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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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14 발우공양 후 중국 출국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서울 공동체 발우공양에 참석해 대중들의 건강 관리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눈 후 나진·선봉 지역의 홍수 피해 지원 답사를 하기 위해 중국에 다녀왔습니다.nbspnbsp어젯밤 새벽 1시에 귀가해서 밤새 업무를 보다가 대중들보다 일찍 새벽 4시에 법당에 내려와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nbspnbspnbsp기도 후에는 발우공양에 참석해 공양을 드신 후 대중공사 시간에 공동체 대중들이 참회하는 내용을 듣고나서 몇가지 당부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먼저 행자님들의 참회 내용에 대해 언급하면서 법회 시간에 조는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환기를 시켜주었습니다.nbspnbspnbsp“행자들이나 행자대학원생들이 법회 시간이나 강의 시간에 졸았다는 참회가 거의 계속 되고 있네요. 한 두명이 하는 것도 아니고요. 원인이 뭘까요? 행자 생활이 너무 고단해서 앉기만 해도 졸릴 수 밖에 없는 생활 상의 문제인지, 군대에서 훈련병들처럼 긴장해 있다가 편안히 앉아서 들으니까 졸리는 문제인지, 건강 상의 문제인지, 행자님들끼리 한 번 연찬을 해보세요. 되게 피곤해서 잠을 못 잤거나 할 때는 강의 듣다가 잠시 졸 수도 있지만 거의 조는 것이 일상화되었다면 그것은 건강 상의 문제이거나 집단적 생활 상의 문제일 수 있거든요. 어쩔 수 없는 문제인지 그렇지 않으면 개선할 수 있는 문제인지를 한 번 검토해 보면 좋겠습니다.”nbspnbsp행자님들은 스님의 이야기에 뜨끔했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스님의 당부를 깊이 새겨 들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병가 중인 법광 법사님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치료를 최우선으로 해서 휴식을 많이 취해줄 것을 당부했고, 출판국과 세계 100회 강연 책 출판 일정을 점검한 후 김제동씨와 함께하는 청춘콘서트의 11월 일정에 대해 실무 준비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nbspnbspnbsp그리고 콧물이 계속 나오는 증상을 앓고 있는 행자님에게도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예불 시간에도 계속 코를 풀어서 스님도 걱정이 되었나 봅니다.nbspnbspnbsp“아직 나이가 서른도 되지 않았는데 앞으로 50년 동안 맨날 킁킁 거리면서 어떻게 살려고 그래요? 개선할 수 있는만큼 개선하도록 하고, 핵심 원인이 공기 때문이라면 업무를 문경이나 봉화, 두북 수련원으로 바꾸고, 치료가 가능하다면 치료를 하세요. 현 상태에서 어쩔 수 없다면 예불 시간이나 기도 시간 등 대중과 같이 있을 때는 밖에 나가서 코를 풀고 들어오는 게 예의예요. 첫째는 치료가 중요하고, 둘째, 치료를 못한 상태에서는 명상을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강의를 듣거나 할 때는 밖에 가서 코를 풀고 들어오도록 그렇게 해야 돼요.”nbspnbsp행자님은 스님의 말씀을 듣고 열심히 치료를 받겠다고 크게 대답했습니다. 오늘 발우공양 시간은 주로 건강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nbspnbspnbsp발우공양 후에는 중국으로 가기 위해 곧바로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북한의 라진 선봉 지역에 홍수 피해가 아주 심하다고 해서 JTS가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오전 비행기로 중국으로 갔다가 상황을 점검한 후 저녁 비행기로 인천공항으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연이어 회의를 가진 후 저녁 7시에는 환경재단 주최로 열리는 그린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기후 변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환경과 평화는 무엇인가요“를 주제로 강연을 할 에정입니다.nbsp

2015.09.15. 24,146 읽음 댓글 23개

2015.9.11 대전 청춘콘서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김제동씨와 함께 충남대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 참석해 대전 지역 청년들을 위해 강연했습니다.nbspnbsp어젯밤 새벽 3시에 울산 두북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눈을 붙인 후 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아침 일찍부터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 텃밭에 심어놓은 가을배추, 무, 상추 등을 살펴보더니 많이 메말라 있는 것 같다며 물을 듬뿍 주고, 사이 사이에 난 잡초들을 제거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무엇보다 지난주에 심은 가을국화가 너무 예쁘게 자라 있어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배추와 무도 새싹을 드러내어 기쁨을 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스님은 “내년에는 마당에 있는 잔디를 일부 드러내고 텃밭을 더 늘이자”며 농사일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아마도 내년에는 텃밭에 다양한 작물들이 더 심어져서 풍성함을 더할 것 같습니다.nbspnbsp텃밭에서 딴 고추 등의 작물들로 아침 공양을 한 후 햇살이 뜨거워지기 전에 예초기를 들고 부모님 산소로 향했습니다. 지난 6월에 전체적으로 벌초를 한 번 하기는 했지만 곧 추석이 다가와서 다시 벌초를 하기로 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산소 구석구석까지 깔금하게 한 후 내려왔습니다.nbspnbsp오후에는 점심 공양을 마치고 텃밭에서 농사일을 더 하다가 원고 교정 업무를 본 후 3시에 두북을 출발해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nbspnbsp청춘콘서트가 열리는 대전 충남대 정심화홀에는 오후 6시 30분에 도착했습니다. 오후에 잠깐 비가 내린 관계로 신청한 사람들이 혹시나 적게 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1층 좌석은 모두 매진이 되고 2층도 거의 다 채워져서 만석을 이루었습니다.nbspnbsp▲ 대전 청춘콘서트가 열린 충남대 정심화홀nbspnbsp저녁 7시 정각이 되자 자리를 가득 메운 1400여명의 청년들이 내지르는 큰 함성 소리와 함께 인디밴드 요술당나귀가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박수 치고 웃다 보니 어느새 행사장은 모두가 하나가 된 듯 출렁거렸습니다.nbspnbsp▲ 요술당나귀의 노래 공연nbsp청년들의 답답한 현실을 보여주는 자료 영상이 나가고, 이어서 사회자 오청춘씨의 “행복의 나라로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라는 멘트와 함께 드디어 청춘콘서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오늘 콘서트가 이곳 정심화홀에서 열릴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신 충남대 유학연구소 김세정 교수님이 무대로 나와 청년들을 환영하는 인사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행복공청회’가 시작되고 큰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로 걸어나왔습니다.nbspnbsp스님은 먼저 과연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수 있는지, 또 이루어진다고 해서 결코 좋은 것인지 질문을 던지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nbspnbsp“인생이란 살다 보면 누구나 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제 뜻대로 다 안 된다는 말이에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진 사람 있으면 한번 손들어 보세요. 없죠? 세상일이라는 게 우리가 바라는 대로 다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다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누구나 그래요. 그래서 천국이나 극락에서는 원하는 대로 다 된다고 해요.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nbspnbsp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어요. 다 될 수가 없는데 다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되었을 때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런데 원래 이 세상이라는 것은 사람이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다는 점을 사실 그대로 알고 있으면 어떨까요? 되면 다행이고, 안 되어도 그만이에요. 괴로워할 이유가 없어요. 원래 다 되는 게 아니니까요. 안 되었다며 괴로워한다고 또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안 되면 그만두면 돼요. 그래도 하고 싶으면 또 하면 돼요.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그만이에요. 두 번 해봤으니까 됐다며 그만두던지, 그래도 하고 싶으면 또 하면 돼요. 괴로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안 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원하는 대로 다 되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과 생각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똑같은 일을 당했는데도 괴로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nbsp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다 될 수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많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면 반드시 좋다는 보장이 없어요. 자기 혼자만 생각해서 ‘내가 원하는 게 이루어지면 좋다’고 하지만 실제로도 그럴까요? 대전 시장 선거에 10명이 나왔는데 모두 시장이 되고 싶어해요. 기독교인은 하나님한테 빌고, 불교인은 부처님한테 빌어서 다들 원하는 대로 이루었어요. 시장이 10명이 되면 대전이 잘 될까요?nbspnbsp이렇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지면 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려요. 기차나 버스 타고 갈 때 내가 좀 늦었을 때는 좀 기다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면 기차는 출발을 할 수 없어요. 먼저 온 사람은 ‘왜 안 출발하지? 빨리 가자’ 하고 늦게 온 사람은 ‘아직 가지 마’ 이러니까, 다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면 아무것도 안 돼요.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곳이 천국이라고 하지만 그런 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입니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극락이라 하지만 그것은 극락이 아니라 극고입니다. 즐거움이 지극한 것이 아니라 고통이 지극해요. 어떻게 보면 오늘날 여러 어려움 속에서나마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돌아가고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지 않는 덕분입니다.nbspnbsp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질 수도 없고 이루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nbspnbsp그런데 대부분 자기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 이루어지면 힘 있는 자에게 부탁해서라도 이루려 들어요. 힘이 무지무지하게 커서 뭐든지 다 알고 뭐든지 할 능력이 있는 존재, 즉 전지전능한 신을 하나 내세워놓고 빌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불교든 기독교든 지금의 종교가 이런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종교 믿는 인구가 많다고 해도 세상이 좋아지지 않아요. 합리적이고 올바른 사유 위에 생겨난 게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어리석은 생각과 욕망에 바탕해 생겨났기 때문에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세상이 평화로워지거나 좋아지지 않습니다.nbspnbspnbsp그러면 원래 부처님, 예수님의 가르침은 어땠을까요? 이런 어리석은 생각, 잘못된 생각을 깨우쳐서 바른 생각, 바른 마음가짐을 갖도록 해서 괴로워하지 않고 살아가도록 안내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되어버렸어요. 부처님, 예수님을 팔아서 어리석음을 합리화하고 있지요.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똑똑해서 종교를 잘 안 가지는지도 모르겠어요. 현실의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저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공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현실의 종교에 있는 예수님과 부처님이 아니라, 우리의 어리석은 생각을 바르게 깨우쳐서 이 답답함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해준 위대한 스승들입니다. 이렇게 아셔서, 종교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조금 재고해주시면 좋겠어요.”nbsp원하는 대로 안 된다며 안절부절하며 살았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외부의 조건이 아닌 우리들의 어리석인 생각이 괴로움의 원인이였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nbsp스님은 이렇게 우리들의 인생이 괴로운 원인에 대해 진단을 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깊이 있는 답변이 이뤄지다보니 두 명의 질문만 받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한 남학생은 스님이 출가할 때 가졌던 의문이 무엇이었는지 들었는데 스님은 그 답을 지금 얻었는지 물었고, 한 여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왜 정당하게 배분하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우리가 행복에 대한 기준을 너무 높게 잡고 있는 것인지 사회가 공정하지 못한 것인지 스님의 경험과 생각을 들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두 명의 질문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스님의 출가 이유와 화두에 대해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이 출가하신 이유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고민하셨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답을 얻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24살이라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서요.”nbspnbsp“그건 자기가 찾아야지, 남의 이야기를 들어서 뭐해요? 질문자 인생인데 질문자가 찾아야죠. 모든 인생이 다 이렇게 해서 이렇게 간다고 정해져 있다면 제가 찾은 길을 질문자가 따라가도 되겠지만 인생의 길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각자 인생의 길은 각자가 가는 거예요. 질문자가 찾아야 해요.”nbspnbsp“감사합니다.”nbspnbsp질문자는 짧고 간명한 답변을 바로 알아듣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모두 웃으면서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왜 인생은 각자 자기 길을 가야 하는 것인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가는 길이 한 길밖에 없다면 저의 스승님이 nbsp제게 그리 물으실 이유가 없지요. 이리 가면 되니까 그냥 따라오라고만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저더러 ‘너, 어디 가니?’ 하고 물었어요. 그냥 그렇게 물은 게 아니에요. 스승님이 ‘이리 와봐라’ 하고 부르는데 제가 이튿날 시험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 길어지기 전에 빨리 도망가려고 ‘저 오늘 바쁩니다’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러면 빨리 보내줄 줄 알았거든요.nbspnbspnbsp그냥 어디로 가냐고 물어본 게 아니고 제가 바쁘다고 대답하니까 ‘어, 그래? 어디 가는데 그리 바쁘냐?’ 하신 거예요.nbspnbsp‘저 오늘 바쁩니다’nbsp‘왜 바쁘냐?’‘내일 시험칩니다.’nbspnbsp‘그래? 너,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이야?’nbsp‘학교에서요.’nbspnbsp‘학교 오기 전에는 어디서 왔어?’nbsp‘집에서요.’nbspnbsp‘집에 오기 전에는?’nbspnbsp이렇게 자꾸 묻고 답하다 보니 결국은 끝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습니다’가 되었어요. ‘그러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기 전에는?’ 제가 답을 모르니까 ‘모르겠습니다’ 했죠. 그랬더니 이번에는 지금 어디로 갈 건지 물어요.nbspnbsp‘지금 어디로 갈거니?’‘도서관에요.’nbspnbsp‘도서관에 간 다음에는?’nbsp‘집에요.’nbspnbsp‘집에 간 다음에는?’nbsp‘내일 학교에요.’nbspnbsp‘학교 간 다음에는?’nbspnbsp이렇게 자꾸 묻다보니 제가 ‘그럼 죽죠, 뭐’ 이랬어요. 그랬더니 ‘죽은 뒤에는?’ 하고 물어요. 이번에도 ‘모르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벽력같이 고함을 치는 거예요.nbspnbsp‘야 이놈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놈이 바쁘기는 왜 바빠?’nbsp그러니까 스승님은 제가 바쁘다고 한 말에 대답한 거예요. 그래서 어디서 왔냐고 물었는데 모른다 하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도 모른다 하니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놈이 왜 바쁘냐는 거지요. 어디로 가는 방향이 있으면 바쁘다는 게 이해되지만 어디 가는지도 모르면서 바쁘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nbspnbsp처음에는 스승님이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나한테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디서 왔냐고 묻고 또 묻고 또 물어요. 가는 것도 학교 가면 됐지 그 다음은 어디 갈 건지 도대체 왜 묻나 싶었는데, 대화의 요점은 이거였어요.nbspnbsp‘저 바빠요.’‘너, 어디서 왔니?’nbsp‘몰라요.’nbsp‘어디로 가니?’nbsp‘몰라요.’nbsp‘그런데 왜 바쁘니?’nbspnbsp그제서야 제가 정신이 번쩍 든 거예요. ‘어, 내가 왜 바쁘지?’ 왜 바쁜지 나도 모르겠어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빨리 가야 된다니 이상하잖아요? 제가 이렇게 저렇게 답한 걸 불교에서는 알음알이라고 해요. 책에서 본 이야기, 경험한 이야기, 생각한 이야기, 이렇게 아는 이야기를 알음알이라고 하는데, 결국 알음알이가 끊어지니 ‘너, 어디서 왔니?’라고 하니까 ‘모르겠어요.’라고 하죠. 처음부터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지는 않아요. 아는 소리를 자꾸 하다 보니 결국 어머니 뱃속까지 갔는데, 뱃속에서 나오기 전을 물어보니 그건 생각도 해본 적도 없고 책에서 본 적도 없어서 모르겠다고 한 거예요.nbspnbsp어디 가느냐는 것도 그래요. 도서관에 가고 학교에 가는 건 내가 다 아는 소리예요. 죽는다, 여기까지는 제가 안단 말이에요, ‘죽은 뒤에는?’ 이건 책에서 본 적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으니까 ‘모르겠어요’ 이랬단 말이에요. 이렇게 정말 모르는데도 지금 나는 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의문이 생겨요. ‘왜 바쁘지?’. 살다보면 바쁘지요. 바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거예요.nbspnbsp‘왜 바쁘지?’nbspnbsp이 물음의 핵심은 현재 자기에게 깨어 있으라는 겁니다. 질문은 다양할 수 있어요. ‘너, 누구니?’라고 할 수도 있고 ‘어디 가니?’라고 물을 수도 있고, ‘너, 지금 뭐 하니?’라고 물을 수도 있어요. ‘너, 누구니?’ 이렇게 세 번만 물으면 대답이 궁해져요. 바쁘게 가길래 어디 가느냐고 하니까 모른다 하고, 내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내세우길래 네가 누구냐고 하니까 모른대요. 자기가 자기를 모른다는 거예요. 세상 온갖 것 다 아는 박사한테도 네가 누구냐고 물으면 ‘몰라요’ 이래요. 화두라는 건 이런 거예요. ‘Who are you?’ ‘Who am I?’ 나, 나, 나라고 내세우는데 나라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무엇인가’를 중국말로 하면 ‘시삼마’라고 해요. 이걸 한국말로 하면 ‘이 뭣고’라고 해요. 아무것이나 보고 그러는 게 아니고, ‘나라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이에요.nbspnbsp이것을 탐구라고 해요. 남한테 듣고 하는 소리, 아는 소리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정말 궁금한 것을 탐구하는 것이 자기 인생이에요. 그래서 스승님은 제가 제 인생을 살아가도록 방향을 잡아준 거예요. 지금까지는 어떤 인생을 살았어요? 초등학교도 엄마가 보냈으니 갔죠. 중학교도 부모가 가라 하고, 친구들도 다 가니까 혼자 안 가면 안 되었잖아요. 남이 장에 간다니 거름 지고 따라가는 거죠. 고등학교도 다들 가니까 따라 올라가고, 대학교도 전부 다 따라 올라왔잖아요. 왔더니 또 취직해야 한다고 하죠. 스승님 말씀은 ‘네 길을 가라, 네 인생을 살아라’는 거예요. 지금 이렇게 공중에 붕 떠서 무작정 남 따라 살아가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도록 한 거예요.nbspnbsp대학 가면 취직해야 돼, 취직하면 결혼해야 돼, 결혼하면 애 낳아야 돼, 애 낳으면 또 키워야 돼, 그것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보내야 돼, 또 취직시켜야 돼, 결혼시켜야 돼, 손자 낳아야 돼, 손자 봐줘야 돼... 사람이 굉장한 것 같지만 토끼 한 마리 태어나서 자라는 것과 아무 차이가 없어요. 시스템을 따라 그냥 쭉 흘러가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너, 누구니?’ ‘지금 어디로 가니?’ ‘지금 뭐하고 있니?’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저라면 질문자에게 ‘여기 왜 왔니?’라고 물어볼 수 있겠죠. 세 번만 물어보면 말문이 막혀서 ‘몰라요’ 이래요. ‘몰라요’ 이걸 무지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이 이렇게 무지 속에서 살아가는 거예요. 자기는 굉장히 똑똑한 척 하고 살지만 실제로는 허황되게 사는 겁니다. 그걸 지적해준 것뿐이에요.nbspnbspnbsp그러니 제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어디로 갈 건가? 나는 무엇인가?’ 이렇게 탐구를 해야 합니다. 스님도 부처님도 예수님도 하나님도 아닌 ‘내’가 누구냐는 겁니다. 내가 누구냐,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느냐,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느냐를 봐야 해요. 이게 없으니까 인생이 괴롭고 한 치 앞도 못 보는 거예요. 저 사람 없으면 못 살겠다고 좋아하다가 금방 너 때문에 못 살겠다고 헤어지고, 또 그래도 그 사람이 나았다며 울어요. nbspnbspnbsp들어가고 싶은 직장에 재수까지 해가며 시험 쳐서 들어가 놓고 그 직장 때문에 못살겠다며 사표 내고 나오죠. 가게 하나만 내면 다 될 듯이 목을 매지만 그 가게가 또 잘 안 되면 가게가 고통의 덩어리가 되잖아요. 다들 애 낳으니 나도 낳겠다고 부처님 코까지 베어가서 아들 낳아놓고는 애 때문에 못 살겠다고 죽는 소릴 해요. 취직이 어떻고 결혼이 어떻고 하지만 딱 본질을 짚는다면, 괴로움의 원인은 자기가 누군지, 어디로 가는지, 지금 뭐하는지도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게 요지예요. 이걸 먼저 찾는 게 중요합니다.nbspnbsp이런 걸 스승님이 딱 지적해준 거예요. 그때 그런 기회를 안 가졌으면 저도 친구따라 대학을 갔을 텐데, 그래서 안 갔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저더러 미쳤다고 했어요. 제가 생각해보니 갈 이유가 별로 없었거든요. 그래서 스님이 되고 보니 조계종에서 스님들이 쭉 가는 길이 또 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거기로 갈 일이 별로 없어요. 스님이 되었다 뿐이지 그건 그냥 우르르 따라가는 길이에요. 그래서 안 갔더니 거기서도 왕따가 되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북한 때려잡자며 데모할 때 생각해보니 아니다 싶어서 안 갔더니 또 왕따가 되었어요. 여러분은 왕따 당했다고 서러워하는데 왕따를 당한 게 아니라 제가 전부를 왕따 시켜버렸다고 볼 수도 있죠. nbspnbspnbsp천 명이 자고 있는데 한 명이 깨서 책상에 앉아 있자니까 천 명이 자면서 잠꼬대를 해요.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그러면 한 명이 천 명을 깨워요, 천 명이 그런다고 그 한 명도 따라가요? 깨어 있다면 잠꼬대 하는 사람이 비록 천 명이라 하더라도 ‘아이고, 이것들 잠꼬대가 심하구나’ 이러고 천 명을 흔들어 깨워주잖아요.nbsp그러니까 그 질문은 다른 게 아니고 ‘네가 네 길을 가라’는 겁니다. IS에 가담하듯 어리석게 외통수 고집해서 가는 게 아닙니다. 네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뭐 하는지를 스스로 보라는 거예요. nbspnbsp저녁에 술 마시면서 다음날 속 쓰릴 것까지 생각 안 하잖아요. 주면 넙죽넙죽 받아 마시고 퍼져서 전봇대 껴안고 울고, 아침에 눈 떠보면 가관이죠. 그런데 저녁 되면 또 마셔요. 담배 피우는 사람은 담배 중에서도 더 좋은 담배 피우려고 야단이에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담배도 안 피우는 것보다는 건강에 안 좋아요. 영화 보면 마약 밀거래 할 때도 그 하얀 가루 보면서 고급인지 아닌지 따져요. 마약을 하는 사람에게는 마약의 저급 고급이 중요하지만, 밖에서 보면 아무리 좋은 마약도 안 하는 것보다는 못 해요. 그런데 마약을 하는 사람, 담배 피우는 사람, 술꾼은 그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이렇듯 우리가 어떤 것에 중독이 되어 한 방향으로 달려가면 진리의 말씀을 못 알아들어요. 마약은 이해가 되는데, ‘아무리 좋은 성형도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하면 또 이해 안 되잖아요. nbspnbspnbsp술 마시고 건강을 해치고 마약하면서 자기를 해치듯이, 우리는 이런 중독 때문에 자기 시간과 재능과 인생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소비중독이란 말 들어봤지요? 이 소비중독이 제일 무섭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이 생산해서 많이 쓰는 게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잘 사는 기준이 뭐예요? 1인당 콜라를 몇 병 마시느냐, 전기를 얼마나 쓰느냐, 물을 얼마나 쓰느냐, 병원 침대 하나당 환자가 몇 명씩 배치가 되느냐... 전부 소비로 계산하잖아요. 엄마가 물건을 사서 아이에게 생일선물로 주면 제일 먼저 ‘엄마, 이거 얼마 짜리야?’ 이러잖아요. 전부 돈으로 계산이 돼요. 지금 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거예요.nbspnbspnbsp그런데 이 소비주의가 결국은 환경을 파괴해요. 한쪽은 자원을 고갈시키고 다른 한쪽은 쓰레기를 양산해서 결국은 지구환경을 파괴합니다. 시간이 100년 걸리냐 200년 걸리냐 정도의 차이밖에 없지 공멸하는 거예요. 원리를 딱 보면 이 문명은 공멸할 수밖에 없어요. 다들 잘 살려고 하는데 잘 산다는 기준이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니까요. 70억 인구 중에 OECD 가입국만 그 길을 가니까 지구가 그나마 덜 파괴되는 지금도 이렇게 환경 문제로 난리인데 70억이 다 그렇게 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지금의 문명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이 문명은 이미 지속가능하지 않고 종말은 예정되어 있는 거예요. 봄에 잎이 피고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지만 이미 가을에 낙엽이 예정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홍수가 나서 물살이 일 때 이 동네 저 동네 온갖 쓰레기가 떠내려와서 휩쓸려 내려가듯이 이 거대한 소비주의의 물결 속에 우리가 지금 휩쓸려가고 있는 거예요. 그 속에서 ‘누구는 눈을 고쳤다는데 나는 못 고쳤다,’ ‘누구는 눈이랑 코를 다 고쳤는데 나는 눈밖에 못 고쳤다’ 이런 작은 걸로 괴로워하며 사는 거예요.nbspnbsp‘너 어디서 왔니?’, ‘너 어디로 가니?’ 라는 평범한 질문을 했는데 그 평범함이 지속되다 보면 평범을 넘어 우리의 삶의 본질에 근접해 갑니다. 이걸 ‘출가하고 스님 되면 좋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안 돼요. 스님만 된다고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면 인생 바꾸는 건 간단해요. 머리 깎고 옷 갈아입고 이름 하나 지어서 붙이면 되잖아요. 그런다고 인생이 바뀌겠어요? nbspnbsp그래서 이 질문은 ‘그래서 스님이 되었다’는 게 핵심이 아니에요. 내가 이 길을 가는 게 남 따라 가는 건지, 필요해서 내가 가는 건지, 남이 마시니까 목도 안 마른데 마시는 건지, 정말 내가 목이 말라서 마시는 건지 늘 돌아보라는 겁니다. ‘남 마시면 나는 안 마신다’ 이건 아니에요. 남이 마실 때 내가 목이 마르면 같이 마시고, 남이 마셔도 내가 목마르지 않으면 안 마시는 겁니다. 세상을 무조건 거스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길을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니까 그냥 결혼하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어떻든 내가 결혼이 필요하면 하고, 천하가 다 해도 내가 필요 없으면 안 하는 거예요. 천하가 다 차를 사도 내가 필요 없으면 안 사면 돼요. 남들 다 산다고 따라 샀다가 타지도 않으면서 창고에 넣어둘 필요 없잖아요. 그런데 그런 경우가 얼마나 많아요? 지금 장롱 속에 입지도 않는 옷 많죠? 남들이 산다고 따라 샀다가 한 번도 안 입어본 옷도 있을 거예요. 그건 말이 옷이지 쓰레기 아니에요? 옷장이 쓰레기장이에요. 겉에 쓰레기장이라고 안 쓰고 옷장이라고 써놨을 뿐이에요”. nbspnbsp“감사합니다.”nbspnbsp질문은 간단했지만 스님의 답변은 삶의 근본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들려주었습니다. 열정적으로 말씀을 해준 스님에게 청중들 모두 감탄을 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스님과 함께한 70분 간의 행복공청회 시간을 마치고 이어서 김제동씨와 함께하는 공청회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환한 웃음을 머금고 무대로 걸어나오는 김제동씨에게 청년들은 열띤 박수와 함께 목청껏 함성을 질렀습니다. 김제동씨는 우리 청년들이 함께 연대하는 힘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열정적인 강연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용이 되지 못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용이 될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함께 연대할 수 있으면 됩니다. 송사리와 피라미 수천마리가 어깨를 끼고 용이 내려오면 ‘저리 가’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4년마다 정치인들이 여의주를 찾으러 내려오면 ‘여의주를 다시는 너한테 못 주겠어’ 라고 말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여의주는 우리가 그들에게 줄 권리가 있는 것이거든요. 이 여의주를 못 물면 못 나니까 5년 마다 진짜 큰 용들이 날아옵니다. 평소에는 눈도 안 마주치다가 ‘안녕하세요’ 하고 오면 ‘저리 가’ 하는 겁니다. 그래서 5년 내내, 4년 내내 송사리와 피라미를 겁낼 수 있도록 우리의 존재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nbspnbsp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 저 윗분들 보다 여러분들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스님과 함께 이렇게 청춘콘서트를 하고 있는 것이죠...”nbsp함께 연대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에 청년들도 뜨겁게 공감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주제에 대한 김제동씨의 이야기는 너무 웃겨서 시종일관 웃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과 김제동씨가 함께 무대에 올라 오늘 청춘콘서트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회자가 “강연장 밖을 나가면 청년들은 또다시 답답현 현실과 부딪혀야 한다” 면서 “마지막으로 청년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면 좋을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김제동씨가 강조한 연대의 힘을 다시 상기시키며 작은 힘을 모아서 큰 일을 벌인 경전 속 우화를 재미있게 들려 주었습니다.nbspnbspnbsp코끼리 때문에 가족을 잃고 한이 맺힌 매추라기가 자신과 비슷하거나 힘이 약한 까마귀, 쇠파리, 개구리와 힘을 합쳐서 순서대로 차근차근 일을 하니 덩치 큰 코끼리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스님이 너무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주어서 마치 동화책을 읽는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스님은 “이 우화의 교훈은 작은 힘도 합치면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아까 김제동씨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메추라기처럼 아주 작은 힘이에요. 회사로 치면 소액주주죠. 그러나 이 소액주주들이 힘을 모으면 큰 일을 할 수 있어요. 독립운동 할 때는 총 들고 가서 목숨을 걸어야 해서 굉장한 각오가 필요했어요. 민주화 투쟁할 때는 돌멩이 들고 싸우다가 잘못하면 감옥에 갔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할아버지 세대가 독립을 이루어놓았고, 부모 세대가 민주화를 이루어놓은 혜택 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통일이든 복지사회든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nbspnbsp뭐만 가져가면 된다? 손가락만 들고 가면 돼요. 뭐만 하면 된다? 이쪽에 찍을지 저쪽에 찍을지만 결정하면 돼요. 얼마나 쉬워요?nbspnbspnbsp게다가 실패해도 아무런 보복이 없어요. 다만, 우리가 힘이 작기 때문에 혼자 해서는 별 도움이 안 돼요. 여럿이 힘을 합치면 다릅니다. 백 명, 천 명이 함께 가면 혁명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메추라기도 그렇게 노력해서 큰 일을 하는데 사람으로 태어나 이런 작은 노력도 안 하겠다면 도대체 뭘 하겠어요? 모든 걸 다 하나님, 부처님한테 해달라고 빌면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거예요?nbspnbsp때가 이르렀을 때 손가락만 들고 가면 분단된 나라를 통일할 수도 있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꿀 수도 있고, 경제민주화를 이룩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각성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 일을 우리가 지금 함께 해나가면 좋겠습니다.nbspnbsp이렇게 우리가 작은 힘을 모아서 한다면 문 열고 나가도 아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작은 일을 통해서 큰 일을 할 수 있어요.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죠. 무슨 큰 결심을 해야 하고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니 문 열고 나가서도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작은 일을 함께 해봅시다. 그럴 때 행복이 있고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가 열립니다.”nbsp사회자는 강연장을 나가면 걱정이 앞선다고 했는데 스님은 연대의 힘을 믿고 작은 일부터 해나가는 자세를 갖는다면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청년들은 스님의 쉽고 가벼운 제안에 기쁜 표정을 지으며 박수갈채로 화답했습니다.nbspnbspnbsp불안해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을 위해 이렇게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를 이야기해주는 두 분이 있어 너무나 든든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한 청년들 모두 정말로 3시간 동안 행복의 나라를 여행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nbspnbsp행복의 나라로 떠난 여행의 마지막은 다함께 노래를 부르는 축제의 장이 되었습니다. 인디밴드 요술당나귀, 스님과 김제동씨, 그리고 오늘 강연을 준비한 서포터즈 봉사자들이 모두 무대 위에 나란히 서서 청춘콘서트 공식 주제가 ‘행복가’를 함께 불렀습니다.nbspnbspnbsp“포기하고 싶을 땐 주위를 둘러봐요 함께하는 사람들과 행복을 노래해요 ♬ 마음껏 웃고 꿈꾸고 사랑하자 ♬ 작은 날개를 펴고 행복의 나라로 날아가자”nbsp후렴구가 이어지자 모두가 반주에 맞춰 양 손을 흔들었습니다. 1400여명의 청년들이 손을 흔드는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힘을 모아 나간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겠다는 가슴 벅찬 기운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nbspnbsp이어서 강연장 입구 로비에서는 감동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청년들을 위해 스님의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한 명 한 명에게 사인을 해주며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고, 길게 줄을 선 청년들은 스님에게 가까이 다가갈 때 마다 감동의 시간을 마련해 준 스님에게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nbsp스님이 사인회를 하는 동안 김제동씨는 저녁을 먹지 못해 급히 저녁을 먹은 후 다시 로비로 나와 스님과 함께 하루종일 강연 준비를 위해 수고한 서포터즈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행복의 나라로 놀라와” 힘차게 외치는 서포터즈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수고한 서포터즈들 한 명 한 명의 손을 꼭 잡아주면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김제동씨는 한 명 한 명을 꼭 껴안아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서포터즈들은 스님과 김제동씨의 격려에 그동안의 피곤함이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강연장을 나와 밤 10시 40분에 대전을 출발한 스님은 곧바로 문경으로 향했고, 문경 정토수련원에 새벽 1시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하루종일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경전반 학생들을 위한 특강수련에 참석해 법문을 해줄 예정입니다.nbspnbsp ※ 법륜 스님과 김제동이 함께하는 2015 청춘콘서트가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곳곳에서 열립니다. 참가를 원하는 분들은 티켓을 사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lt티켓 사전 신청하기gtnbspnbspnbsp우리 지역 콘서트 일정을 nbsp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nbsp

