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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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7 (인도 2일째) 성지순례 A팀 바라나시 도착

nbsp 안녕하세요. 인도에서의 2일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 드디어 첫 번째로 성지순례 A팀이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공항에서 나오는 순례객 한 명 한 명에게 환영의 마음을 담아 직접 꽃목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nbsp nbsp ▲ 바라나시에서의 일출 모습 nbsp 바라나시 숙소에서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스님은 오전 내내 성지순례 실무 준비상황을 점검한 후 11시에 순례객을 마중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습니다.nbsp nbsp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한 스님은 순례객을 환영해주기 위해 꽃목걸이 120여 개를 보자기에 싸서 도착장으로 향했습니다.nbsp nbsp ▲ 꽃목걸이를 직접 들고 온 스님nbsp 12시가 되자 수하물을 모두 찾은 정토회 성지순례단 A팀이 선주 법사님과 자광 법사님의 인솔로 드디어 줄을 지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공항에서 나오자 마자 순례객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nbsp nbsp 스님이 직접 꽃목걸이를 들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던 것입니다. 모두들 깜짝 놀라 어쩔줄 몰라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어머나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며 너무나 기뻐했고, 어떤 분들은 “세상에” 하며 감격해서 할 말을 잃은 듯 했습니다. 예고되지 않은 갑작스런 이벤트에 모두들 기뻐했습니다.nbsp nbsp nbsp nbsp 스님은 한 분 한 분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인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nbsp nbsp nbsp 이어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객들을 14박 15일 동안 성지로 데려다 줄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순례객들은 신이 났는지 버스 앞에 삼삼오오 모여 스님이 걸어 준 꽃목걸이를 자랑삼아 기념사진을 즐겁게 찍었습니다.nbsp nbsp nbsp 정토회 성지순례단 A팀을 총괄하는 선주 법사님의 신호에 따라nbsp버스들이 일제히 출발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자 송수신기를 통해 유튜브와 팟캐스트에서 늘 듣던 익숙한 스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nbsp nbsp 스님은 먼저 “바라나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제 저녁에 잘 주무셨어요? 못 잤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순례객들이 “예”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nbsp nbsp A팀은 어제 오후 1시 50분에 한국을 출발하여 밤 9시 30분에 델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델리 공항에서 침낭을 깔고 노숙을 한 다음 오늘 아침 10시 15분 비행기를 타고 바라나시에 도착했습니다.nbsp nbsp ▲ 델리공항에서 하룻밤을 잔 순례객들 nbsp 어제 공항에서 노숙을 했기에 힘들 수도 있었던 순례객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순례를 떠나는 것이기에 우리는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강조했습니다.nbsp nbsp “인도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여행객이 아니라 순례객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밥은 얻어드시고, 옷은 버린 걸 주워입으시고, 잠은 나무 밑에서 주무심으로 해서 의식주에서 완전히 해방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앞으로 의식주는 걱정하면 안 돼요. 성지순례 와서 의식주 불평하는 사람은 차에서 그냥 내려놓고 가버릴 거예요. 하하하. nbsp nbspnbsp 첫째, 음식은 3일 정도 굶어도 안 죽습니다. 제가 70일까지 굶어봤는데 안 죽었습니다. 이미 이렇게 실험을 해봤으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여기서 지내는 21일 동안 하나도 안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당뇨병 환자는 굶으면 안 돼요. 당뇨병 환자는 당분이 떨어지면 죽진 않아도 뇌에 에너지가 공급이 안 돼서 정신이 가버려요.nbsp nbsp 둘째, 옷은 좀 꾀죄죄해도 괜찮으니까 ‘갈아입었네’, ‘못 갈아입었네’ 이렇게 따지면 안 돼요. 대신 색은 맞춰서 입어야 해요. 즉, 내일 가사를 받으면 반드시 걸치고 다녀야 합니다. nbsp nbsp 셋째, 자는 것은 첫날인 오늘과 내일,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 이렇게 사흘만 호텔에서 묵습니다. 오늘처럼 호텔에 묵을 때 씻어야 해요. 나머지 기간은 모두 학교나 절 같은 순례자 숙소에서 잡니다. 호텔에서 자는 것은 바라나시에서 오늘과 내일, 아그라에서 마지막 날 하루입니다. 아그라에서는 오늘보다 더 좋은 호텔에 묵을 거예요. 그래야 한국 갈 때 호텔에서 잤다는 기억을 남겨서 가죠. 순례하는 마음은 단단히 갖고 오셨어요?” nbsp “예” nbsp nbsp “먹는 것이나 자는 것을 두고 불평하면 안 돼요. 침낭 다 챙겨오셨죠? 침낭만 가져왔으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밥은 안 먹어도 되고, 옷은 이미 입고 있고, 잠은 안 잘 수 없는데 침낭만 있으면 길거리에서 자도 돼요. 아침에 추워봐야 10도, 12도 정도니까요.” nbsp 부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를 이야기하자 모두들 불평이 쑥 들어가고 웃음만 남았습니다. 한국에서 사전교육을 받을 때 이미 다 숙지한 내용이라 이제는 현장에서 즐기는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nbsp nbsp 바라나시 도심에 점점 가까워지자 스님은 ‘바라나시’라는 도시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 nbsp “바라나시는 부처님 당시에는 카시국의 수도였습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카시산 비단이 아주 유명했습니다. 지금도 바라나시는 비단과 공예가 유명합니다. 바라나시라는 지명보다 카시가 더 옛날 지명이에요. 인도 사람들은 카시 또는 바라나시라고 불렀고, 서양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베나레스라고 불렀어요. 카시, 바라나시, 베나레스 모두 같은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지금은 그냥 바라나시라고 불러요. 강가강과 지류인 바루나강과 아시강, 그 사이에 도시가 생겼기 때문에 ‘바라나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nbsp nbsp nbsp 바라나시는 현존하는 도시 중 가장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아온 도시라고 알려져 있어요. 옛날에 사람이 많이 살았던 도시들 대부분이 중간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되어 없어졌는데, 바라나시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람이 살아왔어요. 그래서 바라나시는 도시가 생긴 지 약 4천 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nbsp nbsp 부처님 당시에도 바라나시는 한 나라의 수도로 아주 유명한 도시였는데 지금도 120만 명 정도가 사는 도시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큰 도시들은 지금 거의 다 없어지고 빈터나 작은 마을로만 남았습니다. 왕사성, 사위성, 카필라성, 바이샬리가 다 그래요. 그런데 이 바라나시만 그때도 큰 도시였고 지금도 큰 도시로 남아 있습니다.nbsp nbsp nbsp 그리고 이곳은 힌두교 제일의 성지입니다. 강가강은 전체가 다 성스러운 강이지만 바라나시 앞을 흐르는 이 유역을 특히 성스럽게 여겨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몸을 씻고 경배를 드립니다.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본거지이며 바라나시 힌두대학이 아주 유명합니다. 불교인에게는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설법을 하신 곳이여서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고요. nbsp 바라나시에 가봐야 인도에 온 기분을 제대로 느낍니다. 인도에 온 기분이라면 우선 뭘까요?” nbsp “더럽다는 거요.” nbsp nbsp “복잡하다는 거예요. 엄청나게 북적이는 가운데 소도 다니고, 말도 다니고, 개도 다니고, 사람도 걸어도 다니고, 릭샤도 다니고, 오토바이도 다니고, 자전거도 다니고, 차도 다닙니다. 3천 년 동안 인간이 개발한 모든 탈 것이 한꺼번에 다녀요. 탈 것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나중에 한번 세어보세요. 오토바이, 자전거, 자전거 릭샤, 오토바이 릭샤, 자동차, 소가 끄는 수레, 말이 끄는 수레, 사람이 끄는 수레 등등 끝이 없어요. 전부 세어보면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모든 교통수단이 한꺼번에 전시된 박물관이나 다름없어요.” nbsp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버스 창밖을 바라보니 정말로 온갖 탈것들이 뒤엉켜 굴러가고 있었습니다.nbsp nbsp nbsp 거기다 경적 소리는 얼마나 삑삑 거리는지 정말로 ‘살아있음’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마치 서로 다른 온갖 것들을 포용하는 용광로 같았습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부처님이 인도에서 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습니다.nbsp nbsp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1시간을 달려 드디어 사르나트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사르나트를 참배하지는 않고, 내일 사르나트 박물관이 문을 닫기 때문에 박물관만 먼저 관람을 했습니다.nbsp nbsp 박물관 입구에서는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비롯한nbsp촬영을 일절 금하고 있어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스님은 순례객들을 이끌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구석구석을 자세히 안내해 주었습니다. 특히 조각 작품들에 대한 위트 있는 설명에 간간히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nbsp nbsp ▲ 사르나트박물관 nbsp 순례객들은 사르나트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서 오후 2시가 다 되어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습니다.nbsp nbsp 이어서 오후 3시에는 방콕을 경유하여 오는 팀이 덕생 법사님의 인솔로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늦게 도착한 순례객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꽃목걸이를 걸어 주었습니다. nbsp 저녁 6시부터는 만찬과 더불어 성지순례 입재식이 열렸습니다. 원래 성지순례 기간 동안 조별로 직접 밥을 해서 먹어야 하는데, 오늘과 마지막날만 예외로 식당에서 밥을 먹습니다. 푸짐한 인도식 뷔페 음식을 맛있게 먹은 후 참가자들을 모두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nbsp ▲ 저녁 만찬 nbsp 우선 한국에서 온 A팀 참가자들에 대한 전체 소개가 있었습니다. 경남, 대구경북, 부산울산에서 오신 분들을 비롯해 공동체, 청년정토회가 연이어 소개되자 각 지역 별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습니다.nbsp nbsp 그리고 이번 순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줄 버스 운전기사들을 스님이 직접 소개해 주었습니다. 운전기사들을 소개하면서 덧붙여 이번 순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 네 가지를 알려주었습니다.nbsp nbsp nbsp “순례를 하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첫째, 이동을 해야 하니까 운전기사입니다. 둘째, 잠을 자야 하니까 침낭이 필요합니다. 셋째, 먹어야 되니까 전기밥솥이 중요합니다. 넷째,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여권을 잃어버리면 안돼요. 그 외에는 잃어버려도 괜찮아요.” nbsp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는 사이 버스 운전기사들과 조수들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순례객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운전기사들을 맞이했습니다. 총 10명의 인도인들이 이번 성지순례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nbsp nbsp ▲ 순례객들을 성지로 안전하게 데려다 줄 인도인 운전기사들 nbsp 박지나 JTS 대표님과 선주 법사님이 인도인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건네자 순례객들은 다시 한번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열렬한 환호에 응답하는 의미로 인도인들을 대표해서 수바스지가 인도 노래를 맛깔스럽게 들려주었습니다.nbsp nbsp 이어서 이번 성지순례 실무를 맡은 스텝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호텔, 버스 등 전체 운영을 총괄하는 역할을 박지나 JTS 대표님이 맡았고, 스님을 수행하는 역할을 최말순님이 맡았고, 스님의하루를 매일 써서 올려주는 역할을 이준길님이 맡았습니다. 스님을 포함한 이렇게 4명은 바라나시에서 A, B, C팀을 모두 맞이해서 보내고, 바로 쉬라바스티로 넘어가서 다시 A, B, C팀을 맞이할 예정입니다.nbsp nbsp ▲ 성지순례 전체를 총괄하는 스텝들 nbsp 그리고 A팀 전체를 총괄하면서 1호차를 담당하는 선주 법사님, 2호차를 담당하는 김윤미님, 3호차를 담당하는 자광 법사님, 4호차를 담당하면서 성지 안내를 맡은 덕생 법사님이 소개되었습니다. nbsp nbsp 이렇게 소개를 모두 마친 후 입재식 및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청법가를 부른 후 순례객들이 스님에게 삼배를 올리자, 이어서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nbsp nbsp 스님은 먼저 성지순례 기간에는 밖으로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하고, 안으로는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분별심을 살펴 자기를 알아가는 순례를 할 것을 당부하면서 14박 15일 동안 꼭 명심해야 할 내용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 nbsp “그제 한국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와도 이틀이 걸리는 셈인데, 혜초스님 같은 옛날 우리 선배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겠어요? 대부분 육로로 걸어오거나 해로로 동력이 없는 돛단배를 타고 여기까지 왔으니 참으로 위험하고 머나먼 길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의 순례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제 14박 15일 동안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고자 합니다.nbsp nbsp ▲ 입재식 nbsp 순례를 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첫 번째 자세는 우리가 순례자라는 사실을 늘 명심하는 것입 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해외여행이 아니라 고행을 각오하고 떠난 순례의 길이에요. 순례의 목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다 올바르게 이해해서 내 삶이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한 열반을 얻고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해탈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사후에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참자유와 참행복을 얻는 것이 목적이에요. nbsp 그래서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에서 시작해 부처님이 출가하시고, 수행하시고, 성도하시고, 교화하시고, 마지막으로 열반하신 곳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위대한 삶을 우리가 한 발 한 발 현장을 밟아가면서 이곳에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단순히 과거 역사에 대해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앎으로써 나도 부처님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서입니다.nbsp nbsp 불교가 이 세상에 출현한 지 2,600년 정도 되었습니다. 