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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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21 (오전) 해운대 즉문즉설 강연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산시 수영구 민락동에 위치한 부산MBC 삼주아트홀에서 부산 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어제 저녁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니 더 강한 빗줄기와 바람까지 동반해서 행사를 준비하는 봉사자들은 내심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봉사자들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연장 주변의 영산홍과 철쭉은 봄의 절정을 향해 그 예쁜 빛을 한껏 뽐내며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고 있었구요.nbspnbsp아직 강연 시작하기도 전인 9시부터 강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단비와 같은 법문을 들으려는 사람들의 열기가 참 대단하다 싶었습니다.nbspnbsp강연 시작 30분 전부터 구름같이 몰려오는 청중들로 인해, 강연장은 이미 좌석을 가득 메우고도 자리가 모자랄 정도였습니다. 소개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900여 명의 청중들은 가뭄에 단비를 반기는 듯 환호와 박수로 스님을 맞이합니다.nbspnbsp스님은 비가 오는데도 많은 분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날씨 이야기와 함께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봄비가 오니까 좋지요?”nbsp“예.”nbsp“이렇게 봄비가 오는 날은 뭐하면 제일 좋을까요? 여러분들은 커피집에 앉아서 커피 마시는 것이 좋죠? 저는 아니에요. 봄비가 올 때는 고추모종이든 배추모종이든 모종을 내는 게 제일 좋아요. 저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비가 오기에 ‘야, 오늘은 모종을 내면 좋겠다’ 싶었어요. 이번 봄에는 밭에 여러 가지 채소를 심었는데, 어떤 데는 소복소복 나고, 어떤 데는 듬성듬성 났어요. 그래서 오늘은 그걸 전부 고르게 했어요. 아직 모종이 작으니까 소복소복 난 데서 모종을 뽑아서 볼펜 같은 걸로 땅에 구멍을 뚫어서 아까 뽑은 걸 쏙쏙 집어넣었어요. 비오는 날은 모종을 아무렇게나 심어놓아도 잘 살거든요. 그런 생각 안 해 봤죠?nbspnbspnbsp이렇게 사람은 다 다릅니다. 저처럼 농사짓는 사람은 비오는 날에는 모종을 내고, 맑은 날에는 비료를 칩니다. 그런데 농사를 잘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은 ‘오늘 모종 내려했는데 날이 맑다’고 nbsp불평하고, ‘비료 치려는데 비가 온다’고 불평합니다. 그렇게 날씨 탓하면서 농사 못 지어먹겠다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리 모종 낼 준비도 해 놓고, 비료 칠 준비도 해 놨다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비가 오면 모종을 내고, 맑으면 비료를 칩니다. ‘비야, 오려면 와라. 맑으려면 맑아라’ 하는 식으로 날씨가 어떻더라도 좋습니다. 비도 가끔 와야 농사가 잘 되고, 또 맑기도 해야 농사가 잘 되잖아요. 그런데 그게 내 입맛에 딱 맞게 되진 않습니다. 그저 나는 형편대로 준비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 똑같이 촌에 살면서도 한 사람은 신경질 내면서 살고, 한 사람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살게 되는 겁니다.nbspnbsp우리 인생살이도 똑같아요. 여러분들은 늘 ‘남편이 이래서 문제다’, ‘시어머니가 저래서 문제다’, ‘애가 이래서 문제다’, ‘회사가 저래서 문제다’라고 하지요. 좀 있다가 질문자들 하는 얘기 들어보세요. 다 그런 얘기일 거예요.nbspnbsp그런데 생각을 조금 달리 해보면 어떨까요. 인생의 행복은 재물을 많이 모으고, 출세를 하고, 인기가 높다고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행복할 수 있다면 부처님께서 왜 출가를 하셨겠어요? 그냥 왕자로서 사셨겠지요. 그게 아니기 때문에 출가를 하셔서 이 길을 발견하신 거거든요. 그러니까 스님이 꼭 돼야 행복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생각해 보세요. 머리 깎는다고 해탈할 수 있을까요? 그럼 이발소만 다녀오면 누구나 다 해탈할 수 있게요?nbspnbspnbsp승복을 입는다고 해탈할 수 있을까요? 그럼 옷만 맞춰 입으면 되잖아요. 이런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결혼을 했든 안 했든, 고기를 먹든 안 먹든, 이런 거하고도 아무 관계가 없어요. 고기를 먹고 안 먹는 건 그냥 그 사람의 식성일 뿐이에요. 결혼을 하고, 안 하는 건 각자 선택한 생활방식일 뿐입니다. 그런 것과 관계없이 ‘이치를 알아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다’는 건 ‘누구나 nbsp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그런 대화를 나눠보고자 하는 겁니다.”nbsp스님의 여는 이야기에 벌써부터 청중들은 마음이 활짝 열린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편안한 가운데 문답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오늘도 질문자들의 질문지를 스님이 제비뽑기 통에서 뽑으면, 뽑힌 질문자의 물음에 스님이 답해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총 5명이 질문을 했는데 모두들 기나긴 문답 끝에 결국 활짝 웃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의 답변 덕분에 오랜만에 호탕하게 웃었다는 질문자들에게 청중들도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 외에도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한국남자와 결혼한 후 15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데 한일관계가 나빠지면 주눅이 들 때가 많다며 어떤 마음을 가지며 살아야 하는지 묻는 일본인 여성분, 부산에서 이변에 가까운 총선 결과가 나온 것과 현재 안철수 의원과 그가 속한 국민의당에 대해 묻는 분, 뇌졸중으로 십년간 몸져 누워 계신 어머니의 문제로 누나와 갈등하는 것을 해결할 방법을 묻는 분,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신랑에게 과도한 집착을 하는 것 때문에 힘든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결혼 2년차 주부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은 명쾌한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5명의 각양각색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은 2시간 반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유쾌, 상쾌, 통쾌한 한마당이었습니다. 강연장을 가득 매운 청중들은 때로는 박장대소를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거나 안타까운 탄성을 내며, 질문자와 한마음이 되어 스님의 법문을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마지막 질문자에게 답변을 마친 후 스님은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여러분, 행복하게 사세요”라고 하며 강연을 마무리 했습니다. 청중들도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nbspnbsp강연이 끝난 후 로비에선 스님의 새 책 ‘행복’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으로 한 명 한 명에게 정성껏 사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사인회를 마친 후 오늘 강연을 주관한 해운대정토회 대연법당과 해운대법당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궂은 날씨에 내심 긴장을 놓지 않던 봉사자들은 성황리에 끝난 강연을 자축하며 큰 소리로 “화이팅”을 외쳤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서는 청중들은 세차게 몰아치던 비가 거짓말같이 갠 것처럼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습니다.nbsp이어서 스님은 정토회 해외지부 소속 하일숙님의 아버님이 오늘 아침 6시에 돌아가셔서 부산에 있는 장례식장에 들러 조문을 하고 대중과 함께 염불을 한 후 여수로 출발했습니다.nbspnbsp저녁 7시부터는 여수 시민회관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 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4.22. 256,302 읽음 댓글 82개

2016.4.20 광주 청년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광주교육대학교 풍향문화관에서 청년대학생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어제밤 목포에서 강연을 마치고 새벽 2시가 넘어서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눈을 붙인 후 아침 7시부터 오전 내내 평화재단에서 미팅과 회의 일정을 가졌습니다. 평화재단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친 후 오후 3시에 강연이 열리는 광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이 열리는 광주교육대학교 풍향문화관에는 흐린 날씨와 강풍 때문인지 좌석이 다 차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300여 명이 넘는 청년대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스님의 강연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nbspnbsp저녁 7시 30분, 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올라서자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먼저 봄소식을 전하면서 사는 게 재미있느냐?는 질문을 던진 후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사는 게 재미있습니까?”nbsp“.......”nbspnbsp“젊은 사람들은 대답이 없고, 늙은 사람들만 대답을 하네요. 어떤 일이든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재미가 있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면 재미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니까 이왕이면 재미있게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누구한테 좋을까요? 자기한테 좋습니다.nbspnbsp누가 나한테 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몸에는 열이 오르기 때문에 건강에 안 좋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상대가 화내는 걸 보고 ‘그렇게 화내면 자기만 손해인데…….’ 이렇게 측은하게 생각해 주세요.nbspnbspnbsp여기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가 입으로 쓰레기를 뱉어 나한테 던졌어요. 그런데 나는 그걸 얼른 받아서 그 쓰레기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면서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런 쓰레기를 던질 수 있느냐’라면서 그것을 10년씩 들고 다니며 내내 곱씹어요. 그건 바보 같은 짓이에요. 내가 받은 게 쓰레기인 줄 알면 얼른 버리면 됩니다. 제일 좋은 건 처음부터 받지 않는 것이지만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지요. 상대가 던지면 넙죽 잘도 받게 되잖아요.nbspnbsp그러니 ‘어떤 상황에 처하든 내가 어떻게 대응할거냐’하는 건 ‘어떻게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거냐’의 문제입니다. 누가 내 대신 인생을 살아주지도 않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도 않아요. 그러니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오직 자기만 할 수 있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nbspnbsp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nbsp그럼에도 우리는 이 행복과 불행을 다른 사람이 나에게 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나를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라며 매달리고, ‘왜 나한테 이런 불행을 주느냐’고 원망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까 한평생을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못 살고, 남에게 매여 사는 거예요. 자, 그러면 오늘도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들을 주제에 제한 없이 대화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시작하세요.”nbspnbsp상대가 던진 수많은 쓰레기들을 가슴에 안고 사는 것 같다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 차려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작부터 머리가 시원해진 느낌입니다.nbspnbsp이어서 본격적으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고, 2시간 동안 7명이 질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낯선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덜 외롭고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있는지 묻는 분, 지금까지 너무 열심히 살아와서 언제까지 계속 열심히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여성 분, 공부를 하고 싶은데 취업을 할지 대학원에 진학 할 지를 묻는 분,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놀기만 하는 것이 걱정이라는 분, 출산을 앞두고 출산휴가와 직장일을 고민하는 여성분 등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아버지가 재혼을 했는데 새어머니와 친어머니 중 누구를 결혼식에 모셔야 할지 고민이라는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은 답변 도중 지금까지 즉문즉설 중 이렇게 어려운 질문은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로 해결책을 내기가 쉽지 않았던 질문이었습니다.nbspnbspnbsp“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재혼하셨는데, 저는 새어머니도 친어머니 못지않게 아끼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올해 결혼을 하게 됐는데, 두 어머니 모두 제 결혼식 당일에 부모님 자리에 앉으시길 희망하셔서 고민입니다.”nbsp“어떤 사람은 앉을 사람이 없어서 고민인데, 질문자는 너무 많아서 고민이네요. 두 분 다 모시면 되지요.”nbspnbsp“그 생각도 해 봤는데, 그건 시댁 측에서 원치 않으십니다.”nbspnbspnbsp“질문자는 누굴 모시면 좋겠어요? 두 분 어머니 모두 모시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되는데, 그래도 한 분만 선택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이 어떤 분을 모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nbsp“처음에는 아버지랑 오래 사신 새어머니께서 앉는 게 맞다 생각했는데, 친어머니께서는 여태 혼자 외롭게 사셨기 때문에 자녀의 결혼식에 참석할 기회마저 빼앗기신다면 너무 힘들어하지 않으실까 염려됩니다.”nbspnbsp“친어머니는 재혼을 하셨어요?”nbsp“안 하셨어요.”nbsp“아버지는 누가 앉기를 원해요?”nbsp“아버지께서는 당연히 새어머니와 앉기를 희망하시는데, 그래도 제가 원한다면 결혼식 당일만큼은 친어머니와 앉겠다고 말씀은 하셨습니다.”nbspnbsp“그러면 새어머니한테 양해를 한번 구해 보세요. ‘마땅히 어머니께서 앉으셔야 되는데, 그래도 어머니는 제가 앞으로 계속 뵈면서 모시고 살 분이고, 생모는 혼자 사시기 때문에 앞으로 다시 이런 기회는 없으실 테니 섭섭하실 겁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말씀드려 보세요. 아버지와 새어머니 사이에도 자녀가 있어요?”nbsp“없습니다.”nbspnbsp“아이고,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요.”nbspnbsp“새어머니께서는 제가 힘들어하는 걸 아시고는 ‘우선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제가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새어머니를 위로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nbsp“두 분 어머니 모두 앉히면 어떨까요?”nbsp“아버지께서 ‘만약에 친어머니가 앉게 되면 새어머니는 결혼식에 못 오신다’고 말씀하신 상태입니다.”nbspnbsp“여태껏 누가 나한테 물었을 때 내가 답하기 쉽지 않은 일이 없었는데, 이번엔 쉽지 않네요. 친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자녀는 질문자 한 명뿐이에요?”nbsp“아니오, 오빠가 있습니다.”nbspnbsp“오빠는 결혼 했어요?”nbsp“안 했습니다.”nbspnbspnbsp“만약 오빠가 결혼한다면 예식장에 누굴 앉힐 것 같아요?”nbsp“오빠는 친어머니를 모시고 결혼한다고 했습니다.”nbspnbsp“그럼 질문자는 친어머니한테 양해를 구해 보세요.”nbspnbsp“제가 그 말씀도 드려봤는데 친어머니께서는 ‘그래도 내가 앉겠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십니다.”nbspnbsp“친어머니는 질문자를 몇 살까지 키웠습니까?”nbspnbsp“제가 3살 때 쯤 이혼하셨다고 들었습니다.”nbspnbsp“아버지는 질문자가 몇 살 때 재혼했어요?”nbspnbsp“제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으니까 10살쯤입니다.”nbspnbsp“그 사이에는 누가 질문자를 키웠나요?”nbsp“할머니께서 키우셨습니다.”nbspnbsp“그럼 할머니가 앉아야 되겠네요.”nbspnbsp“예,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nbsp“아이고, 이거 점점 어려워지네요. 내가 즉문즉설 한 뒤로 이렇게 곤란한 질문은 처음입니다.”nbspnbsp“제가 너무 괴롭습니다. 저는 한 분이라도 서운한 분이 없도록 하고 싶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 봤는데, 뾰족한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두 분이 서운하시든말든 나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팟캐스트를 통해서 스님 법문을 들었을 때 스님께서 ‘어른들이 생각하시게 놔두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기에 저도 ‘부모님들께서 서운함을 느끼신다면 그것은 당신들께서 감당해야 할 몫이다’라며 마음을 다잡고 지금은 크게 고민 안 하고 있지만 그래도 스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스님 생각은 어떠신가요?”nbsp“저도 잘 모르겠어요. 거 진짜 어렵네요.”nbspnbsp“예.”nbsp“제가 왜 질문자에게 꼬치꼬치 물었느냐 하면요, 만약 친어머니가 질문자를 9살까지 키웠다면 저는 질문자에게 친어머니를 모시라고 했을 거예요. 또 새어머니가 질문자를 3살부터 키웠다면 ‘새어머니가 엄마다. 누가 낳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를 했을 겁니다. 엄마는 낳은 사람이 아니라 기른 사람이 엄마거든요. 그런데 질문자의 중요한 시기를 사실은 할머니가 키워주셨네요. 그런데 그 할머니는 돌아가셨다고 하니, 이제 남은 두 어머니는 모두 ‘엄마의 절대적 자격’이 없습니다. 친어머니도 ‘내가 이 결혼식에 반드시 참여해야 된다’고 할 자격이 없어요. 질문자의 육신은 친어머니가 만들었지만 그렇다는 거예요. ‘육신’이라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왜 그럴까요? 앞으로 정자와 난자를 인공수정해서 제3자의 자궁에서 기른 뒤에 데리고 와서 키우면, 그 아이는 낳은 사람의 외양은 하나도 안 닮았을 거잖아요? 그래도 낳긴 그분이 낳았잖아요. 그렇지요?”nbsp“예.”nbsp“또 미래에 인공자궁이 발명된다면, 그때는 부부가 결혼해도 아기를 안 낳을 겁니다. 인공수정을 해서 인공자궁에 넣어달라고 회사에 주문해 놓고는 아홉달 반 뒤에 가서 아기만 받아오면 될 거예요. 그런 것까지 생각해 보면 낳은 사람이 아니라 기른 사람이 엄마입니다.nbspnbspnbsp그리고 실제 육체는 생물학적으로 친부모를 닮지만 우리의 정신, 이 마음바탕은 기른 사람의 것을 다운 받습니다. 예를 들어서 애를 낳자마자 프랑스에 입양시켜서 프랑스인 어머니가 양육하도록 했다면, 그 사람은 외양만 동양인일 뿐 마음의 바탕이 되는 업식은 다 프랑스인 어머니의 것으로 형성됩니다. 그래서 한국적인 사고방식은 전혀 없는 사람이 되지요. 그런데 한국에서 3살까지 크다가 4살 때 입양을 가면, 마음바탕은 기본적으로 한국적인 것 위에 서양 것이 더해지기 때문에 생각은 서양식이라도 정서적으로 마음이 작용하는 건 한국식입니다.nbspnbsp그러니까 두 분 어머니 모두 엄마의 절대적 자격이 있다고도 말할 수 없고, 또 두 분 모두 자격이 없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두 분 중에 한 분이 양보를 하든지 해야지, 이건 질문자가 합당하게 결정하기가 어려운 문제예요. 이럴 때는 친어머니와 의논해 보는 게 좋겠어요. 새어머니는 자손이 없으니까 이런 기회가 앞으로도 없을 거잖아요.”nbsp“예.”nbspnbsp“그런데 친어머니는 앞으로 질문자 오빠의 결혼식에 참석할 기회가 남아있으니까, 먼저 친어머니한테 양해를 한번 구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질문자는 종교가 있어요?”nbsp“예, 천주교입니다.”nbspnbsp“천주교라니 잘 됐네요. 그러면 질문자는 결혼식을 두 번 하면 되겠어요. 성당에서 신부님을 주례로 모시고 가족만 초대해서 천주교 식으로 한 번 하고, 또 한 번은 예식장에서 친척들 초대해서 하는 겁니다. 두 분 어머니 중에 어느 분이 천주교 신자예요?”nbsp“새어머니요.”nbspnbspnbsp“그러면 예식장에서 결혼할 때는 친어머니를 모시고 하고, 친구들과 모여서 성당에서 결혼할 때는 새어머니를 모시고 하면 좋겠네요. 신랑과 시어머니한테는 ‘저희 집안 사정이 이러이러해서 제가 어느 분도 외면하기가 어려우니, 대외적으로는 생모를 모시고, 대내적으로는 양모를 모시고 결혼식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의논을 드려보세요. 그렇게 하면 두 분 어머니 중 누구도 섭섭하지 않으시겠지요. 그러나 역시 제일 좋은 방법은, 친어머니한테는 다음 기회가 있으니까 양해를 해 달라고 말씀드려보는 겁니다.”nbspnbsp“예, 감사합니다.”nbsp“네. 젊은 사람들은 성당에 좀 다니세요. 