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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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5. 베를린 강연

오늘 새벽 3시30분에 잠을 잔 관계로 오전 6시에 기상하여 짐을 꾸려 1층으로 내려와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7시에 김용태 거사님이 운전하는 벤을 타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출발했습니다. 김용태 거사님은 라이프찌히에 살고 계시는데 8일 동안 저희를 태우고 함께 강연에 다니기 위해서 어제 라이프찌히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내려오셔서 저희와 합류하였습니다. 아침기도를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모두 아침예불과 천일결사기도를 하였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비가 내렸는데 오늘 오전에는 어제밤보다 훨씬 더 비가 많이 오니 고속도로를 운전하는데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독일은 미국이나 한국에 비해서 훨씬 친환경적인 나라인데, 그 대표적인 예가 도로를 따라가면서 계속되는 풍력발전기와 태양열전기를 만들어 내는 태양열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스님께서 9시 정도에 옛날 서독과 동독을 가르는 경계지역을 넘어선다고 말씀을 해주셔서, 독일이 동독과 서독이 합심하여 통일독일을 만들어 낸 것처럼, 저희들도 남북이 서로 합심하여 통일 한국을 만들어 내기를 발원하면서 잠시 숙연한 마음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기도 했습니다. 휴게소에 들렀을때, 스님께서 독일 및 유럽지도를 펴고 이번 강연을 할 8개 도시를 도는 루트를 가르쳐주시면서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중서쪽에 위치해 있고, 베를린은 독일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대략적으로 독일의 각 도시와 유럽 도시를 지도속에서 살펴보기도 하고, 어제 행사뒤에 남은 김밥과 김선희 총무님이 준비해 온 김치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스님은 한국이나 독일에서나 늘 길 위에서 김밥을 드실 모양이십니다. 거의 1시경에 오늘 묵을 숙소인 이희정 총무님 아파트에 도착하니 몇몇분들이 반갑게 다가와서 스님께 인사를 합니다. 바로 집으로 들어가서 총무님과 베를린 신도님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다들 물품을 챙겨서 오늘 행사장으로 가고, 저희는 각자 휴식도 취하고 업무도 하였습니다. 오늘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5시에 강연이 열리는데, 스님은 4시 40분에 행사장에 도착하여 신도님들과 미리와서 책을 구입하고 행사장을 둘러보고 계시는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강연장소가 강의실인데 350석정도가 되어 보여서 얼마나 모일지 궁금했는데 강연이 시작되니 반 이상이 차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면서 “나는 좋은데 남이 손해가 나는 일은 지속성이 없습니다. 반드시 나쁜 과보가 따릅니다. 그리고 남은 좋은데 내가 손해 보는 것도 지속성이 없습니다. 이분들은 주로 참고 인내하기 때문에 개인은 행복하지 못하고, 또한 오래 지속할 수도 없습니다.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지속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 희생을 한 사람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것은 원래부터 지속성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는다, 용서한다는 것은 지속성이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인욕은 참을 것이 없는 것이고, 진정한 용서는 용서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는 다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속가능하려고 한다면 나도 좋고 남도 좋고, 나도 이익이 되고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이고, 이런 조건을 갖추면 우리가 진리라고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는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하였으며, 위의 요소를 갖추면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이 요소를 갖추지 못하면 언젠가는 과보가 돌아오게 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얘기는 종교, 과학, 불교, 기독교 이런것을 따지지 말고 그것이 가능하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것만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라고 첫 서두를 열었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질문하였는데, 어제 프랑크푸르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주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질의응답이 이루어졌습니다. 1. 저는 30살 된 지적장애우인 여동생이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때 부터 여동생을 봐왔고 함께 생활해서 여동생이 이상하지 않고 편하고 평범하게 여겨지는데, 최근에 결혼할려는 여자친구가 이것을 알고 부담스러워하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현재 생각도 정리할 겸 여행을 와 있는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지, 제가 좀 덜 좋아하더라도 이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2. 베를린에 살고 있는데, 하는 일마다 최근에 안좋은 결과가 나와서 포기하고 싶을 때 스님께서는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이겨나가는지 궁금합니다. 3. 독일에 온 지 40년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발효효소가 좋다고 하여, 유익하다고 하여 저도 매일 베를린에서 발효효소를 만들어서 먹고 하는데 몸속에서 물하고 섞여서 반응하는 것과 공기속에서 반응하는 것이 어떻게 같은지 다른지 궁금합니다. 4. 작년에 전역을 하고 베를린으로 왔는데, 이제서야 어렴풋이 꿈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기부여를 받아서 꿈을 이루어야 할 것 같은데 절박함이 부족한지 동기부여가 잘 안됩니다. 그래서 절박함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5. 베를린에 온 지 6개월 되었는데 공원도 많아서 산책도 많이 하게 되고 사유의 시간을 많이 즐기고 있습니다. 한국의 절에 가면 생각도 정리하고 산책도 하고 해서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독일에 오니 절이 없어서 갈 곳이 없는데 스님께서는 유럽이나 독일쪽에 절을 차릴 생각은 없는지요? 6. 인터넷으로만 스님법문을 듣다가 이렇게 직접 듣게 되니 너무 반갑습니다. 간호원으로 40년을 살고 있는데 이제 이곳이 한국보다 더 많이 살았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도 알고 있는데 마음 한가운데는 허전함이 있습니다. 이 허전한 마음을 떨쳐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런지요? 와 같은 질문들이 나왔는데 어떤 질문에는 간단하게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도 있었고, 어떤 질문에는 단호한 경책과 질책도 있었고, 또 어떤 답변은 자상하게 대답해 주실 때도 있었는데 모두 질문자와 상호 교감을 하면서 듣는 청중들인 저희는 아주 즐겁고 유쾌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첫번째 내용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질문자는 입에 쓰지만 몸에 좋은 약을 먹겠습니까? 맛도 좋고 빛깔도 좋지만 나중에 해로운 마약을 먹겠습니까? 질문자는 상대가 좋지만, 그 상대는 질문자의 무엇을 보고 결혼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인물도 잘생기고 훤칠한데요. 거기다 학벌도 있고 직장도 좋고 하니까요. 그런데 장애동생을 보고 부담스러워 했다지요. 상대방이 떠난 것은 여동생 때문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더불어 고통을 나눌려는 마음이 없어서 입니다. 살다가 질문자가 다치거나 직장을 관두거나 안좋은 상황이 오게 되면 그 사람은 떠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같이 살기보다는 그냥 친구로 사귀면 될 것 같습니다.” 라고 스님께서 답변을 하자 질문자가 “보기도 좋고, 맛도 있고, 몸에도 좋은 것은 없을까요?” 라고 하니 모든 청중들이 와 하고 웃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다시 “그 여자와 결혼을 하고 그 과보를 받으면 됩니다. 상황이 나빠져서 헤어질 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한번 살아봤으니 감사할이라고 하면서 과보를 기꺼이 받으면 아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여자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약 같은 것을 좋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선택에 따른 과보를 기꺼이 받아 들이면 됩니다. 몸에도 좋고 기분도 좋아지게 하는 그런 재주가 저에게는 없습니다.” 라고 하니 질문자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라고 답하면서 자리에 앉으니 스님께서nbsp “사람이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태어남에 의해서 주어진 것을 가지고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인종, 성별, 장애, 성소수자등의 이유로 차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체장애로 태어났더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자의 여자친구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변화된 여성은 아닙니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서 장애이거나 공부를 못하게 되면 제 아이라도 미워하고 한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자친구라면 몰라도 결혼하기에는 썩 적합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여동생한테 감사할 일입니다. 내가 부족한 눈을 가졌는데 동생으로 인하여 미래의 불행을 미리 막은 것이 되었으니까요. 그렇다고 그 여자분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라고 조금 더 보충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190명이 참석했는데 이전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합니다. 이전에는 70여명정도가 왔는데 이번에는 두배이상 참가했다고 하면서 행사를 준비한 모든 자원봉사자들이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질문자가 비교적 적어서 오늘은 좀 빨리 끝날 줄 알았는데 강연이 진지하여 5시에 시작한 강의가 7시35분에 마쳤습니다. 모두들 큰 박수로 스님께 감사를 드리고, 스님께서는 책을 구입한 모든 분들께 사인을 해주시고 함께 사진을 찍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도 역시 장거리에서 오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한 가족은 주말이라서 베를린에 호텔을 잡았다고 하시면서 스님을 뵙고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폴란드에서 7시간 걸려서 왔다고 하면서 아이들도 함께 기쁘게 스님과 사진을 찍고 갔습니다. 그리고 작센주의 주도인 드레스덴에서 오셨다는 분들도 2시간 걸려서 왔는데 곧 미국 뉴욕으로 이사 간다고 하면서 미국에 오면 연락을 주겠다고 하여 기쁜 마음으로 미국 오면 연락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스님의 법문으로 전세계에서 정토행자라는 이름으로 만날 수 있음이 참 기뻤습니다. 강연중간에 스님께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님이 와 계시는 것을 보고 사인회가 끝나고 나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님과 그리고 한국에서 현재 독일로 방문교수로 와 있는 연세대학교 박명림 교수님과 또 방문 중인 북한대학원대학교 이우영 교수님 부부 분들과 만나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행사 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오늘 자원봉사를 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에 근처의 식당으로 이동을 하여 식사를 하고, 내년 유럽강의 계획도 얘기하면서 모두들 지도 법사님과 2년만의 즐거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아쉬운 작별의 시간을 하고, 저는 스님과 함께 숙소로 오고, 오늘 자원봉사자들과 묘덕법사님, 이희정총무님, 그리고 뒤셀도르프의 김선희 총무님은 행사에 대한 평가 및 행사를 준비하면서 좋았던 점, 힘들었던 점, 개선해야 할 점등을 나누기 위해 법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김용태 거사님과 숙소로 돌아오니 그래도 10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저는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였습니다. 내일은 오전 10시에 함부르크에서 강연이 있기 때문에 새벽 5시에 함부르크로 출발합니다. 내일 함부르크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3.10.06. 18,613 읽음 댓글 7개

