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29. 전국 대의원 회의 1일째
“저를 닮아 몸집이 왜소한 아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전국 대의원 회의 1일째를 맞이해 입재 법문을 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벌써 세 번째로 진행되는 온라인 방식의 회의입니다.

문경 수련원에는 새벽부터 보름달이 떠서 눈이 덮인 곳곳을 하얗게 비춰주었습니다.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오전 9시에 전국 대의원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선출직 대의원 146명, 당연직 대의원 60명, 총 206명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대의원들은 삼귀의, 수행문을 함께 읽고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온라인 전환은 정토회가 처음 출발할 때의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하며 변화의 시기에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강조했습니다.

다시 처음 출발했던 그 자리로

“이제 정토회는 온라인이라는 기술과 결합하면서 ‘내가 사는 곳이 법당이다’ 하는 원래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원칙을 져버린 것이 아니라 원칙에 더 맞게 변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공간을 마련하고 법당을 꾸미면서 어느덧 우리는 기존의 불교를 조금씩 닮아가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님 아닌 스님이 되고, 절 아닌 절이 되는 구조로 점점 변화되었어요.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우리가 처음 출발했던 방향으로 오히려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한 명 한 명이 수행자로서 자기 수행을 하면서 자기가 사는 주변부터 전법하는 이런 원칙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 겁니다. 부처님의 전법 선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두 사람이 함께 가지 말고 홀로 가라. 처음도 중간도 끝도 조리 있게 법을 설해라’

사회나 집단의 발전 정도를 평가하는 방법

여러분들은 정토회의 미래를 짊어진 지도자들이기 때문에 오늘은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한 나라가 처음 발전할 때, 한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릴 때, 한 나라가 쇠망할 때, 각각 지도력이 어떻게 다른가 살펴보겠습니다.

한 나라가 발전을 할 때는 지도자 그룹이 대중보다 앞을 내다봅니다. 그래서 대중이 지도자 그룹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지도자 그룹은 미래를 보고 끊임없이 새로운 안을 제안하고 준비하는데 대중은 현실의 문제만을 갖고 계속 얘기하니까 여기에서 갈등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절대적 지지를 받지는 못해요. 이렇게 지도자는 대중의 의사나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뒤로 숨어서는 안 됩니다. 앞을 내다보면서 비록 지금은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해할 것을 염두에 두고 항상 한 발 앞서 나가야 합니다. 사회지도층이 이렇게 할 때 그 사회는 성장하고 많은 부분이 재창조되는 길로 나아갑니다.

어느 정도 성장을 하게 되면 대중도 의식이 올라오는 국면에 진입합니다. 그런 사회를 보통 태평성대라고 하는데 그때는 선각자들이 이루어놓은 성장의 과실을 먹고사는 거예요. 이때는 지도자가 대중의 뜻을 받들어서 대중의 요구를 수용합니다. 그래서 대중의 지지는 굉장히 높지만, 성장은 멈추게 돼요. 꼭 경제적 성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성장이 멈추고 사회가 정체됩니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는 태평성대라고 불리는 시대가 되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가 쇠퇴할 때는 지도자 그룹이 대중보다 의식 수준이 떨어져서 대중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성장기에는 대중이 지도자 그룹에 불만이 있다가도 조금 있으면 해소가 되는 것을 반복했다면, 쇠퇴기에는 갈수록 불만이 커져요. 대중을 끌고 가는 힘도 없고, 심지어 대중보다 지도자 그룹이 뒤처집니다. 그래서 대중이 볼 때 이해되지 않는 이상한 행동을 지도자 그룹이 하게 됩니다.

꼭 경제적인 척도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도자 그룹이 어떠한지를 유심히 살펴보면 지금 발전 국면에 있는지 정체 국면에 있는지 쇠퇴 국면에 있는지 알 수 있어요. 대중보다 앞서가는지, 대중과 같이 가는지, 대중보다 많이 뒤처지는지를 면밀히 살펴보면 됩니다. 대중이 봐도 이해되지 않는 엉뚱한 행동을 한다면 쇠퇴기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변화의 시기에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

