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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5일 두북 어르신 봄 나들이
그제는 청년들과 경주역사기행, 어제는 일반인들과 경주남산기행, 오늘은 두북정토마을 근교의 어르신들과 함께 봄 나들이가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3일동안 20대부터 나이순대로 해서 모든 연령층과 함께 봄 나들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7시에 두북정토마을 근교 어르신 170여분과 봉사자 30여명, 모두 200여명이 두북정토마을에 모였습니다. 오늘 두북 어르신들은 속리산 법주사로 나들이 가게 되었습니다. 아침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참가하시겠다고 한 분중에 취소한 분들도 10여명 계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5대의 차량에 직접 올라서 이렇게 함께 하게 되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나서 법주사로 출발했습니다.nbsp 약 3시간이 걸려 법주사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어르신들보다 먼저 법주사 경내로 들어와서 한바퀴 돌아봅니다. 동선을 어떻게 해야 어르신들에게 가장 짧고 편안하게 안내할 수 있을지를 살펴보시는 모습에서 어르신들을 세세하게 배려하는 스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마당에 있는 국보, 보물등을 먼저 살펴보고 대웅전, 미륵전 순으로 순례하기로 했습니다.nbsp 법주사는 임진왜란때 불타버려 이후에 여러차례 복원을 통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는 말씀을 시작으로 법주사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금강문을 들어서 오른쪽에 3천명의 공양을 지었다는 철확, 왼쪽으로 오면 연꽃모양의 큰 조형물인 석연지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석연지를 지나 마당 한켠의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의상을 보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nbsp 한국에 하나밖에 없는 목탑인 팔상전은 부처님의 일생을 8개의 그림으로 표현한 팔상도가 그려져 있어서 팔상전이라고 한다고 설명하는 가운데, 노보살님 한분이 스님께 궁금하다며 “근데, 왜 지붕 끝에 붕어가 달려있어요?”라고 질문하자 스님께서는 “붕어는 눈을 뜨고 잠을 자는데, 스님들도 잠을 쫓아가며 수행정진하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장식으로 달아놓은 것입니다.”라는 설명을 아주 자세하게 해줍니다. nbsp 이어서 두 마리의 사자가 석등을 바치고 있는 쌍사자 석등, 법화경을 공양하기 위해 소신공양을 올렸다는 희견보살상, 목조관음보살상이 있는 원통보존, 사천왕석등을 돌면서 설명을 들었습니다. 어르신들은 날씨가 매우 쌀쌀한데도 불구하고 아픈 다리를 끌며 스님의 안내에 따라 다니면서 열심히 듣습니다.nbsp 노인분들이라 가능한 동선을 짧게 하기 위해 대웅전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대웅전 참배를 하였습니다. 법주사 대웅전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보통은 중앙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양옆에 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법주사 대웅보전에는 중앙에 비로자나불, 좌우로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고 설명해 주십니다. nbsp 따뜻한 경주에서 오다보니 옷도 얇게 입은데다 오늘따라 날씨가 추워서 어르신들이 추위에 감기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nbsp 사찰을 순례하는 중간중간에 스님을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는 분도 계시고, 지난번에 법주사 방문했을 때 인사드렸다는 분. 특히, 지난 300강중 하남에서 강연하실 때 딸의 문제로 스님께 질문하셨다는 분은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그때 스님 말씀대로 하니 지금은 딸도 대학을 들어갔고 잘 다니고 있다고 하면서 몇 번이나 감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은 하남에 있으면서 법주사로 봉사나온다고 합니다. 이렇게 스님의 법문을 통해 인생이 행복해지는 분들이 계셔서 우리가 만드는 희망세상에 조금씩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nbsp 청동미륵대불이 있는 미륵전 지하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스님의 법문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법당내부에 난방이 되고 있어서 추위에 떨던 어르신들이 몸도 함께 녹일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법주사는 한국에서 불국사 다음으로 국보가 많고 보물도 많은 곳이라고 하시면서 오늘 둘러본 곳을 다시 정리해주시고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한 기도를 하신 후 축원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어르신들이 지금 조심해야할 것이 있다면 첫째가 건강이고 둘째가 앉으나 서나 자식, 손자 걱정하는데, 자식들은 잘 살테니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어르신들을 격려하고 또 편안히 여생을 보낼수 있도록 쉽고 가볍게 해주셨습니다.nbsp 어르신들과 함께 식사를 한 후 서울로 이동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새로운 100년을nbsp여는 통일의병 발기인 대회’에 참석하시기 전에 윤여준 원장님과 함께 어제 두북에서 따온 돗나물, 스님의 누님이 직접 따다 주신 두릅으로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돗나물, 두릅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봄향기가 가득한 것 같습니다.nbsp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우리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나라가 위기에 처할때마다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의병을 만들어 위기를 벗어나고자 노력했던 것처럼, 지금도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정착과 민족의 비젼인 통일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이 되고자 발기인 대회를 가졌습니다. nbsp 오늘 발기인 대회에는 약 80여명의 동참자들이 참석하였고 각자 각오을 다지기도 했습니다. 통일하러 왔다가 통일하고 돌아가겠다는 사람, 통일을 위해 살아갈 것이며 통일을 위해 목숨 바칠 각오가 되어있다는 사람, 아들 손자들에게 물질보다는 통일된 조국을 물려주자는 사람등 모두들 각오와 열의가 뜨거웠습니다. 이러한 개인의 각오를 모아 통일의병의 공통된 각오로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겠다고 결의를 다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 이 자리에 참석한 법륜스님께서는 “의병이라는 것은 자발적 조직입니다. 그리고 자기 생명도 내어놓고 자기 재산도 내어놓고자 하기 때문에 헌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병운동에 참여해서는 과거에 자기가 지녔던 사회적 지위를 내세우지 않고 누구나 평등한 백의종군의 입장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의병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의병은 훈련된 사람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고,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관군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자발성, 헌신성, 그리고 백의종군하는 평등한 자세입니다. 여기에 의병이라면 험난한 길이라도 웃으면서 가야 합니다. 요즘은 너무 심각하면 사람들이 겁이 나서 함께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선 재밌어 보여야 하고 가벼워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의미도 있어야 하지만 재미도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의미있는 일도 재미가 없으면 오래 하지 못합니다. 또,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바깥에서는 사장이다, 변호사다, 장관출신이다등등으로 나뉘어지지만 여기에 오면 누구나 할 것없이 동등해야 의병할 맛이 납니다. 바깥에서도 계급, 지위로 나뉘었는데 자신의 것을 내어놓고 여기 왔는데도 지위나 계급으로nbsp 나뉜다면 장기적으로nbsp힘을nbsp발휘하지 못합니다. 급하더라도 충분히 논의하는 민주적 절차,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의병안에서는 20대나 60대, 장군 출신이나 방위 출신, 남녀, 연령, 승속을 떠나 동등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전문성도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의기가 충천해도 전문성이 결여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수 가 없습니다. 지금 여기 이 자리에는 변호사, 의사, 학자등 전문가들도 있고, 일반 대중들도 있습니다. 이런 전문가와 일반대중을 어떻게 잘 결합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시민운동의 모델이 될 것입니다. 과거 역사적 성과를 다 종합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우리 인류사에도 이제까지 없었던 것을nbsp창조해 낼 수 있어야 지난 68년간 누구도 하지 못했던 통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지금은 위기라고 하지만 이것이 기회이기도 합니다.nbsp 지금 남북의 상황이 날씨로 보면 겨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봄기운은 찾아왔습니다. 통일의 기운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통일의 불길은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불씨를 준비해 놓으면 봄날 건조하고 바람이 불면 삽시간에 불길이 일듯이 통일의 불길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헤쳐나갈nbsp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어려울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으면 독립운동을 했을 것이고 독재시대에는 민주화 운동을 했을 것인데, 지금 우리에게 통일이라는 과제가 주어졌으니 한번 도전해볼만한 일이므로 함께 도전해서 성공시켜 봅시다. 또 실패한다고 해도 그 역량이 쌓여서 우리 후배에게 거름이 되어 그들의 도전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됩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봅시다.”라며 격려와 당부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한번 해보자는 의지를 가지고 으샤,으샤 하는 마음으로 왔지만, 약간은 막막했던 우리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다시 한번nbsp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오늘은 통일의병으로서 각오를 다지며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2013년 4월 12일 김천, 대구 강연
