정토행자의 하루

마산지회
"내가 해보니 참 좋더라! 한번 해볼래?"

통일특별위원회 소속으로 행복학교1 진행자 소임을 맡고 있는 김영순님. 어렵게 생각했던 행복 전하기를 마음을 담아 가볍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을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깨달음의 장[^각주7] 돕는이 봉사 중 김영순 님
▲ 깨달음의 장[^각주7] 돕는이 봉사 중 김영순 님

행복한 순간들이지만 행복하지 않은

늦은 결혼, 연이은 출산과 육아로 나의 30대는 지나갔습니다. 결혼 전 살던 고향인 서울도, 온 생활을 바쳤던 사회활동도 나의 삶에서 떨어져 나가고, 외할머니의 바라지만 받아서 전혀 할 줄 몰랐던 살림을 살아야 했습니다. 어떤 부모가 될지도 모르면서 겁 없이 아이 셋을 낳아 키웠습니다. 가족을 사랑했지만 나를 사랑할 줄은 몰랐습니다. 매일 분주했지만 살림하는 일은 능숙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돌아보면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2004년 우연한 인연으로 동네 분들과 생명평화 탁발 순례단에 공양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탁발 순례단 평가회에 참여한 방연숙 님을 통해 마산에 있는 정토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불교대학 현수막을 봤다”라는 말에 한 번도 관심 갖지 않았던 불교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쿵쾅거리는 설레임으로 불교대학 입학을 결정했습니다.

김영순 님의 세 아이들 어릴 때
▲ 김영순 님의 세 아이들 어릴 때

사실, 그때 의심 없이 살아왔던 내 삶의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어떤 사람에게 좋아하는 감정이 생겼다는 그 이유만으로 원망이 가득했고, 고통스러워서 무언가 의지처를 찾아 여기저기를 다녔습니다. 남들에게는 그냥 돌부리 하나 정도라는 것을 알았지만, 배부르고 등 따신 행동인 줄도 알았지만, 나는 도무지 제어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혔습니다.

불교가 이런 거였다고?

그럴 때 만난 정토회 불교대학, 내가 찾던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마음의 평정, 수행, 사회적 정의 실현을 위한 활동, 빈곤 퇴치와 환경운동, 통일과 평화 운동 등. 신나서 할 수 있는 정토회의 모든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렇게 점점 활동가로 내 삶의 축이 옮겨지면서 하는 일마다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 만큼 치열했고 전력을 다했습니다. 이전보다 소홀해진 엄마의 자리를 스스로 메워가며 아이들은 자랐고, 아이들과 나는 새로운 관계로 다시 만났습니다. 강하게 군림하던 엄마에서 친구가 되어 믿어주는 엄마로.

그 쯤 하면 다 된 줄 알았습니다. 일을 하면서 어떤 건은 성과가 좋았고, 어떤 건은 같이 하는 사람들과 심한 부딪힘이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했고 잘 해결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일하다 보면 그렇지, 상대가 문제가 있지' 라고 넘기며 내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상대의 잘못만 탓했습니다. 일만 열심히 하면 수행이 되는 줄로 믿었습니다. 수련에도 부지런히 참여했습니다. 도중에 심하게 아팠고, 목숨을 잃을 뻔 한 사고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행복학교 소임을 받았습니다. 홍보를 하고, 장소를 어렵게 구하고, 커다란 모니터를 들고 다니며 한 사람 한 사람 귀하게 만나 행복학교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나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떠밀려서 소임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어진 일은 뭐든 하겠는데, 가만히 있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권하는 홍보 일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행복시민들과 경남도청 방문(왼쪽에서 다섯 번째)
▲ 행복시민들과 경남도청 방문(왼쪽에서 다섯 번째)

그리고 도반, 특히 결정권을 가진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일을 공평하게 잘하지 못한다 생각하면 엄청난 분노와 분별이 일어났습니다. 상황이 달라졌는데 명분도 없이 여전히 심하게 분노를 느끼는 나, 그런 나를 보는 건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바닥을 칠 만큼 가라앉았습니다. 10여 년이 넘는 동안 나는 변한 게 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과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도반, 남편, 친정 가족들...... '아, 난 안되는 갑다.'

그러던 중 <깨달음의 장> 돕는 이로 참석 했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정작 나는 내 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직면하지 않았고 그래서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매달렸던 명상수련도 관점이 문제였습니다. ‘애쓰고 잡으려고 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내 모습이 보이고, 화가 보이고, 안간힘을 쓰면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내가 보였습니다.

분노의 시작은 아버지의 부재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을 방치하고 버렸던 아버지, 그래서 늘 불완전한 삶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나를 불태웠던 분노는 그런 힘 있는 존재의 무책임을 향해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분노의 원인은 남편도, 도반도, 이제는 늙고 나약한 아버지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알지도 못하는 사이 자라서 단단한 업장이 되어버린 분노가 나를 자주 지배했습니다. 그 분노를 녹이려고 나날이 놓는 연습을 계속했습니다. 동시에 자책으로 돌리지 않으려 연습했습니다.

