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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8.9 역사기행 여섯째날 - 요전자24개석, 상경용천부, 흥륜사, 도문조중국경
오늘도 4시에 발해의 왕성이 있던 상경용천부로 이동하였습니다. 가는 길에 요전자 24개석을 보았는데, 어제 본 강동 24개석과 같은 형태와 비슷한 크기로 요전자 마을의 밭에 있는 것으로 특별히 보호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nbsp 상경용천부에 도착해서 먼저 박물관을 들러 발해의 유물, 유적들도 둘러보고 궁성의 모형을 보고 그 규모를 짐작해 봅니다. 화려했던 옛 명성을 짐작 할 수 있듯이 왕성의 규모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허물어지고 기단부분들만 남았지만, 내성과 외성의 길이나 각 궁궐이 놓였던 기단의 크기를 보면서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잊혀진 발해의 역사만큼이나 유적이나 유물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nbsp 상경용천부는 입구에 오봉루가 있고 그 뒤에 제1궁궐부터 제5궁궐까지 순서대로 있었으며, 기단의 높이도 제1궁궐부터 차례로 낮아지며서 각 궁궐은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중에서 제2궁궐터가 가장 큰데, 아마도 이곳이 왕이 정사를 보던 곳이었을 것 같습니다. 제4궁궐은 온돌까지 발견된 것을 보면 왕의 숙소로 사용하던 곳 이었을 것입니다. 궁내에는 어화원이라는 큰 화원도 있었고 내성과 외성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nbsp 지금은 거의 허물어지고 기초석이나 주춧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이 주춧돌 위로 궁궐이 복원되기를 바라며 우리의 역사에서도 발해의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nbsp상경용천부를 떠나면서 또다시 발해를 그리며 옛 영광을 상상해 봅니다.nbsp 흥륜사는 발해시대의 절로 발해가 멸망한 후 불타 없어졌다가 청나라때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발해시대의 석등, 불상과 청나라때의 돌거북등 유물이 함께 있었습니다 . nbsp 발해시대의 유일한 불상앞에서 공양미를 올리고 법륜스님의 집전으로 사시예불을 올렸습니다. 스님께서 직접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이 하루바삐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며, 또 625 희생자들의 왕생극락을 빌려 축원해주셨습니다. nbsp 점심을 먹고 봉오동전투터로 향했습니다. 봉오동전투터 앞의 개울물이 불어서 도로를 넘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버스가 지나갈 정도는 되었습니다. 봉오동전투터 기념비는 더 잘 정비하기 위해 현재의 기념비를 떼어내고 계단을 쌓는등 공사중이어서 약간은 어수선한 느낌이었습니다. 봉오동전투는 삼일독립운동 후 계속되는 일본의 통치속에 비정규군인 우리의 독립군이 정규군인 일본을 물리침으로써 민족의 사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nbsp 봉오동전투터에서는 이번 역사기행에 참가하신 분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중학생들이 제주가 되어 제사를 지냈습니다. 봉오동전투터에서 전사한 우리의 독립군들은 물론 전쟁의 희생양이 된 일본의 군사들의 영혼까지 기리며, 또 이후에는 이 땅에 전쟁이 없는 평화롭기를 기원하였습니다. nbsp 제사를 지내고 음복을 하고 기념촬영을 한 후 두만강을 따라 한반도 최북단인 온성군 풍서리까지 가면서 다시 북한땅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가는 길에 스님께서는 처음 JTS를 통해 온성군에 농업지원을 하면서 수확량을 3배이상 올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북한은 주체농업에 의해 밀식재배를 했었는데, JTS의 지원으로 중국의 신농법으로 하면서 처음에는 북한 사람들이 이래서 될것인지 걱정하다 오히려 자라면서 가지가 벌어지고 수확량이 더 많아지면서 매우 좋아했던 이야기들을 해주셨습니다. nbsp 다음은 두만강을 따라 걸으면서 중국의 도문과 북한의 온성간 놓인 국경다리를 둘러보았습니다.nbsp 저녁식사를 한 후 그 자리에서 ‘독립운동사’에 대한 저녁 강의가 있었습니다.nbsp “1811년 서북지역 주민들의 불만으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지만, 리더십부재로 관군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1860년 이후에는 전국 곳곳에서 민중의 봉기가 일어났습니다.nbspnbsp 1860년에 최제우 선생이 동학을 만들었고, 1864년에 순교할때까지 짧은 기간 활동했지만, 그 영향력은 매우 컸습니다. 최제우 선생의 뒤를 이어 최시형 선생에 의해 전국적 조직을 만들면서 동학혁명의 기초가 되었습니다.nbspnbsp 조선시대 젊은 지식인층, 즉 개화파는 세계가 빠른 속도로 변화해 가는데 우리만 뒤떨어진다고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개화파들은 일본쪽의 문물을 받아들이자며 일본의 도움으로 개혁하려 했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갑신정변입니다. nbsp 지난 200년간 청나라의 세상이었지만, 청나라는 지는 해였고 일본은 떠오르는 세력이었지만, 떠오르는 세력이 아직 영향력이 약한데 이것을 읽지 못하고 개화파들이 일본의 도움으로 쿠데타를 일으키니 청나라 군대의 간섭으로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국내가 분열되니까 외세에 이용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nbsp 이것은 지금의 우리 현실과도 비슷합니다. 미국은 이제부터는 지는 해이고 중국은 떠오르는 해에 해당합니다. 이때 우리는 어떤 포지션을 취할 것인가는 역사속에서 배움이 있어야 합니다. 떠오르는 신세력과 너무 빨리 함께 하면 세력의 힘에 억압받게 되고, 너무 늦어지면새로운 세력에 침략받게 됩니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기본적으로 자기 주관이 뚜렷해야 하고 자신의 역량을 알고 주변정세를 정확하게 읽어야 구세력과 어떻게 함께 하면서 신세력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nbspnbsp 갑신정변이 일어난지 10년 후 동학혁명이 일어났는데, 왕조의 중앙권력은 이를 무마 하기 위해 전주관찰사를 파면하고 동학이 내건 개혁 10조를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동학군들은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라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2차 봉기를 했지만, 관군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청군에 요청했고 청이 조선에 관여하자 일본군도 들어오게 되면서 청일 양군에 의해 동학혁명은 무참히 패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작게는 30만, 많게는 60만이 학살되었습니다. 동학혁명은 민중에게 엄청난 희망이었지만, 또 그 패배는 엄청난 좌절이었습니다.nbsp 이런 과정속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나 일본이 이기면서 조선에 대한 주도권이 청에서 일본으로 넘어오게 되었고, 고종황제는 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연호를 광무로 정하고 황제로 칭하였지만, 현실적인 역량은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대원군은 개혁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서원을 철폐하고 개혁정책을 시행할 정도로 국내정세는 잘 알았지만, 국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안목이 없었기 때문에 쇄국정책을 씀으로 해서 그의 개혁속도는 세상의 변화속도보다 늦어지다 보니 수구파로 분류되고 반개혁적인 인물로 평가되었던 것입니다.nbsp 조선에 대한 권한을 일본이 행세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간섭을 하는 나라가 미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과 미국이 협의를 해서 미국이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관장하는 것을 서로 인정한 것이 카쓰라태프트 협약입니다.nbsp 두 번째 카쓰라태프트 협약은 해방후 미국과 소련이 남한과 북한을 분할하고 군정을 실시한 것이고, 세번째는 지금 미국은 북의 핵을 중국이 제거한다면 북의 관할권을 중국이 행사하는 것을 미국이 양해하겠다는 분위기입니다. 미국이 중국에 요구하는 것은 미국이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국제 질서 안에 들어오라는 것이고, 중국은 커진 국력에 맞는 국제적인 영향력을 미국이 인정해라는 것입니다. 미국은 중국이 가진 영향력등을 중국이 북핵제거에 협력한다면 고려해서 제3의 카쓰라태프트 협약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nbspnbsp 이처럼 우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읽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는 문제입니다. 1907년 일본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면서 군대출신이 의병에 동참하면서 의병활동이 활발해졌습니다. 1910년에 오면 의병이 몰락하는 분위기로 가니까 국내에서 의병활동하던 사람들은 결국은 포기하거나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러시아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nbsp그렇게 해서 이 만주지역으로 많은 독립투사들이 뜻을 품고 넘어오게 된 것입니다. 용정벌을 중심으로 연변지역은 매우 넓었기에 수십만이 넘어와서 개척했습니다. 논농사는 조선족이 와서 개척한 것이며 이렇게 이루어지니까 이것을 기반으로 학교도 세우고, 독립을 준비하고, 무장을 하면서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된 것입니다. nbsp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3.1독립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결국 비폭력운동으로는 안되는구나 해서 무력항쟁을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1920년 봉오동 전투의 승리로 일본의 압력이 세어지니까 중국은 독립군에게 중국영내에서 나가라고 하고 일본군은 훈춘사건을 일으켜 중국으로 일본군이 들어오게 되자 독립군들은 백두산으로 이동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속에서 독립군들이 화룡 청산리에서 일본군이 추격하는 것을 되돌아서 공격한 것이 청산리 전투입니다. 김좌진 장군이 한 것을 청산리전투라고도 하고 광의의 청산리 전투는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10월 21일에서 26일 사이에 있었던 완루구, 어랑촌, 천수평, 고동하등에서 승리한 전투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1920년대 이 소식은 삼일운동에 실패한 우리 국민에게 엄청난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 지역의 민간인들을 독립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을 학살하는 등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nbsp 이처럼 우리의 독립은 많은 사람들의 피눈물로 이루어졌고, 독립운동사를 보면 어느민족보다 적극적이며 용감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운동도 민족의 독립을 우리손으로 이루지 못함으로 외세에 의해 남북이 갈리게 되고 분단으로 남북이 체제경쟁을 하면서 오히려 많은 독립운동사들의 규모가 축소 되어버렸습니다.nbspnbsp 축소된 규모의 독립운동사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남북의 화해가 필요하고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민족의 독립운동역사가 반쪽이 될지, 온전하게 될지 결정이 될 것입니다.” nbsp우리의 독립운동사가 단순히 이 시기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민중들의 의병활동부터 내려오게 되었음을 다시 한번 새겨보는 시간이었습니다.nbsp 내일은 원래 청산리 전투터, 용정의 대성중학교, 일송정, 대종교 3인묘를 보고 연길에서 전체 마무리를 하고 심양으로 가려고 했으나 그제 백두산 천지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절반정도 되기에 일정을 조정해서 내일 아침에는 좀 더 일찍 일어나고 연길에서 일정을 취소하고 오후에는 백두산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스님께서 사람들의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일정을 조정해서 다시 백두산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2013.8.7. 역사기행 넷째날 - 림강, 영광탑, 백두산
