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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8일 법륜스님의 하루(경주평지순례, 포항 강연)
어젯밤, 서울에서 울산으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오랫동안 문경정토수련원에서 행자원 반장으로 소임을 맡아서 일을 했던 길상 최동호 법우가 인도로 발령받아, 내일 아침 인도로 떠나기 전 스님께 인사를 드리는 전화였습니다. “내가 시간을 좀 내서 한 번 본다는 게 바빠서 시간을 못 냈네. 잘 다녀오고.” 길상 법우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가야 하는지 묻는 것 같습니다. “처음 가서 3개월간은 아무런 의견내지 말고, 먼저 현지에 적응해야 합니다. 현재 그 곳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상황 파악을 하는 게 필요해요. 처음 가면 제대로 안 된 것들이 눈에 많이 들어오고, 어떻게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아이디어도 많이 생길 거예요.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것이 대부분 내 분별심인 경우가 많아요. 항상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매너리즘에 빠져서 현지의 문제점들이 잘 안 보이게 되고, 또 처음 가는 사람은 현지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런저런 문제점만 보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예요. 그러니까 가서 문제점이 보이더라도 말을 하지 말고, 다 적어 두었다가 3개월이 지난 뒤에 다시 보면 그 중 대부분이 내가 분별한 것이고 몇 개만 쓸만한 게 나오지. 그 때는 그것을 개선해야 돼요. 외국에 떨어져 혼자 있게 되면 외로울 때가 많아요. 외롭게 되면 인간관계가 공적으로 흐르기보다 사적으로 흐르기가 쉽지요. 그래서 자꾸 정에 끄달리게 됩니다. 마음을 밖에 두지 말고, 안으로 잘 챙겨야 경계에 끄달리지 않게 되지, 항상 수행하는 마음으로 정진하세요. 2개월 후면 인도성지순례 때 내가 가니까 그 때까지 현지에 잘 적응하고 있고, 그 때 가서 이야기 나눕시다.” 하나 하나 짚어주시고 살펴 주시는 스님의 모습에서 따뜻한 아버지같은 느낌과 길을 알려 주시는 스승님으로서의 느낌이 함께 느껴집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자고, 아침 일찍 밥을 해 먹고, 경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경주 평지 순례’가 있는 날입니다. 전국에서 불대생이 660여명 참가했습니다. 어제까지 비가 와서 날이 흐리지 않을까, 너무 춥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바람은 좀 많이 불었지만 하늘도 맑고 기온도 그리 내려 가지 않아 가을 여행하기에 좋았습니다. nbsp 봄에는 남산성지순례를 하고, 가을에는 경주 평지순례를 합니다. 오늘은 불국사,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 능지탑, 황복사지, 황룡사지를 지나 분황사에서 마무리 회향을 하는 일정입니다. 불교대학생들이라 거의 처음 보는 얼굴들입니다. 불교대학 학장인 스님을 매주 영상으로 만나다가 오늘은 직접 얼굴을 마주보며 함께 하는 시간이라 그런지 다들 틈만 나면 스님 옆에 따라붙거나 무슨 기자회견장처럼 스마트폰 세례를 쏟아붓곤 합니다. 먼저 불국사 입구에서 입재식을 하고 불국사 경내를 돌아보았습니다. 불국사에 대해서 상세하고 자세하게 스님께서 설명을 해 주십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불국사 축대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면 항상 감동을 받습니다. nbsp “자, 정면을 보시고 축대를 한 번 보세요. 기둥이 있고 중간에 돌들이 있고 또 기둥이 있죠? 기둥이 돌들을 받쳐 주는 역할을 합니다. 기둥 사이의 돌은 다 다듬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석을 편편한 면만 바깥으로 보이도록 배치해서 잘 맞췄습니다. 하나 하나는 부족하지만 서로 끼워지면 다듬은 돌과 같습니다. 그러나 한 면은 편편해야 합니다. 다른 면들은 울퉁불퉁하더라도, 한 면은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한 면이 바로 우리에게 보여지는 면입니다. 불국토에 사는 중생은 완전한 인격체는 안되더라도 적어도 한 가지 정도는 부처님을 닮아야 합니다. 5000만이 다 깨우치지는 못해도 1인 50만명만 깨우치면 불국토가 됩니다. 읍, 면, 동 단위로 아침마다 수행하는 정토법당이 있어서 이 사람들이 정진, 보시하고 환경, 통일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읍, 면, 동에 100명이면 한 시군에 2000명 정도가 됩니다. 이 사람들이 수행, 보시, 봉사하면 시 행정이 똑바로 됩니다. 기둥사이에 있는 자연석이 개개인이라면 즉 중생이라면, 기둥은 보리샤트바, 즉 보살입니다. 이 원리를 가지고 정토행자의 서원을 만들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에 따라 칠보교, 연화교를 보고, 다보탑, 석가탑, 대웅전을 지나 무설전, 비로전, 관음전으로 쭉 돌아봤습니다. 문화적으로 뛰어나고 정교한 불국사를 보면서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1천년은 앞선nbsp우리의 배달문명, 요하문명이 계승되어서 그렇다며 자랑스럽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불국사 참배 후 사천왕사지로 갔습니다. 발굴작업이 한창인 사천왕사지를 바라보며 낭산 입구에 앉아 삼국유사에 나오는 사천왕사지에 얽힌 이야기들은 신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덕여왕릉에서는 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노래자랑도 했습니다. 봄 남산순례 때 신나게 노래자랑을 했던 적이 있어 사람들이 모이자 손뼉부터 치게 됩니다. 신나게 웃고 신나게 노래불렀습니다. nbsp 나와서 노래부른 사람 중에 오늘은 남자분들이 주로 많았고, 그 중에서 해운대 불대생들이 특별히 많았습니다. 스님 앞에서 남자, 여자 상관없이 모두들 사랑한다며 사랑고백을 합니다. nbsp 다시 능지탑으로, 황복사지 석탑으로 이동해서 너른 황룡사에 도착했습니다. 황룡사에서는 호국사찰로서의 황룡사의 역사와 황룡사 9층 목탑, 그리고 금당과 금당의 장육존불상, 솔거의 금당벽화, 원효스님에 대한 이야기들은 재미있고 실감나게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스님의 학창시절 이야기도 같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천년 전의 신라의 숨결을 느끼며 다같이 명상을 하는 시간도 감동적이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출가하신 분황사에서 간단한 설명과 더불어 오늘 장을 마무리 했습니다. nbsp 4시에 경주성지순례 일정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마치고 분황사를 나와 잠시 스님의 모교인 경주중교등학교에 들렸습니다. 스님 중고등학생 때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었습니다. nbsp 포항 강연은 7시라, 중간 틈에 조금의 시간이 있어서 경주정토법당에 가서 1시간 넘게 휴식을 한 후nbsp포항으로 향했습니다. 경주에서 포항은 4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강연장에 들어서니 980석 좌석이 꽉 차고, 오는 사람들은 무대 앞 바닥과 통로 중간중간에 앉고 있었습니다. 123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nbsp 오늘 강연은 ‘방황해도 괜찮아’ 북콘서트로 청년들을 위한 강연으로 포항 청년정토회에서 책임을 맡고, 포항정토회에서 지원을 한 행사였습니다. 강연장의 뜨거운 열기가 얼마나 청년들이 열심히 준비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nbsp 청년을 위한 강연인데 마음이 젊은 늙은 청년들이 더 많이 온 것 같았습니다. 분위가가 밝고 좋았습니다. 질문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열 명이나 되어서 바로 즉문즉설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특이한 점은 군인들 20여명이 참가해서 4명이 군대생활을 어떻게 잘 할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이렇게 군인들이 많이 올 줄 알았으면 내가 군대에 가서 강연을 할 걸 그랬네요?”해서 많이 웃었습니다. 오늘도 문답이 오가는 중간중간에 계속 박수가 터졌습니다. 강연 중간에는 스님 강연 찾아온 청학동 훈장 김봉곤씨에게 스님께서 마이크를 넘기셔서, 나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잠시 이야기하셨고, 이어서 심청전 중 뺑덕어멈에 대한 판소리를 해 주셔서 관객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nbsp 오늘은 군인들의 질문이 많아 그 중 군생활을 어떻게 하면 보람되고 잘 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나눠봅니다. nbsp “학교 다닐 때 한 번 보세요. 영어 선생이 잘 못 가르친다고 영어수업시간에 책상 밑에 수학책 넣어 놓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아무리 선생이 잘 못 가르쳐도 영어시간에는 영어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좋아요. 그처럼 군대 있을 때는 군인에 충실하는 게 좋아요. 군인으로 잘 할 수 있는게 뭘까요? 첫째, 체력을 단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훈련 있는 날은 훈련하고, 훈련 없는 날은 나 혼자 뛰면서 체력 단련을 하면 군인으로서 칭찬받는 일이잖아요. 둘째, 요즘 자식이 한 둘이라서 공동생활이 서툴잖아요. 어차피 사회 나가도 생활하려면 그것도 조직생활입니다. 군대 있을 때 조직생활 연습을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상사가 시키면 무조건 해 보는 것입니다. 비굴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려놓는 하심하는 마음으로 해 봅니다. 그러면 수행이 많이 됩니다. 넷째, 돈만 재산이 아니라 사람이 재산입니다. 부하들 대할 때 직위로 대하지 마세요. 군대의 질서상 필요한 것은 그렇게 대하더라도 평상시에는 사람과 사람으로 대하세요. 그 안에서 인간관계라고 하는 큰 자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군대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지, 군대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군대안에서 눈치보면서 할려고 하면 맞지도 않고 나도 힘들고 또 효율적이지도 않습니다. 제대 얼마 남았어요?” “500일 넘게 남았습니다.” 갓 입대한 군인이었습니다. 제대할 때까지 스님 말씀따라 군생활 잘 하시길 기원해 봅니다. 오늘은 경주에서 천년 신라의 역사와 함께 가을에 흠뻑 취하고, 포항에서 천 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인생이야기를 나누며 재밌고 보람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룻동안의 일들이지만, 적을 것들이 많아 항상 줄이고 줄여서 쓰는데도 어떤 날은 글이 길어지곤 합니다. 오늘 하루도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참 많았던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목포와 광주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가슴 뜨거운 사람들이 사는 전라도에서 만나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nbsp
