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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9 세계 100회 강연(78) 세크라멘토 Sacramento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78번째 강연이 캘리포니아주 세크라멘토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세크라멘토는 캘리포니아주 중부에 있는 캘리포니아주의 주도로써, 캘리포니아 국회의사당이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널찍한 센트럴 밸리에 있는 아메리칸강과 세크라멘토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도시여서 River City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자연환경 상 23시간 운전하면 사계절을 맛 볼 수 있습니다. 약 47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광역 세크라멘토의 인구는 약 214만명 정도인데nbsp세크라멘토가 이 지역의 문화와 경제의 중심입니다. 한국 교민은 약 15,000여명 거주한다고 합니다. 한국 교민들은 소규모 개인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고, 전문인들도 많으며, 데이비스, 유바 같은 쪽으로는 농업이 발전되어 농업하시는 분들이 많으며 한번 정착하면 이사를 가지 않고 계속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nbspnbsp▲nbsp오늘 이동 거리 산호세 →nbsp세크라멘토, 151마일nbsp nbsp지도 보기nbsphttpsgoo.glmapshfwzTnbsp스님 일행은 어제 이성진 Frank 부부의 댁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두 분만 사는 집에 스님 일행으로 인해 손님이 가득하니 아침 식사 준비로 부엌도 분주해졌습니다. 7시30분에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샌프란시스코 정토회를 만드는데 밑거름이 되어주신 박인규님이 스님께서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3일간 머무신다는 소식을 듣고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식사 후에 어떤 길로 세크라멘토를 갈 것인지 얘기를 나눈 후 스님께서는 박인규님과 담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나서 잠깐 원고를 교정하신 후 11시 30분에nbsp세크라멘토로 출발했습니다 nbspnbsp▲nbsp아침식사를nbsp준비해준 Franknbsp이성진 부부nbsp▲nbsp샌프란시스코 정토회를 만드는데 밑거름이 되어주신 박인규님nbsp nbspnbspnbsp캘리포니아는 와인 생산으로 유명한데 세크라멘토로 가는 길에 주변에 포도밭이 많았습니다. 또 은행잎도 노랗게 물들어 있고 빨갛게 곱게 물든 단풍들은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세그라멘토로 가는 길에 만난 포도밭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정혜엘리사벳 한인천주교회’입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내외부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정토회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강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nbspnbspnbsp▲nbsp오늘 강연장,nbsp정혜엘리사벳 한인천주교회그리고 성당에서 최숭근비오 신부님과 김귀태 사목회장님께서 나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어서 성당이 참 예뻤는데, 신부님과 단풍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대기실로 자리를 옮겨 담화를 나누시면서 신부님과 사목회장님께 새로운 백년 책과 인생수업 책을 감사의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 ▲nbsp스님을 반갑게 맞이해주신 최숭근 비오 신부님nbsp오후 3시가 되어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총 300여명이 참석하여 좌석이 거의 다 찼습니다. 먼저 사목회장님이 나오셔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계시고 수행공동체 정토회를 설립하여 지도하고 계시는 법륜스님을 이곳에 모시게 되어서 무엇보다 기쁘고 또 이를 허락해주신 신부님께 감사드린다” 면서“모쪼록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길 기원한다”는 인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강연에 앞서 인사 말씀을 해주고 계신 사목회장님nbspnbsp이어서 스님의 소개 영상과 더불어 스님께서 연단으로 나오시자, 성당을 가득 채운 청중들이 열렬한 박수와 환호로 환영해 주었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잠시 십자가상 앞에서 기도를 하신 후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오전 미사는 잘 보셨습니까? 일요일인데도 성당을 사용하도록 해주신 최비오 신부님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드리고 또 허락해주신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개신교인 분들은 아침에 예배 잘 드리고 오셨어요? 세크라멘토에서의 강연은 처음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강연을 할 때에 세크라멘토에서 차가 한대 두 대씩 와서 “세크라멘토는 왜 안 해줘요?” 하고 요청인지 항의인지 모르게 얘기를 하셨어요. “한 번 갈께요” 이렇게 얘기 했었는데 그게 잘 안됐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교민들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전 세계 각 도시마다 가서 고민을 들으며 대화하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옛날nbsp세크라멘토에 오라고 하셨던 분이 생각나서 이곳에 강연 일정을 넣었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께 반갑다는 인사말씀 드립니다.nbspnbspnbsp저는 여러분께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말할 그런 메시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세계를 다니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합니까?“묻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제가 ”아무런 전달할 메시지가 없습니다“그러니까, ”아니, 전달할 메시지도 없으면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다니세요?“하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전달할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니고요, 여러분들이 대화해보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그 주제로 함께 얘기해보는 겁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고뇌들이나, 인생에 대해 갖는 의문들을 소재로 해서 대화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화의 목표는, 고뇌에 대한 어떤 답이 아니라 고뇌가 조금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의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대화를 하다 보면 문제의식이 없어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화를 하면서 조금 더 행복해지는 길,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길, 조금 더 진실을 규명하는 일, 즉 우리의 인식 상의 오류를 조금 시정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 얘기도 좋고, 사회 얘기도, 종교 얘기도, 과학 애기도, 인간 얘기도, 자연 얘기도 좋고 어떤 소재를 특정 짓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해 봅시다. 자, 그럼 시작해보죠“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nbspnbsp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첫 질문부터 재미있고 유쾌한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질문 내용은, 스님께서 전 세계에 있는 교민사회를 방문하고 계신데 교민 사회의 문화적 특성이나 요구가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이곳 세크라멘토 공동체에 15,000여명이 살고 있고 도서관을 4년 전에 개방했는데 도서관을 개방하는 것이 현재의 방향에 맞는 것인지, 스님이 쓰신 책 중에서 도서관에 주고 가실 책이 있는지 묻는 분, 해외에서 일하고 공부하면서 마음 속에 인종 차별적인 감정들이 많이 올라오는데 평등하게 사람들을 대하려면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지, 뉴스에서 이슬람 국가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사건들을 보면서 이런 종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묻는 분, 천주교에서 성령체험을 했지만 다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는데 불교에서도 득도한 후에도 다시 괴로운 상태로 돌아가는지,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수련을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스님의 즉문즉설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800여개를 모두 들어보니 핵심은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것 같은데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스님의 생각을 묻는 분, 가족을 놓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생각을 하면 슬프고 화가 나는데 죽음을 편안하게 맞을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분, 엄마와 신랑이 서로 갈등 관계에 있는데 신랑은 친정과 인연을 끊으라고 하고 저는 친정엄마를 포기할 수 없는데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은 시종일관 웃음이 넘치고 유쾌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히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을 웃게 해준 모태 솔로 학생의 연애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25살 학생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모태솔로예요. 남자친구를 한 번도 사귀어본 적이 없거든요. 저도 물론 남자 좋아하고 사귀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제가 용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사귀고 교제를 하다가 항상 끝이 안 좋게 끝나는 경우를 많이 보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무섭다기보다는 용기가 없고 걱정이 된다고 할까요? 저는 남자를 만나보고 싶기는 한데, 그 걱정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어떻게 해야 할지 스님께 여쭤봅니다.”nbsp“우선, 덜 위험한 스님이나 신부님하고 사귀어보면 어떨까요?” nbsp“만날 기회가 없어서...” nbsp“질문자가 스스로 자기가 왜 그런지 잘 관찰해보면 찾을 수 있는데, 관찰을 해보지 않았거나 할 능력이 없거나 해서 못한 것 같으니까 제가 물어보죠. 이유가 여러 개 있을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질문자가 눈이 너무 높을 수 있어요.”nbsp“그건 아닌 것 같아요.” nbspnbsp“왜냐하면, 눈이 너무 높으면 접근할 때 심리적인 부담이 돼요. 만만해야 접근하기가 쉬운데, 너무 높으면 퇴짜 맞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높게 설정을 하면 첫째 찾기도 어렵고, 찾아도 접근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첫째 이유는 자기가 눈이 좀 높을 수 있어요.”nbsp“그런데 제가 호감이 가거나 마음에 드는 남자들은 다 이미 임자가 있더라고요.”nbsp“그러니까 그게 눈이 높다는 거죠. 아무도 안 주워가는 사람을 잡으면 됩니다. 이미 괜찮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이미 점을 찍어버렸는데 남이 점 찍은 사람이 좋게 보인다는 것은 본인이 눈이 높다는 거예요. 직장을 예로 들어 봅시다.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변호사가 되거나 의사가 되는 것은 그것이 좋다고 생각되니까 사람들이 많이 몰리죠? 그것도 실력 있는 쟁쟁한 사람들이 다수 몰리잖아요. 내가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것은 내가 너무 높게 선정하고 접근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런 것처럼 ‘저 정도’ 하는 게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평범하게 접근한 것 같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눈을 높이 두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잘 안 받아들여지는 것 같네요. 그렇죠? 그러니까 눈을 수평이나 조금 아래로 내리깔아요. 그러면 남자가 지천에 깔려 있어요.”nbsp“그런데 주변에서 친구들은 제가 눈이 높은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nbsp“알겠어요. 그 다음에 두 번째 요인은 질문자가 어렸을 때 부모님의 갈등이 심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일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어릴 때 엄마나 아빠가 갈등이 있었어요? 지금은 커서 보니까 큰 문제가 없어도 어릴 때 부부간의 갈등이 심하고 엄마가 아이를 안고 울면서 ‘아이고, 내가 네 아버지 때문에 못 살겠다’한 경우가 보통 있지 않습니까? 넋두리를 알아듣던지 못 알아듣던지 아이 있는 데서 불평을 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러면 아이 마음에 남자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식이 심어집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중에 커서 남자에게 호의적이라고 하더라도, 막상 결혼을 할려고 하거나 어떤 인연을 맺으려고 할 때에는, 의식은 만나려고 하는데 마음에서는 자꾸 두려움이 생겨요. 이것은 자기가 컨트롤할 수가 없어요. 마음에서부터 자꾸 부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게 두 번째 원인이 될 수 있어요. 솔직하게 말해 봐요.”nbspnbsp“사실 제가 고3때 미국에 왔어요. 한국인이 없는 학교에 다녀서 이성에 눈도 조금 늦게 뜬 것 같아요. 외국인들은 별로 호감이 안 가더라고요. 그러고 있다가 대학을 가고 주변에 친구들이 이성교제 하는 것을 많이 봤는데, 그렇게 좋아 죽고 추억도 많이 만들고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내놓고도 곧 몇 개월 혹은 1년 이렇게 길게 가지 않고 헤어지더라고요. 그리고 끝나버리면 상대방이 남보다도 못하고 친구도 아니고 아예 나에게 있었던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안 좋아지는 것을 보니까, 아마 그것 때문에 겁이 나는 마음이 있던 것 같아요.”nbsp“그러니까 그런 것을 보고 겁나는 것이, 어릴 때 경험한 어떤 무의식과 관계가 있어요. 지금 성인이 된 후 그 한 두 개의 사건이 나한테 이성적으로 ‘아, 남자들 사귈 때 조심해야 된다’는 하나의 경험은 주지만, 그것 자체를 갖고 마음이 부담스러운 것은 어릴 때 형성된 것이 많거든요.nbspnbsp세 번째로, 어릴 때 성인 남자로부터 약갼의 성추행 경험 같은 것이 있으면 원인이 될 수 있어요. 커서 잊어버렸다고 하더라도, 남자에 대해서 약간의 두려움과 거부반응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있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질문자는 그런 것은 없죠?”nbsp“네, 그런 것도 없습니다.”nbsp“이런 것들을 살펴보고 내가 왜 사람에 대해서 부담스러워하는지 점검이 되어야 해요. 하나는 내가 약간 너무 높은 사람에게 접근하기 때문에 찾기도 어렵고 찾아도 접근할 때 두려울 수 있어요. 여러분들도 여기에 지위가 높은 사람이 올 때 약간 긴장되지 않습니까. 돈이 많은 사람이 와도 약간 긴장 되고, 유명한 사람이 와도 약간 긴장이 되잖아요. 왜냐하면 친해지고 싶기 때문에 혹시 잘못될까 더 긴장이 되는 것입니다. 접근이 만만하지가 않잖아요. 그래서 본인이 눈을 높게 보고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다시 점검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어릴 때 부모님이 살아가신 모습에서 남자에 대한 부정적인 요인이 있는지, 그리고 세 번째는 어릴 때 내가 직접 경험한 성추행같은 부정적인 영향으로, 남자가 접근하는 것이 두려움이 있는지를 점검해보세요. 이런 것들이 바탕이 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nbspnbsp그 다음에, 내 친구들이 남자친구를 사귀다가 헤어지고 원수도 되고 하는 것을 보면서, ‘아, 남자 함부로 사귀어서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은 바른 생각이 아니고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람을 사귀어 보면 처음에는 괜찮겠다 싶은데 시간이 지나면 ‘아, 이거 아니네?’하는 생각이 누구에게나 들 수 있습니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요. 그렇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에요.nbspnbsp사귄다는 것은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처음에는 남자가 결단력이 있고 굉장히 카리스마가 있어서 좋아했는데 같이 살아 보니까 완전 황소고집이고 상대방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요. 또 다정다감하고 친구같이 너무 좋다고 해서 결혼을 하면 이 남자는 우유부단합니다. 이렇게 성질이 다 다른데 우리의 요구는 부드럽기도 해야 되고, 때로는 칼 같이 날카롭기도 해야 되고, 때로는 돌처럼 단단하기도 해야 되고, 요구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처음 사귈 때에는 이 면이 좋아서 사귀었는데 조금 지나니 저 면이 부족해서 안되겠다는 문제가 생겨서 헤어지는 거거든요. 결혼했다가 헤어지는 것보다는 연애 하다가 헤어지는 것은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결혼했더라도 아이를 낳기 전에 헤어지는 것은 아이를 낳고 난 후에 헤어지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일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닙니다.nbspnbsp그리고 또 내가 만약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서 그 사람이 좋아서 결혼하면, 요즘 같은 좋은 세상에 죽을 때까지 한 남자밖에 못 만나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결혼해서 이 남자, 저 남자 만날 수 는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결혼하기 전에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보는 것이 먼 미래에 뒤돌아보면 그게 오히려 이익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내가 이 남자를 조금 사귀다가 저 남자를 조금 사귀다가 하면 바람기가 많다고 사람들이 욕해요. 그런데 남자가 자기가 알아서 떠난다고 하면 나는 전혀 욕 얻어먹지 않고 동정 받으면서 사람을 계속 바꿔서 만날 수가 있어요. nbspnbspnbspnbsp그러니까, 둘이 만나서 서로 좋아서 결혼까지 가면 그건 그것대로 좋지만, 상대방이 떠나버렸다고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떠나주니 또 다른 더 좋은 남자를 만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가는 뒤통수에 대고 ‘안녕히 가세요, 고맙습니다, 저를 위해서 이렇게 떠나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세요. 그러니까 떠나는 것이 상처가 안 돼요. 그러니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는 말입니다.nbspnbsp상대가 떠날까봐 겁난다고 하는데, 있어도 좋고 떠나도 손해날 것이 하나도 없으니 겁낼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 사귀기가 쉬워지는 것입니다. 같이 계속 사귀어도 되고, 니가 떠나도 나는 손해날 것 없다는 것입니다.“nbsp“그럼 만약에 제가 싫어지면 어떡하죠?”nbsp“그럼 관둬버리면 돼요”nbsp“그러면 아까 욕 먹는다고 하셨잖아요, 나쁜 여자 된다고요”nbsp“나쁜 여자 안 돼요. 결혼하고도 이혼하는 것이 부지기수인데, 처녀 총각일 때 만나다가 헤어진다고 욕되지 않아요. 물론 그 남자는 조금 욕하겠지만요. 내가 싫어진 남자가 욕을 하던지 말던지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아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상대방이 떠나도 문제가 안 되고, 내가 떠나도 별 문제 안 돼요. 따라서 어떤 경우가 일어나도 사실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 총각들도 여기 많이 왔으니까 이따 가다가 누가 손 잡으면 같이 가봐요. nbspnbspnbsp여기까지는 아무 부담가질 필요가 없으니 편안하게 만나라는 얘기이고, 조금 더 조언을 한다면 이렇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남자를 사귄다던지, 결혼 상대자를 찾는다던지 하면, 출발을 너무 무겁게 생각해요. 너무 무겁게 출발하면 사람을 우선 고르게 돼요. 아무하고나 사귈 수도, 아무하고나 결혼할 수도 없으니까 고르게 되죠. 나이로 고르고, 혼자 있어야 되고, 학벌이 좀 있어야 되고 하는 식으로 따지게 되면 남자는 많은 것 같은데 아무도 없어요. 나는 별로 욕심을 안 내는 것 같은데 실제로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사귀는 데 너무 목적을 두면 안 돼요.nbspnbsp그리고 반대로 내가 어떤 사람을 딱 찍었다고 하면, 그 남자는 부담스러워 해요. 질문자도 어떤 사람이 자기를 딱 찍어서 접근하면 기분 나쁘거나 부담스럽잖아요. 중세나 조선시대에는 부모가 맺어주면 어쩔 수 없이 만났지만, 옛날과 달리 요즘은 연애나 결혼이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너무 노골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어요. 물건도 아닌데 사람을 딱 찍으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nbsp그래서 이렇게 접근하니까 선택도 어렵고 성사도 어렵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을 사귀어야 할까요? 그냥 친구로 사귀는 겁니다. 애인도 아니고 결혼 상대방도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으로 사귀는 것입니다. 그냥 아는 사람으로 사귀면 나보다 나이가 20살이 많아도, 결혼 을 했어도, 스무 살 밑이어도, 이혼한 남자도 상관이 없고, 신부님도 상관이 없어요. 그냥 아는 사람이니까요.“nbsp“아는 사람으로 사귀어 본 친구는 많은 것 같아요.”nbsp“그렇게 아는 사람으로 사귀어서 지내다 보면, 사람 수가 10명이 되고 20명이 되고 100명이 되면, 그 가운데에 연애 감정이 생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어요. 스무 살 차이가 나는 사람 중에도 사람을 먼저 알고 나서 보면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괜찮은 사람이 있고, 사람을 먼저 알고 보면 나보다 나이가 어려도 괜찮은 사람이 있고, 이혼 경력이 있는 사람 중에도 괜찮은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목적 의식을 갖고 이혼한 것 빼고, 나이 많은 것 빼고, 나이 적은 것 빼버리면 몇 명 남지 않게 돼요. 반드시 그런 사람 중에 선택하라는 말이 아니고, 그렇게 하면 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접근을 해서 그 중에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요. 그리고 그 중에 연애를 하다가 떠나주면 다행이고, 안 떠나주면 같이 살면 돼요.nbspnbsp이렇게 서너 번 사람이 바뀌면 내가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게 돼요. 내가 너무 좋아해도 상대방이 부담스럽고, 너무 발로 차도 상대가 떨어져요. 이것이 소위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밀당’인데 이 밀당은 계획을 세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저절로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학습효과라고 하죠. 실패를 몇 번 해야 학습효과가 나요. 이렇게 가면 자연적으로 사람을 사귀게 되고, 이렇게 사람을 사귀게 되면 결혼한 후에도 이미 사람 사귀는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 살기가 쉽습니다. 아무 경험도 없는 사람과 만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이 더 위험해요. 인간관계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요. 자동차를 사서 작은 접촉 사고를 조금씩 낸 사람이 큰 사고를 잘 안 내는거 알아요? 무사고, 이거 무섭습니다. 대형 사고를 낼 수 있어요. 그리고 건강도 “내가 나이 60이 되도록 병원 한번 안가봤다“는 사람이 더 일찍 죽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병치레를 해서 매일 약 먹고 비실비실한 사람들이 벽에 똥칠할 때 까지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항상 몸을 조심해서 자기를 컨트롤하는데, 건강한 사람은 나이가 들었는데도 한 번도 조심해 본 적이 없기 잘못하면 나이 들어서 과로를 해서 ”옛날에 다 해봤다“하다가 꺾여서 죽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연습을 많이 해보면 돼요.nbspnbsp안전한 것은, 약간 나이가 많거나 어리거나, 즉 연애감정이 일어나기 어려운 사람을 우선 사귀어보는 것이 부담이 덜 돼요. 그러면 쉽잖아요. 그러고 나서 나이를 조금씩 낮추고 조금씩 높이면서 접근을 하면 비교적 쉽습니다.“nbsp“그러면 제가 스님을 믿고 앞으로 많이 만나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nbspnbspnbsp“잠깐만요, 지금 어디에 다니세요? 교회에 나가요? 성당에 나가요? 아니면 아무 데도 안 나가요?”nbsp“음, 교회도 미국에 와서 봉사하러 나간 적이 있고, 전에 한국에 있을 때에는 절에 많이 다녔었어요. 그냥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요.”nbsp“절에는 신도 숫자가 몇 명 안 되니까 남자 찾기가 어렵겠네요. 결혼은 해야 되고 남자가 필요하니까, 지금 결혼하기 전까지는 종교를 너무 따지지 말고 교회도 가보고 성당도 나와 보세요. 신앙으로 만나는 사람은 남녀의 부담을 덜 느껴도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괜찮은 사람이 있을 수가 있어요.”nbsp“감사합니다”nbsp“카톨릭 신자들, 저분 잘 관리하세요. 저 때문에 오늘 한 명 건졌어요.” nbspnbsp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오늘은 스님이 코메디언보다 더 웃긴 것 같았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2시간 45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오늘 참석한 청중들이 모두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 대화를 하면서 무엇을 느낄 수 있었나요? 첫째, 자기 관점을 너무 고집하면 그것은 결국 자기한테 손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에요. 이것이 현실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이것을 얼마만큼 뛰어넘느냐, 뛰어 넘는 그만큼 나의 행복도가 높아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nbsp두 번째는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고 할 때, 더 들여다보면 대가를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 너도 나를 사랑해라’. 혹은 ‘내가 교회에 헌금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교회에서는 우리를 이렇게 취급하느냐’하는 식으로 대가를 바라기 때문에 항상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미움이 생깁니다.nbspnbspnbsp이렇게 우리가 삶에 몇 가지 원칙들을 정하면 훨씬 더 삶이 간소해집니다. 살아있는 것만 해도 기뻐집니다. 그래서 늘 주님께 뭘 해달라고 하지 않고 ‘주님,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 기도만 해야 돼요. 어디 주님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시킵니까? 딱 앉으면 ‘주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살아 있는 것에 첫째 감사하고, 두 눈 뜨고 볼 수 있고 걸어다닐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리가 하나 부러져도 ‘이쪽 다리 안 부러진 것에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내면 몸과 마음에서 굉장히 좋은 에너지가 나오고 행복해질 뿐만 아니라 이웃에도 행복이 전해집니다. 그것이 신앙인과 아닌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욕심으로 와서 기도하기 때문에 불평 불만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좀 더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청중들은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이 끝나고 스님께서는 책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 기다리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시며 인사도 하고 함께 사진촬영도 하였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한국에서 실무자로 있는 김나영님의 동생가족들이 강연에 참석했다가 스님께 찾아와서 인사를 하여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nbspnbsp사인을 받기 위해서 줄을 서있는 분들께 다가가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한 할머니는 “마지막 질문자가 딸의 입장에서 사위와 장모의 갈등 문제로 고민하는 질문을 했는데 그 부분이 정말 공감이 되었다”고 하면서 “나도 1년 동안 손녀를 봐주었는데 스님 말씀이 맞다”고 하시면서 “스님께서는 정말로 현명하시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고등학교 여학생도 “스님 말씀이 어렵지 않고 이해가 잘 되도록 설명해주어서 정말 좋은 시간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께서 이곳까지 오신 것이 너무 좋았다”고 했고, 또 “모든 분들의 질문과 답변 속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었고 마지막 정리 말씀도 참 좋았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자리를 옮겨 강연장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 수고해준 자원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그리고 오늘강연에는 샌프란시스코 정토회원들이 원정자원봉사를 하러왔지만 샌프란시스코 정토회원으로서 새크란멘토지역으로 이사와서 열린법회를 열고 있는 주근영님과nbsp세크라멘토지역 열린법회회원들, 자원봉사자들과 따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nbspnbsp▲ 세크라멘토까지 원정 자원봉사를 온 샌프란시스코 정토회 회원들nbsp▲ 세크라멘토nbsp열린법회 회원들과 오늘 강연 봉사자들nbsp특히 세크라멘토 지역에 사는 정토행자로서 고옥희님과 함께 강연 준비를 맡아 수고하신 주근영님께는 스님께서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그리고 자원봉사자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 주시면서 수고했다며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행사 뒷정리를 마치고nbsp세크라멘토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 김명례지구장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nbsp샌프란시스코 정토회의nbsp자원봉사자들이nbsp세크라멘토까지 와서 강연을 함께 준비했는데 이 지역 봉사자들도 다들 고마워 하였습니다.nbsp열린법회를 담당하고 있는 주근영님은nbsp열린법회를 하는 도중에 세계 100강 소식을 듣고nbsp세크라멘토에서 열린법회 회원들과 함께 강연nbsp홍보를 하고 행사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며 준비과정이nbsp참nbsp즐거웠다고 하였습니다. 열린법회의 회원 중 한분은nbsp2012년 한국에서 300강을 할 때 봉사를 했는데 이곳에서 다시 해외 100강에 봉사할 수 있어서 nbsp뜻깊었다고nbsp하면서nbsp가족 3대가 함께 참석하여 봉사를 할 수 있어서 특히 더 좋았다고 하였습니다.nbsp한 분은 딸이 한국에 있었던 2년 6개월 동안 너무 많이nbsp행복해져서nbsp정토회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nbsp자원봉사에 참가했는데 가족들이 함께 다닐 수 있는 곳이 생겨서 너무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처음 자원봉사를 한 봉사자들은nbsp이번 강연 준비와 진행이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오시면서 스님께서는 성당을 다소 소란스럽게 사용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신부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사목회장님께도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렸습니다. 또한 성당 도서관 책임자에게는 준비한 책이 모자라서 지금 드릴 수 없으니 스님의 책 한질을 모두 기증하겠다고 약속하며 책임자인 고옥희님에게 꼭 보내드리라고 당부를 하셨습니다.nbspnbsp저녁 6시 15분에 강연장을 나와 숙소에 돌아오니 7시 45분이 되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여 이성진님께서 준비해 준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후 스님께서는 내일 일정에 대해서 얘기를 잠깐 나누고 원고 교정 및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nbsp▲ 밤 늦게까지nbsp원고 교정을 보고 계신 스님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78번째nbsp세크라멘토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79번째 강연이 구글 본사에서, 80번째 강연이 저녁에 오클랜드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구글과 오클랜드에서 찾아 뵙겠습니다.nbspnbsp특히 구글은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다니고 싶어하는 꿈의 직장이라고 알려진 곳인데, 세계의 젊은이들은 또 어떤 고민을 갖고 스님과 만나게 될지 기대가 많이 됩니다.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1.8 세계 100회 강연(76) 산호세 San Jose (외국인 강연)
