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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14 대구 청년강연
nbsp오늘 오전 4시에 기상하여 4시30분 기도 후 5시 35분에 제주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어제는 아주 화창한 날씨였으나 오늘은 구름이 잔뜩 끼여 있었습니다. 어제는 차도 많고 길이 막혀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오늘은 새벽이라 비교적 빨리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제주정토회 총무이신 강제연 보살님, 고진수 거사님, 그리고 차를 섭외하여 주신 정연심보살님께서 공항에 스님 배웅을 나와 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총무님을 비롯한 배웅나오신 분들께 어제 강연장 분위기도 좋았고 수고많았다고 격려하셨습니다.nbspnbsp nbspnbsp nbsp 그리고 차량 섭외 해주신 정연심 보살님께도 감사의 인사로 사인한 ‘지금여기 깨어있기’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수속을 마치고 출발하는 게이트로 이동하여 총무보살님께서 준비해주신 찐빵과 과일 등으로 간단히 아침 요기 하였습니다. 오전 7시 15분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다음 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였습니다.nbspnbspnbsp nbsp 출근길이 막혀 예상보다 늦게 평화재단에 도착 한 후 바로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기획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나서 스님께서는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nbsp nbsp 점심 식사 후 노옥재 총장님의 어머니와 언니가 재단을 방문해서 잠시 스님께 인사드리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정토회 행정처 처장님과 국장님들과 함께 오후 1230분부터 1시간 가량 회의를 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안건으로 6월 13일에 있을 전국 통일의병대회 장소와 프로그램 등에 대해 의논하였습니다. 전국 1,100여명의 통일의병이 한꺼번에 모여서 의미를 다져갈 수 있는 곳으로 여러 장소가 추천되었지만, 역사적 의미와 미래지향적 의의를 가져갈 수 있는 곳을 위해서 어느 곳이 적합한지 함께 의논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장소를 한 곳 선택하더라도 꼼꼼하게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지향적 측면을 살펴서 통합적으로 살펴 보시는 것을 보면서 일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 볼 것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몇가지 기타안건에 대해 논의를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nbsp nbspnbsp 대중부 회의가 끝나자 마자 바로 연달아 이어서 문화사업부 임혜진 법우님, 이상옥 보살님과 함께 문화출판사업부 및 정토회 전체 미디어사업부에 대해서 스님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출판, 홍보, SNS, 방송, 인터넷, 기술지원 등에 대해 문화출판부에서 전반적인 검토를 해볼 것을 조언해주셨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바로 스님께서는 3시에 오늘 강연이 있는 대구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늘 대구 강연은 7시 30분에 대구수성대학교에서 청년정토회 주최로 청년대학생들을 위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조금 일찍 강연장에 도착하셔서 대기실에서 밀린 원고 교정작업을 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강연장에 도착하니 젊은 청년들이 희망세상만들기 티셔츠를 입고, 교정 곳곳 및 주차장에 서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연장 앞에 안내부스에서도 밝은 표정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청중들을 위해 안내하고 있어서 참 흐뭇하였습니다. nbsp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연장에 400여명의 청중과 46명의 봉사자를 포함하여 총 450여명의 청중이 강연장 1, 2층을 가득 메웠습니다. 청년들의 분위기가 밝고 좋았습니다. 스님의 소개 영상과 더불어서 청년들의 큰 박수와 환호속에 스님께서 무대위로 올라오셨습니다. nbsp nbsp 스nbsp님께서는 청년 강연인 만큼 직장인들을 고려하여 늦게 시작하였다고 말문을 여셨습니다. 청중들에게 저녁 식사 여부를 물으신 스님께서는 대중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nbspnbspnbsp nbsp “스님의 즉문즉설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 손들어 보세요. 거의 들어보신 분들이 모이셨네요. 손 안 들으신 분은 왜 따라 왔어요? 요즘 남의 말만 듣고 따라 다니면 안돼요. 위험한 세상이에요.” nbsp 스님께선 대중의 긴장감을 풀어주시고 곧바로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8명의 질문 예약자와 3명의 추가 질문자를 합하여 총 11명의 청춘 남녀가 질문하였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운명같은 사랑을 꿈꾸며 6년째 상대를 기다리고 있다는 20대 여성,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30대 남성, 남자친구가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 걱정이라는 30대 여성, 올해 입학한 대학 전공이 적성에 맞는지 고민이라는 20대 여성, 곧 대학을 졸업하는데 아직 꿈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20대 남성,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20대 남성, 어떤 일이든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30대 여성, 감정기복이 심하여 속마음을 드러내기 두렵다는 20대 남성, 어떻게 하면 좋은 상대방을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30대 여성, 마지막으로 세월호 사건 후 직장을 다닐 수 없을 만큼 우울하다는 여성, 스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라며 큰절을 올린 남성까지 총 11분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nbsp nbsp nbsp 그 중 저희에게 가장 큰 공감과 웃음을 주었던 첫 번째 질문자의 내용입니다.nbsp nbsp “덜덜 떨지 마시고 친구에게 애기하듯 편하게 해보세요” nbsp “저는 18살 때부터 지금까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고 있습니다.” nbspnbsp “지금 몇 살이에요?” nbspnbsp “24살이에요. 6년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타나요.” nbsp “누구를 기다려요?” nbspnbspnbspnbsp “정말 소중한 사람이요. 운명같은 사랑을, 진짜 진짜 사랑하는 사람, 도장처럼 가슴에 콱 박히는 사람을요.” “그러니까 백마탄 왕자를 기다린다는 말이에요?” nbspnbsp “조건은 아닌데요, 너무 너무 사랑해서 같이 아침에 눈뜨고 잠들 때까지 감동적인 사람이요.” nbsp “그런 사람 없어요. 꿈 깨세요. 어린아이들 동화처럼 환상을 갖고 있네요.” nbspnbsp “엄마가 그런 감격적인 사랑은 없다고 했는데 정말 없는 걸까요?”nbsp nbsp nbsp nbsp “그런 사람 없어요. 그런데 만에 하나 있다면 뭘까요? 쥐약이예요. 스님 나이가 63살인데 아주 젊고 예쁘고 교양 있고 누가 봐도 공주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그게 뭘까요? 운명적 사랑일까요? 꽃뱀일까요? 그건 꽃뱀이에요. 그러니까 자기에게 그런 사람이 안 나타나는게 불행이 아니라 다행이예요. 혹시라도 나타나면 오히려 그게 큰 불행의 원인이 되요. 설령 나타나더라도 쥐약이예요. 제비에요.” nbsp “가슴이 아파요. 있을거에요. 영화에서 보면 있잖아요.” nbsp “그건 영화, 소설, 동화에 있는 얘기에요. 스님은 괴로워 죽겠다고 하는 사람한테, 희망을 주기 위해서‘힘내세요, 괜찮아요, 희망을 갖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꿈 깨라’라고 할 때는 너무 터무니없어서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이런 애기해서 미안해요. 너무 안타까워서 그래요.” nbsp “그럼 아무나 만나요?”nbsp nbsp nbsp “아니지요. 왜 아무나 만나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야지요. 그런데 질문자가 원하대로nbspnbsp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이게 마음에 들면 다른 게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어요.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적당히 만나서, 사귀면서 맞추어 가면 되요. 그런데 질문자가 생각하는 꿈같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원하면 좀 많이 기다려야 해요. 한 80년쯤. 그래도 쉽지 않아요. 상상으로 결혼하면 100 실패해요. nbsp 실제로 인생살이가 그렇지 않아요. 조선시대는 남자 얼굴도 모르고 결혼했잖아요. 시집가면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집갈 때 울고불고 그랬어요. 그래서 딸에게 이렇게 교육시켰어요. 3년은 눈감고 살아라. 봐도 본 게 아니다. 3년은 귀 막고 살아라. 어떤 말을 들어도 들은 척 하지 말아라. 3년은 입 막고 살아라. 절대로 하고 싶은 말 하지 말고 살아라. 그렇게 9년을 죽어 살면 행복이 온다고 교육했어요.nbspnbsp 요즘은 결혼 준비하다가 파혼하기도 하고, 신혼여행 갔다가 한달만에 이혼하기도 해요. 10쌍중 1쌍은 3년안에 헤어져요. 이렇게 되는 건 결혼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어서 그래요. 질문자는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날 것이라는 것에 대해 기대치가 없어야 해요. 매일 아침 절을 하면서‘이 세상에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어살겠습니다’이렇게 기도하세요.” nbsp 스님께서 명쾌한 답변으로 질문자의 오랜 고민을 간단히 해결해주시는 것 같아 함께 듣고 있던 청중들도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nbsp nbsp 다음은 두 번째 질문자와 스님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nbsp nbsp “저는 올해 서른인 남성입니다. 직장이 적성에 맞지 않고 비젼이 불투명하여 퇴사 후 세무사 자격증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3년 정도 시험 준비만 해야 할지, 세무 관련 회사에 취업하여 공부와 병행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nbspnbsplt “고등고시 시험을 합격할 수 있으면 하는게 좋아요? 안하는게 좋아요?” nbsp “하는게 좋습니다.” nbsp “다들 좋은지 몰라서 안하고 있을까요? 합격하는게 쉽지 않아서 시험준비를 안하겠죠. 처음 대학교 갓 졸업하자 마자 시험준비 하면 도전 해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나이가 30살이에요. 갑자기 공부를 시작해서 3년 동안 하게 되면 나이가 들수록 학습 효과가 떨어져요. 대학 졸업 직후 공부하는 것보다 합격확률이 적어요. 그러다 보니 실패했을 때의 불안이 높아요. 나이가 30살이나 50살이 되어도 공부 잘 하는 사람이나, 시험 잘 보는 사람은 해볼만해요. 현재 질문자의 조건과 처지에서는 일반 회사 세무 분야에 취업해서 직장생활하며, 장기간 공부를 병행하고 시험에 80정도 합격할 수준이 되면 휴직하고 시험 준비 하세요. 그럼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도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잖아요.” nbsp 간단한 답변속에서도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nbsp nbsp 스nbsp님께서는 세월호 때문에 우울하다는 마지막 질문자의 답변후에 다음과 같이 마무리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 “세월호 사건은 참 가슴아픈 얘기입니다. 저희들도 진상규명을 위해서 146만인 서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기살기로 싸우자고 하지도 않습니다. 저도 사실 정부가 진상규명을 못할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대통령이 배를 침몰하라고 한 것이 아니니 사고 후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하고, 진상은 사실적으로 규명을 해버리면 되는데 이것이 제대로 안되니 국민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진상규명을 소극적으로 하니 국민들은 딴이유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들고 그래서 유언비어가 나오는 것입니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는 정말 모두가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때는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이 가슴 아파하고 빨리 해결할려고 했는데 지금은 이 문제가 더 국민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고 후 처음에는 우리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즉 성장 중심, 물질중심의 사고와 생명이나 안전에는 별로 신경을 안썼던 우리의 모습을 진솔하게 반성했습니다. 그래서 사고후에는 우리사회 전체가 생명을 중요시하고 안전을 중요시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오히려 싸움을 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못 살리고 있습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대한민국이 바뀌었다고 해야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는데, 한국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는 개선 안되고 갈등은 더 나빠지고 있으니, 이 분들의 죽음이 개죽음이 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되느냐, 교훈이 되느냐 하는 것은 모두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그러니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좀더 성숙해져야 합니다. nbsp nbspnbsp 무엇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의 정체성을 기독교 국가도 아니고, 진보적인 국가라고도 하기 어렵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의 공통적인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입니다. 헌법에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주인의식이 투철해야 합니다. 대통령, 국회의원을 욕하는 것만으로는 무책임하며, 우리가 주인으로서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거에서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다음에는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nbsp nbspnbsp 이렇게 반성을 해야 하는데 우리가 주인의식, 시민의식이 없이 제국의 신민으로서 살고 있으니 늘 이런 선택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민이 아니라 시민입니다. 욕한다고 해결되지 않으니 자꾸 욕하지 말고 다음에는 좀더 유의해서 선택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를 견지하여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면 시간이 갈수록 통합이 될 텐데,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부족한 것은 우리가 해결해야 합니다. nbspnbsp 산업화로 인해 성장은 되었지만 부의 분배가 잘 안되었기 때문에 복지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민주화도 많은 진척이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안되고 있습니다. 지방분권도 우리가 해야하고 통일도 우리가 해야 합니다. 선배들이 이 만큼 한 것은 고맙지만, 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고 복지사회, 지방자치시대, 통일을 이루는 것은 우리세대가 할일입니다. 이렇게 선배들의 긍적적인 면을 인정하고 다음에 우리가 해야할 일을 잡아간다면 훨씬 더 통합을 일궈내고 역량을 집결시킬수 있습니다. nbsp nbspnbsp 과거의 공덕은 서로 인정해주되 우리는 과거를 먹고 살지 말고, 우리가 어떻게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위해서 개선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내가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내가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되어 행복사회 만들겠습니다.’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nbspnbsp누가 먼저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매사에 감사해하면서 나의 부족한 것은 스스로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하시면서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 오늘 강연장에서는 한 젊은이가 ‘저는 궁금한것은 없고 대신에 나름대로 사는 것이 참 많이 괴로웠는데 스님께서 TV에 나온 후 인터넷 동영상으로 즉문즉설을 다 보았습니다. 그래서 삶이 너무 즐겁고 새로 태어난 것 같아 스님께 감사드리고 싶어서 큰 절을 드릴려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라고 하면서 무대위로 올라와 스님께 감사의 큰절을 하였습니다. 청중들이 모두 함께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어제에 이어 매 강연장에서 스님의 즉문즉설으로 본인이 변화되어 행복해졌다는 것을 보게 되니 우리 사회가 얼마나 힐링이 필요한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이 사회의 희망이 되어 행복사회 만들겠습니다” 라고 하신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 강연이 끝나자마자 스님께서는 바로 로비로 이동하여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청년들께 사인을 해주시고 함께 사진촬영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봉사자들과 단체사진촬영 한 다음에 수고많았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곧이어 대기실로 자리를 옮겨 강연장에 참석하여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한 김부겸 전 의원님과 잠깐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nbsp nbsp 10시 45분경에는 오늘 행사를 총괄한 이효상 법우님과 대구청년정토회 활동가들에게 수고많았다고 격려 하신 후 6월 청년캠프때 보자고 하시면서 서울로 출발였습니다.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하니 새벽 2시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는 수원에서 오후에는 인천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nbsp nbsp
2015.5.11. 애광원 나들이, 창원희망강연
nbsp nbsp nbsp 오늘은 거제 애광원 장애우들과 봄나들이가 있는 날입니다. 이번 봄나들이는 애광원 장애우들 중 거동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경증 장애우와 함께 진주, 사천 일원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제 문경수련원에서 특강, SBS 촬영, 수행대중법회를 하신 후 스님께서는 문경수련원에서 주무시고 오늘 새벽 대중과 함께 예불, 기도 후 5시 30분에 바로 진주로 향했습니다. 가다가 칠곡 휴게소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 후 오전 9시반경에 진주성에 도착하니 마산, 거제, 내서, 함안 정토법당 봉사자들이 먼저 와서 애광원 원생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진주성 북문에 애광원 원생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자 봉사자들이 줄을 지어 따뜻이 환영하였습니다. 법륜스님께서 김임순 애광원 원장님을 반갑게 맞이해주셨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원생들 한 명씩에게 오늘 하루 동안 단짝이 되어 함께 할 봉사자 한 명씩을 맺어주고 본 일정에 들어갔습니다. nbsp nbsp 먼저 임진왜란 때 진주성대첩을 이끌었던 김시민장군 동상 앞에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1차 진주성전투를 이끌었던 김시민장군은 셀 수조차 없는 화살을 쏘느라 엄지와 식지가 잘라져나갈 정도로 항전하여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차 진주성전투에서 성이 함락되어 7만여명의 군인과 백성이 학살당했던 처절한 역사를 전해들으면서 장애우나 봉사자 모두 숙연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바로 옆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손꼽히는 촉석루와 논개를 모시는 사당인 의기사를 들러 아름다운 남강의 정취를 보며 논개의 충절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논개가 왜장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졌던 의암까지 내려가서 잠시 합장하며 의암에 서린 호국의 얼을 기리기도 하셨습니다. nbsp nbsp 진주성 안에는 국립진주박물관이 있지만 월요일에는 휴관일이라 애광원 원생들과 봉사자들은 진주성의 성곽을 따라 걸으며 진주성을 관람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선 진주성전투에서 전사한 분들을 따로 모시는 사당인 창열사를 참배하고 바로 옆의 호국사에 들렀습니다. 호국사는 원래 내성사란 이름의 절이었으나, 2차 진주성전투에서 성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숙종 때 호국사란 이름으로 재건하였다고 합니다. nbsp 스님께서 호국사에서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나오자 애광원 원생들과 봉사자들은 잔디밭에서 한참 레크리에이션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nbsp nbsp 원래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을 알차게 준비했지만, 일부만 계획대로 진행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상치 못했던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모두가 함께 되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애광원 원생들은 워낙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갈고 닦은 노래와 춤을 자랑하였고 봉사자들 역시 함께 흥에 겨워 즐겼습니다. 몇몇 원생들은 스님과의 재회가 기쁜 나머지 스님께 거리낌없이 애정 표현을 하여 모두 박장대소 하였습니다. 원생들은 멍석만 깔아주면 사회자가 연이어 “줄을 서시오”를 외쳐야할 만큼 잘하고 못하고를 상관하지 않고 마음껏 노래하고 춤췄습니다. nbsp nbsp 정말 신나고 즐거웠던 레크리에이션은 점심시간에 걸려 아쉽게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심은 진주성에서 20분 정도 이동하여 사천의 원산면옥에서 맛있는 갈비탕을 먹었습니다. 오전에 진주성을 둘러보느라 제법 걷고 또 흥겹게 놀았던 탓에 모두 시장기를 느껴 너무나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장애우들과 봉사자들도 대부분 스스럼없이 친해져 다정하게 손잡고 다니고, 식사도 함께 챙겨주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nbsp 점심식사 후 예정대로 사천의 항공우주박물관을 관람하였습니다. 이 박물관은 사천공항 인근에 조성된 항공우주산업단지 가운데 위치하여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수준과 전망을 보여주었습니다. 박물관 야외에는 과거 우리나라 대통령 전용기를 비롯하여 한국전쟁 때의 B29폭격기부터, 수송기, 전투기 등이 넓은 정원에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큰 비행기는 내부에 직접 들어가볼 수 있어 호기심 많은 장애우들이 무척 즐거워하였습니다. nbsp nbsp 실내전시관에 들어오니 사천의 항공우주산업단지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내전시관은 항공산업과 우주산업, 그리고 한국전쟁의 3가지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딱딱한 지식 중심의 해설은 짧게 마무리하고 박물관 정원에서 종이비행기 만들기와 날리기 시합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만든 종이비행기를 가운데 표적까지 날리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법륜스님께서 만든 종이비행기는 제트기처럼 잘 날아 모두가 감탄하였습니다. 애광원 원장님께서도 의욕적으로 날렸지만 그만 발 아래로 곤두박질해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셨습니다. nbsp nbsp 종이비행기 날리기가 마무리될 때쯤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해, 박물관 매점 앞에서 애광원 인솔교사님 주도하에 다시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전에는 노래가 중심이었다면, 오후에는 그야말로 본격적으로 춤 솜씨를 자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애광원 원생들은 마치 이날을 위해 평소 연습이나 한 것처럼 모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음악에 맞춰 율동을 뽐냈고, 짝을 이룬 봉사자들도 손에 이끌려 모두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매점 사장님이 계속 웃으며 지켜보더니 아이스크림을 박스째로 찬조하셨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그동안 박물관에 여러 장애인학교나 단체에서 관람오면 봉사자들이 장애우에게 함부로 대해서 실망스러울때가 많았는데, 오늘 JTS 봉사자들의 헌신성을 보고 무척 감동했다고 합니다. 오전에 진주성에서도 레크리에이션을 지켜보던 중년 신사분이 너무 보기 좋다며 후원방법을 물어봐서 JTS 활동을 설명드리고 홈페이지를 가르줬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아 무척 기분 좋았습니다. nbsp nbsp 흥겨운 여흥을 마무리하고 모두 들뜬 마음으로 다시 저녁식사를 위해 진주 남강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식사 전 애광원 김임순원장님께서 법륜스님께 감사의 표시로 원생들의 정성이 담긴 선물을 증정하였고, 스님께선 애광원 인솔교사분들에게 스님의 책을 선물하였습니다. 김임순원장님은 인사말에서 “애광원의 교사 1명이 원생 6명을 담당하는 구조여서 평소 원생들을 먹이고 씻기는 일만해도 일손이 부족해 이렇게 나들이하는 일은 엄두를 못냅니다. 매년 두 번씩이나 정토회에서 이렇게 순수한 사랑으로 하루종일 밝게 원생들의 손을 잡고 함께해주시니 무어라 감사의 표현을 하기에도 벅찹니다. 원생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경험이자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며 거듭 스님과 봉사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해 듣는 우리들이 송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원생들의 건강 때문에 멀리 나들이하는 것을 어려워했는데 다음부터는 좀더 새롭고 의미있는 곳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여 우리도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며 늘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nbsp nbsp 뒤이어 오늘 행사 사진을 즉석에서 일부 편집해 동영상으로 감상하며 너무나 유쾌, 상쾌, 통쾌했던 시간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녁식사 후 원생들과 봉사자들은 석별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짧은 한나절의 추억에 불과하지만 함께 두손 꼭 잡고 걸었던 길과 나누었던 웃음들이 있기에 아쉬운 마음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몇번 애광원 나들이를 함께 한 사람도 이 시간이면 항상 느끼는 그 짠한 마음,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담아 다음 나들이를 기약하며 애광원 친구들을 빗속에 배웅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선 창원 강연 때문에 바쁜 걸음을 옮기셔야 했고, 봉사자들은 많이 느끼고 배운 시간을 나누며 보람있고 행복했던 하루 일과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강의하실 창원은 강연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태풍 노을의 영향으로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 가운에 몇분은 비바람 때문에 대중들이 많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스님 강연을 들으려는 사람들은 이제 날씨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섯 시 즈음 되니 접수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스님 강의를 기다렸고, 질문자 접수도 금방 마감되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청소년을 위한 문화공간인 늘푸른 전당에서 열렸습니다. 강당은 1,2층 합하여 648석이고 참가자 수는 723명이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선 강연 전에 장유분들이 주축이 되어 봉사하는 반야회와 다담을 가지셨고 반야회에서는 그동안 모은 돈을 스님께 좋은 일에 써 달라고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이번 네팔지진피해지역 지원에 사용하겠다고 하셨습니다. nbsp 무대에 오르신 스님께서는 “비가 오는데도 많이들 오셨네요. 전 비가 와서 많이 안올 줄 알았습니다.”로 인사말씀을 하시면서 반가움을 표하셨습니다. 오늘 낮에 거제도 애광원 식구들과 진주 촉성루와 사천 우주 박물관에 다녀오신 이야기를 잠깐 들려주셨고, 지적 장애인들이 거주하는 애광원에 대한 소개도 잠시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창원에 있는 봉림사지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한국 불교의 역사를 고구려에 처음 불교가 전해진 AD 372년을 기준으로 잡아 1,600년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인도의 한 왕국이었던 아유다국의 왕녀 허황옥과 왕족출신 장유화상이 지금의 마산인 합포에 도착하여 가야에 불교를 처음 접한 AD 48년을 기준으로 잡아서 불교역사는 2,000년이 됩니다. 지금도 인도에는 아요이다라는 지명이 있고, 가야시대의 탑으로 알려진 파사이 탑은 우리 나라에서 나지 않는 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허황옥은 김수로왕과 결혼하여 아들 열 명을 낳았는데, 한 명은 김해 김씨를, 또 두 명은 김해 허씨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곱명은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는데, 칠불암의 유래가 거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봉림은 봉황이 알을 낳는 모양의 숲이라는 뜻인데, 가야시대 최초의 절인 ‘가야정사’가 있었고, 나중에 신라 말에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봉림사가 지어졌습니다. 골짜기가 작아 보이지만 한때는 그곳에서 500여명의 스님들이 수행하였습니다. 부산, 마산, 김해 지역의 불심이 높은 이유도 그런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해시에는 지금도 장유면과 장유폭포가 있는데 장유화상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nbsp 장유지역에 사는 분들이 주축이 되어 스님들을 후원하는 반야회라는 모임이 있는데, 오늘은 그분들이 지진이 난 네팔을 돕는데 써달라고 보시해주셨다는 말씀도 전해주셨습니다. 그분들의 보시에 관중들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질문을 받기에 앞서 즉문즉설은 성경이든 불경이든 경전의 진리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내 이야기를 먼저 한 후,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깨달음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의심이나 자기 괴로움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 주변 사람들의 괴로움이나 책에 적혀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라고 안내해 주셨습니다. 질문은 결혼생활 27년중 20년간 늘 아프기만 한 남편을 둔 분, 수행에 관심이 있으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부산 청년,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살아서 고민인 결혼 9년차 주부, 9년간 한 우물을 파다가 이제 다른 우물을 팔려고 준비하고 있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 20대 청년, 칭찬만 듣고 싶은 아가씨, 스님은 사후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한 청년, 나의 행복을 넘어 친구들의 행복까지 챙기고 싶은 30대 후반, 선택을 잘 하지 못하는 공무원 준비생인 2년차 젊은이 등 모두 여덟 분이 하셨습니다. nbsp 첫 번째 질문자의 내용입니다. “스님 남편은 늘 아프다는 말을 합니다. 결혼 생활 27년인데 20년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1년에 너 댓 번, 한 달에 20일 정도 아프다고 합니다. 안 가본 병원이 없고, 천도제, 구병시식, 굿 등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병원에 가도 뚜렷한 병명이 없고, 자신은 열이 난다고 하는데 검사를 하면 정상으로 나와요. 아플 때마다 병원가면 똑같은 일이 벌어지니까 이제 병원에서도 오지 말라고 해요. 그리고 간호사들이 안와도 되는데 자꾸 온다면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것을 보면 제가 남편에게 화가 나요. 어떤 스님은 남편이 스님이 될 사주인데 스님이 안 되어서 아프다하여 스님이 되라고 해도 혼자서는 안 간다고 하고,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할지요?” nbsp nbsp “남편이 아프기는 하지만, 일을 하면서 밥벌이, 용돈, 병원비를 자신이 번다면 별로 손해나는 일은 아니네요. 결혼을 했으면 남편 덕을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 덕을 못 보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손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이들한테는 아빠가 있는 것이 좋고, 질문자에게도 남편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지요. 그리고 아프다고 하지만 죽지는 않았잖아요? 그리고 20여 년간 그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 증상 때문에 갑자기 죽거나 하지는 않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nbsp 현대의학이 장기를 이식하고, 줄기세포를 이용하는 등 아주 발달된 부분도 있지만 아직 질병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해 치료하지 못하는 것도 많아요. 입 돌아가는 것도 침 맞으면 바로 해결되지만 현대의학으로는 안되잖아요? 남편의 경우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아프니까 아프다고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노력한 것을 보면 현대의학으로는 밝혀지지도 않고, 완치도 안되는 질환 같으니 밝히려고도 또 완치하려고도 애쓰지 않는 것이 좋아요. 죽을 병도 아니고,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자기가 병원비를 벌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남편이 아프다고 말하면 남편이 병원가자고 하기 전에 먼저 질문자가 병원에 데리고 가서 링거 맞고 돌아오도록 하세요. 현대의학으로 밝혀지지 않아도 남편은 통증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예요. 억지로 일부러 20년간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거예요. 남편이‘병원 안가겠다’‘가봤자 소용없잖아?’라고 말하더라도 ‘이번에 가면 병명이 나올 수 있잖아?’하면서 좀더 적극적으로 남편의 아픔을 받아주세요. 남편의 병이 질문자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남편이 아프다는 것을 핑계로 본인이 괴로워하는 거예요. nbsp nbsp 남편이 매일 술 먹어서 괴로운 게 나을까요? 아니면 1년에 대 여섯번씩 머리 아픈게 나을까요? 더 좋아지기를 바라지도 말고, 완치되기를 바라지도 말고 또 남편이 꾀병 부린다고 생각도 하지 마세요. 아픈 와중에도 살아갈 수 있게, 아프다고 하면 먼저 병원에 데려가세요. 이것이 성경을 빌어서 말하면‘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주라’‘겉옷을 달라면 속옷도 주어라’‘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대줘라’정신이 아닐까요? 불교에서 말하면 ‘수처작주’가 되겠지요. 처하는 곳마다 주인으로 사는 것이지요. 성경이든, 불경이든, 과학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여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세요. 남편이 아프다하면 바로 병원가고, 대신 이제는 안수기도나 굿은 하지 않도록 하세요.” nbsp “네, 스님 고맙습니다. 그런 비용을 앞으로는 JTS에 기부하겠습니다”로 질문을 마무리하여 관중석에서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nbsp nbsp 스님은 나머지 질문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정성스럽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사후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고,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자세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은 결국 칭찬받고 싶은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내 원하는 대로 다 될 수 없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도 다 해줄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고 힘이 미치지 못하면 미안하다고 이야기 하고 섭섭한 마음을 가진 상대로부터 욕 먹을 각오를 하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열심히 해보고 그리 해도 안되면 다른 우물을 팔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한 우물만 판다는 것에 매일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나와 인연된 모든 것들을 좋게 생각하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질문인 “북한 동포돕기를 위한 단식을 하시다가 70일하고 그만두신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 그러신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nbsp nbsp “내가 단식을 시작할 때 죽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하다가 죽음이 온다하더라도 이 일을 하겠다는 각오로 한 것입니다. 죽음이 두려워서 이 일을 그만두지는 않겠다는 각오였습니다. 그러니까‘죽어도 좋다’와‘죽겠다’는 다른 것입니다. 수행자는 단식해서 배가 고파도 괴롭지 않고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괴롭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 전후로 최대 98일 최소 91일을 단식하셨습니다. 나도 부처님 제자니까 90일이나 100일 정도는 단식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했지요. 49일간은 단식하면서 정부와 협상도 하면서 최선을 다했어요. 그 이후에는 문경에서 명상하면서 단식을 이어갔지요. 부처님 시절에 밥을 빌러갈 때는 일곱 집 이내에만 가야했어요. 일곱 집을 다가도 밥을 하나도 얻지 못하면 두 가지 경우예요. 수행자로서 부족한 것이 있어서 그들이 밥을 주지 않는 경우이거나, 아니면 그들도 먹을 것이 없는 경우예요. 첫 번째 경우는 수행자로서 부족함이 없는가 살펴야 해요. 저 같은 경우는 두 번째와 비슷했지요. 북한 동포에게 밥은 줄 수 없고 또 그들이 굶고 있으니 나도 같이 굶었던 거예요. 그들이 굶어 죽는데 내가 어떻게 밥을 먹겠나 해서 였지요. 제가 단식을 푼 결정적인 계기는 제 주변분 가운데 한 분이, ‘다른 사람들이 스님의 순수한 동기까지도 의심해서 스님이 단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몰래 무엇인가를 드신다고 오해할 수도 있으니 단식을 푸는 것이 어떻겠냐?’고 해서 풀게 되었어요. 북한 동포 돕기는 이미 힘든 상황이라 놓아버린 상태였으니까요.” nbsp nbsp 접수된 질문자외에도 스님께 질문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던 예비 질문자도 많이 있었습니다. 즉문즉설이 거의 9시 40분경에 끝나서 질문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이 섭섭해 했습니다. 다음 기회를 또 기다려야겠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싸인회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자원 봉사자들과 사진촬영을 마치고 스님께서 봄불대생 손들어 보라고 하시면서 봉사에 참여한 봄불대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셨습니다.nbsp nbsp 강연을 마친 다음에는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었습니다. 바람 때문에 배와 비행기가 움직일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내일 제주도 강연이 계획대로 잘 되길 기원합니다.
