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2015.6.7 INEB 주왕산 산행 및 대구정토회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오전에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주왕산 산행을 함께 한 후 오후에는 대구정토회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셨습니다.nbspnbsp▲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 새벽 예불.nbspnbsp새벽4시30분,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문경 정토수련원의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 스님께서는 기도 후 발우공양에 참석하셨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발우공양 후에는 문경 공동체 상주 대중들을 위해 수행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알아차림’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수행을 하는데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 ‘알아차림’입니다. 자기 상태를 자기가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늘 자기 상태를 자기가 알아차리지 못해요. 무슨 일이 생기면 ‘너 때문에’ 이렇게 늘 상황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로부터 일어난 것인 줄 모릅니다. 매일 아침 정진할 때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 라고 되어 있지만 공염불처럼 외우기만 합니다. 자기 상태를 자기가 알아차려야 합니다. 고치는 것은 나중 일이고 먼저 자기 점검을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고치는 걸 너무 서두르면 안돼요.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나서 그냥 놔두어도 되는 일은 놔두고, 고쳐야 할 것은 어떻게 고칠지 연구해서 꾸준히 해야 합니다. 꾸준히 해야 고쳐지지 금방 고치려고 하면 잘 안고쳐 집니다.nbspnbsp밖에 있을 때는 화가 나면 ‘너 때문에 그랬다’ 이렇게 했는데, 이제는 자기에게로 돌이키기로 했으니까 ‘아, 내가 화가 나구나’, ‘아, 내가 짜증이 많구나’, ‘아, 내가 약간 욕심이 있구나’ 이렇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밖에서는 중간 중간에 간식 먹고 커피 마시고 자유롭게 하다 보니까 내가 음식에 껄떡거리는 줄 몰랐는데 여기 와서 딱 세끼만 먹어보니까 ‘내가 좀 먹는 것에 껄떡거리는구나’. ‘나에게 이런 업식이 있구나’ 이렇게 점검을 해야 합니다.nbspnbsp만약에 혼자 있어 보니까 자꾸 외로움을 느낀다면 ‘아, 내가 외로움이 있구나’ 알아차리고 혼자있는 가운데서 외로움을 극복해야 외로움의 까르마가 없어집니다. 누구를 만나서 외로움을 극복하면 그것은 업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담배를 피워서 담배 피우고 싶은 욕구가 잠시 사라진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계속 반복하게 됩니다.nbspnbsp자신이 무슨 까르마로 인해서 이런 욕구가 있는지를 늘 살펴야 됩니다. 도반들과 나누기를 해보니까 ‘나에게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으려고 하는구나’ 알았다면, 거기에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두렵거나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거나 뭔가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늘 자신의 상태를 살펴야 합니다.nbspnbspnbsp알아차려서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꾸준히 지켜봐야 합니다. ‘외로워하고 있구나’ 아는 것에 그치면 안되고 그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 지켜봐야 합니다.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려고 하구나, 이럴 땐 자꾸 맛있는 걸 먹으려고 하는구나, 어떻게 이 욕구가 그것을 채우려고 움직이는지 그 진로를 알아야 합니다. 뱀의 성질을 잘 알아야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고 뱀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자신의 까르마를 늘 점검하면서 내가 어떤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성질을 갖고 있어도 크게 문제가 안되는 것은 그냥 놓아두어도 괜찮고, 이것은 나에게 큰 불이익이 주겠다 싶은 것은 극복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것이 수행의 과제입니다.nbspnbsp정확하게 문제가 무엇인지 요점을 파악해야 하고, 두 번째는 고칠려면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업식이 되었다는 것은 오랜 습관이 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식에서 통제가 안되고 무의식에서 일어납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끌려가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끌려가는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첫째,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하고, 둘째, 주시를 해서 놓치면 다시 돌아오고, 놓치면 다시 돌아오는 연습을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꾸준히 해야 합니다.nbspnbsp그래서 여기 살든, 밖에 나가서 살든, 이렇게 야무지게 정진을 해야 해요. 그냥 대충 하면서 가을 바람의 낙옆처럼 이러저리 바람에 따라 휘날리다가 바람이 멈추면 어느 개골창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그런 막연한 인생을 살지 말고, 오늘 죽어도 좋고 내일 죽어도 좋은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루 더 산다고 의미가 있는 게 아니에요. 각오하고 결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상태에서 주시해서 자기가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 불안해도 괜찮고 이 불안함을 안 고쳐도 괜찮아요. 이 불안함을 알아차리고 불안함이 일어날 때 남을 탓하지 않는, 외로움이 일어날 때 이 외로움을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을 구하지 않는, 그래서 자기 내부로부터 그것이 가라앉도록 정진을 해나가면 과거 경험이 어떻든 어떤 까르마를 가졌든 여러분들 모두 편안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진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오늘 발우공양에는 상주 대중들 뿐만 아니라 지난 4박5일 동안 깨달음의장 바라지를 하러 오신 분들도 많았는데 모두들 우연찮게 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어 무척 기뻐하였습니다.nbspnbsp발우공양 후 스님께서는 곧바로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주왕산으로 향했습니다. 작년에는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계룡산에 올라갔는데 산이 험해서 모두들 힘들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스님께서는 “이번에는 그렇게 험하지 않고 완만하게 산책하듯이 걸을 수 있는 주왕산을 선택했다”고 하시면서 동남아 스님들을 안내했습니다.nbspnbsp주왕산 입구에는 ‘대전사’ 라는 절이 있는데, 대전사 보광전 앞마당에 모여서 간단히 스님의 설명을 들은 후 산행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 주왕산 입구에 위치한 대전사nbsp“여기는 1300년 전 신라 시대 때 절이 지어졌어요. 산은 높지 않지만 기암괴석이 있고 전설이 많이 있는 곳이예요. 그래서 여기는 산이 유명하지 절이 유명한 곳은 아니예요. 절은 작은 절이예요. 이곳은 보광전이라고 해서 비로자나불을 모신 곳이예요. 저곳은 관음전이라고 해서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이예요.”nbsp대전사 기와지붕 위로 웅장한 기암괴석이 보였습니다. 동남아 스님들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며 무척 좋아했습니다.nbspnbspnbsp대전사에서 60분 정도를 걸으니 약 2.2km 정도 지났다는 푯말이 나오고 용추폭포가 나타났습니다. 산행길 옆에는 계곡이 있었지만 가뭄이 심해서 그런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가뭄이 이 정도면 농사도 힘들겠다’고 하시면서 농민들에 대한 걱정을 내비치셨습니다.nbspnbspnbsp용추폭포까지 가는 길에는 떡 시루처럼 생긴 바위도 보이고, 학이 앉았다고 하는 바위인 ‘학수대’도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학이 앉는 바위라고 불려지는 ‘학수대’nbsp용추폭포에 도착했지만 가뭄이라 물이 졸졸졸 흘러 내려오고 있어서 스님께서는 풍경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동남아 스님들은 한국의 연두빛 무성한 산림과 맑은 계곡물을 보며 무척이나 좋아들 하셨습니다.nbspnbspnbsp용추폭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1시간만 더 올라가면 폭포가 더 있다고 하자 동남아 스님들 모두 발길 돌리기를 아쉬워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12시가 넘으면 동남아 스님들이 식사를 하지 못하게 되니까 그것을 배려하려고 하셨는데, 동남아 스님들은 “태국 시간으로 아직 12시가 되려면 멀었다”고 하면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nbspnbsp스님들의 적극적인 의지에 힘입어 다시 1시간을 더 걸어 제2폭포인 용연 폭포까지 올라갔습니다. 폭포의 절경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는 아직 힘이 더 남아 있는 분들은 주왕굴을 더 둘러 보았고, 그렇지 못한 분은 그냥 내려가기로 했는데, 대부분 주왕굴까지 함께 동행했습니다.nbspnbsp▲ 주왕굴nbsp주왕굴에서 조금 내려오니 주왕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었습니다. 주왕암의 주지 스님이 스님 일행을 알아보고는 차를 접대하겠다고 해서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내려왔습니다.nbspnbsp▲ 주왕암nbsp스님께서는 산행을 하면서 ‘주왕산’이라고 이름 붙여진 전설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nbspnbsp“당나라 시기에 반란을 일으키고 주나라를 세운 왕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실패를 해서 쫓겨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신라에서는 이 왕이 여기 숨어 있는지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당나라는 이 사실을 알고, 신라에 군대를 요청해서 주왕을 잡아달라고 합니다. 결국 주왕은 여기서 신라의 군대에 잡히게 됩니다. 이런 전설이 있는 산이기 때문에 ‘주왕산’이라고 불려지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맑은 공기, 맑은 물, 푸르른 자연을 만끽하며 산길을 걸으니 몸과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입니다. 산을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많이 걸어서 그런지 각종 나물과 고추장이 버무려진 비빔밥과 된장찌개가 꿀맛이였습니다. 동남아 스님들도 비빔밥을 무척 생소해 하면서 맛있게 드셨습니다. 점심 식사는 이곳 대전사에 다니고 있지만 스님의 법문을 통해 삶이 많이 행복해졌다는 어느 보살님이 보시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마침 같은 식당 골목에서 장사를 하고 계신 커피집 사장님도 “스님의 유튜브 법문을 즐겨 듣는 펜입니다” 라며 찾아와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동남아 스님들께 자신의 가게에서 뽑은 커피를 한잔씩 나눠주었습니다. nbspnbsp동남아 스님들은 식사와 커피를 보시해준 두 분을 불러 앉히고, 다함께 합장하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기도와 축언을 해주었습니다. 훈훈한 풍경이였습니다.nbsp스님께서도 두 분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생수업’ 책과 ‘지금 여기 깨어있기’ 책에 직접 사인을 해서 선물했습니다. nbspnbspnbsp▲ 점심 식사와 커피를 보시해 준 두 분께 기도를 해주고 있는 INEB 동남아 스님들nbsp점심 식사 후 오후에는 대구정토회로 향했습니다. 4시 무렵 대구정토회에 도착한 INEB 동남아 스님 일행은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5시부터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참관했습니다.nbspnbsp▲ 대구정토회 즉문즉설 강연nbsp대구정토회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는 어제 갑자기 일정이 잡히고 오늘이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600여명이 참석하여 법당 안은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법당 밖 복도와 계단에도 빼곡이 사람들이 앉아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오늘 갑자기 법회가 열리게 된 까닭을 설명해 주시면서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nbsp“오늘 주말인데 어디 갈 데 없어서 여기 왔어요? 이런 걸 번개팅이라고 해요. 원래 어제와 오늘 청년 700여명이 청춘캠프를 하려다가 메르스 때문에 취소가 되어 시간이 남았어요. 저는 시간이 남으면 가만히 못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전국에 메르스 없는 곳이 대구이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갑자기 법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법당 안에 대중들이 빼곡이 앉으니 열기가 후끈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법문도 듣고 사우나도 하고 좋네요.” 라고 웃으시면서 혹시나 더워서 불편한 대중들의 마음을 또한번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nbspnbsp질문할 사람은 손을 들어라고 하니 총 12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자도 여러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모두 허락되지 않아 스님께서는 10명의 질문에 대해서만 답변을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그동안 아내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흥청망청 살았는데 지금부터라도 아내에게 진 빚을 갚으로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불안 장애 및 우울증이 발병했는데 시골 생활이 병을 더 악화시키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병이 호전될 수 있는지 묻는 분, 오빠가 사고로 다쳐서 도와줘야 하는데 도와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아서 걱정인 분, 딸이 직장을 그만두고 방황하는데 엄마로서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묻는 분, 동생이 대학을 가면 같이 살기로 약속했는데 직장 때문에 그러지 못해서 고민인 분, 윤회는 없다고 하는데 생과 사가 없는 도리가 궁금하다는 분, 참선을 해보니 상기가 되고 머리가 아파서 별 진전이 없는데 깨달음은 무엇인지 묻는 분, 아이들과 남편에게 자꾸 화를 내게 되는데 이 성질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방법을 묻는 분, 계약직 강사를 하고 있어서 미래가 불안한데 중국어와 심리 상담을 새로 공부해도 괜찮을지 고민인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재미있고 유익한 즉문즉설이 펼쳐졌습니다. nbspnbsp그 중에서 공부 하지 않는 고3 아이 때문에 걱정인 아버지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큰 아이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작은 아이는 지금 고3인데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원이나 과외를 나름대로 시켜봤는데 전혀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에게 어떻게 해야될까요?”nbspnbspnbsp“자식이 내 말을 잘 듣게 하는 방법이 뭐냐, 이 얘기예요? 그런 방법은 저도 몰라요. 자기는 학교 다닐 때 공부 잘 했어요?”nbspnbsp“잘하지 못 했습니다.” nbspnbsp“공부 못한 자기도 장가 가서 애 낳고 잘 살고 있지요?”nbspnbsp“네, 잘 살고 있습니다.”nbspnbsp“그러니 우리 아이도 공부 못해도 잘 살 겁니다. 나도 잘 사니까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nbsp“그래도 부모 입장에서...”nbsp“공부를 잘해야 된다는 것에 집착하면 우리 아이가 못난 아이가 되잖아요. 지금 부모가 자기 아이를 못난 아이라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부모도 자기 아이를 못난 아이라고 생각하는데 세상 사람 그 누가 이 아이를 잘난 아이라고 생각해 주겠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 못난 아이라고 생각해도 그래도 부모만큼은 ‘너는 괜찮다’ 이렇게 격려해 주어야 하지요.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어떤지 몰라서 그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우리 딸은 쓸모가 하나도 없어요’ 라고 한다면 당신 같으면 친구를 맺겠어요? 안 맺겠지요. 그런데 어떤 부모를 만나보면 ‘딸이 공부도 안 하고 말도 안 듣고...’ 이렇게 저한테 실컷 욕을 해 놓고는 이런 부탁을 합니다. ‘스님, 어디 좋은 남자 있으면 소개시켜 주세요.’ nbspnbspnbsp엄마도 욕하는 딸을 어느 남자가 데려 갑니까? 누구 집 아들을 죽이려고 그래요? 그런 것처럼 자꾸 ‘아이가 공부를 잘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 아이가 못난 아이가 됩니다. 부모도 내 아이를 못난 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아이는 미래의 전망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공부 못한다고 다 야단을 쳐도 아빠라면 ‘공부가 전부가 아니더라. 학교 다닐 때 공부 1등하던 아이들이 일찍 죽은 경우가 많더라’ 이렇게 얘기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빠도 공부를 못했지만 이렇게 결혼해서 잘 살잖니. 그러니 너도 잘 살거야’ 이렇게 얘기해줘야 합니다.nbspnbsp아이가 스스로 ‘아빠, 나는 공부를 못해서 문제야’ 하더라도 아빠는 ‘괜찮아, 아빠도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어. 그래도 이렇게 잘 살잖아’ 얘기해줘야 해요. 그리고 ‘장관이나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결혼해서 밥도 먹고 사는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 너를 낳은 것만 해도 큰 소득이지. 아빠가 볼 때는 괜찮아. 너가 너 자신의 수준을 너무 높여 생각해서 그런 거야.’ 이렇게 격려를 해주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아빠가 자꾸 아이를 보고 ‘못난이’ 라고 말하면 아이가 진짜 못난이가 됩니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벌써 아빠가 자기를 못난이라고 증명을 해버렸잖아요. 그러니 아이가 어떻게 기를 펴고 살 수 있겠어요?nbspnbsp아이는 괜찮아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질문자를 닮아서 공부를 못하는 거예요.” nbspnbspnbsp“네, 그렇네요.” nbsp“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 즉 나라 돈을 떼먹었거나 부정 축재를 했거나 정치적으로 오류를 범했거나 한 경우를 살펴보면 대부분 공부 잘하던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들이 공부를 못하면 ‘적어도 이 세상에 못된 짓은 안하겠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공부를 잘 하면 이 세상에 좋은 일도 하지만 못된 짓도 크게 합니다. 공부를 못 하면 적어도 못된 짓을 크게 할 가능성은 없어요. 그것만 해도 큰 복입니다. 좋게 생각하면 좋은 일이 되는 겁니다.nbspnbsp등수를 매기는 건 공부만 매길 수 있어요? 조선시대에 과거 시험을 잘 보려면 수학을 잘해야 해요? 영어를 잘 해야 해요? 그런 것은 다 필요없고 한문으로 시만 잘 쓰면 되었죠. 또 조선 시대에는 노래 잘 하면 광대 밖에 할 수가 없었죠. 그런데 요즘은 노래 잘 하고 춤 잘 추는 것을 높게 평가를 하잖아요. 또 공을 잘 던지고 때리는 것도 요즘은 높이 평가를 합니다. 농사 짓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재능 있는 사람과 재능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 여기 있는 어떤 사람도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다만 그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만 말할 수 있어요.nbspnbsp서울대 나와서 행정고시도 합격하고, 사법고시도 합격하고, 외무고시도 합격해서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도 심리 불안으로 아무 것도 못하고 집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게 나아요? 공부 좀 못 해도 건강하게 농사 짓고 사는 게 나아요?“nbsp“후자가 낫습니다.”nbspnbsp“큰 아이가 잘 될지 작은 아이가 잘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어요. 공부 잘 하는 사람 치고 효자가 없어요. 공부 못 하는 아들이 어쩌면 질문자가 아플 때 집에 와서 병수발도 하고, 이사 갈 때 짐도 옮겨 줍니다. 공부 잘해서 높은 직위에 올라가면 이사갈 때 짐 하나도 들어주지 못하고, 아파도 병수발을 못 합니다. 그래서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공부 잘 하는 아이한테는 돈만 자꾸 들어 갑니다. nbspnbspnbsp공부 못하는 아이는 고등학교 다니다가 그만둬버리면 돈 들 일도 없어지잖아요. 그리고 직장을 빨리 구하면 돈도 벌잖아요. 그것을 격려해주면 자립을 빨리 하는데, 계속 야단을 치면 아이가 불만이 생겨서 맨날 컴퓨터 게임만 하고 술 먹고 골치덩어리가 됩니다. 자포자기 하는 것으로 아버지한테 복수를 합니다. 자꾸 야단을 치면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오히려 없어져 버리고 ‘니가 나를 욕해? 좋다. 나도 너한테 복수하겠다’ 이렇게 나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이 뭔지 알아요? 자학하는 겁니다. 자기를 형편없이 만들어 버리는 거죠. 그러면 부모는 속이 타겠지요. 부모가 잔소리를 많이 하면 대부분 자식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야단을 치면 안됩니다. 격려해주고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nbspnbsp공부를 안 하면 질문자가 일할 때 데리고 다니면서 못이라도 하나 칠 수 있게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공부 잘 하는 아이는 부모가 자식의 노예생활을 해야 돼요. 뭐 때문에 아이 낳아서 노예 생활을 합니까? 아들은 잘 되면 다른 여자 쫓아가 버리는데, 그래서 그 젊은 여자 좋은 일 시킬 뿐이지 부모한테 무슨 혜택이 돼요? nbspnbspnbsp그러니 아이를 낳으면 세 살 때까지는 끔찍히 사랑해주고, 네 살이 되면 그때부터 심부름을 시켜야 됩니다. 설거지도 시키고 청소도 시켜야 합니다. 어리니까 제대로 못하고 사고도 내고 그러겠지요. 그래도 괜찮아요. 연습을 해야 하니까요. 옛날에는 아이 키우기가 힘들었지 키워놓으면 다 일꾼이 되고 효자 노릇을 했거든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너무 아이를 과잉보호 하니까 나이 들어서도 자식이 무거운 짐이 됩니다. 부모가 잘못 키워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아이가 공부 잘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nbspnbsp이것을 자업자득이라고 합니다. 남편을 잘못 만난 것과 부모를 잘못 만난 것은 100 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자식이 잘못된 것은 100 내 잘못입니다. 누가 아이를 낳았어요? 내가 낳았지요. 아이가 나를 낳아 달라고 그랬어요? 자기가 좋아서 헐떡 거리다가 낳았잖아요. 누가 키웠어요? 내가 키웠잖아요. 그런 아이가 내 말을 안 들으면 누구를 닮아서 그런 거예요? 나를 닮아서 그런 겁니다.nbspnbsp자식을 좋게 생각해야 자기 자신도 긍정이 됩니다. 항상 ‘우리 아이 참 좋다’ 이러면 부모인 나도 좋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 아이 문제다’ 하면 부모인 나도 문제 많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 아이도 버리고 자신도 버리는 그런 행동을 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혹시라도 ‘아이가 공부 못해서 어떡해요?’ 물으면 ‘그래도 학교는 잘 다녀요’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꼴지라도 하려면 그래도 학교는 다녀야 꼴지를 하지요. 학교도 안 다니면 꼴지도 할 수 없잖아요. 학교도 안 다니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nbspnbsp아이가 공부에 취미가 없으면 그냥 놔두세요. 그 아이는 또 다른 재능이 있습니다. 다시 물어볼게요.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거예요?”nbsp“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nbspnbspnbsp질문자가 환하게 웃습니다. 청중들도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즉문즉설의 힘이란 이런 걸까요? 아이가 문제가 많다고 답답해 하던 아버지는 스님의 답변을 듣고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환하게 웃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이어진 다음 질문에서 생과 사가 없는 도리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답변하면서도 위의 질문자의 사례를 다시 언급해 주셨습니다.nbspnbsp“방금 전 남자 분이 아이가 공부 못해서 괴롭다고 했죠. 아이는 본래 아무 문제가 없는데 아이가 공부 잘 하기를 원하면 아이는 문제아가 됩니다. 그러나 ‘공부 잘해서 뭐하노?’, ‘공부 잘한다고 꼭 좋은 게 아니더라’ 이렇게 생각해버리면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본래 문제가 없는데 내가 문제로 삼으면 문제가 있는 것이 되고, 내가 문제로 안 삼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됩니다. 문제가 있고 없음은 아이한테 있어요? 나한테 있어요? 나한테 있습니다. 얼음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나의 인식에 달려 있듯이 말이죠. 이것이 일체유심조의 뜻입니다. 깨끗하다 더럽다 하는 모양도 마음이 짓는 것이지 그 물건에 깨끗하고 더러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nbspnbsp공부 안 하는 아이에서 시작된 괴로움은 ‘생사해탈’과 ‘불구부정’, ‘일체유심조’의 진리에 다다릅니다. 생활 속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고민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연결이 되자 ‘아하 그렇구나’ 하는 탄성이 터집니다. 법회에 참석한 대중들 중에서는 불교대학과 경전반에서 불교 교리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워 하는 모습이였습니다.nbspnbspnbsp또 스님께서는 무엇이 제대로 불법을 공부하는 것인지 일러주셨습니다.nbspnbsp“공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지식적인 문제입니다. 참선을 어떻게 해요? 이것은 기술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공부 안 하는 아들 때문에 괴로워 죽겠어요’ 이런 질문은 문답을 하다가 괴로움이 없어져 버려요. 이것은 괴로움이 사라지는 ‘도’에 바로 들어가는 질문입니다. 지식이나 기술을 익힌다고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nbsp이처럼 개인들의 다양한 고민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연결되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개인들의 고민 속에서 다시 풀어내어 졌습니다. 10명의 고민에 모두 답한 후 2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법회는 끝이 났습니다. 질문을 하려고 손을 들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한 분들이 몇 명 있어서 많이 서운해하는 눈치였지만 스님께서는 다음 기회가 있음을 안내해 주시면서 법회를 마치셨습니다.nbspnbsp대중들은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주신 스님께 뜨거운 박수 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갑자기 열린 법회였지만 뜻밖에 덤으로 주어진 스님과의 시간에 대중들은 어느 때보다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법회를 마치고 나서는 스님께서 INEB 동남아 스님들을 대중들에게 직접 소개해 주셨습니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인도, 스리랑카 5개국에서 9명의 비구 스님과 4명의 여성 수행자, 3명의 재가 수행자가 함께해 이번 일주일 동안 정토회 활동을 돌아보고 있다고 소개하자 대중들은 큰 박수로 동남아 스님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 대구정토회 회원들에게게 환영의 박수를 받고 있는 INEB 동남아 스님들nbsp그리고 대중들이 동남아 스님들이 뒷자리에 앉은 것을 의아해 하자, 스님께서는 “원래 동남아 스님들을 앞자리로 모셔야 하는데 통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뒷자리에 모셨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동화사에 계시면서 찬불가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상정 스님이 찾아와 JTS 네팔 긴급구호 사업에 후원금을 전달하고 가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감사한 마음으로 후원금을 전달 받았습니다.nbspnbsp▲ 네팔 긴급구호 후원금을 전해주신 상정 스님nbsp저녁 8시 무렵 대구정토회를 출발하여 곧바로 경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INEB 동남아 스님들께 야경으로 유명한 경주의 안압지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왜 안압지를 보여주려고 하는지 그 이유도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 경주 안압지nbsp“이곳은 경주입니다. 경주는 천년 동안 유지되었던 신라의 수도입니다. BC 57년부터 AD 935년까지 유지된 수도입니다. 불교 국가였기 때문에 불교 유적이 많습니다. 여기서 건너편이 왕궁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왕궁의 정원입니다. 이곳을 밤에 방문한 이유는 유적을 어떻게 보존하고, 어떻게 조명 시설을 갖추면 밤에도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의 나라에도 이런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조명을 잘 하면 낮보다도 밤에 사람들이 더 많이 옵니다. 한번 둘러보겠습니다.”nbspnbsp가야금과 대금 소리가 고즈넉히 울려퍼지는 가운데 조용히 안압지를 산책 했습니다. 날씩 조금 쌀쌀하긴 했지만, 동남아 스님들은 연못과 정자, 나무들을 비추는 은은한 조명을 보며 무척 좋아했습니다.nbspnbspnbsp안압지를 나오는 길에는 스님을 알아보는 몇몇 시민 분들이 다가와 “스님 법문 덕분에 많이 행복해졌어요. 감사드립니다” 라고 하면서 스님과 사진을 찍고 싶다며 여러번 요청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반갑게 사진을 함께 찍어 주었습니다.nbspnbsp▲ SNS로 스님의 법문을 듣고 삶이 행복해졌다며 스님과 사진을 찍고 있는 시민들nbsp안압지를 둘러보고 나서는 동남아 스님들께 잘 주무시고 내일 뵙겠다고 인사를 한 후 두북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동남아 스님들도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잠을 청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INEB 동남아 스님들과 불국사, 현대중공업, 통도사를 둘러본 후 저녁에는 부산KBS홀에서 상반기에 마지막으로 열리는 희망세상만들기 대강연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6.4 종교인 모임 및 INEB 동남아 승가방문단 환영 인사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가졌습니다. 저녁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INEB 승가방문단과 저녁 예불을 함께 하고 인사 시간을 가진 후 통일의병 모임과 간담회를 했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4시30분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난 스님은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정진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또 어제밤에 도착한 동남아시아 승가방문단 중 일부 스님들도 새벽 예불에 나와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동남아시아에서 온 스님들은 발우공양에도 함께 참석했습니다. 발우공양 작법과 수저 사용이 익숙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은 금새 옆사람을 따라하며 무사히 발우공양을 마쳤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발우 공양 후 스님께서는 공동체 대중들이 어떤 마음으로 동남아에서 온 스님들을 모셔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nbspnbsp“오늘부터 동남아시아에서 테라바타 스님들이 오셔서 일주일 간 정토회 견학을 하십니다. 또 스텝으로 자원활동 하시는 분이 다섯 분이 오셨는데요. 감사드립니다. 대중들도 생활이 좀 불편하더라도 이분들이 잘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이분들이 잘 몰라서 물으시면 친절하게 안내해 드려야 하겠지만, 묻지 않는데 이래라 저래라 일체 가르치려고 하지 않기 바랍니다. 안내하는 역할로 지정된 사람만 성의껏 안내해 드리면 됩니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 시각으로만 보고 ‘옳다’ ‘그르다’ 하는 생각을 가지시면 안됩니다. 편안하게 지내다가 가실 수 있게 해주세요.”nbsp오늘 동남아시아에서 온 스님들은 한국에서는 보통 ‘소승불교’라고 부르는데, 자신들은 ‘테라바타’라고 부릅니다. 또 테라바타에는 비구니 제도가 없는데 대신 ‘난’이라고 부르는 여성 수행자들만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정토회 승가방문단에는 이런 여성 수행자 분들도 여섯분이나 참석할 예정입니다. 