안녕하세요. 오늘 오후 2시에는 세계 100회 강연 중 76번째 강연이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산호세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열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저녁 6시에는 한국 교민들을 대상으로 열립니다. 각각 자세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캘리포니아 주는 미국 서부 해안선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주로서, 인구는 3,548만여명으로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입니다. 주요 대도시로는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샌디에이고가 있고 주도는 새크라멘토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가주라고도 부르며, 특히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한 남부 캘리포니아를 남가주,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북부 캘리포니아를 북가주라고 줄여 부릅니다. 캘리포니아 지역은 아시아계와 히스패닉계 인구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며 민주당 지지주입니다.nbsp 캘리포니아 주는 그 자체의 경제규모만으로도 세계 6위권 국가 수준에 이르며, 가장 상업이 발달한 도시는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캘리포니아 주 제1의 농산물로는 오렌지, 레몬, 아몬드 등이며, 공업은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자동차, 컴퓨터, 영화 필름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습니다.nbspnbsp북캘리포니아는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하여 새크라맨토, 사우스베이, 이스트베이 등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을 일컫습니다. 북가주의 한인들은 약 14만3천여명정도 살고 있는데 현지에서는 20만명을 육박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북가주에서만 절이 8개, 교회는 약 320개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온 지구촌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유명한 금문교가 있으며, 서부 최대의 차이나타운이 있고, 세계의 종교가 다 모여있다고 알려진 곳입니다.nbspnbspnbsp▲nbsp오늘 이동 거리 포틀랜드 →nbsp산호세, 670마일nbsp nbsp 구글 지도 보기nbsphttpsgoo.glmapsvpCVPnbsp이 중 오늘 강연이 있는 사우스베이 지역은 통칭 실리콘밸리라 부르는 지역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약 1시간정도의 거리에 위치하며, 구글, 애플, HP, 인텔, 시스코시스템즈, 오라클, 페이스북, 야후, 아도비시스템즈, 삼성, 엘지 등 세계적인 IT기업이 모여 있는 도시입니다. 전체 인구 수는 95만명 정도이고, 한국 교민은 약 2만 7천명으로 캘리포니아 20개의 카운티 중에서 한국 교민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샐리콘밸리는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기술 혁신의 상징이며, 1인당 특허수, 엔지니어 비율, 모험자본 투자 등의 면에서 미국 내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하이테크 경제로 인해 부유한 지역이 된 곳입니다. 또한 미국 최고의 사립대학 중의 하나인 스탠포드 대학교가 있으며 이 학교는 5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고 학생의 23가 동양계입니다.nbspnbsp오전 4시에 정채임님의 차를 타고 포틀랜드공항으로 가서 수속을 밟았습니다. 오늘은 6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산호세로 갑니다. 일찍부터 서둘러 공용짐과 개인짐을 모두 부치고 1시간 50분의 비행을 거쳐 8시에 산호세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오늘부터 미주 지역 강연이 끝날 때까지 운전 봉사를 해주실 이경택님과 서남부 지부의 김명례 지구장 부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운전 봉사를 해주실 전 콜럼버스정토회 대표인 김준자님, 또한 이번 샌프란시스코 지역 5개 강연의 총괄 책임을 맡은 고옥희 에티엔 부부가 함께 마중을 나와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산호세 공항에 마중을 나와준 미주 서남부 지역 강연 자원봉사자들nbspnbsp인사를 하고 공항에서 사진촬영을 한 후에 고옥희님 댁으로 이동하여 강연 전까지 아침식사 및 휴식을 취했습니다. 고옥희님 댁에 도착하니 모두들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 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자원봉사자들nbsp다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스님께서는 원고 교정을 보시다가 프랑스 출신인 에티엔님과 잠시 얘기도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오늘 영어 통역을 해줄 제이슨 림이 워싱턴DC에서 도착하여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자원봉사자인 박현정님이 준비해준 비빔밥으로 같이 점심식사를 하고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강연장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에띠엔님께 잘 쉬었다가 간다고 하시면서 영문기도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성공회 성당인 St. Thomas Episcopal Church 입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내외부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정토회의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nbspnbsp▲ 오늘 강연장,nbspSt. Thomas Episcopal Churchnbsp강연장 안으로 들어가니 이곳 성당을 운영하고 계신nbspRob Keimnbsp신부님께서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작년부터 스님을 초청하고 싶었는데 올해 이렇게 스님을 모시고 강연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하시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셨고, 스님께서도 “이렇게 영어 강연 홍보도 해주시고 한국인 강연도 할 수 있게 성당을 제공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며 사인한 영문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nbsp▲ 강연 전 Rob Keim 신부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날씨가 좋아서 강연 전에 성당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고 있었는데 오늘 영어 통역 강연 후에 잠시 미팅을 하기로 한 치엔 우님이 와서 스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치엔 우님은 중국 학생으로 뉴욕대학교에서 사회적 종교를 공부하면서 동아시아 불교를 전공하고 있는데 최근에 스님의 외국인을 위한 강연 소식을 듣고 스님의 강연에 직접 참석하고 또 잠깐 스님과 미팅을 가지기 위해 뉴욕에서 이곳 산호세 강연까지 참석하러 오신 분입니다.nbspnbsp▲ 스님과 미팅을 하기 위해 뉴욕에서 산호세까지 달려온nbsp치엔 우님nbspnbsp2시가 되자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외국인 130명이 참석하여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며 특히 제이슨 림의 발빠른 통역 덕분에 짧은 시간에 많은 질문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nbspnbsp▲ 강연에 앞서nbspRob Keimnbsp신부님이 인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먼저 강연을 할 수 있게 성당을 제공해주신 신부님의 인사 말씀과 오늘 강연을 통역해 줄 제이슨림님의 소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된 스님 소개영상이 끝난 후 스님께서는 연단으로 나오셔서 잠시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한 10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따로 따로 살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끼리 불교인들은 불교인들끼리 한국인들은 한국인들끼리 중국인들은 중국인들끼리 제한된 공간 안에서 자기들끼리 살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 자기들의 가치관이 옳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는 서로 뒤섞여 살고 있습니다. 내가 기독교인이지만 친구 중에 불교인이 있고, 내가 한국인이지만 이웃에 중국인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이념, 사상이 한 공간 속에 서로 교류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내 문화, 내 신앙, 내 가치관이 옳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틀리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서로 부딪히게 됩니다. 그래서 갈등이 심화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의문이 생깁니다. ‘어떤 것이 옳은가?’, ‘이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진실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겨납니다.nbspnbsp오늘은 이런 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해보려고 합니다. 어떤 질문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질문의 주제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의 고뇌도 좋고, 사회적인 것에서 생겨나는 문제, 과학적인 문제, 인간문제, 자연문제 등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입니다. 제한을 두지 말고 함께 대화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을 질문할까, 무엇을 제기할까 망설이지 말고요. 어떤 것도 좋습니다. 시작해봅시다. 좋은 질문을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질문을 하시길 바랍니다.”nbsp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10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인들과의 질문은 주로 인생에 대한 고뇌와 갈등에 대한 질문이 많다면 오늘 외국인들과의 강연에서는 아직 사회보편적인 가치관에 대한 물음이 더 많았습니다. 아직은 이런 즉문즉설 방식의 강연이 낯설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설명이 긴 질문들이 많았습니다.nbsp다음은 외국인들이 스님께 질문한 내용입니다.nbspnbsp▲ 외국인 130명이 참석하여 스님께 다양한 질문을 했습니다. nbspnbspIt appears that you have anoverwhelming schedule travelling all over the world meeting lots of people.nbsp How do you manage your busy schedule andmaintain your health?nbsp전세계를 방문하시며 매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 내셔야 되는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스케줄을소화하시면서 그 와중에 건강을 챙기시는지요?nbspI have a standard question related toBuddhism.nbsp On one hand, Buddhism stressesnot having desires and not caring about outcomes.nbsp And yet, it stresses compassion as well.nbsp That seems to be in conflict with Western Christianitywhere compassion springs out of caring and wanting certain outcome.nbsp불교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불교는 한편으로는 욕구를 버리고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 강조합니다. 그러면서도 자비를 강조합니다. 서양 기독교 가르침에서는 연민이란 배려와 어떠한 결과가 일어나기를 원하는 것으로부터 생긴다고 하기 때문에 이 둘이 대립되는 것같습니다.nbspNow, I understand the distinctionbetween different desires.nbsp But regardingthe desire for society in relation to social justice and individual suffering, what will motivate a person to take an action for social justice?이제 여러가지 욕구의 차이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사회에 대한욕구, 즉 사회적 정의와 개인의 고통 측면에서 무엇이 개인으로 하여금 사회 정의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동기를 부여할까요?nbspI would like to know different paths toenlightenment.깨우침으로 가는 여러 길들을 알고 싶습니다.nbspnbspIn relation to the three desires youmentioned, because we’re human, we have a desire to have an identity.nbsp Which category will this desire fallinto? nbsp And, what do we need to do withsuch desire? nbsp말씀하신 세 가지의 욕구 관련해 질문하겠습니다. 인간은 아이덴티티 를 가지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이 욕구는 세 가지 욕구 중 어디에 속합니까?nbsp 또 이 욕구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nbsp“People being biased or greedy is part ofhuman nature. Since this is part of nature, it would not be good or bad.”nbsp What do you think about this statement?“사람들의 편견이나 욕심은 인간의 본능이며 자연에 섭리이니 이것은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라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nbspAs we live, we encounter problems likebetrayal and hatred between business partners or loved ones.nbsp For me, it’s very hard to forgive.nbsp A lot of my friends tell me to just forgive, but I have a hard time to forgive a friend who betrayed me.nbsp Am I wrong to not forgive?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업 파트너간이나 또는 사랑하는 이들 간에 배신과 미움을 경험합니다. 저는 용서가 잘 안됩니다. 제 친구들은 그냥 용서하라 하지만 저는저를 배신한 친구를 용서 하기가 힘듭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제가 잘못됐나요?nbspI have a question regarding dreams fromsymbolism and neurobiological aspect.nbsp Doyou dream and can you share what you do in your dream? nbsp Meaning, do you interpret your dream and getmeaning out of it?꿈의 상징적인 면이나 신경 생물학적 측면에서 질문하겠습니다. 스님은꿈을 꾸십니까? 어떤 꿈을 꾸십니까? 말하자면, 꿈에 대해 해석하고 의미를 두시는지요?nbspIn Christian tradition, some dreams aremessages from God.nbsp Is there messageaspect of dream in Buddhism?크리스찬 전통에서는 어떤 꿈은 하나님의 메시지라고 여깁니다. 불교에서도꿈을 메시지 측면에서 보는 경우가 있습니까?nbspRegarding how justice was defined by youearlier, nature is neutral.nbsp So if mandoes better than nature, it is good. But, if man does worse than nature, then it is evil.nbsp Is this correct?먼저 정의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자연은 중립적이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사람이 자연보다 잘 행하면 그것은 선이고사람이 자연보다 못 행하면 그것은 악입니까?nbspnbspI am a Korean and moved to the U.S. fouryears ago and married a JewishAmerican. What kind of effort should I put for loving family and raising children?저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4년전에 이민왔고 유태인계 미국인과 결혼했습니다. 행복한 가정과 자식들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nbspDo you have any advice for overcomingcultural difference in regards to raising a family?가족을 위해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조언해 주세요.nbspWithout science, how do you validateyour answer to the questions from audience?과학에 근거를 두지않고 스님은 어떻게 청중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입증하실수 있습니까?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제이슨 림의 빠르고 정확한 통역으로 동시통역기를 끼고 있는 것처럼 문답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빠르고 정확하게 영어 통역을 해주시는 제이슨 림. 스님의 외국인 강연이 있을 때 마다 어김없이 비행기를 타고 달려와 자원봉사를 해주고 계십니다. 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화를 조절하는 것을 잘 못하는데 어떻게 화를 다스릴 수 있는지 묻는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nbspnbsp“I am really bad at anger control. I think I am mature enough tokind of recognize the moment that I lose my control. But I just can’t suppressthat. I have problems suppressing my anger although I kind of recognize themoment that my brain just goes around. How can I do better anger control?”nbsp저는 화를 조절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 제가 조절이 안 되는 그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 같긴 한데요, 화를 잘 참지는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화를 더 잘 조절할 수 있을까요?nbsp“우리가 화가 날 때는 첫째, 화를 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도 자극을 받아 화를 냅니다. 나는 또 더 크게 화를 냅니다. 화가 확대 생산됩니다. 대부분 우리는 이렇게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손해가 됩니다. 가장 어리석은 행동에 속하죠.nbspwhen you have an angry, one option for you to express your anger. That causes reaction in the other object of the anger and he becomes angry. It becomes even more anger. So that anger amply the situation. This is how we usually react. It ultimately causes to me as well as the other. This is the most foolish option you have.nbsp두 번째, 화를 참는 것입니다. 그러면 확대 생산은 안 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니까 사회윤리적으로는 아주 좋게 평가됩니다. 그러나 내 자신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즉 나를 괴롭힙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윤리적으로 칭찬받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화를 참지 말라고 합니다.The second option for you to press your anger then at least it prevents to amplify the situation. Since you are not causing the hurt, from ethical societal perspective that consider it very good action. Then you are actually tremendous amount of stress in a way you cause suffering to yourself. So causing suffering to yourself is not right spiritual practice. You may be praised from ethical perspective but it is not the way to make yourself happier. Thats why we tell people do not press your anger.nbspnbspnbsp그러면 화를 내라는 거냐? 그것은 물론 아니겠죠. 화를 내느냐 참느냐가 핵심이 아닙니다. 화가 일어나니까 참느냐 내느냐 두 길 밖에 없죠. 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두 길이 다 없어집니다. 화를 내지도 참지도 않습니다. 화를 내느냐 안 내느냐가 핵심이 아니고 화가 왜 일어나는가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화가 일어날 때 왜 일어나는지 살펴야 합니다. ‘너 때문에 화가 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문제가 깊이 관찰되야 합니다. 이것이 깊이 깊이 관찰이 되어서야 화 낼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화가 일어나지 않는 단계로 갈 수 있습니다. 설령 놓쳐서 화가 일어나더라도 상대를 문제 삼는 게 아니고 내가 놓쳤구나 하고 되돌아 갑니다.nbspSo when I am saying that express your anger either. Of course not. So what I am saying is that the essence of the question is not whether you express or suppress anger. When you see anger arising , when your anger is there already, those are only two options to express or suppress. But there is no anger to begin with, those options are not to be necessary. You dont have to express nor suppress the anger. Why does anger arise? So you should be asking yourself, not whether control your anger, the question you should be asking is why you have anger ? You explore it , if you say I am angry because of you. But it is not really . so you have to be really thought deep down inside you. When you go down and down inside you, only discover that there is no reason to angry. Then you can reach that level of not anger. And you might lose that state once or twice, then you dont blame the other for your anger and recognize you have lost your focus and go back to state of not anger. do not allow anger exist.nbsp이 경우에는 첫째, 일어나지 않거나, 둘째, 일어났다 하지만 금방 사라지거나, 셋째, 화를 내는 단계까지 갔더라도 ‘까르마가 작용하구나’ 알아차리는 계기가 됩니다. 이번에는 비록 놓쳤다 하더라도 문제의 원인을 발견했기 때문에 다음에 화가 나지 않는 단계에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공부해 가면 화가 나는 횟수가 줄어들고 또 화를 내더라도 회수가 줄어들고 화났을 때 지속 시간이 줄어들고 실제로 변화가 일어납니다.nbspIf you feel lose anger, that comes to be you to catch it. if you actually you anger can rise up within you, it actually becomes opportunity to examine Karma to see which part of element within you cause the anger. You might lose it or not catch in time once but because you caught the cause of that problem that provides you a learning experience of you to have exercise more of not anger. That is a study in spiritual practice, then eventually you see that you get angry less often , even if you do angry get angry, you see that you get angry less often. you do get angry, the ration of your angry reduces. You will see real change your emotion or behavior.nbspnbsp참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일어나는 그 뿌리를 봐야 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nbsp 자기가 ‘옳다는 것’에 순간적으로 집착하면 화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과연 ‘옳으냐’ 하는 것입니다.nbsp 우리는 서로 다르지 ‘옳은 것’은 아닙니다. 늘 자기 중심에 서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것이라기 보다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이 됩니다. 이것은 오류입니다. 오류에서 발생합니다. 이렇게 몇 가지 부분을 깊이 관찰하면 원인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머리로 이해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건 무의식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의식으로 콘트롤 되는 것은 아닙니다. 되풀이 해서 연습하게 되면 많은 실패 끝에 억누르는 것이 아니고,nbsp 콘트롤 하는 것이 아니고, 화를 알아차리고nbsp 멈추는 단계로 갑니다.nbspSo suppress something is not spiritual practice. You have to look at the root that causes your anger. There are different reasons obviously, but the ultimate part, one of the largest causes of anger is the fact that you feel you are in the right. so if you feel in the right you feel anger. We may be different from each other but no one is in the right because we always look at and see and evaluate things from ourselves perspective. From that perspective, when you encounter differences then evaluate as you being right and the other person wrong, that is mistake. anger is direct result from mental mistakeIf you explore the several different pattern of anger you will find causes. But you cant change you behavior because you intellectually understand where your behavior coming from because the spiritual spread from not by consciousness but by sub consciousness. Consciousness cannot control the behavior. But if you engage in that kind of watching, after repeat your failures, you wont be nbspsuppressing anger, you wont be control anger, you will be able to reach the state where you can actually observe and be awaken to anger and allow it to disappear.nbsp용서해 줄 것이 없는 단계가 진정한 용서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용서한다 할 때는 ‘내가 옳다’는 얘기입니다. 용서하는 것으로는 같은 문제가 몇 회 반복되면 용서 못하는 쪽으로 터져버립니다. 그래서 이렇게 심리 근저의 본질을 꽤뚫어야지 윤리 도덕적인 것만으로는 풀 수 없습니다. 그러나 1단계로는 화를 내면 나에게도 남에게도 손실이 오므로 일단 멈춰야 합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nbspSimilar to that I said before , we talked about the forgiveness. The true forgiveness is for you to recognize there is nothing to forgive in the first place because when we use the term forgiveness, you are saying that I am in the right. Once you forgive and once you forgive twice then you say thats enough I dont forgive it. Because if you forgive somebody you are actually suppressing. So you cant solve this by ethical approach you have to look at and delve down inside what s really driving to your sub consciousness. But as a first step to this path, stop your suppressing anger because it amplifies the situation. But it is not a final solution.nbsp이렇게 10명의 외국인들이 묻는 질문에 모두 답변을 마치니 2시간 25분이 흘렀습니다. 핵심만 짚어서 명쾌한 답변을 해주신 스님께 외국인들도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진리란 먼 곳이 아닌 우리들의 삶 속에 있다고 강조하시며 이렇게 강연을 마무리하셨습니다.nbspnbsp“좋은 시간이었어요? 어려웠어요? 생활적인 내용을 갖고 쉽게 얘기했지만 철학적으로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제가 너무 쉽게 얘기해서 가볍게 느껴질 거예요.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있습니다. 괴로워 하고 번뇌하는 곳에 진리가 있습니다. 진리는 우리의 마음이 작용하는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을 사실대로 파악하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넘어졌으면 넘어진 줄 알아야 하는데 넘어진 줄을 모르는 것이 오류입니다. 틀렸을 때는 틀렸음을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간단합니다. 그처럼 진리는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입니다.nbspnbsp좀 더 이런 것을 알게 되면 어려분의 삶이 편안해지고 가벼워질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한테도 한 번 웃어 줄 수 있고, 물건도 하나 들어 줄 수 있습니다. ‘남을 도와주어야지’ 하는 의무감으로 하지 않고 그냥 해줄 수 있습니다. 좋은 일도 의무감으로 하면 힘이 들고 무겁습니다.nbspnbsp오늘 여러분들과 이런 방식으로 대화를 한 것은 불교의 전통적인 방법입니다. 법당 안에서 대화를 했을 때는 대화가 아주 제한적이었습니다. 진리다 법이다 이런 얘기만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문제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단을 법당 밖으로 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 주제나 가지고 얘기를 하게 되고 그런 얘기를 하면 유쾌하고 웃습니다. 그것을 ‘야단법석을 떤다’ 라고 하는데 오늘은 별로 웃음이 적었어요. 통역을 해서 그런가봐요. 저녁에 통역없이 한국인들과 이렇게 하는 방법을 한번 보세요. 훨씬 많이 웃고 재밌게 할거예요. 구체적인 삶의 고뇌를 가지고 질문을 하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nbsp마무리 말씀을 하시면서 오늘 장소를 제공해주신 신부님에게 큰 박수를 부탁드리고 좋은 통역을 해준 제이슨 림에게도 큰 박수를 부탁드렸더니 큰 박수 갈채가 쏟아집니다.nbspnbsp스님의 목소리가 많이 갈라지고 탁해지셨는데 어제 강연 후에 잠도 거의 주무시지 못하고 비행기로 이동했기 때문에 피곤이 누적되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사람 한사람의 질문에 정성을 다하여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강연에 참석했던 외국인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백인 남성분은 “스님의 답변 속에서 왜 스님이 이런 활동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하면서 “전체적으로 큰 그림이 그려졌는데 굉장히 깊은 뜻이 있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질문을 하려고 줄은 섰지만 시간이 다 되어 질문하지 못했던 nbsp백인 남성분께 질문을 하지 못했지만 괜찮은지 물어보니 “다른 사람들의 답변 속에서 본인의 의문이 해결되었다”며 만족해 했습니다.nbspnbsp한 외국인은 “질의 응답 하는 방식이 정말 실용적이었다”고 하면서 “용서, 이해, 그리고 사랑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합니다. 또 “특히 좋았던 부분은 오계를 다양한 주제들을 설명하는데에 자연스럽게 적용하는 것이었다”고 하면서 강연 내용이 정말 감명 깊었는지 “내년에 스님께서 이곳에 또 오시면 꼭 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곧바로 북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이동해 사인을 하며 사진 촬영을 함께 했습니다.nbspnbsp또 리셉션이 마련된 곳으로 이동하여 강연에 참석했던 외국인 분들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다들 “스님과 질문자가 대화를 서로 주고 받으면서 깨우쳐 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고 합니다.nbspnbsp▲ 강연 후 리셉션이 마련된 곳에서 외국인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nbspnbsp이어서 스님께서는 뉴욕대학교에서 온 치엔 우님과 약 30분 정도 미팅을 가졌습니다.nbsp치엔 우님은 스님께nbsp한국 불교와 일본 불교의 차이점, 한국 불교가 겪는 어려운 문제, 한국 불교나 일본 불교가 전통 불교와 다르다는 비판을 듣는 이유가 무엇인지, 종교가 인간의 고뇌를 치료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 다양한 질문을 하였는데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3가지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많은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유학오거나 이민 와서 미국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기독교가 부흥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불교가 많이 발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현재 사업가나 정치인 등 기득권 층이 대부분 기독교인들이라고 들었습니다.”nbspnbsp“첫째, 한국은 지난 70년간 미국의 영향권이 절대적인 역사를 지내왔습니다. 두번째, 한국의 발전 모델이 전적으로 미국형이었기 때문에 많은 유학생, 지도층이 미국에서 훈련받아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사회적인 리더쉽을 형성했고 그런 종교적인 영향도 커졌습니다.nbsp 또, 사회가 급격하게 산업화 사회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산업화의 경험을 가진 기독교인들은 노동자, 학생, 민주화 등에 대응을 할 수 있었던 반면 전통 불교는 농경 사회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기반인 농경사회가 붕괴되면서 같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기독교인들이 사회,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화적 기반이 불교이기 때문에 정서적인 면에서는 불교가 그대로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불교가 이런 현대사회의 변화에 대응을 못하면서 수세적으로 몰렸는데, 앞으로는 이에 적극적인 대응을 어떻게 할거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서양 모델을 추종할 때는 기독교가 절대적으로 유리했는데 지금은 거의 서양사회에 근접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서양이 발전의 모델이었는데 이제는 서양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기독교도 동시에 한계가 오게 됩니다. 