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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2일 법륜스님의 하루(라오스 사업 예정지 답사)
오늘은 라오스 아타푸주에서 가장 열악한 초등학교 교육 현장을 답사하기로 한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새벽 5시 40분에 팍세의 숙소를 출발하였습니다. 라오스도 우리나라 1970년대처럼 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지 여기저기에 도로 공사와 건축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우리가 가려고 한 큰길이 막혀 있어서 아직 어둑한 새벽이라 옆으로 난 작은 길로 들어섰더니 아주 큰 농산물 도매시장으로 통하는 길이었고 농산물을 가득 실은 차들이 비좁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길이 막히는 바람에 갈 길은 바쁘고 멀지만 한참 열기가 오르는 아침 시장구경을 덤으로 했습니다. 호박, 무, 양배추같이 우리나라에도 나는 야채는 물론 우리나라에는 없는 바나나꽃봉오리 같은 식품재료들이 커다란 바구니에 수북수북 쌓여있고 상인들은 활기가 넘쳐 보였습니다. 2시간 쯤 차를 달려 따엥이라는 곳에서 쌀국수로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그곳은 긴팔을 입어야 할 만큼 서늘해서 좋았습니다. 우리가 간 식당의 쌀국수 한 그릇 값은 라오스 화폐로 15,000키프이고, 해물쌀국수와 돼지고기쌀국수가 있는데 둘 다 시원하고 단백한 맛이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10시 20분에 아따포교육청에 도착하여 2층에 마련된 자그마한 회의실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교육청 공무원 네 분이 나와 아타푸교육청 관내 각급 학교 현황을 설명하였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는 87개에 학생 수는 22,306명이라고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관내에 학교가 없는 마을이 있는지, 학교가 없거나 낡아서 새로 이을 필요가 있는 학교가 있는지, 학교가 낡은 이유는 무엇인지를 물으시고, JTS의 설립취지와 지원하는 방식에 대하여 설명하셨습니다. nbsp ‘우리 단체의 이름 JTS는 Join Together Society의 약자인데 학교를 그냥 100 지원하는 것이 아니고 주민과 정부와 JTS가 함께 일하는 것이라는 것, JTS가 건축자재 및 책상 칠판 등 교육자재를 제공하고 정부는 기술자를 제공하고, 마을사람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총 소요되는 비용을 비율로 얘기하면 JTS가 70, 정부가 10, 주민이 20라는 것, 주민이 참여하여 주민의 자녀가 공부할 학교를 함께 지으면 교육열도 높아지고 학교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 주민들은 돈을 내는 것이 아니고 마을 전체가 의논해서 열흘정도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것, 이렇게 학교를 지어서 아이들이 어릴 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것, 상황이 열악할수록 우선순위를 둔다는 원칙을 가지고 사업지를 선정한다는 것, JTS는 이런 방식으로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9년 동안 40개 학교를 짓고, 캄보디아 라타나끼리에서 3년 동안 9개 학교를 완성하고 3개 학교를 신축 중이라는 것, 이러한 JTS의 취지를 이해해서 몇 군데 학교를 방문할 수 있도록 안내해 달라’고 요청하니 공무원들도 충분히 수긍한 듯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초등교육을 담당한다는 여자 공무원과 함께 두 군데 학교와 분교를 돌아보았습니다. 돌아본 학교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교실 상태가 열악했습니다. 땅바닥에 벽이 없는 학교도 있고, 교과서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한 명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교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교사용 교재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nbsp 마을 이장이 오셨는데 JTS의 사업방식을 얘기하자 주민들의 협조를 받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지난 번에도 주민들의 협조가 필요할 때 단합이 잘 안 되었다고 했습니다. 교사도 학부형을 설득할 의욕이 없는 듯 했습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마을주민 29가구가 떨어져 살기 때문에 힘을 모으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여러 학교를 돌아보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학교 건물이 낡고 교실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학생들에게 교과서가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가장 걱정하셨습니다. 교사들도 교재가 제공되지 않고 돈을 주고도 살 수가 없는 상황을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학교 현장을 답사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스님께서 오늘 저녁에는 어제 밤 머물렀던 팍세까지 가지 말고 오늘 아침식사를 했던 따엥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쉬자고 하셨습니다. 팍세는 너무 습하고 더웠기 때문입니다. 9시 30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돌아본 학교 지원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평가하시는 중 주민참여에 대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주민참여 문제가 난관이다, 주민참여는 단순히 경비절약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가난할수록 자기 살기 바빠 공익적인 마음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공공성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참여했던 주민이 학교를 준공할 때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주민이 참여했을 때 자기일이 되고 아이들 학교 보내는 데 적극적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민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주민들과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파견 봉사자들의 생활 원칙, 사업의 원칙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학교 건물 하나 덩그렇게 짓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이를 통하여 공공의식, 참여, 정리하는 습관을 가르치는 교육이 됩니다. JTS사람들이 까다롭긴 하지만 성공한다는 믿음을 심어 줍니다. 내 삶의 일부를 어려운 사람과 함께하여 내 일생의 새로운 목표로 정하고 경험합니다. 현지 물가에 맞고, 주민들의 생활에 맞게, 검소하게 주민의 수준으로 살아보고 수행자의 자세로 살 때 소득이 훨씬 많습니다.” 오늘 저녁 스님께서 해외봉사자들에 하신 생활원칙은 일상을 사는 우리들도 지니고 지키면 삶이 한 층 달라질 법문이었습니다. 내일은 팍세주교육청을 방문하고 그 곳 교육현장을 답사할 예정입니다.
