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대연법당
평범함, 그 빛나는 비법은?

굵은 장맛비가 한창인 여름 오후, 온화하고 편안한 미소의 백영희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 재미있는 얘기가 없는 것 같은데…”라며 희망리포터를 걱정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평범함’은 16년을 한 결 같이 수행해오면서 천천히 깊어진 내면의 편안함 그리고 고요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며 밝아지는 도반들의 모습에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그녀의 수행담을 나누어 봅니다.

2016 동북아 역사기행시 백두산 천지에서
▲ 2016 동북아 역사기행시 백두산 천지에서

평범한 나의 인생

인터뷰 제의를 받고 고민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크게 힘들었던 일이나, 그것을 극복했던 경험이 특별히 떠오르지 않았고, 다른 도반들의 얘기처럼 크게 감동을 주지 못할 것 같아서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힘든 일이 없었다기보다는 다행히 나름대로 잘 넘겨 왔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과 결혼

저는 2남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교장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지만 알뜰살뜰한 어머니와 남매들 사이에서 유복하게 자란 편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후, 중매로 남편과 결혼을 했고 당시 대학생이던 남편과 서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낯선 서울 생활에 남편이 학생신분인 터라 시댁에서 생활비를 받아 생활했지만, 젊고 순수했던 시절이라 그런지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습니다.

힘든 순간 나를 지켜주는 힘

남편이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업을 하시는 시아버지와 같이 일을 시작했지만, 사업 특성상 생활비를 꼬박꼬박 받지 못했던 때도 있었고, 친모가 아니었던 시어머니의 간섭 등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성격이 강한 남편과의 다툼, 아이들과의 의견대립 등 힘든 요소들이 충분히 있었지만, 가슴에 응어리가 지거나 크게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힘든 게 힘든 줄도 모르고 잘 넘겨 왔고, 마음의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나름대로 잘 치유를 해온 것 같습니다. 편안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어머니의 바르고 곧은 가르침이 내면의 큰 힘이 되어 저를 지켜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저를 수행의 길로 이끌어준 정토회와의 소중한 인연 덕분입니다.

부처님오신날 행사에서 왼쪽 백영희님
▲ 부처님오신날 행사에서 왼쪽 백영희님

정토회에 첫발을 들이다

어느 날 지인이 “법륜스님 법문이 좋다던데” 라며 정토회 얘기를 해주었지만, 당시에는 동래법당에서 영상으로 강의를 한다기에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길을 지나다 해운대 법당이 개원한다는 플랭카드를 보고 정토회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마침 법륜스님이 100일간 해운대정토회에 상주하셔서 수요일마다 법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100일을 기도하면 내 꼬라지를 볼 수 있다!” 라는 스님 말씀에 이끌려 새벽에 일어나 108배를 하고 명상을 하는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법문이 너무 좋았고, 조금 더 공부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불교대학에 입학도 했습니다.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레 정토행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도전, 합창단 운영

해운대법당을 다니고 얼마 되지 않아, 합창단을 만들어 보자는 법륜스님의 제안이 있었고 우연찮게 합창단 담당이 되어 지휘를 맡고 운영도 하게 되었습니다. 30명 정도로 구성된 도반들과 마음도 잘 맞고 재미있었습니다. 행사가 있을 때는 다른 사찰에도 가고, 문경수련원에 가서 공연도 하는 등 아주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개원한지 얼마 안 된 법당에서는 봉사소임을 맡아줄 사람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법당 봉사와 합창단 활동 둘 다 하기에는 저 자신부터 여유가 없었고, 나도 하기 어려우니 단원들을 이끌고 가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합창단을 해체하기까지 이르렀고, 스님께서 “마음공부 한다 생각하고 다시 한번 해보는 게 어때요”라고 하셨지만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법당에 나가는 것마저 소원해 지고 말았습니다.