2015.09.12. 62,932 읽음 댓글 32개

2015.9.10 전주 청춘콘서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전주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어젯밤 강릉에서 출발해 서울에 새벽 1시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눈을 붙인 후 새벽 4시에 일어나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nbsp기도 후에는 발우공양에 참석해 공동체 대중들과 공양을 함께 했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발우공양 후에는 공동체 대중들과 새벽 일정을 함께하며 들었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몇가지 당부 말씀해 주었습니다. 우선 대중공사 시간에 대중들이 참회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을 나누어 주었습니다.nbspnbsp“바빠서 아예 법회를 못 들었고 그래서 오늘 따로 챙겨 듣겠다는 것은 괜찮아요. 그런데 참회가 반복되는 내용 중에 법회를 듣고 마음나누기를 안 하고 올라가서 쉬었다는 것이 많네요. 몸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빠질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법회를 우리만 듣는 것이 아니고 일반 대중들이 같이 듣는데, 실무자들은 다 나누기 안 하고 빠진다면 굳이 안 해도 되는 나누기 프로그램을 자기들만 하고 있는 것이 되어버리잖아요.nbspnbspnbsp대중들은 ‘안 해도 되는 것을 왜 우리들 보고는 반드시 하라고 하느냐’ 하는 마음이 들겠죠. 또 피곤해서 올라가는 것이라면 ‘그럼 직장생활 마치고 달려와서 법문 듣는 우리는 안 피곤하냐’, ‘우리는 집에 갈 때도 한참 가야 잘 수 있는데 너희는 그냥 올라가서 자면 되지 않느냐’ 하는 마음이 들겠죠. 그래서 이건 전혀 균형이 맞지 않는 얘기에 속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실무자는 안 해도 되고 대중은 해야 되고, 오래된 사람은 안 해도 되고 초심자는 해야 되는 분위기를 만들게 됩니다. 오히려 대중은 빠져도 되지만 실무자는 반드시 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nbspnbsp위로 갈수록 규칙이 더 잘 지켜지고 아래로 갈수록 덜 지켜질 수 있는 건데, 반대로 밑에는 지키라고 해놓고 위에서는 안 지키니까 대부분 안 지키기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군대처럼 강제에 의해서 움직이는 조직이지 자발성에 의해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게 됩니다. 여러분들 개인만 봐서는 피곤할 때 올라가서 쉴 수도 있지만 대중과 같이 있을 때는 늘 대중을 같이 고려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선적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것이 교육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른 모시고 사는 것보다 아랫 사람 거느리고 사는 게 더 어렵다고 하잖아요. 왜냐하면 다 그대로 흉내를 내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제가 정토 회원들의 식사 초대에 한번 응하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식사 초대 한 번 받는 게 뭐 그리 문제가 되겠어요? 그러나 다음에 법사님이나 다른 누가 와서 식사 초대를 했는데 안 간다고 하면 ‘법륜 스님도 왔는데 왜 안 와요?’ 이렇게 나옵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비교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남이 보든지 말든지 규칙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겁니다. 몸이 아픈 환자라거나 특별한 사적인 이유는 보호해주어야 하겠지만 특히 공개된 자리에서는 위선적이여서가 아니라 대중들을 위해서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nbsp공동체 대중들은 스님의 말씀을 듣고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반복적으로 참회해 오던 것에 대해 깊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공동체 대중들부터 먼저 규칙을 잘 지켜나가는 자세가 대중들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예불 시간 마다 몇 일째 계속 기침을 하고 있는 행자님을 걱정하면서 몸이 아픈 사람은 어떤 자세로 수행을 해야 하는지 일러주었습니다.nbspnbsp“계율에는 일에 집착해서 몸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계율이 하나 있고, 몸에 집착해서 몸을 사리지 말라는 계울이 하나 있습니다. 몸에 집착해서 몸을 사리지 말라는 것은 몸에 집착해서 자꾸 꾀를 내는 것입니다. 몸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은 실제로 할 수 있는 능력이 100 밖에 안 되는데 120을 욕심내어서 해서 몸을 헤치는 것입니다. 몸을 함부로 할 때는 일에 집착해서 몸을 함부로 할 때가 있고, 게을러서 몸을 함부로 할 때가 있어요.nbspnbspnbsp가령 위가 나쁜데 계속 과식을 합니다. 과식을 해서 위가 계속 나빠지면 과식을 딱 끊어야 하는데, 과식을 하고 위가 나빠졌다고 하고 또 과식을 하고 위가 나빠졌다고 그러잖아요. 이렇게 반복하는 것은 수행자가 아닙니다. 수행자는 이런 행위가 나와 남을 해치는 것을 알면 멈추려고 노력을 해야 되요. 타성에 젖어서 골골골 하면서 또 술 먹고, 그래서 아파서 후회하다가 또 술 먹고 반복하는 것은 윤회를 하는 겁니다. 이런 행위를 끊자고 이곳에 들어와서 수행자가 되었는데 이런 자신의 생활 습관을 바꾸지 못해서 몸이 아픈 것은 몸을 함부로 하는 것에 속합니다.nbspnbsp낫도 쓰고 나면 씻어서 걸어놓고 다음에 쓸 때는 낫을 갈아서 날이 잘 들도록 하잖아요. 그런데 낫을 갈지도 않고 낫이 잘 안 든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어요. 연장을 다듬듯이 자기 몸도 어느정도 추슬러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거든요. 한갓 연장도 늘 다듬고 닦고 갈아주고 하는데 어떻게 자기 몸을 함부로 팽개치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병원에 다니는 것을 일상화 하면 안 됩니다.nbspnbsp두 가지를 명심해야 해요. 첫째, ‘안 죽고 산 것만 해도 다행이다’ 할 정도로 아플 수 밖에 없다면 대중공사에서 ‘제 몸이 원래 안 좋으니까 이렇게라도 생활을 하겠습니다.’ 라고 공지해서 대중들의 인정을 모두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대중들은 ‘저 분은 아프신 분이니까 예불을 안 하는 것보다는 예불 시간에 법당에 내려와서 앉아만 있더라도 참여하는 것이 더 낫지’ 이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nbspnbsp둘째, 그렇지 않다면 몸을 어느정도 추수려서 대중생활에 맞추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늘 반복된다는 것은 업식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요. 부처님은 몸에 너무 집착해서 얼굴에 무엇을 바르고 붙이고 꾸미고 이런 것을 하지 말라고 했지 몸을 함부로 하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수행을 하고 일을 하려면 건강한 몸이 있어야 해요. 몸에 집착하지 말라는 얘기와 몸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얘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두 계율을 따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nbspnbsp객관적으로 아플 수 밖에 없는데도 그 아픈 몸을 갖고도 일을 해서 기여를 한다는 것은 또 따로 높이 평가를 해야 돼요. ‘저 사람은 맨날 아프다’ 이렇게 평가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은 아픈 몸을 가지고도 사실은 쉬어야 하는데도 그래도 기어나와서 조금이라도 대중생활에 기여를 한다. 참 장한 일이다’ 이렇게 평가를 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리고 대중생활을 할 때 아예 아프면 예불도 빠져야 합니다. 그러나 기어나올 수만 있으면 예불은 해야 합니다. 조금 더 움직일 수 있으면 발우공양은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같이 얼굴을 보고 공양을 해야 공동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건강이 좀 괜찮으면 공동체에 주어진 울력을 함께 해야 합니다. 청소라든지 공양 당번이라든지 이런 것을 같이 해주어야 합니다.”nbsp몸을 잘 추스르고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수행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몸이 아픈 사람과 그 아픈 사람을 바라보는 대중들은 각각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도 함께 배울 수 있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공부는 자발성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얼마 전 시작한 1000일 기도에도 자발적으로 임해줄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 소임 배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업무 배치에 대해서도 어떤 원칙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고려해서 배치할 때도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약 어떤 음식을 한 사람이 냄새도 맡기 싫을 정도로 싫다고 하면 99명이 이 음식을 좋아하더라도 이 한명을 배려해야 합니다. 다수가 좋아한다고 다수결로 가면 안 됩니다. 항상 다수보다는 개인이 싫어해서 못 견디는 것을을 더 고려해줘야 합니다. 이것은 소수와 다수로 계산하면 안 됩니다.nbspnbspnbsp그러나 한 개인이 무엇을 하고 싶다 하는 것은 개인 취향이라고 고려해 주어서는 안 됩니다. 수행자는 좋아함과 싫어함 둘 다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배려를 한다면 싫어함에 대해서는 배려를 해주어야 합니다. 두 명이 서로 너무 좋아해서 업무 배치를 같은 곳에 해달라 하는 것은 고려 대상이 안 됩니다. 그러나 두 명이 서로 너무 싫어해서 만나기만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싸워서 도저히 안 되겠다 할 때는 ‘그것도 수행이다’ 하고 배치할 수도 있지만 고려해서 따로 배치해 줄 수도 있는 겁니다. 서로 좋아하는데 떨어져서 울고 불고 하는 것보다는 서로 싫어하는데 같이 만나서 눈에 불을 켜는 것이 우선적으로 고려가 되어야 합니다. 수행적 관점에서는 똑같은 문제이지만 고려를 할 때는 그 비중이 달라져야 합니다.nbspnbspnbsp그래서 아이들은 강아지를 좋아해서 키우자고 하고 남편은 강아지를 싫어할 때도 어른이라고 고려하자는 문제가 아니라 싫어하는 것을 고려의 우선순위로 해야 하는 겁니다. 평등은 똑같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nbspnbsp대중이 함께 모여 살 때 개인이 갖는 특성을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항상 사소한 것 하나를 보고서도 그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할 관점과 원칙을 발견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니 수행자는 과학자와 같다는 말씀이 절로 생각이 났습니다.nbspnbsp서울공동체는 그저께부터 행자대학원생들이 새롭게 배치되어 6개월간 NGO 실습을 하게 되었는데, 스님은 부서별로 새로 배치된 행자들 한 명 한 명을 눈으로 확인하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발우공양 후 평화재단으로 이동한 스님은 하루 종일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과 회의를 연이어 가졌습니다.nbspnbsp오후 3시 30분에는 서울을 출발하여 청춘콘서트가 열리는 전주로 향했습니다. 청춘콘서트가 열리는 전북교육문화회관에는 오후 6시 30분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는 벌써 대부분의 청년들이 입장을 마쳤고, 아직 좌석을 배정받지 못한 청년들이 혹시나 좌석이 매진될까봐 발을 동동 구르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nbspnbsp▲ 전주 청춘콘서트가 열린 전북 교육문화회관nbsp저녁 7시가 되자 1000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와” 하는 뜨거운 함성과 함께 청춘콘서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사회자 오청춘씨가 나와 “행복 원로 법륜 스님을 모시고 행복 공청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고 하자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nbspnbspnbsp“노인의 특징이 뭡니까? 첫째, 말이 많다. 둘째, 했던 말을 또 한다. 저도 이제 늙었다고 ‘원로’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늙은 티를 안 낼려면 말을 많이 안 하고, 말을 하더라도 했던 말을 또 안 하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거두절미 하고 질문부터 받겠습니다.”nbsp스님은 평소와 다르게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대학생인 여자 분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항상 자기 중심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고 물었고, 청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손을 든 고등학생의 엄마는 아들이 축구를 하고 싶어하는데 엄마가 자꾸 공부를 하라고 해서 불만인데 아이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 물었고, 대학교 1학년 남학생은 행복을 너무 강조하면서 다른 가치들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고, 북한의 영양 개선과 농업 개발에 관심이 많은 직장인 여성분은 북한 주민의 영양 개선 사업을 위해서 직업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북한에 대해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공부를 해나가야 하는지 물었고, 대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여학생은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성격이 쉽게 고쳐지지가 않아서 어떻게 성격을 바꿀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남과 비교하는 마음 때문에 힘들다는 여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은 늘 비교가 되는 속에서도 어떻게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nbspnbspnbsp“그런 방법은 없어요.”nbsp“사람이면 맨날 눈 뜨고 사는데 어떻게 비교를 안 하고 살 수가 있겠어요? 그래도 굳이 찾는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어요. 눈 감고 귀 막고 살면 돼요. 눈 감고 귀 막고 살면 비교를 안 하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눈으로 항상 보고 살고 귀로 항상 듣고 살기 때문에 비교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nbsp“제가 여기 물병을 쥐었는데 커요? 작아요?”“작은 것 같아요.”nbspnbsp“물병을 이 책상과 비교하면 작아요? 커요?” nbsp“작아요.”nbspnbsp“물병을 이 시계와 비교하면 작아요? 커요?”nbsp“커요.”nbspnbsp“그럼 이 물병 자체만 갖고는 작아요? 커요?”nbsp“보통 아닌가요?”nbspnbsp“이 물병을 어떤 사람은 크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작다고 해요. 크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 물병만 갖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자기도 모르게 이 물병보다 작은 것을 생각해서 크다고 말하고, 작다고 말하는 사람은 뭔가 이 물병보다 큰 것을 생각해서 작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다 작다는 이 존재에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 존재를 인식하는 내가 크다고 하고 작다고 하는 것이지 존재 자체에는 크고 작음이 없어요. 인식을 할 때 비교해서 인식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크다고 인식하고, 어떤 때는 작다고 인식하고, 어떤 사람은 크다고 인식하고, 어떤 사람은 작다고 인식하는 겁니다. 그래서 크니 작니 새 것이니 헌 것이니 잘났니 못났니 늙었니 젊었니 길다느니 짧다느니 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인식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일체유심조’ 라고 말합니다. 다 마음이 짓는 바입니다. 모두 인식 상의 문제라는 겁니다.nbspnbspnbsp그래서 이 물병을 책상 곁에 오래 두고 있으면서 늘 ‘작다, 작다...’ 고 인식하다보면 이 물병 자체가 본래 작은 것으로 알게 됩니다. 이 시계 하고만 계속 같이 두고서 ‘크다, 크다...’ 고 인식하다보면 이 물병 자체가 크다고 착각을 하는 거예요. 이것을 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상에 집착했다’고 하는 겁니다. 크다 작다는 객관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 상에서 일어나는 주관의 문제인데 이런 인식이 오래 지속되면 그것이 객관인 줄 착각을 해버립니다. 그래서 ‘이것은 큰 것이다’, ‘이것은 작은 것이다’ 하고 주장을 하게 되는데 사실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닙니다.nbspnbsp이것을 언어를 빌려서 표현하면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어요. ‘이것은 큰 것인가요? 작은 것인가요?’ 물으면 묻는 사람의 언어를 빌려서 표현하면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 라고 대답하고, 이런 언어를 빌리지 않고 대답하면 ‘다만 그것이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것을 철학적인 용어를 빌려서 말하면 ‘공이다’라고 말합니다.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작다고 할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제가 다시 물어볼게요.”nbspnbspnbsp“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들은 젊었어요? 늙었어요?”nbsp“젊지도 않고 늙지도 않았습니다.”nbspnbspnbsp“키가 커요? 작아요?”nbsp“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습니다.”nbspnbsp“예뻐요? 추해요?”nbsp“예쁘지도 않고 추하지도 않습니다.”nbspnbspnbsp“이 시계가 값 비싸요? 값 싸요?”nbsp“값 비싸지도 않고 값 싸지도 않습니다.”nbsp“값이 비싸다 싸다 하는 것은 이 물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값을 정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 온전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는 그대로 다 부처다’ 라고 말합니다. 그럼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들은 모두 다 존재 그 자체로 온전한 거예요.nbspnbsp그런데 우리는 크니 작니 늙었니 젊었니 부자니 가난하니 양반이니 쌍놈이니 하는 인식 상의 문제에 빠지기 때문에 우리는 열등의식을 갖거나 우월의식을 갖고 괴롭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러면 비교하지 않고 살 수 있느냐? 그럴 수는 없습니다. 늘 비교해서 살지만 ‘이것은 비교에 의해서 생기는 인식 상의 문제이지 객관적 사실은 아니다’ 라는 것을 자각하면 거기에 빠지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nbspnbsp내가 저 사람과 비교해서 돈이 적은 것이지 내가 돈이 적은 것이 아니예요. 저 사람과 비교해서는 내가 키가 작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내 자신이 키가 작은 사람은 아니예요. 저 사람과 비교해서 내가 늙은 것이지 내가 늙은 사람은 아니예요. 80세가 된 사람이 볼 때는 60세가 된 사람은 아주 젊은 거예요. ‘내가 60만 되어도 뭐든지 할 수 있을텐데’ 이렇게 말해요. 고2 학생과 고3 학생이 같이 얘기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세요. 고3 학생이 ‘아이고, 우리는 늙었으니까 젊은 너희가 심부름 좀 해라’ 이렇게 말해요. nbspnbspnbsp그래서 객관적으로 젊었다 늙었다 하는 건 없어요. 그 안에서 서로 비교가 되는 거예요. 이것을 깨달으면 불리기는 때로는 늙었다고 불리고, 때로는 젊었다고 불리고, 때로는 스님이라고 불리고, 때로는 아들이라고 불리고 하겠지만, 나는 그 무엇도 아닌 것임을 알 수 있어요. 이것을 자각하면 질문자가 원하는 늘 비교하지 않고 사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어요. 비교하면서도 비교하지 않는 세계에 살 수 있습니다. 비교하지 않고 그 자체로도 온전할 수 있습니다. 부자라고 목에 힘 줄 것도 없고, 젊었다고 목에 힘 줄 것도 없고, 잘났다고 목에 힘줄 것도 없습니다. 반대로 못났다고 기 죽을 것도 없고, 늙었다고 기 죽을 것도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그대로 온전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우리는 인식의 문제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살고 있는 겁니다. 비교하지 않는 방법은 없어요. 그러나 비교해서 생긴 문제라는 사실을 본인이 자각하고 있으면 비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불안함을 자각하고 있으면 그 불안함에 빠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nbsp“감사합니다.”nbspnbspnbsp물병과 책상, 시계를 예로 들어가며 명쾌한 답변을 들려준 스님에게 청중들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질문자는 환한 웃음을 보이며 자리에 앉았습니다.nbspnbspnbsp스님과 함께한 70분 동안의 행복공청회 시간이 끝나고 이어서 행복장관 김제동씨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김제동씨가 모습을 보이자 청중들은 여기저기서 함성을 지르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주로 청년들의 고민을 듣고 상담을 해주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갔다면 김제동씨는 부조리한 사회 문제들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사회 변화를 위해 청년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주 재미있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특히 김제동씨는 우리 사회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많지만 그 중에서 통일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청년들이 통일 세대라는 자부심을 좀 가져보았으면 하고 당부했습니다.nbspnbspnbsp“통일 한국은 10대 20대 30대 여러분들이 주인이 되어서 살아갈 세상입니다. 통일은 이제 선택 사항이 아니고 필수 사항입니다. 통일 세대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먼저 시작해 준다면 40대, 50대, 60대 모든 세대도 분열을 멈추고 통일 세대를 돕게 되고, 진보와 보수도 통일이라는 과제 앞에 여러분들을 돕게 됩니다. 그러면 남북 모두가 하나되는 길도 열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부부 싸움 하다가 힘들면 동네 술집에 가는 게 아니라 기차 타고 블라디보스토트로 가서 보드카를 한잔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청년들의 어깨가 기상으로 넘칠 수 있습니다. 그런 계기를 우리가 한 번 마련해 봅시다.”nbspnbsp김제동씨의 패기 있고 열정 넘치는 모습에 청년들도 뜨거운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배꼽을 잡고 웃었던 김제동씨와의 70분 공청회도 모두 끝나고, 마지막으로 스님과 김제동씨가 함께 무대 위에 올라 닫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사회자가 “강연장을 나가면 또다시 막막한 현실 앞에 부딪혀야 하는 청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더 해주고 싶은 말을 해달라” 고 하자 먼저 스님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베푸는 자세, 남을 이해하는 자세, 내가 먼저 사랑하는 자세를 이야기하면서 주인된 자세가 행복으로 가는 길임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문 열고 나가면 또 골치아픈 일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등산을 할 때 몸이 피곤함에도 산행이 재미있는 이유는 자발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인생을 좀 자발적으로 사는 것이 필요해요. 이것을 불교 용어로는 ‘수처작주’라고 하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거기에 주인이 되라는 겁니다. 즉 자발적이 되어라는 얘기입니다. 이것을 성경의 구절로 표현하면 이래요.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주어라’,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벗어주라’,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대어주라’. 다 같은 의미입니다.nbspnbspnbsp5리를 가자고 해서 따라가면 누가 주인이예요? 가자는 사람이 주인이고 나는 종속적이 되잖아요. 그런데 ‘내가 10리 가줄게’ 하면 내가 주인이 되어버려요. 이렇게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가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해요.nbspnbsp보통 우리는 ‘엄마는 내 맘 몰라’, ‘당신은 내 맘 몰라’ 이러죠. 남의 마음을 모르면 누구 가슴이 답답할까요? 내 가슴이 답답해요. 그런데 내가 상대의 마음을 알아서 ‘아, 엄마가 그래서 그랬구나’, ‘아이고, 여보 당신이 그래서 그랬군요’ 이렇게 이해하면 누구 마음이 시원해집니까? 내 마음이 시원해져요. 내가 상대의 마음을 모르면 상대가 답답해집니까? 내 마음이 답답해집니까? 내 마음이 답답해져요. 내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면 상대가 시원해집니까? 내 마음이 시원해집니까? 내 마음이 시원해져요. 그러니 이해 받으려 하지 말고 이해하라는 겁니다. 이 말은 남을 위해서 좋은 일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얘기입니다.nbspnbspnbsp여기 꽃이 한 송이 있어요. ‘우와, 예쁘다’ 하면 꽃이 좋을까요? 내가 좋을까요? 어떤 사람은 둘 다 좋아요 라고 그러는데 꽃한테 좋은지 물어봤어요? nbspnbspnbsp동해 바다에 가서 ‘우와, 파도 봐라’ 하면서 좋아하면 바다가 좋을까요? 내가 좋을까요? 내가 산을 좋아하면 둘 다 좋을까요? 상대에게 ‘당신 사랑해요’ 하면 상대가 좋을까요? 내가 좋을까요?nbspnbsp둘 다 좋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nbsp않아요. 내가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데 그 여자는 나를 싫어해요. 그럴 때 내가 ‘사랑합니다’ 하면 상대는 기분이 나쁘겠죠. 나는 좋지만 상대는 좋지 않아요. 둘 다 좋은 게 아니에요.nbsp내가 상대를 좋아하면 내가 좋아요.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면 내가 좋아요.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하면 내가 좋아요.nbspnbspnbsp내가 그 사람에게 베풀면 내가 주인이예요. 주는 자가 주인이고, 인사하는 자가 주인이예요. 그래서 사랑받으려고 하지 말고 사랑하라, 도움받으려고 하지 말고 도움을 주라, 의지하지 말고 의지처가 되어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베푸는 것은 내가 주인되는 길이고, 사랑하는 것은 내가 행복으로 가는 길이고, 이해하는 것은 내 마음이 시원해지는 길입니다.nbspnbsp남에게 도움을 받아야 행복하다면, 남에게 사랑을 받아야 행복하다면, 남에게 이해를 받아야 행복하다면, 나는 노예예요. 그 사람이 나를 베풀어줄 때까지, 구원의 손길이 올 때까지 나는 마냥 기다려야 돼요. 그게 안 오면 나는 괴로워해야 돼요. 나는 그의 노예예요. 왜 내가 노예가 되려고 합니까? 주인이 되려고 해야지요. 그러니 행복으로 가는 길은 지금 당장 주인의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베푸는 마음을 갖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면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집니다.nbspnbspnbsp아까 김제동씨의 얘기처럼 통일도 우리가 주인이 되어서 해야 통일된 나라의 주인도 우리가 될 수 있어요. 광복되고 해방된 건 좋았는데 우리가 해방의 주인이 못 되었어요. 해방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제대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외세가 주인이 되어서 분단을 시켜버렸잖아요. 그러니 앞으로 재벌이 중심이 되어 통일을 하게 되면 통일 한국은 재벌이 주인인 국가가 될 것이고, 시민이 중심이 되어 통일을 하게 되면 통일 한국은 시민이 주인인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도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인생도 이런 자세로 살아간다면 금방 행복해집니다. 행복으로 가는 길이 절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도 이 첫발을 내딛는 것에 있습니다.”nbsp내가 먼저 주인이 되고, 내가 먼저 베풀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자세가 곧 행복으로 가는 길이고 나라와 민족의 희망을 만드는 길이라는 명쾌한 말씀에 속이 뻥 뚫리고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청년들도 스님의 소중한 가르침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김제동씨는 스님이 이미 너무나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따로 할 얘기가 없다고 하면서 “저도 지금 가슴이 벅찹니다. 통일은 아직 우리 눈 앞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통일을 꿈꾸는 지금 이 순간부터 통일의 기쁨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고 말해 잔잔한 여운을 남겨 주었습니다.nbspnbspnbsp청춘콘서트의 마지막은 다함께 부르는 노래와 춤으로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재능기부로 출연한 요술당나귀와 오늘 강연을 자원봉사로 참여해 준비해 준 서포터즈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스님과 김제동씨와 손을 맞잡고 청춘콘서트 공식 노래 ‘행복가’를 함께 불렀습니다.nbspnbspnbsp후렴구가 시작되자 앉아 있던 청중들도 다함께 기립해서 머리 위로 손을 흔들며 그 감동을 더했습니다. 정말로 청년들이 마음껏 꿈꾸고 웃고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오도록, 그 세상이 바로 남북이 어우러진 통일 한국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오늘 청춘콘서트를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nbsp집으로 돌아가는 청년들을 위해 강연장 입구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스님의 통일 이야기를 엮은 책 ‘새로운 100년’을 사서 스님에게 직접 사인을 받았습니다. 스님은 사인을 하며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환한 웃음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청년들도 스님에게 ‘너무 감사해요’ 라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한 달 전부터 사전 모임을 수차례 가지며 오늘 강연을 준비한 전주 청년포럼 활동가들과 서포터즈 봉사자들이 다함께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행복의 나라로 놀라와”라고 nbsp외치는 모습 속에서 뿌듯한 보람과 밝은 기상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자원봉사를 통해 이렇게 큰 행사를 치뤄낸 서포터즈들 nbsp한 명 한 명의 손을 꼭 잡아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김제동씨는 더 적극적으로 한 명 한 명을 꼭 안아주며 격려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봉사자들까지 꼼꼼히 챙기는 두 분의 모습은 훈훈한 감동을 주었습니다.nbspnbspnbsp▲ 수고한 서포터즈 봉사자들을 격려해 주는 법륜 스님과 김제동nbsp이어서 스님은 오늘 청춘콘서트 행사장에 찾아온 정동영 전 의원님을 만났습니다. 정 의원님은 전북 순창이 고향이여서 지금 순창에서 감자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하면서 스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특히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이력 답게 통일의 꿈을 놓지 않고 씨감자 농장을 만들어서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통일 씨감자’를 전문가들과 함께 배양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 인사를 하러 찾아온 정동영 전 의원nbsp스님은 밝은 얼굴로 열심히 살고 있는 정 의원님을 보고 기쁜 마음을 내비치며 다음달에 다시 전라도에 내려오면 그 때는 농장을 직접 방문해 보겠다고 한 후 돌아섰습니다.nbspnbsp밤 11시가 넘어서 전주를 출발한 스님은 새벽 3시에 울산 두북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아침 일찍부터는 그동안 못다한 농사일을 챙겨서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대전에서 김제동씨와 함께하는 청춘콘서트가 연이어 계속될 예정입니다.nbspnbsp※ 법륜 스님과 김제동이 함께하는 2015 청춘콘서트가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곳곳에서 열립니다. 참가를 원하는 분들은 티켓을 사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lt티켓 사전 신청하기gtnbspnbspnbsp우리 지역 콘서트 일정을 nbsp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nbsp

