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01.29. 인도성지순례 9일째, 룸비니
“부처님은 108배를 하지 않았는데, 왜 불교에서는 절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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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해발 2천 미터에 위치한 산악지역 탄센으로 가서 부처님이 보고 자라셨다는 설산을 보고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를 순례했습니다.

스님과 순례단은 어제 인도-네팔 국경을 넘어 용성스님의 유훈이 깃들어있는 대성석가사에 머물렀습니다. 이곳 대성석가사에서 탄센까지 이동하려면 왕복 6시간을 이동해야 합니다. 오전 중에 탄센을 다녀오기 위해 새벽 일찍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니 간밤에 대성석가사의 전기가 모두 나가서 깜깜했습니다. 순례단은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손전등을 켜고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계획했던 대로 새벽 3시에 탄센으로 출발했습니다.

버스 안에서 곤하게 자고 나니 6시가 넘어 탄센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뜨기 전이라 밖이 아직 어두웠습니다. 탄센에는 관광객이 많이 오다 보니 마을 곳곳에서 벌써 가게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순례단은 천천히 걸어 올라갔습니다. 동틀 무렵의 빛과 마을의 조명이 어우러진 거리가 아름다웠습니다. 이색적인 골목도 구경하고, 자연 풍경도 보면서 한 시간 정도 올라갔습니다.

스님은 일출이 잘 보일 것 같은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 몇 시인가요?”

“7시입니다.”

“일출하기 직전이네요. 그런데 해가 어느 위치에서 뜰지 모르니 잘 한번 보세요.”

조금 있으니 붉은 해가 동그랗게 솟아올랐습니다. 다 같이 일출을 보고 설산이 보일만한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한쪽 하늘에는 달도 떠 있었습니다.

“동쪽에는 해가 보이는데 서쪽에는 달이 보이네요.”

계속 설산이 보이는지 확인하면서 걸어가는데 누군가 설산이 보인다고 외쳤습니다. 나무 사이로 하얀 설산이 보였습니다. 넓은 공터에 도착해서 다 함께 체조를 했습니다. 인도에 와서 오랜만에 땀을 흘리니 피곤함이 싹 사라진 것 같습니다.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맑은 공기 마시니까 좋지요? 이제 밥도 먹고 룸비니까지 가야 하니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내려가겠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설산이 더 잘 보였습니다. 스님이 농담으로 “그건 구름이야!” 라고 했지만, 대중은 설산이 보인다며 기뻐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잠시 내려 야외에서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3시간을 이동해 오후 1시가 되어 룸비니에 도착했습니다. 순례단은 마야데비 사원에 삼배를 하고 앉아 잠시 명상을 했습니다. 곧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후대에 부처님의 탄생을 기록한 사람들은 그 내용을 좀 더 신비화해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탄생은 ‘부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불타관에 따라서 관점이 서로 다릅니다.

부처님을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

첫째, 역사적인 실존 인물로서의 불타관입니다. 정토회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실제 인물로서의 고타마 붓다를 바라보는 불타관을 갖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2,600여 년 전 인도 대륙의 히말라야 산기슭에 있는 카필라바스투라고 하는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서 인생의 여러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해 6년의 수행을 마치고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었다고 보는 관점 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펴서 그들 또한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기 때문에 부처님은 위대한 우리의 스승입니다.

