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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27 세계 100회 강연(33) 캐나다 토론토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서른 세번째 강연이 캐나다의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노향숙님과 친구분들이 오셔서 어제 저녁 및 오늘 아침 식사를 준비해주어서 스님 일행은 오전 7시에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노향숙님은 오타와에서 스님 강연이 열린다고 하길래 정말 기쁜 마음으로 숙소와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행사준비팀에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숙소와 식사준비를 해주신 노향숙님께 인생수업 책에 사인을 하여 선물로 드리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하룻밤 편안하게 숙박하고 식사까지 대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전 7시 30분에 토론토로 출발하였습니다. nbspnbsplt노향숙님gt캐나다 수도인 오타와와 캐나다 동부 최대의 도시인 토론토가 속해있는 온타리오주는 호수와 강의 땅입니다. 오타와에서 토론토로 가는 길은 온타리오 호수 북쪽편을 끼고 달리는데 이 길은 Thousand Islands Parkway로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가는 고속도로 입니다. 온타리오 호수에 있는 천개의 섬을 천섬이라고 하는데 이 천섬은 온타리오 호수 내에 있는 유명한 관광 명소입니다. 온타리오 호수는 남쪽으로는 미국의 뉴욕주와 북쪽으로는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둘러싸고 있는데 미국쪽에는 로체스터에서 천개의 섬으로 들어가는 유람선이 있고, 캐나다 쪽에서는 킹스톤에서 천섬으로 가는 유람선이 있습니다. 저희는 천섬을 둘러보지는 못하지만 고속도로를 따라 가는 길에 잠깐 화장실도 들를겸 호수를 구경하기로 하고 잠시 호수쪽으로 들어갔습니다.nbsp호수인지 바다인지도 모를 정도로 넓은 온타리오 호수를 잠시 감상하고, 토론토로 오는 길에 마지막 휴게소에 들렀는데 어떤 분이 법륜 스님께 인사를 하면서 천주교 신자인데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있다고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다시 길을 들어 1시쯤에 토론토의 정연희님 댁에 도착하였습니다. 정연희님 댁에 와서야 저희도 스님께 아직 인사를 못드린 것이 생각나서 정연희님과 함께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정연희님이 준비해놓은 음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는 휴식과 각자의 업무를 한 후 행사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nbsp오늘 한인회에서는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여 한인회관 주변에 도로를 막아두고 있었기 때문에 강연 준비를 하던 자원봉사자들은 청중들이 적게 올까봐 걱정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토론토 한인회관은 2012년, 2013년에 이어서 3번째로 같은 장소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사장으로 들어서니 벌써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안내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 강연은 지난 6월에 개원한 토론토 법당의 불교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서 준비를 하였다고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장에 도착하신 후 책 사인을 위해 줄을 서 있던 분들께 책사인회를 해주시고 강연장에 오신 분들과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어 스님소개 영상이 나온 후 5시에 무대에 오르니 큰 박수로 참가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토론토는 약 55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중에서 한인들은 약 65,000명 정도 거주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강연에는 450여명이 함께 하여 많은 분들이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을 찾아주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먼저 “안녕하세요. 주말인데 놀러도 안가고 여기에 오셨어요? 다들 놀러가고 아무도 안올 줄 알았습니다. 유럽 순회강연을 하고 미주로 오는 관계로 조금 목을 다쳤습니다. 감기 몸살에 목이 쉬었으니 목소리가 듣기 싫더라고 좀 참아주세요. 그리고 무대가 너무 높아서 서서 하면 높아지니 앉아서 하겠습니다” 라고 양해를 구하시면서 처음으로 자리에 앉아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그리고 자원봉사자 분들과 한인회 관계자들께 감사인사를 하셨습니다.nbsp매년 토론토는 한인회의 좋은 공간에서 편안하게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 2013년에 이어서 올해도 이렇게 좋은 공간에서 강연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토론토 한인회장님 이하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이 행사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이 강연은 완전 무료로 진행됩니다.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장소도 정하고 포스터도 붙이고 홍보를 해서 강연이 이루게 지게 된 것입니다. 이분들의 수고를 위해서 감사드립니다.” nbsp그리고, 유튜브를 통해서 즉문즉설을 보신 분들을 손들라고 하니 약 23 정도가 손을 들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유튜브의 열기가 뜨겁다는 것을 과연 실감할 수가 있었고, 많은 분들이 유튜브를 통해서 삶이 바뀌었다고 하고, 한 분은 외국인 분인데 자기 와이프가 매일 컴퓨터 앞에서 스님을 매일매일 보고 있다고 하면서 즐거워하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즉문즉설 강연은 어떤 특정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여러 문제를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nbsp어떤 주제도 좋습니다. 종교 얘기, 사회 얘기, 정치, 과학, 인생 등 주제는 제한이 없고, 얘기하는 방식에도 제한이 없습니다. 어떤 애기를 어떤 방식으로 해도 좋습니다. 자 시작해 볼까요?” 라면서 바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에서는 총 10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두려움, 슬픔, 분노가 많은데 순간순간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분, 큰집에서 시부모님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자신도 따라 제사를 지내도 되는지 묻는 분, 심리 상담사인데 상담자들의 상처가 자꾸 생각나서 마음이 무겁고 상담을 잘했는지 죄책감도 드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우울증이 와서 휴학을 반복하고 있는데 자신을 극복하는 방법을 묻는 분,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장례식에 가지 못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는 분,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간관계가 편해졌는데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어 고민인 분, 전생에 지어진 운명이 있는 것인지 궁금한 분, 박사과정 5개월만에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고민인 분, 캐나다의 이혼율이 40라고 하는데 결혼해서 잘 살려고 하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천생연분이란 것이 정말로 있는지 궁금한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마지막 열번째 질문인 한국 문화와 캐나다 문화 사이에서 고통받는 친구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고민인 캐나다 교포 1.5세 친구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저는 캐나다에 11살 때 온 교포 1.5세입니다. 어렸을 때는 한국에서 자랐고 커서는 캐나다에서도 자랐고 그래서 한국과 캐나다의 문화를 함께 접했기 때문에 두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과 있을 때와 캐나다 사람들과 있을 때 서로 간의 문화 차이를 많이 느껴요. 주변에 있는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며 ‘내가 접한 문화에서는 이렇게 해서 쉽게 해결하는데’ 하는 순간들을 양쪽에서 많이 느끼게 됩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해결하는 방법들을 알아서 마음이 편할 수 있는데,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을 위한다면 그냥 그 사람이 가는 길을 놔두어야 할지, 옆에서 내가 참견을 해야 할지 판단이 안될 때가 많습니다. 어떤 태도를 가져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까요?”nbsp“질문자가 좋을 대로 하시면 됩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됩니다. 하고 싶어서 말을 했더니 내 말 안 들으면 그만 두면 되고요. 그러나 내 말 안 듣는다고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됩니다. 나를 위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말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말을 안 들으면 그만이지 내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그를 위해서 한다고 착각했지 사실은 내 식대로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nbsp그래서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말을 해주면 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말을 안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나를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안 하면 되고, 스트레스를 안받는다는 것은 그를 위해서 했기 때문에 하면 됩니다. 해야 된다, 하지 말아야 된다고 정해진 법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즉문즉설을 하는 이유도 인생에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든 자기가 알아서 살면 되는데 물으니까 대답을 하는 것이거든요. 제 말을 받아들여서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이에요. 그건 그들의 자유입니다. 안 받아들이는 것이 기분 나쁘면 제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강연을 하기 싫어지겠죠. ‘묻기만 하고 얘기해줘 봐야 소용 없더라’ 이렇게 되잖아요. 묻기 때문에 그냥 저의 관점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이 그것을 듣고 동의가 되면 그렇게 하면 되고, 동의가 안되면 안해도 되고, 그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저는 다만 할 뿐이거든요. 그래야 저도 스트레스를 안 받고 계속 강연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을 것이 없으면 강연은 그냥 끝나는 것이고, 물을 것이 있으면 더 하는 것입니다.”nbsp“그 사람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면 불쌍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nbsp“그것은 질문자의 기분입니다. 산에 가다가 큰 나무 밑에 작은 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작은 나무를 불쌍하게 느끼면 그것은 질문자의 기분이지 작은 나무의 문제는 아닙니다. ‘내가 저 사람이 불쌍하게 느껴지는구나’ 이러고 가면 되지요. 길거리에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을 불쌍하게 느끼는 것은 내 문제이지 그 사람의 문제는 아닙니다. 거기 앉아 있는 사람 중에는 하나도 안 불쌍한 사람도 있어요. 수행 방법에 구걸하는 것이 있거든요. 제가 수행 삼아서 다 떨어진 옷 입고 길거리에 딱 앉아 있으면 실제로 불쌍한 사람이에요? 불쌍한 사람이 아니지요.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불쌍하게 여기지요. 그러니 다 자기 문제라는 것입니다.nbsp그러니 내가 주고 싶으면 주고, 주기 싫으면 안 주면 됩니다. 왜 너는 구걸하느냐고 나무랠 필요도 없고, 내가 한푼 준다고 그 사람이 고마워할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주는 것은 내 문제이고, 고마워하는 것은 그의 문제입니다. 항상 자기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이 들면 도움을 주면 됩니다. 밥이 필요하다고 하면 밥을 주면 되고,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돈을 주면 되고, 필요 없다고 하면 안 주면 됩니다. 예전에 알렌산더 대왕이 작은 통 속에 살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찾아가서 “도움이 필요하냐? 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다”고 하니까 “비켜라. 햇빛 가리지 마라” 이렇게 얘기 했다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남을 도울 때 ‘그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좋은 생각이 아니에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다시 상처를 입게 되거든요. 제가 인도에 구호활동을 가기 전에도 인도의 아이들은 다 잘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가서 초등학교 공부를 시키니까 중학교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낸 것입니다. 제가 만약에 초등학교 공부를 안시켰으면 그 아이들이 중학교에 갈 생각은 안냈겠죠. 중학교에 가고 싶은데 안보내주면 섭섭하죠. 고등학교 졸업했는데 대학에 안보내주면 섭섭하죠. 섭섭하니까 원수가 되어요. 우리가 도와주면 나중에 과보는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이에요. 그래서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다 노후가 힘들거든요. ‘내가 도와주었다’ 이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래요. 도와주면 원수 되기가 쉬워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면 “내 보따리 내놔라” 이렇게 하기가 쉽다 이말입니다. 그런대도 왜 돕느냐? 아이들은 공부가 필요해요. 비록 원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도울 것은 도와야 합니다. “내 보따리 내놔라” 하더라도 죽어가는 생명은 건져야 합니다. 칭찬받으려고 어떤 일을 하면 안 됩니다.nbspnbsp우리가 길 가는 사람과 원수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다 좋은 관계들이 원수가 되는 이유는 기대 심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기대 심리를 버리는 것을 ‘무주상’이라고 합니다. 기대 심리를 갖는 것을 ‘상을 갖는다’고 하고, 기대 심리 없이 베푸는 것을 상이 없이 베푼다고 해서 ‘무주상보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좋은 일을 한다고 반드시 좋은 과보가 돌아온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내가 남을 돕고도 기대가 크면 실망이 커지는 법입니다. 내가 결혼해서 만난 남자가 훌륭해서 잘 산다 이런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상대 남자의 능력이 100인데 200을 기대하고 만나면 결혼하면 실망하고, 50을 기대하고 만나면 결혼하면 만족하는 것입니다. ‘어, 생각보다 사람이 괜찮더라’ 이렇게 됩니다. 내가 기대가 크면 ‘어, 살아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모자라더라’ 이렇게 됩니다.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다 나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의 기대를 낮추면 행복도가 높아지고, 기대가 높아지면 행복도가 낮아지는 것입니다.nbsp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는 50년 전에 비해 260배 더 잘 살아졌지만 과연 대한민국 국민이 더 행복해졌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기대를 인간이 갖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해야 자신의 행복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그런데, 상대방이 한 행동이 정말 나쁜 행동이여서 도저히 용납이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nbsp“자기 마음에 안 들면 마음에 안 든다고 얘기하면 되지요.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마음에 든다고 거짓말 할 수는 없잖아요.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얘기하면 되지 화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마음에 맞도록 태어나서 사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다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데 그것을 다 내 생각에 맞춰서 사람을 바꾸려고 하면 내가 힘들어지죠. 한국 사람과 캐나다 사람을 나눌 수도 없어요. 한국 사람 중에도 캐나다 사람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고, 캐나다 사람 중에도 한국 사람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다수를 보면 캐나다에서는 자식이 스무살이 넘으면 과잉보호를 안하죠. 그러니 부모가 늙어서 자식 때문에 부담이 덜 되고, 자식들도 부모의 무거운 짐을 안지죠. 그런데 우리는 자식이 스무살이 넘었는데도 과잉보호 한다고 부모가 힘들고, 자식들은 부모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해서 힘들죠. 이런 것은 캐나다의 문화가 오히려 더 나아 보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한국식 문화가 더 나은 것도 있습니다. 한국은 공동체적인 성격이 많고, 캐나다는 개별적인 성격이 많다는 점에서는 캐나다 쪽이 오히려 늙으면 더 외롭죠. 이런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단점이라는 것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또 달라져요. 그러니 장단점이라고 말할 수 없고 문화가 서로 다른 것입니다. 중간에서 보기에 내 취향에 이거는 캐나다가 낫고 이거는 한국이 낫다는 그 판단마저도 내가 하는 것이지 캐나다 문화와 한국 문화로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내 견해를 상대에게 얘기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내 견해일 뿐이지 그것을 상대가 꼭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고 상대가 수용하면 다행이고,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견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nbspnbsp“그렇게 되면 내 취향과 가까운 사람과는 가까워지지만 내 취향과 먼 사람과는 멀어지게 되잖아요. 나랑 맞지 않는 사람들과는 아예 만나지 않게 될 것 같은데...”nbsp“그러면 질문자만 손해이지요. 질문자의 인생살이가 그만큼 좁아지게 되는 것이죠. 질문자의 선택입니다. 취향에 맞는 사람끼리만 살려고 하면 폭이 좁아지고, 폭이 넓어지려면 취향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취향은 취향일 뿐이니까요. 나는 술 먹는 게 싫다면 술 안먹는 사람끼리 모여야 하고, 나는 술을 안 먹지만 술 먹는 사람들과 같이 지내려면 술집에 같이 가서 술도 따라주고 해야 합니다. 나는 담배를 안 피우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겁니다. 나는 불교를 믿지만 기독교인들과도 같이 어울리는 것이고, 기독교인이랑 어울린다고 꼭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될 이유는 없잖아요. 불교를 믿는다고 기독교 신앙을 배척할 필요도 없고요. 그렇게 인생은 자기 선택입니다.nbsp자기 취향을 고집하면 인생의 폭이 좁아집니다. 또 폭을 넓히려면 자기 취향에 너무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채식을 하지만 고기 먹는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어야 여러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지요. ‘나는 채식만 하겠다’고 고집해서 상도 따로 차려줘야 하면 늘 혼자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안 먹을 뿐이지 먹는 것에 대해 시비를 안 하면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나의 선택입니다. 자기 가치관을 고집할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 가치관을 지키되 다른 사람의 가치관도 용납할것인가에 따라서 교류의 폭이 좁아지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합니다. 넓어지는 것이 꼭 좋다 이렇게 생각해도 안 됩니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고, 그것 자체는 자기 선택입니다.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선택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택을 망설이는 이유는 책임을 안 질려고 하기 때문입니다.nbsp예수님이나 부처님은 이런 원리를 가르치신 분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어서 그 원리를 모르다가 그 얘기를 듣고 ‘아, 원리가 이렇구나’, ‘악하게 살면 앞으로 재앙을 받겠구나’ 이렇게 자기가 스스로 원리를 터득해서 사는 것이지 지옥 간다니까 겁을 내거나 천당 간다니까 혹해서 하는 것은 어린 아이와 같은 행동입니다.”nbsp스님께서는 청중들과 웃음과 함께 호흡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가운데 벌써 2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도 목이 많이 아픈 것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고 갈라지셨습니다. 질문에 모두 답변해 주신 후 “끝까지 들어줘서 감사하다” 하시며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당부하면서 지금까지 나온 질문들을 정리하며 다음과 같이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태어남에 의해서 주어진 것은 주어진 대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태어난 아이가 성스러운 것이지, 태어나는 방식에 의해서 성스럽고 추하고가 정해지는 것은 없습니다. 어릴 때 어떤 상처가 있었든 지금 여러분들이 살아 있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은 과거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오지도 않은 미래를 자꾸 걱정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삶이 괴롭고 근심걱정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니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오지도 않은 미래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깨어 있으세요.nbsp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이 ”일체 중생이 다 부처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깨어 있으면 지금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행복과 불행이 남이 준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이 주든 전생이 주든 남편이 주든 아내가 주든 남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헐떡거리고 살아야 됩니다. 또 누구를 미워해야 합니다. ‘너만 아니라면, 당신만 아니라면 나는 행복할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은 항상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자각하셔서 여러분의 인생이 행복해야 합니다.nbsp캐나다에 온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에요. 한국에서 캐나다에 오면 다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그러니 자기가 좋아야 천당이 됩니다. 이것을 ‘유심정토’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좋으면 천당입니다. 한국이 좋으면 한국이 천당이고, 캐나다가 좋으면 캐나다가 천당입니다. 지장보살에게는 지옥이 극락입니다. 왜 그럴까요? 남을 돕는 일은 지옥에 가야 많을까요? 천당에 가야 많을까요? 