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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30 세계 100회 강연(36) 시라큐스 대학교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36번째 강연이 미국의 뉴욕주인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오늘 강연이 있는 시라큐스는 미국의 북동부에 위치한 조그만 대학 도시입니다. 시라큐스 대학교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도시는 아시안 이민자 12,000명, 세계 119개국에서 와 있는 20,000명의 유학생들, 그리고 북한 및 아시안, 아프리칸 난민들의 정착지이라고 합니다. 시라큐스의 중심이 되는 시라큐스 대학교는 감리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사립대학교로서 미국내 50개주와 전세계 119개 나라에서 유학을 와 공부하고 있는 다인종 학교이며 연구 중심대학입니다 .nbsp오전 7시 15분, 최말순 보살님과 유정희님이nbsp어제 로체스터 손정애 보살님이 준비해준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여, 스님께서는 성당 식당에서nbsp신부님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셨습니다. 신부님은 혼자 이곳에 계시기 때문에 저희와 함게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아침 식사 후에 각자 사용한 숙소를 깨끗이 청소하고 다른 사람이 와서 이용할 수 있도록 정리를 하였고, 식당도 처음 있던 자리 그대로 정리를 하고, 저희는 9시에 신부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버팔로 한인 성당을 출발하여 시라큐스로 출발하였습니다.뉴욕주의 북쪽을 ‘업스테이트’라고 하는데 업스테이트에서 큰 도시가 왼쪽부터 버팔로, 로체스터, 시라큐스, 그리고 뉴욕주의 수도인 알바니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이번 36번째 강연은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열립니다. 시라큐스로 가는 길에 온타리오 호수와는 다르게 남북으로 나란히 5개의 호수가 병렬로 서 있는 Finger Lakes 의 중지에 해당하는 Ceneca Lake를 잠깐 들러서 잠시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뉴욕과 캐나다는 호수와 강으로 유명한데 특히 미국은 전세계 담수의 60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향후 물 부족으로 세계가 고통에 빠질 것인데 물이 많은 미국이 부럽기도 하였습니다.nbsp다시 길을 들어 1시에 오늘 강연의 총 책임을 맡고 있는 이희승님의 집에 도착하니 이희승님이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희승님은 2008년 석사과정에 재학중일때 좋은벗들 미국지부에서 인턴을 하여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는데, 그 후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박사학위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이번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세계 100회 강연 중 시라큐스 대학교의 강연 준비를 맡게 되었습니다. 박사학위 마지막이라 아주 바쁜 가운데도 불구하고 많은 자원봉사자를 모아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 일행은nbsp한국의 조선경님께서 정성스럽게 보내준 밑반찬과 장아찌로 점심 식사를 하고 각자 업무를 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온 원고 및 워싱턴DC에서 있을 전문가 포럼에서 사용할 원고 등을 검토하고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하고 강연장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아주었고 스님도 자원봉사자들의 수고를 격려하였습니다.nbsp휴게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에 스님께서 7시에 연단에 오르니 참석자들이 큰 박수로 시라큐스 대학교 방문을 환영하였습니다.nbsp지금 스님께서 방문하고 있는 지역은 예년에 비해 아주 따뜻하여 더운 여름날씨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학교 강연장에 에어컨이 너무 세게 나오는 것 같아서 스님 목소리가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스님 목소리가 조금 나아지고 있는 중인데 다시 목이 다치실까 염려되었습니다.nbsp“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강연을 학교에서nbsp하다보니 대부분이 학생이겠네요. 보통 해외 강연을 할 때 뉴욕 주변은 맨하튼, 퀸즈, 뉴저지를 방문하는데 뉴욕 북쪽에는 한 번도 강연을 안해서 버팔로와 시라큐스를 이번에 처음으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시라큐스 대학교에는 한반도문제연구소가 있어서 북한에서는 현직 관료가 오고 미국은 전직 관료가 와서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많은 노력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북한에서 온 유학생들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자, 그럼 관심가는 주제를 말해 보세요. 함께 얘기를 한번 해봅시다”nbsp이렇게 인사말을 하신 후 곧바로 청중들로부터 인생 고민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처음에는 사람이 많이 오지않을 것이라 예상해 자원봉사자가 18명이여서 한명씩 데려오기 하여 36명을 예상했는데 그 2배인 76명이 왔습니다.nbsp오늘은 총 8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돈이나 명예를 한번 잡아보라고 하시는데 자신은 행복이 중요한 것 같아 고민인 21살 청년,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위로 하고 계시는데 스님은 어떤 걱정이 있고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묻는 분, 역사학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많이 느낀 후 한국사회는 창조력을 가질 수 있는 희망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분, 감리교에서 은퇴한 목사인데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을 강조하는 것과 같이 불교에서의 극락정토가 갖는 위상이 궁금하다는 분, 로스쿨을 다니고 있는데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가서 대기업으로부터 고액연봉을 받으며 일할지 미국에서 적은 연봉을 받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좋을지 고민인 분, 본인도 박사과정이고 아내도 박서과정이다 보니 서로 자존심이 강하고 다툼이 많은데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조언을 구하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마음이 불안하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공부를 할 때는 어떤 마음가짐이여야 하는지 명확한 관점을 잡아 주셨습니다.nbsp“박사과정에 있습니다. 고등학교 이후로 공부를 한지 15년이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불안해지고 가족이 있으니까 마음도 급해지는데, 이렇게 불안한 청년들에게 조언을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욕심을 내기 때문에 그렇지 않느냐 싶어요. 시험 같은 것 안치고 그냥 자기가 궁금해서 역사책을 막 읽는다든지, 우주에 관심이 있어서 천문학 책을 열심히 읽는다든지, 생명의 현상에 대해서 너무 너무 관심이 있어서 생명의 시작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생명의 기본단위는 어떤 작용을 하는지가 궁금해서 이 책도 보고 저 책도 보고 한다면 전혀 불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몰두되어 있고, 공부할 때 심리가 가장 안정되어 있습니다.nbsp그런데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서라든지 공부가 목적이 아니고 공부가 하나의 수단이 되어 공부를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되니까 마음이 불안하게 됩니다. 빨리 끝내야 하는데 뜻대로는 안되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겁니다. 뽀족한 수가 없어요. 공부하기 싫은데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해요?nbsp질문자의 입장에서 들으면 깜깜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공부는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합니까?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싫어도 키워야 합니다. 그것은 생명의 현상입니다. 이런 것은 싫어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부라는 것은 싫으면 안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억지로 하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nbspnbsp만약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 할 때 자기가 아는 수준으로만 쓰겠다고 하면 글쓰는 것이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자신이 아는 것이 100인데 150의 논문을 쓸려면 논문 쓰는 것이 굉장히 힘들죠. 늘 첫 페이지를 못 넘기게 됩니다. 썼다가 또 지우고, 썼다가 또 지우고를 반복합니다. 여러분들도 지금까지 시험을 주욱 쳐봤잖아요? 실제로 내가 가진 실력이 100이라고 할 때 테스트를 해보면 80이 나오면 많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실력이 100인데 120을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평생 시험을 쳐도 시험 잘 쳤다고 느낄 때는 별로 없잖아요. 이번에는 또 이거 실수하고, 이번에는 또 저거 실수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늘 있는 일이에요. 우리의 실력이 100인데 개개인은 다 120씩 나오기를 바라고, 실제로는 사람의 실력이 100이면 80만 나와도 잘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100이라는 점수를 따야 합격한다면 자기 실력을 120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논문을 쓸 때도 아는 만큼 그냥 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일단 아는 만큼 끝까지 써놓고, 읽어보면서 다시 개선을 해야 합니다.nbsp첫째, 원하지 않는 것을 해서 생긴 문제이고, 둘째는 욕심입니다. 능력이상의 성과를 벌려고 하니까 심리적 압박도 받고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게 되는 것입니다.nbsp옛날에는 미국이나 유럽의 문명 수준이 한국보다 100년 정도 앞섰습니다. 그럴 때는 여기 유학 와서 몇 년 공부해서 학위 받아 한국에 돌아가면 죽을 때까지 그 노트 갖고 써먹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점점 문명의 격차가 좁아져서 지금은 거의 동격에 와 있는 것도 있고 대부분 23년 차이 밖에 안 나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배워 가서 한국에서 그대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은 많아야 23년이고, 아예 써먹지를 못할 수도 있어요.nbsp여기는 선진 문명이고 우리는 후진 문명이라, 그래서 우리는 선진 문명을 따라가는 모방 시스템이었습니다. 모방을 할 때는 외우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학교 교육은 대부분 암기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독려를 하면 기간 단축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압축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격차가 거의 근접했어요. 이것을 뚫고 넘어가야 하는데, 우리는 뚫고 넘어갈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체가 되는 것입니다. 일본은 20년 전에 이미 도달했다가 지금까지 정체되어 있잖아요. 정체되면서 사회가 답답해지니까 우경화로 갑니다. 한국 사회도 아마 이 상태가 몇 년 더 지속되면 아마 극우적 성향이 많이 나타날 거예요.nbsp이제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실질적으로 어떤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 즉 창조력입니다. 남의 것을 베껴 서 와서 써먹는 것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합니다. 모방이라는 것은 열 개를 그대로 베끼면 아홉개는 맞고 한개 틀릴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틀리는 것이 용납이 안됩니다. 그런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실험에 있어서는 100개 중에 1개 성공하기도 어렵습니다. 99개는 실패합니다. 실패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야 창조가 나옵니다. 창조적 사고를 할뿐만 아니라 사회 분위기도 실패를 받아내 줘야 합니다.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창조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뚫고 나가면 한국이 문명의 선두 주자로 나올 것이고, 이것을 못 뚫고 나가면 저성장에서 정체되다가 후퇴로 갈 것입니다.nbsp한국과 미국 사이에 격차가 많은 분야일수록 학위를 따서 한국에 돌아오면 유효기간이 조금 길 것이고, 한국와 미국의 격차가 거의 나지 않는 것은 거의 쓸모가 없을 겁니다. 창조성은 자발성에 근거해야 창조가 나오지 억지로 하는 것은 모방은 가능하지만 창조는 안됩니다. 아무리 기술 수준이 우수해도 새로운 것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것을 모방하여 6개월 안에 그것보다 더 잘 만드는 것은 지금 가능합니다. 그러나 회사의 구조와 시스템이 모방을 위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창조를 할수 없어 지금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nbsp문명의 중심에서는 창조력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문명이 늘 흥망성쇠가 있는 겁니다. 그러면 문명의 중심에서 너무 변두리가 아닌 문명의 중심 바로 곁에 있던 곳에서 창조력이 생깁니다. 선진 문명을 모방하고 자신의 고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보더라도 이집트 문명이 쇠락하면서 에게해로, 에게 문명이 쇠락하면서 그리스로, 그리스 문명이 쇠락하면서 로마 문명으로 갔습니다. 로마 문명이 쇠락하면서 오늘날 유럽 문명으로까지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면에서 지금 한국은 문명의 일류가 아니고 일류 옆에 붙어서 모방하고 있는데 nbsp다음 문명을 만들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위치에 있다고 봅니다. 불교와 기독교가 충돌하고 전통과 현대가 동양과 서양이 충돌하는 위치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직 우리에게 창조가 안 나오는 이유는 모방에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방은 시효가 거의 끝났습니다.nbsp그래서 여러분들이 연구할 때도 정말 그 분야에 관심 있어서 연구를 집중하는 그런 자세일 때만이 연구를 통한 자기 진로가 열릴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빨리 그만두는 게 낫습니다. 왜냐하면 시간 낭비하고 국가적으로도 손실입니다. 현재 자기가 연구하는 분야를 억지로 하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가지고 굉장히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하고 연구하는 그런 자세로 해보세요. 점수에 연연하지 말고 연구에 재미를 부쳐야 합니다.nbsp그런데 한국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의사가 되기 때문에 의사가 되어도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성형외과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몰립니다. 수입을 많이 얻으려니까 의료사고, 과잉진료, 보험사기 이런 것들이 끝도 없이 계속 됩니다. 이것은 의사가 돈을 잘 버는 수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돈 중심으로 가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문을 하는 사람은 학문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쪽으로 학문을 하셔야지 그게 아니라 억지 공부는 심리적으로 너무 압박을 받게 됩니다. 또 박사 학위를 따더라도 한국에 돌아왔을 때 실제로는 대학 강사 자리도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제 말은 그만두라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억지로 시작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내 일이니까 적극적인 마음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nbspnbsp성경의 말씀을 빌리면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주라” 이런 말씀입니다. 내가 여기 올 때는 부모님이 보내서 주인이 아닌 종의 마음으로 왔다고 하더라도, 오늘 이 강연을 듣는 순간부터는 이 공부가 내것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궁금해서 내가 필요해서 학문을 하는 것으로 전환을 해야 학습효과도 나고 머리도 창조적으로 돌아가고 심리적인 불안감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하게 되면 누구나 정신적으로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억지 공부를 해서 효과가 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딱 바꾸어서 자기 공부화 시켜서 내가 궁금하고 내가 재미있는 마음을 내어서 공부를 하면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명상을 하거나 절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이유는 그것은 임시 처방입니다. 굉장히 심리가 불안해서 임시 처방이 필요할 때는 절을 하거나 명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논문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는 어떤 처방도 일시적 효과 밖에 안 납니다. 치료가 되려면 내가 거기에 재미를 붙이고 내가 궁금해 하고 그래야 합니다. 그렇게 전환을 하면 심리도 안정이 되고 학습 효과도 오릅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을 조금 달리 생각했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되는 시기가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이런 기회를 좋게 활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힘들어하지 말고 심기일전해서 재미있어 하면서 보내세요.“질문자의 불안한 표정이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스님의 답변에 마음이 많이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청중들도 질문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줍니다.nbsp그리고 강연을 마치면서 스님께서는 ‘이민 생활의 스트레스’를 언급하며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면 행복해져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떤 재앙이 닥쳐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재앙이 바로 복이 되어 버립니다. 한국 생활에 비해서 이민 생활은 무의식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따지면 별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요. 그런데 심리적 불안이 무의식적으로 있습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일가친척이 없고 이런 것들이 늘 심리적으로 불안을 야기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믿을 것이 돈 밖에 없어집니다. 그래서 돈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집니다. 그런 것들을 심리적인 치료를 해가면서 안정을 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미국에 왔다고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나이 든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결혼했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의 상황을 변화시켜서 행복해지려고 하지 말고, 현재 상태로 놔두고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있으니 우리는 그 길을 찾아나가자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이 행복해야 합니다. 이 기회에 공부를 마음껏 해보자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억압적으로 공부하지 마세요. 재미를 내어서 집중했으면 합니다.”nbsp목소리가 갈라지고 탁한 가운데 스님께서는 2시간 20분 동안 강연을 하셨습니다. 강연 후에 사인회가 마련된 장소로 이동하여 청중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촬영도 함께 하였습니다.nbsplt왼쪽이 홍재민님, 오른쪽이 이희승님gt사진 촬영 후에는 이번 행사에 자원봉사를 한 봉사자들 18명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또한 봉사자 한명 한명에게 단주를 끼워주면서 감사의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번 시라큐스 대학교 강연은 대학원 한인학생회와 공동 주관으로 진행하여 홍재민 학생회장이 많은 수고를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감사의 선물로 사인을 한 책을 선물로 전달하고, 이희승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내일 강연을 위하여 먼저 자리를 떠나시고, 묘덕 법사님과 임금이 지구장님이 봉사자들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봉사자들은 모두들 “청중들이 내가 갖고 있는 고민을 대신 질문을 해주는 것 같아 마치 내가 질문한 것처럼 좋았다”고 합니다. 특히 유학 생활의 어려움,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서 불안감이 많았는데 스님의 답변 속에서 길을 찾은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중간고사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총 18명의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하였고, 시라큐스에서 1시간이나 떨어진 코넬 대학교에서도 스님께 질문하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이번에 자원봉사를 한 학생들은 “공부하기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강연준비를 하면서 공부가 가장 쉬운 일인 것을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로 바빠서 얼굴보기도 힘든데 이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서로 모이고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36번째 시라큐스 강연도 잘 진행되었습니다.nbsp내일 37번째 강연은 뉴저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열립니다. 동시 통역으로 외국인과 스님의 즉문즉설이 펼쳐집니다. 외국인들은 또 스님께 어떤 질문을 할 것이며 스님은 외국인들에게 어떤 말씀을 들려줄까요? 내일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그리고 38번째 강연이 연이어 저녁에 뉴욕 맨하튼에서 열립니다.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nbsp

2014.10.02. 49,927 읽음 댓글 34개

