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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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15 (인도 13일째) 상카시아 답사 및 가야로 이동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상카시아의 불교 유적지 한 곳을 답사하고 인도인 슈레스지가 운영하는 인도 불교 부흥을 위한 사업장을 방문하신 후 이따와에서 가야로 가는 기차를 타셨습니다.nbspnbsp어제밤 석가족 청년들과의 수련을 마치고 미얀마 절에서 하룻밤 머문 스님께서는 새벽 5시30분에 미얀마 절을 나와서 어제 수련이 열린 인도 절에서 아침식사를 하셨습니다. 그저께부터 스님께서는 짜파티, 사부지, 달, 짜이 등 3일째 인도 현지 음식으로만 식사를 하고 계십니다.nbspnbspnbsp맛있게 음식을 먹고 나서는 차를 타고 이동해 상카시아 스투파 근처에 불교 성지가 한 곳 더 있다고 해서 답사를 가셨습니다. 성지에 도착하니 아쇼카 석주가 세워졌다가 땅 속에 nbsp묻혀 일부분만 드러나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쇼카 석주를 둘러싸고 미얀마에서 온 불자들이 정성껏 예불을 올리고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아쇼카 석주를 둘러본 후, 이곳 성지를 안내해 준 담마빨 스님께 이곳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담마빨 스님은 이곳 성지를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 사리푸트라가 500명의 제자들을 교화했다고 하는 곳nbsp“부처님께서는 담마가 너무 어려워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먼저 사리푸트라에게 설법을 하셨습니다. 사리푸트라가 그 법을 먼저 이해하고, 사리푸트라가 다시 500명에게 그 법을 설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특별히 미얀마 스님들이 이곳이 중요하다고 많이 믿고 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아쇼카 석주가 정말 맞는지?” 다시 물어보셨고, 담마빨 스님은 “아쇼카 석주는 확실하다”고 대답하면서 “현재는 아직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진행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막아 놓기만 했다” 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성지를 둘러보고 있는데 어느새 동네에 소문이 났는지 동네 아이들이 “1월달에 사탕 주시는 바바가 오셨다”고 하며 벌떼처럼 모여 들었습니다. 쁘리앙카님이 통역으로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이야기를 전해주자 스님께서는 “미안해. 오늘은 사탕을 준비해 오지 못했어. 너희들이 있는지 몰랐어”라고 하시면서 아이들을 달래주고 다시 차에 타셨습니다. 이곳 동네 아이들에게도 스님은 유명인사가 되어있다는 사실에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nbsp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스님께서는 상카시아 지역에 부처님과 관계된 유적지가 더 있는지 담마빨 스님께 물어보셨습니다. 담마빨 스님이 다시 대답했습니다.nbspnbsp“이 근처에 아직도 스투파처럼 높은 곳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첫 번째 성벽 문으로 사리푸트라가 쉬라바스티에서 이곳 상카시아로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져 오고 있어요.”nbspnbsp얘기를 하는 도중에 차창 밖으로 상카시아의 성벽 흔적이 보였습니다.nbspnbsp▲ 상카시아의 성벽이 있었던 자리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인도JTS 사업을 시작할 때 초창기부터 인연이 되어 온 슈레스지가 인도 불교 부흥 사업을 하고 있는 곳을 방문해서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슈레스지는 자신과 관계하고 있는 석가족 청년들을 나가푸르의 암베드카르 쪽, 티벳 불교의 달라이라마 센터 쪽, 고엥가 명상센터 쪽으로 각각 보내어서 불교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업장에 아쇼카 석주도 높이 세우고, 건물을 짓기 위해 벽돌 기계도 마련해서 벽돌을 생산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며 스님께 소개를 했습니다.nbspnbsp▲ 슈레스지가 세웠다고 하는 아쿄카 석주nbsp하지만 슈레스지는 “불교 공부를 하라고 곳곳에 보낸 석가족 청년들이 나중에 이 사업장으로 돌아왔을 때 서로 분열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라고 하며 스님께 조언을 구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그렇게 될 확률이 99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저기 보낸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예요. 누군가가 여기서 담마는 같도록 중심을 잡아주고 서로 다른 문화는 존중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담마를 중심으로 잡을 때 어느 것을 중심으로 잡느냐 하는 선택이 중요합니다. 테라바다, 마하야냐, 탄트라, 젠의 공통된 담마를 잡아줘야 통합을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금방 분파가 되어 버립니다. 가장 바탕은 부처님의 생애와 부처님 당시에 가르쳤다고 생각되어지는 근본불교를 바탕에 깔아야 됩니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 100이라고 하면 테라바다는 50 정도만 남아 있다고 보면 되고, 마하야나는 30 정도 남아 있다고 보면 되고, 탄트라는 10 정도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인도 문화라고 보면 됩니다. 젠 부디즘도 10 정도 남아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 10 라도 공통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이게 안 잡히면 다 갈라질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규모를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nbsp“그럼 어떻게 해야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nbspnbspnbsp“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가능하면 나중에 생기도록 한다든지, 덜 갈라지게 한다든지 하려면 담마를 중시해야 해요. 확대되는 것보다는 공동체 생활의 중심을 잡는데에 비중을 더 많이 두어야 해요. 그리고 분열하면 안된다 하는 것을 너무 강조하게 되면 분열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게 됩니다. 같이 살았던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죠. 분열되지 않도록 노력하되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혹시나 분열이 되어도 내 마음에 괴로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괴로우면 수행자가 아닙니다.”nbsp스님께서 조언을 해주시자 슈레스지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어제 수련을 함께한 힌두 사두 한분이 자신이 지은 학교 건물과 땅을 모두 스님께 기증하고 자신은 출가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분을 찾아가서 잠깐 인사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 건물과 땅을 보시하고 싶다고 말하는 힌두 사두nbspnbsp이 분은 스님이 하시는 일이 너무 좋아서 자신이 갖고 있는 이 건물과 땅을 모두 기증하고 싶다고 했고, 자신은 노동도 잘 할 수 있으니 스님이 짓고자 하는 담마 센터를 짓는 일에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어제 스님 법문 들었어요. 50는 너희들이 모으면 50는 스님이 지원해주신다고 하셨죠. 저는 어제 스님 법문 듣고 너무 기뻐서 제가 갖고 있는 이 건물과 땅을 다 스님께 드리고 싶어요. 이 학교는 군인 생활 마치고 저도 사회에 기여를 하고 싶어서 사람들의 보시를 받아서 지은 겁니다. 스님 하시는 일이 좋아서 스님께 다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노동도 할 수 있어요. 담마 센터를 짓는 데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nbsp스님께서는 “잘 알았어요” 하면서 합장을 하며 감사 인사를 하고 보시도 하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1시간 2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따와로 왔습니다. 이따와에 있는 수바스지의 집에서 잠깐 짜이 한잔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기차 시간이 되어서 기차 역으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출발하기 전 수바스지의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1박2일 동안의 석가족 수련 준비를 총괄해준 수바스지와 그 가족들nbsp기차역까지 마중을 나온 수바스지는 가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타는 스님을 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스님께서는 “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뜻대로 잘 안되어서 그런가 보다” 하시면서 수바스지의 애틋한 마음을 읽어 주셨습니다. 수바스지는 20년 전 청년 시절에 스님을 만나 스님의 뜻을 받들어 인도 불교 부흥을 위한 일을 평생 동안 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입니다. 20년 전의 약속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도 스님을 이렇게 정성껏 모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짠해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 기차에 올라탄 스님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수바스지nbsp수바스지와의 아쉬운 작별을 뒤로하고 스님 일행은 가야행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낮 12시40분에 이따와 역을 출발한 기차는 밤 11시30분에 도착할 예정인데, 인도 기차의 특성상 연착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 내일 아침 무렵에 가야역에 도착할 것 같네요.nbspnbsp스님께서는 기차 안에서 지난 1박2일 동안 석가족과 함께한 수련에 대한 소감을 나누시면서 휴식도 취하시고, 아이패드로 한국에서 온 이메일도 체크하고, 원고 교정도 하는 등 오랜만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스님께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아마도 인도의 기차 안 밖에 없지 않을까 싶네요.nbspnbsp내일은 오전에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가셔서 오후에는 주 인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대사님과 한국문화원 원장님이 보드가야를 방문하셔서 보드가야 대탑을 직접 안내해 주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03.17. 36,665 읽음 댓글 16개