그래야 이런 문제가 생길 때 해결책이 나오지요.”nbsp스님도 선뜻 해결책을 내놓기가 어려웠던 질문은 정말 오늘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스님이 제시해준 해결책에 질문자도 환하게 웃었고, 청중들도 큰 박수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7명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마쳐갈 때 쯤 되자 시간은 어느덧 2시간을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쉼없이 답변을 이어가던 스님은 이제 마쳐야 될 시간이 되었다며 마무리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오늘도 긍정적 사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며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자꾸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잘 나갈 때라도 너무 교만하면 안 됩니다. 교만은 재앙을 불러옵니다. 반대로 아무리 안 된다고 해도 좌절하면 안 됩니다.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해 뜰 일이 생깁니다. 이렇게 무엇이든 꾸준히 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욕하는데 에너지를 허비하지 말고, 세상을 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건 ‘다 좋다’는 얘기와 다릅니다. 넘어지면 ‘아, 이래서 내가 넘어졌구나’ 하고 교훈을 얻어서 다음에는 안 넘어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해요. 그러면 결과적으로 넘어진 게 안 넘어진 것보다 더 좋은 일이 됩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넘어지자는 게 아니라 결과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또 출발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면 ‘실패가 곧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현실이 되고, 늘 웃고 살 수가 있어요.nbspnbsp이런 공부를 하는 게 원래 불교이지 복 비는 게 불교가 아니에요. 그러니 틈 날 때마다 와서 종교에 상관없이 이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볼 때 보통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종교심’이라는 게 저한테는 있는 것 같아요? 없는 것 같아요? 없어요. 저 같은 사람도 이 공부를 하는데 여러분들이 왜 못 하겠어요? 믿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로서 각자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가지느냐. 그래서 어떻게 스스로 행복하게 사느냐’에 대한 이 공부는 누구나 하셔야 됩니다. 꼭 이 마음공부를 하셔서 여러분 모두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오늘도 스님으로부터 행복의 기운을 듬뿍 선물 받은 기분입니다.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청년대학생들은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강연이 끝나고 로비에서는 스님의 새 책 ‘행복’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책에 사인을 해주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 많은 분들에게 웃음을 건넸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에게 자신의 이름도 사인과 함께 적어달라고 했는데 스님은 “자기 이름은 자기가 적고, 내 이름은 내가 적겠다.”고 웃으며 거절해서 모두를 웃게 만들기도 했습니다.nbspnbsp질문을 했던 여성분에게 스님의 답변을 듣고 어땠는지 소감을 물어보니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서 답을 찾기 어려웠던 문제를 스님께서 잘 꿰뚫어보시고 대답해 주셨다.”며 수줍은 듯 만족스러운 얼굴로 강연장을 나갔습니다.nbsp끝으로 오늘 강연을 주관한 광주 청년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스님은 “지화자, 좋다”라는 힘찬 구호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밝고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관객들을 맞이해준 봉사자들 덕분에 무사히 강연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오전 10시에 부산MBC 삼주아트홀에서 부산 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저녁 7시에는 여수 시민회관에서 여수 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4.21. 178,020 읽음 댓글 53개

2016.4.18 두북 어르신들 봄 나들이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울주군 두동면과 두서면에 살고 계신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순천 선암사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농촌에서 혼자 사시는 독거노인분들은 무관심 속에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요. 해마다 봄과 가을이 되면 스님은 노인 분들을 모시고 나들이 가는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nbspnbsp스님은 어르신들보다 먼저 두북 정토수련원 운동장에 도착해 어르신들을 맞이했습니다. 어르신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차에 오르는 것을 도왔습니다. 버스가 출발하고 각 버스의 어르신들에게 수신기가 전달된 후 스님의 인사말과 함께 오늘 목적지인 선암사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습니다.nbspnbsp“오늘 가는 순천은 경상도인 하동을 지나 섬진강을 건너 전라도인 광양 다음에 나타나는 도시입니다. 선암사는 순천에 있는 조계산의 동쪽 자락에 있는데, 한국 불교 태고종의 본사예요. 다른 큰 절과 달리 새롭게 불사를 하지 않았어요. 그 덕분에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옛날의 운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절입니다.nbsp버스에서 내리시면 15분 정도 걷는 길이 있는데, 걷기 힘드신 분들은 절에서 제공해주는 작은 버스를 타고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내려서 걷는 길 중에 있는 승선교가 우리나라 최초의 무지개 다리로 이 절의 유명한 볼거리에요. 또한 600년 된 천연기념물 홍매화와 백매화가 볼만한데 지금은 꽃피는 시기가 지나 꽃은 볼 수 없을 것 같아 아쉽네요.”nbsp11시가 조금 넘어 선암사에 도착하여 미리 안내한 대로 걷거나 차로 이동하여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사찰순례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주차장에서 절까지 15분 정도 걸으면서는 스님의 설명대로 승선교를 볼 수 있었습니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선이 승천하는 곳이라고 해서 ‘승선교’라고 이름이 지어졌습니다.nbspnbsp▲ 승선교를 지나nbsp바로 연이어서 또 하나의 보물인 ‘강선루’가 나타났습니다. 이곳은 반대로 신선이 내려 앉는다는 곳입니다. 때마침 범종루에서 종이 울렸는데 스님은 “불교에서 종을 울리는 이유는 지옥 중생을 구제하려는 의미이고, 북을 치는 이유는 짐승들을 구제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목어는 물고기를, 운판은 새들을 구제한다고 합니다. 불교는 이렇게 사람뿐만 아니라 지옥중생과 짐승까지도 구원하고자 하는 넓은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법회를 하기 위해 ‘만세루’로 이동하면서는 버스에서 간략하게 소개했던 선암사의 유래에 대해 더욱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선암사의 기원은 신라 진흥왕, 백제 성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도화상이 창건하였고, 이때로부터 1500년이 된 절입니다. 그 이후 통일신라 말에 도선스님에 의해 선암사로 재창건되었는데, 이때로부터는 1200년이 됩니다. 고려시대에 왕자의 신분으로 출가해서 스님이 된 대각국사 의천이 다시 선암사를 크게 중창했는데, 대각암에는 그 스님의 유골을 모신 승탑이 남아 있어서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nbspnbsp선암사도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절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어요.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이유는 일부러 불태웠다기 보다 스님들이 주축이 된 의병들의 본거지가 사찰이었기 때문입니다. 의병을 소탕하려다 보니까 절을 불태웠던 겁니다. 6.25 때도 많은 사찰이 불에 타서 소실되었습니다.”nbspnbsp작은 사찰이지만 담길을 따라 꽃나무 아래를 걸었습니다. 스님은 “절 예쁘죠. 오목 조목하니…” 라며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모퉁이를 돌아 조계산 전경이 펼쳐지자 어르신들은 “아 경치가 끝내주네.” 하고 크게 감탄을 했습니다.nbspnbspnbsp또 스님은 탐스럽게 열매처럼 핀 왕벚꽃이 나타나자 “아따 좋다 좋아” 라고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어르신들도 장면 장면에 따라 터지는 스님의 리액션에 함께 웃으며 기뻐했습니다.nbsp▲ 왕벚꽃nbsp‘신검당’을 지나면서는 현판을 읽으면서 ‘우리의 번뇌를 자르고 지혜를 증득한다’라는 의미라고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원통각’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입니다. 여기서는 옛날 어느 스님이 꼬박 1000일을 기도했는데도 아무 영험이 없자 실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때 어느 여인이 홀연히 나타나 구해주었는데, 그 여인이 알고 보니 관세음보살이었다는 전설 같은 옛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었습니다. 또 정조대왕이 아들을 한참 동안 얻지 못하다가 이곳에서 기도를 한 후 순조 임금을 낳게 되었다는 영험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만세루에 도착해서는 주지스님인 호명 스님의 인사말씀을 청해 들은 후 이어서 법륜 스님이 어르신들을 위한 법문을 들려 주었습니다.nbspnbspnbsp특히 스님은 늙었을 때 꼭 유의해야 할 점을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아주 재미있게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제가 작년에 법회할 때 나이 들어서 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했는데, 다들 기억하세요?”nbsp“예.”nbspnbsp“첫째, 과로하면 안 됩니다. 젊을 때와 달라서 이제 과로해서 한번 몸져누우면 건강에 아주 해롭습니다. 그래서 늘 과로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농사도 재미로 지어야지 돈 생각하고 지으면 안 됩니다. 젊을 때는 악착같이 농사를 지어서 돈을 벌어야 했지만 이제는 운동삼아 지으세요.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건강에 안 좋으니까요.”nbspnbsp“농사는 운동 삼아 지을 수가 없어요.”nbsp“그러니까 농사를 재미삼아 심심풀이로 하시라는 겁니다. 죽기 살기로 하면 힘들어서 못 합니다. 요즘 제가 젊은 사람들을 상담해 보면 이런 하소연을 많이 합니다. ‘부모님께 농사를 짓지 말라고 했는데도 부모님이 농사일을 벌려놓고는 저희더러 주말마다 와서 거들라고 하세요. 그래서 막상 가면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시고, 또 아침이 되면 호미를 찾아 들고 밭에 가세요. 아프다고 할 거면 농사를 짓지 마시고, 농사를 지으려면 아프다고 하지 마시라고 해도 부모님이 말을 안 듣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자식들더러 자꾸 주말에 오라고 하지 마세요. 아셨지요?”nbspnbsp“예.”nbsp“그리고 요즘 같은 세상에는 며느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됩니까? ‘우리 아들 안 버리고 같이 살아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 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요즘에는 여자들의 발언권이 커졌으니까요.nbspnbsp제가 며칠 전에 중국 북쪽 몽고족이 사는 도시에 다녀왔어요. 거기가 바로 우리 조상들이 5000년 내지 6000년 전에 살았던 곳이어서 유물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고 해서 이번에 다녀왔거든요. 그런데 지도만 보고 찾아가려니까 위치를 잘 모르겠기에 그 동네 할아버지께 여쭤보고 찾아갔어요. 유적지를 찾아가는 동안 그 할아버지와 대화하면서 알게 된 걸 여러분께 말씀드려 볼게요.nbspnbsp중국의 시골에는 여자들이 다 도시로 나가버려서 마흔에서 오십 먹은 노총각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 노총각들은 결혼하기가 어려우니까 북한여자라도 데리고 와서 같이 살려고 해요. 또 북한여자들은 중국으로 넘어왔으니까 어디에라도 숨어서 살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요즘 우리나라에 베트남 여자들이 시집오듯이 북한여자들도 그렇게 중국 시골로 시집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갔더니 결혼하려면 여자 집에 20만 위안, 즉 4,000만 원은 줘야 한 대요. 그래서 제가 ‘촌에 무슨 그런 큰 돈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아들들이 촌에 안 있고 다 도시로 나간다. 그래서 돈을 벌어서 그 돈을 마련하면 장가가는 거고, 아니면 못 가는 거다. 그리고 요즘은 도시에 아파트도 마련해줘야 된다’고 말하더라고요. 아파트는 30만 위안, 즉 6,000만 원이 든답니다. 그러니까 아들 장가를 보내려면 얼마나 든다는 거예요?”nbsp“1억 원이요.”nbsp“그래서 제가 ‘그래서야 어떻게 장가를 보내느냐?’고 했더니 ‘그렇기 때문에 못 보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세상이 지금 이렇게 바뀌었어요. 그러니까 며느리를 자꾸 구박하지 마세요. 만약 며느리랑 아들이 싸우면 여러분은 누굴 야단쳐야 됩니까?”nbsp“아들이요.”nbspnbspnbsp“예, 아들을 야단쳐야 돼요. ‘입 다물고 가만 있어라. 며느리가 너랑 살아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라’ 이래야지, 아들 편만 들면 안 됩니다. 지금 세상이 많이 바뀌었는데, 50년 전, 60년 전 옛날 생각만 하고 살면 안 됩니다.nbspnbsp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사를 죽기살기로 짓지 마세요. 그냥 놀이 삼아 조금 지어서 본인 드시고 남는 게 있으면 아들딸 왔을 때 상추나 좀 뽑아주고 그러세요. 여러분 입장에서는 아들이 와서 농사일을 도와주면 고맙겠지만 울산이나 부산에 사는 아들 내외가 여기까지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서는 싸웁니다. 싸우는 거 아세요?”nbspnbsp“앞으로는 오라고 안 할게요.”nbsp“예, 자꾸 자식들 더러 오라고 하지 마세요. 알아서 와주면 고맙지만 억지로 오라고 하지는 마세요. 아들이 지금 여러분들 농사 좀 거드는 게 중요해요? 아들 내외가 안 헤어지고 잘 사는 게 중요해요?”nbsp“안 헤어지고 사는 게 중요하지요.”nbsp“예, 농사 좀 거들어주고 사는 게 효자가 아니고, 안 헤어지고 잘 사는 게 효자예요. 저도 촌에 살아봐서 여러분들 입장을 이해는 합니다만 땅을 놀리는 한이 있더라도 무리하지는 마시고, 과로하지도 마세요.nbspnbsp둘째, 과식하지 마세요. 맛있다고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 나면 안 됩니다.nbsp셋째, 술을 몇 잔 마시는 건 괜찮지만 과음하는 건 안 됩니다. 젊을 때는 토하고 자더라도 아침에 일어나면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연세 들어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 세 가지는 하지 마시라고 작년에도 말씀드렸는데, 기억하세요?”nbsp“네.”nbsp“그리고 자식이 사업하다가 부도가 나서 어렵다고 하소연 해도 내 집, 내 먹을 것 심을 집앞 땅, 묘자리 할 선산, 이런 것들은 은행에 잡히면 안 됩니다. 부도가 나서 집이 없느니, 길거리에 나앉느니 해도, ‘엄마, 조금 있다가 금방 갚을게’라고 해도, 그런 말은 절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저희 동네에도 그러다가 집이고, 땅이고, 다 도시 사는 사람들한테 팔고는 고향에 못 돌아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빈터라도 남겨놔야 나중에 아들 딸이 늙어서 고향으로 돌아올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욕심으로 재산을 지키라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나중에 아들 딸을 위해서 고향 땅을 지키라는 겁니다.nbspnbsp또 너무 큰 땅을 갖고 있으라는 게 아니고 누울 묘지 자리랑 식량 일굴 땅 몇 마지기 정도는 남겨놓아야 합니다. 내가 죽고 난 뒤에야 땅을 팔든지 말든지 알게 뭐예요. 그런데 살아있을 때는 꼭 내가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늙어서 집도 땅도 없으면 추해지니까요.nbspnbsp아들 딸들이 안 해 줘도 우리끼리 이렇게 1년에 두 번씩 놀잖아요. 또 동네 청년들이 노인잔치도 해 주잖아요. 그리고 저희 동네에도 보니까 누가 차를 가지고 와서 동네 어르신들을 싣고 목욕도 다녀오더라고요. 그러니까 옛날에 어려울 때도 살았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왜 못 살겠어요. 그지요? 그러니 부디 편안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nbsp그리고 화를 버럭버럭 내는 것보다는 참는 게 좋은데, 참기만 하면 병이 됩니다. ‘안 참으면 어쩌냐?’ 하시는데 참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해하시라는 겁니다. 며느리가 꼴 보기 싫어도 그걸 참을 게 아니라 ‘며느리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내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이해하세요. 며느리가 옳다는 게 아니고 ‘며느리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하면 화가 안 납니다. 화가 나더라도 덜 나요.nbsp며느리가 잘 했다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자식이 ‘선산을 잡히자’고 하면 ‘이놈아, 선산까지 팔아먹으려고 하느냐?’ 하지 말고 ‘자식이 사업을 하다 보니 궁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이해하시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주지는 마시고요. 아시겠어요?” nbspnbsp“예.”nbspnbsp“그럴 때는 ‘아이고, 그래. 네 마음 알겠다. 네가 지금 어렵구나’ 이렇게만 얘기해 주세요. 절대로 집문서, 땅문서는 주지 마시고요. 집문서, 땅문서를 주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엄마, 그렇게 내 마음을 이해한다면 선산이라도 잡혀주면 되잖아’라고 해도 ‘너를 이해는 하지만 주지는 못 하겠다’라고 하세요. ‘너 그러면 안 된다’ 하면서 화를 내면 내 건강에 해롭고, ‘네 말이 옳다’고 하면 재산을 줘야 되니까 내 살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니까 제일 좋은 방법은 뭐겠어요? 내가 자식을 이해하면 화가 안 나고, 자식에게 재산을 안 주면 내가 먹고는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걸 ‘꾀가 많다’고 해요. 꾀가 많다는 건 나쁜 뜻이 아닙니다. 자기 살 궁리는 스스로 한다는 뜻이에요. 스스로 살 궁리는 해야 돼요.nbspnbsp그래서 제가 젊은 사람들한테는 ‘노인을 고치려고 하지 마라. 평생 그렇게 살았는데 어떻게 고치겠느냐? 그러니까 아침에 호미 찾으면 호미 갖다드리고, 저녁에 아프다고 하면 허리 주물러드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식이 아무리 ‘어머니, 이러지 마세요. 아버지, 이러지 마세요’ 해도 노인들은 ‘응. 알았다’고 말만 하지 결국은 당신네들 뜻대로 하니까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은 젊은 사람들이 아니라 여러분들을 만났으니까 ‘젊은이들을 생각해서 농사 너무 벌이지 마라. 그리고 잔소리 너무 하지 마라’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nbspnbsp자식이 안 찾아오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자식들이 안 오니까 내 살림이 좋구나’라고 고맙게 생각하세요. 또 자식이 찾아오면 ‘그래도 인사라도 오니 고맙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안 그러면 나이 들어서 자식 때문에 속상한 일만 생깁니다.”nbsp어르신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공감했습니다. 어떤 분은 맞장구도 치면서 아주 기뻐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간단히 법문을 한 후 혹시 질문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모두 같은 동네 사람들이다보니 소문이 날까 걱정되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의 질문이 없자 스님은 앞에서 강조한 ‘놀이삼아 해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면서 법회를 마쳤습니다.nbspnbspnbsp“여기 공기 참 좋지요? 또 내가 심은 것 키워서 내가 먹으니까 좋으시지요? 요즘 식재료들이 오염이 되어서 문제가 많은데, 내가 심어서 깨끗하게 키워서 먹으니 얼마나 좋아요?”nbsp“예.”nbsp“여러분들이 사는 곳은 물이 맑기로 유명한 곳이잖아요. 가뫼들 가보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전 거기가 설악산보다 더 좋아요. 최근에 ‘태화강 백리길’이라는 관광상품으로 만든 후부터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다녀서 좀 문제이긴 합니다만, 물이 좋은 데서 사니까 건강에도 좋잖아요. 그렇다고 노인정에서 가만히 놀기만 하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 밭일도 조금씩 하기는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농사로 돈벌이를 하려고 하면 안 되고, 놀이 삼아 소일거리로 하면서 편안하게 생활하셔야 해요.” nbspnbsp스님의 감로 법문에 어르신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nbspnbsp법회가 끝나고 나서는 근처 식당으로 이동해 삼합과 각종 산나물이 곁들여진 점심식사를 함께 했습니다.nbspnbsp점심식사 후에는 야외 평상에 앉아 어르신들과 함께 여흥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 마을에서 한 분씩 나와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신나는 노래 한 곡씩을 불렀습니다.nbspnbsp올해 89세라고 소개한 한 어르신은 “세계적으로 덕 높으신 법륜 스님이 우리 마을 분이셔서 저는 참으로 영광입니다.”라며 노래 한 자락을 멋들어지게 불렀습니다. 또 다른 어르신은 “해마다 봄 가을로 이렇게 나들이와 잔치를 열어주시니 우리 마을 사람들은 너무 너무 행복하고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라고 인사한 후 노래를 불렀습니다. 흥겨운 노래 가락은 쉼없이 계속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여흥을 모두 마치고 나서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두 버스에 다시 탑승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돌아가는 길에도 어르신들이 즐겁고 신나게 즐기시도록 잘 도와주세요” 라고 재차 당부했습니다. 마을 입구 앞까지 길 안내를 하며 한 분 한 분에게 인사를 하며 조심히 내려드린 후 봄나들이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두 번의 즉문즉설 강연이 있습니다. 오전 10시에는 충주시 문화회관에서 충주 시민들을 위해, 저녁 7시에는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에서 목포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4.20. 131,653 읽음 댓글 35개