2013년 2월 21일 법륜스님의 하루(청주, 제천, 원주)
어제 일기예보에 목, 금요일 중부지역에 눈이 온다기에 약간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맑은 하늘이라 안심을 했습니다. 그 대신 기온이 떨어져서 쌀쌀했습니다. 오늘 오전은 청주정토회에서 법회가 있었습니다. 각 법당마다 정초에 한 번 오시는 스님을 맞이하느라 꼭 잔치집 같이 들뜬 분위기들입니다. 점심식사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입구에선 오는 분들에게 인사하느라, 주차돕느라 자원봉사자들이 왔다갔다 합니다.nbspnbsp 청주정토회는 몇 년전만 하더라도 활동가들이 나이가 많고, 사람이 많지 않아 약간 썰렁한 느낌이 많았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활기차고, 법당게시판도 갖가지 모양으로 예쁘게 꾸며 놓았습니다. 청주에서도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 중 한 분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저는 공무원하다가 퇴직했습니다. 어머님이 88세이신데 치매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농사지으면서 저희들을 키웠습니다. 저도 열심히 해서 생활도 잘 했습니다. 그 때는 제가어머니를 잘 모신다고 했고, 주위에서는 어머니도 모시고 며느리도 착하다는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퇴직을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치매니까, 이성적으로는 잘 모신다고 생각하는데, 감정적으로는 귀찮아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런 마음이 드는 제 자신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더라구요. 열심히 천배하고 정진하면 그런 마음이 없어질까요?” “그것은 자연스러움이예요.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 들어보셨죠? 효자가 아니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특히 육체적인 질환은 간호할 때 보람을 느껴요. 그런데 정신적인 질환은 육체가 멀쩡하기 때문에아픈 것이 눈에 안 보여요. ‘정신만 좀 차리면 될텐데...’하는 생각이 드니까 힘이 듭니다. 정신적인 질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꾸 하잖습니까? ‘니가 내 밥에다가 독 탔지’ 이런 말을 하니까 환자라는 생각이 들어도 못 견디는 거예요. 간호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리가 그럴 준비가 덜 되어 있거든요. 치매 노인도 마찬가지예요. 딴소리를 하거든요. 치매라는 것은 뇌세포에 이상이 있어서 정신이 왔다갔다 하는 거예요. 무의식으로 깊이 들여다보면 어릴 때의 상처입은 것이 계속 나옵니다. 지금 나를 욕하거나 불만을 토로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릴 때 상처가 저렇게 있었구나’, 가만히 지켜보면서, ‘어머니가 어릴 때는, 결혼생활할 때는 저런 어려움이 있었구나’하며 재미로 보면 됩니다. 연구하는 마음으로 하면 됩니다. 기도를 할 때 그런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 자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죠. 지금 잘 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정떼는 거예요. 노인들이 자는 듯이 죽는 것이 소원이잖아요? 그러면 자식들이 너무 너무 섭섭해 해요. 죽을 때는 자는 듯이 죽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고달프지만좀 아프다가 죽어야 해요. 갑자기 죽으면 남은 사람들이 제정신을 못 차려요.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정을 떼고 있다는 거예요. 나고 죽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거예요. 자연의 순리에 내버려 두세요.나는 간호만 할 뿐입니다. 여기서 불법이라는 것은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도 나는 행복할 수가 있다는 것, 이것이 불법입니다. 정성을 다해서 모시면 됩니다.” nbsp 청주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제천으로 향했습니다. 제천정토법당은 두어 번 와 본적이 있습니다. 자그마한 제천법당에도 신발장에 신발이 다 들어가지 않아, 바깥에 쭉 늘어놓았습니다. 스님께서 법문을 시작하시면서 2013년은 진실한 불자가 되어 보자고 하셨습니다. “신년은 참불자가 되겠다, 진실한 불자가 되겠다고 원을 세워봅시다. 참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불법을 올바로 믿고,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로 실천하고, 올바로 증득해야 합니다. 이것을 신해행증이라고 합니다. 불법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대학이나 경전반에 다니고, 불교를 바르게 행하기 위해서는 백일기도에 입재해서 한 번도 안 빠지고 기도를 한 번 해 보는 겁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불법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문제가 참 많이 해결되는 것 같습니다.매일 매일 정진하는 생활까지 할 수 있으면 보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3년은 불교대학과 천일기도로 한 번 시작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천에서도 컴퓨터 게임을 하는 자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결혼생활 25년동안 부인과 의논하지 않고 큰 돈을 빌리고 사용하는 남편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분,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남편과 이제는 이혼하고 싶다는 분의 사연을 들으면서 가정생활을 힘들게 해 나가고 있는 분들의 삶의 힘겨움이그대로 전해져서 같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어느 상황에서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하시면서, 질문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남자가 돈버는 기계냐며 꾸지람도 하시고, 어려움에 대해서 공감도 해 주시면서 법의 이치에 대해서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권위적인 남자들이 돈까지 못 벌면 가정 속에서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도 못 벌고 있다가 아프면 간호도 해야 하잖아요?”하는 말에 조금은 씁쓸해지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은 경제개념을 넘어서는 공동체라며, 이혼을 하더라도 아이의 아빠가 아프면 당연히 간호를 하고 보살펴야 된다며 스님께서 조금은 야단치듯이, 조금은 어르듯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천에서 원주는 1시간정도의 거리였습니다. 원주에서 저녁식사 준비가 어렵다고 해서 오늘 저녁은 스님께서 원주에서 막국수를 사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천에서 저녁 식사준비를 해 주셔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어정쩡하게 있다가 준비한 음식을 받았습니다. 차를 타고 오면서 스님께서“저녁에 막국수를 먹기로 했으면 음식을 준비해 주시더라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서 안 받아야지.”하셨습니다. “싸온 밥을 먹을래? 막국수 먹을래?” 저희들에게 선택권을 주셔서 “막국수요.”해서, 도시락은 내일 아침 문경 내려가면서 먹기로 하고 저녁으로는 막국수를 먹었습니다. 저는 특히, 이럴 때 사람 관계가 더 우선시 되어서 단호하게 일을 처리하는 부분이 참 잘 안 됩니다.또 한번 배움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막국수를 맛있게 먹고, 원주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 원주정토법당은 오피스텔 사무실 같은 곳을법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통영법당보다는 조금 더 큰 것 같았습니다. “오늘 60여명 정도 온다고 했습니다.”해서 60명이 과연 들어갈까 싶었는데, 그 좁은 공간에 70여명이 참가해서 거룩하게 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nbsp 오십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남자분이 일어나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요, 17일날 충주 입재식에 못 갔습니다. 입재식에 간다고 하니까, 부인이 “여보, 그런데 가지마.”해서 안 갔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일까요? 두 번째는, 법륜스님과 관련해서 걱정이 되어서 말씀드립니다. 3년 전의 스님 존안과 요즘 존안이너무 차이가 납니다. 스님이 자리에 앉자마자 살펴보니 스님 얼굴이 너무 피곤해 보입니다. 일정 좀 줄이시고, 오래 사셔서, 법문을 더 오래 전해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의 생활이 스님 중심으로 되어 있는데 오래 사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세 번째는, 스님의 즉문즉설을 하루종일 듣고도 또 듣고 싶은데, 활동이 너무 화려해서 ‘난 뭐야’ 하는 비교의식이 생기곤 합니다.” 질문을 하는데 듣는 사람들이 즐거워서 신나게 웃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스님께서도 웃으면서 질문에 답을 하셨습니다. “세 번째 것부터 답을 하죠. “난, 나야” 하면서 사시구요. 저는 3년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촛불인데,날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밝아보이고, 날이 밝으면 밝을수록 드러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시대가 어려워지나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조금 어려울 때 강합니다. 시절이 어려워지다보니 더 쓰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치도 잘 되면 사람들이 찾지 않을텐데 어려우니까 찾게 되고, 남북관계도 복잡하니까 묻는 일이 생깁니다. 여러분들 가정이 행복하면 나에게 물을 일이 있겠어요? ‘엄마수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 키우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스님의 주례사’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결혼생활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바깥 밝기에 따라서 드러나기도 하고, 전혀 드러나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이 피곤한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 갔다가 들어왔는데 시차 극복이 좀 어렵습니다. 항상 미국갈 때는 비행기에서 푹 자고 내려서 깔끔한데, 미국에서 돌아올 때는 잠이 안 와 영화도 한 편 보고 그래요. 