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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3 인도성지순례 7일째 라즈길

▲ 칠엽굴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인도성지순례를 출발한지 7일째 되는 날입니다. 3일 동안 머물렀던 수자타 아카데미를 떠나려하니 이 곳 실무자들을 먼 곳에 두고 가서 애처롭고 미안한 생각도 듭니다. 정문 앞까지 배웅 나온 현지 실무자의 얼굴이 우리가 떠나는 걸 아는지 슬픈 얼굴로 서 있는 모습에서 새로운 얼굴을 본 것 같아 가슴이 짠하였습니다. 순례단은 이제 이들의 수고로움을 많이 알아버린 까닭인 것 같습니다.nbspnbsp▲ 새벽 5시. 순례객을 기다리며 수자타아카데미 앞에 서 있는 버스들nbsp이젠 몸도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것에 적응되었는지 새벽 4시 전에 벌떡 일어나지고 몸도 개운하였습니다. 아직도 깜깜한 새벽을 뚫고 짐을 버스에 모두 싣고 nbsp전정각산을 뒤로 한 채 분주히 라즈기르로 출발한 시각은 새벽 5시였습니다.nbsp버스에 타자마자 흔들리는 차 안에서 아침예불을 하고 6시 40분쯤 라즈길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남문을 통과한 후 버스 왼쪽과 오른쪽으로 흩어져 시원하게 노상방뇨를 하고, 부처님 당시 마차바퀴 자국이 돌에 선명히 남은 장소에 모두 앉아 오늘의 일정과 가게 될 곳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날씨가 추워 몸이 오싹 하기도 했지만, 스님의 애정어린 설명에 금새 집중이 되어 추위도 잊었습니다.nbspnbspnbsp▲ 마차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곳nbsp라즈길은 왕사성이라고 우리에게 더 익숙하게 알려져 있는 곳으로 원래 이름은 라자그라하인데 왕의 집이란 뜻입니다. 왕사성은 부처님 당시 북인도에서 가장 큰 나라인 마가다국의 수도로서 당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또한 왕사성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인 천년의 요새였습니다.nbsp이 곳은 부처님이 성도하시기 전에 두 분의 스승을 만나 수행한 곳이었고, 수행하시는 부처님의 청청한 모습을 보고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께서 성도하시면 자기를 깨우쳐 달라고 부탁한 곳이기도 합니다.nbsp스님의 설명을 다 들은 후 오늘의 첫 목적지인 영축산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영축산은 부처님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으로 법화경, 반야심경, 열반경이 설해진 곳이고 염화시중의 미소가 행해진 뜻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nbsp영축산을 오르는 길은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을 만나러 다닌 길이라고 하여 빔비사라왕의 길이라고 불립니다. 왕이 마차로 산 아래까지 와서는 마차에서 내려 가마로 500미터 정도 산으로 오르다가 다시 100m 정도 걸어갔다고 되어 있었습니다.nbspnbsp▲ 빔비사라 왕이 영축산에 계신 부처님을 만나러 다녔다는 빔비사라왕의 길nbsp영축산 가는 길 초입에는 부처님의 주치의인 지바카의 망고원이 있었습니다. 빔비사라 왕이 마차에서 내려 가마로 가기 시작한 곳은 데바닷타가 부처님을 헤치려고 던진 돌 파편에 부처님이 발을 다쳐 제자 아난다에게 업혀 내려와 지바카의 응급치료를 받았던 곳이기도 하고, 육방예경이 설해진 곳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육방예경은 부처님 당시 어리석은 젊은이를 깨우치기 위하여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부부, 친구, 주인과 하인 관계에서 각각 가져야할 마음자세를 가르친 이야기라고 합니다. 스님의 인기 저서 ‘스님의 주례사’도 이 육방예경을 바탕으로 주례를 본 것이라고 합니다.nbspnbsp영축산 정상에는 신기하게도 여러 크고 작은 굴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 곳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굴 이름도 제자들의 이름을 따서 아난다굴, 사리불굴, 목련굴, 마하가섭굴 등으로 불렸고 차례대로 참배하였습니다.nbsp▲ 아난다 존자가 수행했다고 하는 아난다 굴nbsp또한 산의 정상부근에는 데바닷타가 부처님을 해치기 위해 돌을 던졌다고 전해지는 곳이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상세하게 해 주셨습니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자만심에 빠진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해주는 일화였습니다.nbsp▲ 데바닷타가 부처님께 돌을 던진 곳.nbsp영축산 정상에는 독수리를 닮은 바위가 있었고 그래서 이름이 인도말로 ‘그리드라쿠타’ 즉 독수리봉이라고 불리우는데, 한문으로는 ‘영축산’이라고 부르는 곳입니다.nbspnbsp영축산의 정상이 좁아서 순례단의 일부만 정상에 앉고, 나머지 순례단은 모두 정상 바로 밑으로 차례대로 앉아 영축산 정상을 향하여 가사를 수하고 부처님 당시에 설한 경전을 독송하였습니다. 500명이 읊는 예불은 장엄하기까지 했습니다.nbspnbspnbsp공간이 비좁아서 예불은 앉은 자리에서 그냥 했습니다. 예불문에 나오는 ‘영산당시 수불부촉...’ 에서 바로 그 영산이 이곳인데, 예불을 하면서 “영산당시” 라고 읊으면서 무언가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부처님이 2,600년 전에 설법을 하신 바로 그곳에 지금 500여명의 순례단이 다시 찾아와 예불을 올리고 있으니 참으로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nbspnbspnbspnbsp영축산을 내려오는 길에 영축산 정상이 잘 보이는 곳에서 차량별로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영축산을 배경으로 차량별로 사진을 찍는 시간.nbspnbsp버스로 5분쯤 걸리는 곳인 빔비사라왕의 감옥터로 갔습니다. 감옥터는 왕사성의 내성 맨 끝에 위치한 곳으로 감옥터의 외곽만 남아 여기가 감옥이었구나 짐작하게 할 뿐이였습니다. 아침 내내 끼여있던 안개가 많이 걷혀졌고 해가 밝게 비추고 있어 따뜻하기까지 했습니다. 순례단은 조별로 정렬하여 앉아 가사를 수하고 예불을 드렸습니다.nbspnbsp스님께 빔비사라 왕이 아들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된 사연과 그런 왕을 위로하신 부처님의 이야기, 감옥에 갇혀 굶고 있는 왕에게 음식을 몰래 전하려던 왕비 위제희 부인이, 아들에게 이 사실을 들켜 골방에 갇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부처님의 위로를 청하고, 부처님은 그런 왕비를 위로하기 위해 관무량수경을 설하신 이야기 등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nbsp▲ 빔비사라왕의 감옥터. 안개 때문에 안보이지만 스님 뒤로 저 멀리 영축산이 있습니다.nbspnbsp“이곳은 빔비사라왕의 감옥터입니다. 왕이 자기가 만든 감옥에 갇힌 겁니다. 빔비사라왕은 당시 인도 강국의 절대왕인데 나이가 사십이 될 때까지 아들이 없었어요. 당시에는 왕위를 아들이 잇잖아요. 아들이 없으니까 정정이 불안한 거예요. 어느날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서 점을 치니까 3년 후에 아들이 생긴다는 거예요. 저 히말라야 산에서 수도하는 수도승이 명이 3년 남았는데 그 사람이 죽으면 자신의 아들로 태어나도록 인연이 되어있다고 했어요. 왕이 사실을 확인해보고 아들 갖고 싶은 마음이 급하니까 그 수도승이 빨리 죽으면 아들이 빨리 태어날 것이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들어서 사람을 보내서 ”빨리 죽어라“고 했더니 그 수도승이 거절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왕명을 거역했다고 해서 죽임을 당하게 된 겁니다. 이 사람이 죽으면서 ‘내 반드시 원수를 갚겠다’ 하고 죽은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죽자마자 바로 위제희 부인에게서 애기가 생긴 겁니다.nbspnbspnbsp그래서 왕은 애기를 갖게 된 기쁨과 원수라는 사실에 대한 불안함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애기를 낳자 마자 2층에서 아래층으로 던져버렸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애기가 땅에 떨어졌는데도 손가락 하나만 부러지고 무사한 겁니다. 그래서 왕이 다시 마음이 바뀌어서 애기를 극진히 키웠습니다. 그 애기가 바로 아자타사투 왕자입니다.nbspnbsp세월이 흐르고 데바닷타가 부처님 교단의 새로운 리더가 되려고 하는 시도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아자타사투와 데바닷타는 모의를 해서 아자타사투 왕자는 빔비사라 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고, 데바닷타는 부처를 해치고 자기가 새 부처가 된다는 새로운 세상을 꿈꾼 겁니다. 그 때 데바닷타가 아자타사투를 꼬드긴 이야기가 “왕은 너의 아버지라고 하지만 사실은 너의 원수다” 하는 비밀을 이야기해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자타사투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고 굶겨 죽이려고 한 겁니다.nbspnbsp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왕의 부인이면서 왕의 어머니가 될 위제희 부인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권력을 쟁취하는 싸움을 하게 되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이기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죽고, 아들이 이기면 자기 남편이 죽고, 누가 이겨도 진 자는 역적이 되고, 역적은 살려두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여자가 된 것입니다. 해결책이 없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어요?nbspnbsp그런데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리려고 하니까 아자타사투 왕은 어머니도 아버지와 한패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도 감옥에 가둡니다. 그래서 감옥에 갇힌 위제희 부인은 저 멀리 영축산을 바라보면서 자기 신세 타령을 하면서 부처님께 기도를 합니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아들을 낳게 되었고, 부처님은 왜 데바닷타 같은 저런 악인을 친족으로 두었나 원망을 합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지금 너가 억울하고 분한 것 같지만 사실 빔비사라 왕은 자기 아들을 얻기 위해서 남을 죽이고, 너도 너의 아들을 얻기 위해서 그것을 방치했고, 아들은 제 원수를 갚는다고 제 아비를 죽이는 이런 중생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해 줍니다. 그러니까 위제희 부인은 ’나는 이런 세상은 싫습니다. 이런 괴로움이 없는 세상은 없습니까?‘ 하니까 부처님이 극락 세상을 보여주자 위제희 부인은 극락 세상에 나기를 발원합니다.nbspnbsp위제희 부인은 “나는 지금 부처님의 위신력을 빌려서 극락 세상을 볼 수 있지만 후세 대중은 어떻게 극락을 볼 수 있겠느냐?”며 부처님께 청하니 부처님께서 극락을 보는 16가지 관법을 설해 줍니다. 이것이 바로 ‘관무량수경’입니다. 대부분의 경전이 부처님의 제자들이 거룩한 질문을 해서 법문이 설해지는데, 이 경은 가장 곤궁에 처한 여인이 울부짖으면서 부처님께 기도한 데 따른 부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는 더 소중하지 않나 생각합니다.nbspnbsp지금 우리가 앉은 방향이 영축산이예요. 위제희 부인처럼 영축산을 향해서 경전을 독송해 보겠습니다.”nbsp스님의 이야기를 다 듣고 위제희 부인의 간절한 마음이 되어 경전을 독송하고 잠시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이 아니었다면 위제희 부인이 얼마나 더 고통스러웠을까 헤아려 봅니다. nbspnbspnbsp빔비사라왕 감옥터에 조별로 돗자리를 펴고 모여 앉아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해 준 밥을 반찬과 함께 맛있게 먹은 후 다음 장소인 죽림정사로 떠났습니다.nbsp날씨가 갑자기 더워집니다. 버스 안에서 새벽에 추워 껴 입었던 옷들을 벗었습니다. 날씨가 요동을 치니 벗어 놓은 옷이 한 짐이나 됩니다. 5분쯤 달려 죽림 정사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니 콧물이 흐르는 꼬질꼬질한 아이들이 손을 내밀며 우리를 먼저 반깁니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딱하고 안스럽습니다. 스님께서는 어김없이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며 이 아이들의 다음 세상을 위해 발원을 하십니다.nbspnbsp죽림정사는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의 법을 듣고 감명을 받아 부처님과 1,000명의 제자가 머물 곳을 보시한 곳으로 초기 사찰의 원형이 된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도 예불과 공양을 올리고 이곳에서 설한 경을 함께 읊고 명상도 했습니다. 명상을 하며 지금 맡고 있는 공기를 부처님과 제자들도 맡았을까 생각하니 부처님이 더 생생하게 느껴집니다.nbsp▲ 죽림정사에 도착해 예불을 정성껏 올립니다.nbspnbsp예불을 올린 후 스님께서는 이 곳에서 부처님의 상수 제자인 사리불 존자와 목건련 존자가 부처님께 귀의한 이야기며, 빔비사라 왕이 죽림정사를 보시한 이야기 등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이곳이 1,250명의 대중이 있었던 죽림정사입니다. 우리가 늘 예불문에 ‘천이백 제대 아라한’ 또는 금강경에 ‘천이백오십 대 비구중’하는 바로 그곳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바라나시 사르타트로 가셔서 교진녀 등 오비구와 야사 등 육십명을 모아놓고 전법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우루벨라촌으로 오셔서 우루벨라 가섭, 나디 가섭, 가야 가섭 등 일천명을 교화하셔서 가야산에서 탐진치 삼독의 불을 끄라는 유명한 설법을 하신 뒤에 그 천명의 대중을 이끌고 이곳 왕사성으로 오셨습니다.nbspnbspnbsp왕은 왕사성 서문 밖 제띠안까지 마중을 나왔고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왕은 바로 그 이치를 깨닫자 너무 기뻐 부처님을 왕궁으로 초대했습니다. “내가 왕이 되었고, 내가 다스리는 나라에 부처님이 출현하셨고, 내가 부처님을 친견해서 이렇게 법문을 듣게 되었고, 또 내가 그 법문을 이해하게 되어서 지혜의 눈이 열렸다” 면서 “마지막 소원이 하나 있는데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거였다” 라고 하고 “왕궁에 오셔서 저의 공양을 받으옵소서” 청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거절을 하셨어요. 즉 수행자는 궁중에 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왕은 부처님이 머무실 좋은 자리가 어디일까 생각해봤는데, 성 안은 너무 번다하고 성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탁발하기 어려우니 성으로부터 적당히 떨어져 있는 곳이 좋겠다 해서, 북문 밖에 있는 자신이 아주 아끼던 대나무가 우거진 숲을 보시했습니다. 대나무가 우거진 숲을 죽림이라고 합니다.nbspnbsp대나무 숲에서 어떻게 머무는가 하는데 여기 보시면 알지만 인도 대나무는 하나씩 솟는 것이 아니고 무리를 지어서 이렇게 솟아서 마치 보리수나 느티나무 모양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대나무 숲은 수행자들이 정진하기에 좋고, 그래서 이곳이 불교 교단에 처음으로 세워진 죽림정사입니다.nbspnbsp인도 풍습으로는 항상 절에 연못이 있었어요. 이곳 죽림정사의 연못은 카란다카 연못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장자 카란다카가 보시를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과 천이백 대중이 이곳에 머무실 때 아난다 존자는 이 물을 떠서 부처님이 발을 씻을 수 있도록 해드린 그런 곳입니다. 그러니 눈을 감고 가만히 명상을 하면 부처님과 아난다 존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nbspnbspnbsp부처님이 이곳에 머무실 때 ‘앗사지’라는 비구가 있었어요. 앗사지는 사르나트에서 오비구 가운데 마지막에 깨달은 비구예요. 앗사지가 왕사성 안에서 탁발을 하고 다녔어요. 수행자는 두리번 두리번 하지 않고 발 끝 한치 앞만 보면서 정진을 하며 걷습니다. 그 걷는 모습이 너무나 수행자다워서 이 모습을 사리푸트라가 본 것입니다. 그래서 저 분은 참 위대한 수행자다 해서 사리푸트라가 가서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니 “저는 붓다의 제자입니다” 라고 대답했어요.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과 비견되는 여섯명의 스승이 있었고 이것을 육사외도라고 하는데, 사리푸트라는 그 중에 산자야라는 분의 제자였어요. 그런데 그 앗사지의 거동을 보고 감동을 해서 “당신의 스승은 무엇을 가르칩니까?” 하니 “그분이 계신 곳에 가서 여쭤보십시오” 그랬어요. 그래도 한마디만 이야기해 달라고 하니 앗사지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겨남으로 저것이 생겨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라고 하면서 설했어요. 이것을 듣고 사리푸트라는 마음 속에 많은 의문이 풀렸어요.nbspnbsp그래서 사리푸트라는 자신의 그 기쁜 마음을 자신의 친구인 목갈리나와 나누기 위해 수행처로 돌아왔습니다. 목갈리나가 사리푸트라의 환한 얼굴을 보고 “무슨 좋은 일이 있소?” 라고 물어서 그 내막을 이야기해 주니 목갈리나도 바로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자신들의 스승인 산자야를 찾아가서 “이런 위대한 수행자가 출현했는데 우리 같이 가서 법문을 들으면 어떻겠소?” 그러니 산자야는 “그것은 믿을 수가 없소” 하면서 회의론을 폈어요. 그래서 사리푸트라와 목갈리나는 스승을 두고 자기들만 붓다에게로 갔습니다. 그래서 두 분이 자신의 제자 100명씩 총 200명을 데리고 붓다에게 가서 법을 청해 듣고 다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러니 천명이 함께 왔는데다가 이백명이 더 합류했으니 이제 천이백명이 되었습니다. 또 그 전에 육십명의 아라한이 있었죠. 그래서 이 분들은 부처님이 성도하고 1년 안에 제자가 되신 분들이니까 불교 교단 안에서는 모두 장로가 되잖아요. 그래서 늘 천이백 제대 아라한을 칭송하는 이유가 이 분들이 가장 교단의 장로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천이백오십 대중과 함께 계셨다고 경전에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소중한 곳이 바로 이곳 죽림정사입니다.”nbspnbsp그리고 죽림정사에서의 부처님의 행적이 담긴 경전을 함께nbsp독송하고 잠시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nbspnbsp오늘은 일정이 많아 바쁘게 다음 장소인 칠엽굴로 갔습니다. 칠엽굴로 가는 길은 ‘온천정사’라는 목욕을 하는 곳이 있어 초입부터 굉장히 복잡했습니다. 온천정사의 맨 위쪽은 높은 카스트가 목욕하지만 맨 아래쪽의 더러운 물에서는 낮은 카스트가 목욕을 한다는 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21세기인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다시한번 제대로 느끼게 됩니다.nbspnbsp▲ 온천정사를 지나 칠엽굴을 향해 오르는 길.nbsp산 꼭대기에 자이나교의 성지가 있어서 그런지 올라가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멀고 가파른 길을 한참 올라 칠엽굴에 도착했고, 이어폰을 통해 스님께서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시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경전에는 칠엽굴에 아라한 500명이 모여 앉아서 경전을 결집했다고 하는데, 스님께서 “여기 500명이 진짜 다 앉을 수 있는지 보기 위해 500명을 데려왔다” 고 하시면서 “봐라. 500명 다 앉을 수 있네” 하시자 다 같이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 경전을 결집할 당시처럼 칠엽굴 앞에 오백 대중이 앉았습니다.nbspnbsp칠엽굴은 부처님 사후 부처님 말씀을 최초로 결집한 제1결집이 행하진 터로 아난다와 우파리가 초안을 내고, 마하가섭 존자가 사회를 보고, 500명의 아라한이 초안을 검증하는 형식으로 결집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칠엽굴에서의 경전을 결집할 당시의 상황과 부처님 입멸 후에 불교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여러분들 여기까지 올라오신다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앉아 있는 이곳이 바로 경전이 처음으로 결집된 칠엽굴입니다. 왜 칠엽굴이라고 부르냐면 나뭇가지 잎사귀처럼 일곱 개의 굴이 연결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칠엽굴에서 경전을 결집했다고 하니까 무슨 제주도 만장굴 같은 곳에 들어가서 하신 줄 아는데 그렇지 않고 우리가 앉은 여기서 결집을 했습니다. 굴 속은 깜깜해서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경전을 결집했겠어요? 여기 동굴이 후끈 후끈 하잖아요. 수행자들이 동굴 안에서 정진하기 좋았기 때문에 많이 알려진 곳이였어요.nbspnbspnbsp그런데 왜 여기까지 올라와서 경전을 결집했을까요?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결집한다고 하니까 너도 나도 참여하겠다고 한 겁니다. 만약에 저 밑에서 하면 누구는 참여하고 누구는 참여 안 하고 통제를 못합니다. 그래서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이곳까지 올라와서 경전을 결집했다고 해요.nbspnbsp부처님이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를 때 대부분 슬퍼했어요. 그런데 몇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고 해요. 특히 젊은 사람들 중에는 ‘아이고, 그 늙은이 잘 죽었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이것은 하라, 이것은 하지마라’ 이런 잔소리가 많았다고 받아들인 거예요. 이 얘기를 장로들이 듣고 굉장히 걱정을 한 거예요. 지금 부처님이 돌아가시자마자 저런 사람들이 생기는데 세월이 흐르면 어떨까요? 온갖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나는 부처님 말씀을 이렇게 들었다 하는 문제가 생기면 진위를 규명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마하가섭 존자가 부처님의 말씀을 전부 모아 놓아서 가짜가 생기더라도 막을 수 있게 해야겠다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을 결집하겠다고 하니까 수천명이 다 참가하려고 해서 마하가섭 존자가 아라한과를 증득한 사람에 한한다고 제안을 했어요. 그래서 여기 500명이 모인 겁니다. 그 때 재정 후원을 아자타사투 왕이 했다고 합니다.nbspnbsp그런데 문제는 부처님을 25년 동안 시봉한 아난다가 그때까지 아라한과를 아직 증득하지 못했다는 것이였죠. 부처님을 시봉하고 법문을 듣기만 했지 아직 자기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거예요. 아난다는 당연히 자기가 참가할 줄 알았는데 참가가 안되었어요. 아난다에게도 불명예이지만 아난다가 없으면 경전을 결집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래서 아난다가 그날 밤에 백천간두 진일보의 정신으로 목숨을 건 정진을 해서 아라한과를 증득했다고 해요. 아난다는 맨 마지막으로 오백 대중에 함께한 겁니다.nbspnbspnbsp우리도 여기 오백 명이 모였는데 지금 조는 사람도 있네요. 오백명이 모여서 부처님 말씀을 결집하려면 소란했겠죠. 그래서 사회를 마하가섭 존자가 보고 경의 초안을 아난다가 내었어요. 아난다가 먼저 초안을 내면 다른 사람들이 다 듣고 검증을 했어요. 아난다가 언제 어디서 부처님이 누구에게 어떤 법문을 했는지를 읊조리면 거기 모인 사람들이 “옳소. 나도 그렇게 들었소”, “그것은 다른 곳에서 하신 말씀과 섞였소” 이렇게 하나하나 검증을 했어요. 그래서 성경보다는 월등하게 정확합니다. 불경은 깨달은 오백명이 모여서 하나 하나 검증해서 확인된 것을 결집을 시켰으니 정확도에 있어서는 비교가 안됩니다.nbspnbsp초기에 모든 경전은 암송에 의해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부처님이 열반하고 500년이 지난 뒤에 문자로 적게 된 것입니다. 암송이 기록보다 더 정확합니다. 글로 쓴 것은 글자가 틀리면 완전히 오류가 생기거든요. 아난다는 부처님이 하신 말씀의 곡조까지 흉내를 그대로 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가지 의심이 들었다고 해요. 첫째, 부처님이 살아서 돌아오셨는가. 둘째, 타방에 계신 부처님이 이곳에 오셨는가. 셋째, 아난다가 성불했는가. nbspnbspnbsp이런 의심이 들만큼 녹음기 틀어놓은 것처럼 그대로 재현이 된 겁니다. 그렇게 해서 오백명이 다 검증을 해서 모든 경전을 결집한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한번 보세요. 오백명이 앉아도 충분하죠? 딱 오백명이 앉으면 되는 자리네요. 가섭 존자가 오백명 이상은 안된다고 한 이유도 자리가 좁아서 안되었겠어요.” nbsp오백 대중이 모여 경전을 읊는 모습을 상상하며 명상도 하고 경전 독송도 함께 했습니다. 2,600년이 흘러 오늘 오백 대중이 이렇게 다시 모여 이곳에 앉아 당시 상황을 다시 재현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다함께 “만세”를 힘차게 부르면서 기념사진을 찍고 산을 내려왔습니다.nbspnbspnbsp칠엽굴을 바쁘게 나와 오늘의 마지막 여정인 나란다 대학으로 갔습니다. 나란다 대학 유적지 맞은 편에 작은 박물관이 하나 있어서 먼저 그곳부터 들어가서 이곳에서 발굴된 불상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여러 불상들 중에 특히 부처님의 8대 성지가 다 나와있는 불상이 있어서 관심있게 보기도 했습니다. 박물관 입구에 나란다 대학의 전체 규모를 알 수 있는 모형이 있었는데, 현재 발굴된 것은 10분의1도 안된다고 하니 당시에 얼마나 규모가 컸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나란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불상. 8대 성지가 한 불상 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nbspnbsp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란다 대학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란다 대학은 불교를 가르치던 곳으로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큰 대학이었는데 교사만 천오백명이였고 학생은 만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혜초 스님도 이곳에서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런 역사적이고 온갖 지혜가 넘쳐났을 곳을 무슬림이 침공해서 모두 불 태워버렸고, 더군다나 도서관은 6개월이나 불 탔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nbsp▲ 나란다 대학. 네모난 곳이 스님 한 명이 명상을 하던 방이라고 합니다.nbspnbsp나란다 대학을 끝으로 오늘의 많은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순례단은 모두 라즈길에 예약된 숙소 곳곳으로 흩어져서 하루종일 걷고 걸었던 여독을 풀었습니다.nbsp내일은 새벽 3시30분에 기상해서 4시에 출발하는 일정입니다. 바이샬리로 가서 아직 3개 밖에 발견되지 않았다는 진신사리탑을 참배하고 또 원숭이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는 원후봉밀터를 참배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2015.01.15. 27,121 읽음 댓글 22개

2015.1.12 인도성지순례 6일째 수자타아카데미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인도성지순례 6일째로 오전에는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21주년 기념식에 참여하고, 오후에는 둥게스와리 마을 방문을 하는 날입니다. nbspnbsp오늘도 새벽 4시에 기상하여 4시30분에 수자타아카데미 쁘락보디홀에 모여서 새벽 예불을 드렸습니다. 500명의 대중이 가사를 걸치고 함께 하는 새벽 예불은 참으로 장엄하고 엄숙합니다.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고 전정각산에 오르기 위해 6시 20분에 교문 앞에 모였습니다. 새벽에 짙은 안개가 끼여 등산이 가능할까 걱정하였는데 예정대로 진행되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nbspnbsp어제 순례길 행군으로 피곤한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라고 공지하였지만 대부분의 순례객들이 동참하였습니다. 등산길 입구에 있는 돌무더기를 가르키며 스님은 ‘탑터’라고 말씀하시면서 탑에 관한 사연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 부처님께서 죽어가는 여인의 분소의를 입은 곳에 세워진 탑터nbspnbsp“탑 하나는 부처님의 수행 자리를 기리면서 지은 것이고, 또 하나의 조그마한 탑은 버려진 여인이 죽어가면서 부처님이 수행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죽으면 분소의를 저 분이 입어주시기를 소원하였는데 부처님이 그 마음을 아시고 나중에 분소의를 입으시자 그 여인은 곧 천상에 태어나게 되었다는 사연이 있는 탑입니다. 부처님은 이 전정각산 지역에서 무려 6년이나 수행하셨기에 이곳저곳 부처님이 머무르시지 않은 곳이 없다고 볼 수 있어요. 다 사연이 있어서 산봉우리마다 탑이 세워졌고 마을 근처에도 여기 저기 남아 있는 탑터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마을에서 가까운 탑들의 경우 훼손이 심각한데 이는 불교가 쇠퇴하면서 마을사람들이 집수리 하거나 생활에 필요한 돌이나 벽돌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가져다 갔기 때문입니다.nbspnbsp현재 여러분이 보듯이 전정각산은 돌산이지만 부처님이 수행하던 당시에는 아마도 울창한 숲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당시에는 시체를 버리는 곳으로 부정한 땅이라는 뜻인 둥게스와리로 불리었는데 사람들이 여기로 오길 꺼려했습니다. 지금은 근처 마을사람들이 밥을 짓는데 땔감으로 산의 나무를 베어가기 때문에 나무가 자라기가 어렵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의 대다수가 산의 돌을 깨어서 먹고 사는데 산의 일부분이 사라질 정도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불교의 성지로서 세계적 문화유산이 될 전정각산의 바위들이 최근 급격하게 증가하는 도로 포장용 자갈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현재는 정부에서 전정각산을 성지로 보호하면서 함부로 나무를 자르지 못하게 하고 나무를 심도록 지원하고 있고 돌 채취도 금하는데도 실제적으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nbspnbsp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한참 오르다 보니 마을의 짙은 안개들이 엷어지고 산으로 올라갈수록 날씨가 좋아지는 듯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전정각산을 오르시면서 “작은 가시나무들이 바지 가랑이를 붙잡아도 살살 달래면서 털고 오세요. 힘껏 잡아채면 옷의 올이 다 풀려서 상합니다” 라고 하시면서 “여기는 나무들도 척박한 곳이라서 외로워서 사람을 잡으니 살살 달래야 합니다.” 라고 덧붙이십니다.nbspnbsp조금 더 오르니 꽤 큰 웅덩이가 보이는데 물이 뿌옇습니다. 스님께서 물 웅덩이를 가리키며 설명을 해주십니다.nbspnbsp▲ 부처님이 전정각산에 머무시면서 물을 드셨다는 샘터nbsp“이 곳이 전정각산에서 유일하게 물이 있는 곳입니다. 부처님도 이곳에서 물을 드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한번 마셔 볼래요? 배탈 나도 책임 못 집니다. 이곳은 석회석 암반이라서 물이 희뿌였습니다. 아마도 부처님이 마셨던 우물은 기슭의 이 조그마한 샘터일 것입니다. 지금은 건기라서 물이 없네요.”nbspnbsp조금 더 가니 바위로 둘러싸인 평안해 보이는 곳이 나옵니다.nbspnbsp▲ 부처님께서 명상하시던 자리의 탑터nbspnbsp“이곳은 바람을 막아주어서 안온합니다. 아마도 겨울에는 여기서 주로 부처님이 머무셨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여기와 저기에 탑터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명상하던 자리로서 탑을 세웠던 곳입니다. 그럼 여기서 한 20분 정도 명상 하겠습니다.”nbspnbsp스님은 몸소 바위에 자리를 깔고서 자세를 바로 하시고 간략하게 명상하시는 법을 알려주시고 함께 명상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8호차부터 13호차까지 약 250명의 대중이 모두 조용히 자리를 잡고 명상을 하는 가운데 시원한 바람이 살살 불어오고 부처님께서 정진하셨던 이곳에 2500여년이 지나 그 제자인 정토행자들이 명상을 한다고 하니 가슴이 벅차오르고 마음이 새롭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명상의 공덕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부처님이 명상하셨던 이곳에서 잠깐이라도 명상을 해본 것은 인도성지순례의 큰 공덕입니다. 이 잠깐 동안의 명상만으로도 여러분은 본전을 뽑은 겁니다. 나머지는 인도까지 왔으니까 곁다리로 보는 것이예요.”nbspnbsp순식간에 시간이 흘러서 스님께서는 좌선을 풀고 단체 사진을 찍자고 하셨습니다. 그 때 스님이 앉았던 바위 밑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모두 신기해하였습니다. “명상 중에 따뜻하고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더니 이래서 그랬나 보다” 하시면서 웃으셨고 많은 분들이 바위 밑을 들여다 보겠다고 모여 들자 “아이고 이것도 구경이라고 난리다” 하십니다.nbspnbsp▲ 새벽녘 전정각산 위에 올라 힘차게 두 손을 하늘 위로 번쩍 들어 봅니다.nbspnbsp모든 사람들이 바위에 기대여 단체사진을 찍고 나자 아래 마을 쪽에서 짙은 안개가 빠르게 올라오는데 장관이었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사진도 찍지 못할 뻔 했습니다. 스님이 앞장서시고 서둘러 길을 내려왔습니다.nbspnbsp아침 식사를 맛있게 하고 8시 30분부터 설성봉 거사님 추모식을 거행하였습니다.nbspnbspnbsp장도연 행자님은 추모문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습니다. 