2016.4.16 (주간반) 정토불교대학 경주남산순례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과 함께 경주 남산 순례를 하는 날입니다. 전국에서 밤중부터 버스를 타고 출발한 대중들은 새벽 6시경에 대부분 경주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이번 봄에 입학한 주간반 정토불교대학생들인데 이번 순례에는 12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nbspnbsp정토회에서는 법사단도 모두 참석해 각 골짜기마다 안내를 맡았습니다. 스님은 정토회 대구경북지부, 광주전라지부 소속의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과 함께 삼릉골을 선택해서 올라갔습니다. 원래 삼릉골 코스는 보수법사님이 안내할 계획이었으나 보수법사님이 발을 다쳐서 산행을 하기 어려워 스님이 대신해서 안내를 하게 되었습니다.nbsp대구경북지부에서 173명, 광주전라지부에서 95명, 모두 268명이 스님과 함께 삼릉골을 오르면서 곳곳에 있는 불상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nbsp스님은 내려오는 길에 잠시 휴식하면서 어느 지역에서 몇 명이 왔는지 손을 들어 확인하기도 하였습니다.nbspnbsp대중들이 휴식을 하고 있는 사이 스님은 “저는 순례를 마치고 내려오는 다른 대중들도 맞이해야 해서 먼저 내려가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한 후 먼저 산을 내려왔습니다.nbspnbsp통일암 너른 터에 도착한 스님은 통일암 주위를 둘러보고 난 후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대중들보다 1시간 일찍 식사를 마친 후 막 내려오기 시작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건넸습니다. 약 1시간 동안 무려 1200여 명과 악수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대중들이 식사를 모두 마칠 때까지 기다리면서는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습니다. 춤과 노래 실력을 뽐내는 대중들을 보니 정말 소풍을 온 것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식사가 모두 끝나자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불교대학생들은 영상강의로 스님의 법문을 듣다 보니 궁금한 점을 물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는데, 오늘은 그동안 공부하면서 들었던 의문, 인생살이에서 겪는 고충들에 대해 스님에게 마음껏 물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서 한 가지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저는 64세, 남편은 67세입니다. 남편은 기계를 다루는 엔지니어로 30여 년째 자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있어 그런대로 운영은 하였으나 늘 힘들었어요. 남편의 꿈은 큰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56년 주기로 시설을 인수받거나 일을 벌이고, 잘 안 되어서 집을 팔고 빚을 지고, 열심히 일해 빚을 다 갚을만 하면 또 크게 일을 벌이는 생활을 계속 했습니다. 실속 없는 생활이었지만 주변에서는 저희가 아직 잘 살고 있는 줄 알았고요. 남편은 최근에 아이들에게 명의를 빌려달라고 합니다. 법인체를 하나 꾸려서 일을 시작하고 주식을 나눠주겠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거절하니까 저더러 ‘뒤에서 아이들을 조종한다, 용서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인감을 떼놓으라고 말하고 나갔습니다. 저는 의무감으로 밥은 해주지만 어이가 없어서 6개월 전부터는 따로 생활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1년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너무 답답합니다.”nbsp“이야기를 들어보면 돈을 벌었다 망했다를 거듭했다는 게 요점이네요. 벌었다가 망했다가를 반복하더라도 한번 벌어본 게 나아요? 아예 한 번도 못 벌고 사는 게 나아요?” nbsp“한 번이라도 벌어본 게 낫죠.”nbsp“남편이든 자기든 크게 한번 벌어서 비까번쩍한 집을 사본 적이 없는 사람들 손들어 보세요.”nbspnbspnbsp“어찌저찌 돈을 벌어서 큰 집을 샀다가, 망해서 팔아먹었다가, 어찌저찌 또 벌어서 한 번 더 해봤다가 또 망한 건 지금 손든 사람들보다는 나아요? 안 나아요?”nbsp“나아요.”nbsp“예, 나아요. 걱정할 것 없어요.”nbspnbsp“앞으로 어떻게 살까 걱정입니다. 지금 또 일을 벌이고 있으니까요.”nbspnbsp“제가 말씀드리려는 요지는 이거예요.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면 크게 나쁜 건 아니에요. 번 돈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보면 나쁘게 보이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애초에 그런 큰 집도 한번 못 가져보고, 사업도 한번 비까번쩍하게 못 해본 사람에 비하면 이건 오르락내리락해도 좋은 편에 속해요. 사람 욕심이 한번 올라간 걸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데 유지를 못 해서 인생이 피곤한 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도 제법 사는 집 마나님 소리를 듣고 살았던 때도 있잖아요. 지나간 일을 자꾸 생각하면 지금 아르바이트 하는 생활이 너무 힘들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내내 아르바이트하면서 살아온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한번 잘 살아본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nbsp첫째, 남편을 미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내가 당신 덕분에 큰 집에서도 살아보고 마나님 소리도 들어봤으니 고맙소’ 이렇게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nbspnbsp둘째, 질문자는 예순넷이고 남편은 예순일곱 살이라고 했죠. 예순일곱 살쯤 되면 사업을 계속 벌여야 할 때가 아니라 있는 사업도 정리할 때잖아요. 요즘은 80세까지 건강한 경우도 많긴 하지만 어쨌든 일반적으로는 조금씩 정리를 해야 할 때인데 지금 사업을 새로 벌이겠다고 하는 거잖아요. 그나마 자기 돈으로 벌여도 말려야 할 때인데 자기 돈도 없으면서 아이들 명의까지 동원해서 사업을 벌이는 건 위험합니다. 그렇게 해서 요행히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하면 남편과 질문자만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아이들까지 어렵게 만들 일이에요. 명의를 내어줘라 마라 하는 건 내 자식이라도 강요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nbspnbsp질문자가 조정했느니, 어떻게 하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남편이 할 때 그 말에 끌려가서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 자체가 질문자의 심지가 굳지 않은 거예요. ‘아,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심지가 굳은 사람은 남편이 ‘꼭 해와’라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 이러면 돼요. ‘왜 그걸 해오라 그래’ 이러고 싸우면 심지가 안 굳은 사람이에요. 심지가 굳은 사람은 ‘네, 알겠습니다’ 이러고 안 해주면 돼요. 심지가 굳지 않아서 자꾸 흔들리기 때문에 혼자서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안 해주면 저 인간이 화를 내고 난리를 피울 테고, 해주면 아이들까지 어려워질 텐데’ 이런 머리를 굴리는 거예요.nbspnbsp수행자라면 남편이 아무리 난리를 피워도 ‘그것은 합당하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면 흔들리지 않아야 해요. 흔들리지 않으면 남편이 그럴 때 맞서 싸울 필요도 없고 ‘여보. 알겠어요.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애들이 안 해줍니다.’ 이렇게 말하면 돼요.nbsp‘알겠다’라는 말이 곧 ‘해주겠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고 싶은 건 알겠다’라는 뜻이에요. ‘그건 잘못됐어요. 미쳤소? 나이가 지금 몇인데’ 이러지 말고요. ‘알겠습니다’라는 말은 ‘당신 마음을 알겠다’라는 말이에요. 그러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되잖아요. ‘알겠어요. 그러나 그 말은 당신이 직접 하면 몰라도 나는 못 하겠습니다’ 이러든지, ‘한번 말해보니까 애들이 안 된다고 합니다’ 이러고 웃으면서 그만두면 돼요. 그러면서 밥도 착실히 해주고 ‘아이고, 그래도 당신 덕에 이렇게 지금까지 잘 살았으니 고맙습니다’ 이렇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세요.nbspnbsp지금 보니까 질문자는 이 인간이 안 고마워요. 그러면서 또 마음 한켠으로는 ‘해줘야 하나?’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부모가 자식에게 집착하면 ‘너 같은 걸 누가 데려가냐’ 하며 욕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시집보낼 준비를 하는 거랑 똑같아요. 저한테 와서 ‘딸이 나이가 스물 몇인 게 말도 안 듣고 어쩌고저쩌고’ 하며 욕을 실컷 해놓고는 ‘스님, 어디 좋은 총각 없어요?’ 이래요.nbspnbspnbsp제가 바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자기 엄마도 싫어하고 못 믿는 처녀한테 좋은 총각을 소개시켜줄 리 없잖아요. ‘스님, 우리 딸은 착하고 이러저러한 게 참 좋아요. 어디 못난 남자 있으면 복 짓게 붙여주세요’ 이래도 해줄까말까 한데요. 그런데 이런 모순을 스스로는 몰라요. 집착이 되어 있으니까요.nbsp그러니 첫째, 남편한테 고맙게 생각하세요. 두 번째, 남편이 뭐라 그러든 그냥 ‘알았습니다, 네, 네’ 하고 넘어가세요. 미워도 밥은 해 준다느니 어쩐다느니 말하는 건 사실 밥도 해주기 싫고 빨래도 해주기 싫다는 심보예요. 내가 아르바이트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지금의 처지에 화가 나는 거예요.nbspnbsp그런데 한번 남편 입장을 생각해보세요. 잘 살다가 못 살다가를 반복하더라도 그래도 한 때 잘 살아본 사람들은 지금 자기가 사업에 조금 실패하면 자존심이 상해요. 바깥에 가서 기죽기가 싫으니까 뭔가 비까번쩍하게 보이고 싶어서 자꾸 시도하다가 또 실패하거든요. 그러니까 밖에서 자존심 상한 걸 집에서 부인이 왕처럼 대접하면서 좀 다독거려줘야 해요. 그러면 그게 좀 해소가 됩니다. 밖에서도 기를 못 펴는데 마누라도 돈 없다고 자기를 깡그리 무시하니까 밖에서는 큰소리 못 쳐도 마누라한테는 악을 쓰고 큰소리를 치며 행패를 부리는 거예요. 인간 심리가 그래요. 객관적으로 보면 나쁘지만, 그 사람의 심정에서 보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nbspnbspnbsp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첫째,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둘째, ‘아이고, 저 인간이 얼마나 힘들까’ 이렇게 이해해서 위로를 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셋째, 일을 벌이는 것에는 냉정하게 도움을 주지 않는 겁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애초에 도움을 줄 형편도 안 되잖아요. 내가 지금 아르바이트 하는 처지인데 어디 가서 돈을 꾸어오겠어요? 이제는 일을 벌이기보다는 인생을 조금씩 정리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에 질문자는 편안하게 생각하면 돼요. 남편이 자기 혼자 난리 피우다가 집 나가버려도 어차피 내가 아르바이트 해서 먹고 사니까 걱정할 것도 없어요.nbspnbsp남자가 돈 못 번다고 해서 이사 갈 때 버리고 가는 건 안 되지만, 자기가 성질나서 나가는 건 상관할 필요가 없어요. 안 그래도 떼버리고 싶은데 알아서 나가주면 오히려 고맙죠. 뭘 그걸로 신경을 써요? 그래도 고민이 남았어요?”nbsp“감사합니다.”nbspnbsp“이렇게 기도하세요. ‘당신 덕분에 내가 그동안 잘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내면 오히려 내 심지가 굳지 못하고 자꾸 흔들려요. 그저 감사하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어쨌든 옛정을 생각해서 고마워하는 마음을 내면 오히려 이런 데 안 흔들리게 됩니다. 기도를 그렇게 한번 해보세요. ‘돈 빌려와라, 문서 가져와라, 인감 떼 와라’ 이래도 웃으면서 ‘알았어요’ 하세요. 이튿날 ‘떼 왔나?’ 하면 ‘어제 못 갔어요’ 하고, 또 ‘떼 왔나?’ 하면 ‘오늘 아르바이트 한다고 바빴어요’ 하고, 성질내면 ‘아이고, 늙어서 화내면 중풍 걸린다는데 조심하세요’ 이렇게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심지가 굳어야 해요.nbspnbsp감사하다는 기도를 꾸준히 하면 성질이 안 나요. 고마운 줄을 모르면 ‘네가 잘 했냐, 내가 잘 했냐’ 이렇게 화를 내고 싸우게 되는데, 고마운 마음이 딱 들면 절대로 화를 내며 맞싸우지 않습니다. 그러니 고맙다고 더 기도를 해야 해요.”nbsp질문자가 웃으며 자리에 앉자 대중들도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스님이 어투까지 리얼하게 흉내 내며 답변을 해주어서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면 절대로 맞싸우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nbsp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니 약속한 2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서 불안했는데, 법회가 모두 끝나고 나서야 빗방울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마지막으로 질문한 분에게 답변을 해주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수행을 해나가야 하는지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법회를 마쳤습니다.nbspnbspnbsp“천성은 못 고친다고들 하죠? 얼마나 고치기 어려우면 ‘천성’, 하늘이 내린 성품이라고 했겠어요? ‘천성은 못 고친다’라는 말은 고치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라, 고칠 수는 있지만 고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고치기 어려운 줄 애초에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너무 쉽게 시작하면 하다가 그만두는 작심삼일이 됩니다. 이건 원래 고치기 어려운 것이니까, 고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꾸준히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결심이 아주 강해야 합니다. 쉽게 타협하면 안 돼요. 그래서 ‘죽어도 좋다’는 각오의 대결정심을 내야 하고, 또 꾸준히 해야 합니다. 며칠, 몇 달 하고 그만두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해나가면 누구나 고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습니다.nbspnbsp특히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의 경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입니다. 화가 잘 난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라고들 하잖아요. 모른다는 말은 무지를 뜻합니다. ‘내가 이해를 못 하겠다’라는 뜻이에요.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어요. 화를 내고 괴로워하면 내가 손해이니까 나를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해하는 마음을 내되,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면 단호하게 자르면 돼요.nbspnbsp그리고 천성은 고치기 어려운 줄을 알아야 해요. ‘생긴 대로 살겠다’ 이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고치기 어려운 줄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선은 ‘아, 내가 상대를 이해 못하는구나. 그래서 화가 나는구나’라고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이게 내 습이 된 줄을 알아서, 화가 날 때 ‘어, 화가 난다’라는 걸 스스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 순간에 놓쳐버렸다면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고 뒤에 참회해야 합니다. 이렇게 알아차리기와 참회하기를 꾸준히 하면 개선이 됩니다. 뭐든지 조급하게 생각하고 쉽게 생각하기 때문에 안 된다며 좌절하고 포기하게 돼요. 그러니 꾸준히 해 나가십시오.”nbsp알아차리기와 참회하기, 꾸준히 하기 등 스님이 이야기한 수행법에 대중들도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모두 법회를 듣기 전보다 홀가분해진 마음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nbspnbspnbsp법회를 마치고 통일암을 내려 온 대중들은 다시 염불사 앞에 모여서 경주남산순례를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가졌습니다.nbspnbsp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수많은 불교 유적이 계곡마다 조성된 경주남산은 신라인들의 역사와 문화, 신앙이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는 영산입니다. 이곳 염불사지도 그러한데 삼국유사에는 ‘한 스님이 하루에 몇 번씩 시간을 정해 염불을 외우셨다. 법당에 앉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그 소리가 당시 서라벌 360방 7만호에 들리지 않는 곳이 없어 사람들은 그를 공경하여 염불사라 불렀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nbspnbspnbsp염불사지 앞에는 석탑 2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그 앞에서 각 지역별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하루가 무척 유익했는지 다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전국에서 모인 정토불교대학 저녁반 입학생들과 함께 경주남산순례를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4.18. 121,184 읽음 댓글 38개

2016.4.15 수행공동체 경주남산 봄소풍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공동체에서 상주하는 대중들과 함께 경주 남산으로 봄소풍을 다녀온 후 오랜만에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아침 8시에 두북 정토수련원에 도착한 스님은 곳곳에 흩어져 있던 공동체 대중들을 운동장으로 불러 모았습니다.nbspnbsp▲ 두북 정토수련원nbsp대중들이 모두 모이자 오늘 봄소풍 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다들 안 죽고 살아 있네요. 반갑다는 표현을 경상도 식으로는 이렇게 말해요. 오늘 봄소풍 일정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전에는 경주 남산을 종주할 거에요. 그런데 몸이 아픈 환자들이 있으니까 오후에는 차를 타고 백운산 자락을 한 바퀴 돌 예정입니다. 소방도로가 나 있어서 차를 타고 가면서도 꽃구경을 할 수 있어요.nbspnbsp그러니까 우리는 남산의 북쪽 상서장에서 출발해서 남쪽 끝 새갓골로 내려오겠습니다. 환자들은 상서장에서 같이 출발을 하되 남산 아래를 차를 타고 돌면서 부처 바위 보고, 보리사 보고, 창림사지 보고, 포석정 보고, 삼불사 보고 오면 되겠습니다. 아시겠죠? 자, 그럼 출발하겠습니다.”nbsp몸이 아픈 환자들까지 배려하는 스님의 깨알 같은 배려에 대중들은 기쁜 마음으로 환호를 했습니다. 또 오랜만에 사무실을 벗어나 자연을 만끽한다는 설레임에 모든 대중들이 들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차량 여러 대에 나눠서 탑승한 후 상서장으로 향했습니다. 대중들이 모두 도착하자 스님은 경주 남산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우선 해주었습니다.nbspnbsp▲ 상서장nbsp경주 남산은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면 봄과 가을마다 순례를 오게 되는데, 공동체에 상주하는 대중들은 오래 전에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한 경우가 많아 오랜만에 스님의 안내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며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nbsp“지금 우리가 가는 남산은 경주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산이라 부릅니다. 2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하나는 금오산, 하나는 고위산이에요. 고위산과 금오산 사이로 흐르는 계곡이 용장계곡이고, 남북으로 8㎞, 동서로 4㎞로 뻗어 있는 산입니다.nbspnbsp옛날엔 남산에서 옥돌이 많이 났다고 해서 속담에 ‘남산 돌이라고 다 옥돌인가?’ 하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리 남산에서 옥돌이 많이 난다고 해도 남산 돌이 다 옥돌은 아니라는 뜻인데, 쉽게 설명을 드리면 ‘정토행자라고 해서 다 정토행자인가?’ 하는 뜻입니다. 정토행자라고 해도 그 중에는 정토행자가 아닌 사람도 좀 섞여있다는 겁니다.nbspnbspnbsp보통은 주로 남산의 서쪽으로 올라가서 동쪽으로 내려오든지, 동쪽으로 올라가서 서쪽으로 내려오든지 합니다. 동서의 종단 길이가 4㎞로 비교적 짧으니까, 주로 등산을 동서로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남북은 길다 보니까 남쪽과 북쪽은 골짜기 수가 적어요. 