2015.5.9 평화리더십아카데미 경주 역사기행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역사의 전환기, 통일 신라의 리더십을 배운다’는 주제로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을 위해 경주 역사기행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법흥왕릉을 시작으로 진흥왕릉, 태종무열왕릉, 김유신장군묘,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 능지탑, 황룡사지를 차례대로 둘러보면서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신라가 어떻게 삼국 통일을 이루었으며, 그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스님께서는 깊이있게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어제 두북에서 하룻밤을 머무신 스님께서는 오전11시 무렵 법흥왕릉에 먼저 도착해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을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셨습니다. 지난 4월에는 정토불교대학, 경전반, 청년정토회 등 최소 300여명이 넘는 대중들에게 매주 경주 역사기행을 안내하셨는데, 오늘은 조촐하게 23명을 대상으로 안내를 하는 날입니다. 비록 인원은 적었지만 스님의 설명은 한결같이 정성과 열정이 깃들어 있었습니다.nbspnbsp▲ 법흥왕릉nbspnbsp법흥왕릉 앞에 모두 서서 삼배로 참배를 한 후, 스님께서는 오늘 역사기행을 하는 취지와 함께 삼국 통일의 기틀을 닦은 법흥왕의 업적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경주역사기행에서 설명하는 삼국 통일에 대한 초점은 두가지예요. 첫째, 동쪽에 치우친 작은 부족 국가였던 신라가, 즉 비주류였던 신라가 어떻게 민족사의 주역으로 등장했는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신라의 내적 동력은 무엇이였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둘째, 신라는 민족사에서는 비주류였기 때문에 역사 의식이 부재했죠. 역사의식이 부재한 세력이 통일의 주역이 되다보니까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잃어버렸는가? 이 두가지 주제입니다. 먼저 신라가 어떻게 비약적 성장을 하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춰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에 보면 신라는 AD 57년 지금으로부터 2100년 전 쯤에 처음으로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경주 분지 주위에 6개의 씨족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 6부 촌장들이 모여서 ‘우리도 나라를 만들자’고 하면서 임금을 선출했다고 합니다. 인류문화사적으로 보면 씨족이 모여서 만든 것이 부족이지 않습니까? 기록에는 신라가 고대 국가를 세웠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부족 국가가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신라는 동쪽에 치우친 작은 부족 국가이니까 외부와 문명의 교류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이라는 칭호도 없었고,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이라는 칭호를 쓰다가 22대 지증왕대에 와서야 ‘왕’이라는 칭호를 처음 썼습니다. 지증왕이 즉위한 때가 AD 500년이니까 557년 동안이나 아직 고대 왕국이 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죠.nbspnbspAD 400년 경의 역사를 보면 낙동강 유역의 가야·왜 연맹군이 신라를 침공했는데 신라는 거의 나라가 망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라는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고 원병을 청했어요. 그 때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5만 군대를 보내서 가야·왜 연맹군을 격파하고 신라를 구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고구려의 원군을 받아서 나라를 유지할 만큼 신라는 가야보다도 약했습니다. nbspnbsp그런 나라가 어떻게 갑자기 부강하게 되었느냐? 하나는 내부 개혁을 했고, 하나는 외부 개방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법흥왕릉 앞에 와 있는데, AD 514년에 법흥왕이 즉위를 하게 되면서 이때부터 개혁 개방 정책을 쓰게 됩니다. 개혁 정책이라는 것은 율령을 반포한 것을 말합니다. 즉 법제를 정비했습니다. 개방 정책이라는 것은 불교를 공인한 것을 말합니다. 즉 외래 사상의 유입을 받아들인 것이죠.nbspnbspnbsp이렇게 내적인 준비가 된 후에 신라는 가야와 통합을 하게 됩니다. 100년 전에는 가야가 신라를 침공해서 신라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신라 입장에서는 가야가 철천지 원수였어요. 가야 입장에서는 신라를 내리깔보는 입장이였죠. 그런데 거꾸로 이제는 신라가 국력이 강해지고 가야가 국력이 약해졌어요. 이럴 때 보통 신라는 무력으로 가야를 복속시키고, 가야는 끝까지 저항하다가 멸망하는 것이 역사인데, 특이하게도 신라와 가야는 합의 통합을 했습니다. 가야는 나라를 세울 때부터 불교 국가였지만 신라는 불교를 철저히 탄압하는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개방을 해서 불교를 공인했죠. 요즘 말하면 남한은 철저하게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국가이고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인데, 남한이 북한과 통합하기 위해서 공산주의 활동을 허용한 것과 같은 포용 정책을 쓴 것입니다.nbspnbsp그리고 가야의 귀족을 신라의 귀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가야의 왕족들은 신라의 진골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북한의 군장성들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남한의 군장성으로 임명하고, 북한의 관리들을 통합된 나라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우는 통일의 역사에서 극히 드문 일입니다. 대부분 무력으로 진압해서 합병을 하지요. 합의 통일을 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야와 신라는 합의 통일을 했습니다. 지금의 강자인 신라는 옛 원한을 생각하지 않고 가야를 포용했고, 반대로 가야는 끝까지 저항을 하지 않고 통합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nbspnbsp이를 통해 신라는 법흥왕 이후로 급격하게 성장을 하게 됩니다. 특히 신라는 가야로부터 굉장히 많은 인재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통합을 통해 풍부한 인재와 물량을 갖고 영토 확장을 했기 때문에 진흥왕 때는 영토 확장을 3배 가까이 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라가 성장한 비결입니다. 그러나 역사에서 아무도 여기에 주목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nbspnbspnbsp우리가 통일을 연구할 때 자꾸 외국의 사례만 찾는데, 지금 시대에서는 독일 통일의 사례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 역사 속에서는 신라와 가야의 통합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는가 이 부분을 유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합의 통일을 했기 때문에 나중에 신라가 약해져도 ‘후가야’라는 나라가 등장하질 않았어요. 백제와 고구려는 무력으로 통일했기 때문에 200년 후에 후백제, 후고구려가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강자가 포용을 해서 합의 통일을 하게 되면 완전한 통합이 되지만, 약자가 힘에 밀려서 굴복해서 통일하게 되면 반드시 다시 재기를 하게 되는 역사의 반복을 볼 수 있죠.”nbsp스님께서는 동쪽에 치우친 작은 나라인 신라가 어떻게 민족사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었는지 가야와의 합의 통일이 갖는 의미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지금의 남북 관계만 살펴보아도 포용 정책을 펴기란 쉽지 않은데, 당시에 그런 과감한 정책을 폈다니 신라인들의 지혜에 절로 감탄이 되었습니다.nbspnbsp다음은 진흥왕릉으로 향했습니다. 태종 무열왕릉을 지나 선도산을 향해 걸어올라오니 산 중턱에 진흥왕, 진지왕의 무덤이 함께 있었습니다. 무덤을 향해 참배를 한 후 신라가 어떻게 영토를 확장하고 급격한 성장을 하게 되었는지 스님께서는 진흥왕의 업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특히 한반도에서 가장 비옥한 낙동강 유역과 한강 유역을 점령하면서 영토 뿐만 아니라 생산 물량까지 확충하는 과정, 백제와 고구려의 협공을 받고 위기에 처하자 당시 강대국인 당나라와 외교를 하면서 국제 관계를 통해 통일의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진흥왕릉nbspnbsp진흥왕릉에서 내려오니 거대한 무덤 4개가 있고 그 밑에 태종 무열왕릉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태종 무열왕릉 위에 위치한 거대한 무덤 4개를 가르키며 “이 무덤들은 누구의 무덤일까요?” 라며 깜짝 퀴즈를 내어 주셨습니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자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 태종 무열왕릉 위에 자리잡은 4개의 큰 무덤nbspnbsp“무덤을 파봐야 알겠지만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속에는 누구의 무덤이라는 기록이 전혀 없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태종 무열왕이 성골이 아니고 진골이잖아요. 즉 아버지가 왕이 아니란 말이예요. 그러니 아버지를 왕으로 추대해서 무덤을 하나 만들었을 수 있겠죠. 그런데 무덤이 한 개쯤 있으면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데, 무덤이 4개나 되기 때문에 그렇게만 추정하기는 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nbspnbsp그러자 수강생 중에 한명이 “혹시 진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가짜 무덤을 만든 것은 아닐까요?”라고 대답하자 스님께서는 웃으시며 “타지마할에 가면 관광객이 구경하는 관은 가짜이고 진짜 관은 지하에 있거든요. 옛날에는 비석을 안 만든다든지 하는 방식의 가묘를 많이 했죠” 라며 일리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nbsp아무튼 역사 속 수수께끼를 뒤로 한 채 태종 무열왕릉을 참배하고 이어서 스님의 설명을 계속 들었습니다. 태종 무열왕릉 앞에서 스님께서는 태종 무열왕의 업적 뿐만 아니라 신라의 삼국 통일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태종 무열왕은 선덕여왕때 주로 당나라와의 외교를 담당하면서 외교부 장관 같은 역할을 한 분입니다. 당시에는 당나라의 협조를 못 얻으면 나라를 존립시키기 어려웠거든요. 특히 백제는 의자왕이 즉위 초기에 정치를 잘하는 바람에 신라가 40여개의 성을 빼앗겼어요. 태종 무열왕은 당 태종과 대화하면서 ‘만약에 고구려가 멸망하면 대동강 이남은 신라에게 주겠다’는 언지를 받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고 해요. 그렇게 외교를 발전시켜서 나중에는 당나라와 신라가 협공을 해서 백제를 660년에 멸망시키게 됩니다. 태종 무열왕릉은 661년에 죽었습니다.nbsp▲ 태종 무열왕릉nbsp그러나 이 전쟁을 통해서 신라에서는 굉장한 실망이 있었습니다. 당나라는 백제를 멸망시키자 그 영토를 신라에게 통합해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통치했습니다. 신라는 엄청난 군대와 군량미를 지원했는데 전쟁의 성과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나라는 이 여세를 몰아서 고구려를 침공하려 했지만, 신라 안에서는 김유신 등 강경한 세력들이 여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마침 이 때 당나라 군대가 연개소문에게 참패를 당해서 소강 상태에 이르렀다가 연개소문이 죽자 고구려에 내분이 일어나면서 고구려도 나·당 연합군의 협공에 패하고 당의 직할 통치로 들어갑니다. 이 때 민족주의자인 김유신의 영향을 받은 문무대왕은 대당 전쟁을 선포하고 당나라가 세운 안동도호부를 습격해 버립니다.nbspnbsp이것은 요즘으로 비유하면 한미 연합군이 북한을 점령해서 우리는 당연히 통일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미국이 북한에 미군정을 실시하니까 여기에 반발해서 우리가 주한미군을 습격한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되니 미국 본토에서 20만 대군을 한국에 파견해서 한·미전쟁이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죠. 그것처럼 당나라 황제가 화가 나서 20만 대군으로 신라를 침공해 왔는데 이것이 나당 전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구려가 멸망한 668년을 삼국 통일의 해라고 말하지 않고,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몰아낸 676년을 삼국통일의 원년으로 삼습니다.nbspnbsp여기서는 두 가지 비판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라가 외세와 결합해서 제 민족 국가를 제압했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것은 당시에 나라와 나라 사이에 과연 오늘 같은 민족의식이 있었느냐 하는 것이 재검토 되어야겠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자주성이 당나라를 몰아낼 만큼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라의 한계를 비난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남한이 신라만큼의 자주성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만약 한·미 연합군이 북한을 점령했는데 미국이 북한에 들어가서 미군정을 실시하면서 합법적인 정부를 들어서게 한다는 핑계로 북한을 관할한다고 하면 한국이 주한미군을 공격할 수 있을까요? 어떨 것 같아요?nbspnbspnbsp아무튼 신라는 그런 정도의 자주성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정통의 민족사적인 역사의식이 부재했기 때문에 광할한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신라가 만약 역사 의식이 있었다면 고구려의 옛 영토까지도 사실은 회복을 해야되지요. 그러나 신라는 그런 역사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영토가 23배가 된 것에 감격하고 말았죠. 이것은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하나의 위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통일 문제를 다룰 때는 앞서 얘기한 가야와의 통합과 더불어 역사 의식의 부재가 가져오는 폐해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한반도의 통일 문제도 한반도로만 그쳐선 안되고 동북아 공동체라고 하는 더 큰 꿈을 갖고 통일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nbspnbsp역사 의식의 부재가 불러온 결과를 듣고 나니 동북아 공동체를 향한 꿈은커녕 분단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우리들의 현실이 떠올랐고, 당시 신라가 가졌던 한계가 21세기 지금에도 더 나아진 것이 없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몰아낸 신라인들의 자주성 측면에서 볼 때도 오늘날 우리들은 여전히 부끄러운 것 같습니다.nbspnbsp이렇게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태종 무열왕릉을 나와 무열왕의 둘째 아들로서 아버지의 대당 외교술을 잘 계승해 태대각간이라는 칭호를 받았다고 하는 김인문묘를 살펴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김유신 장군묘입니다. 스님께서는 김유신묘가 왜 왕릉처럼 가꿔지게 되었는지, 김유신의 인간 됨됨이는 어떠했는지 재미난 일화도 들려주셨고, 또 김유신은 신라의 삼국통일에 어떤 기여를 했고 그 한계는 무엇인지 신라와 오늘날 한국의 공통점에 대해 짚어주시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김유신 장군 묘nbsp“이 묘는 둘러싼 석축으로 봤을 때 왕릉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김유신은 패망한 가야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신라에 와서 대성공을 한 케이스입니다. 왕이 아닌 사람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신라에서는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것이 ‘상대등’이고 행정부의 수장인 총리가 ‘각간’입니다. 그런데 김유신은 ‘대각간’의 지위에 올랐죠. 죽고 나서는 ‘태대각간’이라는 극존칭을 받았습니다. 후대에 가서는 ‘흥무왕’이라는 존칭까지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무덤은 흥무왕이라는 칭호를 받고나서 왕의 무덤에 준하게 개보수를 했다고 본다면 크게 이의를 제기할 것은 없을 것 같아요.nbspnbsp김유신은 당시 신라의 왕권을 안정시켰습니다. 왕위 쟁탈전으로 혼란이 계속 있었는데 김유신이 무력으로 뒷받침을 해서 태종 무열왕을 등극시킴으로서 정치안정을 시켰죠. 국내 정치가 안정이 되어야 통일의 큰 위엄을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은 아니였지만 내분이 일어나지 않도록 태종무열왕과 문무왕을 앞세워서 국정을 안정시킨 역할을 했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김유신의 영향력이 크다고 하더라도 역시 가야의 왕손이다보니 민족사의 전통을 계승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민족사의 정통은 배달나라, 조선나라, 부여, 부여를 계승한 백제와 고구려, 동부여, 이런 나라들인데 비해 가야와 신라는 민족사의 정통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신라가 굉장히 융성해서 통일의 중심 역할을 했다고 하더라도 역사 의식이 부재했던 이유는 이런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nbspnbsp신라를 가만히 보면 우리 한국이 신라를 닮은 것이 굉장히 많아요. 역사 의식이 부재한 것도 그렇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굉장히 강성해 있죠. 또 외세의 줄을 잘 잡은 것도 그렇고요. 신라가 개방적으로 당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서 당나라에 버금갈만한 문화예술을 발달시켰듯이 우리도 지금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되 서구 문명에 버금갈만한 문명을 지금 만들어가고 있잖아요. nbspnbsp이런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역사 의식과 민족사의 정통을 계승한다는 자부심이 부족해서 주어진 기회를 못 살리고 있죠. 통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되지만 역할을 못하는 것은 역량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식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설령 역량으로 인해 통일을 하더라도 의식이 부재하면 신라가 통일을 한 후에 민족사의 약화를 가져왔듯이 우리의 통일도 어쩌면 민족사에서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통일을 하느냐에 달려 있죠. 그래서 어떤 기본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우리는 과거 역사 속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nbsp스님의 설명을 계속 듣다보니 어느덧 신라 시대의 한복판으로 수욱 들어간 느낌입니다.nbspnbsp다음은 사천왕사지로 이동했습니다. 사천왕사는 나당 전쟁으로 인한 당나라의 침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지은 호국 사찰입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사천왕사에서 문두루 비법을 행했더니 마침 그때 태풍이 불었는지 당나라 군대가 서해 바다에 수장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신앙의 힘으로 나라의 위기를 이겨내었다고 신라인들은 믿은 것입니다. 이후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를 통해 신라는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게 됩니다.nbspnbsp▲ 사천왕사지nbsp이렇게 호국의 의미가 담긴 곳이 이곳 사천왕사이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한반도가 통일이 되려면 사천왕사를 잘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신라처럼 혹시나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과 싸우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대비를 해야 할 것 아니예요?” 라면서 웃음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일본 사람들이 신령스러운 사천왕사의 지맥을 끊기 위해 대웅전과 강당 사이에 철도를 놓았다는 얘기가 전해내려 온다고 합니다. 마침 스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찰나에 기차가 사천왕사지를 막 가로질러 가자, 스님께서 “왜 저렇게 지맥을 끊는거야” 라고 말씀하셔서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 문두루 비법이 행해졌다고 하는 절터nbsp그리고 사천왕사지에서는 일반 절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10cm 크기의 구멍이 뚫린 주춧돌이 12개가 박혀 이었습니다. 문두루 비법을 열두명의 법사가 행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주춧돌이 12개인 것 같습니다. 원래 이 땅은 그냥 밭으로 쓰이던 곳이였는데 스님의 스승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이 이 땅을 구입하고 문화재청에 기증해서 발굴을 하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스님의 역사 의식은 어릴적부터 이런 스승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nbspnbsp사천왕사지에서 시원한 솔숲길을 산책하듯이 걸어 올라가니 선덕여왕릉이 나타났습니다. 오르막길로 인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스님께서 선덕여왕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 선더여왕릉nbsp“삼국 통일의 주역들이 대부분 선덕여왕 때 발굴이 되었습니다. 선덕여왕 당대에는 통일을 못했지만 선덕여왕 때 외교적인 기초와 인재 양성 등 통일을 위한 대부분의 기초가 닦여졌습니다. 그래서 선덕여왕의 리더십은 연구해 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nbspnbsp여러 가지 이유로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어쨌든 여자가 왕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는 세력이 많았습니다. 또 중국이나 주변 나라들이 여왕을 우습게 여기는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황룡사 9층탑을 쌓은 이유도 자장 율사가 나라를 걱정하니까 어떤 신선이 나타나서 ‘너희 나라 임금은 지혜는 있는데, 여자라서 세상 사람들이 다 얕본다. 이를 보강하기 위해서는 큰 위용을 보여야 한다’ 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nbsp그러면서 스님께서는 선덕여왕이 보여준 세 가지 신비한 기적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한미 동맹에 대한 올바른 태도에 대해 함께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세번째 기적은, 선덕여왕이 아무 날 아무 시에 죽을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나를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신하들 입장에서는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언제 죽는다고 하니 이것도 믿어지지 않았지만, 도대체 도리천에 어떻게 묻을 수 있을지 난감해 했습니다. 그러자 선덕여왕은 ‘낭산 남쪽 봉우리에 묻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그날 그 시간에 갑자기 여왕이 돌아가셨고, 신하들은 그 유언을 생각해서 이곳에 여왕을 묻었습니다.nbspnbsp그러나 신하들은 묻어 놓고도 여기가 왜 도리천인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20여년이 지난 후 이 밑에 사천왕사가 지어졌습니다. 사천왕사를 지어놓고 보니까 불교의 세계관에서는 수미산 중턱에 사천왕 세계가 있고 그 꼭대기에 도리천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 낭산을 수미산이라고 한다면 저 아래에 사천왕사가 지어졌으니 여기가 선덕여왕의 유언대로 도리천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얘기는 선덕여왕이 이미 20여년 후에 통일의 기운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고 볼 수 있고, 사천왕사가 당나라와의 갈등으로 지어진 절이니까 현재는 당나라와 굉장히 친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당나라와 갈등이 있을 것이라고 선덕여왕은 예측을 했다고 볼 수 있죠.nbspnbsp우리도 앞으로 미국 없이는 통일을 이루지 못하지만 통일에 있어서 마지막 최대의 장애가 미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예측하면서 국정을 살펴야 합니다.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겠죠. 한미 동맹은 굉장히 필요하지만, 지금의 동북아 정세에서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이익이 딱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통일 문제는 일치한다고 볼 수 없어요. 북한이 패망하고 한국이 북한까지 흡수하는 통일을 하고, 그 통일된 한국이 친미 세력이 된다면, 미국은 통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겠죠. 그러나 그것을 보장할 수가 없잖아요. 지금도 미국은 한국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려는데 한국이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잘 안 움직이기 때문에 미국은 지금 한국을 굉장히 의심하고 있거든요. 반대로 중국은 통일된 한국이 중국 편은 아니지만 중립이라도 지켜준다는 보장이 없잖아요.nbspnbspnbsp그러니 현안적으로 두 강대국이 제일 안심하는 것은 남북을 짤라서 중국은 북한이라도 자기들 편으로 남겨두는 것이 낫고, 미국은 한국을 한미일 삼각동맹체제의 일원으로 넣는 것이 손에 잡히는 이익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을 설득할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까지 어떻게 설득하느냐 하는 외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종속적 한미 관계에서는 이 문제를 풀기가 어렵습니다. 미국을 최고의 우방으로 두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자주적인 동맹이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서 선조들이 겪었던 고뇌를 통해 오늘날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점입니다.”nbsp과거 역사 속에서 오늘날 외교 관계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니 스님의 지혜에 또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다음은 문무대왕의 화장터에 세워진 ‘능지탑’으로 이동했습니다. 능지탑을 참배한 후 스님께서는 문무대왕이 얼마나 나라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가졌는지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 능지탑nbspnbsp“문무대왕이 돌아가실 때는 고구려가 망하고, 백제가 망하고, 가야도 망했을 때니까 이제 신라에는 적이 없잖아요. 당나라와는 화친 관계를 맺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닙니다. 바다 건너 왜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신라에게 유일한 안보 상의 위협은 이제 왜만 남은 것입니다. 그래서 문무대왕은 ‘왜는 바다 건너 있으니까 내가 죽어서 동해 바다 용이 되어 왜의 침공을 막겠다’고 유언을 했습니다. 이때 한 스님이 ‘아무리 용이 힘이 있다고 해도 축생이지 않소. 인간보다는 더 올라가야지’ 하니까 문무대왕은 ‘축생이면 어떠냐? 나라만 지킬 수 있다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신라 고위층들의 이런 솔선수범이 있었기 때문에 국론이 통합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죠.nbspnbspnbsp그래서 왕의 시신을 이곳 낭산에서 화장을 한 후 유골을 수습해서 동해 바다로 가져가 바위에 물길이 십자로 퍼지도록 해서 유골을 안치해 용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감은사라는 절을 지어서 용이 항상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도록 대웅전까지 수로를 연결했다고 합니다. 화장한 이곳에는 재를 모아서 탑을 세웠는데 이것을 ‘능지탑’이라고 합니다.”nbsp축생이 되어서라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스님께서는 문무대왕의 애국심을 소개하면서 김구 선생님이 “나라가 독립이 된다면 문지기라도 되겠다”고 얘기한 것을 상기시켜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어째든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되새겨 봅니다. 이곳 능지탑 역시 스님의 스승이신 도문 큰스님께서 땅을 구입하여 복원하신 것이라고 합니다.nbspnbsp다음은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황룡사지로 향했습니다. 황룡사지는 지금은 터만 횡그러니 남아 있지만 동양 최대의 절인 9층탑이 자리했던 만큼 그 터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넓은 터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남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으신 후 황룡사의 유래와 각각의 건물 위치와 용도를 함께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 황룡사지nbsp“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곳은 남문입니다. 그 다음에 있는 것이 중문이고, 그 다음에 9층탑이 있고, 그 뒤에 동금당, 중금당, 서금당 3개가 있고, 그 뒤에 강당이 있습니다. 이 건물들이 모두 일직선상에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절의 원형이 이 황룡사입니다.nbspnbspnbsp제가 고등학교 때 여기서 황룡사의 복원을 서원했는데,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황룡사를 복원하는 것은 단순히 옛날 절을 복원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통일의 꿈을 성취하는 마음을 모으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nbspnbsp여기가 금당터입니다. 장육존불이 모셔진 곳이예요. 워낙 불상이 크니까 마루에 얹으면 마루가 내려앉을 것 아니예요? 이렇게 큰 돌을 파서 좌대로 만들고 이 위에 불상을 고정시킨 겁니다. 이 장육존불을 금방 복원하는 방법이 있어요. 스님 3명이 여기 좌대 위에 나란히 앉아서 사진을 찍으면 돼요.” nbspnbsp▲ 장육존불이 모셔져 있었다고 하는 금당 터nbsp스님께서 알려주신 장육존불의 간단한 복원 방법에 모두들 웃었는데, 문제는 이 자리에 스님이 한분 밖에 안계셔서 그 간단한 복원법을 실행에 옮길 수가 없어서 또한번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황룡사 맞은 편에 위치한 분황사로 들어가서 원효 스님의 일화를 들려주려고 하셨으나 수강생들의 얼굴에 조금 피곤한 기색이 보였는지 스님께서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들어가는 도중에 원효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 버스 안에서 원효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스님nbspnbsp대안 대사와 방울 스님과 관련된 원효 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언제 들어도 생생하고 재미있었습니다.nbspnbsp숙소로 돌아와서는 간단히 세면을 한 후 저녁을 먹고 7시부터 곧바로 저녁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신라의 삼국통일로 본 통일코리아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에 대해 열정적인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단순히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통일이 우리 민족에게 가져다 줄 희망과 비전에 대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nbspnbsp“오늘 저희들은 신라의 성장과 삼국 통일에 관련된 유적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과거 역사를 보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하는데에 있어서 과거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는 것에 초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라의 통일 과정과 그 역사를 살펴보았는데 그럼 지금 우리는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가 살펴보겠습니다.nbspnbspnbsp남북이 분단이 된 것은 우리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던 일본 제국주의를 우리 힘으로 격퇴하지 못하고 미소를 중심으로 한 연합국이 승리하면서 타의에 의해 해방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것의 대가로 우리가 받은 과보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 못지 않게 혹독했습니다. 즉 남북 분단이라는 결과를 빚게 되었습니다.nbspnbsp이제는 남북이 합의를 통해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여기서 남북이 서로 누가 잘했는지 따지고 티격태격 하기만 하면 앞으로 통일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통일의 책임의식을 누가 가지는가 하는 문제이거든요. 