그래서 여러분들도 대중의 여론을 항상 수렴해야 하지만 대중의 여론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그것을 완전히 반해서 가도 안 되지만, 거기에 안주해도 안 됩니다. 대중의 의사를 그대로 반영해서 할 바에야 대의제도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전 회원이 투표해서 결정하면 되지 굳이 이렇게 여러분들을 뽑아서 대의제도를 둘 필요가 없잖아요. 또 회원들의 의사를 대변하라고 여러분들을 뽑아 놓은 것인데 여러분들이 거기에 반해서 엉뚱하게 간다면 그것 또한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대중들의 뜻을 그대로만 반영하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대중의 뜻을 고려하되 대중보다 한 발 앞서가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 국면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렇게 현재 우리가 하는 행위를 보면, 발전 국면에 있는지, 정체 국면에 있는지, 쇠퇴 국면에 있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 사회 또는 단체를 이끄는 리더들이 회원의 수준보다 조금 앞서가는지, 같이 가는지, 뒤에 가는지를 보면, 어느 국면에 놓여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정토회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니까 어리둥절한 국면에 직면한 것 같습니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그러나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가능하면 대중의 낙오가 적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변화 국면에서는 한 명도 낙오가 없도록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낙오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낙오를 최소화할 것이냐?’ 그리고 ‘안전장치를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 이렇게 접근해야지 이 두 가지 문제 때문에 갈 길을 못 간다면 변화에 제대로 대응을 못 하게 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여러분들이 회의를 하시면 좋겠어요. 충분하게 논의해보니 아직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면 변화를 보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방향이 정해졌고, 여론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서 결론이 났다면, 신속하게 재편하고 집행을 하는 것이 길게 봤을 때 더 좋게 평가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때 그렇게 재편하길 잘했다’, ‘빨리 재편하기를 잘했다!’ 이렇게 평가하게 될 날이 올 거예요.

직위가 없어질까 봐 걱정이 된다면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은 정토회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해왔고 정토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니까 자기 개인의 거취나 개인적인 이해관계, 또는 살아온 습관에 너무 안주하면 진취적으로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 내려놓고 어떻게 하면 정토회가 좀 더 발전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공청회를 여러 번 해보니까 대중들 중에는 마음속에 마치 회사가 구조조정을 해서 실직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분들이 일부 있는 것 같아요. 만약 그런 분이 있다면 그런 생각을 딱 버리셔야 합니다. 원래 내가 정토회에 처음 참여할 때는 수행자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수행자는 두 가지예요.

첫째, 내가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내가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은 전법입니다. 다만, 어린아이들이나 장애우, 극빈자, 이런 사람들은 법을 배워서 자기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는 전법을 넘어서서 그들을 보살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환경을 보존하는 활동을 비롯해 공동체가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이 땅에 실현해야 할 사회 정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한가?’입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도 이 좋은 법을 만나서 행복하도록 내가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입니다. 수행자에게는 이 두 가지가 핵심입니다. 이 핵심에 추가적으로 사회적 정의가 붙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이런 중간 간부 개념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규모가 커지고 행정 체계가 잡히면서 직위라는 게 자꾸 생겨나게 된 거예요. 작금의 불교계를 보면, 심지어 출가를 한 스님들 사이에서도 돈이 되는 절과 그 절에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주지라는 직위를 갖고 다툼이 계속 일어나지 않습니까?

코로나 사태와 온라인 전환으로 큰 변화가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이번 기회를 통해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간다는 그런 입장을 견지해야 합니다.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지부장이나 회계 역할이 필요해서 그 소임을 맡으라고 하면 기꺼이 ‘알겠습니다’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되, 그런 소임도 항상 한시적으로 하는 것이지 영원한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애지중지 만든 법당도 용도가 없으면 과감하게 폐기하듯이 우리가 갖던 지위도 조직이 개편되고 용도가 다하면 당연히 가볍게 내려놓아야 해요. 항상 우리의 중심은 수행자입니다. 수행자의 핵심은 자기 정진과 전법 이 두 가지가 근본입니다. 거기에 추가로 환경 실천이라든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이라든지, 평화라든지, 이런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는 활동도 함께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주어진 과제에 대해서 많은 논의와 토론이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끼리 충분히 토론한 뒤에 내일 아침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의문점이나 어려운 점이 있으면 또 대화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수고들 해주시기 바랍니다.”

입재 법문이 끝나고 대의원들은 한 손을 들고 대의원의 다짐을 함께 낭독했습니다.


