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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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10 (오전) 진주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 10시 30분에 진주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 30분에는 울산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어서 참석자가 적으면 어쩌나 걱정스러웠지만 진주정토회 자원봉사자들은 일찍부터 모여 강연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빠진 것은 없는지, 수정할 것은 없는지 꼼꼼히 챙기면서도 얼굴에서는 즉문즉설 강연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가 한껏 묻어났습니다. 나무와 풀들이 하늘의 단비를 맞아 생기를 찾고 성장을 하듯 오늘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스님 법문의 단비를 맞고 행복한 삶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갖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nbspnbspnbsp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는 분들도 제법 계셨고, 강연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자 많은 분들이 속속 입장하여 600여 명의 참석자와 봉사자가 경남과기대 100주년기념관을 훈훈하게 채웠습니다. nbsp nbsp nbspnbspnbsp사전 노래공연과 스님의 소개영상이 끝나자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청중들의 얼굴에는 비오는 날의 쌀쌀함과 눅눅함을 날려버릴 기대와 열기가 느껴졌습니다.nbsp스님은 비가 내리고 있는 오늘 날씨를 언급하면서 수행이란 좀 더 크고 넓게 멀리 보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강연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nbspnbsp“비가 오는 날씨에도 많은 분들이 와주셨네요. 비가 오면 마음이 좀 불편하죠. 그런데 농사를 지어보면 비가 자주 오는 걸 좋아하게 됩니다. 올해 봄에는 장마철인가 싶을 정도로 비가 너무 자주 오기는 했습니다만, 봄에 비가 오는 것은 도시 사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불편할지 몰라도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참 유용합니다.nbspnbsp그러니 어떤 일이 생기는 게 나한테 나쁘다고 해서 꼭 이 세상에도 나쁜 것은 아니에요. 어떤 일이 나한테 손해라고 해서 꼭 이 세상에도 손해인 것도 아니고, 나한테 이익이라고 해서 꼭 이 세상에 좋은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 일이 생기면 조금 미안한 마음을 갖고 받아들이고, 자기한테 손해가 일어날 때는 다른 사람이 이익 볼 걸 생각하면 비록 손해는 보더라도 입가에 빙긋이 미소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일을 대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이 되느냐 안 되느냐, 혹은 나한테 이익이냐 손해냐 하는 것에 좀 덜 민감할 수 있습니다. 나만 보지 말고 타인도 보고 우리 모두를 보면 저절로 감정기복이 좀 덜해집니다.nbsp비유를 들어볼게요. 명절 때 집에서 온 가족이 화투치기처럼 약간의 돈을 거는 놀이를 할 때가 있잖아요. 요즘은 안 하나요? 우리가 어렸을 때는 많이 했어요. 그런 걸 하다 보면 형이 좀 따고 동생이 잃거나, 반대로 동생이 따고 형이 잃었을 때, 형제간에 울고불고 싸우며 난리가 납니다. 한쪽은 잃었다고 울고 한쪽은 땄다고 좋아하면서 서로 싸우는 걸 보면 엄마가 뭐라고 해요? ‘아이고, 그만들 해라. 그래봤자 그게 그 돈인데 뭘 그러냐’ 이렇게 말하죠. 엄마, 아빠가 볼 때는 누가 따든 그게 그 돈이죠. 그런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절대로 ‘그게 그 돈’이 아니에요. 그와 같다는 이야기입니다.nbspnbsp그래서 부모 입장이 되어보면, 다시 말해 가족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가지면 조그마한 이익과 손실에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그게 그 돈인 줄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좁은 눈으로 바라보면, 다시 말해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면 ‘나는 잃고 형은 땄다’, ‘내가 따고 형이 잃었다’ 이런 것에 기뻐하거나 슬퍼하면서 연연하게 됩니다.nbspnbsp수행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에요. 열심히 빌어서 뭘 이루는 게 수행이 아니라 조금 더 큰 눈을 갖는 것, 조금 멀리 보는 것, 조금 더 넓게 보는 것, 조금 더 깊이 보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런 눈을 갖게 되면 저절로 우리들의 번뇌가 잦아들고 사라집니다.nbspnbsp인생은 정답이 있는 게 아니에요. ‘이혼을 해야 하느냐? 안 해야 하느냐?’, ‘결혼을 꼭 해야 하느냐? 안 해야 하느냐?’ 이런 질문들에 대해 정해진 답이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스님이 답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런 적은 없습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에요. 다만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대해 내가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갖게 되면 어느 쪽을 선택하든 삶이 좀 여유로워집니다.nbsp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런 선택을 해도 괴롭고, 저런 선택을 해도 괴로워요. 이러면 이게 문제고, 저러면 저게 문제입니다. 그런데 조금 눈을 크게 뜨게 되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요. 혼자 살아도 좋고 결혼해서 같이 살아도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혼자 살면 외롭고, 같이 살면 귀찮다고 하죠.nbspnbspnbsp그런데 조금만 눈을 크게 뜨면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고, 같이 살아도 귀찮지가 않아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게 되는 거예요. 그것이 소위 진리의 길입니다. 그런 길로 나아가는 것을 절에서는 ‘설법’이라고 하고, 교회에서는 ‘설교’라고 해요. 그래서 ‘즉문즉답’이 아니라 ‘즉문즉설’이라고 말합니다. 자, 그럼 오늘도 여러분과 대화를 시작해보죠.”nbsp스님이 들어준 재미있는 비유에 시작부터 유쾌한 웃음이 곳곳에서 터져나왔습니다.nbspnbsp질문은 선착순으로 세 명을 먼저 받았고, 나머지는 추첨 방식으로 받기로 했는데 질문지함에 질문지를 넣은 분이 두 명 밖에 없어서 모두 다섯 명이 스님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이를 유산한 이후 매사에 불안감이 엄습한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자가 처음에는 울먹였지만 스님의 답변을 다 듣고 나서 활짝 웃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nbspnbspnbsp“저는 항상 정성을 다하고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신념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참 감사하게도 원하는 꿈도 이루고 행복하게 가정도 이루어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아이가 생겨서 일도 휴직하고 태교에 전념했는데 원인도 알 수 없고 증상도 없이 아이가 유산됐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까 내가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슬픈 일들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감이 가슴속에 생겼습니다. ‘그런 마음은 부질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하다가도 문득문득 ‘다음에 또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할까?’, ‘오늘 비가 오는데 남편이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이건 내가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일 텐데’ 이런 생각들이 듭니다. 이런 마음에서 좀 벗어나고 싶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nbsp“누구나 다 그래요. 만약 오늘이 소풍을 가는 날이라면,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어제 정토회에서는 애광원 장애우들과 함께 나들이를 가는 행사가 있었는데, 다들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비가 오면 휠체어 타고 내리는 게 굉장히 복잡해지잖아요. 그런데 비가 안 오니까 기독교 재단인 애광원에 계시는 분들은 다 하나님이 자기 기도를 들어줬다며 기뻐하고, 자원봉사자들은 전부 불교인이니까 부처님이 자기 기도를 들어줬다며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나들이 장소였던 순천만 국가정원에 600년 묵은 팽나무가 있는데 거기 가서 빌면 뭐든지 다 들어준대요. 정원을 안내해주는 사람이 말하길 ‘지난번에 답사 왔던 사람이 여기서 기도하고 갔기 때문에 비가 안 왔다’는 겁니다. 이처럼 잘 되면 다 자기 덕이고 못 되면 다 남의 탓이에요.nbsp그런데 서두에서 제가 이야기했지만 비가 오면 꼭 나쁜 것만도 아니에요. 우리 어릴 때를 돌아보면 천수답에 비가 안 와서 모내기를 못하다가 비가 오면 비를 맞아가면서도 즐거이 모내기를 합니다. 비가 안 와서 모내기를 못 하는 게 나아요? 비가 와서 비를 맞으며 일하더라도 모내기를 하는 게 나아요? 연세드신 분들은 비 맞고도 모내기 하는 게 낫다고 대답할 거예요. 또 비 맞고 일도 기쁘게 하는데, 비 맞고 노는 게 무슨 큰일이겠어요? 비 맞고 일하는 것보다 비 맞고 노는 게 쉬워요.nbspnbsp그리고 ‘노는 데 굳이 비 맞고 놀 것까지 뭐 있나?’ 하면 안 놀면 되잖아요. 어디를 가기로 했는데 비가 와서 번거로워지는 게 싫다면 안 가면 되잖아요. 그런데 농사 짓는 사람들은 비가 안 와서 농사를 망치면 먹고 살기가 어려워져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 소풍가는 날 비 왔다고 난리잖아요. 지난번에 소풍 갈 때 비가 왔다고 해서 이번에 소풍 갈 때도 또 비가 올까 싶어 초조불안해 하고요. 이렇게 하는 것은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이야기예요.nbspnbsp질문자는 지금까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 왔기 때문에 더 힘든 거예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 자기가 원하는 것이 하나도 돼 본 적이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이 사람은 힘들기는 하지만 앞으로 일이 잘 안 돼도 ‘아이고, 나는 원래 재수가 없어서 안 되더라’ 이러고 마는데, 지금 질문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지금까지 다 이루었기 때문에 앞으로 만약 자기가 원하는 게 안 되면 충격이 더 큰 거예요.nbspnbspnbsp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결말은 반드시 실패하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최근의 대통령들이 특히 더 그래요. 이유가 뭘까요? 이 분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 성공 신화를 이뤄낸 사람들이어서 그래요. 즉,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할 때 밀어붙여서 이뤄낸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 잘못됐을 때 보좌진이나 누가 이야기를 해도 본인이 밀어붙이면 옆에서 말릴 수가 없어요. 옛날에 다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반대할 때 이 분들은 된다고 밀어붙여서 성공한 경험이 있잖아요. 그래서 말리지를 못하는 겁니다. 말려도 듣지 않을뿐더러 말리는 힘이 강하지도 않아요. 왜 그럴까요? 저 분은 늘 세상에서 안 된다는 것을 이뤄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성공을 했다가도 항상 막판에 한꺼번에 말아먹어요. 이번 공천 때 누가 봐도 저렇게 밀어붙여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잖아요. ‘야, 저건 해도 너무했다. 좀 심하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하면 안 될 텐데, 왜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을까요? 늘 세상 사람이 안 된다고 한 걸 밀어붙여서 된 경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이번에 반쪽박을 찼잖아요. 여기서도 제대로 반성하면 되겠지만 안 그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럴 때 반성을 하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이걸 다시 더 세게 밀어붙여서 뒤집으려고 해요. 그러면 이제 완전히 쪽박을 차게 되겠죠.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예요. 이렇게 늘 자기 뜻대로 인생이 이루어진 사람은 항상 막판에 패가망신합니다. 질문자도 그럴 위험이 있어요. 앞에서 질문할 때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늘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됐다고 했잖아요.nbspnbsp건강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예순이어도 병원 한 번 안 가고, 감기 한 번 안 걸렸다’ 이런 사람은 다 일찍 죽습니다. 늙어서 몸이 쇠해지면 그에 맞게 조절을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평생 살아왔던 대로 힘을 쓰다가 한꺼번에 팍 꺾여요. 반면 어릴 때부터 계속 여기저기 아픈 사람은 남이 볼 때는 ‘저게 제 명대로 살겠나’ 싶지만 오히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삽니다. 이런 사람은 늘 조심하거든요. ‘아이고, 또 아프다’ 이러면서 절대로 무리하지 않으니까요.nbsp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한번 생각해보세요.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유산되는 게 질문자한테 나을까요? 낳아서 일주일 안에 죽는 게 나을까요? 세 살 때까지 크다가 죽는 게 나을까요? 열 살이나 스무 살쯤까지 크다가 죽는 게 나을까요? 일단 안 죽는다는 선택지는 빼고 생각해보세요. 어느 게 나을까요?”nbsp“뱃속에 있을 때가 더 나을 것 같아요.”nbsp“그러니 아이가 유산된 것은 질문자에게 큰 복이라는 걸 질문자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걸 지금 불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중에 질문자가 겪어야 할 큰 아픔을 미연에 방지해준 셈이에요. 그러니 앞으로 아기가 또 생겼다가 유산을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명을 제대로 타고 나지 못했으면 미리 뱃속에서 정리돼야 엄마를 덜 아프게 만들어요.nbspnbsp누가 발로 찼다거나 약을 잘못 먹었다든지 해서 유산된 것은 사고에 속하니까 경우가 좀 달라요. 그러나 자연유산은 아이가 형성은 되었지만 너무나 약해서 자궁 안에서조차 생존을 잘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설령 태어나더라도 장애를 안게 되거나 제대로 건강하게 살지 못하고 죽기 쉽기 때문에 자궁 안에서 자연유산된 것은 털끝만큼도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유산이 안 되고 살아난 아이 중에서도 세상에 나와서는 제대로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마의 자궁 안에서조차 제대로 적응을 못 하는 아이는 슬퍼할 일이 아니에요. 아이와 엄마 모두에게 큰 불행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nbspnbsp그러니 앞으로도 병원 검진은 잘 받되 자궁에서 아이가 미성숙 상태에서 유산되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호랑이 새끼도 언덕에서 새끼를 떨어뜨려서 살아남는 놈만 키운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게 모질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자연의 법칙이에요.nbspnbsp이건 누구의 죄도 아니에요. 하나님의 벌도 아니고 과거전생의 인연도 아닙니다. 관점을 그렇게 가지셔야 해요. 그렇게 안 가지면 앞으로 더 힘들어집니다. ‘아기를 낳고 싶다’ 하고 바랬더니 금방 아기가 낳아지고, 이렇게 늘 질문자가 원하는 대로 되면 나중에 오히려 더 큰 불행이 옵니다. 생명을 존중한다면 여러 가지 장애를 갖고 아이가 태어났다 해도 기꺼이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질문자의 수준은 아이가 여러 가지 장애를 갖고 태어나느니보다는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낫잖아요. 어떤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태어난 뒤에는 그 아이도 생존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권리가 있기에 당연히 돌봐야 하지만, 태어나지 않았다고 슬퍼할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걸 슬퍼하는 것은 관점이 옳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nbsp“네, 감사합니다.”nbsp울먹이던 질문자가 비로소 환하게 웃자 청중들도 박수를 보내며 위로의 마음을 보태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덧붙여 추가 설명을 이어가며 마무리 말씀을 대신했습니다.nbspnbsp“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인 거에요. 유산이 되는 것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사실 불행이 아닙니다. 엄마의 자궁에서조차 생존을 하지 못한 아이이니 만약 요행히 태어난다 해도 생존하기가 어렵습니다. 자궁 안에서 건강해도 나온 뒤에 생존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잖아요. 그러니 그것을 슬퍼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다만 사고, 예를 들어 넘어졌거나 배를 걷어채였거나 어떤 충격을 받아서 유산한 경우는 다르죠. 아이가 충분히 건강한데도 불구하고 보호가 안 되어서 유산된 것이니까요. 우리가 건강한데도 교통사고 같은 사고가 나서 죽을 수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자연유산은 그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자연유산은 세 번, 네 번까지 하다가 제대로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병원에서 검진을 통해 몸 상태를 잘 살펴보세요. 검진 결과에 따라 어떤 부분이 약하니까 무리하면 안 된다거나 뭐 하면 안 되는 식의 주의를 줄 테니까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보통 자연에서 동물들을 보면 아기 낳는 날까지 움직여도 됩니다. 자연 생태계가 그래요. 그래서 옛날에는 콩밭 매다가 아기 낳고, 여행하다가 비행기 안에서도 아기 낳고, 기차 안에서도 아기 낳고 이런 일들이 많았잖아요. 부처님도 마야 부인이 길을 가다가 낳았어요.nbspnbsp그러니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합니다. 아기에 대해서 너무 신경을 쓰면 오히려 건강한 아기를 낳기 어려워요. 아기를 가졌다고 해서 너무 조심하고 일일이 조바심을 내도 아기 건강에 안 좋습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 하지 마세요. 낳기도 전에 벌써 저런 걱정을 하는데 아기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겠어요? 아기가 들어서면 기뻐하고, 행여 유산이 되면 나중에 힘든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조금 있다가 또 새로 생기면 감사히 받아들이고, 그래도 안 생기면 인공수정을 시도해보면 되고, 그래도 안 되면 입양을 하면 됩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좋은데 그런 걸로 걱정하고 그래요? 조금 더 편안하게 생활해야 해요.nbspnbsp아이를 키울 때 엄마가 고생하면 아이는 대부분 부모의 기대에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아이 키우는 게 힘들수록 아이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기 때문이에요. 부모의 기대가 크기 때문에 아이가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니까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나빠지고 아이는 나중에 부모에게 저항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 키우는 게 힘들지 않아야 해요. 있는 젖 그냥 물리고, 있는 밥 먹이고, 있는 옷 입히고, 바쁘면 잠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이렇게 대충 키워야 해요. 그래서 아이 키우는 게 별로 힘들지 않아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아이와 같이 있는 게 재미있어야 해요. ‘내가 너 키우는 게 힘들다. 너만 없었으면...’ 이런 게 아니라 ‘네가 있어서 내가 참 행복해졌다. 네가 없었으면 내가 무슨 재미로 살았겠니?’ 이렇게 엄마가 싱글벙글하면서 별로 힘을 안 들이고 아이를 키우면 아이한테 기대도 그리 크지 않고, 아이의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해집니다.nbspnbsp제가 쓴 책 ‘엄마수업’의 핵심은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는 거예요. 엄마가 지극정성으로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행복하라는 거예요. 옛날에 시골분들을 보면 자식이 이미 대여섯씩 되어도 또 아이가 태어나면 다 귀하게 여깁니다. 몸이 좀 고단하긴 하지만 밭 매다가도 아이가 울면 젖먹이고, 밥하다가도 젖먹이고, 자다 깨서도 젖을 먹이지 ‘아이고, 이놈의 자식아 잠 좀 자야 하는데 왜 일어나서 우니? 젖 달라면 아까 달라고 하지 왜 한밤중에 달라고 하냐?’ 이러지 않아요nbspnbspnbsp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키웠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 건강한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아이를 한둘씩 낳아서 키우지만 대여섯씩 키우던 옛날보다 아이 키우기가 더 큰일이 되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어제 한 통계를 봤는데, 지금 장애아가 태어날 확률이 100명당 5.5명이래요. 20년 전보다 3배 정도 늘었어요. 우선 우리가 먹는 음식이나 생활환경이 문제겠지요.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주 원인이 산모의 스트레스 같아요. 산모가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자궁이 긴장되니까요.nbsp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이 ‘토끼도 새끼 낳아서 키우고, 다람쥐도 새끼 낳아서 키우는데, 사람이 새끼 낳아서 못 키울 이유가 없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마음을 편안히 가져야 오히려 아이들이 더 건강해집니다. 아이를 가진 엄마가 힘들어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더 즐겁고 행복하다고 여겨야 아이들도 건강해져요.”nbsp오늘은 마치 태교 수업과 육아 수업을 들으러 왔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엄마는 아이를 어떤 마음으로 잉태해야 하고, 태어난 아기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들이 강연 말미에 주욱 이어졌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네 명의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임용시험에서 여러 차례 떨어졌고, 창업하려고 해도 주변에서 만류하고, 맘대로 되는 것도 없고 계획대로 되는 것도 없어서 점집에 갔는데, 점집에서 들었던 말들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며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별거했던 남편이랑 재결합해서 현재 3년이 됐다는 분이었는데, 불쑥불쑥 남편이랑 살기 싫다는 마음이 다시 올라와서 힘들다고 질문했고, 세 번째 질문자는 26살 된 발달장애아를 혼자서 키워 온 여성분이었는데, 자신의 양육방법이 잘못됐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겹쳐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자주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현재 직장생활이 힘들어서 사직을 결심했는데, 회사에서는 인력수급문제로, 집안에서는 동생 재수 문제로 1년 정도 더 근무하라고 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물었습니다.nbspnbsp스님과 질문자와의 대화는 한편의 코미디나 드라마처럼 많은 웃음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이야기엔 같이 웃고, 아픈 이야기엔 함께 아파하고, 슬픈 이야기엔 눈물지으며 듣다 보니 어느새 시야가 툭 트이고, 주변이 환해지고, 삶이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무겁고 절박하던 질문자들의 표정이 환해지고 밝아지면서 저절로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진주 시민들도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다섯 분의 대화를 들으며 웃고 감동하는 사이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여러 경험과 비유를 들어가며 자유로움과 행복의 본질을 꿰뚫어 드러내주시는 스님의 말씀이 오랜 가뭄 끝의 단비와 같이 마음 밭에 아낌없이 스며든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유산 후 불안증이 왔다는 질문자에게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난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스님과의 대화 후에 너무나 가벼워졌다.”며 환하게 웃었습니다.nbsp스마트 폰을 최근에 갖게 되어 유튜브로 매일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다는 50대 어르신은 “그 동안 잘못 살았구나, 잘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하면서 “내 인생에 어떤 복이 있어서 저런 분을 가까이서 뵐 수 있는지..” 하면서 고마워했습니다. 강연 내용을 꼼꼼히 적으면서 들었다는 한 남자분은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 남들이 보기엔 대단치 않은데 세상의 짐을 다 진 것처럼 그동안 살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라고 소감을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자마자 책 사인회가 열렸는데, 복도에 줄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상기된 얼굴로 책을 들고 서 있는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며 정성껏 사인해 주었습니다.nbspnbsp사인회가 끝나고 오늘 행사를 위해 수고한 많은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표정 속에는 행복이 가득해 보였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봉사자들은 다가오는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작은 꽃다발을 스님에게 전달한 후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차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nbspnbsp스님은 봉사자들을 둘러보며 “수고했다”고 듬뿍 격려를 해준 후 다음 일정을 위해 출발했습니다. nbspnbsp저녁 7시 30분부터는 울산 KBS홀에서 울산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5.11. 104,713 읽음 댓글 41개