2014.9.29 세계 100회 강연(35) 미국 버팔로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35번째 강연이 미국의 뉴욕주인 버팔로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어제 스님께서는 캐나다쪽 나이아가라폴에 도착하여 오전까지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오전 7시경에 녹두죽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저희들은 각자의 업무를 보다가 오전 11시에 미국으로 넘어가기 위하여 숙소를 나왔습니다. 미국으로 넘어가기 전에 차에서 내려 미국쪽 폭포와 캐나다쪽 폭포를 잠깐 보고 국경을 넘어 버팔로 시로 들어왔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기준으로 동북부에는 온이타리오 호수가 있고 서남부에는 이리호가 있는데 이둘은 규모도 거의 비슷한것 같습니다. 국경을 넘어 버팔로 시로 들어오니 이리호가 시작되는지 오른쪽편으로 호수가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nbsp버팔로 시내로 들어와서 한국식당을 찾아서 점심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입구에 스님의 버팔로 강연 포스터가 문 앞에 붙어 있어 더 반가웠습니다.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하고자 하였더니 사장님이 “스님 식사는 공양으로 올리는 것입니다”고 하면서 식사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은 저녁에도 성당으로 스님 강연을 들으러 갈 것이라며 저녁에 뵙겠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에 오늘 강연이 열리는 버팔로 성김대건 성당에 도착하였습니다.nbsplt버팔로 성김대건 성당gt도착하니 미주동북부캐나다동부 지구장인 임금이님과 이곳 자원봉사자들이 나와서 반갑게 스님일행을 맞아 주었습니다. 오늘 숙소는 이곳 성당 부속으로 있는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하였고, 임금이 지구장님은 오늘 행사를 총괄하기 위해서 어제 뉴욕에서 유정희님과 함께 올라와 미리 사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lt미주동북부캐나다북부 임금이 지구장님gt강연이 오후 7시에 있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어 스님께서도 숙소에서 업무와 휴식을 하고, 저희도 각자 개인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nbsp버팔로는 이리호에 면하여 화학공업이 발달한 도시였으나 이리호 인근 도시인 디트로이트, 클리버랜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화학공업이 쇠퇴하면서 도시가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곳 입니다. 그래도 근처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어서 관광사업을 하고 있으나 캐나다 쪽 보다는 훨씬 뒤쳐져 있는 느낌입니다. SUNY Buffalo 뉴욕주립버팔로대학교가 있어서 한국 유학생 약 700명을 포함하면 전체 버팔로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약 1,500명2,000명을 예상한다고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6시에 SUNY 버팔로 대학교의 Mark Nathan nbsp미국인 교수와 김욱수 교수와 잠깐 미팅을 하였습니다. Social Work를 가르치는 김욱수 교수님은 이번 행사에서 홍보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Mark Nathan 교수는 한국 역사와 동아사아 불교를 버팔로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이전에 고려대학교에서 1년간 공부할 때에 정토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이곳을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미팅 요청을 하였다고 하시면서 한국에서의 포교와 스님의 활동에 대해서 질문을 하셨습니다. 또 스님께서는 지난해 유니온 신학대학교의 초청으로 ‘기독교와 불교와의 대화’라는 컨퍼런스 참가하여 즉문즉설을 하셨던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김욱수 교수와 Mark Nathan 교수는 한국말이 유창하여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끝까지 참가하여 듣고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김욱수 교수님께 새로운 백년 책에 사인을 하여 선물로 드렸고 Mark Nathan 교수에게는 최근에 번역한 영문 기도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 전 로체스터에 살고있는 손정애님께서 준비해오신 저녁 식사를 한 후, 버팔로 성김대건 성당의 김영수 시몬 신부님과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어서 바로 1층 강연장으로 내려와서 자원봉사자들과 참가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곳 버팔로에서 강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강연장을 내어주시고 후원해주신 버팔로 성김대건 김영수 시몬 신부님의 환영사에 이어서 스님께서는 6시 50분에 큰 박수와 함께 연단으로 오르셨습니다.nbsp“만나서 반갑습니다. 학생들 손들어 보세요. 절반이나 되네요. 모두 버팔로 대학에 다니는가봐요. 이렇게 좋은 장소와 좋은 숙소를 제공해주신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100회 강연에는 성당에서 강연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작은 도시는 저희 활동가도 적고 인연도 없고 해서 남미나 소도시는 성당에서 많이 협력해주셔서 이렇게 강연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장소를 제공해주신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 감사 말씀드립니다.”nbspnbsp이렇게 인사말을 하신 후 곧바로 청중들로부터 인생고민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전부터 스님께서는 몸상태도 좋지 않고 목소리도 많이 가라앉아 있었는데 사전 미팅때부터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해서 행사를 시작하자 목소리가 더 안좋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정성을 다해 질문에 답해 주셨습니다.nbsp오늘 강연에는 총 11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성당근처에 SUNY 버팔로 대학교가 있어서 학생들의 참여가 높았고 질문도 많았습니다. 말법 시대에 부처님이 나타나면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알수 있을텐데 왜 부처님은 기간을 정해놓고 지금 나타나지 않는지 묻는 분, 성당에 사람들을 더 많이오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오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묻는 분, 작은 생물이라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배웠는데 최근에 실험을 하다가 쥐를 죽여서 충격을 먹었다며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묻는 분, 남들과 비교를 많이 해서 스스로도 힘들고 자기 자신이 더 싫어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묻는 분, 대학생 때 불상에 “오직 예수” 라는 빨간 라카칠을 하는 종교인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그들의 종교에 대해서는 일절 대화를 끊고 있는데 앞으로 교수가 되어서도 이런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건지 고민인 분, 막연한 불안감이 밀려올 때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어떻게 대처하는게 좋은지 알고 싶은 분, 외출할 때마다 문이 잠겼는지 매번 확인해야 하는 등 강박증을 앓고 있는데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묻는 분, 나눔을 실천할 때 행복을 느끼는데 남의 시선이 불편할 때가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눔을 실천해야 하는지 묻는 분,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묻는 분, 현실에서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한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이기심과 이타심의 차이에 대해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남을 돕는 길인지 성찰해 볼 수 있는 명쾌한 답변이었습니다.nbsp“이기심과 이타심이 헷갈립니다.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봉사는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길이고, 불편하더라도 내가 괴롭지 않으면 불편함을 감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달라이라마 스님은 내적 갈등이 있어도 행을 함에 있어서는 나를 우선에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헷갈립니다. 나를 존중하는 것과 이기적인 마음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요?”nbsp“원시 시대에 내가 혼자서 사냥을 하면 토끼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둘이서 협력을 하면 세 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각각 하는 것보다 협력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다들 생각을 하죠. 협력을 했을 때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협력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협력했을 때는 분배가 문제가 됩니다. 내가 세 마리를 다 갖고 싶어집니다. 내가 세 마리를 다 가지면 상대편은 한 마리도 못 갖게 되잖아요. 그러면 상대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손해를 봤기 때문에 이 사람은 다음부터는 협력을 안 하게 됩니다. 그럴 때 내가 세 마리를 갖는 것은 오늘은 이익인데 내일도 지속적으로 이익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오늘 하루로써 끝나버리는 것입니다.nbspnbsp그러면 이 분배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최소한으로 너 한 마리 나 한 마리는 가지고 증산된 한 마리를 갖고 어떻게 나눌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소는 한 마리이고, 최대는 세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 ‘내가 한 마리를 갖겠다’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본 권리에 속합니다. 내가 한 마리 이상 두 마리 이하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욕망이라고 합니다. 내가 두 마리 이상 세 마리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과욕이라고 합니다. 이 과욕을 부리게 되면 상대에게도 손실이지만 나에게도 곧 손실입니다. 그래서 과욕은 버려야 합니다. 사회제도적으로는 과욕을 못 부리게 규제를 해야 합니다. 한 마리를 갖겠다고 하는 기본적인 욕구는 제도적으로 보장을 해줘야 합니다. 기본 권리는 보장해주고 과욕은 제재를 가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기본 권리는 보장해 주지 않고 과욕은 규제를 안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과욕을 규제 안해주면 다른 사람에게 해만 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본인한테도 해가 됩니다. 즉, 이익이 지속적으로 보장이 안 됩니다.nbsp환경적으로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말하잖아요. 오늘날 우리 문명은 지구 생태계에 비하면 과욕에 속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렇게 우리가 성장을 계속하면 우리 인류 문명은 곧 종말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우리의 발전을 유지하려면 과욕은 규제를 해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한 마리와 두 마리 사이에서 어떻게 나눌 것이냐를 놓고 너와 내가 경쟁을 해야 합니다. 이상적인 것은 1.5마리를 갖는 것이지만, 이것이 꼭 현실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늘 토끼를 잡는데 너는 게을렀고,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똑같이 나눈다면 기분이 나쁘고, 좀 섭섭하고 불평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분배는 1.2대 1.8이 될 수도 있고, 1.7대 1.3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상적인 것은 1.5이지만 현실은 1.5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1.5를 향해서 분배를 해 나가야 합니다.nbsp여기서 세 마리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과욕이고 이기심입니다. 이것은 버려야 합니다. 한 마리 이상 두 마리 이하를 갖겠다고 하는 인간의 욕심은 절제를 해야지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서로 절제를 해야 1.3대 1.7로 나누던지 1.4대 1.6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혼자서 두 마리를 다 갖겠다고 하면 싸움만 일어납니다.nbspnbsp여기서 이타심은 무엇일까요? 한 마리를 갖는 것과 두 마리를 갖는 것 사이에서 이타심이 나옵니다. 나의 기본 권리도 못 찾아 먹는 것은 바보이지 이타심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도적으로 기본 권리는 보장해줘야 하고, 또 기본 권리의 보장을 위해서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 기본 권리마저도 스스로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서 희생하면 “이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마리 갖는 것과 두 마리 갖는 것 사이에서 자기 욕망을 절제하는 것도 “이타”에 속합니다. 이타심과 이기심은 완전히 다릅니다.nbsp여기 거지가 한 사람 있다고 합시다. 내가 도와주려니 돈은 없고, 안 도와주고 가려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이럴 때 어느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할까요? 자기 마음 다스리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기심이라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행복하다는 것은 이기심이 아닙니다.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즉 내가 행복해야 남을 실제로 도울 수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는데 남을 돕는다는 것은 희생의 대가를 바라는 행동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너부터 먼저 행복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우면 옆에 사람의 무거운 짐을 들어줄 생각조차도 할 수 없습니다. 옆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설령 내가 옆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도와줄 수 있는 능력도 안 됩니다. 그러나 나의 무거운 짐을 탁 내려놓아버리면 옆에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또한 들어줄 여력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의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nbsp세속에서 말하는 “이타심”과 수행에서 말하는 “이타심”은 서로 다릅니다. 세속에서 말하는 이타심은 자기도 무거운 짐을 지면서도 남의 무거운 짐을 들어준다는 것인데, 이것은 남을 위해서 자기가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이타심”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나중에 원망하는 마음을 내게 됩니다. ‘내가 이 고생을 하며 너를 도와주었는데 너가 그 은혜를 모르는구나’ 하면서 서로 원수가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수행 차원에서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수행 차원에서는 ‘내가 너를 돕는 것이 나한테 좋다’ 이런 마음이여야 합니다. 자기 희생이라는 생각을 넘어서서 남을 도울 때 이것을 수행에서는 “자리이타”라고 부릅니다. 자기를 이롭게 하는 “자리”와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가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nbsp질문자는 “도움이 많이 되었다”며 감사 인사를 했고, 스님의 대답에 청중들도 큰 박수로 환호해줍니다. 스님께서는 11명의 질문에 모두 답해 주신 후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재미있었어요? 유익했어요? 진리의 길은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해야 합니다. 재미만 있고 유익하지 못하면 끝나고 나면 허전해지고요, 유익하긴 한데 재미가 없으면 지루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종교를 지루하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본질에 근접해야 여러분의 삶에 기쁨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세속적으로 돈을 많이 벌게 해주고, 원하는 것을 해주는 이런 식으로 신앙을 갖기 때문에 여러분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인생을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너무 인간을 위대한 존재로 규정해서 자기가 쪼그러 들어 있어요. 자기가 규정한 그 수준이 안되기 때문에 위축감을 같고 살고 있습니다.nbsp산에 있는 다람쥐나 토끼 한마리와 같이 우리 인간들도 그냥 나고 죽습니다. 다람쥐도 토끼도 괴롭다고 하면서 살고 있지 않는데 인간이 더 괴롭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얼마나 속박을 받았으면 날고 있는 새를 부러워 하겠어요. 자기의 아상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자기를 지나치게 우월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삶이란 단순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훨씬 행복하게 됩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두번 세번 해보고 안되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보면 됩니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주어진 상황을 긍적적으로 받아들이면 행복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좋아보일 것입니다. 그렇게 가볍고 기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nbspnbsp처음부터 목이 갈라져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목이 아픈대도 불구하고 2시간 20분동안의 강연을 마치니 참석자들이 스님께 큰 박수로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법륜스님 강연의 주제는 언제나 행복과 자유입니다. 스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고 자유로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오늘도 132명이 스님과 함께 하여 행복과 자유에 관하여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행사를 마치고 나서 바로 스님께서는 책 사인을 할 자리로 옮겨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분들께 한사람 한사람 사인을 해주시고 기념 사진촬영도 해주셨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사인을 받는 분들께 오늘 강연이 어떠했냐고 물어보니 다들 너무 좋았다고 특히 뭐가 더 좋았냐고 하니 전부 다 좋았고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참석한 많은 분들이 유학생이었는데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이번 행사의 총 책임을 맡은 버팔로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최지혜님과 스님 일행의 식사를 준비한 로체스터에 계시는 손정애님께 사인을 하여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손정애님은 스님께 공양 올리기 위하여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로체스터에서 음식을 준비해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 7명과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도 감사함을 담아 사인을 하여 새로운 백년 책을 선물하고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버팔로는 김영수 시몬 신부님께서 흔쾌히 강연장과 숙소를 제공해주셨으며, 또 성당 청년들이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임금이 지구장에게 소개시켜주셔서 오늘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셨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lt스님 왼쪽이 식사를 준비해주신 손정애님, 오른쪽이 강연을 준비해주신 최지혜님gt스님께서는 내일 강연을 위하여 숙소로 올라와 업무를 보고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수요일부터는 매일 하루 2번 이상의 강연 혹은 미팅이 있기 때문에 내일까지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숙소에서 저는 스님과 잠깐 내일 일정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제 숙소로 돌아와서 스님의 하루를 정리하고 저의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lt성김대건 성당의 김영수 시몬 신부님gtnbsp버팔로 강연은 한인성당이 후원하지 않았으면 행사자체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버팔로에서 강연 포스터가 보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버팔로 대학교 및 한인 식당, 상가 등 구석구석에 자원봉사자들이 포스터를 붙이고 홍보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버팔로 대학교의 김욱수 교수님은 도대체 누가 자원봉사를 했느냐고 궁금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중간고사와 겹쳐서 학생들이 바쁜 가운데 정말 열심히 홍보를 하고, 행사 당일날 자원봉사도 해주어서 감사했습니다. 봉사했던 학생들도 이곳까지 스님께서 오셔서 강연을 해주시고 또 강연 자체가 많은 깨달음을 갖게 해주었다며 즐겁고 좋아했습니다. nbsp이렇게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오늘 35번째 미국 버팔로 강연도 잘 진행되었습니다. 내일은 36번째 강연이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열립니다. 내일은 시라큐스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0.01. 41,935 읽음 댓글 43개

2014.9.27 세계 100회 강연(33) 캐나다 토론토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서른 세번째 강연이 캐나다의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노향숙님과 친구분들이 오셔서 어제 저녁 및 오늘 아침 식사를 준비해주어서 스님 일행은 오전 7시에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노향숙님은 오타와에서 스님 강연이 열린다고 하길래 정말 기쁜 마음으로 숙소와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행사준비팀에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숙소와 식사준비를 해주신 노향숙님께 인생수업 책에 사인을 하여 선물로 드리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하룻밤 편안하게 숙박하고 식사까지 대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전 7시 30분에 토론토로 출발하였습니다. nbspnbsplt노향숙님gt캐나다 수도인 오타와와 캐나다 동부 최대의 도시인 토론토가 속해있는 온타리오주는 호수와 강의 땅입니다. 오타와에서 토론토로 가는 길은 온타리오 호수 북쪽편을 끼고 달리는데 이 길은 Thousand Islands Parkway로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가는 고속도로 입니다. 온타리오 호수에 있는 천개의 섬을 천섬이라고 하는데 이 천섬은 온타리오 호수 내에 있는 유명한 관광 명소입니다. 온타리오 호수는 남쪽으로는 미국의 뉴욕주와 북쪽으로는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둘러싸고 있는데 미국쪽에는 로체스터에서 천개의 섬으로 들어가는 유람선이 있고, 캐나다 쪽에서는 킹스톤에서 천섬으로 가는 유람선이 있습니다. 저희는 천섬을 둘러보지는 못하지만 고속도로를 따라 가는 길에 잠깐 화장실도 들를겸 호수를 구경하기로 하고 잠시 호수쪽으로 들어갔습니다.nbsp호수인지 바다인지도 모를 정도로 넓은 온타리오 호수를 잠시 감상하고, 토론토로 오는 길에 마지막 휴게소에 들렀는데 어떤 분이 법륜 스님께 인사를 하면서 천주교 신자인데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있다고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다시 길을 들어 1시쯤에 토론토의 정연희님 댁에 도착하였습니다. 정연희님 댁에 와서야 저희도 스님께 아직 인사를 못드린 것이 생각나서 정연희님과 함께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정연희님이 준비해놓은 음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는 휴식과 각자의 업무를 한 후 행사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nbsp오늘 한인회에서는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여 한인회관 주변에 도로를 막아두고 있었기 때문에 강연 준비를 하던 자원봉사자들은 청중들이 적게 올까봐 걱정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토론토 한인회관은 2012년, 2013년에 이어서 3번째로 같은 장소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사장으로 들어서니 벌써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안내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 강연은 지난 6월에 개원한 토론토 법당의 불교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서 준비를 하였다고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장에 도착하신 후 책 사인을 위해 줄을 서 있던 분들께 책사인회를 해주시고 강연장에 오신 분들과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어 스님소개 영상이 나온 후 5시에 무대에 오르니 큰 박수로 참가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토론토는 약 55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중에서 한인들은 약 65,000명 정도 거주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강연에는 450여명이 함께 하여 많은 분들이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을 찾아주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먼저 “안녕하세요. 주말인데 놀러도 안가고 여기에 오셨어요? 다들 놀러가고 아무도 안올 줄 알았습니다. 