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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28 발우공양 및 깨달음의장 수련생들과의 만남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의 발우공양에 참석해 ‘부모님에게 참회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법문하고, 깨달음의장 수련생들과 만나 ‘생활 속에서 수행을 해나가는 방법’에 대해 법문했습니다.nbspnbsp새벽 4시에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난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공동체 상주대중과 함께 새벽 예불 및 108배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기도를 마치고 나서는 발우공양에 참석해 음식을 먹고 발우를 깨끗이 씻은 후 백일출가 행자들을 위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스님은 먼저 발우공양 때 음식을 먹고 나서 그릇을 씻은 청숫물이 탁한 점을 지적하면서 이것은 발우공양의 청결 정신과 굶주리는 사람을 생각하는 정신에 어긋나는 것임을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 발우를 씻고 난 청수물nbsp특히 “청숫물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전통적으로 청정한 수행으로 남긴 깨끗한 물만 아귀가 먹을 수 있기 때문” 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밥 한 톨을 버리거나 음식을 버리는 것은 결국 배고픈 자를 더 배고프게 합니다. 우리나라의 식량 소비량은 연간 1800만 톤 되는데 생산량은 500만 톤이고 나머지 1300만 톤은 수입해서 씁니다. 자급률이 30가 채 안 되지요. 그래서 음식을 버리게 되면 그만큼 수입을 많이 해야 되고, 수입을 많이 하게 되면 세계 식량 가격이 오르게 되고, 세계 식량 가격이 오르게 되면 식량을 수입해야 하는 가난한 나라는 그만큼 식량을 적게 수입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에 식량 부족 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많은 이들이 굶주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내가 밥 한 톨 버리는 것은 지구 저편의 가난한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는 것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내 눈에 안 보일 뿐이지요.”nbsp스님의 자상한 설명에 발우공양을 할 때도 자신의 행동에 깨어 있어야 함을 다시 한번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은 행자들이 절할 때의 자세가 바르지 못함을 얘기하면서 “절을 할 때는 정성을 기울여서 온 몸이 땅에 붙도록 머리를 조아리고 엉덩이를 들지 말고 발에 붙이고 등을 펴도록 하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또 행자들의 염불 소리가 작은 것을 얘기하면서 “초심자들은 낮은 목소리로 염불을 하면 자꾸 졸게 되요. 전체적으로 고성으로 염불을 하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nbspnbsp그리고 “지금 백일출가 수련생들이 부모님께 참회 기도를 21일 동안 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하면서 왜 부모님께 참회를 해야 되는지, 어떻게 참회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출가와 가출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진정한 출가란 무엇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nbspnbsp“우리가 사는 집은 우리를 안온하게 보호해주는 동시에 우리를 속박하는 굴레입니다. 집에 사는 동안에는 집이 자꾸 속박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자꾸 집을 나가려고 하게 되죠. 그러나 집을 나가서 살아보면 안온함이 없기 때문에 다시 집이 그리워집니다. 이렇게 집은 ‘안온처’와 ‘굴레’라는 두 가지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굴레’라는 성질 때문에 집을 뛰쳐나오고, 집을 나오면 ‘안온함’이 그리워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또 속박을 받으면 집을 뛰쳐나오는 것을 반복합니다. 이렇게 집을 나오는 것을 ‘가출’이라고 합니다.nbspnbsp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집을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즉, 굴레를 없애기 위해서는 안온함도 같이 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출가’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백일출가를 했다고 하지만 엄격하게는 출가가 아니고 가출을 한 것입니다. 세상 사는 것이 힘들어서 피해 온 것이죠. 여기 와서 살아보니 집이 그립죠? nbspnbsp백일출가 한번 해보기 위해서 부모님 승낙 받기도 어려웠고, 회사 휴직하기도 어려웠고, 애인한테 허락받기도 어려웠고, 출가 한번 해보는 것이 꿈이었고, 출가만 하면 뭔가 될 것 같았는데, 막상 출가해서 살아보니 다시 집이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출가하기를 십수 년간 원하다가 막상 출가를 하고 나서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성 안이 그리워졌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때 부처님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내가 지난 세월 얼마나 출가하기를 원했던가. 그런데 7일도 지나지 않아서 이게 무슨 짓인가’ 이렇게 크게 자각을 하고 발심해서 다시 수행의 여행을 떠났습니다.nbspnbsp여러분들도 이제 20일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벌써 집이 그리워지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이제 여러분들도 초심으로 돌아가서 ‘내가 백일출가를 얼마나 원했던가’ 이렇게 자각을 해야 합니다. 얼마나 원했으면 만 배까지 하고 왔겠어요? 그런데 자꾸 집을 그리워하고 연연해 하면 백일이 무의미한 생활이 되고 괴로움의 생활이 됩니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아, 내가 백일출가 하기를 얼마나 원했던가’ 를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수행 생활에 맞게 지내겠다고 발심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nbspnbsp이어서 부모의 안온함과 속박은 집의 안온함과 속박과 같은 의미라고 하면서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집처럼 부모는 우리를 보호해주는 안온한 곳입니다.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이죠. 그러나 동시에 부모는 우리를 속박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보호해주는 것도 부모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나를 속박하는 것도 부모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신경 써서 나를 보살펴주기도 하지만 아주 작은 것까지도 일일이 간섭하는 것이 부모입니다.nbspnbspnbsp어릴 때는 스스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님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 18살이 넘으면 자립을 해야 합니다. 자립을 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동시에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남의 간섭을 받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부모라 하더라도 더 이상 간섭을 받지 않고, 이제는 자기가 자기 인생을 살아야 어른입니다.nbspnbsp자연생태계에도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는 새끼가 어미로부터 보호를 받다가 일정하게 성장하면 자기 생명은 자기가 보호합니다. 새끼가 보호해달라고 어미를 따라다니지도 않고 어미가 새끼를 보호한다고 따라다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어미와 새끼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고, 아무런 부담도 없습니다.nbspnbsp그러나 인간은 이런 자연스러운 관계 설정이 어긋나서 부모는 스무 살이 넘은 자식을 보살핀다고 무거운 짐을 져야 하고, 자식은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부모의 간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잔소리를 듣고 반항을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가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nbspnbsp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부모가 나한테 해를 끼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부모는 나를 보살펴줘야 한다’는 생각이 어릴 때부터 무의식 세계에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보살핌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원망은 부모가 무엇을 안 해주었다는 거예요. ‘유학을 안 보내주었다’, ‘원하는 것을 안 사주었다’ 이런 것들이 마음의 근저에 대부분 깔려 있습니다.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은 아버지의 억압과 어머니의 잔소리로부터 탈출하려는 욕구가 있는 반면에 또한 여러분들은 어릴 때부터 보호를 받고 살았기 때문에 나이가 스물이 넘어도 늘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합니다. 지금도 살기 어려워지면 결국 의지할 곳이 부모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이렇게 의지처를 갖고자 하는 습관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집을 그리워하듯이 늘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부모에게 저항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모의 노예입니다. 부모가 싫어서 여기 와 있으면서도 부모가 걱정이 되고, 부모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이렇게 심리적으로는 아직도 부모의 어린 아이입니다.nbspnbsp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미움과 원망도 버려야 하지만, 이런 의지처와 속박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해요. 출가를 하기 위해 집을 불살라 버리듯이 부모에 대한 미움과 원망만 버려야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 대한 의지심과 사랑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이제 내가 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덩치만 크고 나이만 들었지 자기 인생을 살고 있지 못해요. 엄격하게 말하면 아직도 부모의 어린 아이, 부모의 노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nbspnbspnbsp부모에게 저항하는 사람일수록 이렇게 집을 나와 있으면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 같고, 죄를 지은 것 같은 생각이 더 듭니다. 한쪽은 그리워하고, 한쪽은 원망하고, 그러면서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하면 울고불고 하면서 불효했다고 자책합니다.”nbsp백일출가 수련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님의 법문에 공감했습니다. 집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집이 갖는 안온함도 버려야 하듯이 부모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부모가 주는 안온함도 함께 버려야 한다는 이치가 명쾌하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동시에 부모님에게 연연해서도 안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의지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부모에게 감사 기도를 하라는 것은 부모로부터 독립하라는 얘기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더 이상 부모의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스무 살이 넘었기 때문에 이제 성인입니다. 부모를 원망하는 것도 어린 아이 같은 짓이고, 부모를 그리워하는 것도 어린 아이 같은 짓이고,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도 어린 아이 같은 짓입니다. 노예의 습성이 배어서 그런 것입니다.nbspnbspnbsp‘저를 낳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해달라는 것 안 해준다고 미워하고 원망했는데, 또 엄마 아빠가 싸운다고 원망했는데, 이제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나도 결혼해서 살면 부부 간에 갈등을 일으키고 살 수 밖에 없겠구나. 서로 싸울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감사 기도를 하세요.nbspnbsp그래도 자기들끼리는 싸우더라도 나를 위해서는 같이 살아주었고, 나를 위해서는 보살펴 주었잖아요. 둘이서 싸우는 것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에요. 부부 싸움에도 불구하고 나를 버리지 않고 키워주었다는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지요. 길 가는 사람도 미워하지 않는데 나를 낳고 키워준 부모를 원망하면 안 되지요. 내가 원하는 만큼 해주지 않았다고 해서 원망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것은 아직도 어린 아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미움과 원망, 섭섭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여러분들은 부모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부모가 싫어서 집을 뛰쳐나온 사람은 해탈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은 나중에 다시 부모를 그리워하거나 부모 때문에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리고 더 이상 부모에 연연해서도 안 됩니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도 버려야 하지만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 ‘내가 없으면 부모가 못 산다’ 이런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이 두 가지가 같이 섞여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고리를 끊어야 한 사람의 독립된 인간,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한 것에 대해 참회를 해야 합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원망을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낳고 키워주신 은혜를 많이 입었습니다’ 이렇게 감사 인사를 하게 되면 부모로부터 오히려 자유로워집니다.nbspnbsp예로부터 부모가 죽으면 불효자가 더 많이 운다고 하잖아요. 효자는 부모님에게 할 만큼 다 했기 때문에 돌아가셔도 울 필요가 없는데, 불효자는 살아계실 때는 저항하면서 시간 보내고, 돌아가신 뒤에는 후회한다고 시간을 보냅니다. 부모에 대한 모든 원망과 미움을 버리고 은혜 입은 것에 대해 충분히 감사 기도를 해버리면 부모에 대한 의무감으로부터도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nbspnbsp부모가 나에게 이런 저런 요구를 하는 것은 부모의 요구에 불과해요. 부모의 요구는 나의 삶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독립운동 한다고 하면 모든 부모가 다 말립니다. 그러나 부모가 말린다고 그 말을 따르면 이 세상에 애국자는 나올 수도 없고, 스님도 나올 수가 없고, 어떤 위대한 사람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더 이상 부모의 어린 아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의 어린 아이로부터 벗어나서 이제는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되어야 합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어른이라면 부모에 대한 의지심에서도 벗어나야 되지만 어릴 때 부모를 원망한 것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합니다. 어린 아이 같은 생각에서 미워하고 원망한 것입니다. 해탈을 하기 위해서는 무의식 세계에 뿌리박고 있는 부모에 대한 원망과 의지심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nbspnbsp21일 동안 부모님에게 깊이 참회 기도를 해서 가장 큰 고리인 부모의 굴레를 끊어야 해탈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이제 어른으로 돌아와서 어리석어서 부모님을 미워하고 원망한 것을 깊이 참회하고,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동시에 부모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출가한 수행자는 집에 가더라도 어리광 피우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기만 하는 그런 존재가 되면 안 되고, 나는 자유인이고 어른이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부모님께 밥을 차려 드리고, 방청소도 해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부모도 ‘아, 내 자식이 다 컸구나’ 하면서 과거의 미련은 있지만 점점 그 미련이 줄어듭니다.nbspnbsp여기서 수행한다고 해놓고는 명절 때 집에 가서 늦잠 자고, 해주는 밥을 걸신들린 듯이 먹고 하면, 부모가 볼 때 한편으로는 ‘아이고, 불쌍하다. 안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게 미쳤나. 왜 저렇게 살지?’ 이런 마음이 들어서 부모의 걱정이 끝이 없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자꾸 결혼시켜려고 하는 이유는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자식이라는 무거운 짐을 덜고 싶은 것입니다. nbspnbsp결혼을 시키면 ‘이제 짐을 덜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것처럼 여러분들은 출가를 함으로해써 부모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이제 저는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부처의 길을 가는 수행자입니다’ 이런 자세가 분명해야 합니다. 이것이 안 되면 부모에게 늘 걱정을 끼치는 존재가 됩니다. 이런 원리를 잘 알아서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으면 참회를 하고, 은혜를 입은 것에 대해서는 다 감사를 해버려서, 이제는 부모의 노예로부터 벗어나 한 사람의 독립된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정진하시기 바랍니다.”nbsp대중들은 부모는 자식의 무거운 짐을 덜고 싶어 한다는 얘기에 모두들 공감이 갔는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출가한 것이 부모님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면 오히려 부모님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워진다는 이치도 명쾌하게 다가왔습니다. 모두들 21일 동안 부모님에 대해 참회 기도를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하며 발우공양을 마쳤습니다.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지난 일주일 동안 해외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스님에게 공동체 대중들 모두가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도 맞절을 하며 반갑게 안부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8시 30분에는 봉화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10시 30분에 봉화 정토수련원에 도착하자 이곳 담당을 맡고 있는 희광 법사님과 봉사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봉화 정토수련원 보수 공사를 도와주고 있는 봉사자들nbsp많은 봉사자들의 손길로 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스님은 어떤 시설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 대중들이 이용하기에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전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nbspnbsp▲ 봉화 정토수련원nbsp12시에 봉화 정토수련원을 출발하여 잠시 점촌에 들러 4000원짜리 칼국수로 점심을 먹은 후 2시 30분에 다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대웅전 앞마당에는 스님과의 모임을 갖기 위해 벌써부터 많은 수련생들이 북적거렸습니다. 다들 스님과의 만남에 설레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스님은 수련생들과 함께 차수별로 기념사진을 한 장씩 함께 찍었습니다.nbspnbsp▲ 스님과 기념사진을 찍는 깨달음의장 수련생들nbsp오후 3시부터는 방금 깨달음의장 수련을 마친 수련생들을 위해 격려 말씀과 더불어 혹시 수련하면서 의문 나는 점이 있는지 묻고 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깨달음의장 수련을 갓 마친 분들이어서 그런지 대웅전에 모인 수련생들은 스님의 법문을 듣는 내내 얼굴에 환한 웃음이 가득했습니다.nbspnbsp▲ 깨달음의장을 마친 수련생들과의 만남nbsp스님이 “무엇을 깨달았어요?”라고 묻자, 여기저기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출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등등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스님은 “다 좋아요. 그런데, 괴로울 일이 없구나 이것을 깨달아야지요” 하고 환하게 웃으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괴로울 일이 없는데 괜히 혼자 미쳐서 날뛴 것임을 알면 이제부터는 행복하게 살 수 있죠. 그동안 얼마나 별일 아닌 것 같고 몸부림치면서 살았어요? 이제 내려가시면 괴로울 일 없이 사세요.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자기를 괴롭히는 데 더 이상 쓰지 말고, 세상 사람들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데에 쓰세요.nbspnbspnbsp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에너지를 자신을 괴롭히는 데 쓰잖아요. 어떤 사람이 나한테 오물을 한 봉지 주었어요. 그걸 애지중지하면서 평생 안고 사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 있어요. 무슨 뜻이냐면 어떤 사람이 나한테 욕을 하면 ‘그 놈이 나한테 욕을 했어’ 이렇게 평생 붙들고 산다는 것입니다. 욕이라는 것은 오물이지요. 그 놈이 나한테 오물을 주고 갔는데 나는 그 오물을 딱 움켜쥐고 평생 귀중하게 여기고 삽니다. 그래서 우리가 괴로운 것입니다. 그것이 오물이면 그가 나에게 주었든 말든 받자마자 던져 버려야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움켜쥐고 살잖아요. 자기는 잘한다고 하는데 돌아보면 바보 같은 짓을 우리는 많이 하고 살아요.nbspnbsp이제 더 이상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일은 그만하세요. 밥 먹는 것은 자연의 무수한 노고를 우리가 흡수하는 것이잖아요. 그 소중한 것을 먹고 생긴 에너지를 남을 때리고 욕하고 손해 끼치는 데 쓰지 말고, 자기 괴롭히는 데에 쓰지 말고, 괴로운 사람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데에,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데에,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데에 쓰세요.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을 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고 사세요. nbspnbsp그런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은 특별히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어리석어서 그렇습니다. 몰라서 그렇습니다. 미쳐서 그렇습니다. 수련하면서 자신의 미친 모습들 많이 봤죠? 이제 놓아버리고 편안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nbsp집으로 가면 하루 만에 헷가닥 해서 본래대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일주일 만에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한달 만에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그래요. 깨달았다는 것은 햇볕이 전혀 없는 깜깜한 곳에 살다가 바늘구멍이 하나 뚫린 것과 같아요. 바늘구멍만 하다고 하더라도 깜깜한 곳에서는 밝지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지금 다 깨달은 것처럼 환하게 느껴져요. 그런데 바늘구멍 만큼 작기 때문에 금방 막혀 버려요. 먼지가 많은 곳에서 살면 금방 막혀 버립니다. 금방 물들어서 원래 습관대로 돌아가 버립니다.nbspnbsp그러니 이제부터 그 작은 구멍을 자꾸 넓혀야 돼요. 구멍을 자꾸 넓혀서 어떤 경우에도 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하는 것을 연습해야 합니다. 여기서 겨우 한 것은 바늘 구멍만한 크기를 뚫은 정도입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구멍을 넓히지 않고 금방 막아버리는 것 같아요.nbspnbspnbsp꿈속에 살다가 여기 와서 잠깐 꿈을 깨 놓고서는 다시 꿈속에 살면서 마치 여기서 깨달은 것이 꿈 같이 느껴져요. ‘내가 언제 그런 꿈을 꿔 봤었나?’ 하면서 평생을 꿈속에서 살거든요. 사실 지금이 여러분들이 깨어있는 상태이고, 집으로 가서 다시 헤매게 되는 것이 꿈이에요. 꿈이라는 것은 자기 생각 속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더 이상 꿈속에 살지 마시고 항상 실재의 사실을 볼 수 있게 눈을 뜨고 사시기 바랍니다.”nbsp그리고 “수련하면서 아직도 미진한 것이 있다는 분이 있으면 질문해 보세요” 라고 물었습니다. 3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한 분은 “친구에게 큰 배신을 당하고 그 사실을 잊으려고 하는데 자꾸 욕이 나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고, 또 다른 한 분은 “스님은 70일 단식을 하신 적이 있고, 지금도 자주 단식을 하시는데, 단식을 하는 이유와 그 방법이 궁금하다”고 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상대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물었고, 스님은 각각에 대해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nbsp nbspnbspnbsp모임을 마치면서는 지식 쌓기가 아닌 직접 삶 속에서 연습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지금 여기 깨어있는 삶을 살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지식은 다 바깥을 향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괴로움은 자기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기로 향했을 때만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서도 공부 열심히 하세요. 공부는 책 보고 지식 쌓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법륜스님 즉문즉설 유튜브 동영상을 1000편 봤다고 하는 사람은 지식을 쌓은 것이에요. 부모는 자식에게 어떻게 해야 되고, 자식은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되고, 이런 식으로 논리를 만드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에 불과합니다. 한 두 편만 보더라도 어떤 원리를 깨우쳐서 자기에게 적용하는 연습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자유로움에 이를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자유로워진 상태에서는 무엇을 해도 좋습니다. 결혼해도 좋고, 혼자 살아도 좋고, 정치를 해도 좋고, 장사를 해도 좋아요. 그런데 장사를 하면 괴롭고, 절에 오면 행복한 것은 수행이 아니에요. 아침에 일어나서 염불할 시간이 주어지면 염불하고, 풀 뽑을 일 있으면 풀을 뽑고, 밥할 일이 있으면 밥을 하고, 손님이 오면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됩니다.nbspnbsp삶이 그대로 수행입니다. 직장을 나가든, 정치를 하든, 농사를 짓든, 법문을 하든, 집에 있든, 다 똑같은 겁니다. 그냥 경계 따라 일어나는 일을 할 뿐이지요. 같은 일을 열 번 해도 지루하지 않고, 열 가지 다른 일이 주어져도 복잡하지 않아야 돼요. 어차피 산다는 건 이 일이든 저 일이든 해야 하잖아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 하는 것은 자기에게 깨어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합니다.nbspnbsp이제 ‘괴로워 할 일이 없구나’ 하고 탁 깨쳤죠. 그러나 원리는 괴로워할 일이 없는데 현실은 괴로워할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고 하더라도 금방 웃을 수 있는 쪽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꾸준히 연습하면 작은 구멍이 점점 커져서 이제는 어떤 경계에 부딪혀도 웃을 수 있습니다.nbspnbsp병원에 가서 암이라고 진단을 받아도 버젓이 웃으면서 ‘아이고, 의사 선생님. 암 찾는다고 수고하셨어요. 발견하셔서 기쁘시겠어요’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사가 찾는다고 고생했잖아요. 이왕지사 돈 들여서 검사했으면 못 찾는 것보다는 찾는 게 좋잖아요. 오늘 찾았다는 것은 있던 것을 찾았어요? 없던 것을 새로 만들었어요? 