내가 선택해서 가서 그곳에 할 일이 많으면 그곳이 천당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지나치게 물질에만 연연하면 안 됩니다. 물질이 필요는 한데, 그것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전 지구적으로 200여개의 나라 중에 캐나다 정도면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제도적으로도 좋은 편이에요. 여기에 살면서도 불행하다면 그것은 개인 문제라고 봐야지 세상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일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여러분들의 삶은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이렇게 말씀하고 강연을 마무리 하니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도 않고 갈라지는 가운데 2시간 10분 동안이나 강연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은 큰 박수로 감사를 표하였습니다.nbsp오늘 토론토에서는 주말이라 큰 마라톤 대회가 2시까지 있어서 도로 곳곳에 교통을 막아놓아 사람들이 많이 오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450여명이 참석하여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스님과 함께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옆에 앉아서 시종일관 스님의 말씀에 웃음을 보이던 젊은 커플과 1.5세로 보이는 커플에게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으니 정말 유익하고 재밌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행사를 마치고 바로 연단 아래에 마련된 책상에서 책사인회가 열리자 많은 분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스님께서는 한사람 한사람 사인을 해주시고 기념 사진촬영도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nbsp또한 스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훌륭한 토론토 한인회관에서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장소를 내어주는 한인회장님과 한인회에 감사의 표시로 최근에 나온 책 3권을 사인하여 한인회관 도서실에 기증하였습니다.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한 다음에 자원봉사자 모두에게 선물로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셨습니다. 오늘 자원봉사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불교대학생들로써 처음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이었지만 어느 지역보다도 편안하고 능숙한 모습으로 열심히 해주셨고, 자원봉사자는 모두 20명이나 되었습니다. 토론토 정토법당은 올 6월에 개원한 법당으로서 작년과 올해 2번의 행사는 열린법회를 개척한 김정란 총무님이 맡아서 진행하였습니다. 김정란 총무님은 이번에 캐나다 동부 4개 지역을 스님과 함께 다니면서 행사 총괄을 하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드렸습니다. 또한 행사책임을 맡았던 김미셀님 및 스탭들에게도 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주고,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감사의 큰 박수를 보내는 가운데 기념사진을 함께 촬영하였습니다.nbspnbsplt왼쪽부터 김민석님, 김미셀님, 김종원님, 김정란 총무님, 장호님gt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몸이 좋지 않아 함께 나누기도 못하고 먼저 숙소로 들어가니 묘덕법사님, 김정란 총무님과 함께 나누기를 하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정말 수고가 많았고 인사를 하고 저녁 8시에 숙소로 돌아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정연희님과 일본식당을 운영하는 한승진님께서 준비해온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시고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이후 저는 스님과 내일 일정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제 숙소로 내려와서 스님의 하루를 정리하고 저의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nbsp오늘 자원봉사자들은 홍보하는데 많이 참여하지 못해서 미안했는데 이렇게 오늘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했고, 많은 분들이 함께하여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보람된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처음 행사를 총괄했던 김미셀님은 이전 두 번의 행사 때는 그냥 김정란 총무님을 도와서 시키는 일만 했었는데 막상 총무님이 캐나다 동부지역을 총괄하게 되어 본인이 전적으로 토론토 강연을 책임지게 되니 마음의 부담이 많았는데 준비를 하면서보니 꼼꼼히 김정란 총무님이 잘 챙겨놓고 가서 쉬운 점도 있었고, 또 의외로 준비하고 점검해야 할 것이 많아서 그동안 김정란 총무님 혼자서 참 수고가 많았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nbsp그리고 작년에는 강연장에 청중으로 왔었는데 올해는 봉사자로 참가를 해보니, 스님 강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또 보람이 된다고 하였습니다.nbsp봉사자들은 지난 6월 토론토 법당 개원때 만났던 분들이라서 저도 더 반가웠습니다. 이분들은 거의 대부분이 내일 캐나다런던 강연의 봉사를 위해서 캐나다런던으로 가실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작년에 한국에서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워털루에서 아내, 애기와 함께 왔던 김재명님은 이번에는 강연 봉사자로 다시 만나니 더 기뻤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한 분 한 분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오늘 33번째 토론토 강연도 성황리에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내일은 34번째 강연이 캐나다런던에서 열립니다. 캐나다런던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4.9.25 세계 100회 강연(31) 캐나다 몬트리올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서른 한번째 강연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최말순 보살님과 이경미 보살님께서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셔서 오전 6시30분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보스턴에서 몬트리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차를 타기 전에 리랜드 애커슨 박사와 이경미 보살님, 그리고 두 아드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스님께서는 “하룻밤 잘 묵고 간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시고 7시15분에 출발하였습니다.nbspnbsplt이경미,리랜드 애커슨 가족gt고속도로로 들어서서 조금 달리다가 휴게소에 들러서 화장실을 다녀오는 틈에 스님께서는 잠시 원고 교정업무을 보셨습니다.nbspnbsplt휴게소에서 원고 교정업무를 보시는 스님gt93번 도로를 타고 몬트리얼로 올라가는 길에 White Mountain이 있었습니다. 뉴햄프셔주와 버몬트주는 산이 많다고 하였는데 과연 산세가 아름답고 단풍이 멋지게 물들어 있어서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듯 하였습니다. 워싱턴DC지역은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고, 어제 보스턴 지역을 보니 조금씩 단풍이 물든다 싶었는데, 이곳은 완연한 가을 단풍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10시 30분경에 단풍구경도 하고 휴식도 취할겸해서 세계 3대 단풍명소중의 하나인 화이트마운틴 산맥의 뷰포인트에서 잠시 단풍구경을 하기로 하였습니다.nbsp뷰포인트에서 보니 저멀리 보이는 단풍들이 아주 멋지고, 스님께서는 계곡으로 내려가셔서 물에 손을 담겨보기도 하셨습니다.nbspnbsp미대륙의 양대 산맥은 서부에 로키 nbsp산맥과 동부의 애팔래치안 산맥이 있습니다. 그 중 동부의 nbsp애팔래치안 산맥의 최고봉이 White Mountains이며, 그중 미국의 초대부터 16대까지의 대통령의 이름이 다 붙여져 있는 Presidential Range 선상에 있는 Mountain Washington이 1972m로서 가장 높다고 합니다. Mountain Washington은 White mountain으로 불리는데 1년 중 7개월 이상 봉우리에 눈이 덮여있고 여름에도 항상 흰구름에 싸여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또한 미국 내에서 바람이 가장 드세기로도 유명한데 그 이유는 북극에서 내려오는 한냉 전선과 대서양을 거슬러 올라온 습한 공기와 대륙을 건너온 건조한 바람이 이 곳 정상부근에서 항상 부딪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지역 일대는 나무 수종이 다양하고 무성하여 국유림으로 지정 관리되며 세계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세 곳 중의 하나로 미동부에서 탐방객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nbsp단풍 구경을 잠시하고 곧 다시 길을 들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미국 국경을 넘기 직전에 잠시 점심 요기를 할 곳을 찾아서 고속도로 옆에 있는 크리스탈 호수 공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 김명호 거사님께서 준비해 온 누룽지를 끓여서 간단히 점심요기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12시 30분에 크리스탈 호수 공원에 들어서니 드넓은 호수와 호수비치가 있어서 정말 미국 자연환경이 아름답게 보존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껴보았습니다. 평화롭고 한가롭게 호수가운데를 오리들이 지나가고 저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는 풍력발전소가 돌아가는 밝고 아름다운 가을 날씨와 함께 정말 멋진 풍경이었습니다.버너에 물을 끓여서 각기 숭늉과 사과 한조각으로 점심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들어 1시 40분에 캐나다 국경에서 입국 수속을 하고 국경을 넘어서 캐나다로 들어왔습니다. 다시 길을 달려 오니 저멀리 몬트리얼 이정표가 나옵니다.nbspnbsp몬트리얼 이정표가 나오자 다리 저편으로 다운타운이 보이고 우리가 넘어가고 있는 다리 주변으로 아름다운 호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세인트로렌스강이 몬트리얼을 서쪽편으로 두고 남북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nbspnbsp오후 4시 45분에 오늘의 숙소인 전민락 거사님 댁에 도착하니 전민락 거사님께서 아주 반갑게 저희들을 맞이해주셔서 차에서 짐을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에 스님께서는 다시 누룽지로 간단히 요기를 하신 후에 6시 10분경에 강연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몬트리얼 한인천주교회였습니다. 몬트리얼은 정토 열린법회도 없고 nbsp정토회와 인연이 없는 곳이지만 세계 100회 강연을 기획한 다음에 홈페이지에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홍보를 하여 몬트리얼 행사를 맡아주시겠다고 하신 김은아님을 중심으로 자원봉사자를 찾아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행사를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한인천주교회가 아주 웅장하고 크고 아름다웠는데 기꺼이 법륜스님께서 강연을 할 수 있도록 교회를 빌려주셨다고 하였습니다. 6시 30분경에 스님께서 강연장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과 참석자들이 다가와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입구에 들어오시면서 토론토 정토법당 김정란 총무님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 후에 잠시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자 이번 행사를 후원하고 홍보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신 몬트리얼 한인회의 김광인 회장님께서 간단한 인사말씀을 하셨습니다. 법륜스님께서 이곳 몬트리얼까지 찾아주시니 한인들이 이렇게 모이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고 힐링의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6시 50분에 무대에 오르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몬트리얼 강연은 처음이고, 20년전에 몬트리얼을 잠시 방문한 적은 있지만 강연을 한적은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좋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신 성당에 깊이 감사드리며 또한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신 한인회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말씀부터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감기 몸살로 목소리가 좋지 않는 것도 양해해주면 좋겠고, 또한 자원봉사자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린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어제도 하버드대학에서 질문이 20개 이상 나왔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18개만 받았는데, 오늘도 스님께서는 마음껏 인생사 개인 얘기, 사회 얘기, 종교 얘기, 과학 얘기, 사람 얘기, 자연환경 얘기 등,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얘기를 해보자고 하셨습니다.nbsp오늘은 총 10명이 질문하였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대기하고 있던 2명의 질문자도 시간관계상 질문을 하지 못했습니다.nbsp nbsp남편의 직장을 따라 몬트리올에 온지 2년이 되었는데 영어와 불어를 못하는 것도 짜증이 나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분, 평생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은데 취직이나 돈버는 문제 때문에 고민이 된다는 학생, 논리정연하게 말을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열등감이 생기고 말주변이 없어서 취업 면접도 걱정된다는 학생, 아이들 교육 문제로 몬트리올에 왔는데 시부모님과 관계가 안좋아 한국에 다시 돌아갈 것이 걱정된다는 분, 천주교 신자인데 스님의 ‘깨달음’이란 책을 읽고 크게 의심하고 분노하라는 구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 분, 이민을 온지 20년 동안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해 허무한 마음을 달래는 법을 묻는 분, 즉문즉설을 유튜브를 통해 보고 인생이 행복해져서 스님께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는 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와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묻는 분,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 본분인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어 고민이라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이모와 어머니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저는 이곳 몬트리올에 14살 때 혼자 유학을 와 이모네 집에서 자라 지금 나이는 22살입니다. 처음 오게 된 계기는 몬트리올에 이모랑 이모부가 살고 계셔서입니다. 이모 댁에 같이 살다가 사이가 나빠져서 나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이모랑 이모부를 뵙기는 했는데, 작년에 오랜만에 가족들을 보러 한국에 가기 위해 돈을 다 준비했는데, 이모와 이모부가 굉장히 반대를 하셨어요. “그 돈을 학비에 보태지 뭐하러 한국에 가느냐” 그러셨어요. 지금 어머니랑 이모랑 관계가 굉장히 안 좋은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엄마랑 이모가 서로 관계가 안 좋은 것은 자기들끼리 문제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옛날에 은혜 입은 것은 은혜 입은 것이고, 스무살이 넘은 성인이니까 질문자는 자기대로 자유롭게 살면 됩니다. 스물까지 키워야 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인데 엄마가 의무를 방기하고 이모한테 맡겼잖아요? 그러니 책임을 방기한 것에 대해 엄마가 이모한테 갚아야 합니다. 질문자의 책임은 아닙니다. 질문자는 상관할 필요가 없고 자기 나름대로 살면 됩니다. 이모가 보고 싶으면 방문하면 되고, 보기 싫으면 안가면 됩니다.nbsp스무살 이전에는 미성년자이니까 결정권이 나한테 없었어요. 이모가 되었든 부모가 되었든 보호자에게 결정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쨌든 질문자가 스무살이 넘었으니까 결정권은 질문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엄마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은 참고사항으로 받아들이고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됩니다. “아니요” 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하고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안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스무살이 넘은 자유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nbsp다만 이것은 이해해야 합니다. 친척 아이나 형제 아이를 데려다가 키우면 반드시 원수가 됩니다. 이모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언니의 아이를 받아서 키웠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아무리 언니가 좋아도 언니의 아이를 데려다가 키우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입니다.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친구가 아무리 좋아도 친구 아이를 데려다 키우면 열에 아홉은 원수가 됩니다. 그런데 이모가 바보 같은 행동을 한 겁니다. 그래서 질문자와 관계도 안 좋고 형제간에 관계도 안 좋아진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의 책임은 아닙니다. 이모의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이모 본인이 멍청해서 바보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nbspnbsp왜 친척 아이를 데려다 키우면 관계가 나빠질까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원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모를 조금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내년에 사촌 누나가 결혼을 해요. 제가 한국에 가려고 했는데 이모도 한국에 간다고 해요. 같이 가면 서로 보게 되는데 어떡하죠?”nbsp“서로 보면 어때요? 보면 인사를 해야지요. 여기에서도 이모를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마나러 가면 됩니다.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 이런 뜻입니다. 한국에 가서 만나게 되면, 이모한테 밥 얻어먹고 공부 했으니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지요.nbsp이모가 왜 바보 같은 행동을 했느냐면, 남의 애를 데려다가 키우면 두 가지 어려움이 있어요.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는 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잖아요. 그것을 야단치게 되면 아이가 반발하게 되고 아이가 반발하게 되면 그것을 자기 엄마한테 얘기하게 됩니다. 그러면 엄마는 아이 얘기를 듣지 다른 사람 얘기를 안 듣기 때문에 섭섭해집니다. 말을 계속 안 들으면 또 이모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아이가 문제 있다” 고 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그게 또 듣기 싫어집니다. 그래서 야단을 쳐도 관계가 나빠지고 가만히 놔두어도 나중에 원망을 듣게 됩니다. “나는 너 믿고 맡겨 놓았더니 제대로 돌보지도 않았냐” 이렇게 해서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이모 잘못이 아니라 이모가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서 그런 겁니다.nbsp이모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서 손해만 봤고 질문자는 덕을 봤습니다. 그러니 이모를 멀리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보 이모를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모 본인은 손해가 좀 있는데, 질문자한테는 손해난 것이 없어요. 이모가 잔소리를 했다고 하는데, 이모가 아닌 엄마와 같이 있었더라도 잔소리를 더 했으면 더했지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런데 이모가 잔소리를 하는 것은 엄마가 한 것보다 더 상처를 입습니다. 그러나 이치로 따지만 이모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nbsp이모는 애를 먹어가면서 키우고 돌봐줬는데 말도 안 듣고 해서 이모 또한 지금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렇게 야단을 치고 난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이모님께 “아이고, 이모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거나, 뭐라고 하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세요. 그리고 앞으로는 스무살이 넘었으니까 자기가 알아서 살면 됩니다. 말은 안 들어도 됩니다. 그러나 과거에 질문자를 키워준 것에 대한 고마움은 알아야 합니다. 질문자 혼자서 큰 게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서로 만나면 인사해야 하고 짐이 있으면 들어줘야 합니다. 그러나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니까 구애받지 말고 자립적으로 주체적으로 살면 됩니다. 무거운 짐을 질 필요는 없는데 고마운 줄은 알고 살아야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오늘도 10명의 질문자들과 함께 즉문즉설을 진행하다보니 2시간 35분간 강연을 하였고, 1시간 20분이 넘어서니 스님 목소리가 가라앉고 갈라지는 듯 하였습니다. 마지막 질문자의 대답에 정성스레 답하신 후에 스님께서 목소리가 갈라지니 듣기가 힘들죠? 라고 오히려 청중들을 걱정하니 청중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오늘은 300명 이상이 참석하였는데 몬트리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길대학교가 있고, 대학이 많은 교육도시이기 때문에 유학생 등 유동인구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유동인구까지 다 포함해도 최대 6000명을 추정하는데 오늘 300명 이상이 모인 것은 엄청 나다고 다들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많이 참석해주시고 오늘 또 이렇게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마무리 인사를 이렇게 해주셨습니다.nbsp“인생을 살면 이런저런 일이 많이 생깁니다. 남이 원한다고 내가 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원한다고 또 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질문자가 2명이 남았습니다. 남은 2명의 질문자는 질문을 원하지만 제가 다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못해주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인생이 뜻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니며, nbsp그것은 욕심입니다. 행복하게 살면 나를 위해서도 좋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일이 됩니다. 여기 이곳에서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은 전적으로 내 문제이지 세상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보다는 더 나은 행복을 찾아갈 수가 있기 때문에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다함께 해보겠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nbsp스님께서 인사말을 하시니 2시간 35분동안 목이 아프고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청중들은 큰박수를 보냈습니다.nbsp2012년, 2013년 캐나다 토론토와 벤쿠버 지역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대중들과의 공감이 어느 곳 보다 뛰어나고 스님과 함께 하는 호흡이 좋다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도 강연 중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팡팡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러니 2시간 35분의 강연이 전혀 지루하지가 않고 흐트려지지 않으며 끝까지 집중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오자 성당에 계시는 수사님께서 스님의 큰 팬이 되었다고 하면서 스님과 깊은 허그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스님께서 이렇게 훌륭한 장소를 제공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다시한번 인사를 하셨고, 자리를 이동하여 북 사인회를 하였습니다. 준비한 책이 영문책 몇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팔릴 정도로 스님의 책도 인기가 많았고, 사인을 받아가기 위하여 줄을 길게 섰습니다. 스님께서는 끝까지 사인을 다 해주시고, 자원봉사자들께도 사인을 해주셨습니다. 또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번 행사의 후원도 하고 홍보도 적극적으로 해주신 김광인 회장님께 책을 선물해드렸습니다.nbsp또한 이번 행사를 총괄한 김은아님께도 스님 사인을 한 책을 선물해 드리고, 성기택 베드로 신부님과 서 수사님께도 책을 선물해드리고 그리고 성당을 빌려주심에 감사 헌금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신부님과 서 수사님과 함께 기념 사진촬영도 하였습니다.nbsp또한 함께 자원봉사를 해준 자원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한사람 한사람에게 단주를 선물로 주시면서 몸이 아픈 관계로 함께 나누기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양해를 말씀을 구하고 스님께서는 10시에 숙소로 돌아갔습니다.nbspnbsp스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묘덕법사님과 함께 남은 물품을 뒷정리하고 행사준비를 한 분들과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대중 교통편으로 돌아가야하고 개인적으로 바쁘신 분들은 먼저 돌아가고 4명이 남아서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몬트리얼 책임을 맡아서 행사를 진행한 김은아씨는 성당에 다니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대부분이 풀타임 직업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라서 정말 시간적으로 바빴지만 봉사를 하면서 재밌고 신나게 행사를 준비하였고 홍보 또한 적극적으로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힐링의 시간이었다라고 하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스님의 좋은 법문을 듣고 함께 마음 공부를 할 수 있는 모임이 이곳 몬트리올에서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nbsp나누기를 하고 숙소로 귀가하니 11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과 내일 일정에 대해 잠시 논의하는 시간을 가지고 저는 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내일은 32번째 강연이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에서 열립니다.nbsp 실외 사진 촬영은 이형만 감독님, 강연장 사진 촬영은 장호 거사님께서 해주셨습니다. nbsp