2015.09.11. 59,599 읽음 댓글 33개

2015.9.9 강릉 통일의병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강릉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과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강릉문화예술관에서 강연했습니다.nbspnbsp어젯밤 새벽 2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새벽 4시에 대중들보다 일찍 예불과 기도를 마친 후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6시 30분에는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찾아온 손님들과 연이어 미팅을 가졌고, 오후 3시에는 서울을 출발하여 강릉으로 향했습니다. 서울에서 강릉으로 가는 차 안에서는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nbsp강연이 열리는 강릉문화예술관에는 오후 6시가 다 되어 도착했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이 열린 강릉문화예술관nbsp스님은 입구에서부터 안내 푯말을 들고 있는 봉사자부터 시작해 한 명 한 명에게 환한 웃음으로 악수를 건내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nbspnbspnbsp6시 30분부터는 대기실에서 강릉 지역 통일의병들과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통일의병’ 모임은 전국적으로 확대가 되고 있는데 강릉에서도 처음으로 통일의병 모임이 생긴 것입니다. 이번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난 분들인데, 단순히 자원봉사만 할 것이 아니라 스님과 간담회를 가지는 것이 더 의미있겠다 싶어서 자리가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nbspnbsp▲ 강릉 지역 통일의병들과의 간담회nbsp먼저 스님은 통일의병 모임을 만든 이유와 오늘 강연의 취지에 대해 소개한 후 무엇보다 지금 이 시기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한국 국민들이 통일 지향적인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많은 사람들이 통일 운동을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묻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통일은 국민들의 행복에 직결되는 문제인데, 결국 통일운동은 통일 노래 부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공연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행진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통일이라는 것 자체의 성격이 정치적이고 군사적이고 외교적이고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정부가 하는 것이지 민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예요. 민간에서 제가 지난 20년간 해보니까 그래요. 미국 가서 민간 외교도 해보고 일본 전문가들과도 대화해 봤지만 결국에는 정부가 해야 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이 통일운동에 ‘의병’이란 말이 붙은 데는 그런 이유도 좀 있습니다. 일반 시민단체의 수준으로는 안 돼요. 정치적이고 군사적이고 경제적이고 외교적인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nbspnbspnbsp이렇게 생각해볼 때, 지금 우리 주변에서 통일을 가장 원하는 게 누구일까요? 미국일까요? 제가 미국에 가서 토론해보니 아니었습니다. 미국은 지금 한국 통일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견제할 거냐에 관심이 있어요. 중국은 자기들의 힘에 걸맞는 외교적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관심이 있지, 한국 통일 문제에 관심이 있지는 않습니다. 일본은 패전국가로서의 멍에를 이참에 어떻게 벗어던지고 정상국가화 하느냐, 온통 여기에 관심이 쏠려 있어요. 러시아는 자기들의 잃어버린 패권을 그나마 어떻게 좀 회복해서 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냐에 관심이 있어요. 북한은 입으로는 통일을 이야기하지만 지금 체제가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자기 체제를 지켜내느냐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그래서 이 동아시아 주변국들 중에서도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서 정말 관심을 가지고 또 통일을 추진할만한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할 능력은 되는데 통일할 의향이 없어요. 국민이든 정치인이든 통일이 중요하다고 자각해서 적극 추진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어 보여요. 그래서 지금 정부의 외교도 좀 갈팡질팡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nbspnbsp그러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정부를 강력하게 견인해서 그런 역할을 하게 하든지, 다른 하나는 그게 도저히 현 정부에서 안 된다면 다음 정부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정부로 구성을 해야 합니다. 그때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적인 판단, 여니 야니 하는 판단을 넘어서서 통일을 가장 강력하게 추진할 적격자가 현실적으로 누구이며 어떤 세력이냐를 우리 국민들이 가장 큰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면 통일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갖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nbsp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스님이 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이렇게 통일 강연을 하고 있는지 그 이유가 더욱더 가슴 깊이 다가왔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강릉 지역 통일의병들이 몇 가지 추가 질문을 했습니다. 한 분은 통일의병이 되면 언제부터 어떤 활동을 하게 되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아주 간단한 운동 방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지금은 통일의병 모집 기간이에요. 오늘 강연이 끝나면 강릉에서도 통일시민학교가 열리는데 이걸 수료하면 통일의병이 될 수 있어요. 통일의병이 해야 할 일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확산시키는 것입니다. 통일 앞에는 반드시 ‘평화적’이라는 말을 붙여야 합니다. 평화적이지 않은 통일을 가끔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그래서 평화와 통일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확산시켜야 합니다.nbspnbspnbsp이렇게 확산된 것이 결집되는 것은 ‘투표’라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을 뽑을 때 반통일 세력을 뽑지 말고 민주당이든 새누리당이든 무소속이든 이런 건 따지지 말고 누가 가장 통일을 추진할 사람인지를 보고 뽑아야 합니다. 그래서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를 분명히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왕이 통치하는 국가의 신민이 아니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주권재민의 나라 대한민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책임의식을 좀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운동은 독립운동처럼 총 들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민주화운동처럼 화염병 들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가볍게 손가락만 들고 여기 찍을거냐 저기 찍을거냐만 잘 하도록 해서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해요.”nbspnbsp손가락만 잘 들면 되는 운동이라는 말씀에 모두들 웃음을 띠었습니다. 질의응답을 계속 주고 받다가 강연 시작 시간인 7시가 다 되어 다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에 이어서 큰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강연장 뒤쪽에는 빈자리가 많이 있었는데, 스님은 빈자리를 보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nbspnbspnbsp“즉문즉설을 하면 강당이 미어터지는데, 통일 이야기라는 주제를 붙였다고 사람들이 이렇게 안 와요? 그만큼 우리 개인의 인생이 고달프다는 이야기겠죠. 개인의 문제에 너무 빠져 있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점점 멀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nbsp북적거리는 즉문즉설 강연장과 많이 대비되기는 했지만 스님은 웃음을 띠며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고 와준 사람들을 위해 더욱더 애정을 갖고 강연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저는 승려의 직분으로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여러분들 개인의 삶을 조금 더 행복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조언자의 역할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을 넘어서서 지금 우리 나라가 처한 현실을 힘을 합쳐서 좀 바꾸게 된다면 개인들의 문제도 상당히 개선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오늘은 주로 그런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전에는 주관하는 단체가 정토회였지만, 오늘은 주관하는 단체가 통일의병입니다. 질문하시는 분들이야 이 단체가 주관했든 저 단체가 주관했든 상관없이 자기 물을 거 물으면 되지만 오늘은 저를 초청한 단체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반영해서 나라의 문제, 민족의 문제, 우리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좀 더 비중을 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이해해주시고 질문을 해주십시오.”nbsp사회 문제에 대해 비중을 두고 질문을 해달라는 제안만 간단히 하고, 평소와는 달리 여는 이야기는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총 7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어떤 여성분은 사람들은 왜 단체로 모여서 서로 어울려 살아야 되는지 궁금하다고 물었고, 한 청년은 얼마 전에 여자친구와 싸우고 헤어졌는데 여자친구가 지금도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 걱정되고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고민이라고 물었고, 또 다른 청년은 출가를 하려고 많은 준비를 했지만 주위의 반대가 심해서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물었고, 한 남성 분은 앞으로 성공을 못할 것 같고 고립이 될 것 같고 모든 것이 두렵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물었고, 자살 예방 강연을 다니고 있다는 남성분은 통일이 되면 더 많은 낙오자가 생길텐데 통일 이후에 이런 사람들에게도 어떻게 희망을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한 남성 분은 통일이 되면 일반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고 싶고, 소시민들이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통일이 되면 남북한 주민들 간의 정서적인 이질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물었던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은 개인의 수행적 관점 뿐만 아니라 사회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들까지 함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스님 말씀을 들으니까 벌써 통일이 내일이라도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동서 갈등도 심한 상태인데 통일이 되고 나면 남북 간의 정서적인 갈등도 엄청날 것 같아요. 저는 가끔 해외여행을 하다가 북한 말씨 쓰는 분들을 한 번씩 만나면 무서운 느낌을 받습니다. 미국이나 아프리카 사람도 두렵지 않은데 정작 같은 민족인 북한 사람들이 무섭고, 말도 못 걸겠어요. 통일이 되면 자주 왕래하게 될 텐데 북한 사람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까요? 무조건 포용하고 화합할 자신도 없고, 그렇다고 만나지 않을 수도 없잖아요. 이렇게 정서적으로 예민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nbspnbsp“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외동이에요, 형제가 있어요?”nbsp“형제가 많아요. 언니도 있고요.”nbsp“자랄 때 한 집 한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들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어요, 없었어요?”nbsp“많았죠.”nbsp“그래요. 한 집에 살아도 갈등이 있듯이, 남한 안에도 전라도, 경상도 갈등이 있고 수도권, 비수도권 갈등이 있지요. 결혼하셨죠? 다른 집에서 자란 남자와 결혼해서 살아보니까 어때요? 형제 간의 정서적인 갈등과 남편과의 정서적 갈등 중 어느 게 더 해결하는데 쉽거나 어려웠어요? 솔직하게 이야기해 봐요.”nbspnbsp“남편이 더 어려웠어요.”nbsp“당연하지요. 한 집에서 자란 사람과도 갈등이 있는데, 다른 집에서 자란 사람과는 당연히 갈등이 더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결혼해요? 결혼하면 갈등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결혼하면 실패합니다. 한집에서 자란 형제 간에도 갈등이 있는데, 남의 집에서 자란 남자나 여자와 같이 살면서 어떻게 갈등이 없겠어요? 그런데도 왜 결혼합니까? 갈등이 없는 결혼을 원해서가 아닙니다. 갈등이 있긴 해도 그 갈등은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 갈등이 겁이 나서 결혼을 안 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것처럼 남북 간에는 당연히 통일하면 갈등이 있습니다. 지금 경상도, 전라도 사이의 갈등보다 더 클 거예요. 그러나 그것이 통일을 안 할 이유는 아니에요. 그것은 극복 대상이죠.”nbsp“그렇긴 한데요, 좀 더 우리가 지혜롭게 극복하려면...”nbsp“갈등이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좀 덜 하면 낫겠지요? 갈등을 줄이는 방법은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집에서 자란 사람의 성질, 기호, 취미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갈등이 좀 적어지고, 반대로 그걸 전부 내 식대로 하려고 하면 갈등이 증폭됩니다. 그래서 제가 법문할 때 늘 ‘고치려 들지 말고 인정하고 살아라. 그러면 갈등이 좀 줄어든다’고 하잖아요.nbspnbsp남북 간에도 이게 필요합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정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해요. 한국도 지역 갈등이 심한 이유가 지금 모든 권력을 중앙이 다 쥐고 있어서 그래요. 돈도 마찬가지고요. 전라도 사람이 중앙 권력을 잡으면 전라도가 이익이 되고, 경상도 사람이 중앙 권력을 잡으면 경상도의 이익이 되니까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죠. 여기 강원도처럼 인구가 얼마 안 되는 곳은 여기 붙었다가 저기 붙었다가 하잖아요. nbspnbspnbsp그러니 이 권력을 지방으로 ‘너희 문제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고 나누어 주자는 거예요. 충청도 사람, 경상도 사람, 강원도 사람에게 줘버리자는 겁니다. 중앙 권력은 외교, 안보, 국방, 통일만 중앙에서 관장하고 나머지 권력은 모두 지방에 나눠주는 거예요. 지금 지방 정부의 재정 자립도가 어떻게 돼요? 군이든 도든 자립도가 별로 크지 않아요. 세금을 모두 중앙정부가 거둬서 나눠주니까, 도지사든 시장이든 중앙 정부에 가서 늘 고개 숙이고 빌고 로비해서 가져온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부정부패가 생기는 거예요.nbspnbsp이런 조세정책을 바꾸어서 이러저러한 세금은 지방에서 걷도록 권한을 넘겨주면 돼요. 준 연방제 수준까지 되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조례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는 주법이라는 게 있어요. 예컨대 강원도는 강원도 사람끼리 모여서 도의 법률을 어느 정도까지는 스스로 제정할 권한을 주는 거예요.nbspnbspnbsp이렇게 해보면 어떤 지방은 발전하는 곳이 있고 어떤 지방은 좀 처지는 데가 있겠죠? 그러면 중앙정부가 중앙의 세금을 가지고 처지는 쪽을 조금 도와주면 돼요. 이게 균형발전이에요. 그런데 지금 정부가 생각하는 균형발전은 모든 권한을 중앙이 쥐고 중앙이 돈을 지방으로 배분해주는 것 같아요. ‘한국전력은 광주로 가라’, ‘뭐는 강원도로 가라’ 이런 식이 되니까 서로 가져가려고 물고 차며 싸우잖아요. 돈이 다 중앙에 있기 때문에 싸우는 거예요. 옛날에 남자가 첩을 두셋씩 두면 왜 여자들이 서로 질투했겠어요? 남자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생활이 달라지니 그래요. 여성이라는 신체 구조나 특성 때문에 질투가 생기는 게 아니에요. 내 운명을 내가 결정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의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왕을 두고 신하들 사이에 서로 질투하는 이야기를 많이 봤잖아요. 왕에게 잘 보여야 되니까요.nbspnbsp그런데 권한을 나눠 줘버리면 잘 보여야 할 필요가 없어요. 전라도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결정하면 되고, 싸우더라도 자기들끼리 싸우니까 지역과 지역 간의 갈등까지는 가지 않잖아요. 여기서도 시장 뽑으려면 면끼리, 혹은 읍끼리 싸우잖아요. 도지사를 뽑으려면 군끼리, 혹은 시끼리 싸우잖아요. 대통령을 뽑으려면 지방끼리 싸우는 것처럼요. 이건 누구에게나 다 있는 일이에요. 그걸 나쁘다고 보면 안 돼요. 인간 존재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자치권을 강화시켜버리면 이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nbspnbsp자치권 강화는 통일의 측면에서도 굉장히 좋아요. 북한과 남한이라는 두 덩어리를 합치면 북한은 남한의 이등국민이 되어버리지만, 남한을 이렇게 연방제처럼 만들어버리면 북한이 앞으로 통일코리아에 들어올 때 북한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함경도가 들어오고 황해도가 들어오고 평안도가 들어오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그 권한을 줘버린다고 생각해봐요. 국가적인 것 빼고는 권한을 다 줘서, 자기들끼리 정당 만들어서 자기들끼리 해결 보도록 하면 돼요. 분단되어 있는 강원도만 하나로 합쳐서 통일강원도를 만드는 게 문제겠지요. 다른 곳은 굳이 하나를 만들 필요 없어요.nbspnbspnbsp이렇게 권리를 내어주고 통합을 하면 이 갈등이 훨씬 완화되고, 북한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훨씬 적어집니다.nbspnbsp그래서 통일은 남북연방제가 아니라 다연방제, 8도연방제 방향으로 가면 좋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남한 안에 민주주의도 심화시킬 수 있고 통일도 훨씬 쉬워져요. 그러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nbsp그리고 통일 자금이 많이 든다고 해서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금이 들기는 듭니다. 그런데 이건 소비 자금이 아니라 투자 자금이에요. 철도 놓고 시설 세우는 건 모두 투자예요. 투자는 돈이 모자라면 빌려와도 돼요. 해외에 돈 많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통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통일을 반대한다는 건 통일 못하게끔 겁주는 거예요. 그건 다 투자 자금이기 때문에 걱정 안 해도 됩니다.nbspnbsp북한 사람들 먹여 살릴 양식 주려면 돈이 든다고 하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인건비를 100만원, 200만원을 줘야 할 때 북한 사람은 15만원 줘도 된다면 이 값싼 노동력은 어마어마한 재산이에요. 북한의 지하자원이나 값싼 노동력 이런 것들 자체가 어마어마한 자산입니다. 이렇게 통일이 되면 우리의 국력이 확 달라져요.nbspnbspnbsp그런데 문제는 남쪽의 권력자는 북쪽을 굴복시켜서 통일하고 싶어 하고, 북쪽은 굴복당하기 싫어 한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거꾸로 북쪽이 남쪽을 굴복시키려 했고 남쪽이 죽어도 굴복하기 싫어했잖아요. 이렇게 권력이 너무 중앙에 집중되어 있고, 이걸 서로 차지하려고 둘이 싸우니까 통일이 어려운 거예요. 이걸 없애버리면 통일이 훨씬 쉬워져요.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민주주의도 심화하고, 경제 민주화며 공정사회도 이루어나가려면 정치적으로도 분권이 필요해요.nbspnbsp다음으로는 다당제가 되어야 해요. 다시 말해 권력이 분산되어야 해요. 대통령 혼자 권력을 다 갖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로는 안 돼요. 총리가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장관들이 자기 권한을 가지고 일을 하면 큰 사고가 났을 때 장관만 바꾸면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장관에게 주어진 권한이 너무 작아요. 대통령이 왕이나 다름없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헌법을 바꿔서 국가 시스템을 재편해줘야 해요. 어떤 개인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이 제도가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헌법 개정을 해야 해요.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하니까 지금 문제입니다.nbspnbsp질문자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길이 있는데, 절대 권력을 가진 남북의 두 집단이 어떻게 합의해서 통일할 거냐를 놓고 겨루면서 서로 안 지려고 드니까 문제예요. 만약 우리 대통령이 조금만 양보하면 남쪽에서는 북한한테 끌려다닌다고 난리가 나요. 북쪽도 남쪽에 약간 기가 죽는다 싶으면 북한 내부에서 난리가 나겠죠. ‘젊은 놈이 영 패기가 없다’고 불만을 살 거예요. 그러니 더 세게 나가야 되는 거예요. 한번 칼을 뽑았으면 호박이라도 잘라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저만하면 괜찮다’는 평가를 받을 테니까요.nbspnbsp그러나 이건 그렇게 싸울만한 일이 아니에요. 지난 번에 금방이라도 전쟁을 할 듯이 갔던 이유는 누구도 물러서면 자기 쪽에서 지지받기가 어려우니까 그래요. 그 사이에서 백성만 죽어나는 겁니다. 이런 것이 분단의 폐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가야 합니다. 통일이 그냥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과 직결된 문제란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통일이 우리와는 관계없는 문제인 양 생각해요.nbspnbspnbsp그러니 앞으로 국회의원 선거든 대통령 선거든 다음 선거 때 투표기준을 잘 잡아주십시오. 여기 강원도에 뭘 유치해주고 뭘 해주고 이런 데 너무 현혹되지 마시고, 그것보다 통일 정책이 가장 중요해요. 한반도를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정책을 갖는다면 경제도 성장할 거예요. 통일 빼고 경제를 얘기하면 그건 거짓말이에요. 그렇게는 성장이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그러니 평화적 통일 정책을 좀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삼아달라, 이것을 확산시키는 운동을 하자, 이게 통일의병의 취지입니다.nbspnbsp오늘 강의를 듣고 ‘아, 과연 통일이 중요하구나’ 해도 제 말만 듣고 금방 활동할 수는 없잖아요. 좀 더 자세히 공부해야 하겠죠? 그래서 통일시민학교가 열리니까 참가해서 공부를 한번 해보세요.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면 됩니다. ‘이게 정말 중요하구나. 정말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통일이 필요하구나’ 이렇게 공감하면 여러분도 통일의병이 되어주시고요. 독립군은 총 들고 싸웠고 민주투사는 돌멩이 들고 싸웠지만 통일의병은 손가락만 들고 나가면 됩니다. 이쪽 찍을지 저쪽 찍을지를 잘 결정해서 손가락 잘 움직이는 게 통일운동이에요. 얼마나 쉬워요?”nbspnbspnbsp청중들도 스님이 일러준 쉬운 방법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배울 수 있었고, 또 하나 크게 배운 것은 사회제도적으로 지방 자치권을 강화시키거나 다당제를 도입하거나 8도 연방제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의 수행과 사회 제도의 변화를 함께 개선해 나가야 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마지막으로 “개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사는 나라의 문제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셔서 부디 관심을 함께 가져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당부를 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강릉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사회자가 나와서 9월 19일과 20일에 진행될 예정인 강릉 통일시민학교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강연 중 스님도 꼭 한번 들어보라고 강조를 한 덕분에 강연장을 나가는 길에 많은 분들이 신청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 9월 19일과 20일에 열릴 예정인 강릉 통일시민학교nbspnbsp그리고 통일의병 봉사자들이 다함께 앞으로 나와 스님과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부르며 오늘 강연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오늘 강릉 시민들을 위한 강연이 통일을 이루는데 작은 한걸음이 되었기를 바래봅니다.nbspnbspnbsp강연장 입구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께 사인을 받으며 오늘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 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도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습니다.nbspnbspnbsp사인회를 마치고 나서는 강연장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 오늘 강연이 무사히 치러질 수 있게 해준 통일의병 봉사자들 모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통일 의병 의병 의병” 하는 우렁찬 목소리를 들으니 곧 강릉 지역에서도 통일의병 모임이 아주 활성화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강연장을 나오면서도 봉사자 한 분 한 분의 손을 꼭 잡아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밤 10시 30분 무렵 강릉을 출발해 새벽 1시가 다 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연이어 실무자들과 회의가 있을 예정이고, 오후에는 전주로 이동해 저녁 7시부터 김제동씨와 함께하는 청춘콘서트에 참석할 예정입니다.nbspnbsp ※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nbsp2015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과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이 펼쳐집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하시고 많은 참여 바랍니다. 아래 배너를 누르고 사전 신청을 하세요.nbsplt사전 신청하기gtnbspnbsp