이어서 준비된 안건에 대한 보고와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전국 대의원 회의의 주된 안건은 온라인 정토회 사업방향과 조직개편안을 심도 있게 심의하는 것입니다.

먼저 상임위원회 회의 결과를 보고 받은 후 행정처 사업 보고와 예결산 보고를 듣고 모둠 토론을 100분 간 했습니다. 이어서 2차 만일결사준비위원회로부터 온라인 정토회 사업방향과 조직개편안에 대한 발표를 듣고 다시 모둠 토론을 100분 간 했습니다.

오늘은 활발한 모둠 토론과 질의응답 시간만 가진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충분한 토론 후 중요한 의결 사항은 내일 진행될 예정입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에는 금요 정기법회를 시작했습니다. 1200여 명의 회원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가볍게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2021년이 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오늘이 1월 마지막 법회네요. 어릴 때는 세월이 안 가는 것 같은데,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빨리 가는 것 같아요. 연초에 일 년 중 언제 강의하고, 언제 수련하고 일정을 적다 보면 12월까지 하루 만에 다 가버리는 기분입니다.

현재 정토회는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정토회가 지역에 있는 법당 중심이었다면 온라인 정토회는 각자 사는 공간이 곧 법당이 됩니다. 이제 정토회 회원들은 전 부 다 지역 법당에서 개인 법당으로 이동을 해요. 이런 변화에 좋은 점도 있고, 또 안 좋은 점도 있어요. 좋든 싫든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같이 추운 날에는 개인 법당이 더 좋아요. 제가 있는 문경 수련원은 오늘 아침에 영하 15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저는 머리털이 없으니까 지금 법문 하는데 머리가 선뜩선뜩 해요. 털모자를 쓰고 법문을 할까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보기 안 좋다고 말려서 모자를 안 썼습니다. (웃음) 그럼 이제 질문을 받아보겠습니다.”

이어서 6명이 화상으로 연결되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자신을 닮아 키가 작은 아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는 질문자와 대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몸집이 왜소한 아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괴로워요

“저는 키가 작습니다. 몸집도 아주 작은 편입니다. 그런데 저희 아들이 저를 닮아서 키가 작고 몸집도 작습니다. 지금 대학생인데 제 눈에는 꼭 중학생처럼 보입니다. 아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무지 애를 쓰고 기도도 하지만, 막상 멀리 있던 아들이 집에 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힘듭니다. 아들의 존재는 저에게 가장 큰 기쁨이기에 아들을 편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보고 싶은데 그러지를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편안하고 기쁘게 아들을 볼 수 있을까요?”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르면 제가 깨우쳐주면 되는데 아는 데도 안 된다고 하기 때문이에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어요. 다음 생에는 키가 크게 태어나길 비는 수밖에 없네요. (웃음)

옛날에 산에 있는 나물을 뜯고 열매를 따 먹고 살 때는 모계 사회라고 해서 여성이 중심이었습니다. 여자라고 불편한 것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다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노동을 하게 되니까 남자가 유리해졌고 남성 중심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산업화가 이루어졌고, 특히 요즘은 디지털 사회가 되면서 몸집이 작거나, 키가 작거나, 힘이 약하다고 해서 불리한 것이 하나도 없어졌어요. 몸집이 작다고 자판을 못 누르는 것도 아니고, 스마트폰 터치를 못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몸집이 작다고 해서 자동차 운전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포크레인 운전을 못하는 것도 아니에요. 여성들이 하등 불리한 것이 없어졌습니다. 아직도 큰 기계는 남자가 다룬다는 관습적인 문제가 남아서 그렇지 지금은 포크레인을 운전하든, 차를 운전하든, 기관차를 운전하든, 비행기 운전을 하든, 여성이라고 해서 못할 일이 하나도 없어요. 하물며 사람이 키가 작다고 못할 일은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질문자의 걱정은 힘이 중요한 사회, 소위 농경사회라면 좀 걱정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전혀 그런 것을 걱정할 시대가 아니에요. 그런데도 이렇게 걱정을 하고 있으니까 어떡하겠어요? 그러니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방법이 있다면, 질문자가 정신을 차리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무런 불편할 이유가 없는데 과거의 관습에 의해서 불편하다고 생각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무슨 성씨냐 이런 것 때문에 불이익이 하나도 없는데 상놈 성을 가져서 불리하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여자라고 해서 아무런 차별도 없는데 여자라고 불리하다는 얘기를 한다면 방법이 없잖아요. 지금 질문자는 과거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다리를 못 쓰거나 하면 병신이라고 차별을 했잖아요. 그리고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벌을 받았다고 말했는데,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는 건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장애는 어떤 징벌의 결과가 아닙니다. 다만 장애가 있으면 좀 불편할 뿐이에요.

