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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 법륜스님의 하루(경남 함양, 부산대, 대구)
오늘도 어제에 이어 하루 3강이 있는 날입니다. 바쁘게 움직여야 할 날이네요. 아침 일찍 경남 함양으로 향했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있고, 특히 밭농사와 과수농사가 바쁜 철이라 농촌지역에는 오전에 강연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함양지역은 가까이 지리산정토수련원이 있어서 크진 않지만 귀농자들과 정토회 옛 인연들 중심으로 꾸준히 모임이 진행되고 있고, 실상사 주변으로 깨달음의 장을 한 인연들도 많은 곳입니다. 함양문화예술회관에 도착하니, 여러 사람들이 스님을 반가이 맞이 합니다. 벌써 스님과 오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귀농해서 지내고 있다가 이번 스님 강연을 위해 이리 저리 발품을 팔며 열심히 홍보를 했다고 합니다. 한 분 한 분 반가운 얼굴들입니다. 강연장 입구에도 사람들이 복적댑니다. 지역 도의원을 비롯 지역 유지 10여분이 오셔서 스님께 인사를 합니다. 접수처에도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제 사람들이 적게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을 했다고 하는데, 강연장에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nbsp490여명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아마 오늘 스님이 오신다고 하던 일들을 다 내려놓고 강연장으로 달려왔나 봅니다. nbsp nbsp 스님께서 강연을 시작하면서 전국 시군구로 다니면서 300강을 왜 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질문을 하면 되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십니다. 그러면서 중생의 삶에 대해서도 살짝 한 말씀을 하셨는데, 살다보면 어느새 주인이 아닌 종의 입장으로 바뀌어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밭에 김을 매는데 제가 물어봅니다. 두 사람중에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입니까? 모습은 똑같은데 일이 끝나면 알 수 있어요.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는 사람이 주인이고, 돈을 주는 사람이 주인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인사하기보다 인사 듣기를 좋아하고, 주기보다는 얻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인보다는 자꾸 종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바로 주인이 아닌 종이 중생입니다. 우리가 중생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중생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 인생이 남에게 매여 살고 고달프게 사는 것입니다.” 질문도 많았습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남편 때문에 걱정인 결혼 2년차인 애기 엄마 이야기, 결혼한 지 3개월이 되었는데 신혼여행 때부터 서로 맞지 않아서 싸우고 싸우다가 지금은 이혼을 생각하며 부부클리닉을 다니고 있다는 42살의 늦깎이 새신랑 이야기, 신경쇠약 증세가 보이는 미국 유학생의 사연, 자기 성향과 맞지 않아서 학교를 쉬고 싶어하는 대안학교 고등학생 이야기, 온갖 흉악범죄들이 많아지고 있는 세태에 대한 질문 등 이 곳에서도 이런 저런 많은 사연들과 만났습니다. nbsp 함양에서 강연을 마치자마자 바로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차안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스님은 잠시 휴식을 하셨습니다. 부산대 강연 주제는 ‘대학생과 나누는 새로운 100년’이었는데, 강연장에 도착해서 보니, 학생들이 명사를 초청해서 하는 특강 수업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수업인 줄 알았으면 안 왔을 거라고 무대에 올라서자마자 말씀하셔서 학생들이 약간 당황하는 것 같았습니다. 방송국에서 돈받고 강의듣고 앉아있는 사람들, 출근도장을 찍어 회사에서 의무적으로 강의듣는 사람들, 수업이라 학점 때문에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은 자발적이지 않아서 강의를 해도 반응이 없다, 다들 수업들으러 온게 아니고 5만원씩 내고 강의 들어러 왔다 생각하고 들어라는 첫 말씀에 학생들이 이해가 된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 민족사를 돌아보면 과거 100년의 아픈 역사가 20세기 초엽에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 해서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고 해방이 되었으나 분단되고 전쟁까지 치르면서 고난의 역사를 걸어왔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100년은 이런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21세기 초엽에 현시대의 시대적 과제를 알아야 합니다. 새로운 100년을 내다보면서 이 시대의 과제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현재를 살아가야 합니다. 또 현재 중국과 미국 관계, 일본과 러시아, 그 아래 한국과 북한의 관계가 있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통일만이 유일하게 우리가 새로운 100년을 펼쳐낼 수 있습니다.” 즉문즉설이 아닌 역사관과 통일의 시대적 과제에 대한 말씀이었는데, 좌석을 꽉 채운 학생들 모두 자리를 뜨지 않고 집중해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강연장을 나서면서 스님께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nbsp 부산대 강연을 마치자마자, 또 바로 대구로 향했습니다. 퇴근시간이 걸릴 수 있어서, 최대한 막히지 않는 도로를 찾아 열심히 달렸습니다. 대구는 ‘스님의 주례사’ 북콘서트였습니다. 주례사에 맞게 ‘오월의 정원’이라는 예식장에서 강연을 했는데, 강연 주제가 그래서 그런지, 남녀 커플들이 많았습니다. 여태껏 강연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강연이 진행되었는데, 사람들은 연애 이야기, 남녀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즐거워 하는 것 같습니다. nbsp “5년 사귄 귀여운 남자친구가 있는데 얼마전 부모님을 뵙고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희는 간소하게 하고 싶은데, 부모님은 반대하십니다.” “1년 사귄 여자친구가 있는데, 얼마전 부모님께 인사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종교를 묻더니, 저만이 아니라 집안 전체가 개종해야 결혼이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화기애애한 속에서 스님은 결혼에 있어서는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행복한 결혼 생활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같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가 잘 했다가 아니라 일단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상대를 이해해야 합니다. 상대가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싱겁게 먹는 것은 시댁에 가 보니까 전체가 다 싱겁게 먹더라, 우리 남편이 그래서 그렇구나 하고 이해를 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인정, 두 번째는 이해입니다. 그러면 싸우지 않게 됩니다. 인정과 이해만 하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싸우지 않게 됩니다. 인정과 이해가 되어야 대화가 됩니다. 이것이 최소한 이뤄져야 합니다. 부부, 친구, 회사, 동료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와 다른 상대에 대한 이해와 인정, 이것이 사람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고,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부부 관계이나 남북 관계나 다 똑같애요. 항상 상대를 고칠려고 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nbsp 스님은 남녀 관계 이야기를 하면서 남북 관계 이야기도 같이 하십니다. 스님의 화두는 언제나 남북 관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이 평화롭고, 같이 사는 가족이 평화롭고, 나라가 평화롭고, 남한과 북한이 평화롭게 같이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대구에서 강연을 마치고, 바로 서울로 향해서 달려왔습니다.nbspnbsp 내일은 경기도 포천과 수원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nbsp
9월 24일 법륜스님의 하루(경북 군위, 청송, 영천)