순례객들도 추모문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nbspnbspnbsp설거사님 부를 때마다 안경 너머 작은 눈은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 줄 채비를 갖춘 선한 눈매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옅은 웃음으로 대답하셨죠. 세상 살이에 아무런 욕심이 없어. 어디 살든 나는 정토행자이고 정토행자로 살다 부처님 법다이 살다 죽으면 되지... 언젠가 옥상에서 전장각산을 바라보고 허허 웃으며 하시던 말씀. 지지리도 못 살아 인간 대접 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땀이 많으신 분이 40도를 오르내리는 인도 땅을 밟으심은 바로 그 이유였습니까? 중학교 건물 콘크리트 친다고 인도의 어린 아이들과 함께 대야에 시멘트를 이고 나르던 당신의 모습. 눈물이 납니다. 당신의 모습이 수자타아카데미 전정각산과 더불어 더 큰 무게로 가슴을 누릅니다. 당신의 크나큰 사랑, 남아 있는 저희들이 이루겠습니다. 설성봉 거사님 부처님 고행하신 전정각산 바람따라 네이란자라강 흐르는 강물따라 몸 편히 누이시고 고이 가소서 빛으로 돌아오소서nbspnbsp그리고 유수스님의 염불과 함께 정성스럽게 천도재를 올렸습니다.nbsp척박한 이곳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시다가 무장 강도의 총격에 숨진 거사님이 있었기에 오늘의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부디 왕생극락하시고 빛으로 돌아오소서’ 하는 마음으로 지극정성으로 재를 지내고, 설 거사님의 뜻을 이제 우리가 이어받아서 인도JTS를 잘 가꾸어 나가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nbspnbspnbsp추모식을 하는 동안에 학교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부다가야의 외국절 스님들 그리고 이 지역 국회의원들을 포함한 내빈들이 21주년 개교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내빈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행사가 열리는 쁘락보디홀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nbspnbspnbsp요란한 축하 음악과 함께 기념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사회는 인도어로 진행되었고 오늘을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한 학생들의 공연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공연 하나 하나 신나고 재미있고 멋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정말 다채롭고 인상적인 인도 공연을 보는 듯 했습니다. 때로는 인도 음악에 때로는 한국 전통 음악에 맞추어서 신명나게 즐기는 모습에 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nbspnbspnbspnbsp특히 인도 남자 아이들의 힘차고 멋진 군무에 보살님들의 탄성과 박수가 커 보였습니다. 또 아이들은 평소에 갈고 닦은 태권도 실력도 뽐냈습니다. 한국말로 “하나”, “둘”, “태권” 하는 소리에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nbsp저렇게 멋지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들에서 어제까지 관광지에서 보았던 구걸하는 인도 아이들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정말 정성으로 교육한 힘은 컸고 기적을 보는 듯하였습니다.nbspnbspnbsp한참 신나게 공연을 즐기고 드디어 스님께서 감사의 인사말을 하셨습니다. 먼저 개교 기념식에 참석한 분들을 하나 하나 언급하면서 감사의 말씀을 하는데 학생들을 제일 먼저 말씀하면서 고맙다고 하십니다. 그 뜻을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수자타 아카데미를 오랫동안 지원해 주셨던 미얀마 스님을 위시하여 근처의 베트남, 방글라데시, 티벳 스님들 그리고 지역 유지들 그리고 학교를 세울 당시 땅을 보시하였던 이곳의 가난하고 헐벗은 동네사람들, 하나라도 빠질세라 스님의 세심한 모습이 엿보입니다.nbspnbspnbsp“1993년 시작하여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특히 3번이나 무장강도가 들어서 설성봉 거사님이 총에 맞고 돌아가시기도 하였습니다. 이럴 때마다 부다가야 스님들이 오셔서 위로하였고 도움을 주셨습니다. 경찰서장님도 이곳의 치안에 신경을 많이 써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여기 오신 동네 어르신들이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15개 동네 1만여명의 주민들이 있는 이곳에서 이제는 대부분의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고 결핵환자가 거의 없어졌고 유아 사망자가 크게 줄었습니다. 핸드펌프 설치로 식수도 개선하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할 일들이 더 많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지원과 협력이 필요합니다.nbspnbsp둥게스와리 nbsp아이들도 교육시키면 다른 도시의 어느 아이들과 똑같이 잘 할 수 있습니다. 교육의 기회가 없다면 구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처님이 이곳에서 6년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었듯이 이 아들들도 교육 받으면 이 사회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들을 부처님처럼 잘 돌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nbspnbspnbsp마지막 공연에서는 아이들이 법륜스님과 여러 귀빈들을 모시고 무대 위로 올라와서 꽃목걸이를 걸고 “세상을 함께 치유하자”는 노래를 부르며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미를 장식하였습니다.nbspnbsp학교를 세우신 스님에 대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가슴 속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스님이 아니였다면 지금도 굶주림에 허덕이며 구걸을 하고 있었을 아이들인데...’ 순례객들도 모두 눈시울을 붉힙니다.nbspnbspnbsp성지순례객들도 오늘은 인도식으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나뭇잎으로 만든 접시 위에 유미죽, 뿌리, 달 그리고 오렌지를 담아서 야외 잔디밭에 조별로 올망졸망 모여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늘은 숟가락도 사용하지 않고 인도인들처럼 손으로 식사를 해봅니다.nbspnbspnbsp▲ 인도 아이들처럼 인도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는 시간nbsp점심식사 후에는 직접 마을 방문을 하였습니다. 약 500명의 순례객들이 각각의 마을로 나뉘어져 실제 이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고 무엇을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 위에 올려져 있는 접시와 냄비가 갖고 있는 살림의 전부라고 합니다.nbspnbsp방문한 마을의 아이들은 무슨 신나는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때로 몰려와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건네는데 사탕이나 초콜렛을 원하는 듯 했습니다. 안내해주는 법사님이 “아이들에게 자꾸 무엇을 주지 마세요. 아이들을 거지로 만들지 마시고 의젓한 청년으로 자라게 해주세요. 주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저희 JTS에 주시면 저희가 잘 전달하겠습니다.” 라고 얘기해주시는데 JTS가 어떻게 아이들을 올바르게 교육시켜 왔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두르가푸르 마을을 방문해 부엌을 보여주며 설명을 하고 있는 선주 법사님.nbspnbsp직접 들여다 본 방 안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게 깜깜한지 놀라웠고 염소나 닭과 함께 생활해서 염소 똥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어찌 사는가 싶지만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밝게 웃으면서 사진 촬영에도 응하고 아이들은 해맑기만 하였습니다. 순례객이 직접 방문한 집은 모두 마을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집이였는데, 인도JTS에서 제공하는 구호물품을 함께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방문 후 조별로 소감문을 작성하고 나누기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기준에 그들은 너무나 가난하지만 누가 더 자유롭고 행복한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보니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비위생적이었고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살고 있는지 알겠다는 이야기도 하였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잠깐 시간을 내셔서 JTS에서 수자타아카데미로 파견되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현지 활동가들에게 새책 lt지금 여기 깨어있기gt를 선물하고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인도JTS 활동가들에게 새책을 선물하고 기념사진 촬영.nbspnbsp저녁 식사로 맛있는 라면을 끓여 먹고 나서 저녁 예불 후 강당에서 소감 발표시간을 가졌습니다. 소감과 더불어 둥게스와리의 발전 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도 많이 나왔습니다.nbspnbsp▲ 둥게스와리 마을 방문을 한 소감문을 발표하는 시간nbsp스님께서는 각 조별로 나온 의견들에 대해 대답을 해주시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nbspnbsp“여기서 3일 됐는데 생활할만 해요? 힘들지만 마을 사람이 볼 땐 학교가 어떻게 보일까요? 궁궐처럼 보입니다. 만약 마을 사람들이 여러분들이 사는 곳을 보면 왕궁에 사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그런 곳에 사는데 여러분들은 힘들어 합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천당에 가도 며칠만 살면 또 힘들다고 할 거에요.nbspnbspnbsp여러분들이 보기에 땅이 넓으니 농사도 제대로 짓고 텃밭도 만들면 좋겠다 제안하셨는데, 현실적으로는 어렵습니다. 왜 땅이 비어있겠어요? 물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우기 때만 비가 내리고 다른 때는 비가 안 와요. 또 이 지역은 비가 오면 금방 빠져버려요. 좋은 점은 홍수가 절대로 안 난다는 거에요. 학교 운영하는 데에는 좋은 조건입니다. 습지가 없고 물웅덩이가 없으니 모기가 적거든요. 그러나 농사 짓는 데에는 부적절합니다. 지하수 파면 되지 않느냐 하는데 거기에도 문제가 있어요. 식수 정도는 핸드펌프로 파는 것이 괜찮은데 농업용수를 전기로 펑펑 올리게 되면 지하수면이 낮아지고 그러면 그 나마 조금 있는 나무들도 다 말라버립니다. 환경적으로 검토했는데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어요.nbspnbsp또 들판에 물이 잘 공급되는 땅을 가진 분이 말하길 ‘농사 지어서 남는 게 없다’고 합니다. 하물며 물을 발전기로 끌어 올려서 농사 짓게 되면 남는 게 없어요. 경제성이 없어요. 늘 주민들이 우리에게 양수기를 설치해달라고 해서 시범적으로 한번 해줬는데 운영이 안 돼요. 기름 살 돈이 없어서 양수기를 결국 방치하더라구요. 집집마다 핸드펌프로 올려서 텃밭 가꾼다 하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우물물 파서 채소를 가꾼다는 건 현실성이 없어요.nbspnbsp여긴 원래 사람 살 수 있는 데가 아니에요. 그런데 왜 사람이 사느냐면 보통 마을은 양민이 100명 살면 한쪽 구석에 천민이 100명이 살아요. 천민들이 양민 동네에 가서 일해주고 먹고 살지요. 여기 산 주위에만 천민 집단 부락이 있어요. 평지에는 천민만 있는 집단 부락이 없어요. 항상 양민 주변에 거주하게 됩니다.nbspnbsp그러니 누군가가 여기 살아보면서 사정에 맞게끔 주택개량을 해야 해요. 제가 주민들에게 물어봤어요. 집짓는 비용을 빌려 준다 치고 1년에 얼마나 갚을 수 있겠느냐 했더니, 1000루피 갚을 수 있다고 해요. 집 짓는데 3만 루피를 빌려준다면 이자 없이 무이자로 빌려준다고 해도 30년 갚아야 해요. 그런데 3만 루피로 집을 지을 수 있느냐? 불가능합니다. 최소한 15만루피가 드는데 빌려주면 150년 동안 갚아야 해요. 불가능해요. 여러 채의 집을 지으면서 실험해봐야 해요. 돈도 적게 들고 짓는 기술도 간단한 방식으로 연구해야 해요.nbspnbsp그리고 건조한 지역에도 자라는 식물을 개발하는 거에요. 실험농장을 마련해서 지하수를 파지 않고 물을 적게 주고도 자라는, 그래서 황무지에도 쉽게 키울 수 있는 농법 연구를 해야 합니다. 방목은 안 됩니다. 풀이 없어서 소가 산에 올라가서 나무 가지를 다 먹어버려 나무를 죽이게 됩니다.nbspnbsp학교에서 공사를 계속 하는 것도 주민들에게는 중요한 수입원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도 한계가 있어요. 공사를 관리할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제일 필요한 건 마을개발 자원봉사자에요. 학교, 병원, 마을개발 이 세가지 활동 중에서 마을개발이 제일 답보 상태예요. 경험과 아이디어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언젠가 와서 해결해 주었으면 해요.nbspnbsp아이들 문맹퇴치는 100프로 달성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때부터 노동을 해야 농사일이든 노가다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까지 나오면 노동을 하지 않아 평생 룸펜이 되기 쉽습니다. 핸드폰도 구해야지 자전거도 타야지 소비성이 더 늘어나요. 이런 걸 보면 제가 교육을 해놓고도 잘 한 건지 못한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기숙사에 아이들 두는 것도 중지했어요. 여기서 생활하면 자기집에서 생활을 못 합니다. 주간에는 반드시 집에 가서 농사 짓는 것을 도와야 합니다. 학교 와서 잘못 물들면 집에 가서 농사를 못 지어요. 그리고 ‘학교 졸업하고 농사 일할 바에야 학교 뭐하러 다녔나’ 하는 소리를 듣고, 도시 취업은 쉽지 않아요. 이들이 취직할 수 있는 건 경찰, 군인, 공무원 밖에 없어요. 개인사업을 하려면 카스트가 바이샤라야 되고 아버지가 장사를 물려줘야 되는데 자본과 계급이 둘 다 안 돼요. 공무원은 자리가 있는데 시험 쳐서 걸리는 것도 어렵지만 뒷돈을 대야하는데 학교에서 뒷돈까지 대주기는 어려워요. 공부를 시켜도 이런 문제가 있어요.nbsp노동학교에서 기술을 배워 기술자가 되면 월급이 두배가 돼요. 동네에 미장하는 일은 수요가 언제든지 있어요. 공사장에서 보조로 따라다니면서 배우는 건 어려움이 있어요. 계속 막노동만 하게 되니까요. JTS에서 건축회사를 하나 만들어도 좋은데 할 사람이 없어요.nbspnbsp마을 주민들도 어차피 소비를 해요. 시멘트, 벽돌, 볏짚도 돈주고 사야 합니다. 싸게 구입하려면 공동 구매를 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협동조합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마을금고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강도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100루피만 있어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형편이에요. 고 설성봉 거사 이후 10년 동안 수자타아카데미 안에 경찰이 주둔하고 있어서 지금은 또 치안이 좋은 편이에요. 동네에 가보면 집집마다 연장이 전부 JTS 연장을 씁니다. 일하다가 호미든 낫이든 담장 너머로 던지는 겁니다. JTS가 연장 보급은 많이 했어요. nbspnbsp도난 사고는 훔쳐가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훔칠 수 없는 시스템이 되도록 해야 해요.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면 왜 줄을 안 서고 무질서하게 하느냐 하면 자기에게 불이익이 닥칠까 싶어서 그런 거에요. 안 주든지, 주면 줄을 세워서 끝까지 주든지 해야 해요. 그리고 다 줄 때까지 못 일어나도록 하고 주면 질서가 잡혀요.nbspnbsp제안해주신 것처럼, 여기서 공부해서 여기서 취직이 된다면 도시로 나가지 않아도 되죠. 이 마을에서 자라서 이 마을에 환원되게 하려면 여기에 수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초 자재가 없어요. 관광사업은 잘못하면 사람을 나쁘게 만들 우려가 있고요.nbspnbsp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곳 교육을 통해서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취직을 위해서는 도시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 곳 현지 상황을 기반으로 주택개발, 협동조합과 같은 마을 공동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이 곳에서 생활하면서 봉사할 수 있는 끈기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nbspnbspnbsp이번 방문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얘기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여러분은 이미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욕심을 여기서 멈춰 주어야 이들이 조금이라도 가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도 한국도 가진 사람들이 더 가지고자 하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더욱 빈곤해지는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비록 여러분들은 한국에서는 경제적으로 약자일지 모르지만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분명 많이 가진 자입니다. 그러니 검소하게 생활할 것을 부탁드립니다.nbspnbsp둘째는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현재 여러분들이 가진 것이면 충분히 나눌 수 있습니다. 1년에 20만원이면 여기 한 아이가 일년 동안 입고 먹고 교육 받을 수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지 말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돈이 있더라도 아끼면서 소박하게 살아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극빈자 한 사람은 살리면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은 그 당시에 이미 화려한 궁중 생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많은 농민들과 노예들의 고달픈 생활이 있어야 한다는 모순을 간파하시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몸소 소박한 삶을 사시어서 이 모순을 타파하고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번 경험이 여러분들이 행복을 찾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nbsp nbspnbsp수자타아카데미 개교기념식과 마을 방문을 하면서 열악환 환경을 보고 가슴이 아프기도 했지만 JTS의 사업을 보며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의문이 많이 들었는데, 순례단이 의문을 가진 점들에 대해서 스님께서 다시한번 자상하게 설명을 해주시니 ‘아, 정말 온갖 고민과 실험을 다 해보셨구나’ 알게 되었고, ‘나도 한번 기여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서 인도JTS의 사업에 함께 동참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스님께서 1시간 동안의 열강을 해주시니 벌써 밤이 깊었습니다. 각자 숙소로 돌아가 다시 내일부터 먼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잠자리에 듭니다.nbspnbsp내일은 부처님께서 1000명의 비구들과 함께 왕사성으로 가서 빔비사라 왕을 교화하고 설법을 하신 영축산, 죽림정사, 열반하신 후 500 아라한이 모여 경전을 결집한 칠엽굴, 불교가 번창하면서 세워진 나란다 대학 등이 있는 라즈길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합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nbspnbsp

2015.01.14. 26,514 읽음 댓글 27개

2014.1.8 인도성지순례 2일째 캘커타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순례를 출발한지 2일째 되는 날입니다. 새벽 5시, 순례단 일행이 머물고 있는 캘커타 세바켄드라 건물의 이방 저방 방마다에서 조그마한 소리로 기도 소리가 울려 나오기 시작합니다. 인도성지순례자들의 아름다운 기도 하모니입니다. 어제 밤 새벽2시에 잠자리에 들어 무척 피곤함에도 인도성지순례자들은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어제 방콕에서, 싱가폴에서 자유시간 동안 공항에서 여기저기 바닥에 조그만 깔개를 깔고 기도하던 모습만큼이나 감동입니다.nbsp숙소에는 나무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순례참가자들은 스님의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각오를 하고 와서인지 숙소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았고 의외로 편안한 취침을 하였다고 고마워했습니다. nbspnbsp새벽부터 쁘리앙카를 비롯한 JTS 봉사자들 덕분에 계란후라이가 들어간 샌드위치와 바나나 한조각으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고, 아침 8시부터 일부 순례단부터 캘커타 칼리사원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또 어제 법륜 스님과 함께 이동하지 못해 방콕 공항에서 스님의 OT를 듣지 못한 분들을 위해 숙소 2층 홀에서는 인도성지순례 OT가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제 방콕 공항에서 소음이 많은 곳에서 목청껏 2시간 동안이나 열강을 하셔서 무리가 되셨음에도 오늘도 1시간 반 동안 ‘성지순례자의 마음과 자세’에 대해 열정적으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성지순례에 임하는 마음자세에 대해 OT를 해주시고 계신 스님nbspnbsp숙소에서 깔리사원으로 향하면서는 인도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며 도시 빈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캘커타 시를 창밖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대하게 되는 인도인들의 생활모습과 도시광경을 보면서, 어제 스님께서 던져주신 화두 ‘부처님이 출가하게 된 문제의식’ 부처님의 사문유관을 느껴보았습니다.순례객들은 또한 인도인들의 생활모습을 보면서, ‘왜 사람들은 모두 함께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를 생각해보고 캘커타 방문 목적의 의미를 새겼습니다.nbspnbsp오전9시, 깔리사원에 속해 있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 곳은 마더테레사 수녀님이 예수님의 고통을 잊지않도록 그 정신을 이어받아 인간답게 존중받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마련한 보호시설입니다. 1954년 길거리에서 죽어가던 한 여성을 만난 테레사 수녀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 침대를 제공한 것이 시초가 되었는데, 지금은 수용인원이 많이 없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오늘은 휴일이라 직접 들어가지는 못하고 순례객들의 정성을 모아 보시금만 전하고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이어가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삼배를 올리고 돌아나왔습니다.nbsp이어서 버스탑승 후 순례객들은 국립인도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순례객들보다 30분 일찍 9시30분에 인디안박물관에 도착하셨습니다. 10시부터 입장권 판매가 시작되는데 시간 여유가 있어서 박물관 옆 골목으로 가셔서 쁘리앙카가 사주는 짜이 한잔을 드시면서 쁘리앙카와 인도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짜이 한잔이 10루피를 했는데, 스님께서는 “20년 전에 처음 왔을 때는 1루피였다”고 하시면서 “한 10년 넘도록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았는데, 최근에 갑자기 껑충 껑충 오른다” 고 이야기 하시니 급변하는 인도사회를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nbspnbsp▲ 인도전통차 짜이를 드시며nbspnbsp200년의 역사를 가진 인도박물관에서는 스님께서 직접 불상에 대한 설명을 하셨습니다. 모두들 스님을 다시 만난 반가움에 설명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기울여 들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오전 10시부터 순례단을 3팀으로 나뉘어서 30분씩 3차례에 걸쳐 박물관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불상에 대해 하나하나 상세하고 자상하게 설명해주시는 목소리엔 어제보단 훨씬 힘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지금 보시는 이 석주들은 산치 대탑 같은 큰 수투파를 둘러싼 울타리로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양을 넣어 장식한 조각들이 많지요. 이 조각들은 모두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이거나 부처님의 일생에 관계되는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는 547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조각만 보고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조각한 것이라고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조각은 금방 알 수 있어요. 여기 있는 조각 같으면 여인이 누워있고 코끼리가 그려져 있는데 마야 부인이 부처님을 잉태하는 태몽을 상징하는 것입니다.nbspnbsp또 이 조각은 수다타 장자가 기원정사를 창건하던 모습입니다. 금괴를 바닦에 깔고 있잖아요.nbspnbsp그리고 초기에는 불상을 그리지 않았어요. 이 조각은 BC 2세기의 작품인데, 불상이 조각되기 시작한 것은 AD 1세기 경이였어요.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까지 원정을 오게 되면서 그 영향으로 그리스의 조각이 인도로 전해져 AD 1세기 경에 부처님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조각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부처님을 사람 모양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의 발바닥 모양이나 보리수로 부처님을 상징했어요. 자, 여기를 보세요.nbspnbsp▲ 부처님을 상징하는 보리수 문양nbsp이렇게 보리수가 가운데 있고 사람들이 절을 하고 있으면 이것은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돼요.nbsp여기 원숭이가 나무 위를 기어다니는 조각도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의 전생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이 전생에 원숭이 왕으로 태어났을 때 피난을 가야 하는데 나무와 나무 사이가 너무 멀어서 원숭이 왕이 자기 몸으로 나무를 연결해줘서 자기를 밟고 지나가도록 하는 이야기를 조각한 것입니다.nbspnbspnbsp이 불상을 보면 머리가 툭 튀어 올라와 있죠. 한국에서는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으면 정수리가 툭 튀어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다 이 조각을 보고 만든 얘기예요. 왜 부처님은 보통 사람들과 머리 모양이 다른지 그 원형이 되는 불상이 이 불상입니다.nbspnbspnbsp부처님이 출가하기 전에는 머리를 묶어서 장식을 했거든요. 머리에 장식이 있으면 출가하기 전의 모습을 담은 조각이예요. 그러다가 출가하실 때 왼손으로 머리를 잡고 오른손에 칼을 들고 머리를 잘라버렸어요. 그래서 머리를 묶은 매듭과 머리 위에 잘려진 부위를 조각한 겁니다. 그러다가 매듭을 지은 부위가 조금씩 잘 안보이게 조각이 되다가 나중에는 곱슬머리처럼 동글동글하게 문양을 넣어서 조각을 합니다. 처음에 불상은 이런 모습이였어요.nbspnbspnbsp그리고 부처님의 모습이 굉장히 당당하죠. 우리나라 불상처럼 쭈그러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아주 활동적인 모습입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불상들이 굉장히 활동적인 모습입니다. 또 밑에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모습도 굉장히 호응하는 모습이죠. 초기 불교인들의 이런 당당함과 적극성이 이제는 복원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복을 구하는 힌두교와 결합하고 한국에서는 탄압을 받으면서 쭈그리고 있는 모습이 되어간 것입니다.” nbspnbspnbsp스님께서는 이렇게 불상 하나 하나마다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초기의 불상은 당당함과 적극성이 있었다고 하니 스님께서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를 다니시며 종횡무진 하시는 이유가 어렴풋이 헤아려지기도 했습니다. 한시간 정도의 설명 이후 첫 번째 팀은 자유 관람을 하였고,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팀이 박물관 안으로 들어오자 스님께서는 다시 열정적인 설명을 다시 되풀이 하셨습니다. 한팀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목이 아프셔서 목에 약을 뿌리고, 다시 또 다른 한팀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셨습니다.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처음 설명하듯이 매번 정성껏 하시는 모습을 보니 잔잔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nbspnbspnbspnbsp관람을 마치고 박물관을 나와 조별로 자유시간을 가지며 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도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재미이고 신기한 체험들을 하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박물관 근처 식당에 머무시며 스탭들과 실무를 점검하고 체크하셨습니다. 그리고 쁘리앙카와 함께 시장을 한바퀴 둘러보신 후 하우라역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하셨습니다.nbspnbsp순례객들 또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첫 교화를 하신 사르나트로 가기 위해 박물관 앞에서 버스에 탑승하여 하우라 역으로 향했습니다. 박물관 앞에 모인 많은 인원의 순례객들을 태우려다 보니, 거리에는 크락숀 소리가 유난히 더 커지기도 하였습니다.nbsp하우라역은 델리콜카타 선의 출발역인데, 규모와 사람, 복잡함이 어마어마했습니다. 버스 중 한 대에 짐을 실은 뒷문이 열리지 않아 출발시간을 놓칠까봐 걱정되는 상황이 생겼지만, 워낙 인도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는 곳이라는 교육을 받아서인지, 아님 여행이 아닌 순례자로서의 마음가짐 덕분인지 어느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고 잘 기다려주는 가운데 해결이 되었습니다.nbspnbsp하우라역 안은 기차를 타려는 승객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순례객들은 이어폰으로 소통하며. 조 깃발을 따라 놓치지않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차량별로 짐을 모은 후, 짐을 빙 둘러 앉아 오늘 여정에 대한 나누기를 하는 광경 속에서 정토회 순례단이 아니고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여함과 부처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제자로서의 의젓함을 느껴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nbsp수자타 아카데미로 향하는 공용짐이 많아서 남자 순례객들과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미리 기차가 도착하는 플랫폼 위치로 공용짐을 옮겨 놓았습니다. 모두들 땀을 뻘뻘 흘리며 합심해서 하니 한결 수월하게 공용 짐을 모두 옮길 수 있었습니다. 박스 속에는 대부분 수자타아카데미 아이들이 사용할 학용품과 마을주민 지원 사업에 쓰일 생필품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순례객들이 수고스럽지만 직접 운반해 줌으로 인해 운송 경비를 절약하게 되고, 그 절약된 경비로 천민마을 아이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25년 전 처음 성지순례를 시작할 때부터 스님께서는 매년 이렇게 많은 짐들을 순례객들과 함께 가져오고 계십니다.nbspnbsp▲ 바나라시로 가는 도중 가야역에 내릴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지원 물품들nbsp짐에 대한 걱정을 덜어서인지 본인의 무거운 짐을 들고 뛰어오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표정들이 한층 밝아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그 복잡한 가운데 기차를 기다리시는 동안 역사 안에서 또 철로 옆에서 쉼없이 원고를 읽고 교정하셨는데, 그 모습을 본 순레단들은 늘 시간을 헛되이 보내시지 않는 그 모습에 한층 고개가 숙여졌습니다.nbspnbsp▲ 기차를 기다리며 원고 교정을 보고 계신 스님nbsp오후 7시30분 기차는 신기하게도 정각에 나타났습니다. 워낙 인도는 기차 출발 예정시간이 자유롭다는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순례단들은 환성을 지르며 정각에 나타난 기차를 보고 고마워 했습니다.nbspnbspnbsp기차를 탄 순례객들은 조원들끼리 저녁을 챙겨먹으며 마음나누기를 했는데, 도란도란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웃음소리가 기차칸 곳곳으로 번져나갑니다.nbspnbsp▲ 기차를 타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마음나누기를 하는 순례객들nbsp내일은 선주 법사님과 함께 델리를 경유하여 바라나시로 오는 팀, 덕생 법사님과 함께 방콕에서 바라니시로 바로 들어오는 팀까지 포함하여 드디어 500명의 순레단이 모두 바라나시에 모이는 날입니다. 초전 법륜성지 사르나트에서 수계식을 하고, 이제 진정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내일은 바라나시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01.09. 27,981 읽음 댓글 35개

