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3.5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 밭 울타리 보수 공사
“좋은 일을 하고 나서 서운한 마음이 들 때,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하는 날입니다. 새벽 4시 30분에 유튜브 생중계가 시작되자 맑은 종성이 랜선을 타고 전국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예불,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것을
아라한 세존께서 설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라.
세 종류란 어떤 것인가?
가뭄과 같은 사람,
지역에 따라 내리는 비와도 같은 사람,
전 지역에 고루 내리는 비와도 같은 사람이 그것이다.”

사홍서원으로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후 스님이 오늘 읽은 경전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베풀지 않는 삶을 살거나, 설령 베푼다고 하더라도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나 자기 마음이 내키는 사람에게만 베풉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차별 없이 베푸는 사람입니다. 보문(普門)의 마음, 즉 ‘넓은 문의 마음’은 아무런 차별 없이 베푸는 마음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가거나 길거리를 가다 보면 도와달라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움직일 만큼 호소를 하면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말끝에 ‘아멘’을 하거나,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하거나, ‘부처님 감사합니다’를 할 경우 그 말이 내 마음에 안 들어서 주려던 손을 거둡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돈을 만졌다가 다시 놓게 됩니다. 이게 바로 내 마음에 들 때만 베푸는 태도입니다. 이런 마음은 부분적으로 베푸는 마음입니다.

그 사람의 종교가 무엇이든, 어떠한 행동을 하든, 우리나라 사람이든 외국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관계없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그에게 베푸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우리가 베푸는 이유는 상대방이 어렵고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그의 종교를 보고, 그의 성별을 보고, 그의 국적을 보고 내가 만족하기 때문에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마음이 차별 없이 베푸는 마음입니다.

이처럼 차별 없이 베푸는 사람이 있고, 내 마음에 들 때만 부분적으로 베푸는 사람이 있고, 아예 베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베푸는 사람은 복을 지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베풀지 않는 사람은 복을 지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는 사람은 오히려 복을 까먹는 사람입니다.

차별의 유무에 따라 부분적으로 베푸는 마음과 차별 없이 베푸는 마음으로 나눌 수 있고, 또 차별의 유무와 관계없이 마음속에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베푸는지 여부에 따라 ‘유주상보시’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 대가로 칭찬을 기대하든, 명성을 기대하든, 나중에 돌려받는 것을 기대하든, 기대하는 마음으로 베푸는 건 보시가 아니라 투자입니다. 꼭 돈이 대가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만 투자가 아닙니다. 투자는 칭찬으로 돌아와도 되고, 명성으로 돌아와도 됩니다.

좋은 일을 하고 나서 서운한 마음이 들 때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도 기대하는 마음을 내려놓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여러분도 좋은 일을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이 그걸 몰라주면 나도 모르게 섭섭한 마음이 올라올 때가 있잖아요. 좋은 일을 하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굳이 이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물며 좋은 일을 했는데 비난이 따르면 이런 마음이 더 강하게 생기죠. 심지어 ‘쓸데없는 짓을 했다’ 하고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비난을 하더라도 꾸준히 해나가야 할 만큼 필요한 일일 때 그런 일이야말로 진정으로 좋은 일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좋은 일이긴 한데 사람들이 비난하는 일을 할 때 정말 큰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정말 큰 복이란 ‘목숨이 길어지는 복’을 말합니다. 그렇게 위로를 하면서 좋은 일을 계속해나가도록 장려한 겁니다. 그래서 ‘좋은 일 하고 욕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 하는 말이 생긴 거예요. 세상의 많은 복 가운데서도 최고의 복은 목숨이 길어지는 복입니다. ‘좋은 일 하고 욕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은 결국 다른 사람의 비난을 무릅쓰고도 좋은 일을 해나가면 최고의 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하고 나서도 칭찬받지 못해 서운한 마음이 들 때는 이 말을 떠올려 봐야 합니다.

요즘 치러지는 대선을 보며 국론이 너무 분열되는 것 같아 우려가 컸습니다. 그래서 종교 사회 원로 분들과 함께 뜻을 모아서 ‘누가 집권을 하든 선거가 끝나면 승자가 독식을 하지 말고 상대방과 함께 손을 잡고 일을 해라’ 하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상대방을 지지한 사람들도 국민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지지한 절반의 국민을 외면하지 말고 국민 모두를 포용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제안이었습니다.

이런 성명서를 들으면 누구나 그 내용에 공감합니다. 그런데도 막상 성명서를 발표하려고 하면 내가 지지하는 쪽에 유리할 것인지, 불리할 것인지를 먼저 따지게 됩니다. ‘내용이 좋은 건 맞는데 막상 발표를 하면 어느 한쪽에서 비난을 하지는 않을까’ 하고 염려하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게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우려가 있어도 옳은 일이라면 마땅히 해야 합니다.

