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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1 서울 청춘콘서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호주에서 귀국한 후 광운대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 참석해 청년들의 고민을 듣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nbspnbsp새벽 1시 비행기로 마닐라 공항을 출발한 스님은 밤새 비행기를 타고 새벽 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새벽 6시. 인천공항에 도착한 스님nbsp공항에서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이동해 잠시 휴식을 취한 후 11시부터는 외부 인사와 미팅을 가졌고, 오후에는 행정처 간부들, 평화재단 실무자들과 이번주 주말에 예정된 통일의병대회와 내년도 인도성지순례, 동북아역사기행 프로그램에 대해 점검하고 의논했습니다.nbspnbsp오후 5시 20분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6시 30분에 청춘콘서트가 열리는 광운대학교 동해문화예술관에 도착했습니다. 강연장 입구에는 많은 청년들이 줄을 서서 무료 티켓을 배부 받고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nbspnbsp▲ 오늘 청춘콘서트가 열린 광운대 동해문화예술관nbsp스님은 김제동씨와 주차장 입구에서 만나 함께 강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특히 오늘 청춘콘서트는 광운대 총학생회에서 많은 협조를 해주었는데 스님과 김제동씨는 로비에서 접수를 받고 있던 총학생회 관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대기실로 항했습니다.nbspnbsp▲ 오늘 행사를 함께 주관한 광운대 총학생회nbsp저녁 7시가 되자 사회자인 오청춘씨가 나와 청춘콘서트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400여명의 청년들이 가득 자리를 메운 가운데 인디밴드 요술당나귀의 신나는 노래 공연과 함께 큰 박수와 환호 속에서 청춘콘서트의 막이 올랐습니다. nbspnbspnbsp먼저 등록금 부담, 취업 걱정, 육아 문제 등 청년들의 고민이 담김 영상물이 상영되었고, 이어서 사회자가 ‘이런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해 행복 원로와 행복 장관 두 분을 모시고 그 해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하면서 행복 공청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행복 원로’로서 스님이 소개되자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우리가 왜 행복하지 못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 강조하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나는 열심히, 착하게, 바르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반면 다른 사람은 착하지도 않고 열심히 바르게 살지도 않는데 잘 되는 것 같아 보이지요. 그래서 ‘인생이란 이미 다 정해져 있나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인생이 정해져 있느냐를 중국에서는 사주팔자, 인도에서는 전생,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을 들어 설명했어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nbspnbspnbsp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해서 그래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누구나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면 좋은 세상이 될까요? 한 명의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하고 싶은 남성이 10명 있는데 그 소원이 다 성취되면 어떨까요? 대통령 되고 싶은 사람이 10명 있는데 모두 하느님께 빌어서 대통령이 되었다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요? 공부는 하기 싫지만 좋은 대학에는 가고 싶은 학생들이 모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다면요? 엉망진창이 되겠죠.nbspnbsp원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꼭 나쁜 것은 아니에요. 이 이치를 알게 되면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울고불고 할 필요가 없어요. 이루어지면 다행이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시 시도하면 되고,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면 됩니다. 그래도 하고 싶으면 또 도전하면 되고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괴로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운명론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운명 때문에 그렇다고 몰고 가지요.nbspnbsp오늘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입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의 만족감을 행복으로 삼아요. 그런데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지는 않으니까 불만족감이 생기고, 그걸 불행으로 삼다 보니 늘 행복과 불행을 오가며 돌고 돌지요. 이것을 윤회한다고 말해요.nbsp우리가 원하는 것은 원래부터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게끔 조건 지어져 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꼭 나쁜 것도 아니고, 이루어진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닙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괴로워하기보다는 필요하면 한 번 더 시도하고, 필요 없으면 버리면 돼요. 이걸 알면 지금처럼 늘 괴로워하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자, 여러분들의 질문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무슨 얘기든 해도 좋아요. 의문이 있으면 의문을 이야기해도 되고, 괴로움이 있으면 괴로워하는 이야기를 해도 되고,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해도 돼요. 무슨 이야기든 하면 그걸 주제삼아 대화하고 함께 소통해봅시다.”nbsp스님이 무슨 얘기든 함께 소통해 보자고 하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습니다. 총 4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남자 대학생은 항공정비사가 되는 것이 꿈인데 이 길이 옳은 길인지 나중에 후회하게 될까봐 걱정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엔터테이먼트 회사에 다니는 남자 분은 개개인들이 문제가 아니라 이들을 담고 있는 그릇인 시장경제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스님도 근본 치료보다는 여드름만 자꾸 짜주는 것이 아닌지 물었고,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는 학생 통일 토론대회에서 찬성 쪽이 졌다고 하면서 남한도 먹고 살기 힘든데 굳이 북한과 통일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통일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성장기 때부터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지금은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고민인 여성 분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현실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관계를 개선해 나갈 수 있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서른 두살 주부입니다. 부모님이 중매결혼을 하셨는데 아버지가 처음부터 나가 사셔서 어머니 혼자 저희 남매를 키우셨어요. 그러면 제가 어머니랑 좀 잘 지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해 고민입니다. 여고로 진학해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어머니께서 공공근로를 하셔야 해서 주소를 옮기지 못하고 남녀공학을 가게 되었어요. 그 이유는 최근에 들었고요. 들어가서 적응을 잘 못해서 왕따를 당하고, 전학보내달라고 했는데 교사이신 큰아버지께서 좋은 학교니 옮기지 말라고 하셔서 어머니가 안 옮겨주셨어요. 어머니가 데려간 점집에서 다행히 전학을 시키라고 해서 다행히 전학을 가고 무사히 졸업은 했어요. 이런 식으로 늘 성격이 너무 많이 부딪혀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지금도 어머니랑 사이가 좋지 않아 고민입니다. 남편과도 둘 다 다혈질이라 많이 부딪히는데 제가 좀 더 문제인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마음을 열어서 어머니, 남편과의 사이가 좋아질 수 있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nbspnbsp“사이가 좋긴 어렵겠습니다. 옛날식으로 말하면 사주가 안 맞아요. 부모님이 부부가 같이 못 살 정도의 갈등 관계를 유지했잖아요. 배우자도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성격의 소유자에게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질문자의 성격도 다른 사람들을 수용해주면서 함께 살기가 어려운 성격이에요. 애초에 그랬기 때문에 어머니와의 관계도 좋게 되기 어렵습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남편과도 안 맞았는데 아이와 잘 맞을 리가 없고, 질문자는 그런 어머니에게서 성격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어머니와도 관계가 좋기는 어려워요. 나를 낳아 길러준 어머니와도 관계를 원만하게 풀기 힘든 성격인데 남의 집에서 자란 성인 남자와 관계를 좋게 풀기는 애초에 힘들어요. 그러니 그런 야무진 꿈을 꾸지 말고 포기하세요.” nbspnbspnbsp“어머니가 저랑 잘 지내기를 더 원하시거든요.”nbspnbsp“잘 지내고 싶지만 잘 지내지지가 않아요. 제일 잘 지내는 방법은 서로 안 보는 거예요.” nbspnbspnbsp“저는 그러고 싶지만 어머니가 손녀 보러 일주일에 한 번씩 오시는데 만나기만 하면 싸워요. 거리를 두면 좀 친해질 것 같은데 어머니는 그걸 못 견뎌하시니까요...”nbsp“다른 좋은 방법이 없어요. 이렇게 살면 그 사이에서 내 딸도 영향을 받아요. 엄마와 할머니가 싸우고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가운데서 자랐기 때문에, 그 아이도 자라면 질문자의 성격처럼 질문자와도 안 맞고 남자친구와도 싸우게 될 거예요. 이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격이에요. 달리 방법이 없어요.nbspnbsp그런데 해결할 방법이 영 없진 않습니다. 어머니와 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면 돼요. 어머니와는 애초에 성격이 맞지 않기 때문에, 물고 차고 싸우지 않는 이 정도인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 이보다 더 좋기를 바라거나 개선하려 하지 말고 지금에 만족하라는 뜻입니다. ‘어머니와 싸우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면 그 기도는 영험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하고 기도하면 어때요? 세상에는 어머니와 칼부림하며 싸우는 사람도 있는데 질문자는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소소한 갈등이지 철천지 원수가 되는 갈등은 아니니 다행이잖아요. 그러니 어머니하고 부딪힐 때 ‘아이고, 이만하기 다행이다. 어릴 때 같았으면 두들겨 맞았을 텐데, 우리 엄마 많이 늙으셨네. 어머니, 감사합니다.’ 하면서 좋게 생각해 보세요. 더 좋아지게 하려고 애쓰면 오히려 불만이 생기지만 이만하기 다행이라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생겨요. 그러니 어머니한테 감사하는 마음을 내세요.nbsp남편한테도 ‘아이고, 성질 더러운 나랑 살아주는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세상 어느 남자가 나랑 살아주겠어요’ 이렇게 마음을 내세요. 관계를 더 개선하려 들지 말고 이렇게 부부관계를 감사히 여기세요. 부모님은 부부가 헤어졌지만, 질문자는 좀 싸우긴 해도 아직 헤어지진 않았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헤어지지 않은 것은 내 덕분일까요, 남편 덕분일까요?”nbsp“둘 다 덕분인 것 같아요.”nbspnbsp“그렇게 생각하면 문제 해결이 안 되는데... 누구 덕분에 안 헤어지게 되었다고요?” nbspnbspnbsp“남편 덕분에요.”nbspnbsp“그래요. 힌트를 꼭 줘야 답을 찾아요? 남편 덕이라고 생각해야 문제가 해결돼요. 남편이 부처님 같다는 뜻이 아니라, 둘 다 비슷하지만 그래도 비교해보면 남편이 질문자보다 조금이나마 마음이 너그럽다는 뜻입니다. 남편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었다면 벌써 헤어졌을 텐데, 남편은 아버지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이에요. 부처님 같은 사람 만나면 좋지만 질문자는 그렇게 만날 복은 안 돼요. 둘 다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남편이 조금 더 너그럽다 생각하고, 나랑 살아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내세요.nbspnbsp어머니에게는 ‘어머니가 늙어서 좀 나아지셨네’ 이렇게 고맙게 생각하고, 남편에게도 ‘당신이라도 이렇게 살아주니 고맙습니다’ 이렇게 고맙게 생각하세요. 이걸 긍정적 사고라고 해요. 내가 이런 마음을 내면 남편이 어떻든 어머니가 어떻든 아이에게는 나쁜 영향이 없어요. 아이는 제 어머니를 닮거든요. 질문자가 긍정적 사고를 하면 질문자의 아이는 이런 환경에서 자라도 질문자보다 훨씬 좋은 성격으로 자라요. 다소 까칠한 구석이 있더라도 질문자보다는 훨씬 좋아져요.nbspnbsp그러니 오늘부터 어머니에게 감사기도를 하세요. 부모님이 헤어졌을 때 어머니는 그래도 아버지처럼 질문자를 버리지 않고 남아서 학교도 보내주고 공부도 시켜줬잖아요. 질문자가 원하는 만큼은 못 해주었지만 이 세상에 질문자를 키워준 것은 어머니뿐이니 고마워할 일이에요. 그런데 어머니를 미워하면 고마워해야 할 일을 원수로 갚는 거예요. 그러니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어머니에게 감사기도를 하고, 남편에게도 ‘당신이라서 그래도 날 데리고 살아주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가끔 소소한 갈등을 일으켜도 이렇게 마음을 금방 돌이켜서 감사해 하면 질문자가 원하는 대로 관계가 좋아질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관계를 개선할 방법만 찾을려고 애쓰면 관계는 오히려 더 나빠질 거예요.”nbspnbsp“잘 알아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nbsp질문자가 무슨 뜻인지 명쾌하게 이해가 되었다며 환하게 웃자 청중들이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질문한 여성 분의 눈에는 촉촉한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남편에 대해 늘 불만만 갖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비로소 감사한 마음을 내게 되니 자연적으로 흘러나오는 눈물이었을 것입니다.nbspnbsp스님은 질문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한번 마음의 원리를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지금 이야기하는 마음의 원리를 좀 이해하시겠어요? 어머니와 좋아지는 방법, 남편과 좋아지는 방법을 찾으려 들면 관계는 도리어 악화됩니다. 그러나 지금이 좋은 줄 알고 감사할 줄 알면 개선되는 쪽으로 가요. 심리가 움직이는 이런 법칙을 모르기 때문에 잘 하려는 노력이 계속 악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옵니다. 그래서 수행은 첫째, 현재를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해야 돼요. 우리가 아무리 멀리 보고 가더라도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여기를 인정하고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돼요. 그런데 현실을 무시한 채 좋은 남자 만나길 바라고 어머니와 좋은 관계 맺기를 바란다면 그건 꿈을 꾸는 거예요. 그러면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어요.nbspnbspnbsp그렇다고 ‘현실이 이렇지. 사는 게 이것밖에 더 되나’ 이렇게 안주하면 안 돼요. 현실을 인정하되 현실로부터 출발해서 우리는 미래로, 희망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합니다.”nbsp스님은 시간이 부족해서 더 깊이있게 설명을 해주진 못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스님은 통일에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통일의 필요성을 설득할 수 있는지 묻는 고등학교 선생님의 질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스님에게 주어진 70분의 시간을 마치는 알림 종이 울리고 이어서 ‘행복 장관’의 이름으로 김제동씨가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 70분 동안 다양한 이야기로 쉴새 없이 웃음을 선사한 김제동씨는 특히 지난해 전국민을 아프게 한 세월호 문제가 500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끝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nbspnbspnbsp“그 배에 만약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타고 있었으면 그렇게 했을 것 같습니까? 그 배에 해외 정상들이 타고 있었으면 그렇게 했을 것 같습니까? 그렇게 안했을 겁니다. 우리가 타고 있어서 그렇게 한 겁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들... 그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그렇게 밖에 안 보일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겁 먹지 말고 우리가 그 사람들을 겁 줘야죠. 너희들의 운명을 우리 국민들이 결정한다는 것을 알게끔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 취급을 받지 않습니다...”nbspnbspnbsp청년들도 세월호 이야기 앞에선 눈물을 머금었습니다. 청년들이 앞장 서서 우리사회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주고, 선거 때는 높은 투표율을 통해 정치인들이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알게 하는 행동들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nbsp스님은 김제동씨가 강연을 하는 동안 무대 한 켠에서 김제동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함께 웃고 공감했습니다.nbsp김제동씨와 함께한 70분의 행복 공청회 시간도 마무리되고, 다시 스님과 김제동씨가 함께 무대 위에 올라 오늘 청춘콘서트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사회자가 오늘 소감을 묻자 김제동씨는 “이 말이 20대에 솔직하고 말하고 싶은 딱 한마디”라고 하면서 대신 욕을 좀 섞겠다며 양해를 구한 후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겠다 이 새끼들아.” 청년들의 큰 웃음과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청년들이 지금의 처지를 너무 비관하지 말고 그 어떤 것보다 젊음이 가장 소중함을 좀 알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겠죠.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오늘 지금 여기에, 지금 해결해야 할 과제들 속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초등학교 때 어땠어요? 중고등학교 다니는 언니 오빠들 부러웠지요? 나는 어리다고 꼼짝도 못하고 집에 있는데 언니 오빠들은 마음대로 외출도 하잖아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학교 형님들이 부러웠지요? 형님들은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는데 나는 못 하니까요. 대학에 오니 취직한 선배들이 부럽지요? 직장 다닌다면 어떨까요?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선배가 부럽겠지요? 그런데 갓난아기 낳아서 키우다보면 이미 아이 다 키워서 초등학교 중학교 보내는 집이 또 부러워요. 자녀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부모들은 입시를 치른 집이 또 부럽고요. 우리는 늘 이렇게 앞을 쳐다보고 부러워합니다.nbspnbsp제가 얼마 전에 경주에 갔다가 김유신 장군 묘 앞에 있는 흥무공원에서 옛날 까만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춤추고 노는 모습을 보았어요. 요즘도 저런 교복이 있는 게 신기해서 가까이 가봤더니 얼굴이 전부 4, 50대였어요. 추억의 수학여행이란 프로그램이 있는데 옛날 교복을 빌려입고 학창 시절에 놀던 장소에 와서 같이 노는 프로그램이래요. 남자들은 학창 시절 유행대로 모자를 비딱하게 쓰고 완장도 찼더라고요. 이게 무슨 얘기예요? 4,50대 된 사람들이 청소년 시기를 부러워한다는 거예요.nbspnbsp가끔 어린아이 보고 ‘아이고, 좋겠다’ 이러지요? 또 중고등학교 때를 부러워하고, 대학교 시절을 추억하고, 처녀 총각들을 부러워하고, 신혼 시절을 부러워해요. 좀 이상하지 않아요? 자기가 어릴 때는 어른이 부럽고, 자기가 어른이 되면 청소년이 부럽고. 자기가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한 사람들이 부럽고, 자기가 결혼한 뒤에는 처녀 총각들이 부럽고. 현재의 자기는 늘 불만투성이입니다. 불만투성이로 살아놓고는 지나간 뒤에는 또 그때를 돌아보고 부럽다고 생각하는 거예요.nbspnbspnbsp어릴 때는 어릴 때가 좋은 줄 아는 게 도예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중고등학교 시절이 좋다는 걸 아는 게 행복이고 도예요. 대학 때는 대학 때가 좋은 줄 알아야 돼요. 밥만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만 해도 모두 봐주는 시기가 중고등학교 때며 대학 때잖아요. 나이 먹고 나서 아무것도 안 하고 공부만 하면 미쳤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이런 시기가 길지 않아요. 처녀 총각 시기도, 신혼 시기도 길지 않아요.nbspnbsp그래서 항상 ‘지금이 좋다,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인생은 행복해 집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안중근도 될 수 없었고, 이상설도 될 수 없었고, 이준도 될 수 없었고, 홍범도도 김좌진도 될 수 없었잖아요. 가난한 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에 산업화의 역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독재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민주화의 투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지금을 좋게 생각해야 합니다.nbspnbsp날이 어둡기 때문에 촛불이 빛을 발하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통일을 이룬 세대라고 하는, 역사에 유례가 없고 그 어떤 선배도 하지 못한 새로운 자부심을 가지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좀 더 행복한 복지국가를 이루어낼 수 있고, 권력이 너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분권이라고 하는 좀더 나은 지방자치 시대를 여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과제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의 삶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파랑새를 찾으러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온 들판을 다니다가 지쳐 돌아온 주인공이 마루에 누워 쳐다보니 파랑새가 바로 처마 아래에 있더라는 이야기가 있지요.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사는 오늘에, 그리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과제에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임하느냐에 따라서 행복이 될 수도 있고 불행이 될 수도 있어요. 불평하고 낙담하기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긍정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나선다면 이게 바로 행복입니다.”nbsp지금이 좋은 줄 알아야 하며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의 염원을 가질 수 있고 통일의 염원이 있기에 통일 세대라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에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특히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발 한발 내딛는 이 과정 자체가 행복이라는 말씀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nbspnbsp마지막 피날레는 무대 위로 오늘 행사를 준비한 서포터즈들이 모두 올라와 스님과 김제동씨와 손을 맞잡고 ‘행복가’를 부르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습니다.nbspnbspnbsp“포기하고 싶을 땐 주위를 둘러봐요. 마음껏 웃고 꿈꾸고 사랑하자 ♬ 작은 날개를 펴고 행복의 나라로 날아가자.”nbspnbsp강연장에 울려퍼지는 행복가를 들으며 정말로 청년들이 마음껏 웃고 꿈꾸고 사랑하는 세상을 위해 나도 작은 기여를 해보겠다는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비단 남한의 청년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청년들도 함께 말이죠. 그것은 남북이 하나된 통일코리아의 세상일 것입니다.nbspnbsp감동의 여운을 뒤로 하고 로비에서는 스님의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길게 줄을 선 청년들은 스님과 눈을 마주치며 오늘 소중한 가르침을 전해 준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으로 그 마음을 받아주었습니다.nbspnbspnbsp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고 격려해주는 어른이 있어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마지막으로 한달 전부터 소임별로 모여서 사전 모임을 갖고 오늘도 강연장 곳곳에서 자원봉사를 해 준 희망서포터즈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가자 행복의 나라로”를 외치는 청년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오면서 스님과 김제동씨는 수고한 서포터즈들 한명 한명에게 악수를 건내며 감사 인사를 건냈습니다. 마중을 나온 김제동씨에게 스님은 “수고했어요. 이번주 금요일 포항 청춘콘서트에서 봅시다”고 인사한 후 손을 흔들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 밤 11시가 다 되어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조찬 모임을 비롯해 각종 회의를 연이어 가진 후 저녁7시부터는 안산 올림픽기념관에서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 법륜 스님과 김제동이 함께하는 2015 청춘콘서트가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곳곳에서 열립니다. 참가를 원하는 분들은 티켓을 사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lt티켓 사전 신청하기gtnbspnbspnbsp우리 지역 콘서트 일정을 nbsp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nbsp
2015.8.30 (오후) 시드니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시드니 정토불교대학 수계식 및 졸업식을 마친 후 오후 4시부터는 시드니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하였습니다.nbspnbsp오후 3시부터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시드니대학교 Footbridge Theatre 주위 골목에는 주황색 희망세상만들기 티셔츠를 입은 봉사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강연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nbspnbspnbspnbsp강연장 입구에는 일찍 온 교민들이 인생수업, 새로운100년, 깨달음 등 스님의 저서들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서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강연장 안에는 즉문즉설 영상이 상영되어 오늘 스님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주었습니다.nbspnbsp오후 4시 정각이 되자 시드니대학교 Footbridge Theatre 는 스님의 강연을 듣고자 모인 교민들로 꽉 들어차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박수와 환호 속에서 드디어 ‘시드니’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시드니대학교 Footbridge Theatrenbsp스님의 소개 영상에 이어서 ‘박수로 스님을 모셔볼까요’ 라는 자막이 나오자 열띤 환호와 박수를 속에서 스님이 무대에 섰습니다. 스님은 먼저 안부 인사와 함께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이 일요일인데 오전에 교회나 성당, 절에 다들 잘 다녀오셨어요? 오전에 다 다녀오신 후에 강연 들으러 오시라고 이렇게 오후 4시에 일정을 잡은 거예요. 저는 어제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해서 오후에 마닐라로 가서 강연을 하고, 어제 밤에 비행기를 타서 이곳 시드니에는 오늘 아침에 도착했습니다. 아침부터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에서 불교대학 과정을 마친 분들에게 수계식과 졸업식을 해주고 잠시 쉬었다가 지금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nbsp마닐라에서 밤새 비행기를 타고 아침에 시드니에 도착했고 바로 이어서 불교대학 수계식과 졸업식을 했다고 하자 대중들은 “어머나...” 하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청중들이 어떤 마음으로 즉문즉설 강연에 임하면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즉문즉설은 특정한 종교나 사상에 구애 받음 없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고민을 아무런 형식 없이 자유롭게 묻고 답하는 대화의 시간입니다. 젊은이도 좋고 늙은이도 좋고, 여자도 좋고 남자도 좋고, 불교인도 좋고 기독교인도 좋고, 어떤 얘기든지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소통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불교 교리에 관심이 있어서 물으면 교리 강좌처럼 될 수 있고요. 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이 과학에 대해 물으면 과학 교실처럼 될 수 있고요. 역사에 대해 물으면 역사 교실처럼 될 수 있고요. 또 개인의 삶의 고통에 대해 질문하면 인생 상담처럼 될 수도 있고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겠다고 준비해 온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듣고 싶다는 질문이 주제가 되어 그것을 갖고 대화하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자신이 대화를 나누고픈 내용을 질문하면 그 내용이 오늘 강연의 주제가 됩니다.nbspnbsp오늘 500여명이 참석해서 대화를 하는데, 제가 500여명을 다 고려해서 대화를 할까요? 질문자 한 명을 고려해서 대화를 할까요?nbspnbsp저는 오직 질문자 한 명만 상대로 대화를 합니다. 왜냐하면 질문자가 저에게는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자녀 키우는 문제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그 분과는 오직 자녀 키우는 문제로 얘기를 나누게 되는 겁니다. 통일 문제에 대해 얘기를 듣고 싶은 사람은 불만이 생기겠지만, 그렇다면 다음 강연 때 통일을 주제로 본인이 질문을 하면 되지 제가 그런 분들까지 고려해서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질문자와 제가 단 둘이서만 대화를 하듯이 강연이 진행됩니다. 그러나 질문자가 가끔 이해를 잘 못할 때는 가끔 청중들에게 물어볼 때가 있어요. 그 때도 청중을 위해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고 질문자를 위해서 청중들에게 물어보는 거예요.nbspnbspnbsp다만 여러분들은 저와 질문자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그 속에서 스스로 어떤 깨달음과 교훈을 얻어 가시면 됩니다. 즉문즉설은 묻는 사람에게 가장 초점을 맞춰서 대화를 하는 강연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셔서 즉문즉설에 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자, 누구든지 이야기를 해보세요.”nbsp스님이 얼마나 질문자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집중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질문을 하고픈 분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습니다. 