2015.3.13 (인도 11일째) 상카시아 석가족 수련 1일째

▲nbsp상카시아 석가족 수련 1일째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가야에서 이따와로 이동하셔서 상카시아 석가족들을 위해 수련을 해주셨습니다. 오늘부터 내일까지 1박2일 동안 상카시아 인도 절에서는 석가족들 100여명이 모여 스님과 함께 수련을 하는데 오늘은 그 첫 번째 날입니다.nbspnbsp▲nbsp가야에서 상카시아로 가는 기차nbspnbspnbsp새벽1시30분에 이따와 역에서 도착 예정이였던 기차는 예상했던 대로 밤새 서행을 하더니 5시간이 연착되어 아침6시30분에 이따와 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기차 안에서 휴식을 취하시다가 새벽4시30분에 일어나셔서 명상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기차 안에서 명상 중이신 스님nbspnbsp이따와 역에 도착하니 석가족 청년회 회장인 수바스지가 아들과 함께 마중을 나와 반겨주었습니다.nbspnbsp▲nbsp기차역에 마중을 나온 석가족 청년회 회장 수바스지nbspnbspnbsp차량을 타고 수바스지의 집으로 가서 짜파티와 사부지, 달로 아침식사를 한 후 8시30분에 출발하여 오늘 개원법회 및 불상 점안식이 있는 메인뿌리의 산띠뿌르 마을까지 1시간20분 동안 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nbspnbsp산띠뿌르 마을에 새로 개원한 법당에 스님께서 도착하자 인근 지역의 스님들 30여분과 마을 주민들은 스님께 합장을 하거나 스님의 발에 손을 대는 방식으로 공경의 예를 표하며 스님을 정성껏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법당 입구에서 긴 줄로 나란히 서서 환영해주는 스님들과 마을 주민들nbspnbsp먼저 스님께서 한국식으로 간략하게 점안식을 하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예불을 하시고 난 후 이곳 산띠뿌르 법당과 마을 주민들을 위해 축원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산띠뿌르 마을 개원법당 점안식nbspnbsp이어서 인도 스님들이 인도 방식으로 예불을 올렸습니다. 점안식을 마치고 난 후에는 스님께서 참석자들이 잡고 있는 오색 실을 가위로 끊어주셨고, 참석자들은 끊어진 오색 실을 서로에게 묶어주면서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는 예를 표했습니다.nbspnbsp▲nbsp오색 실을 잘라주는 스님nbspnbsp법당 밖으로 나와서는 스님께서 마을 주민들을 위해 법당 개원 기념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쁘리앙카님의 통역 덕분에 마을 주민들은 스님의 법문을 듣고 모두들 기뻐하였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새해 잘 보냈습니까? 지난 한해의 근심걱정은 다 잊어버리시고 올해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nbspnbsp▲nbsp석가족 산띠뿌르 마을 법당 개원법회nbspnbsp오늘 이곳 산띠뿌르 마을에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담마로꼬 쁘라까스 실 보드 비하르’ 라는 새로운 절이 생겼습니다. 부처님도 새로 모셨습니다. ‘로터스 수투라’라고 하는 경전에 보면 어린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모래로 부처님 얼굴을 그리고 탑을 쌓아도 큰 공덕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금방 없어질 모래로 만든 것도 아니고 이렇게 법당을 짓고 불상을 모신 것은 그것보다 수천배 더 공덕이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절을 지을 수 있도록 많은 도네이션을 해주신 분이 실소만 스님이십니다. 그리고 담마실 스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분들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 절을 책임 맡으신 분은 보드 길라얀 스님이십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점안식을 위해 30여분의 스님들도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환영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nbspnbsp부처님이 계실 때는 우리는 부처님께 경배를 했습니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우리가 경배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대신에 보리수 나무를 경배하기도 하고, 부처님의 발바닥 무늬를 경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부처님의 모습을 그리거나 조각한 불상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저 불상은 돌로 만든 조각입니다. 조각이 부처님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 같이 생긴 조각을 부처님으로 여기는 의식인 ‘점안식’을 하는 것입니다. 점안식을 하기 전에는 조각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점안식을 하고 나면 비록 돌로 만든 조각이지만 부처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점안식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불법승 삼보를 먼저 청합니다. 그래서 이 불상 속에 부처님의 기운이 들어가도록 요청합니다. 그럴 때 다른 잡귀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붉은 팥을 뿌려서 다 쫓아냅니다. 그리고 덮어쓴 천을 벗깁니다. 부처님의 미간에 부처님의 지혜의 광명이 깃들도록 점안을 합니다. 눈을 뜨게 한다 이런 의식입니다. 점안을 하면 비록 돌로 만들어진 불상이지만 오늘부터는 부처님처럼 그 앞에서 경배를 해야 합니다. 이제 자주 자주 찾아오셔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겠어요? nbspnbspnbsp그리고 오색실을 쥐고 있으셨는데 오색실은 불교기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으로부터 여러분을 모두 연결해서 부처님의 기운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그 오색실을 손목에 묶고 있으면 올 한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는 종교 의식입니다.nbspnbsp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셔서 45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시며 교화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의 종족은 육체적으로는 대를 이어서 지금의 여러분들에게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부처님의 육체는 받았는데 부처님의 마음은 잃어버렸습니다. 붓다 담마는 없고 힌두의 믿음만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 담마는 석가족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계속 퍼져나갔습니다. 한국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2천년 전에 들어왔습니다. 그 때 인도에서 담마를 전하는 스님이 한국까지 와서 전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몸은 석가족이 아니지만 붓다 담마는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제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nbspnbspnbsp이 몸둥이가 석가족인 것이 진짜 석가족이예요? 붓다 담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진짜 석가족이예요?nbsp붓다 담마를 가진 사람이요nbsp그럼 여러분은 석가족이 아니예요?nbspnbsp석가족 맞아요nbsp이 몸둥이가 중요해요? 사람 마음이 중요해요?nbsp사람 마음이 중요해요nbsp그러니 몸둥이만 석가족이라고 해서 석가족이라고 하면 안돼요. 반쪽 밖에 안돼요. 마음 속에 붓다 담마를 가져야 진짜 석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사무지가 헤? nbspnbsp▲nbsp스님의 법문을 듣고 기뻐하는 석가족 산띠뿌르 마을 주민들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이 진짜 석가족이 되려면 붓다 담마를 공부해야 돼요. 붓다 담마를 공부 안 한 사람은 “너 성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석가족이다” 라고 대답하면 안돼요. nbspnbsp오늘 절도 새로 생겼고 스님들도 이렇게 계시니까 이제 붓다 담마를 공부하셔야 해요. 알았지요? 절에 가서 붓다 담마는 공부 안하고 기도만 하면 힌두와 다른 차이가 없어요. 여기 절을 지은 이유는 붓다 담마를 공부하라고 지은 것입니다. 붓다 담마를 공부하겠다고 약속 하시겠어요? nbspnbsp오늘 절을 개원하는 것을 기념해서 제가 이곳에 온 것은 개원식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여러분께 붓다 담마를 꼭 공부하라고 이야기해주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진짜 석가족이 되려면 몸만 석가족이 아니라 붓다 담마를 가슴에 안아야 합니다.”nbspnbsp이렇게 스님께서는 석가족 마을 주민들에게 여러차례 반복해서 강조하며 붓다 담마를 공부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4대 성지와 8대 성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면서 인도에 살면서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히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스님의 감로의 법문을 듣고 마을 주민들은 모두들 큰 박수를 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법문 후 스님께서는 석가족 마을 주민들에게 생활 형편이 어떤지 파악하기 위해 몇가지 질문들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주민들의 생활에 대해 물어보시는 스님nbspnbspnbsp“농사를 얼마나 지어요?”nbsp“5비가 지어요”nbspnbsp“농사 그만큼 지어서 생활이 괜찮아요?”nbsp“생활이 어려워요 감자, 마늘, 쌀, 밀 농사를 지어도 값이 낮아서 남는 것이 없어요”nbspnbsp“소를 빌려서 키우기도 해요?”“네”nbspnbsp“소를 나중에 어떻게 해요?”“팔아서 생긴 이익을 주인과 반반 나누어요”nbspnbsp“돈을 빌리면 이자를 얼마 갚아야 해요?nbsp“월 5입니다.”nbspnbsp“비싸지 않아요?”nbsp“비싸요”nbspnbsp“그러면 열집이나 스무집이 힘을 합쳐서 수확한 농산물을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값이 오를 때 판매한다든지, 비료를 스무집이 한꺼번에 구입한다든지 하면 좀 싸게 구입할 수 있잖아요. 공동 판매하면 조금 더 비싸게 팔 수도 있고요”“그러면 좋은데 단합이 잘 안돼요”nbspnbsp이곳 상카시아 석가족 마을에서도 스님께서는 둥게스와리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협동조합을 통한 주민생활의 개선에 많은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다. 둥게스와리에서 모델이 빨리 만들어지게 되면 이곳 상카시아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짜파티를 만들고 있는 부녀자들nbsp▲nbsp뿌리를 만드는 남자들nbspnbspnbsp그리고 부녀자들은 집집마다 나무판과 막대기를 가져와서 법문을 들으면서 짜파티를 만들었고, 또 한쪽 편에는 남자들이 짜파티를 기름에 튀기며 뿌리를 만드는 등 정성껏 요리를 해서 스님 일행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유미죽도 아주 달콤하고 맛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참석한 스님들 한분 한분에게 거마비를 드리고 마을 주민들과도 인사를 한 후 산띠뿌르 법당을 나왔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스님께서 차를 타고 떠나실 때까지 정성껏 배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차를 타고 곧바로 오늘 석가족들을 위한 수련을 진행할 상카시아 인도 절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2시쯤 절에 도착하자 이곳 주지인 담마빨 스님을 비롯한 미리 도착한 석가족들이 스님 일행을 반겨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잠시 인사만 하고 오늘 숙소로 잡은 근처의 미얀마 절에 짐을 내린 후 오후 3시에 다시 인도 절로 와서 석가족들과 함께 수련을 하셨습니다.nbspnbsp석가족들은 스님을 뵙자 스님의 발에 손을 대고 엎드려 절을 하며 스님께 공경의 예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가야에 있는 석가족 청년들도 김정준님과 함께 15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이곳까지 와서 “수련에 참가하러 왔다”고 하면서 스님께 삼배를 하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법문을 시작하시면서 먼저 다들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셨습니다. 메인뿌리, 이따와, 까노즈, 에따, 가야 등 곳곳에서 많은 석가족들이 참석했습니다. 특히 가야에서 온 석가족들은 스님께서 멀리서 왔다고 특별히 소개를 시켜 주셔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들 직업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셨는데, 대부분 농사 짓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사업하시는 분, 학교 선생님,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nbspnbsp▲nbsp스님을 법문을 듣고 있는 석가족들nbsp스님께서는 1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하시면서 첫 번째 법문에서는 불교가 어떤 면에서 다른 종교와 다른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nbsp“무한한 힘을 가진 신이 있고 미약한 인간이 있는데, 미약한 인간이 무한한 신의 도움으로 구원을 얻는다. 대부분의 종교는 이런 시스템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신의 도움을 얻는 의식이 ‘푸자’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이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불교와 힌두교만 다르고, 불교와 크리스천만 다른 것이 아니고, 불교는 모든 종교와 근본적으로 그 입장이 다릅니다.nbspnbspnbsp부처님은 브라만교의 가르침에 대해 의문이 생겼어요. 정말 이 세상 만물을 신이 만들었을까 이런 의문이 생겼어요. 신이 만들었다고 하면 그럴 듯 안해요? 현대 사회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요. 과학을 배우고 우주를 공부하고 인공위성이 날아다니는 이런 시대에도 아직도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이미 ‘이건 아닌 것 같다’ 고 생각하셨어요.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겠어요?nbspnbsp두 번째는 사람이 진짜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이렇게 종자가 다른 것일까, 이것에 대해서도 부처님은 의문이 들었어요. 그 당시에는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고 여겼는데 부처님은 남자와 여자가 왜 차이가 있을까 이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셨어요.nbspnbsp세 번째는 사람이 죄를 지어놓고 제사 지낸다고 그 죄가 없어질까 이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셨어요. 강가강에 가서 목욕을 하면 죄가 없어진다고 하는데 목욕한다고 죄가 없어지는가 이런 생각이 든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행복해지고 불행해지는 것은 운명을 좌우하는 신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든 것입니다.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문제아 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왜 그런가?’ 계속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nbsp nbspnbspnbsp그래서 부처님은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브라만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을 그만두고 집을 나와서 출가 사문들의 무리 속으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극심한 고행을 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았습니다. 출가하기 전에는 욕망을 늘 따라갔고, 출가한 후에는 욕망을 무조건 억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욕망을 따라가는 것과 억압하는 것이 정반대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욕망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욕망에 일체 반응을 하지 않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새로운 길을 발견합니다. 붓다가 발견한 길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로 쾌락과 고행을 떠난 제3의 길 ‘중도’입니다. 그것은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욕구를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참는 것과 알아차리는 것은 다릅니다. 참는 것은 저항을 하는 것이고, 알아차림은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그런 욕구가 있구나’ 하고 다만 알아차릴 뿐인 것입니다. 즉 욕구를 따라가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않고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nbspnbspnbsp즉 ‘담배를 피우고 싶구나’ 하고 알아치리고 있다는 것은 담배를 피운다는 얘기예요? 안 피운다는 얘기예요? ‘담배를 피우고 싶구나’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은 참고 있는 거예요? 안 참고 있는 거예요? 알아차림이 있어야지 참으면 안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고 싶은 대로 하든지 참든지 두 길 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니르바나로 가는 길은 이 두 길을 떠나야 합니다. 그것이 알아차림입니다.nbspnbsp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모든 의문이 다 풀렸어요. 이 세상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서로 연관되어 존재할 뿐입니다. 즉, 이 세상을 신이 창조했다는 것을 부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가 서로 다른 종자라는 것도 부정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똑같은 사람이예요. 어떻게 사고의 습관을 들였느냐, 즉 왕자로 훈련시켰느냐, 브라만으로 훈련시켰느냐, 노예로 훈련시켰느냐, 하는 의식의 차이에 의해 나눈 것이지 모두 똑같다는 것이죠. 남자다 여자다 하는 것도 서로 다를 뿐이지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계급제도를 부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괴로운 것은 신의 벌이 아니고, 인간이 행복한 것도 신의 축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을 누군가가 조정하는 아무런 존재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괴로움은 우리의 무지에 의해서 형성된 까르마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지 누군가가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수행을 통해서 이 무지를 깨뜨려야 니르바나를 증득하는 것이지 푸자를 지낸다고 니르바나를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과 인간 사이에서 제사를 지내주는 사제 계급도 필요없어 지는 것입니다. 붓다 담마 안에는 브라만도 없고 크샤트리아도 없고 바이샤도 없고 수드라도 없고, 그냥 수행자 딱 한가지만 있는 것입니다.nbspnbsp그러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것도 위대한 것이지만, 그 당시의 브라만 사회에서 부처님의 법을 전파해서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것도 위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그 가르침을 따랐다는 것도 정말 위대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교에 귀의한다고 할 때는 나무 붓다, 나무 담마, 나무 상가, 이렇게 삼보에 반드시 귀의해야 해요. 한번 따라해 보세요.nbspnbsp‘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nbspnbspnbsp중요한 것은 붓다 담마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운명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돈이 있어도 행복하고, 없어도 행복해야 합니다. 가족이 죽어도 행복하고 살아도 행복해야 합니다. 결혼해도 행복하고 혼자 살아도 행복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행복을 유지해야 합니다.”nbsp이렇게 해서 무려 3시간 동안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모두들 스님께서 들려주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귀기울여 들으며 불교가 어떻게 다른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차” 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습니다.nbspnbsp이어서 저녁식사 및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저녁7시30분부터 다시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녁에는 방금 전 낮에 스님 강의를 들으면서 또는 평소에 붓다 담마에 대해 궁금하던 것들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석가족들이 편안하게 질문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열어주셨습니다.nbspnbspnbsp“제가 작년 8월부터 세계 115회 도시 강연을 했습니다. 매일 한 도시씩 바꿔가면서 115일 동안 강연을 했어요.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옛날 생각만 하고 살면 안돼요. 유럽이나 아메리카는 부처님 당시와 비교하면 모두 왕족처럼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그들은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먹는 것도 충분하고 집도 좋고 차도 좋고 옷도 좋고 사회 시스템도 좋고, 옛날과 비교하면 이상세계라고 할 만큼 아주 좋아졌어요. 그러나 인간의 괴로움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기독교만 가지고는 그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뇌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붓다 담마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왕자로써 모든 것이 다 갖추어졌는데도 고뇌가 있었고 그런 조건에서 이 고뇌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찾았기 때문에 지금 현대인들의 고뇌와 문제의식이 같습니다. 이 고뇌는 대부분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이 정신적인 고뇌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가장 깊은 연구가 된 것이 붓다 담마입니다.nbspnbspnbsp아마 인도에서도 앞으로 경제적으로 잘 사는 사람들에게 붓다 담마가 새롭게 요구될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붓다 담마를 공부하면 첫째 자기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둘째는 앞으로 여러분들이 해외에 나가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되면 ‘인도에서 왔다’ 하면 다 불교에 대해 질문할지도 몰라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물질적으로는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잘 살아도 정신적으로는 여러분들이 지도를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부처님이 태어나신 인도에는 붓다 담마가 없단 말이예요. 그래서 여러분 석가족들이 이 붓다 담마를 공부해서 인도 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전파하는데 앞장서야 합니다.nbspnbsp그래서 남에게 얘기하기 전에 우선 나부터 붓다 담마를 알아야 돼요. 그래서 오늘 작은 의문이라도 의문이 있는 것은 다 물어보세요.”nbsp그러면서 석가족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많은 질문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한가지 질문을 소개합니다. 한 분이 죽고 태어나는 전생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이런 얘기가 있어요. 강도 한명이 총 맞아 죽었는데 우리 가족이 한명 태어났어요. 그 아이에게 흉터가 하나 있었어요. 그런데 이 아이의 전생에 강도가 총맞아서 죽었고 그 강도가 이 아이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가 맞았어요. 이건 뭐예요? 강도가 죽은 것이예요? 아이가 새로 태어난 것이예요?”nbspnbspnbsp“이런 얘기는 모든 종교마다 엄청나게 많아요. 기도해서 병이 나았다, 기도해서 대학 시험에 걸렸다, 이런 얘기는 모든 종교마다 다 있어요.nbspnbsp얼음 알아요? 얼음으로 만든 구슬 세 개를 어린 아이에게 주었다고 합시다. 어린아이는 그 구슬을 그릇에 담아 놓고 밖에 나가서 한참 동안 놀다가 돌아왔어요. 그러니까 얼음이 없어지고 물만 생겼어요. 그러면 어린 아이는 ”엄마, 얼음이 없어졌어“ 그럴 것 아니예요? ”물이 생겼다“ 이럴 것 아니예요? 왜 어린 아이는 이렇게 얘기할까요? 그것은 얼음과 물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없어졌다, 생겼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는 과정을 아는 어른은 ”없어졌다, 생겼다“ 이렇게 말하지 않겠죠. ”모양이 변했다“ 이렇게 말하지요. 변화 과정을 아는 사람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만 변했을 뿐이다“ 라고 말합니다. nbspnbspnbspnbsp이 세상 모든 사물은 변화할 뿐이지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생겼다 사라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제한된 인식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실제의 세계는 변화할 뿐이예요. 태양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변화합니다.nbspnbsp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지요. 이것을 진리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이것은 진리가 아니예요. 왜 그럴까요? 여기에는 평면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는 평면이 아니예요. 지구 표면은 휘어져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성립하는 것이예요.nbspnbsp여기 앞에 앉은 사람과 저 사이에 최단 거리의 선은 몇 개 그을 수 있어요? 그런데 서로 뒤로 물러서서 이 사람은 북극점에 가서 서고, 저는 남극점에 가서 선다고 합시다. 그럼 선을 몇 개 그을 수 있어요? 무한히 그을 수 있어요. 왜 그럴까요? 지구가 둥그니까요. 하나 밖에 그을 수 없다는 것은 평면이라는 전제 위에서만 그렇습니다. 곡면이 되면 전혀 다른 문제가 돼요.nbspnbsp우리가 갖는 상식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과 진리는 다릅니다. 붓다 담마는 상식을 뛰어 넘어 있습니다. 인도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 문화 속에서 생각하는데 붓다 담마는 그 문화를 뛰어넘어 있는 것입니다. 붓다는 2600년 전 사람이니까 2600년 전의 생각을 해야하는데, 지금 봐도 합당한 그런 생각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붓다 담마를 진리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붓다 담마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어렵고 자신이 아는 범위 속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붓다 담마의 근본 가르침을 이해해야지 다음 시대로 가면 또 안 맞아 버립니다. 인도 역사 속에서 있는 불교를 배우면 진리라고 하면서도 붓다 담마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계급차별이 없다고 하신 이야기는 당시 인도 사람들이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웠어요. 남녀 차별이 없다는 이야기도 알아듣기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래서 중간에 세상의 상식으로 그것을 없애버린 것이예요.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계급차별이 없고 남녀차별이 없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예요. 중간에 인도에 맞도록 붓다 담마를 해석한 것은 지금 와서 안 맞는 거예요. 오히려 부처님이 가르쳤던 그것이 지금 시대에 맞는 거예요.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불교가 맞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거예요.nbspnbsp저는 붓다 담마가 얼마나 위대하냐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는 세상이 이렇게 점점 변해가면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말했어요. “이 과학의 시대, 우주의 시대에 맞는 종교는 불교 밖에 없다.” 그 불교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종교가 아니라 붓다 담마를 말하는 것입니다.nbspnbsp붓다 담마는 진리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검증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것과 조금 다릅니다. 믿음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갖는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것은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처럼 작용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의식 속에서 그것이 없습니다. 믿음은 그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실이냐 아니냐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nbspnbsp인도에서는 모든 것을 다 전생에 한 것으로 설명해 왔습니다. 여기 두명이 싸우게 되면 전생에 원수였기 때문에 싸우게 된다, 이렇게 하면 설명은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을 문화라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것들을 믿는 사람은 그것이 진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붓다 담마가 아닙니다. 이것은 믿음에 속합니다. 이것은 문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하면 안되고 ‘아, 저 사람들은 저런 문화를 가지고 있구나’, ‘저런 믿음을 가지고 있구나’ 이렇게 봐야 합니다.nbspnbsp옛날에는 이런 문화를 갖고 있었는데 이것을 지금 시대에는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남자가 되었고, 전생에 복을 적게 지어서 여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것은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믿음으로써 이 시스템을 그대로 인정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전생에 죄를 지어서 장애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입니다.nbsp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장애인이다 할 때 죄가 많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다쳤거나, 유전인자적인 문제가 있거나 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그런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장애가 없는 사람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nbspnbsp몇 년 전에 미얀마에서 싸이클론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5천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어떤 기독교 목사는 ‘하나님을 안 믿어서 벌 받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담마는 무엇이냐? 미얀마에서 싸이클론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재산이 파괴가 되었다면, 비록 내 가족도 아니고 내 나라 사람들도 아니지만 그들이 이렇게 불행을 겪었을 때는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담마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우리가 믿고 있거나 알고 있는 것과 담마는 다르다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불교에도 담마가 아닌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불교가 인도에 있었기 때문에 인도의 힌두 문화를 받아들여서 섞였기 때문입니다. 또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중국 문화와 섞이면서 중국 불교는 인도 불교와 또 다릅니다. 담마는 인도 문화와 중국 문화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부처님도 인도의 전통문화 속에서 굉장히 저항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세계화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nbspnbsp우리는 그런 문화와 믿음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인도 문화와 담마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담마라는 것은 사실 그대로입니다. 불교인이 봐도 기독교인이 봐도 한국인이 봐도 인도인이 봐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질문한 것이 해결되었어요?”nbspnbsp“네”nbspnbsp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이 계속 이어져 나왔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자상하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통역을 맡은 쁘리앙카님도 마치 스님의 입이 된 것처럼 통역을 잘해주어서 석가족들은 스님의 법문을 듣고 다들 기뻐했습니다. 스님께서 “너무 어렵지 않았어요?” 라고 묻자 “좋았어요. 사회와 연결되어서 생각할 수 있어 더 좋았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은 이런 불교를 어떻게 전파할 것인지를 의논해 봅시다”라고 하시면서 오늘 수련을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수련을 마치고 절을 나오니 밤10시가 넘었습니다. 스님 일행은 오늘 숙소인 미얀마 절로 왔고, 석가족들은 수련이 열렸던 인도 절에서 잠을 청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5시30분부터 명상을 하며 수련을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03.15. 38,912 읽음 댓글 20개

