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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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9.10 미네아폴리스 강연

9월10일 미네아폴리스오늘 새벽2시 30분에 잠이 들어 4시에 기상하여 간단히 죽으로 아침공양 한 후에 4시 40분에 라스베가스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항공사에서 우리표를 이미 11시2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로 바꿔놓아서 우리가 예상했던 델타항공으로 연결되지 않아 마음이 불편하였습니다. 박지나 JTS 대표님의 해결사 정신이 위기에 빛을 발휘하여 겨우 델타항공으로 바꾸어서 6시50분에 미네아폴리스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무사히 탈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이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하니 시간이 빨라지고 있는데 6시 50분에 라스베가스 공항에서 출발하였지만 3시간여의 비행시간과 더불어 2시간의 시차도 있어 12시30분에 미네아폴리스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에 마중 나와 있던 오종윤거사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바로 숙소로 가니 이번 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신도님들께서 스님께 꽃다발을 드리면서 인사하고 삼배를 드렸습니다. 식사 후에 스님께서는 원고교정등 개인일을 보시고, 저도 스님의 하루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미네아폴리스는 미네소타주의 최대도시인데 미네소타주의 인구는 약 오백만정도이고 크기는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것 같습니다. 미네아폴리스와 세인트폴 2개의 투윈시티의 메트로 지역에만 약 300만명이 모여 산다고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자연환경이 시카고와 비슷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날씨는 며칠전부터 아주 덥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처럼 보였는데, 약5개월정도가 겨울이며, 겨울에는 40도가 넘을 정도로 아주 춥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일을 하는 동안에 보살님들은 함께 모여서 나중에 행사장에서 나눠줄 김밥도 만들고 축제처럼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4시쯤에 오종윤, 박현정 부부내외의 8살, 6살 먹은 아이들이 학교를 다녀와서 스님께 삼배를 드립니다. 아이들이 며칠전부터 스님께서 묵을 방, 화장실, 복도등을 청소하고, 스님 뵙기를 기다렸다고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도 아이들이 귀여운지 반갑게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달라스에서는 처음으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공개강연이 있으니 달라스 중앙일보가 행사전에 꼭 스님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해서 행사장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잠깐 전화인터뷰를 하였습니다. 4시 40분쯤 이번 행사의 강연장인 미네소타 대학을 향해 출발하면서 미네아폴리스와 세인트폴 시내를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가는 도중에 차안에서 미시시피 강과 미네소타 주청사도 잠시 구경하였고, 세인트폴 성당에 잠시 들러 기도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세계평화와 한반도 평화와 통일, 굶주리는 북한주민들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강연장소가 미네소타 주립대학 강당이어서 그런지 행사장에 약 180명 정도가 참석했는데 미네소타 주립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참여가 많았던 것 같고, 애기들과 함께 온 젊은 부부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미네소타에서는 처음 하는 즉문즉설 강연이어서 스님께서는 즉문즉설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시면서 즉문즉답이 아니고 즉문즉설이라 부르는 것은 스님께서 답을 주는 것이 아니고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질문자가 스스로 진리의 길로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관점을 바꾸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오늘 여기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지금보다 조금 나은 길을 찾아보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어떤 얘기를 해도 좋고, 질문의 주제에는 아무런 제제가 없으며, 스님께서도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그냥 모릅니다 라고 답한다고 하시면서 첫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가 조금 피곤한지 졸음이 와서 제가 첫질문이 무엇인지를 놓쳐버렸고, 중간중간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많이 놓쳤습니다. 총 14명이 질문을 했는데, 불교인으로서 불살생 계율이 살아가는데 불편한 것 같다고 하며, 불교의 평등사상, 생명존중 사상을 생각해 볼때 개미를 죽이는 것도, 풀밭에 잡초를 뽑는 것도 아무 생각없이 할 수가 없는데 생명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불상생 계율을 따르려면 어떻게 하고 살아가는 것이 좋은지, 그리고 낙태, 안락사등에 대한 불교적인 관점은 무엇인지를 질문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불교인의 관점은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시무종입니다. 질문자체가 비불교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개미를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고 풀을 뽑고 안뽑고도 개인의 선택입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살수 있으면 그것이 좋겠지만, 그러나 산다는 것은 선택이므로 최선이 안될때는 차선을 선책하고 그대신에 과보를 기꺼이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선택해서 살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4년째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어떤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 미국에 와서 산지 14년이 되었는데 남편이 이제 공부를 마치고 이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데도 미국생활이 이방인 같이 느껴지고 답답하고 불편하며, 한국이 너무 빨리 발전하고 그래서 한국에 나가봐도 이방인 같다며,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미네소타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의 경우 회계학을 공부하다가 다시 경제학으로 편입하여 공부하다 보니 친구들이나 남들에 비해 졸업도 늦어지고 친구들은 지금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뒤쳐지는 것 같기도 한데 어떤 마음으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했고, 아무래도 학교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다보니 미네소타 대학에서 유학중인 유학생들이 많이 참석하였던 것 같았고, 그러다 보니 유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질문도 많았습니다. 또 다른 질문자는 스님께서는 세상을 위해서 여러가지 이익 된 일을 하고 있는데 세상에서 자기 일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며,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위해서 일을 할때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남을 돕고 싶으면 돕고, 돕고 싶지 않으면 돕지 않아도 됩니다. 인생이란 자기선택인 것입니다.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남에게 도움이 되는 꼭 있어야하는 사람, 도움도 주지 않고 피해도 끼치지 않아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 즉 없어야 하는 사람인데 최소한 세번째는 안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남에게 피해를 주고 손해를 주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하고 가능하다면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또다른 질문자는 개인적으로 아주 더러운 성격을 갖고 있어 화가 많고, 신경질이 많고, 짜증이 많아 나의 이 나쁜성격으로 인해 가까이 사는 남편, 가족, 형제등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보니 저의 이 성격을 고치고 싶은데 잘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저의 이 성격을 고칠 수 있을지 남편이 스님께 질문해보라고 합니다. 라고 해서 저희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생긴대로 사세요.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면 좋지만, 힘이 듭니다. 그래서 참으면 본인에게 화가 쌓이게 됩니다. 그러니 생긴대로 사세요. 두번째로 질문자는 본인이 생각하는 만큼 성격이 나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주위분들이 얘기하지 않는 것은 견딜만 하다는 것입니다. 진짜 화가 나고 피해가 크면 물어보라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번째로 정말 고치고 싶은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고치고 싶으세요 라고 스님이 질문자에게 물으니 질문자가 평소에 아빠와 비슷한 성격인데, 아빠와 엄마가 싸우는 것을 많이 보아 진짜로 고치고 싶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이 화내고 짜증내는 습관은 부모로 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천성처럼 되어있어 화를 내지 않으려면 의식적으로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 만큼 자기 콘트롤이 잘 안됩니다. 이것을 고칠려면 오늘부터 내가 화내는 성격, 짜증내는 성격을 버려야겠다는 대결정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면 그에 상응하는 큰 벌칙을 내려야 합니다. 제일 빠른 것은 전기충격기로 화를 낼때마다 자극을 주어서 까무러치는 경험을 한3번 정도 하고 나면 선천적으로 무의식 세계에서 저항이 생기게 됩니다. 따라서 신체에 무의식세계에서 저항이 생깁니다. 생존의 본능에서 대응하는 힘이 무의식의 변화를 가져다 주어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1번 화내고 짜증낼때마다 500배 하는 벌칙을 주게되면, 하루에 5번 화를낼경우 2500배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몸이 힘들면 무의식 세계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렇게 한달정도 되면 화내는 자기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라고 하시면서 어느 것을 선택하겠냐고 해서 다시 저희를 한바탕 웃음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일곱시에 시작한 강연은 일정보다 삼십분을 훌쩍 넘긴 아홉시 반이나 되어 끝이 났고, 강연이 끝난 후에 스님께서는 책을 구입한 분들에게 환한 웃음과 함께 사인도 해주시고 사진도 같이 찍었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스님은 아이들로부터 2개의 선물을 받았는데 본인이 그려온 그림에 법륜스님이라고 써놓고 그린 그림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제 스님은 아이들로부터도 인기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부모님들이 유튜브 동영상으로 스님 강연을 들으니 스님은 아이들에게도 친근한 것 같았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바로 숙소로 가시고, 오늘 하루 자원봉사를 한 분들은 묘덕법사님과 함께 공감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다함께 이곳에 스님께서 와서 강연을 해주시는 것이 너무 좋았고, 행사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즐겁고 재미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부부가 다 함께 문경에서 깨달음의 장 수련을 마치고 캐나다 위니팩에서 살고 있는 한가족이 3명의 아이들과 함께 와서 이번 강연에 자원봉사를 하였는데, 만나게 되어서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위니팩은 미네아폴리스와 자동차로 7시간 정도 떨어져 있고, 한국교민들이 약 5천명 정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곳에서 불교대학과 열린법회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문의하여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세계각지에서 지도법사님의 가르침으로 수행하고 공부하겠다는 문의가 들어오니 저는 참으로 기뻤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우리가 지원할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이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공감나누기후에는 오종윤씨댁으로 돌아와서 행사 후 남은 짐을 정리하고, 이곳에서 열린법회를 하고 있는 현황등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앞으로 불교대학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번 미네아폴리스 강연은 깨달음의 장 수련을 마친 3분이 함께 열린법회를 하면서 이 세분이 중심이 되어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정말 수고 많았다고 격려도 하고 앞으로 이곳에서 세분이 중심이 되어 불교대학과 수행법회등 전법을 열심히 해보라고도 격려했습니다. 내일 토론토로 가지고 갈 책과 짐등을 정리하고 나니 새벽2시 30분이 되었습니다. 그럼 내일은 토론토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3.09.13. 19,727 읽음 댓글 7개