지금까지는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을 안보적으로 잘 보호하고 nbsp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이 남한 지도자의 최고 덕목이였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남한의 지도자는 남한 체제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까지 포함한 전 민족의 이익을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 하는 의식까지 가져주어야 합니다. 전 민족적인 책임의식을 가지려면 역사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남북의 적대관계만 보지 말고, 적대 관계를 넘어서서 전민족적인 이익이 무엇인지를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nbspnbsp통일의 필요성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민족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꼭 돈으로만 따질 수가 없는 문제라는 것이고요. 즉 통일의 당위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는 설득이 안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이익이 되느냐를 따집니다. 가난한 북한과 합쳐서 덕이 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 하거든요. 그래서 통일은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다 하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nbspnbsp현재 대한민국은 지난 50년간 고도 성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성장, 마이너스 성장으로 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첫째, 모방 경제가 갖고 있는 한계입니다. 서구 문명과 우리의 경제력 차이가 50년 정도 된다면 고도 성장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간격이 점점 줄어들게 되면 성장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nbspnbsp두 번째는 지금까지는 성장이 중요했는데 이제는 분배가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지비 지출이 자꾸 늘어나는 겁니다. 세 번째는 인구 구성이 급격히 고령화가 되면서 젊은 사람이 먹여 살려야 할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성장 동력이 급격하게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출산율도 저하되고 있고요.nbspnbsp그러니까 지금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조건은 더 이상 고도 성장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창조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창조력 키우기는 단기간에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nbspnbspnbsp다른 방법으로는 임시 해결책이 있습니다. 양적 팽창을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동부 지역은 유럽을 모방해서 빠른 속도로 성장을 했지만 유럽의 수준에 이르니까 정체 국면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서부 개척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창조를 못하고 정체되어 있을 때 서부 개척이라는 새로운 돌파구가 열린 것입니다. 서부 개척이라는 양적 확대를 하는 동안에 전체 사회 분위기가 창조로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두가지를 병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산업화를 해나간 모든 나라들이 겪었던 문제입니다.nbspnbsp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분단은 우리에게 큰 고통이였는데, 이제는 남한의 정체 국면을 극복하는 데에 분단은 큰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통일이라고 하는 양적 확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즉 통일을 통해 북한 개발을 하게 되면, 있는 자본과 기술만 갖고도 앞으로 10년은 양적 확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경제의 성장 돌파구는 통일 밖에 없습니다.nbspnbsp그러나 통일만 되면 다 된다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통일의 효과는 한 10년15년 정도 밖에 안 갑니다. 이 기간 동안 전체 사회 분위기를 창조력 쪽으로 변화시켜줘야 합니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출구 없이 창조력 쪽으로 바꾼다고 하면, 창조도 안 되고 사회도 불만 속에 정체가 됩니다. 그럼 통일이라는 출구만 열어놓으면 될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10년 뒤에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함께 해나가야 하는데, 먼저 북한 개발이라고 하는 통일 정책을 우선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 문제는 단순히 민족적인 문제를 넘어서서 우리에게 현안이 되어 있습니다.nbspnbsp안보 문제에 있어서도 통일된 대한민국은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분단된 한국은 북한에 대한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일 군사동맹체제에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보복을 받게 됩니다. 미일 군사동맹체제에 안 들어가게 되면 미국으로부터 보복을 받게 되고요.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여기서 북한도 개혁개방을 하면서 중국의 안보 우산을 받아들이게 되면 남북 통일도 물건너 갈 뿐만 아니라 결국 양 대국의 충돌 지점이 한반도가 되어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의 상황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 될 겁니다.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도 위협받게 되죠. 그러나 통일을 하게 되면 우리의 평화만 담보되는 것이 아니고 동아시아의 평화도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미중이 49대 51로 비슷한 상황이 될 때 한국이 어느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서 동아시아의 정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즉 캐스팅 보드를 쥘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한국은 자주성도 유지할 수 있고, 한국의 평화 뿐만 아니라 한국이 중심이 되어 아시아의 평화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또 한국이 중심이 되어서 한중일 경제공동체를 구성한다면 아시아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습니다.nbspnbspnbsp한중일 경제공동체가 되면 양적인 규모가 세계 최대가 되는데, 그 위에 창조성을 갖게 되면 문명의 중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시아 지역에서 창조성을 가진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요? 중국은 양적 팽창은 가능하지만 창조성은 없어요. 일본도 모방 쪽이지 창조성이 결여되어 있어요. 한국도 비슷한데 창조성이 돋보이는 영역이 있어요. 대중예술 분야입니다. 왜냐하면 대중예술 분야에는 아무런 억압된 권위가 없거든요. 창조력이 생기기 위해서는 빨갱이니 종북이니 하는 제단이 없어서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해요. 아마 통일이 된다면 노벨문학상도 나올 수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이 분단의 아픔 속에서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이 적나라하게 표현될 수가 있기 때문에요. 그런데서 통일은 단순한 경제적인 성과나 외교적인 자주를 넘어서서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하는 것이 됩니다. 한국이 갖는 창조성과 중국, 일본이 갖는 경제력이 결합된다면 적어도 21세기 말에는 동아시아 시대가 도래할 수 있습니다.nbspnbsp우선 통일만 갖고도 우리는 일제 침략 이후 100년의 한을 풀 수가 있게 되고, 또 통일을 한 후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 국가가 된다면 이것은 천년의 꿈을 실현하는 게 됩니다. 발해 멸망 이후 우리는 동아시아의 변방으로 전락해 있었습니다.nbspnbsp조금 더 나가면, 고조선 멸망 이후에 우리 문명이 중국 쪽으로 흘러간 역사가 있었습니까? 배달 시대에는 우리의 높은 문명이 중국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철기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청동기 문명에 매몰되어 있다가 중국으로부터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고조선 말기에는 한사군이 설치되는 등 중국의 침략까지 받게 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것을 회복하고자 주몽이 다물 사상으로 고구려를 건국한 것이죠. 문명이 중국으로 흘러가던 것이 멈추고, 반대로 중국으로부터 문명이 우리 쪽으로 흘러온 역사가 지금까지 3천년 간 지속해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에 대해 근본적으로 열등의식을 갖고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묘하게도 지금 우리의 기술과 문명이 중국 쪽으로 흘러가는 최근의 현상은 3천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 안해보셨죠? 우리가 세계 최고 문명에 중국보다 빨리 근접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과 우리의 이 격차가 점점 좁혀지고 있어요. 그러나 만약에 통일을 하게 되어서 낭비적인 요소를 잠재우고 창조력에 에너지를 쏟는다면 앞으로도 상당기간 중국에 문명을 전수해주는 입장을 유지해 갈 수 있어요. 다시 말하면, 아시아 전체 문명의 핵심은 한국에 있고, 규모로는 중국과 일본의 경제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세계 최대 규모로 만들어주되 핵심키는 한국이 가지고 있는 상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비전이 없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자신감이 없는 것입니다.nbspnbspnbsp통일은 첫 스텝이지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첫발을 내딛으면 그렇게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데, 통일이라는 첫발을 못 내딛게 되면 아무런 가능성도 없어집니다. 남한만 갖고는 세계 정세나 안보 상황이나 경제적 조건을 고려했을 때 불가능합니다. 이제 통일 문제는 과거의 소극적인 자세를 넘어서서 세계 문명의 중심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첫발로서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좌파든 우파든 과거의 통일 운동 세력이 이 운동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미래를 보는 통일 운동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nbspnbsp신라도 작은 나라였지만 원효대사의 사상이 중국에 유행하고, 신라의 기술 일부가 당나라로 전래되어서 산둥반도에 신라방이 형성되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저력은 신라가 단순히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DNA가 배달 문명의 후예이기 때문에, 세계 최고 문명을 가졌던 우리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그러니 개인의 성공을 넘어서서 집단 지성으로 국가의 발전 계획을 세우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쪽으로 우리의 역할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돈이 있다면 이런 활동에 돈을 써야 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이 있다면 이런 활동에 쓸 때 죽어도 웃으면서 죽을 수 있지요. 겨우 돈 벌어서 골프 치러 다니고 술 마시러 다니고 집 좀 큰 것 사는 것으로 목에 힘주고 다니면, 죽을 때 되어서 하나도 자랑할 만한 것이 못돼요. 그냥 낙옆 하나 떨어지는 것과 똑같지요.nbspnbsp이제는 여러분들이 개인적 삶에서 공적인 삶으로 전환을 해야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꿈꿨던 이상이 하나의 이상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말로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걸 능히 해결할 힘이 있습니다.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임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스님의 강의는 2시간 30분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스님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났습니다. ‘통일 한국’,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세계 문명의 중심’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가슴이 콩닥 콩닥 뛰었습니다. 통일 한국을 이루고 동아시아 문명의 꽃을 피우는 모습을 상상해 보며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껴봅니다. 이렇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그려주시는 스님이 계셔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큰 박수가 터져나왔고, 이어서 질의응답 시간이 계속 되었습니다. 이후 프로그램이 있어서 긴 시간 답변을 하지 못하고 두 명의 질문에 대해서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한 분은 “앞으로 통일을 대비해서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북한 지도부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요?”라고 물었고, 한 분은 “스님은 경제, 문화, 역사에서 깊이 있는 식견을 갖고 계신데, 스님의 생각을 남한의 지식인들과 어느정도 공유하고 계신지? 또 북한에서도 스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라고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두 분의 질문에 답변을 한 후 오늘 강연을 마무리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부터 열린 마음을 가지면서 사회 통합을 향해 나아가자고 당부해 주셨습니다.nbspnbsp“앞으로 우리가 발전하려면 통일이 첫단계이고, 다음이 동아시아 공동체이고, 그 다음은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그 중에서 통일로 가는 첫발은 정부가 확실하게 통일을 목표로 하고 통일 지향적 외교, 통일 중심의 경제, 통일 중심의 안보 정책을 취하는 것입니다. 왕조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잖아요. 정부는 국민의 명을 받아서 집행하는 머슴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머슴을 교체해서 통일 지향적인 정부를 구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심부름을 잘 해줄 머슴이 없다면 그 중에 좀 더 나은 사람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개인은 별 의미가 없어요. 통일지향적인 정치 세력이 구성되어야 하고, 여러분들은 통일지향적인 정치 세력을 후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국민적으로 형성되면 통일을 지향하는 정치 세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에게 정치를 하라는 얘기가 아니예요. 이런 활동을 밀어주는 역할을 여러분들이 해주면, 그 역할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의 마음 속에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통일을 해야 되고, 통일을 하려면 북쪽은 주도를 못하고 남쪽이 중심이 되어서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남쪽이 중심이 되어 북한을 포용할 수 있는 통일지향적 정부를 구성해야 된다’ 그런 목표 하에 판세를 봐가면서 여러분들이 행동하면 됩니다. 여기에는 진보여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도 없고, 보수여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도 없이 이 통일 문제에 중심이 딱 잡힌 사람에게 투표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nbspnbsp이미 기회는 조금 기울어져 버렸습니다. 지금 상황은 한국 안에서 여당과 야당의 갈등을 푸는 것이 남북 간의 갈등을 푸는 것보다 더 어렵고, 남북 간의 갈등을 푸는 것이 일본과의 갈등을 푸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희한한 일이죠. 여야 문제는 풀기 쉬워도 남북 문제는 풀기가 어려워야 하고, 남북 문제는 풀기 쉬워도 일본과의 갈등은 풀기가 어려워야 하는데, 지금 거꾸로 되어 있어요. 한일 갈등은 풀어도 남북 문제는 못 풀고, 남북 문제는 풀어도 한국 안에서 여야 갈등은 못 풀고, 여야 갈등은 풀어도 야당 안에 내부 갈등은 못 풉니다.nbspnbsp진보 세력은 왜 분열이 심할까요? 내가 옳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보수는 옳고 그름을 안 따지고 그저 이익만 되면 서로 힘을 합하니까 결과적으로 분열이 덜 되는데, 진보는 자기 주장을 갖고 서로 싸우니까 분열이 더 많이 되는 겁니다. 국민이 볼 때는 분열을 더 싫어하니까 진보 쪽에 표를 안 주는 것이죠.nbspnbspnbsp그래서 우리가 극복해야 될 것은 생각이 진보적인 것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포용하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큰 목표가 있으면 작은 것을 수용할 수가 있습니다. 과거를 갖고 논쟁을 하면 끝이 안납니다. 미래의 이익과 희망을 보고 과거는 서로 조금 봐주는 관점을 가져야 우리는 힘을 합해 나갈 수 있어요. 사람은 이런 주장도 할 수 있고, 저런 주장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열린 관점에서 포용력을 가져야 우리는 사상의 자유를 가질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들부터 조금 열린 마음을 가져봅시다. 대화를 할 때 견해 차이를 너무 따지지 말고 ‘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해보세요. 사유의 자유를 가져야 창조력이 나옵니다. 자기 잣대를 너무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조금 열려야 합니다. 이런 연습을 해야 우리 사회가 조금씩 통합되어 가지 않겠나 생각합니다.”nbspnbsp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 갈채가 쏟아지면서 오늘 강의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평리아 수강생들은 오늘 밤 통일 한국에 대한 희망에 대해 밤새 이야기를 이어갈 것 같습니다.nbspnbsp▲ 오늘 스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민들레 홀씨 되어 많은 분들에게 희망으로 전해지길 기원해 봅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고 두북으로 이동하셨고, 평리아 수강생들은 10시30분부터 늦은 시간까지 통일 한국을 향한 우리의 역할에 대해 토론하며 친교의 시간을 함께 가졌습니다.nbsp
2015.5.4.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아이를 때리지 말라' 원탁 대 토론회, 통일학교
nbsp nbsp nbsp 서울공동체에서 오늘 새벽예불과 기도, 발우공양을 하시고 대중공사시간에는 업무적으로 몇가지를 논의하셨습니다. nbsp 책출판과 관련해서 스님께서 계속 원고교정업무를 보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시면서 출판예정일이 언제인지, 또 출판계획이 된 것은 어떤것인지등을 논의하셨습니다. nbsp nbsp 또, 통일학교 강의교재 관련해서 5강까지 정리된 것을 전체 다 한번 보자고 하셨습니다. nbsp 대중공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평화재단으로 오셔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 참석하셨습니다. 종교인모임에서는 오늘 오후에 있을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아이를 때리지말라 원탁 대토론회”에 대한 전반적인 최종브리핑과 행사 마지막에 발표할 선언문에 대한 문안을 검토하여 수정하였습니다.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자는 문구를 집어넣어 뜻을 함께 하자 했습니다. 이와 함께 광복 70년, 분단 70년인 올해 광복절 행사에 대해서 종교인모임은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논의하였습니다. nbsp nbsp 종교인 모임 이후 외부인사와 2번의 만남을 가진 후 천도교 수운회관으로 이동하셔서 1시 30분부터 어린이날을 맞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모임’이 주최하고 천도교에서 주관한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아이를 때리지 말라’ 원탁 대토론회에 참여하셨습니다. nbsp 3.1 독립운동의 정신이 깃든 터전이자, 방정환 선생이 처음으로 어린이날을 제정, 선포했던 역사적 장소인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400여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로 꽉 채워졌습니다. 식전행사로 진행된 뮤지컬 공연은 1923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 선생이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어린이운동을 시작했던 모습을 담았습니다. 어린이날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 이란 메시지가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담겨 전해졌습니다. nbsp nbsp 박남수 천도교 교령님의 환영인사, 김명혁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님의 인사말, 정의화 국회의장님,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 등의 축사에 이어 역사음악연구소 어린이합창단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nbsp nbsp 2부는 방송인 김여진씨의 사회로 열렸으며, 법륜스님께서 여는 말씀을 맡아주셨습니다. nbsp “사실 제가 아이를 낳지도 키우지도 않아 이렇게 나서서 말하는 것을 좀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장기판에 장기 두는 사람보다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아는 척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nbsp 사람은 생물종으로서의 인간이자, 인류로서의 인간입니다. 생물종으로서의 인간은 유전자의 정해진 시스템에 따라 작동합니다. 그런데 생물학적인 인간종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속에서 길러져야 인류로서 인간이 됩니다. 인류로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인류가 살면서 수없이 축적해 온 경험인 정신작용을 전수받아야 합니다. 100여년 전 인도에서 짐승들과 같이 살고 있는 아이 2명을 발견하였습니다. 두 아이는 10년 넘게 교육받았지만 결국 인간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nbsp nbsp 그런데, 타잔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4살때까지 엄마품에 자라면서 사람으로서 기본 정신 프로그램을 전수받은 후 동물속에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려면 생물학적으로 인간종이라는 하드웨어가 갖춰져야 하고, 그 바탕위에 인류로서의 정신작용인 소프트웨어가 깔려야 하는 것입니다. nbsp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와 아이는 한 몸입니다. 이때 엄마가 독성 있는 음식을 먹으면 아이가 탈이 납니다. 그래서 아이를 잉태한 엄마는 담배 등의 해로운 음식을 먹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엄마가 스테레스 받으면 아이는 심리적 불안이 생깁니다. 가장 중요한 태교는 엄마가 음식을 가려 먹고 심리적으로 안정되어야 합니다. 옛부터 아이를 잉태한 엄마를 장례식에 못가게 하는 것은 엄마가 슬프면 아이가 나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만 보고 듣게 하는 것입니다. nbsp 사람의 자아는 세살때까지 형성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살 때까지 형성된 것은 아이에게 강하게 각인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면 자동으로 한국어를 하고 김치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 자아형성기에 정신적으로도 그대로 엄마의 영향을 받습니다. 엄마가 우울하면 아이도 우울하고, 엄마가 정신분열이 있으면 아이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어릴때 심리불안이 형성되면 죽을때까지 고쳐지지 않고 계속됩니다.nbspnbsp nbsp nbsp nbsp nbsp 그래서 세살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잘 돌봐야 합니다. 생모가 키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만약 엄마가 있는데 할머니가 돌보면 아이에게 정신적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키우면 아이의 심리적 모체는 할머니가 되어 할머니가 엄마인데, 의식은 젊은 여자를 엄마라고 인식하므로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혼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엄마가 없어서 할머니가 아이를 키우면 괜찮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낳은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키운 사람이 엄마가 됩니다. 흑인인 아이를 백인이 키우면 백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아이가 됩니다. nbsp 생물학적으로는 엄마, 아빠를 절반씩 닮지만 심리적으로는 대부분 엄마를 닮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오늘날 엄마들이 가정형편이 어렵다, 직장다닌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아이들이 정신적인 장애를 많이 겪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부모들은 정성스레 돌봐야 할 어릴때는 제대로 돌보지 않고 아이가 자율적으로 생활을 해야 할 시기인 청소년기에는 돌본다며 지나치게 과잉보호해서 아이들이 육체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게 합니다. nbsp 엄마는 세살까지는 아이를 100 돌봐야 합니다. 그러나 유치원, 초등학생이 되면 학습하는 시기이므로 부모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에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아버지가 술주정하면 아이도 자라면 똑같이 따라 합니다. 부부가 자주 싸우는 집에서 자란 아이가 나중에 커서 결혼하면 더 심한 부부갈등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어릴 때 형성된 무의식으로 움직입니다. nbsp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물건을 사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좋은 물건을 사주는 것은 사실은 엄마의 만족일 뿐입니다. 어릴때부터 야단을 치면 마음에 상처로 남습니다. 아이가 커서 야단을 치면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큰 애는 야단을 안치고, 작은 애는 야단을 칩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고 아이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아이들이 커서 이성이 생기면 판단할 수 있는 자율권이 생기지만 아이가 어릴수록 작은 일에도 말없이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그래서 초등학생까지는 70 돌보고, 중학생은 50 돌보고, 고등학생은 30 돌보고, 대학생이 되면 완전히 독립시켜야 합니다. nbsp 정부의 정책 변화도 필요합니다. 지금의 유아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엄마를 위한 정책이라는 점입니다. 무료보육은 언뜻보면 좋은 것 같지만, 아이를 아주 어렸을때부터 보육원에 보내게 해서 아이를 엄마로부터 분리시키는 결과를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어린아이는 제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3년 유급휴가를 주는 것 같은 특별지원책이 필요합니다. nbsp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엄마가 행복하게 살면 아이는 저절로 행복해집니다. 남편이 아이의 성장에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고민한다면 남편이 아기 엄마를 편안하게 해주면 됩니다. 할머니 역시 며느리에게 잘해주는 것이 손자가 잘되는 길입니다. nbsp 정부는 엄마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정책을 펴야 아이들의 심리적 불안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금 사회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자살이나 정서적 불안,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 해결책입니다. 그리고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문화 가정의 엄마는 한국사회에 적응하는데 힘들어하고 한국어도 잘 못해 심리불안 상태에서 아이를 임신하고 키웁니다. 아이들도 유치원에 가면 피부색 등으로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여 상처가 큽니다. 이렇게 성장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20년 후 한국사회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입니다. 다문화 가정의 엄마가 행복할 수 있도록 아기 엄마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미래 우리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nbsp 스님께서 늘 엄마들에게 해주신 이 말씀은 어린이날 더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토론회에 참여한 패널과 방청객들은 스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하였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끝나고 12명의 패널과 종교인 모임 7명의 종교인들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패널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린이들이 처한 현실을 나누고 이를 해결할 대응방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아동학대의 84가 가정에서 생기기 때문에 아동학대의 모든 책임을 어린이집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며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 부모, 학교, 보육기관 등 모두가 함께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가정에서도 어떠한 폭력도 인정되지 않도록 법제화하고, 이를 신고할 수 있는 의무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되어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아동학대를 담당하는 관련시설을 확충하는 것 역시 과제로 제안되었습니다. 아동학대로 인해 죽어가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학대당한 아이들이 정신적 후유증으로 청소년 폭력, 어른이 되면 가정폭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정신적 치료를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긍정적이고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한 인성교육의 필요성이 이야기 되었습니다. 지금 학교교육에서 지식만 가르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에 대한 교육이 없으므로, 앞으로 지혜에 대한 교육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종교적 교육이 제도화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한 패널은 부모교육자격증이 필요하며, 이를 법제화 해달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꽃으로도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라는 말처럼 어린이에게 어떠한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여전히 우리사회에 깔려 있는 폭력적인 문화를 우리 어른들이 함께 각계 각층에서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려운 시대에 어린이운동을 시작해주심에 감사하고, 그 정신을 잘 계승해나가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nbsp 저녁 7시 반부터는 평화재단에서 통일의병 통일시민학교 수강생을 대상으로 “통일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강의를 하셨습니다. 