여성 수해자들은 수녀님들처럼 가사를 수하지 못하고 흰색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nbspnbsp▲ 동남아에서 오신 여성 수행자 분들nbsp이어서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한 후 아침7시부터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 참석하셨습니다.nbspnbsp오늘 종교인 모임은 메르스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우려를 나누며 여기에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정부를 개탄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것입니다.nbsp▲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nbsp또 6.15 및 8.15 행사 준비 과정에서 남북·남남갈등으로 인해 분단 70주년이라는 막중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별다른 진전이 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종교인들의 교류 행사도 좋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통일의 여건과 시급성에 대해서 국민들을 향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씀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특히 사드 배치를 둘러싼 미국 정부의 행태나 한미일 삼각동맹을 구축하려는 시도에도 별다른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이제는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nbspnbsp2시간의 토론 끝에 이제 종교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민적 우려를 표명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국민적 호소를 담아 선언문을 만들자고 하면서 모임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목사님, 신부님, 교령님이 이렇게 만장일치로 마음을 모으니 한편으로는 참 든든했지만, 종교인들도 나서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분단 70년을 맞는 대한민국이 통일의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몇 분의 손님이 정토회관을 찾아오셔서 미팅을 가지셨고, 점심 시간에는 인도에 남은 마지막 반공포로이며 재인도 한인회장을 지냈고, 가야에 불교를 전래한 허황옥 공주의 기념비와 작은 공원을 인도의 아유디아에 세운 바 있는 현동화 회장님이 찾아와 스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가셨습니다.nbspnbsp▲ 재인도 한인회장을 지낸 현동화 회장님nbsp스님께서 미팅을 연이어 하시는 동안 평화재단에서는 동남아에서 온 승가방문단 위해 정성껏 점심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식사 후 평화재단 노옥재 사무총장은 스님들께 평화재단이 하는 일과 자원봉사자들 한명 한명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동남아 승가방문단은 불교의 수행과 평화재단이 하는 사회활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해 무척 궁금해하면서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평화재단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는 INEB 동남아 승가방문단nbsp이어서 오후2시에는 국회의원 은수미님이 지난주에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깨달음의장을 마치고 오늘 스님께 인사를 하러 찾아왔습니다. 깨달음의장을 다녀온 소감을 들으신 후 스님께서는 세상에 잘 쓰이는 사람이 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오후4시에는 평화재단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출신들이 찾아와 스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습니다.nbspnbsp저녁7시에는 정토회관으로 이동해 동남아 승가방문단과 함께 저녁 예불을 함께 올렸습니다. 동남아 승가방문단은 평화재단, JTS, 좋은벗들, 에코붓다, 문화사업부, 정토회를 차례대로 둘러본 후 예불을 하기 위해 정토회관 1층 법당으로 모두 모였습니다.nbspnbsp오늘은 동남아 스님들을 위해 한국식으로 예불을 올리지 않고, 남방 불교식으로 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에 함께 참석한 대중들은 동남아 스님들이 하는 게송을 경청하며 ‘띠 사라나’와 ‘빤짜 실라’ 는 함께 따라해 보기도 했습니다.nbspnbsp▲ 남방 불교식으로 저녁 예불을 하고 있는 INEB 동남아 승가방문단nbsp예불 후 곧바로 스님께서 일어나셔서 “한국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또 저희 정토회를 방문해 주셔서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남아 스님들 한분 한분을 정토회 대중들에게 소개해 주셨습니다. 비구 스님 10명, 비구니 스님 6명 총 16명이 오셨고, 나라별로는 태국에서 11명, 라오스에서 2명, 인도에서 1명, 스리랑카에서 1명, 미얀마에서 1명이 오셨습니다.nbspnbsp정토회 대중들은 모두 일어나서 동남아 승가방문단 스님들께 삼배의 예를 올렸습니다.nbspnbsp▲ 동남아에서 온 스님들께 삼배의 예를 올리는 정토회 대중들nbsp이어서 스님께서는 동남아 승가방문단을 위해 이번 일주일 동안의 방문 스케쥴에 대해 개괄적으로 안내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여러분께 크게 두 가지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첫째는 한국의 전통불교입니다. 내일 아침에 한국 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종단인 조계종 본부에 가서 행정 체계 등을 먼저 보겠습니다. 그리고 한국 불교는 대승불교 가운데에서도 선불교입니다. 그래서 제일 큰 참선 센터가 있는 봉암사를 방문합니다. 그곳에서는 100명의 스님들이 참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 관광지인 불국사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전통 불교 중에서 많은 대중들에게 포교를 하고 있고,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통도사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비구니 스님들 200여명이 수행하고 있는 운문사를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기암괴석이 아주 아름다운 주왕산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전통 불교와 관련해서 여러분들이 보셔야 할 것들입니다.nbspnbspnbsp둘째는 여러분들의 방문 목적인 정토회를 둘러보겠습니다. 정토회는 전통 불교이면서 또 도심 속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일으키는 새로운 불교입니다. 대중들이 신자가 아닌 수행자로서 생활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실천 활동도 함께 합니다. 그래서 오늘과 내일은 저희들이 이곳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수행하는 센터가 문경에 있는데 거기서 내일 하룻밤을 자겠습니다. 그리고 청년들 700여명이 참가하는 청춘캠프에 참가해서 청년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보겠습니다. 그리고 6월8일에는 부산KBS 홀에서 2500여명 정도 되는 대중들과 담마 스피치를 하는 것을 보겠습니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법당에서 법회하는 모습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불교방송, 불교TV, 불교대학인 동국대 등을 둘러보겠습니다.nbsp현재 두 가지 일정이 서로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생활은 저희들이 사는 방식 그대로 함께 하기 때문에 스님으로서의 예우가 좀 부족하더라도 미리 양해를 좀 구하겠습니다. 저희들이 사는 것을 그대로 체험하도록 했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조금 양해해 주세요.nbspnbsp테라바타와 마하야나는 불교 문화적 전통은 서로 다르지만 담마는 똑같습니다. 문화가 다른 것들은 서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담마는 함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과 다른 모양으로 저희들이 수행을 해나가고 있으니까 여러분들께서 한번 참고해 보시면 좋겠습니다.nbspnbsp저희들의 과제는 가능한 전통을 지키면서도 어떻게 현대 사회와 조화를 이룰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이렇게 번다한 자본주의 도시 문명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습니다. 문만 열고 나가면 다 술집입니다. 그들이 괴로워서 우리 쪽으로 올 것인지, 우리가 그것이 좋아서 그들 쪽으로 갈 것인지 지금 심각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nbspnbspnbsp그래서 번다한 곳을 피하지 않고 번다한 가운데에서 우리가 어떻게 담마를 지킬 것인가 하는 이것이 우리들의 큰 과제입니다.”nbsp술집을 향하던 사람들이 정토회로 올 것인지, 정토회 사람들이 술집으로 가게 될 것인지 경쟁을 하고 있다는 말씀에 동남아 스님들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이 동남아 승가방문단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해주었고, 스님께서는 다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 모임 구성원들과 간담회를 하셨습니다.nbspnbsp‘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은 평화재단 평화리더십아카데미를 수료한 사회인들이 중심이 되어 한반도 통일을 위해 작은 기여라도 해보고자 2013년에 창립된 단체입니다. 오늘은 그동안의 통일의병 활동을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스님의 조언을 듣기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스님께서는 지금 왜 통일이 중요한지, 어떤 통일 운동을 해야 하는지 먼저 설명해 주신 후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고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 모임nbsp참석자들은 스님께 그동안 활동하면서 어려웠던 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했고, 스님께서는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밝고 신나게 통일 운동을 할 수 있는지 관점을 명확히 잡아주셨습니다. 또 통일의 필요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통일의 희망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지 자세히 말해 주었습니다.nbspnbsp“가장 중요한 통일운동은 첫째, 남한에 통일지향적 정부가 들어서서 남한 정부가 북한을 구슬려서 포용하고, 중국과 미국을 얼르고, 일본을 무마해서 어떻게든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저래서 안된다, 중국과 미국이 저래서 안된다, 일본이 저러니까 어렵다, 이런 얘기는 무책임한 얘기입니다. 북한 뿐만 아니라 각국이 다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을 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가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것을 감안해서 우리에게도 이익이 되고 그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어떤 안을 만들어서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초점을 둬야 합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은 애도 낳아서 키워 봤고, 회사도 다녀봤고, 변호사도 해봤잖아요. 그렇게 해봤으면 이제 남은 인생은 어릴 적 가졌던 꿈을 실현하는 데에 한번 몰두해 볼 필요가 있진 않느냐 하는 겁니다. 옛날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들도 똘똘 뭉치니까 세상이 바뀌었잖아요. 그런데 나름대로 사회에서 성공한 여러분들이 무엇을 못하겠어요?nbspnbsp그러니까 통일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많이 확산해 나가야 합니다. 통일 한국이 되면 어떤 희망이 있다, 그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 남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야 통일에 유리한지를 알려 나가야 합니다. 남한 사회를 좋게 만드는 것이 통일과 별개가 아니고 남한 사회를 좋게 만드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고, 통일을 하는 것이 남한 사회를 좋게 만드는 길입니다. 이 두 가지가 일치하도록 정책이 입안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통일이 되어야겠구나’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nbspnbsp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평화적으로 통일을 하려면 상대편의 동의를 얻어야 하잖아요. 상대편의 동의를 얻으려면 상대가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 안심을 시켜줘야 하고, 상대에게도 덕이 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것이 포용 정책입니다. 상대가 걱정하는 것은 신분 보장입니다. 그래서 첫째, 신분 보장을 해주고, 둘째 통일하면 먹고 살기 좋아진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미끼를 던져야 합니다. 말로는 안 믿으니까 ‘한번 봐라. 남한에서 제일 못 사는 사람들도 너희들 중산층보다 잘 낫지 않느냐?’ 이렇게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한이 잘한다고 하지만 ‘통일해서 저 밑바닥으로 가서 생활하면 지금보다 더 힘들 것’이라고 느끼면 통일이 어렵다는 것입니다.nbspnbsp그리고 우리 사회를 좀 더 민주적으로, 지방 분권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너희를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평안도는 평안도 대로 자치하도록 하고, 함경도는 함경도 대로 너희들끼리 자치를 하면 된다, 우리 남한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이렇게 보여주여야 합니다. 이것은 곧 민주주의의 발전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남한 사회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가 곧 통일의 지름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남한 국민들의 요구가 곧 통일의 길이고, 통일을 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이 더욱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 이런 정책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통일이 나와 관련없는 것이 아니고, 통일이 곧 나에게 이익이다’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nbspnbsp미국에 대해서도 친미, 반미 이렇게 가면 안됩니다. ‘긴밀한 한미 동맹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한미 동맹은 종속적 한미 동맹이였고, 앞으로는 자주적 한미 동맹으로 바꿔줘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미 하는 사람들도 자주적 동맹을 하자니까 괜찮아 할 것이고, 반미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한미 동맹을 견고히 하자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렇게 이 두 가지를 함께 묶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목표가 불분명하니까 양쪽에서 욕을 합니다.nbspnbspnbsp또 남한이 중심이 되어서 통일하자고 하는 것이니까 남한의 보수 세력이 우려할 필요가 없고, 북한을 포용하자 하니까 북한 사람들이 우려할 필요가 없잖아요. 이렇게 입장이 분명하면 양쪽을 다 아우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초기에는 북한을 반대해야 하는데 왜 포용하자고 그러느냐, 남한이 중심이 되자고 하는 것을 보니 결국 흡수통일하자는 것이냐,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우리는 너희가 원하는 통일을 하겠다’ 이렇게 하기 때문에 북한이 반대할 이유가 없고, 또 ‘남한이 중심이 되는 통일을 하겠다’ 이렇게 하기 때문에 남한이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남한이 중심이되 북한을 포용하자는 것입니다. 포용의 핵심이 신분 보장과 이익을 주는 것 두 가지입니다. 이렇게 되면 남한과 북한, 진보와 보수가 통일을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누구와도 열어놓고 대화해 볼 수 있습니다.”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답변을 모두 마치고 나니 밤10시가 넘었습니다. 통일의병들은 2시간 30분 동안 열정적으로 답변해 주신 스님께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다른 도시로 통일의병 모임을 확대해 나가고 싶은데 일손이 너무 없어서 힘들다는 분, 통일의병이 되는 자격 기준이 너무 엄격하고 형식주의가 강한 것 같은데 기준을 낮춰줄 수 있는지 묻는 분, 스님께서 강조한 통일 이야기를 A4 2장으로 요약해서 모든 국민들이 읽기 쉽도록 하자고 제안하시는 분 등 다양한 의견과 질문이 쏟아졌고, 스님께서는 각각의 질문에 대해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하반기에는 통일의병 모임에서 요청하면 가장 우선적으로 통일 강연 일정들을 잡아 놓겠다” 고 하시면서 통일의병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게 기운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nbspnbsp통일의병들과의 간담회를 마친 후에는 밤10시가 넘어서 정토회관으로 들어오셨고, 늦은밤까지 업무를 보시다가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회의를 계속 하신 후 오후에는 미얀마에서 온 시따구 사야도 큰스님과 미팅을 가지실 예정입니다. 또 저녁에는 동남아 승가방문단 일행과 함께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6.1 통일의병 서울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에서 주관한 통일 즉문즉설 강연이 서울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화광 법사님과 함께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 두북 정토수련원nbspnbsp기도 후에는 스님께서 직접 딴 상추와 고추를 곁들여 아침공양을 하셨고, 화광 법사님은 고장 난 예초기와 잔디깎기 기계를 고쳐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동안 시간이 없어 제대로 돌보지 못해 무성해진 마당과 텃밭의 풀을 정비하고 새로 심은 수박과 오이, 호박의 지지대를 세워 잘 클 수 있도록 했습니다.nbspnbspnbsp바쁜 시간을 짬내서 살핀다고 해도 늘 손길이 부족하다보니 마당의 나무들이나 풀이 무성해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오뉴월 하룻볕이 대단하다는 것을 작물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우거진 나무들의 가지를 잘라내어 작물에 그늘지는 것을 막아주고, 고쳐온 잔디깎기 기계로 마당의 잔디를 깎았습니다. 작물을 심기 위해 부족한 흙을 채우고 뒷마당의 풀을 제거하는 작업도 했습니다. 오전 내내 풀 뽑고 물 주고 잔디를 깎았는데도 손이 많이 가다보니 일을 끝까지 마무리 하지는 못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 “잡초를 제거하고 마당의 잔디를 깎고 나니 한결 시원해 보인다”고 하시면서 더 일을 할려고 하셨지만 이후 일정 때문에 일을 마무리하고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서울로 이동하였습니다.nbspnbsp오후 5시30분 경에 서울에 도착해서 원고를 교정하신 후 6시 30분에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이 주최가 되어 준비한 “스님, 통일 안하면 안되나요?”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서초구민회관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스님께서 강연장에 도착하자 무대 위에서는 통일의병 노래 소모임인 ‘학수고대’가 부르는 통일 노래가 밝고 신나게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청중들도 함께 노래를 따라부르며 어느덧 강연장은 통일에 대한 열기로 가득 달아올랐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노래 소모임 학수고대nbsp이어서 특별한 무대가 소개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희아씨가 뚜벅 뚜벅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이희아씨는 태어날 때부터 양손 손가락이 각각 두 개 뿐이고 다리도 무릎 아래까지 밖에 안 자란 장애를 가졌지만 이를 극복하고 피아니스트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분입니다. 작년 11월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호주 시드니 강연에서 처음으로 스님을 만나뵙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인연으로 오늘은 통일을 염원하는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함께 참석해 주었습니다.nbspnbsp▲ 피아니스트 이희아씨nbsp멋진 그랜드 피아노와 함께 등장한 이희아씨는 “제 꿈은 분단의 상징적 장소인 베를린 장벽 앞에서 평화의 음악회를 하는 것” 이라면서 남북의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아리랑 변주곡’을 들려주었습니다. 스님과 청중들은 이희아씨의 연주를 감상하며 분단의 아픔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이희아씨의 연주에 이어서 연단에 오르신 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기 앞서 이희아씨의 연주를 들은 소감을 먼저 나누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이희아씨와 함께 아리랑 노래를 부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고 했는데 이 가사가 마치 북한 사람들의 아우성처럼 들렸어요. 그 가사가 제 귀에는 ‘너희가 잘 산다고 하지만 우리를 버리고 가면 너희도 망한다. 너희도 성장이 둔화되고 제대로 가지 못할거야.’ 이렇게 들렸어요. 여러분들은 어땠어요?”nbspnbsp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이 떠올랐다는 말씀에 왠지 가슴이 아련해졌습니다. 하루 빨리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없어지는 날이 다가 오기를...nbspnbsp▲ 서초구민회관을 가득 메운 800여명의 청중들nbsp그리고 오늘의 강연 주제인 ‘통일 안 하면 안 되나요?’에 대한 질문에 대해 먼저 대답을 하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 주제가 ‘통일 안 하면 안 되나요?’ 인데요. 네, 통일 안해도 됩니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나서 문제이지요. 더 이상 성장이 안되고 다시 동북아의 변두리 국가로 전락하는 것이 문제죠. 우리가 지난 천년 동안 동북아 변두리 약소국의 슬픔과 한을 떨쳐버리고 고구려의 후예다운 동북아의 중심 국가로 거듭나려면 통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통일을 얘기하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러면서 스님께서는 어떻게 우리가 통일을 통해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먼저 동시대의 경험에서는 독일 통일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소개해 주셨고, 이어서 우리 역사 속에서는 신라와 가야의 합의통일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두 사례 모두 강자가 약자를 포용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습니다.nbspnbsp“평화적으로 통일을 하려면 합의를 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상대의 우려와 걱정을 좀 수용해줘야 합니다. 또 미끼도 좀 던져줘야 합니다. 통일하면 밥 안 굶을 수 있다, 통일하면 잘 살 수 있다, 이렇게 이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득을 보여줄 생각을 못하고 ‘왜 저런 놈들한테 줘야 하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좀 얻어 먹을 것이 있어야 합하자고 나올 것 아니겠어요? 결혼할 때도 다들 덕 보려고 하잖아요. 손해보려고 결혼하려는 사람 있어요?nbspnbsp동독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서독과 통일을 했겠어요?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했어요? 덕 좀 보려고 통일했습니다.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하자고 한 사람은 소수이고, 대부분 덕 보려고 통일하자고 했어요. 실제로도 덕을 봤어요. 나중에 덕을 본 것만이 아니라 통일하자 당장 덕을 봤어요. 동독 사람들의 화폐 가치를 두 배로 쳐주었어요. 그런데 무한히 화폐 가치를 바꿔준 게 아니라 5천 마르크로 제한을 두었어요. 그런데 동독에 살았던 간부들은 그것보다 돈이 더 많았겠지요. 이 사람들은 5천 마르크 미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활용해서 많은 재산을 그대로 보존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독 정부에서는 이들을 모두 눈감아 주었어요. 우리나라 같았으면 눈 감아 준다고 난리가 났을 거예요. 오히려 당장 잡아서 보복을 해야 한다고 난리가 났겠지요.nbspnbspnbsp또 서독은 동독과 통합하기 전에 공산당 활동을 허용해 주었어요. 통합하기 전에 벌써 공산당 활동이 허용되니까 동독의 공산당 간부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못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자기들의 이념을 포기하지는 않아도 되었습니다.nbspnbsp그래서 첫째는 화폐 교환 때문에 덕을 봤고, 둘째는 신분 보장이 되니까 통합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꼬리 보다는 뱀머리가 되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워낙 다수가 찬성하니까 통일로 간 것입니다. 독일 통일을 서독이 한 게 아니예요. 서독은 동독에게 이득을 보여주고 두려움을 없애주었지 서독이 통일하자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동독 주민들이 덕을 좀 보려고 자기들이 투표해서 통일하자 해서 서독은 준비도 안되었는데 통일을 했어요.nbspnbsp그래서 제가 당시 서독의 장관 출신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준비가 안되었으면 통일 안하면 되지 왜 했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하는 말씀이 ‘총 들고 넘어오면 총으로 막으면 되는데, 밥 숟가락 들고 넘어오는데 무엇으로 막아요?’ 그랬습니다. 인권 국가가 배고파서 넘어오는 사람들에게 총을 쏘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거기 있으면 돈을 두배로 계산해줄게’ 이렇게 해서 할 수 없이 돈을 많이 지불해 줬다는 겁니다. 이것이 포용입니다.nbspnbsp우리 역사 속에서는 신라와 가야의 통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신라와 가야가 통합하기 130년 전에는 가야가 신라보다 월등히 우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130년 지난 후 전세가 역전이 되었어요. 신라는 강성해졌고 가야는 약해졌어요. 이제 신라가 가야를 침공해서 합병해버리면 되잖아요. 또 가야는 백제의 힘을 빌려서 죽기 살기로 저항을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신라는 가야를 합병하기 보다는 협상을 통해, 그리고 엄청난 양보를 해서 통합을 했어요.nbspnbspnbsp첫째가 불교의 공인입니다. 그때까지 신라는 불교를 금지한 국가였고, 가야는 나라가 생길 때부터 불교가 전래된 국가였습니다. 둘째,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왕족인 진골로 모두 인정해 주었습니다. 요즘 말하면 북한에서 별 두 개 단 소장을 남한의 통합 군대의 소장으로 그대로 임명해 준 겁니다. 그리고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은 신라의 공주와 결혼시켜서 사위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대대로 종손들을 신라의 공주와 결혼하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유신 장군은 구형왕의 증손자입니다. 이처럼 신라의 위대한 장군들은 대부분 가야 출신이였습니다.nbspnbsp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시너지 효과가 났던 것은 가야와 신라의 통합입니다. 원한 관계가 있었지만 신라는 그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않고 포용을 해줬고, 가야는 한 때 자기들이 잘 나갔다고 끝까지 저항하지 않고 합의해서 통합을 했습니다. 이렇게 통합함으로 인해서 신라는 비약적으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포용입니다.”nbsp이렇게 말씀하신 뒤 스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포용할 준비가 되었는지 되물으셨습니다. 그리고 통일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nbsp“우리가 지금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겁니다. 포용을 못한다는 것은 첫째,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포용을 못한다는 것은 둘째, 비전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통일 이후에는 통일 한국이 중심이 되어서 중국, 일본과 경제 협력을 해서 동아시아 경제 공동체를 만들고, 그러면 세계 최대의 경제권이 됩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세계 문명의 중심 국가로 간다는 이런 비전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통일은 우리들의 선택입니다. 통일 안 하면 안 되나요? 네, 안해도 됩니다. 대신 그렇게 되면 발병이 납니다. 그러나 발병이 나지 않고 저 언덕을 넘어 이상 세계로 가서 문명의 꽃을 피우려면 우리는 북한을 부축해 가면서 함께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것을 오늘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nbspnbsp이렇게 스님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통일에 대한 상상으로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합니다. 두근 거리는 가슴을 잠시 가라 앉히고 이어서 통일에 관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총 4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왜 이 세상에 왔을까요? 초등학생 때부터 이 질문을 하였는데 그 대답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온전히 저 자신으로 깨어서 자유롭게 사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nbsp“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통일에 대해 가르칠 때 저는 주로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북한의 참상에 마음아파하면서도 ‘아프리카 아이들과 다를 것이 뭐냐’하며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성금 보내듯 도와주면 되지 않을까요?’, ‘굳이 통일을 해야 하나요?’ 반문합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주면 좋을까요?”nbsp“통일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스님이 지향하고 싶은 통일방법은 무엇이고, 통일 후 국민들의 소통을 위한 각자 국민들의 마음자세 및 행동에 대하여 생각해 놓으신 게 있으신지요?”nbspnbsp이렇게 세 명의 질문이 있었고, 또 하나는 북한이탈주민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북한이탈주민이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질문자는 북한 말투로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피력하면서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 스님께 질문하는 북한이탈주민nbsp“저는 탈북자입니다. 밖에 다니다보면 대한민국에는 평화라는 이름으로 막 떠드는 단체들도 되게 많습니다. 북한에서는 어린 아이 때부터 어떻게 교육을 하냐면 ‘총대 위에 평화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상대를 포용을 할 수 있는 넓은 가슴을 가져야 된다고 했잖아요. 만약 상대가 총대를 들이밀면서 심장을 달라고 했을 때 스님은 줄 수가 있겠는지요? 그 자리에서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말이죠.”nbspnbsp“심장을 달라고 하면 안 주지요. 왜 줘요? ‘안 줘’ 이러면 되지요.” nbspnbsp“그러면 스님이 오늘 얘기하신 주제는 가슴 아픈 상처가 있다 해도 독일이 통일한 방식대로 우리도 서로 포용해서 통일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평화라는 말은 얼마나 좋습니까? 피도 안 흘리고 통일을 할 수가 있으니까요.”nbspnbsp“피를 흘려가면서 통일할 사람 아무도 없기 때문에 제가 피 흘려가면서 통일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nbsp“여기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상대는 어릴 때부터 ‘총대 위에 평화가 있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우리는 포용을 하려고 접근을 하는데 상대는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면 어떡하죠? 그래도 죽을 때까지 우리는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nbspnbsp“북한이 6.25 때는 자기들이 힘이 셌으니까 힘으로 밀어붙여서 통일하려고 그랬잖아요. 자기들이 중심이 된 통일을 하려고요.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지금은 북한이 중심이 되어서 통일할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없다고 봐요?”nbsp“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죠.”nbsp“전쟁을 한다면, 첫째, 북한이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남한을 이길 수 있어요? 둘째, 미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셋째,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때 중국이 북한을 도와줄 리가 있어요? 북한의 힘만 갖고 남한을 이기고 미국까지 이길 수가 있을까요?”nbspnbsp“북한이 대한민국 하고만 상대를 하면 이길 수도 있습니다.”nbspnbspnbsp“옛날 6.25 때는 이길 수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 이길 수 있겠냐는 겁니다.”nbsp“그런데 대한민국에는 ‘자립’, ‘자주’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미국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런데 왜 굳이 북한이 미국과 대한민국을 같이 상대해야 하는지요?”nbspnbsp“현재 한미 군사동맹이 맺어져 있잖아요? 그러면 남한을 북한이 침공하면 미국은 자동 개입하도록 되어있어요. 자기는 북한에서 살다왔으니까 ‘북한이 이길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객관적으로 볼 때 북한이 한국을 이기고 거기다가 미국까지도 이길 수가 있겠느냐?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길 수 없습니다. 북한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서 말은 통일이라고 얘기하지만 늘 ‘한국에 안 먹히겠다’ 고 하면서 흡수 통일에 반대하잖아요. 흡수통일에 반대하는 것은 지금 수세에 몰렸다는 거예요? 공격적이라는 거예요?”nbsp“수세에 몰렸기 때문에 그래요.”nbspnbsp“수세에 몰렸으니까 북한은 자기를 지키고자 하는 방어적 입장이라는 거예요. 자기들이 통일해서 한국을 갖겠다는 목표는 이미 벌써 포기했고, 당연히 ‘우리는 우리 체제를 지키겠다’ 그렇게 생각하겠죠. 우리도 60년 전에 북한이 남한을 침공할 때 우리 힘으로 우리를 못 지키니까 미국의 도움을 얻어서 지켜냈잖아요. 그런 것처럼 북한도 자기 힘으로 지킨다고 하지만 만약 결정적으로 자기 힘으로 못 지키면 중국에 요청해서라도 지키려고 그럴 거 아니에요? 그래서 북한이 지금 약하다 하더라도 무력으로 통일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에요. 북쪽이 남쪽을 공격하겠다, 남쪽이 북쪽을 공격하겠다, 이렇게 서로 말은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못합니다.nbspnbsp그러면 북한 입장에서는 흡수가 안 되려면 총대를 쥐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겠죠. 북한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에요. 당연하지요. 그러면 남한도 북한의 침공을 막으려면 국방력을 강화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nbsp“대단히 강화해야겠죠.”nbspnbsp“그래서 지금 남한도 국방을 강화하잖아요. 