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의창법당
나의 수행은 현재 진행형

오늘의 주인공은 항상 밝고 힘이 넘치는 의창법당 에너자이저입니다. 소임을 맡으면 똑 소리가 나도록 깔끔하게 처리하는 전은희 님을 만나보겠습니다.

법사님, 도반들과 봉림사지에서(아랫줄 오른쪽 첫번째)
▲ 법사님, 도반들과 봉림사지에서(아랫줄 오른쪽 첫번째)

높은 열등감은 낮은 자존감으로

저는 돈이 전부인 것처럼 먹고 살기 바빴던 부모님 아래 태어났습니다. 똑똑한 언니와 귀한 남동생 사이에 끼어서 왠지 모를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했던 날들이었습니다. 늘 남을 원망하고 가족에게는 투견마냥 ‘으르렁’ 거리며 살았습니다. 특히 지금은 돌아가신 엄마와는 원수같은 사이였습니다.

삼성공채 시험에 합격하여 이른 사회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5년 8개월의 직장생활이 미운 오리 새끼였던 제가 인정받을 수 있었던 최고의 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열등감으로 자신감이 바닥이었던 저에게 공황장애가 올 만큼 힘들게 버텼던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안팎으로의 삶에 지친 저는 결혼이라는 탈출구를 선택했지만 또 다른 지옥을 선택했을 뿐이었습니다. 술 좋아하고 벌이도 시원찮은 못난 남편 만나 내 인생이 꼬였다는 생각에 남편을 들들 볶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성질을 있는 그대로 퍼붓고 있었습니다. 순간 ‘이러다 이 아이 마저도 나처럼 살겠구나.’라는 생각에 겁이 났습니다.

희망을 찾아 문밖으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더이상 망가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혼생활 10여년을 마무리 하는게 모두를 위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때는 제 3의 길을 몰랐을 때입니다.

담당자 나들이때의 즐거운 시간(맨 오른쪽)
▲ 담당자 나들이때의 즐거운 시간(맨 오른쪽)

의존적이고 집착적이었던 제가 홀로 독립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무지 덕에 경험한 이혼생활은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 같았습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며 두문불출과 식음전폐를 하다 우연히 유투브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잘 못 살았구나.’라고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에 인근지역 희망강연을 찾아 문밖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거꾸로 매달려 산 세월

마침 종교가 불교였던 친한 친구가 법륜스님의 불교대학 있다는 정보를 주었습니다. 2013년도 마산법당 가을불교대학에 입학하면서 지금까지 정토회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지한 채로 완전 거꾸로 매달려 살았기 때문에, 배우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내가 어리석어 잘 못 살았구나.'
'스님 가르침대로 다시 살아보자.’

지금까지 제가 살아왔던 것을 반대로만 살아도 잘 살아지겠다는 현실을 자각하는 웃기고 슬픈 현실이었습니다.

법당 확장불사 대청소 때
▲ 법당 확장불사 대청소 때

하지만 40여 년간 살아온 업식이 쉽게 바뀔리는 없었습니다. 잘하고 싶어도 잘 해본 경험이 없던 터라 자신감 부족으로 남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나누기 할 때는 목소리가 떨렸고 사회와 집전봉사를 할 때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하는 마음에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7년 수행한 지금도 오죽하면 ‘정토행자의 하루’ 기사의 주인공이 된다고 할 때, 고민이 되고 걱정되는 정도이니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나를 위한 봉사

처음 거리모금 봉사를 하던 날, 단지 모금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제게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 모금함에 돈을 넣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스쿠루지 영감이 된 그때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어색하지만 그 감사함에, 얻은 게 많아 코로나가 오기 전까진 빠짐없이 참여했던 봉사였습니다.