그러다 보니 대중들을 데리고 남북으로 종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남쪽으로 올라가는 건 부처바위 골이 거의 유일합니다.nbspnbsp그리고 남산은 현재 47개의 골짜기가 있고, 각 골짜기마다 절터, 탑, 불상, 무덤, 민속신앙, 전설 등 약 700개의 문화유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유네스코에도 등록된 자연박물관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은 북쪽 끝으로서, 시내 쪽으로 가장 튀어나온 부분입니다. 우리는 여기로부터 출발해서 올라갈 겁니다.”nbsp스님의 설명대로 일반 사람들은 거의 가지 않는 코스를 선택해서 가게 되었지만, 막상 걸어보니 코스가 완만해서 정말 산책하듯이 걷기에 아주 좋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우리가 출발하는 이곳이 상서장인데, 상서장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습니다. 상서장은 신라 말기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이 나랏일을 걱정하여 시무십여조의 글을 진성여왕에게 올렸던 곳입니다. 최치원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데, 매년 4월에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nbspnbsp더욱이 스님은 최치원 선생의 후손인지라 얼마 전에 최치원 선생 문집 출판 기념회에 초청을 받아 축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스님의 최치원 선생의 삶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현재의 상서장은 조선 말에 지었는데,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여조를 건의한 곳이라고 합니다. 왕궁이 바로 앞이니까 여왕이 산책을 나오거나 하는 자리에서 건의를 했는지도 모르겠네요.nbspnbspnbsp최치원은 신라 말에 6두품으로 태어나서 12살에 당나라로 유학을 갔습니다. 신라 말에는 골품제도라는 신분제도가 있어서 재주가 있어도 등용이 잘 되지 않으니까 최치원의 부친이 아들의 미래를 걱정해서 당나라에 유학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치원은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6년 만에 외국인을 위한 ‘빈공과’라는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당시 당나라 안에는 자국민을 위한 과거가 있고, 외국인을 위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이란 신라인, 발해인 및 티벳인 등 여러 동남아인들을 뜻하는데, 당시 외국인이 당나라에서 과거급제를 한다는 것은 요즘 우리가 미국에 유학 갔다가 거기 정부 관리가 된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과거급제 후 지방관리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높은 관리까지 올라간 겁니다. 병마도총 고변 대장군의 막후로 들어가서, 주로 당나라 말에 있었던 ‘황소의 난’에 대해서 ‘토황소격문’이라는 글도 쓰는 등 해서 당나라에서 출세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최치원이 외국인이니까 당나라에서 출세하는 데 한계가 있었는지, 신라에서 불렀는지, 어쨌든 29살의 젊은 나이에 이미 당나라에서 문장가로서 이름을 날린 뒤 귀국을 했습니다. 당시 신라에는 신분제도, 즉 골품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인재등용이 제대로 안 됐습니다. 특히 당시는 신라 말 진성여왕 때였는데, 최치원은 당시의 정국 혼란을 개혁하기 위해 시무십여조를 왕에게 바쳤습니다. 6두품으로서 가장 출세하는 게 지방군수 수준이었는지, 최치원은 당시 두 군데의 지방군수를 하다가 관직을 그만두고 해인사로 들어가서 평생을 보내셨습니다.nbspnbsp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중국에 널리 이름을 알린 사람 중에 신라시대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원효와 최치원입니다. 그런데 원효는 국내파로서 외국의 문물을 국내에서 연구하여 깨달은 뒤 중국에까지 이름이 난 세계적인 불교학자가 되었고, 최치원은 유학파로서 중국으로 가서 유학을 전공한 뒤 신라로 들어왔는데, 선진 문물인 당나라 문화를 익힌 후에 우리의 전통사상적 입장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중국에까지 널리 이름을 떨친 분입니다.nbspnbsp시진핑 주석이 우리나라 대통령을 만났을 때 최치원의 시를 읊고 얘기했는데, 대통령이 못 알아들었다고 해요. 또 옛날에 일본 총리가 한국에 와서 불국사를 가고 싶다고 해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데리고 갔는데, 일본 총리는 불국사 법당에 가서 절을 하고 우리나라 대통령은 기독교인이라고 밖에 서있었다는 우스운 일화도 있습니다.nbspnbsp반면에 인도의 모디 총리는 중국을 방문할 때 제일 먼저 백마사를 찾아갔습니다. 즉 인도에서 불경을 처음으로 중국에 가져와서 세운 절인 ‘백마사’를 제일 먼저 방문한 후 그 다음으로 현장법사가 경전을 번역한 곳을 방문했습니다. 그 의미가 뭐겠습니까? ‘너희 중국이 아무리 잘났다 해도 우리가 옛날에 불교라는 선진 문물을 전해준 덕분이다’ 라는 뜻이 있겠고, 또는 문화교류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먼저 문화를 내세우고, 그 다음에 북경에 가서 정치를 논하고, 상해에 가서 경제를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대통령마다 외국에 가면 경제문제부터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문화국가에서는 경제가 중요하긴 하지만 문화도 굉장히 중요시 합니다. 문화는 품위의 문제이거든요. 우리의 수준이 아직 그 수준이에요.nbspnbsp최치원이 당나라에서 쓴 시들을 모아서 국내에서 최초로 만든 개인 문집이 ‘계원필경’입니다. 최치원 선생은 원래 유학자이지만 도교와 불교를 같이 공부해서 유불선 3교를 융합했는데, 그것을 또 우리의 전통신앙인 선도의 입장에서 융합했기 때문에 ‘풍류도’, ‘현묘지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워낙 명문장가였기 때문에 신라 말에 유명한 스님들인 국사들이 돌아가시면 비문을 다 써주셨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사산비문’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지요.nbspnbspnbsp최치원 선생은 불교에도 굉장히 조예가 깊은 분이라 이황 등 유학자들은 고운 선생을 별로 안 좋아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배척했기 때문에 최치원 선생은 유교의 시조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와 타협했다는 이유로 한때 서원에 모셔진 최치원의 위패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편협하고 배타적인 생각입니까? 그런 면에서 원효가 화쟁사상으로 불교의 제 종파를 통합하는 관점을 가졌다면, 최치원은 유불도선 사상을 융합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동양과 서양, 종교와 과학을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하나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nbspnbsp스님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다함께 상서장을 참배했습니다. 영정이 모셔져 있는 영정각 앞에 선 대중 일동은 합장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nbsp이어서 경주 남산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의 설명대로 남산의 북쪽 끝에서 출발해 남쪽 끝으로 내려오는 종주 산행이 되겠습니다.nbspnbsp▲ 경주 남산. 상서장에서 새갓골까지.nbsp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성처럼 쌓여진 둑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이것이 신라 시대 때 서라벌을 지켰던 ‘남산신성’ 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산성을 가로지르도록 만들어진 산길을 지나갈 때는 양 옆으로 높이 쌓은 산성의 윤곽을 더욱 확연히 볼 수 있었습니다. 비교적 야트막한 산봉우리와 계곡을 이어 쌓은 성인데, 울창한 나무들이 없었을 당시에는 왕성인 월성과 경주평야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nbspnbsp▲ 남산신성nbsp상서장을 출발해 이영재를 지나 새갓골로 내려오는 길은 약 4시간이 소요 되었습니다. 산길에는 진달래 꽃잎이 흩뿌려져 있어서 마치 꽃길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스님은 “산에 나무들도 우리가 온 것을 축하해 주려고 이렇게 꽃비를 내려주었네요” 하며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nbsp어느 시 구절처럼 진달래 꽃잎을 사뿐히 즈려 밟으면서, 도반들과 정다운 이야기도 나누며 오랜만에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경주 남산을 내려와서는 다시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묘덕 법사님과 최말순 보살님이 정성껏 국과 반찬을 준비해주어 맛있게 식사를 한 후 오후 소풍을 위해 다시 차량에 올라탔습니다.nbspnbsp오후에는 백운산 자락에 진달래가 산 전체를 물들인 곳이 있는데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환자들을 배려해서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마침 소방도로가 산 주위를 빙 돌 수 있게 잘 정비가 되어 있어서 차를 타고 가면서도 봄구경을 실컷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진달래는 이미 꽃이 진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연달래는 이제야 곳곳에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연달래를 바라보며 스님은 진달래와 연달래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말해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저도 젊을 때는 진달래를 더 좋아했어요. 색깔이 더 진하고 예뻐보이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요즘은 연달래가 더 좋아 보여요. 왜냐하면 연달래는 약간 색이 연하긴 하지만 잎이 진달래처럼 뾰족하지 않고 둥글거든요. 마치 귀부인을 보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어때요?”nbspnbspnbsp스님의 진달래와 연달래 사랑은 언제 들어도 대중들을 웃음 짓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행자님은 꽃을 보고 좋아하는 스님을 보고 “그럼에도 우리들에겐 꽃보다 스님”이라며 웃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오늘은 하루 종일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으로부터 그 어떤 비싼 선물보다 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nbspnbsp저녁 7시부터는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토회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작년 8월부터 24시간 1초도 쉬지 않는 1000일 기도를 시작했고, 또 평화재단을 통해 많은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데, 수행자로서 공동체 대중들은 어떤 마음으로 사회 활동에 임해야 하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특히 그저께 총선이 끝나고 투표 결과에 대해 수많은 평가와 예측이 난무하고 있지요. 이에 대한 스님의 견해도 함께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봄을 맞아서 이렇게 같이 산책도 하고 식사도 하니 참 좋습니다. 업무가 나뉘어 있다 보니까 한꺼번에 만나서 생활하기가 조금 어려워지네요. 정토회가 커갈수록 더할 것입니다. 해외에 나가 계신 분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앞으로 우리가 큰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면, 가능한 도시생활은 대중부에서 하고, 본부는 산속이나 농촌에서 농사지으면서 같이 모여 살면 제일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꼭 결혼을 해서 애기를 낳아야 가족이 되는 게 아니라 같이 밥 먹고 살면 가족이 되는 거니까요.nbspnbspnbsp그런데 우리가 속한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서 우리가 수행공동체를 구성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없는, 즉 우리가 우리들의 삶만을 위해 살 수 없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까지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되는, 이런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우리가 태평성대에 태어났다면 수행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테지만, 물이 고이면 수평을 이루다가 경사가 지면 졸졸졸 흐르듯이,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사회는 아직 분단이 극복되지 못한 상태이고, 여러 사회적 문제들도 있어서 우리가 거기에 대응을 하다 보니 사회적인 실천 활동도 함께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nbspnbsp그런데 수행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혹시 어떤 분들은 ‘우리가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게 과연 수행인가?’ 이렇게 달리 생각하는 분도 물론 있겠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저희가 이 공동체를 구성할 때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외면하지 말고,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서 문제들을 풀어가자’ 하는 원을 세웠습니다. 그 ‘원’이란 사회적으로는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이고, 불교적으로는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에 충실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공동체에 참여하는 분들은 이런 방향으로, 즉 이 두 개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시기에는 백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지옥으로 떨어질 과보를 각오하고 창과 활을 들어 전투를 했지 않습니까. 그런 때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평화롭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nbspnbsp이런 관점하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어떤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현 시스템에서 그 변화의 계기는 독립운동 같은 무장투쟁도 아니고 투표, 즉 선거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옛 선조들에 비해 우리는 훨씬 더 적법하고, 지옥 갈 각오까지는 안 해도 되는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께 투표를 통해서 우리들의 권리를 최대한 행사해 봤습니다.nbspnbsp보름 전까지만 해도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 힘을 지나치게 믿고서 우리가 ‘대한민국이 과연 민주공화국인가?’ 하는 회의를 할 만큼 지나친 권력행사를 해 왔는데, 그것이 선거를 통해서 보름 만에 국민의 심판을 받는 걸 볼 수 있었죠. 역시 우리가 민주공화국인 게 맞긴 맞는 것 같습니다. 만약 권력이 국민들에게 있지 않고 특정한 계급이나 사람에게 있다면 국민이 이렇게 반대한다고 해도 눈도 깜짝 안 했겠지만, 현재의 제도가 국민의 의사를 따라야 한다는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선거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nbspnbsp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제도적 권리를 최대한 활용해서 결국 조금 개선될 가능성은 열어놓은 셈입니다. 진짜 개선될지, 안 될지는 이제부터 지켜봐야 하겠지만요. 그러나 힘을 가진 자들이 국민을 두려워하는, 그래서 만용을 부릴 수 없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또 지나치게 실망해서 의기소침해 있던 사람들로 하여금 ‘가능성이 있겠다. 희망을 가져도 되겠다’라고 하는 계기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nbspnbsp그런 일에 여러분들이 작은 기여라도 하게 된 것이고, 그 힘이 미약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민심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민심이 있어도 그게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이번에도 아주 절묘하게 민심이 드러났는데, 사실 교차투표를 하지 않았다면 결과적으로 정부 여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컸거든요. 그래서 이번 선거결과는 기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기도의 공덕이라고 볼 수 있고, 사회적으로 말하면 국민의 올바른 주권행사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nbspnbsp앞으로 가야 할 길은 더 험난할 것입니다. 선거결과를 봤을 때 누가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누가 가장 나빴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첫 번째로 정부여당이 최악의 행패를 부렸기 때문에 국민은 일단 그것을 견제해서 여당에게 표를 안 줬다고 볼 수도 있고요. 두 번째로 야당도 정말 꼴불견이었습니다. 지역주의에 안주한 야당에게 전라도에서는 ‘이건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의사표시를 했잖습니까. 또 경상도에서는 그렇게까지 표현은 안됐지만 20년 만에 처음으로 대구에서 야당이 당선되고, 경상도 전체에서는 무소속 야당이 17명이나 당선됐잖습니까. 이것은 전라도에서 국민의 당이 이긴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nbsp수도권에서도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인 야당을 선택했을 뿐이지, 야당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당투표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까. 국민들은 ‘너희가 좋아서 투표한 거 아니다’라는 말을 정당 투표로 표현한 겁니다. 그러면 제3당인 국민의당이 정말 잘해서 그렇게 높은 지지를 받았을까요? 아니지요. 새로 생긴 정당이라 아직 구체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기에, 또 최악과 차악을 피하다 보니까 국민의당도 마음에 안 들지만 선택했을 뿐입니다. 그것을 국민들이 국민의당을 지지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오해한다면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 안에 그 결과가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nbspnbsp그러니 모든 정당은 반성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길을 모색해야 할 텐데, 제가 볼 때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실망해서 ‘진짜 꼴보기 싫다’ 라고 할 게 아니고, 다음 대선에서 다시 심판해서 확실하게 국민의 뜻을 보여줘야 합니다.nbspnbsp그래서 다음 대선에서는 좀 더 좋은, 국민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결과가 나왔으면 합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지금 남북 간의 극단적 안보위기, 즉 전쟁위기까지 거론되는 작금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 미중 또는 중일이 벌이는 강대국의 각축전 속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우리의 운명을 강대국 손에 쥐어주고 있는데, 우리가 오히려 강대국들의 힘의 역학관계를 이용해서 평화통일도 달성하고, 또 우리로 인해서 주변국들의 갈등이 오히려 융화되는, 그래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오고 동아시아 공동체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면, 작은 힘이지만 오히려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중생을 편안하게 하는 중요한 방법인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깨우치게 하여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생이 사는 환경 자체를 개선해 줌으로써 그 속에 사는 중생들의 고통이 덜어지도록 하는 게 중요할 때도 있거든요.nbsp다시 강조하지만 사회변화와 개인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게 정토회의 설립 목표이자 취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수행을 통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으로 거듭 나야 하고, 동시에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보다 평화롭고, 보다 평등하고, 보다 자유로운 곳으로 만드는 일도 꾸준히 해 나가야 합니다. nbspnbspnbsp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다들 많은 것을 느끼셨을 텐데요. 조금 잘 됐다고 들뜨거나 조금 안 됐다고 가라앉는 것은 수행의 원칙에 맞지가 않습니다. 성공했을 때는 들뜨지 않고 오히려 그 성과를 바탕으로 해서 더 큰 성공을 향해 노력하는 게 필요하고, 실패했을 때는 실패한 것을 교훈삼아 다음에 성공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게 수행자의 본분입니다.”nbsp선거 결과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관점이 명확히 잡히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앞으로 남은 과제가 무엇인지도 다시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며 대중들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중들은 그동안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한국사회의 모습을 보며 들었던 많은 의문들을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각각의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모임을 마치면서 스님은 “내일은 세월호 참사가 있은지 2주기가 되는 날”이라며 “내일은 정토불교대학생들과 함께 경주 남산순례를 하게 되는데, 순례를 시작하기 전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의식을 꼭 하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스님의 제안에 따라 법사님들은 세월호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정토불교대학생들과 함께 봄소풍을 겸한 경주 남산순례를 할 예정입니다. 오후에는 통일암에 모여서 장기자랑 한마당과 즉문즉설 시간도 가질 예정입니다. nbsp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17. 94,007 읽음 댓글 38개