총 8명이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남편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와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외국에서 산다는 핑계로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는 여성 분, 호주 간호대로 편입을 준비하고 있는데 혹시 실패하게 되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걱정인 청년, 바다의 해양 생태계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고 바다가 오염되지 않게 환경을 지키고 싶은데 이에 대한 스님의 의견을 듣고 싶으며 또 성공한 인물이나 사례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고등학생,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인데 비비탄 총을 사주었더니 엄마 허벅지에 자꾸 총을 쏘아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엄마, 성격이 죽 끓듯이 변덕이 심해서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친구와의 약속이나 여행 일정을 자꾸 변경시켜서 고민인 여성 분, 전생 , 윤회, 극락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스님의 답변에 대해 속이 후련했는데 기도문을 주실 때는 부처님이란 말을 사용하셔서 그 뜻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분 등 다양한 사람들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정성껏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후 4시에 시작한 강연은 저녁 7시가 넘을 때까지 3시간이 넘게 진행되었습니다. 다양한 질문과 스님의 대답은 마지막까지 무릎을 치게 할 정도로 명쾌한 답변의 연속이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두 명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연이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한 분은 남편과 이혼을 한 후 아이의 양육권 문제로 인해 생긴 갈등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엄마는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를 강조하면서 질문자가 명확하게 입장 정리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nbspnbsp“저는 호주인 남편과 결혼해서 8년 만에 남편이 이혼을 원해 지금은 같은 집에서 별거를 하고 있는 워킹맘입니다. 지금 저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는 양육권 문제입니다. 남편도 아이를 원하고 저도 아이를 원합니다. 호주에서는 변호사가 말하기를 82로 양육권을 나누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평일은 한 사람이 주말은 다른 한 사람이 돌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해요. 남편도 더 많은 시간을 원하고 저도 더 많은 시간을 원하다 보니까 아직 서로 합의가 안 된 상황입니다.”nbspnbsp“서로 아이를 돌보겠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예요. 서로 안 돌보겠다고 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서로 돌보겠다고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예요.”nbspnbsp“남편은 아이에게 정말 좋은 아빠예요. 아이도 아빠를 더 좋아하고요. 그런데 저는 호주에 저 혼자 밖에 없는 상황이고 아이까지 없으면 nbsp여기에서 사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아이를 여기에 두고 저만 한국으로 가는 것도 아닌 것 같고요. 호주는 한국과는 상황이 달라서 이혼을 했지만 아직은 한 집에서 별거하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제가 집을 얻어서 밖으로 나가기로 했거든요. 변호사는 아이를 데리고 나가야 한다고 하는데 아이를 데리고 나가고 싶지만 저도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여서 아이를 계속 봐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주위에서는 직장 다니면서 가끔씩 아이를 보면 되지 않느냐고 해요. 둘째 아이도 2년 전에 하늘나라로 보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nbsp“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 속에 답이 다 나와 있네요. 아이를 서로 안 돌보겠다고 할 때는 문제인데 서로 돌보겠다고 하니까 이것은 좋은 일이잖아요. 서로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첫째, 큰 문제가 없고요.nbspnbsp둘째, 자기는 지금 나가서 살아야 하는데 직장을 다녀야 하니까 아이를 전적으로 돌볼 처지가 안 되잖아요.”nbspnbsp“그렇지 않고요. 시부모님이 낮에는 아이를 봐줄 수 있어서 저는 밤에만 아이를 돌보면 됩니다.”nbsp“어쨌든 일주일 내내 전적으로 아이를 돌볼 형편은 못되잖아요. 시부모님 도움을 얻든 아무튼 남의 도움을 얻어야 되는 형편이잖아요. 그러니 자기의 처지와 지금 주어진 조건이 딱 맞잖아요. 내가 전적으로 돌볼 형편이 안 되는데 남편도 돌보지 않겠다고 하면 심각한 문제가 되지만 지금 남편이 가능한 자기가 더 많이 돌보겠다고 하잖아요. 서로 경쟁을 하다보니까 결론이 아직 안 났는데, 나는 지금 객관적으로 돌볼 형편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 아이를 집에 두고 남편에게 좀 많이 돌보라고 양보하는 척 해주면 되잖아요. 양보를 하고 나는 또 내 일을 하면 되고요.nbspnbsp그리고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아이를 아들 집에 두고 돌보는 것이 나을까요? 이혼한 며느리가 이사를 가서 샛방에서 사는데 거기 가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나을까요?”nbsp“시어머니는 남편 집에 아이를 두는 것이 편하겠지요.”nbspnbsp“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있어야 해요? 엄마를 위해서 아이가 있어야 해요?”nbsp“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있어야죠.”nbsp“그런데 자기는 지금 자기를 위해서 아이가 있길 원하잖아요. 그것은 엄마의 자세가 아니에요. 지금 엄마로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지금 호주에서 외로운데 아이라도 한 명 있어야 의지하면서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잖아요. 이런 사고방식은 굉장히 잘못된 거예요. 엄마라면 내가 죽더라도 아이를 위해서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못 봐서 아무리 가슴이 아프더라도 이곳에서 자라는 것이 아이에게 낫다면 내 아쉬움을 내려놓고 혀를 꽉 깨물고 돌아설 수 있어야 엄마의 자격이 있는 겁니다.nbspnbspnbsp남편도 문제가 아니고, 서로 돌보겠다는 것도 문제가 아니고, 자기가 지금 엄마의 자세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엄마의 자세가 된다면 남편이 아이를 돌보겠다고 하면 남편에게 굉장히 감사해 하면서 ‘제가 지금 형편이 안 되는데 당신이 이렇게 아이를 돌봐주겠다니까 감사합니다. 시어머니께서도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일 하면서 틈나는 대로 찾아와서 아이를 돌보겠습니다. 원래는 엄마가 주가 되어야 하는데 저는 호주 태생이 아닌 이민 온 사람이니까 당신이 주가 되고 내가 보조 역할을 할게요.’ 이렇게 얘기해서 아이를 남편이 돌보게 하세요. 또 시어머니가 돌본다고 하니까 잘 된 일이잖아요. 그래서 자기는 틈나는 대로 와서 돌보는 쪽으로 하면 좋겠습니다.nbspnbsp그리고 외로워서 힘들면 조그만 아이한테 의지하지 말고 큼지막한 남자에게 의지하세요. 왜 조그만 아이한테 의지하려고 그래요? 외로운 문제는 큼지막한 남자를 하나 구해서 해결하세요. nbspnbspnbsp아이는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좋다고 하면 엄마와 떨어지게 되더라도 거기에 두는 것이 엄마입니다. 엄마가 희생을 해야 됩니다. 엄마가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면 거기에 아이가 희생이 됩니다. 엄마 아빠가 서로 데려 가려고 싸우면 아이가 찢어져야 되잖아요. 엄마가 양보하세요.nbspnbsp솔로몬의 지혜 아시죠? 서로 자기가 엄마라고 주장할 때 솔로몬이 ‘그럼 반반씩 갈라서 가지자’고 하니까 생모가 포기했잖아요. 정말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 문제를 갖고 싸우는 것은 엄마가 아니에요. 남편은 싸울 수 있어요. 그러나 자기는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 갖고 싸우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남편이 나와는 맞지 않지만 그래도 아이의 아빠 아닙니까? 그러니 항상 아이의 아빠를 존중해줘야 아이가 훌륭해집니다.nbspnbsp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을 자꾸 아이와 결부시키지 마세요. 외로우면 다른 남자 하나 구해서 살면 되지요. 변호사들은 양육권 문제를 자꾸 권익으로 따지는데 권익으로 따지면 변호사의 말이 맞을지 몰라도 인간 세상은 그런 권익만으로는 해결이 안 될 수 있습니다.”nbsp엄마의 자세가 안 되어 있는 것이 자꾸 햇갈리게 되는 핵심 이유라는 말씀에 청중들도 큰 박수로 공감을 표현했습니다. 본질을 딱 꿰뚫어 주시니 질문자도 정신이 번쩍 든 듯 “감사합니다” 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nbspnbsp다음은 취미 생활을 즐기는 남편이 여우 같아 보여서 힘들다는 한 여성의 질문입니다. 질문자는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서 남편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어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nbspnbspnbsp“호주에 이민을 온 지 10년 되었고요. 남편이랑 10살, 7살 된 아이들을 데리고 시드니에서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이들도 잘 돌보고 참 좋은 사람인데 한 가지 문제점은 야구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일을 나가고 남편도 회사를 나가는데, 저는 직장을 마치고 아이들 픽업도 해야 하고 신경 쓸 일이 많아요. 무엇보다 힘든 건 남편이 야구를 하고 돌아와서 자기는 스트레스가 다 풀렸다고 하면서 해맑게 웃는 것입니다. 휴일에는 남편이 인터넷을 보면서 야구 스윙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하는 생각이 올라와서 제어가 잘 안 돼요. 또 얼마 전에는 남편이 정토회 깨달음의장 수련에도 흔쾌히 보내주었는데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면 ‘내가 깨달음의장에 다녀오면 자기가 편해지니까 그런 것이겠지’ 싶고, 오늘 강연에도 흔쾌히 보내주었는데 ‘내가 좋은 강연 들으면 한 달 동안 자기가 편해지니까 그런 것이겠지’ 싶고요. 이런 남편을 보고 있으면 너무 여우 같아요.” nbspnbsp“지금 남편이 여우 같아요? 자기가 여우 같아요?” nbspnbspnbsp“남편이 여우 같아요.”nbsp“제가 볼 때는 자기가 여우 같아요. 이렇게 해주면 이걸 의심하고, 저렇게 해주면 저걸 의심하잖아요. 법문 들으러 가지 말라고 하면 ‘자기는 야구하러 가면서 나는 법문도 못 듣게 한다’ 그러고, 법문 들으러 가라고 하면 ‘좋은 법문 듣고 와서 한 달 동안은 잔소리하지 말라는 뜻이지?’ 이러잖아요. 자기가 의심병이 있는 거예요. 자기가 지금 피해의식이 심한 겁니다. 남편은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에요.nbspnbsp그래도 남편이 일주일에 한번 좋아하는 야구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오는 게 좋아요? 야구도 하러 가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서 자기한테 성질만 버럭 버럭 내는 게 좋아요?”nbsp“남편이 야구하러 가지 않고 웃으면서 집에 앉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nbsp“야구하러 가지도 말고 집 안에서 웃으면서 앉아 있으라고요? 참나.... 남편이 너무 잘해줘서 이런 고민이 생기는 겁니다. 저런 여자를 길들이는 방법은 밖에 가서 바람피우고 맨날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야구 해도 뭐라 하지 않을 테니까 술만 먹지 마라’, ‘야구는 해도 괜찮으니까 바람만 피지 마라’ 이렇게 됩니다. nbspnbspnbsp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부부라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다 해줄 수 없어요. 또 상대가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도 없고요. 부부가 너무 서로 옭아매면 스트레스를 자꾸 받아서 가슴이 답답해져요. 그러면 집에 오는 것이 자꾸 꺼려지고 밖을 돌게 돼요. 이것은 크게 보면 나중에 서로 정이 떨어지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지금 자기의 생각은 위험을 초래하는 생각입니다.nbspnbsp아무리 관계가 좋은 부부라 하더라도 개인의 생활을 좀 열어 주어야 합니다. 남편이 자기 취향이 있어서 개인 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기가 법문 들으러 가겠다고 해도 가라고 하고, 깨달음의장을 가겠다고 해도 다녀오라고 하는 겁니다. 만약에 남편이 자기에게 딱 붙어 있는 사람이라면 깨달음의장에도 못 가게 하고 법문 들으러 가는 것도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서로 약간의 자유를 주고 생활을 할 때 훨씬 두 사람의 관계가 오래 가고 좋아집니다. 자기가 지금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겁니다. 일주일에 5일 가는 것도 아니고 하루 가는 정도는 자기가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있게 약간 열어주는 것이 좋습니다.nbspnbspnbsp지금 질문자가 좀 민감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아 보이니까 남편은 스트레스 좀 풀고 오라고 법문도 들으러 가라고 하고 깨달음의장도 다녀오라고 은혜를 베풀어 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까지도 자기는 ‘내가 깨달음의장 다녀오면 네가 편해지니까 그런 것이지?’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것을 피해의식이라고 하는 겁니다. 심보가 좀 나쁘네요.nbspnbsp계속 이런 사고방식으로 같이 지내면 상대가 굉장히 답답해집니다. 이래도 시비하고 저래도 시비하면 나중에 남편이 화를 버럭 내면서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냐’ 이렇게 나옵니다. 착한 남자가 갑자기 악을 쓰게 되는 겁니다. 그런 꼴을 안 보려면 자꾸 자기중심으로만 보지 말아야 해요.nbspnbsp옛날에 자기 엄마 세대에는 남자가 아이 키우는데 신경을 거의 안 썼어요. 자기 남편이 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옛날 자기 아버지에 비하면 아이들한테 신경을 많이 써주는 것이잖아요. ‘아이고, 우리 남편 고맙다. 내가 요즘 태어나길 잘했지. 엄마 세대에 태어났으면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렇게 자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해요.”nbsp“감사합니다.” nbspnbspnbsp청중들의 박수에 이어서 스님은 질문자가 왜 남편을 자꾸 시비하게 되는지 그 원인을 말해주었습니다.nbspnbsp“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어때요? 잘해줘도 끝이 없지요. 인생은 끝이 없어요. 인간의 갈등은 꼭 잘해준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꼭 못해준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에요. 서로가 적절하게 수용을 해줘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저렇게 민감한 성격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을 조금 고려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nbsp반대로 아내는 이런 것을 조금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남편이 스스로 여가 생활을 즐기니까 자기는 오늘처럼 법문도 들으러 나와 보고, 깨달음의장도 가보고, 한국에 가서 명상수련도 해보는 기회들을 자꾸 가지세요. 남편이 못 가도록 말릴 정도로 자기 스스로 자꾸 이런 기회를 가져서 자기 해탈을 해야 됩니다.nbspnbsp이렇게 남편의 그늘에서만 계속 메여 살면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죽거나 이혼하자고 하면 하늘이 노랗게 됩니다. 좋은 남편, 좋은 아내라는 것은 나쁘게 말하면 굉장한 위험 부담을 안고 사는 것이 됩니다. 어떤 불행이든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여기에 늘 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혼자 살 수 있는 연습을 해야 됩니다. 이것은 남편이나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지 아내도 남편도 부모도 형제도 자녀도 아니에요. 인생은 하나님도 부처님도 아닌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한 겁니다.nbspnbsp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가꾸는 방법 중의 하나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편을 사랑하면 할수록 내가 나를 더 소중하게 가꾸는 길이 되고, 남편이나 아내에게 집착을 하게 되면 그것은 곧 나를 망치는 길이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소중한 줄을 먼저 알아야 됩니다.nbspnbsp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자기가 소중한 줄을 모릅니다. 남편을 자꾸 문제 삼는 것은 지금 남편에게 의지해서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요. 이것은 앞으로 위험을 자초하게 됩니다.”nbsp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른다는 말씀이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자신을 소중하게 가꿀줄 몰랐기 때문에 상대에게 의지하게 되고 상대를 시비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자 엉킨 실타래가 툭 하고 풀린 것처럼 가벼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상대가 나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괴롭힌 것이였습니다. 상대가 여우처럼 행동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여우처럼 생각한 것이였습니다.nbspnbsp이제 마칠 시간이 되자 스님은 “벌써 3시간이나 지나갔네요. 재미있었어요?”라고 교민들에게 물었습니다. 교민들이 “네” 하고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이 얘기는 꼭 드리고 싶다”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제 우리는 불교 안에 이 종파니 저 종파니 하는 생각을 좀 내려놓고, 불교 안에 소승이니 대승이니 하는 생각도 좀 내려놓고, 더 나아가서는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생각도 좀 내려놓고, 더 나아가서는 종교니 과학이니 하는 생각도 내려놓고, 이제는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하고 연구하고 개발해 놓은 모든 불교적 유산, 기독교적 유산, 인문학적인 유산, 사회과학적인 유산, 자연과학적인 유산, 모든 인류의 유산을 다 받아들여서 융합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융합을 해서 진실을 재규명해 나가야 할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미래 학문의 가장 핵심은 융합에 있습니다.nbspnbspnbsp융합을 해서 종합적으로 사물을 봐야 사물의 진실에 접근해 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연구도 정신만 연구해서도 안 되고, 육체만 연구해서도 안 되고, 정신과 육체를 같이 연구해야 됩니다. 이제 우리의 모든 삶에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절대로 다른 사람의 주장을 불필요하게만 생각해서는 안 돼요. 어떤 주장이든 문화사적으로 연구해보면 그런 역사적 환경 속에서 인간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어떤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nbspnbsp아내나 남편이 하는 행동을 ‘저 인간이 미쳤나. 왜 저러지?’ 이렇게만 보지 말고 가만히 연구해 보면 그렇게 성질내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어떤 요인이 있습니다. 이것을 찾아내고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이지 방금 질문한 분처럼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에 드는 남자는 존재할 수가 없어요.nbspnbsp수행은 학문을 연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시대에는 이렇게 융합적으로 접근을 해야 합니다. 우리 인류가 각 분야와 각 지역에서 나름대로 유산을 남겨준 것들을 배척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모두 수용을 해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재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는 이런 시대에 지금 우리가 놓여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nbspnbspnbsp이 모든 것들을 활용해서 내가 행복해져야 합니다. 내가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내가 주인 된 삶을 살아야 됩니다. 목적은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것들을 배척하지 말고 수용을 하세요. 그러니 비록 불교 신자라 하더라도 훌륭한 목사님이 와서 강연을 한다고 하면 가서 들어볼 가치가 있는 겁니다. 먼저 들어보고 별로면 별로라고 해야지 들어보지도 않고 ‘나는 불교 신자이니까 거기에 가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항상 자기중심을 먼저 세우고 나머지 것들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nbsp내 생각과 다르다고 배척하지 말고 모든 것을 수용하고 융합해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 나가자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3시간이 넘도록 한번도 쉬지 않고 이어진 강연에 교민들은 큰 박수 갈채를 다시 한 번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참석한 대다수의 교민들은 스님에게 직접 사인을 받으면서 연이어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책 사인회nbspnbsp사인회가 끝나자 강연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았던 자원봉사자들 모두가 모여서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함께 “평화 통일”을 외치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했습니다.nbspnbsp▲nbspnbsp오늘 강연을 준비한 시드니정토회 회원들nbsp스님은 수고한 봉사자들 한분 한분의 손을 잡아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봉사자들은 “마치 잔치집 같은 분위기에서 너무나 즐겁게 일했다”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nbspnbspnbsp봉사자들에게 “수고 많으셨어요” 라고 인사한 후 스님 일행을 오늘 하룻밤 머물게 해주기로 한 박정연 보살님 댁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시드니의 중심가에서 내륙 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Eastwood 라고 하는 주택가에 위치한 보살님 댁에 도착하자 저녁 8시 30분이 다 되었습니다. 보살님이 차려준 된장국으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오늘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루 종일 강연을 해서 그런지 “목이 아프고 몸살 기운이 있다”고 하며 바로 휴식을 취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10시 30분 비행기로 시드니 공항을 출발하여 다시 8시간을 비행하여 필리핀 현지 시간으로 오후 5시에 마닐라 공항에 도착해 이원주 대표님 댁에 잠시 머물다가 다음날 새벽 1시 비행기로 마닐라 공항을 출발해 새벽 6시에 인천공항으로 귀국할 예정입니다.nbspnbsp ※nbsp2015년 9월, 법륜 스님의 강연이nbsp전국 방방곡곡 여러분을 찾아갑니다.nbsp9월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콘서트와nbsp통일의 주제로 함께 이야기하는 통일 강연이nbsp계속됩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하세요.nbspnbsp nbsp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해서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 오세요.nbsp
2015.8.30 (오전) 시드니 정토불교대학 수계식 및 졸업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호주 시드니와 멜버른, 브리즈번에서 각각 정토불교대학을 수료한 28명에게 수계식 및 졸업식 법문을 해준 후 오후에는 호주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오전에 열린 정토불교대학 수계식과 졸업식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어제밤 10시 10분 마닐라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8시간을 비행하여 현지 시간으로 아침 8시에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비행기 의자에 앉아 밤을 꼬박 지새웠습니다.nbspnbsp▲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시드니 시내 전경nbspnbsp공항 도착 후 입국 수속을 밟고 나오는데 1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중국인 관광객이 매우 많았던 데다가 최근 호주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으로 보안 검색이 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선 채로 원교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 이미그레이션 통과를 기다리며 원고 교정 업무를 보고 있는 스님nbsp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공항을 빠져나오니 시드니 정토법당 정은지 총무님과 운전 봉사를 하러 나오신 불교대학생 구본상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두 분은 “비행기는 일찍 도착했는데 계속 스님이 공항 밖으로 나오지 않으셔서 무척 걱정했다” 며 스님을 뵙고선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nbspnbsp▲ 공항 마중을 나온 시드니정토회 정은지 총무님과 구본상님nbspnbsp정토불교대학 수계식의 시작 시간이 10시 30분인데 공항에서 행사장까지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을 했는지 시드니 정토법당에서 도시락을 싸와서 스님은 차 안에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다행히 행사장에는 10분 전에 도착해 스님은 세수라도 잠깐 하고 행사장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시간이 없어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스님nbsp오후에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진행되기 때문에 수계식과 졸업식은 강연장과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갈색 가사를 입고 나란히 앉아서 스님을 기다리던 졸업생들은 스님이 행사장에 나타나자 열렬히 환호하며 기뻐하였습니다. 총무님의 말에 따르면 호주 지역 교민들은 스님이 일년에 한번씩 오실 때마다 잔치집 같은 분위기가 된다고 합니다. nbspnbsp▲ 강연장 무대에서 조촐하게 진행된 수계식nbsp먼저 정은지 총무님의 시드니 정토회 불교대학에 대한 경과보고가 있었습니다. 시드니 정토회 불교대학은 2010년 2월에 시드니 정토열린법회에서 처음 시작하였으며 지금까지 총 졸업생은 52명입니다. 오늘 졸업생들은 시드니 불교대학 5기, 6기, 7기로 14명이 졸업하고, 멜버른 불교대학 1기는 7명이 졸업하며, 브리즈번 불교대학 1기는 6명이 졸업하고, 한국에 백일출가 기간 동안 불교대학 과정을 마친 1명을 포함하여 총 28명입니다. 그 중 오늘 수계식에 참여해서 수계를 받은 사람은 25명입니다.nbspnbsp25명은 두 줄로 나란히 앉아서 가사를 수하고 삼귀의, 반야심경으로 시작하여 인례자가 따로 없어 스님이 직접 인례자가 되어 수계를 받았습니다. 스님은 수계 법문을 통해 ‘수계를 받는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먼저 오늘 오계 수계를 받게 되는 불교대학 졸업생 여러분들게 진심으로 축하 말씀을 드립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본인이 스스로 불자가 되겠다고 발원을 한 사람에 한해서 오계 수계를 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불명 하나만 지어주세요’ 라고 부탁합니다. 그럴 때 불명은 불명이 아니고 별명입니다. 별도로 부를 수 있는 좋은 이름 하나 지어달라는 그런 얘기이죠. 그러나 불명이란 것은 부처의 이름입니다. 원래는 내가 부처를 이루겠다고 원을 세우고 수행 정진을 해서 부처를 이루어야 그 때 아무개 부처라고 하는 불명을 받게 되는데, 부처를 이루겠다고 원을 세우기만 해도 미리 ‘너는 미래세에 부처를 이루리라. 그럴 때 너의 부처 이름은 이러이러하리라’ 라고 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기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을 예언하고 미리 불명을 받는 것을 ‘수기’라고 합니다. 불명은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불명은 그냥 좋은 이름인 별명이 아닙니다.nbspnbspnbsp그러면 부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부처가 되는 길에 도움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지 행해야 되고, 부처가 되는 길에 장애가 되는 일은 무엇이든지 멈춰야 합니다. 부처의 길에 도움이 되는 일을 불교에서는 ‘선’ 이라고 말하고, 부처의 길에 방해가 되는 일을 불교에서는 ‘악’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선악과는 기준이 다릅니다. 그런데서 계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부처가 되겠다는 목표를 정했기 때문에 그 길로 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마땅히 행하겠습니다, 즉 선을 닦겠습니다는 이야기이고, 그 길에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멈추겠습니다, 즉 악을 멈추겠습니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을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지악수선’이라고 말합니다. 악은 멈추고 선은 마땅히 행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계율이라고 말합니다.nbspnbsp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수계를 받는다는 것은 이러이러한 것은 부처가 되는 길에 장애가 되니 이런 행동들을 오늘부터는 멈추겠습니다. 이러이러한 것은 부처가 되는 길에 도움이 되니 마땅히 행하겠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오늘 약속을 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가 되겠다고 발심을 해야 삼귀의와 오계 수계를 하고 불명을 받는 것이지 그런 목표 설정이 아직 안 되어 있고 ‘나는 죽어서 천당에 가고 싶다’, ‘다음 생에 태어나서는 부자가 되고 싶다’ 이런 목표 설정을 한 상태라면 수계와 불명을 줄 수가 없습니다. nbspnbsp붓다는 진실 만을 말합니다. 윤리 도덕적인 간섭을 하는 분이 아닙니다. 다만 진실 만을 말합니다. 그럼 선택은 누가 해야 될까요? 내가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니까요. 모든 종교는 어떤 능력자가 주인이고 나는 거기에 의지해서 사는 노예입니다. 그래서 신앙 고백을 ‘나는 종이로소이다’ 이렇게 하?아요.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인생의 주인은 너다’ 하는 것입니다. 너가 선택하고 너가 그 과보를 받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선택을 잘못합니다. 왜냐하면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선택을 어떻게 하라고 얘기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을 할 때 진실에 근접해서 선택을 하라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세상의 종교에는 신이 있고, 신을 대행하는 사제가 있고, 신에게 부탁을 하는 신자가 있습니다. 이 세가지가 갖춰진 것이 종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그 어떤 신도 인정하지 않고, 그러니 사제도 필요없고, 신자도 필요없어지기 때문에 이 세 가지가 다 필요없어지는 겁니다. 이 관점이 잡히지 않으면 불교 신자는 될 수 있지만 원래 붓다의 가르침에는 근접할 수 없습니다. 원래 불교에는 딱 하나의 단어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수행자’입니다. 붓다는 신이 아니고 우리를 해탈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입니다. 바른 길로 안내해주는 스승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붓다에 대한 신앙 고백을 할 때 ‘삼계의 대도사요, 사생의 자부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붓다는 스승이지 숭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nbspnbsp그러면 우리는 누구이냐? 바로 그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서 내가 해탈과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수행자입니다. 그런데 불교가 시간이 흐르면서 붓다는 신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고, 스님들은 사제가 되었고, 재가 수행자는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붓다가 일으킨 인생 혁명과는 관계 없이 그냥 세상의 많은 종교 중에 한 종교로 전락을 했습니다. 