더군다나 요즘은 불편한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과학 기술을 도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새보다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비행기를 발명했고, 호랑이보다 속도가 더 빠른 자동차를 발명했어요. 그런 것처럼 장애로 인한 불편함은 앞으로 과학기술을 통해 전부 다 개선이 될 겁니다. 사고로 팔을 잃었다면 의수를 하면 되고, 다리를 잃었으면 의족을 하면 됩니다. 현재 기술력으로는 의수나 의족이 육체의 손발보다 기능이 못하기 때문에 핸디캡이 되지만, 앞으로는 의수와 의족이 훨씬 더 육체의 팔보다 힘도 더 세고 기능도 더 좋아질 거예요. 디지털 눈이 개발되어서 육체의 눈보다 훨씬 더 잘 보이게 되면, 보통 사람도 멀쩡한 눈을 빼고 디지털 눈으로 교체할 겁니다. 처음에는 사고가 나서 개선하려고 한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보통 사람도 멀쩡한 팔을 자르고 의수를 하게 될 거예요.

그런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성형이 그렇잖아요. 성형이라는 것은 원래 다쳐서 얼굴이 일그러진 것을 복원하기 위해서 나온 기술이에요. 그런데 성형 기술이 점점 발달하다 보니 부상을 입지 않은 사람들도 얼굴을 예쁘게 하려고 너도나도 성형을 하기 위해 난리잖아요. 지금의 성형은 더 이상 의술이 아니라 미용이 되었습니다. 그런 것처럼 앞으로 이런 문제가 곧 생깁니다. 이런 인간을 ‘사이보그’라고 해요. 지금 사이보그 기술은 거의 실용 단계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장애도 더 이상 핸디캡이 아닙니다.

시골에 가 보면 관절이 좋지 않아서 다리를 못 쓰는 어르신들이 전동차에 앉아서 가는 경우가 많아요. 이분들은 제가 걷는 것보다 훨씬 빨리 갑니다. 다니는 데 아무 불편이 없어요.

이런 시대에 살면서 지금 그런 얘기를 하니까 제가 볼 때 좀 한심해 보이네요. 내일부터 정토회 오지 말고 어디 다른 절에 다니면 어떨까요? 정토회에 다니고 있다는 게 창피할 정도예요.” (웃음)

“저도 제가 좀 한심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요. 스님이 봐도 한심한데 본인도 그걸 알아야죠. 질문자의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해서 사는 사람이 프랑스에서는 전체 인구의 절반입니다. 장애는 열등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장애인’이라는 말도 요즘은 쓰지 않고 ‘장애우’라는 말로 사용하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질문자가 너무 욕심이 많은 겁니다. 건강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해요. 만약 아이가 자신에 대해 너무 왜소해서 열등하다고 생각하면 엄마는 이렇게 말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 시대가 바뀌었다. 옛날 같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렇게 격려를 해줘야 해요. 아이는 멀쩡하게 잘 지내는데 엄마가 자꾸 그렇게 하면 결국 엄마로 인해 아이에게 열등의식이 심어지게 됩니다.

또 역사적으로도 한 번 보세요. 나폴레옹도 그 시대에 키가 아주 작았어요. 등소평은 150센티미터 수준이었어요. 그런데도 13억 중국을 호령했잖아요.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성공시킨 박정희 대통령도 키가 작았잖아요. 꼭 정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잘 되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그런 걸 가지고 논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질문자가 외모를 갖고 평가하는 잘못된 소비주의에 물들어서 괴로운 겁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가도 불법을 탁 듣고 나면 정신을 차려야죠. 불법이 무엇입니까. 불생불멸 불구부정이잖아요. 큰 것도 없고, 작은 것도 없습니다. 넓은 것도 없고, 좁은 것도 없습니다. 무거운 것도 없고, 가벼운 것도 없습니다. 다만 비교에 의해서 그렇게 규정될 뿐입니다. 이렇게 불교 공부를 하고 있으면서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떡해요. 정신을 차리세요.” (웃음)

“네, 노력해 보겠습니다.”