있던 것을 찾은 것이니까 좋은 일이잖아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nbspnbspnbsp암이라고 울고불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1년 후에 죽는다고 해서 슬픈 것이 아니에요. 1년 후에 죽는다는 생각을 1년 내내 하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 중에서도 열흘 만에 죽을 사람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사람은 죽는다는 생각을 안 하니까 안 슬픈 겁니다. 1년 후에 죽는다, 10년 후에 죽는다,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깨어있는 것이 중요합니다.”nbspnbsp수련을 방금 마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스님의 법문이 귀에 쏙쏙 들어왔나 봅니다. 모두들 환한 미소와 큰 박수로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어떤 분은 “우리는 복도 많지. 깨달음의장 끝나자마자 법륜 스님의 법문을 직접 듣나니. 세상에” 라며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지식 쌓기가 아닌 실천을 강조하는 스님의 호소에 다시 한번 정신이 번쩍 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1시간 30분 동안의 법문을 마치고, 오후 4시30분에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nbspnbsp저녁 7시30분에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서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과 만나 저녁식사를 대접하며 앞으로 더욱더 왕성한 연구활동을 해줄 것을 당부한 후 서울 정토회관으로 들어왔습니다. 집무실에서 원고 교정과 몇 가지 업무들을 처리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에 정토회 법사단과 회의를 가진 후 오후에는 문화사업부와 홍보 관련 업무 논의를 하고, 저녁에는 7시부터 서울대 문예회관에서 열리는 김제동씨와 함께하는 ‘2015 청춘콘서트’에 참석해 청년들을 위해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2015.6.22 (오전)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BBA) 및 언론사 인터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인도 불교의 부흥을 위해 헌신한 끄리빠사란 스님의 탄신 150주년을 기념하여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에서 수여하는 끄리빠사란 상을 수상하기 위해 벵갈 절에 머물면서 인도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nbspnbsp어제 오후6시3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비행기에 탑승한 스님은 방콕을 경유하여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 인도 현지 시간으로는 밤12시30분에 캘커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캘커타 공항에 도착하자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의 주지인 보디팔라 스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통역과 실무를 위해 인도JTS의 보광 법사님과 쁘리앙카님도 함께 공항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nbspnbsp▲ 캘커타 공항에 마중을 나온 보디팔라 스님과 인도JTS 활동가들nbsp캘커타 공항에서 밖으로 나오자 안경이 뿌옇게 흐려질 정도로 열기와 습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인도JTS 스텝들은 “스님이 오신다고 갑자기 비가 내리면서 날씨가 많이 선선해진 겁니다”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캘커타 공항에서 BBA로 가는 차안에서 스님은 보디팔라 스님과 올해 탄신 150주년을 맞는 끄리빠사란 스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용성 조사님과 끄리빠사란 스님의 행적이 비슷한 것 같다고 하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nbspnbspnbsp▲ 캘커타 공항에서nbspBBA로 가는 차안nbsp“끄리빠사란 스님은 저의 3대 할아버지 스님인 용성 조사님과 그 행적이 비슷합니다. 용성 조사님은 1864년에 태어나셨고, 한국에서 사라져간 불교를 새로 일으키셨고, 한문으로 된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셨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서 독립운동을 하셨고, 오늘날 한국 불교를 새롭게 일으킨 분으로 추앙받는 분이에요. 용성 조사님이 새로운 불교 운동을 위해 만든 조직이 ‘대각회’인데 이것을 번역하면 담마팔라 스님이 만든 ‘마하 보디 소사이어티’가 됩니다. 담마팔라 스님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용성 조사님에게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전했어요. 그래서 용성 조사님과 같은 시기에 같은 단체 이름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담마팔라 스님만 알고 있었지 담마팔라 스님과 같이 활동한 끄리빠사란 스님에 대해서는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nbspnbsp그러자 보디팔라 스님이 끄리빠사란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끄리빠사란 스님은 당시에는 인도 땅이였지만 지금은 방글라데시에 속해 있는 치타공에서 20살에 출가했습니다. 20살에 출가해서 21살에 캘커타로 와서 계속 캘커타에서 활동하셨습니다. 담마팔라 스님은 1891년에 ‘마하 보디 소사이어티’를 만들었는데, 끄리빠사란 스님은 1892년에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을 만들었습니다. 두 분은 많은 활동을 같이 하셨습니다.nbspnbsp담마팔라 스님과 끄리빠사란 스님의 차이는 한 가지입니다. 담마팔라 스님은 학력이 높아 의사소통이 가능해서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불교를 전했고, 끄리빠사란 스님은 기초 교육을 받지 못했고 영어를 몰라서 이곳 캘커타에서만 불교를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에 대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다 팔리어로 되어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이 팔리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을 하셨습니다. 마을마다 현지 언어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 주셨고, 부처님의 말씀을 벵갈어로도 거의 다 번역했고, 캘커타 대학교에 팔리어학과를 개설하도록 하셨습니다.nbspnbspB.M 바루아라는 훌륭한 제자가 있었는데 그 제자를 런던에 팔리어 연구를 위해 유학시켰고, 그는 1917년에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런던 대학에서 문학 박사를 수여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사람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많은 활동을 하셨습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도 많이 존경하기는 하지만, 평생 캘커타에서 활동하셔서 캘커타에 많은 제자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 제자이고 끄리빠사란 스님은 저의 3대 할아버지 스승이십니다.”nbsp“용성 조사님도 저의 3대 할아버지 스승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지금 같이 교류를 하고 있나봐요.”nbsp스님과 보디팔라 스님은 각자 자신의 스승들이 서로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 반가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보디팔라 스님은 150주년 끄리빠사란 상의 수상자로 법륜 스님을 선정한 이유도 그런 연유가 있음을 말했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을 끄리빠사란 상의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도 그렇습니다. 스님과 저희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여기 사람들이 스님을 몰라서 이렇게 초대하게 되었습니다.”nbsp곧 차는 BBA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BBA 건물을 보자 한마디 덧붙이셨습니다.nbspnbsp“제가 1991년에 인도에 처음 왔었는데, 그 때 이곳에 벵갈 절이 있다고 해서 한번 왔었습니다. 그 다음해부터 성지순례 올 때는 매번 여기서 잤습니다. 늘 이곳에서 자면서도 끄리빠사란 스님과 관련된 그런 뜻깊은 곳인 줄을 잘 몰랐네요.”nbspnbsp차에서 내려 숙소로 올라가자 인도JTS에서 온 보광 법사님과 쁘리앙카님 교장 선생님은 인도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이 직접 키워 얼마 전 수확한 망고 한 바구니를 스님에게 선물했습니다.nbspnbsp▲ 수자카아카데미 학생들이 키운 망고를 스님에게 전달하는 쁘리앙카 교장nbsp스님은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감사히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한번 맛을 보고 자야지” 하며 망고를 한 입메 물었습니다. 단맛이 잘 배어 있어서 정말 꿀맛이었습니다.nbspnbspnbsp숙소를 제공해준 보디팔라 스님께 감사 인사를 한 후 스님은 오랜 비행으로 인한 여독을 풀기 위해 휴식을 하려고 하다가 한국 시간으로는 이미 5시가 되었기 때문에 천일결사 기도와 명상을 한 후 잠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nbspnbsp다시 날이 밝자 보디팔라 스님이 인도 신문을 갖고 와서 오늘 행사에 대한 기사를 보여 주었습니다. 기사에는 오늘 행사의 내용과 주요 내빈 참석자, 그리고 법륜 스님의 수상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인도의 대표적인 신문인 ‘TIMES OF INDIA’에 실린 법륜 스님의 수상식 기사.nbsp7시30분에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에서 제공한 아침 식사를 먹고 나서는 보디팔라 스님과 함께 인도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nbspnbsp▲ 인도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법륜 스님nbspnbsp보디팔라 스님은 스님에게 현대사회에서 불교가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이유, 아시아 전체에 불교가 전해질 수 있는 가능성, 불교의 사회활동에 대한 생각, 전 세계의 불교가 인도 불교에 미친 영향 등 네 가지 주제에 대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통역은 인도JTS 활동가 쁘리앙카님이 해주었습니다.nbspnbsp▲ 끄리빠사란 상 수상식이 열린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nbsp먼저 BBA의 주지인 보디팔라 스님이 “오늘 행사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웃으며 답했습니다.nbspnbsp“오늘 끄리빠사란 스님의 탄생 150주년 행사에 참석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50년 전에는 인도에 불교가 거의 없다시피한 상태였는데 벵갈 불교를 새로 일으켜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 분이 하신 일을 오늘 우리들이 더욱 계승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보디팔라 스님과의 문답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으로 “현대 사회에서 불교가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이 답했습니다.nbspnbsp“첫째, 서구 문명과 기독교 문화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상태에서 아시아는 지난 1세기 동안 서구의 침략을 받고 식민지 상태에 놓이면서 굉장히 위축이 되어 있었습니다. 둘째,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물질 문명이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정신 문명이 굉장히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불교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인도,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 다시 서구 문명에 버금가는 물질 문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 문명이 한계에 이르러서 이제는 물질 문명만 갖고는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신 문명이 다시 강조되고 있습니다. 지난 12세기 동안 위축되었던 불교의 활동이 이제 새롭게 일어날 때가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스승님들께서 하신 일들이 이제 꽃필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nbsp이어서 “스님께서는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많은 나라에서 불교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요? 아시아의 사람들은 불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이 답했습니다.nbspnbsp“불교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붓다 담마는 진리를 가르칩니다. 붓다 담마는 불교, 기독교, 무슬림 등 종교나 민족, 사상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불교 문화는 기독교 문화, 무슬림 문화 등과 다릅니다. 문화에 대해서는 각각 다른 것을 존중해야 됩니다. 그러나 담마는 모든 것에 다 통하기 때문에 종교를 초월해야 합니다.nbspnbsp지금 아시아 지역의 많은 나라들은 아직도 물질적으로 가난한 편입니다. 아직도 병들었지만 치료받지 못하고, 아이들은 제때에 교육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아주 많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불교인이든 기독교인들이든 무슬림이든, 그 나라가 인도이든 스리랑카이든 아프가니스탄이든 관계 없이 병든 사람은 치료해야 하고,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배울 수 있게 해야 합니다.nbspnbsp이것은 부처님께서 남기신 마지막 유훈에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만약 열반에 드신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공양을 올려야 큰 공덕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아난다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난다여, 걱정마라. 여래가 없는 세상에서 여래에게 올리는 공양과 똑같은 공덕이 있는 것이 네 가지가 있느니라.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배부르게 하고, 병든 사람에게 약을 주어서 치료하고,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는 것, 청정하게 수행하는 자를 잘 외호하는 것, 이 네 가지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과 똑같은 공덕이 있느니라.”nbspnbsp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단순히 자선활동이 아니라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 대상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종교인지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행하는 것입니다.nbspnbsp둘째, 동남아시아는 대다수가 불교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구 기독교인들이 들어와서 그들을 도우면서 전통문화를 많이 파괴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 나라의 전통 문화를 잘 보존할 수 있도록, 즉 불교 국가는 불교의 전통 문화를 보전할 수 있도록 오히려 도와야 합니다.nbspnbsp셋째, 붓다 담마를 가르쳐야 합니다. 붓다 담마는 종교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종교를 믿든, 어떤 나라 사람이든, 붓다 담마를 공부하게 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경제 성장만으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사람들은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붓다 담마는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 사람이든 관계 없이 전 세계로 붓다 담마를 전해야 합니다. 인도도 지금 경제가 많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붓다 담마가 인도에서 발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도에 다시 불교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고, 일어날 수 있도록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nbspnbsp다음은 “스님께서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적용해서 많은 사회적 활동들을 하고 계신데, 출가한 많은 스님들이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이 답했습니다.nbspnbsp“수행자는 먼저 자기가 괴롭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니까 자기가 먼저 그 가르침을 듣고 괴로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괴로움에서 벗어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첫째, 다른 사람들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붓다 담마를 전해야 합니다. 둘째, 붓다 담마를 전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들, 병든 사람들, 어린 아이들, 노약자들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먼저 지원해야 합니다. 또 인종적으로 차별받거나 종교적으로 차별받거나 성별로 차별받거나 이렇게 차별하는 것은 철폐시켜야 합니다.nbspnbsp왜냐하면 부처님께서도 카스트를 부정하셨고, 비구니 제도를 만드셨고, 사키족과 꼴리족이 로히니 강에서 다툴 때 싸움을 말리는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붓다가 직접 행동을 하신 겁니다. 우리는 붓다의 그 가르침과 삶을 닮아가야 합니다. 스님들이 사회 활동에 참여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절에 갇혀서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만 하거나 개인 기도 생활만 하는 것이 오히려 붓다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붓다가 어떻게 사셨는지 그리고 무엇을 가르치셨는지에 기준을 두어야 합니다. 대승이냐 소승이냐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하고, 붓다가 살아가신 그 모습대로 닮으려고 하느냐가 중요합니다.”nbspnbsp마지막 네 번째 질문으로 “인도에서 불교가 파괴되고 나서 두 가지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1891년에 담마팔라로 인해서 부흥되었고, 두 번째는 1956년에 암베드카르로 인해서 불교가 부흥되기 시작했고, 그리고 네루 수상께서 부처님오신날 행사에서 전세계의 불자들에게 ‘당신들이 모든 성지에 와서 쉬어도 된다’고 하면서 전 세계인들이 많은 성지에 절을 세웠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시 전 세계에서 불교가 인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전세계의 불교가 인도의 불교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이 답했습니다.nbspnbsp“인도에서 불교가 거의 사라진 시기에 외국인들이 불교를 가져와서 성지 가꾸기를 시작으로 인도 불교의 불씨를 새로 일으킨 것은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성지를 가꾼다는 것은 주로 과거를 복원하는 일입니다. 또 성지에 지은 절들이 대부분이 외국인 순례자를 위한 것이지 인도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 살아가고 있는 인도 사람들을 위해서는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nbspnbsp둘째, 암베드카르의 불교 운동은 인도에서 일어났고 민중들의 삶의 고통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계급 해방이라는 내용도 현대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너무 계급 해방적 정치 투쟁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이 한계입니다. 계급을 초월해서 붓다 담마의 가르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그런 감동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두 운동 모두 인도 불교를 새로 일으키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것만 갖고는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nbspnbsp그래서 외국에서 들어와서 하고 있는 활동들은 이제 자신들의 순례객들을 위하는 것을 넘어서서 인도 현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돕고 희망을 줄 수 있는 활동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즉, 인도 사람들을 위한 절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제가 둥게스와리에 수자타아카데미를 세운 것도 한국 불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시작한 활동입니다.nbspnbsp그리고 인도는 대부분 힌두교인데 불교가 힌두교와 싸우는 방식으로 출발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그들마저도 포용하고 감동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힌두교의 부족함을 넘어서는 더 위로 나아갈 수 있는 붓다 담마를 가르쳐야 합니다. 암베드카르 쪽에서 하고 있는 계급 해방 운동은 좋은 일이지만 힌두교와 싸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인도에 불교를 전파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암베드카르 운동이 인도 불교를 새로 일으키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nbspnbspnbsp앞으로 인도에 불교를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첫째, 붓다 담마를 힌두어, 벵갈어 등 현지어로 번역해서 민중들에게 다가가기 쉽도록 가르치는 것, 둘째,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괴로움을 벗어나 니르바나를 증득할 수 있도록 수행을 가르치는 것, 이 두 가지가 매우 중요합니다.nbspnbsp다만 한가지 장점은 힌두교는 불교를 외래 사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 사상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독교보다 훨씬 저항을 덜 받으면서 인도 불교의 부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nbspnbsp앞으로 한 30년 정도 지나면 인도가 경제적으로도 세계 중요 세력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때 인도는 물질 문명 뿐만 아니라 정신 문명도 세계로 수출해야 하는데, 힌두교는 인도 안에서는 통하지만 세계화 되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자연적으로 인도 정부도 불교를 발전시키려고 할 겁니다. 지금 인도의 총리는 불교가 아니라 요가를 알리려고 하는데 요가 갖고는 한계가 있습니다. 중국도 처음에는 자신들의 전통 종교인 유교를 공산주의가 굉장히 탄압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발전하고 세계화가 되면서 중국이 정신적으로 세계에 수출할 것이 없다 보니까 지금은 공자를 굉장히 받들고 수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도 이제 시간이 흐르면 정부가 알아서 성지도 가꾸고 불교도 부흥시키려고 할 겁니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는데 끌려가면 형식만 커지지 내용이 없어져요. 그래서 빨리 상가에서 정부의 부흥 정책의 내용을 채울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인도 안에는 테라바타, 마하야나, 탄트라, 암베드카르 이 네가지의 서로 다른 불교가 있는데 이들이 어떻게 서로 협력하도록 만드느냐가 지금 중요합니다. 조건은 앞으로 점점 좋아질 겁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준비가 아직 부족합니다. 같이 준비를 잘 합시다.”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언론사 기자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매우 감탄한 표정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다질링에서 인도 사회에 불교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스님을 다질링으로 꼭 한번 모시고 싶다”고 인사하면서 스님에게 다질링에서 가져온 차를 선물했습니다. 스님도 인도 기자에게 스님의 영문 번역책 “기도”를 선물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동남아 각국에서 초청받아 온 스님들이 모두 도착하자 이번에 새롭게 리모델링을 한 끄리빠사란 스님 메모리얼 홀 준공식을 짧게 가졌습니다.nbspnbspnbsp컷팅식을 갖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참석한 스님들과 기념 사진을 찍은 후 다함께 예불을 올리는 의식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참석한 스님들은 모두 삼귀의 오계를 게송으로 읊고 끄리빠사란 스님의 탄생 150주년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한마디씩 들려 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 예불 의식nbsp이어서 점심 공양 시간이 되었고, 스님은 동남아 각국에서 온 스님들과 담소를 나누며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 점심 공양nbsp오후에는 인도의 ‘Business Economics’ 라는 언론사와 인터뷰를 한 후 곧바로 끄리빠사란 상 수상식이 열렸습니다. 끄리빠사란 상 수상식 소식은 곧이어 또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6.19 희망세상만들기 대전 청년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서울 공동체의 발우공양에 참석해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법문한 후, 저녁에는 청년정토회에서 주관한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했습니다.nbspnbsp오늘 스님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인 새벽4시에 법당에 내려와 혼자서 108배 정진과 명상을 먼저 한 후 5시부터 대중들과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기도 후에는 집무실에서 원교 교정 업무를 보다가 발우공양 시간에 함께 했습니다.nbspnbsp▲ 스님의 발우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수행 공동체에 들어와 상주하고 있는 대중들을 위해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짧은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같이 어울려 살다보면 갈등이 많이 생길 수 있는데 어떤 관점을 가져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지 소중한 가르침이 되었습니다.nbspnbsp▲ 스님의 고무신nbsp“도반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업무 등 일로 인해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방청소를 제대로 안 한다, 물건을 어지럽힌다, 머리카락을 떨어뜨린다 등 생활 문제로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성격으로 인해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갈등이 생기는데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nbspnbspnbsp타인에 대해서는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자기에 대해서는 자각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죽고 못 살아서 결혼한 부부도 같이 살면 갈등이 생기는데, 우리는 그렇게 부부처럼 사랑하는 관계도 아닌데 어떻게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월급 받고 일하는 직장인들도 동료들 사이에 늘 갈등이 생기는데 여기서 돈도 안 받고 일하는 우리들이 어떻게 갈등이 생기지 않겠어요? 또 수행이 잘 되어 있으면 이 좋은 세상에 왜 여기 들어와서 살겠어요? 다 부족한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사는 것 아니겠어요?nbspnbsp그렇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서는 ‘화를 좀 낼 수도 있겠다’, ‘짜증을 좀 낼 수도 있겠다’, ‘업무를 좀 제대로 못할 수도 있겠다’, ‘보고를 좀 못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수행자라는 기준으로 상대를 보지 말고 그냥 세상 사람이라고 보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이다’ 이렇게 보면 그래도 여기 와서 수행하려고 한 것만 해도 장하고, 꾸벅 꾸벅 졸면서도 수행하려고 하는 것만 해도 장하고, 짜증내면서도 여기 같이 있어 주는 것만 해도 장합니다. 사실 세상 사람을 기준으로 보면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장한 사람들이에요. 그런 관점에서 타인에 대해서는 이해를 해야 합니다. 즉 보통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그렇게 해주는 것만 해도 참 고맙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nbsp이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입장, 즉 세상의 기준으로 그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스님이 왜 저러냐’, ‘법사가 왜 저러냐’, ‘수행자가 왜 저러냐’ 이렇게 보지 말고 그냥 ‘세상 사람으로서 그만해도 참 장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마음 속에 화가 일어나거나 짜증이 일어나거나 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도 모르게 ‘저 자식 왜 저러지?’ 