서양 문명, 현대 문명을 어떻게 극복할거냐 하는 것에 다음 사회의 영향력이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nbspnbsp▲nbsp치엔 우님의 여러가지 질문에 대해 nbsp답변해 주고 계신 스님nbspnbsp“종교 조직이 사회에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교육, 기부, 사회활동 등이 있을 수 있겠는데요.”nbspnbsp“일단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뇌를 치료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게 지금 제대로 안되고 있습니다. 태국의 불교가 잘 되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회의 기득권이지 사람들의 고뇌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자본에 물들어 가는 하나의 현상입니다. 그 속에 불교냐 기독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하나의 문화로만 남아있는 거죠. 한국은 문화가 전통 문화에서 기독교 문화로 좀 바뀌어 간다는 점에서는 다른 나라와 차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한국만 제대로 역할을 못하는 게 아니라 일본, 중국도 마찬가지고 한국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사회의 기득권 층입니다.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고 남북관계에 갈등을 가장 크게 가져오고, 한국사회 분열에 중심에 서 있고,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국민들로부터 국민적 저항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집단이 크지만 앞으로 확장성은 없습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고 권력과 밀착돼 있고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런 것으로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고 있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은 이미 내리막길을 가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요. 지금은 고뇌하는 대중들을 어떻게 고뇌로부터 구제할거냐의 문제에 있어 누가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의 문제입니다.”nbspnbsp“종교가 사람들의 고뇌를 치유해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nbsp“기독교는 예수의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불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불교냐 기독교냐 하는 것 보다는 종교가 사회의 기득권을 행사하지 말고 대중의 어려움을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그것을 치료해가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더 개방적이고 얼마나 더 통합적으로 사물을 보느냐, 누가 더 그렇게 할 수 있느냐, 그런 관점에서 경쟁이라면 새로운 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nbsp치엔 우는 특히 “스님께서 115일 동안 115개의 도시를 방문하여 대중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놀라운 일”이라고 하면서 “현재 대중들은 그들이 겪고 있는 고뇌를 해결해야 하는데 큰 스님들은 만나기 어려운데, 스님께서 이렇게 직접 대중들을 만나러 다니니 그것 자체가 굉장히 놀랍고 꼭 필요한 일인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대인의 고뇌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스님의 역할이 무엇보다 큰 것 같다”고 하니, 스님께서는 “단순히 고뇌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법을 깨쳐서 고뇌가 해결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이렇게 스님께서는 잠시의 여유도 없이 일정이 이어졌습니다. 곧이어 이성진님께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하시고 다음 강연을 기다렸습니다. 오늘은 같은 장소에서 연달아 강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들과의 소감나누기는 저녁 한국인 강연 뒤에 함께 하기로 하였습니다.nbsp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76번째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의 외국인 통역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이어 저녁 6시에는 한국인을 위한 강연이 같은 장소에서 열립니다. 곧 77번째 강연 소식도 함께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1.7 세계 100회 강연(75) 포틀랜드 Portland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75번째 강연이 오레곤주 포틀랜드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오레곤주는 북서부 태평양 연안에 있으며 면적은 255,026 km2 이고, 인구는 약 343만명 정도이며, 주도는 세일럼이지만 최대 도시는 북쪽 컬럼비아 강변의 항만 도시인 포틀랜드입니다. 해안부에는 낮은 코스트 산맥이 있고, 그 동쪽엔 화산군을 가진 캐스케이드 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동쪽으로는 주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용암 대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자연환경은 다양하여 서부의 3분의 1은 습한 다우림, 산악지대, 비옥한 계곡 등으로 이루어진 반면, 동부의 고원지대는 건조하고 혹독한 기후 조건을 갖고 있고, 코스트 산맥과 캐스케이드 산맥 사이에 있는 충적 평야 윌래멋 밸리는 비옥한 대농장 지대로서 주 제일의 인구밀집 지역입니다. 1840년대 초 오레곤 도로가 열린 뒤부터 중서부에서 이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했고 1859년에 미국의 33번째 독립주가 되었습니다. 오레곤주 사람들은 환경에 관심이 많아서, 끊임없이 경제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신비하고 경이로운 자연경관들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인구 성장과 환경 오염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nbsp▲nbsp오늘 이동 거리 시애틀 →nbsp포틀랜드, 173마일nbsp nbsp 지도 보기nbsphttpsgoo.glmaps3UPWInbsp포틀랜드는 오레곤주의 최대 도시로서, 약 51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고, 한국 교민은 약 2만8천명으로 추정됩니다. 시애틀 남쪽으로 200마일 가량 떨어져 있으며 대기업인 인텔과 나이키가 위치하고 있고 오레곤 주립 의대와 리드 대학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비가 내리는 온화한 기후로nbsp삼림업과nbsp농업도 활발하고 정원에 대한 관심도 많은 편입니다. 음식 문화와 공예 문화가 발달하고 사람들이 소탈하고 친절한 편입니다. 책을 많이 읽어 큰 서점이 시내에서 인기있는 관광명소입니다.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고 다양한 환경운동과 정치 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nbspnbsp▲ 포틀랜드nbspnbsp스님께서는 오전 7시30분에 시애틀 법당에서 식사를 하시고 9시 30분에 포틀랜드로 출발했습니다. 신수지 지구장님과 오늘 포틀랜드까지 운전봉사를 해줄 김학로님, 그리고 포틀랜드로 원정 자원봉사를 하러 갈 시애틀 정토회 회원들이 법당에 도착해 스님 일행과 함께 출발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떤 경로로 포틀랜드로 갈지 김학로님과nbsp 의논하여 마운틴 레이니어를 경유하여 포틀랜드로 가기로 하였습니다.nbsp시애틀에서 남동쪽으로 2시간 반 정도 가면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당당하게 우뚝nbsp솟아있는 마운틴 레이니어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레이니어 산은 정상이 14,410피트로써 캐스케이드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입니다. 주위에 비교할 만한 산이 없기 때문에 타코마와 시애틀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만년설의 위용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가장 큰 빙하를 가지고 있어nbsp365일 녹지 않는 만년설로 유명합니다.nbspnbspnbsp캐스케이드 산맥으로 접어드니 울창한 원시림이 펼쳐졌습니다. 한참을 올라가니 눈앞에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Mount Reinier를 볼 수 있었습니다. 멋진 모습에 다들 감탄사를 연발했고 내려서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날씨가 산위라서 그런지 몹시 찬공기가 밀려왔습니다. 급히 차를 타고 다시 산허리를 올라가면서 각각의 방향에서 멋진 Mount Reinier를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만년설로 유명한nbsp마운틴nbsp레이니어nbsp차량 한 대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아 급히 서둘러 산 아래로 내려와 간단히 샌드위치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에 포틀랜드로 향했는데 포틀랜드 시내에 들어와서 차 한대가 서버렸습니다. 그래서 차를 바꿔타고서 오늘 강연 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장,nbspCedar park Middle Schoolnbsp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Cedar park Middle School 입니다. 스님께서 학교에 도착하니 오늘 강연의 총괄을 맡고 있는 정채임님과 준비를 하고 있는 노유경님, 고영균님nbsp및 많은 봉사자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장 인근에 있는 이화숙님댁으로 가서 정성껏 준비해준 저녁식사를 드시고 식사를 준비해주신 이화숙님께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nbspnbsp▲ 저녁식사에 초대해 준 이화숙님 부부nbspnbsp오늘 강연은 포틀랜드 정토열린법회 회원들과 봉사자들이 준비했습니다. 포틀랜드는 특히 스님께서 2000년대 초반에 방문하여 법문과 수련을 하셨던 인연이 있었고, 현재는 열린법회도 열리고 있어서 오래만에 다시 방문하시는 스님을 포틀랜드 열린법회의 많은 분들이 반가워 하였습니다. 스님께서nbsp 대기실에서 계시는 동안 동암사의 종안 스님, 그리고 보광사의nbsp능원nbsp스님께서 찾아와 반갑게 인사를 하셔서 두 분께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연 장소를 제공해 주신 교장선생님과 담당선생님께도 스님의 영문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nbsp총 220명이 참석하여 강연장을 가득 메워주었습니다. 6시 30분 스님 소개 영상에 이어 포틀랜드 교민들의 큰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스님께서 연단에 오르셨습니다.nbspnbsp“오늘 날씨 좋았지요? 계속 비가 오더니 오늘은 날씨가 아주 맑았습니다. 포틀랜드는 10년 전에 두 번 정도 와서 강의도 하고 그랬는데 기억나세요? 10년 전에 저를 보신 분 손들어 보세요. 세 사람 밖에 없네요. 유튜브로 즉문즉설을 한 번이라도 보신 분 손들어 보세요. 대부분 보셨네요.nbspnbsp즉문즉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고뇌라든지 의문이라든지 뭐든지 주제에 제한 없이 드러내놓고 같이 대화하는 그런 시간입니다. 살다보면 남에게 말 못할 고뇌도 있고, 또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보기 어려운 그런 문제가 많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을 내어놓고 대화하는 자리입니다. 그렇게 해서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한 길을 함께 찾아가 보자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든지 편안하고 자유롭게 얘기해 봅시다.”nbspnbsp이렇게 청중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신 후 질문을 받고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총 12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자신은 불교신자이지만 아내가 크리스쳔이여서 가족의 화목을 위해 교회를 나가고 있는데 자꾸 세례를 받으라고 해서 편치 않을 때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초등학생 아이가 친구와 놀다가 얼굴에 상처를 입었는데 그 상처를 볼 때 마다 집에 오면 속이 상한데 이럴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미국에 살다보니 교회에 충실히 다니는 지인들이 많은데 하나님이 보여주신 믿기 어려운 현상들을 직접 봤다고 하는 얘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묻는 분, 오레곤주에서는 불치병이 걸리면 의사한테 도움을 받아서 자살하는 것이 허용되는데 29세에 뇌암에 걸린 친구가 지난주 일요일 자살을 했는데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분, 미국인 남편과 결혼했고 곧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데 한국어로 키워야 할지 영어로 키워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분, 세상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모두 신께 달라고만 하지 자기가 무엇을 하겠다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여기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스님께서는 평소에도 법문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면서 사시는지 궁금하다는 분, 50살이 넘다보니 죽을때 괜찮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남은 여생을 뜻깊게 살 수 있는지 묻는 분, 지금까지 즉문즉설을 하시면서 대답 못하신 것이 있었는지 묻는 분, 1년째 유학 중인 학생인데 처음에는 큰 희망과 계획을 가지고 왔지만 지금은 계획도 바뀌고 여러가지 고민이 많다는 분, 꿈과 목표도 없이 살아가는 오빠에게 어떻게 하면 시간낭비 없이 인생을 살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지 묻는 분, 유학와서 춥고 배고팠지만 지금은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딱 한가지 고민이 죽는 게 너무 무섭고 불안해서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첫질문부터 웃음이 빵빵 터지고 시종일관 즐겁고 유익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너무나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 두 딸을 어떻게 이해하고 키워야 할지 고민하는 어머니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께서는 부모와 자녀가 어떻게 하면 함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nbspnbsp“딸이 세명 있습니다. 큰딸과 둘째딸이 완전히 다른 별 사람같아요. 큰딸은 좌뇌형 스타일이예요. 굉장히 논리적이고 말도 잘하고 차갑고 냉철하고 나쁘게 말하면 인간미가 없고 측은지심이 없고 남을 배려할 줄을 모르고 굉장히 개인주의적이예요. 반대로 둘째 딸은 마음은 너무너무 착하고요. 자기 것은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정리정돈이 잘 안되고 항상 공상 속에서 삽니다. 다행히 막내는 좋은 점만 타고 나서 불만이 없구요. 제가 큰딸을 바라보는 관점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점도 있지만 인간미가 없으니까 과연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항상 생각하니까 큰딸과도 자꾸 트러블이 생깁니다. 제가 어떻게 큰딸을 이해하고 관점을 바꿔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nbspnbsp둘째딸은 자기는 자기 나름대로 행복해해요. 이 아이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으면 혼자서도 너무 행복한데 다만 이 아이가 현실 사회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융합하며 살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저 아이를 어떻게 남들처럼 자기 관리를 잘 하고 스스로 온전히 책임지며 살 수 있게 키울 수 있을까 고민입니다. 항상 둘째딸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되고 혼내게 됩니다.nbspnbsp이 두 아이가 만나면 항상 전쟁이 되는 겁니다. 큰딸은 집중적으로 둘째딸을 공격합니다. 그 사이에서 바라보고 있는 저는 큰딸에게 막 화가 납니다. 약자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큰딸을 자꾸 나무라게 되는데, 큰딸은 제가 없을 때는 더 동생을 괴롭힙니다. 큰딸을 바라보는 관점과 둘째딸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 둘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균형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세가지가 저의 질문입니다.”nbsp“그 아이들을 누가 낳았어요?”nbsp“제가 낳았습니다.”nbsp“누가 키웠어요?”nbspnbsp“제가 키웠습니다.”nbspnbsp“그러면 누구를 닮았을까요?”nbspnbsp“저를 닮았어요. 그래서 문제예요. 다 저한테도 있는 문제거든요.”nbsp“자기가 낳고 자기가 키우고 자기가 다 아이를 관찰했으면 답은 자기가 저보다 더 잘 알아야 하지요. 저는 아이 얼굴도 못 보고 자기한테서 말만 잠깐 들었는데 저한테 물어요? nbspnbspnbsp첫째, 자기가 갖고 있는 관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좋은 것만 자기가 다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칼은 날카로운 면을 갖고 있고 솜은 부드러운 면이 있잖아요. 칼는 날카로운 특징이 있으니 그에 맞는 쓰임새로 쓰면 되고, 솜은 부드러운 것에 쓰임새를 쓰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는 솜은 부드러워서 좋은데 날카로움은 없으니 ‘너 좀 날카로워져라’ 그러고요. 칼 보고는 ‘날카로워서 좋은데 너 좀 부드러워져라’ 이런 식으로 요구하기 때문에 자기의 욕망대로 이루어지기는 불가능한 겁니다. 자기가 지금 끝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겁니다.nbspnbsp큰딸이 이성적이면 그에 맞게 아이가 자기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둘째딸이 부드럽다 하면 부드러운 아이의 장점을 살릴 수 있게 해주고, 그래서 딸이 어떤 어려움을 호소할 때 오히려 격려를 해줘야 합니다. 딸이 “엄마 나는 날카로움이 없어서 큰일이야” 하면 “너는 대신 부드러움이 있지 않니? 인간이 모든 것을 다 가질수는 없단다. 너가 가진 것도 참 훌륭하단다” 이렇게 격려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아이를 보고 “너는 이게 문제야” 이러면 자신의 엄마가 보기에도 문제가 있는 아이가 이 세상에 나가서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어요? 제가 “딸이 참 문제야” 하더라도 엄마라면 “스님, 그렇게 볼 것만이 아니에요. 제가 키워봤는데 이런 좋은 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해야 하지요.nbspnbspnbsp그런데 자기 엄마가 벌써 “우리 아이는 형편없는 아이예요” 하면 더 이상 볼 필요도 없어지지요. 그러니 다른사람들이 문제라고 하거나 아이 자신이 문제를 느껴도 엄마는 격려를 해줘야 됩니다. 아이가 만약 장애라면 아이를 건강하게 만들겠다고 하는 건 아이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예요. 될 수 없는 일을 하려 하기 때문에 그 장애 아이가 상처를 입고 열등의식을 갖게 되는 거예요. 아이가 건강한 아이들과 같은 흉내를 내려고 할 때 엄마가 오히려 “너는 저런 면에서는 부족한 것이 있지만 이런 좋은 점도 있단다. 그러니 저것을 너무 본받으려고 경쟁하지 마라” 이렇게 얘기해 줘야 합니다. 이 아이는 이 아이의 수준에 맞게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너는 너대로 행복할 수가 있단다” 이렇게 항상 격려를 해주면 이 아이는 비록 신체 장애이거나 지적인 약간의 장애가 있더라도 심성은 굉장히 안정이 되고 행복하게 살 수가 있거든요.nbspnbsp정신적인 피해의식이나 열등의식 같은 장애가 생기는 이유는 대부분 엄마 때문에 그렇습니다. 애를 낳았는데 장애라면 대부분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가지고 이런 애를 낳았나’ 하는데 이 말은 장애가 죄의 값이라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이것은 공사상에 어긋나는 거예요. 존재에는 좋고 나쁘고 죄의 있음과 없음이 없어요. 모든 존재는 다 소중한 겁니다. 피부 빛깔이 희든 검든 남자든 여자든 신체 장애든 그렇지 않든 성적 지향이 어떻든 모든 존재는 그대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가 벌써 자식을 죄의 결과로 바라보기 때문에 아이는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기가 어려운 겁니다. 그래서 부모는 ‘이 아이는 이런 특징을 갖고 있구나’ 하고 그 특징을 장려하고 격려해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nbspnbspnbsp다만 사람은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야 되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할 네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마음껏 살 자유는 있지만 다른 사람을 헤칠 자유는 없어요. 남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익을 추구할 자유는 있지만 남을 손해끼칠 자유는 없어요.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쳐서는 안 됩니다. 내가 사랑할 자유는 있지만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어요.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말할 자유는 있지만 남을 말로써 괴롭힐 자유는 없어요. 속이거나 욕설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네가지는 다른 사람과 같이 살기 때문에 서로 지켜야 할 일이예요. 아이가 아무리 어려도 이 원칙은 딱 세워서 지도를 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어지럽히고 동시에 다시 본인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네가지 외에는 가능하면 좋고 나쁨으로 평가하면 안 됩니다. 자유롭게 살도록 해줘야 해요. 그런데 어른이 되면 한가지가 더 추가돼요. 술을 먹고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술을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술을 먹고 취하게 되면 이 네가지를 다 범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먹지 마라 얘기하기도 하는데, 엄격하게 말하면 취하지 마라 하는 뜻입니다. 이런 기본 원칙을 딱 가지고 아이를 대해야 합니다.nbspnbsp사람은 동물과 비교했을 때는 다 비슷해요. 그런데 사람끼리만 비교를 해서 분석하니까 정서적인 쪽에 치우쳤다든가 이성적인 쪽에 치우쳤다든가 하는 것을 가지고 요즘은 16가지로 분류를 하고 있죠. 이런 차이가 조금씩 있는 겁니다. 콩을 한 움큼 쥐면 같은 콩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 차이가 납니다. 그것처럼 저 하늘 위에서 크게 내려다보면 그 인간이 그 인간이예요. 그러니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아무 남자와 살아도 되고 아무 여자와 살아도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하나 따지면 어떤 남자와도 못 살고 어떤 여자와도 못 살고 그래요. 그러니 자꾸 분석해 들어가면 천가지 만가지가 다 다르고요. 같은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또 크게 보면 다 고만고만해요. 우리는 너무 미세하게 보기 때문에 갈등이 심해지고 분별이 일어나는 겁니다.nbspnbspnbsp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특성은 그냥 존재로써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불교식으로 말하면 ‘모든 중생은 다 부처다’라는 말이고,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이다’ 라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2500년 전에 제기가 되었지만 아직도 다 못 받아들이고 있죠. 점점 바꿔나가고 있긴 하지만요.nbspnbsp문제라고 보지 말고 큰 아이는 큰 아이대로 장점을 격려해주고, 작은 아이는 작은 아이대로 장점을 격려해주고, 둘 사이에 누가 옳다 그르다고 하지 마세요. 그러나 앞에서 말한 네 가지 원칙을 어기면 큰 아이든 작은 아이든 야단을 쳐야 합니다. 이렇게 분명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엄마가 자기 기분대로 큰 아이 야단쳤다가 작은 아이 야단쳤다가 그러잖아요. 특히 같이 키운 아이들을 서로 비교해서 야단치는 것은 아이에게 굉장한 상처를 줍니다. 잘못했으면 그냥 “너가 이렇게 잘못했다” 이렇게 말해야지 “언니는 안 그런데 너는 그렇다” 이런 말은 하면 안돼요. 그리고 이웃집 아이와 비교해서 얘기하는 것도 안 됩니다. 이건 자녀를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겁니다. 이런 용어를 쓰는 것은 굉장히 차별적이고 심리 안정이 안되어 있고 이성적이지 못한 그런 자세입니다. 그런 관점을 갖고 보시면 좋겠다 싶어요.”nbsp“고맙습니다. 덕분에 머리 속이 환해지고 사고가 좀 유연해진 것 같아요.”nbspnbsp“그래도 현실에 부딪혀 아이들 하는 것을 보면 잘 안될 거예요.” nbspnbspnbsp“이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살아온 사고의 습관이 있기 때문에 행동은 내일 아무것도 안 변합니다. 다만 이제 자기가 화를 내거나 하다가도 ‘아, 내가 또 내 감정에 휩쓸리구나’ 이렇게 자각하면서 자꾸 되돌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연습을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개선이 되어 나갈 수 있습니다. 특히 엄마가 감정적으로 아이에게 대하는 것은 아이 정서에 굉장히 나쁩니다. 아이가 어떻게 하더라도 화를 내거나 감정을 드러내면 안돼요. 만약에 감정이 올라오면 우선 아이를 놓아두고 밖에 가서 심호흡을 하든지 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 차분하게 아이와 대화를 해야 됩니다. 아이와 감정을 갖고 싸우면서 야단을 치면 아이의 심리가 억압이 되기 때문에 나중에 아이에게 정서적 왜곡이 일어나고, 또 아이가 나중에 커서 폭발하면 부모를 폭행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자녀를 굉장히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nbspnbsp질문자는 매우 밝아진 표정으로 기뻐했습니다. 12명의 질문에 모두 답하고 나니 벌써 2시간 50분이 흘렀습니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남을 탓하기 전에 우선 나부터 살펴보자고 하시면서 이렇게 정리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아이의 이런 모습도 고치고 저런 모습도 고치려고 하니까 이것도 안 고쳐지고 저것도 안 고쳐지고 일이 엄청나게 많아지는 겁니다. 그러나 고칠 건 없습니다. 아무 문제 없는 아이를 내 기준을 갖고 ‘너는 이것을 고쳐라’, ‘너는 저것을 고쳐라’ 하니까 죽을 때까지 다 못하는 겁니다. 자녀가 각각의 특성에 맞게끔 살아가도록 엄마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느냐? 그 도움이 과잉이면 안 됩니다. 어느 대학에 가고 뭐가 되고가 사랑이 아니라 부모는 자식이 자립할 수 있도록 키워내는 것이 사랑이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식을 욕심으로 키워요. 자신의 욕심으로 자녀들을 키우기 때문에 자식들은 부모의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굉장히 힘들어해요. 부부지간에도 서로 사랑한다면서 서로 괴롭힙니다. 사실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입니다.nbspnbspnbsp그런 면에서 남보다는 우선 나부터 살펴야 합니다. 나부터 행복한가?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해도 오래 지속이 안 되고, 나를 위해서 남을 희생해도 오래 지속이 안 됩니다.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인생을 살아야 됩니다. 참는 것은 해탈의 길이 아니예요. 스트레스를 받는 길이예요. 그러니 이러한 마음 작용을 잘 알아차려 나가면 참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는 제 3의 길을 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중도의 길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 수행을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늘 자기의 마음상태에 깨어있기, 즉 심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잘 알아서 마음을 가볍고 밝게 갖는 것이 여러분들의 삶을 복되게 합니다. 행복을 밖으로 구하지 말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그런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nbspnbsp큰박수와 함께 스님께서는 2시간 45분의 강연을 모두 마쳤습니다. 다시 열강을 해준 스님께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집니다.nbspnbspnbsp강연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분들께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특히 스님께 직접 질문했던 한 분은 “머리가 가벼워진 느낌”이라며 기뻐했습니다. 사인을 받기위해 줄을 길게 선 분들한테도 많이 여쭤보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스님의 말씀이 다 좋았고 가슴 깊이 새기고 간다” 고 하였습니다. nbspnbsp이어서 책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사인을 해주시며 행사장에 오신 많은 분들과 인사도 하고 함께 사진촬영도 하였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자리를 옮겨 자원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nbspnbsp특히 오늘 강연의 총괄을 맡은 정채임님과 노유경님께 사인한 기도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정채임님은 지난 6월까지 포틀랜드 열린법회의 담당자로서 이번 강연을 준비해오다가 7월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샌프란시스코와 포틀랜드를 비행기로 오가면서 이번 강연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정성으로 오늘 강연이 이뤄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0년 전 스님께서 포틀랜드를 방문하셨을때부터 인연을 맺어 이번 강연을 처음부터 함께 준비한nbsp고영균님께도 사인한 기도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 총괄자인 정채임님과 노유경님, 그리고 10년 전부터 스님과 인연을 맺은 고영균님nbsp그리고 이번 북미주 북서부 지구장으로서 함께 동행한 신수지 지구장님에게는 금강경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또한 시애틀에서 오늘까지 운전봉사해주신 김학로님께도 기도 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 북미주 북서부 지구장인 신수지님과 운전 봉사를 해준 김순미, 김학로님 부부nbspnbsp그리고 자원봉사자들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한명 한명에게 손목에 끼워주면서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행사 뒷정리 후 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 나누기를 하였습니다.nbsp10년 전, 5년 전에 스님과 인연을 맺었던 분들이 자원봉사에 참가했는데, 이분들은 정말 오랜만에 스님을 뵙게 되어서nbsp반가워 했습니다. 10년 전에 스님nbsp강연에nbsp참가했었던 적이 있었다는 봉사자는nbsp불자로서 이곳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불자들은 거의 다 알고 있는데 오늘 참가자들을 보니 절에 다니는 사람들보다 그러지 않은nbsp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참가한 것 같고, 새로운 분들이 많이 온것 같아 참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애틀정토회 회원들이 이곳까지 와서nbsp행사준비를nbsp도와주었는데 봉사자들은 함께 해서nbsp너무 기뻤고, 또한 행사진행 과정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nbsp합니다.nbsp그래서 그런지nbsp행사 진행을 하는 모습들이 다들nbsp체계적이였습니다.nbsp그리고 2년 전nbspLA에서nbsp청춘콘서트에 참가한 분, 유튜브 즉문즉설 동영상을 보고 오신nbsp분, 인터넷으로 스님의 주례사를 접하고 자원봉사를 신청하신 분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모두들nbsp오늘 강연을 통해nbsp본인들이 가지고 있던nbsp고민들이 해결되어 많이 가벼워졌다고nbsp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강연이nbsp내년에도 계속nbsp포틀랜드에서 이어지면 좋겠다는 바램도 나누어주었습니다.nbsp▲ 묘덕법사님과 마음나누기를 하고 있는 봉사자들nbsp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시애틀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오늘 하루밤 묵을 Inn으로 와서 체크인을 하였습니다. 스님 일행을 숙소까지 바래다 주고 밤에 시애틀로 돌아가는 주상휴 총무님, 신수지 지구장님, 그리고 모든 시애틀정토회 회들에게 스님께서는nbsp늦은 밤인데 조심해서 운전하시라고 하시면서그동안nbspnbsp수고많았고nbsp내년에 보자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방 배정을 마치고 짐을 모두 옮기고 나니 거의 11시 30분이 되었습니다.nbsp내일은 산호세로 오전 6시에 비행기를 타고 이동을 해야nbsp하니nbsp새벽 4시에 출발하기로 하는 등 내일 일정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스님께서는 오늘 일과를 마치셨습니다. nbsp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75번째 미국 오레곤주 포틀랜드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76번째, 77번째 강연이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산호세에서 낮에는 외국인을 위해, 저녁에는 한국인을 위해 열립니다. 연달아 두 번의 강연이 있어 무척 바쁜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1.6 세계 100회 강연(74) 시애틀 Seattle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100회 강연 중 74번째 강연이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시애틀은 광역 도시권 인구가 약 400만명으로 미국에서 15번째로 큰 대도시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의 인구는 2011년 기준으로 62만명 정도로 미국 서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한국 교민은 유학생을 포함하여 약 5만명 정도 살고 있습니다.nbspnbsp시애틀은 푸젓사운드만과 워싱턴호 사이의 좁은 지협에 자리잡고 있으며, 서쪽은 올림픽 산맥이 위치해 있고, 아시아와의 무역을 위한 주요 관문으로 컨테이너 처리량으로 미국에서 8번째로 큰 항구입니다. 