그러면 통일하지 말고 그냥 서로 이렇게 무력으로 대치하면서 ‘너는 너고 나는 나다’ 하는 이 길이 하나 있습니다. 이렇게 가면 우리는 앞으로 더 발전하기는 이제 어려워집니다. 경제 성장력은 둔화가 되고, 복지의 요구는 많아지고, 국제관계에서는 미중 사이에 중간에 껴서 지금도 사드 배치부터 복잡해지잖아요. 이렇게 더 발전할 가능성은 없어지지만 ‘이 정도 발전했으니까 안주하자’ 이렇게 하면 이대로 살아도 된다고 전제를 했잖아요.nbspnbspnbsp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남북 통일을 하면 미국에 대해서는 종속적 한미동맹에서 자주적 한미동맹으로, 중국에 대해서는 반중에서 우호적인 한중관계로 이렇게 방향을 잡아 나갈 수 있습니다. 또 통일하면 북한 개발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지금 북한은 건물도 새로 지어야 되고, 도로도 새로 닦아야 되고, 전기도 새로 놓아야 되잖아요. 북한 사람들 옷도 입혀야 되니까 옷 장수도 돈 벌겠죠. 철강, 시멘트도 엄청나게 들어가고, 포크레인도 엄청나게 필요하고, 그렇게 되면 한국 경제가 살아납니다. 지금 한국은 성장이 안 되고 있는데 북한 개발에 들어가게 되면 경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러면 돈이 들지 않느냐? 맞아요. 그런데 이것은 먹어버리고 치우는 놀잇돈이 아닙니다. 이것은 개발이라고 말합니다. 개발은 투자에 들어 갑니다. 투자는 우리 돈이 좀 부족하면 남의 나라에서 빌려도 돼요. 왜? 이것은 투자이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돈이 생깁니다. 갚으면 되죠. nbsp통일 비용을 소비적 비용으로 계산하니까 부담이 되지요. 투자 비용으로 계산하면, 우리 돈으로 쓰고 부족하면 빌려와서 쓰고 나중에 생산된 물건으로 갚으면 되기 때문에 이것은 미국의 서부 개척처럼 우리 경제의 정체 국면을 다시 한번 도약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nbspnbsp두 번째는 노동력 문제입니다. 한국의 중소기업이 지금 인건비 때문에 굉장히 어렵거든요. 한국보다 저임금을 받는 중국에 가서도 지금 다 철수하잖아요.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보다 더 저임금이거든요. 그래서 경제적으로 시너지 효과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남한으로서는 통일하는 게 유리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북한으로서는 주민들은 유리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중간 간부도 유리하다고 생각하는데 최고지도부에 있는 사람은 용꼬리 되는 것보다 뱀머리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안 원할 거예요. 그러니까 북한의 지도부에 대해서는 신라가 가야에게 했듯이 신분을 어느 정도 보장해 준다든지, 체제를 어느 정도 보장해주도록 중국처럼 1국 2체제로 간다든지 이렇게 지도부가 통일을 안 할 수 없도록 조금씩 만들어가는 게 필요합니다.nbspnbspnbsp통일 안하겠다고 앙탈을 피우는 상대를 어떻게 조금이라도 가능하도록 할 거냐 하는 것은 앞으로 정책에 달려 있습니다. 총을 들고 ‘건드리기만 하면 죽여 버리겠다’ 이런 사람을 보고 나도 때리겠다고 덤비면 싸움이 되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을 건들일 필요가 뭐가 있어요? 잘못 건드려서 인천 공항에 미사일이라도 떨어지거나 원자력 발전소에 폭탄이라도 떨어지면 누구 손해예요? 자기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건들겠지만 여기서는 방어만 하지 그것을 건들일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익이 되도록 하면서 문제를 풀어 가면 되지요. 그러니까 어렵지요. 북한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다 잘하겠다. 우리 협력해서 하자’ 이렇게 나오면 통일이 벌써 됐지요. 70년이 지나도록 왜 안 되었겠어요? 상대가 죽기 살기로 저항을 하니까 이제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맞대응 하는 것보다는 잘 구슬리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nbsp“네, 이해했습니다.” nbspnbspnbsp문답이 오고 가면서 질문자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습니다. 아마 질문자는 북한은 대화가 불가능한 집단인데 과연 남한의 포용 정책이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문이 많았나 봅니다. 하지만, 스님의 거듭된 설명 속에서 조금이나마 희망적인 길을 발견한 것 같았습니다.nbspnbsp어느덧 강연을 시작한지 2시간이 훌쩍 넘었습니다. 이제 강연을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 내용을 정리해 주시면서 과거의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미래의 이익을 보고 나아가야 함을 다시한번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nbsp“우리가 머리를 조금만 잘 쓰면 통일은 내적으로도 굉장히 좋은 환경이에요. 외부적으로도 환경이 괜찮아요. 그런데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곧 미국과 중국의 힘이 팽팽해 집니다. 지금 사드 갖고 서로 붙는 거 보세요. 힘이 팽팽해지면, 망설이다가 미국 손을 너무 늦게 잡으면 미국이 일본으로 넘어가버리고, 중국 손을 너무 늦게 잡으면 중국이 북한으로 기울어 버립니다. 또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우리의 경제는 굉장히 어려워지고,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안보가 일본에게 종속되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은 지금 입시가 문제이고 경제가 문제이지만, 국가적으로는 지금 굉장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국민들이 국가의 주인이라면 이 상황을 알아야 되는데, 주인들이 아니고 신민이다 보니까 ‘임금님이 알아서 잘하시겠지’ 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이 굉장히 어려운 고비입니다. 제가 10년 전부터 위기에 처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잘 안 들었는데, 이제 몇 년 내로 가부 간에 결론이 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이런 위기를 우리가 이해하고 나라가 조금 더 잘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들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행사하자는 겁니다.nbspnbsp그래서 현재의 정부를 향해서 ‘그렇게 하세요’ 라고 말할 줄 알아야 되고, 말을 안들으면 바꿔버릴 줄도 알아야 됩니다. 또 새로운 정부도 말을 안들으면 또 바꿔버릴 줄도 아는 그런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정부가 남북 대화를 안 하면 하라고 얘기해 줘야 하고, 남북 대화는 하는데 남남대화를 안 하면 ‘남남대화도 해라. 반대하는 쪽 이야기도 받아들여서 국민 화합을 해라’ 얘기해 줘야 합니다.nbspnbsp북쪽 사람들과도 대화를 하자면서 남한 사람들끼리 서로 대화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되잖아요. 일본과 대화하자고 하면서 북한하고는 대화하지 말자는 것은 말이 안되잖아요. 북한하고도 대화를 해야 통일이 가능하다면, 왜 남한 안에서 같은 국민과 대화를 안 해요? 대화를 하고 합의를 해야지요. 일본과 중국 하고도 대화를 해야 된다면 당연히 북한하고도 우리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nbspnbsp중국은 6.25 때 100만 군대를 보내서 얼마나 우리를 힘들게 했어요? 그런데 사과를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중 수교를 했잖아요. 몇 년 전 시진핑이 부주석으로 있을 때 ‘항미 원조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였다’고 말했을 때도 한국에서 한 사람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왜? 중국과의 관계에 이익이 걸려 있으니까요.nbspnbspnbsp그런 것처럼 남북의 협력이 우리에게는 대박나는 이익이 걸려있는 큰 비전이라면, 과거의 한은 설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땠냐를 얘기하면 죽을 때까지 얘기해도 해결이 안돼요. 그러나 미래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 이익임을 알면 우리는 과거의 감정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은 국가의 주인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할 줄 알아야 됩니다.”nbspnbsp청중들의 뜨거운 박수 갈채가 터져나오면서 강연이 마무리되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 무대에서 내려오자 강연장 전체가 갑자기 암전이 되고 통일의병 김경익님이 무대로 나와 통일을 향한 간절한 다짐이 적힌 편지를 읽어 주었습니다.nbspnbsp편지 낭독이 끝나자 촛불을 든 통일의병들이 무대 위로 함께 올라왔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가 은은하게 강연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스님께서도 무대 위로 올라오시고 무대와 청중석이 하나가 되어 다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손에 손 잡고 불렀습니다. 서초구민회관은 잠시 통일의 물결로 넘쳐흐르는 장관이 펼쳐졌습니다.nbspnbspnbsp함께 노래를 부르고 나니 가슴이 찡했습니다. 머지 않아 통일을 꼭 이루리라는 다짐을 하며 청중들은 강연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책 사인회가 열렸고, 강연장 앞 로비는 길게 줄을 서서 스님의 사인을 받고자 하는 분들로 북적였습니다.nbspnbspnbsp또 많은 분들이 스님의 통일 강연을 책으로 엮은 ‘새로운 100년’ 책을 구입하고, 또 통일시민학교에 참가 신청도 하고, 통일의병 후원회원 가입 신청도 해주었습니다.nbspnbsp책 사인회가 끝나고 오늘 강연을 위해 봉사한 통일의병들과 다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통일의병’ 하고 씩씩하게 외치는 모습이 아주 늠름해 보였습니다.nbspnbsp▲ 오늘 행사를 주최한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과 함께nbspnbspnbsp또 통일의병들은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주신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꽃다발을 선물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꽃다발을 건내준 분과 반갑게 악수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서초구민회관을 나오신 스님께서는 뒷풀이를 하러 이동하는 통일의병들을 수고했다고 격려해 주신 후, 곧바로 정토회관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정토회관에서는 노희경 작가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신 후, 이어서 모레부터 진행되는 INEB 동남아 스님들의 한국 방문 일정에 대해 실무 담당자와 회의를 하신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
2015.5.30 저녁부 자원활동가 수련 1일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전국에서 모인 저녁부 담당 자원활동가 200여명과 함께 수련을 하셨습니다.nbspnbsp그동안 정토회는 주간부를 담당하고 있는 주부 자원활동가들이 주축이였는데 최근에는 직장인들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저녁부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여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저녁부 자원활동가 수련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비가 와서 일정이 어찌 되려나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행사를 시작할 때는 비가 그쳐서 야외에서의 즉문즉설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오전 10시가 되자 전국의 저녁부 자원활동가들이 일제히 문경새재로 모여들었습니다. 문경새재 앞에 위치한 숙소의 대강당에 모인 활동가들은 삼귀의, 반야심경, 청법가로 스님께 입재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nbspnbsp▲ 저녁부 자원활동가 수련 입재 법문nbsp입재 법문에서 스님께서는 먼저 직장 일과 가정 일, 정토회 활동까지 겸해야 하는 저녁부 자원활동가들의 애로 사항을 격려해 주신 후 이를 위한 극복 방법으로 수행자의 관점을 제시해 주셨습니다.nbspnbsp“절에 와서 봉사활동 하는 것을 더 할 수 있는 ‘자유’로 볼 것인지, 이것까지 해야 하나 하는 ‘의무’로 볼 것인지, 여기서 큰 차이가 납니다. 정토회의 회원은 모두 수행자라고 제가 그랬잖아요. 수행자라면 원래 절에서 혼자 살아야 돼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수행자임에도 결혼생활 하는 것을 허용했으니까 특혜이지요? 또 수행자임에도 불구하고 결혼 안 한 사람들에게도 밖에 가서 머리 기르고 맛있는 것 먹어도 되도록 허용했으니까 이것도 특혜이지요?nbspnbsp그러면 수행자로서의 본본을 좀 하고 나서 특혜를 누려야 해요? 수행자라는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려야 해요? 본분은 좀 지켜야 하잖아요. 그러니 저녁에 퇴근하고 나서 또는 주말에는 수행자로서의 본연의 의무를 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안하려고 하면 수행자라는 이름을 떼야 해요. 인생을 사는데는 규정을 어떻게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여러분들이 자신을 수행자라고 규정하면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은 진짜 잘 태어난 겁니다. 옛날에는 수행자가 되면 밥도 얻어 먹으러 다냐야 하고, 여자 남자 손도 못 잡아보고, 사회 생활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수행자이면서 이것도 저것도 다 하잖아요. 대신 오계와 팔재계만 꼭 지키셔야 해요.nbsp여러분들은 저녁반이니까 직장도 다니랴, 활동도 하랴,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파견을 나와 있는 수행자입니다. 수행자이므로 아침에는 그 징표로 1시간은 수행을 해야하고, 저녁에는 그 본분을 지키기 위해 법문을 듣고 정진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이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직장 나가지 않는 주말에는 법당에 나와서 수행자의 본분을 좀 지켜야 합니다. 그럼 이것은 특혜입니까? 힘든 일입니까?” nbspnbsp“특혜입니다”nbspnbsp“마음을 이렇게 먹으면 똑같은 일도 다르게 보입니다. ‘이것까지 하려고 하니 힘들다’ 이렇게 사물을 보는 것과 ‘아, 이것까지는 허용해주네’ 이렇게 사물을 보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제가 만번을 격려해주는 것보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점을 바꾸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어 버리고, 관점을 엉뚱하게 잡으면 허공에 헛꽃을 꺽는 것이 됩니다. 헛꽃를 꺽기 위해 밤새도록 쫓아 다녀야 해요? 눈을 번쩍 떠야 해요? 눈을 번쩍 떠야 합니다. 눈을 번쩍 뜨면 아무런 할 일이 없어집니다.nbspnbsp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제가 아무리 수행자라고 관점을 잡아줘도 겉으로는 수행자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신도다’ 하고 있어요. 그래서 ‘신도가 이런 일을 해도 되나?’, ‘신도가 일이 너무 많다’ 이러고 있으니까 지금 스트레스 받고 힘든 거예요. 그러니 오늘 수련을 통해서 관점을 딱 바로잡아 정립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nbspnbsp수행자로서의 관점을 바로 잡으면 오히려 허용해 주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고민거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말씀에 활동가들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활동가들은 마음을 가볍게 해 준 스님께 큰 박수 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입재 법문을 마치고 나서는 산책 나갈 채비를 하고 숙소 앞마당에 모두 모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산책을 출발하기 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은 산책길 1위가 어딘지 아느냐?”고 물으시면서 “문경새재라고 인터넷에 되어있더라” 하시면서 문경새재 제1관문을 향해 앞장서 출발하셨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스님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시민들이 많았는데 스님께서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nbspnbsp▲ 문경새재 1관문으로 가는 산책로nbspnbsp비가 온 뒤라 뜨거운 뙤약볕은 온데간데 없이 산책하기에 최적의 날씨였고 멋진 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가는 도중에 하얀 찔레꽃을 지날 때 스님께서 송수신기를 통해 “찔레꽃 노래 한번 불러봐라”하시자 활동가들은 일제히 함박 웃음을 피우며 “찔레꽃 붉게 피는” 하며 노래 한자락을 뽑았습니다.nbspnbsp▲ 찔레꽃nbsp문경새재 1관문 옆에 위치한 성황당 자리에 도착하자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성황당에 참배를 한 후 아침에 싸오신 도시락을 드셨고, 자원활동가들도 지역별로 둥글게 모여 앉아 소박하지만 맛있는 도시락 공양을 하였습니다.nbspnbsp▲ 점심 공양 시간nbspnbsp공양 후에는 레크리에이션과 함께 즐거운 친교의 시간을 가진 후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물어 보세요”라고 하시며 질문을 받으셨습니다.nbspnbspnbsp어리석음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인데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그 방법을 물으신 분, 직장을 다니면서 집안일과 정토회 활동을 함께 하는 것이 힘들다며 주 5일제 근무도 하는데 수행도 일요일은 쉬게 해달라는 분, 반야심경과 예불문이 한자라서 뜻이 잘 이해되지 않으니 우리말로 된 경전 독송을 하게 해주면 좋겠다는 분, 사람을 처음 만나면 불편하고 오래 만나면 안주하게 되는데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지 물으시는 분 등 모두 4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직장일과 집안일, 정토회 활동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정토회 봉사활동을 나오시는 많은 분들이 이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nbspnbsp“저는 직장일도 하면서 엄마이면서 주부이면서 정토회 활동도 하는 것 사이에서 심적으로 굉장히 힘듭니다. 직장에서 일하고 와서 저녁에는 밥도 해야 하지만 다시 정토회로 출근합니다. 밤늦게 집에 들어오면 저는 수행이 되어서 너무 즐거운데 집에 있는 식구들은 먹을 것이 없다고 아우성이예요. 화요일은 불교대학 수업 끝나고 뒷정리까지 하고 집에 들어가면 밤12시가 넘을 때도 있습니다. 새벽에는 5시에 일어나서 절도 해야 하고요.nbspnbsp남편이 기분이 좋을 때는 친구들에게 ‘우리 집사람은 보살이야’ 이렇게 자랑하기도 해요. 그런데 집안 일과 정토회 일이 겹칠 때는 굉장히 안좋게 생각해요. 어제는 시동생이 결혼 앞두고 상견례가 있었는데 오늘 수련 때문에 못간다고 하니까 그것 때문에 소리를 지르면서 크게 싸웠어요. 정토회 일도 제대로 마무리 못하고 집안 일도 제대로 못해서 어정쩡한 이 불편함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또 건의하고 싶은 건 요즘 다 주 5일제로 바뀌었잖아요. 새벽 정진도 주 5일제까지는 아니어도 일요일 하루 정도는 쉬면 안될까요? 요즘 너무 무리를 하고 있어서 이러다가 남편이 독거노인이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nbspnbsp“한번 빼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요. 주 2일 빼주다가 주 3일 빼주다가... 그럴 바에야 아예 하지를 말지 그래요? nbspnbsp신자로서는 지금 무리를 하고 계신 것이 맞아요. 그러나 수행자는 관점이 바뀌어야 해요. 방금 ‘몸은 견딜만한데 심적으로는 힘들다’ 이렇게 말했잖아요. 그러나 수행자는 ‘마음은 편안한데 몸은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말해야 해요. 안 그러면 수행자가 아니지요. 열가지를 하든 천가지를 하든 ‘마음은 상관이 없는데 몸이 도저히 못견디겠어요’ 이러면 ‘좀 쉬어라’ 하겠는데, 지금은 ‘몸은 견디겠는데 마음이 힘들다’ 그러니까 저의 대답은 ‘너는 수행이 안되었다’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nbspnbsp수행이 안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욕심을 낸다는 얘기입니다. 수행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 욕심을 내는 것은 수행일까요? 욕심일까요? 욕심입니다. 수행에 대해 욕심을 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가끔씩 남편의 요구가 지나칠 때는 ‘여보, 내가 당신 마누라이긴 하지만 나도 독립된 인간인데 요구가 지나치지 않아요? 제가 당신 종이 되려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서로 행복하려고 결혼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좀 지나친 것 같아요’ 이런 얘기를 할 필요는 있습니다.nbspnbsp그러나 남편 입장에서 볼 때는 질문자를 수행자로 알고 결혼했어요? 내 마누라 되어달라고 결혼했어요? 내 마누라 되어달라고 결혼했는데 마누라 역할은 제대로 안하고 자꾸 밖에 나가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 남편이 불만을 표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라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불만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거기에 응할 것이냐 안 응할 것이냐는 내 문제인데 불만 그 자체는 당연한 것입니다. 남편을 미워하거나 남편에게 항의할 권리는 없어요. 남편은 애 엄마 역할을 해달라고 나와 결혼을 했지 정토회에 가서 활동하라고 결혼한 것이 아니거든요. 처음부터 그렇게 결혼한 것이 아니라 중간에 역할을 바꿔서 내가 딴짓을 하고 있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첫째, ‘남편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겠구나’ 이렇게 인정을 해야 해요. 참으려고 하지 말고 이것을 먼저 인정해야 해요. 그래서 항상 ‘죄송합니다’ 말해야 합니다.nbspnbsp두 번째는 남편의 요구가 정당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내가 응할 것이냐. 이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당신의 요구가 합당하니 그 요구에 응하겠습니다’ 하는 길이 있고, ‘내가 결혼할 때는 이런 일을 예상 못하고 당신의 요구대로 결혼한 것이 맞는데, 내가 살다보니까 이렇게 사는 건 힘들고 너무 재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수행자로서 좀 살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엄마 역할과 아내 역할을 전혀 안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수행자의 역할을 하고 싶으니까 기존에 당신이 나에게 요구하던 수준을 좀 조정하자. 5일을 원했으면 3일로 좀 조정을 하자’ 이렇게 타협을 하는 길이 있습니다. 물론 이해관계가 있으니까 남편은 안 내려놓으려고 하겠지요. 그러나 나는 쟁취를 해야 하니까 밀당을 해서 타협을 해야 하는 겁니다.nbspnbsp한번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보세요. ‘내가 옛날에는 당신에게 짜증을 많이 내었잖아. 이제는 짜증을 좀 적게 낼 테니까 저녁 시간을 나한테 좀 주라. 아니면 당신이 방청소를 좀 해주라. 만약 내가 짜증을 내면 짜증 낼 때마다 그 과보로 하루씩 일찍 들어올게’ 이렇게 하면 내 수행도 되잖아요. 타협안을 마련하는 수 밖에 없어요. 그래도 계속 불평을 하면 다른 여자를 구해주는 수 밖에 없고요. nbspnbsp왜냐하면 서로 계약을 했잖아요. 내가 계약을 지킬 수가 없으면 계약을 해지 해야지요. 이 때 수행자는 ‘당신이 싫어서 같이 안 산다’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 정말 그 사람을 위해서 계약 해지를 해야 합니다. 나는 이 길을 가야되고 남편은 계속 다른 요구를 하면 결국 해결책은 나는 이 길을 갈 수 밖에 없다고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게 수행입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 하려고 욕심을 내지 말고요.nbspnbsp결국 조절을 해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참지 말고 대화를 좀 해야 합니다. 참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질문자는 참았기 때문에 터진 거예요. 그런 감정이 생길 수는 있지만 그 요구를 정당하게 받아들이면 참을 것이 없습니다.nbspnbsp매일 아침 절하는 것은 ‘부처님은 6년 고행도 했는데 그 정도는’ 하면서 한번 넘겨보든지요. 병원에 실려가서 까무라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번 해보는 겁니다. 저는 단식 하다가도 까무라쳐 봤고, 예전에는 학원 강의를 하루에 16시간 했었어요. 강의가 새벽 5시10분부터 시작해서 밤 12시30분에 끝나고 그랬거든요. 그렇게 강의하다가 분필 쥐고 쓰러져서 마이크도 땅바닥에 다 떨어뜨리고 삼일 있다가 깨어났거든요. 그래도 안 죽고 살더라구요. 일주일 동안 잠 안자고 용맹정진 할 때는 너무 잠이 와서 화장실 문고리 잡고 자기도 하거든요. 이것을 정진으로 생각해야지 힘들다고 생각하면 안돼요. 몸이 힘든 것은 이해가 되는데 마음이 힘든 것은 안돼요. 관점이 좀 바꿔야 해요.nbspnbsp정진에는 휴가가 없어요. 일에는 휴식이 필요하지만 정진에는 휴식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수행자라면 머리를 깍아도 그 생활, 머리를 길어도 그 생활, 혼자 살아도 그 생활, 같이 살아도 그 생활, 군대 가도 그 생활, 전역해도 그 생활, 이렇게 수행자로서 삶의 길은 그대로 한결 같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목탁 치는 일을 하다가 타이핑 치는 일을 하든지, 종 치는 일을 하다가 빗자루로 마당 쓰는 일을 하든지, 이렇게 일하는 대상만 바뀌는 거예요. 빗자루질 하다가 49재 기도 한다고 하면 빗자루 놓아두고 49재 기도하고요. 기도가 끝나면 다시 걸레질을 하든지 이렇게 일하는 대상만 바뀌는 것이지 ‘왜 일을 2개, 3개나 하라고 하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nbspnbsp여러분들은 같은 나무를 열 개 심으라고 하면 ‘왜 똑같은 걸 열 개 심어야 해요?’ 이러고, 나무를 바꿔 가면서 열 개 심으라고 하면 ‘왜 열 종류나 심어야 해요?’ 이럽니다. 종류별로 열 개를 심든 같은 종류를 열 개 심든 어차피 열 개 심는 건 같잖아요. 그러면 스님도 즉문즉설을 하면서 ‘물을려면 수행만 일관되게 묻지 왜 이것 물었다가 저것 물었다가 하느냐?’ 하지 않잖아요. 이거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고, 저거 물으면 저렇게 대답하지요. 여러분들도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어요. 엄마, 아이, 남편, 나 이렇게 넷이서 대화를 나눌 때 엄마가 말하면 딸로 역할하고, 아이가 말하면 엄마로 역할하고, 남편이 말하면 아내로 역할하잖아요. 이게 헷갈려요? 한 개 역할도 못하는데 세 개 역할을 해야 해서 힘들어요? nbspnbsp여러분들은 이렇게 실제로 일상 속에서 도를 행하고 있어요. 여러 역할도 멀쩡하게 잘 하다가 지금처럼 질문할 때는 ‘절에 와서 수행도 해야지, 직장도 다녀야지, 집에 가면 마누라 역할도 해야지, 엄마 역할도 해야지, 살림도 해야지’ 이렇게 얘기하니까 굉장히 역할이 많은 것 같잖아요. 이럴 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진공청소기를 사용하든, 세탁기나 전기밥솥을 사용하든, 아니면 아이한테 적절히 역할을 주면 됩니다. 남편은 내 마음대로 안되지만 아이는 내가 낳아서 키웠으니 내 마음대로 좀 되어야 할 것 아니예요? 아이를 살살 꼬셔서 ‘아빠가 저러니까 너가 밥을 해서 엄마가 했다고 해라’ 이러면 되잖아요. nbspnbspnbsp이게 어려우면 아이를 잘못 키웠다는 얘기지요. 아이가 다 컸을 때 일을 시키려고 하니까 안되잖아요. 어릴 때부터 연습을 시켜야지요. ‘얘야, 밥그릇 좀 가져오거라’ 이렇게 계속 어릴 때부터 연습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일곱 살 정도가 되면 엄마 일의 절반 정도는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열 살만 되면 집안 살림을 다 맡겨도 될 정도로요. 인도에 가보면 유치원 아이들이 그릇을 태산처럼 가져와서 설거지를 합니다. 키우기 나름이예요. 우리 세대가 왜 이렇게 부지런하냐면 어릴 때부터 일을 해서 그런 겁니다. 이런 건 아이한테도 좋은 거예요. 공부 좀 더해서 지식 더 쌓는 것은 본인한테는 좋을지 몰라고 엄마한테는 하나도 도움이 안되요. 설거지를 시키든지 밥을 하게 하든지 상을 펴게 하든지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켜야 엄마 살기가 점점 편해지지요. 질문자가 지금 가정부를 둘 형편은 안되잖아요. 아이 잘 키우면 가정부 절반 역할은 한다니까요. nbspnbsp어릴 때부터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같이 일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엄마는 안 하면서 ‘휴지 주워라’ 이러면 안돼요. 엄마 하나 줍고, 아이 하나 줍고 이렇게 엄마도 하면서 ‘너도 하나 주워라’ 이렇게 시켜야 일꾼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아이를 임금 모시듯이 가만히 모셔 놓으니까 나이가 스물이 넘었는데도 ‘밥해달라’, ‘빨래해달라’ 이렇게 하는 겁니다. 지금와서 새삼스럽게 임금을 용상에서 끌어내어 하인으로 시킬려고 하니까 안되지요. nbspnbspnbsp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천하가 다 내 말을 안들어도 자식은 내 말을 들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왜 자식이 내 말을 안 들을까요? 이것은 잘못 키웠다는 얘기입니다. 아이는 세 살 때까지는 극진히 보살피고,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아이 앞에 오면 딱 부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네 살 때부터는 일을 조금씩 시키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렇게 키워야 부모와 자식 관계도 좋아지고, 아이가 자립도 되고, 엄마 마음도 알고, 아이도 엄마를 도와주기 때문에 좋아지지요. 아이도 엄마와 같이 고생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같이 고생한 것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아이에게 이런 추억을 만들어줘야지요. 옛날에는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들었지만 크고 나면 다 효자 역할을 했습니다. 농사 지을 때 다 자식들이 일꾼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여러분들은 지금 그 좋은 일꾼을 그냥 버려둡니까. 어릴 때 잘못 키워서 그런 겁니다.nbspnbsp아이가 초등학생 정도 되면 집안일은 아이한테 맡겨 두고 이런 수련에 참가하면 됩니다. 아이가 ‘엄마 왜 가?’ 하면서 뭐라 뭐라 하면 ‘너 낳아서 이만큼 키웠줬잖아. 그럼 엄마가 맨날 성질 내는 게 낫니? 하루씩 자리를 비우고, 너가 밥을 하더라도 짜증 안 내는 게 낫니? 엄마가 수행을 해서 요즘은 화를 안내잖아. 옛날로 돌아갈까?’ 이렇게 얘기해주면 되지요. nbspnbspnbsp아이들과 남편하고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일도 분장하고 하면 되지요. 생각을 좀 바꿔야 해요. 인생을 너무 피곤하게 사는 것 같아요. 남편한테도 ‘아이고, 저와 같이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이런 마음을 내고, 소탈하게 툭 터 넣고 얘기를 하세요. 자꾸 참으면서 착한 여자 되려고 하지 말고요. 이 좋은 시절에 그렇게 기죽고 살 이유가 뭐가 있어요?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고 서로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면 헤어질 수도 있는 겁니다. 서로가 불행하면 같이 안 사는 것이 나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때 성질 내면서 헤어지면 안돼요. 상대가 싫어서 헤어지는 것은 수행자가 아닙니다. 이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혼은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자세로 좀 당당하면서도 화목하게 사는 게 필요합니다.”nbsp스님의 재미있고 유쾌한 답변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습니다. 질문자의 어두웠던 표정도 어느새 환한 웃음으로 밝아져 있었습니다.nbspnbsp오후 1시부터 시작된 즉문즉설은 3시가 훌쩍 넘어 끝났습니다. 비가 온 뒤라 숲 속은 쌀쌀했지만 그 덕분에 졸지 않고 또렷이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문경새재 1관문 앞으로 내려와 전국 저녁부 활동가들 모두와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께서 사진을 찍기 위해 가까이 오시자 활동가들 모두 너무나 행복해 했습니다.nbspnbspnbsp숙소로 돌아온 저녁부 활동가들은 8개 모둠으로 나뉘어 모둠 토론을 했습니다. 1모둠은 저녁팀 지부 운영사례에 대해, 2모둠은 효율적인 불교대 경전반 운영 방안에 대해, 3모둠은 소규모 법당의 자치조직 운영 사례에 대해, 4모둠은 중간 규모의 법당 운영 사례에 대해, 5모둠은 경전반 활성화 방안에 대해, 6모둠은 마당발 불교대학 운영 사례에 대해, 7모둠은 임진각 통일기도 사례에 대해, 8모둠은 통일의병 활동 방안에 대해 함께 성찰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모둠 토론과 발표 준비를 하는 도중에는 공연 리허설 노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수련을 와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여러 활동들을 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에서 일과 수행의 통일을 보는 듯해서 흐뭇했습니다.nbspnbsp저녁 식사 후 7시30분부터는 다시 대강당에 모여 모둠토론 결과 발표를 함께 경청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모든 발표자의 발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들으신 후 스님의 생각을 함께 나누어 주셨습니다.nbspnbspnbsp먼저 발표 내용을 들으면서 “정토회가 지향하는 것이 모자이크 붓다인데, 여러분들의 이런 경험들을 서로 잘 공유한다면 어떤 뛰어난 리더 한사람의 지도보다 훨씬 더 나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라고 격려해 주시면서 한 분 한 분의 발표 내용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소규모 법당의 운영사례를 발표한 김천법당 전순연님의 발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nbsp“김천법당에서 발표한 것처럼 불교대학생들은 마음이 답답해서 들어오니까 우선 많이 보살펴줘야 해요. 그런데, 우리가 그럴 수 있는 여력이 지금 안 되죠. 또 경전반은 사춘기 청소년 같아서 조금 보살핌도 필요하지만 이것 저것 역할을 줘서 지켜봐 줘야 합니다. 그런데 역할을 주면서 책임을 너무 무겁게 주면 부담스럽고, 너무 간섭하면 어린 애 취급을 한다고 기분 나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임무를 주고 역할을 하도록 지켜보고, 안되는 것은 비판하지 말고 책임은 위에서 져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줘야 해요. 그리고 졸업하고 수행법회에 나올 정도가 되면 독립된 역할을 줘서 가능한 참견하지 말아야 합니다. 간섭하지 말라는 것은 내버려두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을 회의를 해서 결정하지 아랫사람 다루듯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nbspnbsp또 통일 기도 사례 발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절을 하나 크게 지을 때도 정성을 다해서 기도합니다. 예를 들어 큰 불사를 할 때는 일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한 명은 반드시 법당에서 기도를 하도록 합니다. 나머지는 다 일을 하고요. 그런데 일만 하다 보면 수행자라는 것을 놓치기 쉽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한사람씩 기도를 반드시 대신하도록 합니다. 