2016.5.9 지적장애인거주시설 애광원 봄나들이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지적장애인거주시설 애광원 식구들과 송광사와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nbspnbsp2003년부터 시작된 애광원 김임순 원장님과 법륜 스님의 인연은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씩 거동이 불편한 거주인들의 바깥나들이를 지원해주는 모습으로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행사가 10여 년 이어지다 보니 이제 경남 지방의 웬만한 장소는 한번쯤 다녀온 터라 매번 나들이 계획을 세우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경상도 땅을 벗어나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송광사와 순천만 국가정원을 나들이 장소로 정했습니다.nbspnbsp오전 10시 30분, 송광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날씨가 잔뜩 흐리고 간간이 가랑비까지 흩뿌려서 nbsp걱정부터 앞섰습니다. 하지만, 먼저 도착해 있던 정토회 경남지부와 마산정토법당에서 온 40명 가량의 봉사자들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같이 사진촬영을 하고 인사를 나누는데 봄에 입학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스님이 웃으면서 “이제 정토회 온 지 두 달 밖에 안 된 사람들이 봉사는 할 줄 아나?” 하고 핀잔을 주니 봉사자들은 “초발심으로 더 잘 할 수 있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며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오늘은 원생들 중에서 중증 장애인들과 나들이를 하는 날이라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중해야 한다”며 휠체어를 다룰 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습니다.nbspnbsp곧바로 애광원 식구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여 25명의 원생들과 김임순 원장님, 송우진 이사님, 그리고 9명의 선생님들이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원생 한 명마다 봉사자 12명이 하루를 책임지는 친구로 배정되어 반갑게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0여 년 간 매년 스님을 만나와서 그런지 이제는 스님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반가워 하는 장애인들도 있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몇몇 장애인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땅바닥에 드러누워서 봉사자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중증 장애인들은 거의 바깥나들이를 못하다보니 야외로 나가는 것 자체에 너무 들떠서 버스에서 내리기 싫어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 합니다. 한참을 달랜 후 몇몇 원생들은 휠체어에 태운 후에야 겨우 송광사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nbspnbsp궂은 날씨에 버스를 타고 송광사까지 올라갈까 하다가 스님은 “그래도 절은 걸어 올라갈 때 제대로 느낄 수 있다”며 내려올 때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먹고 걷기 시작하니 마침 빗줄기도 점점 가늘어졌고 어느덧 우산을 접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송광사에 이르는 아름다운 계곡길과 상쾌한 편백나무 숲길을 제대로 느끼며 나들이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송광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곳은 송광사입니다.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중요 문화재가 가장 많이 있는 곳이에요. 국보가 4개, 보물이 21개나 있어요. 법정 스님이 머무셨던 불일암이 이 산 내에 있어요. 자, 그럼 한 바퀴 돌아보겠습니다.”nbsp숲길을 한참 걷고 나니 일주문이 나타났습니다.nbspnbsp“지금 우리가 지나가는 곳이 일주문이예요. 세속 세계와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으로 일주문이라고 부릅니다.”nbspnbspnbsp일주문을 지나자 척추당과 세월각이 나타났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생소한 이름인데, 스님은 이곳은 불교에서 천도재를 지낼 때 영가를 목욕시키는 곳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죽은 영가도 남녀 구분이 있나봐요. 척추당은 남자 영가의 관욕처이고, 세월각은 여자 영가의 관욕처입니다. 관욕이라는 것은 영혼을 목욕시켜서 깨끗하게 모신다는 뜻이예요.”nbsp세월각을 지나자 애광원 식구들을 환영하기 위해 올해 새로 송광사 주지에 임명된 진화 스님과 교무국장 소임을 맡고 있는 정응 스님이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두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애광원 식구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자, 여기서 사진 찍겠습니다. 카메라를 보세요. 빠이 빠이.”nbspnbsp원생들은 모두 각기 다른 곳을 보고 있었지만 모두들 오랜만의 나들이에 즐거워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원생들을 매일 돌보는 일을 하고 있는 한 선생님은 “오늘처럼 날씨가 궂으면 원생들이 정말 다운되거든요. 그런데 봉사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잘해주시니까 이런 날씨에도 지금 굉장히 표정이 밝아요.”라고 놀라워하기도 했습니다. nbspnbsp사천왕문에 이르니 양 옆으로 무시무시한 표정을 한 네 명의 조각상이 원생들을 무섭게 했습니다. 스님은 웃으면서 가볍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희는 지금 사천왕문을 지나고 있습니다. 하늘 나라 중에 첫 번째 하늘이 사왕천인데, 거기에서 동서남북을 각각 담당하는 네 분의 신이에요. 인도의 전설에 의하면 이 분들이 늘 인간 세상을 돌아보면서 나쁜 일을 한 사람은 벌을 주고, 좋은 일을 한 사람은 칭찬한다고 해요. 인도의 신들입니다.”nbsp사천왕문을 지나니 계단이 나타났습니다. 원생들이 계단을 오르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스님도 팔을 걷고 원생들의 손을 잡아주며 으라찻 힘을 주며 거들었습니다. nbspnbsp“자, 계단을 올라가겠습니다. 으라찻. 아이고, 잘 한다.”nbspnbsp스님의 따뜻한 목소리에 원생들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소리를 “끼약” 하고 지르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교무 스님인 정응 스님이 대웅전까지 직접 안내도 해주었습니다. 한국 불교에는 삼보사찰이 있는데,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있는 통도사가 불보사찰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의 경판이 모셔져있는 해인사가 법보사찰, 그리고 한국불교의 승맥을 잇고 있다고 해서 송광사가 승보사찰이라고 합니다. 송광사가 승보사찰인 이유는 고려 때 보조 국사가 정혜결사를 통해 한국 불교의 전통을 확립했고, 그 이후에도 열다섯 명의 국사가 더 나와 그 전통을 면면히 이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스님은 휠체어를 탄 김임순 원장님 곁에서 같이 걸으면서 송광사 경내의 문화재와 약사전, 지장전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습니다. 특히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지장보살이 무엇인지 처음 들어보는 원장님에게 재미있는 설명을 해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지장전은 지장보살을 모신 곳이에요. 지장보살이라는 분은 전설에 따르면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 ‘내가 없는 세상에 다음 부처님이 오실 때까지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다 구제하라’는 명을 받고 지금도 지옥 중생을 구제하고 있는 보살이예요.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지옥갈까봐 겁을 내잖아요. 그러나 지장보살이 다 구제를 해준다고 하니까 주로 영가를 천도하거나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이 지장보살을 부릅니다.nbspnbsp그리고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나는 부처가 되지 않겠다’라고 큰 원을 세운 분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죽어서 지옥갈까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이유는, 나를 구제해줘야 저 분이 부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옥에 있는 한 저 분도 부처가 못 되니까 우리는 마음 놓고 살아도 돼요. 하하하.” nbspnbsp김 원장님도 스님의 설명을 듣고 크게 웃었습니다. 두 분은 종교를 뛰어넘어 어떤 이야기도 거리낌이 없이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약사전에 도착했습니다. 약사전에 대해서도 원장님이 생소해하자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저 분은 ‘약사여래불’이라고 해서 손에 약그릇을 쥐고 있어요. 저 그릇에 담긴 것이 약탕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곳이에요. 애광원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으니까 ‘아픈 상태에서도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하고 다함께 기도를 하고 가겠습니다.”nbspnbsp스님의 제안에 다함께 합장하고 정성껏 기도를 한 후 송광사 경내를 나왔습니다.nbspnbsp법당을 나오자 마자 짙은 밤색 차림의 법복을 입은 베트남 스님들을 만났습니다. 베트남 스님들과 함께 인천에서 왔다는 한국 스님이 법륜 스님을 알아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며 이분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베트남 노동자들 중 불자들을 모아서 법회를 해주기 위해 한국에 머물고 있는 스님들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스님도 반가워 하면서 “정토회에서도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해 안산에 다문화센터를 열고 있다”며 “꼭 필요한 일을 잘 하고 계시네요” 라고 격려와 공감을 표해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송광사 순례를 마치고 이어서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향했습니다. 버스 타고 30분 가량을 이동하자 순천만 국가정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정원 안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모두 중증 장애인들이라 간단한 비빔밥으로 식사를 준비했는데도 식사를 원할히 하기가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습니다. 많은 원생들이 휠체어에 탄 채로 식사를 해야 하고, 몇몇 원생들은 일반 식사가 불가능해 따로 죽을 먹어야 했습니다.nbspnbspnbsp거동이 불편한 원생들은 대부분 스스로 식사를 할 수가 없어 대부분의 봉사자들이 본인의 식사는 건너뛰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원생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봉사자들 모두가 자기 배고픈 줄은 하나도 모르겠다는 듯 밝게 웃기만 했습니다.nbspnbsp봉사자들이 휠체어를 밀며 꽃이 만발한 정원을 걸어가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스님도 걸을 수 있는 원생 한 명과 손을 잡고 정원을 걸었습니다.nbspnbspnbspnbsp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 하니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순천만 국가정원의 경우 맑은 날씨에는 햇빛을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더운 날씨에 휠체어를 밀어가면서 넓은 정원을 느긋하게 관람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휠체어를 타지 않은 원생들도 모두 중증의 상태여서 봉사자들이 늘 곁에 바짝 붙어서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 채 안다시피 걸어야 했기 때문에 모두들 흐린 날씨를 고마워했습니다. 스님이 법문 때 늘 하시는 말씀처럼 날씨가 흐리면 흐린 대로 이 상황에 맞게 즐길 뿐입니다.nbspnbspnbsp모두가 홍학이 무리지어 모여 있는 연못에서 한참 쉬었습니다. 홍학들이 있는 연못 옆 호수에는 고니 무리가 멀찌 감치 있었는데 해설사가 “곤” 하고 부르면 온다고 해서 모두 소리모아 “고오온” 하고 부르니 정말로 두 마리의 고니가 앞으로 다가와서 꽥꽥 거리며 반겨주었습니다.nbspnbspnbsp순천만 국가정원을 만들게 된 취지를 설명하는 해설사의 이야기가 정말 멋있었습니다. “순천만 글자의 받침을 보시면 ‘ㄴ’이 세 개입니다. 이것은 자연, 인간, 공존의 3받침을 뜻합니다. 세계 5대 연안 습지인 순천만으로 도심이 점점 침입해 오고 있는데, 이것을 막기 위해 그 중간 지대에 국가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환경적 의미에 공감한 세계적인 정원 설계자 찰스젱스가 자원봉사로 이 정원을 설계해 주었습니다.”nbspnbsp수많은 사람들의 자원봉사와 자원 재활용으로 이루어진 정원이라는 해설을 들으니 정토회에서 하고 있는 쓰레기제로운동의 의미가 더욱더 뜻깊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순천만 국가정원은 넓고도 길었습니다. 길마다 각 국가가 조성해놓은 색다른 정원들이 줄지어 있었고, 온갖 색깔과 모양의 꽃, 이름 모를 나무들이 빈틈없이 드넓은 대지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휠체어를 앞세우고 JTS의 파란조끼와 애광원의 빨깐조끼를 입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무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오후의 정원을 수놓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원생들과 오소리, 거북이, 미어캣, 왈라비 등이 있는 작은 동물원도 관람하고, 뒤이어 15분짜리 3D 입체영화 ‘달의 정원’도 보았습니다. 입체 영화를 잘 접하지 못한 원생들에게는 아마도 오래도록 남을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것입니다.nbspnbsp동문 근처 잔디밭에 이르러서는 간식을 먹으며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연잎으로 ‘컵등’을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비록 대부분의 작업은 봉사자들의 손으로 이루어졌지만 함께 무릎을 맞대며 눈을 맞추어 본 것만으로도 교감할 수 있는 게 많았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순천만 국가정원을 한바퀴 돌고나니 벌써 오후가 저물었습니다. 아쉽지만 더 지치기 전에 마무리를 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식당에서는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함께 가졌습니다. 신이 난 원생들이 앞에 나와 노래를 한 곡씩 부르자 식당 안은 웃음이 넘쳐 흘렀습니다.nbspnbspnbsp먼저 김임순 원장님이 정토회의 매년 계속되어 온 지원활동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오늘 하루의 추억이 원생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정토회와의 나들이를 원생들이 얼마나 기다리는지에 대해서 가감없이 소개하며 고마워 했습니다.nbspnbsp“지적장애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오늘 여러분들을 보내주신 것 같습니다. 오늘 좋은 구경 많이 하고,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고 돌아갑니다. 우리 애광원 직원들은 여러분들이 전해준 이 사랑 잊지 않고 우리 식구들을 더욱더 열심히 돌보겠습니다. 가정에 늘 하느님의 축복이 같이 하시기를 바랍니다.”nbspnbsp하느님의 축복을 내려주심에 정토회 봉사자들은 환호를 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이어서 법륜 스님이 앞으로 나와 마무리 인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의 환한 웃음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습니다.nbspnbspnbsp“애광원 식구 여러분, 재미있게 놀았어요?”nbsp“예.”nbsp“또 봉사자들은 봉사하는 것이 보람 있었어요?”nbsp“예.”nbspnbspnbsp“솔직하게 말해서 애광원 식구들 덕택에 구경 잘 했지요? 저도 덕택에 순천만 국가정원은 처음 구경했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저도 사실 이런 곳에 올 시간이 없어요. ‘올 봄에는 애광원 식구들과 순천만 국가정원에 가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제가 와보지도 않았으니 안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리 둘러볼 시간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난번에 여수에 강의하러 온 김에 이곳을 들렀습니다. 그런데 안까지 들어오지는 못 했고 바깥에서 이 안쪽만 쳐다보다 갔어요. 그 때 안이 잘 안 보여서 서운했는데, 오늘 이렇게 안쪽까지 들어와서 저도 구경을 잘 했습니다.nbspnbsp송광사도 지난번에 시골 어르신들 모시고 가긴 했는데, 차타고 올라갔기 때문에 계곡 길은 걸어보지 못 했어요. 그런데 오늘 여러분과 같이 계곡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다 여러분들 덕택입니다.”nbspnbsp“저희도 좋았습니다.”nbsp“그런데 우리는 오늘 하루만 이렇게 따라다녔는데도 힘들잖아요. 그렇죠?”nbsp“예.”nbspnbsp“그런데 애광원 선생님들은 이런 일을 365일 하시니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월급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 우리가 시간을 좀 내어서 오늘처럼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구나 싶습니다. 이런 기회를 빌어서 애광원 원장님 이하 직원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말씀 드립니다.nbspnbsp원장님, 정말 참 애쓰셨습니다. 스물 몇 살 때 학생 몸으로 전쟁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하셨고, 그 일이 다 끝났으면 쉬셔야 되는데 또 이렇게 지적장애인들을 돌보느라 평생을 보내시고 계시네요. 그래도 만약 원장님이 결혼하셔서 가정을 꾸렸으면 자녀를 많이 낳아봐야 대여섯 명이었을 건데, 지금 원장님이 돌본 자녀가 천 명도 넘잖아요.”nbspnbsp“예.”nbsp“오늘 원장님과 함께 하면서 한 사람의 원이 얼마나 큰 일을 해내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작지만 원을 세워서 오늘처럼 이분들을 돕는 일이라도 계속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오늘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애광원 선생님들도 박수를 치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고, 원생들도 끼약 하고 소리를 지르며 기쁜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다함께 원장님과 스님에게 드리는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두 분의 스승님이 있었기에 오늘 봉사자들과 원생들의 만남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애광원과 정토회가 서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증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스님이 새책 ‘행복’을 직접 사인해서 건네자 애광원 선생님은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공식적인 행사를 마무리하고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나면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한 숟가락 챙겨먹이는 봉사자들의 손길도 간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nbsp짧은 만남이었지만 울컥하는 봉사자도 보였습니다. 애틋한 마음에 “내년에도 꼭 봉사올테니 그때 봐요” 하는 얘기들을 서로 주고 받았습니다. 말 못하는 원생들의 눈빛만 메아리처럼 돌아왔습니다.nbspnbspnbsp멀리 산그림자가 길어질 무렵 원생들 모두가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스님과 봉사자들도 모두 배웅을 나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원생들은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애광원 봄, 가을 나들이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지만 늘 헤어지는 순간은 이렇게 짠합니다.nbspnbsp스님은 남은 봉사자들에게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수고가 많았다”고 하면서 격려를 듬뿍 해준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10시 30분에 진주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 30분에는 울산 KBS홀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 애광원 봄나들이 풍경을 영상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영상으로 더욱 생생하게 만나 보세요.nbspnbsp nbsp글을 읽은 소감은 댓글로 남겨주시고, 감동은 SNS로 통해 주위에 널리 전하세요

2016.05.10. 54,559 읽음 댓글 67개

2016.5.8 (오후) 저녁부 정토불교대학 담당자 봄나들이

nbsp안녕하세요? 스님은 새벽 6시에 있었던 청년·대학생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을 마친 후 아침 9시 30분부터는 정토회 저녁부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에서 교실 운영을 맡고 있는 담당자 및 모둠장들과 문경 용추계곡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nbspnbsp오늘 봄나들이 행사는 그동안 저녁부에서 봄학기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준비하고 운영하느라 수고한 봉사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입니다. 9시가 되자 입재식이 열리는 용추계곡 주차장에는 전국에서 260여 명의 봉사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과 함께 봄나들이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지난 주에 봄비가 흠뻑 대지를 적신 뒤라 하늘은 높고 바람은 시원하며 풀과 나무는 싱그러웠습니다. 스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표정으로 대중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왔습니다.nbspnbsp“그늘진 곳으로 몇 걸음 물러나 깔판을 깔고 앉으세요.”nbspnbspnbsp스님의 배려에 시작부터 마음이 훈훈해졌습니다. 스님은 지부별로, 정토회별로 손을 들어보라고 한 뒤 멀리 제주도와 강릉에서도 참가한 것을 확인하고선 “아이구, 제주에서도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라며 더욱더 반겨 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용추계곡의 지리적 환경을 설명하면서, 과거 용추계곡 밑에 있는 유원지가 경치가 좋아서 정토수련원 자리로 검토했었던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결국 지금의 정토수련원 자리를 선택했는데, 이유인 즉, 그곳은 500년이 지나도 관광지가 될 가능성이 없는 곳이어서 누가 팔아먹을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먼 훗날까지도 내다보고 수행도량을 지으려고 했던 스님의 의지와 혜안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nbspnbsp10시부터 용추계곡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는 분들에게 불편을 끼칠세라 한 줄로 서서 길을 올랐습니다. 스님은 “오늘 나들이의 목적은 친목과 산책, 그리고 소풍이니 천천히 오세요”라고 당부에 당부를 했습니다. 푸르른 나무 사이로 긴 행렬을 이루는 모습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nbspnbspnbsp계곡을 따라 둘레길처럼 편안하고 사람이 거의 없는 호젓한 산길을 오르니 넓고 큰 바위를 타고 맑은 물이 힘찬 소리를 내며 흐릅니다. 물이 엄청 깊어 보이는 폭포를 만나자 저절로 탄성이 나옵니다.nbspnbspnbspnbsp대중들이 걸음걸이를 늦추며 사진을 찍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되자, 스님은 “용추계곡은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좋다”며 올해 봄나들이의 주제곡이 되다시피한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을 대중들이 다같이 따라 부르게 했습니다. 순간 동심으로 돌아가 어린 아이처럼 자연과 하나가 됩니다.nbspnbspnbsp계곡을 따라 월령대까지 오르다가 계곡 반대편 길을 따라 선유동 계곡으로 내려가니 넓은 바윗돌이 있고 그 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모였다가 다시 흐릅니다. 대중은 가장자리의 바윗돌에 정토회별로, 법당별로 둘러앉아 맛있게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2시간 가까이 산행을 한 뒤라 밥맛이 꿀맛 같았습니다.nbspnbsp즉문즉설 시간이 되자 모두 스님을 향해 앉았습니다. 먼저 스님이 “저녁부 부장님이 여러분이 그동안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운영하느라 수고가 많았으니 격려를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면서 “격려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하자 대중들도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누가 나와서 노래 좀 불러보세요”라고 하자, 보살님 한 분과 거사님 한 분이 나와 각각 노래를 불렀습니다. 거사님은 장기자랑을 위해 작은 앰프까지 준비해 왔습니다.nbspnbspnbsp장기자랑이 끝나자 계곡물 소리를 배경음으로 명상을 했습니다. 계곡물, 시원한 바람과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nbsp즉문즉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청년정토회 경전반 담당자 한 분이 “오늘이 어버이날이고 다음 주가 스승의 날이니 노래 한 곡 불러드리겠다”고 하면서 “스승의 은혜”를 불렀습니다. 대중들 모두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자, 겉옷 속에 살포시 감추고 있었던 카네이션을 떼어 스님의 가슴에 달아드렸습니다. 모두가 ‘아, 우리 모두가 놓친 걸 챙겨주셨네...’ 