2013.9.9. 라스베가스 강연

오늘은 5시에 기상하여 기도를 하고,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고 10시 20분에 라스베가스로 출발하였습니다. 라스 vegas 강연은 라스 vegas에서 열린법회를 하는 팀들과 LA정토회에서 함께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라스 vegas 강연에 지원을 하러 가는 분들과 함께 모여 총무님 댁에서 출발하였는데, 가는 도중에 근처의 햄버거집으로 가서 12시경에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이번 강연을 준비하고 있는 안종의 거사님댁으로 바로 갈까 하다가 라스 vegas 근처에 있는 Red Rock Canyon 국립보호지역에 들러서 한바퀴 둘러보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라스 vegas는 사막에 위치에 있기 때문에 보통은 주위가 온통 건조하고 마른풀들이 있는데,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주위가 온통 초록색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이 사막인지 구분이 잘 안 갈 정도였습니다. Red Rock Canyon은 붉은 바위산과 돌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보호지역을 둘러보고는 스님께 식사를 대접하고자 하는 분이 저녁식사를 준비했다고 하여 라스 vegas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라스 vegas로 들어서자 스콜처럼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소나기가 내리는 가운데 해가 있으니 예쁜 쌍무지개가 떴습니다. 석양 무렵이어서 정말 선명하고 동그란 무지개가 떴는데 이렇게 선명하고 동그란 무지개는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았습니다. 식당이 행사장과도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식당은 최근에 오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Gangnam Kitchen 이라는 아주 정갈한 한국식당이었는데, 주인내외의 어머님께서 오랜 정토후원회원으로 스님께서 라스 vegas에 오신다는 포스터를 보고 꼭 스님께 식사대접을 하고 싶었다고 하면서, 정말 정갈한 음식으로 맛있게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종업원들과 함께 식당주인내외와 저희일생은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이번 행사장은 도서관내에 있는 극장이었는데, 음향시설도 좋고, 주변시설이 좋고, 들어가는 출입구도 좋아 아주 깔끔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LA 정토회원들은 책 판매를 담당하였고, 나머지 진행은 모두 라스 vegas 열린법회팀들 및 자원봉사자들이 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도시에서 모두 축제하는 마음으로 아주 즐겁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라스베가스에는 호텔 casino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많고, 네바다 주립대학이 있어서 한국유학생들도 많이 있어 교민이 한 2만5천명 정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즉문즉설 강연장에 오신 분들을 환영하는 환영동영상이 나오자 행사가 뜨겁게 타오릅니다. 그리고 스님의 소개영상과 함께 스님께서 연단에 오르시니 뜨거운 박수가 쏟아집니다. 스님께서 다음과 같이 인사말씀을 하십니다. “사막이라고 해서 비가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시내로 들어오니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석양 무렵이라서 아주 예쁜 무지개가 떳는데 우리가 복이 많은 것 같아요. 기후는 하나의 기후일 뿐이지만 이렇게 비가 쏟아지고 무지개가 뜨니 기분이 좋찮아요. 이와 같이 사람도 밝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남편, 아이, 부모가 생각이 변하여 내맘에 들게 되면 아주 행복해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변하게 하고 주변을 변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변해서, 내가 바뀌어서 내가 행복해지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데 우리는 항상 누구 때문에 괴롭다고 합니다. 나의 무지, 나의어리석음에 의해 괴로움이 따라 옵니다. 천주교에서 내 탓이라고 하는것은 내가 큰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나로 인해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조금 돌이켜보면 훨씬 행복해집니다. 오늘 우리가 괴로워하는 것을 놓고 조금 스스로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라는 서두말씀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모두 11분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젊은 여성분이 스님께서 오신다고 해서 뭘질문해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라고 하면서 스님께 식사하셨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네. 식사 잘했습니다. 저하고 20년정도 알고 계시고 후원하는 분이 한국의 압구정동에서 아주 큰 식당을 경영하고 계시는데 라스 vegas에서 스님 즉문즉설강연 팜플릿을 보고 식사대접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가보니 3개월전에 Gangnam Kitchen 이라는 식당을 오픈했다고 했습니다. 이분 덕분에 제가 밥값하게 되었네요.” 하니 처음부터 강연장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이분은 다시 스님 동영상을 들어보니 누구 때문이 아니고 모든 것이 저로 인해서 일어난 것임을 알았습니다. 스님 건강하십시요. 라고 들어가니 스님께서 저분은 저한테 눈도장 찍으려 나오셨네요. 하고 유쾌하게 웃으셨습니다. 두번째는 이곳에 유학 온 유학생이었는데 유학와서 걱정, 불안이 많고, 스트레스가 많다고 하면서 어떻게 할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이 학생한테 유학 온 지 몇 개월 되었냐고 물으니 3개월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다시 객석에서 웃음이 터집니다. 스님께서는 유학 온 지 3개월 되었으면 당연히 불안하고 초조할 것이며, 문화, 언어, 모든 것이 다른데 어떻게 스트레스가 없겠냐고 하시면서 아주 자상하게 식물이 뿌리내리는 과정을 설명해주시면서 이분이 불교신자라고 하니 ‘부처님 저는 편안합니다. 저는 잘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침마다 108배 기도를 해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이제 갓 유학온 젊은 학생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세번째는 여기 15년전에 이사를 왔었는데, 미국 온 지는 49년 되었다고 하는 보살님께서 여기 이전에는 절이 있었는데 절에 계시던 스님이 병이 나서 나가고 나서는 절이 없어서 허전하고 그러니 스님께서 한국에 나가면 스님 한 분 주선해달라고 해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미국에 와서 절에 다니시는 분들이 개성이 강하고 아주 고집이 셉니다. 왜냐하면 고분고분한 성향을 가진 분들은 외롭고 하니 친구도 사귀고 한다고 이미 다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지않고 불교신앙을 지키는 분들은 고집 센 성향을 가진 사람들만 남아 있으니 절이 시끄럽습니다. 이것은 불교 때문이 아니고 이런 성향을 가진 분들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착해보여도 다들 한고집하는 보살님들만 있으니 절이 시끄러운 것입니다. 불교공부라는 것은 자유와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수행하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집에서도 정진을 할 수 있습니다. 정진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10명 , 20명이 모여도 안시끄럽습니다. 그러나 단지 향수를 가지고 모이게 되면 2명이 되어도 시끄럽고 갈등이 심해지게 됩니다. 향수로 불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절이 있고 없고, 스님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혼자라도 수행을 해야 합니다. 서암 큰스님께서는 청정한 한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스님이고 그 사람이 머무르는 곳이 절이고, 그것이 불교라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혼자있어도 수행하는 수행자가 되어보라고 하십니다. 네번째는 절에 다닌 지10년이 넘었다는 분이었는데 절에는 출근 도장 찍듯이 다녔는데 내마음이 편안해지기 위해서 참선을 시도해보고 하지만, 아무리 기도를 할려고 해도 잘 안되고, 어떻게 하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냐고 질문하셨습니다. 다섯번째 질문자는 세상이 물질 만능시대라서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꼴보기 싫은 마음이 일어나고, 또 돈때문에 배신하는 형제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남성분이었습니다. 여섯번째는 유학온지 3개월 되었는데, 할머니의 기대가 특히 큰데 할머니의 기대를 어떻게 부응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하였고, 그다음은 25살된 여성분이 본인은 처음에 향수병이 없었는데 34년 지나가고 나니 향수병이 생기고, 최근에 미국사람과 결혼을 했는데 문화의 차이로 인해 미국가족들과 의도하지 않게 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한국의 가족이 보고 싶어 우울해지는데, 스스로 결정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는 알아도 실천이 잘 안되는 나에게 채찍질 한말씀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여덟번째는 스님이 오신다기에 며칠전부터 인터넷으로 스님법문을 엄청 들었는데 본인은 욕망이 많은것 같다고 하면서 욕망을 줄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무엇인지 질문하였습니다. 아홉번째로 질문하신분은 미국에 오래 살았고 30살, 34살 난 두딸을 두고 있는데 미국에 와서 열심히 애들을 키워 애들은 잘 되었지만, 현재 두딸과 사이가 안좋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질문을 했습니다. 열번째로 질문하신 분은 백수신랑인 남편을 10년동안 먹여 살리고 있는데 받기만 하는 이 남편을 내가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문하겠다고 일어나신 분은 아무래도 스님은 천재같다고 하시면서 본인은 스님의 유튜브동영상 매일 3040개 보면서 배우고 있는데, 스님의 말씀은 모순이 없고 싫증이 안나는데 동영상의 업데이트가 늦다고 하면서 좀 빨리 업데이트를 시켜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질문자는 스님의 법문에 중독되어있습니다. 법문을 1개, 2개들어도 그것을 나한테 적용해서 실천을 해보아야 합니다. 법문대로 되는지, 안되는지 적용해보고 또 법문을 들어보면 법문1개를 가지고 3년을 공부할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는 현재 스님의 법문 듣는것이 연속극 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의 법문을 듣고 적용시켜 공부를 한다면 1개를 100번 듣는 것이 훨씬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듣기만 하면 지식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자기에 대해 실험을 하고 자기 변화를 도모해가야 합니다 같은 것을 들으면서 자기에게 적용하고 수행연습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유튜부등 동영상으로 법문을 들으니 일부 이런 중독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문을 많이 듣고 귀가 고급이 되고, 새로운 것을 찾아 다음 편은 뭘까 이렇게 연속극 기다리듯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안되는 것을 반복해서 듣고 실천을 해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술에 취해 주정을 하거나, 마약, 게임등에 나를 팔아서는 안됩니다. 항상 자기자신에게 자긍심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소중한줄 알아야 남도 소중한 줄 압니다. 남을 사랑하고 남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라고 따뜻한 말로 마지막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은 질문하고 대답하는 가운데 연신 웃음이 터졌습니다. 도서관을 10시까지 비워야 하기 때문에 질문자가 더 있었지만 9시 30분까지만 질문을 받고, 스님께서는 마무리 하시고 밖으로 나오셔서 책을 구입한 분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시고 같이 사진도 찍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서 오늘 하루 자원봉사를 해 주신분들과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오늘 수고하셨다고 인사를 하니 정말 10시가 되었습니다.10시에 도서관을 나와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에서 오늘 행사를 지원한 LA정토회원들과 LA총무님 부부등과 인사를 하고 이분들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늘 행사를 준비한 열린법회팀들과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묘덕법사님과 저는 행사 후 공감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은 열린법회 56명으로 이런 행사를 치루었다는 것이 너무 뿌듯하고, 심심한 이곳 라스 vegas에서 정말 재밌고 활기차게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기분이 좋았고 보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강연장을 찾는 사람들도 모두 축제의 장소에 오는 듯이 느껴졌는데 이분들은 정말 준비과정에서부터 신나게 준비했었던 것 같았고 오늘은 대학생 아들들을 총동원하여 온가족이 함께 자원활동을 하는 모습도 좋았습니다. 공감나누기를 하고 모든 분들이 돌아가니 12시가 넘어섰습니다. 내일은 오전 6시 40분 비행기로 미네아폴리스로 출발해야 하므로 공항에는 4시40분에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행사장에서 나온 보시금 및 가지고 갈 짐을 다시 정리하고 나서, 인터넷으로 비행기표를 체크하니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가 연기되었다고 안내가 떴습니다. 저렴한 요금으로 비행기를 이용할려고 하다보니 피닉스에서 갈아타는 것으로 비행기표를 끊었는데 라스 vegas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연착을 하게 되니 피닉에서 미네아폴리스로 가는 비행기를 탈수가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그 밤에 항공사에 연락을 해보니 델타 항공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아침에 공항에서 수속을 밟아보라고 해서 조금 안심을 하고 뒷정리를 한 다음에 4시에 기상알람을 해놓고 2시 30분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비행기를 제대로 탈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미네아폴리스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3.09.12. 16,887 읽음 댓글 9개

