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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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4.21. 청송 주왕산 산행, 울산 KBS강연

nbsp nbsp 아침 4시 30분, 스님께서는 해외정토회 활동가들과 함께 새벽예불을 올리며 평소보다 30분 일찍 하루 일정을 시작하셨습니다. 원래는 5시가 기도시간이었으나, 오늘 일정을 조금 빨리 하기 위해 공양시간을 앞당겼는데, 도량석 도는 분이 착각을 해서 전체 시간을 앞당기는 바람에 모두들 잠이 깨버려서 기도시간도 앞당기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약간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nbsp 아침공양 후 7시, 해외활동가들과 함께 주왕산 산행과 불국사 탐방을 위해 두북수련원을 출발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아마도 해외에 계신 분들이 주왕산을 가보지 못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보신 분들이 몇 분 있었습니다. nbsp nbsp 경북 청송군에 위치한 주왕산은 주봉이 720m에 달하는 국립공원으로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기암괴석과 석벽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수려한 계곡이 빚어내는 절경으로 유명하며, 당나라 말기 봉기를 했다가 실패한 주왕과 마장군의 전설이 곳곳에 배어있는 유서 깊은 산입니다. nbsp nbsp 첫 방문지인 주왕산 대전사에 도착하자 입구에서 스님을 알아본 사찰 매표소 직원이 입장료 전액을 자신의 돈으로 보시해 주셨습니다. 대웅전 마당에 들어선 스님께서는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이고 왼쪽 무릎은 세운 우슬착지의 자세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셨고, 참가자들도 다들 우슬착지로 부처님께 삼배올렸습니다. nbsp nbsp 앞으로 넘어질 듯 기울어 치솟은 바위와 떡을 찌는 시루와 같이 생긴 시루봉 등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산길에는 진달래와 연달래, 수달래 등이 가는 봄을 장식하고 있었고 스님께서는 꽃들의 모양과 색깔의 차이를 자세히 설명하시며 오랜만에 방문한 해외 활동가들에게 조국의 산천에 봄꽃이 무르익었을 때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nbsp nbsp nbsp 속세와 천상을 가른다는 용추협곡의 용추폭포를 지나니 오히려 평평한 산길이 이어졌습니다. 응달엔 아직도 진달래가 만발해 있었습니다. nbsp nbsp 절연폭포를 들러 주왕산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규모의 용연폭포에서 단체촬영을 하고 진달래꽃 흐드러진 산길을 밟으며 주왕굴로 향하였습니다. nbsp nbsp nbsp 주왕굴은 ‘당나라의 주왕이 진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반역을 일으키다 신라까지 ?겨와 은거하던 곳으로, 동굴 입구에 떨어지는 낙수를 마시다 당의 요청을 받은 신라왕의 명령으로 주왕을 추적해온 마장군에게 발각되어 최후를 맞았다’는 전설이 있습니다.nbsp nbsp 주왕산을 내려와서 1700년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주산지를 방문하였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유명한 이곳은 저수지 가운데 능수버들과 왕버들이 물에 잠긴 채 자라 신비한 풍광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또, 저수지 주변에는 진달래들이 허트러지게 피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습니다. nbsp 주왕산에서 예정된 시간보다 많이 지체되어 2시 40분경에야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nbsp 점심식사 후 불국사로 이동하는 버스안에서는 올해 9월 뉴욕에서 개최될 명상수련과 행자대회와 관련된 내용들을 말씀하시며 참가자격요건이나 장소,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는지등에 대해 함께 의논하셨습니다. nbsp nbsp 불국사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불국사 방문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역사유적에 대한 교육적 차원이라고 강조하시며 주왕산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바람에 불국사 안내는 1시간여만에 핵심적인 내용만을 짚어가셨습니다. nbsp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에 신도인 김대성의 발의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와 정토삼부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및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형상화하여 통불교적 구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nbsp nbsp 불국사 경내에 높게 솟은 석축과 양 옆의 대웅전, 극락전으로 통하는 계단에서 오른쪽은 청운교와 백운교를 올라가 자하문을 지나면 부처의 세계로 들어서고 왼쪽 연꽃이 음각된 연화교와 칠보교를 통해 안양문을 들어서면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로 가게 됩니다. nbsp 건물을 받치는 석축의 제일 아래는 자연 상태의 큰 돌과 작은 돌로 쌓아올렸고 위로는 작은 돌을 빼곡하게 쌓았는데 그 사이에 반듯한 기둥을 간격을 두고 박아놓았습니다. 이는 아래는 중생의 세계, 위는 부처의 세계로 이 두 세계를 보디사타바를 상징하는 기둥이 연결해주는 것입니다. 결국 정토세계는 모두가 완변할 필요가 없이, 각자의 자신의 능력을 모아서 하나의 부처님으로 만들어가 가는 모자이크 붓다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nbsp nbsp 현재 보수중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다라니경이 발견된 석가탑과 나무로 ?은 듯 정교하고 화려한 다보탑을 지나, 금강경의 설함이 없음을 의미하는 무설전,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 등을 빠르게 훑으며 설명하시고 강연이 열리는 울산으로 향하셨습니다. nbsp 울산 강연장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스님께서 들려주시는 농사 수련법, 정토농원의 구상 등으로 함께 즐거운 상상을 하며 울산 정토회 김용주 대표님께서 마련해주신 저녁을 먹고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김용주 대표님은 ‘해외활동가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데,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지도법사님께 감사드리고 참석해주신 해외활동가들을 환영한다’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요즘 저녁을 드시지 않기 때문에 김용주 대표님과 바로 강연장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nbsp 희망강연이 있는 울산 KBS홀은 6시부터 손님이 입장하여 객석이 조금씩 조용히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40대 여자분들도 많았지만, 연세 많으신 분들이나 젊은 남녀들도 참석해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했습니다. 교복 입은 여학생이 혼자 찾아와 앞자리에 앉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오늘 울산 강연은 언양, 화봉, 방어법당을 산하에 두고 있는 울산정토회에 계신 분들 약 90여명의 봉사자들이 준비해서 약 1650여명의 관중이 참석했습니다. 참여하신 분들은 사전영상을 보면서 ‘장미’ 노래를 불렀는데 신기하게도 서로 모르는 관객들이 박수를 치면서 하나가 되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곧이어 스님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들어오셨고 큰 환호와 박수가 터졌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은 함께 불렀던 노래처럼 꽃 이야기로 대중들의 긴장을 풀어주며 분위기를 편안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편안하게 말하되 의문이 풀릴 때까지 질문하라는 당부말씀을 하시고 질문을 받기 시작하셨습니다. nbsp 질문하신 분은 모두 여덟 분입니다. 아이가 있는 이혼남과 교제하는 중인데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할지 모르겠다는 스물일곱 살의 아가씨, 스님의 말씀으로 인생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지만 과로할 정도로 수행에 집착하게 되어 AS 받고 싶다고 하신 분,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물한 살의 딸이 생각나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는 분, 기독교 이외의 종교들은 다 사이비라고 하신 목사님 말씀 때문에 혼란스러운 분, 자상하고 진실한 애인의 외적인 조건을 탐탁해하지 않는 어머니와 함께 오신 따님, 조울증 때문에 세 살 아이를 대하는 것이 많이 걱정되시는 분, 3년 전부터 혼자 불교공부를 하다가 마음을 보게 되어 좋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공부할지를 물으시는 분, 부처님 같은 존재였던 어머님을 4년 전에 잃고 잠재되어 있던 희귀난치병을 앓게 된 분들입니다. nbsp nbsp 이 중에서 여섯 번째 질문자에게 하신 말씀을 옮겨보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재발된 조울증으로 세살 아이에게 화를 참지 못해서, 저도 죄책감으로 너무 힘들고, 아이도 너무 힘들어합니다.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에게 결혼 전 제 병에 대해 말하지 못했습니다. 원래도 사이가 안 좋았는데, 지금 가정도 위태롭네요. 그리고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조울증이 정신병이라는 사실 때문에 남의 시선이 신경쓰여 매우 부끄럽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조울증이 왜 부끄러워요? 그렇다면 눈이 하나 없는 사람은 바깥에 갈 때 얼마나 부끄럽겠어요? 팔이 하나 없어 의수한 사람은 상대방이 악수하면서 ‘어, 의수네’ 그러겠지요. 그러나 몸이 불편한 거는 불편할 뿐이지 열등한 게 아닙니다. 눈치 볼 필요도 없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는 조울증이다. 성격이 오락가락하니까 이해해 달라.’ 그러면 되지요. 그런데 아이한테 성질내는 건 문제입니다. 아이 감정은 엄마와 같이 파동이 일어나서 성장하면 자기보다 더 심한 조울증이 될 수 있어요. 육체적인 유전인자를 물려줘서 장애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엄마가 자식한테 조울증을 물려준다는 것은 부모의 문제입니다. nbsp 옛날에는 병인지 몰랐기 때문에 성질이 더럽다고 했는데, 현대에는 치료하면 되는 거예요. 팔이 부러지면 처음에는 치료를 해야 되고, 두번째는 불편을 덜기 위해 의수를 해야 되는 것처럼 마음의 병에도 치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상인처럼 목표를 세우고 완치에 조급하면 조울증이 더 심해집니다. 다른 사람이 100이라면 난 환자기 때문에 80밖에 안 된다고 하면 목표를 80에 두면 돼요. nbsp 얼마 전에 중국에서 아파트가 무너졌는데 3일 만에 아이를 품에 안은 죽은 엄마를 발견했는데 아이가 살았어요. 그럴 정도로 아이를 보호하는 마음을 강하게 가지면 한 개인으로는 병을 극복 못하지만 엄마는 극복할 수 있어요. nbsp nbsp 또 내가 유전인자를 잘못 가져서 아이가 장애를 가진 것처럼, 내가 병자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전이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걸 감수하고 어려운 삶을 사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선택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내 장애를 극복해서 아이에게 전이 안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안된다고 하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고, 나도 앓았듯이 아이도 그걸 감수해야 합니다. 둘 중에 선택해서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nbsp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정신작용은 이런 성질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을 웃기려면 어떤 말을 해야 저 사람이 웃을까? 이런 것은 조금 알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거의 예측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결과를 내려면 이렇게 하면 된다는 것이 나옵니다. nbsp nbsp 여러분 개인이 ‘난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살고, 이렇게 가고자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여러분은 자율권이 없습니다. 이미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어떻게 반응할지가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nbsp 자율적인 것 같지만 실제 크게 보면 자율적이지 않습니다. 거의 정해진 패턴, 까르마, 즉 업식대로 움직입니다. 내가 어떤 걸 보고 좋아한다, 싫어한다고 느끼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좋고 싫은 건 없습니다. 이 사람의 프로그램에서 이 업식에는 좋게 반응하게 되어 있고, 저 업식에는 싫게 반응하게 되어 있어 아무런 자율권이 없습니다. 거의 노예수준이예요. nbsp nbsp 네비게이션은 주소를 입력하면 길을 안내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다른 길을 갈 때 금방 수용합니까? 아니면 처음과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 합니까? 네비게이션의 위대함은 화를 안 내고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수행자로서는 최고예요. 그런데 또 하나 문제가 뭡니까. 고집이 황소고집이예요. 절대로 꺾여지는 법 없이 상황이 변하든, 안 변하든 계속 똑같은 주장을 합니다. 여러분들의 정신구조도 이와 같습니다. 의식이 형성되고 길들여지면 그렇게만 보이고 다른 건 안보입니다. nbsp 그래서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 되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다거나, 내가 너하고 만나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이렇게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중생은 육도윤회하는 겁니다. 계속 쳇바퀴 돌듯이 돌고 돌게 되어 있습니다. nbsp nbsp 그런데, 상대가 이 말을 하면 내가 화를 내도록 되어 있구나라고 알면 다음엔 똑같은 행동을 해도 화를 안 낼 수 있어요. 어떤 상황에 처하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반응하도록 되어있으니 ‘아 내가 이렇게 반응하구나’라고 아는 것입니다. 첫째, 자각하고 둘째, 다음에는 안해야지 하고 각오를 하면 바로 바뀌는게 아니라 1정도 바뀔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래서 인간의 운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1의 뚫고 나갈 수 있는 활로가 있는데, 그 핵심적인 키는 반응의 법칙을 알아차릴 때 거기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는 시초가 됩니다. 알아차리지 못할 경우 지나고 보면 늘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됩니다. 자신을 알아차리면 그때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점점 키워나가면 까르마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이 법칙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부처님입니다.”라며 우리는 까르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내가 까르마로부터 속박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림만으로도 그것을 개선할 여지를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아이와 남편이 병원에 가보라고 할 때 ‘내가 왜?’하는 사람은 치유 불가능합니다. 그런사람 여기도 많아요. 그러나 질문자는 조울증이 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각하고 있어요. 남편한테도 성질냈다가도 내 병 때문이라고 자각하고 있습니다. 되고 안되고 옳고 그르고가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자각하는 것이 치유의 길로 가는 첫 출발입니다. 자각하고 있으면 거기에 휘말리는 것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날 길이 있습니다. 자기가 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이한테 전이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아무리 자기도 모르게 짜증이 올라오더라도 적어도 아이한테는 짜증을 내면 안됩니다. 이것은 엄마로서 할 일이 아닙니다. 열번 해봐도 안 된다면 차라리 다른 곳에 입양을 시키든지 고아원에 맡겨야 합니다. 내가 아이보고 싶은 게 중심이 아니고, 아이가 건강하게 사는 게 엄마의 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병을 고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라도 바꿀래요? 아니면 아이를 고아원에 맡길래요?”라며 질문자가 아무리 짜증이 올라오더라도 아이한테는 절대 짜증을 내면 안된다고 말씀해주시니 질문자가 계속 고민되는 것들을 스님께 물었습니다. nbsp nbsp “스님 지금 치료 중인데, 병원에서는 입원을 하라고 하거든요. 병원에 입원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신랑하고 사이가 많이 안 좋아요. 남편이 다른 사람이 생길까봐 사실은 두려워요.” nbsp “딴 여자 생기면 아기 봐 줄 사람도 생기고 좋네요. 보모 구하려면 돈도 많이 드는데요. 내가 환자면 남편이 건강한 여자 만나서 살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을’로 살아야 됩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서 빨리 고쳐서 나오겠다 이렇게 마음 먹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통제가 안 되니까 치유에 집중하는 게 좋겠어요. 지금 병을 고치는 것보다 이혼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런 걸 걱정하잖아요. 지금 스스로 이혼을 해야지, 왜 이혼을 당했다고 생각해요. 주식을 200원 손해보고 파는 게 좋아요? 500원 손해보고 파는 게 좋아요? 그런 걸 손절매라고 합니다. 덜 손해보고 팔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주식투자에 성공할 수 있어요. 손해 봤다는 이 생각 때문에 못 하는 거에요. 손해를 봐도 덜 손해보는 쪽을 선택하는 게 이익 보는 겁니다. 그런 결정을 못 하기 때문에 늘 인생이 피곤합니다. 아이에게 어떤게 더 큰 손실이 됩니까? 정신적으로 힘든 게 더 손실입니다.”라며 질문자가 두려워하는 질문에도 큰 일 아니라며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가볍게 대응을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갑자기 나온 주식 손절매 이야기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스님의 박식한 상식과 현실적인 비유와 명쾌한 답변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질문자에게 “어때요. 결론을 내렸어요?”라며 질문자가 스님과 대화를 하면서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물으니 질문자는 환하게 웃으며 “네. 감사합니다.”라며 밝아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nbsp “옛날에는 정신질환에 대해서 이해가 굉장히 부족했기 때문에, 네가 정신만 차리면 된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병이 완전히 악화돼서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가 되어야 정신병이다라고 인정을 했어요. 교통사고가 났다거나 팔 부러진 것은 치료를 하는데 놀란 마음을 치료하지는 않아요. 육체적인 상처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도 치료를 해야 합니다. 성추행을 당했을 때 정신적인 충격이 크기 때문에, 평생의 삶을 왜곡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치유를 해야 합니다. 육체의 병에도 가벼운 감기부터, 독감, 중환자가 있듯이 정신적으로도 작은 상처도 있습니다. 이런 상처는 며칠 지나면 자동적으로 치유가 됩니다. 그런데 상처가 다음 행위에 제약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모두 치유해야 됩니다. 육체의 병은 80 정도 밝혀졌지만, 정신병은 아직 10밖에 안 밝혀졌어요. 그러나 밝혀진 범위 안에서라도 도움을 받는 게 좋습니다. nbsp nbsp 그래서 그 병이 우울증, 조울증, 분열증, 불면증이든, 내 병이든, 가족 중에 환자가 있든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숨길 필요 없습니다. 감기처럼 몇달 있으면 괜찮겠다 하는 경우가 있고 치유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몸의 호르몬 이상이 있어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약물치료도 필요합니다. 정신질환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것도 병중에 하나고 그것도 가볍게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조기에 치료하면 되는데 쉬쉬하고 숨기고 만성이 돼서 치료하면 치료하기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육체병은 남한테 피해주는 게 없습니다. 정신병은 가족들한테 피해가 엄청납니다. 우울증이나 이런 경우는 대부분 자살로 생을 망칩니다. 자살하면 가족들한테 주는 충격이 크잖아요. 그래서 치료가 중요합니다. 응급치료는 병원에 가서 하고, 근본치료는 수행이나 상담을 통해 해결하면 좋습니다. 치료의 첫 출발은 내 상태를 자각하는 것입니다.” nbsp 많은 청중들은 질문자들의 질문에 함께 안타까워하면서도, 스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마무리하면서 당부말씀을 하셨습니다. nbsp “스님이 부러워하는 마음이 들도록 살아줘야 여러분들이 잘사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뭘 바꿔줄 능력은 없습니다. 정말 세상에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도 못 바꾸는데, 어떻게 남편 술 먹는 버릇까지 바꿀려고 하세요? 바꿀 수는 없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 행복은 내가 만드는 거예요.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라며 어떠한 경우에라도 행복해야 하며 그 행복은 자신이 만든다는 것을 다시한번 정리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스님의 책 싸인회 시간에는 길게 늘어선 줄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끝나고 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난 후 스님과 간단히 인사를 하는 순간에도 봉사자들은 환호를 하며 스님께 인사를 하였고 스님께서도 봉사자들에게 수고했다며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내일은 해외정토회 활동가들과 경주남산순례가 있습니다. nbsp