시애틀 지역에는 백인 이주자들이 처음 발견하기까지 4,000년 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며, 1853년에 두와 미시족과 수쿼 미시족 수장 씨애틀의 이름을 따 마을에 시애틀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nbspnbsp▲ 시애틀의 야경nbsp벌목은 원래 시애틀의 주요 산업이였지만 세계 2차 대전 이후 보잉이 도시 근처에 대규모 공장을 지으면서 항공기 제조업도 도시의 주요 산업이 되었으며, 이후 새로운 소프트웨어 산업, 생명공학, 인터넷 회사 등 기술 중심지로 떠오르며 1990년대와 2000년대 사이 50,000만 명의 인구가 유입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국립공원을 주위에 두고 있는 시애틀 주민들은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 되어 있으며 온화한 자연의 풍광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고 사는 미국에서도 몇 안되는 안전하고 친근한 도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잉,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아마존, TMobile US, 코스트코, 닌텐도, 엑스피디아닷컴 등 세계적인 굴지의 기업들이 자리 하고 있고, IT 업계 뿐만 아니라 생화학, 의료 산업의 많은 기업들이 속속 시애틀로 이주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시애틀은 음악도 잘 발전한 곳으로서 인디록과 인디댄스 음악으로 유명하며 다운타운에는 수많은 Jazz Club 이 있습니다.nbspnbsp▲ 오늘 이동 거리 캐나다 캘거리 gt 미국 시애틀, 1141kmnbspnbsp 지도 보기 httpsgoo.glmapsf2Hwenbsp오늘은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 캘거리에서 미국 워싱턴주 씨애틀로 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갈 때는 캐나나에서 미국 입국 수속을 다 마친 다음에 비행기를 타게 되어 미국에서 내릴 때는 이민국 수속 없이 국내선 비행기로 이동할 때처럼 내립니다. 오전 8시에 출발하는 비행기이나 미국 입국 수속을 밟기 위해 새벽 5시에 숙소에서 출발했습니다. 오선주님이 새벽부터 준비해준 죽과 음식으로 스님께서는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강유신, 오선주 부부와 김미연님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면서 내년에도 다시 스님을 뵙고 싶다고 요청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도 강연 준비하느라 정말 수고가 많았다고 다시 한번 격려해 주시면서 캘거리 열린법회를 잘 만들어보라는 당부의 말씀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 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오선주 강유신 부부와 김미연님nbspnbsp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마친 다음에 오전 8시 10분에 시애틀로 출발하였습니다. 실제 nbsp비행시간은 1시간 57분이나 조금 일찍 도착하였고, 또한 1시간 시차로 인하여 9시경에 시애틀타코마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마중을 나온 김효경님과 함께 공항에서 시애틀 정토법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법당에 도착하여 장연경님이 준비해 준 아침식사를 하고 스님께서는 캘거리 강연 얘기를 스텝진들과 잠깐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강연장으로 가기 전까지 법당에서 업무를 보시다가 5시 30분에 법당을 출발하여 오늘 강연이 열리는 Renton Community Center 내에 위치한 카고 씨에터로 갔습니다.nbspnbspnbsp▲ 오늘 강연장, Carco Theatrenbsp스님께서 강연장에 도착하니 강연장 내외부에서 안내를 맡아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시애틀 정토회 회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도 눈을 맞추며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nbspnbspnbsp오늘 시애틀 강연에는 총nbsp309명이 참석하여 강연장을 빼곡히 메워주었습니다.nbspnbspnbsp6시 30분 스님 소개영상에 이어 시애틀 교민들의 큰 박수와 환호 속에 스님께서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에 오신 분들게 반갑게 인사를 건내셨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오더니 마침 비가 멈추었네요. 오시는데 조금 덜 불편하셨습니까? 어제와 그제는 벤쿠버와 캘거리에 강연을 했는데 날씨가 아주 맑았습니다. 시애틀이 거기보다 못한데요? 시애틀도 거기랑 기후가 비슷할 줄 알았거든요. 날씨가 흐린데도 이렇게 많이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 우리 교민들이 살고 있는 세계 여러 곳을 찾아서 115회 강연을 다니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까마득하더니 벌써 오늘 74회째입니다. 절반이 넘었어요. 이제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78회를 하면 23를 넘기게 되고 연말인 12월 18일까지 진행됩니다.” nbspnbspnbsp그리고nbsp왜 사람들이 즉문즉설을 통해 마음이 가벼워지는지 그 원리를 설명해 주시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즉문즉설이라는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고뇌와 의문들을 여러분들이 구체적인 사실을 갖고 던지게 되면 저와 함께 대화를 해나가게 됩니다. 대화를 해나가면서 그 대화 중에 무겁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고, 괴로운 마음이 조금 사라지고, 답답한 것이 조금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대화를 하면서 본인이 스스로 그렇게 알아가는 것입니다.nbspnbsp그렇다면 왜 대화를 하면서 문제가 개선될까요? 그것은 우리는 어떤 사물을 볼 때 주로 한 측면만을 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 입장에서만 본다던지, 부모 입장에서만 본다던지, 한국사람 입장에서만 본다던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만 본다던지 하는 것처럼, 한 측면에서만 사물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사물의 전모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킵니다. 이것을 우리는 편견이라고 말해요. 저와 대화를 하면서 앞면만 보는 사람에게 ”뒷면은 어때요?“ 하고, 옆면만 보는 사람에게 ”저쪽 옆면은 어때요?“ 하고, 윗면만 보는 사람에게 ”아랫면은 어때요?“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 다른 면을 보게 됩니다. 다른 면을 보게 되면 그냥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집니다. 왜 그럴까요? 다른 면까지 보게 되면서 사물의 전모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아내의 입장만 가지고 있다가 남편의 입장도 생각해볼 수 있고,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의 입장도 생각해볼 수 있고, 한국 사람의 입장만 가지고 있다가 일본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볼 수 있고, 기독교인의 입장만 가지고 있다가 불교나 다른 종교의 입장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전모를 볼 수 있는 것을 ‘통찰력’이라고 하고, 이 통찰력을 ‘지혜’라고 합니다.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마치 깜깜한 방에서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는 것과 같아서 더듬어서 어떤 사물을 찾는데 이때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데 전모를 보면, 즉 불을 확 켜서 보면 ‘아, 저기 있네’ 하고 금방 알 수 있는 것처럼, 통찰력을 갖게 되면 무겁던 마음이 금방 가벼워집니다. 그렇게 대화를 해가면서 행복을 찾아가는 거예요.nbspnbspnbsp이렇게 보면 문제지만, 저렇게 보면 괜찮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자기 입장에만 서서 생각에 사로잡히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보거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별 것 아닌 게 참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도 될까요?” 하는 질문이나 “이것이 정말 있나요?” 하는 질문처럼 단순히 ‘되고’, ‘안되고’ 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것들도 어떻게 사물을 봐야 하는지의 관점에서 우리가 대화를 통해서 풀어가는 거예요. 일방적으로 설명을 하는 게 아니니까요. 편안하게 얘기하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시작해보죠.”nbsp서두 발언부터 오늘 웃음이 나오며 가볍게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총 8명으로부터 질문이 있었고 강연 시간도 3시간이 되었으며, 후반부로 가니 스님께서도 힘이 드시는지 목소리가 갈라지는 듯 하였습니다. 하지만 높은 열기 속에서 집중되고 즐겁고 재밌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학자금을 갚아야 해서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데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고 있지만 학력이 높고 나이도 많고 경력도 특정분야여서 잘 뽑히지 않아 고민인 분,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극심하게 사춘기를 겪고 공부하기 싫어하고 게임만 하고 있는데 아이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새로 사귀게 된 남자 분이 있는데 그 분의 딸이 조울증이 심해서 함께 하기에 어려움이 많다보니 결혼하기가 망설여져서 고민인 분, 또 다른 한분은 질문을 하려고 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문답 속에서 이미 답을 얻었다”고 하면서 스님께 감사 인사만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nbspnbsp그리고 욱 했다가 빨리 가라앉는 것 때문에 여자친구와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하는데 스님의 유튜브 동영상을 볼 때는 마음이 다스려지지만 막상 일이 닥쳤을 때는 화를 내게 되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삼재에 들었다고 하는데 삼재가 정말 있는 건지 궁금한 분, 지구 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물들 중에서 유독 인간만이 높은 지능을 가지게 되고 고도의 문명을 이루게 되었는지 궁금한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6번째로 질문한 아이가 심성은 착한데nbsp싫증을 잘 내고 자꾸 다른 방향으로 튀려고 해서 걱정이 된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께서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 자기 수행을 어떻게 해나갈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nbspnbsp“저는 유튜브를 통해 즉문즉설을 접하면서 ‘아, 내 성질이 더럽구나’라는 것을 여실히 느꼈습니다. 지금도 화가 나면 화가 난 것을 캐치할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성격이 있는 것은 어렸을 때 완벽주의자인 아버지 밑에서 속박을 받고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아들 둘과 딸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둘째가 저와 너무나 닮았다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는데 저와 너무 같다보니까, 제가 어렸을 때 제 아버님이 저를 조금 다르게 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에 많은 시도를 하는데도, 자식은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더니, 제가 튀던 방향으로 자꾸 튀는 것입니다. 아이가 심성은 착하고 다른 것은 다 좋은데, 저와 같이 욱하는 것이 있고 어떤 길로 가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튀려고 합니다. 어떤 것을 하던지 사람들이 놀랄 만큼 잘하지만 일찍nbsp싫증을 느낍니다. 그래서 다른 것으로 튀려고 하고요. 제가 어떻게 해야 제 아들이 제가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좀 더 밝고 나은 길로 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nbsp“질문자부터 먼저 살펴봅시다. 질문자도 아버지 밑에서 조금 어려웠지만 어쨌든 다 컸고 결혼까지 해서 아이를 셋이나 낳아서 잘 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아들도 질문자처럼 잘 살 것입니다”nbsp“제가 아이에게 항상 얘기하는 게 사람이 한번 태어났으면 적어도 남에게 해는 끼치지 말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라고 하거든요.”nbsp“그렇게 되면 좋지만 어떻게 세상이 내가 원하는대로 다 그렇게 됩니까. 질문자도 질문자의 아버지가 볼 때 마음에 안 들었잖아요. 자기가 볼 때 자기 자식이 마음에 안 들어도 그 자식도 자기처럼 잘 살 겁니다. 인류 역사에서 늘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들 하는 짓을 보고 다음에 나라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산업화 세대가 민주화 세대의 젊은이들을 볼 때 저것들이 크면 나라가 세상이 망할거라고 했잖아요. 또 그 사람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을 보면서 “저것들 의식도 없고, 저것들이 크면 나라가 망하겠다” 합니다. 물론 그렇게 변해서 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지나친 우려예요.nbspnbsp질문자는 반대로 생각해야 돼요. 아이가 걱정을 해도 “야, 걱정하지 마라. 아빠가 젊었을 때 너보다 더 했는데도 이렇게 살지 않느냐,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너도 잘 살거다” 오히려 이렇게 격려를 해주는 게 좋습니다.”nbspnbsp“그런데 오히려 그녀석이 “아빠, 너무 걱정하지 마” 합니다. 아들에게 “야, 너 그렇게 집에 와서 공부도 안 하면 학교 성적은 어떻냐?”하면 “아빠, B 이상 받아. 걱정하지 마” 그래요.”nbsp“그것 봐요. 아이가 질문자보다 낫네요. 오히려 질문자가 아이를 그렇게 격려해줘야 돼요. 질문자가 본인의 아버지와 똑같잖아요, 계속 아이를 문제 삼잖아요. 아이가 자기를 문제삼을 때 마저도 아빠가 “괜찮아 괜찮아. 내 친구 보니까 공부 잘한다고 꼭 잘 된다는 보장 없더라. 아빠 학교 다닐 때 공부 안하고 놀고 다녔어도 너도 낳고 잘 살잖아”하고 격려를 해주는 게 좋아요. 그러니까 고치려고 하지 말고 자기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보고 아이에 대해서도 긍적적으로 보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먼저 긍정적으로 봐줘요.”nbsp“그것만이 길입니까?”nbsp“그러니까 제가 묻잖아요. 질문자도 질문자의 아버지가 볼 때에는 질문자가 문제아였는데, 그래도 미국까지 와서 애 셋이나 낳고 살잖아요, 그렇죠? 그렇듯이 사고도 치고 하겠지만 아이도 크면 여자 친구 만나서 아이 낳고 잘 살 거예요. 내 자식이라고 딱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까도 얘기 했잖아요, 자기 성질도 못 고치는데 남의 성질을 고치겠어요? 그것도 남을 닮은 것도 아니고 질문자를 닮은 건데요.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피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그렇게 살아 놓고 아이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 않습니까.”nbsp“그렇지만 부모의 마음이 그렇지 않습니까?”nbsp“마음은 그렇지만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앞에 질문하신 분처럼 학자금을 빌려놓고 부담스럽다고 해도 방법이 없어요.”nbspnbsp“그래서 저는 새벽마다 일어나서 아이의 방 앞에서 108번을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nbsp“그 108번 절 할 때 ‘아이고, 훌륭하다. 그래도 넌 나보다 낫다’고 절을 하는 것이면 몰라도, 지금 절 하는 것은 아이가 변하기를 원해서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아이를 변화시키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절을 하든지 금강경을 외우든지 무엇을 하든지 ‘이렇게 하면 아이가 바뀔 거다’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남을 고치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nbspnbsp‘아, 내가 이 성질을 가지고 사니까 아이도 그대로 닮는구나’ 해야 합니다. 내가 일찍 고쳤으면 아이가 닮지 않았겠지만 이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해갈 수 없으니까 그냥 받아야 합니다. 아이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던지 ‘아, 내가 지었으니 그냥 내가 감당할게’ 하면서 기꺼이 받으세요.nbsp그리고 앞으로는 더 이상 업을 안 지어야겠다고 하면 자기 성질을 고치는 것부터 해야 됩니다. 성질이 일어날 때마다 전기충격기를 가지고 지지라니까요. 안 그러면 절을 3,000배 하던지요. 그렇게 해서 자기에게 변화가 일어나야지 아이를 바꾸려고 하면 안 됩니다. 아이를 바꾸려고 하면 할수록 질문자는 아버지를 닮아가는 거예요. 바꾸려고 하는 것 자체가 아버지를 닮아가는 길이고, 아이는 거기에 똑같이 자기처럼 반발하면서 본인의 아버지를 또 똑같이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nbsp“그렇다면, 제가 표현을 안 하고 마음만 가져도 무의식적으로 표현이 돼서 그렇게 된다는 말씀이십니까?”nbsp“그럼요. 질문자에게 고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이건 해결이 안 됩니다. 그걸 버려야 해요.nbsp 제가 처음부터 말씀드렸듯이, 질문자는 질문자의 아버지가 볼 때에는 문제아였지만 지금 미국 시민권자로서 미국의 평균은 되잖아요. 성질이 우락부락해서 그렇지 괜찮잖아요. 그런 것처럼 아이도 괜찮을 겁니다. 콩을 심어놓고 팥이 나기를 바라면 안돼요. nbspnbspnbsp아이는 그냥 놔두고 본인부터 고쳐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보면서 확실히 인연과의 도리를 깨달았잖아요. ‘아, 이건 안되겠다’, ‘나부터 공부해야겠다’ 이렇게 자기 문제라고 생각하면 자기를 고치는 것부터 해야 됩니다. 아이는 딱 놓고요.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더 심해집니다. 자기도 늙어보니 아버지와 똑같아졌는데 자식에게도 큰 걸 바라시면 안 됩니다. 어머니를 보면 옛날 외할머니와 똑같습니다. 콩을 심으면 잎이 나서 자라고 할 때에는 콩은 온데 간데 없는데 나중에 열매가 달리는 걸 보면 심을 때의 콩하고 똑같이 돼요. 달리 길이 없습니다. 너무 절망적인가요? nbspnbsp아니예요. 얼마나 좋아요? “자기도 잘 살듯이 아이도 잘 살거다, 그러니까 놔라“ 하면 ‘뭐, 나도 잘 사니까 애도 잘 살겠다, 스님 말씀 맞네’ 하고 탁 놔버리면 될 일인데 뭘 그렇게 놓지 못합니까. 나는 사과지만 너는 배가 되라고 하면 그게 어떻게 됩니까?”nbsp“저는 사과지만 아이는 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nbsp“없다니까요. 그러니까 미리 성질을 고쳐서 장가를 가던지, 아니면 장가를 가지 말던지 하지 그랬어야죠. nbspnbsp아이는 괜찮아요, 본인만 변하면 아이는 괜찮다니까요. 그러니까 그대로 두세요. 본인이 괜찮듯이 아이도 괜찮아요. 그런데 이게 조금 문제다 싶으면 아이를 고치려고 하지 말고 자기부터 먼저 고치세요. 자기가 고쳐지면 ‘아, 나도 고쳐지니까 우리 아이도 고쳐지겠다’ 할 수 있어요. 어른인 자기도 못 고치는데 어떻게 아이가 고치겠습니까?”nbsp“그런데 저는 담배피우던 것도 제 의지로 끊었고요.”nbsp“지금 담배 피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성질 내는 것이 문제잖아요.”nbsp“성격도 부인으로부터 ‘니 성질 많이 죽었다’ 소리 듣거든요. ”nbsp“그래요. 성질 많이 죽었지만 아이를 낳을 때 그리고 어릴 때 이미 씨앗을 뿌려놨잖아요. 지금 자기가 고쳐져도 아이에게는 이미 심어져서 자랐기 때문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부인이 볼 때 ‘아이고, 우리 남편 죽을 때가 다 되어가나? 완전히 개과천선했네. 천성이 바뀌었네’ 이 정도로 자기가 확 바뀌면 그 다음에는 아이한테도 자신이 생깁니다. 내가 바뀌면 ‘고쳐라’ 가 아니라 ‘아이가 지금 저래도, 언젠가 좋은 법 만나면 나처럼 바뀔 수 있겠다’ 하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겨요.nbspnbspnbsp지금은 ‘그래, 내가 뿌린 씨앗이니까 어떻게 하겠어’ 하고 아이를 고치려고 하지 말고, 아이를 볼 때마다 ‘아이고, 나 때문에 니가 고생한다. 아빠 성질이 그래서 너도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어 보세요. ‘나도 잘 살듯이 너도 그런대로 잘 살거다’ 하고 긍정적으로 보세요. 그래도 부모로서 조금 아이가 부족하다 싶으면 자기가 자기 성질부터 먼저 고쳐보세요. 그렇게 해서 고쳐지면 우리 아이도 가능성이 있겠다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고, 자기가 안 고쳐지면 ’아이고, 어른인 나도 안 고쳐지는데 어린 애가 어떻게 고치겠나‘ 하고 오히려 이해하는 마음을 낼 수 있어서 이 문제는 저절로 풀립니다. 고쳐져도 풀리고, 안 고쳐져도 풀려요.nbsp“앞으로 긍정적으로 보려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nbsp“말만 긍정적이면 안돼요. 속에서 고쳐야 됩니다. 오늘 딱 저와 얘기하는 동안에 ‘아, 아이도 괜찮다, 나도 괜찮다’하고 놔야 돼요.”nbsp“ 지금부터 저도 괜찮고 아이도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nbspnbspnbsp‘괜찮다’ 하는 질문자의 자신감있는 목소리에 청중들도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줍니다.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문답을 통해 보다 더 전모를 파악하게 되고 마음은 가벼워집니다. 스님의 즉문즉설이 갖는 힘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질문자의 답변에 이어서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첫 번째, 남을 고치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생긴 대로 인정하고 사세요. 두 번째, 나도 너무 고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과보를 받으십시오. 마지막으로, 과보를 받기 싫으면 고치는데, 고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고치려고 하는데 안 고쳐지니까 조급해서 자기를 학대해요. ‘아, 나는 문제다’ 하면서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다 괜찮아요. 자기 스스로 자기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를 너무 과대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다 고만고만하게 괜찮아요. 우선, 자기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조금 더 개선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면 도전해보세요.nbsp도전을 해보겠다고 할 때에는 우선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의식이 지속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면 시간이 흐르면 습관이 되기 때문에 무의식화 됩니다. 그러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두 번째, 아주 강한 충격을 줘서 무의식에까지 영향을 주면 변화가 조금 빨리 일어납니다. 첫째, 강하게 주면 속도가 조금 빨라지고, 둘째, 약하게 주되 꾸준히 해나가야 됩니다. 이것은 물리학의 법칙과 똑같아요. 물체가 움직이고 있는데 멈추게 한다고 합시다. 이것을 멈추려고 강한 힘을 주면 빨리 멈춰지고, 약한 힘을 주면 계속 밀리다가 한참 가서 멈춥니다.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하고, 멈춰있는 물체는 계속 멈춰 있으려고 하는 것이 관성의 법칙이죠. 그렇기 때문에 움직이는 물체를 멈추거나 멈춰 있는 물체를 움직이려면 그만큼의 힘을 가해야 합니다.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서 속도의 변화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힘과 속도변화는 비례관계에 있다, 즉 Fma라는 속도 가속도의 법칙이 나오잖아요. 이것과 꼭 같습니다. 이 세상의 원리라는 것은 법칙이기 때문에 그것이 물질에서 작용하는 법칙이나 생명에 작용하는 법칙이나 정신에 작용하는 법칙이나 다 같은 법칙이예요. 불법이라는 것은 원래 법칙을 이해해서 그 법칙에 의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것입니다. 복을 비는 것이 불교가 아닙니다.nbspnbspnbsp만약 나일 강 하류 쪽에 어떤 사람이 산다고 합시다. 거기에는 비가 안 옵니다. 그런데 저 상류쪽에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난다고 합시다. 그 조짐을 알면 급할 때는 우선 피해야 합니다. 아무리 농경지가 있고 집이 좋아도 급하면 일단 몸을 피하고 살아야 돼요. 그리고 다음에 예방을 할려면 제방을 미리 쌓거나 안전한 데 집을 짓거나 해서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것처럼 자신의 카르마, 즉 업식을 알아서 이미 지은 인연의 과보는 수용해야 하고, 이런 과보를 받기 싫으면 조금 힘들지만 이것을 바꿔야 합니다. 바꾸려면 꾸준한 노력이나 강력한 태클 두 가지가 필요해요.nbspnbsp그런데 여러분은 꾸준히도 안 하고 또 강력하게도 안 하잖아요. 조금 하다가 ‘에이, 꼭 그렇게 해야 하나, 안 그래도 사는데’ 이러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고쳐지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에게 자학증상이 일어나는 것은 노력은 안 하고 쉽게 고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남에 대해서는 안 고쳐진다고 비난하고, 자기에 대해서는 ‘나는 문제다’ 하면서 자학하는 것입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자세 때문에 남을 미워하거나 자기를 미워하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nbspnbsp안 고치고 이대로 살아도 괜찮아요, 아시겠어요? 다만 가끔 짐승보다 못할 때가 좀 있죠.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짐승보다 못한 부분만 개선해주려고 합니다. 짐승보다 나은 부분은 선택해서 하시면 되고, 그렇지 못한 작용들, 예를 들면 자살을 한다던지 괴롭다던지 보복을 한다던지 하는 것들은 짐승들에게는 없거든요. 짐승은 배고프면 먹으려고 하고, 자기 음식 양보 안하려고 하는 것들은 있지만, 자기 생존을 위한 것을 제외하고는 미워해서 해치는 일은 없어요. 그러니까 이런 마음 작용의 이치를 알고 개선해야 합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분들께 오늘 강연이 어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다들 정말 좋았다고 하면서 “질문자들의 질문은 본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스님의 답변 하나 하나가 다 본인들에게 대입이 될 수 있어서 많은 것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답변 후에 스님께서 짤막짤막하게 해주는 정리말씀이 너무 좋았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한 분은 “스님께서 마지막 질문자에게 해주신 말씀이 너무나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라 참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3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왔던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책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행사장에 오신 많은 분들과 인사도 하고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행사장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준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월요일 타코마 강연과 오늘 시애틀 강연의 총괄을 맡아서 행사를 진행한 시애틀정토회 주상휴님께는 사인한 금강경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nbsp▲ 타코마, 시애틀 강연 총괄을 맡아주신 시애틀정토회 주상휴 총무님nbsp그리고 이번에 나온 영문 기도책 초벌 번역을 해주신 정토회 해외지부 번역팀의 송호성님, 박현수님께는 사인한 영문 기도책을 감사의 표시로 드렸습니다.nbspnbspnbsp▲ 번역봉사를 해주신 박현수님, 송호성님과 시애틀정토회 주상휴 총무님nbsp그리고 자원봉사자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시면서 수고하셨다고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할 것을 부탁하시고 숙소로 이동하셨습니다. 숙소에 돌아오니 10시 15분이 되어서 이후 내일 일정에 대해서만 간단히 얘기를 나누고 스님께서도 오늘 일과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그리고 밤늦게 주미숙님이 숙소로 오셔서 스님 건강을 체크하고 약도 처방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도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nbspnbsp행사 뒷정리를 마치고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그저께 타코마에서 강연을 준비했던 것을 경험으로 좀 더 여법하게 안내를 했던 것 같다” 며 보람있어 하였고, 어떤 분은 “자기를 고집하는 모습을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연습을 할 수 있었고, 이런 것이 일과 수행이구나 경험해서 좋았다” 고 하였습니다. 또 어떤 분은 “타코마 강연에 오셨던 분이 전화를 해서 자원봉사 하는 분들의 맑고 행복한 모습에 감명을 받아 정토회에 나오고 싶다고 문의를 해왔다” 면서 뿌듯해 하였습니다. 또 어떤 분은 “행사를 할수록 서로 단합되고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아서 좋았다”고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74번째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 75번째 강연은 오레곤주 포틀랜드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미국 포틀랜드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1.5 세계 100회 강연(73) 캐나다 캘거리 Calgary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73번째 강연이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캐나다 캘거리는 앨버타 주 남부 지방의 고원 지대에 있으며, 옆으로 보우강이 흐르고 있고, 록키 산맥으로부터는 80km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 캐나다 밴프 국립공원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인구가 세번째로 많은 도시이며, 캘거리가 속한 앨버타 주에서는 가장 큰 도시입니다. 인구는 대도시권이 약 120만명 정도이며, 약 12,000명 정도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습니다.nbspnbsp캘거리는 여러 겨울 스포츠와 환경 친화적인 산업, 관광 그리고 록키 산맥의 높은 산들로 유명한 도시인데, 록키 산맥에 있는 밴프 스키장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곳인데 캘거리에서 한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1988년 동계올림픽이 이곳에서 개최 되었습니다. 캘거리의 경제는 석유를 비롯한 자원산업과 농업과 목축업을 포함한 1차 산업, 관광업, 첨단산업 등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국제적인 석유 채굴의 중심지로 백여 개의 석유 및 천연가스회사들이 캘거리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날씨는 대체적으로 겨울이 길고, 4월이나 5월까지 눈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nbspnbsp▲ 오늘 이동 거리 밴쿠버 gt 캘거리, 1000kmnbspnbsp 구글 지도 보기 httpsgoo.glmapso2B9Xnbsp오전 5시30분에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캘거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6시에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늘 캘거리 강연에는 북미주 서부 지구의 신수지 지구장님만 동행하고, 묘덕법사님은 밴쿠버법당에서 밴쿠버 정토회원들과 함께 일일 나누기 수련을 하기로 했습니다.nbspnbsp공항에 도착해서 출국 수속을 밟고 운전 봉사를 해준 최영환님과 벤쿠버정토회 박은선 총무님께 수고했다고 하시면서 내년에 또 보자고 인사하였습니다.nbspnbsp▲ 공항까지 운전 배웅을 해준 최영환님과 밴쿠버정토회 박은선 총무님nbsp그리고 숙소와 식사를 제공해준 박경미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캘거리행 Gate로 들어왔습니다.nbsp▲ 밴쿠버에서 숙소와 식사를 제공해준 박경미님과 아들nbsp비행기를 타기 전에 Gate 앞에서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급하게 요청한 원고 교정을 보셨습니다. 8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2시간 30분을 비행하여 캘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시차로 인하여 현지시간은 11시30분이었습니다. 출구로 내려오니 캘거리 열린법회 담당자인 오선주님과 강연 준비 자원봉사자 김미연님이 반갑게 뛰어오면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오선주님은 3년 전 밴쿠버 강연 때도 가족들과 함께 로키산맥을 넘어 12시간을 운전하여 스님을 뵈러 오기도 하였는데, 이번에는 스님께서 직접 이곳까지 방문해 주심에 감격하여 울먹이다가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인 강유신님도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 캘거리열린법회 담당자인 오선주님과 강연 준비를 도와준 김미연님nbsp이렇게 한바탕 반가운 마음을 나누고 오늘 숙소인 강유신 오선주 부부의 집에 도착하니 정토불교대학을 다니고 있는 캘거리열린법회 회원님들이 반갑게 환영해주면서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1시간 시차로 인하여 이른 점심 식사를 하고 잠깐 원고 교정을 보신 후에 잠시 시간을 내어 강유신님의 안내로 로키 산맥에 있는 밴프국립공원을 방문하였습니다.nbspnbsp▲ 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캘거리열린법회 회원들nbsp밴프는 캘거리에서 한시간 거리에 있는 관광도시로서, 캐나다 로키산맥의 관문이 되는 곳입니다. 로키산맥은 남북으로 3,500km로 뻗어 있고 동서로도 폭이 400km에 달하는 거대한 산맥입니다. 캘거리에서 로키산맥으로 가기 위해서는 캐나다의 등뼈 역할을 하는 Trans Canada 하이웨이를 타야 합니다. 이 도로는 서쪽 해안 도시인 밴쿠버에서 캘거리를 거쳐 동부의 토론토 퀘벡을 거쳐 서쪽 대서양까지 이어집니다.nbsp▲ 밴쿠버에서 퀘벡까지 이어지는 Trans Canada 하이웨이nbspnbsp 캘거리를 출발한지 40여분 지나자 로키산맥의 거대한 모습이 눈에 잡히듯 드러납니다. 로키산맥 인근은 공기 오염이 거의 없는 지역이라 100킬로미터 떨어진 캘거리에서도 로키산맥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는데 가까워지니 눈 덮힌 산들이 더욱 선명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산소를 통과하여 15분 정도 지나자 밴프타운을 대표하는 캐스케이드산이 우람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높이가 2,998m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올라가서 손을 들면 3,000미터가 된다고 합니다.nbspnbspnbsp밴프로 들어와 첫번째 방문한 곳은 밴프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건물입니다. 원래는 밴프 시청사였는데 지금 관리사무소로 쓰인다고 합니다. 이 건물 정면에서 쭉 뻗은 길이 밴프와 Trans Canada 하이웨이를 연결하는 밴프 애비뉴입니다. 그 길의 끝은 캐스케이드산이 떡 버티고 있습니다. 많은 관광객이 캐나다 로키에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합니다.nbspnbsp밴프에 있는 빙하 호수인 미네완카 호수와 투잭 호수에도 잠깐 들렀습니다. 스님께서도 어린 시절 물가에서 놀던 기억이 나는 듯 미네완카 호수 물에 손을 담가보시더니 매우 차다고 하시며며 몸을 떨으셨습니다. 