오늘은 다른 날보다는 아침 일정이 여유가 있었습니다. 김천문화원에서 진행되는 강연이 10시30분부터 였기 때문에 울산에서 여유 있게 길을 나섰습니다. 조금 일찍 강연장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토막 시간을 이용해서 차안에서 원고를 점검하십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시간이 되어 강연장으로 이동하시면서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시고 강연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nbsp 김천문화원에는 약 300여명의 대중들이 자리를 메우고 스님께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하였습니다. 손자가 대학을 졸업했는데 취직을 못해서 걱정하는 할머니, 위파사나 수행을 하는데 현실에서 적용하며 헷갈린다는 거사님, 화가 나면 어떻게 다스리냐고 묻는 50대 여자분 등 여러질문이 있었는데 결혼문제로 고민하는 한 남자분의 이야기가 요즘의 결혼 풍속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질문 저는 결혼문제가 고민입니다. 요즘 여자들은 결혼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고급주택, 고급 승용차등을 가지고 결혼을 해도 이혼율이 높습니다. 아마 10년 정도 지나면 이혼 한두번 한 것을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스님 즉문즉설을 듣는데, 이혼문제로 질문하시는 주부들을 보게 되는데, 이제 이혼도 당연한 현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사귀는 여성이 있는데 돈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서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스님께서 가볍게 답합니다. “그런 것이 걱정이 되면 스님이 되면 됩니다.” 질문자는 다시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다 스님이 되면 어떡합니까?” “ 괜찮아요. 스님이 된다고 안 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스님이 안돼서 문제지, 스님이 된다는데 무슨 문제가 될까요? 결혼을 하려면 상대에 맞춰 살겠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은 겁내고, 스님 되라고 하니까 그건 또 싫다고 하고. 저길을 선택하는 것이 안되겠다고 하면 이 길이라도 확실히 선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네요.” “저의 결혼관은 조선시대처럼 그런 마음 가짐을 가진...”이라고 청년이 말하자 참석자들이 모두 크게 웃습니다. 스님께서도 웃으시며 “자기가 그렇게 생각해야지, 여자보고 그러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이런 사람은 장가가기 힘들겠네요. 요즘은 그런 여자가 없습니다.” 질문자는 걱정이 되는지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긴 본인이 조선시대 여자처럼 하면 되죠. 장가가면 죽었다. 술도 못 마시고, 집에도 일찍 가야하고, 애기도 봐야 하고... 요즘은 남자가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여자를 금쪽 같이 여기고 살아야 장가를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다하고도 이혼하자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그동안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면 됩니다.” 질문자는 이해가 안되는지 “그러면 저한테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피해가 큽니다. 결혼할때는 82로 결혼비용을 부담하고 이혼할때는 재산을 55로 나눕니다.” 다시 참석자들이 박장대소 합니다. “그정도로 손해 볼 생각을 해야 장가를 가죠, 그것도 손해 안보고 어떻게 가려고 해요? 누가 시집오겠어요? 결혼할 때는 전액부담하고 이혼할때는 모두 다 주고... 그래도 한번 결혼 해 보는 게 낫지 않나요?” 질문자는 미심쩍은지 “그래도 결혼을 한번 해보는게 나을까요?” “결혼할때는 백프로 남자가 부담하고 이혼할때는 백프로 다 주는 것이 어떤가요? 결혼비용을 높게 하지 않으면 82라도 부담이 안 될거예요. 결혼비용을 몇천만원씩 잡으니 그렇지 100만원이라면 80만원과 20만원이면 부담도 없잖아요.” “그렇게 결혼할 사람은 조선시대 여자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것은 서로 합의를 하면 되죠?” 질문자는 요즘의 결혼식 비용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요즘은 남자가 8천만원, 여자가 2천만원 부담하는게 일반적입니다.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런 결혼은 안하는것이 나을거예요. 아니면 서로 이야기 해서 결혼비용을 줄여서 다른곳에 쓰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면 조선 시대와 비슷한 다른 나라 여자를 만나던지...” 질문자는 계속해서 “저는 결혼비용을 부담할 능력은 되는데, 이혼이 두렵습니다” “요즘 여자들이 왜 그래요? 이렇게 결혼하려는 남자들을 걱정시켜요? 여자들도 반성 좀 해요. 이 총각의 걱정이 이해됩니까? 이러면 장가 못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이런 여자 말고 좀 더 기다렸다가 자기가 원하는 여자 구했으면 좋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금방 포기하지 말고 다른 여자들도 더 만나보고 결정하세요.” “제가 대학다닐 때처럼 연애를 많이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20대때 여자를 많이 만났는데,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습니다” “선을 보든지 사람을 더 만나봐야지 너무 직장에 얽매이면 안됩니다. 그 여자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의심이 가지고 있는데, 결혼을 하게 되면 나중에 문제가 나타나면 드디어 문제가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별사람 없구나 하고 살면 되는데, 많은 여자를 만나보니 별 사람 없구나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기도를 이렇게 해보세요. 매일아침 108배 절을 하면서 ‘부처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겠습니다.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겠습니다.’ 2가지 기도문으로 100일정도 해보세요.”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을 하시면서 다시 현재의 결혼풍습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짚어주었습니다. nbsp “결혼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요?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학교 다닐때라도 만나서 결혼하고, 직장이 있든 없든 조그마한 방 구해서 결혼하고 살면서 밥그릇도 사고, 가구도 사고, 이렇게 조금씩 함께 노력해서 살림을 만들어 가야 행복하지 않나요? 그런데 시작부터 아파트 있는지? 직장은 번듯한지? 이렇게 해서 무슨 행복이 있겠어요? 이런 것들이 젊은이들의 문제라기보다는 부모의 문제가 아닐까요? 사람은 안보고 만나자 마자 재산은 좀 있는지, 집은 있는지, 직장은 어디인지부터 확인합니다. 진정한 부모라면 ‘내가 살아보니 지위도 중요하지 않고 재산도 중요하지 않고 사람이 최고더라. 이런저런 것 따지지 말고 사람만 좋으면 셋방 얻어서 시작하면 된다’고 이렇게 얘기 해주면 안됩니까? 항상 재산, 지위, 인물을 따지는 부모의 욕심이 자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살아보면 돈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행복이 돈으로 해결이 되는가요? 청년이 이제 직장 다니면서 언제 1억원을 벌겠어요? 그럼 10년이상을 벌어서 결혼식 경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런 것은 뭔가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모두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것들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 요즘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우리들을 경계하는 말씀으로 마무리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김천강연을 마치고 이동하는 중에 휴게소에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김밥과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대구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문수팀 행자 교육이 오후 3시부터 예정되었으나 30분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간단히 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요약하면 행자교육이라는 것은 첫째 수행자로서 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교육. 둘째는 법사가 되기 위한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행자교육은 두 가지 성격을 같이 가지고 있는데, 수행자로서의 자세라고 하면 자기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 법사로서의 생활을 하기위한 교육이라고 할 때는 대중 속에서 내가 어떻게 일정한 지도력을 가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법사라고 하면 다른 사람의 어려운 삶, 흔들리는 삶을 어떻게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가입니다. 어느 것이 선행되어야 하냐면 자기 삶이 흔들림이 없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흔들림이 없어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저녁 6시에 대구법당에서 저녁을 준비해주셔서 오랜만에 밥상을 차려놓고 밥을 먹은 것 같습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대구수성대학으로 이동했습니다. 대구수성대학은 지난해에도 강연을 한 곳으로 오늘도 약 860여명이 참석하여 자리를 꽉 채워서 스님말씀에 귀 기울였습니다. 모두 10분이 질문을 하였는데, 그 중에는 스님이 어떤지 보러왔다는 분도 있어서 참석한 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오늘은 아침도 여유로웠지만 저녁 강의 이후에도 별다른 일정이 없었고, 또 울산까지의 거리도 짧아서 하루가 여유로웠던 것 같습니다. 내일은 청년대학생 300여명과 함께 경주역사기행이 있습니다. 조금 쌀쌀하긴 하지만 화창한 봄날 청춘과의 만남이 기대됩니다.