2015.04.22. 20,866 읽음 댓글 14개

2015.4.19 경주남산순례, 경주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

nbsp nbsp 오늘은 4.19 혁명 기념일이자 전국 정토불교대학의 경주 남산 순례가 있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새벽예불을 한 후 경주남산순례에 나섰습니다. nbsp 전국의 가을불교대학 학생들은 스님과 함께하는 즐거운 봄나들이를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경주로 왔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비가 많이 내려 걱정스러웠지만 스님께서 ‘비 맞고 농사도 짓는데 비 맞고 노는 게 무슨 문제겠어요.’ 하시던 말씀이 떠올라 든든해졌습니다. nbsp 순례길은 용장골, 삼릉골, 포석골, 부처골, 봉화골로 이루어진 5개 코스로 나누어서 법사님들의 안내를 받으며 산행을 했습니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는데도 도반들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다리도 아프고 땀도 많이 나서 힘들다는 분도 계시고 가볍게 잘 걸으시는 분도 계십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불대생들이 모두 산행을 시작한 후 포석정으로 길을 잡으셨습니다. 막 준비하고 시작하려는데, 보수법사님이 이끄시는 팀들과 만났지만, 스님께서는 조용히 홀로 산으로 오르기 시작하셨습니다. 스님께서 조용히 대중들 곁을 지나가셨지만 모두들 법사님 말씀과 산을 오르는데 집중하느라 스님을 몰라보고 그냥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nbsp 길을 걸으면서 잠시 오렌지를 먹었는데, 그 껍질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숲 속에 던지면 된다고 하니 스님께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오렌지 껍질에 묻은 농약 성분 때문에 산에 사는 동물들에게 해롭다고 하십니다. 환경을 위해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하시는 스님께 또 하나 배웁니다. nbsp 통일암 소나무 숲속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유수스님과 함께 칠불암으로 올랐던 서울·제주팀들이 도착했습니다. 그 팀들은 칠불암을 거쳐 산을 넘어 온 것이 아니라 신선암까지 갔다가 비가 많이 와서 되돌아 왔다고 합니다. nbsp nbsp 비가 약하게 내리자 숲속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비 오는 날 산행을 하고 비 내리는 숲속에서 점심을 먹는 일은 정토회 행사가 아니면 경험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다들 별 다른 의견없이 처음 도착한 팀들이 자리를 깔고 점심공양을 하기 시작하니 그 다음 도착하는 팀들은 묻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도 직접 도시락을 가져오셔서 자리를 깔고 드셨습니다. nbsp nbsp 절반정도가 점심 공양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는 팀들을 기다리며 마이크를 잡으시면서 “품위 있게 생긴 연한 색의 연달래가 지금 산에 화창하게 피고 있다.”고 하시면서 좀 더 짙은 색의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중에 피는데, 연달래는 잎과 꽃이 같이 핀다고 하시면서 어릴때는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꽃이고 연달래는 먹을 수 없는 꽃으로 그 가치를 규정했다고 하면서 간단히 꽃 이야기를 해주시니 불대생들은 모두 ‘아 ’하고 이해하면서 좋아 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남을 즐겁게 하는 것도 보라고 하시면서 노래할 사람 나오라고 하니 여기저기서 소양강처녀, 산토끼, 봄비 등 노래를 부르면서 참가자들은 함께 어울려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특별히 해외 정토회에서 오신 활동가들을 소개 해주셨습니다. 멀리 미국, 호주, 독일, 캐나다 등에서 오신 분들에게 참가자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도 이슬비 동요 가락에 맞추어 개사를 해서 대중들에게 노래를 선사 하셨습니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정토 행자 나란히 걸어갑니다. 진달래꽃, 연달래꽃, 산벚꽃들이 만발한 남산길을 올라갑니다.’ nbsp 마지막 팀이 도착해서 공양을 시작했을 즈음에 먼저 와서 기다리던 대중들은 염불사지로 이동했습니다. 계속 내리는 비속을 우산을 쓰고 스님과 함께 걸으며 설명도 듣고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염불사지에 도착해서 바로 석가모니불을 염불했습니다. nbsp nbsp 내리는 비속에서도 780여명의 대중들은 마음을 모아 석가모니불을 불렀습니다. 스님께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4·19를 맞아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잃으신 민주열사들의 명복을 빌며,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 등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묵념’을 한 후 모든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빌며 해탈주 삼독을 하였습니다. nbsp nbsp 대중들은 마음을 담아 영가들을 위한 극락왕생을 빌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한 순간이었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nbsp 염불사지를 떠나 남산사지 3층 석탑을 둘러본 후 통일전 주차장으로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서라벌 문화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주차장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 스님 뒤를 계속 놓치지 않고 졸졸 따라가는 보살님들은 인기 연예인의 뒤를 쫓아가는 모습이 10대 소녀들 같았고 그 마음이 이해됩니다. 스님을 가까이서 자주 뵙고 불법을 배우고 싶은 마음들일 것입니다. nbsp nbsp 오늘 비가 오기 때문에 스님과 함께하는 즉문즉설은 서라벌 문화회관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서라벌 문화회관은 오늘 저녁 경주지역 희망강연을 위해 이미 빌려져 있었기에 좀 더 이른시간부터 연장해서 대여하기에 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nbsp 불대생들은 다음과 같은 궁금한 점들을 스님께 물었습니다. nbsp nbsp ‘작년에 결혼했는데 자녀를 가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신다는 분, 어릴 적 엄마에게 받은 상처로 눈치를 많이 보고 주눅이 드는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는 분, 경주 남산을 순례지로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하시다는 분, 다른 절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정토회에서 봉사하느라 그 절에 봉사를 못해 죄책감이 드신다는 보살님, 동물은 살생하지 말라고 하면서 식물은 함부로 죽여도 되는지가 궁금하신 분, 새벽에 기도하는 것이 힘든데 저녁에 하면 안되냐고 물으시는 분, 스님은 어디에서 그 많은 에너지가 나오시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까지 모두 일곱 분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nbsp 그 중 한 분의 즉문즉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축지법을 쓰시면서 해외 특강을 하시는 것 같고 인간이 아니신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수행이 잘 안되고 신장이 하나밖에 없어 몸이 피곤한 사람은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나요?”라며 스님의 건강을 걱정하면서도 몸이 허약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몸이 피곤한 사람은 몸에 맞추는 것이 좋아요. 근데 몸이 말을 안듣는 것일까요? 마음이 말을 안듣는 것일까요? 몸이 피곤해서 못 일어날 때, 누가 총으로 죽인다고 하면 벌떡 일어날까요? 못 일어날까요? nbsp 절을 하기 싫은 마음 때문에 ‘다리가 아파 이러다 병신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분들이 있어요. 죽을 것 같은 그 순간을 넘는 경험을 해봐야 두려움이 사라져요. 스님도 단식을 하면 배가 고프지만 그 순간을 넘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까 두려움이 없지만 여러분들은 경험하지 않아서 두려워하는 거예요. 음식 먹는것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성불하겠어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굶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굶기도 하는데 더 먹고 싶은 마음쯤이야’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108배하는 것이 힘들다 하시는 분은 3000배를 해 보세요. 그러면 ‘108배 쯤이야.’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남산을 오르는 것이 힘들다는 분은 설악산을 3번만 다녀와 봐요. 남산은 동네 산으로 보입니다. 다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nbsp 자기를 극복해 봐야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해외 강연 다니는 일은 농사짓는 일보다 쉬워요. 공항에서 7시간 자는 것이 뭐가 힘들겠어요? 별 일 아니에요. 스님도 특별한 인간이 아니예요.”라며 마음에서 나오는 두려움을 극복해 보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려주셨습니다. nbsp nbsp 질문자는 또, “수행도 해야 하고 봉사도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서 직장생활이 어려운데 직장에서 짤려도 되나요?”라고 물으니 nbsp 스님께서는 “수행도 하고 봉사도 하고 직장에서도 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해 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하기 싫은 마음에 매여 있으니 힘든 것입니다. ”라며 가볍게 해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사물의 이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불교대학 강의를 듣고 또,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나누기도 하고, 봉사를 하면서 수행 잘하라고 당부하시면서 명쾌하고 시원한 즉문즉설을 마치셨습니다. nbsp nbsp 오늘 참가한 불대생들은 처음에는 비가 와서 어쩌나하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지만, 비를 맞으면서도 산에서 바라보는 멋진 운무와 아름다운 경치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고, 또, 들뜬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히며 나를 더 잘 볼 수 있는 감사한 하루였다고들 합니다. 하루 종일 가슴 벅찬 법비를 맞으며 ‘정토회는 하기로 한 일은 비가 와도 한다. 그리고 더 감동적이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nbsp 가을 불대생들의 경주남산순례를 모두 마치신 스님께서는 오늘 하루종일 비를 맞으며 젖은 몸을 씻기 위해 목욕탕을 다녀오셨습니다. nbsp 6시가 넘어 다시 강연장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고향이 경주이시다 보니 경주지역에 사는 동문들이 찾아와서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실 때 함께 하셨던 분들이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옛 동문 선후배분들을 만난 스님의 활짝 웃으시며 반가운 모습에서 경주가 고향인 것이 느껴졌습니다. nbsp nbsp 오늘 오후 희망강연에는 비가 오고 흐린 날씨로 준비된 좌석보다는 적은 약320여명 정도의 대중들이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먼저 오늘 오전에 비를 맞으며 약 780여명의 불대생들과 함께 경주남산순례를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지금 경주남산에 꽃들이 만발해 있으니 여러분들도 남산을 다녀오시라면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 nbsp 모두 8분이 질문을 하셨는데, 사십년만에 다시 스님을 뵙게 되어 질문한다는 첫 번째 질문자를 시작으로 너무 외로워서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했지만 여전히 남편과 미련이 남아서 만나지만 계속 싸우게 되어서 괴롭다는 질문, 25년 다니던 직장을 부하직원과 회사간의 갈등조율이 힘든 중간관리자로 스트레스를 받고 상처를 입어 퇴직하셨다는 질문자, 어린시절 엄마와 감정소통이 안되어 여전히 미움과 원망이 있다는 질문자, 엄마와의 갈등을 질문하는 대학생의 질문과 30대 초반 가장의 지금 행복하지만 더 강력한 행복을 찾아 ?아 가는것에 대한 질문, 탐진치 삼독과 어리석음에 대한 질문, 사후에 지옥과 천당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등이었습니다. nbsp nbsp 그 중 25년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신 중간관리자의 질문을 옮겨 보았습니다. nbsp “회사정책을 보완하는 중간자 역할 못하면서 갈등상태에 있었습니다. 스님 법문 들으면서 내가 행복해져야겠다 싶어 쉬면서 공부도 했습니다. 최근에 5개월 쉬고 다시 직장생활 시작했는데 회사 정책에 반하는 것들, 불합리한 것들이 여기서는 안 일어날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회사도 사장님과 직원들의 갈등이 힘들어서 내일부터 안다닌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짜 갈등이 되어서 그런건지 하기 싫어서 그런건지, 내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라며 직장생활을 하며 힘든 것을 내어놓고 스님께 길을 구했습니다. nbsp “현재 질문자는 환자입니다. 환자가 되면 어디를 가도 그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처음 회사는 갈등 때문에 병이 생겼지만, 두 번째 회사에서의 문제는 내 병 때문에 일어난 문제입니다. 직장을 다녀야 된다면 치료를 먼저 해야 합니다. 회사문제는 아닙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치료 하든지, 직장을 그만두고 치료를 하든지 아무튼 병원에 다니면서 상담도 하고 약물치료도 받아야 합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호르몬 분비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으면 호르몬이 이상분비 되기도 합니다. 발병하면 두 개가 다같이 작용합니다. 응급으로 먼저 약물치료하고, 호르몬 이상분비만 있으면 약만 먹어도 되는데 마음의 상처가 있으면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해서 치유하는 방법이 있고, 수행처에 가서 치료하기도 하고, 그림 그려서 치료하는 방법도 있고, 여러 가지 심리치료 방법이 있습니다. 깨장에 가서 고뇌했던 문제를 직시해서 깨뜨리면 되는데 심리 불안상태에서는 어렵습니다. 수련 중간에 도망갈 가능성이 있습니다.”라며 질문자의 문제는 단순히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심리적 상태와 관련이 있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심리치료를 가면 어릴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꾸 생각해보라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nbsp “어릴 때 받은 상처가 근거가 되어 그것이 회사에서의 갈등으로 발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어릴 때 받은 상처를 찾을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사갈등 문제는 제가 군대에 가서 받은 장병의 질문을 예로 살펴보겠습니다. nbsp 군대에서 나무 심을 때, 어떤 상관은 심어라 하는데, 또 다른 상관은 왜 심느냐고 합니다. 그럴 때 ‘이래라, 저래라 나보고 어떻게 해라는 말이냐.’ 하게 되면 그것은 자기가 두 상사를 고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럴때는 아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으라 하면 심고, 심지마라하면 안 심고 이러면 됩니다. 그런 구조적인 모순에 끼여서 고민할 필요가 없고 머리 아플 일도 없습니다. 절을 하면서 ‘내가 아무 능력도 없는데 세상을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다보니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참회기도를 자꾸 하면 자기 치유가 됩니다. 일단 불안증세가 심하면 약물치료부터 먼저 받아야 합니다”라며 우선 질문자가 먼저 치료를 받아서 안정이 되도록 말씀해 주시니 질문자는 nbsp “네 감사합니다.”라며 스님의 말씀을 새겼습니다. nbsp nbsp 다음은 7번째로 질문하신 30대 초반의 어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젊은 가장의 질문을 옮겨봅니다. “최근에 ‘행복을 찾기 위해 로또 사야 되는거 아닌가’하는 마음과 ‘내가 로또에 당첨되면 복이 다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주말에 집사람이 일을 하는데 주말에 애를 보니까 기쁨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좋은 아버지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좋은 아버지 되고 싶습니다” nbsp “인간은 모두 요행을 바랍니다. 욕망의 성격은 시간이 지나 살펴보면 중독증상이 있습니다. 마약 1그램 맞을 때 쾌감이 100이라면, 맞을수록 점점 쾌감은 떨어집니다. 그래서 투여량을 점점 늘리게 되고 결국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우리 욕망도 여기까지만 되면 바랄게 없다하지만 욕망도 마약과 성격이 같습니다. 기쁨의 효과가 갈수록 감소하게 되고 그래서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욕망을 따라가면 끝이 없습니다. nbsp nbsp 그래서 욕망은 억압하지만 그러면 긴장과 스트레스가 따르게 됩니다. 부처님은 두 길의 모순을 알차리고 욕망을 따라가지도 않고 욕망을 억압도 않고 다만 욕망을 욕망인 줄 알아차리기만 하는 중도의 길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nbsp 질문자도 이런 욕망을 따라가면 안됩니다. 욕망이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따라가지도 말고, 나쁘다고 억압하지도 말고 다만 알아차리기만 하여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유로워집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을 때의 만족감을 행복으로 삼는데 그렇게 되면 고락이 윤회하게 됩니다. 윤회는 고락이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개가 되고, 돼지가 되는 것이 윤회가 아닙니다. 욕구 충족을 행복으로 삼으면 고락이 되풀이 됩니다. 그 윤회의 고리를 끊는 것이 해탈입니다. 현실 삶속의 잔잔한 일상생활에 만족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nbsp nbsp 두 번째, 아이는 엄마의 영향을 받고 자라니까 엄마 심리 상태가 안정이 되어야 됩니다. 뭘 먹이고 입히는 것이 아이한테 중요하지 않고, 편안한 상태에서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중요합니다. 엄마가 그런 심리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남편이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나가서 동네 형이랑 사귀면서 사회성을 배우는데 부모가 대신 할 필요 없습니다. 옛날에 형제가 많을 때는 가족관계속에서 사회성을 배웠는데 지금은 오직 어른하고만 관계를 맺으니까 사회성이 부족해서 자기 마음대로 안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습니다. 아버지는 아이와 함께 있어주는 시간을 많이 해 주면 좋습니다. nbsp 아버지는 아이가 친구들하고 싸우고 왔을 때 ‘너 싸웠니? 아이고 그랬니?’하며 안아주면 아이의 심리가 저절로 안정이 됩니다. 부모가 의젓함으로 안정된 심리가 형성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가 더 난리를 피웁니다. 이런 것이 아이를 모르고 하는 잘못된 행동들입니다. 어릴때는 역사 이야기나 단군신화같이 가능하면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얘기를 해주면 좋습니다. 아빠가 그런 역할 해 주면 좋은데, 아빠하면 기억 나는 게 ‘돈 주는 사람이다.’라고만 기억되어 있기 때문에 아빠가 물질이 아닌 아이와 같이 놀아주고 얘기해주는 역할을 하면 됩니다. 기계적으로 프로그램 짜서 하는 것은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nbsp nbsp 이번 강연의 질문자 4분정도는 스님께서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도록 권유를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물질은 풍부하지만 우리의 정신이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nbsp 강연을 마치고 사인회를 한 후 기념촬영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nbsp nbsp 내일은 ‘해외정토회 지도자 수련’이 있습니다.