새벽 4시에 림강으로 출발하려 했으나 호텔측의 체크가 늦어져서 약 20분이 늦은 채 출발했습니다. 림강은 발해시기에 서경압록부의 소재지로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최근에 림강 부근에서 발해의 유물, 유적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역사기행 참가자들은 시장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아침을 해결했습니다. 중국 서민들의 실생활을 잘 알수 있었고, 우리가 직접 사먹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nbsp 림강을 떠나 압록강을 따라 장백으로 향했습니다. 압록강 건너 보이는 북한은 여전히 가슴아픈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예년에 비해 농사가 잘 되었다고 합니다. 북한의 뙈기밭들은 여전했지만, 그래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였고 예전보다 활발해 보였습니다. 압록강 건너 보이는 북한의 뙈기밭은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예년보다는 조금 나아보인다는 스님의 말씀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압록강을 따라 가면서 보이는 북한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북한은 자기가 농사를 지어도 자기것이 되지 않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데 소홀하게 되고 수확량이 떨어지게 되고, 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집주위 산을 개간해서 농사를 지어 자기것이 되기 때문에 열심히 짓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자기것이 되어 좋지만, 국가적으로는 손실입니다. 그래도 북한 주민들이 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에 살아남은 것도 다 이 뙈기밭 덕택입니다. nbsp 북한이 계속적으로 식량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현재는 농업생산량의 배분을 바꾼다고 합니다. 생산량의 70는 개인이 처분 가능하고, 나머지 30에 대해서 정부가 공급하는 농자재에 대해 감가하고 남으면 농민에게 현금으로 배분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한꺼번에 시행한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30만 개인이 처분했는데, 이제는 70로 바뀌었습니다. 북한의 관리들도 북한의 농업 시스템이 이렇게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회의를 하면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하는 소수가 주장을 강하게 하면서 제대로 시행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nbspnbsp 역사적으로 볼 때 전쟁이 나면 끝까지 싸우자는 사람들이 있고, 타협하자는 사람들이 있는데, 역사속에서는 싸우자고 하는 사람들이 잘했던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고통받는데도 끝까지 싸우자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nbsp 90년대 후반에 북한 난민을 수도 없이 만나고 이야기 해봤을 때, 이념과 현실은 차이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백성들을 팽개치고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난민들을 만나고 가장 가슴 아팠던 말이 ‘다 죽고 지혼자 왕하면 뭐하노?’라는 말이었습니다.”라는 스님 말씀에 다시한번 북한의 굶주리는 사람들이 스쳐지나 갑니다.nbsp 압록강 건너 북한땅을 보면서 스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북한의 혜산이 내려다 보이는 영광탑까지 왔습니다.nbsp영광탑은 발해시기의 탑으로 그 밑에는 무덤으로 되어 있습니다. 준비해 간 제물을 차려놓고 간단히 예불을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압록강 건너 혜산이 바로 눈앞에 보였습니다. 북한을 가장 가깝게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건너 보이는 혜산은 강변에 벽을 쳐서 제대로 보이지 않게 해 놨지만, 강변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nbsp 점심을 먹고 난 후 백두산 남편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는 중에 슬픈 소식 하나를 들었습니다. 며칠전 내린 비로 백두산 남편이 폐쇄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문입구까지 갔다가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서문으로 이동했습니다. 여기서도 시간이 늦어서 입구에서 모형을 보고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nbsp 백두산은 내일 북문으로 갈 예정입니다. 만약 비가 온다면 이 또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역사기행은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찾아가는 것이지만 그래도 최고의 묘미는 백두산 천지를 보는 것인데, 아쉬움이 많습니다. 혹시나 내일 비가 오면 어쩔까하는 걱정도 됩니다. nbsp 오늘 백두산 천지를 보지 못한 관계로 숙소에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북한에 대한 스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압록강을 따라 가면서 북한의 산하, 마을,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중간중간에 스님의 설명을 듣긴 했지만, 오늘 저녁 강의를 북한을 주제로 스님께서 정리해주셨습니다. “북한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것이건 부정적인 것이건, 사실대로 접근해야 합니다. 일제 시대와 분단이 연관이 돼 있어서 제대로 평가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nbsp 1920년까지 독립운동의 주류는 대종교였고, 1930년 이후는 민족주의 독립운동은 소수였고 사회주의 계열이 주류였습니다. 상해임시정부가 유명무실해지자 무장투쟁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 공산당으로 편재되어 독립운동에 가담했습니다. 일단 조국의 독립을 위해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국내 다수 국민들은 소작농 철폐등 사회주의가 당시 시대의 주류였습니다. 해방 후 남쪽은 미군정이 북쪽은 소련 군정이 들어섰는데, 서로 경쟁 상대가 된 것입니다. 해방이 되었지만, 문제는 해방의 주도 세력이 미국과 소련 외세였지 우리가 아니었습니다. 독립을 우리가 당당히 했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분단 자체가 우리 책임은 아니지만, 미국은 미국에서 활동했던 이승만을 추천한 것이었고, 소련은 5년 정도 하바로브스크에 와서 소련군으로 활약했던 김일성을 내세운 것입니다. 외세의 힘이 강력한 상황에서 김구, 조만식 등 외세와 함께 하지 않았던 국내 세력은 클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nbsp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한은 부정선거등 각종 문제들이 많았지만, 경제개발에 성공해서 1970년대 들어서 남북한 세력이 비등비등해지니까 서로의 체제를 인정한 위에 통일문제를 협의 하게 된 것입니다. 남쪽은 각각 독자적으로 국가를 유지하는 통일에 대한 원칙적인 통일인 연합제를 주장하고, 북쪽은 연방제를 주장했습니다. 7.4남북공동선언에서 세 가지 합의를 한 것입니다. 이때까지도 북한이 공세적인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북한은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는 올림픽이 끝나자 민주화운동도 성공해서 체제의 정당성이 강해졌습니다. 북한은 1989년에 세계청소년축전을 88서울 올림픽에 견주어서 과도하게 평양을 건설하면서 재정이 악화됐고, 주체농법, 자립경제가 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nbsp 거기다 결정적으로는 소비에트와 동유럽이 붕괴되어 북한 경제가 중대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치명적인 것은 에너지 공급이 멈춘 것이었습니다. 전기가 안 들어오니까 석탄을 못 캐고, 탄광이 무너지고, 탄을 못 캐니 다시 발전소를 못 돌리고 이렇게 악순환인데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자본주의 세계와 거래를 할수도 없었습니다. 북한이 대량아사가 발생한 것은 첫째는 북한정부의 잘못이지만, 둘째는 남한 정부의 잘못도 있습니다. 또,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장기전을 한 것도 북한경제의 몰락을 가속화한 것입니다. 현재 북한의 경제와 사회는 붕괴된 상태였고 정치와 군사는 아직 굳건한 상태인 것입니다.nbspnbsp 북한의 긍정적인 점을 얘기하면 보수세력은 친북이라고 하고, 북한의 피폐한 점을 얘기하면 북한과 남한의 진보세력은 반북이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친북, 반북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 위에서 접근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한의 과거 긍정적인 점은 인정하고 그리고 내부 모순이 심해지면서 인권문제등 부정적인 면도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nbsp 북한은 통일해야 할 대상인 동시에 현실에서는 최대 적대적인 당사자라는 이중 모순이 있습니다. 남북간 화해, 교류, 협력을 하되 북한의 도발에는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합니다. 체제유지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면서 북한을 우리 민족사 내부로 어떻게 포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서민들은 인도적 지원을, 중상층 사람들은 남북경제교류로, 최상류층은 신분보장을 해주고 체제보장을 해주어야 통일의 길을 열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남쪽의 우파가 통일을 위해 북쪽을 포용해주어야 합니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포용에서 시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힘있는 우리가 끌어안으면서 가면 신라가 가야를 통일할 때처럼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은 현재 아무리 통일을 얘기해도 통일보다는 체제유지가 급해서 남쪽이 주장했던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자는 것에 남북연합의 큰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도 성장동력이 소진된 현재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북한을 껴안고 가야 합니다. 인도주의 측면, 과거 아픔을 청산하는 측면, 미래의 비전을 만드는 측면,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측면, 평화를 완전히 정착시키는 측면 등 10가지, 20가지를 잡아도 남북한이 통일해야 합니다. 젊은세대는 통일에 부정적인데, 미래의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 통일이 어떤 이익을 가져오느냐가 새로 검토돼야 합니다.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새롭게 통일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기행은 이런 기본 인식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고단한 몸을 끌고 이렇게 역사의 현장을 찾아 다니는 것입니다.” nbsp 스님께서는 북한에 대한 상황도 이해하고 남한의 상황도 이해하면서 서로 양보하고 힘을 합해 나가야 할 것에 대해 당부하시면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역사기행을 다니는 것도 이런 통일운동중의 하나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 내일은 오늘 보지 못한 백두산 천지를 보기 위해 다시 백두산에 오를 예정이며, 오후에는 발해의 유적지를 돌아볼 예정입니다.