하는 마음으로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즉문즉설 시간에는 모두 9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처남과 동종 업계에서 사업을 하게 되면서 사이가 계속 안 좋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관계를 풀면 좋을지 물었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한 분은 ‘소양강 처녀’ 노래를 멋드러지게 부르며 여흥을 돋운 후 질문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저는 15년 동안 처남 밑에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이제는 처남이 자기 아들한테 업을 물려주겠다고 하고 있고, 제 아내도 거기에 지분이 좀 있었습니다. 저도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하는데 기여를 했는데, 처남이 회사를 자기 아들한테 물려준다고 하면서 저와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바로 근처에 있는 동종 업체를 인수해서 운영해 보겠다고 나섰는데, 처남은 제가 자기를 배신했다면서 ‘그동안 내가 돌봐줬는데, 너가 나가서 얼마나 잘 되나 보자’는 식으로 경쟁심을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처음에는 저를 좀 도와줄 것처럼 하더니 결국 안 도와줘서 제가 2년간 엄청 고생했어요. 그렇게 고생하는 동안 저는 정토회를 알게 되어서 스님의 즉문즉설도 많이 들었습니다.nbspnbsp지금도 처남은 거래처가 넘쳐나도 다른 사람한테는 줄지언정 저한테는 주지 못하겠다고 하고 있고, 제 아내가 갖고 있던 지분도 나눠주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형님이 처남한테 얘기도 해 봤지만 처남은 ‘내 밑에 있어야 될 사람이 왜 배신하고 나가서 나를 힘들게 만드느냐? 앞으로 안 보고 살아도 좋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답니다. 저도 제 사업을 하면서 금전적으로 많이 어려웠는데, 이제야 조금 손익분기점을 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15년간 처남 밑에서 일할 때 알았던 거래처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이런 문제로 마찰이 심해지니까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nbsp“그냥 경쟁하세요. 질문자가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빼앗아오는 것도 아닌데, 경쟁하면 되지 고민할 게 뭐가 있어요? 우리나라의 어떤 대기업 회장도 자기 형님과 싸우면서 ‘한 푼도 못 준다’고 하는 거 못 봤어요? 그런 경우도 있는데, 처남이 자기 거래처를 안 나눠주겠다고 한다고 뭘 그렇게 신경을 써요? 질문자는 벌써 동종의 사업장을 인수했다면서요? 그것은 처남과 경쟁관계에 놓였다는 거잖아요. 질문자가 일을 저질러놓고 뭘 그래요? 경쟁을 시작했으면 정당하게,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마음껏 경쟁하면 되지요.nbspnbspnbsp어쨌든 질문자는 처남 회사에 있다가 동종 업체를 차린 거니까 처남으로서는 질문자가 배신했다고 여길만하잖아요. 그러니 처남이 욕을 하면 ‘그래, 네 입장에서는 배신이라고 여길만하다. 그러나 나도 먹고 살아야 되는데, 내가 배운 게 이 일밖에 없지 않느냐? 어쩔 수 없다’라고 하면 됩니다.nbspnbsp만약 제가 미국에서 어렵게 어렵게 절을 하나 냈다고 칩시다. 한 10년 운영하니까 절이 조금 커졌는데, 더 이상은 혼자 못 하겠는 거예요. 형편이 어려울 때는 저 혼자 죽기 살기로 해 보겠지만 절이 좀 커지고 수입이 되면, 저 혼자 그렇게까지 힘들게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면 한국에 있는 젊은 스님 한 명을 구해 와서 비자를 내주고 미국에 있는 절에 데려다 놓으면, 저는 그 스님한테 절을 좀 맡겨놓고 돌아다닐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한 1년 지났더니 젊은 스님을 따라서 신도도 많이 늘고 했는데, 모든 권한은 여전히 주지인 제가 갖고 있다면 자연히 젊은 스님도 불만이 생길 거 아니겠어요? 게다가 신도들도 그 옆에서 ‘스님, 뭣 때문에 그 절에 붙어서 그렇게 삽니까? 나와서 따로 하시면 되지요’라고 부추기면 갈등이 생겨서 결국 그 스님이 나가서 절을 세울 거 아니겠어요? 그럼 그 스님이 LA에 있다가 뉴욕까지 가서 절을 세우겠어요? LA에다 절을 세우겠어요?”nbsp“LA에 세우겠죠.”nbspnbspnbsp“또 그 스님이 이 절에서 알던 신도들 중 일부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 스님 처지로 보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제 절 신도 중에 3분의 1이 됐든 절반이 됐든 그 절로 갔다고 해서 제가 그 스님한테 ‘네가 나를 배신했다. 나는 처음에 혼자 LA에 와서 10년을 고생한 끝에 절을 이만큼 만들어놨는데, 네 놈은 내가 내준 비자로 LA에 와놓고, 1년 만에 우리 절 신도까지 데리고 나가서 바로 옆에 절을 새로 차리다니...’라고 하면 서로 원수가 되어 왕래를 안 하게 되는 겁니다.nbspnbsp그런데 LA에 한국 절이 처음에는 하나로 시작해서 또 나눠지고, 또 나눠지고 하면, 결과적으로 LA에 절이 10개나 생기게 되는 거잖아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nbspnbsp“예.”nbspnbsp“처음에는 신도 100명이 있었지만 제가 혼자 관리를 못해서 스님을 1명 더 데리고 와서 관리를 하다가 50명이 떨어져 나가서 50명씩 2개의 절이 되었는데, 각각 또 잘 운영하면 신도가 100명으로 늘게 될 거잖아요. 그러면 또 스님을 각각 1명씩 더 데리고 와서 관리를 시키게 되겠죠. 그러면 벌써 신도 50명 규모의 절이 4개나 됐잖아요. 그러니 결국 이런 ‘분열’이 바로 절이 더 커지는 길 아니에요?nbspnbspnbsp절이 꼭 하나만 있어야 될 이유는 없잖아요. 힘을 합해서 신도 400명 규모의 절 하나만 운영해도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잖습니까? 그런데 ‘내가 어떻게 고생했는데...’ 하면서 항상 자기 생각만 하니까 원수가 되는 거예요. 현실적으로는 교회도 그렇고, 절도 그렇고, 세탁소도 그렇고, 다 마찬가지입니다.nbspnbsp미국의 세탁소는 대부분 한국사람이 잡고 있는 거 아세요? 왜 그렇게 됐을까요? 전부 질문자와 같은 이유로 그렇게 된 거예요. 미국으로 이민 가서 세탁소 하나 내서 운영하다가 보니까 세탁소가 잘되자 한국에 사는 동생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서 세탁소 하나를 맡기고 자기는 또 세탁소 하나 더 내서 운영하는 겁니다. 그렇게 3, 4년 하다 보면 동생이 아니라 누구라도 오빠 밑에서 말뚝 박고 계속 월급쟁이만 하겠어요? 안 하지요. 그럼 싸우고 나간단 말이에요. 그럼 나갈 때는 자기가 맡아서 운영하던 세탁소를 가지고 나가든지, 아니면 어떻게 하겠어요? 미국에 와서 4년 동안 배운 건 세탁소 일이고, 아는 고객이라고는 그 동네 사는 고객밖에 없는데, 다른 동네로 가서 업종을 바꿔 일을 시작하겠어요? 그렇게 안 하겠죠? 그런데 거기다 대고 ‘세탁소를 차리려면 다른 데 가서 차리든지 하지 어떻게 옆에 차리느냐?’면서 난리를 치는 거예요.nbspnbsp그런 게 세상사입니다. 선임자 입장에서는 질문자를 배신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이고, 그러나 또 질문자 입장에서는 ‘배신을 하려는 게 아니라 나도 먹고 살아야 되지 않느냐’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질문자는 ‘아, 처남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라고 이해를 하세요.nbspnbsp또 질문자는 ‘처남 회사에서 15년간 일을 해줬다’고 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자 입장에서는 ‘내가 15년 간 너를 도와줬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처남 입장에서는 ‘내가 15년 간 너 밥 먹여줬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관점이 다른 겁니다. 그러니 그런 것을 자꾸 생각해 봐야 소용없어요. 이왕 벌인 일이니까 그냥 경쟁을 하세요.nbspnbsp그런데 처남은 질문자를 배신자로 생각하니까 혼내주려고 하겠지만, 질문자는 처남을 굳이 혼낼 이유도 없잖아요. 또 덕 보려는 생각도 하지 마세요. 질문자 입장에서는 ‘그래도 너는 내 처남이고, 내가 네 회사에서 15년간 너를 도와줬는데, 거래처 남는 거 있으면 나한테 좀 넘겨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처남은 갖다버릴지언정 절대로 질문자한테는 안 줄 거예요. 그러니 그냥 열심히 일이나 하세요. 사업이 안 되면 접으면 되지 처남을 욕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질문자는 ‘아내의 지분’에 대해서는 얘기하면 안 됩니다. 그건 자기 형제들끼리의 문제이니까요.nbspnbspnbsp질문자는 처남에게 ‘15년간 네 회사에서 잘 지냈다. 덕분에 기술도 배웠고, 고객도 확보할 수 있었으니 고맙다’라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해서 고객을 유치하세요. 그런데도 처남이 계속 욕을 하면 ‘그래도 내가 아는 게 이 일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나? 미안하다’ 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면 됩니다.nbspnbsp“제가 처남한테 ‘서로 좋은 방향으로 가자’며 6개월을 쫓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제 처남은 저를 아예 안 보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계속 마음이 상합니다.”nbsp“질문자가 어리석은 거지요. 자기 밑에 있다가 나가서 딴 살림 차린 사람이 ‘같이 하자’라고 하면 누가 같이 하겠습니까? ‘지사를 하나 내달라’ 그래도 줄까 말까 한데요. 그러니까 욕을 하면 실컷 얻어 드세요. ‘그래, 네 집에 있다가 딴 살림을 차리니까 네가 그럴 만하다’라고 마음을 먹어요. 상대가 아무리 나를 욕하고 비난해도 질문자는 아무 상관하지 말고 인사도 하면서 인간적으로 지내세요. 그런데 ‘같이 하자’라고는 하지 마세요. 아직은 질문자가 부족한 입장이니까 도울 일도 없겠지만 앞으로 혹시 도울 일 있으면 돕고 그러세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면 풀리게 돼있습니다.”nbspnbsp“처남은 아예 제 인사를 안 받습니다. 저를 쳐다보지도 않아요.”nbsp“그래도 질문자가 ‘잘 있었나?’ 하면서 인사하면 되지요. 우리가 여기 계곡에 와서 ‘계곡이 좋다’라고 아무리 인사해도 계곡이 ‘고맙다’고 인사하던가요? 안 하잖아요. 상대가 인사 안 한다고 질문자도 인사를 안 하면 질문자가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상대야 인사하든지 말든지, 불편해 하든지 말든지, 질문자는 자기 볼일 보면서 ‘잘 있었나?’ 하고 다니면 질문자는 자유롭고, 처남은 불편한 겁니다. 처남은 질문자 안 보려고 도망가야 되고, 피해야 되고, 악 써야 되고 하니까, 상대가 과보를 받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과보 받을 일을 하지 마세요.”nbspnbspnbsp걱정스런 눈빛이 역력했던 질문자는 그제서야 편안하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대중들도 큰 박수로 함께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나 중심으로 좁게만 보던 시야를 더 크게 넓히게 되니 ‘별일 아니네’ 할 수 있었던 명쾌한 답변이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많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가을 불교대학, 봄 불교대학 담당이면서 불교대학 팀장까지 맡았는데 일은 힘들지 않지만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흔쾌하지 않다는 분, 불교대학을 담당하는 분과 관계가 불편하다는 법당 부총무님, ‘도솔이 무슨 뜻이냐?’는 학생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했다며 그 의미를 묻는 분, 불교대학 모둠장을 처음 하는데 사람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해 상대하기가 어렵다는 분, 불교대학 담당을 맡기 전에는 수행을 열심히 했는데 담당을 맡고부터는 수행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분, 수행정진을 강조하니까 학생 2명이 카톡방을 나갔다며 수행정진을 강조하지 말아야 하는지 묻는 분, 탐진치 삼독심 중 치심의 개념에 대해 묻는 분, 경전반 담당인데 스님은 스승님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 묻는 청년, 불교대학 수업에 들어갈 때 항상 쫓기는 마음이 들어 불편하다는 분 등 질문자도 많았고 그 내용도 다양했습니다.nbspnbsp대중들이 계곡의 나무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서 법문을 듣는 모습을 둘러 보니, 부처님 당시에도 많은 제자들이 이렇게 숲속에서 설법을 들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펼쳐진 셈입니다.nbspnbsp스님은 이렇게 2시간 넘게 즉문즉설을 한 후 마무리 말씀을 했습니다. 앞에서 질문자에게 답변한 내용을 다시 상기시켜 주면서 인생을 조금 더 크게 보고, 가볍게 살면 좋겠다고 당부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재밌었어요?”nbsp“예.”nbspnbsp“사는 걸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산에 사는 한 마리 토끼처럼 그냥 가볍게 사세요. 여러분들이 굉장한 거 같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별거 아니에요. 네팔에도 어느 동네에 가면 부자라고 굉장히 잘난 척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nbsp“있어요.”nbsp“방글라데시에도 동네마다 계급이 높다며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한둘은 꼭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지구적인 차원에서 보면 사람이란 그냥 지구에 붙어사는 개미처럼 바글바글한 것에 불과하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아무 것도 아니니까 다 죽어야 된다는 게 아니라 그냥 살면 된다는 겁니다.nbspnbsp어떻게 사는 게 그냥 사는 걸까요? 놀면서 살아도 돼요. 괜찮아요. 그런데 놀기만 하면 지루하잖아요. 예를 들어 70년 가까이 우리는 통일을 못 해 봤잖아요. 그런데 통일하면 좋을 것 같으니까 그거나 한번 해본다든지, 또 이 부처님 법이 참 좋은데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 이걸 한번 알려본다든지, 이런 소일거리를 하나 마련해서 노는 게 좋지 않아요?nbspnbsp정토불교대학 안 나왔으면 언제 모둠장 해보고, 앞으로 어디 가서 총무도 해보고 그러겠어요? 학교 다닐 때 반장도 한번 못 해봤는데, 언제, 어디 가서 그런 걸 해보겠어요? 그리고 대구정토회나 동래정토회 같이 큰 법당에는 가봤자 내 차례 돌아오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신생 법당이니까 수준도 안 되는데도 중책을 맡겨주고 그러는 거예요. nbspnbspnbsp제가 시골에 있는 학교를 다녔고, 학교에 선생님이 부족했으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험도 해 볼 수 있었지, 도시에 있는 학교를 다녔으면 어떻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제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니까 아르바이트 한다고 아이들을 가르쳐보려고 했지, 부자 집에서 태어났으면 어떻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겠어요? 그때는 힘든 일이었지만 지나고 보면 다 도움이 되는 일이었어요.nbspnbsp예를 들어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혼자서 일하게 되면, 자식은 엄마를 도와서 식당 일을 하느라 다른 집 애는 공부할 시간에 나는 식당 일을 해야 했다고 하소연 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사는 데 겁이 없을 수 있잖아요. 여차 하면 식당 하나 내면 되니까요. 안 해본 사람은 식당 내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대학 나온 건 써먹을 데가 그리 많지 않지만, 어릴 때 농사일을 해보거나 식당 일을 해본 경험은 언제든지 여차하면 써먹을 수가 있는 거예요. 그게 진짜 공부예요. 스님이 다른 사람보다 생존력이 더 있다면, 그건 수행했기 때문도 아니고, 학교를 더 다녀서도 아니고, 어릴 때 촌에서 밥 한 숟가락 얻어먹으려고 죽기 살기로 일한 덕분이에요.nbspnbsp그러니 인생이라는 게 별 게 아닙니다. 제가 꿈꾸던 물리학자가 돼서 미국으로 가서 유명해져봤자 무기 공장에 가서 미사일 만드는데 재능을 팔든지 했겠지요. 안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럴 확률이 더 높다는 겁니다. 그 길로 갔으면 그렇게 됐을 거고, 이 길로 왔으니까 이렇게 된 거예요. 인생이라는 게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따져봐야 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인생이 별 거 아닌 줄 알면 그렇게 목에 힘줄 것도 없어요.nbspnbspnbsp여러분들도 가정생활을 좀 가볍게 하세요. 남편이 성질을 내면 ‘좀 성질 날 일이 있으시구나’ 하면서 ‘죄송합니다. 맛있는 밥 지어 줄게요’ 하고 슬쩍 넘어가세요. ‘내가 놀다 왔나? 내가 정토회 다니면서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르나?’ 하면서 따지지 말고요.nbspnbsp또 정토회에 와서도 가볍게 생활하세요. 농땡이 치라는 게 아니라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하라는 거예요. 신생법당 하나 내면 혼자 부총무에다가 팀장에다가 담당에다가 청소까지 자기가 혼자 다 할 수 있잖아요. 좋잖아요. 그런데 그게 뭐가 힘들다는 거예요? 청소가 좀 힘들면 다른 사람이 왔을 때 ‘청소 좀 해 주세요’ 하고 적당하게 나눠서 하면 되지요. 혼자 청소 다 해 놓고, 준비 다 해 놓으려면 너무 힘이 드니까 하는 만큼만 하고, 못 하는 일은 다른 사람과 나누세요.nbspnbsp또 실수하는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비판하면 솔직하게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하고 인정하고요. 이렇게 좀 모자라는 척하고 살면 사는 게 편안합니다. 모자라는 게 안 모자라는 척 하려니까 힘든 거예요. 완벽하지만 모자라는 척 하라는 게 아니라 원래 모자라잖아요.nbspnbspnbsp우리가 이렇게 모자라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활동을 해도 사회에 변화를 조금씩 가져오고 있잖아요. 그렇지요?”nbspnbsp“예.”nbspnbsp“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정토회만 좋게 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도 바꿀 수가 있습니다. 굳이 총 들고 안 싸워도, 두 손만 가지고도 변화를 가져올 수가 있는 거예요. 다만 여러분이 지금 별 거 아닌 인생에 너무 투자를 많이 해서 지금 지쳐있는 겁니다.nbspnbsp아까 질문하신 분도, 남 밑에서 일하다가 새로 살림을 낼 때는 원래 동종업을 하면 안 됩니다. 그것도 형제간에 그러는 게 말이 돼요? 그러니까 처남 아들이 회사를 인수하면 한 발 물러나서 무슨 허드렛일이나 하다가 아내가 주식이 있다니까 배당이나 좀 받아서 살고 그러면 되는데, 질문자도 배운 게 있으니까 ‘한번 해 보겠다’ 했던 것 아니에요? 그렇다면 욕 얻어먹을 각오를 해야 되는데, 욕은 안 얻어먹으려니까 골치가 아픈 겁니다. ‘당연히 욕하겠지. 원수 되겠지. 그래 원수 좀 되지, 뭐. 나도 살아야 되니까 어떡해. 너만 사장하라는 법 있냐? 나도 사장 한번 해 보자’ 하는 배짱이라도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경제적으로도 좋아지고, 지위도 높아지고, 인기도 좋아지고, 욕도 안 먹는 길은 없어요. 그러니 인생을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하고 삽시다.”nbspnbsp“예.”nbspnbspnbsp“그리고 정토회 운영도 잘 해야겠지만, 올해와 내년에는 나라가 잘 되는데 좀 더 힘을 씁시다.”nbsp“예.”nbspnbsp“나라가 잘 되도록 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얼마나 답답하면 제가 이러겠어요? 내버려둬도 잘 되면 저도 편하고 좋지요. 그런데 중은 원래 옛날부터 좀 먼 데를 보잖아요. 지금 우리나라의 기운이 좀 안 좋아요. 100년 전에 겪었던 불행을 안 겪게 하려고 저도 이렇게 노력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개인사는 좀 접어두고, 필요할 때는 나라를 위한 일도 해야 합니다. 알았지요?”nbspnbsp“예.” nbsp스님의 격려말씀 중간중간에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쉼없이 계곡에 울려 퍼졌습니다. 웃음소리 만큼이나 유익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사홍서원으로 행사를 마치고 다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몸을 힐링하고, 스님의 감로 법문을 들으며 마음을 힐링한 시간이었습니다. 모두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nbspnbspnbsp산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몇몇 참가자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오늘 하루 너무 행복했다”라고 하면서 “앞으로는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대중이 탑승한 차량이 모두 출발하자 스님도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5.10. 102,820 읽음 댓글 54개

2016.5.7 평화리더십아카데미 힐링 동문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평화재단 평화리더십아카데미를 졸업한 동문들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힐링 야유회를 다녀왔습니다. 동문들은 오랜만에 스님과 함께 산책도 하고, 즉문즉설 시간도 가지면서 에너지를 듬뿍 받았습니다. nbspnbsp오전 11시, 남한산성 어귀의 숲속 너른 공터에 100여 명의 평화리더십아카데미 동문들이 모였습니다. ‘힐링 야유회’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대부분의 동문들이 가족들까지 함께 데려와서 행사장은 아이들의 목소리까지 더해져 시작부터 아주 화기애애한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nbsp평화리더십아카데미는 남한 사회 전체를 포용하고 남북통일을 이뤄낼 통합의 리더십을 가진 리더 그룹을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활동을 전개하고자 지난 2009년 12월에 제1기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현재는 제14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가 진행 중이며 졸업생들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통일 비전을 실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동문회에도 1기 졸업생부터 14기 졸업생까지 다양한 기수에서 많은 분들이 참석했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이 환한 웃음과 함께 동문들에게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 황사가 심하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는데, 날씨와 환경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 날씨 좋죠? 정부에서 여러분들 좀 놀러다니라고 4일간 휴일도 만들어줬는데 왜 놀러 안 가고 여기 오셨어요? 돈이 없어요?”nbsp“딱히 갈 곳이 없어요.”nbspnbsp“갈 곳이 없어서 여기로 오셨군요. 잘 오셨어요. 오늘 남부지방은 황사가 아주 심하다는데 서울은 좀 괜찮은 것 같네요. 광주는 황사 경보까지 발령되었던데요.nbspnbsp지난달에 제가 요하문명을 답사한다고 황사의 진원지인 내몽고에 가봤더니 바람이 부니까 먼지가 엄청나게 일어나더라고요. 곡식을 심으려고 땅을 갈아놓아서 그런지 먼지가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았어요. 답사를 다니는데 입안에 모래가 가득했어요. 모래에 차바퀴가 빠져서 가지도 못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나무를 많이 심기는 심었어요. 농부들한테 땅의 10는 의무적으로 나무를 심도록 하고 있었고, 주로 미루나무처럼 건조한 땅에도 잘 사는 나무들을 많이 심었더라고요. 세계가 하나의 나라가 되다보니까 이제 중국에서 공해를 일으키면 한국에서 그 공기를 맡아야 하고, 중국에서 바람이 불면 한국에서 그 먼지를 맡아야 되는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nbspnbsp이런 걸 보면 이제는 우리가 환경을 보존하는 의식을 좀 더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개발만 중심에 뒀는데, 맑은 공기, 맑은 물, 깨끗한 음식, 이런 것들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각박해지겠습니까?nbspnbsp오늘 같이 좋은 날, 건물 안 보다는 밖에 나와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니까 참 좋네요. 자, 시작하시죠.”nbspnbsp스님의 인사말을 듣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니 나뭇잎들은 초록색 불빛을 발하며 싱그러운 녹음을 자랑하고 있었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함을 더해 주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하지 말고 후손들에게 잘 물려줘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본격적으로 즉문즉설에 집중했습니다.nbspnbsp손을 드는 방식으로 즉석에서 질문을 받았는데, 총 5명이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은 최근 미국 대선이 진행되는 상황을 보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걱정을 내비쳤는데, 그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최근 미국 대선이 보여주는 모습은 미국 국민들의 어떤 심리를 말해주는 것인지,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지금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대선 후보로 나왔는데요. 미국 대선의 전망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이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스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nbsp“지금 미국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는 빈부격차가 너무 심각하다는 거예요. 제가 작년에 미국에 갔을 때 왜 ‘트럼프 현상’이나 ‘샌더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학자들과 토론해보니까 트럼프가 뜰 거라는 예측들을 많이 했어요.nbspnbsp왜 그러냐고 했더니 미국에서 직장 다니는 보통 사람의 소득이 30년 전보다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여기서 말하는 소득은 명목상 소득이 아닌 구매력 기준의 실질소득을 말합니다. 자기가 받은 월급으로 집을 사거나 물건을 사거나 자동차를 샀을 때의 값어치가 5년 전이나 10년 전이 아니라 30년 전보다 못하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미국의 일반 서민들은 지난 30년 동안 실질소득이 하나도 안 올랐다는 거예요. 반면에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부는 몇 배로 늘었습니다. 즉, 지난 30년 동안 국가 전체의 부는 몇 배로 늘었지만 서민들의 부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것은 부의 대부분이 소수에게로 집중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nbspnbspnbsp노무현 대통령 때 극심한 빈부격차 문제를 두고 ‘10대 90’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구의 10퍼센트가 전체 부의 절반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였는데, 재작년부터 ‘월가를 폭파하라’ 이런 구호를 외치며 미국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을 때는 ‘1대 99’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구의 1퍼센트가 소유한 부가 인구 99퍼센트의 부와 맞먹는다는 거예요. 이렇게 빈부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졌습니다.nbsp이렇게 빈부격차가 벌어지는데도 기존의 워싱턴 정가, 즉 소위 기득권 세력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어요. 