이렇게 화가 일어나고 짜증이 일어나고 미움이 일어나더라도 금방 돌이켜서 ‘아참, 고마운 사람이지’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자기 자신에게는 ‘수행자’라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내가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수행하러 여기 들어와 있지 않느냐’, ‘그래도 명색이 내가 수행자가 아니냐’, ‘수행자가 질투를 한다든지,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든지, 욕심을 낸다든지, 게으르다든지 한다면 내가 왜 여기 들어와 살고 있느냐’ 이렇게 자기에게는 수행자라는 자각을 통해서 끊임없이 자기의 업식을 고쳐나가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nbspnbsp이렇게 타인에 대해서는 ‘이해’ 자기에 대해서는 ‘자각’ 이 두 가지를 가지면, 우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순간순간 놓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지만 그 갈등이 지속되지 않고 그것이 미움으로까지 가지는 않습니다. 놓쳤기 때문에 그 순간만 불뚝불뚝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지 꽁 하고 있지는 않게 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하기가 쉽습니다. 자기한테는 이해하는 마음을 냅니다. ‘그래도 내가 이만큼 사는 것만 해도 얼마인데’ 이렇게 하고, 타인에게는 ‘그래도 수행자인데 절에 들어온 지 10년이나 된 사람이 저렇게 해도 되나?’ 이렇게 거꾸로 적용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수행자들이 모여 살지만 세속과 아무 다름이 없이 갈등이 끝없이 계속 됩니다.”nbsp타인에게는 ‘이해’하는 마음을 내고, 자신에게는 수행자임을 놓치지 않는 ‘자각’을 하라는 가르침에 모두들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상대를 고쳐서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바꿈으로서 상대를 그대로 두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 줍니다. 늘 못마땅하게 여겨온 도반이 있었는데 세상 사람이라는 기준으로 이해해 본 적이 있었는지 되돌아보니 절로 미안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당당하고 겸손하라고 한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주면서 비록 공동체에 들어와 살지만 마음이 어둡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대중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부처님께서 ‘수행자들아,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라.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이렇게 말했어요. 당당하기는 어느 정도까지 당당해야 하느냐? ‘이 세상에 제일 소중한 자가 바로 나다’, ‘금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재산도 아니고, 하늘의 신도 아니고, 바로 내가 가장 소중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이런 당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겸손하기는 어느 정도까지 겸손해야 하느냐? ‘나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길가에 밟히는 풀 한 포기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사실은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nbspnbspnbsp교만함을 꺾고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줄을 알아야 하고, 비굴한 마음이 일어날 때 당당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부처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도 거꾸로 적용합니다. 교만할 때는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대표적으로 쓰이고, 비굴할 때는 풀보다도 더 비굴하게 굴잖아요. 이렇게 적용을 거꾸로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수행을 하면서도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는 늘 거꾸로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욕망에 기준을 두고, 자기에게 기준을 두고, 거꾸로 적용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nbspnbsp그러니 수행자로서 정진할 때는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 선배들이 어떻게 하느냐, 법사가 어떻게 하느냐는 논할 필요가 없어요. ‘당신도 그러지 않느냐’ 이런 말은 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가는 것이고, 못 가면 내가 반성하는 것이고, 내가 간다고 타인보고 가라고 할 필요도 없고, 내가 한다고 타인 보고 하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고, 남이 못 한다고 나무랄 필요도 없고, 내가 한다고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고 당연한 것입니다. 나는 다만 부처님과 계율에 기준을 두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면 고마운 사람들이에요.nbspnbsp이런 관점을 딱 가지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 게으른 사람들 속에서도 부지런하고, 다른 사람은 다 늦잠 자도 자기는 제 시간에 일어나서 자기 정진을 하면서 살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잘한다면서 목에 힘주는 것도 아니고요.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앞에 갈 수 있도록 밀어주고 격려해 주면서 가면 됩니다. 남이 같이 가주면 고마운 일이고, 안 가면 나는 나대로 가면 됩니다. ‘남이 안 가도 나는 간다’ 이것이 소승이에요. 거기에 추가해서 ‘가능하면 남과 같이 간다’ 이것이 대승이에요. 남하고 같이 가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적극적이냐면 내가 못가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이 가도록 돕겠다는 것입니다. ‘너도 안 가니 나도 안 간다’ 이런 태도는 대승이 아니라 중생에 불과합니다.nbspnbsp우리가 다 부족하니까 이렇게 모여서 살지만, 그래도 그 부족한 에너지를 모아서 좋은 일에 쓰고 있잖아요. 정말 일이 많은 것이 아닌데도 늘 밤늦게까지 일하는 습관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고, 이렇게 자기 습관 때문에 건강이 나쁜 것은 수행이 아니잖아요? 세상에서는 일을 열심히 한다고 평가받을지 몰라도 그것은 수행이 아니에요. 일에 집착하거나 자기 습관을 못 버리는 것이지요. 다리가 하나 없는데도 최선을 다한다, 눈이 하나 안 보이는데도 최선을 다한다, 체질적으로 건강이 나쁜데도 그 사람의 역량 안에서는 최선을 다한다, 이런 경우라면 비록 아프면서 일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치료를 안 하고 늘 병을 안고 골골 대고, 먹지 말라고 하는데 계속 과식해서 위 아프다고 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건강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까르마를 못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nbspnbsp몸에 집착해서 몸을 사라지 말라, 수행하기 위해서는 몸이 소중하니까 몸을 함부로 하지 말라, 이렇게 계율에 되어 있잖아요. 하지만 세상 속에서도 늘 자기 습관을 못 벗어나서 건강을 해치는 것처럼 수행 집단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늘 자기 까르마를 고집하고 움켜쥐고 있어서 건강을 해치든지 성질을 내든지 합니다. 같이 살면서도 ‘저 사람은 성질이 저러니 좀 봐주자’ 이렇게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좋은데 본인은 그런 수준이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극복해 나가야죠.nbspnbsp죽는 순간이 와도 얼음이 녹듯이 아무런 집착 없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과 몸을 함부로 해서 맨날 골골 대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업무를 좀 절도 있게 처리하고, 휴식이 필요하면 휴식을 하고, 주말이 되면 조금 산책도 하고요. 내년부터는 계획을 잡아서 노동을 많이 하려고 해요. 우리가 먹는 것은 우리가 생산하려고요. 바쁜 가운데서도 건강을 유지하고 항상 웃고 정신을 늘 맑게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다들 지쳐서 얼굴에 웃음이 없고, 건드리면 터지기 직전이고, 화장도 안 한데다가 회색 옷까지 입고 있으니까 우중충한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속이 시커매도 겉으로는 화사한 옷 입고 얼굴에 분이라도 발라서 그래도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는데 여러분들은 안팎으로 다 어두워요. nbspnbspnbsp그래서 좀 마음을 일신해 보세요. 조금 우울해져도 다시 마음을 내어 웃고, 자꾸 자신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만약 스님이 밖에 가서는 온갖 고민들을 다 들어주면서 정작 본인이 괴롭고 죽겠다고 하면 남들이 웃잖아요. 그런 것처럼 정토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골골대고 있는데, 밖에 가서는 너희들 그렇게 살지 말라고 얘기하면 서로 안 맞잖아요. 그래서 조금 기운을 내고 자신의 상태를 환기해 가면서 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자기 마음을 가볍게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그리고 다른 하나는 여러분들이 원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깨달음을 얻겠다’, ‘통일을 이루겠다’ 이런 원이 있으면 좀 힘들어도 뚫고 나가는 힘이 있는데, 그런 원이 없고 억지로 하니까 자꾸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고 몸이 아프게 되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절을 할 때도 억지로 하지 마세요. 예불 시간이 기쁨으로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시간이 안 되고 눈을 감고 졸아가면서 억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하고 있거든요. 기도를 하고 예불을 하면서 괴로운 마음이 즐거워져야 하는데 즐거운 마음이 종만 치면 괴로워져서는 안 됩니다. 조금 마음을 전환해서 밝게 생활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nbsp이렇게 스님이 기운을 북돋워주자 서울공동체 대중들은 모두 더욱더 밝아진 얼굴이 되었습니다.nbspnbsp발우공양 후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기획팀들과 ‘좋은 세상 만들기’ 운동을 위한 논의를 장시간 하였습니다.nbspnbsp오후에는 기독교계에서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열심히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배기찬 이사장이 찾아와 통일 운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남북 분단을 두고 회개는 누가 해야 합니까. 북한은 당연히 회개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한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분단 70년이 되었는데도 그리스도인조차도 회개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차원에서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문제는 결코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배기찬 이사장의 평소 주장입니다. 그리고 8월에 있을 중국 역사기행 준비팀과 함께 일정, 숙소, 강의, 차량 배치 등에 대해서 마무리 점검을 하였습니다.nbspnbsp오후 3시에는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 청년정토회 주관으로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원래는 충남대학교에서 강연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메르스 때문에 학교 측에서 행사 주관을 많이 부담스러워해 대전 정토법당에서 강연이 열리게 되었습니다.nbspnbsp대전 정토법당을 가득 메운 250여명의 청년들은 소개 영상과 함께 스님이 모습을 보이자 뜨거운 함성과 박수로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 대전 정토법당nbsp스님은 먼저 얼마 전 메르스 환자가 제주도 여행을 한 것으로 일어난 사회적 파장을 이야기하면서 “알고 짓는 죄가 큽니까? 모르고 짓는 죄가 큽니까?” 질문을 던지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청중들이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스님은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얼마 전 제주도에 메르스 환자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서 많은 사람을 두렵게 했는데 그 사람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는 알고 그랬어요? 모르고 그랬어요?”nbspnbsp“모르고 그랬어요.” nbsp“세상에서는 모르고 한 행동은 죄가 안 되는데, 사실은 모르고 한 행동이 죄가 더 큽니다. 이것은 옛날부터 중요한 질문이었어요.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 스님에게 ‘알고 짓는 죄가 큽니까? 모르고 짓는 죄가 큽니까?’ 하고 물으니 ‘모르고 지은 죄가 더 큽니다’ 라고 대답했어요. 왕이 ‘이해가 안 된다. 왜 그런가?’하니 스님이 왕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알고 잡는 불덩이에 손을 더 많이 뎁니까? 모르고 잡는 불덩이에 손을 더 많이 뎁니까?’ 모르고 잡는 불덩이에 손을 더 많이 데겠죠.nbspnbspnbsp양심으로 따지면 알고 저지르는 죄가 나쁘고, 모르고 지은 죄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상대편한테 주는 피해는 모르고 저지를 때 더 큽니다. 본인이 알면 조심을 하게 되고, 죄를 지으면서도 눈치보면서 하게 되는데, 모르면 눈치도 안 봅니다. 그래서 제주도에 여행을 다니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식당, 호텔 등 다녀간 곳은 전부 문을 닫았습니다. 알았으면 그만큼 그랬을까요? 이처럼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의 원인도 사실은 무지입니다.nbspnbsp우리의 고통은 무지, 즉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누구한테 용서를 빌거나 누가 대신 죄를 사해주는 것이 아니라 무지를 깨쳐야 됩니다. 즉 감은 눈을 떠야 됩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본래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그것은 무지입니다. 알지 못함에 있습니다.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무지로부터 벗어나면 모든 죄업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경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nbspnbsp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nbsp죄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죄라고 하는 정해진 씨앗이 없다. 다만 어리석은 마음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에 이 마음의 어리석음이 사라지면 죄업 또한 사라지게 된다.nbspnbsp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이 어리석음도 사라지고, 이 죄업도 사라지고, 둘 다 텅 빈 그 자리가 진정한 참회다.nbspnbsp‘제가 잘못했습니다’ 이것보다 더 진실한 참회는 무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의 대화도 여러분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든 어떤 의문을 갖고 있든 문제의 해결은 누구한테 용서를 빌거나 누가 대신 죄를 사해주거나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데에 있습니다.”nbsp그러면서 청중들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들었지만 총 11명이 스님께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nbspnbspnbsp욕심이 많아서 성취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욕심도 줄이고 성취도 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청년, 5년을 사귀어서 결혼한 남편과 성격이 달라서 계속 힘든데 어떻게 편해질 수 있는지 묻는 여성, 전공을 살려서 디자인을 공부할지 지금 돈을 벌고 있는 영어 교사를 하면서 여행을 다닐지 결정을 할 수 없어 고민인 재미 교포,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데 식탐을 줄일 수가 없어 고민인 여학생, 종합건강검진 결과 아버지가 폐암 판정을 받았는데 아버지가 덜 놀라시고 잘 치료받도록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 묻는 청년, 우울증이 있는 어머니 때문에 늘 걱정인데 어머니와 인연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6개월 전에 갑작스럽게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찾아와서 음식을 소화할 수 없고 현재에 집중할 수 없어 고민인 남학생, 정신분석학자가 자꾸 자신을 미행하며 괴롭힌다고 하면서 우울증을 어떻게 치료해야할지 묻는 분, 성격이 급하고 지레짐작을 해서 잘못된 결정을 자주 하는데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묻는 여성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명쾌한 답변을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 중에서 ‘자살하겠어’, ‘짜증나’ 등 부정적인 말을 하는 습관을 바꾸고 싶다는 한 여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문답을 하는 과정에서 표정이 점점 밝아지다가 마침내 유쾌하게 웃는 여학생의 모습에 청중들 모두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저의 고민은 자꾸 ‘자살하겠다’는 말을 쓰는 겁니다. 저희 학교는 중간고사가 두 번, 기말고사가 두 번, 또 과목별로도 시험이 정말 많아요. 시험 스트레스 때문에 한 친구가 ‘교실에서 뛰어내리겠다’ 그랬는데 교수님께서 농담으로 ‘7층에서 뛰어내려야 즉사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뒤로 시험만 못 보면 장난으로 ‘우리 손잡고 7층 갈까?’ 그런 식이 되었는데 장난이 반복되니까 이제는 습관적으로 ‘자살해야겠다’ 계속 말하고, ‘아, 짜증나’ 그런 말을 계속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건 부정적인 말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습관은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서 긍정적인 얘기를 해보려고 짜증노트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도 계속 부정적인 말을 계속 하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말을 덜 할 수 있을까요?”nbspnbspnbsp“죽으면 부정적인 말을 안 하게 되지요. 제일 완벽한 방법은 죽어버리면 겁니다. 다시는 부정적인 얘기를 안 하게 되지요. 그런데 사실은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도 다 살았으니까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봐야 됩니다.nbspnbspnbsp부정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살아있으니까 가능한 거잖아요. 아픈 것도 살아있으니까 아프지요. 죽으면 아파요? 그러니까 제일 긍정적인 것은 여러분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살아있으니까 아프기도 하고 살아있으니까 헤어지기도 하고 살아있으니까 부모님 모시기도 하지요. 죽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가장 긍정적인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자기가 자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는 아침에 일어나서 딱 눈뜨자마자 세 번 이렇게 외쳐 봐요. ‘아이고 살았네, 오늘도 살았네, 아이고 살았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면 조금 바뀔 거예요. 한번 따라 해 봐요.”nbspnbsp“살았네, 오늘도 살았네. 살았네” nbspnbspnbsp“말해보니까 기분이 좋아요? 기분이 나빠요?” nbspnbsp“좋아요.”nbsp“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내 기분도 좋아지지만 기분이 좋으면 몸의 호르몬과 여러 가지 기분 좋게 하는 물질이 분비가 돼요. 그래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아이고 살았네, 오늘도 살았네, 아이고 살았네,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세요. 부처님 믿으면 부처님 감사합니다고 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 감사합니다고 하면 됩니다. 조상님을 믿으면 조상님 감사합니다고 하면 됩니다.nbspnbsp만약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버스가 전복이 되어서 다 죽고 자기 혼자 살았으면 팔이 하나 부러져도 부러진 팔을 잡고도 기분이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나만 살았네’ 이럴 것 아니에요, 다 죽고 자기만 살아있는 기적이 매일 매일 일어나는 게 우리 인생이에요. 아침에 눈을 뜨면 매일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거예요. 매일 매일 살아있는 것이 이렇게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그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괴롭게 사는 거예요. 내가 살았다는 것만 해도 기뻐할 수 있으면 이런 건 다 괴로움 축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에요. 자기가 살아있기 때문에 늙은 부모님도 모시고, 살아있으니까 두 남자도 좋아하고 그러는 것이죠. 살아있으니까 몸이 뚱뚱하니 안 뚱뚱하니 그러죠. 죽으면 그런 것도 다 없어요. 그러면 죽으면 편안하냐. 그게 아니에요. 살았다는 것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된다는 얘기에요.nbsp내가 몸이 아프지만, 밥을 잘 못 먹지만, 그래도 살아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지은 인연의 과보로 보면 죽어야 되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복이다’ 이렇게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지은 인연의 과보는 기꺼이 받겠습니다. 죽을 과보를 받아야 되는데 죽지 않은 것은 큰 복입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내라는 겁니다. 그러면 몸 안의 전체 신경에서 긴장이 다 풀려요. 친구들이 죽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말고요. 같이 손잡고 죽는다고 같이 가는 거 아니에요. 그건 기분이에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살았네’ 세 번 외치고 생활하면 돼요.” nbspnbsp“감사합니다.”nbspnbspnbsp질문자가 환한 표정으로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그런데 고민이 한 가지 더 있다며 또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 이번엔 식탐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nbspnbsp“요즘 식욕이 늘어서 살이 좀 찐 건 괜찮은데 계속 배가 고파요. 예전에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고 했더니 어느 스님께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셔서 계속 먹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두 달 전부터 갑자기 또 식욕이 증가했어요.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그 양이 보통 사람들이랑 달라요. 피자 한 판을 먹고 다른 것을 또 먹어도 배가 고픕니다.”nbspnbsp“배가 고파도 안 먹으면 되지요. 단식을 해서 음식을 아예 안 먹었을 때 배가 고픈 것이 더 배가 고플까요? 한 끼, 두 끼라도 먹었을 때 배고 고픈 게 더 고플까요?nbsp“아예, 안 먹는 것이 더 배고프죠”nbsp“그래요. 스님처럼 아무것도 안 먹고도 배고픈 것을 견딜 수 있는데 하루에 조금이라도 먹고도 그것을 왜 못 견뎌요?”nbsp“그런데 저는 약간 음식이 들어갔을 때부터 배가 고파지기 시작해요.”nbspnbsp“자기가 고프든지 말든지 그것은 육체의 증상이고, 나는 정해진 양만 딱 먹고 끊어버리면 됩니다. 나는 딱 정해놓은 그것만 먹고, 배가 고파도 더 이상 안 먹고, 먹고 싶어도 더 이상 안 먹고, 먹기 싫어도 그것만 먹고, 딱 정해놓는 겁니다. 밥 한 그릇을 정했다면 밥 한 그릇은 먹기 싫어도 꼭 먹고, 먹고 싶어도 더 이상 안 먹고, 이렇게 딱 정해놓고 하면 처음엔 미칠 거 같아도 그것만 딱 하고나면 100일만 지나가면 저절로 컨트롤 돼요. 딱 정해진 것만 먹고, 아무리 먹고 싶어도 그것만 딱 먹고 끝을 내세요. 담배 피우고 싶은 사람이 담배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피우고 싶다고 피워야 돼요, 피우고 싶어도 안 피워야 돼요?”nbspnbsp“안 피워야 돼요.”nbsp“그렇게 피우고 싶은데 어떻게 안 피워요?”nbsp“사탕을 대신 먹어요.” nbspnbsp“그렇게 하면 안 돼요. 담배 피우고 싶다고 사탕을 먹으면 그것은 담배 끊는데 도움이 안 돼요. 아무리 피우고 싶어도 안 피워야 돼요. 그런 것처럼 아무리 먹고 싶어도 딱 정해진 것 이상은 안 먹으면 저절로 개선이 돼요.”nbspnbsp“감사합니다.”nbsp아무리 먹고 싶어도 정해진 것 이상은 안 먹으면 된다는 명료한 답변에 질문자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또다시 웃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스님이 nbsp“벌써 2시간 반이나 됐네요. 재미있었어요?” 라고 묻자 모두들 “예”하고 크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이치를 깨우쳐서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며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내가 몸이 뚱뚱해서 안 먹으려고 하는데 자꾸 먹어진다, 자꾸 이렇게 생각하면 끝이 안 나요. 먹고 싶으면 뚱뚱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체중이 늘어나는 것이 나한테 안 좋다면 ‘아무리 먹고 싶더라고 마약은 안 먹듯이 이것도 안 먹어야지’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꾸 얼버무리지 말라는 거예요. ‘복은 안 지어놓고 부처님 복 좀 주세요’ 하는데 복을 안 지었는데 복이 어디서 나와요? ‘죄는 지어놓고 부처님 죄 좀 안 받게 해 주세요’ 하는데 죄를 지었으면 기꺼이 받아야지요. 복을 안 지었으면 복 받을 생각을 말아야지요. 이렇게 이치에 맞아야 된다는 겁니다.nbspnbspnbsp이런 자세를 가지면 삶이 자유로워져요. 부처님 하느님한테 매달릴 일이 없어져 버려요. 부처님은 우리에게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가는 이치를 가르쳤지 남에게 매달리라고 가르친 게 아니에요. 종이 되라고 가르친 게 아니에요. 네가 부처가 되라고 가르쳤지요. 그러니까 스님의 종이 되려고 하면 안돼요. 스님의 얘기를 듣고 자기가 이치를 깨쳐서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야 돼요.nbsp어떤 경험을 가졌든 모든 사람은 다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그 말은 모두 다 행복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행복하게 살아야 돼요. 행복하게 살 건지 안 살 건지는 자기 선택이에요. 괴롭게 살고 싶어서 괴롭게 사는 것은 자기가 선택한 것이니까 우리가 간섭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계속 먹고 뚱뚱해지는 것도 자기 선택이기 때문에 괜찮아요. 그러나 내가 뚱뚱한 것이 싫다면 먹고 싶어도 멈춰야 되요. 달리 방법이 없어요.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어요. 죽을 것 같아도 ‘음식을 먹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렇게 각오를 해야 돼요. 어떤 사람은 멀쩡한데도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것보다는 그래도 자신이 정한 원칙을 지켜보려고 하다가 죽는 게 더 낫잖아요. 이렇게 생각해서 하기로 했으면 ‘죽으면 죽지’ 이런 단호한 자세가 있어야 개선이 되지 안 그러면 늘 마약처럼 끌려서 살아요.nbspnbsp그러니 자기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되고, 자식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되고, 스님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되고,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돼요. 자기가 주인이에요. 자기 행복을 스스로 찾아가야 돼요. 그런데 자기에게만 이익이 되는 길을 가면 나중에 후회가 되기 때문에 자기 행복이 훼손돼요. 그렇게 여러분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긴 시간 소중한 가르침을 준 스님을 향해 250여명의 청년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책 사인회가 열렸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선 청년들을 위해 스님은 정성껏 사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오늘 행사를 위해 수고한 자원봉사자들과도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방금 전 사인회 중에 어떤 분이 예쁜 상자에 초코렛을 가득 담아서 스님에게 선물을 했는데, 기념 사진을 찍고 나서 스님은 선물 받은 초코렛을 자원봉사자들에게 모두 나눠주었습니다. 