보기엔 일반 호수와 같지만 빙하가 녹아 생긴 물이라 상당히 차갑습니다.nbsp▲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미네완카 호수nbsp투잭 호수에서는 런들산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한양행이란 회사가 우리 강산 푸르게 란 문구로 광고를 할 때 그 배경으로 나온 산이 이 산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짧은 로키산맥 투어를 마치고 강연 장소가 있는 캘거리 시내로 부지런히 달려갔습니다.nbsp5시에 캘거리 다운타운에 있는 한국식당에 들러 비빔밥으로 저녁식사를 한 후에 강연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캘거리 시내에 있는 도서관에 딸린 John Dutton Theartre입니다. 길을 건너는데 벌써 강연장을 찾는 분들이 스님을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강연장에서도 봉사자들과 눈을 맞추면서 인사를 한 후 스님께서는 대기실로 이동해 원고를 보셨습니다. 잠깐의 틈만 있으시면 스님께서는 새책 원고교정을 보시고 계십니다.nbspnbsp▲ 오늘 강연장, John Dutton Theartrenbsp강연시간 30분 전인데 벌써 400석 객석의 3분의2가 찼고, 책도 거의 다 판매되어서 오늘 강연에 대한 캘거리 교민들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며칠 전 이곳에서도 눈이 와서 어제까지 날씨가 아주 추웠는데 오늘 날씨가 화창해지고 온도도 올라가 따뜻해지자 봉사자들도 무척 기뻐하는 분위기였습니다.nbspnbsp6시 20분이 되자 스님 소개영상에 이어 캘거리 교민들이 뿜어내는 큰 박수와 환호를 받으면서 스님께서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강연이 시작되고 나서도 계속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총 520명이 참석하여 어제 밴쿠버 강연에서 세웠던 참석자 수와 맞먹었습니다. 지금까지 73번의 강연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오늘 참석했습니다. 복도에 앉거나 옆에 서거나 뒤에 서서 강연을 들어야 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nbspnbspnbsp먼저 스님께서는 캘거리에 온 반가운 마음을 나누시며 야단법석을 마음껏 해보자고 하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저는 캘거리에는 처음와 봅니다. 여러분들도 처음 뵙게 되었는데요. 벤쿠버는 몇 년 전부터 몇번 다녀갔는데 그 때마다 가끔씩 캘거리에서 사시는 분이 10시간, 11시간 자동차를 타고 오신 분들이 계셨어요.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로키산맥을 넘어 왔데요. 그래서 로키산맥도 구경할겸 한번 가볼까 이런 생각을 했지만 너무 멀어서 엄두를 못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세계 100회 강연을 마련하면서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장소를 빌리고 강연 준비를 해주신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 박수를 한번 부탁드립니다.nbspnbspnbsp이 자리는 야단법석이예요.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으시면 돼요. 스님한테 이런 것 물어도 되나 이런 생각하지 마시고 뭐든지 대화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입니다. 정답 찾기를 하면 안돼요.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냥 대화를 하는 겁니다. 이 대화를 통해서 우리의 무거운 마음이 좀 가벼워지고, 어두운 마음이 좀 밝아지고, 고뇌가 좀 적어지고, 행복이 좀 커지고, 웃음이 좀 많아지고, 의문이 좀 풀리는,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거예요. 그래서 즉문즉답이 아니고 즉문즉설이라고 합니다. 답이 아니라 설이라고 하는 이유는 대화를 통해서 진실을 규명해가고 행복을 향해 조금씩 한발한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리 질문서를 만드는 게 아니고 지금 바로 즉석에서 문제를 던져서 대화를 나눠보는 자리입니다. 자, 그럼 시작합시다.“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10명으로부터 질문이 있었고 강연 시간도 2시간 50분이 되었습니다. 청중들과 교감 속에서 나오는 스님의 지혜로운 대답에 처음부터 웃음이 빵빵 터지면서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가끔 게을러지고 기대치에 못미쳐서 괴로울 때가 많은데 스님께서는 부지런하게 된 비결이 무엇인지 묻는 22살 대학생, 연애를 여러차례 해보면서 공통적으로 후회되는 한 가지가 평소에는 잘해주다가 상대가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하면 폭발해 버리는 건데 앞으로 이런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딱히 종교를 믿지 않으면서도 영적인 것을 어떻게 키워갈 수 있을지 묻는 분, 며칠 전에 외할아버지가 한국에서 돌아가셨는데 어머님은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배우자는 굳이 그렇게 해야 하나 생각해서 서로 불편함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분, 학생 비자로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데 여기가 너무 좋아서 워킹비자를 받아서 1년 더 있고 싶은데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괜찮을지 묻는 분, 나이가 좀 많이 되었는데 올해도 그냥 시간이 지나갈 것 같아서 잠도 안 오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묻는 분, 10년 전에 아이 아빠가 죽은 이후로 그 쇼크가 아직도 가슴 밑바닥에 남아서 머리가 터질 정도로 아플 때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이 고통을 지켜볼 수 있을지 묻는 분, 마누라가 교회를 꼭 나갔으면 좋겠는데 절에만 나가서 “우리 마누라 교회 데리고 오면 현상금 천불 준다” 고도 했는데 그래도 안 가서 어떻게 하면 부인을 교회에 데려올 수 있는지 묻는 분, 워킹홀리데이로 이곳에 와서 남자친구를 만났는데 행복하고 즐겁게 연애하라고 한마디 조언을 해달라는 분 등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모든 답변들이 즐겁고 유익해서 다 소개하고 싶을 정도였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nbsp욕심을 내려놓았더니 마음은 편안해졌는데 의욕을 잃고 멍청해지는 것 같아 고민인 중년 여성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중년의 아줌마입니다. 어렸을 때는 의욕도 많고 잘 웃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사회에 나와서 열심히 살다가 나이 50이 되어 다시 제 얼굴을 봤는데 사납고 욕심도 많고 피곤에 지쳐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그 모습이 갑자기 너무 싫어져서 방향을 바꿔보자고 생각을 했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하고 다시 보니 웃음도 생기고 편안해진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있는 반면에 어느 순간에는 의욕을 다 잃어버리고 멍청하게 앉아 있고, 그냥 창밖만 바라보고 있고, 누가 불러도 잘 안나가는, 그런 내가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욕심만 내려놓자고 했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것까지 내려놓아져 있더라구요.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갈팡질팡 하고 있습니다.”nbspnbsp“지금 질문자의 앞뒤 말에는 모순이 있어요. 바깥에서 불러도 잘 나가지도 않고 멍청하게 천장만 쳐다보고 있는데 어떻게 얼굴에 웃음끼가nbsp생길 수 있어요? 말이 안맞는 것 같네요.”nbspnbsp“생각을 많이 놓아버리니까 그 웃음이 행복한 웃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nbsp“그건 멍청한 것이지요. 전에는 쫓겨다니다가 지금은 멍청해진 것이지요. 오십보 백보네요. 아직 지평선 위로는 못올라오고 밑에서만 놀고 있는 거예요. 한번은 쫓겨서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한번은 쫓겨다니지 말아야지 하고 멍하게 앉아있는 겁니다.nbspnbsp밥 먹고 싶다는 것은 욕심이 아니예요. 배고프면 밥 먹으면 되는 되죠. 중생 세계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욕구에는 세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생존적 욕구입니다. 배고프면 먹으려고 하고 졸리면 자려고 하고 추우면 따뜻한 곳을 찾고 더우면 시원한 곳을 찾는, 이런 것을 생존적 욕구라고 해요. 이것을 사회적 용어로 표현하면 ‘기본적 욕구’라고 해요. 기본적 욕구는 충족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충족이 안되면 인간에게는 고통이 오는데 이것은 생존에 따르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이런 기본적 욕구는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nbspnbsp다음으로는 상대적 욕구가 있어요.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남보다 더 많이 갖고 싶다,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싶다, 더 좋은 옷 입고 싶다, 더 편하고 싶다, 이것은 상대적인 욕구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대적인 욕구는 끝이 없어요. 비교에 의해서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선까지라고 정해질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10만불을 가졌을 때 주위가 다 1만불 밖에 안가지고 있으면 만족을 해요. 그런데 주위가 다 100만불을 갖고 있으면 내가 굉장히 가난한 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100만불을 갖는다고 해도 다시 주위가 1000만불을 갖고 있으면 나는 역시 빈곤한 것이 됩니다. GDP가 4만불이 되고 10만불이 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예요. 이것은 항상 비교에 의해서 일어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행복도를 높이는 방법은 두 가지예요. 첫째는 사회제도적으로는 빈부격차가 적은 것이고, 둘째는 개인의 기대치가 적으면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 중에서도 행복도가 아주 높은 나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인 욕구는 절제를 할 줄 알아야 해요. 이것은 끝까지 따라 가봐야 영원히 이뤄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선에서 스스로 절제할 줄 알아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제도적인 보완장치를 해줘야 합니다.nbspnbsp세 번째 욕구는 과욕입니다. 만약 과식을 했다면 입은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몸에는 나쁘잖아요? 과음을 했다, 과로를 했다, 이것은 다 과욕이고 자기를 헤치는 겁니다. 개인은 과욕을 버려야 하는 것이고, 제도적으로는 과욕을 부리지 못하도록 규제를 해야 합니다.nbspnbsp이 과욕을 세상에서는 ‘탐욕’이라고 부릅니다. 상대적 욕구는 ‘욕망’이라고 부릅니다. 생존적 욕구는 ‘기본 권리’ 라고 부릅니다. ‘기본 권리’는 보장해야 하고 ‘욕망’은 절제를 해야 하고 ‘탐욕’은 규제를 해야 돼요. 그런 기준에서 질문자가 탐욕을 부렸다면 버려야 하고, 욕망을 쫓았으면 끝간데 없이 가니까 절제를 할 줄 알아야 하고, 기본적 욕구의 문제라면 그것은 기본 권리이기 때문에 오히려 보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지금 질문자가 욕망을 쫓다가 그걸 버리니까 무기력해졌다 하는 것은 과욕이나 욕망을 쫓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쫓고 있는데 현실은 채워지지 않아 지쳐서 멈추니까 뒤쳐진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어떻게 해야 되나 망설여지는 거예요. 담배를 피울 때는 어느 담배가 더 맛있느냐, 술을 마실 때는 어느 술이 더 좋으냐 하면서 그걸 갖고 신분이 높다는 것을 과시했지만, 술이 나쁘고 담배가 나쁘다는 것을 알았다면 딱 끊어버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걸 끊어도 과거의 습관이나 가치관을 못 버리면 다른 사람이 좋은 담배를 피거나 좋은 술을 먹을 때 나만 세상에 뒤쳐진 것이 아니냐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것은 아직 가치관의 전환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술을 먹어도 안 먹는 것보다 못하고 아무리 좋은 담배를 피워도 안 피우는 것보다 못합니다. 이렇게 가치관의 정립이 딱 안되면 그걸 안해도 아직도 중독성이 남아 있으니까 버리기가 너무 아까운 겁니다. 그래서 허전해지고 방황하는 겁니다. 몸은 멈추었을지라도 아직 가치관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그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겁니다.nbspnbspnbsp그러니 좋으면 다시 일어나서 따라가고 앉아서 부러워하지 마세요. 저는 큰 집에 가면 스윽 둘러보고 ‘아이고, 청소하기 힘들겠다’ 하거든요. 큰 것이 좋은 게 아니예요. 그러나 큰 것이 좋다는 생각을 못버리면 계속 소비를 증폭하게 돼요. 그래서 지구환경까지 오염시켜서 같이 지구멸망의 구렁텅이로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이런 소비 중독은 마약보다 더 무서운 겁니다. 현대 문명은 소비 중독입니다. 이 소비주의가 그 어떤 것보다 인류를 위협하는 첫 번째 사안입니다. 소비에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스트레스 받으면 신발을 열 켤레를 사야 마음이 가라앉고, 계속 차를 바꾸거나, 집을 넓히거나, 이래야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는 겁니다. 골프를 치러 외국으로 가야 된다든지, 명품 브랜드 가방을 사야 된다든지, 그래야 만족이 되지 안 그러면 뭔가 허전하게 느껴집니다. 가방은 물건만 담기면 되지 어떤 상표가 붙는지가 뭐 그리 중요해요? 이런 식으로 과소비로 계속 흘러가면 폐기물이 엄청나게 많아 환경오염이 심각해지죠. 그런데 이것은 멈춰지지가 않습니다.nbspnbsp그래서 인류 문명의 최대위기는 소비 중독입니다. 과연 누가 이것을 멈추게 할 수 있겠느냐. 이게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희망이예요. 그런데 아직 소비주의를 이기는 사상을 못봤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도 이미 완전히 소비주의에 중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주님이 아니고 돈이 주님입니다. 한국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이 돈으로 표시되지 않습니까. 교회가 크고 신자가 많고 수입이 많은 것이 성공의 징표가 되었어요. 또 여러분이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다는 것도 다 돈으로 표현되잖아요. 그런데 돈이 주어져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느냐. 그게 가능하면 희망이 있습니다. 흙탕물 속에 있으면서도 거기에 물들지 않을 때 극복했다고 말하지 멀리 떨어져서 경험을 못해봐서 지켜지는 것이라면 극복한 건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물들지 않는 건 좋은 일인데 그러나 그것은 현대 문명을 구제할 새로운 대안은 아직 되기가 어렵습니다.nbspnbspnbsp이건 우리들 전체가 다 안고 있는 문제예요. 이 소비주의에 중독되어 우리들도nbsp살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뒤처지면 나혼자만 낙오자가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죠. 이렇게 소비주의가 질주하고 있는 현상태에서 자신이 거기에 따라갈려니 지치고 헐떡거리고 악쓰게 되고, 그러지 않으려고 멈추니까 낙오자 같은 이런 심리예요. 이건 별다른 처방책이 없어요.nbspnbsp이렇게 생각하면 도움이 돼요. 이렇게 질주를 하면 맨 마지막은 뭘까요?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경쟁하면서 달리다보면 맨 끝은 뭘까요? 낭떠러지입니다. 빨리 갈수록 빨리 죽는 거예요. 끝이 낭떠러지인줄 알면 빨리 가는 게 별로 부럽지가 않아요. 그런데 질문자는 끝이 낭떠러지인줄 지금 모르고 끝이 천국인줄 알기 때문에 따라가려니 헐떡거리고 가만히 있으려니까 뒤처지는 것 같고, 그래서 생긴 고민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빨리 가봤자 낭떠러지다’ 이것을 늘 생각하세요. 스님은 그 끝이 낭떠러지인줄 알기 때문에 빨리 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별로 안 부러워요. 때로는 불쌍하게 느낄때도 있어요. 그러나 자기가 좋아서 가는 거니까 어쩌겠어요.”nbsp답변이 끝나자 질문자가 활짝 웃으며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니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줍니다. ‘끝이 낭떠러지인 줄 몰라서 그랬구나’ 알게 되니 마음이 싹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10명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 여러분들이 꼭 명심해야 하는 것은 첫째,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항상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낼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이해없는 사랑은 폭력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보고 싶다,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욕망입니다. 좋아한다는 데는 반드시 요구가 있습니다. 내가 너 좋아하니까 너도 나 좋아한다고 해라 이렇게 요구가 따라다녀요. 이 요구를 버려야 합니다. 최고의 사랑은 나와 다른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당신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네’ 이렇게 이해하는 겁니다. 이런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에 준하고 부처님의 자비에 준하는 겁니다. nbspnbspnbsp그리고 기대가 높으면 실망이 커지고 기대가 낮으면 만족이 커집니다. 내가 기대가 높으면 불행해지기가 쉽고 기대를 낮추면 행복도가 높아지는 거예요. 기대를 낮춰서 행복도를 높이는 일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인생의 목표를 지나치게 높게 설정합니다. 자기를 과대평가 합니다. 그래서 자기 부족함에 늘 헐떡거리는 겁니다. 자신이 힘들 때는 자신을 다람쥐와 한번 비교해 보세요. ‘이럴 때 다람쥐는 어떨까’ 헤아려보고 ‘내가 다람쥐보다 못하네’ 하면 정신을 좀 차려야 됩니다. 남편이 죽었든 자식이 죽었든 병이 났든 지금 살아있는 것은 행복이예요. 그런 마음으로 지금보다는 더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nbsp긴 시간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신 스님께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는데, 오늘은 특별히 많은 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기립 박수를 보니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이 먼 곳까지 고생해서 오셔서 삶의 지혜를 들려주신 스님에 대한 무한한 감사의 표시겠죠.nbspnbspnbsp강연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분들께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청년대학생에서 부터 연세 드신 분들까지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중년의 신사 분은 “비록 질문은 하지 않았지만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명쾌한 답변을 스스로에게 적용해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고 합니다.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중들과의 교감이 너무 좋아서 3시간이 언제 흘러갔냐는 듯 집중되고 재미있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책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사인을 해주며 참석자들과 인사도 하고 사진 촬영도 하였습니다. 오늘은 준비한 모든 책들이 판매되어 책을 구입하지 못한 분들께 정말 죄송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수고한 자원봉사자들 모두와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의 총괄을 맡은 캘거리열린법회 담당자인 오선주님께는 사인한 영문 기도책을 선물로 드렸고, 오선주님과 함께 강연 준비를 도와준 김미연님께도 기도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nbsp▲ 오늘 캘거리 강연을 준비해 준 김미연님과 오선주님nbsp그리고 자원봉사자들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었습니다.nbspnbspnbsp인사를 마치고 강연장을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초등학생 남학생이 스님과 사진을 찍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면서 울고 있다고 하여 스님께서는 함께 사진촬영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에는 약 20여명이 자원봉사를 하였는데, 정토불교대학 학생들과 열린법회에 참가하시는 분들의 가족과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리고 포스터를 보고 오신 분들도 자원봉사를 하였습니다. 한 학생은 “아는 언니를 통해 봉사를 신청했는데 내일까지 내야 할 과제가 산더미지만 걱정이 사라질만큼 좋았다”고 합니다. 또 한분은 “직장상사였던 분 덕분에 봉사에 참여했는데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 한 학생은 “캘거리에 와서 매일 술먹고 놀며 살았는데 여기와서 지금까지 했던 일 중 가장 행복하고 뿌듯했던 하루였다” 며 보람있어 했습니다. 또 한분은 “사람들이 많이오고 행사가 잘 마무리되어 많은 분들이 희망을 안고 돌아가는 것 같아 좋다”고 하였습니다. 또 한 분은 “기독교가 거센 지역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너무 기쁘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분은 “스님을 만나서 인생이 변하게 되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분들이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며 감사한 마음을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자원봉사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숙소에 돌아오니 10시 40분이 되었습니다. 이후 내일 일정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스님께서는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셨습니다.nbsp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73번째 캐나다 캘거리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 74번째 강연은 다시 워싱턴주 씨애틀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미국 워싱턴주 씨애틀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1.3 세계 100회 강연(71) 타코마 Tacoma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100회 강연 중 71번째 강연이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워싱턴 주는 태평양 연안 북서쪽 끝에 있는 주로서 미국 동쪽에 있는 수도와 자주 혼동되며, 주도는 올림피아라는 도시이고, 제일 큰 도시는 시애틀입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은 미국 첫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인구는 약 680만명인데nbsp미국 서부에서는 캘리포니아 다음으로 많습니다.nbspnbsp산업은 주로 상공업이 중심이 되는데 시애틀 및 그 주변 지역이 최대 중심지입니다. 시애틀 인근 레드먼드라는 도시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본사가 있습니다. 워싱턴 주는 농림수산업이 주의 주요 산업이며, 밀, 보리, 귀리 등을 경작하고, 또한 미국 제1의 사과 생산지입니다. 해안 지역에서는 연어, 넙치무리 같은 여러 해산물이 잡히고 있고, 임업이 발달하면서 제지업과 가구 제품 등도 생산합니다. 공업은 시애틀을 중심으로 비행기, 로켓, 조선업 등이 발달하였습니다. 영국, 아일랜드, 독일, 스칸디나비아 계통의 주민들이 많이 살며, 중국, 일본, 한국, 필리핀 등의 아시아인들도 많이 살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주로 시애틀에 몰려있습니다. 그리고 워싱턴주 전체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은 약 135,000명 정도라고 합니다. 정치적 성향은 전반적으로는 민주당에 가깝다고nbsp하구요.nbsp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타코마는 퓨알럽 인디언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었으며 19세기 경에 대륙 철도가 바로 항구까지 이어짐으로 해서nbsp국제 교육 항구도시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대공황nbsp이후부터 급격한 경제적인 하강 국면을 면치 못하다가 1990년대 이후 다운타운 재생 계획 하에 많은 역사적인 건물을 유지보수하여 관광 명소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타코마에는 약 8,000명 정도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는데nbsp차츰 한인들이 북쪽으로 이동하는 추세라 인구가 많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nbspnbsp▲ 오늘 이동 거리 솔트레이크시티 → 시애틀 정토법당nbsp→nbsp타코마, 887마일nbsp nbsp 구글 지도 보기 nbsphttpsgoo.glmapsElv9Lnbsp솔트레이크에서 시애틀과 타코마로 출발하는 오전 8시30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오전 6시15분에 숙소에서 솔트레이크 국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제 강연 후 자원봉사자들과 마음나누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올 때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아침에 혹시라도 눈이 많이 와서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웠는데 다행이 진눈깨비에 그쳐서 눈은 쌓여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강연 총괄을 맡았던 제럿 힐리스씨가 이른 아침에 숙소에 도착하여 로빈슨 부부의 차와 힐러스씨의 차 2대로 나눠타고 공항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제럿님과 로빈슨 부부께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하고 Gate로 들어갔습니다. 덴버와 솔트레이크시티는 11월부터 눈이 내리는 날이 많기 때문에 이번 세계 100회 강연 중 날씨로 인해 일정에 차질이 있을까봐 가장 우려했던 곳이었는데 다행이 날씨가 좋아 차질없이 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nbspnbspLA로 다시 돌아가는 김명례 지구장님도 비행기 출발시간이 비슷하고 같은 델타 항공을 타고 가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공항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이번 강연의 지구별 역할에 대해서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Gate로 들어갈 시간이 다 되어 김명례 지구장님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고 비행기를 탔셨습니다.nbspnbspnbsp8시 30분에 솔트레이크시티 공항을 출발하여 시애틀타코마 공항에는 9시 37분에 도착했는데, 시차로 인해서 실제 비행시간은 2시간 7분이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북미주 서북부의 신수지 지구장님과 시애틀정토회 주상휴 총무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짐을 모두 찾아 공항과 15분 거리에 있는 시애틀 정토법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nbspnbsp▲nbsp시애틀정토회 정토법당nbsp11시부터는 캐나다 벤쿠버법당과 시애틀법당에서 1년간 정토불교대학을 공부한 졸업생들의 수계식과 졸업식, 그리고 경전반 수료생들의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다들 분주하게 졸업식 준비를 하고 있다가 스님께서 들어오니 모든 정토회 회원들이 반갑게 스님께 인사를 합니다. 스님께서는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시고 수계식과 졸업식을 맞이할 채비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곧이어 11시부터 정토불교대학 수계식 및 졸업식이 이어졌습니다. 수계식은 13명이 참석해 스님께 수계도 받고 법명도 받았습니다. 수계와 법명을 받는 것은 부처가 되겠다고 발심하고 새롭게 인생을 출발하는 것이며 해외에서는 수계자가 적기 때문에 1년에 한번 이렇게 스님이 방문하실 때마다 한자리에 모이게 해서 이뤄지고 있는데 수계식날은 스님께 직접 법명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영광스럽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모두들 스님께 수계의 의미에 대한 법문도 듣고 자신이 받은 법명에 대한 설명도 들으면서 기뻐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수계식에 이어서 정토경전반과 불교대학에서 공부한 분들의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경전반은 10명이 수료하였고, 불교대학은 씨애틀에서 10명, 벤쿠버에서 9명, 총 19명이 수료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한 번의 결석도 없이 참석한 개근상은 씨애틀 정토법당의 박태성님이 받았습니다. 정토불교대학에서 개근상을 받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모두들 큰 박수로 축하해 주었고, 스님께서는 박태성님께 사인한 금강경 책을 선물로 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수계식과 졸업식에 참석한 모든 분들께 인류 문명의 희망을 만들어가자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축하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공부하고, 수행하고, 봉사하고, 보시한 인연공덕으로 오늘 영광스러운 졸업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부처가 되겠다는 원을 세우고 수계를 받았습니다. 멈추지 말고 꾸준히 정진해나가시기를 바랍니다.nbspnbsp세상은 앞으로 혼돈의 상태로 점점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더 잘 살기 위해서 수백 년간 노력해 온 결과로 물질적인 풍요는 어느 정도 누리게 되었지만, 그 반작용으로 인해 문명의 새로운 위기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위기를 예견하면서도 욕망을 멈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물질적인 풍요가 인간의 삶을 더 행복하고 자유롭게 해야 하는데 현재 그렇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지구 환경은 점점 더 파괴되고 있고, 인류의 공동체성은 점점 붕괴되고 있고, 개인의 심성은 점점 훼손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지구환경을 보전하고, 공동체성은 회복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붓다의 가르침은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 관점에서 붓다의 가르침은 첫째로 개인에게 자유와 행복을 가져와 개인에게 좋고, 또한 이 좋은 법을 이웃에 널리 전함으로써 그들 또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고, 이런 것들이 모여 인류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간다면, 현대 문명이 갖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정토회는 한국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번 만일결사 기간 동안은 한국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하기로 하고, 다음 만일 즉 앞으로 10년 후부터는 인류와 세계에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세계 100강도 다음 만일을 위한 씨앗을 뿌려보자는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은 먼저 수행 정진하여 삶이 행복해져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먹어보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어요. 내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되는 경험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을 기초로 해서 이 좋은 법을 이웃에 전하는 역할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 정토행자가 되시기를 당부 드리며 오늘 졸업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nbsp스님의 졸업 축하 법문을 들으니 오늘 졸업한 모든 분들이 인류 문명의 희망을 함께 만들어갈 소중한 씨앗이 될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수계식과 경전반 및 불교대학 졸업을 기념하는 단체 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 모두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계자 13명 모두에게 오늘이 기념으로 남을 수 있게 스님과 일대일로 기념촬영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 밴쿠버 정토불교대학 졸업생nbspnbsp▲nbsp시애틀nbsp정토불교대학 졸업생nbsp▲ 시애틀nbsp경전반nbsp졸업생nbsp수계식과 졸업식을 마치니 오후 2시가 되었습니다. 수계식 이후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스님께서는 원고 교정을 보시다가 강연장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셨습니다. 오전에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비가 오더니 오후가 되니 빗줄기가 더 굵어졌습니다. 교통체증을 예상하여 4시 45분에 서둘러 강연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nbspnbsp오늘 타코마 강연이 열리는 강연장은 Clover Park Technical College 입니다. 강연장에 도착해서 스님께서는 시애틀정토회 회원들이 준비해 준 도시락으로 차안에서 간단히 저녁 요기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장, Clover Park Technical Collegenbsp오늘 타코마 강연에는 18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월요일 오후에 비도 오고 교통체증도 심해서 사람들이 적게 오면 어떡할까 자원봉사자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준비한 자리가 꽉 찼습니다.nbsp하지만 참석자들 중에 늦게 도착하시는 분들이 많아 10분 정도 늦게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타코마는 씨애틀 인근 지역이지만, 타코마에서의 스님 강연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환영 영상부터 분위기가 너무 좋고 이곳 사람들이 스님을 많이 기다렸음이 보였습니다. 이어서 6시 40분에 소개영상과 함께 스님께서 연단에 오르셨습니다.nbspnbsp“비가 오는 데도 이렇게 많이 오셨네요? 타코마에서는 처음 강연을 합니다. 