평화재단 내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인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 주최로 벌써 3기째 개설된 통일시민학교는 통일에 관심 있는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여 통일에 대한 열망을 키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법륜스님의 강의라서인지 수강생 뿐 아니라 기존 의병들도 여러분 참석하고, 진행 스탭들도 맡은 일을 서둘러 마무리 하고 들어와 강의장이 꽉 찼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를 이룬 남한이 왜 지금 통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적외적 필요성으로 나누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 우선 현재 대한민국은 위기로 접어들었으며, 그 근본 원인에 대해 짚어주셨습니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가장 짧은 시간동안 급속히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장 앞선 문명을 가장 빨리 모방하는 시스템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이제는 이 모방 시스템이 한계에 이르러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했다고 진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nbsp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두가지입니다. 본질적으로는 모방에서 벗어나 창조력을 키우는 거예요. 박근혜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얘기하는 것은 굉장한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창조는 모방처럼 그렇게 간단히 단시간 내에 될 수가 없어요. 자율적 환경속에서 많은 실패를 거쳐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미국의 발전사를 보면 미국 동부가 유럽을 모방해서 발전하다가 모방의 덫에 걸려 사회가 정체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이를 극복하고 유럽을 능가할 수 있었던 것은 서부 개척의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부개척이라는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통해서 일정한 경제력 규모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 사이 창조력을 갖추어 사회정체를 뛰어 넘을 수 있었던 겁니다. nbsp nbsp nbsp 반면 과거 유럽은 정체 국면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지만 미국은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죠. 물론 미국도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했지만 전면전보다는 가볍게 이길 수 있었던 맥시코와의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미국은 이렇게 서부개척으로 위기를 극복하면서 창조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습니다. 즉, 양적팽창과 질적 창조를 통해 세계 문명의 중심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거죠. 일본도 19세기 말부터 미국을 모방해서 성장을 시작했는데, 한계에 부딪치자 한반도와 만주를 점령해서 영토확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지만 결국 태평양전쟁에서 패했지 않습니까? 일본은 지금 두 번째 정체국면에 빠졌는데, 예전과 같이 전쟁을 통해 양적 확대를 할 여건이 안 되니 일본사회가 장기간 계속 정체되는 겁니다. nbsp 그런 면에서 볼 때 한반도 분단은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현재 정체국면에 있는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통일을 하게 되면 일단 양적 확대가 가능합니다. 다시 말하면 북한 개발이라고 하는 새로운 양적 확대의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통일은 전 민족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현 대한민국의 정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그럼 통일하면 다 해결 되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통일은 일단 한민족이 재도약을 위한 하나의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당연히 창조력을 키워야 됩니다. 근데 창조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양적 확대를 통해 시간을 벌고, 두 번째는 그 기간에 전반적으로 창조력을 키우는 쪽으로 사회를 개혁하면 지속적 성장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내적 돌파구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 내부에 창조력을 키울 수 있는 개혁이 있어야 하고, 외부적으로는 일단 통일을 해서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절실한 통일의 내적 필요성입니다.” nbsp 스님께서는 덧붙여 남북한이 분단 이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축을 각각 우방으로 해서 발전해온 역사를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미중의 세력 교체기에 통일의 기회가 오고 있고, 통일한국이 주변 4국의 충돌에 균형자 역할을 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세력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외적 필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지난 1000년의 우리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한번도 세계의 중심은 커녕, 동아시아에서도 중심 역할을 하지 못하고 동아시아의 변방으로 전락되어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의 중심은 중국이었고 가끔 일본이 도전을 했습니다. 몽골이나 만주족도 도전했지만, 우리는 발해 멸망 이후로는 동아시아의 중심에 서본 적이 없습니다. nbsp 그런데 통일한국이 되면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통일한국만 해도 발해 멸망이후 천년만에 동아시아에서 자주적 주권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고조선 멸망이후 지난 2천년 동안 중국으로부터 줄곧 문명을 수입하였는데, 지금은 규모는 적지만 중국에 우리의 문명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중국에 우리의 문명을 수출하는 것은 2천년안에서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안에 이 물결의 흐름은 정지되고, 반대로 중국의 문명이 또다시 우리에게 흘러 들어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한국이 되면 많은 부분에서 중국으로의 문명 수출을 지속적으로 더 할 수 있습니다. 통일한국이 동아시아 공동제의 견인해 내어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 공동체를 만든다면 세계적 경쟁에서 유리하게 되기 때문에, 규모와 상관없이 통일한국이 중심역할을 할 수 있어 창조적 문명을 생산하는 국가발전계획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nbsp nbsp nbsp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고조선 중기 이후 3천년만에 온 기회입니다. 우리가 살다가 언제 죽을지 몰라도 이런 가능성을 가진 나라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자긍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안다면 여러분들이 고민하는 개인적인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남자냐, 저 남자냐, 이 회사냐, 저 회사냐 하는 문제는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더 큰 국가비젼과 가능성을 볼 수 있다면, 북한과 작은 일로 티격태격할 필요가 없습니다. 통일이라는 국가 목표가 정해지고 그 속에서 미래 이익이 보장된다면 지금 북한이 요구하는 작은 것들을 수용해도 별 문제가 안 됩니다. 미래 목표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현재의 작은 일로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독도 문제도 통일한국만 이룩된다면 일본이 우리를 우습게 볼 수 없기 때문에 해결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직 통일의 기회가 있으니까 우리가 도전해 볼만하다고 봅니다.” nbsp 동북아의 중심으로서 통일한국의 가슴 뛰는 비젼을 제시해 주시며,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와 통일의병의 할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통일의병의 역할로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가 나오도록 제대로 투표하는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nbsp “한국을 둘러싼 주변 강대국은 지금 모두 자기 국가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중국은 미국의 견제를 뚫고 자기 능력에 걸맞는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 일본은 중국이 커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면서 미국의 힘을 끌어들여서 어떻게든 중국을 견제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패전국가에서 정상국가로 가는 것에 힘을 집중하고, 북한은 자기 체제유지에 치중하여 세계적 규제에도 불구하고 핵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그러니 주변의 어떤 나라도 한반도 통일을 주도할 나라는 없습니다. 통일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한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한국만이 어려움 속에서도 이뤄온 산업화와 민주화의 자산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견인할 수 있으며, 동아시아가 세계문명의 중심이 되도록 만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nbsp 그런데 문제는 한국내에 통일을 이룰 주체 역량이 없습니다. 국민들은 다 자기 살기 바쁘고, 국가 지도자는 통일에 대한 국가비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우리 체제를 어떻게 지키고 발전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남한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북한까지 포함한 전 민족의 이익을 어떻게 지켜낼 것이냐, 그리고 동아시아의 공동체를 어떻게 구성하고 우리가 세계문명의 중심을 어떻게 형성할 것이냐입니다. 이러한 비젼을 가진 정치지도자를 발굴하고, 정치 세력을 형성해야 합니다. nbsp 이렇게 한국 정부가 통일에 대한 목표를 분명히 할때만 통일이 가능합니다. 그래야 북한이 설령 어긋난 행동을 해도 설득할 수 있고 미국과도 종속적인 한미동맹에서 벗어나 자주적 한미동맹으로 전환시킬 수 있습니다. 정부가 남북관계를 풀기 시작하면 민간에서도 할 일이 많아집니다. 그러니 통일을 하려면 우선 통일지향적 정부가 반드시 들어서야 합니다. nbsp 국가 최고 지도자가 통일에 대한 의지가 없으면 국민들은 정부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니까 누구든 국가의 이익을 훼손하면 비판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통일지향적인 정부가 필요하다면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세력화 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어야 합니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선택하고 차선도 없으면 최악은 막아야 합니다. 일제시대 때 독립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고 민주화시대에는 감옥에 갈 각오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목숨 걸 일도 없고, 감옥 갈 일도 없습니다. 통일의병이 해야 할 일은 통일지향적인 정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국민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도록 하는 것 입니다. nbsp 정부가 국민에게 이런 국가비젼을 보여주면 청년들이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북한 개발이 시작되면 청년들의 일자리도 많아질 것입니다. 개발에 필요한 높은 기술력은 대부분 남한사람들이 맡을 수 밖에 없습니다. 노동은 북한사람들이 하면 됩니다. nbsp nbsp nbsp 다른 나라는 모두 자기 나라의 목표를 위해 달려갑니다. 통일 외에 대한민국의 국가 비젼은 없습니다. 이제 국민들이 이러한 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통일의병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제 과거의 일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상놈이나 양반이나 차별이 없었던 것처럼 지나간 얘기는 그만하고 미래를 위해 결집하자는 목표를 가지면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자식 있는 여러분들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자식들이 희망이 있는 나라에 살기 위해서는 통일을 꼭 이루어야 합니다.” 이렇게 예비 의병들의 가슴을 뛰게 하면서도, 마음은 가볍게 할 수 있도록 강의 마무리를 해주셨습니다. 수강생들은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다가 때론 심각하게 때론 폭소를 터트리며 강의에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정보다 강의가 길어져 질문은 하나만 받았는데 그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nbsp nbsp nbsp nbsp “가슴이 뭉클합니다. 저는 조그만 사업을 하는데 정말 우리 사회에 비젼이 없습니다. 통일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몰라서 와서 배우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비젼을 가진 정치세력이 나올 수 있을까요? 지금의 기득권 세력을 봐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일반 시민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 막연합니다. 환경하면 쓰레기를 줄이면 되고 제3세계 구호라고 하면 후원을 하면 되는데 통일은 뭘 해야 할지 막연합니다.” nbsp “통일문제는 옛날로 하면 정치적, 군사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왕이 뜻이 없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는 권리가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가 통일지향적 지도자를 뽑으면 됩니다. 정치인들 중에는 이런 뚜렷한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몇명 안됩니다. 대부분 선거에 당선되는 것에만 목표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이렇게 하면 네가 당선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 개인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지향적 정치세력에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우리는 기회가 와도 우리가 노력을 안 하면 안 되고, 우리가 노력을 해도 기회가 안 오면 안 됩니다. 기회가 올 때를 기다려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고 기다려야 합니다. 정치가 중 자기를 희생해서 통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이익을 보장해주면 하겠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통일지향적 정치를 할 수 있게 우리가 도와줘야 합니다. 돈이 없어도 열의를 가지고 움직이는 세력이 있다면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 ‘아 이거 정말 해볼만한 일이다. 자손에게 물려줄 만한 일이다. 이게 희망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 해볼 만 한 것입니다. 자랑스런 통일코리아를 건설하기 위해 정당한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자는 겁니다.” nbsp nbsp nbsp 질의 응답 후 스님과의 단체촬영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사진을 찍고 나서 조별 토론을 하게 되면 흐름이 깨질 것을 염려하시어 먼저 조별토론을 진행하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사진 촬영을 기다리면서 생긴 자투리 시간에도 원고 교정을 하시다가, 토론이 끝날 즈음 다시 강당으로 오셔서 함께 단체사진 촬영에 임해주셨습니다.
2015.5.1 노원 희망강연
nbsp nbsp 오늘은 스님과 대중들이 새벽예불과 발우공양하는 모습을 시간에는 송코 탈란딕 부족도 함께 자리하며 서울 공동체가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았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이분들에게 불교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는 “지금 우리가 예불하고 발우공양하는 방식은 밥먹는 방식은 불교 전통방식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없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불교의 전통을 지키고 있습니다. 새벽에는 다 함께 모여서 예불하고 청소하고 밥도 같이 모여 먹습니다. 다만 낮동안에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침 한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전통적 방식인 발우공양을 하고 있습니다. 또 아침을 먹고 난 후 오늘 하루 각자는 무슨 일을 했는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서로 공유를 합니다. nbsp nbsp 누구든지 여기 와서 하루라도 자게 되면 예불하고 청소하고 발우공양을 해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들만 이번에 예외였습니다. 다음 방문때는 함께 해야 합니다. nbsp 우리는 밥과 반찬도 간소하게 먹고 생활을 검소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이 문만 나가면 유흥가 골목입니다. 그런데 산속에서가 아니라 이런 번다한 시내속에서 우리의 전통을 지키고 살고 있습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보수를 받지 않고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처럼 절에 와서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든, 춤을 추든, 밥 하든, 일을 하든 일체 임금을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고 돈을 주고 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nbsp 우리에게 필요한 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노래할 수 있으면 노래하고, 촬영할 수 있으면 촬영하고 각기 자기 재능을 여기서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라며 우리가 사는 생활방식을 소개해 드리면서 오늘이면 한국을 떠나는 그분들에게 환송의 박수를 보내드렸습니다. nbsp nbsp 미키타이 추장님은 “한국에 초청해 해주셔서 감사하고, 배려해주시고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와서 배운게 많은데, 특히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라고 하시면서 그동안 편안하게 잘 지내다 간다며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전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7시 30분 외부인사와 만남을 가진 후 다시 법당으로 오셔서 송코 탈란딕 부족과 함께 시간을 가지면서 그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궁금했던 질문들을 받아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특히 정토회와 송코마을에 주어진 공통과제인 현대문명속에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송코가 좋아요? 한국이 좋아요?” “송코가 좋습니다.” “변호사가 되면 송코에서 못사는데 어떻게 하지요?” “나는 우리 부족의 변호사가 될 것입니다.” “전통문화를 지키면서도 현대교육을 받아 세상에 대한 상식을 알아야 합니다. 부족의 문화와 자연환경을 지키는 변호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nbsp “담마가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말씀인 진리를 말합니다. 부처님 말씀뿐만 아니라 진리이면 모두 담마입니다.” nbsp nbsp “정토회는 파괴되어 가는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일,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 갈등을 조절해서 평화롭게 사는 일,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정토회 공동체는 현대문명속에 살고 있지만 소비중심의 문화가 아닌 미래문명의 대안적인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이 지켜본 예불하고 발우공양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20년, 25년 산 사람들도 있고, 온지 한두달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침에도 이야기했듯이 공동체에 사는 사람들은 검소한 생활을 삽니다. 옷장은 개인당 한 개만 쓸 수 있으며, 숙소는 개인방 없이 여러명이 공동으로 생활합니다. 어쩌면 정토회 공동체가 여러분 보다 더 가난하게 살고 있을 겁니다. 개인 삶을 포기해야 여기서 살 수 있습니다. 여기 살 수 있겠어요? ” nbsp “우리 부부도 집이 없습니다. 작은 방 하나 있고 모두 마을 공동체를 위해 쓰여집니다.” nbsp nbsp “송코는 친척 공동체이지만 우리는 잘 모르는 사람들의 관계여서 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깥세상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구성원들의 가족들도 여기서 사는 것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nbsp “송코마을의 고민은 구성원들에게 공동체를 지키라고 해도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밖으로 나갈려고 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깁니다.” nbsp “젊은이들이 공동체를 떠나려고 하는 것은 전통을 지키는 것에 보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상이라고 하면 유일하게 자기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토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강연이나 법문하고 돈을 받지 않습니다. 참가한 사람들이 강연이 끝나면 스스로 후원하고 갑니다. 유명한 가수도 여기서 공연하면 돈 받지 않고 자원봉사로 합니다. 우리는 돈을 벌지 않는 대신에 절약해서 삽니다. 절약하는 것이 가장 돈을 잘 버는 것입니다. 현대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한국에서는 우리민족의 전통문화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아 전통문화가 50년 전부터 빠르게 소멸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만큼은 꼭 전통문화를 지켜내기 바랍니다. 송코마을이 물질문명의 영향으로 많은 것이 변화되어 간다고 해도 여러분들이 자기 정체성을 가지려면 전통문화를 꼭 지켜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전통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계속 지켜볼 것입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젊은 원주민 청년들의 손을 꼭 잡고 송코마을의 아름다운 전통을 잘 지켜나가기를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이별하는 원주민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데 무엇을 줘야 할지 모르시겠다며, 시장에 가서 필요한 것을 사라고 용돈을 챙겨 주셨습니다. 원주민들은 한국에 초청해줘서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 스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했으며, 이별의 아쉬움을 표하였습니다. 스님과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송코마을 원주민들은 마지막으로 동대문시장을 방문하여 쇼핑한 후 필리핀으로 돌아갔습니다. 오전 10시에는 역사학자이신 이이화선생님과 한성대 전 총장인 윤경로선생님,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사무총장님이 실무자들과 함께 스님을 방문해서 해방 70년을 맞이하여 준비한 국제학술심포지엄과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대해서 의논하고 조언을 구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nbsp 12시에는 북한문제 전문가와 최근의 북한 동향, 남북관계에 대해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2시에 약속한 인도에서 오신 현동화 회장님께서 지방에 가셨다가 약속시간에 오실 수 없다고 하셔서 스님께서는 모처럼 시간을 내어 밀린 원고 교정업무를 보셨습니다. nbsp nbsp 저녁 7시에는 노원 구민회관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날씨가 한여름처럼 무더워지고 근로자의 날로 황금연휴임에도 불구하고, 800석의 좌석이 청중들로 가득차고 넘쳐 일부 대중들은 복도에 앉기도 하였습니다. 대중들은 6시부터 입장이 가능함에도 오랫만에 노원을 찾은 스님을 뵙기 위해서 일찌감치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강연전에 김성환 노원구청장님과 잠시 만나 인사를 나누었고 김성환 노원구청장님께서는 오늘 저녁 7시에 있는 연등측제에 참석해야 해서 시작 10분전에 구청장님의 인사말씀이 먼저 있고 곧바로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강의 시작 전에 최근 스님의 근황에 대해 가볍게 나누셨습니다. 1월 인도, 라오스 등을 방문하면서, 그 나라 스님들은 낮 12시가 넘으면 밥을 먹지 않기 때문에 동남아 지역에 있는 동안 스님께서도 저녁을 드시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 계속해서 저녁을 먹지 않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청중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몸을 위한 저녁보다는 우리들의 마음을 위해 법문으로 저녁을 배부르게 드세요”라며 유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nbsp nbsp 오늘도 역시 많은 청중들이 스님께 삶의 어려운 고민들을 나누었습니다. 총 8명이 질문하였습니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저울 달아보니 손해 본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친구같은 남편으로 대할 수 있는지 묻는 분, 본인은 어렸을때 인간관계가 어려웠는데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지, 집에서 키워야 할지 고민인 분, 폭식하는 습관이 있는데, 단식도 해 보고 108배도 해 봤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분, 남자친구와의 결혼 문제로 어머니와 갈등이 있으신 분, 어려서부터 심장이 좋지 않고 뇌경색 등으로 건강이 안 좋아져 걱정이 많고 극도로 불안하다는 분, 세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어려운 일들을 글로 쓰고 싶은데 유명한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남편과 두 딸에게 막말하는 아내와 이혼하고 싶은데 아이들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라는 남성분, 아이 둘을 키우면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데, 열등감으로 정규직이 되고 싶어 준비중이며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무기력하게 사는 것이 맞는지 묻는 분까지, 각자의 고민들을 스님과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해법을 찾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그 중 한 질문자에 대한 스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nbsp nbsp “그저께 안양에서 스님을 뵈었으나, 질문을 못 드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와 두 딸에게 막말하는 아내 때문에 이혼을 결심 중입니다. 중1, 고1의 두 딸이 있는데 이혼할 마음을 먹었으나, 딸들이 아직 어려 이혼절차를 언제 진행하는 게 좋을지 여쭤봅니다.” nbsp “막내가 중1이면 몇 살이죠?” nbsp “14살요.” nbsp “6년 후에 하세요.” nbsp “그런데 아내가 저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막말을 합니다.” nbsp “엄마가 자기 딸에게 그러는 건 간섭하지 말고 그냥 두세요.” nbsp nbsp “제 딸이기도 합니다. 스님께서는 늘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애들이 엄마한테 상처를 받는 걸 보면서 이게 제대로 된 양육인지 의문이 듭니다. 아이들이 상처받는 걸 보면서도 기다려야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nbsp “애들한테 물어보세요. 엄마가 막말하는 데 아빠가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엄마가 막말할 때 그렇게 못하게 한다고 엄마랑 아빠랑 싸우는 게 좋은지? 아니면 엄마가 막말한다고 엄마, 아빠가 이혼하는 게 좋은지?” “물어봤으나 애들이 엄마한테 잡혀 있어서 자기 의사표현을 잘하지 못합니다.” nbsp nbsp “아이들이 의사가 없다는 건 다른 선택보다는 그래도 지금 상황이 낫다는 거예요. 일본이 한국침략에 대회 사과하지 않는다고 외교 관계도 끊고, 교류도 단절하는 게 좋아요? 비록 그렇게 하더라도 외교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게 좋아요? 일본이 바뀌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런 일본하고라도 외교 관계를 맺는 게 낫기 때문에 이 정도 유지되는 것입니다. nbsp 엄마가 막말하는 게 아이들에게는 물론 좋지 않죠. 하지만 이게 현실이고 아내를 고칠 수 없으니 선택해야 해요. 아내를 고치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nbsp 그런데 선택하라고 하면 ‘그래 못살겠다. 이혼한다.’ 이렇게 선택하는데, 그러면 나는 좋을지 모르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엄마에게 욕 좀 먹는 게 나은지, 이혼한 엄마와 사는 게 나은지, 아빠가 욕 못하게 하다가 부부 싸움하는 게 좋은지를 아이들에게 선택하라고 하면 아이들은 부모가 이혼하는 것 보다는 아버지는 좀 가만히 있고, 엄마 혼자 떠들도록 놔두는 게 낫다고 생각할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이 ‘아빠, 이런 엄마랑 살지 말고 이혼해요.’ 하면 20살이 안되었더라도 이혼해도 됩니다. 지금도 이혼할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아이들을 방치하는 게 됩니다. 질문자가 선택할 문제입니다. 이혼하면 아이들도 포기해야 합니다.” nbsp nbsp “잘 알겠습니다. 애들 때문에 이혼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막말하는 것이 싫어서 차라리 죽는게 낫다는 생각까지 들자, 이혼이라도 해야겠다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nbsp “그건 이해됩니다. 하지만 질문자가 지금 도망가야겠어요? 아니면 자식을 보호해야겠어요? 엄마가 아이들에게 막말하면 질문자는 신경 쓰지 마세요. 간섭하면 오히려 싸움이 커져요. 엄마에게도 아이들에 대한 권리가 있어요. nbsp 만약 엄마가 폭력을 쓰면 경찰에 신고하면 됩니다. 제 자식이라도, 제 아내라도 때리면 안 됩니다. 때리는 것은 형법의 문제입니다. ‘아내가 아이들 때린다.’ 고 경찰에 신고하세요. 이때, 애들이 엄마를 용서해 주라고 빈다고 봐주면 안됩니다. 가족문제를 넘어서서 사회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폭력을 쓰는 일이 발생할 때도 엄마가 봐주면 안됩니다. 선생님이 말리더라도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nbsp 사람이 막말할 때 듣기는 힘들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됩니다. 스트레스가 있거나, 어렸을 적 마음에 상처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6년을 억지로 참으면서 살면 스트레스 받아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이렇게 기도하세요. nbsp nbsp ‘여보 얼마나 답답하면 제 자식, 제 남편한테 막말을 할까.’ 하고 아내를 위해 기도해줘야 합니다. 아내도 막말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컨트롤 안돼서 그런것입니다. 아내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부처님, 저 여자 가슴이 얼마나 답답하면 저럴까요.’라고 기도하면 앞으로 6년을 편안하게 살 수 있고, 이혼하더라도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얼굴 표정을 보니 이렇게 기도할 것 같지 않네요. 지금 얘기대로 기도해야 명대로 살 수 있어요.” nbsp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행복의 이르는 길에 대한 말씀으로 강의를 마무리해주셨습니다. “진리로 가는 길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괴로움이 해결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모여서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은 지혜를 증득하는 것입니다. 지혜가 증득되면 고민이 해소됩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모두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nbsp 스님의 답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늘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욕심에서 비롯됨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스님의 즉문즉설은 웃음과 공감, 지혜로 꽉 찬 시간이었습니다. nbsp nbsp 강연 후 사인회를 가진 후 노원구에 소속된 4개 법당의 자원활동가들과 기념촬영을 한 후 스님께서는 경주로 이동하셨습니다.