2013.8.3.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모임, 불교대 경전반 담당자 워크숍, 천준위 회의 및 2번의 미팅
오늘 아침 7시 30분부터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종교인 기자회견에 대한 내용들이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서초동 정토법당에서 전국 불교대, 경전반 담당자 약 380여명이 참석한 워크숍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법문에서nbsp“왜 불교대학을 운영하는가? 어떤 목적으로 설립이 되었는가?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운영, 관리할 것인지를 점검해야 기술적인 문제도 함께 해결될 것입니다.nbsp 불교 신자는 불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식중심으로 불교 공부를 해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불법의 가르침은 어떻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nbsp 청년불자들은 지식적으로만 불교를 공부하기 때문에 신앙심이 부족합니다. 동국대 불교학과를 나와도.에서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점을 극복하고자 정토 불교대학이 생겨나오게 되었습니다. 실천적 불교사상의 첫 머리에 왜 불교를 공부하는가? 왜 불교가 삶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이런 점을 알고 다른 종교와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불교는 무엇인가? 이런 것을 불교의 첫걸음으로 배워야 합니다. 두 번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야 한다면 부처님은 누구신지?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세 번째, 근본 가르침은 무엇인지? 네 번째, 시대가 흘러가면서 변화과정은 무엇인지? 소승, 대승이 왜 생겼는지 알아야 우리와 다른 나라의 불교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그런데 한 종파에 들어가면 그 종파의 교리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종교를 가지면 더 배타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도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선방에 다니는 신도들은 일반 절에 다니는 신도를 수준이하로 보는 현상도 있습니다. 스님이 되어 신도를 하인 취급하기도 합니다. 무슨 불교를 배웠기에 이렇게 되냐? 이런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자기 정체성도 가지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포용성을 키우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수계를 할 때에도 돈 얼마주고 받기 때문에 계를 받아도 삶에 변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한다면, 한국 남자가 얼마나 외도를 했느냐?하는 설문 조사를 한다면 절에 다니는 남자는 한국 남자 평균보다 적을까요? 그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늘 보시해라라고 가르치지만 불교신자가 많이 보시할까요? 불살생 등 계율을 불교신자가 더 잘 지킬까요? 문화적인 것은 남아있으나 가치관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불교신자가 되어도 불교적인 가치관이 정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일반인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불교신자가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숫자가 많은 것으로는 세상에 아무 변화도 줄 수 없습니다. 불자라면 선택하는 삶의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기부금 조사를 하여 차이가 안난다면 불교대학을 지식으로만 배우고 있지, 가치관의 변화가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깨달음의 장, 나누기 수련, 성지순례를 다녀옴으로써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불교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본인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불대 담당자는 관점을 잘 알고 관리를 해야 합니다. 설령 동국대 불교대학을 나왔다 하더라도 정토 불교대학을 다시 다니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불교에 대한 바른 이해, 전체에 대한 통찰력, 삶과 연관된 수행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최고 이상은 깨달음이며 깨우침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원을 세울 수 있습니다. 불교의 궁극적 이상이 열반과 해탈이라는 첫 출발로써 의미가 있으며 실천도 같이 병행하기 위해 봉사, 기도로 자기정진, 깨달음의 장이 필요합니다. 공부를 수직적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도반과 나누기를 하면서 타인의 눈을j 통해 나를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법문을 들어야하고 나누기를 해서 지식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나누기를 하지 않는 것은 조퇴와 같습니다. 절반만 한 것. 나누기도 교과 과정, 둘째가 나누기, 깨달음의 장, 봉사활동이고, 셋 째 기도를 해야 합니다. 수행은 사로잡힘에서 벗어나 나를 행복하게 할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자리이타의 전통사상에 입각한 것이며, 보시는 재물로써 남을 돕는 것, 봉사는 재능으로 남을 돕는 것 이 세 가지를 실천하는 것이 정토불교대학의 설립취지와 목적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1만 있어도 그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세상은 변할 수 있습니다. 정토회 만일결사의 목표이기도 하며 이것은 전국 기초구에 100명에 해당됩니다. 이것을 한 생의 목표로 삼은 것이 만일결사입니다. 원래 불교대학과 경전반은 한 과정으로 경전반에서는 기본을 터득한 입장에서 자기가 경을 보며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금강경은 대승경전 중 초기 사상으로 교이면서 선사상, 반야심경과 함께 선불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육조단경입니다. 자기가 체득되도록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며 기본이 잡혀있으면 이후는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진실한 불자가 되도록 인력을 키워내는 것이 정토불교대학입니다. 여러분이 반장, 담임역할을 하며 향후 1년에 5천명이 들어오더라도 5천만 명이 되려면 백년이 소요되는데, 이것을 3년 안에 하려면 5만 명씩 10년이 필요합니다. 오는 분들이 빠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경전반으로 인도,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도록 하고 졸업자는 다시 담당자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합니다. 가능하면 입학은 많게 졸업은 다 하도록,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늘어나면 우리사회는 저절로 밝아집니다.”라며 왜 불교대학을 우리가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각 지역의 불대 담당자들은 스님께 업무를 하면서 생기는 고민들을 질문했습니다. ‘진행하면서 스스로 부족한 마음이 많아 걱정인 분, 계획성이 없는데 어떻게 계획적으로 할 수 있는지 고민인 분, 깨장을 가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가야하는데, 억지로 보내는 것 같아 고민인 분, 봉사가 많아지면서 어떻게 남편의 이해를 구해야 하는지, 또 아이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 고민인 분, 부처님은 왜 걸식을 하셨고, 부처님이 출가한 것이 실제로 아내와 아버지에게 아픔을 준 것은 아닌지 질문하신 분, 수행과 일상생활속에서 갈등이 있어 고민인 분’등 다양한 분들이 평소 고민하던 것을 내어놓고 스님께 진리의 말씀을 듣기를 웠습니다. 스님께서는 법문을 마치자마자 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서 평화연구원의 김형기 원장님과 만남을 가졌고, 이어서 천준위위원들과 함께 8차년을 구상하는 회의를 함께 했습니다. 이후에도 2차례의 미팅을 더하였고, 원고수정등의 업무를 하고 난 후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내일부터는 동북아 역사기행을 위해 중국으로 출국하게 됩니다.
