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청주법당
기도의 정성으로 찾아온 봄날

자그마한 체구지만 누구보다 당당하게 수행자의 길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는 주인공. 오랜 기간 청주법당 저녁반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심태숙 님의 뜨거운 수행담을 지금 전해드립니다.

필리핀 알라원마을에서
▲ 필리핀 알라원마을에서

책임감으로 버티던 시간

저는 남존여비의 유교 문화가 뿌리 깊은 가난한 시골에서 2남 6녀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아들을 하나 더 낳으려는 바람으로 저를 낳으셨습니다. 다툼이 많았던 부모님의 관심은 언제나 아들들에게 있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어머니를 불쌍하게 느꼈고, 어린 시절부터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저는 가족이나 누군가가 무엇을 요구하면 힘들더라도 들어주는 것이 옳은 일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쯔쯔가무시병으로, 아버지가 뇌경색과 위암으로,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마다 저는 당연히 저의 일이라 생각하며 가족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도리어 저를 탓하니 억울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남 눈치를 보느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제대로 제 권리를 주장하지도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정토회에서 찾은 희망의 씨앗

20대 말에 교통사고를 경험한 후, 삶이 어느 한순간 없어져 버릴 허망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시‘법구경’에서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깨어있으면 괴로울 일이 없다’라는 대목을 읽고 마음이 환해져서, 부처님의 경전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어느 책에서 ‘현재 수행단체에서 청정한 곳이 정토회다’라는 글을 보고, 정토회와 법륜 스님에 대해 처음 알았습니다.

천일결사 입재식 안내 봉사 (맨왼쪽 심태숙 님)
▲ 천일결사 입재식 안내 봉사 (맨왼쪽 심태숙 님)

당시 원주 치악산에 있는 사찰에서 처음으로 법륜 스님 법문을 들었는데, 기존의 불교 강의와는 달리 우리의 삶과 연관 지어 쉽게 설명해주셔서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후 정토회 홈페이지에서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혼자서 공부를 했습니다. 법륜 스님의 저서 ‘실천적 불교사상’에서 자리이타의 삶의 방식을 처음 접하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법륜 스님의 책을 읽고 '내가 먼저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행복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그 말씀이 저에게는 희망의 씨앗 같았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 인연이 아니었던지 정토회와 인연을 더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의 경험을 발판으로

그러다 30대에 부모님이 소개한 남편을 만났고 친구처럼 살면 되겠다 싶어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 전 그렇게 싫었던 병원 보호자 침상 생활을 결혼 후에도 계속해야 했습니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차례로 병원에 입원하였고 그 뒷바라지는 제 몫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손녀가 태어나서 집안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며 제 탓을 하였습니다. 당장 이혼하고 싶었으나,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와 아빠가 재밌게 노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딸아이를 보며 쉽게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깨달음의 장>에 갔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온 세상이 다 제 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제 인생의 가장 큰 원수였던 남편이 진리의 길을 볼 수 있게 해준 보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음이 한 달을 가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기도하다 남편의 말과 행동이 떠올라 화가 나서 염주를 집어 던진 적도 있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은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남편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법사님에게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경험했던 자유롭고 편안했던 마음을 떠올리며, 제 삶의 자유를 위해 이 벽을 넘어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필리핀 의료보상에서 아이들과 함께
▲ 필리핀 의료보상에서 아이들과 함께

꾸준한 기도가 준 평안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6-7차 천일결사에 처음 입재했습니다. 수많은 대중과 함께 예불하니 마음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돌고 돌아 이제야 제가 머물러야 할 안식처에 도착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혼자가 아니라 이 많은 사람과 함께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게으른 업식으로 점점 기도를 빼먹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마침 청주법당 이숙기 님의 권유로 법당에서 새벽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법당에서 기도하니 힘들었던 일상을 내려놓고 오로지 저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상처받고 외로워하는 저를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을 받고 난 다음 날 출혈이 멈추지 않아도, 기관지가 부어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도, 눈 내리는 추운 겨울날 산후풍으로 온몸이 시려 와도 매일 새벽 법당을 찾았습니다. 당시는 새벽기도를 하지 않으면 제 안에 있는 증오, 원망, 분노가 저를 삼킬 것 같았습니다.