2013년 4월 8일 안양, 길벗 강연
오늘은 아침 10시 반, 안양시청에서의 강연으로 스님의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미리 약속은 없으셨지만 강연이 시작되기 전 안양시 시의원 두 분이 오셔서 스님께 반가운 인사를 드리고 말씀을 나누셨습니다.nbspnbsp 오늘 안양 강연에는 봉사자를 포함해서 약 900여명이 참석해서 자리를 꽉 메웠습니다. 스님께서는 모두발언에서 봄이 오는 가운데 활짝 핀 꽃들과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니 눈이 내린 산의 모습을 한꺼번에 보았다고 하시면서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nbsp “우리의 인생도 수행을 하면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올라가고 수행을 하지 않으면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내려갑니다. 인연과보라는 말 들어봤죠.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금방 좋은 일이 생기거나 금방 나쁜 일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낮의 길이가 제일 긴 하지가 제일 더울거 같지만 그로부터 1달뒤에 제일 더워집니다. 12월 21일인 동짓날 제일 추워야 하는데 실지로 제일 추울때는 1월말이 제일 춥습니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으니 즉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고 한달 뒤에 나타날 수도, 몇 년뒤에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 생에 지은 게 다음 생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게 금방 안 나타나니까 복지어봐야 소용없더라. 나쁜짓을해도 뭐 괜찮네 이러면서 자꾸 어리석어집니다. 우리가 자연을 보면서도 늘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서 수행을 하면 반드시 인생이 행복해지고 자유로워집니다. nbsp 엊그제 저는 청년들을 데리고 경주 역사기행을 다녀왔는데 토요일 날 비가 많이 왔습니다. 역사기행을 하는데 우산 쓰고 비 맞고 다니면 기분이 안 좋죠. 근데 안 좋은 면만 있을까요? 농부 입장에서 보면 봄날에 비가 오는 것은 엄청난 혜택입니다. 봄날에 가뭄이 들면 걱정이니 비오면 비 맞으면서 일하게 됩니다. 근데 비 맞으면서 노는 게 쉽겠어요? 일 하는 게 쉽겠어요? 또, 비 맞으면서 놀 필요까지 있겠나싶으면 안 놀면 됩니다. 4월엔 경주는 벚꽃구경으로 차가 막혀서 제대로 구경을 못합니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부터 비가 오니 구경 온 사람들이 적어서 우리끼리 구경하고 도로도 막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비가 와서 좋은 면도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양면을 동시에 보면 비가 와도 괜찮고, 맑아도 괜찮습니다. 감정기복이 좀 덜하게 됩니다. 누구나 다 좋고 싫은 게 있지만 그 폭이 덜하게 됩니다. 그럼 마음이 잔잔해집니다. 즉문즉설은 여러분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를 발견하게 해줍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구애받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내가 내 업식을 극복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이기는 자를 더 큰 영웅이라고 합니다.” 라며 청중들을 다독이는 말씀으로 강연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nbspnbsp 스님께서는 안양 강연을 마치자마자 바로 이동하시면서 차안에서 김밥을 드시고 약속장소로 향하셨습니다. 2시에 경남대학교 총장님과 약속이 잡혀 있었습니다. 현재 고조되어 가는 한반도의 긴장 상황 속에 남북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좋은 의견을 들으시고 방안도 모색해보는 뜻깊은 만남이었습니다. 이어서 오후 4시에는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실무자와 간담회가 있었는데, 평화재단 실무자들도 함께 해서 지역 균형발전, 분권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지방분권이란 개념이 우리처럼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기도 하고, 균형발전 얘기도 많이 하는데 어떻게 다른지 구분이 힘들기도 합니다. 수도권, 비수도권 할 것 없이 다 같이 발전시키자는 것은 ‘균형발전’이고, 지방분권은 서울도 하나의 지방이므로 중앙정부에 편중되어 있는 권한을 지방에 대폭 이양해서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강화하자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고 쉽게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지방분권은 곧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공감이 갔습니다. 주인의식이 없으면서 권한만 가져가면 잘 운영되지 않겠지요. nbsp스님께서는 설명을 들으신 뒤 이런 현안도 중요한 과제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현재 논의에 통일의 시각이 빠져 있으므로, 통일과 지방분권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통합적으로 연구해서 국가 장기 비전을 마련해가야 한다고 지적해주셨습니다. 앞으로 통일 시대를 상정한 지방분권 논의가 우리 사회에 활발해지기를 기대해봅니다.nbspnbsp nbspnbsp저녁 7시에는 여의도 사학연금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정토회 방송인모임인 길벗모임에서 주최한 강연회가 여의도 사학연금재단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길벗모임은 매달 1회 정기적으로 법회를 하고 있습니다.nbspnbsp nbspnbsp이번 길벗모임이 주최한 강연에 앞서 노희경 작가, 이금림 작가, 배우 정우성씨 등과 인사를 나누시고 간단히 환담을 주고 받으셨습니다. 노희경 작가님은 길벗모임을 이끌고 있으면서 이번 강연을 준비해 오신 분입니다. 스님께서는 오랜만에 노희경 작가를 만나 반가움을 전하시면서, 요즘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시청률이 높았다고 들었다시며 축하인사를 건네셨습니다.nbspnbsp 이날 길벗모임 강연회에는 약 350여 명의 대중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습니다. 청중들이 주로 방송인들이다보니,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고민을 사회자 최문경님이 대표로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그분들에게도 무척 공감이 가는 말씀이지만, 평범한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이셔서 다소 길지만 인용해보겠습니다. 질문 방송문화 예술인의 직업은 불규칙하고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자신에게 집중된 인기가 사라지지 않을까, 대중들의 시선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늘 불안해합니다. 언제쯤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늘 조바심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자만에 빠지기도 하고 자학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 간격을 줄이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기지도 하고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감정기복이 심한 방송문화예술인들이 마음의 평정을 찾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nbsp인기라는 것이 계속 되려면 사람의 마음이 한결 같아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한결 같습니까, 자꾸 바뀝니까? 자꾸 바뀝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런 인간을 두고 한결같이 나를 좋게 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기가 올라가면 계속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욕심입니다. 만물은 늘 변하는 것입니다. nbsp 법륜스님의 강의도 앞으로 조금 더 들으려는 사람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몇 년후가 되면 정체, 내리막길로 가게 됩니다. 나는 이런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전에는 스님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스님의 법문을 듣다 보니 저런 스님도 있었네 하면서 가보자고 해서 여기까지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방송에 자꾸 나가고 알려지면 거품이 생기게 됩니다. 그럼 굉장한 기대를 가지고 사람들이 오게 되고, 기대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는 같은 이야기를 해도 기대에 못 미치게 됩니다. 하나씩 떨어지는 사람이 생기고, 나중에는 들어보니 별 것 아니네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nbsp 그런데 스님은 거품이 있으니 조금 가면 정체되고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 수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것을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저평가 되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평가 되었으면 언제나 기회가 있습니다. 저평가가 되면 진주를 발견하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평가 되면 그것을 유지시키려면 힘들고 그래서 인기 연예인들은 정신적으로 부담이 됩니다. 이미 정상에서는 도전을 받아야 하고 인기를 유지시키기 위해 심리적으로도 힘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원리를 알면 자기가 거품에 빠지지도 않고 거품을 자기로 착각하지도 않습니다. 올라가면 정체되고 내려갑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적절하게 올라가다가 적절하게 내려가야 합니다.nbspnbsp 여러분들은 돈도 지위도 아닌 인기를 자기로 삼기 때문에 힘듭니다. 인기가 많다가 없어지면 자기가 없어지는 것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기가 곧 자기는 아닙니다.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저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니어서 좋아하는 구나”,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아 사람들이 이제야 제정신을 차렸구나” 이러면 됩니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겁니다. nbsp 인기가 있을 때, 여러분은 공항이나 식당에 가면 귀찮아합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몰라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러냐 하면 또 그렇지 않습니다. 어디 갔는데 아무도 몰라주면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아는 체 하면 귀찮고 몰라주면 괴로워 하는 것입니다.nbspnbsp 그러므로, 인기에 연연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기가 없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고, 인기가 있으면 내리막길로 가는 것입니다. 실력도 쌓기 전에 인기가 있으면 조기에 늙어버립니다. 젊을 때 인기가 있는 사람이 인기가 떨어지면 은둔하거나 정신질환이 심각해집니다. 몇 번 말씀드리지만, 인기를 나로 삼으면 안 됩니다. nbsp 내가 배우라면, 작품을 하는 것을 재미로 삼고, 연기하는 것을 재미로 삼아야 하고 방송하는 것을 재미로 삼아야 합니다. 역사에서 그림, 음악 등이 그 시대에 열광했던 것중 에 명작이 몇이나 있습니까?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밥 한 그릇에 그림 그렸던 것이 100년이 지나 명작이 됩니다. 인기를 끌려고 애쓰지 말고 작품에 집중하면 인기가 오르는 것이고 안 오르면 그만이다 이렇게 인생관을 정해놓고 살면 덜 힘듭니다. 물론 사람들이 더 좋아하면 기분이 좋은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열광한다고 해서 너무 들뜨지도 말고, 별 인기가 없다고 해서 너무 가라앉지도 말고 진폭을 줄이면 사는 것이 조금 더 편해질 것입니다. 