봉사자들은 스님으로부터 직접 초코렛을 받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nbspnbspnbsp대전 정토법당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새벽 1시가 넘어서 두북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원래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에서 주관하는 평화리더십, 여성리더십, 청년리더십 아카데미 수료생들의 힐링 동문회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메르스로 인해 모두 취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두북에 머물면서 농사일을 할 계획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6.18 평화재단 심포지엄 및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평화재단 심포지엄에 참석해 ‘한반도 평화공동체 건설을 위한 실천 전략’에 대한 전문가들의 발표를 경청하고 소감을 나눠주었고,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에 참여해 통일의병의 마음가짐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4시30분에 도량석 소리와 함께 법당에 내려와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기도를 마친 후 발우공양 시간에는 어제 정토회 행정처 간부들과 함께 메르스 대책에 대해 의논한 결과를 공유해 주면서 6월말까지 예정되어 있는 다중 행사에 대해서 어떻게 방침을 정할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메르스로 인해서 전국적으로 대중이 모이는 이번 주의 행사는 전부 취소했습니다. 지역 행사라 하더라도 방역 등 예방에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먼저 이번 주말에 있는 불교대학 특강 수련과 다음 주말에 있는 경전반 특강 수련을 둘 다 취소했습니다. 23일 전에 갑자기 취소하면 스탭들이 많이 힘들다고 해서 이번 주만 취소하려다가 다음 주 것까지 같이 취소를 했습니다. 취소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취소해 버리면 다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일정이 안 나와서 못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메르스 자체는 그렇게 위험한 것이 아닌데 지금 정부가 잘못 대응함으로 해서 국민들의 불안이 굉장히 가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전국에서 모이는 행사는 만의 하나라도 위험할 수 있으니 취소를 했고요.nbspnbspnbsp용성스님 탄신 기념일 행사는 1박을 하지 않는 당일 행사이고 일반 대중이 아닌 정토회 회원이 참석하는 행사여서 취소를 안 하려고 했는데 장수군에서 취소해 달라고 요청을 해왔어요. 그래서 용성스님 탄신 기념일 행사에 대중이 참여하는 것도 취소하기로 했습니다. 문경 공동체 대중들만 가서 도량을 정비하고 다례제를 지내고, 서울 실무자들도 바쁘지 않으면 가서 행사도 참석하고 도량정비도 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nbspnbsp그리고 6월말에 있는 청춘콘서트 행사도 취소할지 논의를 했는데요. 하루에 34시간 행사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봐서는 큰 위험이 없는데 지금 사회 전체적으로 공포 분위기가 되어 있어요. 사회 전체를 안정시킨다는 측면에서는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낫지만, 다중 집회에 대해서 장소 제공하는 쪽에서 안 했으면 좋겠다는 문제 제기가 있어서 조금 더 검토해 보고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일단은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며칠 더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nbspnbsp지금까지는 병원에서만 전염이 되었는데 앞으로 어떤 전염 경로가 나타날지 모르고, 또 잠복 기간이 최장 18일까지 나타나고 있으니까 며칠 더 유의해 주시고, 꼭 메르스가 아니더라도 감기 환자는 별도의 방에서 취침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기침을 하면 다른 대중을 위해서 마스크를 꼭 써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현재 정부에서는 너무 공포 분위기가 되어가니까 관광객이 줄고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실제 위험에 비해 사람의 두려움이 더 커서 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수행하는 사람들이니까 같이 불안해하지 말고 조금 진정을 해서 기존 사업들을 차분하게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그러나 대중들이 불안해하는데도 고집을 해서 막무가내로 행사를 진행한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도록 해주세요. 대중만 원한다면 우리는 아무런 흔들림 없이 추진한다고 관점을 잡아야 합니다. 대중이 빠지면 빠지는 대로 추진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장소를 제공해주는 측에서 강력하게 하지 않기를 원하면 굳이 하려고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중들이 불안해하면 취소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해서 추진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메르스로 인해서 행사를 담당하고 있는 스텝들이 걱정이 많았는데, 스님이 대략의 방침을 일러주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 듯 했습니다. 그러나 스텝들은 행사를 위해 한 달 전부터 정성껏 준비를 해왔는데 줄줄이 행사가 취소되는 바람에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 것 같습니다.nbspnbsp발우공양 후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아침 7시부터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9시부터는 출판, 영상, 미디어를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들과 함께 스님의 법문을 어떻게 더 많이 알려나갈지에 대해 회의를 하였습니다.nbspnbsp▲nbsp출판, 영상, 미디어 관련 담당자 회의nbsp회의를 통해 스님은 그동안 출판, 영상, 미디어 관련 업무들이 산발적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통합된 하나의 부서로 개편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희망편지를 더욱 참신하게 다가가도록 해야 할 필요성, 스님의 하루와 희망편지를 시각 장애인들이 들을 수 있도록 오디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인터넷방송을 어떻게 준비할지, 연령과 지역을 구분한 타겟 홍보 방식, 불교대학 강의 내용의 개편 방안, 3.1절과 8.15 등 기념일별 기획 법문 제공의 필요성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앞으로는 출판, 영상, 미디어가 서로 융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서 정토회가 홍보에 있어서도 좋은 모델이 되면 좋겠다”고 하며 회의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nbspnbsp오후 1시에는 프레스센터로 이동하여 광북 70주년을 맞이해 ‘한반도 평화공동체 건설을 위한 실천 전략의 모색’을 주제로 열린 평화재단 심포지엄에 참석했습니다.nbspnbsp심포지엄에 앞서 기조 발제를 맡은 박형준 국회사무총장님을 만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박형준 사무총장님은 평소 스님이 강조하는 통일 문제 해법에 대해 많은 공감을 표하면서 스님과 반갑게 대화를 나눈 후 스님과 함께 심포지엄에 자리했습니다.nbspnbsp▲ 박형준 국회사무총장님nbsp오늘 심포지엄에는 총 350여명이 참석해 높은 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먼저 박형준 국회사무총장님이 ‘한반도 평화의 우선성과 유연한 상호주의’에 대해 발표를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고려대 임혁백 교수님이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상’에 대해 방대한 연구 결과를 압축해서 잘 설명해 주었고, 이에 대해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님, 김준형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님,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님이 토론 발표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청중석에서도 질문지를 쓸 수 있도록 해서 전문가들에게 답변을 들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nbspnbsp▲ 발표1 주제인 ‘통일코리아의 평화외교 전략’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전문가들nbsp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평화공동체를 위한 한국 사회의 혁신’을 주제로 정치 개혁과 민주주의를 어떻게 해나갈지 박동천 전북대 교수님의 발표를 들었습니다.nbspnbsp▲ 발표2 주제인 ‘평화공동체를 위한 한국 사회의 혁신’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전문가들nbsp이에 대해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님, 국회의원 천정배, 이현우 서강대 교수님이 열정적인 토론을 이어 나갔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발표자들의 발표 내용과 토론 내용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다가 사회자가 닫는 말씀을 청하자 단상에 올라 오늘 발표된 두 주제에 대한 각각의 요약과 함께 스님의 소감을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nbspnbsp“첫 번째 발표와 토론에서 나온 얘기들을 요악하면 이런 것 같아요. ‘우리 주위의 국제 질서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외교적으로 위기에 처해 가고 있다. 여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면 남북관계를 개선해서 통일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키는 결국 대한민국이다.’ 이런 결론처럼 들렸습니다. 제일 못하는 국가가 북한인 줄 알고 비판했더니 북한도 우리 보고 ‘너나 잘 해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nbspnbspnbsp결국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한반도에 평화도 유지할 수 있고, 통일도 할 수 있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동체도 만들어 나갈 수 있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기이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좋은 기회인 상황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두 번째 발표와 토론에서 느낀 점은 우리 나라는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니까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시민이 아니고 신민이 되어서 ‘그냥 따라가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고, 또 마음에 안 들면 욕만 하는 이런 수준이죠.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안다면 이제는 신민이 아닌 나라의 주인으로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을 욕하거나 정치인을 욕하거나 이렇게 누구를 욕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하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각이 먼저 필요합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거나 경제적인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가져오는 것, 통일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 등 우리가 선택한 정부가 이런 정책을 만들어나가면 지지해 주지만, 그렇게 안 하면 다음에는 교체를 하고, 교체 시기가 멀었으면 그렇게 가도록 독려를 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우리는 아무 책임이 없는 것처럼 정부를 욕하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국민이 나라의 주인입니다.nbspnbspnbsp또 동아시아에 있어서 거센 파도를 헤쳐 나가는 것도 우리가 해야지 북한이 해줄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결국 키는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의 키는 정치 행위를 하는 주체인 정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 그런 정부가 되도록 활동하는 정치인들을 선출해야 합니다. 이제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틀에 갇히거나, 지역주의의 틀에 갇히거나, 계급의 틀에 갇히지 말고, 국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하고 그 구성원인 국민들이 행복해지도록 하는 그런 정부를 우리가 구성해야 합니다. 즉 통일 지향적이면서도 또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그런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이제는 시민이 행동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nbspnbsp우리 사회를 보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은 사고가 경직되어 있는 반면 굉장히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집회도 하고 돈도 내고 댓글도 달고요. 그런데 중도적인 사람들은 굉장히 신사예요. 사고가 합리적이고요. 하지만 아무런 행동을 안 합니다. 그래서 늘 극단주의자들이 사회를 주도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은 앉아서 불평만 늘어놓기 일쑤입니다. 구체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nbspnbspnbsp그런 면에서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하신 분들은 고명하신 분들의 발표를 잘 들었으니 이제는 행동하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극단적인 방식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평화적이고 미래 문명을 지향하는 세계시민다운 품위있는 행동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필요하면 돈도 내고 필요한 행동을 해야만 세상이 바뀌지 욕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지 않습니까. 우리 함께 그 길을 갔으면 좋겠습니다.”nbsp행동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참석한 대중들 모두가 우레와 같은 박수로 공감을 표현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평소 스님은 대중들에게 아주 쉽게 통일 문제와 국제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오늘은 비슷한 내용을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그 근거와 논리를 다시 들으니 훨씬 더 자신감이 생기는 듯 했습니다.nbspnbsp▲ 심포지엄 발표자들과 함께nbsp심포지엄을 마치고 나서는 오늘 발표를 해준 전문가들에게 저녁 식사 접대를 해드린 후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저녁 8시부터 평화재단에서는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스님이 강당에 들어서자 열다섯 명 남짓한 사람들이 스님으로부터 의병 메달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조촐하게 앉아 있는 대중들을 보며 “저는 한 천명쯤 임명장을 주는 줄 알았어요. 일인당 백 명이라고 생각하고 드릴 게요” 라며 웃음을 머금으며 신입 의병들에게 임명장과 통일의병 메달을 nbsp각각 수여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nbsp임명장과 통일의병 메달을 받아든 통일의병들은 함박웃음을 웃으며 스님과 일대일 기념촬영도 함께 하였습니다. 모두들 일당백이 되어 통일한국의 초석이 되어주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후 스님은 ‘통일의병의 마음자세’에 대해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의병은 관군, 반군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해 준 후 과거의 의병과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통일의병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의병은 관군에 반대되는 말이에요. 국가에서 지위도 주고, 녹봉도 주고, 무기도 주고, 훈련도 시켜서 상시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관군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말이 의병입니다. 의병은 국가를 지킬 아무런 의무가 없는 사람인데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기 돈 내고, 자기 옷 입고, 자기 무기 가져와서, 자기 목숨 바쳐서 나라를 지키는 사람을 말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반군입니다. 나라가 잘못할 때 관군과 싸우는 것이 반군입니다. 그러나 의병은 관군과 싸우는 것이 아니고 관군이 힘이 부족할 때 관군을 지원하면서 나라를 보호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병은 관군도 아니지만 반군도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관군도 아니지만 반군도 아닙니다.nbspnbspnbsp우리나라 최초의 의병은 다물군입니다. 고조선이 망하고 우리 민족의 후예들이 고조선의 옛 땅을 되찾자고 일으킨 것이 다물군입니다. 중국의 침입을 받아서 전쟁에 지고 정규군은 다 도망가고 항복했는데 아무런 의무가 없는 민이 일어나서 나라를 지키자고 한 것이 다물군입니다. 후에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 고주몽이고 그래서 고구려의 건국이념이 다물 사상이 되었습니다. 조선의 옛 땅을 되찾겠다, 우리 선조의 고토를 회복하겠다, 이런 정신으로 일종의 독립군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역사를 보면 고구려가 망하고 고구려 부흥군이 있었고, 백제가 망하고 백제 부흥군도 있었고, 발해가 망하고 발해 부흥군도 있었고, 고려 때는 조금 성격이 다른 사병 집단이긴 했지만 항몽 전쟁을 한 삼별초도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의병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일어난 의병입니다. 진주성의 김성일, 김시민, 곽재우 이런 분들이 가장 대표적인 의병이라고 말할 수 있죠. 민이 혼연 일체가 되어서 왜적을 막아내었습니다.nbspnbsp최근 들어와서는 일본의 침략에 반대해서 조선조 말에 1차 의병, 2차 의병이 일어났었고, 이 의병 정신을 계승한 것이 독립군이었습니다. 또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독재 정권에 항의해서 싸웠던 민주화 운동도 외부의 적과 싸운 것은 아니지만 의병과 비슷한 성격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독립운동을 할 때는 총을 들고 싸웠고 잘못하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할 때는 돌멩이 들고 화염병 들고 싸웠고 잘못하면 감옥에 갔습니다. 이제 통일 운동을 하는 의병은 총도 안 들고 돌멩이도 안 들고 손가락만 들고 싸우면 돼요. 손가락 들고 투표만 잘 하면 됩니다. 이것은 잘못해도 죽을 일도 없고 감옥 갈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운동입니다.” nbspnbspnbsp손가락만 들고 싸우면 된다는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스님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왜 손가락만 갖고 싸워도 될까요? 옛날에 대한제국일 때는 나라의 주인이 왕이었고 백성은 신민이었어요. 그 때는 왕이 하는 대로 따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왕을 갈아치우는데 그러면 반군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를 대신해서 뽑아 놓은 머슴들이 지금 직무유기를 하고 있어요.nbspnbspnbsp첫째, 우리가 지난 50년 간 일궈온 재산과 인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로 한반도에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즉 평화를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 지속적으로 발전을 하려면 반드시 통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을 위해서는 이제 통일이 우리에게 지상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헌법 전문에 대통령의 임무이자 대한민국의 국가 지표로 민주사회를 발전시키는 것과 평화통일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어요.nbspnbsp이렇게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목표를 방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대통령과 정치권력의 직무유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자꾸 머슴한테 눈치를 보고 있어요. 그러나 CEO가 회사를 잘 운영 못하면 주주총회를 열어서 CEO를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선 국가를 발전시키도록 압력을 넣어야 하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nbsp이제 우리는 더 이상 야당이냐 여당이냐 진보냐 보수냐를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가 가장 통일지향적 자세를 갖고 있느냐?’ 이것을 가장 중요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복지를 얼마나 할 거냐?’, ‘경제를 얼마나 성장시킬 거냐?’ 이런 것을 가지고 투표 행위를 결정하지만, 통일의병은 그런 것도 보지만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얼마나 통일지향적이냐?’ 입니다.nbspnbsp오늘 의병 임명장을 받았으니까 내년 총선에서는 국회의원 중에서 그런 사람을 뽑아야 하고,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런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설득해서 알려야 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행동을 해야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그냥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만 번 불러봐야 아무런 영향력이 없습니다.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런 힘을 딱 보여주면 정치인들도 당선되기 위해서 공약을 통일로 내걸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정치색을 너무 따질 필요도 없어요. 통일은 진보가 집권하지 않아서 안 된 것도 아니고, 보수가 집권하지 않아서 안 된 것도 아니에요. 양쪽에서 다 집권해 봤지만 그것 갖고는 못해냈잖아요.nbspnbspnbsp여러분들은 국내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실제로는 지금 외교가 가장 위기입니다. 역사를 전환시키고 통일을 이룰 세력은 북한이 아니에요. 남한이 중심이 되어서 갈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 우리가 통일을 목표로 갖고 거기에 돈이 필요하면 돈을 내고, 행동이 필요하면 행동을 해야 합니다.”nbspnbsp그러면서 스님은 앞으로 배지를 하나씩 나눠주겠다고 하면서 우리가 하는 이 일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일임을 강조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활동해 나갈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앞으로 배지를 하나 만들어서 나눠드릴 거예요. 세월호 추모하듯이 통일의병 배지를 하나 달면 ‘나는 한반도의 통일을 원한다’는 뜻이 되고,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물결이 백만 명이 되고 2백만 명이 되면 정치인들도 통일 문제에 신경 쓰게 되겠죠?nbspnbsp배지 하나 달았다고 회사에서 쫓겨나겠어요? 공무원 그만두라고 하겠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너도 통일을 원하니?’ 물어보고 ‘그렇다’고 하면 배지를 나눠주고 통일기금을 받으세요. 이렇게 확산을 시켜야 됩니다.nbspnbspnbsp우리 선배들이 한국 사회를 민주화시켜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또 우리 선배들이 산업화를 이뤄놓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되었으니까 민주화가 된 것이고, 민주화를 해놓으니까 우리가 이런 운동을 할 수 있죠. 민주화가 안 된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운동을 할 수도 없어요. 그러니 우리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은 중국이나 북한에 태어난 것보다 훨씬 좋은 거예요.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우리는 통일을 달성해야 합니다. 그런 데서 여러분들이 확고부동한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nbspnbsp여기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과거는 따질 필요가 없어요. 과거에 진보에 있었든 보수에 있었든 지금 본인만 통일 지향에 동의하면 남녀노소, 과거의 전역을 묻지 않습니다. 이런 열린 자세를 갖고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통일은 지금도 조금 어려워졌어요. 미국과 중국의 경쟁 틀이 거의 짜여 가고 있고, 우리는 그 하위 변수로 배치가 되어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우리가 한일 관계를 잘 풀고, 남북 관계를 잘 풀면, 아직은 희망이 있습니다. 일본이 감정적으로는 밉지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한일 관계도 잘 풀어야 됩니다. 남북 관계도 잘 풀어야 하고요. 한미 동맹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미국이 시키는 대로만 해서는 이 문제를 못 풉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굉장히 중요하지만 중국 눈치만 봐서는 안 됩니다.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시하고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시해야 하지만, 거기에 안주하고 있어서는 우리의 운명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nbspnbsp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를 잘 풀고, 이 작은 힘을 키워서 큰 힘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외교정책과 통일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국민이 압력을 넣어줘야 합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알고 의병이 되어야지 그냥 의병이 되면 안 됩니다. 죽을 일은 없지만 이런 활동을 죽을 각오로 하셔야 합니다. nbspnbspnbsp짧은 기간에 성과를 내려고 하지 말고 ‘나라만 잘 된다면 나는 무엇이 되어도 좋다’ 이런 관점에서 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일은 먹을 것 다 먹고, 입을 것 다 입고, 화장도 다 하고, 자기 할 일을 다 하면서 해도 되는 일이에요. 왜냐하면 세상이 그만큼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지 부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자신감을 갖고 활동하시길 바랍니다.”nbsp스님이 이렇게 용기를 북돋워 주자 신입 통일의병들은 기뻐하면서 큰 박수로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통일의병 파이팅’을 외치며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이어서 손님이 찾아와 미팅을 더 가진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청년정토회에서 주관한 즉문즉설 강연이 대전정토회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6.12 INEB 환송 및 두북 이동