정권이 이리저리 아무리 바뀌어도 아무런 변화가 안 일어나니까 워싱턴 정가 혹은 기득권 전체에 대해서 국민들의 저항이 일어나는 겁니다.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거기에도 사회적 기득권층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갖추어져 있어 그에 대한 저항이 시위나 폭동으로 일어나봐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그 저항이 합법적인 통로를 통해서 지금 선거에 분출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양 진영에서 뜻밖의 돌풍을 일으켜서 주목받은 후보가 샌더스와 트럼프였습니다. 샌더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미국 백인 중에서도 화이트칼라, 주로 사무직 노동자들입니다.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니까 이걸 좀 완화시켜라’, 우리 사회의 이슈로 말하자면 ‘경제민주화를 좀 이루어라’ 이렇게 요구하는 사람들이에요. 샌더스가 빈부격차는 우리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가 사회제도를 개선하면 이 문제는 얼마든지 바꿀 수가 있다고 계속 용기를 불어넣으니까 많은 시민들이 샌더스를 지지하게 된 거예요.nbsp그런데 트럼프 지지 세력은 미국 백인 중에서도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사실 트럼프는 기득권층의 일부죠. 그런데 미국 사회의 성격을 살펴보면,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한편으로 저소득층의 저항을 막기 위해서 공짜로 돈을 주는 게 많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돈을 지원하고, 웰페어도 주고, 인디언이라고 지원해주고, 이런 식으로 해서 사회를 유지합니다. 그리고 인권이 신장되면서 ‘인종차별 하지 말라’, ‘낙태도 허용하자’, ‘동성애도 허용하자’라고 하니까 거기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차마 말로 표현은 못했지만 불만이 계속 쌓였어요. 예컨대 미국 백인 건설노동자들은 ‘우리는 도로를 닦고 건물을 짓고 이렇게 죽어라고 일해도 먹고 살기가 어려운데, 흑인들이나 히스패닉은 아무것도 안 하고 놀면서 내가 국가에 낸 세금으로 산다’ 이런 불만이 있는 거예요. 사회 전체를 못 보고 눈앞의 것만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걸 트럼프가 막 이야기해주는 거예요. 여성비하 발언 이런 것도 많지만 개중에는 ‘여자들은 별로 하는 것도 없이 대우만 받는다’라는 얘기에 지지하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nbspnbspnbsp이런 건 사회적으로 보면 사회 복지에 대한 하나의 저항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나는 죽어라고 일해서 겨우 먹고 사는데 저놈들은 가만히 앉아서 그냥 먹고 산다는 거죠. 히스패닉이나 유색 인종, 여성들, 장애인들에 대한 불만을 트럼프는 까놓고 막 이야기하잖아요. 우리가 보기에는 상식이 없는 사람 같지만 그게 미국 사람들의 일부에게는 자기 속마음을 바깥으로 솔직하게 드러내주는 것이기에 더 열광하는 거예요.nbspnbsp이건 미국만 그런 것도 아니에요. 요즘 유럽에도 무슬림들이 들어오고 난민들이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싫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면 인류애니 도덕이니 하면서 인종차별이라거나 성차별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말을 못하고 있다가, 이제는 막 까놓고 ‘싫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유럽의 극우세력입니다.nbspnbsp최근에 프랑스에서 선거가 있었어요. 10년 전만 하더라도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을 만든 르펜은 완전히 돈키호테 같은 인물로 취급을 받았어요. 그런데 지난 지방선거에서 15군데나 국민전선이 1위를 했어요. 이것도 기성에 대한 저항이죠. 그런데 프랑스에는 결선투표제가 있어요. 그래서 중도우파와 중도좌파가 힘을 합쳐서 결선투표에서는 15군데 모두에서 극우정당을 이기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극우세력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고 있다는 거예요.nbspnbsp독일에서도 난민 문제 때문에 극우세력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일본도 지금 장기적 침체가 되다 보니 아베 총리 같은 인물을 보면 일본의 전체 민심이 극우세력으로 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한국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있어요. 일본 사람 중에는 ‘우리가 한국을 식민지배 했었던 것은 잘못이다.’라고 인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다 옛날에 학교 만들어주고 철도 놔주고 도로 닦아주고 공장 지어준 덕에 한국 사람들이 지금 잘 사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또 ‘맨날 사죄하라 하는데 한번 했으면 됐지 왜 자꾸 걸고 넘어지냐?’ 이런 불만이 있어도 그 동안에는 이걸 말로는 못하다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말하는 분위기로 넘어간단 말이에요. 도쿄 같은 경우에는 아예 사죄 안 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서 다 나가’라고 하는 혐한파들이 길거리에서 데모를 하잖아요. 옛날에는 이런 행동은 어림도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일베에서 보여주는 막말들은 예전에는 몰래 숨어서 했는데 요즘은 대학에서 동아리까지 만들려고 한다잖아요. 이렇게 뻔뻔스러워졌어요. 전에는 극우 활동이나 친일 행위 같은 것은 숨어서 했는데 요즘은 나서서 공개적으로 합니다.nbspnbsp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회가 오랫동안 정체되면 불만이 쌓이게 되는데 이 때 합리적으로 제도를 개선해서 불만을 해소하기보다는 화풀이 하는 쪽으로 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학교 가면 아이들도 만만해 보이는 아이 한 명을 왕따 시키듯이, 사회적 약자를 겨냥해서 막 공격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푸는 거예요. 우리나라의 일베 같은 경우도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 중 일부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너무 혜택을 많이 받는다’ 라고 하면서 여성을 미워합니다.nbspnbsp즉 ‘약자 보호라는 미명으로 공짜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라고 하는 이런 저항이 주로 극우세력으로 모이게 되는데, 트럼프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그런 성향이 강합니다. 공화당이 자기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트럼프는 사실 공화당이 아닙니다. 그냥 자기가 대통령 경선 후보를 공화당에 등록을 했을 뿐이에요. 샌더스도 원래 무소속이였는데 민주당 후보로 참여했을 뿐이고요. 이런 현상들은 모두 그동안 워싱턴DC를 중심으로 한 정치 기득권에 대한 하나의 저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볼 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주의’를 우선할 겁니다. 국내적으로는 ‘우리가 못사는 건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공짜로 먹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하잖아요. 국외적으로는 중국처럼 미국에 대해 무역 흑자를 보고 있는 나라들을 공격하겠죠. ‘저들이 미국에다가 물건 팔아먹어서 우리 일자리와 우리 공장을 다 빼앗아갔다’는 겁니다. 실제로는 중국에서 생필품을 값싸게 공급해주는 덕분에 빈부격차가 극심해도 미국이란 나라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인데 그렇게만 인식하는 거예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블루칼라, 즉 공장노동자들은 자기들이 일자리를 빼앗긴 것이라고 확 받아들이게 됩니다.nbsp다음으로는 방위비 관련 문제를 들고 나올 겁니다. ‘왜 우리가 전 세계에 군대를 주둔시켜가면서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같은 남의 나라를 지켜줘야 하느냐? 우리가 군대를 파견하려면 돈을 받고 파견해야지, 왜 우리 돈 내가면서 저 사람들을 지켜주느냐? 당장 TV를 사려고 해도 전부 삼성, LG와 같은 한국 대기업 제품인데 한국은 잘 사는데도 불구하고 안보무임승차를 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주둔비는 말할 것도 없고 군대파견 비용을 도로 받아야 한다. 용역비를 받아야 한다’ 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nbspnbsp이런 걸 보면 미국이 점점 경제적으로 어려워진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려워진 게 아니라 미국 국민들의 다수가 지금 굉장히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샌더스가 주장하는 관점에서 보면 사회의 불평등 구조 때문에 살기가 어려워진 것인데, 이것을 ‘방위비 지출 때문에 그렇다’라고 인식해버리는 거예요. 또 ‘무역 역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지금 FTA고 뭐고 다 폐지해야 된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민자들 때문에 그렇다’, ‘웰페어 같은 걸 주는 복지제도 때문에 그렇다’ 라고 하죠. 이런 주장들이 블루칼라, 즉 약간 저학력인 백인 노동자들에게는 굉장히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집니다.nbspnbspnbsp반대로 기득권층에 저항한다는 입장은 트럼프 지지층과 같지만 대학을 나오고 합리적이고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회 구조를 바꿔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샌더스의 주장에 동조하는 편입니다. 이런 현상도 소위 ‘변방의 반란’이라고 볼 수 있어요.nbspnbsp그런데 민주당의 정책은 그동안 히스패닉이나 이민자, 여성 등을 대상으로 한 사회복지를 비교적 확대해 왔어요. 이민자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샌더스의 주장이 실제로 훨씬 더 이익이 되지만, 이건 최근에 갑자기 나온 주장이니까 백인 남성들이나 백인 노동자들이 많이 지지하고, 유색 인종이나 히스패닉 같은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력이다 보니 이 사람들이 지금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기반이 되는 거예요. 백인들만 보면 샌더스에 대한 지지가 조금 더 높지만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세력은 다 클린턴을 지지하다 보니까 클린턴이 앞서게 된 겁니다.nbspnbsp그리고 민주당에는 슈퍼 대의원이라는 게 있어요. 예컨대 선거로 뽑힌 대의원이 2,000명이라면 과거에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을 지내서 지위가 높았던 사람들은 자동으로 대의원이 되는데 그 수가 400여 명 정도 됩니다. 이 사람들이 몰표로 클린턴을 지지하니까 샌더스가 이길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nbspnbsp이런 상황에서 만약 클린턴과 트럼프가 본선 경쟁에 가게 되면 공화당의 기득권층 중에서 일부가 민주당 쪽으로 이동해서 클린턴을 지지할 확률이 높습니다. 반대로 샌더스를 지지했던 사람들중 일부가 트럼프 쪽으로 갈 수 있어요. 샌더스와 트럼프는 정반대 같지만 둘 다 기득권에 반대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샌더스 지지층이 트럼프로 옮겨가거나 기권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거예요. 그래서 얼핏 보면 트럼프가 불리한 것 같지만 막상 본선에 가면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샌더스를 지지하는 소위 아웃사이더들이 그냥 기권을 할지, 클린턴을 지지할지, 아니면 거꾸로 트럼프 지지로 옮겨가게 될지에 따라 돌풍이 불 가능성이 있어요.nbspnbsp그래서 민주당에서는 샌더스에게 ‘가능성이 낮으니 그만두라’ 라고 압력을 넣지 못하는 거예요. 지지층이 실망해서 저쪽으로 옮겨가버리면 안 되니까요. 미국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 선거만 있는 게 아니라 하원 의원과 상원 의원 선출이 다 함께 있잖아요. 이 지지층이 옮겨가버리면 대통령 선거도 위험할 뿐 아니라 상하원 선거 모두에 엄청난 영향을 줄 소지가 있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nbspnbsp힐러리 클린턴은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는 견해도 많이 있었습니다. 왜냐 하면 호감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똑똑하고 일 잘하는 이미지는 있지만 사람들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거든요. 트럼프는 사람이 좀 망나니 같아도 솔직하고 화통한 면이 있다고 해서 서민들이 좋아하는데, 클린턴은 아주 냉정하고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미국 대선은 혼재가 거듭되는 양상입니다. nbspnbspnbsp트럼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도 있고, 아니면 그걸로 협박을 해서 우리가 주한미군이 있어야 한다며 바짓가랑이를 잡으면 주둔비 전액을 물어내라고 나올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 우리가 부담하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이 9천 몇 백억원 정도 되는데 아마 2조나 3조를 내라고까지 나올 가능성이 있겠죠. 이런 가능성은 그동안 무조건 미국에만 의지하고 살았던 한국사람들에게 심각한 경종을 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지도자가 바뀌고 미국의 정책이 바뀌어버리면 미국에만 의지하고 있던 우리는 굉장히 어려워지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미국을 반대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미국만 믿고 있다가는 매우 우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가 불리하지요.nbspnbsp그러나 꼭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 공격론이 나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트럼프 같은 사람이 북한과 평화협정이나 핵 협상을 누구보다도 잘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막 협박하면서 전쟁 할 듯이 굴다가 그냥 뒤로 악수해서 풀어버릴 소지도 있는데, 그게 북한의 기질과 매우 비슷하거든요.nbspnbspnbsp그래서 제가 볼 때는 트럼프 같은 사람이 됐을 때 한반도 상황이나 남북관계가 반드시 나빠진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트럼프는 극우파여서 미국에 이익이 되는 것을 중요시하지 한국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으니까 ‘아, 그건 뭐 평화협정 맺고 해결해버리지’ 라고 할 수도 있어요. 미국에 이익만 된다면 이런저런 걸 따지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이에요. 실리적으로 접근을 하니까요. 옛날에 어쨌다거나 체면을 따지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잖아요. 어쩌면 쇼를 할 수도 있어요. 갑자기 북한에 가서 악수하고 전격적으로 해치워버리고는 ‘봐라, 천하가 해결 못하던 걸 내가 해결하지 않았냐’ 이럴 수 있는 스타일이에요. 전 세계가 다 푸틴을 싫어하는데 트럼프는 푸틴을 좋아하잖아요.nbspnbsp이렇게 심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편에서는 우려도 되지만 또 다른 편에서는 반드시 우려할 일만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nbspnbsp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 전통적으로 해오던 대로 한·미 방위 공약은 유지할 수 있겠지만 남북 관계가 획기적으로 풀릴 가능성은 더 낮습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대북 정책들이 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을 지낼 때 만들어진 것이거든요.nbspnbsp이런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 선거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전통적인 방위 질서가 지켜진다면 그에 따라 우리는 어떻게 할 건지를 생각해야겠지요. 또 트럼프 같은 사람이 등장한다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돈을 내는 쪽으로 갈 건지, 우리가 나가라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가겠다고 하니까 차라리 ‘아, 그러면 그렇게 해라. 앞으로 우리의 방위는 우리가 책임지고 하겠다’ 라고 할 건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죠. 돈을 주고 용병을 둘 게 아니라 ‘미국은 전 세계의 다른 일도 많이 해야 하니까, 이제 우리 것은 우리가 책임지고 하겠다. 다만 비상시에는 서로 긴밀히 협력하자’ 라고 해서 한미동맹을 재정립하는 방식이 있을 수도 있겠죠.nbspnbsp이것은 변화된 정세에 맞게 어떻게 대응할 거냐 하는 우리의 문제이지, 굳이 우리가 미국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누구는 안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요.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꼭 나쁜 점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과를 봐서 우리가 거기에 맞게 대응하면 돼요. 미국 대통령은 미국 국민들이 선택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 선택을 존중하고 그런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 나가야겠지요.nbsp다만 한국의 정치권이 이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미국의 바짓가랑이만 잡고 매달리는 쪽으로 일관한다면 앞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죠. 돈도 많이 들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겁니다. 약점을 잡히니까요.nbspnbs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각성입니다. 이것이 한국의 다음 대통령 선거에 어떤 바람으로 불어와서 영향을 줄 건지, 다시 말해 더 자주성을 갖는 쪽으로 불어올 건지, 더 엎드리는 쪽으로 불어올 건지는 국민이 어느 정도 각성이 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nbsp“네, 감사합니다.”nbspnbsp스님의 쉽고 명쾌한 설명에 동문들 모두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마지막에 국민의 각성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스님이 매일같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즉문즉설 강연을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nbspnbsp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손을 든 분은 ‘스님의 하루’를 읽으며 다양한 인생문제와 사회문제에 대해 즉석에서 해답을 말하는 모습에 매일 감탄하고 있다면서 스님이 건강을 잘 유지하셔서 좋은 말씀을 더 많이 들려주실 것을 당부했고, 두 번째 분은 얼마 전에 정토회에서 하는 명상수련을 다녀왔는데 명상과 간화선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질문했고, 세 번째 분은 금강경을 공부하고 있는데 ‘보살은 보살이 아니고 보살이 아님도 아니다’라는 구절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질문했고, 네 번째 분은 통일의병 활동을 하게 되면서 가정에 점점 소홀해지게 되는데 두 가지를 어떻게 함께 잘해 나갈 수 있을지 질문했고, 다섯 번째 분은 언니의 딸이 과잉행동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 사실을 언니와 어떻게 상의해야 할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각각의 질문에 대해 자상한 답변을 들려주어 참석자들 모두가 기뻐했습니다.nbspnbsp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의 즉문즉설이야말로 최고의 힐링이 되었겠지요. 활짝 웃는 모습에서 행복의 기운을 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오후 1시에 즉문즉설 강연을 모두 마치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스님이 재미있게 점심시간임을 알려주자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식사를 하러 이동했습니다.nbspnbsp강의 후 스님은 남한산성의 성곽 위에 잠시 올라 주위의 조망을 살펴보았습니다. 성곽 둘레를 수놓는 여장과 울창한 나무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남한산성의 대부분을 승려들이 축성했고, 이후 보수와 방어까지 도맡도록 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숭유억불 정책을 펴던 시대라 승려의 사회적 지위가 가장 낮았을 텐데, 나라가 위급할 때 분연히 일어났던 사람들은 힘없는 백성들로 이루어진 의병들과 천대받았던 승병이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저려왔습니다.nbspnbspnbsp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즐거운 분위기 속에 식사를 마친 동문들은 모두 4개조로 나뉘어서 해설사의 설명도 듣고 남한산성 둘레길을 산책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내일 문경에서 정토회 저녁부 활동가들과 함께 7km를 걷는 일정이 예정되어 있어 둘레길은 가지 않고 행궁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황금연휴라서 그런지 관람료도 무료였고 안쪽 너른 마당에서는 무예 공연이 한창이었습니다. 유사시에 피신해 있는 산성의 행궁인데도 꽤 반듯한 건물들이 지어져 있는 것을 보자 조선이 왕의 나라라는 것이 실감이 났습니다.nbspnbspnbsp전쟁이 났을 때 백성들은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울텐데 이런 행궁을 짓는데도 백성들이 동원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님도 행궁의 규모를 보고선 고생했을 백성들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는지 “임시 거처인데 천막치고 살면 되지, 뭐 이리 크게 지었노”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잘 꾸며진 건물과 무예 공연이 펼쳐진 마당을 지나 담으로 막힌 곳 너머까지 꼼꼼하게 둘러보고는 만해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한평생을 만해 한용운 연구에 몰두한 전보삼 교수가 원력을 세워 꾸민 기념관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기념관에는 ‘님의 침묵’, ‘조선불교유신론’의 초간본과 친필유묵, 만해의 옥중 투쟁을 보여주는 각종 신문자료와 관련 학술 논문이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만해 스님은 용성 스님과 함께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세간에는 용성 스님보다 만해 스님의 독립운동이 더 알려져 있는 이유를 스님에게 질문해 보았습니다. 스님은 “만해 스님의 제자들은 사회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았고 용성 스님의 제자들은 산중의 스님들이 많아서 용성 스님의 행적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스승의 유지를 따르고 이어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했지만 당시에는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역사를 살필 때는 이런 부분도 깊이 헤아려야 한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만해기념관을 나온 스님은 전승문쪽으로 향했습니다. 어제 비가 와서인지 하늘은 청명하고 주위 나무들의 빛도 정말 고왔습니다.nbspnbspnbsp북문으로 오르는 길 양편으로 음식점과 까페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스님은 “30여 년 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며 세월의 변화를 놀라워 했습니다. 전승문까지의 기분 좋은 산책을 마치고 내려와서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바로 출발했습니다.nbspnbsp저녁 8시에는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해외에 있는 각 정토법당에 영상으로 보내줄 부처님오신날 기념법문 촬영이 있었습니다.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상주하고 있는 대중들이 모두 자리한 가운데 약 50분 동안 법문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법문 촬영을 마치고 나서는 상주 대중 모두가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상주 대중을 대표하여 두 분의 행자님이 다음주에 있을 스승의날을 기념하여 미리 스님께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으로 꽃다발을 받은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새벽 6시 20분부터 9시까지 대수련장에서 청년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9시 30분부터는 용추계곡으로 정토회 저녁부 불교대학 담당자들과 함께 봄나들이를 다녀올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5.09. 82,199 읽음 댓글 26개