둘째, 테라밧다, 우리가 ‘히아야나’라고 부르는 소승불교의 불타관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인도 사람들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단지 6년 동안만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으셨을까?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바라봤습니다. 부처님은 과거 전생에 한량없는 수행을 한 결과로 이생에서는 6년의 과정을 거쳐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현재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보편적인 부처님의 일생이에요. 이에 따르면 과거 전생에 부처님의 행적이 경전에 남아있는 일화가 547가지나 됩니다. 부처님이 언제는 원숭이로 태어나서 자기 몸을 희생해 종족을 살렸고, 부처님이 코끼리로 태어나서 어떤 좋은 일을 했고, 부처님이 언제는 보살로 수행 정진하다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자기 몸을 던져 먹이로 주었고, 이런 교훈적인 일화들을 부처님의 전생담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경전의 기록에는 부처님의 탄생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야 부인이 친정으로 가다가 이곳 룸비니에서 아쇼카 나무 숲에 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오른손을 들어 꽃가지를 잡았는데 그때 산기를 느끼고 아기를 낳았습니다. 하늘의 신들이 와서 황금 그물로 아기를 받고, 용왕이 더운물과 찬물로 아기의 몸을 씻기자 몸이 황금빛으로 변하였습니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한 손은 위를,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사자처럼 외쳤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 개고 아당안지.’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가장 높네, 세상이 다 괴로움에 빠져있구나. 내 마땅히 이를 구제하리라. 이런 뜻입니다. 이 말은 누가 한 말일까요? 부처님이 한 말일까요? 후대에 부처님의 일생을 쓴 작가가 기록한 것일까요? 저는 후대의 작가가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문으로 불소행찬(佛所行鑽), 즉 ‘붓다차리타(Buddhacarita)’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런 기록 때문에 우리가 초파일 행사도 하고 코끼리도 만들고 연등도 달고 욕불 의식도 하는 불교문화가 생길 수 있었다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문화사적으로 보면 부처님께서 태어나자마자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윤회의 세계인 육도 윤회를 벗어났다는 해탈을 상징합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라는 것은 인간 세계와 신들의 세계를 상징하는데, 부처님이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붓다는 신들 중의 한 분이 아니고, 신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셋째, 대승불교의 불타관이 있습니다. 이것은 법화경이나 화엄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들 경전에서는 부처님은 본래부터 부처라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된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구원겁 전부터 원래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부처님이 중생을 고통에서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나투셨다고 봅니다. 그래서 원래 부처를 법의 몸이라고 하여 법신이라고 하고, 인간 세상에 몸을 나툰 것을 화신이라고 부릅니다. 부처님의 수명은 한량이 없고, 부처님의 지혜도 한량이 없어서, 범부는 헤아릴 수도 없다는 것이 대승불교의 불타관입니다. 그래서 대승불교의 불타관에는 인생 이야기가 없어요. 부처님의 일생이라든지 어떤 사건이나 역사성이 전혀 없습니다. 한국 불교인들은 대부분 이런 대승불교의 불타관을 갖고 있다 보니 성지순례를 와도 복을 비는 절 밖에는 할 게 없어요. 구체적인 스토리가 하나도 없으니까요.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났다고 해서 그런 내용을 담은 조각을 둘러보는 정도밖에 하지 않습니다. 사회성이나 역사성이 없다 보니 사회적 실천도 없고 믿음과 구복 행위만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토회에서도 성지순례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누구나 원하면 다 순례를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앙으로서의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와서 스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신심이 나는 게 아니고 오히려 계속 헷갈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부처님 일생을 확실하게 공부한 사람만 순례에 참여하는 것으로 바꾸게 되었어요.

사실 그대로 감동을 주는 부처님의 일생

여러분들은 이렇게 성지순례를 다녀보니 어떤가요? 부처님의 일생을 굳이 신비화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부처님의 일생을 신비화해서 사람들이 더 헷갈려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처님의 삶은 한 인간이 평생 동안 보여준 말씀과 행위만으로도 큰 감동이 됩니다. 신비화하는 것은 꽃 자체가 너무 예쁜데 거기다 색칠을 하는 격이라고 생각해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은 굳이 거기에 무엇을 덧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원형이 더 현대인에게도 맞고 미래에도 맞고 더 실천적이고 우리의 생활에도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삶은 이미 초역사적으로 모든 차별성을 극복한 삶이었습니다. 당시의 역사적 한계를 이미 뛰어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경전을 독송하고 명상을 한 후 예불을 했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욕불의식을 하고 순례단은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룸비니 사원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마야데비 사원을 지나 큰 보리수, 아쇼카 석주를 돌아 원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짐을 정리하여 대성석가사로 갔습니다. 4시 40분부터 대성석가사 앞마당에서 법회를 진행했습니다.