10월 24일 법륜스님의 하루(대전정토회 가을강좌3)
오늘은 대전정토회 가을강좌가 있는 날입니다. 서울에서 아침 7시 30분 출발해서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젯밤 업무하느라 잠을 주무시지 않으셨습니다. 어젯밤 못 잔 잠을 차에서 보충하셨습니다. 오전 강좌에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매주 즉문즉설 전에 모두 강연을 하고 있는데, 오늘 주제는 희망세상 만들기 5가지 실천 중 세 번째인 ‘내가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되어 공정사회 이루겠습니다.’였습니다. 스님께서 공정한 사회에 대해서 한 시간 넘게 강연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살지 않고 무리를 지어 모여사는 것은 함께 사는 것이 혼자 사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함께 하는 무리를 공동체 사회라고 합니다. 공동체 사회는 서로가 공생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도 각각의 구성원간에는nbsp이익을 다투는 경쟁관계에 있습니다. 이 경쟁관계가 지나쳐서 공동체 이익을 훼손하면 공동체가 파괴됩니다. 그러므로 사회구성원간의 경쟁은 사회활력을 넣어주고 개인의 발전을 가져오지만 지나치면 공생관계를 파괴하므로 개인간의 경쟁은 공동의 이익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내여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런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면서도 공동체 전체 이익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자유로 제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서로 경쟁해야 공동체 이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가?nbsp그것은 모든 이에게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고 경쟁의 룰이 공정하게 적용되고 그럼으로 해서 패자가 깨끗이 승복해야 하며 또한 패자에게도 적절한 보호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경쟁 가운데서도 공존하고, 공존하면서 경쟁하는 아름다운 사회, 활력있는 사회를nbsp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기 때문에 불평불만이 많아지고 패자와 약자에 대한 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존감과 행복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정한 사회, 약자도 보호받는 복지사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nbsp 사회의 구성, 공동체의 의미, 경쟁 관계와 공생의 관계, 기회의 균등과 룰 집행의 공정성, 패자와 약자를 보호하는 공평한 사회, 양극화와 경제 민주화, 공정과 복지의 상관관계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전문가들이 어렵게 이야기하는 경제와 복지와 공정, 공평한 사회, 공동체 등에 대해서 누구라도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쉽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앞 강의가 좀 길었는데, 이해하시겠어요?” “예.” 사람들이 큰 소리로 대답을 합니다. “이렇게 듣고 나면 신문이나 방송에 자주 나오는 양극화, 경제 민주화, 복지 등이 왜 대선주자간에 논쟁이 되고 있는지를 좀 더 이해하기가 쉬울 거예요. 자, 그럼 질문 한 번 해 보세요.” 스님 말씀에 이어 질문자가 일어나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nbsp 오늘 질문 중에서는 한의사 한 분의 고민을 나눠 볼까 합니다. “저는 궁금한 것이 있어서 서울에서 왔습니다. 한의원을 하고 있습니다. 동업을 하다가 정리를 했는데 한의원 건물 주인이 바뀌어서nbsp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업자의 빚까지 저에게 넘어 왔습니다. 자리 잡은 것이 아까워서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서 다시 한의원을 차렸습니다. 동업한 것도, 한의원을 다시 차린 것도 후회되고 괴롭습니다. 한의원이 장기적으로 보면 가능성은 많은데 제가 방향을 못 잡고 있습니다. 법적인 책임 등 상황이 복잡합니다. 병원을 접고 출가를 할까? 그러면 도피성으로 보이지 않을까?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요?” “첫 번째는 만약 정리가 다 되었다면 우선 문경에서 백일출가를 해서 예비 출가자 생활을 해 보는 거예요. 할만 하다고 생각이 되면 정식 출가를 하면 되고 어려우면 안 하면 됩니다. 두 번째는 백일출가해서 괜찮다고 하면 3년 정도 서울법당이나 대전법당에서 무료 진료를 해 주는 거예요. 결혼 했어요? 잘 됐네요. 무료로 진료해서 3년간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3년간 돈 안 받고 진료를 하면 임상이 많겠죠? 돈 받고 할 때는 치료해서 안 나으면 말이 많지만, 돈 안 받고 치료하면 안 나아도 그만입니다. 그런데 나으면 입소문이 퍼집니다. 그러다 한의원을 차리면 환자들이 많이 오겠죠? 그러면 성공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공덕을 쌓아라고 하는 겁니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하면 됩니다. 인도 수자타아카데미에 가면 병원도 크게 지어놨습니다. 돈 벌 생각만 안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원장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별 거예요? 임상을 많이 하다보면, 환자를 많이 접하다 보면 명의가 되는 거예요. 한방뿐만 아니라 외상도 치료하다 보면 양의까지 겸하게 되어 가정의로서 종합의가 될 수 있습니다.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수행이 깊어지면 환자 데리고 법문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자신의 역할이 세상에 쓰임새가 커지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환자를 치료해서돈을 번다고 생각하지 말고,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돈이 벌리는 것입니다.” nbsp “한의원을 그대로 한다면 적자는 안나게 할 수 있겠어요?” “상황이 복잡해서 환자를 제대로 못 보고 있습니다.” “환자는 많이 와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상 유지는 할 수 있어요?” “예.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한의원을 정리한다고 마음을 먹어 버리고, 백일 출가해서 3년간 복 짓겠다는 마음으로, 이왕 의사니까, 경영에 대해서는 마음을 탁 놔 버리고 한 번 해 보세요. 법원에서 문 닫아라고 하면 그 때 정리하면 되니까 정리할 때까지 병원 일에 집중하면 어떻겠어요? 내가 병원 문을 닫을까 말까 신경쓰지 말고, 나는 문 닫는 전날까지 환자에게 집중하는 겁니다. 행정, 경영에는 신경쓰지 말고 환자에게만 집중하세요. 오늘 법문 듣고 ‘한의원 문 닫는다고 결정을 했다, 문 닫힐 때 가겠다, 닫힐 때까지는 환자에게 집중을 한다.’하는 마음으로 하세요. 혹시 병원 문이 닫히더라도 환자가 의사에게 감동을 하면 나중에 문 열면 또 오게 됩니다. 한의원 파산해 봐야 뭐가 큰 문제예요? 파산하면 출가해도 되고, 행자하면서 공짜로 침을 놔 주면nbsp어디로 가도 환영받겠죠? 진료만 하면 돈은 저절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것을 빨리 해결하려고 하니까 힘든 거예요. ‘어리석은 과보구나’ 하고 과보를 달게 받으면 됩니다. 오늘부터 가서 마음을 탁 놓아버리면 길이 열립니다.” nbsp 오전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공양 후 잠시 휴식을 하셨습니다. 저녁 식사 전에는 30분 가량 시청앞 산책길을 걷다가 들어오셨습니다. 저희는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2시간 가량 시청 주변과 한밭수목원을 걸으며 운동을 했습니다. 단풍과 국화와 억새와 파란 하늘을 도시 한가운데서도 맘껏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녁 강좌에는 항상 주간보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도 법당이 꽉 찼습니다. 오전과 마찬가지로 스님께서 한 시간 모두 강연을 하시고 질문을 받았는데, 오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했습니다. 친정 부모가 여행갈 때 용돈주는 것조차 반대하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이야기하는 결혼 2년차 주부를 시작으로 이제는 신앙을 가지고 싶은데 어떤 종교를 신앙으로 가져야 할 지를 묻는 아주머니, 자신을 소심한 A형이라고 소개하면서 불교인으로 같이 만나 결혼을 한 아내가 교회에 나가서 기독교를 배우고 싶어하는 것을 강제적으로 반대했는데 이후에도 이런 경우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묻는 남자분도 있었습니다. 30년 군생활을 한 분은 힐링캠프를 통해 스님을 알게 되었고, 스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해보고 싶어서 가족과 함께 오늘 처음으로 왔다고 자기를 소개하면서, 4년 후 퇴직했을 때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경찰 시험에 두 번 떨어진 큰 아들에 대한 걱정스러운 아버지의 마음을 스님께 이야기합니다. nbsp 그 뒤 15살 여학생이 평소에 대화도 많이 하고 정말 친했던 친오빠를 작년에 잃고,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오빠 생각이 계속 난다며 오빠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면서 오빠 생각을 하면 안 되냐고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께서 오빠를 마음으로부터 가볍게 보내줘야 오빠도 무주고혼이 안 되고, 나도 가볍게 살아갈 수 있다고, 이 자리에서 오빠를 보내라고 하면서 “잘 가, 오빠. 안녕.”을 해 보라고 했습니다. 목 메는 목소리로 여러번 오빠를 보냈지만, 스님께서 아직 마음에 많이 남아 있다고 다시 시키고, 다시 시켰습니다. 오빠를 보내는 목멘 여학생의 목소리에 강연을 듣던 남자들도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습니다. 마지막에 여학생이 그나마 가벼운 목소리로 “잘 가, 오빠. 안녕.” 하자, 대중들이 모두 내 일처럼 기뻐하면서 큰 박수로 격려를 했습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얼굴이 탁 밝아야 돼, 알았지? 집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밝아야 돼. 웃어 봐.” “저, 잘 웃어요.” “그래야 억압되어 있는 슬픔이 털어져. 그럼 오늘부터 매일 108배 하면서 오빠를 위해서 기도해 줘. 어떻게? “오빠, 잘가. 안녕.” 이렇게 100일동안 108배 절하세요. 알았지?” 다시 한 번 사람들이 큰 박수로 여학생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nbsp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께 질문을 했고, 질문을 한 사람, 스님과 질문자의 문답을 들은 사람들이 삶의 지혜를 얻어서 각 자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특히 15살 여학생과 그 뒤에 질문한 남자 중학생을 보면서 아직 어린 학생인데도 고민을 스님께 털어놓고 뭔가 길을 찾고자 하는 그 모습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내일은 경기 이천에서 오전 강연이 있고, 오후에는 대전 카이스트대학교에서 새로운 100년 북콘스트가 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10월 9일 법륜스님의 하루(성북구, 동대문구, 노원구, 서일대)