2014.9.23 세계 100회 강연(29) 아일랜드 더블린
▲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에서 열린 유럽에서의 마지막 강연.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유럽에서의 마지막 강연이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매일 1개 도시를 방문하여 드디어 29일째인 오늘, 유럽 29개 도시 순회 강연을 모두 마무리하게 됩니다.nbsp▲ 에든버러에서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nbsp새벽6시30분 숙소를 나와서 아침8시 에든버러 공항을 출발한 스님 일행은 9시에 더블린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에는 오늘 강연 담당자인 오민씨 부부와 허윤진씨 부부가 함께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nbsp오민씨는 프랑스에 유학 와서 공부를 하다가 아일랜드인 남편을 만나서 자녀 둘을 낳고 이곳 더블린에서 살고 있는 분입니다.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을 듣고 삶이 행복해져서 지난번 한국에 와서는 정토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한달 동안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신 분입니다. 오늘은 더블린에서 봉사자 38명을 모집하여 강연 준비를 담당해 주었습니다. 허윤진씨 부부는 아일랜드에 있는 유일한 천일결사자 부부입니다. 깨달음의 장을 한 후 지난 8차 천일결사 때부터 남편과 함께 매일 아침 108배를 하며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nbsp▲ 공항 마중을 나와 준 오민씨 부부와 허윤진씨 부부.nbsp오늘 숙소인 오민씨 부부의 집에 짐을 모두 풀고,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부엌 한 켠에서는 저녁에 먹을 김밥을 부지런히 싸고 있는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곳 더블린 강연 준비팀은 봉사자가 무려 38명이나 되어서 각 팀별로 역할 분담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nbsp전날 저녁부터 바라지팀 자원봉사자들과 더불어 파리지회 정토회 분들이 결합하셔서 나물과 김밥 재료 셋팅 등 거의 밤새다시피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nbspnbsp▲ 하루 종일 봉사자 38인분의 김밥을 싸 준 봉사자들.nbsp스님께서는 어젯 밤에도 공항에서, 오민씨 집에 도착한 후에도, 계속 편두통으로 고생하셨습니다. 점심만 드시고 휴식을 취했지만 통증이 멈추지 않아 마침 오민씨 남편인 가빈씨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셨던 분이라고 해서 가빈씨를 통해 스님을 모시고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늦은 시간에 병원에 도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민씨의 간절한 요청과 의사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진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nbsp오후6시에는 주 더블린 한국대사관에서 박해윤 대사님 부부와 김보연 한인회장님, 손학순 한글학교 교장선생님, 목헌 트리니티 대학 교수님을 비롯한 교민 여러분들이 함께 찾아오셔서 스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 오른쪽부터 트리니티 대학 목헌 교수님, 손학순 한글학교 교장선생님, 박해윤 주 더블린 한국대사님 부부, 김보연 한인회장님, 김경희님 외 교민 1명nbsp오늘 즉문즉설 강연은 더블린 교민사회에서도 의미있는 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학생들 행사에는 교민이 안 오고, 교민들 행사에는 학생들이 안 오고 그랬는데, 오늘 강연은 학생들과 교민들이 함께 하는 뜻 깊은 시간이라면서 다들 좋아하셨습니다. 목헌 교수님은 더블린의 명문대학인 트리니티 대학 최초의 한국인 남성 교수님이라고 합니다. 특히 오늘 강연을 위해 트리니티 대학의 인문사회관을 무료로 대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편두통이 계속 있으셨지만 통증을 그대로 감내하시면서 저녁 7시에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Trinity College Dublin Arts Building의 인문사회관을 가득 메운 300명의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영으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자리를 모두 메우고도 부족해 측면 계단에도 빼곡이 앉아서 스님의 강의를 경청했습니다.nbsp봉사자들은 오늘이 유럽 29개 강연의 마지막 강연이 더블린이라는 점을 의미있게 생각하며 ‘나에게 희망세상이란 무엇인지’를 인터뷰한 특별영상을 준비해서 보여주었습니다.nbsp ▲ 더블린 강연 봉사자들이 만든 특별 영상. nbsp봉사자들은 처음에 스님께 희망세상을 만들어달라는 의미의 영상을 제작하려 했는데, 인터뷰 과정에서 희망세상은 누구에게 만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이번 즉문즉설 강연의 취지를 깨닫게 되어 영상 내용도 우리가 희망세상을 만들자는 내용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nbsp봉사자들은 스님께서 유럽 29회 강연을 모두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내가 만들고자 하는 희망세상’을 한지로 덧붙여 만든 연등과 신문지를 재활용해 만든 소망 노트를 선물했습니다.nbsp오늘 강연장은 유럽 강연 중 가장 많은 수가 모였을 뿐만 아니라 열기가 가장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도 “예상 밖의 환영에 감사드린다” 며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자원봉사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오늘 강연에는 총 8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곁에서 편하게 지내라고 요구하지만 본인은 고생을 통해 내공을 얻고자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인 분,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의 청혼과 새롭게 마음 가는 사람이 생겨 두 사람 사이에서 결혼을 고민하는 분, 아일랜드에 공부하러 왔는데 학원에서 사기를 당해서 화가 난다는 분, 조금만 뜻대로 되지 않아도 자기 비하를 하는 성격을 고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묻는 분, 우리는 폭력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는지 묻는 분, 외국 생활하며 만나는 한국 사람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챙기려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묻는 분, 지금도 어딘가에서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고 있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도 결국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유럽을 여행하며 종교 전쟁에 대해 의문을 가진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지금 더블린에 여행하러 와 있습니다. 종교 전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는 지금 경주에서 출발하여 중국을 거쳐 중앙아시아를 지나 이란과 터키, 로마를 거쳐 지금 더블린에 와 있는데, 여행을 하다보니 3가지 종교를 만났습니다. 한국과 중국에서 불교를 만났고, 이란과 터키에서 이슬람을 만났고, 서유럽에서 카톨릭을 만났습니다. 종교가 사람들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고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도 하지만, 종교를 통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종교 전쟁을 보며 우리가 어떻게 종교를 믿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nbsp“종교는 자연발생적인 원시적인 종교가 있고, 깨달은 이가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종교가 있습니다. 자연발생적인 종교는 기본 원리가 인과응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 그러니까 이것은 좋게 말하면 좋게 들리지만, 법률로 따지만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얘기입니다. 나쁜 짓 하면 징벌을 당하는 겁니다. 힌두교에서 얘기하는 것도 결국 나쁜 짓 하면 나쁜 과보를 받고 좋은 일 하면 좋은 과보를 받는다, 유대교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으면 소돔과 고모라에서처럼 유황불로 지져버리고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버리고 이렇게 다 징벌을 합니다. 이것을 법으로 정한 것이 함무라비 법전의 논리예요. 이런 인과응보적 사고가 모든 종교에 공통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nbsp그러나 예수님과 부처님이 가르치는 종교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그런 인과응보적인 것이 아니에요. 즉, 예수님을 십자가게 못 박아 죽였으면 그 사람은 당연히 인과응보적으로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했나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그랬습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 이전의 구약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라면,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입니다.nbsp그런데 오늘날 크리스트교는 원시 종교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자기 종교를 안 믿거나 하면 징벌을 한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징벌을 하든 질문자가 징벌을 하든 징벌을 합니다. 십자군 전쟁 같은 경우를 보면 다 보복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종교의 이름은 있지만 실제로 그 종교를 창시한 성인과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에서 전교에서 1등하는 아이는 서울대 의대를 가든 법대를 가든 충분히 합격하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의 어머니가 ‘우리 아이 서울대 넣어달라’고 하루에 천배씩 기도할까요? 안할까요? 안하겠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의 성적으로는 서울대 들어가기가 좀 어려운데도 서울대를 가고 싶으면 죽기 살기로 기도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만약 기도를 해서 들어갔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 실력이 안 되는 아이를 넣었다는 것은 실력 되는 아이 하나를 빼고 넣어줬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하는 역할이 입시 브로커 역할이잖아요. 성인으로서의 하나님과 부처님은 이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종교는 다 이런 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종교는 원시 종교입니다 종교의 이름이 어떻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nbsp그래서 오늘날 종교 간의 갈등 이런 것들은 예수님과 부처님, 마호메트와는 관계가 없는 그냥 세속적인 이해의 충돌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세속적 이익을 종교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특히 갈등이 심한 이유는 자기만이 옳다는 믿음이 강조되는 것이 종교의 성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보통 자기가 옳다 하지만 틀릴 수가 있는데, 진리라는 이름으로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신앙이다 보니까 종교는 서로 협력하고 타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종교 사회가 되면서 이 문제는 점점 풀리어 가지 않겠나 싶고, 종교 간의 전쟁은 과거의 문화유산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nbsp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종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즉 ‘원수를 사랑하라’ 는 것은 기독교 안에는 없고 오히려 세속에 있습니다. 세속은 지금 법률적으로 다 남녀 평등 실현하고, 인종 평등, 민족 평등을 실현하고 요즘은 성적 지향까지 다 개방하고 있잖아요. 신체장애자도 차별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종교는 아직도 신체장애가 되면 하나님의 벌이라든지 전생의 업보라든지 이렇게 설명하잖아요. 이것은 신체장애가 무슨 죄라는 얘기 아닙니까.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라든지, 성적 지향이 다른 것이 죄라든지, 그러니까 이것은 아직도 옛날의 원시적인 인간의 사고를 못 벗어난 현상입니다.nbsp옛날에는 전쟁에서 이기면 적군 중에 부상당한 사람도 다 죽이고, 성을 점령하면 어린 애까지 다 죽였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적병이라 하더라도 공격력이 없는 부상자는 치료해주고 포로는 보호해서 나중에 송환해주고 전쟁에 상관없는 민간인은 다치게 하지 말자고 합니다. 이렇게 세속이 훨씬 더 원래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접해 가고 있습니다. 반면 종교는 아직도 원시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 전쟁은 예수님과 부처님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냥 종교라는 이름의 세속적인 이익 충돌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nbsp종교가 무엇 때문에 거대한 탑이 필요하고 거대한 성전이 필요하겠습니까? 거대한 궁전과 성당들을 다 누가 지은 것입니까? 황제가 지었잖아요. 기독교가 로마로부터 공인을 받으면서 황제가 바로 교회의 수장이 되었잖아요. 황제가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세속화가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종교 문제가 아니라 세속적인 문제입니다. 이 세속적인 문제를 갖고 자꾸 종교라고 봐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의 종교이기 때문에 현실의 종교의 공허함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예수님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nbsp중세에서는 신이 다 세상을 움직였잖아요. 천체의 움직임도 신이 한다고 했는데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발견되면서 신의 영역에서 벗어났죠. 모든 생명도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했는데,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오면서 창조할 필요가 없어졌잖아요. 인간의 선한 소리 악한 소리를 신의 소리 악마의 소리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프로이트에 의해서 무의식의 세계라고 다 밝혀졌잖아요. 이렇게 엄청난 기성 사회의 벽을 뚫고 새로운 세상으로 왔기 때문에 세속이 더 진리에 가깝고 진보적이 되었고, 종교가 더 기득권화되어 있고 어리석음에 빠져있습니다.세상은 지금 부정입학이 다 없어졌잖아요. 있더라도 다 몰래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종교는 공공연히 하잖아요. 교회나 사찰 앞에서 ‘기도해서 유명대학에 들어갔다’ 선전하는데, 이건 부정입학 했다는 얘기거든요. 이것을 공공연히 하잖아요. 이런 것에 대해서 이제 우리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 간의 전쟁이라 하지만 그냥 세상의 이념 전쟁, 즉 세속적 이익 다툼의 한 수단으로 종교가 이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또 종교 자체가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nbsp질문한 친구는 명쾌한 답을 얻었다는 듯 기쁜 마음으로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께서도 지난 29일 동안 순회 강연을 하며 유럽 곳곳에 세워진 성당과 모스크를 많이 보게 되었는데, 종교란 무엇인지 느끼신 바가 크셨나 봅니다. 종교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성찰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nbsp오늘 강연에는 어학연수를 온 유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강연을 마무리하며 정리 말씀으로는 ‘지금 행복’ 할 것을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그 어떤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지금 살아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는 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지금 유학생활은 괴롭게 보내고 유학생활이 끝나면 행복할거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는 자세로, 직장 다닐 때가 가장 행복한 자세로, 젊을 때가 가장 행복한 자세로 임하세요.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 희생하는 것은 자기 인생을 후회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내일 행복하기 위해서 오늘 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 ‘되는 대로 살아라’ 이런 얘기도 아닙니다.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되는 때가 인생에서 몇 년 되겠습니까? 그런 시기를 즐기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공부도 하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다면, 애인과 같이 공부를 하면 됩니다. 공부도 하고 술도 먹고 싶다면, 술집에서 공부 토론을 하면 됩니다. 자꾸 분리하지 마세요. 왜 우리는 연애를 하면 공부는 포기해야 하고, 술을 먹으면서 공부 얘기를 하면 안 될까요? 공부를 하는 유학생은 공부에 초점을 맞추고, 필요한 것은 곁들어서 같이 하면 됩니다. 물론 지나치면 안 되겠지만요. 그런 자세로 자기 삶을 항상 행복하게 만들어나가야지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nbsp부처님이나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떨까요? 지금 내가 욕심 부리는 것을 도와줄까요? 가난한 나라 굶어죽는 사람들을 구제할까요?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계신다면 다른 곳에 할 일이 많겠지요. 나를 도와준다고 해도 “아이고, 부처님. 저는 제가 알아서 살 테니까 저 사람들 좀 도와주세요” 이런 자세가 신앙입니다. 욕심이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고난에 처할 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nbsp부처님께서도 이렇게 말했어요.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또 예수님께서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진리 속에서 자유를 얻고 행복을 얻어 나가기 바랍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스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봉사자들이 무려 38명이나 되어서 봉사자들과 다같이 소감나누기는 하지 못하고 봉사자들과 단체사진만 찍었습니다.nbsp특히 오늘 강연 장소인 트리니티 대학의 인문사회관을 무료로 빌리는 등 목헌 교수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목헌 교수님을 비롯하여 38명이나 되는 자워봉사자가 함께 뜻을 모아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봉사자들에게 단주를 선물로 주고 목헌 교수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셨습니다.nbsp▲ 오늘 더블린 강연 총괄을 맡아준 오민씨 부부nbsp오민씨네 집으로 돌아와서는 유럽 29개 순회 강연을 마무리하며 독일, 영국, 파리에서 각각 강연 책임을 맡았던 분들이 오셔서 함께 평가회 겸 소감 나누기를 하였습니다.nbsp▲ 유럽 29개 도시 순회 강연을 마무리하며 평가회 및 소감나누기nbsp유럽 강연 전체를 총괄한 김선희 유럽지구장은 “준비과정이 더 재미있었다”며 보람있어 했고, 직장을 한달 휴가 내고 강연 전체를 담당한 이희정님은 “바로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마음은 가볍다”며 기뻐했고, 파리 강연을 담당한 박지현님은 “스님이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아직 70일이나 남은 100회 강연 일정을 걱정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강연을 담당한 신재숙님은 “프랑크푸르트는 매년 해왔지만, 런던, 더블린은 정토회를 처음 알게된 봉사자가 많았음에도 새로운 방식의 진행으로 봉사자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며 기뻐했고, 추희숙님은 “유럽 강연은 참석자가 10명 남짓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렇게 투자를 많이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씨앗을 심는 것임을 깨닫고 1명을 위해서도 마음을 열어주는 단체가 꼭 필요하구나”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nbspnbsp평가회 겸 나누기를 모두 마치니 새벽 1시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 달 동안 수고한 책임자들을 위해 거듭 격려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도시별로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굉장히 길거든요. 