2015.04.20. 21,096 읽음 댓글 14개

2015.4.17 은평문화예술회관, 성남시청 희망세상만들기 강연

nbsp 법륜스님께서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서울공동체 성원들과 함께 아침 5시에 기도하고 발우공양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대중공사시간에 스님께서는 대중들에게 우리가 불자라고 하면 부처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며 불자들이 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불자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는 사람입니다. 불자들은 계율을 청정히 지켜야 합니다. 계율은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르게 한다는 개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꼭 있어야 할 사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 없으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nbsp 첫째, 없으면 좋을 사람은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 남을 해치는 사람, 남을 괴롭히는 사람입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수행공동체, 나아가 사회에서도 이런 사람은 없는 게 좋고, 이런 사람을 악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nbsp nbsp 둘째,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은 남에게 특별히 이익도 안 주고 손해도 안 끼칩니다. 그리고 남을 즐겁게 하지도 않고 괴롭게 하지도 않으며, 남을 해치지도 않고 살리지도 않습니다. nbsp 셋째, 꼭 있어야 할 사람은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 남을 즐겁게 하는 사람, 남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착한 사람, 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nbsp 수행자는 악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악한 사람은 비난받는 사람입니다. 수행자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수행자는 꼭 있어야 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nbsp 수행자는 수학적으로 말하면, 자연상태를 제로라고 한다면, 적어도 플러스 알파 역할을 해야 합니다. nbsp 간혹 여러분들이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남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다고 비난을 하거나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칭찬하거나 하면 평가가 잘못된 것입니다. nbsp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의무이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은 권장사항에 들어갑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세가지 유형의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수행자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당부하시면서 여기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착한 사람은 자칫 자신의 욕망을 참고, 화를 참기 때문에 심리가 억압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참으면 남에게는 피해를 안 주지만 자기는 괴롭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세상에서는 선한 사람, 착한 사람이 칭찬받지만, 수행자는 자기를 행복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자기를 행복하게 하려면 심리를 억압하거나 불안하면 안됩니다. 감정이 격해지는 것은 모두 우리 까르마, 업식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늘 자기 마음을 살펴서 마음이 긴장되지 않도록, 편안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선정입니다.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잔잔해지도록 조율해가면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선정을 닦아야 수행자입니다.” nbsp 스님께서는 이와 같이 ‘수행자는 첫째 착해야 한다, 둘째 행복해야 한다.’를 말씀하신 후 마지막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가지를 이룰 때 수행자로서의 길이 완성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nbsp nbsp “지혜로운 사람이란 사물의 이치를 관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사물에는 작용하는 원리, 이치가 있습니다. 마음 작용, 생명 현상, 물질의 움직임에도 원리, 이치가 있습니다. 그 이치를 알아서 효율적이고 유용하며 지혜롭게 대응해야 합니다. 마치 바다에 비유한다면, 파도가 심하게 쳐서 파도가 사람을 해친다면 이것은 계율을 어기는 일에 해당됩니다. 적어도 그 파도가 남을 해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해치지는 않지만 파도가 요동을 치면 불안합니다. 그래서 파도가 잔잔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 바닷속에 수많은 보배가 있는데 그 보배를 간직하고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길입니다.” nbsp nbsp 수행자가 나아가야 할 3가지 길을 바다에 비유해서 설명을 해주시니 더욱 명쾌하게 이해되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스님께서는 법당에서 목탁치고 기도하든, 불사를 하거나 사회적인 일을 하든, 일의 종류에 관계없이 이 세 가지를 늘 살펴서 실천할 수 있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수행자는 나는 무엇때문에 불안하다, 나는 무엇때문에 괴롭다, 나는 무엇때문에 일을 이치에 맞게 하지 못했다 등의 변명을 하면 안된다고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수행자는 어떤 일을 해도, 설사 전쟁에 나가더라도 이런 원칙을 가지고 싸움을 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셨습니다. nbsp 특히 최근 49일 동안 직장생활하면서 법당에 상주하는 청년들을 향해서는 편안하게 살지만, 질서있게 살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도 수행의 원칙을 가지고 살면 여기 들어온 이후 몸은 조금 힘들지만 직장 생활이 더 쉬워졌다고 해야 수행이라고 하셨습니다. 덧붙여 힘든 것을 쉽도록 하는 것이 수행이지,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이 수행이 아니다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nbsp 오늘 오전 10시 30분부터는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연장은 어제 내린 비로 한층 푸르러진 나무와 수줍게 피어나는 꽃들이 주위를 감싸 안은 곳이었습니다. 쌀쌀한 기운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따사로운 햇살에 푸른 하늘이 훤히 보이는 포근한 봄날이었습니다. nbsp 어르신들이 2시간 전부터 오셔서 기다리는 것을 보니 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강연장을 꽉 메운 방청객들은 스님께서 무대에 들어서자 열화와 같은 박수로 맞이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날씨가 좋은데 이런 좋은 봄날 놀러 안가고 이 곳에 왔느냐며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전국을 다녀보면 꽃이 피는 순서가 있다고 하시며 활짝 핀 꽃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일을 놀이 삼아 하라고 하셨고, 봄에는 건강에도 좋으니 농사를 지어보라고 하셨습니다. nbsp nbsp 오늘 강연에서는 총 12분이 질문하려 했는데, 제한 된 시간으로 인해 총 9분이 스님께 직접 여쭈어 지혜를 얻었습니다. 질문 내용은 남들도 부러워하고 긍정적인 자세로 살고 있는데 삶이 만족스럽지 않고 행복하지도 않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여자분, 20대 초반에 공무원이 되어 8년을 근무하다 퇴직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즐기면서도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지 묻는 남자 분, 불교 신자들의 활동이 저조해 신자가 자꾸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다고 한 여자분, 24개월인 첫 아이가 있고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인데 작은 아이를 낳으면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는지 묻는 분, 조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는데 하교 후 게임만 하고 점점 폭력적이 되어서 고민이라고 하신 분, 보기만 해도 불편하고 짜증나는 시어머니와 손찌검을 하는 남편과의 갈등에 대해 묻는 분, 사회가 각박하고 사람들에게 인성이 필요한데 인성에 대한 스님의 혜안을 듣고 싶다고 하신 남자 분,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묻는 남자 분, 이혼을 고민 중이라고 하신 분 등의 다양한 질문자가 있었습니다. nbsp nbsp 질문 중 불교 신자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신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스님, 안녕하세요? 우리 동네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스님을 뵙기 전에 조계사에 가서 1인 시위를 할까했습니다. ‘스님 지금 뭐하세요? 불교인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불교신자가 씨가 마르게 생겼습니다.’이런 내용으로 시위를 하고 싶었습니다. 큰 교회에는 어린이집이 있고, 유치원이 있습니다. 우리 동네의 가장 큰 절에는 어린이집이 없습니다. 넓은 터에 쌀도 많고 시간 많은 보살님도 많은데 예쁜 어린이들이 와서 공부하고 놀면 나중에 어른이 돼서 똑똑한 불교 신자가 되지 않을까 하고 어리석은 불교신자로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또 안타까운 것은 천주교신자나 기독교 신자들은 봉사활동으로 2인 1조가 되어 병실마다 찾아다니며‘카톨릭 신자 안계세요?’ ‘교회 다니시는 분 없으세요?’라며 아주 신심을 다해서 기도해주십니다. 우리 불교신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안타까워서 조계종 포교원에 전화했는데 답장이 없습니다. 아는 분이 췌장암에 걸려서 죽음 직전에 개종을 하셨어요. 그 분 말씀이 ‘우리 절에서 어느 한 분이라도 자기에게 전화를 했더라면 개종을 안했을 것입니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스님”라며 스님께 지금의 불교가 사회적 활동이 미비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시며 물었습니다. nbsp “질문하신 분 불교신자죠?” nbsp “네” nbsp “그러면 부처님은 자기 것을 남에게 주라고 했습니까? 남의 것을 빼앗아 오라고 했습니까?” nbsp “내 것 줘야 합니다” nbsp “그래요. 그래서 불교신자를 카톨릭에도 보내고, 교회에도 보내는 겁니다. 그런데 무엇이 불만이예요?” nbsp nbsp “그런데 스님, 그러면 이 나라 사찰은 누가 지킵니까? 미얀마나 스페인에 가보면 신앙심이 없이는 어마어마한 성당이나 절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신앙심이 밑바탕에 깔려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불교도 그렇습니다” nbsp “부처님의 가르침이 절을 크게 세우고, 탑을 크게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그것은 불교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중생들의 욕심으로 교회를 크게 세우고 절을 크게 세우는 세속적인 일입니다.” nbsp “저는 신도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nbsp “신도는 안 줄어듭니다. 통계로는 늘었습니다. 그 동안 줄어든 것은 맞지만 계속 줄다가 바닥을 쳐서 갈 사람 다 가고 이제 더 이상 다른 종교로 갈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서서히 오르기 시작합니다. 개신교는 계속 올라가다가 지금 정체가 되어 약간 줄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 데리고 올 사람이 없습니다. 불교는 스님들이 애 안써도 균형점에 이르렀습니다. 카톨릭이 아직 계속 더 성장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균형점에 도달해 있습니다. nbsp nbsp 시간이 지나면 카톨릭도 줄 것이고, 불교도 줄 것이고, 개신교도 줄 것인데 왜 그럴까요? 교회에서 주일학교 해도 대학에 가면 교회에 안 다닙니다. 불교 대학생회만 안 되는 것이 아니고 카톨릭 대학생회, 기독교 대학생회에 가보면 개신교만 조금 나을 뿐이지 모두 안 되고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불교 학생회에 아무런 지원이 없고 스님이 안 계셔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대학생 지도할 때만 해도 대불련 대회하면 12천 명씩 모였는데, 지금은 온갖 지원을 해줘도 전국적으로 3백명도 안됩니다. nbsp 종교 뿐 아니고 민주당이나 새누리당 정당에도 청년조직이 없습니다. 지금은 말이 청년이지 5060대가 청년입니다. 시골에 가면 청년회 회장이 60대 입니다. 전체적인 사회의 변화이기 때문에 오히려 관심을 갖는다면 스님, 목사님, 신부님, 교무님이 서로 경쟁하기 보다는 젊은이들을 두고 무종교와 경쟁을 해야 합니다. 어디에 가든 상관없습니다. 젊은이들을 어떻게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할 것인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해도 갈수록 줄겁니다. nbsp 지난 해에 유럽에 29개 도시를 다녔는데, 유럽에도 나라마다 우리 라 절처럼 큰 성당이 있지만, 이런 어마 어마한 성당 안에 주일 예배에 200300명이 앉아 있습니다. 수도원에도 할머니 수녀님만 계셨습니다. 수도원이 운영이 안돼서 여행자 숙소로 바꿨습니다. 이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미얀마, 스리랑카, 남미 등은 아직 돈 맛을 덜봐서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의 신자가 많습니다. 돈에 덜 물든 곳은 아직 괜찮습니다. 유럽도 그런데 한국에도 스님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와야 하듯이 신부나 스님 될 사람들도 데려와야 할 처지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불교신자가 아니고 욕심쟁이입니다. 교회나 성당에 신자가 부족하다고 하면 좀 보내줘야 합니다. nbsp nbsp 그리고 불교신자가 병문안 가서 환자를 위로 해주는 것이 맞지만 교회에서는 와서 위로해주는데, 절에서는 안 온다고 개신교로 개종을 했다면 그 사람은 개신교로 개종하는 것이 낫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겁니다. 불법을 공부해서 수행을 하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해탈과 열반은 추구 안하고 아들 대학에 붙게 해달라고 하고, 출세나 복만 빌다가 나이 들어 병석에 누워있는데 누가 와서 위로해 주니까 따라가는 겁니다. nbsp 이런 기복적인 신앙은 부처님 법에 맞지 않습니다. 세상이 살기가 좋아지면 복을 비는 것으로는 안됩니다. 대학생 청춘 캠프에 1천명이 모이는데 그 곳에 가서는 종교 이야기는 안하고, 인생 이야기만 합니다. 불교인은 다른 나라나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일체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통 큰 마음을 가져 보세요.” nbsp “네, 알겠습니다.” nbsp nbsp 이와 같이 종교에 대한 폭넓은 견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참여하신 많은 분들의 뜨거운 성원으로 강연은 대략 2시간 가까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사인회를 하신 후, 자원활동가들과 기념 촬영을 하시면서 은평구 강연을 마치셨습니다. nbsp nbsp 은평구 강연을 마치고 점심공양을 하신 후 2시 50분경에는 국제한민족 재단 이사장이신 이창주 박사님과 실무자 4명이 방문해서 스님과 시간을 가졌습니다. 올해로 한러 수교 25주년 되는데, 국제한민족대회에서 준비하는 행사에 대한 안내와 일제강점기에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톡에 자리잡고 있었던 독립운동 성지인 신한촌 성지화에 대해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nbsp nbsp 오후 4시에는 만다라 미술심리연구소 김영옥 원장님께서 스님을 만나뵙고 그동안 좋은벗들과 함께 새터민들의 심리치료를 해온 과정들을 설명하면서 그림을 통해 개인들의 상처가 풀리고 자기 긍정성을 찾아가는 과정들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nbsp nbsp 김영옥 원장님은 올해는 서울시 25개 구청과 경기도 15개 시군구를 중심으로 온국민 치유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데 스님께서 서울시와 경기도에 심리치료의 중요성을 이야기 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nbsp 2번의 만남이후 7시에는 성남시청에서 희망강연이 있었습니다. 그 전 6시 30분에는 성남시장님과 차담이 있었습니다. nbsp nbsp 성남시청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성남시청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세월호가 침몰하는 모습을 만든 조형물에 참배를 한 후 시장실로 가서 이재명 성남시장님과 차담을 하신 후 7시부터 강연에 들어가셨습니다. nbsp nbsp 강연장인 온누리 홀에는 6시부터 입장을 시작하자 미리 강연장 입구에 줄을 서 있던 청중들로 금새 강연장이 채워지기 시작하더니, 7시가 다 되어서는 601개의 좌석이 가득차고 통로에까지 앉을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강연 시작 전에는 분당정토회 불대생들이 뭉게구름 노래에 맞추어 청중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율동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 도착하시자 박수가 쏟아지고, 바로 환한 웃음으로 강연을 시작하십니다. 스님께서는 청중들에게 봄날에는 농촌이든 산이든 자연 속에서 심신을 부드럽게 가져보라고 하시며 바로 즉문즉설로 들어가셨습니다. nbsp nbsp 즉문즉설이 시작되자 역시 많은 분들의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해서 못다한 대학을 졸업해 사회에 보탬되는 일을 하고 싶은 45세인 일곱살 아이 엄마, 아버지의 성격과 행동방식을 그대로 닮은 것이 싫고 아버지가 밉다는 스물 여섯 살 딸, 남편이 사업실패로 빚을 지고 계속해서 돈을 구해오라고 술주정해서 하루하루가 지옥같다는 아내,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싶고 어떻게 알 수 있을까를 묻는 이십대의 청년, 특별히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없어 고민이라는 중학생, 주식투자 실패 이후 불면증에 시달리고 모든 일에 짜증을 주체할 수 없다는 60대의 남자분, 일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주폭을 일삼던 아버지로 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고 그것을 몰랐던 이전보다 더 괴로운 상태가 되어 버린 직장인, 좋은 직장과 인물 좋은 배우자를 구하고 싶은 바램을 가진 서른 살의 취업 준비생의 질문 등이 있었습니다. nbsp nbsp 그 중 오늘 소개하고 싶은 질문은 “스님, 일본 지도층 인사들의 엇나간 발언들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좌절감이 듭니다. 자신들의 식민지배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발언을 하는 지도층 인사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사회의 지도층 인사중에도 일제 강점을 미화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발언들을 합니다. 그런데 현재 정부를 보고 있으면 그것을 바로 잡을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우리 사회가 후진화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매일 보던 아침 신문을 이제는 아예 덮어 둡니다. 이러한 고민을 누구한테 하소연 해야 하는지,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떠해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nbsp “대한민국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대통령입니까 아니면 국회의원입니까?” nbsp “국민입니다.” nbsp “대한민국에는 언론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발언도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가능한 것이 아닙니까? 진보든 보수든 양쪽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nbsp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회 지도층이 국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발언은 옳은 것인가요?” nbsp nbsp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왕이 주인이니 그러한 비판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국민이 주인입니다.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두 가지 주장이 있었습니다. 대한제국 부흥 운동과 대한민국 수립 운동이었는데, 용성 스님께선 후자를 주장하셨습니다. 나라를 되찾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나라의 주인인 왕의 후손들이나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관리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6년 동안 그들을 찾아다니며 호소하셨지만, 아무런 의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셨습니다. 그러다가 오히려 나라에서 도움은커녕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살던 백성들이 의병을 일으키고 독립운동을 하는 것을 보시고는 이제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다고 생각하셔서 대한민국 수립 운동으로 방향을 잡으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서 대한민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불만만 토로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정치제도는 국민이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에게 위탁하는 제도입니다. 지금 불만이 있다면, 다음에 위탁할 때 사람을 바꾸면 됩니다. 자신이 주인된 마음으로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어 갈 사람을 선택하면 됩니다. 이것은 이제는 왕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nbsp “5년에 한번 돌아오는 선거밖에 방법이 없나요?” nbsp nbsp “모두 자기 살기 바빠서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선택해야 하는데, 평소엔 실컷 불만을 터트려 놓고는 선거때가 되면 같은 지역이라는 이유로, 담뱃값 받았다는 이유로 쉽게 지지해 주고는 또 후회합니다. 정으로 투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동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국민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질문자는 꼭 자기는 주인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불안해하거나 한탄만 하지 말고,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할때는 폭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nbsp 만약 나에게 누군가를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면 제일 먼저 일본 총리를 바꾸고 싶어요. 그 다음에는 북한의 누군가를 바꾸고 싶고요. 그리고 또, 대한민국의 누군가도 좀 바꾸고 싶어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일본이나 북한의 누군가를 바꿀 권리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을 바꿀 권리는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뽑을때도 만약에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차선도 없다면 최악을 피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아예 투표를 하러 가지 않는 것은 주인이기를 포기하는 겁니다. 이것은 공업, 즉 우리 모두의 업입니다. 다수가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 안에서, 우리가 닥친 위기를 우리가 다 같이 안고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nbsp nbsp 대한민국을 안에서 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북한이나 중국, 베트남, 필리핀과 비교하면 그래도 대한민국이 낫습니다. 그리고 50년, 30년 전과 비교하면 경제적, 정치적으로 조금 더 좋아졌습니다. 긍정적인 입장에서 비판을 하면 건설적 에너지인 혁신이 되고, 부정적 입장에서 비판하면 파괴적 에너지가 됩니다. 지금 우리는 파괴적 에너지로 혁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에너지로 혁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여기서 안주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합의점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은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는 부정적 입장이 강하기 때문에 갈등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의견이 다르지만 타협의 중심을 찾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며,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지나간 것만 시비하지 말고, 앞으로 미래에는 이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에 좀더 희망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nbsp 아홉명의 질문자의 질문을 모두 받으니 예정된 두시간을 훨씬 넘어 세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래도 웃으며 마지막 질문을 받으시고, 오늘의 질문들을 아우르는 마무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nbsp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지혜롭게 사는 길을 가야 합니다. 지혜로우면 삶이 가볍고 자유로와집니다. 봄꽃도 예쁘지만, 낙엽도 예쁩니다. 봄꽃은 일주일도 못가지만 낙엽은 책갈피에 끼워놓으면 오래 갑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행복하게 사셔야 합니다. 눈이 안 보이고, 다리가 없고, 암에 걸렸어도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보통 어제까지 암인줄 몰랐다가 오늘 알면 오늘부터 불행해 합니다. 그런데 어제와 달리 오늘 바뀐 건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알게 된 것은 좋은일입니다.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나의 자세에 따라 주인 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nbsp 모든 질문에 일관되게 스님이 강조하신 말씀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바꾸는 수행은 외줄타기 연습과도 같이 어려운 것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병이 절반은 치유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들어도 무겁고 힘든 상황을 가지고 온 질문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행복하게 사는 길을 열어 보여주시는 스님의 법문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그렇구나 감탄사가 이어집니다. 불평불만만 할 것이 아니라 선택에 책임을 지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 지금 여기에 있음을 열어 보여 주시는 말씀에 마지막까지 강연장은 환한 열기로 가득합니다. nbsp nbsp 강연이 끝나고 스님께서는 청중들과 함께 강연장을 걸어 나오셔서 곧바로 책 사인회를 시작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봉사자들과의 사진 촬영이 있었습니다. 사진 촬영 중에는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강연 일정에도 피곤한 기색도 없으신 스님의 농담에 와 하고 봉사자들의 웃음이 터집니다. 스님의 강연과 봉사자들의 활동을 통해, 봄날처럼 따뜻한 웃음과 마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바로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2015.04.19. 21,628 읽음 댓글 16개