유럽 순회강연을 하고 미주로 오는 관계로 조금 목을 다쳤습니다. 감기 몸살에 목이 쉬었으니 목소리가 듣기 싫더라고 좀 참아주세요. 그리고 무대가 너무 높아서 서서 하면 높아지니 앉아서 하겠습니다” 라고 양해를 구하시면서 처음으로 자리에 앉아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그리고 자원봉사자 분들과 한인회 관계자들께 감사인사를 하셨습니다.nbsp매년 토론토는 한인회의 좋은 공간에서 편안하게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 2013년에 이어서 올해도 이렇게 좋은 공간에서 강연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토론토 한인회장님 이하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이 행사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이 강연은 완전 무료로 진행됩니다.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장소도 정하고 포스터도 붙이고 홍보를 해서 강연이 이루게 지게 된 것입니다. 이분들의 수고를 위해서 감사드립니다.” nbsp그리고, 유튜브를 통해서 즉문즉설을 보신 분들을 손들라고 하니 약 23 정도가 손을 들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유튜브의 열기가 뜨겁다는 것을 과연 실감할 수가 있었고, 많은 분들이 유튜브를 통해서 삶이 바뀌었다고 하고, 한 분은 외국인 분인데 자기 와이프가 매일 컴퓨터 앞에서 스님을 매일매일 보고 있다고 하면서 즐거워하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즉문즉설 강연은 어떤 특정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여러 문제를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nbsp어떤 주제도 좋습니다. 종교 얘기, 사회 얘기, 정치, 과학, 인생 등 주제는 제한이 없고, 얘기하는 방식에도 제한이 없습니다. 어떤 애기를 어떤 방식으로 해도 좋습니다. 자 시작해 볼까요?” 라면서 바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에서는 총 10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두려움, 슬픔, 분노가 많은데 순간순간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분, 큰집에서 시부모님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자신도 따라 제사를 지내도 되는지 묻는 분, 심리 상담사인데 상담자들의 상처가 자꾸 생각나서 마음이 무겁고 상담을 잘했는지 죄책감도 드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우울증이 와서 휴학을 반복하고 있는데 자신을 극복하는 방법을 묻는 분,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장례식에 가지 못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는 분,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간관계가 편해졌는데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어 고민인 분, 전생에 지어진 운명이 있는 것인지 궁금한 분, 박사과정 5개월만에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고민인 분, 캐나다의 이혼율이 40라고 하는데 결혼해서 잘 살려고 하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천생연분이란 것이 정말로 있는지 궁금한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마지막 열번째 질문인 한국 문화와 캐나다 문화 사이에서 고통받는 친구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고민인 캐나다 교포 1.5세 친구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저는 캐나다에 11살 때 온 교포 1.5세입니다. 어렸을 때는 한국에서 자랐고 커서는 캐나다에서도 자랐고 그래서 한국과 캐나다의 문화를 함께 접했기 때문에 두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과 있을 때와 캐나다 사람들과 있을 때 서로 간의 문화 차이를 많이 느껴요. 주변에 있는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며 ‘내가 접한 문화에서는 이렇게 해서 쉽게 해결하는데’ 하는 순간들을 양쪽에서 많이 느끼게 됩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해결하는 방법들을 알아서 마음이 편할 수 있는데,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을 위한다면 그냥 그 사람이 가는 길을 놔두어야 할지, 옆에서 내가 참견을 해야 할지 판단이 안될 때가 많습니다. 어떤 태도를 가져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까요?”nbsp“질문자가 좋을 대로 하시면 됩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됩니다. 하고 싶어서 말을 했더니 내 말 안 들으면 그만 두면 되고요. 그러나 내 말 안 듣는다고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됩니다. 나를 위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말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말을 안 들으면 그만이지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그를 위해서 한다고 착각했지 사실은 내 식대로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nbsp그래서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말을 해주면 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말을 안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나를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안 하면 되고, 스트레스를 안받는다는 것은 그를 위해서 했기 때문에 하면 됩니다. 해야 된다, 하지 말아야 된다고 정해진 법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즉문즉설을 하는 이유도 인생에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든 자기가 알아서 살면 되는데 물으니까 대답을 하는 것이거든요. 제 말을 받아들여서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이에요. 그건 그들의 자유입니다. 안 받아들이는 것이 기분 나쁘면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강연을 하기 싫어지겠죠. ‘묻기만 하고 얘기해줘 봐야 소용 없더라’ 이렇게 되잖아요. 묻기 때문에 그냥 저의 관점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이 그것을 듣고 동의가 되면 그렇게 하면 되고, 동의가 안되면 안해도 되고, 그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저는 다만 할 뿐이거든요. 그래야 저도 스트레스를 안 받고 계속 강연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을 것이 없으면 강연은 그냥 끝나는 것이고, 물을 것이 있으면 더 하는 것입니다.”nbsp“그 사람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면 불쌍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nbsp“그것은 질문자의 기분입니다. 산에 가다가 큰 나무 밑에 작은 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작은 나무를 불쌍하게 느끼면 그것은 질문자의 기분이지 작은 나무의 문제는 아닙니다. ‘내가 저 사람이 불쌍하게 느껴지는구나’ 이러고 가면 되지요. 길거리에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을 불쌍하게 느끼는 것은 내 문제이지 그 사람의 문제는 아닙니다. 거기 앉아 있는 사람 중에는 하나도 안 불쌍한 사람도 있어요. 수행 방법에 구걸하는 것이 있거든요. 제가 수행 삼아서 다 떨어진 옷 입고 길거리에 딱 앉아 있으면 실제로 불쌍한 사람이에요? 불쌍한 사람이 아니지요.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불쌍하게 여기지요. 그러니 다 자기 문제라는 것입니다.nbsp그러니 내가 주고 싶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안 주면 됩니다. 왜 너는 구걸하느냐고 나무랠 필요도 없고, 내가 한푼 준다고 그 사람이 고마워할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주는 것은 내 문제이고, 고마워하는 것은 그의 문제입니다. 항상 자기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이 들면 도움을 주면 됩니다. 밥이 필요하다고 하면 밥을 주면 되고,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돈을 주면 되고, 필요 없다고 하면 안 주면 됩니다. 예전에 알렌산더 대왕이 작은 통 속에 살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찾아가서 “도움이 필요하냐? 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다”고 하니까 “비켜라. 햇빛 가리지 마라” 이렇게 얘기 했다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남을 도울 때 ‘그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다시 상처를 입게 되거든요. 제가 인도에 구호활동을 가기 전에도 인도의 아이들은 다 잘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가서 초등학교 공부를 시키니까 중학교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낸 것입니다. 제가 만약에 초등학교 공부를 안시켰으면 그 아이들이 중학교에 갈 생각은 안냈겠죠. 중학교에 가고 싶은데 안보내주면 섭섭하죠. 고등학교 졸업했는데 대학에 안보내주면 섭섭하죠. 섭섭하니까 원수가 되어요. 우리가 도와주면 나중에 과보는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이에요. 그래서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다 노후가 힘들거든요. ‘내가 도와주었다’ 이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래요. 도와주면 원수 되기가 쉬워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면 “내 보따리 내놔라” 이렇게 하기가 쉽다 이말입니다. 그런대도 왜 돕느냐? 아이들은 공부가 필요해요. 비록 원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도울 것은 도와야 합니다. “내 보따리 내놔라” 하더라도 죽어가는 생명은 건져야 합니다. 칭찬받으려고 어떤 일을 하면 안 됩니다.nbspnbsp우리가 길 가는 사람과 원수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다 좋은 관계들이 원수가 되는 이유는 기대 심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기대 심리를 버리는 것을 ‘무주상’이라고 합니다. 기대 심리를 갖는 것을 ‘상을 갖는다’고 하고, 기대 심리 없이 베푸는 것을 상이 없이 베푼다고 해서 ‘무주상보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좋은 일을 한다고 반드시 좋은 과보가 돌아온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내가 남을 돕고도 기대가 크면 실망이 커지는 법입니다. 내가 결혼해서 만난 남자가 훌륭해서 잘 산다 이런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상대 남자의 능력이 100인데 200을 기대하고 만나면 결혼하면 실망하고, 50을 기대하고 만나면 결혼하면 만족하는 것입니다. ‘어, 생각보다 사람이 괜찮더라’ 이렇게 됩니다. 내가 기대가 크면 ‘어, 살아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모자라더라’ 이렇게 됩니다.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다 나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의 기대를 낮추면 행복도가 높아지고, 기대가 높아지면 행복도가 낮아지는 것입니다.nbsp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는 50년 전에 비해 260배 더 잘 살아졌지만 과연 대한민국 국민이 더 행복해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기대를 인간이 갖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해야 자신의 행복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그런데, 상대방이 한 행동이 정말 나쁜 행동이여서 도저히 용납이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nbsp“자기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안 든다고 얘기하면 되지요.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마음에 든다고 거짓말 할 수는 없잖아요.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얘기하면 되지 화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마음에 맞도록 태어나서 사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다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데 그것을 다 내 생각에 맞춰서 사람을 바꾸려고 하면 내가 힘들어지죠. 한국 사람과 캐나다 사람을 나눌 수도 없어요. 한국 사람 중에도 캐나다 사람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고, 캐나다 사람 중에도 한국 사람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다수를 보면 캐나다에서는 자식이 스무살이 넘으면 과잉보호를 안하죠. 그러니 부모가 늙어서 자식 때문에 부담이 덜 되고, 자식들도 부모의 무거운 짐을 안지죠. 그런데 우리는 자식이 스무살이 넘었는데도 과잉보호 한다고 부모가 힘들고, 자식들은 부모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해서 힘들죠. 이런 것은 캐나다의 문화가 오히려 더 나아 보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한국식 문화가 더 나은 것도 있습니다. 한국은 공동체적인 성격이 많고, 캐나다는 개별적인 성격이 많다는 점에서는 캐나다 쪽이 오히려 늙으면 더 외롭죠. 이런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단점이라는 것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또 달라져요. 그러니 장단점이라고 말할 수 없고 문화가 서로 다른 것입니다. 중간에서 보기에 내 취향에 이거는 캐나다가 낫고 이거는 한국이 낫다는 그 판단마저도 내가 하는 것이지 캐나다 문화와 한국 문화로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내 견해를 상대에게 얘기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내 견해일 뿐이지 그것을 상대가 꼭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고 상대가 수용하면 다행이고,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견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nbspnbsp“그렇게 되면 내 취향과 가까운 사람과는 가까워지지만 내 취향과 먼 사람과는 멀어지게 되잖아요. 나랑 맞지 않는 사람들과는 아예 만나지 않게 될 것 같은데...”nbsp“그러면 질문자만 손해이지요. 질문자의 인생살이가 그만큼 좁아지게 되는 것이죠. 질문자의 선택입니다. 취향에 맞는 사람끼리만 살려고 하면 폭이 좁아지고, 폭이 넓어지려면 취향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취향은 취향일 뿐이니까요. 나는 술 먹는 게 싫다면 술 안먹는 사람끼리 모여야 하고, 나는 술을 안 먹지만 술 먹는 사람들과 같이 지내려면 술집에 같이 가서 술도 따라주고 해야 합니다. 나는 담배를 안 피우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겁니다. 나는 불교를 믿지만 기독교인들과도 같이 어울리는 것이고, 기독교인이랑 어울린다고 꼭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될 이유는 없잖아요. 불교를 믿는다고 기독교 신앙을 배척할 필요도 없고요. 그렇게 인생은 자기 선택입니다.nbsp자기 취향을 고집하면 인생의 폭이 좁아집니다. 또 폭을 넓히려면 자기 취향에 너무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채식을 하지만 고기 먹는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어야 여러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지요. ‘나는 채식만 하겠다’고 고집해서 상도 따로 차려줘야 하면 늘 혼자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안 먹을 뿐이지 먹는 것에 대해 시비를 안 하면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나의 선택입니다. 자기 가치관을 고집할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 가치관을 지키되 다른 사람의 가치관도 용납할것인가에 따라서 교류의 폭이 좁아지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합니다. 넓어지는 것이 꼭 좋다 이렇게 생각해도 안 됩니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고, 그것 자체는 자기 선택입니다.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선택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택을 망설이는 이유는 책임을 안 질려고 하기 때문입니다.nbsp예수님이나 부처님은 이런 원리를 가르치신 분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어서 그 원리를 모르다가 그 얘기를 듣고 ‘아, 원리가 이렇구나’, ‘악하게 살면 앞으로 재앙을 받겠구나’ 이렇게 자기가 스스로 원리를 터득해서 사는 것이지 지옥 간다니까 겁을 내거나 천당 간다니까 혹해서 하는 것은 어린 아이와 같은 행동입니다.”nbsp스님께서는 청중들과 웃음과 함께 호흡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가운데 벌써 2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도 목이 많이 아픈 것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고 갈라지셨습니다. 질문에 모두 답변해 주신 후 “끝까지 들어줘서 감사하다” 하시며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당부하면서 지금까지 나온 질문들을 정리하며 다음과 같이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태어남에 의해서 주어진 것은 주어진 대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태어난 아이가 성스러운 것이지, 태어나는 방식에 의해서 성스럽고 추하고가 정해지는 것은 없습니다. 어릴 때 어떤 상처가 있었든 지금 여러분들이 살아 있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은 과거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오지도 않은 미래를 자꾸 걱정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삶이 괴롭고 근심걱정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니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오지도 않은 미래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깨어 있으세요.nbsp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이 ”일체 중생이 다 부처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깨어 있으면 지금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행복과 불행이 남이 준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이 주든 전생이 주든 남편이 주든 아내가 주든 남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헐떡거리고 살아야 됩니다. 또 누구를 미워해야 합니다. ‘너만 아니라면, 당신만 아니라면 나는 행복할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은 항상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자각하셔서 여러분의 인생이 행복해야 합니다.nbsp캐나다에 온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에요. 한국에서 캐나다에 오면 다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그러니 자기가 좋아야 천당이 됩니다. 이것을 ‘유심정토’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좋으면 천당입니다. 한국이 좋으면 한국이 천당이고, 캐나다가 좋으면 캐나다가 천당입니다. 지장보살에게는 지옥이 극락입니다. 왜 그럴까요? 남을 돕는 일은 지옥에 가야 많을까요? 천당에 가야 많을까요? 내가 선택해서 가서 그곳에 할 일이 많으면 그곳이 천당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지나치게 물질에만 연연하면 안 됩니다. 물질이 필요는 한데, 그것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전 지구적으로 200여개의 나라 중에 캐나다 정도면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제도적으로도 좋은 편이에요. 여기에 살면서도 불행하다면 그것은 개인 문제라고 봐야지 세상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일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여러분들의 삶은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이렇게 말씀하고 강연을 마무리 하니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도 않고 갈라지는 가운데 2시간 10분 동안이나 강연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은 큰 박수로 감사를 표하였습니다.nbsp오늘 토론토에서는 주말이라 큰 마라톤 대회가 2시까지 있어서 도로 곳곳에 교통을 막아놓아 사람들이 많이 오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450여명이 참석하여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스님과 함께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옆에 앉아서 시종일관 스님의 말씀에 웃음을 보이던 젊은 커플과 1.5세로 보이는 커플에게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으니 정말 유익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행사를 마치고 바로 연단 아래에 마련된 책상에서 책사인회가 열리자 많은 분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스님께서는 한사람 한사람 사인을 해주시고 기념 사진촬영도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nbsp또한 스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훌륭한 토론토 한인회관에서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장소를 내어주는 한인회장님과 한인회에 감사의 표시로 최근에 나온 책 3권을 사인하여 한인회관 도서실에 기증하였습니다.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한 다음에 자원봉사자 모두에게 선물로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셨습니다. 오늘 자원봉사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불교대학생들로써 처음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이었지만 어느 지역보다도 편안하고 능숙한 모습으로 열심히 해주셨고, 자원봉사자는 모두 20명이나 되었습니다. 토론토 정토법당은 올 6월에 개원한 법당으로서 작년과 올해 2번의 행사는 열린법회를 개척한 김정란 총무님이 맡아서 진행하였습니다. 김정란 총무님은 이번에 캐나다 동부 4개 지역을 스님과 함께 다니면서 행사 총괄을 하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드렸습니다. 또한 행사책임을 맡았던 김미셀님 및 스탭들에게도 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주고,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감사의 큰 박수를 보내는 가운데 기념사진을 함께 촬영하였습니다.nbspnbsplt왼쪽부터 김민석님, 김미셀님, 김종원님, 김정란 총무님, 장호님gt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몸이 좋지 않아 함께 나누기도 못하고 먼저 숙소로 들어가니 묘덕법사님, 김정란 총무님과 함께 나누기를 하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정말 수고가 많았고 인사를 하고 저녁 8시에 숙소로 돌아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정연희님과 일본식당을 운영하는 한승진님께서 준비해온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시고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이후 저는 스님과 내일 일정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제 숙소로 내려와서 스님의 하루를 정리하고 저의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nbsp오늘 자원봉사자들은 홍보하는데 많이 참여하지 못해서 미안했는데 이렇게 오늘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했고, 많은 분들이 함께하여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보람된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처음 행사를 총괄했던 김미셀님은 이전 두 번의 행사 때는 그냥 김정란 총무님을 도와서 시키는 일만 했었는데 막상 총무님이 캐나다 동부지역을 총괄하게 되어 본인이 전적으로 토론토 강연을 책임지게 되니 마음의 부담이 많았는데 준비를 하면서보니 꼼꼼히 김정란 총무님이 잘 챙겨놓고 가서 쉬운 점도 있었고, 또 의외로 준비하고 점검해야 할 것이 많아서 그동안 김정란 총무님 혼자서 참 수고가 많았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nbsp그리고 작년에는 강연장에 청중으로 왔었는데 올해는 봉사자로 참가를 해보니, 스님 강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또 보람이 된다고 하였습니다.nbsp봉사자들은 지난 6월 토론토 법당 개원때 만났던 분들이라서 저도 더 반가웠습니다. 이분들은 거의 대부분이 내일 캐나다런던 강연의 봉사를 위해서 캐나다런던으로 가실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작년에 한국에서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워털루에서 아내, 애기와 함께 왔던 김재명님은 이번에는 강연 봉사자로 다시 만나니 더 기뻤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한 분 한 분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오늘 33번째 토론토 강연도 성황리에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내일은 34번째 강연이 캐나다런던에서 열립니다. 캐나다런던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4.09.28. 46,063 읽음 댓글 45개