목탁 소리 들으면서 대패질 하고 삽질을 합니다. 절을 하나 짓는 것도 큰 불사인데, 대한민국을 통일시키는 것은 어마어마한 대작 불사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정성을 쏟아야합니다. 기도를 하면 하느님이 다 해준다는 얘기가 아니라 통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냐 하는 그 간절한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다’ 라는 말이 있지요. 아무 것도 안하고 법당에서 목탁만 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이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것만 갖고는 어렵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은 기도를 해야 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이 통일되려면 우리가 통일 운동도 하지만 기도도 간절히 정성을 다해 해야 합니다.”nbspnbsp또 통일의병 활동에 대한 발표에 대해서는 통일 한국의 희망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역사를 보면 그리고, 로마, 당나라, 명나라, 영국, 프랑스 등이 역사 속에서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된 적도 있었고, 지금은 미국이 실질적인 세계 문명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 나라가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된다거나 우리 나라가 문명을 전세계로 수출한다 이런 것은 누구도 꿈꾸지 않는 것 같아요.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전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 제품을 사려고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데 요즘 몇 가지 기계는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 제품을 사려고 열망하잖아요. 아직 문명의 중심은 아니지만 몇가지 가능성은 보였어요. 한류 문화도 그렇고, 태권도도 그렇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중국 문명의 아류인줄 알았는데, 6000년부터 3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의 청동기 문명을 창조해낸 민족이고, 그것을 중국에까지 전파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철기 문명 때부터 중국에 역전되어 이후 3000년은 이렇게 뒤쳐진 겁니다.nbspnbsp그러나 지금은 우리 문화가 중국을 앞서가고 있어요. 조선시대 유생들은 이런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중국이 오히려 우리를 따라 배우기 해서 턱밑에 따라오고 있잖아요. 역사적으로 보면 이것은 3000년 만에 일어난 사건이예요. 이런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세계 문명의 꽃을 피우는 꿈을 꿀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오는데 50년이 걸렸으니 100년 이후에는 이런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꿈을 꾸려면 한국만 가지고는 안돼요. 일본, 중국과 힘을 합쳐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왜 합쳐야 하느냐? 우리는 규모면에서 세계 최대가 될 수 없어요. 그래서 규모는 일본과 중국을 합쳐서 세계 최대 문명권으로 만들고, 거기에 문명의 꽃은 우리가 피우는 것을 목표로 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남북이 분단된 상태로는 안돼요. 2020년경에는 남북이 통일을 하고, 2050년에는 동아시아 경제공동체가 세계 최대 규모가 되고, 21세기 말에는 우리가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된다는 꿈을 우리가 꿀 수가 있어요.nbspnbsp그러면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금은 북한이 주도해서 통일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 남한이 중심이 되어 통일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남한에 통일 지향적인 정부를 구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1단계로 통일 지향적 정부를 구성하고, 2단계로 북한을 포용해서 통일을 하고, 3단계로 한국이 중심이 된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하고, 다시 세계 최대의 경제권을 가지고 그 위에서 우리가 세계 문명의 꽃을 피우는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가 생각하는 정토 세상에 비교적 근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기고 너희는 죽어라 하는 민족주의가 아니고, 우리와 더불어 너희들도, 아시아와 더불어 세계도 한 차원 높아지는 그런 꿈을 우리가 꿀 수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줘야 합니다.”nbsp통일에 대한 원대한 꿈을 다시 들으니 가슴이 두근 두근 뛰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각자의 소임에 대해 연구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칭찬하시면서 일과 수행의 통일을 강조하신 후 오늘 수련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 여러분들 보면서 공부가 잘 되어가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이렇게 연구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절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고요. 이것이 일과 수행의 통일입니다. 일이 곧 여러분의 수행을 발전시켜나가고, 또 이렇게 수행을 함으로 인해서 일도 지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해나가게 되니까 일도 잘 됩니다. 발표하신 분과 토론하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nbspnbsp이후 이어진 어울림 마당에서는 백성희님의 사회로 신나고 흥겨운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초를 들고 나와서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 팀, 대중들의 환호 속에서 밸리 댄스를 멋지게 보여준 분,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로 김광석의 노래를 아름답게 들려주신 분, 트로트 노래를 ‘수행하기 딱 좋은 나이야’ 라고 개사를 해서 즐거운 율동과 함께 보여준 팀, 또 통일 노래를 다함께 부르는 퍼포먼스를 대중들에게 요청하는 분 등 재미있고 다양한 분들이 앞다투어 나왔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재미난 공연들을 보면서 배꼽을 잡고 웃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모두 손에 손 맞잡고 한반도의 통일을 간절히 소망하며 저녁부 활동가 수련 첫째날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nbspnbsp내일은 오전에 저녁부 자원활동가 수련 회향식을 가진 후, 오후에는 전국 불교대학 및 경전반의 저녁부 담당자들을 위한 수련이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5.24 청년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및 부처님오신날 점등식
▲ 부처님오신날 점등식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오전에 청년대학생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석하셔서 즉문즉설 법문을 해주신 후 오후에는 서울로 이동해 서울정토회 부처님오신날 점등식에 참석하셨습니다.nbspnbsp어제밤 문경정토수련원에서 주무신 스님께서는 새벽4시30분 대웅전에서 백일출가 행자님들과 함께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천일결사 기도 후에는 문경공동체 상주대중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함께 하셨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여법하게 발우공양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대중들 모두에게 “발우공양 게송을 할 때는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음이 너무 늘어지지 않게 하고, 한박자 쉬어야 하는데 숨가쁘게 이어지는 부분들도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또 스님께서는 발우공양 전에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어떤 행자님이 화장실을 나오면서 수도꼭지에서 물을 과하게 트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시면서 “수행자는 물이 나오는 양을 고려해서 수도꼭지를 틀 때도 자신의 행동에 깨어있어야 한다” 고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그리고 일주일 뒤에 회향을 하게 되는 24기 백일출가 행자님들을 위해 회향을 할 때의 마음 자세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일주일 남았다고 하더라도 ‘일주일 남았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마치 영원히 여기에 살 것 같은 마음으로 하루 하루 자기에게 주어진 일과 정진에 매진하시기 바랍니다. ‘일주일만 있으면 간다’ 하는 생각이 일어난다는 것은 지금 여기 생활이 힘들었고 참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일주일 뒤에 간다는 사실이 섭섭하게 다가온다면 이곳에 있을 때 ‘조금 더 충실하지 못했다’ 하는 후회나 미련이 남아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속마음은 다 내려놓고 여기에 죽을 때까지 살 것 같은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정진을 해나가야 진정한 회향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 ‘몇일 뒤에 나간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백일 수행의 공덕은 다 없어지고 원래의 까르마대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합니다.nbspnbspnbsp입재해서 처음으로 귀중한 하루를 보냈듯이 지금도 매일 매일이 소중한 하루입니다. 오히려 93일이 축적된 위에, 즉 그 모든 경험과 실패를 딛고 일어선 하루이기 때문에 처음 하루보다 더 소중한 하루입니다. 이것을 잘 알고 마무리 정진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여기 살든 세속으로 돌아가든 생활이 여여해야 수행자입니다. 머리를 깍아놓으면 승려라고 말하고, 머리를 기르면 속인이라고 말하고, 승려가 되면 승려라고 목에 힘주고 살고, 속인이 되면 속인이라고 함부로 행동하고, 이런 자세는 자기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머리카락이 붙었든 떨어졌든, 승려라고 불리든 속인이라고 불리든, 백일출가 행자라고 불리든 아무개씨라고 불리든, 그것은 하나의 모양이고 이름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백일출가 행자라고 규정이 되든, 실무자라고 규정이 되든, 법사라고 규정이 되든, 회사 직원이라고 규정이 되든,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부르고 저렇게 부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는 늘 한결같아야 합니다. 그 한결 같은 것이 무엇이냐? 바로 수행자의 마음입니다.nbspnbsp첫째, 수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 늘 자기를 점검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둘째, 수행자라면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치하고 낭비하고 살면 안됩니다. 셋째, 수행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돈이 있거나 지위가 있거나 인기가 있다고 목에 힘주고 살면 안됩니다. 넷째, 수행자는 성실해야 합니다. 게을러서는 안됩니다. 매사에 부지런하되 집착은 없어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개인의 자세에 해당하지요.nbspnbsp다섯째, 수행자는 남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주는 일을 하든,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하든, 괴로운 사람을 위로하는 일을 하든,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여섯째, 수행자는 매사에 연구를 해야 합니다. 연구하는 삶은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지는 삶입니다. ‘내일 초파일 행사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이렇게 연구해야지 ‘어떡하지?’ 하면서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는 것은 수행자가 아닙니다. 연구하면서 하되 그 결과에 대해 반드시 평가를 해서 그 경험을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늘 초조 불안 근심 걱정하다가 일이 끝나면 잘했든 못했든 그냥 덮어버립니다. 아무런 경험을 살려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인생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늘 똑같은 실수가 반복됩니다. 그러니 여러 경우를 고려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사람들에게 편리하고 기쁨을 줄 수 있을까 연구해야 합니다.nbspnbspnbsp이런 자세로 여러분들이 살아간다면 직장에 다니든 가정생활을 하든 절에 살든 자신이 처한 처소는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용성조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처처에 불상이고 사사에 불공이다”, 우리가 이르는 곳마다 부처님 아니 계신 곳이 없고, 우리가 하는 일마다 불공 아닌 것이 없습니다. 청소를 할 때는 청소하는 데에 정성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이건 중요하고 저건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이런 자세로 어디를 가든 수행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nbspnbsp수행자는 늘 한결 같아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봅니다. 특히 수행자의 여섯가지 자세에 대해 말씀해주신 내용은 경계에 끄달리며 지내온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발우공양 후 요사채에서 업무를 보시다가 오전 8시50분부터 청년대학생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석하셨습니다.nbspnbsp“잘 주무셨어요?” 하고 청년들에게 다정한 안부 인사를 건네주신 스님께서는 법문을 시작하기 전 자리에 앉아 있던 청년들에게 모두 방석을 들고 일어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무 뒤에 있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잘 들리지 않을까 하는 배려였습니다. 스님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뒷자리에 앉아 있던 청년들도 모두 스님 가까이서 법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초심자들이고 이른 아침 기상과 300배 정진으로 다소 피곤했던 기색의 청년들도 스님의 자비로움에 모두 밝은 표정으로 법문을 들을 준비를 마쳤습니다.nbsp▲ 청년대학생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nbsp자리가 정돈되고 스님은 청년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나잇대는 어떻게 되는지, 어느 지역 정토회 소속인지 등 한 명 한 명 정성스레 학생들을 살펴보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학습법은 궁금한 점이 생기면 바로 질문을 통해 그 해답을 찾는 것인데 쌍방향 소통을 못해서 죄송하다”고 하신 후 “오늘은 연애, 취업, 학업 등 개인적인 고민보다는 불교대학 교과과정을 들으며 생긴 의문, 인생이 아닌 학문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져보자”고 말씀하시며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오전 8시30분부터 11시10분까지 2시간 40분 동안 총 6명의 질문에 스님께서는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고민을 놓아버리는 것과 회피하는 것의 차이가 궁금하다는 분, 사로잡혔다는 것과 경계에 끄달린다는 것의 자세한 뜻이 무엇인지 궁금한 분, 욕구와 욕심의 차이는 무엇이고 욕구가 없으면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없어질 것 같아 고민인 분, 경전에 나오는 부처님의 신화적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묻는 분, 육식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채식도 환경을 파괴하긴 마찬가지지 않는지, 정명을 지키려면 어떤 마음으로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지 묻는 분, 언론사에 일하는데 기업의 광고주를 의식하다보니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들이 나왔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괴로운 고민을 내려놓는 것과 회피하는 것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내려놓음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으로 보이고 회피하는 것은 임시 방편의 방법 같은데 두 가지는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잘 모르겠어요. 알고 싶습니다.“nbspnbsp놓아버렸다 하는 것과 회피했다는 것의 차이는 놓아버린 것은 재발하지 않고, 회피했다는 것은 재발한다는 것입니다. 애인과 헤어져서 속상한 마음에 저녁에 술을 먹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똑같은 괴로움이 반복된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나 ‘아이고, 그동안 저와 함께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인사를 해버리면 그걸로 끝이 납니다. 즉 놓아버리는 것은 해결된 것이고 회피하는 것은 계속 재발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부모님과 관계가 좋지 않아서 부모님의 전화를 받지 않고 피하기만 한다면 그 갈등과 괴로움은 계속 재발합니다. 그런데 부모님에 대한 거부 반응을 기꺼이 놓아버리면 전화가 오면 받고 안오면 안받고 그것이 더 이상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어떤 문제를 놓아버려서 해결이 되었어도 무의식 세계에 있다가 그것이 다시 생겨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다시 생겨나더라도 앞에 일어났던 문제보다는 다소 약하게 나타납니다. 즉 놓아버린 것은 완전히 해결이 되거나 설령 그것이 다시 나타나더라도 갈수록 나타나는 세력이 약해집니다. 이와 반대로 회피는 단지 참는 것이기 때문에 갈수록 더 강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한번 참고 두 번 참고 세 번 참으면 나중에 그것이 터지게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단순히 회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맞딱드려서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nbspnbsp출가와 가출의 차이도 이와 비슷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도저히 힘드니까 더 좋은 집이 있을까 하고 나가는 것은 가출입니다. 즉, 가출은 현재의 집보다 더 좋은 집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도 못살겠다 하게 되면 또 다른 집을 찾아 나갑니다. 이런 것을 가출이라고 합니다.nbspnbsp출가는 위와 같이 힘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집을 불살라 버리는 것입니다. 집은 두가지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안온함을 준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속박을 한다는 것입니다. 집은 안온함과 속박이라는 두가지 성질을 갖고 있는데,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집이 안온함만 있고 속박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요. 그런데 그렇게는 안됩니다. 두가지 성격이 늘 같이 있습니다. 그래서 집을 뛰쳐나가면 속박은 벗어났는데 안온함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다시 안온함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안온함을 찾아서 돌아오면 처음에는 안온해서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 속박 때문에 또 뛰쳐나갑니다. 이렇게 반복이 되는데 이것을 윤회라고 말합니다. 고와 락이 반복됩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즐겁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괴로운 것, 이러한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nbspnbsp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안온함도 같이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집을 불살라 버리는 것입니다. 한번 집을 나가면 다시 돌아가야 할 집을 찾지 않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제자들은 출가를 하면 두 번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나무 밑이나 숲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것처럼 회피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지금은 피하지만 어디를 가든 다시 맞딱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일어난 거부반응을 회피하게 되면 결국 다시 남편에게서 나타나게 되고, 남편으로부터 일어난 것을 회피하게 되면 결국 자식한테서 또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 그 원인을 해결해버려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상대로부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업식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정면으로 부딪쳐서 해결을 해버려야 윤회의 사슬이 끊어집니다. 이것을 ‘놓아버림’ 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안 놓아지죠?”nbspnbsp“네”nbspnbsp“그러면 다시 이렇게 묻고 싶죠. ‘어떻게 놓아요?’ 저의 대답은 ‘그냥 놓아라’입니다.” nbspnbspnbsp“어떻게 놓아요?”nbsp“그냥”nbspnbsp“어떻게 놓는다구요?”nbsp“그냥”nbspnbsp“그러면 또 다시 묻고 싶죠. 어떻게 그냥 놓아요? ‘어떻게’ 라고 하면서 방법을 찾는 것은 놓기기 싫다는 것을 말합니다. 방법을 모르는 문제가 아니라 놓기가 싫어서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자꾸 방법의 문제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놓아지지 않는 것은 놓기가 싫어서 그렇습니다.nbspnbsp여기 뜨거운 불덩이가 있는데 빨갛고 너무 보기가 좋아요. 참 예쁘다 하고 짚었더니 뜨거워요. 그러면서 저에게 ‘앗, 뜨거’ 그럽니다. 그래서 제가 ‘그럼 놓아라’ 하니까 ‘어떻게 놓아요?’ 그럽니다. 이때 방법을 몰라서 못 놓는 거예요? 놓기가 싫어서 안 놓는 거예요?”nbspnbsp“놓기가 싫어서 안 놓는 것이예요.”nbspnbspnbsp“그럴 때 ‘그냥 놓아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뜨거우면 ‘앗, 뜨거’ 하고 바로 놓습니다. 어떻게 놓았어요? 그냥 놓았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그냥 놓습니다. 뜨거우면 그냥 놓게 되는데, 뜨겁다고 하면서도 계속 쥐고 있는 것은 놓기가 싫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제가 ‘그냥 쥐고 있거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뜨거운데요’ 하지요. 그러면 ‘손을 대면 된다’ 그럽니다. 그러니 뜨거움에도 불구하고 갖고 싶으면 손을 대는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손을 대기 싫다면 놓아야 합니다.nbspnbsp수행은 한가지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일 좋은 것은 놓는 것이지만, 놓기 싫다고 해서 수행이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놓기 싫으면 손을 대는 과보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일반적으로 네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데 해도 되는 상황, 하고 싶은데 하면 안 되는 상황, 하기 싫은데 안 해도 되는 상황 그리고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고 싶은데 해도 되는 상황이면 하면 됩니다. 하기 싫은데 안 해도 되는 상황이면 안 하면 됩니다. 이 두가지는 아무런 문제가 안됩니다. 이렇게 인생의 절반은 자기가 좋은대로 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머지 절반입니다. 하고 싶은데 하면 손해가 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고 싶더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기 싫은데 하면 큰 이익이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하기 싫어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늘 ‘하고 싶은데 어떻게 안해요?’, ‘하기 싫은데 어떻게 해요?’ 이럽니다.nbspnbsp쥐가 몇일 굶고 헤매다가 접시에 담긴 아주 맛있는 고구마를 발견했어요. 왠 떡인가 하고 먹으려고 하는 찰나에 제가 “쥐야, 거기에 쥐약 들었다”고 말해줍니다. 그러면 안 먹어야 되겠지요. 부처님은 “거기에 쥐약 들어있으니까 먹지 마라” 이렇게 말하기 보다는 “거기 쥐약 들었다” 이렇게만 말합니다. 항상 사실만 말합니다. 먹고 안 먹고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으셔요. 그건 개인의 자유이니까요. “거기 쥐약 들었다”고 하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살려는 생각이 있으면 안 먹게 되지요. “어떻게 안 먹어요?” 이렇게 말하지 않죠. “어, 그래요?” 하면서 그냥 안 먹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먹으면 안될까요?” 계속 얘기하면 부처님은 “쥐약 들었다” 라고만 반복하십니다. 항상 진실만 말씀하시죠. 그러나 법륜 스님은 어떨까요? “조금만 먹으면 안돼요?” 두 번 세 번 얘기하면 “그러면 먹고 죽어라” 이렇게 말해요. nbspnbspnbsp내가 살려고 하면서 먹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죠. 그러나 죽기 위해서 먹는 것은 선택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러니 그것이 손해라면 하고 싶더라도 멈출 줄 알아야 되고, 그것이 이익이라면 하기 싫더라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중생은 오직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안해야 된다는 이 생각만 하기 때문에 손실이 늘 발생하는 것입니다.nbspnbsp우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하기 싫어도 능히 할 수 있어야 되고, 하고 싶어도 능히 안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고 싶을 때 할 자유, 하기 싫을 때 하지 않을 자유는 반쪽짜리 자유입니다. 완전한 자유는 하고 싶을 때 하지 않을 자유, 하기 싫을 때 할 자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나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밖의 백만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내가 나를 이기는 것이 진정한 장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원리를 알아도 잘 실행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꾸준히 연습을 해야 됩니다. 이런 연습이 바로 수행입니다.”nbsp스님의 쉽고도 재미있는 명쾌한 답변에 2시간 30분이 금새 지나갔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청년들의 간곡한 요청에 스님께서는 함께 단체 사진도 기꺼이 찍어 주셨습니다. 모두들 어제의 서먹함은 다 사라지고 입가에 환한 웃음이 가득했습니다.nbspnbspnbsp특강수련 법문을 마치고 수련원에서 점심공양을 하신 후 원고 교정 업무를 보시다가 오후1시30분에 서울로 출발하셨습니다.nbspnbsp서울로 출발하기 전, 마침 깨달음의장 수련을 마친 수련생들이 스님을 알아보고는 너무나 반가운 얼굴로 환호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니, 깨달음의장 수련을 잘 마쳤으면 어떤 경계에도 끄달리지 않는 여여한 마음이 되어야지 왜 이렇게 들뜨고 그러세요?” 라며 농담을 하셨고, 수련생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스님을 붙잡고 너무나 좋아했습니다.nbspnbsp▲ 깨달음의 장을 방금 마친 수련생들과 함께nbsp오후5시부터 서울 정토회관에서는 내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이를 기념하는 사전 행사와 점등식이 열렸습니다. 5인의 정토행자들로 구성된 사물놀이패의 힘찬 장단으로 시작한 점등식 사전 행사는 서울제주지부 활동가들의 합창, 부처님의 일생 OX 퀴즈, 수행문 외우기 대결, 세존팀과 아난다팀으로 나누어 진행한 삼배 릴레이로 웃음과 배움이 가득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당초에 스님께서는 5시부터 사전행사에 참석하여 대중들과 함께 하시려 하셨으나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같이 참여하지는 못하시고, 잠시 뒷자리에서 대중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지켜 보셨습니다.nbsp7시부터는 저녁 예불을 거행한 후 스님의 점등식 기념 법문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올해가 불기 2559년이지만, 정확하게 따지자면 오늘까지는 2558년이고 부처님이 오신 날인 내일부터가 2559년의 시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음력 사월 초파일을 부처님오신날로 삼습니다만, 인도에서는 인도 달력으로 2월 만월이 부처님오신날입니다. 부처님이 탄생하신 인도에서는 보름이 15일이 아니라 말일이고, 인도의 2월 말일을 우리 달력과 맞추어보면 4월 15일이 됩니다. 우리의 사월 초파일보다는 1주일이 늦게 되는데, 이는 나라마다 신년을 세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이 양력화 되었기 때문에 우리와는 날짜가 또 다릅니다.nbspnbsp이처럼 소승불교냐 대승불교냐, 어느 나라이냐에 따라 부처님오신날은 제각기 다르지만, 날짜란 말 그대로 날짜에 불과한 것입니다. 진짜 부처님이 오신 날은 어떤 특정한 날짜라기 보다는 나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무지에서 벗어난 날입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을 부처님 오신 날로 만들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내일 하루라도 마음을 맑게 가져서 진정한 부처님오신날을 맞아야겠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께서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마음자세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우리가 마음에 대해서 묘사할 때는 “가볍다, 무겁다”,“밝다, 어둡다”, “맑다, 탁하다” 라고 합니다. 마음이 가볍다는 것은 웃으며 풀 한포기처럼 가볍게 사는 것을, 무겁다는 것은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밝다는 것은 지나간 일에 괴로워 하지 않고 오지 않는 일에 걱정하지 않는 것을, 마음이 어둡다는 것은 근심걱정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맑다고 하는 것은 어린 아이들의 눈이 맑다고 하는 것처럼 욕심이 없는 청정한 마음을 일컫고, 탁하다는 것은 속이 시커멓다, 욕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nbsp우리가 마음에 대해 얘기할 때는 이 세 가지를 다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부님, 수녀님, 스님들 같은 종교인들은 마음이 맑기는 하지만, 사명감으로 인해 마음이 무거워서 꼭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를 다 갖춘 가볍고, 밝고, 맑은 마음을 가지면 이를 부처의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것을 어둠에 비유하고 깨달음은 밝음에 비유하는데, 어리석음인 어둠을 밝혀서 밝은 행복과 열반의 세계로 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불을 켠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입니다.nbspnbspnbsp더 나아가 대승불교에서 등을 연꽃 모양으로 표현한 이유는 혼자 조용한 곳에서 수행하며 자신만의 해탈을 추구하는 소승불교와는 달리 진흙 속에서도 아름답고 청정한 꽃을 피워내는 연꽃처럼 번잡하고 어지러운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자기 마음을 평화롭게 갖는 대승 불교의 정신을 상징하기 위해서입니다. nbsp nbspnbsp우리는 대승불교를 표방한다고 하면서도 소승의 수행법에 관심이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일상이 너무 복잡해요, 어디 조용한 데 가 있고 싶어요” 라고 하시는데, 이는 혼탁한 세상을 떠나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대승의 정신에 따른 수행을 한다면 시끄러운 저잣거리에서도, 갈등이 많은 직장에서도, 복잡한 가족관계 속에서도 늘 나의 마음을 잘 간직하고 편안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는 이러한 대승적 자세를 견지하지 못하고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세요”, “합격하게 해 주세요” 라며 기복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민속신앙이지 불교라 할 수 없습니다. 대승불교는 출가자들로만 상가를 구성하는 소승불교와는 달리 출가자와 재가 신자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상가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가 되기를 발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겉모습에 구애받지 않고 상가의 구성원이 될 수 있고, 마음의 평화를 이루어 열반과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대승불교입니다.nbspnbsp오늘 이렇게 전야 법회로 점등식을 거행하는 것은, 오늘까지가 어두운 중생의 세계였다면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세상이 밝아졌다는 것을 축하하고 이의 상징적인 의미를 마음에 새기기 위함입니다.”nbspnbsp이렇게 점등식의 의미를 짚어 주신 후 부처님 당시의 일화로 ‘가난한 여인의 등불’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너무 가난해서 구걸로 목숨을 연명할 수 밖에 없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여인이 주변에 수 만개의 등불이 환히 밝혀진 것을 보고 그 연유를 물으니 사람들은 이 나라의 왕이 야외에 머무시는 부처님을 위해 이렇게 많은 등불을 밝혔다고 말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가난한 여인은 ‘왕은 전생에 많은 복덕을 지어 왕으로 태어났고 또 이생에서도 이렇게 큰 공덕을 지었으니 다음 생에는 더 많은 복덕을 누리겠구나. 그런데 나는 전생에도 복덕을 짓지 못했고, 이생에서도 가난하여 복을 쌓지 못하는데, 이를 다음 생으로 이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이생에서 가난한 가운데에도 꼭 복을 지어야겠다’ 하고 생각했어요.nbspnbsp가난한 여인은 하루 종일 일해서 번 두 닢의 동전으로 등불을 밝힐 기름을 사러 갔습니다. 기름가게 주인이 이 여인의 갸륵한 이야기를 듣고 자비심을 내어 이 여인에게 두 배의 기름을 주었어요. 가난한 여인은 자신의 초라한 등불을 들고 부처님 처소로 갔으나 이미 그 곳은 왕의 등불로 가득하여 놓을 자리가 없자 숲의 제일 가장자리에 자신의 등불을 놓고는 ‘다음 생에는 성불하여지이다’ 라고 소원을 빕니다. 이렇게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다음 생에는 부자 되게 해 주세요’ 가 아니라 ‘다음 생에는 성불하여지이다’ 라고 원을 세웁니다.nbspnbspnbsp부처님께서 잠자리에 드실 시간이 되어 아난 존자가 한쪽에 켜진 그 여인의 작은 등불을 끄려했으나 손으로도 가사 장삼으로도 끌 수가 없었어요.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야, 헛수고를 하지 마라, 그 등불은 비록 작으나 너의 힘으로 끌 수가 없다. 그 여인은 이 작은 등불을 켠 공덕으로 미래세에 부처를 이룰 것이다’ 라고 수기를 주셨습니다. 이 여인의 이야기를 들은 왕이 수 일에 걸쳐 수 만개의 등불을 켠 자신의 공덕이 얼마나 큰지 부처님께 여쭈었더니 부처님께서는 ‘대왕이시여, 진리라고 하는 것은 너무도 미묘해서 하나를 주고도 백을 얻을 수 있고, 백을 주고도 하나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면 성불의 기회가 올 것입니다’ 하시니 대왕이 부끄러워하며 물러났다고 합니다.nbspnbsp가난한 여인의 등불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베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공덕을 바라는 보시는 바라밀다가 아니며 공덕을 바라면 그것은 장사나 거래이지 진정한 보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항상 거래를 합니다. ‘다만 할 뿐’ 이라는 생각으로 이러한 거래와 계산의 관계를 넘어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진정한 행복의 길로 가려면 거래와 계산의 관계를 넘어 사랑으로 가야 합니다. 계산을 넘는 사랑의 길, 이것이 부처님이 오신 진정한 뜻이니 이를 마음에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nbsp법문을 마치신 후에는 대중들과 함께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며 앞마당으로 나가 탑돌이를 하였습니다. 장엄한 북소리에 맞추어 가난한 여인의 등불을 상징하는 작은 등불을 든 정토회 회원들은 탑 앞의 큰 연등 주위에 큰 원을 그리며 섰습니다.nbspnbsp▲ 부처님오신날 점등식nbsp조용한 음악 소리와 함께 한 여인이 등장해 불을 밝히자, 앞마당 위에 줄지어 설치된 수백개의 연등과 탑에도 일제히 불이 들어와 주변을 형형색색으로 밝히는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스님께서도 밝게 켜진 연등을 보며 환한 웃음을 보이셨습니다.nbspnbsp서울제주지부 상임법사님이신 자재법사님께서 맺음말로 해 주신 “우리들의 마음 속 등불에도 스위치를 켜자” 는 말씀은 오늘 점등식에 참석한 모든 대중들에게 행사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감로수와도 같은 말씀이셨습니다.nbspnbspnbsp경건한 마음으로 사홍서원과 산회가를 합창한 230여명의 정토행자들은 사물놀이패의 신명나는 장단에 맞추어 정토회관 앞마당을 빙글빙글 돌며 흥겨운 대동 한마당으로 점등식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nbspnbsp이어서 밤11시10분부터는 SBS에서 부처님오신날 특집으로 lt법륜 스님의 즉문즉설gt이 방송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방송을 시청하지 않으시고 휴식을 하셨고, 서울 공동체 대중들은 강당에 모여 함께 방송을 시청하였습니다. 방송이 끝나자 대중들은 지난 2개월 동안 다큐 촬영을 위해 스님 곁을 주야로 쫓아다니며 고생한 SBS스페셜 제작팀에게 감사의 박수를 함께 보냈습니다.nbspnbsp내일은 불기 2559년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아침7시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1부 법회를 시작으로, 아침10시 주간반을 대상으로 한 2부 법회, 오후1시 저녁반을 대상으로 한 3부 법회, 오후4시 이웃종교인들과 함께하는 4부 법회, 저녁7시 청년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5부 법회까지 하루 종일 법당을 찾아오는 대중들을 위해 법문을 해주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5.22 천안, 광주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