2013.9.6. 통일전략포럼 초청강연 및 오렌지 카운티 강연

오늘은 8시55분에 LA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하므로 6시40분에 숙소에서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5시에 기상하기로 하였으나 알람소리를 놓쳐서 스님께서 6시에 깨워주셔서 일어났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세수만 하고 나왔더니 벌써 호박죽으로 공양을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간단히 아침공양을 마치고 숙소에서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부치고 수속을 밟고 게이트에 들어오니 오늘은 그래도 약간 여유가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제 주무시지 않고 원고 교정을 다 끝마쳤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12시부터 바로 일정이 시작되는데 스님께서 잠이 모자르지 않겠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시 15분쯤에 오렌지카운티 롱비치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을 비롯하여 저희는 롱비치공항을 이번에 처음 이용하였는데, 롱비치공항은LA근방의 공항중에서 가장 작은 미니공항이어서 처음에는 조금 신기하였습니다. 짐을 찾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LA 김명례 총무님께서 마중을 나왔습니다. 총무님께 인사를 드리고 짐을 찾은 다음에 일부 짐은 이승훈 대표님 차로 실어 보내고, 저희는 이경택 거사님 차로 오늘 12시부터 있는 LA 코리아 전략포럼 오찬 행사장인 LA 다운타운으로 바로 출발하였습니다. 행사장에 11시 30분쯤에 도착하여 스님께서는 행사장에서 간단히 세면을 하시고 행사장으로 올라가니 오늘 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하는 통일전략포럼의 곽태환 교수님과 Action for One Korea의 정연진 대표님께서 반갑게 스님을 맞아주셨습니다. 오늘은 LA지역에서 사회활동을 하시는 원로들과 함께 오찬을 겸한 미팅이었습니다. 먼저 식사를 한 다음에 약 1시간정도 법륜스님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구상이라는 주제로 스님의 기조강연이 있었고, 그런 다음에 질의응답시간을 가졌습니다. 행사는 2시30분에 마치기로 하였으나 총10분이 질문을 하였고, 스님께서도 답변하시느라 다음행사가 있기 직전인 2시50분에야 겨우 모임을 마쳤습니다. 곽태환 교수님은 법륜스님을 소개하면서 저는 새로운 백년을 2번이나 읽었고, 한국 사람이면 모두 새로운 백년을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고 하면서 제가 세일즈 맨은 아니지만 꼭 이 책을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연진 대표는 미주지역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풀뿌리 운동을 하는 시민운동단체를 2012년도에 결성하였는데, 본인 역시 새로운 백년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스님의 강연도 새로운 백년을 압축하여 설명한 것 같았습니다. 한반도의 천년의 꿈을 이야기 하실때는 괜스레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지난 여름에 동북아역사기행을 다녀온 후라 그런지 마음이 더 울컥하였습니다. 오늘 7시에 오렌지 카운티에서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강연이 있기 때문에 통일포럼행사를 마치자 마자 참가하신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바로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김명례 총무님댁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4시쯤에 총무님댁에 도착하여 가방을 풀고, 짐정리를 한 다음 잠깐의 휴식시간을 갖고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한 다음에 오늘 강연이 있는 행사장으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은 2013 희망세상 만들기 법륜스님 즉문즉설 북미주 25개 순회 강연 중 4번째입니다. LA정토회의 오렌지카운티법당이 있는 부에나팍시의 홀리데이인 호텔에서 21명의 자원봉사자들은 5시부터 배너 설치, 마이크 점검, 책 판매대와 스님의 책사인회 준비를 하느라 일사불난하게 움직입니다. 화씨 100도를 기록하는 더위도 스님을 맞는 오렌지카운티 교민들의 열정을 따를 수는 없나봅니다. 주중인데도 불구하고 450석 규모의 강연장에 520여명이 입장하셔서 반가움으로 얼른 여분의 좌석을 준비합니다. 지난 6월 강연에도 오셔서 기억이 생생한 멀리 유타주에서 오신 분은 외국인 남편과 함께 맨앞에 자리하셔서 사회자의 소개로 환영의 박수를 받습니다. 지난 6월에도 오시고 12시간을 운전하여 스님강연을 듣기 위해서 유타주에서 기쁜 마음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nbsp 새로 나온 스님의 책 과 CD 가 이곳 오렌지카운티 에서 인기가 대단합니다. 6시 30분쯤에 행사장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강연직전까지 미리 책을 구입한 분들에게 일일이 싸인을 해주셨습니다. 모두들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하시자 스님께서는 예의 그 환한 미소로 함께 촬영에도 임해주십니다. 드디어 음악과 함께 법륜소개 영상이 나오자 열렬한 박수 속에 법륜스님께서 강단으로 오르십니다. 희망세상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질문을 받기 전 스님께서는 교민들에게 올여름 한국의 소백산맥 남부 지방의 기록적인 더위와 북부지역의 45일간의 긴 장마소식을 전해주시며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의 메마름 등 아열대성 이상 기후 변화는 냉난방 등의 에너지 과소비와 자원낭비로 인한 기상이변이며 문명을 발전시키고 부의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잘 살려고 한 것이 결국 공멸의 길로 나아가는 길이 되고 있음을 자각시키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네 인생도 잘잘못을 떠나 몇십년을 잘한다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더행복하지 못하다면 지금 이시점에서 자기 점검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자리에서 바로 즉문을 하면 인생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질문에 대해 답이 아니라 길을 가르쳐 주는 지혜, 곧 설법을 하시겠다고 하시며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모두 8분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양쪽에 마련된 질문자석에 대기하고 있던 젊은분들의 질문이 많았고 간단하게 즉문즉설을 그려봅니다. 젊은 남자분의 첫번 째 질문은 결혼생활 10년이 되었는데 , 화가 많아서 아내와 자주 다툰다고 하며 화를 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화는 같은 상황에서도 내가 옳다는 생각이 있고 남을 탓할 때 생기며, 내가 옳다고 하는데 아내도 자신이 옳다고 할때 서로 부딪혀 싸우게 된다고 하시며 똑똑한 아내를 골라 결혼한 과보라 하시니 , 청중들이 박수로 공감합니다. 마음의 작용을 상세히 설명하시고 항상 잘못했다고 숙이고 내가 썩 잘한 것도 없다고 인정하면 화가 풀려버리지만 30년 넘게 지녀온 습관으로 머리로는 알아도 현실에 잘 안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매일 108배 절을 하며 ‘아내 말이 옳습니다, 내가 부족합니다.’ 하는 절 수행을 강조하셨습니다. 다음질문자는 젊은 새댁이었습니다. 오늘 강연에 남편과 함께 왔는데,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다가 달랑 남편과 둘인데 출장이 잦은 남편과 늘 함께 하지 못해 괴롭지만 한편으로는 남편의 직업을 이해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시니 스님께서 당장 직업 없는 남편으로 바꾸라고 하셔서 웃음바다가 되었는데 어떻게 이겨내야할 지 마음공부에 대해 질문하니 혼자있을 때 정토에 오라고 하셔서 또 한번 웃습니다. 자기가 처해 있는 처지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니 내 생각을 바꿔 유리한 쪽으로 자신의 위치를 전환해서 수처작주하는 삶을 살으라고 하십니다. 남편을 마이크 앞으로 나오게 하셔서 ‘결혼을 했으면 함께 해야지 왜 그랬어요?’ 하니 직업을 바꿀 수도 없다는 남편에게 변명의 기회를 대중들 앞에서 주시고 아울러 아내와 대화를 잘 해서 서로 이해하고 아내는 스스로 자기 삶을 사는 방향을 가도록 격려해주셔서 모든 청중들이 큰 박수로 함께 했습니다. 따뜻한 교민들의 정이 느껴집니다.nbsp 스님의 인터넷 동영상을 보고 수행을 하니 옛날의 어린 자기를 보게 되고 업식을 발견하게 된다는 청년은 또 자꾸 남을 판단하게 되어 그런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고 질문을 합니다. 스님께서는 판단을 안하려고 하여도 판단은 저절로 되어버리므로 결국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안하려고 하기보다 먼저 판단을 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라고 하신 후 1차 수술로 당신이 옳고 내가 틀렸다고 하고, 2차 수술로 결국은 당신이든 나든 옳고 그름이 없고 두사람의 의견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결국 옛날의 자기 업식도 사라진다고 하십니다. 말을 잘 못해 적어 온 것을 읽으며 4분간 장문의 글로 질문하는 청년에게 한마디로 생각이 너무 많다 하셔서 모든 청중이 함께 공감하며 웃습니다. 수줍은 듯이 질문하고 있는 청년에게 스님께서 구체적인 혼란이나 괴로움을 예를 들어 말해보라 하시며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유도하십니다. 질문의 요지를 간파하시고 짧은 문답을 주고 받으시며 상황이 주어지면 목적에 맞게 나의 행동이 달라져야 하는데 질문자는 목적은 빼고 방식만 고집한다고 촛점을 찾아주십니다. 질문자의 많은 번뇌는 근본을 꿰뚫어야 해결이 된다고 하시고 지엽적인 것보다 본질을 추구해야 함을 일러 주시니 끄덕이며 ‘본질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라고 하신 것입니까?’하고 질문자는 한번 더 확인하고 수줍었던 얼굴이 금새 밝아집니다. 예로 말한, 질문자의 생각에 회사에서 나쁜 동영상을 보는 외국인 직원들의 행동에는 친교를 택할 것인지, 정의 차원을 택할 것인지 목적에 맞게 행동하면 되고 그들의 행동은 무시가 아니라 개입이나 간섭을 하지 말고 각자의 취향 다름으로 보라고 일러 주십니다. 또다시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일반적인 관심사는 아닐 것이라는 전제를 하시며 스님께서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으시는지? 불교에서의 도솔천은 영적차원인지 실제적 행성인지? 등 질문자는 새로운 사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6분동안 질문을 하였는데 스님께서는 끝까지 들어주시고 은하계와 우주, 단군신화를 보는 관점, 생명의 원리를 몇가지 제시 하시며 시대에 따라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이 달랐음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지식 등으로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인격적 측면에서의 스승을 견주어서는 안되고 무엇이 진실인가로 접근해야 한다고 하시며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의 해결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깨우쳐주십니다. 우리들의 편협되고 폐쇄된 의식을 넘어서 종교적, 과학적, 역사적 모든 다양한 경험을 참고로 하는 의식의 업그레이드를 주문하십니다. 그러면서 이시대의 엄마에 대해 일침을 내리십니다. 닉부이치치를 키운 엄마의 훌륭함을 언급하시며 지금 우리 현실은 엄마는 없고 이웃집 아줌마만 있다고 하시며 지금 여기에서 엄마 있으면 손들어 보라 하셨는데 모두들 조용하십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함으로 바뀌자 스님께서 예수님, 부처님께서는 엄마가 자식 보듯 우리를 보셨다고 하셔서 박수로 크게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질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2시간 반이 넘어가고 유방암을 진단받고 치료중인 분이 남편과 친정과의 갈등으로 괴롭다고 하심에 시간이 부족해 상세히 못들어 듣는 우리들이 오해가 있을까 걱정하시면서도 단호하게 결혼을 했으니 아이를 위해서도 남편을 위해서도 친정과의 관계를 끊으라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이민 1세대이고 자식은 1.5세대인데 미국에서 어떻게 잘 살아야할 지 무엇을 시켜야할 지 질문을 하니 ‘애들이 몇살입니까?’ ‘8살, 12살입니다.’ ‘그러면 밥이나 잘 챙겨 먹이세요’ 자기 머리가 복잡하지 아이는 하나도 안 복잡하다 하시며 명쾌하게 한마디 더 주십니다. 아이는 상관말고 자기나 잘 사세요 모두들 박장대소를 하며 오늘의 질문이 마감되어집니다. 끝마치며, 나의 선택은 자유이니 눈치도 보지 말고 그렇다고 너무 나서서 남을 기분 나쁘게도 하지말고 삶에 너무 전전 긍긍하지 말고 당당하게 사시라고 교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자기정체성은 갖되 열린 자세로 행복 합시다.’ 7시에 시작된 강연은 10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고, 강연이 끝난 후 10시가 넘도록 스님께서는 많은 분들에게 둘러싸여 책사인회를 하셨습니다. 10시20분이 지나서야 자원 봉사자들의 수고에 웃음으로 답하시며 기념사진을 찍으시고 총무님 댁으로 가셔서 내일 엘에이 강연을 위해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이번 강연에는 지역마다 한국여성분과 결혼한 외국인 남편들이 행사장에 함께 오셔서 끝까지 스님강연에 함께 하였습니다. 유타에서 오신 분은 한국말도 유창하여 10월에 LA에서 열리는 깨달음의 장에 참가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홈페이지 관리 및 기타 자원활동을 해외사무국과 함께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명함도 주시고 하여 저와도 반갑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꼭 내년에는 스님께서 유타에 오셔서 강연을 해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스님께 약속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스님께서는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분 2분이 행사장에 찾아오셔서 스님과 따로 시간을 갖고 싶다고 하여 스님께서는 친구분과 함께 가셨고, 저희는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스님께서 그제와 어제밤을 꼬박세우고 원교교정한 것을 수정하기 위해서 제 숙소로 와서 타이핑을 하다가 1층으로 내려가보니 스님께서 오셔서 LA이승훈 대표님, 김명례 총무님등과 함께 내년에 해외지역 100회 강연을 할 때 LA지역에서 몇군데에 걸쳐서 강연을 해야 하는지, 서부지역을 어디까지 포함해서 강연을 해야 할지등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잠이 부족한지 새벽 1시30분을 넘기니 많이 졸렸습니다. 그래서 월간정토에 나갈 원고교정을 위해서 스님께 프린터물을 전해드리고,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오전 9시부터 불교대학과 경전반 졸업식 및 수계식이 있는 날이라 바쁠 것 같습니다. 그럼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오렌지카운티 즉문즉설강연 현장스케치는 LA정토회 허성화보살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2013.09.09. 17,032 읽음 댓글 4개