많은 분들의 정성으로 원만히 잘 진행되었습니다. 교민들이나 학생들이 해외에 살면서 이번 강연을 통해 격려를 받거나 자극을 받은 것들이 그 분들의 인생에는 작은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모두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nbsp내일은 스텝진들도 모두 공항으로 가서 각자의 생활 공간으로 돌아갑니다. 유럽 순회 강연 소식도 오늘이 마지막이네요.nbsp스님께서는 오전11시50분 비행기로 보스톤으로 가십니다. 보스톤을 시작으로 세계 100회 강연 중 미주 순회 강연이 시작됩니다. 미국에서 새롭게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고민과 스님의 법문이 다시 펼쳐집니다. nbsp스님의 건강과 세계 100회 강연의 원만 성취를 기원해 주세요.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19 세계 100회 강연(25) 스페인 마드리드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5번째 강연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그리스 아테네의 Best Western Fenix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스님 일행은 새벽 6시에 호텔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오늘 일정을 시작합니다. 어제 그리스 강연을 준비해주신 한종엽 사장님과 김근찬 선생님이 차량 운전을 직접 해주셔서 무사히 아테네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nbsp▲ 아테네 공항까지 무사히 차량 운전을 해주신 한종엽 사장님과 김근찬 선생님nbsp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위해 대기하는 동안 스님께서는 원고 교정 업무를 보셨습니다. 오전 8시30분에 아테네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4시간을 날아 12시30분에 스페인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 AEGEAN 항공을 타고 출발하며nbsp공항에는 재 스페인 마드리드 한인회에서 이인철 회장님과 이장훈 부회장님, 정재현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고문님이 함께 나오셔서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 스페인 강연을 준비하고 운영해주신 분들. 이인철 한인회 회장님, 이장훈 한인회 부회장님, 정재현 고문님nbsp이인철 회장님은 1989년에 스페인에 오셔서 지금까지 25년 동안 스페인에 거주하신 분입니다. 원래는 회장님의 부인인 오인숙님이 강연 담당을 맡았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회장님께서 발 벗고 나서서 오늘 강연이 준비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장훈 부회장님은 부모님을 따라 12살에 스페인으로 오셨다가 지금은 마드리드에 주재한 한국 기업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정재현님은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마드리드 지부 회장을 하셨고, 지금은 고문 역할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남편 분이 스페인에 처음으로 태권도를 알리신 분이시고, 본인은 40년 전에 라스팔마스라는 곳에 이주해 오셔서 동양의학 전문의로 일하시다가 최근에 마드리드에 오신 분입니다. 이 세 분이서 함께 이번 스페인 마드리드 즉문즉설 강연과 유적지 안내, 차량운전 등을 지원해 주셨습니다.nbsp공항 근교에 예약해 둔 민박집에 짐을 먼저 풀고, 한인회 회장님과 함께 한국식당 ‘한강’에서 nbsp점심 식사로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원래는 ‘똘레도’라는 곳에서 식당업을 하고 계신 전덕희님이 점심 식사를 대접하려고 했는데, 거기까지 가기에는 도저히 시간 여유가 없어서 전덕희님께서 오늘 점식식사비를 보시해주셔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차와 다과는 한국식당 한강의 사장님이 무료로 서비스해 주셨습니다. nbspnbsp오후2시부터 시내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마드리드 왕궁입니다. 16세기에 건립한 군사 요새 알카사르를 1734년 크리스마스 전날 화재로 소실한 이후 필리페 5세가 그 부지 위에 새 궁전을 짓도록 지시하여 1755년 호화로운 마드리드 왕궁이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중요 국가 행사 때에만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nbsp▲ 마드리드 왕궁왕궁 앞에는 큰 성당이 있었습니다. 유럽 강연을 다니면서 도시별로 성당을 한곳 이상은 꼭 들러보고 있는데, 스페인은 어떤 느낌의 성당을 지었는지 궁금해서 들어가 보았습니다. ‘알무데나 성모 대성당’ 이라고 불리우는 이곳은 착공 이후 1세기가 지난 1992년 완공했다고 합니다.nbsp▲ 알무데나 성모 대성당nbsp널찍한 실내에 밝은 느낌의 벽채와 깔끔한 장식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유럽 성당들이 어둡고 엄숙한 느낌이 많았는데, 스페인은 밝고 깔끔한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 스님께서는 합장을 하고 짧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 후 성당 안을 둘러보셨습니다.nbsp마지막으로는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원래는 세계 3대 미술관 중에 하나인 프라도 미술관이 이곳 마드리드에 있어서 그곳을 가보면 좋겠다고 추천을 받았지만, 스님께서는 역사에 더 관심이 있으셔서 고고학 박물관을 가보기로 하였습니다.nbsp전시실 제1실에서 제20실까지는 고대문화와 관계된 유물, 즉 구석기 시대의 원주민부터 아프리카 계통의 이베로족과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카르타고인의 고고학적 발자취를 담고 있는 다양한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었고, 제21실에서 26실까지는 로마가 스페인을 지배했을 때의 유물, 즉 스페인 각지에서 발굴된 로마인의 대리석상, 모자이크, 장식품, 로마시대 그리스도교의 고고학적 유물들을 관람했습니다. 제27실에서 29실까지는 서고트족의 문화유산, 제30실에서 31실은 이슬람문화의 유산, 제31실에서 35실까지는 기독교 문화의 전성기에 관련된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방문해 본 유럽의 박물관 중에서 비교적 연대순으로 깔끔하게 잘 배열된 점이 참 좋았습니다.nbsp▲ 페르니난드 앤드 산차의 십자가. 상아에 조각한 것인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작품. nbsp▲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왕비 ‘리비아’를 조각한 상. 팔이나 코가 부서진 모습이 마치 우리나라에 불상이 부서져 있는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nbspnbsp그리고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박물관 지하실에 모사로 복원되어 있어 들어가 보았습니다. 대략 18,50014,000년 전 정도로 추정되는 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적으로서 야생 동물의 뼈와 사람들의 손으로 그린 암벽화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색채가 나타난 천정이 가장 유명한데 두 마리의 말과 큰 사슴, 수퇘지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실제 알타미라 동굴을 방문하려면 예약하고 최소 1년을nbsp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nbsp▲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복제품nbsp유적지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동상을 보았습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사람들이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인물 중에 한명이라고 합니다. 그의 신항로 발견으로 인하여 아메리카 대륙이 비로소 유럽인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현재의 미국이 탄생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토대가 생길 수 있었다고, 스페인 사람들은 생각한다고 합니다.nbsp▲ 콜럼버스 동상nbsp당시에 아메리카 대륙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유럽인들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어쩌면 요즘 우리가 말하는 ‘세계화’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동상 앞은 마드리드 사람들이 어떤 사건이 있을 때 마다 모이는 광장이라고 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광화문 앞 광장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nbsp강연장으로 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장인 레알 마드리드 경기장을 보았습니다. 8만4천명이 수용되는 이 경기장은 경기가 있을 때마다 시내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축구에 대한 마드리드 사람들의 열정을 느낄 수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도 레알 마드리드 소속의 선수입니다.nbsp▲ 레알 마드리드 축구 경기장.nbsp오늘 강연장은 ‘한마당 마드리드’ 라고 하는 이인철 한인회장님이 얼마 전 오픈한 문화공간입니다. 한인회 회장님은 이곳에서 한국과 스페인의 음식과 문화에 대한 강습을 열고 있다고 합니다. 부인인 오인숙님이 직접 만든 공예품들도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특색있는 공간이었습니다.nbsp▲ 오늘 강연장 ‘한마당 마드리드’ nbspnbsp한인회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스페인에는 총 4천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마드리드에 1300여명, 바르셀로나에 700여명, 원양어업기지로 많은 한국인들이 이주했던 라스팔마스에 1200여명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nbsp저녁 7시30분에 시작된 오늘 강연에는 총 40명이 참석하여 조촐하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참석자 중에는 마드리드에서 600km 떨어진 바르셀로나에서 4명이 오셨고, 빌바오에서 1명, 아스토리아에서 1명이 nbsp오시는 등 스페인 전역에서 스님의 강연 소식을 듣고 오셔서 더욱 값진 시간이 되었습니다. nbsp질문은 총 5명이 했는데, 남편이 죽고 나서 딸아이의 꿈에 아빠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묻는 분, 딸이 어떻게 하면 서로 마음에 맞는 배우자를 만나게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자식들이 런던, 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그래도 괜찮은지 묻는 분, 세월호 사고의 처리과정을 보면서 해외에서도 많이 안타까웠는데 해외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분, 반야심경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운데 쉽게 설명해 달라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여전히 스님의 목 상태가 좋지 않아 많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목이 계속 잠겨 있으셔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시간 30분 동안 열강을 하셨습니다. nbsp오늘은 그 중에서 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 한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남편을 잃고 혼자 산지 3년 정도 되었습니다. 딸이 2명 있는데 결혼할 때가 되었어요. 제가 어떤 마음을 가지면 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저도 결혼생활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더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nbsp“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도록 하는 게 엄마가 어떻게 한다고 되겠어요?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질문자가 다니면서 남자를 구해서 가져다 줄 겁니까? 질문자와 아무 관계 없는 일에 왜 신경을 써요? 그것은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하는 부모의 그 마음은 이해가 되는데,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nbsp질문자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못했다면, 질문자는 자기 남편도 제대로 못 구했잖아요. 그런데 그런 안목을 가지고 딸의 남편까지 구해줄 능력이 됩니까? 기지도 못하면서 날려고 하는 형국입니다. 자기 것도 제대로 못 구했는데 어떻게 남의 것을 구해줄 생각을 합니까? 그러니까 질문자는 신경을 뚝 끊으세요.nbsp요즘 세상에는 ‘결혼하는 것이 꼭 좋다’ 이렇게 말할 게 없습니다. 사물이라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그것도 유럽에 사는 여러분들이라면, 첫째, 이제는 결혼을 해야 된다, 안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놓아야 합니다. 둘째, 누구하고 결혼하느냐, 이것도 흑인하고 하든, 백인하고 하든, 어느 나라 사람과 하든, 이런 생각도 놓아야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결혼식을 하지 않고 계약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절반 정도 된다고 합니다.nbsp그래서 자식들이 스무살이 넘었으면 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살기 때문에 부모가 내 자식을 믿어줘야 합니다. “엄마는 너를 믿는다. 니가 혼자 살든 결혼을 하든 어떻게 살든 너의 선택을 엄마는 믿는다” 라고 얘기해 주세요. 아이가 “엄마, 나 어떻게 해?” 물어도 “너는 잘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라. 엄마는 너가 잘 할 수 있다고 믿어. 괜찮아” 이렇게 격려를 해주세요.nbsp딸이 남자를 하나 사귀어와서 “엄마, 이 남자 어때?” 하면 “아이고, 어리석은 내가 어떻게 아니? 똑똑은 너가 더 잘 알지. 너가 판단해라” 이렇게 얘기해 주세요. 그래도 딸이 “한번만 봐죠” 요청하면, “바보 같은 내가 뭘 알아? 공부를 해도 너가 더 많이 했고” 이렇게 얘기했는데도 두 번 세 번 요청을 하면, “내가 그렇게 남자 잘 볼 줄 알면 내가 너희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났겠니?” 이렇게 얘기해 주세요.nbsp그렇게 봐달라고 요청을 해도 엄마가 딱 짤라서 “엄마는 너가 어떤 결정을 하든 너를 지지하고 너를 믿는다” 이렇게 격려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자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할 문제는 아닙니다.nbsp질문자가 부처님께 빌면서 “우리 딸 좋은 남자 만나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하면, 반드시 딸은 결혼을 질문자의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 하게 됩니다. 재수가 없어서 그러느냐? 아닙니다. 내가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치가 높아집니다. 실제로는 어지간히 좋아도 내 기대치보다는 못 미치기 때문에 결국 내 마음에 안 들게 됩니다. “조금 더 기다려봐라”, “다른 남자는 없나” 이렇게 해서 결혼을 방해하게 됩니다. nbsp“다른 건 안 바랍니다. 마음 맞는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요.”nbsp“다른 건 안 바라고 서로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하는데 그게 가장 어려운 겁니다. 숫제 돈이 많은 사람을 찾으면 딱 부러지게 찾을 수가 있지만,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은 컴퓨터에 넣어 돌려도 하나도 안 나옵니다. 서로 마음이 맞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거야 말로 욕심입니다. 질문자도 이런 걸 남편에게 요구하니까 결혼 생활이 힘들었던 것입니다. 결혼을 하면 마음을 맞춰가는 것이지 마음이 맞는 사람은 없어요. 내가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지 상대가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딸이 남자를 이해하면 되는 것이니까 남자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고 “너가 그 남자를 이해할 수 있으면 결혼하고, 이해 못하거든 결혼하지 마라” 이렇게 얘기해 주면 됩니다.nbsp나를 이해해 줄 사람, 나를 사랑해 줄 사람, 나와 마음이 맞을 사람을 찾고 싶다는 건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이것이 바로 욕심입니다. 이런 요구를 하면 결혼은 이뤄질 수가 없고, 결혼을 해도 오래 유지될 수가 없어요. 당연히 같이 살면 안 맞지요. 음식 맛도 서로 안 맞고, 방안의 온도도 원하는 게 서로 안 맞고, 운전하는 방식도 서로 안 맞고, 뭐든지 안 맞습니다. 안 맞는 것을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서로 맞춰가는 겁니다. 혼자 살면 안 맞춰도 되는데 둘이 살면 서로 맞춰야 하는 겁니다. 회사 생활은 큰 것만 맞추면 되고 자질구레한 것들은 안 맞춰도 되는데, 같이 살면 자질구레한 것들을 맞춰야 합니다. 세수하고 수건을 빨래 통에 담느냐, 걸어두느냐 이런 것 갖고 서로 싸우게 됩니다. 천 가지 만 가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산에 어디를 둘러봐도 기둥하기 좋은 나무가 어디 있습니까? 다 다듬어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도 다듬으면 누구하고도 살 수 있고, 딱 맞는 사람을 찾으면 천하에 아무하고도 같이 못 삽니다. 딱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자기 딸을 결혼 안 시키려고 하는 겁니다.nbsp그러니까 오늘부터 딱 마음 놓고 자기 인생을 사세요. 자식이 스무살 넘었으면 신경을 딱 끄세요. 신경을 딱 끊어줘야 자식이 잘 삽니다.”질문한 어머니는 활짝 밝아진 얼굴로 “스님, 감사합니다” 하며 스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졌길 기원해 봅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천주교인들이 많은 마드리드 교민들을 위해 종교를 떠나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자며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의 몫이 아니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내가 내 행복을 찾아가는 마음을 낼 때 내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에서 예수님을 믿어서 이익을 본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출세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있었습니까? 죽음 밖에 없었습니다. 죽어도 그 길이 더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그러잖아요. 자꾸 출세하고 돈 벌고 하는 데에 하나님이 작용하는 것 같으면 그것은 신앙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 조건 속에서도 내가 행복을 찾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는 삶, 이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길입니다.nbsp종교를 떠나서 어쨌든 자기 인생은 자기가 행복하도록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을 자꾸 남의 몫으로, 남편 몫으로, 자식 몫으로, 부모 몫으로, 세상 몫으로 하지 마세요. 자기 문제로 바라보세요. 내가 어제 무슨 일을 당했든, 어떤 불행을 겪었더라도 나는 오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렇게 가야 됩니다. 어떤 경우라도 나는 살아 있는 한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렇게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오늘은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정토회 해외포교팀에서 책을 붙여주었는데 마드리드 지역에만 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원인을 찾아보니 발송 업체에서 오류가 있었다고 합니다.nbsp모두들 아쉬워 하셔서, 스님께서는 대신 참석자들 한분 한분과 기념사진을 많이 찍어 드리는 걸로 아쉬움을 대신했습니다.nbsp▲ 강연을 마치고 정재현님으로부터 감사의 꽃다발 선물을 받았습니다.nbsp강연장 뒷정리를 마치고 한인식당인 ‘강남식당’으로 갔습니다. 스님께서 “이 늦은 밤에 웬 식사입니까?” 하니, 스페인은 원래 저녁 식사 시간이 밤10시라고 합니다. 유적지를 둘러본 후 바로 강연에 들어오느라 저녁을 못 드셨는데, 간단히 요기를 하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을 위해 수고해 주신 한인회 회장님, 한인회 부회장님, 고문님 한분 한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악수를 한 후, 오늘 숙소인 민박집으로 밤12시가 다 되어 돌아오셨습니다. 모두들 스님께서 오늘 하루만 짧게 스페인을 방문한 것을 많이 아쉬워 했습니다. 내년에는 23일 정도 여유를 갖고 오셔서 바르셀로나와 라스팔마스 등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다른 지역에서도 꼭 강연을 해주실 것을 부탁했습니다.nbsp내일은 포루투갈 리스본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스물여섯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은 포루투갈에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18 세계 100회 강연(24) 그리스 아테네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4번째 강연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새벽6시에 윤혜숙님, 김연옥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아침식사를 하고, 신중애, 에르한씨 부부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6시30분에 이스탄불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김연옥님과 신중애님 부부는 새벽녘에 공항까지 손수 나오셔서 스님 일행이 무사히 출국절차를 밟을 때까지 도움을 주셨습니다.nbsp▲ 이스탄불의 윤혜숙님 민박집에서 차려주신 아침식사 nbsp스님께서는 어제 이스탄불 강연에서 질문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무려 3시간 동안 열강을 하시는 바람에 아예 목이 잠기셨습니다. 그저께부터 목에서 피가 나오기도 해서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의사선생님이 주신 항생제를 계속 복용하고 계셨는데, 어제 강연으로 목에 더 무리가 간 것 같습니다. 목소리가 안 나와서 과연 오늘 강연을 제대로 하실 수 있을지 많이 걱정이 되었습니다.nbsp에게 항공을 타고 오전9시30분에 출발하여 11시30분에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nbsp곧바로 오늘 강연 장소이면서 숙박 장소이기도 한 Fenix 호텔을 찾아갔습니다. 짐을 풀고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오후1시부터는 주 그리스 한국대사님이 점심 식사 초대를 하셔서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셨습니다.nbsp▲ 왼쪽부터 주 그리스 한국대사관 김유철 참사관님, 신길수 대사님, 정효민 영사님대사님은 교민들의 현황과 그리스의 현재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현재 그리스 아테네에는 교민들이 350명 정도 거주하고 있는데, 주로 관광 업종이나 여행사, 여행 가이드, 식당업을 하고 계신 분들이며 절반 이상이 20년 이상 거주하신 분들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삼성, LG를 비롯하여 해운업도 진출해서 주재원들도 나와 있다고 합니다.대사님은 스님께서 115회 연속으로 하루 1개 도시를 방문하는 강연 스케쥴을 보시며 스님의 건강을 많이 염려했습니다. 그리고 참사관님이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해법”에 대해 스님께 질문을 했는데, 스님께서는 “통일이 해법”이라며 한반도 주변 정세와 통일이 가져올 긍정적 변화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특히 대사님이 “유럽사회 모델과 미국사회 모델을 반면 교사로 삼아서 더 나은 모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자, 스님께서도 전적으로 공감을 표하시면서 “유럽은 여기까지 오는데 400년이나 걸렸습니다. 수없는 실패와 반성을 통해 지금의 복지사회를 이뤘는데, 한국은 시간이 아직 짧고, 제도를 넘어서서 관습까지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라며 너무 조급하게 바라보면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또, 스님께서는 최근 세월호를 비롯한 한국사회의 갈등 문제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서로의 요구를 어떻게 조율하고 타협을 하느냐”가 중요함을 강조하셨는데, 대사님도 공감을 표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1시간 30분 동안 그리스 사회와 한국 사회에 대해 대사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nbsp오후3시에는 크렘을 타고 도심으로 가서 고대 유적지인 ‘아크로폴리스’를 둘러보았습니다. 