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송파법당
그대로의 남편을 마주하다

송파법당의 초창기부터 법당 내 다양한 봉사 활동에 솔선수범하고 계시는 문필순 님. 재주가 좋아서 법당 살림들을 이리저리 뚝딱 고쳐놓기도 하고, 담당자가 부족하다고 하면 한 반을 선뜻 맡아 주시는 등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선배 도반. 문필순 님의 수행담을 소개합니다.

동북아 역사 대장정에서
▲ 동북아 역사 대장정에서

아버지를 피하려다 아버지 같은 남편을 만났어요

6·25 때 두 부부만 남한으로 내려온 실향민으로 열심히 삶을 꾸려 오신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지독히 가부장적이고 이기적인 아버지, 남편의 막말이나 부당한 처사에도 그저 순종하기만 했던 어머니, 그 아래에서 자라며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미움이 쌓였습니다. 늘 마음속으로 아버지 같은 남자와는 결혼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남편은 아버지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사람입니다. 자기밖에 모르고, 술 마시면 가끔 주사도 있고, 버럭 성질을 내는 등 여러 가지가 못마땅하고 미웠습니다. 마누라는 자고로 집에서 밥을 하고, 자신을 떠받들어 주는 존재로 여기는 남편 옆에서 저의 정토회 활동은 아주 힘들었습니다. 남산 순례나 문경수련원과 같이 멀리 또는 며칠간 집을 비워야하는 일정의 수련을 갈 때에는 남편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또 수련을 다녀온 저에게는 말도 안 하고 싸늘하게 대하는 시선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고지식할 정도로 성실한 생활 자세를 지닌 남편이어서 “〈깨달음의 장〉1을 갔다 와야 졸업이 돼~” “명상수련을 다녀와야 경전반 졸업장을 줘” 이런 식으로 설득하며 2013년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불교대학 담당, 불교대학 팀장, 행복학교 담당, 통일 의병통일의병 등 정토회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변 동기들은 나와 달리 어렵지 않게 정토회 수련이나 활동을 다녀오는 것을 보며 남편에 대한 원망은 더욱 자라났습니다.

그래도 정토회에 발을 들여놓고 법문을 듣고 수행하며 3년쯤 보내고 나니, 남편이 자란 배경과 환경 등으로 그러는구나 하고 어느 정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오기 전에는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이 컸는데 지금은 가끔 이뻐 보일 때도 있고 예쁘게 보려고 노력합니다.

아차산에서의 즉문즉설 세종대 강연 홍보 활동, 오른쪽이 문필순 님
▲ 아차산에서의 즉문즉설 세종대 강연 홍보 활동, 오른쪽이 문필순 님

인도성지 순례를 향한 대작전

저는 정토회를 다니는 초창기부터 인도 성지 순례를 가고 싶은 열망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경전반을 다녀야 인도를 갈 수 있었기에 남편의 못마땅함을 무릅쓰고 경전반 수업을 이어나갔고, 그렇게 이어진 정토 행자로서의 인연으로 수행의 여러 과정을 하나씩 경험해 나갔습니다. 불교대학 담당을 오래 해서인지 불교대학 수업 중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할 때면 인도를 가고 싶은 열망이 더욱 커졌습니다. 하지만 인도 순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남편은 인도 가려면 이혼하고 가라는 둥의 말을 하며 완강히 반대했고, 그럴 때마다 남편에 대한 나의 마음은 ‘저 쪼잔한 사람, 저 성질머리하고는...’ 하며 원망하는 마음이 쌓여서 아주 속상했습니다. 주위의 도반들과 법사님께 이런 내 사정을 털어놓으면 “그냥 질러버리면 되지 뭘 허락을 받아” “그냥 갔다 와. 인도 가서 이혼하고 갔다 와서 재결합하면 되지 뭐” 이렇게 가볍게 답을 주시곤 했는데 저는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2014년부터 해마다 한 번씩 인도를 가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고 2019년에는 어렵사리 9박 10일 동북아 역사 대장정도 다녀와서, 2020년 인도 순례 공지가 떴을 때는 남편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일단 신청 부터 해버렸습니다. 그때는 법사님의 “그냥 갔다 오면 되지”라는 말씀이 희한하게 마음에 확 꽂혔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인도성지순례 출발 전 같은 조 도반들과 함께, 앞줄 오른쪽이 문필순 님
▲ 인도 성지 순례인도성지순례 출발 전 같은 조 도반들과 함께, 앞줄 오른쪽이 문필순 님

그로부터 6개월간 아침 운동을 열심히 하는 등 인도성지순례 준비를 해나갔지만, 남편에게는 비밀로 하였습니다. 그래도 떠나기 한 달 전쯤에는 말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침 산책 중에 “나 인도 가는 거 신청했어. 지금은 취소해도 돈 못 돌려받는데.” 하고 털어놓았습니다. 당연히 버럭 하고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남편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그럼 할 수 없네…. 뭐…. 가겠다고 하고 이미 신청했다는데 내가 뭐 어떡하겠노...” 그러고는 몇 박 며칠인지 묻더군요. 16박 17일이라고 말해줬더니 “그렇게 길지 않네. 난 한 달 정도 걸리는 줄 알았지!” 이렇게 6년 동안이나 속앓이했던 인도 문제는 순조롭게 마무리됐고 올해 무사히 성지 순례를 잘 다녀왔습니다.