화요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맑은 가을날입니다. 오늘은 강연이 4개나 있는 날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연하는 곳이 모두 강북쪽으로 모여 있어서 이동거리가 많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아침에 조찬으로 몇 년째 해 오고 있는 전문가 모임에 참석했다가, 강연시간에 맞춰 성북구민회관으로 출발하셨습니다. 성북구민회관은 전에도 강연을 했던 적이 있는 곳입니다. 구청장님과도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구청장님은 ‘새로운 100년’을 스님께 선물받자마자 바로 다 읽었다며,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서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강연에 들어가셨습니다. nbsp 500명이 넘는 많은 분들이 강연을 들으러 오셨습니다. 어렵게 질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질문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 문제 해결의 시작점에 서 있다던 스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딸이 결혼하려고 만나는 남자가 직장이나 학벌은 좋은데, 언청이 수술을 했던 사람이라 이빨도 시원치가 않고, 또 손자에게 유전이 될까봐 걱정된다는 아주머니에게 스님께서 큰 과제를 주셨습니다. “말씀하신 뜻은 직장과 학벌은 좋은데, 언청이는 싫다, 또 언청이는 싫은데 직장과 학벌은 너무 좋다 이런 경우라면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갈nbsp가능성이 90입니다.nbsp결혼을 하면 잘못했다고 후회합니다. 또 결혼 안 하면 괜찮은 사람을 놓쳤다고 후회합니다. 결혼을 해도, 안 해도 후회가 되는 수에 걸렸습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외통수에 걸렸습니다. 왜냐하면 욕심으로 사람을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됩니다.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학벌을 보거나, 육체를 보고 판단을 하는 이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욕심에 걸려 있기 때문에 결혼을 하면 헛다리 짚는 경우가 되고, 안 하면 괜찮은 사람을 놓쳐 버린 경우가 되어 버립니다. 결혼한다, 안 한다 둘 다 내려놓고, 100일동안 욕심을 내려놓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면 상대가 문제가 있더라도 수용을 하든지, 학벌이나 지위가 돈보다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결론이 나든지, 그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든지 저절로 교통정리가 됩니다. 내 마음이 정리되든, 상대 마음이 정리되든, 상황이 바뀌든 정리가 될 것입니다. 기독교 같으면 ‘주의 뜻대로 하소서.’, 불교 같으면 ‘인연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하는 것입니다. 놓아버려야 이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안 그러면 어느 쪽을 선택해도 과보가 따릅니다. 욕심내려 놓고 기도하세요.” 상대에게 분노가 생기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분노가 많다는 여자분이 분노를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 분노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스님같이 아픈데를 시원하게 긁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28개월, 70일된 아이 둘 키우기가 너무 힘들고, 남편만 보면 짜증나고 싫어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우울증 초기 증세의 31살 젊은 엄마, 노래교실에서 계속 태클을 걸고 시비하는 동료때문에 힘들다는 적극적인 성격의 할머니, 아이 둘 있는 남자와 결혼이야기가 오가다가, 자기가 남자분의 큰 아이를 너무 싫어해 거의 헤어진 상탠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약간 불안해 보이는 여자분 이야기 등 마칠 때까지 깊은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참 소중한 자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 외국에서 오신 손님들을 모시고, 북악 팔각정 휴게소의 원두막에 앉아 김밥을 먹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북한산, 점심시간에 휴식차 나온 듯한 여유로워 보이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3시에는 동대문구 예그리나 명사 특강으로 스님 초청 강연이 있었습니다. 예그리나란 말이 낯설어서 사전에 찾아보니 ‘서로 사이좋은 사이’란 뜻을 가진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합니다. 구청 강당에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이 곳에서도 험난한 인생사가 터져 나오고 스님을 애타게 바라보는 눈동자들이 있었습니다. nbsp 의처증이 있는 남편과 35년을 살다가 남편이 돌아가셨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의심하는 할머니 이야기, 사회복지사로 일했었는데 지금은 조울증으로 집에서 쉬고 있어 올바른 가장, 올바른 아빠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상심하고 있는 젊은 남자분, 30년정도 직장생활을 하고 명예퇴직을 했는데 잘 늙어 가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묻는 여자분, 한국에 온 지 2년된 새터민인데 남북이 다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왜 아직도 통일이 안 되고 있는 것인지 묻는 여자분. 스님의 답변은 진지하되 가볍고, 간결하나 시원했습니다. 큰 박수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저녁 강연은 청년대학생들을 위한 희망콘서트였습니다. 노원구민회관에서 있었는데, 처음 시작할 때 약간 자리가 비었다가 강연시작한 후 얼마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오늘은 청춘멘토링인데, 왜 이렇게 아주머니들이 많이 오셨어요? 자, 청년대학생들 손 한 번 들어보세요? 없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많네요. 청년대학생들이 먼저 질문을 하고, 그 후 나이든 청춘들 질문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nbsp 20대, 30대 젊은이들이 질문은 역시 연애, 진로에 대한 것이 많았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옛날 사람처럼 끈적끈적 붙는 엿처럼 연애하지 말고 바싹바싹 하는 쌀과자처럼nbsp연애하세요. 내가 너 좋아하는 것은 내 자유지만 그렇다고 너도 나 좋아하라고 요구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강요고 독재입니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가 망설여지고 참 어려운데 그것 또한 나를 좋아한다는 답을 얻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쉬워요. 그런데 너도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해라, 이러니까 망설여지는 거예요. 그래서 말도 못하고 시간 보내고 혼자 끙끙 앓습니다. 상대가 내 요구대로 안 되면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미워합니다. 그럼 자기 인생만 손해잖아요. 이것은 민주 질서를 어귀는 거예요. 완전히 독재적 사랑을 하는 겁니다. 남이 나를 좋아하든 말든, 그건 남의 인생이니 상관할 바가 없어요. 바다에 가서 ‘야, 바다 좋다.’ 이런 말은 그냥 쑥 나오잖아요. 아무 대가도 안 바라니까요. 그것처럼, ‘야, 너 좋다.’ 하고 그냥 말하면 되는 거예요. 상대도 좋다고 하면 되는 거고, 상대가 싫다고 하면 그만 두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상대가 싫다고 하는데도 내가 좋다면 싫어하는 사람을 좋게 만들려면 공을 많이 들여야 해요.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선물도 하고 정성을 기울여야 해요. 좋고 싫은 감정은 개인의 자유예요. 나를 좋아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어요. 그 사람의 자유니까요. 그렇게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면 내가 사귄 사람을 전부 친구로 둘 수 있어요.” 스님은 연애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사귀는 법을 알려주십니다. 잠시 강연장을 나왔는데, 남자 고등학생 두 명이 복도로 급하게 뛰어 들어옵니다. “야, 빨리 와라. 법륜스님 강의 끝나겠다. 스님 봐야 된다.” 이 고등학생들이 학원수업을 마치고 스스로 이렇게 스님을 찾아오는 이유가 뭘까? 스님께서 젊은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같이 호흡을 해 주고, 방황하는 삶의 방향을 잡아주시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nbsp 저녁 강연까지 마치고 나니까, 동행했던 저희들도 눈이 감기는데, 스님은 더 피곤하실 것 같습니다.nbsp그런데 오늘은 또 강연이 하나 더 남아 있어, 노원구민회관에서 강연을 마치자마자 서일대학교로 이동했습니다. 일정이 안되는데도 계속 강연 요청을 해서, 스님께서 일정표까지 보여주며 시간이 없다고, 밤 10시 30분 외에는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그 시간에도 해 달라고 해서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늦은 시간이라 강연장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300명이 모여있다고 강의 요청을 했는데 가봤더니 6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그런데도 스님께서는 인원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500명 앞에서 강연 하시듯이, 통일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강연을 하셨습니다. 회관에 들어오니 새벽 1시가 다 되어 갑니다. 오늘 하루는 완전 풀타임이었습니다. 강연을 하는 것은 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로 하기 때문에 이렇게 매일 매일 할 수 있다던 스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스님의 일상 모습 속에서 하나 하나 배워갑니다. 내일은 2012년 가을 강좌가 대전정토회에서 시작됩니다. 내일 대전에서 뵙겠습니다. nbsp