시애틀에서 강연을 하면 여러분들이 오시기 불편하다고 해서 이번에는 시애틀과 타코마에 나눠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nbsp이렇게 이곳에 처음 오게 된 반가운 마음을 나누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은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아내와 20년 가까이 함께 살아왔고 아내를 잘 안다고 하면서도 화를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화를 내게 되는데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는 분, 미국에 와서 36년 동안 기독교에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수많은 목사님을 만났지만 가슴이 펑 뚫리지 않는 것 같고 내가 가짜라는 생각이 든다는 분, 만인이 우러러보는 하늘의 별과 같은 분을 사랑하고 있고 그 분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이생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이 아픈 가슴을 달래면서 살 수 있는지 묻는 분, 무심결에 돼지 몇천마리가 축사에서 생매장 당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이후 육식을 하지 않고 있는데 그 바람에 주변에 친구도 없어지고 소외를 당하고 있어서 이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묻는 분, 소리와 냄새, 느낌에 대해서 트라우마를 갖고 있고 특히 어렸을 때 실수한 것에 대한 생각이 자꾸 나는데 여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묻는 분, 2살 때 엄마가 교수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기억은 못하지만 그 시절에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무의식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 것 같아서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그 중에서 성전환 문제로 고민하는 40대 남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이 많은 깨우침을 주었기에 그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nbspnbsp“그동안 남자로서의 삶을 40년 넘게 살았는데 이제 남자의 삶이 재미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최근에 남자의 삶을 없애고 제3의 성으로 제 삶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한지 1년 정도 지났습니다. 이 삶이 너무 재미있고 즐기고 있는데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하나 고민입니다. 70대 중반의 부모님 두 분이 정정히 살아계시거든요. 엄격하시고 완고하셔서 제가 더 이상 남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고 말씀드리면 연로하셔서 많이 놀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한국에 일년에 한두번 가는데 그 때마다 아버지랑 목용탕에도 갔는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서 좀 난감합니다. 이런 사실을 숨기는 것이 나은지 솔직히 말씀을 드리는 것이 맞는지, 말씀을 드린다면 어떻게 말씀 드려야 하는지 조심스럽습니다.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nbsp“그게 체질적인 거예요? 자기가 의도해서 호르몬 주사를 맞고 바꾸는 거예요?”nbsp“어렸을 때부터 제가 여자였다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사춘기때부터 제 생각과 모양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느꼈지만 그런 생각을 잘 관리하고 살았습니다. 축구선수로서 생활을 한 적도 있었고, 수영 선수로도 생활한 적도 있었고, 군대도 갔다 왔습니다. 34년 전에는 이혼을 했고,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의 영향을 안 받는 상태가 되니까 그동안 관리해오며 살았던 생각을 한번 실행에 옮겨보자 마음을 먹게 된 것입니다. 결혼 생활을 13년 정도 했는데 아이는 없었지만 부부관계는 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성전환자라고 하면 동성애자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이성애자입니다. 저 같은 케이스는 아주 소수인 케이스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성으로 살고 싶습니다. 성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취미 같은 일이 되어서 괜찮은데 부모님한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입니다.”nbspnbsp“그냥 여성으로서의 마음을 지니고 그냥 생활하면 되지요. 몸의 형상은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요. 몸의 형상이 남성이든지 여성이든지 상관하지 말고 그냥 생활하면 안될까요?”nbspnbsp“호르몬을 복용해 보면, 호르몬은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저한테 일어나는 일은 여성 또는 남성으로 태어나신 분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경험입니다.”nbsp“의도적으로 호르몬을 맞아서 몸을 여성적 특징으로 만든다는 얘기네요. 그렇게 하는 건 자유인데 자연의 법칙에는 어긋나잖아요. 내가 태어난 몸은 남자인데 여성에게는 아무런 성적 호기심이 없고 남성에게만 성적 호기심이 있기 때문에 내가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할 때는 동성애를 인정해주는게 맞지 않느냐 할 수 있거든요. 태어남에 의해 주어진 것을 어떻게 하느냐, 그 사람 책임이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볼 수 있죠. 그런데 자기는 남성적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의도적으로 호르몬을 맞아서 강제적으로 여성으로 전환한다고 한다면, 그렇게 할 자유는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느냐 하는 문제 제기를 받을 수 있겠죠.”nbsp“이미 시작이 되어서 되돌리기가 어려워요. 멈추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nbspnbsp“성을 제거를 하게 되면 아버지와 만나는 게 문제가 되는데, 제거를 하지 않으면 부모님과 만날 때 연로하신 부모를 굳이 그렇게 혼란을 줄 필요가 없겠다 싶으면 본인은 여성으로 살더라도 부모님을 만나러 갈 때는 남성으로 변장해서 가면 되잖아요. 그러니 선택을 하셔야 해요.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일 때는 부모님에게 고백하는 게 맞다 싶어요. 아무리 부모가 충격을 받아도 이것은 내가 의도적으로 부모의 뜻을 거스른 것이 아니고 주어진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것일 때 그것이 부모에게 지나친 충격을 준다면 부모에게 아예 말을 안하거나, 부모님 뵐 때만 잠시 변장을 하고 나머지 생활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취향이나 호기심으로 인해 부모에게 굳이 그렇게 큰 충격을 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그것도 질문자가 선택할 문제이지만요.nbspnbsp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도 가고 부모의 처지도 고려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지 그것을 굳이 까발려서 부모님을 힘들게 만들 이유가 있겠느냐 싶어요. 내가 이렇다고 고백하고 사는 게 그렇게 급한 일이예요? 한국에서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한테는 사업 하느라 바쁘다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아예 안보는 방법도 있죠. 그렇지 않으면 미국에서는 여성으로 자유롭게 살다가 한국에 갈 때만 일주일 정도 남자로 변장을 해서 아들 노릇을 하고 오면 되지 굳이 부모에게 큰 충격을 줄 필요는 없지 않나 싶네요. 신부, 목사가 되거나 스님이 되는 것보다 충격이 더 클 것 같거든요.”nbsp“알겠습니다.” nbspnbspnbsp“삶은 선택이기 때문에 저런 선택을 한다고 해서 나쁘다 좋다 이렇게 윤리 도덕적인 평가를 해서는 안됩니다. 윤리 도적적인 평가는 네가지입니다. 첫째, 내가 살려고 남을 헤쳐서는 안 된다. 둘째, 내가 이익보려고 남을 손해 끼쳐서는 안된다. 셋째, 내가 행복하자고 남을 괴롭혀서는 안된다. 넷째, 내가 말할 자유가 있다고 욕설이나 사기를 쳐서 남을 괴롭혀서는 안된다. 이 네가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을 떠나서는 가능하면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아야 되고, 나도 남으로부터 간섭받을 필요가 없이 세상이 뭐라 그러든 자기 소신대로 살아도 좋습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자기 선택인데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면 항상 반작용이 따릅니다.nbspnbsp자신의 취향 때문에 자연의 질서를 바꿔서라도 한번 살아보겠다 하는 건 좋은데, 그것이 부모에게 큰 충격이 된다면 부모에게 내가 특별히 도와드리진 못하더라도 내 삶의 기쁨이 부모에게 괴로움이 된다면, 그것이 어쩔 수 없는 나의 길 때문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면 내가 가는 길은 가더라도 부모에게 직접적인 충격은 주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nbspnbsp그래도 나는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다 할 때는 얘기해 볼 수도 있는 문제인데, 미국의 부모들도 충격이 클 것 같은데 동성애도 아니고 성을 바꾸겠다고 할 때 한국의 부모들이 아들이 여자가 되겠다고 하는데 75살 된 부모님한테는 큰 충격이 될 것 같아요. 이건 고려를 좀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nbspnbsp어느덧 2시간 20분이 흘렀고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질문을 하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는 분이 2명 더 있었지만 약속한 시간을 20분이나 초과해서 더 이상 질문을 받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이렇게 정리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 질문 못하신 두 분은 시애틀에서 강연할 때 또 물으러 오세요. 제가 오늘은 시간 조절을 잘 못했네요. 사람들도 괴롭다고 아우성인데, 중간에 돼지 죽는 문제로 얘기를 나누다보니까 그랬네요. nbspnbsp나중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을 희생해서도 안되고 지금의 쾌락을 위해서 나중을 희생해도 안됩니다. 늘 지금 좋아야 됩니다. 지금 좋다는 것도 미래의 좋음을 헤치지 않는 지금의 좋음이여야 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의 ‘지금 좋음’은 공부를 재미있어 하는 겁니다. 또 같이 살 때는 같이 사는 게 좋고, 혼자 남았을 때는 혼자 남은 게 좋아야 합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야 하는데, 우리는 늘 같이 살 때는 귀찮아서 문제고 혼자살면 외로워서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하는 게 좋아야 되고, 직장 있을 때는 직장 다니는 게 좋아야 합니다. 젊을 때는 젊어서 좋고 늙으면 늙어서 좋아야 됩니다.nbspnbsp저는 요즘 늙음을 만끽하고 있어요. 늙으면 좋은 게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호박, 하나는 스님입니다. 젊은 스님은 인기가 있으면 위태위태합니다. 어느 여자가 채어갈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늙은 스님은 사람들이 겁을 안내요. 그래서 늙은 스님은 인기가 있어도 사람들이 별로 신경을 안써요. 주워갈nbsp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nbspnbspnbsp그래서 스님은 늙을수록 값어치가 있어져요. 세속에 살 때는 젊을 때가 좋지만 출가를 하면 늙을 때가 좋아요. 저는 앞으로의 인생이 활짝 열리는 일만 남았어요. 그러나 젊을 때는 승려 생활이 정말 어렵습니다. 오해도 많이 받고, 자기도 자기를 컨트롤하기 어렵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아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강연 내용은 사실은 30년 전에도 똑같이 얘기하고 있었어요. 그 때는 독자도 없고 완전히 왕따였어요. 법문으로는 밥도 못 얻어 먹어서 아르바이트 해서 먹고 살았어요. 법문의 내용도 더 좋아지고 스님이 더 성숙해진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오직 한가지 혜택은 늙었다는 점입니다. 늙으니까 저절로 해결되는 게 많아요. 그래서 호박과 중은 그냥 때를 기다리면 됩니다. 여러분 행복하셔야 됩니다.”nbsp항상 지금이 좋은 줄 알아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에 청중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고 기쁨이 맴돕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가시는 분들의 발걸음도 참 가볍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몇몇 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대부분이 유튜브로 스님 법문을 이미 듣고 있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유학생인 듯이 보이는 학생들도 어른들의 질문이었는데 도움이 되었냐고 물어보니 큰 도움이 되었다며 강연을 준비해주신 분들게 정말 고마워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님께 직접 질문한 분들에게도 어땠는지 물어보니 “스님의 답변이 명쾌하게 이해가 되었다”고 하면서 좋아했습니다. 오늘 타고마 강연에서는 비교적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많이 참여했지만 스님께서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잘해주셔서 다들 좋았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강연이 끝나고 스님께서는 책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사인을 해주시며 행사장에 오신 많은 분들과 인사도 하고 함께 사진촬영도 하였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내일 모레 있을 시애틀 강연 때 오지 못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따로 챙기셔서 한국에서 가지고 온 단주를 한명 한명에게 손목에 끼워주시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이후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nbsp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비가 오고 날씨도 추운 가운데 외부에서nbsp강연장nbsp안내 및nbsp주차 안내를 담당한 자원봉사자들은nbsp너무 춥고 배고프고 힘들어서 굶주리고nbsp병든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경험해 볼 수 있어서 참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고nbsp밝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시애틀 정토회 회원들은 여러번 이런nbsp강연을 준비해왔지만, 이번에도nbsp서로nbsp화합하여nbsp도와주는 마음을 내는 것이 느껴져서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며 멤버십이 한층 돈독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nbsp오늘 참석하신nbsp분들이nbsp이런 행사를 할 수 있도록nbsp준비해줘서 고맙다고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nbsp많이nbsp해서 봉사자들도nbsp모두nbsp뿌듯함을 느끼는 분위기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뒷마무리를 하고 있는 시애틀정토회 회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신 후 “목요일 시애틀 강연에서 다시nbsp봅시다”고 하시면서 먼저 강연장을 나오셨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10시 10분이 되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숙소에 돌아오셔서 감기 몸살 기운이 있으신지 춥다고 하시고, 목도 안좋으신 것 같았습니다. 내일은 캐나다로 넘어가는 일정인데 밖에는 비도 오고 날씨가 쌀쌀해서 스님의 건강이 많이 염려되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크리닉을 운영하고 계시는 주미숙 보살님께서 오셔셔 스님께 비타민 링거 주사를 놓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내일 일정에 대해서 의논만 간단히 하고 스님께서는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71번째 워싱턴주 타고마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 72번째 강연은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캐나다 벤쿠버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1.2 세계 100회강연(70) 솔트레이크시티 Salt Lake City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100회 강연 중 70번째 강연이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유타 주는 미국 서부지역에 있는 주로서, 인구는 약 280만명이며, 주도인 솔트레이크시티 지역에 65의 인구가 모여 살고 있습니다. 유타주는 나바호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이 지역에 1847년 7월 24일 종교적 자유를 찾아 브리검영이 이끄는 몰몬교 신도들이 이주하여 정착촌을 건설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이 정착촌이 지금의 주도인 솔트레이크시티입니다. 유타 지역은 원래 멕시코 땅의 일부였는데 멕시코와 텍사스 지역 분쟁으로 인하여 전쟁이 일어나 미국이 승리함으로서 1848년 미국의 땅이 되었습니다.nbspnbsp아메리카 대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록키산맥 서편을 따라 도시가 남북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도시 평균해발이 1,860m인 고산지대이며 최고봉인 Kings Peak은 해발 4,126m로 만년설이 덮여 있습니다. 염도 27로 어류가 살지 못하는 소금 호수인 솔트레이크는 길이가 112Km에 너비가 48Km나 되며 호숫가에는 두꺼운 소금층이 얼음처럼 덮여 있습니다. 주 전체가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면 산동네이고 280만 인구 가운데 3분의 2가 몰몬교 신자로, 미국에서 보수 성향이 가장 강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Utah는 ‘유트’라는 인디언족의 말로 산에 사는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nbsp▲nbsp오늘 이동 거리 덴버 →nbsp솔트레이크시티, 515마일nbsp nbsp 구글 지도 보기nbsphttpsgoo.glmaps4PPfH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솔트레이크시티는 유타주의 주도로서, 인구는 시내가 18만명이며 대도시권은 109만명입니다. 시의 중심가는 처음에 몰몬교도들에 의해 개발되었고, 몰몬교 관련 시설과 아름다운 공원이 조화를 이룬 청결하고 질서 정연한 시가지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유타 주에는 8,300여 명의 한인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 솔트레이크시티 주변에 살고 있으며 일반 이민자를 중심으로 유학생, 몰몬교인, 국제 결혼한 군인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nbsp오전 7시 25분 솔트레이크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새벽 5시에 숙소에서 덴버 국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섬머타임이 해제되는 일요일이기 때문에 공항이 혼잡스러울 것 같아 조금 일찍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덴버 강연을 위해 수고한 장재영, 석진숙 부부에게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덴버 공항은 다른 공항과는 달리 지붕이 하얀 천막의 돔이 연결되어 있는 듯한 아주 특이한 모양을 이루고 있습니다.nbspnbsp▲nbsp덴버공항. 지붕이 참 특이하죠?nbsp1시간 30분 동안 비행하여 8시 55분에 솔트레이크 공항에 도착하니 제럿 힐리스amp이미옥 부부와 진amp스티브 로빈슨 부부가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nbspnbsp▲ 공항에 마중을 나와 준 제럿 힐리스님과 스티브 로빈슨님nbspnbspnbsp짐를 모두 찾아 재럿 힐리스님과 이미옥님의 차를 타고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신 김 그레이스님 댁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nbsp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신 김 그레이스 님nbspnbsp아침식사 후 감사 인사를 하고, 몰몬교 성전도 둘러볼겸 시내로 나가 보았습니다.nbsp몰몬교의 정식 명칭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인데, 초대 교회의 신권 조직과 교리와 운영 원리를 그대로 복원하였다는 등 회복된 기독교를 표방하며 미국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성립된 기독교 교파입니다. 1830년 뉴욕주 로체스터시 인근에서 조셉 스미스 2세를 포함하여 다른 종교에 소속된 적이 없는 6명의 설립 등기인으로 공식 설립되었고, 이 교회는 처음부터 스스로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일원이 아니며 그 어느 틈새에서 파생된 종파도 아니고 회복된 기독교임을 천명하였습니다. 가톨릭이나 개신교 등 기성 교파에서 파생된 분파가 아니므로 구교와 신교의 구분과는 전혀 별개로 분류되며, 성경과 더불어 몰몬경을 경전으로 공인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몰몬교’라고도 알려져 있으나 대외적으로는 공식 명칭 사용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1955년 처음 대한민국에 소개되었으며, 조직과 운영 원리상 직업 성직자를 인정하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있는 평신도들이 부름을 받아 융화되고 단합되는 가운데 자발적인 헌신과 봉사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nbsp▲nbsp몰몬교 성전nbsp스님께서는 몰몬교 성전을 방문하여 한바퀴 둘러보고 솔트레이크 시내도 한바퀴 둘러보고 왔습니다.nbspnbsp▲nbsp몰몬교 예배당 안nbsp▲nbsp몰몬교 예배당에 있는 예수상 앞nbsp▲nbsp예배당 안에서 기도하시는 스님nbsp몰몬교 성전은 시내에 위치에 있는 반면에 유타주의 주청사는 언덕위에 위치해 있어 한바퀴 둘러보고 다시 시내로 내려왔는데 내려오는 길이 무척 아름다웠고, 산꼭대기에서 시내까지 쭉뻗은 대로가 인상적이엇습니다.nbspnbsp▲nbsp솔트레이크시티 주청사 앞nbsp솔트레이크시티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워새치 산맥에 어제밤 눈이 내려 설산의 풍경도 참 멋있고 공기도 아주 시원해서 꼭 한국의 강원도 속초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nbspnbsp▲ 저 멀리 설산이 보이시죠?nbspnbsp몰몬교 성전 및 시내 관람 후에 오늘 묵을 숙소인 진amp스티브 로빈슨님 댁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갓 구운 빵으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 후에 따님 등 가족 모두와 함께 사진촬영도 하였습니다.nbspnbsp▲nbsp진amp스티브 로빈슨 부부와 가족들nbsp오늘 강연은 Comfort Inn에 딸린 미팅룸에서 있기 때문에 로빈슨님의 운전으로 강연장에 도착하니 입구에서부터 자원봉사자들이 스님께 인사를 하면서 즐겁게 강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장, Comfort Innnbsp총 150여명이 참석했는데 아담하고 소박한 Comfort Inn의 미팅룸이 가득찰 정도로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4시에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고 큰박수와 함께 스님께서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유타에는 몰몬교도들만 사는 줄 알았는데 솔트레이크시에는 몰몬교도와 비몰몬교도가 반반정도라고 하고, 한국 성당도 하나 있고, 한국 교민들이 다니는 개신교 교회도 6개 정도 있다고 합니다.nbspnbspnbspnbsp솔트레이크시티 강연은 미국인 제럿 힐리스님의 사회로 강연을 시작했는데, 약간 서투른 한국어 발음으로 강연 시작을 알리고 공지안내 등을 하였는데 서투른 한국 말투가 더 정감이 느껴져서 강연 시작부터 청중들을 모두 웃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제럿 힐리스님은 몰몬교 성도 출신으로 작년에 LA정토수련원에서 묘당법사님과 함께 깨달음의 장 수련을 한 비한국인 1호 깨달음의 장 출신자이며, 천일결사자로서 현재 해외지부 사무국에서 해외정토회 홈페이지 관리와 해외지부 번역팀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이번 솔트레이크시티 강연은 재럿 힐리스님과 이미옥님 부부가 총괄 책임을 맡아서 모두 준비해 주었는데, 한국말도 잘해서 이번 강연에서 사회도 맡게 되었습니다.nbsp▲nbsp강연 사회를 맡은 재럿 힐리스님, 정토회 깨달음의장 제1호 비한국인 수련생입니다nbsp먼저 스님께서는 오늘 몰몬교도들도 많이 참석했는데 종교를 떠나서 인생의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얘기를 나눠보자고 하시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일요일인데 오전에는 교회들 잘 다녀오셨습니까? 교회 다녀오시라고 오후에 강연을 잡았습니다. 솔트레이크시티는 늘 한번 와보고 싶었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인연이 닿지 않아 오지 못하다가, LA에서 뵈었던 이곳의 몰몬교 성도님 중 한 분이 초청하셨었는데 일정을 잡지 못하다가 이번 세계 100회 강연을 준비하면서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장소도 호텔 사장님이 제공해주셨다고 하고, 준비해주신 분들도 대부분 몰몬교 성도님들이 준비해주셨습니다, 그 분들께 감사드립니다.nbspnbspnbsp여기에는 종교가 없는 분도 계실 것이고, 불교신자인 분도 계실 것이고, 몰몬교 성도도 있을 것이고 개신교 신자도 있을 것이고 천주교인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종교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종교가 어떻든지 간에 저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문제는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싶어요. 여러분들은 조금 더 행복하려고 이 먼 미국 땅에 와서 사시는데, 여기에 와서 조금 더 행복하세요? 와서 살아보니까 미국에 온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죠? 한국에 있을 때에는 미국만 가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막상 미국에 와보면 그렇지 않고, 젊은 학생들은 입학시험만 끝나고 대학만 가면 고생이 끝난 줄 알지만 그렇지 않죠. 또 결혼만 하면 끝날 것 같지만 오히려 더 복잡해집니다. 아이들이 다 크고 늙으면 걱정이 없겠지 하지만 어때요? 늙어도 별로 끝이 안나죠? nbspnbsp이게 우리 인생입니다. ‘이렇게 되면 행복할거다’, ‘이렇게 되면 자유로울 것이다’는 것은 우리의 꿈이고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처하든 지금 행복할 수 있어야 하고, 지금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흘러도 늘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데 죽을 때까지 행복을 맛보지도 못하고 꿈만 꾸다가 죽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더 이상 꿈만 꾸지 말고 직접 행복을 경험해보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nbspnbsp그래서 우리들이 갖는 고뇌들을 드러내놓고 대화를 해보면서 괴로움의 원인을 발견하고 시정하면 조금 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문제로 오늘 얘기를 해보려고 해요. 자, 그럼 시작해봅시다.”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8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어려움이 있지만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꿈을 향해 계속 가야할지 현재 처해있는 상황을 감안해서 현실에 순응해서 살아가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스님의 조언을 구하는 분, 불교의 목표는 해탈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해탈을 이루기에는 부담이 있는데 현실에서는 어떤 목적을 갖고 수행을 해야 하는지 묻는 분, 과거에 잘못한 일이 있어 사과를 하려고 하면 상대는 기억도 못할 때가 있는데 과거의 잘못한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자녀들이 모두 몰몬교 신도이고 주위에서는 기독교를 믿으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거부감이 있는데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불교에서는 최고의 경지가 해탈과 열반이라고 하셨는데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중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묻는 분, 스님이 된다는 것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인데 모든 사람들이 스님이 되어 아이를 낳지 않으면 세상이 망하지 않는지, 스님이 되면 부모님이 마음이 아플텐데 그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묻는 분, 직원이 600명인 회사에 모두 미국인이고 혼자 한국인인데 일을 하다보면 언어적인 장벽도 있고 잘 섞이지 못하고 나는 조직의 진정한 구성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은nbsp 곳곳에서 웃음이 빵빵 터지면서 많은 분들이 유쾌해했습니다. 그 중에서 남편이 원하는 삶과 내가 원하는 삶이 서로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문답 속에서 인간의 심리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nbspnbsp“남편이 이직을 해서 이곳 솔트레이크에 이사 온 것까지 해서 제가 이사를 다닌 것이 미국과 캐나다 각각 3번씩이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이사올 때 이번이 마지막이냐고 물었더니 이곳에 뼈를 묻는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더니, 남편은 이번에 또 캐나다에서 직장을 갖고 싶다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도 캐나다에 인터뷰를 하러 갔어요. nbsp사람마다 다 가치관과 추구하는 행복이 다르기 때문에 남편이 원하는 것은 저도 해주고 싶어요. 만약 남편이 아파서 누워있을 때 ‘해줄 걸’ 하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런데 저도 결혼을 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서 남편이 원하는 대로 도와주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하지만 또 다른 데로 옮긴다는 것은 저는 원하지 않는 삶입니다.nbspnbsp결혼을 했으면 거기에 책임이 있으니 제가 원하지 않더라도 거기로 따라 가야 하는 것인지, 일 때문에 떨어져있는 부부도 있고 기러기 아빠도 있는데 꼭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일은 아닌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남편이 원하는 삶을 존중해주고 싶고, 또한 남편도 제가 여기에 남겠다고 하니까 저를 존중해주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부부관계에 있어서 올바른 결론인지 듣고 싶습니다.”nbsp“그것을 혼자 사는 저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합니까? 왜냐하면 혼자 사는 사람은 계속 혼자 살아도 이렇게 사는데, 조금 떨어져 사는 것이 뭐가 문제겠어요? 그래서 저한테 묻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평생 떨어져 살아도 별 문제 없는 사람한테 조금 떨어져 사는 것이 문제가 있습니까 묻는다면 ”문제가 없습니다“ 하고 얘기하지요. 떨어져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이혼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기가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저는 아이도 없고 결혼도 안하고도 잘 살잖아요. 자기는 이혼을 하더라도 그래도 결혼이란 걸 한번 해 봤잖아요. 저보다 훨씬 낫죠. nbspnbspnbsp그런데, 결혼을 할 때 헤어져서 살려고 결혼을 했는지, 같이 살려고 결혼을 했는지가 문제예요. 예를 들어, 혼자 사는 스님도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잖아요, “내가 결혼을 좀 해도 될까요?” 질문자에게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실 건가요?”nbsp“결혼하고 싶으면 하시라고 하겠습니다”nbsp“그래요. 결혼을 하는 것은 자유죠, 그렇지만 그러려면 승복을 벗고 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런 것처럼 헤어져서 사는 것은 좋습니다. 헤어져서 살려고 한다면 이혼을 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nbspnbsp그러다가 같이 살 조건이 되면 다시 결혼을 하면 되지요. 그러면 어떤 좋은 점이 있습니까? 따로 살 때 남편도 캐나다에 있을 때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이 자유로워지고, 질문자도 여기서 좋은 남자가 있으면 자유롭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대 1년, 2년, 3년이 지나서 같이 살 조건이 되었는데도 서로 너만한 사람이 없어서 혼자 살고 있다고 한다면 같이 살아도 되겠죠. 그런데 결혼은 해놓고 따로 살면, 남자 생각이 나고 여자 생각이 날 때 약간 도덕적으로 죄를 지어야 하잖아요. 양심에 가책을 받는 행동을 해야하지 않습니까? 안 그러려면 스트레스를 받지요.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로를 속박하면서 사느냐는 것입니다.nbspnbsp행복하려고 결혼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결혼을 해서 괴로운데 그것을 억지로 참고 살려고 합니까? 그러니까 선택은 ’그래도 이 남자와 같이 사는 게 좋겠다’ 생각하면 배우자가 캐나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질문자가 따라가면 됩니다. 다만 이것은 성인인 두 사람의 얘기니까 이렇지 자녀가 있으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됩니다.nbspnbsp그리고 솔트레이크에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오자고 해서 왔을 뿐이잖아요. 남편이 오자고 하지 않았으면 처음부터 올 일도 없던 곳이죠. 그래서 여기 구경도 잘 했고요. 저 같으면 배우자가 1, 2년마다 직장 위치를 바꾸면 좋을 것 같은데요. LA로 이민 와서 죽을 때까지 LA에서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해요. 이 넓은 나라에서 여기도 한 번 살아보고, 저기도 한 번 살아보고, 캐나다에서도 한 번 살아보고, 멕시코에서도 한 번 살아보고 하면 좋잖아요. ‘남편 덕에 온갖 곳을 다 구경한다’ 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바꾸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nbspnbspnbsp그리고 남편이 “여기 뼈를 묻겠다“ 했던 것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본인이 여기에 올 때 그 때의 입장은 뼈를 묻겠다고 왔던 것이지요. 질문자가 ”또 이사 갈거니?” 하니까 거짓말로 “뼈를 묻겠다”고 말한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본인은 그 때 진실하게 말을 했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변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변한다는 것이 나쁜 것인가요? 아니에요.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원래 변하는 것입니다. 변하는 것이 사람인데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니까 괴로운 거예요. 본인 마음을 한번 살펴보세요. 자꾸 바뀝니까? 아니면 늘 똑같습니까? 하루에도 열 두 번도 더 바뀌는 것이 사람 마음이지 않습니까?