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01.27 인도성지순례 7일째, 쿠시나가르
“부처님이 돌아가시면 누구를 스승으로 모셔야 합니까?”

▲ 오디오로 듣고 싶은 분은 영상을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성지 쿠시나가르를 순례했습니다.

아직 캄캄한 새벽 4시 40분, 순례단은 숙소를 나와 쿠시나가르로 출발했습니다. 6시 30분에 버스는 거대한 탑 앞에 멈춰 섰습니다. 부처님이 바이샬리를 떠나면서 발우를 띄워 보낸 것을 기념해서 세운 케사리아 탑입니다.


탑을 참배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부처님의 마지막 여정을 향해 갔습니다. 부처님이 열반하기 전 마지막으로 공양을 하셨던 춘다의 공양터, 마지막으로 물을 드셨던 카쿠타 강에도 참배했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어 쿠시나가르에 도착했습니다. 숙소에서 공양을 하고 열반당으로 갔습니다.

순례단은 스님을 따라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한 발 한 발 열반당 경내로 들어갔습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경내가 한산하고 고요했습니다. 염불 소리가 여느 때보다 더 간절했습니다. 순례단은 열반당을 한 바퀴 돌아 열반당이 보이는 넓은 공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모든 순례단이 자리에 앉자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바이샬리에서 부처님께서 열반을 선언하시고, 이곳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 3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3개월간 부처님께서 움직이신 거리를 우리는 버스를 타고 새벽에 출발해서 세 시간 만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부처님이 병이 나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천천히 움직인 데다가 도중에 군데군데 들러서 대중들을 위해 설법을 하셨기 때문에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열반경에는 왕사성 영축산에서 출발하여 바이샬리를 거쳐서 쿠시나가르에 이르기까지의 일정을 거의 매일매일 기록해 놓았습니다. 부처님은 늙고 병들었지만 사자처럼 당당하게 대중의 앞에 서서 길을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처님 돌아가실 때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오늘 우리는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목욕을 하셨다고 하는 카쿠타 강을 건너 이곳 사라나무 숲에 도착했습니다. 저 앞에 보면 열반당 앞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있죠? 저 나무가 바로 사라나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날 저녁에 사라나무 숲에 들어가 나무 두 그루 사이에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서 깔고 누우셨어요. 그런 후 ‘오늘 저녁에 이곳에서 열반에 들리라’ 하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아난다가 마음이 너무 슬퍼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라나무가 꽃피울 철이 아닌데도 하얀 꽃을 피웠습니다. 이 모습을 어떤 경전에서는 ‘사라나무가 학처럼 휘어졌다’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고 꽃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수자타 아카데미를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코끼리 위에서 꽃을 뿌린 걸 보셨죠? 이렇게 꽃비를 내리는 것은 인도의 문화입니다. 하늘에서 꽃비가 내려 대중들이 의아해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니까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신들이 부처님의 열반에 임해서 마지막으로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난다여, 이것은 여래에게 올리는 제1의 공양이 아니다. 여래에게 올리는 제1의 공양은 여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 정진하는 것이다.’

굉장한 말씀이죠. 이 세상의 어떤 신비한 현상도 수행자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행 정진해서 자기 마음이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여여한 것이 부처님께 올리는 최고의 공양이고, 그 어떠한 신비한 현상도 이와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불을 할 때도 가장 먼저 다섯 가지 인격의 향기를 부처님께 올리는 거예요.

왜 이런 시골에서 열반에 드십니까?

그러면서 아난다에게 ‘이제 마을에 가서 여래가 오늘 저녁에 열반에 드니 여래를 친견할 사람은 다 친견하라고 알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난다가 묻습니다.

‘부처님, 왜 이곳에서 열반에 드십니까? 라자그라하, 바라나시, 쉬라바스티처럼 왕도 부처님의 제자이고, 부유한 사람들과 재가 신자들도 많은 그런 곳에서 열반에 드시지 왜 이렇게 한적한 시골에서 열반에 드십니까?’

제자로서는 당연히 이런 아쉬움이 들겠죠. 그러자 부처님께서 대답합니다.

‘아난다여, 그런 소리를 하지 말아라. 이곳은 먼 옛날에 아주 성스러운 곳이었고, 앞으로 먼 훗날에도 성스러운 곳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아난다가 다시 묻습니다.