2015.09.10. 40,222 읽음 댓글 28개

2015.9.7 수원 통일의병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수원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과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에 두북 정토수련원 법당에서 법사단과 함께 새벽 예불을 올린 스님은 법사단과 함께 아침 공양을 했습니다.nbspnbsp▲ 두북 정토수련원nbsp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스님이 직접 텃밭에서 기른 수박을 잘라서 법사단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수박이 속 깊이 익어서 달고 맛있었습니다. 수박을 먹으며 어제 법사단 회의 결과와 관련하여 몇가지 의논을 한 후 아침 7시 30분에 서울로 출발했습니다.nbspnbsp▲ 법사단에게 직접 키운 수박을 잘라주고 있는 스님nbsp연이어 강연이 계속되면서 목이 많이 아프다고 하셨는데 12시 쯤 서울에 도착해 곧바로 이비인후과로 가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점심도 드실 시간도 없이 서울 정토회관에 들러 세수만 한 후 곧바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1시 30분부터는 국회의사당 내에 위치한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정의화 국회의장님의 사진전에 참석했습니다. 스님은 일정상 사진전 같은 데는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데 의장님이 종교계를 대표해서 스님이 꼭 오셔서 축사를 해달라고 요청을 해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정 의장님은 대학 시절 사진 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 첫 개인사진전을 열어본 후 43년 만인 오늘에서야 두 번째 사진전을 열게 되었다고 합니다.nbspnbsp▲ 정의화 국회의장의 사진전nbsp의장님이 종교계를 대표해서 스님께 축사를 요청하자 스님은 간단히 사진전을 본 소감과 부탁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nbspnbsp“제가 스님인데 왜 사진전에 와서 축사까지 하게 되었냐면, 저도 고등학교 때 과학을 좋아해서 과학실에 있으면서 사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런데 의장님과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 오늘 사진전이 있으니 축사를 꼭 해달라고 해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정의화 의장님의 사진을 보면서 사진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면 첫째는 사진은 그림과 달리 사실대로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그림은 그리는 사람의 주관이 많이 개입되는데 사진은 현실을 사실대로 나타냅니다. 둘째는 사실대로 나타냄에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인도에서 굉장히 초라한 아주머니의 옷을 찍었는데 사진으로 보면 굉장히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어요. 의장님의 사진에서도 인디언 여성들이 옷을 벗은 사진을 보았는데 사실은 야한데도 불구하고 사진으로 찍어놓으니 성스러워 보이잖아요. 사진은 더러운 것도 깨끗하게 보이게 하고 속된 것도 성스럽게 보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nbspnbspnbsp이런데서 저는 의장님도 정치를 사진처럼 했으면 좋겠다 싶어요. 정말 국민의 뜻이 사진처럼 사실대로 구현되는 그런 정치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러나 세상이란 것은 또한 속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된 것에 너무 빠지지 말고 속된 것이 성스럽게 보일 수 있는, 야한 것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더러운 것이 깨끗하게 보일 수 있는, 그런 사진 같은 정치를 해주십사 하는 부탁 말씀을 드립니다.”nbsp사진과 같은 정치를 하면 좋겠다는 말씀에 정 의장님을 비롯해 함께 자리한 많은 분들의 큰 박수로 공감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의장님은 시간을 내어준 스님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했고, 함께 자리한 몇몇 국회의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다시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집무실에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오후 6시에 정토회관을 출발해 저녁 6시 40분에 오늘 강연이 열리는 경기중소기업센터 경기홀에 도착했습니다. nbspnbspnbsp▲ 오늘 강연이 열린 경기중소기업센터 경기홀nbsp저녁 7시가 되자 통일의병 소개 영상에 이어서 스님 소개 영상이 나간 후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먼저 스님은 이번 강연은 ‘통일의병’이라는 단체에서 주관했다고 하면서 인생 고민도 좋지만 사회 문제나 통일 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질문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오늘의 강연은 조금 특별합니다. 주로 정토회에서 주최해서 즉문즉설을 하지만, 오늘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활동하는 민간단체인 ‘통일의병’에서 이 강연회를 주최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힘이 드는 것이 마련이니까 개인적인 질문도 받긴 하겠습니다. 그래도 통일에 관련된 질문을 되도록 많이 해주시면 좋겠어요. 통일의병 측에서 어렵사리 강연 준비를 했는데 통일 이야기는 하나도 묻지 않고 개인적인 이야기만 물으면 주최 단체가 실망하잖아요.” 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점과 분단된 상태로는 더 이상 지속적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nbspnbsp“오늘 강연에서는 개인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행도 좋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전체적인 문제, 즉 공동체적인 문제에도 내가 관심을 좀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수행자도 기독교인도 부자도 다 위험에 처하지 않습니까? 지난 50년간 우리가 피땀 흘려 이루어낸 산업화의 결실과 우리의 소중한 인명을 결코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최근에도 마치 당장에라도 전쟁을 할 것 같은 위기에 처했잖습니까? ‘저놈들 까짓 거 한 달만 전쟁하면 이긴다.’ 이런 건 굉장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누가 이기고 지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현재 남북한이 보유한 화력을 고려할 때 전쟁은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는 항구적인 평화를 우리가 추구해야 합니다.nbspnbspnbsp또 전쟁이 없는 평화만 유지하면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50여 년간은 분단된 상태로도 우리는 어느 정도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간은 거의 발전이 안 되고 정체 국면에 머물러 있었어요. 성장이 둔화되고 있잖아요. 어떤 정치인이 이렇게 성장이 안 되는 게 노동자들이 쇠파이프 들고 시위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건 좀 편견인 것 같아요. 또 반대하는 쪽에서는 재벌 개혁을 못 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것도 편견입니다. 이런 문제들도 포함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살펴보면 이제는 정체 국면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어요. 분단된 상태에서 남한만 가지고는 더 이상 지속적 성장은 담보되기 어렵습니다.”nbsp그리고 6000년 전의 배달나라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의 민족사를 강조하면서 통일 한국은 이를 계승하여 우리 민족이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우리는 지난 1000년 동안 자주적인 독립국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마음 속에 ‘우리는 약소국가다,’ ‘우리 국민성은 사대주의 성향이 있다’ 이렇게 좀 자학하는 성향이 깃들게 되었어요. 그러나 실제의 우리 민족은 그렇지 않습니다. 6000년 전에 배달나라가 건국되었을 때에는 세계 최고의 문명국가였습니다. 배달나라를 계승한 조선나라도 청동기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국가였습니다. 이 고조선의 일파가 중국으로 가서 중원을 지배한 것이 은나라예요.nbspnbspnbsp그런데 청동기 문명에서 철기 문명으로 바뀔 때 중국의 철기 문명이 앞서가고, 우리는 청동기 문명에 안주하다가 주도권을 놓치게 되었어요. 그래도 부여가 동북방에서 강대했고, 부여를 계승한 고구려는 잃어버린 고조선의 옛 땅을 되찾겠다는 다물 정신으로 나라를 건국했기 때문에 동북아에서 강대한 국가를 형성했습니다. 이때 한나라의 침공을 막겠다고 만들어진 다물군이 최초의 의병이었어요. 고구려가 패망하자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또 동북아 대륙에 큰 제국을 이루고 활약했습니다.nbsp이렇게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때는 세계 최고의 문명을 이루었고 이후에도 동북아시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발해 멸망 이후에는 고구려와 발해에 속해 있던 토착세력인 제 부족들이 일어나 독립했지요. 거란족이 요나라를 세우고,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우고, 몽골족이 원나라를 세우고,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우고, 왜가 대일본제국을 만들고, 이렇게 우리 아래에 있던 민족들이 다 한 번씩 대륙을 재패했습니다. 이런 천 년을 지나다 보니까 우리는 우리 민족의 웅대함이나 영광스러움을 다 잃어버리고, 원래부터 동북아 대륙의 한반도에 사는 작은 약소국인 양 잘못 생각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는 최근 5060년 사이에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잖아요. 지금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며 선진국에 들어섰다고들 말해요. 약소국가가 노력한다고 이렇게 된 예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 DNA 속에 고대의 웅대한 민족사가 있었기 때문에 기회를 맞았을 때 그게 발현되어 빠른 시일 내에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저앉는다는 것은 좀 아깝지 않느냐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nbspnbspnbsp만약 우리가 여기서 조금만 더 노력해서 남북 간 평화를 유지하고 통일을 만들어낸다면 단순히 통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갈 수 있어요. 요즘은 이웃 나라와 싸워 이겨서 우리만 잘 되는 것은 세계의 추세가 아닙니다. 이웃 나라와 손잡고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게 오늘날의 세계 추세입니다. 먼저 남북한이 협력해서 통일을 하고, 통일된 한국이 그 다음으로 일본 및 중국과 협력해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고, 또 우리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면 앞으로 50년 쯤 지나면 문명의 중심이 아시아로 옮겨올 것입니다.”nbsp스님의 가슴 뛰는 통일 이야기에 시작부터 가슴이 두근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하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총 4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여성분은 야속하기는 하지만 남편도 행복할 권리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남편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고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지 물었고, 이어서 또 같은 분은 회사에서도 못마땅한 상사가 있는데 항상 맞추며 살아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한 여성분은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아이의 친구 오남매와 인연이 되었지만 모두 정신불열증, 지적 장애, 자살 시도, 대인기피증 등으로 방황하고 있어서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물었고, 마지막으로 한 남성분은 교회나 절에 가면 종교인들이 항상 통일을 외치지만 말 뿐이고 종교인의 3분 2가 팬티만 입고 삼보일배를 하면서 휴전선을 넘어가면 통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스님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평범한 시민이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던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저는 두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저는 대통령도 아니면서 나라 걱정이 좀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스님의 책 ‘새로운 100년’을 읽었습니다. 특히 민족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무척 감명 깊었습니다. 뿌리를 알게 되니까 가슴이 정말 후련해졌어요. 그리고 통일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알게 되니까 가슴이 뛰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주변 정세를 보면 마치 100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불안하고, 지뢰 사건으로 인해서 전쟁 직전까지 치닫는 등 정치적 환경은 통일과 멀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저처럼 이제 통일 문제에 대해 막 눈을 뜬 사람들이 통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통일을 바라는 평범한 주부로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먼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민족적 열등의식도 치유할 수 있다고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설명을 해준 후 평범한 시민들이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쉽고 간명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중요한 문제인 통일을 누가 해야 할까요? 미국이 해줄까요? 미국은 지금 중국 봉쇄에 관심이 있을까요? 한국을 통일하는 데 관심이 있을까요? 중국은 미국의 봉쇄를 뚫고 나가는데 관심이 있을까요? 한국을 통일하는 데 관심이 있을까요? 일본은 지금 부상하는 중국에 대응하는 데 관심이 있을까요? 한국의 통일에 관심이 있을까요? 러시아가 한국 통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일까요?nbspnbspnbsp북한은 지금 자기 체제 지키기에 급급할까요? 통일에 전심전력을 쏟으려 할까요? 말은 통일은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자기 체제 지키기에 급급합니다. 우리도 약할 때는 우리를 지키는 데 급급했어요. 박정희 대통령이 5.16 쿠데타를 일으킨 뒤 내세운 혁명공약 1번이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건 우리 체제를 지키는 게 국가의 제1목적이었다는 뜻이에요. 그것처럼 지금 북한은 자기 체제를 지키는 게 제1목적입니다.nbspnbsp통일을 하려면 할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은 대한민국 밖에 없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능력 면에서는 통일을 주도할 만한 조건이 되지만 통일을 할 의지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통일이 안 되고 있는 거예요. 제가 볼 때는 통일을 하지 못하면 90는 여기서 가라앉는 쪽으로 갈 거라고 봐요. 100라고 하면 차라리 아무 노력을 안 할 텐데, 그래도 10는 가능성이 있어요.nbspnbsp그러면 탁월한 정치 지도자가 나타나서 이 문제를 풀어나갈까요? 정치인들을 아무리 봐도 그럴 의지도 능력도 별로 없어 보여요. 우리나라 재벌들이 이 문제를 풀어나갈까요? 노동 조직들이 이 문제를 풀어나갈까요? 아니에요. 그러니 마지막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은 국민 밖에 없습니다. 국민이 통일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면 통일은 가능합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가 통일 노래를 부른다고 통일이 됩니까? 안 됩니다. 통일은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이건 다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하는 거예요. 북한 같은 경우, 정부가 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다릅니다.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되어 있잖아요. 통일에 우리의 운명이 걸렸다고 하면 우리가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할 정부를 세우면 되겠지요. 현 정부가 통일 대박론까지 주장하고 있으니까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하도록 압력을 더 넣고요.nbspnbspnbsp그런데 통일을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한다는 통일 지상주의가 되면 안 돼요. 그렇게 하면 이겨서 통일을 할지는 몰라도 나라가 풍비박산 나요. 반대로 평화 지상주의, 즉 평화만 유지되면 된다고 하면 분단 고착화로 갈 위험이 있어요. 우리는 평화도 필요하고 통일도 필요합니다. 그러니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해야 합니다.nbspnbsp그 중에서도 평화가 우선이에요. 통일이란 미래에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통일하자는 거예요. 평화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루어놓은 것을 파괴하지 말고 지켜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안주하면 미래가 없어요. 미래에 더 큰 이익을 얻으려면 통일을 해야 하는데, 미래의 이익을 보고 지금의 것을 모두 날려버리는 모험 투자를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현재를 지키면서 안전하게 미래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평화적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nbspnbsp평화적 통일이라는 말은 북한과 서로 협의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우리 식대로 하면 안 되고 협의를 해야 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책임자답게 주인이 되어서 통일을 추진해야 하고, 그런 가운데 어느 정도 북한과 협의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협의를 한다는 것은 상대의 요구도 좀 받아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받아주는 게 바로 포용이에요. 강자가 약자의 요구를 좀 받아주면 포용이라고 하고, 약자가 강자에게 눌려서 양보하면 비굴이라고 해요. 그렇게 해야 우리 손으로 통일의 길을 열 수 있습니다.nbsp질문자가 한 이야기의 핵심은 ‘내가 뭘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지요?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제일 중요하고 쉬운 방법은 투표를 잘 하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투표권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러니 내년 4월 총선에 국회의원을 뽑을 때 내 친구, 내 동창, 인물 잘 생긴 사람 이런 것들을 보지 말고, 여기에 공장을 세워준다 이런 것도 보지 말고, 투표의 핵심 기준을 통일에 대해 비전을 가진 사람인지를 놓고 비교해봐서 찍어주면 돼요.nbspnbspnbsp그리고 대통령 선거 때 경제를 성장시킨다거나 복지를 한다는 공약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통일정책을 제일 중요시해야 합니다. 입으로만 말하고 말 사람인지, 진정으로 추진할 사람인지, 북쪽에서 무력시위를 하더라도 적당히 다독이고 구슬려서 함께 갈 사람인지, 미국이 간섭해도 우리의 이익을 지키면서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할 사람인지, 중국이 뭐라고 해도 넘어가지 않고 우리의 이익인 평화와 통일에 딱 중심을 잡고 추진할 지도자인지를 보세요. 이걸 가장 중요하게 보고 투표하면 됩니다.nbspnbsp그런데 질문자는 주식으로 치자면 소액주주니까 혼자 찍어봐야 큰 효과가 없어요. 주주총회할 때 결정권을 행사하려면 51가 넘어야 합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10명이든 20명이든 100명이든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데려가서 투표하도록 해야 합니다.nbspnbsp독립 운동을 할 때는 총 들고 싸우다가 지면 죽었어요. 민주화 투쟁할 때는 돌멩이 들고 싸우다가 잡히면 감옥 갔어요. 그런데 투표는 국민의 권리기 때문에 손가락만 들고 가면 돼요. 그리고 설령 잘못된다 하더라도 아무 피해가 없어요. 너무너무 쉬워요. 이래서 무슨 운동이 되겠나 싶지요? 아닙니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우리 선배들이 목숨 걸고 싸워서 나라를 독립시켜줬고 민주투사들이 싸워서 민주화를 이루어줬잖아요. 그 덕분에 우리는 선배들 같은 모험을 하지 않고도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것마저도 안 하려 든다는 겁니다. 이것조차 안 하려는 사람에게 비전이 있을까요? 없어요. 그러면 가라앉는 수밖에 없습니다.nbspnbsp질문자는 뭘 해야 되느냐고 물었는데, 지금 말씀드린 것만 하면 돼요. 가만히 있다가 투표날에 가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시키면 누가 말을 듣겠어요? 그러니 지금부터 계를 모으든지 해서 100명이든 1000명이든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을 모아 질문자가 투표장으로 데려가세요. nbspnbspnbsp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배우자에게 잘 해줘야 해요. 남편이 뭐라고 하든지 그저 ‘예, 예’ 하면서 잘 해주다가 나중에 ‘여보, 나한테 소원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래?’ 이렇게 말해서 ‘뭔데?’ 하면 ‘이 사람 좀 찍어줄래?’ 이렇게 하세요. 정말로 통일에 열의가 있으면 마음에 안 드는 회사 직원한테도 잘해 주세요. ‘나는 당신한테 뭐 해 주지?’ 이러면 ‘아이고, 됐어요. 나도 부탁 있을 때 이야기할게요.’ 이러고 마냥 잘 해주세요. 그러다가 나중에 ‘부탁이 있는데요, 이 사람만 꼭 좀 찍어줄래요?’ 이렇게 해보세요.nbspnbsp진짜로 통일에 열의가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해요. 그럴 정도로 우리가 열의가 있으면 나라를 바꿀 수 있습니다. 너무너무 쉬워요. 너무 쉬워서 오히려 안 되는지도 몰라요. ‘다 버리고 나와라. 총 들고 싸우자’ 이러면 올 사람이 좀 있을 텐데 뭐 그런 걸 가지고 운동이라고 하느냐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진정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 방법은 너무너무 쉬워요. 결혼생활을 해도 되고 직장을 다녀도 되고 밥 먹어도 되고 화장을 해도 돼요. 스님이 되려고 하면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 일은 그런 거 다 해도 돼요. 자기 생활 그대로 유지하면서 엄지손가락만 갖고 잘 하면 되잖아요. 요즘은 손가락 지문 찍는 것도 아니니 더 쉬워요.nbspnbspnbsp나라를 위해서 나에게 주어진 권리를 올바르게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전에 시간이 남으면 북한 돕기에 좀 보태주세요. 북한에 굶어죽는 아이들이 영양실조라도 면하도록 보시도 좀 하고, 북한에 나무 심는다 하면 좀 보태고요. 통일되기 전에 나무를 미리 심어놓아야 해요. 아이들은 어때요? 지금 영양실조인 아이들을 나중에 통일 되고 나서 지원하려면 사회 보장기금이 엄청나게 듭니다. 지금 조금 도와줘서 영양실조를 면하게만 해줘도 통일 후에 지원하는 비용이 훨씬 적게 들어요. 이런 걸 선투자라고 해요. 지금 미리 나무 심어두면 나무가 자라는 데 30년쯤 걸리니까 좋잖아요. 나무가 총이 되어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요. 하기야 제가 예전에 북한 사람들 굶어죽는다고 지원하자 하니까 이런 플래카드를 붙이는 사람이 있긴 했어요. ‘우리가 지원한 쌀, 총알 되어 돌아온다’. 그래도 ‘우리가 심은 나무, 총알 되어 돌아온다’ 이런 플래카드는 안 붙을 것 같아요. 이제는 인식들이 좀 바뀌었으니까요. 20년 전에는 그랬어요. 그래서 돕자는 이야기 꺼내는 것만도 굉장히 어려웠어요. 돕자는 말만 꺼내도 북한 편드는 양 취급들을 했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통일 운동을 아주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어요.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제안합니다. 첫째, 역사 공부를 좀 하세요. 시험 치려고 공부하는 것 말고 우리 역사에 대해 공부를 좀 해서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자는 겁니다. 둘째, 현재의 대한민국에 대해서 자긍심을 가지세요. 우리가 분단이 되고 전쟁까지 치렀지만 그래도 지난 50년 간 노력해서 산업화도 이루었고, 민주화도 이루었다는 것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그러니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세요.nbspnbsp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잘 되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이 상태에서는 절대로 잘 될 수가 없어요. 경제는 장기불황에 빠지고 안보도 미중의 경쟁 속에서 불안이 계속될 겁니다. 전에는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었으니 미국 옆에만 붙어 있으면 됐지만 이제는 미국 옆에 붙어 있어도 보장이 안 됩니다. 미일 동맹에 우리가 붙어버려서 중국과 갈등이 생기면 경제가 하루아침에 굉장히 어려워져요. 옛 친구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새 친구도 중요하고, 그 가운데서 내 중심을 잡아야 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최고의 방법, 가장 쉽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통일입니다. 이걸 딱 생각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지금 통일을 주도할 나라가 아무도 없고 대한민국뿐이에요. 대한민국이 통일을 주도하려면 강력한 통일지향적 정부를 우리가 세워야 해요.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도 마침 통일을 추진하겠다고 말하니 더욱 강력하게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우리가 독려를 합시다. 말만 하고 행동은 안 한다면 다음에는 정부를 바꾸어야 되겠죠. 지금까지는 투표를 할 때 야당, 여당, 경상도, 전라도, 진보, 보수 이런 게 판단기준이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건 기준이 안 됩니다. 보수라도 통일만 강력히 추진한다면 밀어주자, 진보라도 통일만 강력히 추진한다면 밀어주자,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의 평가기준을 확 바꿔야 합니다. 통일이 우리에게 정말로 가장 중요한 문제라면 기준이 이렇게 바뀌어야 해요. 그런 자세로 임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nbsp“예, 말씀 잘 들었습니다.”nbsp통일을 분명한 기준으로 해서 투표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일러 주어서 가슴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질문자도 청중들도 큰 박수로 스님의 답변에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자 2시간이 훌쩍 넘었습니다. 아직 질문하려고 대기하던 사람이 2명 더 남았지만 시간이 부족해 답변을 하지 못해서 다음 강연 장소에 찾아와서 질문하라고 양해를 구한 후 마지막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쉽고 간단한 행동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nbspnbspnbsp“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은 간단합니다. 손가락만 잘 누르면 됩니다. 손가락을 이리 놀리느냐 저리 놀리느냐에 따라서 나라의 운명이 달라져요. 그런데 혼자 오면 안 되고 다른 사람을 데려와야 해요. 그래서 지금부터 100명을 모으겠다고 목표를 세우세요. 그러면 통일의병 1만 명만 있으면 100만 명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100만 표만 좌우해도 당락에 영향을 좀 줄 수 있습니다.nbspnbsp‘이렇게 통일을 추진해 줄 사람 없나? 그렇게 해주면 우리의 100만 표를 주겠다’ 라고 하면 여야가 팽팽하게 맞설수록 그 표를 얻기 위해 서로 다투어 통일 정책을 바꾸겠지요. 우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다시 바꿔오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또 바꿔오고, 이렇게 선거날까지 딱 중심을 잡고 있으면 양측이 표를 얻으려고 우리가 원하는 통일 방안을 내어놓을 거예요. 그러면 누가 되든 상관이 없어져요. 어차피 둘 다 정책이 비슷하게 되었기 때문에 누가 되든 똑같아요. nbspnbspnbsp한쪽이 되고 한쪽이 떨어지면 승패가 되잖아요. 그런데 표를 쥐고 ‘우리가 300만 표 갖고 있다’ 이러면 그 표 잡으려고 계속 정책을 바꾸다가 결국에는 양 진영이 비슷해질 거 아니에요. ‘비슷해지면 누굴 찍어요?’ 이렇게 걱정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걸 왜 걱정해요? 어차피 비슷하면 누굴 찍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데요. nbspnbsp이런 정도의 자세만 갖는다면 우리가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있어요. 밥 굶던 시절,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며 열심히 일했던 그 시절에 우리가 지금처럼 잘 살게 되리라고 꿈에라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이루어졌어요. 대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을 할 당시에는 이 정도까지 올 거라고 생각 못 했잖아요. 그것처럼 통일도 우리 국민들이 딱 마음먹고 시작하면 과거처럼 희생하지 않고도 이룰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러니 통일시민학교에 등록을 하셔서 3주 교육 받고, 통일을 원한다면 저처럼 이렇게 뺏지도 다세요. 행동은 다만 투표만 잘 하면 됩니다. 갈 때 혼자 가지 말고 지금부터 조금씩 사람을 모으세요. 누굴 찍으라고 하면 선거운동 한다고 하니까 그러지 말고 평소에 잘 해주세요. 커피도 사주고 술도 사주며 잘 해주다가 상대가 ‘답례로 뭐 해줄까’ 하면 투표만 잘해 달라고 하면 돼요. 정치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예요. 많은 시민들이 이렇게 각성을 해야 하니까 통일시민학교에 주위 사람들을 많이 참여시키는 운동을 함께 해봅시다. 우리 손으로 나라의 운명을 바꿔봅시다.”nbsp우리 손으로 나라의 운명을 바꾸어보자는 스님의 호소에 청중들은 다시 한 번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은 다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강연을 준비한 스텝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오고 청중들도 기립을 한 채 서로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노래를 시작하려는 찰나 뒤늦게 수원 시장님이 도착해 스님께 꽃다발을 건냈고, 시장님도 스님과 함께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습니다.nbspnbsp▲ 강연 후 스님에게 꽃다발을 건낸 수원 시장님nbsp▲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nbsp마지막으로 사회자가 나와서 방금 스님이 언급해 준 통일시민학교에 대해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수원에서는 9월 11일과 19일 2일에 걸쳐 통일시민학교가 열릴 예정이라고 합니다.nbspnbsp▲ 수원 통일시민학교 일정과 참가방법nbsp강연장 입구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오늘 강연을 들었던 수원 시민들은 사인을 받으며 “스님, 소중한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하며 인사를 했고, 스님은 한명 한명과 눈을 마주치며 환한 웃음을 머금었습니다.nbspnbspnbsp사인을 받는 사람 중에 초등학교 여학생 한 명이 보이자 스님은 “오늘 지루해서 힘들었지?” 라고 물어보면서 “너가 질문했으면 오늘 강연이 더 재미있었을텐데...” 하면서 웃음을 띠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 준비를 위해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수고해준 통일의병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통일 의병 의병 의병”를 씩씩하게 외치는 모습에서 통일을 향한 열정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nbsp사진 촬영 후 다시 대기실로 가서 늦게 도착한 수원 시장님과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시장님은 시정 활동의 어려운 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스님은 애정을 담아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빠져나오닌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스님은 수원을 출발하여 다시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밤늦게까지 원고 교정을 업무를 보다가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광주에서 김제동씨와 함께하는 청춘콘서트가 있을 예정입니다.nbspnbsp ※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nbsp2015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과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이 펼쳐집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하시고 많은 참여 바랍니다. 아래 배너를 누르고 사전 신청을 하세요.nbsplt사전 신청하기gtnbspnbsp