2,6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는 가운데, 나라가 바뀌고 문화가 다른 지방으로 전해져 내려오면서 불교가 많이 왜곡되어 그 가르침이 본질에서 많이 벗어났어요. 그래서 첫째, 우리가 다시 이곳 현장에 와서 처음 시작할 때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 즉 정법은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난해하지 않고 아주 쉽습니다. 셋째,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생활과 떠나지 않아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nbsp nbsp 이것이 세 가지 특징입니다. 첫째, 바른 불교입니다. 즉 정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둘째, 쉬운 불교입니다. 그 정법은 난해하지 않아서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셋째, 생활불교입니다. 정법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 불교를 모토로 하고 있어요. 우리 정토행자들은 반드시 인도성지순례를 와서 이렇게 붓다가 어떤 가르침을 설하고 어떻게 살아가셨는지를 직접 경험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머리로만 이해하거나 믿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저절로 믿고 받들게 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여행객이 아니라 순례자입니다.nbsp nbsp nbsp 그리고 이번 일정 동안 여러분들은 자기 내면의 변화도 함께 여행해야 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에 가보면 언어만 좀 다를 뿐 건물도 비슷하고 모든 게 우리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인도는 많이 달라요. 연세 드신 분들은 ‘우리도 5060년대에는 이렇게 살았지’ 하고 향수를 느낄 수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은 ‘진짜 이런 데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라요. 이렇게 바깥 구경도 가지각색이지만, 사실은 그 경계에 부딪히는 자기 마음 구경이 바깥 구경보다 더 좋습니다. 마음이 죽 끓듯 시시각각 변하거든요.nbsp nbsp 지금은 이렇게 밝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내일이든 모레든 언제 다시 얼굴이 찌그러져서 도무지 펴지지 않게 될지 몰라요. 이걸 사로잡힘이라고 해요. 사로잡히면 보름 내내 괴롭게 지내게 되니, 나도 모르게 사로잡히더라도 사로잡힌 줄을 빨리 알아차려서 돌아와야 합니다. 그렇게 돌아오려면 지금 여기서 순례를 떠날 때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늘 자기 마음을 잘 살펴야 합니다. 살펴보면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간사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nbsp 예컨대 우리는 약속이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말로 약속한 건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런 걸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막 싸우게 되기 쉬워요. 물건을 살 때도 100루피 달라고 하다가 안 사고 돌아서려하면 금방 10루피로 내려갑니다. 금액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물건에 값이 있는지 없는지도 종잡을 수 없는 나라예요. 역시 부처님의 나라여서 값이 원래 없나 봐요. 이런 경험들을 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 그래서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사물을 보면 분별심이 끝도 없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인도에 와서 사흘만 지나면 ‘인도 정부는 도대체 뭐햐나, 정치인들은 뭐하고 있냐’라며 욕을 하면서 남의 나라를 몽땅 고쳐주고 가려고 들어요. 다니다 보면 온갖 생각을 다 하게 됩니다. 그러니 바깥 구경도 좋지만 이런 자기 마음의 변화도 놓치지 마세요. 내 마음이 경계에 따라 얼마나 자주, 크게 변하는지 구경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는 여행입니다. nbsp 지금은 제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겠지만 당장 내일부터는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을 거예요. 델리에 가서 제가 마지막에 또 이런 이야기하면 그때서야 ‘아, 내가 놓쳤구나’ 할 겁니다. 그러니 항상 순례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바깥으로의 순례도 있지만, 그 바깥 경계를 따라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잘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순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 nbsp 그리고 순례를 하는 동안 공동체생활을 하게 됩니다. 아마 이렇게 낯선 사람과 한 식구가 되어서 같은 방에 자고,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이 밥 먹으며 다녀본 적이 가족을 제외하면 별로 없었을 거예요. 같이 사는 데는 인물이 잘나거나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가장 좋은 관계예요. 다시 말하면 밥도 돌아가면서 하고, 밥통도 돌아가면서 드는 등 뭐든지 일을 나누어서 해야 좋아요.nbsp nbsp 그런데 이렇게 사흘만 다녀보면 ‘밉상’이 나타납니다. 물건 들어야 할 때는 어디 갔는지 흔적도 없다가 밥 먹을 때 되면 숟가락 들고 맨 먼저 와서 앉아 있고, 설거지할 때 또 없어져요.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면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해주지만 사나흘만 지나면 분별심이 생기죠. 분별심이 생기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봐야 합니다.nbsp nbsp 또 자기가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얼마나 밉상이 되고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알아차리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평소에는 자기 성질을 숨기면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지만 부부지간에는 오래 살다 보니 성질이 안 숨겨집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보름이 지나면 자기 성질머리를 숨기려야 숨길 수 없습니다. 어차피 다 나오게 되어 있으니 아예 처음부터 긴장하지 말고 성질 내어놓고 사는 게 좋아요. nbsp nbsp 이렇게 공동체생활이라는 걸 늘 생각하세요. 여기서는 차장이라고 해서 무슨 스탭도 아니고, 조장이라고 해서 돈을 10원이라도 적게 낸 것도 아닙니다. 똑같이 돈을 내고 똑같이 순례자로 왔는데 그저 전체 진행을 원활하게 하고자 차장이며 조장을 뽑은 것이지, 따로 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이번 여행은 정토불교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해서 왔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거의 전체 여행을 자율적으로 진행하다시피 해야 합니다. 일반 여행처럼 다른 누군가가 해주는 대로 따라만 가면 되는 여행이 아닙니다. 따로 챙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차에 딱 법사님 한 분밖에 없고, 나머지는 전부 여러분들이어서 똑같이 온 사람들입니다.nbsp nbsp 향로에 불을 붙이든 밥을 지어먹든 다 우리 손으로 직접 일을 해가면서 다니는 여행이지, 누가 해주는 대로 받으면서 따라다니는 여행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늘 돈만 주면 여행사가 알아서 하고 여러분들은 손님으로 다니는데 익숙하지만 이번은 그렇지 않고 함께 만들어가는 여행이에요. 이렇게 첫날 하루와 마지막 날 하루에만 식사를 주는 걸 제외하면 당장 내일 아침부터는 다 밥도 여러분들이 해먹어야 하고, 물건도 나눠서 들고 가야 하고, 모든 걸 다 같이 해야 합니다. 그런 공동체로서, 가족으로서 같이 생활하는 거예요. 여행의 주인이나 스님이 따로 있고, 나는 그저 따라만 가는 여행이 아니라 내가 여행의 주인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nbsp nbsp nbsp 이렇게 설명해도 귀에 잘 안 들어올 거예요. 며칠 다니면서 밥도 못 먹고 물건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보면 조금씩 정리가 되긴 하지만, 지금 처음부터 마음가짐을 바꿔두면 여행하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nbsp 밖을 보는 순례도 좋지만 안을 보는 순례도 해야 한다는 말씀에 어떤 마음으로 순례를 해야할지 명쾌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는 공부를 하자고 마음을 먹으니 마음도 한층 가벼워진 느낌입니다.nbsp nbsp 이어서 스님은 인도의 역사와 기후, 사회 문화 환경 등에 대해 지도를 짚어 가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런 후 부처님의 생애와 순례객이 찾아갈 10대 성지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순례객들은 자료집에 열심히 메모를 하며 눈을 반짝이면서 스님의 법문을 경청했습니다.nbsp nbsp “부처님은 인도 북쪽인 히말라야 산 기슭 카필라바스투에서 태어나셔서 29살까지 거기서 살다가, 진리를 찾아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셔서 당시 가장 큰 나라였던 마가다국으로 오셨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미국의 뉴욕으로 가신 것과 같아요. 마가다국의 왕사성 주변에서 스승을 만나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만났던 위대한 스승이 ‘웃타카 라마푸트라’와 ‘아라라 까라마’라는 선정주의자입니다. 열심히 수행한 끝에 그 스승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완전한 해탈이 아님을 아시고 스스로 수행하러 떠난 곳이 마가다국 안에 있는 가야 지방이었어요. 가야 시의 변방에서 6년 고행을 하시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곳을 ‘깨달음을 얻은 가야’라고 해서 ‘보드가야’라고 부릅니다.nbsp nbsp nbsp 부처님이 최초로 설법을 하신 곳은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 바라나시입니다. 여기는 16강국 가운데 하나였는데 당시 이름은 카시였어요. 첫 설법을 바라나시 근교의 사르나트에 와서 하시고 다시 보드가야로 돌아가셔서 거기서 1천 명의 비구를 교화하신 뒤, 다시 왕사성으로 가셔서 빔비사라 왕을 교화하고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를 기증받게 됩니다. 부처님이 이곳에서 3년을 머무시는 동안 초기 교단의 중요한 제자들 대부분이 이때 귀의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1250인’ 또는 ‘1200 제대 아라한’이라고 부르는 초기 제자들과 대 선지식들은 주로 부처님의 성도 후 3년 안에 출가하신 분들이에요. 지혜제일 사리푸트라, 신통제일 목갈리나, 두타제일 마하가섭 같은 존자들은 모두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 교화되신 분들입니다.nbsp nbsp 그러다 부처님은 수닷타 장자의 초대를 받고 두 번째 강국이었던 코살라국의 쉬라바스티로 가셨습니다. 우리 말로 하면 사위성이에요. 여기에서 수닷타 장자가 기증한 절이 기원정사입니다. 사위성에서 또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그래서 왕사성과 사위성은 불교의 8대 성지에 속합니다. nbsp nbsp 부처님은 이 지역들을 다니면서 교화를 하셨어요. 또 8대 성지에는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을 공양 올렸다는 바이샬리가 있습니다. 바이샬리에는 릿차비족과 밧지족이 살았는데 여기는 절대왕정이 아니라 공화제였어요. 릿차비족이나 밧지족이 통치하는 그 정치 체제가 부처님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체제였어요. 오늘로 말하면 민주적인 국가였습니다. 상가가 민주적으로 구성된 것도 여기에서 어느 정도 따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제일 서북쪽으로는 상카시아까지 가셨어요. 부처님이 하늘나라의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서 도리천에 갔다가 하강하신 곳이라고 전해오는 상카시아도 8대 성지에 들어갑니다.nbsp nbsp 그리고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인 카필라바스투의 룸비니, 도를 이루신 곳인 마가다국의 보드가야, 최초로 설법하신 곳인 바라나시 근교의 사르나트,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곳인 쿠시나가라를 4대 성지로 꼽습니다. 8대 성지라고 하면 4대 성지에 네 곳을 더하면 됩니다. 첫번째가 왕사성입니다. 부처님이 죽림정사를 최초로 지은 곳으로 우리가 말하는 영축산이 있는 곳입니다. 당시 인도 지명은 ‘왕들의 집’이라는 뜻인 ‘라자그라하’였고 지금은 ‘라즈길’이라고 불립니다. 여기서 성난 코끼리가 부처님께 귀의했다고 해요. 두번째는 천불화현을 했다는 쉬라바스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쉬라바스티에 가면 천불화현탑을 참배할 예정이에요. 세번째는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을 공양했다는 바이샬리이고, 네번째는 부처님이 도리천에서 내려오셨다고 하는 상카시아입니다. 그래서 박물관에 가면 4대 성지를 하나의 돌판에 새기거나 8대 성지를 하나의 돌판에 새겨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nbsp nbsp 여기서 또 10대 성지라고 하면 8대 성지에 카필라바스투와 둥게스와리가 더해집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건 룸비니지만 29년간 자라신 곳은 카필라바스투예요. 룸비니는 거기에서 태어났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지만, 29년간 실제로 시간을 보낸 곳은 카필라바스투, 즉 카필라성입니다. 또 부처님이 성도하신 곳은 보드가야지만, 성도를 얻기까지 6년 간 고행하신 곳은 전정각산입니다. JTS가 수자타아카데미를 세운 둥게스와리는 전정각산 아래에 있습니다. 이 전정각산에서 6년간 수행하신 후 마지막에 보드가야에 가서 49일간 정진해서 성도하시고 성도 후 49일간 그곳에 머물며 법열을 느끼셨어요. 그러니 보드가야에는 길어봐야 98일 정도만 머무르신 셈이고 실제로 6년간 머물렀던 곳은 전정각산입니다. 그래서 카필라바스투와 전정각산을 포함해서 10대 성지라고 부릅니다.nbsp nbsp nbsp 우리의 여정은 10대 성지를 둘러보게 됩니다. 오늘과 내일 초반 이틀은 초전법륜 성지인 사르나트, 그 다음 이틀은 보드가야와 전정각산, 하루는 라즈길, 이틀은 바이샬리와 쿠시나가라, 이틀은 룸비니와 카필라바스투, 그 다음 이틀은 쉬라바스티, 그 다음은 상카시아를 둘러볼 예정이에요. 그런 뒤 아그라에 가서 타지마할을 보는 것으로 여정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아그라에 가면 순례는 다 끝나고 여행이에요. 그때 가면 화장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여행객으로 다녀도 됩니다. 순례 일정 중 이렇게 하루만 여행으로 보낸 뒤 델리로 가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봤자 모두 북인도 지역을 벗어나지 않습니다.nbsp nbsp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14일간 다녀야 할 여행지입니다. 한 군데 한 군데씩 찾아가면서 자세히 공부하게 돼요.” nbsp 인도 지도를 조목 조목 짚어 가며 자세히 이야기를 들으니 벌써부터 앞으로의 일정이 기대가 됩니다.nbsp nbsp 이렇게 입재법문과 오리엔테이션을 모두 마치고 덕생 법사님의 간단한 공지가 있은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 nbsp 한국에서 이곳 바라나시까지 꼬박 이틀 동안 머나먼 길을 달려와서 그런지 모두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순례객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모두 숙소로 돌아갔고, 법사님들과 차장, 조장님들은 다시 모여서 늦게까지 내일 순례 일정을 준비했습니다.nbsp nbsp 내일은 새벽 5시에 기상해서 각자 숙소에서 기도를 한 후 6시 30분에 사르나트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처음으로 설법을 해서 불법승 삼보가 이뤄진 곳이고, 구리가장자를 비롯해 처음으로 재가신자가 탄생해 삼귀의 오계가 이뤄진 곳인 ‘사르나트’에서 순례객들 모두가 삼귀의 오계 수계식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제 진정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의 길을 떠날 채비를 마치게 되는 것이지요. 오후에는 강가강으로 가서 삶과 죽음을 대하는 인도인들의 문화를 느껴보는 시간도 가질 예정입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1.08. 71,043 읽음 댓글 61개