2015.4.13. 두북 어르신 봄 나들이 / 대구 수성대 희망강연

nbsp nbsp 오늘은 법륜스님께서 두북 어르신들을 모시고 봄나들이를 하시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두북 수련원에서 법사님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한 후 경주남산 답사 때문에 두북수련원에 와 있는 신규법사님들의 만행 후 첫 인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는 19일에 있을 경주남산 순례에 대해 누가 어느 코스로 갈 것인지, 어떤 것을 답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습니다. nbsp nbsp 오전 7시에는 두북 어르신들을 모시고 봄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올해는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에 사찰순례를 하고, 부석사 인근에 있는 소수서원과 선비촌도 함께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며칠 전부터 일기예보에서 비가 올 것이라고 해서 행사준비를 담당한 해운대정토회 봉사자들의 걱정이 많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전날 밤부터 부산전역에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봉사자들이 정토수련원에 집결한 새벽 6시경까지도 그칠 줄을 모르고 추적주적 내렸습니다. 오늘의 나들이행사를 위하여 전날 두북에서 주무신 법륜스님께서도 비가 오는데 어르신들이 괜찮을지 염려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해 온대로 행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그저 최선을 다해 할 일을 할뿐,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모두들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수행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마을 어르신들께서도 대부분 시간에 맞춰 나오셨고, ‘우리는 비를 예사로 맞는다’시면서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는 모습들을 보니 우리가 너무 소심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오히려 부끄러워졌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네 대의 버스에 일일이 오르셔서 비가 오는데도 이른 새벽부터 나오시느라고 수고하셨다는 인사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편 “비 맞고 농사도 지었는데 비 맞고 노는게 뭐가 문제겠어요?” 하시며 기운찬 덕담도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르신 129명과 봉사자 21명, 법륜스님과 화광법사님까지 모두 152명의 인원이 질서 있게 두북을 출발하였습니다. nbsp 봉사자들은 차 안에서 어르신들께 수신기와 간식 등을 나누어드려서 간단한 아침식사 겸 요기를 하시도록 하고, 건천휴게소와 안동휴게소에서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시게 한 후 오전 10시 25분에 부석사 주차장에 도착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남쪽에서 출발한 버스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차창을 때리던 빗발은 점점 가늘어지더니 차에서 내릴 즈음엔 흐리고 쌀쌀할 뿐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남녘에서는 이미 지고 있는 벚꽃, 개나리, 목련과 진달래 들이 부석사를 향해 오르는 길목에서 한껏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nbsp nbsp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 앞에 다다르자 스님께서는 먼저 도착하신 어르신들을 잠시 대기시키시고 부석사에 대해서 그리고 일주문의 의미 등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부석사는 신라시대에 가장 유명하신 스님인 원효, 의상, 자장 중에서 의상조사께서 지으신 절입니다. 676년에 지었으니 1,300년 이상 되었습니다. 의상조사께서 중국 유학을 다녀오신 후 화엄종 본찰로 삼아 지으셨습니다. 일주문이라는 의미는 사바세계와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으로 불이문이라고도 합니다. 부석사 바로 뒤에 보이는 산은 봉황산이라고 합니다. 천천히 올라가시면서 봄꽃 구경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nbsp nbsp 일주문을 지나 약간 오르막길을 오르시면서 스님께서는 영주시는 예전에 영풍군 또는 풍기군이라고 하여 영주와 풍기를 포함하는 이름이었고 풍기는 원래 인삼으로 유명했는데 요즘에는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사과가 더 유명해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nbsp 천왕문을 바라보며 오르는 왼편 길가에는 당간지주라고 하는 두 개의 기다란 돌기둥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기둥 사이에 큰 깃발을 꽂아 ‘여기가 화엄종찰이다’라는 표시를 하였다.” 설명해주셨습니다. 네 분의 사천왕들을 모신 천왕문에 들어 서시면서는 ‘사천왕은 동서남북의 하늘을 맡아 악귀로부터 지켜내는 천신들’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부석사 경내로 들어서자 가파른 계단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어르신들이 따라 오르시기에 힘이 들 것을 염려하시어 “빨리 오르지 마시고 천천히 오르세요. 이래서 부석사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와야 합니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부석사에 오면 저 축대들을 잘 봐 두어야 합니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들을 가지고 이처럼 안정적이고 아름답게 축대를 쌓았다는 것은 무척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축대를 쌓으려는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연구해 가곤 합니다.”라고 하셔서 어르신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셨습니다. nbsp nbsp 흰색과 자색의 아름다운 목련이 부석사 경내의 곳곳에서 수줍게 우리를 맞아주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국보급 건축물들이 들어선 경관은 신라고찰로서의 중후한 풍모를 고스란히 보여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르신들과 함께 잠시 쉴 자리를 찾아보시다가 아담한 잔디밭에 모두 앉게 하신 후 부석사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들려 주셨습니다. nbsp “부석사라는 이름은 뜰 부, 돌 석, 즉 돌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는 데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신라시대의 의상스님은 원효스님과 함께 당나라에 유학을 가기 위해 길을 떠나셨다가 밤이 되어 비가 많이 내리자 비를 피해 잠을 청하려고 굴속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원효스님께서 한밤중에 목이 말라 주위를 더듬어보니 웬 바가지 안에 물이 있어서 그 물을 달게 마시고 주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날이 밝아 눈을 떠 보니 지난밤에 자신이 마신 물은 해골 속에 고여 있던 썩은 물이었던 겁니다. 순간 구역질이 올라와서 간밤에 마신 물을 모두 토해내셨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자 더럽고 깨끗한 게 모두 마음 가운데 있음을 깨달아 ‘일체유심조’의 원리를 증득하심으로써 유학을 가려던 발걸음을 돌리셨습니다. nbsp 그러나 의상스님은 유학의 뜻을 굽히지 않고 배를 타고 당나라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신도 집에 하룻밤 머물었는데 신도 딸인 선묘낭자라고 하는 여인이 의상스님의 기상에 반해서 연정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의상스님께서는 여인을 잘 감화시키셨고, 선묘낭자는 의상스님의 평생 제자가 되기로 원을 세웠습니다. 의상스님은 화엄종의 3대 교조인 지엄화상아래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nbsp nbsp 그 무렵, 신라와 당나라가 힘을 합해 멸망시킨 고구려, 백제 땅을 모두 당나라가 다 차지하려고 하자, 신라와 당나라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당나라가 큰 군사를 보내 신라를 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의상스님께서 이를 급히 신라에 알리기 위해 당나라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황급히 떠나시는 스님을 배웅하지 못한 선묘낭자는 스님이 타신 배를 향해 바다로 뛰어들면서 스님께 드리려고 마련해두었던 법복 선물을 힘껏 던져서 선물만은 스님의 배에 가 닿았으나 몸은 바다에 빠져서 죽었다고 합니다. 이 선묘낭자가 죽어서도 의상스님을 지켜드리기 위해 큰 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nbsp 이후 나당전쟁에서 승리하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문무대왕이 의상스님의 공적을 기려 큰 절을 지어드리고자 의상스님으로부터 직접 터를 잡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의상스님께서는 이곳 부석사의 터를 고르셨는데 문제는 이곳에 500명의 도적떼가 차지하고 있으면서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용이 된 선묘낭자가 커다란 돌을 공중에 뜨게 하니 도적들이 깜짝 놀라 모두 도망을 가는 바람에 비로소 이 절을 지을 수 있었고 절 이름이 부석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용의 머리 부분은 무량수전의 부처님 앉으신 자리 부분에, 꼬리부분은 무량수전 앞마당의 석등 부분에 위치해 있다고 합니다.” nbsp 둘러앉으신 어르신들은 스님의 재미나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올라오는 동안 힘들었던 것도 잊으시는 듯 했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부석사에는 국보가 다섯 개나 있다고 하시면서 우리나라에서 국보가 일곱 개 있는 불국사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절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과 그 안의 소조아미타여래상, 무량수전 앞마당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등, 조사님들의 영정을 모신 조사당과 그 안의 벽화 등 다섯 가지가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또 부석사의 대웅전인 무량수전은 아미타부처님을 모시는 곳이므로 극락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아미타는 인도말이고 한문으로 번역하면 ‘무량수’ 또는 ‘무량광’ 이라고 한다는 설명도 덧붙여주셨습니다. nbsp 또한 스님께서는 두북 정토수련원의 모든 살림살이를 살뜰히 돌보시면서 마을 어르신들과도 가족처럼 친근하신 법성행 보살님께서 최근에 법사수계를 받아 ‘화광법사’님이 되셨다면서 소개해주시자 어르신들께서는 따뜻한 박수로 축하해주셨습니다. nbsp 이어서 어르신들과 함께 ‘안양문’이라고 쓰인 문을 향해 오르시면서 안양문이란 ‘극락 가는 문’이라는 뜻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안양문을 통과하자 고색찬연한 무량수전과 석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서 안양문을 보니 안양루 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들어올때는 극락으로 가는 문이었고, 극락에 들어와서 보면 노니는 누각이란 것 같습니다. nbsp 무량수전에는 고요히 선정에 드신듯한 웅장한 아미타부처님이 동쪽을 향해 앉아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르신들이 참배를 올리시는 동안 무량수전 왼편 마당에 있는 ‘부석’을 보여주셨습니다. 과연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묘한 형상이었습니다. nbsp nbsp 무량수전 앞에서 단체 사진촬영을 한 후,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을 지나 조사당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오르시면서 예전에는 이 길이 좁다란 오솔길이어서 저 위에 보이는 조사당이 훨씬 더 크게 보였는데, 길이 넓어지니 조사당이 너무 작아 보인다며 아쉬워하셨습니다. 조사당에 오르니 건물 모양이 작고 심플해서 옛 선사들의 소박함이 물씬 풍기는 듯했습니다. 이 조사당 건물도 800년 전의 것으로 국보라고 다시 말씀해주셨습니다. 조사당 안에는 진품은 아니지만 국보로 지정된 벽화가 있습니다. 또 조사당 앞에는 의상조사가 심었다는 ‘선비화’라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nbsp nbsp 내려오시는 길에 일반 관광객들의 이런저런 질문에도 정성껏 답해주시는 스님의 모습이 참 따뜻했습니다. 법륜스님임을 알아보고 반가워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절에서 내려오신 스님께서는 미리 음식을 준비해 둔 식당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셨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던 봄비에도 불구하고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참석하시느라, 또 가파른 부석사 순례 길을 따라오시느라 힘드셨을 어르신들도 된장찌개와 생선구이 등으로 차려진 점심을 맛있게 드셨습니다. 모든 분들이 식사를 마치자 스님께서는 모처럼의 나들이 길에 오르신 어르신들의 여흥을 돋우어 주시기 위해 노래자랑을 하셨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신이 나서 흥겨운 노래잔치를 벌이셨습니다. 주름진 얼굴들이 모두 시름을 잠시 잊고 어깨춤을 들썩여가며 초롱초롱 빛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매해 이렇게 잊지 않고 나들이 행사를 마련해주시는 법륜스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nbsp nbsp 이제 다시 버스에 올라 소수서원을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창밖 풍경을 보시며 밭에 심어진 거뭇거뭇한 것들은 거의 다 인삼이고 벌판과 언덕에 심어진 과수원의 나무들은 거의가 다 사과나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요즘에는 풍기인삼보다 금산인삼이 더 유명하지만 아직 풍기에도 인삼밭이 많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니 나란히 이어진 선비촌과 소수서원 주차장에 당도했습니다. 소수서원은 원래는 절터였는데 조선시대에 불교가 탄압되면서 풍기군수로 오게 된 주세붕이 절을 허물고 서원 즉, 사립학교를 건립했다고 합니다. 소수서원의 소는 이을 소, 수는 닦을 수로 ‘옛 선현의 바른 가르침을 이어서 닦자’는 뜻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원래는 안향이라는 유학자를 기리는 백운동서원이었는데, 이황이 군수로 오면서 국왕으로부터 인정받는 사액서원이 되었고 명칭도 소수서원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소수서원의 입구로 들어서자 오른편 길가에 부석사의 일주문 지나서 보았던 당간지주와 똑같이 생긴 돌기둥 두 개가 있어서 깜짝 놀랐는데 이것이 바로 이곳이 절터였음을 말해주는 증표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불교탄압의 역사적 현장을 목격하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nbsp 소수서원의 오른쪽 담장을 따라서는 아름다운 풍광의 개천이 흐르고 있었고 주변은 아담하게 잘 가꾸어진 모습이었습니다. 학교 건물인 본관은 수리 중이어서 천막이 둘러져있었고 뒤쪽에 기숙사와 장서각, 영정각, 사료관 등이 있었습니다. nbsp nbsp 소수서원의 후문을 나오니 주변이 잘 조성된 공원이었고 여기서 조금 걸으니 바로 선비촌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연결되었습니다. 이곳은 옛날 고택들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일종의 민속촌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해우당 고택, 두암 고택 등으로 이름 붙여진 기와집들을 둘러보시며 정말 큰 부자들이 살던 집이라고 하시며, 보통의 시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큰 규모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런 집들의 문간채 정도밖에 안 되는 집에서 사셨다고 하니 어르신들께서 여기저기서 공감을 표합니다. nbsp nbsp 고택들 안에는 여러 가지 옛날 살림살이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스님을 따라다니시는 어르신들과 함께 베틀이니 기름틀이니 도리깨니 하는 옛 살림살이에 쓰시던 물건들에 대해 함께 회상하시며 공감을 나누시는 모습이 참 친근하고 훈훈했습니다. nbsp 선비촌의 관람을 마치고 이제 스님과 이별을 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르신들께 마지막 인사를 하시면서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르신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이제 농사일은 놀이삼아 하세요. 죽기 살기로 하지 마시고 재미삼아 하시면서 무엇보다 건강을 잘 돌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아들 딸 손자 위한다고 땅문서 집문서 내어주지 마세요. 논도 나누어주시더라도 먹고 살 만큼은 꼭 남겨두셔야 합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셔야 합니다. 안녕히들 돌아가세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서시면서 스님께서는 우리 봉사자들에게도 한 말씀 하십니다. “차 안에서 꼭 음악 틀어드리세요.” 네, 스님... 어르신들을 극진히 생각하시는 스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nbsp 스님과 함께 어르신 봄나들이를 잘 마치게 되어서 너무도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부석사를 떠나 올해 첫 희망강연이 있는 대구로 향했습니다. 강연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대구법당에 들러서 원고교정등 업무를 보신 후 강연인 대구 수성대학으로 향했습니다. nbsp 대강당 입구에 들어서니 봉사자들의 따뜻한 웃음이 시샘 많은 봄추위를 다 녹일 듯합니다 저녁 여섯시부터 하나둘 메워지던 자리는 어느덧 강연시간인 7시가 되자 700여명으로 꽉 찼습니다. 계단에도 사람들이 자리를 빼곡하게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 무대로 나오시자 봇물 터지듯 박수와 환호성으로 대강당이 떠나갈 듯합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비가 오는데도 많이 참석해주셨다고 하시면서 오늘 노인분들 모시고 부석사 다녀온 이야기, 다니면서 꽃구경 한 이야기등 하시면서 무리하게 놀고 있다고 하니 참가하신 대중분들이 모두 크게 웃으시며 긴장을 푼 것 같습니다. nbsp 올해 첫 희망강연이라 그런지 스님께서는 질문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시 설명해주시면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nbsp nbsp 오늘은 늦은 시간까지 아홉분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명쾌한 길을 제시하시며 우선 질문자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 주시고 듣는 이들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넌지시 일러주십니다. 질문자의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리며 대화를 듣다보면 어느 순간 질문자와 청중이 함께 “네 알겠습니다” 하며 환하게 웃을 수 있습니다. nbsp 외국에서 10년정도 살다가 외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에 들어와 사는데 친정 엄마와 남편의 사이가 좋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아내, 육남매의 맏이로서 부모님 모시고 동생들 거두며 살았는데 자꾸만 행패를 부리는 둘째 동생을 보며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는 환갑이 넘은 남자분, nbsp nbsp 다친 오빠를 간호하고 있는데 자꾸만 오빠가 짜증을 내서 참고 참다가 화를 내고 후회한다는 여린 마음의 39살 여동생, nbsp 그리고 39살 된 아들이 건강이 좋지 않아 수술까지 했는데도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괴로워하는 걸 보고 갚아주면 다시 또 술을 마시고 돈을 빌리는 악순환이 계속되어 답답하다는 어머니, nbsp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으로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는데 어떻게 하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 방법을 알고 싶고, 노모한테서도 독립하고 싶다는 부산에서 온 45세 남자분, nbsp 우울증으로 아파트 6층에서 투신해 자살을 시도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새 삶을 얻어 티벳불교를 접하였다가 힐링캠프에 나온 스님을 뵈러 한국에 왔는데 직업이 횟집 주방장이어서 살생을 하는 것 같다며 어찌해야 하는 지를 묻는 중국 교포, nbsp 폭언과 폭행을 일삼던 남편이 사업이 망해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안스러워 남편과 아들과 함께 잘 살고 싶은데, 고등학교를 자퇴한 아이 때문에 괴로워 하는 48세의 엄마, nbsp nbsp 어린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묻는 젊은 아빠, nbsp 그리고 청송에 내려와서 함께 농사를 짓겠다는 29살의 아들이 미덥지 못한 엄마의 유쾌한 질문등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질문한 분과 스님과의 대화를 옮겨봅니다. nbsp “저는 청송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29살된 아들이 직장을 1년 정도 다니다가 사과농사를 같이 짓고 싶다고 합니다. 같이 살면 많이 부딪힐 것 같은데 제가 어떻게 아들을 봐야할지, 수익이 생기면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 좀 있으면 결혼을 할 것 같은데 같이 살아야 할지, 아니면 제가 따로 나가서 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물었습니다. nbsp “농사일이 할 만 합니까?” 라며 스님께서는 질문을 듣고 몇가지를 다시 물었습니다. nbsp “딸 둘은 각각 외국과 서울에서 잘 살고 있고 남편은 작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현재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nbsp nbsp “아들이 농사에 대해서 잘 알아요?” nbsp “제가 농사를 30년 지었는데 저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이 말합니다. 친구나 지인들한테서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아들을 봐야할지 모르겠습니다.” nbsp “엄마는 사장이고, 너는 종업원이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시키고 네가 3년 간 종업원으로서 성실히 하면 진급도 시켜주고, 대우도 해주겠다. 계산은 종업원으로 월급으로 주겠다. 3년간 너를 지켜본 뒤에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다고 하시면 됩니다. 한번 종업원으로 채용해 보고, 괜찮으면 계속 같이 하고 아니면 내보내면 됩니다.” nbsp nbsp “아들은 자신이 가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들 생각이지요.” nbsp “제게 가게가 하나 있는데 이것도 해 보고 싶어 하는데 아들에게 줄까요?” 라고 다시 질문합니다. nbsp “계약서를 쓰세요. 그래도 약간 아는 사람이니까 조금 싸게 해서 계약서를 쓰고 임대해 주세요. 20살이 넘었기 때문에 엄마, 자식이라는 관계로 넘겨주게 되면 원수가 됩니다. 사장종업원간에 계약서를 쓰면 사장종업원끼리는 원수가 되어도 이해관계이므로 감정이 상하지 않는데, 그게 정에 끌려서 잘 안 될 것 같으면 아예 남에게 과수원을 맡기거나 파는 게 낫습니다. 이렇게 하면 절대 부모자식 간에 원수관계가 안 됩니다. 엄격하게 해야 합니다. 이 회사를 넘보지 말고, 이 회사 내에서는 엄마자식이 아닌 임대를 하는 관계로 해야 합니다. 나는 너를 키워준 것으로 내 할 일은 다 했다고 하시면 됩니다.”라고 하시며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을 전체적으로 정리해주셨습니다. nbsp “자식을 보살피는 것도 부모고, 자식을 망치는 것도 부모입니다. 자신을 안온하게 하는 것도 집이고, 자신을 속박하는 것도 집입니다. nbsp 자식을 보살피는 것은 3살 때까지는 100, 초등학교 때는 70, 중학교는 50, 고등학교는 30, 대학을 들어가면 완벽하게 독립을 시켜야 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다 이렇게 해요. nbsp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을 보살펴야 할 때 보살피지 않고, 자립시켜야 할 때 그렇게 하지 않아 자식을 망칩니다. nbsp 자식이 부모를 괴롭히는 것이 남편에게서 괴로움 받는 것보다 10배는 더 힘듭니다. 전생의 원수가 부모·자식이 된다는 헛된 말을 믿지 말고, 자식은 부모를 고맙게 생각하고 부모는 자식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nbsp 우리가 낚시를 할 때 맛있는 것을 미끼로 하지요. 쥐약도 쥐가 좋아하는 음식에 놓지요. 그러므로 좋아 보이는 게 사실은 굉장히 위험해요. 쥐가 접시에 맛있는 것이 딱 놓여있으면 ‘이것이 내 것이 아닌데’ 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덥석 물으면 어떻게 될까요? nbsp nbsp 그래서 부처님께서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 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부처이기 때문에 천하 누구에게도 비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어서 당당하라 그러면 교만하고, 겸손하라 그러면 비굴해집니다. 겸손하되 당당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알이 차야 고개를 숙이고 고개를 숙인 벼는 알이 찬 법입니다. nbsp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나만 정신 차리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다른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게 사십시오.” nbsp 스님께서는 한분한분 질문하신 분들이 놓치고 있는 점을 다시 상기시키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행복해야 함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됩니다. nbsp 강연이 끝난 후 스님의 책에 사인을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많은 이들이 스님의 가르침에 목말라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사인회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시고는 다시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2015.04.14. 22,031 읽음 댓글 17개