덜 연연하게 되면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작품에 더 집중해서 깊이 있게 되기도 합니다. nbsp 이쪽만 보면 울 일이고 저쪽만 보면 웃을 일이지만 양쪽을 다보면 울 일도 아니고 웃을 일도 아닙니다. 그냥 하나의 존재, 하나의 현상이구나 생각하면 삶이 편안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면만 보는 오랜 습관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자꾸 한 면만 보고 대응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아 다른 면도 있지” 하면서 조금씩 변화한다면, 감정이 안 일어 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더라도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기복이 적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금씩 자기를 아름답게 가꿔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인생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려면 이런 존재의 법칙, 참모습을 알게 되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더 좋은 작품을 쓴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방해받지는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앞으로 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으면 고맙다고 생각하고, 인기가 떨어지면 또 괜찮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겸손해야 된다가 아니라 저절로 겸손해집니다.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도 이런 방향을 가지고 있으면 조금 더 나아질 것입니다.” nbsp
2013년 3월 31일 법륜스님의 하루(자카르타 강연)
오늘 오후 5시 자카르타에서 인도네시아 교민을 위한 스님의 희망세상 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nbspnbsp 어제 저녁에 나갔던 전기는 아침까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여기 봉사자들이 온 이후 밤새 정전이 되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 덕분에 모처럼 촛불을 켜고 올리는 예불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예불과 기도를 마치신 스님께서는 대중들에게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하시면서 봉사자들의 귀국 날짜를 일일이 챙기시고 건강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nbsp 이 곳 빠당지역은 99가 무슬림으로 부끼띵끼에 타종교는 절 한 곳, 교회 한 곳, 천주교 한 곳 뿐이랍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이곳 절 비하르 신도회가 초청하는 아침공양에 응하셨습니다. 비하르에서는 화교들 200여명이 모여 정기적으로 법회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이곳에 머무르시는 3일 동안 이곳 신도회 회장의 부인인 주이따가 생업도 잠시 뒤로 미루고 통역봉사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 7시에 도착하여 예불을 올리자 아이들까지 함께 나와 있던 신도들도 스님을 따라 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이 끝나자 가족단위로 스님께 예배하고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스님께 보시하는 모습이 참 정성스럽고 귀하게 보였습니다. 어린 아이까지 스님을 보면 바로 예배하는 자세가 몸에 밴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릴 때부터 이런 정신과 습관이 면면히 이어져서 1도 안 되는 사람들이 99의 무슬림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1층 로비에 마련된 공양장소로 옮겨서 공양받기 전에 소심경을 외우셨습니다. 불자들은 스님을 바라보며 합장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각 가정에서 음식들을 몇 가지씩 정성껏 차려온 듯 했습니다. 대중들과 함께 공양을 마치신 스님께서는 소심경 끝부분으로 공양을 마무리 하시고 정문을 나서면서 전체 불자들과 기념촬영을 하셨습니다. nbsp 빠당 공항으로 가는 길에 부끼띵끼의 유명한 관광지라는 파노라마파크에 잠시 들렀습니다. 파노라마파크는 규모는 작지만 미국의 그랜드캐년 같은 협곡입니다. 야생원숭이들이 주먹만한 아기원숭이를 껴안고 가족단위로 놀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고 신기했습니다. 협곡 아래에는 과거 일제가 징병들을 동원하여 파놓은 동굴이 몇 십 킬로미터 떨어진 빠당판장이라는 곳을 비롯해서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시간이 웬만하면 동굴입구에라도 내려가 보았으면 했는데 빠당공항에서 12시 50분 비행기를 타려면 시간이 촉박하여 그냥 떠나는 마음이 못내 아쉬웠습니다.nbspnbsp 10시 35분에 빠당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부치고 기다렸는데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는 또 시간을 넘겨 오후 2시가 되어도 빠당공항에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우리가 자카르타에서 빠당에 올 때 그랬던 것처럼 비행기가 몇 시간씩 늦게 뜨고 결항되는 일은 예사라고 합니다. 공항 측에서는 계속 2시에 비행기가 들어와 2시 30분에 틀림없이 출발한다고 했는데도 우리는 3시 25분에야 빠당공항을 이륙하여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법회장소는 공항에서도 1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에 있다고 해서 스님께서는 혼자라도 먼저 가시기로 하고 걸망만 하나 지니신 채 뛰어나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짐을 다 찾아 나올 때까지 스님께서는 출구에 그냥 계셨습니다. 공항에 스님일행을 마중 나온 분들은 그분들대로 비행기가 연착되자 탑승자 명단까지 확인하며 기다렸는데도 안내하는 출구가 이리저리 바뀌고 게다가 공항 측에서 안내를 잘못하여 다른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nbsp 5시에 시작하기로 한 법회인데 스님께서 7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하셨습니다. 그래도 220여 명의 청중들은 강연장을 꽉 메우고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단에 오르셔서 오늘 늦게 도착하신 연유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 청중들을 향하여 모르는 것, 궁금한 것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물으라고 하셨습니다. nbsp 결혼하려는 상대와 불교신자인 어머니가 종교가 달라서 어머니가 걱정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지를 묻는 청년, 스님은 신을 믿으시는지 묻는 남자분, 인생을 살면서 죄를 많이 지었는데 어떤 노력을 해야 죄를 사할 수 있는지를 묻는 분도 있었습니다. 또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 사는 교민으로서 생업에 종사하다 보면 이슬람에 대해 무지한 상태라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다고 질문한 분이 있었는데 이 질문에 대한 스님의 설법을 옮겨 봅니다. “사람들이 미국에 갈 때 미국이 좋다고 갑니까, 나쁘다고 갑니까?” “좋다고 갑니다.” “그러면 미국 가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 유리합니까? 안 배우는게 유리합니까?” “배우는 게 좋지요.” “인도네시아에서 잘 살아갈려고 하면 무슬림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게 유리합니까, 모르는게 유리합니까?” “아는 게 유리합니다.” “그럼 자신을 위해서 무슬림에 대해서 공부하십시오.” “문화적 관습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딪히고 갈등이 있습니다.” “왜 미국에 가서 영어 배우는 건 당연하고, 여기서 이슬람 문화 배우는 것은 갈등이라 합니까? 우리가 아는 불교도 또한 문화예요. 문화는 옳다, 그르다 따지면 안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할 뿐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따져도 됩니다. 진리는 탐구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이 허황된 생각을 하니까 ‘복을 지어야 복을 받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복 받고 싶으면 복을 지어라, 벌 받기 싫으면 죄 짓지 마라’ 하셨습니다. 부처님 법은 독이 든 물이 있다면 ‘거기 독 들었다’ 라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먹고 안 먹고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오늘의 종교는 문화이기 때문에 첫째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라, 둘째 그 사람 편에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존중입니다. 그러면 다름에도 불구하고 다툴 일이 없고 평화가 옵니다. 진리를 자각하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집니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이들을 미워하는 것은 자기 불행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모두 따라해 보세요.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이해하고 존중하고 스님 가르침대로 하겠습니다.” “소수가 다수에 취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저항과 동화가 있는데 어느 쪽을 선택해도 갈등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나는 나대로 그 속에 사는 것입니다. 돈벌이가 되면 여기서 살면 되고, 안되면 한국으로 갈수도 있고, 돈벌이가 안 돼도 그냥 살면 됩니다. 우리 JTS는 어려운 사람 도우러 왔어요. JTS 이념에 따라 수로를 정비하고 보건소와 유치원을 지었어요. 이런 일을 하는 JTS도 무슬림들의 입맛에 맞게 도와주고 적응해야 하는데 질문자는 여기서 돈을 벌고 있으니 더욱 그들의 문화를 고려해야지요.” 그 밖에도 서면으로 외로움에 대한 질문, 골프치는 남편이 골프장에만 다녀오면 화를 내는데 어떻게 화를 다스려야 하는지 등의 질문에 대하여 스님께서는 쉽고 명쾌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마무리 법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노동의 해방은 노동이 놀이가 되는 거다, 이것만 깨달으면 일체 세상살이가 놀이가 된다, 직장에서 월급받고 일하기 때문에 중노동이다, 골프장 캐디는 돈을 받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고 골프 치는 사람은 놀이를 한다, 돈을 주고 하면 삶이 주체적이 되고, 돈 받고 하는 것은 돈 때문에 비추체적이 된다. 어린애가 방에 똥을 누었는데 방에 있으면 오물이 되고, 밭에 가면 거름이 된다. 화내는 남자는 나쁜 남자도 아니고 좋은 남자도 아니다. 제법은 공하다. 존재 자체는 공인데 한 생각 일으키면, 부정적 생각을 하면 똥이 오물이 되고, 긍정적 사고를 하면 똥은 거름이 된다. 불행하려면 부정적 사고를 하고, 행복하려면 긍정적 사고를 하라. 절에만 다니지 말고, 교회만 왔다가다 하지 말고 공부를 하라. 인생이 행복해져야 한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사는 것, 구경한 것 만으로도 본전 뽑은 것이다. 매일매일 정진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스님께서는 8시 50분에 강의를 마치시고 책 싸인회를 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줄을 서서 싸인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도 스님 곁을 떠나기가 아쉬운 듯 보였습니다. 9시 5분 강연장을 출발하여 자카르타 공항으로 향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녁식사도 거르신 채 11시 50분 자카르타 공항을 출발하여 4월 1일 아침 8시 반에 인천공항에 내리셨다가 곧 바로 대만으로 출국하셨습니다.스님께서 귀국하실 때까지 ‘스님의 하루’는 며칠 쉬겠습니다.