이른 새벽 서울 정토회관에서 경북 군위로 향했습니다. 휴게소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아침 날씨가 쌀쌀했습니다. 밤낮 기온 차가 커서 감기 걸리기 딱 쉬운 날씹니다. 오랜만에 도시를 벗어나 산천을 바라봅니다. 어느새 들판도 연노랑색으로 가을 채비를 하고 있고, 길가의 코스모스도 한들한들 춤을 춥니다. 짙푸르기만 하던 나무들도, 붉은 색 이파리 한 두 개 선보이며 붉게 타오를 단풍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경북 군위, 청송, 영천 3군데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왔다갔다 하며 강연장으로 향해 달렸습니다. 스님은 이동하는 차안에서 잠깐 잠깐씩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오늘 첫 강연이 있었던 경북 군위는 삼국유사가 만들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강연 전 군수님과 잠시 인사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군수님 말에 의하면, 군위가 서울시보다도 더 면적이 넓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구는 2만 5천여명이 된다고 하네요. 천만명과 2만 5천명. 어마어마한 차이입니다. 비도 바람도 피해가서 살기좋은 곳이라고 자랑을 하셨습니다. 강연 시작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사람들이 별로 오질 않습니다. 예전에 거의 없던 풍경입니다. 강연장에는 자원봉사자까지 150여명이 앉아 있었습니다.nbspnbsp 청송도 같은 상황이었는데 추석 전이라 농사일이 바쁘다고 합니다. 태풍 이후 뒷정리도 해야 하고, 사과도 따야 하고, 고추도 따야 해서, 동네에 노는 일손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낮에 강연장에 올 사람이 없다며 아쉬워들 했습니다. 그래도 이 인근에서 올 사람들은 다 왔다고 합니다. 강연장에 사람이 많지 않아, 강연을 준비한 분은 스님께 죄송한 모양입니다. 스님께 말씀을 드리니, “아이구, 괜찮지, 괜찮아. 태풍 뒷정리도 그렇고, 우리가 오히려 농사일을 도와 드리러 가야 하는데nbsp못 가서 더 죄송하지. 온 사람들만큼 이야기 나누면 돼지.” 하시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연장으로 들어가십니다. 지역이라 질문이 많지 않을 것 같았는데, 구미에서 원정오신 분을 시작으로 질문이 6개나 되었습니다. 한 분 한 분 질문에 성의껏 답을 하시고, 마지막에 행복에 대해서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자기 행복은 자기가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를 행복하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조건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처지를 비관하지 말고,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살았네” 하면서 산 것에 대해서 참으로 고마워 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이 기적인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으면 다른 것은 별 것 아닙니다. 오늘 웃지 못하면 내일도 웃지 못합니다. 나날이 행복해야 합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긍정적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일 때 행복이 있습니다.“ 스님의 말씀은 한 말씀, 한 말씀이 그대로 멋진 어록이 됩니다.nbspnbsp 사과가 많이 나는 청송으로 가는 길 양쪽으로 사과밭이 많았습니다. 올 해는 송이버섯도 풍년이라고 합니다. 길가에 자연산 송이를 판다는 광고도 곳곳에 보입니다. 청송도 추석전이라 사과 수확이 바빠서 강연장에는 15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스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24살짜리 아들 이야긴데요, 아들이 늘 당당하지 못하고, 거짓말로 순간을 모면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걸 고쳐 주고 싶습니다.” “어릴 때는 안 그랬어요? 본인은 안 그래요?”“저도 남편에게는 그랬죠.”“엄마가 그래서 그런 거예요.”“저희 부부가 귀농한 후에 떨어져 살고 있는데, 아들이 기숙사에서도 남들에게 살짝 살짝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걱정마세요. 엄마는 남편한테만 그래요? 아니면 남들한테도 그래요?”“남에게는 안 해요. 남편에게는 하게 되더라구요.”“그럼 괜찮아요. 아이는 무조건 엄마 따라해요. 아이도 엄마에게만 그러고, 남에게는 안 그럴 거예요.”“당당하게 키우지 못한 게 문제지만, 그걸 지금은 바로 잡아주진 못하나요?”“이미 그렇게 자랐는데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가 있어요. 지금이라도 내가 고칠 것, 두 번째는 아이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이를 위해서 한 거짓말이 오히려 아이를 나쁘게 만든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아들을 위해서 남편에게 참회를 해야 됩니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용서를 구하세요. 위기를 살짝살짝 넘기지 말고, 이제부터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보, 내가 당신에게 슬쩍슬쩍 거짓말을 해서 미안해요. 우리 아들도 잘 살 겁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말씀을 따라가다보면, 정말 인연과의 법칙이 이런 것이구나 싶습니다. 반드시 지어진 인연에 대한 과보는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 받아들이던 질문자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nbsp 영천으로 가는 양쪽 길에는 포도밭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거리에 상자를 포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차창밖으로 무심히 바라보며 다음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영천은 인구가 10만 도시라 그런지 670여명이 참가해서, 강연장 좌석을 꽉 채우고 복도에도 앉아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10대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하게 참가를 했고, 질문도 다양했습니다. 준비하는 분위기도 밝고 활발한 느낌이었습니다. 스님 소개 영상이 나갈 때부터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열렬히 칩니다. nbsp 질문도 많았는데 그 중 마지막 질문을 소개합니다. 외국에서 살다온 20살 청년이 실패했을 때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실패했을 때 그것을 상처로 간직하면 부담이 되어서 장애가 되고, 교훈으로 삼으면 경험이 되어서 다음 일에 자산이 됩니다. 실패 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실패 자체는 상처도 아니고 자산도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서 경험으로 간직해 보세요. 그러면 몇 번의 실패는 곧 경험이 되어서 당신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실패를 실패라 생각하지 말고 경험이라 생각하세요. 실력이 쌓이게 될 것입니다. 실패는 성공을 위한 연습입니다. 실패를 상처로 간직하지 말고 경험으로 삼으세요. 상처는 나의 부채가 될 것이고, 경험은 나만의 재산이 될 것입니다. 수많은 실패가 나만의 절대적 무기임을 알게 되면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요즘같이 스스로에 대해서 자신없어 하고,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스님의 이 말씀을 꼭 들려 주고 싶습니다. 마치고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서 줄을 서서 사인을 받았습니다.nbsp스님 앞에서 밝게 웃는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따라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오늘 낮의 가을햇살은 여름 햇살만큼이나 따가웠습니다. 곡식들이 잘 익을 것 같습니다. 곡식이 익듯이 우리 희망세상만들기도 하루 하루 강연을 치줘내면서 결실들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각 지역에서 희망강연을 준비하신 분들 수고많으셨습니다. 내일은 경남 함양, 부산대, 대구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9월 13일 법륜스님의 하루(시카코 희망콘서트)
휴스턴과 애틀란타는 정토모임이 없는 곳이라서 행사 후에 짐정리를 해보니 짐이 많이 늘어나 있었습니다. 밤늦게까지 짐정리를 하고 새벽녘에 겨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 6시에 애틀란타 공항으로 출발하여 8시45분 비행기를 타고 중부시간인 시카고에 도착하니 10시가 되었습니다. 시카고에 도착하니 공항에 콜럼버스정토회원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한 후 짐을 찾아 점심공양을 준비하고 계시는 보살님댁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콜럼버스정토회원들과 함께 스님께 삼배를 드렸습니다. 또한 이전에 스님께서 순회강연을 할 때 시카고를 방문하여 법회를 한 인연이 있었던 터라 점심식사장소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러시아워라고 하여 5시30분에 행사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부슬비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불어 겨울같은 날씨였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콜럼버스정토회원들이 걱정을 많이 하였습니다. 비도 오고 날씨도 추운 날이었지만, 행사장인 시카고 노스사이드 대입준비고등학교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습니다. 평통 시카고지부 회장님과 한인회장님이 행사장에 도착해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김홍신작가님과 인연있는 분들이 이 곳 시카고에는 특히 많아서 행사장에도 많이 오셨습니다. 김홍신 작가님은 행복한 삶에 대해서 강연을 하였습니다. 이번 시카고 강연에서도 진로문제, 부모, 배우자와의 갈등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으면, 시카고 주변 인근의 다른 주에서 장거리로 스님의 강연을 듣고자 오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50대인데, 미국에 유학온 지 6년 되었는데, 우리 민족의 자존감을 가지기 않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아 안타까운데, 젊은이들이 우리나라의 자존심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는 첫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지난 번 강연에서 하셨던 우리 문명의 역사, 고대사에 대해서 다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시원인 요하문명, 홍산문명에 대해서 들으니 몇 번을 들었는데도 또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힐링캠프를 통해서 스님을 처음 뵈었는데, 스님께서는 통일이 곧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뭘 보고 통일이 곧 될 것이라고 확신을 하는지 대답해달라는 청년의 질문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금 현재 처한 동북아의 정세, 미국, 중국의 세력변화 등을 자세히 설명하시면서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시대가 열렸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위스콘신대학교의 박사과정에서 공부 중인 유학생은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가 불안하며 현재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고민을 스님께 털어 놓자, 스님께서는 “그렇게 살다가는 희망이 없다. 