2015.12.30 (오전) 연말 명상수련 5일째, 발원문과 활동가 격려말씀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활동가들과 함께한 연말 명상수련 5일째를 맞이하여 그동안 정진한 공덕에 대해 발원을 한 후 대중들의 소감문 발표를 경청하고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난 대중들은 천천히 포행을 하며 명상 장소인 대수련장에 모였습니다. 스님은 대중들보다 먼저 대수련장에 도착해 법상 위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새벽 명상이 끝나고 곧이어 예불과 스님의 발원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5일 동안 부지런히 수행 정진한 대중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발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의 발원 기도를 들으며 곳곳에서 눈물을 닦는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nbspnbspnbsp“우러러 발원하옵니다. 오늘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저희 정토행자 대중 일동은 5일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정진한 후 이와 같이 부처님께 예배하고 참회하면서 발원하옵니다.nbspnbsp저희들은 어리석어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기억과 상처에 집착하여 그 업식에 충동적으로 반응하며 괴로움과 슬픔과 침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과 온갖 상을 지어 근심하고 걱정하며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몸은 여기 지금 들숨과 날숨 사이에 살아가고 있지만, 생각은 언제나 과거의 영상 속이나 미래의 상상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꿈속에서 강도를 만나 두려움 속에서 도망다니며 이곳 저곳 피할 곳을 찾듯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nbspnbspnbsp부처님이시여, 그러하오나 저희에게 꿈속의 안온한 피신처를 주실 것이 아니라, 비록 매정하다 느끼고 부처님을 외면할지 몰라도 ‘눈 떠라, 꿈을 깨라’고 일갈해 저희가 영원히 강도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일깨워 주옵소서. 강도를 피하는 길은 다만 눈뜨는 것일 뿐임을 예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부처님의 가르침은 변함없이 일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눈뜨는 소식은 온데간데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강도를 만나면 어떻게 어디로 피할 것인지 알려주는 가르침으로 변질되어 세간을 풍미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비록 아직 미약하지만 그래도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인 깨달음을 통한 해탈과 열반, 참자유와 참행복을 구하는 이 길을 추구합니다.nbspnbsp오늘 같은 세상에 부처님의 정법을 잊지 않고 그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비록 한줌밖에 되지 않아도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소중하고 소중한 일입니다. 이 작은 씨앗들이 아직은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한겨울이라 대지 깊이 숨어 웅크리고 있지만, 이제 곧 봄날이 오면 싹이 트고 쑥쑥 자라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입니다.nbspnbsp저희들은 다가오는 새로운 정법의 시대에 좋은 씨앗이 되고자 가족들의 반대와 친구들의 만류와 세상의 온갖 장애를 무릅쓰고 세상을 거슬러 이같이 정진하고 있사옵니다. 비록 저희들이 아직도 어리석어 꿈에서 깨지 못하여 강도를 두려워하고, 강도가 없는 안온한 땅을 구하기를 그치지 못하고 강도를 탓하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이 모두가 꿈이어서 눈만 뜨면, 강도도 없고, 피할 것도 없고, 도움을 구할 것도 없고, 도움을 줄 자도 없음을 꿈 속에서라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눈 뜨는 그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열반을 체험하지 못한 것일 뿐이니 저희들의 이 길을 불보살님께서는 귀중히 여기시어 격려하고 옹호하여 주시옵소서.nbspnbsp이 험난한 세상에서 온갖 고통을 이기는 힘은 세력도 아니고 돈도 아닙니다. 오직 저희 행자들이 어떠한 경우에도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이 자유와 행복을 우리 주위에 괴로워하고 속박받는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여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보다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만이 저희들의 유일한 발원이오니 저희가 이 길을 꾸준히 근면하고 성실하게 갈 수 있도록 제불보살님들은 옹호하여 주시옵소서.nbspnbsp오늘 저희가 정진하고 발원한 이 공덕을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오니 괴로움에 빠진 모든 중생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며,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항구적인 평화가 도래하고, 분단이 극복되어 통일한국이 성취되고, 나아가 주변국들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동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라옵니다.nbspnbspnbsp이 발원 공덕 영가님들께 회향하오니 먼저 돌아가신 조상 영가님과 유주무주 모든 고혼들까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저 극락세계로 왕생하옵소서. 또한 극락에도 머무르지 않고 다시 이 세상에 오시어 저희의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옹호하는 신장이 되어 주옵소서.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nbsp스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며 이런 크나큰 축원을 받기에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대중들은 스님의 발원을 오롯이 가슴에 새기며 108배 정진과 명상, 경전 독송을 함께 했습니다. 이렇게 기도가 끝나고 곧바로 소감문을 작성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소감문을 들으면서 첨언해 줄 내용에 대해 메모를 하면서 한 명 한 명의 발표를 경청했습니다.nbspnbspnbsp각 조를 대표한 19명의 발표를 모두 들은 후 다시 법상에 오른 스님은 소감문을 들으며 느꼈던 소감과 몇 가지 조언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네 가지를 예로 들며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내가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임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법당 운영하랴 행정 하랴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건 잘 압니다. 물론 직접 경험하고 있는 여러분만큼은 모르겠지만 저도 이야기를 들어서 어느 정도는 알아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웃을 수 있어야 해요. 법당 총무나 부총무를 맡은 내가 바쁘다고 인상 쓰고 힘들어 하고 괴로워 하고 ‘이거 언제 그만둘까’ 이런 생각에 빠진다면 다른 사람이 그런 나를 보면서 왜 정토법당에 계속 나오겠어요? 대중들도 자기가 힘드니까 이 괴로움에서 좀 벗어나 행복하고 싶어서 정토법당에 왔는데 정토법당에서 보는 사람들이 저리 괴로워하면 거기서 뭘 얻겠어요? nbspnbspnbsp여러분들은 나름대로 애쓰고 있지만, 그러나 정토법당을 운영하느라 애쓰는 게 100이라면 힘들어하고 인상 써서 내치는 게 200이에요. nbspnbspnbsp그런 걸 두고 ‘아무런 공덕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힘들다고 하면 제가 늘 이렇게 말하잖아요.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내가 법문 듣는 게 좋은 지를 우선 생각해보세요.’nbspnbsp나도 법문 듣기 싫은데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법문을 들으라고 하는 것이라면 안 됩니다. 우선 내가 노는 것보다 법문 듣는 게 더 좋아야 해요. 그래서 아무도 안 나오면 나 혼자서라도 듣는 겁니다. 어차피 내가 들을 거라 법문을 틀었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같이 들으면 더 좋고, 셋이 들으면 더 좋고요. 길 가다가 누굴 만나면 ‘아이고, 나 오늘 법문 듣는데 오세요. 같이 들읍시다’ 이렇게 할 수 있잖아요. 법문 들어서 행복해진 이 마음을 같이 나눌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찾아온 사람들에게 차 한 잔 줄 수도 있겠지요. 그에 따른 약간의 일거리가 있으면 이런 좋음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니 그 정도 수고는 할 수 있잖아요.nbspnbsp일이 조금 많아진다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야죠. ‘우리가 사람이 많아져서 도움이 조금 필요해졌어요. 조금만 일찍 와서 청소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이렇게 내가 책임을 지고 해나가면서 ‘좀 도와주세요’ 라고 해야 다른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아요. ‘당신도 법문을 들으니 이걸 책임지고 하시오’ 하니까 상대가 부담스러워 도망가는 거예요. 일이 많아서 나도 모르게 짜증낼 때가 있지만 그건 잠깐이고, 크게는 이게 재미가 있고 기분이 좋아서 힘들어도 보람이 있어야 사람이 모여듭니다. 사람을 모으는 데는 효율적으로 잘 관리하는 경영 마인드도 필요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거예요. 하는 사람이 이 일에 흥이 나 있는 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가장 크고 좋은 힘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보면 민주화 운동이든 통일운동이든 노동자들 투쟁이든 내내 악쓰면서 하잖아요. 악쓰는 걸 보면 안쓰럽긴 한데 나는 거기에 가고 싶지 않는 거예요. 가난하게 사는 걸 보면 불쌍해서 보시는 좀 해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거예요.nbspnbsp검소하게 살아도 사람들이 얼굴이 밝고 편안해 보이면 나는 가진 게 많은데도 이 사람들보다 덜 행복하니까 ‘여기에 뭐가 있나’ 싶잖아요. nbspnbspnbsp그러니 제일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행복한 것입니다. 여기 사는 여러분들이 서로 흔쾌히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 티격태격하더라도 금방 참회하고 밝게 웃으며 서로 어울리면 바깥의 사람들도 여기에 오면 편안함을 느껴요. 그런데 여기가 좋다고 해서 왔는데, 와서 가만히 보니 팀장이라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성질내고 토라져서 이틀씩 말도 서로 안 하고 있으면 말은 안 하지만 ‘여기서 몇 년을 배웠다는 사람이 저러는데 나머지는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게 마련이에요. 인상쓰고 토라지는 건 내 까르마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아까 성질내서 미안하다’ 이렇게 금방 돌이켜주는 맛이 있어야 함께하지요. 물론 저는 그런 수준 안 되는 사람이라도 데리고 있어야 일이 되니까 데리고 있긴 하지만요. nbspnbspnbsp그래서 첫째, 자기가 행복해야 합니다. 일이 힘들어 불평하다가도 금방 내려놓고 탁 밝아지려면 수행적 관점이 분명해야 해요. 수행자의 기준은 내가 얼마나 행복하냐입니다.nbspnbsp두 번째로 좀 자유로워야 합니다. 원칙을 딱 세워 지키더라도 상대가 뭐라고 하면 ‘그래그래, 알았다’ 이렇게 가끔은 놔주는 것도 좀 있어야 해요. 늘 밧줄에 묶이듯 원칙에만 꽉 묶여서 살면 누가 좋아 보이겠어요? nbspnbspnbsp그렇다고 원칙도 없이 헤벌레 하고 살면 이미 헤벌레 하고 사는 세상과 다를 게 없으니 굳이 여기 올 이유가 없어요. 여기 원칙이 있기 때문에 모이는데, 그게 너무 옥죄이면 사람이 힘들어집니다.nbspnbsp이렇게 자유와 행복이 있어야 해요. 계율을 지키되 거기에 묶이지 않아야 합니다. 즉 나에게는 원칙을 지키되 타인에게는 조금 열어두고, 윗사람들은 원칙을 지키되 아랫사람들에게는 조금 열어두는 것이 필요해요. 가진 사람과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딱 정확하게 법을 적용하되 서민들과 아랫사람들에게는 그걸 곧이곧대로만 적용하지 말고 조금 융통성있게 적용해줘야 세상이 잘 돌아갈 텐데, 위에는 법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만큼 엉망으로 하면서 아랫 사람들은 담뱃값 정도 되는 촌지를 받았다고 목을 치잖아요. 자기들은 수백억 원씩 떼먹고도 들어갔다 3일 만에 나오는데요.nbspnbsp이처럼 질서가 딱 서 있되 약간의 자유로움이 있어야 하고, 내가 아직 부족하여 경계에 끄달려서 성질내더라도 금방 탁 돌이켜서 어우러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게 안 되니까 밖에서 정토회 하는 일을 보고 호감을 느껴 찾아왔던 사람들도 왔다가 다시 가버려요. 법당에 가면 총무란 사람이 성질이나 내고, 수련원에 오니까 팀장이라는 사람이 짜증이나 내면, 월급 받는 것도 아닌데 왜 여기에 붙어 있겠어요? 자기 부족한 걸 누군가로부터 수용받아야 계속 있을 텐데 오히려 자기가 남의 부족함을 다 감당해줘야 하니까요.nbspnbsp우리가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사람이니 그에 근접하려면 우리가 먼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저돌적으로 투쟁할 땐 투쟁하더라도 평상시로 돌아갈 때는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경쟁력이 있어요. 우리가 다른 뭘로 경쟁하겠어요? 돈으로 경쟁하면 재벌 앞에선 한 주먹도 안 되고, 권력으로 경쟁하면 일개 부대 수준도 안 되는데요.nbsp우리의 힘은 우리 삶의 자유로움과 행복입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의 위대함도 거기에 있습니다. 남의 집에 가서 밥 얻어먹고 나무 밑에서 자고 옷 주워 입는 건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을 만한 수준의 거지나 다름없는 행색인데도 그들이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고, 두려움 없이 살았기에 수많은 왕들과 부자들이 귀의한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삶을 보고 사람들이 귀의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불쌍하게 여긴다면 인생 끝이에요. nbspnbsp그리고 우리가 소중하다는 걸 우리 스스로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안이든 밖이든 사람들을 만나보면 관심사가 늘 돈 이야기, 음식 이야기, 옷 이야기, 출세 이야기, 배우자며 자식이 뭐 했다는 이야기뿐입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는 첫째, 적어도 자유와 행복이라는 주제, 즉 해탈과 열반을 향해서 살아가잖아요. 이것만 해도 굉장한 거예요.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떻게 하면 더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는가, 즉 열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도 드물어요. 세상이 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는 해탈과 열반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고, 그래도 매일 아침마다 해탈과 열반에 향해서 수행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잖아요. nbspnbsp두 번째,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열이나 백에 하나 있다손 치더라도 자기 해탈과 열반에만 관심 있지, 이걸 통해 다른 사람도 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법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스님들마저도 어디 큰 부자에게서 49재나 생일 불공 하나 받을 궁리, 건물 지을 때 돈 낼 사람을 찾을 궁리만 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젊을 때는 스님들이 그런다고 비난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것도 그냥 세상의 일부일 뿐입니다. 불교라고 해도 이름만 불교지 불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절에 다니는 신도도 마찬가지예요. 다 ‘여기서 빌면 돈 더 많이 버나’에만 관심 있습니다. 누가 교회 다녀서 더 잘됐다고 하면 다들 내일 당장 교회 갈 사람들이에요. 이런 가운데서 이 좋은 법을 혼자 알지 않고 주변에 전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건 굉장한 일입니다.nbspnbsp세 번째, 우리는 여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실천까지 하잖아요. 환경에 대해 생각해서 화장실 휴지라도 덜 써보려고 노력하잖아요. 현실에서 잘 안 되는 건 알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이라도 하고, 어디 가서 물건 하나 살 때 ‘포장은 하지 말아 주세요’ 이런 말이라도 할 줄 알잖아요. 불쌍한 사람 돕기 위해서 거리 모금도 나가잖아요. 우리 주변을 둘러보세요. 얼굴도 모르는 아프리카며 인도 사람, 북한 사람을 위해 길거리에서 모금하기는커녕 자기 돈을 내는 사람도 별로 없어요. 평화와 통일에 대해 고민하고 참여하는 것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런 생각을 갖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 안 됩니다. 그런 걸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조차도 대부분은 이름을 어떻게 붙여서 세력을 키울 궁리, 돈을 더 벌 궁리, 더 위로 올라갈 궁리만 합니다.nbspnbsp네 번째, 이렇게 사회적 실천도 하는 가운데 우리는 또 다른 종교와 다른 민족,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포용적이기까지 해요. 