“룸비니 참배 잘하셨습니까? 지금 우리가 도착한 이곳은 네팔 룸비니 국제 사원 구역 내 한국사원인 대성석가사입니다. 이곳은 용성진종조사님의 유훈에 따라 창건한 절입니다. 용성조사님께서는 ‘인도의 5대 불적지를 잘 가꾸어라’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룸비니,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신 보드가야, 부처님께서 처음 설법하신 사르나트, 부처님이 열반하신 쿠시나가르, 부처님께서 가장 오래 머무셨던 쉬라바스티를 잘 가꾸어라.’

이 중 가장 먼저 룸비니 대성석가사를 창건했습니다. 용성진종조사의 법을 계승한 동헌완규조사, 동헌완규조사의 법을 계승한 불심도문조사, 불심도문조사의 법을 계승한 법신스님께서 현장에 나와 이 모든 불사를 20년이 넘도록 추진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이렇게 웅장한 불사를 완성 했습니다. 현재는 법신스님의 대를 이어 보현스님께서 대성석가사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성지순례기간 늘 이곳에서 머무르면서 조사님의 유훈을 실현하는 데에 작지만 참여하는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보현스님께서도 이 자리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잠시 인사를 듣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스님은 보현스님에게 마이크를 건넸습니다.

“은사스님께서는 귀국하시기 전에 정토회 순례단이 오시면 편안하게 머무르실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라고 신신당부하고 한국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혼자서 네팔 현지 분들과 살림을 하다 보니 부족함이 많습니다. 여기 있는 현지 분들은 대성석가사를 처음 지을 때인 1995년부터 함께 해 온 분들이에요.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룸비니 순례가 여러분의 수행에 큰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보현스님의 인사말씀이 끝나고 이어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성지순례를 하면서 궁금했던 점이 있으면 누구든지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네 명이 질문을 했는데요. 그중 세 번째 질문과 네 번째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은 108배를 하지 않았는데, 왜 불교에서는 절을 하나요?

“정토회에서는 아침마다 108배 절 수행을 하는데, 부처님께서 전정각산과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하실 때 절을 하셨다는 내용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하는 절 수행의 유래가 궁금합니다.”

“부처님이 절 수행을 했다는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반면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처님에 대한 존경의 표현으로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는 기록은 많이 있습니다. 인도의 전통에서 존경의 표현은 상대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는 것입니다. 내 머리 위에 당신의 발을 올려놓는다는 뜻으로 하는 이 동작은 상대방을 그만큼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의에서 비롯된 절 동작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상대를 진심으로 존경할 때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그렇게 못할 때는 허리를 굽혀서 무릎 밑에 손을 대는 시늉을 합니다. 나중에 상카시아에 도착하면 인도 사람들이 인사하는 동작을 잘 관찰해 보세요. 스님에게 와서 인사할 때 무릎을 꿇고 스님의 무릎 밑에 손을 대는 시늉을 하는데, 이것이 모두 인도의 전통적인 인사 방식입니다.

그리고 인도 사람들은 ‘나마스떼’ 하고 인사를 합니다. 이 말은 ‘나는 당신께 귀의합니다’ 하는 뜻입니다. 우리가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또는 ‘나무아미타불’ 하고 말하는 ‘나무’가 귀의한다는 의미입니다. 테라밧다에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신 존귀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하는 의미로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 이렇게 말하는데, 여기서 ‘나모’라는 말도 ‘나무’와 같이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모두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높인다는 의미입니다.

절 동작을 취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내면을 겸손히 한다는 의미로 절 수행법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절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숙이고 겸손히 하는 마음입니다.