2013.7.6. 백두산
동북아역사기행 넷째날, 오늘은 꿈에 그리던 백두산 가는 날입니다. 설레임에 밤잠을 설쳤다는 사람, 기상시간 1시간 전부터 일어나 목욕재개를 했다는 사람, 구름 낀 아침 하늘을 보면서 걱정하는 사람, 신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 등 언제나 그렇듯 ‘백두산 가는 날’은 그야말로 기다리던 소풍이나 축제와도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두산 천지 탐방’은 이번 동북아워크숍 참가의 가장 중요한 이유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동북아워크숍의 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벽 5시 정각, 버스는 예정대로 흐린 하늘과 새벽안개를 헤치며 백두산으로 힘차게 출발합니다. 버스에서 백두산에 대한 스님의 설명으로 이해를 돕습니다.nbspnbsp “백두산은 우리나라는 물론 동북지방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서 중국에서는 장백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60만 년 전에 화산 분출로 인해 생성되었으며, 높이는 해발2,750m인데 정상에는 2,500m 이상의 봉우리가 16개나 솟아있습니다. 그 중 제일 높은 봉우리가 북한편에 있는 장군봉입니다. 천지 바깥쪽에 있는 능선 중 34은 중국 땅에 속하고, 천지의 35는 북한땅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산 정상의 호수인 천지는 전형적인 칼데라 호수로서,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이 분출해서 흘러내려가고 그 화산재가 덮이면서 형성되었습니다. 흔히 용왕담이라고도 불리우는 천지는 해발 2,189m에 위치하며 남북 4.9km, 동서 3.35km의 면적에 수심이 384m나 되는데, 전 세계적으로 이런 높이와 면적을 가진 호수로는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명산입니다. 또한 백두산에는 천연적인 식생이나 동물이 많고 자연적인 약초들도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백두산에 있는 풀 한포기, 돌 하나, 동식물 하나라도 무단으로 채취하거나 가져가는 행위는 모두 위법이 됩니다.”nbsp ‘백두산으로 찾아가자 우리들의 백두산으로 신선한 겨레의 숨소리 살아 뛰는 백두산으로 백두산으로 찾아가자 만주벌판 말을 달리던 전사들의 투쟁의 고향 백두산으로 찾아가자 서해에서 동해에서 남도의 끝 제주도에서 그 어디서 떠나도 한품에 넉넉히 안아줄 백두산 온 힘으로 벽을 허물고 모두 손 맞잡고 오르는 백두산이여 꺽이지 않을 통일의 깃발이여’백두산으로 가는 마음을 담아 버스에서 신나게 노래도 함께 배우고, 목청껏 백두산을 불러보기도 하면서 버스는 달리고 달립니다. nbspnbspnbsp 백두산 남문에 예정 시간 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것은 그만큼 백두산 천지를 빨리 맞나고 싶다는 우리들의 소망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서 빨리 개장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삼삼오오 모여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소형 버스로 갈아타고 정상을 향해 굽이굽이 올라가는데 그 길이 장관이었습니다. 산 아래 쪽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지만, 해발 2천미터 이상 올라가다보면 하얀 사스래 나무만이 홀로 남아 수목한계선임을 표시하며 백두산을 지키고 있습니다. 길 양쪽에는 이제 피기 시작한 야생화 군락이 보이고 특히 중간 정도 올라갔을 때부터 보이던 연노란색의 두메양귀비는 노랑 나비처럼 아름다워 참가자들의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지천에 두메양귀비, 보라색 매발톱, 노랑 만병초 등이 피어 있어 보는 눈이 즐거웠습니다. 올라갈 때는 하늘이 맑고 구름도 뭉게구름이라 천지를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잔뜩 했는데, 거의 정상에 도착할 때쯤엔 갑자기 구름이 어디선거 몰려와 하늘을 뒤덮어 사람들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듭니다. 갑자기 먼저 간 일행의 천지 정상쪽에서 ‘와’ 하는 탄성이 터져나옵니다. 곧이어 강의용 수신기를 통해서 스님께서도 기쁜 마음으로 탄성과 함께 화답해 주십니다. ‘천지가 열렸다’는 말에 가슴이 벅차올라 참가자들은 그 기쁜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는 듯 보입니다.nbspnbsp “자, 여러분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 천지를 보니 기분이 좋지요? 여러분들이 그동안 공덕을 잘 쌓은 인연 때문인지 오늘은 정말로 하늘이 맑고 시야가 깨끗해서 천지의 본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인 바로 천지입니다. 천지의 물은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하수가 60나 됩니다. 그리고 온천도 있습니다. 천지에 고여 있는 물 자체는 북쪽으로 흘러서 송화강의 원류가 되고, 백두산의 서쪽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압록강의 원천이 되고, 동쪽 기슭으로 흘러내린 물은 두만강을 이루게 됩니다. 이렇듯 백두산 천지는 이 동북일대의 강물의 원천이 되어, 예로부터 이 곳 사람들로부터 신비스럽고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지며, 각종 기원과 제사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이 천지가 북쪽의 천문봉과 용문봉 사이의 통천하를 통해 흘러서 장대한 폭포를 이루는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장백폭포’입니다. 백두산은 예부터 우리 민족 활동의 중심지로서 보이는 것처럼 산세가 장엄하고 자원이 풍부하여 일찍이 한민족의 발상지이자 개국의 터전으로서 민족의 영산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특히 일제 식민지 시절에는 이 곳 백두산 일대를 중심으로한 항일독립운동의 주요한 무대로서 그 역사적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nbspnbspnbsp 백두산이 우리 민족에게 전하는 역사적 의미를 스님의 설명을 통해 듣고, 직접 눈앞에 펼쳐진 장엄하고 웅대한 백두산 봉우리와 심오한 천지를 바라보는 참가자들의 마음은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가슴 뛰는 설레임으로 웃음 짓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떠올리며 숭고한 마음으로 뚫어지게 한 곳을 바라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저 봉우리 건너편의 북한동포를 생각하며 하루 빨리 통일의 길이 열리기를 바라는 간절함도 있었노라고 내려오는 길에 이런저런 감상들이 이어집니다. 천지의 감동이 사라지기 전, 내려오는 길에 들른 압록강이 발원하는 물줄기가 이룬 폭포수와 압록강 대협곡을 덤으로 감상하며 참가자들은 어 더 없는 행복감을 맛보는 시간이었다고 전합니다. 백두산 탐방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백산으로 가는 길에서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느낀 소감을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맛있게 마치고 친교의 시간을 가진 뒤 워크숍 마지막 강의를 스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nbspnbspnbsp “우리 사회에서 자살율이 많은 것은 현재 삶에 대해서 희망적이지 못하다는 반증입니다. 출산율이 매우 저조하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두가지는 현재뿐 만아니라 미래에 대해서도 희망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성장동력이 작아졌느냐? 첫째, 그동안 우리 성장동력이 모방이었습니다. 모방을 통해 압축성장, 고도성장이 가능했지만, 이제 우리의 성장이 서구문명의 수준에 이르렀어요. 그러므로 더 이상 모방으로는 성장하기가 어려워졌어요. 그런 점에서 한계점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일본이 이미 보여주고 있습니다. 20년전에 서양기술 수준에 도달했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죠. 우리는 이제 도달해서 앞으로 정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두번째로는 인건비라던지, 인구의 정체현상이라던지 여러 요소들을 봤을 때 성장이 더 이상 되기 어려운 국면에 놓여져 있어요. 세번째는 국제정세의 변화입니다. 전에는 미국 중심으로 세계의 질서가 편재되었지만 지금은 중국의 급격한 성장을 통해 세계가 G2시대로 돌입했습니다. 이런 세가지 변화를 잘 살펴야 합니다.”nbspnbsp “현재의 한국이 처한 내외적 상황을 분석해 볼 때 한국은 정체와 쇠퇴국면으로 갈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일한국을 이루어 미중관계에서 자주성을 갖고 우리의 이익을 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면에서 통일은 과거를 단순히 청산하는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것입니다. 또한 통일은 우리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옵니다. 통일문제는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한 당위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발전적 비전을 만들어 내고, 우리가 자신감을 갖게 되고, 희망을 갖게 만드는 유일한 하나의 돌파구입니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가 아주 심한 사회라면 통일에 아무런 동력이 없습니다. 또한 중앙권력이 지방으로 분산되고, 지방권력이 더 주민들에게 더 분산되어서 지방분권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화라고 할 수 있죠. 또한 독점된 부가 분산되는 것이 경제민주화입니다. 남한에 의한 북한의 지배가 아니라 그냥 각각의 지방자치정부가 어느 정도의 자주권을 갖는 지방분권의 형태를 갖는 것입니다. 이러면 세계문명의 가치와도 일치하겠죠. 힘에 의한 통일, 전쟁에 의한 통일 이런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세계가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가면서 근대의 질서들을 청산해나가는 통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면에서 통일은 과거의 학생, 노동자만의 요구가 아니라 이제는 중산층의 요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은 더 이상 이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가 통일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통일된 국가의 내용에 대해 주변국가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고, 앞으로 인류의 미래에 어떤 역할, 비전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바라봐야 하는 통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의병은 우리 사회의 갈등관계에 놓여있던 사람들이 공공의 이익, 민족적 이익을 위해서, 애국심 있는 사람, 헌신성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백년, 통일시대의 비전과 여러분이 역할입니다.”nbsp 동북아워크숍의 마지막 날 강연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백두산을 통해 우리 민족의 원대한 기상을 직접 보고 느낀 경험에 스님의 새로운 백년, 통일코리아의 비전이 더해져 가슴 뛰는 대륙의 밤이 깊어만 갑니다.