이곳은 미케네 시대에 아테네 여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최초의 사원입니다. BC 6세기 후반까지 아크로폴리스에는 사람들이 살았지만, BC 510년에는 이곳이 신들만이 존재하는 지역이라는 델피 신약이 공포되어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BC 480년 살라미나 전투 직전에 페르시아인들은 이곳의 모든 건물들을 불태워 버렸는데, 페리클레스가 순수한 신전의 도시로 재건했다고 합니다.nbsp▲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입구를 지나니 BC 2세기에 세워진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 보였습니다. 로마 집정관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세운 이 극장은 정치가이며 대부호였던 그가 죽은 아내 레기나를 기념하여 BC 161년 아테네 시민에게 기증했는데, 5천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고 7월9월에는 그리스 고전극과 콘서트, 오페라 등의 음악회도 열린다고 합니다.▲ 파르테논 신전아크로폴리스 위에 우뚝 서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의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기념비적 건축물입니다. BC 438년 완성된 이 건축물은 무척이나 우아하고 조화로운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특히 기둥은 완벽한 조형미를 갖추도록 하기 위해 위로 올라갈수록 약간씩 좁아지고 있고, 하단부는 끝으로 갈수록 약간 위를 향해 휘어져 있어 마치 직선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기둥 위에도 장식들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nbsp1687년 터키인과 싸우던 베네치아 군대가 아크로폴리스에 폭격을 퍼부으면서 파르테논 신전은 바닥과 기둥, 지붕 일부만 남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답니다.▲ 멀리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nbsp파르테논은 아테네의 위대한 신상들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고, 새로운 보물들의 보관 창고 역할을 했습니다. AD 426년에는 약 12m 높이의 도금된 동상이 콘스탄티노플로 수탈되어 갔고, 결국 거기서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nbsp파르테논 신전에서 저 밑을 내려다보니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된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보였습니다. 헤파이스토스는 대장장이·장인·공예가·조각가·금속·야금·불의 신인데, 특히 아테네에서는 제조, 산업 종사자들에게 많이 숭배되었다고 합니다. 발굴 당시 대장장이에 관련된 물건들이 발견되어 헤파이스토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nbsp▲ 헤파이스토스 신전.nbsp언덕에서 내려다 보니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이 보였습니다. 시간이 없어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제우스 신에게 봉헌된 이 신전은 BC 515년에 착공했으나 BC 124년경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완성됩니다. 파르테논 신전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컸던 17m 높이에 104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던 이 거대한 신전은 4세기 고트족에게 파괴당하고 지금 15개의 코린트식 기둥들만 남아 있습니다. 신전 안에는 황금과 상아로 만든 제우스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우스는 그리스 최고의 신이었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수호신으로 아테나 여신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우스는 아크로폴리스에 자리 잡지 못했는데, 대신 아테네 시민들은 제우스 신전을 더 크게 지어 바침으로 대접을 해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nbsp▲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스님께서는 아크로폴리스를 모두 둘러보신 후 “예전부터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 이라며 오늘 이렇게 둘러볼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강연 시간이 거의 다 되어 택시를 타고 강연장으로 돌아왔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아테네 도심에서 약간 외곽의 바닷가에 위치한 Best Western Fenix Hotel에서 열렸습니다.nbsp▲ 강연 담당자인 한종엽 선생님이 직접 제작하셨다는 포스터입니다. 멋있죠?nbsp현지 교민수가 많지 않다보니 많은 분들이 참석할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22명이 참석하여 조촐하게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nbsp이차돈의 피가 정말 하얗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분, 사리가 구상인지 비구상인지,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는 분, 아직 결혼하지 않고 아테네에 계속 살고 있는 것이 부모님에게는 불효로 느껴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주위에서 받은 사랑에 대해 감사하다는 표현이 서툴러 고민인 분, 템플스테이에서 고민을 적어서 의식을 한 후 불에 태우는 의식을 했는데 심리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생활 속에서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는 남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고, 예상치 않은 일로 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를 내고 나서는 후회를 하고요. 평상시에 생활 속에서 쉽게 화를 절제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차를 타고 오다가 신호등을 안 지키는 모습을 볼 때 화가 많이 납니다.nbsp“매일 아침에 108배 절을 하면서 “화 낼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절을 하면 도움이 됩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그냥 일어나는 일이지 화낼 일은 아니거든요. 내가 화를 내는 것이지요.nbsp화 낼 일이 없는데 내가 화를 내는 것이니까 정신적으로는 약간 미친 증상이지요. ‘너 또 미치고 있다’ 이렇게 자기에게 암시를 주면 도움이 됩니다. 화는 미친 증상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과 정반대의 행동이 일어납니다. 보통은 사람이 칼을 들고 찌르겠다고 협박하면 도망을 가는데, 화가 나면 미쳐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가가서 옷을 걷어 올려 배를 내놓고 ”찔러라, 찔러” 이렇게 나오거든요. 제 정신이 아닌 것입니다.nbsp첫째, 화가 난다고 화를 다 내어버리면 상대도 덩달아 화를 내기 때문에 화를 확대 생산하게 되니까 이 방법은 제일 하수가 됩니다. 둘째, 화를 참는 것은 확대 생산은 안하는데 자기가 병이 드니까 역시 하수에 속합니다. 참으면 화병이 됩니다.nbsp예전에 어머니 세대는 여자들이 주로 참기 때문에 대부분 화병을 가지고 있었죠. 화를 참아서 화병이 난 사람의 경우는 응급치료를 위해서 화를 내도록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압력이 너무 세기 때문에 오히려 화를 참지 말고 감정 표현을 하라고 인도를 해줍니다. 그러면 압력이 좀 줄어드니까 병이 좀 낫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 때문에 화가 나는데 늘 참아서 화병 수준까지 갔다면, 헝겊으로 인형을 만들어서 남편 사진을 붙여 놓고 막 욕하면서 두들겨 패면 스트레스가 조금 풀릴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여성들의 화병을 치료하는 데는 빨래터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젊은 여자들끼리 마주 앉아서 시어머니와 남편 욕을 하면서 빨래를 두드리면 심리적으로 스트레스 해소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 치료책은 아닙니다. 응급치료책입니다. 물이 끓어 넘칠 때 찬물을 한 바가지씩 붓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 끓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조금 있으면 또 끓어 넘칩니다.nbsp참는 사람은 화를 안내니까 윤리적으로는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괴롭지 않아야 수행이라고 합니다. 수행은 ‘화를 냈냐, 안냈냐’ 이것이 기준이 아니고 ‘너가 괴롭냐, 안괴롭냐’ 이것이 기준입니다. 참을 것이 없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욕바라밀입니다.nbsp그래서 그 다음 단계는 화내는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너 또 화나는 구나’, ‘너 또 미치는 구나’ 이렇게 알아차립니다. 왜 미쳤다고 하느냐? 사람은 서로 생각이 다르고 행위도 다릅니다. 옳고 그름이 없고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다 자기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어 있어요. 인간은 항상 자기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인식합니다. 자기와 다른데 자기를 기준으로 잡아버리니까 자기와 다른 것은 잘못된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나와 다를 뿐인 것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가 되어 버립니다. ‘그르다’는 것은 고쳐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그런 줄 모르기 때문에 안 고칩니다. 그래서 미치는 겁니다.nbsp이치적으로는 본래 옳고 그름이 없는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만 다를 뿐이지, 옳고 그름이 없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면 화날 일이 없어집니다.nbsp그러나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중심에 둡니다. 그 때 ‘너 또 너 중심으로 생각하는 구나’ 이렇게 지적하거나 ‘너 또 미친다’ 이렇게 자신의 화 난 상태를 직시해야 합니다.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을 통해서 고쳐가는 것입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너 또 미친다’, ‘너 또 니 성질 부린다’, ‘너 또 니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 이렇게 자기를 자각시켜 보세요. 이것이 되면 화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에 열번 내던 화를 아홉번만 내게 되고, 아홉번 내다가 일곱번 내고 이렇게 줄어듭니다. 화가 일어났을 때 전에는 그것을 움켜쥐고 있으니까 분이 한 시간씩 간다면, ‘아, 내가 또 미쳤구나’ 자각하면 10분 만에 제 정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빠르게 개선이 될 수 있습니다.nbsp화가 날 때마다 ‘너 또 미치는구나’, ‘너 또 너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 이렇게 자기에게 주의를 주세요. 밖을 보지 말고 자기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명상을 하면 도움이 됩니다. 명상은 자기 상태에 자기가 깨어있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질문한 거사님은 한국에 가려는 일정도 취소하고 오늘 스님의 답변을 듣고자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질문한 만큼 스님의 지혜로운 답변을 듣고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마지막으로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종교를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해질 것인지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삶의 변화가 와야 그 가르침의 전파력이 생깁니다. 절에는 열심히 다니고 신앙이 깊다고 해도 자기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고지식하면 전파력이 전혀 없습니다. 불법을 전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어떻게 내가 행복할거냐, 내가 좀 더 자유로워질거냐, 그게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이거 한번 해보니까 괜찮더라”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전파력이 생기는 겁니다.nbsp교회를 다니느냐, 절에 다니느냐를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인종, 민족, 종교를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해질거냐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런 곳에 멀리 온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파랑새를 찾으러 온 천지를 찾아 다녔지만 집에 돌아오니 처마 밑에 있더라 이런 얘기가 있죠. 행복은 아무리 밖을 찾아 헤매어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안으로 돌이켜보면 행복은 바로 여기에 있어요.nbsp부처님의 말씀입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nbsp여러분들이 행복하고 불행한 것은 누구 책임인가요? 자기 책임입니다. 누구 탓할 것 없습니다. 환경은 안 바꾸어도 된다 이런 얘기가 아닙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런 얘기입니다.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면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남 탓하고 욕하기만 하기 보다는 나의 주체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스님께서는 목이 아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2시간 20분 동안 열강을 해주셨습니다. 스님의 건강이 많이 염려되었지만, 참석자들은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고 모두들 한층 밝아진 얼굴이 되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22명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오늘은 봉사자가 담당자 한분 밖에 없어 참석자들이 다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오늘 강연을 담당해 주신 분은 아테네에서 무역업을 하고 계신 한종엽 사장님입니다. 스님께서 연일 계속된 강행군으로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피로회복에 좋은 올리브 오일을 선물해 주셨습니다.nbsp▲ 오늘 아테네 강연 책임을 맡아주신 현지 교민 한종엽 사장님그리고 여행사를 하고 계신 김리자 선생님께서는 오늘 강연장과 스님 일행이 머무를 숙소 예약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내일 새벽에 공항으로 갈 때는 한종엽 사장님과 아테네 한글학교 교장선생님이신 김근찬 선생님이 차량 지원을 해주실 예정입니다. 이렇게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아테네에서도 여러 교민 분들의 도움을 받아 강연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도움 주신 한분 한분과 기념사진을 찍고 책을 선물해 드리면서 감사 인사를 전하셨습니다.▲ 오늘 강연장 섭외와 숙소 예약에 도움을 주신 김리자 선생님nbsp내일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25회째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17 세계 100회 강연 (23) 터키 이스탄불
▲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대성당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3번째 강연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어제는 뒤셀도르프에서 강연을 마치고, 새벽2시 비행기로 독일 쾰른 공항을 출발하여 새벽6시에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오늘 일정을 시작합니다.nbsp공항에 도착하니, 신중애님과 남편 되시는 에르한, 그리고 박남희씨 부부가 공항에 마중을 나와주셨습니다. 모두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소식을 접하고 자원봉사를 해주시기로 한 분들입니다. 스님께서는 감사 인사를 하고 이분들이 렌트해 주신 차를 타고 오늘 숙소인 윤혜숙님이 운영하는 민박집 ‘다온’에 도착했습니다.nbsp▲ 공항에 마중을 나와 주신 박남희씨 부부민박집 ‘다온’은 큰 아파트를 민박처럼 운영하는 곳인데 윤혜숙님이 오늘 스님 일행을 위해서 손님도 받지 않고 특별히 공간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오전 8시, 윤혜숙님이 아침 식사를 맛있게 차려주셔서 감사히 먹고, 밤새 비행기를 타고 온 피로를 풀기 위해 11시30분까지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오늘 강연 준비와 유적지 안내를 도와주실 봉사자 분들. 왼쪽부터 김연옥님, 윤혜숙님, 신중애님, 에르한씨.nbsp12시부터 이스탄불의 주요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스탄불에 온지 11년이 되었고 현지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고 계신 윤혜숙님의 안내로 터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풍부한 설명과 안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nbsp터키는 우리와 같은 우랄 알타이족입니다. 그래서 어순도 같고, 왠지 모를 친근감이 가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이라는 말처럼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에 걸쳐져 있습니다. 북쪽의 흑해와 남쪽의 마르마라해가 연결된 보스포러스 해협은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의 경계입니다. 이스탄불은 AD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수도를 이 도시로 옮겨와 ‘콘스탄티노플리스’ 라 칭해졌었습니다. 로마는 동서로 분열하여 서로마는 멸망하였으나 동쪽은 번영하여 1000년 이상에 걸쳐 존속하였습니다. 이것이 현재 ‘비잔틴’ 혹은 ‘동로마’ 라 불리는 제국입니다. 비잔틴 제국은 6세기에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과 이탈리아 반도까지 영토를 회복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이스탄불의 구시가에 있는 성 소피아 대성당, 지하 저수지, 테오도시우스 성벽 등은 모두 이 시대의 구조물입니다.nbsp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점거하면서 도시는 황폐화되었다가, 셀주크 투르크에 이어 아나톨리아를 지배했던 오스만 투르크의 메흐멧 2세가 이 도시를 포위하면서 비잔틴의 영토는 현재의 이스탄불 구시가와 성벽 내의 아주 미미한 주변지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1453년 간절히 원하던 콘스탄티노플을 빼앗은 메흐멧 2세는 수도를 이곳으로 옮겨 ‘이스탄불’ 이라 불렀습니다. 오스만 투르크가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한 후인 1923년에 수립된 터키 공화국의 새로운 수도를 앙카라로 옮기기 전까지 이스탄불은 1000년 이상 이곳의 수도로 존립했습니다. 그런 역사 깊은 도시를 오늘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입니다. 413년 비잔틴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그 당시까지의 성벽을 새로 늘리면서 지어진 성벽인데, 높이10m, 두께5m의 3중으로 지어져 난공불락을 자랑했습니다.nbsp▲ 난공불락의 요새, 테오도시우스의 성벽비슷한 시기의 우리나라 고구려 성벽의 특징인 ‘치’의 모양도 그대로 갖추고 있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치’는 고구려 성벽만의 고유한 특징인줄 알았는데 말이죠. 실제로 이 성벽은 78세기의 페르시아군과 아랍군, 9세기의 불가리아군과 러시아군의 공격을 견뎌내었다고 합니다. 1600년 전에 만들어진 성벽 치고는 보존상태가 굉장히 양호해서 놀라웠습니다. nbsp다음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에 하나인 ‘성 소피아 성당’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스님께서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성 소피아 성당은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이었던 곳입니다. 360년 비잔틴의 콘스탄티누스 2세에 의해 세워졌으나 그후 심한 화재를 입었고, 532년에는 ‘니카의 난’으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세운 성당이 불타 무너져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바로 재건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이후 5년 만에 제국 각지에서 운반해 온 석재로 어마어마한 인력을 동원하여 537년에 비잔틴 미술의 최대 규모로 꼽히는 대성당을 완성합니다.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성당은 성 소피아 성당보다 크지만 지어진 시기는 약 천년의 차이가 납니다.nbsp▲ 성 소피아 대성당성당 내의 녹색 기둥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붉은 얼룩이 있는 기둥은 레바논에 있는 바르베크의 아폴론 신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거대한 돔은 높이가 54m나 된다고 합니다.nbsp▲ 54m 높이의 돔.nbsp오스만투르크의 정복으로 한때는 모스크가 되었고, 화려한 모자이크 성화들이 모두 회칠이 되어 가려졌고, 건물과 가운데 제대의 방향이 약간 틀어져 있는데, 이는 원래 예루살렘 방향으로 세워진 제대를 모스크로 개조하면서 메카 방향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nbsp▲ 가운데 제대의 방향이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져 있습니다. nbsp입구의 왼쪽 안에 있는 나선 통로를 올라가니 2층에 테라스가 나왔습니다.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모자이크 화는 예수를 중심으로 한 황제상, 성모자상 등으로 상당 부분 손상이 됐지만 그래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기도 했습니다.nbsp▲ 성 소피아 성당의 모자이크 화.nbsp이 모자이크 화의 특징은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예수님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nbsp9세기 초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성상 파괴가 행해져 성 소피아 성당의 모자이크 화도 모두 없어졌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모자이크는 9세기 중반 이후의 작품들이라고 합니다.nbsp성 소피아 성당을 관람한 후에는 대부분 ‘블루 모스크’를 방문합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이곳 터키 땅은 세계 최고의 신석기 문명의 발상지인 곳”이라며 ‘고고학 박물관’을 가자고 하셔서 그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일반 관광객들과는 다른 역사에 대한 스님의 높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고고학 박물관은 3개의 관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먼저 고대 오리엔트 관에서는 초기 아나톨리아 문명의 유물과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관한 유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히타이트의 수도 핫투샤에서 출토된 히타이트와 이집트 간의 평화조약을 기록한 타블렛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으로 최근에도 몇 가지 조약들의 문항 작성에 많은 참고가 되는 유물이라고 합니다.nbsp▲ 히타이트와 이집트 간의 평화조약을 기록한 타블렛, Kadesh Treatynbsp고고학 관에서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상, 묘비, 석관 등 광대한 수집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관이 인상적이었는데, 안내하시는 유혜숙 보살님이 “자신의 무덤을 이렇게 파헤쳐 전시해 놓은 걸 알면 마음이 어떨까” 라고 하니, 스님께서는 “관을 이렇게 화려하게 해 놓으니 파헤쳐 지는 것”이라며 “다 자기들이 지은 과보로 생긴 일” 이라며 권력자들의 사치에 대해 일갈을 해주셨습니다.nbsp도자기 관에서는 12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셀주크, 오스만 투르크의 도자기가 연대순으로 정렬되어 있었습니다.nbsp강연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마지막으로 이스탄불 시내의 전체 조망이 한눈에 보이는 갈라탑으로 향했습니다.nbsp▲ 갈라타 탑1348년에 지어진 이 탑은 제노바인들이 거주하던 요새라고 합니다. 