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소사법당
하기 싫은 것도 일단 하고 나면 참 좋더라

한 송이 향기로 공간을 채우는 백합처럼! 청년대학생정토회 곳곳을 채우는 일당백(합)! 소사법당의 향기로운 꽃 허향화(香花) 님의 수행향을 전합니다.

청춘콘서트 스텝으로 봉사하는 허향화님
▲ 청춘콘서트 스텝으로 봉사하는 허향화님

고향을 벗어났지만 다시 혼자가 되어

저는 중국 연길에서 태어난 조선족입니다. 고3때 내 키만큼 큰 배낭을 메고 베이징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습니다. 워낙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고, 수도에 대한 동경, 작은 고향 땅을 벗어나고픈 마음이 커 무작정 먼 길을 떠났습니다. 수업시간에만 사용되던 중국어는 고향 땅을 벗어나니 자는 시간 빼고 모두 필요한 일상 언어가 되었습니다. 수도는 유동인구가 어마어마해서 알아듣기 힘든 방언이 많아 소통도 힘들고 상식의 차이도 너무 커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혼자서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은 점점 바닥이 났고, 치열한 경쟁을 버티기 힘들었던 친한 대학동기들은 너도나도 살길을 찾아 자기 고향으로, 제2, 제3의 도시로 떠났습니다. 또 다시 혼자라는 외로움 속에서 위안이 되어 준 것은 절을 찾아 향 피우고, 꽃등 올리고, 부처님 상 앞에서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서유기(西遊記) 드라마를 좋아해서인지 불교가 친숙했던 저는 절 문화가 발달한 베이징의 절과 절에서 피우는 향냄새에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중국에서 직장생활 중 전시회 부스운영 중인 향화님
▲ 중국에서 직장생활 중 전시회 부스운영 중인 향화님

타지생활 중 불법을 만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장님의 소개로 티베트 스님들과 인연이 닿아 불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같은 지역에 사는 불자들과 같이 켄포 소달지(Khenpo Sodargye)스님의 중국어 법문을 들으며 불교 교리 및 경전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불교 교리에 대해 배우면서 기복 불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경전에 새로운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공부하면서 외롭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어 장벽으로 인한 이해 부족으로 공부를 하면서도 불법을 좀 더 잘 알고 싶다는 갈증은 남아 있었습니다.

입재식 때 청년정토회 부스 스텝 봉사
▲ 입재식 때 청년정토회 부스 스텝 봉사

또 다른 문화 정토불교대학

건강상의 문제로 중국에서 다니던 직장도 퇴사하고 한국에 요양 차 와있었습니다. 그러다 SNS에서 봄 정토불교대학 입학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번 기회에 대학교에서 제대로 된 불교 공부를 해보자! 중국어 번역본 법문의 아쉬움을 채울 수 있을거야.' 란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노원법당 2014년도 봄 불교대학에 입학 신청을 했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과 달리 첫 수업을 위해 간 곳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생각했던 대학 강당이 아니라 가정식 법당 분위기에, 회사 일로 참석하지 못한 오리엔테이션에서 이미 서로 끈끈해진 도반들을 보니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고 혼자 외톨이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아직 한국 물정도 잘 모르던 때였고, 일반 대학교와 같이 생각한 불교대학이 정식 대학교가 아니라는 말에 실망했습니다. 게다가 나만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까지 잡고 나누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떨려서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나누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불법의 이치를 쉬운 언어로 깊이 있게 알려주는 스승님의 법문과 다양한 봉사를 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커서 불교대학 공부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새터민나들이
▲ 새터민나들이

기억에 남는 봉사 그리고 ‘여기 놀러 왔냐’

