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대전법당
할 말은 할 줄 아는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일교차 큰 요즘이지만 푸른 하늘과 적당한 바람은 나들이 하고프게 만드는것 같습니다. 지금은 완치되었지만 착한사람이라 남에게 내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마음의 병을 얻었던 도반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대전법당에 이기선님을 만나보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환하게 웃는 이기선 님
▲ 인터뷰를 마치고 환하게 웃는 이기선 님

남편의 실직

남편은 1997년 우리나라 IMF 사태가 있기 전만 해도 38살의 젊은 나이에 보험회사 국장으로 실적이 좋아 임원 승진을 앞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1998년 신정을 지내고 사무실에 출근해보니, 남편은 구조조정 대상자로 발표, 돌연 실직자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가정보다는 회사 일이 우선이었고, 주말도 없이 열심히 한 결과 전국 최우수영업국으로 여러 차례 표창을 받았기에 그 실망감은 매우 컸습니다. 남편은 그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사업을 하기 시작했지만, 운이 없는지 사업마다 잘되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보기가 답답해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심정으로 이 절 저 절, 이 무당 저 무당을 찾아다녔습니다. 남편은 자기 사업만 고집하다가 결국, 큰 빚만 남기고 백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남편이 밉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신세계 같은 정토불교대학을 만나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던 직장 상사가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해서 따라가보니, 정토회 불교대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님도 안 보이고 다른 법당과 너무 달라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이런 곳으로 나를 데리고 와 공부를 하자고 할까 궁금 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믿고 따랐던 직장 상사이기에 거기다가 입학금까지 미리 내었다고 해서 2009년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남편 때문에 그동안 이 절 저 절 많이 다녀 봤지만, 정토불교대에서 불교공부를 하면서 법륜스님의 법문은 이해하기 쉬워서 신세계가 여기구나 싶었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꾸벅꾸벅 졸면서도 재밌게 불교대학 공부를 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소개해준 고마운 도반 장덕자 님과 이기선 님(오른쪽)
▲ 정토불교대학을 소개해준 고마운 도반 장덕자 님과 이기선 님(오른쪽)

쉽지 않은 결혼생활

4남 1녀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과 오빠들의 보살핌 속에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살다가 결혼할 나이가 되니, 고등학교 은사님이 남편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은사님을 믿고 막상 결혼하고 보니, 받는 입장에서 줘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고, 직장생활 한다고 아무도 집안일을 시키지 않아 할 줄도 모르는 살림을 해야 했습니다. 살림집에는 이미 작은 시누이가 짐을 싸서 와 있었습니다. 시누이는 청소, 빨래 하나 도와주지 않고 방에 들어가면 식사 시간에 나와 밥 먹는 게 얼굴 마주 보고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시간이 지속되다 보니, 이런 생활을 하기 위해 결혼을 했나 후회가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부족함 없던 친정과는 다르게 결혼할 당시에 시댁에서는 제대로 된 신혼집을 얻어주지 못했습니다. 남편의 실직상태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 집을 내놓으니, 시아버님이 다른 시댁 식구들 모르게 산을 팔아 빚을 갚는 데 쓰라며 돈을 주었습니다. 그걸 시누이가 어떻게 알았는지 집으로 전화해서, 마침 어린 제 아들이 전화를 받자 “갚으라고 해라, 엄마한테 말하면 안다”하며 통보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시누이를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결혼 전 내 손으로 무언가 해 보지 않아 모든 게 서툴고 어렵기만 했습니다. 시할머니는 집에 오셔서 아이도 키우면서 살림도 도와주었지만 고맙다는 생각보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시누는 시누대로 눈치 보며 살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시댁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싫어해서 말을 못 하니, 어느새 마음의 병을 얻어 이유 없이 여러 번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무거웠던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지다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깨달음의 장>을 갔습니다. 시내 운전은 해도 대전에서 문경까지의 장거리는 갈 엄두가 안 나서 대중교통을 이용했습니다. 가은에서 문경수련원까지 가는데 택시가 내 마음처럼 무겁고 힘들게 올라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3일 내내 울었습니다. 불교대학 입학은 그렇다 치더라도 <깨달음의 장>까지 가라고 해서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나 도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4일째 되던 날부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시누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고, 남편도 어릴 때 상처와 아픔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도반과 함께 자장면을 먹으러 가기 위해 트럭을 탔습니다. 우리를 태운 트럭은 새털보다도 더 가볍게만 느껴졌습니다. 차창밖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고맙고, 이 세상 모든 게 감사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행복한 회의를 마치고(뒷줄 가운데가 이기선 님)
▲ 행복한 회의를 마치고(뒷줄 가운데가 이기선 님)

봉사를 시작하다

경전반을 마치고, 수행법회 담당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녁반 봉사자가 적어서 방석 깔기, 공양간, 접수 등을 혼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봉사하는 게 힘에 부쳐 방석을 깔다가 ‘부처님 저 너무 힘들어요?’하고 하소연도 해 가면서 3년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작은 봉사하면서 수행법회나 열심히 나와야지 했는데, 자활팀장 소임을 맡아서 하게 됐습니다. 이것저것 하라는 건 많은데, 체계적인 교육도 없이 전임자에게 물어봐서 하라고 하니 수행법회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물어가며 깜냥 것 한다고 하는데 어떤 한 도반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계속하니 마음속에서 분별심이 불타올랐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봉사를 하던 중, 새물정진에 300배와 기도를 통해 그 도반은 나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새물정진 이후로 무슨 일이 주어지면 투덜거림은 적어지고 가볍게 봉사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힘이 이런 거구나 신기함을 느끼며 편안한 마음으로 봉사를 하다 보니, 곁에 있는 도반들이 자진해서 봉사를 같이 하고 싶다고 하는 순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현재 저녁 책임팀장이라는 소임을 하고 있지만, 혼자 하지 않고 도반들과 함께 행복한 회의를 통해 소통하면서 해나가니 즐겁기만 합니다. 이제 대전법당 저녁반은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신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못해 화병(火病)을 안고 사는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시누이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는 내가 아닙니다. 남편이 무얼 해도 감사하고, 시어머니가 타박해도 ‘네’와 ‘죄송합니다’, ‘그래도 잘했죠’ 하며 할 말은 할 줄 아는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글_신명옥 희망리포터(대전법당)
편집_하은이(대전충청지부)

전체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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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지

잘 읽었습니다. 힘든시간 이겨내시고 꾸준히 수행하시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지금의 행복한 미소가 그냥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_()_

2019-10-05 16:32:37

황소연

할말은 할줄 아는 여자~~ 멋집니다(_)

2019-10-01 17:38:59

정지안

많이 행복해 보여요
존경스럽습니다

2019-10-01 14: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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