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3.6 영어 즉문즉설, 100번 째 일요명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어떻게 봐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날입니다. 오전에는 즉문즉설을 하고,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 명상을 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8시부터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300여 명의 외국인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한국에는 완전히 봄이 왔습니다. 여기 매화 보이시죠? 제가 지내는 폐교에는 매화가 활짝 피었습니다. 땅에서는 쑥과 달래 등 봄나물이 돋아나고 있어요.

이렇게 계절은 따스한 봄이 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겨울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왜냐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세계인들의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50년 사이에 강대국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은 국가를 침공한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사람들도 어느 순간부터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쟁이 종식되어 하루빨리 우크라이나인들이 평화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잠시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를 함께 하겠습니다.”

잠깐의 침묵 속에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간절히 염원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이런 혼란의 시대일수록 왜 부처님의 가르침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부처님은 출가하기 전에 ‘싯다르타’라는 이름을 가진 왕자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모든 것을 갖추었기 때문에 고민할 게 아무것도 없어 보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왕자를 부러워했어요. 그러나 정작 본인은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습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병이 나면 약을 먹을 수 있었고, 옷이 없으면 옷을 구해서 입을 수 있었습니다. 무언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어요. 이런 모든 것을 다 갖추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괴로운 문제는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뭔가 더 갖기를 원한다면 신에게 빌기라도 하면 되는데 왕자는 더 원할 것이 없는 데도 많은 고민을 갖고 있었어요.

나는 왜 괴로워할까?

2600년 전 싯다르타 왕자의 고민은 현대인의 고민과 비슷합니다. 옛날 사람과 비교해 본다면 현대인은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할 수 있어요. 옛날 사람들이 현대인들을 보면, 현대인들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될 겁니다. 먹을 게 없는 것도 아니고, 치료를 못 받는 것도 아니고, 옷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집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 더운물이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나무를 때서 밥을 해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옛날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천국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많이 가지고도 여전히 괴로울까요? 싯다르타 왕자도 왕이 되어야 했고, 나라를 더 크고 강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싯다르타 왕자도 채워야 할 욕구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욕구를 충족하는 길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자는 아버지나 스승에게 ‘어떻게 하면 나라를 더 크게 만들 수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어요. 대신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하나가 살기 위해서 다른 하나가 죽어야 합니까? 왜 하나가 행복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가 불행해야 합니까? 함께 살고 함께 행복해지는 길은 없습니까?’

아버지도 스승도 누구도 이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싯다르타는 이 답을 구하기 위해서 왕위를 버리고 수행의 길을 떠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스스로 질문해봐야 합니다.

‘나는 왜 괴로워할까?’

싯다르타의 문제의식은 오늘날 현대인이 가진 문제의식과 동일합니다. 2,600년 전에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날 우리들의 가슴에도 다가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처한 현실과 문제의식이 싯다르타와 같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과학기술이 더 발달하고 경제가 10배 더 성장한다고 해도 나의 행복을 바깥에서 구하는 방법으로는 우리의 고뇌는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부처님을 믿어야 한다거나 불교를 믿으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천국이나 극락에 가자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가 가졌던 문제의식으로 한번 돌아가 보자는 겁니다. 싯다르타가 청년 시절에 가졌던 그 문제의식을 우리 또한 성찰해본다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처럼 우리 또한 괴로움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남자냐 여자냐, 어떤 종교를 믿느냐와 상관없이 누구나 성찰해볼 수 있습니다.

인간 붓다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부처님 당시에도 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계급 차별로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병에 걸렸거나 식량이 부족해서 죽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사회 문제들을 외면하지도 않았고, 그 문제들만 해결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철저한 계급 사회 속에서 계급의 부당성을 지적하셨습니다. 귀하고 천한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하셨어요. 부처님 당시에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여성이 남자 없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비구니의 길을 열어주었어요. 그가 인간이 사는 세상에 관심이 없었다면 무엇 때문에 계급 철폐를 주장하고 성차별을 부정했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전쟁이 무익함을 설파하고, 분쟁이 생긴 곳에 가서 화해를 하도록 주선했겠습니까?