2014년도에는 봉사활동 40시간을 채워야 불교대학 졸업이 가능했고 한 가지 소임에서 10시간 이상은 인정이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학사수업 봉사 외에 온갖 봉사를 다녔습니다. 법륜스님 유튜브 즉문즉설 영상편집과 업데이트, 청년 행사스텝, 문경바라지, 서초법당 수요법회 공양간 봉사 등 힘들긴 했지만 재미있게 하였습니다. 공양간 봉사는 어렵지만 엄마와의 관계가 어색했던 저한테는 보살님들과 친해지는 시간이었고 요리도 배울 수 있었던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봉사입니다. 이런저런 많은 현장 봉사로 보람은 느꼈지만 무교인 가족들로 부터 '너종교에 너무 빠진 거 아니냐’ ‘여기 돈 벌러 왔지 놀러 왔냐’ 라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되고 저 또한 의식적으로 경계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가끔 행사 참가할 때 스텝이나 담당자 분들의 지친 얼굴을 볼 때면 ‘나는 한 발만 담그고 쏙 빠져야지’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땐 수행처로 봉사를 삼기보다 함께 일하는 즐거움, 도움을 드렸다는 뿌듯함이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동북아역사기행 공양스텝 봉사 중인 허향화님
▲ 동북아역사기행 공양스텝 봉사 중인 허향화님

소임과 함께 동서남북으로! 온라인으로!

2015년 경전반때는 적을 서초법당으로 옮기고 봉사를 이어가던 중, 기획 홍보팀에서 단신뉴스 담당 소임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기획 홍보팀은, 청년대학생정토회의 중앙 부서였는데, 특별 부서에 대한 궁금증과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제안을 수락을 했습니다. 2015년 2월, 청년국 기획홍보팀의 단신뉴스(https://cafe.naver.com/hopeyouth2030)를 시작으로, 동북아/경주역사기행, 입재식 청년부스, 청춘콘서트 스텝으로 활동했습니다. 9-9차에는 청년대학생정토회 사회활동팀장을 맡으며 애광원 나들이 봉사도 하고, 철원/임진각 DMZ역사기행을 기획하고 광주5.18 역사기행, 봄불교대학 특강수련, 동북아역사기행 등 대외적인 청년부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9-10차에 들어와 청년대학생정토회 행사팀장으로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중앙활동가연수 및 전 세계 청년 21일 수행챌린지를 진행하였습니다. 현재 부천정토회 청년담당 소임과 온라인 SNS채널팀을 담당하며, SNS 관리와 홍보를 맡고 있습니다. SNS채널팀에서는 팀원들과 함께 군 전법, 온라인우체부(전국 청년 소식을 전하는 우체부), 청꽃(청정이들의 책꽂이)등에 힘쓰고 있습니다.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활동가연수(두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활동가연수(두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거절 못하는 업식! 내 생활은 어디에?

여러 행사를 진행하다보면 예기치 못한 변수와 어려움이 많이 생깁니다. 그 중,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거절을 못하는 저의 업식이었습니다. 학생 때는 봉사시간도 필요했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소임을 많이 했던 것 같고, 9차 때는 하기 싫다 받기 싫다 하면서도 건네는 소임을 받았습니다. 하도 싫은 티를 팍팍 내고 소임을 받아서 어차피 할 건데 그냥 흔쾌히 받으면 안 되냐는 문제 제기도 받았습니다. 거절을 확실하게 못하니 일은 계속 주어지고, 소임이 한꺼번에 몰려 스트레스 받을 때면,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건가?’ ‘내 생활은 어디에?’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봉사를 통해 수행하고 나를 돌아보기보다 주어진 일을 마무리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낮에 출근하고 밤이나 주말에 소임을 하니 피로도가 계속 쌓이기만 하고 소임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발 담그고 있었던 것은 몸은 힘들지만 사람과 부대끼는 그 느낌이 내가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어 좋았습니다. 그러나 소임이 내 생각보다 성과가 안 났을 때 다시 괴로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생동감과 스트레스의 윤회를 돌고 돌던 어느 날, 역사기행 물품담당으로 이것저것 준비하던 중, 크게 몸살을 앓아 역사기행 당일에 급작스레 불참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혼자서 끙끙거리며 제대로 안 챙겨지면 어쩌나 불안해하고 있는데, 저 없이도 잘 돌아가는 것을 보고, 그제야 소임이 아니라 내 마음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봄불교대학 첫 경주역사기행
▲ 봄불교대학 첫 경주역사기행

거절도 편하게! 못해도 괜찮아!