바른 길이라면 비난을 받아도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칭찬을 해도 자기가 가진 재물이 아까워서 내놓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칭찬을 하면 자기가 가진 걸 조금 내놓고 칭찬을 듣는 것에 만족을 합니다. 좋은 일을 했는데도 비난을 듣게 되면 좋은 일을 할 때 냈던 마음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이라면 비난을 듣게 되더라도 해야 합니다. 나라의 독립은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체포가 되더라도, 감옥에 가더라도, 설령 죽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국민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민주화는 체포가 되거나 감옥에 가더라도 꼭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대개 ‘그것이 해야 할 일이 맞긴 하지만 내 자식은 안 된다’, ‘다른 아이들은 해도 너는 뒤로 빠져 있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이 바른 일이라면 나부터 해야 하고, 그것이 바른 길이라면 내 아이부터 가야 합니다. 설령 불이익이 생기고, 손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 바른 길이라면 마땅히 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다른 사람이 비난을 하더라도 가야 하는 길이고, 나에게 손실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가야 하는 길이라면, 다른 사람이 칭찬을 하지 않는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칭찬받기를 기대하면서 일을 했는데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괴로운 거예요. 마음이 괴롭다면 복은 지을지 모르지만 해탈을 하지는 못합니다.

기대 없는 베풂, 즉 ‘무주상보시’를 행하면 설령 칭찬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섭섭하지 않습니다. 비난받을 각오, 손실을 감수할 각오를 하면서 하는 일은 설령 비난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무주상보시를 행하면 다른 사람의 칭찬과 비난 여부가 나를 괴로움에 빠트릴 수 없습니다. 수행자는 기대하는 마음이 없는 보시, 조건 없는 베풂, 기대 없는 베풂, 조건 없는 사랑, 기대 없는 사랑을 하는 사람입니다.

복을 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내가 너를 사랑할 테니 너도 나를 사랑해라’ 하는 것은 조건부 사랑입니다. 이런 조건부 사랑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을 때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배신당했다’ 하면서 서로 원수가 됩니다. 조건 없는 사랑에는 ‘배신’이라는 게 없습니다. 나는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비난을 받게 되니까 ‘배신당했다’, ‘뒤통수를 맞았다’ 하고 느끼는 거예요. 그러면 마음이 괴로워집니다. 이런 괴로움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인해 생겨난 것입니다.

복을 짓는 것과 해탈하는 것은 다릅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복을 짓는 일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을 하고 나서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해탈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을 짓기는커녕 오히려 복을 까먹으면서 살아가고, 복을 짓는 사람들조차 대개 복만 짓고 해탈을 하지는 못합니다. 바로 기대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수행자에게는 해탈이 가장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영향력을 가지려면 복을 짓는 일이 필요합니다. 전법을 하든, 무슨 일을 하든, 지은 복이 있어야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지혜와 복덕이 구족하신 분’이라고 표현합니다. 수행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복덕은 부차적인 일입니다. 수행자라면 우선 해탈을 해야 합니다. 즉,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만 전법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지혜도 있어야 하고, 복덕도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어서 세상에 기여를 하는 것은 이 법이 전해지는 데에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베푸는 행위가 곧 해탈로 나아가려면

세상에는 베풀지 않는 사람이 있고, 자기 마음에 들거나 자기 마음이 내킬 때만 부분적으로 베푸는 사람이 있고, 차별 없이 베푸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베푸는 사람 중에는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베푸는 사람이 있고, 기대하는 마음 없이 베푸는 사람이 있습니다. 베풀지 않는 사람은 복을 짓지 않는 사람이고, 베푸는 사람은 복을 짓는 사람입니다. 다만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 베풀면 섭섭함과 괴로움이 발생하기 때문에 복은 짓지만 해탈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반면, 조건이 없는 베풂은 복도 짓고 해탈에도 이를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렇게 조건이 없는 베풂은 그것이 괴로움, 재앙, 불행으로 변하지 않는 복이라고 해서 ‘무루복(無漏福)’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새어나가지 않는 복입니다. 반면, 유루복(有漏福)은 새어나가는 복입니다. 유루복은 그 복이 다하면 다시 빚을 지게 됩니다. 이런 복은 불행이 따르는 복이고, 행과 불행이 되풀이되는 윤회의 복입니다.