2013.9.24. 워싱턴 DC미팅 및 메릴랜드 강연

오전 5시에 기상하여 저도 밀린 업무와 스님의 하루도 작성하고 도반들과 함께 천일결사 기도도 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으니 짐을 꾸리고 할 필요가 없어 아침시간이 조금 여유롭습니다. 아침식사를 하고 오늘은 8시 15분에 DC로 출발하였습니다. 오전에는nbsp모두 상원 외교위 전문 보좌관들과 미팅이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차가 막혀 겨우 제 시간에 미팅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첫 미팅은 상원외교위원장 보좌관과의 만남이었는데 존케리 위원장이 국무부장관으로 가고 전문보좌관이 바뀐 후 두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자료를 나눠주고, 북한의 식량상황, 경제 상황등에 대해 얘기를 했습니다. 스님과 미팅을 하는 분이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에 대한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에 대해 감사한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도 이산가족상봉이 취소된 이유와 킹 대사의 방문취소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이분들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만 스님께서는 그들 입장에서 왜 그렇게 했는지 설명해주었고, 의회에서는 현재 시리아 문제와 중동 문제로 북한문제는 거론할 여유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nbsp 첫 미팅을 마치고 다음은 메릴랜드 주상원의원인 벤카딘 의원의 한반도 보좌관과의 미팅을 가졌습니다. 올해가 한미동맹 60주년 기념이라서 지난 일요일에 케네디 센터에서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공연이 있어 남편과 함께 공연을 다녀왔는데, 남편은 사물놀이를 처음 보았는데 너무 좋았다고 하면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곳에서도 스님께서 북한상황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북한주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재개와, 북한의 핵문제 풀기위해서는 북미간의 직접 대화가 필요함에 대해 스님의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여론이 팽배하므로 국내 정치상황을 고려하여 미국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북한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역으로 얘기하니 정말 정치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제 국무부와 오늘 의회를 방문하고 보니 정말 북한 문제가 뒷전으로 물러나 있으니 한국정부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재개를 통하여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남북관계의 개선의 효과로 인해 북미간의 대화가 이루어 지도록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남북관계도 잘 풀리지 않고 있으니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의회에서 12시까지 미팅을 마치고, 어제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던 제이슨에게 미안하여 오늘은 제대로 된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자고 하여 근처 레스토랑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 점심식사 후에 오늘 비공개로 전문가 모임이 오후 2시30분부터 잡혀 있어서 NCNK로 가니 디렉터인 Karin Lee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행사장소로 갔습니다. 총 12명이 참석하였는데, 브루킹스연구소,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 World Bank, 조지타운 대학교, 국무부 등 여러곳에서 북한관련 업무나 연구를 하고 있는 분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스님을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고, 처음 보는 분들도 있어서 서로 인사를 하고 바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말문을 연 분은 박근혜정부에서 왜 인도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지 스님께 질문을 했고, 스님께서도 청와대에 통로가 막혀있다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이곳에서도 스님께서는 북한의 식량상황, 경제상황, 농업정책 변화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현재 북한상황에 대해서 얘기해 주시고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식량뿐만 아니라 의약품이 부족하여 결핵문제도 심각하고 에너지 또한 가장 큰 문제라고 하니 하루빨리 남북관계, 북미관계가 개선되어 북한의 경제개발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nbsp 한편 이곳에서도 왜 최근에 북한이 로버트 킹대사의 방북을 돌연 취소시키고, 또 이상가족상봉을 연기시키는지 왜 북한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 도대체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면서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북한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갑작스런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면 이해하기 쉽지는 않지만, 그들 나름의 논리에 의해서 그들도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고, 그들 나름대로의 역학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의 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우리가 그들을 콘트롤 해야 합니다. 북한을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한다고 북한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 정부와 관련하여 관계를 개선시키면서 북핵은 북핵대로, 인권은 인권대로 인도적 지원은 인도적 지원대로 해 나가면서 보편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가 따뜻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인도적 지원을 하면서 인권도 얘기해야 합니다. 우리의 따뜻한 마음을 가져가면서 북한에 대해 인도적 지원을 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 DC에서 미팅을 마치고 바로 오늘 강연장이 있는 메릴랜드 엘리컷시티로 출발했습니다. 강연장까지 넉넉하게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교통사고로 길이 막혀서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지난 9월 2일에 시작된 법륜 스님의 2013년 북미주 25개 도시 순회강연, ‘희망 세상 만들기’의 마지막 법회가 열리는 메릴랜드 주 엘리컷씨티에 있는 성공회 교회 강당에 겨우 무사히 도착했습니다.nbsp 교회에 들어서니 주차장에서 차지근 거사님께서 반갑게 인사하시면서 주차안내를 하고 있었고, 주차장에서 강연에 참석하러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분들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하늘은 맑게 푸르고, 햇살은 따스하고 투명하고, 바람은 가끔씩 나뭇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초가을의 청명한 날씨 때문에 마음까지 차분하고 가벼워졌습니다. 행사장에 와서 오늘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불교를 가르치는 허브 교수님께서 스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해서 강연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오는 도중에 교통체증으로 약속시간을 넘겨서 왔다고 미안해 하시면서 스님을 처음 뵙는 분인데 신발을 벗고 스님께 인사를 하셨습니다. 이분은 인도분이신데, 인도에서는 신발을 벗고 수행자의 두발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큰 예를 표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nbsp 이분이 DC에서 불교인 모임을 이끌고 있는데 여러 국가의 불교인들과 교류하면서 불교의 연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번에 아메리칸 대학교 즉문즉설 강연홍보를 통해서 스님을 알았다고 하시면서 정토회와 법륜스님의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앞으로 DC에서 한국불교를 대표해서 참석하는 단체와 스님이 없는데 워싱턴 정토회와 스님께서 함께 활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미주 정토회관도 방문하고 싶고, 함께 모임을 갖는 분들과 돌아가면서 각국의 불교에 대해서 서로 발표도 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스님께 깊은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곧 강연장으로 들어가야 하니 유주영 총무님의 통역과 함께 한 30분정도라고 강연을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하니 그렇게 하겠다고 하여 스님께서는 급하게 강연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강연회 날이 주중이라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이 올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강연 시작 40분 전부터 대중들이 오기 시작하여 270개의 의자를 거의 채우는 바람에 즐거운 마음으로 의자를 80여개 더 내놓았습니다. 그래도 모자라서 나중에는 벽에 기대어 서있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약 350여명이 온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저녁강연 이라서 참여하신 분들께 하얀종이에 말린 김밥 한 줄과 물 한 병으로 요기를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7시 정각에 강단에 오르신 법륜스님께서는 우선 이 좋은 장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 하여준 성공회 신부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즉문즉설의 진행방식을 대중들이 이미 알고 있을 것임으로 질문이 있는 분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연세가 드신 남자 어르신들이 질문자석을 채우고 있어서 어떤 질문이 나올까 궁금했습니다. 첫번째 질문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신문에서 읽는 한국사회의 혼란스러움 을 개탄하였습니다. 스님은 만약 누군가가 본인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기분 나빠하는지를 질문자에게 물어봤습니다. 왜 저런 반문을 하실까 궁금했습니다. “미국에서 살면 미국 신문을 보고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지 왜 한국신문을 봐요? 며칠 전 총기 난동 사건으로 10여명이 죽은 사건이 터졌는데 그런 미국을 걱정해야지요.” 하고 스님이 말하자 그분은 한국이 조국이기 때문에 더 걱정한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조국이기 때문에 걱정하는 것은 고맙지만 한국은 한국인의 저력과 역동성으로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 가면서 잘 살고 있으니, 안심하시고 외국에 나와 있는 교포들에게 한반도 평화와 북한의 기아와 같은 세계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도움을 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러자 참석자들이 큰 박수로 스님의 답변에 호응하였습니다. 두번째 질문자는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니는 23세 청년이었습니다. 다른 대학으로 전학하는데 필요한 토플 점수를 7점은 높혀야 하는데 불안하고 우울하고 집중이 안되니 어떻게 마음을 잡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첫째, 정신과 의사의 진료를 받고 본인이 갖고 있는 증상의 정도에 따라 치료를 받을 것. 둘째, 운동을 많이 하고 오래 걷고 잠을 푹 잠으로써 몸을 건강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육체의 건강은 현대 의술의 발달에 따라, 나쁜 것은 잘라내서 새 것으로 바꿔 낄 수 있으나 정신질환은 본인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도 괴롭히며 치료하지 않고 두었다가 참을 수 없어서 감정의 불만이 되어 바깥으로 터져 나오게 되면 며칠 전에 있었던 총기 사건과 같은 큰 비극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nbspnbsp 세번째 질문자는 60대의 남자분으로 아주 독특한 요구사항을 들고 나왔는데 자기의 관상을 좀 보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성인을 만나본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하며, 스님의 관상을 보니 밝고 행복한 기운이 흘러나온다고하자 스님께서는 “제가 관상을 보니, 머리는 희고 눈은 작고 피부는 까무잡잡하고 주름살은 많아서 별 볼품은 없지만 행복한 기운이 나오네요.”하는 스님의 대답에 청중들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남자분의 다음 질문은 종교에도 팔자가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종교를 믿는다고 하는데, 교회 장로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거들 나도록 해서 국민을 고생시키고 복음주의자라고 알려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전쟁을 일으켰는데, 종교와 정치를 논리적이 아니고 종교적으로 관찰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질문의 뜻이 아리송해서 스님이 어떻게 대답하실지 궁금했습니다.nbsp “어느 종교가 부흥하고 세력이 커지고 신도가 늘어나고 하는 것들은 사회 분위기에 따라 좌우됩니다.” 라고 스님은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통찰력 있는 지도자가 나오면 나라가 잘됩니다. 그런데 지도자를 뽑아놨더니 나라 사정이 더 악화됐을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라가 안될려고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탄만 합니다.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기회를 잡아서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데, 그런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한반도의 경우, 분단상태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기 때문에 통일로 가야 되는데 서로 자기 주장만 하고 상대편을 포용할 용기가 없습니다. 한국은 지금 분기점에 처해 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지도가가 나오니 그런 결과가 생긴다 는 말씀이었습니다. 네번째 질문자도 나이가 있으신 남자분으로, 통일이 되면 북의 싼 임금과 풍부한 자원을 활용해서 모두 잘 살 수 있을텐데 국민전체가 그런 생각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라는 질문을 했고, 다음 남자분은 금강경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그 뜻을 알 수 없으니 풀이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스님께서 공부하실 때도 억수로 헷갈렸는데 알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똥을 예로 들었습니다. “똥은 방안에 있을 때는 오물이고 밭에 있을 때는 거름입니다. 그런데 똥 자체는 오물도 아니고 거름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오물이 아닌 것도 아니고 거름이 아닌 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 이름이 방안에 있을 때는 오물이고, 바깥에 있을 때는 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인연 따라 오물이라 불리울 때도 있고 거름이라 불리울 때가 있을 뿐 오물이란 실체, 거름이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 설명 해주셨습니다. 또한 어린 아이가 얼음 구슬을 갖고 놀다가 한참 뒤에 와서 보니 얼음 구슬은 없고 물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얼음 구슬 내놓으라고 하는데, 그것은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는 원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행무상인 까닭으로 얼음이 변해 물이 되고, 물이 변해 얼음이 될 뿐이지, 생긴 것도 아니고 멸한 것도 아닌, 불생불멸이라고 대답하시면서, 질문하신 어르신께 답변이 되었냐고 물으시니 질문하신 어른신은 ‘감사합니다’ 라고 하시면서 자리로 돌아가셨습니다.nbsp 다음 질문자는 좀 충동적이었습니다. 4050대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미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스님의 견해를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미국이 현재 잘 살고 있으나 미래에는 쇠퇴될 것인데 그 경로는 로마제국이나 명나라가 쇠퇴한 것과 같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인류가 지구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구에서 계속 살려면 지구환경을 보존해야 하는데 가장 적극적으로 지구환경을 보존해야 되는 미국이 가장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소비, 자원의 낭비등으로....”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질문자가, 그것은 자기가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며 긴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여기 자기 의견을 발표하러 온 것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화를 벌컥 내며 강연장에서 홱 나가며 주위 사람들에게 뭐라고 힐난하는 어조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수근거리고, 바로 옆에 앉았던 사람은 저 사람이 혹시 총 들고 들어와서 한바탕 난동부리는거 아닌가 하며 무서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스님께서는 시종 웃으시면서 다음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여자분이 나와서, 동생이 병과 싸우고 있으며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자기는 별 도움이 안 되어서 괴롭다며 어떻게 해주는 것이 좋겠는가 라고 질문했고, 한 젊은 남자는 말 실수를 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다른 사람의 시기와 원망을 받을까봐 두렵다고 했고, 50대의 개신교 여신자는 자기가 본 예전 스님들은 엄격하고 속세에는 잘 내려오지 않았는데 법륜스님은 친근한 이미지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이런 모임에서 얘기를 하는데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행하는 것인가 하고 물었습니다.nbspnbsp “갓 쓰고 곰방대 물고 사시던 할아버지와 지금의 할아버지는 다릅니다. 거기에는 시대의 영향과 개인의 영향이 작용합니다. 이것은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습니다. 우리 사는 것이 예전보다 경제적으로는 부유해졌으나 물의 오염, 공기 오염처럼 오히려 나빠진 것들도 있습니다. 저는 불교, 기독교, 과학 등에서 벗어나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형식보다 내용에 좀 더 충실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질문자에게 이렇게 살아야한다고 말하지 않고 다만 질문에 대답할 뿐입니다. 이런데서 얘기를 잘 하니까 가까이서 살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지만 전혀 재미없고 성질도 급합니다. 어렸을 때 교회에 다녔는데, 처녀가 애를 낳았다는 얘기를 듣고 어떻게 처녀가 애기를 낳느냐고 23번 물었더니, 그 대답은 안하고 너는 믿음이 없다고 전도사가 야단쳤습니다. 그 후 절에 갔더니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떼었다고 해서 어떻게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야단은 치지 않았지만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소가 송아지 낳는 것을 보았더니 송아지가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 탁 떨어지며 다리를 발발 떨며 섰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알다시피 부처님 어머니는 서서, 나뭇가지를 붙잡고 부처님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낳자마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결혼을 했더라면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해 보았을 것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것은 단언하지 않고 그저 그런 말이 있다더라 하고 얘기할 뿐입니다. 현재는 자기가 찾은 진리의 삶에 만족하며, 내가 가진 재능을 가장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도움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아프가니스탄, 필리핀 민다나오 같은 가장 오지로 갑니다.” 라고 답변했습니다. 다음에는 스스로를 이중인격자로 생각한다는 남자가 지금까지는 자신의 진모를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왔는데, 40이 되니 이제 어떻게 인간관계를 지속해나갈 것인가 고민된다는 얘기와 집안 식구가 때렸다던지 성추행을 당했다는 등 학생들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묻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있었습니다.nbsp 이렇게 메릴랜드에서도 350여명이 참석하여 스님책도 준비해간 것보다 많이 판매되어서 스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걱정도 하였지만 ‘희망세상만들기 25회 미주즉문즉설강연’의 대장정이 마무리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진촬영을 하시고, 자원봉사하신 신도님들께 모두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하고 내일 업무를 위해서 회관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자원봉사자들은 행사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박대현 거사님댁으로 가서 늦은 뒤풀이 겸 저녁식사를 하고, 이번 행사에 대한 마무리겸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10시 40분에 미주 정토회관에 돌아오니 허브교수로부터 이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강연장에서 스님과 대중들이 교감하는 것을 한 30분정도 보고 왔는데, 스님께서 질문자의 질문을 경청하는 모습에도 감동을 받았고, 그렇게 즉문즉설하시는 모습이 진정한 보디사트바 같았다고 하면서 스님께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스님께서 워싱턴을 방문하실 때 스님과 함께 행사도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스님의 영향이 이제 한국을 넘어서서, 한국 교포를 넘어서서, 미국인과 전 세계인들의 고민과 삶에도 영향을 미칠 날이 멀지 않았음이 느껴졌습니다. 이번 행사를 다니면서 내년 해외 100강이 조금 버겁기는 하지만 전혀 하지 못할 일이 아님을 느끼면서 좀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 봐야겠다는 원을 세워보았습니다. 내일은 스님의 DC일정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메릴랜드 강연스케치는 워싱턴 정토회 윤시내 보살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2013.09.27. 17,756 읽음 댓글 2개