2013.7.2 '가슴뛰는 상상 새로운 백년' 북콘서트 시즌 3-서초구민회관
스님께서는 5일간의 미얀마 일정을 마치고 오늘 아침 8시 30분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 정토회관에 도착하셔서 휴식을 취한 후 저녁 7시부터 서초구민회관에서 북 콘서트 시즌 3 ‘가슴뛰는 상상 새로운 백년’강연이 있었습니다.nbsp 사전에 오연호 대표, 서초구청장님과 함께 차담이 있었습니다. 구청장님은 정토회, 평화재단이 서초구에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스님 강연에는 자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는 것이 신기하다고 합니다. nbsp 이어서 진행된 강연에서 우선 오연호 대표가 오늘 5시 45분경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 한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 선언문’에 대해 축하하면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스님께 물었고 스님께서는 “올해는 정전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런데,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도 제대로 정착이 안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보면 국제정세, 남북관계도 어렵지만 통일에 걸림돌이 되어왔던 것이 남남갈등이 큰 원인중의 하나입니다. 통일문제를 어떻게 풀것인가에 대한 남한내 의견차이가 너무 커서 그 문제로 갈등하고, 또 싸우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다 보니까 남북관계를 풀기가 어렵습니다.nbspnbsp 미국, 중국, 북한은 남이니까 우리가 쉽게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남한안의 통일에 대한 생각을 통합하는 것은 우리노력으로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해서 여, 야 정치인, 전통일부 장관 등 사회지도층 20여분을 만나서 남북관계에 대해 6가지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남북관계의 기본원칙은 교류, 협력, 평화, 통일로 가는 것으로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도발을 하면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즉, 국방안보는 튼튼히 하고, 전쟁 끝난지 60주년 되었으니 정전체제를 평화제제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남북 비핵화 원칙은 이미 합의한 사항입니다. 북한이 먼저 핵확산 방지를 약속하고 점차 폐기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또, 북한의 인권문제가 심각함을 인식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하자는 것입니다. 남북의 경제협력도 정치와 관계없이 교류하고 투자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6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nbspnbsp 여기에 여,야당 중진의원, 종교지도자 등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장시간 여러 차례 논의를 해서 합의문을 만들었습니다. 외통위를 통과하고 오늘 오후 545분에 국회 본회를 통과했습니다. 신문에 기사는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가 힘을 합해가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북관계가 정권이 바뀐다고 바뀌지 않고 서로 합의를 해서 한발한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nbsp 청년들은 통일을 하기 위한 재정적 부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통일을 결혼에 비유해서 당사자만이 아니라 주변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 않는지, 통일기금을 모으고 있는 어떤 분은 통일기금이 통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지난 대선후에 나와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과는 말도 섞기 싫다는 분, 통일운동을 하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힘든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순수한 마음으로 스터디도 하고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런 행동들을 모두 정치적으로 연결해버리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등의 질문들이 있었습니다.nbsp 어떤 청년분은 스님께 지금까지 해오시면서 후회하신적이 없냐고 물었고 스님께서는 “저에게도 번뇌가 있습니다. 내가 승려로서 너무 우리 민족문제에만 집착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미얀마도 인종, 민족 갈등이 크고, 또, 이런 문제에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많은 역량을 한국문제에 쏟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스님들이 저에게 하는 말이 스님의 말씀은 세계적인데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문제에 너무 쏟고 있지 않냐고 합니다. 한국은 경제, 민주화 다 되었는데, 통일문제만 아니면 저는 한국문제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정신적인 역할은 서양이 더 필요하고 민주화, 인권, 여성 문제등 동남아가 처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우리가 해 온 지난 경험들을 살려 그들을 도와주면 좋겠다 싶기도 합니다. nbsp 그러나, 북한 문제는 단순히 민족문제만은 아닙니니다. 남북한의 전쟁문제는 세계가 걱정하는 문제입니다. 북한 동포가 굶어죽는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기 이전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량아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북한문제가 세계의 문제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이 통일이 된다면 이스라엘아랍사람들이 공생하는데 큰 본보기가 되지 않겠냐 싶기도 하고, 미얀마의 대립 세력에게도 한국문제를 풀면 답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있습니다.nbspnbsp 어제도 미얀마 주재 미국대사를 만났는데 미얀마에서는 다수인 불교신자가 소수인 무슬림을 억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미얀마 불교지도자들과 함께 이야기 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나라에도 평화문제들이 많습니다. 이런걸 위해 남북문제와 세계문제를 일치시켜서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내 인생문제와 통일문제를 대립적으로 보면 안됩니다. 연애하면서 남북문제 이야기 하고, 직장에서도 내 직장이 장기적으로 북한 개발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연구해도 되고 안되면 내 월급 중 5라도 북한 어린이를 돕는데 후원하기도 하고 매주 금요일 점심한끼는 굶고 오천원 기부하는등 나의 삶과 통일운동을 자꾸 분리해서 생각하지 말고 같이 가야 합니다. 동남아 가서 봉사활동하면 그게 내 취직에 도움이 안되지 않냐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해 보면 만원이 똑같지 않습니다. 여기 오천만원은 그렇게 큰 돈이 아니지만 미얀마의 경우 그 나라에서는 5000만원으로 다리를 놓으면 10개 이상의 마을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 할 수 있습니다.nbsp 그런데 여러분이 봉사 일년하고 오면 봉사하면서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수 있습니다. 자기를 보람 있는 존재로 만들면 그것이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nbspnbsp 통일은 과거 100년을 정리하고 미래 100년을 설계하는 큰 문제입니다. 내가 이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다 하면 희망이 생깁니다. 오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 대통합 선언문’을 만드는데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찾아보면 다들 의견이 다르고 주장들이 있어서 답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문제를 못 풀고 어떻게 남북문제를 풀겠으며, 남한안에 다른 종교인이나 생각 다른 사람을 못 껴안는데 어떻게 북한을 껴 안을 수 있으며, 일본도 못 안는데 동아시아를 어떻게 껴 안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여기에서 갈등 있는 다른 사람을 껴안는 것이 바로 통일운동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사는 삶의 현장에서부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통일운동입니다. 저는 통일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북한의 아이들을 우리나라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돕고 있으며 북한 관리들이 협력 안해서 어려우면 그 사람 뒤에 있는 우리 국민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하며 일을 합니다. nbsp 남한안의 갈등을 늘 통일의 관점을 가지고 임합니다. 형식적 통일은 1020년 뒤에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마음을 바꾸면 지금 당장 통일 한국에 살 수 있습니다.”라며 스님께서는 이미 통일 한국에 살고 있으며 우리도 그렇게 살기를 바라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 오늘로 청년포럼에서 준비한 북콘서트 시즌 3의 상반기 강연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그동안 수고한 많은 청년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하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오늘 행사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nbsp 오늘 강연을 마치고 바로 평화재단으로 돌아온 스님은 오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 대통합 선언문’을 어떻게 전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을지 논의를 하였습니다.nbsp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 하고 스님께서는 내일 또다시 중국으로 가셔서 짧은 고구려 유적, 백두산을 답사하는 역사기행을 하실 예정입니다.
2013.6.22. 시애틀 강연
오늘은 시애틀의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매년 9월에 오시던 스님께서 올해는 캐나다에서 열리는 한민족 포럼 행사에 오신 김에 저희도 덤으로 6월에도 강연을 한 번 더 하게 되었습니다.nbsp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셔서 시애틀에 8시 35분에 도착하셨습니다. 집에서 간단한 아침 공양을 하시고 비행기 안에서 못 주무셔서 강연이 있을 때까지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배가 안 고프시다며 점심도 거르시고 오신 분을 위해 강연전에 사인회를 30분 정도 해 주시겠다고 하셔서 일찍 출발했습니다.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주말이라 그런지 차가 많이 밀려 30분이 걸려 도착을 했습니다. 10분 정도의 사인회를 마치고 바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300석 규모의 강연장은 280석 정도가 채워졌습니다.nbspnbsp 어떤 미국 보살님은 아드님이 얼마 전에 자살을 해서 가족이나 지인들의 아픔이 너무 크다고 하셨고 이런 상처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그리고 저희가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시 하는 것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 이런 일을 겪은 같은 처지의 남겨진 분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지, 또 이 사회나 공동체들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셨습니다.nbsp 이 질문에 대한 스님께서는 “자살도 일종의 질환입니다. 이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고 스스로 너무 자책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즉, 팔 다리가 없는 것, 그리고 신체가 아픈 것은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아이를 가졌을 때 보살님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를 살펴보면 그렇게 마음먹은 아이의 마음상태가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아이를 가졌을 때는 초상집에도 못 가게하고 소나 돼지를 잡는 것도 못 보게 합니다. 