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송현법당
당신이 나보다 더 낫네!

대구 송현법당에는 잘 물든 가을 단풍 같은 분이 있습니다. 법당 어른이자 선배 수행자로서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며 후배 도반들에게 귀감이 되는 김영해 님입니다.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김영해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스님 법회 때 꽃다발을  전달하기 전 김영해 님
▲ 스님 법회 때 꽃다발을 전달하기 전 김영해 님

인연

결혼하고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즈음 저는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마다 여기저기 좋은 법문을 들으러 찾아다녔습니다. 결혼 생활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시집과 친정의 문화 차이가 커서 누구를 만나든 저도 모르게 시집 식구들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 넉넉한 친정에서 꽃병처럼 자란 제가 시집에서는 질그릇처럼 쓰이는 것 같았습니다. 장남과 결혼해서 시동생들 교육과 혼사에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 아이 반에 친하게 지내는 학부모가 황금동에서 법륜스님이 직접 금강경 강의를 한다며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때가 대구법당이 생기기도 전입니다. 하지만 그곳까지 가서 강의를 들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대구법당이 생기고 스님이 오신다고 하면 가서 가끔 법문만 듣다가 2006년 천일결사 제5-7차 입재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입재자 인원이 많지 않았고 장소도 지금처럼 큰 체육관이 아닌 문경법당 옆 작은 방에서 스물 너덧 명 남짓한 인원이 모여 입재식을 하였습니다.

법문, 그 신선한 충격

스님 법문은 다른 법문들과 달리 굉장히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과학적이고 이치에 딱 떨어지는 말씀에 매번 정 맞은 돌이 깨어지듯 내 무지함이 탁 깨우쳐지는 느낌이어서 저는 스님의 법문을 좋아했습니다. 입재식 이후로 스님이 대구법당으로 법문하러 오시면 놓치지 않고 갔습니다. 그때는 지역마다 법당이 있어 정기적으로 수행법회를 들을 수 있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스님 법문을 들으려면 입재식에 참가하는 수밖에 없었고 입재식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참여하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금은 스님 법문을 유튜브나 영상으로 쉽게 들을 수 있지만, 그때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널리 퍼지지 않은 때라 법문을 듣기 위해 카세트테이프를 정기 구매하여 들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개씩 법문이 담긴 테이프가 오는데 그 테이프를 받으면 차 안에서 늘어질 때까지 들었습니다.

평화대회에서 오른쪽 김영해 님
▲ 평화대회에서 오른쪽 김영해 님

<깨달음의 장>, 오히려 내가 시집에 불편한 존재임을 깨닫다

그러다 제가 사는 동네에 송현법당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법당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에 다니기 전에 저는 이미 다른 곳에서 개설한 불교대학 과정을 들은 적이 있어 불교대학을 개설한다고 해도 입학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인도 성지 순례가 너무 가고 싶어졌습니다. 친한 친구와 함께 환갑이 되는 해에 인도 성지 순례를 하러 가기로 약속을 하고 3년 동안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단 인도 성지 순례를 가려면 인도와 부처님의 삶에 대한 기본 지식은 배워야 할 것 같아 2012년도에 불교대학을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바로 3월에 <깨달음의 장>을 갔습니다. 남들 보기에는 평탄한 결혼 생활이지만 제 마음속에는 요동치는 부분이 참 많았습니다. 시집 문제로 인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깨달음의 장>에서 오히려 제가 얼마나 시집 식구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존재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만 생각하던 이기적인 인간에서 주변을 돌아보고 아량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에서
▲ 인도 성지 순례에서

꿈에 그리던 인도 성지 순례

그 다음 해인 2013년에 계획대로 인도 성지 순례를 스님과 함께 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60세였는데 주변에서는 다들 '힘들지 않겠냐'고 걱정을 했지만 저는 힘들기는커녕 너무 좋아서 꿈을 꾸는 듯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스님과 함께 경전을 읽고 명상을 하면서 이제껏 제가 해오던 불교 공부가 꽃을 피우는 듯 가슴 가득 충만했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 후 스님의 경전 법문도 듣고 싶어져 경전반에 입학하였고 2014년 졸업한 뒤 지금까지 법당을 다니고 있습니다.