▲ 천안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오전에 천안에서 저녁에는 광주에서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을 연이어 하셨습니다.nbspnbsp서울 정토회관에서 새벽 5시부터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께서는 6시30분부터는 대중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셨습니다.nbspnbsp▲ 서울 공동체 발우공양nbspnbsp발우공양 후 대중공사 시간에는 청년정토회 49일 입재 대중들에게 언제 회향하는지 날짜를 확인 하신 후 회향한 이후에도 어떤 마음으로 수행할지에 대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nbspnbsp“역사적인 인물을 쭉 살펴보면 크게 3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세상이 좋아지도록 기여한 사람입니다. 자기 부모한테만 헌신적이어도 효자비가 세워지고, 남편에게만 헌신적이어도 열녀비가 세워지고, 동네에서 헌신적이면 동네에서 공덕비를 세우고, 가문에 헌신적이면 가문에서, 나라에 헌신적이면 나라에서, 학문 세계에서 새로운 학설을 냈으면 학계에서 그들을 기립니다. 또 학생들을 잘 가르쳤으면 스승으로 존경받고, 약초를 발견했으면 약초를 발견했다고 이름이 남고, 이렇게 세상에 유용하고, 남에게 조그만 일이라도 득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nbspnbspnbsp둘째, 세상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왕이었는데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부자였는데 남의 논밭을 많이 뺏고, 여자를 성폭행하고, 술 먹고 취해서 행패피우고 거짓말하고,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도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 하는 것 하고, 하고 싶은 것 실컷 하고, 편한 대로 살아 일시적인 쾌락을 추구하면 순간적으로는 좋지만 작게는 한 여자나 한 남자를 괴롭히거나, 크게는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인류에게 재앙을 주는 사람이 됩니다.nbspnbsp셋째, 있으나 마나 한 사람입니다. 특별히 세상에 이로운 것도 없고, 해도 끼치지도 않은 사람입니다.nbspnbsp수행자는 적어도 세상에 해를 끼치면 안됩니다. 하지만 일신의 편안함만 추구하면 결과적으로 세상에 해를 끼치게 됩니다. 이것은 마약과 같습니다. 남편이 일신의 편안함만 추구하면 아내를 괴롭히게 되고, 아내가 일신의 편안함만 추구하면 남편을 괴롭히게 되고, 부모가 편안함만 추구하면 자식을 괴롭히게 되고, 자식이 편안함만 추구하면 부모를 괴롭히게 됩니다. 그래도 있으나 마나한 사람은 해를 끼치는 사람에 비하면 괜찮은 편에 속합니다.nbspnbsp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삶의 보람이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재산이 많고 얼마나 큰 집에서 살았고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그가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살고 세상에 유익한 일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첫째는 내가 행복하냐, 둘째는 얼마나 유익한 일을 하느냐입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더라도, 또는 무엇하나 작은 것일지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해서 얼마나 유익하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무공해 농법을 개발하든지, 약 안 치고 병충해를 예방하든지 하는 새로운 농법을 개발해야 합니다.nbspnbsp부처님은 자신이 행복하고 세상에 유익한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이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절에 살든, 세상에 살든 항상 그것을 명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수행은 큰 절에 산다거나, 무슨 교수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 즉 남을 괴롭히지 않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종교나 수행도 허상에 젖어서 세상에 짐이 되고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nbspnbsp49일이 끝나가니까 나가더라도 여기서 배운 것이 여러분들의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 유익하기를 바랍니다. 여기 49일 있었던 것이 밖에서 10년 있었던 것보다 유익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정진하시길 바랍니다.”nbspnbsp이렇게 발우공양 마친 후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을 위해 곧바로 천안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장미꽃 향기가 싱그러운 5월, 아침 일찍부터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천안시청 봉서홀에는 봉사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습니다. 9시부터 강연장 주변으로 시민들이 모여들고, 입구에는 즐겁고 쾌적한 분위기가 가득한 가운데 70명이 넘는 봉사자들의 발걸음도 덩달아 바빠집니다. 무대에서는 사전 공연을 맡은 봄 불교대학 저녁반 학생들이 ‘행복해요’ 노래에 맞춰 율동 연습을 시작하고 현관입구에서는 부지런히 접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천안 시청 봉서홀nbsp9시 40분이 되자 아침 일찍부터 로비에서 기다리던 시민들이 하나둘씩 입장하기 시작합니다. 한 분씩 입장할 때 마다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이하니 봉사자들의 마음도 즐겁고 오시는 분들도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평일 오전인데도 강연장 2층까지 봉사자 포함 1031석이 꽉 채워지자 스님이 강단에 오르시고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 먼저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하자 청중석에서 열렬한 박수가 쏟아졌는데, 스님께서는 “이렇게 너무 환영하시면 충청도 사람 같지가 않잖아요. 천안이 도시가 커지면서 다들 외지에서 이사 온 사람들인가 보죠?” 라고 농담을 하시며 여는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올 봄 잘 지내셨어요? 봄을 만끽하셨어요? 그런데 계절의 봄은 찾아왔는데 여러분들 마음의 봄은 찾아왔어요? 마음은 아직 한겨울이예요? 오늘은 대화를 하면서 밖의 봄 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의 봄도 오도록 한번 해봅시다. 마음의 봄이 오려면 첫째, 마음이 무겁지 않고 가벼워야 합니다. 둘째, 마음이 먹물처럼 탁하지가 않고 수정처럼 맑아야 합니다. 셋째, 마음이 어둡지가 않고 햇살처럼 밝아야 합니다. 사명감이 많으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욕심이 많으면 마음이 탁해집니다. 근심걱정이 많으면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그러니 오늘 얘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가벼워지고 맑아지고 밝아져야 합니다.nbspnbsp무겁고 탁하고 어두운 얼굴에 화장을 하면 녹슨 철판에 페인트칠을 해놓은 것과 같습니다. 조금 있으면 녹이 다 일어나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매일 매일 화장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스탠처럼 녹이 싹 없어지면 페인트칠을 안해도 깨끗하죠. 마음이 맑고 밝고 가벼우면 화장을 하지 않아도 항상 얼굴이 깔끔합니다. 마음을 행복하게 가지면 어떤 화장한 얼굴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자, 그럼 오늘도 마음 어두운 사람들의 얘기들을 좀 들어 봅시다.”nbspnbsp청중들이 박장대소하자 이어서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모두 6명의 질문자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새엄마 밑에서 자랐는데 정신질환이 있는 친어머니를 만나야 하는지 고민이라는 질문자, 중증 발달장애 아이가 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고 지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곧 학사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인데 대학원을 가야할지 취업을 해야 할지를 묻는 분, 아이가 이상해질 때마다 천도재를 지내면 괜찮아지는데 천도재를 계속 지내야 하는지 묻는 분,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엄마가 반대하시는데 어찌해야 할지를 묻는 30대 여성분 등 총 6명의 질문자가 있었습니다.nbspnbspnbsp그 중 평소에 돈 씀씀이가 크고, 화가 나면 통제가 안 되는 남편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전해 드립니다.nbspnbsp“시어머니께서는 첫 아이를 잃고 거의 미치다시피 할 정도로 상심이 컸다고 합니다. 그러다 제 남편인 둘째 아이를 갖게 되어 그 낙으로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아주 극성맞은 데가 있어서 어머니는 화가 나면 발가벗겨서 밖에 내쫓거나, 이불 속에 가두고는 ‘죽어라, 죽어라’ 했다고 합니다. 남편은 부모님의 엄청난 기대를 한 몸에 받는 한편, 그 기대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늘 걱정과 불안이 심해서,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나도 못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 탓인지, 시부모님은 평소 아주 근검절약하며 사시는데, 남편은 화가 나면 스스로 통제를 못하고 돈 씀씀이도 너무 큽니다. 또 평소 밤낮없이 죽기 살기로 일하다가 1년에 한 번씩은 크게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기를 해년마다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편이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또 남편이 씀씀이가 큰데 아이들 교육비에 노후자금 등 앞으로 자금이 많이 필요한데 어떻게 제가 그런 것들을 준비해야 되는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남편이 질문을 해달라고 했는데, 화를 통제 못하는 데 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요?”nbspnbspnbsp“도가 뭡니까, 해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걸 스님한테 물어야죠. 자기 둘이 사는 얘기를 나한테 하면서 한 가지만 물어도 대답 해줄까 말까인데, 세 가지 질문을 연달아서 해요?” “제가 남편에게 어떻게 해줘야 마음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nbspnbsp“가만히 놔두세요. 자기 성질대로 살도록.”nbsp“네, 알겠습니다.”nbspnbsp“왜냐하면 성질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고칠 수가 없습니다. 남편의 성질이 내 마음에 안들기는 하지만 고칠 수는 없어요. 고치려고 하면 안 고쳐지니까 누가 힘들어요? 내가 힘듭니다. 성질이 내 마음에 좀 안 들지만 ‘아이고, 천성이 그런 걸 어떻게 해’ 하고 탁 놔 버리면, 남편은 어떻든지 나는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행복한 게 중요해요? 상대가 행복한 게 중요해요?”nbsp“저는 행복합니다.”nbsp“그런 남자랑 사는 데 뭘 그리 썩 행복하겠어요?” nbspnbsp“아이들도 예쁘고, 신랑이 항상 그러는 게 아니라 안 그럴 때도 많거든요.”nbsp“남편이 하루 종일 그러면 벌써 이혼했겠지요. 가끔 가다가 그러니까 지금 물어보러 왔겠죠. 남편의 성질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이 얘기 아니에요? 못 고칩니다. 왜냐하면 어릴 때 형성된 것은 고쳐지지가 않아요. 불가능한 것은 아니에요. 고치려면 신랑이 한번 죽었다가 살아나야 돼요. 부처님도 6년 고행하면서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났잖아요.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면서 한번 죽었다가 살아났단 말이예요. 한번 죽었다가 살아나는 걸 기독교 용어로 ‘거듭난다’, ‘새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거듭나야 이 근본 뿌리를 바꿀 수 있지 그러기 전까지는 3살 이전에 형성된 건 고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잖아요? 이 말은 죽을 때까지 못 고친다 이 말이죠.nbspnbsp이렇게 어릴 때 형성된 것을 무의식이라고 하는데, 무의식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고치기가 엄청나게 어렵습니다. 내 성질도 고치기가 힘든 데, 남의 성질을 고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남편의 성질을 고치겠다는 것은 아예 시도를 하지 말고 그냥 놔둬야 내가 편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 질문에 짧게 대답하면 ‘그냥 놔둬라’ 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뭐예요?”nbspnbsp“신랑이 씀씀이가 너무 커서 걱정입니다. 애들 교육비에 들어가는 것과 노후 문제 등을 준비해야 하는 데 제가 기껏 모아놓아도 신랑이 다 써버립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어요.”nbsp“그것도 못 고칩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엄하면 아이가 자립심이 없어요. 부모가 어려서부터 모든 결정을 해버리니까 아이는 반항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가 아낄수록 아이는 반발심으로 그냥 갖다 마구 써버립니다. 반발심으로 어긋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남편은 그게 이미 습관이 되어 버려서 고치기 어렵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헤프게 쓰고 싶어서 쓸까요? 성질이 나면 그렇게 될까요? 성질이 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질을 못 고치기 때문에 이것도 안 고쳐져요. 이것도 고치려면 재산을 다 날리고 완전히 죽을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아, 이러면 나도 죽고 마누라도 죽고 자식도 죽고 다 죽겠다’ 하면 그때 고쳐집니다.nbspnbsp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같이 막 써버려야 합니다. 신랑이 1백만원 쓰면 나는 2백만원 쓰고, 신랑이 3백만원 쓰면 나는 5백만원 써버리고, 신랑이 차를 팔면 나는 집을 팔아버리는 식으로 해버려야 합니다. nbspnbsp내가 아끼면서 남편을 못 쓰게 하면, 내 행동이 엄마의 잔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에, 의식으로는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무의식에서는 더 반발하게 됩니다. 그때는 건드리면 안 돼요. 손대는 게 더 부작용이 일어나요. 내버려 두세요. 그렇다고 완전히 빚을 져서 죽을 지경까지 가는 건 안하잖아요. 미니멈은 지키잖아요. 자기 스스로 죽을 행동은 안하니까 옆에서 아내가 이것을 놓아버려야 해요.nbspnbsp그래도 불안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주머니를 따로 챙겨야 해요. 그런데 질문자 성질로 봐서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할 성질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남편이 돈 없다고 막 난리피우면 또 쌈짓돈 꺼내서 줄 사람이네요. 괜히 실수해서 의심을 사면 더 부작용이 있겠어요. 그래서 그냥 놔둬야 할 것 같고요.nbspnbsp그리고 남편도 절대로 굶어 죽을 정도로까지 판을 깨지는 않을 사람입니다. 말리면 더하니까 그때는 같이 ‘그래 그래 잘했다. 너도 쓰니 나도 쓰자’ 이렇게 맞불을 질러요. 마누라가 잔소리하면 그게 엄마 잔소리와 똑같이 들려서 심리적으로 그런 행동이 나오게 되는 것이거든요. 그냥 좀 벌어서 말아 먹고, 좀 벌어서 말아 먹고 이렇게 살면 돼요. 그래도 처음부터 못 버는 게 나아요? 벌어서 말아 먹는 게 나아요? 최소한만 딱 간직해 놓고, 벌어오면 ‘아이고 당신 훌륭하다’ 라고 하고, 말아먹으면 ‘자기 것을 자기가 말아 먹었네’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뭐예요?”nbspnbspnbspnbsp“남편이 스님을 뵈러간다니까 여쭤봐 달라고 그랬는데, 자기가 화를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상처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 합니다.”nbspnbsp“어머니한테 참회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한 것은 결과는 나에게 나빴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잘 한다고 한 거예요. 그러나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잘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어 버렸어요. 어머니는 큰 아들 하나 죽고 둘째 아들 낳아 어떻게든 잘 키워보려고 하다가 이렇게 된 거니까 이것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릴 때는 너무 힘들어서 원망했는데 이제 내가 커서 애를 키워보니, ‘아, 어머니가 나를 정말 사랑해서 그랬구나 어머니는 잘한다고 그런 거였구나 그런데 내가 어려서 모르고 원망했구나’ 이렇게 어머니한테 참회기도를 해야 합니다. ‘낳아주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잘한다고 했는데 제가 어릴 때 이해 못했습니다’ 이렇게 참회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진짜 나를 사랑해서 그랬구나 하는 게 마음 깊이 다가오고, 마음에서 눈물이 나면 화병이 고쳐집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남편이 불끈불끈 할 때마다, ‘여보, 힘들지’ 하고 등을 두드려 주어야 합니다.”nbsp“그런데 남편이 죽기 살기로 일을 해서 병이 나고 하니까 걱정입니다.”nbspnbsp“아이고, 괜찮습니다. 돈 좀 벌어놓고 죽으면 시집 한 번 더 가면 되지요. 옛날 같으면 시집을 못가게 되어 있으니까 걱정이지만 요즘은 살아 있는데도 이혼하고 떠나잖아요. 내가 죽인 것도 아니고 자기가 아파서 돌아가셨는데 뭐가 걱정이예요? 아프면 병원에 가서 좀 있다가 또 돈 벌고 하면 괜찮아요. 고치려고 할수록 더 빨리 죽고, 가만 놔두면 제 명대로 삽니다.nbspnbsp지금 스님은 질문자가 행복하도록 답변을 해주는 겁니다. 남편의 질문에 대헤서는 ‘스님이 그거 고치기 어렵다고 하더라’ 이렇게 말해주세요. ‘성질대로 살도록 놔두는 게 가장 오래 산다고 하더라’고 전하세요. 대신 어머니한테는 참회 기도를 하면 성질이 조금 변한다더라 이렇게 얘기해주세요. 그리고 질문자는 그냥 남편이 성질대로 살도록 놔두어야 남편이 오래 삽니다. 남편을 자꾸 건드리면 명이 짧아져요.”nbsp“네. 감사합니다.”nbspnbsp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들은 질문자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자리에 앉자 청중들도 큰 박수로 환호해 주었습니다. 열띤 강연으로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늦게 강연회가 끝나고 강연장 앞에서 봉사자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쉬워서 강연장을 떠나지 못하는 많은 시민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모여들어서 봉사자들도 덩달아 연예인이 된 것처럼 서있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nbspnbsp▲ 천안 강연 자원봉사자들과 함께nbspnbsp단체사진 촬영을 마치고, 천안 정토법당 15명의 활동가들과 스님이 함께하는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총무님이 활동가 한명 한명을 소개하며 법당에서 맡고 있는 소임과 오늘 강연회에서 맡은 소임을 알려드리자, 스님께서는 따뜻한 시선을 맞추며 웃음 띤 얼굴로 인사를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천안이 예전에는 여기에 법당을 내면 될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보니 봉사자도 많고 크게 발전했다며 웃으셨습니다.nbspnbsp▲ 천안 정토법당 회원들과의 간담회nbspnbspnbsp간담회 중 청소년 법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남겨주시기도 하셨습니다.nbspnbsp“저는 청소년 학교보다 유치원부터 시작하는 대안학교를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를 낳고 엄마 역할을 못하는 사람들 대신에 엄마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면 좋겠어요. 지금의 출세 지향적인 학습이 아니라, 30년 후를 대비해서 아이들의 창조성을 키우는 교육을 하는 겁니다. 아이가 농사를 짓고 살든 뭘 하고 살든 자기 나름대로 자기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작은 것부터 자기가 하도록 하는 학교지요.”nbspnbsp앞으로 30년 후를 내다보며 청소년을 위한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지금부터 20년 전에 만일결사를 시작하신 스님의 시간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해 볼 수조차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과의 짧은 만남을 모두가 아쉬워하는 가운데 스님께서는 저녁 강연이 있는 광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천안 강연이 끝나고 광주로 가면서 정안 휴게소에서 잔치 국수로 점심을 먹고 바로 갔는데도 오후 5시 가까이 되었습니다. 광주에 사시는 지인을 한 사람 만나고 시청으로 가서 광주시장님을 만났습니다. 윤장현 시장님께서는 스님을 따뜻이 맞이해 주실 뿐만 아니라 저녁을 드시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사모님께서 간단히 죽까지 준비해 주셨습니다.nbspnbsp▲ 윤장현 광주 시장님과 미팅nbspnbsp스님께서는 시장님께 “시정의 어려움은 무엇인지?” 물으셨고, 시장님은 “처음에는 좀 갈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안정되어 간다”고 하시면서 “광주가 한국의 미래가 되고 빛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또 증심사 주지 스님께서 오셔서 스님께 인사드리고 증심사 법회에 스님을 꼭 초청하고 싶다고 요청을 하였습니다.nbspnbsp▲ 증심사 주지 연광스님nbspnbsp손꼽아 기다리던 올해 첫 광주 강연은 저녁 7시에 광주시청 3층 대회의실에서 열렸습니다. 여느 때처럼 636개의 좌석은 만석이었고, 90여명이 넘는 봉사자들까지 모두 730여명이 함께하여 강연장은 열기와 감동의 한마당이 되었습니다. nbspnbsp▲ 광주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nbspnbsp강연 시작에 앞서 시장님의 환영사가 있었습니다. 이어 스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정치적으로 아픈 기억이 있는 광주의 5월에 대해 언급하며, 잘 견뎌온 지난 시절을 새옹지마에 빗대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마침 맨 앞자리에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인 두 남매가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두 남매를 보시곤 “새옹지마의 뜻을 아세요?” 라고 물으셨고 “모른다” 고 답하자 쉽고 자상하게 그 의미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nbsp“지금 좋은 게 나중에 좋다고 말할 수 없고, 지금 나쁜 것이 나중에도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입니다. 새옹지마는 늙은 영감의 말이라는 뜻입니다. 옛날 중국에 어떤 할아버지가 살았는데, 건강한 아들이 들에 놀러갔다가 야생말을 한 마리 잡아서 큰 횡재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다 부러워했는데, 영감은 이게 좋은지 나쁜지는 두고 봐야지 안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그 야생말을 훈련시키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다리 병신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영감은 이것도 좋은지 나쁜지는 두고 봐야 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서 동네의 장정이 모두 군대에 소집되어 가서 전멸했습니다. 이 집 아들만 장애라서 살아남아 대를 이었습니다.nbspnbsp그러니 이 이야기는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되고,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짧은 순간만 보면 좋은지 나쁜지 잘 모릅니다. 인생을 좀더 길게 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너무 짧게 봅니다. 순간 순간 찰나만 보기에 울고 웃지만, 인생을 길게 보면 남이 웃을 때 조금 웃고, 남이 울 때 약간만 슬퍼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란 불생불멸이라 나고 죽는 것도 없고, 불래불거라 온다고 할 것도 간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마세요. 젊은 사람들은 ‘그럼 목석이예요?’ 라고 묻는데 이 말은 감정이 없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마라는 뜻입니다.nbspnbsp진리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우리의 삶 속에 있습니다. 일은 사람이 하고 뜻은 하늘이 이룬다는 말이 있죠.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학생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하되 시험 결과에 연연하지 말아야 하겠죠.”nbsp초등학생 두 남매가 스님의 말씀을 따라하며 “새옹지마란 지금 좋은 것이 나중에도 좋다고 말할 수 없고...” 라고 말하자, 스님께서도 두 남매를 칭찬하고, 청중들도 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우리의 삶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야 한다고 강조하시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오늘 질문자는 모두 7명이었는데, 어린 자녀들을 양육하며 욱하는 성질 때문에 힘들다는 33세의 가정주부,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역사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가족부양을 위해 현실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라는 37세의 가장,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분열과 정권교체의 실패로 너무 안타깝고 지금의 현실이 억울하다는 40대 남성분, 스님을 너무 사랑하는 열혈팬이자 불자로서 자신이 다니는 절이 부흥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46세의 주부, 결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시각장애를 가진 39세의 노총각 교사, 자신의 진로에 대해 스님께 질문하고 싶어서 경상도에서 왔다는 33세의 청년, 결혼한 지 2년 지났지만 아기가 생기지 않는 36세 주부의 사연까지 다양한 질문들에서 삶의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 광주시청 대회의실nbspnbsp이 중에서 한 분의 즉문즉설을 전합니다.nbsp“시각장애 1급을 가진 나이 39세 노총각 교사입니다. 마음공부를 하고 있지만, 꿈은 항상 큰 것들을 보고 있으니 갈등,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든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꿈이었던 교사도 되었고, 안정된 생활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어 혼자 충분히 잘 살고 장애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변사람들이 장애인은 혼자 살기 어렵다고 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 자신도 결혼을 해야만 삶이 풍요로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려고 상대를 만나면 시각 장애인라는 것을 확인하고 거부를 많이 당합니다. 그러면 자존심이 너무 상합니다. 그래서 포기하려 하다가도 다시 도전하게 되지만 제 자존심은 더욱더 망가지는 것 같습니다. 국제 결혼까지도 생각할 정도이지만 아직은 제 마음이 갈팡질팡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nbspnbspnbsp“듣는 사람도 마음이 짠하네요. 질문자는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데, 눈이 잘 보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신과의 삶이 불편할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누구나 더 잘 살고 싶어서 결혼을 하는데 굳이 왜 불편을 감수하려고 하겠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무엇 때문에 자기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겠어요?”nbsp“시각장애인과 결혼하면 어떻겠는지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시각장애인과는 결혼하고 싶지 않습니다.”nbspnbsp“그런 뜻이 아니예요. 저는 차라리 당신이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체장애까지 갖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람들을 부처님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중생이라고 표현을 하잖아요. 또 죄 많은 사람이라고까지 부릅니다. 교회와 절마저도 돈, 돈하는 세상입니다. 시각장애인이지만 돈이 많다면 상대는 무엇을 보고 결혼할까요? 당연히 돈을 보고 왔고 당신 몰래 돈을 빼돌리려고 하겠죠. 그럼 당신은 여자를 의심하게 되고 결국은 인생이 피곤하게 되는 것입니다.nbspnbsp내가 덕을 보려면 그만큼 손실이 따르고 그만큼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예를 든다면, 제가 지금 63세인데 만약 결혼을 하려면 20대 꽃다운 나이의 처녀보다는 75세의 할머니와 결혼하는 것이 더 쉬울 것 아니겠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 일이 다 될 수는 없습니다. 어떤 한 부분을 내려놓아야만 됩니다.nbspnbspnbsp시각장애이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고,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밖의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열등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만난 광주시 시각장애인협회 회장님은 옆에서 봤을 때 전혀 장애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김이 없고, 거침없이 잘 생활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항상 저의 법문을 들으며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가볍고 밝게 가지라는 말을 새기신다고 합니다. 점자책도 아닌 스마트폰으로 법문을 다 듣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처럼 우리 인생에서 장애는 열등한 것이 아니라 다만 불편할 뿐입니다. 다리를 못 쓰면 휠체어 타면 되고, 손이 없으면 의수하면 됩니다.nbspnbsp자기 스스로 욕심을 내면 열등해집니다. 당신은 열등한 존재가 아닙니다. 혼자 사는 것이 힘들어서 결혼해야지 하는 것은 내가 배우자로부터 도움을 좀 받겠다는 것이잖아요. 나는 그 배우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죠? 서로 주고 받아야 하잖아요. 