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국제국&국제정토회
전세계 번역 봉사자와 함께 하는 세계전법
한 발 한 발 내딛습니다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는 요즘, 호주 멜번법당의 이정화 님은 전세계 번역 봉사자들과 함께 세계 전법을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습니다. ‘주어지는 대로 해보겠습니다.’ 라는 마음으로 국제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이정화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번역 일의 특성 상, 드러나지는 않아도 끈기를 가지고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있는 봉사자들로부터 감동과 가르침을 받고 있다는 이정화 님의 수행담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행복을 꿈꾸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한 수계식(왼쪽 두번째 이정화 님)
▲ 도반들과 함께한 수계식(왼쪽 두번째 이정화 님)

“행복이 제 안에 있는 것임을 아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가지고 싶었던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인도 최고 공과대학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호주에 정착한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두 아이들, 늦게 도전하였지만 갖게된 호주 통역사 자격증, 그리고 꿈에 그리던 내 집 장만까지. 그렇게 행복만을 향해 달려 왔고, 이제 다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도착하니 그렇게 갖고 싶었던 행복이 아닌 생각지 못한 우울감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저를 낳아준 어머니는 저를 키우지 못할 사정이 되어 돌이 지날 무렵 자식이 없던 이모, 이모부 내외분께 저를 맡겼습니다. 자주 화내며 꾸짖고 매를 들었던 이모와 자상했지만 그런 이모를 말리지 못하고 산책나가는 걸로 피했던 이모부. 그래서 저는 꼼짝없이 혼자 방안에 갇혀 무서워하며 울었던 기억이 참 많았습니다. 늘 착해야하고 시키는데로 잘 해야한다는 훈계와 꾸중 속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지금 저는 그 시절 부모님들은 흔히들 그러했었고, 이모내외가 저를 잘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어린시절의 제 마음은 늘 외롭고 힘들고 두려웠습니다. 때때로 집에 들어가기 싫어 해질녘까지 동네 친구집에서 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친구의 엄마가 차려주는 가난하지만 따뜻한 밥상을 받는 친구가 그렇게 행복해 보일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늘 행복을 꿈꾸었습니다.

멜번법당 발대식에서 도반들과 함께 (맨 왼쪽 이정화 님)
▲ 멜번법당 발대식에서 도반들과 함께 (맨 왼쪽 이정화 님)

행복하지 않은 이유

2015년, 평소 존경하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보수적인 인도 전통과 관습, 그리고 집안의 체면을 다 뒤로하고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라”며 인도인이 아닌 저를 며느리로 맞이해 주었던 분입니다. 그런 아버님을 떠올리며 그 덕담과는 너무나 다르게 남편을 미워하고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현실이 죄송함과 함께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되는지 너무나 알고싶었습니다.

그해 4월, 지인의 소개로 멜번법당에 나가게 되면서 수행법회를 듣고, 도반의 안내를 받으며 천일결사1에 입재 했습니다. 제가 왜 행복하지 않은지 꼭 알아서 돌아오고 싶어 <깨달음의 장2>을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남아있던 의문을 불교대학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정답과 공식을 다 배웠으니 괴로움 끝, 행복 시작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인생의 문제를 푸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혼 전에도 술을 좋아하던 남편은 결혼 후에도 거의 매일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올 때가 많았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데 도움이 안된다며,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했습니다. 그 원망과 미움이 진흙처럼 제 마음 저 아래에 쌓여 가라앉아, 매번 조금만 휘저으면 흙탕물이 되어 다시 올라왔습니다. 화내고 짜증내는 저의 모습은 제가 꿈꾸던 다정한 아내도, 따뜻한 엄마도 아닐 때가 많았습니다. 그만 문제집을 집어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이제 더 풀려고 애쓰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간다

새롭게 경험한 인도, 2020년 성지순례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 이정화 님)
▲ 새롭게 경험한 인도, 2020년 성지순례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 이정화 님)

불교대학에서 배운 출가정신은 온데간데 없고, 인생의 두번째 사춘기를 겪듯 마음의 가출을 경험하며 방황했습니다. 그런 저를 지켜보며 수행의 끈을 놓치 않도록 이끌어준 도반들 덕분에 경전반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눔의 장3>을 통해 제 마음을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를 고집하고, 내가 바라는 바를 상대가 들어주지 않는다고, 내 의견을 존중해 주지 않는다고, 화내고 짜증내면서 스스로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한 사람은 남편도 아이들도 아닌 바로 나였습니다.