행복한 워크숍 도반들과 함께 뒷줄 왼쪽 첫번째
▲ 행복한 워크숍 도반들과 함께 뒷줄 왼쪽 첫번째

그렇게 기도가 천일, 이천일, 삼천일을 지나가면서 불타오르던 감정들은 천천히 줄어들고 감사함과 평안함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괴로움이 제 업식으로 인해 생겨난 것임도 알았습니다.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은 업식으로 쉽게 거절을 못 하였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도 듣기 싫어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다그치기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환상 속의 제가 되기 위해 힘들어하는 현실의 저를 외면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수 있게 되니 세상의 모든 인연이 고마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미워하고 원망했던 부모님께 키워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함이 올라왔습니다. 이 불같은 성질을 옆에서 묵묵히 받아준 남편은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직장과 정토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서도 잘 자라준 딸에게는 고맙고도 미안했습니다. 법당에서의 새벽기도는 제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버팀목이었고, 우리 가정을 보호하는 울타리였습니다.

나를 세워 준 법륜 스님과 법사님의 가르침

기원정사에서 스님과 함께
▲ 기원정사에서 스님과 함께

수행하며 넘어질 때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법륜 스님의 법문과 정일사에서의 법사님들의 가르침 덕분에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정일사에서 법사님이 해준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적어놓았다가 마음이 힘들어질 때면 다시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던 말씀이 몇 년이 지나서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법륜 스님과 법사님들의 가르침을 통해 ‘내가 나를 보지 않고 또 남 탓을 해서 문제를 엉키게 했구나, 내가 또 나를 괴롭히고 있구나, 욕심에 빠져 수행에서 벗어나고 있었구나.’라고 깨달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인도 성지순례 갔을 때도 피곤하고 지친 몸일 텐데도 기차역에서 무거운 공용 짐을 제일 먼저 등에 지고 앞서가시던 법륜 스님과 법사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힘든 일정 속에서도 저희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하시고, 수자타 아카데미의 아이들에게는 시골 할아버지처럼 해맑게 대하는 법륜 스님의 모습을 보며 존경심이 일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한 성장

희망세상만들기 거리캠페인에서 (왼쪽 심태숙 님)
▲ 희망세상만들기 거리캠페인에서 (왼쪽 심태숙 님)

9차 천일결사 때는 지원팀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업무를 지원하는 지원팀장이 되지 말고, 사람을 지원하는 지원팀장이 되자.’라고 새기며 일했습니다. 저는 평소 혼자 일을 해나가는 스타일이었으나,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는 도반과의 화합이 중요했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서로의 입장과 견해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며 함께 일하는 과정이 재미있었습니다.

지원팀장을 하면서 가장 중점에 두었던 사업은 정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법당 새벽기도 참가자를 모으고, 월 500배 정진, 연말 3000배 정진을 진행해 나아갔습니다. 도반들이 함께하는 정진을 통해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책임 있는 활동가로 성장하는 모습에 감동하고 또 많이 배웠습니다. 함께하는 도반이 또 다른 스승임을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생명이 다할 때까지 수행자의 길로

정토회에 오기 전 저는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게 독약인지도 모르고 덥석 물었고, 그 과보로 괴로움이 오면 남 탓, 세상 탓을 하며 분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한 자신도 미워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수행은 넘어졌던 저를 일으켜 세웠고, 어두웠던 삶에 빛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걸려 넘어지지만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아는 힘은 조금 생겼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삶의 주인이 되는 수행자의 길을 계속 가겠습니다.


온라인 정토회 활동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요즈음, 심태숙 님의 딸아이가 부쩍 관심을 가져달라며 삐져 있다고 합니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정토회 활동, 가정과 직장의 일을 조화롭게 해나가는 것이 주인공의 최근 수행 과제입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수행, 봉사하며 따뜻한 봄날을 맞은 심태숙 님에게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지금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정토회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글_김성욱 희망리포터 (청주 정토회 청주법당 )
편집_임도영 (광주 정토회 광주법당)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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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연기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신 흔적이 보이네요ㅜ뭐든 보살님처럼 꿋꿋이 견뎌보는 사람이 되고싶습니다^^짧은 숏컷 헤어가 잘어울리셔,저도 문득 나도 저렇게 해볼까?했는데ㅎ 긴머리도 잘 어울리시네요^^*보살의 길에 이미 들어서신 보살님!응원합니다~많이 배우고가요^^*청주!지금은 미치도록 변해버리고, 외국사는 언니와의 아련한 추억이있는 곳이죠~쫄면을 처음 먹었던곳~~ㅜㅜ

2021-02-17 01:07:22

나부터

말씀 감사합니다.

2021-02-07 12:34:18

이진영

딸아이와 소통이 우선이지 싶습니다
나와같은업식으로 힘들어할 딸아이에게 엄마로서 인연의역할을 해야할때라고 보여지네요
엄마도 그동안 여러 인연으로서의 역할을 해내신것처럼 딸이 마음으로 홀로서기 할수있도록 연을 맺어주세요~~

2021-02-07 07: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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