미래는 염려할 것이 아니라 목표를 세우고 되는 쪽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거지에서 100불을 주면, 그 거지가 100불을 가지고 총을 사서 다른사람을 죽일 경우 거지에게 100불을 주는 것이 맞는가 하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또한 인턴을 하고 있는데 3개월이 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미국올 때 초심을 찾고 싶다고 하는 젊은 학생, 부모님의 기대와 의견 때문에 고민이 많고, 엄마를 실망시켜드리고 싶지는 않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묻는 젊은이의 질문에 스님께서는 “나이가 29살이면 하고 싶은데로 하면 됩니다. 엄마는 엄마의 권리가 있어 자식들에게 당연히 기대합니다. 엄마의 기대를 들어보고 나에게 맞겠다 싶으면 따르면 되겠지만 내 인생은 나의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면 됩니다.” 라고 간단하게 대답하니 박수가 쏟아집니다. 간호학과에 다니고 있는 학생인데 보고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학부를 졸업하고 1년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의대를 진학하라고 해서 의대를 가야할지 몰라서, 현재 부모님의 뜻을 어기고 1년 동안 휴학을 하며 진로를 찾고 있다는 대학 졸업생에게 스님께서는 “3개월간 가장 힘들고 보수가 적은 일을 경험해보세요. 그러면 자신의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또한 4,9살 아이를 둔 엄마는 남편과 아이들 키우는 문제로 많이 다투는데, 예를 들면 아이들에게 잡곡밥과 야채를 주고 싶지만 남편은 패스트푸드 음식을 먹이려고 해서 다투게 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묻는 주부의 질문에 스님께서는 “아이들에게 화목한 부모가 선물일까요, 아니면 잡곡밥이 선물일까요?”라고 되묻자 청중들의 웃음과 박수가 바로 터져나옵니다. 스님께서는 음식 문제로 싸우기보다는 부부간에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잡곡밥을 먹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또한 절에 다니지만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 교회에 나가는데 불편함을 느낀다는 20대 여성의 질문에는 “새로운 것을 배울 때는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고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또한 미국에 온지 3년된 심리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은 본인이 감정기복이 아주 심해서 심리학을 공부해도 되는지 질문을 하자, 스님께서는 본인이 자신의 감정을 잘 알아챈다면 누구보다도 상담을 잘해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스님께서는 긍정의 힘을 보여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끝으로 스님께서는 재외선거와 관련하여 “이전에는 대립하는 한국정치가 동포사회를 분열시킬 것 같아 재외선거에 반대를 했지만 이왕 재외선거가 시작되었으니 투표권을 가진 분들이 많이 참여해 좋은 지도자를 뽑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점도 있는만큼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올해는 미국 대선도 있으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누가 가장 좋을지 잘 판단해서 시민권을 가진 분들은 미국 대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덧붙여 주셨습니다. 스님께서 무대에 내려오시니 10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책을 구입하는 모든 분들께 일일이 사인을 해주셨습니다. 뒷정리를 하고 나니 시간이 11시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김홍신작가님 후배되는 분의 광고회사가 행사장 도로 건너편에 있어 그 곳에서 서포터즈들과의 뒷풀이 모임이 있었습니다. 간단히 뒷풀이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12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시카고에는 약 450여명이 참석하였는데, 북미주 다른지역에 비해서 조금 더 보수적이고, 도시가 넓게 퍼져 있다보니 사람들이 조금 소극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인 행사에 100명이상이 모인 적이 없는 도시라고 하면서 400명 이상이 모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많은 서포터즈들이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콜럼버스정토회원들의 노력이었습니다. 차로 6시간이나 운전해서 가야 하는 곳이었지만, 이번 행사를 위하여 시카고 현지 서포터즈들을 모으고, 서포터즈 교육을 하고, 정말 수차례 시카고를 방문하면서 일구어낸 값진 결과인 것 같습니다. 또한 위스콘신, 미네소타 등에서 혼자서 천일결사를 하는 정토행자님들이 장거리 이동을 하여 서포터즈로 참석하여 함께 행사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시 한 번 콜럼버스정토회원들과 서포터즈들의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시카고 희망세상만들기 강연후 지혜광 김순영 두손모음
9월 14일 법륜스님의 하루(캐나다 토론토)
시카고에서 잠을 거의자지 못하고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수고하신 콜럼버스정토회 신도들 및 시카고 서포터즈들의 도움을 받아 공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스님과 헤어짐을 아쉬워 하면서 공항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저희들은 토론토로 출발하엿습니다. 시카고와 토론토는 1시간 시차로 인해서 8시40분에 시카고에서 출발하였으나 토론토에 도착하니 11시 10분이 되었습니다. 토론토에 도착하니 열린법회를 운영하고 있는 보살님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토론토는 비가 자주 오지 않는 지역이라면서, 지금까지는 가물어서 반가운 비이긴 하지만 오후 행사에 사람들의 참석이 적을까봐 준비를 해주신 보살님들께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지금 이 비가 반가운 비인 것처럼 토론토지역에 법륜스님이 오신 것도 이 비처럼 반가운 일이라며, 행사도 잘 될 것이고, 오후 6시쯤이면 비도 그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식사가 마련된 식당으로 갔습니다. 토론토도 정토회 모임이 없는 곳이지만 열린법회는 열고 있는 여러분들이 따뜻하게 환대를 해주셨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호텔에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묘덕법사님을 포함하여 사무국 전원은 바로 행사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젊은 서포터즈들이 의자를 셋팅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책판매대도 만들고, 무대에 배너도 걸고, 정말 정신없이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행사장을 장엄했습니다. 드디어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자리가 모자라기 시작합니다. 벤쿠버도 그렇지만, 이곳 토론토의 열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토론토 한인회관에서 강연을 하였습니다. 이곳에서도 스님께서 한인회장님께 스님의 책을 사인해서 기증하였고, 여러 단체에서 스님의 뵙기를 원하여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행사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500명 좌석은 이미 만석이 되어 의자를 더 셋팅하였으나 그래도 자리가 모자라서 중간, 뒤, 양옆으로 참가자들이 바닥에 앉았습니다. 700여명 이상이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인사말을 하기위해 무대에 올라서자 큰 박수소리와 함께 환호가 터져나왔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인사말을 통해 요즘 한국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높다고 하시면서 희망이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기 위해 북미주 순회에 나서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법륜스님의 인사말에 이어서 1부 김홍신작가님의 강연도 다른지역에 비해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김홍신 작가님은 “인생에 정답이 없다. 정답 대신 명답을 찾아야 한다. 인생은 마음을 내가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라고 하였습니다. nbsp 2부 즉문즉설을 위해 다시 무대에 오른 스님은 뒤에 서있는 분들에게 누구든지 앞으로 나와 무대위에 앉으라고 하자, 바로 수십 명이 무대위로 올라와 스님 주변에 둘러 앉았습니다.nbsp 현재 22살,20살의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중1,2때 이민을 왔습니다. 