2015.4.12 용성조사 제75주기 열반일 기념법회

nbsp nbsp nbsp 오늘은 용성조사 열반 75주기 기념법회가 있는 날입니다. 스님과 서울 공동체 대중들, 그리고 SBS 촬영팀은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나 3시에 전라북도 장수군에 있는 죽림정사로 출발했습니다. 죽림정사에는 문경공동체 행자원의 행자님들이 행사와 공양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유수스님을 비롯한 법사님들과 서울 공동체 대중들, 그리고 문경공동체 행자원 대중들과 함께 6시 30분에 발우공양을 하셨습니다. 도문 큰스님께서 오셨더라면 참 흐뭇해 하셨을 텐데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nbsp nbsp 스님과 법사단, 그리고 서울공동체 대중들은 9시 30분부터 교육관에서 다례재를 올렸습니다. 석가여래부촉법 제1세 마하가섭 존자로부터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해동 법맥을 이은 역대조사들에 대한 지극정성으로 다례를 올렸습니다. 이어 기념법회가 열렸는데, 일요일인데도 기념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에서 600여 명의 대중들이 모였습니다. nbsp 벚꽃이 만발한 화창한 일요일, 대지는 푸른 옷을 갈아입은 모습이었습니다. 생동하는 봄기운이 느껴지는 가운데, 죽림정사에는 쉼 없이 찬바람이 불어 닥쳐 자꾸 옷깃을 여며야 했습니다. 죽림정사는 백두대간의 중심에 위치한 장안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행정지명으로는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입니다. 이곳은 백용성 조사님의 탄생지로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와 백용성조사 유훈실현 후원회의 주도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백용성조사님의 유지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습니다. nbsp nbsp 용성조사님은 석가여래부촉법 제68세, 석가여래계대법 제75세, 조선불교중흥율 제6조이시며, 불교의 지성화·대중화·생활화운동을 전개하는 등 현대 한국 불교의 기초를 닦은 근대 한국불교의 중흥조이십니다. 또한, 용성조사님은 1919년 기미 3·1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중 불교계를 대표해서 서명하셨고, 그 이후 평생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독립운동가이십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오늘 용성조사님의 제75주기 열반일 기념법문을 통해, 용성조사님의 평생의 삶을 다시한번 정리해 주시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할 바가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시절에는 나라의 독립이 시대적 과제였다면, 오늘 이 시점에서 시대적 과제는 분단된 나라의 통일입니다. 발해 멸망이후 대륙을 잃고 반도에 갇혀 강대국의 변방으로 전락한지 일천여년만에 그 천년의 한을 풀고 동북아에서 자주 독립국가로서 옛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민족의 통일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고구려가 다물사상으로 건국이념을 삼았듯이 우리는 새로운 100년의 비젼을 위해 통일을 반드시 성취하겠다는 원력보살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nbsp nbsp 기념법회가 끝난 뒤 즉문즉설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nbsp nbsp 질문하는 사람은 6명이었습니다. 여자와 음식에 대해서는 절제가 잘 안 된다는 분,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은데, 수행에서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말라고 하셔서 사회문제를 등한시하라는 의미로 들린다는 분, IMF 이후에 남편이 주식투자에 빠져있어서 걱정이라는 분, 친정어머니에게 마음이 많이 일어난다는 분, 그리고 환경운동을 하다 보니 모든 것을 파괴하는 인간들이 혐오스러워진다는 분 등 대단히 솔직한 질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중에서 세월호 관련 질문과 답변을 나눕니다. nbsp 질문자는 “광화문에서 슬퍼하는 분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고 왔습니다.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도웁게 된다는 부처님 말씀이 있는데, 사회에서는 억울한 일들이 계속 일어납니다. 이때 함께 공감하고 위로를 나누게 되면 서로가 치유가 되는 듯합니다. 억울한 일들은 밝혀야 되는 것이 아닌지요?”라고 질문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밝혀야 한다면 밝혀야지요. 그렇지만 때론 침묵이나 때를 기다려야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밝히는 것이 상대에게 억울함이 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추행당한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그 사람의 말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무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보왕삼매론의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이 이해가 안돼서 이건 아니지 않나 이런 생각에 빠졌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여러 다양한 계층과 사례들을 접하고 상담하면서 이해하게 됐습니다. 세상에 죽을 놈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도, 내막을 알고 보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한 일이 많았습니다. nbsp 억울하고 분한 마음으로 진실을 밝히려고 하면, 얼마 못 가 지치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실이 규명되지 않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어 밝혀질 수 없는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몇몇 국민의 힘으로 밝히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른 정부가 들어서서 국민 다수가 참여해 원인규명을 할 수 있도록, 사회를 보다 투명한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때로는 더 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뤄지지 않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규명이 안 된다고 해서 분노하면, 그만큼 허탈해지고 냉소하다가 결국 바뀌지 않는 정치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돌아서게 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 일이 어렵더라도, 그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하더라도, 만약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분노하기보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바꿀 수 있는 방법 쪽으로 힘을 모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nbsp nbsp 세상에 분노할 일이 많은데, 분노하기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그쪽으로 꾸준히 정진하고 힘을 모아가는 일이 수행이라는 말씀이 많이 와 닿았습니다. nbsp 즉문즉설을 마친 뒤 사홍서원으로 1부 행사를 끝내고 대웅전 계단에서 단체 사진 촬영이 있었습니다. 대웅전 계단에서 스님의 당부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nbsp nbsp “암울한 시대에 굴복하지 않으시고, 수행의 관점을 놓치지 않으시며 민족과 불교 중흥을 위해 애쓰신 백용성 조사님의 뜻 깊은 열반일을 맞아 이곳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용성조사님의 생가 터에서 면면히 흐르는 민족사와 불교사의 정수를 온 몸으로 느끼고 새기셨기를 바랍니다. 용성조사님의 뜻이 오늘 정토회 활동을 통해 이어져가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내가 몸담은 정토회가 부처님의 정법을 계승한 곳임을 확신한다면 외부의 그릇된 소견에 흔들리지 말고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히 활동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재삼 당부하셨습니다. nbsp 간부수련과 담당자 수련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셔서 피곤하실법한데도, 스님께서는 여전히 힘 있고 활기찬 모습으로, 때로는 단호하고 명쾌한 답변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이런 스승님의 은덕에 힘입어 우리의 삶이 더 가벼워져서, 용성스님의 유훈을 잘 받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오전 내내 심하게 불던 바람이 잦아지면서 경전반 학생들은 따스한 봄볕 아래 묘수법사님과 무변심법사님으로부터 사찰안내를 받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사찰 경내를 다니시면서 오늘 행사를 위해 애써준 담당자들과 따스한 정담을 나누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스승을 통해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조사의 원력과 노고를 새기고, 원대한 미래를 꿈꾸는 정토행자로 거듭나리라 믿습니다. nbsp 내일은 두북어르신 봄 나들이가 있습니다.

2015.04.13. 20,212 읽음 댓글 8개

2015.4.9. 정토불교대학 담당자 수련

nbsp nbsp 두북수련원에서 새벽예불을 드린 후 6시 30분경 유수스님과 교육팀 2분, 해외에서 오신 2분과 함께 마곡사로 출발하였습니다. 곳곳에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꽃으로 추위를 잊게 하는 화창한 봄날, 전국에서 모인 정토불교대학 담당자들은 마곡사 입구에 모여 즐겁게 나들이를 준비하고 있었니다. nbsp 일주문을 지나 다함께 모일수 있는 장소에서 간단히 입재식을 한 후 해탈문을 지나 마곡사의 솔바람 길, 백범 김구선생의 명상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평온한 마음을 주는 편한 길도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오르막 길, 돌들이 알알이 박힌 길을 조금은 힘겹게 걷다가 문득 고개 돌려 보니 마치 진연분홍 구름이 연상되는 진달래꽃 길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nbsp nbsp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며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이었습니다. 진달래꽃이 봄이 왔음을 알리며 우리들을 반기듯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에 빠져있는 것 같았습니다. nbsp nbsp 따뜻한 햇볕아래 야외에서 스님의 지도에 따라 20분간 명상을 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어 봅니다. 솔잎 부비는 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모두가 한 몸이 되는 순간입니다. 명상이 끝나고 그 자리에서 스님과 함께 잠시 대화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nbsp 어느 지역 법당의 담당자분이 스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소속된 법당이 이제 갓 생긴 신생 법당이어서 시시콜콜 빚어지는 내부갈등에 대한 고민과 일부 신도님들이 사소하지만 법당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에 분별심이 나고, 또 그런 사람을 보고 신규 불자들이 보고 배울까봐 걱정되고, 얘기하면 가르친다고 뭐라하는 것 같아 갈등이 생긴다고 합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질문을 듣고 웃으시며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질문자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자기 이익과 물질적 편의를 추구하는 세상에서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적게 자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정토회가 창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질문자는 이런 사람이 와서 맑은 물을 흐린다고 생각하고 흐린 물 때문에 맑은 물을 버릴까 염려된다는 질문자의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정토행자로서는 아닙니다. 정토행자는 흐려진 세상을 맑게 만들겠다고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진흙탕을 두려워 할 게 아니라 깨끗하게 만들자는 게 정토회의 취지입니다. 대다수 사람이 정토회에 오지를 않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정토회에 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문제로 불편해 하면 안됩니다. ‘나의 수행문제이다.’라는 관점을 정확하게 잡고 일해야 합니다. nbsp nbsp 불편한 마음을 보는 것이 수행입니다. 아까 산에 오르막을 오를때 힘들었지만 이후에 이렇게 편안하게 있게되는 것처럼 이런 사람을 수용하며 힘든 경험을 해보고 극복하면 앞으로 어느 누구를 만나도 편안함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nbspnbsp nbsp 스님과의 짧은 대화시간이었지만 질문자의 답답한 마음을 뚫어주는 답변이었습니다. 이후 마곡사 보물인 오층석탑과 대광보전에 대해 스님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빠르게 산을 내려왔습니다. nbsp 경내에 참배의 예를 취하고 공양 후 수련관에서 본격적인 불교대학 담당자들을 위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산에서의 질문자처럼 솔직히 이야기해야 한다 하시며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불교대학 담당자들의 고민이 녹아있는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습니다. 그 중에 몇가지를 소개하면, nbsp nbsp 첫 번째 질문은 “큰 아이가 사춘기때 힘든 고비가 와서 정토회에 온 덕분에 잘 넘겨 그 은혜를 갚으러 불교대학 담당자가 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맡은 지역 법당 입학생이 적어 참가자들이 야간으로 이동하고 안 나올까봐 걱정이 되어 수업전날 떨리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합니까?” nbsp 스님께서는 “정토회 창립목표는 2600년전 근본불교 사상을 이 땅에 다시 구현하는게 설립취지입니다. 인구의 1 정도만 올바른 관점을 갖는 사람이 있으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의 접근이 용이하게 하기 위해 읍,면,동에 수행처 한 개 쯤 두려고 합니다. 그러면 가르침이 생활 속에서 실현되고 그 길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입학생이 많으면 좋지만,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면 됩니다. 일은 사람이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면 됩니다. 불교대학 학생이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가면 좋지만 중도에 그만둬도 좋습니다. 날씨가 맑으면 좋지만 수행자는 날씨에 연연해 하지 않습니다. 수행의 관점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행자는 농사철 최선을 다하되 수확에 연연해하지 않고, 어떤 일의 결과에도 연연해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답해주셨습니다. nbsp 두 번째는 “서대문 법당에서는 2년간 불교대학 진행해보니 입학생들이 첫 수업때 처음nbsp해 보는 예불의식과 불교용어 등으로 당황해합니다. 입학하기 전 이런 것들을 알려주었으면 합니다”라고 건의하였습니다. 이 건의사항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칭찬 아끼지 않으시며 수용하시겠다고 답하셨습니다. nbsp 세 번째 질문은 “담당을 맡으면서 나는 편한데 남편은 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편은 이번에 불교대학 졸업하고 정토회 그만두면 명품백을 사주겠다고 합니다. 불편한 마음과 죄책감으로 1년만 하고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님께서는 이 질문에 답변을 하시기 전 어떤 봉사자의 남편분께서 쓰신 편지를 읽어 주셨습니다. 그 편지 내용은 정토회 활동으로 아이와 남편의 불만을 토로한 내용이었습니다. 스님께서 남편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된다고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정토회에서 봉사하는 일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남편에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짜증내면서 우울하게 남편과 하루 종일 보내는 것보다는 밥 한끼 덜 해줘도 성질 고쳐 남편 마음 이해하며 함께 보내는 게 낫지 않습니까? 내가 바른 길이라 생각하면 내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나, 남편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하고 숙이며 성질부리지 않고 나아가야 합니다. 남편이 불평하더라도 위축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고비를 넘어가면 그게 어떤 길이 되든 괴로워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아무렇지 않게 됩니다. 누군가의 노예가 되는게 아니라 내 길을 분명하게 걸어가는 것이 행복의 길입니다.”라고 답을 주셨습니다. nbsp nbsp 네 번째 질문은 “엄마, 아빠가 이혼한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왔으며, 엄마와의 성격차이로 누군가에게 맞추는 것이 힘이 듭니다. 그런데 불교대학 담당을 맡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 불편하고 일반사람을 만나면 힘들고,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으려 하는게 힘듭니다.”라고 질문하니 스님께서는 nbsp “수행은 나의 욕구를 알아차릴 뿐 억누르고 참는 것이 아닙니다. 내 업식으로 일어난 상태를 올바로 알아차리는 연습은 금방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늘 일어납니다. 마음을 자기 쪽으로 돌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연습해 나가다 보면 옛날보다 좋아집니다. 그 문제를 안 보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 과제로 삼고 연습하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뛰어넘다보면 부처의 길로 가게 됩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질문을 계속 받으시면서 담당자들의 고민을 들어주시려 애쓰셨습니다. 담당자가 JTS, 통일활동 등에 대해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와서 고민하는 것, 윗사람과 부딪치는 고민 등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많은 분들이 고민하는 정토회 활동하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한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해주셨습니다. nbsp “아이 나이에 맞는 정토회 활동범위는 3세 전까지는 무조건 아이곁에 있어야 합니다. 4세에서 7세에는 엄마가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엄마가 자기 중심을 잡으면서 아이에게 늘 웃으며 이야기해야 합니다. 엄마는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요. 아이에게도 조금씩 역할을 주어 설거지도 나눠할 수 있으면서 같이 보내야 합니다. 초등학교때 50 정도 함께 하고, 중고생이 되면 30정도 함께 해서 이렇게 조금씩 독립할 수 있는 범위를 만들어 주세요” nbsp nbsp 긴 시간 불교대학 담당자들의 고민을 열성적으로 들어주시고 함께 나눠주시는 스님의 열정에 감사한 마음이 컸습니다. 스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각 지부별로 나와 자신의 지부를 대표하는 응원메세지를 발표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물단지 한 가득 안고 가는 기분으로 봄 나들이를 마쳤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서울로 출발하셔서 9시에 외부인사와 만남을 가진 후 정토회관으로 오셔서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nbsp 내일은 조찬을 겸한 기획위 회의가 있습니다.