그런 저를 인정해 주고 함께 해주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올라왔습니다. 남편이 참 많이도 미웠던 제게는 큰 변화였습니다.

결혼 이십 여 년 동안 여러 번 다녀왔던 인도이지만 직접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감사함을 올리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시댁을 먼저 들러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혼자 배낭을 메고 떠나는 며느리를 염려 하는 시어머니에게 죄스러움을 뒤로하고 성지순례 다녀왔습니다. 올 1월 스님과 법사님들 그리고 한국과 해외에서 모인 450여명의 도반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동안 남편과 시댁 가족들의 보호 속에서 보지 못했던 인도의 또 다른 모습들, 그리고 인간 붓다가 걸어갔던 그 길을 스님의 안내와 법문을 들으며 함께 걸으며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성지순례, 그 행복한 여정 (가운데 이정화 님)
▲ 인도성지순례, 그 행복한 여정 (가운데 이정화 님)

소임, 나를 돌아보게 하는 감동

호주로 다시 돌아왔을때 10차 천일결사가 시작되면서 '국제국 소임을 맡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성지순례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해외에 있는 도반들과 더 자주 교류할 수 있다는 작은 기대감과 ‘주어지는 대로 해보겠습니다.’ 라는 마음으로 받은 소임은 ‘국제국 출판번역 담당과 유튜브 영어자막 코디’ 였습니다.

국제국 소임이 지역법당에서의 봉사과는 달리 인수인계를 받고 시간이 지나도 일이 빨리 익숙해지지 않자 조급함이 느껴졌습니다. 모르면 묻고 배우면서 한다는 생각과 다르게, 때로는 너무 기초적인 질문을 한다는 생각에 부끄러워 혼자서 끙끙대기도 했습니다. 소임을 잘 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일과 수행의 통일은 머리에서만 맴돌고,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어지러웠습니다.

이런 마음을 보면서 조금씩 일을 배워가다보니 그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팀을 이끌어 온 이전 담당자의 노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번역 봉사를 해온 도반들의 시간과 땀이 모든 번역물에 녹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영어로 번역된 스님 책들을 읽으며 번역된 영어 표현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 책들이 모두 번역 봉사자님들 한 분 한 분의 손끝을 거쳐 이루어진 것을 소임을 통해 알았습니다.

제6차 아시아 태평양 행자대회(오른쪽 두 번째 이정화 님)
▲ 제6차 아시아 태평양 행자대회(오른쪽 두 번째 이정화 님)

어느 날 번역 봉사자 한 분과 통화를 하며 깨닫게 된게 있습니다. 그 분이 지난 몇 개월 동안 갑자기 건강에 문제가 생겨 힘든 치료를 받으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번역 소임을 꾸준히 정기적으로 해 주었음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회복단계이니 필요한 번역일을 더 보내라는 요청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 때 제가 얼마나 일이 쉽게 이루어지길 바라는 욕심 많고, 어리석은 사람이었는지 참회가 되었습니다. 서툴고 잘 못하는것 투성이인 나, 꾸준히 하는게 안된다고 하소연만 하는 나, 그러면서 또 잘 하고 싶어하는 나, 그런 저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길가의 풀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잘하려 하지 말고 그냥 한다는 겸손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2019년 즉문즉설 강연에 참여했던 봉사자들과 함께(왼쪽 두 번째 이정화 님)
▲ 2019년 즉문즉설 강연에 참여했던 봉사자들과 함께(왼쪽 두 번째 이정화 님)

세계 전법을 위해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국제국 컨텐츠 팀 소속인 출판번역부서에서는 스님 책 번역 외에도 불교대학 교재 및 강의, 정토회 용어집, 그리고 《월간정토》에 연재할 법문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주로 진행합니다. 최근 '스님의 하루'와 '정토대전편찬' 시 필요한 경전 원서 번역 등의 지원 업무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종종 다른 부서에서 진행하는 정토회 관련 기사나 컨텐츠도 번역하고 있습니다.