수차례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고 19세기 중반 제노바의 성벽을 모두 철거할 때도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사방이 탁 트인 발코니에 서니 시원한 전망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저 멀리 성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도 보였습니다.nbsp▲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보스포루스 해협▲ 저 멀리 성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가 있는 구시가지가 보입니다.nbsp이스탄불의 조망을 보고 내려와, 거리를 달리는 전차로 유명한 이스틱클랄 거리를 따라 내려오니 바로 오늘의 강연장이 나왔습니다. 오늘 강연은 Convento Santa Maria Draperis 라는 수도원에서 열렸습니다.nbsp▲ 오늘 강연장인 Convento Santa Maria Draperis 수도원. 이스탄불의 메인 스트리트인 이스틱클랄 거리에 있었습니다. nbsp오늘 강연 장소는 주 이스탄불 한인공동체의 도미니코 신부님께서 섭외해 주셨는데, 신부님께서는 지난 5월에 한국으로 귀국하셔서 오늘 강연에는 참석하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님께서는 사전에 한인 분들에게 많은 홍보를 해주셔서 오늘 강연에는 한인 성당에서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nbsp수도원에 도착하니 수도원장님이신 루벤 신부님이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루벤 원장님이 직접 수도원 전체를 안내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예배당에서 정성껏 기도를 한 후 루벤 원장님의 안내를 받아 수도원을 둘러보셨습니다. 루벤 원장님은 종교를 뛰어넘어 대중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스님의 활동에 대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스님께서도 오늘 강연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주신 루벤 수도원장님께 The Freedom 이라는 스님의 영문 번역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 스님을 정성껏 맞이해준 마르셀로 신부님과 루벤 수도원장님 nbsp오늘 이스탄불 강연은 총 100명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강연준비팀에서는 50명 정도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장소를 좁은 공간을 빌렸는데, 100명이 넘게 오는 바람에 앉을 의자가 부족해 앞부분 무대 쪽에 쪼그려 앉거나 뒤쪽에 서서 강연을 들어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미리 참석인원을 예상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하고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nbsp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결혼을 할 때 좋은 남자를 만나는 방법을 묻는 분, 뜻대로 안될 때 좌절감이 드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종교가 카톨릭인데 종교가 점점 세속화되어 갈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불교는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는지 묻는 분, 이곳 이스탄불에서 이뤄낸 성과들과 외로워서 한국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어머니에게 상처주는 말을 했는데 어떻게 어머니와 화해를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아이에게 자주 화를 내게 되는데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어머니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고 난 뒤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 할지 고민인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이스탄불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후회 없이 살았습니다. 딱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이 어머니가 사업으로 힘드실 때 상처 되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제가 어머니께 어떤 분을 믿지 말라고 했는데 그 분을 믿어서 사업에 실패해서 “다시는 엄마를 보지 않겠다” 고 막말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지금도 상처가 분명히 있으실 텐데... 그 상처를 회복시켜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제가 보기에는 어머니의 상처가 문제가 아니고 질문자의 상처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왜 괜히 어머니 핑계를 댑니까? 자기라는 존재는 완벽한 존재여야 하는데 그런 미숙한 행위를 한 자기를 지금 자기가 용서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다 잘났는데 그것 하나만 인생의 오점이 생긴 겁니다. 어머니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nbsp질문자 스스로가 이런 오점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무오류성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종교의 무오류성, 교황의 무오류성, 공산당의 무오류성, 수령님의 무오류성, 이것이 모든 세상의 악을 만드는 원인입니다. 우리는 늘 부족한 존재입니다. 질문자도 부족한 존재이니까 질문자의 수준에서는 그런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럽니까. 질문자는 엄마가 자기 말 안 들으면 성질이 나서 “엄마 안 본다” 하는 수준 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nbsp그러니까 앞으로 이것을 계기로 해서 ‘항상 나는 부족하다’는 것을 자각해 보세요. 질문자의 성질은 앞으로 결혼을 해서도 내 마음에 안들면 남편한테 “너하고 다시는 안 산다” 이럴 수 있는 성질입니다. 나중에 아이도 말 안 들으면 “모자 관계를 끊자” 이렇게 말할 성질이고, 회사 다니다가도 마음에 안 들면 사표를 확 던지면서 “다시는 안보겠다” 이럴 수 있는 성질입니다. 엄마한테도 그렇게 독한 말을 했는데 누구한테 못하겠어요?nbsp그러니까 ‘아, 나한테도 이런 미숙함이 있구나’ 이것을 내가 발견한 것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내가 알게 된 것입니다. 부족함을 알게 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천하가 다 내 부족함을 아는데 나만 그 부족함을 모르고 있으면 얼마나 웃음거리입니까? 아직 세상 사람들은 나의 부족함을 잘 눈치 채지 못하는데 나는 이것을 미리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착하다고 해도 속으로는 ‘아니야, 나도 독한 구석이 있어’ 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이 성질 좋다고 해도 ‘아니야, 나는 성질 안 좋은 사람이야’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앞으로도 내 성질대로 계속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겠구나. 어머니 한 분으로 족하다’ 이렇게 학습비라고 생각하셔야 돼요.nbsp그래도 어머니한테 그렇게 했으니까 부작용이 적지, 남한테 그렇게 했으면 부작용이 아주 많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나한테 이런 부족함이 있구나’, ‘내가 성질이 받칠 때는 좀 유의를 해야겠구나’,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는 좀 유의를 해야겠구나’, ‘화가 날 때는 호흡을 한 번 더 가다듬고 생각을 해보자’, ‘절대로 극단적인 단정은 내리지 말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nbsp그래서 엄마한테 절하면서 “엄마, 감사합니다. 저의 이런 부족한 점을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절을 하면 자기 상처가 치유가 됩니다. 어머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의 상처를 붙들고 헤매고 있는 겁니다. 자기의 무오류성에 흠집이 생겨서 자기가 지금 못 견뎌 하는 것입니다. 하얗고 깨끗한 옷을 입으면 흙탕물이 한 방물만 튀겨도 옷 버렸다 이렇게 되는데, 검은 옷을 입고 가면 열 방울을 떨어뜨려도 표시가 별로 안 납니다. 그것처럼 너무 깨끗한 척 하면 세상 살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부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nbsp벌써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왔다” 이런 얘기를 할 정도면 얌전하게 생겼어도 질문자는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내가 부족하구나’ 자각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착실해도 속으로는 ‘부족하구나’ 자각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에, 이것을 발견하게 해준 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어머니의 판단이 옳았다’ 이러지도 말고, 또 ‘내가 잘못했다’ 이러지도 말고, 그 사건을 계기로 해서 내 속에 있는 극단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께 “앞으로 화를 자초할 것을 미리 발견하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세요.nbsp어머니에게 “어머니 그 때 제가 막말을 해서 미안해요” 말하고, 어머니가 ”괜찮다” 그러면 ”어머니, 그때 제가 나이가 너무 어려서 막말이 나왔는데, 저는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서 제가 독한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어머니에게 늘 감사하며 지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세요.nbsp어머니가 “그래, 너가 그래서 엄마가 상처를 입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엄마가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딸이 좋아졌다니까 엄마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풀어야 합니다. “엄마, 죽을 죄를 지었어” 자꾸 이러면 오히려 안 풀려요. 딸이 자꾸 잘못했다고 하면 오히려 엄마는 자신의 속심을 안 내어놓습니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 덕분에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렇게 얘기를 하면, 엄마가 “아이고, 내가 너를 낳았지만 너 진짜 독하더라. 어째 내 자식이 저렇게 독한 줄은 몰랐다” 이렇게 속심을 내어놓게 됩니다. 속심을 내어놓는 것이 엄마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입니다. 엄마가 “괜찮다, 괜찮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nbsp nbsp nbsp그렇게 얘기했는데도 엄마가 “그런 일이 있었냐? 나는 다 잊었다” 할 수 있습니다. 엄마란 원래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 엄마가 그 때 상처가 안 되었구나’ 알 수 있어요. 만약 엄마가 상처가 되었다면 “미안해” 그러지 말고 대화를 걸면, 엄마는 “내가 상처를 입었지만, 너가 좋아졌다니까 엄마는 괜찮다” 그럽니다. 부모란 그렇습니다. 질문자도 자식 낳아 키워보면 부모 심정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nbsp그러니 엄마의 상처는 질문자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나중에 자식을 낳아서 그런 말을 했다면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엄마의 인생입니다. 엄마는 자식을 감싸 안고 살아야 하니까 엄마는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자는 꽁 하고 있지 말고 ‘내 결벽증에 내가 지금 못 견뎌 하는 구나’ 이렇게 자기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부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스님이 이렇게 안 꼬집어 줘도 자기가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nbsp모든 상처는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남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화가 나서 “주여, 저 두 놈은 지옥에 확 처넣어 버리세요” 했다면, 예수님이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가 없지요. 그분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상처가 없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위로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항상 자기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합니다. 이기적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내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우리는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고, 타인의 상처를 감싸 안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엄마 문제가 아니고 자기 문제라는 것을 자각했으면 좋겠습니다.”nbsp질문한 여성분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질문자에게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난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질문자는 “스님 말씀대로 엄마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구나 알게 되어 개운한 느낌입니다” 라며 밝게 웃었습니다. nbsp오늘 강연은 무려 3시간 동안 열기있게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살아있음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강조하며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삶이 길거리에 핀 풀 한포기와 같다고 생각하면 사는 것이 걱정할 게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살았네’ 한 번씩만 외쳐 보세요. 살았다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살았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내면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마세요. 항상 현재에 살아야 합니다. 현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상을 할 때 호흡관을 하는 이유도 숨 쉬고 있다는 것에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이 늘 행복해야 합니다. 혼자 살아도 행복하고, 둘이 살아도 행복하고, 자식이 있어도 행복한 것이고, 이혼을 해도 결혼 한 번 더 할 수 있으니까 행복한 것이고, 신체 장애라도 살아있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나는 이래서 불행하다며 불행한 이유들을 자기가 만들어서 확고부동하게 움켜쥐고 있어요. 그것을 놓아버리세요. 나이가 들면 들어서 좋고, 젊으면 젊어서 좋고, 혼자라면 혼자여서 좋고, 결혼했으면 결혼해서 좋고, 터키에 살면 터키에 살아서 좋고, 한국에 가면 한국에 가서 좋고, 이렇게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의 삶이 가벼워지고 밝아집니다. 그런 마음으로 친구를 사귀고 장사를 하면 조금 더 나아져요. 그러면 모든 것이 좋아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렇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한분 한분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김연옥 보살님이 주축이 되어 담당해 주셨습니다. 93년 모스크바에 유학을 오셨다가 터키인 남편을 만나서 2004년부터 이곳 이스탄불에서 의사를 하고 있는 남편과 살면서 딸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계셨습니다. 오늘 강연 준비를 위해 가족 모두가 나와서 함께 봉사를 했습니다.nbsp▲ 오늘 강연 담당을 맡아주신 김연옥님 가족nbsp그리고 윤혜숙님은 오늘 하루 종일 유적지 안내를 명품 가이드 수준으로 해주시고, 식사와 숙소도 준비해 주셨습니다.nbsp신중애님은 남편인 에르한씨와 함께 공항 마중을 나오셔서 운전도 해주시고, 스님 일행이 시내로 이동할 때와 돌아올 때 하루 종일 운전 지원과 점심 도시락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강연 준비도 함께 해주셨고요.nbsp이 외에도 파카유로 온형일 이사님이 강연 준비와 스님 일행을 맞이하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후원금을 보시해 주셨고, 한인회 회장님께서는 스님을 환영하는 꽃바구니를 보내주셨습니다.nbsp또 오늘 강연을 함께 준비해준 많은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단주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라며 감사 인사도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단주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라며 감사 인사도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강연장 뒷정리를 마치고 오늘 숙소인 윤혜숙님이 운영하는 ‘다온’ 민박집으로 다시 돌아오니 밤10시반이 다 되었습니다. 스님과 스텝진 모두 강연을 준비하느라 저녁식사를 하지 못했는데, 보살님께서 정성껏 차려준 저녁 식사를 감사히 먹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nbsp내일은 오전에 비행기를 타고 아테네로 갑니다. 아테네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nbsp
2014.9.16 세계 100회 강연(22) 뒤셀도르프
▲ 뒤셀도르프 즉문즉설 강연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2번째 강연이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어제는 밤12시에 프랑스 파리를 출발하여 밤새 차를 타고 새벽5시30분에 독일 아헨의 김선희 법우님 집에 도착했습니다. 밤새 차를 타고 오느라 휴식을 취하지 못해 6시부터 스텝진 모두 휴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전9시에 최말순 보살님이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10시에 아헨을 출발했습니다. 차를 타고 2시간을 달려 12시에 뒤셀도르프의 박삼순 보살님 집에 도착해 보살님께서 정성껏 마련해 주신 점심을 먹었습니다.nbsp▲ 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독일정토회 회원 분들.nbsp스님께서는 연일 계속된 강행군으로 목이 많이 편찮으시고 온몸에 근육통이 있으셔서 도착하시자마자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오후 1시부터는 독일정토회 이사회와 총회가 열렸습니다. 현재 독일에서는 푸랑크푸르트, 베를린, 뒤셀도르프 3곳에서 정토법회가 열리고 있고, 뮌헨, 함부르크 2곳에서 열린법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독일정토회인데, 이제는 독일정토회도 회원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총회를 통해 이사를 뽑고, 선출된 이사회에서 이사장을 뽑고, 1년 한번 회계 감사도 하고, 이사회의 회의 결과도 회원들에게 보고하는 형식을 갖춘 법인을 운영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총회를 소집해 이와 같은 내용들을 논의하여 결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nbsp▲ 독일정토회 총회 모습. nbsp먼저 총회 구성원 28명을 확정하고, 이사회의 이사로 송임덕 보살님을 대표로하는 임원 7명을 선출했습니다. 이사장으로 법륜스님을, 행정업무를 보는 총무로 이희정 보살님을, 회계 담당자로 김선희 보살님을 선출하였습니다. 그리고 법회 홍보를 위한 신문 광고료 지불 여부, 인도성지순례 참가자 모집 방법 등 몇 가지 안건들을 함께 논의하였습니다. nbspnbsp▲ 독일정토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nbsp정토회의 1차 만일결사는 국내 활동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2차 만일결사는 해외활동이 중심이 될 것이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해외 정토회의 사업 내용과 회계가 항상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해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총회를 마치고 잠깐 시간을 내어 독일 교민 역사의 산 증인이신 이상호 거사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상호 거사님은 1965년 33살의 젊은 나이에 광부로 독일에 오셨습니다. 독일 교민의 역사에서 가장 초창기에 오신 분입니다. 최근에는 ‘독일 광부 30년사’를 직접 책으로 집필하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거사님의 사모님도 남편을 따라 1966년에 간호사로 오셨는데, 두 분은 이곳 독일에서 무려 49년을 살아오신 셈입니다. 거사님께 그동안의 독일에서 살아온 삶이 어떠했는지 물어보니 이렇게 답변해 주십니다.nbsp▲ 독일 교민 역사의 산 증인이신 이상호 거사님과 박삼순 보살님 부부.nbsp“사실 독일이나 한국이나 삶에 있어서 부딪치는 어려움은 같습니다.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한국에서도 똑같은 어려움에 처할 것입니다. 독일 사회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직업에 대한 귀천 의식도 크지 않았습니다. 한국처럼 광부라 하면 천한 직업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광산에서, 제철공장에서 일하면서 보람되게 잘 지냈습니다. 다만 이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몸은 고향 땅에 묻히고 싶은 바램이 있습니다.” nbsp낯선 나라에서 어려움이 많으셨을 텐데, “어려운 점은 없으셨냐?”는 질문에 그냥 웃기만 하시는 얼굴의 주름살을 보며 마음 한켠이 숙연해졌습니다.nbsp오후 4시에는 스님께서 건강이 계속 안 좋으셔서 원래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병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북유럽에서 강연을 하는 동안 마이크 시설 없이 휴대용 스피커로 강연을 하셨는데, 목을 무리하게 사용한 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편도선이 붓고 목에서 피가 나오고 온몸에 근육통이 있으셔서, 배길야 보살님의 소개로 뒤셀도르프 근교에 있는 박영옥 선생님의 개인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으셨습니다.nbsp▲ 병원 진료를 해주신 박영옥 선생님nbsp박영옥 선생님은 “오늘도 강연이 있으시냐?” 며 스님의 계속된 강행군을 많이 염려했습니다. 항생제 처방을 받고, 인근 약국에서 항생제를 구입해 드시고 곧장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Freizeitstatte Garath 라고 불리우는 문화센터에서 열렸습니다. 총 120명이 참석하여 강연장을 가득 메웠습니다.nbsp▲ 오늘 뒤셀도르프 강연이 열린 Freizeitstatte Garathnbsp총 6명이 다양한 질문을 했습니다. 부모 형제들에게 협박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친오빠를 미워하고 증오해서 고민인 분, 불교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한 분, 50년 전에 노동자로 독일에 왔지만 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 우리나라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차별을 받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성 때문인지 압축 성장으로 인한 것인지 스님의 견해를 묻는 분, 20대에는 서른이 되면 더 의젓해지겠지 기대했는데 막상 서른이 되니 달라진 것은 없고 좌절이 된다는 분, 결혼한지 5년이 되었지만 아내와 종교가 달라 지금까지 고민이라는 분, 스님 법문을 들을 때는 참 좋은데 회사에 출근하면 10번 중에 1번 꼭 걸려서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분 등 각각이 질문에 스님께서는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아내와 종교가 달라 갈등인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저는 기독교를 믿고 있고요. 아내는 어렸을 때부터 불교 집안에서 자라서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학교를 다녔다면 아내는 불교학교를 다녔습니다. 결혼할 때는 종교는 개인적인 문제라 제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괜찮겠지 했는데, 제 가족들도 모두 기독교여서 아내가 혼자 외롭게 떠다니는 섬처럼 되고 있어요. 