2014.9.25 세계 100회 강연(31) 캐나다 몬트리올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서른 한번째 강연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최말순 보살님과 이경미 보살님께서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셔서 오전 6시30분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보스턴에서 몬트리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차를 타기 전에 리랜드 애커슨 박사와 이경미 보살님, 그리고 두 아드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스님께서는 “하룻밤 잘 묵고 간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시고 7시15분에 출발하였습니다.nbspnbsplt이경미,리랜드 애커슨 가족gt고속도로로 들어서서 조금 달리다가 휴게소에 들러서 화장실을 다녀오는 틈에 스님께서는 잠시 원고 교정업무을 보셨습니다.nbspnbsplt휴게소에서 원고 교정업무를 보시는 스님gt93번 도로를 타고 몬트리얼로 올라가는 길에 White Mountain이 있었습니다. 뉴햄프셔주와 버몬트주는 산이 많다고 하였는데 과연 산세가 아름답고 단풍이 멋지게 물들어 있어서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듯 하였습니다. 워싱턴DC지역은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고, 어제 보스턴 지역을 보니 조금씩 단풍이 물든다 싶었는데, 이곳은 완연한 가을 단풍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10시 30분경에 단풍구경도 하고 휴식도 취할겸해서 세계 3대 단풍명소중의 하나인 화이트마운틴 산맥의 뷰포인트에서 잠시 단풍구경을 하기로 하였습니다.nbsp뷰포인트에서 보니 저멀리 보이는 단풍들이 아주 멋지고, 스님께서는 계곡으로 내려가셔서 물에 손을 담겨보기도 하셨습니다.nbspnbsp미대륙의 양대 산맥은 서부에 로키 nbsp산맥과 동부의 애팔래치안 산맥이 있습니다. 그 중 동부의 nbsp애팔래치안 산맥의 최고봉이 White Mountains이며, 그중 미국의 초대부터 16대까지의 대통령의 이름이 다 붙여져 있는 Presidential Range 선상에 있는 Mountain Washington이 1972m로서 가장 높다고 합니다. Mountain Washington은 White mountain으로 불리는데 1년 중 7개월 이상 봉우리에 눈이 덮여있고 여름에도 항상 흰구름에 싸여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또한 미국 내에서 바람이 가장 드세기로도 유명한데 그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오는 한냉 전선과 대서양을 거슬러 올라온 습한 공기와 대륙을 건너온 건조한 바람이 이 곳 정상부근에서 항상 부딪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지역 일대는 나무 수종이 다양하고 무성하여 국유림으로 지정 관리되며 세계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세 곳 중의 하나로 미동부에서 탐방객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nbsp단풍 구경을 잠시하고 곧 다시 길을 들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미국 국경을 넘기 직전에 잠시 점심 요기를 할 곳을 찾아서 고속도로 옆에 있는 크리스탈 호수 공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 김명호 거사님께서 준비해 온 누룽지를 끓여서 간단히 점심요기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12시 30분에 크리스탈 호수 공원에 들어서니 드넓은 호수와 호수비치가 있어서 정말 미국 자연환경이 아름답게 보존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껴보았습니다. 평화롭고 한가롭게 호수가운데를 오리들이 지나가고 저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는 풍력발전소가 돌아가는 밝고 아름다운 가을 날씨와 함께 정말 멋진 풍경이었습니다.버너에 물을 끓여서 각기 숭늉과 사과 한조각으로 점심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들어 1시 40분에 캐나다 국경에서 입국 수속을 하고 국경을 넘어서 캐나다로 들어왔습니다. 다시 길을 달려 오니 저멀리 몬트리얼 이정표가 나옵니다.nbspnbsp몬트리얼 이정표가 나오자 다리 저편으로 다운타운이 보이고 우리가 넘어가고 있는 다리 주변으로 아름다운 호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세인트로렌스강이 몬트리얼을 서쪽편으로 두고 남북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nbspnbsp오후 4시 45분에 오늘의 숙소인 전민락 거사님 댁에 도착하니 전민락 거사님께서 아주 반갑게 저희들을 맞이해주셔서 차에서 짐을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에 스님께서는 다시 누룽지로 간단히 요기를 하신 후에 6시 10분경에 강연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몬트리얼 한인천주교회였습니다. 몬트리얼은 정토 열린법회도 없고 nbsp정토회와 인연이 없는 곳이지만 세계 100회 강연을 기획한 다음에 홈페이지에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홍보를 하여 몬트리얼 행사를 맡아주시겠다고 하신 김은아님을 중심으로 자원봉사자를 찾아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행사를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한인천주교회가 아주 웅장하고 크고 아름다웠는데 기꺼이 법륜스님께서 강연을 할 수 있도록 교회를 빌려주셨다고 하였습니다. 6시 30분경에 스님께서 강연장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과 참석자들이 다가와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입구에 들어오시면서 토론토 정토법당 김정란 총무님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 후에 잠시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 이번 행사를 후원하고 홍보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신 몬트리얼 한인회의 김광인 회장님께서 간단한 인사말씀을 하셨습니다. 법륜스님께서 이곳 몬트리얼까지 찾아주시니 한인들이 이렇게 모이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고 힐링의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6시 50분에 무대에 오르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몬트리얼 강연은 처음이고, 20년전에 몬트리얼을 잠시 방문한 적은 있지만 강연을 한적은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좋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신 성당에 깊이 감사드리며 또한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신 한인회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말씀부터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감기 몸살로 목소리가 좋지 않는 것도 양해해주면 좋겠고, 또한 자원봉사자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린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어제도 하버드대학에서 질문이 20개 이상 나왔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18개만 받았는데, 오늘도 스님께서는 마음껏 인생사 개인 얘기, 사회 얘기, 종교 얘기, 과학 얘기, 사람 얘기, 자연환경 얘기 등,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얘기를 해보자고 하셨습니다.nbsp오늘은 총 10명이 질문하였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대기하고 있던 2명의 질문자도 시간관계상 질문을 하지 못했습니다.nbsp nbsp남편의 직장을 따라 몬트리올에 온지 2년이 되었는데 영어와 불어를 못하는 것도 짜증이 나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분, 평생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은데 취직이나 돈버는 문제 때문에 고민이 된다는 학생, 논리정연하게 말을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열등감이 생기고 말주변이 없어서 취업 면접도 걱정된다는 학생, 아이들 교육 문제로 몬트리올에 왔는데 시부모님과 관계가 안좋아 한국에 다시 돌아갈 것이 걱정된다는 분, 천주교 신자인데 스님의 ‘깨달음’이란 책을 읽고 크게 의심하고 분노하라는 구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 분, 이민을 온지 20년 동안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해 허무한 마음을 달래는 법을 묻는 분, 즉문즉설을 유튜브를 통해 보고 인생이 행복해져서 스님께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는 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와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묻는 분,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 본분인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어 고민이라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이모와 어머니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저는 이곳 몬트리올에 14살 때 혼자 유학을 와 이모네 집에서 자라 지금 나이는 22살입니다. 처음 오게 된 계기는 몬트리올에 이모랑 이모부가 살고 계셔서입니다. 이모 댁에 같이 살다가 사이가 나빠져서 나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이모랑 이모부를 뵙기는 했는데, 작년에 오랜만에 가족들을 보러 한국에 가기 위해 돈을 다 준비했는데, 이모와 이모부가 굉장히 반대를 하셨어요. “그 돈을 학비에 보태지 뭐하러 한국에 가느냐” 그러셨어요. 지금 어머니랑 이모랑 관계가 굉장히 안 좋은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엄마랑 이모가 서로 관계가 안 좋은 것은 자기들끼리 문제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옛날에 은혜 입은 것은 은혜 입은 것이고, 스무살이 넘은 성인이니까 질문자는 자기대로 자유롭게 살면 됩니다. 스물까지 키워야 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인데 엄마가 의무를 방기하고 이모한테 맡겼잖아요? 그러니 책임을 방기한 것에 대해 엄마가 이모한테 갚아야 합니다. 질문자의 책임은 아닙니다. 질문자는 상관할 필요가 없고 자기 나름대로 살면 됩니다. 이모가 보고 싶으면 방문하면 되고, 보기 싫으면 안가면 됩니다.nbsp스무살 이전에는 미성년자이니까 결정권이 나한테 없었어요. 이모가 되었든 부모가 되었든 보호자에게 결정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쨌든 질문자가 스무살이 넘었으니까 결정권은 질문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엄마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은 참고사항으로 받아들이고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됩니다. “아니요” 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하고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안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스무살이 넘은 자유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nbsp다만 이것은 이해해야 합니다. 친척 아이나 형제 아이를 데려다가 키우면 반드시 원수가 됩니다. 이모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언니의 아이를 받아서 키웠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아무리 언니가 좋아도 언니의 아이를 데려다가 키우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입니다.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친구가 아무리 좋아도 친구 아이를 데려다 키우면 열에 아홉은 원수가 됩니다. 그런데 이모가 바보 같은 행동을 한 겁니다. 그래서 질문자와 관계도 안 좋고 형제간에 관계도 안 좋아진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의 책임은 아닙니다. 이모의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이모 본인이 멍청해서 바보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nbspnbsp왜 친척 아이를 데려다 키우면 관계가 나빠질까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모를 조금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내년에 사촌 누나가 결혼을 해요. 제가 한국에 가려고 했는데 이모도 한국에 간다고 해요. 같이 가면 서로 보게 되는데 어떡하죠?”nbsp“서로 보면 어때요? 보면 인사를 해야지요. 여기에서도 이모를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마나러 가면 됩니다.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 이런 뜻입니다. 한국에 가서 만나게 되면, 이모한테 밥 얻어먹고 공부 했으니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지요.nbsp이모가 왜 바보 같은 행동을 했느냐면, 남의 애를 데려다가 키우면 두 가지 어려움이 있어요.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는 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잖아요. 그것을 야단치게 되면 아이가 반발하게 되고 아이가 반발하게 되면 그것을 자기 엄마한테 얘기하게 됩니다. 그러면 엄마는 아이 얘기를 듣지 다른 사람 얘기를 안 듣기 때문에 섭섭해집니다. 말을 계속 안 들으면 또 이모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아이가 문제 있다” 고 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그게 또 듣기 싫어집니다. 그래서 야단을 쳐도 관계가 나빠지고 가만히 놔두어도 나중에 원망을 듣게 됩니다. “나는 너 믿고 맡겨 놓았더니 제대로 돌보지도 않았냐” 이렇게 해서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이모 잘못이 아니라 이모가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서 그런 겁니다.nbsp이모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서 손해만 봤고 질문자는 덕을 봤습니다. 그러니 이모를 멀리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보 이모를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모 본인은 손해가 좀 있는데, 질문자한테는 손해난 것이 없어요. 이모가 잔소리를 했다고 하는데, 이모가 아닌 엄마와 같이 있었더라도 잔소리를 더 했으면 더했지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런데 이모가 잔소리를 하는 것은 엄마가 한 것보다 더 상처를 입습니다. 그러나 이치로 따지만 이모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nbsp이모는 애를 먹어가면서 키우고 돌봐줬는데 말도 안 듣고 해서 이모 또한 지금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렇게 야단을 치고 난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이모님께 “아이고, 이모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거나, 뭐라고 하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세요. 그리고 앞으로는 스무살이 넘었으니까 자기가 알아서 살면 됩니다. 말은 안 들어도 됩니다. 그러나 과거에 질문자를 키워준 것에 대한 고마움은 알아야 합니다. 질문자 혼자서 큰 게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서로 만나면 인사해야 하고 짐이 있으면 들어줘야 합니다. 그러나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니까 구애받지 말고 자립적으로 주체적으로 살면 됩니다. 무거운 짐을 질 필요는 없는데 고마운 줄은 알고 살아야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오늘도 10명의 질문자들과 함께 즉문즉설을 진행하다보니 2시간 35분간 강연을 하였고, 1시간 20분이 넘어서니 스님 목소리가 가라앉고 갈라지는 듯 하였습니다. 마지막 질문자의 대답에 정성스레 답하신 후에 스님께서 목소리가 갈라지니 듣기가 힘들죠? 라고 오히려 청중들을 걱정하니 청중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오늘은 300명 이상이 참석하였는데 몬트리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길대학교가 있고, 대학이 많은 교육도시이기 때문에 유학생 등 유동인구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유동인구까지 다 포함해도 최대 6000명을 추정하는데 오늘 300명 이상이 모인 것은 엄청 나다고 다들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많이 참석해주시고 오늘 또 이렇게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마무리 인사를 이렇게 해주셨습니다.nbsp“인생을 살면 이런저런 일이 많이 생깁니다. 남이 원한다고 내가 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원한다고 또 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질문자가 2명이 남았습니다. 남은 2명의 질문자는 질문을 원하지만 제가 다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못해주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인생이 뜻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니며, nbsp그것은 욕심입니다. 행복하게 살면 나를 위해서도 좋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일이 됩니다. 여기 이곳에서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은 전적으로 내 문제이지 세상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보다는 더 나은 행복을 찾아갈 수가 있기 때문에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다함께 해보겠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nbsp스님께서 인사말을 하시니 2시간 35분동안 목이 아프고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은 큰박수를 보냈습니다.nbsp2012년, 2013년 캐나다 토론토와 벤쿠버 지역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대중들과의 공감이 어느 곳 보다 뛰어나고 스님과 함께 하는 호흡이 좋다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도 강연 중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팡팡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러니 2시간 35분의 강연이 전혀 지루하지가 않고 흐트려지지 않으며 끝까지 집중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오자 성당에 계시는 수사님께서 스님의 큰 팬이 되었다고 하면서 스님과 깊은 허그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스님께서 이렇게 훌륭한 장소를 제공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다시한번 인사를 하셨고, 자리를 이동하여 북 사인회를 하였습니다. 준비한 책이 영문책 몇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팔릴 정도로 스님의 책도 인기가 많았고, 사인을 받아가기 위하여 줄을 길게 섰습니다. 스님께서는 끝까지 사인을 다 해주시고, 자원봉사자들께도 사인을 해주셨습니다. 또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번 행사의 후원도 하고 홍보도 적극적으로 해주신 김광인 회장님께 책을 선물해드렸습니다.nbsp또한 이번 행사를 총괄한 김은아님께도 스님 사인을 한 책을 선물해 드리고, 성기택 베드로 신부님과 서 수사님께도 책을 선물해드리고 그리고 성당을 빌려주심에 감사 헌금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신부님과 서 수사님과 함께 기념 사진촬영도 하였습니다.nbsp또한 함께 자원봉사를 해준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한사람 한사람에게 단주를 선물로 주시면서 몸이 아픈 관계로 함께 나누기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양해를 말씀을 구하고 스님께서는 10시에 숙소로 돌아갔습니다.nbspnbsp스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묘덕법사님과 함께 남은 물품을 뒷정리하고 행사준비를 한 분들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대중 교통편으로 돌아가야하고 개인적으로 바쁘신 분들은 먼저 돌아가고 4명이 남아서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몬트리얼 책임을 맡아서 행사를 진행한 김은아씨는 성당에 다니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대부분이 풀타임 직업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라서 정말 시간적으로 바빴지만 봉사를 하면서 재밌고 신나게 행사를 준비하였고 홍보 또한 적극적으로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힐링의 시간이었다라고 하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스님의 좋은 법문을 듣고 함께 마음 공부를 할 수 있는 모임이 이곳 몬트리올에서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nbsp나누기를 하고 숙소로 귀가하니 11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과 내일 일정에 대해 잠시 논의하는 시간을 가지고 저는 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내일은 32번째 강연이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에서 열립니다.nbsp 실외 사진 촬영은 이형만 감독님, 강연장 사진 촬영은 장호 거사님께서 해주셨습니다. nbsp

2014.09.26. 59,242 읽음 댓글 59개

2014.9.23 세계 100회 강연(29) 아일랜드 더블린