2013.9.23. 워싱턴DC 미팅 및 아메리칸 대학교 강연

어제 비교적 일찍 잠이 든 관계로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여 함께 천일결사 기도도 하고 오전에는 스님의 하루도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오전 9시30분부터 바로 국무부 에서 미팅이 있고, Amnesty International 워싱턴지부에서 미팅이 있기 때문에 아침공양을 하고 8시에 워싱턴DC로 출발했습니다.nbsp 오늘은 오전 9시30분부터 1시30분까지 점심도 거르고 국무부에서 부서를 달리하면서 3개의 미팅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현재 미국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체크를 해보았습니다. 시리아 문제 및 중동 문제가 우선인 것 같았고, 북한 문제는 비교적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먼저 북한 식량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하시면서 여전히 북한에 인도적 지원이 필요함을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서 미국 정부와 미국에서의 반응에 대해서 여쭤 보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이곳에서는 최근에 왜 북한이 킹대사의 방문을 전격 취소했는지, 그리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왜 연기했는지에 대해서 스님께 질문하였고, 스님께서는 이에 대한 스님의 견해를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북미관계개선에 대한 의지는 강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시간을 끌면 끌수록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문제는 멀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북한은 체제유지와 경제개발을 원합니다. 북한은 이 둘을 동시에 하고자 합니다. 체제유지를 위해서 북한은 핵에 집착을 할 것이고 핵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시간을 끌면 북한에서 핵물질은 증대되고 핵기술은 늘어날 것 입니다. 북한을 제제하면 북한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붕괴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핵개발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핵폐기를 목표로 하지만 우선 핵개발을 멈추게 하는 핵확산방지에 촛점을 두고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핵무기 제거이지만, 우선 핵무기 개발을 중지시켜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핵제거가 가능하지 않다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신속한 회담을 통하여 핵무기 개발, 핵무기의 이전 및 핵실험을 멈출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 미국은 핵폐기에만 너무 매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넓은 틀에서 북한 문제를 바라보고 장기적인 목표가 핵폐기가 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라고 북핵문제에 대한 스님의 의견을 말씀하였습니다.nbsp 국무부에서 미팅을 마친 후에 다음 미팅장소 근처인 이스턴마켓 근처로 가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고 2시30분에 엠네스티 인터네셔널 워싱턴지부를 방문했습니다. 이곳에는 의회에서 오랜동안 근무하면서 외교적으로 북한문제를 다루고자 했으며, 여전히 북한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프랭크쟈뉴찌씨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두분은 서로 반갑게 포옹하면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께서 날씨가 너무 좋다고 하니, 쟈뉴찌씨가 ‘스님께서 좋은 가을 날씨를 가져 왔습니다.’ 라고 하시니, 스님께서는 ‘그런 능력이 내게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제가 벌써 해결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분이 ‘스님께서는 션사인을 한반도에 반드시 내릴 것입니다’ 라고 서로 인사를 주고 받으니 이분도 스님에 대한 신뢰가 참 많은 것 같았습니다.nbspnbsp 이곳에서도 스님께서는 북한의 상황에 대해서 얘기했으며, 또한 현재 엠네스티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는 곳이 어디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현재 이곳에서는 시리아문제를 제일 크게 보고 있고, 올림픽 개최국인 러시아의 시민참여제약에 대해 국제사회에 알리려 하고 있고, 또한 북한의 인권문제도 다루고 있으며, 쿠바 관타나모 기지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 내에서 인권침해문제등을 다루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도 많은 얘기를 서로 주고 받았지만, 만약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북한 내에서 저질러진 반인류적인 범죄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한 정의를 추구하고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화해와 협력의 부분을 어떻게 균형 잡을 것인지 조심스럽게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스님께서는 “이것은 이상과 현실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진보적이기 때문에 이상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의 삶에서 답을 찾을 수 있고, 예수님이 말한 하나님은 사랑, 용서의 하나님이지 징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 범죄를 끝내는 것이 중요하지 징벌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저는 인도주의라는 데서 이미 답이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중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부상을 당하여 더 이상 공격하지 않는 상태라면 비록 적이라 하더라도 상대를 치료해 주고, 포로가 되었더라도 죽이지 않고 전쟁이 끝난 후에 돌려보내 주고 있습니다. 통일이 된 후 이미 그들이 권력을 잃어버린 상태라면 굳이 징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면 격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취득한 돈이나 지위는 돌려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징벌과는 다릅니다. 군인등이 그들의 법에 따라 행동했다면 굳이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 당시 그 사회에서의 적당한 방법에 따라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북한의 법을 어겨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사람을 벌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감정적인 것은 파괴할 때는 유용하지만 건설할 때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항상 감정이 앞서면 인권의 침해가 꼭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 원칙적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보복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용서하고 포용하라고 하는 것은 현실의 보통 사람들의 감정을 무시하는 처사가 될 것입니다. 국제법을 어기거나 자국법을 어긴 경우에는 고위 간부들은 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형집행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처벌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화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라고 얘기하니, 쟈뉴찌씨는 위와 같은 주제에 대해 국가적인 토론이 있을 때 스님께서 참여하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프랭크 쟈뉴찌씨와의 미팅을 마지막으로 오늘 워싱턴DC 일정을 마친 스님께서는 이번 북미주 순회강연 중 세번째 영어 즉문즉설이 진행될 아메리칸 대학교로 이동했습니다. 비교적 길이 막히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여 강연시간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하여 학교도 둘러보고 나서 행사장에 올라가니, 간단한 저녁식사를 준비해서 참가자들이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워싱턴DC에 있는 조지타운 대학교, 조지워싱턴 대학교,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등은 다 방문해 보았지만 아메리칸 대학교는 처음 방문했습니다. 아메리칸 대학교는 워싱턴DC 북서쪽에 학교캠퍼스가 위치해 있습니다. 아메리칸 대학교의 즉문즉설 강연은 이 대학 철학종교학과 교수이자 동양학 프로그램 디렉터인 박진영 교수님께서 스님을 초청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교수님은 정토회 및 법륜스님 관련하여 영문자료들을 미리 요청하여 수업 시간에 정토회 및 법륜스님에 대해 다루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참여한 학생들은 질문도 많았고 스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호응도 참 좋았습니다. 총 140여명의 청중이 모였고,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반인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nbsp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두시간 동안 무려 25명의 질문자가 질문을 하겠다고 줄을 섰습니다. 처음에는 4명 정도가 질문을 하겠다고 줄을 섰는데, 즉문즉설이 진행되면서 점점 늘어나서 질문자석에 길게 줄을 서 있기도 해서, 스님께서 너무 많으니 꼭 하지 않을 사람은 들어가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때로는 냉철하게, 때로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고 제이슨은 스님의 말씀을 바로바로 영어로 잘 전달해주었습니다. “오늘 이곳 날씨가 꼭 한국 가을 날씨 같네요.” 라는 인사로 스님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워싱턴DC에서는 북한 전문가로, 동남아에서는 구호활동가로, 한국에서는 상담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농사를 짓는 농부이고 싶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은 것 같습니다. ‘이거다’ 라고 한가지로 정할 수 없고, 물질현상, 생명현상, 정신작용이 모두 우리의 삶이기 때문에 그 세 가지에 대해 모두 잘 알아야 합니다. 환경, 평화, 평등, 행복 등 주제를 가리지 말고 대화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라는 말씀과 함께 본격적인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말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nbsp nbsp 1. 나를 완전히 버리고 절대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2, 우리 인류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까? 4. 학부생인데, 학업, 성적, 취업, 성공에 집착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5. 어른 세대가 젊은 세대들에 대해 못마땅하게 인식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6.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7.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되나요? 8. 가족 중에 10년간 투병중인 암환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생각해봤자 도움이 안되는 걸 알지만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9. 친구가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10. 명상을 하면서 계속 집중하고 맑은 상태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11.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인류의 발전과 함께 갈 수 있을까요? 인류 발전을 위해 개발을 하면 환경이 파괴되고, 환경을 보존하려다 보면 인류 문명의 발전이 없을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12.저는 불만족스러울 때가 많고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13.몸 을 잘 돌보는 것과 몸에 집착하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요? 14.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마음의 평화를 찾고, 자신을 용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15.불교는 다른 종교와 상호 배타적인가요? 아니면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는 여러가지가 있나요? 16.행복은 나로부터 온다고 하셨는데요, 다른 사람들보다 어려운 조건에 처해있는 사람에게 그들이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17.삶의 목표, 희망을 잃은 사람에게 스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시나요?18.다른 이들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느끼고 싶습니다. 고독을 느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19.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논리와 감정이 구분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둘은 어떻게 구분이 되나요? 사랑이나 자비심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도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하나요?20.저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제가 제 삶에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21.저는 이민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가족 중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갔고, 처음으로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족들이 저에게 거는 기대에 부담을 느낍니다. 제가 원하는 것과 가족들이 제게 바라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고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22.최근 친구가 부모님 두 분을 한꺼번에 사고로 잃었습니다. 부모님과 참 가까웠기 때문에 너무 허전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깊은 허전함 속에서도 건강하게 자기 정체성을 지켜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 정말 많은 참석자들이 나와서 스님께 질문하고 스님께서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곳에서의 학생들과의 대화는 스님의 일방적인 설명이 아니라 대부분이 스님과 학생들이 서로 문답을 주고받는 대화방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10번째와 11번째 질문에 대한 스님의 말씀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자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진전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잡념이 더 많아졌고 더 이상 진전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목표를 잃은 것 같습니다. 다시 집중하고 계속 맑은 상태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nbsp 법륜스님 명상을 할 때는 생각이 편안해지기를 기대하면 처음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갈수록 명상을 하는 30분 중에 처음 5분만 편안하고 나머지 25분 동안 생각이 더 많아집니다. 100일을 한다면 처음 5일은 좋지만 나머지는 오히려 더 나빠집니다. 하지만 이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방 안에 먼지가 많지만 평소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햇살이 들어오면 우리 눈에 먼지가 많이 보이게 됩니다. 이 때 이 먼지를 없애려고 애쓰면 오히려 더 늘어납니다. 이럴 때는 먼지를 가만히 내버려둬야 합니다. 시간이 흘러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머리가 복잡합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그것을 자각하지도 못합니다. 명상을 하다보면 그게 보이게 될 뿐입니다. 계속 하다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맑아집니다. 명상을 할 때는 생각이 많은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 때, 머리가 맑아질수록 더 많은 생각이 보이고,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것처럼 생각이 됩니다. 이 때 이 생각들을 머리속에서 없애려고 하지도 말고 그 생각들을 따라가지도 않아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가만히 둬야 합니다. 이렇게 가만히 두려고 해도, 우리의 사고는 가만히 두질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상할 때는 한군데 집중을 합니다. 예를 들어 호흡에 집중을 한다면, 오직 마음을 코 끝에 집중합니다. 숨이 나올 때 나오는 줄을 알고, 숨이 들어갈 때 들어가는 줄을 압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그 생각을 나도 모르게 따라가게 됩니다. 이 때 호흡을 놓친 줄 알아차리면 다시 호흡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간단한 것 같지만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항상 우리 생각이 바깥으로 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합니다. 온갖 생각이 지나가도 호흡을 지켜보는 연습을 합니다. 무의식 세계에 있던 어린시절 기억이 지나가는 것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마치 물이 증발하듯이 나의 업식 이 조금씩 소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명상을 할 때는 다만 할 뿐이어야 합니다. 잘 된다, 잘 안 된다 하는 건 없습니다. 마치 양파껍질을 벗기는 것과 같습니다. 졸음이 오고 온갖 생각이 일어나면 명상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다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고 고요해지기도 합니다. 명상이 잘되나? 생각하면 다음 번에 또 머리 속이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후퇴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파껍질을 벗기듯이 계속 벗겨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조언을 한다면, 다만 할 뿐이어야 합니다. 질문자 감사합니다.nbsp 마지막 부분에 제이슨이 스님의 ‘다만 할 뿐이어야 합니다’란 말씀을 ‘Just meditate.’ 이라고 통역했더니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Just Do It 이 연상되는지 질문자와 청중은 웃음으로 화답했습니다. nbsp 다음은 환경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자 저는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환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까 스님께서 어떤 조건에서 좋은 것이 다른 조건이 되면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고,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지속가능한 발전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환경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요, 환경을 위해 좋은 것과 인류를 위해 좋은 것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사람들을 위해 병원을 지으면 환경이 나빠질 수도 있잖아요.nbsp 법륜스님 네. 좋은 질문이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에게 좋은 것이 환경에게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환경에 꼭 나쁜 것도 아닙니다.nbspnbsp 먼저 자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어떤 연못이 있다고 할 때, 거기엔 많은 플랑크톤이 있고, 그것을 먹고 사는 물벌레, 그 물벌레를 먹고 사는 개구리, 그 개구리를 먹고 사는 뱀이 있습니다. 개구리의 입장에서 볼 때, 물벌레는 양식이니까 좋은 겁니다. 그러나 뱀은 개구리를 해치므로 나쁜 것이 됩니다. 개구리는 뱀만 없다면 번영을 누릴 것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개구리들이 신에게 부탁하든 힘을 합쳐서 하든, 뱀을 없앴다고 가정해 봅시다. 일정기간 동안에는 개구리에게 번영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구리 숫자가 늘어나면 무한하게 느껴졌던 물벌레 수가 줄어들고, 개구리는 어느 순간에 전멸하게 됩니다. 이 때 개구리가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지속적 생존을 위해서는 물벌레만 필요한 게 아니라 뱀까지도 필요하다.’ 이것이 자연의 원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무조건 그대로 놔두는 것만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는 것도 자연이 환경을 복원해 내는 범위 안에서라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정도를 넘어가는 것은 이제는 멈춰야 합니다.nbspnbsp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간단한 질병을 고치고,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 소비하는 것을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설사 그 지역에 어느 정도 자연의 파괴가 있다 하더라도,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람이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빈곤퇴치는 환경파괴보다 우선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생활하는 방식은 바꿔야 합니다. 에어컨을 지나치게 틀어놓고 벌벌 떨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은 확실히 지구환경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빈곤을 퇴치하는 것과 환경운동하는 것은 모순이 아닙니다. 그러나 빈곤을 퇴치한다는 이름으로 개발이 지나치다면, 이제는 우리는 유의해야 합니다. 그들을 돕는다고 하면서 우리의 삶을 본받도록 하는 것은 조금 유의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지원하는 것이 욕구를 지나치게 급격하게 키워줄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유의해야 합니다. 질문자 그럼, 최소한의 것을 가지고 살라는 말씀이신가요? 과도한 개발이 진행됐을 때 그것이 옳은 선택인지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씀인가요? 법륜스님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는 생각은 지속가능하지가 않습니다. 지구 인구의 20가 좀 잘산다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면 나머지 80 인구들도 이렇게 살아야합니다. 중국, 인도 모두 지금 따라오고 있습니다. 인류가 모두 이 길로 간다면 과연 지구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방식은 분명히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문명의 길에 대해 재고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소비주의, 소비의 중독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마약과 같습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내 스스로를 관찰해 봐도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적게 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속도도 조금 줄이고, 불편을 좀 감수하고, 지나친 효율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또 지구 저편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도 생각해야 하고, 미래에 태어날 후손과 함께 써야 한다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히 환경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물질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다른 문명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명상이라든지 남을 돕는 봉사활동이라든지, 물질적 소비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만족을 얻는 방향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제가 여기 와서 여러분과 만나는 것도 그런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질문자 감사합니다. 질문자와 스님과의 대화는 짧은 것은 짧은 대로 긴 것은 긴 것대로 영어로 통역을 하여 진행했지만 재미있었고, 스님께서는 “이곳에서 즐겁기도 하고 유익한 것은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습니다.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지 말고, 지금에 너무 만족해버린 채 미래를 희생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한테만 좋고 다른 사람에겐 좋지 않은 것은 과보가 따르며 그 좋음이 지속되지 않습니다. 또, 남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나에게는 손해가 된다면, 그것은 세상에서는 훌륭하다고 할 진 몰라도 내가 그것을 지속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지속이 가능합니다.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것이 바로 진리의 성질입니다. 즉, 지금 나에게 좋고, 나중에도 이익이고,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쪽으로 나아가면 삶이 더 행복해집니다. 자신에 만족하고 세상에 유익한 존재가 되어 행복이 지속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라고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2시간 내내 집중된 분위기였고, 반응도 좋았습니다. 스님과 제이슨은 환상의 팀웍을 보여주며 아주 속도감 있게 진행하였습니다. 지난번 유니온 신학대학에서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이 있어서 제이슨이 말이 빠르다고 말하는 속도를 늦춰달라고 했지만, 이곳에서는 속도감이 있으니 통역을 통하여 강연이 있을 때 오는 지루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영어로 통역되는 스님의 말씀을 바로바로 알아듣는 미국 학생들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강연을 마친 뒤 스님께서는 출입구 앞에서 감사의 인사를 표하며 돌아가는 청중들을 환한 웃음으로 배웅하셨습니다. 또한 질문한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와 스님께 인사하고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질문하지 않는 사람들도 악수하고 사진을 찍자고 하니 재미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책판매를 할 수 없다고 하여 책을 판매하지 못했는데,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한 자녀들을 데리고 강연장에 온 한국 부모님들은 스님의 책을 미리 가지고 와서 스님께 사인을 받아가셨습니다. 질문자가 25명이 나와서 정말 질문자가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정확하게 1시간 50분간 제이슨이 통역하여 22명과 질의응답을 했는데 제이슨의 통역이 빛나는 날이었습니다. 박진영 교수님께 초청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스님의 영문책을 선물로 드리고, 교수님께서도 학교밖으로 까지 나와서 스님과 저희일행을 배웅해주었습니다. nbsp 9시경에 회관으로 돌아오니 내일 있을 메릴랜드 강연 준비로 늦게까지 남아서 준비하고 있는 워싱턴 정토회 회원들을 스님께서 격려해주시고 스님께서는 숙소로 올라갔습니다. 저는 밀린 업무와 스님의 하루등을 정리하고 저도 비교적 이른 시간인 1시경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메릴랜드 강연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American University 강연스케치는 워싱턴 정토회 김지현 법우님이 도움 주셨습니다.