2016.5.5 경주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경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경주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어린이날이라 경주지역 공원과 체육관에서도 갖가지 행사가 열린 가운데 서라벌문화회관에도 스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많은 분들이 자리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을 준비한 경주정토회 봉사자들은 전날 강풍으로 인해 꽃가루와 먼지로 하늘이 흐렸는데, 오늘은 하늘이 한층 더 푸르고 청명하다며 모두들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 시작 1시간 전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비더니 6시 30분이 되자 530석의 강연장은 2층까지 가득 찼습니다. 소개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청중들은 큰 박수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오늘부터 연휴가 시작되었는데 다들 놀러 안 가고 왜 여기 왔냐고 농담을 던지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부터 4일간 연휴인데, 이렇게 좋은 기회에 다들 놀러 안 가고 왜 여기에 오셨어요? 갈 데가 없어요?”nbspnbsp“하하하.”nbspnbsp“하긴 경주사람들은 어디 갈 필요가 없지요? 전국에서 이곳으로 놀러 오는 그런 곳에 사니까요. 그래서 오늘 경주를 강연 장소로 잡았나봐요. 만약에 오늘 같은 날 다른 도시에서 강연을 했다면 강연이 취소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다 놀러가 버려서요.”nbsp스님의 환한 웃음에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에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즉문즉설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대화라고 간단히 소개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예정된 강연 시간이 2시간이었으나 질문자가 많아 스님은 30분을 더 연장하여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한 분이라도 더 인생의 고뇌를 해결했으면 하는 스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총 9명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서 남편이 서울로 발령이 났는데 남편을 따라가야 할지 아니면 아이들과 경주에 남아야 하는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마침 오늘은 어린이날이라 질문자와 청중들은 가정교육의 중요성과 더불어 부모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해 소중한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결혼 15년 차이고요. 큰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이고, 작은 아들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현재 경주에서 살고 있는데 신랑이 서울로 발령이 나서 3년 후에나 돌아올 예정이에요. 지금 큰 아들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 제가 신랑을 따라 서울로 가야 할지, 아니면 저랑 아이들만 여기에 남아있어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든 다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서 결정을 못 내리고 있습니다.”nbspnbsp“결혼한 지 몇 년 됐다고요?”nbsp“15년이요.”nbsp“15년 같이 산 질문자가 잘 알지, 결혼도 안 해 본 제가 뭘 알겠어요? 지금 둘이 산다고 저한테 자랑하는 거예요?nbspnbspnbsp따라가고 싶으면 따라가고, 여기 있고 싶으면 남으면 되지요. 그런데 저는 혼자 살고 싶어서 혼자 살지만, 질문자는 남편과 같이 살려고 결혼했어요, 떨어져 살려고 결혼했어요?”nbsp“같이 살려고요.”nbsp“그런데 뭘 물어요? 무조건 따라가야지요.”nbsp“남편이 돌아오게 될 쯤엔 큰아들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게 될지도 모르는데요?”nbsp“그럼 아이만 여기 남겨두고 가면 되지요. 그게 뭐 걱정이에요? 아이를 여기 남겨둬야 될 필요가 있으면 남겨두고 질문자는 남편을 따라가면 되고요.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게 좋겠다 싶으면 데리고 가면 되고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여기 있어야 될 이유가 있다고 해서 엄마도 여기 같이 남아있는 건 도리에 안 맞는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nbsp“무조건 남편을 따라가라는 말씀이신가요?”nbsp“무조건 남편을 따라가라는 말은 아니에요. 질문자가 못 따라갈 형편이면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여기에 있는 다른 회사에 취직해서 가족과 함께 여기에서 지내면 되지요. 남편이 반드시 가야 될 형편일 때 질문자가 가는 것이지 질문자가 무슨 종이에요? 따라다니게요?nbspnbspnbsp그러니까 부부가 결혼을 했으면 같이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남편은 직장이 있고 질문자는 직장이 없는데 남편이 서울로 가야 된다면 질문자가 그냥 가면 되는 거고, 아이는 여기 남아서 학업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면 여기서 자취하라고 하면 되는 겁니다. 집도 있겠다 왜 자취를 못 하겠어요? 제가 학생 때는 셋방 얻어서도 지냈는데요.nbspnbsp질문자가 저한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벌써 질문자의 결혼관이 잘못됐다는 걸 말해 주는 거예요. 지금 남편과 아이를 두고 우선순위를 고민하고 있는데, 이건 털끝만큼도 고려의 대상이 될 게 아닙니다. 부부가 행복하게 살면 아이는 매년 전학을 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nbsp“저는 아이가 잘됐으면 좋겠거든요.”nbsp“부부가 행복하면 아이는 저절로 잘됩니다. 자식이 잘되라고 온갖 공을 다 들여도, 부부가 싸우거나 헤어져서 살면 아이는 잘 안 됩니다. 자식을 위해서 부모가 고생하면 고생할수록 자식이 안 됩니다. 자식은 내버려두고 부부가 재미있게 살면 자식은 저절로 잘돼요.”nbspnbsp“...”nbsp“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되는 것 같네요? 질문자는 지금 아들과 남편 중에 어떤 남자를 선택할래요?”nbspnbsp“둘 다 소중합니다.”nbspnbspnbsp“지금 어느 남자가 질문자에게 더 우선순위냐는 거예요.”nbsp“남편이요.”nbsp“그럼 저한테 물을 것도 없지요. 요즘은 자식 교육이 중요하다는 사고방식 때문에 기러기 아빠가 많이 생기는데, 이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남편이 군대에 징집이 되어서 중동으로 파병을 가게 되었다면 거기에는 여자가 따라갈 수가 없으니 그땐 어쩔 수 없이 여자가 아이들과 여기에 남아야겠지요.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혼을 했다면 국내든 해외든 아이는 내버려두고 부부는 무조건 같이 가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알아서 잘 큽니다. 저도 초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혼자 자취하면서 공부했는데요. 뭐. 그러니 아이들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nbspnbsp질문자처럼 자식에 집착하는 부모가 없으면 아이들은 더 빨리 성인이 될 수 있어요. 남편과 아들을 다 끼고 살고 싶으면 사세요. 그거야 질문자의 자유이니까요. 그런데 질문자가 저한테 물었으니까 저는 제 견해를 얘기하는 겁니다. 저는 인간의 도리를 얘기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업이 망해서 원룸에 살게 되었을 때, 아이들은 방에 재우고 부부는 거실에서 자면 자식들이 잘 안 됩니다. 부부는 안방의 침대에서 자고, 아이들은 거실에 재워야 자식들이 잘 크는 거예요.nbspnbsp그런데 지금 질문자의 사고방식으로는 자식 농사가 별로일 겁니다. 한번 자기 생각대로 해 보세요. 그런 관점을 갖고 있으면 고생만 하지 결과는 별로 안 좋을 거예요. 사람이 사는 데는 다 삶의 원리가 있는 겁니다.nbspnbspnbsp제가 어떤 집에 갔더니 자식을 서울로 유학 보냈는데, 부모는 같이 갈 형편이 못되니까 할머니께 ‘아이 좀 돌봐주세요’라며 아들이 있는 서울로 할머니를 모신 거예요. 그런데 제가 우연히 그 집 아들이 있다는 서울 집에 가보게 됐어요. 큰방 하나, 작은방 하나 해서 방이 2개인 작은 아파트였는데, 큰방에는 책상과 침대를 넣어서 아이가 쓰도록 하고, 할머니는 가정부가 쓰는 것처럼 작은방에서 지내고 계셨어요. 그래서 제가 ‘방 배정을 왜 이렇게 했느냐?’고 물으니까 할머니가 ‘아이는 책상도 있어야 되고 침대 생활을 해야 되는데, 나는 원래 방바닥에서 잤으니까 이렇게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 이 집구석 안 되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공부를 잘 시켜도 자식 농사가 안 됩니다. 할머니를 밥 해 주는 식모 취급을 하는데 어떻게 질서가 잡히겠어요?nbspnbsp자식을 둔 부모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할머니께는 큰 방을 드리고, 아이는 작은 방에서 지내도록 해야 되는 겁니다. 부모가 그렇게 방 배치를 해 놓고 갔다면 부모가 돌아간 뒤에 할머니께서 ‘얘야, 네가 큰 방에서 공부하며 지내라. 나는 작은 방에서 지내도 된다’라고 하셨다면 그건 할머니께서 손자한테 베푸는 ‘선의’가 됩니다. 그런데 설사 할머니께서 그렇게 하셨더라도, 나중에 부모가 올라와서 바뀐 방 배치를 보게 되면 ‘이놈의 자식 아무리 할머니께서 그러자고 하셨어도 그렇지 어떻게 네가 버르장머리 없이 큰방을 차지하고 있느냐?’라고 하면서 방 배치를 바로 잡아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삶의 질서가 잡힙니다. 그러니 이런 원리를 염두에 두시고 질문자가 알아서 결정을 내려서 사세요.” nbspnbsp“예. 잘 알겠습니다.”nbspnbsp“질문자가 물으니까 제 의견을 얘기했을 뿐이에요.”nbspnbspnbsp“두 번째 질문 드리겠습니다. 제 주변을 보면 아직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인데도 형제들끼리 한 집안에 살면서 몇 년 동안 서로 말 한마디 안 하고 사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TV를 봐도 가끔 그런 경우가 있고요.”nbspnbsp“남의 집 얘기를 하는 거예요?”nbsp“예.”nbsp“남들이야 어떻게 살든지 질문자는 신경 끄세요. 나 살기도 바쁜 세상에 남의 집 사정을 뭐 하러 신경 쓰나요?”nbspnbsp“제 아이들도 형제인데, 나이 차가 좀 나거든요. 일곱 살 차이가 나요.”nbspnbsp“나중에 문제가 생기거든 그때 가서 질문하세요. 질문자의 집에 지금 그런 문제가 생겼다는 거예요?”nbsp“아니오.”nbsp“우리 아이들도 나중에 그럴까봐 걱정이라는 거예요?”nbsp“아이들이 사이좋은 형제로 자랐으면 하는데, 엄마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 궁금합니다.”nbsp“둘이야 싸우든지 말든지 내버려두면 저절로 질서가 잡힙니다.”nbspnbspnbsp“동생이 형을 무시하고 그래도요?”nbsp“동생이 형을 무시하면 형한테 두들겨 맞겠지요, 뭐. 그럴 때 질문자가 싸움을 말리면 안 됩니다. 형의 편을 들어줘도 안 되고, 동생의 편을 들어줘도 안 됩니다. 둘이 알아서 질서를 잡도록 그냥 두세요. 일곱 살 차이가 나면 엄마 없을 때 형이 동생을 두들겨 패주겠죠. 그런 건 관여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끼리의 문제는 아이들끼리의 문제이니까요.nbspnbsp마찬가지로 아빠가 아이를 야단칠 때 엄마가 관여해도 안 되고, 엄마가 아이를 야단칠 때 남편이 관여해도 안 됩니다. 그러면 아이는 ‘봐. 엄마는 내가 잘했다고 하잖아. 그런데 아빠는 왜 내가 문제라는 거야?’라고 하면서 자기 잘못을 모르게 됩니다. 아빠가 아이를 야단칠 때 질문자가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외출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들어오면 됩니다.nbspnbsp부자끼리, 모녀끼리, 형제끼리 싸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뭐라고 하면서 싸우든 다른 사람은 거기에 관여하는 게 아닙니다. 폭력을 행사해서 상처를 입히거나 하는 것처럼 아주 심한 경우가 아니면 관여하지 말아야 해요. 그러면 형제끼리 저절로 우애가 좋아질 겁니다. 대부분 부모가 형제의 일에 관여하기 때문에 우애가 안 좋아지는 거예요. 부모가 자꾸 동생을 두둔하면 형이 동생을 미워하게 되고, 부모가 자꾸 형을 두둔하면 동생이 형을 미워하게 됩니다.nbspnbsp이런 질문을 하는 거 보니까 질문자는 집에서 할 일이 별로 없나보네요? 집에 있으면서 그런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집 밖으로 나와서 봉사도 좀 하고 그러세요. 정토회에 오시면 봉사를 많이 하실 수 있어요. 그러면 그 공덕으로 아이들이 다 좋아집니다.”nbsp“잘 알겠습니다.”nbspnbsp“오형제를 키우려면 부모들이 좀 힘들긴 하겠지만 형제끼리는 같이 사는 것 자체가 가정교육이 되고 사회교육이 됩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과자를 한 봉지씩 나눠줬는데 막내가 ‘엄마, 난 두 봉지 주세요’라고 하면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니까 첫째한테 ‘넌 나중에 줄 테니까 내놔라’라고 해서 막내한테 ‘그래, 두 봉지 먹어’ 라고 하게 됩니다. 그게 부모 마음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방을 나가면 첫째가 막내한테 ‘내놔’ 하면서 빼앗아 가버립니다. 그런 식으로 그 안에서 질서가 잡히는 겁니다. 그게 사회교육이에요.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학교에 가도 선후배 관계에 잘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요즘은 자식을 하나만 낳거나 둘만 낳아서 키우니까,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부모와 자식 관계밖에 못 맺어보고 삽니다. 수평적인 관계를 맺어볼 기회가 없어요. 또 요즘 부모들은 자식을 적게 낳는데다가 자식한테 뭐든지 다 해주면서 키우잖아요. 그렇게 키워서 학교에 보내기 때문에 아이가 사회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학교 선생님들이 수업을 진행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들 가르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해 주곤 합니다. ‘자기가 낳아서 자기가 키운 제 자식도 말을 안 들어서 부모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그 아이들이 선생님 말을 들을 거라곤 아예 기대를 하지 마세요. 그러니 그냥 월급 받은 만큼 가르치고 마세요. 그런 아이들을 고쳐보려고 덤비면 여러분들의 머리만 아픕니다. 그래야 선생님도 살지, 안 그러면 스트레스 받아서 못 삽니다.’nbspnbspnbsp요즘은 가정교육이 근본적으로 잘못됐습니다. 그러니까 학교교육도 제대로 되기가 어려운 거예요. 질문자는 자신의 지나친 관심이 아이를 나쁘게 한다는 걸 명심하세요. 그러니까 아이가 네 살 정도 되면 방청소도 시키고, 이불도 정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밥 안 먹어’ 라고 하면 바로 밥상을 치워버리고, 다시 ‘밥 달라’ 라고 하면 ‘네가 찾아 먹어라’라고 해야 질서가 잡히는 겁니다. 어릴 때 배운 게 평생 가거든요. 우리가 사는 힘은 대부분 어릴 때 생활 속에서 배운 것들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배운 수학이나 영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에요. 책으로 배운 건 다 허례허식에 불과하고, 진짜 삶의 동력은 어릴 때 생존과 관련해서 배운 생활교육의 힘입니다. 요즘 왜 유학까지 다녀온 젊은이들이 제대로 못 사는 줄 아세요? 삶의 기초교육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서 그런 거예요.” nbspnbsp질문자가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자리에 앉자 청중들도 큰 박수로 격려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이에게 가정교육을 제대로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속시원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많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55세 한 주부는 시댁 형제들이 시부모님에게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않는 모습에 배신감과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생기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질문했고, 남편과 오랜 시간 별거중인 여성분은 사춘기가 된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며 어떻게 해야하는지 질문했고, 우울증 치료를 받고있는 한 여성은 많이 호전은 되었으나 그래도 가끔 우울감이 들 때가 있어 어떻게 해야하는지, 일은 하기 싫고 봉사활동은 하고 싶은데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질문했고, 작은 공동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여성분은 신입구성원과 기성구성원과의 중재역할을 어떻게 해야할 지 질문했습니다.nbspnbsp또 아들이 대학졸업 후 직장을 다니는데 6년 내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본인도 괴롭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알려달라는 분도 있었고, 엄마가 열 번이나 바뀌었다며 버림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한 남성분은 무의식 속에 있는 이 두려움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 질문했고, 한 할머니는 아들은 우울증이고 딸은 직장에서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질문했고, 고1 남학생은 매일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경쟁하며 공부해야하는데 왜 공부해야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질문했습니다.nbspnbsp각각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때론 자비롭게 감싸주기도 하고, 때론 엄중하게 꾸짖기도 하면서 질문자의 상황에 맞게 행복을 찾아가도록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자의 답변까지 마치니 거의 3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오늘 강연이 재미있고 유익했는지 물어보며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재밌었어요?”nbspnbsp“예.”nbsp“유익했어요?”nbsp“예.”nbsp“재미도 있고 유익한 게 진리입니다. 스님들이 하는 얘기는 유익하기는 한데 재미가 없고, 코미디언들이 하는 얘기는 재미는 있는데 유익하지 못하기도 하죠. 그런데 오늘 강연은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했다니 다행입니다. nbspnbsp그리고 무엇보다 나한테 좋아야 합니다. 나한테 좋을 뿐 만 아니라 상대한테도 손해가 안 되어야 합니다. 마치 부모한테 좋은 게 자식한테 좋듯이 말이에요. 이렇게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게 진리입니다. 나한테 좋아야 한다는 것은 이기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부터 먼저 행복하고, 다른 이의 행복에도 도움을 좀 주자는 뜻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재미있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스님의 강연이 너무 좋았는지 경주시민들은 오랫동안 박수갈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 밖에서는 스님의 새책 ‘행복’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섰습니다. 스님은 한 분 한 분 눈을 마주치며 미소로 반겨주었고, 질문했던 분이 앞에 서면 “행복하게 사세요”라며 기운을 북돋워주었습니다. 한 질문자는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눈물을 보이긴 했지만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진행하기 위해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 준 경주 정토법당, 영천 정토법당, 경산 정토법당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경주 좋아요”를 외치는 봉사자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저녁 7시에 목포 시민문화체육센터에서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목포 시민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5.06. 116,909 읽음 댓글 35개

2016.5.4 (저녁) 부산 청년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전에 KMA에서 열린 조찬 강연에서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부산 동아대 부민캠퍼스 국제관에서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는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인 국제시장과 가깝고, 백화점, 영화관 등이 밀집해 있는 남포동과도 가까운 캠퍼스이기에 동아대학교 학생들은 이곳을 대학생활을 즐기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곳이라고 여긴다고 합니다.nbspnbspnbsp어제는 부산시민들에게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될 정도로 태풍이 부는 날씨였지만 오늘은 청년들의 미소를 닮은 청량하고 맑은 날씨가 지속되었습니다. 덕분에 강연의 주관을 맡은 부산 청년정토회 자원봉사자들은 강연장을 찾은 청중들을 환한 웃음으로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소개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올라서자 강연장을 메운 500여 명의 청년들이 큰 박수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은 안부 인사와 함께 연휴의 시작이라 서울에서 내려올 때 도로가 막혀 10분 늦었다고 하며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nbspnbsp“내일부터 연휴라는데 놀러도 안 가시고 많이들 오셨네요. 갈 데가 없어요?”nbspnbsp“......” nbsp“전 서울에서 낮 1시 반에 출발했는데, 오는 길이 엄청 막혔어요. 차가 계속 막혀서 오늘 여러분들 얼굴도 못 볼 뻔했어요. 빨리 오려고 이리저리 돌아서 왔는데도 10분 늦게 도착했네요. 따뜻한 봄날에 다들 잘 지내고 계셨어요?”nbspnbsp“예.”nbspnbsp특히 늦게 도착한 탓에 저녁식사도 못하고 무대에 오른 스님이 오히려 청년들에게 식사는 하고 왔는지 안부는 물어봐주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 곳이 아련해지기도 했습니다. nbspnbsp질문지함에 넣은 질문지들이 많아서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청년들은 강연장 입구에서 질문지를 적어내었고, 스님이 질문지를 뽑으시면 질문자가 일어나서 질문하는 방식으로 이어졌습니다.nbspnbsp총 10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매일 회사와 집을 오가는 것만 반복하고 있는데 언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할지 몰라 답답하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저는 매일 회사, 집, 회사, 집 이러고 있는데, 언제 결혼하고, 언제 애기를 낳을지 생각할수록 제 자신이 답답합니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요?”nbsp“예, 그래도 돼요. 몇 살이에요? 30대 중반은 됐어요?”nbsp“서른 다섯입니다.”nbspnbsp“서른 다섯인데 회사, 집, 회사, 집 이렇게 다녀도 되느냐고 물으면, 저는 예순 넷인데 혼자 살아도 되는지 질문자한테 도로 물어볼 수밖에 없어요.”nbspnbspnbsp“스님은 스님이시니까요.” nbspnbspnbsp“그럼 질문자도 스님 하면 되겠네요.”nbsp“전 교회 다녀요.”nbspnbsp“그러면 전도사 하면 되겠네요. 아니면 수녀가 되세요. 스님도 이렇게 강의하고, 절에 가고, 강의하고, 절에 가고, 강의, 절, 강의, 절 이러고 살아요. 이것밖에 뭐가 더 있겠어요?nbspnbsp사람이라는 게 회사 갔다가 회사 끝나면 귀가해서 씻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회사 가고 그러는 거예요. 그것 말고 뭘 하겠어요? 이 세상 사람들이 다 그래요. 질문자만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데 가끔 회사에서 회식도 할 거 아니에요. 그렇게 회식에 참석하고, 주말에 가끔 친구들과 모여서 어디 놀러가면 되죠. 그런 게 전혀 없어요?”nbsp“예, 그런 시간도 가지고 있고, 남자친구도 있어요. 그런데 제 또래 친구들이 사는 걸 보면, 결혼해서 애 돌잔치도 하고 그러는데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이러고 있어서요.”nbsp“그럼 질문자도 결혼하면 되잖아요.”nbsp“그런데 저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많거든요.”nbspnbsp“어떤 걱정을 하는데요?”nbsp“예를 들어, 결혼한 뒤에 남편이 바람을 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합니다. 지금 남자친구는 저에게 그런 빌미도 준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요.”nbsp“바람 좀 나면 어때요? 바람나면 바꾸면 되잖아요. 왜 평생 한 사람하고만 살아야 돼요? 둘 하고도 살아보고, 셋 하고도 살아볼 수 있는 것이지요. 젊은 사람이 참 고지식하네요.nbspnbspnbsp내가 이 남자 만나봤다가 싫어서 저 남자 만나고, 저 남자 만나봤다가 싫어서 또 다른 남자를 만나면, 우리 사회에서는 도덕적으로 좀 문제가 되잖아요. 그런데 남편이 바람나서 떠나는 것은 질문자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좋아요? 자기가 알아서 가주니까. 그런데 그게 왜 겁이 나요?”nbsp“제가 상처를 받게 되잖아요.”nbsp“왜 상처를 받아요? 잘 된 일인데요.”nbspnbsp“버림받은 느낌이 들 것 같아요.”nbspnbsp“이 남자가 다른 여자한테 가면, 옛날 같으면 질문자 혼자 평생 살아야 되니까 버림받았다고 느낄 수가 있어요.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이 남자가 가줘야 질문자가 다른 남자를 만날 거 아니에요. 이 남자가 계속 질문자 옆에 있으면 질문자가 다른 남자를 만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게 무슨 큰일이라는 거예요?nbsp미래의 남편이 진짜 바람이 날지 어떨지 지금으로서는 모를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설령 바람이 난다고 하더라도 걱정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옛날 같으면 좀 걱정인데, 요즘은 하나도 걱정이 안 되는 일이에요. 궁합이 나쁘다거나 남편이 단명한다는 것도 괜찮은 일이에요. 남편이 일찍 죽으면 질문자는 다른 남자 만나면 되니까요. 질문자가 죽인 것도 아니고, 남편이 자기가 알아서 죽은 건데요, 뭐. 그런데 질문자는 도대체 어떤 집에서 자랐기에 그렇게 고지식한지 모르겠네요.nbspnbspnbsp질문자가 남편을 버리면 좀 문제지만 남편 스스로 알아서 가는 건 질문자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런 일이 안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날 수도 있는데, 일어나도 그건 걱정할 게 아니에요.nbsp그럼 애기를 낳으면 어떻게 키우나? 그런 걱정도 전혀 안 해도 돼요. 첫째, 애기가 생길지 안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둘째, 닭이든 토끼든 개든 고양이든 어미가 되는 훈련을 받아서 어미가 됩니까? 아니면 새끼를 낳으면 저절로 어미 역할을 합니까?”nbspnbsp“저절로 어미 역할을 하죠.” nbspnbsp“예,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저절로 어미 역할을 하게 돼있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는데, 낳으면 심리가 모성애로 바뀔 거예요.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왜냐하면 우리가 종족을 보존해야 하거든요. 만약 모성애라는 게 없었다면 종족이 보존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새끼를 낳기 전에는 ‘제 목숨을 버려서 새끼를 보호한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는데, 새끼를 낳으면 그건 저절로 됩니다. 정신 이상자가 아닌 한, 즉 돈이나 어디에 미쳐서 정신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닌 이상 99는 자동으로 그렇게 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러니 그건 연습 안 해도 되고, 미리 준비 안 해도 되고,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또 무슨 걱정이 남았어요?”nbsp“글쎄요...” nbsp“더 이상 걱정이 없지요? 그러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거 별 일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두려울 일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남편을 의심하고 그러면 늘 남편한테 신경을 써야 되니까 인생이 피곤해집니다. 남편이 좀 늦게 들어오면 ‘어디 갔다 왔나?’, ‘누구 만났나?’ 이렇게 자꾸 신경이 쓰이니까 인생이 피곤해지는 거예요. 왜 같이 살면서 그렇게 피곤하게 살려고 합니까?nbspnbspnbsp같이 살 때는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고 살되 각자 독자적인 생활도 좀 인정해 주면서 살아야 되는데, 여러분들이 하는 결혼은 서로를 너무 속박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혼을 꿈꾸지만 막상 결혼하면 서로를 너무 간섭해서 답답해 하고 뛰쳐나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조금씩 혼자 사는 연습을 해서, 함께 살면서도 귀찮지 않고, 그러면서 혼자도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두 사람이 같이 살아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결혼생활을 20년이나 했으면서도 남편 허락 없이는 수련에도 참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그래서 ‘도대체 너희 부부는 20년간 어떤 신뢰를 갖고 살았기에 20년을 한 이불 밑에 살면서도 서로를 못 믿느냐? 