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산법당
당신은 무엇을 움켜쥐고 있는가?

경산법당에는 환하게 웃는 모습이 고운 연꽃 같은 허태숙 님이 있습니다. 집에서 모시던 치매 시어머니를 얼마 전 요양원에 모셨다는 주인공은, 정토회 명상 수련에서 남들보다 더 빨리 먹으려고 작은 감자를 고르는 자기를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세 가지 직업을 한꺼번에 가지기도 하며 숨 가쁘게 질주하던 인생에서, 불법을 만나 그제야 고른 숨을 쉬게 되었다는 주인공의 진한 수행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오늘의 주인공
▲ 가을의 문턱에서, 오늘의 주인공

여동생 월경 점검하는 오빠들과 보수적인 고향마을

저는 경북 경산시 하양읍 ‘하양 허씨’ 집성촌에서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어진 부모님 덕분에 어린 시절 편안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 세 명이 무척 보수적이었습니다. 언니와 저는 여자라는 이유로 제약이 많았습니다. 여자는 집에서 살림 살다가 시집만 잘 가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오빠들은 매달 하는 월경도 점검하며 여동생들 몸단속에 신경썼고, 영화를 보고 오면 자극적인 내용은 없었는지 오빠들에게 줄거리를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동생 잘되라고 챙긴 것이겠지만 저의 마음은 답답하고 주눅이 들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군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여자가 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알아보려고 병무청에 갔습니다. 보수적인 오빠들의 성품으로 여자군인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군인이 되는 저의 모습을 상상하면 종일 행복했습니다. 아버지는 오빠들이 나서기 전에 저를 설득했습니다. 군인이 안 된다면 간호사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어도, 책 읽는 것은 좋아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기 시작하면 문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도서관을 나왔습니다. 여자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공부를 마칠 수 없었습니다. 어차피 직장을 다닐 것도 아니고 얌전히 있다가 시집을 가는 거면 공부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이 나빠서 안경을 써야 하는데 마을에 들어갈 때는 안경을 벗고 들어갔습니다. 더운 여름이라도 반바지를 입지 못했습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2020년 시무식에서 도반들과 (앞줄 오른쪽 두 번째)
▲ 2020년 시무식에서 도반들과 (앞줄 오른쪽 두 번째)

매일 술 마시는 남편과 화내는 시어머니

남편은 이웃에 사는 사람으로 저를 무척 따라다녔습니다. 도랑이 넓어서 물을 건너지 못하면 자기 몸을 엎드려 징검다리를 만들어줄 정도로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남편은 특전사 출신이었습니다. 군인이 되고 싶었던 저에게는 매력이 있었지만, 오빠들은 남편의 성격이 지독할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결혼해 보니 오빠의 말이 남편에게 건 주문 같았습니다. 반대가 심했던 결혼을 하면서 오빠들에게 저의 선택을 인정받고 싶어서 더 애를 썼습니다.

남편은 직장 생활 하는 것을 힘들어했습니다. 아이 넷과 시어머니, 일곱 식구가 살려고 결혼생활 내내 원 없이 일을 했습니다. 한꺼번에 세 가지 일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인천에서 살 때 너무 힘들고 지쳐서 집을 나가려고 무작정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버스가 집 앞을 지나갈 때, 과자를 사들고 서로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두 딸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눈에 밟혀 결국 두어 정거장 더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거의 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음주 운전으로 낸 벌금을 합하면 집 한 채를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술을 마시면 난폭해지는 아빠를 피해, 두 딸은 가방을 메고 집밖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당신 아들의 모든 행동을 못마땅해했고 자주 다투었습니다.