2014.12.31 연말 자원활동가 명상 수련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12월27일부터 4박5일 동안 진행된 연말 자원활동가 명상수련을 마치고 2014년 한해의 마지막날입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지난 4박5일 동안 200여명의 정토회 자원활동가 대중들과 명상수련을 함께 하셨습니다. 정토회 자원활동가들은 올해 8차 천일결사가 새롭게 시작되면서 변화된 조직 구조 속에서 각자 새로 맡게 된 소임에 적응하느라 모두들 바쁜 한해를 보냈는데, 이번 연말 명상수련을 통해 그동안 쌓인 피로도 풀고 마음의 상처도 치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도 115일 동안 시차 적응 없이 세계 115회 강연을 다니시느라 피로가 누적되셨는데 이번 명상을 계기로 다시 건강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명상수련을 마치고 전체 대중과 함께nbspnbsp스님께서는 명상수련 마지막날 아침인 오늘, 새벽 예불을 올리며 참가한 수련생들을 위해 축원 및 발원 기도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거룩하신 부처님 불기 2558년 서기 2014년 한해를 보내며 부처님께 청정한 감로수와 향과 촛불로 공양 올리며 예배 찬탄 공경하며 발원하옵니다.nbspnbsp지난 한해를 돌아보면 여느 해와 다름없는 한해였지만 특별히 우리 국민들에게는 많은 슬픔과 아픔과 한탄을 가져다 준 사건들이 많이 발생한 한해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하여 각종 사고, 재난과 재해, 또 사회 지도층들의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과 좌절과 절망을 주었습니다.nbsp그러나 저희 정토행자들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만나 상황이 어떠하든 자신을 잘 지키며 오롯이 마음을 다스려 경계에 물들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유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슬픔에 겨워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큰 힘은 못 되었더라도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들을 꾸준히 할 수 있었습니다. 미약한 저희들이 부처님 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상황에 빠져 허우적거렸을텐데 다행히 저희들은 부처님 법을 만나 그 진흙탕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작은 손길이라도 내밀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부처님께 감사드리옵니다.nbspnbsp한해를 보내며 저희들은 지난 5일 동안 수행 정진을 하였습니다. 조용히 앉아 호흡을 관하며 스스로를 돌이켜봤을 때 역시 저희들은 미약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중력도 떨어지고 조그마한 불편도 참지 못하고 이미 지나간 과거 일에 연연하고 있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면서 번민 속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라 하루하루 정진을 거듭해보니 천지 만물 간에 들숨과 날숨만 있지 나라고 할 것도 내 것이라고 할 것도 내가 옳다고 할 것도 없는 그런 편안한 경지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다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다람쥐 한마리처럼 들숨과 날숨 뿐인 존재인데도 환상에 젖어 세상이 마치 자기 것인양 다 자기가 옳은 양 착각 속에 살아온 것을 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욕망, 성냄, 어리석음의 흐름 속에 빠지지 않고 그 흐름의 강가에 나와서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은 오직 부처님 법 만난 인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nbspnbsp한해를 보내며 부처님과 부처님 법과 부처님 법을 따르는 무리들에 귀의하오며, 새해에도 저희들은 부처님 법에 귀의하여 오롯이 자신을 추스르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수행을 놓치지 않고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아 과거 업식에 끄달려 때로는 넘어지고 슬픔에 빠질 때도 있겠지만 오뚜기 마냥 다시 일어나서 정진해 나가겠습니다. 나아가 고통 속에 헤메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법을 꾸준히 전하는 전법의 활동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어떤 사람도 이 법을 만나지 못하여 헤메이는 일이 없도록 해서 이 법을 만나 그들도 우리처럼 삶이 기쁠 수 있도록 그런 역할을 다하겠습니다.nbspnbsp더 나아가 새해에는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가겠습니다. 꽉막힌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고 굶주리는 북한동포들에게도 희망이 되는 일을 해나가겠습니다. 저희들은 작지만 부처님의 원력의 가피를 입고 있기 때문에 여래의 사도로서 당당하게 보살행을 행하겠습니다.nbspnbsp그러하오니 재불보살님들이시여 저희들을 옹호하시옵고, 천륭팔부 신중님들이시여 저희 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옵소서.nbspnbsp한해를 보내며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이 슬픔과 고통을 잊고 새해에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발원하며 먼저 가신 조상영가님들 왕생극락하기를 발원하옵니다.” nbspnbsp그리고 명상수련을 마치며 스님께서는 한해 동안 수고한, 또 4박5일 동안 명상수련에 함께한 대중들에게 회향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그 중의 일부분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중도는 경험 속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쪽에도 치우쳐 보고 저쪽에도 치우쳐 보고 이쪽으로도 떨어져 보고 저쪽으로도 떨어져 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중도를 실천해 보면서 하나하나 경험해가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에 토대하지 않고 이론적으로만 중도를 배우게 되면 하나의 알음알이에 불과하지 현실에서는 적용이 잘 안됩니다. 줄타기 하는 사람을 한번 보세요. 항상 왼쪽으로도 휘청 오른쪽으로도 휘청 이렇게 휘청휘청 하면서 줄타기를 주욱 해나갑니다.nbspnbsp우리는 살아 숨쉬고 있는 생물입니다. 우리의 생각도 늘 살아 꿈틀거립니다. 찰나찰나 민감하게 흔들리면서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탁 한번 깨달아버리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되는 것인양, 한번 천국에 가버리면 영원한 행복이 주어지는 것인양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방안에 촛불을 한번 밝혔다고 영원히 밝은 것도 아니고 한번 어두웠다고 영원히 어두운 것이 아닙니다. 천년 동안 어두웠던 방도 불을 켜면 바로 밝아지고 천년동안 밝았던 방도 불을 끄면 바로 어두워집니다. 그러니까 늘 지금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쳐버리면 어떻게 된다, 천국에 가면 어떻게 된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안됩니다. 이것은 무상과 무아에 대한 깨달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영원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우리는 늘 지금 깨어있어야 하고,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nbspnbsp그래서 우리가 통일의 길, 정토의 길을 가는 것도 부족한 대로 모여서 함께 만들어가는 이것이 곧 수행이고 이것이 곧 정토입니다. ‘보살에게 있어서 정토란 이미 완성되어 있는 세계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보살이 활동하는 국토입니다.’ 즉 지금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만일결사 기간 동안 전국 시군구에 법당이 다 생겼다 하는 이것이 성공이 아니라 그런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지금이 이미 성공입니다. 어느 날 어느 시에 통일이 되어야 성공했다가 아니라 우리가 통일을 향해서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오늘 이미 나는 통일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겁니다. 이런 관점이 잡혀야 환영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잡히지 않으면 수행에 대해서도 사회활동에 대해서도 늘 환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지장보살이 죽을 고생을 다해서 지옥 중생을 다 구제해야 정토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지금이 지장보살에게는 정토입니다. 우리가 인도에 가서 둥게스와리 마을을 아름답게 다 가꿔놓아야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목표를 향해서 거기서 그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 보람이고 수행입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새해에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만들어갑시다.”nbspnbsp대중들은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모두들 기뻐하였습니다. 회향 법문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수련에 함께한 대중들 한명 한명 모두의 각자 소임과 이름이 무엇인지 다 듣고 한해 동안 수고많으셨다며 환하게 웃으시면서 일일히 악수를 다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200여명의 대중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토수련원을 걸어 내려갔습니다. 오늘 폭설이 내린 후 한파가 들이닥친다는 일기예보가 있어서 스님께서는 “연말인데 어둡기 전에 집에 들어가야 하잖아요” 하시면서 특별히 일찍 수련을 마쳐주셔서 다들 예전 수련보다 훨씬 이른 시간인 오전11시에 수련원을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nbspnbsp명상수련을 모두 마치고, 정토회 공동체 대중들은 스님과 함께 문경새재를 찾아가 오랜만에 눈길을 밟으며 오순도순 정겹게 이야기도 나누면서 1시간 정도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늘 이렇게 여유가 생기면 걷는 것으로 휴식을 대신하십니다. 오늘도 살짝 땀이 날 정도로 걷고 나니 몸도 개운해지고, 도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마음도 활짝 열려졌습니다.nbspnbspnbsp오후 6시15분부터는 문경 정토수련원 대중전에서 저녁예불을 모시고, 3년 이상 상근자원활동가와 실무자, 법사단 50여명이 자비당 요사에 모여 지난 4박5일 동안의 명상수련 소감을 함께 나누고, 2015년 정토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 한해 동안 보이는 곳에서든 보이지 않는 곳에서든 각자의 위치에서 많은 수고를 해준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저녁 9시30분부터는 대수련장에서 서울과 문경 공동체 대중 120여명이 모여 조촐하게 송년회를 가졌습니다. 스님께서 “예전에는 항상 문경에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는데, 바쁘다보니 그러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문경에서 새해를 맞이해서 기쁜 마음입니다” 라고 하셔서 박수와 환호 속에서 즐겁게 송년회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23기 백일출가생들, 문경정토수련원 상근자원활동가들, 행자원 식구들, 평화재단 실무자, 문수팀, 법사단, 그리고 깨달음의장 바라지 오신 분들까지 모두가 나와서 새해 소망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밤 11시30분부터는 모두 대웅전에 모여서 송년 예불을 올렸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부처님께 정성을 다해 예불을 올리고, 보수법사님의 발원 기도를 함께 들으며 한해를 뜻깊게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밤 11시50분이 되어 스님과 대중들 모두는 잠시 명상을 시간을 가졌습니다. 0시부터는 새해 첫 새벽예불을 부처님께 올릴 준비를 정성껏 하였습니다. nbspnbspnbsp내일 새해 첫날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먼저 굴뚝 위에 올라가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는 경기도 평택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찾아가고, 다음으로 8개월째 진상규명을 호소하고 있는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의 유가족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nbsp

2015.01.01. 24,257 읽음 댓글 22개

2014.12.18 세계 100회 강연(115) 일본 오사카 大阪市

nbspnbsp안녕하세요. 방금 전 교토 강연에 이어 대망의 세계 100회 강연의 마지막 강연인 오사카 강연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nbsp강연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준비하여 출발해서인지 아주 여유 있게 오사카에 도착하는 듯 했지만 고속도로에서 빠져 나오는데 시간이 걸려 강연 1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걱정했는데 낮 동안 다 녹아서 다행히 오사카 가는 길에는 지장이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지나온 도쿄 쪽은 폭설로 전차나 비행기가 다 운행을 멈췄다는 소식을 들으니 스님이 100강 하시는 길에는 정말 날씨가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필리핀 강연 일정 중에도 하이옌보다 더 큰 태풍이 올 거라 걱정했는데도 결국 세력이 급속도로 약해져서 스님 가시는 길은 태풍도 피해 간다고 다들 신기해했는데 여기 일본에서는 폭설과 추위가 스님을 피해 가는 것 같습니다.nbspnbsp▲ 일본 오사카nbsp오늘 강연은 오사카 시립아베노 구민센타에서 진행되었는데 일본 강연 중 가장 넓고 좋은 장소였고 교토 강연을 잘 치러낸 봉사자들도 기차를 타고 와서 합류하여 오사카 봉사자들과 함께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기대보다는 다소 적은 인원인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스님께서는 오늘까지 해외 115개 도시를 돌며, 115강을 해왔는데 바로 이번이 115번째 강연이라며 환하게 웃으시면서 역사적인 마지막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총 115일 동안 115회 강연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하루 1개 도시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비행기 일정 때문에 하루가 빠지면 다음에 하루에 2번 강연 하는 방식으로 오늘까지 왔습니다. 오늘 오사카 강연이 마지막 강연입니다. nbspnbspnbsp4개월 동안 한 집에서 이틀 밤도 못 자고 매일 옮겨 다녔기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뜨면 여기가 어느 나라인지 구분이 안될 때가 많아요. 정신을 차려야 ‘여기가 교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115개 도시를 다녀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렇게 무사히 전세계에 살고 있는 교민들을 만나서 애환을 듣고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한 것이 잘 마무리 되어서 오늘은 기쁜 날이예요.nbspnbsp115강 중에 8번만 통역을 해서 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화를 해 보았습니다. 프린스턴대학, 미시간주립대학, 조지워싱턴대학, 텍사스AampM, UCLA, 구글 본사에서 강연을 했고요. 조금 전에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교토에서 통역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우리 교민들이 좀 산다 하는 곳은 다 방문해서 대화를 해보았습니다.nbspnbsp해보니까 이런 특징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기 전에는 막연히 부자 나라에 사는 우리 교민들은 편안할 것이고, 가난한 나라에 사는 우리 교민들은 이민 생활이 힘들거다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까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어요. 가난한 나라인 동남아나 중남미에 사는 우리 교민들은 그 나라에서는 잘 사는 축에 들어가요. 제가 대부분 가정집에서 자고 호텔에 자게 되더라도 70불 이하로 해야 한다고 원칙을 정해 주었는데, 동남아에서는 70불 짜리 호텔은 완전히 고급호텔이었어요. 그런데 독일이나 스위스, 일본, 이런 나라에 와보니까 잘 사는 나라에 우리 교민들은 그 나라에서 어렵게 사는 축에 들어 기를 못펴고 사는 것 같았어요. 훨씬 살기가 좋은 줄 알았더니 마음 고생이 더 많은 것 같았어요. 독일에서도 방 두칸짜리에 움추려서 자고, 노르웨이는 물가가 너무 비싸서 물 한병도 아까워서 못 사먹고 굶고 다녔고요. GDP가 10만불이 된다고 해서 좋은 줄 알았는데 좋은 게 아니였어요. 그러니 물가와 비교해서 생활이 결정되는 것이지, 명목상 GDP 만으로는 생활 정도를 알기 어렵겠어요. 거기서 벌어서 다른 나라에 가서 쓰면 아주 좋지만, 거기서 벌어서 거기서 쓰면 별로 잘사는 게 아니였어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다녀보고 견학을 해야 진실을 알 수 있지 막연히 생각하는 것 하고는 다른 점이 많았어요.nbspnbsp유럽에서 사시는 교민들은 주로 외국인들과 결혼해서 사시는 분들이 많다 보니까 정체성 문제가 고민이 많았어요. 스위스에서 30년 살았는데도 스위스 사람이 아니고, 늙어서 한국에 가봐도 한국 사람도 아니고, 영원한 이방인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들이 있으셨고, 또 아이들을 도대체 스위스 사람으로 키워야 하는지 한국 말을 가르쳐야 하는지 이런 정체성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더라구요. 그런데 미국은 전혀 달라요. 미국은 외국에 와서 살 뿐이지 대부분 한국 사람끼리 결혼한 부부가 한국 식으로 먹고, 사는 장소만 미국이지 완전히 한국 식으로 살기 때문에 이민 생활의 갈등이 덜한 편이였어요.nbspnbsp오늘 대화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겪는 이런 저런 고뇌에 대해서, 정말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고뇌할 수 밖에 없는지, 그리고 인생에 이런 저런 의문이 있다면 한번 드러내놓고 대화해 보자는 것입니다. 어떤 주제의 제한 없이 편안하게 친구가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서로 대화를 해봅시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예요. 인생에는 정답이 없어요. 보다 나은 길을 한번 찾아가보는 거예요. 자, 그럼 시작해 보시죠.”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저는 일본으로 시집온지 10년정도 됐거든요. 일본 남편과 잘 살고 있고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를 쭉 해왔는데 이제는 조그만 가게를 해보고 싶어요. 잘 될까요?”nbsp“지금까지는 제가 주로 연구직을 많이 하다보니까 혼자서 일하는 게 많았는데 2,3년 전부터는 제가 리드를 해야 하는 입장에 올라가고 팀원이 4명 정도 되었어요. 어떻게 하면 팀원들과 소통을 잘 할 수 있을까요?”nbsp“저의 고민 대신에 어머니 고민을 묻고 싶은데요. 저희 어머니가 같이 일하는 동료 분이 너무 밉다고 하세요. 그 분이 일처리를 제대로 안 해주시면 어머니한테 피해가 와서 그렇답니다. 밉기는 한데 일을 같이 해야 된데요. 어머니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편할 수 있을까요?”nbspnbsp“한국에서 1년 반 정도 결혼해서 살다가 일본에 온 지 3년 됐습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습니다. 요즘 점점 커가면서 느끼는 것은 한일 역사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아니면 일본 공교육에 맡겨둬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이 군대를 가야되는데 저도 군대를 만기전역 했지만 솔직히 군대를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일본 국적을 선택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 의견을 아이에게 투영해도 될지 고민이 됩니다.”nbspnbsp“멘탈 카운셀링이라는 직업을 하고 있어요. 우울증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데, 스님은께서는 108배를 하라고 하셨는데, 일본 사회에선 종교를 멀리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저희는 수면요법 같은 걸 쓰는데 그럴 땐 심리 묘사나 카운셀러가 필요해요. 그런데 108배는 스스로 해야 하니까 면담이 끝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조언이 있으면 듣고 싶습니다.”nbspnbsp“저는 108배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았거든요. 예전에는 교회에 다녔거든요. 저는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고 나서 1년 후에 즉문즉설 영상을 봤는데요, 제가 불자도 아니고 하느님을 섬기는 것도 아닌데 아무데나 아무 것을 향해서 108배를 해도 되는지요?”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통일은 왜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마지막 115번째 강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스님의 즉문즉설은 한반도의 통일 이야기입니다.nbspnbspnbsp“15년 전만 해도 이산가족 상봉이다 해서 통일에 대한 염원이 굉장히 강했었는데요. 한 2,3년 전부터 통일이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다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통일비용이 들고 정치적 이념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일본에 와서 보니까 저희들 민단쪽 친구들은 통일에 대한 염원이 별로 없고, 조총련계 친구들은 통일에 대한 염원이 굉장히 강한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도 통일에 대해서 굉장히 힘을 쓰시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일은 왜 해야 되는지요?”nbspnbsp“그런 얘기를 어떻게 짧은 시간에 다해요. . 질문이 너무 거창해요. 통일은 본인이 통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 싶으면 통일을 지지하면 되고요. 통일하는 것이 별로 안좋다 싶으면 지지 안해도 돼요. 같은 민족이니까 꼭 통일을 해야 한다 이런 법칙은 없어요.nbspnbspnbsp다만 인류 역사의 전 과정을 살펴보면, 현재 전세계에 한 200개가 넘는 나라가 있어요. 그런데 나라를 분류해 보면 크게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게 있고, 여러 개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경우가 있어요. 전자를 단일민족국가, 후자를 다민족국가라고 해요. 한국 같으면 단일민족국가이고, 중국 같으면 다민족국가예요.nbspnbsp다민족 국가를 보면 주류 민족이 있어요.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류 민족이 있고, 그 다음에 소수 민족이 있어요. 그런데 주로 주류 민족은 당연히 우리가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비해 소수 민족들은 가능하면 독립하고 싶어해요. 그런데 주류 민족의 힘에 의해서 거의 독립을 못합니다. 중국 같으면 티벳, 위구르 지역, 북쪽에 있는 몽골 이런 지역은 다 독립을 하고 싶어해요. 그러나 주류 민족인 한족의 힘에 의해서 꼼짝을 못 해요. 중국 같으면 한족이 94 정도 돼요. 그러니까 소수 민족은 그 민족의 수는 많지만 인구수는 한족의 인구에 비해서 아주 적기 때문에 국민 투표를 해도 이길 수가 없어요. 요즘은 특히 내몽고 자치구나 위구르 자치구나, nbsp티벳 자치구 안에 한족이 이사를 많이 가서 그 지역에서 주민투표를 해도 이길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한족이 더 다수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런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독립을 원하지만 독립이 되기가 어려워요.nbsp우리는 영국이라고 해서 하나의 나라인 것으로 알지만, 자세히 보면 잉글랜드 이외에 스코틀랜드도 있어요. 이번에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겠다고 투표하는 것 봤지요. 억압을 안하는 나라에도 다 자기 민족은 독립할려고 그래요. 여러분들 스페인 하면 하나의 나라인 줄로 늘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거기도 북쪽의 바스크족도 독립할려고 그러고, 바르셀로나 이 지역도 이번에 독립할려고 했잖아요. 체코슬로바키아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따로 독립을 했잖아요. 유고슬라비아는 여섯개로 독립했잖아요. 다 나눠서 독립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 세계 전체로 보면 단일민족국가와 다민족국가가 있는데, 다민족국가 안에 있는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독립을 하고 싶어해요. 러시아에서도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은 독립 할려는데 독립이 안되니까 테러하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독립이 안되어서 그렇지 다들 독립하고 싶어해요.nbsp이런 성질을 보면 같은 민족은 하나의 독립국가를 구성하고 싶은게 우리나라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 사람들의 특징인 것을 알 수 있잖아요. 그러나 다수와 소수의 크기가 너무 차이가 나면 어쨌튼 현실에서는 힘이니까 이것이 다 해결이 안돼요. 그러나 호주나 미국은 성격이 틀려요. 이런 국가는 이민을 와서 서로 다른 민족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뿌리를박고 살아온 여러 민족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이민을 와서 섞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다민족이라도 러시아나 중국하고는 성격이 달라요. 그래서 인류 전체 문화로 볼 때는 같은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이예요. 한 민족이 두 개의 국가를 구성하는 경우는 그 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어요. 그것도 역사적으로 한시적으로 있어요. 즉 내전이 일어나거나 외세의 개입에 의해서 분단되어 따로 정부를 구성하는 경우인데, 그런 것은 역사상에서 보면 그러다가 다시 통합이 돼요. 그래서 지금 베트남도 통합이 됐고, 독일도 통합이 됐고, 예맨도 통합이 되었어요. 심지어 중국도 조그만 타이완하고 양한관계라고 해서 통합해 나가잖아요.nbspnbsp이런 것을 볼 때 인류문화사적으로 보면 100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봤을 때는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국가로 구성하는데, 분단으로 2개의 국가를 형성하는 것은 내전이 일어나서 생긴 일시적 현상입니다. 아니면 외세가 개입해서 분단을 시켰을 때 생긴 일시적 현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길게 보면 통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하나 있고요.nbspnbspnbsp두 번째는 남한은 분단된 상태로도 지난 50년간 발전을 해왔습니다. 이유는 경제가 제일 앞서고 규모가 제일 큰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 선진 기술이 빨리 들어올 수 있었고, 그 배후를 통해서 세계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외교적으로 보면 무슨 하수인 같았지만, 어쨌든 발전할 수 있었던 거예요. 안보적으로 보면 세계 최강국과 동맹관계에 있다보니까 북한이 아무리 그래도 현실적으로는 침략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남한의 발전이 가능했던 거예요. 물론 분단으로 고통도 많이 겪었지만 남한의 발전에는 그런 면이 있다는 거예요.nbspnbsp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어 버렸어요. 즉 미국이 계속 경제가 성장하는 최고의 강국이 아니고, 경제 규모는 아직 최고로 크기는 하지만 경제는 이미 지는 해로 전락했어요. 일본도 거기에 따라가서 지금 정체 국면에 가 있잖아요. 규모 면에서는 아직 막강하지만 이것은 이미 지는 해예요. 그런데 중국은 규모가 작아도 급격하게 뜨는 해에 속해요.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균형이 깨질 수 밖에 없잖아요. 이런 균형이 아직은 유지되지만 점점 이 균형이 깨어져 가는 세계사적인 변화 국면에 지금 우리가 놓여 있어요. 우리 역사 속에서 보면 원나라가 명나라로 교체되고, 명나라가 청나라로 교체되고, 청나라는 일본으로 교체되는 시기와 같은 이런 패권세력의 힘이 바뀌어가는 상황에 놓여 있어요.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내적으로는 성장 동력이 다 소진되었어요. 분단 국가인 남한으로서는 더이상 성장이 어렵고 마치 미국이 쇠퇴하듯이, 일본이 쇠퇴하듯이 한국도 따라서 쇠퇴해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지금 놓여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안주한다면 괜찮은데 여기서 한번 더 성장에 도전하겠다고 하면 우리에게는 북한 개발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미국이 마치 서부개척, 중국이 지금 동북공정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북한개발이라고 하는 새로운 하나의 투자처가 나오게 되고 소비시장이 넓어지고 자원이 확보되는 전혀 다른 희망이 있어요.nbsp100년 전에 일본은 이런 것을 침략을 통해서 했는데 지금 시대에는 침략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지금 일본은 출구가 없는데 우리는 침략이 아니잖아요. 통일이라고 하는 문제는 실제로는 영토를 두배로 넓히고 인구를 50 늘리고 자원을 확보하는 길을 가능하게 하는 거예요. 현재 북한의 입장은 놓아두고서라도 우리 입장만 가지고 봐도, 통일이 아니고는 지금 이 정체 국면을 돌파할 다른 대안이 마땅이 없어요. 그러니 과거에 분단되었기 때문에 통일하자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어떤 국가적 비전을 가질려면 통일이라고 하는 길이 남아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예요. 그런데 북한의 입장에서는 남한에 흡수되는 그런 통일을 원하지 않잖아요. 힘으로 밀어붙이면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러면 이것은 통일보다도 더 못하게 돼요. 그러니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는 평화가 먼저 전제가 되고, 평화가 전제가 된 상태에서 남북이 경제통합을 하고 통일로 간다면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얘기한대로 대박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nbspnbspnbsp그리고 여러분들이 소비성 물질을 사는 것은 비용으로 계산을 하지만, 아이들 교육시키는 것을 비용으로 계산해요? 돈이 나가는 것은 맞는데 이것은 투자라고 그러잖아요. 여러분이 아이들 공부 안시키면 생활수준이 훨씬 더 높이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무엇때문에 아이들 공부를 시켜요? 그런 것처럼 북한을 개발하는 것은 투자비용이지 소비비용이 아니예요. 철도를 건설해도 투자고, 도로를 닦아도 투자고, 건물을 지어도 투자고, 광산을 개발해도 투자고, 투자를 하는 데에는 돈이 들어요. 그런데 투자하는 돈은 모자라면 외국에 빌려서 사용해도 돼요. 왜냐하면 투자라고 하는 것은 나중에 이익이 남기 때문에 갚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먹고 써버리는 것은 없어지면 다른 대안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것은 비용이 많이 들지만 투자 비용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어요. 또 투자는 자본이 있는 만큼만 투자를 하면 돼요.nbspnbsp그런데 한꺼번에 금방 통일을 해버리면 북한주민들이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요구가 너무 커요. 현실 가능하지도 않지만 통일이 되었다고 해도 돈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진짜 우리가 감당을 못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도 북한이 자기 체제를 유지할려고 하고, 또 실용적으로도 우리가 한꺼번에 돈을 그렇게 많이 투자할 수가 없기 ?