아이들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이고, 또한 여기에 살다보니 한국의 소식이 좋은소식보다는 나쁜소식이 더 많고, 또한 도피성 유학을 온 조기유학생을 보게 되면서 아이들이 한국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또한 부정적인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긍적적인 생각을 갖게 하고, 한국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을까요? 라고 이민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한국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고자 고민하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명쾌하게 엄마, 아빠가 긍정적이지 않고 비판적이기 때문에 아이도 비판적이 된 것이라고 하자 첫 질문부터 웃음이 터집니다. 곧이어 공부하기 힘들다는 남학생에게는 공부가 뭐가 힘드냐고 하시면서 공부하는것이 힘들면 당장 보따리싸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리고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된다는 여학생은 친구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울음을 터뜨리면서 질문을 합니다. 또한 매일 스님법문을 이어폰으로 듣고 있다가 잠이 든다는 한 주부는 스님께 한번 안아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스님과 주고 받는 문답속에 웃음이 터지면서, 한인회관이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소아당뇨로 고민하고 있는데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에 대한, 매일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어르신의 질문, 또한 스님의 기도와 주례사를 읽었는데 너무 남자들 편만 드는 것 같으니 여자들편에서 남자를 혼내는 글을 써주면 좋겠다는 주부의 말에도 다들 웃음이 터집니다. 캐나다 토론토 한국일보가 이번 행사에 후원도 해주었는데, 행사후 기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nbsp lt자녀교육 등 가정사로 고민하는 주부들에게 스님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조금만 헤아리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희망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또 스님과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한 한 여성이 한번만 안아달라고 부탁하자 “혼자 사는 사람한테 왜 안아달라고 하느냐”고 말해 한인회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법륜스님은 즉문즉설에서 난해한 불교철학을 언급하지 않고 보편적이지만 정곡을 찌르는 답변을 내놓아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일부 질문자들은 장황하고 걸러지지 않은 질문으로 주변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gt 아마도 20여개의 질문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은 질문이 나왔고, 2시간 이상스님께서도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았던것 같습니다. 강연이 끝나니 많은 분들이 모금함에 보시를 해주시고, 스님의 책도 많이 구입하였습니다. 책판매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몬트리얼에서 오셨다는분들, 미국 디트로이트 지역에서 오셨다는분들을 보면서, 스님의 강연을 듣기위해서 먼 거리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음을 알 수있었습니다. 토론토에서는 강연이 끝난후에 청중들이 내년에도 꼭 다시 들러달라고 스님께 부탁을 합니다. 미국과 조금 다른 분위기가 또 느껴집니다. 미국보다 조금 더 자유롭고 발랄 한것 같습니다. 아마도 가장 많은 책을 판매한 곳이 토론토 인 것 같습니다. 한쪽 옆에서 스님의 북사인회가 있자 스님과 사진을 찍을려는 분들이 줄을 섭니다.그렇게 행사를 마치고 뒷마무리를 하니 11시가 훌쩍 넘어갑니다. 스님은 먼저 숙소로 돌아가시고 저희들은 남아서 서포터즈들과 함께 뒷마무리를 하였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뉴욕으로 가야하니 한시간이라도 잠을자야 할 것 같아 뒷정리를 마치고잠자리에 드니 새벽 4시가 가까워옵니다. 이번 토론토 행사도 정말 서포터즈들과 열린법회를 운영하는 몇분들이 없었으면 이렇게 성공적인 행사를 할 수가 없을 것 것입니다. 이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캐나도 토론토에서 지혜광 김순영 두손모음
9월 12일 법륜스님의 하루(애틀란타 희망콘서트)
오늘은 애틀란타에서 희망콘서트가 열립니다. 애틀란타는 CNN 본사가 있고, 미국 남부지방의 물류 중심도시이기 때문에 남쪽에서 제일 큰 대도시 중의 하나이며, 한인들이 약 10만명 정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애틀란타로 출발하기 위해서 오전 6시에 휴스턴 숙소에서 출발하여 애틀란타 공항에 내리니 오전 11시가 되었습니다. 휴스턴과 마찬가지로 애틀란타에도 정토모임이 없어서 깨달음의 장 수련을 마친 한 분께 부탁하여nbsp장소를 구하고, 해외사무국에서 직접 신문사와 라디오사에 전화하여 광고를 한 곳이라 애정이 더 많이 갑니다. 멀리 잭슨빌에서도 잭슨빌 정토법회를 담당하는 최영태거사님, 김성순 보살님 부부가 6시간이나 운전하여 공항으로 저희를 마중나왔습니다. 애틀란타 강연에는 사무국에서 함께 스님과 동행했던 모든 분들이 다 일찍부터 행사장에 투입되어 행사준비를 하였습니다. 오늘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은 애틀란타 한인회관에서 열렸습니다. 스님께서 행사장에 도착하니 전현직 한인회장님을 포함하여 많은 분들이 스님께 인사를 하기위해nbsp나와계셨습니다. 한인회관에는 한인도서관이 있었는데 법륜스님께서 스님의 책을 직접 사인하여 회장님께 기증하였습니다. 오늘 애틀란타 강연회는 약 500여명이 참석하였는데, 애틀란타에서 100200여명 이상의 한인들이 모인 적인 없었고, 그래서 행사를 준비했던 자원봉사자들도 200여명이 오리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인회관이 생긴이래 주차장에 차가 꽉 들어차기는 처음이라고 자원봉사를 하신 분이 말씀하십니다. 여기서에서도 스님의 인기를 실감합니다. 이제 조금 시차가 적응되는지 오늘 김홍신 작가님의 말씀이 어제, 그제보다 더 관중들과 호흡이 맞아지는 것 같습니다. 애틀란타에 이렇게 유명한 분이 오셨다고 많은 분들이 좋아하니 행사를 준비한 저희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김홍신 작가님에 이어서 법륜스님께서 등장하니 질문을 하기위해서 마이크앞에 줄이 길게 섰습니다. 대부분 유학생, 청년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첫번째 질문자는 전직 한인회장을 역임하셨고, 현재 유권자 등록운동을 열심히 펼치고 있는 어르신의 질문이었습니다. 한국청년들을 보니 전혀 꿈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꿈을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미국에서 투표를 하면 우리 한인들의 권리가 신장될텐데 전혀 선거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선거안하는 청년들의 풍토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이 질문에 이어서 직장인이라고 밝힌 30대 청년은 조금전의 어른신의 말씀에 동감할 수 없다고 하면서 청년들의 투표에 의해서 박원순 서울시장도 당선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미국땅에서 1.5세, 2세들이 정체성의 혼돈을 겪고 있는데 미국 주류사회에 진출하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합니다.nbsp 첫번째 질문과 두번째 질문에서 스님은 민주주의 시대에 투표로서 우리의 권리를 행사하는 참정권에 대해서 아주 핵심을 짚어서 설명을 해주시니 참석자들이 공감하면서 박수를 칩니다. 또한 스님께서 출연한 힐링캠프를 잘 보았는데 실지로 한혜진씨가 이쁘냐는 질문도 받았습니다. 이 질문에 고주몽의 부인인 소서노 역할을 한혜진씨가 했었다며,nbsp소서노는 여성으로서 나라를 2개나 세운 분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는데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꿈과 미래, 삶에 대해서 궁금하다는 분, 일에대한 집착과 막연한 걱정때문에 늘 근심걱정이 많다는 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첫투표를 하게 되는 여학생이 어떤기준으로 투표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합니다. 스님께서는 상식적인가 비상식적인가를 판단 기준으로 두면 좋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또한 부모님이 엄격하게 키워서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유학생. 그래서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평가에 대한 두려움, 부모님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지 아주 간절하게 질문을 합니다. 결혼한지 4년차된 주부의 질문은 남편과 함께 검진을 받아보았지만 아무 이상은 없는데, 아직 아이가 생기기 않고 있습니다. 어떤마음으로 아기를 기다리면서 기도해야 하는지요? 박사과정중에 있는 여학생은 공부를 하다보니 이길이 아닌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면 깨끗하게 이길을 정리하는게 좋은지 공부를 계속하는것이 좋은지 질문을 합니다. 또한 5시간 걸려 운전을 해서 North Carolina에서 오신 주부는 스님께서는 항상 웃으시는데 본인은 열심히 살고는 있지만 얼굴이 어둡습니다. 어떻게 하면 스님과 같은 활짝 웃는 웃음을 가질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또한 이제 막 결혼하여 유학생으로 온 남학생은 미국에 와서 보니 2 안되는 유태인들이 미국을 이끌어 가는 것을 보고 놀랬다고 합니다. 