2015.3.11 인도 9일째 스리람푸르 바가히 까나홀 가왈비가 자르하리 마을 방문

▲ 둥게스와리 까나홀 마을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JTS가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스리람푸르, 바가히, 까나홀, 가왈비가, 자르하리 등 5개 마을의 523가구를 모두 방문하여 쌀을 나눠주고 새해 인사를 하셨습니다. 오늘로서 전정각산을 둘러싼 둥게스와리 지역 전체 1,433가구에 대한 쌀 배분을 모두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도 새벽4시30분에 기상하여 새벽 예불 및 108배와 명상을 한 후 6시30분부터 발우공양을 함께 하였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어제에 이어서 소심경에 대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 소심경 강의는 십념입니다. 열가지를 염한다는 뜻인데, ‘염’이라는 것은 또렷이 깨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열가지에 대해서 뚜렷한 알아차림을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그 열가지 중에 핵심이 불법승 삼보입니다. 수행자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수행자이지 사제가 아닙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나 밖의 어떤 존재가 있고 그 존재에 위해서 우리가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빈다고 우리의 인생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무지를 깨치고 까르마를 고쳐서 번뇌가 없는 삶을 산다, 이 관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종교들과 근본적으로 입장이 다릅니다.nbspnbspnbsp이런 가르침을 주신 위대한 스승인 붓다에게 귀의한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붓다의 위대함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냥 세상의 다른 종교와 똑같아요. 그래서 이 진리를 스스로 깨달으시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붓다의 위대함과 중생을 어여삐 여기시는 그분에 대한 존경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의 귀의불입니다.nbspnbsp둘째, 그분의 가르침은 우리를 해탈과 열반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가르침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이 가르침에 귀의한다는 입장이 분명해야 합니다.nbspnbsp셋째, 이 가르침에 따라 수행정진하는 사람들은 진짜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관습과 풍속과 문화에 젖어서 사는 이 세상에서 그와 전혀 다른 이 길을 가는 이 수행자들은 정말 중생으로부터 존중받을 만한 사람들입니다.nbspnbsp그래서 이렇게 불법승 삼보를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예요. 입장이 분명하면 수행생활 하는 것이 쉽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절에 오래 살아도 수행 생활이 어렵습니다. 여러분들도 여기 수행자라고 하고 와 있는데 늘 비교를 세속에 있는 내 친구와 부모님 말씀을 듣고 합니다. “저기는 자가용이 있는데...”, “이웃집 누구는 결혼을 했는데 너는 왜 그러니?” 이런 말에 자꾸 흔들리는 이유는 입장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nbspnbspnbsp부처님은 수행하실 때 마왕이 “지금 수행을 포기하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전륜성왕이 될 수 있다”고 계속 유혹을 하잖아요. 그러나 부처님께서 “그런 소리를 하지 마라” 이렇게 단호하지 않았습니까. 빔비사라왕이 “당신 같이 훌륭한 사람이 이렇게 수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니 나와 함께 내 나라를 다스리자. 그것도 싫다면 내가 내 나라를 줄테니 너가 다스려라. 그것도 부담스럽다면 내가 군대를 줄테니까 너가 큰 나라를 만들어라” 이런 식으로 제안했을 때 부처님께서는 “대왕이시여, 제 입에 있는 가래침이 필요없다고 뱉은 사람이 누가 뱉어 놓은 더 큰 가래침을 보고 주워 먹는 사람이 있습니까?” 라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왕의 자리를 가래침에 비유했습니다. 이렇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흔들리는 이유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지극히 세상의 가치에 기준을 두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닌가’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nbspnbsp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위를 추구하고, 돈을 추구하고, 명예를 추구하고 사는데 그런 길을 가는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냐?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다고 해서 지금 이 길을 온 것이잖아요. 그런데 현실의 불교는 제 실력으로 좋은 대학에 못 가니까 부처님 빽을 써서 좋은 대학에 가겠다는 이것이 입시 기도 아닙니까. 이것은 이 세상에서도 불공정한 경쟁을 조장하는 부정·부패한 것입니다. 이것은 세속보다 더 못한 것이잖아요.nbspnbsp그러니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세속에 물드는 존재가 아니라 세속의 때를 씻어주는 사람, 물 들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 붓다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수행자로써 살아감으로 해서 여러분의 부모님들도 여러분들을 보고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아, 나도 저 길을 가야되겠다’, ‘나는 못가더라도 격려라도 해줘야 되겠다’ 이렇게 된다든지, 형제들이나 친구들도 후원자가 된다든지 해야 하는데,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면 친구들이 여러분의 영향을 받아서 이 좋은 길에 입문하기 보다는 밥한끼 얻어먹거나 술한잔 같이 하다보면 여러분들이 친구들한테 물들잖아요. 그래서 집에 한번 다녀오면 고민이 생깁니다.nbspnbspnbspnbsp이것은 수행자로서의 입장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항상 수행을 기초로 해야 합니다. 그 핵심이 삼보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부처님 당시의 수행자들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수행자들은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잤는데 내가 그렇게는 못해도 그보다는 잠자리가 낫다, 옷은 다 떨어진 분소의를 입었는데 나는 그보다는 낫다, 음식은 동네에서 얻어 먹었는데 아무리 반찬이 없어도 그것보다는 내가 낫다, 이렇게 기준을 부처님과 수행자들에게 두고 항상 거기에 못 미치는 나에 대해서 근신하고 살아야 되는데, 기준을 세속 사람들에게 늘 두고 사니까 자꾸 힘들다는 얘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nbspnbsp그래서 십념에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해 줍니다. 먼저 법신, 보시, 화신 세 분의 부처님과 저 타방에 있는 극락 세계의 아마타 부처님, 미래에 오실 미륵 부처님, 이 다섯 부처님을 비롯한 모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그리고 모든 스승님들께 귀의하는데, 우리는 대승불교이니까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 모든 존귀하신 보살님들께 귀의를 합니다. 이것이 십념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걸식을 하면 ‘이 집이 밥을 많이 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불법승 삼보만 생각을 한다 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수행자는 계정혜 삼학을 닦아야 하니까 이어서 계정혜를 생각합니다. 즉 십념은 발우를 펴면서 또 음식을 담으면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나가야 함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그런 내용입니다.”nbspnbsp그러면서 스님께서 다같이 십념 부분을 같이 외워 보자고 하자 큰 목소리로 게송을 읊어 보앗습니다.nbspnbsp“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구품도사 아미타불, 당래하생 미륵존불, 시방삼세 일체제불, 시방삼세 일체존법, 대지문수 사리보살, 대행 보현보살, 대비 관세음보살, 대원본존 지장보살, 제존보살마하살 마하반야바라밀.nbsp불삼신진언 옴 호철모니 사하바, 법삼장진언 옴 불모규라혜 사바하, 승삼승진언 옴 수탄복다혜 사바하, 계장진언 옴 흐리브니 사바하, 정결도진언 옴 합부리 사바하, 혜철수진언 옴 나자바니 사바하”nbspnbsp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아침마다 늘 수행자의 마음으로 돌아갈 것을 다시한번 다짐해보고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마을 방문을 하러 나가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nbspnbsp오늘은 전정각산의 산너머에 있는 5개 마을 523가구를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침부터 쌀을 트럭에 싣느라 평소보다 더 분주했습니다. 8시에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하여 제일 먼저 도착한 마을은 ‘스리람푸르’입니다. 스리람푸르는 총 92가구가 살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입구의 첫 집에서부터 시작해서 골목 사이 사이를 찾아가며 쌀을 나눠주고 새해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nbsp▲ 오늘 523가구에 나눠줄 쌀을 이동하고 있는 인도JTS 활동가 주연우님nbspnbspnbsp오늘은 방문해야 할 집들이 너무 많아서 집집마다 찾아가 간단히 인사만 하고 쌀을 나줘주었습니다. JTS에서 인구 센서스 조사를 통해 집집마다 가족사항이 적힌 카드를 만들어 놓아서 카드를 보여주면 바로 쌀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중복이 되지 않도록 하면서 쌀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만큼 카드가 소중하기 때문에 집집마다 비닐 봉지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서 보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nbspnbsp▲ JTS에서 발급한 카드를 확인하고 있는 스님nbsp스리람푸르는 돌광산 근처에 있는 마을이라 남자들은 돌광산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최근에 돌광산이 중단되면서 일을 못하고 집에서 놀고만 있는 남자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놀고 있는 남자들에 대해 대책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nbspnbsp다음은 바가히 마을로 넘어와서 총 100가구에 대해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쌀을 나눠주고 새해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방문하는 중에 저체중아를 한명 발견해서 내일 지이바카 병원에서 진료를 받도록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홀리 잘 보내셨어요?”nbsp“아니요. 아기가 아파요.”nbspnbsp“왜요?”nbsp“아이에게 영양이 부족해요.”nbspnbsp▲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 있는 아이를 안고 있는 아기 엄마nbsp스님께서는 병원 담당자인 박종화님에게 “한번 체크해보라”고 하셨는데 박종화님이 “저체중아가 맞습니다” 라고 하자 스님께서는 아기 엄마에게 “내일 병원에 한번 나와서 진료를 받으세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바기히는 가야시에서 마을개발 시범마을로 선정이 되어서 많은 부분 시설 보완이 된 집과 깔끔하게 정비된 골목이 많았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수도관을 설치해서 집집마다 수도가 나오게 했다는 점과 하수도를 만들어서 물이 흘러가도록 했다는 점, 전기가 들어오는 집이 있다는 것이였습니다. 인도 정부에서도 이제 이곳 천민 마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nbspnbsp▲ 바가히 마을에 수도관이 설치된 모습nbsp▲ 골목마다 설치된 하수도nbsp▲ 전기가 들어오는 모습nbspnbsp그러나 지금까지 방문했던 마을들에 비해서 개발된 정도가 너무나 확연히 차이가 나서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JTS가 세운 스리람푸르와 바가히의 마을 유치원에 잠깐 들러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A, B, C, D, E ......” 알파벳을 큰 소리로 외우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요” 라고 강조한 후 과자 한봉지씩을 선물로 나눠주셨습니다.nbspnbsp▲ 스리람푸르 유치원nbsp바가히 마을 방문을 모두 마치고 까나홀 마을로 지나가는 길에 큰 나무 아래에 그늘이 넓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잠깐 그늘 밑에서 쉬었다 가자” 하셔서 물로 목을 축이고 앉아서 과자를 나눠 먹었습니다. 다닐 때는 무척 더웠는데 나무 밑에 앉아 있으니 바람이 불어와서 아주 시원했습니다.nbspnbsp▲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휴식 시간nbsp다음은 까나홀 마을로 이동해서 총 190가구를 모두 방문하고 쌀을 나눠주고 새해 인사를 하였습니다. 까나홀 마을은 둥게스와리 전체에서 가장 큰 마을입니다. 또 양민 마을이여서 집집마다 농사를 짓고 소도 많이 키우고 있었습니다.nbspnbsp▲ 넓은 농토와 높게 쌓은 짚을 갖고 있는 까나홀 마을nbspnbsp그런데 좁은 골목 사이로 빼꼭히 집들이 들어서 있고, 심지어 어떤 골목은 사람 한명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비좁았습니다. 거기다가 동네 아이들이 계속 쫓아와서 좁은 골목을 비집고 다니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골목이 좁아서 어떻게 살지?” 하시며 “집이 서로 떨어져 있는 천민마을이 훨씬 나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잘 사는 양민이라고 하지만 앞으로 집집마다 차가 생기면 주차할 공간도 필요할텐데 이 마을 사람들은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 골목이나 마당을 더 가지기가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집은 가왈비가 마을에도 집을 하나 더 지어서 집을 두 채 가진 경우도 있었습니다.nbspnbsp▲ 까나홀 마을의 좁은 골목길 사이로 쌀을 나루고 있는 인도JTS 활동가들nbsp스님께서는 까나홀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다니며 인사를 하셨는데, 초반에는 인도인 활동가들이 골목길 사이로 쌀을 나르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다른 마을에 비해서 시간이 더 지체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홀리 잘 보내셨어요?”“네”nbspnbsp“음식 뭐 만들어 먹었어요?”“뿌와 만들어 먹었어요”nbsp“왜 나는 안 주고 혼자서만 먹었어요?”nbsp“지금 드릴까요?”nbspnbsp“아니요. 농담이예요.nbsp이 소는 누구 것이예요?”nbsp“제가 키우는 소예요.”nbspnbsp“새해 선물 가져왔으니 받으세요.”nbspnbspnbsp양민 마을이여서 그런지 다른 마을에 비해서 대부분 여유가 있어보이고 옷차림새도 더 깔끔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소를 다섯 마리 이상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골목마다 소가 많이 묶여져 있는 모습에서 잘 사는 마을임을 금방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집집마다 소를 키우고 있는 까나홀 마을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곳곳에 있는 우물은 많이 지저분하고 핸드펌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 출신 교사에게 다시 물어보니 “잘 사는 집은 집 마당에 핸드펌프가 설치되어 있다” 고 합니다.nbspnbsp▲ 까나홀 마을의 우물nbspnbsp190가구나 되는 큰 마을이다 보니 방문을 다 마치지 못한 채 점심 시간이 되었습니다. 까나홀 마을에는 아이들 수가 많아서 수자타아카데미의 분교가 세워져 있는데. 까나홀 분교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까나홀 분교nbsp오전 내내 걸었더니 무릎이 아프고 발바닥이 뻐근했는데 앉아서 밥을 먹으니 밥도 맛있고 이제 좀 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nbspnbsp▲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JTS 활동가들nbsp점심식사 후에는 수자타아카데미 분교 교장을 맡고 있는 카필데오지가 스님께서 오셨다고 학교로 찾아와서 스님께서는 분교 운영에 대해 카필데오지랑 잠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예전에는 까나홀 마을 아이들의 대부분이 수자타아카데미 분교에 다녔는데 최근에는 모두 정부학교로 보내게 되면서 현재는 1학년에 66명, 2학년에 40명 총 106명이 분교에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까나홀 분교 교장선생님인 카필데오지nbspnbsp이어서 다시 마을방문을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갈 길이 멀어요. 우리가 아니면 대신 해 줄 사람도 없기 때문에 어차피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이라고 하시면서 스탭들에게 다시한번 힘을 낼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몸이 노곤해지려고 했는데 스님의 기운 찬 목소리를 들으며 모두들 벌떡 일어나서 다시 마을로 향했습니다. 육십이 넘으신 스님께서 서른살 청년들에게 기운을 넣어주시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좀 이상하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nbspnbsp▲ 오후 방문 일정을 힘차게 시작하시는 스님nbsp분교를 나와서 걸어가고 있는데 까나홀 마을 주민들이 “JTS 식구들에게 보시하고 싶다” 고 하면서 감자 한 포대를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니, 우리가 돈을 주고 살게요” 라고 했지만 마을 주민들이 보시한 것이라고 하자 그 마음을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가난하지만 고마운 마음을 나눌 줄 아는 둥게스와리 주민들을 보니 잔잔한 감동이 일었습니다.nbspnbsp▲ 까나홀 마을 주민들이 보시한 감자 한 포대nbspnbsp오후에는 까나홀 마을에서 아직 찾아가지 못한 집들을 더 방문하고 가왈비가 마을로 이동했습니다. 가왈비가 마을로 넘어와서 총 95가구를 모두 방문하고 쌀을 나눠주었습니다. 가왈비가 마을은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집들이 차례대로 늘어서 있어서 쌀 배분이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nbspnbspnbsp“홀리 잘 보내셨어요?”nbsp“네”nbspnbsp“홀리 때 무슨 음식 만들어 먹었어요?”“집이 가난한데 뭐 먹을 것이 있겠어요?”nbspnbsp“새해 선물 가져왔어요.”nbspnbsp마을 주민들은 스님과 JTS 활동가들에게 “단야바드” 라고 인사를 하면서 모두들 고마워 했습니다. nbspnbsp어떤 할머니는 계속 스님을 쫓아와서 “아까 전에 밭에 다녀온 사이에 우리 집이 빠졌어요” 라고 하기도 해서 JTS에서 발급한 카드를 확인하고 쌀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다음은 이번 마을 방문의 마지막 종착지인 자르하리 마을로 이동했습니다. 자르하리 마을은 전정각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이라 트럭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밀밭이 넓게 펼쳐진 평원을 1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니 자르하리 마을이 나왔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논밭이 많아서 차를 세우고 걸어서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nbspnbspnbsp▲ 자르하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nbsp주민들은 먼곳에서 온 JTS 활동가들을 무척 반겨주었습니다. 총 46가구를 집집마다 방문하며 새해 인사를 하고 쌀을 나눠주었습니다. 가구수가 적어서 다른 마을에 비해 금방 배분을 마치고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 JTS 스텝들을 졸졸졸 따라다니며 환영을 해준 자르하리 마을의 아이들nbsp이렇게 해서 오늘 하루 동안 523가구에 대한 방문을 모두 마쳤고, 또 지난 4일 동안 진행된 둥게스와리 전체 1,433가구에 대한 방문도 모두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다들 수고가 많으셨어요. 다 방문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 해내었네요.” 하시며 인도인 활동가와 한국인 활동가들 모두에게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 523가구에 대한 방문을 모두 마치고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시는 스님nbsp큰 일을 해내었다는 뿌듯함 때문인지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도 “원래 내일까지 방문할 계획인데 오늘 다 마쳤으니 하루 벌었다”고 하시면서 좋아하셨습니다.nbspnbsp개인정비 시간을 가진 후 저녁6시45분부터는 어제에 이어서 오늘 마을 방문에 대한 평가 및 인도JTS 사업 논의를 진행하였습니다. 3시간 동안 많은 논의를 하였지만 다 소개해 드리지는 못하고 스님께서 마을 주민들과 항상 회의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을 짧게 소개해 드립니다.nbspnbspnbsp“마을별로 6개 조직을 구성하면 좋겠다고 제가 말씀드렸는데, 마을별로 23명씩을 불러서 의견 청취를 한번 들어보면 좋겠네요. 선생님들이나 마을 주민들과 회의를 해야 하는데요. 결정을 하기 전에 의견 청취를 해야 하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 생각이 아닌 진짜 주민들의 실정에 맞는 결정을 하기 위해서이고요. 둘째는 별다른 의견이 나오지 않아도 회의를 하는 이유는 결정을 통보받는 방식이 아니라 사전에 논의구조에 참가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훈련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예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마을 주민들이 인도처럼 위에서 밑으로 내리먹이는 구조에서 민주적인 훈련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어요. 그렇게 함으로해서 주민들이 갖게 되는 자긍심도 있어요. 그러면 자기들도 나중에 그렇게 일을 하게 되거든요. 배움이라는 것은 늘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의 적용을 받거든요.”nbspnbspnbsp스님께서는 다음주에 마을 리더들, 학교 교사들과 더 논의를 하면서 최종적으로 사업 방향을 결정하자고 하시면서 오늘 회의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회의를 마치니 밤10시가 넘었습니다. 내일 일정에 대해 스텝들과 간단히 회의를 더 하신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에 아직 방문하지 못한 유치원 23곳과 지이바카 병원, 수자타아카데미 교실들을 둘러보신 후 오후에는 석가족 청년들을 위한 수련을 하기 위해 상카시아로 이동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03.12. 38,795 읽음 댓글 15개