2013.09.27. 20,346 읽음 댓글 1개

2013.9.18. 듀크 대학교 강연

4시에 기상하여 세수만하고 잠자기 전에 꾸려놓은 짐을 차에 싣고 4시30분에 바로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North Carolina 랄리더램으로 가는 비행기 수속을 마치고 김성순 총무님 부부와 함께 짧은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내년에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만 24시간도 함께 하지 못한 짧은 시간에 총무님은 눈물을 살짝 내비쳤습니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6시30분 비행기를 타고 더램랄리공항에 11시20분에 도착하니 이번에 듀크대학교로 초청해주신 듀크대학의 일미스님, 김지형교수님, 정상희법우님, 그리고 Korea Forum의 김혜영 교수님이 마중을 나와 있어 반갑게 인사하고 짐을 찾아 점심식사 약속장소인 한국식당으로 갔습니다. 한국식당에 12시30분경에 도착하니 코리아포럼 소속 교수님들이 기다리고 있어 같이 인사를 하고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듀크대학의 한국학과에는 6명의 한국인 교수가 있고, 이공대와 메디컬센터를 합치면 10명이상의 한국인교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North Carolina에는 유명한 대학이 세 개 있는데, 오늘 강연이 있는 듀크대학교와 2개의 주립대학교인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그리고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가 있는 세개의 도시가 자동차로 1시간 이내에 있는 삼각형 꼴로 자리를 잡고 있어 이 지역을 Triangle 지역이라 불리며 공항도 이 세곳의 중간쯤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학 포럼에도 이 세개의 대학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함께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점심식사 후 숙소인 정상희 법우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작지만 아주 역사적인 장소를 보았습니다. 이곳은 남북전쟁 당시 더 이상의 전쟁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남북의 장군들이 서로 모여서 종전을 협의하고 종전선언을 한곳이라고 하여, 남북전쟁이 종결된 지역으로서의 역사적 기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서 우리도 남북이 대치되어 있는 휴전상태를 끝내고 종전협정이 체결되어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잠깐 발원하면서 지나갔습니다. 듀크대학교는 학교캠퍼스가 아름다우며, 학교정원이 특히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하여 학교와 정원을 산책하였습니다. 추석을 하루 앞둔 18일, 스님께서는 듀크 채플의 5시를 알리는 종소리에 맞추어 강연장이 있는 신학대학교에 도착하셨습니다. Raleigh Durham Chapel Hill을 포함한 Triangle Area의 한인 커뮤니티는 크지 않지만 5시부터 신학대학교에 위치한 Goodson Chapel에 한 두분씩 들어오기 시작하여 6시가 다 되어가자 220석 모두 꽉 찰 정도로 한국분들이 모였습니다. 강연에 앞서 스님께서는 잠시 듀크대학의 명상클래스에 참석하여 지도하고 있는 교수님, 학생들과 잠깐 인사를 하고, 선과 명상이 스님의 사회적인 활동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질문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강연장에서는 듀크의 코리아포럼에서 참석자들에게 준비한 빵과 음료를 나누고 서로 인사를 하며 스님의 힐링캠프 영상을 보며 스님의 강연을 기다렸습니다. 또한 멀리 아칸사스에서 7시간 운전을 하고 왔는데 오늘 참석한 분들과 나누고 싶다면서 법륜스님의 미주강연을 축하는 큰 기념케이크를 만들어 오셨습니다. 6시가 다 되자 아시아 중동학과 김혜영 교수님께서 듀크 코리아 포럼을 대표하여 인사를 드리고, 또한 종교학과 김환수 교수님께서 오늘 강연자이신 스님약력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종교와 문화의 벽을 뛰어넘어 인류의 인권, 환경 및 사회를 위한 스님의 활동들을 나열하신 후 그 와중에서도 24일간 25개의 미주도시를 순회하는 빡빡한 일정 중에 듀크에 오신 법륜스님께 교직원, 학생들을 대표하여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 영상이 나온 후 스님께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강단에 오르신 후 반갑게 인사를 하신 후에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며,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과 함께 오늘의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인생의 고뇌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에서 고뇌가 생기는 것이며 강연의 제목이 즉문즉답이 아니고 즉문즉설인 이유가 바로 이처럼 인생에 답이 없고 스님의 역할은 그저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할 뿐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우리들의 고뇌와 고민들을 듣고 이야기하며 어두운 것이 조금 더 밝아지고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짐으로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하고 자유롭게 생활하게 되는 것이 스님의 목표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어 강연 바로 전 듀크의 불교수업 중 받은 질문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한 학생이 스님께서 하는 환경, 통일, 인권에 관한 모든 활동이 선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밥을 먹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봉사를 하는 것도 다 사람들이 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은 각기 다른 문제가 아니라 전부 동일한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에 대한 일화로 손가락은 각각 길이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지만 다섯 손가락이 한 손으로 이어져서 물건을 집을 때 같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개인의 문제, 사회의 문제, 종교의 문제, 환경의 문제가 각각 나누어져있는 문제로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동일한 삶의 문제입니다. 이처럼 모든 분야에 걸쳐 개인에게 있어서 괴롭거나 답답한 문제가 있으면 같이 이야기하고 대화하며 조금 더 나은 길을 모색해보자고 말씀하시며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첫번째 질문자는 유태인인 미국인 남편과 결혼하여 살고 있는 부인이었는데, 이분의 고민은 자신의 욱하는 성격과 자신을 닮아가는 아들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아들과 질문자 두 분 다 ‘한 성깔 하는’ 성격으로 밖에서는 아무말도 못하지만 집에만 오면 남편을 괴롭히는 한 성질이라고 하며, 아들이 자기를 닮아가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님께 질문을 하였고, 이분과의 대화속에 첫 질문부터 유쾌한 웃음이 터졌습니다. 두번째 질문자는 대학생이었는데, 하루를 엄청나게 열심히 살다보면 하루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 같고, 이것이 잘 사는 것이라 착각하다가 우물안의 개구리로 전락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어느 순간 삶을 뒤돌아보게 되면 후회가 된다는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이어진 세번째 질문자는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남학생이었는데, 학교에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께 물어보니 다들 웃으면서 스님과 질문자와의 대화를 지켜보았습니다. 네번째 질문자는 듀크대학교 학부에 다니는 여학생으로 스님께 자존감에 대해 여쭈어보며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외국 생활을 많이 하며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자신은 그 기준을 만족하지 못해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하며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지 질문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에 질문자에게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질문자가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답하자 스님께서 질문자에게 청중을 바라보라고 하신 다음 청중에게 과연 이 분이 부족한지 아니면 충분한지 물어보았을 때 220명 전원은 질문자가 아주 충분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985170질문자는 목표를 너무 높이 설정하였습니다. 자신이 설정한 높은 자아와 그렇지 못한 현실의 괴리가 크기 때문에 더 괴로운 것입니다. 자신의 목표가 높을 때 현실을 끌어올려 그 기준에 맞추려고 하다보면 힘이 부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자아의식은 허상이고 망상이고 착각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열등의식은 착각일 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쁘다, 공부 잘한다 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을 때 오히려 더 열등감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어린 시절 들었던 칭찬들이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을 하기 때문에 교만감과 자만심이 생김과 동시에 열등감이 생기게 됩니다. 작은 목표를 설립하고, 작은 스텝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긍적적으로 변하고 목표에 대한 달성감으로 만족감이 일어나 동기부여가 됩니다.985171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질문자가 이에 대하여 큰 목표를 잡지 않으면 자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자 스님께서는 “이는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그런식으로 자신을 끌고 가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커서도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채찍질 한다면 창의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공부는 재미있어야 하고 삶은 가벼워야 합니다985171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질문자가 기쁜 얼굴로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다섯번째 질문자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하여 스님께 여쭈어보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인터넷 뉴스를 보면 여성 연예인을 성 상품화하고 가사 활동에 있어서도 남자가 가사를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배품으로 여겨지는데 이에 대한 해결방법이 없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스님께서는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고 23세기 정도는 걸리는 과정입니다. 법은 하루아침에 바뀌어도 습관은 바뀌기 쉽지 않습니다. 인도의 예를 들어보면, 인도는 근대 국가의 탄생과 함께 카스트 제도를 금지하였지만 아직도 농촌 사회에서는 카스트 제도와 낡은 혼인 제도가 그대로 존재합니다. 이처럼 여성 인권에 관한 문제는 사회 전체가 개방이 된 이후 점차적으로 개선이 될 문제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수용과 변화를 같이 추구해야만 합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또한 자녀 양육에 있어서 어머니의 책임에 대하여 얘기하였습니다. “동물들의 사회에서 알 수 있듯이 암컷이 새끼를 키우는 것은 자연의 법칙인 것입니다. 인간은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에서 또한 여성이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남성이 자녀 양육을 도와주는 것은 감사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지만 자연의 법칙은 존중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비판도 있음을 알지만 아이에 대한 책임을 여성의 권리와 바꾸고 싶다면 어미의 역할을 포기해야 합니다985171고 하셨습니다. 여섯번째 질문자는 한국에서 자라온 주부였는데, 질문자는 자신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만 남편은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라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의 아픔을 같이 공유하게 될까봐 두렵다고 하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님께 조언을 구했습니다.nbspnbsp 일곱번째 질문자는 듀크 MBA 학생이었는데,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할아버지가 아무리 바뀌지 않는다며 스님께 조언을 구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준엄하게 학생을 꾸짖는 모습도 보여 때로는 자상하게 때로는 호되게 질문자에게 답변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여덟번째 질문자는 박사과정을 끝내고 미국에서 취업을 해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질문자는 스님께 현 정부의 상황을 보면 답답함이 든다며 스님께서는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질문자에게 985170만약 현 상황을 지켜보고 분석하는 것이 질문자의 주요 관심이라면 그런 관심을 지속하면 되는 것입니다. 관찰자는 분석을 해야지 화를 가지고 있으면 안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주식회사에서는 주식수로 회사의 주요 사항을 결정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람 수로 결정을 합니다. 하지만 소수 집단이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돈과 권력을 사용해서라도 사람 수를 늘리려고 하기 때문에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영향력이 더 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다수의 반발이 심화가 되면 변화가 생길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질문자가 관망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면 그런 분석을 토대로 삼아 그 영향력을 더 넓혀야 합니다. 세상의 변화는 옳고 그름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의 힘에 의해서 생기게 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투표에서 과반수, 즉 51를 확보해야만 변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변화를 위해 일해야 하며, 목표달성을 위해 효과적인 방법을 항상 연구해야 합니다. 이에 비추어 보았을 때 현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며 작년 대선에서 중도가 캐스팅 보트를 가지고 있을 때 진보당 대표가 보수를 공격을 해서 중도층이 진보에 등을 돌린 사건은 효과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현 상황을 역학적으로 분석을 해서 변화를 시켜려고 노력해야지 자신이 화를 내고 속상해 하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985171라는 말씀으로 여덟번째 답변을 끝마쳤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고등학생으로 공부에 대한 고민을 말하며 공부를 하다보면 성적을 신경을 써야하고 성적에 신경을 쓰다보면 공부가 싫어지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께 물어보았고, 2시간 35분에 걸친 강연을 끝마치며 스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지금 내가 좋고 즐거워야 하며 그리고 이를 통해 남이 같이 좋고 즐거워야 합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을 때 지속 가능한 행복감을 느끼게 되고 그럼으로써 사회가 변화됩니다.985171라는 말로 2시간 50분동안의 즉문즉설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책을 구입한 분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신 다음에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오늘 자원봉사를 해주신 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이분들께 다들 수고했다는 인사를 한 후에 스님께서는 Goodson Chapel 옆 강의실로 자리를 옮기셔서 코리아포럼 소속회원들과 소규모 토론회를 진행하였습니다. 우선 김혜영 교수님께서 북한에 대하여 미국에서 가르치며 목격한 미국학생들의 무모한 열의와 한국 학생의 무관심에 대해 지적하며 이에 대한 해법을 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이에 스님은 정확한 상황 판단이 있어야 실제적인 조언이 가능하다고 하셨지만 대체적으로 한국에서 젊은 청년들이 북한에 대하여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전 한국이 한 나라였을 때를 기억하는 연세 드신 분들은 분단이 직접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청년들에게는 나의 문제가 아닌 과거의 이야기, 남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결혼 전에 서로에게 했던 약속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부부간 싸움이 끝이 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과거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젊은 세대에 접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 미래지향적 이익 추구 접근을 한다면 젊은 세대도 더 이상 통일이 남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됩니다.985171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답변에 토론에 참가한 분께서 통일 문제를 생각했을 때 스님께서 말한 미래지향적 이익 추구가 힘들지도 않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시며 스님께서 생각했을 때 통일 이후의 경제적 이익이 무엇인지 스님께 여쭈어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통일 문제는 이익으로만이 아니라 민족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접근해 보았을 때도 통일은 이익입니다. 과거 일본은 남의 나라인 조선을 뺏고서도 여러가지 투자를 감행했는데 우리가 북한에 투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현재 남한의 성장은 이미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고 미국의 서부개척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개발의 원동력이 필요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북한 개발만으로도 부족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다음 성장의 원동력은 동아시아 공동체여야 합니다. 하지만 동아시아 공동체의 주체는 일본이 될 수 없습니다. 일본이 주체가 되려면 독일처럼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고 그 이후 경제적 원동력이 되어야 하지만 현 일본정부처럼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동아시아 공동체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경제적 규모는 크지만 아직 인권 문제 등 20세기의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입니다. 만약 남북한이 통일이 된다면 원수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동아시아 협력의 주체로서 떠오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주체는 통일 한국 인 것입니다. 경제의 중심은 1819세기 유럽, 20세기 미국에서, 21세기 동아시아로 옮겨가고 있지만 동아시아가 문명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경제뿐만 아니라 도덕, 사회를 아우르는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발전되고 통일을 이룩해 낸다면 이로써 문명의 중심을 동아시아로 이전하게 되는 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 분단 상황이 이어질 확률이 높습니다.nbsp현재 미국은 패권 유지를 위해 미국이 편성해 놓은 세계질서에 중국이 동의를 할 시에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중국의 이익을 보장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남한은 국가적 목표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통일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명청 시대에서 명을 따르다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고 청일 시대에서 청을 따르다가 일본에게 식민지 지배를 당했던 것처럼 정확한 사태 파악을 한 이후 이를 통해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국내 문제도 이와 개별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남한 사회를 좋은 사회로 만드는 것과 통일 사회를 만드는 것은 같은 일입니다. 통일 한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비전을 남한 사회가 제시해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 지방 분권이 강화되고 민주주의가 심화되며 빈부 차이가 해소되는 발전이 뒤따라야 합니다.98517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토론회에서의 세번째 질문자는 중국에서 태어난 3.5세 교포였습니다. 질문자는 한중수교가 되기 전까지 중국에서 살며 북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제는 남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과연 두 나라의 사람들이 같이 생활 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였습니다. 이에 스님은 현재의 대치 상황은 지배 계층의 권력 투쟁이고 이를 이해해야 한다며, 두 나라의 국민이 섞여 지내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지배 계층의 권력 투쟁을 이해한다면 현 북한의 지배 계층의 위치를 통일 한국에서도 보장해주는 방법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현 상황은 통일에 매우 유리하다고 스님께서는 분석하셨습니다. “예전 남한은 완전히 미국에 예속되어 있어 남한만의 주장을 펼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남한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현재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를 핑계를 대며 한반도 문제에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중국에 예속될 가능성이 있는데 통일은 현재 북한이 중국에 완전히 예속되기 전 이루어져야 합니다.985171스님께서는 이를 위해 미국에서도 교민들이 할 일이 많다며 한국과 미국의 이익을 일치하는 정책을 위해 표를 행사해야 한다며 독려하셨습니다. 이어 스님의 말씀을 더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다음 날의 일정을 위하여 11시 30분쯤에 토론회를 끝마치며 스님께서는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각자 개인 짐을 정리하고 나서 저녁식사를 하지 못한 분들이 많아서 추석도 축하할 겸해서 간단한 다과를 하기로 했는데 상희법우의 남편이 이태리출신인데 자기가 간단하게 파스타요리를 해주겠다고 하여 12시가 넘은 시간에 간단하게 파스타로 간식을 먹었습니다. 마티오는 듀크대학에서 에이즈백신을 연구하고 있는데 상희법우님의 통역으로 스님과 이태리의 정치, 경제, 사상등에 대해서 얘기를 하니 얘기가 끝날 줄을 모르고 깊어져서 저는 내일을 위해서 2시경에 스님께 인사를 하고 제방으로 돌아와서 하루를 마무리 하고 나니 2시30분이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프린스턴대학교와 뉴욕강연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듀크대학 강연스케치는 듀크대학의 배종현님께서 도움주셨습니다.