2013년 3월 29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네시아 사업예정지 답사)
스님께서는 새벽 예불과 천일기도를 마치고 돌아앉으시면서 “오늘은 눈치 안 보고 맘껏 예불을 할 수 있어서 좋으네”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스님께서 예불을 시작하자 곧 마을 전체에 스피커로 라마단의 기도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에 우리도 맘껏 소리내어 예불을 할 수 있었다는 말씀인 것 같았습니다. 이곳 사람들 99가 무슬림이라고 들었는데 시골이건 도시이건 몇 집 건너 있다고 할 만큼 가까이에 무스크가 있고 새벽에 온 국민을 깨워 기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nbsp 우리도 스님을 마주하고 둘러앉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이곳 봉사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봉사한다고 왔지만 주는 입장, 결정하는 입장이다, 인도에서 경험해 보니 이런 입장에 있다 보면 봉사자와 주민이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가 된다, 이렇게 하면 업무상 효율은 높아지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과는 멀어진다.’ 우리 봉사자들이 만리타국에 와서 유치원과 학교, 보건소를 짓고, 다리를 놓고 하는 일들이 사람들을 편리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이 되지만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근본임을 잊지 말라는 간곡한 당부를 짧지만 명료하게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곳에서 진행할 사업예정지를 답사하기 위하여 8시에 사무실에서 출발하셨습니다. 가는 길에 부끼띵끼에서 유일한 절인 비하르에 잠시 들르셨습니다. 부처님을 참배하고 기도를 하신 스님께서는 이곳 신도회장과 신도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5월에 결혼한다는 예비부부에게 축원하시고 기념사진을 함께 찍으셨습니다. nbsp 오늘은 빗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주민들의 식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원지가 될 만한 샘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차라리 걸어가는 게 시원하고 빠를 것 같은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한참 가다 멈춘 곳에 대나무 호스를 통해 맑은 물이 콸콸 쏟아지는 곳에서 차가 멈췄습니다. 주민 세 분이 미리 나와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호스에서 나오는 물맛을 보셨습니다. 주민들은 여기서 300m쯤 더 가면 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30m 쯤 아래에 웅덩이 같은 샘이 보였고, 스님께서는 조심조심 그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저 아래 호스에서 나오는 물과 윗샘의 물이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윗샘에 수원지를 설치하는 데는 산길이라 장비와 자재를 옮기는 것도 어렵고, 윗샘물과 아랫샘물 사이에 사람이 살지 않으니 수질도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고 하자 마을 주민들은 윗샘에 수원지를 만들어 관을 통해 마을에서 맑은 물을 마시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두 곳 물의 수질검사와 물의 양을 비교해 본 후 결정하자고 하셨습니다.nbsp 내려오는 길에 맑은 물 수원지를 요청하는 마을을 돌아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마을 유치원 처마에 홈통을 대고 관을 연결해서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물탱크에 모아서 마을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도록 JTS에서 시설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탱크 옆에는 예전부터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사용하는 수조가 있고 거기에 담겨 있는 흐린 물로 마을 사람들이 몸을 씻고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 중 절반 가량은 자기 집 처마에 홈을 설치하여 받은 빗물을 사용하고 나머지 반은 JTS가 설치한 탱크에서 맑은 물을 길어다가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봉사자가 물탱크에서 패트병에 물을 받아 보였는데 여느 생수와 다름없이 맑았습니다. 물맛도 좋다고는 하지만 녹슨 함석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이라 오래 먹다보면 철분이 중금속으로 쌓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스님께서는 걱정하고 계십니다. 마을의 여러 집에 들어가 보고 물을 사용하는 모습을 돌아보고 무슬림 사원의 공동 수조도 살펴보았습니다.nbspnbsp 마을의 물 사정을 살피고 돌아오는 길에 스님께서는 JTS에서 농기구를 기증했던 마을에 들러 농기구 보관 상태를 살피셨습니다. 탈곡기와 세발경운기를 마을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바퀴에 바람을 빼놓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바퀴를 그 상태로 오래 두면 굳어져서 바람을 넣으면 새게 된다고 걱정하셨습니다. 옛날 우리나라 어려울 때, 농기구가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데 농기구를 함부로 다루는 것을 보면 면 마음이 쓰인다고 하셨습니다. nbsp 수원지 답사와 농기구 상태를 살펴본 우리는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때웠습니다. 스님께서는 오후에는 이곳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칼데라호인 신까락 호수를 보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인도네시아 JTS의 사업진행과 재정지출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이번에 함께 오신 김기진 감사님은 오전에 답사를 함께하지 못했는데 호수 구경도 다음기회로 미뤄야 했습니다. 산까락 호수는 정말 넓고 맑은 물이 잔잔히 출렁거리는 것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멋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하시는 스님을 뵈면서 맑은 호수와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었습니다. nbsp 이곳 불교신도는 모두 화교들이라고 합니다. 신도회장 가족이 어제 스님께 찾아와 예배하고 오늘 저녁공양을 초청하였습니다. 우리는 호수에서 돌아오는 길에 부끼띵끼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갔습니다. 신도회장 가족과 신도회 간부들도 함께 참석하여 편안히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신도회장은 이곳에서 건재상을 하는데 불심이 아주 깊어 빠당공항까지 나가 이곳을 찾아오시는 스님들을 직접 마중하고 스님들께 공양 올리는 일이 아주 기쁘고 영광스럽다고 합니다. 신도회장 부인 주이따는 평소에는 남편의 사업을 돕는데 영어에도 능통해서 스님께서 이곳 사업을 돌아보시는 3일 동안 통역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격이 아주 밝고 항상 활기가 넘칩니다. 우리 최보살님께 ‘보살님, 보살님’ 하고 정확한 우리말 발음으로 정겹게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주위 사람들 마음까지 밝아지는 것 같습니다. 신도회장의 작은딸 생일이 어제였는데 스님께 저녁공양을 올리면서 딸 생일을 축하하려고 일부러 오늘로 미루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작은딸의 생일을 마음껏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곳은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라 매일 비가 온다고 합니다. 아마 구름이 지나가다 이 거대한 언덕에 부딪쳐 비로 변하는 모양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시작된 비는 밤이 깊은 지금까지 내리고 있습니다. 내일은 JTS가 지은 유치원 두 곳과 보건소 한 곳의 준공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3월 22일 법륜스님의 하루(부산 중구, 거제시)
새벽 1시 30분경 두북에 도착했습니다. 잠을 자고 5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한 후 오늘 오전 강연이 있는 부산 중구청으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부산에 와서 부산공기를 마시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차담이 있어 중구청장실에 들어가니 떠들썩했습니다. 스님께서 들어가니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스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중구청장님이 오늘 스님 강연이 있다고 부산지역 여고 동창회장님들 전체 모임을 했다고 합니다. 구청장님이 여장부처럼 성격이 시원시원해 보였습니다. “강연장이 크질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은 모두 모니터로 시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1층엔 따로 모니터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오늘 우리 구에 큰스님이 오셔서 정말 영광입니다.”하며따뜻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nbsp 300석 강연장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가득 차서 무대 위, 복도에까지 앉아 강연을 들었습니다. 구청장님과 부산지역 여고 동창회장님들도 끝까지 강연에 참석했습니다. 강연장이 그리 크지 않아서 오히려 오붓한 맛이 있었습니다. 오늘 질문하신 분들 중 한 아저씨의 이야기를 나눠 봅니다. “스님. 저는 55살이고 경주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대중 앞에서 사생활을 공개하기가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어 질문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군 의무를 마치고 와서 경주에서 옷 가게 하다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큰 슈퍼를 인수하여 5년을 했는데 또 문을 닫게 되었고, 그 다음으로 식품 대리점도 했는데 5년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이어서 운수업을 했습니다. 그것도 5년 하다가 잘 안되어서 양계농장을 인수했는데 태풍 때문에 쫄딱 망해서 2억 5천만원을 빚졌습니다. 가족이 모두 월세집으로 이사 와서 일당직 운수업을 했는데 그것마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직과 성실을 기본으로 살아왔습니다. 본인의 양심을 벗어나는 것을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명상수련도 다 하고 경전반에 입학하여 정진하고 있습니다. 스님. 저는 왜 하는 일마다 56년이 되면 실패를 하는 걸까요? 하기 싫어서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왜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지, 저에게는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왜 하는 일마다 실패가 반복되는지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몇 살이예요?” “55살입니다.” “건강은요?” “이루 말할 수 없이 건강합니다.” “아이들은요?” “1남 2녀입니다. 큰 애는 홍대 미대 다니다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3학년에서 그만 뒀습니다. 둘째는 대구에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고, 셋째는 자기가 알아서 살겠다고 하사계급 따서 군대에 있습니다.” “자, 한 번 보세요. 이 분은 하는 일마다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했어요, 큰 가게를 했어요? 대형 슈퍼 하다가 양계장도 큰 것을 해서 2억 5천만원이나 빚졌죠? 그것을 하다가 중단하고 중간에몇 번 바꿨다는 것 빼고는 그만 그만한 사업을 계속 해 왔고, 아이들도 다 컸죠? 이 정도면 한국 사회에서 평균 이상은 되죠? 아이들은 이미 스무살이 넘었잖아요? 자기 할 일 다 했어요. 저는 고등학교 다니다가 그만 뒀는데 큰 아이는 대학 다니다가 그만 뒀잖아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따져 보면 큰 걱정이 아니예요. 둘째도 아르바이트 해서 학교 다니면 되고, 셋째는 그렇게 살면 되고, 자기 건강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큰 문제 아니죠?” “제가 제일 고민하는 것이 집 한 칸 없이 월세 산다는 것이 부담이 됩니다.” “월세 얼마 줘요?” “월 30만원 나갑니다.” “월 100만원 벌면 월세 30만원 주면 되잖아요. 