이것이 현재의 불교입니다.nbspnbsp정토회가 추구하는 것은 세상의 종교 중에 불교, 불교 중에서도 대승불교, 대승불교 중에서도 선불교, 선불교 중에서도 어떤 종파, 이런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붓다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행자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길이 아니라 옛길이예요. 어긋난 길에서 다시 본래의 길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길이 나에게도 좋다고 여겨지면 한번 시도해 보고, 그냥 나는 신자되는 것이 좋다면 세상의 불교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됩니다.nbspnbsp만약 붓다의 길을 선택했다면 나의 무지를 극복하고 깨달음을 얻어서 어떠한 경우에도 괴로움과 속박이 없는 자유와 행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거기에 첫발을 내딛는 것이 오계 수계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수계를 받아야 합니다. 복을 받는 수단으로 계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nbsp이런 가르침은 붓다로부터 대를 이어서 내려왔습니다. 근본 가르침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흐트러짐이 없이 내려왔습니다. 그 법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마하가섭 존자에게로, 마하가섭 존자로부터 아난다 존자에게로, 아난다 존자에게서 상나화수 존자에게로, 그래서 제28대 보리 달마 조사에게 이르렀고, 다시 6대를 내려가서 육조 혜능 조사에게 이르렀고, 그것이 더 내려가서 제56대 석옥 청공 조사로부터 제57대 고려말 태고 보우 조사에게 이르렀고, 그 법이 계승해서 내려와서 서산대사를 거치고 환성 지안조사에 이르렀고, 지안 조사가 순교함으로 해서 그 후신으로 다시 오신 분이 용성 진종조사이고, 용성 진종조사의 법이 동헌 완규조사를 거쳐서 불심 도문대사를 거쳐서 여기 지광 법륜에 이르렀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이 정법의 분상에서는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단 한명이라도 바른 법에 귀의해서 해탈과 열반을 성취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정법을 계승하여 주변에 전파해야 하는 것이고 또한 이 법을 후대로 이어서 저 미륵 부처님의 세계에까지 이어가야 합니다. 이런 근본 입장을 가지고 그 첫발로 우선 다섯 가지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오계입니다.”nbsp부처님으로부터 정법의 맥이 면면히 이어오고 있음을 알게되자 수계 대중은 기쁜 마음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수계는 복을 받는 수단이 아니라 수행자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발심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은 불교대학 졸업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소중한 나침반이 되었습니다.nbspnbsp법문을 마친 후 졸업생들은 무릎을 꿇고 호궤합장 자세를 취한 후 오랜 세월 동안 지은 허물을 참회하고 스님으로부터 연비를 받는 의식을 가졌습니다.nbspnbsp▲ 스님으로부터 연비를 받고 있는 수계 대중nbsp스님이 연비하는 동안 수계 대중들은 참회 진언을 계속 외웠습니다.nbspnbsp연비와 참회를 통해 마음이 한결 청정해진 수계대중은 삼귀의와 오계 수계를 약속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nbsp거룩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nbsp거룩하신 대중들께 귀의합니다.”nbspnbsp스님이 한 구절씩 말하자 수계대중도 함께 따라하며 잘 지킬 것을 다짐하며 반배를 했습니다.nbspnbsp“첫째, 산 목숨을 때리거나 죽이지 않겠습니다. nbsp둘째, 훔치거나 뺏지 않겠습니다.nbsp셋째,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하지 않겠습니다.nbsp넷째, 거짓말이나 욕설을 하지 않겠습니다.nbsp다섯째, 술에 취해 주정하지 않겠습니다.”nbspnbsp그러자 스님이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nbspnbsp“오늘 그대들은 부처님 앞에서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계를 지킬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이 기쁜 마음을 부처님 앞에 나아가 한 사람씩 헌화함으로써 그대들의 뜻을 다시 한 번 다짐하도록 하십시오.”nbsp대중들은 한명씩 나와 부처님 전에 헌화 하였습니다.nbspnbsp수계의식과 헌화를 마치고 수행자로 거듭난 대중들을 위해 스님은 정성을 기울여 발원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거룩하신 부처님,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대원본존 지장보살님. 오늘 이곳 호주 시드니에서 그동안 불교대학을 이수한 28명의 졸업생 중 25명이 모여서 ‘나도 부처님처럼 살겠다’, ‘나도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되겠다’, ‘정말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겠다’,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겠다’ 이런 큰 원을 세우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잘 받아지니기 위해서 이렇게 오늘 수계 법회를 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 수계 대중을 위해 발원을 해주고 있는 스님nbsp지금까지 삶을 돌아볼 때 저희들도 부지런히 살아왔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직장 생활도 열심히 하고, 가정 생활도 열심히 하고, 누구보다도 성실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저희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왜 이런 부모 밑에서 태어났을까’ 하면서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고, ‘왜 이런 나라, 이런 사회에 태어났을까?’ 하면서 세상과 사회를 원망하기도 하고, ‘왜 저런 사람을 만났을까?’ 하면서 남편이나 아내를 원망하기도 하고,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자식을 낳았을까’ 하면서 자식을 원망하기도 하며, 괴로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nbspnbsp그러나 이제 부처님의 바른 법을 만나 진지하게 내 인생을 돌이켜보니 이 모든 괴로움이 다 나의 어리석음으로부터 일어난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 누구를 원망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미움과 원망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아직 내 인생의 새길이 열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음을,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고 또 결과가 돌아오는 인연과보가 분명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돈을 빌리면 갚아야 되고, 갚기 싫으면 빌리지 말아야 하는 너무나 간단한 이치를 알게 되었습니다.nbspnbsp아직 부족하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제 방향을 잡았습니다. 이미 내가 어리석어서 지은 인연의 과보가 있다면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인연을 짓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쾌락을 가져오더라도 수행에 방해가 된다면 멈출 것이고, 그것이 아무리 싫어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수행의 공덕이 된다면 기꺼이 행하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나의 감정과 기호에 연연하지 않고 그것이 바른 길이라면 기꺼이 행하며 그것이 바르지 않다면 기꺼이 멈추겠습니다.nbspnbsp오늘 저희들이 부처님 앞에서 삼귀의 오계를 받으며 이렇게 발원하고 결심하지만 이틀 삼일이 지나면 이 마음이 해이해져서 또 욕망에 끄달리고 성질에 끄달려서 오늘 이 발원을 잊어버릴 수 있겠습니다. 그럴 때는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이시여, 본래 서원 잊지 마시고 저희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늘 저희들을 격려하고 이끌어주시고, 잘못이 있으면 경책하여 주시기를 발원하옵니다.nbspnbspnbsp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저희에게 이런 바른 길을 일러주셔서 감사드리며, 부처님의 제자됨이 부끄럽지 않는 그런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남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하기 보다는 작게나마 남에게 베푸는 것을 즐기겠습니다. 남에게 이해 받으려 하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내가 남을 이해하는 쪽으로 가겠습니다. 사랑 받기 보단는 사랑하는 마음을 내겠습니다. 의지하기 보다는 의지처가 되어주겠습니다. 사치하게 사는 것보다는 검소하게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교만하고 거만하게 사는 것보다는 겸손하게 살겠습니다.nbspnbsp오늘 저희가 발원한 이 공덕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오니 이 공덕이 배고픈 자에게는 양식이 되고 병든 이에게는 양약이 되고 배우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터가 되는 등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 이고득락하여지이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nbsp스님의 간절한 발원이 계속되는 가운데 수계 대중들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nbspnbsp이어서 불명과 수계증을 수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수계를 받은 모은 이들에게 한명 한명씩 불명을 지어주고 그 의미도 함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표자 한명에게만 스님이 직접 불명의 의미를 해석해 주는데 오늘은 모두에게 불명의 의미를 해석해 주니 모두들 너무나 기뻐하였습니다.nbspnbsp▲ 스님으로부터 직접 수계증과 불명을 받고 있는 졸업생nbsp정은지 총무님의 영접사를 끝으로 수계식을 마친 후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진 후 곧바로 정토불교대학 졸업식이 거행되었습니다.nbspnbsp졸업식 기념 법문이 있기에 앞서 지난 1년 동안 부처님의 바른 법을 가르쳐주신 스님에게 정토불교대학생을 대신하여 최고령 졸업생인 거사님 한 분이 꽃다발을 증정했습니다. 졸업생 일동은 ‘스승의 은혜’ 노래를 다함께 부르면서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졸업식 기념 법문을 통해 스님은 법문을 자기 경험화 해야 하는 것과 그 방법으로 수행, 보시, 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었습니다.nbspnbsp“한국에서는 많은 이들이 문제 제기를 해요. 학과 수업만 하면 되지 마음나누기, 봉사활동 등 다른 것들을 왜 이렇게 많이 해야 되느냐고요. 정토불교대학의 설립 취지는 수행자의 모임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되려면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의 이치를 바르게 아는 데에 50, 그것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데에 50를 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학교 교육을 주로 학습 위주로만 받아왔기 때문에 교과 과정만 공부의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정토불교대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머지 50는 학습 받은 것을 자기화 하는 과정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고 스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나는 어떤가?’ 하는 문제입니다. ‘나는 지루하더라’, ‘나는 재미가 없더라’ 하고 느낀 것도 수행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떠했는가 살피는 것이 마음나누기입니다. 마음나누기를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어떠했는지를 말하면 됩니다. 이 나누기 과정을 통해서 법문을 자기화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리고 깨달음의장을 통해서 ‘깨달음이란 것이 어떻게 우리의 고뇌를 해결하는가’ 하는 것에 대해 자기 체험을 해야 합니다. 복을 빌어서 내 괴로움을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깨달아서 내 괴로움을 해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지를 체험해야 합니다. 나의 무지를 깨치니 이렇게 고뇌가 사라지는구나 하는 것을 경험해봐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수행을 해야 합니다. 이치는 알지만 경계에 부딪히면 잘 안 됩니다. ‘화를 안 내야지’ 하지만 경계에 부딪혀 보면 화가 확 나버리잖아요. 그러니 매일 매일 점검을 하면서 연습을 해야 해요. 이것이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 정진을 하는 천일결사 정진입니다.nbspnbsp그리고 우리는 늘 남에게 도움을 얻는 쪽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만 하루에 1000원이라도 남을 위해 베푸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우리는 남이 나에게 뭔가 해주기를 바래요. 내가 남을 위해서 서비스를 할 생각을 잘 안 해요. 우리는 자신의 작은 재능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 그 대가를 돈으로 계산해서 받으려고 하거나 감사 인사라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어요. 재능을 파는 데에 너무 익숙해 있어요. 그래서 내가 내 자식을 키우듯이 이 세상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나의 재능을 값으로 계산하지 않고 쓰는 것을 봉사라고 해요.nbspnbsp이렇게 정토회는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수행과 이웃에 도움이 되는 보시와 봉사, 이 세가지가 활동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런 과정을 마쳐야 졸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졸업을 하게 된다는 것은 수행자로 거듭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nbspnbspnbsp원래는 오계를 받게 되면 수행자가 됩니다. 그러나 현재 불교계에서 오계가 너무 남발되고 있기 때문에 정토회에서는 승가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발심행자 신청서를 제출해서 정회원이 되도록 하는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정회원과 일반회원의 차이는 정회원부터는 수행자로서의 입장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합니다. 정회원이 아닌 사람은 그냥 신자로서 정토회에 다닐 수 있게 열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불교대학을 졸업했으니까 경전반을 다니는 중에 발심행자 신청서를 제출해서 정회원이 꼭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축하드립니다.”nbsp수계식과 졸업식을 합쳐서 무려 4시간이 넘도록 법문을 해주신 스님에게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사홍 서원을 끝으로 오후 2시 30분이 다 되어 수계식과 졸업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한국에서는 2500명이 동시에 수계를 받는데 오늘은 25명이 수계를 받음에도 한국 보다 시간이 더 걸린 것 같습니다. 스님은 인원의 많고 적음에 관계 없이 한명 한명에게 정성을 다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nbspnbsp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수계 대중들은 환한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수행자로 새로 태어난 날이니까요.nbspnbspnbsp올해도nbsp시드니에서는 불교대학 21명 경전반 8명이 입학해 수업을 듣고 있고, 멜버른에서는 불교대학 7명, 경전반 6명이 입학해 수업을 듣고 있어서 내년에도 40여명이 넘는 대중들이 졸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nbsp나날이 발전하는 호주 시드니정토회의 모습이 느껴져서 참 좋았습니다.nbspnbsp스님은 졸업식을 마친 후 길가에 세워진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 40여분 남짓한 시간 동안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시드니 즉문즉설 강연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명쾌한 강의를 통해 마음이 작용하는 이치와 불교에 대해 쉽고 체계적으로 배워보세요. 2015년 정토불교대학 가을 학기가 전국 114개 지역과 해외 33개 지역에서 동시 개강합니다.nbsp nbsp nbsp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는 분들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2015.8.29 필리핀 마닐라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필리핀 마닐라 정토법당의 이전 개원 기념으로 현지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하였습니다.nbspnbsp새벽 4시에 법당에 내려와 공동체 대중들 보다 일찍 기도를 마친 스님은 새벽 예불을 마친 후 곧바로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아침 8시 1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4시간을 비행하여 필리핀 현지 시간으로 11시 10분에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도 서울에서 들고 온 각종 보고서와 서류들을 읽고 점검하며 계속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 비행기 안nbsp공항에서 수하물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필리핀정토회 이원주 대표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공항에서 이원주 대표님 댁으로 이동하는 중에는 회장님이 최근 남북 간 긴장 국면에 대해 걱정을 내비쳤고 스님은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어떻게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 공항 마중을 나온 필리핀정토회 이원주 대표님nbspnbsp이 대표님 댁에 도착하자 대표님 부부는 정성껏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보살님이 정성껏 차려준 점심 식사를 감사히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늘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마닐라 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마닐라 정토법당이 위치한 nbspMAKATI CITYnbsp마닐라 정토법당은 지난 7월 19일에 개원하여 아직 개원한지 한달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즉문즉설 강연은 외부의 공공 장소를 빌려서 진행해 왔으나 이번에는 새롭게 개원한 기념으로 법당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 7월19일 개원한 필리핀 마닐라 정토법당nbsp강연 시간 보다 1시간 일찍 마닐라 정토법당에 도착한 스님은 먼저 공양간, 접견실, 사무실, 소강당 필리핀JTS 사무실 등 법당 구석 구석을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nbsp특히 필리핀정토회 회원들은 민다나오에서의 JTS 구호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고, 또 필리핀은 자연 재난이 빈번한 지역이여서 긴급 구호 활동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법당의 한쪽 편은 JTS 강당과 사무실이 넓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텅 비어 있었지만 앞으로 이곳 마닐라 교민들을 중심으로 JTS의 구호 사업이 더욱더 활성화 되겠구나 싶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이곳 필리핀 한인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해오신 지역 인사 분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과 최근 필리핀 한인 사회의 모습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후 4시가 되어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 JTS 사무실에서 마닐라 한인 사회 지역 인사 분들과 함께nbspnbsp준비된 의자에는 대중들 모두가 빈자리 없이 가득찼고 자리가 부족해지자 법당 왼쪽 방에서는 TV로 법문을 들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nbspnbsp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나간 후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이 나왔습니다. 먼저 개원을 한 것에 대해 축하 말씀을 한 후 우리들의 행복이 지속가능해지려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애기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저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특별한 주제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인생은 자기가 좋을 대로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누구에게 간섭 받을 것도 없고 간섭할 것도 없어요. 다만 몇 가지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데 그것은 내 마음대로 살 자유는 있는데 그렇다고 남을 해칠 자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남을 해치게 되면 반드시 과보가 따르게 됩니다. 과보가 따른다는 것은 그 자유가 지속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이익이 되고 남에게도 이익이 될 때만 그 이익이 지속적으로 보장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은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복을 주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몇 가지 원칙만 지킨다면 본인 마음껏 살아도 좋고, 가능하면 남에게도 간섭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고 살고, 또 남의 인생에 간섭을 너무 많이 해요. 그래서 동물보다도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어리석음이 모든 고뇌의 원인이 됩니다.nbspnbsp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의 이런 고뇌를 이야기해 보세요.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고뇌를 이야기하면 그 원인을 함께 찾아가 보자는 것입니다. ‘어떤 원인으로 이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이렇게 대화를 해보는 것입니다. 자, 누구든지 손들고 이야기해 보세요.”nbsp누구든지 손을 들고 이야기해 보라는 말씀에 여기 저기서 손을 들었습니다.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밤마다 잠을 잘 자지 못해서 고민인 여성분, 감정을 억제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공부를 해야 하는데 여자친구가 계속 신경이 쓰여서 고민인 고등학생, 강박증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묻는 여학생, 죽기 전에 통일 한국을 한번 보고 죽을 수 있겠는지, 지금 한반도의 정세는 어떻게 흘러가게 될는지 묻는 할아버지, 결혼한지 20년이 넘었지만 아내의 역할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주부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은 정성껏 답변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 중에서 아이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하고 남편은 강아지를 싫어해서 그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어머니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 합니다. 자녀 교육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엄마가 어떤 원칙과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남편은 강아지를 무척 싫어하는데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다 보니까 남편을 설득해서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어요. 그런데 막상 키우고 나니까 집안에 개 냄새가 나서 남편은 본인이 허락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불만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빠의 눈치를 살피면서 강아지를 키워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고요. 남편 입장에서는 ‘아빠가 중요하니? 강아지가 중요하니?’ 하면서 본인이 허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아지를 다른 곳으로 빨리 보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저 보고는 ‘처음부터 아이들을 설득해서 강아지를 못 키우도록 했어야 한다’고 질책합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해야 될지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nbspnbsp“우선 질문자에게 먼저 물어볼게요. 강아지가 중요해요? 남편이 중요해요?” nbsp“물론 남편이 중요하죠. 그러나 저에게는 남편도 중요하고 아이들도 중요합니다. 저희 아이는 수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예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강아지에 대해서 책도 보고 공부도 많이 하거든요. 가능하면 아이가 강아지를 키울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아이들도 많은 노력 끝에 아빠를 설득했는데 아빠가 다시 변덕을 부리고 있어서 저도 무척 곤란한 상황입니다.”nbspnbsp“만약에 남편이 뱀을 너무 좋아해서 비단뱀 한 마리를 침실에 가져다 놓고 생활한다면 질문자는 어떨 것 같아요? 아무리 자기가 허락을 했다고 하더라도 뱀을 볼 때 마다 계속 문제 제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처음에는 반대를 하다가 남편이 너무나 원하니까 허락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기는 뱀을 볼 때 마다 ‘안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요? 매일 뱀을 보게 되면 어떨까요?”nbspnbsp“싫겠죠.”nbsp“그러니 질문자의 생각이 잘못된 거예요. 나는 강아지를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남편은 내가 뱀을 보는 것 이상으로 강아지가 싫은 거예요. 내가 강아지를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들도 다 강아지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아이가 자기가 좋으니까 아빠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원하니까 그래서 허락까지 해주었는데도 ‘강아지가 중요하냐? 내가 중요하냐?’ 고 다시 문제 제기를 할 정도라는 것은 질문자가 뱀을 싫어하는 정도로 남편도 개에게 도저히 적응을 못해서 그러는 겁니다. 아내가 볼 때는 ‘그게 뭐가 문제냐?’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남편은 그 냄새며 그 털이며 남편은 너무 너무 견디기 힘든 겁니다.nbspnbsp숫제 뱀은 오히려 강아지보다 훨씬 깨끗합니다. 강아지는 발에 흙 묻혀서 돌아다니고 털 떨어뜨리고 냄새도 나잖아요. 그러나 뱀 가죽은 만져보면 자기 살결 보다도 더 부드럽습니다. 이렇게 따지면 뱀이 훨씬 더 방에서 키우는 데 문제가 없지만 이것을 아무리 설명한다고 해서 상대가 납득이 됩니까? 안 되겠지요. 물론 설득이 되어서 처음에는 적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뱀을 보기만 해도 까무라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서로 다릅니다. 자기가 개를 좋아한다고 개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을 동물을 애호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 안 됩니다.nbspnbspnbspLA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떤 집에 냄새가 많이 난다고 이웃집에서 항의를 해서 경찰이 들어가봤더니 고양이 300마리를 키우는 집이 있었다고 해요. 이런 사람들은 인간이 애완용 동물을 길에 버리는 것을 엄청나게 비인간적이라고 주장하는데, 반면에 아프리카나 인도에서 어린 아이가 태어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왜 사람이 죽는 것은 외면하느냐?’ 라고 물으면 ‘부처님은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고 했는데 왜 사람과 동물을 차별하느냐?’ 고 되묻습니다. 그렇게 자기 취향이 옳다고 방어를 하는 것이죠.nbspnbsp남편이 개를 싫어하는 것은 어릴 때 받은 어떤 상처가 그 원인일 수 있어요. 어릴 때 개한테 물렸다든지 개가 짓는 것에 크게 놀랐다든지 뭔가 상처가 되는 경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개가 집 안에 있는 것이 너무 너무 싫은 거예요. 그렇다면 아무리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더라도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예요? 우선 남편 아니겠어요? 그런 남편이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하잖아요.nbspnbspnbsp남편은 사는 것이 힘들어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고, 아이는 자기의 기호를 갖고 지금 말하는 거잖아요. 아이의 기호 문제는 엄마가 조정해 주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집을 이사를 가서 개가 아이들 방에만 있게 하고 그 외에는 아예 출입을 못하도록 해주든지 조치를 취해 주어야 하지요.nbspnbsp질문자는 자신이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니고 중립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남편은 아이들이 예쁘지 않아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일까요? 본인은 싫지만 사랑하는 아이들이 간절히 원하니까 허락은 한 겁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아이들과 얘기를 해서 ‘우리는 좋지만 아빠는 너무 힘들어하니까 우리가 조정하자’ 이렇게 얘기해야지 ‘아빠가 좀 참으면 되지. 너무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고 한다. 권위주의적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가족 공동체에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예요.nbspnbsp반대로 남편이 개를 좋아하고 아이가 개를 너무 무서워하고 죽도록 싫어한다면 이 때는 아이가 못 견뎌 하는 것을 더 우선시 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우선시 하는 것이 아니고 싫어하는 것을 더 우선시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섯 명이 한 집에 사는데 네 명은 개고기를 좋아하지만 한 명은 개고기를 죽기보다 싫어한다면 네 명이 양보해야 합니다. 싫어하는 사람의 기준에 더 맞춰주어야 합니다. 질문자가 이런 원칙이 딱 안 잡혀 있어서 생긴 문제입니다.nbspnbspnbsp아이가 개를 좋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수의사 하는 것과 개를 좋아하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어요? 그렇게 개를 좋아하면 수의사가 되면 배를 가르고 해부도 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nbspnbsp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싫어하는 것과 같이 사는 것도 괴로움인데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고통보다 싫어하는 것과 같이 사는 것이 더 큰 고통이예요. 좋아하는 개와 같이 살지 못하는 아이의 고통과 싫어하는 개와 한 집에 살아야 하는 남편의 고통 둘 중에 남편의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질문자가 이해하셔야 해요. 남편에게 참으라고 하면 남편은 참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하면 남편이 행복하지가 않아요. 집에 들어오면 냄새가 나서 남편이 자꾸 짜증을 내면 집안 분위기가 안 좋죠. 제가 보기에는 아내가 조정을 해주는 것이 좋겠어요. 질문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nbspnbsp“사실 남편이 집에 들어올 때 쯤 되면 개를 치워서 안 보도록 하고 있어요. 