2015.04.10. 22,346 읽음 댓글 12개

2015.3.30.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통일학교 제1강

nbsp nbsp 오늘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하신 스님께서는 새벽 기도 후 5시 30분에 아침공양을 하시고 서울로 출발하기 전에 탑곡으로 산책을 나가셨습니다. nbsp nbsp nbsp 작년에 봤을 때 약간 특이한 색깔의 진달래가 있었는데, 다시한번 그 진달래꽃을 관찰하기 위해 탑곡 저수지로 향했습니다. 작년에는 탑곡으로 오는 시기가 늦어져 진달래꽃을 많이 보지 못했었는데, 오늘 가보니 온산에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분홍빛깔의 특이한 진달래꽃도 피어 있어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예전에는 진달래꽃으로 꽃망방이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오졌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하시면서 직접 꽃송이가 많은 꽃을 보여주며 설명해주셨습니다. 요즘 우리가 보는 진달래는 꽃이 23개씩 달렸는데, 스님이 보여주신 진달래는 5개의 꽃이 한꺼번에 달려 있어 보기에도 훨씬 풍성해보였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탑곡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 산소에 잠깐 들러 산소상태를 체크하신 후 서울로 향했습니다. nbsp 11시 30분에는 평화재단에서 예전에 스님께서 가르친 제자분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현재 큰 회사의 사장님이신데, 스님께 인사도 드릴 겸, 또 강의 요청도 할 겸 찾아오셔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환담을 나누셨습니다. nbsp 그리고 지난번에 스님께서 민중미술가이며 설치미술가이신 임옥상 미술작가님이 하시는 ‘헌법을 다시 읽읍시다.’는 운동에 후원을 하신 적이 있는데, 임옥상 작가님께서 헌법 읽기 운동을 후원해주신 분들께 헌법을 새긴 종이병풍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직접 검은색과 흰색 종이에 헌법을 새겨서 병풍처럼 만든 것인데, 보기에도 너무 정성스럽고 감동스러워 보였습니다. nbsp nbsp nbsp 오후 2시부터는 서울 서초법당에서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제 1기 통일학교가 열렸습니다. 이날 강의는 사전에 접수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집중 밀착 강의였습니다. 시작 30분 전부터 이미 많은 대중들이 속속 모여들어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보통의 법회나 강의와는 다르게 법당에는 통일학교 학생을 위한 100여 개의 앉은뱅이 책상이 마련되어 벌써 ‘학교’의 분위기가 물씬 났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기획되고 기다려온 강의이기에 시작 전부터 조용한 가운데서도 기대감이 흘렀습니다. 통일의병학교는 오늘 입학을 시작으로 마지막 역사기행까지 총 6강으로 진행이 됩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의병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의병이 무엇입니까? 의병은 관병에 반대되는 말, 즉 정규군이나 직업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하므로 보통 민병이라고도 부릅니다. 의병이라는 용어는 조선시대 이후의 용어고 그 전에는 주로 민병이라고 썼습니다. 의병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의병은 다물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조선 말기에 중국에서 한군이 고조선을 침략했는데 이것이 단군 조선 이래 최초의 외세침략일 겁니다. 이때 관병이 전쟁에서 지고 나라가 망하니까 관병이 해체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애국심이 강한 민간인들이 스스로 일어나서 한사군에 대항하며 ‘한군을 우리 강토에서 몰아내고 조선의 옛 땅을 회복하자, 우리 조국을 되찾자’는 민병운동이 일어납니다. 이게 다물군입니다. nbsp 다물군에 참여해 그것을 계승한 사람이 고주몽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는 건국이념이 다물사상이예요. 그냥 나라 하나를 세우는 게 목적이 아니고 고조선의 옛 땅을 되찾자는 큰 원을 가지고 시작이 된 거에요. 때문에 고구려는 고조선을 이어서 동북아 대륙에서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그 후에도 나라마다 시대마다 민병이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의병이 눈부신 활약을 합니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해서 1차 의병봉기, 2차 의병봉기가 있었고 이 의병운동을 계승해서 나라 밖에서 독립군이 조직됐습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정의로운 뜻을 가지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재산을 다 바쳐 헌신했지요. 이를 일컬어 의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nbsp 그러므로 의병은 첫째,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고 자발적으로 일어난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꼭 싸워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니에요. 무기도 식량도 의복도 자기가 알아서 구해야 돼요. 다만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하는 두 가지 이유를 위해. 그래서 나라가 위태로울 때와 백성이 고통 받을 때 의병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의병은 반군하고는 달라요. 반군은 나라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할 때 임금을 갈아치우고자 일어나서 관군과 싸우지요. 그러니까 의로운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권력을 잡으면 보상이 따르죠. nbsp 그러나 의병은 반군이 아니에요 정부군과 싸우는 게 아니에요. 제 역할을 못한 나라, 그 관군을 도와서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겁니다. 의병은 실패하면 목숨도, 재산도 다 잃습니다. 비난도 받습니다. 그러나 관군은 죽으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든지 인정을 받습니다. 그럼 성공을 하면 어떠냐. 관군은 출세를 합니다. 반군은 권력을 잡으니까 이 또한 이득을 얻죠. 근데 의병은 승리해도 아무 얻는 게 없어요. 자기 본래 직업으로 돌아가야 해요. 때로는 관군으로부터 공로에 대해서 시기, 질투를 받고 모함을 받아 오히려 희생이 될 때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관병하기가 제일 쉽고 두 번째 반군은 위험도 따르지만 잘하면 보상을 받는데, 의병하기가 제일 어려운 겁니다. nbsp nbsp nbsp 그러니까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정의로운 생각으로 나서는 것이지 어떤 이익을 추구한다면 의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데서 의병의 성격이 규정됩니다. 비전문적이고, 자발적이며, 자급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성공하면 자기 직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의병은 관군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의병이 관군에 아무리 지극히 협력을 하더라도, 관군은 의병을 달가워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 오히려 사지로 내몰기도 합니다. 의병은 처음부터 이런 걸 감수해야 합니다. 이런 점을 알고, 여러분들이 의병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의병이라는 용어가 부담스럽다고 바꾸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성격상 의병이라는 말이 가장 맞아요.” nbsp 스님의 재치 있는 설명에 간간이 웃음이 터지기도 했지만, 강연은 어느 때보다 숙연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계속됐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렇다면 왜 지금 이때 통일의병이냐?”는 질문을 던지시며 강연을 이어가셨습니다. nbsp “의병이라는 것은 백성이 처한 고통을 해결하고자 일어나는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가장 큰 어려움, 국민의 가장 큰 어려움이 바로 분단에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통일의병이 일어납니다. 마치 일제 식민지배가 그 당시 백성이 처한 가장 큰 고통이라는 인식에서 항일독립의병이 일어났듯이, 분단상황에 대한 문제인식이 있어야 통일운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nbsp nbsp nbspnbsp nbsp 그런데 그런 인식이 없는 이유는 두 가지에요65279. 하나는 이해관계, 즉 같은 백성이라 하더라도 외세의 침략에 큰 손실을 보는 집단이 있는 반면, 오히려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어요. 이익을 보는 집단에서는 외세의 지배를 반대할 이유가 없겠죠. 두 번째는 식민지배가 많은 불이익이 있어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이 아니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 고통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nbsp 예나 지금이나 모든 국민이 이런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들 자기 사는데 급급하기 때문에 출발할 때는 올바르게 인식한 사람은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소수의 사람들이 거병을 해서 그들의 주장이 세상에 알려지고, 또 어느 정도 성과가 있어야 합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하면 대중 참여가 이뤄지기는 어렵습니다. 일정한 성과가 있어서 가능성이 열리면 대중 참여는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거기까지 만드는 게 사실 제일 힘들어요. 가능성 있는 데까지 끌어올리는 데 열정과 시간이 가장 많이 듭니다. 우리가 지금 거기까지 만들어가야 합니다. nbsp 그럼 통일에 있어 관군은 누구일까. 첫째 정부, 그중에서도 통일부가 대표적이죠. 국방부도 막강한 힘이 있습니다. 이런 주체들이 관군이라 할 수 있죠. 관군을 지원하는 통일연구원이나 민주평통 같은 준 관군도 있습니다. 이런 관군이 통일을 추진하는데 역부족이라면 밀어줘야 하고, 추진할 생각이 없다면 비판을 해야겠죠. nbsp 옛날 같으면 임금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임금이 안하겠다고 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국민이 주인이니까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면, 정부를 비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오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하면 반군이 되는 것 아니냐 하는 걱정이 그겁니다. 아닙니다. 민주국가에서 정부를 비판하거나 교체하는 것을 반군이라고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지금은 국민이 주인이기 때문에 국민의 의사에 맞지 않게 정부가 운영되거나 통일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요구하고 또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를 구성하도록 여론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병의 역할입니다.” nbsp 참가자들은 스님의 한 말씀, 말씀마다 깊이 호응하면서 높은 집중력을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여기까지 말씀하시고, 그렇다면 “지금 국민의 가장 큰 고통이 과연 분단 때문인가 검토해보자”고 하셨습니다. 크게 국내요인과 국제요인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정치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최근 중국이 급격히 부상하면서 우리를 둘러싼 역학관계, 즉 힘의 관계가 변화하고 있어 통일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nbsp 현재 국제정치 역학을 설명하기 전에, 분단 70년의 역사를 먼저 짚어주셨는데, 지난 1945년 전후로 국제 정치의 역학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에 따라 왜 우리가 이런 분단 상황을 맞게 됐는지 설명해주셨는데, 정말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학교에서 1945년 전후의 세계사와 국내 상황을 배울 때는 세력의 충돌과 계파가 하도 많아서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스님 설명 덕분에 통시적으로 그러면서도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nbspnbsp nbsp “1945년 이전은 어땠냐.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 시대였고, 우리는 그에 저항했지만 힘이 못 미쳐서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어요. 일본제국주의와 적대관계로 대항하고 있던 것은 연합군이었습니다. 연합군의 주축은 미국과 소련이었고, 작게는 중국도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국에 패망하면서 국제 질서는 연합군으로 함께 활동하던 미국과 소련이 양대 세력이 된 거예요. 당시 중국은 항일을 하던 세력이 둘이었는데,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과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이었습니다. 이 둘도 경쟁관계에 돌입하게 됩니다. 일본이 패망하자, 한반도는 전후처리를 두고 연합국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nbsp 남측은 미국의 후원을 받는 세력이, 북측은 소련의 후원을 받는 세력이 장악하게 되죠. 우리로서는 상해임시정부가 정통인데, 이미 들어와 있는 미국이나 소련으로서는 자기네들이 후원하는 세력이 주도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임정요원들은 남북 양쪽으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지요. nbsp 그런데 당시 미국이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국제 여론은 인민해방의 기치를 걸었던 소비에트가 더 컸어요. 봉건제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개혁, 혁명, 즉 민족해방이든 계급해방이든 여성해방이든 토지개혁이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명분 면에서 훨씬 앞섰던 거죠. 또, 우리 독립운동가 중에도 한반도의 지형지세로 보면, 중국 공산당의 동북항일연군에 참여한 사람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드나들며 전투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소비에트도 한반도와 연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쪽은 소비에트가 자기 세력을 형성하기가 어렵지 않았는데, 미국은 이남에서 자기 세력을 형성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미국이 후원하는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무장투쟁을 할 수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미국은 남한 내에서 주도를 잡는데 많은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미국이 미국에서 공부한 소수의 사람으로 중심을 세우면서 다수의 반대에 부딪쳤기 때문에 이런데서 남한 안에는 사회적 갈등이 많이 생겼습니다. nbsp nbsp nbsp 북한은 이런 남한 내부 정세를 보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통일할 수 있겠다 판단해서 전쟁을 일으켰죠. 사실 이 판단은 비교적 정확해서 한 달 만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내부 정세는 정확했지만, 국제정세를 오판했습니다. 국제정세 측면에서 보면 당시 미소경쟁이라고 하지만 미국이 최대 세력이었고, 미국이 용납을 안 하니까 UN에서 침략으로 규정받고 미국을 비롯한 UN군이 참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nbsp 미국의 참전으로 당장 전세가 뒤바뀌어서 이북으로 막 밀고 올라가니까 이번에는 중국이 나섭니다. 38선 위로 올라오면 자기네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한 것이지요. 당시 중국은 1949년도에 국·공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고 겨우 공산정부를 수립했는데 미군이 올라오니까 자기들 체제가 위태롭다고 보지 않았겠어요? 평양까지 올라가니까, 이것은 우리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겠다고 하고는 100만군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들 말로는 항미원조전쟁에서 참여한 것이지요. nbsp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시간은 흐르고,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는 어려울 것 같으니 1953년에 휴전협정을 맺습니다. 그 전에는 북한에도 북한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고, 남한에도 남한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쟁을 거치면서 각 진영내 반대세력은 모두 말살되다시피 합니다. nbsp 미국은 점점 초강대국이 되니 미국이 후원하는 한국은 점점 발전하고, 반대로 북한은 소련의 세력이 축소되는데다, 소련과 중국이 싸우면서 주체경제를 내세웠지만 경제가 점점 취약해집니다. 처음에는 북쪽이 우세했지만 점점 남쪽이 경제를 성장시키면서 70년대 들어 남북한 양쪽의 세력이 비슷해지면서 이제는 누구도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을 흡수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자각이 생기면서 탄생한 게 7.4 남북공동성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90년대 들어 세력판도가 급속도로 바뀌게 됩니다. 소련이 붕괴되고 동유럽이 해체되고, 미국이 세계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죠. 한국은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으니 안보가 튼튼하고 미국과의 경제협력으로 국제무대에서 더욱 성장해갑니다. 북한은 공산진영 자체가 붕괴되니 판로가 없어지고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으로 자본주의 사회와는 차단돼 있어 급속히 경제가 추락합니다. nbsp nbsp nbsp 중국은 개혁개방을 하면서 다시 일어났지만 체제의 성격이 바뀌었죠. 정치는 사회주의라지만 경제는 시장경제로 바뀌어, 북한과 정치적으로 안 맞아서 북중 사이에 갈등이 심화됩니다. 이러니까 북한은 더욱 체제붕괴위험에 몰리게 됩니다. 경제를 회복할 가능성도 없고 안보가 불안하니까 핵을 개발하는 쪽으로 가죠. 이런 상황에서 2000년대 6.15 공동선언이 일어납니다. ‘남북한이 각자의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위해서 상호협력하자.’ 이렇게 됩니다. 이런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국내 변화는 국제 변화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nbsp 스님 말씀 덕분에 우리나라가 국제정치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미국과 함께 이른바 ‘G2’ 시대에 돌입하면서 또 다시 달라졌습니다. 남한은 중국이 부상하면서 경제적인 필요 때문에 20년 전에 한중수교를 맺은 바 있습니다. 중국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경제적으로 대중의존도도 급격히 심화되는 상황입니다. 한중교역액이 한미와 한일교역액을 합친 것보다 1.5배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나 안보적으로는 여전히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즉 경제로는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고, 안보적으로는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스님은 이런 상황에 대해, 역사적으로 고려말 ‘원청 교체기’와 조선 중기 ‘명청교체기’, 그리고 구한말 ‘청일교체기’와 비교하면서, 그 시점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왔고, 어떤 결과를 맞았는지 설명해주셨습니다. nbsp “우리는 늘 대륙세력의 교체기에 우리끼리 싸웠습니다. 명나라와 원나라가 교체되던 시기에 고려말 기득권 세력은 원나라를 지지하고 신진세력은 명나라를 선택해서 이성계의 반정으로 조선을 건국했습니다. 그러면서 명나라에 자발적으로 사대주의를 선택했습니다. 명나라와 청나라 교체기에는 어떻습니까? 명나라에 대한 의리와 명분을 이유로 청나라와의 화친을 반대하는 세력이 많아서 두 번의 침략을 받고 결국은 패해서 속국이 돼버렸습니다. 삼전도의 굴욕을 다 들어보셨을 겁니다. 구한말에는 청의 지배를 받던 시기였는데 일본이 부상하니까 다시 우리나라에서 각축이 벌어졌습니다. 주변세력을 등에 업고 우리끼리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결국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버렸습니다. nbsp 일제 강점기말에는 일본이 주변 연합군과 싸우다가 망해버렸습니다. 만약 일본이 어느 한 나라와 싸워서 망했다면, 또 그 나라의 속국이 됐을지 모르지만, 연합군과 싸우다가 망하니까 그 연합국이 후원했던 세력이 제각각이라 우리 내부에서 또 여러 갈래로 분열하게 된 것입니다.” nbsp 스님 말씀을 듣다보니, 우리는 역사의 중요 고비마다 내부 분열 때문에 미래를 안전하게 선택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전쟁위기와 참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스님께서 “우리 민족은 발해 멸망 이후 천년 동안 주변 강대국에 좌우되는 약소국으로 전락했고, 그것이 지금껏 유지돼왔다”며 지금도 마찬가지임을 짚어주셨습니다. nbsp “중국이 부상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유동적인 상태입니다. 중국이 완전히 뜨는 해가 될지, 아니면 뜨다가 가라앉을지, 미국이 예측대로 서서히 가라앉을지, 아니면 다시 부상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북한 정부는 아직도 중국에 고개 숙이기를 거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 정부가 굉장히 문제가 많은 정부이지만, 통일의 시각에서 보면 아직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반대로 북한 정부가 얼마 못 버티고 중국에 고개를 숙이면, 통일은 더 어려워집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통일 후의 전망에 대해서도 잠깐 말씀해주셨습니다. 통일을 하면 저성장 정체기에 접어든 한국 경제의 활로를 찾을 수 있고, 동아시아의 통합과 평화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우리였습니다. nbsp “통일된 한국이 미국에 붙을지, 중국에 붙을지에 따라 동북아 정세가 달라집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주변국들 입장에서는 남북한이 통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러니까 통일을 하려면 어때요? 우리의 통일이 너희 두 나라에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통일을 하겠다고 우리가 마음을 똘똘 뭉쳐도 그들을 설득하기가 만만치 않은데, 우리 내부가 분열돼있기 때문에 그리고 국제정세의 흐름을 본다면 90는 계속 분단상태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습니다. nbsp 우리 개인적인 삶은 어때요? 우리 까르마를 보면 대충 미래가 예측되잖아요? 우리 업식도 바꾸기가 굉장히 어렵죠. 그래도 한 번 바꿔보자는 것이 수행아닙니까? 가만히 있어도 성불할 바에야 우리가 뭣 하러 수행하겠습니까? 그냥 기다리면 되는 거죠.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통일이 된다면 뭣 하러 노력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냥두면 안 되니까 우리가 나서서 ㅂㅏ꾸어 보자는 겁니다. nbsp 통일만이 전쟁의 위험을 막는 항구적 평화요, 희망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발해 멸망 이후 천년 넘게 주변국으로 전락해서 늘 우리의 운명이 주변 강대국의 운명에 좌우되는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즉 통일은 우리 민족이 천년의 한을 푸는 일이고, 천년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런 역사적 전환기에 우리가 의병으로 일어나 통일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게 부담이 아니라 큰 은혜요, 혜택을 입은 거라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nbsp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옛날에 왕이 주인이던 시대의 백성 의식이 있어서 ‘주인들이 안 하는데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이제 ‘국민이 주인이니,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인식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통일의병이 되어 통일운동을 한번 일으켜보자는 것입니다. 정토회 창립의 꿈이 하나는 불교중흥이고, 하나는 민족중흥인데, 민족중흥의 핵심은 분단된 나라를 통일해서 천년의 한을 풀어 천년의 꿈을 실현시켜보자는 것입니다. 이제 이 두 가지를 시도해볼 때가 왔습니다.” nbsp nbsp nbsp 의병이 무엇인지 의미를 규정하면서 시작했던 첫 강의는, 이렇게 우리가 왜 통일의병이 되어야 하는지 당부 말씀으로 끝났습니다. 2시간여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님의 첫 강의는 우리에게 ‘천년의 꿈’을 되살려주었습니다. 강의가 끝나자 누구랄 것 없이 한 마음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정토회 김은숙 행정처장의 입학 환영 인사가 이어졌는데, 감동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목소리가 살짝 떨렸습니다. 김은숙 처장은 “이젠 정말 통일을 이룰 시간과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 거린다”며 감동받은 소감을 나눠주었습니다. nbsp nbsp nbsp “통일의병, 하자, 하자, 하자”라는 구호 선창에 따라 힘차게 외치며 사진기를 향해 함박웃음을 짓는 새내기 ‘의병’들의 모습을 보니, 그 어떤 장애와 곤란이 오더라도 희망하는 이가 있는 한 꿈은 꼭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병 정신으로 우리부터 똘똘 뭉치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nbsp 강의 후 스님께서는 앞으로 5일동안 계속 진행되는 통일학교 강의를 위해 강의내용을 정리하시는 등 서울정토회관에서 업무를 보셨습니다. nbsp 내일은 아침 7시에 기획위회의, 통일학교 제2강,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입학식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2015.03.31. 22,344 읽음 댓글 13개

2015.3.19 (인도 17일째) 둥게스와리 마을리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 모임

