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소사법당
고마웠던 뗏목, 안녕히 계세요

코로나19 이후로 텅 비어있는 소사 법당에는 가끔씩 선명한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법당을 혼자 오가며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박선영 님의 발소리입니다. 소사 법당 회계 담당, 박선영 님의 노 젓는 뱃사공 같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보겠습니다.

친숙했던 불교

저는 어렸을 때 할머니와 어머니가 늘 절에 다니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수행 측면보다는 기복 신앙에 가까웠지만, 두 사람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부처님을 알게 되고 불교에 친숙해졌습니다. 그래서, 절에 가면 어느 절이든지 상관없이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정기적으로 법회에 참석하거나 불법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불교 공부를 해야지’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다 컸을 때, 인근의 절에 불교대학이 있는 것을 알고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준비가 안 되어 있던 탓인지 도무지 강의를 알아들을 수 없어서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그 무렵 팟캐스트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던 남편의 권유로 저도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람쥐도 그냥 살고 토끼도 그냥 사는데, 사람이 왜 못 사느냐”라는 법륜스님의 말씀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즉문즉설을 계속 들으면서, 사람은 동물보다 잘난 존재이니까 당연히 그냥저냥 살면 안 된다는 저의 생각이 집착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2019경전반 쓰레기분리수거 봉사(오른쪽 첫번째)
▲ 2019경전반 쓰레기분리수거 봉사(오른쪽 첫번째)

정토회와의 인연

그렇게 오래된 관점을 전환하고 집착을 버리는 체험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밤낮으로 시간 날 때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면서 정토 불교대학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대로변에 걸려있는 정토 불교대학 홍보 플래카드를 보고 주저 없이 정토 불교대학 입학을 신청했습니다. 2015년에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이어서 2016년에 경전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불교 대학에 다니면서 얻은 가장 큰 결실은, 화가 나거나 기쁠 때, 들뜨는 제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는 힘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알아차리고 부드럽게 대응하니, 주변의 반응도 부드럽고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경전반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불교대학 담당자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새로 들어오는 불교대학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성장한다고 생각하고 소임에 임하면 된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학생들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담당보다는 부담당 소임을 맡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교대학 담당자가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결국은 제가 담당자가 되었고 1년 동안의 불교대학 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때는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지나고 보니 그 또한 좋은 경험이었고, 무리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다음 해, 2018년에는 경전반 담당자 소임을 권유받았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반, 총 2년 동안 선배들의 도움과 혜택을 받았으니, 저도 2년 동안 봉사하고 회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현재 저에게는 정토회 활동을 함께 하는 불교대학 동기가 없습니다. 거의 모든 입학 동기들이 개인 사정으로 과락했고, 저와 함께 졸업한 유일한 동기는 천주교 신자라서 졸업과 동시에 정토회 활동을 접었습니다. 함께 활동하는 동기가 한 명도 없어서 내심 서운했는데, 담당하는 불교대학과 경전반 학생들을 제 동기라고 생각하니 함께 하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2019경전반 졸업식(앞줄 오른쪽에서 첫번째)
▲ 2019경전반 졸업식(앞줄 오른쪽에서 첫번째)

소사 법당 개원

이듬해에 전법의 원을 담아서 부천 법당에서 소사 법당을 개원하면서, 저는 소사 법당으로 소속을 옮겼습니다. 모든 도반이 소임을 하나씩 맡았는데, 저에게 회계를 담당해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맙소사! 나에게 회계를 하라고?’라는 당황스러움에 그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도 두어 번 더 같은 요청이 들어와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만 조금씩 배우면서 하기로 하고 어렵게 수락했습니다. 회계 소임의 특성상, 아무 때나 제가 시간 날 때 업무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한, 부천 법당 회계담당자의 도움으로 회계 시스템을 배워보니 생각보다 복잡하거나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처음 혼자서 회계업무를 할 때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제가 실수하면 누군가는 그것을 바로잡느라 고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웠고, 돈과 관계된 일이라 더욱 긴장감이 들었습니다. 탄탄한 회계 프로그램 덕분에 입력만 정확하게 하면 금액이 맞지 않을 일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물론,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있고, 때때로 변수가 생겨서 당황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도반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잘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고독한 회계

코로나19 이후로 소사 법당은 늘 비어있습니다. 회계 담당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혼자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좋기도 하지만, 아무도 없는 법당에 혼자 들어갈 때면 무척 쓸쓸합니다. 잠깐씩 볼일 보러 오는 도반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늘 갖고 있지만, 그런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회계 소임을 하러 텅 빈 법당에 가면, 제일 먼저 부처님 앞에 삼배합니다.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소임을 하려고 합니다. 틀리지 않고 잘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잘 모르는 일을 하려니 걱정이 생기고, 간절한 마음이 듭니다. 실수 없이 소임을 마친 후,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속으로 말하며 삼배를 합니다.