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늘 바뀌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생각할 때 ‘남편이 또 변덕이다’가 아니라, ‘남편이 여기 몇 년 살아보니까 또 다른 데에 살아보고 싶구나’하고 이해하면 되는 거예요. ’나쁘다‘, ’좋다‘ 하지 말고요. 마음이 늘 바뀌는 사람에게 이번에는 죽을 때까지 이렇게 하기로 확실히 결정하라고 하면 안 됩니다. 이런 남자와 여행이나 하면서 산다 생각하면 됩니다.nbspnbsp그래도 남편은 직장을 구해서 가잖아요. 무작정 가서 실업 상태에서 질문자가 먹여 살려야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직장을 구해서 가니까 그렇게 큰 문제는 없어요. 외교관을 하면 매 3년마다 바꾸잖아요, 그것도 전 세계로요. 그것도 바꾸는 것이잖습니까. 위치가 바뀌더라도 직업을 하나로 유지하면 문제가 없고 직업을 바꾸면 문제가 되나요?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nbsp다른 한편으로 남편은 어렸을 때 가족관계나 가정 분위기 때문에 정서불안이 있을 수 있어요. 정서불안 때문에 직장을 자주 바꾸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그렇다면 여자를 자주 안 바꾸는 것만 해도 굉장한 사람이예요. nbspnbspnbsp이런 경우에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이미 형성된 자기 정서에 맞게 사는 방법이 있어요. 두번째는 명상을 하던지 해서 불안한 마음을 치유해서 한 곳에 조금 더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고요. 저희 수행자 그룹에 들어와도 늘 이런 정서가 있는 사람은 한 부서나 한 지역에 파견되면 1년을 못 있고 사람을 시비하거나 업무를 시비합니다. 그래서 옮겨주면 괜찮다가 또 갈등을 일으켜요. 또 옮겨줘도 그렇고요. 이렇게 옮겨줘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지도자가 그 사람의 성향을 고려해서 처음부터 그 성향에 맞게 1년씩 배치 근무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언을 해주는 겁니다. “너는 이런 카르마가 있는데, 이런 업식에 따라 살래? 아니면 고칠래?” 하고, “고치겠다”고 한다면 ”그래, 이 불안 심리를 고치겠다고 한다면, 이번 3년은 하늘이 무너져도 거기에 있어야 한다” 고 약속을 합니다. 그렇게 해도 1년도 못 가서 엉덩이가 들썩들썩 해요. 그래도 이렇게 약속을 해서 수행 지도를 하면 그 사람이 몇 번의 위기를 넘기고 그곳에서 3년을 버티게 돼요. 이렇게 한번 고비를 넘기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훨씬 그 간격이 길어집니다. 이것은 일종의 치료이지요.nbspnbsp저같이 매일 옮겨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3년 정도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요, 제 견해는 그렇고요. 질문자 본인의 의견을 말씀해보세요.”nbsp“일단 저도 스님이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싸움이 없었습니다. 인정을 해주니까요. 그런데 결혼생활 10년 동안 저도 저 나름대로 학교를 다녔고 그것을 활용하고 싶은데 남편이 너무 자리를 옮기니까 그걸 못합니다. 학교에 가서 좀 더 영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또 뉴욕에 저희 집 식구들이 다 같이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데, 저도 같이 가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결혼을 했기 때문에 같이 있는 것이 저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했고, 사랑했기 때문에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10년을 어디를 가던지 감사한 마음으로 따라다녔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또 캐나다를 가면서는 ”거기서 몇 년을 있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1년 있다가 또 옮길 거니까 자리를 잡고 싶으면 너는 자리를 잡으라” 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혼생활에 있어서 이렇게 떨어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여쭤보고 싶습니다”nbsp“옳지는 않아요. 옳지는 않지만 서로 요구가 다른 상황이잖아요. 부부가 한 방에서 자는 게 좋지만, 한 사람은 덥다고 20도로 맞추자고 하고, 나는 추워서 25도로 맞추자고 해요. 아무리 해도 이게 해결이 안 돼서 22.5도로 맞춰서 한 사람은 조금 더워도 참고, 한 사람은 조금 추워도 참자고 합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두 사람은 헤어져야 할까요? 아닙니다. 다른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한 사람은 20도로 방을 하나 쓰고, 한 사람은 25로 방을 쓰면서 볼 일이 있을 때에만 잠깐 잠깐 만나는 생활도 있습니다. nbspnbsp이것이 서로가 합의되면 부부생활이 잘못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방에서 자는 것이 원칙이지만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두 사람의 체질이 다르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분이 의논을 해보세요.nbspnbsp기본적으로는 본인이 맞춰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내가 춥더라도 스웨터를 입고 상대방의 온도에 맞추면 특별히 시비할 것이 없어요. 그런데 ‘나는 도저히 그렇게는 못살겠다, 얼어죽겠다’ 싶으면 중간이라도 맞추자고 남편에게 얘기해보고, 남편이 ‘나는 그러면 더워서 못 산다’고 한다면 방을 각각 쓰고 가끔 보자고 하는 방법도 있다는 거예요. 그것도 합의가 안 되면 헤어지는 수밖에 없는데,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까 각 방을 하나 쓰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해볼 수 있습니다. 주말 부부도 아니고, 월말 부부도 아니고, 연말 부부가 되겠네요. 연말 부부라 해도 결혼 안 한 나보단 낫잖아요. 저는 1년이 지나도 만난다는 아무 예약도 없이 사는데요. 그러니까 질문자도 ‘스님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 문제 없지요nbspnbspnbsp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성인 사이에서는 서로 합의를 한다면 문제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따로 따로 살면 따로 사는 데 습관이 붙어요. 그러다가 같이 살려면 서로 잘 안 맞아요. 그래서 따로 사는 것은 앞으로 완전히 따로 사는 쪽으로 발을 디디는 결과로 갑니다.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요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처음에는 직업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살다보면 습관이 붙게 되고 생각이 바뀌게 돼요. ‘직업 때문이니까 떨어져 살아도 되겠지’ 생각하지만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이것이 임시가 아니라 정상화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와서 나에게 호의를 표할 때 부부가 한 집에 살 때와 떨어져서 6개월 동안 외롭게 지내고 있을 때에는 심리가 다르게 작동을 하게 되죠. 즉 그것이 좋고 나쁘다는 것과 관계 없이 따로 살 확률이 높은 쪽으로 첫 발을 디디는 것이라는 것은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인간은 늘 환경에 따라 의식이 바뀌는 존재예요.nbspnbsp제가 볼 때에는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고, 죽어도 그렇게 못살겠다면 질문자도 본인의 권리가 있기 때문에 주말부부를 해도 됩니다. 또 떨어져 살아도 별 문제 없겠다 싶으면 아이도 없으니까 이혼을 해도 됩니다. 괜찮아요. 종교적, 도덕적인 것들에 크게 구애받을 필요는 없어요. 단, 자식이 있다면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이것은 종교 때문도 아니고 도덕적인 문제 때문에도 아니예요. 하나의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가 나처럼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한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이 때는 부부가 자기들 좋은 대로 해서는 안 돼요. 이럴 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이 안 낳은게 다행이네요, 아주 현명했어요 자, 어떻게 하고 싶어요?“nbsp“그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이에요. 그래서 스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했습니다.”nbsp“저는 제 의견을 말했고, 결정은 본인이 하면 됩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고민을 해봐도 결정이 잘 안 날거에요. 그 이유는 비율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지요. 비율차이가 크면 와서 묻지도 않았겠지요. 본인이 이미 결정해버렸겠죠. 여기서 물을 때에는 같이 살아야 되는지, 따로 살아야 할지가 4951쯤 돼서 결정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서 묻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어떻게 결정해도 큰 차이는 없어요.nbspnbsp한편으로 이 경우에는 어떻게 결정해도 후회를 할 것입니다. 반반이기 때문에 결정한 쪽으로는 좋은 건 눈에 안 보이고 부족한 것만 눈에 보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을 결정해야 후회가 없을까’ 하는데 그런 건 없어요. 어느 쪽을 결정해도 후회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를 결정하고 거기에 따른 과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즉 남편을 따라가게 되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되는 과보를 받아야 하고, 떨어져 살면 외로움이나 앞으로 일어날 여러 문제들에 대한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고 하면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동전을 던져서 결정하면 돼요”nbsp“감사합니다”nbsp문답이 진행될수록 점점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스님께서는 늘 이쪽 측면에서도 보게 해주고 저쪽 측면에서도 보게 해주고 위에서도 보게 해주고 아래에서도 보게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고 나면 마음은 어느새 가벼워져 있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점점 가벼워지는 즉문즉설 강연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주변 상황을 바꾸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다며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어떠셨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고요. 그런데 우리들은 이 행복과 자유를 남이 준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신이 조금만 더 잘하면 내가 더 행복할텐데’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당신 탓 하다가 계속 올라가면 하나님까지 올라갑니다. 이것은 누군가로부터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이라는 것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오는 거예요.nbspnbsp나의 기대심리를 조금 낮추면 만족도가 높아져요. 상대방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실직하면 짜증이나죠. 그런데 상대방이 죽고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무섭기도 하고 운전하는 것도 문제고, 다른 사람 만났을 때 혼자 산다고 얘기하는 것도 싫잖아요. 그러니까 ‘살아 있는 것만 해도 복이다’ 라고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내가 어떤 기준, 어떤 자세,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가 나의 행복도를 높이는 데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이제는 공부를 조금 하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바꾸면, 내 관점을 바꾸면, 바깥 상황을 그대로 놔두고도 여러분들의 행복도가 높아져요.nbspnbspnbsp‘저 인간 문제다’ 하는 것은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고, ‘그 인간 술은 먹지만, 다른 것은 괜찮다’ 하는 것이 긍정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면 우선 자신의 심리가 행복해지고 상대에 대해서도 존중해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우리 몸에서 신선한 에너지가 나타납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스트레스가 심해지고요. 세상이 어떻든 간에 ‘지금 살았다’는 것은 대성공이예요. 지금까지 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머진 부차적인 것입니다. 그런 긍정성 위에 움직여야 합니다. 지금 아파도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아플 수 있는 것이죠, 사업이 실패해도 지금 살아있으니까 실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살아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십시오, 그러면 행복도가 높아질 것입니다.”nbsp스님의 명쾌한 행복론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마음도 밝아집니다. 웃음을 머금은 청중들이 뜨거운 박수 갈채로 고마운 마음을 스님께 표현합니다.nbspnbspnbsp강연을 마치고 돌아가시는 분들께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서만 스님의 뵙다가 이렇게 직접뵈니 너무 좋고 감격스러웠다” 고 하였고, 또 어떤 분은 “카카오스토리 희망편지를 통해서 스님을 매일 만나고 있는데, 스님을 이렇게 직접 볼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고 하는 등 스님을 직접 만나뵙게 된 것을 모두들 기쁘게 여겼습니다. 강연 내용에 대해서도 다들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인 자리였다고 하고, 더군다나 이렇게 많은 한국인이 솔트레이크시티에 살고 있는 줄 몰랐다고 하면 다들 반가워 하였습니다. 교민들이 비교적 적게 살고 있는 도시로 갈수록 서로 만날 기회가 없는데 스님 강연을 계기로 서로 만나게 되니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되는 것 같아 참 좋았습니다. 특히 이번에 자원봉사를 했던 진로빈슨님, 김그레이스님도 이번에 서로 처음 만나게 되어 기쁘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nbsp책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사인을 해주면서 행사장에 오신 많은 분들과 인사도 하고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자원봉사자 모두와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nbspnbspnbsp자원봉사자들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시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외국인 분도 두 분이나 자원봉사를 함께 해주셨는데 스님께서는 그분들께도 단주를 끼워주시면서 특별히 더 감사한 마음을 전하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장은 Comfort Inn을 운영하고 있는 김중렬 사장님이 무료로 제공해 주셨는데 사장님께도 사인한 새로운 백년 책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행사를 후원해주신 서울식품의 스티브정님께도 새로운 백년 책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을 후원해주신 스티브정 부부nbsp그리고 스님 일행의 아침 식사와 후원을 해주셨던 김그레이스님께도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nbsp아침 식사를 제공해준 김 그레이스님nbsp또한 이번 행사의 강연 담당자로 행사 총괄을 맡아 동분서주 했던 재럿 힐리스님과 이미옥 부부님께도 각각 새로운 백년과 영문 기도 책을 감사의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을 총괄해주신 제럿 힐리스, 이미옥 부부nbsp그리고 오늘 숙소 및 점심, 저녁 식사를 준비해 준 진amp스티브 로빈슨 부부에게도 인생수업 책과 영문 기도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nbsp이후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힘들 때 TV에 나온 스님을 보고 스님의 유튜브 강연을 듣고 있었는데 유타에 온다는 것을 알고 은혜를 갚고 싶어서 봉사신청을 하게 되었다 고 합니다. 어떤 분은 봉사를 하면서 종교에 대한 여러가지 갈등이 해소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시고, 또 어떤 분은 이곳은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많아서 홍보하고 봉사자를 모으고 하는 과정이 힘들었는데, 한 분이 지인들을 모아주어서 큰 힘이 되었다 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일요일은 아무런 행사나 활동을 하지 않는 날이고, 가족과 함께 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가하신 것 같아 봉사한 보람이 더 컸다 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다음에도 스님께서 유타를 방문해주시면 좋겠다고 요청을 했습니다. 오늘은 외국인이 4명이나 자원봉사를 함께 해주셨는데, 모두 스님의 유튜브 법문을 듣고 아내와 남편이 행복해진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 가족들도 기쁘게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해외에 사시는 분들일수록 유튜브, 팟캐스트, 카카오스토리, 희망편지 앱 등 SNS를 통해 스님의 법문을 더 많이 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뒷마무리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하다고 거듭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셨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 진amp스티븐 로빈슨 부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잠시 내일 일정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셨습니다.nbspnbsp▲nbsp숙소인 진amp스티브 로빈슨님 댁 마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죠?nbsp내일은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강연이 있기 때문에 새벽 6시 15분에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70번째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 71번째 강연은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타코마에서 또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nbsp
2014.10.30 세계 100회 강연(66) 일리노이 대학교 Urbana-Champaig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66번째 강연이 일리노이주 일리노이 대학교 얼바나삼페인에서 열리는 날입니다.오늘 강연이 열리는 일리노이주는 인구가 약 1,241만명으로 중부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로, 미국 전체에서는 다섯 번째로 많으며, 주 대부분의 인구가 시카고와 그 주변 지역에 밀집해 있습니다. 일리노이주의 지형 자체가 평야라서 토네이도도 매년 정기적으로 나타나고, 산이나 언덕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집들이 바람 막이 차원에서 나무를 집 주변으로 빙 둘러 키우는 것이 일반적일 정도입니다. 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시카고이며, 주도는 스프링필드이고 얼바나샴페인 지역도 전자공학, 경영학, 법학으로 유명한 일리노이 대학교 캠퍼스가 있는 도시라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습니다.nbsp▲nbsp옥수수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지역답게 광활한 옥수수 밭이 펼쳐졌습니다.미국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 율리시스 S. 그랜트, 그리고 현직 대통령인 바락 오바마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주로 유명하며, 특히 유색 인종들에게 매우 유서 깊은 주인데, 노예제 폐지와 인종차별 금지를 꿈꾸다가 암살당한 링컨의 주에서 훗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정치 경력을 쌓고 대통령에 오르며, 미국 역사상 아프리카계 미국인 상원의원 6명중 3명이 이 주에서 선출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나 유독 시카고만 진보적입니다. 문제는 일리노이 인구가 1,200만인데 그 중 시카고 인구가 무려 900만이라서 결국 실제로는 민주당이 우세한 지역입니다.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일리노이 대학교 얼바나샴페인은 은 일리노이주에 있는 주립 대학으로, 일리노이 대학교 시스템 중 가장 큰 캠퍼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카고에서 남쪽으로 약 3시간 떨어진 일리노이주의 중부지역인 얼바나와 샴페인 이라는 작은 두 농촌도시 사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학생을 포함한 교민은 약 4,000명 정도입니다. 이 도시의 인구는 약 23만명 정도이며, 그래서 학교의 공식명칭 또한 일리노이 대학교 얼바나샴페인이며, 학생수는 약 4만명이고 그 중 대학원 과정에 만여명이 재학 중이며, 미국 최우수 주립대학교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고, 공학부분은 대학원과 학부 모두 전국 최고의 수준입니다.nbsp오전 7시 30분에 Inn에서 제공하는 아침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8시 30분에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오늘 강연이 열리는 일리노이대학교 얼바나삼페인으로 출발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제 하루 종일 틈틈이, 그리고 강연이 끝나고 숙소인 Inn으로 와서도, 오늘 아침에 다음 장소로 이동하시기 전에도, 손에서 원고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원고를 보고 계십니다.nbsp▲nbsp오늘 오전 이동 거리 인디애나폴리스 gt 알바나샴페인, 112마일nbsp nbsp지도보기 httpsgoo.glmapsWPQAd학교까지 2시간 거리이나 1시간 시차가 있어 9시 50분에 학교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장, 일리노이 대학교의 University YMCA. 입구에서 포스터를 들고 길안내를 해주시는 봉사자 두 분이 보이시죠?오늘 강연이 열리는 일리노이대학교 얼바나샴페인의 캠퍼스에 도착하니 이곳 학생이면서 천일결사자이고 정토행자인 정가영님이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학생 휴게실에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강연 전에 스님 책을 구입해 사인 받기를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북 사인회도 강연 전부터 시작하여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스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정가영 학생오늘 일리노이 대학교 강연은 세인트루이스로 가는 길에 오전 11시 무렵 학생들을 대상으로 열렸습니다.nbsp약 200여명이 강연장을 찾았으며 강연은 1시 20분까지 이어졌습니다.nbsp일리노이 대학 뿐만 아니라 인근의 스프링필드, 인디애나의 퍼듀 대학교에서도 많이 와 강연장은 꽉 찼고 환영의 열기가 가득했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소개 영상이 끝나고 큰 박수와 함께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낮 시간에 강연을 열게 된 것에 대해 양해 말씀을 구하면서 즉문즉설 강연의 취지에 대해 안내해 주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낮 시간에 강연을 잡아서 학생들이 많이 못올 줄 알았어요. 수업 중에 강연 들으러 나왔어요? 제가 5년 전에 여기 와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어요. 저녁에 강연을 잡으려니까 도저히 일정이 안 되었어요. 그래도 이곳은 학교이니까 낮에 한번 잡아보자 해서 낮에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업에 방해가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맨날 하는 공부니까 하루 정도는 빼먹어도 돼요. nbsp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면 학습 효율도 오르니까 오늘은 지식적인 것을 조금 내려놓고 사물의 전모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키우는 지혜에 대해서 함께 대화해 보고 싶습니다. 즉문즉설에서 ‘설’이라는 말은 대화를 하면서 좀 더 진실을 규명하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말을 뜻합니다. ‘답’이라는 말과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그래서 즉문즉설은 제가 여러분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갖는 고뇌에 대해 함께 대화하면서 조금 더 진실에 접근하는데 도움이 되려고 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자, 그럼 누구든지 질문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드세요.”그러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20년 했는데 요즘은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나 하는 생각이 들고 이 일을 안 할 수는 없나 하는 생각때문에 답답한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하는 분, 대학 전공을 부모님의 의지에 따라 결정했고 지금은 전공에 대해 회의가 들면서 자꾸 부모님 탓을 하게 되고 이제부터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두려움이 앞선다는 분, 3개월 전에 20년지기 친구와 사소한 계기로 싸우고 난 후 아직도 화해를 못하고 말도 서로 못하고 있는데 허무감이 너무 커서 고민인 분, 부처님께서 창조주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 있는지, 일상생활을 하면서 업이 계속 발생하는데 이것을 청소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만인의 업을 짊어지는 것을 부처님께서 언급한 것이 있는지 묻는 분,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는데 인연이 흩어지는 순간 허무해지면서 인생이 허무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인연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선의를 베푼 것이 조롱이나 멸시로 돌아와서 힘들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이 많은 깨우침을 주었기에 자세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살아가면서 선한 행위를 추구하며 살려고 하지만, 그렇게 하는 건 순진하다거나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 그렇다거나 현실을 잘 파악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사람에게 선의로 대한 것이 조롱이나 멸시로 돌아오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선의를 베푼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베푼 것이니까 이걸로 상처를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현실에서 마음을 컨트롤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nbsp“좀 막연하네요. 구체적인 사건을 얘기해 주실래요?”nbsp“룸메이트와의 사이에 돈 문제가 생겼습니다. 공동으로 쓰고 있는 물건에 대해서, 가령 렌트비와 인터넷 사용료를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배려해서 제가 먼저 내고 나중에 돌려받으려고 했는데, 정작 나중에는 못 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nbsp“똥 누러 갈 때 마음하고 똥 누고 나올 때 마음이 서로 다르다고 하잖아요. 돈을 빌려갈 때는 정말 고맙다고 하면서 3일 뒤에 준다고 했는데 빌려간 뒤에는 태도가 바뀌잖아요. 그러니까 빌려 준 사람이 받으러 다녀야 해요. 일단 내 손에 있을 때라야 내 돈이지 상대 편에게 넘어가면 내돈이 아니예요. 돈에는 원래 니꺼 내꺼가 없는데 손에 쥐면 내꺼가 됩니다. 그런데 나는 내 손에 있던 걸 주었기 때문에 아직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상대는 자기 손에 쥐고 있기 때문에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늦게 돌려주려고 하는 겁니다. 인간의 심리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불해야 할 돈은 가능한 늦게 지불하려고 하고, 받을 돈은 빨리 받고 싶은데, 현실은 지불하는 돈은 바로 줘야 하고 받을 돈은 빨리 못 받고 그렇게 되지요. 자기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불할 돈은 늘 제 시간에 지불하고 받을 돈은 늘 제 시간에 못 받는다고 느껴요. 이것은 인간의 정상적인 심리입니다.nbsp일단 상대가 돈 없다고 해서 대신 좀 내어 달라고 해서 지불했잖아요. 그런데 달라고 하면 상대는 자기 것을 달라는 것처럼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한번 해보고 인간 심리가 이렇구나 하고 알고 약속을 못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됩니다. 이런 관계를 매번 반복하다는 것은 자기가 바보인 겁니다. 이건 착한 것이 아니고 바보에 속합니다. 착한 것과 바보는 다릅니다. 착하다는 말은 남에게 해를 안끼치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예요. 그런데 선행을 베풀 때는 항상 보상을 바랍니다. 그래서 보상이 안 오면 굉장히 섭섭하고 미워지죠. 그래서 착하다고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착한 사람이 오히려 악한 사람보다 더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nbsp그래서 질문자는 지금 자기 인생의 갑 노릇을 못하고 있는 겁니다. 영악해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식투자를 할 때도 한 두번 해보고 손해보면 포기를 해야 되는데 미련을 가지면 집까지 날리고 이러지 않습니까. 그럴 때 이 사람은 지혜가 부족한 것입니다. 질문자는 착할지는 몰라도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습 효과가 없는 겁니다. 남의 돈을 떼먹으라는 얘기가 아니고 상대편의 성향이 그러면 내가 그걸 미리 감안을 해야 돼요. 친구지간이라면 “그래. 뭐 너가 돈이 없으면 내가 낼게” 이렇게 하든지, 한두번 해보고 안 되면 화낼 필요도 없고 상대가 낼 때까지 “이번엔 니가 내것까지 대신해서 내라. 니가 내고 나면 내가 줄게.” 이렇게 얘기하면 되지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얘기해야 방법이 나옵니다. 또 어떤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더 얘기해봐요.”“어떤 일을 할 때도 상대가 도움을 요청해서 도와주었는데 정작 상대는 ‘이건 내가 원했던 퀄리티가 아닌데’ 하는 얘기를 듣게 된다든지요.”“내가 어떤 여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마음이잖아요. 그런데 내가 그 여성을 사랑한다고 그 여성도 나를 사랑해야 합니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내 마음이니까 그건 좋아요. 그러나 상대가 나를 사랑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은 상대의 권리에 속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너도 나를 좋아해라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질문자는 지금 친구지간에 거래를 하고 있는데, 지금 손해가 좀 났다는 이런 얘기네요. 그러니까 사랑이라고 이름을 붙일 때는 거래를 하지 말아야 돼요. 내가 백번 전화했는데 상대는 나한테 한 번도 전화를 안 하더라도 그걸 갖고 논하지는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nbsp그렇지 않고 장사를 하려면 똑똑하게 해야 됩니다. 아예 장사를 안 하든지, 장사를 하려면 좀 똑똑하게 하든지요. 그런데 자기는 지금 장사를 하면서 사랑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배신감을 느끼는 겁니다. 친구지간에 우정을 얘기하면서 친구를 또 나쁘다고 얘기합니다. “나는 술을 세 번 샀는데 너는 왜 한번도 안 사느냐”고 합니다. 술을 한 번도 안 산 그 친구만 나쁜 사람이 아니라 질문자도 문제인 겁니다. 왜 그럴까요? 친구지간에 무슨 술 몇 번 샀는지를 따집니까? 그건 친구 사이가 아니고 거래를 하는 것이죠. 친구라면 거래를 멈춰야 되고, 친구가 아니라 거래를 하겠다면 장사를 똑바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사랑이다 우정이다 하면서 실제로는 거래를 해요. 그래서 늘 횟수를 따지고 액수를 따집니다.nbsp자기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선행이라기 보다는 선투자를 하는 식입니다. 먼저 돈을 주고 나중에 이자를 붙여서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자는커녕 본전도 안 돌아오니까 본인도 괴롭고, 남들이 보기에도 바보라고 그러는 겁니다.”“대가를 바라지 않고 손해를 보더라도 하는 것을 호의라고 생각했는데 스님은 그게 호의가 아니라는 말씀인건가요? 저는 대가를 바라지는 않았는데 욕을 듣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nbsp“그것도 대가를 바라는 것이지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이 진짜 호의라는 것입니다. 대가는 꼭 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좋은 일을 할 때 어떤 대가를 바래요? 칭찬 받는 대가를 바래요. 그런데 칭찬이 안 돌아오고 욕이 돌아오니까 기분이 나쁜 것이지요.”nbsp“칭찬은 아니더라도 욕은 하지 말았으면 했습니다.” nbspnbsp“그것도 내 요구이지요. 칭찬은 아니더라도 욕은 하지 말아달라는 그 말은 이자는 못 붙여줘도 원금은 갚아달라 이 얘기 아닙니까. 그런데 니가 어떻게 원금도 안 갚냐 이런 거래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이건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걸 내 문제로 봐야 내가 이 문제를 풀 수 있지 그 사람의 문제라고 보면 자기가 그런 인간을 어떻게 다 고칠 수 있어요? 같이 살자고 룸메이트를 했지 그 사람의 성격 고쳐줄려고 룸메이트 한 게 아니잖아요. 자기는 바깥으로는 착할지 몰라도 자기가 그려놓은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겁니다. 자기 머리속에 그려진 모습으로 세상을 보는데 이것이 실제 세상과는 안 맞아서 고뇌가 생기는 겁니다. 내가 그린 모습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고 인식을 해야 됩니다.” nbsp nbsp“스님 말씀 들으니까 거래면 거래고 호의면 호의이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nbsp“그런데 현실의 인간은 성인이 아닌 이상 누구나 다 거래를 하게 되어 있어요. 바깥으로는 호의를 베푸는 것 같지만 머리 속으로는 전부 거래를 해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줬는데 딱 건져내자마자 내 보따리 내놔라 했을 때 기분이 나쁘다. 그러면 이건 거래입니다. 진짜 호의란 어떤 것일까요? 