저는 종교를 바꾸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분위기가 교회에 나가야 하는 것으로 압박이 되고 있습니다. 저도 말로는 아내에게 자신의 종교를 지키면 된다고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는 아내가 종교를 바꿔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줄 알았는데, 결혼 한지 5년이 되었지만 갈등은 늘 제자리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nbsp“아이들이 있어요?”nbsp“네, 있습니다.”nbsp“남편과 아내, 두 사람의 문제는 평등합니다. 이 문제를 갖고 각각 고집해도 상관없어요. 그러나 아이를 가지면 부모로서 아이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제도가 아이는 주로 엄마 품에 많이 있게 되지요. 엄마라는 말은 ‘기룬 자’라는 뜻이에요. 주로 여자가 아이를 기루니까 주로 여자가 엄마가 되는데, 만약에 아빠가 아이를 기루면 아빠가 엄마가 됩니다. 아이는 육체적으로는 엄마와 아빠를 반반씩 닮는데, 정신적으로는 품에 안아서 기룬 자를 80 이상 닮습니다. 엄마의 심리적 프로그램을 아이가 다운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질문자의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스트레스도 덜 받고 건강하려면 내가 아이에게 잘해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엄마가 스트레스를 안 받아야 합니다. 엄마가 편안하고 심리가 좋아야 아이도 좋아집니다.nbsp시어머니가 손자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려면 ‘아기 엄마’인 며느리에게 잘해주어야 하고, 아빠가 아이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려면 ‘아기 엄마’인 아내에게 잘해주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라는 입장에서 아내에게 잘해주라든지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입장에서 며느리에게 잘해주라는 개념이 아닙니다. 성인끼리는 둘이서 싸우든 말든 자기들 문제인데, 아기가 있을 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nbsp종교적인 문제로 아기 엄마에게 갈등이 있으면 부부 지간에는 괜찮지만 아기에게는 나쁘다는 것을 질문자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아기가 세 살 때까지는 100 영향을 줍니다. 유치원 때는 70, 초등학교까지는 50, 사춘기 때는 30 정도 영향을 주고, 성인이 되면 거의 영향을 안 줍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아기 엄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야 합니다. 종교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면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불교가 좋냐 기독교가 좋냐 하는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제입니다.nbsp그렇다고 가족들에게 “그러지 마라” 자꾸 그러면 질문자가 가족들과 또 갈등이 생기거든요. 특히 기독교는 가족들을 전도하지 못하면 교회에서 체면이 안섭니다. “너 가족도 전도하지 못하니?” 이렇게 되기 때문에. 권사나 집사가 되려면 가족을 전도해야 올라갈 수 있거든요. 기독교 집안에 시집을 왔기 때문에 가족들이 그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질문자는 아내가 아기를 키우는 동안에는 거기에 구애를 받지 않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질문자가 아기 엄마를 편안하게 하는 방법은 질문자만이라도 항상 아내에게 “아이고 여보, 종교 문제 때문에 힘들었지? 괜찮아” 이렇게 위로해 주고 오히려 자기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nbspnbsp남편이 좋으면 남편의 종교도 좋게 보이고, 남편과 갈등이 생기면 남편 갖고 시비를 못하고 자기 정체성으로 종교를 지키려고 합니다. ‘기독교로 바꾸는 것은 내가 남편에게 굴복하는 거다’ 이렇게 해서 더 불교를 움켜쥐게 됩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라는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종교로 건드리면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질문자가 아내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하더라도 종교로 접근하면 절대로 승산이 없습니다. 아이들한테도 나쁜 영향을 주고요.nbsp오히려 질문자가 아내에게 잘해주고 최선을 다해주고 아내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질문자가 수행을 많이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남편이 신뢰가 되고 좋아지면 종교는 부차적으로 따라옵니다. 그때는 가만히 놓아두어도 아내가 교회로 따라오게 됩니다. 사람이 변하면 부정적인 것은 다 상쇄돼요.nbsp아이들을 기독교 신자로 만들고 싶으면, 엄마 아빠가 다투는데 아이들이 듣기에 엄마가 더 합리적이다 싶으면 아이들이 엄마 쪽 종교를 선택합니다. 엄마가 좀 문제고 아빠가 더 낫다 싶으면 아빠 쪽 종교를 선택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를 믿어라 하는 방식의 선교는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nbsp첫째, 아이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도 질문자가 아내를 잘 보살펴주어야 하고, 둘째, 아내를 장기적으로 기독교로 오게 하기 위해서도 질문자가 아내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고, 셋째, 자녀들이 기독교로 오도록 하는 데에도 질문자의 삶이 얼마나 사랑으로 바뀌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회로 강제로 오게 하는 것은 쉽지가 않아요. 시어머니가 아무리 절에 열심히 다녀도 집안에서는 며느리한테 고지식하게 대하고 자기 고집이 세서 며느리한테 신뢰를 못 얻으면 며느리는 절대로 불교 신앙을 안 가집니다. 형식적으로만 따라가지 교회로 갈 확률이 높아요. 시어머니가 싫으니까 시어머니가 믿는 종교도 싫어지는 것입니다.nbsp그래서 질문자는 종교는 잊어버리고 우선 ‘아이의 엄마를 편안하게 해줘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편이 먼저 되세요. 외로움 속에서 남편 하나 믿고 시집을 왔는데 남편이라도 방패막이가 딱 되어 주어야 합니다. 가족들과 갈등이 있더라도 오히려 위로해주세요. 그렇게 해줘야 아내가 남편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nbsp질문한 남성분은 활짝 웃으며 “예, 감사합니다”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목이 많이 아프심에도 불구하고 2시간 20분 동안 쉬지 않고 열강을 해주셨습니다. 강연을 마무리하면서는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하시면서 함께 행복한 삶을 기원해 주셨습니다. nbsp“아직 안 죽고 살아 있는 것만 해도 인생은 대성공입니다. 남의 집에 가서 구걸하지 않고 사는 것만이라도 됐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자기를 바라보면 아직은 살만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해 걱정들도 많이 하시는데, 대한민국도 이런저런 문제가 많지만 지금까지 잘 굴러왔고 앞으로도 잘 굴러갈 거예요. 그런 긍정 위에서 그래도 더 잘 되려면 ‘내가 힘을 좀 보태야겠다’ 이렇게 해서 긍정적인 측면에서 비판도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같이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는데 많은 분들이 스님의 건강이 염려되었는지 “스님, 건강하세요”, “100회 강연, 무사히 잘 마치세요” 하며 인사를 건냈습니다.nbsp오늘 뒤셀도르프 강연은 최순진 총무님을 중심으로 뒤셀도르프 정토법회 회원들의 자원봉사로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최순진 총무님의 아들 동찬군도 함께 자원봉사를 해서 모자 지간의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nbsp▲ 뒈쉘도르프 정토법회 최순진 총무님과 아들 동찬군.nbsp수고한 봉사자들과 기념 촬영을 한 후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였습니다.nbsp▲ 오늘 뒤셀도르프 강연을 함께 준비해준 봉사자분들.nbsp스님께서는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봉사자들과의 소감나누기는 함께 하지 못하시고 곧바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독일 쾰른 공항에서 새벽 2시에 비행기를 타고 밤새 이동해 터키 이스탄불에는 아침 6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내일은 터키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11 세계 100회 강연(17) 덴마크 코펜하겐
▲ 덴마크 코펜하겐의 명소 뉘하운. 배가 다니는 운하인데 주위의 파스텔톤 색상의 집들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열일곱번째 강연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노르웨이 오슬로의 유스호스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5시에 호스텔 지하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6시에 오슬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공항에서의 대기 시간이 길었는데, 스님께서는 명상을 하시면서 대기 시간을 보내셨습니다.nbsp9시5분에 노르웨이 오슬로를 출발하여 10시20분에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 북유럽에 강연을 다니면서 스님 일행이 이용하고 있는 최저가 항공 ‘노르웨이 항공’.nbsp공항에는 이번 강연 담당자인 임미숙님과 오늘 유적지 안내를 해주실 오대환 목사님이 마중을 함께 나와주셨습니다.nbsp▲ 덴마크 코펜하겐 강연 담당을 맡아주신 임미숙님과 유적지 안내를 해주신 오대환 목사님▲ 덴마크 코펜하겐은 자전거 도시란 것을 실감할 정도로 곳곳에 자전거가 많았습니다.공항에서 곧바로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들어가 한인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 스님께서는 “목사님이 기도를 해주세요” 라고 목사님께 nbsp식사 기도를 청하니 목사님께서는 우렁찬 목소리로 기독교식 예배를 해주셨습니다. 목사님은 평소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을 들으며 많은 배움이 있었고, 최근에는 새로운 100년이라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시면서, 스님께서 이곳 덴마크를 방문해주심을 무척 감사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 내내 코펜하겐의 주요 유적지를 안내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덴마크에 오신지 24년이나 되신 분입니다. nbsp덴마크는 도시가 작아서 걸어서 모든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목사님과 함께 덴마크의 역사와 현재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며 걸으셨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시청 앞 광장에 있는 안데르센 동상입니다. 안데르센은 미운오리새끼, 인어공주, 벌거숭이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등 주옥같은 동화작품들을 저술해 전세계 어린이들을 기쁘게 한 덴마크의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의 동상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nbsp▲ 안데르센 동상도심 한복판을 걷다가 큰 교회 앞에 도착했습니다. 교회가 크고 웅장해서 덴마크의 교회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요금을 지불하고 들어가 보았습니다. 4층까지 올라갔지만 예배당은 없고 현대식으로 리모델링을 해서 전시회만 열리고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와 보니 교회 외벽에 “Im not a church 라고 크게 현수막이 걸려 있어, 스님께서도 크게 웃으셨습니다.nbsp▲ 스님을 웃게 한 교회 앞에 적힌nbsp“Im not a church 문구.nbsp아마 많은 여행객들이 비슷한 오해를 많이 했나 봅니다. 대부분의 교회나 성당이 종교의 본연의 역할보다는 관광 또는 숙박업을 위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곳도 상황이 비슷했습니다.nbsp계속 걸으니 배가 들어오는 뉘하운 운하에 도착했습니다. 운하의 양쪽에는 파스텔톤 색상의 각양각색의 집들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상점 앞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시식을 할 수 있게 호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유럽에서 이런 풍경은 처음 보는 것이어서 스님께서도 “정겹네” 하시며 웃으셨습니다.nbsp▲ 뉘하운 운하nbsp뉘하운 운하를 지나니 바닷가 부두가 나왔습니다. 건너편에는 웅장한 오페라하우스가 보였는데, 오슬로에서 본 오페라하우스가 생각나면서 서로 더 웅장해 보이려고 경쟁을 하는 둣해 보였습니다. nbsp수변 지구를 따라 조금 더 걸으니 광장을 둘러싼 네 채의 화려한 저택들로 이루어진 아말리엔보르 궁이 나타났습니다. 이 궁전은 크리스천보궁의 화재로 1794년 이래 왕실 처소로 이용되어 온 곳인데, 지금도 여왕 가족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고, 행사 때는 2층 테라스에 여왕 마르그레테 2세가 나와서 손을 흔드는데 많은 덴마크인들이 운집한다고 합니다.nbspnbsp▲ 덴마크의 여왕이 살고 있는 아말리엔보르 궁.nbsp이곳은 덴마크의 유명한 명소라 한국인 단체 관광객도 많이 있었는데, 스님을 알아보고는 많은 분들이 같이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 했습니다.nbsp▲ 스님을 알아보고는 너무나 반가워하는 한국인 관광객들.nbsp아말리엔보르 궁 앞의 광장을 지나 프로데릭스 거리를 따라 내륙으로 가니 화려한 프로데릭스 교회가 나타났습니다.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을 본 딴 듯한 웅장한 돔을 가진 이 교회는 ‘대리석 교회’ 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라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교회 안에 앉아 잠시 기도를 하고 나오셨습니다nbsp▲ 프로데릭스 교회nbspnbsp교회를 나와 계속 걸어 카스테릭 요새에 도착했습니다. 이 요새는 별 모양의 성벽과 해자로 이루어져 무척 독특했습니다.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산책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nbsp요새의 성벽을 따로 조금 더 걸으니 덴마크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인 인어 공주 조각상이 나왔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황량하고 쓸쓸한 분위기의 이 조각상은 그 유명세와는 달리 무척 외소해 보였습니다.nbsp오대환 목사님은 덴마크의 교민 현황에 대해서도 간략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덴마크에는 현재 약 300여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는데, 과거에 낙농업을 배우러 왔거나 국제 결혼을 통해 정착하신 분이 많고,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정착하신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입양되어 온 분들도 많은데 덴마크에서만 대략 8500명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nbsp교민 수가 300여명 된다고 하니, 과연 오늘 강연에 몇 명이나 올지 걱정도 조금 되었습니다. 그러나, 강연을 담당한 임미숙 보살님은 50명은 올 것이라며 자신있게 말해서 스님께서도 웃으셨습니다. nbspnbsp요새를 모두 둘러본 후, 시내로 나와 버스를 타고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인 헬러럽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nbsp교회에 도착해서 강연 준비는 스텝들을 포함하여 스님까지 나서서 모두 함께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봉사자들이 의자를 아무렇게 놓는 것을 보시곤 뒷사람의 시야가 앞사람의 머리에 가리지 않도록 배려하시며 정성껏 의자를 다시 배치하셨습니다. nbsp저녁 6시, 강연 시간이 되자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20명 정도 올까 예상했는데 65명이나 와서 빈자리 없이 자리를 빼곡이 채웠습니다. 그동안 한인 행사를 오랫동안 해왔지만 30명 모이기가 힘들었는데, 덴마크 교민사회에서 스님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nbsp▲ 덴마크 코펜하겐 강연이 열린 Hellerup 교회 강당.nbsp오늘 강연에는 특히 스웨덴 남부 지방에 사시는 분들이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그저께 스웨덴 스톡홀름 강연이 있었는데, 스톡홀름 보다 코펜하겐이 거리가 가까워서 오늘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오늘 북유럽 4개국 강연을 마무리하시면서, 이렇게 여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북유럽 하면 살기 좋은 곳이잖아요? 살기 좋은 곳에 살면서 힘들면 본인도 힘들지만 우리 인류 전체에도 희망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살기 힘들면 북유럽에 가면 좋아지지 않겠느냐 생각하는데, 막상 여기 와보니 여기 있는 사람들도 괴롭다 하면 nbsp우리 인류에게 희망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괴로우면 자기 문제를 넘어서서 nbsp인류를 절망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에요.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한 것이 있거나, 괴롭거나 힘든 게 있으면 같이 대화를 나눠봅시다.”오늘 강연에는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결혼 후 성격 차이로 남편과 많은 갈등을 겪고 도망치듯이 덴마크로 유학을 왔는데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지 묻는 분, 한국 사회는 왜 덴마크 사회만큼 행복하지 못한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nbsp그 중에서 해외에 살다보니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데, 스님께 언제쯤 통일이 될 것이라 보는지 묻는 분의 질문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저는 나름대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살고 있는데요. 그런데 외국에서는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항상 남이냐 북이냐 하고 묻습니다. 이곳에 이주하고 나서 통일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보실 때 과연 통일은 언제 될 것이며, 통일은 과연 될 것인지, 된다면 어떤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시부모님이 통일에 대해 자주 물어보시는데 제가 답변을 항상 못하고 있습니다.”“모르면 모른다고 답하면 되지요. 모르면서 아는 척 하려고 하니까 머리가 아픈 것이지요. 통일이 언제 될 것인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통일은 될 것입니다” 라는 것은 말할 수가 있지요.nbsp그리고, 통일이 언제 될 것인지 묻는 질문은 외부 사람들은 그렇게 물을 수 있지만, 한국인들이 언제 될 것이지 묻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통일이 되도록 하면 통일이 될 것이고, 통일이 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언제 될 거냐고 묻기만 할까요? 통일을 누가 할 겁니까? 왜 자기는 빠져 버리고 누가 대신해 주는 것처럼 말하나요? 통일이 언제 될 것이냐는 질문은 옳지 않습니다.nbsp통일 하는 것이 좋은가, 통일 안 하는 것이 좋은가,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막연히 ‘통일 하는 게 좋다’ 그렇게 생각하면 통일을 위한 노력을 하나도 안하게 됩니다. 통일이 되면 좋다 하지만 통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 아무도 노력을 안 한다면 그것은 그냥 뜬구름 잡는 얘기에 불과합니다.nbsp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가 먼저 잡혀야 하고, 그 다음에 그런 통일을 하려면 어떤 문제가 예상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살펴나가야 합니다. 현재 객관적인 조건은 예전에 비해서 우리가 통일을 하겠다고만 한다면 통일을 하기에 유리한 조건이 되어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 관계가 조금 유동적이 되었습니다. 유동적이 되었다는 말은 불안정해졌다는 것인데, 불안정해지면 넘어질 수도 있지만 속도를 빨리 낼 수도 있습니다. 유동적이 되었기 때문에 통일을 하려면 하는 쪽으로 더 쉽게 갈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버려두면 통일이 어려운 쪽으로 기울 수도 있습니다. 독일도 통일할 때는 그동안 있었던 양대 세력 사이에 균형이 깨어지면서 유동적이 되니까 그 기회를 잡아서 통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한반도도 중국의 부상에 따라 힘의 균형이 깨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반도의 상황을 통일에 유리하도록 활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우리에게 달려있는 문제입니다.nbsp외부 상황은 좋아졌지만 실제로 통일을 하려면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니까 통일의 주도 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통일의 주도 세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역사적으로 가장 나빠졌다고 볼 수 있어요. 통일을 주도할 세력이 없어졌습니다. 1960년대까지는 북한이라는 집단 전체가 통일에 목을 걸 정도로 주도 세력이 있었어요. 남한에서도 이것에 동조를 하면서 통일을 주장하는 일부 세력이 있었고요. 그런데 북한이 사회경제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남북 중에 어느 한쪽이 전 민족적 관점에서 어떻게 통일을 할 것이냐 고민하는 세력이 없어져버렸어요. 남한은 분단 초기에 북한보다 열세였기 때문에 전 민족적인 관점에서 통일을 다루기에는 역량이 작았고 남한의 체제를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이냐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한 안에 있는 통일지지 세력들은 남한 정부와 갈등 관계를 유지했던 것입니다.nbsp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서 북한이 사회경제적으로 붕괴되면서 지배세력들의 고민이 점점 체제 유지에만 집중이 되어 갔습니다. 그러니 북한도 이제 통일 주도 세력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통일의 희망을 걸고 북한을 긍정적으로 보던 남한 안의 세력들도 북한의 체제가 쇠퇴하면서 같이 몰락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남한 안에도 통일 주도 세력이 없게 되었습니다.nbsp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남한의 발전을 넘어서서 북한까지 포함한 전 민족적인 관점에서 한반도를 발전시키겠다고 하는 지도자가 남한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남한의 지도자들은 오랜 역사 경험에서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안 해봤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북한은 지금 자기체제 방어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이고요. 민족 전체적으로 통일을 주도할 만한 세력이 없습니다. 외부 환경은 좋아졌는데 주체 세력은 미비한 이것이 지금 현재 우리 민족이 처한 형국입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과거와는 다른 개념에서 남한 안에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이 새롭게 형성되어야 합니다.nbsp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가 남한 출신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남북 양측의 정치경제 시스템과 다양한 측면을 비교했을 때, 남한도 아직 부족한 것이 있고 북한에도 긍정적인 요소가 있지만, 북한 중심으로 통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해결책은 남한의 체제 시스템을 기본으로 깔고 이것을 조금 더 개선해서 통일의 중심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방법이 옳아서가 아니라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이죠. 통일 안하겠다면 모르지만 통일 하겠다고 할 때는 이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더 있겠느냐 싶어요.nbsp50년대의 적화통일 방식도 안 되고, 70년대의 남북 연방제 방식도 현실적으로 되기가 어렵고, 결국은 남한이 중심이 되어서 통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현재 남한의 상태로는 통일하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통일 국가의 모델로서 현재 남한은 적절치 않습니다. 