시차극복이 어려운데, 바로 정토회 35곳을 다니다 보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무리를 했으니까 여기까지 와 봤잖아요. 인상은 좀 안 좋더라도 이렇게 가까이서 보잖아요. 멀리 보면서 얼굴 좋은 것을 볼 때도 있고, 화면은 좀 안 좋아도 가까이 보는 재미가 또 있습니다. 그리고 부인에 대한 것인데, 저는 남편이 못 가게 하는 것과 부인이 못 가게 하는 것과는 어려움은 비슷한데, 남편 쪽은 좀더 수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권위주의다’ 하는 것은 위에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다가 뭘 내걸어서 제압을 하려고 하는 것이 권위주의입니다. 말이 딸리면 ‘스님 앞에서 신도가 어디’한다든지, ‘여자가’, 혹은 ‘어디 아버지한테’ 하면서 누릅니다. 자기 힘이 아닌 다른 힘을 빌려와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는 것이 권위주의인데, 그러면 상대가 승복이 안 되고 억압이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 폭발을 하게 되지요. 부부간에, 자식에게 권위로 대하면 나중에 버림받게 됩니다. 권위로 누르지 마세요. ‘우리 남편이 너무 종교에 빠지지 않나?’하는 걱정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문제도 권위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토론을 하면서 풀어보세요.” 오늘은 서울에서 약속이 있어 9시 30분에는 마쳐야 했는데, 거의 10시 되어서 마쳤습니다. 질문자가 꼭 질문을 해야 되겠다고 하면 스님도 잘 끊지를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이구. 질문하겠다고 그렇게 하는데 어떻게...”하십니다. 서울로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스님께서는 평화재단으로 가셨습니다. 약속을 마치고 오시면 스님의 오늘밤은 또nbsp짧을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 7시부터는 또 평화재단 이사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금, 토, 일은 문경정토수련원에서 전국대의원대회가 있습니다. 문경의 차가운 공기와 쏟아지는 하늘의 별들이 갑자기 그리워집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2월 14일 법륜스님의 하루(대구, 구미, 상주, 달서)
오늘은 서울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해서 대구로 내려왔습니다. 대구정토회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하고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8시 30분이 되니 법당에서 정초기도 회향 300배 정진을 하고, 이어 10시에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 먼저 한 시간 가량 새해에 대해서, 불자로서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불자는 먼저 불법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불교대학이나 경전반을 다니면서 불법을 올바로 이해합니다. 두 번째, 불법을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해야 합니다. 세 번째, 이해하고 행한 것을 경험하고체험해야 합니다. 해탈과 열반의 기쁨을 증득해야 합니다. 자기가 체험하면 믿음이 굳건해 집니다.”신해행증에 대해서 설명하시면서 이치를 제대로 알고 행하는 불자로서 역할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nbsp 질문을 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30년간 어려운 결혼생활을 한 한 아주머니의 질문을 들으면서 어려운 속에서도 자식때문에 모질게 살아온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스님을 뵈니까 갑자기 눈물이 납니다. 이번 주 일요일 있는 백일기도 입재식 신청도 해 놨고, 다음 주에 깨달음의 장 신청도 해 놨는데, 마음이 복잡해져서 갈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남편이 술을 너무 좋아해서 8번째 음주운전에 걸려서 500만원 벌금을 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의 장에 가야죠. 깨달음의 장에 갔다오면 ‘우리 남편, 8번이나 음주 운전했는데도안 죽고, 큰 사고 안 나서 다행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일어납니다.” “술만 먹으면 욕하죠, 시어머니한테 늙으면 죽어야지, 자식이 먼저 죽는 것 봐야겠냐며 소리지르죠.저는 그런 남편 말 안 들은 것으로 하려고 mp3를 켜서 귀에 꽂고, 한 쪽에 앉아 있으면 가스 불 켜고, 칼 꺼내서 죽자고 합니다.” “여태껏 칼 몇 번 꺼냈어요?” “수도 없이 많아요.” “칼을 쓰진 않았죠?” “그렇지만 30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막내아들 20살까지만 살자 했는데 아들이 20살이 되었어요.” “아들이 20살이 되었으니 자식에 대한 책임은 끝났어요. 남편이 돈은 벌어 왔요?” “남편은 돈도 안 벌어요. 제가 먹여 살렸어요. 남편이 회사를 450군데는 옮겼어요. 한 회사에 3개월 이상 못 다녀요.” “3개월동안 450군데를 다녔으면 계산 한 번 해 보세요. 어쨌든 일을 하려고 계속 노력은 했다는 거네요?” “스님” 질문하신 분이 스님께 투정부리듯 스님을 부르는 소리에 사람들이 다같이 웃었습니다. 심각하고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해서 약간 분위기도 가라앉았었는데 스님과 대화가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전체 분위기도 가벼워지고 질문하신 분도 가벼워졌습니다. “깨달음의 장 갔다 오면 괜찮아질겁니다. 갔다와서 이혼하든지 하고싶은대로 하세요. 남편 술 먹는 것과 깨달음의 장 가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남편 술 먹었다고 안 가겠다는 거예요? 그런 남편과 사는 여자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잘 알겠습니다. 깨달음의 장 다녀오겠습니다.” 대구답게 시원시원한 질문과 대답이 많았습니다. 법문 후, 점심 식사를 하고, 다음 강연장인 구미법당으로 향했습니다. 구미법당을 처음 구할 때 한 번 가 본적이 있었는데, 공사를 해서 단장을 하고 나니까 딴 얼굴이 되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오전과 저녁 사이에 있는 법당들에는 1시간정도의 법문만 하시고, 바로 이동을 해야 다음 강연장에 갈 수 있어서, 구미에서도 한 시간 강연을 하셨는데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첫 질문자가 대학생 부부인 며느리가 아이를 가졌는데, 아이 보육원에 맡겨놓고 공부를 계속하면 안되느냐고 스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공부가 아이보다 더 중요하냐 그렇게 아이를 키워서는안된다고 하시면서 야단을 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자기의 권리를 말할 수 없는 3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과 북한 동포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권리를 대신해서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깊은 애정이 느껴졌습니다.우울증이 있는 아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해서 죄책감으로 아들의 눈치를 보며 산다는 엄마에게도 왜 엄마가 아이에게 눈치를 보며 사느냐고 야단을 치셨습니다.nbsp “부모가 자식에게 비굴하게 굴지 마세요. 자식을 키워줬는데 비굴하게 굴 필요가 뭐가 있어요? 그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도움을 제대로 못 줬기 때문에 아들이 안 죽고 살아준 것만으로도참 고맙다, 대학 가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하셔야 됩니다. 기대를 낮춰줘야 합니다. 참회는 남편에게 하고 아이한테는 엄마가 당당해야 합니다. 엄마가 당당해야 나중에 아이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내치지도 말고 항상 진실하게 대해야 합니다. 자식이 못 받아들이면, 진실하게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내가 자식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자식도 부모를 이해하는 것이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구미에서는 자녀 보육관련해서 질문한 사람들에게 스님께서 따끔하게 말씀해 주시는 부분들이 좋았습니다. 어떻게 손자를 키워야 하는지, 어떻게 아이에게 엄마로서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해서정확하게 정리를 해 주셔서, 듣는 저희들도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구미에서 법문이 끝나자마자 바로 상주로 향했습니다. 오후 4시에 거의 정확하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월 29일날 개원을 한 상주법당은 올 해 순회하는 법당 중 가장 최근에 생긴 법당입니다. 깔끔하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고, 생각보다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법당을 담당하신 분은 법당이 생겨서 좋기도 하고, 또 법당에 사람 채워야 해서 조금 부담스럽기도할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 작은 법당들에서는 질문을 34개씩 받았습니다. 상주에서는 그래도 짧은 시간에여러 명의 사람들이 질문을 해서 자기 고민을 해결해 갔습니다. 남편보다 잘난 마음에 잘 숙여지지 않는다는 분, 물질 중심의 사회 속에서 어떻게 중용의 삶을 살 수 있는지 묻는 남자분, 20년전에 왕따를 당해서 생긴 분한 마음이 지금도 생각하면 그 느낌 그대로 올라와서 어떻게 하면마음을 풀 수 있는 지 묻는 분, 여동생이 다운증후군의 아들을 낳아서 평생 고생하며 살 것이 너무 걱정스럽다며, 아버지에 대한 깊은 미움으로 아버지 때문에 조카가 비정상으로 태어난 것 같다며 흐느끼며 질문하는 여자분도 있었습니다. nbsp 법문을 마치자마자 바로 대구 달서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중간에 차가 조금 막히긴 했지만 30분정도를 남겨놓은 시간에 여유있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각 층마다 한 사람씩 자원봉사자들이 서서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달서법당 자원봉사자들은 대구법당보다 조금 더 젊고 발랄한 분위기였습니다. 법당도 생각보다 컸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한 사람이 하나씩 반찬 준비를 해 와서 참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고 법회에 들어갔습니다. 대구지역 직장인들과 청년회 회원들이 많이 참석을 했습니다. 이 곳에서도 기도를 이제 시작하거나정토불교대학에 다니는 초심자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60대 초반 아주머니는 정말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남편인데 술버릇이 좋지 않아 주변에 신세를 많이 지게 되어서 괴롭다며 질문을 했습니다. “술 마시고 제 정신을 잃는다는 것은 어릴 때 어떤 이유로 심리가 굉장히 억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야단을 치지 말고 등을 두드려주고, ‘아이고. 