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정토행자의 하루
1도 없던 미안함이 '미안한 1'이 되기까지

오늘은 정토행자의 하루 편집자 권영숙 님의 이야기입니다. 자기 고백 형식의 글로 독백체입니다. 권영숙 님은 2008년부터 북한동포 돕기를 시작으로 8년간 정토회 봉사를 했습니다. 세상밖이 궁금해 4년은 간단한 봉사만 하면서 쉬었습니다. 세상에서 잘 놀다, 정토행자의 하루 봉사로, 놀이터를 바꿨습니다. 권영숙 님이 봉사하면서 일어난 마음나누기, 시작합니다.

잘 물든 단풍이 아름답다
▲ 잘 물든 단풍이 아름답다

기도를 안하면 아침밥은 없다

앗, 또 늦잠이다. 이렇게 매번 알람을 못 듣는다는 건 일어날 의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 빨리 몸이 침대에서 튀어나와야 하는데 굼뜨다. 핸드폰을 슬쩍 열고, 닫기를 반복한다. '스님은 왜 아침 기도를 만드셨을까?' 잠시 원망을 해보다 겨우 몸을 일으킨다. 몇 년 전부터 나와의 약속 첫 번째가 아침 기도를 하지 않으면 그날 밥을 먹지 않는다였다. 나는 아침밥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라 아침 기도를 빼먹을 수가 없다. 약속했다고 뭐 다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약속은 꼭 지킨다. 내가 강박증 환자 문턱에 있는 사람이라 그렇다. 그래서 약속을 잘 안 한다. 지켜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최근 들어, 참회 기도문에서 문제없이 잘 넘어갔다. 그런데 오늘은 첫 단어에서 걸렸다. 화나고.. 화나고.. 화나고... 어제 회의에서 한 도반에게 올라오는 화를 참지 못했다. 나는 남에게 잘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 사람 특징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집중을 잘하고, 공감해주려 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의 공감은 상대방의 처지를 진짜 이해해서라기보다 웬만하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려는 공감일 때가 많다.

업식도 어릴 때 뽑으면 쉽다.
▲ 업식도 어릴 때 뽑으면 쉽다.

드디어 만난 '욱' 업식

나는 젊은시절부터 내 의견을 남보다 강하게 주장했다. 싸움이라면 이길 때까지 하는 성격이었는데 이젠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어느 날,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또 내 생각이 정말 옳다고 주장했지만 그 결과가 틀린 적이 많았다. 그런데, 어제 회의에서는 내 타고난 업식이 올라왔다. 나와 다른 의견을 냈다고 감정이 터진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중간에 상대방이 내 말을 물고 차분하게 반박하는데서 터졌다. 다른 때 같으면 말이 잘려도 일단 들어보고 내 말을 다시 이어가는데 어제는 감정이 욱 하고 올라왔다. 도반들과의 사이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 사람의 말을 자르고, 내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목소리를 높이는 나와는 달리 상대는 차분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끝까지 자기 말을 다 했다. 우리 둘 다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안건이 많아 내 입장을 계속 고집할 수가 없었다. 다른 안건으로 넘어가면서 내 감정을 살펴봤다. 나는 딱딱한 회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즐겁게 하는데 어제는 기분 나쁜 감정에 충실해서 건조한 회의를 했다. 도반들과 나누기를 하면서 왜 그 도반에게 격하게 감정이 올라왔는지 돌아봤다. 다른 도반들이 보기에는 나와 의견이 달라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와 다른 의견이라서 화를 낸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견을 들여다보면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지 않다. 추구하는 방향은 같았다.

업식이 이 정도 자라면 힘은 좀 들어가지만 뽑을만하다
▲ 업식이 이 정도 자라면 힘은 좀 들어가지만 뽑을만하다

어디서 본 듯한 착한 여자

그런데 왜 화가 났을까... 왜 화가 났을까... 아, 바로 그거였다. '착한 여자', 나는 착한 여자를 싫어하는구나. 바보같이 참고 사는 여자가 싫구나. 그 도반이 내 눈에 착해보였다. 참고 살아 보였다. 실제로 참는지 안 참는지는 모르지만 내 눈에 비치는 그 도반은 잘 숙이는 것 같았다. (물론 이번 회의에서 고집스럽게 구는 모습을 보니 하나도 착하지 않다!!! )

책에서 본 구절인데 상대방의 모습이 못마땅하다면 그것은 내 모습이라고 했다. 나도 한때 들어봤던 착한 여자. 그 소리가 싫구나. 과거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불편하구나. 내가 한때 '착한 여자' 소리를 들었다고 하니,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누가 그런 거짓말을 쳐? 자기가 어딜봐서 착한 여자로 보이냐? 착한 여자가 그렇게 할 말 다하냐?"