10월 8일 법륜스님의 하루(경북 영덕, 영양, 울진)
오늘은 경북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대게가 유명한 영덕에서 오전 강연이 있었고, 오후 2시 30분에는 고추가 유명한 영양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7시에는 망향정이 있는 울진에서 마지막 강연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서 영덕으로 향했습니다. 4시간 가량 걸렸는데,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완연한 가을이 그대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노오란 들판 위로 안개가 피어오르고, 파란 하늘에는 비늘 구름 흘러 다니고, 파란 호수엔 산그림자 내려 앉아 우리들을 반깁니다. 우리들이 맘껏 산천을 눈요기할 때, 스님은 차에서 곤히 휴식을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푹 쉴 수 있는 장거리 여행이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영덕에 도착하기 10분전 강연장에서 문자가 왔습니다. ‘현재 100여명 정도 왔는데, 질문자는 없습니다.’ 가을에 농촌에 강연이 많이 잡혀 있는데, 실제 농사일 하는 분들이 강연장 오시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질문자들이 없는 것도 당연한 것 같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이 강연장에 오시는 분들을 반가이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강연이 시작되고 살펴 보니, 아저씨들은 거의 없고, 50대 중 후반, 60대 초반의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더 연세드신 분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질문을 받기 전 모두 강연을 한 시간 가량 하셨습니다. “곱게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예쁘다.”고 하시면서 늙어서 좋은 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젊다는 것, 늙었다는 것은 어떤 것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지만, 젊었을 때는 젊어서 좋고, 늙어서는 늙어서 좋은 원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법의 이치, 삶의 이치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마음의 작용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내가 좋아집니다.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못 받아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지 않아서 불행한 것입니다. 마음의 성질이 그렇습니다. 이해 못하면 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내가 상대를 이해 못해서 그렇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이해받으려고 하지 말고 이해하세요.” nbsp 50대 후반의 아주머니들이 스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합니다. 스님은 역시 아주머니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10분 전에 100여명이라 걱정을 하더니, 강연이 시작되고도 사람들이 꾸준히 들어오더니 250여명이 강연장을 가득 채우고 강연을 들었습니다. “영덕에 왔는데, 영덕게도 못 먹어보고 가네요.”하며 저희들끼리 아쉬움을 이야기하며 영덕에서 영양으로 떠났습니다. 하루 강연이 3개 있을 때는 주변 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강연 마치면 바로 다음 강연장으로 이동하고, 차 안에서 김밥이라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일정들입니다. 영양은 고추가 많이 나는 지역입니다. 가로등마다 빨간 고추 모양이 두 개씩 달려 있습니다. 고추가 특산물임을 알리는 것 같습니다. 바다를 접하고 있는 영덕, 울진과 달리 영양은 내륙으로 들어와 있는 지역입니다. 인구도 1만 8천명으로 조그마한 군입니다. 380석의 강연장에 사람들이 얼마 안 앉아 있어서 강연장이 약간 썰렁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180명이 넘게 참가를 했으니, 인구의 1가 넘는 인원이 참가한 것입니다. 고추가 막바지라 일손이 바쁘다고 하는데, 그리고 길 양옆으로 주렁주렁 달린 사과도 수확철이라 일손이 바쁜데 많은 분들이 참가해 주신 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영양에서 울진으로 넘어가는 길도 아름다웠습니다. 절벽을 붉게 타고 오르는 담쟁이의 향연은 탄성을 지르게 했습니다. 20년 후면 물맑고 공기좋고 먹거리 안전한 이 곳이 가장 경쟁력이 있는 곳이 될 것이라고 영양 강연에서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시원한 가을 공기도 좋고, 계곡의 물도 면경같이 맑고 깨끗했습니다. 울진으로 넘어가는 길은 스님께서 지도를 보고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산길을 알려 주셨는데, 아직 도로 포장이 다 되지 않아서 비포장도로로 아슬 아슬 울진으로 넘어갔습니다. “아이구, 큰 일 날 뻔 했네. 잘못 했으면 강연에도 못 갈 뻔 했네.”하시며 웃으셨습니다. 비포장도로로 재를 넘어 멀리 높은 산꼭대기 너머로 파란 바다가 보입니다. 와 바다다 꼭 바다를 처음보는 사람들처럼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강연시간보다 30분 일찍 울진에 도착해서 바닷가로 갔습니다. 배들이 파도에 흔들리고, 얕은 어둠 속에 파도는 더욱 하얗게 부딪혀 쓰러집니다. 멀리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이 수평선 너머에 환한 도시 하나가 숨은 것처럼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서서 김밥과 먹을 것들을 든든히 먹고 다시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nbsp 울진은 6만의 제법 큰 군이라서 그런지, 강연장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450명이 참가해서 강연을 들었는데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질문도 많았고, 대중들의 분위기도 밝았습니다.” “저는 23살 대학생인데 살아오면서 어려운 점이 크게 없었습니다. 학교도 잘 다니고, 친구도 잘 사귀는데, 요즘 와서 가끔 삶이 무거력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저만이 아니라 친구들도 많이 느낍니다. 친구도 많고 성격도 밝던 20대가 어느날 변사체가 되어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이 20대의 지나가는 열병인 것인지, 다른 원인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왜 사는지는 애매합니다. 친구도 많고 재미있는 일도 많은데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람쥐나 토끼가 왜 사는지를 알고 살까요, 그냥 살까요?” “그냥 산다고 생각합니다.” “왜 사느냐를 자꾸 생각하면 종착역은 자살입니다. 왜냐면 삶에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없으니까 자살을 합니다. 삶의 의미를 묻기전에 이미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삶이 먼저 있는데 왜 사냐고 물으니까 답이 안나옵니다. 사는 것은 그냥 사는 것입니다. 삶에 대해서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가 되어야 합니다. 어차피 사는데 즐겁게 살래요, 괴롭게 살래요? 속박받고 살래요, 자유롭게 살래요? “현대사회에서 20대들이 죽음이라는 종착역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잖습니까?” “첫째, 자기 삶에 대한 생태적 삶의 자세가 안 갖춰졌기 때문에 그렇게 갈 수 있습니다. 20살이 넘자마자, 제 먹고 사는 것을 제가 책임지고 살면 자살할 확률이 푹 떨어집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부모의 희생위에 얹혀서 살기 때문에 몸은 성인인데, 정신이 미성숙해서 생기는 부조화 때문에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20살이 넘으면 부모는 무조건 자식을 내어보내고, 20대 자신도 딱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을 지면 자살이 줄어듭니다. 삶이 생태적이지 못합니다. 그것은 토끼든, 다람쥐든 산에서 키우면 엄마에게서 독립을 하는데, 집에서 키웠다가 자연에 풀어놓으면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자연에 있는 생명은 병이 안 들지만, 집에서 키우는 동물은 병이 듭니다. 인간이 생태적인 것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 삶을 책임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살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삶의 방식이 잘못되어서 그렇습니다. 사회구조적인 잘못입니다. 이것이 환경적 조건입니다. 둘째, 심리적 조건은 심리불안입니다. 부부지간에 싸워서 엄마가 심리가 불안한 상태에서 애를 낳아서 키웠기 때문에 자아가 불안합니다. 그래서 장애에 부딪혔을 때 못 이겨냅니다. 그래서 발병합니다.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대학생을 조사해 보면 13가 정신적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의 불안심리로 인해서 형성된 자아가 억압적인 상황에 부딪힐 때 뚫고 나가지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삶의 환경이 야생적 태도를 가지면 자살은 굉장히 떨어집니다. 그 다음 사회적 대응은, 심리적 불안요인은 조기 치료하면 됩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자살률이 현재의 13, 15로 떨어질 것입니다. ” 20대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의 튼튼하고 건강한 구성원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nbsp 울진 강연을 마치고 어두운 밤을 가르며 다시 서울로 향했습니다. 오늘도 하루 3강 하느라 바쁘게 다녔는데 내일은 밤 10시 30분에도 강의가 있어 4개의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바쁠 것 같습니다. 내일은 서울에서 강연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오전 10시 30분에는 성북구민회관에서, 3시에는 동대문구청에서, 7시에는 노원구민회관에서, 10시 30분에는 서일대학교 대강당에서 있습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참가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nbsp