절 수행이 널리 퍼지면서 문화마다 그 방식은 조금씩 다릅니다. 티베트에서 절을 할 때는 ‘오체투지’라고 해서 온몸을 땅에 엎드리고 눕는 방식으로 절을 합니다. 중국에서는 호궤 합장을 해서 이마만 땅에 대는 방식으로 절을 합니다. 한국에서는 무릎을 꿇고 엉덩이가 두 다리에 붙는 자세로 절을 합니다. 이러한 절 자세는 모두 자기 아만을 버리고 겸손해지기 위한 수행법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살아갑니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대부분 내가 옳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주장을 내려놓는 것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치적으로는 사람마다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고, 실천적으로는 나를 숙이는 겸손함이 중요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숙이는 것은 비굴한 것과 다릅니다.

저는 50년이 넘도록 수행을 하고 있고 대중을 지도한 지도 30년이 넘었는데, 하루에 20분 동안 명상하는 것과 20분 동안 절하는 것을 비교해 보면 절하는 것이 사람의 변화에 조금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아주 장기간에 걸쳐서 수행을 한다면 명상 수행과 절 수행 사이에 어떤 방법이 더 효과적일지 말하기가 어렵지만, 짧은 시간 동안을 비교해 보면 대체로 절 수행이 더 효과적입니다. 특히 세속 생활을 하면서 수행을 할 때는 절하는 것이 자기를 변화시키는 데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정토회에서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108배 또는 300배 절하는 것을 수행법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 현대인은 대체로 운동 부족이 매우 심합니다. 그래서 매일 108배 절을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건강에 아주 도움이 됩니다. 한때 법원에서 판사들이 종교와 관계없이 108배를 하면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아침에 출근해서 매트리스를 깔아놓고 108배를 하는 것이 유행이 된 적이 있습니다. 절 운동은 전신 운동이기 때문에 운동 부족을 극복하는 방법으로도 매우 좋습니다.

부처님 당시의 기록을 보면 부처님은 선정을 배웠기 때문에 주로 좌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부 행선(行禪)을 하기도 했고요. 이 전통을 이어받아서 위빠사나 명상을 할 때는 좌선과 행선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의견을 내는 것과 고집하는 것을 어떻게 구분하죠?

“스님께서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하신 법문 중 우리는 모두 자기 방식대로 사물을 보고 이해한다고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 주장을 할 때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것과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기분이 나쁘면 고집을 하는 것이고, 아무렇지 않으면 그냥 의견을 개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하고 제안을 할 때, 상대방이 안 받아들여 주어도 ‘알겠습니다’ 하고 아무렇지 않으면 의견 개진입니다. 그럴 때는 세 번까지 다시 제안을 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내 의견을 안 받아줄 때 기분이 나빠진다면 그것은 전부 고집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간단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다 누라자’가 석가모니부처님의 조상이라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다누라자의 뜻은 다누= 단군, 라자=왕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우리 민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생각이 허무맹랑한가요?

  • 지금 자라고 있는 10대들에게 어떻게 불법을 전해주면 좋을까요?

법회를 마치고 저녁공양을 했습니다.

저녁공양 중에 인도성지순례에 참가 중인 한 스태프의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은 저녁예불 후에 천도재를 올리며 함께 추모를 했습니다. 스님은 그 스태프가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하고 비행 편을 알아봐 주었습니다.


내일은 다시 국경을 통과해 인도로 돌아갑니다. 석가족이 세운 진신사리탑인 삐쁘라하와를 참배하고, 부처님께서 가장 오래 머무신 쉬라바스티를 순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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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52

0/200

드림하이

“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기분이 나쁘면 고집을 하는 것이고, 아무렇지 않으면 그냥 의견을 개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하고 제안을 할 때, 상대방이 안 받아들여 주어도 ‘알겠습니다’ 하고 아무렇지 않으면 의견 개진입니다. 그럴 때는 세 번까지 다시 제안을 해도 괜찮습니다.

2024-03-26 13:49:01

이선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02-19 07:03:00

오정숙

스님의 명쾌하신 말씀 고맙습니다.

2024-02-07 1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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