문에 이 양쪽을 생각하면 점진적으로 투자를 확대하면 돼요. 북한주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내일이라도 되어버리면 일당으로 당장 오만원을 달라고 하겠지요. 현재 북한에서는 일당 천원만 지급해도 노동이 가능하단 이말이예요. 그러니까 북한은 굉장히 값싼 노동력을 지금 갖고 있잖아요. 중국도 지금은 이것 가지고는 안돼요. 중국도 이미 월 500불을 넘었고, 베트남도 지금 월 250불 정도 해요. 지금 필리핀도 월 300불이예요. 그런데 지금 북한은 월 120불, 150불 남짓 해요. 지금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들이 어려운데 전부 해외로 빠져나가야 되거든요. 중국에서도 ?겨나가면 사실은 북한 밖에 살데가 없어요. 그러니 이것이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이 살 방법도 이것 밖에 없고 북한도 지금 빠른 시간 내에 경제개발을 할려면 남한하고 협력하는 것이 제일 빨라요. 언제 순서 밟아가지고 천천히 개방해서 베트남 전철을 밟고 중국 전철을 밟아서 지금 중국처럼 될려고 해도 30년이 걸리는데요. 30년 걸려서 지금 중국만큼 되면 이미 중국하고 남한이 더 앞서 가버리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nbspnbsp그러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이 굶어죽는 것도 통일이 되면 단박에 해결이 될 것이고, 인권도 개선될 수 있고, 개발도 해결될 수 있고요. 우리도 지금 노동력의 문제나 자원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굉장한 새로운 비젼이 된다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다만 적대감정 때문에 그 악감정을 못 벗어나고 있어요. 둘이 협력하면 이익인 것을 아는데 지금 한국정부는 ‘너가 무릎 꿇고 굴복해라, 빌어라’ 이렇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쪽은 nbsp‘나는 죽어도 무릎 꿇고 비는 것은 싫다. 건드리기만 해봐라. 나만 죽나? 너도 죽는다’ 이것이 서울 불바다론 아니예요? 그래서 건드리면 ‘너하고 나하고 확 껴안고 같이 죽어 버린다’ 이러는 겁니다.nbspnbsp일본은 우리를 36년간 식민지 지배를 하고 엄청난 고통을 주었고, 아직도 위안부 문제, 독도문제가 남아 있는데도 해방 후 20년 만에 한일수교를 했어요. 벌써 내년이 되면 수교 50주년이 돼요. 한일 간의 협력은 한국과 일본 양자에게 다 이득이었나요? 손해였나요?”nbsp“이득이었어요.”nbsp“이득이었지요. 중국은 한국전쟁 때 100만 대군을 보냈어요. 그런데도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것을 반성하기는 커녕 “항미원조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다” 라고까지 말하잖아요. 그런데도 한국사람은 아무도 말을 안하잖아요. 왜냐하면 지금 중국하고 외교를 맺은지 20년 만에 엄청난 교류가 벌어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꼭 제 동포인 북한하고는 옛날에 네가 뭐라 했으니 사과해라 이러고 있잖아요. 그리고 앞으로 통일이 되고 교류협력이 된다 하더라도, 중국하고도 역사문제, 일본하고도 독도문제로 말썽이 있듯이 북한하고도 말썽이 있겠지요. 그게 어떻게 없어지겠어요. 그럼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류협력과 통일로 가는 것이 엄청난 폭발적 이익을 가져오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그런 길을 안가요? 바보 멍청이지요.nbspnbsp그러니 우리가 너무 감정에 치우쳐 있다는 거예요. 꼭 하나가 “너가 와서 무릎을 꿇어라. 너가 와서 잘못했다고 빌어라” 이렇게 하면 너와 대화를 하겠다 이렇게 하는 것은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예요. 대화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예요. 대화는 일단 테이블에 조건없이 앉고, 앉은 다음에 “너 사과해라”고 말을 해야지, 사과를 먼저하면 앉겠다 하는 것은 대화를 안하겠다는 얘기예요. 그러고 항상 협상에는 유리한 쪽, 약간 힘이 있는 쪽에서 양보를 해야돼요. 힘있는 쪽이 양보하면 포용이라고 해요. 힘이 없는 쪽에서 양보를 하면 그것은 굴복, 비굴이라고 해요. 돈이 있는 사람이 검소하게 살면 청빈하다고 그러고, 돈이 없어서 가난하게 살면 극빈이라고 해요. nbspnbspnbsp힘 있는 사람이 고개를 숙이면 겸손이라고 하고, 힘이 없어서 고개를 숙이면 비굴이라고 그래요. 그러니 우리가 포용해야 하고, 우리가 겸손해야 하고, 우리가 열어줘야 돼요. 일본하고 한국하고 관계를 보면 일본이 버팅기는데 우리가 일본하자는 대로 하면 비굴하다고 그러잖아요. 우리부터도 안되잖아요. 그런데 이 문제를 풀려면 일본이 과거사를 진솔하게 반성해주고 좀 너그럽게 나오면 문제가 금방 풀리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을 일본한테 요구하면서 또 우리는 북한한테 “너 무릎꿇어라” 이러니까 이것이 해결이 안되지요. 그러니까 동아시아 문제를 풀려면 일본이 주변국에 진솔하게 사과하고 경제적인 이익을 주면서 통합을 해나가야 해요. 독일이 모범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러면 한국도 북한을 포용해서 좀 이끌어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힘으로 밀어부치면 저쪽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있잖아요. 이기지는 못해도 자폭해서 우리에게 상당한 피해는 줄 수 있어요.nbspnbsp이번에 후코시마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하나 터지니 어때요? 피해가 엄청 나잖아요. 북한에서 우리나라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 하나만 터트려버려도 쑥대밭이 돼요. 그런 위험을 안고 있으면서 전쟁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몰라요. 그래서 협력하는 것이 상호에게 이익이예요. 북한 쪽에서 자발적으로 통일을 결정하면 중국이 그것을 막을 길이 없지만 힘으로 밀어붙이면 안그래요. 북한이 남쪽으로 힘으로 밀어붙였을 때 미군이 남한에 진주했지요. 우리가 힘으로 북한을 밀어붙이면 중국이 개입하겠지요. 그러면 우리가 중국한테 이기겠어요? 어떻게 터무니없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북한이 자발적으로 동독처럼 합하겠다고 결정을 하면 중국이 개입을 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될려면 북한의 민심을 얻어야 해요. 북한주민의 민심을 얻을려고하면 하층민은 인도적지원을 통해서 먹을 것을 충분히 지원해야 될 것이고, 중간층 사람은 중국보다 한국경제가 낫다고 하니 한국하고 통합하면 먹고살기가 훨씬 좋아진다고 하는 그런 유혹이 있어야 할 것 아니예요?nbspnbsp높은 사람들은 신분이 보장되어야 해요. 통일이 되면 다 처벌받는다고 하면 누가 통합을 할까요? 안하겠지요. 이런 것을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야 될 거 아니예요? 꼭 저놈을 잡아가지고 벌을 주겠다고 하는데 총들고 있는 군인이 총을 내려놓겠냐는 거예요. 벌을 주더라도 우선은 다 대우해주겠다고 하고 나중에 벌을 주더라도 줘야지 벌써부터 잡아가지고 죽이겠다 그러는데 누가 항복을 하겠어요. 우리가 테러조직, 깡패조직도 회유를 할때 잡아서 처벌하겠다고 하면 끝까지 저항하잖아요. 이것이 인간세상이라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우리가 조금 더 과거의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현실가능한 방법을 서로 찾아야 됩니다. 그러니 항상 자기 입장만 주장하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의 입장도 고려해서 해결점을 찾아야 됩니다.nbspnbsp한일 간에도 서로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대화를 해야되겠지요. 그런데 이 한일간의 문제를 풀 때는 키가 오히려 일본에게 있고, 남북 간의 경우에는 오히려 키가 한국한테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인간세상이 그렇다는 거예요. 내가 힘이 없는 주제에 할 수 없이 굴복해서 타협을 하면 힘이 좀 생기면 도전을 해요. 그래서 평화가 곧 깨어져요. 그런데 힘 있는 쪽에서 포용을 해버리면 모든 문제가 없어져 버려요.nbspnbsp그러니까 신라하고 가야를 봐요. 신라가 힘이 있고 가야가 힘이 없는데 신라가 가야를 통합할 때 가야 왕족을 다 신라 왕족으로 받아들이고 가야의 불교를 신라가 수용해 주었잖아요. 그때 신라는 불교를 금지하고 있었고 가야는 불교국가였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다 받아주었어요. 우리가 공산주의를 인정해 주듯이요. 그런데 백제하고 고구려는 외세를 끌여들여서 힘으로 밀어부쳤찮아요. 그러니 200년 후에 신라의 힘이 약해지니까 후백제, 후고구려가 나오잖아요. 이게 세월이 흘러도 또 일어나는 문제예요. 그래서 힘있는 쪽에서 양보해서 포용을 하면 갈등이 해소되고, 힘없는 쪽에서 굴복해서 억지로 통합하면 시간이 지나면 분쟁은 또 발생하는 거예요.nbspnbsp한일관계도 우리가 힘이 없어서 억지로 굴복해서 하면 우리가 독립운동 하듯이 그렇게 또 생기는 거예요. 그러나 힘있는 쪽에서 양보해서 포용해버리면 이 문제는 끝이 나버린다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남한이 북한에 포용정책을 써야 해요. 포용정책은 북한이 다 옳다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nbsp북한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고려한 후에 정책을 써야 한다는 거예요. 이것을 몰아붙이면서 항복받겠다 이러면 안돼요. 이미 우리 역사에서 한번 써 봤잖아요. 북한이 힘이 세고 남한의 힘이 약할 때 한달만 밀어부치면 다 된다고 했을 때, 실제로 부산만 남기고 다 밀어부쳤잖아요. 그런데 뒤에 미국이 있어서 결국에는 안됐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실패의 경험을 했는데 우리가 힘 좀 있다고 밀어부치면 중국에서 또 개입을 해가지고 엄청 난 피해만 오고 아무 문제도 해결이 안될 거잖아요. 북쪽이 썼든 남쪽이 썼든 한번 잘못한 정책을 두번 답습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거예요. 그러니 남한이 북쪽 민심을 확보하는 정책, 즉 포용정책을 써야 한다는 거예요. 동독하고 서독이 통일을 할 때도 동독이 한 거예요. 서독은 통일을 할 기반을 조성했지, 통일을 결정한 것은 서독이 아니라 동독이 한 거예요. 서독이 했다고 하는 것은 잘못알고 있는 거예요. 서독은 준비도 안되었는데 동독 주민들이 투표를 해서 통일을 하자고 한 거예요. 왜 그랬나면 독립적으로 있는 것보다는 통일하는 것이 더 이익이니까 그런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북한주민들이 통일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이익이다 라고 하는 생각을 갖게 할려면 우리가 좀 퍼줘야 할까요? 안줘야 할까요?”nbsp“퍼줘야겠지요.”nbsp“북한한테 퍼줘야 되고, 통일이 되면 더 많이 얻을 게 있다는 생각이 있어야 될 것 아니예요? 그런데 퍼주기를 못하게 하는데 무슨 통일이 되겠어요? 그 사람들이 왜 통일을 하겠다고 하겠어요? 이익이 되니까 통일을 하겠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지금도 먹여살려줄 것이고, 통일이 되면앞으로 더 많이 줄 것이다 하는 그런 믿음을 줘야 그런 결정을 할 것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통일이라는 더 큰 국가이익을 생각하면 이런 문제는 우리가 충분히 풀어나갈 수 있어요.”nbsp“알겠습니다.”nbsp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명쾌한 답변에 청중들의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더불어서 만약 통일 한국을 이뤄낸다면 전세계 800만의 우리 교민들에게 얼마나 큰 자긍심과 기쁨을 가져다줄까 상상해 보게 됩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이번 세계 115회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진리로 가는 길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해 주시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 지난 115회의 강연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하셨던 메시지의 요지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스님의 메시지 함께 전합니다.nbspnbsp“진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재미도 있고 유익해야 합니다. 재미가 있다는 말은 지금 좋다는 말이고, 유익하다는 말은 나중에도 좋다는 말입니다. 지금을 위해서 나중을 희생해도 안되고 나중을 위해서 지금을 희생해도 안됩니다. 애들이 공부 안하고 노는 것은 지금을 위해서 나중을 희생하는 것이고, 애들이 이를 악 다물고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것은 나중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내일 죽어버리면 얼마나 억울해요? 그러나 공부하는 것을 재미있어 하면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습니다. 그래서 과정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야 합니다.nbspnbsp나는 좋은데 너는 손해인 것은 상대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복은 오래 지속이 안돼요. 너한테는 좋은데 내가 희생한다고 하면 내가 오래 참지 못해요. 참는데는 한도가 있기 때문에 이것도 오래 지속이 안됩니다. 오래 지속이 되려면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합니다. 일시적 기쁨은 쾌락이라고 하고, 지속적 기쁨을 행복이라고 해요. 그 기쁨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때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너도 좋고 나도 좋아야 합니다. 너도 이익이고 나도 이익이 되어야 합니다.nbspnbsp시간적으로는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공간적으로는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합니다. 이 네가지 조건이 갖춰줘야 진리라고 말할 수 있어요. 부처님과 예수님은 이러한 진리를 우리에게 설파해 주신 분들입니다. 그 가르침대로 살면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길을 갈 수 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nbspnbsp그런데 오늘날 종교는 이런 본질적인 것이 다 없어지고 그냥 복 빌고 돈 벌고 출세하는 이런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역할을 종교가 대신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종교가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못 만드는 것이예요. 일시적 쾌락을 위해 지금 종교가 있는 것이지 행복을 지속화시켜 주는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서 여러분들이 종교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것에 대해서 저도 이해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무엇이 진실인가?’, ‘무엇이 지속가능한 행복을 가져오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이제는 탐구를 해야 합니다. 물질적인 복을 넘어서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런 길을 가는데에 붓다의 근본 가르침은 매우 유용합니다. 그리고 붓다의 근본 가르침은 종교를 초월해있지 종교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이 마음의 원리를 알고 삶에 적용을 하면 누구나 다 행복해질 수가 있습니다. 지금 행복한 줄을 알아야지 노력해서 행복하겠다는 것은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예요. 지금 이대로 여러분들은 행복한 사람들이예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아셔야 해요. 일본 온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예요. 그러면 한국으로 돌아가면 해결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만이 세월이 가도 어디를 가도 자기 행복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이렇게 스님께서는 남은 힘을 모두 내어 2시간 동안 지혜의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그동안 각 도시에서 강연 담당을 맡았던 자원봉사자 분들이 보내온 115강 회향 축하 영상 편지를 스님과 함께 보았습니다. 스님께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뭔가 하시다가 영상편지임을 아시고는 흐뭇한 표정으로 영상을 보셨습니다. 축하 영상이 끝나고 힘겨운 115강의 여정을 꿋꿋하게 걸어오신 스님의 원만한 회향을 축하드리며, 한금화 동남아 지구장님이 꽃다발을 증정하였고 청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로 함께 기쁨을 나눴습니다.nbspnbsp이어서 청중들을 위한 책 사인회가 이어졌는데 스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선 가운데 설레는 표정으로 스님께 사인을 받는 사람들과 열심히 사인하는 스님을 같은 화면에 넣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사인회 공간은 작은 축제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nbspnbspnbsp사인회를 마치고 나서 스님께서는 웃는 얼굴로 밝은 표정의 봉사자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강연 준비에 수고한 봉사자들을 격려하시며 일일이 단주를 끼워주셨습니다.nbspnbspnbsp특히 이번 오사카 강연을 담당한 신은숙님은 강연장 여기 저기서 너무 바쁘게 움직이느라 함께 사진을 찍지도 못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nbspnbsp▲ 교토에서 숙소를 nbsp제공해 주신 채영옥님nbspnbspnbsp마지막 강연이라 동남아 일정부터 함께 수고하신 한금화 동남아 지구장님과 이봉식 일본 강연 총괄에게도 수고했다고 격로하시며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일본 강연 전체를 총괄해 주신 이봉식님과 동아시아 전체 강연을 총괄해 주신 한금화 지구장님nbspnbsp필리핀, 대만, 홍콩, 일본 등 동아시아 강연 전체를 총괄한 한금화 지구장님은 세계 115강을 위해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지역 담당자들과의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서 함께한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끝난 지금 참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이 강연을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함께한 모든 인연들께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라고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먼저 호텔로 들어가시고 한금화 지구장님은 마음나누기를 하기 위해 남았다가 다른 지역과 달리 봉사자들이 강연 장소 청소까지 마무리해야 해서 함께 나누기도 하지 못하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호텔 로비에는 내일 아침 공항까지 차량 봉사를 해주실 최영진, 박영신 부부가 스님을 기다리고 있다가 인사를 나눈 뒤 호텔 근처의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부부는 앞서 교토 강연에서 질문을 했던 11살 소년의 부모이기도 한데 이번 강연에 보탬이 되기를 희망했다가 스님이 공항 가시는 길을 배웅해 주는 역할을 맡았다고 합니다.nbsp어제 도쿄에서부터 나고야, 교토, 오사카까지 안전 운전을 해주신 김세환님이 도쿄로 돌아가기 위해 스님께 인사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너무 많이 수고했다며 고마워하셨고 대신 김세환님이 선물용으로 사온 책 여러권에 사인을 해주는 걸로 마음의 빚을 조금 갚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김세환님 본인에게도 감사의 뜻으로 사인한 책을 선물하시고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전부터 부인을 통해 스님에 대해 많이 들었지만 이틀 동안 스님을 모시면서 정말 많은 것을 공부하고 느꼈다면서 이제 스님 법문만 들으면 눈물이 나는 이유를 밤새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 봐야겠다며 680km 거리의 도쿄를 향해 출발했습니다.nbsp▲ 도쿄에서부터 나고야, 교토, 오사카까지 운전 봉사를 해주신 김세환님nbsp스님께서도 휴식을 취하시고 일행은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오늘 오사카 강연에는 통일교 신도이면서 15년 전에 일본인에게 시집 온 분이 지난 처음으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소식을 들은 9월18일부터 스님의 통일에 대한 발원과 열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 봉투에 날짜와 함께 “스님, 감사합니다”라고 적고 천엔씩 모아온 돈을 가져와 스님께 전달해 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스님 일행은 정토회 회원인 우리보다 그 분이 더 낫다며 그 정성에 감탄했습니다.nbspnbsp오사카 강연은 상대적으로 홍보나 강연 준비가 조금 부족해 보인 면도 있었지만, 정토회 회원이 없는 황무지에서 씨앗 몇 개 뿌려지고 여리디 여린 새싹이 돋아난 것과 같이 정토회가 2차 만일결사를 하는 시기에는 더욱 크게 자라고 꽃 피울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nbsp이렇게 밤이 깊어가면서 세계 115회 강연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nbspnbsp건강이 좋지 않으셨음에도 마지막까지 교민들을 위해 열정적으로 법문을 해주신 법륜스님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계 100회 강연 이야기에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11시50분 비행기로 일본을 출발해 한국 인천 공항에 오후 2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공항에 도착한 후 곧바로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서 주최한 ‘남북화해와 평화네트워크 워크샵’가 열리는 경기도 가평으로 이동하실 예정입니다.nbspnbsp nbsp

2014.12.20. 41,996 읽음 댓글 49개

2014.12.17 세계 100회 강연(113) 일본 나고야 名古屋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해외 100강 중 113번째 일본 강연이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3번째로 열리는 강연입니다. nbspnbsp아침 7시에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 8시에 나고야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정체가 매우 심해 고속도로 진입하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는데 차량 봉사하신 분에 의하면 다른 시간대에 비해 1시간 30분이 더 걸렸다고 할 정도로 도쿄의 도로 정체도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nbspnbsp▲ 나고야nbsp나고야시는 일본 중부 지역의 가장 큰 도시로서, 일본 전체에서 세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아이치현의 현청 소재지입니다. 아이치현의 총생산량은 동경, 오사카에 다음가는 전국 3위로, 덴마크 오스트리아와 맞먹는 경제력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아이치현은 산업별로는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일본 내에 비해서 상당히 높은 지역특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자동차 산업품 관련이 약 60퍼센트, 그외 식료품 플라스틱제품 등 기타 소형 품목이 40퍼센트를 차지해 자동차산업 중심으로 경제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토요타 자동차 공장과 그 부품 업체가 나고야시 근방에 있기 때문이며, 나고야도 토요타와 함께 발전해 온 산업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울산이나 포항이 현대 및 포철과 함께 발전한 것과 비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고야 사람들은 일본 내에서 평소에는 구두쇠고 견실한 반면 명품이나 고급품을 좋아한다고 재밌는 정평이 나 있기도 합니다.nbspnbsp▲ 나고야시 전경nbspnbsp나고야를 향해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겨울이라기 보다는 봄이나 늦가을 같았습니다. 아직 고운 단풍과 노란 은행나무, 억새풀을 볼 수 있어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는데 고속도로가 계속해서 외벽으로 막혀 있어 바깥 풍경을 보기 어렵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소음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그렇다고 하는데 남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는 일본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일본에서 가장 특이했던 것은 이른바 공사판까지도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사판이라는 단어가 뭔가 무질서하게 놓여있거나 어수선한 이미지를 주는데 비해 일본은 모든 공구가 질서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먼지도 없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nbsp한참을 가다가 운전 봉사하시는 김세환님이 오른쪽을 가르켜서 보니 일본의 영산인 후지산이 보였습니다. 정상 부분은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지만 굉장히 큰 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 후지산nbspnbspnbsp김세환님은 목소리도 작게, 주로 손짓으로 이야기를 하셨는데 알고 보니 집에 계시는 보살님한테 편찮으신 스님을 배려하여 묻는 말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교육을 받고 왔다고 하여 함께 웃었습니다.nbspnbsp▲ 예쁘게 다듬어진 차밭nbspnbsp바다가 보이는 마을도 지나고 예쁘게 다듬어진 차밭이 유명한 곳도 지나고 어느샌가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도 하여 일본의 가을, 겨울의 계절도 경험할 수 있었고 휴게소라기보다는 우리의 대형 마트나 쇼핑몰 같은 느낌을 주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동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가다보니 6시간 정도 걸렸지만 지루하지 않고 짧은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nbspnbsp▲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우동nbspnbsp2시쯤에야 강연 시간 전까지 쉴 곳을 제공해주시기로 한 분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김경미씨라고 나고야 시에서 가까운 아이치현의 나가쿠테시라는 신도시에 사는 분인데 기업체 연수를 주로 하다가 동북대지진 이후 국내 대기업의 연수가 딱 끊겨 지금은 한글 강좌, 스포츠웨어 총판, 통역이나 번역 등의 일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 분은 천주교 신자인데 남편이 스님의 유투브 즉문즉설을 열심히 들으면서 성격이 바뀌어 삶이 많이 편해졌다고 하면서 정성껏 어묵국을 끓이고 맛있는 배추김치를 내어 주고 쉴 곳을 제공해 주셔서 스님과 일행은 맛있게 음식을 먹고 편안히 쉴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이 분에게는 다섯 살짜리 딸이 있는데 전날 스님의 희망강연 포스터를 따라 스님의 모습을 그리고 어떤 과일을 좋아하시냐는 편지까지 써놓은 것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nbsp▲ 김경미씨의 5살 된 딸이 그려 준 스님 얼굴과 희망세상만들기 글자nbsp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 전에 일본 중부지역 총영사관의 김인환 부총영사와 저녁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10분 늦게 출발한데다 모두 나고야 초행길이라 약속 장소를 잘 못 찾아 빙빙 돌다 시간이 늦어 스님께서는 매우 미안해 하셨습니다. 다음에는 꼭 현지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을 태워서 다녀야겠다는 것을 또 하나 크게 배우는 날이었습니다.nbsp오늘 강연이 이루어진 곳은 나고야 시내에 있는 윙크 아이치 산업노동센터로서 108개의 좌석을 마련했는데 좌석이 거의 다 차서 봉사자 포함하여 110명의 교민들이 모인 가운데 113강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께서는 인생을 살면서 꼭 지녀야 할 기본 가치관 네 가지를 말씀해 주시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인간은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불어 살기 때문에 타인의 자유를 뺏을 권리는 없어요. 그래서 첫째, 남을 헤치지 마라. 둘째, 남을 손해끼치지 마라. 셋째, 남을 괴롭히지 마라. 넷째, 말로 남을 괴롭히지 마라. 이 네가지를 제외하고는 인간은 마음껏 살아도 좋습니다. 나도 남 눈치 보지 말고 살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 네가지를 어기는 것이 아니면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수업 시간에 졸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네 가지에 들어가요? 안 들어가죠. 그러니 야단치면 안돼요. 성적이 떨어졌다고 합시다. 남을 헤쳤어요? 손해 끼쳤어요? 괴롭혔어요? 말로 괴롭혔어요? 그래서 이것도 야단치면 안돼요. 성적이 떨어진 것은 오히려 칭찬 받을 수 있는 일이예요. 남의 성적을 올려주었기 때문에 그래요. nbspnbspnbsp그런데 수업시간에 떠든다고 합시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공부에 방해를 주었잖아요. 이것은 잘못된 행동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잘못된 행동은 아주 어릴 때부터 바로잡아 주어야 해요. 3살짜리 4살짜리라고 하더라도 남을 때리면 안 된다고 얘기해줘야 해요. 남의 장난감을 뺏으면 안 된다고 야단을 쳐야 합니다. 남을 괴롭혀도 안 되고, 욕설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본 가치관을 어릴 때부터 안 심어주니까 학교 폭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nbspnbsp공부를 안 하는 것은 나쁜 짓은 아니에요.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에 속합니다. 나쁜 것과 어리석은 것은 틀려요. 어리석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에게 손해 끼치는 것을 말합니다. 공부를 안 해서 자기한테 손해 끼치고 수업시간에 졸아서 자기한테 손해 끼치죠. 어리석은 것은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잘못한 것은 아니에요. 깨우쳐줄 때는 야단치면 안 돼요. 열 번 이야기해서 말을 안 들으면 열 한번 깨우쳐 줘야지 야단치면 안돼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성적이 떨어졌다고 야단을 치잖아요. 이것을 구분할 줄 모르기 때문에 사회질서가 안 잡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억압을 받아요.nbsp그래서 이 네가지에 해당이 안되면 남의 인생에 간섭도 하지 말고, 이 네가지에 해당이 안되면 남의 눈치도 볼 필요 없어요. 우리 인생은 마음껏 살아도 좋아요. 그러나 이 네가지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내가 마음껏 산다고 남을 헤치거나 손해끼칠 권리는 없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살다보면 고뇌가 생기고 의문이 생깁니다. 그런 얘기를 오늘 마음껏 해보자는 것입니다. 답이 있는 게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인생의 문제를 갖고 대화를 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좀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제가 답을 주는 것이 아니고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자기 고민이 해결이 되면 마이크를 놓지 그 전에 마이크를 놓으면 안 됩니다. 끝까지 대화를 해서 ‘아, 그렇구나’ 해서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으면 “알겠습니다”하고 마이크를 놓으면 됩니다. 같이 대화를 하면서 진실을 규명하자는 것입니다. 자, 시작해 봅시다.”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둘째 딸아이가 고등학교 들어와서 학교생활이나 일본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활동이나 이런 것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딸이 학교 생활에서 방황하고 갈등하고 공부를 집중해서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걸 제가 편안히 바라보지 못하겠습니다.”nbspnbsp“15년 전에 결혼했으나 이혼을 했고 애가 하나 있어요. 음식을 잘 해서 10년 전부터 식당을 시작했으나 말아 먹었어요. 다시 청소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잘되는 한류 이자카야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특이한 당뇨에 걸려 쓰러지기를 반복하고 목에도 종양이 생겼어요. 병원마다 처방이 다르고 너무 힘들었는데, 한국에 계신 할머니가 무당이여서 굿이란 걸 한 이후 깜짝 놀랄 정도로 좋아졌으나 3개월 후 또 나빠졌습니다. 