수행자라면 첫째,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행위를 멈추어야 합니다. 둘째, 자립을 해야 합니다. 셋째,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넷째, 더 나아가 기대함이 없는 베풂을 행해야 합니다. 기대함이 없는 베풂이야말로 진정한 베풂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대가 있는 베풂을 ‘보시’라고 하고, 기대가 없는 베풂을 ‘보시바라밀’이라고 합니다. 기대가 없는 베풂은 보시일 뿐만 아니라 해탈로 나아가는 수행법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시의 완성을 뜻하는 ‘보시바라밀’이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하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고 두북 공동체 대중은 각자 맡은 구역에서 청소를 했습니다. 6시 40분부터 스님과 함께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이 대중에게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3월에는 방송국에 녹화 일정이 있어서 서울에 자주 왕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어제 나무를 가지치기했는데 잔가지를 그냥 버리지 말고, 톱밥으로 만들어서 거름으로 사용하면 좋겠어요. 오늘은 10시부터 울력을 시작합시다. 산 윗밭에 울타리를 정비해야 할 것 같아요. 쓰러진 지지대를 바로 세우려면 지지대를 만들어야 하니까 도끼날을 날카롭게 갈아서 가져갑시다. 혹시 사용하고 남은 파이프가 있으면 재활용을 하면 제일 좋고요. 가능한 새로 구입은 하지 맙시다.”

정토불교대학 교재 제작과 관련하여 문서들을 검토한 후 오전 9시 30분에 산 윗밭으로 올라갔습니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도 부드러웠습니다.

있는 것을 활용해서 울타리 고치기

산 윗밭에 도착해 먼저 울타리를 고쳤습니다.

처음 이 밭에서 농사를 시작할 때 원래 산에서 자란 나무 사이사이에 말뚝을 세우고 그물망을 쳐서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한 해 농사를 짓고 나자 말뚝이 썩어 쓰러지거나 그물망이 쳐진 곳이 있었습니다. 만물이 자라나는 봄이 되면, 칡과 덩굴도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 울타리를 뒤덮습니다. 그러면 울타리를 보수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농사를 짓기 전에 미리 울타리를 보수해두어야 합니다.

이미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울타리를 보수했습니다. 울타리에 엉켜있는 덤불을 걷어내고 쳐진 그물망을 풀었습니다. 흙이 무너져 내려 그물망이 푹 내려앉은 곳도 있었습니다. 그물망을 한껏 당겨 나무 지지대에 다시 꽉 묶어주었습니다.


삭은 말뚝은 아예 뽑아버리고 새 말뚝을 꽂았습니다. 말뚝을 꽂기 전에 나무 밑동을 날카롭게 깎아주었습니다.


오늘은 스님이 매일 챙겨 다니는 톱과 낫에 곡괭이, 망치, 도끼까지 총출동했습니다. 곡괭이로 땅을 파고 나무대를 세운 다음 망치로 쾅쾅 박았습니다. 그물망을 한껏 당긴 다음 꼼꼼히 묶었습니다.




스님과 행자님들이 지나간 자리에 울타리가 번듯한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구부러진 파이프는 망치로 두드려 펴 준 다음 다시 꽂아주었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자 밭을 한 바퀴 다 돌았습니다.


“자, 이제 나무 잔가지를 실읍시다.”

지난번에 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뒷정리를 다 못했습니다. 스님이 잔가지를 차에 싣기 좋게 낫으로 다듬어주면 행자들이 트럭으로 옮겨 실었습니다.


겨울 동안 밭 한편에서 잘 마른 들깻대도 실었습니다. 마른 들깻대에서 고소한 들깨 향이 났습니다.

다 싣고 나니 트럭보다 높게 나뭇가지가 쌓였습니다.

“생각보다 양이 많네요.”

스님은 땔감이 되고, 갈면 톱밥이 될 나뭇가지를 배부른 듯 바라보았습니다.

오후 1시가 지나 울력을 마쳤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한 후 이번에는 밑밭에 울타리를 고쳤습니다. 밑밭에는 울타리 상태가 괜찮아서 1시간 만에 울력이 끝났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나서는 보광법사님, 인도에 곧 파견될 행자님들과 인도 사업에 대해 논의를 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에는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하고, 원고 교정을 하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을 한 후 저녁에는 일요 명상수련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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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

앞으로 남은 삶은 무루복을 지으며 살아보겠습니다. 스님 법문덕분에 괴로움이 없는 삶으로 변화되며 살고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2-03-11 07:25:58

보리왕

바라는 마음 없이 보시하겠습니다. 법륜스님 감사합니다 🙏

2022-03-10 09:18:19

마음이괴로워요

바라는 만큼 베푸는 사람.계산해보고 베푸는 사람.딱 저를 말하는 것 같군요.
잘 안되지만 다시 해봅니다.
스님 고맙습니다.꼼꼼히 울타리를 다시 고치고 고칩니다.

2022-03-10 0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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