그러나 냄새가 좀 나니까 개가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죠.”nbspnbsp“질문자가 아이들의 가정 교육을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아빠를 존경하지 않게 됩니다. 아빠와 아이가 상출될 때는 항항 엄마가 남편의 뜻을 존중해줘야 아이들이 아빠를 미워하지 않게 돼요. 엄마가 아이들 편을 들어주면 아이들이 자기가 옳고 아빠는 틀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와 엄마가 견해 차이가 있을 때 아이의 견해에 편을 들어주면 엄마가 틀렸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엄마 편을 들어주는 것이 맞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꾸 자녀를 우선시 하는데 자녀를 우선시 하기 때문에 대부분 자녀 교육에 실패하게 됩니다.nbspnbsp아이들이 아빠와 정서적인 유대감이 약한 이유는 아빠들이 잘못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엄마가 아빠와 갈등이 있기 때문에 엄마로 인해서 아이들은 대부분 아빠를 정서적으로 싫어하게 됩니다. 엄마와 아빠가 싸워서 엄마가 울고 있으면 당연히 누가 미워집니까? 아빠가 미워지겠죠. 둘 중에 누가 잘했는지 아이는 모르잖아요. 무조건 아빠가 나쁜 사람처럼 인식이 되는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질문자의 그런 태도가 벌써 아이들에게는 나쁜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를 자기 편으로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러나 아이를 자기 편 만들어서 뭐할 건 데요? 이혼할 때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nbspnbspnbsp그래서 남편이 많이 싫어하면 자기가 딱 나서서 아이를 설득하고 정리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 때도 ‘아빠가 싫어하니까 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면 아빠와 아이의 사이가 더 나빠집니다.nbsp뱀을 방 안에 두고 남편이 올 때는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고 가면 또 내어놓고 하면서 ‘눈에 안 보이잖아’ 한다고 견뎌집니까? 안 되지요. 제일 좋은 방법은 단독 주택 같은 곳으로 이사를 가서 개집을 따로 만들어주든지 아이의 방을 움막처럼 따로 지어주어서 개와 같이 지내게 해주는 겁니다.nbspnbsp자녀 교육을 할 때는 질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만약에 응접실과 방 하나만 있는 좁은 집에 살아야 한다면 누가 방에 자야 될까요? 부부가 방에서 자고 아이를 응접실에서 재워야 아이가 나중에 커서 효자가 됩니다. 그런데 아이를 방에 재우고 부부가 응접실에서 자면 아이들은 다 불효자가 돼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자녀를 사랑하지만 결과적으로 자녀를 버리고 있다는 걸 잘 모르지요? 쥐가 배가 고파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데 그 속에 쥐약이 들어있는 것처럼 여러분들은 아이를 잘 키운다고 키웠는데 결과는 나빠집니다. 왜냐하면 이치에 맞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nbspnbsp지금 질문자가 말하는 태도를 보면 100 아이 편이 되어 있고, 남편에게는 ‘자기가 허락을 해놓고 그것도 못 참느냐’ 이런 마음이 질문 속에 다 포함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남편이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면 그렇게 싫어하는 것을 허락했을까 싶거든요. 허락을 해놓고 책임을 못 진다가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하니까 허락을 해준 겁니다. 그러나 허락은 했지만 살아보니까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이죠.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한테는 화를 못 내고 마누라한테 ‘네가 대신 좀 나서서 해결해주라’ 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질문자가 좀 해결해줘야지요.”nbsp“엄청 큰 고민이였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끔히 정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강아지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하는데 아이가 슬퍼서 눈물을 글썽글썽 할 것 같아서요. 어떻게 하면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게 순조롭게 할 수 있을까요?” nbspnbsp“원칙이 정해지면 방법은 부차적인 거예요. 아이의 상태와 현실을 고려해서 그에 맞게 정리를 해나가면 됩니다. 아이가 운다고 또 난리를 피우면 안 돼요. 부모와 헤어져도 살고 자식과 사별하고도 사는데 강아지와 헤어졌다고 죽을 지경이 되겠어요? 그러나 아이들의 심리는 어른이 보는 것과 달라요. 부모의 정은 위에서 내려오는 정이지만 강아지에 대한 정은 아래로 주는 정이거든요. 아이들에게는 강아지가 자기 자식 같은 존재인 겁니다. 그 불쌍한 것을 버렸다고 하면서 아이들은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까 대화가 필요합니다. 초등학생이라면 조금 더 아이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고, 중학생 정도가 되면 대화를 할 수 있겠죠.nbspnbspnbsp핵심은 질문자가 지금 원칙 없이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원칙이 정해지면 방법은 현실에 맞게 정하면 됩니다. 단기간에 정리하기 어렵다면 남편에게 양해를 구해서 ‘시간을 주시면 제가 그 사이에 조정을 하겠습니다’ 라고 하고, 아이에게도 ‘너가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너 같지가 않다. 아빠는 어릴 때 받은 강아지에 대한 상처가 있기 때문에 같이 생활하는 것을 힘들어 하신다. 그러니 우리 쪽에서 조금 조정을 하자. 대신 가끔 강아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해줄게’ 이렇게 지혜롭게 방안을 마련하면 됩니다. 이 때 원칙이 먼저 딱 서야지 그렇지 않고 중간에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면 아이로 하여금 ‘아빠는 자기 마음대로 한다’고 하는 나쁜 이미지를 갖게 합니다.”nbsp“명쾌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nbsp근심이 가득하던 질문자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는 순간이였습니다. 질문자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확실하게 이해했다는 듯 바로 자리에 앉았습니다.nbspnbsp청중들도 스님의 지혜로운 답변과 질문자의 밝아진 표정을 보며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해야 아이를 바르게 키울 수 있는지를 강조하며 한 번 더 답변을 갈무리하였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좋아요. 그러나 아이를 왕으로 모시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자식한테 종노릇을 해야 됩니다. 자식을 낳으면 스무살 때까지는 키워야 할 책임이 있어요. 그러나 스무살이 넘으면 정을 딱 끊어줘야 합니다. 자연의 법칙에 맞게 키워야 돼요. 그래야 아이는 자립을 하고 여러분들은 자녀의 무거운 짐을 덜 수가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끈끈하게 엮이면 여러분들은 죽을 때까지 무거운 짐을 지어야 하고, 자식은 죽을 때까지 자립도 못 하고 부모의 간섭을 받아야 됩니다.”nbspnbsp스님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습니다. 자녁 교육에 대해 말씀을 하실 땐 자주 그런 것 같습니다. 부모들의 욕심과 집착이 자녀들의 인생을 망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일 것입니다.nbspnbsp오늘 마닐라 강연에는 자녀들의 교육 문제에 관심이 높은 40대 50대의 교민 분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스님의 답변이 무척 좋았나 봅니다. 2시간 30분 동안 강연이 진행되었지만 중간에 자리를 비우는 사람 없이 끝까지 집중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강연이 끝나자 소중한 가르침을 들려준 스님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정토회 동아시아 지구장 한금화 보살님이 앞으로 나와서 새롭게 개원한 법당을 찾아와 준 대중들에게 감사 인사와 더불어 몇가지 공지사항과 오늘 강연이 있기까지 수고해 준 봉사자들의 노고와 보시물을 알려주었습니다. 또 마닐라 정토법당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와 일요일 오전 10시에 정기 수행법회가 열리고 있는데, 오늘 강연을 들은 대중들 모두 일상적으로도 이곳 법당에서 스님 법문을 자주 듣고 마음 공부를 함께 해나가자고 제안해 주었습니다.nbspnbsp▲ 정토회 동아시아 지구장 한금화님nbspnbsp이어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 책을 쉽게 구하기 힘든 해외여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스님 책을 구입하고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스님은 직접 책에 사인을 해주면서 교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았고,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는 요청에도 흔쾌히 응해 주면서 “힘내세요” 라며 교민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듣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 세부에서 온 정토불교대학 학생들nbsp강연을 듣기 위해 찾아온 교민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 오늘 강연 준비를 위해 곳곳에서 수고한 봉사자들과 정토회 회원들은 국수를 맛있게 먹으며 “수고많았다” 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해외에서 살다보면 한국에서 살 때와는 달리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이 많은데 이곳 마닐라 정토법당이 그런 어려움들을 해결해나가는 소중한 역할들을 해나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은 후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화이팅”을 외치는 모습 속에서 밝고 활기찬 기운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함께 준비한 필리핀정토회 회원들nbsp이어서 “마닐라 법당에 청년정토회가 생겼다”고 하면서 청년들끼리 함께 모여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법당에서 수행 법회를 함께 들으면서 민다나오 JTS 사업장에 가서 봉사활동도 하고 긴급구호 활동도 해보는 경험들을 쌓아나간다면 아주 멋진 필리핀 청년정토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nbsp▲ 마닐라정토법당의 청년정토회 멤버들nbsp마지막으로 필리핀정토회 회원들과 한번 더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눈 스님은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마닐라 공항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밤새 시드니로 향해 날아갈 비행기nbsp밤 10시 10분에 마닐라를 출발한 비행기는 밤새 8시간 30분을 비행하여 현지 시간으로 내일 아침 8시 45분에 시드니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내일 시드니에서는 오전에 정토불교대학 수계식과 졸업식이 있고, 오후에는 호주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nbsp nbspnbsp
2015.8.23 서원행자대회 2일째 및 행자대학원 7기 졸업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서원행자대회를 마치며 회향 법문을 한 후 저녁에는 행자대학원 7기 수료생들을 위해 졸업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 스님은 서원행자대회에 참석한 300여명의 대중들과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기도 후에는 어제에 이어서 행정처 상반기 사업보고 및 하반기 사업계획과 예산에 대한 발표, 전국 대의원 회의의 결정 사항에 대한 발표 등이 이어졌습니다. 서원행자들은 정토회의 사업 전반에 대해 자세히 보고 받고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하고, 건의사항이 있으면 마음껏 의견을 내어 놓기도 했습니다.nbspnbsp▲ 서원행자대회nbsp보고회 이후에는 모둠별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둠별로 ‘불교대학 활성화 방안’, ‘경전반 활성화 방안’, ‘수행법회 활성화 방안’, ‘정회원들의 봉사 일감 마련’, ‘청년 불교대학 활성화 방안’, ‘공동체 기획법회 열기 실천과제 달성 방안’ 등 각각의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한 후 다시 한자리에 모여 토론 결과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 모둠별 토론 및 발표 시간nbspnbsp▲ 점심 식사는 각자 집에서 싸온 밑반찬과 수련원에서 만들어 준 밥과 국으로 먹었습니다.nbspnbsp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쏟아졌고, 스님은 각각의 발표 내용을 경청하면서 들었던 스님의 지혜를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 특히 불교대학 활성화 방안과 관련해서는 어제에 이어서 더욱 핵심적인 방안들을 많이 이야기해 주셔서 앞으로 불교대학 운영 개선안을 마련하는데 큰 귀감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nbsp상임위원회에서는 한달 동안 연구 조사 작업을 펼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전국 대의원 회의에서 한 차례 토론이 이뤄지고, 또 그 결과를 토대로 서원행자들이 모둠별로 다시 아이디어를 모아내고, 다시 그 결과를 공유해서 스님께서 또 지혜를 보태어 주시니 그동안 무엇이 문제인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던 것들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과제도 아주 선명해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대중의 지혜를 모아나가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진 3분 스피치 시간에는 다양한 건의 사항들을 마음껏 이야기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업무에 빠지다 보면 수행을 놓치기 쉬운데 그럴 때마다 서원행자들은 깨달음의장 돕는이를 꼭 해보면 좋겠다고 추천하는 분, 소통 수단으로 카카오톡에 너무 의존하는 문화를 한번 살펴봐야 하지는 않는지 환기를 시켜주신 분, 통합 전산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는데 무작정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고 요구만 하지 말고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산출할 수 있도록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달라고 호소하는 분, 가을 불교대학 입학 신청 마감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더욱 분발해서 많은 사람들이 불교대학을 듣게 하자는 분 등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되고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 3분 스피치 시간nbsp긴 시간 동안의 토론과 공유의 시간을 마치고 오후 4시부터 서원행자대회 회향식이 열렸습니다. 회향 법문에서 스님은 먼저 8월 27일에는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선언 기자회견이 있다고 알려주면서 이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다함께 정성을 모아 보자고 당부했습니다.nbspnbsp“8월 27일에는 5대 종교의 지도자들 600여명이 서명을 해서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nbspnbsp대한민국 정부가 통일에 대해서 전향적인 정책을 취해라. 그것은 새삼스러운 길이 아니고 박정희 대통령이 7.4 공동성명에서 이미 길을 열었고,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 기본합의서에 이미 합의를 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6.15 선언에서 이미 표명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10.4 선언에서 이미 표명한 옛길이다, 새로운 길이 아니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도 헌법 정신에 입각해 지난 역사에서 선배들이 갔던 그 길을 따라서 통일 정책을 전향적으로 추진해라. 그리고 국민 여러분들도 이제 우리의 모든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통일 밖에 없음을 각성하고 통일의 길에 앞장서야 한다, 우리 종교인들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못 살았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살 것이다, nbspnbspnbsp이렇게 성명서를 오전에 발표하고, 오후 4시에는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를 시작하게 됩니다. 9월6일에는 통일의병 발대식을 하게 되고 이어서 평화재단에서 주최한 전국 통일 강연이 진행되고, 청년포럼에서 진행하는 청춘콘서트도 시작합니다.nbspnbsp그래서 이 민족적 위기를 극복해 보고자 합니다. 늘 초조불안 속에서 강대국의 하위 변수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체적으로 주어진 조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종속 변수가 아닌 상수로서의 역할을 하는 그런 국가를 만들고 그런 국민이 되어보자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 1000일 동안 기도를 하려고 합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온 정성을 쏟아서 그 길로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는 의미합니다. 저도 다른 종교인들, 사회 인사들과 함께 캠페인을 벌이고 활동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정성껏 기도하면서 뜻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이어서 부처님은 사회적인 저항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그 사례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부처님은 사회적인 저항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에 대한 여러 사례가 있는 중에 이런 사례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 부처님과 아난 존자와 제자들이 갔는데 처음에는 환영을 받았는데 조금 있으니까 걸식을 해도 아무런 공양을 주지 않고 법문을 들으러 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왕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지 마라. 법문도 들으러 가지 마라’ 이렇게 국민들에게 지시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난 존자가 상심을 해서 부처님께 물었습니다.nbspnbsp“부처님, 다른 나라로 갑시다. 다른 나라에는 부처님을 환영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요.”“네가 말한 대로 다른 나라로 갔는데 그 사람들도 만약 환영을 하지 않으면 어떡할래?”nbsp“그럼 또 다른 나라로 가죠. 뭐”nbsp“그런데 그 사람들도 만약 환영을 하지 않으면 어떡할래?”“그럼 또 다른 나라로 가죠. 뭐”nbspnbsp그러자 부처님께서 말했습니다.nbspnbsp“네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렇게 쫓겨 다니니?”nbspnbspnbsp이 모습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그런 현실은 받아들이되 거기에 구애를 받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런 것은 그들의 사정이고, 나는 공양을 안 주면 안 먹고 살고, 법문을 들으러 오지 않으면 법문을 안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그 경계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nbspnbsp오늘 우리는 우리가 가는 길이 바르다면 여러 가지 역풍이 불 수도 있고 비난이 따를 수도 있지만 그냥 묵묵히 갈 뿐입니다. 불교대학생이 많이 입학하면 많이 입학한 대로 좋고, 적게 입학하면 적게 입학한 대로 좋습니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활동을 하는데 그래서 국민들이 호응하면 좋지만 설사 비난이 따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묵묵히 갈 뿐입니다.”nbspnbsp부처님이 걸어가셨던 그 당당한 위용이 오롯이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우리들이 기준으로 삼아야 할 표본으로 부처님의 사례를 상기키셔 준 것입니다.nbspnbsp그리고 마지막으로 얼마 전 은사 스님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을 친견하면서 있었던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몇 일 전에 불심 도문 큰스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우리가 민족의 통일을 위한 활동을 하려고 하는데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은 제가 하고 사람의 힘으로 하지 못하는 것은 큰스님께서 불보살과 천지 신명의 가피를 좀 모아주십사 부탁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이런 저런 우려점들을 말씀드렸더니 웃으면서 그러셨어요.nbsp“바람이 불지 않기를 원하는구나...”nbspnbspnbsp‘바람은 마땅히 부는 거야. 우려한다는 것은 바람이 안 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는 것 아니냐. 바람이란 건 본래 부는 거야. 또 바람이 불어야 곡식도 익고 시원해지고 잘 되는 거야’ 이런 말씀이죠. 바람이란 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죠. 때로는 우리가 태풍에 휩쓸려 피해를 입을 수도 있지만 또 태풍이 불어야 여러 환경적인 오염 물질들을 씻어낼 수 있습니다. 녹조니 적조니 난리인데 태풍이 한번 와야 해소가 됩니다. 한쪽에서는 태풍이 큰 재앙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태풍 만이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요인이예요.nbspnbsp그렇기 때문에 큰스님께서 ‘바람이 안 불기를 원하는 것 같은데’ 그러셨어요. 이것은 ‘바람이란 부는 거야. 마땅히 부는 줄 알고 해야 한다. 그러니 역풍에 대해서 너무 우려하지 마라.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역풍은 늘 있기 마련이다. 큰 뜻을 세웠으면 눈치 보지 말고 과감하게 밀어붙이지 뭘 그런 것 같고 걱정하느냐’ 하는 격려의 말씀이였고 또 지침이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오늘 이렇게 서원행자들이 모여서 큰 발원을 했으니까 이 나라에 대한 은혜를 갚는 평화와 통일의 기초를 마련하는 일을 앞으로 3년을 내다보고 차근 차근 밟아 나가고자 합니다. 그 가운데에 혹시 상충되는 것이 있다면 나라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우리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정토회의 전통적인 입장입니다. 그래서 우리 서원행자들이 딱 한 마음이 되어서 추진을 해나간다면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건투를 빕니다.”nbsp여러분들의 건투를 빈다는 스님의 말씀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민족의 평화와 통일은 이제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묵직한 무게감과 사명감이 함께 밀려왔습니다. 스님은 항상 우리들을 추종자가 아니라 주체자로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대중들은 긴 시간 동안 애정을 갖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 준 스님께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nbspnbspnbspnbsp이어서 사홍서원을 끝으로 서원행자대회를 모두 마친 후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사진 촬영을 마치고 대중들은 문경수련원에서 나눠주는 가래떡을 입에 물고 통일에 대한 큰 원을 가슴에 간직한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 아래로 내려갔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업무를 보다가 저녁 7시 30분부터는 대웅전으로 올라가 7기 행자대학원 졸업생들을 위해 졸업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현재 문경수련원에 상주하고 있는 모든 행자들이 함께 자리하고, 마침 서원행자대회에 참석한 법사단도 전원 참석해 어느 때보다 뜻깊은 행사가 되었습니다.nbspnbsp▲ 졸업식이 열린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nbsp행자대학원 7기는 2012년 9월에 8명이 입재하였고, 1학년 과정에서는 생태적인 삶과 공동체 운영이라는 학기 목표에 맞춰 봉화수련원에서 생태 주택을 지었으며, 2학년 과정에서는 NGO 활동을 통한 사회실천가로서의 지도력 함양을 목표로 서울에서 평화재단과 문화사업부, JTS, 에코붓다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사회운동 경험을 쌓았으며, 3학년 과정에서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를 위한 국제 구호 활동을 목표로 인도JTS에서 마을개발,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운영 파트에서 구호활동 경험을 쌓고 다시 문경수련원으로 돌아와 살림팀, 행자원, 불사팀에서 각각 근무하며 보살의 삶과 미래 문명에 대해 학습 했습니다.nbspnbsp3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8명에서 3명으로 줄긴 했지만, 그래서 그런지 끝까지 과정을 수료한 3명에게 대중들은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 행자대학원 7기 졸업생 민도연, 박연화, 정윤미 행자님nbsp이어서 3년 동안의 방대한 교육 과정을 원만히 마친 졸업생들을 위해 묘수 법사님의 축하 말씀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세 사람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면서 우리도 한번 새롭게 마음을 내고 조금 더 긴 호흡으로 공부해 나갈 것을 발심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보디사트바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정토 세상이 실현될 때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새로운 도반이 생기게 되어 감격스럽고 기쁩니다.”nbsp이어서 행자님들을 가까이에서 지도한 유수 스님의 인사 말씀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었고, 매일 매일 법륜 스님의 주옥같은 말씀이 계셔서 오늘의 졸업이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3년이라는 수많은 난관 끝에 오늘이기에 더욱 감동스럽고 기쁜 것 같습니다.”nbsp이어서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한 11기 행자대학원 후배님들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11기 행자님들은 대중가요인 ‘땡벌’을 개사해서 재미난 율동을 보여주어 대중들이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들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정토를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 업식을 넘어 정토가 부르면 무조건 달려갈거야 ♬’ nbspnbsp이어서 졸업생 3명을 대표해 박연화 행자님이 지난 3년간 수행을 지도해준 스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문경 수련원에서 꺾은 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행자님들의 정성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더욱 뜻깊게 느껴졌습니다. nbspnbspnbsp졸업생 3명과 더불어 함께 자리한 모든 행자님들이 청법가와 삼배로 스님께 법문을 청했고, 스님은 애정을 담아 소중한 법문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먼저 오늘 졸업을 하는 7기 행자대학원 박연화, 정윤미, 민도연 행자님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서 많은 행자님들이 함께 자리해주셔서 감사 말씀 드립니다.nbspnbspnbsp이제 여러분들은 행자대학원을 졸업하고 정토회의 일선 활동에 배치가 됩니다. 그것이 문경수련원이든 서울의 어느 파트이든 인도나 필리핀의 해외 활동이든 정토회에서 필요로 하는 곳에서 그 필요에 맞게 요구에 수순해서 활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활동을 할 때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가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이 과제로 주어질 것입니다.nbspnbsp그런데 정토회에서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내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이것이 먼저 방침이 서야 합니다. 사람은 어떻게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괴롭게 인생을 살 것인가, 행복하게 인생을 살 것인가. 내가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이것이 첫 번째 과제로 주어지게 됩니다.nbspnbsp모든 사람들이 다 당연히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러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현실을 보면 그 의도와 결과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보다 괴롭게 사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살고 싶은 건 아니였을 거예요. 처음에는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반대의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면 억울하고 분한 일이겠지만 누구도 괴롭게 살아라고 한 사람이 없는데도 그런 결과가 나왔습니다.nbspnbspnbsp왜 그럴까요? 이것이 전도몽상입니다. 순간 순간 내가 선택한 것이 내 본래 의도와는 다른 선택이 된 것입니다. 건강한 몸을 원한다면 건강해지도록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몸에 이로운 음식을 선택하지 않고 몸에 해로운 음식을 선택합니다. 몸에 이로울 만큼 먹지 않고 몸에 해로울 만큼 먹습니다. 몸에 이로울 때를 선택해서 먹지 않고 몸에 해로울 때를 선택해서 먹습니다. 먹고 싶다, 많이 먹고 싶다, 지금 먹고 싶다 하는 그 욕망에 사로잡혀서 결과는 그 정반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나의 무지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나의 책임입니다. 순간의 욕망에 사로잡혀서 이런 결과가 생긴 것입니다.nbspnbsp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요? 만약 괴로운 인생을 살 것이라면 성질대로 살아도 됩니다. 화내고 짜증내고 욕망을 쫓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고 주인으로 살고 싶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한다면 욕망을 쫓아서는 안 됩니다. 천하가 다 그렇게 살아도 나는 거기에 휩쓸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니까 그들을 비난할 필요도 없고 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야 합니다.nbsp▲ 스님의 법문을 경청하고 있는 행자대학원 7기 졸업생들nbsp어떤 선택을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수행자라고 할 때는 부처님께서 실제로 다 경험해 보시고 ‘이것은 아니다’ 하면서 ‘진정으로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은 그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라고 하신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너무 먼 얘기여서 잘 안 믿어지면 가까이에 있는 선배들로부터 확인해서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도 자기 경험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해보고 자각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nbspnbsp두 번째로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도 해치고 남도 해치는 인생은 괴로운 인생입니다.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거나 나를 위해 남을 손해 끼치는 인생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지속 가능한 삶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것이 지속가능하려면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 인생이면서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인생, 이것이 보살의 삶입니다.nbspnbsp이렇게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먼저 정해지면, 그 다음에 정토회를 한번 살펴보는 겁니다. 그랬더니 ‘바로 정토회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단체이구나. 