▲ INEBnbsp스텝 봉사자들과 대화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며 환송 인사를 하고, INEB 스텝 봉사자들과 점심 식사를 한후, 오후에는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새벽4시30분에 일어나 서울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한 후 발우공양을 함께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먼저 메르스로 인해 주말에 예정된 정토회 행사가 모두 취소되었음을 알려주셨습니다.nbspnbsp“메르스 확산 때문에 통일의병대회와 불교대학 특강수련, 대전에서 있는 청년 불교대학 특강수련이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특별히 위험해서라기 보다는 대통령도 미국 방문 일정을 연기하고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서 전국민이 협력하는데 전체적으로 같이 협력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서 이번주 행사는 모두 최소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아시고 함께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혹시 여러분들 중에서도 병원에 갈 때는 주의를 좀 해주세요.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방문했거나 또는 집에 있는 환자를 방문한 사람은 당분간 상주 대중생활을 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어제 법광 법사님은 딸이 메르스 환자와 가까이 있었던 처지로 격리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딸을 방문하고 왔기 때문에 열흘간 법당을 출입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환자를 방문할 때는 검토를 해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방문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현재까지는 대부분 병원에서 전염되고 있습니다. 병문안 갔다가 전염되고, 입원했다가 전염되고, 응급실에 갔다가 전염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일반인에게 전염된 예는 크게 없는 것 같군요. 현재까지는 모두 병원에서 전염되었기 때문에 병원을 방문할 때는 모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우리도 겨울이 되면 독감 환자가 생기면 같은 방에 사는 사람은 다 전염되잖아요. 올 겨울부터는 독감 환자가 생기면 무조건 독방을 쓸 수 있도록 하고, 같은 대중방을 사용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올해부터는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매년 독감에 대해서 예방을 못해 거의 한달을 고생하잖아요. 그래서 누구든지 독감 환자가 생기면 대중과 분리시켜서 함께 생활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독감 환자는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그리고 INEB 동남아 스님들이 모두 출국을 하게 되는데 스텝 봉사자들은 공항 배웅을 다녀오면 함께 점심 식사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밥이라도 한끼 먹으면서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데 함께 소감이라도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하셨습니다. nbspnbsp그리고 내일 열릴 예정이던 통일의병대회가 취소되어서 대신에 그동안 경주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이 많았는데 못해주다가 내일 해주기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음주에는 폐교 위기에 처한 조선족 학교들을 방문하려고 하는데 학용품을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줄 것을 JTS 담당자에게 요청하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지난주에 49일 출가 수행프로그램을 회향하고 밖에서 살고 있지만 일주일마다 하루씩 법당에 다시 들어와 정진을 이어나가기로 한 청년들을 보고선 세상 속에 살면서 어떻게 수행을 해나가야 하는지 한번 더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밖에 가서 일주일 살아보니 어때요?”nbspnbsp“다시 들어오고 싶어요.”nbsp“역시 밖이 좋더나?”nbsp“아니요. 안에 사는 게 더 좋습니다.”nbsp“여기 사는 게 좋아요?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마워요. 그러면 아예 직장 그만두고 들어오는 게 더 낫지 않아요? 그러기에는 좀 어려워요? 여기서 출퇴근하면 잠을 제대로 못자서 피곤했잖아요.”nbsp“그건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nbsp“또 들어오고 싶다는 얘기네요. 수행이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 늘 이뤄져야 하니까 절에 있으면 수행이 되고 밖에 나가면 금방 물들면 아직 수준이 안되는 것이거든요. 지금은 물드는 존재이지만 여기서 연습을 해서 이제 물 안드는 존재로 가야 되잖아요. 물 안드는 존재는 두 가지가 있어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말처럼 물 안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서 물이 안 드는 방법이 있고, 물들 수 있는 세상 속에서도 물이 안드는 방법이 있어요. 소승은 세속을 경계해서 세속을 멀리하고, 대승은 세속에 있으면서도 세속에 물이 안드는 수행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기 들어와서 수행하는 것과 같이 회사에서도 화를 안내고, 짜증도 안내고, 먹는 것에 욕심 안내고, 승진에도 욕심 안내고, 야단을 쳐도 새소리처럼 듣고 이렇게 되는지, 그게 안되면 여기 와서 다시 기도하고, 또 직장에 가서 되는지 검토하고, 그래서 그 속에서 되어야 합니다.nbspnbsp이것을 매일 점검하고 한주에 한번씩 와서 정화시키고 또 나가서 살면서 물 좀 들면 또 정화하고 또 나가고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49일 한 것은 물 안드는 격리 조건에서 연습한 것이고, 이번에는 다시 나가서 왔다갔다 하면서 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물 안드는 수준이 되는지 검토해 보고, 그게 되면 나가 살아도 되고, 그게 안되면 아예 회사 사표를 내고 들어와야 해요. nbspnbsp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세속에 살 수준이 안되는가 봐요. 여기 사는 사람들도 세속에 살 수준이 안되어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거에요. nbspnbsp결혼해서 애기 낳고 사는 사람들은 수준이 상당히 높은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보통 수준이 안되는 사람이 멋도 모르고 결혼해서 살다가 괴롭다고 아우성치고 난리잖아요. 그래서 스님이 늘 얘기하잖아요. ‘나도 수준이 안되지만 그래도 나는 안되는 줄을 알아서 이렇게 혼자 사는데, 너희는 안되는 수준인데도 되는 줄 착각해서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되었다’ 하고요. nbspnbsp자기가 결혼하고 자기가 애 낳고 자기가 직장다니고 이렇게 자기가 선택해놓고 자기가 괴롭다고 아우성치는 건 좀 모순이잖아요. 밖에 나가 살다가 후회가 되면 다시 들어오면 됩니다. 그런데 그 수준에서 들어오면 여기서 살아도 또 괴롭다고 아우성을 쳐요. 여기 살면서도 괴롭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러니 장소에 구애받지 말고 연습을 해보세요. 늘 여여하게 되는 연습을 꾸준히 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스님의 법문을 듣고 청년들은 다시 용기를 내어 봅니다. 49일 수행을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가니 힘든 점이 여전히 많았나 봅니다. 다시 들어오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절히 느껴졌지만 역시나 스님께서는 힘들어하는 바로 그곳에서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해야함을 다시 일깨워 주셔서 모두들 다시 수행 자세를 가다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며 스님께서는 오늘 고국으로 돌아가는 INEB 동남아 스님들께 다같이 삼배로 인사를 드리자고 하셨습니다. 삼배를 한 후 ‘다음에 다시 만나요’라고 할 때 태국말로는 무엇이라고 하는지 물어보니 ‘폽깐마이’라고 하자 공동체 대중들과 다함께 ‘폽깐마이’를 외치며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 고국으로 떠나는 동남아 스님들께 삼배로 인사를 하는 정토회 상주 대중들nbspnbsp이어서 다같이 사진 촬영을 하면서 ‘폽깐마이’를 외치니 동남아 스님들 모두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공항에 배웅을 나가야 하는데 아침부터 미팅이 있어서 나가지 못한다”며 양해를 구했고, 동남아 스님들은 마지막으로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도 맞절을 하면서 “다음에 태국을 방문하겠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nbsp nbspnbsp▲ INEB 동남아 스님들과 서울 공동체 상주 대중들이 다함께nbsp오전에는 평화재단에서 찾아온 손님들과 계속 미팅을 하셨고, 점심 때는 동남아 스님들 공항 배웅을 마치고 온 INEB 스텝 봉사자들과 함께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최말순 보살님을 비롯하여 평화재단 봉사자들이 차려준 음식에는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nbspnbsp▲ INEB 스텝 봉사자들과 점심 식사nbsp식사를 하면서 스님께서는 “동남아 스님들은 어떤 점이 좋았다고 하더냐?”고 물어보았고 스텝 봉사자들은 “동남아 스님들 모두 법륜 스님과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가장 좋았다고 얘기하셨다”, “정토회의 수련 프로그램과 원리에 대해 설명해준 것이 좋았다고 한분도 많았다” 등을 말해주었습니다. 메르스 때문에 행사들이 연이어 취소되는 바람에 대중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진 못했지만 덕분에 동남아 스님들은 스님과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게 되어서 오히려 더 좋아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이 외에 스텝들은 동남아 스님들이 말한 다양한 건의 사항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참가자들끼리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저녁마다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정토법당 화장실이 좁아서 불편했다”, “도착한 첫날 바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해서 힘들었다” 등 각각의 개선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가장 의견이 많이 나온 첫째날 일정에 대해서는 “다음에는 공항에 도착한 후 바로 문경으로 가서 쉬면서 수련에 대해 먼저 보여주고, 마지막에 서울에서 사회활동에 대해 보여주면 좋겠다”고 얘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평가 겸 소감 나누기 형식으로 많은 대화를 나눈 후 스님께서는 수고한 봉사자들 모두에게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했습니다. 봉사자들도 그동안의 수고가 녹아나는 듯 무척 즐거워 했습니다. nbspnbsp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내일 경주에서 진행될 예정이였던 통일의병대회가 메르스로 인해 최소되긴 했지만 대신에 경주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해주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경주고등학교는 스님의 모교인데 오래 전부터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으나 시간이 나지 않아 응해주지 못하다가 마침 시간이 생겨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저녁6시 정도에 두북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짐을 풀자 말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마당 구석 구석의 텃밭에 시원하게 물을 주었습니다. 요즘 가뭄이 심하고 햇볕이 뜨거워서 마당의 텃밭 작물들이 타들어가서 걱정이 많으셨는지 물을 주면서 안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농작물들도 스님이 준 물을 흠뻑 머금으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nbsp▲ 잘 자란 마디호박nbsp그리고 인도에서 8년 동안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김신아님도 두북으로 와서 스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님께서는 8년 동안 인도에 살면서 몸이 삐쩍 마른 김신아님에게 “소도 팔 때가 되면 잘 먹여서 살을 찌워야 값이 오르는데, 신아도 잘 먹여서 세상에 보내야지” 라고 농담을 하시며 특별한 저녁상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푸짐하게 식사를 하며 그동안 수고한 김신아님을 격려도 해주셨습니다.nbspnbsp▲ 달래꽃nbspnbsp그런데 저녁에 경주고등학교 강의가 메르스 때문에 최소가 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연락을 받고 나서 “메르스 때문에 잡힌 강연이 메르스 때문에 취소가 되네”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늘 바쁜 스님께 이렇게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다행이다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스님의 법문을 원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쉽기도 했습니다. nbspnbsp아쉬움을 뒤로 하고 저녁에는 BTN에서 스님께 전해준 ‘붓다’ 드라마 영상물을 함께 보았습니다. 최근 인도에서 ‘붓다’라는 드라마가 제작되었는데 이번에 동남아에서 온 스님들이 이 드라마 얘기를 많이 해서 스님께서도 관심을 갖고 보셨습니다. 밤이 늦어서 드라마는 1회와 2회만 시청을 하고, 스님께서는 방에 들어가셔서 업무를 보시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메르스 방지 대책으로 인해 연달아 일정들이 모두 취소가 되는 바람에 내일 일정은 아직 미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2015.6.11 INEB 간담회 및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INEB 동남아 스님들과 일주일 동안의 정토회 방문을 마무리하는 간담회를 가진 후 저녁에는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식에 참석해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도 스님께서는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새벽4시30분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나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기도를 마치고 발우공양 시간에는 지난 일주일 동안의 정토회 방문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친 INEB 스님들의 소개와 간단한 소감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분 한분의 소개를 듣다보니 오늘 고국으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는데 더 깊이 있는 교감을 나누지 못한 점이 아쉽기만 합니다. 이번 인연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많은 교류가 일어나길 간절히 기원해 보았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INEB 동남아 스님들은 강남구 수서동에 위치한 전국 비구니 회관을 둘러보러 이동했고, 스님께서는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아침 7시30분부터 점심 때까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시작으로 몇 번의 미팅을 가지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후2시부터는 전국 비구니 회관을 둘러보고 온 INEB 스님들과 함께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가셨습니다. 특히 이번 시간은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간담회입니다. ㄱ래서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 하고 있는 활동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활동을 하면서 무엇이 어려운지 얘기하고 스님의 조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INEB 동남아 스님들과의 마지막 간담회nbsp먼저 태국의 두사디 스님은 센터를 지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분인데 “학생을 가르칠 스님이 부족하고, 수련 후 돌아가서 어떻게 수행하는지 체크할 수가 없고, 지역사회와 학교, 절이 함께 참여하는 제대로 된 교과 과정이 부족하다”고 얘기했습니다. nbsp또, 태국의 콩신 스님은 계를 받기 이전의 사람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가르치는 스님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특히 요즘은 아무도 스님 되려는 것에 관심이 없고, 계를 받아도 지속되지 않고 나중에 환속하게 된다”고 고민을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미얀마의 헤이마 비구니 스님은 청년들을 위한 교육, 훈련, 사회활동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분인데 역시 갈수록 청년들의 참여가 줄어들고 있는 점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nbspnbspnbsp이렇게 이번에 오신 분들 대부분이 교육이나 트레이닝에 관계된 사람들이 많았고, 대부분 교과 과정이 완전하지 않고, 팀웍이 안되니깐 교육에 치중할 힘이 부족하고, 그것을 꾸려갈 인력과 재정이 부족함을 호소했습니다. nbspnbsp이에 대해 스님께서도 “한국도 불교대학이 많이 개설되어 있는데 지식은 많은데 믿음이나 계율, 실천이 안되고 있고, 지식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개발되어 있다”며 한국 불교의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태국의 지라삭 스님은 “우리는 윤리에 대해서 강조하기 때문에 교리보다는 윤리 중심으로 가게 되는 한계가 있다”고 얘기 했습니다. 또 태국의 아노샤 스님은 “출가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사회적 실천 활동이 부족한 남방 불교의 한계를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러면서 듀사디 스님이 “지금 태국 불교는 중앙 집권적이여서 진보적인 스님들은 민중으로부터 시작하는 방식으로 함께 교육하는 허브를 만들고 싶어 한다”고 이야기하자 스님께서는 INEB가 만들어진 취지를 설명해주시면서 부처님의 법을 어떻게 현대사회에 맞게 전할 것인지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새로운 것을 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30년 전에 민주화 운동에 참여할 때 그건 불교가 아니라 정치 활동이라고 평가가 되어서 사회 실천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감옥에 갔을 때도 교단으로부터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로부터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스님 중심이 아닌 재가자나 청년들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할 때도 기존의 스님들이 보기에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보여졌습니다. 신도는 담마를 알 필요가 없고 그저 복만 빌면 되지 공부는 스님들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바뀌어서 불교 교리를 신자들에게도 가르칩니다.nbspnbspnbsp그러니 새로운 불교 운동을 할려면 목표를 한 30년 정도 잡고 미래를 보고 해나가야 합니다. 그동안 사이비 취급도 받고 왕따도 당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저의 경우엔 불교에서 먼저 인정받기 보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나서 나중에 불교에서 인정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을 각오하셔야 합니다.nbspnbsp아까전에 윤리 이야기를 하셨는데 불교와 윤리를 동일시하게 되면 젊은이들이 싫어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이혼을 하겠다고 할 때 ‘결혼했기 때문에 이혼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이 윤리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혼하는 건 너의 선택인데, 지금 이혼하는 게 과연 올바른 결정인지 너 자신을 살펴보라’고 얘기해 줍니다.nbspnbsp‘결혼할 때는 이 사람이 좋아서 결혼한 거 아니냐? 그런데 지금 살아보니깐 안 좋지 않으냐? 그러면 너가 그 때 판단을 잘못한 거 아니냐? 그리고 지금은 헤어지는게 좋겠다고 판단하지 않느냐? 그럼 또 일정하게 지나면 이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 첫 번째 한번 잘못 했으면 두 번째는 좀 신중해라. 그리고 우리가 좋아서 한 것이 결과도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 또 싫다고 안 하면 그것이 또 반드시 좋은 결론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붓다가 말씀하시길 좋다 싫다에 끌려가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이 괴로움과 즐거움이 돌고 도는 것이 윤회다. 지금 너가 먼저 해야할 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과 같이 있어도 괴롭지 않은 것을 먼저 달성하고, 그러고도 헤어지고 싶으면 그때가서 헤어져도 된다. 지금 해야할 일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고 싫은 것과도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수행을 먼저 해야 된다.’nbspnbsp이렇게 이혼 문제로 제기했지만 이것을 수행의 문제로 바라보고 수행의 과제로 삼도록 안내합니다. 젊은이들은 ‘그러면 안된다’ 이렇게 하기 보다는 ‘나를 위해서 안 하는게 좋겠다’ 이렇게 자기 선택이 될 수 있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계율과 윤리는 다릅니다. 윤리는 선악의 개념이고 계율은 내가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성격이 다릅니다. 그래서 계율은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나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해주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리고 계율에 대해서 막연하게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 사람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불살생 계율의 경우를 보면, 한국에서는 ‘모기를 죽여도 되는가’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자기 자식은 마구 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계율을 줄 때 첫 번째로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되면 그 다음에 짐승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되면 어류도 죽이지 말라고 하고요. 그래서 최소한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지 않는 것만이라도 확실하게 하도록 기초를 잡아 줍니다.nbspnbsp술 먹지 말라는 계율도 술을 안먹으면 제일 좋습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먹는 일이 생긴다면 음료수 먹는 수준까지만 먹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어울리다 보니 조금 더 먹었다면 정신적으로 취하는 증상이 없을 정도까지만 먹어라고 얘기합니다. 적어도 불자라면 술을 먹고 취했다, 이러면 절대로 안됩니다. 그래서 불자라면 적어도 인격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 우리 선생님이 불교 신자라면 ‘아, 맞을 일은 없겠다’고 학생들이 생각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재가 신자들에게도 ‘불자는 다르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인격자가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기독교 신자와 불교 신자는 이름만 다르지 그 행동은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우리가 이 사회에서 조금 더 앞서가는 길을 열어야 합니다. 정토회는 이런 것을 계속 실험해 가는 것이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분들이 활동하는 곳에 직접 가보고 어떤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지 배우려고 합니다. 아비 달마에 대해서 저도 확실하지 않은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물어보고 싶어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 생활에 적용이 될 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확하지 않으면 가르침의 내용이 어려워지고 말이 많아집니다. 가르침이 굉장히 쉽고 재미있을려면 자기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자기가 경험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제가 가서 여러분들에게 물어볼 게 많아요. 준비를 좀 해주세요.” nbspnbsp이번에는 스님께서 한국 불교와 정토회의 활동에 대해 자세히 안내를 해주었으니 다음에는 동남아 스님들이 스님께 자신의 활동을 보여줄 차례라는 이야기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언제든지 스님께서 방문해 주시면 성의껏 안내해 주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앞으로 정토회의 활동과 nbsp남방 불교 간에 더욱더 활발한 교류가 일어나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욱더 현대사회에 맞게 자리매김하게 되길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nbspnbsp간담회를 마치고 동남아 스님들은 일주일 동안 많은 가르침을 준 스님께 각자 자기 나라에서 가져온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어떤 분은 꿀을 선물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야자수에 글자를 세긴 펜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감사히 선물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nbsp미얀마에서 오신 비구니 스님은 그 자리에서 바로 스님께 절을 하며 공경의 예를 올리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동남아 스님들은 인사동으로 가서 한국의 전통문화가 깃든 상품들을 구경하거나 쇼핑을 하며 자유 시간을 보냈고, 스님께서는 잠시 시간을 내어 김윤신 작가님의 전시회에 다녀오셨습니다.nbspnbsp김윤신 작가님은 지난 세계 100회 강연 때 아르헨티나 강연을 준비해주셨던 분입니다. 현재 서울에 와 계시면서 그림 전시회를 하고 계신데 스님께서 꼭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초대장을 보내서 잠깐 방문해서 축하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 김윤신 작가님의 전시회nbsp다시 평화재단으로 돌아오셔서 찾아온 손님과 미팅을 가진 후 저녁 7시30분부터는 평화교육원의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식에 참석했습니다.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는 지난 3월26일 개강하여 6월11일까지 총 12주 동안 우리사회 각계 각층의 리더들을 모시고 강연도 듣고 토론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갈등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 통일 한국의 비전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해왔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오늘 수료하는 분들이 졸업과 동시에 어떤 마음 자세를 갖고 살아가면 좋을지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식nbsp먼저 스님께서 “축하합니다. 3개월 동안 고생 많이 하셨어요. 재미있었어요?”라고 묻자 모두들 큰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12주 동안 강의도 듣고 경주도 다녀오고 하면서 자신이 변한 게 뭐가 있어요?”라고 묻자, 남자분 중에 한 분은 “통일에 대한 생각이 선택에서 필수로 바뀌었고요. 필수로 가도록 하기 위해 내가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을 시작하게 된 점입니다.”라고 말했고, 여자분 중에 한분은 “사회를 보는 눈이 넓어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nbspnbsp그러자 스님께서는 비록 나이가 사십, 오십이 되었지만 다시 한번 가슴 뛰는 꿈을 꾸어보자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개인의 꿈을 공동의 꿈, 민족의 꿈, 아시아의 꿈, 인류의 꿈으로 확대해 나가 보자는 말씀에 정말로 가슴이 설레였습니다.nbspnbsp“아직 만족은 못하실 것 같아요. 인생은 죽을 때까지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옆에서 제가 볼 때는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 됐으면 된 것 아니냐 싶어요. 이 말은 여기서 끝내라는 것이 아니에요. 첫째, 이제 나이가 벌써 40대, 50대가 되었잖아요. 키가 더 클 것도 아니고 이제 꺽이기 시작한다 이말이예요. 둘째, 결혼해서 자식도 낳았잖아요. 의사가 되었든 변호사가 되었든 이제 자신의 전문 직종을 가졌잖아요. 여기서 갑자기 생각도 못한 인생으로 바뀐다는 것은 1의 확률도 안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갈 뿐이지 청소년이나 대학생처럼 생각도 못한 변화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nbspnbspnbsp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여러분들은 인생의 진로가 거의 정해졌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큰 변화는 없습니다. 이 중에 한두명은 또 변화가 생길지 모르지만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대충 삶의 방향이 잡혀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죠.nbspnbsp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공동체인 사회는 어떤가요? 우리 사회도 어렵게 살다가 이제 먹고 살만하게 되었고, 자유없이 살다가 자유롭게 되었고, 옛날보다 좋아졌어요. 한국 사회가 아무리 문제가 있다 하지만 옛날에 비하면 좋아진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도 계속 성장하고 좋아질거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나무와 풀도 7,8월이 지나면 더 이상 성장이 안되듯이 우리 사회도 거의 정체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저성장하고 정체되다가 시간이 흐르면 다시 쇠퇴로 가는 것이 이미 보입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난다든지, 출산율이 낮아진다든지, 사회적인 복지 요구가 높아진다든지 이런 전반적인 상황과 우리 주위의 국제 정세를 보면 더 이상의 성장은 어렵게 되어 있어요. 이런 상태에서 자연의 질서에 맞게 늙고 죽는 과정을 거부할 수는 없겠지요.nbspnbsp그런데 개인은 대충 방향이 잡혔지만 우리 공동체에 대해서 저는 약간 아쉬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힘을 합하면 한번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 눈에는 보여요. 