2015.4.30. 새터민과의 즉문즉설. 평화리더십아카데미 강의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아침 기도 후 서울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시면서 그동안 문경행자반장과 인도에서 활동하다가 이번에 회향하는 최동호법우님의 노고를 치하해주시면서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오늘 회향한다, 군대 간다, 외국 간다, 오늘 입국했다 그러면 사람은 늘 특별한 날로 생각해서 마음이 긴장되거나 해이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똑같은 날을 살고 있습니다. 그때그때 의미를 부여해 부를 뿐, 매일 같은 날입니다. 최동호 법우님이 오늘 회향 한다해서 특별한 날이 아니라 한결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회향이라는 이름이 붙든, 머리를 깎든, 한국에 살든, 인도에 살든 마음이 한결같아야 합니다. 세상사람들이 볼 때 머리 모양이 바뀌어서 ‘속퇴했구나, 입재했구나, 들어갔구나, 나왔구나’ 하는 것은 남이 보는 것이고 수행자는 그런것에 구애받지 않고 한결같아야 합니다. nbspnbsp행자님들도 오늘 아침에 농사지어라 하면 수행의 대상이 농사이고, 오늘 밥해라 하면 수행의 대상이 밥하는 거고, 밖에 가서 봉사해라하면 수행의 대상이 봉사하는 것이지요. 이때 ‘내가 밥하는 사람이가? 내가 농사꾼이가?’ 하는 그런 마음은 수행자가 아닙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그러나 실제는 마음이 한결같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한결같은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수행자는 늘 일상이 수행이어야 합니다. 특별한 날이 아닙니다. 법문을 해야 하는 쪽이 되면 하는 거고 들어야 하는 쪽이 되면 들으면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지요. 이런 일하면 수행이라고 하고, 저런 일하면 수행이 아니라 하지요. ‘마음에 분별심이 일어나면 중생이고, 분별심이 가라앉으면 보살이다.’는 관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천당가려고 하는데, 천당이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한결같으면 그 곳이 천당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라며 수행자는 일상에서 주어진 일이나 상황에 한결같이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정해진 계율을 다수가 반복적으로 지키지 않을 때는 타성화 되어서 그런것인지, 제도적인 문제인지를 살펴보고 바로 잡아서 고치도록 개선해야 합니다. 만성화되면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또, 환경이나, 제도등으로 인해 개선하기 어렵다면 제도를 바꿔줘야 합니다. 평화재단 활동가들이 정토법당에 와서 저녁 예불하고 가면 업무에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제도를 바꿔서라도 가능하면 주어진 계율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다수가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계율이 사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없애도록 해야 합니다. 꼭 지켜야 할 것이라면 다른 일을 포기하더라도 모두가 지킬수 있도록 주변 여건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검토해서 대중대표는 제도 개선을 할 수 있도록 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계율이 형식적으로 있지 않고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제도 등을 보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 요즘 서울 정토회관, 신관, 별관, 평화재단등을 보시면서 “전반적으로 공간을 너무 넓게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도 자본주의가 갖는 소비주의를 계속 추종해서 따라가고 있거든요. 한 번 넓게 쓰면 좁히는 게 어렵습니다. 공간을 과감하게 좁혀서 수행장소로 쓰도록 해야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 원칙을 정해서 검소하고 아껴쓰고 효율적으로 쓰도록 스님 당대에 바뀌지 않으면 스님이 없으면 겉으로만 수행자로 남을 수 있습니다. 정토회가 규모가 커지면서 사무실등을 넓혀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부러 좁게 지저분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제가 볼 때 이렇게 점점 넓혀 나가기 시작하면 앞으로 바로 잡기 어렵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대중의 의견은 세속적 욕망을 가지고 요구하기 때문에 이걸 들어주기 시작하면 수행의 문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자본주의에 살아도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고, 소비주의에 살아도 소비주의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은 거창한 주장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면 원칙을 점검해서 바로잡았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우리도 소비주의에 대해 점점 헤이해지고 있는 점을 바로 잡아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오늘 저녁 법당에서 송코 탈란딕 부족과 정토회원들이 준비하는 놀이 한마당에 대해서 송코 탈란딕 부족에게 우리의 전통적인 것들을 많이 보여줄 수 있도록 다시한번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자마자 스님께서는 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셔서 기획위 회의에 참석하셨습니다. 11시까지 진행된 기획위 회의를 마치고 12시에 찾아온 손님과 점심을 겸한 만남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이어 2시부터는 서초법당에서 수도권 지역 새터민을 위한 즉문즉설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새터민을 대상으로 법당에서 즉문즉설이 진행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즉문즉설에는 새터민 36명과 봉사자 20여명, 일반 정토행자 30명 등 총 90여명이 참여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법륜스님과의 즉문즉설 외에도 다양한 부대행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엄마를 따라온 유아 20여명을 대상으로 lt사이숲 유아교실gt이 신관 3층에서 열렸고, 즉문즉설 직후에는 그림 심리치료인 lt마그마 힐링 체험gt과 풍성한 lt새터민 100냥 장터gt가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법륜스님께서는 행사 시작 전“서로 가까이 앉아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자리 배치를 새롭게 하시고 새터민들에게“여기는 절이라서 불교 의식이 있는데, 불편하면 따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며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즉문즉설을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용어부터 친절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nbspnbsp65279nbsp “즉문즉설은 여러분들에게 인생의 정답을 주는 게 아니라 자유와 행복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살면서 생긴 큰 어려움을 여기에서 함께 나누다 보면 답답하던 마음이 풀려버립니다. 둘이서 얘기하듯이 이 자리에서 의문점을 얘기하면, 그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것을 즉문즉설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남편이 술을 많이 먹어요’하면 남편이 술을 안먹도록 해주는 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예요. 남편이 술을 먹어도 내가 괴롭지 않은 법이 있어요.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고, 내가 그 사람 때문에 괴로울 필요가 없어요. 그 사람 때문에 내가 괴롭지 않은 것, 그것이 진리로 가는 길이예요. 천당이나 지옥 가는 얘기가 아니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뇌와 의문이 해소되는 길이예요. nbspnbspnbspnbspnbsp 북쪽에서 살다가 남쪽에 오신 분, 지금 행복해요? 지금 더 행복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 북쪽에서 더 행복했다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그럼 북쪽보다 남쪽이 행복한 조건을 많이 갖추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남쪽에 사는 사람은 다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지요. 그렇다고 북쪽에 사는 사람은 다 괴로울까요? 남쪽에 사는 사람도 괴로운 사람이 있고, 북쪽에 살아도 행복한 사람이 있어요. nbspnbspnbspnbspnbsp제가 어떤 한 분에게 10만원 주면서 ‘저녁 사드세요’ 하면 기분이 좋겠지요? 스님 참 좋은 사람이지요? 그런데 그 옆 사람한테 100만원을 주면, 10만원 받았던 사람은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요. 손해를 본게 없는데도 기분이 나빠져요. 왜 그럴까요? 이게 상대적 빈곤때문이예요. 북쪽은 지금 절대적 빈곤에 처해 있어서 양식, 약, 옷을 주면 빈곤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런데 상대적 빈곤 문제는 많이 준다고 해결이 안돼요. 차등을 좁혀야 해요. nbspnbspnbspnbspnbsp북쪽에 있을 때는 남한에 있는 사람들에게‘니가 괴로울 일이 뭐가 있노?’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남한에 사는 사람들도 괴로운 사람 많아요. 처음엔 한국 왔을 때는 천국 같았을 겁니다. 하지만 살아보니까 그 지옥이나 이 지옥이나 비슷하죠?. 그래서 새터민들이 또 천국을 찾아 한국을 떠나 영국이나 캐나다로 가는 겁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중국 장백 국경변에서 북한 혜산에서 넘어온 여자 분을 두 번 만나 지원해준 적이 있는데, 그 뒤로 만나지 못하다가 대전에서 만났어요. 보자 마자 스님을 껴안고 우는 거예요. 그러다 또 못봤는데 캐나다 토론토에서 강의하는데 거기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고 하니까 애 공부시키려고 왔대요. 의지의 한국인이죠. 미국이나 캐나다 가면 북한에서 왔다고 차별 안받죠. 당분간은 편해요. 그런데 조금 살아보면 또 힘들어요. 스위스에 30년 살아도 스위스 사람이 아니고, 한국 돌아오면 한국 사람도 아니고 영원한 이방인이예요. 작년 여름부터 넉달간 해외 다녀왔는데 교민의 심리가 불안해요. 문화가 다르니까 심리가 불안하고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요.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믿을 건 돈밖에 없어요. 그러니 물건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그렇다고 고향에 산다고 다 좋냐면 그것도 아니예요. 고향은 안온한 반면 감옥이예요. 온갖 잔소리하는 사람이 많아요. 타향에 가면 자유로운 반면 외로워요. 그래서 한국에서 외국 가면 처음엔 좋은데 좀 있으면 외로워지고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구속하는 게 많아서 또 외국으로 가게 됩니다. 절대적 빈곤은 부족한 것을 채우면 해결되는데, 마음의 행복은 환경이 바뀐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 다른 차원의 공부를 해야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새터민들의 이해를 돕고 편안하게 질문할 수 있도록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스님의 설명 후 바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질문자들은 모두 젊은 여성이었는데, 씩씩하고 진솔하게 어려움을 털어놓았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3살 난 딸을 가진 엄마로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데, 시부모님은 딸이 6살이나 7살 될 때까지 하지 말라고 합니다. 고부간에 갈등 없이 하고 싶은 것 하며, 편하게 사는 법은 없을까요?”nbspnbspnbspnbspnbspnbspnbsp“사람은 입장에 따라 생각이 조금씩 달라요 그래서 고부간이나 부부간에 갈등이 없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러나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갈등이 적어져요. 내 생각대로 하면 갈등이 없을 수는nbspnbsp없습니다. 직장을 못 다녀서 좀 불만인 것 같은데, 요즘 결혼해서 집에 있어도 되는 집은 열 집에 한 집도 안돼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애를 키우고 싶어도 직장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는 직장을 못나가서 걱정이네요. nbspnbspnbspnbspnbsp아이는 세 살 때까지는 엄마가 돌봐야 해요. 요즘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면 학대한다는 말이 많죠. 엄마도 자기 자식이 말 안들으면 때리죠. 그런데 결혼도 안한 선생님이 아이들 9명씩이나 키우면nbspnbsp실제 제대로 키우기 어렵고, 그런 곳에서 받는 심리적 상처가 큽니다. 어릴 때 받은 상처는 치유할 수 없어요. 그래서 3살 때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해요.‘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이 얘기 들어봤죠?nbspnbspnbspnbspnbsp모든 어린 아이는 엄마로부터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엄마가 그 책임을 안 지려면 아기를 안 낳아야 해요. 대부분 한국의 직장 다니는 여성은 그렇게 할 조건이 안돼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국가가 엄마들이 아이를 키울수 있도록 유급휴가를 줘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의 불안한 심리에서 오는 정신질환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 대학생들 20가 정신질환이예요. 엄마가 아이가nbspnbsp어릴 때는 안 돌보고, 아이가 다 성장해서 과잉보호를 하기 때문에 그래요. nbspnbspnbspnbspnbsp최소 3살 때까지는 엄마가 직접 키우고,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도 키우면 좋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녜요. 4살 때부터는 떨어져도 상처가 덜 해요. 초등학생때는 70정도 돌보고, 중학생은 50, 고등학생은 30 돌보고, 대학 들어가면 집에서 쫓아내야 해요. 이게 제일 건강한 방식이예요. 이게 잘 안되어 문제가 많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질문자는 시집을 굉장히 잘 갔어요. 다들 돈 벌어 오라고 내보내는데, 이런 질문은 한국에서 처음 받아봤어요. 그래서 감사기도를 해야 합니다. 1년 후에 엄마가 직장 다니고 싶으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 돼요. 초등학교 보내고 나면 직장 다녀도 됩니다. 한국 사람은 거꾸로 해요. 어릴 때는 남한테 맡겨 놓고, 아이가 커서 문제 생기면 직장 그만두고 돌본다고 아이랑 매일 싸워요. 나중에 자식 돌본다고 애쓰지 말고 지금 잘 돌보고 나중에 일하세요. 시어머니가 직장가지 말고 아이나 돌봐라고 하면 ‘아이고 어머니 감사해요. 놀기가 미안해서 그랬는데 봐주시니까nbspnbsp정말 고맙습니다’하면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두번째 질문자는 중국인과 결혼해 17살, 13살, 3살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남편과 큰 아이 둘이 중국에 있는데 이중국적자입니다. 둘째 아이가 비자 없이 중국을 가는 바람에, 엄마를 보고 싶어 도 한국에 돌아오지 못해 속이 탄다고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은 여러 차례 질문을 주고받으신 후에 두 개의 국적 중 하나를 포기하고 교통정리 하던가, 두 쪽 다 살려놓고 양다리 걸치는 방법이 있는데, 전문적인 것은 좋은벗들과 얘기해서 국적관련 변호사에게 상담해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세 번재 질문자는 한국에 온지 7년 된 여성으로 “한국에 와서 북한의 가족들과 연락이 닿았는데, 가족들이 계속 돈을 보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보내줬는데, 계속 돈을 요구하니까 부담스럽고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nbspnbsp nbspnbspnbspnbspnbsp“계속 좀더 보내줘야죠. 질문자도 북쪽에 살아봤잖아요. 그곳이 얼마나 살기 어렵고 돈이 필요한지. 사람들의 심리라는 것이 초창기에는 한달에 100불만 있어도 살만하잖아요. 그런데 200불, 300불 점점 더 많이 보내면 북쪽 가족들은 거기에 맞춰서 소비를 하게 되요. 거기서는 한국에는 돈이 공짜로 생기는 줄 알아요. nbspnbspnbspnbspnbsp처음에 길을 잘못 들인거예요. 여기도 살기 어렵다고 100불만 보내줬으면 부담이 안되는데, 질문자 얘기 들어보니 가족들에게 마음이 많이 아파서 왕창 보내준거 같네요. 그렇게 돈 받아서 목에 힘주고 주위에 자랑하고 살아왔는데 지금 새삼스럽게 줄이려니까 어렵죠. 아무리 돈 없다고 해도 북쪽 가족들은 안 믿을거예요.nbspnbspnbspnbspnbsp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적절한 금액을 정해서 더 달라고 해도 정기적으로 그 금액만 보내는 방법이 있고, 두 번째, 6개월 정도 연락 안하고 끊었다가 그 다음에 100불 정도 주면 굉장히 고맙게 여겨요. 형편이 되면 좀더 주면 좋아요. 형편이 안 되면 고민할 필요 없이 형편되는 만큼만 주면 됩니다. 그것으로 가슴 아파하면 죽을 때까지 가족에 매어 살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내가 낳은 자식을 돌보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예요. 어린 자식이 북한에 있어서 돌보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지만 그것도 20살이 넘으면 안 도와줘도 돼요. 가족을 적당히 도와주는 건 좋은데, 부담이 되면 도와주지 않아도 됩니다.”라며 스님께서 방법을 알려주니 질문자는 마음으로 결정했는지 ‘감사합니다’고 인사를 하면서 앉았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네번째 질문자는 한족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지 2년 되었고 5살 얘기가 있는 여성으로 “남편은 한국말도 모르고 적응을 못해 직장생활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을 하고 있는데, 일을 나가면 남편이 불안해하며 전화를 자주 합니다. 그렇게 1년을 살았는데 배려조차 없어서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이혼을 안해 주어 좋은벗들에서 변호사 소개받아 이혼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집을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아, 제가 아이를 데리고 1달 반 동안 나와서 생활하다 어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질문자가 북쪽에서 중국으로 갔을 때는 그 사람이 유리한 조건이었고 내가 불리했잖아요. 그는 자기 나라 말도 되고 직장도 구할 수 있고, 그가 유리할 때는 자신감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질문자가 유리해지고, 남편은 말도 안 통하고 불리해진거예요. 그러니 남자로서 열등의식이 생기는 거예요. nbspnbspnbspnbspnbsp중국에 있을 때는 남편 처지에서 결혼하기 어려웠는데, 질문자가 북쪽에서 와서 갈 곳이 없으니nbspnbsp쉽게 결혼할 수 있었어요. 이런 결혼생활이 중국에서는 유지가 되었지만, 다른 나라에 오면 북쪽에서 온 여자가 중국의 남편보다는 수준이 높아요. 북한에서 오는 여성은 주로 배우고 똑똑한 데, 중국에서 북한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는 중국내에서도 좀 모자라는 남자가 대부분입니다. 서로 격이 좀 안 맞아요. 그러니 한국에 와서는 남편이 질문자에게 잘 해줘도 데리고 살까 말까한 거죠. 그러니 남자는 자존심이 상해서 자꾸 어긋나는 거예요. 남편을 이해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지금 이 사람을 쫓아내면 당장 살기는 좋지만, 아이 아빠잖아요. 나중에 아이한테 할 말이 없어져요.‘내 어려울 때 당신 만나서 참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하고 감사기도를 하세요. 이혼신청 한 것은 그대로 진행하고, 그러나 아침마다 늘 감사기도를 하고 잘 해줘야 합니다. 빚 갚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처음 중국에 와서 어려울 때 그 사람이 도와줬잖아요. 그러니 조건을 따지지 말고 남편이 2년간 아무것도 안해도, 밥을 해 먹인다는 마음으로 빚을 다 갚아야 후회가 없어요. 그래야 나중에 아이한테도 죄의식이 안 들어요. 자꾸 고맙다고 해야 아이가 나중에 물어도 할 말이 있어요.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 아이가 자긍심이 없어져요. 그러면 아이가 나빠지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 사람도 얼마나 힘들겠어요? 보살펴주는 게 필요해요. 그 사람도 나빠서 그런 게 아니예요. 불안해서 그런거예요. 아이 아빠라는 이유만으로라도 잘 해 줄 이유가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이혼소송은 그대로 진행하고 남편이 비자 연장해달라고 하면 ‘예 알았어요’ 하면 돼요.nbspnbsp나중에 비자 연장할 때가 되어서 남편 하는 것을 보고 결정하면 됩니다. 잘 해주되 냉정해야 합니다. 도망다니면서 남편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꼭 기도를 해야 합니다.‘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어요’하면서 남편을 잘 보살펴 주세요. 옛날 도움 받았던 생각을 하면서 남편에게 고맙다고 기도해야 내 맘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어요.”라며 스님께서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다섯 번째 질문자는 북한 남편과 9개월 아이가 있는 25세 주부입니다. 임신 중인데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아 너무 힘들다고 했습니다. 남한 남자는 집안 일을 도와주는데, 어떻게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질문자는 지금 미국 남자하고 결혼해 놓고‘왜 한국말 못하느냐?’하는 것과 같아요. 그 남자 문제가 아니예요. 남편이 안 도와준다고 자꾸 미워하면, 남편은 안 바뀌고 아내는 심리가 불안해서 나중에 아이가 우울증에 걸려요. 그러니까 항상 고맙게 생각해야 해요. 그래야 내 심리가 안정이 돼요. 그래도 오늘 안 죽고 들어왔잖아요. 엄마 심리가 편안해야 아이가 정신적으로 안정이 돼요. nbspnbspnbspnbspnbsp남편에게 도와달라는 것을 포기해야 해요. 남편이 다른 좋은 점도 있잖아요? 좋은 점을 찾아서 고마워 해야 해요. 남편이 바뀌려면 30년쯤 지나야 해요. 남자는 자기가 여자 말을 들으면 진다고 생각해요. 머리로는 도와줘야 된다고 생각해도 행동은 잘 안돼요. 제가 북한 남자들에게 물어봤더니 도와줄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부끄러워서 못 도와준다고 해요. 그래서 남이 볼까봐 아무도 없을 때 조금 도와주고 그런다고 합니다. 우리 어릴 때 시골에서도 그랬어요. 공처가라고 소문날까봐 잘 못 도와줬어요. 그러니까 가사 일에 대한 남편 도움은 포기해야 돼요. nbspnbspnbspnbspnbsp지금 남편을 바꾸려면 질문자가 이야기해서는 안바껴요. ‘깨달음의장’수련에 가면 남자들이 조금 바껴요.”nbspnbspnbspnbspnbspnbsp마지막 질문자는 “남편은 북한사람으로 한국에 온지 10년 된 30대 중반입니다. 남편은 밥도 잘 하고 집안 일 잘합니다. 남편과 갈등이 생길 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려고 하는데, 그게 실제로는 잘 안되고 화를 억눌려서 분노로 표출됩니다. 그리고 스님의 책을 읽고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고 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해가 있어야 해요. 그러면 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성적으로는 되는데 무의식적으로는 화가 팍 올라와요. 이때는 참지 말고‘또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내가 내 관점에 집착하는구나’ 하며 그 상태를 자각하는 거예요. 참회를 한다는 것은 내가 잘못 했고 네가 잘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잘잘못이 없고 각자 다르기만 할 뿐인데, 내가 옳고 상대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참회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자각을 하면 당장 해결은 안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화나는 것이 약해져요. 참으면 나중에 폭발합니다. 참으면 세상에서는 좋은 거지만 수행은 아닙니다. 참지 말고‘내가 내 기준에 사로 잡혀있구나’하고 자각해야 합니다.‘화내면 안돼’라고 하지 말고,‘화가 나네’라고 자각합니다. 그러면 점점 옅어지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답을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부부가 싸우면 아이가 왜 불안증이 되냐면, 엄마가 아빠를 욕하면 아이한테는 엄마 말이니까 아빠가 진짜 나쁜 사람이 되고, 아이는 나쁜 사람의 아이가 되어 자긍심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아빠가 나쁜 사람이 아니면 엄마가 거짓말을 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아이가 정신분열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아이를 더 사랑하는 엄마가 희생을 할 수 밖에 없어요. 남편이 뭐라 하면 ‘네 알겠습니다. 네네’해야 해요. 남자에게 숙이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 엄마로서 아이 아빠에게 숙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행복하게 살면 애는 저절로 행복해지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25개월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두었다고 하는데,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경우는 끝나자 마자 애를 보살피고, 애한테 미안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항상 애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새기고 있어야 합니다. 애기는 엄마로부터 첫 번째가 되기를 원할까요?. 동생한테 밀려나도 화가 나는데 돈 때문에 밀려나면 아이한테 사랑고파병이 생깁니다. 잠시 맡기고 금방 돌아오는 마음으로 갔다 오면 심리가 안정이 됩니다. 36개월까지는 그렇게 하세요”nbspnbspnbsp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 길을 알려주시고는 참가한 청중들에게 “재밌었어요?” 하니까 청중들은 일제히 “네”하고 대답합니다. “어려웠어요?” 하니까 “아니요”라고 대답합니다. 이어서 스님은‘한국에서 사는 게 힘들고 힘들다보면 마음 깊이 무의식에 상처가 생긴다’면서 그림으로 심리치료를 하는 마그마 힐링 프로그램에 꼭 참석하시라고 다음 프로그램 소개하십니다.nbspnbsp 4시 30분에 즉문즉설을 마치고 단체사진 촬영이 있었습니다. 새터민 중의 상당수는 단체사진 촬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외부로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동안의 상처로 인해 꺼려지기 때문입니다. 단체사진 촬영 후에는 스님과 함께 삼삼오오 자유롭게 사진촬영이 이어졌습니다. 어떤 분은 스님의 책을 준비해 와 사인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새터민 즉문즉설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새터민들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졌고, 봉사자들의 마음은 감동으로 물결칩니다. 앞으로 많은 새터민들이 스님의 가르침을 받기를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6시 평화재단에서 여영학 변호사님과 만남을 가진 후 다시 7시 저녁예불과 송코 탈란딕 부족의 놀이 한마당에서 인사말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저녁 7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에서 “갈등의 한국사회, 사회통합을 향한 길”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의 6주차에 접어들면서 수강생들은 한층 더 편안하고 밝은 분위속에서 강의에 집중하였습니다. 강연 시작에 앞서 스님께서 사회통합과 관련해서 수강생 10여명에게 자신의 생각 또는 질문을 먼저 받았습니다. 수강생들의 질문을 통해 사회통합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알 수 있었으며, 다양한 문제의식들이 녹아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 수강생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강의를 시작하였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럼 먼저 수강생의 질문을 소개합니다. “우리사회에는 노사갈등, 빈부격차,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간의 갈등 등 다양한 갈등 있으며, 원인은 정의감 상실때문이라고 봅니다. 정의가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정의에 따라 살면 내가 손해 본다는 생각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개인이 희생하더라도 정의를 지키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고, 우리부터라도 나와 다른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아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서로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님 의견은 어떠십니까?”nbspnbspnbspnbspnbsp“그럼‘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해봅시다. 정의는 보편적 가치에 토대를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 기독교, 유교, 자본주의, 공산주의 등의 가치는 특정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집단 등에 제한되므로 특수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보편적 가치란 나라가 다르거나 종교가 달라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즉 인류보편적 가치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면 안 된다.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는 것은 안 된다. 상대방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면 안 된다. 말로 남을 속이는 것은 안 된다. 술을 마시고 취해서 남에게 주정하면 안 된다.’와 같은 내용은 누구나 다 수용할 수 있고, 누구나 들어서 합당한 것으로 이러한 것들이 보편적 가치에 해당합니다. 정의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에, 일정한 합의가 가능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 그럼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때 그 기초를 무엇으로 둬야 할까요? 자연현상, 즉 생태윤리를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자연 현상에는 없지만 인간의 행위가 좋아 보이면 그건 선이라고 말할 수 있고, 자연 현상에는 있는데 인간의 행위가 그 만큼 못 미칠 때, 즉 짐승보다도 못하다고 하면 그건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짐승은 새끼를 놓으면 종족보존의 본능이 있어 어미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새끼를 보호합니다. 이것이 자연현상입니다. 하지만 엄마들 중 아이를 낳고 직장을 다닌다고 돌보지 않거나, 자식을 유기한다거나 하면 이는 자연현상에 어긋나기 때문에 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짐승은 어미가 늙었다고 돌봐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식이 늙은 부모를 돌보는 것은 선행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고 악한 것은 아닙니다. 이를 악행으로 보는 것은 유교윤리에 의한 것입니다. 또 짐승들은 색깔과 모양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피부색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는 것은 자연현상과 맞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말해왔던 정의 중에는 특수상황을 일반화시킨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정의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정의가 우리사회의 보편성을 가지려면 이렇게 생태원리를 기초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럼 갈등을 해결하고 통합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진실에 근접해서 문제를 바라봐야 합니다. 둘째,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무의식은 항상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에 있는 사람과는 다르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에 갈등하지 않지만, 부부끼리는 자기 기준에서 서로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갈등하는 겁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대화를 하면 서로 합의해서 절충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예를 들어 A는 빨간색 안경, B는 파란색 안경을 꼈어요. 흰 벽면을 보면서 A는 빨갛다고 하고, B는 파랗다라고 서로 주장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이 문제는 자기 안경을 벗으면 쉽게 문제가 해결됩니다. 즉 진실에 근접하면 갈등이 해소되는 것입니다. 설령 진실에 근접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갈등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르게 보이는 구나, 진실은 뭘까’이렇게 규명의 자세가 되거나, 최소한 서로 안경이 다르니까 달리 보이는구나라고 인정하면 갈등이 해소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 갈등을 해결할 때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힘에 밀려 양보하면 비굴하게 됩니다. 즉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의식구조상 복종하면 그 힘의 역학관계가 역전되었을 때 다시 저항이 일어나면서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오히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포용해서 통합하면 부작용이 없고 통합의 시너지가 납니다. 신라는 힘이 약하고 관계가 좋지 않았던 가야를 포용해서 통합했습니다. 통합 후 신라의 국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이 힘으로 삼국을 통일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통합의 시너지 효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신라가 삼국 통일할 때는 백제와 고구려를 침공해서 힘으로 눌러서 통합했습니다. 그러자 200년이 지나 신라가 힘이 약해지니 후고구려, 후백제가 일어나면서 분열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의 남북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힘의 우세에 있는 남한이 약세에 있는 북한을 포용하면서 통합할 때 남북통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확대할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우리사회 갈등의 근본원인은 남북갈등입니다. 하지만 해결책은 남남갈등에서 풀어야 합니다. 남북문제는 남한에 있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풀어야 하는데 남한안에서 생각이 일치 하지 않으면 풀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한내 사회통합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민통합이 되려면 강자가 먼저 양보해 주고, 약자도 자기 요구를 100 해결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타협이 필요합니다. 대표적으로 세월호를 봅시다. 세월호 진실 규명이 지금 가장 큰 이슈입니다. 유가족들은 진실규명을 요구하지만 진실을 밝히지 않겠다는 세력의 힘이 더 강하니까 안 풀리는 것입니다.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들보다 힘을 더 키워서 밝히든지, 아니면 진실 규명을 80만 밝히고 나머지 20는 유보했다가 다음 정권에서 밝히는 차선책을 선택하든지 해야 합니다. 100 요구하며 상대에게 저항할 수는 있으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분노한다고 해결이 안됩니다.nbspnbspnbspnbspnbsp남북 갈등을 해결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의 통합을 하나의 큰 가치로 봐야 합니다. 남한에 사는 사람이 지금 남북갈등으로 남북 모두에게 손해가 되고 오히려 다른 엉뚱한 쪽에서 이익을 본다는 것을 알고,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북한을 포용하는 게 낫다고 자각한다면 남한이 양보해서 통합이 가능합니다. 남북문제는 동북아시아의 공동체를 구성하면서 우리가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라는 것까지 내다보면 당장 풀어질 수 있는 문제인데, 미래를 보지 않고 과거를 보니 해결되지 않습니다. 분단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다른 사회갈등도 해소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회갈등이 첨예하더라도 우리가 미래의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입장을 가지면 금방 타협점이 나옵니다. 산업화의 성과도, 민주화의 성과도 인정해주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음 과제인 남북통일, 복지사회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하는 이런 미래지향적 관점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수강생 10명의 질문에 대한 해법을 최대한 담아서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셨습니다. 사회통합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갈등의 원인, 어떻게 갈등을 풀어갈 것인가 등 다양한 모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평화리더십아카데미에 참여한 수강생들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전문가 집단인 만큼 스님의 말씀이 보다 더 책임감있게 와 닿았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