10월 5일 법륜스님의 하루(강원도 철원, 경기도 양주)
오늘은 가을 100강 중 17강, 18강이 있는 날입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20강이 다 되어 갑니다. 이렇게 쉴 새 없이 다니다보면 어느새 300강의 피날레를 장식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오전에는 강원도 철원군, 오후에는 경기도 양주시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철원으로 가는 길에 벼가 노랗게 익어서 추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윗 쪽 지방은 추수가 빨라서 지금이 한창 바쁜 철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또 철원 장날이라, 강연 참가자가 적을 것 같아서 철원 희망지기가 걱정이 많았는데 360명이나 참여를 해줘서 참 고맙다며 인사를 합니다. 첫 질문은 약간 연세드신 아저씨가 스님의 금강경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하면 공과 연기, 실상, 무아를 총괄해서 이해할 수 있는 지 물었습니다. “똥이 방에 있으면 오물이고, 밭에 있으면 거름입니다. 사실 똥은 거름이기도 하고 오물이기도 한 것이 아니라 똥은 똥일 뿐입니다. 철학적인 용어로 이야기하면 똥을 똥인 줄 아는 것을 실상이다, 공이다라고 합니다. 똥이 공하다 할 때 공은 거름도 아니고 오물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똥은 때로는 오물이라고 불리고 때로는 거름이라 불립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이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일체유심조라 합니다.”하면서 여러 가지 예를 들면서 쉽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시어머니가 교회에 다니라고 강요를 하는데 좋게 거절하는 방법에 대해서 묻는 며느리에게는 “첫째, 성경의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줘라.”“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벗어줘라.”는 말씀처럼 첫째 해결책은 시어머니가 교회 가자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가버리면 이 문제는 해결이 됩니다. 그러면 이런 것은 교회 가냐 안 가냐의 문제를 넘어서 수행이라고 합니다. 시어머니에게 억지로 끌려 가면 시어머니에게 멱살 잡혀 가는 꼴이 되지만 내가 먼저 가버리면 시어머니에게 끌려 다니지 않습니다. 교회 안 가는것만 자유가 아니라 교회 가는 것도 자윱니다.” 스님의 뜻밖의 답변에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합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대한민국은 신앙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며 두 번째, 세 번째 방법에 대해서도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거짓말을 자주 하고 가르치려고 들어서 밉고 사이가 안 좋다는 여자분의 질문에, “그 가까운 사람이 남편이지요?” 하고 스님이 묻자, 여자분이 “예 ”하고 답을 합니다, “그냥 툭 터넣고 이야기하세요.” 하자 또 사람들이 까르르 웃으며 넘어갑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은 내가 남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상대가 거짓말 하는 것을 보고 내가 싫다고 해도 상대가 안 고치면 그만이잖아요. 저 사람은 말에 뭔가 풍이 있구나 하며, 거짓말하는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내가 편하고, 따지면 내가 괴롭습니다. 남편을 고칠 능력이 있어요? 없죠? 지금까지 남편과 살아온 것을 보면 남편 거짓말이 소소하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 정도는 용인하고 사세요. 미움이 생기면 내가 괴롭잖아요? 미워하면 결국 내 손해입니다.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가꿔 나가세요.”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고 자원봉사자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철원에는 기존 인연이 많지 않아서 이 곳 저 곳에서 지원을 한 것 같습니다. 다들 수고많으셨습니다. 철원 강연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재단에서 일상 업무를 보신 후, 5시에 양주로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스님이 서울에 계실 때는 잠시의 틈도 없습니다. 분과 초를 다투어 생활을 하십니다. 지역 다니는 일정도 만만치 않은데 서울에 오면 더 만만치 않은 일정이 스님을 기다립니다. 특히, 오늘부터는 대만에서 오신 손님들이 있어서 손님들도 함께 동행을 해서 다닙니다. 스님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손님들과 같은 차를 타고, 차안에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재단에서 양주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가 아닌데다가, 저녁 퇴근시간까지 겹쳐서 길이 많이 막혔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5분가량 늦어서 강연은 큰 차질없이 진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양주는 강연을 시작하는 첫 환영영상이 나올 때부터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습니다. 강연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중간 중간 스님의 말씀에 웃음이 터지고, 관객석 중간에서 스님 말씀에 추임새처럼 답변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뭐가 즐거운지 내내 웃으면서 강연을 듣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양주는 특히 남자분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직업 군인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분은 질문을 시작할 때, 마칠 때 큰 소리로 거수 경례를 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올 해 나이 55세라는 분은 열심히 살아왔는데 아직 처자를 만나지 못해서 고견을 듣고 싶다고 했고,nbsp스님이 성불하셨는지 알고 싶다는 연세드신 남자분도 있었습니다. 아내와 이혼하고 괴로워할 때 스님 말씀을 접하게 되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 남자분은 아이들을 자신이 키우고 있는데 폭력적인 큰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질문을 했습니다. nbsp 그리고, 의정부 교도소에 근무하는 교도관이라고 밝힌 남자분은 갈수록 흉악해지는 범죄자들을 매일 접하면서 왜 우리나라는 사형제도가 있으면서 사형을 시키지 않는지, 흉악범은 처벌을 더 해야 하지 않나? 이제는 제소자들 교화에 회의가 든다며nbsp목소리에 감정이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스님의 답변 과정에도 댓구를 하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교도관 생활에 지친 느낌이었습니다. 철원 강연에서도 아이 둘을 가진 엄마가 요즘의 묻지마 범죄 때문에, 특히 딸을 가진 엄마로서 성폭행범들 때문에 불안하다며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스님께서 인권이 무엇인지, 인도주의가 어떻게 자리잡아왔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특히 어린이 성범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결을 해 나가야 하는지, 죄형법정주의에 대해서, 사형제도에 대한 선진국들의 추세에 대해서,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들어서 하나 하나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가 있다는 말씀은 참 감동적이었습니다.nbsp처음 목소리에 화도 묻어있고 감정이 격해서 질문하던 교도관 님은 스님 말씀 중간 중간에도 불쑥 불쑥 튀어나와 스님 의견에 대해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었는데, 마지막에는 감정이 싹 가신 편안한 목소리로, “가르침, 감사합니다.”하며 스님께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nbsp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는데, 스마트폰 부대가 스님 앞에 쫙 서서 사진을 찍어댑니다. 그런 정도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단체 사진을 찍는다고 스님께서 자원봉사자들 사이에 앉았는데도nbsp스마트폰 부대는 떠나지 않고 스님 사진을 찍어댑니다. 가는 지역마다 이런 저런 특색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양주 강연을 마치고, 스님은 다시 재단으로 가셨습니다. 아마 오늘도 스님은 늦은 밤까지 주무시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내일은 스님께서 중국에 가시는 날입니다. 그래서 내일 스님의 하루는 쉬겠습니다. 일요일은 북한동포들과 함께하는 통일체육축전이 있는 날입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청주에서 북콘서트가 있습니다. 일요일 뵙겠습니다. nbsp
10월 4일 법륜스님의 하루(전남 강진, 장흥)
오전 6시경 울산 두북에서 전남 강진으로 출발했습니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싸간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10시경 강진에 도착했습니다. 강연전에 강진군수님과 간단한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강진은 태풍 볼라벤으로 인해 피해가 심각하다고 했습니다. 요즘 농촌으로 가면 태풍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와 정부 지원금, 보험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앞으로 농촌 정책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싶었습니다. 인구 4만의 강진은 도자기가 특산품이라며 군수님께서 스님께 다기 세트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먼 남도의 강진까지 스님이 오신 것에 대해서 감사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350명이 참가했는데, 이 좋은 행사에 군민이 많이 참가하지 못했다며 내년 3월에 다시 강진군에 와서 전체 군민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꼭 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nbsp 강진에서는 “저는 강진 사람입니다.”