나는 도움을 받고 싶다고 하지만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결혼할 때 내가 상대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생각을 바꾸세요.nbspnbsp시각장애인과는 무조건 결혼을 안한다 하는 것은 자기가 오히려 시각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입니다. 내가 힘드니 도움을 좀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말고, 나는 이제 살만해 졌으니까 상대에게 도움을 좀 주면서 살자 이런 마음으로 임해 보세요. 외국이이냐 한국이냐 장애가 있는 사람이냐 없는 사람이냐 이런 것도 따지지 마시고요. 상대를 만나면 내 조건을 얘기하고 그저 서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을 구해야지, 내가 보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사람은 그 사람이 보기에는 내가 부족해 보입니다.nbspnbsp대부분 선을 볼 때도 조금씩 속입니다. 누구나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구하기 때문에 항상 조금씩은 상대를 속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면 불화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속아서 결혼한 사람일수록 상대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을 못했을 것이니까요. 우리의 욕심 때문에 속이지 않으면 결혼은 잘 성립이 안됩니다.nbspnbsp그러니 질문자는 생각을 바꿔서 나는 털끝만큼도 열등한 것이 없다고 여기고 자긍심을 가져야 됩니다. 욕심을 내니까 오히려 내 존재가 열등해지고, 자학증세가 생기고, 한탄이 생기는 것입니다. 항상 밝게 자신감을 갖고 생활하면 됩니다. 혼자 살아도 상관없고 결혼해도 괜찮습니다.”nbsp“예, 감사합니다.”nbspnbsp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이미 결혼한 기혼자들에게도 좋은 가르침을 주시는 해답이었습니다. 이렇게 7가지의 질문을 장장 2시간 30여분 이상에 걸쳐 명쾌하게 답을 주시고 광주 강연의 대미를 장식하셨습니다.nbsp여느 때처럼 강연 후 사인회와 봉사자들과의 기념사진까지 마치고 오늘은 좀더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지난주에 스승의 날이 있었기 때문에 간단하게 스승님께 감사할 기회를 가지고자 꽃다발 증정식을 하고, 다같이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며 감동적인 오늘의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봉사자들은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nbspnbsp▲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부르는 광주정토회 회원들nbspnbsp밤10시가 늦었지만 스님께서는 이어서 계속 미팅을 가지셨습니다. 먼저 오늘 저녁 강연을 준비한 광주정토회 팀장급 봉사자들과 간담회 시간을 가지며 그동안 강연 준비하느라 수고한 노고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광주 정토법당은 지난 9월에 확장 이전을 하였는데, 이전한 후 불교대학과 경전반에서 입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200여명의 회원들이 법당을 가꾸어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다음주 월요일에 있을 초파일 행사를 잘 치룰 것을 당부하시고 봉사자 한분 한분에게 악수를 건내셨습니다.nbspnbsp▲ 광주정토회 활동가들과의 간담회nbsp이어서 광주에서 통일의병 모임을 하고 있는 분들이 스님을 찾아와 ‘왜 통일의병이 지금 필요한지’, ‘지금까지는 당위적 통일 운동이 많았는데 앞으로의 통일 운동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질문을 하였고, 스님께서는 각각의 질문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광주 지역 모임 회원들nbsp“한국 사회를 조금 더 나은 사회로 만드는 것이 통일과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를 조금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야 북한 사람들로 하여금 합하자는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요. 또 남한 사람들에게는 합하는 것이 경제적인 총량 측면에서 이익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즉 경제 성장이 정체되어 있는 것을 뚫을 수 있는 길은 북한 개발입니다. 또 북한 사람들의 열악한 인권 상황과 빈곤을 벗어나게 하는 것도 통일입니다.nbspnbsp그리고 한반도의 통일은 일본과 중국에게도 나쁜 것이 아닙니다. 통일된 한반도가 어느 쪽으로 붙느냐 하니 걱정이지 통일된 한반도는 어느 쪽으로 붙을까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한중일이 협력해서 더 나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자고 하면 되지요. 독일의 통일이 유럽 공동체로 나아갔듯이 한반도의 통일은 동아시아의 공동체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21세기 초에는 통일, 21세기 중반에는 동아시아 공동체, 21세기 말에는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된다는 이런 비전을 갖고 새로운 국가 건설을 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이런 꿈을 좀 가졌으면 좋겠어요.nbspnbsp통일로 가려면 북한도 포용해야 하는데 남한의 보수 세력을 포용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고, 동아시아 공동체로 가려면 일본도 포용해야 하는데 북한을 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좁게 생각하면 자기 마누라도 용서가 안되고, 공부 안하는 제 자식도 용서가 안되지요. 크게 생각하고 판을 크게 짜나가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현실을 핑계대고 안주하면 안되고, 이런 현실 위에서 우리가 꿈꾸는 이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스텝을 밟아 나가야 하는가, 이렇게 접근해 나가야 합니다. 두 발을 대지에 딛고 앞으로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통일에 기여를 많이 해주세요.”nbsp광주 지역 통일의병들은 늦은 시간까지 소중한 말씀을 해주신 스님께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했고, 스님께서는 “너무 큰 욕심을 갖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한발 한발 해나가세요” 라고 격려해주신 후 광주 시청을 나오셨습니다.nbspnbsp밤11시가 넘어서 광주를 출발한 스님께서는 마산 정토법당에 새벽 2시 무렵 도착하셔서 오늘 하루를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에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 6주기를 맞이하여 묘소에 참배하신 후 오후에는 평화재단 청년포럼에서 주관하는 청년학교 5기 수료식에 참석해 강연을 해주실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5.18. 청주, 전주 희망강연
nbsp nbsp nbsp 어제 대전법당에서 주무신 스님께서는 새벽예불과 기도를 대전법당 신도님들과 함께 하신 후 아침 공양을 하시고 청주강연이 열리는 CJB미디어센터로 향했습니다. 강연장으로 가는 길에 잠시 새로 이전한 청주법당에 들렀습니다. 오늘 청주강연이 열리는 날이다 보니 법당문이 잠겨 있어서 비밀번호를 확인한 후 들어가셔서 법당을 둘러보았습니다. nbsp nbsp 법당을 나와서 근처에 있는 CJB미디어센터로 향했습니다. 강연장에는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9시부터 줄을 서서 입장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본 강연에 들어가기 전 귀여운 사진으로 강연안내영상이 나오고 추가열의 행복해요로 다 함께 노래와 율동을 따라하며 가볍게 몸을 풀었습니다. 흥을 돋우는 동안 하나, 둘 빈자리가 차면서 어느새 1,000석의 청중석이 꽉 찼습니다. 스님께서 입장하시자 공연의 절정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습니다. nbsp nbsp “왜 안하던 일을 하고 그래요? 사람들이 좀 변한 것 같아요. 충청도 사람들이 반응이 느린 편인데 오늘은 반응이 참 좋네요. 여기 다 외지인들 아니에요? 열렬하게 환호해줘서 감사합니다.” 웃음과 훈훈한 분위기로 강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질문자들의 질문을 받기에 앞서 현재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경제, 사회 상황과 이로 인한 현대인의 심리상태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욕망을 쫓아 살고 있는데, 이제는 욕망과 기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현실의 나를 긍정하면서 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조선시대의 여자들은 결혼하면 죽는 줄 알고 시집을 갔습니다. 그래서 시집갈 때 딸도 울고 엄마도 울었어요. 시집갈 때 5년간 귀 막고, 입 막고, 눈 감고 못본 척 하라고 교육 받았어요. 남자에 대해 전혀 모르고 그냥 시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기대를 안 하고 갔으므로 생각보다 좀 낫다, 살만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게다가 아이를 낳으면 대우를 해주므로 마음이 괜찮아집니다. 그런데 요즘은 결혼하면 천국에 가는 줄 알죠. 결혼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혼해서 살아보면 생각만큼 좋지 않아요. 복권 당첨되듯이 득 보고 싶은데, 실망하게 되니 갈등이 생겨 괴롭고 아이가 생기면 스트레스가 더 커지므로, 부모의 스트레스로 아이들의 불안증이 더 커집니다. 초등학생 10명 중에 2명이 정신이 불안하고 대학생 10명 중에 23명이 우울함을 겪고 있습니다. 자살이 조금 더 나가면 나 혼자 죽기는 억울하다 해서 무차별 학살이 나타나게 됩니다. 실제로 이런 질환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 자신이 겪고 있는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이 자리에서 이야기해보라며 질문을 받았습니다. 김포에서 강연 때 스님께 질문을 못해서 청주까지 쫓아왔다는 김포 불대생까지 총 6분이 질문하였습니다. nbsp 현재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데 나중에 외로워지고 싶지 않아 딸을 낳고 싶다는 40대 여성, 친오빠가 자립하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의존해 걱정이라는 여성,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해 고민인 청년, 언니에게 불법을 전하고 싶은데 언니가 귀찮아해 고민하는 중년여성, 악세사리 도매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망설여진다는 여성, 부인의 구박으로 사는 게 고되다는 70대 노인의 질문까지 다양한 연령의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모든 질문에 스님께서 정성껏 답해주셨지만, 불안증으로 사회 적응이 힘들다는 청년의 질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다양한 예를 들어 애정이 담뿍 담긴 답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두 가지 문제의 습관이 있습니다. 첫째는, 새로운 일을 할 때 망설이는 것이고 둘째는,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졸업 후에 사회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작년 8월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격증 시험을 공부했고 취직을 했습니다. 올 1월부터 구직을 했는데 세 개의 회사에 입사통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출근 첫날부터 내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는지, 이 회사의 재정을 생각했을 때 내가 오래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다시 직장을 구하더라도 이런 마음이 또 올라와 회사를 그만둘 것 같습니다. 건강한 사회인으로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nbsp “첫 번째는 심리가 불안해서 이랬다 저랬다 하기도 하고요. 두 번째는 욕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씨앗을 심고 빨리 수확하고 싶어서 가을까지 기다리지 못하거나, 이거는 안되나 싶어 씨앗을 이곳 저곳, 여러 군데 옮기며 심게 됩니다. 조급함이 있고 욕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문제아는 아닙니다. 조급함이 커서 문제가 되었다면 학교를 다니지 못했을 것입니다. 직장도 여기 저기 다녔지만 자격증을 땄다는 것은 꾸준함이 있다는 것이에요. 자신이 불안함이 있지만 병이라고 할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닙니다. 또 자기의 상태를 자각하고 있으므로 문제는 아니죠. 술 마시고 취한 줄 모르면 사고를 낼 확률이 커지지만 자신의 취기를 자각하면 사고는 치지 않습니다. 정상인에 비해 좀 문제가 있지만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닙니다. 증상이 그 정도고 자신이 자각하고 있으면 됩니다. nbsp nbsp 첫째, 심리가 불안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신이 자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태생적이므로 쉽게 고쳐지지 않아요. 불안을 없애려고 하는데 안 되니까 자신이 부족하다는 자학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학을 하면 안돼요. 기도문을‘나에게 불안증이 있지만 이 정도는 괜찮아.’이렇게 정진해 보세요. nbsp 둘째, 꾸준히 하지 못하는 문제를 고치고 싶다면 취직을 해서 고치면 됩니다. 이번에 취직이 되면 돈을 주든지 안주든지, 회사가 망하더라도, 무조건 사장과 함께 3년간 다니는 것입니다. 이번에 취직하면 수행 1,000일 기도를 들어간 것입니다. 직장을 다니는 것으로 천일기도를 하는 것이죠. 회사가 망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수행의 경계일 뿐입니다. 천일기도를 하려면 비가 오든 말든, 어떤 경우든 해야 하죠. 직장을 구할 때도 아무 곳에나 원서를 내서 처음 구해진 곳에 다닙니다. 첫 직장이 삼백주고, 두 번째 구한 직장이 오백 줘도 첫 번째 삼백주는 직장으로 무조건 들어갑니다. 사장이 아무리 성격이 더러워도 1,000일 다니는 것을 수행으로 삼으면 병이 상당히 치유됩니다. nbsp nbsp 여자문제도 마찬가지에요. 외로워서 여자를 사귀다가도 여자가 결혼하자고 하면 겁이 나서 도망가게 됩니다. 회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기 불안이 병이에요. 이대로도 괜찮아요. 하지만 개선하고자 하면 직장을 구해서 천일을 절대 어떤 경우라도 핑계대지 않고 끝까지 다니는 것으로 수행 삼아야 합니다. 할 수 있을까요? nbsp “네 할 수 있습니다.” nbsp “예전에 굉장히 머리가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데 불안증이 있는 사람이 나를 찾아왔어요. 머리를 탁 깎고 와서‘스님의 제자가 되겠습니다.’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보니 오랫동안 못 붙어있을 사람이에요. 다른 절에 가보라고 했더니 이미 송광사도 3개월 있어 보고, 해인사도 행자생활 1년 하다가 나왔고, 그러다가 법륜스님이 자기에게 딱 맞는 스승이라 찾아왔다는 거예요. nbsp nbsp 스승과 제자가 된다는 것은 네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했더니 그 정도는 하겠습니다라고 해요. 제자가 되면 스승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삼배를 정성스럽게 하고 나서‘무엇을 할까요?’라고 묻기에, 문경에 가면 내가 잘 아는 스님이 있는데 그 분에게 가서 3년만 살다 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제가 스님 제자가 되려고 왔지, 다른 사람의 제자가 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하고 싫다는 겁니다. 제가 다시 ‘제자가 되는 것은 자기의 생각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느냐?’하며 스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더니 이해를 못해 몇 번의 실랑이를 했어요. 그렇게 고집 피우려거든 제자 하지 말고 나가라고 했더니 그제야 문경에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스님이 뭐라고 하든 3년간 꼭 붙어있어야 한다고 다짐을 받고 보냈지요. nbsp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바랑을 메고 털레털레 오는 겁니다.‘너 무슨 일이 있어도 삼년은 붙어 있으라고 했더니 왜 왔니?’하고 물으니,‘자기도 안 오려고 버텼는데 오늘 아침에 대중공사를 붙여서 가라고 해서 왔다’는 겁니다.‘어떤 일이 있어도 버티고 있으라고 했지 않느냐? 이렇게 고집을 피우면 나의 말을 안 들으니 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하니,‘스승이 스님만 있는 줄 아세요?’하며 나갔어요. 질문자는 내 말 알아듣겠어요?” nbsp “네, 알아들었습니다. 절대 그만두지 않겠습니다.” nbsp nbsp “어느 절이든, 회사든, 여자든. 남자든,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회사에 부도가 나도 사장은 부도 처리한다고 회사 다닐까요? 안다닐까요?” nbsp “다닙니다.” nbsp “그러면 자기도 사장처럼 다니는 거예요. 먹고 사는 건 사장이 주던, 자기가 사먹던, 저 동생 같은 사람이 사주던 어떻게든 해결되요. nbsp 그러니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것이 수행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카르마를 바꾸는 거예요. 카르마를 바꾼다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원칙을 세우면 대결정심을 내서 해봐야 고쳐지죠. 돈 버는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업식을 없애는 게 중요합니다. nbsp 질문한 청년을 위해 또 하나 얘기하면 화엄사에 가면 각황전이라는 큰 법당이 있어요. 임진왜란 때 불이 나서 없어졌어요. 절을 복원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절의 주지스님이 천일기도를 들어갔어요. 기도가 끝나는 날 꿈을 꿨는데 오늘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 시주자라는 거예요. 그 사람한테 끝까지 부탁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 귀부인이나 대관고작을 만날 줄 알았는데 제일 첫 번째 만난 사람이 거지였습니다. 자기 먹을 것도 없는 거지에게 시주라니 택도 없는 일이라 외면하고 가려다 현몽을 꾼지라 거지에게 시주를 부탁해 보았어요. 거지가 내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내가 어떻게 절을 지을 수 있겠느냐며 화를 내도 계속 절을 지어달라고 했어요. 스님이 계속 따라다녀 거지가 거절하면서 뒷걸음질 하다가 그만 우물에 빠져 죽어버린 겁니다. 천일기도의 공덕이 좋게 나타난 게 아니라 사람을 죽게 한 거죠. nbsp nbsp 그런데 중국의 어린 황제가 즉위를 했는데 밤마다 스님이 꿈에 나타나서 시주를 하라고 따라다니는 겁니다. 괴로워서 고승을 불러서 물어봤더니 옷차림새를 물어보니 조선사람이라는 겁니다. 거지가 죽어서 중국 황제로 태어난 거였죠. 결국 이 사람의 도움으로 절을 지었어요. 그래서 그 건물 이름이 각황전입니다. 그러니 믿음은 이렇게 굳건해야 합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아도 이런 것을 봐야 진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카르마가 바뀌면 어머니로부터 타고난 불안증이 오히려 복이 될 수 있어요. 방황하다가 이 법을 만났고, 병을 극복하고 치료하게 되면 인생의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lt241gt 스님의 지혜롭고 명쾌한 답변과 번뜩이는 재치로 청중들이 즐겁게 웃는 소리가 강연 내내 멈추지 않았습니다. 너무 즐거웠던 탓인지 시간이 매우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시간관계상 2명의 질문을 못 받았는데, 질문을 못한 두 사람에게 천안 강연 때 오면 우선 질문권을 드리겠노라고 사과말씀을 정중히 하고 강연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nbsp 짧은 강연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많은 분들이 줄을 서 스님께 싸인을 받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팔십명이 넘는 스텝들이 마지막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스님과 단체사진을 찍고 활기찬 월요일 오전 강연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nbsp nbsp 오후 2시부터는 전국 총무단, 법사단, 공동체 실무자들이 참여하여 약 3시간동안 회의가 있었습니다. 오늘 회의는 정토회 전체 사업중에서 만일결사를 결산하고 또 세계전법을 위한 제 2차 만일결사를 준비하는 과정중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본부불사에 대한 마음을 모으는 자리였습니다. nbsp 먼저 김은숙처장님께서는 이렇게 바쁜 가운대 회의를 잡아 미안하지만 공동체실무자, 대표님, 법사님등 소중한 분들이 자리를 해서 함께 모였으니 지도법사님과 함께 귀한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nbsp nbsp 이어서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말씀중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법의 상속자가 될 지언정 재물의 상속자는 되지마라.’ 재물의 상속자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 사회적 지위, 명예 이런것도 다 재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마땅히 법의 상속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법의 요체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해탈은 완전한 자유, 참자유이고, 열반은 완전한 행복, 참행복입니다. 참자유, 참행복은 자유와 속박이 되풀이 되고, 즐거움과 괴로움이 되풀이 되는 그런 것이 아니고, 자유와 즐거움이 지속되어야 하고 그런 행복을 열반, 그런 자유를 해탈이라고 합니다. 그런 길로 나아가도록 하는 모든 가르침, 수련을 법이라고 한다. 그러니 수행자라고 하면 높은 지위, 많은 재산, 높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좀 더 행복해지고 자유로워질까? 그길로 나아가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을 우리가 계승을 해야 합니다. nbsp nbsp 그런면에서 정토행자는 재물의 상속자가 아닌 법의 상속자로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하고 늘 생각하고 연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천일결사의 첫번째 목표가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인다’ 입니다. 괴로움이 없는 것이 열반이고, 자유로운 사람이 해탈입니다. 대승불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인데 상구보리가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고 하와중생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행자로서 이 첫번째 목표를 반드시 실천해야 합니다. nbsp 두번째 항목이 ‘대중이 주인되어 청정화합의 수행공동체를 만든다’입니다. 수행자들이 모인 공동체는 청정하고 화합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경공동체든 서울공동체든 해외 공동체든 대중공동체든 수행자들이 모인 공동체는 청정하고 화합해야 합니다. 청정해야 한다는 것은 수행자로서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검소하고 살아야 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수행자들이 사는데 지나치게 사치해도 안되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거만해도 안됩니다. 또한 수행자들운 게을러도 안되고 수행자들이 남의 도움을 얻어서 받는자가 되서도 안됩니다. 서울과 문경 공동체 뿐만 아니라 사업을 하든 장사를 하든 대중공동체도 그렇게 가야 합니다. 그런데서 청정성이라는 것은 걸식의 정신과 검소함을 말하는 것이고, 화합은 갈등이 없는 그런 뜻이에요. 즉 상가의 가장핵심은 청정과 화합이에요. nbsp nbsp 대승불교의 원은 사홍서원에 있는데 일체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예요. 따라서 법을 확산시켜야 합니다. 법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질을 유지하면서 규모를 키우는 것이지, 질을 포기하고 키우면 안됩니다. 수행공동체의 질을 훼손하는 지원은 주어도 받으면 안됩니다. 아무리 어떤 보시나 정부로 부터 혹은 권력자로 부터 지원을 해준다 해도 질을 훼손하는 지원받아서는 안됩니다. 질이 담보되는 범위 안에서 확산을 해야 합니다. 확산을 하려면 세속에 물드는게 아니라 세속을 활용을 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모이려면 건물이 있어야 되고 건물이 있으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기술이나 세속적인 재물을 좋은 법을 확산시키는데 활용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지금 현재 우리의 목표는 정토세상을 실현할 정토행자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군구 읍면동에 정토법당을 만든다. 정토행자운동을 지원할 본부와 연수원을 건립한다. 해외정토행자운동의 기반을 마련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끌어 갈 통일의병을 양성한다.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세계어린이를 돕는다. 지구를 살리는 쓰레기제로운동과 환경운동을 생활화한다. 국내외 여러단체와 함께 미래사회의 대안을 만든다입니다. nbsp nbsp 법을 계승하기 위해서 질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양을 확대합니다. 양을 확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교육과 수련을 위해서는 물적토대가 필요합니다. 향후 10년 20년을 바라볼때 서울에 큰 규모의 불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본부와 중앙연수원이 건립이 필요합니다. 우선 현재 우리는 본부 건물을 위한 불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힘을 합쳐서 불사를 원만히 할 수 있도록 기도정진하고 힘을 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본부건물을 위한 불사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 그리고 정토회가 1988년 창립해서 1999년 이사오기 까지 1단계는 홍제동시절, 그리고 1999년 정토회관 건립후 2단계는 서초동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제 다시 본부불사를 하여 3단계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8차에 본부불사를 완공해서 9차, 10차에서 1차 만일결사를 성취할 수 있도록 물적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므로 부지런히 불사에 함께 동참해서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2차만일결사를 위한 토대가 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nbsp nbsp 본부건물이 신속하게 건립이 되면 정토회의 본부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중요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현재 평화재단에서 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종교인 모임, 사회정치적인 모임, 시민단체모임등 중요한 모임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또한 주요발표도 프레스센타가 아니라 이곳에서 하고, 국제회의도 하면 자연적으로 우리사회에서 NGO차원의 중요한 운동의 중심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제가 20대때는 이런 활동의 기반이 명동성당과 종로5가의 기독교 회관이었습니다. 스님도 젊었을때는 늘 명동성당과 기독교 회관에서 중요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제 정토회관이 정토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미래를 지향하는 세대, 청년세대에 있어서 중요한 활동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토회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 문화예술분야인데, 이곳에서 공연장도 만들어서 문화예술분야도 함께 갈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nbsp nbsp 그래서 지금과는 다른 정토회로 되고, 수행과 활동뿐만 아니라 품위를 갖춰주게되면 정토회의 전법활동이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국민운동으로 새로운 문명운동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방송시설까지 갖추어서 종합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정토회의 양적확대와 동시에 질적변화를 가져오는 제1차 만일결사를 마무리하고 다음 제2차 만일결사를 준비하는 기초와 토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조용히 들뜨지 않되 확신을가지고 본부불사를 하면 좋겠습니다. 총무님들이 중심을 잡고가야 불사가 흔들림없이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어떤마음으로 본부 불사를 준비해야하는지, 그리고 본부불사에 대한 향후 비젼을 공유해 주시면서 본부불사를 원만히 진행해보자고 하셨습니다. nbsp 대전에서 회의를 마치고 잠시 휴식하신 스님께서는 전주강연이 열리는 전북도청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스님의 강연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전주와 익산, 군산, 정읍, 남원, 무주, 진안, 장수 등의 지역에서 공연장 3층, 4층 객석을 꽉 채운 890명의 청중과 봉사자 60여명, 총95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청중들의 큰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올라 서두를 시작하였습니다. 즉문즉설 시간동안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듣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 정리해주셨습니다. nbsp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귀에 들리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보고, 지금까지 들어온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듣고, 지금까지 내가 만져본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만져봅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우리의 괴로움도 꼭 괴로울 일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nbsp 우리는 늘 누군가를 내 마음에 들도록 고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요. 그런데 조금만 살아보면 세상은 내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마치 세상이 내 뜻대로 되는 줄 알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내 뜻대로 안 되면 괴로워해요. 그런데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세상이다’ 이렇게 알면 괴로워 할 일은 없잖아요? 내 뜻대로 되면 다행이고 안 되어도 그만입니다. 그리고 남이 나한테 원하는 걸 내가 다 못해준다고 괴로워 하는 경우도 있어요.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되듯이 남이 원하는 걸 내가 다 해줄 수 없어요. 해줄 수 있으면 다행이고 해줄 수 없으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nbsp nbsp 오늘 질문자는 모두 일곱 명으로, 어릴 때 부모의 불화로 여전히 가슴속에 원망과 분노가 사라지지 않아 자살 시도 등 우울증으로 힘든 34세 주부, 이혼하면 세 아이의 양육이 걱정되면서도 이미 이혼소송이 시작되어 혼란과 슬픔으로 힘든 40대 엄마, 어머니의 정신분열로 부모가 이혼 후 의지하고 돌봐주던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경제력 없는 아버지와 폭력적인 오빠를 일생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힘든 20대 젊은 여성, 나이 들어 점점 초췌해지고 멋이 없어지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될지 궁금해 하는 50대 남자, 직장에서 성과를 내고 승진하기 위해 남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 괴롭다는 젊은 직장인, 뭔가를 하고자 할 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또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굳은 마음을 가지고 싶다는 여자 고등학생, 남편이 1년 넘게 집에 들어오지 않고, 채권자들에게 크게 시달림 당하고, 돈 앞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변화에 실망과 미움으로 대인 기피증까지 생겨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고 싶다는 여자, 삶의 애환이 담긴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nbsp 이 중에서 중년 남자분에게 해주신 스님말씀을 전합니다. nbsp “저는 한 가정의 아빠이고 남편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뭔가 초췌해지고 별로 멋이 없어지는 거 같은데 어떻게 하면 멋있게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을지 스님께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nbsp nbsp “지금까지 돈을 조금 벌었나 봐요?” nbsp “조금은 벌었는데 다 까먹고 거지 돼버렸습니다.” “질문자가 생각하는 훌륭한 남편과 아빠의 기준은 ‘돈을 제대로 버는 사람이다’ 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굳어있어요. 우리 사회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남자들이 돈을 못 벌면 기가 죽는 거예요. 그리고 남자들이 돈 좀 벌면 기고만장해요. 그래서 바람을 피우거나 집에 늦게 들어와도, ‘내가 돈을 못 벌었나’ ‘내가 너한테 돈을 안줬나’ 이렇게 얘기해요. 그러니까 돈만 주면 놀러 다니던, 술을 늦게까지 먹던, 무얼 해도 내 할일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돈 잘 버는 게 훌륭한 아빠, 멋진 남편이다 이렇게 규정하고 있어요. 그래서 돈 벌때는 고개를 세우고 살았는데 돈을 벌지 못하는 지금은 자신이 존재 가치가 없는 것 같은 거예요. 애들을 봐도 미안하고 부인을 봐도 미안한 거죠. 그런데 돈 버는 남자가 좋은 남편도 아니고, 돈 버는 아빠가 좋은 아빠도 아니에요. 이 전제가 잘못됐기 때문에 치유할 방법이 없어요. 그런 사람은 기가 살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해요. 그런데 늘 그럴 순 없잖아요. 사회적으로도 돈의 기준에 따라 잘나고 못나고 기준이 되기 때문에 내가 똑똑한 척을 해도, 내가 돈이 없다는 걸 알면 내 주위에 사람이 없어요. nbsp nbsp 이것은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이 주인인 사회입니다. 교회마저도 자본주의에 물들어서, 목사가 성공했다, 교회가 성공했다의 기준이 신도가 많아야 되고, 교회가 커야 되고, 돈이 많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한 교회가 되는 거예요. 스님들도 훌륭한 스님, 성공한 스님의 기준은 신도가 따라야 되고, 절이 커야 됩니다. 그런데 성당이나 절은 똑같이 자본주의에 물들었지만 개신교보다는 덜해요. 불교와 천주교는 이미 있는 절과 성당을 가지고 먹고 살고 있고 그 안에서 경쟁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목사가 개척하기 때문에 사업체를 새로 내는 것과도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도 신이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재물로 표현됩니다. 목사가 아무리 성경에 밝고 착실해도 교회가 없으면 실패한 목사예요. 스님이 아무리 훌륭해도 절의 주지 못하고, 신도도 없으면 실패한 수행자에요. 다만 불교는 자본주의에 물들긴 했지만 조금 덜한 편입니다. 