현재 열다섯 분의 번역봉사자가 있으며, 번역은 1차 초벌 번역, 2차 검토 및 수정, 그리고 최종감수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지난 해 6월에 시작된 불교대학 교재 번역은 현재 2차까지 번역이 거의 마무리가 되었으며 강의 번역도 진행 중입니다.

즉문즉설 유튜브 영어 자막 봉사자들은 번역과 자막화를 동시에 하는 플랫폼에서 작업을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면서, 틈틈히 번역 봉사를 하면서 만나는 스님의 법문에 번역 봉사자 분들도 보람을 느끼며 세계 전법의 밭을 갈고 작은 씨앗을 심고 있습니다.

국제국 온라인 회의(맨 오른쪽 가운데 이정화 님)
▲ 국제국 온라인 회의(맨 오른쪽 가운데 이정화 님)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법

지금 저는 조금 더 가벼워졌고, 더 감사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가족들에게 어떤 말을 들으면, 인정하고 숙이면서도 어느새 서운함이 올라옴을 봅니다. 아직도 남편과 아이들의 인정에 의존하는 마음을 알아챕니다. 정진을 하면서, 제가 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압니다. 화내고 짜증내고 불안해 하는 나를 괴롭히는 선택이 아닌, 나를 행복하게 하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깨어있고 그 지혜로움과 힘이 바깥이 아닌 바로 제 안에 있음을 알아갑니다.

번역기가 점점 발달되어 언젠가는 통역도 번역도 자동으로 쉽게 하는 날이 오겠지만, 수행과 봉사를 통해 가볍고 행복해져가는 이 경험은 그 무엇도 대신해 줄 수 없을 것입니다. 고대 인도에서 태어나신 부처님의 법이 선지식들과 법륜스님을 통해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전해지고 있듯이, 정토회 국제국 번역 봉사자들을 통해 이 좋은 법이 더 많은 세계인들에게 널리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국제국, 전 세계 함께 하는 봉사자들
▲ 국제국, 전 세계 함께 하는 봉사자들


이정화 님과 화상으로 회의가 아닌, 인생 나누기를 하면서 정토행자들이 전세계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할 수 있고, 각자의 길을 돌아 이제 불법의 길을 걸어가는 도반이 되었음에 든든함을 느낍니다. 스님의 법문을 세계화하기 위해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밑작업을 하는 전세계 번역 봉사자 분들과 이정화 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정토행자 한 명 한 명이 모자이크 붓다가 되어 정토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을 보며 국제국 활동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글_이정화(아시아태평양 정토회 멜번법당)
정리_임희정 희망리포터(국제국&국제정토회)
편집_장순복(남양주정토회 남양주법당)


  1.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2.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3.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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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이정화님윽 수행당을 들으며 봉사라는 소임의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나도 정화님처럼 저런 봉사를 행복한 마음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정화님의 진심이 담긴 봉사자의 마음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0-12-09 06:00:21

이동우

인도순례 때 차장소임을 맡아 주신 이정화 보살님을 처음뵙고 자기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위해 밝은 모습으로 기꺼이 소임에 임하시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너그럽고 친절한 언행,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관세음보살님이 저런 모습일까 혼자서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감동적인 수행담 감사드립니다.~❤️

2020-11-12 08:52:35

고명주

이정화 님
이제서야 글 읽어 봅니다.
행자대회 때 뵙고 정말 정말 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는데, 이렇게 글로 뵙게 되니 더 반가워요.

2020-11-05 21:3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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