여러분들이 여기에 안 다녔다면 자기 까르마에 따라 동성애자를 혐오할 수도 있고,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싫어할 수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를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까르마가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다 해도 적어도 우리가 여기서 공식적으로는 성, 인종, 신체장애 여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하지 말자고 배우잖아요. 나에게 업식이 남아서 못 하는 건 못 하더라도, 그런 것을 배우고 그런 인식을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불교인이나 기독교인 중에서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은 사람은 얼마 없어요. 다만 그 배타성이 강하고 덜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 정도의 수준만 되어도 지성적인 면에서는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 안에 들고도 남아요. 대한민국 5천만 인구 중에 이런 사람은 사실 50만 명도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사람이 50만 명만 되면 나라가 바뀐다고 하잖아요. 그게 곧 정토회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이 50만 명, 즉 인구의 1퍼센트만 되면 세상이 바뀌는 거예요.nbspnbsp그러니 우리 개개인이 부족한 건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지금 이 지구의 인류공동체 70억 구성원 중에서도 가장 미래지향적이고 인류 보편적인 것을 지향하며 그 길에 서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에 내가 조금이라도 참여할 수 있다는 걸 보람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밥 한 숟가락 더 먹고 옷 한 벌 더 사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nbspnbsp이렇게 부족한 건 부족하더라도 내면의 가치관이 어느 정도 정립이 되어야 흔들리지 않고 남이 뭐라고 해도 포용성을 발휘할 수 있어요. ‘알았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이렇게 웃어주고 또 내 갈 길은 가는 힘이 생기는 거예요.nbsp저도 여러분도 우리 개개인은 다 부족하지만 우리의 지향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습니다. 기독교, 불교를 논할 때 말하는 불교가 아니라 부처님의 보편타당한 가르침이에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보편타당한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합리적이고 사실이며 모든 사람에게 다 통할 수 있는 가르침, 그것이 진리입니다. 불교인이 아닌 다른 종교인도 수용할 수 있고, 한국 사람만이 아닌 다른 민족도 수용할 수 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들으면 다 공감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진리의 길을 우리가 지금 함께 가고 있어요.nbsp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이 이 길을 조금 더 가볍게 가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멀잖아요. 중간에 장애가 생기면 힘들게 갈 때도 간혹 있지만 크게 봐서는 웃으며 자유롭게 이 길을 함께 가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nbsp웃으며 자유롭게 이 길을 함께 가자는 격려 말씀에 모두들 크게 기뻐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활동가들에게는 정말로 큰 힘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nbsp기쁜 마음과 감동의 여운을 뒤로 하고 대중들은 문경 정토수련원 곳곳에 흩어져 대청소를 했습니다.nbspnbspnbsp마음을 청소하듯이 곳곳을 처음 사용하던 그대로 깨끗하게 돌려놓은 후 다시 대수련장에 모여 회향식을 가졌습니다.nbspnbsp회향식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31. 48,738 읽음 댓글 46개

2015.12.25 쑥고개 성당 성탄절 미사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성탄절을 맞이하여 쑥고개 성당에서 열린 성탄절 미사에 참석해 축하 인사와 더불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참뜻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아침 10시 20분에 정토회관에서 쑥고개 성당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정토회 새벽 예불nbsp쑥고개 성당 입구는 성탄 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온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nbspnbsp대기실에서는 쑥고개 성당의 김홍진 신부님을 비롯해 박남수 천도교 교령님, 김대성 원불교 교무님이 속속 도착해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미사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차담을 나누면서 스님은 어제 경동교회 성탄전야 예배에서 목사님이 해준 설교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었다며 소개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아기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이 최근 IS 테러로 인해 관광객이 대거 줄어든 반면 근방에 있는 산부인과를 찾는 사람들은 더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원정 출산하려는 사람들 때문인데, 그 중 상당수가 한국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고난의 길을 간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성지에서 아이를 낳으면 축복 받는다는 생각에 IS 테러의 위협도 아랑곳하지 않는 기복 신앙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꼬집었습니다. 신부님과 교령님, 교무님도 모두 공감하면서 지금 한국에는 오직 한 가지 신앙인 ‘돈교’만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nbspnbsp11시가 되자 드디어 성탄 축하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2층에서는 성가대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가운데 신부님, 스님, 교령님, 교무님이 차례대로 입장을 했습니다.nbspnbsp▲ 쑥고개 성당nbsp김홍진 신부님의 안내로 아주 거룩하게 성탄절 미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적절한 시간이 되자 신부님이 “오늘은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오셨다”며 스님, 교령님, 교무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웃 종교인 세 분이 나란히 십자가 앞에 서자 열렬한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 성탄절을 맞아 함께 자리한 이웃 종교인들. nbspnbsp신부님까지 포함하면 4대 종교가 함께 어우러져 성탄을 축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합이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주는 네 분의 모습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먼저 박남수 교령님이 성탄 축하 인사를 한 후 이어서 스님이 앞으로 나와 성탄 축하 메시지와 함께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참뜻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성탄 축하드립니다.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특히 성인들의 경우는 태어날 때와 죽을 때 가장 상징적으로 묘사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어떻게 했느냐를 보면 그 삶을 알 수 있습니다. 태어나실 때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으며 돌아가실 때 어떤 모습으로 돌아가셨는지를 보면 그 분의 삶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지금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지만,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실 때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환영받지 못해도 제 부모에게는 환영받게 마련인데 예수님은 제 부모에게도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했어요. 결혼을 하지도 않았는데 아기를 가졌으니 그 어머니가 너무나 놀랐고, 결혼을 하지도 않았는데 아내 될 사람이 아기를 가졌으니 그 아버지도 매우 놀랐습니다. 그 어머니가 놀라서 거부하고, 그 아버지가 놀라서 파혼을 하려고 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다’라고 전했는데, 두 분은 원치 않았지만 주님의 뜻이라면 세상의 어떤 비난과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신앙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nbspnbsp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의 자연적, 사회적 환경도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따뜻한 봄날이 아니라 추운 겨울날에, 게다가 밝은 낮이 아니라 어두운 밤에, 그것도 따뜻한 방이 아니라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어요. 또 로마의 지배를 받는 변방의 작은 나라에서, 그 속국의 왕이 자기 백성을 억압하는 나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인인 동방 박사들이 주님의 오심을 가장 먼저 알아본 것도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nbspnbspnbsp하느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동박 박사들로부터 듣고 놀란 헤롯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 주변의 갓난 애기들을 모두 죽이는 대참극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품에 안겨서 애굽까지 피난길에 올랐다가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어요. 태어나실 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nbspnbsp이야기를 하다 보니 오늘 아침에 본 뉴스가 생각납니다. 이스라엘 극우 세력들이 어린 아기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일가족을 불질러 학살하고, 죽은 아기의 사진을 들고 아기가 죽은 것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다는 기사를 보고 증오와 미움이 사람을 얼마나 타락시키는지 알 수 있었어요. 오늘 그 뉴스를 보면서, 마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이처럼 예수님은 결코 오늘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축하 받으면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어요. 성경 말씀대로 표현하자면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가장 핍박을 받다가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어요. 세상 이치로 보면 실패한 인생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그런데도 결국은 부활하셔서 가장 높은 자가 되셨습니다. 긴 역사 속에서 보면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훌륭하고 성공적인 삶을 사신 것으로 만인이 추앙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이런 예수님의 탄생 모습을 생각해보면, 하느님의 축복이 우리가 생각하듯 꼭 영광으로만 오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온갖 수난과 장애로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수난이 하느님의 축복인 줄 알지 못해서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수난을 피해가려 합니다. 실제로는 그 수난과 고통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축복이고 하늘 나라로 가는 유일한 길인데도 오늘 우리는 그 길을 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nbspnbsp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보면 최후의 심판 날 천국과 지옥에 가는 심판의 그 기준이 무엇인지 나옵니다. ‘주께서 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느냐?’,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느냐?’,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혀주었느냐?’,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느냐?’, ‘병들었을 때 보살폈느냐?’,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 면회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생존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 다시 말해 굶주리는 사람, 병든 사람, 고향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난민들, 죄 없이 감옥에 갇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했느냐가 기준이에요.nbspnbsp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이 기독교 국가라고 하지만 오늘날 유럽을 향해 오는 중동 난민들을 유럽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유럽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이 땅에 온 많지 않은 무슬림, 이주민들을 벌써 잠재적 테러범으로 취급하면서 테러방지법을 만든다며 난리를 피우는 것을 보면 이것은 종교와 관계없는 인간의 어떤 야만성을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nbspnbsp예수님의 오심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구원의 희망을 주는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의 희망과는 다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구원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nbspnbspnbsp지금 실패하고 패배하고 큰 어려움에 처한 처지가 단기적으로 보면 실패지만, 주님의 삶을 생각하며 길게 본다면 이것은 결코 실패한 삶이 아니고 패배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성공으로 가는 어떤 출발점일지 모릅니다. 우리들이 겪고 있는 이 고난은 그 분이 겪으신 고난에 비하면 고난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그러니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이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힘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내야 합니다. 즉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만 희망을 갖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절망에 빠진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희망의 메시지인 복음을 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nbsp또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의 마지막 모습, 즉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두고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저는 깊은 영감과 믿음을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유대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하느님은 죄를 응징하는 하느님이었는데,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죄를 응징하는 하느님에서 죄를 용서하는 하느님이 되셨어요.nbspnbsp또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서 보면 유대인만을 구원하는 폐쇄적 구원관이 아닌 이방인까지도 구원하는 열린 하느님과 개방된 구원관을 보여 줍니다. 