2015.4.29. 송코 탈란딕부족과 차담, 안양 희망강연
nbsp nbsp 오늘 아침 새벽예불과 발우공양을 대중들과 함께 하신 스님께서는 몇가지 생활상의 고쳐야 할 점들을 점검해주셨습니다. nbsp “기도할 때 물병을 지참하는 사림이 있는데, 환자라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수행자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명상할 때도 물병은 밖에 놔두고 휴식시간에 마시고 들어오듯이 예불시간에 목이 마르면 참아야 하고 기도시간에 목이 마르면 뒤에 배치해놓고 나가서 마시고 오든지 해야합니다. 그리고 법회 시간에도 물을 옆에 놔두고 마시는데 그러지 않는게 좋겠습니다.”라며 우리가 별 의미없이 놓치고 있는 것을 지적해주셨습니다. nbsp nbsp 또, 소심경 염불곡조가 좀 늘어지는 부분을 다시 지적해 주시면서 곡조 전체가 늦어지거나 빨라지는 것은 괜찮지만, 어느 한부분이 늘어지는 것은 유의해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nbsp 계율과 관련해서는 지난번에 얘기가 나왔던 저녁예불에 대해서 시간변경이나 장소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를 물으시면서 “저녁예불을 아예 6시로 옮기면 어떤지? 저녁 7시가 어중간하니까 자꾸 빠지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저녁예불을 6시에 하거나 6시 30분에 하든지 해서 자기가 조금 노력하면 모두가 예불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만약 6시에 예불을 한다면 스님이 일정을 6시에 잡더라도 약속시간은 6시 15분으로 알아들으면 됩니다.”라며 이미 계율로 정해진 것은 꼭 지켜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해주셨습니다. nbsp 발우공양후에 스님께서는 송코 탈란딕 부족과 짧은 만남을 가지셨습니다. 한국에 와서 다니는 동안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nbsp nbsp 탈란딕 부족은 “한국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어떤 종교가 있었는지, 한국은 몇 개 부족으로 되어 있고, 사용하는 언어는 몇 개인지, 북한과는 언어가 같은지? 한국 아이들이 춤추는 것은 못봤는데 춤도 추는지?”등에 한국의 문화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면서 스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각각의 질문에 대해 답을 해주셨습니다. nbsp “우리 전통신앙에는 하느님이 있고,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천왕이 땅으로 내려와 6000년전 이 땅에 새로운 나라인 ‘신시’를 세웠어요. 환웅이 인간인 웅녀과 결혼해서 태어난 아들인 단군왕검이 4300년 전 조선을 세운 첫 왕이 되었어요.”하시면서 전통신앙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씀해주시면서 단기, 서기, 불기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해주셨습니다. 또 “한국에는 다른 민속신앙들도 있었는데 불교가 들어오면서 민속신앙을 수용했기 때문에 절에 가면 불상이 있는 큰 법당 뒤에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 일곱별신을 모시는 칠성각들도 있다”고 덧붙여주셨습니다. nbsp nbsp 탈란딕 부족들은 한국이 1개의 민족, 1개의 언어, 1개의 글을 쓴다고 하니 놀라워 했고 특히 북한과도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를 쓴다는 말에 더욱 더 놀라워 했습니다. 필리핀은 여러 부족들이 있고 각 부족별로 각자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1개의 민족, 언어, 문화를 가진 한국이 신기했나 봅니다. nbsp 스님께서는 탈란딕 부족과 이야기 하시면서 이 분들에게 한국의 전통적인 것, 전통옷, 전통가옥, 전통신앙, 전통의학등을을 더 보여주도록 제안하셨습니다. 내일 서초법당에서 탈란딕 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때 전통악기도 연주하고 또 한복을 입고 와서 우리의 전통 옷을 보여주도록 제안하시기도 하셨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스님께서는 다니는 동안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한국의 음식도 사먹으라고 용돈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용돈을 주는 가운데, 한 꼬마가 늦게 와서 사람들이 용돈을 못 받을거라고 놀려서 서러워하는 표정이 무척이나 재밌고 귀여웠습니다. nbsp 탈란딕 부족과의 차담이후 스님께서는 정토회관 집무실에서 원고교정업무등을 보시면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nbsp nbsp 오후 5시에는 네팔 지진 피해 지역 지원을 준비하고 있는 JTS와 현안문제들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진 후 바로 강연이 있는 안양 아트센터로 향하셨습니다. nbsp 오늘 안양 아트센터에서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과 JTS후원의 밤 필리핀 민다나오 송코마을 원주민 초청공연이 함께 있었습니다. 오전부터 비가 와서 대중들이 강연장 오기 불편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강연이 시작될 즈음 비가 그쳤습니다. 대중들은 6시부터 입장이 가능함에도 오랫만에 안양을 찾은 스님을 뵙기 위해서 일찍 감치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nbsp nbsp 정토회 불교대학생들의 기타 공연으로 대중들은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으며, 강연장 로비에 배치된 JTS 홍보사진과 영상은 강연 기다리는 분들에게 풍부한 볼거리를 주었습니다. 강연장에 조금 일찍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책 사인을 먼저 하신 후에 강연장 주변을 돌아보시며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강연이 시작되고 JTS 활동영상과 민다나오 소개 영상을 본 후 스님께서는 대중들의 박수와 환영을 받으시면서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nbsp nbsp “오늘 비가 와서 우중충한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서 봄꽃을 더 많이 구경했는데, 벚꽃이 피자마자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꽃을 오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봄날 꽃구경도 좋은데 더 좋은 것은 말랑말랑한 흙을 밟고 농촌에서 일하는 것이예요.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는 일은 상쾌하고 기분 좋은 일이며 노는 것과 비교가 안되는 일입니다.”라고 하시면서 또, 스님께서는 즉문즉설로 들어가기 전에 오늘 강의 취지와 함께 정토회 산하 기관인 JTS 활동이 왜 필요하신지에 대해 말씀해주시며, 오늘 초청된 필리핀 민다나오 송코마을 딸랑딕 원주민들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해주셨습니다. nbsp “이 세상의 문제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어요. 첫째는 먹고 살기 어려워서 힘든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인류의 20가 절대 빈곤선상에 있습니다. 절대 빈곤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만 잘 먹어라, 그럼 행복하다’이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절대빈곤에 있는 사람은 짐승보다 못하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영양실조 걸리거나 배고파 죽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절대빈곤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이든 다른 나라 사람이든, 내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내 부모든 남의 부모든, 내 종교든 남의 종교든 관계없이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병든 사람은 치료받아야 하고, 어린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합니다. nbsp nbsp nbsp 이것은 이념, 사상, 종교를 초월해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권리이므로, 우리는 배고픈 사람, 병든 사람, 못 배운 사람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인도적 지원은 북한 사람이라도 도와야 하고, 무슬림이라도 도와야 합니다. 설령 적이라 하더라도 지원을 해야 됩니다. nbsp 두번째, 먹고 살만 한데 괴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부부간에, 또 부모자식간에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싸우고 괴롭다고 합니다. 혼자 살때는 외롭다고 하고, 둘이 살때는 귀찮아합니다. 그리고 종교가 다르다고 싸우고, 나라가 다르다고 싸웁니다. 또 밥을 너무 먹고 비만에 걸려 걱정합니다. 이런 사람은 치료법이 없습니다. 본인이 적게 먹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영양실조 퇴치는 돈이 조금 들지만 비만 퇴치는 돈이 엄청나게 듭니다. 이것은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해결책도 없습니다. nbsp nbsp 사실 배부른 병은 치료법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 치료법을 연구하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원래 배부른 사람이었어요. 배는 불렀지만 마음은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왜 마음이 괴로운가 연구했습니다. 오랜 연구 끝에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새로운 길은 특정한 종교나 민족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배부른 사람이 생긴 병, 즉 인간관계의 갈등, 외로움 등은 붓다의 가르침속에서 해결할 길이 있습니다. nbsp 오늘 이 자리에는 이 시대의 두 가지 문제를 모두 나눕니다. 하나는 배는 부른데 괴로운 여러분을 위해서 붓다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다른 하나는 강의 후 필리핀 민다나오 원주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들은 배고픈 사람들로서 분쟁지역에서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nbsp nbsp 필리핀은 과거 스페인의 침략과 미국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되면서 원주민들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살고 있는데, 원주민들 중 일부는 공산 반군을 조직해서 저항하기도 하고, 무슬림은 자기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 저항하다 보니 민다나오가 분쟁지역이 되었습니다. nbsp JTS는 분쟁지역에 가서 원주민 마을과 무슬림 마을에 학교를 짓고, 그들의 어려움을 도와줌으로서 그들의 저항심을 누그려 뜨려 평화를 정착시키는 평화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부족중에 자기 전통문화를 지키는 부족이 있습니다. 전통문화를 지킨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한국에서도 불교를 제외하면 모두 전통문화를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nbsp nbsp 가난한 원주민들은 옷과 식량을 얻기 위해서 전통을 버리기도 하는데 오늘 여러분들에게 소개해줄 탈란딕 원주민들은 가난하지만 전통문화를 지키고 보존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아이들에게 전통을 계승할 수 있는 평화의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들을 특별히 초청해서 이 부족들의 전통 옷과 연주, 노래, 춤을 여러분들께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세계화라는 추세속에서 수없이 많은 소수민족의 문화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상의 소수민족의 전통을 보존하는 것도 우리 인류문화 유산을 보존하는 중요한 일 입니다. 우리는 산업화 과정에서 전통 문화를 많이 잃어서 정체성마저 잃고 있는데, 이들이 우리와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전통문화를 잘 지켜갈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nbsp nbsp 그럼 오늘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배부른 병은 즉문즉설로 치료를 하고, 가난한 삶들이 겪고 있는 배고픈 병은 여러분들이 기부를 통해서 치유해주시길 바랍니다.” nbsp 강의 서두에 우리 인류의 주요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기다렸던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nbsp 총 6명이 질문하였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교포인데 불교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한 달간 한국에 와 계신다는 분, 임신중인데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갈구한다는 분, 24세 아들의 음주운전과 도박으로 힘들어 하는 어머니,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지방을 왔다 갔다 해보니 힘들던데 스님은 어떻게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시는지 궁금해 하는 분, 10살때부터 오빠에게 맞았으며 중 3때 아빠가 자살하는 것을 목격하고 현재 일상생활이 힘들다고 하는 분까지, 살면서 힘들고 풀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스님과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해법을 찾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nbsp 오늘은 음주운전과 도박하는 아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어머니와의 대화를 소개하겠습니다. nbsp “스님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24살 된 아들이 있는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더니 지금은 음주운전에 도박까지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작년 7월 대부업체에 4천 5백만원의 빚까지 졌습니다. 지금은 도박전문 상담센터에서 상담하며 치유하고 있지만, 가족들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최근 횟수만 줄였을 뿐 아직도 도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딸에게 들었고, 딸은 동생을 집에서 내보내자고까지 합니다. 도박은 중독성이 강해서 끊기가 힘들고 평생 당뇨병 환자처럼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현재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연히 접한 스님 책을 읽고 법문 영상을 보며 엄마인 저에게 잘못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25년 결혼생활을 되돌아 보니 엄마로서 중요한 역할을 못해 준 것 같아 내 자신이 안타깝고 원망스럽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면 아들이 도박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보고 싶습니다. 스님, 제가 어떻게 하면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nbsp nbsp “엄마로서 참 가슴 아프겠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스무살 넘었어요? 안 넘었어요? 스무살 넘었으면 엄마로서 자식에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nbsp “옆에서 지켜보니 너무 고통스럽고 힘듭니다. 매일 술먹고 늦게 들어오고 안하던 행동을 해서 아들이 공포스럽습니다.” nbsp “이 세상에 도박하고 술 먹는 사람이 한 두명도 아니에요. 아들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다른 곳에 가서 한번 찾아보세요. 교회 가서 기도하면 낫는다, 절에 가서 기도하면 낫는다, 굿하면 낫는다 이런 방법이 있어요. 거기 가면 낫는데 돈이 많이 들어요. 저는 아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몰라요.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나는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남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누구라도 남을 고치려고 하면 대부분 실패합니다.” nbsp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스님?” nbsp nbsp “그런 아들을 바꾸지 않고도 내가 행복하게 살 것인가? 그런 아들 때문에 나는 괴롭게 살 것인가? 이건 질문자의 선택입니다. 선택은 두가지이니 여기서 선택하세요. 아들을 고쳐서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제가 능력이 없어서 몰라요. 내가 그럴 정도로 능력이 있으면 꼭 고치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능력이 없어서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고치고 싶은 분들은 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한 다른사람에게 피해가 엄청납니다. 아들 도박해서 4천만원 빚지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수준이예요. 수천 수만배의 피해가 오는데도 못 고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사람을 고쳐줄 수 있으면 그런 사람 먼저 고쳐야지 왜 아들부터 고치겠어요. 나는 누구한테 부탁하면 고쳐진다는 말 잘 안믿습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아들을 두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겁니다. 그렇다고 아들의 병을 포기하기보다 고치는 노력을 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행복하면서 고치는 노력을 하면, 아들이 고쳐져도 그만, 안 고쳐도 그만입니다. 그런데 괴로워 하면서 고치면 안 고쳐질 확률이 높으니 평생 괴로워하다가 죽어야 합니다. 아들이 도박을 안 하면 좋지만은 하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nbsp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nbsp nbsp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닭도 새끼를 낳으면 병아리를 돌보잖아요? 강아지도 돌보죠? 그런데 영원히 돌봅니까? 어릴때만 돌봅니다. 사람은 언제까지 돌봐야 됩니까? 원시시대는 12살까지, 농경시대는 15살까지, 지금의 이 시대는 교육 기간이 길어져서 만 18살때까지 즉한국 나이로 20살때까지 자식을 최대로 돌볼 수 있는 부모의 임무예요. 이 이상은 안 돌봐도 죄가 안됩니다. 그 이상 돌보고 싶다고 하면 사랑이 아니라 내 집착입니다. 그러니 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나하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과거에 내 아들이었고, 지금은 독립된 남이예요. 아침마다 일어나‘저 사람은 남입니다’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들이 어떻게 하던지 상관이 없습니다. 남이기 때문에 집에서 내보내도 되고, 놔둬도 되지만 아들 일에 일체 관여를 안해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nbsp “그렇게 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nbsp “그게 안되면 그럼 죽을 때까지 괴롭게 살아야죠. 빌린 돈을 갚아준다고 해서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안 갚아 준다고 해서 고쳐지는 것도 아니예요. 도박은 중독이기 때문에 갚아주면 다음에 또 갚아줘야 합니다. 능력 있으면 갚아주고 능력이 없으면 내 일 끝났다 생각하고 거기에 관여하지 마세요. 아들의 도박 중독을 먼저 끊으려고 하기 보다 내가 아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집착의 중독을 먼저 끊으세요. 내 중독이 끊어지면 아들 중독도 끊어집니다. ‘그러면 아들이 아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nbsp nbsp “알겠습니다. 아들을 보고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nbsp “아들을 보면서 어떻게 어미가 고통스럽지가 않아요? 아들이 아니라니까요. ‘부처님, 저사람은 내 아들이 아닙니다. 남입니다.’이렇게 기도 하시라니까요. ‘아들 아닌데 내가 착각했구나, 내가 미쳤지, 헛것이 보이네’ 이렇게 자기를 돌아보며 아들에 대한 중독성을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잘 안되고 어려워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집착을 끊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어렵다는 것을 알고 해야 계속 꾸준히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나도 살고 아들도 살고 내 가족이 삽니다. 어릴때는 돌봐주는게 사랑이고, 지금은 집착을 끊어 주는게 사랑입니다. 이게 진짜 아들을 위한 사랑입니다. 강원랜드 가면 도박하는 사람이 많죠. 그들이 도박을 하던 안하던 내가 상관없잖아요. 그것처럼 아들에 대해 아무 상관을 안해야 합니다. 핵심은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다입니다. 이건 스님이 정한게 아니고 원래 그런 것입니다.” nbsp “부처님, 아들이 아니고 남입니다” nbsp nbsp 처음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질문하던 질문자가 마지막에는 경쾌하고 밝은 목소리로 스님께 답을 하는 것을 보니 듣고 있는 청중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청중들은 우렁찬 박수로 위로와 격려해 주었습니다. nbsp 6명의 질문과 답변이 모두 끝난 후 스님께서 강연 처음에 소개해줬던 민다나오 원주민의 민속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연을 들으니 울창한 숲속에 사는 동물들과 나무들의 노래소리, 사람과 자연이 어울러져서 살아가는 모습이 그림처럼 상상되었습니다. 청중들도 함께 즐길 수 있었던 공연을 마친 후 스님께서 강연장 로비에서 다시 책사인회를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스님을 가까이서 뵙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며 스님의 사인을 받아갔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으시고 지역을 한번씩 더 챙겨서 불러주셨습니다. nbsp nbsp 오늘도 좋은 법문을 들려주신 스승님께 봉사자들은 힘찬 박수로 보답했습니다. nbsp
2015.4.27. 구미, 부산 희망세상만들기 강연
nbsp nbsp 어제 필리핀 송코 탈란딕 부족 사람들이 두북수련원에서 1박을 하면서 이원주 필리핀 대표님도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새벽기도를 하신 후 이원주 회장님 부부와 아침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송코팀 미키타이 추장님에게 두북수련원이 스님께서 다니시던 초등학교라고 소개하시면서 스님께서 초등학교를 다닐때는 차도 다니지 않고 전기도 없어서 지금의 송코마을과 비슷했다며 서로 공감을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지금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했지만 한국적인 전통들이 많이 사라지고 없다고 안타까워 하시면서 수련원 여기 저기를 안내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송코 탈란딕 팀을 대표해서 미키타이 추장님께서는 스님께 초청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송코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든 북, 동물소리 내는 작은 악기, 흙 그림, 직접 따서 볶은 커피 등을 선물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아침 구미 강연이 있어서 구미로 출발하고 송코 탈란딕 팀은 울산 현대중공업으로 출발했습니다. nbsp nbsp 오늘 오전 희망강연은 어제 입재식에 이어 구미에서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340명의 청중과 53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찾고자 모였습니다. 4월의 눈부신 햇살만큼이나 환하고 밝은 스님의 웃음과 함께 강의는 시작되었습니다. 강의 동안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유쾌했고, 삶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는 더 없이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 강의 서두에 즉문즉설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즉문즉설은 지식을 묻는 자리가 아니라 인생의 고민을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나누고 대화하는 자리입니다. 요즘 사회는 지식을 인터넷 통해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지식을 배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만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지식을 기초로 하되,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옛날에는 촌로도 지혜가 있었는데 요즘은 박사도 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삶이 힘들어집니다. nbsp 50년전보다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해서 살기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자살률, 우울증이 더 많아지는 등 우리가 더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지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명상을 어떻게 하느냐, 목탁을 어떻게 치느냐’이런 것은 기술에 불과하고,‘공이 무엇인가, 연기가 무엇인가’이런 것은 지식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을 고상한 불교라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생각하는 부처님께 복을 빌고 지식을 구하는 것은 불교의 본래 가르침이 아닙니다. nbsp nbsp 한편‘남편이 술 먹어서 힘들어요, 아이가 매일 게임해서 힘들어요’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을 사람들은 보통 상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질문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진정한 불교입니다. 왜냐면 지혜가 있어야 해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증득해야 열반을 증득하며, 고뇌가 없어지고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nbsp 즉문즉설을 늘 들어왔지만 스님께서 해주신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니 그 의미를 곱씹을 수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의 삶의 고뇌를 나누고 지혜를 찾는 이 자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nbsp 오늘 역시 많은 분들의 고민이 담긴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몸이 아픈데 가족들을 챙겨주는 것이 힘들다는 여성분,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책임에 힘들어하는 여성분, 일을 하면 구역질이 나서 일을 할 수 없다는 젊은 여성분, 어렸을때 고생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남편 때문에 힘들다는 분 등, 질문자들은 스님과 함께 마음 깊이 담아둔 속내를 훌훌 털어 놓아 버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nbsp 그 중 한 질문자에 대한 스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nbsp “저는 41세 평범한 주부입니다. 별 어려움 없이 지내왔으나 친정어머니에게 많이 의지하고 자랐습니다. 어머님께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힘이 들 만큼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시집와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크고 보니 제가 시댁식구, 친정식구, 남편에게 눈치를 많이 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해도 뭔가 뒤가 캥기게 되고 멈칫해집니다. 지금까지 저는 다른 사람과는 조금의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살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큰 짐이었나 봅니다. 딱히 힘든 일이 없는데도 자꾸 마음이 불편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하는게 옳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하면 불편한 마음이 좀 나아질까요?” nbsp “제가 답변하기 전에 여러분, 한 번 물어봅시다. 주변과 갈등이 생기더라도 자기 하고 싶은 것 한번 해보는게 좋겠다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아니면 부모와 남편에게 순종하면서 사는게 좋겠다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nbsp nbsp “주위에 의지가 될 만한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저 마음대로 살라고 권유하지만 저에게 중요한 사람인 어머니, 시어머니, 남편의 뜻을 거스른다는 것이 제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힘들어서 지금 정토회에 다니고는 있지만 이유도 모르는 채 계속 불안한 것이 기도가 부족해서 인지, 마음공부가 부족해서 인지 모르겠어요.” nbsp “질문자는 착하지만 지혜롭지는 못합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산에 가서 토끼나 노루의 새끼를 한 마리 잡았습니다. 집에 와서 아직 어리니까 풀도 주고 먹이를 줘서 오랬동안 직접 키웠습니다. 다 크자, 이제 산에 가서 스스로 살라고 놓아주었는데 산으로 돌아갈까요, 아니면 다시 집으로 돌아올까요? 처음에는 나가지만, 나중에는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왜 다시 돌아올까요?” nbsp “짐승들이 무서워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를 것 같아요.” nbsp nbsp “이 짐승은 우리에 갖혀 있으면 답답하니깐 나가고 싶기도 하고, 나가면 먹이를 구하기 어려우니까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가둬 놓으면 나갈려고 하고, 나가라고 하면 또 돌아옵니다. 꼭 질문자와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산에 사는 짐승이 너무 추워 보여서 좋은 맘으로 돌봐줬는데 결과적으로 짐승의 야생성을 잃어버리게 한 겁니다. 만약 어미가 이렇게 새끼를 보살피면 야생의 생물이 존재 할 수 없겠죠. 이것은 실제로는 제대로 도와주는게 아닌 겁니다. 외국 공원에 가 보면 야생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못하게 합니다. 야생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죠. 야생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결국 그 짐승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nbsp 미국이 원주민인 인디언에게 인디언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모든 생활비도 지원해줬는데, 이것이 인디언들을 더욱 더 몰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일은 안 하고 계속 술만 먹게 되면서 인생의 자립심이 점점 더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일부 학자는 옛날에 미국이 인디언 학살할때보다 더 나쁘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nbsp nbsp 아이를 낳으면 세 살까지는 엄마가 100 보살펴줘야 합니다. 만약에 이때 엄마가 직장다닌다고 제대로 보살피지 않으면 아이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굉장히 잘못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부모들이 직장 다니느라 잘 보살피지 않아서 청소년들의 우울증 비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리고 세 살 이후 초등학교까지는 70 돌봐주고 나머지는 스스로 하게 해 주고, 중학생이 되면 50 정도 도와주고, 고등학생이 되면 30만 도와 주고, 스무살이 넘으면 아무것도 안해 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자립심을 키워서 스스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게 진정한 사랑입니다. 어릴 때는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게 사랑이고, 커서는 냉정하게 정을 끊어 주는 게 사랑입니다. 어릴 때 보살피지 않는 것은 외면이고, 커서 보살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외면당해서 상처받고, 커서는 부모가 집착해서 자생성을 잃어버립니다. 