2015.3.9 인도 7일째 방갈비가 만코시힐 나훌나가르 소라즈비가 마을 방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인도 달력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둥게스와리의 방갈비가, 만코시힐, 나훌나가르, 소라즈비가 4개 마을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316개 가구에 쌀 10kg씩을 나눠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평소대로 새벽 4시30분에 기상하여 새벽 예불 및 108배 정진과 명상을 한 후 6시30분에 발우공양을 하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발우공양을 마치고 그저께 법문해주신 ‘발우공양의 의미’에 이어서 오늘은 발우를 펼 때 염하는 ‘회발게’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대중이 모두 앉아 있으면 입승 법사님이 죽비 삼성을 치면서 합장 반배를 하고, 다시 죽비 일성을 쳐서 시작 신호를 알리면 “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이렇게 회발게를 합니다. 왜 이렇게 4대 성지를 생각하느냐면 이것은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을 모아 놓은 열반경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오늘밤에 돌아가신다고 하니까 아난다 존자는 갑자기 걱정이 되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처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누구를 생각해야 합니까?”라고 아난다가 묻자, 부처님께서 “아난다여, 걱정하지 마라. 여래가 없는 세상에서는 4대 성지를 생각하라” 라고 답하십니다.nbspnbspnbsp부처님이 태어나신 곳, 도를 이루신 곳, 처음 설법하신 곳, 열반하신 곳이 4대 성지인데, 그곳을 순례하고 또 그곳에 가서 여래가 태어날 때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셨는지, 여래가 성도하실 때는 무엇을 성도하셨는지, 여래가 설법을 하셨을 때는 어떤 내용으로 설법을 하셨는지, 여래가 돌아가실 때의 그 마지막 모습이 어떠하였는지, 이 4가지를 늘 생각하면 수행자가 어긋날 일이 없다고 하는 부처님의 최후 유언이 있습니다. 이 뜻을 계승해서 소심경에서는 발우를 펴고 음식을 먹기 전에 맨 먼저 4대 성지를 생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nbspnbsp불생가비라, 부처님은 가비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가비라는 인도말로 ‘카필라바스투’를 말합니다. 부처님은 카필라바스투의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한글로 바꾸면 “부처님은 카필라성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시었고” 가 됩니다.nbspnbsp성도마갈다, 부처님은 마갈다에서 도를 이루셨습니다. 마갈다는 마가다국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이 옛날에는 마가다국이였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은 카필라성이지만 도를 이룬 곳은 마가다국의 보드가야였습니다.nbspnbspnbsp설법바라나, 부처님은 바라나에서 처음으로 설법을 하셨습니다. 바라나는 바라나시를 말합니다. 부처님은 어디서 최초로 설법을 하셨느냐? 도는 이곳에서 보드가야에서 이루셨지만, 바라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사로잡혀서 부처님의 법문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 상인은 자신의 복만 구했지 법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좋은 법을 누구에게 전할까 생각하시고 두 분의 스승을 생각했는데 이미 돌아가셔서 자신과 함께 수행했던 다섯명의 도반들을 찾아가서 처음으로 설법하는 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바라나시의 사르나트에 머물고 있었어요. 그곳으로 가셔서 콘다냐 등 다섯 비구에서 처음으로 설법을 하셔서 그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nbsp nbspnbsp입멸구시라, 부처님은 구시라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구시라는 쿠시나가르를 말합니다. 부처님은 쿠시나가르의 사라숲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사라나무가 자욱하게 우거져 있는 숲속 사라나무 두 그루 사이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발우를 펴면서 이 네가지를 회상하는 것입니다.”nbsp이렇게 회발게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들은 후 모두 함께 모여서 오늘 해야 할 업무들에 대한 일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일나누기를 마치고 나서는 각자 자신이 맡은 일을 준비하러 갔습니다.nbspnbsp오전 8시에는 각 마을마다 유치원 선생님을 하면서 6학년, 7학년에 다니고 있는 중학생 31명이 찾아와서 스님께 새해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 스님께 새해 인사를 하러 온 중학생들nbsp“홀리 잘 보냈어요?nbsp“네”nbspnbsp“유치원이 몇시부터 시작해요?”nbsp“9시부터요”nbspnbsp“아이들 잘 가르치세요.nbsp그리고 신발을 벗을 때는 항상 잘 정돈해야 돼요. 조금 전에 보니까 신발이 다 흐트러져 있었어요. 나갈 때 한번 보세요. 그리고nbsp새해니까 스님이 용돈을 줄께요.”nbspnbsp▲ 스님께 용돈을 받는 중학생들nbsp스님께 용돈을 받은 중학생들은 꼬깃꼬깃 돈을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법당을 나가면서 자신들이 아무렇게 벗어놓은 신발들을 신으면서 부끄러운 듯 눈치를 살피며 웃었습니다. nbspnbsp▲ 신발 정돈이 안된 것을 스님께서 지적하자 부끄러워하는 중학생들nbsp오늘은 방갈비가, 만코시힐, 라훌나가르, 소라즈비가 4개 마을을 방문하여 총 316개 가구에 쌀을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트럭에 쌀포대를 모두 싣고 8시50분에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하여 9시에 방갈비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nbsp방갈비가 마을에서는 총 34가구가 살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집집마다 모두 찾아가서 새해 인사를 하고 선물로 쌀 10kg 씩을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지난번 두르가푸르와 자그디스푸르 마을에는 교사들이 쌀 배분을 도와주었는데, 오늘 수자타아카데미의 정상 수업이 열리는 날이여서 9기 행자대학원 분들이 쌀을 지고 나르며 쌀 배분을도와주었습니다.nbspnbspnbsp“나마스떼. 홀리 잘 보냈어요?”nbsp“네”nbspnbsp“음식은 뭐 만들어 먹었어요?”nbsp“뿌와 만들어 먹었어요”nbsp“자녀가 몇 명이예요?”nbsp“네 명이요”nbspnbsp“일은 뭐하고 있어요?”“아파서 일을 못하고 있어요.”nbsp“보드가야에 요즘 정부 병원이 새로 생겼다는데 한번 가보지 그래요?”“지금 한약처럼 만든 약을 먹고 있어서 일단 그것부터 먹어보려구요.”nbspnbsp“오늘 홀리 인사 왔어요. 홀리 선물 드릴게요.”nbsp▲ 쌀을 선물 받고 기뻐하는 방갈비가 마을의 할머니nbspnbsp스님께서는 이렇게 인사를 드리며 마을의 골목 골목을 다 들여다보시고,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 그리고 집안 형편 등을 하나 하나 확인하셨습니다.nbspnbsp▲ 지푸라기를 깔고 이 위에서 잠을 잔다는 마을 주민들nbsp그리고 수업이 한참 진행 중인 유치원에도 들어가셔서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참관하시고 아이들에게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말씀과 더불어 과자 한봉지씩을 나눠주셨습니다.nbspnbspnbsp▲ 방갈비가 유치원nbspnbsp다음은 만코시힐과 나훌나가르 마을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에는 140가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역시 이곳에서도 스님께서는 쉬지 않고 가가호호 방문하셔서 새해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었습니다. nbspnbspnbsp먼저 학교에 갈 나이 또래의 아이 한명이 집에 있어서 스님께서 물어보셨습니다. nbspnbsp“오늘은 학교 안 가요?”nbsp“아직 등교 시간이 안되었어요”nbsp“몇 학년이예요?”nbsp“2학년이요”nbsp그리고 두 부부가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하자 스님께서는 nbsp새해를 잘 보냈는지 안부를 물어보시며 nbsp아직 벽돌로 집을 짓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여쭈어 보셨습니다. nbspnbsp“홀리 잘 보냈어요?”nbsp“네”nbsp“음식은 뭐 만들어 먹었어요?”nbsp“뿌와 만들어 먹었어요”nbsp“그런데 이 집은 정부에서 집 지으라고 돈 못받았어요?”nbsp“네, 못 받았어요”nbsp“이유가 뭐예요?”nbsp“모르겠어요. 늙었다고 그러는지...”nbsp“오늘 홀리 인사 왔어요.nbsp홀리 선물 드릴게요.”nbsp▲ 만코시힐 마을의 두 부부nbsp만코시힐과 나훌나가르 마을에는 학교 갈 시간인데 학교를 가지 않고 있는 아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얼마전부터 정부학교가 생기면서 수자타아카데미에 다니던 학생들이 정부학교로 대부분 옮겨 갔는데, 정부학교는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아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다고 합니다.nbspnbsp▲ 정부 학교는 부실하게 운영되어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다는 만코시힐의 아이들nbsp그리고 만코시힐과 나훌나가르 마을의 특징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 못한 집이 많다는 것이였습니다. 어떤 집은 작년에 비가 많이 내려서 지붕이 완전히 주저 앉아 버린 곳이 있었습니다. 할머니 한분이 스님께 “집이 이렇게 무너졌어요” 하며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 작년에 비가 많이 내려서 무너진 나훌나가르 마을의 흙집 nbspnbsp이렇게 오전 내내 약 3시간 동안 총 174가구에 쌀을 나눠주고 나니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전혀 지치는 기색 없이 계속 다니시는데, 오히려 주위에 있는 인도인 활동가들과 한국인 활동가들이 다들 배가 고프다며 조금 힘겨워하는 눈치였습니다.nbspnbsp▲ 트랙터로 쌀을 계속 실어나르는 행자님들과 인도인 활동가들nbsp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1시부터는 초등학생들을 모두 쁘락보디홀 강당에 모이게 하고 스님께서 간단히 새해 인사와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초등학교 1학년5학년 학생들nbsp“홀리 때 엄마가 맛있는 것 해줬어요?”nbsp“네”nbsp“어떤 게 제일 맛있었어요?“nbsp“뿌와가 제일 맛있었어요”nbspnbsp학생들은 쑥스러운 듯 자신있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새해 인사로 격려를 해주시면서 다섯가지를 꼭 지킬 것을 여러차례 반복해서 강조하셨습니다.nbspnbspnbsp“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nbsp“네”nbspnbsp“올해는 스님이 말한 다섯가지를 꼭 지킵니다. 첫째, 때리지 않는다. 지킬 수 있어요?”nbsp“네”nbsp“둘째, 훔치지 않는다. 지킬 수 있어요?”nbsp“네”nbsp“셋째, 거짓말 하지 않는다. 지킬 수 있어요?”nbsp“네”nbspnbsp“넷째, 욕하지 않는다. 지킬 수 있어요?”nbsp“네”nbsp“다섯째, 화내지 않는다. 지킬 수 있어요?”“네”nbsp“다 외웠어요?”“네”nbspnbsp“다시 따라해 보세요. 올해는 이것을 꼭 지켜야 해요.nbspnbsp자, 그럼 한명씩 나오세요. 스님이 새해 선물을 드릴게요.”nbspnbsp학생들도 스님께서 강조한 다섯가지에 대해 큰 목소리로 따라하며 열심히 지킬 것을 약속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시한번 더 강조하기 위해 학생들 몇 명에게 다섯가지를 다 외웠는지 확인을 해보셨습니다. 남학생 한명, 여학생 한명이 다섯가지를 정확하게 외우자 스님께서는 “참 잘했어요” 하시며 과자 한봉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새해 선물로 전체 학생들에게 용돈과 더불어 비스켓 한봉지씩을 나눠주었습니다. 학생들은 용돈은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비스켓은 손에 든 채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nbspnbsp잠시 쉬어갈 여유도 없이 곧바로 오후1시30분에는 소르즈비가 마을로 가서 총 142가구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새해 인사를 하고 쌀을 나눠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쉬지 않고 계속 방문을 이어가셨는데, 어떤 집은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기도 하고, 어떤 집은 지원금을 받지 못하기도 하는 등 마을마다 집집마다 편차가 많이 있었습니다.nbspnbsp▲ 쌀을 받고 있는 소라즈비가 마을 아주머니nbsp“집을 잘 지었네요. 정부에서 돈을 얼마나 지원해 주었어요?”nbsp“7만 루피요”nbsp“아이고, 이 집은 지원을 많이 받았네요.”nbsp또 어떤 집에 갔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nbspnbspnbsp“여기는 정부에서 돈을 얼마나 지원 받았어요?”nbsp“3만5천 루피요”nbsp“오늘 홀리 인사 왔어요.”nbsp“홀리 선물 드릴게요.”nbsp그리고 소라즈비가 마을에는 소를 키우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소를 키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기 소가 아니고 빌려서 키우고 있었습니다.nbspnbsp▲ 집집마다 양민 마을에서 소를 빌려와서 키우고 있는 모습nbsp“소가 몇 마리예요?”“4마리예요. 빌려서 키우고 있어요.”nbsp“다 크면 어떻게 나누어요?”nbsp“반 반 나누어요.”nbsp“몇년 키워야 큰 소가 됩니까?”nbsp“78년 키워야 해요.”nbsp“송아지는 얼마 해요?”nbsp“2,000루피 정도 해요.”nbsp큰 소는 얼마 해요?20,000루피 정도 해요.nbsp“78년 키워서 10,000루피 번다는 이야기인데...”nbspnbsp이렇게 소라즈비가 마을까지 쌀 배분을 모두 마치고 나니 오후3시가 되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로 다시 들어와서는 내일 마을 방문을 위해 준비를 한 후 각자 씻고 개인정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9기 행자대학원 분들은 쉴 여유도 없이 곧바로 전정각사 법당으로 가서 300배 정진을 했습니다.nbspnbsp오후3시30분이 되니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도 수업을 모두 마치고 각자 집으로 향했습니다. 교문 밖을 나서는 학생들의 모습에 밝은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아마도 오늘 스님께서 용돈을 주셔서 더 그런 것 같았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정문nbsp저녁7시부터는 인도JTS 활동가 모두가 모여서 오늘 방문한 마을에 대한 평가 및 인도JTS의 장기적인 사업계획에 대해 회의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수자타아카데미가 향후 10년을 바라보며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큰 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 스님께서 해주시는 수자타아카데미의 비전을 들으면서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상상해 보니 가슴이 뛰기도 했습니다.nbspnbsp“오늘 하루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다니면서 체크가 된 것은 소를 빌려와서 키우고 나중에 이익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는 집이 굉장히 많았다는 것입니다. 절반 정도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마을에 생산물이 없어서 이익을 증대하기가 어렵다고 봤었는데, 오늘 소를 키우는 것을 보니까 한 집에 소를 한두마리씩 다 키울 수 있다면 우유를 생산해서 공동 판매하는 것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소를 빌려와서 키우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더 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양민 마을에서 소를 빌려왔을 테니까 이익이 충돌되지 않도록 진행을 하려면 청년회 조직이나 주민회의 조직에 가입한 사람들부터 키우는 사람에게 이익이 더 많이 남도록 지원해주면 이것은 회원제니까 문제가 적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옛날에 우리나라도 소작농들의 소작료 지불이 70 정도 되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반반 되었다가 나중에는 거꾸로 30가 되고, 요즘은 10도 채 되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 해서든 양민과 천민, 부농과 빈농 사이에 지나친 이익 불균형을 개선해 주는 게 필요합니다.nbspnbspnbsp오늘 파악해보니 송아지를 빌려와서 키운 후에 시장에 팔면 그 이익을 주인과 반반 나눠갖는다고 해요. 예를 들어 2천 루피짜리 소를 가져와서 7년을 키워야 2만 루피에 팔 수 있다고 하니까 이익을 반분하면 1만 루피를 벌게 되잖아요. 송아지 주인이 7년만에 5배의 이익이 남는다고 하면 이율로 보면 연 35 정도로 볼 수 있거든요. 은행 이자로 보면 거의 10배 정도 이자가 많은 것에 속하거든요. 이것을 연 1할 정도로 계산하도록 조정한다면 이익 배분을 조금 개선할 수 있거든요. 이 문제가 공동 생산 문제에서 중요한 아이템이 될 것 같아요. 이것을 마을 리더들과 의논해서 이익 배분이 어느 정도 되면 키울만 한지, 키울 때는 무엇이 어려운지, 어떤 문제가 해결되면 키우기가 쉬운지가 자세히 분석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nbspnbsp그리고 문맹퇴치를 하려면 유치원에 100 다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유치원은 확실하게 강화하고 초등학교는 과감하게 정부학교에 보낸다고 할 때는 나중에 수자타아카데미 중학교에 고급학교나 예술학교를 만들면 정부학교에서 5년 동안 방치된 아이들을 다시 데려와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nbspnbsp그리고 컴퓨터 공급을 어떻게 할지 연구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스텝들에 대한 공급이고, 장기적으로는 선생님들에게도 공급해줘야 할 겁니다. 둘째는 자원봉사로 오는 선생님들은 이곳에 있으면서 사용하도록 해야 하고요. nbspnbsp오늘 마을 가보니까 기부스를 한 사람들이 몇 명 있던데요. 기부스는 Xray를 찍어서 뼈가 부러진 것은 큰 병원에 보내줘야 하거든요. 무조건 기부스를 하면 평생 잘못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Xray 기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있다면 병원 담당인 까미스와르지가 어느정도 훈련을 받으면 되는지 한번 체크해 봐야 할 것 같아요.nbspnbsp그리고 전기는 태양열 발전판을 도입하려면 어느 정도의 경비로 어떻게 시설을 할 수 있는지 조사가 필요합니다. 너무 경비가 비싸면 최소한의 컴퓨터만 사용할 수 있는 정도만이라도 시설을 갖추면 좋을 것 같아요.nbspnbsp유치원 15개는 시설 보완도 해야하지만 교육기자재 보완도 해야 하고, 선생님 훈련도 해서 인도에서는 정말 괜찮은 유치원이 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아이들만 모아놓는 수준이 아니고 23시간을 가르쳐도 제대로 가르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따로 특별한 기자재가 없으니까 한국보다 공부를 더 시키는 것 같더라구요. nbspnbspnbsp지금까지는 중학생들이 유치원 선생님을 맡아 왔는데, 중학생들의 문제는 지속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가버리면 자기 공부하기 바빠서 더 이상 유치원을 못가르치거든요. 가장 안정적인 것은 마을에 가보니까 이제 젊은 아줌마들 중에는 수자타아카데미에서 8학년까지 나온 경우가 제법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아줌마들은 자기 아이들과도 관계가 있으니까 조금 훈련시키면 지속성이 보장될 것 같아요. 아니면 이런 아줌마들이 유치원 원장을 하고 중학생들이 수업을 도와주는 방법도 있어요. 왜냐하면 지금 유치원을 책임지는 어른이 없거든요. 제가 갑자기 방문해보면 아예 문을 열지도 않은 경우도 있거든요.nbspnbsp초등학교는 정확하게 실태조사를 해서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 방갈비가 3개 마을만 수자타아카데미로 다니고 나머지는 다 정부학교로 다니도록 유도를 하고요. 까나홀 사람들은 교육열이 높아서 정부학교에 덜 만족하잖아요. 앞으로 수자타아카데미를 고급학교로 만들려면 학교 운영 상 까나홀 아이들은 입학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선생님도 까나홀 사람들이 가장 많으니까요.nbspnbsp유치원 교육을 강화해서 여기 유치원을 나온 천민 아이들이 양민 학교로 올라가서 공부를 잘하도록 해버리면 차별을 덜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천민 아이들이 양민 아이들보다 성적이 훨씬 떨어지니까 선생님도 박대하고 친구들에게도 외면당하고 부모도 지원을 안해주니까 아이들이 기를 못펴서 학교를 안 가버리는 것이거든요. 학교가 재미가 없으니까요. 우리도 학교 다닐 때 생각해보면 공부 못하면 학교가 재미없잖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유치원 교육을 강화해서 천민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서 공부를 잘해서 빨리 자리를 잡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nbspnbsp중학교는 3개 정도로 나누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첫째는 직업학교입니다. 실제로 생활에 필요한 어학이라든지 기술이라든지 사무행정이나 노동을 배우도록 처음부터 학부모와 이야기해서 취직시켜주겠다고 약속하고 잘 다니도록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둘째는 예술체육학교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재능을 발굴해서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약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고급학교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영어나 외국어를 강화시키고 수업도 많이 시키고요. 너무 많이 뽑지 말고 한 학년에 한 반 정도만 운영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직업학교는 여자 아이들은 중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사무직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고, 남자 아이들은 공고처럼 조금 더 기술을 익혀서 전문 기술자가 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결혼을 해버리면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에 여기 시스템상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유치원 때부터 재능있는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정부학교 아닌 바로 수자타아카데미로 다니도록 배치를 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럴려면 수자타아카데미가 사립학교 인가를 받아야 합니다.nbspnbspnbsp그 다음 단계로는 10학년까지 인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 단계로는 인터 칼리지까지 인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 단계로는 수자타 칼리지까지 가야 합니다. 칼리지로 가게 되면 불교학과, 간호학과, 사회복지학과, 마을개발학과 등을 만들 수 있습니다. 농업기술이나 토목건축 정도는 기술학교 단계에서 가르칠 수도 있고요. 나이가 더 어릴 때 가르치는 것이 습득도 더 빠르거든요. 이것을 목표로 한 단계 한 단계로 쌓아 올려가자는 것입니다.nbspnbsp그리고 만약 고급학교를 만들어 수업료를 받게 된다면 이 동네 아이들은 다 장학금으로 처리해서 다닐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장학금을 지급하게 되면 한국에서 장학재단을 만들어서 지원하기가 오히려 쉬워요. 무상 교육을 하기 때문에 특정한 아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면 교육상 좋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일대일 지원은 일체 안 받아 왔거든요. 이렇게 바뀌면 장학금 지원을 해도 괜찮습니다.nbspnbsp마을개발은 제일 먼저 해야할 것이 인구 센서스 조사입니다. 인구 센서스 조사에 기초해서 연령별로 면담을 하고 그에 따른 마을별 조직을 만들어서 그릇계중, 주택개량, 소 키우는 것, 이에 따른 우유 생산, 마을금고, 공동구매, 이에 따른 창고 건립을 해나가야 합니다. 수요조사를 해서 몇 집당 한 개씩 핸드펌프를 팔지, 도로를 어디로 어떻게 낼지, 등 마을 설계를 계속 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롤러, 트랙터, 포크레인 3개는 꼭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마음 주민들과 쉬람단을 해서 도로 정비를 우리가 할 수 있거든요.nbspnbsp또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 축구장도 만들고, JTS배 쟁탈전 경기를 열고, 또 실력이 쌓이면 가야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해서 상금도 받고 해서 어쨌든 이 동네가 가야에서는 중심이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초파일 행사처럼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우리 동네의 문화예술단이 보드가야에 가서 공연을 해준다든지, 아니면 가야에 있는 공연장을 대여해서 공연을 해도 좋겠어요.nbspnbspnbsp우선 주택 조합을 만들어서 주택을 어떻게 전체적으로 개량할 것인지, 그 다음에 도로를 내고 하수도 개선하고 핸드펌프를 파서 식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지, 그리고 제일 큰 일이 협동조합입니다. 협동조합 안에는 공동판매 파트, 공동 구매 파트가 있는데, 소의 경우에는 공동 판매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우유를 생산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우유를 집산해서 가야로 판매를 하려면 도로도 빠리 정비가 되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JTS 딱지가 붙으면 품질 보증이 되어야 합니다. 우유에 물을 타지 않도록 수분 측정을 해서 품질이 보장되도록 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우유 공장을 세워서 여기서 생산된 것을 가야시까지 배달해 주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공동구매는 시멘트와 벽돌, 철근 같은 경우는 우리가 대량으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해주면 좋습니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잘 내면 주민들에게 이익이 많이 돌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을 금고의 경우에는 마을별 조직을 만들어서 처음에는 신용을 검토해서 괜찮은 사람만 들어오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확대해 가면 됩니다. 이것은 구호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자기들이 노력해서 생산하도록 하되 대신에 사적 이익으로 가지 않고 협동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끊임없는 조합원 교육과 연수가 필요합니다.nbspnbsp요즘처럼 홀리가 끝나면 마을 축제를 열어준다든지, 체육대회는 언제 연다든지, 크리켓 대회는 언제 한다, 문과공연대회는 언제 한다 하는 계획이 나와야 하고 또 기술 겨루기 대회도 해야 합니다. 벽돌 빨리 쌓기, 의자 빨리 만들기, 재봉틀로 옷 빨리 만들기 등 기술자들이 모여서 경연 대회를 한다든가, 일반 노동자들은 벽돌 빨리 나르기 같은 것을 하고 시상을 해주면서 주민들에게 기쁨을 줘야 합니다. 그리고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수질조사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nbspnbsp20년 전에는 이런 아이디어들을 도저히 시도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글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전부 무지몽매한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마을에 다녀보니까 벌써 수자타아카데미를 다닌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거든요.”nbsp스님께서는 2시간이 넘게 그동안 고민해오시던 것과 오늘 마을 방문을 하시면서 들었던 소감을 들려주셨습니다. 많은 과제들이 도출되어서 앞으로 마을 방문을 더 진행하다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더 추가되고 부족한 계획들은 더욱 보완이 되어갈 것 같습니다.nbspnbspnbsp사업논의 회의를 마치고 나서는 스텝들과 함께 내일과 모레 마을 방문 일정을 어떻게 가질지 회의를 하셨습니다. 특히 모레 까나홀과 바가히, 가왈비가, 자르하리는 집들이 빼곡이 밀집해 있어서 이동 동선을 어떻게 가질지 많은 연구가 필요한데, 스님께서는 아이패드로 구글지도를 보시면서 이동 동선을 많이 고민하셨습니다. 밤10시가 넘어서 회의를 마친 후 스님께서는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자드비가, 안투비가, 아마르푸르, 산티나가르 4개 마을의 총 343가구를 직접 방문하셔서 새해 인사와 쌀 배분을 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03.10. 31,859 읽음 댓글 10개