한국에서는 더 굿을 하고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정말 무병이라는 게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요?”nbspnbsp그리고 12살 정도 되는 여자 아이가 질문을 해서 큰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nbspnbsp“결정을 잘 내리지 못해서 고민이에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을까, 이런 걸 잘 결정 못해서 고민이에요.”nbspnbsp“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제가 감정기복이 너무 심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산책하는 것도 기쁜데 나쁠 때는 다 싫습니다. 좋은 기분을 항상 유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nbspnbsp“스님께서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유롭게 행하되 4가지를 유념하면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하셨는데, 만약에 자유를 침범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하면 됩니까? 남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요? 예를 든다면 이번에 대한항공의 부사장님 사건이 큰 이슈가 되었는데 그 사무장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nbspnbsp“서울에서 나고야에 온지 23년인데요. 부모님이 함경도에서 오셔서 그런 것도 있고 통일에 대해서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사춘기 아이가 불만이 많아서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서 자신 없어 하는 재일교포 어머니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문답이 길게 이어지며 마지막에는 옆에 앉아 있던 딸도 자신의 모습을 돌이키는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nbspnbspnbsp“안녕하세요. 저는 재일교포 엄마입니다. 요즘에 아이들이 사춘기가 와서 조금 힘들어요.”nbsp“사춘기가 왔다는 기준이 뭔가요? 말을 안 듣는다는 거예요? 요즘은 말 안 들으면 무조건 사춘기라고 그래요. 어떤 분이 “우리 애가 사춘기를 너무 일찍 시작했어요” nbsp해서 스님이 “몇학년이에요?” 라고 하니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그래요. 이것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말을 안 듣는다는 얘기이고요. “우리 애는 사춘기가 좀 늦어요” 해서 “몇학년이에요?” 라고 하니 “고등학교 1학년요” 그러면 고등학교 1학년부터 말을 안 듣는다는 얘기에요. 사춘기가 아니고 엄마 말을 안 듣는다 이 말이지요?”nbspnbsp“네. 말을 안 들어요. 요즘에는 제가 좀 많이 힘들어서요.”nbsp“애가 힘든 게 아니고 왜 어른이 힘들어요?” nbsp“저는 한국에서 결혼해서 남편이 주재원으로 일본에 왔는데요, 재일교포로서 한국으로 시집을 가서 다른 엄마들보다 교육같은 것이 부족해서 좀 자신이 없거든요.”nbspnbsp“질문자가 자신이 없다고 하는데, 질문자는 개보다는 나아요? 못해요? 질문자가 생각할 때 한국말이 좀 부족해도 강아지보다는 나아요? 못해요?”nbspnbsp“강아지보다는 낫구요.” nbsp“개도 새끼를 낳아서 키우는데 사람인데 왜 못 키우겠어요? 아무 문제없어요. 부족한 것 없어요. 질문자가 그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애를 낳아서 키우는 것은 한국말을 못하는 것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한국말을 못하면 그냥 일본말을 하시면 돼요. 그러면 아이들은 한국말도 배우고 일본말도 배우고, 2개들 다 배우게 돼요.”nbspnbspnbspnbsp“앉지 말고요. 서서 계속 얘기해요. 벌써 그만 둘려고 그래요? 뭐가 어려워요?”nbsp“저는 잘해주고 싶은데요, 다른 엄마들과 비교했을 때 저한테 불만이 많아요. 밥 같은 것은 제가 잘 하는 데요.” nbspnbsp“밥만 해주면 돼요. 옷도 빨래해서 입혀요? 빨래는 안 해줘요? 질문자가 집안 청소는 해요? 집을 엉망으로 해놓고 살아요?“nbsp“아니요. 깨끗하게 해놓고 살아요.”nbsp“일본에서 살았으니 뭐든지 깔끔하게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됐어요. 그게 엄마가 해야 할 거 다에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어려워요?” nbspnbsp“애들이 엄마한테 불만이 좀 많아서요. 그게 좀... 제가 좀 많이 만만한 것 같아서요. 애들이 남편은 좀 무서워하거든요.”nbspnbsp“아빠는 주먹이 있으니까 겁내는 것이고, 질문자는 주먹이 없으니까 그런 거지요. 그것은 당연하지요.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힘드는 데요? 남편하고 관계 때문에 힘들어요? 아니면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요?”nbsp“애들 때문에 그런 것 같애요.”nbsp“남편하고는 문제가 없어요? 남편하고 문제가 없으면 애들하고 힘들 일이 없어요. 솔직하게 얘기해봐요.” nbsp“특히 우리 딸이 자신감이 없습니다. 저가 좀 많이 부족해서 딸이 그렇게 자신이 없나 싶어가지고요.”nbspnbsp“질문자는 괜찮아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지금 그런 것을 자학이라고 그래요. 자기를 학대한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아무 문제도 없어요. 또 뭐가 문제예요?”nbspnbsp“다른 것은 없습니다.” nbspnbsp“애가 말을 안 듣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말을 안 들어요?”nbspnbsp“그냥 좀 많이 짜증을 내는 것 같애요. “엄마가 해주는 것이 없다”고 얘기도 하고요.”nbspnbsp“엄마가 해주는 것이 없다고 하면, “엄마는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학교 보내주면 그것으로 다 했지, 나머지는 엄마가 해 줄 의무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돼요.” nbspnbsp“알겠습니다.”nbsp“강아지도 새끼 낳아서는 젖만 먹여주면 돼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 해줘도 돼요. 학교 안 보내줘도 되고, 옷 안 입혀줘도 되고요. 그래도 사람이니까 학교도 보내주고, 옷도 입혀주는 것인데, 그럴 때는 웃으면서 “아이고, 밥해주고 빨래해주면 됐지. 엄마가 뭘 더 해주냐?” 이렇게 편안하게 얘기하면 되지요. 그런데 ‘왜 나는 해주는 게 없다’ 이렇게 생각해요?”nbspnbsp“저가 원래 자신이 없는 것 같애요.”nbspnbsp“질문자가 자신이 없으니 애도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지금부터 “밥해주면 됐지? 뭐가 문제니?” 이렇게 자신있게 답을 해주면 애도 자신이 있어져요.”nbsp“네”nbsp“또 뭐가 문제예요? 얘기 꺼낸 김에 다 얘기해봐요. 진짜 어려운 게 뭐에요? 솔직하게 얘기해봐요. 일본 사람들은 자기 속내를 잘 안 밝힌다고 하더니 일본에 살아서 그래요?”nbsp우리 딸이 좀 아팠습니다. 몸이 아팠는데요, 지금은 많이 건강해졌는데요.nbsp“딸이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가면 되지요. 의사가 할일이지, 질문자가 할일은 아니잖아요. 진짜 뭐가 문제예요? 사는데 뭐가 힘들어요?” nbspnbsp“우리 딸이 저보고 “왜 태어나게 했냐?” 고 그런 얘기도 하고요.”nbsp“너희 아버지하고 좋다가 보니 생겼다 이렇게 얘기하면 되지요. 그게 뭐 어렵다고 그래요. 그러면 “나도 너 낳고 싶어서 낳은 게 아니다. 그럼 너는 왜 나한테 태어났니?” 이렇게 말하면 되잖아요. “왜 나를 낳았나?” 그러면 “왜 나한테 태어났니?” 이렇게 얘기하면 되지요. 그러면 비기잖아요. . 뭐 그것을 가지고 걱정을 하고 그래요. 또 얘기해봐요. 스님이 다 답해 줄테니까요.”nbspnbspnbsp“그냥 그런 것만 힘든 것 같애요.”nbspnbsp“그것 밖에 없어요? 그러면 힘든 것도 아니네요. 딸이 말을 어떻게 안 들어요? 그냥 얘기해요. 남 눈치 보지 말고요. 뒤에 계신 분이 누구에요? 시어머니요? 언니에요?”nbspnbsp“친구언니입니다.”nbsp“친구언니인데 왜 자꾸 뒤를 쳐다보고 얘기를 해요. 스님을 보고 얘기를 해야지요.”nbspnbsp“한국말을 잘 못 알아들어요. 통역을 해주고 있어요. 자기 표현을 못해서요.”nbsp“그러면 천천히 얘기를 해보세요. 스님도 천천히 말 할게요. 자, 다시 물을게요.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뭐가 힘들어요?”nbsp“애기 키우는 것이요.”nbsp“애기는 밥만 주면 본인이 알아서 크는데 왜 힘이 들어요?”nbspnbsp“마음이 힘들어요. 짜증내면서 저한테 부족한 것을 많이 얘기할 때요. 그냥 계속 외모에 자신이 없어 해요”nbspnbsp“외모에 자신이 없을 때는 지체부자유 아이들이 있는 곳 있지요? 거제도에 가면 애광원이 있는데, 그런 곳에 봉사를 시키면 돼요. 그러면 ‘내가 건강한 것만 해도 엄청난 복이구나. 내가 제대로 말하고 걷는 것만 해도 엄청난 복이구나.’ 이렇게 자각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외모가 조금 열등의식이 있다는 것은 잘났다는 얘기에요.nbspnbsp여러분들이 생각할 때는 못났기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잘났기 때문에 외모에 열등의식이 있는 거예요. 즉 딴 것은 다 괜찮은데 눈만 조금 크면 이렇게 되기 때문에 눈에 열등의식이 생기고, 눈을 수술하고 나면 코만 조금 높으면 미인인데 이렇게 해서 또 코가 문제고요. 또 코를 고쳐놓으면 턱이 조금 문제인데 하면서 턱을 조금 깍아놓고, 이러고 나면 볼이 조금 나와가지고 이렇게 해서 성형 병에 걸리게 되거든요. 그런데 스님같이 못난 사람은 어디부터 뜯어 고쳐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아예 문제가 안돼요. nbspnbspnbsp그러니까 얼굴에 흉터가 있다거나, 언청이라든지, 아예 부상을 크게 입어서 그런 것은 예외이고요. 얼굴에 열등의식이 있다 이런 경우의 대부분은 어릴 때 예쁘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어릴 때부터 예쁘다고 소리를 들었는데 본인보다 더 예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열등의식을 갖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은 “괜찮아, 괜찮아. 너 잘났어” 이렇게 말해주면 돼요. “엄마보다 잘났나? 못났나?” 이렇게 한번 물어보고 엄마보다 못 났으면, “그것은 네 아버지 탓이야” 이러고요. 엄마보다 잘나도 “그건 네 아버지 공덕이다. 엄마하고는 관계가 없다. 아버지한테 가서 감사하다고 얘기해라. 네가 못생겼으면 아버지한테 가서 따지고, 칭찬을 해도 아버지한테 가서 얘기해라”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해요. 애들 얘기에 무슨 어른이 그것을 듣고 상처를 입어가지고 질질 짜고 울고 그래요. 그냥 애들이 하는 소리에요. 사춘기가 되면 온갖 것이 다 불만이에요. 얼굴에도 불만이고, 옷 입는 것도 불만이고, 뭐도 해달라고 그러고 원래 그래요.nbspnbsp그러면 그것이 나쁘냐? 그게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에요. 시켜서 말을 잘 들으면 어린애이고요. 반항도 하고 불평불만도 하면 ‘우리 딸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구나’ 하고 이렇게 지켜봐야지요. 그것을 힘들다고 하면 안돼요. 애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하면 애들이 커서 잘못돼요. 왜 그럴까요? 조그만한 아이가 벌써 엄마를 괴롭히잖아요. 그러면 불효하는 거잖아요. 불효하는 아이는 크면 훌륭한 사람이 못돼요. 엄마는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어도 항상 아이를 키우는 것이 좋아야 돼요. ‘아이고, 네가 있어서 행복하다. 엄마는 너 보는 낙으로 산다’ 이런 기분으로 살아야 애가 잘 돼요. 그 이유는 아이가 엄마를 즐겁게 해준다는 얘기 아니에요? 그러면 아이가 효자라는 얘기거든요. 밥해주고 빨래해주는 것은 조금 힘들지만 애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항상 즐거워야 해요. 아이가 그런 불만을 말하면 ‘아이고 그래그래. 그래도 잘났다. 엄마 보기에는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예쁘다’ 이렇게 웃고 넘어가야지 그것을 애들처럼 하나하나 다 가슴에 새기고 힘들어 하면 안돼요. 애를 둘이나 낳은 여자인데 지금 질문자는 애 같은 짓을 하고 있어요. nbspnbsp어른이 되세요. 아이만 낳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하는 얘기를 그냥 웃어넘겨야 돼요. 빙긋이 웃으면서 ‘그래그래’ 하면서 그것을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요.”nbsp“감사합니다.” nbspnbsp“옆에 앉아 있는 딸에게 마이크 한번 줘봐요. 스님하고 얘기하면 재미있어요. 학생은 뭐가 엄마한테 불만이에요? 그냥 얘기해봐요.”nbspnbsp지금부터는 딸과 스님의 대화가 이어집니다.nbspnbsp“불만 없어요.”nbspnbsp“미인이지요? nbsp제가 얘기했잖아요. 잘 생긴 사람이 성형한다구요. 스님같이 못생긴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할 여가도 없어요. 학생은 지금 뭐가 힘들어요?”nbspnbsp“힘든 것 없고요. 그냥...”nbsp“그런데 왜 엄마가 힘들다고 그래요?”nbspnbspnbsp“힘든 것 없는데 왜 울어요?”nbsp“그냥 눈물이 막 나요.”nbsp“엄마 눈물 닮았구나. 엄마 딸 아니라 그럴까 싶어서 그래요.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요?”nbspnbsp“공부하는 게 힘든 게 아니고, 그냥 저보면 한심해요. 그냥 제가 싫어요. 그냥 다 불만이 많아요. 얼굴도 그렇고 그냥 다요. 그냥 못 생겼어요.”nbspnbspnbspnbsp“그냥 못 생겼어요? 영화배우들을 너무 쳐다보다가 저래 생겨놓으니 그래요. 영화배우보다 못 생긴 것은 맞아요. 못 생겼어요. nbspnbsp자, 여기 스님 책상 앞을 봐요. 여기 마이크 스탠드가 있고 여기 물병이 있고, 여기 물잔이 있어요. 자, 여기 물병을 들고 마이크 스탠드하고 비교하면 물병은 커요? 작아요?”nbspnbsp“작아요”nbsp“물잔하고 비교하면 커요? 작아요?”nbsp“커요.”nbspnbsp“그러면 이 물병 하나만 딱 놓고 보면 커요? 작아요?”nbsp“모르겠어요.”nbspnbsp“지금 본인이 한 번은 크다고 그러고 한번은 작다고 그랬는데 비교해서 얘기했잖아요. 그러면 비교하지 말고 물병 하나만 딱 놓고 보면 커요? 작아요? 물병 이것 자체는요?”nbsp“몰라요.”nbspnbsp“그러니까 이 물병은 이 스탠드하고 비교하면 작다. 이 물잔하고 비교하면 크다가 돼잖아요. 그러면 크다 작다라고 하는 것은 이 물병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인식 상에 있어요. 즉 스탠드하고 비교해서 인식할 때는 작다고 머리가 인식을 하고, 물잔하고 비교해서 인식할 때는 크다고 머리가 인식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 물병은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작다고 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이 물병이 나한테 인식이 될 때 어떤 때는 크다고 인식이 되고, 어떤 때는 작다고 인식이 된다 이말이에요. 그러니까 큰 것하고 비교하면 작다고 인식이 되고, 작은 것하고 비교하면 크다고 인식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물병 자체를 두고 크냐 작냐고 물으면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크냐 작냐고 묻는 그 용어를 빌려서 대답을 하면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대답을 해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nbspnbsp스님이 묻기를 ‘크냐? 작냐’고 하면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가 되고요. 스님이 묻기를 ‘무거우냐? 가벼우냐?’고 하면 ‘가벼운 것도 아니고 무거운 것도 아니다’가 되고요. ‘새것이냐? 헌것이냐?’ 라고 물으면 ‘새것도 아니고 헌것도 아니다’가 되고요. ‘긴가? 짧은가?’ 라고 물으면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니다’가 됩니다. 즉 존재 그 자체는 존재 그 자체일뿐이지, 이것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에요. 이것을 한문으로 고쳐서 말하면, ‘비대비소’,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 이것을 선적이 언어로 표현하면 ‘다만 그것이다’, ‘다만 그것일 뿐이다’. 이것을 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공이다” 그래요.nbspnbsp그러면 여기서 자네는 지금 이 물병을 가지고 작다고 얘기해요. 작다고 얘기할 때는 스탠드하고 비교할 때 작다고 했는데, 지금 본인이 못생겼다 라고 하는 말은 지금 본인이 영화배우하고 본인의 얼굴을 비교해서 못생겼다 이렇게 생각한다 이말이에요. 그러면 본인은 죽을 때까지 못생겨요. 이 물명을 계속 스탠드하고만 비교하면 나는 영원히 작아요. 그래서 내 존재 자체가 작은 줄 아는데 원래는 작은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비교를 스탠드하고 하기 때문에 작다고 인식되는 거예요. 이 물컵하고 비교를 하면 크다고 인식이 돼요. 자네가 2m 키의 사람과 비교를 하면 늘 작아요. 그런데 150cm 키의 사람과 비교하면 늘 커요. 그러면 자네는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고,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못 생긴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추한 것도 아니고, 착한 사람도 아니고 악한 사람도 아니고, 공부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공부 못하는 사함도 아니고, ‘나는 그냥 나다’ 이거예요.nbspnbsp공부 잘하는 학생들과 반 편성을 하면 자네는 꼴찌를 해요. 그런데 본인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과 반 편성을 하면 본인은 일등을 해요. 그러면 비교해서 일등하고 비교해서 꼴찌를 하는 것이지, 일등한다고 공부 잘 한다, 꼴찌한다고 공부 못 한다. 이렇게 말할 수가 nbsp없어요.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nbspnbsp그래서 다시는 본인보고 못 생겼다느니, 잘 생겼다느니 하지 말고, 본인이 못 생겼다 해도 본인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고, 본인이 잘 생겼다 하고 우월감을 가져도 본인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본인은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못 생긴 것도 아니고, 키가 큰 것도 아니고 키가 작은 것도 아니고, 잘난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니고,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착한 아이도 아니고 악한 아이도 아니고, 나는 다만 나다.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이다.nbspnbsp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있는 그대로 다 존엄하다.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차별해서는 안 된다. 피부 빛깔이 검다고 희다고 차별해도 안 되고, 남자 여자라고 해서 차별해도 안 되고, 신체 장애 유무를 가지고 차별해도 안 되고, 성적 지향을 가지고 차별해도 안 되고, 태어남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을 가지고 차별하는 것은 옳지가 않다. 이것이 불교 철학의 가장 핵심이에요. 그러면 지금 본인은 잘 생겼어요? 못 생겼어요?”nbsp“못 생긴 것도 아니고 잘 생긴 것도 아니에요.” nbsp“그래요. 그럼 본인은 공부 잘 해요? 못 해요?”nbsp“못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nbsp“나는 나다, 아시겠어요? 지금 자네 실력을 가지고 전국에서 꼴찌하는 학생들 모아놓고 그 반에 자네가 들어가면 일등을 하겠지요. 전국에서 일등하는 아이들만 모아놓은 자리에 자네가 들어가면 꼴찌 하겠지요. 그러니 꼴찌했다고 공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일등했다고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번 시험에 성적이 올라갔다고 내 실력이 좋아진 것도 아니고, 낮아졌다고 나빠진 것도 아니에요. 내가 공부 안하고 놀아도 다른 친구가 내보다 더 놀아버리면 내 성적이 올라가고, 내가 죽어라고 공부해 갔는데 다른 애들이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버리면 성적이 못 나오고 그러는 것이지요. 시험은 다만 상대적 평가를 할 뿐이에요. 그러니 본인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지, 본인을 못났다든지, 열등의식을 가져도 안 되고 거꾸로 잘났다 하는 우월의식을 가져도 안돼요. 알았지요?”nbspnbsp“네, 감사합니다.” nbsp“그래요. 딸이 엄마보다 훨씬 낫네요. 딸은 말귀를 알아듣는데 엄마는 도대체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한국말이 서툴다고 못난 여자도 아니고, 본인은 뭘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나는 나일 뿐이다’ 그런 자신감을 가져야 애들이 좋은데 엄마가 저렇게 자신감이 없으니까 아이들도 영향을 받는 거예요. 알았지요? 그러니까 앞으로 자꾸 나는 못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돼요. 그렇다고 나는 잘났다 이래도 안되고요. 잘못했으면 ‘죄송합니다’ 이러면 되고, 틀리면 ‘아이고 틀렸네요, 고치겠습니다’ 하고, 모르면 물어서 알면 되고요. 그런것을 가지고 우리가 위축될 필요가 없어요.nbspnbspnbsp스님이 지금 말을 쉽게 해도 이것은 굉장한 철학이에요. 이것이 전부 반야심경, 금강경 교리의 요점이에요.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종교는 성인의 말씀은 성인의 말씀으로 따로 하고, 생활은 생활대로 따로 하고 그래서 지금 문제예요. 그래서 절에 다니고 교회에 다녀봐야 삶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은 그것은 하늘의 얘기 따로 두고 땅의 얘기 따로 두고 이렇게 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땅과 하늘이 둘이 아니에요.”nbsp질문한 엄마도 활짝 웃고, 엄마와 갈등하던 딸도 활짝 웃고, 강연장 전체에 잔잔한 감동이 일었습니다. 청중들은 다시 한번 모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강연장 대여 시간을 엄격히 지켜야 하는 곳이라 닫는 말씀을 따로 하지 못하고 시간이 다 되어 곧바로 강연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2시간 20분간의 강연이 끝나고 바로 스님의 책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오늘 청중 중에는 일본인들도 간혹 보였는데 어떤 분들은 한국어를 공부하는 중이라 어느 정도는 알아듣지만 좀 어려운 내용일 때는 알아듣기 힘들었다고 하고 또 어느 부부는 부인이 열심히 수첩에 스님의 말씀을 일본어로 적어주면서 남편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강연을 듣고 감동한 분들이 책을 사서 스님의 사인을 받으면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장소 대관 시간의 제약 때문에 스님께서는 서둘러 책 사인을 하시면서도 웃으시며 사람들의 인사를 받아주셨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잘 치러낸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강연 담당자 부부에게 책을 선물하고 사진도 같이 찍었습니다. 특히 이 부부는 신혼여행을 갔다가 이번 해외 100강 중 핀란드 강연에 참가하여 스님께 나고야에서 뵙겠다고 인사를 했는데 마침 나고야 담당자가 중간에 비는 바람에 스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강연을 담당하여 열심히 준비해왔다고 하여 인상적이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오늘 봉사자는 거의 대부분 학생들로서 처음 자원봉사를 해보며 함께 이루는 기쁨을 경험한 게 좋아서 다음에도 꼭 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nbspnbspnbsp▲ 한금화 동아시아 지구장님과 함께 마음나누기nbspnbspnbsp오늘은 바로 교토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스님께서 먼저 들어가 쉬시지 못하고 봉사자들의 나누기 시간을 기다려 주시고 정리정돈과 짐 챙기는 것도 손수 함께 도와주셨습니다.nbspnbspnbsp서둘러 짐을 챙겨 바깥으로 나와 보니 하얗게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나고야의 첫 눈이라고 하는데 차량 봉사를 하신 김세환님은 약간 들뜬 목소리로 첫 눈이 오는 날 스님을 모실 수 있어서 너무나 뜻 깊은 날이라고 기뻐했습니다.nbsp교토로 가는 길에 밤인데도 약간의 정체가 있어 일본에서는 강연장 근처에서 자고 밥은 도시락으로만 먹어야겠다며 일본의 교통 정체를 경험하며 함께 웃었습니다.nbsp교토의 호텔에 도착하니 1시가 넘었습니다. 내일은 하루에 2번의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오후 2시에는 114번째 강연이 교토에서, 저녁 6시30분에는 이번 세계 100회 강연의 마지막 강연인 115번째 강연이 오사카에서 열릴 예정입니다.nbspnbsp지난 8월26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한 첫 번째 강연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5개 도시를 거쳐 마지막 115번째 강연이 드디어 내일 열립니다. 마지막 강연을 앞두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습니다. 내일 마지막 강연 소식까지 생생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18. 54,022 읽음 댓글 43개

2014.12.16 세계 100회 강연(112) 일본 가와구치 川口市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12번째 강연이 일본 가와구치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어제 도쿄에 이어서 두 번째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가와구치는 일본 사이타마 현 남동부의 아라카와 강 북안에 있는 인구 약 50만 명의 시입니다. 사이타마 현 내에서는 사이타마 시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입니다.nbspnbsp▲ 일본 가와구치 nbsp그간 다른 나라에서의 일정에 비해 여유 있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는데 7시에 아침식사를 하셨습니다. 식사를 하시면서 “어제 강연 후 책 사인회 때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분들이 많았다”고 하시며 타국, 특히 일본에서 사는 교민들의 아픔에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일본인들이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성향이 강한데다가 일제 강점기때부터 살아온 재일교포들은 일본에서 항상 약자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매사 행동을 조심하면서 한국인임을 숨기며 살아왔다고 하니 그 어려움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런 재일교포뿐 아니라 80년대 이후 일본에 온 자영업자나 유학생, 주재원들을 의미하는 이른바 뉴 커머들 또한 타국에서의 삶이 녹록치 않음을 봉사자들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식사 후에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뒤 도쿄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센소지라는 절에 가보기로 하고 아사쿠사로 향했습니다. 어제까지는 스님께서 건강이 안 좋으셔서 아무데도 가실 수 없었는데 아침에 스님이 좀 나아지셨는지 한번 가보자 하셔서 나서게 됐습니다. 센소지는 우리나라 조계사와 같이 시가지 내에 위치하고 있고 그 주변은 인사동처럼 전통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많은 일본인들이 이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센소지는 건물들이 크고 깔끔하게 지어졌고 정원도 잘 꾸며놓은 곳이었습니다.nbspnbsp▲nbsp도쿄에서 제일 오래된 절 센소지 방문nbsp중간에 어느 작은 다리 아래에 노는 잉어들이 파란색이라서 놀라서 다시 보니 물속에 파란색 LED 등을 켜놓은 것입니다. 물이 파란색으로 보이니 물고기들도 파랗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nbspnbspnbsp센소지에 도착했을 때 이미 비가 꽤 내리고 있어서 우산을 쓰고 구경을 다녔는데 혹여나 스님께서 감기라도 들게 되면 남은 강연에 차질이 생길까봐 한군데 더 가보려던 계획을 취소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선 점심 식사로 500엔 이하의 서민들이 즐겨먹는 우동을 먹어보자고 하셔서 차량 봉사하시는 서현관님이 급히 인터넷을 검색하여 유명한 우동 체인점을 찾아 갔습니다. 종업원들의 빠른 손놀림으로 여러 종류의 우동이 서비스되고 있었고 우동값은 290엔이라 저렴한데 같이 파는 고구마, 호박, 새우 등의 튀김은 값이 비싸서 거기 온 일본인들은 주로 우동만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점심식사. 290엔짜리 우동. nbsp식사 후 숙소로 돌아와 간단히 짐 정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다가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강연 봉사자분들이 추천하는 식당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원래 3분 정도 걸린다는 거리라 하여 거기에 맞게 시간을 계산했는데 저녁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길이 막혀서 10분이 걸리고 음식 주문에도 시간이 예상외로 많이 소요돼서 스님께서는 음식이 나오자마자 급히 드시다가 다 드시지도 못하고 강연 장소로 먼저 출발하셨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장은 정확하게 10시까지 모든 것을 끝내야 하는 곳이라 강연 전에 사인회를 먼저 하셔야 했습니다. 비가 오는 쌀쌀한 날씨라서 청중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는데 예상 외로 많은 분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장, 리리아 홀.nbspnbspnbsp일본에서는 이런 날씨에 집에 가는 습성이 있어 절반 정도는 행사가 취소된다고 하는데 준비된 150석이 대부분 채워져서 봉사자 포함하여 약 13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112강이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즉문즉설은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뇌를 먼저 드러내놓고 저와 함께 대화하는 것입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어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정해진 길이 없습니다.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돼요. 문제는 자기 좋을 대로 살면 행복해야 되는데 자기 좋을 대로 사는데 인생이 괴롭다는 겁니다. 왜 그런가? 세상이 내 뜻대로 안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인생에 의문이 듭니다. 그런 문제들로 인해 혼자 끙끙 거리고 고민해봐야 시간만 낭비하고 해결이 잘 안되죠. 주위 사람들도 힘들게 만들고요. 이런 것들을 꺼내놓고 잘 살펴보면 혼자 생각할 때는 해결 불가능한 것 같은 것도 같이 보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nbspnbsp그러나 사실 개인 얘기를 꺼내놓기 어렵잖아요. 특히 일본 사람들은 속 얘기를 잘 안한다고 하던데 맞아요? 그런데 여러분들도 일본 살다보니 닮았을 것 아니에요? 그래서 속앓이를 많이 하시는데 오늘은 일본에 살지만 우리 한국 사람끼리 모인 자리니까 속에 있는 얘기들을 좀 꺼내놓고 스트레스를 좀 풀고 가세요. 눈치 보지 마시고요. 언제 또 볼 거라고 눈치를 보고 그러세요. nbspnbspnbsp개인 얘기도 좋고요. 사회 얘기도 좋습니다. 종교 얘기, 과학 얘기, 자연환경 얘기도 좋습니다. 주제는 상관 없어요. 자신이 고민하거나 의문이 있거나 하는 내용이 있으면 편안하게 내어놓고 대화를 하면 되겠습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총 5명의 질문자가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둘째 아이를 위해서 집에서 작은 공부방을 시작했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너무 커져버렸습니다. 미국, 필리핀 그리고 일본 직원들과 일을 하다보니 너무도 다른 언어와 문화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직원들의 질투와 다툼을 해결하는 것이 스트레스였습니다. 올해는 미군 감축으로 원생들이 많이 줄어 수입이 적어졌습니다. 이렇게 계속 간다면 제가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맞는 건지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nbspnbsp“저는 재일교포 3세인 남편을 만나 올해로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최근 남편과 딸에 대한 교육문제로 충돌이 있는데, 남편은 일본식 교육을 원하고, 저는 한국식으로 교육을 하고 싶어합니다. 딸의 장래를 위해 어떤 식으로 해야할지 조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bspnbsp“스님 말씀 듣고 불교에 대해 공부하면서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요. 첫번째 과보는 피할 수 없다 하셨는데, 세상에는 나쁜 짓 하면서도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지 혼란스러운데 그에 관한 스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일본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회사에서 한국에 관한 비판을 들으면 신경이 민감해 지곤 합니다. 