그랬어요, 그랬어요’ 하면서 동조를 해 줘야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무의식 저 깊숙이 상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술이 취해 의식을 잃었을 때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고 이야기를 들어줘야 합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300번이라도들어줘야 합니다. 동조를 해 줘야 합니다.” 질문들이 구체적이고 생활 속에서 겪는 어려움들이라 쉬 공감이 되었습니다. 또한 시원시원하게 묻고 답하는 분들의 이야기는 전체 대중들이 박장대소하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nbsp 달서법당까지 강연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오늘은 4군데 법당을 돌며 스님께서 법문을 하셨습니다. 다들 구체적인 질문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생활적인 질문들이 많아서 전체적으로 분위기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법문을 마치자마자 오늘의 숙소인 두북으로 들어왔습니다. 두북으로 오는 길에 스님께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면 시차적응이 금방 되는데, 미국에서 한국 오면 시차적응이 잘 안 되어서 힘드네.”하셨습니다. 워낙 바쁘게 하루를 움직이고, 바로 바로 이어서 법문이 있어서, 스님께서 힘드신 지옆에서도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들 자고 있는 깊은 밤입니다. 스님께서도 옆 방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푹 주무시고 빨리 시차적응이 되셨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가져 봅니다. 내일은 오전에 해운대, 오후 3시에 부산 사하법당, 오후 7시 30분에 울산에서 법문이 있습니다. 울산 법문 후 바로 서울로 이동하는 일정입니다. 내일 부산과 울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2월 5일 법륜스님의 하루(워싱턴 미국 국무부, 미국 의회 방문)
법륜스님께서 LA에서 열리는 제3차 해외정토행자대회에 참석하시기 위해서 미국에 오셨습니다. 인도,필리핀 일정에 이어서 한국에서 불교대학 졸업식과 수계식을 마치자 마자 미국의 수도 워싱턴D.C로 오셨습니다.nbsp 워싱턴D.C는 토요일에 눈이 내렸는데, 한국도 일요일 오후부터 폭설이 내린다고 해서 비행기가 무사히 뜰려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스님께서 타고 오는 비행기는 출발이 다소 지연되어 워싱턴에 한1시간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지만 스님께서는 일정대로nbsp 잘 도착하였습니다. nbsp한국에서 스님편으로 미주지역에 필요한 수행일지, 8차 경전, 그리고 지역에서 주문한 물품등 이민가방 7개를 보냈습니다. 스님께서 무거운 짐을 차에 다 부려놓는 동안 저는 지난 봄에nbsp 팔목을 다쳐서 팔목수술을 하였기 때문에 아직 짐을 제대로 옮길수가 없어서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nbspnbsp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2월 5일 오전 9시부터nbsp 국무부의 관련 부서를 방문하여 nbsp현재 북한의 식량 사정 및 주민생활등에 대해nbsp 설명하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 및 인권을nbsp증진 시킬 수 있는 방안 등에 대하여의견교환을 하였습니다. 또한nbsp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단계적으로 미국에서 해야할 일 등에 대해서 여러가지 제안도 해주었습니다. 저는 특히 오늘 말씀중에서 다음의 말씀이 좋았습니다. 스님께서는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북한정부와 미국정부간의nbsp관계개선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것보다 더 우선해야 하는 것은 북한주민의 마음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에 촛점을 두어야 한다. 지난 몇년간을 돌아보면 이것에 대한 고민이 적었다. 새정부가 정책을 조정해서 이천만 주민을 어떻게 해방시켜야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그들만이 그땅의 진정한 주인이다.” 오후 1시에 nbsp미팅을 마치고 나와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의회를 방문하여 국무부에서 하신 것과 같이nbsp 북한식량사정 및 북한주민의 생활에 대한 브리핑,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여러가지 상황등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오늘 하루 미팅을 마쳤습니다. 늘 스님께서는 이렇게 미국을 방문하시게 되면 워싱턴D.C를 들러서 미국 국무부, 의회, 조야, 학교, 연구소 및 USAID 등을 방문하시어 북한의 상황 및 인도적 지원, 한반도의 평화와통일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의견을 전달하십니다. nbsp저는 벌써 10년째 스님을 모시고 워싱턴D.C를 다니고 있습니다. 2003년 12월nbsp그날은 하루종일 점심식사도 거르고 바쁘게 미팅을 하시는 중에 마지막 날nbsp마지막 미팅시간으로 이동하는 중에 제가 스님께 질문했습니다.nbspnbsp“스님 저는 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 똑같은 과목의 수업강의에서 첫번째는 조금nbsp 긴장하고, 두번째는 재미있고, 세번째는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스님께서는 이렇게 식사도 거르시고 똑같은 얘기를 며칠동안 이렇게 하면nbsp지겹지 않으세요? “ 이렇게 우문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스님께서는“북한주민을 위한길이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길이라면 나는 똑같은 얘기를 천번이고 만번이고 할 수 있다. “ 이렇게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때 그 감동이 오늘까지 제가 워싱턴D.C에서 이런 활동을 할수 있는 원천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그전부터 워싱턴D.C를 방문하시었고 15년 이상을 북한문제로 애를 쓰고 있지만nbsp아직도 북한주민들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한반도의 평화는 불안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스님께서 애쓰시고 있는데 상황은 안풀리고 답답하면 가끔씩 제가 스님께 불평을 하게되는데, 그때마다 “우리가 이렇게 할 일이 있어서 좋잖아.” nbsp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늘 그러면 다시한번 기운을 차립니다.nbsp 스님께서는 워싱턴D.C에 오셔도 늘 바쁘셔서 미주정토회관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으십니다. 그런데 오늘은 회관에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할 수가 있게 되어, 내일 LA로 먼저 떠날 준비팀들이 스님께 삼배를 드렸습니다.nbsp 그리고 잠깐 회관주변도 돌아보시고 nbsp주변공원으로 가셔서 산책도 하시고 오랜만에 조금의 여유를 즐겼습니다. 내일은 USAID, 엠네스티, 그리고 조야에 계시는 분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워싱턴에서 지혜광 김순영 두손모음 nbsp
2013년 1월 31일 법륜스님의 하루(필리핀 인라보 초등학교 준공식 )
오늘은 부키드논 주 다물록 시 바랑가이땅꿀란, 인라보 마을에 세워진인라보 초등학교 준공식이 있었습니다. 새벽 4시에 숙소를 출발하여 시장님댁에 도착하였습니다. 밤새 내린 비 때문에 오늘 인라보에 어떻게 갈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도로가 뚫려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지만 1주일 내 비가 와서 10km를 걸어야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다물록 시 관계자가 얘기하기도 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가능한 한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 힘이 좋은 꼬몽꼬몽 트럭을 빌렸습니다.중간 중간 길이 진창이기도 하였고, 산사태가 나서 어떤 곳은 곡예를 하며 차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걷다가 차를 다시 타고 다시 걸어서, 차로 가면 1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에 3시간만에 도착하였습니다. 준공식이 시작되었고 스님은 아이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학교 누가 지었어요? 엄마아빠한테 고맙다고 박수 쳐 주세요. 엄마아빠한테 학교 지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세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하고 박수 쳐 주세요. 이 학교를 지어 준 모든 분들께 은혜를 갚아야 해요.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에요. 첫째 학교 빠지면 안 돼요. 날씨가 더워도 빠지면 안 돼요. 비가 많이 와도 빠지면 안 돼요. 집에 농사일이 바빠 엄마 아빠가 학교 가지마라 해도 학교 와야 돼요. 언니나 오빠, 삼촌이 시집 장가 간다고 집에 잔치가 있다고 해도 학교 와야 돼요. 어떤 핑계를 대도 빠지면 안 돼요. 약속해야 해요. 아이들은 매 질문마다 예 하고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학부모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부모는 가난하게 살지만 아이들은 가난하게 살지 않게 해야되겠죠. 그럴려면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요. 집안 일이 바쁘다고 학교 못 가게 하면 안 돼요. 아이들을 학교에 빠지지 않고 보내는 것 스님하고 약속하죠? 어린이 여러분, 저도 시골에서 자랐는데 학교가 2km 떨어져 있었어요. 초등학교 6년 동안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어요. 여러분도 결석하지 않고 학교 다녀야 해요. 알겠죠?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하면 학용품은 JTS에서 지원해 줄 거에요. 감사해요 스님의 말씀이 끝나고 학생들의 선서식이 있었습니다. ‘나는 결석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어서 학부모들도 오른손을 들고 맹세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꼭 보내겠습니다.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를 잘 가꾸겠습니다.’ nbsp 오늘의 약속대로 아이들이 이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인라보 마을에, 다물록 시에,민다나오에서 좋은 일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nbsp 준공식이 끝나고 다물록 시에 돌아와 스님은 시청에 방문하셔서 다물록 시 관계자들을 만나 격려하였습니다. 그리고 차로 5시간을 달려 JTS 센터에 도착하셨습니다. nbsp 내일은 JTS 센터를 둘러보고 나무를 심을 예정입니다.
