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송현법당
다만 정성을 다할 뿐

우리는 마음에 걸림돌이 생겨 부딪치고 넘어질 때면 '여기 돌이 왜 있는 거야, 아프다, 괴롭다' 하며 돌을 탓하고 내 괴로움만 바라봅니다. 여기, 경계에 부딪치는 삶을 기꺼이 걸어가겠다고 다짐하는 수행자가 있습니다. 오늘의 수행담은 봉사를 하며 결과를 여여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송현법당의 나영희 님과 함께 합니다.

얽힌 실타래 같은 삶

결혼 후 신혼의 달콤함도 잠시, 남편은 갈 길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뭘 해야하지 고민하며 방황하는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딱 사춘기 아이 마냥 방황하고 있는 남편이 철없어 보였고 한 가정의 가장이 이러면 되느냐며 비판의 잣대만 들이대었습니다. 친구로 만나 서로 잘 이해하며 평생을 살아갈 수 있겠다 싶어 결혼했는데 어느 순간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 헤아릴줄 모르고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며 평가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돌아누운 남편의 등이 얼마나 멀고 높은지 이런 내 삶이 너무도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가 이렇게 갈등을 하고 있는 중에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시부모님과의 갈등까지 더해졌습니다. 제 삶은 더욱 더 얽힌 실타래 같았고 저는 깜깜한 동굴 속을 헤메는 듯 했습니다.

그러던 중 큰 아이에게 불안 증세와 야뇨증이 찾아왔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며 상담을 받으니 아이의 불안증은 다른 가족이나 환경은 상관없고 엄마가 안정적이면 괜찮아진다고 했습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고있는 동안 아이가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을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친정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기 시작했고 절하는 법을 배워 108배를 시작했습니다.

마음 속에 불안이 올라올 때 절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틈만 나면 절을 하고 불경을 사경하니 마음도 많이 편안해지고 안정감을 찾게 되었습니다. 깜깜한 동굴 속에서 빛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이 답답한 마음이 들 때에 108배를 하면 숨통이 트이는 듯 했지만,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할지 삶의 방향을 잡을 수가 없어 막막했습니다. 그저 선지식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선지식으로 만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친구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녹음된 파일을 보내주어 듣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얼마나 후련하고 명쾌한지 그때부터 매일 출근해서 즉문즉설을 몇 개씩 듣고, 정토회에서 하는 기도법을 배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은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귀에 '이만하길 다행이고 다만 감사하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고 눈앞에 어둠이 사라지고 환하고 밝은 대로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느낌은 얽혔던 실타래가 매듭 하나로 확 풀어진 듯 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나영희 님
▲ 오늘의 주인공 나영희 님

제 마음이 편해지고 안정되니, 남편의 말이 있는 그대로 들리고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춘기 시절, 부모님의 잦은 싸움과 이혼, 재결합 등으로 힘든 시절을 보낸 남편의 상처를 제가 안아줄 힘이 생겼습니다. 하루에 서너시간씩 남편과 대화하며 그의 마음을 받아주고 공감하는 날들이 늘어가니 어느새 남편도 편안해 졌습니다. 우리는 결혼 전 가장 잘 통하던 친구사이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남편은 다시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자격증 준비를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기도 하고 함께 공부하러 도서관에 다닌 덕분에 자연스럽게 아이들과의 관계도 좋아졌고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찾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찾아가는 느낌이였습니다.

원래 짐이라 할 것도 없다

당시 힘들었던 시아버지의 간병도 생각보다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사는 게 신나고 재미나기 시작했습니다. 방황하던 남편은 어느 새 자상하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책임감 있는 가장이 되어 있었고 아이들도 나무랄데 없이 자라주었으며, 내 집도 갖게 되면서 남들 부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병상에 있던 시아버지는 꿈에 나타나 제 손을 잡고 고맙다고 인사하셨고 그런 뒤 거짓말처럼 이틀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제 삶의 무거운 짐들이 다 내려지니 원래 짐이고 말고 할 것이 없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살게 해 준 부처님 법이 너무 고맙고 그 법을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안정되니 내 속에서 다시 의문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내 어깨의 짐은 가벼워졌고 나는 건강하고 행복한데 그럼 이게 다인가? 나는 또 어디로 가야하는 건가? 별탈없이 산다는 것, 남들처럼 사는 게 다인가? 이것이 행복이라면 산다는 게 뭐 대단한 건가? 이런 의문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는 마음 속에서 명쾌하게 내려놔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제서야 정토회를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50살이 되는 나에게 내가 주는 선물로 정토회를 가야겠다, 내가 힘들 때 이 좋은 법을 만나게 도움주신 분들께 보답하는 마음으로 조그마한 일이라도 도와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서 정 할게 없으면 계단이라도 쓸고 법당 바닥이라도 닦아야겠다는 결심으로 법당을 찾았습니다.

jts 거리모금모습 (빨간 코트 아이 뒤편이 주인공)
▲ jts 거리모금모습 (빨간 코트 아이 뒤편이 주인공)

그렇게 찾은 정토 불교대학에서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불교 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그토록 찾던 삶의 방향을 찾은 느낌이였습니다. 부처님 법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같은 뜻으로 모인 도반들이 있다는 것도 신이 났습니다. 불교대학, 경전 대학을 다니는 동안 봉사는 주어지는 대로 흥이 나서 했습니다. 그 때는 꿈길을 다니는 마냥 발이 붕 떠서 법당을 다녔습니다.