2013.9.5. 샌프란시스코 강연

오전 4시에 기상하여 간단히 세수만하고 4시 40분에 시애틀 정토법당을 출발하여 시애틀 국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6시 10분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공항에 8시30분경에 도착하니 공항에 신도님들이 마중 나와서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짐을 찾아 샌프란시스코 법당에 도착하니 여기서도 신도님들이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맛있어 보이는 호박죽과 함께 간단한 아침상을 차려놓았습니다. 아침공양을 하고나서 샌프란시스코 법당 출입문에 예쁜 정토회 간판을 달아놓고 현판식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샌프란시스코 법당의 길 안내 역할은 오롯이 길가 세움 간판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스님의 샌프란시스코 방문과 때를 같이 하여 샌프란시스코 법당의 입구에는 소박하지만 매우 정겨운 느낌의 현판이 내걸리게 되었습니다. 다른 곳의 정토법당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이곳 샌프란시스코 정토법당도 자리잡기까지 많은 신도님의 수고와 노력이 있었고, 수많은 정성과 작은 땀방울들이 모여 세워진 법당이기에 법륜스님과 신도님들이 함께 해주신 현판식은 매우 뜻깊은 자리였습니다.nbspnbsp 현판식 행사가 끝난 후, 스님께서는 강연 전에 신도님들과 함께하는 산책을 위해 샌프란시스코 법당에서 약 40분 거리에 있는 Cupertino의 Rancho San Antonio Park로 이동하셨습니다. 오전 11시, Rancho San Antonio Park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매일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의 스케줄로 피곤하실 텐데도 신도들의 짐을 나누어 들어주셨고, 또 산을 오르실 때는 누구보다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등성이를 오르셨습니다. 산행 중 스님께서는 여름내 빗방울을 맞지 못한 매마른 이곳의 땅을 보시고는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물 부족현상을 걱정하시기도 하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후 변화와 앞으로 계획하신 미주지역 100회 강연 등 많은 이야기를 산책하면서 신도님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두 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신 스님께서는 신도님들이 준비해 오신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시고 다 함께 담소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자리에서 행복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행복과 자유라면 그 행복은 반쪽짜리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고의 습관으로부터 일어나는 나의 욕망을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내 습관에 매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사고의 습관이든 행동의 습관이든 그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며, 행복입니다. 우리는 장소, 상황, 시간에 관계없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삶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나가게 해야합니다. 물이 그릇의 모양에 따라 달라지듯이 그렇게 우리의 삶이 주어진 상황에 맞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스님께서는 수행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자유와 행복을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유지시켜 나가야 하는데, 사람들은 자꾸 외부의 환경 때문에 자신의 괴로움이 생겼다고 핑계를 대며, 자신을 괴로움에 빠뜨리고 학대하는 일을 계속합니다. 그래서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와 수행을 해야 합니다. 또한 이것이 자기 자신에게서만 끝나지 않고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나의 이웃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도록, 그 사람 스스로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전법의 인연을 맺어서 그 사람이 밖에서만 찾던 행복을 자기 안으로 돌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또한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환경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우리의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또한 스님께서는 보람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람은 내가 남에게 쓰임새가 있을 때 생기는 심리 현상인데, 아무리 만족했던 삶이었다 할지라도 이 보람이 없으면 나중에 삶이 허무해 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 스님의 말씀에 신도님들은 다시 한 번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 귀한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산행 일정을 마무리 짓고 스님 일행은 숙소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약 4시정도에 숙소에 도착하셔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행사장으로 갈 준비를 하고 6시 10분에 행사장으로 출발했습니다. 퇴근시간과 맞물려 교통체증이 있어서 6시 40분정도에 오늘 강연이 열리는 ST. Thomas Episcopal Church에 도착하였습니다. ST. Thomas Episcopal Church는 Sunnyvale에 위치한 성공회 성당으로 300명 가량의 사람들이 미사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번 법륜 스님의 샌프란시스코 지역 즉문즉설 강연의 장소는 성공회 성당의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모임에서 장소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스님의 강연에 앞서 홍승환 목사님의 인사 말씀이 있으셨는데, 성공회 성당의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모임은 주낙현 신부님과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만든 모임으로 이번 스님의 강연이 성공회 성당에서 열리게 됨으로써 기독교 활동이 많은 이 지역에 타종교에 대한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이 성당이 문을 연 이래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는 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스님의 강연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참 뿌듯하였습니다. 점점 사람들이 많이 오니 300석 좌석이 만석이 되고 복도에 의자를 더 놓았습니다. 약 350명 정도가 입장한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오후 7시 법륜스님의 2013년 희망세상 만들기 샌프란시스코 지역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급변하는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셨습니다. 요즘의 기후 변화는 어디에서 그 원인을 찾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지구 온난화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고 하시며, 지나친 에너지 소비로 인해 생겨났다는 측면이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소비 행태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분명 우리는 50년 전보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었지만, 지구의 환경은 너무나 심각하게 파괴되고 오염되었으며, 우리의 삶이 물질적 풍요로움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그때보다 반드시 행복해졌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 각자의 삶을 점검하고, 우리가 말하는 발전이 진정한 발전인가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찌보면 냇물에 나무토막이 떠내려오듯 그런데 앞으로 앞으로 떠밀려 왔다고 말씀하시며, 이제 무작정 앞을 향해 가기 보다는 잠깐 멈춰서서 개개인의 삶을 점검하고, 우리 인류 문명을 점검하여 오늘보다는 내일이, 올해보다는 내년이, 그리고 지금보다는 10년 후가 더 나아지도록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멈추면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뒤쳐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이것을 극복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오늘의 대화는 어떤 고통이나 번뇌의 종류와 관계없이 삶의 문제를 무엇이든 내놓고 점검하는 시간이 되도록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열심히 일했지만, 월급이 동결되고, 해고가 일어나 직장 생활에 의욕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물으신 분, 동료에게 조언을 해주었지만 자신의 말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 고민하신 분, 이민 생활을 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상처를 덜 주며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시는 분,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두 분이 결혼을 앞두고 어떻게 양쪽 부모님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할는지 질문하신 분, 스님께서는 굉장히 현명하게 상담을 해주시고 계신 것 같고, 상담을 하는데 있어서 확신이 있는 것 같은데 무엇에 대한 확신이 있는지 질문 하는분, 아이를 2년전에 잃었는데 아내가 아주 많이 힘들어 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질문 하는분, 고등학교때 미국에 와서 현재 결혼을 했는데, 남편의 폭언과 폭력에 의해 이혼신청을 해놓았는데 남편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고등학교 아이가 한명 있는데 속에 화가 엄청난것 같은데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등 많은 질문이 계속되었습니다. 그중에 한 분께서는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자꾸만 생기는데 어떻게 하면 그 걱정을 떨쳐버릴 수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자식을 가진 부모는 대부분 자신의 아이가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인물이 좋고 , 똑똑하고, 공부를 잘 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런 아이는 누구나 다 좋아하고 키우고 싶어 합니다. 이웃집 아주머니나 아저씨도 이런 아이는 좋아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이웃집 아주머니나 아저씨만 있습니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면 이웃집 아주머니나 아저씨는 그 아이를 걱정하고 싫어합니다. 여기서 바로 진짜 부모냐 아니냐가 구별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자식을 금쪽 같이 여기는 것이 엄마입니다. 어떤 장애를 가졌건, 어떤 문제가 있건 없건 모든 아이들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낳아 내가 키우는 자식이 어떤 문제가 있든 좋고 나쁘고를 따지면 이미 부모가 아닙니다. 어떤 아이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 확신이 확고해야 합니다. 부모의 요구에 맞게 하려면 아이는 열등감을 갖고 힘에 부친 삶을 살게 됩니다. 그 아이의 상황에 맞게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부모의 자식 사랑입니다. 아이의 특성에 맞춰서 그것에 맞게끔 키우고 알맞은 상황을 만들어 줘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아이도 스무 살이 지나면 독립,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아이가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됩니다. 부모가 아이의 어떤 부분을 문제로 삼으면 아이에게 열등감이 생깁니다. 내마음으로부터 자식이 진정으로 자랑스러워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가식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그 분의 종교가 무엇인지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질문자 분은 크리스천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세요. 다른 집에 태어났다면 사랑받지 못했을 텐데, 저희 집에 태어났으니, 주님이 우리를 아무 대가없이 사랑하셨듯이, 저희 또한 이 아이에게 아무런 대가없는 사랑을 베풀겠습니다. 이 세상에 지위나 돈과 관계없이 천하고, 가난하고, 차별받고, 내처진 사람에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사랑을 베푼 것이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징벌이 아닌, 포용하고 안아가는 사랑입니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너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다고 했으며, 불교에서 보자면 이 세상에 버려진 사람들에게 네가 바로 부처이다.,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사상의 사상입니다. 이렇게 아이를 온전하게 껴안으십시오 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진심에서 우러난 박수 소리가 잔잔하게 장내에 울려 퍼졌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우리는 이런 저런 이유로 자기를 내팽개 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인간은, 모든 생명은 모두 부처라고 말씀하시며,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변수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유지해 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질문에 대한 답변들은 모두 하나하나를 다 소개해 드리고 싶을 정도로 감동이 있었고, 질문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그만큼 청중들과 스님은 공감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기꺼이 강연회 장소를 후원해 주신 성공회 성당 관계자 분들과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모임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끝나는 그 시간까지 식지 않은 즉문즉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날 있을 L.A. 오렌지카운티 지역의 즉문즉설 강연을 기대하며 오늘의 강연은 10시 무렵 끝났습니다. 많은 분들의 질문이 이어지고, 스님께서 설법해주시는 사이 세 시간 정도의 시간이 너무나 훌쩍 지나갔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많은 분들이 스님께 사인을 받기 위해서 길게 줄을 섰습니다. 벤쿠버는 젊은 유학생 및 청년들이 참가를 많이 하였고, 질문도 많았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청년, 장년층의 참여가 많았고, 부부나 연인등 커플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많았고, 질문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튜브등을 통해서 이미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었고, 또는 나름대로 기도를 해보고 있었던 터라 스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그런지 청중들의 호응과 공감이 아주 높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준비해놓은 책들이 거의 다 판매되었고, 일부 책들은 없어서 판매를 못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통해 많은 분들과 더 가깝게 인사를 나누시고, 오늘의 즉문즉설 강연 일정을 마치셨습니다. 이제 오늘 강연을 준비한 자원활동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나니 10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준비를 한 모든 자원봉사자들에게 수고하였다고 감사의 인사를 하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으나 11시가 넘었습니다. 돌아와서는 스님께서는 아직 다 못한 원고교정을 보고, 저희는 샌프란시스코 정토법당의 총무님 및 각팀장들과 함께 행사 후 공감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지난 6월 행사에 이어서 9월 행사를 준비하였는데, 모든 것에 있어서 역량이 커진 것 같다고 다들 좋아하였고, 장소와 음향과 모든 것들이 애쓴 만큼 잘되어서 모두들 기뻐하였습니다. 그렇게 나누기를 하고나니 2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나누기를 끝내자 스님께서는 1층으로 내려오셔서 식탁에서 아직 다 끝내지 못한 원고교정을 하셨습니다. 저희는 내일 아침 6시30분에 공항으로 출발해야 해서 먼저 짐부터 정리를 하고나니 2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저는 원고를 보고 계시는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원고교정을 마쳐야 하니까 아마도 밤을 새울 것 같습니다. 내일은 미주지역에서 가장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LA지역으로 갑니다. 내일 LA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샌프란시스코nbsp즉문즉설 강연 현장 스케치는 샌프란시스코 정토법당의 이승용보살님께서nbsp도움 주셨습니다.