2015.09.09. 38,025 읽음 댓글 23개

2015.9.6 (오후) 제1차 통일의병대회 제2부

nbsp식사를 마치고 다시 행군을 계속해서 오후 1시에 통일암 너른 터에 도착했습니다. 통일암에서는 통일의병대회 2부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통일의병대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 통일의병학교 졸업 기념으로 각 지부에서 준비한 축하 공연이 연이어 신나게 펼쳐졌습니다.nbspnbsp▲ 성동 법당의 ‘백두산’ 노래nbsp▲ 마산 법당의 ‘통일의병가’nbsp▲ 울산 법당의 ‘통일의 불꽃’ 공연nbsp▲ 대구법당과 남산법당 합동팀의 ‘아리랑’ 공연nbsp공연을 보니 의병들의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느껴져서 행사장은 순식간에 통일에 대한 열기로 다시 한 번 후끈 달아올랐습니다.nbspnbsp모두가 하나 되는 신명나는 시간에 이어서 서로를 부정하고 반목하는 역사를 넘어 이제 새로운 희망의 역사를 써나갈 것을 발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토회 통일의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김은숙 행정처장님의 경과 보고가 있은 후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이 대회사를 해주고, 또 통일의병 대표인 김홍신 작가님이 축사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지난 3월부터 진행된 1차 교육과 2차 교육을 모두 수료한 1510명의 통일의병들에게 임명장과 배지를 수여했습니다. 법륜 스님이 먼저 법사단에 임명장과 배지를 수여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nbsp임명장과 배지를 수여 받고 법사단을 대표해서 묘수 법사님이 그 소감을 말했습니다.nbspnbsp“굉장히 감격스럽습니다.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는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nbspnbsp묘수 법사님은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nbspnbsp▲ 법사단에 통일의병 뺏지를 달아주고 있는 법륜 스님nbsp법사단에게 배지를 모두 달아주고 나서 스님도 통일의병 0번으로써 배지를 달았습니다.nbspnbsp▲ 법륜 스님이 단 통일의병 뺏지nbsp다시 법사님들이 각 지부별로 임명장과 배지를 전달했습니다. 통일의병들은 배지를 받아서 가슴에 달면서 모두들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일제 시대 때 독립운동을 했던 선조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짐작해 봅니다.nbsp▲ 통일의병 뺏지를 달고 기뻐하는 통일의병들nbsp이어서 통일 돼지 저금통을 통일의병 모두에게 분양했습니다. 일제 시대 때 독립운동 군자금을 모았듯이 통일의병들은 점심 도시락을 싸서 다니며 절약된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돼지 저금통에 모두 넣어 오기로 약속했습니다. 저금통을 양손에 든 통일의병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통일의병들이 마음을 모아 저금통을 뒤로 전달하는 모습은 정말 그 자체로 감동이었습니다.nbspnbspnbsp▲ 통일 돼지저금통 분양nbsp임명장과 배지 수여, 돼지 저금통 분양을 모두 마치고 다소 고무된 분위기 속에서 통일의병들은 법륜 스님에게 청법가와 삼배로 법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통일의병의 자세와 역할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왜 지금 통일이 중요한지 지금 대한민국이 놓인 위치를 재조명하고 통일 한국이 되었을 때 우리가 꿈꿀 수 있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현재에도 먹고 살 만하고 과거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하더라도 미래에 아무런 희망이 없으면 사람은 생기가 없어집니다. 과거도 중요하고 현재도 중요하지만 역시 사람에게는 미래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꿈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어요. 가능성과 희망이 있다면 인간은 현재의 어려움을 능히 극복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오늘 큰스님께서도 우리가 비록 지금은 중생이지만 나도 부처님 같이 될 수 있다고 믿고 노력한다면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 같이, 조사님 같이, 우리 각자에게도 그런 좋은 성품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지런히 수행정진 한다면 우리도 그 분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희망이라는 것은 가능성입니다. 반드시 된다면 노력할 필요가 없고 아무리 해봐야 안 된다면 역시 노력할 필요가 없겠죠. 나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때 사람은 노력을 하게 됩니다.nbsp지난 100년을 돌아보면 나라가 기울어져 갈 때 그걸 바로 세우려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나라를 찾으려고 많은 희생을 했지만 우리 힘으로 되찾지는 못했어요. 그러다 일본이 패망하면서 해방은 되었지만 우리가 해방정국의 주인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해방을 쟁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을 패망시킨 주 세력인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에게 우리 운명이 달리게 되었고, 그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남북이 38선으로 분단되었어요.nbspnbsp왜 분단이 되고, 왜 자주적인 정부가 들어설 수 없었을까요? 독립을 우리 힘으로 못 했기 때문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해방은 이루어졌지만, 결국은 일제를 패망시킨 국가들이 주역이 되고 우리는 종속변수가 되었어요. 분단이 된 데다 종속변수가 되어 소위 그들의 하수인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nbspnbsp20세기 전반기는 이런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는 시기, 일제로부터 탄압을 받고 희생되는 시기, 나라를 되찾았지만 분단되는 시기, 동족상잔의 비극인 전쟁까지 치르는 시기... 정말 혼란기였습니다.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북쪽은 북쪽대로 60년대에는 대동강의 기적이라 할 만큼 재건을 했고, 남쪽은 10년쯤 뒤에 한발 늦게 출발했지만 70년대 들어 북한을 따라잡았고 80년대 들어와서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북한을 앞질렀습니다. 남북은 갈등관계에 있었지만 이때는 서로 잘 살려고 경쟁했기에 우리는 분단된 상태에서도 성장을 할 수 있었어요. 남북은 서로를 적대했지만 다른 편에서는 서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경쟁을 한 측면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빈곤국가에서 소위 중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지금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만큼 경제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 투쟁이 있었고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을 통해 어렵사리 민주사회를 이루었습니다. 이 또한 제3세계 나라 가운데 몇 안 되는 성공 사례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 두 가지에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오늘 우리 국민들은 어렵사리 여기까지는 왔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지난 10여 년 동안 거의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계속 이런 정체 국면에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조건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 데다가 우리가 많은 성공사례를 갖고 있고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그러면 국민이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지수로 따지면 세계 100위보다도 한참 아래인 117위라고 합니다. 최하위권이에요. 절대빈곤은 해소되었지만 상대적 빈곤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빈부격차가 너무 심해서 생긴 문제입니다.nbspnbsp거기다 성장도 더 이상은 어렵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우리가 직접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도 뽑는 선거민주주의는 쟁취했지만 뽑힌 사람이 권력을 행사하는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는 아직 전혀 진척이 없습니다. 지난 10년 동안에는 경제가 정체되고 민주화는 오히려 후퇴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답답한 거예요.nbspnbsp게다가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 금융위기가 도래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옛날보다 오히려 더 커지고 있고 직장도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점점 가중되고 있어요. 여러 면에서 뚜렷이 ‘저러면 되겠다’라고 하는 희망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nbsp이런 데서 우리 국민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려면 첫째, 수행이 필요합니다. ‘계속 성장할 거라는 욕심을 버려라. 남을 쳐다보고 상대적 빈곤에 헐떡거리지 말고 밥 먹고 살면 되었다’라고 자기만족하고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경제를 발전시킨다 뭘 한다 해서만은 더 이상 해결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nbspnbsp동시에, 모든 것을 다 이런 수행만을 통해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수행하고 기도한다고 한반도의 평화가 보장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회적, 제도적인 조건들에 갇혀서 답답해하는 문제들을 조금 개선한다면 훨씬 더 희망을 갖고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수행은 혼자 할 수 있지만 사회 변화는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서로가 협력해서 함께 나가야 합니다.nbspnbspnbsp경제적으로는 성장의 한계라는 문제, 정치적으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 남북 간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안보 불안 문제 등 이런 모든 문제의 원인은 돌아보면 어디에 있을까요? 나라가 분단된 데 원인이 있어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주위 정세를 볼 때 중국이 부상하고 미·중이 경쟁에 들어가면서 분단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남북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nbspnbsp그래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도, 또 한 발 더 나아가서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도 이제는 통일 없이는 어렵습니다. 전에는 그나마 통일 없이도 성장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통일 없이는 성장도 어렵고, 평화 유지도 어렵고, 나라를 발전시키기에는 한계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통일의 문제는 지금 우리의 답답한 문제를 극복하는, 어쩌면 유일한 출구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변수가 되었습니다.nbspnbsp적대 관계에 있던 북한과 합의를 해서 공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면 나아가 중국과도 공생의 길을 찾을 수 있고, 일본과도 공생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통일 한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큰스님은 옛날식으로 용성 큰스님이 쓰셨던 말씀을 쓰신 거고, 저는 요즘의 정치사회학적인 언어를 써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바로 여기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 있어요. 21세기 초반에 우리가 사실상의 통일을 이룬다면 21세기 중반에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룰 수 있고 21세기 후반부에 가면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 등장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게 아니라, 될 수 있는 씨앗이 지금 우리에게 있다는 거예요. 이걸 우리가 한번 해보면 어떻겠어요?nbspnbsp통일을 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 우리 미래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통일을 해야만 과거의 한을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엄청난 고통을 겪었어요. 지금도 상처가 많아요. 학도병으로 20만 명이 끌려갔고, 위안부로도 20만 명이 끌려갔고, 징용으로는 100만 명이 끌려갔어요. 맺힌 한을 다 꺼내면 끝이 없습니다. 한국전쟁 때도 엄청나게 많이 죽고 한 마을이 몰살당했고, 그 뒤로도 남북 갈등 때문에 북한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숙청당하고 남쪽에서도 인혁당이니 뭐니 해서 빨갱이로 몰려 온갖 고통을 겪었잖아요. 말을 안 하고 다 못 드러내서 그렇지, 드러낸다면 사람마다 집집마다 쌓인 한이 태산 같이 많아요.nbspnbspnbsp또 이산가족은 어때요? 북쪽에서 내려온 500만 이북 도민은 나이 들어 죽어가는 지금도 고향에 가고 싶어 하죠. 요즘 새로 온 탈북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사람 당 소설이 한 권 나올 만큼 사연이 많고, 북쪽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역사를 조금 더 올라가보면 동학 혁명, 좀 더 올라가보면 병자호란이며 임진왜란 때 어때요, 고통을 겪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많지요? 조공물로 처녀들을 뽑아 바치고... 이렇게 한이 서려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분오열 되는 거예요.nbspnbsp통일을 하면 이런 한을 좀 풀 수 있습니다, 과거의 한을 좀 씻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도 나라를 위해 죽었지만 누구는 공산주의 물이 있다 해서 남쪽에서 인정 안 하고, 누구는 북한 정부 세울 때 협력하지 않았다 해서 북한에서 인정 안 했어요.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들이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인정을 못 받았습니까.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했지만 나라가 독립한 뒤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분들 역시 남북이 화해하고 통일만 되면 우리가 다 복원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가 공산주의 활동을 했든, 사회주의 활동을 했든, 모택동 밑에서 했든, 러시아 가서 했든, 장개석 밑에서 했든, 미국 가서 했든, 국내에서 했든 그게 뭐가 중요해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운 사람들을 우리는 모두 다 평가해줘야 합니다. 이런 복원 작업도 통일되기 전까지는 어려워요.nbspnbsp우리 속에 묻혀 있는 이런 갖가지 한들은 무슨 한풀이 춤을 춘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영가 천도재 지낸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오직 통일을 해야 해결돼요. 통일을 통해 이런 한을 풀면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정말로 자존심과 자신감을 가지면서도 이웃 나라와 함께 어깨동무 할 수 있는 세계인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이런 가능성이 지금 우리에게 열려 있어요. 여기서 우리가 평화와 통일의 기회를 못 잡으면 전쟁과 후퇴의 국면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고, 여기서 기회를 잡으면 오히려 성장과 통일과 새로운 문명의 희망을 가질 수도 있는 분기점에 섰다는 뜻입니다. 20년, 30년 전에는 통일이 되면 좋긴 하지만 안 되어도 그런 대로 살 수 있었다면, 지금은 살 만하긴 하지만 시대적 과제인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몰락하는 쪽으로 가고, 극복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을 위해 노력해보자고 오늘 모인 겁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인이기 때문에, 정말 주인으로서 나라를 걱정하고 나의 행복도 공동체와 함께 찾아가는 주인 된 자세를 한번 가져보자고 하여 오늘 통일의병 발대식을 하게 된 겁니다.”nbspnbsp스님이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렇게 큰 뜻과 서원을 갖고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되었음을 알게 되자 큰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오늘 하루 종일 정성껏 기도를 한 이유에 대해 다시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이렇게 기도를 한 것은, 사람의 힘으로 부족한 것은 큰스님과 조상님들과 천지신명과 불보살이 알아서 해달라고 청하는 뜻입니다. 역할을 나눈 겁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해야지 이걸 해달라고 하면 안 돼요. 우리가 못 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기도해야지요. 그래서 우선 불보살에게는 ‘증명해 달라’, 그 다음으로 화엄성중, 제석천왕, 사대천왕, 팔부신장, 호국 선신들에게는 ‘우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해 달라’, 그 다음으로 환인, 환웅, 단군 이하 온갖 조상신들에게는 ‘우리를 보호해 달라’ 하는 뜻으로 오늘 재를 지낸 거예요. 재를 지낸 의미를 이해하시겠지요? 이렇게 오늘 통일의병대회 첫 출발을 했습니다.nbspnbspnbsp향후 1000일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지요? 그래서 3년, 천일기도에 들어간 거예요. 성불하려면 좀 더 길게 해야 하지만 이런 정도의 세상일은 3년 노력해서 기회를 마련해보자, 3년 안에 통일이 된다는 게 아니라 통일되는 쪽으로 물꼬를 터놓자는 거예요. 지금 분단 쪽으로 갈지 통일 쪽으로 갈지 분기점에 있으니 통일 쪽으로 방향을 틀어놓자는 겁니다. 통일이 완성되는 게 언제일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일단 분단이 고착화되는 쪽으로 가는 것을 막고 통일 쪽으로 가도록 물꼬를 트는 것은 우리가 3년을 바짝 노력한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은 삽으로 막을 게 3년 지나면 포크레인으로도 막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니 한번 전력투구해서 우리의 운명을 정말로 우리가 한번 개척해보자는 의미로 오늘 발대식을 했습니다.nbspnbsp오늘 우리는 황룡사지에서 통일 발원 기도를 했어요. 통일 과정에서 일어날 여러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천왕사지에서 통일 성취 기도를 했고요. 그런데 여기 오니 또 절 이름이 통일암이에요. 통일암이 다 지어져 있으면 좋겠지만 이 통일암은 터만 있어요. 앞으로 통일을 제대로 하라는 말이겠지요. 통일도 하고, 통일암도 짓고요. 오늘 우리는 이런 야외에서 미완성의 역사를 계승했습니다. 이런 미완성에서 시작해서 앞으로 새로운 미래는 우리 손으로 완성하자는 이야기입니다.nbspnbspnbsp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함께 했다는 사실을 정말 자랑스럽게 여기고 가문의 영광으로 간직하셔도 좋겠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이 기쁨, 오늘의 이 결의를 잊지 말고 1000일 후에는 통일의 길로 대한민국이 들어섰다는 기쁨을 한번 만끽해봅시다.”nbspnbsp오늘의 결의를 잊지 말자는 스님의 호소에 통일의병들도 굳게 마음을 다졌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오늘 행사를 위해 수고한 많은 분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행사를 할 수 있게 통일암 솔밭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 대구경북지부와 부산울산지부 거사님들, 밤새 행사를 준비한 행정처 자원활동가들, 곳곳에 배치되어 안내를 맡아 준 대구경북지부 자원활동가들, 천지신명에게 기도하려고 큰스님의 뜻에 따라 공양물을 준비해 준 부산정토회 활동가들, 내부 진행을 맡은 울산정토회 활동가들, 큰스님 일행의 공양 준비를 맡은 경주법당 활동가들을 비롯해 오늘 공양물을 보시해준 분, 5천만 남한 동포를 위해 5천만원을 모아서 보시해준 분들, 또 2천만 북한 동포들을 위해 오늘 보시해 준 분들, 깃발을 든 행자님들 등 모든 분들에 대해 자세히 언급해 주면서 대중들 모두에게 감사의 박수를 부탁했습니다.nbspnbspnbsp정말 보이지 않게 수고한 많은 분들의 정성 덕분에 오늘 행사가 이뤄질 수 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법문에 이어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통일의병 모두의 의지를 모아 ‘통일의병 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이 선창을 하면 모두가 함께 따라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선언문 낭독nbsp“1. 우리는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체제를 구축한다.nbsp2. 우리는 미래 100년을 결정하는 통일시대를 연다.nbsp3. 우리는 주변국과 상생하는 동아시아공동체를 지향한다.nbsp4. 우리는 대한민국을 통일국가의 모델로 발전시킨다.nbsp5. 우리는 기존의 남북한 간 당국의 합의를 존중한다.nbsp6. 우리는 진영논리를 뛰어넘는 새로운 통일운동을 펼친다.nbsp7. 우리는 민족구성원 중심의 ‘화해상생’의 통일방안을 추구한다.nbsp8. 우리는 남한이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북한과 합의하는 통일을 추진한다.nbsp9. 우리는 생명존중, 평화, 인권, 민주주의, 환경보호의 정신과 가치를 수호한다.nbsp10. 우리는 백의종군, 공공성, 자발성, 헌신성의 의병정신을 계승한다.”nbspnbspnbsp대표님이 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사회자가 “이제 정토회 통일의병의 출범을 만천하에 선포합니다.” 라고 공표했습니다. 통일의병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함께 기뻐했습니다. 이로써 1510명의 통일의병이 대한민국에 새롭게 탄생한 것입니다.nbspnbsp이를 축하하며 법륜 스님이 축원 및 발원 기도를 해주었고, 이어서 통일의병 모두를 대표하여 서울제주지부 백기순님의 발원문 낭독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 통일 발원문을 낭독하는 백기순님nbsp백기순님은 “지금까지는 내 앞만 보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나라의 자주독립과 민주화, 통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순국 선열과 민주열사의 뜻을 계승해 통일코리아를 이루는데 기여하겠다”고 하면서 “그 길에 밥을 해야 하면 밥을 하고, 기도가 필요하면 기도를 하겠습니다”고 덧붙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일도 기꺼이 하겠다는 다짐을 말해 통일의병들의 큰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nbspnbsp다음으로는 통일자유발언대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사회자가 1510명의 통일의병을 대표하여 오늘의 소감을 생생하게 말해 볼 사람은 마음껏 이야기해 보라고 하자 울산법당에서 통일의병이 된 한 청년이 뛰어나왔습니다. 청년은 “오늘만큼 기쁘고 뜻깊은 일은 없었습니다. 정토회는 항상 저를 놀라게 했지만 오늘 가장 많이 놀랐습니다.”고 하면서 “오늘의 이 기쁨을 노래로 표현하겠다”며 100년 전 선배 의병이었던 독립군들이 불렀던 독립군가를 오리지날 버전으로 불렀습니다.nbspnbspnbsp“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nbsp청년의 우렁찬 독립군가 노래 덕분에 통일의병들의 굳은 결의는 하늘을 울리고 땅을 울리는 듯 했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서 이제는 지부별로 의병 구호를 만들어 온 것을 외쳐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강원경기동부지부는 “백두와 한라가 하나 되는 그날까지 통일의병 앞으로”를 외쳤고, 인천경기서부지부는 독립군가 반주에 맞춰 “가자 가자 통일로 가자 경의선에 철마가 달릴 때까지 통일로 나가세. 얍” 하고 외쳤습니다. 대전충청지부는 “뜻 모아 힘 모아 대전충청 통일의병 얍” 하고 외쳤고, 전라광주지부는 “호남이 있어 통일이 있다”고 외쳤습니다.nbspnbspnbsp부산울산지부는 “백두에서 한라까지 통일의병 물결쳐라. 우리가 통일의병이다”고 외쳤고, 공동체는 “위, 아래, 위, 아래, 통일 오오오옥 통일” 이라고 외쳤으며, 청년정토회는 “통일세상 마음껏 누릴 희망 청년 통일은 청년이 만든다” 고 외쳐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특히 대구경북지부는 “마, 통일하자 됐나? 됐다 됐나? 됐다” 고 해서 가장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의 이 함성을 노래로 모아보았습니다. 먼저 용성조사님이 작사하신 ‘온 겨레의 노래’를 선창으로, ‘터’를 힘차게 부른 후 마지막으로 ‘우리의 소원’ 노래를 다함께 손에 손을 맞잡고 불렀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nbspnbspnbsp노래를 마치니 많은 대중들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습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서 북녘 동포들과도 어깨동무하고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사홍서원을 끝으로 제1차 통일의병대회를 모두 마친 후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통일전으로 내려왔습니다. 통일전 주차장에서는 지부별로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각 지부별로 특색 있는 구호를 외치며 즐겁게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의병들이여서 그런지 금방 줄을 맞춰 서서 순식간에 모든 지부가 사진 촬영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nbsp스님은 각 지역별로 돌아가는 대중들에게 “수고했어요” 라며 반갑게 배웅을 해주었습니다. 대중들이 모두 돌아가자 행사를 준비한 행정처 자원활동가들을 데리고 인근 식당에 가서 칼국수 한 그릇씩을 사준 후 두북으로 돌아와서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두북을 출발하여 서울로 올라간 후 저녁에는 수원에서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