부모가 과잉보호함으로써 자식이 자립하지 못해 부모는 자식에 대해 무거운 짐을 지게 되고, 자식은 자립성을 잃어 부모의 노예로 살아야 합니다. 봄날 제비를 보세요. 알을 낳아 새끼가 나오면 입에 작은 벌레를 하나씩 물어 줍니다. 그래서 새끼들이 골고루 자랍니다. 새끼들이 더 자라서 검은 털이 나기 시작하면 먹이도 굵은 것을 잡아오고, 새끼 입에 바로 넣어 주지 않고 어미가 벌레를 물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면 새끼들이 벌레를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하지만 어미가 절대로 주지 않고 있으면 새끼들이 몸부림을 쳐서 뺏어 먹습니다. 많이 뺏어 먹는 새끼는 빨리 자라고 못 뺏어 먹는 새끼는 늦게 자랍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새끼들마다 3일에서 일주일까지 각기 다른 날에 날라서 밖으로 나갑니다. 어미가 모질러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미의 입에 있는 벌레를 뺏는 것은 사냥하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새끼들이 벌레를 뺏기 위해 몸부림 치면서 날개에 힘이 생깁니다. 간혹 이 와중에 한, 두 마리가 떨어져 죽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새끼가 자립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날아가버린 새끼는 다시는 어미 뒤롤 따라 다니지 않고 어미도 새끼를 보호하겠다며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그래서 짐승 세계에서는 어미와 새끼 사이에 부담되거나 원수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nbsp nbsp nbsp 그런데 짐승보다 영특한 동물인 인간만이 부모와 자식이 원수가 되고 자식이 부모의 억압속에 살아야 하는 이런 일이 생깁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바로 엄마가 자식을 낳으면 목숨을 걸고라도 보살펴야 하는데 아이보다 자기 직장, 출세, 인생이 먼저라서 제대로 보살피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마음속에 사랑이 충만하지 못해 늘 허전한 마음 때문에 사랑을 껄떡 거리고, 욕구 불만이 생깁니다. 또 과잉 보호를 받게 되면 자기를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인간사회의 고뇌입니다. 대부분 모든 인간들이 비슷한데 서양 사람들보다 한국 사람들이 더 심합니다. 옛날에는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자기 힘으로 먹고 살았는데 지금은 유학을 보내도 자기 힘으로 잘 살지 못합니다. 이것은 우리 삶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도 이런 사람들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nbsp 그러니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이번 생은 이미 야생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산에 갈까, 우리에 있을까를 고민하지 말고 그냥 애완동물로 사는 방법입니다. 엄마, 남편, 시어머니의 애완용 동물로 삽니다. 자기가 입장을 정해버리면 괴롭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보면서 나도 저랬으면 하고 공연히 고민하니 힘든 겁니다. 애완용 동물은 착하죠.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으면 순종하고 사세요. 이렇게 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자기가 선택하는 겁니다. 자기가 길들여진 짐승도 아니고 노예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남편의 사랑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모험을 해야 합니다.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사춘기 때 아이들이 부모 말을 안 듣기 시작해야 자립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아이가 잘 되는 길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안 듣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부모 말 잘 들으면 부모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질문자처럼 되는 겁니다. nbsp nbsp 불교는 내가 주인 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신의 종이 되어서 잘 먹고 잘 살겠다, 천국에 가겠다고 합니다. 스님은 주인이 되고 싶지, 종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종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게 나쁜게 아니라 부모의 종으로서 천국에서 살겠다고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자꾸 나를 보고 스님처럼 살겠다고 천국을 나오려고 하니 천국에서 나오면 지옥으로 갈지도 몰라요. 스님은 지옥에 가더라도 주인으로 사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좋은 환경의 종으로 살겠는가, 아니면 나쁜 환경이라도 주인으로 살겠는가.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자기는 주인으로도 살고 좋은 환경도 가지고 싶다고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한 쪽은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주인으로 살려고 하면 그 동안의 주인이 반대하겠죠. 그것을 두려워하면 종이 되는 겁니다. 내가 주인으로 살겠다고 하면 지금까지 길들여진 삶의 습관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 듣고, 갈등이 일어나는 등 정말 어렵습니다. nbsp 여러분도 아이들 말 안 들으면 집을 나가라고 하고 밥 안 준다고 그러죠. 늘 아이들이 주인이 되려고 할 때, 먼저 주인된 부모들이 아이들의 행동을 막으려고 합니다. 때로는 아이들을 때리기도 하는데, 부처님이 그래서 때리지 말라는 겁니다. 인간관계는 평등한 관계입니다. 그래서 계율에 첫 번째 때리지 마라, 두 번째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뺏앗지 마라, 세 번째 사랑을 하더라도 강제로 성추행 하지 마라, 네 번째 말하더라도 거짓말 하지 마라, 다섯 번째 술을 먹더라도 행패를 부리지 마라가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계율만 잘 지켜도 세상이 많이 좋습니다. 요즘 학교 폭력의 대다수가 뺏고, 때리고, 욕설하고, 성추행하는 것입니다. 공부는 잘할지 몰라도 인간이 되는 가장 기초적인 것을 안 가르치기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주인으로 살려고 할때 다섯 가지 계율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남 눈치 볼 필요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남편이나 자식이 내 말 안 듣는다고 속상할 때도 나도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눈치 보지 말고 간섭하지 않으면 세상이 자유로우면서 남에게 손해도 끼치지 않고 함께 잘 살 수 있습니다. nbsp nbsp 그런데 질문자는 어렵습니다. 착하다는 말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나쁜 사람이라는 말은 절대로 듣기가 싫습니다. 노예로 살아가는 조건이 주어져 있는데 그것을 버리기 어렵습니다. 부처님은 그걸 확 버렸습니다. 왕위와 부모, 아내, 자식을 버리고 자유의 길을 갔습니다. 질문자는 절에 오지 말고 교회로 가면 딱 맞겠습니다. 그럼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긴 순종하는게 목적이니까요. 불교는 주인 되는게 목적이기 때문에 조금 안 맞아요. 절에 다니니 고민이 되는 겁니다. 다시 얘기하지만 선택입니다. 질문자의 지금 마음은 남의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하는데 돈을 빌리고 안 갚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nbsp 스님의 말씀을 통해 주인으로 살아가는 부처님의 법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강연 마친 후 한 질문자는 그동안 늘 듣기만 하다가 실제로 질문을 해 보니 훨씬 가벼워졌다고 말했습니다. 청중들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성공했으니 당당하게 아무 거리낌없이 주인이 되어 살라는 스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습니다. nbsp nbsp 시간이 조금 늦게 즉문즉설이 끝나고 스님께서는 청중과 책 사인회를 마치고 일정이 있으시다고 양해를 구하며 급히 강연장을 떠나셨습니다. 스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늘 강건하기를 바래봅니다. nbsp 구미 강연이 조금 늦어져서 스님께서는 서둘러서 통도사로 출발하셨습니다. 원래 송코 탈란딕팀과 함께 통도사를 안내하려고 했으나 오전 강연이 늦어졌고 또 구미에서 통도사로 오는 고속도로가 공사로 체증이 심해서 결국 통도사를 다 구경하고 나온 송코 탈란딕팀과 기념사진을 찍고 스님께서 아이스크림을 사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nbsp 통도사 일정을 마치고 바로 부산 사하구에 있는 관음사 환희 노인요양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 요양병원에 계시는 노보살님께서 부산 사하구에 있는 작은 건물을 정토회로 보시해 주셔서 건물을 기증하는 약정식이 있었습니다. 고순화 보살님께서는 가지고 있는 건물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으면 해서 보살님을 보살피던 백승완 부산대 교수님께서 정토회를 추천해서 이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보살님께서는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스님을 뵙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보시해주셨고 스님께서는 스님의 책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기증식이 끝난 후 바로 저녁 강연이 있는 서면 롯데호텔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저녁 6시 20분경, 법륜스님께서는 2015년 JTS후원의 밤과 함께 진행될 희망세상 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을 위해서 부산 서면 롯데호텔 3층 크리스탈볼륨홀을 찾으셨습니다. 이 강연에서는 특별히 필리핀 민다나오 송코마을의 원주민 딸랑딕 부족이 초청되어 전통 문화 공연을 볼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nbsp 초여름 무더위로 하루 종일 사람들이 지치고 월요일 저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많은 분들이 일찍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입장했습니다. 1,200개의 좌석이 어느듯 꽉 채워졌습니다. 스님께 직접 좋은 말씀을 듣는다는 기대감으로 강연장에는 즐거운 설레임이 가득찼습니다. nbsp nbsp 강연에 앞서 특별히 준비된 JTS 활동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법륜스님과 봉사자들이 오랫동안 함께 일궈낸 활동을 청중들이 흐뭇한 미소로 호응하였습니다. 영상을 시청한 후 스님께서는 JTS 활동 및 송코마을에서 오신 분들을 소개해주셨습니다. nbsp “안녕하세요. 요즘 날씨 좋죠. 이런 좋은 봄날, 이런 좋은 곳에서 여러분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은 저와 여러분들의 대화인 즉문즉설도 있고, 또 필리핀 민나다오의 딸랑딕 원주민 음악과 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nbsp nbsp 정토회 산하에 국제구호단체인 JTS가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병든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어린 아이는 제때 배워야합니다.라는 설립 정신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아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많이 세우고 병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필리핀에는 민다나오라는 섬이 있는데, 그 섬 산속에 사는 원주민들이 교육을 못 받고 매우 열악한 환경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또 무슬림 분쟁지역도 환경이 매우 열악합니다. 그래서 지난 12년 동안 초등학교 2칸3칸짜리를 원주민 부락, 무슬림부락에 약 40여 곳에 지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하이옌 태풍이 휩쓸고 간 필리핀 마라봇 지역에도 교실 87칸을 복구하는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nbsp 원주민 중에 자기 전통문화를 잘 지키는 부족이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 전통 문화를 잘 지켜야 하죠. 그런데 너무 서양화 되어서 옷도 서양옷 입고 다닙니다. 나만 이렇게 전통을 고수하고 있어요. 집도 여러분들은 양옥에 살고 있잖아요. 나만 전통한옥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스님들은 종교인의 한 사람이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비교적 전통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에 속해요. 그래서 저는 다른 나라에 가도 자기 전통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호감을 갖습니다. 특히 인구가 얼마 안 되는 원주민 소수민족이 자기 전통문화를 지키는 것을 보면 애틋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전통문화를 지키는 부족을 찾아서는 물질적인 구호만이 아니라 전통문화를 보존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그 부족중의 한 부족을 초청했습니다. nbsp nbsp 오늘 여러분께서는 그분들이 옷은 어떻게 입고, 춤은 어떻게 추고, 미술은 어떻게 그리고, 음악은 어떻게 하는지 보시고 격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갈 때는 그들을 위해서, 그리고 이런 좋은 JTS의 사업을 위해서 후원도 해주세요.” nbsp 스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 스님의 소개 말씀이후 바로 청중들이 기다리던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연프로그램으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 시간이 30분 줄었음에도 총 10명의 질문자가 궁금한 것을 여쭈었고, 스님께서는 특유의 명쾌한 답변을 척척 내주셨습니다. nbsp nbsp 남편과 대화가 전혀 없고 의사소통이 안 돼서 답답하다는 분의 질문을 시작으로, 영가가 보여서 힘들어하는 친정엄마와 새벽에 파자마 입고 108배하는 남편을 바꾸고 싶다는 보살님의 질문, 내 인생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고, 그러다보니 죽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젊은 여성분의 질문, 담배 끊은 남편이 술도 좀 줄였으면 좋겠다는 아내, 게을러서 움직이기 싫어하는 통통한 딸이 걱정이라는 엄마, 귀농을 꿈꾸는 신혼부부의 식용 곤충사육에 대한 도전과 세계 식량난에 대한 스님의 견해를 묻는 질문, 결혼 후 인터넷 스포츠 도박으로 재산을 다 잃은 남편이 용서가 잘 되지 않는다는 아내, 나이든 보살님께서 도솔천 내원궁에 계신다는 미륵부처님에 대한 질문 등, 인생을 살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가지각색의 고민들이 풀어졌습니다. 질문자들이 가진 아픔에 대해 스님께서 격려와 위로의 따뜻한 말씀과 명쾌한 해법을 해주셔서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nbsp 질문들 중에 한가지를 소개드립니다. nbsp nbsp “저의 딸이 서른 두 살입니다. 좋은 인연을 찾고 싶은데 나름대로 기도도 하고 있지만, 좀처럼 좋은 인연이 나타나진 않고 있어요. 언제쯤 좋은 인연이 짠하고 나타나 맺어질까요? 저도 친구들처럼 장모님 소리도 듣고 싶어요. 스님 명쾌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nbsp “네. 아주 좋은 질문 하셨어요. 쥐는 먹이를 어떻게 구합니까. 밥상을 차려놓고 먹어요? 쓰레기장을 뒤져서 먹어요? 쓰레기장 뒤져서 먹죠? 그러다가 갑자기 접시에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짠 하고 차려진 음식이 나타났어요. 그게 뭘까요? ” nbsp “쥐약” nbsp “질문자는 모르는 거예요? 아니면 차마 그 얘기가 하기 싫은 거예요? 어느 순간 내가 원하던게 짠하고 나타나는 건 99 쥐약입니다. 쥐약 빼고는 쥐한테 그런 게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나한테 인물도 잘났고, 돈도 많고, 가정환경도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100 쥐약이예요. 엄마가 딸한테 쥐약 먹이면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nbsp “안되지요. 근데 지금 딸 나이가 서른둘이니까. 갈 때가 되었거든요.” nbsp “서른 두살에 쥐약 먹는 게 좋아요? 쥐약 안 먹더라도 더 사는 게 좋아요?” nbsp “안먹더라도 더 사는게 좋긴 한데요.” nbsp “그러면 놔둬요. 지금 너무 밀어붙이면 쥐약 먹을 가능성이 높아요. 한번 생각해봐요. 내 딸이 인물도 훨씬 낫고, 학벌 좋고, 집안 가문도 좋고, 돈도 잘 버는 그런 남자와 결혼할 가능성이 높아요, 낮아요? 엄마가 자꾸 그런 걸 원하면 결혼하기 힘들어 혼자 살기가 쉽습니다. 근데 이게 쥐약인데, 쥐약이 아니라고 치고, 그런 남자가 나타나 결혼했다고 치십시다. 결혼 잘했지요? 그런 남자가 결혼한 뒤에 자기보다 인물도 못하고, 재산도 못하고, 학벌도 못하고, 집안도 못한 이 여자만 사랑하며 살까, 아니면 딴 여자도 힐끔힐끔 보고 살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nbsp “저만 바라보고 살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nbsp nbsp “그럼 이런 남자 주위에는 여자가 늘 있게 되고 그 부인은 질투심이 생기겠죠. 그런데 어디 가서 그런 남자를 또 구하나라는 생각에 이혼도 못하겠죠. 그래서 이혼도 못하고 속만 끓이며 살게 되는 거예요. 또 그런 남자는 아내를 존중할까요? 안하겠지요. 그럼 시부모도 며느리를 존중할까요? 안하겠지요. 하인 부리듯 부리겠지요. 그러면 자기는 자기 딸을 부잣집 하녀로 파는 거예요. 그런데 엄마들이 자기 체면을 위해서 자기 딸을 그렇게 파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그러니까 지금 엄마의 생각은 자기 딸보고 쥐약 먹으라고 기도하는 것과 똑같다는 겁니다. nbsp 여러분들, 사기꾼이 보통 인물 잘 생겼죠? 옷 잘입죠? 친절하죠? 말 잘하죠? 차 좋은 거 타죠? 그런 사람 안 좋아할 여자, 남자 있어요, 없어요? 없기 때문에 우리가 사기를 당하는거예요. 예를 들어 우리가 물고기 낚을 때, 쥐를 잡을 때 좋아하는 음식을 놔요? 싫어하는 음식을 놔요? 우리가 ‘이야 저거 정말 좋다’ 하는 건 미끼일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래서 그거 잘못 물어서 고생하는 사람 지금 여기도 얼마나 많아요?” nbsp 그러니 엄마가 되어서, 딸이 남자를 잘못 물면 인물 갖고 사는 거 아니다, 가문으로 사는 거 아니다, 돈 갖고 사는 거 아니다 하고 이렇게 말려야 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딸 앞에 짠하고 나타날 왕자를 요구하니까 잘 나타나지도 않아, 결국 혼자 살도록 만들게 되는 겁니다. 게다가 혹시 나타나도 그건 쥐약이예요. 요새 봄날이 오니 제비가 막 날아오던데 딸보고 제비 한 마리 키우라구요? 그런 생각을 하면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nbsp nbsp 지금 딸의 결혼을 기도할 것도 없고, 그런 생각을 딱 끊으셔야 해요. 내가 딸의 결혼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딸에게 불행이 자초됩니다. 결혼을 하겠다 해도 말려야 하고, 좋은 결혼조건 일수록 말려야 해요. 이렇게까지 모질게 얘기해서 죄송합니다만 쥐약을 안 먹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nbsp “네. 잘 알겠습니다.” nbsp “자, 부처님께 열심히 빌면 진짜 좋은 신랑, 좋은 아내 만난다고 생각한다면, 부처님께서 중생의 결혼생활에 관여한다는 말이죠? 부처님께서는 자신이 결혼해서 자식이 있는데도 이게 ‘고’라고 하여 아내와 자식을 두고, 왕위도 버리고 출가를 했는데, 그런 부처님께 여러분들이‘왕이 되고 싶다’‘좋은 결혼하고 싶다’라고 바라면 힘 실어줄까요? 부처님께서는‘그건 쥐약인데’ 이런 말씀은 해줍니다. 재앙은 막아 줘야하니까요. 그런데 세상에 욕심 갖고 제 딸은 형편없는데 사위는 좋은 사람 봐야겠다고 하면 부처님이 관여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nbsp 부모의 역할은 스무살까지 키워 주는 겁니다. 스무살 넘으면 자식이 알아서 살도록 놔두는 거예요. 결혼을 해도 좋고, 결혼을 안 해도 좋고, 어떤 남자하고 해도 좋고요. 질문자는 남편 잘 만났어요? 남편이 짠하고 나타나서 딱 마음에 들었어요? 아니면 조금 부족했어요?” nbsp “옛날에는 아이 아빠가 배를 타서 단점이 안보여서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단점이 보이기 시작해 안 맞는 게 있긴 했지만,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 보니 남편이 나한테 참 많이 양보를 해줬구나하는 참회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nbsp nbsp “질문자는 제 남편도 못 알아봤잖아요. 자기 남편도 못 알아봤으면서 남의 남편 구해줄 눈이 될까요? nbsp “친구들이 왜 딸 시집 안보내냐고 물어봅니다. 요즘 동창회 밴드 하면서 친구들이 사위와 며느리 얻어서, 특히 사위 자랑을 많이 해요. 그래서 저는 좋은 사위를 좋은 인연으로 만나서 딸을 너무 늦지 않게 결혼시키고 싶습니다. 요즘 결혼에도 때가 있는데 너무 늦는 것 같아서요” nbsp “여러분들은 아이들이 말 안 듣고 속상하게 하면 어떤 얘기합니까?‘너도 나중에 결혼해서 애 한번 낳아봐라.’이렇게 말하죠. 이게 사랑의 마음이예요? 증오의 마음이예요? 나는 이 고생하지만 너는 결혼해서 이 고생하지마라 그렇게 해야 하는데, 너도 너 같은 애 하나 낳아서 눈물을 펑펑 쏟아야 내 마음 이해한다며, 부모가 제 자식 놔두고도 이렇게 저주합니다. 주변 친구들 이야기는 사실 자식들 결혼시켜 놓고 보니 지금 속상하거든요. 그런데 질문자를 보니 질투심이 나서 ‘너도 좀 고생해봐라.’ 하는 소리니까 너무 귀담아 들을 필요 없습니다. ” nbsp “네 잘 알겠습니다.” nbsp nbsp “여자 친구, 남자 친구 하나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 공원을 산책 하는데, 저 멀리 남녀 둘이 걸어가는 모습 보면 부럽죠? 멀리서 보면 좋아 보이죠? 그런데 저 둘은 이혼하려고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주변에서 하는 소리 너무 믿으면 안돼요. 그냥 하는 소리예요. nbsp 제가 상담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에게 딸이 뭐도 안하고, 뭐도 안하고 하면서 욕을 해놓고는 조금 있다가‘아이고 스님, 좋은 남자 있으면 우리 딸 소개 좀 해주세요.’ 그게 말이 되요? 제 엄마도 욕을 해 좋고, 좋은 남자한테 보낼려고 해요. 이런 심보 가지면 안돼요. 이렇게 엄마가 이야기하고서도 아무런 모순을 못 느껴요. 엄마도 제 자식을 못 봐주는데 어느 남자가 그 딸을 받아주겠어요? 심지어 좋은 남자 소개 시켜 달라고 그래요. 시대가 바뀌었으니 너무 욕심내지 말고, 젊은이들이 알아서 살도록 해야 해요. 결혼하고 안하고, 스님 되고 안되고 그런 건 간섭하면 안됩니다.” 스님의 답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늘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이기심에서 비롯됨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스님의 즉문즉설은 웃음과 공감, 지혜로 꽉 찬 시간이었습니다. nbsp nbsp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끝나고 이어서 필리핀 민다나오 송코마을의 원주민 딸랑딕 부족의 공연이 바로 이어졌습니다. 자연의 소리를 담은 연주와 개구리 춤, 원숭이 춤, 매의 춤, 구애의 춤 등 원주민 부족의 전통이 담긴 다양한 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부터 청년, 연세 많으신 분들까지 다양한 세대의 원주민들이 함께 하는 춤을 보고 있자니 마치 어느덧 자연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청중들 역시 춤에 맞춰 박수치며 색다른 희망 강연 시간을 즐겼습니다. 춤 공연의 마지막 무대에서는 법륜스님과 무대 앞자리 청중들이 딸랑딕 부족과 함께 춤을 추며 하나가 되는 흥겨운 시간도 가졌습니다. nbsp nbsp 강연 끝나고 뒤돌아 나가는 청중들의 모습이 모두 가벼워 보입니다. 스님의 말씀 듣고, 필리핀 딸랑딕 원주민의 음악을 듣고, 함께 박수치며 춤추는 사이 각자 가지고 있던 고민 하나 쯤, 강연장 바닥에 흘린 것 같이 홀가분한 모습입니다. 사람들로 가득 넘친 JTS 홍보부스를 보며 이곳이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한 아름다운 사찰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을 마치고 바로 문경으로 이동하셨습니다.
2015.4.23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 1일째
▲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해외에서 정토법당을 운영하고 계신 총무님들을 위한 수련이 문경정토수련원에서 열렸습니다. 해외 총무단 일행은 어제밤 문경에 도착해 하룻밤을 잔 후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과 함께 문경에서의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무변심 법사님으로부터 발우공양 작법에 대한 교육을 받고, 100여명의 대중이 함께하는 발우공양에도 참석해 불교 전통 식사법에 대해 체험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새벽에 두북을 출발해 아침7시 무렵 문경정토수련원에 도착하셨습니다. 해외 총무단은 간단히 생활안내를 받은 후 아침8시30분부터 스님께 입재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문경의 봄날이 좋아요? 혹시 발우공양 하면서 체하지는 않으셨어요?” 라고 가볍게 인사를 하시면서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 입재 법문nbspnbsp그리고 인간의 정신 작용과 부처님이 발견하신 ‘알아차림’의 수행법, 정토회가 이 땅에 실현하고자 하는 근본 불교의 의미, 2차 만일결사를 위해 정토회를 세계화 하는 방안 등 해외 총무단이 알아야 할 핵심 내용들에 대해 개괄적으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인간의 정신작용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거의 비슷합니다. 그래서 짜여진 대로 작용을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프로그램은 누가 짰을까요? 어떤 특정한 존재가 짠 것이 아니고 수백만년 혹은 수천만년 동안 자연 속에서 진화해 오면서 조금씩 변화를 거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수없는 학습 작용을 통해서 현재 인간이 갖고 있는 정신 작용이 형성되었는데, 이렇게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프로그램대로 반응을 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자율권이 거의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다’, ‘이런 원리로 반응을 한다’는 것을 미리 알면 그렇게 반응을 안 할 수도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하게 되면 종속적으로 반응하는 데서 다르게 반응을 할 수도 있게 되어서 윤회의 사슬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데 있어서도 ‘자기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이 치료의 절반이다’는 말도 나오고 있죠. 옛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것처럼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자기 상태만 딱 점검이 되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을 경우 다른 방향으로 전환이 가능합니다.nbspnbsp그러나 이 상태가 점검이 안 되고 전환하려고 하는 것은 거의 작심삼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작용은 대부분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스스로 통제가 잘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실까지도 알아차려야 됩니다. 잘 안 된다는 사실마저도 알아차리면서 시도를 하면 안 된다고 좌절하지는 않아요. 안 되는 것을 보면서 또 해보고, 또 해보고 할 수 있거든요.nbspnbsp첫 번째, 대부분은 무지한 상태에서 윤회하면서 살아가고요. 두 번째는 바꿔보려고 하지만 잘 안되니까 대부분 좌절하지요. 그 이유는 이것은 바꾸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인데 욕심으로 쉽게 생각하니까 안 된다고 좌절하는 것입니다. 바꾸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알고 시작하면 안 되더라도 좌절은 하지 않습니다. ‘아, 이렇게 하니 안 되네. 저렇게 한번 해볼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계속 해나가면 변화가 일어나거든요. 큰 변화가 일어나려면 한번 죽을 고비를 넘겨야 됩니다. 부처님도 6년 고행을 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겼고, 서암 큰스님도 결핵에 걸려 치료가 안되니까 이왕지 죽는 것 정진하다가 죽겠다고 하고 산속에 죽으러 들어갔다가 살으셨거든요. 이 때 죽었다고 하는 것은 몸은 안 죽었지만 자신의 원래 까르마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황야에서 40일 금식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자각하는 그런 과정이 나오지 않습니까.nbspnbsp용수 보살도 젊은 때 못된 짓 하고 돌아다니다가 잡혀서 죽을 뻔 했거든요. 그래서 쾌락을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짓인 줄을 자각했기 때문에 거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니까 오히려 성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젊을 때부터 착실해서 성인이 된 것이 아니고 쾌락을 즐기고 못된 짓을 하고 돌아다니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 좋기는 하지만 착하기만 한 사람은 크게 깨닫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착하다고 주위로부터 칭찬의 소리만 듣기 때문에 자기를 바꿀 생각이 거의 없어요. 반면에 너무 망나니로 산 사람은 거기에 물이 들어서 헤어 나오지를 못합니다. 뭐든지 뜻대로 안되어서 자포자기해버린 사람은 극복할 의지가 없고, 너무 자기 뜻대로 된 사람은 극복할 필요성을 못 느끼죠. 뜻대로 되기도 한 것이 있어서 도전할 의향이 생기고, 뜻대로 안되기도 해서 안주하지 않기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천상이나 지옥이 아니라 인간 세상이 좋다고 하잖아요.nbspnbsp이런 것을 보면 여러분들이 사는데 장애라는 것이 꼭 불행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결혼 생활 중에 갑자기 남편이 돌아가신다, 재산이 파산이 된다, 건강이 안 좋아진다, 이런 것들은 우리 인생에서 큰 불행이잖아요. 그러나 이 불행이 불행으로 끝나면 불행이지만, 그 앞에서 ‘내가 그동안 집착하고 살아온 것이 아무 것도 아니구나’ 이것을 한번 깨달으면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nbspnbsp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되어도 좋은 것이고요. 해탈은 못해도 중생으로서는 괜찮은 삶이니까요. 반대로 장애에 부딪히고 재앙이 쏟아지면 중생으로서는 좀 힘들지만 해탈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것 또한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이러면 이렇게 배울 것이 있고, 저러면 저렇게 배울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경계에 영향을 안 받는 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그런데서 첫째 이 수행의 관점을 분명히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nbsp붓다의 위대한 자각인 근본 불교를 통해서 현대인이 갖는 고뇌를 해결해보자는 것이, 즉 근본불교를 다시 재현해보자는 것이 정토회의 설립취지입니다. 근본 불교가 현대사회에서 한번 꽃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 현대사회는 물질이 충분히 주어졌는데도 인간의 고뇌가 해결되지 않는 이 문제에 봉착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인간을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길로 안내하느냐? 여기에 바로 붓다의 가르침이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붓다는 2500년 전에 이미 현대사회가 경험한 수준을 스스로 경험했습니다. 왜냐하면 왕자였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고뇌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탐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경제적 풍요로 말하면 다수가 소비의 왕이 된 사회이거든요. 붓다의 문제의식의 출발이 그랬기 때문에 제가 생각할 때는 현대인의 고뇌에 어쩌면 유일한 해결책이 불교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의 말씀, 서양 철학, 기독교에서도 우리가 배워야 할 좋은 점들이 많지만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꿰뚫은 것은 아닌 것 같아요.nbspnbsp그런 면에서 ‘우리 불교가 최고다’ 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를 통해서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불자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자신이 수행을 통해 조금이라도 이 맛을 봐야 하고요. 둘째는 세상 사람들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법을 널리 전해야 합니다. 앞의 것은 내가 해탈해야 한다는 소승의 수행 원칙이라면, 뒤의 것은 중생에게도 이 혜택을 줘야 한다는 대승의 원입니다. 이것을 교리적으로 말하면 상구보리 하화중생입니다.”nbsp이렇게 큰 방향을 일러 주신 후 이어서 2차 만일결사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2차 만일결사의 목표는 1차 만일결사 때 한국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본 것을 다른 나라 사람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실험한 1차 만일결사의 성과를 기초로 해서 다음 만일에서는 세계화를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1차 만일의 목표를 이루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여러분들은 외국에 살고 있는 교민들이기 때문에 2차 만일의 씨앗도 함께 준비해야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남편이 외국인이든, 자식이 외국인이든 그렇잖아요. 이들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 교민 사회를 중심으로 해서 점차 주위로 확대해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럴려면 언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책을 영어로 번역하고, 즉문즉설도 모두 영어로 바꾸어야 합니다. 제가 영어를 배우면 되는데, 제 수준이 좀 안돼요. 그래서 그에 합당한 통역사를 확보해야 합니다. 즉,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정토행자가 각각 있어야 합니다. 현재 교민들의 2세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나오면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겠죠.nbspnbsp이제 다음에는 영어로 깨달음의장을 진행하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또 기도법도 다 영어로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 기도법에는 용어가 한국적인 것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또 종교적인 언어도 많이 베여 있습니다. 전통 불교와 비교해서는 많이 대중화, 생활화 되었다고 하지만, 요즘 대학생이나 외국인이 볼 때는 ‘이게 무슨 소리예요?’ 라고 묻는 부분이 많거든요. 2차 만일결사에서는 이런 것들을 모두 다 덜어내야 합니다. 종교적인 언어는 완전히 다 빼고 보편적인 생활 언어로 바꾸어야 하고, 한국적인 것들도 다 빼고 외국인도 자기나라 말로 번역을 하면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합니다. 