2013.09.07. 16,833 읽음 댓글 8개

2013.9.3 벤쿠버 강연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서 예불 준비를 하고, 법륜스님과 함께 5시부터 아침예불과 천일결사기도를 하였습니다. 아침기도를 마치고 벤쿠버로 갈 짐을 꾸려 총무님댁으로 이동하여 아침식사를 하고 업무를 보신 후에 오전 9시에 저희들은 벤쿠버로 출발했습니다. 그동안 시애틀에 왔을 때는 날씨가 화창하였는데 새벽부터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가 쌀쌀하여 스님께서도 감기기운이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국경을 통과하여 12시 20분경에 벤쿠버 근교 벤쿠버 정토법당이 있는 Surrey 지역에 도착하였습니다. 법당에 도착하니 총무님과 신도님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법당에 가서 참배를 하고 기다리고 계시던 신도님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께서 지난 6월에 이어서 9월에 또다시 강연을 준비한다고 수고가 많으시다고 격려를 하시고, 바로 아래층 식당으로 가서 신도님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으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점심식사 후에 바쁘신 가운데 스님께서 잠시 시간을 내어서 신도님들과 함께 벤쿠버 정토법회를 이끌어 오신다고 수고하신 많은 분들의 노고와 문영신보살님 내외분의 수고와 노력에 대해서 깊은 감사를 표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재 벤쿠버 정토법회에서 도반들끼리의 약간의 갈등과 어려움이 있으니 이에 대해서 서로 허심탄회하게 나누기를 하면서 앞으로 벤쿠버 정토법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함께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하는 가운데 도반들끼리 갈등과 어려움이 있으면 어떻게 수행의 관점을 잡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니, 그동안의 힘듦이 힘듦이 아니라 비온뒤 땅이 굳듯이 벤쿠버 정토법회가 벤쿠버와 캐나다 전법의 중심이 되기를 희망하였습니다. 잠시시간을 낸다는 것이 오랜만에 법륜스님을 모시고 진지하게 마음나누기를 하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하고 저희는 강연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스님께서는 그동안 벤쿠버 정토법회를 이끌어 오신 문영신 보살님 내외분의 댁을 방문하여 대화를 하시고 함께 강연장으로 오셨습니다.지난 6월 밴쿠버 강연 때에는 행사장이 작은 관계로 많은 분들이 되돌아 가셔서 안타까움이 컸던 관계로, 이번 행사는 예전 행사장의 두배가 넘는 약 500명 좌석 규모의 새로운 행사장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토회 신도분들 및 외부 서포터즈들은 오후 3시 반부터 행사장에 속속 도착하여 주차장 점검 및 접수 데스크 세팅등 본격적인 밴쿠버 희망 강연 준비를 진행하였습니다. 저녁 강연 관계상 끝나는 시간이 너무 늦고 강연 후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혼잡함을 덜고자 스님께서는 행사 시작 20분전 책 사인회를 하였습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 첫날이라는 우려 속에서도 약 420여분이 참석한 가운데 밴쿠버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이 성황리에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어제와 같은 주제로 기조강연을 해주셨습니다. “요즘 한국기후가 국지성호우, 국지성가뭄, 국지성열대야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나는등 기후변화의 징후가 확실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구의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한 우리가 에너지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 결과로 CO2를 너무 많이 배출하여 온실가스에 의한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고도 볼 수도 있습니다. 다수의 의견은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추정하며, 이산화탄소의 과다발생에 의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지난 300여년 동안 우리는 많은 발전을 이루어왔습니다. 제가 어렸을때를 기준으로 하여보면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천국에서 살고 있다고 할 만큼 아주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개울에 흐르는 물은 마실 수 있을 만큼 깨끗했습니다. 물을 사먹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잘한다고 한 것이 꼭 결과가 좋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게 과연 발전인가 이제 재점검을 해보아야 합니다. 기후변화는 한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의 문제이며, 따라서 전세계가 협의를 하고 협력을 해야 합니다. 가장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인 미국과 중국이 제대로 협력을 하지 않으니 다른 나라들도 다 안할려고 합니다. 기후변화는 우리에게 심각한 위험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기후얘기를 여기서 할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이민도 오고 유학도 왔습니다. 어렸을 때보다 어른이 되어서 훨씬 더 행복한가 살펴보았을 때 잘살려고 수십년동안 노력을 하였는데, 출발점인 어린시절보다 못하다면 헛살은 것입니다. 그동안 쌓은 지식, 돈, 경험, 지위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식,돈,경험,지위등이 인생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행복으로 가는 핵심이 아니라면 행복으로 가는 길은 무엇인지 잠시 내려놓고 내 인생의 길을 다시 점검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따라서 내 인생도 인류문명도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점검이 필요하지 않냐 생각합니다. 자유와 행복으로 나아 갈려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그것이 무슨 질문이든 상관없이 질문을 한번 해보세요.“ 라고 하시면서 기조강연을 마쳤습니다. 원활한 강연 진행을 위해 약 14명의 사전 질문자들이 접수된 가운데 새로운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재의 직업을 병행하기 힘들어 하는 분, 아버지와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인 분,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왔지만 막상 귀국할 때가 되니 취업이 걱정인 분,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비굴함을 느낀다는 분등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 중에서 16살된 아들이 너무 긴 시간 컴퓨터를 사용하고 불규칙적인 생활로 지각이 잦은 것에 대해 질문자는 화가 나고 아들을 고치고 싶지만 아내는 막상 그 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 자리에 같이 나와 있던 아내 분에게 마이크 앞으로 나오시라고 하시며 왜 엄마로서 아들의 문제에 대해 그렇게 행동했는지 물으셨습니다. 대답을 하는 과정에서 엄마는 지난 10년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해결이 되지 않아 차라리 마음 먹기를 아이가 건강하고 학교에 아직 다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스님께서는 아이에게 가장 나쁜 것은 부모의 의견 불일치라고 하시며 두분이 먼저 합의를 하고 합의대로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때, 그 문제를 포기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일들을 시도해보는 것이 오히려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도 지적해 주셨습니다. 아이 둘과 병든 시부모님 그리고 남편을 한국에 둔 채 홀로 캐나다에 와서 살고 계신분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먼저 캐나다에 나와 있지만, 병든 시부모님을 돌보지 못하고, 아이들의 보살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많이 들지만 아이들은 한국에서 엄마가 있는 캐나다를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서 이 중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것이 사실은 본인이 캐나다에서 더 지내고 싶은 욕심을 아이들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특히 이런 문제를 스님께 질문했을 때는 어느쪽을 택하더라도 후회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양쪽 모두에 욕심을 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럴때는 복잡하게 생각할 부분이 아니고 동전을 던져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단지 선택을 하면 되는 문제이지 아이들이 이 고민에서 문제의 원인이 아님을 본인이 깨닫는 것이 핵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13명의 질문자들과 질의응답 마치고 마지막 질문자 순서가 되었습니다. 젊은 여자분은 캐나다에 남자친구와 입국하여 서로 함께 살고 싶어서 현재 1년 예정으로 지내는 중인데 막상 남자친구와 살다보니 모든 생활이 남자친구 위주로 돌아가는 것이 불만이며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부모님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질문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본인이 스스로의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함을 강조하시며 남은 1년의 기간 동안 남자친구와 상관없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같이 사는 시간과 역할들에 대해서는 남자친구를 위해서 밥을 하더라도 그 시간이 나의 요리시간이다. 