‘그럼 이곳에서 열반에 드신다면 쿠시나가르 왕족인 말라족의 성안에 들어가셔서 열반에 드시지 왜 이 숲 속에서 열반에 드십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안에서 열반에 들면 귀족들만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지 천민은 친견하고 싶어도 왕궁에 들어올 수가 없고, 짐승들도 오고 싶어도 못 옵니다. 그러나 이 숲 속에서 열반에 들면, 자기 마음만 내면 누구든지 올 수가 있습니다. 아무런 울타리도 없고 자격 제한도 없잖아요.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열반을 하실 때도 평등을 실현하셨습니다.

아난다는 마을에 가서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알리고 돌아와서 마음이 너무너무 슬펐습니다. 그래서 혼자 저 숲 속에 가서 나무에 기대서 울었어요.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난다는 어디에 있냐?’ 하고 물으니 저 숲 속에서 혼자 울고 있다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다를 이리로 오라고 하신 뒤 아난다를 칭찬하셨습니다. 부처님을 25년간 시봉한 아난다의 그 자세를 마치 입 안의 혀와 같다고 비유했다고 합니다. 군말할 필요 없이 부처님의 입장을 잘 헤아리고 모신 아난다의 공덕과 그동안의 수고에 대해서도 칭찬하셨습니다. 그때 아난다가 부처님께 질문을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계실 때는 우리는 세존을 의지해서 수행 정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서 수행정진을 합니까?'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대답합니다.

‘아난다여, 걱정하지 마라. 여래가 없는 세상에서 의지해야 할 것은 네 가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 사념처이다.’

사념처란 네 가지를 말합니다. 첫 번째가 신념처입니다. 몸이라는 것은 성스럽지가 못합니다. 곧 허물어질 것이기 때문에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다는 거죠. 이것을 한문으로 ‘관신부정’이라고 합니다. 몸을 있는 그대로 관하면 정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가 수념처입니다. 우리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보면 곧 괴로움입니다. 이것을 한문으로는 ‘관수시고’라고 합니다. 세 번째가 심념처입니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하면 죽 끓듯이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관심무상입니다. 네 번째가 법념처입니다. 법을 있는 그대로 관하면 ‘아’라고 하는 실체가 없습니다. 이것을 한문으로는 ‘관법무아’라고 합니다. 이런 원리에 의해 나온 것이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몸을 관하고, 느낌을 관하고, 마음을 관하고, 법을 관한다고 해서 ‘관법수행’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아난다가 또 묻습니다.

'우리는 늘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수행 정진을 했는데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누구를 생각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합니다.

'아난다여, 걱정하지 마라. 여래가 없는 세상에서는 사성지를 생각하라’

사성지란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 도를 이루신 곳, 처음 설법하신 곳, 열반에 드신 곳을 말합니다. 그 장소를 중요시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부처님이 태어나실 때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도는 어떤 것인지, 부처님의 설법은 어떤 내용인지, 부처님이 열반하실 때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이것을 늘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수행공동체에서는 발우공양을 할 때마다 사성지를 늘 회상합니다.

아난다는 25년이나 부처님의 설법을 들어놓고도 마지막에 묻는 게 많았어요. 그 덕분에 우리가 배울 내용이 많은 겁니다. 이렇게 누가 물어줘야 부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있으니까요. 마하가섭 존자처럼 별로 말이 없으면 우리는 들은 게 별로 없어요. 아난다가 또 부처님께 묻습니다.

'우리는 여래에게 공양을 올려서 큰 공덕을 쌓았는데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그런 큰 공덕을 쌓을 기회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대답합니다.

'아난다여. 걱정하지 마라. 여래에게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똑같은 것이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줘서 배불리 먹이는 것이다. 둘째, 아픈 자에게 약을 줘서 치료하는 것이다. 셋째,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는 것이다. 넷째, 청정하게 수행하는 자를 외호하는 것이다.‘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주는 것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에 공양물을 올리러 가다가 옆에서 배고픈 사람을 보면 그 공양물을 불단에 올려야 해요? 배고픈 사람에게 주어야 해요?"

"배고픈 사람에게 주어야 합니다."