부처님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 부처님은 없어져버리고 그저 복을 빌면 복을 주는 신 같은 존재로 바뀌어버렸어요. 전생에 죄를 지어서 여자로 태어났다는 건 성차별을 합리화하는 사고입니다. 전생에 죄를 지어서 장애인으로 태어났다는 건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고입니다.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부자가 됐다거나 왕이 됐다는 건 지배 계급을 미화하는 사고입니다. 부처님은 어떤 차별도 부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불교는 오히려 차별을 합리화하고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세상의 모순, 지배 질서,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쪽으로 변질된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사회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마음을 닦는 불교를 ‘순수 불교’라고 부릅니다. 이런 불교가 어떻게 순수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불교인이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면 마음은 안 닦고 정치에 참여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교가 지배 질서를 옹호하는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런 비난이 나오는 거예요. 티베트 불교에서는 이 생에 린포체로 태어났으면 다음 생에도 린포체로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왕의 아들이 왕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사고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물론 문화는 존중을 해야 해요. 그러나 문화가 진리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태어남에 의해서 귀하고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마음속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남자로 태어나서 귀하다, 왕자로 태어나서 귀하다, 린포체로 태어나서 귀하다, 브라만으로 태어나서 귀하다, 이런 말들은 마치 귀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이잖아요. 물론 인도의 힌두 문화는 존중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문화도 존중해야 하고, 나라마다 서로 다른 불교문화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화가 곧 진리라고는 할 수 없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곧 진리라고 할 수 있어요.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인 이유는 어떤 문화를 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모인 겁니다. 우리가 가진 고뇌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격앙되어 있다 보니 오늘은 질문이 모두 이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고, 한국에서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지 않느냐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어떻게 봐야 할까요?

"Hello Sunim, nice to meet you. I’m glad I get a chance to ask my question. When I heard about the war between Ukraine and Russia, I felt like I was witnessing peace crumbling. The U.S. cannot take the role of world police anymore, and the world now seems to be divided between allies and enemies of the U.S. How should we look at this war? Should we think that Putin is the devil? It seems like it might happen on the Korean peninsula, and I am worried that war could break out in East Asia as well. I would like to hear your opinion. Thank you."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의 전쟁에 대해 듣게 되었을 때 마치 평화가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할 수 없고, 세상은 미국의 동맹국과 적대국으로 나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전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푸틴을 악마로 생각해야 할까요? 이런 일은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 것 같고,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날까 걱정이 됩니다. 스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한 적이 없어요. 자국이나 동맹의 이익을 지키는 경찰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갖고 있으니까 그 힘을 이용해서 세계를 지배한 것이죠. 결과적으로 힘에 의한 지배 질서 속에서 평화가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거기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사람들은 나쁜 나라, 나쁜 사람, 악마로 규정했어요. 그런 지배 질서가 근래에 와서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세상이 예전보다 혼란스러워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옛날이 바람직한지 지금이 나은지에 대해서도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앞으로 이러한 혼란이 계속 간다면 미국 중심의 일국 지배 질서가 더 낫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혼란을 겪으면서 세계가 다양성을 서로 존중하고 공존하면서, 한 나라에 의해서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나라들이 서로 네트워킹하고 연합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면, 이런 혼란은 오히려 긍정적으로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섣불리 평가하기가 어려워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 간의 경쟁이나 야욕에 의해 희생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입니다. 지금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입니다. 그들이 난민이 되어 유럽으로 몰려오면 유럽 사람들도 부담을 안아야 합니다. 또한 경제 제재로 인해 러시아 사람들도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나 일본을 악마라고 불렀지만 그때 일본 국민들과 독일 국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어요. 지금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지도자를 ‘악의 축’이라고 비난만 할 줄 알지 그곳에서 살아가는 2,500만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합니다. 그들이 병들어 죽거나 굶어 죽고 있는데도 인도적 지원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나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과 국민을 잘 보호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정말 세계의 경찰이었다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역할을 했어야 합니다. 그런 역할을 할 때 세계의 경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크라이나 지도자가 현명했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했어야 합니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은,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힘에 굴복하는 사람들이라고 폄하합니다. 적을 향해서 끝까지 싸우자고 주장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살기 위해 빠져나가고, 애꿎은 젊은이들만 죽습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를 공격했을 때 그건 과연 침공이 아니었나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푸틴도 러시아 국민들에게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를 나치주의라고 하면서 악마화 시킨 겁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침공을 정당화한 거예요.

만약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마찬가지로 대만을 민족적 배신자, 분리주의자 이런 이름을 덧씌워서 자신들의 침공을 정당화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웃 나라의 땅을 점령하고 나서 아직도 유엔 결의를 무시하고 일부는 그대로 지배하고 있잖아요. 수많은 유엔 결의가 나왔지만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팔레스타인의 권리가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우리 모두가 미국 중심의 이데올로기 속에 살고 있는 겁니다.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나마 지금의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그래도 이 체제가 현실적으로 가장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편은 모두 정의이고, 다른 편은 다 불의라고 말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총체적으로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미국이 하는 행동이 모두 선(善)일 수는 없어요.