제가 볼 때는 지난 천년 동안의 역사 속에서 지금이 가장 나을 때라는 생각이 드니까 이런 시대에 살았다는 것만 해도 괜찮은데 여기서 멈추기에는 조금 아깝지 않나 싶어요. 여기서 조금만 잘하면 3천년 만에 올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즉,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로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고, 우리 전체가 조금 더 성장하고 조금 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느냐. 그 첫발이 통일이 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국가가 조금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통일의 길로 가지 않고서는 달리 그 기회가 없고, 국민이 좀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민주화의 심화, 즉 분권이 이뤄져야 하고, 경제민주화, 즉 빈부격차가 좀 해소가 되어야 하는 몇가지 과제들이 있습니다. 국가가 더 발전하고 국민이 더 행복해지는 그런 사회를 우리가 조금만 더 힘을 합하면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nbspnbsp세월호 사고나 메르스 대책을 보면 양이 커진 것에 비해서는 질이 너무 떨어져서 좀 챙피하거든요. 옛날에는 이 정도 수준이여도 별로 안 챙피했어요. 왜냐하면 그 때는 우리가 별 볼일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우리가 굉장히 괜찮은 줄 알고 있는데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좀 신통치 않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심화도 좀 가져와야 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목표의식을 갖고 힘을 모으면 한단계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첫단계가 통일입니다.nbspnbsp지난 50년 간 우리가 이룬 것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평화가 유지되어야 하고, 여기서 한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통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통일은 통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통일된 대한민국은 일본과 중국까지 포용해야 합니다. 즉 일본은 과거사를 진솔하게 반성하기로 하고 우리는 좀 용서해주고,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의 발전을 용인하되 어느 정도 경계할 것은 경계하면서 협력을 모색하면, 한국의 발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고, 이것이 조금 더 지속이 되면 아시아 시대를 우리가 꿈꿔볼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러면 타고르가 얘기했던 동방의 등불을 우리가 만들 수 있습니다. 타고르는 이것을 생각하고 동방의 등불이라고 얘기한 게 아니고 생각도 못했던 3.1운동이 일어나서 그 3.1운동의 영향이 중국의 5.4운동에 영향을 주고, 5.4운동의 영향이 바로 인도의 반영 독립 운동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그 때 타고르가 한국에 대해 찬미를 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고 200년이 지났으면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는 세계 문명의 꽃을 피우는 나라를 우리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가능성으로써 우리가 통일을 생각해볼 수 있고, 통일 없이는 그 가능성을 아예 생각도 못할 뿐만 아니라 현상 유지하는 것도 사실은 쉽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nbspnbsp그런데서 통일은 이제 좌우의 문제도 아니고, 여야의 문제도 아니고, 민족의 비전과 관계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정도만 살고 말겠다는 사람에게는 복잡한 문제로 느껴지겠지만, 약간 꿈을 갖고 뭔가를 달성해보겠다는 사람에게는 이 통일이 굉장한 메리트가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꿈을 좀 가벼봤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청소년기에 ‘나는 무엇이 되겠다’ 고 꿈 꾸었던 것처럼 지금 나이 사십, 오십이 되어서도 이런 꿈을 꿀 수가 있다면 인생이 행복하지 않을까요?nbspnbspnbsp물론 꿈을 갖고 도전을 하면 고생스럽지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산꼭대기에 올라갈 때도 힘이 들 듯이요. 그러나 거기에는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저도 승려이기 때문에 제3세계 구호활동이나 환경운동이나 사람들의 수행 지도나, 그래도 조금은 이 땅에 태어난 인연으로 남북의 평화나 북한의 인도적 지원이나 이런 활동들을 하려고 했는데, 제가 지난 20년 동안 미국을 다니며 민간 외교를 해봐도 현재 상태에서 통일 문제는 결국 한국 정부가 어떤 자세를 갖고 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nbspnbsp미국이 아무리 뭐라 그래도 ‘북한은 우리 나라다. 우리 문제니까 우리가 책임지고 할테니 너희가 나서지 말고 우리를 좀 도와라. 핵문제는 통일하면 우리가 해결할테니 너무 그것 갖고 설치지 마라’ 이렇게 딱 책임지는 자세로 민족의 주인으로서 입장을 갖고 대응을 하면 되거든요. 그렇지 못하니까 억지로 끌려가서 하수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반미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을 딱 잡고 한미동맹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통일 지향적인 정부가 들어서야 됩니다. 이제 2017년이라는 기회를 놓치면 두 가지 측면에서 통일이 어려워집니다. 첫째는 미국과 중국의 세력이 비등해지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둘째는 북한이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버텨줘야 협상도 하고 중국의 개입도 막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친중 정부가 들어서 버리면 우리도 지금 미국 때문에 자주적으로 결정을 못하듯이 북한도 이제 중국 때문에 자주적으로 결정을 못하게 되어서 통일은 더 어려워집니다.nbspnbsp통일의 기회는 언제든지 오는 게 아니에요. 제일 좋기는 이명박 정부 때 잘했으면 가장 좋았고, 박근혜 정부 들어설 때만 해도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매우 어려워졌어요. 벌써 미일 동맹이 굳어져버렸고, 우리는 이제 하위 변수이지 대등한 변수가 안돼요. 여기에 사드 배치까지 다 되고나서는 정권이 새로 들어서든 어떻게 되겠어요? 미국과 약속해 놓은 것을 다 번복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쉬운 게 아니에요. 그래서 사실은 분단 쪽으로 이미 기울어졌어요. 그러나 저는 아직은 한번 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제가 보기에 어렵습니다. 미중 간의 세력 균형, 북한 권력이 자주성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 그리고 판이 이미 짜여져 버린 상황을 고려했을 때 통일은 매우 어려워집니다. 우리가 통일하고 싶다고 쉽게 되는 게 아니거든요.nbspnbspnbsp그런데서 여러분들은 더 이상 통일 문제를 진보니 보수니 좌니 우니 여니 야니 지방이 어떠니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통일이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임을 알고, 그 쪽을 향해서 모든 국가적 역량을 투입할 수 있는 그런 사람과 세력이 통일지향적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겠느냐, 이것을 봐야 합니다. 우리가 나라의 주인이니까 ‘우리는 이런 정부를 원한다’ 이렇게 우리가 내세운 방향에 누구든지 가장 동의하는 사람과 세력을 지지하는 관점만 분명히 가지면 됩니다.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도 오늘 졸업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시야가 좀 넓어졌으니까 이제는 개인의 꿈을 공동의 꿈으로, 개인의 꿈을 민족의 꿈으로, 마치 독일 사람들과 프랑스 사람들이 독일과 프랑스의 꿈을 유럽의 꿈으로 승화시켰듯이 우리는 지금 개인의 꿈을 우리 민족의 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한국의 꿈을 아시아의 꿈으로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다시 아시아의 꿈을 인류의 꿈으로 더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는 약소국으로 너무 오래 살아서 그런지 우리가 인류 문명의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생각을 별로 안하는 것 같아요. 인류는 고사하고 아시아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생각도 안하고,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한 책임도 생각 안하고, 한국 정도의 책임도 별로 생각 안하고, 자기 가문의 꿈도 별로 생각 안하는 것 같아요. 겨우 개인의 꿈이나 가족의 꿈 정도만 생각하지요. 조금 더 우리의 꿈을 확대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꿈을 꿔 봅시다.” nbspnbsp스님의 열정이 담긴 간곡한 말씀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스님께서는 매번 반복하시는 말씀이지만 정말 들을 때마다 새롭고 들을 때 마다 우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스님께서 진정을 다해 말씀하시기 때문일 겁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이렇게 인사 말씀을 한 후 오늘 수료하는 한분 한분에게 수료장과 개근상, 정근상을 각각 나눠 주셨습니다. 환한 웃음으로 ‘함께 통일한국을 향해 나아가자’는 무언의 말씀을 하시듯 꼭 잡은 손으로 악수까지 해주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통일코리아”를 외쳐 보았습니다. 모두들 변호사, 의사, 기업가 등 각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인데 이번 12주 동안의 아카데미 과정을 통해 이제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함께할 자세가 되어있는 통일의병이 된 것 같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생 일동은 스님께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 더 많은 활동을 해달라는 뜻으로 등산화 한 켤레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감사합니다. 잘 신을게요”라고 고마워 하셨습니다.nbspnbspnbsp기념사진 촬영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정토회관으로 가셔서 늦은 밤까지 업무를 보시다가 오늘 일정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발우공양 시간에 nbspINEB 동남아 스님들과 환송 인사를 하고, 평화재단에서 회의를 한 후 오후에는 경주로 이동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2015.6.8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부산 대강연
▲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부산 대강연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대화 시간을 가진 후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인 통도사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부산 KBS홀에서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을 하셨습니다.nbspnbsp새벽4시30분, 오늘도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 후에는 INEB 동남아 스님들을 위해 스님께서 직접 음식물 테이블 셋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두북 정토수련원nbsp아침 식사는 최말순 보살님과 묘광 법사님, 화광 법사님 세 분이서 어제부터 정성을 다하여 준비해 주셨습니다. 동남아 스님들은 식사를 준비해주신 세분께 감사 기도와 축언을 함께 한 후 맛있게 식사를 드셨습니다.nbspnbsp▲ 식사 전 감사 기도를 하고 있는 동남아 스님들nbsp식사 후 스님께서는 동남아 스님들께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하며 대화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nbsp동남아 스님들은 “어떤 사람이 정토회 회원이 될 수 있습니까?”, “수련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부모와 아이가 함께 변하도록 수련을 해야 하지 않는지?”, “부모의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 스님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나요?”, “예전에는 한국 사람들이 극단적이였는데 요즘은 타협하는 모습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정토회는 어떻게 기복 신앙을 붓다에 대한 존경으로 바꿀 수 있었는지?”, “집착을 내려놓은 방법을 어떻게 가르치시는지?” 등 많은 질문들을 스님께 했습니다.nbspnbspnbsp그 중에서 “강연을 하면서 어떤 사회변화를 느끼시나요?”라는 질문에는 스님께서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아직 사회 변화 정도까지는 안돼요. 조그만 변화가 있다면 세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아요. 첫째, 아기를 낳으면 세 살 때까지는 엄마가 정성껏 키워라. 둘째, 청소년들에게 너무 간섭을 하지 말고 스무살이 넘으면 더 이상 관여를 하지 말아라. 이렇게 강조를 계속 하니까 조금씩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셋째, 부부관계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이 담긴 책이 아주 많이 팔려서 이혼하려는 사람들이나 부부 갈등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nbspnbsp그리고 한국 불교는 복을 비는 것이 대부분인데 자기 마음을 닦아서 행복해지는 수행에 대한 요구가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장을 하려면 거의 10대1 정도의 경쟁률이 있을 정도입니다. 여기 못 오는 사람들이 위빠사나 수행이나 다른 프로그램으로 많이 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수련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어요. 어제 미얀마에서 온 시타구 사야도의 제자는 한국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법륜 스님 법문을 듣고 자신의 수행처로 많이 온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아직 뚜렷하게 성과로 나타난 것은 없고 작은 변화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nbspnbsp또 “앞으로 정토회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nbspnbsp“정토회는 30년 단위로 목표를 세우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안에서의 목표는 동네마다 수행 모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내년까지 목표는 시군구까지 확대하는 것입니다. 22년 전에 처음 시작할 때는 하나의 모임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때 목표가 남북한에 5천개의 동이 있는데 모든 동에 수행 모임을 만들자는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처음 10년 동안 겨우 10개 정도 만들었어요. 다음 10년 동안 50개 정도 만들었어요. 이번 3년 동안은 200개를 만들려고 해요. 현재 110개 정도까지 만들었어요. 앞으로 8년 남았는데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nbspnbsp그러나 어떻게 보면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수행을 많이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통 불교에 기반을 두지 않고 전혀 새로 시작했습니다. 전통불교의 의식은 한문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는 대부분 한글로 바꾸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에겐 전통 의식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침기도와 저녁예불은 모두 전통 방식입니다. 이것이 젊은이들에게는 지금 큰 장애입니다. 다른 종교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도 장애입니다. 법문은 누구에게나 쉽게 전달이 되는데, 절에 오면 이 전통문화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다음 30년 계획에는 이것을 다 바꾸어야 합니다. 첫째, 젊은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둘째,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셋째, 외국인을 위해서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모두 자기식으로 수행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와 같이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절하는 것은 외국인들이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고뇌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고뇌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목표를 달성해야 합니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탈과 열반을 어떻게 달성하느냐입니다.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바른 길과 쉬운 길을 어떻게 개발하느냐 입니다.nbspnbspnbsp한국 사회 안에서의 목표는 평화와 통일에 맞춰져 있습니다. 만약에 정부가 그 길로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부가 그 길로 가도록 행동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은 늘 수행을 해야 하지만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마음의 평화만 추구하고 사회적 모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것이 됩니다.“nbsp동남아 스님들은 정토회에 대해 더 깊이있게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며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정토회 활동을 먼저 보여준 후 다시 궁금한 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번 INEB 방문단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nbspnbsp아침 대화 시간을 마친 후에는 평화재단 이승용 팀장의 안내로 경주 불국사로 향했습니다.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의 이야기, 청운교와 백운교, 석가탑과 다보탑 등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들으면서 동남아 스님들은 한국의 전통 불교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 불국사nbsp다시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돌아와서 점심 식사를 한 후에는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기 위해 울산 현대중공업을 견학하였고, 이어서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사찰인 통도사를 방문했습니다.nbspnbsp▲ 통도사nbsp스님께서는 “이 절은 신라 시대에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가서 부처님의 사리를 받아와서 지은 절입니다. AD 642년에 지어졌습니다.” 라고 짧게 소개한 뒤 통도사 경내 곳곳을 함께 둘러보며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무엇보다 통도사는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된 곳으로 유명한데, 문이 잠겨 있었지만 마침 이곳 교무스님과 전화 연락이 닿아 사리가 봉안된 금강 계단을 참배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nbsp그리고 대웅전 옆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에 얽힌 설화도 스님께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 구룡지연nbsp“이곳은 아홉 마리의 용이 있는 연못이라는 뜻의 ‘구룡지연’입니다. 원래 이 지역은 습지였습니다. 그것을 메웠어요. 이 습지에 아홉 마리의 용이 있었는데, 자장 율사가 그것을 다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눈 먼 용이 한 마리가 있어서 자기는 갈 수 없다고 하면서 이 절을 지키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 용이 여기서 살도록 이 연못을 남겼다고 합니다. 신라시대는 나라를 용이 지켜준다는 신앙이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자상한 설명을 들으며 동남아 스님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스님께서 설명해주신 곳마다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통도사를 모두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스님께서는 “통도사의 관할 아래에 큰 암자가 무려 16개나 있어요” 하시면서 “이 절은 규모 면에서 아마 정토회의 100배 정도는 될 겁니다” 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토회가 미약한 규모에 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는지 상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통도사 방문을 마치고 곧바로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부산 KBS홀로 향했습니다. 메르스의 확산과 비가 계속 내리고 있는 관계로 참가자가 적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는데, 스님께서는 “참가자가 적게 와도 괜찮으니 비가 왕창 내려서 가뭄이 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농사가 안되어서 안절부절하는 농민들의 마음을 많이 걱정하셨습니다.nbspnbsp부산으로 가는 길에는 동남아 스님들께 광안대교를 보여주었습니다. 높고 길게 뻗은 다리 위를 생생 달리며 높은 빌딩들이 빼곡이 들어선 부산의 모습을 잠시 엿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광안대교nbsp부산 KBS홀에는 강연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해서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다. 스님께서는 여유 시간을 활용해서 다시 INEB 동남아 스님들과의 대화 시간을 이어나가셨습니다.nbspnbspnbsp부산을 포함한 한국의 가야 지역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된 이야기, 혜초 스님의 인도 방문 이야기, 타고르가 일제 식민지 시대의 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한 이유, 일제 식민지 시대에 용성 스님의 독립운동과 불교 개혁 이야기, 테라바타와 마하야나, 탄트라, 선불교 네 가지가 함께 어우러진 한국불교의 특징 등 많은 이야기들을 1시간 동안 들려주셨습니다. nbspnbspnbsp오늘 부산 KBS홀에서 열리는 즉문즉설 강연은 동래정토회의 자원활동가들이 주관을 맡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부산에 자리하고 있는 여러 정토회와 소속 법당 봉사자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홍보에 힘을 기울였는데, 기발하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홍보를 하며 참여했던 봉사자들과 구경했던 시민들 모두 즐거웠다고 합니다. 봉사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강연회에 와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괴로움을 덜고 행복해지기를 기원하며 밤낮없이 번화가, 유원지, 주택가 등 여러 곳에서 포스트와 현수막을 붙이고 전단지를 돌린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또 이른 아침부터 동래정토회 불교대와 경전반 재학생들이 중심이 된 100여명의 봉사자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확인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고 합니다. 강연회 시작 시각은 오후 7시 30분이지만, 오후 5시부터 강연장 주변으로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의 확산과 비까지 오는 궂은 날씨로 강연회 참가자 수가 적을까봐 걱정을 했지만, 걱정과는 달리 입장하는 시민들의 수가 적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밝은 얼굴로 시민들을 맞이하는 봉사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또 행사를 주관한 동래정토회 측에서는 행사장에 출입하는 모든 시민들을 줄을 세워서 입장하기 전 손 세척제를 사용하도록 하고, 호흡기 질환이나 기침 환자는 출입을 통제하고, 2주 안에 서울 대형병원에 입원했거나 병문안을 다녀온 분들은 출입을 삼가하도록 안내하는 등 메르스 대책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참석한 시민들로 하여금 안심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7시부터는 해운대 소리 합창단과 ‘소리지’ 오카리나 봉사 공연단의 아름다운 선율을 담은 공연이 있었습니다. 강연장 3층까지 2000석이 모두 채워지고 7시30분이 되자 스님께서 무대에 오르시고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nbsp▲ 부산 KBS홀nbsp스님께서 먼저 환한 얼굴로 “안녕하세요. 오늘 같은 날 겁도 없이 이렇게 많이 오셨어요?”하고 인사하셔서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어 스님께서는 “오늘 행사를 부산 시민을 위해 정토회 회원들이 많이 준비했는데 낙담을 많이 했어요. 오늘 용기를 내서 오신 만큼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하고 말씀하시며 ‘즉문즉설’은 어떤 강연인가를 설명해주신 후 청중들의 질문을 받으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모두 11명의 질문자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스물한살 된 딸이 입시를 준비하다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발작을 일으켜 조울증 치료를 받는 중인데 어린 아이처럼 행동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라는 분, 25년째 생활 능력도 없고 집안일도 하지 않는 천하태평 남편과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답함을 호소하는 분, 3년 전 스님께 질문을 해 편안함을 얻었다고 하며 앞으로 직장생활을 고민하는 조현병을 앓고 있는 대학생, 태어나면서부터 팔자가 사나운데 지금까지 외롭고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가려서 사랑하는지 궁금해 하는 기독교인, 직장에서 상사들의 짜증 때문에 직장에 가기 힘들다는 30대 여성분, 8개월 전 남편과 사별해서 49재를 지냈는데 주위 사람들이 남편이 꿈에 나타난다고 해서 다시 천도재를 지내야 할지 고민인 분, 일에만 집중하고 사람에게는 관심없는 자신을 바꾸고 싶어하는 분,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는 친정아버지를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작년 여름에 막내 아들을 하늘 나라로 보내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어머니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시어머니와 시동생, 시누이를 데려와서 같이 살고 싶어하는 남편 때문에 고민인 여성 분의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문답 과정도 무척 재미있었지만 문답 끝에 환하게 웃는 질문자의 모습이 훈훈한 감동을 주었습니다.nbspnbsp“저는 시댁을 좋게 생각할 수 있는 기도를 하고 싶어요. 시부모님이 저한테 거는 기대감이 높아요. 저는 아이가 넷이 있어요. 시어머니한테는 딸이 있는데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집에 그대로 있어요. 이분은 나이가 37살인데 정신 연령은 7살이예요. 시어머니는 자기가 죽고 나면 자기 딸의 보호자가 필요한데 그 일을 저희 부부에게 넘기려고 하세요.”nbspnbspnbsp“시어머니가 몇 살이예요?”nbspnbsp“이제 환갑 지나셨어요.”nbsp“한국인 여성의 평균 수명으로 계산하면 시어머니가 앞으로 몇 년 더 사실까요?”nbsp“한 20년 더 사시겠죠. 너무 많이 남은 것 같아요.”nbsp“죽은 뒤에 딸을 맡긴다고 했으니까 앞으로 20년 동안은 안 맡길 것 아니예요?nbsp그러니 20년 뒤의 일을 지금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nbsp“그런데 시어머니는 저희가 허락만 하면 언제든지 같이 사실려는 마음을 자꾸 내비치시거든요.”nbsp“그러면 같이 안 살면 되지요.” nbspnbsp“그런데 신랑은 부모님이 원하니까 그렇게 해주고 싶어 해요.”nbsp“그건 안된다고 얘기하면 되지요.”nbsp“안된다고 얘기하니까 제가 너무 미안한 거예요.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의 부모이고, 좋아하는 사람의 여동생인데요.”nbsp“그래도 안된다고 얘기하면 돼요. 남편은 자기 부모와 자기 여동생을 데리고 살고 싶어 하겠지만 그것은 남편의 요구죠. 내가 어떻게 남편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있어요? 만약에 남편이 밖에 나가서 첩을 세 명이나 두고 싶은 요구가 있다고 하면 그런 것도 자기가 들어줄 거예요?”nbsp“그렇게 하면 안되지요.”nbsp“그 얘기나 이 얘기나 무슨 차이가 있어요?” nbsp“그런데 신랑의 남동생도 있어요. 신랑의 남동생은 한달 전에 이혼을 했어요. 저희 집에 자꾸 들어올려고 합니다.”nbsp“이제 남 얘기 그만 하고요. 안된다고 얘기하면 된다니까요. ‘내가 너하고 결혼했지 동생하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너 엄마하고 결혼한 것도 아니다. 너가 가서 엄마를 돌보든지, 너가 가서 너 동생을 돌보든지 하는 건 좋다. 그러나 나는 안된다’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nbsp“이미 그렇게 얘기는 했어요. 