지금은 이런 말을 듣지만, 나는 하고 싶은 말은 꼭 하는 '착한 여자'였다. 아무튼 나누기를 하며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내 감정을 말하기 싫어 숨기려 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건 내 안에서 들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영숙아, 솔직해야지. 매일 아침 기도는 뭐하러 해? 지금 솔직하지 않으면 네 꽁한 성격상 저 도반하고 사이 나빠져.'

"저는 **님이 쏴한 표정으로 '너는 말해라, 나는 안듣는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확 올라왔어요.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요. 그동안 잘 감추고 있던 제 업식이 오늘 확 드러났네요."

업식이 이 정도 자라면 뿌리까지 뽑기가 힘들다
▲ 업식이 이 정도 자라면 뿌리까지 뽑기가 힘들다

미안한 1

회의 때 성질을 버럭 냈으면 나누기 때 사과하라고 내 머리가 시켰다. 그게 수행자의 자세라고. 하지만 내 입에서는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다른 도반들에게 미안했지, 화냈던 상대인 그 도반에게는 1도 미안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도반이 자신이 왜 차분하고, 냉정하게 자기 말만 했는지를 나누기했다.

"제가 눈물이 많아요. 그래서 울지 않고 말하느라 그렇게 냉정하게 말한 거예요."

결국 울지 않으려고, 냉정하고 차분하게 말했던 그 도반은 울었다. 아... 이래서 결국 나는 착한 도반을 울린 까칠한 인간으로 우뚝 올라섰다. 회의하던 다른 도반들이 동시에 마이크를 켰다.

"아니 왜 영숙님은 **님을 울려요?"

이래서 착한 여자랑 일하면 손해다. 적들에게 둘러싸인 느낌이다. 그 도반의 나누기에 1도 미안하지 않던 나는 '미안한 1'이 생겼다. 그 미안한 1은 그 도반이 울어서가 아니라 '울기 싫어서 참느라 냉정하게 말했다'는 말에 공감해서다. 사람들은 안 믿지만 나도 눈물이 많은 편이라 그 도반처럼 냉정한 표정으로 참을 때가 많다. 내가 왜 그걸 못 알아챘을까. 나와 똑같은 모습이었는데...

솔직하게 나누기하기 잘했다. 만약 내가 속말을 숨긴 채 겉말로만 나누기했다면 나는 그 도반을 계속 마음에서 씹었을 것이다. 또 그 도반의 진실한 고백이 없었다면 오해는 새끼를 쳤을 것이다. 사과했다. 미안한 1이 아니라 미안한 70으로. 30은 남겨뒀다. 100% 이해는 아직 안되었기에. 내가 보기와 다르게 뒤끝이 긴 사람이다. 정토회 봉사는 이렇듯 내게 기회를 준다. 업식을 바꿀 기회. 인간답게 살 기회. 욕구에, 욕망에, 충실한 삶으로 달려가는 것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인디언들처럼 자신이 달려온 길을 잠시 멈춰 돌아보기길 스스로에게 권한다.

어제 회의에서 뿌리 깊은 내 업식을 파내기 위해, 놓았던 호미질을 다시 시작했다. 가볍게 호미로 파내 질지, 곡괭이까지 꺼내야 할지,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나를 아는 건 멈추고 있지 않다는 거다. 오늘도 밥을 먹기 위해 아침 기도를 거르지 않는 것처럼...

글_권영숙(정토회 홈페이지 운영팀)
편집_권영숙(정토회 홈페이지 운영팀)

전체댓글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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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숙

스님의 하루만 매일 보다가 오늘 우연히 행자의 하루를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울컥하는 마음이 생겨서 눈물이 맺히는 글입니다. 나이가 드니 눈물만 많아지는구나 혼자 자책도 하면서 선배행자님들의 글들에서 저도 제 갈길을 짚어봅니다.

2021-04-09 09:58:55

묘정행

불대수업 생각나고 영숙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잘 읽었습니다. 반갑고 감동이었습니다

2020-11-25 19:48:11

감로상

재미있네요,ㅎㅎ
그리고 감동도 있네요
착한여자....저두 싫어요
내 모습같아서요~~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들킨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11-20 09: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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