2015.09.08. 41,524 읽음 댓글 35개

2015.9.6 (오전) 제1차 통일의병대회 제1부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제1차 통일의병대회에 참석해 불심 도문 큰스님을 모시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nbspnbsp새벽 6시, 황룡사지에 스님이 도착하자 이미 전국에서 많은 통일의병들이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어젯밤 10시에 법당에 모여 함께 300배 정진을 한 후 12시에 출발해 밤새 고속도로를 달려왔다고 합니다.nbspnbsp▲ 전국에서 밤새도록 버스를 타고 황룡사지 앞 주차장에 도착한 통일의병들nbsp그 사이 빗줄기가 강해져서 오늘 행사를 무사히 할 수 있을까 모두가 걱정했지만 행사 시작 30분 전이 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비가 뚝 그쳐 신령스러운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nbspnbsp비옷을 입고 해드랜턴을 낀 채 현수막을 설치하고, 법상을 옮기고, 매트를 깔고, 공양물을 차리는 등 밤을 꼬박 지샌 사람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죠. 수백 명이 한 마음이 되어 온 정성을 기울여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천지신명도 감응을 해서 도움을 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nbspnbspnbsp▲ 시설물을 설치하기 위해 밤을 샌 통일의병들nbsp6시 20분이 되자 전국에서 1510명의 통일의병들이 황룡사지로 모두 집결하였고 드디어 제1차 통일의병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각 지부별 참가자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울제주, 인천경기서부, 대전충청, 광주전라, 부산울산, 경남, 청년대학생, 공동체 순서로 차례대로 소개가 되자 각 지부는 큰 함성과 구호로 통일의병대회의 열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습니다.nbspnbspnbspnbsp이어서 법륜 스님이 앞으로 나와 오늘 통일의병대회를 시작하는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신라와 가야의 합의 통일 속에 지금의 남북 갈등을 푸는 해법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저희들이 도착한 이곳은 황룡사입니다. 진흥왕 때 이곳에 왕궁을 지으려고 터를 닦는데 큰 황룡이 나왔대요. 그걸 보고 이곳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 부처님이 사실 곳이다 하여 궁터를 절로 바꿨기 때문에 터가 엄청나게 넓습니다. 절터의 규모로는 동양에서 가장 큰 절터라고 해요. 이렇게 신라 최대, 동양 최대의 절인 황룡사 터에 우리가 지금 앉아 있습니다.nbsp왜 우리가 지금 이곳에 이렇게 모였느냐? 남북의 긴장이 완화되고 갈등이 해소되어 서로 화해 협력해서 평화를 유지하자는 평화 발원 기도를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나아가 평화를 넘어서서 남북이 통일을 하자는 통일 발원 기도를 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고자 우리가 이곳에 모인 것입니다.nbspnbsp6세기 전까지 신라는 한반도의 동남쪽에 치우친 작은 부족국가였어요. 그런 작은 나라였는데 신라의 국력이 갑자기 비약적으로 증대된 것은 신라와 가야가 통합을 한 덕분입니다. 통합을 어떻게 했느냐 하면 합의 통합을 했습니다. 둘이 서로 의논해서 통합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신라와 가야는 이웃 나라지만 친하기는커녕 원래 철천지원수였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적대 관계였고 통합 100여년 전에는 가야가 신라를 침공해서 신라가 멸망할 뻔한 것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구원병을 보내 겨우 살아난 원한이 있는 역사를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신라의 국력이 점점 커지고 가야의 국력이 약해졌을 때 신라가 가야를 침공했다면 가야는 죽기살기로 저항했을 것이고, 결국 가야를 무력으로 복속시켜 신라가 영토는 넓어졌을지는 몰라도 통일을 통해 이득을 얻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인명과 재산의 큰 손실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후에도 또 가야 부흥운동을 한다고 반란을 일으키면 굉장히 사회가 혼란스럽지 않았겠습니까?nbspnbsp그런데 신라는 가야와 합의 통일을 했어요. 합의 통일이라는 게 말은 좋지만 쉽지 않습니다. 합의 통일을 할 때 신라가 강하고 가야가 약하니까 신라가 중심이 되어 가야를 흡수 통일 할 수 있겠죠. 이러면 가야가 끝까지 저항을 하겠지요? 저항을 하지 않도록 하려면 신라 쪽에서 가야에게 엄청난 양보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강자가 양보하는 것을 포용이라고 말합니다.nbspnbspnbsp어떻게 포용을 했느냐? 두 가지 어려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첫째, 가야는 나라가 생길 때부터 불교국가였어요. 그러나 신라는 불교를 철저히 탄압하는 국가였어요. 요즘 말로 하면 북한은 공산 국가이고 남한은 반공 국가라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신라가 불교를 공인했습니다. 우리가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공산당 활동을 합법화해준 셈입니다. 이건 독일의 예도 그래요. 통일하기 전에 이미 서독은 공산당 활동을 합법화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서독 안에서 공산당이 합법적으로 의회에 진출해 있었어요. 이렇게 해서 가야 사람들에게 통일 이후에도 자신의 신앙과 사상을 지킬 수 있도록 허용해 준 것이 첫 번째 큰 결단입니다.nbspnbsp두 번째로는 가야의 귀족을 신라의 귀족으로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당시는 신분사회니까 전쟁에 지면 왕이라 해도 노예로 팔려가요. 그런데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왕족으로, 가야의 귀족을 신라의 귀족으로 신분을 그대로 인정해주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설명하면 북한에서 별 두 개짜리 사단장이면 통일코리아 안에서도 북한 장군이 통일 한국 군대의 장군이 되고, 북한 출신도 자기만 똑똑하면 장관도 대통령도 될 수 있도록 다 열어준 거예요. 지금 서독의 메르켈 수상도 동독 출신이에요. 정치적으로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인정해준 겁니다.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왕족으로, 가야의 귀족을 신라의 귀족으로 아무런 차이 없이 인정해준 신분 보장 정책을 취한 겁니다.nbspnbsp이럴 때 신라 안에서도 반대가 많았어요. 신라 안의 기득권 세력이 엄청나게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신라의 젊은이들이 ‘아니다. 가야와 통합하려면 가야의 신앙을 인정하고 우리가 먼저 문을 열어야 한다.’ 이렇게 불교를 공인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보수 세력은 ‘무슨 소리냐, 150년이나 금지해온 불교를 어찌 공인할 수 있느냐?’ 고 맞섰어요. 그러는 중에 젊은이들이 흥륜사라고 하는 절을 지었어요. 법으로는 아직 금지되어 있고 논쟁이 되고 있는 중에 절을 지으니까,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보수세력들이 전부 일어나서 ‘왕이 국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저런 사태를 방치한다’고 난리가 났어요. 그 사건에 주범으로 지목된 사람이 이차돈이었습니다. 이차돈은 당시 왕궁의 서기관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행정관 정도 되는, 왕의 비서였습니다.nbspnbsp왕은 지금이라도 앞으로 불교를 믿지 않겠다고 하면 죄를 묻지 않겠노라 했는데 이차돈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이 꼭 필요하다, 이를 공인하지 않으면 신라의 발전은 없다’고 왕을 설득했어요. 왕은 그 말을 이해했지만 대신들이 정치적으로 엄청난 반대를 했기 때문에 그걸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법대로 이차돈을 사형에 처하게 되었어요. 그때 흰 피가 솟구치고 이차돈의 목이 하늘로 날아가서 저기 보이는 소금강산에 떨어졌다고 해요. 그 자리에 가보면 백률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신라 안의 여론이 뒤집혔어요. 그래서 보수세력이 후퇴하고 불교를 공인하자는 젊은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어요. 이차돈이 527년에 죽고 1년이 지난 528년에 신라가 불교를 공인했어요. 그리고 4년 후인 532년에 가야와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신라가 가야를 포용할 준비가 된 것이 확인되니까 가야가 신라와의 통합을 승인한 거예요.nbsp이때 가야 안에서도 반대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북한을 포용하자고 하면 남쪽에서도 반대가 있겠지만 거꾸로 북쪽의 지도층 중에도 자기 체제를 지키려 하는 강력한 반대 세력이 있겠죠. 그런 세력이 있기 때문에 이 결정을 찬성한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을 여기 쓰지 않고 산청에 썼대요. 신라에 귀순했으면 죽어서 무덤도 이곳 경주에 써야 하는데 그리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무덤에는 잔디가 안 산대요. 이것은 정치적으로는 좋은 결정을 했을지 몰라도 조상님에게는 면목이 없다 하여 그렇답니다. 찬성한 사람도 이렇게 어려움이 있었어요. 신라가 고려에 통합될 때도 경순왕이 통합을 승인했지만 마의 태자는 끝까지 반대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쪽은 절대로 통합은 안 된다고 하고, 또 다른 한쪽은 절대로 저들을 포용할 수 없다고 서로 맞서면 결국은 전쟁밖에 길이 없잖아요. 그런데 신라는 가야를 포용했고 가야는 그것을 받아들여서 합의 통일을 했습니다.nbsp이렇게 되면 1 더하기 1이 2가 되는 통일이 아니라 5가 되고 10이 되는 통일이 되지요. 이 통합 이후 신라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어요. 그래서 법흥왕 다음인 진흥왕 때는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동해로 올라가서 함경남도 지역을 차지하고 그 다음에 대가야를 복속시켜서 낙동강 유역을 차지하여 큰 국가로 등장했습니다. 그게 합의 통일의 시너지 효과입니다.nbspnbsp이런 우리 역사의 경험을 우리는 북한과 통일을 할 때 참고해야 합니다. 현재의 국력이나 조건으로 볼 때 북한 중심으로 통일을 해야겠어요? 남한 중심으로 해야겠어요? 반반씩 섞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남한에 산다고 남한 중심으로 되면 좋겠어요? 하하하. nbspnbsp그러려면 신라가 가야를 포용했듯이 남한 중심으로 하려면 우리가 그만큼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북한에게 그만한 포용력을 베풀어야 합니다. 신분을 보장해주고 정치활동까지 다 보장해줄 정도의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보면 북한은 자기를 지키겠다는 게 강하고 남쪽은 북한을 포용할 의향이 없기 때문에 갈등이 심한 거예요. 우리는 이 신라와 가야의 통합 경험을 우선 본받아야 합니다.”nbsp그러면서 스님은 원래 이 이야기를 법흥왕릉에 가서 들려주고 싶었는데 인원이 1510여명이나 되다 보니 법흥왕릉에 다 앉을 수가 없어서 이곳 황룡사지에서 바로 설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황룡사지가 갖는 역사적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법흥왕, 진흥왕을 거치면서 신라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진흥왕 때 바로 이곳에 황룡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황룡사를 지을 때도 묘한 일이 일어납니다. 울산 앞바다에 배가 한 척 왔는데 글과 함께 철이며 황철 같은 것들이 많이 실려 있는 거예요. 글을 보니 인도의 아육왕, 즉 아쇼카왕이 불상을 조성하려 했는데 도저히 조성이 되질 않아서 인연이 없나 보다 생각하고 인연 있는 나라에서 불상을 조성해주길 빌며 배를 띄워 보냈는데 수백 년을 바다를 떠내려오면서 어느 나라에서도 불상 조성을 못 했다는 거예요. 이제 여기 이르렀는데 그 재료를 가지고 신라가 불상 조성에 성공해서 지금 저기 금당 터에 장육존불을 모셨습니다. 부처님의 키가 1장 6척, 약 5미터 정도 되었다는 뜻입니다. 5미터면 지금도 큰 편이죠? 그 옛날에는 5미터짜리 불상을 주조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힘들었는데 그 불상을 만들어서 금당에 모셨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신라는 넓어진 영토를 안정시켜나가면서 부강해졌습니다. 우리 남한도 옛날엔 가난했지만 지금 부강해졌지요? 그런데 세상사에는 다 장단점이 있어요. 신라가 강해지니까 부작용도 나타났습니다. 한강 유역은 원래 백제 땅이었어요. 장수왕이 빼앗아서 고구려 땅으로 삼았어요. 이후에 고구려가 약해진 틈을 타서 백제가 신라와 힘을 합쳐 다시 찾았는데, 신라가 다시 이것을 빼앗아버렸어요. 그러니 신라와 백제가 원수가 되었겠죠? 고구려와도 원수가 됐어요. 부강해진 건 좋았는데 백제와 고구려 모두와 원수가 되니까 백제도 힘을 추슬러서 성왕, 의자왕에 이르면서 다시 부흥을 이루었을 때 신라를 공격했어요. 고구려도 마찬가지예요.nbspnbsp이제 신라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어요. 북쪽에는 고구려, 서쪽에는 백제, 남동쪽으로는 일본이 위협하니까요. 그러니 이제 신라는 완전히 고립당한 처지가 되었어요. 이웃 나라들과 원한을 샀기 때문에 자칫하면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한 겁니다. 그래서 신라가 바다를 건너서 중국의 수나라에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그런데 수나라가 고구려를 쳤으나 실패해서 멸망하자 당나라가 천하를 통일했지요. 그래서 다시 당나라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때 신라의 왕은 진평왕의 뒤를 이은 선덕여왕이었고 이때 외교부 장관은 선덕여왕의 조카인 김춘추였어요. 김춘추가 당나라 왕인 당태종과 밀약을 맺지요. 두 나라가 힘을 합쳐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면 대동강 이남은 신라가 가진다고 서로 합의한 겁니다. 그래서 당태종이 645년에 고구려를 침공했는데 양만춘과의 안시성 전투에서 패하고 결국은 침공에 실패합니다. 당나라의 고구려 침공이 실패로 끝나니까 백제와 고구려는 더욱 더 태도가 강경해져서 신라를 침공했어요.nbspnbspnbsp이런 위기에 신라는 이 국난을 사람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우니 부처님의 도움으로 극복해야 한다 해서 황룡사 9층탑을 쌓았습니다. 1층은 왜, 2층은 중화... 6층은 말갈... 이런 식으로 층마다 신라를 위협하는 나라들을 정해서 불보살의 가피로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신앙심으로 저 탑을 쌓았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그리 했겠지요. 더 나아가 통일이 되면 완전한 평화가 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국난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미의 기도를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통일을 하겠다고 원을 세워 저 탑을 세웠습니다. 즉 황룡사 탑은 국난 극복 기도를 하는 탑이자 통일을 발원하는 탑이었습니다.nbspnbsp이때부터 신라는 한쪽으로는 내부적으로 국가 개혁을 계속하며 국력을 기르고 한쪽으로는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돈독히 해서 드디어 660년에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삼국 통일의 원을 이루었습니다.”nbsp이어서 다음 이동 장소인 사천왕사지에서 기도를 하는 이유도 함께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그러나 신라가 제 힘으로 통일을 한 게 아니라 외세의 도움을 얻어 통일을 했기 때문에, 그것도 신라보다 강한 당나라와 협력했기 때문에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두 나라가 멸망하자 당나라가 그 땅에서 물러나지 않고 백제와 고구려를 다 차지한 거예요. 백제 땅에는 웅진도독부를 세워서 자기들이 통치하고, 고구려 땅에도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자기들이 통치했습니다. 신라는 당나라가 약속을 안 지킨다 해서 여러 번 항의했지만 당나라는 오히려 계림도독부를 설치하고 김인문을 신라왕으로 임명하면서 신라까지 위협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신라는 고구려 부흥군과 손을 잡고 대당 선전포고를 하고 당나라와 전쟁을 하게 됩니다.nbspnbsp신라를 한국이라 치면 당나라는 오늘날의 미국보다 더 큰 나라였어요. 한국이 아무리 지금 좀 잘 산다 해도 미국과 전쟁하면 이길 수가 없겠죠. 그런데 신라는 결국 당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어 당나라의 침공을 받게 됩니다. 그때 신라 사람들은 이 당나라를 사람의 힘으로, 즉 현실의 국력으로 이기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항복하자는 사람도 많았지만 끝까지 싸워서 우리의 자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니까 신의 힘을 빌리자고 해서 사천왕사지를 건립했어요. 그 사천왕사에서 신의 힘을 빌어서, 다시 말해 제석천과 사천왕의 힘을 빌어 당나라군을 물리치자고 한 것이 문두루 비법입니다. 그래서 사천왕사에서 문두루 비법을 행해서 당나라의 20만 군대가 서해에서 폭풍을 만나 전멸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고 합니다. 2년 뒤에 당나라는 다시 10만 군대를 이끌고 침공을 해왔는데 이 때에도 역시 폭풍을 만나서 파선함으로써 신라는 위기를 극복했다고 합니다.nbspnbsp그 뒤로도 당나라는 크고 작은 침공을 계속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육지전에서는 매소성 전투에서, 바다에서는 기벌포 전투에서 신라가 승리함으로써 해서 당나라는 신라 침공의 야욕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676년에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으로 옮기고 당나라와 신라는 다시 화친을 하게 되었습니다.nbsp이렇듯 660년에 백제가 망하고 668년에 고구려가 망했으면 668년을 삼국통일의 해라고 불러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이 땅을 당나라 군대가 지배했지 신라가 통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당 전쟁을 8 년간 벌여서 676년에 당나라가 평양에 설치한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옮기면서야 결국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그 기도를 한 것이 사천왕사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큰스님을 모시고 황룡사에서 남북통일 발원 기도를 하고 사천왕사에서 통일 성취 기도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온 힘을 모아서 통일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nbspnbsp그런데 그 통일의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와 동맹 관계에 섰던 나라와도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원수가 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미연에 예방하거나 아니면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대비하기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사천왕사지에서는 통일의 과정 중 통일이 성취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오전은 통일 기도 장정입니다. 여기 황룡사지에서는 통일을 기원하는 발원 기도를 하고 사천왕사지에서는 통일을 성취시키고자 하는 통일 성취 기도를 하게 됩니다.nbspnbspnbsp또 가는 도중에 당나라와 싸워 이긴 문무대왕의 화장터를 참배할 예정입니다. 문무대왕은 화장을 하고 뼈를 동해바다에 묻었어요. 그 화장한 자리에 능탑을 세웠어요. 이 능지탑을 참배하고 다음으로는 통일 발원을 한 선덕여왕릉을 참배하고 사천왕사지에 가서 다시 현대판 문두루 비법 기도를 하겠습니다. 이곳 황룡사지에서는 마하 비로자나 여래불 총귀다라니를 하고, 사천왕사지에서는 제석천 제구예진언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문두루 비법입니다. 그러니 오늘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함께 합시다.”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오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서 통일의 길을 함께 열어보자고 호소했습니다.nbspnbsp“2012년에는 제가 전국의 시군구를 다 찾아다니며 법회를 하면서 남한 국민들의 정성을 모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북한의 시군구를 다 다니면서 옥수수 100톤씩 전해주려고 했어요.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베풀어서 이 공덕으로 통일을 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포들이 사는 해외 100개 도시를 다니면서 강의를 해서 그 공덕으로 통일을 하자고 했습니다. 국내와 해외는 했는데 아직 북한 방문을 못했어요. 그래서 남북관계가 조금만 개선되면 북한의 모든 시군구에 가서 옥수수 100톤씩, 북한의 시군구가 210개라니까 21,000 톤을 전해주고 이렇게 하면 아마 천지신명도 감동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nbspnbspnbsp그러니 오늘 여러분들이 기도로도 천지신명이 감동하고, 공덕을 지어서도 천지신명이 감동할 만큼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되느냐?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정성의 징표일 뿐입니다. 실패했던 독립운동, 그 선배들의 뜻을 이어받아서 우리가 온 힘을 다해서 통일만큼은 우리의 힘으로 우리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야 통일된 국가가 자주적인 독립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nbspnbsp용성진종조사님께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다가 독립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공덕이 부족하다, 공덕을 쌓아라 해서 10가지 유훈을 남기셨어요. 이 공덕을 쌓게 되면 앞으로 800년간 대한민국이 번영할 거라고 했습니다. 나라 이름도 정해주셨어요. 신라, 고구려, 백제 모두의 뜻을 하나로 모아야 된다고 해서 나제려 대국이에요. 공덕을 쌓으면 앞으로 나제려 대국이 800년간 번영할 거라는 예언을 하셨어요.nbspnbsp오늘 불심 도문 큰스님을 법사로 모신 이유가 저의 스승님이셔서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바로 이 10가지 유훈을 평생을 바쳐 실현해 오셨기 때문에 그 공덕이 기반으로 해야 우리가 이 통일 대원을 성취할 수가 있으니까 우리가 큰스님께 통일을 위해 기도의 공덕을 계승하려면 전 국민이 1인당 1원이라도 보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합니다.nbspnbsp다음으로, 저 앞에 보이는 절이 분황사입니다. 큰스님께서 저곳에 와 계실 때,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말에 큰스님께 귀의해 저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통일 발원뿐만 아니라 황룡사 복원도 발원했습니다. 그런데 4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못 이루었어요. 이번에 우리가 힘을 모아서 첫째는 황룡사 복원보다 더 중요한 통일, 그 다음으로는 황룡사 복원, 즉 황룡사를 복원해서 그 힘으로 통일을 하든지 통일을 해서 그 황룡사를 복원하든지 그렇게 기도해 봅시다. 큰스님께서 예시를 해주시고 제가 작은 씨앗이 되어 시작했는데 이제 여러분과 함께하면서 드디어 이렇게 가능성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온 힘을 기울여서 우선 불보살님께 기도를 하고, 다음으로는 한 3년 1000일 간 온 힘을 기울여서 노력한다면 통일의 길이 열릴 겁니다.nbsp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온 거예요. 오늘 비가 좀 오더라도 맞고 할 만하지요? 비가 오는 건 좋은 거예요. 이 정도 난관도 극복 못하고 벌써 비 온다고 안 온 사람들은 통일의병 자격이 없어요, 하하하. nbspnbspnbsp또 신라는 호국 용이 나라를 보살폈어요. 서해 바다에 폭풍이 일어났다, 이런 건 다 비가 왔다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 당연히 비가 와야 하는 겁니다. 비가 와야 기도의 영험이 있는 거예요. 비가 올수록 더 좋다는 마음을 가지세요.”nbspnbsp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는 일기 예보가 있어 다들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비가 와야 기도의 영험이 더 크다는 말씀에 모두들 활짝 웃으며 큰 박수로 공감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의 설명이 끝나자 저 뒤편에서 도문 큰스님이 주장자를 들고 뚜벅 뚜벅 걸어 나왔습니다. 큰스님은 석가여래부촉계대법 77세, 조선불교증흥율 제8조이며 백용성조사 탄생성지 장수 죽림정사 조실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대종사입니다. 대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청법가와 삼배로 법을 청했습니다.nbspnbsp불심 도문 큰스님은 연기화엄부의 게송, 소승아함부의 게송, 대승방등부의 게송, 공해반야부의 게송, 실상법화부의 게송, 원적열반부의 게송을 각각 하나씩 읊고 해설해주고 또 대중들이 큰 목소리로 따라하게 하면서 통일의병들이 어떤 마음으로 통일운동에 임해야 하는지 경전에 근거하여 법문을 설해주었습니다. 연세가 80이 넘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가 황룡사 빈 절터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져서 대중들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nbspnbspnbsp“만약 인간계에서 삼세일체 부처님을 요달하고자 함을 알진데 마땅히 십법계의 성품을 관할지어다.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지은 바 이니라...nbsp무릇 상이 있는 바는 다 허망함이니 만일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nbspnbsp원효대사님께서 금강삼매경을 설한 법회를 이곳에서 하셨습니다. 원효대사님은 삼국 통일의 후유증을 이 금강삼매경의 사구게를 설해서 해결하셨습니다. 그렇듯이 우리는 이 게송을 읊음으로서 호법선신이 옹호해서 남북통일 성취의 씨앗을 뿌리고자 합니다. 그 씨앗을 뿌리는 주인공이 누구이십니까?” nbspnbspnbsp“통일의병입니다.”nbspnbsp“통일의병들이시여, 공이 무엇입니까? 집착만 놓으면 공입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어리석음의 굴레를 벗어버리면 지혜입니다. 이 민족이 집착을 놓도록 이 민족이 어리석음의 굴레를 벗어버리도록 우리는 해야 합니다.nbspnbspnbsp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남북 문제를 미국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나 일본에게 맡기고 뒷짐 지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남북 문제는 우리의 문제라, 저 매헌 윤봉길 의사가 대한의사군이 되었듯이 우리도 통일의사군이 되어서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실패하고 성공하는 것은 둘째 문제이고 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nbspnbspnbsp아쇼카 대왕이 부처님께 모래 공양을 올려서 그 공덕으로 서역 인도를 통일했듯이 법륜 스님은 고등학생 때 이미 고철을 주어서 황룡사 대종 불사를 발원하고, 황룡사 빈터의 기와조각을 온 국민에게 보내면서 조상의 얼을 상기시킨 공덕을 지었기에 오늘 우리는 이 대 공덕주를 모시고 남북 통일 불사를 발원하는 것입니다.nbspnbsp성공이냐 실패냐 장사하는 사람들처럼 이해를 따지지 말고 해보자, 이 말이오. 하면 된다. 하지 않아서 안 되었다 이 말이오.nbsp그리하여 여러분들은 나라가 편안하고 남북 통일을 성취할 수 있는 줄기가 되어야 합니다. 역대조사는 나무가 자랄 수 있는 뿌리가 되어주셨고, 용성조사님께서는 그 씨앗이 나오도록 만들어 주셨고, 도문 법사는 몸통이 나올 수 있도록 해주었고, 이제 그 몸통이 법륜 스님이 되었습니다. 몸통에서는 줄기가 나오지요. 그럼 여러분은 누구입니까?”nbspnbsp“줄기입니다.”nbspnbsp“그 다음에 1510명만 갖고 통일이 되겠습니까? 만 명이 되고, 백만 명이 되고, 2백만 명이 되고, 3백만 명이 되고, 5백만 명이 되어야 이 나라를 잡아 흔들어서 들썩 들썩 진동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줄기는 누구입니까?”nbsp“통일의병입니다.” nbspnbsp“줄기에서는 가지가 나옵니다. 그 가지는 뜻있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그래서 몸통에서 줄기가 나오고, 줄기에서 가지가 뻗고, 그 가지에서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된다 이 말입니다.”nbsp큰스님의 하면 된다는 말씀에 통일의병들도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그 의지를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도문 큰스님은 “동학교주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100년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졌지만 그대는 1000년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져라. 이것이 도문법사와 법륜스님의 인연입니다.”라고 하면서 1000년을 보는 안목을 가진 법륜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한반도 통일의 길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웠습니다.nbspnbsp통일의병들의 열렬한 환호와 박수가 계속되자 큰스님은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를 한 자락 불렀습니다.nbspnbsp“역대전등 제대조사와 용성, 동헌, 불심 3대 대사는 이제 썩고 희생을 다했다. 아무도 모르게 살았다. 거기에서 지광 법륜 스님은 이 겨레의 몸통이 되었다. 오호라. 1510명의 통일의병은 그 줄기가 되었다. 여기에서 만명, 백만명, 2백만명, 3백만명, 5백만명의 가지가 뻗어서 여기에서 잎이 핀다. 꽃이 핀다. 열매를 맺는다.”nbspnbsp다시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큰 스님은 “이 공양 올린 공덕으로 만사가 여의하고, 만복이 운운하고, 대한민국 전 국민의 자손이 창성하고, 부귀와 공명과 행복과 영화가 대대승승하고, 만대에 번창이 되어지고, 이 덕화가 온 겨레, 전 인류, 만 중생에게까지 미치어지이다.” 라고 하면서 대원성취 진언을 외우며 법문을 마쳤습니다.nbspnbsp이어서 법륜 스님은 대한민국 국민 5천만 명의 통일 기원의 뜻을 담아 대중들이 보시한 5천만원을 불심 도문 큰스님께 통일발원 공양으로 올렸습니다. 큰 스님은 그 뜻을 받아 지극 정성을 다해 한반도 통일을 발원하는 기도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통일의병 1510명도 함께 발원하는 마음을 모아 두 손을 합장하고 온 정성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큰스님의 염불 소리에 맞춰 통일의병들은 마하 비로자나 여래불 총귀다라니를 염했습니다.nbspnbsp“나무 마하 비로자나 여래불 총귀다라니. 나무 이바이바제 구하구하제 다라니제 니하라제 비니마니제 사바하”nbspnbspnbsp정성을 다해 기도를 마친 후 드디어 민족의 역사와 의병의 역사를 상징하는 28개의 깃발들을 앞세우고 nbsp장대한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먼저 맨 앞에는 청룡과 황룡이 앞장을 섰습니다. 그 다음 14개의 깃발을 통해 한나라로부터 시작해 배달나라, 단군 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고려, 조선, 대한민국, 북한을 모두 계승하는 마음을 담아 통일코리아 깃발을 그 마지막에 세웠고, 다음 14개의 깃발은 다물군, 고구려 부흥군, 백제 부흥군, 고려 항몽의병, 임진의병, 병자의병, 동학혁명군, 을미의병, 정미의병, 독립군, 순국열사, 산업역군, 민주투사를 모두 계승하는 마음을 담아 통일의병 깃발을 그 마지막에 세웠습니다. nbspnbspnbsp30명의 청년들이 깃발을 곧추 세우고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스님을 맨 앞으로 해서 통일의병들도 그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nbspnbsp앉아있던 백고좌 강당터를 출발해 금당지를 지나 황룡사 9층 목탑이 있던 자리를 탑돌이 하며 기도를 한 후, 그대로 대열을 유지하며 도보로 능지탑과 선덕여왕릉을 향해 행진했습니다.nbspnbspnbsp“나무 도량교주 관세음보살, 나무 도량교주 관세음보살...”nbspnbsp1510명이 모두 탑돌이를 마칠 때까지 염불은 계속 되었습니다. 황룡사지에서 선덕여왕릉으로 걷는 길에서는 송수신기를 통해 한명씩 나와서 자신이 생각하는 통일은 무엇인지 말한 후 통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준비된 통일 노래도 사이사이에 흘러나오는 등 작은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땅은 질퍽하고, 신발도 젖고, 옷도 점점 더 젖어갔지만, 통일의병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행진을 이어갔습니다.nbspnbspnbsp즐겁게 노래를 부르다보니 어느새 능지탑에 다다랐습니다. 탑을 한 바퀴 휘이 돌고 선덕여왕릉으로 향했습니다. 선두는 선덕여왕릉을 지나 낭산 아래 자락에 이르고, 후미는 능지탑에 막 도달해서, 행진 대열의 중간 지점이 선덕여왕릉에 이르렀을 무렵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대왕의 화장터에 세워진 능지탑nbspnbsp▲ 선덕여왕릉nbsp휴식을 하면서 스님으로부터 송수신기를 통해 능지탑과 선덕여왕릉, 사천왕사지를 순례하는 의미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다시 출발해 사천왕사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사천왕사지에 도착하자 행군을 할 때 내렸던 비가 갑자기 멈추고 잠시 소강 상태를 보였습니다. 모두들 하늘을 바라보며 신기해했습니다. 큰스님이 법문을 할 때만 비가 그쳤기 때문입니다.nbspnbsp사천왕사지에는 불상이 없기 때문에 대신에 삼존불 탱화를 모셨습니다. 가운데에는 부처님께 공양물을 올렸고, 왼쪽으로는 환웅 천왕님과 단군 왕검님 등 조상신들을 위해 영단을 차렸고, 오른쪽에는 제석천왕과 사대천왕, 화엄성중 등 신단을 차려서 남북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염원 기도를 했습니다.nbspnbspnbsp큰스님은 사천왕사지에서 신라 시대 당시에 이곳에서 행해진 문두루 비법인 3밀가지 수행법에 대해 알려주면서 통일의병들이 함께 기도를 하도록 안내해 주었습니다. 양 손가락을 펴고 오므리고 접으면서 지, 수, 화, 풍, 공의 5대 요소의 인연 가합상을 새기고 심념으로 발원하는 의식을 하며 진언 다리니를 외웠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큰스님은 “사천왕님이시여 옹호하여 주옵소서. 도리천 33천, 제석천왕, 환인 천주 하느님이시여, 보호하여 주옵소서.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의 하느님이시여, 이 민족 과 국가를 항상 보호하여 주옵소서.” 라고 하면서 설법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큰스님의 설법을 듣다 보니 정말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라는 구절이 절로 생각이 났습니다. 이어서 통일의병들은 큰스님을 따라 제석천왕 제구예진언을 함께 염했습니다.nbspnbsp“나무 제석천왕 제구예진언. 아지부 뎨리나 아지부 뎨리나 미아 뎨리나 오소 뎨리나 아부다 뎨리나 구소 뎨리나 사바하”nbspnbsp이렇게 기도를 마쳤는데 갑자기 해가 떴습니다. 그러자 큰스님은 “태양을 보라” 하면서 기뻐하시면서 “통일의병대회를 했으니까 이제 통일은 자연적으로 될 것이고, 그것만 갖고는 안 됩니다. 오대양 육대주 사바세계 남섬부주 전 인류가 성불 인연을 맺도록 해야 합니다. 우선 여러분들은 전 국민을 통일의병으로 만드세요” 라고 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nbspnbspnbsp법문을 마치고 법좌에서 내려오면서는 “남북 통일 만세”를 삼창하며 마지막까지 통일의병들에게 기운을 넣어주었습니다. 통일의병들도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따라 외쳤습니다. nbsp또 큰스님은 더 기운이 나셨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하느님이 보우하고, 천룡팔부님이 옹호해서, 남북통일 성취한 뒤에 한국, 일본, 중국이 삼형제가 되어서 세계만방이 하나 되자. 만만세” 라고 노래를 불렀고, 통일의병들도 덩달아 어깨를 들썩이며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통일성취기도를 모두 마친 후 마지막 장소인 통일암으로 다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사천왕사지에서 통일암으로 향하는 2차선 도로는 통일의병들의 행진으로 길게 장엄이 되었고, 다시 빗줄기가 강해지면서 부슬 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비를 맞으며 30여분을 걸어 통일전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빗줄기가 너무 거세어져서 잠시 비를 피해 모두 버스에 탑승해서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nbsp다음 이야기에 계속됩니다...