덤덤하게 대응하고 싶은데, 마치 부모님 욕을 듣는 것 같은 부분이라 쉽게 감정 조절이 안 됩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 강연도 어제 신주쿠에서와 같이 스님과 청중들이 하나가 된 듯 호응이 좋아 스님 말씀에 청중들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질문자는 5명이었지만 다소 꺼내놓기 어려운 질문도 솔직하게 내어놓고 스님의 조언을 구하니 청중들의 집중과 이해가 좋았고 처음엔 다소 굳어있던 청중들의 표정이 강연이 진행된 2시간 20분 동안 환하게 바뀌어져 있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서 살고 있는데 남편이 자주 삐져서 너무 힘들다는 아내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문화가 서로 다른 상대와 어떻게 화합해서 살 수 있는지 명쾌한 답변 속에 시종일관 웃음이 빵빵 터지면서도 많은 배움이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일본 사람이랑 결혼해서 1살짜리 남자 아기가 있어요. 아기는 건강하고 남편은 성실하게 살고 있는데요. 그런데 남편이 자주 삐쳐요. 1년 중 300일은 보통 남자들의 10배정 도로 자상해요. 밖에서도 좋은 사람이지만 저한테도 굉장히 잘하고 그래요, 그런데 평소에 본인이 잘하고 배려하던 것들이 스트레스로 돌아오면 말도 안 되는 작은 것을 가지고 저한테 짜증을 부리고 삐쳐서 말도 안하고 혼자서 텔레비전만 보고 핸드폰 게임만 하고 있고, 그럴 때면 제가 이런 생각을 안하고 싶은데도 ‘내가 너 하나 믿고 이 나라 와서 혼자서 애 키우면서 이러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올라오면서 막 서러워요.nbspnbsp사실 생각해 보면 누가 내밀어서 내가 이 나라에 온 것도 아니고, 내가 내 행복을 찾아서 여기 와서 둘이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왜 그렇게 삐지는 걸까요? 평소에는 다 맞춰주고 웃으면서 넘어가는데, 피곤이 쌓이면 제 평소 행동에 대해서 ‘너는 왜 그러냐?’ 그러면서 넘어가지를 않는 거예요. 연애할 때부터 남자가 삐돌이라는 것을 알고 연애를 했어요. 그것을 감안하고 결혼을 했는데, 변하지 않고 여전히 삐돌이가 되어서 싸우다 보면 막 눈물이 나요. 이런 것이 계속 주기적으로 반복이 되니까 힘들어요.”nbspnbsp“질문자도 감정 기복이 심한 것 같은데요.”nbsp“네, 제가 좀 그런 것 같애요. nbsp울고 싶지 않은데요. 솔직히 너무 자잘한 것을 갖고 삐지기 때문에 일일이 상대하고 싶지 않아요.”nbsp“남편도 남편 심리상태를 보면 본인이 어릴 때 자란 환경이 있어서 남편도 자기가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도 있어요. 질문자가 감정기복이 심한데 남편이 참다가 참다가 남편도 터져서 그래요. 질문자가 평소에 본인 감정 기복을 좀 조절을 하면 남편이 그렇게 삐지는 횟수가 줄어들 거예요. 남편이 많이 참기 때문에 조그마한 일을 가지고도 나중에 터지는 거거든요. 질문자가 평소에 남편의 참는 압력을 줄여주면 삐질 횟수가 좀 적지요.”nbsp“평소에 제가 거의 맞춰주는 편인데요.”nbspnbsp“남편이 질문자를 맞춰주는 것 같은데요.” nbspnbsp“물론 남편도 맞춰주지만, 저도 잘하는데요.”nbsp“잘한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기도를 좀 해야 돼요. 질문자가 감정 기복이 좀 심해요. 감정 기복이 좀 심하니까 남편이 참다가 자꾸 터지는 거예요. 주로 어떤 것을 가지고 갈등이 생기는지 좀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봐요.”nbsp한동안 괜찮다가 그저께 삐쳤는데, 저녁에 기분 좋게 밥을 먹고 애기를 재우고, 제가 와인을 한잔 마신다고 들고 거실에 들어왔어요. 거실 바닥이 카펫트인데 제가 와인잔을 카펫트 위에 올려놓은 거예요. 그런데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넘어뜨렸죠. 그 와인잔이 카펫트에 쏟아졌어요. 내가 어떡하지 하고 있는데 애기가 깨어서 방에서 우는 거예요. 남편은 이미 좀 열을 받아가지고 있는 상태였어요. 카펫트 위에 와인잔을 올려놓은 상태부터가 이미 열을 받아 있는 거예요. “너는 도대체 왜 그렇게 주위가 산만하냐?”, “너는 또 저렇게 해서 카펫트 위에 넘어뜨리냐?”고 하면서 팔짱을 끼고 보고 있는 거예요. 애기가 우니까 저는 애기한데 가잖아요. 그러면 남편이 씩씩 거리면서 이제 카펫트를 빨아요.nbspnbsp나중에 애기 재우고 nbsp제가 다시 와서 “내가 쏟았으니까 내가 할께, 내가 치울게” 라고 하면 이미 삐져서 그때부터 말을 안 해요. 물어도 대꾸도 안하고요. 그러고서, 오늘은 쉬는 날인데 하루종일 입술 삐죽 해가지고, 밥 먹을 거냐고 물어봐도 “몰라”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왜 삐졌냐?”고 계속 묻고 하면, “사실은 어제 와인잔을 쏟았을 때부터”라고 하는 거예요. “열을 받으면 치우지 마라, 당신이 열 받으면서 치우는 것이 나는 싫다. 차라리 내버려두면 내가 쏟은 것을 내가 치우지, 당신은 친절을 베풀어 놓고 그것을 가지고 삐져가지고 일주일 동안 nbsp말을 안 하고 그러냐, 나는 그것이 싫다” 라고 말을 해요.nbsp“네. 하나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니 질문자는 일본 사람하고 결혼할 성격이 아니네요. 개인이 문제라기보다는 질문자의 성격이 일본 문화하고 너무 안 맞아요. 일본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도 굉장히 깔끔하게 용의주도하게 하는데, 와인잔을 가지고 와서 카펫트 위에 쟁반도 깔지 않고 놓는다는 것 자체가 일본 사람이 볼 때는 터무니없는 짓을 한 거예요.”nbsp“맞아요. 그런 식으로 저를 보는 거예요.”nbsp“한국사람 국제 망신시키고 있어요.” nbspnbsp“결국에는 제가 “알았다. 이제 와인잔은 카펫트 위에 안 올려 놓겠다” 이렇게 해서 화해하고 나오긴 나왔는데요.”nbsp“그래도 그것은 질문자의 행동이 ‘잘못해 놓고 사과 한마디 하면 된다’, nbsp‘놔두세요. 내가 알아서 빨게요’ 하는 그런 생각이 잘못 되었어요. 어떻게 잘못을 해놓고 ‘내가 쏟든지 말든지 당신이 관여 안하면 되지 뭐 그러냐’ 이렇게 생각하는데, 부부가 같이 사는데 어떻게 그렇게 돼요? 좀 주의를 하고 살아야지요. 일본 남자하고 살려면 일본에 좀 맞춰서 살아야지 한국의 선머슴아도 아니고요. 말괄량이처럼 그렇게 사니까, 사랑 안하면 벌써 헤어졌을 건데, 당신을 사랑하니까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삐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것이 어떻게 하루 만에 풀어지겠어요? 자꾸 반복되니까 ‘아이고, 저것 때리지도 못하고, 저것을 어떻게 할까? 내가 말을 해도 듣지도 않고...’ 그러니 말이 하기 싫은 거예요.nbspnbsp일본에 시집을 왔으면 일본의 그런 문화를 조금 익혀야 돼요. 우리는 절에 살면서 차를 컵에도 따라 마시고, 밥 먹고 나서 밥그릇에도 따라 마시고 우리는 절에서 그렇게 살아요. 그러나 일본 사람은 차 문화도 요래 무릎 꿇고 앉아서 따라주는데 스님이 봐도 속이 터져서 죽을 것 같은데요. 문제는 그렇게 하는 사람들한테 시집을 왜 왔냐는 거예요. 그런데 와인잔을 가지고 와서 카펫트 위에 무식하게 그냥 놓아요? 아이고, 스님 같이 밥그릇에 커피 받아 마시는 사람도 카펫트 위에 그냥은 안 놓아요. nbspnbsp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좀 문제예요. 호텔에 들어가면 한국 사람들은 과일이나 커피 이런 것을 침대 위에 턱 올려놓고 그러거든요. 그러면 안돼요. 스님하고 같이 다니는 일행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스님이 잔소리를 얼마나 하는데도 잘 안돼요. 그 나라마다 가면 예의가 있는데 막 함부로 해요. 한국 사람들의 제일 큰 특징이 남이 보든지 말든지 아무데나 벌여놓고 밥 먹고 냄새 풍기고 함부로 해요. 이 세상에 제일 함부로 하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라면, 제일 눈치보는 사람이 일본사람이니까, 한국하고 일본은 굉장히 가깝지만, 이 눈치 문화는 굉장히 차이가 나요. 그래서 진짜 일본 사람들은 숨막힐 정도로 너무 남의 눈치를 보고, 한국 사람은 포항제철소에 갔다 온 사람처럼 진짜 너무 뻔뻔스럽게 남의 눈치 안보고 아무데나 벌리고 그래요. nbspnbspnbsp그러니 이 둘이 가까이 있고 비슷한데 결혼하면 많이 부딪힐 수밖에 없어요. 질문자가 일본사람하고 결혼을 했으니까 지금 애기까지 있는데 애기만 없으면 ‘그 성질을 가지고는 일본사람하고 살기 어렵다, 헤어져라’ 고 하겠지만 , 애기가 있으니 20년은 살고 헤어져도 헤어져야 해요. 알았지요?”nbspnbsp“네”nbspnbsp“이렇게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애기한테 나빠요. 이것은 문화 차이이기 때문에 누가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지만 질문자가 이런 것을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애기한테 굉장히 나빠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남녀의 문제로 보지 말고, 일본 것이 다 좋다가 아니라, 애기 엄마로서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기 위해서 남편이 몇 가지를 얘기하면 남편이 지적하는 것 몇가지를 맞춰주는 것이 좋아요.nbspnbsp결혼이라는 것은 서로 맞춰서 사는 거예요. 내가 상대에게 100 맞춰서 살면 결혼 생활은 100 성공해요. 50 맞추면 50 성공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혼을 할려면 최소한 50는 맞춰야 해요. 50는 내 것을 포기해야 돼요. 이것을 움켜쥐고 결혼을 하면 부딪쳐서 못살아요. 그러니까 그럴 때는 사과를 정중하게 해야 돼요. 질문자는 일본 수상을 닮은 것 같아요. ‘어제 내가 사과를 했잖아’ 지금 이런 식이잖아요. nbspnbsp‘아이고 여보 미안해요.’ 그 자리에서 애기 우는 것 신경쓰지 말고 남편부터 먼저 달래야 해요. 애기가 울어도 놔두세요, ‘여보, 미안해요. 내가 부주의해서 쏟아서 미안해요.’ 남편이 말 안해도 내가 12번이라도 ‘미안해요, 미안해요’ 라고 그 자리에서 넙죽 절을 하고 애기가 울어도 카펫트부터 먼저 다 닦아놓고 해야 돼요. 애기는 좀 울어도 큰 지장이 없어요. 작은 애기보다 큰 애기가 더 중요하지요. 질문자가 우선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요. 한국에서 연애했어요? 일본에서 연애했어요?”nbsp“연애는 일본에서 했어요. 일본에 유학을 왔고, 지금 일본에서 1년 살았어요.” nbspnbsp“1년 살았는데도 일본에서 살지 않는 나보다 일본 문화를 모르네요. 일본, 한국을 떠나서 서로 맞춰야 돼요. 그런데 종교가 다르거나 민족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면, 내가 맞추는 것이 마치 내가 상대에게 지는 것 같고, 내가 한국 사람으로서 일본사람에게 지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 생겨요. 자기 자존심을 자꾸 민족 문제로 환치시키면 안돼요. 그것은 잘못하는 거예요. 문화를 넘어서서 ‘여보 미안해요. 내가 부주의했어요.’ 이렇게 해줘야 합니다. 한국사람 같으면, ‘아이고, 내가 몇 번을 얘기했어. 그렇게 하지 말라구’ 이러고 말아버리는데, 여기는 문화가 안 그래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이런 것을 세심하게 배려해야 돼요. 그 사람도 해도 해도 안 되니까 말을 안 하겠지요. 그런 삐치는 성질도 있겠지만, 질문자가 알면 그것을 조절을 해줘야지요. 이런 것이 맞추는 연습이에요. 이런 것 맞추기 싫으면 스님이 되면 돼요.” nbspnbsp“네, 맞추겠습니다.”nbspnbsp“삐졌다고 자꾸 그러지 말고요. 이 사람하고 못 살겠다 그러지 말고요. 그러면 한국사람하고 결혼하지요. 일본 남자 싹싹하다고 일본 남자하고 결혼했지요?”nbsp“네”nbsp“질문자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하고 사는게 낫겠어요. 무뚝뚝한 사람은 그렇게 흘리는 것을 보고 nbsp“아이고, 지랄하고 있다” 이렇게 말은 험악하게 해도 별 게의치 않아요. “아이고 저 미친것 봐라. 내 몇번 얘기했나?” 이러고 말아요. 텔레비젼도 안보고 밖으로 나가버려요. 그래도 들어오면 풀고 그래요.nbspnbspnbsp그래서 착실할수록 빼꼬롬한게 많아요. 성질을 버럭낼수록 뒷끝이 없어요. 모든 인간이 다 그래요. 성질이 급한 사람은 뒷끝이 별로 없고, 착한 사람은 꿍해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스님이 “착한 여자가 무섭다. 조심해라” 고 하는 거예요. 착한 여자도 무서운데 착한 남자가 더 무섭지요. . 그러니까 질문자가 이왕지사 결혼을 했으니까 지금 당장 안살 것은 아니잖아요. 성질이 날 때 못살겠다 그런 마음이 들고, 365일 중에 300일은 괜찮고 65일 정도는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살겠네요. 평균을 내어보면 일주일에 한번 정도예요.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 오늘은 삐지는 날이다’ 하고 달력에 표시해 놓으세요. 이렇게 하고 사는 수밖에 없어요. 달리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이것 말고 구체적으로 한 두개 더 최근에 일어났던 일을 얘기해봐요.”nbspnbsp“이런 얘기를 하면 제가 이상한 여자처럼 보일 것 같은데요.”nbsp“그래도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이상한 여자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고 이상한 여자예요.” nbspnbsp“이 남자가 얼마나 조그만 것에 삐지냐 하면요. 크린랩 있잖아요. 음식 쌀 때 하는 크린랩요. 제가 랩을 놓는 위치가 찬장에 있는데, 제가 항상 랩을 그 위치에 놓는다고 놓는데 남편의 말로는 제가 자꾸 잊어 먹는다는 거예요. 남편이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주말에는 요리를 자기가 하고 싶어해서 기본적으로 부엌이 자기 공간이라고 생각을 해요. 자기 공간이지만 주중에는 아내가 관리를 하는 것이라고요. 그런데 아내의 관리방법이 마음에 안드는 거죠. 랩을 넣는 것을 잊어먹고 찬장문을 열어놓은 채로 잠이 든다 라든가.” nbsp“그것도 질문자 문제네요. 놓는 자리에 딱딱 놓으면 되잖아요.” nbspnbsp“아, 그렇긴 하죠. 그런데...” nbsp“그 남자하고도 못 사는데 질문자는 절에 오면 더 못 살아요.” nbsp“절에는 걸레도 딱 쓰고 딱 빨아서 그 자리에 갖다 두고, 빗자루도 딱 제자리에 걸어 두고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걸레 닦고, 급하다고 이런데 아무데나 던져놓고 가다가 스님한테 잡히면 죽비로 맞아요. 그 남자는 삐지지 스님은 때려버려요. 거 봐요. 얘기하면 할수록 질문자가 문제네요. 아까도 얘기했잖아요. 일본 사람들은 정리 정돈을 잘한다고요. 그래서 사용하고 나면 딱딱 그 자리에 두고 그런데, 질문자는 랩을 쓰고 나서 여기 갖다 놓고, 저기 갖다 놓고, 두 번 세 번 얘기해도 또 잊어버리니까 찬장 문을 딱 열면 짜증이 나지요. 그러니까 삐지는 것이 아니라 ‘너는 말해도 안 된다. 너한테 말하면 뭐하나. 개한테 얘기하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nbsp그래서 스님이 질문자는 일본 남자하고 살 수준이 안 된다고 아까부터 얘기했잖아요. . 일본 남자가 수준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문화 차이가 있어요. 질문자가 맞춰야 해요. 일본 문화라서가 아니라 그것은 절에 와도 고쳐야 하는 거예요. 아까처럼 와인잔은 카펫트 위에 그냥 놓는다고요? 어떻게 꿀렁꿀렁한 카펫트 위에 그냥 놓아요? 방바닥이라도 받침 없이 안 놓아요. 여기도 봐요. 한국 사람이 했으니 이랬지, 일본 사람이 받침 없이 이렇게 갖다 놓는 것 봤어요? 이것 누가 했어요? 질문자가 한 것 아니에요? nbspnbspnbsp저도 일본 문화를 좋아는 안 해요. 어제도 선물을 하나 받았는데 포장이 5겹이었어요. 봉투 있지, 하나 뜯으니 그 안에 또 있지, 또 있지. 뜯으니까 그 안에 요만한 과자 몇 개 들어 있었어요. 스님이 환경운동하기 때문에 이런 것은 싫어하는데, 그런데도 여기는 문화가 그렇다는 말이예요. 딱 받쳐서 깔끔하게 가져다 주고 하는 그런 문화가 있는데 질문자처럼 랩을 아무데나 갖다놓고 칼도 아무데나 놔놓고 그러면 짜증이 나지요.nbspnbsp특히 남자가 부엌을 자기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조정을 해야 돼요. 남이 사용해도 딱 제자리에 두는 그런 문화인데 자기 집에서 랩을 쓰고 아무데나 놓아두니 남편이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함부로 사용하더라도, 금요일 오후에는 부엌 주인이 오니까 매뉴얼대로 정리를 해서 찬장문도 딱 닫아놓고 인수인계를 해주세요. 그래서 토요일 일요일은 남편이 사용하도록 해주고, 월요일부터 출근하고 가버리면 대충 내 맘대로 사용하다가 금요일이 오면 딱 정리해서 넣어놓는 그런 센스라도 있어야지요. nbspnbsp‘남편이 조그마한 일에 삐진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맞지 않아요. 질문자는 nbsp스님하고도 못 살겠어요. 그것은 질문자의 잘못이예요. 남편이 삐진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사랑하는 것도 한도가 있지 질서를 안 지키면 동거하기가 힘들어요. 말이 부부지 사실은 같이자취하는 사람 아니예요? 자취하는 사람은 뭐가 중요해요? 밥 당번은 밥 제대로 하고, 청소 당번은 청소 제대로 하고, 물건 사용하고 제자리에 놓아두고 이렇게 해야 오래 같이살지요. 그것을 막 자기 맘대로 어질러 놓고 살면 같이 살기 힘들어요. 일본을 넘어서서 질문자는 잘못하고 있어요. 엄마가 누구예요? 엄마를 불러다가 야단을 좀 쳐야겠어요. 이렇게 해가지고 시집을 보냈어요? 남편을 문제삼지 말고 그것은 질문자가 좀 고쳐야겠어요.”nbsp“네” nbspnbsp“그리고 잘못할 수도 있잖아요. 잘못했으면, ‘죄송합니다. 아이고,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하세요. 일본 사람들은 잘하잖아요. ‘하이’ 이러면서요. 스님이 일본 사람들한테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이 ‘하이’라고 할 때에요. 누구를 불러도 ‘하이’ 이렇게 대답을 하고요. 한국사람은 불러도 대답을 안 하고요. 그러다가 옆에 대답도 안 하고 와요. 오기는 또 와요. 오든지 안 오든지 대답을 우선해야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남편 탓하지 말고 질문자가 조금 조정을 해야 돼요. 알았지요? 애기가 몇돌 되었어요?”nbspnbsp“아직 두돌 안되었어요.“nbsp“애기 엄마가 너무 스트레스 받으면 애기한테도 안 좋고 정신적으로 굉장히 안좋으니 애기 엄마는 항상 얼굴이 밝아야 돼요. 알았지요?nbsp“네”nbspnbsp질문자도 웃고, 청중들도 질문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큰 박수갈채를 다시 보내줍니다. 너무 웃겨서 배꼽을 잡고 웃었고, 또 내용이 너무 유익해서 참 좋았던 감동적인 스님의 답변이였습니다.nbspnbsp“여러분들, 여기서 사는 게 힘들죠? 제가 전 세계를 돌아다녀보니까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 가서 사는 한국인들은 그 나라에서 비교적 잘 사는 축에 들어가요. 그래서 대부분 깃을 세우고 살고 제가 가도 다 환대를 잘 받아요. 차도 가지고 나와 태워주고 집도 크고 그래요. 그런데 독일이나 스위스나 부자 나라에 가면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사는 수준이 밑이에요. 그래서 스님이 초대 받아서 가보면 방 두칸 짜리에 조그마한 집에서 살고 있어요. 이게 아이러니예요. 부자 나라에 간 한국 사람은 부자 나라에서 가난하게 살고, 가난한 나라에 간 한국 사람은 그 나라에 부자로 살고요. 그러니까 인간이 느끼는 빈곤은 상대적 빈곤이예요. 저는 가난한 나라에 사는 교민들을 더 애틋하게 생각하고 갔는데 전체를 돌아보고 느낀 점은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사는 나라에 간 교민들이 진짜 불쌍한 사람들이예요. nbspnbspnbsp그래서 일본에 사시는 여러분들도 눈치를 좀 많이 보고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음 고생 좀 하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이것은 상대적 빈곤감입니다. 그러니 기죽지 마시고요. 그러나 문화는 받아들여야 해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일본에 왔으면 일본 문화를 지켜주면서도 한국의 정체성을 가져야지 저항감으로 버티고 여기 살면서 일본 사람들을 욕하면 여기 사는 내가 피곤해져요. 알았지요?nbspnbsp일본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더라도 일본 문화를 존중해주는 자세를 갖는 게 좋아요. 그렇게 해서 사는 게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하려고 이렇게 다 사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누구나 다 고민이 있는데, 이것을 내어놓고 대화를 하면서 풀어야지 혼자서 이성적으로 꾹 눌려 놓기만 하면 나중에 더 위험해져요. 그러니 서로 소통하면서 삽시다. 행복하게 사세요.”nbsp스님께서 “행복하게 사세요” 라고 말씀하시자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게되어 기뻐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nbspnbsp강연을 마치고 이어서 강연 전에 스님 사인을 못 받은 사람들을 위해 잠시 사인회를 마저 가졌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 준비에 애쓴 봉사자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봉사자들은 행사를 잘 치러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듯 행복한 표정으로 스님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 담당자인 한정숙 보살님과 이틀 동안 차량 봉사를 열심히 해주신 김숙이 보살님, 서현관 거사님께 책을 선물하고 사진을 같이 찍으셨습니다.nbspnbsp▲ 강연 담당자 한정숙님nbspnbsp▲nbsp이틀동안 차량 운전 봉사를 해주신 서현관님nbspnbsp▲nbsp이틀동안 차량 지원 및 봉사를 해주신 김숙이님nbsp정토회 인연도 전혀 없는 분들이 만나 막막하기만 했던 강연을 잘 치러낸 봉사자들에게 스님께서는 일일이 단주를 나눠주고 악수를 청하시니 모두 기뻐하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하는 모습이 들뜬 잔치집 같았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먼저 숙소로 돌아가시고 봉사자들은 서둘러 강연장을 정리하고 모여 앉아 한금화 지구장님과 함께 나누기를 했습니다.nbspnbspnbsp처음이라 얼떨떨했지만 처음 한 것 치고는 너무 잘 한 것 같다며 다음에도 꼭 불러달라는 얘기를 하는 분도 있었고 좀 더 많이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는 분도 있었습니다. 어제 신주쿠 강연과 오늘 강연 모두 참여한 봉사자는 양 쪽이 진행하는 방식이 너무 달라 당황했지만 이렇게도 저렇게도 강연이 이뤄지는 모습에 감동적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일본인 2분이 있었는데 강연담당자인 한정숙 보살님의 지인들로서 묵묵히 봉사하시는 모습도 눈에 띄었지만 나누기 하실 때 스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 유감이었다고 하여 청중들이 그렇게 웃을 때 내용이 얼마나 궁금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신주쿠 강연에 오신 한 스님의 제안대로 일본인들을 위한 즉문즉설이 이뤄지게 되면 스님의 법문으로 그들의 철벽같은 마음이 녹아내리고 우리 교민들도 훨씬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합니다.nbspnbsp일본에 와서 한일관계나 남북관계에 따라 우리 교민들의 삶이 큰 영향을 받는 것을 보니 우리 정부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고 하루빨리 한일관계과 남북관계가 평화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로 나아가길 기대해 봅니다.nbspnbsp오늘도 이렇게 기적처럼 112강이 훌륭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과정을 몰라서 그렇지 기적은 없다는 스님의 말씀처럼 이런 해외 강연도 쉽게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뿔뿔히 흩어져 있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땀과 눈물로서 이뤄내는 감동적인 결과인 것 같습니다.nbsp내일은 113강이 열리는 나고야로 떠납니다. 나고야에서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17. 46,839 읽음 댓글 41개

2014.12.15 세계 100회 강연(111) 일본 도쿄 신주쿠 Tokyo

nbsp안녕하세요. 오늘부터는 해외 115강을 멋지게 마무리할 일본 강연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일본에서는 총 5강이 진행되는데 이중 첫 강연이 오늘 저녁 도쿄 신주쿠에서 열릴 예정입니다.nbsp서초 법당에서 5시 45분에 출발하여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 필리핀 마닐라에서 출발하신 한금화 보살님이 먼저 와서 스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보통 국내 메이저 항공사의 경우 비행기를 타면 기내식이 나오지만 스님께서 이용하시는 저가항공은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아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고 탑승을 해야 했습니다. 탑승권 수속을 하고 식사 주문을 기다리고 공항 지하철을 타고 가거나 비행기 안에서도 스님께서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시고 짬짬이 원고 교정을 하셨습니다.nbspnbsp▲ 탐승권 수속을 기다리면서nbspnbsp▲ nbsp공항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nbsp▲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nbspnbsp주말까지 청년 캠프로 강행군을 하셔서인지 일본으로 떠나는 스님의 건강은 그리 좋지 못하고 다시 편두통까지 있으신 듯하여 함께 하는 일행들이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nbspnbsp▲ 일본 도쿄 신주쿠nbspnbspnbsp도쿄는 일본의 혼슈 동부에 있는, 메이지 시대 이후 사실상 일본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입니다. 행정 구역 상으로는 도쿄 도에 속하고, 도쿄 도는 다마 지역이나 이즈 제도, 오가사와라 제도의 넓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쿄에는 일본 각 정부 부처, 일본 천황이 기거하는 고쿄 등이 있습니다.nbsp현재 도쿄 23구의 인구는 852만 명이고 도쿄 도 전체는 1264만 명, 도쿄 권으로 보면 3400만 명 이상입니다.nbsp약 2시간 반 가량 지나자,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일본은 굳이 소개할 필요도 없이 우리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로 잘 알려져 있는 나라입니다. 과거 역사 속에서도 2014년 현재에도 끝없이 이어진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출국장으로 나가자 일본 5강 총괄 담당인 이봉식님, 가와구치 강연 담당 한정숙님, 그리고 오늘과 내일 이틀동안 차량봉사를 해주실 김숙이님과 서현관님이 마중을 나와 스님을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 일행과 강연봉사자들이 두 대의 차량으로 나눠 타고 숙소가 있는 가와구치로 출발했는데 보통 1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 오늘따라 차가 꽉 막혀 거의 2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가 이용한 도로가 한국식으로 보면 외곽순환도로라고 할 수 있는데 나리타 공항, 요고하마 항 등에서 물류가 이동하는 루트라 연말에 특히 밀린다고 합니다. 가는 길에 유명한 도쿄 디즈니랜드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고 에도 가와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서 전면에 스카이트리 타워라는 높은 탑을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가와구찌로 가는 길에 에도가와 다리를 건너면서 본 스카이트리 모습nbspnbsp새롭게 일본의 상징으로 떠오르는 스카이트리 타워는 높이 634m의 철골 구조로 된 전파송신탑으로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재건 일본을 상징하는 건물이기도 한데 전망대와 쇼핑몰이 유명하다고 합니다.nbspnbsp▲ 도쿄 신주쿠의 마천루nbspnbsp길이 밀리긴 했어도 강연 시간은 저녁이라 여유있게 이틀 동안 묵을 가와구치 호텔에 도착하여 내부 식당에 미리 주문한 도시락을 먹으려는데 식당에 자리가 없어 직원의 양해를 구하고 호텔 로비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강연 전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어 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한금화 지구장과 강연 봉사자들은 강연 준비를 위해 4시에, 스님은 4시 반에 오늘의 강연이 열리는 신주쿠로 출발했습니다.nbspnbsp▲ 호텔 로비에 놓여져 있는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신주쿠 강연 홍보 전단지nbspnbspnbsp신주쿠는 서울로 치면 명동에 비견되는 곳으로 특히 신오오쿠보 지역에는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들이 많은데 최근에는 한국과 같이 커피숍 붐이 일어나 두 집 걸러 하나씩 커피숍이 성업하기도 한다는데 곳곳에 한글로 된 간판이 보여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nbspnbsp▲ 오늘 강연장, 아스카 신용조합nbspnbsp오늘의 강연 장소는 한국분이 운영하는 아스카 신용조합이라는 곳인데 입구에서 봉사자들이 서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고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강연장을 찾는 분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습니다.nbspnbspnbsp일반사단법인 정경문화교류회에서 재일교포 3분이 찾아오셔서 잠시 환담을 나누셨고 스님께서는 직접 책에 사인을 하셔서 선물을 드렸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에 가보니 벌써 준비한 자리에 많은 분들이 앉아 계셨고 계속해서 자리를 속속 채우고 있었습니다. 총 150석을 준비했다는데 봉사자 포함하여 약 3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청중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오늘 일본에 도착했어요. 115회 중에 110회 강연을 했고 이제 5번만 더 하면 끝이 납니다. 지난 번에 100회를 마치고 이제는 어려운 고비를 다 넘겼다 싶어서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끝까지 가겠다 했는데, 필리핀에 태풍이 불어서 강연을 못할 뻔 했어요. 호치민에서 필리핀으로 가는 노선에 태풍이 있어서 홍콩으로 둘러간다 어쩐다 하는데 마침 세력이 갑자기 약화되어서 갈 수가 있었어요. 이제는 어려움이 없겠다 했더니, 필리핀에서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가 3시간 늦어서 강연 시간에 겨우 도착했어요. 또 대만에서 홍콩가는 비행기가 또 늦었어요. 대만에서 관제탑에 이상이 생겨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이 전부 딜레이 되는 바람에 그랬나봐요. 그렇게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왔는데, 일본은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일본은 기차든 비행기든 다 제 시간에 가는 나라 아닙니까?nbspnbspnbsp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고민이 있으면 뭐든지 내어놓고 한번 얘기를 해보는 시간입니다. 또 살다보면 인생이 뜻대로 안되잖아요. 그래서 생기는 의문이 있으면 함께 얘기해 봐도 좋습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진실을 규명해 간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속내를 잘 못내어 놓는다면서요? 20년을 이웃집에 살아도 이웃집 친구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아마 여러분들도 같이 살면서 좀 닮았지 않았겠나 싶어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속내를 잘 못내어 놓을 것 같아요. 어떡하죠? 속내를 내어 놓아야 얘기를 할 수 있는데...nbspnbsp혼자 꽁 움켜쥐고 온갖 고민들을 하는데 이렇게 드러내놓고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살펴보는 것을 도와주는 거예요. 찬찬히 살펴보면 별 것 아닌 경우가 많아요. 자기는 엄청나게 큰 일인데 옆에서 보면 아무 일도 아니예요. 여러분들은 물체의 한쪽 면만 보고 마음에 안든다고 하는데 대화를 하면서 앞만 보던 사람을 뒤도 보게 하고, 옆만 보던 사람을 반대편 옆도 보고 하고 이렇게 해서 사물의 전모를 보게 하는 겁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인의 특성을 닮아 재일교민들도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아 즉문즉설이 쉽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을 깨고 총 17명이 질문자가 있는 가운데 총 7명의 질문에 문답이 이루어졌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저는 최근에 한달 전에 싸움을 했는데요. 싸울려고 싸운 게 아니라 일적으로 부딪혀서 싸우게 됐는데 마음으로 대화를 했으면 그렇게 크게 되지 않았을 것 같고요. 또 제가 그렇게까지 다치게 하려고 한 게 아니고 그냥 일적으로 그렇게 된 거라서요. 제가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피하네요.”nbspnbsp“저는 일본에서 어학연수로 일본에 왔다가 남편하고 결혼해서 20년이 됐고요. 자식이 3명 있거든요. 남편이 사업을 하다가 조금 어려워지니까 굉장히 우울해지고 잠을 못자서 수면제를 먹고 술을 먹기도 해요.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인데 집안에 들어오면은 무거운 얼굴로 있어요. 요즘에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집에 가기도 싫어지구요.”nbsp“저는 초등학교 1학년짜리 딸이 있는 데요. 올해 학교에 들어갔는데 같은 반 친구가 저희 딸을 괴롭히려고 한 건 아닌데 어떻게 하다가 저희 딸이 괴롭힘을 당하는 상태인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nbspnbsp“궁금한 건 백인, 흑인 어느 나라 친구를 봐도 범죄가 있고, 동성애가 있다는 걸 느꼈는데 답을 못내겠더라고요. 언어랑 피부는 다른데 왜 닮았을까. 운동을 하다가 정말 깜짝 놀랐는데 건장한 외국인 친구가 동성애할 친구가 아닌데 고백을 하는 거예요. 가끔 군인들이나 운동선수들보면 그런 분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을 실제로 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nbsp“저는 두돌 반 된 남자 아이가 하나 있고요. 일본 남편과 셋이서 살고 있는 주부입니다. 정말 귀여운 아들 때문에 둘 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니까 본인들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겠다는 주관 때문에 남편에 대한 사랑이 식어가는 거 같아요. 