▲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에서 열린 유럽에서의 마지막 강연.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유럽에서의 마지막 강연이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매일 1개 도시를 방문하여 드디어 29일째인 오늘, 유럽 29개 도시 순회 강연을 모두 마무리하게 됩니다.nbsp▲ 에든버러에서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nbsp새벽6시30분 숙소를 나와서 아침8시 에든버러 공항을 출발한 스님 일행은 9시에 더블린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에는 오늘 강연 담당자인 오민씨 부부와 허윤진씨 부부가 함께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nbsp오민씨는 프랑스에 유학 와서 공부를 하다가 아일랜드인 남편을 만나서 자녀 둘을 낳고 이곳 더블린에서 살고 있는 분입니다.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을 듣고 삶이 행복해져서 지난번 한국에 와서는 정토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한달 동안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신 분입니다. 오늘은 더블린에서 봉사자 38명을 모집하여 강연 준비를 담당해 주었습니다. 허윤진씨 부부는 아일랜드에 있는 유일한 천일결사자 부부입니다. 깨달음의 장을 한 후 지난 8차 천일결사 때부터 남편과 함께 매일 아침 108배를 하며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nbsp▲ 공항 마중을 나와 준 오민씨 부부와 허윤진씨 부부.nbsp오늘 숙소인 오민씨 부부의 집에 짐을 모두 풀고,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부엌 한 켠에서는 저녁에 먹을 김밥을 부지런히 싸고 있는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곳 더블린 강연 준비팀은 봉사자가 무려 38명이나 되어서 각 팀별로 역할 분담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nbsp전날 저녁부터 바라지팀 자원봉사자들과 더불어 파리지회 정토회 분들이 결합하셔서 나물과 김밥 재료 셋팅 등 거의 밤새다시피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nbspnbsp▲ 하루 종일 봉사자 38인분의 김밥을 싸 준 봉사자들.nbsp스님께서는 어젯 밤에도 공항에서, 오민씨 집에 도착한 후에도, 계속 편두통으로 고생하셨습니다. 점심만 드시고 휴식을 취했지만 통증이 멈추지 않아 마침 오민씨 남편인 가빈씨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셨던 분이라고 해서 가빈씨를 통해 스님을 모시고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늦은 시간에 병원에 도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민씨의 간절한 요청과 의사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진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nbsp오후6시에는 주 더블린 한국대사관에서 박해윤 대사님 부부와 김보연 한인회장님, 손학순 한글학교 교장선생님, 목헌 트리니티 대학 교수님을 비롯한 교민 여러분들이 함께 찾아오셔서 스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 오른쪽부터 트리니티 대학 목헌 교수님, 손학순 한글학교 교장선생님, 박해윤 주 더블린 한국대사님 부부, 김보연 한인회장님, 김경희님 외 교민 1명nbsp오늘 즉문즉설 강연은 더블린 교민사회에서도 의미있는 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학생들 행사에는 교민이 안 오고, 교민들 행사에는 학생들이 안 오고 그랬는데, 오늘 강연은 학생들과 교민들이 함께 하는 뜻 깊은 시간이라면서 다들 좋아하셨습니다. 목헌 교수님은 더블린의 명문대학인 트리니티 대학 최초의 한국인 남성 교수님이라고 합니다. 특히 오늘 강연을 위해 트리니티 대학의 인문사회관을 무료로 대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편두통이 계속 있으셨지만 통증을 그대로 감내하시면서 저녁 7시에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Trinity College Dublin Arts Building의 인문사회관을 가득 메운 300명의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영으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자리를 모두 메우고도 부족해 측면 계단에도 빼곡이 앉아서 스님의 강의를 경청했습니다.nbsp봉사자들은 오늘이 유럽 29개 강연의 마지막 강연이 더블린이라는 점을 의미있게 생각하며 ‘나에게 희망세상이란 무엇인지’를 인터뷰한 특별영상을 준비해서 보여주었습니다.nbsp ▲ 더블린 강연 봉사자들이 만든 특별 영상. nbsp봉사자들은 처음에 스님께 희망세상을 만들어달라는 의미의 영상을 제작하려 했는데, 인터뷰 과정에서 희망세상은 누구에게 만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이번 즉문즉설 강연의 취지를 깨닫게 되어 영상 내용도 우리가 희망세상을 만들자는 내용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nbsp봉사자들은 스님께서 유럽 29회 강연을 모두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내가 만들고자 하는 희망세상’을 한지로 덧붙여 만든 연등과 신문지를 재활용해 만든 소망 노트를 선물했습니다.nbsp오늘 강연장은 유럽 강연 중 가장 많은 수가 모였을 뿐만 아니라 열기가 가장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도 “예상 밖의 환영에 감사드린다” 며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자원봉사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오늘 강연에는 총 8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곁에서 편하게 지내라고 요구하지만 본인은 고생을 통해 내공을 얻고자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인 분,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의 청혼과 새롭게 마음 가는 사람이 생겨 두 사람 사이에서 결혼을 고민하는 분, 아일랜드에 공부하러 왔는데 학원에서 사기를 당해서 화가 난다는 분, 조금만 뜻대로 되지 않아도 자기 비하를 하는 성격을 고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묻는 분, 우리는 폭력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는지 묻는 분, 외국 생활하며 만나는 한국 사람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챙기려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묻는 분, 지금도 어딘가에서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고 있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도 결국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유럽을 여행하며 종교 전쟁에 대해 의문을 가진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지금 더블린에 여행하러 와 있습니다. 종교 전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는 지금 경주에서 출발하여 중국을 거쳐 중앙아시아를 지나 이란과 터키, 로마를 거쳐 지금 더블린에 와 있는데, 여행을 하다보니 3가지 종교를 만났습니다. 한국과 중국에서 불교를 만났고, 이란과 터키에서 이슬람을 만났고, 서유럽에서 카톨릭을 만났습니다. 종교가 사람들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고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도 하지만, 종교를 통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종교 전쟁을 보며 우리가 어떻게 종교를 믿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nbsp“종교는 자연발생적인 원시적인 종교가 있고, 깨달은 이가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종교가 있습니다. 자연발생적인 종교는 기본 원리가 인과응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 그러니까 이것은 좋게 말하면 좋게 들리지만, 법률로 따지만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얘기입니다. 나쁜 짓 하면 징벌을 당하는 겁니다. 힌두교에서 얘기하는 것도 결국 나쁜 짓 하면 나쁜 과보를 받고 좋은 일 하면 좋은 과보를 받는다, 유대교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으면 소돔과 고모라에서처럼 유황불로 지져버리고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버리고 이렇게 다 징벌을 합니다. 이것을 법으로 정한 것이 함무라비 법전의 논리예요. 이런 인과응보적 사고가 모든 종교에 공통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nbsp그러나 예수님과 부처님이 가르치는 종교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그런 인과응보적인 것이 아니에요. 즉, 예수님을 십자가게 못 박아 죽였으면 그 사람은 당연히 인과응보적으로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했나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그랬습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 이전의 구약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라면,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입니다.nbsp그런데 오늘날 크리스트교는 원시 종교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자기 종교를 안 믿거나 하면 징벌을 한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징벌을 하든 질문자가 징벌을 하든 징벌을 합니다. 십자군 전쟁 같은 경우를 보면 다 보복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종교의 이름은 있지만 실제로 그 종교를 창시한 성인과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에서 전교에서 1등하는 아이는 서울대 의대를 가든 법대를 가든 충분히 합격하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의 어머니가 ‘우리 아이 서울대 넣어달라’고 하루에 천배씩 기도할까요? 안할까요? 안하겠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의 성적으로는 서울대 들어가기가 좀 어려운데도 서울대를 가고 싶으면 죽기 살기로 기도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만약 기도를 해서 들어갔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 실력이 안 되는 아이를 넣었다는 것은 실력 되는 아이 하나를 빼고 넣어줬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하는 역할이 입시 브로커 역할이잖아요. 성인으로서의 하나님과 부처님은 이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종교는 다 이런 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종교는 원시 종교입니다 종교의 이름이 어떻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nbsp그래서 오늘날 종교 간의 갈등 이런 것들은 예수님과 부처님, 마호메트와는 관계가 없는 그냥 세속적인 이해의 충돌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세속적 이익을 종교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특히 갈등이 심한 이유는 자기만이 옳다는 믿음이 강조되는 것이 종교의 성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보통 자기가 옳다 하지만 틀릴 수가 있는데, 진리라는 이름으로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신앙이다 보니까 종교는 서로 협력하고 타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종교 사회가 되면서 이 문제는 점점 풀리어 가지 않겠나 싶고, 종교 간의 전쟁은 과거의 문화유산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nbsp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종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즉 ‘원수를 사랑하라’ 는 것은 기독교 안에는 없고 오히려 세속에 있습니다. 세속은 지금 법률적으로 다 남녀 평등 실현하고, 인종 평등, 민족 평등을 실현하고 요즘은 성적 지향까지 다 개방하고 있잖아요. 신체장애자도 차별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종교는 아직도 신체장애가 되면 하나님의 벌이라든지 전생의 업보라든지 이렇게 설명하잖아요. 이것은 신체장애가 무슨 죄라는 얘기 아닙니까.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라든지, 성적 지향이 다른 것이 죄라든지, 그러니까 이것은 아직도 옛날의 원시적인 인간의 사고를 못 벗어난 현상입니다.nbsp옛날에는 전쟁에서 이기면 적군 중에 부상당한 사람도 다 죽이고, 성을 점령하면 어린 애까지 다 죽였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적병이라 하더라도 공격력이 없는 부상자는 치료해주고 포로는 보호해서 나중에 송환해주고 전쟁에 상관없는 민간인은 다치게 하지 말자고 합니다. 이렇게 세속이 훨씬 더 원래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접해 가고 있습니다. 반면 종교는 아직도 원시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 전쟁은 예수님과 부처님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냥 종교라는 이름의 세속적인 이익 충돌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nbsp종교가 무엇 때문에 거대한 탑이 필요하고 거대한 성전이 필요하겠습니까? 거대한 궁전과 성당들을 다 누가 지은 것입니까? 황제가 지었잖아요. 기독교가 로마로부터 공인을 받으면서 황제가 바로 교회의 수장이 되었잖아요. 황제가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세속화가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종교 문제가 아니라 세속적인 문제입니다. 이 세속적인 문제를 갖고 자꾸 종교라고 봐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의 종교이기 때문에 현실의 종교의 공허함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예수님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nbsp중세에서는 신이 다 세상을 움직였잖아요. 천체의 움직임도 신이 한다고 했는데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발견되면서 신의 영역에서 벗어났죠. 모든 생명도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했는데,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오면서 창조할 필요가 없어졌잖아요. 인간의 선한 소리 악한 소리를 신의 소리 악마의 소리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프로이트에 의해서 무의식의 세계라고 다 밝혀졌잖아요. 이렇게 엄청난 기성 사회의 벽을 뚫고 새로운 세상으로 왔기 때문에 세속이 더 진리에 가깝고 진보적이 되었고, 종교가 더 기득권화되어 있고 어리석음에 빠져있습니다.세상은 지금 부정입학이 다 없어졌잖아요. 있더라도 다 몰래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종교는 공공연히 하잖아요. 교회나 사찰 앞에서 ‘기도해서 유명대학에 들어갔다’ 선전하는데, 이건 부정입학 했다는 얘기거든요. 이것을 공공연히 하잖아요. 이런 것에 대해서 이제 우리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 간의 전쟁이라 하지만 그냥 세상의 이념 전쟁, 즉 세속적 이익 다툼의 한 수단으로 종교가 이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또 종교 자체가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nbsp질문한 친구는 명쾌한 답을 얻었다는 듯 기쁜 마음으로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께서도 지난 29일 동안 순회 강연을 하며 유럽 곳곳에 세워진 성당과 모스크를 많이 보게 되었는데, 종교란 무엇인지 느끼신 바가 크셨나 봅니다. 종교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성찰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nbsp오늘 강연에는 어학연수를 온 유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강연을 마무리하며 정리 말씀으로는 ‘지금 행복’ 할 것을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그 어떤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지금 살아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는 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지금 유학생활은 괴롭게 보내고 유학생활이 끝나면 행복할거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는 자세로, 직장 다닐 때가 가장 행복한 자세로, 젊을 때가 가장 행복한 자세로 임하세요.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 희생하는 것은 자기 인생을 후회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내일 행복하기 위해서 오늘 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 ‘되는 대로 살아라’ 이런 얘기도 아닙니다.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되는 때가 인생에서 몇 년 되겠습니까? 그런 시기를 즐기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공부도 하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다면, 애인과 같이 공부를 하면 됩니다. 공부도 하고 술도 먹고 싶다면, 술집에서 공부 토론을 하면 됩니다. 자꾸 분리하지 마세요. 왜 우리는 연애를 하면 공부는 포기해야 하고, 술을 먹으면서 공부 얘기를 하면 안 될까요? 공부를 하는 유학생은 공부에 초점을 맞추고, 필요한 것은 곁들어서 같이 하면 됩니다. 물론 지나치면 안 되겠지만요. 그런 자세로 자기 삶을 항상 행복하게 만들어나가야지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nbsp부처님이나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떨까요? 지금 내가 욕심 부리는 것을 도와줄까요? 가난한 나라 굶어죽는 사람들을 구제할까요?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계신다면 다른 곳에 할 일이 많겠지요. 나를 도와준다고 해도 “아이고, 부처님. 저는 제가 알아서 살 테니까 저 사람들 좀 도와주세요” 이런 자세가 신앙입니다. 욕심이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고난에 처할 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nbsp부처님께서도 이렇게 말했어요.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또 예수님께서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진리 속에서 자유를 얻고 행복을 얻어 나가기 바랍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스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봉사자들이 무려 38명이나 되어서 봉사자들과 다같이 소감나누기는 하지 못하고 봉사자들과 단체사진만 찍었습니다.nbsp특히 오늘 강연 장소인 트리니티 대학의 인문사회관을 무료로 빌리는 등 목헌 교수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목헌 교수님을 비롯하여 38명이나 되는 자워봉사자가 함께 뜻을 모아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봉사자들에게 단주를 선물로 주고 목헌 교수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셨습니다.nbsp▲ 오늘 더블린 강연 총괄을 맡아준 오민씨 부부nbsp오민씨네 집으로 돌아와서는 유럽 29개 순회 강연을 마무리하며 독일, 영국, 파리에서 각각 강연 책임을 맡았던 분들이 오셔서 함께 평가회 겸 소감 나누기를 하였습니다.nbsp▲ 유럽 29개 도시 순회 강연을 마무리하며 평가회 및 소감나누기nbsp유럽 강연 전체를 총괄한 김선희 유럽지구장은 “준비과정이 더 재미있었다”며 보람있어 했고, 직장을 한달 휴가 내고 강연 전체를 담당한 이희정님은 “바로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마음은 가볍다”며 기뻐했고, 파리 강연을 담당한 박지현님은 “스님이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아직 70일이나 남은 100회 강연 일정을 걱정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강연을 담당한 신재숙님은 “프랑크푸르트는 매년 해왔지만, 런던, 더블린은 정토회를 처음 알게된 봉사자가 많았음에도 새로운 방식의 진행으로 봉사자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며 기뻐했고, 추희숙님은 “유럽 강연은 참석자가 10명 남짓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렇게 투자를 많이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씨앗을 심는 것임을 깨닫고 1명을 위해서도 마음을 열어주는 단체가 꼭 필요하구나”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nbspnbsp평가회 겸 나누기를 모두 마치니 새벽 1시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 달 동안 수고한 책임자들을 위해 거듭 격려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도시별로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굉장히 길거든요. 많은 분들의 정성으로 원만히 잘 진행되었습니다. 교민들이나 학생들이 해외에 살면서 이번 강연을 통해 격려를 받거나 자극을 받은 것들이 그 분들의 인생에는 작은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모두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nbsp내일은 스텝진들도 모두 공항으로 가서 각자의 생활 공간으로 돌아갑니다. 유럽 순회 강연 소식도 오늘이 마지막이네요.nbsp스님께서는 오전11시50분 비행기로 보스톤으로 가십니다. 보스톤을 시작으로 세계 100회 강연 중 미주 순회 강연이 시작됩니다. 미국에서 새롭게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고민과 스님의 법문이 다시 펼쳐집니다. nbsp스님의 건강과 세계 100회 강연의 원만 성취를 기원해 주세요.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09.24. 46,666 읽음 댓글 79개

2014.9.19 세계 100회 강연(25) 스페인 마드리드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5번째 강연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그리스 아테네의 Best Western Fenix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스님 일행은 새벽 6시에 호텔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오늘 일정을 시작합니다. 어제 그리스 강연을 준비해주신 한종엽 사장님과 김근찬 선생님이 차량 운전을 직접 해주셔서 무사히 아테네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nbsp▲ 아테네 공항까지 무사히 차량 운전을 해주신 한종엽 사장님과 김근찬 선생님nbsp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위해 대기하는 동안 스님께서는 원고 교정 업무를 보셨습니다. 오전 8시30분에 아테네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4시간을 날아 12시30분에 스페인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 AEGEAN 항공을 타고 출발하며nbsp공항에는 재 스페인 마드리드 한인회에서 이인철 회장님과 이장훈 부회장님, 정재현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고문님이 함께 나오셔서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 스페인 강연을 준비하고 운영해주신 분들. 이인철 한인회 회장님, 이장훈 한인회 부회장님, 정재현 고문님nbsp이인철 회장님은 1989년에 스페인에 오셔서 지금까지 25년 동안 스페인에 거주하신 분입니다. 원래는 회장님의 부인인 오인숙님이 강연 담당을 맡았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회장님께서 발 벗고 나서서 오늘 강연이 준비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장훈 부회장님은 부모님을 따라 12살에 스페인으로 오셨다가 지금은 마드리드에 주재한 한국 기업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정재현님은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마드리드 지부 회장을 하셨고, 지금은 고문 역할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남편 분이 스페인에 처음으로 태권도를 알리신 분이시고, 본인은 40년 전에 라스팔마스라는 곳에 이주해 오셔서 동양의학 전문의로 일하시다가 최근에 마드리드에 오신 분입니다. 이 세 분이서 함께 이번 스페인 마드리드 즉문즉설 강연과 유적지 안내, 차량운전 등을 지원해 주셨습니다.nbsp공항 근교에 예약해 둔 민박집에 짐을 먼저 풀고, 한인회 회장님과 함께 한국식당 ‘한강’에서 nbsp점심 식사로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원래는 ‘똘레도’라는 곳에서 식당업을 하고 계신 전덕희님이 점심 식사를 대접하려고 했는데, 거기까지 가기에는 도저히 시간 여유가 없어서 전덕희님께서 오늘 점식식사비를 보시해주셔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차와 다과는 한국식당 한강의 사장님이 무료로 서비스해 주셨습니다. nbspnbsp오후2시부터 시내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마드리드 왕궁입니다. 16세기에 건립한 군사 요새 알카사르를 1734년 크리스마스 전날 화재로 소실한 이후 필리페 5세가 그 부지 위에 새 궁전을 짓도록 지시하여 1755년 호화로운 마드리드 왕궁이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중요 국가 행사 때에만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nbsp▲ 마드리드 왕궁왕궁 앞에는 큰 성당이 있었습니다. 유럽 강연을 다니면서 도시별로 성당을 한곳 이상은 꼭 들러보고 있는데, 스페인은 어떤 느낌의 성당을 지었는지 궁금해서 들어가 보았습니다. ‘알무데나 성모 대성당’ 이라고 불리우는 이곳은 착공 이후 1세기가 지난 1992년 완공했다고 합니다.nbsp▲ 알무데나 성모 대성당nbsp널찍한 실내에 밝은 느낌의 벽채와 깔끔한 장식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유럽 성당들이 어둡고 엄숙한 느낌이 많았는데, 스페인은 밝고 깔끔한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 스님께서는 합장을 하고 짧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 후 성당 안을 둘러보셨습니다.nbsp마지막으로는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원래는 세계 3대 미술관 중에 하나인 프라도 미술관이 이곳 마드리드에 있어서 그곳을 가보면 좋겠다고 추천을 받았지만, 스님께서는 역사에 더 관심이 있으셔서 고고학 박물관을 가보기로 하였습니다.nbsp전시실 제1실에서 제20실까지는 고대문화와 관계된 유물, 즉 구석기 시대의 원주민부터 아프리카 계통의 이베로족과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카르타고인의 고고학적 발자취를 담고 있는 다양한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었고, 제21실에서 26실까지는 로마가 스페인을 지배했을 때의 유물, 즉 스페인 각지에서 발굴된 로마인의 대리석상, 모자이크, 장식품, 로마시대 그리스도교의 고고학적 유물들을 관람했습니다. 제27실에서 29실까지는 서고트족의 문화유산, 제30실에서 31실은 이슬람문화의 유산, 제31실에서 35실까지는 기독교 문화의 전성기에 관련된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방문해 본 유럽의 박물관 중에서 비교적 연대순으로 깔끔하게 잘 배열된 점이 참 좋았습니다.nbsp▲ 페르니난드 앤드 산차의 십자가. 상아에 조각한 것인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작품. nbsp▲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왕비 ‘리비아’를 조각한 상. 