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산법당
천일을 하루같이

아파트 단지를 살짝 비켜 숲과 들판이 펼쳐진 곳에 자연과 어우러진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실천하는 정토행자, 허인숙 님이 아이들과 함께 꿈을 펼치고 있습니다. 천일 결사 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서 '천일을 하루같이' 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는 주인공의 수행 이야기 들어 보겠습니다.


행복한 수행자 허인숙 님
▲ 행복한 수행자 허인숙 님

학업에 대한 상실감, 시어머니

너무나도 가난한 집 3남 2녀 중 장녀, 이것이 평생 제 삶에 장애로 남을 줄은 몰랐습니다.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던 당시, 가난한 집안의 딸들은 배움의 기회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담임선생님이 “인숙아, 너는 머리를 썩여서는 안 되니까 내가 하라는 대로 한번 해봐라.”며 대구에 있는 장학제도가 좋은 중학교를 추천해주었습니다. 저는 공부할 수 있다는 기쁨에 석탄을 때는 기관차를 타고 경산에서 대구까지 통학하는 것이 단 한 번도 고생스럽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3년을 장학생으로 무난히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할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고 집안일을 도우며 생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공부 생각 밖에 없었고, 사춘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오직 공부가 하고 싶어 울면서 보냈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속에 상실감이 자리 잡았던 것 같습니다.

결혼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방송통신대를 진학하여 학업에 대한 열망을 이어가며 만족한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며느리가 학교 다니는 것이 못마땅했던 시어머니는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저는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고 더 공부하지 않겠다고 어머니 앞에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 했습니다. 학업이 중단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저는 일주일간 앓아누워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이후 속기를 배워 속기사사무소를 운영하며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인생 공부를 할수 있었습니다. 속기 일이 안정적으로 잘되니 또 배움에 대한 욕구가 슬금슬금 올라왔습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힘들고 우울했지만, 공부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번쩍 뜨이고 신이 났습니다. 시어머니 몰래 전문대 보육교사 과정을 다니면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큰 학원을 연 지인이 학원 유치부를 운영해보라고 제안하였고 저는 무엇에 홀린 듯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어린이집과의 인연의 시작되었습니다.

경산법당 시무식에서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 경산법당 시무식에서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깨달음의 장>에 미운 마음을 놓고 오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들 둘을 키우며 1인 3역의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시어머니에 대한 섭섭한 마음, 배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갈구로 마음이 산란할 때, 저는 인근 사찰에 가서 기도하곤 했습니다. ‘천불보살님, 제발 제가 저 어른을 미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도록 해주세요.’ 상대를 미워하니 제가 괴로워졌고, 시어머니 앞에서 속마음은 괴로운데 겉으로는 웃어야 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사찰을 돌아 나오는 길목에서 항상 가슴 속에 허전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사는 게 바빠서 돌아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정토회 활동을 하던 여동생과 통화하면서 우연히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법륜스님의 법문을 TV에서 종종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내 허전함을 채워줄 무언가가 있겠다.'는 생각에 앞뒤 돌아보지 않고 정토회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불교대학을 입학하기 전에 <깨달음의 장>에 가고자 했지만, 마음처럼 잘 안 되었습니다. 온라인 신청이 실패하고 65세라는 나이 제한에 걸린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습니다. 그 무렵인 2013년 12월, 경산법당 개원식에 스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64세이고 이러이러한 이유로 〈깨달음의 장>을 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빼고 넣어달라는 것이 아니고, 혹시 포기하는 사람이 나오면 넣어주실 수 있나요?’ 하며 구구절절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당시에는 내색하지 못했지만, 시어머니와 남편과의 자잘한 갈등에 ‘나는 괴롭지 않다.’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아야 한다. 그런데 힘에 부친다.’는 생각에 혼돈에 빠져 있었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억지로 묻어둔다고 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이 감정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에 <깨달음의 장>에 매달리게 되었고, 결국 가게 되었습니다.

수련 후에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라고 할 것이 없음을,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으로 인해 내가 괴로워지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2014년 봄불교대학을 시작으로 경전반까지 졸업하였습니다.