그게 무슨 행복이냐? 속박이지’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각자 자기 마음대로 살라는 건 아니지만, 함께 하면서도 자율성이 좀 있어야 될 거 아니겠어요?nbspnbsp그래서 그런 건 너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만약 질문자가 계속 그렇게 ‘남편이 바람피우면 어떻게 하나?’ 그러면 질문자는 계속 남편을 의심해야 됩니다. 요즘은 대학도 다 다니고, 이성 친구 사귀는 것도 자유로우니까, 남자든 여자든 결혼해서 살아도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로부터 전화가 올 수가 있어요. ‘동기들끼리 술 한 잔 하자’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걸 받아들이지 않고 살면 의심병에 걸려서 못 삽니다. 또 무슨 걱정이 있어요?”nbspnbsp“제가 한 남자랑 평생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nbspnbsp“가만 보니, 남자가 아니라 질문자가 못 살겠다는 거네요?”nbspnbsp“예.”nbspnbsp“질문자가 한 남자와 살아보고 지루하면 ‘당신하고 사니까 너무 지루하다. 우리 따로 좀 살아보자’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상대가 ‘아니다. 그래도 같이 살자’ 하면 같이 살아보고, 또 몇 년 있다가 ‘아무래도 너하고 같이 살기 힘드니까 따로 한번 살아보자’라고 다시 얘기하면 됩니다. 이게 싸울 일은 아니에요. 성인이니까 서로 의견을 교환해서 조정할 수도 있잖아요. 질문자는 일단 시집을 가서 단 3일이라도 살아보고나 결정을 하세요. 결혼을 해 보지도 않고 앉아서 계속 걱정만 하고 있으면 해결이 안 됩니다. 일단 결혼을 한번 해 보세요. 남자친구가 있다면서요?”nbsp“예, 알겠습니다.”nbspnbsp“내일이라도 날을 잡아서 빨리 결혼을 해버려요.”nbspnbsp“감사합니다.”nbspnbsp스님의 단호한 대답에 망설이던 질문자도 움찔하며 정신을 차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덕분에 청년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웃을 수 있었는데, 질문자가 마지막에 환하게 웃자 격려의 박수 또한 크게 쳐주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9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모습이 고민이라는 분,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데 상사가 부당한 일을 지시할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분, 상업고를 졸업 후 바로 취직하여 야간대학을 다니는데 삶은 계속 바빠지고 왜 이렇게 지내는지 모르겠다는 분, 대학이 재미없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분, 남편이 게임앱 개발한다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언제까지 뒷바라지를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분, 좋아하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 편입을 했는데 공부에 흥미가 떨어졌다는 분, 가족과 친구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궁금하다는 분, 사회생활과 그 인간관계 속에서 고민이 있다는 분, 사립고등학교를 나와서 친구들은 어학연수나 유학 등 해외로 나가는데 본인도 나가고 싶지만 경제적 상황이 여유롭지 않아 고민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시작할 때는 스님과의 즉문즉설이 생소했는지 스님의 물음에 다소 소극적이었던 청년들이 많았는데, 시간이 무르익어 갈수록 웃음소리도 박수소리도 커져만 갔습니다.nbspnbsp스님과 청중과의 대화가 한참 깊어갈 무렵, 어느덧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대관이 10시까지라 그 전에 강연을 끝내야 했기에 아직 답변하지 못한 질문지가 더 있었지만 청년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스님은 곧바로 정리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nbspnbsp“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 되기도 하고, 불행의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주어진 조건을 행복의 조건으로 보는 것을 ‘긍정적 사고’라고 하고, 불행의 조건으로 보는 것을 ‘부정적 사고’라고 합니다. 우리가 불행한 건 사물을 보는 사고방식이 부정적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사고를 긍정적으로 바꿔야 합니다.nbspnbspnbsp물론 여러분들이 ‘지금 공부해야 되는데 힘들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돌아보면,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되는 때는 바로 지금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그럴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가 않아요. ‘결혼 못해서 걱정이다’라고 하지만 한번 결혼해 보세요. 처녀총각 때가 좋았습니다. 늙어보면 젊은 시절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게 청소년 때는 청소년이라 힘들다 그러고, 대학 때는 대학생이라 힘들다 그러고, 처녀 총각 때는 처녀 총각이라 힘들다 그러고, 신혼 때는 신혼이라 힘들다 그러고, 애 키울 때는 애 키우느라 힘들다 그럽니다. 그런데 다 지난 뒤에는 ‘아이고, 그때가 좋았다’고 합니다.nbspnbsp그래서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것, 그것이 지혜입니다. 지나고 보니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좋은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늘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힘들다’고 하면서 ‘앞으로 돈만 벌면’, ‘결혼만 하면’, ‘애만 낳으면’, ‘나이만 들면’, ‘승진만 하면 좋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진짜 그렇다면 나이 들고, 승진하고, 돈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여기에 불러다가 진짜 행복한지 한번 물어볼까요? 여러분들은 그런 사람들을 못 만나봐서 그런 사람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저는 지위 높은 사람, 인기 많은 사람, 돈 많은 사람들을 다 만나보잖아요. 그 사람들이 저를 왜 만날까요? 괴로워서 입니다. 그 사람들은 여러분들보다 더 많이 괴로워요. 그러니 일시적으로는 돈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것 같지만 꼭 그렇다고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행복의 요건은 아닙니다.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은 지금 행복한 줄 알아야 합니다. 납득이 잘 안 되지요? ‘내가 어디가 어떻게 행복하다는 거냐?’라고 할 텐데, 기분 좋은 게 행복이 아닙니다. ‘괴로워 죽겠다’ 하는 것만 없으면 행복이에요. ‘지금 괴로워 죽겠다’ 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보세요. 없지요? 그럼 다 행복한 겁니다.nbspnbspnbsp행복의 정의를 잘 몰라서 늘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웃으면서 사세요. 기분 좋은 건 마약입니다. 기분 좋은 것에 너무 의지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모두 행복하시기 바랍니다.”nbsp지혜는 지금이 좋은 줄 알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말씀에 부산 청년들은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려는 듯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nbspnbsp질문자에게 가서 스님과 대화를 해 본 소감이 어떤지 물어 보았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졌어요.라며 웃음을 보였습니다. 용기를 내어 질문한 청년들에게도 지혜로운 답변을 준 스님에게도,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박수를 보내준 청중들에게도 모두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강연장 복도에서는 스님의 lt행복gt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사인을 받으려고 줄서있는 청년들의 얼굴에는 봄꽃보다 더 예쁜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nbspnbspnbsp사인회를 마치고 오늘 강연을 준비한 부산 청년정토회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활짝 웃는 모습이 봄꽃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이동해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경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nbsp 5월 21일 시청광장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청춘콘서트amp청춘박람회가 열립니다. 법륜 스님, 김제동, 박원순 서울시장, 노희경 작가가 펼치는 사이다 심쿵 토크, 봄밤의 정취를 느끼게 해 줄 뮤지션들의 공연, 42개 청년 단체가 참여하는 박람회 등 세상을 바꾸는 즐거운 축제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전국 15개 도시에서 청춘 버스도 운영되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nbspnbsp 티켓신청 바로가기 httpwww.jungto.org nbspnbsp

2016.05.06. 125,095 읽음 댓글 38개

2016.5.3 (저녁) 천안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전에 김천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천안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늘 그렇듯 오늘도 스님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을 누비며 강연 행진을 이어갔습니다.nbspnbsp스님은 강연 시간인 저녁 7시가 다 되어 강연장인 천안시청 봉서홀에 도착했습니다. 오랜만에 천안을 찾아 준 스님을 천안정토회 봉사자들은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었습니다.nbspnbspnbsp어젯밤부터 한반도 전역에는 강풍주의보와 풍랑특보가 발효되었습니다. 비행기가 멈추고 간판이 날아가고 가로수가 뽑혔다는 뉴스를 들으며 한 달 전부터 강연을 준비해 온 천안정토회 자원봉사자들은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비가 그칠까 애타게 기다렸는데, 강연 시작 시간인 저녁 7시가 가까워져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은 바뀌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봉사자들은 한 달 전부터 포스터와 현수막을 열심히 붙였고, 한 정토회 회원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 600세대에 가가호호 전단지를 나누어주기도 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며 크게 불안해 하지는 않는 모습이었습니다.nbsp다행히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1,000여 명의 대중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강연장 입구에 마련된 질문지함에는 질문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는데, 오늘은 스님이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설레기까지 했습니다.nbspnbsp천안에서는 그동안 열 번의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는데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오전에만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장에 다니느라 강연에 올 수 없었던 분들을 위해 특별히 저녁에 강연을 열었습니다. 나란히 함께 오는 부부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고, 시각 장애인 두 분도 봉사자들의 안내로 무사히 강연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nbspnbspnbsp어느덧 저녁 7시가 되어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1000여 명의 청중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갈채로 보냈습니다. 스님은 청중들의 환호에 다소 놀란 듯 하며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충청도 사람이면 충청도 사람답게 점잖아야죠. 왜 충청도 사람답지 않게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다들 본적은 경상도나 전라도이면서 살기만 충청도에서 사는 거죠?nbspnbspnbsp충청도 사람들은 웃는 것도 담장 너머로 소리가 안 들리게 웃는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와서는 많이 바뀐 것 같네요. 예전에는 제가 강연을 해도 다들 빙긋이 미소만 짓지 반응이 별로 없어서 ‘강연을 제대로 못 했나?’ 싶었는데 강연 마치고 사인할 때가 되면 그때서야 ‘강연 잘 들었습니다’ 인사를 해서 웃을 때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왜들 그러세요?”nbsp“하하하...” nbspnbspnbsp스님의 솔직담백한 인사 덕분에 시작부터 웃음과 함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즉문즉설과 즉문즉답의 차이에 대해 간단히 안내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여러분과 저는 종교가 다를 수도 있고, 태어나서 자란 지역이 다를 수도 있고, 현재 사는 환경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생각이나 견해, 느낌 또한 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함께 대화를 하다보면 각자 자란 환경이나 관습, 가치관에서 봤을 때는 도저히 안 풀리던 것이 다른 관점에서 쉽게 길이 찾아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혼자 끙끙대는 것보다는 드러내서 함께 대화하는 게 좋습니다.nbspnbspnbsp이 강연은 ‘즉문즉설’이라고 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자꾸 ‘즉문즉답’이라고 표현하는데, 즉문즉설과 즉문즉답은 다릅니다. 즉문즉답은 답을 주는 거예요. 즉 정답이 있는데 여러분들이 못 찾으니까 스님이 찾아주는 것, 그게 즉문즉답이에요. 그런데 인생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스님이 답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고뇌에 대해서 저에게 묻는다면, 저와 대화를 하는 과정 속에서 ‘별 거 아니네. 괴로워할 일 아니네’ 하면서 고뇌가 사라지게 될 겁니다. 이런 대화를 ‘설법’이라고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를 해탈과 열반에 이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열반이란 괴로움이 없는 상태, 모든 고뇌가 사라진 상태를 말하고, 해탈이란 온갖 무거운 짐과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nbspnbspnbsp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대화를 하다보면 완전하게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가벼워지는 길로 나아가게 될 겁니다. 이런 대화를 ‘설’이라고 해요. 이것은 ‘답’과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그러니 오늘 이 강연을 통해 ‘스님이 답을 주신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스님과 대화를 한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지실 겁니다. 자, 이제 여러분들의 얘기를 듣겠습니다.”nbspnbsp왜 스님의 강연을 ‘즉문즉설’ 이라고 하는지 이해를 한 청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장은 천안시청이라 규정상 책 사인회를 할 수 없어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길게 강연이 진행됐습니다. 총 8명의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는데 그 중에 한 분의 사연을 소개해 드립니다.nbspnbsp초등학교에서 담임을 맡고 있는 분이셨는데, 수업시간에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 때문에 힘들다며 하소연을 하자 스님은 충돌조절장애 아동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학생 중 한 학생이 혼자서 교실에 있는 장난감을 크게 벌려놓고는 수업이 시작됐는데도 절대 치우지 않는 겁니다. 결국 다른 학생들이 그것을 치웁니다. 이런 상황이 3월부터 지금까지 두 달 동안 지속되었어요.nbspnbsp그래서 제가 마지막 경고를 했습니다. ‘네가 앞으로 3번만 더 그렇게 하면 다시는 그 장난감을 못 가지고 놀게 하겠다’라고요. 그런데 그 학생은 3번이나 더 그런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정말 화가 많이 났지만 계속 참았어요. 결국 그 학생 하나 때문에 다른 학생들도 다 수업을 못하는 상황이 됐고, 그 학생은 심지어 쓰레기를 계속 교실 뒤편에 쏟아놓고, 이어서 남의 책상을 뒤집어 엎었고, 자기 책상도 뒤집어 엎었습니다. 그때 제 손도 부르르 떨렸지만 그 학생을 때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마지막으로 ‘네 자리는 치워야 하지 않겠니?’라고 했는데, 그 학생은 갖고 있던 색연필 세트에서 색연필을 하나씩 뽑아서 보란 듯이 뒤쪽으로 던진 후에 교실 한쪽에 쌓아둔 실로폰까지 무너뜨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학생 어깨를 딱 잡고는 ‘저리 가’라고 소리를 지른 후 그 상황을 정리했습니다.nbsp저는 ‘그 학생은 어린 아이이니까 내가 이해를 해야 된다. 아이는 자기 잘못을 모를 수도 있다’ 하는 생각도 들고, 또 그 학생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화가 나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보통의 아이라면 그렇게까지 행동하지는 않거든요. 그 학생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자기 아버지의 체벌인데, 제가 참다, 참다, 참다 결국 폭발을 해서 그 학생한테 ‘이렇게 하면 너희 부모님한테 말할 수밖에 없어’라고 협박을 했더니 학생이 엉엉 울면서 ‘죄송해요’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계속 이렇게 한 번씩 감정적으로 폭발을 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제가 어떤 식으로 이 학생을 다뤄야 될까요?”nbspnbsp“그 아이 한 명만 없으면 수업을 할 만 해요?”nbsp“네.”nbsp“그 아이의 역할은 다른 모든 아이를 착한 아이로 만드는 거예요. 만약 그 아이가 없으면 질문자는 또 다른 어떤 아이 때문에 수업하기 힘들다고 할 텐데, 그 아이가 지금 다른 모든 아이를 다 착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그런 장점이 있어요.nbspnbspnbsp이렇게 스스로를 나쁘게 만들어서 남을 더 좋게 만드는 사람을 ‘역행보살’이라고 합니다. 얼마전 총선에서 우리 국민들이 투표를 잘 한 이유도 누구 한 사람이 굉장히 자기 고집대로 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던데, 동의를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대구경북에서는 지난 30년 간 진짜 한 당만 찍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대구경북에서 야당의원이 선출되는 변화가 온 이유는 온 국민들이 각성해서 그런 걸까요? 어떤 한 분이 잘해서 그런 걸까요? 어떤 한 분과 그 주위 사람들이 워낙 잘 하니까 국민들이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한다’ 하면서 변화를 가져온 것이라고 하잖아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nbspnbsp“예.”nbspnbsp“역행보살이란 자기가 잘못 함으로써 세상을 좋게 만드는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저처럼 이렇게 좀 잘해서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보다는 자기를 확 나쁘게 만들어서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처럼 이 아이 때문에 다른 20명의 아이들이 다 착한 아이가 된 거예요. 그 아이한테는 이런 장점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이해하셨어요?nbsp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그 아이는 약간 문제가 있는 아이일까요? 환자일까요?”nbsp“환자인 것 같아요.”nbspnbsp“환자한테 왜 화를 내요? 질문자가 화를 내는 건 그 아이가 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가 나는 거예요. 그 아이는 자신을 스스로 컨트롤하는 것이 안 되는 아이예요.”nbspnbsp“예.”nbspnbsp“그 아이는 선생님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도 아닌데, 선생님이 야단을 치면 딱 그만큼 반작용으로 반발을 계속 하는 거예요. 그럼 해결방법이 뭘까요? 칼로 목을 치듯이 그 아이한테 누군가가 완전히 세게 나가야 꺾이지, 그전까지는 그 아이 스스로 자기 통제가 안 됩니다. 아이가 집에서 그런 행동을 할 때는 아버지가 인정사정 없이 때리면서 폭력적으로 하니까 꺾일 수 있었던 거예요. 아이가 스스로 자기 행동을 반성해서가 아니고, 그 폭력에 못 이겨서 숙였던 거예요. 그러니 그 아이는 선생님이 야단친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질문자가 그 아이한테 폭력을 행사해서 제압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교육시스템상 그러면 안 되지요. 그 아이 아버지도 자기가 아이를 때리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선생님이 아이를 때린다고 하면 아마 난리를 칠 겁니다.nbspnbsp그렇기 때문에 그 아이를 보고 질문자가 화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 아이는 환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고, 자극을 받으면 그렇게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는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 속으로 ‘환자다’ 하고 봐주세요. 아이 아버지한테 찾아가서 ‘얘는 환자입니다’라고 하지는 말고요.nbspnbspnbsp지금 그 아이가 했다는 행동 몇 가지만 딱 들어봐도 벌써 저는 ‘그 아이는 환자이구나’ 하는 걸 알 수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그런 아이들의 행동이 정신질환임을 모른다는 거예요. 그것처럼 애인과 헤어졌다고 ‘죽고 싶다’ 하거나 남자가 바람을 피웠다고 ‘확 자살해 버리고 싶다. 내가 확 죽어버려야 저 인간이 반성할 것 같다’ 하는 심리상태는 다 정신질환상태입니다.nbspnbsp그런데 이런 정신질환은 병이 일어났다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치유가 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죽은 남편이나 자식을 못 잊는 사람한테는 시간이 흐르면 자연치유가 된다는 의미에서 ‘세월이 약이다’라고 말했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그런 사람들을 환자라고 생각을 안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실제로는 환자이거든요. 가만히 놔두면 치유되는 데에 3년이 걸리지만 조금만 치료하면 한 달 만에 극복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이것을 조기에 치료하지 않고 만성화시킵니다. 완전히 병이 깊어져서 머리를 산발하고 침을 흘리고 쓰레기통 뒤지고 다닐 때가 되어서야 ‘저 사람 미쳤다. 정신병자다’라고 하게 됩니다.nbspnbspnbsp이런 우리의 오랜 관습 때문에 자신이나 자녀가 정신과에 가는 걸 굉장히 꺼리거나 숨기게 됩니다. ‘정신병’이라고 하면 전부 이상 행동을 하는 미친 사람만 연상하기 때문이에요. 감기도 1주일이면 자연치유가 되지만 독감은 한 달씩 가잖아요. 감기 같은 걸 옛날에 누가 병이라고나 했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감기 걸리면 바로 병원에 가잖아요. 그런 것처럼 교통사고가 나서 놀랐다든지 하면 다 정신적인 치료를 해야 됩니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미군들에게 육신만 치료하고 정신은 치료를 안 해서 나중에 엄청난 부작용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나중에야 그것이 ‘트라우마’라는 질환임을 알게 되어서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게 된 겁니다.nbspnbsp그 아이는 요즘 말로 ‘충동조절장애’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 아이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관찰해 보고 ‘좀 이상하다’ 싶으면 부모님을 학교로 오시라고 해서 의논을 하세요. ‘아이한테 약간 이런 장애가 있는 것 같으니까 집에서 야단만 치지 마시고, 검진을 받아서 치료를 한번 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선생님이 안내를 해 줘야 합니다.nbspnbspnbsp그리고 아이가 벌써 아버지 얘기만 해도 겁을 낸다는 것은 아버지가 아이의 병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아이를 두드려 팬다고 개선될 병이 아니에요. 두드려 패면 아버지 앞에서만 겁을 내지 다른 데 가면 또 증상이 재발하는 거예요. 그 아이는 충동조절장애에 속하기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는 게 좋고, 어쩌면 신체적으로도 호르몬의 이상분비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필요하면 의사한테 진단을 받아서 약물치료도 받게 해야 해요. 그건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그런데 만약 아이의 집에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질문자는 교장선생님과도 의논해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교실에서 이상행동을 하면 그 아이만 문제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수업에 방해를 받기 때문이에요.nbspnbsp더 나아가서, 학교에서는 이런 아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100명을 모아놓고 선생님 혼자 가르쳐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장애가 있는 아이는 1명을 위해 선생님 2명을 최소한 붙여야 해요.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문제는 이겁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소수만 모아놓고 선생님이 집중 지도를 하도록 해주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한꺼번에 모아놓고 지도하거든요.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일수록 한 반의 정원을 더 줄이고,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아이 한 명당 선생님 2명을 붙여서 교육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공평한 교육이에요. 