팔이나 코가 부서진 모습이 마치 우리나라에 불상이 부서져 있는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nbspnbsp그리고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박물관 지하실에 모사로 복원되어 있어 들어가 보았습니다. 대략 18,50014,000년 전 정도로 추정되는 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적으로서 야생 동물의 뼈와 사람들의 손으로 그린 암벽화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색채가 나타난 천정이 가장 유명한데 두 마리의 말과 큰 사슴, 수퇘지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실제 알타미라 동굴을 방문하려면 예약하고 최소 1년을nbsp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nbsp▲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복제품nbsp유적지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동상을 보았습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사람들이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인물 중에 한명이라고 합니다. 그의 신항로 발견으로 인하여 아메리카 대륙이 비로소 유럽인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현재의 미국이 탄생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토대가 생길 수 있었다고, 스페인 사람들은 생각한다고 합니다.nbsp▲ 콜럼버스 동상nbsp당시에 아메리카 대륙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유럽인들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어쩌면 요즘 우리가 말하는 ‘세계화’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동상 앞은 마드리드 사람들이 어떤 사건이 있을 때 마다 모이는 광장이라고 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광화문 앞 광장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nbsp강연장으로 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장인 레알 마드리드 경기장을 보았습니다. 8만4천명이 수용되는 이 경기장은 경기가 있을 때마다 시내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축구에 대한 마드리드 사람들의 열정을 느낄 수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도 레알 마드리드 소속의 선수입니다.nbsp▲ 레알 마드리드 축구 경기장.nbsp오늘 강연장은 ‘한마당 마드리드’ 라고 하는 이인철 한인회장님이 얼마 전 오픈한 문화공간입니다. 한인회 회장님은 이곳에서 한국과 스페인의 음식과 문화에 대한 강습을 열고 있다고 합니다. 부인인 오인숙님이 직접 만든 공예품들도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특색있는 공간이었습니다.nbsp▲ 오늘 강연장 ‘한마당 마드리드’ nbspnbsp한인회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스페인에는 총 4천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마드리드에 1300여명, 바르셀로나에 700여명, 원양어업기지로 많은 한국인들이 이주했던 라스팔마스에 1200여명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nbsp저녁 7시30분에 시작된 오늘 강연에는 총 40명이 참석하여 조촐하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참석자 중에는 마드리드에서 600km 떨어진 바르셀로나에서 4명이 오셨고, 빌바오에서 1명, 아스토리아에서 1명이 nbsp오시는 등 스페인 전역에서 스님의 강연 소식을 듣고 오셔서 더욱 값진 시간이 되었습니다. nbsp질문은 총 5명이 했는데, 남편이 죽고 나서 딸아이의 꿈에 아빠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묻는 분, 딸이 어떻게 하면 서로 마음에 맞는 배우자를 만나게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자식들이 런던, 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그래도 괜찮은지 묻는 분, 세월호 사고의 처리과정을 보면서 해외에서도 많이 안타까웠는데 해외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분, 반야심경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운데 쉽게 설명해 달라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여전히 스님의 목 상태가 좋지 않아 많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목이 계속 잠겨 있으셔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시간 30분 동안 열강을 하셨습니다. nbsp오늘은 그 중에서 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 한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남편을 잃고 혼자 산지 3년 정도 되었습니다. 딸이 2명 있는데 결혼할 때가 되었어요. 제가 어떤 마음을 가지면 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저도 결혼생활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더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nbsp“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도록 하는 게 엄마가 어떻게 한다고 되겠어요?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질문자가 다니면서 남자를 구해서 가져다 줄 겁니까? 질문자와 아무 관계 없는 일에 왜 신경을 써요? 그것은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하는 부모의 그 마음은 이해가 되는데,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nbsp질문자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못했다면, 질문자는 자기 남편도 제대로 못 구했잖아요. 그런데 그런 안목을 가지고 딸의 남편까지 구해줄 능력이 됩니까? 기지도 못하면서 날려고 하는 형국입니다. 자기 것도 제대로 못 구했는데 어떻게 남의 것을 구해줄 생각을 합니까? 그러니까 질문자는 신경을 뚝 끊으세요.nbsp요즘 세상에는 ‘결혼하는 것이 꼭 좋다’ 이렇게 말할 게 없습니다. 사물이라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그것도 유럽에 사는 여러분들이라면, 첫째, 이제는 결혼을 해야 된다, 안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놓아야 합니다. 둘째, 누구하고 결혼하느냐, 이것도 흑인하고 하든, 백인하고 하든, 어느 나라 사람과 하든, 이런 생각도 놓아야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결혼식을 하지 않고 계약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절반 정도 된다고 합니다.nbsp그래서 자식들이 스무살이 넘었으면 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살기 때문에 부모가 내 자식을 믿어줘야 합니다. “엄마는 너를 믿는다. 니가 혼자 살든 결혼을 하든 어떻게 살든 너의 선택을 엄마는 믿는다” 라고 얘기해 주세요. 아이가 “엄마, 나 어떻게 해?” 물어도 “너는 잘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라. 엄마는 너가 잘 할 수 있다고 믿어. 괜찮아” 이렇게 격려를 해주세요.nbsp딸이 남자를 하나 사귀어와서 “엄마, 이 남자 어때?” 하면 “아이고, 어리석은 내가 어떻게 아니? 똑똑은 너가 더 잘 알지. 너가 판단해라” 이렇게 얘기해 주세요. 그래도 딸이 “한번만 봐죠” 요청하면, “바보 같은 내가 뭘 알아? 공부를 해도 너가 더 많이 했고” 이렇게 얘기했는데도 두 번 세 번 요청을 하면, “내가 그렇게 남자 잘 볼 줄 알면 내가 너희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났겠니?” 이렇게 얘기해 주세요.nbsp그렇게 봐달라고 요청을 해도 엄마가 딱 짤라서 “엄마는 너가 어떤 결정을 하든 너를 지지하고 너를 믿는다” 이렇게 격려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자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할 문제는 아닙니다.nbsp질문자가 부처님께 빌면서 “우리 딸 좋은 남자 만나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하면, 반드시 딸은 결혼을 질문자의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 하게 됩니다. 재수가 없어서 그러느냐? 아닙니다. 내가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치가 높아집니다. 실제로는 어지간히 좋아도 내 기대치보다는 못 미치기 때문에 결국 내 마음에 안 들게 됩니다. “조금 더 기다려봐라”, “다른 남자는 없나” 이렇게 해서 결혼을 방해하게 됩니다. nbsp“다른 건 안 바랍니다. 마음 맞는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요.”nbsp“다른 건 안 바라고 서로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하는데 그게 가장 어려운 겁니다. 숫제 돈이 많은 사람을 찾으면 딱 부러지게 찾을 수가 있지만,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은 컴퓨터에 넣어 돌려도 하나도 안 나옵니다. 서로 마음이 맞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거야 말로 욕심입니다. 질문자도 이런 걸 남편에게 요구하니까 결혼 생활이 힘들었던 것입니다. 결혼을 하면 마음을 맞춰가는 것이지 마음이 맞는 사람은 없어요. 내가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지 상대가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딸이 남자를 이해하면 되는 것이니까 남자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고 “너가 그 남자를 이해할 수 있으면 결혼하고, 이해 못하거든 결혼하지 마라” 이렇게 얘기해 주면 됩니다.nbsp나를 이해해 줄 사람, 나를 사랑해 줄 사람, 나와 마음이 맞을 사람을 찾고 싶다는 건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이것이 바로 욕심입니다. 이런 요구를 하면 결혼은 이뤄질 수가 없고, 결혼을 해도 오래 유지될 수가 없어요. 당연히 같이 살면 안 맞지요. 음식 맛도 서로 안 맞고, 방안의 온도도 원하는 게 서로 안 맞고, 운전하는 방식도 서로 안 맞고, 뭐든지 안 맞습니다. 안 맞는 것을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서로 맞춰가는 겁니다. 혼자 살면 안 맞춰도 되는데 둘이 살면 서로 맞춰야 하는 겁니다. 회사 생활은 큰 것만 맞추면 되고 자질구레한 것들은 안 맞춰도 되는데, 같이 살면 자질구레한 것들을 맞춰야 합니다. 세수하고 수건을 빨래 통에 담느냐, 걸어두느냐 이런 것 갖고 서로 싸우게 됩니다. 천 가지 만 가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산에 어디를 둘러봐도 기둥하기 좋은 나무가 어디 있습니까? 다 다듬어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도 다듬으면 누구하고도 살 수 있고, 딱 맞는 사람을 찾으면 천하에 아무하고도 같이 못 삽니다. 딱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자기 딸을 결혼 안 시키려고 하는 겁니다.nbsp그러니까 오늘부터 딱 마음 놓고 자기 인생을 사세요. 자식이 스무살 넘었으면 신경을 딱 끄세요. 신경을 딱 끊어줘야 자식이 잘 삽니다.”질문한 어머니는 활짝 밝아진 얼굴로 “스님, 감사합니다” 하며 스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졌길 기원해 봅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천주교인들이 많은 마드리드 교민들을 위해 종교를 떠나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자며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의 몫이 아니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내가 내 행복을 찾아가는 마음을 낼 때 내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에서 예수님을 믿어서 이익을 본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출세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있었습니까? 죽음 밖에 없었습니다. 죽어도 그 길이 더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그러잖아요. 자꾸 출세하고 돈 벌고 하는 데에 하나님이 작용하는 것 같으면 그것은 신앙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 조건 속에서도 내가 행복을 찾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는 삶, 이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길입니다.nbsp종교를 떠나서 어쨌든 자기 인생은 자기가 행복하도록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을 자꾸 남의 몫으로, 남편 몫으로, 자식 몫으로, 부모 몫으로, 세상 몫으로 하지 마세요. 자기 문제로 바라보세요. 내가 어제 무슨 일을 당했든, 어떤 불행을 겪었더라도 나는 오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렇게 가야 됩니다. 어떤 경우라도 나는 살아 있는 한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렇게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오늘은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정토회 해외포교팀에서 책을 붙여주었는데 마드리드 지역에만 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원인을 찾아보니 발송 업체에서 오류가 있었다고 합니다.nbsp모두들 아쉬워 하셔서, 스님께서는 대신 참석자들 한분 한분과 기념사진을 많이 찍어 드리는 걸로 아쉬움을 대신했습니다.nbsp▲ 강연을 마치고 정재현님으로부터 감사의 꽃다발 선물을 받았습니다.nbsp강연장 뒷정리를 마치고 한인식당인 ‘강남식당’으로 갔습니다. 스님께서 “이 늦은 밤에 웬 식사입니까?” 하니, 스페인은 원래 저녁 식사 시간이 밤10시라고 합니다. 유적지를 둘러본 후 바로 강연에 들어오느라 저녁을 못 드셨는데, 간단히 요기를 하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을 위해 수고해 주신 한인회 회장님, 한인회 부회장님, 고문님 한분 한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악수를 한 후, 오늘 숙소인 민박집으로 밤12시가 다 되어 돌아오셨습니다. 모두들 스님께서 오늘 하루만 짧게 스페인을 방문한 것을 많이 아쉬워 했습니다. 내년에는 23일 정도 여유를 갖고 오셔서 바르셀로나와 라스팔마스 등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다른 지역에서도 꼭 강연을 해주실 것을 부탁했습니다.nbsp내일은 포루투갈 리스본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스물여섯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은 포루투갈에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09.20. 41,747 읽음 댓글 47개

2014.9.18 세계 100회 강연(24) 그리스 아테네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4번째 강연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새벽6시에 윤혜숙님, 김연옥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아침식사를 하고, 신중애, 에르한씨 부부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6시30분에 이스탄불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김연옥님과 신중애님 부부는 새벽녘에 공항까지 손수 나오셔서 스님 일행이 무사히 출국절차를 밟을 때까지 도움을 주셨습니다.nbsp▲ 이스탄불의 윤혜숙님 민박집에서 차려주신 아침식사 nbsp스님께서는 어제 이스탄불 강연에서 질문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무려 3시간 동안 열강을 하시는 바람에 아예 목이 잠기셨습니다. 그저께부터 목에서 피가 나오기도 해서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의사선생님이 주신 항생제를 계속 복용하고 계셨는데, 어제 강연으로 목에 더 무리가 간 것 같습니다. 목소리가 안 나와서 과연 오늘 강연을 제대로 하실 수 있을지 많이 걱정이 되었습니다.nbsp에게 항공을 타고 오전9시30분에 출발하여 11시30분에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nbsp곧바로 오늘 강연 장소이면서 숙박 장소이기도 한 Fenix 호텔을 찾아갔습니다. 짐을 풀고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오후1시부터는 주 그리스 한국대사님이 점심 식사 초대를 하셔서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셨습니다.nbsp▲ 왼쪽부터 주 그리스 한국대사관 김유철 참사관님, 신길수 대사님, 정효민 영사님대사님은 교민들의 현황과 그리스의 현재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현재 그리스 아테네에는 교민들이 350명 정도 거주하고 있는데, 주로 관광 업종이나 여행사, 여행 가이드, 식당업을 하고 계신 분들이며 절반 이상이 20년 이상 거주하신 분들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삼성, LG를 비롯하여 해운업도 진출해서 주재원들도 나와 있다고 합니다.대사님은 스님께서 115회 연속으로 하루 1개 도시를 방문하는 강연 스케쥴을 보시며 스님의 건강을 많이 염려했습니다. 그리고 참사관님이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해법”에 대해 스님께 질문을 했는데, 스님께서는 “통일이 해법”이라며 한반도 주변 정세와 통일이 가져올 긍정적 변화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특히 대사님이 “유럽사회 모델과 미국사회 모델을 반면 교사로 삼아서 더 나은 모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자, 스님께서도 전적으로 공감을 표하시면서 “유럽은 여기까지 오는데 400년이나 걸렸습니다. 수없는 실패와 반성을 통해 지금의 복지사회를 이뤘는데, 한국은 시간이 아직 짧고, 제도를 넘어서서 관습까지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라며 너무 조급하게 바라보면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또, 스님께서는 최근 세월호를 비롯한 한국사회의 갈등 문제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서로의 요구를 어떻게 조율하고 타협을 하느냐”가 중요함을 강조하셨는데, 대사님도 공감을 표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1시간 30분 동안 그리스 사회와 한국 사회에 대해 대사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nbsp오후3시에는 크렘을 타고 도심으로 가서 고대 유적지인 ‘아크로폴리스’를 둘러보았습니다. 이곳은 미케네 시대에 아테네 여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최초의 사원입니다. BC 6세기 후반까지 아크로폴리스에는 사람들이 살았지만, BC 510년에는 이곳이 신들만이 존재하는 지역이라는 델피 신약이 공포되어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BC 480년 살라미나 전투 직전에 페르시아인들은 이곳의 모든 건물들을 불태워 버렸는데, 페리클레스가 순수한 신전의 도시로 재건했다고 합니다.nbsp▲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입구를 지나니 BC 2세기에 세워진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 보였습니다. 로마 집정관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세운 이 극장은 정치가이며 대부호였던 그가 죽은 아내 레기나를 기념하여 BC 161년 아테네 시민에게 기증했는데, 5천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고 7월9월에는 그리스 고전극과 콘서트, 오페라 등의 음악회도 열린다고 합니다.▲ 파르테논 신전아크로폴리스 위에 우뚝 서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의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기념비적 건축물입니다. BC 438년 완성된 이 건축물은 무척이나 우아하고 조화로운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특히 기둥은 완벽한 조형미를 갖추도록 하기 위해 위로 올라갈수록 약간씩 좁아지고 있고, 하단부는 끝으로 갈수록 약간 위를 향해 휘어져 있어 마치 직선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기둥 위에도 장식들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nbsp1687년 터키인과 싸우던 베네치아 군대가 아크로폴리스에 폭격을 퍼부으면서 파르테논 신전은 바닥과 기둥, 지붕 일부만 남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답니다.▲ 멀리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nbsp파르테논은 아테네의 위대한 신상들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고, 새로운 보물들의 보관 창고 역할을 했습니다. AD 426년에는 약 12m 높이의 도금된 동상이 콘스탄티노플로 수탈되어 갔고, 결국 거기서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nbsp파르테논 신전에서 저 밑을 내려다보니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된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보였습니다. 헤파이스토스는 대장장이·장인·공예가·조각가·금속·야금·불의 신인데, 특히 아테네에서는 제조, 산업 종사자들에게 많이 숭배되었다고 합니다. 발굴 당시 대장장이에 관련된 물건들이 발견되어 헤파이스토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nbsp▲ 헤파이스토스 신전.nbsp언덕에서 내려다 보니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이 보였습니다. 시간이 없어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제우스 신에게 봉헌된 이 신전은 BC 515년에 착공했으나 BC 124년경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완성됩니다. 파르테논 신전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컸던 17m 높이에 104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던 이 거대한 신전은 4세기 고트족에게 파괴당하고 지금 15개의 코린트식 기둥들만 남아 있습니다. 신전 안에는 황금과 상아로 만든 제우스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우스는 그리스 최고의 신이었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수호신으로 아테나 여신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우스는 아크로폴리스에 자리 잡지 못했는데, 대신 아테네 시민들은 제우스 신전을 더 크게 지어 바침으로 대접을 해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nbsp▲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스님께서는 아크로폴리스를 모두 둘러보신 후 “예전부터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 이라며 오늘 이렇게 둘러볼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강연 시간이 거의 다 되어 택시를 타고 강연장으로 돌아왔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아테네 도심에서 약간 외곽의 바닷가에 위치한 Best Western Fenix Hotel에서 열렸습니다.nbsp▲ 강연 담당자인 한종엽 선생님이 직접 제작하셨다는 포스터입니다. 멋있죠?nbsp현지 교민수가 많지 않다보니 많은 분들이 참석할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22명이 참석하여 조촐하게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nbsp이차돈의 피가 정말 하얗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분, 사리가 구상인지 비구상인지,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는 분, 아직 결혼하지 않고 아테네에 계속 살고 있는 것이 부모님에게는 불효로 느껴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주위에서 받은 사랑에 대해 감사하다는 표현이 서툴러 고민인 분, 템플스테이에서 고민을 적어서 의식을 한 후 불에 태우는 의식을 했는데 심리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생활 속에서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는 남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고, 예상치 않은 일로 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를 내고 나서는 후회를 하고요. 평상시에 생활 속에서 쉽게 화를 절제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차를 타고 오다가 신호등을 안 지키는 모습을 볼 때 화가 많이 납니다.nbsp“매일 아침에 108배 절을 하면서 “화 낼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절을 하면 도움이 됩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그냥 일어나는 일이지 화낼 일은 아니거든요. 내가 화를 내는 것이지요.nbsp화 낼 일이 없는데 내가 화를 내는 것이니까 정신적으로는 약간 미친 증상이지요. ‘너 또 미치고 있다’ 이렇게 자기에게 암시를 주면 도움이 됩니다. 화는 미친 증상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과 정반대의 행동이 일어납니다. 보통은 사람이 칼을 들고 찌르겠다고 협박하면 도망을 가는데, 화가 나면 미쳐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가가서 옷을 걷어 올려 배를 내놓고 ”찔러라, 찔러” 이렇게 나오거든요. 제 정신이 아닌 것입니다.nbsp첫째, 화가 난다고 화를 다 내어버리면 상대도 덩달아 화를 내기 때문에 화를 확대 생산하게 되니까 이 방법은 제일 하수가 됩니다. 