2015.09.07. 43,043 읽음 댓글 61개

2015.9.5 고향 마을 석문암 초청법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고향 마을인 울주군에 위치한 석문암 초청법회에 참석해 고향 사람들을 위해 법문을 했습니다.nbspnbsp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천일결사 정진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5시부터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여름 한철 명상수련과 동북아 역사기행을 다녀오느라 텃밭을 방치해 두었더니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어제는 나무를 쳐내고 풀을 베어냈다면 오늘은 삽으로 땅을 고르고 가을 국화와 배추, 무를 새로 심었습니다.nbspnbspnbsp땅을 고르는 작업은 바닥이 단단해서 힘이 많이 들어갔는데 스님은 땀을 뻘뻘 흘리며 삽질을 했습니다. 동트기 전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하다가 잠깐 쉬면서 아침 공양은 텃밭에서 딴 가지와 호박으로 반찬을 해서 드신 후 다시 마당으로 나와 일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땅을 파고 가을 국화를 심고 다시 땅을 북돋워주는 동작 하나 하나에 온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잘 심어진 국화를 보면서는 “예쁘지?” 하면서 함박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하고 있는데 법회 시간이 다 되었다고 연락이 계속 와서 급히 법복과 가사를 수하고 석문암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석문암nbsp석문암은 스님이 졸업한 두북 초등학교 뒤편의 나지막한 산 아래에 자리잡은 작은 암자입니다. 스님의 고향 마을 어르신들이 다니는 사찰인데 오래전부터 스님을 초청하여 법회를 열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으나 들어주지 못했는데 오늘에서야 법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nbspnbsp법회 시간 보다 30분 일찍 석문암에 도착한 스님은 석문암 주지 스님을 비롯해 신도회 분들, 두북초등학교 동기 분들 등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스님은 이곳 주위에 산들이 많이 있는데 모두 다 올라가보았는지 물어보면서 어릴적 추억들을 얘기했는데 모두들 옛날 생각에 환한 웃음을 띠었습니다.nbspnbspnbsp오전 10시가 되자 석문암 신도회장님의 인사말씀과 함께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법회는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되었습니다. 암자가 작아서 많은 대중이 들어갈 수가 없어 법당 마당에서 법회가 열린 것입니다. 좁은 마당에 250여명이 참석하여 발디딜 틈 없이 빼곡이 자리를 메웠습니다.nbspnbsp▲ 석문암 법륜 스님 초청법회nbsp먼저 스님은 고향 사람들을 위해 법회를 하게 되니 느껴지는 소회를 말하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고향에 와서 여러분들을 뵈니까 편안하기도 하고 약간 부담스럽기도 해요. 왜냐하면 여기 계신 어르신들 중에는 제 친구 부모님들도 많이 계세요. 또 두북 초등학교 선배님들도 많이 계시고요. 또 제 초등학교 동기들도 많이 왔어요. 저희 누님도 오셨어요. 또 조금 젊으신 분들은 대부분 후배 되시는 분들이고요. 스님과 불교 신자로서의 만남이라기 보다는 동네 어르신들, 선배님들, 친구들, 후배들을 만나서 같이 얘기 나누는 시간이 되지 않겠나 싶어요.nbspnbspnbsp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곳 석문암에 소풍을 많이 왔는데 올해로부터 꼭 55년 전부터 다녔던 곳이에요. 여러분들은 여기 사니까 여기가 좋은 줄 모르시는데 자세히 둘러보시면 참 좋은 곳이예요. 저도 나이가 드니까 회귀본능이 생기는지 자꾸 고향이 좋아져요. 저는 젊었을 때부터 전세계로 늘 다녔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는 한국에 오면 여기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고향 쪽으로 자꾸 오게 되요.nbspnbspnbsp이곳은 특히 물이 굉장히 맑습니다. 냇가에 흐르는 물도 그렇고 우물도 그렇고 바닥이 다 보일 정도입니다. 경주만 가도 우물 바닥이 잘 안 보이거든요. 이렇게 물이 맑은 곳이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대부분 건강한 이유가 첫째 물이 좋아서인 것 같아요. 둘째는 공기가 맑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도시로 나가서 사는 것도 좋지만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자, 그러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무엇이든지 같이 대화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nbspnbsp법회를 들으러 오신 분들이 모두 고향 선배님들과 친구들이여 약간의 부담이 느껴진다고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자 청중들도 공감을 하며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nbsp질문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라고 하자 모두들 머뭇거렸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동네가 좁아 소문날까 싶어서 질문을 못하겠어요?”라고 하면서 웃자, 그제서야 청중들도 웃음을 띠며 여기저기서 질문을 했습니다. nbspnbspnbsp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남성분은 보통 스님들은 통가사를 많이 하는데 스님은 반가사를 주로 하고 계신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고, 한 여성분은 그동안 이뭐꼬를 화두 삼아서 참선 수행을 해오다가 최근에는 새로 비파사나 명상법을 배웠는데 그 방법을 자세히 알고 싶다고 물었고, 한 거사님은 스님이 자신의 고향 선배라는 사실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15년을 목표로 매주 토요일마다 철야기도를 해오고 있는데 올해 12년이 되었고 앞으로 회향을 하게 되더라도 계속 기도를 해야 하는지 물었고, 또 다른 거사님은 스님과 같은 고향 출신인데 스님은 고향에 올 때마다 특별한 감흥을 느끼는 것이 있는지 물었고, 마지막으로 한 거사님은 치술령 자락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어떤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면 좋을지 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언니가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 든다는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언니가 항암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동생인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힘이 듭니다.”nbspnbsp질문자는 울먹이면서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답해주었습니다.nbspnbsp“동생인 자기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자식도 해줄 수 없고, 남편도 해줄 수 없고, 부모도 해줄 수가 없어요. 남의 인생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 살이에서 두 가지 착각을 하고 있어요. 첫째,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 해줄 수 없는 것을 다 해줄 수 있다고 착각을 하면 내가 못해준 것에 대해 자꾸 죄책감을 느끼게 돼요.nbspnbspnbsp스님이 된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많아요. 스님이 되면 부모님이 자꾸 장가가라고 얘기하겠죠. 이 때 ‘부모 마음도 하나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면서 무슨 중생을 구제하느냐’고 고리를 걸면서 덤빕니다. 이럴 때 대부분 속아 넘어갑니다. 법을 아는 사람은 ‘어차피 내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다 못해준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니 못해 주는 것으로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인생은 늘 이것과 저것 사이에 선택을 해야될 때가 있는데 그 선택에 따른 책임만 질 줄 알면 됩니다.nbspnbsp제가 제자들을 두고 있으니 가끔 부모들이 절에 찾아와서 주로 하는 얘기가 “절에서 나와라. 안 나오면 내가 죽겠다. 내 죽는 꼬라지 볼래?”입니다. 이렇게 걸면 대부분 넘어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부모가 죽겠다고 해도 출가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설사 부모님이 돌아가신다 해도 돌아가시면 장래를 치뤄드리면 됩니다. 돌아가시는 건 그 부모의 결정이고 나는 내 길을 가야 합니다. 내가 부모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부모라 하더라도 자식의 인생을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만 살면 그것이 어떻게 내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부모의 노예이지요. 그래서 남이 원하는 요구를 못해준다고 죄책감을 갖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nbspnbsp둘째,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이루어진다고 괴로워 하잖아요. 아이가 결혼을 안 했다고 괴로워하고, 돈 많이 못 번다고 괴로워하고, 시험에 떨어졌다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다 이루어질 수 없는데 마치 다 이루어질 수 있다고 착각을 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겁니다. 이루어지면 다행이고 안 이루어지면 그만두면 됩니다. 그래도 아쉬우면 또 도전하면 되고요.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면 되고요. 그래도 아쉬우면 또 하면 될 뿐이지 괴로워할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안 이루어졌다고 괴로워하는데 이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nbspnbspnbsp또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고 반드시 좋을까요? 예쁜 여자 한명이 있는데 백명의 남자가 그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소원을 다 이루면 한 여자가 백명의 남자와 살아야 되는 일이 벌어져야 하는 겁니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온 열명의 소원이 다 이뤄져서 한 지역에 국회의원 열명이 당선되면 되겠어요? 그렇게 되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립니다. 조금만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원하는 일이 다 안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나마 요만큼이라도 세상이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반드시 좋다고 할 수도 없고, 또한 다 이루어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nbspnbsp제가 대학생들을 지도할 때의 일입니다. 4학년 학생이 데모를 했어요. 경찰에 잡혀 가서 구치소를 가게 되었는데 그 어머니가 매일 같이 찾아와서 부처님께 제발 좀 우리 아들 빨리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3개월 후에 아들이 재판을 받아서 집행유예로 나왔어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저를 붙잡고 부처님 가피를 입었다고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 아들이 3개월 만에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어요. 그래서 다시 어머니가 저를 붙잡고 ‘내가 아들을 죽인 것이다’ 하면서 울었어요. 이 액난을 피할려고 감옥에 들어간 것을 억지로 끄집어 내었으니 결국 자기가 죽였다는 것이죠. 이렇게 우리는 한치 앞을 볼 줄 몰라요. 지금 벌어진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이것을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하죠.nbspnbsp그런데 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되면 좋다고 난리를 피우고, 조금만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괴롭다고 난리를 피웁니다. 이래서 우리 인생사는 늘 희로애락에 젖어서 괴롭습니다. 그래서 진짜 니쁜 일인지 좋은 일인지는 조금 더 두고 볼 일입니다. nbspnbspnbsp시골에 노름할 때도 초장 끗발 개끗발이란 말이 있잖아요. 초장에 끗발이 오른다고 좋다고 할 수 없어요. 좀 더 길게 봐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까 우리 인생이 늘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남이 원하는 걸 내가 다 해줄 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것도 다 이루어질 수 없다, 이 두 가지만 안다면 바라는 대로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고, 그래도 되길 원하면 더 해보면 되고,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면 되고, 그래도 또 더해보고 싶으면 더 하면 돼요. 꼭 그만둬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또 내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줄 수도 없어요.nbspnbsp언니가 암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지요. 내가 원하는 게 뭐예요? 언니의 암이 낫길 바라지요? 그런데 그게 내가 원한다고 낫고, 원하지 않는다고 안 낫는 게 아니에요. 아베 총리가 일본에서 자꾸 망언하니까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다고 안 죽어요. 내가 사랑하는 부모는 오래 살면 좋겠죠? 그렇다고 오래 사는 게 아니에요. 그건 내가 원한다고 되고 안 원한다고 안 되는 게 아니에요. 그렇기에 특히 수명과 관계된 것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닌데 첫째, 내가 자꾸 관여하려고 하는 거예요. 마치 내가 뭘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이 생각해요. 두 번째, 남편이든 부모든 아내든 자식이든 사람이 평소에는 내 말을 잘 듣다가도 자기가 다급할 때는 남의 말을 들어요? 자기 마음대로 해요? 자기 마음대로 하죠. 인간 성질이 그래요.nbspnbsp암 치료를 받는 중이라는 것은 목숨이 달린 문제잖아요. 급한 문제라 해도 목숨이 달린 문제보다 더 급한 문제는 없겠죠. 그러니 옆에서 뭐라고 권해도 잘 안 들어요. 이런 성질을 알아야 해요. 내 말대로만 하면 잘 들을 것 같은데 왜 그러냐고 하지만 그것은 성질 자체가 원래 잘 안 듣게 되어 있어요.nbsp그러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언니가 약을 먹든 치료를 받든, 낫도록 하겠다는 것은 언니를 위한 것 같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거예요. 언니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자기 만족이에요. 어머니가 일하면서 자꾸 아프다고 ‘아야 아야’ 하니까 그게 듣기 싫어서 일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지 부모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일하려면 아프다 소리 하지 말아요’라고 하잖아요. 이건 다 내 문제예요. 진정으로 부모를 생각한다면 부모가 일을 하려 하면 호미를 찾아드리고, 부모가 아프다 하면 주물러드리고, 그냥 그대로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고, 그게 듣기 싫으면 조용히 어디 가 버리면 돼요. ‘엄마, 나 바쁜 일이 있어요’ 하고 어디 가버리면 되지, 이래라 저래라 하면 갈등밖에 안 일어납니다.nbspnbsp혼자 일하시는 게 좀 안쓰러우면 주말에 와서 거들어줄 수 있으면 거들어주고 못 거들어주겠으면 주말에 안 오면 돼요. 그런데 안 오려니 불효 같고, 와서 거들려니 힘들죠. 그러니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 농사 안 지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이게 다 자기 필요 때문에 생기는 문제예요. 제 말 이해하셨어요?nbspnbsp굉장히 효자 같지만 아니에요. 질문자도 언니를 굉장히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니에요. 그게 다 내가 원하는 대로 언니가 이러저러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 욕구란 뜻이에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기분 나빠요? nbspnbsp아픈 사람은 내가 아니라 언니잖아요. 언니를 생각하면 나는 첫째,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나마 조금이라도 해줄 수 있다면 언니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 돼요. 이야기나누고 싶다 하면 이야기 나누면 되고, 그저 밥 한 끼 같이 먹고 싶다면 같이 먹으면 되고, 병원비가 조금 부족하니 조금 보태줬으면 좋겠다고 하면 병원비를 보태주는데, 100만원을 부탁했는데 내 형편이 안 되면 50만원 주면 되고 50만원도 어렵다 하면 30만원만 주면 돼요. 원하는 만큼 못 줄 때는 ‘언니야, 미안하다’ 라고 주면서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주면서 미안할 게 뭐 있나, 내가 인사받아야지’ 라고 생각할 게 아니에요. 언니가 원하는 만큼 못 줬으니까 ‘아이고, 미안하다’ 이러고 그냥 주면 돼요. 원하는 대로 다 해줄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주면 돼요.nbspnbsp오라고 해도 갈 수 있으면 가고, 못 가면 ‘아이고, 언니야 미안하다’ 이러고 안 가면 돼요. 갈 수 있으면 가면 되지 그걸 가지고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고 또 내 식대로 하려 들어도 안 됩니다. 그러니 언니 하시는 대로 하세요.nbspnbsp그리고 병은 의사가 치료하지 내가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치료비가 필요하다면 내가 치료비 다 대겠다고 나설 것도 없어요. 그냥 어려워 보이면 내 형편 안에서 돕고, 말벗이 없어 보이면 가서 말 좀 나눠주면 되고, 가끔 밥 한번씩 같이 먹으면 돼요.nbspnbspnbsp밥도 내가 먹고 싶어서 사면 안 돼요. 언니가 먹고 싶을 때 사야 돼요. 이 말은 신도님들도 잘 들으셔야 해요. 봉암사 선방에 있어 보면 냉면을 좋아하는 신도는 선방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이 여름철에 냉면을 한번 먹어야 한다고 여러 사람을 동원해가며 야단을 떨면서 냉면 공양하러 올라옵니다. 자기가 수박을 좋아하면 수박을 한 트럭 들고 와요. 자기가 빵을 좋아하면 어디 유명한 빵집에서 빵을 사와요.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선물을 사갈 때 누가 좋아하는 걸 사 가요?nbspnbsp이렇게 인간 자체가 전부 자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요. 그렇다고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자기가 밥을 먹고 싶으면 괜히 붙잡고 ‘아픈데 밥을 챙겨 먹어야지’ 이러면서 아픈 사람 끌고 밥 먹으러 가고, 자기가 이야기 나누고 싶으면 또 가서 이야기를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나를 중심으로 하는 것은 언니에게 도움이 안 돼요.nbspnbspnbsp언니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로 좋은 도움입니다. 언니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해주는 게 언니를 최고로 위하는 길이란 말이에요. 우리가 남을 위한다지만 자세히 보면 다 자기 얘기일 뿐입니다. 그러니 편안히 사세요. 언니가 전화 와서 뭐라고 하면 가서 해주시고요.”nbspnbsp무거운 표정으로 질문을 시작한 여성 분은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서 환한 표정이 되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니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면서 오늘 법회를 마무리하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만약에 버스 대절을 해서 같이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버스가 넘어졌어요. 깨어나 보니 나는 팔만 하나 부러져 있었고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다 죽고 자기 혼자 살아남았어요. 팔이 하나 부러졌지만 재수가 참 좋구나 하고 느껴지죠. 산다는 것은 이렇게 늘 재수가 좋은 거예요. 우리의 인생은 이렇게 재수가 좋은 기적이 매일 매일 일어나고 있어요. 그게 언제인가요? 아침에 눈을 뜨니 살아있을 때입니다. 밤에 눈을 감았는데 아침에 눈을 못 뜨면 죽은 거예요. 그래서 아침에 눈 뜰 때 이렇게 외쳐보세요.nbspnbspnbsp‘아이고, 오늘도 살았네’nbspnbsp이렇게 매일 아침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다른 소소한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살았다는 기적 앞에서 돈 몇푼 벌거나 잃었거나 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찾는 것보다 더 영험이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눈 뜨자마다 세수하기 전에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감사합니다’ 하고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해 보세요. 그렇지 않고 일어날 때 온갖 인상을 쓰고 하루를 시작하니까 예쁜 얼굴에도 자꾸 주름살만 지는 겁니다.nbspnbsp항상 첫 시작이 중요합니다. 하루의 첫 시작을 항상 ‘오늘도 살았네 감사합니다’ 하고 기분좋게 시작을 하면 여러분들의 인생에 아주 좋은 부처님의 가피가 내릴 것입니다. 꼭 명심하세요.”nbsp대중들은 ‘아이고, 살았네 하고 따라하면서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2시간이 넘도록 긴 시간 동안 정성을 다해 법문을 해준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법회를 들은 두북초등학교 동기들, 선후배들과 함께 악수를 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기쁨을 표현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고향 분들은 모두들 스님에게 “좋은 일 많이 하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나마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고 하면서 뿌듯해 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기념으로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주름진 얼굴과 흰 머리를 보니 55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nbspnbsp▲ 초등학교 동기들과 함께nbsp스님은 오늘 초청법회를 주관한 석문암 주지 스님인 석봉 스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오후 1시가 다 되어 다시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오후 4시에는 황룡사터로 가서nbsp행정처 간부들과 함께nbsp내일 이곳에서 열릴 통일의병대회 준비 상황을 nbsp점검했습니다. nbspnbspnbsp이후 다시 두북으로 돌아와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내일은 전국에서 통일의병 1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정토회 통일의병대회가 황룡사와 능지탑, 선덕여왕릉, 사천왕사지, 통일암 일대를 순례하며 진행될 예정입니다.nbsp