내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집착

마냥 즐겁기만 하던 법당 생활에,불대 담당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괴로움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아무리 정성을 들이고 애를 써도 불교 대학 입학생들이 한 명, 두 명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괴로움에 법당에 나가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절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건가 고민하기도 하고 새벽 기도에 온 선배 도반을 붙잡고 애타는 내 심정을 이야기하면서 펑펑 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조금 정성을 들였다고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내 마음이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이 마음을 보고 나니 20년 넘게 키운 내 아이들에게도 제가 얼마나 집착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좋은 엄마인 척하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집착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마음을 불교대학 담당하면서 확연히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마음을 깨닫고 난 뒤부터는 학생들에게 정성을 다할 뿐, 그 결과에는 여여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내가 잘한 게 아니다

불교 대학 담당하면서 학생들이 다 떨어져도 내 마음에서 '정말 할 만한 일이였구나' 수긍 할 수 있다면 성공한 거라 한 도움말씀을 현실로 겪고 나니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불교대학 담당이 큰 복이고 공부거리인지 알게되어, 법당 총무에게 괜찮다면 한 번 더 담당을 맡겨달라고 말했습니다. 여전히 잘 하지는 못했지만 정성들이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은 많이 되었습니다.

조금씩 소임의 무게가 늘어나서 9차년도에 지원팀장까지는 신나고 재미나게 하였습니다. 9차년도가 끝나고 회향 기간에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잘한 게 아니라 제 앞에 있던 법당 총무도반이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어 제가 잘하는 것처럼 보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오시는 날 욕불의식
▲ 부처님 오시는 날 욕불의식

나를 성장시키는 소임

법당 총무가 바뀌고 지원팀장을 하면서 매일 매일이 힘듬의 연속이었습니다. 소임도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았는데, 10차년도부터 온라인체제로 변화하면서 몸과 마음이 너무 힘겨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새로운 법당 총무님에게 내 마음이 잘 숙여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걸림이었습니다. 정말 소임을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행복하자고 하는 일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았고, 정토회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줄까 봐 가족들에게 이런 저의 모습을 내색하지도 못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자만과 교만이 가득한 제가 보였습니다. 인정하기 싫은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새벽 기도를 마친 후 가슴이 답답하여 앞산 정상을 올랐습니다. 이 변화에 적응을 해야하고 '예'하고 하는 사람이 될텐데, 어차피 할 거 지금 해버리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결심처럼 선뜻 마음이 내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바꾸니 상대나 상황을 조금 너그럽게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마음이 힘들수록 수행은 더 잘 되었고 주말마다 스님과 명상을 하면서 지금에 깨어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스님에게 화상 질문하는 모습
▲ 스님에게 화상 질문하는 모습

소임을 통해 몇 번의 고비를 넘어서면서 어렵고 힘든 것은 싫지만 그 힘듦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원팀장을 하던 중 법당 총무소임을 하라는 제안이 왔을 때 몇 번이나 거절을 했지만 결국 받아들이게 된 것도 이런 성장의 경험 때문이였습니다. 부족한 능력으로 소임을 하면서 넘어지고 징징거리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많은 사람들의 도움 속에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소임이 더 큰 은혜로 내게 돌아옴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꺼이 경계에 부딪치는 수행자

봉사로 받은 은혜를 갚으려 했는데 오히려 빚은 늘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온라인 정토회가 되니 개인 법당에서 법의 비를 매일 받을 수 있고 주말에는 매주 스님과 함께 기도와 명상을 할 수 있으니 복이 쏟아졌습니다.

올해는 해외지부 불교대학 진행자로 봉사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 또한 복인 듯 하여 그저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새로운 소임이 오면 경계에 넘어지고 힘들다고 하겠지만 하기로 한 것은 기꺼이 해나가겠습니다. 넘어지기 싫고 편안한 것만 찾고 싶은 중생 마음이 늘 일어나지만 수행자는 기꺼이 경계에 부딪쳐서 넘어가야함을 알기에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입니다. 오늘도 새벽 공기를 맞으며 기도를 합니다.


나영희 님은 법당에 네비게이션같은 분입니다. 갈 길을 정확하고 명확하게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처럼 슬기로운 법당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반들에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제시해줍니다. 앞으로도 온라인 시대로 변화하는 흐름에 맞춰 도반들과 함께 걸어갈 방향을 잘 일러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_윤정인(달서정토회 송현법당)
편집_김난희(온라인홍보팀)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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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여

보살님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 삶이 가벼워진 모습을 보니
너무 좋습니다

2021-04-27 12:59:36

김근아

보살님~ 보살님 마음이 오롯이 느껴지네요^^

2021-04-22 22:25:22

나영희

진정한 수행자이십니다~
많이 배웁니다~

2021-04-22 22: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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