2013년 1월 24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인 스텝 성지순례)
오늘은 스님과 인도JTS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하는 날입니다. 인도JTS 각 부서에는한국인 스텝과 인도인 스텝이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인도인 스텝은34명이 참가했는데 수자타아카데미, 지바카병원, 마을개발, 건축 파트 스텝 중 수자타아카데미 대학생 교사들의 숫자가 제일 많았습니다. 인도JTS도 정토회 방침대로 자원봉사로 운영이 되고 있어서, 대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자원봉사로 수자타아카데미 상급반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새벽 6시, 천일기도를 끝내고 내려오니 인도인 스텝들이 한 두명씩 오고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달걀 2개, 빵1개, 바나나1개, 짜이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인도인 남자 스텝들은 모두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여자들은 전원 슬리퍼를 신고 왔습니다. 운동화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슬리퍼를 신고 산에 오를 수 있을까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오전 6시 40분경 스님으로부터 오늘 하루 전체 일정에 대한 소개를 듣고 전정각산으로 출발했습니다. 교문을 나서면 바로 앞에 돌무더기가 있습니다. 그 앞에 서서 스님께서 전정각산 전반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nbsp “우리가 살고 있는 ‘둥게스와리’는 부정한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둥그’는 부정한, ‘스와리’는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는 옛날 가야 사람들이 시신을 버리던 곳입니다. 시타림이라고 합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위생적인 의미가 아니라 시신을 버리는 곳이라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그런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부처님이 5비구에게 최초의 법을 설했던 바라나시의 사르나뜨도 둥게스와리와 같이 시신을 버리던 곳입니다. 시신을 버리는 곳은 부정한 곳이라 사람들이 잘 오지 않기 때문에 조용해서 수행자들이 주로 그 곳에서 수행을 했습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땅인데 시신을 버렸을 때는 부정한 땅이었는데부처님께서 수행했던 곳이라서 지금은 성스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닫기전 정진한 곳이라고 해서 이 곳을 쁘락보디힐이라고 하고, 유영굴은 쁘락보디 케이브라고 합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보이는 돌무더기있는 곳은 부처님께서 시신옆에서 명상하시던 곳입니다. 전정각산은 부처님께서 6년동안 정진하셨던 곳이라 여러분들이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6년이나 계셔서 명상하셨던 곳마다 탑터가 있습니다. 부처님과 친구 5명이 같이 수행했던 자랑스러운 곳입니다. 지금은 자랑스러운 곳이 되어 있습니다. 부정한 곳이라도 부처님이 깨달아성스러운 곳이 되었듯이, 여러분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도록 하세요.” 스님을 따라 전정각산으로 올랐습니다. 유영굴 앞에서 부처님께서 그림자를 남기고 간 이야기, 부처님이 오래 여기 계셨기 때문에 흔적이 남겨져 있다는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전정각산에 유일하게 물이 나오는 ‘부처님 샘터’에서도 잠시 머물러 부처님과 이 곳에 사는 동물들이 먹었을 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 전정각산에서 명상하기 제일 좋은 곳인 것 같다고 지난 번 성지순례 때도 말씀해 주셨던 곳에 앉아 오늘도 다같이 명상을 했습니다. nbsp “내 생각에는 전정각산 전체에서 여기가 명상하기가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앉아 있으면 여름에는시원한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요. 부처님께서도 여기에서 명상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들 조용히 앉아 바람을 느끼고, 햇빛을 느껴 보면서 늠름한 수행자 폼을 한 번 잡아봤습니다. 전정각산은 완전 칼산입니다. 그런데 한 두명의 여자 스텝을 빼놓고는 다 잘 걸었습니다. 성지순례 때는 스님이 맨 먼저 갔는데, 오늘은 대부분의 인도스텝들이 스님을 앞질러 갔습니다. 동네 앞산이라 항상 다니던 곳이어서 험한 칼산도 쉽게 쉽게 뛰어 다녔습니다. “여기 탑터 보이죠? 여기도 부처님이 계셨던 곳입니다. 부처님이 계셨던 곳에 아쇼카왕이 탑을 세워 놨는데 훼손되어서 지금은 이렇게 벽돌조각과 탑의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전정각산 정상부분에 지금 남아 있는 탑터가 총 몇 개나 되는지 한 번 세어 봅시다. 자, 총 몇 개? 열 개네요.” 스님 옆과 뒤에는 항상 사람들이 붐빕니다. 스님 옆에서 같이 가고 싶어서 다가옵니다. 전정각산 제일 높은 탑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환한 웃음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스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운 것 같습니다. nbsp 전정각산 낙타등까지 넘어서 평지로 내려왔습니다. 네이란자라강쪽으로 접어드는데 길가에 우리나라 엉겅퀴같은 잎새에 노랗고 예쁜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그 꽃 참 예쁘지?” 하십니다. 살짝 카메라에 담아봤습니다. nbsp 성지순례 때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물이 있었는데, 오늘 네이란자라강은 완전히 물이 말라 그냥 전체가 넓은 모래밭 같았습니다. 강을 건너자마자 부처님이 쓰러지셨던 곳에서 스님께서 부처님의 중도의 발견과 고행을 그만두고 목욕을 하고 수자타에게서 유미죽을 얻어 먹게 되는 과정들을 이야기로 재미있고 알기 쉽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벌써 11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산을 탔더니 배가 고팠습니다. 부처님 쓰러지신 곳에서 500미터 정도 더 부다가야쪽으로 가면 정토회에서 명상센터를 짓기 위해 구입한 부지가 있습니다. 지난 번 성지순례 때는 열쇠를 챙겨오지 않아 들어가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그 곳에 들어가 간식을 먹었습니다. 부지 바깥으로는 벽돌로 벽을 치고, 내부에는 나무도 심어놓고 풀도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지순례객들이 봤으면 참 좋아했겠다 싶어 괜히 뒤늦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간식을 먹고, 수자타 공양터에 들러 스님 설명을 듣고,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했던 곳으로 갔습니다.강가 모래밭에 둘러앉아 스님께 우리벨라 카사파를 교화한 재미있는 부처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nbsp 그 후, 논길을 걸어 수자타스투파에 갔습니다. 이 곳은 수자타의 공덕을 기려 수자타의 집에 지어놓은 스투파입니다. 수자타스투파에서 참배를 드리고, 부다가야로 향했습니다. 부다가야에 들어가니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혼잡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스텝들의 얼굴표정은 신난 것 같았습니다. 대탑에 들어가, 그늘진 잔디밭에 앉아 스님께서 다시 부처님의 성도 과정에 대해서 자세하고 알기 쉽게 하나 하나 설명해 주셨습니다. 스텝들도 진지하게 스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설명을 다한 후에는 스님께서 대탑을 돌며 부처님께서 성도를 이루신 곳, 성도 후 첫 일주일을 보내신 곳, 두 번째 일주일을 보내신 곳, 세 번째, 네 번째 일주일을 보내신 곳을 차례로 다니며 스텝들에게 설명을 하셨습니다. 성지순례 때는 인원이 너무 많아 전체적으로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오늘은 스님께서 직접 스텝들을 데리고 다니며 하나 하나 일러 주셨습니다. 이렇게 오늘 성지순례는 마쳤습니다. 이제 1년에 한 번, 스님께서 오시면 하는 전체 외식을 하러 갔습니다. 식당에는 한국인 스텝들이 미리 배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맛있게, 실컷 점심겸 저녁을 먹고, 대절한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인도인 스텝들의 얼굴 표정이 참 밝았습니다. 오늘 하루를 스님과 보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해서 몇 명의 스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저는 스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부처님께서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외우고 계신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저에게 스님은 힌두신 같이 하나의 신과 같은 분이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여기서 태어나서 이 마을에 살면서 매일 산에도 올라가곤 했지만 이 지역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책에도 간단하게는 나와 있는데, 오늘 스님께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처음 들었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셨던 곳에 직접 가서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bsp 스님께서 인도인 스텝들에게 부처님에 대해서 정성을 다해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동행했던 불교TV 감독님이 “수행을 열심히 하면 스님처럼 될까요?”하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스님과 함께 동행하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존경과 감동의 표현인 것 같습니다. 내일은 스님을 모시고, 오늘 함께 동행했던 인도인 스텝들과 수련이 있을 예정입니다. 인도인 스텝들은 일을 하면서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1월 21일 법륜스님의 하루(석가족 수련, 수자타로 이동)