엄마의 슬픔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못 보게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자식이 잘 자라나게 하려면 아내를 마음이 편하도록 잘 배려를 해야 하고, 시부모 역시 손주가 잘 자라나게 하려면 며느리를 배려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가진 엄마는 무슨일이 있어도 아이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런 감정들을 엄마가 잘 다스려 아이에게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nbspnbsp 얼마전에 중국에서 지진이 난 몇 일뒤에 붕괴된 건물 잔해물을 걷어내고 실종자를 찾았을 때, 엄마는 죽었지만 애기는 살아 있었던 뉴스를 다 들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엄마는 자기 목숨을 다해 아이를 지켜야 하고 또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nbsp 요즈음 직장을 가진 주부들은 봉급과 유치원비용을 비교해서 어떤 것이 더 이익인가를 생각하는데 잘못 된 생각입니다. 아이를 엄마가 키우지 않고 할머니가 키우면 아이는 할머니를 엄마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3살 때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됩니다. 이때는 각인작용이 일어나므로 엄마의 좋은 모습들을 봐야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그런 것들이 아이가 성장하는데 있어서 외부의 장애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는 따라 배우기를 합니다, 부모가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자기가 보고 익힌 학습을 확인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고, 19살 이후가 되면 부모자식 간의 정을 끊고 성인과 성인으로 일대일로 대해야 합니다.nbspnbsp 보살님은 이 일을 계기로 젊은이들이 자살하는 일이 일어 나지 않도록 상담역활을 한다면 50명 100명의 죽을 목숨을 살리고 결코 죽은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아 오히려 좋은 공덕을 지을 수 있게 됩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 안젤리나 졸리가 가슴 절제수술을 했는데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할 필요가 있겠냐는 질문, 직장을 다니는데 마음이 힘이 드신다는 보살님, 반야심경이 우리나라 말이 아니라서 이해하기가 힘들다시는 분, 한국에 있는 언니랑 통화를 자주 했는데 이야기를 들어 주고 하는게 힘이 들어 지금은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계시다는 분 등 많은분들의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nbsp답변에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하시는지 박수를 많이 치셨습니다. 강연을 3시간 하시고 사인회와 사진찍기를 원하시는 분께 일일이 사진을 다 찍어 주셨습니다. 뒷정리를 마치고 바로 법당으로 가서 보살님들이 마련한 충무김밥으로 저녁 공양을 맛있게 한 후 단체 사진을 찍고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3.6.20 LA 부에나팍 강연
오늘은 스님께서 LA 부에나팍에서 즉문즉설을 하시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오전 11시 LA 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 LA 날씨가 청명하고 시원해 가을처럼 느껴진다고 하시며 코리아타운으로 향하셨습니다. 미리 섭외한 LA 불사 장소를 세심하게 둘러보시고 LA 정토회 김명례 총무님 댁에서 오후 1시에 점심공양을 드시며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셨습니다. 점심 공양 후 잠시 휴식을 취하시고 오늘 강연회 장소인 LA 부에나팍의 헐리데이인 호텔에 도착하셨습니다. 강연장에는 행사 시작 1시간 반 전인 5시 반부터 교민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6시 30분부터 30분 간 책 사인회를 갖고, 교민들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청소년부터 대학생, 청년,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세대가 왔습니다. 그 중에는 한국 불교에 관심이 많아 이 곳을 찾아 온 관객도 있었습니다. 모두 스님 말씀을 영상과 글로 미리 접하고 직접 지혜의 말씀을 듣고자 행사장을 찾아온 분들입니다. 7시가 되자 행사장이 가득 메워졌습니다. 400여 분이 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평일인 목요일 저녁, 더구나 교통체증이 심한 LA에서 저녁 7시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였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낮은 조명 아래 스님의 활동과 지난 즉문즉설이 포함된 영상이 상영되었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모두 앞에 서셨습니다. 박수로 또는 합장으로 스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으로 말문을 여셨습니다. 985170즉문즉설이란 살아가며 궁금하고 답답한 일, 괴로운 일을 드러내놓고 얘기해보는 강연방식입니다. 많은 분들이 즉문즉설을 즉문즉답이라고 잘못 부르곤 합니다. 하지만 즉문즉답이라는 건 없어요. 왜냐, 인생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린이들을 데리고 대한민국의 수도가 어디에요? 서울입니다 이런 퀴즈를 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답을 줄 수는 없어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대중이 스스로 지혜로워질 수 있도록, 그 지혜로워지는 과정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어떤 선택을 해야 좋을까요라고 물어봐요. 하지만 인생에는 좋은 선택, 나쁜 선택이 따로 없습니다. 다만 어느 쪽을 택하든 책임이라는 것이 따르는데, 그 책임은 안지고 좋은 것만 얻으려고 하니 질문이 생기는 거예요. 그게 욕심이지요. 허황된 생각을 품는 거다, 이런 얘기예요.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것은 피하고 싶고 좋은 것만 얻고 싶은 사람들이 주로 종교를 찾기 쉽습니다. 하지만 원래 예수님, 부처님의 가르침은 허황된 생각을 하지 마라 눈 뜨고 바르게 살아라는 데에 있어요. 그 가르침을 전하고 돕는 과정이 바로 설교이고 설법인 거지요. 제가 만약 사물의 이치를 원리로 얘기한다면 10분이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추상적이고 어려운 이야기는 이 분야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어렵지요. 같은 이치라 할지라도 구체적인 실례를 갖고 얘기하면 훨씬 대중이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비록 시간은 두 시간, 세 시간이 걸리고 45명의 얘기 밖에 들어주지 못한다고 해도 그 힘은 훨씬 클 수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것을 하는 자리입니다.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치를 듣는데서 만족하지 말고 이치를 알고 그것을 자기화하는 과정 즉 수행을 꾸준히 해나가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없으면 한 번 들은 좋은 얘기는 그것으로 끝이에요. 부디 오늘 실례를 통해 이치를 듣고 본인의 꾸준한 수행을 통해서 마음 가볍고 행복한 삶을 꾸리시기를 바랍니다. 질문을 받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중년의 여성이 준비된 마이크대 앞으로 나가 섭니다. 스님의 말씀을 유튜브를 통해 접하고, 언젠가 꼭 한국에 가서 스님을 뵈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이렇게 스님께서 LA로 와 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아이고, 제가 온 덕분에 비행기값 아꼈네요라는 스님의 농담에 질문자도 관객도 모두 함께 웃었습니다. 질문자의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nbsp 제 딸이 발레리나인데 보스턴에 살고 있어요. 딸을 보러 갔는데, 마침 그 날 보스턴 폭발 사고가 났어요. 저는 그 현장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내가 죽다 살았구나 싶은 그 찰나에 내가 이대로 죽으면 너무 억울하겠구나. 내 인생을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온갖 혼돈이 밀려왔습니다. 남편은 늘 바쁘고, 애는 반항만 하고, 내 인생이 뭔가 싶었습니다. 그 후로 한 번씩 남편도 보기 싫고 딸도 싫고, 집을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 날 부처님께서 저를 살려주셨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살려주신 이유가 뭘까요. 제가 이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스님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본인이 산 것은 부처님이 살려줘서 산 것이 아니에요. 부처님이 만물을 살리거나 죽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에요. 만약 본인이 산 것이 부처님이 살려줘 그런 거라면, 그 사고로 사망한 3명은 부처님이 죽인걸까요? 아니죠. 부처님이든 예수님이든, 그렇게 선택적으로 누구를 살리고 죽이는 것이 그 분들의 뜻이 아니란 말입니다. 본인이 종교에 대해 지금 잘못 알고 있어요. 그 어떤 종교도 누군가를 선택해 죽이거나 살리지 않는다는 설명에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집니다. 죽음의 위기를 느낀 순간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는 건 그 동안 본인의 삶이 충만하지 못했다는 얘기에요. 오히려 그런 죽었다 살아나는 경험을 해 봤으니, 앞으로 살아있는 동안에 하루라도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죽음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게 아니라 늘 가까이 있는 거구나, 이렇게 깨우치면 돼요. 잘 들으세요, 이 말은 죽음을 두려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으라는 거예요. 남편과 딸에 치여 본인의 삶을 살지 못했다고 했는데, 남편 인생, 딸 인생에 간섭 안 하면 이 관계 유지하면서도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어요. 꼭 집을 뛰쳐나가야지만 본인의 삶을 살 수 있고 집에 남아 있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삶이다,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남편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면 그래, 당신도 아직 안 죽고 살아 있으니 이렇게 술이라도 마시고 늦어도 집에 돌아오지, 아니었으면 이렇게 술 마실 수나 있겠나 이렇게 생각하세요. 남편이 자꾸 늦게 집에 오면 아이고 그래, 당신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 마음 가는대로 뜻대로 해라 이렇게 놓아줘버리세요. 지금 본인이 아무것도 못하게 붙잡고 있는 사람 없어요. 그냥 자기가 식구들을 잡고 못 놓고 있는것이죠. 내가 결혼이라는 선택에 책임을 지라고 한 말은 일단 결혼했으니 절대로 이혼하지 말고 같이 살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다만, 함께 살기로 선택을 했으니 더불어 살도록 서로 이해하고 맞춰도 줘 보고 그런 노력을 충분히 해야 한다 이 뜻이에요. 살아보다 영 아니면 다른 사람이 데리고 살게 놔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남에게 주고 떠나는 것도 좋은 말이라는 스님 말씀에 관객이 모두 웃습니다. 질문자도 웃음이 터졌습니다. 웃으면서 아닌게 아니라 제가 다른 사람 찾아 가보라고도 제안을 해 봤는데... 싫다더라구요.라고 대답합니다. 스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거 잘 됐네요. 먼저 이혼 제안해서 득 볼 거 별로 없거든요. 상대방이 이혼하자고 해야 내가 위자료를 받아도 더 받고, 서류 떼러 가는 절차도 내가 안 해도 되고 여러모로 편하고 좋아요. 그러니 가만히 좀 더 내버려두고 아이고 당신도 마음 가는대로 살아봐라, 살아 있어 고맙다 이렇게 마음 먹어 보세요. 그리고 여유가 되면 매일 기도를 해보세요. 이 때 기도는, 부처님 저를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살아 있어 감사합니다라고 하셔야 돼요. 그렇게 매일, 이 살아서 눈 뜨는 하루에 감사하면서 지금부터의 인생은 덤이라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살아요. 네,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하는 질문자의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관객도 함께 웃으며 박수를 쳤습니다. 이어, 공황장애를 앓고 있어 괴롭다는 20대 여성, 사회 생활이 만만치 않아 적응하기 어렵다는 35세 남성, 그리고 자신은 매번 남들보다 운이 나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것 같다는 20대 남성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자 중 한 명은 스님께 질문을 드리고 중간 중간 대답을 하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네, 목사님이라고 답해 모두가 한바탕 웃기도 했습니다. 그럴 땐 재치 있게 네, 목사스님 이렇게 하면 돼요라고 가르쳐주시며 스님도 웃으셨습니다. 다음으로 장년층 남성분이 마이크 앞에 서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스님. 저는 은퇴한 목사입니다.종교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먼 길 찾아와 질문을 하시는 목사님께 관객의 감탄사와 박수가 쏟아집니다. 