하면서 첫 질문을 시작해서 많이 웃었는데, 강진에서는 외지인보다 강진 사람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큰 며느리와 종교적인 갈등으로 7년째 안 보고 있어 손자들도 보고싶은데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묻는 아주머니, 열등감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열등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는지 묻는 젊은 남자, 암에 걸린 여동생의 시댁과의 관계의 어려움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묻는 언니, 공부해야 할 시긴데 공부가 하기 싫다는 남자 고등학생, 산소에 손을 대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지 묻는 여자분. 여러 가지의 많은 고민들과 갈등들로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의 답변으로 여태껏 가지고 있던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nbsp 강연을 마치자 마자 바로 장흥으로 이동했습니다. 장흥이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강진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장흥이 있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장흥 체육공원 정자에서 마련해준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여유있게 장흥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장흥은 강연장 입구부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자원봉사자만이 아니라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군수님이 오시니 스님과 약속이 있는 접견실에 우루루 같이 들어 왔습니다. 군수님, 교육장님, 군의회 의장님, 문화원장님 등 장흥지역 유지분들은 다 참석을 하였습니다. 스님 강연이 장흥군의 큰 행사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장흥은 강진보다 1200명 정도 인구가 많아 4만 2천명정도 된다고 하는데 강연장에는 450명의 대중들이 참가해서, 밝고 활기찬 느낌으로 강연 진행되었습니다. nbsp 강연장에 들어가서 스님께서 대중들에게 인사를 하니, 큰 박수가 쏟아집니다. 장흥에는 광주 등에서 원정 질문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러 질문 중, 연세드신 할머니 한 분이 올 해 76세인 할아버지의 우울증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노인 우울증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가까이 아는 할아버지가 우울증으로 얼마전 병원에 입원한 일도 있어서, 저도 스님의 답변을 귀 기울여 듣게 되더라구요. “제가요 나이가 많은데 바깥 양반이 우울증을 앓은지가 20년이 되었어요. 항상 마음이 불안해 지고, 바깥양반이 어디에 가시면 오늘은 무슨 일이 없을까? 불안해집니다. 옆에서 어떻게 해줘야 덜 불안해 할까요?” “남편이 우울증 환자라고 했죠? 불안해하는 것이 병이라고 했잖아요. 그것을 보고 나도 같이 불안해 하는 것이 나아요? 아니면 남편 혼자 불안해 하는 것이 나아요? 둘 다 불안해 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만 불안해 하는 것이 낫겠죠? 자꾸 남편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요구하니까 불안한 것예요. 남편이 다리 하나가 부러졌다 했을 때nbsp옆에서 안스러워 하는 것이 다리 부러진데 도움이 되요? 다리가 부러진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우울증 환자의 상태로 약을 먹으면서 좀 나아지기도 하고 그런 거예요. 자꾸 두려워하면 질문자도 늘 우울증 환자처럼 불안해 하게 됩니다. 올 해 연세가 76세이면 사고가 나더라도 단명할 수준은 넘어섰잖아요? 이제 생긴대로 살 게 놔 두세요. 이제 자기 인생 사세요. 길에 넘어지면 모시고 오면 되고, 돌아가시면 장례 치뤄 주면 됩니다. 이제부터는 남편이 우울하든 병이 나든 걱정하지 마세요. 살만큼 살았다 생각하세요. 그리고 내가 건강해야 혹시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간호할 수 있잖아요. 부처님 감사합니다. 우리 남편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이래라, 저래라 요구하면 안 됩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nbspnbsp 질문하신 할머니가 고개를 연신 끄덕끄덕 하십니다. 할머니의 불안함이 기도하면서 없어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nbsp 장흥에서 강연을 마친 후, 광주로 달려 갔습니다. 광주에서 몇 몇 분들과 잠시 얼굴을 보고는 바로 약속이 있는 서울로 이동했습니다. 바쁘게 오느라 휴게소 들를 시간도 없이 총알택시처럼 서울로 이동했습니다. 내일 오전은 강원도 철원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오후에는 양주에서 저녁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nbsp
10월 1일 법륜스님이 하루(제주 강정마을 한가위 큰잔치)
추석 잘 보내셨나요? 올 해는 달도 휘영청 밝게 떠서,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었습니다. 오늘은 한가위 강정마을 큰잔치가 있었습니다. 행사 준비를 위해서 평화재단 실무자들은 지난 금요일 배편으로 제주도에 도착해서, 한 팀은 토요일날 오후, 강정마을 집집마다 이번 행사 선물인 장우산을 돌렸습니다. 한 분 한 분께 인사를 드리고, 행사 참여도 요청했습니다. 직접 한 집 한 집 돌아보면서, 소수이기는 하지만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분들을 만나고, 또 반대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감정의 골이 상당히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추석날인 어제는 오전에는 4.3 평화공원에 다녀왔습니다. 가슴아픈 4.3 제주 민주항쟁을 보면서 실무자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3만여명의 죽은 자들은 말이 없지만, 이 나라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들이 남긴 역사의 과제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오후에는 강정마을 큰잔치 사전 준비를 했습니다. 행사장에 만국기를 달고, 음향기기를 들여놓고, 무대설치를 도왔습니다. 식사팀들은 강정마을 부녀회 회원들과 함께 내일 먹을 국수 고명을 준비하고, 그릇을 미리 챙겼습니다. 그리고,저녁 식사 후에는 스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스님은 이틀동안 내내 금강경 원고를 보셨습니다. 원고 수정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새벽 기도를 마치고, 일찍 밥을 먹은 후 강정마을로 향했습니다.두 팀으로 나눠서, 강정의례회관에서 음식 준비를 하는 팀과 행사장 팀으로 나눠서 준비를 했습니다. 이번 행사 음식은 강정마을 부녀회에서 수고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점심으로는 국수와 돼지고기, 김치와 양파절임, 떡과 포도, 사과와 막걸리가 나가고, 행사 마칠 때쯤에는 돼지고기와 도토리묵, 바나나, 귤과 함께 막걸리를 준비했습니다. 부녀회에서도 함께 음식 배식할 준비를 해 주셨습니다. 10시 40분경부터 마을 어르신들이 오시기 시작했습니다. 스님도 일찍 오셔서 일하는 분들에게 수고한다며 인사를 하시고, 일찍 오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문정현 신부님과도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nbsp 제주 정토회에선 20여명이나 와서 하루종일 일을 실컷 했습니다. 스님이 같은 공간에 있어서 좋아서 그런지 밝은 모습으로 설거지, 배식, 음식 준비, 주변 정리까지 해 주셨습니다. 참 든든했습니다. 스님께서 감사의 뜻을 전하며 제주정토회 회원분들과 사진 한 컷 찍었습니다. nbsp 오늘 행사는 3부까지 진행이 되었습니다. 1부는 ‘나눔과 공감의 장’으로 강동균 마을 회장님 인사말, 인명진 목사님, 김홍신 작가님의 격려사,nbsp법륜스님의 ‘위로와 화합의 말씀’, 강정마을 주민 이야기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2부는 ‘화합의 문화마당Ⅰ’으로 제주도말로 노래하는 뚜럼브라더스의 공연, 김제동 토크콘서트, 제주민요패 소리왓 마당극, 김미린씨의 노래로 이어졌고, 3부는 ‘화합의 문화마당Ⅱ’로 마을 주민장기자랑으로 진행되었습니다. nbsp 행사를 마칠 때까지 햇살 뜨거운 축구장에 앉아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주민들과 함께 하던 스님의 모습도 주민들에게 인상깊게 다가간 것 같습니다. 인명진 목사님, 김홍신 작가님, 정동영 전의원님, 이강래 전의원님이 어려운 걸음을 해 주셨습니다. nbsp 김제동씨는 토크콘서트를 통해 힘들었던 강정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즐거움을 선물했습니다. 사람들이 참 좋아했습니다. 김제동씨도 재능기부를 해 주셨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nbsp 오늘 하늘은 참으로 맑고 아름다웠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강정마을에 조용히 울려퍼진 스님의 말씀은 여태껏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했고, 강한 여운을 남긴 것 같습니다. “야당이고 시민단체고 다 해군기지 반대만 이야기했지, 오늘 스님처럼 말씀하시는 분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오늘 스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희망이 생기는 것 같고, 방향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꼭 스님이 중재를 해 주십시오. ” “그동안 주민들이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찬성과 반대를 떠나, 오늘 하루 맘놓고 실컷 놀아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합니다.” “마을행사에 주민이 이 정도로 모이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행사에 한 번도 참가하지 않던 마을 사람들도 오늘 여러 명 왔다갔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경쾌한 쾡과리 소리 울려 퍼지고, 술 한 잔 거나해진 어르신들의 어깨가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이번 잔치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화합을 위한 하나의 시작점이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푸른 강정마을의 바람 사이로 차분하게 그러나 무게있게 들렸던 스님의 말씀을 옮겨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생각을 달리할 수가 있습니다. 