지금도 여전히 소임을 딱 받았을 때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옵니다. 이제는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노하우를 살려서, 소임이 주어지면 혼자서 다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팀원과 나눠서 일을 진행하는 방법을 생각해보거나 못 하겠다고 얘기도 해봅니다, 가끔은 제가 일을 진행하기 편한 쪽으로 개선사항과 수정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거절하는 마음도 전보다는 많이 편해졌습니다. 예전엔 잘하려고 애쓰고, 안 되면 중도포기하고 자책했었는데, 이제는 못해도 괜찮으니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오래 붙어 있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합니다.

청춘콘서트 스텝 봉사
▲ 청춘콘서트 스텝 봉사

도반들과 만들어 가는 모자이크붓다

정일사 정진과 나누기 수련 등, 중간점검의 시간들은 관점을 바로 잡는 길잡이가 돼주었습니다. 함께 활동하는 도반들과 허심탄회하게 마음나누기를 하다보면 묵혔던 감정도 풀리고, 죽마고우보다도 깊은 신뢰와 우정이 쌓이는 것을 느낍니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소임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하는 도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업식대로 이런저런 일들을 다 받아 판을 벌려놓으면, 도반들이 수습을 잘 해주어 너무나 고맙습니다. 도반과 함께 만들어 가는 모자이크 붓다임을 매번 실감하고 있습니다.

경주역사기행 스텝 봉사 중인 허향화님
▲ 경주역사기행 스텝 봉사 중인 허향화님

돌이키고 그냥 해 봅니다

정토회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을 거울삼아 저를 다시 볼 수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마음이 단련되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부정적인 성향이 강하고, 지나간 일을 계속 후회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마음 없이 얼굴로만 웃을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마음이 많이 편해지고 밝아진 것을 느낍니다. 정토회 활동 7년을 돌아보며 가장 큰 매력을 꼽자면, ‘하기 싫은 것도 일단 하고 나면 참 좋더라’ 입니다. 아직도 소임에 분별심이 올라오지만, 나에게 좋을 것임을 너무 잘 알기에, 얼른 돌이키고 그냥 해봅니다. 낯가림이 심했던 제가 전국적으로 활동을 하고, 소임 한두 개쯤은 가볍게 받는 모습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나를 느낍니다.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큰 사람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앞으로 2차 만일을 이끌어 갈 청년들을 많이 챙겨주세요!
청년대학생정토회 인스타그램 링크 (https://www.instagram.com/jungtoyouth)
혹은 인스타그램에 '청년대학생정토회' '@jungtoyouth'

입재식에서 청년부스 봉사 중인 향화님
▲ 입재식에서 청년부스 봉사 중인 향화님


허향화님 하면 자연스럽고 밝은 미소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인터뷰를 통해 다시 알게 되면서, 저 멀리서부터 묵묵히 걸어온 발걸음이, 지금의 환한 미소가, 귀하고 고맙게 느껴집니다. 향화님이 좋아하는 백합꽃처럼, 청년 전법의 향기가 널리 퍼지길 바랍니다. 청년대학생정토회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글_박난영(희망리포터)
편집_이정선(진주법당)

전체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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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불

허향화님을 보면서 저를 돌이켜 보게 되네요. 첨엔 저도 거절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다 받아들고 하다가 번아웃 되어 나가 떨어졌습니다. 그리곤 이젠 나름(?) 영리하게 한다고 발만 살짝 담고 있는데 찔리는 마음입니다. 허향화님처럼 거절도 해보고, 받아서 개선도 하고, 또 능력껏 하면서 도반들과 나누는 힘을 길러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고맙습니다.

2020-12-30 08:57:28

박인순

향화 법우님. 반갑습니다. 도반님의 수행나누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2020-12-08 11:55:55

기영

향화법우님 나누기 반갑고 감사해요 놓치고 있던 관점 다시 잡을 수 있는 나누기 감사해요~코로나라 못 만난지 오래돼서 더욱 반갑네요

2020-12-03 00: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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