오늘도 어제와 같이 새벽 5시 10분경, 새벽길을 걸어서 수련장으로 갔습니다. 오늘이 월요일이라 수련하던 청년들 몇 명이 새벽기차를 타기 위해 수련장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새벽 명상으로 아침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40분 동안 명상을 하고, 시범으로 절하는 연습을 잠시 했습니다. 여태껏 중 제일 오랜 시간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 후, 아침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곳 사람들은 아침 식사시간에 짜이 한 잔 마신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인도 녹두와 콩, 쌀로 죽을 끓여 먹었습니다. 따끈한 죽과 과일로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수련이 이어졌습니다. 스님께서 담마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제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화가 난다는 분의 질문을 예로 들면서, 담마를 생활 속에서 체화하게 되면 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nbsp 이어서 즉문즉설 법회가 이어졌습니다. 어제와 달리 사람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손을 드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생각이 과거와 미래에 가 있는데 왜 현재에 있지 않냐고 어떤 남자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의대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다는 대학생은 어제 스님께서 욕심이 있으면 괴로움이 있다고 하셨는데, 욕심이 없으면 인생의 발전이 없지 않냐며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엔지니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학생은 열심히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집중해서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귀의를 하거나 경전을 읽게 되면 무릎을 꿇게 되는데 그 이유가 따로 있는지 궁금하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생활 속의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사람들이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 정말 알기 쉽게 하나 하나 풀어서 말씀을 해 주시는데, 인도 사람들은 잘 알아듣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서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학생에게 스님 법문을 듣고 어떤 지 물어봤습니다. “여기서 45시간 걸리는 바다윤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왔습니다. 부처님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부처님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얼굴이 환하게 바뀌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 법을 배우면 괴로움과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마음이 깨끗해지고 기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저는 스님의 많은 말씀 중에 오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단 말씀이 제일 많이 다가왔어요. 꾸준하게 오계를 지키면서 노력했을 때 결국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이 좋았습니다. 저도 우리 지역에 가면 담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담마를 이야기해 줄 겁니다. 그렇게 되면 혼자 있어도 두렵지 않고, 당당한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애요.” 눈을 반짝이면서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여학생을 보면서 옆에서 듣고 있던 저희가 더 감동을 받았습니다. 즉문즉설 법회까지 마치고 스님께서 수련 전체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그냥 믿는 것보다는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의 법은 어떤 원리를 설명한 것이예요. 세상의 원리, 마음의 작용, 인간관계, 몸의 작용 이런 원리를 설명한 것이예요. 마치 과학자가 이 우주의 원리, 물질세계의 원리를 설명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담마, 법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담마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해야 합니다. 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것이 됩니다. 부처님이 훌륭하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나하고 관계가 없습니다.부처님의 가르침인 붓다 담마가 내 인생의 고뇌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내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부처님에 대해서 고마움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저절로 절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무 붓다, 나무 담마, 나무 상가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아무런 이익을 못 받았어요. 아무런 혜택도 못 받았는데 나무 붓다, 나무 담마, 나무 상가 하는 것은 입으로만 하는 거예요. 제가 왜 인도 사람도 아닌데 붓다 담마에 귀의해서 여기까지 와서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겠습니까? 그것은 붓다 담마를 내가 받아들여서 너무나 내 인생의 큰 기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붓다 담마를 믿고 행해서 그런 기쁨을 얻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마지막 정리 말씀 이후에 단체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먼저 여자분들이 사진을 찍고, 이어서 남자분들이 찍었는데, 단체 사진 이후에도 스님과 사진 찍느라고 다들 바빴습니다. 스마트폰,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으로 그룹 그룹, 가족을 모아 스님과 사진을 찍습니다. 요즘 스님은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사진 찍히느라 바쁘십니다. nbsp nbsp 수련 마치고도 계속 스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거나, 양쪽 발에 예를 표하고 합장을 하며 공경의 예를 올립니다. 문으로 나오는데 이제는 여자분들이 모두 몰려와 스님 발에 예를 올립니다. 사진 찍고 예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참이 지난 후에야 스님께서 수련장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수바쓰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수련 전체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평가를 하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스님께서 오셔서 정말 너무 좋았습니다. 스님께서 담마에 대해서 말씀해 주셔서 너무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3일은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 스님은 한국에는 내내 계시지만 인도에는 1년에 한 번 오시니까, 내년에는 적어도 5일은 시간을 내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담마를 충분히 이해하기에 3일은 너무 짧습니다. 5일정도 오셔서 부처님 법인 담마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하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이번 행사 장소를 제공한 분이 스님을 초대했습니다. 우리 숙소 바로 옆 골목에 있는 집이었습니다.집으로 들어가니 수련장에서 봤던 얼굴들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연세드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먼저 스님께 이마를 발에 맞추며 공경의 예를 올리자, 이어서 4명의 아들 부부, 손자, 손녀들이 다스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이 후 사촌들까지, 동네 청년들까지 모두 스님께 다시 공경의 예를 올리느라 오늘 스님께서 조금 늦게 수련을 마쳤으면 기차 타기도 빠듯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집 셋째 아들 부부는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아이가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 법문을 듣고 마음이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기도문을 주시면서, 어떻게 기도할지 기도문을 주셨습니다. 집안 가득 사람들이 모여들어 잔치집이 되었습니다. nbsp 인도는 큰 스승에게 올리는 기본적인 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머문 집에도 연세드신 부모님과 아들이 나와 스님 가신다고 꽃으로 공양을 올리며 환송을 해 주었습니다. 저희들은 스님 옆에 있다가 같이 환영을 받아서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동네를 빠져 나와 이따와역으로 향했습니다. 2박 3일이었지만 반짝이는 눈동자의 사람들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스님을 향한 공경의 마음을 보면서 전법의 힘을 느낄 수 있었고, 전혀 높낮이 없이 평등하게 이 곳 사람들을 대하고 정성을 기울이시는스님의 모습에서 소리없는 감동이 피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뿌린 씨앗으로 인해 이 곳에도 우리와 함께 뜻을 펼쳐 나갈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선 수바쓰지와 향후 석가족 불사에 대한 말씀을 나누시고, 마지막으로 YBS회원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수바쓰지와 YBS 회원들이 기차칸에까지 짐을 실어주고 손을 흔들며 환송해 주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유피주 이따와역에서 오후 12시 40분 기차를 탔습니다. 비하르주 가야역에는 오후 11시 30분에도착하게 됩니다. 11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가서, 가야역에서 수자타아카데미가 있는 둥게스와리로들어갈 예정입니다. 오늘은 기차를 타고 환한 대낮에 글을 씁니다. 내일부터 6일간은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한국인 스텝 수련, 인도인 스텝과의 수련, 마을 방문, 공화국 행사, 인도JTS와 인도정토회 이사회, 총회 등의 일정이nbsp잡혀 있습니다. 내일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소식 전하겠습니다.