저 사람 건져주면 분명히 내 보따리 내놔라 할 것을 알고도 건지는 것이 진짜 호의입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야 되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면 나한테 복 된다’, ‘저 사람이 나한테 고맙다고 할 거다’, 이것이 대가를 바라고 있는 마음입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은 나한테 비난이 오고 손실이 와도 그건 해야 될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비난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손익 계산을 하지 말고 살려야 되면 살려야 하는 겁니다.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울 건 도와야 합니다. nbsp nbspnbsp예수님은 2천년 전에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고 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예수님처럼 지향점은 ‘남을 도울 때 대가를 바라지 마라’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불경에서는 ‘무주상보시’ 라고 했고, 성경에서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라고 했는데, 이 말은 아무도 모르게 하라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뜻입니다. 손이 발 씻겨주고 발한테 대가를 바라지 않잖아요. 세수 해주고 얼굴한테 대가를 바라지 않잖아요. 그것처럼 자기 일로 하는 것이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남한테 조금이라도 호의를 베풀면 대가를 바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종속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나는 성인을 지향하지만 내 친구들은 아직도 보통 사람들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해 둬야 합니다. 나는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더라도 그들이 대가를 바라며 호의를 베푸는 것은 받아줘야 합니다. 그들은 성인이 아니니까요.nbsp지금 질문자가 약간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성인이 아닌데 성인처럼 흉내를 내서 그런 겁니다. 머리는 성인의 생각을 하고 마음은 세속의 생각을 하니까 ‘나는 좋은 생각으로 도와줬다’ 이러지만 마음에서는 대가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지금 고민이 생기는 겁니다. 그럴 때 나를 보고 ‘내가 대가를 바라서 이런 괴로움이 생기는구나’ 이렇게 자각하면 괜찮은데, 그걸 갖고 친구들한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씩이나 불평을 털어놓으니 멍청이 같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겁니다. 그런 불평을 자꾸 함으로해서 자기가 더 바보가 되는 겁니다.”“알겠습니다.”nbsp질문자가 활짝 웃자, 청중들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줍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다시 한 번 질문자에게 내가 이기적이듯이 상대도 이기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갈등이 줄어들 수 있다며 덧붙여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nbsp“사람은 이기적입니까? 이타적입니까? 이기적이에요. 그렇다면 이기적인 것을 이기적이라고 아는 것이 진리입니다. 여러분들은 이타적이라야 진리라고 생각하지요? 그렇지 않아요. 진리란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것을 이기적이라고 알고, 어리석은 것을 어리석다고 아는 것이 진리입니다. 꿈을 꿈인 줄 아는 게 깨달음이예요. 내가 나를 보고 ‘이기적이구나’ 라고 알면 다른 사람도 이기적이겠다는 것을 알게 되니 다른 사람이 이기적인 것을 갖고 내가 시비를 안 하게 됩니다. 이기적인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nbsp우리는 방안 온도부터 음식의 간까지 서로 다른 점이 천가지 만가지가 넘습니다. 상대가 덥다고 하면 에어컨을 틀어주고 내가 약간 추워도 옷을 입고 적응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가 약간 춥다고 하면 온도를 올려주고 내가 옷을 벗고 적응할 수 있게 서로가 준비되어 있어야 같이 사는 게 됩니다. 같이 살려면 최소한 절반 정도는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이 제일 낫고요. 그러면 아무 갈등이 없어요. 그런데 이게 안 되기 때문에 같이 사는 게 다 힘든 겁니다.사람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것을 버려야 세상에 평화가 오는 게 아닙니다. 내가 이기적일 때 남도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면 상대가 이기적인 것을 내가 수용할 수 있습니다. 상대에게 “너는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 하며 따지는 것 자체가 이기적인 겁니다. 인간의 심성 속에는 물론 이타심도 있고 이기심도 있습니다만 이타심은 저 무의식의 아래에 있고, 이기심은 그 상위층에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일상적으로는 이기심이 밖으로 많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아주 위기에 처하면 인간은 이타성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이타심으로 다 돌아가자고 주장하면 안돼요. 인간은 다 이기심을 갖고 있다고 인정을 하고 그래서 상대가 이기심을 가진 것을 이해하면 갈등이 덜 생깁니다. 상대는 이기심을 갖고 있는데 내가 어느 정도까지 맞출 거냐의 문제일 뿐입니다.”스님의 답변을 끝까지 듣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고 시원해집니다. 마치 어두웠던 방안에 불을 켜니 환히 밝아지는 것과 같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6명의 질문에 모두 답하고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사물을 긍정적으로 보세요. 항상 자기 존재에 대해 긍정적이여야 합니다. 첫째 가장 긍정적인 것은 안 죽고 지금 살아있는 겁니다. 아침에 눈 탁 뜨자마자 ‘오늘도 살았네’ 해보세요. 그럴 때 기쁨이 일어납니다. 이런 긍정 위에 인생을 살게 되면 행복해집니다. 살아 있으니까 지금 공부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공부도 너무 잘하려고 하기 때문에 늘 힘든 겁니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잘하려고 하는 것은 공부를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성적을 잘 받으려고 하는 겁니다. 실력이 100밖에 안되면서 150의 결과를 낼려고 하면 늘 위축되어 살 수 밖에 없잖아요. 실력이 100이면 80정도 결과가 나오면 잘 나오는 겁니다. 기대치를 낮춰야 만족이 커지고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이 커요. 누구도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늘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잖아요. 아무 것도 안 하고 밥만 먹고 공부만 할 수 있는 시기는 인생 전체에서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소중한 시기를 행복하게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nbsp스님의 제안에 청중들도 “오늘도 살았네” 라고 따라 하며 한바탕 크게 웃습니다. 2시간 20분 동안의 강연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어느새 사람들의 닫혀있던 마음을 활짝 열어주었습니다.nbsp책 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nbsp그리고 오늘 행사의 총괄책임을 맡아준 정가영님에게 수고 많았다고 하시면서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오늘 일리노이 대학 강연 총괄을 맡은 정가영님또한 오늘 일리노이 대학교 강연은 이곳 한인 불교학생회에서 후원하여 정가영님과 함께 행사를 준비하였는데 스님께서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불교학생회장 오승진님께도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한인 불교학생회 회장 오승진님이곳 교민으로서 행사 준비에 많은 도움을 주신 이동우님께도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강연 준비를 함께해주었고 알바나샴페인에 살고 있는 이동우님그리고 강연장 곳곳에서 자원봉사를 해준 분들 모두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nbsp자원봉사자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시면서 수고 많았다고 격려를 해주셨습니다.nbsp뒷정리를 마치고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청춘콘서트 책을 선물받고나서 유튜브를 통해 스님 법문을 듣고 있다가 강연 소식을 알게 되어 봉사할 마음을 내었다는 한 청년은 스님의 법문을 오늘 처음으로 직접 들어보았다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깨달음의장 수련에 참가했던 한 분은 매일 기도하고 있던 중에 스님을 직접 뵐 수 있어서 좋았고, 또 봉사할 수 있어서 더 기뻤다고 하였습니다. 대학원생 2명은 책임자가 너무 열심히 홍보하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자원봉사 신청을 했는데 법문도 좋았고 강연에 많은 분들이 오신 것을 보고 참 기뻤다고 하였습니다.nbsp특히 강연을 책임지고 준비했던 정가영님은 강연에 오신 분들의 밝아진 얼굴을 보니 너무 기쁘고 감사한 날이었다며 강연 준비하면서 걱정도 많았지만 그 이상으로 보람차고 행복하고 좋았다 면서 너무 뿌듯해 하고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 앞에서 스프링필드에서 오신 분들을 만나 단주를 선물했습니다.스님께서는 강연장을 나와 차안에서 대기하면서 봉사자들이 마련해준 삼각김밥과 호박죽으로 점심을 드시고 오늘 저녁 강연을 위해 2시에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로 서둘러 떠나셨습니다.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66번째 일리노이주 일리노이 대학교 얼바나샴페인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67번째 강연은 잠시 후 저녁 7시에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립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0.28 세계 100회 강연(64) 콜럼버스 Columbus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64번째 강연이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열리는 날입니다.오하이오주는 면적은 116,096㎢이며, 인구는 2012년 추계로 11,544,951명이고, 미국 전체의 7위에 해당하여 인구밀도가 높은 편입니다. 주의 남쪽 경계를 따라 미시시피강의 지류인 오하이오강이 흐르고, 북쪽에는 오대호의 하나인 이리호가 있으며, 미국 굴지의 수상 교통의 동맥이 북쪽과 남쪽에 나 있어 수운 교통이 편리하고 석탄과 철 산지에 인접하여 공업이 일찍부터 발달하였습니다. 주의 대표적인 도시는 신시내티, 콜럼버스, 클리블랜드의 3대 도시인데, 주 내에서 각각 남부, 중부, 북부에 위치하고, 이들 3대 도시가 저마다 오하이오의 최대 도시라고 하여 라이벌 의식도 강합니다.nbsp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결정적인 영향력이 있는 선거인단을 보유한 주가 오하이오 주이며, 정치 성향은 공화당과 민주당 한쪽에 기울지 않고 표심이 자주 변하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 격전지로 통하는 주의 하나입니다. 미국의 정계에서는 오하이오 징크스가 존재하며 오하이오가 가면 미국이 간다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7명이 이 주를 고향으로 하고 있어 대통령의 어머니라는 별칭도 있고,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한 곳이기도 하여 항공기의 발상지라는 점도 강조하는데, 주민들은 독일, 아일랜드, 영국, 폴란드 계통들이 많이 살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인구의 12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중 한국교민은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약 21,000명 정도입니다.nbsp▲nbsp오늘 이동거리 피츠버그 →nbsp콜럼버스, 227마일nbsp nbsp지도보기 httpsgoo.glmapsNk6ZQ한편 오늘 강연이 열리는 콜럼버스는 주 중앙부에 위치한 주도로서.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학 중 하나인 오하이오 주립대학교가 있으며, 학생수가 5만명 이상으로 미국 최대규모의 대학 중 하나입니다. 콜럼버스는 원래 행정중심지, 대학도시 정도로 알려진 도시였으나, 20세기 중반 이후 도로교통이 발달하면서 인구가 집중되어 시내인구가 클리블랜드와 신시내티를 초과하여 시내인구 기준으로 오하이오주 최대의 도시가 되었으며 가끔 조지아주 Columbus와 혼동되기도 합니다. 콜럼버스에는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 재학중인 한국유학생을 포함하여 교민은 약 3,000여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nbsp오전 6시 30분에 아침식사를 하고 7시에 콜럼버스로 출발하였습니다. 새벽부터 음식을 준비해준 권병구, 박영순 부부에게 하룻밤 숙소 및 식사를 제공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인사를 드렸습니다. 어제 강연이 있었던 성김대건 피츠버그 한인성당은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데 스님 일행이 콜럼버스로 갈 때 지나가는 길목인데 어제 성당에 놓고 온 물품이 있어서 잠시 성당에 들리니 신부님께서 미리 전화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에 보는 성당과 낮에 보는 성당이 많이 달랐는데 예쁜 국화가 성당 입구를 장식하고 있어 가을 분위기가 흠씬 풍겨 참 좋았습니다.nbsp다시 한번 신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서둘러 출발하여 콜럼버스 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 펜실베니아주에서 오하이오주로 오는 길에 이른 아침 길 위에서 맞이하는 일출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장관이었습니다. 어제 저녁의 일몰도 멋졌지만 오늘 아침의 일출도 참 아름답습니다. 매일 먼 거리를 이동하다 보니 이렇게 길 위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입니다.nbsp12시 30분에 콜럼버스 정토법당에 도착하니 오봉산 총무님, 고창미 전총무님, 정은주님 등 신도님들이 1년만에 법당을 찾은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도 그동안 다들 잘 지냈냐고 하시면서 반가워 하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신도님들이 준비해놓은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법당에서 새책 원고교정 업무를 보시다가 간단히 저녁식사를 한 후 강연장으로 출발하셨습니다. nbsp오늘 강연이 열리는 Holiday Inn의 미팅룸에 도착하니 입구부터 아주 깔끔하게 포스터를 붙여놓고 안내판도 준비해놓고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어느 해보다 열심히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봉사자들의 노고가 보였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장, Holiday Inn그리고 클리버랜드에서 오신 박광종님과 조영미님이 안내대에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디트로이트에서 피츠버그 가는 길에 클리버랜드가 있어 사실 클리버랜드에서 강연이 열리기를 기원했는데 무산되어서 아쉬운 마음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다음에는 꼭 클리버랜드에서도 강연이 열릴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nbsp▲nbsp클리버랜드에서 오신 박광종님과 조영미님오늘 강연에는 약 1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인근에 오하이오 주립대학교가 있어서 그런지 젊은 직장인과 젊은 부부, 그리고 청년들의 참가가 연세 드신 분들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젊은 청년들의 질문이 많아 어제 피츠버그에서처럼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 속에서 강연이 이루어졌습니다.nbsp7시가 되자 소개 영상과 함께 스님께서 큰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눠보자고 하시면서 스님께서는 이렇게 여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까 비가 후두둑 와서 오기 싫으셨죠? 아마 그래서 안 오신 분들도 꽤 될 거예요. 오늘 우리의 대화가 ‘오면서는 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갈때는 집에 있는 것보다는 잘 했다’ 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nbsp누구든지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문제를 던지고 얘기해 보세요.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진실을 규명해나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고뇌하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들어가면 되지만, 안 되었다면 마이크를 쥐고 계속 물어야 돼요. 자기 견해가 있으면 주장도 하고요. 그렇게 진실을 규명해나가기 위해서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다만 고집해서는 안돼요. 처음가는 산길을 찾아가듯이 미지의 세계를 함께 찾아가는 자세로 임하면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도 단정해서는 안돼요. 미지의 세계이니까 누구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길이 맞다, 저 길이 맞다’ 할 수 없어요. 같이 찾아가서 정상에 오르면 좋고, 꼭 정상에 오르지 못했더라도 중턱까지라도 갔다 오면 좋은 일이지요. 자, 얘기를 시작해봅시다.”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남편을 따라서 미국에 왔고 개인적으로 불자이지만 여기서는 교회를 다녀야 해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데 교회를 다녀야 할지 고민인 분, 미국에서 회사생활 5년이 지나고 나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든다는 분, 결혼을 해야 할 나이이지만 결혼할 마음이 별로 생기기 않는데 주위와 부모님은 결혼하라고 요구해서 결혼을 꼭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자유롭게 여자도 만나고 싶고 술 마시고 춤도 추는 생활을 하고 싶은데 곧 취직도 해야 하고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 때문에 고민인 분, 결혼전에는 부모님이 저를 두고 좌파라고 했는데 결혼 이후 남편은 저를 우파라고 비난해서 자꾸 논쟁을 하게 되는데 어떻게 갈등없이 대응을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미국에 온지 20년 정도 지났고 부모님이 연로하시다 보니 부모님께 좋은 아들이 되지 못한 것이 굉장히 괴롭게 다가올 때가 많은데 스님은 부모님을 버리고 나오셨음에도 어떻게 이 고뇌를 풀었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남편과 함께 미국에 해외 연수를 왔지만 가정 일을 잘 도와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괴롭다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이 많은 감동과 재미를 주어서 그 내용을 자세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저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년간 여기서 공부를 하게 돼서 얼마 전에 오하이오에 왔는데요. 남편도 여기에 같이 왔고 22개월 된 딸이 하나 있습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딸도 많이 봐주시고 가사도 도와주시고 해서 수월했었는데, 여기에 오니까 제가 학생 역할도 해야 하고 딸도 돌봐야 되는데, 남편은 도와준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어 제가 많이 힘듭니다. 더군다나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돌아가면 되죠.” “그런데 제가 1년만 있다가 돌아갈 것이어서, 1년만 충실하게 쓰고 싶거든요.”“그러니까 힘들면 지금 돌아가면 됩니다.nbspnbsp“그러고 싶지는 않거든요. 저에게 소중한 기회라서요.”“만약에 ‘설악산 정상에 올라가려다가 중턱 쯤 되니까 너무 힘든데 제가 올라가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이렇게 물으면 제가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까요? 계속 올라가면 계속 힘들 것이고요. 힘들어도 정상까지 올라가려면 계속 올라가야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꼭 올라가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올라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데요. 그러니까 힘들면 중간에 내려가도 되고요. 질문자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요. 설악산 꼭대기에도 올라가고 싶고 힘도 안 드는 그런 방법은 없어요.”“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남편이 공부를 안 하고 있어서 시간이 많으니까 저를 좀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는데요.”“그런데 남편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어떡해요? 왜 그런 사람이랑 결혼을 했어요? 남편이 조금 가부장적이라면, 인물이 조금 잘났다든지 돈이 많다든지 학교 다닐 때 학벌이 괜찮다든지 직장에서의 직위가 괜찮다든지 뭔가 고개를 뻣뻣하게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뻣뻣한데도 불구하고 질문자는 그 사람을 좋아했잖아요. 살림 좀 도와달라고 그 남자와 결혼한 것은 아니란 말이에요. 인물이 괜찮아서 결혼했든 돈이 많아 결혼했든 nbsp다른 것들이 좋아서 결혼했기 때문에, 남편이 지금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남편이 문제라는 생각은 전혀 잘못된 생각이에요.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nbsp“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남편도 제가 인물이 좋거나 학벌이 좋거나 직장이 좋거나 하기 때문에 본인도 저와 결혼을 했을 테니까, 남편 입장에서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저를 좀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서로 맞춰가야죠.”“그렇게 하면 좋지요. 그런데 지금 그 사람이 안 그런다고 하잖아요. 안 그러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늘 날씨가 따뜻하면 좋지만 비가 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비가 와도 강연을 들으려면 여기로 와야죠. 남편은 그런 남편대로 놓아두세요. 만약 질문자가 혼자 유학을 왔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어쨌든 영어로 수업을 들었어야 했을 거고 애도 돌봤어야 했을 거고 밥도 해먹어야 했을 거 아닙니까. 그래도 남편과 같이 와 있는 것이 밤에 무서운 걸 해결해주든지 집을 지켜주든지 운전을 해주든지, 같이 안 온 것과 비교했을 때 어느 것이 더 나은지 한번 판단해 보세요. 이럴 바에는 같이 안 오는 게 나았겠어요? 허수아비라 하더라도 그래도 있는 게 낫겠다 싶어요?nbsp“같이 있는 게 더 낫죠.”nbsp“그래요. 그 정도면 그럼 밥은 차려 줘야죠.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요. 내가 한국인인데 아무리 영어 공부를 해도 태어날 때부터 미국에 살지 않은 이상 그만큼 영어를 잘하기가 어렵잖아요. 그건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스님이 지금 세계를 다니면서 100강을 하는데, 힘들까? 안 힘들까요? 당연히 힘든 것인데, 힘들어서 못 다니겠다고 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이건 처음부터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시작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할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그래 하자’ 하고 시작했는데, 그렇다면 아파 죽어서 기어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 되는 거잖아요. 중간에 그만둘까 망설이면 안 되죠. 모든 사람이 이런 스케쥴은 불가능하다고 처음부터 말렸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겠다고 시작을 한 것이니까 제가 지금 남을 한탄할 수가 없지요. 처음부터 이런 고생을 할 것이라고 알고 시작한 거니까요.nbsp그것처럼 질문자도 공부하러 외국에 왔으니까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거기다가 애기 엄마로 왔으니까요. 애기 엄마이면 집에서 애기만 키우지 뭐하러 직장까지 다녀요? 애기 엄마가 직장을 다니려고 하면 애기 엄마 역할과 직장 생활을 다 해야 하니까 힘든 것은 당연한 거잖아요. 그래도 자기는 쉬운 애기 엄마 역할만 하기 보다는, 조금 어렵지만 직장생활을 겸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거 아니에요? 그것만 해도 힘든데 외국 유학까지 하겠다고 한 거잖아요.nbsp여기 올 때 남편이 뒷바라지를 해주기로 약속하고 왔습니까? 아니면 그냥 ‘가자’ 하고 왔습니까?nbsp“약속은 했지요. 본인이 시간이 더 많으니까 본인이 역할을 더 많이 하겠다고요.”“그래요. 역할을 많이 하겠다는 것이 밤에 잠도 같이 자주고, 가끔 집도 지켜주고 그러겠다는 것 아닙니까? 제가 보기에는 남편이 역할을 많이 하고 있네요. 지금 남편이 한 달만 한국에 가 있으면 남편의 역할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남편에게 항상 ‘아이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하고 생각해야 돼요. 지금 남편은 굉장히 고마운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오히려 본인이 더 큰 소리를 칩니까? 그러니까 질문자가 묻는 초점이 ‘어떻게 조금 마음 편하게?’ 였잖아요. ‘아이고, 여보 나 따라와서 힘들지? 같이 와줘서 고마워’ 라고 생각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nbsp“아마 내일부터는 또 안 될 거예요. 그러니까 절을 해야 돼요. 자꾸 절을 하면서 ‘아이고, 여보 고맙습니다. 저를 지켜줘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바쁜 와중에도 밥을 해서 남편을 먹여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경호원은 잘 먹여야 돼요. 운전수도 잘 먹여야 돼요. 남편이 지금 운전도 해주지 경호해주지 밤에 애인도 해주지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해줍니까. 애를 안 봐줘도 급할 때 애가 울면 봐줄 거 아니에요? 오늘 강연에 올 때에도 남편에게 아이 맡겨 놓고 왔을 거 아닙니까? 남편이 없었으면 아이를 어디에다 맡겨놓고 오겠습니까? 이렇게 많이 이용하면서 왜 다른 소리를 해요? 절을 해야 돼요. 그런데 지금은 법문듣고 알겠는데 집에가서 남편 하는 짓을 보면 또 그렇게 생각이 되지 않으니까 항상 아침마다 절을 하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해보세요. 그래야 욱 하다가도 ‘그래도 고마워’ 하게 됩니다”스님의 답변이 끝나자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가 쏟아지고, 질문자도 “감사합니다” 하며 활짝 웃었습니다.nbsp그리고 마지막에 스님께서 정리말씀을 하시는 와중에 질문자의 여동생이라는 분이 다시 스님께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형부가 언니에게 잘해주고 있는 겁니다.” 라고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스님께서는 다시 질문자에게 못다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닫는 말씀까지 갈무리해주셨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조금만 인생을 잘 살피면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개선해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앞에서 질문하신 분이 남편이 집안일을 안 돌봐준다고 자꾸 불평을 하는데, 자꾸 그렇게 불평을 하면 나에게 주어진 이 좋은 해외연수의 기회가 굉장히 힘들고 상처입고 부부갈등의 원인이 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만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고맙게 여기면 불평불만이 안 생긴다는 겁니다. 불평불만이 있는 것을 참으면 확대는 안 되지만 나한테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주게 됩니다. 자꾸 참으면 내상을 입게 되고, 외부로 자꾸 터뜨리면 외상을 입히게 됩니다. 외상을 입히는 것은 둘다 다치니까 나쁜 것이고, 내상을 입으면 내가 곪으니까 그것도 나쁜 겁니다. 내상을 치유하려면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고맙게 여기면 아예 불평불만이 안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고마운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nbsp남편은 100을 해주지만 내가 150을 원하기 때문에 불만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나 내가 50을 원하면 남편은 굉장히 잘해주는 사람이 됩니다. 기대를 잔뜩 하고 보니까 불만이 생기는 겁니다. 지금 질문자는 남편이 오는데 내가 희생하고 따라왔다는 생각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불만이 더 큰 겁니다. 그러니까 질문자는 ‘남편 덕에 미국 유학도 하고 미국 구경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습니다. 거기다가 남편 뒷바라지만 해야 하는데 학교 공부까지 시켜 주잖아요. 그러니 더더욱 고맙다고 생각해야죠. 기대가 너무 높아져서 생긴 문제예요. ‘내가 지금 너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 이 생각이 무의식에 깔려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잘해줘도 객관성을 가질 수가 없고 ‘내가 고생한다, 너 때문에 내가 손해봤다’ 이게 깔려 있게 됩니다.nbspnbsp그러니 가볍게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 따라 미국 구경도 왔고 거기다가 공부할 기회까지 주었으니 ‘여보, 밥도 내가 하고 육아도 내가 다 할게’ 이렇게 생각하고 고맙게 여기세요. 고맙게 생각하는 게 문제의 해결책이에요. 불만을 갖고 참고 있기 때문에 지금 힘든 겁니다. 여동생 분이 아주 얘기를 잘해주셨어요.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봤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얘기거든요.nbsp내가 원하는 대로 안되어서 답답한 마음은 저도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질문자는 ‘내가 희생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남편에 대한 기대가 자꾸 올라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딱 뒤집어서 ‘남편 덕택에 참 좋은 경험한다’ 이렇게 매일 기도를 해보세요. 이게 인생을 올바르게 사는 지혜입니다. 사람을 너무 위대하게 보면 안 됩니다. 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심리를 잘 알아서 서로 고맙게 생각을 하면 사는 게 재미있지요. 불평불만으로 얘기하지는 마세요. 그러나 남편한테 힘들다고 마음나누기는 해도 돼요. “여보, 당신 때문에 여기 와서 좋은 구경도 하고 참 좋기는 한데 학교도 다니고 당신 뒷바라지 하고 애도 키우고 이 세 개를 다 못하겠는데, 학교를 그만둘까?” 이렇게 나와야 마음이 누그러지지요. 질문자가 좀 맹하네요. 부부 지간에는 서로에 대해 배려해주는 약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참으면 안돼요. 불만을 참으면 나중에 터집니다. 너무 억누르지 말고 가능하면 ‘고맙지만 저도 힘든 것이 있어요’ 이렇게 얘기하는 건 괜찮습니다. 자,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어느덧 시간은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있었고, 청중들은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큰 박수를 다시 보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질문자에게 스님의 답변을 듣고 어땠는지 물어보니 “한결 명쾌해지고 밝아졌고, 일단 남편에게 감사 기도를 시작해보겠다” 고 합니다. 참 다행이다 싶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다른 분들께도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지난 3년간 콜럼버스에서 열린 스님 강연에 다 참가했는데 어느 해보다 재미있었고 아주 큰 도움을 받아 간다”며 기뻐했습니다. 젊은 분들도 나이든 분들도 다 좋아했는데 특히 청년들에게 물어보니 “부부관계에 대해 말씀해주시면서 부모, 자식, 며느리의 복잡한 관계를 명쾌하게 재정립 해주셔서 참 좋았다” 고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책 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셔서 강연장을 찾아준 모든 분들께 사인을 해주고 사진촬영에도 응해주셨습니다. 오늘 행사 총괄을 맡은 현명진님께 수고 많았다고 하시면서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 총괄을 맡아주신 현명진님그리고 동부 5개 지역 강연의 총괄을 맡고 있는 콜럼버스정토회 오봉산 총무님께도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nbsp미주 동부지역 5개 강연 총괄을 맡고 있는 콜럼버스정토회 오봉산 총무님그리고 행사장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 준 자원봉사자들 모두와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nbsp봉사자들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시면서 격려의 말씀도 해주셨습니다.nbsp뒷마무리 후 자원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대부분 정토법당에 나오는 분들과 그 지인들이여서 다들 편안하게 서로 업무를 나누고 화합된 분위기 속에서 행사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강연장도 아담하여 준비하기가 좋았고, 처음에는 사전 질문자가 없어서 걱정들을 하였으나 스님께서 질문할 수 있게 분위기를 잘 조성해주어서 질문자도 7명이나 되었고, 질문 내용과 답변이 모두 좋아서 봉사자들도 각자가 가지고 있던 고민들이 함께 풀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학생 봉사자들은 좀 더 가볍고 새로운 마음을 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직장 일이 바빠서 홍보랑 사전준비를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던 봉사자 분들은 오늘만이라도 함께 도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낮에 비가 많이 온 관계로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참석했는데, 인근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갑작스런 큰비로 인해서 못 온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나누는 분들도 있었습니다.nbsp아직 스님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여 뒷마무리를 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수고했다”고 인사를 건내고 스님께서는 먼저 숙소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늘 숙소인 오봉산 총무님 댁에는 10시 10분에 도착하여 잠시 내일 일정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스님께서는 새책 원고 교정을 늦게까지 보시다가 일과를 마치셨습니다.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64번째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 65번째 강연은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립니다. 그럼 내일은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