아이들의 형편에 맞게끔 교육을 하는 게 평등한 교육입니다. 그 아이도 그 아이의 처지에 맞게끔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질문자는 그런 충동조절장애 아동을 교육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 그 아이를 교육하기 보다는 전문가에게 안내해 줘야 되는 거예요. 우선 ‘그 아이는 환자다’라고 생각하면 화가 나지는 않을 겁니다. 화가 나는데도 부들부들 떨면서 참는다고 하셨죠? 그러면 질문자는 스트레스가 쌓여서 언젠가는 폭발하게 될 겁니다. 그 아이가 지금은 초등학교 2학년이니까 질문자가 제압할 수 있지만, 앞으로 6학년만 되어도 선생님 머리를 잡아채고, 덤비고, 그럴 겁니다. 그래서 그런 아이는 건드리면 안 됩니다. 오히려 질문자는 그 아이가 하는 몇 가지 행동을 관찰해서 기록을 하든지 비디오로 찍든지 해서 전문가한테 의뢰를 하세요. 그런 장애는 전문가가 치료하도록 해야 합니다.”nbsp“네, 감사합니다.”nbsp예상치 못한 답변에 질문자는 아주 속시원해 하며 밝게 웃었습니다. 스님은 이런 아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일러주면서 우선 질문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다음으로는 해결책에 대해 제시해주었습니다. 청중들도 모두 감탄을 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 외에도 7명의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심지어 아이와 있을 때도 불편한 감정이 생겨서 걱정이라는 분, 같이 사는 시어머님이 불평불만이 많고 짜증을 입에 달고 살아서 그로 인해 자신의 일도 안 풀리는 것 같는 분, 유튜브에서 스님의 통일 강연을 듣고 너무 감동 받아서 직장 동료들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얘기했더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며 어찌해야 하는지 묻는 분, 어렸을 때부터 불치병을 앓았고 현재는 아토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5살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묻는 분, 남자 같은 스타일을 하고 있어서 여자 화장실에 갈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는 분, 아이 둘을 낳고 산후우울증을 겪다보니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묻는 분, 중3 딸이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데 아이가 어렸을 때 엄마가 우울증을 겪은 탓인 것 같다며 어떻게 아이를 품어주어야 할지 묻는 분 등 다채로운 질문에 대해 스님의 명쾌한 답변이 쏟아졌습니다.nbspnbsp강연은 2시간 30분 동안이나 계속 됐습니다. 자리를 뜨지 않고 집중해 준 청중들을 위해 스님이 마지막으로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모든 강연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할테니 이 내용만큼은 꼭 명심해 주었으면 하는 스님의 바람이 묻어났습니다.nbspnbsp“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조건, 살아온 환경과 관계없이 모두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행복해야 합니다. 남편이 죽은 사람도 행복할 수가 있고, 자식이 죽은 사람도 행복할 수가 있고, 교통사고가 나서 장애가 생겨도 행복할 수가 있어요.nbspnbspnbsp그런데 실제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는 왜 불행해 하는 걸까요? 옛날 생각을 해서 그래요. 다리를 안 다쳤을 때에 집착하기 때문에, 현재 다리를 다쳤다는 것이 괴로운 겁니다. 다리 한 쪽이 부러졌을 때 ‘그래도 나머지 한 다리는 안 다쳐서 다행이다’, ‘그래도 안 죽고 살아서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장애를 입었어도 미소를 머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미소는 누가 나에게 주는 게 아니에요. 내가 내 인생을 그렇게 만들어나가야 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부처님 말씀을 한 번 따라해 보세요.nbspnbsp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nbsp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nbsp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nbsp입으로 따라 하기는 해도 속으로는 여전히 행복과 불행을 다른 사람이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죠? 네가 술을 먹어서, 네가 바람을 피워서, 네가 공부를 안 해서 내가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잖아요. nbspnbspnbsp긍정적 사고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아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걸 긍정적 사고라고 해요. ‘그 자식이 그러지만 않았어도 내 다리가 안 부러졌을 텐데’ 이걸 부정적 사고라고 해요. 부정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긍정적 사고를 하면 누구나 다 행복해질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신앙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또 남자든 여자든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걸 불교적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은 다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소중한 권리인 행복할 권리를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nbsp스님의 말씀이 큰 울림이 되었는지 오랫동안 박수가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강연회를 마치고 나가시는 몇몇 분들에게 소감을 물어보니, 어떤 분은 “시간이 더 있었으면 아직 질문지함에 남아있는 다른 질문들에 대한 답변도 다 들을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스님의 강연이 유익하고 재미있었다는 반증일 테죠.nbspnbsp스님이 강연장 통로로 걸어 나오자 천안시민들은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스님도 환하게 웃으며 시민들과 악수를 한 후 강연장 밖으로 나왔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준비한 천안정토회 봉사자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고생한 봉사자들의 수고로움이 한꺼번에 녹아나는 순간입니다. 모두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아침 7시부터 조찬 강연을 시작으로 10시에는 평화재단에서 미팅이 있고, 저녁 7시에는 부산 동아대 부민캠퍼스 국제관에서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5.04. 101,769 읽음 댓글 39개

2016.5.3 (오전) 김천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 10시 30분에 김천시 문화예술회관에서 김천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천안시청 봉서홀에서 천안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어제 밤부터 날씨가 흐려서 혹여나 비가 많이 올까봐 강연을 준비하는 김천 정토법당 봉사자들은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김천시 곳곳을 누비며 홍보에 힘쓴 김천 정토법당 회원들의 노고 덕분인지 비가 오고 있음에도 청중들이 하나 둘씩 입장하기 시작하여 530여 명이 자리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은 구미정토회 산하 왜관법당, 문경법당, 상주법당, 구미법당에서도 많은 봉사자들이 지원을 와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봉사자만 61명이었습니다.nbspnbsp소개 영상 후 무대에 오른 스님은 “비가 오는데도 많이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돈도 안 생기는데 왜 왔어요?”라며 농담을 던지자 청중석은 시작부터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여기가 김천이니까 혹시 농사짓다가 오신 분 계세요?”라고 질문했는데 몇몇 분들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스님은 봄날에 하면 제일 좋은 일이 농사일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어서 즉문즉설 강연의 취지만 간단히 설명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즉문즉설은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이런저런 어려움이라든지 의문을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살다보면 ‘그게 왜 그러지?’ 하고 의문이 생기잖아요. 참 착하게 사는데 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을 보거나, 또 우리가 볼 때는 진짜 인간이 나빠 보이는데도 떵떵거리고 잘사는 사람을 볼 때면 ‘하나님이 없나?’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죠. 그래서 즉문즉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이런 의문과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고뇌를 가지고 대화해 보는 시간입니다. 꼭 질문을 해야 하는 건 아니고 자기 견해를 이야기해도 됩니다. ‘인생을 살아보니까 이러저러한 것은 참 좋았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경험을 함께 나누어도 됩니다.nbspnbsp제가 여러분들에게 일방적으로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할 만한 이야기는 따로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저도 나이가 예순이 넘도록 살아왔고, 나름대로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했으니까 ‘그런 경우에 저는 이렇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자, 시작해 보죠.”nbsp이미 강연 전에 많은 분들이 질문지함 속에 여러 장의 질문지를 넣어 두었습니다. 스님은 하나씩 뽑은 후 선택된 질문자와 문답을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총 6명이 질문을 했는데 오늘은 그 중에서 행복해진 엄마를 질투하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지 고민인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자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간간히 발산하며 아주 재미있게 스님과 문답을 주고 받았습니다.nbspnbspnbsp“저는 행복을 찾기가 참으로 힘들었어요. 나이가 환갑인데 올해에야 두려움을 떨치고 ‘야, 나는 정말 행복해’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걸 보고 첫째 아들은 ‘엄마가 너무 멋있어’ 이렇게 생각해주는데, 둘째 아들은 ‘엄마가 행복한 게 미워. 엄마는 엄마만 바라보고 갔잖아’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너도 너를 바라봐. 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래도 둘째는 제 행복을 약간 질투합니다. 둘째 아이가 ‘엄마는 지금 내가 힘든 걸 모르고 엄마만 행복하잖아’라고 하기에 제가 ‘그러면 내가 너한테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하냐? 나도 진실이고 너도 진실인데.’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행복하고 자기는 행복하지 않다고 자꾸 이야기합니다. 애들 아버지 영향인가 싶기도 해요. 남편이 둘째 아들과 성향이 비슷하고 큰아들과 제가 성향이 비슷하거든요.nbsp그래서 제가 이 아이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미안해. 나는 그 동안 살아오면서 정말 불행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날 자꾸 찾다보니까 행복해질 수 있었다’라고 해야 할까요? 아이들에게 피해 안 주고 제가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스님 책 보면서 힘들게 찾은 행복이거든요. 둘째가 술 마실 때마다 ‘엄마는 왜 혼자 행복하냐?’ 이렇게 이야기하면 저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해요?”nbsp“둘째 아들이 엄마가 행복한 걸 보고 질투심이 난다고 하는데 이럴 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느냐는 말이죠?”nbsp“예.”nbsp“간단해요. ‘아이고, 미안해’ 하면 됩니다.”nbspnbsp“미안하다고 했는데 조금 있다 또 이야기하고 조금 있다 또 이야기해서요.”nbsp“그 이상 말을 하려니까 복잡하죠. 아이가 뭐라고 해도 그냥 ‘미안해’ 이러면 돼요. ‘아이고, 내가 너보다 행복해서 미안해’라고요. ‘미안해’라고 하면 아들이 뭐라고 하는데요?”nbsp“조금 있다가 또 이야기해요. 술 마시면 항상 그래요. 조금 있다 또 하고, 또 하고, 자꾸 그러니까 힘들어요.”nbsp“술 마시고 이야기하든 뭐라고 이야기하든 똑같이 대답하면 돼요. 어떤 사람이 자꾸 ‘너는 잘났고, 나는 너보다 못났다’라며 시비를 걸면 ‘아이고, 내가 너보다 잘나서 미안해’라고 하면 됩니다. ‘너는 재산이 많고 나는 재산이 적다’라며 자꾸 이야기하면 ‘아이고, 재산이 많아서 미안해’라고 하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상대가 남편이든 자식이든 이웃사람이든 그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데 질문자는 별로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데요.”nbspnbsp“아뇨, 행복해요. 얼마나 행복한데요. 하하하.”nbsp“재산을 예로 들어볼게요. 내가 10억이 있다고 꼭 부자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1억 가진 사람이 보면 부자지만 100억 가진 사람이 보면 가난뱅이예요. 그것처럼 자식이 보기에는 엄마가 자기보다 행복해 보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아이고, 내가 너보다 행복하다고? 네가 보기에 그렇다고 하니까 엄마는 듣기 좋네. 고맙다. 그러나 미안하다.’ 이렇게 엄마가 행복하다고 해주니까 듣기 좋다고 말해주세요. ‘그래, 난 행복하다. 어쩔래?’ 이러지 말고요.nbspnbsp‘엄마도 힘들 때가 있다. 그러나 네가 보기에 엄마가 행복해 보인다니 참 다행이다. 그리고 네가 그런 엄마를 보고 질투한다니 내가 좀 미안하다. 나눠줄 수 있으면 나눠주고 싶은데 나눠줄 방법을 모르겠다. 네가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거라.’ 이러면 돼요.”nbsp“저도 행복을 줄 수 있으면 주고 싶어요. 그런데 아들은 행복하려는 노력을 하나도 안 했잖아요.”nbsp“그렇게 따지니까 싸우죠.”nbspnbsp“그러네요. 대놓고 따지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따지고 싶었죠.”nbsp“꼭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런 생각을 하니까 자꾸 번뇌가 되는 거예요. 아들은 아들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 건데 그걸 두고 ‘너는 안 했다’ 이러지 마세요.nbsp언젠가 어떤 대학생이 자기 고민을 이야기하고 저한테 이렇게 물었어요.nbsp‘어떻게 하면 스님처럼 그렇게 지혜롭게 될 수 있습니까?’‘너가 보기에는 내가 지혜롭게 보이니?’‘네.’‘그래? 고생 좀 하면 되는데 한번 해볼래?’‘어떤 고생이요?’‘고문도 한번 당해보고, 죽을 고비도 넘겨보고, 단식도 한 70일 해보고, 이렇게 고생을 많이 하면 조금 도움이 될 텐데 한번 해볼래?’nbsp그랬더니 ‘아니요, 저는 안 할래요’ 이래요. 이렇게 대화를 해보세요.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그런 질문을 한다고 기분 나빠할 것도 없어요.nbspnbspnbsp스님이 네 가지를 이야기했어요. 첫째, 네 보기에 내가 행복해 보인다니까 다행이다. 좋게 봐줘서 고맙다. 둘째, 엄마인 내가 자식인 너보다 행복해서 미안하다. 셋째, 나눠주고 싶지만 나눠줄 방법을 내가 모르겠다. 넷째, 네가 가져가려면 마음대로 얼마든지 가져가라. 엄마는 챙기지 않을게. 나는 주고 싶어도 줄 방법을 모르니 네가 알아서 가져가려면 가져가거라.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너는 고생도 안 하고 공짜로 먹으려고 드냐? 엄마는 얼마나 노력해서 행복을 얻었는데’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말라니까요.”nbsp“그런 이야기는 안 했어요. 생각만 했어요. 그래서 지혜로운 대답이 뭘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던 거죠.”nbsp“말이 생각이 안 나면 ‘엄마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하면 돼요. 가장 진실한 말은 솔직한 것입니다. 질문을 했는데 답을 모르겠다면 ‘아이고, 나는 모르겠다’ 이게 진실이에요. 제 말 이해하셨어요?”nbsp“네.”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저한테 와서 묻고 그 대답을 외워가서 이야기해 주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머리가 복잡하죠. 모르면 그냥 ‘아이고, 엄마도 모르겠다’ 이러면 돼요. ‘엄마, 나 결혼해야 돼요? 말아야 돼요?’ 이러면 ‘나도 잘 모르겠다’라고 하면 돼요. 답을 알면 ‘하면 좋지’ 이러면 되고, 모르면 ‘아이고, 나도 잘 모르겠다’라고 하면 됩니다. 남자를 데려와서 ‘이 남자 어때?’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알면 이야기하고 모르면 ‘아이고, 내가 남자 볼 줄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래도 또 물으면 ‘내가 남자를 그리 잘 보면 네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났겠니?’ 이러면 돼요.nbspnbspnbsp내가 내 남편도 못 골라서 지금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어떻게 딸 남편감을 보는 눈이 있겠어요? 그러니 아무리 와서 물어도 모른다고 해야 하는데, ‘키가 작아서 안 된다’, ‘종교가 달라서 안 된다’, ‘외국인이어서 안 된다’ 하면서 자기 인생도 못 사는 주제에 온갖 것에 간섭을 하려니까 머리가 아픈 거예요. 자기가 모르니까 점쟁이한테 물어봤다가 그래도 안 되면 저한테까지 와서 물어봅니다. ‘딸이 이렇게 묻는데 제가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라고요.nbspnbsp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되지 그걸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해요? 아이가 물었는데 답을 모르겠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는 거예요. 알면 아는 대로 이야기하고요. ‘나는 고생해서 얻었는데 너는 고생도 안 하고 얻으려 드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대가 기분 나쁘잖아요. 그러니까 ‘아, 네가 보기에 좋아 보이니? 다행이다’라고 받아주면 됩니다. 아름답다는 말이 칭찬이듯이 행복해 보인다는 건 어쨌든 칭찬해주는 말이잖아요. ‘엄마는 행복하네요’라고 하면 ‘고맙다’라고 받으세요. 그런데 부모자식 사이에 엄마는 행복하고 자식은 안 행복하다니까 조금 미안하잖아요. ‘미안하다. 주고 싶은데 나는 줄 방법을 모르겠다. 네가 가져갈 수 있거든 다 가져가도 엄마는 괜찮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죠.”nbsp“네. 감사합니다.”nbspnbsp질문자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 소리를 또한번 내며 감사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스님의 시원스런 답변에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총 6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충격적 고백을 들었다며 어떻게 해야하는지 묻는 여성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자기 딸이 걱정되는데 엄마로서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묻는 분, 죽은 남편을 위해서 49재 기도를 하고 있는데 희한한 현상이 일어났다며 직접 사진까지 가져와 보여주는 분, 눈 앞에 불이 번쩍번쩍하고 귀에 환청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불교의 인연법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분이 있었는데, 스님은 각각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강연은 2시간 30분 동안이나 계속 됐습니다. 비록 내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스님과 질문자의 대화를 듣다보면 어느새 내 이야기가 되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nbsp마칠 시간이 되자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질문자들이 문답을 통해 조금 더 행복해지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었듯이 스님은 우리들도 누구나 행복할 수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남편이 죽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자식이 죽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파산을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병이 들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여자로 태어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얼굴이 검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신체장애가 있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종교가 어떻든 피부 빛깔이 어떻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 수가 있어요. 이것이 ‘불성이 있다’, 다시 말해 ‘부처가 될 소질이 있다’는 말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 우리는 어떤 이유를 대고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다. 남편이 죽어서, 자식이 죽어서, 돈이 없어서, 늙어서, 신체장애가 있어서 등등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나는 괴롭다, 나는 괴롭다’라고 해요. 이것은 괴롭게 살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괴롭게 살고 싶으면 그냥 그렇게 사세요. 그런데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자기는 이미 행복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조건을 붙이지 마세요. 그래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nbspnbsp‘이것만 이루어지면 나는 행복하겠다’라고 하면 죽을 때까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옛날에 길 가다 보면 ‘때려주세요’라고 써 붙여놓은 두더지 잡기 게임기 알죠? 이걸 때리면 저게 튀어나오고, 저걸 때리면 이게 튀어나오고, 자식문제를 해결하면 남편문제가 튀어나오고, 남편 문제를 해결하면 돈문제가 튀어 나오고, 돈문제를 해결하면 병이 나고, 병을 치료하면 또 다른 뭐가 튀어나옵니다. 머리 하얀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물어보세요. 나이 든다고 해결이 됩디까? 갈수록 일이 더 복잡해져요.nbspnbsp그러니까 지금 행복해야 해요. ‘내일 행복할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선거 하는 사람이 ‘당선되면 행복할 거다’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선거하는 과정 자체가 행복하고 재미있어야 해요. 아이들은 공부하는 게 재미있어야 합니다. 어른은 일하는 게 재미있어야 해요.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바람피운 남편을 어떻게 다스릴까’ 이걸 오늘부터 연구하면 재미있어요. 이 인간의 행동거지를 가만히 관찰하면서 양다리 걸치는 심리를 연구해보면 재미있어요. ‘이 인간이 16년이나 나하고 살았는데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어릴 때 뭐가 부족해서 이리 되었을까?’ 그걸 오늘부터 연구해 봐요. 연구하다가 잘 안 되면 상대 여자를 만나보고 인터뷰도 해봐야 해요.nbspnbspnbsp이것은 좋은 연구 대상에요. ‘내 남자를 데려간 여자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게 자꾸 연구해보면 나중에 ‘아, 인간 심리가 이래서 이런 일이 벌어졌구나’ 이렇게 결론을 얻을 수가 있는데 그게 재미입니다. ‘하나님이 해결해주세요’, ‘저 여자 죽여주세요’ 이게 재미가 아니에요. 그러면 그 여자가 죽을 때까지 매달려 살아야 하고,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매달려 살아야 해요. 왜 내 인생을 그렇게 낭비합니까? 나는 지금부터 행복할 수가 있어요.nbspnbsp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할 수가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스님만 부처가 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머리 깎는다고 부처가 될 수 있다면 이발소만 갔다 오면 되고, 이런 옷 입었다고 부처가 될 수 있다면 옷만 한 벌 맞춰 입으면 되게요? 아니에요. 부처가 되는 것, 행복해지는 것은 그런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여러분들 스스로 ‘내가 행복할 권리가 있고, 나는 행복할 수가 있다’ 이 믿음을 가지시고 행복하셔야 해요.nbspnbspnbsp자꾸 조건을 붙이면 죽을 때까지 행복하지 못합니다. 남편이 죽었다고 슬퍼하고만 있으면 안 돼요. 같이 잘 살다가 돌아가셨으니까 ‘안녕히 가세요’ 하고, 혼자 사는 게 외로우면 남자친구를 사귀면 되고, 그냥 혼자 살아도 됩니다. ‘스님은 평생 혼자 사는데 나는 그래도 남자랑 같이 살아봤잖아. 그런데 굳이 또 둘이 살 게 뭐 있나?’ 하면 혼자 살아도 돼요. 둘이서도 한번 살아봤고 혼자서도 한번 살아보니까 혼자밖에 못 살아본 저보다 이익이잖아요. 그런데 슬퍼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이유를 자꾸 만들어서 슬퍼하는 거예요. 그러지 말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오랜 시간 선 채로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로 화답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이 끝나고 스님의 책 ‘행복’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많은 분들에 ‘눈 좀 맞춰봐라’라고 하면서 웃음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어떤 분은 “스님을 직접 보니 너무 너무 행복하다”며 어쩔 줄 몰라하기도 했습니다. 김천시민들은 스님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일년에 한 번 뿐이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주관한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이 봉사자들에게 “어디에서 왔어요?”라고 묻자 봉사자들은 큰 목소리로 “김천이요”, “왜관이요.”, “구미요”, “상주요”라며 조금이라도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스님과 한 번의 눈맞춤으로도 봉사자들은 그동안의 수고로움이 녹아나는 듯 하다며 좋아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저녁 강연을 하기 위해 천안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부터는 천안시청 봉서홀에서 천안 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5.04. 86,056 읽음 댓글 31개