선방에 앉아 있기만 해도 훌륭하다고 평가 받기도 합니다. nbsp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돈으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곧 능력입니다. 결혼을 할 때도 옛날처럼 신분 따지지 않고 돈만 따집니다. 결혼 생활할 때 성격이 엄청 작용하는데도 거의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돈만 많으면 남에게는 괜찮아 보이지만 개인은 굉장히 불행해요. nbsp nbsp 그러니 세상이 돈중심으로 가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고 해도 그건 올바른 게 아니에요. 질문자는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야 돼요. 질문자가 돈 벌수 있게 해주는 능력은 나한테 없어요. 다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현재의 자신의 조건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거에요. 자신 스스로 좋은 남편의 기준을 돈 버는 남자로 규정하지 마세요. 가족들에게 위축되지도 말고, 부엌 일도 좀 해주고, 방청소도 하면 좋습니다. 그런데 집안 일을 돈이 없어서 비굴하게 한다고 하면 더 위축 됩니다. 여성분들에게 물어봅시다. ‘여보, 내가 이제 은퇴했으니까 청소와 설거지 내가 할게, 내가 직접해보니 네가 그동안 고생 참 많이 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좀 부족하더라도 괜찮아요, 안 괜찮아요? nbsp “괜찮아요.” nbsp “근데 애들도 돈 버는 아버지가 익숙하니까 그래요. 그러나 사실대로 얘기 하면 위축될 것 없어요. 빚이 많아도 괜찮아요. 돈이 없어서 못 갚는 거는 죄가 안돼요.” nbsp “돈도 없지, 빚 있지, 정신까지 제대로 안됩니다.” nbsp “정신까지 제대로 안되면 빚이 늘까요, 줄까요?” nbsp “사람이 뭔가 폐허가 되는 거 같아요.” nbsp nbsp “이번에 총리하다가 떨어진 사람 패배감이 들까요, 안 들까요? 절세 미인과 못생긴 사람이 얼굴에 화상 입으면 누가 충격이 더 클까요? 잘 생긴 사람이 충격이 더 크겠죠? 그러니 세상은 공평한 거예요. 보통남자들은 돈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데 집착이 너무 강해요. 술값 안내면 어때요? 술값 못 낸다고 기분 나빠할 일도 없고, 술값 낸다고 목에 힘줄 이유도 없어요. 술 사주면 얻어먹고, 주위에서 얻어먹기만 하고 사주지 않는다고 뭐라 하면 경제가 쪼들려서 그렇다고 말하고, 그 말도 하기 싫으면 그 자리에 안 나가면 됩니다.” nbsp “문제는 그게 아니고 돈에 따라 서열이 나뉘어지는 거예요.” “다른 사람 밑에 가기 싫다 이거 아니에요.” nbsp “좀 열 받을 때 있죠.” nbsp “사람들이 보기에 돈 없는 사람이 위에 있으면 더 불만일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 밑에 좀 가주면 어때요?. 어떻게 사람이 위에만 서요? 밑에도 서고 위에도 서고, 서열도 왔다 갔다하는 거죠. 이것을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다라고 말하죠. 근데 요즘 우리나라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가 아니잖아요. 질문자가 그럼 솔선수범해야지요. 친구들 간에도 내 서열을 좀 낮춰주고, 집에서도 마누라를 위로 올려주고, 부자간에도 애를 좀 올려주고 자기부터 솔선수범 하면 얼마나 좋아요. 이렇게 다른 사람을 올려주는 사람을 겸손하다고 해요. 그런데 다른 사람 세워주는 것을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면 비굴해집니다. 비굴하게 안하려고 하면 허세를 부린다고 해요. 허세를 부리며 살래요? 비굴하게 살래요? 아니면 겸손하게 살래요?” nbsp “자리에 앉겠습니다.” nbsp nbsp “이 분 얘기 참 가슴 아프죠? 여자들도 다 잘하는 거 아니고 피해자도 아니에요. 여자들은 남자를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해요. 이게 문제예요. 돈 못 벌면 사람 취급 안 해요. 은퇴해서 오면 그날부터 ‘돈도 못 버는 게’ 이래요. 등 두드려 주면서 ‘당신 그동안 고생했다, 이제 좀 쉬라’고 하세요. 그동안에 한 것만 해도 많이 고생했어요. 남편이 앞으로 ‘뭐 먹고 사노?’라고 걱정하면 ‘내가 나가서 좀 벌게 쉬세요, 가방 메고 등산도 좀 가고 쉬세요’ 이렇게 하세요. 남편에게 격려해주면 기가 살아요. 바깥에 가서도 마누라만 옆에 딱 붙어서 격려해주면 기가 안 죽어요. nbsp 특히 돈을 벌다가 못 버는 사람, 지위가 있다가 망한 사람, 은퇴한 사람은 격려가 필요해요. 남자가 돈을 벌면 집안일에 소홀 합니까? 자상합니까?‘여보, 커피 한잔 줘 아침 신문 왔어? 창문 좀 열어라’이런 남편 많죠? 여자들은 아니꼽지만 돈을 벌어오니까 참고 사니 심리가 억압되어 있어요. 남편이 명퇴를 한 후 빈둥빈둥 놀고, 기존에 해오던 습관은 안 바껴서 ‘커피 한 잔 줘, 창문 열어’이렇게 하면 여자들은 남편이 돈도 못 벌어오면서 큰 소리 뻥뻥 친다고‘너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라고 하는 겁니다. 남편은 돈이 없어서 친구도 못 만나고, 사람들이 자기 보는 눈이 영 이상하고 돈 없이 인간행세도 못하네라고 느끼는데 아내까지 무시하니까 팍 성질내는 거예요. 그러면 아내가 보기에는 남편은 참회를 해도 신통치 않은데 더 날뜁니다. 그래서 황혼이혼도 늘어나는 겁니다. 그러니 여자는 남편 등을 좀 두드려 줘야 하고, 남자는 알아서 여자에게 기어줘야 되요. 어차피 결혼한 것이니 이렇게 바꿔서 살면 안되나요? 여러분들은 결혼을 선택했으니 수행을 하면서 바꿔야 합니다. 수행을 안 하면 같이 사는 아내와 남편, 자식을 괴롭히고 나쁜 영향을 줍니다. 수행하기 싫은 사람은 머리 깎고 스님이 되세요. 수행은 스님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수행을 해야 합니다.” nbsp 스님께선 일곱 사람의 일곱 가지 고민에 대해 질문자가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고 침울했던 얼굴을 펼 때까지 갖가지 질문을 던져 자신의 문제를 바로 볼 수 있을 때까지 이야기를 끌어가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2시간 30분은 금방 흘러가버렸습니다. nbsp nbsp nbsp 강연이 끝난 후에는 스님의 책 사인회가 진행되었고, 스님과 봉사자들의 단체 촬영을 끝으로 오늘 행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봉사자들도 흐뭇한 마음으로 뒷정리와 마음 나누기를 하고 참석해주신 관객들의 해탈을 마음속으로 기원하며 집으로 귀가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다시 대전법당으로 이동하셔서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내일은 진주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2015.5.17 불교대학 특강수련 및 전국 새터민 백제문화 가족나들이
6527965279nbsp nbsp 65279 오늘 새벽 1시가 되어 문경 수련원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새벽에 몸이 좀 불편하다고 하시면서 방에서 기도를 하신 후 6시부터 불대 특강수련 법문을 하셨습니다. 이번 수련에는 서울제주지부와 광주전라지부 불교대학생 380명과 봉사자 80여명 등 총 46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불교대학생들은 그동안 영상으로만 접해왔던 스님을 직접 뵙고 그동안 공부하면서 풀리지 않던 의문을 풀 수 있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감정을 기준으로 할 때 “하고 싶다”와 “하기 싫다” 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는 환경의 조건은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감정과 환경의 조건들을 결합하면 경우의 수는 4개가 생깁니다. 첫째, 하고 싶은데 해도 되는 것, 둘째, 하고 싶은데 해서는 안되는 것, 셋째,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것, 넷째, 하기 싫은데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nbsp 65279 하고 싶은데 해도 되는 조건이 만날 때는 하고 싶은 데로 하면 되고, 하기 싫은데 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만나면 안해도 되니 문제가 안됩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데 하지 말아야 하는 조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왜 못하게 하느냐’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쥐가 배가 고파서 쓰레기장을 뒤지다가 접시에 맛있는 고구마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서 먹으려고 하니 쥐약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이럴 때 먹어야 하나요? 안 먹어야 하나요? 이때 쥐가 ‘배고픈데 어떻게 안 먹어요?’ 하면 먹지 말라고 할까요? 먹고 죽어라고 할까요? 이처럼 아무리 하고 싶어도 그것을 했을 때 큰 손해가 난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nbsp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자유라고 하면, 자유는 네 가지 경우 중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과 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 않는’ 이 두 가지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니 인생의 절반만 자유이고 절반은 속박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필연적으로 자유와 속박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어요. 이것이 윤회이며, 우리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nbsp 65279 완전한 자유, 즉 고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절반의 속박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하고 싶은데 안 할 자유가 있고, 하기 싫을 때 할 자유가 있다면’ 가능합니다. 어떤 조건이 와도 나의 자유가 속박되지 않을 때 참자유, 즉 해탈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자유는 반쪽 자유, 즉 윤회입니다. nbsp 우리가 해탈, 참자유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을 때 멈추는 연습, 하기 싫을 때 해버리는 연습입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기 싫을 때 일어나는 자유, 혼자 자고 싶을 때 여럿이 자는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가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에 메어 삽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죽을 때까지 자유와 행복을 추구해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nbsp 우리가 여기서 공부하는 목적은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바로 이 문제를 풀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스님, 기도, 명상 어떻게 합니까?” “절을 어떻게 합니까?”, “목탁을 어떻게 칩니까?” “공이 뭡니까?”, “무아가 뭡니까?”이렇게 기술 습득과 지식에 대해 질문합니다. 기술과 지식은 모르면 물어볼 수는 있으나 이런 것은 행복으로 가는 방법이 전혀 아니예요. nbsp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해지려면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은 왜 지혜롭게 안될까요? 결혼할 때는 행복하려고 합니다. 결혼 해보니 나아졌어요? 여러분은 매일 돈이 많으면, 승진을 하면, 애가 있으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까 해서 이렇게 몸부림을 치고 살고 있어요. 그런데 결과는 나아진 게 없잖아요. 그런데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거나 즉문즉설 듣고 수행하면서 전보다 조금 더 행복해진 사람은 예전보다 조금 더 지혜로워져서 그렇습니다. nbsp 지혜에는 세 가지가 있어요. 문혜, 사혜, 수혜가 있는데, 이것은 지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지식에 불과합니다. 불교로 박사 학위를 받아도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즉문즉설 1,000개를 듣고 분류해서 ‘즉문즉설의 원리가 무엇이다’라고해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행복해질까요? 이것은 지식적으로 많이 아는 것 뿐입니다. nbsp 65279 그러니 여러분들이 문경에 와서 무엇을 얼마나 더 배우는 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장실 가서 약간 불편할 때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화장실 가서 불편할 때는 화장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이 내 습관의 문제입니다. 지금 계절에 화장실이 크게 불편하지 않지만 겨울에 화장실에 가면 밑에서 찬바람이 쏴악 불고, 냄새가 나면 여러분들은 당장 화장실 문제라고 여기죠. 그러나 이때 ‘화장실 문제가 아니고 내 습관의 문제다’로 돌이킬 수 있으면, 해탈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화장실이 문제다. 세수도 못하고...’ 이렇게 궁시렁하다가 스님께 ‘공이 뭡니까’ 이렇게 질문합니다. 공부는 지금 이 순간해야 하는데, ‘지금’은 늘 놓치고 ‘생각’만 가지고 질문합니다. 여러분들의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이것이 참자유, 참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문경에 와서 불편을 느껴야 ‘내가 이런 습관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불편을 안 느끼면 내가 다 잘하는 줄 알게 됩니다. nbsp 그리고 관점이 확실히 바뀌어야 합니다. 원효가 해골바가지인 줄 모르고 물을 마셨을 때에는 불편하지 않았는데, 해골바가지인줄 알고는 구역질을 하며 토했습니다. 그때 ‘똑같은 바가지이고 똑같은 물인데 왜 불편할까?’ 생각하다가 더럽고 깨끗함이 물이나 바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똑같이 잠을 자고 화장실 쓰는데, 왜 나는 불편할까?. 조건이 문제면 모두가 불편해야 하는데 좋았다는 사람도 있잖아.’ 이것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조건부 자유, 조건부 행복이 아니라, 무조건 이래도 좋고 저래도 괜찮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지향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은 쾌락주의예요. 무조건 안한다고 하는 것은 고행주의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이 둘의 양극단을 떠난 중도주의입니다. nbsp nbsp 여러분들이 공부할 때 목표점이 없으면, 1년을 공부해도 발전이 없고 2년을 공부해도 변화가 없습니다. 목표가 분명하면 ‘놓쳤구나’ 이러면 실패가 연습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어느 순간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여러분들에게 관점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고, 연습은 여러분들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합니다. ” nbsp 스님께서는 시종일관 애정어린 마음으로 이제 갓 한 학기를 마친 불교대학생들이 수행자의 관점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행정진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불교대학생으로부터 사전에 받은 질문내용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질문에 대해 답변해 주셨습니다. 여러 질문 중 대표적인 것 한 가지만 소개합니다. nbsp “의무와 봉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절에서나 가정에서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의무 아닌가요? 너무 무거워 봉사로 포장하는 것 아닌지요?” nbsp 65279 위의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의무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 봉사는 하기 싫은 것을 능히 하는 것이예요. 어떤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것을 노동이라고 합니다. 장사가 주고 받는 것이라면, 봉사는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필요에 의해 하는 것입니다. 죽어라 일을 시키고 돈을 안준다고 하면 강제 노역, 노예라고 해요. 돈을 받으면 노동이라고 하고, 아무 조건 없이 내일처럼 하면 자원봉사라고 해요. 그러니까 결론을 내리면 자원봉사는 사랑과 같습니다. nbsp 여러분은 실제로 사랑을 나누고 삽니다. 부부관계는 사랑이지요. 부부관계를 했다고 계산을 하나요? 안하잖아요. 아이들 옷 갈아입히고 빨래해서 입히는 것을 계산하나요? 안하잖아요. 그러니까 사랑을 나누고 사는 거예요. 정토회에서 일을 하고 돈을 받으면 노동이 되며, 돈을 조금 받으면 저임금이고, 그러면 내가 악덕기업주가 되는 것이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정토회에서 돈을 안받고 일하면 봉사고, 봉사는 사랑이예요. 스님은 좋은 기업주도, 악덕기업주도 되고 싫지 않아요. 여러분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거예요. nbsp 노동의 진정한 해방은 노동이 놀이가 되는 것입니다. 놀이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재능을 마음껏 나누고, 거래를 없애는 것이 사랑입니다. 일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파는 거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nbsp nbsp 우리가 크게 생각하면 수행은 내가 주인이 되는 것이고 사랑을 나누는 일이며,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이예요. 조건은 거래입니다. ‘부부는 사랑이다’ 하지만 실제로 부부지간에도 거래하고 있잖아요. ‘살아보니 손해다’라고 생각해서 살까 말까 고민하며 머리가 아픈 것은 거래하기 때문이예요. 애들한테 까지도 그래요. ‘내가 너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라고 생각해요. 친구지간에도 매일 거래 하는 거예요. ‘술을 3번 샀는데’, ‘이사 갔을 때 도와줬는데’라고 생각하며 섭섭해 하는 것은 장사하고 있는 거예요. 태어나서 장사만 하고 사니까, 머리가 자동적으로 그렇게 돌아가는 거예요. 장사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진정한 친구예요. 사랑을 해서 괴로운 게 아니고, 장사를 해서 괴로운 거예요. nbsp 그래서 ‘봉사하고 보시해라’라고 하는 거예요. ‘주인되는 연습을 해라’ 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예요. 이렇게 보시를 자꾸 하다 보면 내 남편에게도 할까요? 안할까요? 저절로 됩니다. 집에서만 하는 것은 밖에서 안하게 됩니다. 남의 자식에게 잘하라고 하면 자기 아이는 지가 알아서 하게 됩니다.” nbsp 라고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주시고, 다음과 같이 마무리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공부하는 기본 원리를 터득하셨어요? 우리가 공부하는 목표는 해탈과 열반이며, 이것으로 가는 길은 기술과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지혜로운 것은 이치에 밝은 것이예요. 심리와 마음, 몸뚱이의 작용, 세상 사람들, 사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 이것을 이해하면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해를 못하면 욕만 나오고, 미친 놈, 죽일 놈, 하면서 미움만 생깁니다. 그러면 내가 괴롭습니다. 이해를 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좀 더 밝아지고 가벼워집니다. 그러면 화장을 덜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자연스레 얼굴에 생기가 돕니다. 녹슨 철판에 페인트를 칠하면 자꾸 벗겨지고 지저분해져요. 여러분들이 마음이 더러운데 화장만 자꾸하면 덕지덕지 되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저녁에 지우고 아침에 다시 화장해요. 마음이 행복하면 화장 안해도 좋아요. 행복이 영원한 화장입니다. nbsp 이제 수행도 기분 좋게 할 수 있겠지요?. 밥을 늦게 줘도, 안 줘도 불만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을 긍정적 사고라고 해요. 긍정적인 사고위에 개선할 것이 있으면 개선을 하면 좋아요. 불만으로 하지 말고요.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개선을 해야 합니다. ‘불편은 내 문제다’ 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상대가 하고 안하고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이게 말이 쉽지, 쉬울까요 안 쉬울까요? 안쉽겠지요. 그래서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런 연습이 수행입니다. 열심히 연습해보세요.” nbsp 라고 하시면서 스님께서는 3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으시고 봄불교대 학생들에게 해탈과 열반의 길을 자상하게 일러주셨습니다. 학생들의 표정도 문경 정토수련원의 맑은 공기만큼이나 밝고 가벼워 보였습니다. nbsp 65279 불대 특강후 스님께서는 바로 새터민 가족 나들이가 있는 부여로 향했습니다. 도착하니 점심시간이어서 점심공양을 먼저 하셨습니다. 좋은벗들이 새터민 지원할 때 처음 지원했었던 김홍익 거사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스님께 인사를 드렸고 함께 공양을 하시면서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들 아들 이야기, 직장이야기, 현재 북한의 상황등 을 나누었습니다. nbsp nbsp 이어진 새터민 노래자랑을 신나게 들으신 후, 궁남지로 이동해서 먼저 화지산에 세운 백제오천결사대출정식 계백장군동상을 둘러보셨고, 길을 따라서 다시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서동공원의 궁남지와 포룡정을 둘러 본 후 오늘 강연이 있는 부여 박물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조금 시간이 있어 부여박물관을 잠깐 관람했습니다. nbsp nbsp 관람을 마친 새터민들이 하나 둘 스님과의 즉문즉설을 위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자리가 3분의 2 가량 찼을 때 스님께서 무대 위로 올라가 아까 노래자랑이 성에 덜 차지 않았냐고 말씀을 꺼내십니다. 야외라 제대로 집중이 안 되고,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새터민들이 마음껏 놀지 못한 것을 염두에 두셨던 듯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 못한 사람 지금 노래하라고 하니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듭니다. 공연장 안에서 들리는 노래소리에 다른 새터민들도 속속 들어와 어깨를 들썩입니다. 노래를 마친 한 새터민이 스님도 한 곡 하셔야 한다고 마이크를 넘겨서 스님의 선창으로 다같이 ‘고향의 봄’을 불렀습니다. nbsp nbsp 예정된 시각을 조금 넘기기는 했지만 강연은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상대에 따라 달리 설법하는 것이 즉문즉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중국에서 카톨릭 세례를 받았으나 한국에서 인정이 안 되어 고민인 여성,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지 묻는 어린이, 우리 대에 통일이 될지, 또 통일인 된다면 새터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여성, 고향의 가족을 생각하면 늘 죄책감에 마음이 아프다는 여성, 자신의 정체성이 고민된다는 남성 등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중 몇 가지를 전하겠습니다. nbsp nbsp “저는 중국에 오래 살다가 한국에 왔습니다. 중국에 살 때는 쫓겨 다니느라 생각을 못했는데 여기 오니 고향 생각, 가족 생각이 너무 많이 납니다. 우리 대에 통일이 되겠습니까?” nbsp “통일의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습니다. 또 정치적으로 꼭 통일이 안 되더라도 남북한이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어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는 상황은 조만간 올 것입니다. 지금 북한은 현재의 체재를 유지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경제나 사회구조 같은 하부구조가 거의 붕괴됐습니다. 그런데 주체사상, 정치, 군대 같은 상부구조는 아직도 탄탄하지요. 하지만 하부구조가 약하기 때문에 상부구조 역시 자생력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개선을 해서 살아남든지 개선을 못하면 붕괴가 되든지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개선을 한다는 것은 내부에서 개혁개방 정책을 취한다든지 해서 서서히 변화 되는 것이고 붕괴된다는 것은 갑자기 폭발적으로 변화가 오는 거겠죠. nbsp nbsp 북한은 이름은 공화국이지만 현실은 왕조와 같습니다. 결정권이 왕한테 다 있기 때문에 인민들이 아무리 반발을 해도 쉽게 안 무너집니다. 또 정권이 무너져도 북한이라는 국가는 유지가 되는 거지, 나라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만약 북한에 변고가 생기더라도 중국은 조중동맹을 근거로 개입할 수 있고, 미국은 힘으로 밀어붙여 개입하겠지만 현재와 같이 남북이 적대 상태에서는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근거가 없습니다. nbsp 남북한의 교류협력이 잘 되어 국가 연합의 형식을 취해 놓으면 만일의 사태에 가장 먼저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우리에게 있고, 국제적으로도 저건 korea 내부문제라고 쉽게 받아들이겠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남한 정부가 통일 정책을 좀 더 적극적으로 펴나가야 하는 겁니다. 물고기 잡으려면 미끼를 줘서 통 속으로 들어오게 해야 하잖아요. 국민들도 그렇고 자꾸 감정적으로 대응하니까 지금 상황이 안 좋은데, 이성적으로 대응하면 여러분들의 아픔도 좀 더 짧아지고 남북한 모두의 미래에 큰 이익이 됩니다. nbsp 여러분들도 여기 있으면 북한에서보다는 잘 살지만 남한 사람만큼 성공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잖아요. 장기적으로 인생의 목표를 통일조국이 건설될 때 내가 내 고향을 건설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하면 여러분에게 더 희망이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체제나 경제나 구조가 남한 중심으로 통일이 될 거기 때문에 여러분이 불이익을 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여러분이 통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 일본에 사는 한국 사람이 힘들 듯이 남북관계가 나빠지면 여러분도 힘들고 북쪽 가족들도 더 고통을 받습니다. 지금 힘들어도 통일을 지향하면 여러분들이 여기서 배운 앞선 기술이나 모아놓은 자본을 가지고 고향에서 성공하고 통일 조국 건설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쨍하고 볕들 날이 있을 테니 지금 처지를 비관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사십시오.” nbsp nbsp 스님의 말씀에 새터민들은 가슴이 다 트이는지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다음은 두고 온 가족생각에 괴롭다는 여성의 질문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20년이 되고, 한국 온지는 5년 되었는데 마음이 많이 괴롭습니다. 아침마다 스님 즉문즉설을 들으려고 매일 유투브를 찾아 듣습니다. 얼마 전에 동생과 20년 만에 통화를 했는데 그러니까 조금 나은 것 같습니다. 두고 온 형제들에게 늘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nbsp “지금 여기서 매일매일 울면서 걱정한다고 동생들의 처지가 좋아지나요? 그러면 내 인생은? 그런데 내 인생에도 도움이 안 되고, 동생도 안 좋은 일을 왜 해요? 차라리 어디 가서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더 하든지요. 잠 못 들고 우는 시간에 일을 더 하지. 아무리 못해도 최저 임금이 시간당 5천원이잖아요. 그 시간에 일을 더 하면 한 달에 12만원 되잖아요. 그러면 100달러죠. 그러면 동생한테 매월 100달러를 보내주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여기서 매일 우는 게 도움이 될까? 북쪽에 있는 동생은 남쪽에 있는 언니가 매일 우는 게 좋을까, 즐겁게 사는 게 좋을까요? nbsp 괴로운 마음과 감정은 백분 이해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거예요. 나라도 하나 넘어 왔으니 지금 도와주려면 도와줄 수 있잖아요. 어차피 둘 다 못 살 때는 나 혼자라도 살아야지요. 나만 살자는 게 아니라, 나 혼자라도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내 가족이 죽는데 어떻게 나만 살 수가 있나, 감정적으로는 이렇게 느끼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기 와 혼자 잘 산다고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나라도 여기 와서 가족을 도와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이렇게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nbsp nbsp 여러분들이 여기 오느라 가족들이 감옥에 가고 중국에서도 이리 저리 팔려가고 온갖 아픔이 있었지요. 그런데 남한에서도 이런 고통은 있었습니다. 독재시대 때 시위하다가 많이 감옥가고 죽었습니다. 북쪽에 가족이 반동분자로 몰려서 죽은 경우 많았죠? 남한에도 빨갱이로 몰려서 몰살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주에서 4.3 사건으로 3만 명이나 희생당하는 등 아예 한 마을이 통째로 몰살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아픔을 안고 살고 있으니 내 후손들은 다시는 이런 아픔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첫째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또 미래의 이익을 위해서 통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살았네’ 하고 기분 좋게 생각하세요. 과거의 불행을 자꾸 생각하면 미래의 불행을 만드는 겁니다. 웃으면서 사세요.” nbsp ‘웃으면서 살겠습니다’ 한번 크게 해보라는 스님 말씀에도 질문자는 쉽사리 울음기를 거두지 못합니다.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민족의 고통에 듣는 이들도 가슴이 찡해옵니다. 스님은 이어 부여에 왔으니 부여의 역사에 대해 좀 알고 가야 한다며 우리 민족의 기원과 부여에 대한 짧은 역사 강의를 하셨습니다. nbsp “우리 민족의 역사는 길게 보면 9천년이 넘습니다. 우리 민족이 맨 처음 세운 나라는 환인의 한나라입니다. 한은 아주 크다는 뜻으로 한나라는 약 3천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 그중 3천여 명 가량이 동북아시아로 이주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그것이 신시, 즉 배달나라입니다. 우리의 개천절은 배달나라를 연 날에서 기원합니다. 배달나라의 임금은 환웅이라 불렀고 천 오백여년간 나라가 유지됩니다. 후에 임금의 아들과 토착민의 딸이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새롭게 왕이 되어 나라를 세우니 그것이 단군의 조선나라입니다. nbsp nbsp 조선은 청동기문명이 대단히 발전한 나라였는데 청동기문명에 안주하다보니 철기의 발달이 늦어지고 중국의 한나라에 밀려 많은 영토를 잃게 됩니다. 조선을 이어 받아 건국된 나라가 부여인데 부여는 다시 동부여, 졸본부여, 남부여로 나뉩니다. 졸본부여는 고구려로 이어지고 남부여가 바로 백제입니다. 백제가 수도를 옮기면서 이곳의 지명을 부여로 바꾼 데는 부여를 계승하는 나라라는 뜻이 있습니다. 나중에는 신라가 통일을 했지만 백제의 문화와 기술은 상당히 우수하고 앞선 것이어서 통일 후 신라의 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nbsp 역사 이야기가 흥미로운지 ‘재미있냐’고 묻는 스님 말씀에 새터민들은 ‘네’하고 크게 답합니다. 이번에는 젊은 남성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열심히’라는 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람인 것 같은데 아니고. 제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nbsp “제가 작년에 전 세계를 다니면서 강연을 했는데, 그들의 질문이 자기 질문하고 똑같아요. 40년을 독일에서 독일남자랑 살았는데 독일 사람도 아니고, 한국에 돌아가도 한국 사람도 아니고 내가 도대체 누구요? 합니다. 남의 기준을 적용하지 말고 내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질문자는 북한에서도 살아보고 남한에서도 살아봤지요. 이런 사람은 희귀합니다. 거기에 대해 당당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nbsp 남한에서 차별받는다 생각하지 말고, 내가 북한에서 태어나 그동안 북한에 충성했는데 남한에서 받아주고 시민권도 주고 집도 주니 고맙다고 생각하면 나쁘게 여길 일이 없습니다. 그래도 내가 북에서 왔으니까 오자마자 시민권도 주고 하지,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왔으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시민권을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제도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개선해야지만,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관습적인 차별은 시간이 필요하니까 감수하고 그나마 이렇게 시민권도 주고 집도 주니 감사하다고 마음을 바꾸면 좋겠어요.” nbsp 질문자는 씩씩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을 합니다. 모든 질문자의 질문이 끝난 후 다시 한 번 노래가 이어집니다. 어떤 여성은 고향을 떠나온 마음을 시로 낭송하여 공감을 자아내기도 하였습니다. 남쪽에서도 답가를 하라 하여 대전에서 온 한 봉사자가 나가 ‘찔레꽃’을 흐드러지게 불러 흥을 더욱 돋우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옆 사람과 손에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는 것으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새터민들의 얼굴을 보니 묵은 체증이 내린 듯 시원하다는 표정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늘 서로 고통을 이해하고 화합하듯 통일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nbsp 모든 강연을 마치고 많은 새터민들이 스님께 와서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중에 ‘기도를 열심히 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지’ 물었던 초등학교 여학생이 와서 스님께 귀속말로 소곤소곤하고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나중에 스님께서 그 아이가 와서 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스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열심히 기도할께요. 제 소원은 통일이예요” 라고 했답니다. 초등학생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비록 한 사람이지만, 우리의 미래가 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어린이가 잘 자라서 통일일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nbsp nbsp 새터민과의 일정을 마치고 대전법당으로 오는 길에 백제 왕릉원이 있는 능산리 고분군을 둘러보셨습니다. 능산리 고분군에는 백제의 왕족 무덤 5개가 있었고, 그 옆으로 가다보면 의자왕 단비와 태자 융의 비가 있었습니다. 의자왕은 백제 마지막 왕으로 당에 볼모로 가 있어서 유해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을 백제의 후예들이 중국 낙양에 있는 무덤을 찾아 흙을 가져와서 단을 꾸미고 의자왕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nbsp nbsp 저녁에 대전법당에 도착해서는 원고교정과 영상점검등을 하신 후 하루일과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내일은 청주, 전주 희망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nbsp