한 생각 돌이켜 법당 지킴이가 되기까지

소임이라고 특별하게 한 것은 없지만 7대 행사 때 차 바라지며 공양 바라지, 어린이날이나 연말 JTS 행사에 봉사하는 등 법당에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여하였습니다. 9-1차 천일결사 때는 모둠장도 처음으로 해보았습니다. 법당 총무의 부탁으로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선배로서 해야 할 몫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흔쾌히 받았습니다. 200일 동안 후배 도반들이 잘 따라 주어 즐겁게 모둠 활동도 했습니다.

주인공이 공양 준비하는 모습
▲ 주인공이 공양 준비하는 모습

몇 년 전부터는 법당 공양을 책임지는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공양 밴드를 만들어 순번을 정하고 운영하는 소임입니다.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아이를 낳고부터 그만두고, 오랜 세월 주부로 살아왔습니다. 그렇다 보니 한두 가지 반찬을 준비하는 것은 크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소임은 내가 가볍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공양 밴드를 만들어 순번을 정해두면 계획대로 되어야 하는데 그 주 당번인 도반이 가타부타 답도 없고 해오기로 한 반찬을 해 오지 않을 때는 굉장히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순간 돌이켜 ‘반찬을 안 해 오면, 있는 반찬 가지고 소박하게 먹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공양 담당이라고 도반에게 이렇게 분별 낼 일도 도반에게 지도하고 지시할 일도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올라오던 분별심도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녹는 듯했습니다.

불교대학 홍보활동 중
▲ 불교대학 홍보활동 중

이 소임을 하면서 자부심도 생겼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먹으면서 정도 나고 힘도 생깁니다. 먹는 것을 담당하는 소임이야말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법당 다니는 것도 즐겁고 뿌듯했습니다. 불교대학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보수법사님과 간담회를 했습니다. 그때 보수법사님이 법명 풀이를 해주면서 저에게 그냥 법당에만 나와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법사님 말씀처럼 꾸준히 법당에 나와서 지키고 있는 것이 제 가장 큰 소임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지금은 법당이 집만큼이나 편안하고 좋습니다.

유연하고 검소하게

13년 전 처음 입재식에 참여할 때 스님이 만일결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 내 생각에 ‘13년 뒤면 내가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될 텐데 과연 만일결사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너무 먼 이야기 같고 현실감 없는 이야기처럼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제 3년만 지나면 만일결사가 됩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듯 그동안 저도 서서히 변했습니다. 매사 사고가 경직되어 있고 정형화된 성격이라 내 틀에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싫은 것을 받아들이려 하니 늘 불평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 자신을 돌아보면 예전보다 많이 유연해진 것을 스스로 느낍니다.

아들이 작년에 결혼을 했는데 예물도 예단도 모두 생략하고 스님의 가르침대로 소박하고 검소하게 그야말로 작은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이런 저의 결정에 주변 친인척은 물론 남편도 내심 섭섭해했지만, 지금은 우리의 선택이 참으로 현명했음을 느낍니다. 얼마 전 남편이 저에게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아서 당신도 본성은 바뀐 것 같지 않지만, 수행은 좀 되어 가는 것 같아. 당신이 나보다 인격적으로 더 나은 것 같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래요? 그러면 다행이네요!”라고 남편에게 가볍게 얘기했지만, 남편이 저를 인정해 준 듯하여 마음속으로는 무척 좋았습니다.

어린이날 JTS 거리모금, 왼쪽 김영해 님
▲ 어린이날 JTS 거리모금, 왼쪽 김영해 님

정토회와 스님을 만나 이렇게 마음공부 하는 것이 제 인생에 가장 큰 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조금 더 젊었을 때 조금 더 일찍 정토회를 만났다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도 듭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좀 더 젊을 때 스님을 만나 하루라도 더 빨리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_윤정인 희망리포터(대구정토회 송현법당)
편집_강현아 (대구경북지부)

전체댓글 9

0/200

필라

묵묵히 서있는 산 같으신 분이네요. 감사합니다.

2019-12-06 20:30:31

무애승

잔잔하지만 큰 감동이 있는 도반님의 나누기가 또 다른 법문이에요

2019-11-29 22:13:24

무애승

잔잔하지만 큰 감동이 있는 도반님의 나누기가 또 다른 법문이에요

2019-11-29 22: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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