나만을 사랑하는 하느님에서 만백성을 똑같이 사랑하는 하느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또한 예수님을 통해 신앙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서도 자기성찰을 하지 못하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기에 신앙이 바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그 땅에는 미움과 증오, 복수가 계속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nbspnbsp오늘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기독교인 중에서도 일부이기는 하지만 증오와 복수로 신앙을 삼는 사람들이 아직 많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북한을 미워하더라도 신앙인들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 나서서 미워하고 증오하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이해하고 포용해야 할 텐데 오히려 더욱 배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위배된다고 생각합니다.nbsp그래서 저는 기독교냐 불교냐 하는 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불교인들도 다 하느님의 창조물이고 하느님의 백성이지 않습니까? 문제는 ‘신앙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어떤 신앙을 갖느냐’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정말로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질 수 있는 신앙인지를 성탄절을 맞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nbsp제가 어릴 때 배운 찬송가 중에 이런 찬송가가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 배워서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고 곡도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불러보겠습니다.nbsp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nbsp♬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nbsp♬주께 더 나아가기 원합니다.nbspnbspnbsp노랫말에서 보듯이 우리가 주를 가까이 한다는 것은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지, 물질적인 축복을 받는 데서 행복을 찾는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기 어렵습니다.nbspnbsp어릴 때 배운 노래니까 잊히지 않는데, 저는 통일운동을 하니까 통일운동을 하는 자세도 이 노랫말과 같다고 생각해요. 통일을 원한다면 분단의 갈등 속에서 뿌리내려온 증오와 미움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증오하는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통일 조국을 건설하는 것이 진정한 소원이라면, 그걸 기쁜 마음으로, 찬송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이 운동을 꾸준히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통일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서 그만두게 됩니다.nbspnbsp가톨릭 순교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아무 죄도 안 지었는데, 다시 말해 남을 때리지도 않고, 도둑질하지도 않고, 성추행하지도 않고, 거짓말하지도 않고, 술에 취해서 행패부리지도 않았는데, 그저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한 가지 이유로 죽임을 당하면 억울하고 분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런데도 사형당하는 형제들 간에 웃으면서 ‘잘 가라. 천국에서 점심 먹을 때 보자’라고 인사나눌 수 있는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신앙입니다. 과연 우리가 죽음 앞에서 이렇게 원망 없이 웃으며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요?nbspnbspnbsp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권세 있는 자를 위에서 내리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셨습니다. 그래서 만인을 평등하게 하셨어요. 오늘날 이 땅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권세 있는 자에게 빌붙는 비굴한 삶보다는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과 함께함으로 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누리는 삶을 우리가 함께 실천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오늘 예수님 오신 뜻을 다시 한 번 새겨봅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스님의 성탄절 축하 강론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참뜻이 무엇인지 가슴 절절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신부님은 스님의 강론을 열심히 경청한 후 “스님께서 예수님 탄생의 의미와 십자가의 신비에 대한 신학적 고찰에 대해 주임 신부인 저보다 더 잘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라며 웃었습니다.nbspnbsp▲ 쑥고개 성당 김홍진 신부님nbspnbsp함께 자리한 교인들도 웃음을 띠며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김대성 원불교 교무님의 축한 인사가 이어졌고, 세 분의 종교지도자의 말씀이 모두 끝나자 신부님은 스님과 함께 온 정토회 식구들, 교령님과 함께 온 천도교 식구들을 모두 불러 일으켜서 인사를 시켜 주었습니다. 환영의 박수가 계속 이어졌습니다.nbspnbsp▲ 성당 식구들에게 인사하는 정토회 회원들nbsp이렇게 성탄절 미사에 4대 종교가 함께하는 모습은 그 모습 자체만으로 참 감동이었습니다.nbspnbsp이웃종교인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훈훈한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드디어 본격적인 미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가장 눈에 띈 건 세례명을 주는 의식이었는데 총 19명의 천주교인들이 대부, 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거룩한 의식을 가졌습니다. 웅장한 찬송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여러 차례 십자가 앞으로 나오게 하여 한 명 한 명을 예수님이 가신 그 길로 인도해주는 모습은 아주 거룩한 분위기를 자아내었습니다.nbspnbsp▲ 세례를 받고 있는 천주교인들nbsp이렇게 2시간 동안의 성탄절 미사를 모두 마치고 오후 1시부터는 성당 2층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성당에서는 몇몇 분들이 아침 일찍부터 떡국과 갖가지 반찬을 정성껏 준비했다고 합니다.nbsp맛있게 떡국을 먹으며 신부님이 주신 미사주를 잔에 붓고 다함께 건배를 했습니다.nbspnbspnbsp특히 성당에서도 청년들이 20여 명 참께 했고, 정토회에서도 20여 명이 함께 자리해 서로 마주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분위기가 무르익자 김홍진 신부님은 “이웃 종교에 대해 서로 궁금한 것이 많으시죠?” 라며 잠시 즉문즉설의 시간을 갖자고 했습니다. 각자의 종교에 대해 궁금한 점에 대해 끼리 끼리 대화를 나누던 청년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스님과 신부님, 교령님, 교무님 네 분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먼저 쑥고개 성당에 다니는 한 분은 “요즘 저희 성당에서는 서로 일을 도맡아 하려고 하지 않고, 앞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힘듭니다. 스님의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질문했습니다.nbspnbspnbsp그러자 스님은 망설임 없이 곧바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희 정토회도 똑같아요. 방법이 없어요. 쑥고개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책임지고 하는 일은 가능한 안 하려고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해답이 있으면 누가 저한테도 좀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어요.” nbspnbsp예상치 못한 짧은 대답에 모두가 크게 웃었습니다. nbsp질문자가 “알겠습니다.”하고 자리에 앉자 스님도 “이것 봐요. 답을 주지 않아도 해결이 되어버리잖아요.” 하며 웃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성당과 정토회의 청년들 간의 교류와 친목의 시간이 펼쳐졌습니다. 스님은 교류의 시간을 갖기에 앞서 오늘의 만남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종교 지도자 간의 교류는 예전부터 많이 있어 왔지만 오늘처럼 신자들 간의 교류는 거의 없었어요. 종교 지도자들이 신자들을 못 믿었나 봐요. 혹시 교류하다가 양떼 잃어버릴까 걱정이 되어서요. nbspnbspnbsp그러나 이제는 지도자 간에만 이루어지는 제한된 교류가 아니라 좀 더 전면적인 교류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사월 초파일과 크리스마스에 서로 오가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교류를 더 넓혀 나가면 공동 활동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구 환경을 살리는 운동에서 공통점을 찾아 함께 할 수도 있고, 국제 구호활동도 선교나 전법이라는 목적을 떠나 인류애로서 함께 할 수 있고, 공동 바자회를 함께 열거나 통일운동을 함께 해볼 수도 있어요.nbspnbsp불교인이냐 기독교인이냐를 떠나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면서 겪어야 하는 공통의 문제와 해결과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간다면 그 과정에서 각자의 신앙도 더 깊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교리를 비교해서 공통점이 있네 없네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예요. 믿음은 각자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그 속에서 같이 살아가는 것이니까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의논해볼 수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이런 교류 활동들이 더 넓어지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신자님들이 더 많이 오시면 좋았겠지만 공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오늘은 우선 양쪽의 젊은이들만 20여 명씩 초대해 이렇게 모였습니다. 그러니 청년 여러분들은 대화를 활발히 나눠주세요.nbspnbsp오늘은 신부님이 식사도 술도 다 내주십니다. 다이어트는 잊고 실컷 먹으면서 대화 나누고, 무엇이든 질문도 하세요. 질문하는 사람은 질문하기 전에 노래 한 곡을 하면 더 좋겠습니다.” nbsp스님의 제안에 먼저 정토회에서 온 청년들이 미리 준비해 온 크리스마스 캐롤송과 율동을 보여주었습니다. 두 곡을 준비했는데 첫곡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아주 멋지게 불러주었습니다. 이어서 경쾌한 멜로디의 “울면 안돼” 노래를 재미있는 율동과 함께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크리스마스 캐롤송에 맞춰 율동을 보여주고 있는 청년정토회 멤버들nbsp불자 청년들이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롤송과 재미있는 율동에 성당에서 온 청년들과 신부님, 수녀님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웃고 즐거워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쑥고개 성당 청년들도 즉석에서 답가를 해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 이라는 노래를 반주에 맞춰 멋지게 불러주었습니다. 성가대를 하는 청년들이 많아서 그런지 다들 평범한 실력이 아니었고, 노래가 끝나자 정토회에서 온 청년들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nbsp▲ 답가를 부르고 있는 쑥고개 성당 청년연합회 멤버들nbsp청년들끼리 이렇게 교류하는 모습을 보고 박남수 천도교 교령님은 짧게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종교 간의 화합이 바로 이것입니다. 책에서 보거나 법문이나 강론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었잖아요. 정토회에 다니시는 분들이 남의 성당에 와서 이렇게 춤추고 노래하고 서로 대화하는 이런 모습이 바로 젊은이의 용기입니다. 이런 젊은이들의 용기야 말로 종교 간의 평화도 만들도 남북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nbsp교령님은 큰 감동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김대성 원불교 교무님도 “정말 감동적인 모습이었다”고 소감을 이야기해 주자 양쪽 청년들은 모두 공감을 표하며 함께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한껏 어우러진 후 즉문즉설의 시간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누구는 원불교에 대해, 누구는 천주교에 대해, 누구는 불교에 대해 허심탄회한 질문들이 쏟아졌고, 각 종교 지도자들은 알기 쉽게 대답을 해주어 청년들도 무척 좋아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오후 3시부터 또다른 미팅 일정이 약속되어 있어 양해를 구하고 중간에 자리를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웃종교인들의 아름다운 만남은 오후 늦게 까지 계속 되었습니다.nbspnbsp평화재단으로 온 스님은 국제한민족재단 이창주 교수님과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위치한 신한촌의 독립운동역사 재건을 위해 어떻게 모금을 해나갈지 회의를 한 후 오늘 공식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 연해주 신한촌 독립운동역사 재건을 위한 모금 준비 회의nbsp저녁에는 집무실에서 명상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밤늦게까지 보았습니다.nbspnbsp내일을 시작으로 스님은 12월26일부터 30일까지 5일 동안 정토회 활동가들과 함께 한해를 마무리하는 명상수련을 할 예정입니다. 명상수련을 마치고 12월31일부터 1월2일까지는 3일 동안 정토회 실무자 수련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nbsp※ 12월 26일부터 30일, 명상수련을 하는 기간 동안은 ‘스님의 하루’도 묵언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명상을 모두 마치고 12월 31일 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26. 107,647 읽음 댓글 128개