그런 관점에서 저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인 적이 없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아직도 미국의 국력이 세계에서 가장 강하지만 조금씩 그 힘이 약해지면서 세계 도처에서 도전과 저항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그 결과 세계가 힘의 갈등으로 인해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미국의 최대 도전자는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입니다. 어쩌면 이번 전쟁은 중국의 한쪽 변방을 공략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일 수도 있어요. 다른 말로 하면 동아시아에도 분쟁이 생겨날 위험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분쟁이 생길 때는 어떤 명목이나 형식으로 일어날지 지금으로서는 예측할 수 없어요. 남중국해에서도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대만에서도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일본과는 센카쿠열도에서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한반도에서도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어떤 시점에서 어떻게 분쟁이 일어날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지만, 갈등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럴 때 국방력을 강화해서 결연하게 대응해야 할지, 중간에서 적당히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미국과의 연대를 견고하게 함으로써 중국과의 갈등을 각오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지, 이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처럼 약소국의 지도자는 어떤 길을 가는 게 좋을지 선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한국도 우크라이나와 매우 유사한 상황에 빠질 위험이 있어요. 한국도 이런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항상 평화를 기원해야 하고, 평화를 위한 행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Thank you Sunim, it was a really good opinion for me. I actually really agree with you. Well, I’m a little ashamed but I didn’t consider that the it might be US’s big strategy. I will pray for the people in Ukraine and also pray for world peace.”
(감사합니다, 스님. 정말 좋은 의견이었습니다. 저도 스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지금 조금 부끄러운데요. 이번 전쟁이 미국의 큰 그림일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시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새로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오전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미국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여러 가지 면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스님은 내일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국경변으로 답사를 가는 JTS 대표님과 독일정토회 상임이사님을 위해 세계 지도를 살펴보며 어떤 경로로 답사를 가면 좋은지, 답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했습니다.

오후에는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했습니다.

100회째 온라인 일요명상

해가 지고 저녁 8시 30분부터는 일요명상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온라인 명상수련을 시작한 이후 오늘이 100번째 시간입니다. 카메라 한 대 세워놓고 미국과 연결하여 동시통역으로 온라인 명상을 처음 시작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2년 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외출을 못 하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답답해했습니다. 그때 ‘주말마다 온라인으로 명상을 해보자’ 하고 가볍게 시작했는데, 오늘이 100번째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2년 동안 쉼 없이 각자 자신의 집에서 온라인 명상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과학 기술 덕분입니다. 둘째, 과학 기술이 발달했더라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이 없었으면 온라인 명상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셋째, 어려운 조건을 오히려 유리하게 변화시켜서 적응해내는 사람들의 지혜 덕분입니다. 이 세 가지 요인이 합해져서 100회째 온라인 명상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행이란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당황하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상황을 직시하고 그것을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통찰력입니다. 수행은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을 때는 수행하는 사람이나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이나 큰 차이가 없어 보여요. 그러나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수행하는 사람은 편안한 가운데 지혜롭게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갑니다.”

이어서 지난주에 영어로 올라온 질문에 대해 답변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명상을 통해 생각을 멈추는 것과 통찰력을 얻는 것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명상을 하면 어떻게 통찰력이 생기게 되나요?

“스님께서는 명상하면서 생각을 멈추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모순이 아닐까요?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통해서 통찰력을 얻는 것이 아닌지요?”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에 기초해서 자기가 아는 정보를 가지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생각을 통해서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고 편견을 가지기가 쉽습니다. 자기가 쓴 색안경으로 사물을 보기 때문에 실제의 모습을 보기 어려워요. 생각을 멈춘다는 것은 이런 고정관념을 버린다는 뜻입니다. 이런저런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과거로부터 전승된 윤리나 도덕, 관습이나 습관, 경전이나 계율에 의해 진리는 검증되지 않는다.’

우리는 늘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 이렇게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다른 문화, 다른 믿음,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물을 통찰하기 위해서는 모든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사실은 어떠한가?’ 하는 관점에서 살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내려놓는 명상은 통찰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한 가지 질문에 더 대답을 한 후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명상하는 방법을 안내했습니다.

“동작을 멈추고, 생각을 멈추게 되면, 몸에서 호흡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관심을 콧구멍 끝에 두게 되면,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숨이 들어갈 때 들어가는 줄 알고, 숨이 나올 때 나오는 줄 알고, 숨이 가쁘면 ‘가쁘구나’ 하고 알고, 숨이 규칙적이면 ‘규칙적이구나’ 하고 알고, 숨이 불규칙적이면 ‘불규칙적이구나’ 하고 압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립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40분 간 명상을 해보았습니다.

명상이 끝나자 실시간 채팅창에 소감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스님은 한 줄씩 소감을 읽고 난 후 마무리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우리가 한 주 한 주 명상을 하다 보니까 벌써 100회가 되었지 않습니까? 이렇게 꾸준히 명상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곧 이어서 영어 정토불교대학 입학식 법문을 촬영한 후 방송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영어 통역을 해준 국제국 활동가들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국제 사회의 반응은 어떠한지, 특히 미국과 러시아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대화를 나눈 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내일은 오전과 저녁에 전법활동가 법회를 생방송하고, 오후에는 공동체 공청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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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덕행

감사합니다 많이 할게되었습니다
나무불법승()()()

2022-03-13 06:20:31

원행심

스님 법문 고맙습니다.
스님 높으신 혜안에 항상 놀랍고 위로받고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

2022-03-11 19:46:02

보각

스님 고맙습니다.

2022-03-10 18: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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