본인 생각으로는 우리 한국인들이 유태인들보다 더 똑똑한 것 같고, 우리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북한과 통일을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통일에 대해서 어떤 자세로 개개인들이 시발점 같은 일을 하면 좋은지 스님께서 말씀을 해주시면 좋겟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애틀란타 강연회에서는 청춘콘서트 만큼이나 젊은 분들의 질문이 많았고, 투표권, 시민의식, 통일등에 대한 질문이 아주 많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까지 줄을 선 질문자에게 답변을 하고 나니 행사시간을 45분이나 훌쩍넘겨 10시 45분이 되었습니다. 함께 행사장을 정리하고, 스님께서는 책사인회를 해주셨습니다. 서포터즈들과 단체촬영을 한후, 잠시 서포터즈들과 스님께서 행사하면서 느낀점을 서로 나누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번 행사를 도와주기 위해서 멀리 앨러바마에서 오신분들도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들의 열정이 세상을 한층 더 밝고 희망차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정말 나 한사람 한사람이 세상의 희망임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포터즈들과의 모임을 끝으로 숙소로 돌아오니 12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저희들은 다시 짐을 정리하고 내일 시카고로 떠날 준비를 하니 시간이 3시를 넘어섭니다. 내일은 6시30분에 애틀란타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하고 모두들 잠자리에 들었섭니다. 내일은 다시 서부시간이 되는 시카코로 이동합니다. 동부시간보다 한시간이 늦어집니다. 그럼 내일 시카고에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지아 애틀란타에서 지혜광 김순영 두손모음
8월 5일 법륜스님의 하루(중국역사기행 첫 날)
새벽 4시, 정토회관에서 인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좋은벗들에서 매년 여름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찾아가는 중국역사기행을 떠나는 날입니다. 올 해로 18번째 맞이하는 중국역사기행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법륜스님의 안내로 진행이 됩니다. 124명의 참가자와 15명의 진행 스텝이 7박 8일간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매년 인도성지순례 안내와 고구려 발해 유적지 안내, 그리고 국내 경주순례 안내를 하면서 부처님의 발자취와 한민족의 시원과 역사, 그리고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루어낸 신라 역사의 현장인 경주에서 역사를 통해 돌아볼 것과 미래를 위해 배워야 할 것에 대해 안내를 해 주십니다. 역사의식이 있어야 미래를 통찰할 수 있고, 올바른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스님의 말씀은 삶을 살아가는 현장에서 그 때 그 때 직접 몸으로 만나게 됩니다. 정치, 사회적인 사건들을 보면서는 더 크게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의 지도자가 왜 역사의식이 있어야 하는지를 더 여실히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7박 8일 여행 중의 첫 날입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중국 심양공항에 도착, 요녕성박물관을 둘러보고, 다시 백암산성으로 갔다가 환인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져 있습니다. 스님은 지난 20여일간의 단식을 마치고 보식에 들어가셨습니다. 살이 많이 빠진 모습으로 밝게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하십니다. “몸은 괜찮은데 이렇게 목소리가 아직 잘 안 나오네요.” 몸을 걱정하는 분들에게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nbsp 중국역사기행 실무 준비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와 중국 현지에서 도움을 준 분들 덕분에 실무자들은 21일 동안의 안거를 마치고도 편안하게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별 문제없이 전원이 모두 중국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심양공항에 3대의 버스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첫 목적지인 요녕성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16년전, 처음 스님을 따라 중국에 왔을 때는 겨울이라 매캐한 매연과 안개가 저희를 가장 먼저 맞이해 주었는데 오늘 중국은몰라보게 깨끗해진 거리와 높은 빌딩들, 쭉쭉 뻗은 길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nbsp 요녕성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차안에서 먼저 요하문명에 대한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동북아의 요하문명과 황하문명의 시원에 대한 이야기, 환인, 환웅, 단군에 이르는 한나라, 배달나라, 조선나라로 이어지는 역사 이야기, 환웅천황의 신시개천 아래 5천년간을 이 좁은 한반도가 아니라 동북아를 중심 무대로 활동했던 우리 민족에 대한 말씀들이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줍니다.nbspnbsp 요녕성 박물관 1, 2, 3, 4, 5관을 훑어 보듯 살펴보고, 심양시내를 빠져나와 백암산성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산성으로 향하는 길에 보니 냇가에 황톳빛 물이 넘실거리며 흘러내립니다. 다리에 닿을 듯 밀려내려오는 물결들, 가장자리에는 이미 쓰러져 부러진 나무들도 보입니다. 어제까지 이 곳에는 비가 많이 왔다고 합니다. “아하. 작년에도 백암산성에 못 올라갔는데, 올 해도 못 갈 수도 있겠네. 저 정도 물이면 물을 건널 수가 없겠는데...” 하시며 스님이 안타까워 하십니다. 백암산성까지 가는 길은 넓게 펼쳐진 만주 벌판을 바라보는 시원함과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 넓은 땅에 온통 옥수수가 심어져 있습니다. 쓰러져 가듯이 군데 군데 촌락을 이루고 있는 집들도 정겨워 보입니다. 백암산성 앞 태자하도 역시 물이 넘실거리며 흘러 내리고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 백암산성으로 갈 수가 없어 일행들은 할 수 없이 차를 돌렸습니다. 멀리 백암산성을 바라보며, 옥수수밭 옆에 차를 세워놓고, 차안에서 스님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nbsp 백암산성의 역사와 성의 구조, 백암산성의 특색까지 하나 하나 상세히 설명을 해 주십니다. 고구려 성의 특징에 대한 설명, 지난 역사 속에서 선조들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들이 눈에 하나씩 그려집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아, 이 곳이 우리 고구려 땅이었구나 하는 것이 새삼 느껴졌습니다. 이 광활한 땅이 내가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는 우리 선조들이 숨쉬며 살아왔던 땅이라는 생각에 내가 선 이 곳이 다시 한 번 더 바라봐지고, 발에 힘을 주고 땅을 다시 밟아 봅니다.nbspnbsp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점심은 옥수수 한 개씩을 먹었는데, 백암산성 오르는 일정이 취소되면서 저녁식사를 더 일찍하게 되었습니다. 본계의 한 호텔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이번 일정 중 중국 음식과의 첫 만남이었는데, 다들 배가 고팠던 탓인지 입맛에 맞다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전체가 함께 있는 이 시간에 어떤 분들이 참가했는지, 그리고 행사를 진행하는 스텝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nbsp 다시 두 시간 정도를 차를 타고 오늘의 숙소인 환인으로 들어왔습니다. 두 시간동안은 각 차량별로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와서 어떻게 이번 여행에 참가하게 되었는지와 자기 소개시간을 가졌습니다. 저희 차량에는 부부도 몇 커플이 되고, 미국, 일본, 태국, 중국 등 외국에서 오신 분들, 정치인, 공무원, 언론인 등 다양한 분들이 타고 계셨습니다. 서로를 알아가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바로 짐만 풀어놓고 강연장에 모여 스님의 첫날 강연을 들었습니다. 왜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을 하시면서,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특히 6천년 우리 민족 역사에서 역사유실과 역사왜곡이 심각한 부분에 대해서 자세한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민족사의 뿌리에 해당하는 상고사 부분이고, 둘째는 일제침략기에 행한 독립운동사이고, 셋째는 현대사 부분입니다. 상고사 부분이 많이 유실되고 왜곡되었기에 우리 민족사가 중국사의 변방이 되어 버려서 중국에 대한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을 갖고 있고, 남북분단으로 인한 독립운동사의 왜곡은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과 열등의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nbsp현대사는 서양문명, 특히 미국 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열등의식을 극복하지 않고는 새로운 인류문명을 개척하고 창조해 나가는데 앞장서기가 어렵습니다. 이 셋 중에서 이번 역사기행의 주과제는 고구려 발해사를 중심으로 해서 상고사 부분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려면 첫째, 역사관이 올바르게 정립되어야 합니다. 