▲ 전정각산에 올라 수자타아카데미를 바라보고 계신 스님 nbsp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오전에 둥게스와리 마을 리더들과 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과 모임을 갖고, 저녁에는 인도JTS 활동가들을 위해 법회를 해주셨습니다.nbsp nbsp 오늘도 새벽4시30분에 도량석 소리와 함께 전정각사 법당으로 올라가 새벽 예불 및 108배와 명상, 경전 독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6시30분부터는 발우공양을 하며 함께 밥과 국, 반찬을 나눠 먹었습니다. 오늘 발우공양에는 상카시아 석가족 청년회에서 온 인도인 세 분이 함께 참석해서 더욱 특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 nbsp ▲ 발우공양 nbsp 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석가족 세 분에게 소감을 물어보셨습니다. 석가족 분들이 “인도에서 옛날에 밥 먹는 방식과 너무 비슷해요” 라고 말하자 스님께서는 “그래요. 맞아요. 발우공양은 인도에서 전래되어 온 것이예요. 그런데 한국에서도 이렇게 인도식으로 밥을 먹는데, 너희들은 인도에서 살면서 왜 다 잊어버렸어요?” 라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nbsp nbsp ▲ 상카시아 석가족 청년 세 분이 함께한 발우공양 nbsp 그리고 스님께서는 어제에 이어서 발우공양 때 함께 외우는 소심경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오늘 배울 게송을 함께 따라해 보았습니다.nbsp nbsp “여등귀신중 아금시여공 차식변시방 일체귀신공 옴 시리시리 사바하nbsp nbsp오관일적수 팔만사천중 약불염차주 여식중생육”nbsp nbsp 이어서 스님께서 이 게송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 nbsp nbsp “여등귀신중, 너희 귀신의 무리들아. 아금시여공, 내가 지금 이 음식을 너희들에게 공양을 올리노니. 차식변시방 일체귀신공, 이 음식이 온누리에 있는 일체 귀신들에게 두루 베풀어져 다 먹고 배불러지이다.nbsp nbsp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만 생각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모양 있는 사람과 모양 없는 사람 두 가지를 늘 함께 생각했거든요. 사람이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양 없는 사람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양 없는 사람, 즉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도 함께 배불러지이다 하는 의식을 했단 말이예요. 그래서 자기 밥에서 조금 덜어서 발우에 모은 후 ‘옴 시리시리 사바하’ 하고 진언을 외우는데, 이것은 성경에 비유하면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의미입니다.nbsp nbsp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설교를 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설교를 듣기 위해 산 위에 올라와서 그 설교를 듣고 점심 때가 되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이다 보니 대부분 음식을 못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몇 사람이 음식을 들고 온 거예요. 예수님께서 “가지고 온 것을 이리 다 내어놓아라” 하니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그것을 다시 주욱 나눠주었더니 다 먹고도 남았다. 이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nbsp nbsp nbsp 이것이 현재에도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에서 값비싼 호텔에서 두 사람이 먹는 비용이면 이곳 마을 사람들 200명이 먹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돈을 가져와서 마을잔치를 한다고 하면 이것은 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호텔에서 먹으면 10여명 밖에 먹지 못하는 돈이 이곳에 오면 2천명이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손가락을 튕길 때에는 그런 마음이어야 합니다. 이 음식이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뻥튀기가 되어서 배고픈 무리들은 모두 배불러지이다. 배고프다고 내 먹는 데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밥을 먹을 때는 늘 배고픈 사람을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한끼 굶어서 그 돈을 북한에 보내주면 일주일치의 식량이 됩니다. 돈을 보시하는 것도 있지만 배가 고파봐야 배고픈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nbsp nbsp 오관일적수, 물 한반울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관해보니. 팔만사천충, 한량없는 생명체가 살고 있구나. 약불염차주, 만약에 이 염불을 하지 않고 이 음식을 먹는다면. 여식중생육, 중생의 고기를 먹는 것과 같다.nbsp nbsp 우리가 산다는 것은 이렇게 다른 생명의 희생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내가 알아야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아니, 깨끗한 물 한방울 속에 뭐가 들어있노’ 라고 하겠지만, 아무리 깨끗한 물 속이라도 수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죠. 이렇게 자신의 삶의 존재 방식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상태에서 생존하고 있는지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nbsp 늘 배고픈 사람을 함께 생각하고, 내 존재가 수많은 생물들의 희생 위에서 살고 있음을 자각하면서 음식을 먹는다는 발우공양의 의미를 들으니 ‘밥 한끼 먹는 것도 큰 수행이 되는구나’ 하는 것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 nbsp 이렇게 발우공양을 모두 마치고 아침 7시40분에는 SBS 촬영팀과 함께 전정각산에 올라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전정각산을 올라가시면서 21년 전 수자타아카데미를 처음 세울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유영굴로 올라가는 길 위에서 수백명의 아이들이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nbsp수자타아카데미가 세워지고 난 후 지금은 구걸하는 아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nbsp nbsp ▲ SBS 촬영팀과 함께 전정각산으로 출발하시는 스님 nbsp 그런데 올라가는 길에 구걸하고 있는 아이 한명을 만났습니다. 스님께서는 곧바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nbsp nbsp “너는 왜 학교 안 가고 여기에 있니?” “집이 가난해서 학교에 안보내줘요” nbsp 그러면 수자타아카데미에 오면 되지 않느냐?nbsp 수자타아카데미에서는 안 받아 주어요. nbsp 왜? 라르푸르에 살아요. 입학 대상이 아니예요. nbsp 알았다. 스님이 허락해 줄테니nbsp오늘 바로 수자타아카데미에 와서 입학 등록을 하거라”nbsp nbsp 이렇게 얘기를 해주고 스님께서는 전정각산으로 올라가시고 아이는 마을로 내려갔는데, 산을 내려와보니 이 아이는 정말로 학교에 다니고 싶었는지 몸을 씻고 새옷으로 갈아입은 후 입학 등록을 하러 학교에 와 있었습니다.nbsp nbsp ▲ 아침에 스님을 만나고 구걸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겠다며 교무실로 찾아온 아이 nbsp 스님께서는 전정각산 위에 올라가서 산 아래 수자타아카데미를 바라보고 계셨는데, 촬영팀이 스님께 “여기서 수자타아카데미를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라고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nbsp nbsp ▲ 전정각산nbsp nbsp “멀리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참 아름답게 보여요. 그러나 마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참 어렵게 살고 있죠. 자연 풍경은 아름다운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힘들게 살고 있어요. 여기 온 관광객들이나 멀리서 이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뇌를 잘 모르죠. 그러나 그 속에 들어가서 보면 사람들이 먹고 살기도 힘든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nbsp nbsp 제가 여기 학교를 짓겠다고 해서 여기 지은 것이 아니고요.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 마을과 제일 멀리 떨어져있고, 농토로 부적합한 황무지여서 못 쓰는 제일 위쪽 땅을 저한테 준 것이죠. 45평씩 10명이 450평을 초등학교 지을 자리만 저한테 기증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불교의 가장 중요한 성지인 부처님이 6년 고행했던 그 자리에 학교가 지어지게 된 것입니다.nbsp nbsp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였고요. 여기 유영굴에 성지순례를 왔다가 아이들이 구걸하고 있어서 그 이유를 물으니 “학교가 없어서 그렇다” 하고, 주민들은 “학교가 필요하다” 해서, 제가 “그럼 너네가 못 쓰는 땅을 좀 내어놓아라” 하니까 이 땅을 준 것이고, 그렇게 해서 학교를 짓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의미있는 학교가 된 것입니다.” nbsp nbsp 학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시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잔잔한 감동이 물밀 듯이 올라왔습니다. 한 수행자가 심은 작은 보리수 나무 씨앗 하나가 21년을 자라 지금은 제법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nbsp nbsp 스님께서는 부처님이 물을 드신 곳인 샘터와 명상을 하시던 자리에 남겨진 탑터를 더 둘러보시고 잠시 앉아서 명상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nbsp nbsp ▲ 부처님께서 명상을 하셨던 곳 nbsp 전정각산을 내려와서는 곧바로 10시부터 마을 리더들과 ‘어떻게 하면 둥게스와리 마을을 더 아름답게 가꿔나갈 것인가’ 하는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주에 1400여 가구를 모두 방문하시면서 새해 인사를 하셨는데, 마을 방문을 하시면서 생각해낸 마을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들을 이야기해 주시고 또 이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셨습니다. 쁘리앙카님이 스님의 입이 되어 원활히 통역을 해주어서 스님과 마을 사람들 모두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nbsp nbsp ▲ 마을 리더들과의 회의 nbsp 특히 오늘은 젊은 여성 분들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스님께서 마을에서 유치원 선생을 할 수 있는 여성들을 데리고 오라고 마을 리더들에게 부탁했는데 오늘 함께 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마을의 유치원 선생님을 이 여성들이 맡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시고, 주민들도 이것에 대해 만족해하는지 최종 의사를 확인해 보셨습니다. 모두들 여성들이 맡으면 좋겠다고 동의를 해주었습니다.nbsp nbsp ▲ 마을 유치원 교사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젊은 여성들 nbsp 또 유치원에 화장실을 지어달라는 요청에 대해 시범적으로 한두곳 지어서 운영해보고 난 후 확대하자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을별로 축구장으로 꾸밀 수 있는 공터가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하시고, 또 까나홀 마을은 하수구와 도로를 새로 정비하면 좋겠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얘기들을 함께 나누신 후 둥게스와리의 마을 개발에 대해 큰 틀에서 이런 제안을 해주셨습니다.nbsp nbsp “앞으로는 우리가 마을별로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조직을 만듭시다. ‘우리 마을을 어떻게 잘 만들 것이냐?’ 하고 머리를 맞대면 훨씬 더 빨리 개선할 수 있어요. 마을에 골목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 고민해서 벽돌을 깔아서 비가 와도 괜찮도록 하고요. 하수구로 어떻게 물을 뺄 것인지, 핸드펌프를 파더라도 어느 위치에 파서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하기 편하게 할 것인지, 주택을 지을 때도 협동해서 지으면 더 잘 지을 수 있고요. 비료나 벽돌, 시멘트 같은 것들은 1000명이 필요한 것을 동시에 구입하게 되면 훨씬 더 싸게 구입을 할 수 있습니다. 염소나 소를 키우는 문제도 이런 마을별 조직을 통해서 하면 키우는 사람에게 더 유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유 같은 것도 공동으로 모아서 판매를 하거나, 우리가 공장을 만들어서 판매를 하면 훨씬 더 이익이 남습니다.nbsp nbsp nbsp 현재처럼 이렇게 그냥 살면 더 이상 수입이 없으니까 공부한 젊은이들은 다 외지로 나가버리고 시간이 흐르면 노인들만 남게 됩니다. 땅은 외부인들이 다 사서 가져가 버리고요. 그래서 마을이 우리 것이 되지 못합니다. 자그디스푸르와 두르가푸르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 외부인들이 땅을 사버릴 겁니다. 왜냐하면 곧 도로가 나고 관광객이 몰려오고 가게가 생기면서 외부인들이 땅을 비싸게 준다고 하면 여러분들도 땅을 다 팔어버릴텐데 지금 팔 때는 돈이 비싼 것이 좋지만 한번 팔면 다시 살 수는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마을을 지켜야 합니다.nbsp nbsp 그럴려면 수입이 될 만한 것들을 자꾸 만들고, 주택도 개량하고 도로도 정비해서 가난하지만 예쁜 동네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도 대학까지는 못보낸다고 하더라도 고등학교까지는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노력하면 가능합니다. 20년 전에는 마을에 배운 사람들이 없어서 불가능했는데, 이번에 마을을 주욱 돌아보니까 수자타아카데미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많아져서 ‘이제는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nbsp nbsp 주민들 중에 한 분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nbsp nbsp nbsp “스님께서 저희들의 미래에 대해서 참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지금 스님말씀처럼 하지 않으면 우리 자식들도 우리들처럼 살게 될 것입니다.”nbsp nbsp 스님께서는 다시 한번 주민들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을 담아서 이야기하셨습니다.nbsp nbsp “젊은이들이 가야나 큰 도시로 돈 벌러 간다고 하지만 돈 조금 더 버는 것 외에는 남 밑에서 고생하고 건강만 더 헤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외부로 나가봐야 남들 밑에서 심부름 하는 것 외에 다른 할 일이 있어요? 여기서 조금만 노력하면 우리 동네에서 우리가 살 수 있어요.” nbsp 주민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렇게 2시간 동안 스님께서는 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핸드펌프부터 주택 개량, 마을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 등에 대해 스님의 아이디어들을 세세하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일 마을 잔치에 꼭 오시라고 부탁하시고 마을 리더들과의 회의를 마치셨습니다.nbsp nbsp 집안일이나 밭일을 제쳐두고 시간을 내어 준 마을 주민들에게 스님께서는 티셔츠 한 장씩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nbsp nbsp ▲ 회의에 참석한 주민들에게 티셔츠를 나눠주시는 스님 nbsp 그리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학교 급식으로 점심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주민들과 식사를 하시면서는 주민들이 농사를 어떻게 짓고 있는지, 모판을 만드는 것, 모내기 하는 시기 등에 대해 주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정말 화두를 참구하듯이 어떻게 하면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 몰입해 계신 것 같았습니다.nbsp nbsp ▲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사부지와 달로 점심 식사를 하고 계신 스님 nbsp 쉴 틈도 없이 바로 이어서 오후1시부터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 전체와 모임을 가지셨습니다. 오늘 교사들과의 모임은 무려 4시간 30분 동안이나 진행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 20년간 마음 속에서만 간직하고 있던 말씀들을 진솔하게 들려 주셨는데, 교사들은 스님의 간곡한 말씀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nbsp nbsp ▲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과의 모임 nbsp 무엇보다 그동안 수자타아카데미에서는 윤리와 도덕적은 측면에서만 항상 이야기를 해오셨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붓다 담마에 대해 이해를 해야 JTS의 활동 원칙에 대해서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붓다 담마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nbsp nbsp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인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에 이곳 둥게스와리는 시체를 갖다 버리는 곳이였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이곳이 수행하기 적당하다 생각하시고 이곳에서 6년간 정진을 하셨습니다. 밥도 안 먹고 하루에 대추 한알씩 드시기도 했어요. 이 동네에 대추 많이 있죠? 여러분들도 많이 주워서 먹었죠?nbsp nbsp 네 nbsp nbsp 그러니 여러분들도 부처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부처님처럼 조금 먹어야 하는데 너무 많이 먹어서 아직 부처가 못 되고 있는 거예요. nbsp nbsp nbsp 그래서 이런 고행상의 모습이 되도록 수행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깨닫지를 못하니까 왜 깨닫지를 못하는지 반성하기 시작했어요. 출가하기 전에는 욕구를 쫓아 갔습니다. 여러분들도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면 기분이 좋지요? 그것으로 행복을 삼는 것을 쾌락주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요? 욕망이 더 커져요? 그래서 욕망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돈이 1락만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1락이 생기면 그것으로 만족이 될까요? 이렇게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어요. 그렇게 치면 한국 사람들이나 미국 사람들은 괴로울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러분들보다 더 괴롭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이것이 길이 아니다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왕자였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물질적 풍요를 누려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길이 아닌 줄 알게 된 것입니다.nbsp nbsp 그래서 출가를 하고 나서는 욕구를 무조건 억압을 한 것입니다. 먹는 것도 포기하고, 자는 것도 포기하고 목욕도 안 했어요. 이렇게 고행을 하시다가 욕구를 억압하는 것은 욕구를 따라가는 것과 정반대이지만 사실은 이것도 욕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을 발견하십니다. 욕구를 따라가는 것과 욕구를 억압하는 것이 모두 욕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을 이해하세요? nbsp nbsp 세상에는 이 두가지 길 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이 두 길은 결국 욕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똑같아요. 이 두 길이 아닌 제 3의 길은 무엇일까요? nbsp nbsp nbsp 이 제3의 길을 바로 이곳에서 발견하신 겁니다. 그것은 붓다가 이 세상에서 처음 발견한 길입니다. 이 길은 욕구에 반응하지 않는 길이예요. 그것은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즉, 지금 다리가 아프다면 첫 번째 길은 다리를 펴는 거예요. 두 번째 길은 참는 거예요. 이 둘을 떠난 제3의 길은 그냥 ‘다리가 아프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예요. 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알아차리는 것이예요. 긴장하는 것이 아니고 ‘통증이 있구나’ 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다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nbsp nbsp 이렇게 6년간 수행하신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이곳은 정말 중요한 곳입니다. 보드가야에서는 100일 계셨고, 이곳은 6년 계셨어요. nbsp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후 어떻게 생활하셨는지 한번 봅시다. 당시는 노예제 사회였어요. 노예제 사회라는 것은 심부름하는 노예가 있다는 것이죠. 말을 모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옷 입혀주는 사람도 따로 있어야 하고, 음식 만드는 사람도 따로 있어야 하죠. 만약 왕이라면 종이 10명이든 30명이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출가한 뒤에, 또 부처님이 되신 뒤에 종을 데리고 살았다는 기록이 있어요? 당시에 집을 지어서 살았다면 누군가 밥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것 없이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해요? 밥은 남의 집에 가서 얻어 먹고, 옷은 시체 싸던 것을 주워서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고요. 그러면 남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렇게 부처님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가 없는 삶을 사셨어요. 부처님 뿐만 아니라 모든 수행자가 그랬어요.nbsp nbsp nbsp 그런데 지금 절은 어떻습니까? 절에 밥하는 사람도 있어야죠. 운전해주는 사람도 있어야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어야죠. 그러면 그 사람들 월급을 줘야 하잖아요?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스님들이 스승이예요? 사장이예요?”nbsp nbsp “사장입니다” nbsp “그러면 저는 어떻해야 합니까? 여러분과 저의 관계에서 저는 여러분의 스승이예요? 사장이예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동안 붓다 담마를 이야기하지 않았던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여러분들의 스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장을 하기 위해서 출가를 했어요? 스승이 되기 위해서 출가를 했어요?”nbsp nbsp “스승이 되기 위해서요.”nbsp nbsp “그런데 저는 지금 여기서 사장하고 있잖아요. 이것이 지금 저의 가장 큰 고민이예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스승이 되고 싶지 사장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모두 저한테 돈을 달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저는 사장이 되어야 하잖아요. 여러분들은 자꾸 저보고 사장이 되라고 하잖아요. 저는 여러분들의 스승이 되고 싶고, 여러분들은 자꾸 저보고 사장이 되라고 하고, 이 사이에 간격이 자꾸 생겨요. 이해하시겠어요?”nbsp nbsp “이해하는데 이해 안하고 싶어요.” nbsp nbsp “그런데 저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사장이 아니고 스승이예요. 왜냐하면 서로 돈을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예요. 모두 다 수행자예요. 수행자로써 역할이 분담되어 있을 뿐이예요. 부처님이 나이가 많을 때 아난존자가 옆에서 도왔죠? 그런데 종으로서 도왔어요? 월급 받고 도왔어요? 아닙니다. 그것은 수행자로서 역할을 분담한 것이예요. 우리는 지금 수행자로서 어떤 사람은 운전하고 어떤 사람은 밥을 하고 역할이 분담되어 있는 것이예요. 이것을 현대식으로 말하면 모두가 다 자원봉사자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nbspnbsp nbsp 그런데 지금 인도는 그렇지 않아요. 이런 모순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모순은 계속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수행자로서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이 저의 고민이예요. 둥게스와리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도 아니고 저의 친척들도 아니고 저의 자식들도 아니고 불교신자도 아니예요. 그러나 저는 둥게스와리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늘 생각해요. 집을 보면 어떻게 집을 개선해야 할까, 물은 어떻게 더 확보할까, 골목은 어떻게 정비해야 할까, 먹고 살 수 있는 수입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서로 협력하면 좋을텐데...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 마을에 살면서도 이런 생각을 안해요.nbsp nbsp 학교 안가는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하면 저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공부 못하는 아이를 보면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학용품이든 교복이든 어떻게 하면 더 좋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여러분들에게는 이 아이들이 다 여러분의 마을 아이들이잖아요. 다 인도 사람이고. 같은 둥게스와리 마을에 살고 있고, 우리 친척의 아들인데... 어떻게 하면 서로 힘을 합해서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좀 하면 좋겠어요.nbsp nbsp 우리가 조금만 더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하면 좋은 방법이 많이 있는데 전부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오늘 제가 붓다 담마를 이야기한 것은 이런 붓다 담마에 기초해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는 노동자를 고용하면 안돼요. 그것은 부처님 당시에 노예를 데리고 상가를 구성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월급을 주고 받는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가 아닌 우리가 같이 이 마을을 좋도록 만드는 같은 활동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현실은 이해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죽을 때까지 먹고 사는 것만 하다가 죽어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nbsp nbsp 여러분들이 만약 ‘우리는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같이 일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스님은 악덕 기업주가 아니라 좋은 스승이 될 수 있고, 좋은 스폰서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 좋은 사장은 될 수 있지만, 좋은 스승은 될 수 없어요. 여러분들은 사장이 필요하지 스승은 필요 없죠?” nbsp nbsp “저희들은 둘 다 필요해요.”nbsp nbsp nbsp “오늘 스님이 갖고 있었던 20년 동안의 고민을 처음 이야기 했어요. 왜 오늘에서야 이야기하느냐?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너무 어렸어요.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되었어요. 이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노동자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고 마을을 변화시키는 활동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학교를 운영하든, 유치원을 운영하든, 병원을 운영하든, 마을개발을 하든, 스님 일을 도와준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을을 가꾼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nbsp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정말 내 일이다’ 생각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일을 해도 지치지가 않아요. 그래서 둥게스와리 마을을 가난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듭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너 어디서 왔느냐?” 하고 물으면 “둥게스와리에서 왔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둥게스와리’라는 말 뜻이 원래는 ‘부정한 곳’이잖아요. 그러나 부처님이 이곳에서 6년간 수행함으로 해서 성스러운 곳이 되었단 말이예요. 그런데 천민들이 가난하게 살다보니 다시 나쁜 마을이 되었단 말이예요. 바깥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이곳에 가지 말라고 해요. 그런데 JTS가 들어오고 나서 위험한 것도 많이 없어졌잖아요.nbsp nbsp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설성봉님 같은 분의 희생이 있었어요. 설성봉님의 죽음이 없었다면 이렇게 치안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변화를 위해서는 이렇게 누군가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들 동네 버리고 도망갈 생각만 하잖아요. 그러지 말고 둥게스와리를 자랑스럽게 한번 만들어 봅시다.” nbsp 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인도인 교사들은 모두 “Yes” 라고 크게 대답했습니다. 인도인 교사들의 눈빛은 더욱더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습니다. 무려 4시간 30분 동안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 그리고 통역을 해준 쁘리앙카님에게 모두들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 nbsp nbsp 둥게스와리 마을을 가난하지만 가장 살기좋은 마을로 만들어보자는 스님의 말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통역을 하던 쁘리앙카님은 이곳에 봉사를 왔다가 강도의 총에 맞아 돌아가신 설성봉님을 스님께서 언급하자 목이 메여서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리고 사장이 아니라 스승이 되고 싶다는 스님의 호소에 뒤에 앉아 있던 한국인 활동가들은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nbsp nbsp 스님께서 법문을 마치고 법당을 나가시자 인도인 교사들은 한층 밝고 들뜬 마음으로 함께 모여서 내일 있을 마을잔치 준비를 위해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하는 모습 속에 평소보다 더 큰 생동감이 느껴졌습니다. 스님께서 교사들에 대해 그리고 수자타아카데미에 대해 그리고 둥게스와리 마을에 대해 갖고 계신 따듯한 사랑을 모두들 느꼈을 것입니다.nbsp nbsp 긴 시간 법문을 마치시고 스님께서는 잠시 쉬었다가 6시부터는 어제에 이어서 상카시아에서 온 석가족 청년들과 담마 센터 건립을 위한 회의를 하셨습니다.nbsp nbsp ▲ 상카시아에서 온 석가족들과 회의 nbsp 저녁 식사 시간도 없이 회의를 하고 나서 오후 6시45분부터는 인도JTS 활동가들을 위해 수행법회를 해주셨습니다. 인도JTS 활동가들은 원래 매주 목요일마다 수행법회를 영상으로 하고 있는데 오늘은 스님께서 직접 즉문즉설 법회를 해주셨습니다. 기존에 파견되어 있던 활동가들, 그리고 이번에 새로 파견을 오게 된 9기 행자대학원생들, 보광법사님, 쁘리앙카님, 그리고 SBS 촬영팀까지 카메라 촬영을 멈추고 스님께 고민을 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nbsp ▲ 인도JTS 활동가 수행법회nbsp nbsp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화를 잘 내는 편인데 인도에 파견을 와서 다시 아이들에게 화를 낼 것 같아 걱정이 된다는 분, 한가지 일에 집중을 잘 하지만 전체를 살피는 눈이 없어 고민인 분, 인도에 오고 나서 언어를 잘 몰라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서 조급한 마음이 올라온다는 분, 남들보다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을 어떻게 고쳐야할지 묻는 분, 행자 교육을 받고 있지만 잘 생긴 남자를 보고나 결혼한 사람을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는 분, 인도에 행자로써 파견이 되어 왔는데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 등 각각의 질문들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 nbsp 각각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소개해 드리지는 못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고 나서 스님께서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마지막으로 정리해 주신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가르침이 될 것 같아 함께 나눕니다. nbsp nbsp “욕구를 따라가면 반드시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반대로 욕구를 억압하면 괴로움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욕구를 억압하는 그 자체가 괴로움이 됩니다. ‘행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너무 자기를 규정하지 마세요. 일단 자기 상태를 늘 알아차리면 됩니다. ‘나는 이런 욕구에 치우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면 되지 ‘치우치면 나쁜 거야’ 이렇게 규정을 자꾸 짓지 마세요.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nbsp nbsp nbsp 부족하다고 열등의식을 가지며 안돼요. 열등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가 잘 나고 싶어서 열등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부족해요. 그러나 우리는 그 부족한 상태에서 출발해서 그 부족한 점을 개선해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너무 빨리 개선하려고 하면 부족한 것이 자꾸 부각이 되니까 자학 증상이 생기고, ‘나만 그런가? 사람이 다 그렇지 뭐’ 이렇게 부족한 것을 합리화시키면 현실에 안주하게 됩니다. 그러면 발전이 없어져 버려요. 부족한 현실에서 출발해서 부족한 것을 극복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엎어지고 넘어지고 하면서 꾸준히 해나가면 됩니다.nbsp nbsp 수행자는 밖을 보지 않고 자기를 봐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를 봐야 합니다. 원칙대로 행동하지 않는 도반이 있다고 합시다. 그것을 보고 화가 나는 것은 내 문제입니다. 이 화는 내가 다스러야 할 문제이지 저 사람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원칙을 어긴 것은 지적해서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화가 나서 지적을 하거나 불평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불평으로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그것은 자기 문제로 봐야 합니다.nbsp nbsp nbsp 개선이 필요하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 요구를 해야 됩니다. 불평하거나 화내지 않고 끝없이 문제제기를 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화가 나는 것은 내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연구하고 시도하고 도전해 나가야 하지요. 그러나 화가 나면 ‘내가 나를 고집하고 있구나’ 이렇게 내 문제라는 것을 딱 알아차려야 합니다. 화를 냈다고 하더라도 ‘앗, 내가 집착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면 수행자이고, ‘아니, 그런데도 화를 어떻게 안 낼 수가 있어?’ 이렇게 나가면 수행자 아닙니다.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자기로 돌아올 수 있으면 수행자이고, 그것을 놓쳐버리면 수행자가 아닙니다. 놓치면 다시 돌아오고, 놓치면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정진을 하는 것입니다.”nbsp nbsp 스님의 명쾌한 말씀에 인도JTS 활동가들도 모두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나서는 세명씩 네명씩 모여서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구체적이고 명쾌한 답변에 마음이 홀가분해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 nbsp ▲ 수행법회 후 마음나누기 nbsp 법회 후 8시30분부터는 사업논의 회의를 하였습니다. 내일 마을잔치 준비 상황을 함께 점검하고, 초등학교 인도인 책임자는 누구를 배정할지, 마을 개발 인도인 담당자는 누구를 배정할지 등을 논의하면서 인도JTS 2015년 사업계획을 거의 완성시켜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nbsp ▲ 인도JTS 사업논의 nbsp 이렇게 오늘 스님께서는 오전에는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시고, 오후에는 인도인 교사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시고, 저녁에는 인도JTS 활동가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셨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시려는 스님의 애정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오늘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nbsp nbsp 내일은 둥게스와리의 마을 잔치가 열리는 날입니다. 마을별로 장기자랑 경연대회도 하고, 푸짐한 음식도 함께 먹으면서 왁자지껄하고 신나는 날이 될 것 같습니다. 내일 하루 만큼은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들도 먹고 사는 걱정 없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 nbspnbspnbsp