2015.5.15 스승의날, 수원 및 인천강연
nbsp nbspnbsp 대구에서 새벽 2시경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법륜스님께서는 잠시 눈만 붙이시고 오전 4시 30분에 일어나 서울공동체 상주대중들과 함께 기도하고 발우공양에 참여하였습니다. 마침 백일출가 행자님들이 서울 NGO 탐방으로 문경에서 올라와 있어 함께 했습니다. 발우공양 후 대중공사시간 스님께서 백일출가 행자님들에게 수행자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서울에서 공부할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백일출가 수행자들이 서울에 실습 온 건가요? 탐방 온 건가요? 여기에 뭐 볼 게 있다고 탐방왔나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 범부중생, 즉 더러움에 물드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현명한 사람입니다.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더러운 것에 가까이 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지혜로운 사람, 즉 성인입니다. 더러운 가운데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 더러움을 오히려 닦아내는, 더러움을 없애는 사람, 즉 붓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세상에 살 때는 더러움에 물드는 사람, 범부중생이었습니다. 게으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 게을러지고, 사치하거나 교만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사치하거나 교만해지고, 쾌락을 즐기고 과소비 하고 욕망에 껄떡거리면 범부중생입니다.nbspnbsp nbsp 여러분들은 소비주의 사회에서 더러움에 물드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문경공동체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회 생활할 때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맡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예불하고, 기도하고, 청소하고, 부지런한 사람과 같이 있어서 부지런해지고, 계율을 청정히 지키는 사람과 같이 있어서 청정해지고 수행하는 사람과 같이 있어서 수행하고 있습니다. 더러움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기 때문에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좋은 사람과 같이 있기 때문에 좋음에 물듭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세속을 떠난다는 게 하나 있고, 하나는 좋은 도반들, 즉 대중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nbsp nbsp nbsp 그런데 여러분들은 세속을 떠나 대중과 함께 있으면서 완전히 청정해졌습니까? 그것을 알려면 소비주의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 테스트를 해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세속 사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게으른 사람과 있으면서도 나는 부지런하고, 다른 사람이 자더라도 나는 기도하고, 상대가 욕설해도 나는 부드럽게 말하고, 상대가 거짓말해도 나는 진실을 말하고, 모두 술 먹고, 마약하고, 담배를 피워도, 나는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고, 마약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세속에 있어도 물들지 않는 진흙속의 연꽃 같은 사람을 성인 또는 보디사트바라고 합니다. nbsp 지금 여러분들은 범부중생으로 있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해서 문경공동체로 들어와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좋음에 물들기 위해 대중과 같이 삽니다. 그러다 다시 지금 NGO탐방을 위해서 서울 저자속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회관에서 한 발만 나가면 술집과 슈퍼가 있고, 저녁에는 술 먹고 와글와글 소리지르고, 고기 먹는 사람, 데이트하는 사람들 등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와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냄새가 나는 속에 있으면서도, 내가 그것에 물들지 않는 사람인지 한번 실험해보세요. 수행자는 서울 와서 살아보고 세속에 물이 들면, 또 다시 문경에 가서 정진하며 살아야 합니다. 물들지 않을 정도가 되었을 때 세상으로 나와야 합니다. 여기 오래 산 사람들은 세상에 크게 물들지 않습니다. nbsp nbsp nbsp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사치하는 사람이 우리와 살다가 사치를 덜하게 되고, 부자인데도 검소하게 살게 되고, 교만한 사람이 겸손해지고, 우리로 인해 주위가 점점 정화되어야 합니다. 바깥이 우리 속으로 점점 들어와 흰 것이 검어지는 것이 아니라, 흰 영역이 넒어져서 주위가 조금씩 맑아지는, 이게 우리가 세운 원, 정토 건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일회용품 쓰고, 비닐 쓰고, 간식 먹는 이런 혼탁한 속에 있더라도, 여러분들이 거기에 물들지 않을 때, 진정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 주변에 따라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은 세상에 물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선 물들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 서울 와서 살아도 주위가 어떻든, 남이 어떻든 상관없이 정해진 내 수행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라고 애정 어리면서도 따뜻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이어서 오늘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조촐한 행사를 가졌습니다. 회관에 살고 있는 청년붓다 49일 입재한 7명 행자들의 재미있고 유쾌한 꽁트와 꽃다발 증정이 있었고, 이어서 다함께 법륜스님께 감사의 삼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모두 손을 잡고 이렇게 우리를 지도해주시는 스승님이 있다는 것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스승의 은혜’노래를 불렀습니다. nbsp nbsp nbspnbsp 스승의 날 기념행사 후 스님께서 공동체 대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해주셨습니다. nbsp “우리의 유일한 스승은 고타마 붓다,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이십니다. 제가 여러분보다 나이가 많고 여러분보다 불문에 들어온 시간이 앞서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스승 노릇을 하고 있지만 부족함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볼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언젠가 스님께서 ‘누구를 추종하면 안 된다, 법륜스님도 추종하면 안 되고, 우리는 오로지 부처님께서 살아오신 삶을 따라 부처님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면서 다시 한번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nbspnbsp nbsp nbspnbsp 오전 9시 25분 희망강연이 있는 수원시청으로 출발해 10시경에 강연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염태영 수원시장님은 부서별 국장님들과 함께 잠깐 시간내어 스님께 인사하러 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시장님께 행정의 어려움은 없는지, 2번째 임기를 시작했는데 1기와는 어떻게 다른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시장님은 오늘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스님께 꽃다발을 드리고, 스님 가슴에 카네이션 꽃을 달아드렸습니다. 스님께서도 시장님께 사인한‘지금여기 깨어있기’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nbsp nbsp nbspnbsp 스님께서 자리를 옮겨 수원시에서 운영하는 수원시방송과 짧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그동안 많은 즉문즉설하시면서 어떠하셨는지 등을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nbsp nbsp 이어 강연장에 도착하니 좌석이 모두 차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 있다, 문이 열리고 입장이 시작되자 곧 1,2층 좌석을 모두 메우고 로비까지 가득해서 총 1,300여 명이 함께 강연에 참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강연장에서는 일사분란하게 자원봉사자들이 접수와 안내를 진행해 1,300여명임에도 아주 원활하게 강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자 관중속의 큰 박수와 함께 스님께서 입장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서두에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존재라는 자긍심을 가지라고 당부하며, 각자 갖고 있는 삶의 고뇌를 꺼내 놓고 여러 각도에서 비추어 보면서 함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고 하였습니다.nbsp nbsp nbsp 오늘은 총 10명이 스님께 질문을 하였는데, 딸과 남편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화와 짜증이 올라온다는 분, 자살의 형태에 따른 죄의 크기와 남녀간의 불륜은 동물적 본능인지, 인연에 의한 것인지를 묻는 분, 난치성 아이로 인해 불안과 걱정이 많다는 분, 잠들기 전 고립된 느낌으로 초조해 하는 분, 어릴적 어머니의 학대와 폭력이 용서가 안돼 가슴이 답답한 분, 학업을 중단하고 스님 법문만 듣는 딸에 대해 질문한 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본인과 비교해서 무시하거나 열등감을 느껴 마음이 불편한 분, 안 좋은 뉴스를 접하더라도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물으신 분, 결혼 6년차인데 아이가 생기지 않아 감정기복이 심한 분, 버럭하는 성질과 주변에서 위축됐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20대 취업준비생 이렇게 10명의 고민이었습니다.nbsp 이 중 남녀간의 부적절한 관계와 자살에 관해 물은 질문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nbspnbsp nbsp nbsp “불륜은 동물적인 본능에 의한 것인지, 인연에 의한 것인지, 인연이라면 어떻게 끊을 수 있는 지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의가 더 강한지, 인연이 더 강한 지도 궁금합니다.”nbsp “윤리나 도덕이라는 가치관은 종교마다, 나라마다 또 시대마다 달라요. 신라시대엔 완전히 연애가 자유로워 촌수를 헤아릴 수 없었어요. 그 때는 순수혈통을 중요시 해 왕의 딸이 삼촌과 결혼하곤 했어요. 아버지도 왕자고 엄마도 공주일 때 내가 순수혈통이 되는 거였기 때문이죠. 반면 조선시대는 성만 같아도 결혼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또 천주교가 처음 조선에 유입되었을 때 그들의 종교문화로 제사를 안 지낸건데, 유교에선 조상제사도 안지내는 인간은 짐승보다도 못하다고 여겨 천주교인들을 죽여도 될 사람들이라 생각했죠. 그러니 결혼관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nbsp nbsp65279nbsp 가치관이 충돌돼서 문제가 일어날 때는 문화가 서로 달라도 수용할 만한 비교적 공통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합니다. 이때 기준은 자연 생태계입니다. 자연생태계에선 어미가 종족보호 본능으로 새끼가 성장할때까지 보호하고 어느 정도 성장하면 더 이상 돌보지 않고 새끼도 크면 늙은 어미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nbsp 두 남녀가 결혼한 것은 성인끼리의 약속입니다. 약속이기 때문에 결혼을 파기 할 수도 있는 거지요. 선은 아니지만 악 또한 아니란거예요. 결혼할 때 상대와 너 외에 다른 남자,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서로 약속했어요. 내가 다른 남자, 여자를 만나서 그 약속을 깼다면 이혼 사유가 되요. 그런데 다른 남자, 여자를 만나는게 죄악은 아니에요. 성인이 자기가 선택한거에요. 하지만 약속을 파기했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해야 됩니다. 간통죄가 폐지된 것은 형사상의 처벌죄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간통으로 있은 손해는 민사상으로 배상하라는 것입니다.nbspnbsp nbsp nbsp “불교적 관점에서 불륜이란 게 인연인가요? 전생 때문인가요?”nbsp “자기가 좋아서 만나놓고 전생을 왜 따져요. 전생을 따지는 건 무책임한거예요. 이 사람 때려놓고‘전생에 내가 맞아서 지금 너를 때리는 거야’‘사주에 이 시간에 내가 너를 때리게 되어있어’이게 다 무책임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다 네 탓이다’하는 책임 회피에 불과합니다.”내가 인연을 지었으니 과보를 받아야 해요. “그럼 현생에 일어나는 모든 행동은 자기 의지에 따라 일어나는 일인가요?” “의지는 의식에 불과하고 의식 아래 무의식이 있습니다. 안해야 되는데 자꾸 하고 싶다, 이것을 업식이라고 해요. 과거부터 형성된 것이 업식입니다. 불교는 사고의 습관, 말의 습관, 행위의 습관이 지금의 우리를 규정한다고 봐요. 이 습관을 까르마라고 해요. 그건 정신적 습관도 있고, 육체적인 습관도 있어요. 어떤 성인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지하철에서 여자 종아리 찍다가 걸린 적이 있죠. 자기 무의식을 통제 못하는 거예요. 아무리 의지로 안해야지 해도 강제로 전자발찌를 채워 놓아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의지로 제어하지를 못하지요. 그러니 마음을 치료해야 되요. 지금은 처벌을 하고 있는데 이는 보복일 뿐,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에요. 치료가 제일 중요합니다.” nbsp nbspnbsp “그럼, 자의에 의한 자살, 단원고 교감선생님 같은 선의의 자살, 타인에 의한 강박으로 하는 자살은 모두 죄인가요?” nbsp “자살은 정신질환에 속합니다. 우리의 생명체는 자기 생명을 자기가 끊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육체는 어느 정도의 수명이 다하면 쇠진하도록 되어 있지, 생존해 있는 생명을 자기가 공격한다는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모두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안 좋은 것도 아니고, 귀한 것도 천한 것도 아니고 다만 그것일 뿐이에요. 좋다고 인식할 때는 그 존재가 좋아서 좋은게 아니고, 머리에서 좋다고 인식할 때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nbsp 한 남자가 친한 친구가 죽고 친구 부인이 살기 힘들어 호프집을 마련해 살려고 하는데, 친구 부인을 도우려 하니 자존심 상해서 안 받겠다 해요. 그래서 친구에 대한 의리를 생각해서 오며가며 술한잔씩이라도 팔아줘요. 친구 부인이 생각하기에는 고마운 사람인데, 남자의 부인이 생각하기엔‘그 사람이 네 마누라냐, 아니면 너 여동생이냐, 왜 도와주냐’이렇게 나오죠. 똑같은 사람의 행위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해요. 그런데 내가 나쁘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고, 내가 좋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하면 좋은 사람 되어버리니 이건 착각이에요. nbspnbsp nbsp 자살의 문제는 정신질환 문제와 관계가 많아요. 본인은 자기가 굉장히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기는 말도 잘해야 되고, 인물도 잘나고, 돈도 많고, 성질도 좋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실의 나는 말도 더듬거리고, 신체도 별로고, 날씬해야 되는데 뚱뚱하고, 재능도 별로 없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그리는 상상의 자기가 현실의 자기를 볼 때 너무 모자라죠.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그래서 남을 만나지 않으려고 해요. 어느 순간 자기 같은 것은 죽는게 낫겠다 싶어 스스로 죽는 거에요. 살인도 똑같아요.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상대가 못 미치니까, 미워하다가 저런 사람은 죽여버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살과 살인은 심리적으로 같은 거예요. 그런데 살인은 남을 해쳤으니까 처벌을 받는 거고 자살은 자기가 죽어버렸으니까 처벌할 당사자가 없는 거죠. 심리적으로 같은 거에요. 살인이든, 자살이든 원인을 규명해서 치료를 하면 자살율을 낮출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어떤 것에도 죄란 본래 없습니다.”nbsp 총 10명으로 부터 질문을 받다보니 강연은 2시간 30분을 훌쩍 넘겼지만, 스님께서는 마지막에 짧게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긍정적 사고를 하면 얼굴에 생기가 돌게 됩니다. 삶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삶을 좀 다른 각도로 보고 내 몸에 맞게 옷을 맞춰 입는 것처럼, 내 삶의 가치관을 정립해서 그냥 살면 됩니다. 자기 기분을 가지고 살아야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사는 것은 노예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끝까지 강연장을 찾은 청중들에게 행복하게 살기를 당부하였습니다.nbspnbsp nbsp nbsp nbsp 강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 책 사인회와 사진촬영이 진행되고, 자원봉사자들과도 함께 단체 촬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원정토회 준비로 스승의 날을 기념해 꽃과 노래를 올렸습니다. nbsp nbsp nbsp 1시 30분이 되어서야 평화재단으로 출발하였으며, 2시 평화재단에서의 약속으로 이동 중 차안에서김밥과 쥬스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쳤습니다.nbsp 재단에 도착해서 바로 스님께선 언론인 마이클 브린씨와 재미교포인 김영진님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마이클 브린씨는 영국인으로 지금 한국에 살고 있으며, 30년전에 ‘한국인’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외국에 소개하였습니다. 스님을 찾아오게 된 것은 이 책의 개정판 준비 중에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nbsp nbsp nbsp nbspnbsp 마이클 브린씨가 스님께 궁금했던 질문은 ‘본인이 보기에 한국인들은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불행하게 보이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지’였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첫째, 기대가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실망이 크고 만족이 안되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기대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주로 하는 일이‘지금도 행복한 줄 알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1960년 국민소득이 100불이었다면 지금은 3만불 가까이 됩니다. 그러면 소득은 300배 정도 늘었는데, 우리가 300배 행복해졌느냐고 하면 아닙니다. 300배는 고사하고 30배는 행복해졌느냐? 아니면 30배는 고사하고 3배는 행복해졌느냐? 저는 앞으로 국민소득이 30만불 된다고 해도 이 문제는 해결 안된다고 봅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때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행복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nbsp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것이다’는 조건부 행복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지금 주어진 조건속에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런 관점에서 사람들에게 주로 당신이 얼마나 지금 행복한가를 깨우쳐 줍니다. nbsp 그리고 우리는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여럿 가운데에 하나입니다. 즉 여럿이라는 것은 공동체를 말하며, 하나는 나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발전해야 나도 그 속에서 더불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발전하는 것이 반드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개인이 행복하면 공동체 발전에 도움이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도 반드시는 아닙니다. 식민지때 일본의 경우 국가가 발전을 했어요. 그렇다고 일본 국민은 행복합니까? 당시 한국사람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일본사람들도 굉장히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발전해도 국민이 반드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nbspnbsp nbsp 그래서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가가 발전하려면 경제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불평등이 심화되면 국민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해집니다. 국민이 행복해질려면 경제적으로 성장한 결과물이nbspnbsp다수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한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국민이 행복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경제는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봐야 하는데, 우리는 50년 전에 굉장히 가난해서 경제라고 하면 성장만 생각합니다. 정부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가 그렇게 보았습니다. 생산만 경제가 아니라 생산한 것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것도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nbsp nbspnbsp 한국이 50년전에 서양을 모델로 따라 배우기 할 때 경제만 모방하고, 민주주의, 인권, 철학 등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사람은 물질주의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nbspnbsp경제성장이 주춤해져 저성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저성장과 심한 빈부격차로 국민들이 느끼는 불행감은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동안 경제성장이 일직선으로 발전해 왔는데, 한국의 자살률도 성장률과 똑같이 평행선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자살률이 떨어져야 하는데 일직선으로 함께 증가했다는 것은 경제성장이 사람의 행복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살은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국민들이 희망은 없고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한편 출생률은 반대로 쭉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경제성장이 우리도 잘산다는 자부심을 심어준 것도 있지만 실제로 사람들의 행복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nbspnbsp nbsp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첫째, 사회적, 국가적으로 빈부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룰을 만들어야 하고, 경쟁에서 처지는 약자에게 생존권을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둘째, 국민들 개개인도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성장이 계속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 50년간 계속 성장한 경험만 있기 때문에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기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들도 앞으로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민들도 저성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기대를 낮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물질적인 것에서만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가족관계, 민주주의의 발전, 인권, 평화, 환경, 명상 등 가치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정치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대통령이나 시장, 국회의원 등을 뽑을 때는 선출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nbspnbsp대통령, 시장이 권력을 집행할때는 민주적인 방식이 아닌 옛날의 봉건적인 왕이나 독재방식으로 합니다. 그러니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권리는 4년 중에 선거할 때 15일만이고, 나머지는 종으로 살고 있습니다. 권력자들은 선거기간에는 고개를 숙이고 잘하겠다고 하고 나서 선거 끝나면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중앙권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지방자치하게 하고, 대통령의 권한도 총리, 장관에게 분산해야 합니다. 일반시민들이 일상생활속에서 자기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안되니 불행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nbsp nbsp nbspnbsp 종합적으로 말씀드리면 한국은 지난 50년을 돌아봤을때 경제적으로 산업화를 이끌어내고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도 투쟁을 통해 어느 정도 이루었다는 면에서 성공적입니다. 이제는 이를 기초로 해서 더 깊은 민주화가 되어야 하고, 복지사회와 통일로 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단계 더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에 멈춰 있습니다. nbsp 산업화에 성공한 세력들은‘우리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 때문에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으니 고마워해라’이렇게 과거의 성과를 가지고 권력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민주화를 이루어 낸 세력은‘우리 때문에 민주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얘기를 자꾸 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향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 과거에 머물러 있으니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문제가 풀어질려면 산업화, 민주화의 성과를 함께 인정하고 그 공로를 치하하면서 다음 단계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미래 과제를 가지고 정치인들이 경쟁해야, 싸우더라도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nbspnbsp 제가 볼 때 정치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현재 양당구조속에서, 여기에 속한 엘리트층의 정치의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제3의 길로 가는 것을 지지하지만, 여기에 동의하는 정치인들은 기존의 질서에서 나와 새롭게 개척하기에는 힘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한번은 이쪽을 지지하고, 한번은 저쪽을 지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nbsp 그래서 한국도 유럽처럼 다당제로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이 다양한 정당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 하고, 필요에 따라 두개, 세 개의 정당이 협력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양당구조이다 보니 협력이 안 되고 죽으라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협력의 정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국민들의 요구가 자본가, 노동자 양쪽으로만 나눌 수가 없습니다. 노동자안에 정규직, 비정규직 사이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고, 자본가도 재벌과 중소기업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래서 여러 개의 정당이 각 계층의 이익을 대변해주어야 하는데, 한 정당이 국민의 여러 요구를 다 들어준다고 하니 아무것도 들어주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이런 문제도 한국 국민들이 희망을 갖지 못하므로 불행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희망이 있으면 행복도가 높아지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조건에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왜 국민들이 불행한가에 대해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속에서 조명해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미팅이 끝난 후에 스님께서는 마이클 브린씨와 김영진님께 영문 기도책을 선물로 주고, 통역을 한 정수진님께는 미혼이라고 하여 스님의 주례사를 전달했습니다. 이후 스님께서는 다음 강연 전까지 원고교정 등의 업무를 보신 후 차가 막힐 것을 고려하여 5시에 저녁 강연이 열리는 인천대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 인천강연에 앞서 인천대 총장실에서 총장님, 교수불자회 교수님 5분과 차담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불교가 지식이나 기술로 접근하기보다는 해탈과 열반을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스님께서 대중들에게 즉문즉설을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문제들, 특히 교육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nbsp nbsp nbsp 이후 강연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강연 전 청년 불대에서 수화공연을 펼쳤는데 어떤 공연보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웠습니다. 인천대 교수 불자회에서 스님께 환영의 꽃다발을 전하였습니다. 1천여 좌석이 넘는 인천대학교 대강연장을 꽉 메운 인천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스님을 맞이하였습니다. nbsp nbsp 총 8명의 질문자들이 삶의 고뇌를 스님과 함께 나눴습니다. 외동딸로 엄마의 과잉보호와 집착으로 힘들다는 대학생, 부모님의 잦은 불화로 감정조절이 어렵고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있으며 수면장애로 정신과를 다니고 있는데 부모님에 대한 증오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분, 공부에 대한 집중력을 키우는 방법을 묻는 분, 아버지와 남동생 그리고 자신의 건강에 대해 이것저것 많은 질문을 하신 분,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큰 슬픔에 빠진 분, 베트남 아내와 갈등으로 이혼위기에 처한 분, 폭력적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분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nbspnbsp nbsp 이 중 한 중년 남자분의 질문을 소개해 드립니다.nbsp 저는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 너무도 가난하여 배고픈 시절을 보냈고, 20대에는 노동운동을 하다 구속되기도 하였습니다. 30대 넘어서 안정된 생활을 하다 퇴사하여 조그만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상황이 나빠져 폐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다시 예전의 곤궁한 상태로 돌아갈까 너무도 불안합니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굳건한 마음을 가지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nbsp nbsp nbsp “어릴 때 굶은 경험은 2가지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굶은 것이 내게 좋은 경험으로 승화되면 내가 굶고 살아봤기 때문에, 나중에 그런 상황에 또다시 처하게 되어도 겁나지 않습니다. 굶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크게 두려움이 없습니다. 둘째, 굶은 것이 상처로 있으면 그때의 이미지가 떠올라 두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질문자는 그때의 경험이 상처로 남은 거예요. 그래서 같은 경험을 가지고도 스님은 좋게 작용되어 자산이 되었는데, 본인은 나쁘게 작용되어 두려움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어릴 때 굶어도 봤고, 감옥도 가봤는데 세상에 겁날게 뭐가 있어요?”nbsp nbsp“저 혼자면 괜찮은데 처자식이 걱정이 돼서 그렇습니다.”nbsp nbsp “자기 없으면 아내와 자식이 못살 것 같지만 다 본인의 생각일 뿐입니다. 다들 또 그 상황에 맞춰 살아가게 되어있어요. 무기력증에 빠져 매일 널부려져 있으면 어떤 도움이 될까요? 걱정을 내려놓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해주면서 방법을 모색해야지,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일만 하고 있어요.”nbsp nbsp “어떻게 이 불안한 마음을 놓을 수 있겠습니까?” nbsp “그런 방법은 없어요. 그냥 놓는 겁니다. 뜨거우면 놓으면 되지 “어떻게 놔요?”가 없어요. 방법을 몰라 못 놓는 게 아니라 놓기 싫어 놓지 못하는 거예요.” nbsp nbsp nbspnbsp 이렇게 질문자의 사연에 내 삶을 적용시키며 웃고 울고 하면서 유익하고도 재밌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스님께서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 조건을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행복의 조건이 되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불행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다 마음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진리는 다른 게 아닙니다. 바로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성공과 실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순간이 성공인 겁니다.” nbsp 스님께서 모든 일정을 마치신 후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전 봉사자들이 스승의 노래를 불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우리는 모두는 삼계대도사三界大導師이신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수행정진 해 나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인천강의가 끝나자 바로 경주로 출발하였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의 통일역사기행을 안내하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