둘째, 주변국의 정세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셋째는 우리의nbsp역량을 정확히 타산해야 하며 넷째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올바른 전략과 전술을 구사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민족사관의 정립이 첫째 과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역사기행동안 나의 정체성과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올바른 민족사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번 여행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nbsp 여행 첫 날이라 다들 피곤할텐도 민족의 자긍심이 가슴 깊이 느껴져서인지눈을 똑바로 뜨고 스님 강연을 진지하게 듣습니다. 다른 나라 역사가 아니라 우리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고, 상고사, 독립운동사, 현대사의 열등감을 극복할 때 동북아의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말씀에 새로운 기운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첫 날, 오랜 역사를 가진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들을 마음에 차곡차곡 새기고, 다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스님은 된장국물 몇 모금만 마시면서, 오늘 하루도 참가자들에게 우리 민족의 뜨거운 가슴을 일깨워주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채워 주십니다. 내일은 둘쨋 날입니다. 졸본산성과 환도산성, 국내성을 돌아보며 단군조선과 부여를 계승했다는 위풍당당한 고구려의 역사와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7월 10일 법륜스님의 하루(전북 순창, 충북 진천)
아침 7시, 정토회관에서 전북 순창으로 이동했습니다. 순창하면 고추장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nbsp지역 특성에 맞게 장류박물관도 있다고 합니다. 인구가 2만 9천명정도 되는데 오늘 539명이나 되는 군민들이 참가해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40대 중반인데 일찍부터 학원사업을 해서 돈도 벌고, 아이들이 공부도 잘 하고 속을 썩이는 일도 없는데 행복하지 않아서 행복해지고 싶어서 왔다는 여자분, 글로벌 시대 통일을 자손들에게 남겨줘야 할텐데 개인은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지, 통일을 생각하면 잠을 설칠 때도 있다는 여자분, 경제력이 부족한 예술가인 남편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젊은 부인, 캐나다에서 공부하다가 군대입대한다고 들어왔는데, 제대하고 다시 캐나다로 유학을 가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묻는 학생, 하나의 관심사가 생기면 쉽게 빠져들어 고민이라는 여고생, 친구사귀기가 어렵다는 고1 남학생, 나이 40이 넘었는데도 성격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물으면서 별거중인 아내와 대화하는 법을 묻는 남자분,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데 나로인해 어린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미리 걱정된다는 임용고시생nbsp등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nbsp 그 중 예술가와 살고 있는 부인에게, 처음 그런 남자를 선택할 때부터 문제는 내재되어 있었다며 남편이 살아있는 것,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내어야 한다, 그래야 이제 갓 4개월 지난 아이의 심성이 안정된다며, 악한 예술가의 부인으로 남을래요? 천사같은 부인으로 남을래요? 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역사 속의 예술가들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다음 강연장으로 이동을 하다가 휴게소에 들어가서 받은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드시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단식에 들어가셨습니다. 모레부터 3주간 명상이 시작됩니다. 스님은 여름 명상 때면 단식을 하시곤 합니다. 어떤 때는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을 함께 하기 위해서, 어떤 때는 몸에 너무 쌓인nbsp피로를 풀기 위해서 단식을 하십니다. 올 해는 어떤 마음으로 단식을 하실까? 강연을 다니는 중 몸이 너무 아플 때에, 너무 힘이 들 때에,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여름 명상 때까지는 이 몸을 끌고 가야 할텐데...” 상반기 200강 하시느라 몸이 너무 무리가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몸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서 단식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하반기 미주 순회강연과 가을 100강을 무사히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 3주간 단식을 하고, 또 3주간 복식을 하면, 중국역사기행 동안도 제대로된 식사를 못하면서 안내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명상 들어가기 이틀전에 먼저 단식을 시작하시면서, “강연 마치는 날 맛있는 것 사줘야야 하는데, 내가 단식을 시작해서 미안하네.”하면서 저희들을 먼저 살펴 주십니다. 충북 진천으로 가서 잠시 시간을 내어 보탑사 참배를 했습니다. 보탑사 주지스님께서 스님 저녁 식사 초대를 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되어서 못 간다고 했었는데,nbsp스님은 마음이 쓰이셨는지, 잠시 시간을 내어 참배만 하고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보탑사 마당에서 참배를 하다가 주지스님을 만났습니다. 법륜스님께서 평소 좋은 일 많이 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주지스님도 스님 하는 일에 조금 돕고 싶다 하시며 보시금을 전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곳에서도 스님은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를 하십니다. nbsp 진천군청에서는 군수님이 스님을 만나 뵙고 선물을 드리고 싶다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진천에는 종박물관이 있다며, 소리가 맑고 크게 나는 작은 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인협회장님은 법륜스님의 진천 방문을 축하하며 ‘희망세상’을 붓글씨로 써서 족자를 선물로 주셨고, 강연 마치고 나올 때도 한 분이 스님께 목판 ‘희망세상’을 새겨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nbsp 진천은 추진위원회를 꾸려서 법륜스님 강연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추진위원장님, 상공회의소 회장님, 도의원님, 예인협회장님 등 지역의 많은 인사분들과 자원봉사단들이 마음을 모아 행사를 진행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작은 공간을 빌렸다가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아 더 큰 공간을 빌리면서도nbsp혹시 다 차지 않을까 조마조마 했다고 하는데,nbsp오늘 강연장 468석에 611명이 와서 공간을 가득 채워서 강연을 했습니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열심히 홍보를 한 덕분인가 봅니다. 사전 차담을 할 때, 이 곳은 충청도라 스님이 하시는 방식인 문답식으로 강연 진행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미리 걱정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스님도 충청도 여러 번 해 봐서 반응이 늦은 걸 알고 있으니 괜찮다고 하셨었는데, 강연장에 들어서서 질문자 손을 들어라고 하니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손을 듭니다. 그리고, 첫 질문부터 남편이 바람을 피웠는데, 살아야 되겠는지 안 살아야 되겠는지 묻는nbsp59세 아주머니를 시작으로 바로바로 질문이 이어집니다. 작년 구제역으로 돼지, 소를 강제로 묻은 포크레인 기사는 가축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 후 지금까지 매일 가축들 좋은데 가라고 108배를 해 오고 있는데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겠냐고 묻습니다. 결혼 46일을 앞두고 양쪽집안의 갈등으로 결혼식을 해야 할지, 말아아야 할지 고민하는 남자, 77세 아버지가 이제 죽음을 준비하면서 오토바이 열쇠도 넘겨주고, 고추 말리는 기계 사용법도 알려주는데, 아들로서 어떻게 이 상황을 맞이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 등생활 속의 구체적인 질문들이 많아 강연이 진지하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즐거워 하기도 하고, 심각한 사연일 때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강연에 집중하기도 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오면서, 이곳은 충청도같지 않다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nbsp 밤 10시 30분에 재단에서 회의가 잡혀 있어, 진천 강연을 마치고 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늦게 시작한 회의라 보통 새벽 12시는 되어야 끝이 납니다. 내일 아침 일찍 조찬 모임이 있어서, 오늘 밤에도 스님 잠시간은 짧을 것 같습니다. 스님은 오늘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하루를 강행군하셨습니다. 오늘로서 드디어 여름 100강도 끝이 났습니다. 이제 가을 100강만 남았습니다. 스님이 차를 타시기에 “스님. 그동안 수고많으셨어요.”하면서 저희들이 감사의 박수를 쳤습니다.nbsp그랬더니 스님께서 “운전한다고, 글쓴다고, 밥 준비하고 생활 바라지 한다고, 상담한다고 다들 수고했어요. 영상 촬영팀, 교육팀도 다 이번에 수고 많았네.”하면서 함께 동행하고 있는 저희들에게도 박수를 쳐 주십니다. 수고하신 전국 자원활동가들을 대신해서 저희가 스님께 박수를 받았습니다. nbsp 봄 100강, 여름 100강, 200강을 정말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 왔습니다. 살인적인 일정을 다 소화해내신 스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희망본부 활동가님들과 각 지역마다 강연준비를 한 지구장님과 희망지기님들, 자원봉사자님들 모두 모두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정진하는 마음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고, 괴롭고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었습니다.nbsp굶주리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남한이 북한을 지원해야 하고, 남한이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백성을 감동시켜야만 하늘이 감동해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며 매일 매일 기도를 하시는 스님과 함께 달려온 여정이었습니다. 모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스님은 오늘부터 단식 들어가셨고, 내일부터 문경정토수련원으로 내려 가십니다. 8월 3일날, 명상을 마치고, 8월 5일부터 2주간 중국역사기행 안내차 동행을 하십니다. 그리고 저희들도 모레부터 9박 10일 명상 들어갔다가, 8월 3일까지 실무자 수련이 있습니다. 스님의 하루는 스님 명상하시는 동안 쉬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그동안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nbsp