2013년 1월 4일 법륜스님의 하루(칼리사원, 인디안박물관)
어제 캘커타 공항에 11시 10분경에 도착해서 짐 찾고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2시가 거의 다 되었었습니다. 다들 간단히 씻고 잤는데, 시차 적응이 안 되는지 새벽 4시, 5시부터 일어나 부산스러웠습니다. 오전 8시에 출발한다고 했는데도, 해가 나서인지 아침 7시가 되니까 벌서 짐을 챙겨들고 1층 마당으로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정도 돼요. 이 시간까지 어떻게 잠이 오겠어요?”하면서 늦게 잔 것에 상관없이 일찍부터 소란스러웠습니다. 아마, 여행 첫 날이라 그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침에 참가자들에게 달러를 루피로 환전해 주고, 따뜻한 물을 끓여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아침으로는 간단하게 달걀 1개, 바나나 1개, 머핀 1개를 나눠 주었습니다. 다들 잠시간이 부족했는데도 여행에 대한 설레임때문인지, 이국에 대한 궁금함 때문인지 차가 1시간동안 칼리사원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자지않고 창밖을 바라보며 인도의 냄새를 실컷 맡고 있었습니다. 감기기운이 있으신 스님은 약이 독한 지 차에서 계속 주무셨습니다. 칼리사원 앞에서 내려 긴 행렬을 만들며 힌두교 사원인 칼리사원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 사원에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칼리사원으로 가는 길이 전보다 훨씬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칼리사원의 이름은 “깔리까트”인데 꼴까타 도시 이름이 이 사원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여신 깔리는 쉬바신의 부인으로서 독립적이며 도전적이고 파괴자적인 성격이 부각되는 여신입니다. 이 곳에선 양의 목을 쳐서 그 피로 기도를 드리는 곳도 있었습니다. 참배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원에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사원밖만 빙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nbsp 칼리 사원에 속한 한 건물에 있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으로 갔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집은 마더 테레사가 이 곳 행려자를 보호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저희들이 도착한 시간이 목욕시간이라개방이 되지 않아, 죽음을 기다리는 집도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마더 테레사의 사진을 보며 인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다시 덜컹이고 급정거를 시도 때도 없이 하는 버스를 타고 인디안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인디안 박물관은 영국지배기에 세워진 박물관으로 성지에서도 보기 어려운 유물이 많은 박물관이었습니다. 사람이 많아 스님께서 두 팀으로 나누어 안내를 했습니다. 불상과 신상을 보면서 인도에서 불교와 힌두교의 문화가 뒤섞여 서로 영향을 준 것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12시까지 자유롭게 나머지 전시실들을 둘러보게 하고, 스님께서는 전에도 둘러보신 전시관을 하나 하나 빠지지 않고 다 둘러보셨습니다. 불교 유물, 인도의 문화와 역사를 전시한 전시실과 더불어 고고학, 예술, 민속, 지질, 산업, 생물 등 여섯가지를 전시실을 다 둘러보았습니다. 깨끗하거나 세밀하게 정리가 되어 있진 않았지만 많은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 전시실이었습니다. 저도 여러번 와 봤는데, 전체를 둘러본 것은 오늘 처음이었습니다. nbsp 12시까지 박물관 관람을 한 후, 조별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라는 곳, 그 중에서도 켈커타라는 곳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조별로 같이 식사도 하고, 쇼핑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디안박물관 뒤편에는 시장도 있고, 인도음식 거리도 있고, 고급식당들도 있어서 인도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짧은 시간에 느끼기엔 적당한 곳 같았습니다. 시장은 깊고 넓어서 충분한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자료집 뒤에 주변 지도까지 부착을 해 두어 길을 잃지 않도록 배려를 한 부분도 눈에 띄었습니다. 저희 스텝들도 스님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 조금 있으니, 인도 현지 스텝이 “스님. 큰 일 났습니다. 오늘 저녁 예약된 기차가 취소되었습니다. 북쪽에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운행이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하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보고를 했습니다. 221명이 예약되어 있고, 이 기차를 안 타면 내일부터의 일정들이 당장 문제가 되는데, 기가 차지만 또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곳이 인도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간단한 대책회의를 했습니다. 한 쪽에서는 켈커타에 오늘 잘 수 있는 숙소가 있는 지 체크를 하고, 제이티에스 박지나 대표님과 쁘리앙카, 제이제이 브라더가 급히 하울라역에 역장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소식을 기다리는동안 스님께서는 처음 인도성지순례를 하러 왔다가, 아이 우유를 사달라는 여인의 요구를 외면했다가,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배고파도 먹지 못하고,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고,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이티에스를 설립하게 되었던 그 현장에서 그 때의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nbsp “이 집이 내가 제일 처음 인도에 와서 묶었던 집입니다. 길에 나오니 아이를 안은 여인이 자꾸 저를어디로 데리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 길을 따라 계속 따라 나왔더니, 저렇게 조그맣고 어두침침한 가게에 들어가요. 그 여인이 분유를 가리키고 아이 입을 가리키기를계속 반복하는 거예요. 아, 아이 우유를 사달라고 하는구나. 그런데 분유가 60루피인 거예요. 인도 사람들에게 1루피 이상은 절대 주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던 터라, 얼른 외면하고 돌아섰지요.그런데, 숙소에 와서 60루피가 얼만지 물어보니 그 때 돈으로 2400원인 거예요. 얼마되지 않는 돈인데 배곯는 아이를 외면한 내 모습이 죄스럽고 부끄러워서 얼른 다시 그 자리에 가보니 아이를 안은 그 여인이 없었습니다. 그 때 제가 세운 원이 오늘날 제이티에스가 생기게 된 이유가 되었죠.” 항상 법문 속에서 듣던 스님의 고전같은 이야기였는데 오늘 직접 그 현장에서 스님께 이야기를 들으니 감회가 더욱 새로웠습니다. 그 때의 아이 안은 여인이 관세음보살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습니다. 다시 식사했던 곳으로 돌아오니 전화가 왔습니다. 하우라역이 아닌 켈커타역에서 17시간동안 가는 완행 기차를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와, 역시 일은 또 되는구나 싶으면서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습니다. 4시 30분, 박물관 앞에서 다같이 버스를 타고 켈커타역으로 향했습니다. 기차표를 반환하고, 다시 예약해서 받는 과정을 거치는동안, 대중들은 역사 바닥에 앉아 저녁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뭔가 돌발현상이 생기고, 또 해결을 하고, 기차에 짐을 싣기 위해서 짐지키는 몇 사람을 빼고는 모두 짐을 나르는 모습도 재미있었습니다. nbsp 지금은 기차를 타고 가고 있는 중입니다. 완행이라 중간중간 계속 기차가 섭니다. 자리가 입구라 화장실 냄새가 인도냄새인 것처럼 진하게 밀려 옵니다. 그래도 앉아서 자지 않고 누워서 잘 수 있는 기차를 탈 수 있어서, 내일까지 바라나시에 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내일은 부처님이 처음 5비구에게 설법을 하셨던 녹야원에서 수계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기차가 오후 1시에 무갈사라역에 도착을 한다고 하는데, 별 일 없이 도착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오랜만에 인도의 침대기차에서 잠을 청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1월 3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성지순례 첫 날)