그동안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여기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북한의 미래와 한반도의 정세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북한이 어떻게 될 지, 우리가 어떤 자세로 이 상황을 바라보아야 할 지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라는 목사님의 질문에 스님께서는 현재의 한반도 상황,nbsp복잡한 역학관계와 국제질서를 설명해주셨고,nbsp스님의 말씀에 강연장이 숙연해졌습니다. 막연히 생각해왔던 북한과 통일의 이슈가 400명의 관객들의 귀를 적시는 순간입니다. 나 사는 이야기나 하려고 왔더니 갑자기 북한 얘기하고 통일 얘기해서 놀라셨어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자신이 궁금한 것, 자기가 고민되는 걸 나누다 보면 이렇게 평소에 본인은 관심 없었던 것,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듣게 되고 그런 거예요. 그 과정을 통해서 미처 예전에는 생각 못했던 것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고, 그것이 다 즉문즉설의 힘이에요. 매력이에요. 스님이 시간을 물어보십니다. 밤 10시입니다. 7시에 강연이 시작되었으니 어느덧 3시간이나 흐른 셈입니다. 오늘 긴 시간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 하는 이야기 듣느라 다 수고 많으셨어요. 행복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아요. 예전에는 밥이나 넉넉히 먹고 살면 좋겠다, 내일 끼니 걱정 안 하면 좋겠다 하는 것이 큰 과제였지만 여러분들은 이제 물질이 핵심이 아니에요. 먹고 사는 건 거의 해결이 되었기 때문에 그 외의 문제로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상처 받거든요. 물질이 문제가 아니니 이제 마음을 바꾸셔야 해요. 행복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에요. 자유도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에요. 내가 눈 바로 뜨고 내가 딱 땅에 발 제대로 디디면 그 때부터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그 눈 뜨게 하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 바로 성현의 가르침이고, 그 말씀을 전달하는게 바로 제가 하는, 계속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이렇게 와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요, 부디 다 평안하고 행복한 인생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의 닫는 말씀이 끝나자 큰 박수가 쏟아져나옵니다. 강연장을 가득 메운 400명이 미소 띈 얼굴로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강연 후 이어진 30여 분 간의 사인회에 다시 많은 분들이 모이셨습니다. 스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함께 사진도 찍고, 환하게 웃으며 강연장을 빠져 나갑니다. 정성으로 행사를 진행한 LA 정토회와 오렌지카운티 정토회 신도분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스님도 강연장을 떠나셨습니다. 강연회 다음날인 6월 21일 금요일에는 오전 9시 45분에 집을 나와 오렌지카운티 불사 지역 두 군데를 둘러보시고 회원들과 함께 불사에 대해 논의하셨습니다. 오렌지카운티 공항에 오전 11시 30분에 도착하여, 12시50분 출발 항공편으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셨니다. 오늘 저녁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또 다른 수백명의 교민들이 스님의 즉문즉설을 통해 깨우침의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남은 미주 강연 일정이 잘 마무리되길 바라며, LA의 정토회 식구들도 스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스님의 하루 자주 찾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13.6.18. 파주운정강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서울JC특우회 강연
아침 7시30분부터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 선언문’ 기자회견을 위한 최종 마무리 회의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준비된 것을 점검하고 내일 행사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10시30분부터는 파주 운정행복센터에서 올 상반기 마지막 강연으로 730여명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마무리 했습니다.nbsp운정행복센터는 이번에 지은 새건물이다 보니 무대위에 앉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무대앞 맨 앞자리에만 자리를 깔고 앉는 것이 허락되어서 일부는 바닥에 앉아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nbsp 스님을 직접 뵙고 싶어 왔다는 분, 5학년인 아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언어습관도 좋지 못한데,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답을 구하는 분, 출산을 앞둔 예비엄마인데 태교를 잘하는 방법과 어떻게 아이를 잘 키울수 있는지를 묻는 분, 6살 아이가 예민한데 내가 잘 되라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는데, 아이와 맞지 않는 것 같아 고민인 분, 잠에서 일어나는 고통, 일하는 것이 두렵고, 자신을 책임지려하지 않으며 항상 몽롱하고,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인 분, 중3아들이 있는데,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면서 이제 고등학교도 가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가 걱정이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제주 4·3항쟁에 대한 상처가 있는데, 이런 경우 학살한 사람이 과보를 받는지, 명령한 사람이 받는 것인지, 국가가 지시를 했는데, 누가 과보를 받는지 묻는등 다양한 분들이 스님께 답을 구했습니다. nbsp 오늘은 2013년 희망세상만들기 100강 중 상반기 마지막 강연이었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 오늘 행사를 준비한 활동가들은 상반기 50강을 무사히 마침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간단한 케익 커팅식 후 스님께서는 그동안 수고해준 활동가들을 격려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준비된 자리에 와서 2시간 강연을 하면 되는데, 그 2시간 강연을 위해 며칠동안 홍보를 하고 당일에도 미리 와서 준비하고 마치고 나서도 뒷정리하신다고 수고하셨다면서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파주지역 활동가들은 이 지역이 통일된 대한민국의 중심이 될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면서 올 상반기 강연을 무사히 마무리 함을 자축하였습니다.nbspnbsp 파주 강연을 마치고 바로 홍릉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연구인의 날을 맞아 스님께서 ‘과학자들, 법륜스님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약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과학도들에게 “한면만을 보는 것을 편견이라고 하고 전모를 보는 것을 통찰력이라고 하고 이것이 지혜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지식, 사상을 내려놓아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면을 움켜잡고 있으면 전체를 보지 못합니다.nbspnbsp 불자가 불법에 사로잡혀도 진리를 보지 못합니다. 참선하는 사람이 스승의 말이나 경전의 말에만 사로잡혀도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그것이 갖는 본래 의미를 봐야 하는데 그림자만 쫓느라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죠. 우리가 보기에는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 같이 보이는데, 이것이 편견이고, 착각이죠. 내가 지구에 머무르고 있고 지구가 돌기 때문에 자신을 중심에 놓고 보니 바깥이 도는 것 같은 착각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 눈으로 봤다고 하는데 이렇게 본 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nbsp 경험의 세계가 중요하면서도 경험이 갖는 한계가 있는 거예요. 창조의 핵심은 탐구예요. 탐구해야 창조가 일어나지, 모방·답습, 여기엔 창조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근데 우리나라는 창조하기가 좀 어려운 시스템이예요. 지난 백년간 사회의 모든 부문이 모방을 해왔잖아요. 우리가 닮아야 할 모델이 있어서 따라 배워 압축성장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이 정체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건데, 아직도 과거처럼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가능성이 없는 얘기입니다.nbspnbsp 일본은 이런 한계점에 이미 20년 전에 도달했는데 창조를 못하니 그 장벽에 막혀 정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장벽에 와 있습니다. 이것을 뛰어 넘으려면 창조를 해야 합니다. 새로움을 연구해야 하는데 우린 그런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아무 훈련과 준비가 안 되어 있는거죠. 모방의 최첨단에 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전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방에서 질을 좀 개선한 것이지 창조해 낸 것은 아니예요. 싸이 같은 경우가 창조에 해당합니다. 흉내내서 이른 게 아닙니다. 이런 것이 대중문화에서 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일류에서는 창조가 안 일어납니다. 싸이는 가수 중에 이류였어요. 이류니까 몸부림을 치고, 엄청난 고통, 고생, 시행착오를 거치다가 터진 거예요. 대중문화는 다른 부문에 비해 기존질서의 억압이 덜합니다. 그래서 가능한거예요. 그런데, 과학기술 분야, 법률, 사회제도등은 아직 어림도 없습니다. 오직 모방시스템이예요. nbsp 창조로 가려면 아이들 교육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고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창조를 해야 합니다. 뭘 창조하던지. 모든 분야에 창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창조과학기술은 좋은 말이에요. 근데 정말 그렇게 가겠느냐는 문제예요. 창조는 일이년 준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방은 실패가 용납 되지 않지만 창조는 열 개중 9개가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것 입니다. 창조가 일어나려면 사고가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통일이 또하나 과제입니다.nbspnbsp 과거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의 사실을 알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느냐입니다. 근데 우리의 학문은 죽은 학문입니다. 지적 축적만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이제 더 이상 주입식으로만 교육해서는 안됩니다. 문제해결능력을 키워 주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시험칠때 아이패드 들고 가서 과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지식은 찾아서 하면 됩니다. 지난 100년은 지식이 유용했지만 미래 백년은 지식만으로는 어려울 것입니다. 직업의 문제도 많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여러분의 과학기술자로서의 상상력을 높이는 데에도 정신적 자유가 없으면 여러분들이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과학기술자는 수행 할 여가가 없다가 아니라, 정말 이제는 모두 그런 걸 다 열어놓고 연구대상으로 봐야 합니다. 물질이든, 생명이든, 정신이든. 공통점이 있으면 공통점을 찾고, 다른 것이 있으면 다른 것을 찾고. 우리가 그렇게 가야 새로운 기술, 새로운 아이디어 얻을 수 있습니다. 늘 생각이 갇혀 있다면 더 이상 진보는 없습니다. 이제 모방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니 상상력을 더 높이셔서 연구해나가시기 바랍니다. nbsp저녁 7시부터는 서울 JC 특우회에서 진행하는 리더스 클럽에서 강의가 있었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약 6개월 과정으로 리더 교육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약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님께서는 이곳에서도 무엇보다도 개인이 어떤 조건에서도 행복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nbsp 오늘 아침 7시 30분 조찬모임부터 해서 4개의 일정을 소화한 후 다시 평화재단으로 와서 내일 행사를 점검하셨습니다.nbsp 내일은 프레스 센터에서 ‘평화와 통일를 위한 국민통합 선언문’ 발표가 있고 평화연구원에서는 ‘한반도 핵 위험 시대와 평화의 조건’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움이 있습니다.