7월 9일 법륜스님의 하루(대구 달성군, 서울대 북콘서트)
대구 달서군 현풍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오전 강연이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반가이 맞이해 주셨습니다. 질문자들이 많아 강연을 2시간 30분동안 진행했습니다. 그랬는데도 질문을 하지 못한 분들이 있어서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오늘 질문 중에 유독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는 질문이 있습니다. 시어머니의 아들 내외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현명한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흐뭇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nbsp질문한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해 봅니다. “저희는 영감, 할멈 둘 다 70이 넘었습니다. 4년전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사돈이 없는 고아랑 결혼을 하려고 해서 말렸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직장도 없는 내게 저런 여자가 딱입니다, 아니면 필리핀, 베트남 여자와 결혼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도 좋겠냐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 천도재를 지내주고 결혼을 시켰습니다. 며느리가 참 착합니다. 며느리에게 설에 옷꼬시를 해서 맛을 봐라고 하니까 치아가 안 좋아서 맛을 못 본다고 합니다.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 치아를 못 고쳤다고 해서, 제가 데리고 가서 1500만원을 주고 다 고쳐 주었습니다. 시집와서 운전면허증을 따고 싶다고 해서 면허증도 따게 했습니다. 아이 하나 낳고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해서, 면허증은 있으면 좋은 거다 하면서 따게 했습니다. 애도 잘 키우고, 아르바이트도 하겠다고 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아이가 참 명랑하고 활발하고 문제가 없이 우리 맘에 쏙 들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우울증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해서 병원에 데려 가니 우울증이니까 집에서 즐겁게 해 주라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냐고 물으니, 남편이 직장없이 노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가장이 돈을 벌어서 가정을 일구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우울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며느리가 아들이 놀면서 가정을 책임지지 않는 것 때문에 이혼을 이야기합니다.nbsp며늘아이가 “지금 이혼해서 나가도 남편보다 좋은 사람과는 만나겠는데, 어머님, 아버님 보다 좋은 분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합니다. 합니다.겨우 달래서 다시 살기로 했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일 모레 이혼해도 손해날 것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 편안하게 사세요. 아들하고 의논해서, 처음 결혼할 때는 반대했는데, 너의 말대로 괜찮은 여자 만나서 사는데, 여자가 어떻게 룸펜하고 살 수 있겠니? 힘을 합해서 사는 시늉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니? 하면서 한 달에 50만원이라도 버는 직장을 구하도록 의논해 보세요. 부인이 원하는 것은 부모가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남편이 노는 것을 못 본다는 거잖아요. 마음을 며느리가 아들과 4년 살아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이런 마음을 가지세요. 우리 며늘아이가 착합니다. 우리 아들이지만 저런 아들과 살아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맙습니까? 아이고, 우리 아들 장가라도 가보고, 가정이라도 꾸려봐서 감사합니다 하세요. 그리고 어떤 여자도 부모 유산만 받아먹고 사는 것보다, 남자가 나가서 제 역할을 해야 좋아합니다. 아들과 이야기해서 안 살려거든 보내줘라 하고, 살려거든 나가서 7080만원이라도 벌어라 하세요. 요즘 엄마 같으면 난리가 났을텐데 질문하신 분도 참 착하시네요. 살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면 나중에 며느리가 집나가면 미워져요. 살아준 것만해도 고맙다, 고맙다 하면 살아주는 것도 고맙고, 가도 고맙습니다.nbspnbsp 질문을 듣고 스님과 문답이 오가는 속에서 참 지혜로운 시어머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 현풍고등학교에서 강연을 마치고 곧장 ‘새로운 100년’ 북콘서트가 있는 서울대로 향했습니다. 서울로 오는데 고속도로 공사가 이 곳 저 곳 많아서 정체되는 곳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 스님은 바깥 상황과 관계없이 현풍에서 서울 오는 동안 차안에서 곤히 주무셨습니다. 서울대학교에 도착하니 강연 한 시간 전입니다. 강연전에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원장님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식사를 못 하신 스님께 샌드위치를 준비해 주셔서 간단한 요기를 하면서, 통일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원장님은 최근 유럽에 평화관련 탐방을 다녀 오신 이야기를 하시면서 20세기형 평화관리형의 한국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두 분이 서로 오래된 지인이라 거리낌없이 편안하게 사회문제와 통일에 대한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7시가 되어 강연장에 들어가니, 1600석 강당엔 1, 2층 모두 꽉 차고 복도에도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1800여명이 참가를 했다고 합니다. 200여명이 바닥에 앉았는데, 바닥이 카펫으로 되어 앉기에 좋았습니다.nbsp 기nbsp 오늘은 초대손님으로 시골의사 박경철, 서울대 교수 조국 님이 나와서 인사를 하고, ‘새로운 100년’을 읽고 어땠는지부터 여러 질문들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창조적인 삶,nbsp진보적인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스님과 함께 이 자리에 앉아서 구시대의 낡은 통일이 아니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통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자체가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연장에 온 1800여명의 관객들은 모두 스님 강연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 같았습니다. 스님의 통일에 대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 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희망세상 강연회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아, 사람들이 이렇게 스님의 말씀에 공감을 하고 있구나. 오늘 강연 온 사람들은 정말 통일을 위해 통일의병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분위기에 취해서 감동하곤 했습니다. 통일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겠구나. 이런 열기를 모아 나간다면, 정말 통일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느낌으로 확인하는 희망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강연 마지막에,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 강연장 밖으로 나가서도 행동을 할 수 있는 실천방법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뭔가 통일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행동해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자의 간절함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그 때 스님의 하신 말씀이 마음에 많이 남습니다. 2000만 북한동포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데, 이것을 외면하고 어떻게 진리를 이야기하고,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맨 처음, 이들을 위해서 커피 한 잔 값이라도 먼저 기부를 하는 것에서부터 통일을 위한 준비는 시작된다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많이 다가왔습니다. 