2016.4.6 희망편지, 스님의하루 구독자와 함께하는 공개방송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SNS를 통해 ‘희망편지’와 ‘스님의하루’를 읽고 있는 구독자들과 nbsp함께 공개방송을 했습니다.nbspnbsp그동안 ‘희망편지’와 ‘스님의하루’ 구독자들로부터 ‘나도 스님에게 질문을 해보고 싶다’ 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SNS를 통해 스님의 법문을 읽으면서 나날이 행복해져 가고 있지만 일상 생활로 돌아와 자신의 문제에 직면하면 여전히 힘들다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죠. 또 아기를 키워야 하는 여성들, 퇴근이 늦은 직장인들, 해외에 사시는 분들 등 즉문즉설 강연장에 오지 못하는 많은 분들도 같은 요청을 자주 했습니다. 오늘은 이런 분들을 위해 화상 채팅 방식을 도입한 대화도 새롭게 시도되었습니다.nbspnbsp카카오스토리 ‘희망편지’와 카카오톡 ‘스님의하루’를 통해 전세계에서 300여 명의 구독자들이 공개방송에 참여해 질문해보고 싶다고 신청을 했습니다. 그 중 40여 명이 채택되어 정토회 별관 4층 스튜디오에 모두 모였습니다.nbspnbsp▲ 정토회 별관 4층 스튜디오nbsp참석자들은 대부분 SNS를 통해서만 스님을 만나왔던 분들이라 “오늘 법륜 스님을 가까이서 본 것이 처음이예요” 라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참석자들이 “법륜스님” 하고 환호하자 스님이 웃음을 머금고 무대로 걸어나왔습니다.nbspnbsp먼저 사회를 맡은 최현태님이 마음이 들뜨는 봄날에는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 여쭤보며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세상은 봄으로 가득합니다. 이렇게 들뜨기 쉬운 봄날에도 수행은 해야 되는 거겠죠?”nbspnbsp“봄날에는 노세요. 무슨 수행을...”nbspnbsp“아... 그런가요? 봄날에는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 여쭙고 싶었는데.” nbspnbsp“봄날은 밖에 나가서 봄놀이 하는 게 수행이에요. 이런 봄날에는 이렇게 답답한 공간에 앉아있을 게 아니라 밖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도 보고, 대지로부터 솟아오르는 새싹들도 보고, 봄나물도 뜯어서 맛있게 먹고, 그러면서 마음을 기쁘게 갖는 게 공부예요. 자연스럽게 봄은 봄으로서 만끽하고, 여름은 여름으로서 만끽하고, 가을은 가을로서 만끽하고, 겨울은 겨울로서 만끽하는 게 수행입니다.”nbspnbsp“저희들도 오늘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모였으니까 그것도 자연스러운 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겠죠?”nbsp“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좋은데, 그것도 지나치면 욕심인 거예요.”nbspnbsp이렇게 유쾌하게 웃는 가운데 촬영장 분위기는 벌써 후끈 달아올랐습니다.nbspnbsp참석자들은 방송 시작 전에 포스트잇으로 미리 자신의 질문을 적어서 칠판에 부착해 두었는데, 스님과 사회자가 번갈아가며 포스트잇을 무작위로 뽑는 방식으로 방송은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받은 질문지nbsp무엇보다 이번 공개방송에서는 화상채팅 방식의 즉문즉설이 새롭게 시도되었는데요. 두 명이 화상채팅으로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일본인과 결혼해서 일본에서 아이를 낳아 살고 있는 임산부 여성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살아야 하지만 한국이 자꾸 그리워서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젊은 시절 번 돈을 아버지에게 위탁해 놓았는데 지금에 와서 아버지가 그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화상으로도 재미있게 대화가 오고가는 모습을 청중들도 아주 흥미롭게 지켜보았습니다. nbspnbsp▲ 화상 채팅으로 즉문즉설을 하고 있는 모습nbsp또 촬영장에서 즉석 질문을 받았습니다. 참석한 모든 분들이 질문을 적어서 포스트잇에 붙였지만 그 중에 6명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 중에 한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성분은 스님을 보자 “그동안 스님의 법문을 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질문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작년에 아이 아빠와 이혼을 해서 아이와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아이는 선천적으로 심장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 아빠가 아이 안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고, 왕래도 안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이런 상황을 아이한테 어떻게 설명을 하고, 나중에 아이가 아빠를 찾으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또 어떻게 하면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지 생각하니 답답합니다.”nbsp“지금 엄마는 행복한가요?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가 행복할 수 없어요.”nbsp nbsp“그동안 SNS로 스님 법문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많아서 예전보다 재밌고 행복하게 살고는 있어요.” nbspnbsp“그런데 무슨 일로 그렇게 우세요. 남편과 헤어진 게 슬퍼요?”nbspnbsp“제가 눈물이 좀 많습니다.”nbspnbsp“그럼 아이도 나중에 눈물 많은 아이가 되지요.” nbsp nbspnbsp“그 동안 저에게 위로가 되어주신 스님을 직접 만나 뵈니까 저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요.”nbspnbsp“그럼 웃어야지 왜 울어요. 아이가 몇 살이에요?“nbsp“3살입니다.”nbsp“질문자가 행복하게 살면 아이는 저절로 행복해진다는 걸 알고는 있지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아이가 행복하기를 원한다고 말로만 하는 것과 같아요. 신체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엄마 때문입니다. 아이의 장애를 보고 엄마가 아이 앞에서 자꾸 ‘어쩌나, 어쩌나’ 하면서 근심 걱정하니까 아이의 성격이 왜곡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아이를 보고도 엄마가 ‘너는 하느님이 주신 나의 사랑이야. 너야말로 나의 인연이다.’라며 즐겁게 키우면 아이가 비록 신체에 장애가 있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아주 명랑하게 자랍니다.nbspnbsp가장 대표적인 예가 ‘닉 부이지치’라는 호주 사람이에요. 닉 부이지치는 두 팔,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났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런 아이가 태어난 걸 보고 통곡할 때 그 엄마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다’라고 기뻐하면서 키웠기 때문에 중증장애인인데도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며 본인도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행복할 수 없다는 걸 명심하세요.nbspnbsp그리고 남편이 없는 게 무슨 걱정이에요? 질문자는 남편이 맘에 안 들어서 헤어졌을 거 아니에요?”nbspnbsp“행복한 가정을 보면 많이 부럽더라고요.”nbsp“그러면 성질 좀 죽이고 살지, 왜 성질을 부려서 헤어졌어요?”nbspnbspnbsp“아이 아빠와 사는 게 행복하지 않았거든요.”nbsp“행복하지 않아서 싹 정리했으면 이제부터 행복해야 되잖아요. 남편과 살 때는 같이 살아서 행복하지 않았고, 헤어진 후에는 헤어져서 행복하지 않다는 얘기 아닙니까?”nbsp“저는 아이 아빠의 모난 성격이 아이한테 해가 된다고 생각했고, 그게 아이한테 전이될까봐 걱정이 많았습니다.”nbspnbsp“남편이 모났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자가 남편과 싸우기 때문에 아이한테 전이가 되는 겁니다. 아이는 엄마로부터 영향을 받는 존재예요. 지금이라도 질문자가 행복하게 살면 아이한테는 아무 문제가 안 생깁니다. 나중에 아이가 아빠는 어디 있냐고 물으면 ‘미국에 있다’거나 ‘돌아가셨다’고 하면 되지요.”nbsp“그러면 아이한테 거짓말을 하는 게 되잖아요.”nbsp“그런 거짓말은 해도 괜찮아요. 아이가 나중에 다 크면 ‘네가 걱정할까봐 거짓말 했는데, 사실 네 아빠는 살아있다’ 라고 얘기해 주면 됩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았다고 하면 아이도 좋아할 거예요. 죽었는데 살아있다고 했다가 나중에 사실은 죽었다는 걸 알게 되면 슬프겠지만 그 반대는 괜찮아요. 살아있다는 건 기쁜 일이잖아요.”nbsp“저는 아이 아빠와 같은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이에요.”nbsp“그러면 거짓말하지 말고 애가 아빠 어디 있냐고 물으면 ‘저기 있다’고 가르쳐주면 되잖아요.”nbspnbsp“저는 아이 아빠가 친자식을 외면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됩니다.”nbspnbsp“자연 세계에 있는 강아지나 소, 개나 토끼를 한번 보세요. 수컷이란 건 교미 한 번 하면 끝이에요. 새끼는 다 암컷이 키웁니다. 자연의 질서를 닮는 건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질문자만 이해가 안 된다고 할 뿐이에요.”nbspnbsp“아이가 아픈데다가 모자 가정이 정상적인 가정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제가 아이한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nbsp“괜찮아요.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아이를 갖고 싶지만 결혼하기는 싫은 여성들이 정자 은행을 이용한다고 해요.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그 여성들은 질문자처럼 울면서 지낼까요? 아니에요. 아이가 아빠 찾을까봐 걱정할까요? 아니에요. 그저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기 때문에 아빠가 있건 없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또 고주몽도 아빠 없이 컸지만 나중에 한 나라의 왕이 됐잖아요. 질문자의 아이도 고주몽처럼 될지 누가 알아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런 건 걱정거리가 아닙니다.nbspnbsp그리고 이혼했더라도 아이 아빠에게 아이 양육비는 청구할 수 있잖아요. 청구해서 받을 수 있는 건 받고, 못 받으면 포기하세요. 그러나 받을 수 있는 건 계속 요청해서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질문자에게 주어진 권리니까요. 주어진 권리도 못 찾는 건 바보예요.”nbspnbsp“나중에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아빠가 그렇게 가까이 사는 데도 자기를 외면하고 살았잖아요.”nbspnbsp“상처를 안 받을 수 없지요. 아빠가 아이를 외면한 건 외면한 거니까요. 그런데 그럴 바에야 아빠가 죽었다고 거짓말하는 게 나아요. 굳이 사실대로 얘기하려면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빠는 외국에 갔다’고 거짓말했다가 그 이후에 ‘저 동네에 산다’고 얘기하세요. 아이가 묻지도 않는데 질문자가 미리 얘기하지는 말고요. 아이가 ‘그런데 왜 나는 아빠를 볼 수 없었느냐?’고 물으면 ‘엄마가 잘못해서 아빠와 헤어졌기 때문에 그렇다’고 얘기하면 되지요.”nbsp“아이가 나중에 아빠를 보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nbsp“당연히 보여줘야지요. 부처님도 아이를 낳자마자 버리고 가셨다가 12년 만에 아들을 만났어요. 그 사이에 아이를 찾지도 않았습니다. 야소다라 공주가 아들한테 ‘저기 부처란 분이 네 아버지이다. 그러니 가서 상속물을 달라고 해라’라고 했어요. 그 말속에는 남편에 대한 야속한 마음이 들어있어요. ‘말도 없이 가서 나를 고생 시키더니 깨달았는지 뭐했는지 알 게 뭐냐?’ 하는 마음이었겠죠. 그래서 아들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부처님한테 가서 인사를 하고 ‘당신의 아들 라훌라입니다. 저에게 상속물을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잠시 계시다가 옆에 있던 사리불존자에게 ‘이 아이를 출가시켜라’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 라훌라도 출가를 하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으로서는 최고의 상속물을 준 것이지요.nbspnbspnbsp물론 아이에게는 가능하면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지요. 그러나 예를 들어서 2살짜리 아이가 ‘엄마, 나 어디서 나왔어?’라고 물으면 ‘이리로 나왔어’라고 다리 사이를 가리키지 않고 ‘배꼽으로 나왔어’라고 얘기하잖아요. 우리가 그런 거짓말을 나쁜 거짓말이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그 아이의 수준을 봤을 때 달리 말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런 것처럼 ‘아빠가 미국에 있다’고 얘기해 뒀다가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사실은 엄마와 아빠가 헤어졌고, 아빠는 지금 저기 살고 계신다. 아빠한테 우리 같이 가볼까?’라고 해서 아이가 아빠를 보고 싶어 하면 남편한테 연락해서 ‘아이가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데 보낼까요?’라고 물어서 ‘싫다’고 하면 사실대로 ‘아빠가 안 보겠다고 한다. 우리 여태 아빠 없이도 잘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우리 둘이 잘 살자’ 라고 하면 됩니다.nbspnbsp그런데 질문자가 남편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듣고 남편을 미워하거나 슬퍼서 울거나 하면 아이까지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그런 얘기를 듣고 아무렇지도 않아야 합니다.”nbsp“그런데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nbspnbsp“그래서 질문자는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남편을 찾아가서 다시 같이 살자고 얘기해 봐요.”nbsp“저는 헤어지게 된 이유가 반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잘못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을 하는데, 그 사람은 ‘쟤는 변하지 않을 사람이니까 같이 살기는 힘들 것 같다’고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nbsp“그럼 질문자가 변해서 찾아가면 되잖아요.”nbsp“그런데 제 기준에서는 ‘나도 잘못이 있고, 너도 잘못이 있으니까 우리 서로 변해 보자’ 하는 것이 되어야지, 한쪽만 변한다고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nbsp“서로 반반씩 변하자는 건 불가능한 요구예요. 그렇게 요구할 거면 애초에 같이 안 사는 게 나아요. 질문자가 ‘너는 그대로라고 하더라도 내가 100 변하겠다.’ 하는 자신이 있으면 남편한테 같이 살자고 하세요. 그게 아니라면 같이 안 사는 게 나아요. 아니면 ‘너도 변하지 말고, 나도 변하지 말고, 우리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살자’라고 하든지요. 상대한테 10분의 1이라도 변하라고 요구해도 상대는 그게 안 되는 걸 어떻게 하겠어요? 요즘 부부가 싸우는 것도 다 그것 때문이에요.nbspnbsp상대한테 요구하지 말고, 본인이 결정을 하세요. 지금 이대로 생긴대로 내가 받아들이고 살겠다면 살고, 그렇게는 못 살겠다면 헤어지면 되지, ‘너도 반만 바꿔라. 그러면 살겠다’ 라거나 ‘너만 바꾸면 살겠다’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은 ‘그게 왜 불가능해요?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바뀌어야 되는 것 아니에요?’라고 하겠지만, 사람이 바뀌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에요?nbspnbsp바뀌는 게 그렇게 쉽다면 본인부터 바뀌면 되잖아요. 질문자는 우선 자꾸 우는 것부터 바꿔보세요. 그 심정은 내가 충분히 이해하는데, 어쨌든 질문자의 마음에 스트레스가 쌓여있으니까 눈물이 자꾸 나는 거예요.nbspnbsp귀찮은 남편 떼어놓았겠다 아이 하나 데리고 재미있게 살면 되지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없잖아요. 6822825전쟁 때 애기 하나 업고, 하나는 손에 잡고, 하나는 뱃속에 있고, 피난 보따리 하나 이고 내려와서도 산 우리 할머니 세대도 있는데요. 그런데 질문자가 왜 못 살겠다는 거예요?nbspnbsp‘못 살겠다’고 생각하면 아이 없이 혼자서도 못 사는 것이고, ‘살겠다’고 생각하면 토끼도 살고 다람쥐도 사는데 왜 사람이 못 사냐 하면서 재미있게 살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그렇게 맨날 울고 살면 곱게 늙을 수가 없어요.”nbsp그제서야 울먹이던 질문자는 웃음을 보였습니다. 청중들도 밝아진 질문자를 위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질문자가 한 가지 질문이 더 있다며 다시 물었습니다. 마지막 대화에서 질문자는 자신이 그동안 왜 남편과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었는지 좀 더 본질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한 가지 더 질문이 있는데요, 제가 혼자 아이와 어렵게 살고 있는데 저 모르게 부모님이 남동생한테 많은 재산을 줬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어요. 저는 그게 너무 섭섭합니다. ‘남동생 보다는 제가 더 힘든 처지인데, 도와주시려면 저를 도와주셔야지 왜 남동생을 도와줬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남동생이 부모님의 돈을 그렇게 함부로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고, 거기에 응한 부모님도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남동생과는 거의 말을 안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nbsp“질문자는 진짜 웃기는 사람이네요. 부모님이 자기 돈을 누구에게 주든 그건 부모님의 자유잖아요. 또 자기 부모님한테 돈을 얻어내는 것도 남동생의 재주이고요. 자기도 필요하면 가서 달라고 해보고 안 주면 그만이지 왜 남을 미워해요?”nbspnbsp“부모님이 그렇게 힘들게 모은 재산을 자식이 그렇게 가져가면 안 되는 거잖아요.”nbspnbsp“그런 생각을 하니까 질문자가 남편과 못사는 겁니다. 질문자는 ‘너는 남자니까 어떻게 해라’, ‘너는 아이 아빠니까 어떻게 해라, ’너는 부모니까 어떻게 해라’라고 하는데, 그렇게 정해진 건 이 세상에 없습니다. 부모님이 자기 돈을 길 가는 사람에게 주든, 절에 보시를 하든, 남동생을 주든, 그건 부모님의 자유예요. 질문자는 왜 남의 돈에 그렇게 욕심을 내요? 질문자한테나 남동생이지,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기 아들한테 준 거예요.”nbspnbsp“돈을 조금은 줄 수 있겠지만 너무 많은 돈을 주셨어요.”nbsp“많이 주든 적게 주든 질문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nbspnbsp“저는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부모님이 힘들게 번 돈인데 내가 이렇게 하면 안 되겠지. 나중에 정 힘들면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라고 했던 건데, 남동생은 마치 맡긴 돈을 찾아가듯이 그렇게 쉽게 받아갔다는 게 저는 너무 이해가 안 갑니다.”nbsp“자기 엄마 돈을 아들이 가져간다는데 질문자가 무슨 상관이에요. 저야말로 질문자가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nbspnbsp질문자가 엄마를 걱정해서 돈을 안 가져갔다고 해서 남동생도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게 바로 독재에요, 사람은 다 달라요. 질문자는 그런 거고, 남동생은 그렇지 않은 거예요.”nbsp“그런데 제 기준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nbspnbsp“질문자 기준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 게 맞는데,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가 괴로운 거예요. 질문자는 항상 자기 기준에 의해서 남편을 보고, 부모를 보고, 남동생을 보니까 남편과도 원수가 되고, 부모와도 원수가 되고, 남동생과도 원수가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는 나중에 아이하고도 원수가 됩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든 신경 쓰지 마세요.nbspnbsp남편도 남편 좋을 대로 사는 거고, 부모님이야 돈을 어떻게 쓰든 당신들 알아서 쓰는 거고, 남동생이야 돈을 어떻게 얻어서 쓰든 그건 자기 재주껏 사는 거고, 질문자는 자기 아이 데리고 알아서 살면 되는 거예요.”nbspnbsp“그렇지만 섭섭합니다. 저도 딸인데, 제가 더 힘든데, 왜 저를 안 도와주시고 남동생을 도와주시나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nbspnbsp“질문자는 몇 살이에요?”nbsp“39살입니다.”nbsp“39살이나 된 딸을 부모가 왜 생각해야 돼요? 짐승들도 보면, 새끼가 젖을 뗀 후에는 다 스스로 알아서 삽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돈을 어디에 쓰든 그건 부모님의 자유입니다. 지금 질문자는 자기 인생도 똑바로 안 살면서 끊임없이 남의 인생에 간섭하고 있어요. 질문자부터 독립을 하세요. 지금 질문자는 유아적인 사고를 하고 있어요. 7살짜리 애가 3살짜리 애를 키우려니까 애는 먹겠어요.nbspnbspnbsp지금 질문자는 덩치만 컸지 사고방식이 그렇다는 거예요. 어른다운 사고를 해야지요. 질문자는 지금 아이 엄마잖아요. 본인이 엄마면서 왜 자꾸 엄마를 찾아요? 부모한테는 ‘나한테 돈 안 달라는 것만 해도 고맙다. 안 돌아가신 것만 해도 고맙다’라고 생각해야지,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건 벌 받을 일입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아이 하나 데리고 재밌게 잘 사세요. 이 좋은 세상에서 그렇게 못 살 이유가 없잖아요.”nbsp“예, 감사합니다.”nbsp본인의 문제점을 발견한 질문자는 한층 더 밝은 얼굴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뜨거운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방송 촬영이라 평소 강연장에서와는 달리 한 명당 10분 내외로 아주 간명하게 문답이 오갔습니다. 