이것이야말로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네’ 이렇게 해서 정토회를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정토회는 좋은 곳이라고 정해놓고 거기에 내 인생을 옭아매서는 안 됩니다.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먼저 딱 잡히고 그런 삶을 어디에서 살까 살펴보니 ‘정토회가 합당하네’ 이렇게 해서 정토회에 들어와야 하는 겁니다. 내가 정토회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의 길을 여기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으니까 내가 거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정토회의 주인이 됩니다. 혼자서 하려면 힘든 일인데 이미 사람들이 모여서 하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nbspnbspnbsp그렇지 않고 ‘내가 정토회를 위해서 헌신한다’ 고 생각하면 정토회에서 좀 살다가 인정을 안 해주고 고맙다고 안 해주면 섭섭해져서 마음이 틀어집니다. 그리고 막상 와서 있어보니까 ‘선배는 그렇게 안 사네. 말로는 해놓고 실제로는 그렇게 안 사네’ 한다면 속았다고 생각하고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주인이 되면 ‘너는 왜 그렇게 안 사니?’ 하면서 내가 현실을 고쳐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들이 많이 들어오면 올수록 정토회는 나날이 발전하게 되는 겁니다. 선배들이 좀 부족해도 후배들이 자꾸 자꾸 좋은 사람들이 들어오니까 똥차들은 밀려나가고 자꾸 자꾸 좋아지는 겁니다. 이런 관점이 딱 잡혀야 합니다.nbspnbsp이제 여러분들이 선택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주지 못합니다. 내가 생각해봐도 이 길이 옳으면 내가 선택해서 가는 것입니다. 나는 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느날 보니까 스님이 엉뚱한 길을 가려고 한다면 나는 스님을 제껴버리고 나는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스님한테 속았네’ 이렇게 생각하는 건 바보같은 짓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고 하신 겁니다. 법륜 스님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륜 스님이 말하는 그 법의 방향이 옳다면 나는 그 길을 가는 겁니다. 가다가 스님이 안 가면 ‘당신은 빠지시오’ 하고 나는 그 길을 계속 가는 겁니다. 이것이 안 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자꾸 미혹이 생기고, 속았다고 하는 사이비가 생겨나는 겁니다. 그러면 왜 속았을까요? 자기 속에 욕망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그런 미혹이 생기는 것입니다.nbspnbspnbsp이런 입장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직도 자꾸 껄떡거리는 것이 있고 미련이 남는다면,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하고 다시 기어오르기도 하면서 자꾸 실험을 해봐야 합니다. 이것을 선에서는 ‘보림’이라고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활동을 하면서 계속 수행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치를 더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치는 이것 한가지 밖에 없어요. 남은 것은 끊임없이 이 이치가 온전하게 나의 삶이 되도록 경험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되었다가 안 되었다가 하면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도록 해나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득이 되는 일을 해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을 마치고 세상을 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다 구해놓고 나를 완성하는 것도 아니고, 이 길에서 나도 완성하고 세상에도 득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께 가기 때문에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여러분들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nbsp이 방향성을 딱 잡은 것이 가장 큰 졸업 선물입니다. 이 방향 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계속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연습을 하는 장소는 어느 곳이든 상관 없어요. 농사 짓는 일이 주어지면 농사 짓는 것으로 연습하고, 혼자 있으라고 하면 혼자 있으면서 외로움을 극복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으라고 하면 갈등 극복을 연습하고, 서울에서 술집들이 즐비한 곳에서 일하라고 하면 욕망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하고, 이렇게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연습을 하면 됩니다.nbspnbsp그런데 마음과 생각이 이것 하라고 하면 저것 하고 싶고, 일찍 일어나라고 하니까 늦게 일어나고 싶고, 이렇게 계속 부정적 반응이 일어나니까 피곤해지는 겁니다. 피곤하니까 애궂은 밥만 많이 먹게 되는 것입니다. nbspnbspnbsp그래서 툭 놓아 버려야 합니다. 피곤해도 일어나고, 1시간만 자고도 일어나고, 그러면서 ‘아, 몸이란 건 이런 성질도 있네’ 하면서 공부를 해가는 겁니다. 이렇게 경험을 해나가면 밥을 좀 못 먹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고, 하루 쯤 못 자도 불평이나 두려움은 없어지고, 1시간 밖에 못 자도 견딜 수 있고, 이렇게 몸이란 것은 적응을 하게 되어 있으므로 이것으로 인해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습하는 겁니다.”nbsp이제 방향성을 잡았으니 앞으로는 연습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말씀에 모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또한 졸업생들은 스님의 법문을 화두로 삼아서 다시 출발하는 마음이 될 것을 다짐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졸업생 3명에게 그동안 수행하면서 들었던 의문에 대해 스님께 질문할 수 있는 즉문즉설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한 분은 대중생활을 하다보니 사람을 못 믿는 면이 있다는 것이 살펴졌다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물었고, 한 분은 항상 명확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면이 많은 점을 어떻게 해결할지 물었고, 한 분은 성격이 급하고 일이 뜻대로 안될 때 화가 많이 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다시 참석한 행자님들 전체에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한 행자님은 뉴스를 보니까 지금 남한 정부는 북한이 붕괴되기를 기다리면서 흡수 통일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스님은 어떻게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각각의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법회는 밤 10시가 넘어서 끝났습니다. 행자님들은 늦은 시간까지 소중한 가르침을 준 스님께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다음은 스님으로부터 졸업장 수여가 있었습니다. 한명씩 앞으로 나와 졸업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지난 3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지 졸업생들은 눈시울을 붉혔고, 졸업장을 받기 위해 한명 한명 호명되어 앞으로 나올 때마다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7기 졸업생들이 지난 3년 동안 수행 정진할 수 있도록 해준 대중들의 보살핌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사를 올린 후 사홍서원을 끝으로 졸업식을 마쳤습니다.nbspnbsp스님은 졸업생들과 행자님들 전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이어서 졸업생들 한명 한명과도 개별적으로 기념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졸업식을 모두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이동해 밤 12시가 다 되어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내일 스님은 아침 비행기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항일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신한촌을 방문한 후 26일에 귀국할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명쾌한 강의를 통해 마음이 작용하는 이치와 불교에 대해 쉽고 체계적으로 배워보세요. 2015년 정토불교대학 가을 학기가 전국 114개 지역과 해외 33개 지역에서 동시 개강합니다.nbsp nbsp nbsp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는 분들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2015.8.16 8차 천일결사 6차 백일기도 입재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실현하고자 큰 서원을 세우고 시작한 만일결사 중 제8차 천일결사 5차 백일기도 회향식 및 6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입재식에 참가한 대중들을 위해 새로운 백일을 맞이하는 마음 자세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입추가 지나 더위가 한 풀 꺾인 가운데 전국 각지에서 모인 정토행자들이 알알이 여무는 곡식처럼 김천 실내체육관을 가득 채웠습니다.nbspnbspnbsp회향식은 예불과 반야심경에 이어서 사회자 김병조님과 힘찬 파이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정토회 대표 이기혜님의 인사 후 호주와 뉴욕에서 오신 행자님과 전국 각 지역 정토회 및 청년대학생, 교사정토회, 길벗, 공동체, 상근 및 자원활동가 등 총 4,001명의 소개와 인사가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일어나 환하게 웃으시며 따뜻한 눈길로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백일출가 25기생들의 합창 공연이 있었습니다. ‘슈퍼스타’와 ‘여름’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모두 즐거웠습니다. 밝은 표정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준 백일출가생들에게 환호와 힘찬 박수를 보냈습니다. 백가지 기교보다 한 가지 순수함이 더 낫다는 말이 와 닿는 무대였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백일간의 발자취’ 영상을 통해 통일 역사기행, 부처님 오신 날, 명상수련 및 바라지, 불교대학경전반 졸업식 및 수계식, 불사 신규 법당 소개, 통일 의병학교,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 등 수행, 보시, 봉사로 백일을 채워온 정토행자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백일 동안의 활동 모습을 모아보니 시간을 정말 알차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하고 뿌듯한 마음이었습니다.nbspnbspnbsp그 후 85차 실천과제 발표가 있었는데, 법당 과제인 ‘총3회 이상 모둠 법회 열기’는 62가 달성했고, 개인과제 ‘통일 활동 3회 이상 참여하기’는 25가 달성하여 개개인의 과제는 아직 달성률이 낮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다음은 정토세상 만들기를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행 정진해 오신 분들의 수행담을 들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세 분의 발표가 있었는데 정토회 행사에 처음 참석했을 때의 느낌에 공감하며 웃기도 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정진해가고 있다는데 모두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보내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3,000배 정진은 불가능 할 것 같았지만 절하다 죽는 사람 못 봤다는 말씀은 진리였습니다. 무릎 통증이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실상보다 더 큰 통증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육체적 통증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으나 불대 담당을 맡으면서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입학해 심리적 불안감이 증폭되었습니다.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법당에서 새벽 정진을 결심하였습니다. 법당 새벽정진의 백일 서원이 이루어지던 날 눈물이 펑펑 쏟아지며 그냥 하면 된다는 스님 말씀이 온 몸과 마음으로 체득되었습니다. ‘노력은 적게 하면서 얻는 것은 많기를 바랐으니 잘 될 턱이 없었구나’, ‘불대 봉사를 한다고 했는데 내가 오히려 배우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잘하겠다는 부담이 줄었습니다. 법당 새벽 정진을 시작한지 1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불대생들을 귀한 인연으로 여기고 불법 깨닫고 끝까지 배우도록 도와주겠다는 굳건한 원이 생겼습니다.” nbsp nbsp여수정토회 이미순님nbspnbsp“인터넷에서 스님 즉문즉설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서점에서 ‘답답하면 물어라’는 책을 보고 법당에 찾아갔습니다. 천일결사 입재식에 같이 가자고 했지만 진짜 가기 싫었습니다. 워낙 간곡한 말씀에 참석은 했지만 이건 더 가관이었습니다. 넓은 체육관에 뭔가 상기된 표정의 사람들. ‘이건 사이비다’ 싶었지만 나만 정신 똑바로 차리면 된다 생각했습니다. nbsp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보자. 사람들이 왜 열심이지? 이건 뭐지? 스님께서 ‘백일을 기도하면 내 꼬라지를 볼 수 있다. 천일기도 하면 스스로를 바꿀 수 있고 운명도 바꿀 수 있다’ 하셨는데 그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아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열심히 기도를 하다 보니 5시를 기다리다 어떤 때는 3시부터 잠이 오지 않아 밤을 샌 적도 있습니다. nbspnbsp천일 기도가 끝났지만 저는 하나도 안 변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제가 변했다고 합니다. 여전히 아이들은 만나보지 못하고 있고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나 자신을 예전처럼 괴롭히지는 않습니다. 천천히 끊임없이 정진하겠습니다.”nbsp 대전정토회 김태우님nbspnbsp“스물한살 때 야간 대학에서 강직성 척추염을 앓는 남편을 만났습니다. 난치성 질환자이지만 그가 좋아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살다보니 모든 것을 남편 탓으로 돌리고 속으로 무시하고 ‘몰라’ 하는 대답을 자주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법당에 못나가다가 출가열반재일을 맞이해 8일간 용맹 정진 중 ‘내가 참 많은 은혜 속에서 살고 있구나,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서 5개월 동안 열린 법회 후 바쁜 생활 속에서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정토회 활동을 열심히 하였습니다.nbspnbsp그러던 중 큰 아들은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고, 너무나 건강하고 독립적이던 둘째 아들이 작년 12월에 하늘 나라로 떠났습니다. 18세 나이였습니다. 일요일 저녁 머리가 너무 아프다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뇌출혈이었고 수술했으나 3일째 뇌사 상태였습니다.nbspnbsp눈물만 났습니다. 남편은 귀하고 예쁜 아이를 그냥 보낼 수 없다고 했고,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이대로 정신을 놓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사후 장기 기증 서약을 했습니다. 워낙 건강했던 아이는 여섯 명에게 새 생명을 선사하고 떠났습니다. nbspnbsp아이를 보내고 열흘 뒤부터 49재 동안 사시예불 집전을 했습니다. 눈물이 나면 울면서 염불 집전을 했습니다. 아이는 아빠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형이랑 비교하지 않아서... 자기는 정말 행복한 집에서 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아이의 제사 비용을 모두 기부하고 집에서 제사를 지냅니다.nbsp어느새 제 입에서 ‘몰라’라는 말 대신 ‘예, 알겠습니다’ 는 말이 나옵니다. 남편을 미워한다는 말 대신 고마워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 한마디 바뀌는데도 수행해서 3년이 걸리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수행에 욕심 부리지 않고 서두르지 않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괴롭지 않고 행복하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냥 일일 뿐, 그것을 복으로 만들지 재앙으로 만들지는 나의 몫입니다. 저는 삶이 수행임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제 남편을 가장 존경합니다.”nbsp 창원정토회 이숙미님nbsp하늘 나라로 간 아이 이야기에 많은 대중들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마지막에 남편을 죽도록 미워했으나 지금은 남편을 가장 존경하는 말에는 울컥 눈물이 나왔습니다. 기적이 있다면 이런 것이 기적이겠지요.nbspnbspnbsp감동적인 수행담을 들으며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뜨끈해지더니 ‘지난 백일을 나만 혼자 넘어지고 깨진 것은 아니구나’ 싶어지면서 ‘내 고민은 저 분들에 비하면 가벼운 고민이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nbspnbsp수행담의 깊은 울림을 느끼며 입정 후 법륜스님 백일기도 회향 법문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천일결사자들에게 왕의 제자인지 부처님의 제자인지 되물으며 무엇이 수행자인지를 상기시켜 준 후 왜 우리가 백일 마다 이렇게 모임을 갖는지 그 취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우리가 아무리 돈을 많이 모아도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아무리 얼굴이 잘 생겨도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나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 더 지위가 높은 사람 더 잘 생긴 사람 더 능력있는 사람과 같이 있게 되면 우리는 열등의식과 빈곤의식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이 열등의식과 빈곤의식은 능력을 키운다고 돈을 더 번다고 지위가 더 높아진다고 성형을 한다고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비교하느냐에 따라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항상 돈을 더 벌면 해결될 것이다, 더 승진하면 해결될 것이다, 기술을 더 익히면 해결될 것이다, 코만 성형하면 해결될 것이다, 눈만 동그랗게 하면 해결될 것이다, 가슴에 뭘 짚어 넣으면 해결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데 그렇게 하면 이 문제는 죽을 때까지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nbspnbsp그래서 인간의 고뇌는 나이가 든다고 해결되어지지 않고, 돈이 많아진다고 해결되어지지 않고, 지위가 높아진다고 해결되어지지 않습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어요. 논을 99마지기 가진 사람과 1마지기 가진 사람이 만났을 때 99마지기 가진 사람이 1마지기 가진 사람에게 1마지기을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고 하잖아요. 그 이유는 100마지기를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인물이 잘났거나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사람이 행복해 보입니다. ‘저 사람은 무슨 걱정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이 드는데 정작 그 사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온갖 고뇌를 가지고 있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부처님 당시에 300여개 나라 중에 가장 큰 나라인 마가다국의 왕은 누가 보기에도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인생이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늘 부처님을 찾아와서 인생 고민을 하소연하고 법문을 듣고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왕은 부처님께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부처님이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괴로우면 스스로 부처님을 찾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가진 왕은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아무것도 갖지 않고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맨발로 밥을 얻어 먹고 나무 밑에서 자는 부처님은 아무런 괴로움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왕이 부처님을 도와주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부처님이 왕을 늘 도와주었습니다. 고민이 있어서 찾아오면 어리석음을 깨우쳐주고, 욕심을 부리면 욕심을 내려놓게 하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면 아집을 내려놓게 하고, 때로는 위로도 해주고, 때로는 깨우쳐 주었습니다.nbspnbsp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입니까? 아니면 왕의 제자입니까?nbspnbsp만약 여러분들이 ‘돈을 더 많이 벌면 행복할 수 있다’, ‘출세하면 행복할 수 있다’, ‘이뻐지면 행복할 수 있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행복할 수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한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고 왕의 제자입니다. 부처님은 이런 것들이 우리들을 진정한 자유와 행복으로 이끌지 않는다고 자각하시고 왕위를 버리시고 모든 재물을 버리시고 잘못된 행복관을 버리시고 새로운 길을 찾아 온갖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정진을 하시다가 마침내 중도를 발견하시고 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신 후에도 45년 평생을 분소의를 입으시고 맨발로 걸으시고 나무 밑에서 잠자고 남의 집에서 얻어 먹는 등 거지와 다름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nbspnbsp그러니 물질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물질만으로 행복해질 수가 없고, 지위를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지위만으로 행복해 질 수가 없고, 몸뚱이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를 만족시킨다고 행복해질 수가 없고, 인기를 누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인기가 행복의 근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고 싶다면 여기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지위의 노예가 되지 말고, 인기의 노예가 되지 말고, 돈의 노예가 되지 마라. 거기에 집착할 때 그것이 사라지면 우리는 다시 더 큰 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것으로 복을 삼으면 복이 곧 재앙이 됩니다. 그것을 즐거움으로 삼으면 그것이 곧 괴로움이 됩니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반복되는 세상이 윤회의 세상이고, 윤회의 세상이 곧 괴로움의 세상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우리 모두 붓다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서 자유와 행복을 누리자는 취지로 정토회가 설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토행자는 신자가 아니라 수행자입니다. 신자는 부처님을 신처럼 생각하고 복을 비는 사람이고, 수행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해탈과 열반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부처님 당시를 보면 이 붓다의 길을 깨우친 사람들 중에는 지위를 버리고 인기를 버리고 출가하여 출가 수행자로서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러나 자신의 삶의 처지가 그렇게까지 할 수 없을 때는 재가에 있으면서 수행자로 살아가는 길도 열어주었습니다.nbspnbsp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누누이 얘기하잖아요. 많은 절들이 있고 많은 종파가 있는데 거기에 가면 되지 왜 주지도 없고 시내 한 가운데에 사무실 하나 내어 놓고 그것도 없으면 가정집에 모여서 활동하는 정토회로 오느냐? 그래서 누구는 사이비 같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왜 이렇게 하느냐?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이 신자가 아니고 수행자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가 아니고 자기를 닦는 자이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은 하루 종일 수행하지는 못하더라도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한 시간은 수행을 해야 합니다. 비록 내가 세속에 살지만 내가 수행자라는 것을 늘 자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부처님 당시처럼 장사도 그만두고 직장도 그만두고 딱 절에 들어와서 수행자처럼 사는 것이 제일 좋은데 그게 안 된다고 하니까 조금 풀어준 겁니다. 그래서 ‘내가 신자이다’ 하고 생각할 때는 정토회가 좀 센 편이에요. 그런데 ‘내가 수행자이다’ 하고 생각할 때는 많이 풀어준 겁니다. 그래서 평상 시에도 검소하게 살면 좋은데 재일날 만큼은 검소하게 살아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도록 했을까요? 너가 비록 몸은 세속에 있지만 수행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하는 뜻입니다. 매일 매일 나무 밑에서 자고 남의 집에서 밥을 얻어 먹고 그렇게 안 해도 된다. 그러나 조금은 해야 된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에 재가 수행자들은 자신들에게 이런 길을 열어준 것에 대해 너무 너무 감사했기 때문에 출가 수행자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그들에게 음식을 공양하고 그들이 수행정진 하는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도운 것입니다.nbspnbsp그런데 오늘날 출가 수행자는 복을 빌어주는 사제로 전락하고, 재가 수행자는 복을 비는 신자로 전락해서, 마치 돈을 내고 물건을 구입하듯 거래하는 것과 같이 세속적으로 변해 있습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수행자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만일결사, 천일결사, 백일정진을 하는 거예요. 한번 수행자라고 다짐한다고 해서 세상에 살다보면 지켜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리에 와서 ‘아, 내가 정진을 놓쳤구나’ 반성을 하고 다시 또 입재를 해서 ‘내가 수행자이지. 나는 붓다의 길을 가는 자야’ 이렇게 다짐을 하고 또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놓치고, 또 와서 다짐하고, 또 놓치고, 또 와서 다짐하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오기만 하면요. nbspnbspnbsp그래서 앞에서 세 사람이 나와서 세 가지 다른 차원의 수행담을 들려주었잖아요. 넘어지고 자빠지다가 길을 찾았다는 사람이 있고, 길을 찾아서 좀 더 나아갔다는 사람도 있고, 나만이 아니라 길을 잃고 헤매이는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는 쪽으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다른 세 사람의 경우를 보았습니다.nbspnbsp왜 이렇게 백일 마다 모일까요? 이렇게 백일 마다 모여서 다시 환기시키지 않으면 만일 끝나고 나서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예요. nbspnbspnbsp‘내가 수행자다’ 하는 것을 놓친 분들에게 ‘내가 수행자다’ 하는 것을 자각하게 하고 다시 발심해서 다음 백일은 정진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내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모임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을 환기시켜 주려고 중국에 있다가 어제밤 비행기 타고 한국에 들어온 겁니다. 그래서 본래의 목적인 해탈과 열반에 중심을 두고 한발 한발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nbspnbsp스님은 우리는 수행자임을 늘 자각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여러차례 반복해서 자각시켜 주었습니다. 또 그런 취지로 오늘의 백일 입재식이 매번 열리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지난 백일 동안 수고가 많았던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잘 안내해준 담당자들, 모둠을 잘 관리해준 모둠장들, 직장생활과 가정생활 정토회활동의 삼중고에 시달리면서도 많은 활동을 해 온 저녁부 활동가들, 이 전체를 총괄하면서 자기 수행을 해나가고 있는 임원과 간부들, 사천왕사지와 임진각, 봉림사지에서 자발적으로 통일 기도를 하고 있는 대구경북지부, 인천경기서부지부, 경남지부 활동가들, 바쁜 중에도 통일의병학교를 이수하신 분들을 차례대로 언급하면서 대중들에게 이들의 노고에 대해 큰 박수를 부탁했습니다.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 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어제가 광복 70주년인 동시에 분단 70년이 되었다고 하면서 아직도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1000일 동안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1초도 쉬지 않고 함께 기도하자고 제안했습니다.nbspnbsp“어제는 광복 70주년이면서 분단 70주년이었습니다. 광북 70주년을 마냥 기뻐만 할 수 없는 이유는 광복이 되자마자 분단이 되어서 70년이 지나도록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번 8.15에서도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확대될 수 있는 대통령 담화가 나오지 않겠나 기대했는데 지금 상황은 거꾸로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북 간에는 오히려 국지전이 생길지도 모를 일촉즉발의 험악한 말들이 오고가는 상황입니다.nbspnbspnbsp우리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많은 선조들이 투쟁을 하면서 희생을 했습니다. 저는 대중들을 데리고 봉오동 전투터, 청산리 전투터, 대종교 3인묘, 일송정, 용정중학교 이런 독립운동 유적지를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명복을 빌고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당신들이 없었다면 어찌 지금의 대한민국의 번영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당신들의 은혜를 잊지 않고 당신들이 그렇게 바라던 독립이 지금도 미완성이니 완전한 독립인 통일을 이루겠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nbspnbsp대종교 3인묘의 시신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도 우리가 분단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나철 선생님이 죽으면서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이 땅에 나를 묻지 마라’고 하셔서 지금까지 백두산 아래 화룡에 묻혀 있는데, 나라가 두 쪽이 났기 때문에 돌아갈 곳이 없어 초라한 묘소가 그대로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통일이 된다면 그들이 얼마나 영광스럽게 생각할까요. 이렇게 3.1 독립운동을 비롯해서 수많은 운동이 있었지만 우리의 힘만으로 독립을 이뤄내지 못하고 결국 연합군에 일본이 패함으로 해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즉 남의 도움으로 해방이 되었기 때문에 해방이 된 것은 좋은 일이였지만 그들에 의해서 우리는 분단의 고통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해방이 분단보다 낫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분단의 고통도 식민 지배의 고통에 못지 않은 고통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특히 6.25 전쟁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고통을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우리는 7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최근에 들어와서는 나아지기는커녕 관계가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백용성 조사님께서는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저 백운산에 수백만평에 화과원이라는 과수원을 만들어서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을 몰래 상해임시정부에 전달했습니다. 