굶주리는 북한동포들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사람들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살짝 눈물을 보이시는 듯했습니다. 그 모습에 저도 가슴이 찡해지면서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인간이라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일을 우리는 외면하고 있구나....가슴이 아팠습니다. 북 콘서트가 오늘로써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처음 서울에서 북콘서트 하던 날, 이렇게 해서 사람들의 열의를 모아 나갈 수 있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사실 앞섰습니다. 두 번째, 광주에서의 북콘서트를 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의를 가지고 있구나. 귀를 열고 듣고 있구나. 행동하려고 하는구나. 대전, 울산, 부산을 거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분위기가 달구어져 왔던 것 같습니다. 오늘, 1800여명이 모인 서울대에서 같이 환호하고, 같이 손뼉을 치는 10대부터 머리 하얀 할아버지들까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감동이 밀려와서 저는 또 눈물이 났습니다. nbsp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내기 위해서 스님이 얼마나 많은 날들을 거리에서 보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오직 굶주리는 북한동포들을 돕기 위해, 통일을 위해 염원하고 또 염원하셨는지.... 어느 곳에서나 어느 때나 항상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시는 스님. 스님의 기도가, 이제는 우리들의 염원이 된 통일이 속히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내일은 사실상 여름 200강 마지막 날입니다. 순창과 진천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 강연장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7월 3일 법륜스님의 하루(영광, 완주, 대전 북콘서트)
이른 아침, 5시 20분경 전남 영광으로 출발했습니다. 5시간 가량 걸려서 영광에 도착했습니다. 영광은 인구 5만 7천명의 군소재지로,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며, 기독교 순교지, 원불교 성지가 위치해 있고, 동학혁명의 중심지 중의 하나이기도 한 역사깊은 지역입니다. 310석의 강연장에 530명이 참가해서, 스님 말씀처럼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행사 준비를 하면서 현수막을 달았는데, 그 다음날 바로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서 현수막도 떨어지고, 사람들이 많이 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참가해서, 행사 준비를 한 자원봉사자들의 표정도 밝았습니다. 강연장에 참가한 사람들도 분위기가 밝았습니다. 영광 강연장에서도 이런 저런 인생사에 대한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nbsp 7월 중순 이후 스님의 일정이 어떻게 되는 지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스님의 이후 일정을 나눠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7월 10일까지 여름 100강이 있습니다. 여름 100강을 마치면 올 해 계획한 300강 중 200강을 마치게 됩니다. 8월 초까지 3주간 문경정토수련원에서 명상수련이 있고, 명상이 끝나면 중국 역사 기행이 2차례 잡혀져 있습니다. 그 후 미주 순회법회가 있고, 미주 순회 법회를 마치고 돌아와 9월 24일부터 가을 100강을 시작합니다.” 올 한 해 스님 일정이 빽빽하게 다 잡혀져 있습니다. 영광에서 완주로 가는 길에 잠시 김제에 있는 요양병원에 들렸습니다. 스님이 80년대 대학생불자들을 지도할 때의 학생이 이제는 50의 나이가 되어, 위암 말기로 곧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병문안을 가니 손을 꼭 잡고, 스님을 꼬옥 안으면서 좋아하십니다. 마지막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완주 강연장으로 가니 이 곳도 거의 난리가 났습니다. 군수님과 사전 차담을 하고 들어가니, 로비에 비디오를 설치해놓고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nbsp강연이 오후 3신데, 오후 2시에 강연장 자리는 물론 복도까지 다 차서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스님은 로비에 앉아 계신 분들게 불편한 자리에 앉아 강연듣도록 해서 죄송하다며 고개 숙여 양해를 구합니다. nbsp 무대 앞까지 빡빡하게 앉아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강연장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 에어콘이 제대로 작동이 안 되어 더운데도 사람들이 초롱초롱 집중해서 스님 말씀을 듣습니다. 아이 키우는 문제나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제일 반응을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nbsp완주에서도 정신적인 불안이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들이 있어 스님의 답변이 좀 길어졌는데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귀 기울여 스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아이처럼 밝았습니다.nbspnbsp nbsp 완주nbsp강연을 마치고 또 바로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대전 ‘새로운 100년’ 북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북콘서트를 기독교연합회관에서 했는데,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해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스님과 오연호 기자의 문답에 이어, 플로어에서 질문을 했는데 질문하려는 사람이 넘쳐 났습니다. 특히 대학생, 20대 후반, 30대 초반 젊은이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유성지역 국회의원도 참가해서 강연을 끝까지 듣고 스님 사인도 받아갔습니다. 대전 kbs 아니운서도 함께 했습니다. 20, 30대가 약간 많았지만, 20대부터 60대까지의 연령층이 다 참가한 것 같았습니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답답함에서 나오는 질문들이 눈에 띄였습니다. “통일에 관심이 없고 다른 나라 얘기 같았는데 ‘새로운 100년’ 책을 보면서 우리도 이대로 하면 되겠구나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주부로서 당장은 아니지만 어떤 생각으로 애들한테 얘기를 해줘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통일을 하게되면 경제적 상황이 안 좋을 것 같은데 경제적 손실이 있을텐데 그걸 감안하고까지 통일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책을 읽고 좋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통일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일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저는 공직에 있는데 공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새로운 100년’을 읽고 역사의식이랄까, 역사의 혼이 제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역사의식을 주변 사람들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nbsp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스님이 말씀해 주십니다. “일반인들이 통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요. 일제시대 농사꾼들이 독립운동을 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많았겠어요? 추수하게 되면 쌀 한 가마 군자금으로 내어 놓거나, 산에 나무해서 장작을 지원하는 이런 일이었겠죠? 자식이 여러 명 있으면 그 중 한 명을 독립운동 시킨다든가 했겠죠. 일반인들은 기부가 가장 쉬운 방법이지요. 그리고 한국 현대사나, ‘새로운 100년’이나 책 읽기 모임을 한다거나 ‘새로운 100년’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일도 하나의 방법이겠죠. 친구들 밥 한 끼 사주고 이런 토론회에 데리고 오는 방법도 있고. 통일을 위해서 거리에서 캠페인을 해 보는 방법도 있죠. 반대하는 보수적인 할아버지의 저항도 받아보면 현실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부딪혀 봐야 됩니다. 직장이면 직장, 학교면 학교에서 가벼운 한 두 개를 시작하면서 방향을 잡아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작게 해 나가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큰 것을 바라봅니다.” 대전 강연을 마치자마자 서울로 향했습니다. 늦은 밤에 스님과 약속되어 있는 분이 있어서 바로 서울로 왔습니다. 하루에 3개 강연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스님만이 아니라 동행한 사람들도 다들 피곤했는지 운전자 외에는 모두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내일은 충북 괴산과 부산대 북콘서트가 있습니다. 아침에 괴산 갔다가 다시 저 아랫마을 부산까지 갔다와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괴산과 부산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