부인이 불만이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운전 잘 해요?” “베테랑입니다.” “자기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잘 살았고 성실하게 살았어요. 자기가 자기 자신을 거름이라 보지 않고 오물이라고 보니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저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맨날 실패합니까?’ 이렇게 하지 말고 ‘부처님. 감사합니다. 제가 지은 공덕이 없는데 부처님 믿은 공덕으로 몸 건강하고, 결혼생활 원만하고, 아이들 다 잘 키웠습니다. 재능이 부족한데 잘 살도록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도를 하면 상황이 바뀔 거예요.” “예. 알겠습니다.” nbsp 오전 강연을 마친 후, 지방분권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을하고 계시는 부산대학교 황한식 교수님과 점심 식사를 하셨습니다. 평소에는 식사 초대를 받거나 따로 식사를 하시지 않는데 이번에 교수님이 퇴임을 하게 되었는데 찾아 뵙지를 못해서 죄송하시다며 교수님과 따로 식사 약속을 잡으셨습니다.그런데 식당 사장님이 스님께서 본인의 식당에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저희들 식사비까지 일체를 다 보시해 주셨습니다. 스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오늘 아이를 낳았다는 사장님의 딸에게 ‘엄마 수업’ 책을 사인해서 선물을 드렸습니다. 부산에서 거제로 가는 길에 잠시 을숙도에 들렀습니다. 남쪽이라 가는 길에 동백꽃이 허드러지고,노란 개나리꽃이 한창이었습니다. 아직 3월인데도 벚꽃이 핀 곳도 있고 꽃 필 준비에 바쁜 모습이었습니다.nbsp 을숙도 공원 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햇볕만 나면 따뜻하고, 햇볕이 숨으면 아직 쌀쌀했습니다. nbsp 을숙도를 잠시 들린 후 거가대교를 지나 거제도로 향했습니다. 점심을 외식을 해서 배가 고프지 않다 하시며 스님께선 저녁 식사를 안 하시고 강의에 들어가셨습니다. 강연장이 404석인데 500여명이 와서 복도에도 사람들이 앉았습니다. 거제는 삼성, 대우 중공업 등이 있어서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과 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들도 많이 참가했습니다. 거제 강연장은 9시면 공간을 비워줘야 해서, 강연을 시작하면서 바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마지막에 질문한 딸과 아버지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봅니다. “얼마 전에 스님 책을 보고 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보수적입니다. 제가 이제 나이가 들어 가니까 아버지 뜻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주말에 집에 가면 아버지와 조금씩 부딪히다가 얼마 전에는 크게 싸우고 집에서 쫓겨 났습니다.” “아버지가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 중 가장 큰 것이 뭐예요?” “아버지가 자꾸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합니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지만 참다 참다가 ‘제가 태어나서 저 줄려고 밥을 한 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밥상에 제 숟가락 하나 더 놓은 것이지 않냐? 아빠가 해 준 것이 뭐가 있냐?’고 해 버렸습니다.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포장마차도 하시고, 계란 장사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가장이긴 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가 벌어서 아버지 인생을 즐기세요. 금전적으로 아버지가 해 준 것이 없는데, 요즘 ‘아빠가 해 준 것이 얼만데?’ 하면 화가 납니다. 효라는 것이 뭔가요?” “몇 살이예요? 직장 있어요?” “24살요. 직장 있어요. 대학 다닐 때부터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있어요.” “아버지가 없었으면 세상에 태어났어요, 안 태어났어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죠? 엄마는 아버지를 원수로 여겨요, 어때요?” “원수로 여겼다가 잘 지내다가 왔다갔다 하세요.” “엄마가 아버지를 미워했기 때문에 자기가 아버지를 안 미워하려고 해도 저항감이 있는 거예요. 어쨌든 두 분이 싸우면서도 살잖아요. 엄마는 해 주고 아버지는 안 해줬다고 나누면 안 됩니다. 아버지께 고맙다고 100일간 108배를 해 보세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셔도 ‘감사합니다, 아버지 때문에 잘 자랐습니다’ 하고 억지로라도 해 보세요.” “월급 얼마나 받아요?” “세금 떼고 140, 150만원 정도 됩니다.” “그러면 기독교에서 십일조 하듯이 매월 월급의 110을 부모님께 드리세요. 그러면 해결될 거예요.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드리세요. 지금이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예요. 결혼하고 나면 못 드릴 수도 있어요. 적은 가운데 지금 자기의 처지에서 나눠 쓰는 것이 좋아요. 한꺼번에 드리지 말고 정기적으로 드리세요. 그렇게 해 보세요. 부모님이 봉투를 집어던지고 화를 내도 두고 오세요. 대문 밖으로 버리면 주워오고. 금방 해결이 될 거예요. 스님이 시킨대로 한 번 해 보세요. 하루 기도 108배하고,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며 기도하고, 용돈도 드리고. 아셨죠? 이렇게 안 하면 나중에 남자를 만나면 아버지 같은 남자와 만납니다. 그러면 부모와 똑같이 되풀이 됩니다.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있을 때는 남편에게 그런 문제가 생길 때 격렬하게 내가 반응하게 됩니다.갈등이 증폭됩니다. 어릴 때 받은 상처가 결혼생활에 큰 장애가 됩니다. 아버지 문제를 푸는 것은아버지 관계를 넘어서서 내 결혼생활과 내 아이를 키우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지금 베풀어야 합니다. 아버지에게 베풀고 참회기도 해야 자기 속의 상처가 치유되어 남편 만났을 때 재발이 안됩니다. 아셨죠?” “예. 알겠습니다.”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스님과 대화를 함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작은 깨달음으로 다시 스스로가 주인으로 설 수 있는 힘을, 방향을 잡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강연장에 참가한 사람들도 스님과의 대화를 들으면서 함께 웃고 함께 눈물도 흘리면서 자기 문제를해결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nbsp 날이 많이 추웠습니다. 꽃샘 추위가 마지막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연장 안에서도 발이 시렸는데, 스님께서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열강을 하셨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사인회를 하는데, 스님 손을 잡는 사람, 사진 찍고 싶어 왔다갔다 부산한 사람, 고맙다고 크게 인사하며 웃는 아줌마, 7개월된 애기를 안고질문한 남편과 스님을 사진찍기 위해 애써는 사람 등 스님 주변으로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 분위기가 붕붕 떠 있었습니다. 스님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nbsp 거제도에서 밤을 달려 두북으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오전 9시, 용인에서 평화리더쉽아카데미 입학 워크삽에 강의가 있고, 12시에 용인인보성체수도회에서 수녀님들을 대상으로 강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에는 조계사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서울경기지역불자청년회 초청 두런두런콘서트가 있습니다. 내일도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3월 20일 법륜스님의 하루(서울 도봉구, 수원 장안구)
오늘 아침 스님께선 평화재단에서 있었던 『제 69차 북한현실이해와 연구 전문가 모임』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하셨습니다. 아침 모임 후, 서울 도봉구민회관으로 바로 이동을 하셨습니다. 오늘부터 ‘2013년 법륜스님의 희망세상 만들기 100강’이 시작되었습니다. 상반기에는 3월 20일 시작해서 6월 18일까지 총 49강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홈페이지를 참고하셔서 인근 강연장에 많은 분들이 동참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0시 조금 넘어서 도봉구민회관에 도착했습니다. 강연 전에 도봉구청장님과 간단하게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구청장님은 지난 300강 할 때는 일이 있어 스님을 뵙지 못했다며 도봉구를 찾아와줘서 감사하다고인사를 하였습니다. nbsp 총 600석인데 10시 10분경에 좌석이 다 찼습니다. 10시 25분경에 스님과 구청장님이 차담을 마치고강연장으로 들어가다 보니까, 자리가 다 차고 들어가지를 못해서 50m 넘게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줄 끝까지 걸어가면서 자리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고, 강연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강연장에 온 분들이 많아 강연장 복도에도 다 앉지 못해 무대까지 가득 앉았습니다. 오랜만에 스님께서 대중강연을 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스님을 뵈러 온 것 같았습니다. nbsp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생의 고민거리들을 한 보따리씩 들고 왔습니다. 37년생할머니부터 25살 총각까지 거의 모든 세대들에서 질문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2개의 제사를 며느리에게 물려주기가 부담스러운데 한 날짜에 몰아서 해도 되는 지 물으시는 할머니, 민망하거나 긴장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히죽히죽 웃어서 오해도 받고 사회생활하기도 힘들다는 25살 여자분, 30년간 군생활을 한 남편이 어느날 지뢰를 밟아 장애인이 되어 너무 힘들어 하는데 어떻게 해줘야 하는 지 묻는 아주머니, 자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쳐가고 있는데 따끔하게 혼 좀 내달라는 25살 남자분, 6살 아이가 좀 늦되는데 기다려줘야 할지, 치료를 받아야 할지 궁금하다는 2살, 6살 아이를 가진 엄마 등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서운해 한다는 청년과 스님의 대화를 들으며 사람들이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청년입니다. 첫 번째는 독립된 성인이 되고 싶어서, 부모님에게 정을 떼어 달라고 하니 안 떼어 주더라구요. 제가 정 떼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서운해 하세요. 냉정하게 하고 있는데 이것이 옳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같이 안 놀아준다고 부모님이 서운해 하세요. 그리고 2년 전 결혼을 생각했던 여자친구와 헤어졌어요. 방황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생각나서 정리가 안 되는 거예요. 결혼을 해야 할 것 같고 나눠줘야 할 여유가 생긴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좀 가르쳐 주세요.” “직장 다녀요? 부모랑 같이 살아요? 자기가 번 돈으로 먹고 살 수 있어요? 그럼 일단 이사를 나오세요. 집으로부터 나와서 작지만 열 평짜리 집이라도 얻어서 일단 삶이 먼저독립되는 것이 필요해요.” “제가 집에 생활비를 내고 있고, 부모님과 외식하면 제가 다 계산해요.” “독립하고 생활비를 드리면 되죠.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고 함께 있고 싶은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돼요. 자기가 낳고 키워왔기 때문에 늘 엄마는 걱정이 되는 거예요. 그것은 고맙게 받아들여야 해요. 그런데 고맙다고 다 받아들이면 안 돼요. 그러면 마마보이가 돼요. 마마보이가 되면 여자들이 안 와요. 여자들은 참 이상해요. 자기가 결혼하면 남편이 효자가 되는 것은 원치 않고, 자기 아들은 효자이기를 바래요. 이상하죠? 이제 자기가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해요. 나이가 스무살이 넘으면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도, 다른 쪽으로도 의지를 하지 말고, 인생에 대해서도 간섭을 안 받아야 해요. 요즘 청년들은 의지는 하고 간섭은 안 받으려고 하니까 갈등이 생겨요. 