"이런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에 착안해서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병든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때에 배워야 합니다’ 하는 JTS의 구호가 나온 거예요. 부처님께서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라고 하셨는데, 가난한 자를 상징하는 징표가 바로 제 자식을 공부 못 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부처님의 말씀을 약간 변경해서 '아이들은 제때에 배워야 합니다' 하는 구호를 만든 거예요. 그런데 청정하게 수행하는 자를 외호하라는 구절은 뺐습니다. 왜냐하면 스님이 세상에 좋은 일을 하려고 하면서 ‘나를 외호하라’ 이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JTS 설립 취지는 서구 철학에서 가져온 구호가 아니라 불교 경전에 있는 내용을 가지고 만든 구호입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시면 누구를 스승으로 모셔야 합니까?

또 아난다가 부처님께 묻습니다.

'우리는 늘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 정진을 해왔는데,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면 누구를 스승으로 모셔야 합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대답합니다.

'나의 가르침인 경과 율을 스승으로 삼아라.'

특히 부처님께서는 율을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계율을 청정히 지키면 나와 멀리 떨어져도 항상 나와 같이 있는 것과 같고,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내 옆에 있어도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붓다의 가르침을 행하는 게 중요하지, 절을 짓고 불상을 만들고 이런 모양이나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계위사(以戒爲師)’라고 합니다. 즉 계를 스승으로 삼아라고 하셨어요.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한 명씩 부처님께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다섯 명씩 열 명씩 가족 단위로 인사를 드렸어요. 밤이 깊어서야 사람들이 다 돌아가고 부처님은 마치 불이 깜박깜박 꺼져가듯 마지막 생명을 유지하는 상태였습니다. 제자들은 부처님이 편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도록 모두 조용히 물러나 있었습니다. 그때 그 늦은 시각에 어떤 늙은 영감이 지팡이를 짚고 왔어요.

‘내가 고타마를 좀 만나야 되겠소.’

이 사람은 수바드라라는 사람으로 불교도가 아니라 이교도인데, 세존이니 여래이니 부처님이니 하는 존칭도 쓰지 않고 그냥 부처님의 이름을 불렀어요.

‘고타마를 좀 만나야 되겠다.’
‘안 됩니다.’
‘내가 좀 물을 게 있소. 오늘 안 물어보면 기회가 없으니까 꼭 물어봐야겠소.’

아난다는 부처님을 생각해서 안 된다고 했고, 수바드라는 꼭 물어야겠다고 고집했습니다. 한동안 둘이 옥신각신 했어요. 부처님께서 이 소란을 듣고 ‘아난다여, 그 사람을 들여보내라. 그는 나를 귀찮게 하러 온 게 아니고 물을 게 있어서 온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바드라는 부처님의 처소에 들어가자마자 예를 취하거나 법을 청하는 게 아니고 대뜸 시비조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스승이 있는데 각자 다 자기주장만 옳다고 하고 남의 주장은 틀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타마는 그들이 다 누군지 아십니까?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 것입니까? 아니면 그들은 다 틀렸습니까? 나는 도대체 모르겠으니 나에게 알려 주시오.’

부처님께서는 그 얘기를 다 들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들을 다 알고 있다, 마음속에 탐욕이 있고, 성냄이 있고, 질투가 있다면, 그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진실하다고 할 수가 없느니라. 그러니 수바드라여, 그런 말들에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나는 출가한 지 50년이 지나도록 쉬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해 왔다.’

그러면서 바르게 보아라, 바르게 생각하라, 바르게 말하라, 바르게 행동하라, 바르게 생활하라, 바르게 정진하라, 바르게 집중하라, 바르게 살펴라, 이렇게 여덟 가지 실천 덕목인 팔정도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시비하지 말고 다만 수행 정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바드라는 그 말을 듣고 탁 깨달아서 ‘저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수바드라여, 이교도가 수행공동체 안에 들어오려면 3개월은 지켜봐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출가를 하면 행자 생활을 3개월 해야 한다는 규칙이 여기서 나온 거예요. 사실 부처님은 제자가 되기를 청하는 사람에게 ‘오라, 비구여’ 하고 말하면 끝이었는데, 기록에는 당시 부처님이 수바드라를 수행자로 받아들이기 위해 3개월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수바드라는 ‘받아만 주신다면 저는 3개월이 아니라 3년이라도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 ‘수바드라’라고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라

마지막으로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나한테 물을 것이 있으면 물어라. 내가 열반에 든 뒤에 그때 물어볼 걸 못 물어봤다고 후회하지 마라. 물을 것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그런데 제자들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요. 그래서 한 번 더 묻습니다.

‘친구가 친구에게 묻듯이 물어라.’