그런데 얘기하고 나니까 너무 미안한 거예요.”nbsp“미안해할 필요 없어요.”nbsp“미안해 하지 않아도 될까요?”nbspnbsp“네,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요.”nbsp“그런데 저는 미안한데요.”nbsp“미안하면 데려와서 같이 살면 돼요.” nbspnbspnbsp“길 가는 사람도 데려와서 같이 사는데, 시동생 시누이 시어머니를 데려와서 같이 못 살 이유가 없지요. 자기가 원하면 데려와서 같이 살면 돼요. 그런데 자기가 원하지 않으면 자기가 데려와서 살아야 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거절해도 괜찮아요.”nbsp“저한테 자꾸 요구하는 느낌을 받으니까 남편한테 거리를 두게 되어서요.”nbsp“남편한테는 잘해 주세요. 남편의 요구는 요구인 것이고, ‘여보, 그거는 안돼요’ 얘기하고 다른 건 또 잘해주세요. 또 그 얘기 하면 ‘여보, 그거는 안돼요’ 하고 또 다른 건 잘해주면 됩니다.”nbspnbsp“아하, 그렇네요.” nbspnbspnbsp“이제 그 방법을 알았어요?”nbspnbsp“네, 저는 그 말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nbsp“괜찮아요. 백번 말해도 ‘여보, 그건 안돼요’ 말하고 다른 건 잘해주세요. 남편을 미워하지 말고요. ‘내가 백번 말했는데도 또 말해요?’ 이러면 안돼요. 같이 살고 싶은 건 남편의 의견이고, 안된다는 건 내 의견이니까요. 죄송하다고 말할 필요 없어요. 이것은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어떤 얘기를 해도 ‘여보, 그건 안돼요. 나는 우리 가정의 행복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nbsp“시부모님이 자꾸 불편함을 표시하면 어떡하죠?”nbsp“불편함을 표시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예요? 불평을 좀 들으면 되지요. 그럼 불평 좀 안 들으려고 시어머니와 같이 살다가 서로 원수 되는 게 낫겠어요? 아니면 짜증내는 소리만 좀 듣고 말래요? 질문자가 저한테 묻고자 하는 심리는 시어머니도 짜증 안내고, 남편도 싫어하지 않고, 시어머니 안 모시고도 살 수 있는, 이런 길이 없느냐 하는 거죠? 그런 길은 없어요.” nbspnbspnbsp“남편과 대화를 하면 늘 허전하고 외롭습니다. 그럴 땐 어떡하죠?”nbsp“우울한 마음으로 애기를 키우는 게 애기한테 나쁠까요? 즐겁게 애기 키우는 게 애기한테 좋을까요? 엄마가 이 남자와 사느냐, 저 남자와 사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핵심은 애기가 볼 때 엄마가 행복한 것이 중요해요. 엄마가 행복하게 살면 아빠가 없어도 괜찮아요. 아빠가 죽었다고 울고 불고 하면 아빠가 죽어서 애기가 나쁜 것이 아니라 엄마가 울고 불고 하기 때문에 애기가 나빠집니다. 아빠가 죽고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해도 엄마가 웃으면서 살면, 또 혼자 살아도 웃으면서 살면 애기는 건강하게 잘 자랍니다. 지금 질문자의 문제는 본인이 우울하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그런 요구를 자꾸 하니까 질문자가 지금 허전한 겁니다. 남편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못하니까요.nbspnbsp그러니 질문자는 입장을 분명히 하세요. 우리 가정을 지키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지만, 남편은 또 자기 형제를 돌봐야 할 책임이 있겠지요. 그러나 두 가지를 섞을 필요가 없어요. 남편이 그런 것은 남편의 일이고, 나는 내 자식을 돌보는 것이 내 일이니까 남편이 돈 번 것 중에 나눠줄 수 있으면 돈을 좀 포기하면 돼요. 자기 번 돈을 자기 엄마한테 주는 것은 내가 상관할 필요가 없잖아요. 자기 동생한테 주는 돈도 내가 상관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렇게 간섭하지 않으면 괜찮아요. 그러나 ‘같이 사는 것은 안됩니다, 돈을 주는 것은 알아서 하세요.’ 이렇게 해야 합니다. 길 가는 사람한테도 보시하고 절에도 보시하는데 자기 가족한테 보시 좀 하면 어때요?nbspnbspnbsp이렇게 삶의 가닥이 분명하면 아무 문제가 안돼요. 시어머니가 좀 싫어해도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하고요. ‘너는 같이 사는 게 싫니?’ 물으면 ‘저는 시어머니와 같이 사는 것 보다는 우리 남편과 같이 사는 것이 훨씬 좋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됩니다. ‘남편은 엄마 모시고 사는 게 좋겠지만 저는 둘이 사는 게 더 좋아요’ nbsp이렇게 얘기하세요.”nbsp“시어머니 눈이 아주 부리부리 하거든요.”nbspnbsp“부리부리 하면 어때요? 부리부리 하면 지 눈 부리부리 하지 나하고 무슨 상관이예요? nbspnbspnbsp여자로 태어난 것이 큰 죄가 아니에요. 자기 중심을 딱 잡고 살면 돼요.”nbspnbsp“감사합니다.”nbspnbsp질문자가 마지막에 당당한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하자 청중들이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질문자의 밝아진 표정을 보니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nbspnbsp특히 오늘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분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우울증 환자들의 질문이 거듭되자 잠시 분위기가 무거워지기도 했는데 스님께서는 마지막에 정리말씀을 해주시며 늘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볼 줄 알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이렇게 강조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매일 아침 눈뜨면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하고 감사히 생각하며 살면 행복해져요. 이 세상에 태어난 어떤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어도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nbsp시원하고 유쾌한 스님의 답변에 청중들은 강연 내내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객석의 청중들은 2시간 30분을 고뇌로부터 벗어나게끔 도와주신 스님께 큰 박수로 환호해 주었습니다. 로비에서는 스님의 책 사인회와 더불어 자원봉사자들과의 단체사진 촬영이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nbsp사진 촬영 후 동래 정토회 봉사자들은 2015년 상반기 희망세상 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을 무사히 끝내신 스님께 케익과 함께 꽃다발 증정을 하며 감사를 표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무대 뒤 대기실로 자리를 옮겨 수고가 많았던 팀장급 자원봉사자들과 짧은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행사를 주관한 동래정토회의 운영 현황과 애로사항을 경청한 후 몇가지 조언을 해주셨고, 또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강연을 무사히 치러낸 봉사자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우리는 몸의 병을 치료하는 데는 온갖 검진을 하고 많은 관심을 갖는데, 정신적인 병을 치료하는 데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관심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서 우리가 하는 이런 일들은 보이지 않게 사회 공헌을 많이 하는 겁니다.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요. 공덕이 되니까 지치지 말고 계속해 나갑시다. 읍면동까지 이런 수행하는 모임이 늘어나면 사회 변화도 가져올 수 있을 거예요.”nbspnbsp봉사자들은 스님의 격려를 듣고 더욱더 기운이 나는 듯 했습니다. 다함께 ‘동래정토회,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한 후 자리를 마무리하였습니다.nbspnbspnbsp행사가 끝나고 INEB 동남아 스님들은 곧바로 숙소로 이동했고, 스님께서는 해운대 정토법당으로 이동하신 후 오늘 일정을 마치셨습니다. 내일은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운문사를 방문하고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6.7 INEB 주왕산 산행 및 대구정토회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오전에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주왕산 산행을 함께 한 후 오후에는 대구정토회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셨습니다.nbspnbsp▲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 새벽 예불.nbspnbsp새벽4시30분,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문경 정토수련원의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 스님께서는 기도 후 발우공양에 참석하셨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발우공양 후에는 문경 공동체 상주 대중들을 위해 수행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알아차림’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수행을 하는데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 ‘알아차림’입니다. 자기 상태를 자기가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늘 자기 상태를 자기가 알아차리지 못해요. 무슨 일이 생기면 ‘너 때문에’ 이렇게 늘 상황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로부터 일어난 것인 줄 모릅니다. 매일 아침 정진할 때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 라고 되어 있지만 공염불처럼 외우기만 합니다. 자기 상태를 자기가 알아차려야 합니다. 고치는 것은 나중 일이고 먼저 자기 점검을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고치는 걸 너무 서두르면 안돼요.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나서 그냥 놔두어도 되는 일은 놔두고, 고쳐야 할 것은 어떻게 고칠지 연구해서 꾸준히 해야 합니다. 꾸준히 해야 고쳐지지 금방 고치려고 하면 잘 안고쳐 집니다.nbspnbsp밖에 있을 때는 화가 나면 ‘너 때문에 그랬다’ 이렇게 했는데, 이제는 자기에게로 돌이키기로 했으니까 ‘아, 내가 화가 나구나’, ‘아, 내가 짜증이 많구나’, ‘아, 내가 약간 욕심이 있구나’ 이렇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밖에서는 중간 중간에 간식 먹고 커피 마시고 자유롭게 하다 보니까 내가 음식에 껄떡거리는 줄 몰랐는데 여기 와서 딱 세끼만 먹어보니까 ‘내가 좀 먹는 것에 껄떡거리는구나’. ‘나에게 이런 업식이 있구나’ 이렇게 점검을 해야 합니다.nbspnbsp만약에 혼자 있어 보니까 자꾸 외로움을 느낀다면 ‘아, 내가 외로움이 있구나’ 알아차리고 혼자있는 가운데서 외로움을 극복해야 외로움의 까르마가 없어집니다. 누구를 만나서 외로움을 극복하면 그것은 업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담배를 피워서 담배 피우고 싶은 욕구가 잠시 사라진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계속 반복하게 됩니다.nbspnbsp자신이 무슨 까르마로 인해서 이런 욕구가 있는지를 늘 살펴야 됩니다. 도반들과 나누기를 해보니까 ‘나에게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으려고 하는구나’ 알았다면, 거기에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두렵거나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거나 뭔가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늘 자신의 상태를 살펴야 합니다.nbspnbspnbsp알아차려서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꾸준히 지켜봐야 합니다. ‘외로워하고 있구나’ 아는 것에 그치면 안되고 그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 지켜봐야 합니다.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려고 하구나, 이럴 땐 자꾸 맛있는 걸 먹으려고 하는구나, 어떻게 이 욕구가 그것을 채우려고 움직이는지 그 진로를 알아야 합니다. 뱀의 성질을 잘 알아야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고 뱀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자신의 까르마를 늘 점검하면서 내가 어떤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성질을 갖고 있어도 크게 문제가 안되는 것은 그냥 놓아두어도 괜찮고, 이것은 나에게 큰 불이익이 주겠다 싶은 것은 극복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것이 수행의 과제입니다.nbspnbsp정확하게 문제가 무엇인지 요점을 파악해야 하고, 두 번째는 고칠려면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업식이 되었다는 것은 오랜 습관이 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식에서 통제가 안되고 무의식에서 일어납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끌려가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끌려가는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첫째,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하고, 둘째, 주시를 해서 놓치면 다시 돌아오고, 놓치면 다시 돌아오는 연습을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꾸준히 해야 합니다.nbspnbsp그래서 여기 살든, 밖에 나가서 살든, 이렇게 야무지게 정진을 해야 해요. 그냥 대충 하면서 가을 바람의 낙옆처럼 이러저리 바람에 따라 휘날리다가 바람이 멈추면 어느 개골창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그런 막연한 인생을 살지 말고, 오늘 죽어도 좋고 내일 죽어도 좋은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루 더 산다고 의미가 있는 게 아니에요. 각오하고 결심하라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상태에서 주시해서 자기가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 불안해도 괜찮고 이 불안함을 안 고쳐도 괜찮아요. 이 불안함을 알아차리고 불안함이 일어날 때 남을 탓하지 않는, 외로움이 일어날 때 이 외로움을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을 구하지 않는, 그래서 자기 내부로부터 그것이 가라앉도록 정진을 해나가면 과거 경험이 어떻든 어떤 까르마를 가졌든 여러분들 모두 편안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진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오늘 발우공양에는 상주 대중들 뿐만 아니라 지난 4박5일 동안 깨달음의장 바라지를 하러 오신 분들도 많았는데 모두들 우연찮게 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어 무척 기뻐하였습니다.nbspnbsp발우공양 후 스님께서는 곧바로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주왕산으로 향했습니다. 작년에는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계룡산에 올라갔는데 산이 험해서 모두들 힘들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스님께서는 “이번에는 그렇게 험하지 않고 완만하게 산책하듯이 걸을 수 있는 주왕산을 선택했다”고 하시면서 동남아 스님들을 안내했습니다.nbspnbsp주왕산 입구에는 ‘대전사’ 라는 절이 있는데, 대전사 보광전 앞마당에 모여서 간단히 스님의 설명을 들은 후 산행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 주왕산 입구에 위치한 대전사nbsp“여기는 1300년 전 신라 시대 때 절이 지어졌어요. 산은 높지 않지만 기암괴석이 있고 전설이 많이 있는 곳이예요. 그래서 여기는 산이 유명하지 절이 유명한 곳은 아니예요. 절은 작은 절이예요. 이곳은 보광전이라고 해서 비로자나불을 모신 곳이예요. 저곳은 관음전이라고 해서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이예요.”nbsp대전사 기와지붕 위로 웅장한 기암괴석이 보였습니다. 동남아 스님들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며 무척 좋아했습니다.nbspnbspnbsp대전사에서 60분 정도를 걸으니 약 2.2km 정도 지났다는 푯말이 나오고 용추폭포가 나타났습니다. 산행길 옆에는 계곡이 있었지만 가뭄이 심해서 그런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가뭄이 이 정도면 농사도 힘들겠다’고 하시면서 농민들에 대한 걱정을 내비치셨습니다.nbspnbspnbsp용추폭포까지 가는 길에는 떡 시루처럼 생긴 바위도 보이고, 학이 앉았다고 하는 바위인 ‘학수대’도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학이 앉는 바위라고 불려지는 ‘학수대’nbsp용추폭포에 도착했지만 가뭄이라 물이 졸졸졸 흘러 내려오고 있어서 스님께서는 풍경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동남아 스님들은 한국의 연두빛 무성한 산림과 맑은 계곡물을 보며 무척이나 좋아들 하셨습니다.nbspnbspnbsp용추폭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1시간만 더 올라가면 폭포가 더 있다고 하자 동남아 스님들 모두 발길 돌리기를 아쉬워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12시가 넘으면 동남아 스님들이 식사를 하지 못하게 되니까 그것을 배려하려고 하셨는데, 동남아 스님들은 “태국 시간으로 아직 12시가 되려면 멀었다”고 하면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nbspnbsp스님들의 적극적인 의지에 힘입어 다시 1시간을 더 걸어 제2폭포인 용연 폭포까지 올라갔습니다. 폭포의 절경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는 아직 힘이 더 남아 있는 분들은 주왕굴을 더 둘러 보았고, 그렇지 못한 분은 그냥 내려가기로 했는데, 대부분 주왕굴까지 함께 동행했습니다.nbspnbsp▲ 주왕굴nbsp주왕굴에서 조금 내려오니 주왕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었습니다. 주왕암의 주지 스님이 스님 일행을 알아보고는 차를 접대하겠다고 해서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내려왔습니다.nbspnbsp▲ 주왕암nbsp스님께서는 산행을 하면서 ‘주왕산’이라고 이름 붙여진 전설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nbspnbsp“당나라 시기에 반란을 일으키고 주나라를 세운 왕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실패를 해서 쫓겨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신라에서는 이 왕이 여기 숨어 있는지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당나라는 이 사실을 알고, 신라에 군대를 요청해서 주왕을 잡아달라고 합니다. 결국 주왕은 여기서 신라의 군대에 잡히게 됩니다. 이런 전설이 있는 산이기 때문에 ‘주왕산’이라고 불려지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맑은 공기, 맑은 물, 푸르른 자연을 만끽하며 산길을 걸으니 몸과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입니다. 산을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많이 걸어서 그런지 각종 나물과 고추장이 버무려진 비빔밥과 된장찌개가 꿀맛이였습니다. 동남아 스님들도 비빔밥을 무척 생소해 하면서 맛있게 드셨습니다. 점심 식사는 이곳 대전사에 다니고 있지만 스님의 법문을 통해 삶이 많이 행복해졌다는 어느 보살님이 보시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마침 같은 식당 골목에서 장사를 하고 계신 커피집 사장님도 “스님의 유튜브 법문을 즐겨 듣는 펜입니다” 라며 찾아와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동남아 스님들께 자신의 가게에서 뽑은 커피를 한잔씩 나눠주었습니다. nbspnbsp동남아 스님들은 식사와 커피를 보시해준 두 분을 불러 앉히고, 다함께 합장하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기도와 축언을 해주었습니다. 훈훈한 풍경이였습니다.nbsp스님께서도 두 분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생수업’ 책과 ‘지금 여기 깨어있기’ 책에 직접 사인을 해서 선물했습니다. nbspnbspnbsp▲ 점심 식사와 커피를 보시해 준 두 분께 기도를 해주고 있는 INEB 동남아 스님들nbsp점심 식사 후 오후에는 대구정토회로 향했습니다. 4시 무렵 대구정토회에 도착한 INEB 동남아 스님 일행은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5시부터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참관했습니다.nbspnbsp▲ 대구정토회 즉문즉설 강연nbsp대구정토회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는 어제 갑자기 일정이 잡히고 오늘이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600여명이 참석하여 법당 안은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법당 밖 복도와 계단에도 빼곡이 사람들이 앉아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오늘 갑자기 법회가 열리게 된 까닭을 설명해 주시면서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nbsp“오늘 주말인데 어디 갈 데 없어서 여기 왔어요? 이런 걸 번개팅이라고 해요. 원래 어제와 오늘 청년 700여명이 청춘캠프를 하려다가 메르스 때문에 취소가 되어 시간이 남았어요. 저는 시간이 남으면 가만히 못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전국에 메르스 없는 곳이 대구이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갑자기 법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법당 안에 대중들이 빼곡이 앉으니 열기가 후끈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법문도 듣고 사우나도 하고 좋네요.” 라고 웃으시면서 혹시나 더워서 불편한 대중들의 마음을 또한번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nbspnbsp질문할 사람은 손을 들어라고 하니 총 12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자도 여러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모두 허락되지 않아 스님께서는 10명의 질문에 대해서만 답변을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그동안 아내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흥청망청 살았는데 지금부터라도 아내에게 진 빚을 갚으로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불안 장애 및 우울증이 발병했는데 시골 생활이 병을 더 악화시키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병이 호전될 수 있는지 묻는 분, 오빠가 사고로 다쳐서 도와줘야 하는데 도와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아서 걱정인 분, 딸이 직장을 그만두고 방황하는데 엄마로서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묻는 분, 동생이 대학을 가면 같이 살기로 약속했는데 직장 때문에 그러지 못해서 고민인 분, 윤회는 없다고 하는데 생과 사가 없는 도리가 궁금하다는 분, 참선을 해보니 상기가 되고 머리가 아파서 별 진전이 없는데 깨달음은 무엇인지 묻는 분, 아이들과 남편에게 자꾸 화를 내게 되는데 이 성질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방법을 묻는 분, 계약직 강사를 하고 있어서 미래가 불안한데 중국어와 심리 상담을 새로 공부해도 괜찮을지 고민인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재미있고 유익한 즉문즉설이 펼쳐졌습니다. nbspnbsp그 중에서 공부 하지 않는 고3 아이 때문에 걱정인 아버지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큰 아이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작은 아이는 지금 고3인데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원이나 과외를 나름대로 시켜봤는데 전혀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에게 어떻게 해야될까요?”nbspnbspnbsp“자식이 내 말을 잘 듣게 하는 방법이 뭐냐, 이 얘기예요? 그런 방법은 저도 몰라요. 자기는 학교 다닐 때 공부 잘 했어요?”nbspnbsp“잘하지 못 했습니다.” nbspnbsp“공부 못한 자기도 장가 가서 애 낳고 잘 살고 있지요?”nbspnbsp“네, 잘 살고 있습니다.”nbspnbsp“그러니 우리 아이도 공부 못해도 잘 살 겁니다. 나도 잘 사니까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nbsp“그래도 부모 입장에서...”nbsp“공부를 잘해야 된다는 것에 집착하면 우리 아이가 못난 아이가 되잖아요. 지금 부모가 자기 아이를 못난 아이라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부모도 자기 아이를 못난 아이라고 생각하는데 세상 사람 그 누가 이 아이를 잘난 아이라고 생각해 주겠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 못난 아이라고 생각해도 그래도 부모만큼은 ‘너는 괜찮다’ 이렇게 격려해 주어야 하지요.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어떤지 몰라서 그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우리 딸은 쓸모가 하나도 없어요’ 라고 한다면 당신 같으면 친구를 맺겠어요? 안 맺겠지요. 그런데 어떤 부모를 만나보면 ‘딸이 공부도 안 하고 말도 안 듣고...’ 이렇게 저한테 실컷 욕을 해 놓고는 이런 부탁을 합니다. ‘스님, 어디 좋은 남자 있으면 소개시켜 주세요.’ nbspnbspnbsp엄마도 욕하는 딸을 어느 남자가 데려 갑니까? 누구 집 아들을 죽이려고 그래요? 그런 것처럼 자꾸 ‘아이가 공부를 잘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 아이가 못난 아이가 됩니다. 부모도 내 아이를 못난 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아이는 미래의 전망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공부 못한다고 다 야단을 쳐도 아빠라면 ‘공부가 전부가 아니더라. 학교 다닐 때 공부 1등하던 아이들이 일찍 죽은 경우가 많더라’ 이렇게 얘기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빠도 공부를 못했지만 이렇게 결혼해서 잘 살잖니. 그러니 너도 잘 살거야’ 이렇게 얘기해줘야 합니다.nbspnbsp아이가 스스로 ‘아빠, 나는 공부를 못해서 문제야’ 하더라도 아빠는 ‘괜찮아, 아빠도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어. 그래도 이렇게 잘 살잖아’ 얘기해줘야 해요. 그리고 ‘장관이나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결혼해서 밥도 먹고 사는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 너를 낳은 것만 해도 큰 소득이지. 아빠가 볼 때는 괜찮아. 너가 너 자신의 수준을 너무 높여 생각해서 그런 거야.’ 이렇게 격려를 해주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아빠가 자꾸 아이를 보고 ‘못난이’ 라고 말하면 아이가 진짜 못난이가 됩니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벌써 아빠가 자기를 못난이라고 증명을 해버렸잖아요. 그러니 아이가 어떻게 기를 펴고 살 수 있겠어요?nbspnbsp아이는 괜찮아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질문자를 닮아서 공부를 못하는 거예요.” nbspnbspnbsp“네, 그렇네요.” nbsp“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 즉 나라 돈을 떼먹었거나 부정 축재를 했거나 정치적으로 오류를 범했거나 한 경우를 살펴보면 대부분 공부 잘하던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들이 공부를 못하면 ‘적어도 이 세상에 못된 짓은 안하겠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공부를 잘 하면 이 세상에 좋은 일도 하지만 못된 짓도 크게 합니다. 공부를 못 하면 적어도 못된 짓을 크게 할 가능성은 없어요. 그것만 해도 큰 복입니다. 좋게 생각하면 좋은 일이 되는 겁니다.nbspnbsp등수를 매기는 건 공부만 매길 수 있어요? 조선시대에 과거 시험을 잘 보려면 수학을 잘해야 해요? 영어를 잘 해야 해요? 그런 것은 다 필요없고 한문으로 시만 잘 쓰면 되었죠. 또 조선 시대에는 노래 잘 하면 광대 밖에 할 수가 없었죠. 그런데 요즘은 노래 잘 하고 춤 잘 추는 것을 높게 평가를 하잖아요. 또 공을 잘 던지고 때리는 것도 요즘은 높이 평가를 합니다. 농사 짓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재능 있는 사람과 재능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 여기 있는 어떤 사람도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다만 그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만 말할 수 있어요.nbspnbsp서울대 나와서 행정고시도 합격하고, 사법고시도 합격하고, 외무고시도 합격해서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도 심리 불안으로 아무 것도 못하고 집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게 나아요? 공부 좀 못 해도 건강하게 농사 짓고 사는 게 나아요?“nbsp“후자가 낫습니다.”nbspnbsp“큰 아이가 잘 될지 작은 아이가 잘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어요. 공부 잘 하는 사람 치고 효자가 없어요. 공부 못 하는 아들이 어쩌면 질문자가 아플 때 집에 와서 병수발도 하고, 이사 갈 때 짐도 옮겨 줍니다. 공부 잘해서 높은 직위에 올라가면 이사갈 때 짐 하나도 들어주지 못하고, 아파도 병수발을 못 합니다. 그래서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공부 잘 하는 아이한테는 돈만 자꾸 들어 갑니다. nbspnbspnbsp공부 못하는 아이는 고등학교 다니다가 그만둬버리면 돈 들 일도 없어지잖아요. 그리고 직장을 빨리 구하면 돈도 벌잖아요. 그것을 격려해주면 자립을 빨리 하는데, 계속 야단을 치면 아이가 불만이 생겨서 맨날 컴퓨터 게임만 하고 술 먹고 골치덩어리가 됩니다. 자포자기 하는 것으로 아버지한테 복수를 합니다. 자꾸 야단을 치면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오히려 없어져 버리고 ‘니가 나를 욕해? 좋다. 나도 너한테 복수하겠다’ 이렇게 나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이 뭔지 알아요? 자학하는 겁니다. 자기를 형편없이 만들어 버리는 거죠. 