2015.3.8 인도 6일째 인도인활동가 라즈길 소풍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인도인 활동가 30명과 함께 라즈길로 소풍을 다녀오셨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수자타아카데미를 운영하기 위해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서 수고한 인도인 활동가들을 격려해주기 위해 스님께서 어느 곳으로 소풍을 갈지 고민을 많이 하셨는데,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라즈길로 향했습니다.nbspnbsp먼 길을 떠나기 위해 평소보다 이른 새벽3시30분에 기상하여 새벽 예불 및 108배와 명상을 마친 스님 일행은 5시부터 소풍 갈 채비를 마치고 인도인 활동가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nbsp그런데 버스를 대여한 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어제밤 운전기사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출근을 안했다”고 하면서 “다른 기사를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가 계속 도착하지 않아 여러차례 전화를 했지만 “다 왔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였습니다. ‘인도란 이런 곳이구나’ 다시한번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학교에 도착한 인도인 활동가들은 전정각사 법당에서 스님께 새해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세배를 한 인도인 활동가들에게 새해 덕담과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나마스떼 새해에는 다들 건강하시고, 원하는 일이 잘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홀리는 잘 보냈어요? nbspnbsp그런데 왜 옷에 물감이 안 묻었어요? 얼굴에도 물감이 안 묻었네요. nbsp왜 여러분들만 맛있는 것 먹고 스님한테는 왜 좀 안줘요? nbspnbsp오늘은 원래 6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기사가 술을 먹고 뻗어서 버스가 늦게 온데요. 홀리 기간이니까 여러분들이 좀 이해를 하세요.”nbsp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 세배돈을 주자 모두들 하하호호 웃음을 띠었습니다.nbspnbspnbsp결국 약속한 시간 보다 2시간이나 늦은 8시에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늦게 도착한 버스는 우리가 주문한 50인승 버스가 아니라 작고 낡은 30인승 버스였습니다. 일정이 늦어져서 버스를 되돌려 보낼 수도 없어서 한국인 활동가들 중에 최소한의 스텝 인력만 함께 타고 나머지는 수자타아카데미에 그냥 남기로 했습니다. 새로 오신 행자님들은 소풍 간다고 새벽부터 준비했는데 많이 아쉬워 했습니다.nbspnbspnbsp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덜컹 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부처님이 가셨다는 길을 따라 라즈길로 향합니다.nbspnbspnbsp인도인 활동가들은 벌써부터 신이 났는지 스피커에 인도 음악을 크게 틀고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혹시나 스님 때문에 눈치를 볼 것을 염려하셨는지 “오늘은 신나게 노세요” 라고 하시면서 분위기를 가볍게 해주셨습니다.nbspnbsp버스가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스님께서는 일정을 조정하셨습니다. 영축산 가는 일정과 기리악의 호수까지 걸어가서 배를 타보는 일정은 취소하고 곧바로 제띠안으로 가서 공터에서 크리켓을 하면서 놀고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이패드로 구글 지도를 보시면서 혹시나 운전 기사가 길을 잘못 들까봐 계속 점검을 하시면서 가셨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인도인 교사 중에 한 명이 둥게스와리가 아닌 처갓집이 있는 와질락에서 버스에 탑승하기로 해서 길을 조금 돌아가게 되었고, 또 원래 나 있는 도로가 아닌 지름길로 가로질러 가다가 도로 사정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나빠서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출발도 이미 2시간 늦은 상황이라 스님께서는 시간이 계속 늦어지고 있는 상황을 인도인 활동가들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인도인 활동가들은 “No Problem” 하며 웃었습니다. nbspnbspnbspnbsp그리고 “작년에 탔던 덜컹거리는 버스에 비하면 오늘이 훨씬 좋다”고 하며 즐거워 했습니다. 일정이 자꾸 늦어셔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늘 둥게스와리에서만 지내고 바깥으로 나가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이들에게는 오늘처럼 이렇게 외부로 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큰 즐거움이겠구나 싶었습니다. nbspnbsp드디어 오전10시30분이 되어서 제띠안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저께 자전거 타고 왔을 때도 10시30분에 여기 도착했는데 오늘은 버스 타고 왔는데도 비슷하네”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우루벨라 가섭 등 1000명의 제자들과 라즈길로 왔을 때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영접했다고 하는 곳이 ‘제띠안’입니다. 제띠안에는 큰 공터가 있어서 여기에 짐을 풀고 운동도 하고 점심도 먹고 가기로 했습니다.nbspnbsp인도인 활동가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크리켓 기구들과 축구공을 들고 공터로 뛰어갔습니다. 스님께서도 인도인 활동가들과 함께 크리켓과 축구를 하며 함께 어울리셨습니다. nbspnbspnbsp▲ 인도인 활동가들과 함께 크리켓을 하고 있는 스님nbspnbsp인도인 활동가들은 스님께서 안타를 치자 모두들 환호를 지르며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축구공도 스님께 계속 패스를 했는데 스님께서 공을 뻥 차자 박수를 치기도 했습니다.nbspnbsp▲ 축구nbspnbsp이렇게 잠깐 인도인 활동가들과 어울리신 스님께서는 자기들끼리 더욱더 마음껏 놀 수 있게 자리를 비키셨습니다. 그리고 나무 그늘 아래에 앉으셔서 크리켓 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누가 크리켓을 잘하는지, 크리켓의 규칙은 어떻게 되는지, 둥게스와리 마을에서는 어떻게 선수 선발을 해서 가야시 전체의 크리켓 대회에 참여하는지, 크리켓할 때 보통 팀은 어떻게 구성하는지 등에 대해 물어보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주니어팀과 시니어팀으로 팀을 나누어서 경기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니어팀은 대학을 다니고 있는 교사들이고, 시니어팀은 대학을 졸업한 교사들이라고 합니다.nbspnbsp남자들이 크리켓을 하고 있는 동안 한국인 활동가들은 인도식 라면과 한국식 라면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라면은 불으면 안되기 때문에 라면이 다 끓여지자 크리켓을 하고 있는 남자들을 급히 다 불렀습니다. 허겁지겁 땀을 흘리며 달려온 남자들은 후후 입김을 불어가며 맛있게 라면을 먹었습니다.nbspnbspnbsp먼저 인도식 라면을 먹었습니다. 인도식 라면은 카레 가루를 섞은 국물이 전혀 없는 비빔면입니다. 양이 적었는지 다들 아쉬워하는 눈치여서 다시 한국 라면을 가득 끓였습니다.nbspnbsp▲ 인도식 라면을 먹는 모습nbsp▲ 한국식 라면을 먹는 모습nbsp인도식 라면과 한국식 라면을 다 먹어본 인도인 활동가들에게 “어느 나라 라면이 더 맛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모두들 “인도 라면이 더 맛있어요” 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한국 라면은 매운 맛이 강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어제 남은 찬밥까지 챙겨와서 라면 국물에 찬밥까지 말아 먹고 나니 다들 배가 두둑해졌는지 모두들 만족스러운 표정입니다.nbspnbsp일찍 식사를 마친 스님께서는 주위를 살펴보시더니 “설거지할 물이 없네” 하시면서 직접 개울가로 가셔서 설거지물을 뜨시러 가셨습니다. 스님께서 한국에서는 늘 대중들을 위해 법문을 통해 깨우쳐주는 역할을 하시는데, 이곳 인도에서는 직접 몸으로 하시는 일이 많으십니다.nbspnbsp▲ 개울가에서 설거지물을 떠 오시는 스님nbsp점심을 먹고 나서 스님께서 “누가 이겼어요?” 물어보셨습니다. 그러자 “오전에는 한팀만 공격을 했어요. 오후에 다른 팀이 공격을 한번 더 해야 해요” 라고 해서 오후에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스님께서는 나무 그늘 아래 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하셨는데, 나무 아래 바위는 찬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햇볕으로 나오기만 하면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나무 그늘이 인도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제띠안을 뒤로 하고 크리켓을 하고 있는 인도인 활동가들nbsp크리켓은 투수가 공을 던져서 나무 막대기를 맞추면 타자가 아웃이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타자가 투수가 던진 공을 저 멀리 쳐내는 경기 방식입니다. 열 번을 아웃 시켜야 경기가 끝나서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다행히 예상보다 빨리 경기가 끝났습니다.nbspnbsp스님께서 다시 “누가 이겼어요?” 라고 물어보자 “주니어팀이 이겼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스님께서 시니어팀을 향해 “너희들은 벌써 늙어서 힘이 밀리나봐” 라고 하자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 nbspnbsp이렇게 한바탕 땀을 흘리며 어울리는 시간을 가진 뒤에는 왕사성 북문 밖 나란다 대학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실라오’라는 마을의 시장으로 갔습니다. 시장에 차를 멈추고 스님께서는 1인당 100루피씩 주시고는 “맛있는 ‘카자’ 한봉지씩 사서 집에 선물로 가져다 드리세요” 라고 하셨습니다. 인도인 활동가들은 각자 시장에 있는 여러 가게들로 흩어져서 ‘카자’ 한봉지씩을 샀습니다. 1kg에 70루피를 주고 산 사람도 있고 90루피를 주고 산 사람도 있고 다양했습니다. nbspnbspnbsp▲ 인도인들이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인 ‘카자’nbsp▲ ‘카자’를 구입하고 있는 인도인 활동가들nbsp다들 집으로 가져갈 카자 한봉지씩을 한아름 들고 버스에 다시 올라탔습니다. 목이 마른 사람들이 많다고 하자 스님께서는 사이다와 애플주스도 한병씩 사주셨습니다. 한손으로는 서비스로 더 받은 ‘카자’를 먹고, 다른 한손으로는 사이다를 마시며 흥겨운 인도 음악을 들으며, 버스는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기리악’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기리악’은 왕사성의 동문 끝에 위치한 수투파 유적지가 있는 곳입니다. 오늘 스님 일행은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영접했다고 하는 왕사성의 서문 쪽에 위치한 제띠안으로 들어와서 왕사성의 북문으로 나가서 ‘카자’를 산 다음에 다시 들어와서 그 중앙을 관통하는 산길을 넘어와서 왕사성의 동문 끝에 이른 곳입니다. 동문 끝에는 성벽의 흔적과 더불어 부처님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수투파가 산꼭대기에 세워져 있었습니다.nbspnbsp산 아래에 버스를 주차하고 한참 동안 계단을 올라가니 이 지역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멋진 풍경이 펼쳐졌습니다.nbspnbsp nbspnbsp▲ ‘기리악’에 있는 스투파를 참배하러 올라가는 길nbsp산 중턱에는 성벽을 쌓은 흔적이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성벽을 가리키면서 “산 봉우리가 높은 곳에는 성벽을 낮게 쌓아도 되지만 저렇게 계곡처럼 움푹 들어간 곳은 지대가 낮아서 성벽을 높게 쌓아야 한다” 고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왕사성 동쪽편 끝에 쌓아진 성벽의 흔적nbsp산 꼭대기에 오르니 큰 수투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수투파에는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작년에 왔을 때는 도굴을 해갔는지 파헤쳐져 있었는데 제법 보수를 많이 해놓았네” 하셨습니다.nbspnbsp▲ 기리악에 세워진 수투파nbspnbsp수투파 참배를 마치고 나서는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나마스떼” 라고 하면서 활짝 웃었습니다.nbspnbspnbsp단체사진을 찍고 나서 스님께서는 이곳 기리악의 수투파가 왕사성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땅에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왕사성에 있는 산 줄기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여기가 제띠안이고요. 여기가 북문입니다. 여기가 남문이예요. 여기가 서문이예요. 여기가 영축산이예요.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어요. 성벽은 이렇게 둘러져 있어요. 이것을 외성이라고 해요. 이 안에 내성이 있어요. 내성에 왕이 살았어요.nbspnbspnbsp나중에 빔비사라왕이 죽고 아자타사투왕 때는 북문 밖 여기에 성을 새로 쌓았어요. 이것을 ‘신왕사성’이라고 해요. 이렇게 성 주위를 산이 빙 둘러싸고 있어서 천연의 요새입니다. 왕사성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적을 방어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어요.nbspnbsp가야는 이쪽에 있어요. 죽림정사는 북문 밖에 있어요. 부처님은 제띠안이 있는 서문 쪽으로 들어오셨어요. 제띠안이 있는 산 뒤쪽으로 올라가면 꼭대기에 부처님이 계셨다는 동굴이 있어요. 그리고 영축산에서도 부처님이 계셨어요. 그리고 동문 쪽에도 동굴이 있는데 부처님은 거기서도 계셨어요. 그리고 여기도 부처님이 계셨어요. 그래서 수투파가 지금 세워져 있는 거예요. nbspnbsp그래서 다음에 시간을 내어서 이 왕사성의 외성 성벽을 따라서 이렇게 주욱 돌아봅시다. 그리고 가야에서 왕사성까지 자전거를 타고 와 봅시다. 이틀을 시간 내어서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왕사성까지 오고, 하루는 성벽을 따라서 한바퀴 돌고요.”nbsp스님께서 왕사성의 성벽을 따라서 하룻동안 걷자고 하자 다들 “와우” 하면서 웃었습니다. 힘들 것이라는 뜻인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뜻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다들 웃었습니다.nbsp그리고 수투파에서 조금 더 올라가 제일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니 저 멀리 큰 호수가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호수를 가리키시면서 버스가 늦게 오는 바람에 가지 못했던 원래 계획이 되어 있었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원래는 영축산에서 저기 호수로 걸어와서 배를 탈려고 했어요. 호수 왼쪽에 있는 바위산 밑에 부처님이 계셨다는 동굴이 있어요. 동굴도 보고 배도 타보고 하려고 했는데, 버스가 늦게 와서 저기에 못 갔어요. 다음에 와서는 배를 꼭 태워줄게요.nbspnbspnbsp그리고 댐이 여기 막혀 있는데 그것이 왕사성의 동문이예요. 성벽은 동문에서 시작해서 양쪽 능선이를 따라 주욱 있어요. 시간만 있으면 밑에 내려가보면 더 좋은데 여학생들은 집에 늦게 가면 안되니까 여기서만 보고 그냥 내려갈게요.” nbspnbsp호수에서 배를 탈려고 했었다고 하자 다들 ‘아하’ 하면서 탄성을 내었는데, 해가 벌써 지고 있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nbspnbsp산을 내려오니 또한번 버스 운전수가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모두 산에서 내려왔지만 버스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나타나지 않아서 전화를 해보니 “타이어를 갈려고 이동했다”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할 수 없이 타이어를 갈고 있는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강을 건너 걸었습니다. 한 30분 정도를 걸어서 기리악 시내를 관통하고 나서야 버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버스 때문에 이리저리 고생을 많이 하는 하루입니다.nbspnbspnbsp다시 버스에 탑승해 신나는 인도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둥게스와리로 향했습니다. 창 밖에는 붉은 태양이 뉘엿뉘엿 땅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해가 지자 스님께서는 여학생들이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것을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산 넘어 마을인 까나홀, 바가히, 가왈비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둥게스와리로 들어가기 전에 ‘부순다’라는 마을에 모두 내려 오토릭샤를 잡아 주셔서 오토릭샤를 타고 안전하게 집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nbspnbsp▲ 오토릭샤를 잡아주고 있는 쁘리앙카nbsp4시50분에 기리악을 출발한 버스는 해가 다 지고 껌껌한 저녁 7시가 되어서 둥게스와리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한국인 스텝들은 버스에서 짐을 모두 내리고 인도인 활동가들이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배웅하고 난 뒤 학교 안으로 들어왔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저녁 일정은 따로 갖지 않으시고 한국에서 온 이메일과 원고들을 점검하시며 업무를 보신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방갈비가, 만코시힐, 라훌나가르, 소라즈비가 4개 마을 총 316가구를 직접 방문하시면서 쌀 10kg씩을 나눠주고 새해 인사를 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03.09. 45,668 읽음 댓글 21개