둘째, 화를 참는 것은 확대 생산은 안하는데 자기가 병이 드니까 역시 하수에 속합니다. 참으면 화병이 됩니다.nbsp예전에 어머니 세대는 여자들이 주로 참기 때문에 대부분 화병을 가지고 있었죠. 화를 참아서 화병이 난 사람의 경우는 응급치료를 위해서 화를 내도록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압력이 너무 세기 때문에 오히려 화를 참지 말고 감정 표현을 하라고 인도를 해줍니다. 그러면 압력이 좀 줄어드니까 병이 좀 낫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 때문에 화가 나는데 늘 참아서 화병 수준까지 갔다면, 헝겊으로 인형을 만들어서 남편 사진을 붙여 놓고 막 욕하면서 두들겨 패면 스트레스가 조금 풀릴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여성들의 화병을 치료하는 데는 빨래터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젊은 여자들끼리 마주 앉아서 시어머니와 남편 욕을 하면서 빨래를 두드리면 심리적으로 스트레스 해소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 치료책은 아닙니다. 응급치료책입니다. 물이 끓어 넘칠 때 찬물을 한 바가지씩 붓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 끓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조금 있으면 또 끓어 넘칩니다.nbsp참는 사람은 화를 안내니까 윤리적으로는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괴롭지 않아야 수행이라고 합니다. 수행은 ‘화를 냈냐, 안냈냐’ 이것이 기준이 아니고 ‘너가 괴롭냐, 안괴롭냐’ 이것이 기준입니다. 참을 것이 없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욕바라밀입니다.nbsp그래서 그 다음 단계는 화내는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너 또 화나는 구나’, ‘너 또 미치는 구나’ 이렇게 알아차립니다. 왜 미쳤다고 하느냐? 사람은 서로 생각이 다르고 행위도 다릅니다. 옳고 그름이 없고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다 자기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어 있어요. 인간은 항상 자기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인식합니다. 자기와 다른데 자기를 기준으로 잡아버리니까 자기와 다른 것은 잘못된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나와 다를 뿐인 것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가 되어 버립니다. ‘그르다’는 것은 고쳐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그런 줄 모르기 때문에 안 고칩니다. 그래서 미치는 겁니다.nbsp이치적으로는 본래 옳고 그름이 없는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만 다를 뿐이지, 옳고 그름이 없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면 화날 일이 없어집니다.nbsp그러나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중심에 둡니다. 그 때 ‘너 또 너 중심으로 생각하는 구나’ 이렇게 지적하거나 ‘너 또 미친다’ 이렇게 자신의 화 난 상태를 직시해야 합니다.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을 통해서 고쳐가는 것입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너 또 미친다’, ‘너 또 니 성질 부린다’, ‘너 또 니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 이렇게 자기를 자각시켜 보세요. 이것이 되면 화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에 열번 내던 화를 아홉번만 내게 되고, 아홉번 내다가 일곱번 내고 이렇게 줄어듭니다. 화가 일어났을 때 전에는 그것을 움켜쥐고 있으니까 분이 한 시간씩 간다면, ‘아, 내가 또 미쳤구나’ 자각하면 10분 만에 제 정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빠르게 개선이 될 수 있습니다.nbsp화가 날 때마다 ‘너 또 미치는구나’, ‘너 또 너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 이렇게 자기에게 주의를 주세요. 밖을 보지 말고 자기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명상을 하면 도움이 됩니다. 명상은 자기 상태에 자기가 깨어있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질문한 거사님은 한국에 가려는 일정도 취소하고 오늘 스님의 답변을 듣고자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질문한 만큼 스님의 지혜로운 답변을 듣고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마지막으로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종교를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해질 것인지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삶의 변화가 와야 그 가르침의 전파력이 생깁니다. 절에는 열심히 다니고 신앙이 깊다고 해도 자기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고지식하면 전파력이 전혀 없습니다. 불법을 전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어떻게 내가 행복할거냐, 내가 좀 더 자유로워질거냐, 그게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이거 한번 해보니까 괜찮더라”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전파력이 생기는 겁니다.nbsp교회를 다니느냐, 절에 다니느냐를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인종, 민족, 종교를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해질거냐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런 곳에 멀리 온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파랑새를 찾으러 온 천지를 찾아 다녔지만 집에 돌아오니 처마 밑에 있더라 이런 얘기가 있죠. 행복은 아무리 밖을 찾아 헤매어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안으로 돌이켜보면 행복은 바로 여기에 있어요.nbsp부처님의 말씀입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nbsp여러분들이 행복하고 불행한 것은 누구 책임인가요? 자기 책임입니다. 누구 탓할 것 없습니다. 환경은 안 바꾸어도 된다 이런 얘기가 아닙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런 얘기입니다.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면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남 탓하고 욕하기만 하기 보다는 나의 주체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스님께서는 목이 아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2시간 20분 동안 열강을 해주셨습니다. 스님의 건강이 많이 염려되었지만, 참석자들은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고 모두들 한층 밝아진 얼굴이 되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22명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오늘은 봉사자가 담당자 한분 밖에 없어 참석자들이 다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오늘 강연을 담당해 주신 분은 아테네에서 무역업을 하고 계신 한종엽 사장님입니다. 스님께서 연일 계속된 강행군으로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피로회복에 좋은 올리브 오일을 선물해 주셨습니다.nbsp▲ 오늘 아테네 강연 책임을 맡아주신 현지 교민 한종엽 사장님그리고 여행사를 하고 계신 김리자 선생님께서는 오늘 강연장과 스님 일행이 머무를 숙소 예약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내일 새벽에 공항으로 갈 때는 한종엽 사장님과 아테네 한글학교 교장선생님이신 김근찬 선생님이 차량 지원을 해주실 예정입니다. 이렇게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아테네에서도 여러 교민 분들의 도움을 받아 강연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도움 주신 한분 한분과 기념사진을 찍고 책을 선물해 드리면서 감사 인사를 전하셨습니다.▲ 오늘 강연장 섭외와 숙소 예약에 도움을 주신 김리자 선생님nbsp내일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25회째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09.19. 37,605 읽음 댓글 38개

2014.9.17 세계 100회 강연 (23) 터키 이스탄불

▲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대성당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3번째 강연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어제는 뒤셀도르프에서 강연을 마치고, 새벽2시 비행기로 독일 쾰른 공항을 출발하여 새벽6시에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오늘 일정을 시작합니다.nbsp공항에 도착하니, 신중애님과 남편 되시는 에르한, 그리고 박남희씨 부부가 공항에 마중을 나와주셨습니다. 모두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소식을 접하고 자원봉사를 해주시기로 한 분들입니다. 스님께서는 감사 인사를 하고 이분들이 렌트해 주신 차를 타고 오늘 숙소인 윤혜숙님이 운영하는 민박집 ‘다온’에 도착했습니다.nbsp▲ 공항에 마중을 나와 주신 박남희씨 부부민박집 ‘다온’은 큰 아파트를 민박처럼 운영하는 곳인데 윤혜숙님이 오늘 스님 일행을 위해서 손님도 받지 않고 특별히 공간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오전 8시, 윤혜숙님이 아침 식사를 맛있게 차려주셔서 감사히 먹고, 밤새 비행기를 타고 온 피로를 풀기 위해 11시30분까지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오늘 강연 준비와 유적지 안내를 도와주실 봉사자 분들. 왼쪽부터 김연옥님, 윤혜숙님, 신중애님, 에르한씨.nbsp12시부터 이스탄불의 주요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스탄불에 온지 11년이 되었고 현지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고 계신 윤혜숙님의 안내로 터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풍부한 설명과 안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nbsp터키는 우리와 같은 우랄 알타이족입니다. 그래서 어순도 같고, 왠지 모를 친근감이 가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이라는 말처럼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에 걸쳐져 있습니다. 북쪽의 흑해와 남쪽의 마르마라해가 연결된 보스포러스 해협은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의 경계입니다. 이스탄불은 AD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수도를 이 도시로 옮겨와 ‘콘스탄티노플리스’ 라 칭해졌었습니다. 로마는 동서로 분열하여 서로마는 멸망하였으나 동쪽은 번영하여 1000년 이상에 걸쳐 존속하였습니다. 이것이 현재 ‘비잔틴’ 혹은 ‘동로마’ 라 불리는 제국입니다. 비잔틴 제국은 6세기에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과 이탈리아 반도까지 영토를 회복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이스탄불의 구시가에 있는 성 소피아 대성당, 지하 저수지, 테오도시우스 성벽 등은 모두 이 시대의 구조물입니다.nbsp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점거하면서 도시는 황폐화되었다가, 셀주크 투르크에 이어 아나톨리아를 지배했던 오스만 투르크의 메흐멧 2세가 이 도시를 포위하면서 비잔틴의 영토는 현재의 이스탄불 구시가와 성벽 내의 아주 미미한 주변지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1453년 간절히 원하던 콘스탄티노플을 빼앗은 메흐멧 2세는 수도를 이곳으로 옮겨 ‘이스탄불’ 이라 불렀습니다. 오스만 투르크가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한 후인 1923년에 수립된 터키 공화국의 새로운 수도를 앙카라로 옮기기 전까지 이스탄불은 1000년 이상 이곳의 수도로 존립했습니다. 그런 역사 깊은 도시를 오늘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입니다. 413년 비잔틴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그 당시까지의 성벽을 새로 늘리면서 지어진 성벽인데, 높이10m, 두께5m의 3중으로 지어져 난공불락을 자랑했습니다.nbsp▲ 난공불락의 요새, 테오도시우스의 성벽비슷한 시기의 우리나라 고구려 성벽의 특징인 ‘치’의 모양도 그대로 갖추고 있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치’는 고구려 성벽만의 고유한 특징인줄 알았는데 말이죠. 실제로 이 성벽은 78세기의 페르시아군과 아랍군, 9세기의 불가리아군과 러시아군의 공격을 견뎌내었다고 합니다. 1600년 전에 만들어진 성벽 치고는 보존상태가 굉장히 양호해서 놀라웠습니다. nbsp다음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에 하나인 ‘성 소피아 성당’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스님께서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성 소피아 성당은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이었던 곳입니다. 360년 비잔틴의 콘스탄티누스 2세에 의해 세워졌으나 그후 심한 화재를 입었고, 532년에는 ‘니카의 난’으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세운 성당이 불타 무너져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바로 재건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이후 5년 만에 제국 각지에서 운반해 온 석재로 어마어마한 인력을 동원하여 537년에 비잔틴 미술의 최대 규모로 꼽히는 대성당을 완성합니다.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성당은 성 소피아 성당보다 크지만 지어진 시기는 약 천년의 차이가 납니다.nbsp▲ 성 소피아 대성당성당 내의 녹색 기둥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붉은 얼룩이 있는 기둥은 레바논에 있는 바르베크의 아폴론 신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거대한 돔은 높이가 54m나 된다고 합니다.nbsp▲ 54m 높이의 돔.nbsp오스만투르크의 정복으로 한때는 모스크가 되었고, 화려한 모자이크 성화들이 모두 회칠이 되어 가려졌고, 건물과 가운데 제대의 방향이 약간 틀어져 있는데, 이는 원래 예루살렘 방향으로 세워진 제대를 모스크로 개조하면서 메카 방향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nbsp▲ 가운데 제대의 방향이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져 있습니다. nbsp입구의 왼쪽 안에 있는 나선 통로를 올라가니 2층에 테라스가 나왔습니다.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모자이크 화는 예수를 중심으로 한 황제상, 성모자상 등으로 상당 부분 손상이 됐지만 그래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기도 했습니다.nbsp▲ 성 소피아 성당의 모자이크 화.nbsp이 모자이크 화의 특징은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예수님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nbsp9세기 초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성상 파괴가 행해져 성 소피아 성당의 모자이크 화도 모두 없어졌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모자이크는 9세기 중반 이후의 작품들이라고 합니다.nbsp성 소피아 성당을 관람한 후에는 대부분 ‘블루 모스크’를 방문합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이곳 터키 땅은 세계 최고의 신석기 문명의 발상지인 곳”이라며 ‘고고학 박물관’을 가자고 하셔서 그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일반 관광객들과는 다른 역사에 대한 스님의 높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고고학 박물관은 3개의 관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먼저 고대 오리엔트 관에서는 초기 아나톨리아 문명의 유물과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관한 유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히타이트의 수도 핫투샤에서 출토된 히타이트와 이집트 간의 평화조약을 기록한 타블렛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으로 최근에도 몇 가지 조약들의 문항 작성에 많은 참고가 되는 유물이라고 합니다.nbsp▲ 히타이트와 이집트 간의 평화조약을 기록한 타블렛, Kadesh Treatynbsp고고학 관에서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상, 묘비, 석관 등 광대한 수집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관이 인상적이었는데, 안내하시는 유혜숙 보살님이 “자신의 무덤을 이렇게 파헤쳐 전시해 놓은 걸 알면 마음이 어떨까” 라고 하니, 스님께서는 “관을 이렇게 화려하게 해 놓으니 파헤쳐 지는 것”이라며 “다 자기들이 지은 과보로 생긴 일” 이라며 권력자들의 사치에 대해 일갈을 해주셨습니다.nbsp도자기 관에서는 12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셀주크, 오스만 투르크의 도자기가 연대순으로 정렬되어 있었습니다.nbsp강연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마지막으로 이스탄불 시내의 전체 조망이 한눈에 보이는 갈라탑으로 향했습니다.nbsp▲ 갈라타 탑1348년에 지어진 이 탑은 제노바인들이 거주하던 요새라고 합니다. 수차례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고 19세기 중반 제노바의 성벽을 모두 철거할 때도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사방이 탁 트인 발코니에 서니 시원한 전망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저 멀리 성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도 보였습니다.nbsp▲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보스포루스 해협▲ 저 멀리 성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가 있는 구시가지가 보입니다.nbsp이스탄불의 조망을 보고 내려와, 거리를 달리는 전차로 유명한 이스틱클랄 거리를 따라 내려오니 바로 오늘의 강연장이 나왔습니다. 오늘 강연은 Convento Santa Maria Draperis 라는 수도원에서 열렸습니다.nbsp▲ 오늘 강연장인 Convento Santa Maria Draperis 수도원. 이스탄불의 메인 스트리트인 이스틱클랄 거리에 있었습니다. nbsp오늘 강연 장소는 주 이스탄불 한인공동체의 도미니코 신부님께서 섭외해 주셨는데, 신부님께서는 지난 5월에 한국으로 귀국하셔서 오늘 강연에는 참석하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님께서는 사전에 한인 분들에게 많은 홍보를 해주셔서 오늘 강연에는 한인 성당에서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nbsp수도원에 도착하니 수도원장님이신 루벤 신부님이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루벤 원장님이 직접 수도원 전체를 안내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예배당에서 정성껏 기도를 한 후 루벤 원장님의 안내를 받아 수도원을 둘러보셨습니다. 루벤 원장님은 종교를 뛰어넘어 대중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스님의 활동에 대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스님께서도 오늘 강연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주신 루벤 수도원장님께 The Freedom 이라는 스님의 영문 번역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 스님을 정성껏 맞이해준 마르셀로 신부님과 루벤 수도원장님 nbsp오늘 이스탄불 강연은 총 100명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강연준비팀에서는 50명 정도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장소를 좁은 공간을 빌렸는데, 100명이 넘게 오는 바람에 앉을 의자가 부족해 앞부분 무대 쪽에 쪼그려 앉거나 뒤쪽에 서서 강연을 들어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미리 참석인원을 예상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하고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nbsp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결혼을 할 때 좋은 남자를 만나는 방법을 묻는 분, 뜻대로 안될 때 좌절감이 드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종교가 카톨릭인데 종교가 점점 세속화되어 갈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불교는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는지 묻는 분, 이곳 이스탄불에서 이뤄낸 성과들과 외로워서 한국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어머니에게 상처주는 말을 했는데 어떻게 어머니와 화해를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아이에게 자주 화를 내게 되는데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어머니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고 난 뒤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 할지 고민인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이스탄불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후회 없이 살았습니다. 딱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이 어머니가 사업으로 힘드실 때 상처 되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제가 어머니께 어떤 분을 믿지 말라고 했는데 그 분을 믿어서 사업에 실패해서 “다시는 엄마를 보지 않겠다” 고 막말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지금도 상처가 분명히 있으실 텐데... 그 상처를 회복시켜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제가 보기에는 어머니의 상처가 문제가 아니고 질문자의 상처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왜 괜히 어머니 핑계를 댑니까? 자기라는 존재는 완벽한 존재여야 하는데 그런 미숙한 행위를 한 자기를 지금 자기가 용서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다 잘났는데 그것 하나만 인생의 오점이 생긴 겁니다. 어머니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nbsp질문자 스스로가 이런 오점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무오류성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종교의 무오류성, 교황의 무오류성, 공산당의 무오류성, 수령님의 무오류성, 이것이 모든 세상의 악을 만드는 원인입니다. 우리는 늘 부족한 존재입니다. 질문자도 부족한 존재이니까 질문자의 수준에서는 그런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럽니까. 질문자는 엄마가 자기 말 안 들으면 성질이 나서 “엄마 안 본다” 하는 수준 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nbsp그러니까 앞으로 이것을 계기로 해서 ‘항상 나는 부족하다’는 것을 자각해 보세요. 질문자의 성질은 앞으로 결혼을 해서도 내 마음에 안들면 남편한테 “너하고 다시는 안 산다” 이럴 수 있는 성질입니다. 나중에 아이도 말 안 들으면 “모자 관계를 끊자” 이렇게 말할 성질이고, 회사 다니다가도 마음에 안 들면 사표를 확 던지면서 “다시는 안보겠다” 이럴 수 있는 성질입니다. 엄마한테도 그렇게 독한 말을 했는데 누구한테 못하겠어요?nbsp그러니까 ‘아, 나한테도 이런 미숙함이 있구나’ 이것을 내가 발견한 것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내가 알게 된 것입니다. 부족함을 알게 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천하가 다 내 부족함을 아는데 나만 그 부족함을 모르고 있으면 얼마나 웃음거리입니까? 아직 세상 사람들은 나의 부족함을 잘 눈치 채지 못하는데 나는 이것을 미리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착하다고 해도 속으로는 ‘아니야, 나도 독한 구석이 있어’ 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이 성질 좋다고 해도 ‘아니야, 나는 성질 안 좋은 사람이야’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앞으로도 내 성질대로 계속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겠구나. 어머니 한 분으로 족하다’ 이렇게 학습비라고 생각하셔야 돼요.nbsp그래도 어머니한테 그렇게 했으니까 부작용이 적지, 남한테 그렇게 했으면 부작용이 아주 많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나한테 이런 부족함이 있구나’, ‘내가 성질이 받칠 때는 좀 유의를 해야겠구나’,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는 좀 유의를 해야겠구나’, ‘화가 날 때는 호흡을 한 번 더 가다듬고 생각을 해보자’, ‘절대로 극단적인 단정은 내리지 말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nbsp그래서 엄마한테 절하면서 “엄마, 감사합니다. 