2013.6.17 양천구 강연 및 통일의병 창립대회
강연전에 구청장권한대행인 부구청장님과 차담이 있었습니다. 오늘 양천구 강연에는 약 약720여명이 참석하여 각자의 고민들을 내어 놓았습니다. nbsp 1살된 아이가 있고 남편이 다른 여자가 생겨서 별거를 하고 있는데 이혼을 하는 것이 좋은지, 같이 살아야 하는지 고민인 분, 직장을 옮기면서 기존에 있던 직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계속 이 직장에 있어야 하는지 옮기는 것이 좋은지 고민인 분, 남편이 목에 생긴 혹을 4번이나 수술을 했는데, 아들이 장가를 못가서 걱정인데, 죽기전에 아들을 장가보낼 걱정이신 분, 과학자가 꿈이며 이번에 대학원을 가게 되었는데, 연구실이 쥐 실험을 하는 곳인데, 불교신자로서 불살생에 어긋나는 것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고1딸이 작년부터 유학을 보내달라고 하는데, 아이가 병도 있는데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인 분, 초등학생때부터 비만인데, 작년에 108배 하면서 다이어트를 했는데 올해 초에 살이 찌는데, 다이어트 하는 기도문을 받고 싶다는 분, 고부갈등으로 힘들어 하는 여성분등이 고민을 내어 놓고 답을 구했습니다. nbsp 그 중에서 한 젊은 여성분은 36개월, 5개월 된 2명의 아이가 있는데, 고부 갈등으로 힘든 자신의 상황을 내어 놓았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남편이 사람이 괜찮아요? 그 괜찮은 아들을 누가 만들었어요? 그 괜찮은 아들을 낳고 온갖 정성들여 키워서 괜찮은 사람을 만들어 놨더니 젊은 여자가 와서 채갔어요. 그러니 얼마나 섭섭하겠어요? 질문자도 애를 키우는데, 아들을 키운 엄마가 아들에 대한 소유욕이 강할까요? 결혼한 부인이 더 강할까요?. 내 아들이다고 하는 소유욕이 더 강합니다. 시어머니가 보기에는 잘 키운 내 아들을 뺏긴 것 같은 감정이 있는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기분 나쁜 것을 어떻게 표현하겠어요? 밥 먹을 때 찬밥 남으면 며느리 먹도록 하겠지요.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경쟁 상태에 있고 질투하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머님의 심정을 이해해서 첫째, 남편의 원주인은 시어머니이고 나는 가끔 빌려 쓰고 있다. 빌려 왔으니까 남편이 벌은 수입의 일부를 원주인에게 줘야 합니다. 그리고 가끔 집에 원주인이 오면 돌려줘야 합니다. 자리를 양보해 줘야 합니다. 그러면 시어머니는 주인을 알아보네 하고 시비를 덜 하게 됩니다. 그런 심리를 이해한다면, 시어머니께 잘 키워 내게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 기도를 해야 하고, 내가 뺏어 와서 죄송합니다라는 사과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하고도 대화가 풀리게 됩니다. 남편은 엄마입장에도 서지 못하고 부인에게도 서지 못하고 하다보니 남편은 힘들고 이렇게 중간에 끼어 있으면 단명하기 쉽습니다. 어머님은 자기 바라는 마음에서 아들에게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남편은 아내에게는 아내마음을 받아주고 엄마에게 가서는 엄마마음을 받아줘야 하는데, 중재를 설려고 하니까 싸움만 커집니다. nbsp 누군가가 괜찮게 키워놓은 사람이랑 결혼했기 때문에 지금의 갈등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누구집의 아들로 착실하면, 누구집 남편으로는 착실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어쩔수가 없습니다. 시어머님에게 절을 하면서 내 남편 키워줘서 감사합니다. 뺏어 와서 미안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면 어머님과의 갈등은 괜찮아집니다. 시어머니의 구박이 이정도인 것이 고맙다고 해야 합니다.nbspnbsp 지금 시어머니께 숙이면 20년 후에 내 아이들이 나에게 속 썩이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렇게 신경쓰고 마음이 불안정하면 안됩니다.” 라고 하시며 스님께서는 질문자 옆의 사람에게 마이크를 줘보라고 합니다.nbspnbsp 마이크를 잡은 남자는 전에 다른 강연장에서 아내의 고부갈등으로 인해 고민이라면서 스님께 질문을 한 적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고민하는 아내를 직접 데리고 와서 스님께 답을 구했던 것입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왜 여자를 데리고 와서는 고생을 시켜요? 남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엄마가 나를 키웠다고 해도 20살 넘어 결혼을 하면 부모님 집에서 회원탈퇴를 해야 하는데 회원탈퇴를 하지 않고 이중가입을 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님은 아들이 회원탈퇴를 하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nbsp 결혼생활은 서로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남편은 부모의 가정에서 회원탈퇴를 해야 합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머니는 둘이 잘 살기만을 바래야 합니다. 지금 두 사람은 스님이 각자에게 한 말만 듣지 남편이나 아내에게 한 말은 신경 쓰지 말아야합니다. 욕심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nbsp 이렇게 스님께서는 결혼한 부부가 원만히 살아가려면 시어머니, 남편, 며느리로서 각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nbsp 오후 2시부터는 평화재단에서 한겨레 하니 TV에서 ‘나이드는 법’이라는 주제로 지난번에 이어 세 번째 대담이 진행되었습니다. 5시에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외부인사와 만남이 있었습니다.nbsp 7시부터는 ‘새로운 백년을 여는 통일의병’ 창립대회가 평화재단 3층 강당에서 있었습니다. 약 150여명의 의병이 되기를 희망했고 오늘 창립대회에는 약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nbsp 통일의병은 오늘 창립이 되기까지의 경과보고를 하며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도 소개를 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오늘 통일의병 창립대회 격려사에서 “이게 얼마만입니까? 지금부터 적어도 이 삼십년 전에, 어떤 분은 사십년 전 청년 때 나라와 겨레를 위해서 이 한몸 바쳐보겠다고 마음을 내어 어떤분은 군대 가서 국가를 위해 국방의 의무를 다했고, 어떤분은 산업화 현장에 가서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 하면서 건설에 매진했으며, 어떤 분은 우리도 한번 자유롭게 살아보자 해서 독재에 맞서서 목숨 걸고 투쟁도 했습니다. 모두 한 가지 일만 한 것이 아니라 각자 여러 가지 일들을 다방면에서 열의를 가지고 해 왔습니다.nbspnbsp 그런 과정에 나름대로 고생도 하고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하고 성공도 해서 이렇게 여기에 이르렀는데 어쩌면 지금 돌아보면 우리는 지위도 얻었고, 명예도 얻었고, 재물도 얻었고, 지식도 얻었지만 우리가 젊었을 때 가졌던 그 열정, 조국과 민족을 위한다는 그 열의, 뜨거운 가슴, 이런 것들을 잃어버리고 산 지가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몸은 이렇게 늙어 가는데 다시 한번 꺼져가는 불꽃이 불타듯이 여러분들이 마치 이십대 청년처럼 시대적 소명을 갖고 시대적 과제인 통일을 위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재능을 마지막으로 한 번 쏟아 넣어 보자고 이렇게 결의를 한 것은 어쩌면 다시 젊음을 되찾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nbspnbsp 지나간 삶을 되돌아 보면 재물이 소중한 것이지만 그러나 잃어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명예가 소중한 것 같지만 인기란 것은 한 때 물거품이예요. 우리들이 가졌던 그 정열, 미성숙된 서투르지만 젊을 때 가졌던 그 투지, 정열이야말로 삶의 희망이고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농사짓다 일어나고, 사냥하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어난 의병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한 몸 던진 사람은 그 이름이 빛나며, 빼앗긴 나라 되찾기 위해 젊은 나이에 희생한 사람들은 그 이름이 빛납니다. 어쩌면 더 크게 보면 이런 소중한 인생에 이름 따위 남아 뭐하며 빛나면 뭐하겠느냐. 큰 뜻을 품고 사는 사람은 비록 전투에서 죽고, 병들어 죽었다하더라도 그 기개는 누구도 꺾을 수 없습니다. nbsp 그런 면에서 오늘 여러분들이 통일의병에 가입하고 의병의 뜻을 세운 것은 꼭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만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기 위함입니다. 마음이 뜨거운 청년들은 신분·지위·역할을 논하지 않고 누구나 뜻이 같으면 동지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런 젊음을 되찾아보라는 것입니다.nbspnbsp 이제 시절인연이 도래했습니다. 때가 왔습니다. 때가 오지 않았을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없고, 아무리 때가 와도 씨앗을 심지 않으면 싹이 트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바라던 통일의 기운, 천년만에 민족의 운이 트이는 그런 시절인연이 점점 도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이 그런 준비, 씨앗을 심고 있는 것입니다. 씨앗을 심으면 싹이 트고 꽃 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땅속에서 싹이 나오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는 그 기간을 인내할 줄 알고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은 정말 중요한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통일이 된 뒤에 어쩌면 오늘 6월 17일이 소중하게 기억될 것입니다. 통일의 물길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통일이란 영토의 통일만이 아닙니다. 진정한 통일은 마음의 통일입니다. 전라도 사람도 김유신장군 묘에 절하고, 경상도 사람도 계백장군 묘소에 참배하기도 합니다. 그처럼 통일된 뒤에 북한의 열사능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존중하고, 북한사람들도 국립묘지 와서 인사하고 다같이 소중한 역사의 유적지인 국립묘지로 남을 것입니다. 바로 원수의 능에 절을 하고 참배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단순히 통일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 말한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을 우리가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nbspnbsp 그렇게 때문에 이것은 단순한 국가의 통합, 영토의 통합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중생에서 부처로 승화되는 것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통일은 대한민국 통일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아시아의 통합으로 승화되어가는 씨앗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시아가 새로운 인류문명의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있는 그 출발은 통일입니다.nbsp 오늘 우리의 출발은 대한민국의 통일을 향해 가는 출발이지만, 통일 한국은 동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출발이 됩니다. 이것이 한 세기 백년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빠른 시일 내에 통일해서 이 세기 중반에 아시아 공동체를 만들고, 이세기 후반에 아시아 시대를 가능케 할 때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나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런 꿈을 한번 꿔보자는 것입니다.” 라고 하시며 우리에게 다시한번 가슴뛰는 삶, 대륙의 중심으로 선 대한민국을 가진 자긍심을 일깨워주셨습니다. nbsp 이렇게 창립대회를 마치고 뒷풀이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스님께서는 건배사에서 “통일 해버리자” 라며 간단하지만 단호히 그리고 정열적으로 해주셨고, 참가자들도 다시 한번 소리높였습니다. 오늘 같은 기세라면 정말 통일 해버려질 것 같습니다.nbsp 이렇게 오늘 하루도 마무리 하고 내일은 조찬모임부터 해서 파주 강연, kist 강연, 리더스클럽 강연등 4개의 일정이 예정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