2015.3.2~3 인도 1일째 한국인 활동가 법회

▲ 인도JTS 한국인 활동가 법회nbspnbsp안녕하세요. 3월2일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한 스님께서는 3월3일 인도 가야에 도착하셔서 둥게스와리 마을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가셨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한지 1일째인 오늘, 스님께서는 이곳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인 활동가들을 위해 법회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2일 오전7시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 참석하셔서 김명혁 목사님, 김대선 교무님, 김홍진 신부님, 박경조 주교님, 박남수 교령님과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 문제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시고 종교인 모임의 역할에 대해 의논하셨습니다. 이어서 오전10시에는 윤여준 전 원장님과 교육원 운영에 대해서, 12시에는 기획위원회 회의를 오후4시까지 연달아 가지셨고, 오후4시에는 비자 발급 업무로 한국에 잠깐 귀국한 필리핀JTS 김희자님이 스님께 인사를 하러 찾아와서 지난주에 파견된 행자님들이 잘 도착했는지 안부를 물으시고 격려도 해주셨습니다.nbspnbsp이어서 오후4시30분에는 김명혁 목사님이 회장으로 계신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 오는 13일에 nbsp‘3.1정신을 이어받아 남북한의 평화통일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종교인의 사명과 역할’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는데 스님께서 인도에 방문하셔서 참석하지 못하는 관계로 대신 발표 내용에 대해 영상 촬영을 하셨습니다.nbspnbsp오후5시30분에는 지난 일주일 동안 전국으로 정초법회를 연이어 다니시느라 목을 많이 무리하셔서 이비인후과에 들러 진료를 받으셨습니다.nbspnbsp오후6시에는 인도로 출국하시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셨습니다. 인도JTS 활동가들에게 전해줄 짐을 수하물로 다 부치고 나니 시간 여유가 생겨 스님의 하루 원고 교정을 보시다가 오후9시20분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셨습니다.nbspnbsp5시간 55분을 비행한 후 현지 시간으로 3일 새벽1시20분에 방콕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밤이 깊어서 그런지 늘 인파로 북적이던 방콕공항이 너무나 한산했습니다. 가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려면 12시간을 공항에서 더 기다려야 해서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공항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공항이야 말로 최고의 호텔이지” 하시며 의자에 몸을 눕히신 채 그대로 잠을 청하셨습니다.nbspnbsp▲ 방콕 공항nbsp의자 위에서 단잠을 자다가 갑자기 주위에 사람들 목소리가 웅성거려 일어나 보니 아침 해가 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시계를 보시더니 “늘 시간에 쫓기는데 비행기 시간이 이러니까 시간이 남아도는 일도 생기네”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왜 이렇게 공항에서 잠을 자보냐면 내년부터는 주로 이 비행기로 인도성지순례를 갈거거든. 내가 직접 여기서 자봐야 어떤 문제점이 생기는지 파악할 수 있지” 하시며 공항에서 잠을 청하신 이유를 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의자에서 자보니까 좀 불편하네. 은박지를 가져와야 바닥에서 편안하게 잘 수 있겠다” 하시며 공항 이곳저곳을 둘러보시고 대중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불편함이 없을지를 연구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법문하실 때 대중들을 인솔하는 지도자는 사전답사를 꼼꼼히 해야함을 자주 말씀 하셨는데, 스님께서 보여주시는 모습도 말씀 그대로였습니다.nbspnbsp12시간 동안의 공항 체류를 끝내고 다시 비행기에 탑승해 12시40분에 방콕을 출발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늘 저가항공을 타고 다니시는데 이번 가야행 비행기 탑승석은 맨 끝좌석이여서 의자가 젖혀지지가 않고, 앞좌석과의 간격이 너무 좁아서 다리를 온전히 펼 수가 없었습니다. 접이식 책상을 펴고 서류를 얹으니 이마가 앞좌석에 닿았습니다. 이 자세로 어떻게 3시간20분 동안이나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스님께서는 무릎을 앞좌석 밑으로 넣으신 채 단잠을 주무셨습니다.nbsp▲ 방콕에서 가야로 가는 비행기 안nbsp오후2시30분에 가야 공항에 도착해 수하물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인도JTS 활동가 최동호님, 김신아님과 방금 전 델리에서 가야 공향에 도착한 보광 법사님, 쁘리앙카님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스님께 합장하며 인사를 드린 후 승합차 2대에 나눠타고 수자타아카데미로 향했습니다.nbspnbsp▲ 가야 공항nbsp전정각산이 보이고 둥게스와리 마을 입구에서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가는데, 대부분의 길이 도로 포장을 하기 위해 길이 넓혀져 있었고 어떤 구간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곳도 있었습니다. “둥게스와리에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가 생기다니..” 하며 놀라워 하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이렇게 되면 앞으로 관광객은 점점 더 많아지고 또 구걸하는 사람은 더 많이 몰려오지” 하시며 걱정을 내비치셨습니다.nbspnbsp▲ 둥게스와리 마을 입구에 드러선 아스팔트 도로nbsp아니나 다를까 최근 인도 정부에서는 전정각산을 관광지로 개발하려고 수자타아카데미 바로 옆에 큰 건물과 공원을 지을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해서 보니 벌써 담벼락 앞에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가 이미 진행 중에 있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담벼락을 경계로 건물을 짓기 위해 기초 공사가 진행 중인 모습nbsp스님께 “앞으로 둥게스와리에 호텔이 생길 수도 있겠네요” 라고 물어보니 스님께서도 “그렇지” 라고 하셨습니다. 개발의 물결이 들이닥치면 앞으로 둥게스와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많은 걱정이 되었고, 또 이에 따라서 인도JTS의 사업은 어떻게 변해나가야 하는지 염려가 되었습니다. nbspnbsp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한 스님 일행은 간단히 짐정리를 한 후 오후4시에 모두 법당에 모여 서로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께서 불상을 향해 삼배를 올리셨고, 이어서 활동가들 모두가 스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아픈 사람은 없어요?” 라고 안부를 물으셨고, 활동가들 모두 “없습니다” 라며 우렁차게 대답했습니다.nbspnbsp▲ 서로 맞절을 하는 기존 활동가들과 새로 파견 온 활동가들nbsp이어서 기존 활동가들과 이번에 새로 파견된 행자대학원 9기 행자님들과 보광 법사님, 쁘리앙카님이 서로 맞절을 했습니다.nbspnbsp▲ 인도에서 1년간 파견 근무를 하게 된 행자대학원 9기 정유진, 김미정, 김민경, 박영민, 강명희, 신애남 행자님, 그리고 인도 사업 책임자로 파견을 온 보광 법사님과 쁘리앙카님nbspnbsp▲ 현재 인도JTS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신아님, 마을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최동호님, 시설을 맡고 있는 주연우님, 지이바카 병원 담당자 박종화님, 학교와 유치원을 담당하고 있는 권도영님, 회계와 총무를 맡고 있는 신예슬님nbspnbspnbsp그리고 인도인 교사들이 와서 스님께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는 다들 잘 지냈는지 안부를 물으신 후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쁘리앙카님이 이번에 같이 왔다”고 소개하자 인도인 교사들은 축하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새로 파견된 활동가들도 인도인 교사들에게 각자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새로 파견온 한국인 활동가들과 인도인 교사들은 서로 맞절을 하며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 서로 맞절을 하고 있는 새로 파견을 온 한국인 활동가들과 인도인 교사들nbsp또 인도인 교사들은 모두 어릴 때 쁘리앙카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인데 8년 만에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온 쁘리앙카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 8년 만에 돌아온 쁘리앙카님에게 삼배를 올리는 인도인 교사들nbsp이렇게 기존 활동가들, 새로 파견 온 활동가들, 인도인 교사들 모두는 설레이기도 하고 조금은 어색하기도 한 첫대면식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더 자세한 소개는 수련을 같이 하면서 나누자고 하시며 짧게 대면식을 마쳤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주로 머무시는 이번 3월까지는 이곳 소승불교의 계율에 따라 오후 불식을 하시기로 하셔서 활동가들이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스님께서는 학교 주위를 산책하시며 공간 사용에 대한 점검을 하셨습니다.nbspnbsp오후6시45분부터는 한국인 활동가들을 위해 스님께서 법회를 해주셨습니다. 활동가들이 삼귀의, 반야심경, 청법가, 삼배로 스님께 법을 청하자 스님께서는 정토회의 설립 취지에서부터 시작해서 인도에 파견 온 활동가들은 어떤 마음 자세로 지내야 하는지, 스님께서 머무시는 이번 20일 동안 어떤 것을 주안점으로 살펴봐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nbspnbspnbsp“부처님께서 6년 간 수행하신 이곳 전정각산 아래 전정각사에서 인도 달력으로 새해를 맞을 즈음에 이렇게 다시 만나 이야기할 수 있어 참 좋네요. 제가 인도에 많이 다녔지만 인도의 설날에 있어본 것은 처음인 것 같네요.nbspnbsp오늘은 한국에서 9기 행대생 중에 6명이 1년 동안 봉사하려고 왔고, 쁘리앙카 시스터가 인도를 떠난지 8년 만에 다시 인도로 돌아왔습니다. 또 장도연 행자님이 3월1일날 법사 수계를 받고 보광 법사님이라는 법호를 받아서 인도로 파견 왔습니다. 또 김신아님은 여기서 8년 동안 근무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고, 최동호님은 올해로 4년째 일하고 있고, 주연우님은 3년째 일하고 있고, 권도영님은 1년 6개월째 일하고 있고, 박종화님은 1년 5개월째 일하고 있고, 신예슬님은 6개월이 되었네요. 이렇게 해서 오늘 우리가 만났습니다.nbspnbspnbsp정토회가 설립되고 27년이 지났고 우리가 만일결사를 시작한지도 22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어떤 법문을 하더라도 늘 한결같이 ‘우리는 수행자로써 봉사도 하고 사회활동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학교를 짓고 병원을 세우고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수행자여야 합니다. 수행자는 첫째, 자기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는 것에 가장 큰 비중을 두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자기가 감당을 못합니다. 그래서 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잖아요. 사람이든 신이든 자기 밖의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요. 돈 좀 많이 있는 사람과 만나서 혜택을 좀 볼까, 성격 좋은 사람 만나서 위로를 좀 받을까 그러는데 이것은 자기가 자기 인생을 못산다는 얘기예요. 저 산에 있는 토끼나 노루도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데 사람이 되어서 자기가 자기 인생도 못 살고 늘 누구에게 의지해서 껄떡거리며 살아요.nbspnbsp그러니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입니다. 수행은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남탓하거나 의지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nbspnbsp두 번째는 세상 사람들이 다 도와달라고 아우성이니까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든, 물질적으로 도움이 되든,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든, 아픈 환자를 치료해주든,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숟가락을 주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하나 주든,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주든 남한테 도움을 주는 자가 되자는 것입니다.nbspnbsp그러니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첫째 내 인생은 내가 산다는 것을 기본에 깔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못 먹는 사람들에게 밥도 좀 주고, 옷 없는 사람들에게 옷도 좀 주고, 아픈 사람 치료도 해주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공부 좀 하도록 해주자 이런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하면서 괴로워 죽겠다고 하면 수행자라는 기본 바탕이 무너진 것입니다. 기초는 수행으로 쌓고 그 위에 봉사의 탑을 하나씩 쌓자 했는데 탑을 쌓기는커녕 지반이 무너진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파견을 오든 어떤 경우에도 항상 수행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계속 얘기하지만 소귀에 경읽기입니다.nbspnbspnbsp남을 돕는 것은 플러스 알파에 해당하기 때문에 역량이 되면 하고 역량이 못되면 못하는 겁니다. 최선을 다하되 역량이 되는 만큼 하는 것이지 역량이 안되면서 더 많은 일을 하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을 내는 것은 수행이 아니예요. 그러면 괴로워집니다. 내 능력은 다섯명 밖에 못 돕는데 어려운 사람이 열명이나 있다고 하면서 밤잠 못자고 울고 있으면 일반 세상에서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지 몰라도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수행이 안된 사람입니다. 수행자는 다섯명 밖에 도울 능력이 없으면 다섯명을 돕고, 앞으로 다섯명을 더 도와야 한다면 어떻게 더 도울 수 있는지 연구를 해서 능력을 키우는 사람입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우는 사람이 수행자가 아닙니다.nbspnbsp우리는 수행자로써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항상 자기를 돌이켜서 자유와 행복으로 나아가도록 끊임없이 살피고, 그 다음에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도록 재정적인 보시를 하든, 재능을 가지고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발우공양을 하거나 절을 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고 수행자들이 모여서 수행을 하면서 그 다음에 봉사를 해나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곳에 온 것은 봉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니고 수행을 하러 와 있다는 것을 명심하셨으면 합니다. 더군다나 이 곳은 부처님이 깨닫기 전에 수행하신 곳이고, 부처님이 깨달은 곳이고, 부처님이 깨닫고 교화하신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수행상, 성도상, 설법상 이렇게 삼존불을 모신 것이예요.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안 전정각사에 모셔진 삼존불nbsp그러므로 이곳은 수행도량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곳은 수행자로써 수행을 하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기만 하면 되는데, 이곳은 그 일도 하면서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수행의 길을 열어주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즉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할 사람을 안내하는 역할까지 앞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곳은 그런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 법인을 두 개를 설립했습니다. 하나는 어려운 주민을 돕는 인도JTS이고, 다른 하나는 수행자의 길을 열어주는 인도정토회입니다.nbspnbsp이제는 여기도 문경공동체 살이와 똑같이 수행도량으로 가꾸어가야 합니다. 낮에는 밖으로 나가서 병원과 학교 운영, 마을개발을 하고, 저녁에는 돌아와서 정진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을개발이든 학교든 병원이든 운영한다고 하면서 괴롭다고 껄떡거리고 울면 수행자가 안된 것입니다. 수행한답시고 여기 앉아서 절만 하고 책이나 보고 있고, 마을 주민들이 아파서 죽는다고 해도 그런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핸드펀프가 고장난지 한달이 넘었는데도 모르고 있으면 이것은 보디사트바가 아닙니다. 대중에 대한 아무런 연민이 없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내내 그런 일들만 하러 다니고, 자기를 돌아보는 것도 없고, 힘들다고 울고, 말 안듣는다고 인도 사람들에게 화내면 이것은 수행자가 아닙니다. 여기 온 목적은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것인가 늘 연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는 나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늘 보면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일과 수행의 통일입니다. 이런 과제를 안고 정진을 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이번에 3주 동안 머물면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고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본 후에 지금까지 해온 일들 중에서 어떤 일이 정말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당장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그것이 꼭 도움이 된다고는 볼 수 없어요. 미래의 방향은 가난하지만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행복한 사람, 내가 살고 있는 이 마을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 부자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이곳에 와도 그들은 삶이 헐떡 거리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들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 이런 수행자의 지향에 맞는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예요. 마을개발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성장 속도에 뒤쫓아가는 그런 마을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아이들 공부시켜서 대학에 보내 돈에 껄떡거리며 살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수행자이잖아요. 우리는 그런 것이 다 주어졌지만 다 버리고 여기 와서 있는데, 그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뭐가 그리 좋다고 우리가 버리고 온 것을 다시 먹으라고 줄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nbspnbsp당장 아픈 사람들이나 굶는 사람들에게는 약을 주고 밥을 줘야 하겠지만, 어떻게 사람들이 수행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서로 협동하고, 가난하지만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런 마을을 만들 것인가? 이런 목표의식을 뚜럿이 갖고 마을을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에 가서 길이 지저분하니 길을 닦자, 집이 부서졌으니 집을 고쳐주자, 아이들 공부시켜서 취직시켜주자, 이렇게 몇 년을 했는데도 잘 안된다고 ‘한 것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수행자적 관점도 확실하지 않고, 그런 관점에서 개발한 어떤 모델도 아직 없다 보니까 늘 서구에서 해왔던 또는 기존 단체들이 해왔던 모습들이 늘 우리에게 모델이 됩니다.nbsp그래서 앞으로 정토회에서는 첫째, 수행적 관점이 잡힌 서원행자 이상은 누구나 이곳에 와서 살 수 있고, 발심행자는 그렇게 살겠다고 약속은 한 사람들이니까 이런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봉사를 하게 할 계획입니다. 두 번째는 일반인들이 와서 봉사를 하겠다고 하면, 이곳에 행자원을 만들어서 행자원에 소속되어서 봉사를 하게 할 계획입니다. 수행자들을 모아서 수행하면서 봉사를 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봉사만 하기 위해서 온다, 이것은 이제 허용이 안됩니다. 이제 여기는 수행도량이니까 하루를 살더라도 수행자로 와서 살면서 봉사를 해야 합니다.nbspnbspnbsp앞으로 이곳은 수행도량이 되는 공동체로 운영합니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수행자적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늘 같이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를 운영하거나 병원을 운영하거나 마을개발을 하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속적인 욕망을 끊임없이 추구하는데 도와주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정말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끊임없이 보장해주는 것이 복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힘든 사람들은 도와주어야 하겠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많은 주민들이 이러한 가치관을 갖도록 여기서 훈련이 되어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물질에 껄떡거리는 주민들을 보고 ‘저건 안된다’ 하면 여러분들은 자비심이 없는 것이고, 불쌍히 여겨서 하자는 대로 자꾸 주기만 하면 여러분들은 JTS 사업의 원칙을 놓친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수행을 해야 중심을 잡아나갈 수 있습니다. nbspnbsp이제 우리는 힘을 합쳐서 첫째, 우리가 수행 정진하고, 두 번째는 학교도 인도 정부 학교가 생기니까 현실을 감안해서 어떤 학교는 하고 어떤 학교는 안할 것인지, 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할 것인지 검토가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 병원도 너무 욕심을 내어서도 안되고 너무 방치해도 안되고 병원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짓고 운영할 것인지, 네 번째, 마을개발도 우리가 지향하는 것들을 마을 주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사업은 어떤 것인지 검토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개발에 대해서는 인도 정부가 우리보다 100배의 힘으로 밀고 들어올 겁니다. 그렇게 개발이 되면 남이 와서 보면 마을이 개발이 되었지만 정작 마을 주민들은 개발업자들의 하인으로 전락되어 그 이익이 주민들에게는 하나도 돌아와 있지 않거든요. 한번 개발이 시작되면 이 흐름을 막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이제 마을에 도로가 들어오고 상가가 들어서고 관광객이 몰려오면 땅값이 오르고 주민들의 민심이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대응하면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공부한 아이들이 마을마다 몇 명씩 배치되어 있으니까요.nbspnbsp그러니 20일 있으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한번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 봅시다. 처음에 이 마을에 와서 발원을 한지 20년이 지났고, 이것을 기초로 해서 다음 20년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계획을 세워 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이 지역의 변화나 인도 경제의 변화를 예측하면서 다음 20년이 지나서 돌아봤을 때 ‘그 때 우리가 준비를 제대로 했었다’ 이렇게 되어야 하거든요. 이번에 방향을 세운 것이 앞으로 20년 계획의 기초가 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nbsp스님께서는 목이 많이 잠기셨음에도 불구하고 2시간 동안 자상하게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수행공동체로 가꾸어나가야 한다는 것, 마을개발을 하더라도 공동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을 할지 등에 대해 조목조목 큰 과제들을 던져 주셔서 관점을 분명하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이번에 새로 법사 수계를 받고 인도JTS 책임자로 파견되어 수행공동체를 가꾸어나가는 일과 JTS 사업을 함께 이끌어줄 보광 법사님에게 공동체 대중들 모두 삼배의 예를 올렸습니다.nbspnbsp▲ 보광 법사님에게 삼배를 예를 올리는 대중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내일 일정에 대해 간단히 의논을 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주위 마을인 두르가푸르의 108가구와 자그디스푸르의 143가구를 모두 다 방문하시면서 주민들의 이야기도 듣고, 생활 모습도 직접 다 둘러보실 예정입니다. 그리고 인도의 새해 명절인 홀리데이를 맞이하여 방문하는 집집마다 쌀 20kg씩을 나눠주고 저녁에는 현지 활동가들과 평가회의를 갖습니다. 내일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2015.03.04. 40,572 읽음 댓글 25개

2015.2.28 서울제주지부 정회원의 날

nbsp nbsp오늘은 정초순회법회 마지막 순서인 서울제주지부 정회원의 날 행사가 서울정토회 서초법당에서 있었습니다. nbspnbspnbsp 오전 10시와 저녁 7시에는 서울제주지부 주간부와 저녁부 정회원을 대상으로, 낮 2시에는 전국의 청년 정회원을 대상으로 열렸습니다. 서울제주지부 내 7개 정토회와 산하 15개의 법당의 정회원들이 함께 했는데요. 서울제주지부에는 정회원이 총 551명이 있고 정토회별로는 서울 299명, 서대문 62명, 노원 64명, 양천 51명, 성동 35명, 송파 37명, 제주 3명이 있습니다. 오전 10시 법회에는 주간부 157명이, 오후 2시 법회에는 전국의 청년들 40명이, 저녁 7시 법회에는 저녁부 80명의 정회원이 참석하여 법륜스님을 친견하여 정토행자로서의 삶의 방향을 단단히 잡아가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오늘의 주요 프로그램은 각 정토회별로 참가한 정회원의 소개가 있은 후, 스님께서 정회원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궁극적으로 정회원이 추구하는 목표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신 후 정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궁금한 점이나 의문나는 것에 대한 즉문즉설의 시간, 그리고 스님께 새해 세배를 드리고 단체사진촬영을 하면서 마무리 하였습니다. nbsp 먼저 오전 10시 법회에서는 이성미 서울제주지부 사무국장님의 여는 말씀이 있은 후, 정토회별로 정회원 한명 한명이 나와서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규발심행자들의 가슴에는 정회원이 된 것을 축하하는 연분홍꽃이 한송이씩 곱게 달렸습니다. 한두 해 전에 정토회 새내기였던 보살님, 거사님들이 이제 의엿하게 법당의 주인이 되어 불대담당, 활동팀장, 법당지기, 새벽기도 담당, 법회 담당 등의 소임으로 자기 소개를 합니다. 몇글자 소임 뒤에 얼마나 많은 좌충우돌의 시기들이 있었을까 싶으니 한 분 한 분이 모두 부처로 보입니다. nbsp 법륜스님은 연신 빙긋이 웃으며 정토행자들의 소개를 듣고 사전출석부에서 빠진 사람들을 챙기기도 하셨습니다. 이어 서울제주지부의 밝은 미래, 신규 발심행자 88명과 신규 서원행자 6명의 얼굴과 각오 한마디가 담긴 영상을 감상하고, 법륜스님께 법문을 청하여 들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오늘이 ‘정회원의 날’인데 정토회에서 아직 정회원이라는 의미 규정을 한 지가 얼마 되지가 않아 왜 정회원을 따로 모으고 천일결사 모둠을 따로 하는지 의구심들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스님은 우리가 매일 아침에 읽는 정토행자의 서원을 가만히 읊어 주셨습니다. nbsp “지금 우리 인류는 인간성 상실·공동체 붕괴·자연환경 파괴라는 중대한 위기에 처해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 속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nbsp 이 두 문장 안에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 우리가 정토행자가 된 이유, 정토회가 가고자 하는 바가 다 들어 있는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까막눈이가 된 마냥 부끄럽고 화끈거립니다. 스님은 정토회의 설립취지는 부처님의 정법, 즉 초기 근본불교의 모습, 석가모니 부처님의 인격에 근접한 모습을 현대 사회에서 구현해 보자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정회원의 단계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서 정회원의 마지막 단계인 법사에 대해서는 “법사되는 건 능력하고는 특별히 상관이 없습니다. 계율적 결격이 있으면 안되고, 지향이 붓다의 법에 귀의한 것이 아니면 결격사유가 됩니다. 법과 율에 근거해서는 문제가 되지만, 능력이 문제가 있거나 성격이 문제다 하면 고치려고 노력하고 개선이 돼 간다 하면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여러분이 법사가 다 되어야 하니까요. 문턱이 너무 낮아서 ‘법사되서 뭐하노’ 해도 안 되고, 너무 높아서 나는 안되겠다고 지레 포기해도 안 되니까, 적절해야 합니다.” nbsp 스님은 “나의 제자들아, 비굴하지 말고 당당 하라, 교만하지 말고 겸손 하라.” 는 부처님 말씀으로 법문을 마치셨습니다. 정회원의 자세에 대한 스님의 세심한 법문을 듣다보니 어느새 훌쩍 두 시간이 다 지났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즉문즉설은 세분께만 받았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영상을 보며 너무 가슴이 아파 성지 보존을 위한 제안을 하신 보살님, 정토회 통일 활동을 하면서 지역 시민단체와의 연대에 대한 바램이 생기신 거사님, 법당불사를 맡으면서 힘든 점을 호소하시는 보살님의 질문에 스님은 귀한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nbsp 이 중 노원정토회에서 성북불사 담당하는 보살님의 질문을 소개합니다. “불사정진 중인데요, 불대생이 의외로 접수가 많이 되었어요. 그런데 오늘 법회 중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3월 2일 계약 예정인데 건물주는 정확한 이유 없이 계약을 안하겠다고 한답니다. 추측으로는 실내 철거문제나 정토회의 요구가 까다로워서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불협화음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대생은 많이 접수되었고, 장소는 없어지고 하니 막막하고 스님 법문도 귀에 들어오지 않아 잘 못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며 다급하게 질문하시는 보살님께 스님께서는 nbsp “정토회에서 불사를 맡아서 봉사로서 해주는 건 고마운 일이에요. 그런데 항상 ‘수행자로서 일을 해라.’고 하잖아요. 수행자가 전화 한 통화에 정신이 없으면 수행자도 아니고 불사하는 봉사자 밖에 안 됩니다. ‘내가 전화 한 통화에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있구나.’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바깥 문제를 내 고민의 원인으로 합리화해서 얘기하면 수행자 관점을 놓쳐버린 사람에 속합니다. 세상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수행자는 아니에요. 착한 것과 지혜로운 것은 다릅니다. 사람이 죽거나 건물이 무너진 것도 아니고, 계약해서 돈 떼인 것도 아니고, 아직 계약서도 안 썼는데 계약을 전제로 일을 추천했으면 실수를 한 것에 속합니다. 계약을 했다가도 파기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 장소를 꼭 해야겠다면 먼저 계약을 취소하는 이유를 알아보고 계약과정에서 우리가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접수된 불대생들은 근처 공간을 돈을 주고 임시로 빌려서라도 하던지, 가까운 법당으로 안내해서 올 사람은 오고, 안 올 사람은 입학금을 내주면 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안을 연구하면 됩니다. nbsp 그리고 불사 담당 상임법사와 상의를 하면 될 일이지, 그것을 가지고 정신이 없어지고 법문도 귀에 안 들어온다면 딱 정신 차리고 ‘전화 한 통화에 마음을 놨구나.’하고 돌이켜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어떻게 하면 될까하고 향후 대처를 하면 됩니다. 큰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물이 엎질러졌는데 흥분을 해서 해결이 되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하는 관점에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아쉬워하면 내가 괴롭고, 또 서로 책임을 전가하면 내부에 분열이 일어납니다. 벌어진 일은 적절히 대응하는 게 중요합니다.” 라며 우리가 일을 하다가 위기가 왔을 때 어떻게 수행적 입장에서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nbsp 법문 후 정토행자들은 법륜스님과 유수스님께 새해 인사를 하고 정토회별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도반들은 스님의 오늘 법문이 너무너무 명쾌했다고 기뻐하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정회원의 날’ 마다 보석 같은 법문을 들으니 벌써부터 내일 죽림정사의 행사가 기다려집니다. nbsp 오후 2시부터는 청년정회원을 대상으로 한 법회가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119명의 청년정회원이 활동하고 있는데, 오늘 법회에는 서울지역 청년정회원 35명, 인천경기서부 지역 2명, 대전충청지역 3명이 참가하여 총 4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 외 청년정회원들은 각 지역법당에서 열리는 정회원의 날 행사에 참석했었습니다. nbsp 특히 청년정토회 초기부터 활동해 온 정회원 법우들도 오래간만에 함께 해 주어서 반가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지역별 참가자 인사 후,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원을 세운 신규 서원행자와 초발심시변정각의 마음으로 발심한 신규 발심행자의 개인사진에 각자의 각오와 다짐을 담은 신규 정회원 소개 영상 상영으로 감동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신규 발심행자들이 양의 해를 맞아 수건으로 양머리를 만들어 각오를 다지는 퍼포먼스도 보여 주었습니다. nbspnbspnbsp 신규정회원 소개 후 먼저 스님께서는 청년들이 불교의 4대 명절이나 각종 기도에 참석하는 것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상세히 일러 주시고 복을 비는 것이 아닌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다지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셨습니다. nbsp 이후에는 정회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정회원이 왜 봉사활동을 하는가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도록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또한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 법을 따르던 젊은 수행자들이 많았음을 언급하시면서 현 시대에도 청년들이 부처님 법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문명, 새로운 세대를 열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정토회의 정회원으로서, 또한 부처님 법을 따르는 이 시대의 청년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점검해 볼 수 있었습니다. nbsp 법문에 이어진 즉문즉설 시간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공부해야 할 분량이 많아 조급한 마음이 들고 조급함 때문에 정작 공부는 안 된다는 분, 평소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 청년정토회 활동을 하는 것이 나을지 백일출가를 가는 것이 나을지 고민이라는 분, 지인의 힘든 이야기를 들을 때 부담스러운 마음이 올라온다는 분, 직장생활을 3개월하고 그만두었는데 정토회나 여자 친구에게 의지하고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하는 자신의 업식을 알게 되었다는 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강의를 할 때 어렵다는 분, 새로 온 도반과 나누기를 할 때 긴장이 되고 불편하다는 분 등의 다양한 고민에 스님께서는 친절하고 따스하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그 중 한 대학생 활동가의 고민을 소개합니다. “저는 대학생 정토회 활동을 한지 2년 반 정도 되었는데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저 스스로 잘했다 생각한 적이 없고 약간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특히 사업을 진행하면서 참가자가 없을 때에 마음이 무겁고 잘할 수 없을 것 같고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대학생 사업 준비하는데 목표가 커지니까 위축되는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라며 질문했습니다. nbsp “질문자가 사업에 대해 보고 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청년국 국장님 맞지요? 자기가 볼 때 국장님이 좀 똑똑해요, 멍청해요? 본인이 국장님이 똑똑하다고 믿는다면 걱정할 게 없어요. 자기가 실력이 없으면 ‘니 그만둬라.’ 할 거예요. 그런데 그만두고 다른 일 해라 하지 않고 같이 일하고 있잖아요? 국장이 보기에는 법우가 딴 사람보다 낫다 생각하는 거 아니겠어요? 본인은 본인이 잘하니 못하니 해도 국장님 보기에 그래도 괜찮으니 놔둔 거예요. 내가 사업에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나는 능력이 없다, 이런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믿고 있는 담당법사님이나 국장님이 알아서 하겠지요. 위에서 보기에 지금 상황에서 나 빼고는 대안이 없고 내가 지금 자리에서 잘하고 있으니 그냥 놓아 두는 거구나 하고 자부심을 느껴야 합니다. 사업에 대해서는 국장이 알아서 책임질 일이지, 법우님 책임이 아니니까 자기는 편안하게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nbsp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본인이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내 능력은 100인데 목표를 200으로 정해 놓고 욕심 부리니 아무리 해도 내가 부족하다 싶어 자학증이 생기는 거예요. 우리는 본인의 능력의 100만큼만 해도 그 자체가 좋고 아무도 200만큼 하라고 하지 않는데 본인이 혼자 200을 목표로 세워놓고 난리피우는 거예요. 내가 가진 능력으로 ‘최선을 다 한다.’ 그런 마음으로 하세요. 자기를 과대평가 하지도 말고, 학대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알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로 돌아가세요.” 라며 답을 해 주셨습니다. nbsp 습관처럼 잘해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활동에 부담을 가지고 있었던 청년 정회원들에게 가볍게 있는 그대로만 최선을 다하는 수행자가 되라는 말씀은 큰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nbsp 마지막으로 유수스님께서 그 동안 청년정토회가 서울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지만 향후 점점 지역으로 확대되리라 기대하며, 좋은 법을 전하기 위해 청년들이 힘써 나가자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청년정회원들은 스님께 새해인사를 드리고, 스님께서는 한 명 한 명 악수로 격려해 주셨습니다. 스님과 청년정회원이 처음 만난 오늘 자리는 정회원으로서, 청년으로서, 수행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 저녁 7시에는 서울제주지부 대표소임을 맡고 있는 마경숙보살님의 인사 말씀으로 저녁부 정회원의 날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80여명의 저녁부 정회원이 모였지만, 주말이라 저녁부도 낮에 많이 참여해서 평소보다 참여인원이 조금 적었습니다. nbsp 각 지역법당별로 참가자 소개가 있었습니다. 한명 한명 소속과 소임을 밝히고 서로 인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신규발심행자들의 소개영상을 시청 한 후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설 잘 보냈는지, 정초기도는 잘 했는지 물으시고 오늘 정회원의 날 행사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정토회는 단체의 이름이에요. 정토회의 설립취지는 부처님의 정법을 이 땅에 한번 구현해 보자는 겁니다. 정법이란 말은 추상적인 단어죠. 너도 나도 정법을 주장하는데, 우리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해서,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루고자 했던 것, 깨달음, 설법한 것, 실행한 것의 범주에 맞는 불교단체를 만들자. 그 정신을 오늘날 다시 재현해보자는 것이 구체적 내용입니다. 그것이 근본불교입니다.” nbsp 어떤 일을 하든 정토회가 어떤 단체인지 설립취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씀해주시고, “어떤 법당이든 책임 있게 운영해야 합니다. 혼자 운영해도 아무렇지도 않아야 합니다.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일반회원들과 달리 여러분은 수행자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우리가 일반회원들에게‘고맙습니다.’라고 인사 할 수 있어야 합니다.”고 하시며 정회원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불교의 역사 속에서 변질된 수행자의 모습과 사제와 신도에 대한 긴 법문이 이어졌고, 스님의 재치 있는 말씀에 모든 정회원들은 쑥스러운 웃음으로 신자가 아닌 수행자가 되기를 다시 한 번 다짐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 법문 후 즉문즉설이 이어졌습니다. 그 중 인사동 거리모금 담당하시는 보살님의 질문을 소개합니다. “인사동 거리모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금에 학생참여가 많습니다. 그런데 작년 가을부터 무주상보시의 정신으로 봉사하자고 봉사 확인서 발급이 중지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봉사확인서 발급이 안 된다며 타 단체로 갈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웠습니다. 처음에 말도 제대로 못하고 빈 모금함으로 오던 학생들이 회를 거듭할수록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미 스님 법문에서 정토회가 지향하는 바를 들어서 저는 이해가 되었지만, 많은 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라며 활동하면서 든 의문에 대해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nbsp nbsp “원래 정토회는 자기 수행으로 참여하는 거라 봉사증 발급과 같은 것이 없었어요. 정부차원에서 인정해주는 봉사 확인서를 격려차원으로 발급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계속되다 보니 부작용도 있습니다. 엄마가 봉사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고, 봉사는 조금하고 봉사 시간만 많이 받으려 하고, 이렇게 남발하다 보니 서류 처리하는데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요. 봉사에는 관심이 없고 봉사점수에 관심이 있어서 오는 사람이 생기다 보니 JTS의 정신에 맞지 않아 봉사확인서의 발급이 중지 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점수보다는 봉사의 의미를 설명해서 모금으로 인도하고, 나중에 점수를 지원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nbsp 이런 유사한 경우가 몇 가지 있는데, 정토회에서는 해외봉사 나가는 비용도 자기비용으로 갑니다. 1년 후에 계속 봉사활동을 하려고 할때 JTS에서 지원해줍니다. 정부에서 민간단체에서 해외 봉사를 나가는 경우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어서 JTS도 KOICA의 지원을 받게 되었어요. 처음 1, 2년에는 받은 돈을 본인들이 다시 JTS에 보시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원받는 것이 오히려 봉사에 좋지 않는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KOICA의 지원을 받는 것을 폐지하게 되었습니다. nbsp 또, 정토회에서 사회운동을 하면서 평화재단이나 에코붓다, 좋은벗들 같은 법인 단체 활동 중에 정부에서 사업비를 지원해주는 경우가 있어요. 정부지원금으로 식비를 정산 할 경우 카드로 계산을 해야 하는데, 두북이나 시골의 경우 카드결재가 어려운 상황도 있고, 얼마 이상 되는 식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렇게 비용지불을 하면서 정토회 돈, 정부지원금을 분리해서 써야 되는데 이것은 수행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일체 지원을 받지 않는 걸로 결정했습니다. nbsp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사업의 확대가 아니라 원칙을 지키고자 함이에요. 조금 늦게 되더라도, 사람 한명 적더라도,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방침입니다. 봉사점수를 준다는 것보다 먼저 봉사를 하고나서 후에 지원해 주는 방향으로 해야 하는데, 봉사점수를 받기 위해서 봉사를 하는 것처럼 변질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부작용을 줄이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함께 연구해봅시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법사단에서 다시 한 번 이 문제에 대해서 논의 하라는 말씀을 전하시고 수행자로서 사는 기본정신은 살리고 그 과보로 인정해주는 것으로 운용해야한다는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nbsp 일반 신도가 아니라 정토행자로서, 수행자로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새기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nbsp 스님의 법문과 즉문즉설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세 시간 반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남은 질문이 더 있었으나 내일 행사를 위해 새벽에 죽림정사로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사진촬영을 마지막으로 정회원의 날 행사를 마쳤습니다. nbsp nbsp늦은 시간까지 우리를 위해 성심으로 법문해 주시는 스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토행자들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nbsp