자기는 경제적으로 독립이 되니까 먼저 독립을 하세요. 요즘 젊은 여성들은 부모님과 같이 사는 남자, 결혼해도 부모님과 같이 살아야 하는 남자는 싫어해요.” “제가 같이 살기 싫다고 말씀드리니까 서운해 하시더라구요.” “싫다고 하니까 싫어하시죠. 그렇게 이야기하면 불효죠. 엄마에게 물어봐요. 제가 총각으로 이렇게 부모님 모시고 사는 것이 좋겠어요? 가정을 이루는 것이 좋겠어요? 하고.” “어제도 결혼하라고 하셨어요.” “요즘 여자들은 남자 뒤에 늙은 여자가 있는 것을 싫어한대요. 그래서 어머니께 ‘제가 장가갈 때까지 살림을 내서 살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먼저 살림을 조그맣게 내고 부모님께는 생활비를 좀 대어 주는 거예요. 생활비를 대어줄 때도, 이렇게 해야 돼요. 지금 100만원을 드리는데 결혼을 하면 50만원으로 줄이겠다 싶으면 조금 서운해 하시더라도 지금부터 50만원으로 줄여서 줘야 해요. 지금은 욕을 듣고, 결혼을 하면 70만원을 주면서, ‘아내가 50만원이 적다고 20만원을 더 올려 주래요.’ 이렇게 이야기해야 돼요. 결혼을 해서 부모에게 너무 효도를 하면 부인이 싫어해요. 그러면 부모와 부인 중간에 끼여서 살면자기 명이 단축돼요. 엄마로부터 딱 독립을 해야 돼요. 부모로부터 독립이 되지 않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어요. 첫째 독립을 먼저 할 것, 그 다음은 부모에게는 적절하게 재정을 지원할 것, 결혼해도 줄 수 있는 만큼 미리 줄일 것, 알겠어요? 부모가 어떤 말을 해도 ‘알겠습니다, 어머니.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고, 실제 하는 것은 내 하고 싶은대로 하면 돼요. 그러면 불효 아니냐?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것은 효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은 성인으로서 내가 사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엄마 말대로 따라해도 내가 결정한 것이고, 안 해도 엄마를 거역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안 한 거예요. 엄마가 섭섭해 하면 ‘죄송합니다’ 하면 됩니다. 자기 인생이 먼저 독립되어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 느끼는 그 아픔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엄마도 적응을 해야 합니다.” 청년이 밝아서 강연장도 같이 밝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고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노원법당 불사 준비하랴, 강연 준비하랴 노원 자원봉사자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도봉구민회관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하셨습니다. 다시 김밥의 계절이 돌아왔다며 저희들끼리 웃었습니다. 스님께서 평화재단에서 업무도 보시고, 사람도 만나셨습니다. 오후 강연은 수원 장안구민회관에서 있어서 오후 6시 재단에서 출발했습니다. 식사하실 시간이 없어서 싸간 도시락으로 차안에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하셨습니다. 장안구민회관도 500석인데 사람이 많이 와서 중간 복도에까지 사람들이 앉아 강연을 들었습니다.강연을 시작하면서 스님께서 질문할 사람 손을 들어보라고 하니 13명이나 손을 들었습니다. 2시간 30분간이나 강연을 하셨는데도 8명밖에 하지를 못했습니다. 질문한 내용들이 모두 간단히 답을 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었습니다. 강연을 마칠 때쯤 스님께서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어요?”하실 정도로 오늘은 삶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쭉 이어졌습니다. nbsp 질문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스님 법문이나 책을 읽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제 자신의 문제에 스님 말씀을 적용을 해 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몰라 질문을 하다보니, 기본적으로 스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어서 자신의 문제를 숨기지 않고 구체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두 무거운 이야기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강연이 2시간 30분 동안 이어져도 강연장을 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딸아이를 키우면서 13년간 남편과 별거를 했습니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다가, 형부 친구를 소개받아서 재혼을 하려고 합니다. 다시 재혼할 남자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은 아들이 친어머니를 못 보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저희 딸과 만나는 관계를 불편해 합니다.전 남편과 같이 살고 있는 딸을 보면서 전 남편과 연결될까 봐 못 만나게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6개월 후로 보류하고 서로 다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해도 딸아이와 만나지 않는 것은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혼자 살기도 어렵습니다. 제 딸은 중학교 1학년입니다.” “제가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9살 때 어머니가 재혼했습니다. 어렸을 때 가정불화가 심하고 어렸을 때 따돌림이 경험이 있고, 새아버지의 동생에게 여러 번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성실한데 저는 마음이 불안해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했어요.” “‘스님의 주례사’를 요즘 봤어요. 결혼할 때 그 책을 못 본 것이 통한스럽습니다. 나는 사기 당한 것 같습니다. 모든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살았더니 결혼생활이 개판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는데 대기업 다닐 때는 묻혀 살다가, 명퇴한 이후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집사람이 제가 부모에게 잘 하고 자기에게 잘못한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저에게도 그렇고 아이들에게도 심하게 합니다. 부부로서 남남이 된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도 치료를 받아서 가족관계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이 부인과 막낸데 저로서는 방법이 없어요.” “결혼한 지 19년 되었습니다. 남편 외도로 이혼을 하려고 했는데 이혼을 안 해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살려고 하는 것도 집착이고 안 살려고 하는 것도 집착이란 생각에 이혼 생각은 내려놨어요.둘째가 20살이 될 때까지 5년간은 더 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많아요. 시집에 대한 의무를 해라고 하면 분노가 올라와요. 시댁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맏며느린데.시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많아요. 큰 애가 3살이고 둘째가 뱃속에 있을 때도 남편 외도 문제가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애 떼고 큰 애 놔 두고 나가라고 했어요. 시댁은 외면하고 싶은데 외면할 수도 없고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요.” 스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상하면서도 시원하게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어리석어서 보지 못하는 부분을 깨우칠 수 있도록 때로는 꾸짖고 때로는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참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들이 많구나 싶었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자, 모두 따라 해 보세요.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고, 기대를 낮추면 만족이 크다.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 없다. 깊은 산속, 깊은 바다 속에 숨는다 하더라도. 지은 인연의 공덕은 없어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스님 말씀을 따라 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이어서 사인회를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nbsp스마트폰으로 스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 사인하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100강의 첫 날이 저물었습니다. nbsp 내일은 평화교육원 평화리더쉽아카데미 8기 입학식이 있는 날입니다. 내일 입학식 소식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3월 15일 법륜스님의 하루(종교인모임, 청춘학교)
스님께서는 지난 3월 7일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답사를 떠나셨는데, 오늘 아침 일찍 귀국하셨습니다. 스님과 함께 동행하셨던 분들 모두 건강하게, 무사히 잘 돌아오셨습니다. 공항에 마중나간 저희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귀국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번에 다녀오신 답사에 대해서 저녁에 있었던 ‘청년학교’에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 먼저 그 내용을 올려봅니다. “저는 지난 한 주 동안에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갔다가 오늘 아침에 왔습니다. 간 목적은 캄보디아 북동쪽이고,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지역에 ‘나타나끼리’라는 주가 있어요. 그 주는 산악지대로 캄보디아 사람들 중 원주민이 많이 살고 있어 캄보디아에서는 지역 개발이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학교가 없어서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못 다니고 있어요. 그 지역에 학교를 지어주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어요. 주 교육청 말로는 필요한 학교가 100개정도 된답니다.그래서 정부가 50개 짓고, 우리가 50개를 지어서, 일년에 10개씩을 짓는마면 5년 안에 학교문제를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의논을 하고 있어요. 또 건축현황이나 학교 실태를 살펴봤습니다. 날짜를 길게 잡았던 것은 캄보디아 국경과 인접해 있는 라오스, 베트남 지역은 국가는 다르지만 같은 원주민들입니다. 라오스와 베트남도 캄보디아와 동일한 조건이지 않을까 싶어서 답사를 했습니다. 베트남은 생각했던 것보다 지역 개발이 많이 되어 있는 편이었어요. 문맹퇴치를 위해 학교를 짓는 일은 필요없을만큼 어느 정도 개발이 되어 있는 편이고, 라오스는 모든 마을에 학교가 있기는 있는데 그 상태가 다 열악했습니다. 나무기둥 세우고, 위에 양철지붕 하나 올리고, 대나무로 벽을 쳐서 배우는 그런 수준이 아직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교실을 제대로 만들어 주는 일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또 이번에 돌아보니, 아이들이 대부분 교과서가 없어요. 선생님만 교과서를 가지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지급하는 것, 연필이나 학습 교재를 공급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선생님은 교사용 학습 참고서가 많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여러 곳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살펴봤습니다.” 돌아오시자마자 평화재단에서의 일정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10시 약속에 이어, 12시에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모임’이 평화재단에서 있었습니다. 자주 뵈어서 이제는 저희들에게도 친근한 목사님, 신부님, 교무님, 선도사님 등 10여명이 넘는 분들이 활기차게 웃으시며 재단을 찾아 주셨습니다. 한 목사님은 빵과 오렌지를 사들고 오셨는데 꼭 다정한 할아버지 같았습니다. 재단에서 정성껏 점심식사를 드신 후, 말씀들을 나누셨습니다. 남북 관계가 워낙 살얼음 걷듯 하고, 국내정치도 만만치가 않아서 나눌 말씀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nbsp 종교인 모임 이후에도 재단에서 계속 스님은 업무가 있으셨습니다. 