절할 때 ‘관세음보살’ 부르는 것도 다 바꾸어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의 정서에는 맞을지 몰라도 외국사람 입장에서는 한국식 발음을 해야 되거든요. 예불문도 세계 보편적인 빨리어로 바꾸든지 해야 할 겁니다.nbspnbsp즉, 1차 만일 기간 동안에는 국내와 같이 한국 교민을 위해 그들도 부처님 법의 가피를 입을 수 있도록 각 지역에 법당을 열어나가는 것이 필요하고요. 동시에 여러분들은 2차 만일의 씨앗을 만들어가는 기초도 함께 마련해야 합니다. 2차 만일이 되면 한국은 세계 정토회의 하나의 지구로 편재될 수도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아마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어요. ‘내가 왜 내 밥 먹고 뭣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있나’ 하고요. 여러분들이 안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가족들은 ‘진짜 너 미쳤다’ 이럴 수도 있고요. nbspnbspnbsp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종교 활동이라고 해서 이해가 되지만, 외국에 살고 있는 분들은 ‘국가도 나를 구제해주지 못하니 내가 내 몸 하나라도 살려고 이 먼 나라까지 와서 몸부림치며 사는데 왜 갑자기 지구를 구제하겠다고 난리냐?’ 그러겠지요.nbspnbsp그런데 삶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자기가 원해서 하는 즐거움이 있고요. 다른 하나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보람이 있습니다. 즐거움은 내가 원하는 일을 할 때 그 순간에 생기는 것인데, 보람은 항상 지난 뒤에 생깁니다. 보람은 내가 남에게 유의미한 일을 했을 때 드는 행복감입니다. 보람 있는 일만 한다고 하면 현재가 힘들 수 있어요. 그러나 재미있는 일만 하면 나중에 보람이 없으니까 허전해져요. 그래서 행복은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야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서 여러분들이 외국에 가서 잘 산다 하지만, 마치 부처님이 왕자였지만 고뇌가 해결되지 않았듯이 여러분들도 ‘내가 밥 먹고 살려고 이 고생 했나’ 하면서 허무해질 수가 있습니다.nbspnbsp그러나 여러분들이 ‘내가 외국에 와서 왜 이 고생하고 살았나?’ 했더니 알고보니 ‘아, 부처님 법을 전하라고 내가 여기 왔구나’, ‘그동안 이것도 모르고 허둥대고 살았는데, 이런 사명을 갖고 씨앗이 되라고 여기 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여기 와서 산 의미가 밥 잘 먹는 성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방향을 잡아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좀 힘들지만 이 정도의 고생은 할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조금 어렵더라도 서로 격려하면서 해나갑시다.nbspnbsp nbspnbsp지금 생각하면 2차 만일결사의 목표가 까마득한 것 같지만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시절 인연이 도래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거예요. 우리가 준비해놓고 있으면 세상에서 이것을 가져가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어느 순간 빠르게 확산이 되게 됩니다. 개인은 별 영향이 없을지 몰라도 이렇게 앞서나가서 함께 준비해 놓으면 나중에 모두 의미 있는 존재가 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의 이 일은 사양 산업이 절대 아니고 미래 성장 산업이라는 것이예요. nbspnbspnbsp정토회가 노력해서 성장하는 것도 있지만 이런 시대의 요구에 부합해 나가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더 확대되어 나갈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통일 운동도 지금은 굉장히 어렵죠. 하지만, 10년, 20년 지나놓고 보면 독립운동 했던 수준의 평가를 받습니다. 이번 수련 기간 동안 문경 공동체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현재 정토회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행정적으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배우고, 질문도 많이 해보시고, 자기 고민도 충분히 이야기해서 같이 해결해보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이렇게 1시간 40분 가량 법문을 해주셨고, 해외 총무단은 시대의 요구를 내다보고 바른 길을 일러주신 스님께 큰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더불어 2차 만일결사를 위한 씨앗을 지금부터 만들어나갈 것을 함께 다짐했습니다.nbspnbsp잠깐 휴식을 가진 후 10시40분부터는 정토회 행정처 박종숙 국장님으로부터 ‘법당 운영 원칙’에 대해 실무 교육을 자세히 받았습니다.nbspnbsp▲ 법당 운영 원칙에 대해 강의 중인 행정처 박종숙 국장nbspnbsp해외 총무단은 ‘불상을 액자로 모신 법당이라 하더라도 불단이 클 경우, 화분이나 조화를 불단에 올려도 되는지?’, ‘법당을 타단체에 임대하지 못하도록 원칙이 정해져 있는데, 해외는 우리가 타단체 시설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우리도 타단체의 사용을 허락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해외에서는 천일결사 입재식에 참여하기가 어려운데, 정토회의 정회원이 되려면 이 자격 요건을 어떻게 갖출 수 있는지?’ 등 궁금한 점들을 물었고, 행정처로부터 각각의 원칙에 대해 명확히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해외 총무단이 실무 교육을 받는 동안 명상원에 머무시며 새로 출간하는 ‘세계 100회 강연’ 책의 원고 교정과 그동안 밀린 업무들을 보셨습니다.nbspnbsp점심 식사 시간이 되어 모두들 명상원 마당으로 나오자, 스님께서도 마당으로 나오셔서 “복사꽃이 많이 피었네. 저기 봐바. 복사꽃 국경 좀 하세요.” 라며 점심 식사 후 한국의 봄날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할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모두들 곳곳에 핀 복사꽃을 보며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습니다.nbspnbsp▲ 문경정토수련원의 복사꽃nbspnbsp점심 식사 시간에는 하얀 접시와 그릇이 각각 제공되었고, 모두들 식사 후 김치조각으로 깨끗이 닦아먹어서 음식물 쓰레기가 하나도 남지가 않았습니다. 전세계에 살고 계신 분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가 쉽지 않기 때문에 식사를 하면서도 서로 이야기를 멈출 줄 몰랐습니다. nbspnbspnbspnbsp▲ 2박3일 동안 식사 바라지를 맡으신 조선경, 최경숙, 김유정님. 조선경, 최경숙님은 전직 해외사무국 출신이여서 그런지 더욱더 애틋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nbspnbsp새벽부터 일정이 진행되어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식사 후에는 어디서 또 힘이 나오는지 몇몇 분들은 “저기 쑥 봐라” 하며 쑥을 캐러 나섭니다. 해외에서는 쑥을 볼 수가 없는데, 오랜만에 방문한 한국에서 쑥을 발견하자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또 한 번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nbspnbsp▲ 점심 시간을 이용해 쑥을 캐러 나온 수련생들nbspnbspnbsp▲ 점심 때 캔 쑥으로 만든 특별 요리nbsp열심히 캔 쑥은 공양간으로 가져다주고, 오후1시30분부터는 정토수련원 원장이신 유수스님과 함께 수련원 곳곳을 둘러보며 설명을 들었습니다. 정토회의 초창기 역사적인 모임들이 많이 열렸던 제1수련장을 시작으로 깔끔하게 새로 지은 제2수련장, 제3수련장, 수련사무실, 나눔의장이 진행되는 제4수련장, 수련원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인 대웅전과 자비당, 원력당을 차례대로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대강당과 이곳에 가장 처음으로 세워진 건물인 백화암까지 둘러보았습니다. nbspnbsp▲ 문경정토수련원 대웅전nbspnbsp해외 총무단 일행은 10년, 15년 전에 이곳에 왔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때와 비교해 많은 건물들이 위용 있게 들어선 모습을 보며 모두들 자랑스러움을 느꼈습니다. 특히 해외는 비좁은 공간을 임대해서 법당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외에서도 이런 수련장을 가지면 정말 좋겠다’ 는 바램과 함께 ‘우리 법당도 이렇게 짓자’ 며 모두들 설레여 했습니다.nbspnbsp대웅전에 올라와서는 유수스님께 앞으로 이곳 수련원 불사를 어떻게 진행해나갈 것인지 이야기를 들은 후 대웅전 앞 금강 계단에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정토수련원을 모두 둘러본 후 오후 3시부터는 정토회의 회계 원칙에 대해 강의를 들었습니다. 또 이어서 3시40분부터는 정토회의 통합정보시스템에 대해 설명을 듣고, 해외에서는 어떻게 활용 가능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현재 국내는 작년부터 불교대학생, 천일결사자, 수련생 모두 통합정보시스템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데, 해외에서도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좋겠다고 하며 다들 좋아했습니다. 시스템부를 담당하고 있는 김도영님은 해외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조만간 해외를 위한 시스템도 마련하겠다고 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다만 회계 부분은 국내와 사정이 많이 달라 어떻게 적용할지 과제로 남았습니다.nbspnbsp▲ 정토회 통합정보시스템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김도영 시스템부 부장nbsp오후4시50분부터는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을 모시고 대의원제도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대표님은 “정토회가 운영방식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어보자는 취지로 대의원제도를 도입했다”고 하면서, “현재 정토회는 선출직 88명, 당연직 38명 등 총 126명의 대의원들이 회원들의 민의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해외는 아직 정회원이 30명 이상 되는 곳이 없어 대의원이 선출되지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 정회원이 많아지면 우리들 손으로 뽑은 대의원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에 대의원 제도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마음이 급한 어떤 분은 “해외는 넓게 퍼져 있으니까 지구별로 대의원을 한명씩 선출하면 안 되는지?”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대의원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기혜 정토회 대표nbsp오늘의 모든 교육을 마치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빈그룻 운동으로 깨끗이 접시를 닦아 먹은 후 7시부터는 스님도 함께 참석하셔서 다함께 저녁예불을 올렸습니다.nbspnbsp▲ 빈그릇 운동nbsp예불 후 곧바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의문이 들었던 점에 대해 마음껏 묻고 스님의 답변을 청해 들었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께서 “다들 피곤하시죠?” 라고 묻자 모두들 “예”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저도 어제 엄나무 순을 자른다고 늦게 까지 일했더니 손이 펴지질 않네요”라고 하시면서 “낮에 쉬지 않았기 때문에 밤에는 잠을 푹 잘 수 있을 거에요. 그러면 내일부터는 시차 적응도 잘 될 겁니다. 때로는 하고 싶은 것에 구애받지 않는 경험들을 해야 삶이 자유로워집니다.” 라며 다들 기운을 내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 즉문즉설 강연nbspnbsp그리고 즉문즉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원칙의 적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중도적 자세에 대해 강조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정토회 대중부에서는 ‘한국은 이렇게 한다’ 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해외에도 한국과 똑같이 해야 한다’고 말하면 해외의 실정이 덜 반영될 소지가 있습니다. 반면 해외에서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다 자기들 마음대로 될 소지가 있습니다. 출발 선상에서는 각도가 1도쯤 벌어지면 12미터 가봐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수백키로 수천키로를 간다고 하면 엄청나게 사이가 벌어집니다. 그런 것처럼 작은 차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이 달라지면서 점점 벌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예요. 그러나 우리가 최초의 원형을 잘 통일시켜 놓으면 벌어지는 시간을 좀 더 멀리까지 연장할 수가 있습니다. 즉, 우리가 원칙대로 잘 살면 변질되는 시간을 좀 길게 잡을 수 있죠.nbspnbspnbsp그래서 정법이라는 것은 아주 심플해야 합니다. 아주 심플한 그것만 지키고, 나머지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원칙도 유지가 되고 현실 적용도 됩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다 정법이라고 정해버리면 현실에 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통째로 변질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 원칙을 너무 안 잡아 주면 말이 정토회이지 법사님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종파가 되고, 지역에 따라서 서로 완전히 다르게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서 원칙도 지키고 현실 적용도 유연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nbspnbsp원칙을 지킨다는 것을 너무 강조하게 되면, 굉장히 경직되고 대중의 요구를 무시하게 되고, 대중을 계속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됩니다. 그렇다고 대중의 요구를 너무 받아들이다 보면 원칙이 없어져 버리고 혼란스러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원칙을 지키면서도 대중의 요구를 늘 유연하게 수용하는 이것이 ‘중도’입니다. 중도는 모든 부분에 적용이 됩니다.nbspnbsp원칙을 잘 지킬수록 훨씬 유연하게 적용이 되고, 원칙이 안 잡힐수록 원칙을 너무 경직되게 강요하거나 원칙없이 혼란스럽게 진행이 됩니다. 정토회 대중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너무 강하게 적용해서 대중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분별심을 버리는 것이 수행인데, 원칙을 칼 같이 드리밀면서 분별심 덩어리가 되어 자꾸 부딪히는 것입니다. 중도란 이렇게 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예요. 중도는 원칙에 대한 이해와 현실에서의 여러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조율되어 가는 것이여서 결국 시간이 요하고 연수가 필요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100으로 벌어졌던 것이 한번 연수하면 70으로 좁혀지고, 또 현실에 적용하면 갈등을 일으키다가 다시한번 중심을 잡으면 이번에는 50, 30, 20으로 차이가 좁혀져 나가면서 중도에 근접해 나가게 됩니다.nbspnbspnbsp이쪽 저쪽 치우침의 원인은 자기의 욕망에 있습니다. 일이 수행이 되는 이유는 열심히 일하다 보면 자꾸 치우치게 되는데, 그 치우치는 것을 가지고 자기를 보면서 ‘아, 내가 지금 욕망을 갖고 대응을 하고 있구나’ 이것을 자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거든요.nbspnbsp가족이 협조하지 않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하다 보면 가족 중에 협조하지 않는 사람이 있죠. 가족과 화합하려니 정토회를 그만둬야 하고, 정토회 활동을 하려고 하니 가족과 갈등이 생깁니다. 이럴 때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냐’ 하는데, 이것도 자기 속에 욕망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 때 자기의 욕망이 작용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려놓으면 가족이 그렇게 반대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정토회 일하라고 결혼한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남편이 하자고 하는 대로 살면 내 인생이 없어지잖아요. 그러나 치우치지 않으면 나는 내 인생을 살고도 가족들의 서운함도 받아들여서 ‘죄송합니다’ 하면서 부딪히지 않고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이 길이 바르다고 생각한다면 또한 내 갈 길을 가는 중심도 분명히 있어야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수행입니다.nbspnbsp그래서 오늘은 업무든 개인 얘기든 무엇이든지 자기 속에서 번뇌가 되거나 의문이 되는 것들을 편안하게 얘기해 보세요.”nbsp이렇게 여는 말씀을 해주신 후 수련생들의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세계 100회 강연을 마치고 몸이 아프고 다시 활동을 못하게 될까봐 불안했는데 귀의하는 것과 의지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묻는 분, 몇 번 주의를 주었지만 사적으로 모임을 계속 여는 사람이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분, 재정 형편이 열악해서 법당 공간을 임대해줘서 수익을 취해도 괜찮은지 묻는 분, 법회에 나오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법당을 책임질 사람이 없어 고민인 분 등 총 4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첫 번째 질문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세계 100회 강연을 하면서 보람도 컸지만 제 안에서 화가 폭발한 적이 몇 번 있었어요. 100회 강연 끝나고 나서 맨붕 상태가 오더라구요. 그래서 휴가를 내고 아버지가 위독해서 한국에 나와 있었는데요. 몸이 아플 때 첫 번째 드는 마음이 ‘이러다가 정토회 활동 못하게 되겠다’ 하는 불안함입니다. 정토회 활동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정토회 활동에 대한 집착인 것인지, 승가에 대해 귀의한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 모르겠는데요. 어떻게 초발심으로 돌아가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당장 돌아가서 명상수련 준비도 해야 하거든요.”nbspnbsp스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결혼 생활은 두 가지 경우가 있어요. 하나는 결혼을 했으니까 마지못해 사는 경우입니다. 애를 낳았으니까 살아야 되고, 시부모님과 남편 눈치보고 살아야 되는 경우입니다. 그렇게 행복하지 않지만 그냥 사는 경우가 많이 있죠. 이것은 주체적인 자기 인생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환경이 주어진 대로 바람에 부는 낙엽처럼 사는 것이지요.nbspnbsp이런 부정적인 면이 있는 반면에 또 달리 살펴보면, 우리는 자기가 일어나는 생각대로 다 행동했으면 결혼생활을 끝까지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예요. 오늘은 도저히 못 살겠다 했지만, 내일 갑자기 시어머니가 아파서 도와주다보면 한 고비를 넘어가고, 아이 키우다보니 또 한 고비를 넘어가고 그렇거든요. 우리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이렇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늘 일시적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하는데, 주위에 주어진 조건들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입니다.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면 정말 노예처럼 사는 것이 되지만, 우리는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nbspnbsp또 반대로 내가 주인으로 산다는 것을 환경에 영향을 안 받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으로 오해하면 이것 역시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상은 내 뜻대로 안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정해진 울타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과 자각을 하면 이 영향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봐야 합니다.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을 영향 안 받는 존재가 되는 것으로 자꾸 오해를 하는데, 영향을 받지만 그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영향을 받는 것이 주위와 종속적 관계라면 이것을 자각함으로 해서 주어진 환경을 자신이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각하든 안하든 남이 보면 똑같아요. 그러나 하나는 노예처럼 속박되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능동적으로 수용해서 나가기 때문에 내면의 세계가 자유로운 상태에 있습니다.nbspnbspnbsp지금 질문자는 근본적으로는 이렇습니다. 정토회 문제도 아니고 결혼 생활 문제도 아니고 부모 문제도 아니고, 질문자는 지금 심리적 불안 증세가 있습니다. 감정 기복이 있어서 한번은 이렇게 갔다가 한번은 저렇게 갔다가 극단적으로 치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아, 나는 다른 사람보다 감정 기복이 조금 심하다’ 이것을 자기가 자각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각하고 있지 못하면 감정기복이 늘 널뛰기를 하게 되는데, 이것은 누구의 문제도 아니고 나의 까르마의 문제라고 자각하고 있으면 감정에 놀아나지 않게 되고 이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됩니다. ‘너 또 감정이 증폭되어서 일어나네’ 하면서 가만히 자신의 상태를 보고 있으면 조금씩 감정 기복이 낮아지면서 다시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는 이렇게 ‘알아차림’을 통해서 치료할 수 있고, 현대 의학에서는 약물 투여를 통해 증폭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증폭이 가라앉으면 지켜보는 것도 용이해지죠.nbspnbsp그래서 이런 경우는 대부분 귀의가 안 되고 의지가 되기 쉽습니다. 정토회에 귀의가 되었다고 한다면, 내가 내 일처럼 최선을 다하되 내가 능력이 안 되어서 정토회에 아무런 기여를 못해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정토회에서는 자기가 할 수 있으면 하면 되고, 못하게 되면 안 해도 괜찮아요. 몸이 아프면 이곳에서 약 먹고 쉬어도 되고요. 몸이 더 아프면 그냥 이곳에서 요양만 해도 되고요. 이런 믿음이 아직 부족한 겁니다. 이것은 자기 생각을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자기 생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nbspnbsp초발심으로 돌아간다고 할 때도 그 초발심이 정말 깨달아서 생긴 것이냐, 아니면 자기가 그냥 좋아서 생긴 것이냐 하는 문제죠. 필이 딱 꽂혀서 좋아서 생긴 초발심은 시간이 흘러가면 약화되거나 반대로 뒤집어지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딱 자각을 해서 일어난 초발심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마음이 더욱더 단단해지는 쪽으로 갑니다.nbspnbsp첫째는 자신의 심리 불안에 대한 치유를 명심하고 있는 것이 필요하고요. 이것 때문에 스님이 아무리 안심하라고 얘기해도 심리 불안이 일어나면 스님의 말이 온데 간데 없어져 버리거든요.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은 여기에 몸을 탁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아프면 ‘나를 보살펴 줄거냐’ 이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어요. 수행적 관점이 딱 잡히면 일이 많으면 내가 열심히 하고, 일이 적으면 여유 있게 놀고, 환경에 따라서 바쁘면 빨리 가고 여유가 있으면 천천히 가고 이렇게 형편에 따라서 물 흐르듯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욕망을 움켜쥐고 일을 하게 되면 정토회에서 엄청나게 일을 많이 하고 나중에 ‘나는 희생되었다’고 서운해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자기 공부만 딱 되어 있으면 정토회는 아주 살기 좋아요.nbspnbsp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자기 공부만 한다, 이건 수행과는 아주 거리가 먼 얘기입니다. 다만 ‘내가 지금 심리 불안 상태가 심하니까 조금 휴식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건 괜찮습니다. 그만두려고 했는데 일이 있어서 한다는 것은 일에 대한 집착이고, 내 수행이 안 되었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겠다 하는 것도 전혀 수행적 관점에 안 맞는 얘기가 됩니다. 질문자가 뉴욕에 있어서 명상수련도 준비하고 하면 좋은 일이예요. 그러나, 질문자가 없어도 우리는 명상 수련을 할 겁니다. 200명 진행할 것을 150명만 받아서 할 거고, 매끄럽게 진행할 것을 조금 불편하게 할 겁니다. 이런 차이 밖에 없고 지나놓고 보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있으면 되고 없으면 안 되고 이런 개념은 아닙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습니다.nbspnbsp제가 ‘너가 없어도 해는 뜬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질문자가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너무 일에 집착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또 여러분들 한명 한명이 힘을 보태주기 때문에 지금 일이 이뤄지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또한 매우 소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가 없어도 해는 뜬다 이런 얘기입니다.nbspnbspnbsp부처님이 안 돌아가셨으면 불교가 더 발전했을까요?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는 살아계셨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셨고, 그러나 부처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더욱더 불법이 확산이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 안 돌아가셨으면 부처님이 한분 밖에 없었을 텐데, 부처님이 돌아가심으로 해서 오백 아라한이 오백 부처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부처님이 전 세계를 다닐 수 없잖아요. 그러나 오백명은 다 역할분담을 할 수 있잖아요. 초기에 오백명을 만드는 것은 부처님이 아니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확산은 부처님이 계속 계셨다면 오히려 더 어려웠을 겁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머지가 다 모자이크 붓다처럼 협력이 되어서 인도 전역으로 확산이 된 것입니다.nbspnbsp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있으면 좀 잘 되고, 없으면 좀 부족할 뿐이지, 광명이 거기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나 스님이 아무리 잘해도 여러분들이 없으면 해외의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여러분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지치거나 과대망상을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항상 여기서 나가는 빛을 받아서 여러분들이 일을 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열심히만 하면 돼요. 문제가 생기면 보고를 하면 돼요. 여기서 의논해서 지침을 알려줄테니 그대로 해보면 되지 너무 혼자서 머리 싸 메고 죽기 살기로 고민 안 해도 돼요. 갈등이 생기면 문의하면 돼요.nbsp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가 한다고 생각하고 자기 머리로 문제를 풀려고 생각하니까 쉽게 지치고 머리가 아픈 겁니다. 이것을 가볍게 받아들여야 해요. 엄격하게 말하면 부처님이 태양이라면 우리는 그냥 달이예요. 빛이 반사되어서 투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우리가 발광체는 아니거든요. 물론 여러분들은 스스로 발광체가 되기 위한 정진을 끊임없이 해야 되지만요. 이 말의 뜻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편안하게 해도 된다는 겁니다. nbspnbspnbspnbsp질문자가 지금까지 기여한 것만 갖고도 공덕이 많으므로 정토회 오면 밥도 먹여주고 재워 줍니다. 여기가 그렇게 의리 없는 집단이 아닙니다. 다만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안 됩니다. 아무리 경력이 많아도 여기 와서 자기 성질대로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nbspnbspnbsp그래서 수행적 관점을 딱 지켜야 합니다. 수행적 관점은 법문을 많이 안 들어도 우리가 매일 아침마다 읽는 수행문에 있어요. 그런데 늘 읽는 것하고 실제로 자신이 그 관점을 딱 유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 같아요. 수행문을 딱 간직하고 있으면 불안한 심리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속적으로 의지처를 삼으면 나중에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수행적으로 의지를 하게 되면 이런 불안한 마음을 안 가져도 됩니다. 놀아도 노는 것을 편안하게 얘기하게 되고, ‘아이고 스님, 휴가 좀 주십시오’ 이렇게 가볍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수행적 관점이 안 잡히면 휴가 받고 노는 것이 불안해집니다. 다른 사람은 다 일하는데 나만 논다고 생각하거든요. 쉬고 일하자, 밥먹고 일하자고 할 때는 쉬는 게 일이고, 밥 먹는 게 일인 것처럼 지금은 휴식하는 것이 일이고 수행입니다. 아픈 몸으로 계속 일하다 몸을 버려서 병이 나면 아무 것도 못하잖아요. 아직 20년, 30년 더 정토회에서 봉사할 수 있는데 1,2년 잘하려다가 병들어 버리면 비효율적이잖아요. 이런 관점을 가지고 편안하게 접근을 하면 좋겠습니다.”nbsp스님께서 이렇게 편안하게 임할 것을 일러주시니 질문자도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수행적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질문자가 자리에 앉고 나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이 믿음의 불안정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더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전제 조건 하에 믿음이거든요. 어떻게 해주면 내가 너를 믿는다, 이런 전제 하에 있는 믿음이기 때문에 이런 믿음은 굉장히 불안정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복은 그 행복이 높으면 불행도 깊게 같이 나타납니다. ‘아이가 내 행복의 전부이다’ 라고 하는 사람은 아이에게 집착하기 때문에 아이가 죽으면 정신이 나가버리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이가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라고 말하면 ‘너 핵폭탄 가지고 있구나’ 이렇게 말하거든요. nbspnbspnbsp그래서 스님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환상을 갖고 접근을 하면 제가 뒤집어 놓는 이유도 그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스님에 대한 소문은 어떻게 들리고 전해질지 모르잖아요. 누구든지 음해하려고 하면 무슨 일이든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이것을 여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공부이고, 이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는 것이 공부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획가닥 해버리잖아요.nbspnbsp이 때 이 좋아함이라는 것은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것에 놀아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한이 됩니다. 불안정성에서 좋아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에 안 맞으면 다시 원수가 되겠구나’ 미리 보고 있어야 합니다. 원수가 안 되면 다행이지만, 원수가 되더라도 나를 좋아해준 과보이니까 미워하는 과보를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자기를 보호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nbspnbsp그래서 사람들이 스님을 막 좋아하면 저는 제 나름대로 방어를 칩니다. 또한 그 사람들을 보호하기도 해야 합니다. 나에 대한 환상이 그 사람들을 불행에 빠트리는 것을 막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도 또 나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도 가을 바람이 불어서 낙엽이 공중에 올라가니까 잘 올라가는 줄 알다가 바람이 멈추면 개굴창에 떨어지듯이 그 거품에 놀아날 수가 있거든요. 누구도 나를 보호해 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기를 보호하는 것과 남을 보호하는 것이 사실 둘이 아니예요. 내가 희생해서 남을 보호해준다는 것도 아니고, 내 이익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킨다는 것도 아니예요. 결국은 남을 배려하는 것이 나를 가장 잘 보호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공부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많이 걸립니다.nbspnbsp세상에는 행복이 있고, 행복이 있으면 반드시 불행이 따르는데, 이 행복과 불행이 윤회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열반이라는 것은 이 고와 락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고락의 널뛰기로부터 잔잔해지는 것이 열반이기 때문에 열반은 들뜨는 행복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열반을 이 들뜨는 행복과 혼돈하기 때문에 늘 윤회에서 못 벗어나게 되는 겁니다.” nbspnbsp다소 어렵게 들릴 수도 있는 법문이었지만 스님의 쉽고 명쾌한 설명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스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혹시나 그 믿음이 불안정성에 기초하고 있을 경우 그들에게 닥쳐올 괴로움을 헤아리셔서 미리 방책을 쓰신다는 말씀에 스님의 대중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이어서 세명의 질문이 더 이어졌는데, 주로 정토회에서 회원들 사이에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모임을 자꾸 만들려고 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화가 오갔고, 스님께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일러주셨습니다.nbspnbsp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니 밤10시가 넘었습니다. 2시간 30분이 넘게 진행되었지만 모두 스님의 말씀에 몰입이 된 분위기였습니다. 모두들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너무 늦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하신 후 “더 궁금한 내용은 내일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자”고 여지를 남겨 두시고 오늘 즉문즉설 강연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계속해서 해외 총무단 수련 2일째 일정이 계속될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