‘넘어지는 모습 그대로가 나인 걸’ ‘애썼다. 수고했다. 괜찮다. 다시 해보자’ 그렇게 나를 토닥였습니다. 다행히 어떤 경우에도 우선시 했던 행복학교 수업 덕분에 참가자들과 함께 차근차근 관점을 점검하고 고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자유로워지고 가벼워지면서 경계는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언니가 멀리 미국에서 오랜 투병 끝에 위독하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급하게 어머니를 모시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우리를 만나고 언니는 눈을 감았습니다. 당황해하는 가족에게 이별의 인사를 하고 형부를 도와 무사히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동생이 심하게 아팠습니다. 창원과 경기도를 오가며 동생을 챙기고 어머니를 챙겼습니다. 어느 날 동생은 어머니와 못 살겠다고 누나네 집으로 모시라고 하더니, 다음날 무너졌습니다. 하루 만에 다시 동생에게 달려갔습니다. 구급차를 부르고, 달려간 응급실에서 연명치료를 거부하며 동생은 새벽에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없었습니다. 다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었고, 아픈 몸을 만져줄 수 있었고, 끝까지 함께 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고 고맙단 생각뿐이었습니다.

고마운 어머니
▲ 고마운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의 모습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언니를 잃은 자리에서도, 동생이 힘들어했던 순간에도, 장례를 치루는 과정에서도, 그 모든 순간에 어머니가 힘든게 먼저였습니다. 어르신들은 다 그렇다고 하지만 어떻게 저러실 수 있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나는 동생 장례를 마치고 폭발했습니다. 마음을 내놓자고 대화를 하다가 결국 싸움이 되었고 어머니를 비난하면서 돌아섰습니다. 형제들의 고통이 어머니 탓이라고 여겼던 밑 마음이 있었습니다.

온라인 명상이 동생의 장례가 끝난 주말에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이 흔쾌히 협조를 해주었습니다. 다만 알아차리면서 평정심을 유지했습니다. 내 옳다는 생각, 사로잡힘, 불같은 분노를 그만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마냥 끌려가다가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오고. 아 그렇구나. 지금 마음이 그렇구나, 다시 호흡으로 다시 호흡으로......

어느 순간 ‘어머니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내가 고집하고 있었구나.’ 알아차렸습니다. ‘어머니가 그러면 왜 안 되는데?’ 어머니에 대한 잣대가 탁 놔졌습니다. 그러고 나니 어머니는 나보다 더 큰 풍파 속에서 홀로 아이들을 키워내셨다는 사실이 비로소 보였습니다. 그동안의 잘난 척하고 지기 싫어하는 모습이, 살아내면서 짓밟힌 자존심 때문이라,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내느라 지치고 늙은 어머니 모습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미워해서 죄송했고, 이렇게 옆에 계셔서 얼머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어떤가? 나는 나를 납득시키지 못하는 리더는 인정하지 않는 업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경계를 만들고 시비심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결국 내가 괴로워졌습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업식이었구나. 그 시작이 무엇이든 스님의 가르침과 명상은 그런 나를 잘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주었구나 알아졌습니다.

죽림정사 봉사 (가운데)
▲ 죽림정사 봉사 (가운데)

봄꽃이 가득한 요즘 덩달아 마음도 환합니다. 뭔가 그동안 엉켜있던 내 삶의 역사들이 비로소 정리된 느낌. 유난히 요동치며 살아온 것 같은 내 삶이 폭풍우 지난 뒤 같이 편안합니다. 물론 또 어느 순간, 안에 있던 뭔가가 경계를 만나 괴로움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넘어지는 건 잘 가고 있는 거다”라는 법륜스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또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것도 압니다. 쉽지는 않지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와 평정심 유지하기는 기적과도 같이 내 삶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눈 어둡고 지옥 같은 순간들을 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했겠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불교대학이나 행복학교 참가자들의 변화를 보면서 ‘난 참 늦는 사람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길을 가고 있어 참 대견하다며 스스로를 토닥토닥합니다. 엉뚱한 길로 가지 않았고 더 늦지 않아 정말 다행입니다.

어머니도, 남편도, 도반들에게도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힘이 되어 준 아이들이 너무 고맙습니다. 어렵게 생각했던 행복 전하기도 이제는 마음을 담아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해보니 참 좋더라. 한 번 해 볼래?” 지금 나는 이런 나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늦은 사람이라 놓치는 일도 있지만, 넘어지면서도 걸어가고 있어 다행이고 고맙다”라고 말하는 김영순님. 도반들과 여유 있게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하지만, 함께여서 고마웠다는 말에 진심어린 감사가 느껴졌습니다. 행복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 그 어디에서나 행복을 전하는 김영순님을 응원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글_정선혜(경남지부 마산지회)
편집_한숙(서초지회)


  1. 행복학교 행복해지고 싶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종교적 의식이나 프로그램을 배제하고, 법륜스님의 행복 메시지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는 연습을 함께 하는 곳.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12강 구성으로 진행되고 있음.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전체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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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행

가슴 뭉클합니다
가까이에 있는 도반이라 더욱더 이해되고
잘 가고 계신다고 말해주고 싶고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자신의 업식을 알기까지 많은 수행의 과정이
필요하고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길 반복해야
함을 알기에 감동이 큰것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도반님~~♡

2021-06-22 12:04:51

박신영

봄꽃처럼 환한 도반님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참 잘하시고 대단하십니다 . 나누기 잘 읽었습니다

2021-05-25 06:16:24

큰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길을 가고 있어 참 대견하다며 스스로를 토닥토닥합니다.
엉뚱한 길로 가지 않았고 더 늦지 않아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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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ㅎ

2021-05-20 21: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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