여덟 명의 질문을 받고도 2시간 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마칠 시간이 되자 사회자가 마무리 말씀을 부탁했습니다. 스님은 2시간 동안의 문답을 총정리하면서 왜 우리가 불행한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nbspnbsp“사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면 끝이 없어요. ‘시어머니 모시고 살기 힘들다’, ‘결혼해서 살기 힘들다’, ‘애 둘 키우기 힘들다’, ‘직장 다니기 힘들다’ 라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는 힘들고 괴로운 조건밖에 없어요. 그런데 반대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래도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행복하다’, ‘다른 사람은 결혼도 못 했는데 나는 결혼해서 행복하다’, ‘애가 둘이나 있어서 행복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늘 행복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옛날 여성들은 직장에 다니고 싶어도 다닐 권리가 없었잖아요. 지금도 사우디 같은 데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직장 다닐 권리가 있잖아요. 또 옛날에는 애 엄마가 되면 직장을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남자들과 똑같이 애도 키우면서 직장도 다닐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또 옛날에는 남자가 죽으면 여자 혼자 살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지금은 남편과 헤어지거나 남편이 죽어도 여자 혼자 살림 꾸리며 살 수 있잖아요. 재혼하고 싶으면 재혼할 수도 있고요. 그러니 좋게 보면 다 좋은 조건밖에 없어요.nbspnbsp‘이래서 불행하다’ 그러면 세상만사가 다 불행할 조건이고, ‘이래서 행복하다’ 그러면 모든 게 행복할 조건입니다. ‘이래서 불행하다’ 라고 하면서 불행의 조건을 찾는 걸 부정적 사고라고 합니다. ‘이래서 행복하다’ 라고 하면서 행복의 조건을 찾는 걸 긍정적 사고라고 합니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조건 때문이 아니라 부정적 사고 때문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 사고로 바꿔야 해요. 매사를 ‘아, 그래서 좋은 일이다’ 이렇게 여겨보세요. ‘오늘 저녁을 못 먹어서 힘들다’ 라고 하지 말고 ‘저녁을 안 먹었으니 다이어트에 참 좋겠다’ 라고 해 보세요. 있는 거 안 먹으려면 힘든데 없으니까 안 먹기가 쉽잖아요.nbspnbsp이렇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그러면 늘 입가에 미소를 띌 수밖에 없습니다. ‘늙어서 힘들다’ 라고 하지 마세요. 늙어 보면 좋은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늙으면 공부 안 해도 되고, 결혼 안 해도 되고, 애 안 키워도 되고, 직장 안 다녀도 되고, 버스 타면 자리도 양보받고 좋은 점이 많아요. 실제로는 늙었는데 자꾸 젊은 애들처럼 뛰어다니려고 하니까 ‘늙어서 나무에도 못 올라가고, 뛰지도 못 한다’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늙은 게 한스러워집니다.nbspnbspnbsp그러니 지금부터는 주어진 조건의 좋은 점만 자꾸 보세요. 긍정적 사고를 하세요.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 수가 있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행복하지 못할 조건 때문에 불행한 게 아니고, 조건은 다 똑같은데 본인이 부정적 사고를 하니까 괴로워지는 거예요. 긍정적 사고를 하면 행복해지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긍정적 사고로 봄날처럼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nbsp스님의 얘기만 듣고 있는데도 벌써 입가에 미소가 돌고 얼굴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늘 스님으로부터 긍정적 사고가 무엇인지 잘 배웠으니 이 기운을 듬뿍 받아서 ‘무조건 행복하기’를 다짐해 봅니다.nbspnbsp공개 방송을 마치고 참석자들 모두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을 가까이에서 뵌 것이 처음인 분이 많아 모두들 어쩔 줄 몰라하며 기뻐했습니다.nbspnbsp▲ 공개방송 참석자들과 함께nbsp촬영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모종을 심는 등 농사일을 한 후 다시 서울로 올라갈 예정입니다.nbspnbsp오늘 촬영한 공개방송은 유튜브, 카카오TV, 카카오스토리 희망편지, 카카오톡 스님의하루, 희망편지 앱,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다음주에 하나씩 공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nbsp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07. 143,473 읽음 댓글 54개

2016.4.4 (저녁) 방송, 연극, 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전에 문경 봉암사에서 열렸던 서암대종사 열반 13주기 추모법회에 이이서 저녁 7시부터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을 주제로nbsp방송ㆍ연극ㆍ연예ㆍ작가ㆍ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길벗 모임 주관으로 열렸습니다. 길벗은 정토회에서 마음 공부를 하고 있는nbsp방송ㆍ연극ㆍ연예ㆍ작가ㆍ문화 예술인들의 모임입니다.nbspnbsp여의도 한국화재보험협회 1층 강당 앞에서는 몇몇 방송인들이 강연 포스터를 들고 반갑게 참석자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수고하는 봉사자들의 손을 잡아주며 격려를 한 후 강연장에 들어섰습니다.nbspnbsp▲ 여의도 한국화재보험협회 1층 강당nbsp먼저 길벗 대표 소임을 맡고 있는 노희경 작가님이 무대에 올라와 참석자들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nbspnbsp▲ 길벗 대표 노희경 작가nbsp“오늘 강연장으로 오면서 무척 설레었어요.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동료들이 그동안 했던 고민들을 쪽팔려 하지 않고, 민망해하지 않고, 숨기지 않고, 마음껏 터놓는 자리로 오늘 강연을 마련했습니다. 어떤 질문이 나와도 함께 경청해보면 좋겠습니다. 좋은 스승이 있다는 것은 참 기쁜 일입니다. 좋은 스승님에게 좋은 말씀 듣고 봄날처럼 화사한 마음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nbspTV에서 자주 보았던 인기 연예인, 배우, 방송국 PD, 작가 등 많은 분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편안한 분위기에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큰 박수로 환영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인생의 겨울을 따뜻한 봄날로 전환하는 것이 수행이라고 봄날씨를 언급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요즘 같이 이렇게 좋은 봄날에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시간을 좀 내서 서울 근교라도 가서 자연 속에 있어보세요. 그래서 봄에 피어오르는 식물들을 한번 보세요. 굉장히 작고 여린 새싹이 대지를 뚫고 올라오지 않습니까? 그 힘이 굉장한 겁니다. 대나무를 집 가까이에 심어놓으면 죽순이 구들을 뚫고 올라온다고 하잖아요. 그런 생명력을 느껴보는 게 필요합니다. 또 그런 생명력 강한 나물을 먹으면 우리 건강에도 아주 좋대요. 영양가를 분석해 보면 다른 채소와 별 차이는 없지만 그 기운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시골에서는 봄에 맨 처음 올라오는 부추는 사위도 안 준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봄나물은 고기 부럽지 않은 음식입니다.nbspnbspnbsp그러니 여러분도 그런 나물을 먹고, 대지도 밟고, 손으로 흙도 만져보세요. 도시 사람들은 거름에서 냄새가 난다고 약간 거북할지 몰라도 시골에서 그런 냄새를 오래 맡다보면 그것도 구수하게 느껴져요. 거름 냄새가 나야 농사짓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자기가 씨앗 심고 거름 뿌린 데서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기분이 굉장히 좋아집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그런 것을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더 잘살 거라고,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무실에만 앉아서 태양도 못 보고 전깃불 밑에서만 삽니까. 요즘 별 본 적 있어요? 밤하늘에 달이 있는지도 모르지요? 봄이니까 여유를 가져보세요. 집에서 키운 예쁘게 다듬은 인공 꽃 말고 자연에서 제멋대로 피어있는 꽃들을 보는 그런 여유 말이에요.nbspnbspnbsp이제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텐데, 이런 봄날에도 여러분들은 저한테 ‘괴롭다’는 얘기를 하겠지요? 인생의 겨울을 따뜻한 봄날로 전환하는 게 수행입니다. 여러분은 수행이란 경전을 외고, 밥 굶고, 고기 안 먹고, 결혼도 안 하는 ‘금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욕망이 지나쳐서 화근이 될 때 그것을 멈추는 게 수행이지, 뭘 하지 말라는 것이 수행이 아닙니다. 괴로운 마음을 행복한 마음으로 전환시키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nbspnbsp우리가 오늘 대화하는 목적은, 우리들 각자 마음의 어려움을 나누면서 ‘이게 정말 어려워 할 일인가, 아닌가?’를 살피고, 어려워하지 않아도 될 일임을 발견해서, 같은 조건에서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자는 겁니다.”nbsp스님의 환한 웃음에 청중들도 마음이 활짝 열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2시간 남짓한 동안 5명이 스님께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방송 쪽 관계자들이여서 그 쪽 업무와 관련된 질문이 많았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가정과 직장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드라마 담당 PD님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아마도 많은 직장인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스님은 우리가 돈을 버는데 정신이 팔려서 무엇을 놓치고 사는지 일깨워 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는 드라마 담당 프로듀서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방송 일을 시작한지는 10년이 넘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다섯 살짜리 아이를 둔 가장이기도 하고요. 제가 출퇴근시간이 불규칙한 직업에 종사하다 보니 가정에 충실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시간이 남더라도 가족과 함께 있기보다는 새로운 일을 계획하거나 일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마음이 더 편합니다. 그러니 가족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정과 일 사이에 균형을 잘 맞출 수 있을까요?”nbsp“가정과 일 사이에서 어떤 일을 더 중요시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된 때가 언제입니까?”nbsp“오늘 같이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일찍 귀가해서 아이와 아내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한데, ‘일을 해야 할 것 같다’거나 ‘커리어를 더 쌓아놔야 한다’는 강박도 있고, 솔직히 ‘드라마를 연출하는 일은 생존율이 길지 않다’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래서 쉽사리 귀가하지 못합니다.”nbspnbspnbsp“질문자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면 새로운 걸 개발할 수 있을까요?”nbspnbsp“아니오, 어려울 것 같습니다.”nbspnbsp“예, 오히려 가족과 함께 있어서 마음이 편안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일과 가정은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닙니다.nbspnbsp예를 들어, 오늘 가족하고 보낼 것이냐? 아니면 스님 강연을 들을 것이냐? 둘 중에서 가족하고 보내는 게 좋겠다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되지만 번뇌가 많아서 스님 강연을 듣는 게 좋겠다 판단이 되면 아내한테 전화해서 ‘오늘 내가 일찍 귀가하려고 했는데, 요즘 내가 좀 불안해서 스님 강연을 듣고 도움을 받아야겠다. 강연 듣고 귀가 하겠다’라고 얘기하면 됩니다. 질문자의 아내 입장에서도 남편이 강연을 듣는 게 자신한테도 좋은 일이니까요. 아내한테는 불이익이 되고 질문자만 이익인 것도 아니잖아요. 설령 아내가 이해를 못 해 주더라도 질문자 스스로 강연을 듣는 게 내 심리안정에 도움이 되고 그건 아내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강연을 들으면 됩니다. 이렇게 질문자 혼자 결정하지 말고, 아내한테 이야기를 하세요. 아내가 이해를 못 하면 질문자가 조금 인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nbspnbsp그러니까 아내의 요구를 들어주는 방법이 있고, 아내의 불평을 듣는 방법이 있어요. 요구를 들어주면 당연히 아내는 아무 말을 하지 않겠지요. 중요한 것은 불평을 듣는 경우인데, 그 때는 질문자가 그 불평에 너무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됩니다. 질문자 스스로 떳떳하면 ‘내가 강연을 듣고 좋아지면 당신의 오해는 한 달이나 두 달 후에 풀어지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스스로 떳떳하면 상대가 오해하더라도 두려움은 안 생깁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상대가 오해하면 빨리 설득해서 오해를 풀려고 조급하지요? 그건 본인의 심리가 불안하기 때문인데, 본인이 안정되면 상대의 오해를 지켜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아내가 오해하는 것을 알아도 본인의 문제를 해결할 동안에는 그 오해를 좀 받으면서 갈 길을 가는 거예요.nbspnbsp그런 관점을 가지면 가정과 일은 절대 상충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질문자가 지금 직장생활에 충실하려고 하는 이유가 뭡니까?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잖아요. 그런데 아내가 ‘나는 당신이 돈 버는 것도 싫고, 유명해지는 것도 싫다. 가정에 충실하면 좋겠다’라고 요구한다면 질문자는 아내의 요구를 더 중요시해야 합니다. 질문자는 강연을 듣거나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게 가정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정작 그런 것 필요 없다는데도 계속 자기 생각만 고집한다면, 어느 날 귀가했을 때 아내가 떠나버리고 집에 아무도 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nbspnbsp제가 한 20년 전에 부부 열 쌍을 모아서 상담한 일이 있었어요. 먼저 남편들만 모아서 ‘아내가 당신한테 제일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더니 다섯 명이 ‘돈’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아내가 어떻게 할 때 당신이 제일 위축되느냐?’라고 물었더니 ‘돈을 못 벌 때’라고 대답했어요. 반대로 아내들에게 ‘당신은 남편이 어떻게 할 때 제일 위축되느냐?’라고 물었더니 ‘아이 앞에서 질책할 때’라는 겁니다. 요즘은 그렇게 간 큰 남자가 별로 없지만 옛날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애들 앞에서 아내에게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애들한테 엄마는 하늘인데, 애들 앞에서 자신을 깔아뭉개버릴 때 아내들은 자신을 굉장히 하찮은 존재로 느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엄마들은 아이들 앞에서 존중받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남편들 중에 이런 아내들 마음을 인식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또 아내들은 남편이 돈 벌어오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게 첫 번째는 아니었습니다. 돈보다는 존중을 중요시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입장이 서로 다른 거예요.nbspnbspnbsp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만 어느 정도로 서로 다르냐 하면, 제가 아는 여자분 중에 서울대학교 출신으로 대기업 다니는 남편과 사는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나한테 상담을 신청했는데 들어보니 이혼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저는 비오는 날 커피숍 창가에 앉아서 내리는 비를 보며 커피 한 잔 마시고 음악 듣는 게 좋아요. 그래서 제가 여러 번 남편한테 얘기했지만 남편은 청승맞게 뭐하는 짓이냐고 비오는 날 왜 밖에 나가냐고 그냥 집에서 커피 마시라고 해요.’라는 겁니다. 그런데 밖에서 보면 그 남편은 학벌 좋고, 직장 좋고, 가정적이어서 집에도 일찍 들어오는 사람인데, 여자분이 그런 남편과 못 살겠다고 하니 시댁은 물론이고 친정집에서도 ‘미쳤다. 네가 호강에 받쳐서 요강깨는 소리를 한다.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느냐?’며 자기를 비난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답답해서 못 살겠다는 거예요. 결국 여자분은 온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혼한 뒤에 한 남자를 사귀었는데, 그 남자는 나이가 여자분 보다 열 살 이상 많고, 직업도 불분명한 사람이었어요. 그렇지만 그 여자분은 그 남자랑 비 오는 날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는 것이 통한다는 이유로 사귄 거예요. 어떻게 이런 것을 윤리·도덕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겠어요.nbspnbsp또 제가 미국의 어느 주에 법회를 갔다가 어떤 의사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됐어요. 그 댁 남편은 외국인 의사이고 부인은 65세의 한국인이었어요. 그 댁 부인이 저한테 ‘스님 아니면 제가 어떻게 이 마음을 이야기하겠습니까. 저는 남편이 의사라 집도 크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무엇보다도 남편이 제게 잘해 줍니다. 남이 봤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저는 가슴이 답답합니다. 저에게 소원이 있다면 죽기 전에 한국 영감과 6개월만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거예요.nbspnbspnbsp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세요? 아마 안 될 거예요. 외국인과 결혼생활을 하면서 서로 말은 주고받겠지만 정서적 교감이 안 되니까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분이 먹고살기 어려웠으면 정서적 교감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여유가 있다 보니 그런 것도 생각하게 됐을 거예요. 우리의 행복은 정서적인 것, 감정적인 것이거든요 정서적인 교감이 안 되니까 사는 게 답답했을 거예요. 무슨 문제라고 할 만한 게 있어야 남한테 가서도 ‘남편이 이런저런 능력이 없어서 힘들다’는 하소연이라도 하고 상대로부터 위로라도 받을 텐데, 질문자의 속마음을 남한테 얘기하면 ‘미쳤다’ 소리만 들을 것 같으니 스님한테 하소연을 한 거예요.nbspnbsp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성향이 다양하기 때문에 ‘사람은 다 이럴 거다’라고 일률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의 아내가 ‘집에 일찍 들어오고 아이와도 좀 놀아주라’고 요구하면 질문자가 거기에 맞추는 게 좋습니다. 직장만 너무 신경 쓰지 말고요.nbspnbsp그리고 질문자가 이러다간 직장에 정말 문제가 생기겠다 싶으면 아내한테 ‘나도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데, 내가 맡은 일에 집중을 안 하면 회사에서 잘릴 위험이 있다. 그러니 당신이 조금 힘들더라도 내가 직장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달라’ 하고 의논을 하세요. 그럼 아내가 당연히 이해할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 아내가 ‘아쉽지만 당신 사정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래도 주말에는 조금 시간을 내주라.’라고 하면 질문자가 받아들이면 되지요. 이렇게 서로 대화를 통해 조정해야 합니다. 대개 여자들은 남자가 의논 안 하고 일에만 집중하면 나중에 대놓고 ‘내가 좋냐, 직장이 좋냐? 양자택일하라’라고 합니다. 사실 아내와 직장은 비교할 일이 아닌데도 사람 마음이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nbspnbspnbsp그러니 질문자는 아내와 의논을 하세요. 만약 질문자가 ‘그런 걸 왜 아내와 의논하느냐’고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돈을 벌어다 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삶에 대해 서로 의논하는 게 부부이고, 그게 부부의 사랑입니다. 그렇다고 질문자가 아내한테 가서 자기 걱정을 계속 토로해서 아내 머리를 아프게 하라는 건 아닙니다. 아내가 걱정할까봐 말을 안 하는 것이 사랑은 아니에요. 서로 소통하는 게 사랑입니다.nbspnbsp예를 들어 가장이 직장을 그만뒀다면 자녀들을 모아놓고 ‘아빠가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 그러니 아빠가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너희 용돈을 조금 줄여서 절약하면 좋겠다. 어떠냐.’라고 말하는 게 사랑입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뭘 모르니까 불평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이들을 가족구성원이 되게 하는 방법이고, 아이가 어른이 되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려고 하니까 서울역 앞에 노숙자가 되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까 질문자는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또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편안하게 아내와 대화하세요. 