어린이집 앞에서
▲ 어린이집 앞에서

불법 안에서 꿈을 펼치다

아이들에게 푸른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생각에 어린이집을 이전하였습니다. 500평의 텃밭이 있어 계절 따라 농작물을 키우고, 메주 끓이고, 콩나물 기르고, 고추장 담고... 아이들이 자연의 순리대로 자연의 이치에 맞게 편안하게 자라게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유아교육 석사과정까지 마쳐 배움에 대한 한을 풀었고, 그 지식과 열정을 지금 일터에서 마음껏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정토회에서 지향하는 실천과제들을 교육 현장에 접목하고자 시도하였고, 그 결과 JTS 돼지저금통 분양과 환경실천은 이제 우리 어린이집 특화 활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4년 이후 매년 원생들과 학부모에게 돼지저금통을 분양하고 경산법당에 보시합니다. 엄청난 양의 동전 계수작업을 경산법당 도반들이 ‘돼지 잡는 날’로 정해 대대적인 봉사활동을 전개해주어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경산법당 '돼지 잡는 날'
▲ 경산법당 '돼지 잡는 날'

또한 환경운동, 빈 그릇 운동 실천을 위해 월 1회 학부모 교육과 환경사랑 알뜰바자회를 지역주민과 함께 열어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빈 그릇 실천, 잔반 줄이기, 일회용품 쓰지 않기 등 환경실천 방안을 제시해주니 학부모들의 반응이 좋고, 특히 요즈음은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어서 더욱 체감할 수 있어 학부모들이 뿌듯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환경사랑 알뜰바자회는 정토회의 나비 장터와 같은 형태로, 학부모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 재활용품을 교환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고, 모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먹거리 장터를 운영하여 수익금을 경산시 장학회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제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현장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백일기도 입재식에서
▲ 백일기도 입재식에서

내 주위 인연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남편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입니다. 장남으로 떠받들어져 살아온 남편을 제 식대로 고치려고 다그치니 남편은 고슴도치처럼 더 날을 세우며 말문을 닫아 버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시어머니와 갈등이 있을 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컸습니다. 드러내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속으로는 '내가 잘났다.'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기도를 하던 중에 문득 그런 제 모습을 보게 되었고, 이 어리석은 모습에 눈물이 한없이 흘렀습니다.

‘여보, 정말 미안했어요. 내가 옳다고 당신을 나무라니 속이 상해 말을 하지 않았군요.’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나니 속이 시원하고 가벼워졌습니다. 어리석음이 참회의 눈물이 된 순간에 불법의 인연에 깊이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남편은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내가 배우고 싶다고 학교 다니고 자유롭게 일하는 것을 지켜봐 주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농담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학교 등록금을 내주니, 내가 학부모다. 성적표를 나한테 가져와라.’고. 이제는 서로 마주 보고 웃을 수 있습니다.

정토회 덕분에 제가 이렇게 바뀌고 편안한데, 아무리 바쁘더라도 수행을 게을리할 수 있겠습니까? 정토회와 인연 맺은 후 천일결사 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7-9차 백일기도에 입재 후 8차 1000일, 9차 1000일 모두 회향식 때 ‘천일을 하루같이’ 상을 받았습니다. 이제 수행기도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생에서 불법에 인연이 되었다는 것이 영광스럽고, 인연법을 알고 나니 제 주위에 닿는 인연들이 참으로 좋은 것임을 알게 된 것이 천일을 하루 같이 기도할 수 있는 힘입니다. 수행자로서 자기의 괴로움을 없애서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좋고, 이것이 제 생활의 중심이 되어 줍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며 늘 깨어있는 삶. 저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정일사 입재 정진 후 도반들과 함께 (앞줄 왼쪽 첫 번째)
▲ 정일사 입재 정진 후 도반들과 함께 (앞줄 왼쪽 첫 번째)


배움에 머물지 않고 실천하는 정토행자, 아직도 아이들의 소리에 가슴이 뛴다는 열정을 가진 허인숙 님의 수행담을 통해 ‘잘 쓰이는 삶’이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글_윤영애 희망 리포터 (대구정토회 경산법당)
편집_강현아 (대구경북지부)

전체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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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인내와 노력의 승리자 이십니다
저도 시어머니 모시고 살면서 마음의 힘듦을 극복하지 못했는데 존경스럽습니다~~

2020-03-18 09:13:04

김정화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

2020-03-16 19:09:49

박민자

정말 훌륭하십니다. 정토회 도반이라는 사실에 자랑스럽습니다. 따라 배우겠습니다!

2020-03-16 17: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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