2013.09.22. 19,941 읽음 댓글 2개

2013.9.17. 잭슨빌 강연

4시30분에 알람을 맞춰 놓았으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아침예불소리에 벌떡 일어나니 벌써 5시5분이었습니다. 한용우 거사님댁에서 함께 아침예불 및 천일결사기도를 하고 6시 10분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스님강연에 참석하기 위해서 아칸사스에서 깨달음의 장 수련을 하고 난 후에 혼자서 공부를 하고 계시다는 보살님께서 새벽에 거사님 댁으로 왔는데, 어제 강연에 참석한 후에 찜질방에서 보살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 아침기도를 함께 하기 위해서 왔는데, 함께 아침기도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면서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한 후 이번 행사를 준비한 모든 분들께 인사를 하고 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달라스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8시30분 비행기를 타고 휴스턴 하비공항으로 간 다음에 잭슨빌로 갈아타고 가는 노선이었는데 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 못잔 꿀잠을 잤습니다. 중부시간에서 다시 동부시간으로 변하니 1시 20분에 도착예정이었으나 도착예정시간보다 약 25여분정도 빨리 잭슨빌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최영태 거사님이 마중나와 있어 짐을 찾아서 숙소인 김성순 총무님댁에 도착하니 1시50분정도 되었습니다.nbsp 숙소에 도착하니 잭슨빌 정토법회 분들이 스님과 함께 식사를 하려고 한가지씩 음식을 해가지고 와서 준비를 해놓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잭슨빌에 오지 않아 거의 대부분 2년만에 스님을 뵙게 되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 다음, 늦은 점심으로 다함께 맛있게 공양을 하고, 스님께서는 휴식과 업무를 보시고 저도 밀린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였습니다. 그동안에 묘덕법사님과 잭슨빌 정토회원들은 서로 수행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미국은 워낙 땅이 넓다 보니 워싱턴이나 LA로 가서 수련을 한다는 것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묘덕법사님과 함께 짧지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민역사가 오랜 타도시에 비해 잭슨빌은 한인 인구가 2천여명 밖에 되지 않는 관계로 정토회와 각종 부대활동이 소규모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하지만, 수행은 결국 본인을 위한 것이기에 하루 중 짧은 시간이나마 일과 사람관계에서 벗어나 본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꼭 규칙적으로 가지기를 묘덕법사님께서 조언해주셨습니다. 아울러 그간 기회를 갖지 못했던 회원들에게 깨달음의 장, 불교대학, 경전반등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해주셨습니다.묘덕법사님과 나누기 시간후에는 거사님들은 거사님들대로, 보살님들은 보살님들대로 서로 맡은 바 일들을 챙겨서 행사장으로 출발해서, 비록 회원은 적지만, 잭슨빌 회원들은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이용해 무리없이 아주 원만하게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잭슨빌 다운타운에 위치한 에버뱅크 빌딩의 오디토리움이 오늘 스님의 강연이 있는 곳인데, 에어뱅크빌딩은 아주 높은 초고층의 빌딩으로 미국전역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곳에서 스님 강연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한 강연장은 300여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곳인데, 언젠가는 이곳을 가득 채우는 일을 잭슨빌 정토회원들은 수행과제로 삼아 현재 한인이 가장 적은 도시에 살고 있지만 최선을 다해서 늘 홍보하고 준비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스님께서 행사장에 도착할 무렵부터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한차례 쏟아졌습니다. 스님께서는 6시40분에 에어뱅크에 도착하니, 잭슨빌 한인회장과 인근의 올랜도 지역의 한인회 관계자, 그리고 잭슨빌 한인성당 신도대표등 몇분들이 와서 스님께 인사를 드리면서 한인들이 적은 도시까지 스님께서 오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이곳에서도 멀리서 스님을 뵙기 위해서 오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소나기가 와서 혹시나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염려스런 마음이 들었지만, 2년 전에 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스님께서 강연을 시작하자 약 80여명의 사람들이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모두 강연으로 자기자신을 돌아보는 수행과 참회의 마음가짐이 중요한지를 간략하게 말씀 해 주셨으며, “인생살이란 다람쥐의 삶과 같습니다. 다람쥐는 특별히 즐거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습니다. 그래서 괴롭게 살면 짐승보다 못한 삶이 되는 것이고, 즐겁게 살면 짐승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이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으면 짐승수준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 개인 인생사, 사회적 이슈, 우주에 대한 얘기등 어떤 이야기도 좋습니다. 다만 불교 신자라고 불교 얘기 안 한다고 섭섭해 하지 마시고, 기독교 신자라고 불교 이야기 한다고 싫어하지 말고 그냥 인생얘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만 선택만이 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질 일만이 있을 뿐이며, 옳고 그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즉문즉답이 아니고 즉문즉설이라고 하고, 좀 더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해 보자는 것입니다.”라고 하시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결혼 생활 10년차 아이 둘을 가진 주부께서 했는데, 육아로 인해 몸의 기력이 많이 약해져 있는데다 가정 형편도 좋지 않고 애들 아빠는 빚까지 있는 상황이고, 이전에는 친정에서 많이 도와주었는데 이제는 친정 부모님도 지병이 있으셔서 편찮으신데다 한국에 나가보고 싶어도 나갈 형편이 안되어 나갈 수 도 없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이러하다 보니 이제껏 이정도 생활밖에 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에 10년 세월이 헛된 것 같고 이런 저런 상황들로 최근엔 우울증 진단까지 받아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 낼 수 있을지 다시 예전처럼 직장을 나가야 할지 스님께 도움 말씀을 부탁드렸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남편이 생활비를 주는지 질문자에게 물으시고, 이전에는 친정에서 가끔 도와주었지만 생활비는 잘 준다고 하시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지금 빚이 있어도 굶지 않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상황에 본인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문제, 우울증 치료가 먼저여야 할 것입니다.” 라고 하시면서 약물 치료와 약간의 상담이 필요하다가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가 자기 삶이 모자란다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직장 생활을 한다고 질문자가 나아지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지금 애기 엄마는 예전에 직장에 다닐때 상황이 좋았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내가 지금은 승려를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대학 교수를 했다 라고 말을 하고 다닌다면 그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은 비록 승려지만 내가 예전에는 잘나가는 대학교수였어, 지금 현재보다 과거에 뭐했다라고 하는 것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승려에 대한 자존감, 자신감이 없다라고 하는것과 같습니다. 지금 내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식을 키우는 엄마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애 엄마만 하고 있다는 열등감을 없애야 합니다. 직장을 다니는 것은 잘하는 것이고 아이 키우는 일은 도태되는 것 같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아버지도 편찮으셔서 한국에 나가봐야 한다지만 부모님께 자주 전화 드리면 됩니다. 가 봐야 돈 받아 올 일 밖에 없잖아요. 걱정은 아버님 돌아 가실까 하는 것이 아니라 돈 받을 때가 없을 까봐 걱정하는 것 일 수도 있습니다. 엄마 정신이 건강해야 자식이 잘됩니다. 그러니 기분전환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자식 잘 돌보고 맘을 다 잡으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번째 질문은 외할머니와 갈등에 대해 젊은 여성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자는 “어릴때 외할머니께서 제게 애착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촌들과 노는 것이 좋아 외갓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떠들고 놀때 저만 혼내시는걸 보고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외할아버지께서 좋아해주시고 사촌들과 노는 것이 좋아 놀러갔었는데 대학 4학년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 가시고 장지에 갔을때 너는 내리지 말라는 외할머니 말씀에 상처를 받은 뒤로는 할머니에 대한 원망에 외갓집도 가지 않고 새해인사 전화도 형식적으로 하고 할머니와 접촉을 피하고 저도 할머니께 살갑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려운 가정 형편이 못마땅해 부모님을 이혼시키려 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는 저를 임신중이었고 저 때문에 당신 딸이 고생한다는 생각에 저를 미워하시는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제 연세도 많으시고 건강도 안좋으신데 외할머니와의 사이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라고 물었습니다.nbsp 그러자 스님께서는 “굳이 본인이 나서서 해결하지 않아도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다 해결될 일입니다. 예를 들어 엉덩이에 종기가 생겼는데 3년 뒤엔 저절로 사라진다는데 굳이 수술을 해서 낫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할머니는 나름 이유가 있는데 어쩌겠습니까? 딸이 맘에 안들면 그자식도 맘에 안들어요. 남편이 미우면 자식도 밉다라는 말처럼 사위가 맘에 안들면 그자식도 다 밉게 보이고, 그 자식을 쳐다보면 사위 생각이 나고, 지금 할머니의 마음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할머니의 문제입니다. 질문자가 괴로울 정도로 미워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피해의식입니다. 인간의 피해 의식은 오래갑니다. 엄마가 언니 동생 야단칠 때 야단 맞은 우리는 생각나도 엄마는 기억에 없습니다. 그것처럼 어려서 몰라서 미워했다면 그것은 내문제입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미워하는 것은 어려서는 몰라서 그랬지만 커서 그것을 알고 나면 어릴때의 기억은 있지만 미움은 사라집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자기의 유아기 상처가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지금의 31살의 마음으로 그때의 상처를 치유해야 됩니다. 질문자는 사고가 7살 그때에 멈춰 있으면 본인만 힘들어요. 어릴때의 그것을 털어야 됩니다. 하지만 법문을 듣는다고 금방 털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할머니께 참회의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다. 해보시고 할머니와의 대면이 불편하면 아직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것이니 또 기도 하세요. 요즘은 덩치는 어른인데 마음은 자라지 않은 어린애의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세번째는 ‘해외에서 고국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라고 다소 요점이 없고 너무 범위가 넓은 얘기로 질문을 해서 질문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는데, 스님께서는 한반도 통일과 국제정세로 이어지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거의 한시간여동안 대미, 대중관계, 한반도 통일의 전망과 중요성등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고, 많은 분들이 처음으로 이런 관점에서 통일이 왜 한민족, 한반도에서 지상과제일 수밖에 없는지 핵심을 집어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답변 덕분인지 강연이 끝난 후에는 새로운 백년을 사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네번째로는 세시간 운전해서 온 유학생이 여러 갈래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배운 사람들의 다소 추상적인 걱정을 스님은 간단하게 두 가지로 요약해주셨습니다. 고국에 있는 부모님 걱정과 유학생활중 맺는 인간관계의 어려움, 그 두 고민에 대한 답변은 간단히 본인의 지금 자리에서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것, 즉 공부 열심히 해라로 해결되었습니다.nbsp 다섯번째 질문자는 처음에는 다소 엉뚱하게 들리지 모르는 소리로 우리 민족의 유래와 역사에 관한 다소 파격적인 질문을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이분의 얘기를 끝까지 경청하시면서, 결국에는 환인의 한나라, 환웅의 배달나라, 단군의 조선나라의 역사까지 역사기행 강좌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를 쭉 돌아보시며, 한민족이 다시 한단계 비상할 수 있는 시대적 과제가 결국 통일임을 세번째 질문에서 제기되었던 문제와 아울러 다시한번 명쾌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처음에 스님께 역사강좌를 들었던 때가 2000년 봄이었는데, 그때 제가 느꼈던 감동을 오늘 강연에 참석했던 많은 분들이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은 지역신문 기자분이 이 좋은 말씀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지 못해 아쉽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자로서 일부 보수신문의 글쓰기를 비판하면서도 스님께서도 좀 더 담대하게 언론보도를 대했으면 하는 애정 어린 비판도 과감하게 던지셨습니다. 오늘은 세번째, 다섯번째 질문이 통일과 우리민족의 역사에 대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이질문은 거의 스님의 통일강연과 역사강좌 시간이 되므로 아주 길게 답변을 하여 참석자들이 지루해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우를 했는데 강연이 끝나고 나서 오히려 질문자들의 강연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았고, 새로운 백년을 사 가지고 가는 분들이 많아서 제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강연은 인생에 대한 즉문즉설이든, 우리 역사와 통일에 관한 것이든 어떤 것이든 참석한 분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제가 많이 피곤한지 참석자들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많이 놓쳤습니다. 세시간 여 진행된 잭슨빌 즉문즉설 강연은 시간관계상 10시가 가까워져 마무리하였고, 이후에는 책을 구입한 분들께 책사인을 해주셨으며, 멀리서 온 분들이 많기 때문에 잭슨빌 정토법회에서는 다과회를 준비하여 함께 다과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후에 행사를 준비하면서 좋았던 점, 어려웠던 점 등에 대해서 묘덕법사님과 함께 나누기를 한 후에 숙소로 돌아오니 11시 4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시 1시 30분까지 잭슨빌을 깃점으로 플로리다 지역에서는 내년 100회 강연을 할 경우에 어느 지역에서 강연을 할지 총무님과 최영태거사님과 함께 논의를 하였습니다. 이후에 스님께 인사를 하고 제방으로 돌아와서 개인짐을 정리한 후에 2시30분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듀크 대학교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강연스케치는 잭슨빌 정토법회의 허지원 보살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2013.09.21. 18,636 읽음 댓글 1개