질문자가 직장에 충실해야겠다 싶으면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또 아내가 돈보다는 가정을 우선시 해달라면 직장에 대해서 너무 미련을 갖지 말고요. 질문자가 PD로서 성공하려는 건 질문자의 욕망일 뿐, 삶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nbspnbsp지금 국회의원 출마한 사람들은 국회의원 되는 게 엄청난 일인 양 그러지만 옆에서 우리가 볼 때는 누가 당선되든 말든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초선한 사람은 재선에 목숨을 걸고, 2선하면 3선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우리가 볼 때는 그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잖아요. 3선하면 뭐하고, 4선하면 뭐하겠어요. 그러니까 욕망을 탁 놓은 상태에서 최선을 다한 뒤에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면 그 역할을 하고, 안 되면 그만이고. 이래야 하는데 거기에 목숨을 걸고 살잖아요.nbspnbspnbsp그런데 인생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그렇게 살면 긴장하고 괴로워하다가 인생이 끝나요. 소중한 자기 아이와 재밌게 손잡고 놀던 추억 하나 못 만들고 말이에요. 세월호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죽은 뒤에 더 슬퍼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부모들은 악착같이 돈 벌어서 애들 공부시키는 데만 신경 썼지, 애하고 밥 한 끼 따뜻하게 먹고, 손잡고 놀러가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거예요. 악착같이 돈 버는 게 아이를 위하는 것인 줄 알고 그랬던 건데, 지나 보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잖아요. 어릴 때 뭘 먹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엄마, 아빠와 쌓은 추억이 더 중요한 겁니다. 그렇다고 꼭 비싼 놀이시설에 데리고 간 것만 추억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엄마 아빠와 같이 고생한 건 더 좋은 추억이 됩니다. 산에 갔다가 길을 잃었는데 같이 의논해서 길을 찾아 내려왔다는 게 더 좋은 추억이 될 수도 있어요.”nbsp“네, 감사합니다.” nbsp“질문자는 일이 없어도 약간 초조, 불안하다고 했는데, 그건 약간 정신질환이에요. ‘정신질환’이라고 했다고 너무 나쁘게 듣지 마세요. 감기 같은 거예요. 병원에 가서 의사와 얘기해 보세요. 그게 긴장의 문제라면 질문자가 긴장을 풀어야 하고, 호르몬의 문제라면 약으로 금방 해결됩니다.nbsp술 마시면 약간 마음이 들뜨고, 없던 용기도 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지요? 그게 왜 그럴까요? 물질의 영향 때문입니다. 잠이 안 올 때 수면제를 먹으면 잠이 오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런 것처럼 질문자의 몸에서 어떤 물질이 분비되면 불안심리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 건 자기가 결심하고 마음을 다진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간단하게 진료하고 그것을 중화시키는 물질, 약을 투여하면 금방 안정이 될 수 있는 겁니다.nbspnbsp그리고 그런 불안증은 봄과 가을, 즉 계절 변화기에 더 쉽게 많이 생깁니다. 그런 문제로 병원에 가는 걸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볼 때는 병원에 갈 수준이 아니더라도 가서 체크해 보고 괜찮다면 더 좋고, 초기증상이라고 진단이 나오면 처방을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금방 좋아지는데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고 지내다가 병을 키웁니다. 감기가 심해지면 폐렴이 될 수도 있으니까 감기는 초기에 잡는 게 좋은 것과 같은 원리예요.nbspnbspnbsp질문자는 아까 일이 없는데도 집에 가려면 불안하고, 직장에 있기는 뭐하다고 했는데, 그건 제가 봤을 때 이미 병증에 들어간 수준입니다. 그러니 ‘내가 일 때문에 이렇다’ 라고 꼭 생각하지 마세요. 몸에서 그런 반응이 오는 건데도 그걸 모르니까 질문자가 일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 한번 체크를 해 보세요.”nbspnbsp“네, 감사합니다.”nbspnbsp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하다가 정작 그 돈을 벌어서 쌓고자 했던 가족들과의 소중한 추억은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씀은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원 진료에 대한 조언까지 듣고 난 질문자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답변을 마치고 나니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참석자들이 인기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방송인들이라는 점을 헤아리며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강조한 후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어떤 상황에 처하든, 어떤 조건에 처하든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다고, 동성을 좋아한다고, 얼굴이 검다고, 다리가 하나 없다고 불행할 이유는 없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실제로 행복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 자꾸 ‘나는 이래서 불행하다’고 불행할 이유를 찾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누가 저한테 불행하다고 말하면 ‘그렇게 불행하고 싶니? 그렇다면 불행해라.’라고 하는 겁니다. ‘불행하고 싶다’고 정해 놓고 그 이유를 찾는 사람한테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nbspnbsp그렇다면 반대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행복하다’고 정해 놓고 행복할 이유를 찾아보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불행해야 할 이유만큼이나 행복해야 할 이유도 똑같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작품을 써야 하니까, 연기를 해야 하니까’ 힘들다고 하지만 똑같이 ‘작품을 써야 하니까, 연기를 해야 하니까’ 행복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nbspnbsp그런데 그냥 작품을 쓰고 연기를 하면 되지, 왜 잘 썼는지, 잘 했는지까지 여러분이 신경을 씁니까. 그건 독자나 시청자가 결정할 문제잖아요. 스스로 ‘나는 연기를 잘 해야 해’ 한다고 잘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법문 잘 해야겠다’ 라고 결심한다고 잘 하게 될까요? 여러분들이 ‘스님, 오늘 법문 잘 하더라, 못 하더라’ 하고 판단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니까 제가 거기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지요. 제가 거기에 구애를 받으면, 즉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해서 자꾸 신경 쓰면 저는 여러분의 노예가 됩니다. 제가 왜 여러분의 노예로 삽니까? 저는 제 인생의 주인으로 살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도 각자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사세요.nbspnbsp여러분의 직업이 인기에 민감한 직업이라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그런데 작가든 배우든 누구나 다 자기가 좋아서 그 길을 선택한 거잖아요. 다들 열심히 하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인기라는 건 원래 영원한 게 아닌 일장춘몽이에요. 1년 열두 달 하는 해수욕장이 어디 있나요. 여름에 반짝하고 마는 거지요. 그래도 그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것처럼 여러분들도 인기가 있는 기간을 딱 3년으로만 잡으세요. 그 후에도 인기가 유지되면 재수 없어서 그런 줄 알고요.nbspnbspnbsp그 다음부터는 즐기세요. 거기에 매달리지도 말고요. 그리고 감사하세요. ‘3년이 지났는데도 여태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세요.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내고,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면서 살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게 살아보세요. 감사합니다.”nbspnbsp스님의 축복과 같은 격려 말씀에 방송문화예술인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강연장이 혼잡스러워질 것을 우려해 인기 연예인들은 스님께 인사만 하고 곧바로 강연장을 빠져나갔고, 강연을 준비한 정토회 방송문화예술인들의 모임 ‘길벗’ 식구들만 남아서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방송, 문화, 예술을 통해 행복을 널리 전파하는 사람들이 되어주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 방송, 연극, 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마음공부 모임nbsp‘길벗’ 봉사자들과 함께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길벗 대표 소임을 맡고 있는 노희경 작가님을 격려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밤 10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07. 86,505 읽음 댓글 25개

2016.4.4 (오전) 서암대종사 열반 13주기 추모법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서암대종사 열반 13주기를 맞이하여 봉암사에서 열린 추모법회에 참석한 후 저녁에는 여의도에서 방송문화예술인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오늘은 서암대종사의 열반 13주기 추모법회가 있는 날입니다. 오전 9시 30분에 봉암사에 도착한 스님은 가장 먼저 서암대종사의 부도탑을 참배했습니다. 봉암사 경내로 들어가기 전 오른쪽으로 난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면 한적한 곳에 부도탑과 탑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nbspnbspnbsp서암대종사는 법륜 스님이 정토회의 고문으로 모셨던 큰스님이십니다. 젊은 시절 불교계의 현실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법륜 스님은 1980년대 미국 LA의 작은 사찰에서 서암큰스님을 만납니다. 한국 불교의 문제점에 대해 하소연을 털어놓으니 큰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nbsp“여보게, 어떤 한 사람이 논두렁 밑에 조용히 앉아서 그 마음을 스스로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바로 중이요, 그곳이 바로 절이지. 그리고 그것이 불교라네.”nbsp이 말씀은 법륜 스님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불교라는 것은 그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인데 불교를 말하면서도 눈은 밖을 향해있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지금껏 불교를 개혁한다고 했는데 이제 보니 불교 아닌 것을 불교라고 착각하고 개혁하려 했음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이때부터 법륜 스님의 삶과 불교 운동은 큰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싸우는 데 에너지를 쏟기 보다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먼저 실천하고 불교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nbspnbsp▲ 서암 큰스님의 영정nbsp또 서암 큰스님은 겉치레에 연연하지 않고 한평생 문중도, 자기 절도 없이 수행자로만 사셨습니다. 어디를 가시든 언제나 통일호 기차나 버스를 타고 다니셨고, 어쩌다 새마을호 표를 끊어드리려 하면 마다하며 꼭 통일호를 타고 가겠다 하셨다고 합니다. 이유를 여쭈어보면 “통일호 타는 노인에게는 승차비를 할인해 준다. 통일호 의자는 딱딱해서 참선하기에 좋다”라며 아주 단호하셨다고 하는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nbspnbsp또 봉암사와 가은 버스터미널은 20리가 넘는 거리인데 큰스님은 늘 그 길을 걸어다니셨습니다. 어쩌다 선방 수좌들이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오다가 큰스님이 앞에 가시면 지나칠 수도 없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내려서 걸어갔다 합니다. 또 대중이든 신도든 음료수를 마시는 것을 보면 “왜 맑은 물 놔두고 썩은 물을 돈 주고 사 마시나?” 하셨고, “공부하는 사람은 차 달여 마시는 것도 엉뚱한 짓”이라고 질책하셨다고 합니다. 쓸데없는 일에 욕심 안 부리고 공부에만 전념하면 저절로 수행이 된다는 것을 큰스님께서는 늘 생활 속에서 깨우쳐주셨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도 항상 해외에 가실 때는 저가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운동화도 10여 년이 넘도록 신고, 1만 5천원 짜리 시계를 10년 이상 차고 다니는데, 아마도 이런 큰스님의 소박한 삶이 스님에게도 많은 귀감이 되었을 것입니다.nbspnbsp2003년 3월 29일, 세수 90세의 나이로 봉암사에서 입적하실 때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라고 남긴 열반송은 검소하고 진솔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어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nbspnbsp오늘 서암대종사 열반 13주기를 맞아 스님은 부도탑 앞에 삼배를 한 후 큰스님의 검소한 삶과 깨달음의 말씀을 다시 한번 가슴에 되새겼습니다. nbspnbsp▲ 서암대종사 부도탑nbsp부도탑 참배를 마치고 나서는 조실채에 들러 수좌 스님인 적명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오늘 열반 13주기를 맞이해 정토출판에서 새로 출간한 서암큰스님의 법어집 3권 ‘그대 안의 부처를 보라’ 책을 건넸습니다.nbspnbsp▲ 서암대종사 열반 13주기에 맞춰 오늘 출간된 법어집 ‘그대 안의 부처를 보라’.nbsp일찍 도착한 덕분에 추모법회가 시작할 때까지 시간 여유가 생겼습니다. 먼저 위패가 모셔져 있는 대웅보전을 참배한 후 왼쪽에 있는 조사전, 금색전을 차례로 참배했습니다. 또 대웅전 앞마당에는 9세기 통일신라 때 세워진 삼층석탑이 적절한 균형과 비례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삼층석탑 뒤로는 안개 사이로 희양산의 기암괴석이 모습을 드러내 멋진 풍광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봉암사 삼층석탑과 희양산nbsp이어서 스님은 봉암사 뒤쪽으로 아주 좋은 계곡이 있다며 산책을 가보자 했습니다. 계곡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바닥이 투명하게 보였습니다.nbspnbspnbsp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조금 올라가니 산 자락 곳곳에 진달래가 가득 피어있는 곳이 나타났습니다. 스님은 “아이고, 예뻐라” 감탄사를 연발하며 진달래를 구경했습니다.nbspnbspnbsp진달래 꽃구경을 실컷 한 후 산을 내려오면서 스님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살면 세상 걱정이 뭐 있겠어. 세상이 온갖 가지로 변해도 전혀 모르고 살 것 아니야. 그래서 옛날에도 선각자들은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 이렇게 산속에서 고요히 정진하고 있으면 존경받을 수가 있을 텐데, 그렇다고 암울한 시대를 가만히 보고만 있자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고, 또 사회를 변화시켜보자니 그 힘이 너무 미약하고...”nbsp스님의 얘기를 듣다보니 그래도 우리들에게는 시대적 과제인 통일이 선조들이 처했던 조건에 비해서는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싶어 용기가 생기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추모법회가 곧 시작되려고 하는 찰나 남방 가사를 하고 다니시는 것으로 유명한 도성 큰스님을 만났습니다. 도성 큰스님은 한국 남방 불교의 승왕으로 추대받는 분이신데 1972년에 태국 승단에서 정식 계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남방 가사를 수하고 위빠사나 수행에 매진해오신 분입니다. 올해로 세납이 98세라고 하지만 아주 정정해 보이셨습니다. 스님은 도성 큰스님과 잠시 차담을 나눈 후 큰스님을 부축하고 추모법회가 열리는 대웅보전에 들어섰습니다. nbspnbsp▲ 한국 남방불교의 상징인 도성 큰스님과 봉암사 적명 수좌스님nbsp서암 큰스님을 위한 제사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천도재와는 달리 관음 시식이 아닌 화엄 시식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nbsp문중을 대표해서 수좌 스님들이 먼저 잔을 올린 후 이어서 곳곳에서 참석한 스님들과 신도님들이 잔을 올렸습니다. 죽비 삼성으로 간결하게 추모법회를 마친 후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봉암사를 나왔습니다.nbspnbsp▲ 서암대종사 열반 13주기 추모제nbsp저녁에 서울에서 방송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예정되어 있어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nbspnbsp서울로 향하는 길에는 봄꽃 구경을 하기 위해 바로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일부러 선유동 계곡과 용추 계곡 쪽을 거쳐서 올라갔습니다. 곳곳에 노랗게 핀 개나리, 붉게 물든 진달래가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인생의 전환기를 마련해준 정신적 스승, 서암큰스님의 법어집 제3권이 출간되었습니다. 자비롭고 명쾌하게 공부 길로 이끌어주시는 선지식의 가르침 지금 인터넷서점에서 만나보세요.nbspnbsp

2016.04.06. 41,878 읽음 댓글 24개

2016.4.1 용성조사 열반일 기념법회, 경전반 즉문즉설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용성진종조사의 열반일을 맞이해 조사님의 탄생성지인 전북 장수 죽림정사에서 정토회 봄경전반 학생들과 함께 기념법회 및 즉문즉설을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서울에서 아침 6시에 출발한 스님은 9시 30분에 죽림정사에 도착했습니다. 죽림정사는 소백산맥의 산세가 웅장한 전북 장수 장안산 자락 아늑한 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이자 불교의 대선사였던 용성진종조사님의 생가터를 불심도문 큰스님이 복원하여 지은 절입니다.nbspnbsp▲ 전북 장수 죽림정사nbsp그리고 오늘은 조사님이 열반하신지 76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조사님의 탄생성지에서 열반일 기념법회를 하게 된 것을 뜻깊게 여기며 죽림정사 정광 사무국장이 앞에 나와 조사님의 행장을 낭독하였습니다.nbspnbsp용성진종조사는 서기 1864년 음력 5월 8일 전북 장수군 번안면 죽림리에서 태어났으며, 14세시에 교룡산성 덕밀암에 출가하였으며 23세에 오도를 했습니다. 그 뒤 전국 각 사암들을 찾아 다니면서 수도정진 하였으며, 44세시에는 중국불교계의 선지식들과 불법의 진리를 논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용성진종조사 nbsp1910년 경술치욕을 맞이한 용성진종조사는 산중수행을 정리하고 1911년 48세 되던 해에 종로구 봉익동에 민가를 구입해서 수리, 개조하여 대각사 간판을 내걸고 불교중흥과 민족중흥을 발원하여 불교계의 혁신작업과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에는 만해 한용운 대사와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 대표로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에 4번째 서명하였으며 이로인해 서대문 감옥에서 1년 6개월 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1921년 출옥과 더불어 삼장역회를 조직하여 한문으로 되어 있던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였으며, 1922년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중국 길림성 안도현 명월촌과 봉녕촌에 대규모의 대각교당을 설립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했습니다. 1926년에는 민족정신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던 왜색불교의 폐단을 지적하고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건백서를 2차에 걸쳐 제출하면서 전통불교의 맥을 계승하기도 했습니다. 1927년 64세시에는 창작 찬불가를 작시, 작곡하고 노구에도 불구하고 대각사에 일요학교를 설립하여 오르간을 손수 치기도 하였으며, 같은 해 함양에 화과원을 만들어 사원경제의 자립을 부르짖는 선농불교를 솔선수범 하였습니다.nbspnbsp이후 20여 종의 경전을 번역하였고, 20여 종의 저술도 남겼습니다. 그러다가 1940년 2월 24일 대각사에서 입적하니 세수는 77세이고 법랍은 61하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법안장을 전수한 전등 68대 조사인 동시에 조선불교 중흥율 제6조입니다.nbspnbsp이렇게 행장 낭독에 이어서 용성조사가 작사한 ‘온 겨레의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nbspnbsp▲ ‘온 겨레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대중들nbsp“백두산이 아빠되어 단군겨레 이루었고♬ 한라산이 엄마되어 단일기백 이루었네.nbsp북녘송화 남녘낙동 젖줄되어 흐르르니♬ 자손만대 이어가며 이강산을 가꿔가세.”nbsp노래를 힘차게 함께 부르는 가운데 북녘을 송화강까지라고 작사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도 고구려 발해 시대의 역사까지 헤아렸기 때문일 겁니다.nbspnbsp이어서 죽림정사 주지를 맡고 있는 법륜 스님의 기념법문이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온 400여 명의 정토회 봄경전반 학생들은 청법가와 삼배로 스님에게 법을 청했습니다.nbspnbsp▲ 용성교육관nbsp스님은 용성진종조사님이 주창한 불교의 지성화, 대중화, 생활화 3대 지침이 현재 정토회를 통해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 그 맥락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용성진종조사님의 생애를 요약해보면 첫째가 불교중흥을 위해 노력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근세불교의 중흥조라고 하는 거예요. 