저의 이런 부족한 점을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절을 하면 자기 상처가 치유가 됩니다. 어머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의 상처를 붙들고 헤매고 있는 겁니다. 자기의 무오류성에 흠집이 생겨서 자기가 지금 못 견뎌 하는 것입니다. 하얗고 깨끗한 옷을 입으면 흙탕물이 한 방물만 튀겨도 옷 버렸다 이렇게 되는데, 검은 옷을 입고 가면 열 방울을 떨어뜨려도 표시가 별로 안 납니다. 그것처럼 너무 깨끗한 척 하면 세상 살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부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nbsp벌써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왔다” 이런 얘기를 할 정도면 얌전하게 생겼어도 질문자는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내가 부족하구나’ 자각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착실해도 속으로는 ‘부족하구나’ 자각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에, 이것을 발견하게 해준 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어머니의 판단이 옳았다’ 이러지도 말고, 또 ‘내가 잘못했다’ 이러지도 말고, 그 사건을 계기로 해서 내 속에 있는 극단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께 “앞으로 화를 자초할 것을 미리 발견하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세요.nbsp어머니에게 “어머니 그 때 제가 막말을 해서 미안해요” 말하고, 어머니가 ”괜찮다” 그러면 ”어머니, 그때 제가 나이가 너무 어려서 막말이 나왔는데, 저는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서 제가 독한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어머니에게 늘 감사하며 지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세요.nbsp어머니가 “그래, 너가 그래서 엄마가 상처를 입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엄마가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딸이 좋아졌다니까 엄마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풀어야 합니다. “엄마, 죽을 죄를 지었어” 자꾸 이러면 오히려 안 풀려요. 딸이 자꾸 잘못했다고 하면 오히려 엄마는 자신의 속심을 안 내어놓습니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 덕분에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렇게 얘기를 하면, 엄마가 “아이고, 내가 너를 낳았지만 너 진짜 독하더라. 어째 내 자식이 저렇게 독한 줄은 몰랐다” 이렇게 속심을 내어놓게 됩니다. 속심을 내어놓는 것이 엄마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입니다. 엄마가 “괜찮다, 괜찮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nbsp nbsp nbsp그렇게 얘기했는데도 엄마가 “그런 일이 있었냐? 나는 다 잊었다” 할 수 있습니다. 엄마란 원래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 엄마가 그 때 상처가 안 되었구나’ 알 수 있어요. 만약 엄마가 상처가 되었다면 “미안해” 그러지 말고 대화를 걸면, 엄마는 “내가 상처를 입었지만, 너가 좋아졌다니까 엄마는 괜찮다” 그럽니다. 부모란 그렇습니다. 질문자도 자식 낳아 키워보면 부모 심정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nbsp그러니 엄마의 상처는 질문자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나중에 자식을 낳아서 그런 말을 했다면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엄마의 인생입니다. 엄마는 자식을 감싸 안고 살아야 하니까 엄마는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자는 꽁 하고 있지 말고 ‘내 결벽증에 내가 지금 못 견뎌 하는 구나’ 이렇게 자기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부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스님이 이렇게 안 꼬집어 줘도 자기가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nbsp모든 상처는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남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화가 나서 “주여, 저 두 놈은 지옥에 확 처넣어 버리세요” 했다면, 예수님이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가 없지요. 그분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상처가 없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위로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항상 자기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합니다. 이기적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내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우리는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고, 타인의 상처를 감싸 안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엄마 문제가 아니고 자기 문제라는 것을 자각했으면 좋겠습니다.”nbsp질문한 여성분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질문자에게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난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질문자는 “스님 말씀대로 엄마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구나 알게 되어 개운한 느낌입니다” 라며 밝게 웃었습니다. nbsp오늘 강연은 무려 3시간 동안 열기있게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살아있음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강조하며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삶이 길거리에 핀 풀 한포기와 같다고 생각하면 사는 것이 걱정할 게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살았네’ 한 번씩만 외쳐 보세요. 살았다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살았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내면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마세요. 항상 현재에 살아야 합니다. 현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상을 할 때 호흡관을 하는 이유도 숨 쉬고 있다는 것에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이 늘 행복해야 합니다. 혼자 살아도 행복하고, 둘이 살아도 행복하고, 자식이 있어도 행복한 것이고, 이혼을 해도 결혼 한 번 더 할 수 있으니까 행복한 것이고, 신체 장애라도 살아있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나는 이래서 불행하다며 불행한 이유들을 자기가 만들어서 확고부동하게 움켜쥐고 있어요. 그것을 놓아버리세요. 나이가 들면 들어서 좋고, 젊으면 젊어서 좋고, 혼자라면 혼자여서 좋고, 결혼했으면 결혼해서 좋고, 터키에 살면 터키에 살아서 좋고, 한국에 가면 한국에 가서 좋고, 이렇게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의 삶이 가벼워지고 밝아집니다. 그런 마음으로 친구를 사귀고 장사를 하면 조금 더 나아져요. 그러면 모든 것이 좋아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렇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한분 한분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김연옥 보살님이 주축이 되어 담당해 주셨습니다. 93년 모스크바에 유학을 오셨다가 터키인 남편을 만나서 2004년부터 이곳 이스탄불에서 의사를 하고 있는 남편과 살면서 딸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계셨습니다. 오늘 강연 준비를 위해 가족 모두가 나와서 함께 봉사를 했습니다.nbsp▲ 오늘 강연 담당을 맡아주신 김연옥님 가족nbsp그리고 윤혜숙님은 오늘 하루 종일 유적지 안내를 명품 가이드 수준으로 해주시고, 식사와 숙소도 준비해 주셨습니다.nbsp신중애님은 남편인 에르한씨와 함께 공항 마중을 나오셔서 운전도 해주시고, 스님 일행이 시내로 이동할 때와 돌아올 때 하루 종일 운전 지원과 점심 도시락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강연 준비도 함께 해주셨고요.nbsp이 외에도 파카유로 온형일 이사님이 강연 준비와 스님 일행을 맞이하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후원금을 보시해 주셨고, 한인회 회장님께서는 스님을 환영하는 꽃바구니를 보내주셨습니다.nbsp또 오늘 강연을 함께 준비해준 많은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단주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라며 감사 인사도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단주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라며 감사 인사도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강연장 뒷정리를 마치고 오늘 숙소인 윤혜숙님이 운영하는 ‘다온’ 민박집으로 다시 돌아오니 밤10시반이 다 되었습니다. 스님과 스텝진 모두 강연을 준비하느라 저녁식사를 하지 못했는데, 보살님께서 정성껏 차려준 저녁 식사를 감사히 먹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nbsp내일은 오전에 비행기를 타고 아테네로 갑니다. 아테네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nbsp

2014.09.18. 45,561 읽음 댓글 43개

2014.9.16 세계 100회 강연(22) 뒤셀도르프

▲ 뒤셀도르프 즉문즉설 강연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2번째 강연이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어제는 밤12시에 프랑스 파리를 출발하여 밤새 차를 타고 새벽5시30분에 독일 아헨의 김선희 법우님 집에 도착했습니다. 밤새 차를 타고 오느라 휴식을 취하지 못해 6시부터 스텝진 모두 휴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전9시에 최말순 보살님이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10시에 아헨을 출발했습니다. 차를 타고 2시간을 달려 12시에 뒤셀도르프의 박삼순 보살님 집에 도착해 보살님께서 정성껏 마련해 주신 점심을 먹었습니다.nbsp▲ 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독일정토회 회원 분들.nbsp스님께서는 연일 계속된 강행군으로 목이 많이 편찮으시고 온몸에 근육통이 있으셔서 도착하시자마자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오후 1시부터는 독일정토회 이사회와 총회가 열렸습니다. 현재 독일에서는 푸랑크푸르트, 베를린, 뒤셀도르프 3곳에서 정토법회가 열리고 있고, 뮌헨, 함부르크 2곳에서 열린법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독일정토회인데, 이제는 독일정토회도 회원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총회를 통해 이사를 뽑고, 선출된 이사회에서 이사장을 뽑고, 1년 한번 회계 감사도 하고, 이사회의 회의 결과도 회원들에게 보고하는 형식을 갖춘 법인을 운영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총회를 소집해 이와 같은 내용들을 논의하여 결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nbsp▲ 독일정토회 총회 모습. nbsp먼저 총회 구성원 28명을 확정하고, 이사회의 이사로 송임덕 보살님을 대표로하는 임원 7명을 선출했습니다. 이사장으로 법륜스님을, 행정업무를 보는 총무로 이희정 보살님을, 회계 담당자로 김선희 보살님을 선출하였습니다. 그리고 법회 홍보를 위한 신문 광고료 지불 여부, 인도성지순례 참가자 모집 방법 등 몇 가지 안건들을 함께 논의하였습니다. nbspnbsp▲ 독일정토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nbsp정토회의 1차 만일결사는 국내 활동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2차 만일결사는 해외활동이 중심이 될 것이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해외 정토회의 사업 내용과 회계가 항상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해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총회를 마치고 잠깐 시간을 내어 독일 교민 역사의 산 증인이신 이상호 거사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상호 거사님은 1965년 33살의 젊은 나이에 광부로 독일에 오셨습니다. 독일 교민의 역사에서 가장 초창기에 오신 분입니다. 최근에는 ‘독일 광부 30년사’를 직접 책으로 집필하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거사님의 사모님도 남편을 따라 1966년에 간호사로 오셨는데, 두 분은 이곳 독일에서 무려 49년을 살아오신 셈입니다. 거사님께 그동안의 독일에서 살아온 삶이 어떠했는지 물어보니 이렇게 답변해 주십니다.nbsp▲ 독일 교민 역사의 산 증인이신 이상호 거사님과 박삼순 보살님 부부.nbsp“사실 독일이나 한국이나 삶에 있어서 부딪치는 어려움은 같습니다.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한국에서도 똑같은 어려움에 처할 것입니다. 독일 사회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직업에 대한 귀천 의식도 크지 않았습니다. 한국처럼 광부라 하면 천한 직업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광산에서, 제철공장에서 일하면서 보람되게 잘 지냈습니다. 다만 이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몸은 고향 땅에 묻히고 싶은 바램이 있습니다.” nbsp낯선 나라에서 어려움이 많으셨을 텐데, “어려운 점은 없으셨냐?”는 질문에 그냥 웃기만 하시는 얼굴의 주름살을 보며 마음 한켠이 숙연해졌습니다.nbsp오후 4시에는 스님께서 건강이 계속 안 좋으셔서 원래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병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북유럽에서 강연을 하는 동안 마이크 시설 없이 휴대용 스피커로 강연을 하셨는데, 목을 무리하게 사용한 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편도선이 붓고 목에서 피가 나오고 온몸에 근육통이 있으셔서, 배길야 보살님의 소개로 뒤셀도르프 근교에 있는 박영옥 선생님의 개인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으셨습니다.nbsp▲ 병원 진료를 해주신 박영옥 선생님nbsp박영옥 선생님은 “오늘도 강연이 있으시냐?” 며 스님의 계속된 강행군을 많이 염려했습니다. 항생제 처방을 받고, 인근 약국에서 항생제를 구입해 드시고 곧장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Freizeitstatte Garath 라고 불리우는 문화센터에서 열렸습니다. 총 120명이 참석하여 강연장을 가득 메웠습니다.nbsp▲ 오늘 뒤셀도르프 강연이 열린 Freizeitstatte Garathnbsp총 6명이 다양한 질문을 했습니다. 부모 형제들에게 협박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친오빠를 미워하고 증오해서 고민인 분, 불교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한 분, 50년 전에 노동자로 독일에 왔지만 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 우리나라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차별을 받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성 때문인지 압축 성장으로 인한 것인지 스님의 견해를 묻는 분, 20대에는 서른이 되면 더 의젓해지겠지 기대했는데 막상 서른이 되니 달라진 것은 없고 좌절이 된다는 분, 결혼한지 5년이 되었지만 아내와 종교가 달라 지금까지 고민이라는 분, 스님 법문을 들을 때는 참 좋은데 회사에 출근하면 10번 중에 1번 꼭 걸려서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분 등 각각이 질문에 스님께서는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아내와 종교가 달라 갈등인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저는 기독교를 믿고 있고요. 아내는 어렸을 때부터 불교 집안에서 자라서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학교를 다녔다면 아내는 불교학교를 다녔습니다. 결혼할 때는 종교는 개인적인 문제라 제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괜찮겠지 했는데, 제 가족들도 모두 기독교여서 아내가 혼자 외롭게 떠다니는 섬처럼 되고 있어요. 저는 종교를 바꾸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분위기가 교회에 나가야 하는 것으로 압박이 되고 있습니다. 저도 말로는 아내에게 자신의 종교를 지키면 된다고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는 아내가 종교를 바꿔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줄 알았는데, 결혼 한지 5년이 되었지만 갈등은 늘 제자리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nbsp“아이들이 있어요?”nbsp“네, 있습니다.”nbsp“남편과 아내, 두 사람의 문제는 평등합니다. 이 문제를 갖고 각각 고집해도 상관없어요. 그러나 아이를 가지면 부모로서 아이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제도가 아이는 주로 엄마 품에 많이 있게 되지요. 엄마라는 말은 ‘기룬 자’라는 뜻이에요. 주로 여자가 아이를 기루니까 주로 여자가 엄마가 되는데, 만약에 아빠가 아이를 기루면 아빠가 엄마가 됩니다. 아이는 육체적으로는 엄마와 아빠를 반반씩 닮는데, 정신적으로는 품에 안아서 기룬 자를 80 이상 닮습니다. 엄마의 심리적 프로그램을 아이가 다운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질문자의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스트레스도 덜 받고 건강하려면 내가 아이에게 잘해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엄마가 스트레스를 안 받아야 합니다. 엄마가 편안하고 심리가 좋아야 아이도 좋아집니다.nbsp시어머니가 손자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려면 ‘아기 엄마’인 며느리에게 잘해주어야 하고, 아빠가 아이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려면 ‘아기 엄마’인 아내에게 잘해주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라는 입장에서 아내에게 잘해주라든지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입장에서 며느리에게 잘해주라는 개념이 아닙니다. 성인끼리는 둘이서 싸우든 말든 자기들 문제인데, 아기가 있을 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nbsp종교적인 문제로 아기 엄마에게 갈등이 있으면 부부 지간에는 괜찮지만 아기에게는 나쁘다는 것을 질문자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아기가 세 살 때까지는 100 영향을 줍니다. 유치원 때는 70, 초등학교까지는 50, 사춘기 때는 30 정도 영향을 주고, 성인이 되면 거의 영향을 안 줍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아기 엄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야 합니다. 종교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면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불교가 좋냐 기독교가 좋냐 하는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제입니다.nbsp그렇다고 가족들에게 “그러지 마라” 자꾸 그러면 질문자가 가족들과 또 갈등이 생기거든요. 특히 기독교는 가족들을 전도하지 못하면 교회에서 체면이 안섭니다. “너 가족도 전도하지 못하니?” 이렇게 되기 때문에. 권사나 집사가 되려면 가족을 전도해야 올라갈 수 있거든요. 기독교 집안에 시집을 왔기 때문에 가족들이 그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질문자는 아내가 아기를 키우는 동안에는 거기에 구애를 받지 않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질문자가 아기 엄마를 편안하게 하는 방법은 질문자만이라도 항상 아내에게 “아이고 여보, 종교 문제 때문에 힘들었지? 괜찮아” 이렇게 위로해 주고 오히려 자기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nbspnbsp남편이 좋으면 남편의 종교도 좋게 보이고, 남편과 갈등이 생기면 남편 갖고 시비를 못하고 자기 정체성으로 종교를 지키려고 합니다. ‘기독교로 바꾸는 것은 내가 남편에게 굴복하는 거다’ 이렇게 해서 더 불교를 움켜쥐게 됩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라는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종교로 건드리면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질문자가 아내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하더라도 종교로 접근하면 절대로 승산이 없습니다. 아이들한테도 나쁜 영향을 주고요.nbsp오히려 질문자가 아내에게 잘해주고 최선을 다해주고 아내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질문자가 수행을 많이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남편이 신뢰가 되고 좋아지면 종교는 부차적으로 따라옵니다. 그때는 가만히 놓아두어도 아내가 교회로 따라오게 됩니다. 사람이 변하면 부정적인 것은 다 상쇄돼요.nbsp아이들을 기독교 신자로 만들고 싶으면, 엄마 아빠가 다투는데 아이들이 듣기에 엄마가 더 합리적이다 싶으면 아이들이 엄마 쪽 종교를 선택합니다. 엄마가 좀 문제고 아빠가 더 낫다 싶으면 아빠 쪽 종교를 선택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를 믿어라 하는 방식의 선교는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nbsp첫째, 아이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도 질문자가 아내를 잘 보살펴주어야 하고, 둘째, 아내를 장기적으로 기독교로 오게 하기 위해서도 질문자가 아내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고, 셋째, 자녀들이 기독교로 오도록 하는 데에도 질문자의 삶이 얼마나 사랑으로 바뀌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회로 강제로 오게 하는 것은 쉽지가 않아요. 시어머니가 아무리 절에 열심히 다녀도 집안에서는 며느리한테 고지식하게 대하고 자기 고집이 세서 며느리한테 신뢰를 못 얻으면 며느리는 절대로 불교 신앙을 안 가집니다. 형식적으로만 따라가지 교회로 갈 확률이 높아요. 시어머니가 싫으니까 시어머니가 믿는 종교도 싫어지는 것입니다.nbsp그래서 질문자는 종교는 잊어버리고 우선 ‘아이의 엄마를 편안하게 해줘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편이 먼저 되세요. 외로움 속에서 남편 하나 믿고 시집을 왔는데 남편이라도 방패막이가 딱 되어 주어야 합니다. 가족들과 갈등이 있더라도 오히려 위로해주세요. 그렇게 해줘야 아내가 남편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nbsp질문한 남성분은 활짝 웃으며 “예, 감사합니다”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목이 많이 아프심에도 불구하고 2시간 20분 동안 쉬지 않고 열강을 해주셨습니다. 강연을 마무리하면서는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하시면서 함께 행복한 삶을 기원해 주셨습니다. nbsp“아직 안 죽고 살아 있는 것만 해도 인생은 대성공입니다. 남의 집에 가서 구걸하지 않고 사는 것만이라도 됐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자기를 바라보면 아직은 살만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해 걱정들도 많이 하시는데, 대한민국도 이런저런 문제가 많지만 지금까지 잘 굴러왔고 앞으로도 잘 굴러갈 거예요. 그런 긍정 위에서 그래도 더 잘 되려면 ‘내가 힘을 좀 보태야겠다’ 이렇게 해서 긍정적인 측면에서 비판도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같이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는데 많은 분들이 스님의 건강이 염려되었는지 “스님, 건강하세요”, “100회 강연, 무사히 잘 마치세요” 하며 인사를 건냈습니다.nbsp오늘 뒤셀도르프 강연은 최순진 총무님을 중심으로 뒤셀도르프 정토법회 회원들의 자원봉사로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최순진 총무님의 아들 동찬군도 함께 자원봉사를 해서 모자 지간의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nbsp▲ 뒈쉘도르프 정토법회 최순진 총무님과 아들 동찬군.nbsp수고한 봉사자들과 기념 촬영을 한 후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였습니다.nbsp▲ 오늘 뒤셀도르프 강연을 함께 준비해준 봉사자분들.nbsp스님께서는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봉사자들과의 소감나누기는 함께 하지 못하시고 곧바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독일 쾰른 공항에서 새벽 2시에 비행기를 타고 밤새 이동해 터키 이스탄불에는 아침 6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내일은 터키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09.17. 49,966 읽음 댓글 58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