나를 돌이키니 남편이 보였어요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한 번도 남편에게 인도 순례에 대한 일정이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준 적도 없고 조곤조곤 설득해 볼 생각을 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가고 싶다면 응당 허락해줘야 하는데 내 뜻과 다른 것에 화가 났고 나를 존중해 주지 않고 나를 미워해서 반대하는 거로 생각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찬찬히 의논해 볼 생각은 못 하고 ‘인도’하면 자동으로 튀어 오르는 각자의 망상만 부여잡고 6년을 쳇바퀴 돌 듯 서로를 미워하고 비난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멀리 오랫동안 힘든 곳에 가는 게 싫다는 남편의 그 마음만 받아들였으면 될 텐데, 나에 대한 미움으로 확대 해석하고 내가 인도에 못 가는 건 오로지 나쁜 남편을 둔 탓을 했습니다. 사실 힘든 여정이 두렵고 엄두가 나지 않는 내 마음도 있었을 텐데, 남편 핑계만 대면서 내가 결심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돌아봐졌습니다.

동북아 역사 기행에서
▲ 동북아 역사 기행에서

하나의 산을 넘다

인도에 가서 책에서만 봤던 장소들, 부처님이 처음 설법하셨던 곳 등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감동도 컸지만 이번 일로 깨달은 바가 컸습니다. 내가 넘어야 할 큰 산 하나를 넘은 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저는 누군가의 거절, 상대방이 ‘싫어’ ‘안 돼’ 하는 것에 대해 상처를 깊게 받아왔습니다. 이제는 남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반대에 대해 ‘당신의 마음은 알겠고 그 마음만 내가 받을게. 상대방의 거절에 대해서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까지는 낼 필요가 없겠구나, 내가 속상해할 필요도 없겠구나’하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싫어서 상대방이 거절하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일단 하고 살면 될 것을 남 탓하고 남 원망하며 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했고, 상대방의 반응에 대해 내가 끄달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정토회 소임들을 맡으며 도반들의 거절에 상처를 많이 받았었는데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문경 정토수련원에서의 경전반 특강, 오른쪽이 문필순 님
▲ 문경 정토수련원에서의 경전반 특강, 오른쪽이 문필순 님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남편에게 미안하고도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의 상을 내 멋대로 지어 놓고 그것과 맞지 않는 남편을 속으로 무시하고 모자라게 여겼습니다. 시시비비를 따지고 드는 내 성격에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며 남편을 대했고 내 뜻과 다르다고 해서 미운 마음을 내는 독재자의 마인드를 지니고 살았습니다. 비판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을 만나 남편도 힘들고 편치 않았을 텐데 이런 나를 받아주고 이혼하지 않고 살아주는 남편이 고맙습니다. 이번에 산 하나를 넘은 경험은 앞으로 저의 수행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아직도 주변에 삐죽삐죽한 돌멩이들이 많이 깔려 있지만 꾸준한 수행으로 하나하나 넘어가고 싶습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수행법회를 온라인으로 집에서 듣다 보니 남편이 처음으로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법당을 못 나가는 답답함이 있었지만 이번 사태 덕분에(?) 난생처음 남편과 법문을 들으며 웃기도 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감사한 일상입니다. 앞으로도 법당에서 작은 소임이라도 계속 맡아가면서 수행의 끈을 이어가 걸림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문필순 님의 수행담을 들으며 매번 넘어지더라도 한번 넘어보면 그것을 바탕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번 넘어지더라도 계속 일어나다 보면 언젠가는 산도 넘고, 강도 건넌 내가 있을 테고, 또 더 돌아보면 산도 강도 그저 내가 장애로 여겼을 뿐이었구나 알게 되지 않을까 하고 희망해 봅니다.

글_이선희 희망리포터 (송파정토회 송파법당)
편집_서지영(홍보국 홈페이지운영팀)


  1. 깨달음의 장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4박 5일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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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수행이 많이 되셨군요. 인도도 다녀오시고, 동북아도 다녀오셨네요.
불대담당을 몇년씩이나 하신 공덕을 누리고 계신가 봅니다.
늘 넉넉하고 유머러스하신 보살님 곁에 있으면 행복합니다.

2020-04-20 16:09:46

송정화

보살님의 글을 읽으며 잠시 눈물이 흐르네요~
나또한 무언가 부탁을 받으면 흔쾌히 승락한적이 없었던거 같네요.
나또한 남편과 대화가 안통해서 저지르고 보는데 난 언제쯤 소통이 되려는지 ~
보살님의 작은소임을 맡으며 정토회와 연결 되어짐에 공감이 드네요.

2020-03-29 19:40:04

권용미

보살님 수행담을 들으며 내 자신도 돌아보며 또하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20-03-29 15: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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