도반들과 저녁 거리모금(맨 가운데)
▲ 도반들과 저녁 거리모금(맨 가운데)

불교대학 담당을 맡아 보라는 안내에 공황장애가 다시 온 듯 두려웠습니다. 정토회에서 계속 공부하려면 넘어야 하는 산이었지만 도망가기를 두 어 차례 거듭했습니다. 제가 누구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제가 누구를 가르칠 능력이 없어 불안했습니다. 빠짐없이 안내만 잘하고 제 경험을 나누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것 또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나는 나의 희망

지금도 여전히 소임을 맡을 때 무겁게 받아들이는 고비들이 옵니다. 소통능력이 부족해 학생들에게 전화하는 일도 어렵고, 70%를 못 넘기는 아침정진을 하며 모범을 보여야 하는 책임감 앞에 좌절 할 때도 있었습니다.

불교대학 팀장을 하며 담당자들과 트러블이 생길 때에도, 일주일 시간을 내려놓을 각오를 하며 맡았던 책임팀장도, 통일하고는 거리가 멀면서도 통일특위를 맡은 것도... 이러한 경험들이 밑거름이 될 거라는 것을 알기에 무거움을 알아차리고 가볍게 받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도반들과 어린이날 행사 준비(맨 왼쪽)
▲ 도반들과 어린이날 행사 준비(맨 왼쪽)

<나눔의 장1> 덕분에 용기를 내어 중학교 입학 전에 딸아이를 데려와 함께 산지 3년. 미운 중3이라 그런지, 제가 갱년기가 와서 그런지 마찰이 시작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코로나로 수행이 해이해진 탓인것 같기도 하고 정신을 좀 차려볼려고 합니다. 수행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니 크게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제가 제 인생의 희망이 되어 본 경험 때문인지 조금은 든든합니다.

딸과 함께 행복앞으로

새벽정진이 자신 없어 미루고 미루다 선택했던 8-1차 첫 입재식2의 경험은 참 신선했습니다. 정토행자의 삶을 살아 보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하루도 계획하며 살아보지 못했는데 30년을 계획한다고?? 말이야 방귀야~’ 하다가도 ‘혼자하면 힘들겠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 하면 가능 할 수도 있겠구나.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끈을 놓지 말아야지.’ 합니다.

그때의 다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지금은 제가 하는 일이 저에게 좋은 건 분명히 알고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타인에게 좋다는 것은 제가 검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최선을 다하면 결과가 어떻든 받아들이며 다만 할 뿐입니다.

서울 광화문 평화집회 때 딸과 함께
▲ 서울 광화문 평화집회 때 딸과 함께

또 기도하면서 딸의 마음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딸은 제가 인정해주지 않아 불만입니다. 반면 저는 부모로서 딸의 행동을 교정해주고 싶은 욕구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제 생각을 딸에게 전달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수행은 지금도 현재 진행중입니다.


어떤 소임이 오던 가볍게 싹 받아서 해보는 아름다운 수행자 전은희 님. 9차는 저녁부 책임팀장으로, 10차에는 행복학교에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로 에너지 넘치게 도반과 함께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빠르고 솔직하며 놓치면 바로 돌이키는 모습의 은희님을 보면 항상 바삭바삭한 비스킷 같습니다. 바삭한 삶을 유지하는 그 모습이 바로 “나는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라는 명심문이 떠오릅니다. 똑순이 전은희 님을 응원합니다.

2020 하반기 온라인 정토불교대학 입학생 모집
▲ 2020 하반기 온라인 정토불교대학 입학생 모집

글_전은희(창원정토회 의창법당)
정리_정선혜 희망리포터(창원정토회 의창법당)
편집_정지혜(해운대정토회 반여법당)


  1.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2. 입재식정토행자 천일결사를 백일 단위로 나누어 매 백일 마다 함께 모여 수행을 점검하고, 새롭게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의식.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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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자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01-15 14:14:09

무애명

멋지십니다. 길을 만들어가시는 모습. 늘 행복하시길.

2020-09-04 03:22:25

이윤주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따님과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감사 합니다. ^^

2020-09-02 23: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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