의견을 달리해서 결과가 다르기도 하고 생각과 견해를 달리 해서 야당이나 여당, 진보나 보수가 되기도 합니다 마땅히 다른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정부의 해군기지 정책에 대해서도 마을주민들 사이에는 견해를 달리하고 있고, 또 달리하다보니까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이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우리 강정마을이 해군기지로 인해서 4백년 이상 살아온 마을의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또 어쩌면 대대로 살아온 마을의 일부분이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더 걱정하는 것은 이러한 문제는 우리가 언젠가는 회복할 수 있는 문제지만, 이 문제를 둘러싼 사람들의 갈등, 그로 인해서 생겨나는 우리들의 상처는 치유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데서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되는 것보다 함께 살아가는 이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더 안타까워해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이런 마을 화합의 잔치를 마련한 것은 우선 파괴되어가는 자연환경을 우리가 어떻게 막아내고nbsp복원할 것인가에 앞서서 사람들 사이에 생채기 나고 있는 이 상처를 어떻게 아물게 할 것인가, 파괴되고 있는 마을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가 먼저 인 것 같아서입니다.”nbsp “현실은 함께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하지 않는다면 해결되기 어렵습니다.nbsp남북간엔 6.25 전쟁까지 겪고 철천지 원수가 되어서 지난 60여년을 지내오고 있습니다. 남북한이 화해와 협력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는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정말 함께 하기 어렵습니다. 무고하게 죽은 사람들의 온갖 상처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를 좀 더 낫게 만들어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정말 함께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미래를 보면 함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서 우리 자손들에게 물려줄 평화로운 마을, 전통이 잘 유지되는 그런 마을을 앞으로 만들어가려면 오늘 우리에게 닥친 이 어려움을 아무리 어렵더라도 극복을 해 나가야합니다. 그런데서 오늘 이 잔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하는 시작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이하 정부 관계자들, 이 문제를 추진하는 행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국방을 지켜야 될 의무를 가지고 있는 우리 해군관계자 여러분들께서 이 주민들의 아픔과 간절함을 다시 한 번 재고를 해주셔서 정말 주민들 속에 있는 이 분함과 억울함과 이 아픔을 해소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을, 그런 희망을 주는 정부정책을 재고해 주십사 이 자리에서 간곡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들이 정부의 잘못되거나 부족한nbsp정책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대신에 여러분들도 찬성하는 분들의 소수의 아픔을 좀 이해하시고, 미워하기보다는 그분들까지도 껴안아주는 그런 아량을 베풀어주시기를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이 먼저 화합한다면 틀림없이 이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여러분들의 그 원이 반드시 성취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들 또한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겠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해군기지를 강행하는 정부를 보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소수자로 억울한 느낌이었는데, 또한 마을로 돌아와서보면 찬성하는 사람들이 어느새 소수자가 되어서 또 하나의 아픔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어떤 관점에서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하나 하나 짚어주시는 스님의 말씀을 강정마을 사람들도 귀담아 듣고 있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제주시로 이동했습니다. ‘제주희망만들기 콘서트’에서 스님 초청강연이 저녁 7시 30분부터 예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강연장에는 350여명이 빽빽하게 앉아 강의를 들었습니다. 새로운 100년에 대한 말씀이 주 내용이었습니다. 왜 지금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통일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인지, 통일을 준비하는 시민들은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 2012년 대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스님의 강연은 통일 강연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될 것 같습니다. 스님 강연을 들으면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왜 통일이 희망인지, 왜 통일이 새로운 백년을 위한 초석인지 이해하게 되고, 가슴 설레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일 제주도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즐겁기도 했고, 가슴아프기도 했고 또한 감사하기도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잘 마무리하고 돌아갑니다. 내일은 남원과 부안에서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이 진행됩니다. 스님은 아침 비행기로 광주로 바로 이동하셔서 강연을 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9월 27일 법륜스님의 하루(강원도 정선, 경기도 안성)
강원도 정선. 정선아리랑을 어떻게 부르는지도 모르는데, 정선아리랑이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강원도로 간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았는데,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차에 타자마자 자기 시작해서, 강연장에 도착해서야 잠이 깼습니다. 추석전이라 정선장이 서는 날이었습니다.nbsp추석전이라 강연에 많은 주민들의 참가가 어려울 것 같아 걱정했는데, 지역주민들이 많이 참가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군수님 인사말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군수님도 끝까지 강연에 참가를 하셨고, 지역 주민들도 공지사항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책선물 공지가 나갈 때는 큰 박수를 치면서 강연에 대해서 만족해 하였습니다. 정선 강연은 강원도 전 지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함께 강연을 준비했는데, 그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분당, 제천에서도 왔지만, 태백, 화천, 춘천, 원주, 강릉에서 두 세명씩 와서 함께 행사를 지원했는데, 강원도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정선사람들만 모여서 사진도 한 컷 찍었습니다. nbsp 질문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입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대학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대학을 다니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묻는 젊은이의 질문에, 기존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는 삶과 그 길을 벗어나서 살아가는 두 가지 삶에 대해서 스님께서 살아오셨던 삶의 경험들을 말씀해 주시면서 젊은이가 스스로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대학생인데 시험에 떨어져 초라해진 자신에게 충고 한 말씀해 달라는 대학생에겐, 실력이 안 되어서 떨어진 것은 굉장히 잘된 일이다, 감사한 일이다, 연습을 해서 제 실력으로 합격해야 한다, 그런데 시험에 떨어져 지쳐서 시골에 내려왔다면 공부할 수준이 안 되니까 그만 두는 게 낫겠다, 시험에 떨어지면 실력을 더 쌓아야겠구나 하면서 그 다음날부터 바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이 합격을 할 수 있다, 하면서 시험에 떨어지면 안 좋다는 기존의 생각을 바로 뒤집어서 말씀을 해 주시니 학생이 “바로 공부 시작하겠습니다.” 하면서 우렁차게 대답을 합니다. nbsp 소설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분은, 대한민국의 희망은 무엇인지? 통일과 희망에 대해서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스님께서 성공이란 무엇인가? 시대정신이 왜 중요한가? 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군수님이 정선 특산품의 하나라며 수리취떡을 5상자 선물 주셨습니다. 수리취의 향과 달콤한 팥이 앙꼬로 들어간 쫀덕한 찰떡이 참 맛있었습니다. 차가 출발하려고 하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달려와 어제 가리왕산에 가서 땄는데 스님 드릴려고 가져왔다며 버섯을 선물로 주십니다. 저는 처음 본 버섯인데 노루궁둥이버섯이라고 했습니다. 털이 보슬보슬난 것처럼 예쁜 버섯이었습니다. nbsp 감사함의 인사를 드리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오대천을 만났습니다. 아침에는 보지 못했던 경치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곤두레밥을 싸주셔서, 오대천 옆에 차를 세우고 맛있게 점심 식사까지 하고 정선을 떠나왔습니다. 서울로 와서 스님은 재단에서 사람을 만나고, 저희는 2시간 가량 휴식을 했습니다. 오늘 저녁 강연은 안성에서 있었습니다. 안성 희망지기가 열심히 홍보활동을 하면서, 매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서, 안성 사람들과의 만남이 살짝 기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스님께서는 ‘법륜스님의 영상 희망편지’ 촬영을 간단하게 했습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희망편지를 받아보는 분들에게 추석인사 말씀을 전했습니다. 강연장에는 벌써 좌석은 모두 다 차고, 복도와 무대에까지 사람들이 앉았습니다. 700명이nbsp넘는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홍보도 열심히 했지만, 안성에는 스님이 처음 오셔서, 사람들이 많이 기다렸다고 합니다. 분위기도 정말 좋았습니다. 스님도 다른 날보다 더 열정적으로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nbsp 첫 질문으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에 대해 잘 모르겠다며 스님께 설명을 요청하는 남자분이 있었는데, 첫 질문부터 이런 질문이면 좀 딱딱할텐데하면서도nbsp 스님께서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셨는데, 색과 공에 대해서, 계율에 대해서, 불교에 대해서 설명하신 것이 좋았습니다. 