통일의병 속성교육 중 (앞줄 왼쪽 두 번째)
▲ 통일의병 속성교육 중 (앞줄 왼쪽 두 번째)

어둠 속에서 잡은 든든한 동아줄

회사에서 신간 문고를 정리하는데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스님이 책을 썼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저는 그 책을 바로 다 읽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정토회를 찾아보았습니다. 가까운 곳에 대구정토회 대구법당(현 수성정토회 수성법당)이 나왔습니다. 저녁에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서 저녁반 수업이 어려웠지만, 그날 바로 2012년 가을 불교대학에 등록을 했습니다. 대구법당을 처음 찾아간 날은 수행법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뭐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피자집 사장님의 배려로 화요일 저녁에는 불교대학 수업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불교대학 담당자는 제가 주저앉으려고 할 때마다 일으켜 세워주고,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던 중 <깨달음의 장>에 갔습니다. 수련 시작 전 면담에서 불면증에 우울증약을 먹고 있다고 하니 담당 법사가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수련장에 갈 때 저는 손안에 뭔가를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그 움켜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다 놓아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다고 우겼습니다. 3일 동안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날, 같이 참여했던 분이 지난밤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면서 “어제 저녁에는 좀 잤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이후 불면증약을 먹지 않아도 잠이 들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고집이 센 저를 보았고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집은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싸우면서 물병을 던져서 벌어진 풍경입니다. 가벼워진 몸과 마음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깨진 그릇을 치우고 밥을 해서 먹었습니다.

JTS 거리모금 중 도반들과 (맨 오른쪽)
▲ JTS 거리모금 중 도반들과 (맨 오른쪽)

부처 되기 싫다!

사무실이 포항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기에는 월급이나 퇴직금 등 아쉬움이 많아서 포항에 원룸을 얻어서 혼자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포항에는 경전반 수업을 하는 법당이 없었습니다. 포항에서 대구까지 2시간은 걸리는 거리를 저녁 시간에 왔다 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도반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과 도반들의 격려에 힘을 얻어 경전반에 등록했습니다. 포항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대구법당으로 왔습니다. 도반들은 버스를 타고 오는 날이면, 차 시간을 챙겨서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었습니다.

경전반 수업을 들을 때 집에서는 한 번도 마음 편한 적이 없었습니다. 늦은 시간이고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해서 집에 갈 수가 없었지만, 남편은 대구까지 오면서 집에 들르지 않는다고 불만스러워했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내내 갈등과 불안의 연속이었습니다. 경전반 졸업식 때 정근상을 받았습니다. 한 번 결석했는데 수업이 있는 목요일에 술을 먹고 남편이 포항까지 택시를 타고 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결석을 했습니다. 졸업식 때 법륜스님과 찍은 사진을 가끔 꺼내 봅니다. 사진 속의 제가 환하게 웃고 있어서 낯설기도 하지만 기분이 좋아집니다.

경전반 졸업식에서
▲ 경전반 졸업식에서

경전반을 졸업하고 경산 법당에서 토요일에 사시기도를 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포항에 있다가 집에 왔는데 다음날 일찍 집을 비우니 남편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JTS거리 모금을 하고 있으면 전화가 와서 어디서 술 먹고 있으니 데리러 오라고 했습니다. 불교대학 집전을 하고 있는데 술을 먹고 법당에 찾아와서 집전을 못 하고 집으로 갔던 적도 있습니다. 남편은 법륜스님 현수막을 찢어버리기도 했습니다. ‘내가 지금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두어 달 법당 출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불교대학, 경전반을 졸업하고 스님의 즉문즉설도 들었지만, 화는 가라앉지 않고, 악을 쓰며 싸웠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남편에게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어느 누가 봐도 남편이 문제라고 이야기할 것 같았습니다. 함께 공부했던 도반들은 ‘보살님을 부처 만들려고 그러는가 보다.’라는 말로 위로해 주려고 했지만 ‘부처 되기 싫다!’라며 저의 괴로움을 더 크게 표현했습니다.

경산법당 개원 법회에 법륜 스님이 오셨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고단한 삶을 사는지?’, ‘남편은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지?’ 여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는 스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모두 제 탓이 맞습니다. 반대가 심했던 결혼을 인정받고 싶어서 저 혼자 애를 썼습니다.