회계 소임을 맡은 지 일 년 반쯤 지났고 이제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습니다. 전혀 모르던 일을 해보는 기회를 얻어서 감사하는 마음도 듭니다. 만약 법당에 딱 두 사람만 있어야 한다면, 총무와 회계만 있으면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회계의 소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제가 법당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뿌듯합니다.

소사법당 첫 수행법회 후(가운데)
▲ 소사법당 첫 수행법회 후(가운데)

뗏목과의 작별

처음 소사 법당 불사를 시작할 때, ‘부천 법당에도 사람이 모자라는데 무슨 불사를 한다고 그러지?’라며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소사 법당을 개원하니 집과 가까워서 좋았고, 도반들 덕분에 법당이 잘 운영되어서 좋았습니다. 부천 법당 도반들의 아낌없는 지원과 소사 법당 도반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있어서 오늘까지 소사 법당을 잘 운영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소사 법당 개원 초기에 지원해준 부천 법당 도반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개원 법회를 한 지 서너 달 만에 온라인 체제로 전환되고, 끝내 법당을 철수한다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 정말 서운했습니다.

사실, 돌아보면 저는 단계마다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딴지 놓기에 바빴습니다. 밥 먹을 때는 밥만 먹고 잠잘 때는 잠만 자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불사할 때는 ‘왜 해야 하지?’라는 마음이 들었고, 법당을 철수한다니 ‘하나쯤은 남겨놓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밥 먹으면서 잠잘 생각을 하고, 잘 때는 밥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자신을 알아차리니 부끄러웠습니다.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아닌 줄 알고도 탁 놓아버리지 못하니 수행자라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참회했습니다. 또한, 법당철거가 결정되었을 때, 불사에 그 누구보다 정성과 온 힘을 쏟았던 한 도반이 두말하지 않고 수긍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했습니다.

소사 법당을 개원하고 여러 활동을 하면서 힘도 들었지만, 그만큼 수행자로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소사 법당을 개원한 일원이 아니었다면 겪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들이었습니다. 이제는 험난한 강을 건너게 해준 고마운 뗏목인 소사 법당과 작별할 때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생기면 물러나거나 머물러있기보다 하나씩 해결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겠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음을 평안히 하는 것뿐만 아니라, 강을 건넌 후에 고마웠던 뗏목을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수행임을 알고 힘써 닦겠습니다.

소사법당 성도재일 법회 후(앞줄 왼쪽에서 첫번째)
▲ 소사법당 성도재일 법회 후(앞줄 왼쪽에서 첫번째)


박선영 님은 ‘정토 행자의 하루’의 인터뷰에 응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가장 먼저 ‘나에게 이야깃거리라고 할 것이 있나?’라는 의문이 들었답니다. 자신에게 감동의 요소는 하나도 없어서 인터뷰 대상을 잘못 선정했다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인터뷰하면서 지난 시간을 차근차근히 떠올려보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수행의 관점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비록 더디지만, 주어진 것을 담담하게 감당하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박선영 님의 수행담이 은은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저 또한, 소임을 맡을 때 설레는 마음보다 물러서는 마음이 먼저 듭니다. 시작하기도 전에 걱정을 한 바가지씩 만들어내곤 하지요. 박선영 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걱정보다는 일단 그냥 해보면 다 길이 있다는 것을 되새겼습니다. 강을 건넌 후 뗏목에서 나와서 땅에 두 발을 내딛듯이, 발을 붙잡는 생각을 떨치고 눈앞에 놓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자고 다짐합니다.

글_박난영 희망리포터(부천정토회 소사법당)
편집_성지연(서초정토회 서초법당)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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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도반님의 수행담으로 소임이 복임을 늘 염두에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04-25 05:53:03

향공덕

수행담으로 만나뵈니
참 반갑습니다 박선영보살님 ♡

사진에도 반가운 얼굴들이 보이니
미소가 지어집니다 ^^
수행담 감동입니다

늘 차근차근 꼼꼼히
소임 해가시는 모습에 많이 배웠습니다

함께가는 도반님 감사합니다 ()

2021-04-24 18:14:40

이재선

선영 도반님 반가워요 ~
벌써 몇년이 지났네요 ~ 그때 함께
지냈던 기억을 되살리며 멀리서 응원합니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맡은 일 척척 해내신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함께 가는 도반이 있어 행복합니다

2021-04-23 12: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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