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강북법당
왜 아직도 깡통을 줍고 그래?

강북법당에는 노보살님이 한 분 계십니다. 다리가 불편해도 수요 법회에 꼬박꼬박 참석하시고, 웃을 때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소녀입니다. 코로나19로 정토회 행사가 온라인으로 바뀌어 자식들에게 물어가며 행복한 회의에 들어오십니다. 맡은 소임이 별로 없다며 미안해하시지만, 강북법당 도반들은 그저 건강하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럼 죽을 때까지 정토회와의 인연을 놓지 않겠다는 유정자 님을 만나 볼까요?

박복하다 생각한 내 인생

부모님이 어렸을 때 돌아가시고 많이 배우지도 못했어요. 남편은 젊을 때부터 아팠구요. 애들은 어리고, 남편은 아프니 내가 돈을 벌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아파트 청소를 다녔어요. 그렇게 일을 하면서도 쉬는 날은 길상사며 다른 절들을 갔어요. 초하루 법회도 듣고, 반찬 봉사도 일주일에 한 번씩 했는데 일하면서 절에 다니기가 쉽지 않았어요. 더이상 일때문에 절을 아예 못 가니 마음이 불편하더라구요. 그런데 어느날, 딸이 법륜 스님을 알게 돼서 정토회 서초법당에 갔나 봐요. 이 정토회는 낮에 일하고, 저녁에 다닐 수가 있다는 거예요.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정토회 서초법당까지 가는데 1시간이 걸리는데도 환희심이 나서 다녔어요.

왼쪽이 유정자 님
▲ 왼쪽이 유정자 님

화장실에서 아침기도를

문경 바라지 같은 봉사는 못 했지만 2009년에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반에 다니면서 수행과 봉사를 했어요. 지금은 다리를 다쳐서 108배를 못 하고 주력만 하고 있지만요. 남들 다 하는 봉사를 내 형편때문에 많이 못 했지만 정토회에 안 온 것에 비하면 훨씬 낫잖아요. 한번은 친척들이 다 모여서 한 방에서 잤어요. 아침에 그 곳에서 수행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화장실에서 책 읽고 절하고 기도했던 기억도 나네요.

또 한번은 조계사 앞에서 부처님 오신 날 행사가 있었어요. 법당별로 천막을 쳤는데 둘씩 짝을 지어주는 거예요. JTS모금 활동을 하라구요. 처음에는 많이 창피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가만히 서서 소리만 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돈을 내가 갖는게 아니잖아요. 그 마음이 드니까 창피함도 잊고 돌아다니면서 적극적으로 모금 활동을 했어요.

오른쪽 가운데 분홍색 패딩 입으신 분이 유정자 님. 9차 천일결사 회향식에서 강북법당 도반들과 함께
▲ 오른쪽 가운데 분홍색 패딩 입으신 분이 유정자 님. 9차 천일결사 회향식에서 강북법당 도반들과 함께

난 복이 많다

지도 법사님 법문 듣기 전에는 앞날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며 살았어요. 어디 가서 아파트 청소하러 다닌다고 말도 못 했고요. 근데 이제는 법문을 많이 들으니까, 내가 열심히 벌어 산다는 생각에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어요. 또 근심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들으니 집안에 불편한 일이 있어도 편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구요.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지 싶더라고요.

아까도 말했지만 남편은 젊어서부터 아팠어요. 병원에서 오래 생활했어요. 그래서 일 갔다가 퇴근하고 병원에 있는 남편을 돌봤어요. 그런데 남편은 자기 몸이 아프니까 신경질을 많이 냈어요. 나도 나대로 화가 났죠. 본인이 몸 관리를 안 해서 이 지경이 된 건데 왜 나한테 짜증을 내나, 이해를 못 했어요. 이렇게 고생시킬 거면 얼른 죽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남편이 죽고 나니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내가 죽으라 해서 죽은 건 아니지만... 죽을 때까지 이 사람에게 참회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도 이제는 많이 편안해요. 지금은 남편에게 고마워요. 자식들 건강하고, 또 그 사람 덕분에 예쁜 자식들 낳아 대접받고 살고 있으니 고맙지요. 내가 복이 많아요.

사실 내 목소리가 곱지 않아요. 사는 게 힘들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자식들에게도 자상한 목소리로 말해야 좋은데 그러질 못했어요. 제가 그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는데 남들이 들을 때는 오해하기도 해요. 그런데 지도 법사님이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하지 않았어도 상대방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알려주셔서 시원했어요. '남은 그렇게 들을 수도 있구나.' 그 법문을 듣고, 환희심이 많이 났어요.

맨 오른쪽이 유정자 님. 도반들과 함께 즉문즉설 홍보 중
▲ 맨 오른쪽이 유정자 님. 도반들과 함께 즉문즉설 홍보 중

수행도 봉사도 기회가 있을 때

나이가 들어서 몸이 무겁고,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어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처럼 소임을 많이 할 수가 없어 마음이 불편해요. 젊었으면 컴퓨터도 잘 활용해서 다른 도반들도 도와주고, 정토회에서 글도 쓰고 이것저것 해볼텐데... 법당에라도 나가면 뭐라도 하겠는데 코로나때문에 못나가니 답답해요. 수행도 봉사도 기회가 있을 때 해야하는 것 같아요. 특히 젊은 엄마들이 지도 법사님 말씀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내 생각이지만, 젊을 때 이 법문을 많이 들었으면 애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안 그랬을 텐데 싶어요. 다들 이 좋은 법을 일찍 많이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왜 아직도 깡통을 줍고 그래?

불교대 졸업 시 개근상을 받은 유정자 님
▲ 불교대 졸업 시 개근상을 받은 유정자 님

유정자 님 자녀인 신수희 님은 9차 천일결사 때 도봉법당 부총무를 맡았습니다. 신수희 님이 엄마이자 도반인 유정자 님에 대한 기억을 잠시 들어봅니다.

어느 날 아버지 산소에 다녀올 때에요. 엄마(유정자 님)가 땅에 버려진 깡통을 줍는 거예요. 그걸 보니 화가 났어요.

"엄마, 이제 이런 고철 줍지 않아도 살만하잖아? 왜 아직도 이런 걸 줍고 그래?"

저는 고철을 줍는 엄마에게 쏘아붙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어느 날, 엄마가 제게 흰 봉투를 주셨습니다.

"이거 JTS 거리모금함에 넣어라."

그 돈은 엄마가 산소에서 주운 깡통을 비롯해 그동안 폐지를 모아 판 돈이었습니다. 저는 엄마의 그 깊은 속도 모르고 화냈던 그 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어머니로서, 도반으로서, 그 모습은 제게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바뀐 시대 흐름을 어렵지만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유정자 님. 정토회와의 인연이 소중해서 죽을 때까지 놓지 않겠다는 말씀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겸손하게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유정자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를 돌아봅니다. 욕심도 많이 부리고, 저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도 온라인 모둠활동에 접속하시는 유정자 님. 앞으로도 건강하게 법당에 나와주시길 기원합니다.

글-박희진 희망리포터(노원정토회/강북법당)
편집_조미경(김해정토회/김해법당)

전체댓글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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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숙

눈물이 나네요.
전법은 말보다 행동으로
하는 것이 힘이 있네요

2021-02-22 13:12:50

세명심

지하철이라 ㅠ 눈물나는거 꾹 참았습니다.
보살님덕분에 오늘도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2020-10-05 18:55:55

금강화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20-10-03 0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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