거지로 분장을 해서 전달하기도 하고, 불상 안에 숨겨서 전달하기도 하고, 그래서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3.1독립선언의 불교계 대표로 참석하셨을 뿐만 아니라 용정에는 대각교당을 지어서 교민들을 위로하고 거기서도 농장을 지어서 그 수입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하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희생된 이들의 가족들이 그곳에서 살게 하고, 국내에서도 그냥 자금을 모으면 들통이 나니까 과수원을 만들어서 그 수익금을 전달했습니다. 아무도 몰랐는데 결국 용성 스님이 돌아가시고 김구 선생이 1945년에 귀국해서 대각사를 방문해 용성 스님의 영정 앞에서 ‘스님께서 이렇게 독립 군자금을 보내주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렇게 고백함으로 해서 그 때 그 돈이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여졌음을 나중에 알게 된 것입니다.nbspnbsp그러니 우리는 용성 조사님의 법을 계승하고 그 분의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했기 때문에 우리 정토행자들은 한쪽으로는 바른 법을 따라서 수행정진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사님께서 독립을 위해 활동했듯이 우리는 통일을 염원하고 통일을 성취하는데에 한발 나아가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nbspnbsp그래서 이번 입재식이 끝나고 가을부터는 1000일 동안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는 기도를 1초도 쉬지 않고 매일 매일 하려고 합니다. 남북이 갈등이 첨예한 이럴 때 우리는 불보살님의 힘을 빌어서 평화와 통일을 성취하자는 취지로 통일 기도를 시작하니까 여기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줄 것을 당부드립니다.”nbsp용성 조사님의 헌신적인 활동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져 오면서 지금 이 시대에는 통일을 위해 우리가 그 역할을 해내자는 스님의 간곡한 호소도 가슴 깊이 새겨졌습니다. 1초도 쉬지 않고 1000일 동안 기도하자는 제안에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늘을 감동시켜서라도 통일을 이뤄내자는 스님의 간절한 염원이 느껴졌는지 많은 대중들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nbspnbspnbsp점심 시간에는 오랜만에 만난 도반들과 돗자리에 둘러앉아 소박한 도시락을 함께 했습니다. 스님도 대중들과 인사를 나누고, 홍보 부스를 돌아보았습니다.nbspnbsp2부 여는 마당에서는 창원, 대구, 울산, 마산, 양덕 법당의 통일염원을 담은 영상을 모아보았습니다. 각 법당의 보살님들 중에는 핸드폰으로 직접 찍은 영상물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으며 행복해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nbspnbsp다음은 순천정토회 순천법당 정호원님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일어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떨린다고 하면서도 박수를 유도하고, 혼자 하모니카, 기타까지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외모까지 가수 김건모씨를 닮아 순간 정말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nbspnbspnbsp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뒤로 서울제주지부 신규발심행자 25명의 특별한 무대가 있었습니다. nbsp랩에서부터 트로트까지 뮤지컬처럼 가사를 쓰고 춤을 추는 멋진 무대 여럿이 저렇게 노래를 하고, 춤을 추려면 얼마나 고민하고 연습을 했을까? 도반들과 땀 흘리며 보냈을 시간들이 여름날의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았으리라는 생각에 빙긋이 웃음이 났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신규 천일결사자 결의식이 있었습니다. 천일결사자의 다짐을 하는 모습에서 초심자의 굳건한 결의가 느껴졌습니다. 선배 행자들도 초심을 떠올리며 새롭게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법사님들이 직접 환하게 웃으며 염주를 일일이 목에 걸어주었는데 앞으로 백일, 천일, 나아가 새로운 만일결사 동안 이 많은 사람들이 든든한 도반으로 함께하기를 발원하였습니다.nbspnbsp“이제 부처님 법 만나 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발원하지만 그러나 내일은 경계에 부딪혀 원망하고 탓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제불 보살님께서는 저희들이 수행정진 할 수 있도록 옹호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신중님들, 조상 영가님들께도 이 수행 대중을 잘 보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수행정진 출발한 도반들도 처음 발심한 결사자들을 잘 도와주옵소서. 이제 껍데기는 범부중생이지만 그 속에 부처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이것이 자라면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수행 정진하도록 하십시오. 잘 된다고 자만하지도, 안 된다고 좌절하지도 말고 나아가십시오.”nbsp제불 보살님과, 신중님, 조상 영가님들에게 까지 꾸준히 수행할 수 있도록 보살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시는 스님을 보니 그 정성에 감동해서라도 계속 해나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진 입재 법문에서는 삼귀의부터 수행문, 참회, 명상, 경전독송, 정토행자의 서원, 천일결사의 목표, 보왕삼매론, 사홍서원, 수행나누기, 보시, 봉사의 의미까지 그 의미와 방법을 세세히 알려주셨습니다. 특히 스님은 참회 기도를 하면서 대중들이 오해하기 쉬운 내용을 강조하면서 참회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불자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는 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첫째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둘째 선정을 닦고, 셋째, 지혜를 증득해야 합니다. 수행 원칙의 첫 번째가 계율을 지키는 것이예요. 그럼에도 계울을 어기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우선 어긴 것을 알아야 하고 다시는 안 어기겠다는 참회와 발원을 해야해요. ‘아이고, 내가 어겼구나’ 알아차리는 것이 참회이고, ‘다시는 어기지 말아야지’ 하는 것이 발원입니다. 참회 뿐만 아니라 발원까지 해야 합니다. 참회와 발원을 할 때는 그냥 앉아서 하는 ‘어기지 말아야지’ 하는 방법이 있고, 그것을 좀 더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엎드려 절을 하면서 ‘죄송합니다. 제가 어겼습니다. 다시는 안 어기겠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율에 따른 수행입니다.nbspnbspnbsp‘내가 옳다’는 한 생각을 내려놓으라고 하니까 ‘그럼 상대는 잘하고 나는 잘못했다는 것이냐’ 하는데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본래 제법이 공하기 때문에 옳고 그름이 없는데 내가 내 관점에서 보고 내가 옳다고 고집하니까 상대는 저절로 틀린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는 맞고 나는 틀렸다’는 것이 참회가 아닙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내려놓으면 그것이 참회입니다. 본래 옳고 그름이 없는데 내가 옳다고 상을 짓고 집착했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을 놓아버리는 것이 참회입니다. 참회는 상대에게 싹싹 빌면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옳다’고 움켜진 것이 진리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놓아버리는 것입니다.nbsp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렇게 참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까 ‘내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다가 ‘뭐 나만 잘못했나? 니는 잘못 안 했나?’ 이렇게 악에 받치게 됩니다. 그래서 염주도 집어 던져 버리고 ‘참회 안 할거야’ 이러잖아요. 이것은 참회를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본래는 옳고 그름이 없는데 내가 옳다고 상을 짓다가 보니 너는 틀렸다고 상이 지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화내고 짜증내고 미워했는데 ‘내가 옳다’는 상을 놓아버리는 것이 참회입니다.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내가 사로잡혔구나’ 하고 놓아버리면 상대가 틀렸다는 생각도 저절로 없어집니다.nbspnbsp그러면 남편에게 절을 하면서 ‘죄송합니다’ 하는 것은 남편이 잘했고 나는 잘못해서 참회를 하는 것이예요? 본래 잘하고 잘못한 것이 없는데 내가 옳다고 고집을 해서 남편을 미워한 것을 참회하는 것입니까? 남편을 미워한 것을 참회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는 잘했고 나는 틀려서 참회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잘한 것이 없으면서 잘했다고 착각을 해서 상대를 미워했기 때문에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절을 한다는 것을 미워한 것을 참회하는 것이지 ‘너는 잘했고 나는 틀렸다’ 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미워하는 것은 내가 일으킨 것입니다. 그것을 반성해야 하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정말 잘못했다는 것에 대한 표현으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는 절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했다고 하면 고개를 쳐들고 잘못했다고 하면 고개를 숙이게 되잖아요. 그래서 엎드리면서는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나의 어리석음에 대해 참회하고, 일어날 때는 ‘다시는 이런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하고 발원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해도 되고 그냥 절만 해도 됩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자꾸 복을 비는 쪽으로 가기 쉬워요. 그러나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진짜 이유는 내가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복을 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관세음보살은 누구든지 중생이 괴로움에 처하면 그 부모보다도 그 자식보다도 그 부부보다도 더 빨리 아시고 그 괴로움을 덜어주려고 그를 돕는 자가 관세음보살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관세음보살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죄인까지도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인데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관세음보살의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은 닮아야 되지 않겠느냐’ 생각하고 그래서 ‘우선 내 남편 하나 정도는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좀 보살펴 주어야겠다’ 이렇게 관세음보살을 닮아가고자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내가 작은 관세음보살이 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nbspnbsp관세음보살이 되겠다는 것은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이해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사랑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참회를 하면서 ‘아, 내가 사랑 받겠다는 마음을 내다 보니 상대를 미워하게 되었구나. 오히려 내가 상대를 이해하고 내가 베풀어주어야 되겠구나’ 이렇게 마음을 내라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은 그렇게 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참회 기도를 할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냥 ‘죄송합니다. 제가 또 당신에게 짜증을 내었군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생각하면서 참회하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관세음보살을 닮아가겠다고 마음을 내면 ‘관세음보살은 일체 중생을 위해서 사는데 나는 속이 좁아서 내 남편 한 명에게도 마음을 내지 못하고 싸우고 있구나’ 하는 반성이 되고 그런 의미에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방법이 있습니다.nbsp그 다음에 선정을 닦기 위해서 명상을 하는 것이고, 지혜를 증득하기 위해 이어서 경전을 독송하는 것입니다.”nbsp대중들은 참회 기도의 의미에 대해 듣고 나서는 모두 ‘아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항상 의문이 들었던 점들이 명쾌하게 해소되면서 마음도 한결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입재 법문 후 김해정토회 김해법당 이지영님의 ‘청산에 살리라’ ‘once upon a dream’ 성악 공연이 있었습니다. 식사 후 조금은 나른해진 분위기에 청량제 같은 목소리와 맑은 피아노 연주를 들으니 비타민을 먹은 듯 다시 힘이 났습니다.nbspnbsp이번 입재식 명심문은 ‘나는 법을 전하는 정토행자입니다’라는 것과 ‘우리동네 열린강좌 3회 열기, 우리 동네 열린강좌에 3번 참여하기 혹은 3명 인연맺기’ 실천 과제를 안내받고 옆 도반들과 손을 잡고 산회가를 부르며 헤어졌습니다. 스님과 법사님들은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도록 무대에서 손을 흔들어 주셨습니다.nbspnbsp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피곤하지만 맑은 기운이 퐁퐁 솟아나 보였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또 다른 백일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에게로 시원한 바람이 새로운 계절을 알리듯 불어왔습니다.nbspnbsp이렇게 백일기도 입재식을 성황리에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저녁부터 내일까지 두북 정토수련원에서는 전국에서 정토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스님과의 간담회를 가집니다. 오후 6시30분에 두북에 도착한 스님은 입재식 행사 후 곧장 두북으로 달려온 정토회 활동가들과 함께 저녁 예불을 올린 후 곧이어 간담회를 이어갔습니다.nbspnbsp스님은 간담회에서 “상반기 동안 모두들 고생이 많으셨어요” 라고 활동가들을 모두 격려해 주신 후 “그동안 힘들었던 것이 있으면 마음껏 하소연을 해보라”고 하면서 활동가들이 그동안 마음 속에 쌓아 두었던 이야기들을 하도록 장을 열어주었습니다. 3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활동가들은 그동안 힘들었던 점들을 편안하게 이야기하였고, 스님은 각각의 제안에 대해 그 해법을 조언해 주었습니다. 10시 30분이 되어 간담회를 마무리 짓고 모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nbspnbsp내일은 계속 이어서 정토회가 갖고 잇는 각종 현안과 방향에 대해 주제를 잡아서 스님의 기조 발제와 그에 따른 활동가들의 집중적인 토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nbspnbsp ▼ 법륜 스님의 명쾌한 강의 ‘2015년 정토불교대학’에서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8월23일에 신청 접수가 마감되오니 많은 신청 바랍니다. nbsp
2015.8.15 청년 동북아 역사기행 7일째, 백암산성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청년 동북아 역사기행 7일째를 맞이하여 백암산성에 올라 고구려의 기상을 느끼고 청년들과 함께 버스 안에서 즉문즉설의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기상해 버스에 몸을 싣고 동북아 역사기행의 마지막 7일째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길림 시내에 위치한 새벽 시장을 찾아갔습니다. 오늘은 길림에서 심양까지 꼬박 7시간을 버스로 달려가야 하는 일정이여서 각자 아침과 점심을 미리 시장에서 구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길림 새벽 시장nbsp중국 사람들은 아침 식사를 직접 요리하지 않고 사먹는 경우가 많아서 새벽 시장이 굉장히 활성화 되어 있다고 합니다. 새벽 5시부터 새벽 시장은 인산인해를 이루며 활기를 띠었습니다. 콩국, 연두부, 죽, 빵, 튀김, 과일 등 먹을 거리를 주섬 주섬 들고 버스에 올라타 먼 거리를 달릴 채비를 마쳤습니다.nbspnbsp길림에서 심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그동안 역사기행을 하며 궁금했던 점들에 대해 스님께 마음껏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년들은 지난 6일 동안 하루 종일 스님의 역사 강의를 들으며 방대한 시간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 속에서 더 알고 싶은 점과 의문이 들었던 점이 많았는지 1호차, 2호차, 3호차 차량별로 연이어 많은 질문들을 쏟아내었습니다.nbspnbsp▲ 버스 안 즉문즉설nbsp자칫하면 버스 안에서 잠만 자며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스님은 이 시간 조차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시려고 즉문즉설 시간을 마련한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한 명 한 명의 질문에 대해 애정을 갖고 정성껏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청년들은 지난 6일 동안의 역사기행 소감을 간단히 말하거나 노래 한자락을 신나게 부른 후 자신의 질문을 스님에게 말했습니다.nbspnbsp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우리의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반성하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는 한 친구는 “위안부 문제를 보면 식민지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인 것 같은데, 일본과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하기 위해서 한국 국민들은 어떤 시각을 가지면 좋을지요?” 라고 질문했고, 어떤 친구는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사는 다문화 시대에는 자기 정체성을 갖기 위한 민족적인 역사관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요?” 라고 물었습니다. nbspnbsp스님과 같이 역사기행을 하면서 민족적 열등의식에 대해 집단적인 심리 치료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 한 친구는 “사회 초년생으로서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어서 사회 변화에 대한 동참이 망설여집니다” 라고 자신의 고민을 말했습니다. 또 한 친구는 “통일 이전에 대한민국은 남남 갈등이 심각한데 갈등의 해결 방법과 통일을 위해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는지?” 물었고, 스님이 항일무장투쟁에서 희생된 민간인들과 일본 군인들까지 헤아리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 친구는 “통일을 위해서 정부는 현재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nbspnbsp또 어떤 친구는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로 불안해 하는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통일에 대해 지지해 줄지 걱정이 됩니다.”라고 질문했고, “통일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어떤 직업이 전망이 있어질까요?” 라고 묻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또, “개인적인 문제이든 사회적인 문제이든 객관화해서 바라보려면 어떤 연습을 해야 하나요?”, “스님은 어떤 대선 후보를 지지하시는지요?”, nbsp“일본 천황이 백제의 후예라고 알고 있는데 일본을 답사하는 기행을 해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중성화 시키는 것이 좋을지 고민입니다”, “안중근은 나라의 영웅이였지만 가족에게는 큰 고통이였다는 말에 대해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 “훌륭한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며 그런 지도자를 알아보려면 어떤 안목을 가져야 하는지요?” 등 다양한 질문들이 연이어 펼쳐졌습니다.nbspnbsp각각의 스님의 답변이 모두 궁금하실테지만 그 중에서 많은 감동을 주었던 한 가지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일정이 빡빡해서 피곤했지만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어 보람있었다는 한 친구가 스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통일의 모습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nbspnbsp“솔직히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 입장에서는 돈 많다고 잘난체 하는 남한 사람들이 활개를 치고 다닌다고 느낄 것이고, 남한 주민 입장에서는 북한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세금을 많이 내야 해서 힘들어진다고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통일 이전에 미리 투자를 해서 북한과 남한의 수준과 차이를 일정 수준까지 맞추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스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통일의 모습이 궁금합니다.”nbspnbsp▲ 송수신기로 스님께 질문하는 청년nbsp“통일을 하는 것이 좋은지 안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 젊은 사람들은 ‘굳이 할 필요가 있겠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것은 너무 좁은 생각입니다. 앞으로 우리 주변의 정세가 바뀌어 나가고 새로운 세계 질서가 성립되고 또 우리 경제의 성장이 둔화되는 이런 모든 상황들을 감안할 때 통일로 가지 않고는 지속적 성장도 어렵고, 우리의 자주권을 지키기도 어렵고, 평화를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nbspnbspnbsp지금까지 분단된 상태로도 안보를 지키고, 경제 성장도 이루었고, 민주화도 이루었으니 앞으로도 분단된 상태에서 안보가 지켜지고, 경제도 계속 성장하고, 민주주의는 더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통일을 꼭 해야하나’ 하고 마음 속에서 망설임이 생겨나는 것이겠죠. nbspnbsp지금까지와 앞으로가 같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경제 성장은 둔화될 것이고, 자칫 잘못하면 정체 국면에서 후퇴 국면으로 갈 가능성도 매우 높아졌습니다. 미중의 패권 경쟁이 강화되면 될수록 우리의 입지가 넓어지는 것이 아니고 좁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체제에 묶일 가능성이 높아서 미국에 대한 예속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본에 대한 예속까지도 조금씩 조금씩 진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 문제에 있어서도 미·중 두 개의 판이 충돌할 때 그 충돌판이 남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의 미래가 매우 불확실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100년 전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똑같은 건 아니지만 판이 그런 구조로 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nbspnbsp그러나 우리가 100년 전에는 잘못 대응해서 실패를 했다면 굳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를 교훈 삼아서 우리가 잘 대응한다면 이미 짜여진 판에서 일방적으로 규정 받는 것이 아니라 판이 짜여오는 속에서 우리의 이익과 안전, 평화를 관철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통일은 우리의 지속적인 성장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고, 이 판에서 자주성을 확보할 수도 있고, 지속적 평화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통일 없이는 이것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통일을 얘기하는 것입니다.nbspnbsp질문자는 통일을 하면 오히려 손해가 생기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첫째, 북한은 지하 자원이 많습니다. 무역 규제만 안 받으면 지하 자원만 팔아도 북한은 경제 회복을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원자재 값이 좀 떨어지기는 해도 적게 잡아도 1조, 많이 잡으면 8조 달러 가치의 지하 자원이 있습니다. 특히 희토류 등 희귀 금속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nbspnbsp둘째, 북한이 갖고 있는 노동력은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필리핀에 비해 굉장히 우수합니다. 현재 임금도 훨씬 더 쌉니다. 이것은 단순히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돈이 드는 일이지만, 그러나 그 사람들이 값싼 노동력이다 하는 측면에서는 굉장한 자산입니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규제가 풀려서 해외에 나가서 1인당 한달에 500불만 벌어 들여도 북한 경제는 굉장히 살아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개성공단에서 1인당 57불 주면서 남북이 서로 갈등하고 그러잖아요. 수당까지 다 합해도 임금이 150불이 채 안 되는데 이것은 임금 착취에 해당합니다. 전 세계에 그런 임금은 없습니다. 현재 도문시에 있는 조중 공단에 북한 노동자들이 3천명 와서 일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지급되는 임금도 250불에서 300불이 안 됩니다. 중국에서는 최저 임금에 해당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그 돈 받고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을 데려다가 일하는 것이죠.nbspnbsp▲ 스님의 답변을 송수신기로 듣고 있는 청년들nbsp북한 주민들의 노동력을 소비의 관점에서 볼 거냐, 생산적 관점에서 볼 거냐 하는 문제입니다. 북한 사회의 여러 산업을 재건시키는 것을 투자로 볼 것이냐, 소비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와도 같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나라에 와서 철도도 놓고 도로도 닦았는데 그것은 한국 사람을 위해서 해준 것이냐, 일본의 이익을 위해서 했느냐 하는 문제죠. 남의 나라 땅도 뺏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건설을 하잖아요. 하물며 북한은 앞으로 돌려줘야 할 남의 나라가 아니고 앞으로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나라 땅인데 거기에 재건설하는 것이 왜 낭비가 됩니까? 그것은 투자이지요. 그래서 통일을 위해 북한을 개발하는 것은 투자의 관점에서 봐야지 소비의 관점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투자는 돈이 모자라면 외자 유치를 하면 돼요. 북한 개발을 한다고 하면 해외에서 투자하겠다는 곳이 무궁무진할 거예요. 왜냐하면 돈은 있는데 투자처를 못 찾아서 특정한 곳에 돈이 몰리면서 지금 금융 위기가 오고 하잖아요. 안전된 투자처를 제공하면 투자자는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통일 문제를 새로 봐야 합니다.nbspnbsp통일은 내일 휴전선 싹 허물어 버리고 두 나라를 당장 하나로 합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그렇게 하면 혼란이 엄청나게 가중됩니다. 우리가 통일을 하자고 아무리 방침을 정하고, 설령 통일 지향적 정부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완전히 하나가 되는 통일은 시간이 꽤 걸립니다. 그러니 하나가 다 되어야 통일이 아니라 그런 입장이 딱 정해지면 그게 바로 통일인 것입니다. 모든 투자가 통일 지향적으로 이뤄지게 되면 그것은 이미 통일된 사회입니다.nbspnbsp나무도 심으면 금방 자라는 것이 아니잖아요. 현재 남북한 간에 갈등이 있는 이 상황 속에서도 미래를 생각하면서 일단 북한에 나무부터 심는 겁니다. 나무는 앞으로 30년 자라야 하니까요. 현재 북한에 나무 한그루 심는 데는 100원이면 되는데, 통일된 뒤에 나무를 심으려면 5000원으로도 못 심습니다. 나무 값 뿐만 아니라 인건비가 엄청나게 오르기 때문이죠. 지금 북한 주민들이 하루 종일 뙈기밭에서 일해 봐야 1000원의 생산량도 못 만들어내는데, 뙈기밭 하지 말고 여기 와서 나무를 심으면 쌀 1kg을 주겠다든지, 밀가를 2kg을 주겠다고 하면 전부 나무 심으러 올 겁니다. 그러면 하루에 2000원만 갖고도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거예요.nbspnbsp통일 지향적이 되면 투자도 달라집니다. 철도도 러시아와 중국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모두 개선을 해야 되는데, 통일된 후에 이 일을 하려면 너무 늦습니다. 이런 식으로 도로도 닦고, 하천 재방도 쌓고, 전기도 넣어서 주민 생활도 개선하고, 산업 시설도 돌리고, 이를 위해 남한의 중소기업이 여기저기 공단을 만들어서 북한으로 들어가 생산을 해낼 수 있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이 중국에 와서도 일을 하는데 북한 안에 공단을 만들어서 전기는 우리가 지원해 주면서 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겠어요?nbspnbspnbsp이렇게 추진해 나가는 과정이 곧 통일입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협력해 나가는 것이죠. 그러면 북한에서도 우선 100불, 200불 짜리 일자리라도 늘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기에서 생산한 물건들이 가치가 있다면 노동 인건비도 올려줘야 하겠죠. 처음에는 필리핀이나 베트남 수준에서 시작하고, 다음에는 중국 수준으로 올려주고, 이렇게 조금씩 향상시켜 나가야 합니다. 여기에 남북 간의 교류와 방문도 자유로워져야 하겠죠. 또 기업인들의 북한 투자에 대한 보장도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부동산을 무작위로 매매하게 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또 개발의 이익이 남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북한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어야 합니다.nbspnbsp흡수 통일처럼 그냥 합치게 되면 북한은 2등 국민이 되고 개발의 이익이 남한의 자본가들에게 다 돌아가게 되겠죠. 그러면 북한 사람들도 남한 수준의 최저 임금으로 먹여 살려야 하니까 사회적 부담도 엄청나게 늘어나겠죠. 그러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니까 남한 사람들의 불만이 늘어납니다. 왜냐하면 남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통일에 대한 이익이 없고, 그 이익을 재벌기업이 다 가져가니까요. 그런데 하나의 나라가 갑자기 되면 북한 사람에게도 남한 수준의 사회 보장 제도를 해야 되잖아요. 그럴려면 세금이 두 배로 뛰어야 되고 사람들의 불만도 가중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한 흡수 통일은 일어나기도 어렵지만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nbspnbspnbsp그리고 북한이 어느 정도 개발을 한 뒤에 통일을 해야 된다고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꾸준히 통일의 기반을 구축해 나가면 됩니다. 북한 주민들이 투표에 의해서 합하자고 결정이 되면 부담이 좀 되더라도 하나의 시스템으로 가야 하고요. 반면 북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독자적인 시스템을 당분간 유지하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가면 됩니다.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되고, 통일을 선택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그 권리를 주어야 해요. 북한이 통일하자고 하면 하고, 지금 이대로 당분간 가자고 하면 그렇게 해주는, 그러나 상호 협력 체제를 가져야 합니다.nbspnbsp지금 남한의 입장에서도 지방자치제를 강화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남한이 5도, 북한이 3도라면 남북한이 8도 연방이 되도록 해서 북한이 남한에 예속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제가 강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이 자신들이 선택하는 체제를 가지고 들어올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남한의 경상도처럼 신자유주의적 시장 질서가 좀 강한 곳도 있고, 북한의 평양이나 평안도처럼 사회주의적 요소가 강한 곳도 있죠. 한 나라 안에서도 이렇게 다양할 수 있습니다. 도 마다 집권 세력이 다르고요. 그러면서 연방 정부를 어떻게 구성할지 서로 경쟁을 하게 되겠죠. 사회주의를 더 지지하면 어떤 지방 정부는 거기에 맞게끔 추진해 나가도록 하면 됩니다. 