제주도 여행 중에
▲ 제주도 여행 중에

기도, 정신없이 사는 내가 보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불교대학을 다니고 경전반을 다녔습니다. 저를 통해서 정토회를 접한 언니는 천일을 하루같이 기도합니다. 저를 만날 때마다 “기도하니? 기도해라, 기도해!”라고 일깨워주어 고맙습니다. 정토회에서 기도는 곧 수행이라는 것을 압니다. 허리 수술을 해서 움직이지 못하게 몸을 고정해놓았을 때도 기도를 했습니다. 수술 이후 여전히 절을 하는 건 쉽지 않지만 해도 아프고 안 해도 아파서 그냥 108배를 합니다.

명상수련에 가서 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숨이 찬 줄 모르고, 쫓아오는 실체가 뭔지도 모른 채 쫓기듯 살았습니다. 간식으로 감자가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배가 고파서 큰 감자를 고르려고 했다는데 저는 빨리 먹어야 한다고 작은 감자를 골랐습니다. 운전대만 잡으면 전력 질주하는 저를 봅니다. ‘빨리 가서 뭐 하려고......’ 급한 성격, 잘하려는 마음, 내가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저를 정신없이 살도록 했습니다. 남편이 무책임하니까 제가 한다고 여겼던 일들을 ‘좀 기다려 주었더라면, 남편에게 맡겨보았더라면, 내가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먼저 행복해지니 남편도 변해

행복이 멀리 있는 줄 알았습니다. 피곤할 때 먹는 초콜릿 한 조각에 들어 있는 행복을 이제는 압니다. 점심을 먹고 따뜻한 전기장판 안에서 취하는 휴식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지 이제는 압니다.

휴가 나온 막내 아들과 함께
▲ 휴가 나온 막내 아들과 함께

남편은 1년 내내 마시던 술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마십니다. 제대로 된 벌이를 하지 않던 사람이 농사일이든, 설비 일이든 일이 생기면 하려고 합니다. 법당에 일이 있으면 늘 못마땅해하던 남편이 이제는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합니다. 지금, 저는 여전히 화를 내고, 화낸 것을 알아차리고, 삶이 힘들어 원망하고 엎어졌다가 엎어진 걸 알고 일어나서 다시 살아갑니다. ‘사는 것이 별거가, 이렇게 살면 되지!’ 어느 순간,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부처님의 말씀은 내 몸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일하고 오는 남편을 맞이하며 오늘 하루 얼마나 힘들었을지 살핍니다. 집에서 쉬고 있는 마음이 불편한 걸, 제가 일하고 들어올 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아이 넷, 착하게 잘 커서 자기 앞가림을 합니다. 지금, 이대로, 괜찮습니다. 행복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저는 행복 찾기를 합니다.


허태숙 님은 진흙 속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 같습니다. 귀한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나고 화도 나고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수술 후 몸이 불편한데도 '일반 모둠 관리 꼭지' 봉사를 하고 있는 주인공은 늘 밝게 웃으며 살고 싶다고 합니다. 가까이에서 제가 응원합니다!

글_김정림 희망리포터(수성정토회 경산법당)
편집_강현아 (수성정토회 수성법당)

전체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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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미

허태숙보살님 행자의 하루를 오늘 읽습니다. 불대ㆍ경전반 공부를 하면서 함께 한 일들
특히 통일의병대회가 열리던 날 제가 동북아 탐방길에서 다리를 다쳐서 목발을 짚고 참석했을 때 3층 까지 데려다 주시고 포항시며 베풀어 주신 도반의 따뜻한 마음을 오래 기억하며 감사합니다. 감동입니다~♡

2021-03-13 06:25:15

이의수

귀한 수행담 잘봤습니다... 과거에 저를 보는듯해서 마음이 찡합니다^^ 성불하십시요~~

2020-11-08 13:45:38

이수미향

도반님 응원합니다
함께해서 행복합니다~

2020-11-07 13: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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