부산울산 활동가 합창공연(백영희님은 지휘)
▲ 부산울산 활동가 합창공연(백영희님은 지휘)

내 고집을 내려놓다

그 후로 2년 6개월 정도 법당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법당 총무님께 전화가 와서 다시 나와서 활동을 좀 해주면 좋겠다 라고 했고, 저는 문득 ‘내가 뭐라고, 고집을 부릴 일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어색함을 감수하고 다시 정토회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경전반에 입학하게 되었고, 소중한 인연을 다시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2018년 9-4차 입재식 때는 유수스님의 제안으로 부산·울산 활동가 108명과 합창공연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인원이 많고 사는 지역도 다양하다 보니 연습 자체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고군분투하며 한 달반 가량 공연을 준비했는데 행사를 총괄하는 본부 쪽에서는 ‘인원이 너무 많다, 무대나 대기실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승인하기 어렵다, 힘들게 섭외한 반주자는 정토행자가 아니어서 안 된다’ 등등 절차가 무척이나 까다로웠습니다. 예전 같으면 분별이 일어나 화내고 그만두었을지도 모르지만, 스님의 금강경 강의와 꾸준한 수행 덕분인지 내 의견과 다른 것도 ‘받아들이는 연습’이라 생각하는 내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내 생각이 맞다 싶어도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고 지금도 무척이나 보람되고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정토회 안에서의 경험들 하나하나가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계속 시켜주었습니다.

연등만들기봉사
▲ 연등만들기봉사

나를 성장시키는 가르침

한때 아이들 문제로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딸은 의대 진학을 희망했는데 항상 시험에서는 컨디션이 안 좋거나 긴장을 해서 아까운 점수로 탈락이 되곤 했습니다. 다른 대학교에 입학을 해도, 의대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하고 휴학과 자퇴를 반복하는 딸이 걱정되고 불안했으며, 좋은 남자 만나 시집이나 가라며 딸과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상을 짓지 말라’는 부처님 가르침을 되새기며 묵묵히 수행하며 딸아이를 조용히 지켜 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렀고, 지금은 원하는 대로 의사가 되어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딸의 인생 그대로를 응원할 뿐입니다.

불교대학 봉사소임, 남산순례(오른쪽 맨앞 백영희님)
▲ 불교대학 봉사소임, 남산순례(오른쪽 맨앞 백영희님)

또 한 번은 스님께 아들에 대해 질문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엄마인 나와 상의도 없이 잦은 이직을 결정하는 아들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스님은 “이거는 아들 공부 잘한다고 자랑하는 거 아니가” 하시는데 부끄럽기도 하고 ‘아..아무런 문제가 아닌데 내가 문제 삼고 있을 뿐이구나.’하고 느낀 다음부터는 더더욱 아이들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조금씩 편안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수행도, 봉사도 꾸준히 한결같이

2019 가을불교대학 마지막수업 기념(뒷줄 왼쪽 백영희님)
▲ 2019 가을불교대학 마지막수업 기념(뒷줄 왼쪽 백영희님)

새벽에 일어나 매일 수행하는 내 모습을 보고는 집에 놀러 왔던 손녀딸이 옆에서 절을 따라 하기도 하고, 법당에 가보고 싶다고 먼저 말을 합니다.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좋은 면을 물려줄 수 있는 것 같아 뿌듯하고, 아이들이 기특합니다. 이런 복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고, 정토회에서 하는 좋은 일들에 작은 역할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 불교대학 모둠장 소임을 비롯한 봉사활동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꾸준히 할 계획입니다. 이제 저에게 수행과 봉사는 자연스런 하루 일과입니다. 정토회와의 인연과 수행으로 ‘평범하게’ 잘 살아올 수 있었음에 늘 감사합니다.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무기는 없다고들 하지요. 16년째 새벽 수행을 이어오고 있는 백영희님의 내공과 여유가 느껴지는 인터뷰였습니다. 인생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온 데는 꾸준함과 성실함이라는 특급 비결이 있었습니다. 작은 개울이 흘러 흘러 결국 바다로 가듯, 꾸준한 수행과 봉사야 말로 우리를 행복의 바다로 데려다 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 같습니다.

글_강문주 희망리포터(해운대정토회 대연법당)
편집_이정선(진주정토회 진주법당)

전체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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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명행

마음이 편안해지는 수행담 감사합니다~
평범함 속에 이른 깊은 감동이 숨어 있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습니다. 다 도반님 덕분입니다~

2020-09-07 22:33:17

백영희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 주시고 웅원의 글까지 적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글을 예쁘게 적어주신 강문주보살님 또한 감사드립니다.
이곳에 나투어주신 모든 부처님들 감사합니다. ()()()

2020-09-02 14:37:24

이미진(상광명)

대연법당 처음 들어와서 가장 열심히 일하시는 분 중의 한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원래부터 불교일을 해오신 분처럼 자연스러웠는데 수행담 읽어보니 감동적이었고 많은 여러가지 일도 담당하시고 특히 합창지휘하는 모습 보고싶네요. 옛부터 있었던 이 새로운 길 함께 나아갈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2020-08-24 11: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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