2015.12.23 (오전) 주간반 송년법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오전에는 주간반 회원들을 대상으로, 저녁에는 저녁반 회원들을 대상으로 송년법회를 함께 했습니다.nbspnbsp아침 7시부터 조찬 모임을 마치고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온 스님은 10시부터 송년법회에 참석했습니다. 오늘도 스님이 직접 강의를 하는 날이라 많은 대중들이 참석해 정토회관은 발디딜 틈 없이 자리가 가득 찼습니다.nbspnbspnbsp죽비 삼성과 함께 명상이 끝나고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약 1시간 동안 수행자는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지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어제의 결과이고 내일의 원인입니다. 지금은 지나간 과거의 결과이고, 앞으로 올 미래의 원인이 됩니다. 인생은 시작과 끝이 있는 듯 보이지만 본래 시작과 끝이 없어서 늘 흘러가는 물처럼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현존하는 것은 늘 현재만 있습니다. 지난 뒤에 보면 성공한 일이든 실패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과거의 일이고, 과거의 일은 내 인생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과거의 일은 성공이든 실패든 하나의 경험에 불과합니다.nbspnbspnbsp일이 일어날 그때 그때에는 성공하는 일은 좋고 실패하는 일은 나쁘게 보입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때 좋은 일이 지금도 반드시 좋다고 할 수 없고, 그때 나쁜 일이 지금도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때 실패한 것이 오히려 지금은 더 큰 발전의 바탕이나 새로운 기회가 되어주기도 하고, 그때 성공했던 것이 지금 큰 낭패나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미 지나가버린 것은 성공이든 실패든 현재의 나에게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현재의 나에게는 그냥 하나의 경험일 뿐이에요.nbspnbsp이 경험을 나의 자산으로 만들 지, 빚으로 만들 지는 그 사건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결정하는 거예요. 과거의 성공에 도취되어 자만하게 되면 지금 실패의 원인이 되고, 과거의 성공을 잘 살려서 계승한다면 지금 성공의 원인이 됩니다. 과거에 실패했던 것을 잘 반성하고 실패의 원인을 규명해서 경험화한다면 그것은 지금 성공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과거의 실패에 상처를 입어서 좌절하고 절망해 버리면 지금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순간순간은 성공과 실패, 좋음과 나쁨이 있지만, 지나가버린 일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좋은 일, 나쁜 일, 성공, 실패가 없습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는 지금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렸습니다. 지금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서 경험의 자산으로 삼을 지, 상처로 간직해서 지금 내 인생의 큰 빚으로 남길 것인지는 지금 나의 시각에 달린 거예요.nbspnbsp올 한해를 되돌아보면 좋은 일과 나쁜 일, 성공과 실패가 수없이 반복되었을 겁니다. 다사다난이라는 표현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건 흘러간 물처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현재에 어떻게 남아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지나가버리고 없지만 뭔가 흔적이 남아 있거든요. 그 흔적이 어떻게 남아 있느냐에 따라서 이게 미래의 좋은 자산이 되기도 하고 엄청난 빚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지금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성공했다고 자만하거나 교만하거나 들뜨지 말고, 실패했다고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마세요. 실패했든 성공했든 그건 그냥 내 인생의 일부입니다. 성공했다면 그 성공의 좋은 점들을 지금 간직해서 미래에 계승하고, 실패했다면 실패의 원인을 잘 규명해서 다시는 그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미래에 예비를 하세요. 그러면 그것도 소중한 내 인생의 자산이 됩니다.nbspnbspnbsp농사를 지을 때는 봄에 밭갈고 씨뿌리고, 여름에 김매고 거름 주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가을에 추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아무리 많이 했더라도 가을에 추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앞서 해 놓은 일들이 다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마무리를 잘해야 해요.nbspnbsp우리가 부지런히 사는 가운데 내가 원하는 대로 된 것도 있고, 안 된 것도 있고,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때는 그것 때문에 헐떡거렸다 해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지나간 실패를 상처로 간직하지 마세요. 실패한 게 상처가 되는 것은 좌절하고 절망하기 때문입니다. 그 좌절과 절망은 욕심 때문에 생겨요. 한번 해 보고 안 되면 ‘이러면 안 되니까 저렇게 해 봐야지’, ‘이렇게 해도 안 되네? 또 다르게 해봐야지’ 이렇게 오히려 계속 연구를 하면 더 좋은 방법을 새로 발견해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안 된다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은 연구하거나 노력하지 않고 공짜로 먹으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면 실패가 상처로 남아서 다음에 할 때 두렵거나 망설이게 돼요.nbspnbsp겪었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게 있고, 겪었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이 없어지는 게 있습니다. 처음 할 때 두렵지, 한두 번 해보면 ‘까짓 거, 전에도 해 봤는데’ 이런 경우가 있고, 처음 할 때는 오히려 괜찮았는데 한동안 해본 사람이 오히려 더 겁을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실패가 거듭되더라도 해볼수록 두려움이 없어지고 능수능란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욕심을 내면 마음에 상처를 입기 때문에, 즉 좌절과 절망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실패가 쌓여서 큰 빚이 됩니다. 어린 아이가 자전거를 배울 때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것은 자전거를 못 타는 게 아니라 곧 탈 수 있게 되는 과정입니다. 많이 넘어졌다는 것은 곧 잘 탈 때가 다 되어간다는 뜻이에요.nbsp이렇게 지나간 1년을 돌아보고 마무리할 때 실패한 것을 경험화해서 내년에는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 또는 참고사항이 되도록 하세요. 그러면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됩니다. 또 성공했던 것에 들뜨거나 교만에 빠지지 말고, 그것을 잘 계승해 나간다면 그것 또한 내년에 성공의 기초가 될 겁니다.nbspnbsp산다는 것은 다 수행이에요. 앞으로 엎어져도 수행이고, 뒤로 자빠져도 수행입니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순간순간이 다 똑같은 시간이에요. 군대 입대하는 날이나 제대하는 날이나, 그믐날이나 초하룻날이나 다 같은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초하루는 여유가 있다며 낭비하고, 그믐날은 다 지나갔다며 포기합니다. nbspnbspnbsp똑같은 날이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것을 경험화해서 축적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이, 하루하루가, 매년 매년이 늘 새로운 시작이에요. 이제까지는 다 연습이고, 그 연습을 기초로 해서 이번에는 제대로 하도록 노력하는 것의 반복입니다. 여태까지 100번을 했다면 101번째는 제대로 해 보고, 그 다음에 101번 연습한 걸 갖고 102번째는 더욱 제대로 해 보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하루는 그냥 하루가 아니라 이제껏 살아온 총 날수에 더해진 하루입니다.nbspnbsp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삽니까? 그냥 수학적으로 하루하루 살아요. 어제 것을 버리고 오늘 하루를 살고, 오늘 것을 버리고 내일 하루를 삽니다. 그러나 오늘 하루는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위에 또 얹어진 하루이기 때문에 오늘 하루는 어제 하루보다 훨씬 값져요. 10년 전의 하루보다는 오늘 하루가 훨씬 값집니다.nbspnbsp그런데 그렇게 살지 않으니까 인생에서 비약이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어느 정도 경험이 축적되면 문리가 터지듯이 비약이 일어나야 해요. 아이들이 공부해서 시험 치고 나면 쓰레기통에 버리고, 시험 치고 나면 쓰레기통에 버리기를 반복하니까 대학 졸업한 사람에게 뭘 물어봐도 중학교 수준이 안 돼요. 그게 계속 축적이 되어서 올라온 게 아니라서 그래요. 자기 필요에 의해서 공부하지 않고 억지로 했기 때문에 시험만 통과하면 그냥 버려버렸어요. 시험은 통과하기 위한 서류에 불과했거든요.nbspnbsp그나마 인생에서 다 버린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걸 또 녹화해 놨다가 내내 다시 틀어보면서 괴로워해요. 오지도 않은 10년 후, 20년 후의 일도 상상의 녹화를 해 놨다가 틀어보면서 ‘죽으면 어떡하나? 애가 어찌 되면 어떡하나?’라고 근심 걱정해요. 미래의 일을 근심 걱정하고 과거의 일을 괴로워 하느라 현재는 허수아비로 사는 거예요. 머릿속에는 내내 과거나 미래의 테이프를 틀어놓고 슬픔과 괴로움, 초조와 불안, 근심과 걱정 속에 인생을 사느라고 지금 여기 깨어있지 못한 겁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미 과거는 지나가버려서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없고, 지금만 존재하니까요.nbspnbsp그리고 이 ‘지금’은 과거의 결과요, 미래의 시작입니다. 이미 지나가버리고 없는 과거를 우리가 돌이켜보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아파하려는 게 아니라 그것을 경험화해서 그 교훈으로 미래를 잘 살기 위해서여야 합니다. 그래서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가 달라요. 오늘의 하루는 그만큼 축적된 하루예요. 우리가 인생의 계단을 올라갈 때, 10년 전의 한 층이 9층에서 10층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한층은 100층에서 101층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보이는 전망이 달라요. 그리고 우리가 미래를 생각하는 이유는 내일이라는 게 내일이 되면 또 지금이 되니까 준비를 하는 거예요. 근심하고 걱정하라고 미래를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nbspnbsp그러니 2015년을 마무리 하면서 개인적으로 인생을 잘 정리하세요. 실패든 성공이든 관계없이 다 정리해서 추수를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내년 1년을 간단히 설계해야 합니다. 멍하게 시작하지 말고요. nbspnbspnbsp처음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시작해도 시간이 흐르면 멍청해지기가 쉬운데 대부분 새해를 멍청하게 시작하잖아요. 공부 잘 하는 아이는 공부를 많이 하는 아이가 아니라 오늘 뭘 배우는지 미리 알고 수업에 들어가는 아이예요. 그 시간에 배울 지식을 다 알고 들어간다는 게 아니라, 뭘 배울 예정이고 내가 뭘 모르는지를 알고 수업에 들어가야 선생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이번 시간에 뭘 배우는지,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들어가면 들은 내용이 기억에 남지도 않고, 이해도 잘 안 되고, 끝난 뒤 복습을 아무리 해도 별로 효과가 없어요. 공부할 줄도 모르면서 괜히 책상에 앉아 애만 쓰는 꼴이에요. 그러니 한 해 마무리를 잘하고, 새해 기본준비를 해서 새해를 맞으세요. 항상 현재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즉 지금에 충실해야 해요.”nbsp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할지 명쾌하게 정리가 되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주옥 같은 말씀을 해준 스님에게 대중들도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내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모두들 만족스러운지 물어본 후 스님 자신은 대만족이라고 하며 그 이유를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우리들은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측면에서 한해를 평가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스님이 늘 웃음을 머금고 사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1년을 돌아보니 여러분 개인의 삶은 만족스러웠어요?”nbsp“......” nbspnbsp“저는 대만족입니다. 첫째, 올 한해도 안 죽고 살았거든요. 지구상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가운데 안 죽고 이렇게 살아남았잖아요. 둘째,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큰 사고도 안 나고 살아남았어요. 깁스하고 병원에서 수액 맞아가며 살아남은 게 아니잖아요. 그런 것에 비하면 저는 이렇게 큰 사고 없이 살아남았어요. 또 신체 검사도 했는데 몇 가지 병명이 나오긴 나왔지만 암이나 무슨 큰 병은 아니고 사는 데 별 지장 없는 병들이었어요. 이것도 지난 한 해 동안 제가 잘 살았다는 거예요. 아프거나 사고 당해서 휴가 낸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지난 한 해 동안 휴가도 안 내고 잘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한 해 잘 살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지난 한 해도 지루하지도 않았고 ‘죽겠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힘들 때도 있었고 아플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다 지났습니다.nbspnbsp그런데 인생이 60살이 되면 시속 60㎞로 가고 70살이 되면 시속 70㎞로 간다더니, 빨리 가기는 확실히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설을 기다리는 열흘도 엄청나게 길었는데, 저는 벌써 내년이 다 가버렸습니다. 10월에 내년 수첩을 미리 받아서 강의 일정을 적어 넣어보니까 일정 없는 날이 열흘이 안 돼요. 수첩 일정에서 벌써 1년이 다 가버려서 저는 이미 꼼짝달싹 못합니다. 자유롭게 살라고 중이 됐는데, 이게 노예보다도 더 꽉 짜인 일정으로 살고 있어요. 다만 ‘내가 정했다’ 하는 정보 하나 때문에 자유롭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노예예요. 짜인 대로 사는 기계나 다름없는데 ‘내가 정했다’는 그 정보 하나 때문에 노예이면서도 노예가 아니라 주인인 양 착각하고 살아가게 하는 것 같아요. nbspnbsp여러분들은 어때요? 첫째, 개인수행도 좀 발전했어요? 수준이야 비슷비슷하겠지만 작년보다는 나아졌어요? ‘작년보다 나아졌다’, ‘아니다. 올해가 작년보다 못하다’, ‘작년이나 올해나 비슷하다’ 셋 중 어느 쪽이에요? 사람이 수행이 됐느냐는 걸 묻는 건 아니에요. 다들 형편없지만 그래도 작년하고 비교해서는 나아졌어요?”nbspnbsp“네.”nbspnbsp“작년하고 똑같아요?”nbsp“아니오.”nbspnbsp“더 못 해졌어요?”nbsp“아니오.”nbsp“그럼 나아졌다는 거네요.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우리가 이렇게 자기만 수행할 게 아니라 이 기쁜 소식을, 즉 복음을 전파를 해야 해요. 주위 인연들에게 정토불교대학을 소개하고, 천일결사에 입재하게 하고, ‘깨달음의 장’에도 가게 하고, 수행법회도 오게 하고, 즉문즉설 강연에도 참여하게 하고, 카카오스토리에서 희망편지도 읽게 하고, 카카오톡으로 스님의하루도 구독하게 해서 이 기쁜 소식을 주위에 널리 전파하는 전법을 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수행자가 너무 칭찬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송년법회를 통해서 서로가 고생한 것을 알아주고, 성과도 알아주는 것은 참 좋은 것 같아요. ‘우리가 늘 먹는 밥은 누가 해 줬지?’, ‘누가 늘 스님을 따라다니면서 스님의 하루를 매일 써서 올려주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면 좋잖아요. 법륜 스님은 얼굴 같고 나머지 정토행자는 다 몸 같아요. 손발 같은 사람이 몇 명 있어서 고생하는 게 남들 눈에도 보이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옷에 가려져서 안 보이고 생색은 얼굴이 다 내요. nbspnbspnbsp법륜 스님 혼자 다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지요. 그러니까 이럴 때 옷을 홀랑 벗고 각각의 역할과 속을 다 보여주면서 ‘아, 법륜 스님은 얼굴 마담이고 우리 정토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손발이 되고 장기며 기관이 되어주었기에 정토회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게 송년법회의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신년을 맞을 때는 지나간 것 중 나쁜 기억들은 다 털어버리고 교훈으로만 남겨서 그것을 경험삼아 새 출발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그래서 이런 송년법회가 열리게 된 겁니다.nbsp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송년회는 ‘지긋지긋한 한해 잘 갔다. 그러니 한잔 먹고 놀자’는 의미이기 쉽습니다. 사실 올해도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안 죽고 산 것만 해도 축배 들 만해요. 그런데 우리는 너도 살고 나도 살았는데 새삼스럽게 축배까지 할 건 없고 이런 의미로 송년법회를 열었어요.nbsp여러분 모두, 특히 임원단들, 지난 한 해 동안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일일이 제가 거명해서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한 사람 한 사람 다 불러서 치하할까요,? 그냥 다 한 걸로 해요?” nbspnbsp“네.”nbspnbspnbsp“굳이 옷 벗어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요? 수고하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말씀 드립니다. 표가 나든 안 나든 여러분들의 노고와 아껴서 보시한 돈에 의해 정토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요즘 경제가 안 좋아서 어려운 속에서는 보시하기가 더 어려울 텐데, 감사합니다. 또 경제가 안 좋으니 일하러 가서 자기 재능을 한 푼이라도 받고 팔아야 할 텐데 그걸 가지고 봉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보시와 봉사로 정토회가 유지되는데, 그 보시와 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수행이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이 안 되면 얼마 안 돼서 다 떨어져 나가는데 장기간 보시와 봉사를 한다는 것은 수행이 기초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수행, 보시, 봉사 덕분에 오늘날 정토회가 이렇게 유지 발전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관여한 우리 모두는 바로 모자이크 붓다입니다. 