이렇게 열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인위적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주민들의 의사가 최대한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nbspnbsp자기 지방의 결정권을 자기 지방이 갖도록 권리를 돌려주는 것을 분권이라고 합니다. 권리를 먼저 주고 발전의 속도가 낙후한 곳을 지원해서 균형을 잡아가는 방식이 되어야 하겠죠. 그래서 권리를 주는 것과 동시에 경제적인 발전의 격차를 줄여주는 지방 발전 계획도 함께 수립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통일을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외교, 안보, 국방은 중앙 정부가 해야 하지만, 나머지는 다 자신의 처지에 맞게끔 시간을 좀 더 가지면서 풀어나가면 됩니다.nbspnbsp통일은 단순히 남북이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제2건국입니다. 그래서 많은 정치 시스템, 경제 시스템 등이 재구성 되어야 합니다. 분단 국가는 불안정한 정부이기 때문에 이제 새로운 통일 코리아를 건국하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nbsp통일은 제2건국 운동이라는 말에 버스 안의 청년들도 큰 박수로 공감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질문을 주고 받으며 미진했던 부분들은 점점 사라져갔고, 그럴수록 역사적 자부심이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nbspnbsp버스 안에서 즐겁고 명쾌한 즉문즉설을 들으며 7시간을 달려 낮 12시 30분 무렵 이번 역사기행의 마지막 코스인 백암산성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백암산성으로 올라가는 길nbsp스님은 청년 130여명을 이끌고 맨 앞에 서서 백암산성의 남문에서 시작해 웅장하게 쌓여진 서쪽 성벽 위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성벽을 오르느라 송수신기를 통해 들려오는 가쁜 숨소리 사이로 스님은 백암산성의 구석 구석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고구려는 수도인 본거지는 깊은 산 속에 숨겨 놓았습니다. 졸본성이든 국내성이든 우리가 직접 가서 확인해 보았죠. 깊은 산 속에 딱 숨어 있다가 광할한 만주벌에 나와서 대륙을 경영했습니다. 그래서 바깥에 드러난 부분에 크게 성을 쌓은 것이 요동성입니다. 즉 요동성을 중심으로 해서 대륙을 경영했던 것이죠. 미국 같으면 수도는 워싱턴이지만 실제로 큰 도시는 뉴욕이잖아요. 그런 것처럼 요동성이 훨씬 컸습니다.nbspnbsp▲ 백암산성nbsp요동성을 대륙에 딱 배치해 놓고, 그러다가 만약 위기에 처하면 요동성은 포기하더라도 자신들의 본거지는 유지를 해야 하니까 치고 빠졌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산속으로 들어가 버려서 추격해 오면 산 속에서 공격을 해서 적을 막아 내었습니다. 그래서 적이 도망가면 다시 뒤따라가서 공격을 했습니다. 이렇게 산 속에 수도를 정한 것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이고, 대륙에서 요동성을 경영했던 것은 고조선의 옛 영토를 확보하기 위함이였습니다.nbspnbsp이 요동성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안시성이 있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건안성이 있고, 지금의 요동 받도 끝인 대련에 비사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개모성, 신성, 저 위쪽으로 부여성까지 있었고, 나중에 당나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그 사이 사이를 연결했는데 그것을 천리장성이라고 합니다. 고구려는 천리장성을 쌓기 위해 엄청난 국력을 소모했고, 이로 인해 국민들이 도탄에 빠지고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nbspnbspnbsp이 백암산성은 만주벌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던 요동성을 보호하는 산성입니다. 환도산성이 국내성을 보호하는 산성이듯이 요동성을 보호하는 산성이 백암산성입니다. 요동성에서 도저히 못 견디면 백암산성으로 도망올 수도 있고, 적의 공격을 여기서 막아내는 역할도 한 곳입니다. 왕이 있는 성을 보호하는 산성이 아니고 대륙을 경영하기 위한 고구려의 제2도시 요동성을 보호했던 산성입니다.nbspnbsp산을 보면 동모산과 비슷합니다. 환도산성처럼 험준한 것도 아니고, 홀본산성처럼 웅장한 것도 아니고, 그냥 들판에 있는 언덕 같은 산에 쌓은 산성입니다. 그런데 꼭대기에 있는 망대에 올라가면 사면이 훤히 보입니다. 특히 적이 쳐들어오는 서쪽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동쪽에는 태자하가 흘러서 자연 해자가 이루어져 있고, 남쪽은 절벽으로 되어 있고, 산성 안에는 샘물이 있어서 아주 천연의 요새입니다.nbspnbspnbsp547년에 돌궐족 부대가 1만명이 공격했는데 결국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갔다 할만큼 견고한 성이였습니다. 또 당태종이 침입했을 때 요동성이 함락되었는데, 요동성이 함락이 되자 이 성의 성주가 항복을 해버렸다고 해요. 아무리 성이 견고해도 그 성을 지키는 사람이 나약하면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런 기록이 남아있는 성입니다.”nbsp고구려의 웅장함이 많이 이야기 되었지만 실제로 환도산성과 국내성은 대부분 허물어져 있었던 반면 이곳 백암산성은 지금 봐도 ‘우와, 잘 쌓았다’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nbspnbspnbsp남쪽 성벽을 통과한 전체 대중은 먼저 서쪽 성벽 위를 걸으며 성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그 웅장함을 느껴보았습니다. 이어서 다시 성벽 아래로 내려가 성벽 위를 쳐다보며 다시 그 웅장함을 느껴보았습니다.nbspnbsp아랫 기단은 피라미드처럼 탄탄하게 계단식으로 받추고 있고, 그 위로는 적이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수직으로 우뚝 솟아있는 모습은 고구려의 기개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습니다.nbspnbspnbsp적을 공격하기 위해 5060미터 간격으로 설치한 ‘치’는 성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 안에도 있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스님은 “아마도 적을 공격하기 위해 물자를 비축하는 등 방어 면적을 더 확보하기 위해 그런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성 밖에 23미터 떨어진 지점에 작은 성벽을 더 쌓은 덧성의 흔적도 보였습니다. 얼마나 정교하게 적의 공격에 대비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전체 대중은 높고 튼튼한 서쪽 성벽을 지나 이제 북쪽 성벽 위를 걸었습니다.nbspnbspnbsp북쪽 성벽 끝에는 깍아지른 절벽과 맞닿아 있었고, 그 아래로 태자하가 유유히 흐르는 모습과 광활한 벌판이 시야에 펼쳐졌습니다. ‘과연 천연의 요새이구나’ 하는 탄성이 나왔습니다.nbspnbspnbsp내성 안으로 들어와 망대에 오른 스님은 사방이 훤히 보이는 풍경을 가르키며 이곳 저곳을 짚어가며 당시에 백암산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망대까지 오르느라 흘린 땀방울이 만주벌판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맞닿으며 시원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내려오는 길에는 빗물을 저장하기 위해 바위를 파서 만든 샘터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을 여유있게 가지며 고구려인들의 숨결을 깊이 느껴보고 싶었으나 내일이 정토회 천일결사 백일기도 입재식이기 때문에 스님께서 오후에 심양공항으로 바로 이동하셔야 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종종 걸음으로 백암산성을 내려왔습니다.nbspnbsp아래 마을에서 수박을 깨어 먹으며 땀을 식힌 후 곧바로 버스를 타고 심양 공항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공항에 내리기 전 스님은 동북아 청년 역사기행팀을 향해 “마지막 마무리 잘 하고 오세요. 저는 먼저 갈게요” 라고 인사한 후 공항 출국심사대로 향했습니다.nbspnbsp오후 4시 35분에 심양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저녁 7시 45분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정토회관에 도착해 짐을 푼 스님은 늦게까지 그동안 밀린 업무를 처리하시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정토회 제8차 천일결사 제6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지난 백일을 돌아보고 새로운 백일을 맞이하는 스님의 법문과 정토행자들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담아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nbsp
2015.8.12 청년 동북아 역사기행 4일째, 백두산 그리고 발해의 역사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청년 동북아 역사기행 4일째를 맞이하여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에 오른 후 북쪽으로 올라가 발해의 첫 수도 동모산을 둘러보고 발해의 역사에 대해 강연했습니다.nbspnbsp드디어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가는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몸은 피곤하지만 들뜬 마음으로 4시에 일어나 중국식 아침 뷔페를 먹고 백두산 매표소로 향했습니다. 보다 빠른 시간 안에 백두산 천지를 보고자 각 조에서 한명씩 가서 매표소가 열기 전부터 줄을 섰습니다.nbspnbsp▲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매표소 앞.nbsp6시 정각 매표소가 열렸고, 선발대로 출발했던 매표 담당팀이 표를 흔들며 정문 앞 일행에게 다가왔을 때 모두 환호를 보냈습니다. 표를 나눠받은 조원들은 최대한 빨리 천지에 올라서 스님과 함께 경치를 즐기고픈 마음에 어린 아이들처럼 버스를 타는 곳까지 신나게 달렸습니다.nbspnbsp▲ 표를 받자 버스를 타기 위해 달려가는 청년들nbsp천지를 올라가는 봉고차는 89명이 탈수 있는 작은 차였는데 높은 천지까지 가파른 길을 롤러코스터처럼 올라 커브를 돌 때마다 짜릿한 기분에 모두 소리를 질렀습니다. 중국인 기사 아저씨께서 흥겨워하는 저희를 위해 한국 노래까지 서비스로 틀어주셨습니다. 커브를 돌아 한단 한단 올라가 천지에 가까워질 때마다 옆으로 보이는 경치는 놀라웠습니다.nbspnbsp▲ 백두산 천지로 올라가는 길nbsp끝없이 펼쳐진 푸르고 너른 광원, 그리고 빛나는 아침햇살이 점점 짙어지는 안개와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었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햇살이 보기 어렵다는 천지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겨주어 매우 설레였습니다.nbspnbsp직접 눈으로 본 백두산 천지는 어느 사진, 어느 그림으로 보았던 것과도 달랐습니다. 크기는 백록담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광활했으며 호수의 푸르름은 영롱했습니다. 한반도에 이런 경치가 있었다니, 풍경을 보면서 이렇게 놀란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백두산 천지는 아름다웠습니다.nbspnbsp▲ 백두산 천지nbsp걸어도 걸어도 계속 바위사이로 보이는 천지의 모습 때문에 호수가 34개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전날 늦게까지 있었던 일정으로 인해 쌓인 피로가 천지를 보자마자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천지는 워낙 높은 곳에 있어 구름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날씨가 바뀌어 천지가 보였다 안보였다 했는데 저희가 올라갔을 때 눈부신 모습을 보여줘 참 감사했습니다.nbspnbsp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청년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스님의 법복이 얇아 보여서 무척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천지의 감동을 뒤로하고 비룡 폭포로 출발했습니다. 가는 길에 유황 냄새와 함께 땅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백두산이 화산임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나무 계단을 지나 도착한 비룡폭포 역시 그 웅장함에 모두 탄성이 나왔습니다.nbspnbsp▲ 비룡폭포nbsp폭포에서 흘러내려온 물에 손을 담가 보았는데 유황 온천수와 섞여 그런지 제법 높은 고도였고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차갑지 않고 미지근해서 신기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참가자 전원과 개별로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청년들은 “스님 곁에서 있는 것만도 감사한데 사진까지 찍어주시니 더욱 감사하다”며 기뻐했습니다. nbsp nbspnbspnbsp비룡폭포를 감상하고 울창한 삼림을 지나 모두 함께 동요를 부르며 소천지로 걸어갔습니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동요를 부르니 마음도 함께 어려지고 순수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걸으면서 보이는 원시림의 자연그대로 모습도 감탄을 자아내었습니다. 용암으로 인해 생긴 커다란 바위를 뒤덮은 이끼와 군데군데 쓰러져있는 상태 그대로 있는 나무들이 멋스러웠습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큰 바위에 놀랐고 보송보송한 들풀이 예뻤습니다.nbspnbsp▲ 비룡폭포에서 소천지로 내려가는 길nbsp소천지는 정갈하고 고요했습니다. 물결이 없으면 완전히 거울같다고 하는 스님의 말씀에 그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경쾌한 저희 일행의 발걸음 때문인지 비온 뒤 수량이 많아져서인지 물결이 멈추지 않아 은거울의 모습은 보지 못해 살짝 아쉬웠습니다.nbsp▲ 소천지nbsp소천지를 나와 찾아간 녹연담은 정말 짙은 에메랄드빛의 녹색 호수였습니다. 군데군데 보이는 황금 잉어 때문에 호수는 더욱 신비로워 보였습니다.nbspnbsp▲ 녹연담nbsp어떻게 그리 아름다운 녹색이 나는지 궁금증을 가지며 지하삼림으로 향했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내 발 아래 숲의 모습에 놀랍고도 신기했습니다.nbspnbspnbsp▲ 지하삼림삼림욕을 몇 시간에 걸쳐 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백두산은 여러 가지 매력을 가지고 있는 웅장한 산이었습니다.nbspnbsp점심을 맛있게 먹고 발해의 첫 수도인 동모산을 가는 길에 스님께서는 즉문즉설을 해주셨습니다. 각 차별로 한 명씩 질문을 했는데 통일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솔직한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인상적이었습니다.nbspnbspnbsp통일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어렵다고 포기하는 방법이 한가지이고, 어려운 와중에도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이 한가지 방법이라고 하셨을 때 무엇인가에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단순하게 두가지 길이 있고 그 중 후자를 고르면 되는 것인데 어려운 문제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통일만 잘하면 모두가 살고 싶어하는 남부럽지 않은 나라가 될 거라는 말씀에, 우리나라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또한 통일을 하려면 우리 스스로가 주체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에 모든 상황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초자연적 존재, 운에 맡기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였습니다. 종속적으로 살지 말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나와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nbspnbsp강대국과 항상 부대껴 살아온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짚어 주시면서 하셨던 말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강대국에 치여 산게 아니라 강대국과 맞서 싸우며 살아온 것이고, 나라가 크다고 좋은 게 아니라 신라가 유지할 수 있었던 저력이 고유한 문화였듯이 우리나라도 작지만 자긍심을 가질만 하다는 말씀에 이때까지 해왔던 인식이 전환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거대한 보리수 나무도 그 씨앗은 콩알 만하다.”는 말씀에 정토회도 그 씨앗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씨앗이 발아하여 보리수 나무가 되어 남부럽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그려보았습니다. nbspnbsp즉문즉설을 하며 언제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버스는 벌써 발해의 첫 수도인 동모산에 도착했습니다. 거대했고 찬란했던 발해의 자취를 느끼기에는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동모산의 경우 중국에서 출입을 금지한다고 하여 더욱 아쉬웠고 무력한 기분도 들었습니다.nbspnbsp▲ 동모산nbsp그러나 스님은 이런 실망한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비록 시작은 작게 했지만 얼마나 큰 나라가 되었냐며 오히려 더 의미를 부여하며 동모산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제가 처음에 고구려 발해 유적지 답사를 할 때 누구의 안내도 안 받고 찾아 다녔어요. 그 때 제일 찾기 어려운 곳이 동모산이였어요. 아무리 봐도 성이 어디서 어디로 연결이 되어 있는지 못 찾았어요. 그런데 여기 보시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작죠. 아마 실망하실 수도 있어요.nbspnbsp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렇게 조그맣게 시작을 했는데 그렇게 큰 나라를 이룬 것이잖아요. 그러니 시작이 중요한 거예요.nbspnbspnbsp서쪽에는 대석하라고 하는 조그만 강이 흐릅니다. 이 강을 자연 해자로 하고, 저쪽 능선을 따라서 성벽이 쌓여져 있어요. 저쪽에 꺽인 부분이 서문 자리입니다. 봉우리를 성벽이 빙 둘러싸고 있어요. 예전에는 서문 자리로 올라가서 성벽을 따라 빙 돌면서 함께 노래도 불렀는데 지금은 접근 금지를 시켜 놓아서 78년을 쳐다 보기만 하고 지나갑니다. 처음에는 쳐다 보는 것도 금지를 시켰었어요.nbspnbsp봉우리에 올라가서 보면 ‘이곳에 성을 쌓을 만했구나’ 알 수 있는데 옆에서 보면 평면으로 보이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겁니다. 사면이 다 평지예요. 섬처럼 되어 있죠. 어느 곳에서 적이 쳐들어 와도 다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나라 군대가 이 먼 곳까지 쳐들어 올 이유도 적고, 쳐들어 오더라도 소규모 부대만 올 수 있으니까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겠다 싶죠.nbspnbspnbsp첫 시작은 이곳에서 했지만 여기서 계속 살지는 않았겠구나 알 수 있죠. 그래서 여기서 2km 정도 떨어진 목단강 변에 영승유지라는 곳이 있어요. 그곳이 평지성 자리가 아닌가 싶어요. 평지성은 토성으로 쌓았기 때문에 거의 다 붕괴가 되었지만, 산성은 돌로 쌓았기 때문에 지금도 그냥 남아 있죠.”nbsp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먼 길을 도망쳐 온 대조영이 처음으로 나라를 세우기에는 이곳이 적절했음이 헤아려졌습니다. 발해의 첫 수도 동모산 앞에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강동 24개석을 찾아 갔습니다. 24개석은 발해의 대표적인 유물인데 아직 이 건물의 용도가 무엇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도시의 도로가에 철창으로 둘러싸여 횡그러니 있는 모습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nbspnbsp▲ 강동 24개석nbsp무엇보다 ‘돈화’라고 하는 이 도시는 조선족자치주에 속해 있는데 간판에 한자와 함께 한글이 써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말이 써있어 반가웠으나 법으로 규정되어 있어 무조건 사전적으로 직역하여 써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글자는 거꾸로 뒤집혀 있고 단순히 한자를 번역해 놓는 수준에서 한글이 간판 표기용으로 이용되고 있어 사실상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웠고, 이곳 사람들이 한글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싶게끔 통일이 되어 한단계 도약하는 부국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해보았습니다.nbspnbsp▲ 한글을 잘못 붙인 간판nbsp저녁 식사 후 이어지는 스님의 강의는 발해에 대한 강의였습니다. 발해의 수도에서 강의를 들으니 몇 천년 전으로 돌아가 발해 조상들의 정신과 이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nbspnbspnbsp하지만 발해에 대해서 일정이 원래 3일이었는데 1.5일로 줄어들 정도로 방문할 유적지가 없고, 있어도 중국의 방해에 의해 방문할 수 없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발해의 역사에 대해 강연하기에 앞서 스님은 고구려 패망의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60년간 당나라와 전쟁했고, 강력한 독재 정책을 썼던 고구려의 마지막 모습이 오늘날 북한과 닮아있어 놀랐습니다.nbspnbsp“고구려는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공도 잘 막아내었지만 결국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서 피폐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고개를 숙이자는 온건 세력과 끝까지 싸우자는 강경 세력이 생길 수 밖에 없기 마련이였습니다. 왕정파 세력은 온건 세력이 많았고, 연개소문을 비롯한 군인 세력 중에는 강경 세력이 많았습니다. 이것이 오랜 시간 지나면 내분이 일어나게 되죠. 왕이 강경 세력을 배제하고 온견 세력의 뜻에 따라 당나라와 화친 관계를 맺으려고 하자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을 갈아치워 버렸습니다.nbspnbspnbsp고구려는 연개소문의 독재가 이뤄지고 천리장성을 쌓으면서 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겪었어요. 현대판 천리장성이 바로 핵개발이예요. 고구려의 천리장성은 북한의 핵개발과 닮았어요. 고구려가 당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천리장성을 쌓듯이 북한의 핵개발은 미제국주의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죠.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도 미국을 때리기 위한 것이죠. 그로 인해 북한 주민들은 굶어 죽고 난리가 나죠.nbspnbsp위기에 처해서 독재를 하게 되면 반대파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북한도 지금 반대파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잖아요. 감옥에 넣어도 되는데 그냥 죽어버려서 누구도 반대를 못하게 하죠. 저도 옛날에는 연개소문이 나라를 위해서 외세를 막아내었다는 생각만 했는데, 북한을 경험하면서 저도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연개소문이 외적을 물리친 것은 잘한 것이지만 과연 백성들은 행복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행복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결국 당나라로부터 고구려를 지킨 것도 연개소문이지만 장기적으로 고구려가 멸망한 것도 연개고문의 영향이 컸던 겁니다. 그것처럼 북한의 체제를 지켜내는 것도 강경 세력 때문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들 때문에 지탱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nbspnbsp국가라는 것은 지켜내야 하는 것이고 자주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항상 그것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위하기 때문에 자주를 지켜야 하고, 사람을 위하기 때문에 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사람은 죽어도 되는 것은 안 됩니다. 통일을 하더라도 그 속에 사는 사람을 외면한 통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nbspnbsp이념적인 강경 세력이 꼭 진실은 아니라는 것이죠. 어릴 때 민족적인 성향을 공부하던 것과 현재의 북한에서 일어나는 사실들을 갖고 공부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가를 위하는 것은 참 중요하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국가주의가 되면 그 국가 안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희생된다는 것입니다.nbspnbsp고구려가 단기적으로는 당나라에 강경하게 대응해서 굴복하지 않았지만 연개소문이 죽자 그 독재 권력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갖고 아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나고 권력을 잃은 아들이 당나라를 끌고 들어와서 결국 나라가 패망하는 비극적인 결말에 도달했습니다.nbspnbsp고구려 패망의 원인은 첫째 당시 세계에서 제일 강한 나라인 당나라와 60년 전쟁을 하다보니 점점 피패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둘째, 그러다보니 강경 세력과 온건 세력이 있는데 온건 세력이 타협을 하려 하니까 강경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더욱더 강경하게 나가게 되었습니다. 셋째, 천리장성이라는 엄청난 공사가 주민들을 곤궁하게 만들었습니다.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애국심을 갖게 한 것이 아니라 강경한 강요에 의한 저항을 하게 되니까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되었고, 나라를 지켜야 할 자발적 저항 정신도 점점 약해졌습니다. 넷째, 마지막 계기는 권력 분쟁이 일어나면서 오히려 적에 가서 아부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nbspnbsp연개소문이 적을 물리치는 강력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을 잘한 것이라 생각했으나 오늘날 북한을 겪으며 생각이 달라졌다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정말 고구려의 백성들이 행복했을지, 오늘날 북한의 국민들은 어떨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역사가 이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nbspnbsp북한 이야기가 나오자 통일과 인도적 지원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통일을 하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도적 지원이 없는 통일, 북한의 체제가 무너지기만을 기다리는 통일은 ‘사람을 외면한 통일’이었습니다. 스님이 직접 북한의 대량 아사사태를 접하고 행하셨던 ‘북한동포살리기운동’에 대한 여러 가지 장애물 이야기를 듣고 우리도 북한하면 북한의 사람보다 막연히 김정은이라는 독재자 한명으로 대등시하고 있지 않았는지 반성했습니다. nbsp nbspnbsp마지막으로 중국은 역사를 문명사적으로 접근하고 우리 나라는 민족적으로 접근하여 역사를 다루는 범위가 훨씬 중국에 비해 적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도 문명사적으로 접근하여 보다 폭넓은 역사관을 가지고 다양했던 우리의 선대와 이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발해가 멸망하면서 동북아에는 큰 역사적인 전이가 일어났습니다. 요나라가 동북아를 지배하고 송나라를 압박했죠. 그 다음에 나라를 한 번도 세워본 적이 없던 여진족이 일어나서 금나라를 세워서 송나라를 남쪽으로 밀어내서 남송을 만들었죠. 송나라 황제가 금나라의 포로가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저 서쪽에 있던 몽골족이 일어나서 원나라를 세워서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저 아래로 내려가서 송나라도 멸망시키고 대제국을 건설했죠.nbspnbspnbsp아무튼 발해 시대까지는 우리 민족이 중심이 되다가 발해가 멸망하면서는 우리 민족의 아래에 있던 민족들이 전부 일어나서 제국을 건설합니다. 그래서 동북아의 역사를 우리 민족에만 한정하면 대륙을 잃은 것이 됩니다. 그러나 민족이 아니라 문명적으로 보면 동북아 대륙은 우리가 잃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아래 있던 다른 민족이 일어나서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를 세웠고, 한족에게는 명나라 때 이 지역을 한번 빼겼을 뿐이죠. 다시 청나라가 일어나서 또 장악을 했죠. 그 뒤는 일본이 들어와서 만주국을 건설했죠. 그래서 동북아 지역이 한족의 지배를 받은 것은 첫번째가 한사군에 의해서였고, 두번째가 원나라가 망하면서 명나라에 의해서였고, 세 번째는 지금입니다. 이렇게 단 세 번 밖에 없어요.nbspnbsp오히려 동북 민족이 중원을 재패한 것은 여러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 민족이였던 은나라였고, 그 다음은 선비족이 세운 연나라였고, 그 다음은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 그 다음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들어가서 장악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크게 문명사적으로 보면 자기 지역을 장악한 것이고 자기 지역 안에서 정권 교체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작은 민족 단위로 보기 보다는 문명사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은 역사를 민족사적으로 보지 않고 문명사적으로 보니까 원나라와 청나라도 자기 역사의 일부로 보지 외세의 침략을 받아 식민 지배를 받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너무 좁은 의미의 민족사로만 보니까 우리 역사는 작아지는데, 중국은 그것까지 다 포용해서 자기들의 역사로 만드니까 역사가 어마어마하게 커져 버린 것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이것을 북방 민족과 남방 민족의 문명사적 갈등과 협력 관계로 본다면 지금까지는 아직 대등한 관계에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이냐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민족사로 보면 발해 이후의 역사를 잃었다고 볼 수 있지만, 발해 이후에는 우리의 다른 종족들이 일어나서 동북아 대륙을 점령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서 이제는 인류 문명사적인 관점으로 크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도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이제는 하나로 연대하잖아요. 그것은 다시 이슬람 문명과 충돌하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중국과 인도 문명도 있고요. 이제는 이웃나라만 보는, 적의 적은 동지라고 하는 원교근공책의 문제가 아니예요. 문명적으로 비슷한 나라끼리 통합해가는 이런 시대입니다. 이렇게 과거를 배우면서 우리는 늘 미래를 생각해야 돼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것을 기억하려고 이렇게 고생하면서 다니는 게 아니잖아요. 여기서 어떤 아이디어를 얻어서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고 개척할 것인가가 핵심입니다.”nbspnbsp문명사적으로 역사를 해석한다면 우리의 정신과 역사적 감수성이 좀 더 풍부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잃어버린 역사를 직접 찾아다니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도 중요하다는 말씀에 좀 더 우리의 역사관을 동북아 지역으로 확장시켜 생각의 깊이를 넓히고 싶어졌습니다. nbspnbsp이어지는 조별 나누기에서도 가장 많이 나왔던 이야기는 단연 사람을 앞세운 통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동북아 역사기행을 왔던 이유도 모두 사람을 위해서인데 홍익인간을 제창했던 우리 민족이 왜 통일을 말할 때 자꾸 사람을 배제할까 하는 어느 조원의 나누기에 모두 숙연해졌습니다. 북한이 극한에 처해 있는 것은 알았지만 남한도 통일에 있어서는 극한에 처해있는 것 같아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nbspnbspnbsp더 많은 청년들이 동북아 역사기행에 와 선조들의 역사가 스며든 이 땅을 직접 두 발로 느끼고 같은 역사를 지녔던 북한의 국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커지기를 기원했습니다. 비록 동북아 역사기행의 하이라이트였던 백두산은 오늘 여정으로 끝이 났지만 우리의 가슴은 뜨거운 무엇인가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몇 천년 전 선조들과의 교감, 북한 주민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nbspnbspnbsp내일은 발해의 수도인 상경용천부 유적을 둘러본 후 오후에는 봉오동 전투터로 가서 독립운동가들의 넋을 기리고 두만강 건너편으로 한반도 최북단 마을과 함북 온성군을 바라본 후 연길로 가는 일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오늘 현장 스케치는 김다정님이, 사진 촬영은 권성준, 변지민님이 해주셨습니다.nbsp