그 첫째가 불법의 참모습을 알리고 내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불교라는 것이 미신 마냥 아주 형편없는 이미지였기 때문에 ‘불교의 참모습은 그렇지 않다. 불법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이요, 철학이요, 종교다’ 하는 것을 내세우셨어요. 이것을 ‘불교의 지성화’라고 합니다. 불법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리고 정립하는 작업을 첫 번째로 하신 겁니다. 왜곡된 불교를 바로잡고자 부처님의 정법을 바로 세우는 일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석가여래부촉법 제68세로 등단하신 거예요. 부처님의 정법이 조선조 영조에 이르렀을 때 조정에서는 환성지안조사에게 사약을 내려 돌아가시게 했어요. 즉 순교를 하신 겁니다. 이렇게 환성지안조사가 순교하신 뒤 정법의 맥이 끊어졌기 때문에 이를 복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용성진종조사를 ‘환성지안조사의 후신’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게 정법안장이에요. 그러면 환성지안조사는 법을 어디서 받았습니까? 이렇게 해서 계속 올라가면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이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용성진종조사님의 열반일에 다례재를 지낼 때 인도로부터 중국을 거쳐 우리 해동 조선에 이르기까지 그 분의 모든 뿌리가 되는, 즉 스승이 되는 분들을 한 분 한 분 다 모셔서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을 첫 번째로 계승하신 마하가섭 존자, 두 번째로 계승하신 아난다 존자, 세 번째 계승하신 상나화수 존자 등.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역대 조사만이 아니라 원효대사, 의상대사 등 신라 5교 9산이 다 예배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담징을 비롯해 그림을 잘 그린 사람이며 조각을 잘 한 사람 양지 등도 여러분들이 절을 올린 대상에 들어 있어요. 우리의 스승이자 뿌리에 해당되는 분들을 다 따지자면 수천, 수만이 되겠죠. 이게 역사성이고 뿌리에요.nbspnbsp그리고 불법은 수행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5대 수행, 즉 참선하고 염불하고 주력하고 간경하고 불사하는 5대 수행을 정립하셨습니다. 이렇게 큰스님은 불교의 지성화를 이끄셨습니다. 정토회의 표현으로 하자면 이게 ‘바른 불교’입니다. 바른 불교관을 정립한 거예요.nbspnbsp그런데 아무리 바른 불교, 좋은 불교라 하더라도 대중이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그래서 두 번째 하신 일이 ‘불교의 대중화’예요.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첫 번째로는 어려운 한문 경전을 누구나 다 알 수 있도록 한글로 번역하시고, 인쇄하시고, 유포하셨습니다.nbspnbsp▲ 용성진종조사가 펴낸 조선글 화엄경nbsp그리고 시내에 대각교당이라는 포교당을 내서 산속에 있던 불교를 누구나 다 시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어요. 재가자들에게도 삼귀의 오계를 줘서 그냥 복이나 비는 신자가 아니라 수행할 수 있는 길을 가르치셨어요. 다시 말해 재가수행자가 되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nbspnbsp정토회도 ‘쉬운 불교’를 추구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즉문즉설을 듣든 여기 경전반에 다니든 다른 곳보다는 좀 쉽죠? 여러분들이 옛날에 났으면 죄다 절에 가서 복이나 빌지, 불법이 뭔지도 몰랐을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큰스님께서 이런 작업을 시작해주셨습니다. 그런데 70년, 80년, 100년 전 당시에 비해서는 굉장히 쉽게 만들어주셨지만 요즘 우리가 듣기에는 그것도 어려워서 제가 이제 여러분들 수준에 맞도록 더 쉽게 고쳤습니다. 요새 청년들은 이것마저도 어렵다고 난리를 피워서 즉문즉설을 통해 또 더 쉽게 하고 있어요. 이게 불교의 대중화입니다.nbsp세 번째가 ‘불교의 생활화’입니다. 아무리 쉬워도 불교 수행 따로 있고 내 생활 따로 있으면 안 돼요. 밥 먹는 게 수행이고, 부부관계가 수행이고, 회사 다니는 게 수행입니다. 그게 수행인 줄은 알아요?”nbsp“예.”nbspnbsp“즉문즉설의 내용은 전부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가질 거냐에 대한 거예요. 수행이 따로 있지 않고 우리 일상의 삶 속에 있다는 게 불교의 생활화예요. 그래서 큰스님께서 하신 게 선농일치입니다. 화과원을 세우고 선농당을 세운 건 농사짓는 것이 곧 수행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큰스님께서는 수행자가 그냥 앉아서 참선만 하는 게 아니라 농사를 지으면서 곧 수행하도록 하셨어요. 화과원은 백운산에 만든 과수 농장입니다. 깊은 산 속에, 그것도 높은 곳에 과수원을 만들어놓은 이유가 뭘까요? 첫째는 생산불교를 하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독립운동자금을 모으자는 거예요. 형사들이 그 산꼭대기까지는 안 따라오니까요. 또 다른 하나는 중국에다가 농지를 사서 개간해서 선농당을 만들었어요. 해외에 있으니까 형사들이 일일이 따라갈 수 없었겠죠.nbspnbsp큰스님이 이렇게 하려면 누군가 뒤에서 돈 대는 사람이 있었겠지요? 남원의 만석꾼이고 큰스님의 절친한 친구이자 후원자인 임동수 거사님이 전부 돈을 댔습니다. 그분이 바로 여기 불심도문 큰스님의 증조할아버지십니다.nbspnbsp‘불교의 지성화,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생활화’ 이 세 가지가 포교, 전법의 3대 지침이에요. 이것을 지금의 정토회 식으로 표현하면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 불교’입니다. 이렇게 해서 불교를 새로운 불교로 바꾸었습니다. 아예 불교라는 이름까지 대각교로 바꾸고, 한때는 스님도 스님이라 하지 말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럴 만큼 ‘이 전통의 묵은 때 속에서는 안 된다’ 하는 각오가 컸던 겁니다.nbsp그리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친 독립운동가로서 3.1독립운동의 막후 기둥이셨고, 3.1독립선언을 할 때 불교계를 대표해서 서명을 하셨어요. 그때 한용운 스님은 나이가 39세 정도였고 용성스님은 56세였으니 한번 생각해봐요. 불교계의 어른인 용성스님이 독립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불교계가 참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감옥에서 나오셔서는 일제가 늘 따라다니니까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서 보내거나 사람을 모아서 보내는 일을 하셨어요.nbspnbsp▲ 3.1독립선언을 할 당시 민족대표 33인nbsp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셨어요. 한반도기를 독립운동 깃발로 쓰자는 주장에 한반도기를 쓰면 우리 땅을 한반도만으로 축약시켜 버리는 셈이 되므로 안 된다고 반대하셨어요. ‘온 겨레의 노래’ 가사에서도 남녘은 낙동, 북녘은 ‘압록, 두만’이라고 하지 않고 ‘송하’라고 했어요. 깃발도 태극기를 쓰도록 했고요. 물론 그 전에도 태극기가 있기는 했지만 독립운동에서 어떤 깃발을 쓸지 논의할 때 태극기로 하자고 정해주셨습니다. 대한제국 부흥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운동을 하자고 하신 분도 큰스님이고요. 그러니 도문 큰스님께서 ‘용성스님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국부다’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국호를 정하셨으니까요.nbspnbsp이렇게 나라의 독립을 위해 평생 노력하셨지만 결국은 독립을 보지 못한채 1940년에 열반에 드셨습니다. 오늘이 그 열반일입니다. 열반의 게송은 이렇습니다.nbsp제행지무상이요, 만법지구적이라.nbsp포화천리출이요, 한와마전상이다.nbsp‘제행지무상이요.’ 제행무상이란 말 알죠? 모든 세상의 행이 다 무상하다, 영원한 게 없다, 다 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모든 행이 떳떳함이 없다’라고 합니다.nbsp‘만법지구적이라.’ 만 가지 법이 다 고요적적하도다. ‘고요하도다’라는 말은 제법무아라는 뜻입니다. 만법이 다 아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고요적적한 거예요.nbsp‘포화천리출이요.’ 포화는 박꽃입니다.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가니’라는 뜻입니다.nbsp‘한와마전상이다.’ ‘한와’는 한가로이 누워 있다는 말이고 ‘마전’은 삼밭입니다. ‘한가로이 누워 있도다’라는 뜻입니다.nbspnbspnbsp왜 이런 열반송을 남기셨을까요? 아도화상이 돌아가실 때 ‘큰스님께서 돌아가시면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더니 ‘내년 봄에 칡넝쿨을 따라가보라’라고 했어요. 용성스님이 돌아가실 때도 ‘큰스님께서 가시면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이런 열반송을 남기고 입적하셨습니다.”nbsp용성진종조사님의 업적과 정토회의 바른불교, 쉬운불교, 생활불교의 3대 방향이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말씀에 대중들은 무척 놀라워 하면서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이런 용성진종조사의 삶을 오늘날에 진정으로 계승하는 길은 바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기념법문을 마쳤습니다.nbspnbsp“오늘은 용성조사 제 76주기 열반기념일입니다. 용성조사께서 77세를 사셨다는데 77세는 만으로 따지면 76년이에요. 그러니 태어나셔서 사신 해수와 돌아가신 뒤 해수가 올해로 똑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분단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분단 극복, 통일은 고사하고 남북 간의 평화도 제대로 유지 못 하는 슬픈 역사를 안고 있듯이, 큰스님께서 열반하시고 76년이 지났는데도 나라의 독립과 통일은 물론이고 우리 불교계마저도 큰스님의 그러한 불교운동, 즉 불교가 사회적인 리더십을 갖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구태를 벗지 못하며 사회적 리더십을 갖추지 못하고 오히려 손가락질 받는 일이 허다하니 후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nbspnbspnbsp그러니 오늘 열반일을 맞아서 우리부터라도 바로 이 두 가지를 실천해야겠습니다. 다시 말해 바른 불교를 이 땅에 실현하고자 수행하고 전법하는 것이 하나이고, 큰스님께서 그렇게도 바라셨던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하는 것이 또 하나입니다. 해방은 됐지만 분단이 되었으니 우리가 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뤄야 완전한 독립이라고 할 수 있어요. 분단됐을 뿐 아니라 아직도 강대국에 휘둘리고 있는 이런 상태는 완전한 독립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당시의 시대적 과제가 나라의 독립이었다면 지금 우리의 시대적 과제는 평화적 통일입니다.nbspnbsp그러니 평화적으로 남북을 통일해서 큰스님께서 바라시던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들의 또 하나의 사명입니다. ‘불자가 복이나 빌면 되지, 뭘 이런 걸 하고 다니나’ 하는 생각이 드시는 분은 다른 절에 가세요.nbspnbsp여기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 바른 불교를 하고, 그것을 널리 전하는 전법정신이 있고, 역사의식을 갖춰서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정신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니 그런 뜻이 있으면 정토회에 다니시고, 그런 뜻이 없으면 그냥 신도가 부족하다고 어서오시라는 주위의 다른 절로 가세요. 공연히 여기 와서 ‘왜 복을 안 빌어주느냐’, ‘극락이 있느냐, 없느냐’ 하지 말고요. 지금 사는 것도 제대로 못 살면서 죽은 뒤를 걱정하고 앉아 있어요.nbspnbspnbsp그리고 ‘불교가 왜 수행이나 하지 않고...’라고 하는데, 그런 말을 하면서 수행이나 하면 또 괜찮지만 그 말은 사실 ‘복이나 빌지, 무슨 사회에 관여하느냐’ 라는 뜻이잖아요. 적어도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 하면 안 돼요. 아시겠죠?”nbsp“예.”nbsp스님의 강한 어조에 모두들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족보를 보고나니 우리는 뿌리가 있는 집안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이랄까요. 그런 뿌듯함이 가슴 속에 차올랐습니다. 또 스님이 왜 통일운동에 매진하는지 그 역사적 배경도 함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용성진종조사님과 법륜 스님의 행적은 무척이나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역사성에 대해 돌아보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기념법문이 끝나자 곧바로 즉문즉설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정토회 봄 경전반 학생들은 그동안 영상을 통해서만 스님을 뵈어오다가 가까이서 직접 스님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며 무척이나 기뻐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스님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며 대화의 시간을 갖자고 하니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그 중 한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시어머니가 불평을 늘어놓은 것을 들어주기가 무척 힘이 드는데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결혼한 지 20년 되었습니다. 결혼해서 시금치도 안 먹고 시청 앞도 안 지나간다는 분들을 보면 별로 이해가 안 됐고, 시부모님이라고 해서 딱히 싫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나 시어머니는 예전 분들이 다 그리 살아오셨듯 좀 안 됐다, 애처롭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어머님에게 좀 안 좋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어머님 당신이나 아버님이 드시는 걸 잘 챙기지 못하시면서 자식들에게는 챙겨주길 바라는 말씀을 하실 때, 특히 제가 이야기를 잘 들어드리는 편이라서 형제간에 있었던 불편함 같은 것을 제게 자꾸만 이야기하실 때 싫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반까지 다니니까 예전보다 좀 더 이해를 해야 할 텐데도 요즘 오히려 더 마음이 좁아지는 것 같아서 아침에 수행할 때 어떤 기도를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nbsp“정토회는 부처님의 근본불교를 대승불교로 계승해서 그것을 다시 ‘직지인심 견성성불’하는 선불교로 계승한 불교예요. ‘절을 얼마 해야 한다, 경을 얼마 읽는다, 주력을 얼마 한다’ 이런 걸 중요시하는 게 아니라 바로 문제의 본질을 탁 꿰뚫어서 해탈하는 길을 추구하는 불교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시어머니가 자식들이나 형제간에 있었던 이런저런 불편한 이야기를 나한테 한다고 그게 왜 불편해요?”nbspnbspnbsp“예전에는 제가 별로 싫은 마음 없이 들어드렸는데 요즘에 이상하게 싫은 마음이 들어서요.”nbsp“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이상하다면 질문자가 자기 마음을 보세요. 어머니가 옛날보다 말을 많이 하니까 불편해요? 노골적으로 하니까 불편해요? 어머니는 옛날에 하던 그대로인데 내가 요즘 그걸 못 받아들여요? 질문자가 보기엔 어느 쪽이에요?”nbsp“그대로인데 제가 못 받아들입니다.”nbsp“왜 못 받아들이는데요?”nbsp“그걸 잘 모르겠습니다.”nbsp“그럼 지금부터 빨리 시어머니한테 가서 대화를 해보면서 연구를 해보세요. ‘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왜 마음이 안 좋을까?’ 이걸 연구해 봐요. 자기 마음이잖아요.nbspnbsp자기가 알 수 없는 것이라면 제가 이야기를 해주겠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옛날과 똑같이 이야기하는데, 옛날에는 내 마음이 안 불편했는데 지금은 왜 내 마음이 불편할까?’ 이건 자기가 연구해야 할 과제 아니에요? 그걸 제가 말해줘서는 안 되지요. 말해준다면 스님이 점쟁이 취급밖에 더 받겠어요? 그건 스스로 연구해야죠. ‘네가 누고?’ 라고 물었는데 ‘스님, 내가 누구예요?’ 이렇게 물으면 안 되잖아요. 그건 자기가 연구해야 할 과제예요. 자기가 연구해야 될 걸 남한테 물으면 어떡해요?nbspnbsp문제의 핵심은 ‘왜 마음이 불편할까?’입니다. 어머니가 말하는 게 전에는 안 불편했는데 지금은 왜 불편할까요? 그동안은 어머니가 말을 안 해서 내가 안 불편했고 지금은 말을 하니 불편하다면 ‘아, 내가 어머니와의 예전 관계에서는 전혀 공부가 안 됐구나. 어머니가 아무 일도 말씀 안 하시니까 내가 안 불편했는데, 말씀하니까 나도 똑같이 경계에 끄달리고 불편하구나.’ 이렇게 알고 어머니를 이해하는 마음을 냄으로 해서 내가 불편하지 않은 경지로 나아가게 됩니다.nbsp어머니는 똑같이 있는데, 어제는 괜찮았던 게 오늘은 불편하다면 이유가 뭘까요? 이유가 어머니한테 있는 건 아닐 거예요. 그러면 나한테 이유가 있는 거니까 ‘내가 왜 그럴까?’ 하고 지금부터 계속 참구를 해봐요. 그걸 참구하려면 어머니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하겠죠?nbspnbsp그냥 여기 앉아서 ‘왜 내가 마음이 불편할까?’ 생각하는 건 공상에 불과해요. 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자꾸 하는 걸 내가 들으면서 마음이 불편할 때 ‘왜 불편하지?’ 이래야 지금 참구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 사람이 욕을 하면 내가 왜 기분 나쁠까’ 이러고 있는 건 혼자서 생각만 하는 거예요. 생각은 수행이 아니라 번뇌예요. 그 사람이 이야기할 때 그걸 듣고 내가 화가 나면 바로 그때 ‘왜 화가 나지?’하고 살펴봐야 진짜 참구입니다. ‘내가 왜 화가 날까?’ 이걸 제대로 참구하려면 남이 나를 욕해서 내가 화나는 것을 많이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연습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화만 내다가 놓쳐버려요. 화가 나려고 할 때 화를 낼 게 아니라 바로 그때가 원인을 규명할 시간이에요. 그러니 오늘 빨리 시어머니한테 가서 ‘어머니, 다른 사람 흉 많이 봐주세요’ 이래야 합니다.”nbspnbspnbsp“시어머니께서 다른 형제나 동서, 형님들에 대해서 흉을 보거나 욕을 하시는 게 저는 좀 불편하고 싫어요.”nbsp“그게 왜 불편한데요?”nbsp“다른 사람한테 불만이 있으면 이러저러해서 이렇다고 본인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게 더 좋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nbsp“좋은 말이지만 질문자는 실제로 그게 되던가요? 사람이 그리 되나요? 여러분은 스님한테 불만이 있으면 스님한테 와서 이야기하는 게 잘 됩니까? 자기들끼리 ‘법륜 스님 왜 저러지, 왜 정치 이야기 하지’ 이러잖아요. 그런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nbspnbsp이렇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니까 스님이 지적해주잖아요. 어머니가 도사나 부처도 아닌데 어떻게 그걸 일일이 큰며느리한테 직접 이야기하는 게 되겠어요. 속은 답답하고 본인한테는 이야기를 못 하겠으니까 질문자한테 하는 거죠. 나쁘게 이야기하면 질문자가 만만해서 이야기하는 거고, 좋게 이야기하면 믿을 수 있으니까 이야기하는 거예요. ‘답답하니 너한테라도 이야기해야겠다’ 해서 이야기하니까 ‘어머니가 저리 불편하시구나’ 하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걸 ‘큰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나쁘게 하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그건 질문자가 또 상상하는 거예요. 큰며느리하고 아무 관계없는 일이에요. 어머니가 별을 보고 불편하게 생각한다고 그게 별 탓은 아니잖아요. 어머니가 추운 날씨를 불평한다면 그건 날씨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어머니 마음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큰며느리를 나쁘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걸 큰며느리 잘못이라고 보면 안 돼요. ‘어머니가 그걸 보고 지금 불편해하시는구나’ 이렇게 그냥 이해하면 됩니다.”nbsp“감사합니다.”nbspnbsp“그러니까 이것이 바로 ‘생활 불교’라는 걸 알아야 해요. 밥 먹을 때 무슨 기도를 하고 밥 먹는 게 생활불교가 아니예요. 생활에서 일어나는 것을 지금 여기에서 바로 공부하는 게 생활 불교예요. 지금 시어머니와 대화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을 보고 그 원인을 찾으면 그게 수행이에요. 무슨 딴 짓을 해야 수행이 아니에요. 그래야 수행이 삶 속에서 딱딱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사는 삶에서, 번뇌가 일어나는 그곳에서 바로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안 그러면 다 죽은 수행이고 죽은 불교예요. 경전반에서 공부하면서 배운 것들을 생활에 적용해야 해요. 알았죠?”nbsp“예”nbspnbsp질문자는 스님 말씀대로 수행해 보겠다며 크게 대답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니 앞서 용성진종조사님이 지침으로 제시한 ‘불교의 생활화’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더욱더 생생하게 와 닿았습니다.nbspnbsp이렇게 기념식을 마친 후 모두 대웅전 계단에 올라가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봄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는 가운데 곳곳에 피어난 봄꽃처럼 경전반 학생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nbspnbspnbsp▲ 경전반 학생들과 기념사진nbsp삼삼오오 곳곳에 흩어져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2시 30분부터는 묘수 법사님과 무변심 법사님의 안내로 사찰 순례 시간을 가졌습니다. 법사님들은 교육관 외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포함하여 경내 곳곳에 담긴 의미들을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 법사님들의 안내로 진행된 사찰순례nbsp죽림정사에서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에서 미팅을 가진 후 내일부터 1박2일 동안 청년대학생 경주역사기행을 안내하기 위해 밤 9시에 다시 경주를 향해 출발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청년대학생 400여 명과 함께하는 경주역사기행이 아침 9시 30분부터 태종무열왕릉 앞에서 시작됩니다. 벚꽃 내리는 경주에서 삼국통일의 숨결이 서린 곳곳을 둘러본 후 저녁에는 ‘역사의식과 통일의 중요성’에 대해 특강을 할 예정입니다. nbsp

2016.04.03. 125,162 읽음 댓글 35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