비록 작지만 붓다를 이루는 작은 한 조각으로써 활동하고 있는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말씀을 드리며 한 해를 마무리하겠습니다.”nbsp한해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갖 일들을 도맡아 준 정토회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를 깊이 헤아려 볼 수 있었고, 이런 노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스님께도 존경의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지금 대중들이 편안하게 법회를 듣고 있는 중에도 지하 공양간에서 열심히 밥을 하고 있는 분들이 앞치마를 입고 불단 앞으로 걸어나왔습니다. 많은 대중들이 늘 밥만 먹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 같이 공양을 지어준 분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소감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공양팀장을 맡고 있는 이보경님은 “공양간에만 있다 보니까 스님 얼굴을 볼 기회가 없는데 오늘 이렇게 보게 되어서 너무 좋다”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늘 음식을 준비해 놓는데 법회만 듣고 공양은 안 드시고 가는 분들이 많아서 아쉬울 때가 있다”며 대중들이 공양을 꼭 드시고 가주실 것을 부탁했습니다. 대중들도 그렇게 하겠다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공양팀 한 분 한 분의 손을 꼭 잡아준 후 함께 기념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대중들의 박수갈채가 계속 이어지면서 순식 간에 법당 안은 감동의 물결로 넘쳐 흘렀습니다.nbspnbsp▲ 한해 동안 대중들을 위해 공양간에서 밥을 해준 공양팀 자원봉사자들nbsp지난 한해 동안 서울정토회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영상을 시청한 후 특별히 수고한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유수 스님이 나와서 한 분 한 분에게 선물을 전달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올해도 대중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많이 설해 주신 법륜 스님께도 대중들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과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모두들 스님께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든 표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대중을 대신해서 신성숙님이 꽃다발을 전하자 모두들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는 2015년을 마무리하고 2016년 새해를 맞이하는 발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중들이 모두 일어서서 마주보고 합장을 하자 봄 불교대학을 다니고 있는 권혜진님이 발원문 낭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권혜진님은 도박 중독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황폐한 삶을 살고 있는 남편, 이런 아들을 보며 점점 야위어가는 시어머니, 주말이면 교회에 갈 것을 강요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 이렇게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상황 속에서 친구의 권유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4층 아파트 창문이 삶과 죽음의 경계로 느껴질 즈음에 만난 스님의 법문은 인생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고 하면서 수행은 참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는 것이라는 스님의 법문을 아침마다 가슴에 새기며 기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아침 기도 시간이 매일 기다려질 정도라며 이제는 남편과 시어머니, 아이들을 큰 분별심 없이 편안하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하면서 앞으로는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을 주위에 더 널리 전하는 일을 하겠다는 발원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발원문을 들으며 많은 분들이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행복은 스님의 법문을 만나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에 모두가 공감을 했기 때문입니다.nbspnbsp바로 이어서 스님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간절한 발원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거룩하신 부처님,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대원본존 지장보살님. 오늘 저희 정토행자들은 2015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두 손 모아 합장하며 발원하옵니다.nbspnbspnbsp이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다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다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원망하고 괴로워합니다.nbspnbsp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이 원하는 것을 다 해 줘야 한다는 의무감과 부담을 갖고 살아가기에 해 줄 수 없는 나를 초라하게 여기고, 해달라는 그들을 원망합니다.nbspnbsp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다행이고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만인, 남들이 원하는 것을 해 줄 수 있으면 좋고 해 줄 수 없으면 ‘죄송합니다’ 하면 그만인, 그러면 우리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자유롭고 행복할 수가 있는데, 우리는 어리석음에 사로잡혀, 욕망에 사로잡혀, 자기견해에 사로잡혀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nbspnbsp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에 내가 그를 사랑할 수 없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기에 내가 그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이 세상사람 모두가 다 하고 있는 일입니다. nbsp다른 사람이 사랑할 수 없을 만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때,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용납할 수 있을 때, 그럴 때 우리가 다른 사람과 달리 좀 더 수행자다운 삶, 다른 사람보다도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nbspnbsp그런데도 우리는 늘 비교를 합니다. ‘동네사람한테 물어봐라’,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신다’ nbsp이렇게 남을 핑계 대며 자기를 합리화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 어떤 경험을 했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우리의 괴로움을, 불행을 합리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고 그 가운데에서 나는 행복의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도 내가 행복한 가운데 해야 합니다. 그들을 행복하게 이끌기 위해서 내가 불행하다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항상 자기 먼저 행복하기, 자기 먼저 희망 갖기, 자기 먼저 사랑하기, 자기 먼저 나눠주기를 행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nbspnbspnbspnbsp이 자유의 길, 행복의 길, 주인의 길, 부처의 길을 열어주시고 보여주시고, 우리 또한 그 속에 들게 하여 주신 부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우리 또한 그 받은 은혜를 우리 이웃에게 나눠줄 것을 다짐하면서 한 해 동안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있고 행복할 수 있도록 돌봐주신 불보살님과 일체중생, 모든 천지만물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nbsp스님의 간곡한 발원에 더욱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스님의 발원을 가슴에 새기며 한해를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 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nbspnbsp이렇게 송년법회를 모두 마친 후 스님은 정토회를 창립할 때인 20여년 전부터 법당을 지켜주고 계신 연화회 노보살님들을 챙겼습니다. 노보살님들만 따로 불러 모아서 함께 기념 사진을 찍어주니 노보살님들도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30대의 젊은 수행자에게 큰 신심을 보여주시고 오늘날 정토회가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마음을 써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은 스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주간반 송년법회를 마친 후에는 내년 2월에 졸업하는 불교대학 학생들을 위한 졸업 축하 영상과 다다음주에 출발하는 인도성지순례 참가자들을 위한 환영 인사 영상을 함께 촬영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후에도 손님들과 미팅을 갖거나 원고 교정 업무를 하며 바쁜 일정을 보냈습니다. 대중들은 점심 식사 후 2부 프로그램을 가지며 서로 장기자랑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등 여흥을 즐겼습니다.nbspnbsp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자원활동가들을 위한 송년법회가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24. 61,235 읽음 댓글 47개

2015.12.17 (저녁) 쑥고개 성당 초청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후에 서울 정토회관에서 열린 통일의병교육에 이어서 저녁 8시부터는 쑥고개 성당에서 ‘민족의 화해와 남북의 통일’을 주제로 천주교 신자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 쑥고개 성당nbsp강연 시간보다 30분 일찍 쑥고개 성당에 도착한 스님은 대기실에 머물며 스님을 초청한 쑥고개 성당 김홍진 신부님과 담소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 스님을 초청한 김홍진 신부님nbsp신부님은 스님께 다음주 성탄절 미사에도 참석해서 강론을 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정토회에서 몇 명의 대중들이 함께 올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매년 성탄절 미사에 스님과 정토회 대중들을 초청해서 미사를 마친 후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해 주셨는데, 올해는 단골 식당이 문을 닫았다며 성당 사목회에서 직접 식사를 마련하겠다고 합니다. 특히 작년부터는 정토회 청년회와 쑥고개 성당 청년회 간의 교류 활동도 시작되었는데, 청년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스님도 성탄절 날 정토회 청년들과 함께 오겠다고 말하며 대기실을 나왔습니다.nbspnbsp200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자리한 가운데 스님과 신부님이 함께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큰 박수로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먼저 사회자가 지난 20여 년 동안 스님이 걸어온 통일을 위한 활동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94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해온 온갖 노력들, 좋은벗들을 설립해 북한 난민들을 도운 일, 평화재단을 설립해 다양한 통일정책 연구활동과 대중 통일교육을 해온 일, JTS를 설립해 북한의 탁아소, 양로원 등을 지원해온 일 등을 소개한 후 큰 박수로 스님을 무대 위로 모셨습니다.nbspnbsp스님은 오늘은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는 시간이라며 무엇이든 편안하게 물어볼 것을 제안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주로 개인이 괴로워하는 문제를 다뤄요. 인생을 굳이 힘들게 살 필요가 없으니 생각을 좀 바꾸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개인이 아니라 개인들이 모여 이루는 공동체, 즉 국가 공동체 또는 민족 공동체를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갈 때 그 구성원인 우리들이 더 행복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를 가지고 대화하는 시간이에요.nbspnbsp그래서 이름은 통일문제라고 하지만 통일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사회 현상들에 대해 여러분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요. 제가 일방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여러분과 주고받는 게 낫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통일이든, 북한 사정이든, 주변 강대국들 이야기든, 한국 정치문제든, 요즘 일어나는 현상들을 보면서 어떤 게 궁금하고 어떤 게 이해가 잘 안 되는지, 미래를 예측할 때 어떤 게 잘 예측이 안 되는지, 자기가 문제 삼는 것을 물어보세요. 아들딸이나 배우자와의 문제 같은 개인의 문제처럼 우리 사회의 문제도 자기 문제의식을 갖고 대화를 해야 재미가 있습니다. 안 그러면 다들 재미없어서 졸아요. nbspnbspnbsp날씨도 추운데 졸면 힘들어요. 손들고 우리 공동체에 대해서 아무 이야기나 질문해보세요.”nbsp여기저기서 손을 들었고, 총 3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통일이 과연 언제 될지 궁금하고, 스님은 통일의병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국민들의 의식을 깨우치는 일을 하고 계신데 어떤 노력을 해야 통일이 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 보다는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것 같다며 어떻게 갈등을 통합할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세 번째 질문자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통일을 반대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고 부탁한 후 스님이 생각하는 통일 방안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정치인들의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국민통합을 이뤄가기 위한 방안을 물었던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정치인들의 개인적 성향으로부터 시작해서 한국 사회가 갖는 승자 독식의 폐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 양당 구도로 인해 국민의 삶과 괴리되어 가는 정치 현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nbspnbspnbsp“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일하거나 국가의 통일에 주안점을 두고 움직이지 않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그러다보니 여론이 나눠져서 서로 상대를 비난하며 다투게 되고, 선거를 할 때도 정말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하는 위정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역이나 종교가 일치하는 사람을 뽑으려 하다 보니 방향이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작은 선거라도 빠져본 적 없이 항상 주권을 행사하고는 있지만 이런 것들을 보다 보니 마음속에서는 정치나 경제의 주체가 되는 큰 세력들을 바꿀 힘이 나에게 없다, 대한민국의 변화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점점 무관심해집니다. 젊은 사람들의 무관심이 이해가 가더라고요.nbspnbsp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다 보면 우측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빨갱이란 말을 듣고, 좌측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저는 정치인이든 국민이든 통일이라는 그 목표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런 대화는 전혀 문제가 안 될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나눠진 여론 속에서 자기 이익만 내세우는 것 같아요. 그럴 때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정말로 이 변화를 만드는 데 동참할 수 있을까요?”nbsp“좋은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의 성향문제이고 하나는 제도의 문제예요.nbsp개인의 성향부터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누가 아프다고 하면 팔도 주물러 주고 물도 떠주며 보살피는 심성이 있던 사람들이 의사가 되면 의사의 본분을 다하겠죠. 