2015.8.10 청년 동북아 역사기행 2일째, 고구려의 역사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청년 동북아 역사기행 2일째를 맞이하여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 유적지를 안내하며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 강연했습니다.nbspnbsp동북아 역사 대장정 2일째 새벽이 밝았습니다. 낯선 중국 땅에서 처음 보낸 밤이라 피곤했을 텐데도 단 한명도 지각하지 않고 어제 밤 약속한대로 4시 40분까지 버스 탑승을 하고 새벽5시 정각에 송수신기로 들려오는 스님의 아침 인사로 오늘의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nbspnbsp고구려의 유적을 보러 환인에서 집안으로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이동하였습니다. 그런데 고속도로인데도 너무 느려서 이상하다 했는데 스님이 “지난 번 관광버스가 전복된 사고가 났던 지역인데 경찰차가 앞에서 통제를 하고 있어서 서행을 한다” 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버스를 멈춰 세우더니 공안이 들어와 검문을 하기도 해서 뭔가 위험한 지역을 가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일기도 했습니다. 검문을 무사히 통과하고 구불구불한 국도를 따라 흔들리며 이동을 하였습니다.nbspnbsp▲ 북한의 뙈기밭. 가파픈 절벽까지 뙈기밭으로 만들어져 있는 모습.nbspnbsp그 때 스님이 “지금 오른쪽으로 보이는 강이 압록강이고 강 건너는 북한 땅입니다”라는 말을 하시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북한 땅이 있고, 내 눈앞에 보이는데 직접 갈 수 없다는 분단의 현실이 가슴 아팠습니다. 특히 절벽 꼭대기까지 뙈기밭을 만든 모습을 보고 무변심 법사님은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굶주림에 얼마나 몸부림을 쳤던 것일까... 목이 메였습니다.nbspnbsp압록강을 따라 조금 더 가니 오늘의 첫 일정인 국동대혈에 도착하였습니다. 국동대혈은 나라의 동쪽으로 가면 큰 대혈이 있다는 뜻으로 이때 국은 고구려 시대의 국내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국동대혈을 보러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비 때문에 우산을 들고 우비를 입느라 출발 준비가 더 분주해졌습니다. 이런 비 걱정도 잠시 조금 걷기 시작하니 신기하게도 비가 멈췄고 이동하기엔 한결 수월해졌습니다.nbspnbspnbsp국동대혈에 올라 고구려의 선조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모습을 떠올리며 대한민국에서 온 140명의 청년들도 함께 그 뜻을 기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국동대혈nbsp1300년 전까지 우리의 조상들이 이곳에 와서 우리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에서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는 게 신기하였습니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듯 한 오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1300년 전까지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던 조상들은 자신의 후손들의 우리의 땅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땅이 되어 이렇게 찾아와야하는 것을 어떻게 여기실까’ 하는 생각에 빠지며 우리의 역사인데 중국 땅에 있는 것이 아쉽기도 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청년 역사기행단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기울여 발원과 축원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 세상에서 가장 크시고 이 세상에서 가장 밝으신 환인 하느님,하느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처음 나라를 세우신 환웅 천황님,환웅 천황님께서 세우신 배달 나라의 건국 이념 홍익인간 재세이화,nbsp환웅 천황님의 건국 이념을 계승한 단군 왕검님,nbsp단군 왕검님께서 신시를 새롭게 하여 세운 조선 나라,nbsp조선 나라를 계승한 해모수님의 부여 나라,nbsp그 뜻을 계승한 고주몽님의 고구려, 온조님의 백제, 박혁거세님의 신라, 김수로님의 가야,고구려의 뜻을 계승한 대조영님의 발해,nbsp남북으로 흩어진 민족의 뜻을 이은 왕건의 고려,nbsp그 영토와 사람을 계승한 이성계의 조선,nbsp조국이 광복되어 세운진 나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nbsp오늘 우리를 있게 한 하느님을 비롯한 조상님들께 삼가 합장하오며 발원하옵니다.nbspnbsp우리가 여기까지 오도록 나라를 지켜주고 백성을 지켜준 모든 호국 영령들의 은혜에 보답하며 하나된 조국 통일 대한민국을 발원하옵니다. 통일된 우리 나라는 우리만이 아니라 이웃 나라들과 더불어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여 인류 문명의 새로운 중심지가 될 것을 발원하옵니다.nbspnbspnbsp이곳에 일찍 찾아오지 못하고 고구려 멸망 이후 1300여년 만에 찾아온 것을 참회드리오며 늦게 나마 이렇게 찾아와 인사를 올립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온 130여명 청년들의 이 간절한 발원을 받아들여 주옵소서. 저희들은 그동안 개인의 행복 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통일을 향해 나아갈 것을 발원하옵니다. 저희들의 이 간절한 발원을 들어 주옵소서.nbspnbsp북녘 동포들 굶주림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고 병듦에서 벗어나고 인권이 개선되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길 발원하며, 남한의 젊은이들도 절망을 딛고 일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빈부격차 해소되어 모두 다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발원하며, 남북이 하나되는 새로운 나라 통일 한국을 발원하옵니다. 오늘 이 발원하는 젊은이들 모두 건강하고, 이 여행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저희들을 보살펴 주시옵소서.”nbspnbsp스님의 발원을 들으며 ‘선조들은 이렇게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우리들을 어떻게 바라보실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 깊은 곳에서 북받치는 울음이 울컥하고 올라오기도 했습니다.nbspnbsp국동대혈에서 나와 집안에 있는 장수왕릉,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릉을 보러 이동하였습니다. 이동하면서 이번엔 버스 왼쪽으로 조금 전에 이동하면서 보았던 압록강 넘어 북한 땅이 보였습니다. 해가 나고 날씨가 더워진 탓인지 북한 어린이들이 물가로 나와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을 보며 ‘북한 아이들도 물놀이 하는 것은 우리와 똑같구나’ 하는 생각의 한편으로는 멀리서 봐도 너무 마른 아이들의 모습에 일정 중에 조금만 배가 고파도 틈틈이 맛있는 간식을 챙겨먹는 우리들이 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버스 안에서 북한의 마른 아이들, 나무는 다 베어버리고 없는 민둥산, 검은 연기를 내 뿜고 있는 시멘트 공장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nbspnbsp▲ 북한의 시멘트 공장nbsp다음은 장군총을 보았습니다. 그 웅장함은 책과 영상자료로 봐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그 위엄은 더 대단하였습니다. 역사기행을 온 우리들의 추억을 배려해 스님은 조별로 사진 촬영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햇빛이 강렬함에도 늘 한결같은 미소를 지어주시는 스님의 편안한 마음에 장군총에 대한 추억이 더 편안하게 남을 것 같습니다.nbspnbsp▲ 장군총에서 조별 기념 사진nbsp무덤을 만드는데 사용한 돌이 여기에서 20km 떨어진 우리가 지나온 도로를 개발하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게 신기하고 유적의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개발로 알게 되었다는 게 엉뚱하기도 했습니다. 1600년 전 만주 땅에서의 고구려의 위엄과 위대함이 그 유적의 규모로도 크게 다가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위대한 유적이 잘 관리하고 보전되고 있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쉬웠습니다.nbspnbsp이어서 조춘호 선생님과 이승용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광개토대왕릉비, 광개토대왕릉 순서로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 광개토대왕비nbsp▲ 광개토대왕릉nbsp가장 안타까운 것은 광개토대왕릉은 장군총과 달리 절반 이상 무너져 내렸는데 이것은 무덤 속에 사용한 돌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광개토대왕은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으면서 무덤을 만들 때 미처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튼튼한 강돌을 넣은 게 아니라 주변 산돌을 넣어서 오랜시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이라고 합니다. 무너져 내린 무덤을 보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nbspnbsp집안 무덤에 있는 고구려 무덤 중 벽화가 발견된 무덤은 30곳 정도 된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공개된 5회분5호묘로 이동하여 직접 무덤 속으로 들어가서 벽화를 보았습니다.nbspnbsp▲ 5회분 5호묘로 들어가는 길nbsp조춘호 선생님의 후레쉬를 비춰가며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고, 늘 말로만 하던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의 모습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땡볕을 걸어다니다가 지하 무덤으로 들어오니 거대한 냉장고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시원함이 느껴져서 기다리고 있는 시간마저 행복했습니다.nbspnbsp무덤 앞에 있는 박물관으로 이동하여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스님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벽화를 한 장 한 장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우리 고구려의 벽화를 중국식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느 부분에서 틀렸고 어떤 부분에선 일리가 있는지도 짚어주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청년들의 ‘아’ 하고 외치는 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nbspnbsp▲ 5회분 벽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스님nbsp“원래 고구려 무덤은 돌로 쌓아서 덮개를 덮은 적석총입니다. 이 무덤이 점점 커져서 장군총에 오면 무덤이 7층까지 올라갑니다. 여기에 무덤실은 5층에 배치가 됩니다. 이렇게 무덤실은 주로 지상에 있었는데 어떤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점점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지하로 내려가면서도 석실은 그대로 가져갔기 때문에 위치만 바꾼 것 밖에 아니였어요. 그러면서 나타난 것이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nbspnbsp초기 벽화는 주로 생활상을 그렸어요. 후기 벽화로 갈수록 불교 영향을 받아서 연꽃을 그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신도를 많이 그렸습니다. 오늘 들어가본 5호묘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데 그것은 후기 것임을 알 수 있죠. 여기에 전시된 것들은 생활도가 많아요.”nbsp그러면서 스님은 전시된 벽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여기 벽화를 보시면 머리가 소머리로 그려져 있죠. 소머리로 되어 있으니까 이것은 고구려에 있었던 ‘우가’를 표현한 겁니다. 5가 아시죠? 마가, 우가, 저가, 구가, 양가라는 다섯 개의 부족이 있었어요. 각 부족은 거의 독립되어 있었어요. 군대도 다 따로 가지고 있었고요. 고구려는 일종의 연방 국가 같은 것이였어요. 나중에 각 부족은 왕권이 점점 강화되면서 다섯 부서의 장관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다섯 개의 지방자치와 같은 연방 국가였다가 점점 중앙 정부의 각부 책임자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임금도 이 5가가 합의해서 뽑았습니다. 이것은 신라의 화백 제도와도 같습니다. 우리 나라는 이렇게 초기에 연방 형식을 갖추고 있었어요.nbspnbsp이 ‘우가’는 고기의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 시기에는 농업을 담당했습니다. 식량과 농업을 담당하는 부서가 ‘우가’였는데 이 우가 출신 중에 단군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왕의 아들이 건실하면 그대로 왕이 되지면 왕이 아들이 없으면 5가 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을 선택해서 뽑았던 것이죠. 그리고 왕의 아들이 여러명 있어도 맞이가 시원치 않으면 또 의논을 해야 합니다.nbspnbsp이 벽화는 ‘우가’를 표현한 그림이라고 보면 되는데 밑에 ‘신농씨’라고 적혀 있죠. 이것은 중국식 해석입니다. 중국에서는 농업의 신을 신농씨라고 합니다. 중국 역사에서 농업을 처음으로 시작한 신이 신농씨입니다. 그래서 이 벽화를 신농씨라고 표현했지만 이 벽화는 중국의 그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고구려의 우가를 표현한 그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신농씨도 배달나라 출신입니다. 선진 문명인 배달 나라의 일부가 중국 쪽으로 내려가서 처음으로 농사 짓는 방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신이 된 거예요. 우리 나라 사람 중에 일본에 가서 신 된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일본에 처음으로 호미를 전했다면 일본에서 호미 신이 됩니다...”nbsp큰 유적 뿐 아니라 그 속에 그려진 벽화의 의미까지 다 알고 계신 스님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상세하게 그 내용들을 다 알고 계실까?’ 라고 옆에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공부를 많이 하셔서 그럴 것’ 이라는 친구도 있고, ‘워낙 직관력이 뛰어나신 분이니깐 바로 아시는 것’ 이라는 친구도 있고,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옆에 있던 종합 생활도에 대해 특별히 중요성을 강조하며 설명을 이어나갔습니다.nbspnbspnbsp“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서 봐야할 것은 왼쪽 아래쪽에 있는 이 그림입니다. 이 나무는 신단수입니다. 여기 신단수 아래에 동굴이 하나 있죠. 동굴 안을 자세히 보시면 곰이 한 마리 앉아 있어요. 호랑이는 동굴 밖에 있는데 화살을 맞고 있어요. 이 그림은 단군 설화와 내용이 똑같습니다.nbspnbspnbsp단군 설화를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비판이 있는데, 일연은 12세기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벽화는 5세기 벽화예요. 그러니까 단군 설화는 민족 전통적으로 주욱 내려온 이야기니까 여기에 그림으로 그린 것이죠. 그러나 고구려가 멸망한 후 사료가 유실한 상태에서 일부 자료를 보고 일연이 그것을 요약해서 기술했던 것이죠.nbspnbsp토착 세력은 다 자기 부족의 상징이 있습니다. 곰을 섬기는 부족, 호랑이를 상징물로 여기는 부족, 각 부족이 있었어요. 그런데 선진 문명을 가진 이주민이 오니까 토착 세력과 이주민이 서로 사이좋게 협력하기도 했지만 저항하는 경우도 있었겠죠. 단군 설화를 보면 호랑이족은 저항을 했다고 볼 수 있고, 곰족은 서로 협력했고 특히 결혼 동맹을 맺었다고 볼 수 있죠. 고구려 건국에서도 보면 고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고 제일 먼저 합병한 나라가 송양국이거든요. 전쟁을 해서 합병한 것이 아니고 합의해서 합병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 초기에는 반드시 송양국의 공주를 왕후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2대 유리왕의 부인도 송양국의 공주였습니다. 첫 부인이 결혼하고 2년 안에 죽자 다시 송양국의 둘째 딸을 왕후로 데려옵니다. 이처럼 선진 이주민 세력인 환웅족과 토착 세력인 웅족이 결혼 동맹을 맺었고 그 사이에 난 아들이 단군 왕검인 것입니다.”nbspnbsp한 친구는 스님의 벽화 설명 중에서 마지막에 설명해 준 종합생활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벽화 왼쪽 아래에 아주 조그맣게 그린 부분을 찾아내면서 이 속에서 우리 단군 신화 이야기가 들어있지 않느냐라고 설명해주신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스님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신단수 아래에 웅크린 곰을 보기 위해 우르르 모여들었고 곰을 알아 보지 못한 친구들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자 스님은 “곰이 안 보이는 사람은 업장이 두터워서 그렇다”며 농담을 던졌습니다. 단군 이야기는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임이 벽화로 증명된 것을 알게 된 이 순간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nbspnbsp시원했던 5회분5호묘 벽화 냉장고에서 빠져나와 다음으로 간 곳은 환도산성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평지성인 국내성에 있다가 외적의 침입시 방어를 위해 환도산성을 지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나무와 풀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했는데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발굴 작업을 진행해 지금의 형태를 갖추고 있고 직접 가 보니 지금도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었습니다.nbspnbsp▲ 환도산성 남문 앞에서 전체 기념사진nbsp환도산성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 보기도 하고, 아래에 내려와 발굴된 산성하 무덤떼를 하나씩 둘러보며 아래에서 환도산성 위를 올려다 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 환도산성을 올려다 보았을 때 지는 해가 환도산성 너머 산에 늬엿늬엿 걸린 모습은 잊지 못할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해주었습니다.nbspnbsp▲ 산성하 무덤떼에서 바라본 환도 산성nbsp산성하 무덤떼에서는 전체 일행이 바닥에 주저 앉아 조용히 사방을 둘러본 후 잠시 명상을 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머릿 속에는 산성을 쌓고 나라를 지키려고 부단히 애를 쓰던 고구려인들의 모습이 한 편의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nbspnbsp▲ 산성하 무덤떼에 앉아 잠시 명상의 시간nbsp다음은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국내성을 둘러보았습니다. 국내성이라고 해서 궁궐을 상상하며 한껏 기대감을 갖고 갔는데 중국인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 가운데에 성벽 터가 조금 남아있는게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방치해둔 것에 대해 또 다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nbspnbsp▲ 국내성nbsp국내성 북쪽 성벽에서 시작하여 서쪽 성벽이 끝날 때까지 걸으면서 성벽을 유심히 살펴보는 우리 일행을 중국인들은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중국인들은 운동하고 밥먹고 휴식하고 걸어다니는 일상 거리인데 우리들에게는 선조들이 남긴 소중한 유산인 것이죠.nbspnbsp서쪽 성벽을 돌고 남쪽 성벽이 시작되면서부터 통구하와 압록강도 함께 합해졌습니다. 압록강을 따라 걸으면서는 이승용 국장님으로부터 좋은벗들이 96년부터 북한동포돕기 운동과 통일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 국내성의 남쪽 성벽을 따라 압록강변을 거닐며nbsp저녁 식사는 압록강변에 위치한 조선족 식당에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한 후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법륜 스님의 역사 강의였습니다.nbspnbsp강의 내용은 고구려의 시작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고구려는 북부여를 계승한 나라이고, 고구려 역사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 부여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면서 “우리 역사에서 부여, 발해에 대해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면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우리가 도착한 이곳은 고구려가 425년 동안 수도로 정한 곳입니다. 환웅의 배달 문명을 계승한 나라가 단군의 조선 나라이고, 그 조선 나라의 옛 영토를 되찾겠다고 하면서 세운 나라가 고구려입니다. 이것이 다물 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는 배달의 문명을 계승했고, 조선의 문명을 계승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배달 나라와 조선 나라에 대해 여러 가지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지만 고구려를 보면서 우리는 고구려가 이 문명을 계승한 동북아의 독특한 민족임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nbspnbsp그동안 고구려가 마치 창조한 것으로 말해진 것들도 그 이전을 알게 되면서 계승했다고 표현을 하게 된 것입니다. 광개토대왕의 비석에도 ‘북부여의 후손이고, 북부여로부터 말을 타고 남으로 내려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기에 보면 해모수가 ‘나는 단군의 후예로서 단군의 조선 나라를 계승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여는 조선보다 조금 더 북쪽에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부여라고 불리우는 현이 있습니다. 고구려 시대에도 천리장성 중에 부여성이 있었습니다. 이 부여에서 고주몽은 남쪽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여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발해가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의 첫 번째라면 두 번째는 부여입니다. 부여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어요. 이것은 발해와 부여 모두 지금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한반도가 아닌 저 동북쪽에 있었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그러니 다물 사상에 의해서 고조선으로부터 고구려로 바로 이어진 것이 아니고 그 중간에 부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여와 고구려를 하나로 봐야 합니다. 부여 고구려 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죠.nbsp지금 현재로 보니까 고구려가 처음부터 강성했던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고, 동부여와 고구려의 경쟁에서 고구려가 이기게 되면서 그 정통성을 이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동부여는 만만한 나라는 아니였습니다. 고구려 문자 명왕 때인 6세기까지 유지가 되었습니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있을 때도 부여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6세기 초까지 삼국 시대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오국 시대였습니다. 남쪽에 가야가 있었고, 북쪽에 부여가 있었기 때문에 삼국에 두 나라를 포함시켜야 합니다. 6세기에 들어와서야 가야가 신라에 합병이 되었고, 6세기에 들어와서야 부여가 고구려에 합병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삼국이 유지된 것은 6세기와 7세기에 한 160년 정도 밖에 안 됩니다.”nbsp이어서 스님은 고구려의 성장과 쇠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특히 신라가 어떻게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고구려는 북위와 화친을 맺으면서 서북 쪽이 안정이 되고 그러자 장수왕은 주력군을 백제 공격에 사용하여 백제를 남쪽으로 밀어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태평성대가 오래가면 항상 문제가 생깁니다. 첫째, 사람들이 사치하기 시작하고, 둘째, 부정부패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셋째, 왕위 쟁탈전이 생기면서 내부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고구려는 겉으로는 영토도 크고 힘도 있었지만 내부는 점점 취약해져 가게 됩니다.nbspnbspnbsp이때 신라는 5세기 때까지만 해도 가야의 침공을 받고 망할 지경이 되어서 광개토대왕에게 부탁해서 5만 군사의 지원을 받아 겨우 나라를 유지했는데 6세기에 접어들면서 법흥왕 때 율령을 선포하고 불교를 공인합니다. 불교를 공인한 이유는 가야와 합병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가야는 원래부터 불교 국가였어요. 왜냐하면 김수로왕의 부인이 인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삼국 가운데 철저하게 불교를 금지한 국가가 신라였습니다. 옛날로 치면 가야와 신라는 철천지 원수였지만 거꾸로 개혁 개방 정책을 하면서 신라가 강성해지고 가야는 점점 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가야를 침공하기 보다는 합의 통일을 했습니다. 국명은 신라로 하기로 하되 대신에 신라가 가야를 포용하기로 한 것입니다.nbspnbsp첫째, 가야인들의 신앙을 신라가 수용해야 된다고 해서 불교를 공인한 것입니다. 신라 안에서도 반대가 심했지만 이차돈 같은 젊은 사람이 반대를 해서 결국 한 사람이 죽고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불교가 공인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신라도 가야와의 통합이 쉬운 일은 아니였어요. 둘째,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왕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즉 가야 귀족들의 신분 보장을 해주었습니다. 이것을 지금의 남북 관계에 비유를 하면 불교를 공인한 것은 공산주의의 합법적인 활동을 허용한 것과 같습니다. 가야의 귀족을 신라의 귀족으로 받아들인 것은 북한의 장성을 통합군의 장성으로 임명한 것과 같습니다. 또한 함경북도의 도지사를 통합된 나라에서도 도지사의 자리를 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가야가 이런 통합 신라와의 합의 통합을 받아들인 것입니다.nbspnbsp신라 중심으로 통일을 하려고 했으니까 이렇게 가야를 포용한 것이겠죠. 그렇다면 지금 남한이 남한 중심으로 통일을 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그대로 두려면 북한을 포용해줘야겠지요? 그런데 지금의 남한은 이 정도의 포용 정책을 할 수 있나요? 이 정도를 못하면 북한이 수용을 안 하겠죠. 죽기 살기로 저항을 하겠죠. 지금 남북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강자가 약자를 포용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이렇게 신라는 가야와의 통합을 통해 갑자기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인재도 두배로 늘어났고, 가야의 앞선 철기 문명을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 생산량이 늘어나고, 무기가 개발이 되고, 그래서 진흥왕이 나제 동맹을 맺어서 고구려를 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자 고구려는 한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신라는 함흥, 원산까지 밀고 올라갑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북방도 막아야 하고 남쪽도 막아야 하고 두 개의 전쟁을 할 여력이 도저히 안 되었던 겁니다.nbspnbsp어쨌든 신라가 단시간 내에 갑자기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야와의 합의 통합 때문이였습니다. 신라는 가야에게 조금 양보했지만 얻은 것은 열배를 더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남북한도 합의 통일을 하게 되면 통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까지 만들어나가게 되면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됩니다. 유라시아로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북한 개발을 하기 위해서 돈이 조금 드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nbspnbspnbsp나아가서 신라는 통일이라는 계획을 세워 놓고 통일을 한 것이 아니고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다가 결과적으로 통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목표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대륙을 차지하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어서 통일을 했다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로 대륙을 잃어버린 한계가 있었죠. 물론 잃어버린 것은 아니죠. 발해가 다시 생겼으니까요.nbspnbsp고구려 멸망 후 30년만에 북방 영토에는 발해, 즉 대진국이 일어났죠. 그래서 고구려와 백제가 망했다는 의미에서는 삼국 통일이지만 실제로는 삼국 통일이라기 보다는 신라와 발해라는 이국 시대라고 볼 수 있죠. 이때 또 재미있는 점은 고구려를 잃고 나라를 되찾고자 한 부흥군과 신라군이 합동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와 신라는 철천지 원수였지만 그 보다 더 큰 원수가 당나라였습니다.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쫓아내기 위해서는 고구려 부흥군이 신라군과 연합해서 가장 활발하게 싸웠던 것입니다. 신라는 무기와 물자를 대고 실제 인력은 고구려군이 전면에 나서 싸워서 결국 당나라군을 한반도 안에서 쫓아내게 됩니다.nbspnbspnbspnbsp고구려의 영토 일부를 신라가 차지했지만 그것은 반도 안에 불과했고, 실제로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는 발해가 회복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삼국통일이라기 보다는 북발해와 남신라라고 하는 이국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고구려의 기운은 발해로 그 역사적 전통성이 계승되었기 때문에 환단고기에 신라는 언급을 안 하고 있습니다. 고구려 다음에 대진국이 나옵니다. 발해 사람들은 자기들을 발해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자신들의 나라를 진국이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고구려는 후대로는 발해로 계승이 되었습니다.” nbspnbsp신라의 삼국 통일에 대한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한반도 동쪽 아래의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신라가 짧은 시간에 어떻게 비약적 성장을 할 수 있었는지는 많은 시사점을 주었습니다. 특히 신라가 가야를 포용해서 합의 통일을 한 것에서 분단 국가인 우리가 독일 통일이라는 외국의 사례만 보고 통일의 방안을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경험 속에서도 보고 배울 점이 많다는 사실은 아주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nbspnbsp이렇게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오국시대의 방대한 역사를 단 2시간 만의 강의로 우리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춰 적절히 비유로 강의를 해준 스님이 더 대단해 보였습니다. 에어컨도 잘 안 나오고 2시간 내내 서서 열정적으로 강의해주는 스님 앞에서 체력적 한계와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무거운 눈꺼풀과 씨름하는 우리들이 많이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nbspnbsp잠자리에 들기 전 조별로 모여 마음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집안에 있는 고구려의 거대한 유적지를 돌아보며 느낀 점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체력적인 소모가 커서 많이들 지쳐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제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여러 명의 친구들이 환도산성 아래에서 산성을 올려다 보며 바라본 해질녘 풍경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보았던 초록색 중 가장 아름다웠던 색이었다고 이야기한 친구도 있었습니다.nbspnbsp▲ 조별 마음 나누기 시간nbsp그리고 책에서만 보던 장군총,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릉을 실제로 보니 그 거대함에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한 현실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식사 전에 압록강변에서 바라본 북한의 모습이 불빛 하나 없는 암흑이었던 것과 달리 이곳 중국은 알록달록한 불빛으로 휘향찬란한 것을 보면서 북한을 껴안지 못하고 있는 우리 남한의 현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고 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하루 종일 압록강변을 따라 북한의 모습을 보면서 북한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볼 예정입니다. 어떤 모습을 보게 되고 그 속에서 무엇을 느끼게 될지 기대하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오늘 스케치는 김양숙님이, 사진 촬영은 권성준, 변지민님이 함께해 주셨습니다.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