인도성지순례를 가는 날입니다. 새벽 3시 30분, 인도성지순례 스텝들은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참가자가 많아서 미리 공항수속 밟고, 인도에 가져갈 많은 짐들도 미리 부치고, 참가자들이 편하게 출국 수속을 받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하 16도를 밑도는 새벽 추위는 살을 에는 듯 했습니다. 이 시린 새벽 공기를 뚫고 전국에서 인도성지순례를 떠나기 위해 사람들이 인천공항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켈커타에서 합류할 미국, 방콕 분들을 포함해서 순례객이 207명, 스텝이 13명으로 220명이 함께 15박 16일동안 법륜스님과 함께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모든 수속절차를 마치고 인천공항을 떠나 방콕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방콕 공항에 오후 2시경에 도착했는데, 인도 켈커타행 비행기는 저녁 9시 55분 출발이라 방콕 공항에서의 시간이 많았습니다. 준비해온 간단한 김밥과 빵 등으로 조별로 모여앉아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고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 4시부터 방콕 공항 한 쪽에서 인도성지순례 입재식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이번 성지순례에 임하는 자세, 성지순례를 하면서의 여러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시면서 여행이라 생각했을 때는 힘들고 어렵겠지만, 순례라고 생각했을 때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하면서 나중에는 제일 큰 걱정이, 부처님은 온데 간데 없고, 어디서 어떻게 싸느냐,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자느냐는 것이 됩니다. 그 때 자기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지, 똑 같은 조건에서 밥먹고 차타고 자는데, 누군가 특별한 조건이 없는데 얼굴이 환해서 좋아죽겠다, 내년에 또 오고싶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상 팍 쓰고 다른 사람들이웃는 것도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나타날 때, 조건이 다르면 감정이 다를 수 있는데 조건이 똑 같은데 감정이 다르다고 하면 감정의 원인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자기에게 있습니다.자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업식입니다. 순례다니면서 즐거우면 한국에서도 즐거울 수 있고, 순례다니면서 불평하면 평소에 내가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산다고 보시면 됩니다. 자기 업식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45일 지나면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습니다. 머리도 못 감고, 몸도 못 씻고, 피난민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밤에 방에 들어갔는데도 습해서 축축합니다. 그러니까 이 마음이 자기 성질대로, 자기 까르마대로 가는 것입니다. nbsp 스님께서는 2시간에 걸쳐서 열강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30분 휴식을 하고, 다시 인도의 역사와 기후, 관습, 현재의 인도 상황인 종교갈등, 인종갈등, 민족갈등, 언어갈등을 포함한 인도 전반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 후, 우리가 순례하는 길이 부처님이 다니신 순서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서 헷갈릴 수 있다며 부처님의 생애와 10대 성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안내를 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서서 1시간 30분가량 열정적으로 강의를 해 주시면서, 처음 서암큰스님과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마음 가는 곳에 부처님이 있습니다. 저의 스승님이셨던 서암큰스님과 처음 인연이 되었을 때, 그 때는 그 분이 누군지도 몰랐어요. 둘이서 우연히 함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미국 LA에 있는 한 작은 법당에 하룻밤 묵으려고 찾아갔더니 절 주지는 외출하고 없고, 노승이 한 분 계셨어요. 먼저 왔으니 대접을 하겠다고 하며 먹던 밥으로 볶음밥을 해 주셨어요. 밥을 먹고 나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 때만 하더라도 제가 30대 열혈청춘이라 불교계에 불만이 많았어요. 이것도 고쳐야 하고 저것도 고쳐야 한다며 데모도 하고 그러던 때였어요. 불교계에 대한 불만 이야기를 두어시간 말씀을 드렸어요. 노승께서는 한 말씀도 안 하시고 다 들으셨어요. 다 듣고 나서 “여보게, 어떤 한 사람이 말이야. 논두렁 밑에 앉아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네. 그 곳이 절이야. 이것이 불교라네.” 그랬어요. 그 때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뒷통수를 몽둥이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이론적으로는 ‘제법이 공하다’ 이런 것을 다 알죠. 그러나 현실에서 스님은 머리깎고 먹물 옷 입은 사람이다, 절은 기와집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것이 불교라고 규정짓고 이 불교가 잘못되었다, 고쳐야 한다는 입장에서 접근을 했는데, 큰 스님 말씀은 마음이 청정한 사람이 수행자다, 수행자가 머무르는 곳이면 어떤 곳이든 절이다, 도량이다, 수행처다 이런 이야기였어요. 이것이 불교다 이런 거예요. 그런데 나는 그동안 불교 아닌 것을 불교로 삼고, 그것을 고치려고 애쓰고 안 고쳐진다고 불만을 토로해 왔어요. 선에서 마치 어리석은 자가 환화를 꺾으려는 것과 같다, 허공의 헛꽃을 꺾으려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이 때 환화라는 것은 꿈 속에서 본 환상의 꽃을 말하는데요, 그처럼 나도 또한 불교 아닌 것을 불교로 삼고 그것을 고치려고 한 헛된 노력이었습니다. 이런 스승의 지도와 작은 깨달음이 계기가 되어서, 소위 말하면 형식적인 것보다는 내용적으로 어디서든지 법담을 나눌 수 있다면 그 어떤 곳이나 다절이지 어떤 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nbsp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방콕공항에서 법이 설해지니 이 곳이 또한 절이고 수행처라고 하시면서 부처님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쭉 훑어 주셨습니다. 자상하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참가한 분들도그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스님과 함께 하는 역사순례라 그런지 자료집을 앞에 두고, 눈을 반짝이면서 들었습니다.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스님 입재법문을 마치고 나니, 이번 순례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과 자세, 우리들의 역할에 대해서도정리가 확실히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강연 후 인도성지순례 스텝들이 퀴즈를 통해 부처님 성지에 공양 올릴 조를 배정하기도 하고, 넌센스 퀴즈를 통해 순례기간동안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재미있게 놀이로 진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nbsp 방콕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인도 켈커타로 들어왔습니다. 올 때보다 더 좁고 작은 비행기를 타고, 인도 켈커타의 늦은 밤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자마자 매연의 매케한 냄새가 이곳이 인도구나 하는 생각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짐이 많아 스텝들은 거의 모두 짐을 찾고 체크하고 정리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그리고 인도스텝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트럭에 짐을 싣고, 6호버스까지 본인이 배정된 차에 모두 올라탔습니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스텝들을 만나니 반가움이 더했습니다. 잠시 눈 인사를 나눴지만, 함께 하는 도반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마웠습니다. 오늘은 숙소가 두 군데로 나눠졌습니다. 저희가 머문 곳은 세바켄드라입니다. 씻지도 못하고, 양치질만 겨우 하고 잠을 잡니다. 벌써 새벽 3시가 넘었네요. 내일은 켈커다 칼리사원과 죽음을 기다리는 집을 보고, 인디안박물관 참배를 하고, 하우라역에서 기차를 타고 밤새 무갈사라역으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내일 소식 다시 전하겠습니다. 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