즉 내가 중심이 되어 시간을 활용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꿔야한다고 하셨습니다. 힐링캠프의 영향이 큰지 참석자들 중에서 청년들의 참여가 아주 많았고, 청년들의 질문도 많았습니다. 법륜스님께서 청년들의 멘토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로 고민을 하고 답을 하니 강연장이 생동감이 있고, 웃음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예정된 2시간을 훨씬 넘겨 약 2시간 45분에 걸친 긴 강연과 시차에도 불구하고 스님께서는 지친 기색 없이 다시 책 싸인회를 가진 다음 봉사자들과의 단체 사진 촬영 후 10시 20분이 넘어서야 씨애틀로 다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남은 봉사자들은 행사장 뒷정리 후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 나누기를 하며 이번 강연 준비를 통해서 잘 되었던 점, 아쉬웠던 점을 서로 나누면서 다음 행사를 위한 큰 자산이자 봉사자 모두의 역량을 키우는 중요한 계기가 됨을 함께 공감하며 밴쿠버 강연을 마감하였습니다. 이렇게 행사후의 마음나누기를 하고 씨애틀 정토회 총무님댁으로 돌아오니 새벽 2시30분이 넘어섰습니다. 내일은 씨애틀과 밴쿠버 지역에서 활동하는 자원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자원활동가 수련이 시애틀정토법당에서 예정되어 있습니다.

2013.09.05. 18,280 읽음 댓글 7개

2013.9.2. 미국으로 출국

오늘은 스님께서 미국 강연을 위해 시애틀로 출발하는 날입니다. 그럼에도 아침 7시 30분부터 일정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9시, 10시 30분, 11시 30분, 오후 1시까지 5개의 모임소화한 후 오후 3시에 인천공항으로 출발하셨습니다.nbspnbsp 어떤 분은 스님께 짐은 언제 싸냐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이번에 9월2일부터 26일까지 미국 전역을 다니면서 25회의 순회강연을 하실 예정입니다. nbsp 미국에서 소식이 오는대로 올려드리겠습니다.

2013.09.04. 16,229 읽음 댓글 13개

2013.8.15. 민족의 영산, 그리고 웅장한 백두산

오늘은 백두산에서 하루종일 보내는 일정이었습니다. 다들 들뜨고 신나했습니다.nbsp 새벽 3시에 장백에서 출발한 버스는 백두산 자락을 따라 이도백하로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백두산 자락을 따라 고개를 넘어 백두산의 서쪽인 송강하를 지나 북쪽 아래인 이도백하로 가는 이 길은 해발 1,000미터를 거의 수평으로 계속 달리는데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곳은 없을 것이라고 감탄하십니다.nbspnbsp 백두산은 260만년전에 화산이 분출해서 생긴것이라고 합니다. 화산이 여러차례 폭발하고 함몰되고 또다시 폭발하기를 반복하면서nbsp고인 천지는 칼데라 호에 해당합니다. 천지는 해발 2,200미터에 위치하며nbsp수심이 384미터로 서해바다 어떤 곳도 이렇게 깊은 곳이 없다고 합니다. 천지는nbsp동서가 좁고 남북이 긴 타원형으로 남북의 길이는 4.95km 정도이며, 동서의 길이는 3.35km 정도입니다. 천지의 물은 60가 지하수이기에nbsp비룡폭포의 물량이 가뭄이어도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아침을 먹고 백두산 북쪽으로 갔습니다. 오늘은 햇볕이 쨍쨍합니다. 북문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백두산의 정상에는 약간의 구름이 걸려 있었습니다. 표를 끊고 천지로 가는 짚차를 갈아타려고 중간 승차장에 내리니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천지가 있는 봉우리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고 구름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올라가도 천지를 볼 가능성이 없기에 비룡폭포부터 가기로 했습니다. 비룡폭포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참가한 학생들은 천지를 못볼까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비룡폭포에서 스님과 참가자들은 한명씩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구름이 점점 아래로 내려와 비룡폭포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nbsp 비룡폭포를 나와 소천지로 향했습니다. 소천지는 작은 천지라는 뜻으로 주변의 경관을 그대로 호수에 담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운데, 오늘은 역시 비가 내리고 있고 소천지로 흘러드는 물이 많다 보니 수면이 일렁거려 주변경관을 비추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소천지 주변을 한바퀴 돌아서 다시 녹연담으로 갔습니다.nbsp 녹연담은 물이 매우 맑고 깊어서 물색이 짙은 녹색을 띄고 있었습니다. 녹연담에 떨어지는 2개의 폭포도 작지만 예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녹연담을 둘러본 후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는 동안 조별로 스님과 김제동씨와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nbsp 그런데, 구름을 걷히기를 기다리는데, 오히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비를 피해 기다리다가 비가 좀 잦아들자 천지를 가기는 어렵고 바로 지하산림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은 천지로 가는 짚차가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지하산림으로 이동했습니다. 지하산림으로 가는 동안 비는 더 세차게 내렸습니다. 비와 안개로 지하산림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nbsp 지하산림에서 나오니 해가 나기 시작합니다. 하늘을 보니 해는 나지만 구름이 하얗게 덮여 있습니다. 혹시나 천지에 갈 수 있을지nbsp다시 물어보니 오늘은 천지로 올라가는 것이 폐쇄되고 천지에 있는 관리인들도 철수를 했다고 해서 아쉬움을 가지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nbsp 오늘은 8월 15일 광복절입니다. 스님 강의에 앞서 저희들도 간단히 광복절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애국가를 부르고 호국선열들에 대한 묵념하는 시간을 하졌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스님 강의에 이어 김제동씨의 강의도 있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오늘 천지를 보지 못했기에 모레 일정을 조정해서 다시 천지를 볼 수 있도록 해보자고 하니까 참가한 젊은 청년들은 모두 환호를 지르고 좋아합니다. 내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문제없다고 흔쾌히 동의합니다. 오늘은 스님께서는 발해의 역사에 대해 정리해주셨습니다. “발해는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서 잃어버린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 발해의 역사를 다시 우리의 역사로 되찾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의 실학자들에게서부터 입니다. 발해는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 1시간 내지는 2시간을 배우게 되는데, 제 기억에 남는 건 발해 제목하에 석등사진 하나입니다. 내일 가는 흥륭사에 그 석등이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발해유물은 영광탑, 흥륭사 대웅전의 석불좌상, 석등 정도입니다. 최근에는 공개되지는 않지만 벽화와 왕관이 나오고 있고 많은 성터가 남아 있습니다. 발해인들은 스스로 발해역사를 써서 남아 있는 것은 한 점도 없었는데, 정혜공주묘가 발견되면서 그안에 발해역사 기록물이 나왔습니다. 발해인들이 쓴 발해역사기록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nbspnbsp 고구려는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부여를 계승하는 입장을 가졌고, 다물사상이라고 조선의 옛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것을 건국이념에서 밝혔습니다. 고려는 발해의 역사를 건너뛰어 고구려와 연결되어 계승되었습니다. 고려가 분열된 발해와 신라를 제치고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의미도 되고, 분열된 국가를 모두 포용했다는 뜻도 됩니다. 대조영은 동모산에 산성을 짓고 처음으로 나라를 세웠는데, 이것이 698년으로 고구려 멸망이후 30년 만입니다. 발해는 순식간에 고구려 영토를 회복하기 시작하여, 10대 선왕에 와서야 해동성왕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919년에 발해는 거란의 침입으로 많은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925년 2차 침입으로 부여성이 함락당하고 바로 수도까지 함락당하며 926년에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발해의 유민들은 발해의 부흥을 위해 투쟁했지만, 역량이 부족하였습니다. 발해는 이제 우리 역사속으로 편재해서 역사의 정통성을 이어나가야 합니다. 역사의식은 고구려에서 발해로 그리고 고려로 이렇게 이어지고 또 현실적으로는 발해와 함께 신라를 이어 내려갑니다, 이 문제는 다시 와서 남북한을 어떻게 계승해 나갈것인지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어서 김제동씨는 청년들의 눈높이에서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아주 재밌게 풀어주셨습니다. 청년들은 중간중간 박장대소를 하기도 하고 아주 즐거워 했습니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 하고 내일도 새벽 3시에 발해의 유물을 찾아 발해진으로 갈 예정입니다.