저도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겠다는 계획이 있었고, 거기에 터치가 들어오면 기분이 상해서 그게 남편에게 전달이 되거든요.”nbspnbsp“현재 동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고 지낸지는 12년 정도고 동거한지는 10년 됐습니다. 처음에는 결혼할 생각에 26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시작했는데, 결혼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나쁜 사람이라면 냉정하게 뿌리치겠는데 착하고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라서 머리로는 헤어져야지 하는데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고요. 회사 사장님이라서 혼자 덩그러니 내버려두고 떠나자니 정이 들어서 제 마음이 아프고 속상합니다.”nbsp질문자와 스님의 문답을 들으며 300여명이 함께 웃고 울다 보니 어느덧 정해진 시간을 40분이나 넘겨 총 2시간 40분이 흘렀습니다. 오늘도 매 질문마다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지만 특히 작년에 착실한 외아들을 갑작스럽게 과로사로 잃은 분의 안타까운 질문에 대한 스님의 말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nbspnbsp“일본에 온지 32년 정도 됐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1년 전에 갑자기 회사를 다니다가 죽었어요. 죽은 것도 몰랐다가 한 이틀 후에 발견되었어요. 과로사였어요. 속도 안 썩이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었고, 학교다닐 때도 아침에 한 번도 깨워본 적 없고, 검도도 3년 하고, 대학교도 연맹에서 부회장을 했던 아들이 갑자기 죽으니까 제가 길을 잃었습니다. 여기 계신 스님이 인연이 되어서 49재를 지내줬습니다. 작년 6월 말일날 죽고 7월1일에 발견됐어요. 수면제도 먹고 알콜도 맨날 마시고 좀 힘이 듭니다. 아파트 문을 열었는데 죽어 있더라고요. 저도 장사를 한 20년 했는데 그래도 남편이 저보다 16살이 많으니까 남편 먼저 보내고 제가 가야지 하는데, 제가 너무 힘드니까 요즘엔 어떻게 죽을까 생각만 해요.”nbspnbsp“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있다고 생각해요? 없다고 생각해요?”nbsp“영혼이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없다고 생각할 때고 있고, 반반이라고 생각해요”nbspnbsp“영혼이 있다고 생각해서 아들이 지금 자기를 보고 있다면 엄마가 지금 헤매고 다니는 게 아들에게는 좋아보일까요? 괴로울까요?”nbspnbsp“아들은 안 좋겠죠.”nbspnbsp“안 좋은 행동을 왜 해요? 첫째, 자기는 지금도 아들이 괴롭도록 행동하고 있습니다. 둘째, 자기 아들이 착했어요? 악했어요?”nbspnbsp“착했어요.”nbspnbsp“착했으면 죽은 뒤에 좋은 곳에 갔을까요? 나쁜 곳에 갔을까요?”nbspnbsp“좋은 곳에 갔다고 생각해요.”nbspnbsp“극락은 이 세상보다 좋다고 하죠. 그러면 아들이 좋은 곳에 갔는데 무엇 때문에 울어요?”nbspnbsp“좋은 곳에 갔어도 여기서 만져볼 수도 없고 신기루처럼 잡을 수도 없고요...”nbspnbsp“아들이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내가 못 보면 싫고, 내가 보는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 말이예요?”nbspnbsp“네, 살아만 있었으면 좋겠어요.”nbspnbsp“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결혼해서 아무리 잘 살아도 다른 여자랑 사는 건 보기 싫다 이렇게 되었을 것 아니예요? 아들이 극락에 갔으면 여기보다 좋은 곳에 갔잖아요. 좋은 곳에 갔는데 왜 불만이예요?”nbsp“그렇게 생각해야 되는 건가요?”nbspnbsp“그럼요. 나쁜 곳에 갔다면 불쌍하니까 불만이 있지만요.”nbsp“그럼 저는 살아야 되는 건가요?”nbspnbsp“살든지 죽든지 그건 자기가 알아서 하세요. 그런데 우선 자기 문제는 놔놓고 우선 아들 문제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우선 아들이 죽은 뒤에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는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데 세상 사람들이 보통 말할 때는 영혼이 있다고 하죠. 영혼이 있다면 엄마가 즐겁게 사는 것이 보기 좋겠어요? 괴롭게 사는 것이 보기 좋겠어요?”nbsp“즐겁게 사는 것이 보기 좋겠죠.”nbsp“죽은 아들이 보기에는 엄마가 즐겁게 사는 것이 보기 좋겠죠. 그리고 자기 아들은 극락에 갔을까요? 지옥에 갔을까요?”nbspnbsp“극락에 갔겠죠.”nbspnbsp“그럼 자기 아들은 여기보다 좋은 곳에 갔어요? 나쁜 곳에 갔어요?”nbspnbsp“좋은 곳에 갔죠.”nbspnbsp“좋은 곳에 갔으면 되었지 않나요?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은 곳에 갔잖아요. 내 아들이나 내 딸이 결혼하면 조금 아쉽지요? 그렇다고 내 좋으라고 영원히 결혼도 안하고 내 옆에 있는 게 좋아요? 아이를 위해서는 결혼을 하는 게 좋아요?”nbspnbsp“결혼하는 게 좋죠.”nbspnbsp“조금 섭섭하지만 결혼하는 게 좋으니까 우리가 보내주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 생에서 헤어지는 것이 좀 섭섭하지만 그래도 아들이 좋은 곳에 갔으니까 걱정할 일은 없다는 겁니다. 좋은 곳에 갔는데 왜 불만이예요? 헤어진 것은 좀 섭섭하지만 좋은 곳에 갔잖아요. 같은 회사에 다니는 친구나 상사가 좌천되어서 다른 부서로 갔다고 할 때는 마음이 아프지만, 승진을 해서 다른 부서로 갔다고 할 때는 조금 섭섭하기는 하지만 괜찮잖아요. 그러니까 좋은 곳에 갔으니까 크게 걱정 안해도 됩니다.nbspnbsp저도 시계를 가지고 있다가 이것을 잃어버리면 얼마나 아쉬운데요. 값이 12만원 밖에 안되는데도 오래 쓰다가 잊어버리면 아까운데 내가 낳아서 내가 키운 아들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요? 그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좋은 곳에 갔기 때문에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nbspnbsp“감사합니다.” nbspnbspnbspnbsp“자기는 아들 걱정할 일이 없어요. 아들은 좋은 곳에 갔으니까요. 그런데 그 아들이 자기를 볼 때 걱정이라는 겁니다. 엄마가 죽느니 사느니 하고 있으니까 아들은 그게 걱정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아들에게 걱정을 안 시킬려면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울고 불고 살아야 해요?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지금이라도 아들을 즐겁게 좀 해주세요. 엄마가 되어서 왜 그렇게 아들을 고생시키려고 그래요? 내가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저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 아들이 좋단 말이예요. ‘아이고 엄마가 슬퍼하고 힘들어 하더니, 오늘 스님 만나고부터는 저렇게 행복하게 사니 얼마나 좋노’ 이렇게 되도록 아들을 좀 기쁘게 해주란 말이예요.”nbsp“법륜 스님께서는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세요?”nbspnbsp“저는 몰라요. 그거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때요? 없으면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 죽으면 그만이니까요. 그런데 있다고 치면 좋은 곳에 갔으니까 좋은 일이고요. 또 아들이 보기에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겠죠? 그러니까 영혼이 있다고 치면 자기가 행복하게 살아야 지금이라도 그곳에서 아들이 기뻐합니다. 그러니 기쁘게 살아야 될까요? 괴롭게 살아야 될까요?”nbspnbsp“기쁘게 살아야 되겠죠.”nbspnbsp“그런데 자기가 죽는 것이 아들한테 무슨 도움이 되나요? 죽으면 서로 만날 수 있나요? 자기가 죽으면 누가 장례를 치러 주나요? 왜 사람을 그렇게 귀찮게 해요? 그러면 그 스님이 또 49재 지내고 염불해 줘야 하잖아요. nbspnbspnbsp49재 지내고 염불하려면 목 아프지 제사상 차려야 하지 얼마나 일이 많은데요. 왜 그렇게 남을 귀찮게 하려고 해요. 주위 사람들을 또 슬프게 만들고요. 그러니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마세요. 약 사러 갈려면 얼마나 귀찮아요. 돈도 들고요. 살아 있으면 그냥 살면 되는데 뭐 때문에 일부러 죽으려고 그래요? 저런 사람들이 꼭 죽을 때는 안 죽겠다고 산소호흡기 끼고 또 난리를 피워요. nbspnbsp살아 있을 때는 일부러 죽으려고 하지 말고 잘 살고, 때가 되어서 죽을 때는 기꺼이 죽어줘야 돼요. 아시겠어요? 안 죽으려고 발버둥치고 그러지 말고요. 평소에는 즐겁게 살고 때가 되면 죽으면 돼요. 그래서 너무 슬프게 생각하지 마세요. 절에 다녀요? 교회 다녀요?“nbspnbsp“성당에도 다녔는데요. 아들이 죽고 나니까 성당 문을 열기가 무서워졌어요. ‘하나님은 없구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여동생이 한국 절이 있다면서 저를 데려다 주어서 거기 주지 스님과 1년 동안 공부를 했어요.”nbspnbsp“기독교 식으로 표현하면 ‘주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아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셨잖아요. 이렇게 좋은 일로 여겨야 해요.”nbspnbsp“그런 말이 안 나와요. 문을 아예 닫아버렸어요.”nbspnbsp“그러니까 자기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 이말이예요. 문을 열고 다시 가세요. 기독교식으로 설명하면, 살고 죽는 것은 주님께서 하는 일이니까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이런 마음으로 ‘주님, 감사합니다. 아무런 고통 없이 하나님 곁으로 데려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야 돼요.nbspnbsp불교식으로 말하면 인연이 다한 겁니다. ‘여기에서 너무 과로하고 애썼으니까 이제는 과로 안해도 되는 극락에 가서 편안하게 잘 살아라. 엄마도 잘 살다가 인연이 다하면 또 따라갈게’ 이렇게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nbsp“그런데 저는 절이 제 마음에 좀 맞는 것 같더라구요.”nbspnbsp“절에 다니다가 성당 가고 성당 다니다가 절에 가고 그런 것은 괜찮아요. 하나님이 그것 때문에 성질을 낼까요? 하나님이 그 수준 밖에 안 될 것 같아요? 저 위에서 보시기에는 이 집 가든 저 집 가든 별 것 아니예요. 성당도 좋고 절도 좋고 다 좋은데 어려움을 당해보니 내 경우에는 절이 낫더라 이렇게 생각하고 다니면 됩니다. 천주교 식으로 얘기해도 하나님 하시는 일이니까 불만을 갖지 마세요. ‘주님의 뜻이려니’ 이렇게 생각하고, 또 좋은 곳에 갔다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됩니다. 또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아이고, 인연이 다했구나. 새 몸 받아서 극락에 가서 살고, 다음 세상에는 과로 안해도 되는 세상에서 살아라’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알았지요? 또 아들 얘기하면서 울고 불고 하면서 정신없이 살래요? 이제 정신 차리고 살래요?”nbspnbsp“그래도 시간이라는 게... 죽을라니까 이것도 정리해야 하고 저것도 정리해야 하고, 땅문서도 정래해야 하고요”nbspnbsp“죽는 사람이 지금 땅문서 걱정하게 생겼어요? 질문자는 절대로 못 죽을 사람이예요. nbspnbspnbsp정말 죽어야겠다 싶으면 문서 전부 저한테 가져다 주세요. 제가 정리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죽을 생각을 하지 말고 즐겁게 살아야 됩니다. 즐겁게 살아야 나중에 아들과 관계가 좋아져요. 아들은 착해서 극락갔는데, 자기는 자살해서 지옥가면 이제 못 만나잖아요. 영혼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영혼이 있다고 치고 하는 얘기예요. 저는 영혼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 안 하는 사람이예요. 저는 지옥이 더 좋아요. 천당은 살기 좋은 곳이여서 도와달라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러니 제가 가봐야 할 일도 없고 빈둥빈동 놀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지옥에 가면 살기가 어려우니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많겠죠? 거기 가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데 왜 제가 지옥에 가지 천당에 가겠어요? 천당에 가서 심심해서 놀고 있느니 지옥 가서 열심히 일하는 게 낫지요. nbspnbspnbsp지옥이 있나 천당이 있나 이렇게 자꾸 묻지 말고 천당 가고 싶으면 천당에 갈 행동을 해야 해요. ‘천당이 있다면 나 빼고 누가 가겠노?’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지옥이 있느냐 없느냐 생각하지 말고 지옥에 안 갈 행동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천당이 있냐 지옥이 있냐 자꾸 묻는 사람들의 심보가 뭔지 알아요? 있다고 하면 억지로라도 좋은 일 좀 하고, 없다고 하면 좋은 일 안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심보가 얼마나 더러워요? 그러니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예요. 있든지 없든지 마땅히 천당에 갈 수 있는 인생을 살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천당에 갈 수 있는지는 성경에도 있고 불경에도 다 적혀 있어요. 그런 삶을 사는 게 중요합니다. 이생도 행복하게 살면 다음 생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겁니다. 오늘 불행하게 살면 내일도 불행하게 살게 됩니다. 저렇게 미쳐서 날뛰면 다음 생에 가서도 또 미쳐서 날뛰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생에 나쁜 업은 다 끊어야 합니다. 아들이 극락가서 살기를 원해요? 무주고혼이 되어서 떠도는 걸 원해요?“ nbspnbsp“극락가서 살기를 원하죠.”nbspnbsp“엄마가 계속 울고 불고 하면서 아들을 그리워하면 아들이 극락갈 수 있을까요? 자꾸 부르면 극락에 못가고 허공에서 떠돌게 돼요. 그러면 무주고혼이 돼요.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자기 아들을 지금 무주고혼으로 만드는 행동이예요. 아들을 탁 놓아버려야 아들이 극락가든지 천당 가든지 갈 수 있어요. 보내주는 게 나아요? 잡고 있는 게 나아요?”nbspnbsp“보내 주는 게 좋겠죠.”nbspnbsp“그러면 ”아들아, 잘가 안녕“ 한번 해봐요.”nbspnbsp“ 아들아 잘가” nbspnbsp“울먹이며 그러는 것은 가지 말라는 얘기예요. 스님을 속이면 되나요? 저는 그런 것에 잘 안 속는 사람이예요. 진심으로 ‘잘가 안녕’ 할 때는 뒷끝이 탁 올라가야 해요. 뒷끝이 내려가면 가지 말라는 얘기예요.”nbsp“너가 있어서 행복했고, 엄마가 너를 굉장히 보고 싶어 했는데 오늘 법륜스님한테 여러 가지 말씀 들으면서 너를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도록 열심히 노력할게.”nbspnbsp“왜 그렇게 사설이 길어요? 노력하면 안 돼요. 노력한다는 말은 하기 싫다는 뜻이예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을 노력이라고 해요. 노력하면 안돼요. 길게 말하지 말고 ”아들아, 잘가 안녕“ 이렇게 해보세요.”nbspnbsp“아들아, 안녕 사요나라” nbspnbspnbsp“그렇게 탁 놓고 행복하게 사세요. 그렇게 살아야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좋아보이시고, 부처님이 보시기에도 ‘너가 참 불자다’ 그러십니다. 천도라는 것은 내 마음에서 떠나 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49재를 지내는 것은 집착을 끊는 의식이예요. 재를 아무리 지내도 저렇게 집착을 못 끊으면 천도가 안되는 거예요. 스님이 천도의식은 해주지만 천도는 자기가 하는 거예요.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버리면 천도가 되고, 움켜쥐고 있으면 천도가 안돼요.”nbsp질문하신 할머니의 얼굴도 밝아지고, 청중들도 할머니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줍니다. nbspnbspnbsp나가실 때 이 질문하신 할머니에게 문답을 통해 답을 얻으셨는지 물어보니 안정제에 많이 취해있는 상태라 잘 정리하긴 어렵지만 아들을 위해 마음의 집착을 끊어주고 보내줘야 한다는 건 확실하게 이해했다고 하며 아직도 눈물을 흘리셔서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진리의 성격 4가지를 말씀해 주시며 강연을 마무리해 주셨습니다.nbspnbsp“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재미있었어요? 유익했어요? 이 얘기가 나만 좋자는 얘기예요? 남도 같이 좋자는 얘기예요? 남한테 좋기 위해서 너를 희생하라는 얘기예요?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손해끼치라는 얘기예요? 진리의 성격은 4가지입니다. 재미도 있고 유익해야 합니다. 재미가 있다는 말은 지금 좋다는 말이고, 유익하다는 말은 나중에 좋다는 말이예요. 그리고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지속가능합니다. 이 즐거움이 순간적이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될 때 행복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진리에 근접해 갔습니다. 진실을 규명해 갔습니다.nbspnbsp아무리 내 아들이라도 죽으면 놓아 주어야 합니다. 놓아주어야 하는데 못 놓고 있는 겁니다. 이것을 집착이라고 합니다. 집착하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미래를 위해서 지금을 희생해도 안되고 지금을 위해서 미래를 희생해도 안되고, 나를 위해서 남을 희생해도 안되고,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해도 안되요. 항상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은 길,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길을 가야 됩니다. 이 중에 하나만 빠져도 인생에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nbsp강연이 끝나고 책 판매와 사인회가 바로 이어졌는데 스님의 강연에 감동을 받은 분들이 너도나도 책을 구매하면서 준비한 책 170 여권이 모두 판매되었고 스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분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 보였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서는 몇몇 분에게 오늘 강연이 어땠는지 물어보니 유투브에서 스님 강연을 들어왔지만 현장에서 실제 들어보니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다면서 기쁜 표정으로 마음을 나눠주는 분들이 많았습니다.nbspnbsp사인회를 마치신 스님께서는 총 24명의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자원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오늘의 성공적인 강연을 열성적으로 준비한 강연 담당자 김세환씨 부부에게 책을 선물하고 함께 사진 촬영을 하셨습니다.nbspnbsp▲ 신주쿠 강연 담당자인 김세환씨 부부nbspnbsp모든 봉사자들에게도 단주를 일일이 끼워주시고 한명 한명 악수를 하시며 수고했다고 위로해 주시니 다들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아직 몸이 성치 않으시다고 한금화 보살님과 나누기하실 것을 당부하시며 호텔로 돌아가셨습니다. 한금화 지구장님과 봉사자들이 동그랗게 둘러 앉아 이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느낀 점을 나누기하는데 이번 강연에는 이벤트 전문가가 참여하여 체계적으로 진행이 되었고 SNS 홍보도 주효했지만 그 분 덕택으로 신주쿠에 전광판 홍보를 한 것도 오늘 많은 청중이 온 이유인 것 같습니다.nbspnbsp▲ 한금화 지구장님과 함께 마음나누기nbspnbspnbsp정토회 인연이 없는 분들이 인터넷이나 지인을 통해 봉사를 하게 되면서 함께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고 다음에도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고 또 어떤 분들은 자원봉사자에 대한 연락 체계에 대해 문제점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저녁 식사를 못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김밥을 사가지고 방에 와서 나눠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 전에 가볍게 조금 드시고는 저녁식사를 따로 하지 않으시고 원고 교정을 하시면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nbsp이렇게 111번째 강연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잘 치러졌습니다. 이렇게 곳곳에 민들레 홀씨처럼 작은 씨앗이 뿌려지고 있는 것이 실감납니다. 언젠가는 싹이 트고 자라서 예쁜 꽃을 피워내는 때가 올 거라는 기대감에 설레이기도 합니다.nbsp내일은 가와구치에서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강연장도 가깝고 시간 여유도 있어서 아사쿠사의 센소지를 방문할 계획입니다. 내일 또 생생한 소식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16. 50,369 읽음 댓글 47개

2014.12.12 세계 100회 강연(110) 홍콩 Hong Kong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10번째 강연이 홍콩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대만 타이베이의 숙소 호텔 로비에서 오전7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가기 전 9시부터 10시까지 1시간 정도 고궁박물관을 들러보기로 하였습니다. 현지 교민인 임혜순님이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고궁박물관에서 가이드 업무를 오랫동안 자원봉사로 해오고 계신데, 스님께서 대만에 오셨는데 꼭 한번 안내를 해드리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임혜순님은 대만 사람 남편을 만나 37년 동안 이곳에 살아오신 분입니다. 오늘은 남편인 유소우님도 함께 오셔서 고궁박물관 투어와 공항 마중까지 함께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제 대만 강연을 총괄해준 김영애 강담규 부부도 함께 동행해 스님 일행을 고궁박물관과 공항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었습니다.nbspnbsp▲ 대만 고궁박물관 관람을 안내해 주신 임혜순 유소우 부부nbspnbsp스님께서는 고궁박물관에 10년 전에 와보고 처음 오셨는데 “10년 사이에 진열이 많이 변했다”고 하시면서 관심있게 전시물들을 둘러보셨습니다. 전시물은 중국 국민당이 국공 내전에서 패배하여 대만으로 이동할 때에 대륙에서 가져온 문화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장품의 수는 69만 6112개나 되어 세계 4대 박물관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곳입니다. 연대순으로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옥기, 청동기, 토기와 자기 이렇게 종류별로 전시가 되어 있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1시간 밖에 시간이 없어서 임혜순님은 중요한 포인트만 짚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당나라 시대의 미인상을 보여주는 작품. 당나라 미인들은 통통한 몸매에 발그레한 뺨이 미인이었다고 합니다.nbsp고궁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와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정성껏 가이드를 해주신 임혜순 유소우 부부에게는 스님께서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임혜순님은 어제 대만 강연을 마치고 책이 완판되어 스님 책을 구하지 못했는데, 오늘 스님께서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해 주시니 너무나 기뻐했습니다.nbspnbsp▲ 대만 강연을 총괄해준 김영애 강담규 부부와 고궁박물관 안내를 해준 임혜순 유소우 부부nbsp대만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탑승하려는데, 12시30분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가 연착이 되었다는 공지가 나왔습니다. 오늘도 저녁7시에 홍콩 강연을 해야 하는데, 혹시나 늦게 도착하면 어쩌나 다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게이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2시간 연착이 되어 2시30분에 홍콩으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항공기 이륙이 연기되면서 관제탑의 지시를 기다리며 이륙할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국제선 비행기들nbsp홍콩에 오후3시에 도착 예정이던 비행기는 오후5시에 도착하였고, 강연장에 늦을까 싶어 헐레벌떡 짐을 찾고 입국 수속을 빠르게 밟고 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홍콩 공항에는 김옥순님과 이윤호님이 나오셔서 스님 일행을 강연장으로 신속히 태워 주셨습니다. 원래는 숙소에 들러서 짐을 풀고 휴식시간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곧바로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nbspnbsp▲ 공항 마중을 나와 주신 이윤호님과 김옥순님nbsp김옥순님은 홍콩에서 여행업을 하고 계신 분입니다. 평소 유튜브로 스님 강연을 듣고 많은 도움을 받아 왔는데, 오늘 스님께서 오신다고 하니 오늘 하루는 손님도 받지 않고 오로지 강연 준비와 스님 일행을 안전하게 모실려고 시간을 비워두었다고 합니다. 이윤호님은 강연 준비 봉사자 최윤경님의 남편되시는 분인데, 공항에서 강연장으로 오는 차안에서 홍콩의 교민사회와 지역정보 등에 대해 자세히 안내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홍콩 국제 상업 센터 , 세계에서 7번째로 높은 건물nbsp홍콩은 홍콩 섬과 구룡, 신계 및 그 밖의 230개의 부속 도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인천광역시보다 조금 넓습니다. 란타우 섬이 가장 큰 섬이며, 두 번째로는 홍콩 섬으로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약 698만명입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민족은 한족으로, 홍콩 인구의 95를 차지합니다. 한족 이외에 가정부 등의 일에 종사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로서 필리핀인과 인도네시아인이 있고, 다음이 미국인, 그 다음으로 식민지 시대에 이주한 영국인 순입니다.nbsp일본인도 약 2만 명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nbspnbsp▲ 홍콩nbsp한국인의 수는 교민과 체류자 포함 총 1만 2천명 정도라고 합니다. 최근 23년 사이에 한류 nbsp열풍이 불면서 한국 식당을 여는 곳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nbsp홍콩의 공식 언어는 중국어와 영어로서 홍콩 어디서나 사용되는데, 영어는 영국의 통치가 시작된 이후 1974년까지 약 120여 년간 홍콩의 유일한 공용어였다고 합니다. 홍콩 영화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많은 배우들이 할리우드로 진출하여 스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장,nbspBradbury School 강당nbsp오늘 강연장은 Bradbury School 강당입니다.nbsp오후6시에 강연장에 도착한 스님은 강연 전까지 무대 뒤에서 자리를 펴고 앉으셔서 조용히 명상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홍콩 강연은 시작부터 담당자를 구하지 못해 전세계 115개 도시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진행 여부가 결정된 곳입니다. 카카오스토리에서 홍콩 강연 담당자 모집 공고를 보고 몇몇 분들이 의사를 알려왔지만 막상 책임자는 결정되지 못했는데, 자카르타 강연을 담당해 준 김지영님의 여동생인 김희진님이 언니의 소개로 홍콩 강연 담당을 맡아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홍콩 지역은 장소 대여료가 무척 비싸고 1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구할 수가 없어서 강연장 섭외 때문에 계속 어려움을 겪다가 이곳 학교 측에 요청하여 이곳 Bradbury School 강당을 강연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홍콩 도심에서 언덕길로 한참을 올라와야 하는 곳이여서, 금요일 퇴근길에 교민들이 장소를 찾지 못하거나 너무 멀어서 강연장에 오지 못하는 분도 있을 수 있겠다며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nbsp그럼에도 불구하고nbsp오늘 강연장에는 150여명이 참가하였습니다.nbspnbsp7시가 되자 환영 영상과 소개 영상에 이어서 강연장을 찾은 홍콩 교민들의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께서 무대에 오르셨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도착할 때 보니까 산으로 많이 올라오던데 올라오다가 넘어진 사람 없었어요? 눈이 안오길 참 다행이지 눈 왔으면 차가 올라오기 어렵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저도 저녁을 못 먹고 왔어요. 오늘 비행기가 두 시간 늦게 도착해서 숙소로 갔다 와야 하는데 그냥 바로 왔어요. 오다가 차가 막힌다고 김밥 한 줄을 먹고 왔는데, 와서 보니까 약간 일찍 도착해서 잠깐 명상을 하다가 나왔어요.nbspnbspnbsp오늘은 어떤 얘기든 좋아요. 개인 얘기든 사회 얘기든 종교 얘기든 과학 얘기든 인간 얘기든 자연 얘기든 주제에 제한이 없이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묻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주장하고, 괴로운 것이 있으면 내어 놓고, 친구가 친구에게 얘기하듯이 편하게 얘기해 보는 시간이예요. 좋죠? 스님하고 친구가 되는 시간이니까 좋잖아요. 그런데도 마이크를 잡으면 덜덜 떨리고, 또 동네 소문날까 싶어서 얘기 꺼내기가 어렵고 그래요. 이해는 돼요.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 얘기하지 않으면 해소할 길이 없어요. 그래서 강연 끝나고 스님하고 개인적으로 따로 얘기하려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데 스님도 근무 시간이 있어요. 오늘 강연하는 두 시간이 끝나면 저도 더 이상 질문을 받지 않습니다. nbspnbsp그리고 여러분들이 무슨 질문 했는지 저는 이 자리가 끝나면 전혀 기억하지 못해요. 원리를 얘기하면 마치 거울과 같아요. 거울은 병이 와서 비치면 병의 그림을 그리고, 꽃이 와서 비치면 꽃의 그림을 그리고, 이 사람 오면 이 사람 비춰주고, 저 사람 오면 저 사람 비춰주고, 그러나 지나가면 아무 것도 없어요. 그래서 무수한 그림을 그리지만 사실은 한 그림도 그린 바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제를 던지면 그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환경 얘기하면 환경 교실이 되고, 고민 이야기를 하면 인생 교실이 되고, 교리를 물으면 교리 교실이 되고, 과학 얘기를 하면 과학교실이 되고, 그렇게 대화를 하는 자리입니다. 자, 그럼 용감하신 분이 먼저 손들어 보세요.“nbspnbsp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일이 진행되기 전에 불안감이 먼저 생깁니다. 어릴 때부터 아무 생각 없이 집에 들어오면 아버지한테 혼이 난다던지 하는 일이 꼭 생겼습니다. 이런 사전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nbspnbsp“졸업을 앞두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어떤 것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눈 앞에 교사의 길과 마켓팅 회사로 가는 길, 두 가지 오퍼가 있습니다. 어떤 선택이 옳을까요?”nbspnbspnbsp“3년 동안 홍콩에서 직장생활 하다가 퇴사 후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유학생활을 한 남편의 도움을 받아 살고 있지만 우울증으로 괴롭습니다. 남편이 한 말 중 상처를 받은 말이 있는데 ”아기가 너 닮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어릴 때부터 사교성도 없고 참을성도 없기 때문이라는 말에 상처를 많이 받아왔는데, 이 말을 되새길 때마다 우울증과 괴로움으로 많이 불안하고 힘듦니다.”nbsp“저는 현재 아이가 둘이 있고 셋째 임신 중입니다. 첫째 아이가 신생아일 때 환영을 보았습니다. 아이를 끔찍하게 학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때도 보았습니다. nbsp지금도 가끔씩 제 자신이 제 아이를 학대하는 환영을 보곤 합니다. 내년에 셋째가 태어날 텐데 그런 환영이 다시 나타날까봐 아주 걱정이 됩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nbspnbsp“카톨릭 신자입니다. 반야심경 등 스님 책을 좀 읽어보았습니다. 성경과 너무 흡사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지학수선, 이고득락, 전미개오에 대한 스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nbsp설명 부탁드립니다.”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의처증으로 아내를 죽이고 싶기까지 할 때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의사한테 과학적으로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제 생각으로는 거의 100 의처증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느정도 선까지만 하면 상관이 없는데 너무 상태가 깊어지다 보니 때로는 한잔 마셨을 때에는 ‘이러다가 와이프를 죽일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현재 자녀는 대학교 1학년, 중학교 3학년, 초등학생 5학년 셋이 있는데 아이들한테도 너무 많은 상처를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쯤에서 차라리 와이프 원하는 대로 보내줘 버리면 좋겠는데요. 