2015.03.02. 19,359 읽음 댓글 7개

2015.2.25 인천경기서부 지부 정회원의 날

nbsp nbspnbsp 어제 밤 늦게 광주에서 출발하여 새벽에 서울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오전에는 정토회관에서 업무를 보시고 오전 12시에는 김장훈씨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김장훈씨는 스님과 만남이후 평화재단 활동가들과 기념촬영을 하기도 한 후 돌아가서는 자신의 트위터에 스님께서 힘내라서 밥상을 차려주셨다면서 마, 더덕이 맛있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오후 2시부터 정토회 서초 법당에서 인천경기서부 정회원의 날 법회가 있었습니다. 인천경기서부 정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정회원으로서의 권리, 책임과 의무에 대한 스님의 말씀 듣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 가졌습니다. 인천경기서부 지부는 넒은 지역에 법당이 포진되어 있어서 교통편이 나쁘고 아직 많은 인원을 수용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서초 법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nbsp nbsp 인천경기서부 지부는 2014년에 출범했고, 일산 정토회가 93명, 인천 정토회가 62명, 안양 정토회가 54명, 부천 정토회가 42명으로 총 251명의 정회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 2시 법회에는 인경지부, 서울 및 문경 공동체, 행자대학원생, 시드니와 해외지부사무국에서 오신 두 분등 모두 115명의 정회원들이 참석해주셨습니다. 행사 시작에 앞서 송순애 인경지부 국장님의 여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정회원들이 함께 모일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인경지부는 이번에 102명의 정회원이 참여함으로써 전체 회원의 41에 해당합니다. 역사가 짧은 법당과 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활동가들이 많은데 활동가들의 노고가 이 수치에 모두 담긴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재미있고 활기찬 인경지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nbsp 여는 말씀이 끝난 후 인경지부의 2014년 활동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영상이 준비되어 모두 흥미롭게 우리의 모습과 이야기가 담긴 영상을 감상했습니다. 그 후 각 정토회별 참가자 소개가 있었습니다. nbsp 약간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인경지부의 각 정토회별로 각자 자기소개를 한 뒤 신규 발심행자들에 대한 환영 박수가 있었고 조금은 급하게 준비한 티가 나지만 활기를 띄우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한분 한분이 어느 법당에서 어떤 소임을 맡고 있는지 많은 관심을 보이셨고 일일이 배치된 자리 정돈을 해주시고 각 정토회별로 몇 명이 참석했는지도 확인하시는 등 빈틈없이 챙기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어서 서울과 문경 공동체, 행자대학원생들, 호주 시드니 법당에서 오신 구본승, 해외지부사무국에서 불교대 팀장 소임을 맡고 계신 임금이 법우님의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nbsp nbsp 이렇게 각 정토회별로 각자의 소임, 이름등의 소개를 마친 후 스님께서는 정초 기도와 새해 시작의 사전 준비, 초발심의 중요성에 대한 법문을 들려주셨습니다. nbsp “정초기도 잘하셨어요? 정초에 기도를 하는 것은 앞으로의 한해를 위해 정초에 정성을 기울여 준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준비하지 않을때에 비해서는 사고가 줄어들고 사고가 나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도 제대로 준비 안 해서 사고가 생겼고, 사고 후 신속하게 대응을 못해서 피해가 커졌습니다. nbsp 어떤 일이든 아무리 준비해도 예상대로 안 되기도 하지만 준비가 잘 될수록 실패율이 낮아지고 또, 실패해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정초기도 제대로 안 한 사람, 꼭 하세요. 정초기도 뿐 아니라 불사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 과정에 함께 함으로써 화합을 도모하고 사고를 미리 예방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를 잘 하고 연구해 가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또한 수행이란 탐구하는 것입니다. 초발심자들은 아직 서투르지만, 정신을 딱 차려서 정성을 기울여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오랫동안 하고 있어서 업무에는 익숙하지만 타성에 젖어있는 사람들보다 더 수행자다울 수 있습니다. 타성에 젖으면 수행에 진척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먼저 간 자가 나중에 간다.’는 말도 있지요. 무난하기 때문에 자극 받기가 어렵고 그래서 초심자들보다 못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 우리가 100일 마다 입재식을 하는 이유도 타성에 젖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늘 처음 하는 것처럼 오류를 발견하고 시정해 가야 창조가 있고 발전이 있습니다. 생물도 늘 새로 바뀌고 진화하듯이 이는 자연의 원리이자 우주의 질서입니다. 늘 똑같은 날인데도 새해라 하는 이유는 인생살이가 늘 반복되어 타성에 젖기 쉬운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지난해의 오류를 시정하고 새해에는 새로 다짐하고 출발하면 전 해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듯 해도 조금씩 발전이 있습니다. 인생은 우리의 업식, 즉 카르마가 반복되는 것이고 이를 벗어나는 게 해탈입니다. 수행자는 이것을 목표로 나아가야 합니다.” nbsp 이어서 정토회 행자와 정회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nbsp “정회원은 뭐냐? 정토회는 신자, 신도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정토 행자, 정토 회원이란 용어만 있습니다. 정토회원에는 후원회원, 일반회원, 정회원이 있는데 모두 정토회 안에서의 혜택은 같지만 일정한 책임과 의무가 정회원에게만은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정회원이라 해서 별다른 혜택이 있는 건 아니고 다만 해탈과 열반을 인생 목표로 삼아 적극적으로 활동해서, 부처가 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정토 세상을 만들어가는 부처 클럽회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nbsp 그리고 정회원이라면 자신이 수행자라는 중심이 딱 잡혀있어야 하고 뚜렷한 자부심과 목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만약 사이비라고 해도 눈도 깜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준이 잡히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습니다. 머리를 자르지 않고 자꾸 법당에 가니 집에 가면 가족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만, 관점을 딱 잡으면 문제가 없습니다. 기존 종교의 문화는 인정하고 존중하고 예를 갖추되, 정토회 안에서는 수행자여야 합니다. 정토회는 오직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nbsp nbsp 다음은 즉문즉설 시간이었는데, 본래 질문이 많았던 인경지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자세한 법문 때문인지 질문하시는 분이 계시지 않아 착하다는 칭찬까지 듣고 스님께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는 1분 스피치로 바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지정된 시간 안에 질문이 없는 것을 보시고 정회원에게는 정을 끊어줘야 훈련이 된다고 하시며 바로 1분 스피치로 이어졌습니다. nbsp 그중에는 즉문즉설의 질문 타임을 놓쳐서 아쉬운 마음에 1년 동안 정토회 활동 했던 소감과 질문과 섞인 스피치를 하신 분, 3년간 기도 정진하시다가 요즘 쉬고 있는데 솔직히 쉬니까 몸은 편하고 친구들 만나는 게 좋지만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기도 하신다는 인천의 보살님들, 인도에서 수자타 아카데미 교장을 하고 있다가 쉬고 싶어서 한국으로 왔는데, 동국대에서 8년 만에 박사 과정까지 하루도 못 쉬다가 어제 졸업하니 이제야 정말로 쉬는 것 같다는 쁘리앙카님, 최근 JTS에 인력이 부족하니 봉사자를 모신다고 하셨던 JTS 사무국장님, 처음에 스님 뵈었을 때 너무 표정이 무서워서 마음에 안 들었지만 뵐수록 명쾌한 말씀이 좋았고 수행자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는 분, 발심행자로서의 긍지를 심어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전하신 분, 활동한지 4년이 됐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내가 수행자임을 다시 깨닫게 되어 기쁘다는 분, 오는 3월부터 발대식을 하는 군포 법회 불사팀의 응원을 부탁하신 분등의 발표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마지막 스피치에 대한 조언으로 “좋은 법당자리를 얻는 것은 일반적인 회사 사무실 얻는 것과는 다릅니다. 발품을 많이 팔아 위치 좋고 깨끗하고 값도 싸고 목탁을 두드려도 시비가 없을 만한 곳으로 정성을 다해 골라야 합니다. 저는 2차 만일결사때는 본부를 미국에 두려는 생각으로 22년 전부터 땅을 보고 있는데도 아직도 구하지 못했어요. 시작이 반이니 이렇게 출발하면 절반은 한 것이니까 계속 정성을 다해 준비하시면 됩니다.”며 22년째 불사를 준비하고 있는 스님의 예를 들면서 불사에 임하는 분들을 격려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마지막으로 인경지부 상임법사이신 묘수법사님께서 “수행자로서 이 세상에 뭔가 해보려는 이들이 모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정회원들이 출발점이 되어 모범을 보이면서 함께 원을 세우고 나아가면 될 것 같습니다. 함께 해주신 스님께 감사드리고 기쁩니다.”라고 하시며 마무리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nbsp 모든 법회를 마치고 참석한 인경지부 정회원들은 스님께 새해 세배를 드렸고, 지역정토회별로 기념촬영을 한 후 스님과 악수를 하면서 오후 5시가 되어 인경지부 정회원의 날 법회를 마쳤습니다. nbsp 이어서 저녁 7시부터 인경지부 저녁반 정회원들을 위한 법회가 서초법당 2층 소강당에서 있었습니다. 6시가 넘어서부터 출입구 앞에는 봉사자들이 분주히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소강당 앞에는 소담스럽게 담긴 현미가래떡과 귤이, 퇴근 후 인천경기서부 각 지역에서 스님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달려오시는 정회원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에 이어 참으로 바쁘시고 힘든 일정을 보내시고 계신 스님과의 만남이 인천경기서부 정회원들을 설레게 하였습니다. 일산, 인천, 안양, 부천 각 정토회순으로 각각 도반들의 자기소개와 정토회 별 구호가 이어지기도 하였습니다. nbsp nbsp 각 지역정토회별 소개가 끝난 후 스님께서는 정토회 정회원이 무엇인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등 정회원의 자격요건, 책임과 의무, 모든 일에 임하는 자세등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시면서 모두가 법사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부지런히 수행정진 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nbsp 이어진 즉문즉설에서는 정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든 의문이나 고민등이 다양하게 이어졌습니다. 인경지부 정회원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nbsp 첫 번째 질문자는 “도반들이 스님 건강이 어떠신지 걱정을 많이 하고 여쭈어보라 하셨습니다. 또 저희가 임진각 통일정진기도를 인경지부에서 법당들끼리 모여서 하는데 북한 아이들도 아침밥을 먹었으면 좋겠습니다는 플랭카드를 들고 합니다. 2014년 사회활동과제 수행 중 새터민 초청강연을 들었는데, 사람들은 다 죽고 호랑이와 늑대만 남았다. 먹는 것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위기는 지났다고 하는데 점검이 필요합니다. 또 새로운 백년을 읽으면서 역사상 평가를 못 받았던 지리산 남부군에 대해서 통일 정진을 하면서 가서 천도재를 지내드려야 제 맘이 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 생태계에서 모든 수컷들이 자식을 돌보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황제펭귄과 가시물고기는 열심히 돌보는데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여쭈어봅니다.”라며 평소 활동하면서 든 의문에 대해 질문을 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특정한 한 개의 예를 들어서 비유하면 안됩니다. 남자가 여러여자 데리고 살면 저 수컷 짐승들을 봐라하고, 반대로 여자가 남자 여러명을 거느리면 여왕벌을 예로 듭니다. 생태계에는 수많은 종이 있습니다. 자연생태계에서 볼 때 어미는 목숨을 걸고 새끼를 지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크면 죽던지 말던지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고 정을 딱 끊어버립니다. nbsp nbsp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은 선행이고, 부모가 어린 자식을 돌보지 않는 것은 나쁜 행위입니다. 그런 기준을 얘기할 때 생태계의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윤리적 개념이나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안됩니다.”라며 뒷 질문부터 이어서 지리산 남부군, 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해 차례로 답을 해주셨습니다. nbsp “지리산 남부군 천도재는 2030년전부터 어느 편을 떠나서 천도재를 지냈습니다. nbsp 북한의 식량사정은 예전에는 북한은 지위여하를 불문하고 모두가 식량사정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에 배급제도가 거의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개개인의 빈부격차가 심합니다. nbsp 아직도 가난한 사람중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북한을 방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양시내나 보지 뒷골목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렇습니다. 탈북자라고 해도 굶어죽는 사람들에 대해서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평양에서 온 사람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nbsp 지금 북한의 식량사정은 개선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평양만은 옛날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들 방문하는 사람들을 좋은 곳으로만 안내하기 때문에 어려운 사정을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nbsp 북한의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을 북한정부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도와주려면 조용히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굶어죽는다고 너무 떠벌리지 말고 사진도 못찍게 하고, 그러나 북한 사정이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요즘 탈북자들은 먹고 살만한 사람들입니다. 국경경비가 워낙 삼엄해서 국경을 넘어올 때 돈을 주고 넘어오기에 굶어죽을 사람이 넘어올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중국돈 몇 만원을 외부로부터 지원받든 본인이 주든 해야 넘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사람들 만난다고 어려운 사정을 다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nbsp 우리는 북한의 모든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북한사람들의 생존과 인권이 개선되도록 하는 통일염원 참회정진 기도를 계속해야 합니다.”라며 통일을 위해 우리가 계속 북한을 지원하고 통일염원 기도를 계속해 나가야 함을 강조해 주셨고, 이어서 “스님 건강은 원래 태생적으로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건강 나쁜 것은 나쁜 거고, 내 할 일은 할 뿐입니다. 스님이 내일 죽었다 해도 울 필요는 없습니다. 열심히 살다가 가셨구나, 이러면 됩니다. 수명이 다 되어 가는 걸 안타까워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단명한다고 해서 40살까지 살거라 했는데, 벌써 살만큼 살았습니다. 더 연연할게 무엇이 있나요? 법사님들이 계시고, 시스템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걱정되는 건 이해되지만 괜찮습니다.”라며 스님의 건강에 대해서도 괜찮다는 답을 해주셨습니다. nbsp 다음 질문은 “경전반 졸업하고 소임을 맡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 불대는 열심히 했는데 소임이 어렵습니다. 거리모금도 나가기 전에는 분별심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여기 오면서 질문을 하는 것도 수행으로 삼아 해야지, 잘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돌이키고는 있지만 이렇게 불대 다닐때는 분별심이 없었는데 오히려 지금 더 생기고 있습니다.”는 고민에 대해 스님께서는 nbsp nbsp “그 정도는 모든 사람이 하는 고민입니다. 나도 어릴 때 100미터 달리기 하기 전에 화장실을 세 번이나 갔다와야 했어요. 누구에게나 모든 일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거리모금도 그렇고, 여기 오는 것도 그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그렇게 고민이 되지만 일어나서 기도하면 괜찮습니다. 그런 경험을 살려서 처음에는 싫지만 하고 나면 좋으니까,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바랍니다.”며 모든 것을 경험으로 삼아 부지런히 해 나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nbsp 세 번째 질문자는 “작년 10월에 법당에서 활동가들 사이에 일이 좀 있었는데 아직도 도반들을 보면 서먹서먹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며 도반들과의 갈등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공부를 하니까 생각은 내려놓아야 하는데, 업식은 아직 그대로 거부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이라도 알아차리면 아직은 거부반응이 있지만, 자꾸 하다보면 괜찮아집니다. 불편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업식이 반응하구나’ 이것을 보면서 자꾸 만나면 적응이 됩니다. 지나놓고 보면 별거 아니예요. nbsp 마음이라는 것이 좁아지면 바늘하나 꽂을 자리가 없고 탁 터 놓으면 드넓은 우주보다 넓어집니다. 내가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자각을 해야 합니다. 딱 일어나면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이 없어집니다. 불편한 사람과 자주 만나보세요. 혼자서 기도하는 것 보다 직접 만나서 불편하는 것도 지켜보고 그렇게 부딪혀 보세요. 부딪혀서 아무렇지도 않아야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별거 아니네...’그렇게 될 것입니다.”며 갈등에 대해서도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돌파해 보기를 조언해 주셨습니다. nbsp 네 번째 질문자는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강조하셨는데 괜히 정회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도로서 기도하고 부처님 매달릴 때와 수행자로 기도할 때가 같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부처님께 기도할 때 신도로서 비는 마음이 큰데, 굳이 수행자로서의 자세로 바꿔라는 것이 이해가 안됩니다.”며 정회원이 수행자라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질문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신도로서 의문을 가지고 지켜보세요. 나의 운명을 관장하는 어떤 존재가 있으니까 부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원래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운명은 자기 업식에 의해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에 의해서 변화하는 것이지, 제사를 지낸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nbsp 불법에 귀의한다는 것은 내 운명을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원래 부처님이 가신 길을 한번 가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도로서 그렇게 기도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인도성지순례 갈 때 부처님을 신처럼 생각하고 복 빌던 사람은 헷갈립니다. 그래서 인도성지순례는 불교대학 졸업한 사람들만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며 우리가 왜 신도가 아니고 수행자인지에 대해 다시한번 짚어주셨습니다. nbspnbsp 이렇게 모든 즉문즉설을 마치고 스님께 세배를 드리고 기념촬영을 하였고 스님께서는 악수로 회원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nbsp 오랜만에 스님과 함께 보낸 시간은 지혜의 가르침으로 환해졌으며, 귀가길이 멀어도 가슴 한가득 희망을 안은 채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도반님들의 뒷모습은 봄비를 가르며 희망을 전하듯 행복해 보였습니다. nbsp