2013.9.16. 달라스 강연 - 2부

텍사스는 유전이 유명하고, 휴스턴에는 석유회사가 많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잘 사는 주 중의 하나인데 달라스로 가는 길 옆으로 밭에서 작동하고 있는 석유를 퍼올리는 기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거의 3시간 30분이 걸려서 달라스 다운타운을 지나 오늘 행사가 열리는 성 안드레아 성당에 도착하니 김도미니코 신부님과 성당 성도님들이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한편 오늘 행사를 담당한 달라스 열린법회팀에서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준비하여 스님께서는 대기실에서 신부님과 함께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바로 7시에 행사장인 성당 예배당으로 입장하였습니다. 성당을 가득 채운 청중들 사이로 법륜 스님이 온화한 미소로 입장을 하셨습니다. 청중들은 우렁찬 박수로 스님을 환영하였으며, 스님께서는 우선 강연장소를 제공해 주신 성 김안드레아 달라스 한인 성당 김도미니코 주임신부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여기에 모이신 분들이 종교를 초월해서 건강한 교류와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인사하셨고, 법륜스님의 소개영상에 이어 본격적인 스님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올해 많이 덥지 않았냐고 질문하시고 유난히 더웠던 올해 한국의 기상현상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산업화에 따른 에너지 과소비로 인한 기상이변을 말씀하신 후, 전세계적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 속에 미국과 중국이 가장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한국은 1년에 버리는 음식쓰레기가 14조원, 처리비용은 5000억원이 소요될 정도로 잘 먹고 풍족하게 사는 거 같지만 공기 오염, 수질 오염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물도 돈 주고 사먹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정수기나 정화기도 생기고 무공해나 유기농업식품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과연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으며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과연 발전인가?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개인의 삶도 다시 되돌아 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동안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가? 더 자유로워졌는가? 마치 달리던 자동차를 잠시 멈추고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처럼 우리 삶도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해야 내 삶이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종교적인 문제를 떠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라고 하시면서 첫 질문을 받았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20대의 여성분이 하였는데, 부모님과 주변의 어른분들에게는 사랑도 받고 잘 지내는데 여자친구들하고는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꽃이 예쁘면 꽃을 예쁘다 하며 내가 좋아하면 되지 꽃에게 뭘 바라지 않듯이 친구관계는 주고 받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에 남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에 개의치 말고 내 마음 그대로 좋게 대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남이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그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과는 별개로 내 자신 스스로가 잘 하고 좋게 대하면 된다고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 두번째는 젊은 남성분이 질문하였는데, 동성결혼으로 인해 동성 결혼 2세 자녀들의 정서적 혼란과 정체성 문제도 야기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사회적 영향을 어떻게 해석하고 극복해야 하는지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세상에는 남자, 여자,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자,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한 자 등 4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은 각자 태어난 그대로 존중 받으며 살아가야 하며 그 존재로서 다 가치가 있기에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것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뭐라 할 이유가 없으며 그런 측면에서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으며, 자녀 양육에 관해서는 아이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지에 대해 좀 더 깊은 연구와 검토가 필요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nbsp 세번째는 종교가 없는 20대 여성분이 질문하였는데, 본인은 종교가 없어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결을 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질문하자, 스님께서는 웃으시면서 해결할 수 없는 건 포기하라고 말씀하시고 ,그래도 포기를 못할 일이면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나가면서 방법을 모색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좌절과 절망은 욕심에서 오는데 자전거를 두 번 타보고 잘 타길 바라는 것이 욕심이듯 그 욕심을 버리고 자전거를 잘 탈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연습하라고 하시며 세상에는 공짜가 없지만, 난관에 부딪혔을 때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난관을 견디어 내는 힘이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신앙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네번째는 20대의 대학생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가야 할지, 군대를 가야 할지 고민이라며 스님께 질문하자, 스님께서는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지를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하고 선택을 했으면 그에 맞는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피력하시면서 경제적 여건이 제공되고 공부를 계속 열심히 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으면 대학원을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군대를 가는 것이라고 조언하셨습니다.nbsp 다섯번째로는 중년의 남성분이 미국에 와서 생긴 두 가지 고민이 있다며 얘기를 하였습니다. 첫째, 한국에서는 따뜻한 밥에 옷도 잘 챙겨 주던 아내가 미국에 와서는 잘 챙겨 주지도 않고 변한 거 같고, 둘째, 패션 디자인에 재능이 있어 한국에서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애의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아들은 미국에서 좋은 학교에 다녔고, 또 좋은 회사에서 잘 취직해서 다녔는데, 갑자기 그만두고 내옆에 와서 빵을 만들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이에 스님께서는 우선 가부장적인 태도를 버리고 그동안 힘들어 했을 아내를 생각하며 108배 참회의 절을 하면서 아내의 마음을 이해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좋은 직장을 그만 두고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아빠와 비슷한 상황을 거치고 있으니 아들의 입장에 서서 아들이 곁에 있는 동안 감싸 주고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을 편안히 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욕심으로 아내와 아들을 바라보지 말고 그들의 삶에 서서 바라 봐 주는 아량이 필요함을 말씀하시면서 객석에 앉아 있던 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아내는 미국생활 17년 동안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4개의 비즈니스를 운영하느라 힘들었기에 이제는 좀 자유롭고 싶고 내 삶을 찾고 싶다고 얘기하였습니다. 이에 스님께서 미국생활에 먼저 적응해 경제적으로 자립하신 부인에 비해 남편은 과거에는 좋은 직장을 다녔지만 지금은 그만 둔 상황이라 상대적으로 의기소침해 질 수 있으니 그 점을 이해해주고 격려해 주시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여섯번째로는 미국생활 15년이 되신 여성분이 질문하였는데, 한국에 계신 친정 부모님은 연로하여 한국에 돌아와 함께 살았으면 하고, 잘 크고 있는 두 명의 자녀를 생각하면 미국에 사는게 좋고 그런 면에서 갈등이 된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부모님이 걱정되고 돌봐 드려야 한다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부모에게 독립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다면 미국에서 아이들 잘 키우면서 잘 사는게 효도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부모님께서 혼자 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고민해 보아야 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라면 지금처럼 멀리 있지만 미국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게 부모님에게도 좋은 일이며 대신 여건이 된다면 한국에 가끔 나가서 부모님도 뵙고 오면서 챙겨 드리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 일곱 번째로는 미국생활이 25년 되었다는 남성분이 질문을 했는데, 이제 아이들도 다 컸고 본인은 한국에 돌아가서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싶은데, 부인은 아이들과 미국에 함께 살기를 바라며 한국에 나가더라고 부인은 서울에 살고 싶다고 해서 서로 의견차이가 나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지에 대해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아내와 같이 살고 싶으면 자기의 고집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하시면서 부인이 한국에 가서 산다고 하면 서울주변에 살면서 텃밭을 가꾸며 시골의 삶도 함께 누릴 수 있을 거라는 절충안을 웃으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편 부인에게 108배를 3년 동안 해보면서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보라고 질문자에게 조언해주셨습니다.nbspnbsp 여덟번째로 20대의 여대학생이 대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하시면서, 다만 자신의 선택에 있어서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대학교를 다니면서 첫째는 학업에 충실해야 할 것이고, 둘째는 스스로 경제적으로 자립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셋째는 자기 취향에 맞는 사람만 만나지 말고 두루두루 인간관계를 넓혀 갈 필요가 있고, 네번째는 젊음의 특징은 부족하고 서툴어도 도전해 보는데 있으니 실패를 두려워 하지말고 계속 시도해보는 노력을 기울여 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아홉번째로는, 욕심을 버려라, 자신을 내려 놓으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고 어떤 노력을 해야 욕심을 버릴 수 있는지에 대해 50대의 남성분이 스님께 질문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음식을 먹을때 과식하면 안좋은 것처럼 뭐든지 과한 것은 좋지 않으며 과하다는 것이 고로 욕심을 의미하고 욕심은 안좋은 것이니 버리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자기 고집을 버리고 남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욕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삶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내려놓으면 내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 열번째로는 미국에 온지 3년 되었고 미국인 남편을 두신 여성분이 질문했는데, 자식이 3명 있고, 첫째와 셋째는 대학원과 대학교를 다니면서 잘 크고 있는데 둘째는 마약중독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사고만 친다고 하면서 이제 남편도 정년퇴직 할 예정이라 유산분배도 고려해야 하는데 깨달음의 장에 다녀 온 후, 둘째의 거짓말이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는 본인 때문에 반복되는 상황으로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솔직히 마음이 가지 않고 유산도 주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님께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우선 자식에게 유산을 나누어 준다면 균등하게 주어야 하며, 가급적 본인들이 쓸 노년 자금만 남겨 두고 나머지 유산은 사회에 환원하는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요즘엔 진정한 부모가 없다라고 하시면서 말 잘 듣고 예쁜 자식만이 자식이 아니고 사고치는 아들이라 해도 끌어 안아 주는 것이 엄마의 몫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nbsp열한번째로는 29살인 여대학생이 질문했는데, 갈수록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것 같이 느껴지고 자신감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자신감을 회복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스님은 자신이 별거가 아니라고 가볍게 생각하라고 하시며 이상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차이가 크면 점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현실의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그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쳐 나가라고 조언하셨습니다.nbspnbsp 열두번째로는 최근에 자신을 내려 놓으면서 삶을 되돌아 보고 있다는 남성분이 현 대한민국에 보수세력이 집권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과거에 맞물린 시대적 오류가 아니냐는 지적을 하면서 현 정권에 대한 비난과 걱정을 하였습니다. 정치적 사안은 예민한 부분이라 청중 몇 분이 동요하였고, 그만하라고 고함을 치고 하자, 스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끝까지 들어주자고 하시며 동요하고 흥분하는 청중들을 진정시켰습니다. 질문자의 말씀이 끝나자, 우선은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끝까지 들어 주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삶을 총체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역사적 성과는 성과대로, 과오는 과오대로 인정하고, 시정해야 할 것은 시정해 나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과거를 시시비비를 하기보다는 미래를 보며 통일과 복지사회를 위한 다음 단계를 고민을 해나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를 서로 인정하고 복지사회를 구축해 가야하며, 복지에 있어 부의 재분배를 통해 삶의 균등한 질적 향상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타협을 통해 순리대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헌법정신에 의거해서 정확히 판단해 나가는 성숙된 시민의식과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늘 이분의 질문과 청중들의 반응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미숙하게 대응을 하는지, 의견이 다르거나 생각이 다를때 얼마나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지를 새삼 생각해 보았으며, 스님께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했을 때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달라스 강연에는 약 700여명이 참석하여 달라스 지역에 큰 축제와 같이 행사가 성황리에 개최되고 진행되었는데,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오자 의자를 계속해서 깔고 자원봉사자들이 정말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말씀을 하시자 많은 분들이 함께 웃고 즐거워하며 정말 유쾌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 말씀을 하는 도중에 곳곳에서 ‘아멘’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였고, 성당에서 강연을 하니, 기독교인들이 많이 참석한 것 같았습니다. 종교를 떠나서 이렇게 좋은 말씀을 들으러 올 수 있도록 오늘 행사를 담당한 달라스 정토열린법회는 법회를 시작한지 1년이 채 못되었는대도 다섯분이 합심하여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달라스 인근에 있는 4개의 대학연합소속 학생 20여명이 함께 자원봉사를 하였고, 지난해 워싱턴 청준콘서트와 워싱턴 리더쉽아카데미에서 자원활동을 한 박동준님이 수고하여 행사를 진행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nbsp 행사를 마차자 스님의 친구분이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하였고 또 많은 분들이 스님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촬영도 하였습니다. 또한 준비한 책이 거의 다 팔릴 정도로 많은 분들이 책을 구입하여 스님께서는 책을 구입하신 분들께 일일이 사인도 해주시고 또 이번 행사를 위해 기꺼이 성당을 빌려주신 신부님께 건축헌금에 사용하시라고 헌금을 하였습니다. 또한 신부님, 수녀님, 사무장님과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행사의 자원봉사자들과 4개 대학 연합회 회장 및 학생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뒷정리를 함께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도중에 법회가 열리는 있는 법회장소로 갔는데 법회장소는 열린법회에 나오고 있는 거사님의 태권도장의 한쪽 사무실에서 법회를 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태권도장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스님께 드린다고 예쁜 카드를 만들어서 스님을 그려놓고 법륜스님 사랑합니다 라고 적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스님과 마주하니 모두들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법회장소를 둘러보고 함께 이곳에서 기념촬영을 한 다음에 지금 여러분과 이곳이 미래의 달라스 정토회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해주시고 한용우 거사님 보살님과 함께 숙소로 출발했습니다. 이후에 묘덕법사님과 저는 오늘 행사를 준비하면서 좋았던 점, 어려웠던 점 등을 서로 나누면서 마지막에 취재를 하지 못한다고 한 것과 관련하여 약간의 불미스러운 상황이 생겼지만 모두들 합심하여 적은 인원으로 행사를 잘 치루었고, 또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공부가 되었다고 하여 정말 적은 인원이지만 앞으로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nbsp 일정을 마치고 숙소인 한용우 거사님댁으로 돌아오니 11시 30분이 되었고, 짐정리와 그리고 내년에 해외 100회 강연을 할 경우 이지역에서는 어떤 곳에서 강연을 하는 것이 좋을지 거사님과 함께 논의를 하고나니 1시 30분이 되어 스님께 인사를 하고 방으로 와서, 개인짐을 정비하고 나니 2시가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잭슨빌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nbsp 강연스케치는 달라스열린법회의 김은선, 이두라 보살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2013.09.20. 17,828 읽음 댓글 6개

2013.9.15. 휴스턴 강연

오전 4시 30분에 기상하여 짐정리를 마치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후에 6시에 공항으로 출발하여 8시 10분 휴스턴행 비행기를 타고 휴스턴 하비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찾아 숙소로 도착하니 10시가 되었습니다. 숙소인 박경원 법우님 집에 도착하니 경원법우님 아내와 애기들인 상민이, 상윤이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특히 상윤이는 5살인데, 4번째 스님을 보게 되니 스님을 많이 기다렸다고 하면서 흥분하고, 자기방에 스님께서 주무신다고 아주 좋아하였습니다. 식구들이 다같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스님께서 안부도 물었습니다. nbsp 휴스턴은 중부시간이라 한시간 늦어지니 실제로는 동부시간으로는 11시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강연이 4시에 있으므로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하여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에 상윤이는 동화책을 가지고 와서 스님께 어떻게 하면 동화책에서 소리가 나는지 가르쳐주기도 하고 스님께서는 한참을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상민이와 놀았습니다. 10시 30분경에 식사를 하고 저는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고, 스님께서도 업무를 보시고, 묘덕법사님께서는 11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오스틴 열린법회팀들과 마음나누기 수련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오늘은 일요일인데, 휴스턴 날씨가 아주 좋았습니다. 보통 미국에 있는 대도시의 경우 한인들이 한 두 곳에 모여 사는데 비해 휴스턴은 다른 도시와는 달리 크기 자체가 매우 큰 도시인데다 한인의 숫자도 많지 않고, 또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어 홍보에도 조금 어려움을 겪었다고 자원봉사자들이 많은 분들이 오실 지 걱정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212석 좌석을 마련했는데 스님께서 3시 40분 즈음에 강연장에 도착하셨고, 4시가 되어 법륜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즐거운 환호와 박수로 법륜스님을 맞이하는 사이 좌석이 거의 들어찼습니다. 웃으시는 얼굴로 강단에 서신 법륜스님은 기조연설로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잘 사는 우리의 삶이, 오히려 이상기온이 심해지는 등, 우리 삶을 파괴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맑은 물과 공기를 잃어버리고 정수기와 공기 청정기를 달아놓고 예전보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현재가 정말 ‘잘’ 사는 상황인지, 이 길이 지속가능한 길인지, 어떤 미래가 펼쳐질 지 예측을 해보고 점검을 해봐야한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또 청중들에게 어렸을 때 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몇 명인지 물어보셨는데, 10명도 채 안되는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휴스턴이 유독 살기 힘든가보다 하시는 농담에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 200여명의 청중중에서 10명도 채 되지 않는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삶이 어릴때보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우리의 삶도 지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법륜스님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현재 우리의 상태 그대로에서 우리의 마음상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하시며 첫번째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 첫번째 질문자는 결혼한 지 25년만에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이혼 후 10년간 혼자 살다가 현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이 사람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았습니다. 스님은 질문을 들으시고, 단박에 그런 길은 없다고 하여 사람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주셨습니다. 현재와 같은 마음으로 살면 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예전 남편의 좋았던 모습들이 계속 생각날 수 있으니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즉 이 사람과 영원히 사랑하고 지내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냥 이 사람과 있어서 좋고, 3일을 있든 5일을 있든 같이 있어줘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전 남편에게도 그동안 같이 살아줘서 감사하고, 잘하지 못한 지난 날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날을 감사하고, 내 자신을 반성하는 마음을 내면 전남편과 현재 만나는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현재 만나는 사람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nbspnbsp 두번째 질문자는 스님이 속세에 계셨다면 어떻게 사셨을 지, 어떤 삶을 살았을 지, 그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스님은 명쾌하게 현재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가정하고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스님께서는 원래 스님이 되고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고,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결국 스님이 되었고 그런데도 잘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한가지 스님의 장점은 융합적 사고를 하는 것인데 그래서 다른 종교와도 잘 통하고 결국 종교간의 소통과 화해도 이룰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 세번째 질문자는 워킹맘으로 남편은 한국에 있고, 휴스턴에 아이와 함께 머무르고 있는데, 아이도 잘 키워야하고, 미국에서 적응도 해야 하고, 일도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가끔씩 화가 울컥하고 눈물이 난다며 지쳐가고 있는 마음에 어떻게 해야 끝까지 잘 해낼 수 있는 지를 여쭤보았습니다.nbsp 스님께서 질문자에게 단호하게 꾸짖으시며 현재의 비정상적인 삶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미래를 말씀하셨습니다. 옳다고 믿으며 고생고생해서 살고 있는 현재의 삶으로 인해 망가질 수 있는 생활들, 예를 들어 남편이 바람을 피게 되어 망가질 수 있는 부부생활, 아이에게 공을 들인다고 했지만 제대로 애정을 쏟지 못해 아이가 비뚤어질 수 있는 경우, 고생해서 자기의 성공을 이뤄냈지만 망가진 건강으로 인해 전공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하시며, 이런 경우 지금 자기의 삶이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고 하셨습니다. 현재의 삶은 그러한 위험 부담을 안고 가는 삶이라 하시며 질문자의 현재 삶이 남편의 아내로서, 아이의 엄마로서는 부족한 삶임을 인지하고 그것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결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어야 하며, 남편과 아이에게는 부족한 사람임으로 항상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지, 스트레스를 받는다던지 삶이 힘들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그다음 질문자는 박사과정 학생으로 프로답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친구들과 교수님들과의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는데, 스님은 애처럼 굴었음을 자각했으면 어른처럼 행동하면 되는 것이지 질문에 모순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마음은 즉, 이성적으로는 자각을 하고, 노력을 해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실제 마음은 노력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좋게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소위 공짜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한 것이라고 하시며 우리가 노력한 만큼 얻고, 자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면 그 부족한 것을 어떻게 보완하고 극복할지를 생각하고 노력해야 하며, 요행을 바라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nbsp 다섯번째 질문자는 남편과 함께 미국에 나와 있다 2년후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현재 아이들과 5년째 남아있는 기러기 엄마로, 아이들을 위해서 어떤 미래를 선택해야할 지를 여쭤보았는데, 스님께서는 지금 남아있는 현재의 상황이 아이들의 교육을 앞세워 본인 스스로가 미국에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초래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의 교육 때문이 아니라, 나의 마음 때문에 눌러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나오는 과보들은 모두 나의 업보 때문이니 아이들에게 책임전가를 해서는 안되며, 아이들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살아야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사는 삶이 최선이며, 그렇게 하지 못할때는 나의 선택으로 인한 부족함들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한다고 하셨습니다.nbsp 그 다음 질문자는 직장인으로 특별한 문제없이 살고 있고, 직장이나 집안에 이런 저런 일이 있어도 잘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문제없이 살고 있는데, 가끔 아무런 감정 없이 있는 본인이 괜찮은 건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스님은 웃으시며 감정이 없는 것 같이 느끼는 것도 감정이 있으니까 그런 것이라고 하시며, 죽었으면 그런 것을 느낄 수 없다고 하시며 좋게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아픈 마음, 통증 또한 나쁜 것이 아니라 통증이 있어야 처치도 할 수 있으므로 그 정도는 있어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 이어지는 질문은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괴리감을 느낀다며, 한 직장의 직원으로, 남편의 아내로, 시댁의 며느리로, 집안의 딸로서 부담을 느낀다고 하였는데, 이 질문에 스님은 명쾌하게, 아내 아닌 사람 없고, 며느리 아닌 사람 없고, 딸 아닌 사람 없는 것이라고 하시며, 그냥 평범한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피곤하다고 느끼는 것은 뭔가 하기 싫은 마음이 있기 때문인데, 바쁘다 생각하지 말고 그것 자체가 살아가는 것이니 그런 속에서 나오는 즐거움을 느끼라고 하셨습니다. 여덟번째 질문자는, 법륜 스님이 지난번 휴스턴 강연에서 ‘우리 모두 선글라스를 벗듯이 무지에서 벗어나라’ 하셨는데, 그러면 예를 들어 ‘벽 색깔이 하얗다면 그 무지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모두 하얀 색깔을 보게 되는지’등 여러가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스님은 빨간 안경을 낀 사람이 흰 벽을 볼 때, 안경을 껴서 빨갛게 보인다는 것을 인식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라고 하시며, 내눈에 빨갛게 보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파랗다고 하면 틀린 것이 아니라 저 사람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 구나라고 접근하면 되고, 옳고 그름의 분쟁이 아니고 이해로 가야한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 그 다음 질문자는 박사과정 학생으로 미팅이나 시험 전에는 벼락치기로 공부가 잘 되는데 평상시에도 벼락치기 효율처럼 잘 되는 질문을 물어보자 청중들도 모두 웃었고, 스님께서도 명쾌하게 그런 것은 없다고 하시며, 벼락치기를 잘 하면 시험을 자주 보는 것이 답이라고 하셔서 또 한번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 열번째 질문자는 공부를 업으로 삼고 싶은 박사과정 학생인데, 공부만 하다보면 몰입을 하게 되어 일상생활을 잘 할 수가 없는데, 친구들과 모임도 하고 싶고, 밥도 혼자 먹고, 연애도 못하게 되어 조화롭게 사는 삶을 여쭤보았습니다.nbspnbsp 이에 스님은 욕심을 내서 그렇다며 본분을 지키는 게 중요하고 여유가 생기면 다른 것도 하면 좋은 것이라 하셨습니다. 스님을 예로 드시며, 스님이 불경도 못 외면서 구호활동만 하고, 사회활동을 하면 활동가이지 스님이 아닌 것 처럼 자기 전공을 충실히 하고, 전공 문제에 대해서 남들에게 조언할 정도는 되고, 그 다음에 여유가 되면 다른 걸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3시간 연구하는 것 보다는 2시간 반을 연구하고 30분 휴식을 하여 그 다음 연구의 효율을 높이게 되면 그 30분이 연구의 연장 선상인 것처럼, 중간에 사람들과 만남을 가질 수도 있고 같이 식사를 할 수도 있고 이런 모임과 휴식을 연구의 효율을 높이는 데 사용하여 연구의 연장선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nbsp 질문자들이 많아 스님의 강연은 두시간 반이 훌쩍 넘어갔고, 이어지는 11번째 질문자는 한국에 있는 8살 어린 여동생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이쁘고 발레를 계속하던 여동생이 어느날부터 그만두고, 술담배를 많이 하고 매일 새벽 늦게 들어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동생과 어떻게 소통을 해야하는 지를 여쭤보았는데, 이에 스님은 20살이 넘었으니 부모나 언니가 간섭할 권리가 없으며,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부모와 언니가 이해를 못해주니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하시며, 자신의 능력으로 자기 살길을 살고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으며, 걱정되어서 말해주는 것은 괜찮지만, 동생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습니다.nbsp 세시간이 다되어가는 강연 끝에 마지막 질문자는 시민권자와 결혼하여 6개월전에 휴스턴으로 온 상황인데 영주권이 1년간 나오지 않고 있어 집에서 놀고 있고, 공부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스님은 ‘팔자가 좋다’고 하시니 모든 청중이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스님의 말씀은 지금 놀 수 있을 때 놀아야 한다. 그리고 10년 넘게 불법체류를 해가며 영주권을 받기 위해 저 임금으로 고생해서 사는 사람들이 숱한데, 그런 상황에 비하면 행복한 상황이니 즐겁게 받아들이고, 영주권이 안나와서 공부를 못하고 있어 힘들다고 하면, 학교 가기 전에 미리 책을 사서 공부를 하면 될 것이라는 명쾌한 답을 내려주셨습니다.nbspnbsp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이곳에 불교신자들이 있으니 즉문즉설의 원리를 조금 설명해주시겠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벽색깔은 각자의 업식, 과거의 살아온 습관에 의해 투영이 되어 인식이 되고 보일 뿐이지 실제로는 빨간색도 아니고 파란색도 아닙니다. 이것을 ‘공’이라고 하며, 공이란 다른 말로는 ‘다만 그것일 뿐이다’라고 말하며, 예를 들면 ‘똥은 오물도 아니고 거름도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와 같이 ‘똥은 똥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우리의 생활속에 있는 것이며, 제법은 공하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현실속에서 살아가므로, 현실속에서 우리가 안경을 끼고 살 수 밖에 없으므로 갈등이 생길 수 있지, 내눈에 빨갛게 보인다고 빨갛다, 내눈에 파랗게 보인다고 파랗다라고 하지말고 내눈에 빨간 것임을 인식하면 그것은 내 업식을 인정하는 것이며,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의해서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고 다 내 주관인데 이것을 일체유심조라고 합니다. 마음의 작용, 원리에 대해 이해하고 실천하게 되면 마음이 여유로와지고 밝아지고 가벼워지므로 인생의 행복, 자유는 답답함이 해결되어 지는 것이니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시며 3시간 가까운 강연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은 마무리되었고, 이후, 스님은 책을 구입한 모든 분들께 일일이 책에 사인을 해주시고, 사진도 함께 찍어 주셨습니다.nbspnbsp 그 사이 자원봉사자들은 강연장에 설치한 기기와 포스터들을 모두 마무리 하였고, 함께 단체사진을 촬영한 후에 식사장소로 이동하여 함께 식사를 하며 자원봉사자들에게 적은 인원으로 행사를 한 것에 대해서 수고했다고 격려해주었다. nbsp 저녁 식사 후에는 휴스턴 강연을 준비한 박경원법우님과 이원자보살님등 6명의 휴스턴 열린법회팀과 구진영 보살님,정민규 법우님등 6명의 오스틴 열린법회팀등 총 12명이 함께 묘덕법사님과 함께 공감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이번 행사는 인근지역에서 열린법회를 하는 두지역의 법회에서 팀원들이 합심하여 행사를 준비하였는데 이번 행사에 대한 느낌, 좋았던점, 아쉬운 점등을 나누기를 통해 서로 공유하였고, 내년의 더 멋진 행사를 위한 다짐들을 한 뒤 헤어졌습니다. 그 시각 다시 오스틴으로 돌아가려면 3시간은 족히 운전을 해야 하는데, 다들 조심해서 가라고 인사하고, 저희들은 10시가 되어서야 숙소로 출발할 수 있었고, 숙소에 도착하니 10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뒷정리를 하고 피곤해서 스님의 하루를 작성할 수가 없어서 11시 30분에 비교적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Texas AampM 대학교와 달라스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nbsp 강연스케치는 휴스턴열린법회의 이현정 법우님께서 도움주셨습니다.