그러면 부모는 속이 타겠지요. 부모가 잔소리를 많이 하면 대부분 자식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야단을 치면 안됩니다. 격려해주고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nbspnbsp공부를 안 하면 질문자가 일할 때 데리고 다니면서 못이라도 하나 칠 수 있게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공부 잘 하는 아이는 부모가 자식의 노예생활을 해야 돼요. 뭐 때문에 아이 낳아서 노예 생활을 합니까? 아들은 잘 되면 다른 여자 쫓아가 버리는데, 그래서 그 젊은 여자 좋은 일 시킬 뿐이지 부모한테 무슨 혜택이 돼요? nbspnbspnbsp그러니 아이를 낳으면 세 살 때까지는 끔찍히 사랑해주고, 네 살이 되면 그때부터 심부름을 시켜야 됩니다. 설거지도 시키고 청소도 시켜야 합니다. 어리니까 제대로 못하고 사고도 내고 그러겠지요. 그래도 괜찮아요. 연습을 해야 하니까요. 옛날에는 아이 키우기가 힘들었지 키워놓으면 다 일꾼이 되고 효자 노릇을 했거든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너무 아이를 과잉보호 하니까 나이 들어서도 자식이 무거운 짐이 됩니다. 부모가 잘못 키워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아이가 공부 잘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nbspnbsp이것을 자업자득이라고 합니다. 남편을 잘못 만난 것과 부모를 잘못 만난 것은 100 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자식이 잘못된 것은 100 내 잘못입니다. 누가 아이를 낳았어요? 내가 낳았지요. 아이가 나를 낳아 달라고 그랬어요? 자기가 좋아서 헐떡 거리다가 낳았잖아요. 누가 키웠어요? 내가 키웠잖아요. 그런 아이가 내 말을 안 들으면 누구를 닮아서 그런 거예요? 나를 닮아서 그런 겁니다.nbspnbsp자식을 좋게 생각해야 자기 자신도 긍정이 됩니다. 항상 ‘우리 아이 참 좋다’ 이러면 부모인 나도 좋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 아이 문제다’ 하면 부모인 나도 문제 많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 아이도 버리고 자신도 버리는 그런 행동을 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혹시라도 ‘아이가 공부 못해서 어떡해요?’ 물으면 ‘그래도 학교는 잘 다녀요’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꼴지라도 하려면 그래도 학교는 다녀야 꼴지를 하지요. 학교도 안 다니면 꼴지도 할 수 없잖아요. 학교도 안 다니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nbspnbsp아이가 공부에 취미가 없으면 그냥 놔두세요. 그 아이는 또 다른 재능이 있습니다. 다시 물어볼게요.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거예요?”nbsp“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nbspnbspnbsp질문자가 환하게 웃습니다. 청중들도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즉문즉설의 힘이란 이런 걸까요? 아이가 문제가 많다고 답답해 하던 아버지는 스님의 답변을 듣고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환하게 웃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이어진 다음 질문에서 생과 사가 없는 도리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답변하면서도 위의 질문자의 사례를 다시 언급해 주셨습니다.nbspnbsp“방금 전 남자 분이 아이가 공부 못해서 괴롭다고 했죠. 아이는 본래 아무 문제가 없는데 아이가 공부 잘 하기를 원하면 아이는 문제아가 됩니다. 그러나 ‘공부 잘해서 뭐하노?’, ‘공부 잘한다고 꼭 좋은 게 아니더라’ 이렇게 생각해버리면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본래 문제가 없는데 내가 문제로 삼으면 문제가 있는 것이 되고, 내가 문제로 안 삼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됩니다. 문제가 있고 없음은 아이한테 있어요? 나한테 있어요? 나한테 있습니다. 얼음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나의 인식에 달려 있듯이 말이죠. 이것이 일체유심조의 뜻입니다. 깨끗하다 더럽다 하는 모양도 마음이 짓는 것이지 그 물건에 깨끗하고 더러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nbspnbsp공부 안 하는 아이에서 시작된 괴로움은 ‘생사해탈’과 ‘불구부정’, ‘일체유심조’의 진리에 다다릅니다. 생활 속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고민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연결이 되자 ‘아하 그렇구나’ 하는 탄성이 터집니다. 법회에 참석한 대중들 중에서는 불교대학과 경전반에서 불교 교리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워 하는 모습이였습니다.nbspnbspnbsp또 스님께서는 무엇이 제대로 불법을 공부하는 것인지 일러주셨습니다.nbspnbsp“공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지식적인 문제입니다. 참선을 어떻게 해요? 이것은 기술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공부 안 하는 아들 때문에 괴로워 죽겠어요’ 이런 질문은 문답을 하다가 괴로움이 없어져 버려요. 이것은 괴로움이 사라지는 ‘도’에 바로 들어가는 질문입니다. 지식이나 기술을 익힌다고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nbsp이처럼 개인들의 다양한 고민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연결되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개인들의 고민 속에서 다시 풀어내어 졌습니다. 10명의 고민에 모두 답한 후 2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법회는 끝이 났습니다. 질문을 하려고 손을 들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한 분들이 몇 명 있어서 많이 서운해하는 눈치였지만 스님께서는 다음 기회가 있음을 안내해 주시면서 법회를 마치셨습니다.nbspnbsp대중들은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주신 스님께 뜨거운 박수 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갑자기 열린 법회였지만 뜻밖에 덤으로 주어진 스님과의 시간에 대중들은 어느 때보다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법회를 마치고 나서는 스님께서 INEB 동남아 스님들을 대중들에게 직접 소개해 주셨습니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인도, 스리랑카 5개국에서 9명의 비구 스님과 4명의 여성 수행자, 3명의 재가 수행자가 함께해 이번 일주일 동안 정토회 활동을 돌아보고 있다고 소개하자 대중들은 큰 박수로 동남아 스님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 대구정토회 회원들에게게 환영의 박수를 받고 있는 INEB 동남아 스님들nbsp그리고 대중들이 동남아 스님들이 뒷자리에 앉은 것을 의아해 하자, 스님께서는 “원래 동남아 스님들을 앞자리로 모셔야 하는데 통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뒷자리에 모셨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동화사에 계시면서 찬불가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상정 스님이 찾아와 JTS 네팔 긴급구호 사업에 후원금을 전달하고 가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감사한 마음으로 후원금을 전달 받았습니다.nbspnbsp▲ 네팔 긴급구호 후원금을 전해주신 상정 스님nbsp저녁 8시 무렵 대구정토회를 출발하여 곧바로 경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INEB 동남아 스님들께 야경으로 유명한 경주의 안압지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왜 안압지를 보여주려고 하는지 그 이유도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 경주 안압지nbsp“이곳은 경주입니다. 경주는 천년 동안 유지되었던 신라의 수도입니다. BC 57년부터 AD 935년까지 유지된 수도입니다. 불교 국가였기 때문에 불교 유적이 많습니다. 여기서 건너편이 왕궁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왕궁의 정원입니다. 이곳을 밤에 방문한 이유는 유적을 어떻게 보존하고, 어떻게 조명 시설을 갖추면 밤에도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의 나라에도 이런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조명을 잘 하면 낮보다도 밤에 사람들이 더 많이 옵니다. 한번 둘러보겠습니다.”nbspnbsp가야금과 대금 소리가 고즈넉히 울려퍼지는 가운데 조용히 안압지를 산책 했습니다. 날씩 조금 쌀쌀하긴 했지만, 동남아 스님들은 연못과 정자, 나무들을 비추는 은은한 조명을 보며 무척 좋아했습니다.nbspnbspnbsp안압지를 나오는 길에는 스님을 알아보는 몇몇 시민 분들이 다가와 “스님 법문 덕분에 많이 행복해졌어요. 감사드립니다” 라고 하면서 스님과 사진을 찍고 싶다며 여러번 요청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반갑게 사진을 함께 찍어 주었습니다.nbspnbsp▲ SNS로 스님의 법문을 듣고 삶이 행복해졌다며 스님과 사진을 찍고 있는 시민들nbsp안압지를 둘러보고 나서는 동남아 스님들께 잘 주무시고 내일 뵙겠다고 인사를 한 후 두북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동남아 스님들도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잠을 청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INEB 동남아 스님들과 불국사, 현대중공업, 통도사를 둘러본 후 저녁에는 부산KBS홀에서 상반기에 마지막으로 열리는 희망세상만들기 대강연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6.4 종교인 모임 및 INEB 동남아 승가방문단 환영 인사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가졌습니다. 저녁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INEB 승가방문단과 저녁 예불을 함께 하고 인사 시간을 가진 후 통일의병 모임과 간담회를 했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4시30분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난 스님은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정진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또 어제밤에 도착한 동남아시아 승가방문단 중 일부 스님들도 새벽 예불에 나와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동남아시아에서 온 스님들은 발우공양에도 함께 참석했습니다. 발우공양 작법과 수저 사용이 익숙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은 금새 옆사람을 따라하며 무사히 발우공양을 마쳤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발우 공양 후 스님께서는 공동체 대중들이 어떤 마음으로 동남아에서 온 스님들을 모셔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nbspnbsp“오늘부터 동남아시아에서 테라바타 스님들이 오셔서 일주일 간 정토회 견학을 하십니다. 또 스텝으로 자원활동 하시는 분이 다섯 분이 오셨는데요. 감사드립니다. 대중들도 생활이 좀 불편하더라도 이분들이 잘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이분들이 잘 몰라서 물으시면 친절하게 안내해 드려야 하겠지만, 묻지 않는데 이래라 저래라 일체 가르치려고 하지 않기 바랍니다. 안내하는 역할로 지정된 사람만 성의껏 안내해 드리면 됩니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 시각으로만 보고 ‘옳다’ ‘그르다’ 하는 생각을 가지시면 안됩니다. 편안하게 지내다가 가실 수 있게 해주세요.”nbsp오늘 동남아시아에서 온 스님들은 한국에서는 보통 ‘소승불교’라고 부르는데, 자신들은 ‘테라바타’라고 부릅니다. 또 테라바타에는 비구니 제도가 없는데 대신 ‘난’이라고 부르는 여성 수행자들만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정토회 승가방문단에는 이런 여성 수행자 분들도 여섯분이나 참석할 예정입니다. 여성 수해자들은 수녀님들처럼 가사를 수하지 못하고 흰색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nbspnbsp▲ 동남아에서 오신 여성 수행자 분들nbsp이어서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한 후 아침7시부터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 참석하셨습니다.nbspnbsp오늘 종교인 모임은 메르스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우려를 나누며 여기에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정부를 개탄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것입니다.nbsp▲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nbsp또 6.15 및 8.15 행사 준비 과정에서 남북·남남갈등으로 인해 분단 70주년이라는 막중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별다른 진전이 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종교인들의 교류 행사도 좋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통일의 여건과 시급성에 대해서 국민들을 향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씀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특히 사드 배치를 둘러싼 미국 정부의 행태나 한미일 삼각동맹을 구축하려는 시도에도 별다른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 이제는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nbspnbsp2시간의 토론 끝에 이제 종교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민적 우려를 표명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국민적 호소를 담아 선언문을 만들자고 하면서 모임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목사님, 신부님, 교령님이 이렇게 만장일치로 마음을 모으니 한편으로는 참 든든했지만, 종교인들도 나서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분단 70년을 맞는 대한민국이 통일의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몇 분의 손님이 정토회관을 찾아오셔서 미팅을 가지셨고, 점심 시간에는 인도에 남은 마지막 반공포로이며 재인도 한인회장을 지냈고, 가야에 불교를 전래한 허황옥 공주의 기념비와 작은 공원을 인도의 아유디아에 세운 바 있는 현동화 회장님이 찾아와 스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가셨습니다.nbspnbsp▲ 재인도 한인회장을 지낸 현동화 회장님nbsp스님께서 미팅을 연이어 하시는 동안 평화재단에서는 동남아에서 온 승가방문단 위해 정성껏 점심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식사 후 평화재단 노옥재 사무총장은 스님들께 평화재단이 하는 일과 자원봉사자들 한명 한명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동남아 승가방문단은 불교의 수행과 평화재단이 하는 사회활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해 무척 궁금해하면서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평화재단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는 INEB 동남아 승가방문단nbsp이어서 오후2시에는 국회의원 은수미님이 지난주에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깨달음의장을 마치고 오늘 스님께 인사를 하러 찾아왔습니다. 깨달음의장을 다녀온 소감을 들으신 후 스님께서는 세상에 잘 쓰이는 사람이 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오후4시에는 평화재단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출신들이 찾아와 스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습니다.nbspnbsp저녁7시에는 정토회관으로 이동해 동남아 승가방문단과 함께 저녁 예불을 함께 올렸습니다. 동남아 승가방문단은 평화재단, JTS, 좋은벗들, 에코붓다, 문화사업부, 정토회를 차례대로 둘러본 후 예불을 하기 위해 정토회관 1층 법당으로 모두 모였습니다.nbspnbsp오늘은 동남아 스님들을 위해 한국식으로 예불을 올리지 않고, 남방 불교식으로 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에 함께 참석한 대중들은 동남아 스님들이 하는 게송을 경청하며 ‘띠 사라나’와 ‘빤짜 실라’ 는 함께 따라해 보기도 했습니다.nbspnbsp▲ 남방 불교식으로 저녁 예불을 하고 있는 INEB 동남아 승가방문단nbsp예불 후 곧바로 스님께서 일어나셔서 “한국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또 저희 정토회를 방문해 주셔서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남아 스님들 한분 한분을 정토회 대중들에게 소개해 주셨습니다. 비구 스님 10명, 비구니 스님 6명 총 16명이 오셨고, 나라별로는 태국에서 11명, 라오스에서 2명, 인도에서 1명, 스리랑카에서 1명, 미얀마에서 1명이 오셨습니다.nbspnbsp정토회 대중들은 모두 일어나서 동남아 승가방문단 스님들께 삼배의 예를 올렸습니다.nbspnbsp▲ 동남아에서 온 스님들께 삼배의 예를 올리는 정토회 대중들nbsp이어서 스님께서는 동남아 승가방문단을 위해 이번 일주일 동안의 방문 스케쥴에 대해 개괄적으로 안내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여러분께 크게 두 가지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첫째는 한국의 전통불교입니다. 내일 아침에 한국 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종단인 조계종 본부에 가서 행정 체계 등을 먼저 보겠습니다. 그리고 한국 불교는 대승불교 가운데에서도 선불교입니다. 그래서 제일 큰 참선 센터가 있는 봉암사를 방문합니다. 그곳에서는 100명의 스님들이 참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 관광지인 불국사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전통 불교 중에서 많은 대중들에게 포교를 하고 있고,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통도사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비구니 스님들 200여명이 수행하고 있는 운문사를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기암괴석이 아주 아름다운 주왕산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전통 불교와 관련해서 여러분들이 보셔야 할 것들입니다.nbspnbspnbsp둘째는 여러분들의 방문 목적인 정토회를 둘러보겠습니다. 정토회는 전통 불교이면서 또 도심 속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일으키는 새로운 불교입니다. 대중들이 신자가 아닌 수행자로서 생활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실천 활동도 함께 합니다. 그래서 오늘과 내일은 저희들이 이곳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수행하는 센터가 문경에 있는데 거기서 내일 하룻밤을 자겠습니다. 그리고 청년들 700여명이 참가하는 청춘캠프에 참가해서 청년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보겠습니다. 그리고 6월8일에는 부산KBS 홀에서 2500여명 정도 되는 대중들과 담마 스피치를 하는 것을 보겠습니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법당에서 법회하는 모습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불교방송, 불교TV, 불교대학인 동국대 등을 둘러보겠습니다.nbsp현재 두 가지 일정이 서로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생활은 저희들이 사는 방식 그대로 함께 하기 때문에 스님으로서의 예우가 좀 부족하더라도 미리 양해를 좀 구하겠습니다. 저희들이 사는 것을 그대로 체험하도록 했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조금 양해해 주세요.nbspnbsp테라바타와 마하야나는 불교 문화적 전통은 서로 다르지만 담마는 똑같습니다. 문화가 다른 것들은 서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담마는 함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과 다른 모양으로 저희들이 수행을 해나가고 있으니까 여러분들께서 한번 참고해 보시면 좋겠습니다.nbspnbsp저희들의 과제는 가능한 전통을 지키면서도 어떻게 현대 사회와 조화를 이룰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이렇게 번다한 자본주의 도시 문명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습니다. 문만 열고 나가면 다 술집입니다. 그들이 괴로워서 우리 쪽으로 올 것인지, 우리가 그것이 좋아서 그들 쪽으로 갈 것인지 지금 심각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nbspnbspnbsp그래서 번다한 곳을 피하지 않고 번다한 가운데에서 우리가 어떻게 담마를 지킬 것인가 하는 이것이 우리들의 큰 과제입니다.”nbsp술집을 향하던 사람들이 정토회로 올 것인지, 정토회 사람들이 술집으로 가게 될 것인지 경쟁을 하고 있다는 말씀에 동남아 스님들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이 동남아 승가방문단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해주었고, 스님께서는 다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 모임 구성원들과 간담회를 하셨습니다.nbspnbsp‘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은 평화재단 평화리더십아카데미를 수료한 사회인들이 중심이 되어 한반도 통일을 위해 작은 기여라도 해보고자 2013년에 창립된 단체입니다. 오늘은 그동안의 통일의병 활동을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스님의 조언을 듣기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스님께서는 지금 왜 통일이 중요한지, 어떤 통일 운동을 해야 하는지 먼저 설명해 주신 후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고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 모임nbsp참석자들은 스님께 그동안 활동하면서 어려웠던 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했고, 스님께서는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밝고 신나게 통일 운동을 할 수 있는지 관점을 명확히 잡아주셨습니다. 또 통일의 필요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통일의 희망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지 자세히 말해 주었습니다.nbspnbsp“가장 중요한 통일운동은 첫째, 남한에 통일지향적 정부가 들어서서 남한 정부가 북한을 구슬려서 포용하고, 중국과 미국을 얼르고, 일본을 무마해서 어떻게든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저래서 안된다, 중국과 미국이 저래서 안된다, 일본이 저러니까 어렵다, 이런 얘기는 무책임한 얘기입니다. 북한 뿐만 아니라 각국이 다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을 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가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것을 감안해서 우리에게도 이익이 되고 그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어떤 안을 만들어서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초점을 둬야 합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은 애도 낳아서 키워 봤고, 회사도 다녀봤고, 변호사도 해봤잖아요. 그렇게 해봤으면 이제 남은 인생은 어릴 적 가졌던 꿈을 실현하는 데에 한번 몰두해 볼 필요가 있진 않느냐 하는 겁니다. 옛날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들도 똘똘 뭉치니까 세상이 바뀌었잖아요. 그런데 나름대로 사회에서 성공한 여러분들이 무엇을 못하겠어요?nbspnbsp그러니까 통일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많이 확산해 나가야 합니다. 통일 한국이 되면 어떤 희망이 있다, 그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 남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야 통일에 유리한지를 알려 나가야 합니다. 남한 사회를 좋게 만드는 것이 통일과 별개가 아니고 남한 사회를 좋게 만드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고, 통일을 하는 것이 남한 사회를 좋게 만드는 길입니다. 이 두 가지가 일치하도록 정책이 입안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통일이 되어야겠구나’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nbspnbsp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평화적으로 통일을 하려면 상대편의 동의를 얻어야 하잖아요. 상대편의 동의를 얻으려면 상대가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 안심을 시켜줘야 하고, 상대에게도 덕이 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것이 포용 정책입니다. 상대가 걱정하는 것은 신분 보장입니다. 그래서 첫째, 신분 보장을 해주고, 둘째 통일하면 먹고 살기 좋아진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미끼를 던져야 합니다. 말로는 안 믿으니까 ‘한번 봐라. 남한에서 제일 못 사는 사람들도 너희들 중산층보다 잘 낫지 않느냐?’ 이렇게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한이 잘한다고 하지만 ‘통일해서 저 밑바닥으로 가서 생활하면 지금보다 더 힘들 것’이라고 느끼면 통일이 어렵다는 것입니다.nbspnbsp그리고 우리 사회를 좀 더 민주적으로, 지방 분권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너희를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평안도는 평안도 대로 자치하도록 하고, 함경도는 함경도 대로 너희들끼리 자치를 하면 된다, 우리 남한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이렇게 보여주여야 합니다. 이것은 곧 민주주의의 발전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남한 사회를 어떻게 발전시키느냐가 곧 통일의 지름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남한 국민들의 요구가 곧 통일의 길이고, 통일을 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이 더욱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 이런 정책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통일이 나와 관련없는 것이 아니고, 통일이 곧 나에게 이익이다’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nbspnbsp미국에 대해서도 친미, 반미 이렇게 가면 안됩니다. ‘긴밀한 한미 동맹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한미 동맹은 종속적 한미 동맹이였고, 앞으로는 자주적 한미 동맹으로 바꿔줘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미 하는 사람들도 자주적 동맹을 하자니까 괜찮아 할 것이고, 반미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한미 동맹을 견고히 하자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렇게 이 두 가지를 함께 묶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목표가 불분명하니까 양쪽에서 욕을 합니다.nbspnbspnbsp또 남한이 중심이 되어서 통일하자고 하는 것이니까 남한의 보수 세력이 우려할 필요가 없고, 북한을 포용하자 하니까 북한 사람들이 우려할 필요가 없잖아요. 이렇게 입장이 분명하면 양쪽을 다 아우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초기에는 북한을 반대해야 하는데 왜 포용하자고 그러느냐, 남한이 중심이 되자고 하는 것을 보니 결국 흡수통일하자는 것이냐,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우리는 너희가 원하는 통일을 하겠다’ 이렇게 하기 때문에 북한이 반대할 이유가 없고, 또 ‘남한이 중심이 되는 통일을 하겠다’ 이렇게 하기 때문에 남한이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남한이 중심이되 북한을 포용하자는 것입니다. 포용의 핵심이 신분 보장과 이익을 주는 것 두 가지입니다. 이렇게 되면 남한과 북한, 진보와 보수가 통일을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누구와도 열어놓고 대화해 볼 수 있습니다.”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답변을 모두 마치고 나니 밤10시가 넘었습니다. 통일의병들은 2시간 30분 동안 열정적으로 답변해 주신 스님께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다른 도시로 통일의병 모임을 확대해 나가고 싶은데 일손이 너무 없어서 힘들다는 분, 통일의병이 되는 자격 기준이 너무 엄격하고 형식주의가 강한 것 같은데 기준을 낮춰줄 수 있는지 묻는 분, 스님께서 강조한 통일 이야기를 A4 2장으로 요약해서 모든 국민들이 읽기 쉽도록 하자고 제안하시는 분 등 다양한 의견과 질문이 쏟아졌고, 스님께서는 각각의 질문에 대해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하반기에는 통일의병 모임에서 요청하면 가장 우선적으로 통일 강연 일정들을 잡아 놓겠다” 고 하시면서 통일의병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게 기운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nbspnbsp통일의병들과의 간담회를 마친 후에는 밤10시가 넘어서 정토회관으로 들어오셨고, 늦은밤까지 업무를 보시다가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회의를 계속 하신 후 오후에는 미얀마에서 온 시따구 사야도 큰스님과 미팅을 가지실 예정입니다. 또 저녁에는 동남아 승가방문단 일행과 함께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