2015.02.26. 20,603 읽음 댓글 5개

2015.2.23 경남지부 정회원의 날

nbsp 오늘은 경남지부 정회원의 날입니다. nbsp 오늘도 스님께서는 마산으로 가는 길에 탑곡의 가매들 계곡으로 산행을 가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피곤한 가운데서도 휴식의 한 방식으로 오히려 산행을 하고 계십니다. nbsp 마산법당에서 진행된 경남지부 정회원의 날에는 주간은 오후 2시에 85명, 저녁은 오후 7시에 64명의 경남지역의 정회원들이 참석, 마산법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nbsp 마산 법당은 2000년 11월에 마산시 자산동 한백빌라에서 초청법회를 시작하면서 문을 열었습니다. 유애경 보살님이 마산에서 동래법당까지 다니시면서 금강경 강의 와 불대 수업을 마치고,부처님의 법을 함께 나누기 위해 지인의 집을 빌어 법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2001년 3월 남성동 마산 정토법당이 개원, 봄 불대까지 개강하였습니다. 2005년엔 마산법당은 정토행자상을 수상하기도 하였고, 지금의 창원정토회를 비롯 진주, 김해등 현재 거창법회까지 15개의 법회가 경남지역에서 진행될 수 있게 한 정토회 경남지부의 모법당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nbsp 두시가 되어서 정회원의 날 법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거의 100여분이 모여서 반야심경을 욀 때는 각 법당에서 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역시 함께하니 좋았습니다. 정회원들이 소속법당, 이름, 소임으로 자기 소개를 할 때마다 스님께서는 일일이 눈을 맞추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한 법우님은 “야간반인데 스님이 뵙고 싶어서 일찍 왔어요.” 또 거제에서 오신 보살님은 “밤에 온다고 접수했는데 마치고 집에 늦게 들어가면 남편에게 쫓겨날까봐 낮에 왔어요.” 라고 말해 스님을 뵙는 날이라 약간 긴장하고 있던 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하였습니다. nbsp 정회원 소개가 끝나고 신규 정회원들이 간단한 율동과 노래로 축하 퍼포먼스를 하였습니다. 노래는 “나성에 가면”을 “윗동네에 가면”으로 개사를 하였는데,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마산법당에 모여서 급하게 준비하다보니 가사를 다 못 외워 관중석에 앉은 보살님이 가사를 적은 종이를 들고 있고 그것을 보면서 하였지만, 참석한 정회원들과 함께 신나게 박수치면서 흥을 돋구었습니다. 정회원들의 반응도 좋았지만 함께 하신 스님께서 더 많은 대중들과 나누고 싶다고 하시면서 3월 1일 행사에 할 수 있도록 준비해보라 하셨습니다. 그날은 노래 가사와 동작은 완전히 다 외워야겠습니다. nbsp nbsp 새해맞이 정초기도는 잘 마쳤냐는 인사로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 “1차 만일 결사의 목표가 불교중흥, 민족중흥입니다. ‘불교에게 희망을’, ‘민족에게 희망을’ 이지요. 불교중흥은 불교도 숫자를 늘려서 세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것이고, 민족중흥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입니다. 만일결사중 8차 천일 결사의 목표는 정회원 1만명 만들기입니다. 정회원이 될려면 불교대를 졸업해야 하니 불대생 많이 모집하고 정성을 다해서 교육시켜 졸업률을 높여 정회원으로 잘 안내하기 바랍니다. 이 정회원 1만명이 통일의병 1만명이 되는 것이지요. 정회원을 중심으로 불교중흥과 민족중흥을 이룰 수 있는 것이지요. 내가 부처되겠다고 발심하고, 삼귀의·오계를 받았으니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정토행자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nbsp 그리고 정토회 회원의 분류.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 법사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정토회 회원으로서, 그러니까 정토행자로서 모두가 동등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정회원이 아닌 사람들이 불편한 마음을 내지 않도록 정회원이라고 부리기보다는 발심행자라고 불러주세요. 말만 앞세우지 말고 행동으로 그러니까 지행합일, 언행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수행, 보시, 봉사하는 정토행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다른 절에는 없는 이런 정회원 제도를 정토회에 두는 이유는 우리 모두는 해탈과 열반의 길로 나아가는 수행자라서 그렇습니다. 결혼 생활을 하더라도 가족에게 집착하면 수행자가 아닙니다. 자고, 먹고, 입는 것에, 또 승진, 돈에 집착하면 수행자가 아닙니다. 수행자로서 모든 세상일을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수행자는 해탈을 목적으로 하니 집착을 놓아야 합니다. 부처님 법안에서는 오로지 수행자만 있습니다. 용성조사 탄생지에서 법사수계를 받는 것도 정법계승자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수행자라는 자부심을 갖되 다른 종파와 종교의 문화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 사회를 좋게 할 것인가? 우리만이라도 계율을 지킨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nbsp nbsp 스님의 법문에 이어진 즉문 즉설 시간에는 아이문제, 아내와의 관계, 법명에 대한 질문등 다양한 질문에 스님께서는 친절하게 답해주셨습니다. 그 중 불교대학과 법당운영에 대한 질문은 정회원으로서 소임을 맡고 있는 많은 분들이 고민하는 내용이라서 함께 나눠봅니다. nbsp 질문자 불대 소임 맡은 지 한 학기입니다. 학생이 열 세분 와서 일곱 분 남았는데, 다섯 분은 밴드로 묶여서 서로 수행도 열심히 잘 하는데 나머지 두 분은 밴드 기도정진, 깨장도 안다녀오고 활동하고 참석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불대를 맡아 있으면서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고민입니다. nbsp 스님 제일 중요한 것은 출석률이니까 수업만이라도 잘 들어서 중간 탈락하지 않고 졸업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세요. 밴드나 깨장등의 조언은 좀 미루고, ‘지금이 고비니까 이 고비만 넘으면 좋아진다. 나도 이 고비를 넘겼다.’고 하면서 격려해주세요. 지금 마음이 학생 한명 한명에 대한 애정보다는 본인의 책임완수에 더 마음이 가 있는 것입니다. 학생에게 불법을 전달하려는 마음으로 해야지,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수세적인 자세로 하면 안됩니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인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인가? 잘 살피세요.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해하지 말자, 그것이 수행자의 마음입니다. 이번엔 연습으로 해보고 다음에 봄 불대 맡아서 또 해보고, 또 연습해서 다음에 또 맡아서 해보고 이것이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일에 임하고 있는지를 꿰뚫어 보면서 다시 수행자로서 어떻게 일에 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nbsp 다음 질문은 불대생이 늘어나는 것에 비해 일감이 적당하지 않아서 고민인 분의 질문도 함께 나눠봅니다. nbsp 질문자 이번 학기부터 불교대학 수업이 법문, 봉사, 나누기 순으로 이루어지는데, 처음 오신 분들에게 어떻게 일감을 나눌까 많이 고민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에 비해 일감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고민입니다. 4월에는 연등 만들기 봉사등을 할 수 있지만, 3월 입학하고는 별다른 일감이 없고 청소만 있는데, 봉사 안내를 할때 마음에서 수세국면으로 머뭇거려집니다. nbsp nbsp 스님 처음 법당에 와서 봉사를 하는 분들에게는 우리가 문경수련원에서 하듯이 모든 물건을 다음에 쓸 사람을 생각하면서 원래 있던대로 해놓기등 모든 것을 수행으로 일에 접근하도록 안내를 해주어야 합니다. 봉사는 돈을 받고 노도을 파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큰 법당이면 가능한데, 작은 법당은 할 게 없을 것 같은데, 행정처에 건의를 해보세요. 이번의 수업개편이 탁상공론이 되지 않도록 지역분위기, 참가자수등을 고려하여 법당마다 재량을 주어야 할 듯도 하네요. ‘내 생각을 버려라”’라는 의미에서 ‘예 하고 합니다.’이지 무조건 따라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건의를 해볼 수 있어요. 세번까지는 건의를 할 수 있어요. 그래도 해라고 하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냥 따라야겠지요. nbsp 즉문즉설이 끝나고 1분 스피치 시간에 창원법당의 하숙이 보살님이 스님께 드리는 편지는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수행정진하는 모습이 우리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70이 넘어서 불대에 입학하여 잘 따라갈 수 있을까? 스님 말씀이나 알아들을까? 참 걱정도 많았는데, 여러 도반님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서명운동, 거리모금, 불대 졸업행사 퍼포먼스 준비 등 참 많은 일들을 하였습니다. 스승님 고맙습니다. 지금 이대로 좋습니다.” 보살님은 마지막에 눈물을 흘리셔서 끝말은 제대로 잇지 못하고 앉으셨습니다. 보살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보살님의 지난 1년을 함께 지켜본 다른 보살님들도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nbsp 이어서 칠원에서 마산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나오시는 천영희 보살님께서 하숙이 보살님께 격려의 말씀을 바로 이어서 해주니 마음이 더 따뜻해졌습니다. 그런 마음이 스님께도 전달되었을까요? “아이고, 대단하네요. 과연 아유다국의 후예답네요” 라고 말씀해주시고 활짝 웃으셨습니다. 산청에서 29개월 된 아이를 두고, 또 아픈 남편을 두고 도저히 오늘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오로지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는 분은 ‘You Raise Me Up’이라는 노래로 1분 스피치의 마지막을 장식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이어서 마산 정토회원 출신으로 이번에 법사 수계를 받을 예정인 유애경 보살님의 인사말씀이 있었고요, 같은 정회원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경남지부 상임법사님이신 선주 법사님의 인사 말씀도 있었습니다. 사진촬영 후 스님과의 악수시간을 가진 후 주간반 정회원의 날 행사는 다섯시를 넘겨서 끝이 났습니다. nbsp 주간반 봉사자들은 야간반 봉사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다시 법당을 깔끔하게 정리하기도 하였습니다. nbsp 여섯시가 지나자 저녁반 회원님들이 오셔서 다시 법회 준비를 하셨습니다. 낮에 일하시고 저녁에 오셔서 또 주인으로서 행사를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것이 정토행자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5시 30분에 경상남도 박종훈 교육감님이 신년 인사차 찾아오셔서 중간 휴식도 없이 함께 차담을 나누셨습니다. nbsp nbsp 저녁 7시에 저녁반도 주간반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처음 인사할 때부터 주간반 보다는 더 조용한 분위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을 직접 모시고 행사를 하니 더 여법하게 하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살짝 더 긴장도 하신 듯하기도 했습니다. 각 법당별로 소개가 끝나니 스님께서는 낮에 온 정회원의 숫자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물으시는 등 정회원들의 상황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야간반도 신규 정회원들의 퍼포먼스를 하였습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를,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이순간이 제일 좋다는 내용으로 개사를 하였는데 아주 신나고 좋았습니다. 스님과 정회원의 모습을 담은 영상준비도 함께하여 약간 긴장하고 있던 대중의 분위기를 많이 풀어주었습니다. nbsp nbsp 스님은 며칠전 대구법당에서 하셨던 정초기도 입재법문을 간단하게 정리해주시면서 올해 정회원들이 꼭 지켜야 할 10가지 계율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 올해 정초기도의 법문을 요약하면 올해는 인격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수행자로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사람답기 위해서 최소한 이것은 지켜봅시다. 안되면 깊이 반성하고 또 도전해 봅시다. 첫째, 때리지 말자. 둘째, 훔치지 말자. 셋째, 성추행하지 말자. 넷째, 술먹고 취하지 말자. 주정부리지 말자. 다섯째, 욕은 하지말자. 여섯째, 속이지는 말자. 일곱째, 잔소리 하지말자. 여덟째, 짜증내지 말자. 아홉째, 맛에 탐닉하지 말자. 열 번째 사치하지 말자입니다.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그 피해가 우리 모두에게 옵니다. 위 열 가지만 지켜도 세상에서 인격있는 사람이 됩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에 집착하지만 않아도 부처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정토행자는 신도가 아니라 수행자라는 관점을 늘 견지하고 살아야합니다. 가방이나 옷이 명품이 아니라 사람의 인격이 명품이 되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nbsp 주간반과 마찬가지로 정토회원 분류와 정회원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정리해주셨습니다. 이어서 즉문즉설시간에는 법사수계에 즈음하여 법사의 자격요건에 대한 질문, 법사의 꿈을 꾸었다가 자격요건을 듣고는 물러나고 싶다고 하시는 분, 제대로 봉사하지 못해 불편한 마음이 있으신 분, 정토회 생활이 길어지면서 모든 것이 무덤덤해진다는 질문, 탈북자들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에 대한 질문등이 있었습니다. nbsp 그 중 몇가지 질문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nbsp 질문자 1 담당자 교육을 들어도, 불교대학 수업을 들어도, 예전의 환희심은 없어지고 그저 덤덤합니다. 어떻게 마음을 내면 좋을까요? nbsp nbsp 스님 정토회 생활하면서 무덤덤하게 느껴지는 시기는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기쁨의 들뜸이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쾌입니다. 그 기간을 넘어서면 흥분도 가라앉고 감정과 의식이 일치하게 됩니다. 감정이 들뜨면 지혜가 부족합니다. 감정과 지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안정기에 도달하기 위해 꾸준히 자신을 살피고 수행, 정진하길 바랍니다. nbsp 질문자 2 수행자로 살아가야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법사가 된다는 것은 지도력을 가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깨닫는다든지 견성이라든지 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nbsp nbsp 스님 부처님 당시의 똥꾼 니이다이나 주리반특이 수행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지적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번뇌가 사라집니다. 수행자는 자기번뇌가 없는 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두 번째로 계율을 어기지 말아야 합니다. 법사가 되는데 있어서 능력부족이나 성격을 약간 개선해야 하는 점들은 법사로서 부족한 것이지, 결격사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음, 견성등 용어의 환영에 젖어서 아직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면서 낙담하면 안됩니다.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출발선을 바라보면서 그때보다 많이 좋아졌다면 계속 정진하면 됩니다. 목표에 너무 빨리 도달하려고 욕심을 내어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또 ‘이만큼이면 되었지 뭐’ 하면서 안주해서도 안됩니다. 지금까지 온것에 감사하고 또 거기서 출발해서 계속 정진하면 됩니다. nbsp 질문자 3 법사를 많이 배출해야 된다는 말씀을 듣고 저도 법사의 꿈을 키우고 있었는데, 법사에 대한 자격요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니, 애고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nbsp 스님 정토행자들이 법사가 되는것에 대해서 너무 두려움을 가질까봐 그게 사실 큰 걱정이 되었어요. ‘저렇게 열심히 하는 분도 안되는데 내가 되겠나?’ 하는 두려움 말이지요. 저의 스승님께서는 본인이 원하고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가 늘 자신을 살피고 수행정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법사가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계속 열심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nbsp 즉문즉설에 이은 1분스피치는 정말로 일분만에 한분의 발표로 끝났습니다. 창원법당의 성환섭 거사님이 불교대학, 특히 저녁 불교대학을 활성화시키 위한 좋은 생각을 내어주셨습니다. nbsp 마지막으로 예비 법사님 두분의 짧은 수행담과 선주 법사님의 인사말씀을 듣고 법회를 마무리 한 후 지역별로 기념촬영을 한 후 한분한분 스님과 악수를 하면서 오늘 경남지부 정회원의 날 행사는 모두 막을 내렸습니다. nbsp nbsp 법회가 끝난 후 떡과 과일로 다과시간을 가졌습니다. 음식물을 보시해 주신 분들, 행사 진행을 위해 봉사해주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nbsp 주간반은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다과를 즐겼지만, 저녁반 회원들은 늦게 끝나기도 했고 갈길도 멀고 하여서인지 떡과 과일 하나씩을 들고 서둘러 돌아가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도 늘 바쁘게 다니셨을 것을 생각하니 힘내세요 라고 외쳐주고 싶습니다. nbsp 스님께서도 이렇게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고 난 후 밤 11시경 늦은 밤에 바로 서울로 이동하셨습니다.

2015.02.24. 19,386 읽음 댓글 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