2013.09.18. 17,663 읽음 댓글 7개

2013.9.14. 애틀란타 강연

새벽 1시 30분에 취침하여 오전 4시에 기상해서 애틀란타로 가지고 갈 짐을 다시 정리하였습니다. 5시에 식사를 하고 5시20분에 출발하여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마치고 무사히 7시 10분에 출발하는 애틀란타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어제밤에 스님께서 요 며칠사이에 계속 공항 에피소드가 있으니 오늘 조금 일찍 출발하자고 하여 숙소에서 20분거리에 있는 공항으로 5시 20분에 출발하였습니다. 오늘 공항까지 스님을 태워주신 분은 이곳에서 20년째 살고 계시는 거사님이신데, 고속도로에서 공항으로 빠지는 출구가 공사로 인해 막혀있고, 이 고속도로선상의 모든 출구가 막혀있으니 갑자기 당황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자동차 두대에 나눠서 타고 있던 저희들은 모두 하일숙 보살님차로 옮겨타고 공항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네비게이트는 유턴해서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가는 길로 계속 안내하기 때문에 아이패드를 꺼내 직접 지도를 보면서 공항으로 가는 길을 찾기로 하였습니다. 지도법사님께서 아이패드에 나타난 지도를 보면서 운전자에게 길을 일러주니 겨우 고속도로가 아닌 로컬도로를 따라 공항으로 가는데 공항을 가리키는 사인판을 보니 반갑기 그지 없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 오늘도 고비가 있었다고 하면서 함께 웃으면서 저희들 바래다 주신 콜럼버스 신도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저희는 탑승대로 들어왔습니다. 미국동부에서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애팔라치안 산맥이 있는데, 애틀란타는 이 애팔라치안 산맥의 가장 끝자락인 남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애팔라치안 산맥을 따라 구름이 덮혀져 있었는데 마치 눈덮힌 것처럼 보여서 이색적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9시에 애틀란타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아 10시에 오늘 저희가 묵을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12시정도까지 오늘 행사에 대해 서로 의논을 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은 애틀란타에서 열린법회를 열고 있는 팀들이 준비를 하는데 이분들은 처음 자원봉사도 하고, 이런 행사도 처음하게 되니 여러가지로 질문도 많고 걱정도 많았던가 봅니다. 그렇게 1차팀이 행사장으로 떠나고 스님께서는12시30분에 조지아대학교에서 현재 교수로 재직중인 박한식교수님과 점심약속을 했습니다. 박한식교수님은 북한문제를 연구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 미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는 노교수님이십니다. 법륜스님께서 애틀란타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는 꼭 스님을 만나서 여러가지 얘기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미팅이 성사되었는데, 74세의 노교수님은 사모님과 함께 애틀란타에서 1시간정도 떨어진 곳에서 직접 운전을 하고 오셨습니다. 오늘 스님강연도 듣기 위해서 오늘 일정을 하루종일 비웠다고 했습니다. 1시무렵에 교수님께서 오셔서 두분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점심을 예약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식사를 함께 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우선 이렇게 여기 애틀란타에서 스님을 볼수 있게 되어서 무척 기쁘다고 하셨고, 스님께서는 교수님께 새로운 백년을 선물했습니다. 이곳에서 열린 법회팀이 처음 행사를 준비하기 때문에 점심식사 후에 저희는 바로 행사장으로 이동을 하였고, 스님께서는 교수님과 얘기를 나누시다가 강연시간이 되어서 교수님과 함께 행사장으로 오셨습니다. 행사는 Northview 고등학교 오디토리움에서 하였는데, 어느 대학 극장보다 더 좋은시설을 갖추어 놓았습니다. 이 학교에는 한국인 재학생들이 많고, 또 한국문화반이라는 동아리가 있어, 이 동아리 학생들이 모두 자원봉사를 하고, 한국인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행사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멀리 미시시피, 테네시, 알래바마, 몽고메리등 애틀란타 이외의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봉사신청을 하여, 실제 열린법회팀은 7명이지만,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30명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차성호 거사님 집에 설치된 프레스기를 이용하여 희망티셔츠도 넉넉하게 만들어서 자원봉사를 하는 모든분들에게 다 나눠주니 행사장에 활기가 넘치는 것 같고 또 좋아보였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여 배너도 함께 달고, 스피커와 마이크테스트도 함께 하고, 준비를 처음부터 함께하여 저도 현장에서 행사에 차질이 없도록 함께 준비를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여 4시가 거의 되자 400여명이 참석하였는데, 총 450여명이 오늘 강연장에 왔습니다. 외국인과 결혼하여 남편을 모시고 오신 분들이 2분이나 자원활동으로 참가하여 이 또한 색다른 모습이고 보기 좋았습니다. 애틀란타에서는 총 9분이 질문을 하였고, 그 중에서 74세 된 어르신과 스님의 대화는 강연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정말 재밌고 유익하고 즐겁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첫번째 질문자는 아들에게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 알고,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문의했습니다. 또한 딸과 아들을 두고 있는데 딸은 그렇지 않은데 아들은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베풀 줄 모르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nbsp 그러자 스님께서 자기가 낳고 자기가 키웠는데 누구를 닮았겟습니까? 지금 질문자의 자세부터가 남에게 배풀고 배려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딸은 자기를 닮았다고 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닮았다고 하니, 좋은 것은 자기 닮고 나쁜 것은 남편 닮았다고 하니, 이것부터가 베풀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베푸는 마음은 잘된 것은 아빠 닮고 못된 것은 나를 닮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들이 엄마 닮았네요. 라고 하니 첫 질문부터 반전이 나와서 그런지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맹모삼천지교를 얘기하면서 베풀어라 뭐해라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베푸는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를 질문했는데, 스님과 질문자의 대화속에서 결국은 엄마가 남편한테 열린마음을 먼저 내어야 아이도 변화가 올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남편한테 깊은 참회의 마음을 내고 참회를 해야 한다고 설명해주셔서 질문자의 질문과는 전혀 상반된 답변 같아 보였지만,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두번째로는 외국인 남편과 함께 와서 질문을 한 50대 중반정도의 중년 여성이었는데,nbsp백인남편과 결혼한 지 30년이 되었고, 본인은 천태종 가정에서 독실한 불교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반면에 남편은 독실한 침례교 집안인데, 남편이 결혼하고 나서 20년전에 불교로 개종을 하고 나니 시부모님이 질문자보고 자꾸 남편을 훔쳐갔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것은 다 봐줄테니 종교만 옮기라고 하고, 질문자도 자기 신앙이 있으니 자꾸 이런 말을 하니 시부모님을 만나기가 불편하고 시댁에 가기 싫고, 본인도 싫어하니 결국 아들도 할머니, 할아버지 한테 가는 것을 싫어한다고 질문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리고 종교만 옮기라고 하지만 제맘속에는 기독교에 대한 거리감이 오고, 마음이 따라가지 않고 있고, 지금도 시부모님은 천당과 지옥을 얘기하면서 종교를 옮기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스님께 질문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985170지옥에 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내가 지옥에 가면 나한테 부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므로 내가 도와주어야 할 일이 많으니 수행자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천당에 가서 할일없이 빈둥빈둥 놀면 심심할 것이니 고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착하게 살아서 내가 지옥에 안갈 수 있고 천당에 갈수 있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는 지옥에 가겠습니라는 마음으로 지옥에 간다면 그것은 더이상 지옥이 아닙니다. 그리고 시부모님께는 알겠습니다 라고 하면 되고, 걱정이 되어서 얘기해준다고 하면 늘 걱정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감사랍니다. 라고 하면 됩니다. 시어머니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주면 됩니다. ‘어머니의 신앙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신앙의 자유가 있으니 내 신앙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계속 말씀을 하시면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라고 하고,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인정해주면 됩니다. 그러면서 ‘어머니, 저는 예수님의 용서의 정신,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면서 살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그분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질문자의 그런 마음은 불교신자의 마음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나를 걱정해주는 것을 듣기 싫다고 하면 불교인이 아닙니다. 절을 하면서 ‘어머님 당신 아들을 빼앗아 가서 미안합니다. 좋은 아들 낳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 하면 좋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마음을 내고 90세 된 어머님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하는 참회의 마음을 내면 됩니다.985171라고 자상하게 말씀을 해주셔서 종교간의 갈등이 있는 집안에서 어떤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세번째는 화초를 많이 가꾸고 있는데 화초를 가꾸다가 마음속에서 펑하는 에너지가 나오는 느낌이 들면서 시기하고 질투한 자기 모습이 보여 식은땀이 낫다고 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질문했고, 네번째 30살 된 대학원생은 작년에 결혼을 했는데, 아내도 대학원생이고, 직장생활도 잘하고 싶고, 학교생활도 잘하고 싶은데 시간이 모자란 것 같아 평소에 마음이 불편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리고 현재 이상태에서 아이를 가져야할지등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결혼을 했으니 상황이 더 복잡해졌는데, 상황이 복잡해졌으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더 열심히 집중해서 살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아이를 준비해서 낳을 수는 없지만, 아이가 생기면 낳는 대신에 낳으면 책임을 지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대개 우리는 일이 많아지면 복잡해서 하기 싫어하고 한가지만 선택하고 싶어하는데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하여야 하면 더 열심히 집중해서 살아야 함을 알수 있어서 저는 좋았습니다. 다섯번째 질문자는 오분거리에 살고있는 언니가 놀부심보인데, 아버지가 형제간에 우애있게 살라고 해서 안보고 살수도 없고, 언니를 미워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에 대해서 질문을 했는데, 이분께는 절은 자기의 머리를 상대의 발밑에 두는 것이고, 숙이는 것의 몸의 표현이 절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마음이 숙여져야 몸이 숙여지는 것인데, 몸을 억지로라도 숙여서 마음을 숙이는 연습을 해보라고 해서 이부분만 보면 참 뜬금없는 답변같았지만 현장에서 스님과 질문자의 대화속에서 이같은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습니다.nbsp 여섯번째 질문자는 남편의 불륜을 큰아이가 알게 되었고, 남편에게 아이들에게는 최소한 이것을 보이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고 하니 남편이 다 먹고 살기위해서 한 것이라고 하며, 상관하지 말라고 하니 자존심도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그러던차에 스님께서 오신다는 것을 알고 질문하러 왔다고 하면서 아들이 본인의 성격을 닮아 소심하고 숫기가 없어 걱정이라는 분의 질문이었습니다. 일곱번째는 종교에 관한 질문이었는데 스님께서는 신의 아들,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에 대해서 자상히 말씀하셨는데, 스님과의 대화 후에 이분은 스님은 종교얘기보다 삶의 얘기를 해주어서 침 좋다고 하여 청중들이 모두 큰 박수로 환호하였습니다.nbsp 그리고 결혼 7년차인 주부가 아직 아기가 없어서 고민이라고 하니 어떤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스님께서 자상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nbsp 오늘의 거의 마지막에 나오신 분 거사님이 오늘 즉문즉설의 백미였습니다 모든 분들이 빼꼽을 잡고 웃었고 이보다 더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질문자는 74세의 어르신이었는데, 며느리와의 갈등이 있어서 여기에 나왔고, 3년전에 며느리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며느리가 한국에 잠시 나가게 되었는데 가끔 아들집에 가서 보니 집이 너무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5일 동안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였더니 며느리가 돌아와서 남의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하면서 3년전부터 며느리가 오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며, 전화도 안 받고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하는데 말도 없고, 지금은 집도 팔고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번호도 안가르쳐 주어서 아들집을 방문하고 싶어도 방문할 수가 없어서 한번은 아들이 올때 까지 아파트 주차장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아들을 만나서 함께 들어가고 싶었는데 며느리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그냥 왔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스님께 하소연 하듯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그냥 놔두라고 하시면서 며느리가 열쇠를 주면서 그냥 가끔 와서 우편물을 챙겨주고 집에 도둑이 드는지 살펴봐 달라는 것이었는데 집에 들어가서 함부로 청소를 한다면서 남의 물건을 옮기면 안된다고 하자, 어떻게 집이 더럽고 지저분한데 청소를 안 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계속 스님과 실갱이를 벌이자 스님께서는 여러차례 설명을 해도 질문자가 고집을 하자, 그럼 배심원들의 판결을 한번 들어보자고 하시면서, 이런 경우 청소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자 거의 대부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또한 스님께서는 질문자는 현대 여성의 편에서 보면 골치 아픈 시아버지라고 하니, 질문자가 전혀 동의를 하지 않자 또다시 스님께서는 배심원 판결을 한번해보자고 하면서 이분이 골치아픈 시아버지라고 생각하는분은 손들어보라고 하자 절대다수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분께서 한사람이 손을 안들었는데 우리 아내네요. 라고 껄껄웃으셔서 다시 한번 우리가 박장대소를 하였습니다. 이분은 위트가 있어서 스님과의 대화가 아주 재미있어 보는 저희들이 다 즐거웠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시아버지가 자꾸 아들, 며느리의 삶에 간섭 하면 결국에는 아들을 이혼시키는 것이 된다고 하면서 아들과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이런 마음을 내야 한다고 하니, 질문자는 스님께 머리숙여 인사하면서 감사합니다. 라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거의 3시간에 걸친 유쾌한 즉문즉설 강연시간이 끝났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7시부터 스님께서는 약 30분간 책에 사인도 해주시고 사진촬영도 해주셨습니다. 오늘 여기서도 많은 분들이 스님의 강연에 감동을 받았는지 준비해 간 책이 완전히 판매되었고, 미네아폴리스에서 남은 책을 가지고 왔는데도 더 이상 책이 없어서 판매할 수 없게 되어 아직 사고 싶은 책을 사지 못한 분들이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이렇게 행사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자원봉사를 해준 한국문화반 고등학교 학생들, 지도선생님과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자원봉사자들과 사진촬영을 하고 스님께서는 숙소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뒷정리를 하고, 동아리 학생들과도 간단하게나마 나누기를 하였는데, 이런 행사에 참가한 것이 뿌듯했고, 4시가 되어서는 봉사는 정리하고 뒷자리에 와서 모두 앉아서 스님강연을 들었는데 좋았다고 하면서 자기들도 다음에는 질문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한국문화하면 한국전통악기 이런것만 생각했는데 조금 더 방향을 달리하여 요즘 한국문화를 알리는 것도 좋은 것 같다고 하며 오늘 정말 뿌듯한 시간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뒷정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서 애틀란타 열린법회팀 7명과 멀리 테네시에서 6시간에 걸쳐 외국인남편과 함께 와서 자원활동하고, 몽고메리에서 오신 용수진님, 그리고 어바인에서 오신분, 또 미시시피에서 7시간에 걸쳐서 오신분등과 함께 8시에 늦은 저녁식사를 스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스님께서는 이분들과 함께 내년에 100회 강연을 할 경우에 조지아 인근의 테네시, 사우쓰캐롤나이나등 어느 지역에서 강연을 하면 좋을지, 한국교민은 어느 정도 되는지 등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모두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nbsp그리고 저와 묘덕법사님은 자원활동가들과 공감나누기를 하여 처음 행사를 하느라 미진한 점도 많았지만, 각자의 역할을 잘해서 행사가 잘 되었다고 격려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콜럼버스법당의 전범석법우님이 박사학위를 받고 조지아텍으로 직장을 잡아 애틀란타로 옮겨서 이곳에서 영상담당 및 어려운 부분을 맡아서 일을 또 진행해주어서 모든 것이 원만하게 잘 된 것 같다고 그러니, 정토행자들이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참 잘쓰이는 것이 좋았습니다.그리고 이번 열린법회팀을 이끌어가면서 이번 행사를 준비한 차성호 거사님, 그리고 곽선희 보살님, 또한 김병조거사님 내외 및 열린법회팀들과 불교대학에 대한 논의, 그리고 앞으로의 법회장소 및 법회에 대한 논의등 애틀란타는 이제 갓 첫걸음을 띠는 곳이니 서로 논의할 것이 많아서 11시가 되어서야 모두들 아쉬움을 안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숙소로 돌아와서 뒷정리와 내일 휴스턴으로 갈 짐등을 정리하고 나니 1시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서쪽으로 이동하니 시간이 한시간 늦어져 내일은 하루가 25시간이 되니 조금 여유가 있을 것 같아 스님의 하루가 밀렸는데 내일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텍사스 휴스턴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3.09.18. 17,567 읽음 댓글 6개