이럴 경우에 우리 아이들한테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요?”nbsp“그 정도까지 생각을 했으면 답은 간단하지요. 혼자서 속으로 이혼했다고 생각하면 돼요.”nbsp“지금 이미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어요.”nbsp“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고민할 것 없잖아요. 이미 이혼을 해버렸는데요.”nbsp“그래도 아내가 계속 원하는 것이 있으면 계속 들어주거든요.”nbspnbsp아내가 아니라 아이들의 엄마 얘기를 들어주면 돼요.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고요. 이혼을 해도 아이들을 위해서예요. 지금 아이들을 위해서 질문자가 걱정을 하잖아요. 그러면 아이 엄마에게 잘해줘야 할까요? 잘 안해줘도 될까요?nbspnbsp“잘해줘야지요.”nbspnbsp“그래요. 부인한테 해주는 것이 아니고 아이 엄마한테 잘해주는 거예요. 막내가 스무살이 될 때까지는 아이들이 잘 자라도록 아이 엄마한테 잘해줘야 합니다. 이혼하는 것 보다는 아이가스무살까지는 가능하면 부모가 같이 있는 것이 좋지요. 그렇다고 이혼하면 절대로 안된다 이런 것은 없어요. 그러나 질문자가 얘기한대로 못견뎌서 부인을 때리거나 헤친다 하는 것 보다는 이혼하는 것이 훨씬 나아요. 그런데 더 좋은 방법은 오늘부터 이혼을 했다고 딱 생각을 정리하는 겁니다. 그런 후 같이 사는 겁니다.nbspnbsp이혼을 했으니까, 잘해주는 것은 아이들 엄마한테 잘해주는 것이 되고, 이혼을 했으니까, 가끔 부부생활을 해도 이것은 남의 여자와 자는 것이지요. 그냥 남의 여자와 자면 부인이 질투를 하거나, 부인이 문제를 삼거나, 이웃사람으로부터 본인한테 도덕적인 흠이 가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 남의 여자는 내가 가끔 연애를 해도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비난을 하는 사람이 없어요.”nbsp“문제는 아무래도 제가 술을 자주 먹게 되는데 술을 먹다 보면 술이 저를 먹어버려요. 제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는데 나중에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이들한테도 엄청난 상처를 주고, 아내한테는 폭력까지는 아니더라도 계속 똑같은 얘기를 또하고 또하고 하면서 사람을 완전히 말려 죽일 것 같은 그런 행동을 합니다.”nbspnbsp지금까지는 내 아내였으니까 그렇게 했는데요. 남의 여자한테는 그러면 안되잖아요? 질문자는 아직도 내 아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지금 이혼을 했다고 생각하면 남의 여자잖아요. 이혼을 했다고 생각은 하는데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그래도 내 여자다’ 이러니까 안되는 거예요. 마음 깊은 곳까지도 완전히 오늘 이혼 도장을 찍어야 해요. 첫번째는 마음에서 완전히 이혼 도장을 딱 찍어버린다. 두번째는 부인이 질문자에게 가끔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가 있어요? 아니면 전혀 없어요? 부인은 그래도 외간 남자가 있든지 말든지 질문자에게 그래도 부부관계를 요구하거나 좋아하는 표현을 해요? 전혀 안해요?nbsp“별로 없어요. 제가 오히려 들이대지요. 제가 먼저다가가지 저한테 다가오지는 않아요.” nbspnbspnbsp“본인이 매일 의심을 하니까 그러겠지요. 이제는 남의 여자이니까 한번 다가가 봤는데 상대가싫다면 계속 다가가야 돼요? 그러면 안돼요?nbsp“다가가면 안돼지요.”nbsp“그래요. 첫째, 다가갈 필요가 없고. 그래도 한집에 사니까 남의 여자라도 관심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마음이 있어서 다가갔는데 상대가 싫어하면 남의 여자니까 터치하면 안돼요. 상대가 싫다는데 손을 대면 부부라도 그것은 성추행에 해당됩니다. 아시겠지요?nbsp질문자가 의식 속에서 ‘부부지간이다’라는 것까지 완전히 끊어버리면, 그것만 될 수 있으면 이 문제는 병원에 안가도 돼요. 그러나 잘해주는 것은 똑같이 해줘야해요. 아이들 엄마를 위해서요. 아이들 엄마한테는 최선을 다해서 무엇이든지 재정 뿐만 아니라 다 해줘야 하고요, 또 가끔 아이들 엄마한테 관심이 있어서 표현을 했더니 아이 엄마가 좋다고 하면 엄청나게 좋아하면서 한번씩 만나야 되고요. 내가 관심을 표현했는데 거절을 했다고 해서 실망을 하거나 술을 먹으면 안된다는 거예요. 이제 내 여자가 아니니까 그 여자가 무슨 행동을 하든 내가 의심할 필요는 없잖아요?”nbspnbspnbsp“의심은 아니고요. 원래 저랑 결혼하기 전에 nbsp연극배우 생활을 했었어요. 텔레비전 나갈려고 했는데 제가 각종 감언이설로 꼬드겨서 결혼을 한 거예요. ‘결혼하면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와서 한국에서 일하게 해줄께’ 이렇게 해놓고는 전라도 시골 대종손집 며느리로 데리고 가서 한집에 4대가 같이 살았어요. 그렇게 몇 년을 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어요. 그런데 뉴질랜드에서는 제대로된 직장을 잡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한국에 나와서 홈쇼핑 사업을 하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아서 지금 다른 나라에 가서 비지니스를 하는데 꽤 잘 되었고요.nbsp부인은 지금 한국에 있어요. 제가 ‘본래 하던 일을 다시 하게 해주겠다’ 하고 3년 전에 한국에 보냈는데 여배우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연기잖아요. 그런데 자꾸 성형을 해야된다고 해요. 주변에 텔레비젼만 틀면 나오는 조연급들이 다 친구들이예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다보면 무슨 성형외과 자꾸 그래서 저지를 했다가 풀어주었다가, 다시 저지를 했다가 풀어주었다가 하다가 결국 이번에 보냈거든요. 이제 제발 얼굴에 손 같은 것은 대지 말고 연기력으로 도전해라 그랬거든요. 하다못해 엑스트라부터 다시 시작하라고요. 엑스트라 해서 하루에 5만원을 벌더라도 내가 생활비는 줄테니까 그렇게 하라고 기회를 또 주었는데 결국에는 성형외과에서 카드가 띵똥하는 것을 듣는 순간 화병에 걸릴 것 같더라구요.”nbspnbspnbsp그 외간 남자는 3년 전에 한국에 보내주었을 때 생겼어요. 원래 그 동네가 아시다시피 텔레비전에 나와서 멀쩡한 것이지 그렇고 그렇거든요. 저한테 차라리 애당초 다 얘기를 해버리면 저도 바보가 아니고 이해를 할 수가 있는데 다 속인 거예요. 이메일, 카카오톡, 그 다음에 페이스북에서 저한테 발각된 거죠.”nbsp“부인이 질문자에게 이혼하자고 그래요?” nbspnbsp“아내는 지금 이혼하기가 힘들죠. 서포트가 없으면 한국 가서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이 없으니까요.”nbsp“그러면 아이 엄마가 자신의 꿈을 실현할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해요?”nbspnbsp“아이들이 원해서 제가 계속 서포트를 해주는 거예요. 그래도 엄마가 하고 싶은 것을 해줘야하니까요.”nbsp“얘기를 들어보면 질문자 잘못도 있네요. 질문자가 무대에 서는 꿈을 가진 여자를 꼬셔서 데리고 와 가지고 꿈을 그냥 뭉개버렸잖아요. 그것도 전라도 농촌에 데려가 가지고요. 그래놓고 본인이 잘났다고 그래요?nbspnbspnbsp“잘났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마음이 아파서요. 이렇게 하다가는 제가 병들어 죽을 것 같더라구요.” nbspnbsp“죽어도 싸지요. 남의 여자 그렇게 인생을 망쳐놓고 본인이 무슨 좋은 복을 지었다고 잘 살겠어요? 과보를 안 받으려면 다시 빚을 갚아야지요. 그래서 스님이 볼 때는 정신과에 가서 얘기를 쭉 한번 하고 치료를 받으면 좋겠는데요. 질문자의 심리상태가 ‘우리 부인한테 남자가 있다’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니면 ‘내가 성형하지 말라는데 성형을 자꾸 하니까 이게 나한테 사기 치고 거짓말한다’ 이것이 의심의 핵심이예요?”nbsp“남자도 핵심이었고요. 그런데 그건 3년 전에 다 끝난 얘기예요. 지금은 한번 더 만났다가는 제가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자기도 알고 있으니까요. 요즘 성형하는 것은 저한테 작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고요.” nbspnbsp“그런 쪽에 일하는 사람들은 질문자 본인 말로 ‘다 남자관계가 있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런 속에 있는 여자를 왜 선택했어요? 그러면 딴 여자를 선택하지요. 질문자가 그런 여자를 선택했다면 가정을 유지하는데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그런 정도는 용인을 해주면 돼요. 스님이 전체적으로 들어봤을 때는 그럴 수는 있는데, 본인이 조금 민감하게 대하는 것 같아요. 부인은 아니라고 그래요? 부인은 솔직하게 그렇다고 인정했어요?”nbsp“아내는 아니라고 하죠.”nbsp“그러면 질문자가 ‘좋다. 너 인정하면 봐줄께’ 이렇게 윽박지르죠?”nbspnbsp“앞뒷방 다 막아놓고 코너에 몰아버리지요. 처음에는 ‘아 그랬어?’ 좋게 좋게 얘기하다가 나중에는 이름, 주민번호, 주소, 카톡 보낸 것도 확인하고요.” nbspnbsp“그런데 이름, 주민번호, 주소, 카톡 보냈다고 그런 관계가 있다고 어떻게 단정을 해요? 예를 들어 호텔에 한방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해서 그것을 어떻게 단정을 해요?”nbspnbsp“안그래도 아버지께서도 금방 스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너 과보를 생각해라. 너가 선택한 것이고, 너가 이렇게 해 온 것이니까 그것은 남자의 질투일 뿐이니까 너가 다 덮어주라’ 고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덮을려고 3년 전부터 계속 노력을 해왔거든요.”nbspnbsp“노력을 해서는 안 되고요. 질문자가 노력을 해도 안되는 것은 더이상 참지 말고요. 질문자가 마음으로는 이혼을 하고, 아이들 엄마로서 잘해주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전체적으로 얘기를 들어봤을 때 스님이 보기에는 본인이 의처증이예요. 의처증이 생길만한 상황은 이해가 돼요. 그러나 질문자는 100 그렇게 확신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굉장히 불확실한 일이예요. 본인이 사물을 그렇게 보면, 매사가 그렇게 보여요. 그런데 예를 들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자가 바람을 피웠는데도 여자가 모르면 가정이 화목해요? 안해요?”nbspnbsp“화목하죠.”nbspnbsp“그런데 바람은 안피웠는데도 피웠다고 의심을 하면 집안이 시끄러워요? 안시끄러워요?”nbsp“시끄럽죠.”nbsp“그러니 이것은 심리적인 문제예요. 실제로 일어나도 내 의식 속에서 없으면 없는 것이고, 없어도 내 의식 속에서 있으면 있는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 본인의 의식 속에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있는게 되는 거예요. 옆에서 누가 아무리 아니라고 하고, 부인이 아니라고 해도, 본인한테는 있는 일이 되는 거예요. 실제로 그게 있느냐 없느냐는 관계가 없어요. 그래서 질문자가 그렇게 하면 부인은 굉장히 힘들 수가 있어요. 부인이 만약에 그랬다면, 조금 덜 힘들지 몰라도, 만약에 부인이 그렇지 않았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부인이 힘들면 아이들은 굉장히 나빠져요. 아이들이 엄마편을 드는 것은 아이들이 보기에 엄마가 너무 아빠한테 시달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엄마 좀 풀어주라’고 아빠한테 얘기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아이들이 자라면, 질문자가 그렇게 애써서 키운 아이들로부터 질문자는 버림받아요. 아이들이 아빠가 엄마한테 성질내고 하는 것을 다 보기 때문에, 지금은 아빠 지원 받아 살기 때문에 참지만 나중에 질문자에게 다 등 돌리고 떠나버려요.” nbspnbspnbsp“그러면 아예 지금부터 다 잘라버릴까요?” nbspnbsp“글쎄요. 그것도 한 방법이긴 한데요. 그러면 자기 부인도 잘라버리고, 자기 아이들도 잘라버리고 그렇게 해서 돈을 많이 벌면 뭐하겠어요? 그러면 새로운 결혼을 해도 똑같은 일이 벌어져요. 이것은 질문자 본인의 병이지 부인의 병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질문자가 치료를 받아야 해요. 다른 것은 다 정상인데 이 부분만 그래요. 사업도 잘하고 다른 것도 다 잘하는데 이 부분만 어떤 필이 딱 꽂혀서 아무리 얘기해도 안되거든요. 그래서 이 문제 때문에 질문자가 인생을 실수하면 본인 인생 전체를 망쳐요.nbspnbsp그러니까 이것은 정신과에 가서 치유를 받아야 해요. 약물 치유도 있고, 상담 치유도 있거든요. 그러니 상담 치유를 받고 약물 치유는 딱 필이 꽂힐 때, ‘이것 틀림없다’ 이렇게 확 발작하잖아요. 그럴 때 약을 딱 먹어요. 그래서 진정을 시켜야 해요. 그러니 일단 병원에 가서 비상 약을 받아 놓아야 해요. 안 그러면 지금 본인이 통제가 안되거든요. 훽가닥 돌아버리니까요.nbsp그러면 좀 위험해져요.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스님이 많이 상담하지만 그중에는 의도적으로 나쁜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가 어느 순간에 자기도 모르게 훽가닥 해서 범죄를 저지르고 10년, 20년, 30년을 살거든요. 만약에 아내를 죽이거나 했다면 아이들 상처는 물론이거니와 본인 개인도 요즘 법령으로 2030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본인도 알잖아요?” nbspnbsp“그것 때문에 미리 그냥 제가 떠나야 되나, 어쩌나 해서 여쭤볼려고 문의드린 거예요.”nbsp“그러니 간단하게 치료를 받으면 해결이 된다는 거예요. 부인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질환이라는 것을 대화하면서 받아들여져요? 아니면 이것은 부인만 해결이 되면 된다 이렇게 자꾸 받아들여요?” nbspnbsp“복합적인 것 같아요. 저도 문제이고, 아내도 문제인데…”nbsp“아내가 문제라는 생각은 질문자가 오늘 이 자리에서 내려놓아야 돼요. 안그러면 질문자의 병을 치료할 길이 없어요. 참는다고 해소가 안돼요.” nbspnbsp“아이들한테도 너무 미안하고요. 이제는 잘못하면 아버지가 아니라 아저씨로 보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이들이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를 않아요.” nbspnbsp“미쳐서 날뛰니 어떻게 쳐다보겠어요? 지금 질문자는 제정신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첫째 병원에 가서 비상약, 이럴 때 좀 진정시킬 수 있는 응급약을 좀 받아서 가지고 있어야 돼요. 그래야 위험을 막을 수 있어요. 질문자는 그 문제를 제외하고는 다 정상이니 재능도 있고, 인물도 괜찮고, 사업 수완도 있고, 나쁜 사람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게 딱 도지면 악마보다도 더 나쁜 인간인 거예요. 발병할 때를 제외하고는 질문자와 부인의 관계가 좋아요?”nbspnbsp“제가 왠만하면 다 맞춰주니까요. 항상 아버지께서 그러시거든요. ‘너 같은 놈 만나서 불쌍하다’ 항상 그렇게 대하고 살으라고 그래요.”nbspnbsp“질문자는 발병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자상한 남자네요? 부인이 질문자한테 무엇을 해달라고 한다는 것은 부인이 질문자한테 아직 관심이 있다는 것 아니예요? 딱 질려버리면 야밤 도주라고 할텐데요. 그런 것을 보면 본인 생각만큼 부인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예요. 질문자의 병이예요.”nbsp“제가 차라리 그런 것을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요. 결혼하기 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랑 메세지 했던 것을 봐버리고 했던 것이랑 뒤죽박죽 섞여가지고 죽이고 싶은 생각 밖에 안들더라구요.”nbspnbsp“쫀쫀하긴 쫀쫀하다. 대부분이 옛날 남자친구하고 서로 연락하기도 하고 전화도 하고 도움도 얻고 그러고 살지요. 본인은 동창회에 가면 가끔 여자친구들이 인사를 하고 전화도 오고 중학교 동창도 만나고 이런 것 전혀 안해요?nbspnbsp여기 있는 여자 분들도 남편하고 결혼해서 산다고 다른 남자한테 아무 관심이 없고 옛날 애인한테 관심이 없고 그런 것 아니예요. 연락 안 할 수도 있고 연락 할 수도 있고, 다른 남자보면 관심도 있을 수도 있고요. 그래도 사람이라는 것은 옛날 감정이 있어도 자기 남편이고 자기부인이 있기 때문에 마음은 있더라도 자기가 해야 할 울타리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거예요. nbspnbsp부인이 연락을 한다고 해서 꼭 그렇다 생각할 수도 없고, 또 어느 순간에 질문자가 미치듯이 부인도 사랑에 미쳐서 한번 관계를 맺었다 하더라도 자식이 셋이나 있는데 돌아오지 거기 가서 불장난하고 그럴 사람도 아니고요. 정말 다른 사람 한테 관심이 있다면 질문자가 그렇게 미치지 않아도 버리고 갈텐데, 질문자가 그 정도로 일년에 3번씩 발병을 한다면 어떤 여자도 살기 어려워요. 그러면 벌써 가버렸어요. 갈 때가 없기 때문에 질문자 옆에 붙어있지요. 성형하고 싶어서 돈 좀 얻을려고 본인 옆에 붙어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부인을 좀 믿으세요.nbspnbsp자, 여기 계시는 분들한테 nbsp배심원 판결을 한번 해봐요. 첫 번째, 지금 우리는 부인 얘기는 안 듣고 남자 얘기만 들었어요. 그래도 부인이 이렇게 남자가 의심을 할 만큼 행동을 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요.nbspnbsp두 번째, 부인이 했다기 보다는 남자가 좀 의심이 심해서 생긴 문제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요.nbspnbsp지금 부인은 이상이 없는데 질문자가 좀 심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두배 이상이네요. 질문자 얘기를 듣고도 부인이 조금 그런 관계가 있었겠다 이런 사람도 있기는 있어요. 그러나 아니다 하는 사람이 2배 정도 더 많아요.nbspnbspnbsp그러면 이 경우에 이혼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손 든 사람 중에 부인을 위해서 이혼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봐요.nbspnbsp이 남자를 위해서 이혼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봐요. 반반이네요.nbspnbsp세 번째, 이혼을 안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요.nbspnbsp이혼하는 것보다 안하는 것이 낫겠다고 하는 것이 지금 두배쯤 많아요.nbspnbsp남들 의견이니까 신경쓸 것은 없어요. 그런데 질문자가 여기서 참고는 해야 돼요. nbsp지금 질문자가 본인 얘기만 했지 부인이 이 자리에 와서 얘기를 한 것은 아니잖아요. 질문자가 본인 생각대로 본인 주장만 했잖아요. 본인만 주장을 했으면 여기있는 사람들이 90 이상 질문자에게 지지를 해야 한단 말이예요. 그런데 부인 얘기는 하나도 듣지 않고 질문자 얘기만 듣고도 질문자가 좀 심하다는 사람이 두 배가 넘어요. 그 다음에 질문자 얘기만 듣고도 이혼하는 것보다는 사는게 낫겠다는 것이 두배쯤 돼요. 요즘 사람들은 굉장히 자유로워져서 이럴 경우에는 이혼하는 것이 낫겠다 이런 사람도 상당히 있네요. 비율은 대강 그래요. 이런 평가는 질문자는참고만 하면 돼요.nbspnbsp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첫째, 지금 이혼을 아예 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러면 부인이야 성형을 하든지 말든지, 외간 남자와 살든지 말든지 나는 상관없이 사는 방법이지요. 이혼할 때는 재산의 절반을 주고요. 그동안 나하고 살아준 것 하고 아이들 셋 낳아준 것만 해도 참 고맙지요. 그러니 본인도 이렇게 의심을 하다가 사고 저지르면 본인 인생을 망치게 되잖아요. 그러니 확실하게 이혼을 해줘서 살도록 해주고, 재산을 가지고 싸우지 말고 절반 뚝 잘라서 확실히 줘버리고 아이들은 부인이 키우도록 하되 양육비는 본인이 지원해주고요. 부인한테 절반 주는 것은 아이들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니고 부인 살라고 주는 것이고요. 그 다음에 아이들은 반반이니까 키우기는 부인이 키우는 거죠. 아이들은 엄마가 키우는 것이 좋아요. 고아원에 맡기더라도 엄마가 데려가서 맡기는 것이 좋아요. 아이는 본인이 관여할 일은 아니예요. 큰 애는 대학생이라면서요. 그것은 제외, 열외입니다. 스무살 넘으면 독립을 해야하니까 대상에 안들어가요. 이혼하면서 재산 가지고 싸우면 안돼요. 재산의 절반은 줘야하는 이유는 재산을 다 본인이 모았다고 하더라도 부인이 연극을 해서 만약의 경우에 성공했다고 가정을 해본다면 그것에 대한 손실이 굉장해요. 질문자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에요. 그래서 이것을 아깝게 생각하면 안돼요. 이것이 조언의 첫번째 길이고요, 이혼을 하고 재산의 절반을 주고, 아이들 학비는 고등하교 졸업할 때 까지만 지원하면 돼요. 첫째 이것이 낫겠느냐? 그러면 질문자에게 좋은 점은 다른 여자와 결혼해도 된다는 거예요.”nbsp“별로 그런 생각은 없습니다.”nbsp“그런 생각이 있든지 없든지 그게 좋은 점이라는 거예요. 연애를 해도 되고요.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안되기 때문에요.nbspnbsp두 번째 방법은 아이들의 이런 저런 문제를 생각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마음 속으로 부인하고 이혼을 했다 이렇게 결론을 내버려요. 재산도 절반을 줘버렸다 이렇게 생각하고요. 오늘 결론을 내버려요. 이 자리에서요. 그리고 이혼도 안하고 재산도 안주고요. 그러나 내 마음에서는 정리를 해버렸어요. 절반의 재산은 누구 거예요?”nbspnbsp“아내꺼요.”nbsp“아내꺼지요. 그 다음에 ‘내 여자 아니다’, ‘다만 아이들을 위해서 아이들 엄마한테 잘해준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그러면 앞으로 부인이 성형한다 뭐한다 하고 돈을 달라고 할 때도 내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돈을 쓰는 것이니 다해줘요. 얼굴이 뭐 썩든지 뭉개지든지 말든지, 어떤 남자와 놀든지 말든지 본인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nbspnbsp만약에 부인이 잘못되어 망해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되지만, 사실 그래도 괜찮아요. 그러면 아이들이 질문자한테로 돌아오는 거예요. 그러니 그것은 나쁜게 아니예요. 그러면 아이들이 ‘아, 엄마가 문제구나’ 이런 판결이 나면 질문자가 그렇게 신경쓰는 아이들은 본인이 차지할 수 있어요. 엄마가 잘해줘도 아이들한테는 괜찮고, 엄마가 못해주면 아이들을 전부 질문자 쪽으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그것도 나쁜 것 아니예요. 그 여자만 바보지요. 질문자는 손해날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그것도 신경쓸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오늘 결정해 놓고도 자꾸 ‘내 여자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안돼요. 딱 끊어야 돼요. 돈도 내 돈 주는 것이 아니예요. 자기 돈 가지고 가는 거예요.nbspnbsp본인 돈이니까 쓸데없는데 쓴다고 생각하지, 자기 돈 자기가 쓰는데 무슨 상관할 일이 있어요? 자기 돈 자기가 쓰는데 그래도 나한테 허락 맡고 쓰니까 얼마나 고마워요? 이혼해서 나눠줬으면 나한테 허락 안 맡고 쓸거잖아요. 그런데 내가 마음 속에서만 정하면 그래도 나한테 허락맡고 쓰는 거잖아요. 내가 사인을 해줘야 쓰잖아요.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예요. 그렇게 해야 질문자가 사고 안 치고 잘 살 수 있어요.nbspnbsp세번째, 사업이고 뭐고 다 놓고 무조건 병원에 가서 치료부터 받는 겁니다. 그냥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상담하고 약물 치료 받으면 돼요. 어떻게 하면 질문자가 살 수 있느냐를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세번째 치료를 받는 길이 있다는 거예요.nbspnbsp우선 제일 쉬운 것은 병원에 가고, 두번째 길은 이혼은 안하고 속으로 이혼해버리는 것이고요. 우선 이렇게 해보고 도저히 속으로 이혼하는 것이 안되면 1번으로 올라가서 직접 이혼해버리면 돼요. 그런데 속으로 이혼하는 것을 능히 해낼 수 있으면 직접 이혼하는 것을 굳이 안해도 되잖아요. 그죠?nbspnbsp그러면 아이 엄마한테 잘해주고, 질문자는 어차피 딴 여자 필요없다니까 외간 여자하고 가끔 데이트도 하고 이러면 재미있을 것 아니예요? 외간 여자, 남의 여자라는 것이 아이 엄마를 말하는 거예요. 알았지요? 심리적으로만 딱 정리가 되면 이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데 내 꺼라는 생각을 못 버린다고 하면 1번으로 가는 수밖에 없어요.” nbspnbsp“그러니까요. 그게 제일 문제더라구요. 내 꺼라는 생각이..”nbspnbsp“108배 절하면서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절을 해보세요. 교회에 다녀요? 아무데도 안다녀요?“nbsp“저희집은 절에 다녔죠. 절하면서 한번 노력해 보겠습니다.” nbspnbsp“그러면 이렇게 절을 해요. 한번 따라해 보세요.nbspnbsp‘감사합니다.nbsp저는 편안히 잘 살고 있습니다.nbsp애기 엄마는 내 여자가 아닙니다.nbsp애기 엄마는 좋은 사람입니다.nbsp애기 엄마는 믿음직한 사람입니다.nbsp애기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잘 돌보겠습니다.’nbspnbsp이렇게 기도를 해보세요. 기회가 있으면 한국에 와서 깨달음의 장이라고 하는 수련에 참가해 보세요. 그 수련에서 이 문제를 꺼내가지고 집중적으로 근본 뿌리를 탐구해서 그 뿌리를 본인이 찾아내어야 해요. 스님이 이렇게 설명을 해주어서는 안되고요. 본인 스스로 꼭 해야 돼요. 그러면 괜찮아질거예요. 이런 것을 다 해보고 나중에 이혼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돼요. 우선 이렇게 치료를 해보고요. 기도를 해보고 병원에도 가보고 마음으로 정리도 하고, 수련도 가고 알았지요? 그래도 안 되면 이혼하는 수 밖에 없어요.” nbspnbspnbsp“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nbsp긴 시간 이어진 문답에 밝아진 질문자의 표정을 보고 청중들도 큰 박수를 보내 줍니다. 오늘 홍콩 강연은 6명이 질문했지만 3시간 동안이나 진행 되었습니다. 의처증으로 힘들어하는 남성 분의 질문에 대한 대화가 오랫동안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이 길어졌는데 주범은 당신이예요” 라고 질문자에게 농담을 하니, 질문자는 미안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래서 강연을 마치고나서 질문자는 봉사자들이 하는 일을 도와 의자를 접고 뒷정리 하는 일들을 함께해 주었습니다.nbsp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진리의 길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며 강연을 마무리해 주셨습니다.nbspnbsp“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합니다. 남을 돕는 게 나한테도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희생이 안 됩니다. 진리의 길은 나도 좋고 너도 좋아야 합니다.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야 합니다. 이런 진리에 근접하면 지속가능한 행복을 누릴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성경 공부를 할 때도 신학에 너무 메이고, 복을 구하는 것에 너무 메이면 안돼요. 훨씬 뛰어넘어서 주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확인하는 그런 단계로 가야 진짜 신앙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nbspnbsp초기 기독교 신앙이 신앙을 통해서 복을 얻었어요? 기독교 믿어서 돈을 벌었어요? 기독교 믿으면 지위가 올라갔어요? 천만에요. 신앙을 가짐으로써 재산을 잃었고, 지위를 잃었고, 목숨을 잃었어요. 그래도 거기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신앙은 많이 변질되었습니다. 신앙을 가져서 다 돈을 벌려고 하잖아요. 대학 시험에 걸릴려고 하고, 좋은 여자 좋은 남자를 만나려고 하고, 주님의 말씀과 신앙을 그냥 세속적인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자유로워지지도 못하고 행복해지지도 못하는 겁니다. 절에 아무리 다녀도 해탈을 못합니다.nbspnbsp그래서 조금 더 진실되게 사는 게 필요합니다. 절에 다니느냐, 교회에 다니느냐, 종교를 갖느냐, 안갖느냐, 이게 중심이 아니예요. 그런 형식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조금 더 삶을 진지하게 살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가셨으면 합니다. 행복하십시오.”nbspnbspnbspnbsp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강연장 입구 로비로 이동하셔서 책 사인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연도 좋았지만 청중들은 스님의 사인까지 받고나니 너무나 기뻐하는 표정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그리고 수개월 전부터 사전모임을 가지며 오늘은 강연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자원봉사를 해준 분들 모두가 모여서 기념 촬영을 하였습니다. 강연을 총괄한 김희진님은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많은 봉사자들이 모일 줄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데, 한명씩 마음을 내어 연락을 주시는 과정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nbspnbspnbsp그리고 특히 강연 전체를 총괄한 김희진님에게는 스님께서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하고 기념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봉사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봉사자 전체를 잘 이끌어준 김희진님에게 “정말 수고가 많았다” 면서 큰 박수를 함께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 오늘 홍콩 강연 총괄 책임을 맡아 주신 김희진님nbspnbspnbsp스님께서는 봉사자 모두에게 단주를 선물로 나눠주면서 손목에 직접 다 걸어주셨습니다. 봉사자들은 “법륜 스님이 직접 끼워 준 단주”라고 하면서 너무나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봉사자들 모두에게 다시한번 감사 인사를 하고 스님께서는 휴식을 하기 위해 숙소로 먼저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nbsp자원봉사자들은 행사장에 설치된 의자들을 모두 철거하고 뒷정리를 마친 후 묘덕 법사님, 한금화 동아시아 지구장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먼저 한금화 지구장님은 “홍콩이 115강 중에서 마지막에 결정된 강연이었고 장소 섭외에 어려움이 있어 취소될 위기에 놓여서 걱정이 많았으나 장소가 결정되니까 아주 빠른 속도로 강연이 준비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동이 있었다”고 하면서 “금요일 퇴근시간이라 많이 참석할까 걱정도 많았지만 성황리에 잘 마쳐서 너무 감사하다” 며 봉사자들 모두를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봉사자 중 한분은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경험이 전혀 없었는데, 서로 다른 생각들이 한 마음으로 모이는 과정이 참 감동이었다” 고 하고, 어떤 분은 “3개월 전부터 희망 강연 카카오스토리를 받아보고 있다가, 홍콩이 항상 강연 미정이라고 해서 안타까워서, 우리도 이런 좋은 강연을 듣고 싶다고 연락을 드렸다가 강연을 함께 준비하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이번 강연이 준비되는 과정은 마치 기적과 같았다“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회를 보신 남성 봉사자 분은 “매일 매일 하루 1개 도시를 방문하는 일정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고, 그때부터 카카오스토리로 스님의 하루를 매일 읽고 있다” 면서 “그런 훌륭한 스님을 홍콩에 모실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고 하였습니다. 또 한분은 “홍콩에 10년 정도 살았는데,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모인 것은 처음 본다” 면서 “치유도 받고 희망을 보게 된 것 같다” 고 하였습니다. nbspnbspnbsp강연을 총괄한 김희진님은 “진짜 기적인 것 같다”고 하면서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분이 참여해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여러분 덕분에 저도 굉장히 좋은 경험을 했다” 면서 이런 좋은 nbsp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바램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강연장 사용 시간이 다 되어서 더 길게 나누기를 하지는 못했고, 나누기를 마무리하면서 묘덕 법사님은 “한분 한분 함께해 주셔서 오늘 행사가 진행될 수 있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고 하시면서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nbspnbsp그리고 묘덕 법사님은 나누기를 마치고 “홍콩에서도 정토불교대학을 한번 열어보면 좋겠다” 하시면서 봉사자 중에 한분인 분당 정토법당에서 오신 분에게 불교대학 개설 방법을 안내해 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오늘 숙소는 홍콩 도심에 위치한 작은 원룸입니다. 홍콩은 물가도 비싸고 임대료도 비싸서 그런지 원룸으로 들어가는데 복도, 엘리베이터, 방, 거실 등이 모두 매우 작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비좁은 틈으로 땀을 흘리며 짐을 숙소로 올리고 나니 밤11시가 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원고 교정 업무를 밤늦게까지 하시다가 새벽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드셨습니다.nbspnbsp오늘도 이렇게 많은 분들의 땀과 정성 속에서 110번째 홍콩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 4시에 숙소를 나와서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귀국합니다. 주말인 1박2일 동안 청년 500여명과 함께 특강 및 토크콘서트 등을 함께 하실 예정입니다. 그런 후 111번째 강연은 12월15일부터 일본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내일은 한국에서 청년들과 함께하는 청춘캠프 소식을 생생히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12.14. 50,689 읽음 댓글 2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