스님 일정이 빡빡한데 그런 중에서도 힘을 얻도록 하는 음식이 과연 뭔지 궁금하다는 젊은 청년, 아이가 한 명 있는데 둘째 애를 가져야 하는지, 안 가져야 하는지 스님께 여쭙는다는 젊은 주부, 임신 4개월짼데 애기 낳은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게 나을지,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닐지 고민이 된다는 여자분, 28살인데 꿈이 없는 것이 고민이라던 젊은 여자분. 스님의 답변이 시원시원했습니다. 문제가 해결된 질문자들의 답변과 각오들도 가볍고 밝았습니다. 사람들이 스님 말씀을 들으며 즐거워하는 것이 그대로 느껴지는 분위기였습니다. 같이 온 사람끼리 속닥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웃고, 스님 말씀에 바로바로 추임새도 넣으며 재미있어 합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는데 젊은 청년 한 명이 스님께 편지를 내밉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천안에 사는 29살 청년 000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몇 달전 스님의 책을 읽고 나서 정말 충격받았습니다. 모두 내 탓이었구나 한 생각 바꾸니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스님. 정말 고맙습니다. 스님으로 인하여 불법을 접했고, 기부도 시작했고, 더욱 행복해졌습니다. 스님이 쓰신 책들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새로운 100년도 읽었습니다.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꼭 통일의병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평생 존경하는 마음으로 뒤에서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구 비타민C를 동봉합니다.” 스님과 인연이 되고 더욱 행복해졌다는 말에 울림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이처럼 스님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얻고, 스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일은 광주와 전주에 초청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
9월 26일 법륜스님의 하루(포천, 수원)
오늘은 경기도 포천과 수원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포천하면 다른 것보다 이동막걸리가 먼저 떠오르고, 수원은 수원성이 떠오릅니다. 스님은 이른 아침부터 약속이 있었습니다. 미국무부 북한 인권 담당 로버트 킹 대사와 북한 식량난과 인권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후 포천으로 향했습니다. 요즘 전국 시군구로 다니면서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정말 우리나라 도로가 잘 되어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어떤 곳은 나홀로 도로도 있어, 도로에 차량 한 대없이 우리 차만 달리고 있는 곳도nbsp가끔씩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포천으로 가는 길은 차도 막히고, 도로 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nbsp시간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이동을 했는데도 거의 정시에 도착했습니다. 포천 반월아트홀은 넓고 시설 좋은 강연장이었습니다. 요즘은 대도시보다 지역이 더 시설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460여명이 참가했는데도, 워낙 큰 공간이어서 사람이 적어 보였습니다. nbsp질문이 시작되고 스님과 문답이 오고 갑니다. 질문 하나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끝나면 사람들이 와 박수를 칩니다. 강연 집중도가 높았고, 강연을 듣고 나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환했습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도 즐거웠다고 합니다. 포천 체육대회, 장날을 찾아가며 홍보를 했는데, 강연장을 듣고 나가는 사람들이 만면에 웃음을 짓고 좋아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더 좋아졌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책 사인을 하고, 자원봉사자들과 사진을 찍고, 자원봉사자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하시고는 바로 다음 일정 때문에 급히 자리를 떴습니다. 그 다음 일정으로 영국 상원의원 엘튼경을 만나 북한 식량난 개선과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엘턴경은 영국 의회 북한 그룹 대표로, 2003년 북한도 방문하고, 국제사회가 북한 식량지원을 시급히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런 후, 다시 저녁 강연이 있는 수원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고가는 차 안에서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십니다.nbsp 오늘도 강연장과 강연장으로 이어지는 차 안에서 스님은 주무시고, 차는 다음 강연장으로 향해 달려 갔습니다. 차 안에서 자고, 차 안에서 먹습니다. 하루 강연이 3개이거나, 중간 약속이 잡히면 정말 따로 시간이 없습니다. 강연장에 있는 시간 외에는 거의 대부분을 차 안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수원 문화예술회관을 멀리서 바라보니, 건물에 법륜스님의 희망콘서트 플랭카드가 붙어 있습니다. 관계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신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nbsp 강연장에는 900여명의 사람들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다가, 스님의 등장에 큰 박수로 맞이합니다. 매일 매일 강연을 듣지만, 사람마다 각각 다른 인생사의 어려움들이 참 많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답변을 듣고 있노라면, 사실은 별 문제가 아니었구나 싶을 때도 있고, 스님 말씀대로만 하면 정말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매번 느끼는 감탄입니다. 오늘은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보이는 질문까지도 하나 하나 다 듣고, 말하는 질문자보다 더 상황을 잘 이해하시고 질문자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설명을 해 주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신적인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의 질문이 많았는데도 900여명의 참가자들이 강연이 끝나고 공지사항을 할 때까지 중간에 일어나는 사람없이 집중해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시설에 맡겨둔 5살 딸을 이제 찾아와도 되겠냐고 묻는 정신쇠약 증세가 있는 미혼모, 애인과 사소한 일로 싸우게 되면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낀다는 젊은 여성, 부동산이 안 팔려서 어떻게 하면 부동산이 팔릴 수 있는지 물어서 강연 참가자들에게 웃음을 선물한 60대 후반 할머니,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다는 아이 셋 키우는 주부, 새벽 기도 73일째 착한 큰 아들을 잃고, 이어서 바로 둘째 아들이 다리를 다치고, 교통사고 나고, 아파트 앞 차량 파손까지 생겨서 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아주머니 이야기 등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질문을 하신 분 중, 아들이 41살인데 장가를 못 가서 걱정이라 급하게 택시까지 타고 질문하러 왔다는 어머니에게 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나눠 봅니다. “40이 넘은 아들을 엄마가 저렇게까지 걱정하면 장가 못 갑니다. 아들 여자친구가 와서 보니 어떤 여자가 자기 남자친구 뒤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어요. 그러면 내키지가 않아요. 정을 딱 끊어야 합니다. 그것이 나도 좋고, 아들에게 좋은 거예요. 나이 들어서는 정을 끊어주는 것이 진짜 자식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 감정 때문에 울고 불고 합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종교가 뭐예요?” “기독교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에게 아들은 딱 맡기고, 엄마가 아들을 믿어줘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들은 하느님 보살핌 속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하고 기도하세요. 그런 일은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실 거니까, ‘주님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하면서, 행복하게 사십시오. 세상 사람이 아무도 안 믿어도 엄마가 믿어줘야 되는데, 엄마가 못 믿어주면 세상 사람 누가 자식을 믿어주겠어요? 행복으로 가는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가 조금 생각을 잘못해서 화를 자초합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시면 언제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남편이 집 나가도 웃으며 살 수 있고, 자식이 죽어도 웃으며 살 수 있습니다. 거기에 내가 목 매달고 살면 자식에게도 안좋습니다. 희망을 다른 데서 찾지 마세요. 내가 내 인생의 희망입니다.” “감사합니다.” 처음 질문할 때는 무거운 돌덩이를 이고 있는 사람처럼 질문을 하더니, 스님과의 문답이 오가고는 정말 가벼워진 목소리로,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도 같이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강연을 마치자 밝고 환한 표정의 사람들이 우루루 강연장 밖으로 밀려 나옵니다. 금새 문화의 전당 로비가 시끌벅적해집니다. 스님책을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스님께서 책 사인회하는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스님사진 찍으면서 사람들이 즐거워합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저도 덩달아 즐거워집니다. nbsp 오늘은 짙은 꽃내음 풍기는 꽃다발을 스님께 선물 주신 분도 있었고, 아침에 직접 만든 호박떡을 선물해 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즐거웠습니다. 내일은 오전에는 강원도 정선에 갔다가, 오후에는 안성으로 갑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