2013.9.13. 콜롬부스 강연

새벽 2시 30분에 취침하여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서 오늘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짐정리를 마치고 5시 30분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다음에 숙소를 제공해주신 거사님 내외와 장희옥 보살님께 인사를 드리고 저희는 콜럼버스에서 어제 트로이로 저희를 태우러 온 하일숙 보살님 차를 타고 트로이를 출발했습니다. 트로이는 디트로이트 폴리탄의 외각에 위치해있어 콜럼버스로 내려가는 길에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을 들려서 얼마나 폐허가 되었는지 둘러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으로 내려가는 길로 내려서니 벌써부터 폐허가 된 건물이 보입니다. 200만명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가 몇년만에 140만명이 빠져나가고 시에는 60만명만이 살고 있고, 대부분 흑인이라고 합니다. 도시가 파산을 했으니 대형 교회와 성당도 문이 닫혀있고, 대형빌딩들의 유리창이 깨어지고, 전기가 끊어졌는지 신호등에 불도 들어오지 않는 곳도 있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30년전 뉴욕맨하튼의 할렘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시내를 따라 내려가자 오대호와 마주한 캐나다 국경변을 마주보는 곳은 아주 높은 GM본사건물이 휘황찬란하게 있으니 이곳이 파산한 도시가 맞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잠깐 내려서 강가를 건너다 보니 호수 너머로 Casino 호텔도 보이고 평화로운 캐나다가 보입니다. 맨하튼 할렘가가 복원된 것처럼 디트로이트도 30년 후면 복원될테니 지금 우리가 초석을 한번 다져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시가 파산을 할 경우에 얼마나 황량해지는지를 보면서 다시 차를 타고 우리는 콜럼버스로 향했습니다. 날씨가 오늘아침부터 갑자기 추워져서, 스님께서도 미국 와서 처음으로 스웨터를 꺼내 입었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우리 다들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오늘이 11번째 강연이니 총 25번의 강연중에 아직 일정의 반도 소화해내지 못했습니다. 콜럼버스는 오하이오주의 Capital City로서 한국교민은 적으나 오하이오주립대학교가 있어서 한국유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OSU 학생들이 콜럼버스법당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콜럼버스 법당에 도착하니 총무님과 보살님들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또 총무님과 신도님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조금 이른 점심이 준비되어 함께 점심공양을 하고나서 스님께서는 12시에 달라스에 있는 라디오 코리아와 생방송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숙소에서 나오셔서 함께 내년도 100회 강연을 할 장소와 콜럼버스를 중심으로 중부지역 도시 및 대학들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이 있는 7시까지 잠깐 시간이 나서 법당에 와 있는 학생 및 신도들과 함께 근처의 공원 Highbanks Metro Park으로 산책을 가기로 했습니다. 약 1시간 30분 정도 산책을 하고 법당으로 돌아오셔서 다음 강연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6시 20분에 행사장으로 출발하여 행사장 First Unitarian Universalist Church of Columbus에 도착하여 자원봉사자들 및 강연장에 오신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님 책을 사신 분들께 반갑게 책사인회도 잠시 가져주셨습니다. 드디어 7시 강연이 시작되고 스님께서는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오늘 제가 달라스 라디오코리아와 여기 오기 전에 12시에 잠깐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교민들에게 희망을 줄만한 무슨 메시지를 가지고 왔는지 묻길래, 저는 메시지가 없습니다. 주어진 상황을 바꾸지 않고서도 지금 있는 상황에서도 조금 더 행복해지고 자유로운 길이 있다면 그것이 희망적입니다. 라디오에서 이런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영주권이 없는 동포인데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그렇고, 여기 있기도 그런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영주권을 받고 여기에 오는 것이 맞습니다. 여행으로 여기에 왔으면 여행이 끝나고, 공부하러 왔으면 공부가 끝나고 돌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돌아가지 않고 남아서 영주권을 획득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은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치에 맞지 않게 욕심을 부리기 괴로울 뿐입니다.” 라고 서두를 시작하시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총 여덟분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미국에 유학 온 지 6년 된 여학생은 개인적으로 한국에 있을때는 자신감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미국에 유학와서 영어도 잘해야 하는 학문이라서 그런지 영어도 원어민처럼 되지 않고 그래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서 감정 콘트롤도 좀 잘 안되고 하는데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질문을 했고, 한분은 작년여름에 치과대학에 합격통지서를 받았으나 3년간 치과대학입학을 준비하면서 건강이 안좋아져서, 학교수업을 받을 수 있는 심신의 상태가 아니라서 학교입학을 취소했더니, 1년이 지나니 우울증이 생겼고, 입학을 안한 것에 대한 후회하는 마음도 생기고, 그동안의 삶의 방향을 잃은 것 같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잘 몰라 현재 방황하고 있는데 어떻게 할지 조언을 달라고 하는분, 2000년 미국에 공부하러왔는데 몇년후에 집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지도교수가 우울증이 심하니 휴학을 하고 건강이 좋아지면 다시 공부하라고 하는데, 휴학을 하면 졸업이 늦어질것 같아 그냥 다녔더니 병이 심해져서 오히려 더 늦어졌고 그러는 사이 저하고 같이 입학한 동료에 비해 10년 이상 늦어지니 후회하는 마음도 올라오고 하는데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생물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유학생은 현재 하고 있는 실험이 동물을 죽여야 하는 실험을 해서 많이 괴로운데 어떤 마음으로 전공생활을 할 수 있는지 질문을 하였고, 또 한 유학생은 유학생활을 하면서 생활이 단조롭고 밋밋하고 재미없는 것 같아 한국으로 갔더니 한국에서 얼마 안있다가 미국의 여유로움이 좋아서 돌아왔는데, 여기가면 저기가 그립고하는 마음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년의 대학교수님은 가족들과 약 6개월정도 떨어져 있다보니 불교공부를 하게 되었고, 공부를 하다보니 몇가지 의문사항이 생겨서 이렇게 질문을 한다고 하면서 색즉시공, 공즉시색, 불교의 윤회사상등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중에서 부모님이 간절함이 담겼지만, 스님께서 따끔하게 혼을 낸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2002년도에 미국에 이민 왔고, 현재 20살이 된 여식이 있습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는 별문제도 없었고, 공부도 아주 잘하여 1등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3이 되자 심적 부담을 느껴서 그런지 집중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대학도 현재 진학하지 않고 있으며, 양방, 한방으로 3년간 치료를 하고 있지만 좋아지지도 않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라도 하는데, 영적인 문제라면 애아빠로서 어떻게 하면 아이가 회복될 수 있는지 스님께 질문하고 싶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자식을 위해서 아버지가 존재합니까? 아버지를 위해서 자식이 존재합니까?, 아버지는 아이가 행복해지는 것을 어떻게 찾아줄 것인가?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고자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옛날 능력만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안죽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가 옛날처럼 되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아이를 인정하고 이 아이가 이 상태로도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지 지나간 것은 다 버려야 합니다. 질문자는 반성을 먼저 해야 합니다. 아이는 심리가 약합니다. 영리할지는 몰라도 정신력이 약합니다. 아이는 부모가 기대하는 짐이 무겁습니다. 공부를 할때는 가볍게 해야 합니다. 가볍게 해야 창조성이 나옵니다. 아이가 어렸을때 엄마가 정신적으로 안좋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첫번째로 아이의 그대로를 인정하고 아이에게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요구를 해서는 안됩니다. 단지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서 시간을 길게 가지고 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본인때문에 아이가 힘들었기 때문에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절도 하고 하루 10km 정도 걷고 잠을 푹 잘자고 하면 23년뒤에 오히려 잘 될 수도 있고 대학도 갈 수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따뜻하고 인자하게 격려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다시 아이가 조금 좋아진다고 잊어버리고 옛날처럼 대한다면 다시 증상이 반복되어 치료할 기회를 놓칠 수 있으니 꾸준히 치료하고 운동이나 육체적인 활동을 통해서 잠을 푹 잘 잘수 있도록 하는게 좋다고 다시 격려해주었습니다. 오늘 오하이오는 오하이오 인근 23시간 걸리는 많은 지역 및, 시카고에서도 강연장을 찾아와서 질문을 하였고, 특히 멀리 켄터키 루이빌지역 및 일리노이에서 5시간을 운전해서 와서 질문했습니다. 특히 장거리에서 오신 분들의 질문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하이오 주립대학교가 위치해 있고, 씬씨네티대학교등도 인근에 있어서 참가자중 학생이 많았고, 질문자도 학생이 많았습니다. 유학생활속에서 참으로 힘듬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멀리서 다들 어려움을 가지고 스님께 질문을 하러 오는데 모두들 유튜브나 동영상을 보면서 나름대로 스님과 많이 만나고 있고, 그 가운데에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먼거리를 와서 스님께 질문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오늘은 외국인 한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스님이 말씀하실때마다 빙그레 웃으시길래 한국말을 다 이해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강연이 끝난후에 스님께 와서 스님말씀 잘들었다고 하면서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한국말이 아주 유창하였습니다. 또한 지난번 유니온 신학대학교 있었던 참여불교와 해방신학자와의 만남이란 주제로 가졌던 컨퍼런스에서 만났던 백은주교수도 스님을 뵈러 여기에 왔다고 하면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고 다음에는 본인이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강연을 해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스님의 강연요청이 점점 늘어나고, 대학교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모두 스님을 본인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모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9시45분이 되어서야 질문에 대한 답변이 끝이 나고 이렇게 훌륭한 교회를 빌려주신 교회관계자 분들께 감사인사를 하시면서 10시가 되어서야 스님께서는 강당을 내려오셨습니다. 이후에는 약 30분정도 행사장을 찾은 많은 분들과 인사를 하였고, 약 30분정도 사진촬영도 하시고 책사인도 하시면서 강연장을 찾아오신 많은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하신 분들과 단체로 사진촬영을 하신 후 자원봉사하신 분들께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한 후 스님께서는 숙소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묘덕법사님과 함께 자원봉사자들과 행사 후의 뒷정리를 하고, 이번 행사를 하면서 들었던 마음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년 시카고 행사에 비해서 우리 식구들끼리 행사를 준비하니 일체감이 더 많았고, 좋았다고 하였으며, 비록 준비과정에 미흡한점들도 있었지만 다들 잘 행사를 치루었다고 하여, 함께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공감나누기를 마치고 11시30분쯤에 숙소로 돌아와서는 김종필 거사님,오봉산 보살님 내외분, 그리고 해외사무국식구들과 스님께서는 내년도 100회 강연을 어떻게 준비할지등에 대해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시간을 훌쩍 1시30분을 넘겼습니다. 그럼 내일 애틀란타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3.09.16. 18,019 읽음 댓글 5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