“노력할 것도 없어요. 딱 한 생각만 바꾸면 됩니다.

‘아! 모든 존재는 있는 그대로 다 존엄하다.’

이번에 젊은이들을 위해서 나온 새로운 책이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입니다. 그 어떤 것도 열등한 것이 없어요. 그냥 풀은 풀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큰 나무는 큰 나무대로, 작은 나무는 작은 나무대로, 양지 식물은 양지 식물대로, 음지 식물은 음지 식물대로, 다 서로 다를 뿐이지 모두 존엄합니다. 인종도 키가 큰 인종이 있고, 작은 인종이 있고 또 같은 인종 안에서도 키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합니다.

질문자가 키가 작은 문제는 한국에서 좀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통일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됩니다. 통일이 되면 남한 인구의 절반 가까이 되는 북한 사람들은 키가 질문자의 아들만큼 작아요. 왜냐하면 북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영양 부족으로 키가 남한의 초등학생 정도 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 아이들은 직접 만나보면 굉장히 똑똑해 보여요. 겉보기에는 키가 작으니까 일곱 살, 여덟 살이겠구나 싶은데, 실제 나이는 열 두세 살이니까요. 얘기를 나누다가 아이가 참 똘똘해서 나이를 물어보면 벌써 고등학생 나이예요.

그러니 질문자가 지금 딱 깨달아서 해결이 안 되거든 하루빨리 통일이 되도록 모든 일을 제쳐두고 통일운동을 하세요.” (웃음)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몇십 년 동안 늘 비슷한 꿈을 꿉니다. 꿈에 의미부여를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중국이 단오절, 한복, 심지어 김치가 자신의 문화라고 완전히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경제 강대국이 되면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아질 텐데 불안한 마음이 큽니다. 수행자로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 저와 함께 민원을 처리하러 나갔던 직원이 저를 기다리다가 공사차량에 치었습니다. 죄책감이 많이 드는데 어떻게 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 저는 10여 년 전에 다니던 절에서 석불 하나를 얻어와 집에 모시고 있습니다. 정토회원이 된 후로는 액자형 부처님을 모시고 싶은데 집에 모셔진 석불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누가 이래라 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라 하면 저렇게 하면 부딪힐 일이 없는데 어느 순간 ‘왜 계속 나만 맞춰주고 참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화를 마치고 스님은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자신을 닮아 키가 작은 아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는 질문자가 먼저 소감을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한심하고 어리석다고 느끼고 있었어요. 그래도 한 단계 뛰어넘기 위해서 스님에게 꼭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계속 한심하게 살래요? 한심한 걸 알았으니 이제 한심하게 안 살래요?”

“이제 통일 운동도 해보고 시야를 넓게 가져보겠습니다.”

“그러니까 키가 작은 것은 열등해요, 열등하지 않아요?”

“열등하지 않아요.”

“그래요. 스스로 열등한 것처럼 느껴지면 ‘내가 또 미쳤구나’ 이렇게 딱 자기를 돌아봐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질문자들의 소감을 다 듣고 인사를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밤 9시가 다 되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전국대의원회의 즉문즉설과 회향법문을 할 예정입니다.

2020년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한 해였습니다. 2021년 새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해 설에 여러분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입니다.

2.10(수) 오전 10시 ~ 2.14(일) 오전 10시 (4박5일, 한국시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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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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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수행자의 관점 한번더 새깁니다.
감사합니다.

2021-02-13 16:59:21

정보현화

스님..요즘은 '장애우'라는 단어는 없어지고 원래대로 '장애인'으로 쓰고 있는데 확인해 보시면 좋겠습니다....대한민국에서의 법적인 공식 용어는 장애인이다. 장애우라는 용어는 장애가 있는 사람을 장애우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것 자체가 이미 장애인에 대한 동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장애인이 더 적합한 용어다.

2021-02-06 22:32:08

청정화

우리 모두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저 지어진 그 모양 그대로 감사히 받아 들이겠습니다.()

2021-02-06 02: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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