2015.09.06. 63,470 읽음 댓글 77개

2015.9.4 포항 청춘콘서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포항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 참석해 청년들의 고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nbspnbsp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정진을 마친 스님은 아침부터 농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마당에 잔디를 깎고 화단에 있는 잡초들을 제거하고 웃자란 나뭇가지들을 치는 등 오전 내내 구슬 땀을 흘렸습니다.nbspnbsp▲ 텃밭에 심어 놓은 배와 수박과 참외nbspnbsp오후에는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고, 4시가 되어 오늘 청춘콘서트가 열리는 포항으로 향했습니다. 포항으로 가는 길에 경주에 잠깐 들러 손님과 미팅을 한 후 포항에는 6시 50분이 다 되어 도착했습니다. nbspnbsp포항 청춘콘서트가 열린 경북 학생문화회관은 저녁 7시가 되자 1200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좌석이 부족해 계단과 복도에도 앉아야 할 정도로 높은 관심과 열기를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포항시 경북 학생문화회관을 가득 메운 1200여명의 청년들nbsp스님은 청년들이 요즘 많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공감을 한 후 나를 행복하게 하는 수행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저런 일로 좀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어요. 첫째, 직장 구하기가 어렵다. 둘째, 연애와 결혼도 쉽지가 않다. 셋째, 아이 낳아 키우기도 쉽지가 않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정말 그래요?nbspnbsp그런데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이해가 되는데 연애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좀 이해가 안 돼요. 그리고 연애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왜 고민이 되는지 그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어요. 연애 안 하면 되잖아요. nbspnbspnbsp결혼도 안 하면 되잖아요. 아이도 안 낳으면 되잖아요. 이런 고민이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저한테 오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연애나 결혼을 안 하고도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저한테 물으면 ‘그걸 갖고 왜 괴로움이라고 그래요?’ 하는 소리를 듣겠죠?nbspnbsp그래서 비교를 어떻게 하느냐가 참 중요해요. 돈을 천만원 가진 사람이 1억 가진 사람과 비교하면 가난한 사람이 되고, 백만원 가진 사람과 비교하면 부자가 되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힘들 때는 꼭 저한테 오세요. ‘그래도 스님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nbspnbspnbsp이것은 심리적인 처방이예요. 개인은 이렇게 심리적인 처방을 스스로 할 줄 알아야 돼요. 왜냐하면 사회 제도를 바꾸고 다른 사람들을 바꾸는 것은 첫째, 시간이 많이 걸리고, 둘째, 될지 안 될지 불확실해요. 마냥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우선 내 인생은 행복하게 살아야 되니까 이런 심리적 처방을 통해서 내가 먼저 행복해지고, 그런 후에 행복한 마음으로 사회적 변화도 마련해야 합니다. 청년 일자리를 늘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기 낳기가 쉬운 사회적인 제도와 문화도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어요.nbspnbsp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은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다 질문해도 좋습니다. 세상은 그렇다 치고 우선 나부터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은 심리적 처방이예요. 그럼 세상을 이렇게 내버려두어도 됩니까? 안 되지요. 세상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혼자서는 못 합니다. 힘을 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공감대를 가져야 합니다.nbspnbsp농사를 짓기 위해 콩이든 배추든 상추든 심을 때 잘 자라게 하려면 두 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해요. 첫째, 씨앗이 좋아야 합니다. 씨앗이 안 좋으면 아무리 땅이 좋아도 신통치 않아요. 그래서 종자 개량을 하거나 좋은 씨앗을 선택해야 해요. 둘째, 아무리 씨앗이 좋아도 땅이 안 좋으면 잘 못자라요. 셋째, 잘 돌보지 않으면 벌레가 먹든지 거름이 부족하든지 물이 부족해서 잘 못자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땅에 거름도 주고 물도 주고 병충해도 막아주는 보살핌이 있어야 합니다.nbspnbsp수행은 이 씨앗을 개량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위 환경을 그대로 두고도 여러분들이 조금 더 수행을 하면 행복도가 높아져요. 땅은 그대로 두고 좋은 종자를 심으면 소출이 좀 늘고, 같은 종자라도 땅을 잘 가꾸면 역시 소출이 늡니다. 그런데 두 가지 다 하면 더 좋겠죠. 그래서 우리는 개인적으로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수행도 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사회 변혁 운동도 같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nbspnbspnbsp이것을 불교에서는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한다고 합니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성불’이라고 하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전쟁이 없도록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병든 사람이 없도록 아름답게 가꾸는 것을 ‘정토’라고 합니다. 이 성불과 정토를 동시에 추구합니다. 또 다른 말로는 ‘자리이타’라고 합니다.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다는 뜻입니다. 자, 그러면 이 두 가지 종류의 문제에 대해서 마음껏 질문하세요.”nbsp마음껏 질문하라는 스님의 말씀에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습니다. 총 3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한 여학생은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을 수도 있지만 나보다 잘난 사람도 늘 보고 살아야 해서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데 이럴 땐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 물었고, 한 남학생은 요즘 통일에 관심이 많아서 주변에 얘기를 꺼내면 ‘니 밥그릇이나 잘 챙겨먹어라’고 해서 어떻게 하면 주변 사람들이 통일에 관심을 갖도록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각각에 대해 스님은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어 유익하면서도 웃음이 넘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4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공허함 때문에 힘들다는 한 여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슬픔에 못 이겨서 울먹이며 질문을 시작한 여학생은 스님의 답변을 듣고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nbspnbsp“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걸로 인해서 마음이 공허해져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마음을 저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공허함이 자꾸 커지다 보니까 이걸 제가 감당을 못 하겠어요.”nbspnbsp“몇 살이에요?”nbsp“스물여섯살이요.”nbsp“스물여섯살이면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고아는 아니에요. 스무살 미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만 남의 도움이 필요하고 스무살이 넘으면 어머니가 살아계셔도 어머니로부터 독립해야 해요. 그런데 질문자는 아직 어린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프다는 건 이해합니다. 제가 나이 예순이 넘어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슬픔이 있겠죠. 나이 예순에 아흔이 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게 슬플까요? 마흔일 때 일흔인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게 슬플까요? 스무 살일 때 쉰이 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게 슬플까요? 열 살에 마흔인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게 슬플까요? 언제 돌아가셔도 슬픔은 있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 일수록 슬픔이 더 크겠지요.nbspnbsp제가 만원 짜리 시계를 15년째 차고 다니다가 얼마전 중국에서 잃어버렸어요. 식당에서 강의할 때 시계 본다고 벗어놓고 강의했는데 잊고 안 가져왔어요. 이튿날 아침에 시계가 없어서 얘기하니까 식당에서는 못 봤대요. 지금도 아니고 15년 전에 만원 주고 사서 쓴 물건이면 본전 다 뽑았지요? 그런데도 섭섭해요. 남이 들으면 그런 고물 시계 가지고 뭐가 섭섭하냐 하지만 이런 시계도 오래 가지고 있던 것이 사라지면 섭섭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만원 주고 시계를 새로 샀어요. 그런데 이걸 오늘 또 잃어버린다면 15년 전에 산 시계와 산 지 일주일도 안 된 시계 중 어느 것을 잃어버린 게 더 섭섭할까요?”nbspnbsp“15년 전에 산 시계요.”nbsp“왜 그럴까요?”nbspnbsp“추억이 있으니까요.”nbsp“값어치 얼마 안 되는 시계도 15년 갖고 있다 잃어버렸다 해서 이렇게 섭섭한데 나를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슬프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누구나 다 슬픕니다.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야기를 해본다면, 시계 잃어버렸다고 계속 시계 타령을 하는 게 좋을까요? 좀 섭섭하지만 한번 가서 물어보고 두 번 물어봐도 못 봤다 하고 전화까지 해봤는데도 못 봤다 하면 포기하고 새로 시계를 사야 돼요, 한국에도 오지 말고 중국 그 식당에 붙어살면서 찾아야 돼요? nbspnbspnbsp섭섭하지 않아서나 필요없어서가 아니라, 필요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단 말이에요. 다들 못봤다 모른다 하는데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아깝지만 다른 시계를 사서 대신할 수밖에 없듯이,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은 나에게 큰 슬픔이지만 이걸 내가 섭섭해하고 공허해한다고 돌이킬 수 있어요?”nbsp“없어요.”nbsp“돌이킬 수 있다면 한 달이라도 울겠지만 되돌려지지 않는 문제란 거예요. 부처님에게 빌어도 방법이 없어요. 좋은 데로 가는 건 부처님이 도와줄 수 있어요. 하나님에게 빌면 천당에 간다, 부처님에게 빌면 극락에 간다, 이런 건 도울 수 있지만 이리로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도 부처님도 못 도와요. 만약 돌아올 수 있다면 좋은 데 간다는 이야기 자체가 나올 수 없습니다. 못 돌아오니까 차선책으로 좋은 데 갔다고 대안을 내놓은 거예요. 헤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헤어진 후 좋은 데 가 계신다 말하는 게 좋아요? 나쁜 데 가 계신다 하는 게 좋아요?”nbsp“좋은 데요.”nbsp“이럴 때 진짜 천당이 있냐, 극락이 있냐 묻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그건 따질 필요가 없어요. 좋은 데 갔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위안이 되니까 이것은 진실 게임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효능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해요. 어머니가 좋은 데 가 계신다고 믿으면 내가 마음이 편해져요. 어머니를 자꾸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면 첫째, 그래도 돌아올 수가 없고, 두 번째, 만약에 올 수 있다고 누가 이야기한다고 해도 문제가 돼요. 어머니가 좋은 곳에 가서 잘 지내시다가 질문자의 욕심 때문에 나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하잖아요. 사실은 오시겠다고 해도 좋은 곳에 그냥 계시라고 해야 하잖아요.nbspnbsp게다가 설령 돌아온다 하더라도 돌아올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너무 슬프게 울면 돌아오는 것을 옛날에는 이렇게 표현했어요. 돌아올 수 있는 몸이 없으니까 남의 몸에 끼어들어와요. 다른 사람의 몸에 영혼이 끼어들어오면 그 사람은 정신분열을 일으켜 정신질환자가 돼요. 이걸 옛날에는 귀신 들었다고 표현했고 현대의학에서는 정신분열 혹은 이중인격이라고 표현해요. 그러니까 너무 슬퍼해서 어머니가 질문자 속으로 들어오면 질문자에게 정신분열이 일어나고, nbsp내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오면 그 사람에게 정신질환이 일어나요.nbsp그러니 공허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 간절히 바라는데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공허하지요. 그런데 그렇게 해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괴롭고, 너무 간절해서 이루어져도 주위에 이런 일이 벌어져서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nbspnbspnbsp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공허함이 좀 덜어지느냐? ‘아이고, 어머니 이 세상에 사실 때 고생 많이 하셨어요. 우리도 키워주시고 아버지와도 여러 문제로 고생하셨는데 이제 편안한 데 가셔서 행복하게 사세요.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행복하게 사세요.’ 이렇게 인사를 해주면 어머니가 굉장히 좋아하실 거예요.”nbspnbsp“그냥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죠?”nbsp“아니요. 인사하라고요. 가셨는데 질문자가 아직 인사를 안 해서 생긴 문제예요.”nbsp“보고 싶을 때마다 계속 인사를 몇 번이나 했어요.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아요. 저도 그게 말이 안 되는 줄은 당연히 알죠. 그런데 스님은 시계를 잃어버리고 새 시계를 사셨지만 저는 대체할 게 없잖아요.”nbsp“대체할 게 있어요. 딴 남자를 만나면 되죠.” nbspnbsp“어머니를 잃었는데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그걸 대체하라고요?”nbsp“아니요. 어머니를 잃은 대신에 남자친구를 만나면 된다는 거예요. 남자를 만나서 아기를 낳으면 질문자가 다시 엄마가 되거든요. nbspnbsp세상은 이렇게 내려가는 거예요. 여기 있는 사람 중 누구도 영원히 엄마의 딸로만 살 수는 없어요. 어릴 때는 엄마의 딸로 살다가 딸을 낳고 다시 엄마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엄마와 아빠에게 의지하고 관계 맺던 것을 결혼해서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대체하거나 나처럼 완전히 독립을 하면 돼요. 어느 쪽이 좋아요?”nbsp“둘 다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진 않아요.” nbsp“그건 내가 남자친구를 너무 좋아하다가 헤어졌을 때 어떤 남자도 눈에 안 들어오는 것과 똑같아요. 그런데 그건 그 남자를 사랑해서가 아니에요. 지금은 다른 남자가 눈에 안 들어와서 본인은 영원히 다른 남자를 안 볼 것처럼 이야기하죠. 그렇지만 우리처럼 오래 산 사람은 세월이 약인 줄 압니다. nbspnbspnbsp그러니 지금은 해결이 안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돼요. 돌아가신지 몇 년 되었어요?”nbsp“4년이요.”nbsp“그러면 10년 되면 지금보다 나을까요, 못 할까요?”nbspnbsp“잘 모르겠어요.”nbspnbsp“그러면 20년 지나면 지금보다 나을까요, 못 할까요?”nbsp“그것도 잘 모르겠어요.”nbsp“30년 지나면요?”nbsp“그것도 잘 모르겠어요.”nbsp“그렇게 거짓말하면 안 돼요. 지금은 그렇게 슬프지만 그래도 10년, 20년 지나면 지금보다는 조금 낫지 않을까 하는 짐작이 안 돼요?”nbsp“그런데 4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이러니까요. 그 시간의 두 배가 8년이잖아요. 그렇다고 과연 괜찮아질까 싶어요. 처음에는 저도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는 게 없이...”nbsp“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으면 그걸 보통 정신질환이라 해요. 시간이 지나도 남자를 잊지 못하면 상사병이라 하죠. 어떤 하나를 좋아했는데 나중에도 놓지 못하고 계속 집착하는 걸 편집증이라고 합니다. 질문자가 어머니와의 추억이 좋아서 생긴 것이겠지만 거기에 대해 편집증이 있는 거예요. 이 편집증을 안 고치면 나중에 어떤 남자를 좋아했다가 헤어질 수도 있는데 그럴 때 다시 편집증이 생겨서 그 남자를 못 잊고 또 몇 년씩 시간을 보냅니다. 자식을 낳아 기른 뒤 시집 장가보낼 때도 또 편집증이 생겨서 떠나보내질 못해요.nbspnbsp그래서 지금이 그 편집증을 고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예요. 어머니를 떠나보낼 수 있으면 질문자는 나중에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혹시나 헤어질 때 그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있고, 자녀를 낳아서 키울 때도 아이가 커서 독립할 때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러니 지금 이것은 공부거리로는 아주 좋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잘 가세요’ 하고 인사를 하세요. 그리고 ‘어머니 걱정 안 끼치고 저도 잘 살겠습니다.’ 이렇게 절을 하면서 기도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아져요.nbsp어머니가 좋은 곳으로 가셨는데 자기 옆에 오라고 계속 잡아당겨야 되겠어요? ‘엄마, 내 나이가 스물여섯인데 이제 안 와도 돼. 그러니 거기서 살아.’ 이렇게 인사하고 놓아드려야 되겠어요? ‘엄마, 안녕’ 하고 영원히 인사할 자신이 있어요?”nbsp“아직은 좀 자신이 없어요.”nbsp“어차피 인사 못 하고 계속 울어도 어머니가 돌아오실 수 있어요?”nbspnbsp“아니요, 안 돌아오시죠.”nbsp“그러면 어차피 안 돌아오실 거면 인사를 확실히 해버리는 게 낫지 않아요?”nbsp“나을 것 같긴 한데...”nbsp“그럼 지금 이 자리에서 한번 해봐요. ‘엄마, 안녕. 잘가’ 이렇게 한번 해봐요.” nbspnbsp“말이 안 나와요.”nbsp“그게 편집증이란 거예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너무 쉽지만 본인은 심리적인 이유로 입이 안 떨어지는 거잖아요. 헤어짐을 아직 못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니까, 억지로라도 한번 따라 해봐요. 엄마, 안녕, 잘 가”nbspnbsp“엄마, 안녕. 잘 가.” nbsp“박수치면 안 돼요. 이건 ‘엄마, 안녕. 잘 가’ 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가면 안 돼’ 하고 붙잡는 거예요. 그건 헤어지는 게 아니에요. 나처럼 상쾌하게 ‘엄마, 안녕. 잘가’ 하고 뒤끝이 올라가야 돼요. 그렇게 한번 해봐요.”nbspnbsp“엄마, 안녕. 잘 가” nbspnbsp“지금도 감정이 실려서 ‘엄마, 안녕. 잘 가’ 하고 소리를 질러요. 이것도 안 돼요. 하나는 가지 말라고 붙들고 하나는 ‘못 올 바엔 꼴도 보기 싫어. 가’ 이러는 거예요. 아까보다는 낫지만 둘 다 안 돼요. 입 앙 다물고 각오하지 말고 편안하게 다시 말해봐요. ‘엄마, 안녕. 잘가’ 이렇게.”nbsp“엄마, 안녕. 잘 가...”nbsp“아직 안 돼요. 악 쓰지 말고 좀 더 편안하게.nbsp그 소리 듣고 엄마가 어떻게 가겠어요? 여기 나이드신 분들에게 물어볼까요? 저 소리 듣고 갈 수 있어요? 못 가요. 다시 해봐요. ‘엄마, 안녕. 잘 가’ 이렇게. 마음을 탁 내려놓고.”nbsp“엄마, 안녕. 잘 가”nbsp“거의 다 됐어요. 50점은 됐어요. 한번 더 해봐요.”nbspnbsp“엄마, 안녕. 잘 가”nbsp“100점은 아니지만 봐 줄게요. 박수쳐 주세요.”nbspnbspnbsp청중들이 큰 박수와 함께 응원의 마음을 담아 환호를 보내주었습니다. 스님은 밝아진 질문자의 얼굴을 보고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아픔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인간 세상이라는 게...참... 부모 자식이 만나서 부모가 먼저 돌아가면 자식이 울고, 자식이 먼저 돌아가면 부모는 더 웁니다. 부모가 돌아가셔서 4년을 저리 못 잊는 사람도 있는데 세월호를 생각하면 고등학교 아이들을 잃은 엄마들은 스님이 잊어라 한다고 잊어질까요? 안녕 하라 한다고 안녕이 될까요?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고 하죠. 정치인들이 이걸 알면, 물론 시신을 찾는다고 살아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이럴 수밖에 없었고 구조에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었다고 밝히고 죄송하다고 사과도 해주면 좋지 않겠어요?nbspnbsp그러니 우선 진상을 규명해주고, 책임자들은 책임을 좀 더 깊이 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하겠다고 재발방지 약속도 해줘야 해요. 그래도 또 이런 일이 생기겠어요, 안 생기겠어요? 또 생기더라도 이렇게 해주면 한이 좀 풀린다는 이야기에요. 그렇게 좀 해주면 좋을 텐데 다들 황소고집이라서 이렇게 아프게 하잖아요. 저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머니 돌아가신 것도 저렇게 가슴에서 못 놓잖아요.nbspnbspnbsp질문자도 이제 어머니를 좀 내려놓고 좋은 데 가셨다 믿고 행복하게 사세요. 엄마가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웃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할까요? 우는 모습 보는 걸 좋아할까요? 웃는 걸 보기 좋아하겠죠. 그러니 질문자는 살아서도 불효하고 죽어서도 불효하는 셈이에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웃어주는 것이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웃으며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이제 자기 인생 살아야 해요. 어렵지만 그렇게 해야 해요.”nbsp청중들은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로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보내주었습니다. 스님은 답변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질문자를 위해 여러차례 기다려주며 다시 묻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상대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 이렇게 기다려줄 수 있는 것이나구 싶었습니다. 또 질문자가 마지막에는 환한 웃음을 보이자 강연장은 순식간에 감동의 물결이 되었습니다. nbspnbsp이어서 다른 질문들이 이어졌고 특히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스님은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통일한국이 청년들에게 가져다 줄 희망에 대해 가슴 뛰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시간이 부족해 3명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자 주어진 70분이 모두 지나갔습니다. 이어서 김제동씨가 큰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나왔습니다.nbspnbspnbsp김제동씨는 최근 전쟁 위기에까지 치다른 남북의 행태를 재미있게 풍자하면서 통일이 되면 청년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열정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어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nbspnbsp김제동씨와 함께한 70분 간의 행복 공청회가 끝나고 다시 스님과 김제동씨가 함께 무대 위로 올라와 마무리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사회자 오청춘씨가 “많은 청년들이 오늘 행복의 나라에 놀러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가게 되어 참 기쁜데요. 하지만 청년들은 오늘 강연장 밖으로 나가면 또다시 대한민국의 팍팍한 현실로 돌아가야 합니다” 라고 하면서 행복의 나라가 다시 그리워질 청년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을 부탁했습니다. 먼저 김제동씨가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nbsp“제가 대구경북지역에서 태어나 이런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신 시민 여러분들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마이크의 존재 이유를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자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마이크의 진짜 존재 이유는 듣는 여러분들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 직업은 여러분들의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고, 여러분들의 은혜 위에 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은혜를 갚는 일을 계속 할 것입니다.nbspnbsp20대 청년들에게는 통일이라는 세대적 자부심을 가지고 힘들지만 함께 나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프니까 청춘이다 하는 이따위 말은 믿지 마세요. 아프면 중년입니다.” nbspnbspnbsp청년들은 큰 웃음과 박수로 공감을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스님은 김제동씨를 바라보며 “눈이 작아도 참 멋있죠” 한 후 “눈이 작아도 눈 수술하지 마세요” 라고 농담을 하면서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살아있음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 사회 변화를 위한 작은 책임의식이라도 가져보는 자세를 함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단점이 장점이 되기도 하고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기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즉 노력을 해서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해요. 성공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고, 또 그 과정도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관점을 바꾸면 노력할 것도 없고 지금 이대로 바로 좋아집니다. 제가 볼 때 여러분들은 인생을 너무 피곤하게 사는 것 같아요. 노력해서 뭔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살잖아요. 관점을 바꾸면 이대로 좋다는 이야기를 오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nbspnbspnbsp도라는 것은 지금 좋은 줄 아는 거예요. 어릴 때는 어릴 때가 가장 좋고, 중고등학교 때는 중고등학교 때가 가장 좋고, 대학 때는 대학 때가 제일 좋아요. 중고등학교나 대학 때는 밥 먹고 공부만 해도 칭찬 받아요. 나이 들어서 밥 먹고 아무 일도 안 하고 공부만 하면 욕을 먹잖아요. 그러니 지금 이 시기가 가장 소중한 거예요.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되는 시기가 인생에서 그리 길지 않아요. 처녀 총각으로 지낼 수 있는 시기가 그리 길지 않아요. 신혼 시기가 길지 않아요. 그러니 일흔이 되면 일흔이 좋고 여든이 되면 여든이 좋아요. 그 때가 가장 좋은 시기예요.nbspnbsp여든 노인도 얼마나 좋아요? 공부할 일이 있나, 애 키울 일이 있나, 취직할 일이 있나, 시험칠 일이 있나? 시비하지 말라고 눈도 침침해서 안 보이고 귀도 어두워 안 들리니 남의 말 하고 시비할 일이 없죠. 점잖게 걸으라고 하는데 다리가 아프니 저절로 점잖게 걸어져요.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도 노인이 젊은이를 부러워하는 것은 자기 좋은 줄 모르고 남을 부러워하는 거예요. 자기가 젊을 때는 늙은이를 부러워해놓고 나이 들면 또 거꾸로인 거예요.nbsp이렇게 해서 우리 인생의 괴로움은 어릴 때부터 늙어죽을 때까지 끝이 안 나요. 살아있을 때는 늘 죽을 궁리만 하다가 죽을 때 되면 또 살 궁리하고 안 죽겠다고 야단이에요. 경상도 말로는 ‘디비쫀다’고 해요. nbspnbspnbsp이렇게 인생을 거꾸로 디비쪼면 안 됩니다. 항상 지금이 좋은 줄을 알아야 해요. 여기서 이야기 듣는 것은 듣는 걸로 좋지만 집에 가면 집에 가는 게 좋아요. 아침에 눈뜨면 살아 있다는 건 좋은 일이죠? 그런데 아침에 눈뜨자마자 ‘에이’ 이러고 인상을 쓰니 그 인생이 행복할 리 없지요. 아침에 눈뜨자마자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이렇게 시작해도 저녁이 되면 지치는데 인상쓰고 시작하면 오죽하겠어요? 그러니 아침을 제일 기분좋게 시작해야 해요. ‘오늘도 살았네’ 한번 따라해보세요.nbspnbsp‘아이고, 오늘도 살았네’nbsp차 타고 가다가 버스가 사고를 당해서 다 죽었는데 자기만 살았으면 엄청난 기적이잖아요. 그런 기적이 매일매일 일어나요. 아침에 눈뜰 때마다 그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 소중한 인생이에요. 나의 하루의 삶은 그런 엄청난 기적의 연속입니다. 이런 소중함을 여러분이 알고 있다면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nbsp오늘 우리가 통일을 비롯해 온갖 이야기를 했는데,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이 뭐예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은 뭐예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면 나라의 주인은 우리예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에요?”nbsp“우리요.”nbsp“그런데 여러분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욕하고 기분 나쁘다며 이민 가겠다 하는 것은 주인의 자세가 아니에요. 주인이라는 게 뭐예요? 내가 주주인데 회사가 경영을 잘 못하면 주식을 팔아야 돼요? 다음 주주총회 때 사장을 바꿔야 돼요?nbspnbspnbsp지금은 다들 주식 팔고 도망가려는 꼴이에요.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어서 그래요. 우리가 사는 나라의 주인은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나라, 젊은이들이 원하는 나라, 이 땅에 생명을 보전하는 평화, 우리 미래의 발전에 대해 비전을 가질 수 있는 통일 같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도록 주인이 위탁한 CEO에게 ‘이렇게 해라’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해요.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다음 주주총회에서 CEO를 바꿔야겠죠. 그런데 소액 주주가 CEO를 바꾸고 싶다고 혼자 나서면 바꾸기가 힘들어요. 소액 주주는 표를 많이 모아야겠지요. 그런데 늘 대주주가 지정해주는 대로 따라가요. 회사 전체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재벌이 전체 주식을 가진 게 아니라 3, 5를 가지고 회사를 움직여요. 나머지는 소액주주이기 때문이에요.nbspnbsp그런 것처럼 어떤 특정 정당 말뚝만 박아놓아도 찍는다는 태도를 우리가 아직까지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표를 포기하는 거예요. 주인의 자리를 포기하는 거예요. 새누리당 찍어도 괜찮고 민주당 찍어도 괜찮아요. 선택은 자유예요. 그러나 내가 선택해서 내가 결정하는 것이여야지 말뚝 보고 찍으면 안 돼요. 그런데 지금은 결과적으로 말뚝 보고 찍잖아요. 공천만 되면 당선이 정해져요. 이것은 지역주의가 우리의 시민적 권리, 국민적 권리를 사실상 빼앗는 것과 같고 또한 우리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념의 문제도 아니고 지역 감정의 문제도 아니에요. 여러분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헌법에 보장된 권리에 대해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투표라는 이 작은 행위로부터 국가가 바로서는 길로 가는 것이지 어떤 큰 결심을 해야 국가가 바로서는 것이 아닙니다.nbspnbspnbsp‘행복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라는 질문에 다시 답하자면, 첫째,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침에 눈뜰 때 살았다는 기적을 만끽하자는 것입니다. 셋째, 작은 책임을 지자는 것입니다. 국가의 큰 변화도 우리의 작은 투표 행위로부터 시작해요. 불평은 많이 하면서 정작 젊은이들의 투표율은 50가 안 돼요. 노인들은 90예요.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해도 실제 투표를 해보면 안 돼요. 여러분들은 그만큼 책임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이 한 발을 내딛는 이 작은 행위로부터 미래의 큰 변화가 일어난다는 각성이 필요합니다.nbspnbsp그래서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이런 작은 책임의식을 갖는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행복할 수 있고 지금부터 좋은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nbsp행복해지기 위해 스님이 제시해준 세가지 방법에 대해 청년들은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강연의 마지막을 장식할 노래와 축제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오늘 행사를 준비한 서포터즈들이 다함께 무대 위로 올라와 스님과 김제동씨의 손을 맞잡고 강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nbspnbsp인디밴드 요술당나귀가 작사작곡한 ‘행복가’의 노래 가사가 스크린 위에 비춰지자 청년들도 가사를 함께 따라 부르며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nbsp“마음껏 웃고 꿈꾸고 사랑하자 ♬ 작은 날개를 펴고 행복의 나라로 날아가자.”nbspnbsp노래 가사처럼 청년들이 마음껏 웃고 꿈꾸고 사랑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작은 실천이라도 함께 해 볼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였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 입구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채 스님의 사인을 기다렸습니다. 스님은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고, 청년들도 소중한 가르침을 들려준 스님께 직접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nbsp사인회를 마치고 나서는 오늘 청춘콘서트를 위해 한달 전부터 사전 모임을 비롯해 곳곳에서 수고해준 희망서포터즈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서포터즈들은 스님과 김제동씨를 가운데로 모시고 “청춘콘서트, 파이팅”을 외치며 밝게 웃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오면서 스님은 강연을 마치고 포항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김제동씨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김제동씨도 “제가 오히려 더 큰 도움을 얻는다”고 하면서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포항에서 10시30분에 출발한 스님은 밤 11시가 다 되어서 두북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농사일을 한 후 10시부터는 두북정토수련원 뒷산에 위치한 성문암에서 법회를 하고, 2시에는 정토회 통일의병 모임과 함께하는 워크샵에 참석할 예정입니다.nbspnbsp ※ 법륜 스님과 김제동이 함께하는 2015 청춘콘서트가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 곳곳에서 열립니다. 참가를 원하는 분들은 티켓을 사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lt티켓 사전 신청하기gtnbspnbspnbsp우리 지역 콘서트 일정을 nbsp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nbsp

2015.09.06. 55,799 읽음 댓글 48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