2016.5.1 (오후) 정토회 저녁부, 청년부 자원활동가 봄나들이

nbsp안녕하세요? 새벽에 있었던 경전반 특강수련에 이어서 아침 10시부터는 정토회 저녁부와 청년부에서 모둠장 소임을 맡고 있거나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240여 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대야산 용추계곡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nbspnbsp전국에서 새벽부터 출발한 자원활동가들은 아침 10시 무렵에 용추계곡 주차장에 모두 도착했습니다. 반갑게 인사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스님도 주차장에 도착하고 곧바로 입재식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약간 흐리고 쌀쌀한 듯했지만 입재식과 함께 나들이가 시작되자 해가 들며 날씨가 포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인사말에서 “오늘 나들이의 핵심은 친목도모, 봄소풍, 그리고 경치를 충분히 즐기는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간단하게 일정도 알려주었는데, 용추계곡을 따라 월영대까지 올라갔다가 선유동 계곡으로 내려와 점심을 먹고 스님의 법문을 듣는 일정이었습니다. 용추폭포가 볼 만하다는 스님 말씀에 기대가 되기도 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산행할 때 피곤한 기척을 보이는 사람은 평소에 108배를 안 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며 눈치를 주었는데, 대중들은 스님에게 들킬까봐 살짝 긴장하는 듯 하면서도 웃으면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nbspnbspnbspnbsp도시와 사무실을 벗어나 연두빛 산 속에서 푹신한 흙길을 걸으니 자연과 하나가 되는 듯했습니다. 산길을 걸으면서도 수신기를 통해 스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오늘도 스님의 연달래에 대한 사랑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연달래와 진달래, 그리고 철쭉에 대해 설명해 주었는데, 특히 연달래는 먹지 못하기 때문에 개꽃이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용추 계곡에 들어서자 절로 탄성이 나오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들어더니 널찍한 바위 사이로 흐르는 옥빛의 맑은 물은 영롱하게 반짝이기까지 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사진도 찍고 물놀이도 하면서 올라오니 금세 월영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다리가 아프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은 곧바로 내려오고, 컨디션이 괜찮은 사람은 월영대를 한 바퀴 둘러보고 오라고 하셨는데, 대중을 세심하게 살피는 스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참 좋았습니다.nbspnbsp월영대를 한바퀴 둘러보고 선유동 계곡으로 내려오니, 계곡 옆으로 돗자리를 펴고 밥을 먹을 수 있는 널찍한 바위가 보였습니다. 대중은 삼삼오오 모여 집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을 하나 둘씩 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nbspnbsp점심을 먹고난 후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법문을 시작하기 전, 스님이 “점심식사 후 식곤증을 없애기 위해 대중들에게 노래를 보시할 사람은 나오세요.”하니 여러 사람이 나와서 준비한 율동을 선보였고, 어떤 활동가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었고, 대학생들은 7월에 있을 필리핀 선재수련을 홍보하며 ‘사랑의 배터리’ 노래를 깜찍한 율동과 함께 보여주었습니다. 선유동 계곡이 스님과 대중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습니다.nbspnbsp한 차례 여흥을 즐긴 후에는 명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죽비 삼성이 울리자 스님이 고요한 목소리로 명상하는 방법을 안내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눈을 지긋이 감고,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합니다. 내가 물소리를 듣지 말고 내가 물이 되어 졸졸 흘러가고, 내가 바람을 맞지 말고 내가 바람이 되어 불어 봅니다. 내가 바위 위에 앉아 있지 말고 내가 바위가 되어 가만히 있어 봅니다.nbspnbsp그리고 코구멍 끝에서 들락날락 하는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려 봅니다. 숨이 들어가면 들어가는 줄을 알아차리고, 숨이 나가면 나가는 줄을 알아차립니다. 그냥 알아차리지 알아차리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모든 긴장과 애씀을 내려놓고 그저 편안히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혼침에 떨어지지 말고, 이런 저런 과거의 생각에 골똘히 빠지지 말고, 오직 호흡에 깨어 있고, 물소리, 바람소리에 깨어 있어 봅니다.”nbspnbspnbsp한참 시간이 지났을까 싶을 무렵 다시 죽비 삼성이 울렸습니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nbspnbsp드디어 본격적으로 활동가들이 스님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많은 분들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서 사업에 실패한 뒤 가족에게 미안하고 스스로도 의욕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남자분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중 일부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23년 동안 사업을 해오다가 얼마 전에 파산을 했습니다. 직원들도 많이 거느리고 있었고 잘 나가는 중소기업이었는데, 남들이 안 하는 블루오션 아이템을 한번 개발해보려고 도전했다가 성공을 하긴 했지만 판매권을 잘못 넘겨주는 바람에 폐업신고를 하고 파산을 해야 했습니다. 남은 공장 설비들을 대기업에서 인수해 가려고 여러 차례 접근해 왔는데,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빈번이 취소가 되니까 더 힘들었습니다.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느라 그동안 벌어놓은 30억원도 다 까먹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되니까 첫째,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둘째, 다른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이제는 자신이 없습니다. 세 가지 아이템을 개발했는데 비록 한 가지 아이템은 망했지만, 나머지 두 가지 아이템은 아직 가능성이 있거든요. 계약하는 기업들을 믿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자신감이 없으니까 요즘에는 ‘나만 없어지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족이 있기 때문에 겨우 버티고 있거든요. 어떻게 하면 제가 다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가족들에게도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요?” nbspnbsp“혹시 정토회에서 하는 깨달음의장에 다녀오셨어요?”nbspnbsp“6월에 다녀오기로 신청해 두었습니다.”nbsp“깨달음의장에 다녀오시면 좋아질 거에요. 지금 생각에는 내가 죽어버리면 다 해결될 것 같은데, 그것이 바로 사로잡혀 있는 상태입니다. 만약 질문자가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아무 일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이 지팡이 하나에 너무 집착을 하게 되면 지팡이 하나 잃어버렸다고 죽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질문자는 지금 그 일에 너무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nbspnbspnbsp그러나 집착을 딱 놓고 평상심으로 돌아오면 아무 일도 아니에요. 20년 사업하다가 그만두든, 50년 사업하다가 그만두든, 100년 사업하다가 그만두든, 햇수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다만 햇수가 많으면 그만큼 집착이 강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도 큰 충격이었겠지만 세월호 사고로 아들딸 죽은 것과 비교하면 그 분들은 더 큰 충격을 겪었고, 이 자리에 남편이 죽은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 또한 자녀가 죽은 분의 고통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더 큰 시각으로 이 지구 전체를 내려다보면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은 바다에 물결이 치는 것에 불과해요. 그것처럼 질문자가 20여 년 동안 중소기업 운영하다가 망한 것 때문에 죽을 생각을 했다면, 대기업 하다가 망한 사람은 자살을 열두 번도 더 해야될 것 아니겠어요?nbspnbsp그러니까 지금 그런 심리 상태는 어떤 것에 너무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에요. 우선 내가 삶을 기쁘게 살아야 새로운 아이템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지 내가 곧 죽을 것처럼 살고 있는데 새로운 아이템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질문자가 지금 얼마나 어리석냐 하면, 그러면서 가족은 왜 또 걱정을 해요? 그건 가족한테 물어보면 되잖아요. ‘내가 파산을 했는데 내가 죽는 게 낫느냐? 그래도 살아 있는게 낫느냐?’ 이렇게 물어보고 ‘죽는 게 낫다’고 하면 죽고, ‘살아있는 게 낫다’고 하면 살면 되지요. 정말로 가족을 중심에 둔다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겁니다.nbspnbsp내가 죽어도 살아있는 가족들이야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살겠지요. 다만 내가 나를 못이겨서 죽는 것이죠. 죽으려고 하는 사람이 살아있는 가족들까지 걱정하면 못 죽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가족들 걱정하는 것을 보니 질문자는 못 죽을 것 같아요. 죽는 사람은 살아있는 가족들 걱정을 전혀 안 하기 때문에 죽을 수 있는 것이거든요.nbspnbspnbsp그런데 내가 죽는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나요? 교통사고가 나서 죽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나를 못 이겨서 죽는 건 집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대학시험에 떨어져서 죽고, 어떤 사람은 연애에 실패해서 죽고, 어떤 사람은 이혼해서 죽고,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해고가 되어서 죽고, 어떤 사람은 사업에 실패해서 죽었다고 할 때 그 사람들 나름대로는 다 이유가 있어서 죽었다고 하지만, 남들이 볼 때는 ‘그게 무슨 죽을 일이냐?’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 차이는 뭘까요? ‘그게 무슨 죽을 일이냐?’ 할 수 있는 건 집착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고, 죽을려고 하는 사람은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nbspnbsp그래서 질문자도 어느 순간 집착을 탁 놓아버리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됩니다. 20년 넘게 해오던 사업을 문 닫은 것이 아무 일도 아닌 게 될 수 있어요. 혹시 사채가 많아요?”nbsp“사채는 없습니다.”nbsp“사채가 없으면 더 걱정할 것 없어요. 내가 돈을 챙기고 파산을 하면 욕을 얻어 먹지만, 내가 돈이 없어서 파산을 하면 법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내가 아무리 빚을 많이 졌다고 하더라도 팬티만 딱 입고 ‘다 가져가라’ 하면 아무런 죄가 안 돼요. 내가 갖고 있으면서 남에게 안 주면 죄가 되지만요. 그래서 첫째, 파산했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nbspnbspnbsp둘째, 질문자는 스무살 때 돈도 없고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도 이 사업을 일으켰던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 나이에 질문자가 가진 경험 정도면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해서 스무살 때보다 못할 이유가 뭐가 있나요? 인맥으로나 경험으로나 모든 면에서 스무살 때보다 훨씬 나은 조건이잖아요. 다만 스무살 때는 없는 데서 시작했기 때문에 열심히 했고, 지금은 자꾸 옛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나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할 의욕이 없어진 겁니다.nbspnbsp대기업과 계약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팔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비싸게 팔고 싶은 겁니다. 그게 나쁜 게 아니에요. 모든 사람의 심리가 팔 때는 비싸게 팔고 싶습니다. 반대로 사는 사람은 가능한 싸게 사고 싶어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더군다나 부도가 났다거나 상대가 약점을 갖고 있으면 더 깎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것을 나쁘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누구나 사고 팔 때는 심리가 그렇다는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nbspnbsp또 가족한테 미안할 것도 크게 없어요. 질문자가 그동안 사업을 잘 했기 때문에 아내도 마나님 소리 들으면서 한 번 살아볼 수 있었잖아요. 이 자리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마나님 소리 못 들어본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아내한테 그래도 마나님 소리 한번 들어보게 해줬으면 됐지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요?nbspnbspnbsp아내가 뭐라 뭐라 그러면 ‘알았다. 그래도 내 덕분에 마나님 소리 들으면서 한번 살아봤잖아. 그러면 됐지 않아? 그렇다고 지금 어떻게 할 수 없잖아’ 이렇게 당당하게 얘기 하세요. 이사갈 때 버리고 가면 그냥 혼자 살면 돼요.nbspnbsp안 그러면 정토회로 오세요. 몸도 건강해 보이고, 그 정도 경험 있으면 톱질도 할 줄 알고, 낫질도 할 줄 알고, 땅도 좀 팔 줄 알 것 아니에요? 저랑 같이 인도에 갈래요? 학교도 지어야 하고, 마을 개발도 해야 하고, 지금 할 일이 천지예요. 그래서 당신 같이 멀쩡한 사람이 죽는다고 하니까 저는 너무 아까워요. 그 몸 그냥 갖다 버릴 바에야 차라리 저를 주세요.nbspnbsp왜 쓸데 없는 곳에 갖다 버릴려고 그래요? 저에게 주면 쓸 곳이 천지예요. 앞으로도 한 20년은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옛날에는 이랬는데...’ 하면서 이미 지나가버린 일을 자꾸 생각하는 것은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격이에요. 탁 털고 일어나세요.nbspnbsp부도난 회사를 처분하는 문제도 그래요. 물론 옛날에 회사가 잘 나갈 때는 값이 잘 나갔겠죠. 그러나 일단 부도가 났다 하면 싸게 사려고 하지 비싸게 사려고 하지 않거든요. 자꾸 ‘옛날에 이게 얼마였는데...’ 이 생각을 하면 절대 못 팝니다. 그냥 갖다 버리느니 적절하게 요령껏 팔고, 계약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죽는다면서 상심하지 말고 다시 다른 곳을 물색해서 다시 계약을 시도해 봐야죠. 어차피 부도 나서 갖다 버려야 할 건데 다만 얼마라도 건지면 낫잖아요. 그냥 저한테 줄래요? 제가 적당하게 팔아 쓸게요.nbspnbspnbsp그런 심리를 갖고 있으니까 사업에 실패하지요. 사업하는 사람이 자기 욕심대로 안 된다고 죽어버리겠다고 하고 그러면 안 돼요. 100만원을 빌려줬으면 당연히 이자까지 쳐서 110만원을 돌려받아야 마땅하지만 때로는 상대가 원금도 못 갚는 상황이 될 수가 있는 거에요. 이 때 대부분 욕하고 말아버리는데 그러면 안 돼요. 욕도 하지 말고 계속 받으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줄 돈이 정말 없는 사람이면 받으러 가지 말아야 해요. 가봤자 소득이 없어요. 그러나 돈이 있는 사람이면 계속 받으러 가야 돼요. 이 때도 십만원만 주면 대부분 ‘내가 이거 받으려고 여기까지 왔나?’ 하고 화를 내고 말아버리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일단 십만원을 받고 또 달라고 해야 됩니다.nbspnbsp그러니까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사업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지금 남은 것만 잘 정리해도 돈이 좀 될 겁니다. 그걸 왜 버려요? 제가 아는 한 사람은 형님이 수백억 원을 가진 자산가였는데 자살을 했어요. 그 이유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이 폭락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형님이 자살을 했으니까 그 동생이 형님의 남은 유산을 정리했는데 25억원이나 되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25억원을 놓아두고 자살을 한 겁니다. 여러분 같으면 그 정도 돈이 있는데 자살을 하겠어요?nbspnbspnbsp질문자도 그와 똑같아요. 서울역에 있는 노숙자들도 다 이런 상태입니다. 한 때는 대기업 임원이든 식당 주인이든 한 자리 했던 사람들이 거기에 다 누워 있어요. 자기 뜻대로 안 되니까 괴로워 하면서, 그렇다고 막노동을 할 수도 없고, 가족들 보기에는 민망하고, 그래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술만 마시다 보니 알코올 중독이 되어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깨달음의장에 먼저 다녀오시고,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니다’ 이렇게 받아들이셔야 해요.nbspnbsp‘스님은 안 겪어 봤으니까 그런 소리 하지’라고 말할 수 있는데, 네 맞아요. 저는 안 겪어봐서 아무런 집착이 없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에요. 질문자는 겪어본 것이 뭐 큰 자랑인 줄 아세요? 겪어보고 남은 건 집착 밖에 없잖아요. 그래놓고 괜히 아까운 목숨만 버리려고 하잖아요. 한 번만 더 그런 생각을 하면 마누라한테 사인 받아서 저한테로 넘겨 주세요. 제가 아주 좋은 곳에 사용해 드릴게요.”nbspnbsp스님의 시원한 대답에 질문자도 얼굴이 밝아지고 대중들의 마음도 함께 가벼워졌습니다. 마지막에 질문자가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자 대중들도 질문한 분을 격려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문답이 오가는 사이에는 중간 중간 질문자들의 노래도 들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2시간 3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주 재미가 있었습니다.nbspnbsp오늘 봄나들이에 참석한 대중들은 대부분 모둠장 소임을 맡고 있는 분들이었는데, 스님은 정토회가 모둠 활동을 시작하게 된 취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모둠장들의 노고에 대해 특별히 격려 말씀을 더 해주었습니다.nbspnbsp“정토행자는 끊임없이 연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주로 마음 공부와 수행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마음 공부와 수행이 된 여러분들은 이제 사회 각계 각층으로 나아가서, 정토회가 관심을 갖는 분야와 안 갖는 분야까지 포함해서, 계속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개선책을 마련해 나가야 합니다.nbspnbspnbsp지금 먹거리 문제가 많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저는 통일문제만 좀 해결되면 농사일과 허물어진 농촌공동체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를 해보고 싶어요. 왜 웃어요? 통일문제가 해결 안될 것 같아서요?nbspnbsp이렇듯 여러분들도 여러분에게 주어진 일을 조금씩 조금씩 개선해 나가면서 아이디어도 내고 새로운 길을 계속 만들어 나가야 해요. 이것을 ‘생활의 지혜’라고 해요.nbspnbsp이 때 다중의 지혜가 굉장한 힘을 발휘합니다. 어떤 천재 한 명의 지혜보다 범부들 100명의 지혜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범부들이 그냥 힘들어 죽겠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조금씩 소통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자꾸 공유하면 굉장한 힘을 발휘할 수가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그렇게 발전해 온 것이지 천재들에 의해서만 발전해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 때에 ‘똑똑한 한 명이 만 명을 먹여살린다’, ‘일류 기업 하나가 온 국민을 먹여 살린다’ 하면서 1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그 결과 빈부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는 쪽으로 나아가게 된 겁니다.nbspnbspnbsp그래서 덜 똑똑한 우리들은 어떤 천재를 하나 만들려고 하기 보다는 다중의 지혜를 자꾸 공유해 나가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덜 똑똑한 100명이 천재 1명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노력들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정토회가 하고자 하는 ‘대중주체 운동’입니다. 역사의 주체는 대중이지 한 명의 영웅이 아닙니다.nbspnbsp저의 목표는 몇 명의 스님을 깨닫게 해서 도인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나중에 얼마나 효과가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처럼 고통받는 다수 대중들이 점점 의식이 깨어나서 역사의 주인, 사회의 주인, 수행의 주체로 올라가도록 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몇 명의 훌륭한 승려들이 나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면 영웅 몇 사람 만드는 것으로 끝나고, 여러분들은 죽을 때까지 영웅의 노예 생활만 해야 된단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훌륭한 스님들 뒷바라지만 하다가 끝나고요. 그렇기 때문에 정토회가 표방하는 ‘대중주체’ 정신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그런 관점을 갖고 모둠 활동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nbsp모둠을 만든 이유는 종적인 조직이 아니라 횡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수행의 주체가 되고, 우리가 전법의 주체가 되고, 우리가 사회실천 활동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그 주체 단위를 모둠으로 하고자 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들도 활동하기가 좀 벅찰 거예요. 내 살기도 바쁜 사람들을 모아놓고 ‘수행해라’, ‘전법해라’, ‘사회실천 해라’, ‘법당운영 해라’ 하니까 힘들다고 말하는 게 이해는 됩니다. 그런데 그 수준을 한꺼번에 높이려고 하면 부담스럽지만, 그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모둠 활동이 나온 것이라고 이해하고 한 발 한 발 나아간다는 자세를 가지면 할 만 합니다. 그렇게 모둠 활동을 해나가면서 개발한 아이디어들을 계속 서로 공유하고, 영역을 확대시켜 나가고, 시행착오 한 것들은 계속 개선해 나가면, 앞으로 12년만 지나면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nbspnbspnbsp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반드시 성공한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이렇게 해보니까 ‘이 방법은 대중의 정서에 안 맞다’라고 결론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여러분들은 ‘실패했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는 ‘이건 아니다’라고 결론이 난 것도 굉장히 성공한 케이스라고 봅니다. 앞으로는 이 방법을 안 써도 되니까 굉장히 좋은 경험을 한 겁니다. 여러분들은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저는 제가 몸이 아픈 것도 저에게 굉장히 은혜라고 생각해요. 몸이 아픔으로 해서 다음에는 어떻게 몸관리를 하면 되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잖아요. 실패는 늘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그렇게 항상 연구하는 자세를 가지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nbsp이렇게 격려를 해준 후 마지막으로 스님은 다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자 누군가가 “스님이 불러주세요” 하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하며 운을 띄웠습니다. 덩달아서 모든 대중이 다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nbspnbsp사홍서원을 끝으로 회향식까지 모두 마친 후, 스님은 세 가지 당부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 수고하셨습니다. 세 가지만 얘기할게요. 첫째, 개인은 어떤 상황에서든 행복하게 사셔야 해요. 스님의 가장 큰 장점은 행복하게 산다는 겁니다.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보다 행복하게, 혼자 사는데도 불구하고 결혼한 사람보다 행복하게 살잖아요. 그러니 어떤 이유를 붙여서 자기를 불행하게 만들지 말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행복하셔야 해요.nbspnbspnbsp둘째, 우리가 이 좋은 법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게 된 이것을 주위에도 많이 전해서 대한민국의 국민 행복도를 좀 높입시다. 국민 행복도가 세계 117위가 뭐예요? 한 30위 쯤으로는 올라와야 되지 않나 싶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nbspnbsp셋째, 대한민국을 좀 괜찮은 나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맨날 일본 욕하고, 미국 욕하고, 북한 욕하고, 중국 욕하고, 이렇게 남탓 하지 말고 우리가 좀 책임감을 가지고 국민 통합도 하고, 남북통일도 하고, 일본과 중국이 싸우면 서로 화해도 시켜주고 합시다. 배달의 후손으로서 우리 역사상 몇 천년 만에 좀 괜찮은 나라가 되도록 한번 만들어보자는 겁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작게나마 역할을 하셔야 합니다. 아셨죠? 그런 원을 세우면서 헤어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스님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은 뒤 오늘의 나들이를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nbsp대중들이 길을 잘 모르자 스님은 신발끈을 고쳐매고 앞장 서서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내려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은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악수를 건네며 대중들을 배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대중이 탑승한 버스가 모두 출발하자 스님은 행사를 준비한 스텝들을 격려해 준 후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5.03. 150,734 읽음 댓글 63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