사람도 만나고, 업무 점검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청년학교’ 개강 강연이 있었습니다. ‘청년학교’는 오늘은 서울에서, 다음 주에는 대전, 대구, 부산, 울산, 창원에 개강을 합니다. 총 11주 동안 ‘법륜스님으로부터 배우는 삶, 사랑, 시대’라는 소주제로, 스님의 저서를 가지고 이 시대의 젊은이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함께 토론하고 나누며 젊은이들이 자기 길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입니다. 작년 300강을 할 때도 후반부로 가면서 특히 젊은이들의 참가가 늘어났었는데, 그래서인지 올 해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젊은이들의 참가가 눈에 띄게 많은 것 같습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학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붓다캠퍼스, 청년대학생을 위한 정토불교대학 등에 전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노크를 하고 있습니다. 강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든든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강단에 오르셨습니다. 스님의 책과 스님의 영상물로 인생을 공부하기 위해 모여든 청년들인만큼 스님을 향한 환호성이 대단했습니다. 스님께서도 거의 2시간동안 열강을 해 주셨습니다. nbsp 먼저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답사 다녀오신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살면 한국내의 여러 문제가 참 크다고 느끼는데 외국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사실은 별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보아도 한국이 왜 저럴까 하고 걱정되는 문제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남북간의 전쟁문제이고, 또 하나는 북한 주민들의 굶어죽는 문제입니다.”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이런 나라에 가도 저에게 묻는 것이 있어요. 첫째가 남북한이 싸우는 전쟁문제입니다. 외국인들도 싸움이 걱정이 되어서 저한테 물어요. 그러니까 남북한의 평화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예요. 세계적인 이슈입니다. 두 번째가 북한의 아이들이 굶어죽는 문젠데 이것도 가난한 나라에 갔을 때 저에게 걱정이 되어서 진짜로 굶어 죽는지 거꾸로 물어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는 한국문제인 동시에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제가 필리핀 민다나오의 분쟁문제, 스리랑카의 분쟁문제, 평화의 문제를 이야기하다가도 한국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힘이 쫙 빠져요. ‘자기나라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남의 나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느냐?’는 생각이 들어 자괘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 한반도의 평화문제와 그리고 북한주민의 문제는 우리가 같은 민족이 아니라도 우리가 마땅히 해결해야 할 인류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잊고, 개인 문제에만 빠져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우리문제이기도 하지만 세계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문제는 우리 문제인 동시에 보편적인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을 잘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에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 해결없이 앞으로 대한민국 미래의 비전, 국가발전의 비전을 만들 수 있을까요?” nbsp 청년들이 진지하게 강의를 들었습니다. 시간이 늦었는데도 질문자들이 많아 3명만 한정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먼저 스님의 책 ‘새로운 100년’을 가지고 2번에 걸쳐 세미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직접 한 명 한 명 이름까지 써주면서 사인을 해 주셨습니다. nbsp 11주 동안 이 청년들은 책으로, 영상으로, 직접 스님과 역사기행을 같이 하며 스님의 삶과 만나고,스님의 사상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스님의 민족에 대한 사랑을, 역사와 인류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되고, 자연스럽게 보다 가슴 뜨거운 젊은이들로 거듭 나게 될 것입니다. 진정 주인된 삶으로 한 발자국 대딛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참가한 모든 청년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
2013년 3월 14일 법륜스님의 하루(프놈펜왕립대학에서 즉문즉설)
오늘은 프놈펜왕립대학에서 스님의 즉문즉설 강의가 열리는 날입니다.nbsp 라오스를 떠나 프놈펜으로 가기 위해 새벽 5시에 라오스의 팍세를 출발하여 다시 캄보디아 국경을 넘어 저녁 6시에 프놈펜에 도착하였습니다. 무려 13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은 프놈펜왕립대학 코이카강당에서 캄보디아 불자회가 주최하여 캄보디아 교민을 위한 스님의 즉문즉설 강의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7시 20분 국경에 도착하여 1시간 동안 캄보디아 입국비자를 다시 받는 등 수속을 마치고 캄보디아로 다시 들어섰습니다. 텡트렁 삼거리에서 쌀국수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박지나 대표와 박병수 법우, 문태훈 법우는 라따나끼리 사무실로 돌아가고 스님과 서울에서 온 일행은 정 대표님과 함께 프놈펜을 향하여 달리고 달렸습니다. 프놈펜 시내에 들어서자 퇴근시간에 임박해서인지 길이 많이 막혔지만 다행히 6시전에 강의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강연장에는 10여명의 교민들이 미리 와서 스님을 반갑게 맞았습니다. nbsp 지난 7일 캄보디아에 오신 스님을 마중한 김재성 거사님께서 스님께 요청하여 캄보디아 교민을 위한 즉문즉설 법회를 계획하신 것입니다. 캄보디아 불자회는 2012년 12월 창립하여 회원 40명이 매월 2회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 법회를 준비한 스탭들은 홍보기간이 짧아 많이 참석하지 못한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법회에는 100여 명의 교민이 모였습니다. 교민들이 모이는 동안 작년에 SBS에서 방영했던 ‘힐링캠프’를 스님과 함께 보았습니다. 6시 20분 캄보디아 불자회 총무 이승익 거사님의 사회로 행사를 시작하였으며, 작년 스님께서 하신 300강 이야기를 담은 ‘법륜스님의 외출’을 함께 보며 300강의 여운과 감동을 다시한번 느끼고 바로 이어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강단에 오르셔서 요즘시대에 성공신화의 기준을 돈과 지위로 잡고 있는데, 돈과 지위가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만으로 행복해지 않는다, 돈이 많은 것, 지위가 높은 것이 행복의 기준은 아니라고 하시면서 행복이라는 마음작용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마음작용의 원리를 알아 원리에 맞게 접근하면 괴로움이 사라지고 행복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왜 즉문즉답이라고 하지 않고 즉문즉설이라고 하는지를 설명하신 후 강단을 내려 오려서 청중들과 눈높이를 맞추시고 의문 나는 것을 물으라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질문을 하신 분은 기독교인인데 참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한 후 팟캐스트에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스님 팬이 됐다고 하면서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가장으로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걱정이 된다고 했습니다. 또 한분은 캄보디아에 온지 1년 반이 됐는데 보증을 서주고 잘못되어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 유투브로 즉문즉설을 듣는다면서 불교신자 중에 젊은 사람이 거의 없고 아들들한테 절에 가자고 하면 창피하다고 안 가려 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를 물었습니다. 다른 한 여자 분은 세상에 잘 쓰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안락해지니 이전마음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본다, 거만한 마음이 생기니 원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게 잘 안 된다, 혼자 사는 삶의 장점보다 단점이 많다는 걸 느낀다. 그런 자신이 욕심이 많은지 당연한 건지를 물었습니다. 한국식당 2개를 운영 중이라는 다른 한 분은 젊은 후배세대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nbspnbsp 첫 번째 질문에 대하여 스님께서는 신앙심이 부족하다, 참된 신앙인이 되라고 하시면서 내가 최선을 다하고 설령 실패를 했더라도 그 경험이 쌓이면 더 큰 실패를 막을 수 있다, 실패가 꼭 나쁜 게 아니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고자 하면 신앙인이 아니다 라고 하시면서 교회만 다니지 말고 신앙심이 깊어야 한다고 말씀 하실 때 참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 질문에 하신 말씀을 옮겨봅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선배세대보다 경제적으로 혜택을 받고 교육을 잘 받아서 혜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마가 다 해줘서 야생성을 상실한 불행한 세대다, 비유하자면 야생동물들이 집에서 키워진 살찐 돼지, 가축 수준이 되어 버린 것과 같다. 지금 5060대는 젊을 때 초등학교만 나와도 자기 아버지보다 유식했다. 그래서 공부를 하든 안하든 나의 문제, 나의 자유 나의 책임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삶의 방식을 터득했기 때문에 자생력이 있다. 자기가 호기심을 갖고 원해서 공부하면 기억력이 5배 높다. 또 단순지식으로만 남지않고 융합이 일어나고 창조력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야생성을 키우라, 자기 삶을 살아라. 20세가 넘으면 부모에게 의지하지 마라. 판단은 자기가 하고 부모님께 조언을 구해라. 부모 또한 자녀가 결혼문제를 상의하면 ‘네가 살 사람인데 네가 선택해라, 나는 너를 믿는다. 네가 선택하면 OK다 라고 말하라. 자식에게 조언이 필요하지 간섭해서는 안된다.nbspnbsp 그러나 20세 미만은 다르다. 미성년자라고 하는 것은 최종결정권이 없고 미성숙한 사람이다. 20세가 넘으면 삶이 자립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에게는 자식이 무거운 짐이 되고 자식에게는 부모가 감옥이 된다. 어릴 때는 보살펴주는 것이 사랑이지만 자식이 커가면 자식의 아픔을 지켜보는 게 사랑이다. 사춘기 때 지켜봐 줘야 한다. 부모는 자식을 독립시키고 정을 끊어야 한다. 자생성, 야생성을 가져라, 고생을 좀 해야 한다. 실패도 해야 한다. 세상의 뜨거운 맛은 젊었을 때 보아야 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스승이 된다. 나는 새도 내일 먹을 것을 걱정 안 하는데 걱정하는 사람은 결국 새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놓아버려라, 방하착. 마음이 가벼워야 한다. 오늘 기뻐야 내일도 기쁘다. 욕망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니다.nbspnbsp 어떤 경우에도 다음에 말하는 다섯 가지는 꼭 지켜야 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남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아무리 탐이 나도 훔치거나 빼앗으면 안 된다. 남을 속여서는 안 된다. 타인의 의사에 반해서 성추행, 성폭행을 해서는 안 된다. 남을 괴롭히면 안 된다. 술은 안 먹는 게 좋고 먹더라도 취하면 안 된다.진리를 알고 진리에 귀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계율이 있어서 자기 삶의 변화를 가져오기를 당부한다. 캄보디아 생활, 유학생활, 봉사생활이 하루하루 삶이 소중하게 생활하기를 바랍니다.nbspnbsp 9시 20분경 법회를 마친 스님께서는 교민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하시고 11시 30분발 인천행 비행기에 오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