또 아무 대답이 없었어요. 다시 부처님께서 ‘후회하지 말고 물을 게 있으면 물어라’ 하고 말했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세 번이나 얘기했는데도 대중의 대답이 없으니까 아난다가 그제야 대답을 했습니다.

‘저희들은 물을 것이 없습니다. 여래께서는 이미 다 법을 설하셨고, 이제 우리는 그것을 행하는 것만 남았기 때문에 물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덧없다. 부지런히 수행정진하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이렇게 말씀하시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열반에 드시는 그 마지막 모습이 마치 하루저녁에 일과를 마치시고 주무시는 것과 같았어요. 마지막 순간까지 대중을 위해서 설법을 하시고 돌아가신 겁니다.

부처님이 숨을 거두시자 비록 수행자들이긴 했지만 슬픔을 가누지 못해서 우는 사람도 있고, 분위기가 어수선했습니다. 그러자 천안제일 아니룻다가 ‘여러분,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사념처를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몸을 관하고, 느낌을 관하고, 마음을 관하고, 법을 관하는 것을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대중 모두가 진정을 하고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은 팔십 인생을 마치셨습니다. 출가한 이후 51년을 여여히 지내셨고, 성도 후 45년을 교화 설법하시다가 이곳 쿠시나가르에서 마지막 육신을 버렸습니다.”

이어서 부처님의 마지막 여로가 담긴 경전 구절을 독송했습니다.

경전독송을 마치고 일제히 명상에 들었습니다. 안개 속에서 명상하는 모습이 마치 그림 같았습니다.


명상을 마치고 순례단은 가지런히 줄을 맞춰 천천히 열반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열반당 안에 들어서니 가운데에 부처님의 열반상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순례단은 열반상을 에워싸고 섰습니다. 오백 명이 들어서니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열반당이 빼곡하게 찼습니다. 순례단은 두 손을 합장하고 예불을 시작했습니다.


좁은 열반당 안에 예불 소리가 나지막하고 간절하게 울렸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발원문을 낭독했습니다.

스님의 발원문을 듣고 여기저기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발원문이 끝나고 뒷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열반당을 나왔습니다. 천천히 열반당을 나와 공터로 돌아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지금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너희 곁에 남아 있으리라.’

마음이 청정하면 부처님은 항상 나와 함께 있습니다. 그러한 자부심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열반당에서 차량별로 기념사진을 찍고 바로 옆에 있는 라마바르총으로 걸어갔습니다.


“지금 우리가 도착한 라마바르총에서 부처님을 화장했습니다. 쿠시나가르에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자 말라족은 자신들이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장소를 화장 장소로 정했습니다. 이곳은 원래 말라족이 왕위를 계승하는 대관식을 했던 성스러운 곳입니다.

이 담벼락 뒤쪽에 히란냐바티 강이 있습니다. 작은 개울입니다. 이 강에서 부처님을 화장했습니다.

부처님을 화장한 이곳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영가천도재를 하겠습니다. 우리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돌아가신 부모님이 부처님처럼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발원하는 의식을 하겠습니다.”


각자 마음으로 부처님을 떠올리며 지극하고 정성스럽게 잔을 올리고 절을 했습니다. 오백 명의 염불소리가 라마바르총을 울렸습니다.


천도의식이 끝나고 다 함께 노래 ‘빛으로 오소서’를 불렀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라마바르총에서 천도재를 마치고 스님은 내일 일정을 안내했습니다.

“오늘까지 부처님의 여로를 따라 순례했습니다. 내일은 부처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봅니다.
인도 국경을 넘어 네팔로 가서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로 갑니다. 오백 명이 국경을 통과하려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새벽 일찍 출발합니다.”

오후 5시가 되어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새벽 2시 30분에 인도-네팔 국경으로 가서 국경을 넘은 후 부처님이 자란 카필라성을 순례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4

0/200

드림하이

마음이 청정하면 부처님은 항상 나와 함께 있습니다. 그러한 자부심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024-03-26 12:15:20

법륜스님의 제자들

법륜스님의 제자들이 지금 한두 명이 아닙니다.

정치 쪽에도 있고 연예계에도 있으며
프롤레타리아들 중에도 많죠.


스님의 제자들이 서로 앞다투어 경쟁합니다.
서로 제2의 법륜스님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죠.


법륜스님이 되면 대한민국을 손에 넣을 수 있다!

2024-02-25 17:58:11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4-02-06 10:43:41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