2013.08.17. 16,245 읽음 댓글 3개

2013.8.9 역사기행 여섯째날 - 요전자24개석, 상경용천부, 흥륜사, 도문조중국경

오늘도 4시에 발해의 왕성이 있던 상경용천부로 이동하였습니다. 가는 길에 요전자 24개석을 보았는데, 어제 본 강동 24개석과 같은 형태와 비슷한 크기로 요전자 마을의 밭에 있는 것으로 특별히 보호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nbsp 상경용천부에 도착해서 먼저 박물관을 들러 발해의 유물, 유적들도 둘러보고 궁성의 모형을 보고 그 규모를 짐작해 봅니다. 화려했던 옛 명성을 짐작 할 수 있듯이 왕성의 규모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허물어지고 기단부분들만 남았지만, 내성과 외성의 길이나 각 궁궐이 놓였던 기단의 크기를 보면서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잊혀진 발해의 역사만큼이나 유적이나 유물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nbsp 상경용천부는 입구에 오봉루가 있고 그 뒤에 제1궁궐부터 제5궁궐까지 순서대로 있었으며, 기단의 높이도 제1궁궐부터 차례로 낮아지며서 각 궁궐은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중에서 제2궁궐터가 가장 큰데, 아마도 이곳이 왕이 정사를 보던 곳이었을 것 같습니다. 제4궁궐은 온돌까지 발견된 것을 보면 왕의 숙소로 사용하던 곳 이었을 것입니다. 궁내에는 어화원이라는 큰 화원도 있었고 내성과 외성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nbsp 지금은 거의 허물어지고 기초석이나 주춧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이 주춧돌 위로 궁궐이 복원되기를 바라며 우리의 역사에서도 발해의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nbsp상경용천부를 떠나면서 또다시 발해를 그리며 옛 영광을 상상해 봅니다.nbsp 흥륜사는 발해시대의 절로 발해가 멸망한 후 불타 없어졌다가 청나라때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발해시대의 석등, 불상과 청나라때의 돌거북등 유물이 함께 있었습니다 . nbsp 발해시대의 유일한 불상앞에서 공양미를 올리고 법륜스님의 집전으로 사시예불을 올렸습니다. 스님께서 직접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이 하루바삐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며, 또 625 희생자들의 왕생극락을 빌려 축원해주셨습니다. nbsp 점심을 먹고 봉오동전투터로 향했습니다. 봉오동전투터 앞의 개울물이 불어서 도로를 넘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버스가 지나갈 정도는 되었습니다. 봉오동전투터 기념비는 더 잘 정비하기 위해 현재의 기념비를 떼어내고 계단을 쌓는등 공사중이어서 약간은 어수선한 느낌이었습니다. 봉오동전투는 삼일독립운동 후 계속되는 일본의 통치속에 비정규군인 우리의 독립군이 정규군인 일본을 물리침으로써 민족의 사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nbsp 봉오동전투터에서는 이번 역사기행에 참가하신 분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중학생들이 제주가 되어 제사를 지냈습니다. 봉오동전투터에서 전사한 우리의 독립군들은 물론 전쟁의 희생양이 된 일본의 군사들의 영혼까지 기리며, 또 이후에는 이 땅에 전쟁이 없는 평화롭기를 기원하였습니다. nbsp 제사를 지내고 음복을 하고 기념촬영을 한 후 두만강을 따라 한반도 최북단인 온성군 풍서리까지 가면서 다시 북한땅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가는 길에 스님께서는 처음 JTS를 통해 온성군에 농업지원을 하면서 수확량을 3배이상 올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북한은 주체농업에 의해 밀식재배를 했었는데, JTS의 지원으로 중국의 신농법으로 하면서 처음에는 북한 사람들이 이래서 될것인지 걱정하다 오히려 자라면서 가지가 벌어지고 수확량이 더 많아지면서 매우 좋아했던 이야기들을 해주셨습니다. nbsp 다음은 두만강을 따라 걸으면서 중국의 도문과 북한의 온성간 놓인 국경다리를 둘러보았습니다.nbsp 저녁식사를 한 후 그 자리에서 ‘독립운동사’에 대한 저녁 강의가 있었습니다.nbsp “1811년 서북지역 주민들의 불만으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지만, 리더십부재로 관군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1860년 이후에는 전국 곳곳에서 민중의 봉기가 일어났습니다.nbspnbsp 1860년에 최제우 선생이 동학을 만들었고, 1864년에 순교할때까지 짧은 기간 활동했지만, 그 영향력은 매우 컸습니다. 최제우 선생의 뒤를 이어 최시형 선생에 의해 전국적 조직을 만들면서 동학혁명의 기초가 되었습니다.nbspnbsp 조선시대 젊은 지식인층, 즉 개화파는 세계가 빠른 속도로 변화해 가는데 우리만 뒤떨어진다고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개화파들은 일본쪽의 문물을 받아들이자며 일본의 도움으로 개혁하려 했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갑신정변입니다. nbsp 지난 200년간 청나라의 세상이었지만, 청나라는 지는 해였고 일본은 떠오르는 세력이었지만, 떠오르는 세력이 아직 영향력이 약한데 이것을 읽지 못하고 개화파들이 일본의 도움으로 쿠데타를 일으키니 청나라 군대의 간섭으로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국내가 분열되니까 외세에 이용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nbsp 이것은 지금의 우리 현실과도 비슷합니다. 미국은 이제부터는 지는 해이고 중국은 떠오르는 해에 해당합니다. 이때 우리는 어떤 포지션을 취할 것인가는 역사속에서 배움이 있어야 합니다. 떠오르는 신세력과 너무 빨리 함께 하면 세력의 힘에 억압받게 되고, 너무 늦어지면새로운 세력에 침략받게 됩니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기본적으로 자기 주관이 뚜렷해야 하고 자신의 역량을 알고 주변정세를 정확하게 읽어야 구세력과 어떻게 함께 하면서 신세력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nbspnbsp 갑신정변이 일어난지 10년 후 동학혁명이 일어났는데, 왕조의 중앙권력은 이를 무마 하기 위해 전주관찰사를 파면하고 동학이 내건 개혁 10조를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동학군들은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라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2차 봉기를 했지만, 관군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청군에 요청했고 청이 조선에 관여하자 일본군도 들어오게 되면서 청일 양군에 의해 동학혁명은 무참히 패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작게는 30만, 많게는 60만이 학살되었습니다. 동학혁명은 민중에게 엄청난 희망이었지만, 또 그 패배는 엄청난 좌절이었습니다.nbsp 이런 과정속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나 일본이 이기면서 조선에 대한 주도권이 청에서 일본으로 넘어오게 되었고, 고종황제는 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연호를 광무로 정하고 황제로 칭하였지만, 현실적인 역량은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대원군은 개혁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서원을 철폐하고 개혁정책을 시행할 정도로 국내정세는 잘 알았지만, 국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안목이 없었기 때문에 쇄국정책을 씀으로 해서 그의 개혁속도는 세상의 변화속도보다 늦어지다 보니 수구파로 분류되고 반개혁적인 인물로 평가되었던 것입니다.nbsp 조선에 대한 권한을 일본이 행세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간섭을 하는 나라가 미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과 미국이 협의를 해서 미국이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관장하는 것을 서로 인정한 것이 카쓰라태프트 협약입니다.nbsp 두 번째 카쓰라태프트 협약은 해방후 미국과 소련이 남한과 북한을 분할하고 군정을 실시한 것이고, 세번째는 지금 미국은 북의 핵을 중국이 제거한다면 북의 관할권을 중국이 행사하는 것을 미국이 양해하겠다는 분위기입니다. 미국이 중국에 요구하는 것은 미국이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국제 질서 안에 들어오라는 것이고, 중국은 커진 국력에 맞는 국제적인 영향력을 미국이 인정해라는 것입니다. 미국은 중국이 가진 영향력등을 중국이 북핵제거에 협력한다면 고려해서 제3의 카쓰라태프트 협약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nbspnbsp 이처럼 우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읽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는 문제입니다. 1907년 일본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면서 군대출신이 의병에 동참하면서 의병활동이 활발해졌습니다. 1910년에 오면 의병이 몰락하는 분위기로 가니까 국내에서 의병활동하던 사람들은 결국은 포기하거나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러시아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nbsp그렇게 해서 이 만주지역으로 많은 독립투사들이 뜻을 품고 넘어오게 된 것입니다. 용정벌을 중심으로 연변지역은 매우 넓었기에 수십만이 넘어와서 개척했습니다. 논농사는 조선족이 와서 개척한 것이며 이렇게 이루어지니까 이것을 기반으로 학교도 세우고, 독립을 준비하고, 무장을 하면서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된 것입니다. nbsp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3.1독립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결국 비폭력운동으로는 안되는구나 해서 무력항쟁을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1920년 봉오동 전투의 승리로 일본의 압력이 세어지니까 중국은 독립군에게 중국영내에서 나가라고 하고 일본군은 훈춘사건을 일으켜 중국으로 일본군이 들어오게 되자 독립군들은 백두산으로 이동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속에서 독립군들이 화룡 청산리에서 일본군이 추격하는 것을 되돌아서 공격한 것이 청산리 전투입니다. 김좌진 장군이 한 것을 청산리전투라고도 하고 광의의 청산리 전투는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10월 21일에서 26일 사이에 있었던 완루구, 어랑촌, 천수평, 고동하등에서 승리한 전투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1920년대 이 소식은 삼일운동에 실패한 우리 국민에게 엄청난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 지역의 민간인들을 독립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을 학살하는 등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nbsp 이처럼 우리의 독립은 많은 사람들의 피눈물로 이루어졌고, 독립운동사를 보면 어느민족보다 적극적이며 용감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운동도 민족의 독립을 우리손으로 이루지 못함으로 외세에 의해 남북이 갈리게 되고 분단으로 남북이 체제경쟁을 하면서 오히려 많은 독립운동사들의 규모가 축소 되어버렸습니다.nbspnbsp 축소된 규모의 독립운동사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남북의 화해가 필요하고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민족의 독립운동역사가 반쪽이 될지, 온전하게 될지 결정이 될 것입니다.” nbsp우리의 독립운동사가 단순히 이 시기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민중들의 의병활동부터 내려오게 되었음을 다시 한번 새겨보는 시간이었습니다.nbsp 내일은 원래 청산리 전투터, 용정의 대성중학교, 일송정, 대종교 3인묘를 보고 연길에서 전체 마무리를 하고 심양으로 가려고 했으나 그제 백두산 천지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절반정도 되기에 일정을 조정해서 내일 아침에는 좀 더 일찍 일어나고 연길에서 일정을 취소하고 오후에는 백두산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스님께서 사람들의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일정을 조정해서 다시 백두산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2013.08.11. 16,547 읽음 댓글 5개