통일의 모델이 될 수 있게 현재의 남한을 바꿔야 합니다. 남한 사회를 위해서도 그렇고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nbsp두 번째, 북한 입장에서는 이 안을 수용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북한을 해체하고 흡수통일 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처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이런 우려를 힘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포용해 주어야 합니다. 북한 내부를 분석해보면 3개의 계층으로 나눠집니다.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일반 주민들에게는 생존권을 보장해 줘야 하고, 생존권을 보장해 주려면 인도적 지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먹고는 살지만 가난한 사람들인 중간층에게는 남북 간 경제협력이 되어서 통일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중국 제품 보다는 남한 제품이 훨씬 좋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통일의 중심 역할을 남한이 하는 것에 대해 동의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사는데 지장이 없는 상류층에게는 통일이 된 뒤의 신분 보장을 해주어야 합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 체제 보장을 해주던지,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는다는 신분보장을 약속해 주던지 해서 이들이 통일 지향적인 생각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적어도 이런 과감한 정책을 취해야 통일이 가능합니다.nbsp결국 주도하는 사람이 양보를 해야 합니다. 힘이 강한 사람이 양보하면 포용이라고 말하고, 힘이 약한 사람이 양보하면 굴복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러니 지금은 남한이 북한을 포용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 주민들과 지배세력들의 두려움이 없어지고 합의점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현재 남한 정부의 정책은 무릎 꿇고 빌면 지원하겠다고 하니 한발도 못나가는 것입니다. 대화에는 전제 조건이 있으면 안 됩니다. 사과하면 대화한다, 이런 자세로는 안 됩니다. 대화를 먼저 시작하고 나서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과를 해야 테이블에 앉겠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런 것들이 남북 간에 가로 놓여 있고, 이것을 둘러싼 국제 정세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입니다.nbsp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자국 힘만으로는 어려우니까 일본을 재무장시켜서 역할분담을 하려고 하는데 한국을 그 밑에 붙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재무장한 일본 nbsp밑에 붙으려고 하지 않죠.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을 하자는 것이 미국의 요구인데, 한국은 일본과 함께하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한국이 일본과 군사 협력하는 것이 중국에 대한 적대행위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중국과 갈등이 생기고, 이걸 안 받아들이면 미국과 갈등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외교적인 측면에서는 굉장히 딜레마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균형 있게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국가 이익을 위해 무조건 따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nbsp그런 면에서 이런 세력 변화 앞에서 통일 없이 미중 사이에 균형을 잡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한국은 미일 동맹체제로 편입되고, 북한은 현재까지는 잘 버티지만 내부에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 중국의 체제 아래로 편입되면, 미중의 갈등 구조 속에 남북이 강대국의 하위 변수로 편재되어 지난 100년과 같은 고통을 또다시 보내야 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nbsp그런 고통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거대한 중국 세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중국과 등지지도 않는 선택을 어떻게 할 것이냐. 거기에는 미국의 힘도 필요하고 일본의 힘도 필요합니다. 일본의 군국주의에는 반대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과 싸우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일본과 싸우면 앞으로 한국이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철저하게 반대하고, 그것을 일본 국민과 함께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일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도 일본의 군국주의를 반대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협력을 하되 중국의 패권주의를 반대해야지 중국을 반대하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군수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반대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미국의 평화주의자들과 미국의 양심적인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미국의 정책을 바꿀 수 있지 우리의 힘만으로는 미국의 정책을 바꾸기는 매우 어렵습니다.nbsp그런 면에서 유럽과의 협력이 돌파구를 열고 균형을 조금 깨어주는 역할을 해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여러분들에게 해준 것은 없지만, 그래도 여러분들이 태어난 국가를 위해 국가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는데 여러분들이 기여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일제시대 때 만주로 쫓겨나 힘들게 살았지만 그분들은 오히려 독립운동까지 하면서 희생을 치뤘잖아요. 사실은 국가가 그분들에게 해준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그분들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희생을 치뤘고, 그래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처럼 여러분들이 해외에 나와서도 정부나 국가가 해준 것이 없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긍정적으로 보고 이것을 극복하는데 기여를 해주셨으면 해요. 이번 유럽 강연을 하면서 국적을 바꿔버리고 싶다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는데 이것은 도피적인 사고입니다. 한국 안에서 한국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 못하면 내가 고국에 들어가서라도 해결을 해야 겠다 이렇게 보따리 싸서 들어올 생각을 해야지 도망갈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들어오지는 못하더라도 여기서라도 한국이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도록 댓글을 하나 달든, 편지를 하나 쓰든, 모금을 하든, 뭔가 한국이 긍정적으로 바뀌도록 노력해 주었으면 합니다.nbsp남북 간의 갈등에 너무 한쪽 편에 편들지 마시고, 여기서는 북한까지도 이해하면서 어떻게 지금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에 우리들이 기여할 수 있느냐, 우선 인도적 지원 문제부터라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셨으면 합니다.”해외에 사시는 많은 교민들의 한반도의 통일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오늘 스님 답변을 들으면서 균형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공감했습니다.nbsp마이크 시설이 옆 공간과 공용으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어 마이크 사용을 하지 못하고 소형 마이크를 사용하다보니, 스님께서 목소리를 많이 높여야 했습니다. 목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스님께서는 2시간 30분 동안 열정적으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강연을 마치고 많은 분들이 스님께 찾아와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nbsp오늘 강연은 덴마크 한인여성회 모임에서 주축이 되어 준비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실무를 맡으신 임미숙 보살님을 비롯한 여성회 모임 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단주를 선물했습니다.nbsp▲ 오늘 강연을 위해 자원봉사 해주신 덴마크 한인여성회 모임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한분 한분과 인사를 나눈 후, 오늘 숙소인 박혜정 법우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박혜정 법우님은 한국에서 깨달음의장을 하고 수련 바라지 봉사와 희망세상 강연 봉사를 통해 정토회와 인연이 깊은 분입니다. 덴마크에 와서 정착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한참 적응해 가고 있는 시기인데, 오늘 스님 일행을 흔쾌히 받아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하룻밤 재워준 박혜정 법우님에게 금강경 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nbsp▲ 덴마크에서 하룻밤 머물고 갈 수 있게 해준 박혜정 법우님.nbsp이곳에서 하룻밤 묵고, 내일은 독일 함부르크로 이동합니다. 내일은 기차 타고 배를 타고 바다를 넘어 독일로 넘어가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9.10 세계 100회 강연(16) 노르웨이 오슬로
▲ 오슬로의 오페라하우스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열여섯번째 강연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스웨덴 스톡홀름의 김태자 선생님 댁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새벽5시에 콜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6시반에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밟는 동안 스님께서는 원고 교정 업무를 보셨고, 출국 수속을 마친 후 어제와 그제 이동 중에 남은 빵과 약밥으로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였습니다. nbsp nbspnbsp▲ 노르웨이로 넘어가는 비행기 안아침8시35분에 스웨덴 스톡홀름을 출발하여 9시30분에 노르웨이 오슬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오슬로에 거주하는 봉사자가 미리 예약해 준 콜택시를 타고 오슬로 도심으로 들어왔습니다. 조주형씨는 오슬로에서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분인데, 바쁜 와중에서도 혼자서 열심히 강연을 준비해주셨습니다.nbsp먼저 오늘 숙소로 사용할 호스텔에 도착하여 짐 보관실에 짐을 모두 내려놓고 곧바로 유적지를 둘러보러 도심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이곳 노르웨이 오슬로에는 마중을 나오거나 유적지 안내를 해주실 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호스텔에서 나눠주는 관광 지도에 의지하여 대표적인 nbsp한두 곳만 둘러보기로 하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nbsp먼저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케르후스 요새에 가보았습니다. 1049년 하랄 하르드라다가 설립한 오슬로는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입니다. 1299년 동쪽 스웨덴의 침략에 대비해 호콘 5세가 이곳에 흙벽을 올려 요새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도시는 1624년에 불에 타 사라져버렸는데 이후 크리스티안 4세가 보다 방어하기 쉬운 자리에 벽돌과 바위로 다시 재건했다고 합니다. 나무가 줄지어 있는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 오르니 성벽 너머로 오슬로 도심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졌습니다. nbspnbsp▲ 아게르후스 요새에서 바라본 오슬로 도시 전경.nbsp아게르후스 요새에서 해안을 따라 걸으니 거대한 오페라하우스가 나타났습니다. 2008년 오픈한 이 오페라하우스는 건설하는데 약 5천억원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마치 오슬로 앞바다에 빙하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건물 전체를 하얀 대리석으로 덮었다고 합니다. 건물 외관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비스듬한 외벽 때문에 독특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 오슬로의 오페라하우스nbsp오페라하우스에서 10분 정도를 걸어 다시 시내로 들어가 오슬로 대성당 안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성당 안에는 에마누엘 비겔란이 만든 정교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천장벽화가 눈에 띄었습니다. nbsp▲ 오슬로 대성당nbsp노르웨이는 1인당 국민소득이 8만불이 넘고 물가가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점심을 어떻게 먹을지 고민했는데, 마침 오슬로 대성당 앞에 버거킹이 보였습니다. 그래도 버거킹이 가장 저렴하지 않을까 해서 들어갔는데, 햄버거 메뉴 하나가 12000원이 넘었습니다. 한국에 비해 2배 가량 비쌌습니다. 그래도 식당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저렴하지 않을까 싶어 가슴이 조마조마했지만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하였습니다.nbsp오슬로 대성당을 지나 메인 스트리트인 카를 요한스 게이트에 접어드니 상점들이 늘어선 차 없는 거리가 나왔습니다. 일직선의 대로 맨 끝에 왕궁이 보였습니다.nbsp▲ 왕궁산책 겸 왕궁까지 걸어가 주변을 둘러본 후, 다시 해안가로 내려와 노벨평화센터 앞을 지났습니다. 노벨평화센터는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자 노벨이 창시한 노벨상의 역사를 비롯해 1901년부터 현재까지의 수상자가 안내되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건물 안에 들어가보려고 했으나 입장료가 너무 비싸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사진만 한 장 남기고 돌아섰습니다.nbspnbsp▲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이 안내되어 있는 노벨평화센터.nbsp노벨평화센터 앞에는 시청사 건물이 붉은 벽돌로 지어져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이곳 오슬로 시청에서는 매년 12월 10일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거행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벽돌탑이 있는 건물 외관만 보면 전형적인 정부기관 건물로 보였지만, 로비 안으로 들어가면 노르웨이의 역사와 신화가 그려져 있는 벽화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스님 일행은 로비 안으로는 들어가 보지 않고 외관만 보고 지나쳤습니다.nbsp▲ 매년 12월 10일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거행되는 오슬로 시청.nbsp오후3시 무렵, 다시 숙소인 호스텔로 돌아왔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이동과 강연 일정으로 스텝진들도 모두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서, 오후5시까지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주어지는 휴식 시간에 스텝진 모두 달콤하게 휴식을 가졌습니다. 오후7시부터 강연이 열리는 오슬로 문화센터 건물로 가서 강연 준비 담당자인 조주형씨를 만나 강연을 준비했습니다.nbsp▲ 노르웨이 오슬로 강연이 열린 문화센터, Litteraturhusetnbsp오늘 노르웨이 오슬로 강연은 총 55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습니다. 준비한 40개의 의자가 부족해 바닥에 앉은 분들도 10명이 넘을 정도로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노르웨이에는 아무런 인연이 없어서 사람들이 적게 올 줄 알고 자리를 적게 준비했다” 며 죄송한 마음을 전하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nbsp오늘 오슬로 강연에서는 총 7명이 스님께 질문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 현재를 살 수 있는지 묻는 분, 작년에 명상수련을 배웠는데 해외에서 스승도 없이 어떻게 명상을 해야 할지 묻는 분, 어떻게 살아야 좋고 싫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묻는 분, 아이가 수학을 잘못하고 자꾸 저항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문뜩 문뜩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부모님이 건강관리를 소홀히 해서 답답한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직장도 갖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고 많은 것이 이뤄졌는데도 마음 속에는 아직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다고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nbsp그 중에서 해외에서 생활하며 문뜩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한국에서 20대와 30대를 보내면서는 직장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바쁘게 산다고 외로움을 못 느꼈습니다. 그런데 노르웨이에 와서 시간적으로 여유롭고 아이도 크고 하니까 문뜩 문뜩 외롭다는 느낌이 자주 듭니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형제가 있고 다 있지만 외롭다는 느낌이 들 때 지혜롭게 넘어가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nbsp“현대인을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표현하죠. 많은 사람과 몸을 부딪치고 사는데 고독하다, 결혼해서 남편과 살을 맞대고 사는데 고독하다 하는 건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산속에서 혼자 살아도 마음의 문을 닫고 있지 않으면 외롭지가 않아요. 나무 하고도 대화하고 새 하고도 대화하고 자연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부가 살을 섞고 살아도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외롭습니다. 남편의 돌아선 등이 마치 성벽처럼 느껴집니다.nbsp한마디로 진단하면 질문자가 지금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의 잘못이 아니에요. 바쁜 남편이나 가족이 볼 때는 ‘호강에 받쳐서 요강을 깬다’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네요. 편하니까 쓸데없는 걱정을 다한다 이렇게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본인도 바쁘면 외로움을 못느껴요. 그런데 한가하면 느껴지게 되거든요. 눈 감고 명상을 하면 망념이 일어나는 증상과 같습니다. 보통 우리는 의지로 이것을 억압하기 때문에 자신이 굉장히 도덕적인 인간 같습니다. 그러나,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태이거나 꿈속에서는 억압된 심리가 그냥 일어나서 외간 남자도 만나게 됩니다. 그것처럼 심리가 억압이 되어 있어서 못 느겼는데 한가해지니까 이런 것이 나타나는 겁니다. 바쁘다는 것은 억압이 되어 있다는 것이거든요.nbsp그래서 자기 자신을 가만히 지켜보세요. 외롭다 하는 것은 사람이 없어서 그럴까요? 질문자가 ‘지금 좀 마음의 문을 닫고 있구나’ 자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직장을 가던지 생활을 바쁘게 해서 덮으려고 하지 말고, 명상을 통해서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편안할 수 있게 해보세요. 제일 중요한 것은 ‘내 까르마가 외로워하고 있구나, 내가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고 있구나’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지금 질문자는 자기 생각에 좀 빠져 있어요. 남편과 아이들과 편안하게 대화를 하는 것이 좀 필요해요. 꼭 불만이 있어서 마음을 닫고 있는 건 아니고, 질문자가 어릴 때 이런 심성이 형성된 것입니다. 우리의 심리적인 근저는 주로 어릴 때 형성됩니다. 엄마의 성격을 닮거나 아니면 어릴 때 자란 환경이 자신의 무의식 세계를 형성하고, 이것이 평생 삶의 심리적 근저에서 작동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첫째, 이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나를 알아야 됩니다.nbsp둘째, 외로움이라는 것은 노르웨이에 와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남편이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다만 내 까르마가 이렇게 형성되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을 통해 어떻게 극복을 할 것이냐 이게 문제죠. 만약 기도를 한다면 이렇게 해야 되요. ‘저는 편안합니다’ 이렇게 자꾸 자기 암시를 주세요. 그러면 편안하다는 자기 암시와 편안하지 못한 자신의 현실 사이에서 늘 충돌이 일어날 거예요. 편안하다고 기도하는데 현실은 늘 편안하지 못하죠. 그래도 계속 절을 하면서 ‘감사합니다. 저는 편안합니다.’ 이렇게 자꾸 자기 암시를 끝없이 해보세요.”nbsp질문한 여성분은 스님 말씀대로 실천해볼 것을 다짐하면서 “감사합니다” 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을 마무리 하시면서 참석한 교민 분들에게 격려의 말씀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강조하셨습니다.nbsp“여기 와서 ‘힘든다’ 이런 생각은 가급적 하지 마세요. 100년 전에 태어났으면 노르웨이를 구경이나 한번 해봤겠어요? 구경도 하기 힘든데, 나는 구경도 하고, 여기 와서 살아도 봤고, 결혼하신 분은 외국 남자와도 살아도 봤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고국에 돌아가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잖아요. 항상 지금의 생활에 감사를 하면 심리가 안정이 되고 몸에서도 좋은 에너지와 호르몬이 분비가 되고 항상 얼굴이 밝고 기분이 상쾌해져요. 상쾌해지면 아이디어도 좋게 나오고 다른 사람에게도 호감이 많이 가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하는 일도 잘 됩니다. 장사를 하거나 회사에 근무하는 내 자세가 편안하고 즐겁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손님이 한명이라도 더 오게 됩니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행복하게 사시면 좋겠습니다.”좁은 공간에 바닥에 앉으신 분들도 많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된 분위기로 즐겁게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모두들 강연을 듣고 나갈 때의 얼굴 표정이 환하게 밝아져 있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자들 한분 한분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봉사자들과의 단체 사진은 봉사자가 조주형씨 한분이여서 조촐하게 함께 찍었습니다.nbsp스텝진들은 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촬영장비와 현수막 등 짐들을 들고 오슬로의 메인스트리트인 칼 요한 게이트를 20분 가량 걸어서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숙소인 호스텔에 도착하니 밤10시가 넘었습니다.nbsp강연 전에 연락받기를 오슬로에 사시는 이민아 보살님이 점심 식사 접대를 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으나, 초대 받은 장소가 시내 외곽 지역에 있어서 다녀올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성의에 응하지 못했는데, 보살님께서 강연장으로 직접 오셔서 라면과 김치를 보시해 주셨습니다. 강연을 준비하느라 스텝들은 저녁을 먹지 못했는데, 호스텔 지하 식당에서 이민아 보살님이 보시해주신 라면과 김치로 맛있게 저녁을 늦은 시간에 먹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nbsp내일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열일곱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덴마크로 넘어가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