2015.03.20. 47,906 읽음 댓글 26개

2015.3.16 (인도 14일째) 주인도 한국 대사님과 문화원장님 보드가야 대탑 참배

▲ 보드가야 대탑 보리수 나무 앞에서 주 인도 한국 대사님과 한국문화원장님nbsp안녕하세요. 상카시아 석가족 수련을 마치고 어제 오후 이따와역을 출발한 스님께서는 오늘 아침에 가야역에 도착한 후 오후에는 주 인도 한국 대사님과 한국문화원장님께 보드가야 대탑을 안내하신 후 저녁 식사 자리에 함께 하셨습니다.nbspnbsp어제 낮 12시40분에 이따와 역을 출발한 기차는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더니 원래 밤11시30분에 도착 예정이였으나 7시간을 연착하여 오늘 아침 6시40분에 가야역에 도착했습니다. 인도의 기차는 도착 시간을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고 하는데 오늘도 그랬습니다. 스님께서는 기차 안에서 일어나시자 마자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 기차 안에서 명상하시는 스님nbsp어제밤이나 늦어도 오늘 새벽 일찍 도착하는 것으로 알고 미리 가야역에 마중을 나와 있던 주연우님은 스님 일행을 기다리다 지쳐 오토릭샤에서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nbspnbsp▲ 가야역에 마중을 나온 주연우님nbsp아침 8시에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하여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후 오전에는 장거리 이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겸 휴식을 취했습니다.nbspnbsp▲ 16시간 동안의 먼 길을 달려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한 스님 일행nbsp12시30분에 점심을 먹고 오후1시30분에는 주 인도 한국 대사님과 한국문화원장님이 수자타아카데미를 비롯한 보드가야 대탑을 방문하러 오셔서 최동호님은 공항으로 대사님 일행을 마중나가고, 스님께서는 보드가야에 나간 김에 잠깐 시간을 내셔서 차크마 템플에 계시고 인도JTS 및 인도정토회 부이사장이신 쁘리야팔 스님을 만나셨습니다. 차크마 템플에 스님께서 도착하자 쁘리야팔 스님은 너무나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스님께 합장을 하며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는 쁘리야팔 스님nbsp쁘리야팔 스님은 얼마 전부터 스님을 계속 뵙기를 요청하셨습니다. 2013년부터 인도 불자 대회를 보드가야에서 매년 8월에 개최해 오고 있는데 올해는 스님께서도 함께해 주실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행사 내용을 검토해 보고 답변을 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nbsp“불자들이 인도 사회에서는 소수 민족 취급을 받는데 우리는 소수 민족이 아니라는 것, 마하보디 소사이어티도 우리 인도 불자들에게 돌려달라는 것, 성지로 가는 도로를 제대로 정비해 달라는 것, 공무원 시험에 빨리어 시험이 없어졌는데 다시 복원해 달라는 것, 대탑 근처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등을 우리는 인도 정부에 요청하고자 합니다. 스님께서 좀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요?” nbspnbsp“이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정부와 관계된 일입니다. 인도 국민으로서 당연히 요구해야 하는 일이지만, 제가 지원할 일은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비정치적인 일입니다. 인도에서 상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승려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미승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신도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테라바타와 마하야나, 탄트라를 서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제가 서포트를 할 수 있는데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인도 불자들 자체에서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nbspnbsp그리고 쁘리야팔 스님은 보드가야 대탑 주변에 태국 절이 있는데 그곳 주지스님과 스님이 서로 만나면 좋을 것 같다고 적극적으로 요청을 해서 태국 절을 잠깐 방문해서 주지스님을 만나 뵈었습니다.nbspnbsp▲ 보드가야 대탑 바로 옆에 세워진 태국 절nbsp태국 절 주지스님은 10년 전에 스님과 만나셨던 인연을 금방 기억하시고는 “륜 반테지” 라고 하시며 무척 반가워 하셨습니다.nbspnbsp▲ 태국 절 주지스님nbspnbsp태국 절 주지스님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대사님 일행이 보드가야 대탑 앞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태국 절 주지스님께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다고 인사를 한 후 보드가야 대탑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보드가야 대탑 앞 사무실에 도착하니 이준규 주 인도 한국 대사님과 김금평 한국문화원장님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대사님과 원장님에게 각각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이곳에 방문해 주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셨고, 대사님은 “그렇지 않아도 예전부터 꼭 스님을 뵙고 싶었는데 오늘에서야 뵙게 되었다” 라고 하시면서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nbspnbsp▲ 보드가야를 방문하신 이준규 주 인도 한국 대사님nbsp그리고 대탑 안에 있는 법당을 함께 참배하고, 스님께서는 대탑과 대탑 주위에 있는 유적지를 하나씩 안내해 주셨습니다.nbsp▲ 보드가야 대탑 안 법당 참배nbsp“부처님께서는 강변의 큰 보리수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으셔서 이곳에서 마지막 정진을 해야되겠다고 결심을 하십니다. ‘내가 깨닫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 즉 죽어도 좋다는 결심을 합니다. 이것을 대결정심이라고 합니다. 그러고나서 49일만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이곳입니다.”nbsp▲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나무nbspnbsp“성도 후에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나무 아래의 그 자리에 앉아서 일주일 간 깨달음의 기쁨을 만끽하셨고, 두 번째 주에는 앉았던 보리수 나무를 응시하면서 일주일 간 정진을 하셨어요. 세 번째 주에는 열아홉 발자욱을 왔다갔다 하면서 행선을 하셨습니다.”nbspnbsp▲ 세 번째주에 부처님께서 열아홉 발자욱 행선을 하신 곳nbsp“네 번째 주는 가만히 앉아 있는데 몸에서 빛이 나는 방광을 하셨어요. 다섯 번째 주는 어떤 바라문이 지나가다가 부처님을 만나서 “이 세상에서 제일 고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니 부처님께서 “마음이 청정한 자가 가장 고귀합니다” 했더니 그 바라문이 “흥” 하고 콧방귀를 끼고 지나갔다고 합니다.nbspnbsp여섯 번째 주는 이 지역에 홍수가 나서 이곳이 다 물에 잠겼나 봐요. 일주일 내내 비가 쏟아져서 큰 용왕이 부처님 몸을 보호했다고 해요. 일곱째 주에는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데 두 명의 상인이 지나가다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서 성도 후 처음으로 식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을 얻기 전에 49일, 얻은 후에 49일 해서 98일 동안은 아무것도 안드셨는데, 그러니 인간이 단식을 한다면 100일까지는 가능할 수도 있구나 알 수 있죠.”nbsp▲ 여섯 번째 주에 용왕이 부처님 몸을 보호했다는 무차린다 연못nbsp이렇게 대탑 주위의 유적지를 하나씩 설명하신 후 대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대사님과 원장님은 스님께서 이렇게 직접 안내를 해주시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감사해 했습니다.nbspnbsp▲ 대탑 앞에서 함께 기념촬영nbspnbsp그리고 5시30부터는 마하보디 소사이어티에서 국제불교연합 주관으로 인도의 방송, 신문들과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대사님은 인도의 불교 성지를 잘 가꿀 수 있도록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본격적인 지원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도 함께 자리해 기자 회견 모습을 잠시 지켜보셨습니다.nbspnbsp▲ 인도 언론사들과 기자회견nbsp이어서 고행을 끝내고 네이란자강 강변에 쓰러져 있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수자타 여인의 집터에 세워진 탑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해가 다 져서 어두웠지만 스님께서는 “대사님이 언제 한번 이곳에 와 보시겠어요? 어두워졌지만 한번 보시고 갑시다” 하시며 자세히 안내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수자타 여인의 집터에 세워진 탑nbspnbsp그리고 수자타의 탑에서 수자타 여인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는 곳, 부처님이 네이란자라 강변에서 쓰러지셨던 곳 등을 손으로 가리키며 소개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이어서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한 곳을 찾아가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부처님이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한 곳nbsp“우르벨라 가섭을 교화하기 위해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는 부처님께 우루벨라 가섭은 머물 곳이 없다며 거절을 했어요. 그러자 부처님은 “어떤 자리도 좋습니다”고 했어요. 우르벨라 가섭은 부처님을 ?아낼 심산으로 “당신이 머무를 곳은 화룡이 있는 곳 밖에 없다”고 해서 부처님은 화룡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우르벨라 가섭은 ‘좋은 수행자를 잃었구나’라며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무사히 자고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은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를 하였는데, 바로 그 화룡굴이 바로 여기입니다.nbsp우루벨러 가섭이 교화가 되자 그의 제자 500명도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고, 사용하던 제사 용구를 모두 물에 던져버렸습니다. 물에 떠내려 오는 형님의 제사 용구를 보고 형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염려하여 ?아온 동생 나디 가섭은 형님의 말을 듣고 300명 제자와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고, 막내 동생 가야 가섭 역시 200명의 제자와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1000명의 제자들을 교화하고 이들과 함께 라즈길, 당시의 ‘왕사성’으로 갑니다. 라즈길에서도 빔비사라 왕을 교화하고 죽림정사를 기증받는 등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내일 라즈길로 가서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대사님과 원장님에게 이렇게 설명을 해주신 후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한 이야기까지 이곳에서 설명해 드려야 내일 방문하게 될 라즈길에 있는 성지들에 대한 스토리가 연결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이시면서 내일 라즈길 방문 일정에 대해서도 간략히 소개해 주셨습니다.nbspnbsp이렇게 안내를 마치시고 나서는 보드가야 시내에 있는 식당으로 와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대사님께서 특별히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봉사자들에게도 식사 초대를 해주셔서 오랜만에 봉사자들도 보드가야로 나와서 함께 자리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봉사자들을 대사님께 소개하고 있는 스님nbsp스님께서는 봉사자들 한명 한명을 대사님과 원장님에게 소개해 주셨습니다. 대사님은 “먼 곳에 오셔서 정말 훌륭한 일들을 하고 있으십니다” 라고 하시면서 격려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오후 불식을 하고 계셔서 저녁 식사는 하지 않으시고, 함께 자리한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데에 집중하셨습니다. 저녁식사 자리에는 국제불자연합 관계자들과 이곳 가야 지역의 행정 책임자인 DM, 이 근방의 6개 디스트릭을 총괄하는 컴미셔너 등이 함께 자리해서 스님께서 둥게스와리 지역에서 펼치고 있는 구호활동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수자타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한 지난 22년 동안의 구호활동에 대해 간략히 소개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저희들은 둥게스와리에서 22년 전부터 학교와 병원, 마을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문맹퇴치를 위해 활동해 왔습니다.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100 문맹 지역이였습니다. 이제 20년이 되었기 때문에 문맹퇴치를 넘어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립학교 설립 허가를 정식으로 받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사립학교가 되면 이제는 직업학교도 운영하려고 합니다. 시설은 이미 다 갖춰져 있습니다.”nbsp스님의 설명을 들은 이 지역의 DM과 Commissioner는 “참 훌륭한 일을 하고 있으십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행정 책임자인 두 분께 둥게스와리의 성지 가꾸기 사업에 대해서도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nbspnbsp▲ 스님 맞은 편에 앉은 분이 DM과 Commissionernbsp“불교 성지를 잘 가꿔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불교 성지가 너무 복잡합니다. 그래서 조용히 명상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둥게스와리는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하신 곳입니다. 이곳만큼은 조용한 성지로 개발했으면 좋겠습니다. 순례도 오지만 명상을 할 수 있는 공원을 겸해서 가꾸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개발을 하는 모습을 보면 보드가야처럼 복잡하게 개발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아직은 빈 공터가 많으니까 공원을 많이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도로가 좋아지면 관광객이 훨씬 더 많이 올 것이기 때문에 주차장을 멀리 떨어뜨리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둥게스와리만큼은 외국 사람들이 왔을 때 조용히 명상할 수 있게 해주세요.”nbspnbsp스님의 간곡한 요청에 두 분께서도 긍정적으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인도에 있는 많은 성지들이 보드가야처럼 난잡하게 개발될 것을 많이 염려하고 계셨는데, 관광객 유치에 더 관심이 많은 인도 정부가 과연 어느만큼 스님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줄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nbspnbsp저녁식사를 마칠 때 즈음 대사님께서는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봉사자들을 주욱 둘러보시더니 “다들 싱글들만 있네요”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싱글이 아니면 이런 오지에 올 사람이 누가 있어요?” 라고 하니 대사님도 웃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한국 젊은이들이 이런 오지에 와서 봉사활동을 꼭 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한국의 젊은이들이 너무 한국에서만 살아서 나약한 것 같아요. 정부 차원에서 청년 실업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정부 차원에서 해야할 일이고요. 젊은이들은 스스로 이런 오지에 나와서 살아보면 한국이 살만한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한국 안에서만 있으면 진짜 못 살 나라라고 느껴지는데... 제가 여기 마을을 방문해 보면 대부분 스무살도 안되어서 장가가서 애 낳고 부모 모시고 흙집이지만 자기 집을 갖고 살거든요. 그래서 제가 농담으로 “너네는 대학도 나왔는데 장가도 못가고 시집도 못가고, 이게 꼭 경제적인 문제만일까?“ 그러거든요.”nbsp스님의 말씀에 대사님도 크게 공감을 하시면서 특히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이렇게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격려 말씀을 해주시고 계신 이준규 주 인도 한국 대사님nbsp“여러분들이 이곳 오지에 와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 대한민국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느낍니다. 여러분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고,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는 월급도 많이 받고 나라에서 제공해 주는 집에서 살면서 외교를 하는 것이지만, 여러분들은 월급도 안 받고 고생하면서 자원봉사를 하고 계시는데, 여러분들의 이런 노고가 작은 밑거름이 되어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여러분들의 후손들이 그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nbspnbsp대사님의 격려를 듣고 나니 수자타아카데미 활동가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대사님은 이런 노고가 언젠가는 결실을 맺게 된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인도가 크게 발전하게 되었을 때 자신들이 어려울 때 한국의 청년들이 이렇게 헌신적인 활동을 했음을 기억한다면 이것 자체가 우리의 후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대사님의 따뜻한 격려 말씀을 듣고 수자타아카데미의 활동가 9명은 트럭을 타고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왔습니다. 한국문화원장님은 배웅을 해주시며서 화려한 호텔 레스토랑을 나와 털털 거리는 트럭 뒷칸에 비좁게 앉는 활동가들을 보며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이런 오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애틋하게 보이셨나 봅니다.nbspnbsp▲ 덜컹 거리는 트럭에 탑승하는 인도JTS 활동가들nbsp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하니 밤10시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과 함께 내일 대사님 일행이 수자타아카데미를 방문할 때 어떻게 안내 할지에 대해서 간단히 역할분담을 하고, 또 앞으로 스님께서 한국 출국 전까지 세부 일정을 어떻게 가질지에 대해서 논의를 한 후 밤11시 넘어서 모든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 인도에서의 앞으로 남은 일정에 대해 의논하시는 스님nbsp내일은 오전에 대사님과 원장님 일행이 수자타아카데미로 오셔서 함께 아침식사를 하신 후 수자타아카데미와 전정각산에 대해 스님께서 안내를 해주시고, 오후에는 라즈길로 가서 제띠안, 영축산, 죽림정사에 대해 안내해주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03.17. 56,187 읽음 댓글 2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