2013.8.7. 역사기행 넷째날 - 림강, 영광탑, 백두산

새벽 4시에 림강으로 출발하려 했으나 호텔측의 체크가 늦어져서 약 20분이 늦은 채 출발했습니다. 림강은 발해시기에 서경압록부의 소재지로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최근에 림강 부근에서 발해의 유물, 유적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역사기행 참가자들은 시장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아침을 해결했습니다. 중국 서민들의 실생활을 잘 알수 있었고, 우리가 직접 사먹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nbsp 림강을 떠나 압록강을 따라 장백으로 향했습니다. 압록강 건너 보이는 북한은 여전히 가슴아픈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예년에 비해 농사가 잘 되었다고 합니다. 북한의 뙈기밭들은 여전했지만, 그래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였고 예전보다 활발해 보였습니다. 압록강 건너 보이는 북한의 뙈기밭은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예년보다는 조금 나아보인다는 스님의 말씀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압록강을 따라 가면서 보이는 북한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북한은 자기가 농사를 지어도 자기것이 되지 않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데 소홀하게 되고 수확량이 떨어지게 되고, 개인은 먹고 살기 위해 집주위 산을 개간해서 농사를 지어 자기것이 되기 때문에 열심히 짓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자기것이 되어 좋지만, 국가적으로는 손실입니다. 그래도 북한 주민들이 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에 살아남은 것도 다 이 뙈기밭 덕택입니다. nbsp 북한이 계속적으로 식량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현재는 농업생산량의 배분을 바꾼다고 합니다. 생산량의 70는 개인이 처분 가능하고, 나머지 30에 대해서 정부가 공급하는 농자재에 대해 감가하고 남으면 농민에게 현금으로 배분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한꺼번에 시행한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30만 개인이 처분했는데, 이제는 70로 바뀌었습니다. 북한의 관리들도 북한의 농업 시스템이 이렇게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회의를 하면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하는 소수가 주장을 강하게 하면서 제대로 시행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nbspnbsp 역사적으로 볼 때 전쟁이 나면 끝까지 싸우자는 사람들이 있고, 타협하자는 사람들이 있는데, 역사속에서는 싸우자고 하는 사람들이 잘했던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고통받는데도 끝까지 싸우자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nbsp 90년대 후반에 북한 난민을 수도 없이 만나고 이야기 해봤을 때, 이념과 현실은 차이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백성들을 팽개치고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난민들을 만나고 가장 가슴 아팠던 말이 ‘다 죽고 지혼자 왕하면 뭐하노?’라는 말이었습니다.”라는 스님 말씀에 다시한번 북한의 굶주리는 사람들이 스쳐지나 갑니다.nbsp 압록강 건너 북한땅을 보면서 스님의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북한의 혜산이 내려다 보이는 영광탑까지 왔습니다.nbsp영광탑은 발해시기의 탑으로 그 밑에는 무덤으로 되어 있습니다. 준비해 간 제물을 차려놓고 간단히 예불을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압록강 건너 혜산이 바로 눈앞에 보였습니다. 북한을 가장 가깝게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건너 보이는 혜산은 강변에 벽을 쳐서 제대로 보이지 않게 해 놨지만, 강변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nbsp 점심을 먹고 난 후 백두산 남편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는 중에 슬픈 소식 하나를 들었습니다. 며칠전 내린 비로 백두산 남편이 폐쇄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문입구까지 갔다가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서문으로 이동했습니다. 여기서도 시간이 늦어서 입구에서 모형을 보고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nbsp 백두산은 내일 북문으로 갈 예정입니다. 만약 비가 온다면 이 또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역사기행은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찾아가는 것이지만 그래도 최고의 묘미는 백두산 천지를 보는 것인데, 아쉬움이 많습니다. 혹시나 내일 비가 오면 어쩔까하는 걱정도 됩니다. nbsp 오늘 백두산 천지를 보지 못한 관계로 숙소에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북한에 대한 스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압록강을 따라 가면서 북한의 산하, 마을,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중간중간에 스님의 설명을 듣긴 했지만, 오늘 저녁 강의를 북한을 주제로 스님께서 정리해주셨습니다. “북한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것이건 부정적인 것이건, 사실대로 접근해야 합니다. 일제 시대와 분단이 연관이 돼 있어서 제대로 평가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nbsp 1920년까지 독립운동의 주류는 대종교였고, 1930년 이후는 민족주의 독립운동은 소수였고 사회주의 계열이 주류였습니다. 상해임시정부가 유명무실해지자 무장투쟁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 공산당으로 편재되어 독립운동에 가담했습니다. 일단 조국의 독립을 위해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국내 다수 국민들은 소작농 철폐등 사회주의가 당시 시대의 주류였습니다. 해방 후 남쪽은 미군정이 북쪽은 소련 군정이 들어섰는데, 서로 경쟁 상대가 된 것입니다. 해방이 되었지만, 문제는 해방의 주도 세력이 미국과 소련 외세였지 우리가 아니었습니다. 독립을 우리가 당당히 했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분단 자체가 우리 책임은 아니지만, 미국은 미국에서 활동했던 이승만을 추천한 것이었고, 소련은 5년 정도 하바로브스크에 와서 소련군으로 활약했던 김일성을 내세운 것입니다. 외세의 힘이 강력한 상황에서 김구, 조만식 등 외세와 함께 하지 않았던 국내 세력은 클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nbsp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한은 부정선거등 각종 문제들이 많았지만, 경제개발에 성공해서 1970년대 들어서 남북한 세력이 비등비등해지니까 서로의 체제를 인정한 위에 통일문제를 협의 하게 된 것입니다. 남쪽은 각각 독자적으로 국가를 유지하는 통일에 대한 원칙적인 통일인 연합제를 주장하고, 북쪽은 연방제를 주장했습니다. 7.4남북공동선언에서 세 가지 합의를 한 것입니다. 이때까지도 북한이 공세적인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북한은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는 올림픽이 끝나자 민주화운동도 성공해서 체제의 정당성이 강해졌습니다. 북한은 1989년에 세계청소년축전을 88서울 올림픽에 견주어서 과도하게 평양을 건설하면서 재정이 악화됐고, 주체농법, 자립경제가 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nbsp 거기다 결정적으로는 소비에트와 동유럽이 붕괴되어 북한 경제가 중대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치명적인 것은 에너지 공급이 멈춘 것이었습니다. 전기가 안 들어오니까 석탄을 못 캐고, 탄광이 무너지고, 탄을 못 캐니 다시 발전소를 못 돌리고 이렇게 악순환인데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자본주의 세계와 거래를 할수도 없었습니다. 북한이 대량아사가 발생한 것은 첫째는 북한정부의 잘못이지만, 둘째는 남한 정부의 잘못도 있습니다. 또,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장기전을 한 것도 북한경제의 몰락을 가속화한 것입니다. 현재 북한의 경제와 사회는 붕괴된 상태였고 정치와 군사는 아직 굳건한 상태인 것입니다.nbspnbsp 북한의 긍정적인 점을 얘기하면 보수세력은 친북이라고 하고, 북한의 피폐한 점을 얘기하면 북한과 남한의 진보세력은 반북이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친북, 반북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 위에서 접근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한의 과거 긍정적인 점은 인정하고 그리고 내부 모순이 심해지면서 인권문제등 부정적인 면도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nbsp 북한은 통일해야 할 대상인 동시에 현실에서는 최대 적대적인 당사자라는 이중 모순이 있습니다. 남북간 화해, 교류, 협력을 하되 북한의 도발에는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합니다. 체제유지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면서 북한을 우리 민족사 내부로 어떻게 포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서민들은 인도적 지원을, 중상층 사람들은 남북경제교류로, 최상류층은 신분보장을 해주고 체제보장을 해주어야 통일의 길을 열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남쪽의 우파가 통일을 위해 북쪽을 포용해주어야 합니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포용에서 시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힘있는 우리가 끌어안으면서 가면 신라가 가야를 통일할 때처럼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은 현재 아무리 통일을 얘기해도 통일보다는 체제유지가 급해서 남쪽이 주장했던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자는 것에 남북연합의 큰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도 성장동력이 소진된 현재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북한을 껴안고 가야 합니다. 인도주의 측면, 과거 아픔을 청산하는 측면, 미래의 비전을 만드는 측면,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측면, 평화를 완전히 정착시키는 측면 등 10가지, 20가지를 잡아도 남북한이 통일해야 합니다. 젊은세대는 통일에 부정적인데, 미래의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 통일이 어떤 이익을 가져오느냐가 새로 검토돼야 합니다.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새롭게 통일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기행은 이런 기본 인식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고단한 몸을 끌고 이렇게 역사의 현장을 찾아 다니는 것입니다.” nbsp 스님께서는 북한에 대한 상황도 이해하고 남한의 상황도 이해하면서 서로 양보하고 힘을 합해 나가야 할 것에 대해 당부하시면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역사기행을 다니는 것도 이런 통일운동중의 하나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 내일은 오늘 보지 못한 백두산 천지를 보기 위해 다시 백두산에 오를 예정이며, 오후에는 발해의 유적지를 돌아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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