그런데 본인은 전혀 그런 심성도 생각도 없는데 성적이 좋으니까 주변에서 ‘의사 되라. 돈 많이 번다’ 해서 의대에 보냅니다. 부모든 아이든 돈 벌기 위해 의사가 되니까 아무리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읽고 의사의 본분을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의사 된 뒤에도 제일 돈을 많이 번다는 성형외과로만 몰려가고 일반 외과 수술은 기피해서 요즘 외과 의사가 부족해요. 이렇게 돈 많이 벌려고 의사가 됐으니까, 돈을 못 벌면 주변에서 ‘너는 의사가 돼서 왜 돈도 못 버냐’라는 말을 듣습니다. 처음부터도 잘못되었지만 중간에 정신을 차리려 해도 주위 사람들 때문에 멈출 수가 없어요. 돈을 못 벌면 왕따나 실패자가 됩니다. 그러니 아픈 사람이 없으면 의사가 좋아해야 할 텐도 오히려 ‘환자가 왜 안 올까’ 하고 걱정하는 거예요. 이 말은 ‘좀 아파야지. 그것도 이왕 아프려면 좀 크게 아파야지’라는 말입니다. nbspnbspnbsp게다가 돈 벌려고 과잉진료를 해서 검사 안 해도 될 것도 다 검사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의사의 의술을 못 믿는 게 아니라 과잉진료를 못 믿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합니다. 의료보험이며 여러 가지 부정이 생기는 이유도 출발이 이렇고 주변에서도 그런 시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괴롭게 사니 주말 되면 술을 마시거나 골프를 치면서 다른 걸로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하는 거예요.nbsp법대 가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이 법을 몰라서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빼앗기는 걸 보고 정의감을 느낀 사람이 법대에 가서 판사든 검사든 변호사가 돼야 정의를 세우는 일을 하는데, 문과에서 공부 잘 하는 학생에게는 덮어놓고 법대 가라고 해요. 돈 많이 번다고요. 그러니 아무리 유명한 판사든 검사든 변호사든 권력이나 돈에 약할 수밖에 없어요. 지위가 높고 경력이 오랜 사람들이 나중에 다 불쌍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변호하지 않고 대형 로펌에 가서 재벌 탈세하는 걸 뒤처리해주고 돈을 법니다. 그런 걸 해야 돈이 벌리니까 대법관 출신들은 다 후자로 가요.nbspnbsp개인이 문제라고도 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지금 이렇게 잘못돼 있어요. 정치인도 그래요. 국가 권력이나 돈에 억압당하는 약자들을 보호하고자 정치인이 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우리는 직업을 막론하고 권력 지향적입니다. 의사협회 회장 하면 다음엔 국회의원 하고, 간호사 협회 회장도 다음에 국회의원 하고, 노동조합 전국위원장도 다음엔 국회의원 하고, 장애인 단체 회장도 다음에는 국회의원을 합니다. 이렇게 권력지향적인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까 일반인보다 훨씬 더한 해바라기들이어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이것은 제도 문제만으로도 해결이 안 되고, 개인을 욕한다고도 해결 안 돼요. 우리 사회 전체가, 우리 모두가 다 공범이에요. 이런 가치관의 문제가 있습니다.nbspnbsp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나서 몇 백 년 동안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손해를 보는 세상이었습니다. 손해 보는데도 믿는 것이 신앙이에요. 200년 전 조선에 천주교가 들어왔을 때 천주교를 믿으면 손해 보는 정도가 아니라 죽었어요. 그런데 지금 천주교 믿으면 재산 몰수당하고 직장 쫓겨나고 죽는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하나도 없진 않겠지만 거의 없을 거예요. 반면에 천주교든 불교든 그걸 믿으면 공부 못 해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돈 많이 벌린다고 하니까 대다수가 그리로 쫓아갑니다. 이건 신앙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어요.nbspnbsp이렇게 하나님의 은총이 신도 수와 돈으로 표현되니까 교회를 크게 지어야 성공한 목사이고 교회가 작으면 하나님의 은총이 없는 교회가 되는 것이지요. 큰 교회에 신도가 더 많이 가는 것은 거기가 하나님의 은총이 있는 곳이라서 그런 거예요. 일부 기독교인들이 작은 교회에는 구원이 없다고들 하잖아요. 종교마저 성전을 크게 짓고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와야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다는 식으로 지금 접근하고 있습니다.nbspnbsp이렇게 된 게 첫째 문제입니다. 그러니 참답게 사는 가치를 회복해야 해요. 제가 보기에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를 떠나서 지금 세상에는 돈교라는 딱 하나의 신앙만 있는 것 같아요. 신앙은 돈교 하나인데 그 밑에 점포가 여럿 있어서 ‘우리 집에 오면 돈 잘 벌린다’ 하며 서로 경쟁하는 거예요. 북한에는 김일성 유일신앙이 있고, 남한에는 돈이 유일 신앙이에요. nbspnbsp그런데 이런 사회 흐름에 거슬러 나타나는 현상이 세 가지 있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 어디서 읽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프란체스코 교황입니다. 이 분은 전부 다 돈을 따라 가는 로마카톨릭 교회에서 아웃사이더였는데 주류로 올라왔어요. 그래서 교황님이 좋은 말씀 많이 하시지만 여러분들 입장에서 받아들이려면 불편한 이야기도 있잖아요. 두 번째가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 중 힐러리 클린턴 다음인 버니 샌더스 의원입니다. 이 사람은 미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사회주의 운동을 해온 사람입니다. 옛날 같으면 명함도 못 냈을 사람이 2위로까지 올라와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어요. 세 번째는 ‘구식 좌파’라고 불릴 정도로 성향이 뚜렷한데도 영국 노동당의 당수가 된 제레미 코빈입니다. 특정한 사상이 정당하다거나 특정 인물이 훌륭하다는 뜻으로 말씀드리는 게 아니에요. 거대한 자본의 흐름에 약간 다른 징조가 지금 나타나기 시작한 반증이라는 겁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조금 미래사회를 주의 깊게 예측해볼 필요가 있습니다.nbsp이대로 흘러가서 같이 패망할지, 아니면 예수님 같은 성인이 또 나와서 이 흐름을 바꿀지 지금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지금은 사회의 흐름이 이렇기 때문에 정치인들 개개인을 나무랄 수는 없어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듯 순수하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정치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말만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정치인만 그런게 아니에요. 스님, 목사, 신부도 다 말만 그렇게 하잖아요. 주일 헌금을 공중에 집어던지면서 ‘하나님의 것이거든 하늘로 가고 내 것이거든 땅으로 떨어져라’라고 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입니다. nbspnbspnbsp신앙을 흔들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만큼 우리가 물질적 가치로 치우쳐져 있다는 거예요. 물질적 가치가 아예 필요 없으니 중세 사람들이나 청교도처럼 살자는 게 아닙니다. 물질적 가치로 너무 치우쳐버려서 신앙의 근본까지도 놓쳐버렸다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nbsp다른 하나는 제도의 문제입니다. 첫째, 지역주의에 뿌리를 둔 양당 구조 때문입니다. 지역주의에 뿌리를 둔 양당구조 때문에 제3의 선택을 할 수 없어요. 경상도에서 아무리 새누리당이 미워도 전라도 당을 찍을 수 없고, 전라도에서 아무리 민주당이 미워도 경상도 당을 찍을 수 없으니 비판하다가도 표 찍을 때는 ‘우리가 남이가’ 하고 찍습니다. nbspnbspnbsp전라도에서 민주당을 반대하는 사람과 경상도에서 새누리당을 반대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에요. 자기 투표가 국정에 반영된 적이 없으니까요. 이게 다 사표예요. 이런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다당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당은 자기들이 획득한 득표율만큼의 의석 수를 가져야 해요. 예컨대 새누리당이 전체 표의 40퍼센트를 얻었다면 국회의원 수도 총 100명이라면 40명이어야 해요. 그런데 지역구에서 이미 40명이 넘어버렸다면 비례 대표는 받지 못해요. 그런데 지지율 5퍼센트를 얻으면 지역구에서는 한 자리도 못 얻는다 하더라도 5명을 배정해줘야 해요. 개인이 나서서 지역에서 경쟁해 올라온 사람과 비례대표제의 경우도 각 득표 별로 배정해줘서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줘야 해요.nbspnbsp옛날에는 자본가와 노동자를 딱 나누어서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보수당이고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 게 진보당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자본가와 노동자를 나누기 어려워요. 자본가 안에서도 재벌 기업과 중소기업의 이해관계는 완전히 달라요. 자영업자와도 또 이해가 다르고요. 자영업자는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인데도 재벌기업 노동자보다 수입이 적어요. 노동자 중에서도 재벌기업에서 일하거나 민노총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연봉이 1억 가까운 경우도 많고요. 말은 노동자인데 학력이나 수입은 자본가인 자영업자보다 훨씬 높고, 중소기업 노동자와는 임금 차이가 배 가까이 나요. 또 중소기업 노동자들 중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임금 차이가 배 가까이 나고요. 이제는 자본가니까, 혹은 노동자니까 이해관계가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nbspnbsp사회가 이렇게 다양해졌어요. 그러니 어느 한 당이 전 국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현재 새누리당이라면 재벌기입의 이익을 대변한다, 즉 국민의 1퍼센트를 대변한다고 해야 맞아요. 야당은 소위 진보당까지도 민주노총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보면 10퍼센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셈입니다. 나머지 90퍼센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은 대한민국에 없어요. 지역주의에 뿌리를 둔 양당 구조에서는 우리 피부에 와 닿는 생활 개선 정책이 나올 수 없어요. 또 이게 승자독식 구조니까 죽기 살기로 싸워요.nbspnbspnbsp그러니 다당제로 가서 연정을 해야 해요. 지역 정당을 하고 싶으면 지역 정당을 하고, 이념 정당을 하고 싶으면 이념 정당을 하고, 환경 정당을 하고 싶으면 환경 정당을 하되 연정을 통해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합니다. 정치가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역할을 못 하니까 강정마을이다 밀양 송전탑이다 해서 온갖 충돌이 일어납니다. 공권과 국민이 직접 충돌하는 거예요. 원래는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의회 내에서 이익을 조율하고, 다시 현장에 내려가서 주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주민들의 이익을 도저히 다 수용할 수는 없지만 60퍼센트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설득하고 타협해서 조율해 나가야죠.nbspnbsp그런데 현재의 사회 구조에서는 갈등이 극심해서 한국의 갈등지수가 OECD 가입국 중 2위입니다. 1위인 터키는 종교와 민족이 엄청나게 섞여 있어서 당연히 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나라 다음으로 갈등이 극심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에요. 이 갈등으로 인한 손실이 몇 백 조에 이릅니다. 어떤 통계에서는 248조라고 계산해놨어요. 이런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는 것도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nbspnbsp제왕적 대통령제도 문제입니다. 권력이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는데 이게 대통령에게도 좋은 게 아닙니다. 대통령의 권력은 너무 크고 장관은 권력이 없어요. 삼권분립을 해야 하는데 의회에게도 사법부에게도 힘이 없어요. 뭐가 잘못되면 장관이 책임지고 나가야 할 텐데, 장관이 아무 권한이 없으니까 뭐가 잘못되면 죄다 대통령을 탓해요. 그러니 이건 대통령 개인에게도 불행이에요. 우리 역대 대통령들 중 성공한 대통령이 한분도 없잖아요. 지금 대통령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nbspnbspnbsp이렇게 너무 큰 권력이 한 사람에게 몰려 있으니까 그 주위의 책임 없는 사람들이 권력을 행사하잖아요. 이런 일은 권한이 너무 비대해서 생겨요. 장기독재를 막기 위해 단임제 하는 것만 생각하고,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줄일 생각은 안 하고 헌법을 만든 게 지금까지 왔어요.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이 다 불행해졌습니다. 외교, 안보, 국방, 통일이라는 국가에 대한 권한만 대통령이 갖고 나머지는 내각이 가져서 각자 나누어 집행하고 책임져야 국가가 제대로 유지되고 관리됩니다. 그래서 삼권분립을 다시 제대로 해야 하고, 행정부 안에서도 대통령의 권한을 내각으로 많이 이전해야 해요. 장관이 대통령의 비서가 되면 안 됩니다.nbspnbsp그리고 권력이 중앙에 너무 많이 모여 있으니 지방 분권을 추진해야 합니다. 중앙권력이 지방으로, 지방에서 다시 기초자치단체로, 기초자치단체에서 다시 주민센터로 분산되어야 해요. 돈이 분산되는 게 경제민주화, 권력이 분산되는 게 정치민주화예요. 이렇게 분산이 돼야 국민에게 그 권리가 가까이 다가오고 또 국민이 고루 잘 사는 세상이 되어서 국민의 행복지수도 높아집니다. 지금 이게 안 되니까 국민의 행복도가 자꾸 떨어져요.nbsp그러니까 이걸 질문자 말대로 바꿔줘야 해요. 여당 정치인들을 만나서 제가 질문자 같은 비판을 하면 대부분 답하기를, 줄서기 잘하는 것 외에는 개인이 어떻게 해볼 수가 없대요. 야당과 만나면 야합했다면서 배신자 취급을 하니 줄 서는 것 빼고는 다른 선택이 없다는 거예요. 정치인들의 그런 출발도 문제지만, 개중 괜찮은 정치인마저도 이런 체제 안에서는 운신할 폭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밖에서 변화를 좀 도모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요. 우리는 ‘너희가 어떻게 좀 잘해봐라’ 하는데 자기들은 우리더러 ‘밖에서 어떻게 좀 변화를 만들어줘야 우리가 어떻게 해본다’라고 하면서 얽혀 있어요.nbspnbsp이런 점을 이해해서 여러분들도 앞으로 권한이 시장과 도지사, 기초자치단체장, 또 그 아래 주민자치센터까지 내려올 수 있도록 하는 지방분권에 힘써야 합니다.nbspnbspnbsp또 국가는 통일을 해야 하니까 연방에 준하는 체제를 갖줘야 해요. 또 다당제로 가서 국민의 다양한 의견들이 수렴되고, 또 의회에서는 상시적으로 국민 각계각층의 이해를 조정할 수 있는 연정을 해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국민이 51퍼센트 지지한 대선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49퍼센트 지지를 받은 사람은 그냥 떨어지는 승자독식구조입니다. 국민의 전체가 아닌 절반이 찍어준 거니까 절반의 대통령이에요. 그러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면 나를 찍어주지 않은 절반도 국민이니 그들의 권익도 보전해줘야 합니다. 그러면 적어도 떨어진 사람을 국무총리로 임명하든지 해서 전체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해줘야 해요. 그런데 우리 나라는 지금 그렇게 안 돼 있다는 것이 저렇게 계속 싸우는 원인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합니다.nbspnbsp첫째는 사람의 문제, 즉 참여한 개인의 참여 동기 문제이지만, 둘째는 제도의 문제도 함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nbsp정치 갈등의 원인을 개인적 측면에서 그리고 제도적 측면에서 함께 이야기해 주어서 문제의 본질에 대해 더욱 명쾌하게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논리적이고 명쾌한 설명에 모두들 감탄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약속한 2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너무 감정적 대응에만 치우쳐서 천년의 꿈을 이룰 절대절명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상기하며 북한을 포용해내어서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 도약하자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남북이 통일 되면 영토가 9만 8천에서 21만 제곱킬로미터, 인구가 5천만에서 7천 5백만이 됩니다. 그러면 이탈리아나 영국을 능가합니다. 조금만 내부 정비가 되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는 경쟁이 안 돼요. 지금 남한만으로는 어림없지만 통일이 되면 국가적으로 세계 10위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립니다.nbspnbspnbsp그리고 통일 한국이 일본과 중국까지 협력해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면 이 동아시아공동체의 경제력이 세계 경제집단 중 제일 커집니다. 그러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던 세계 문명의 중심이 아시아로 와서 동아시아시대가 도래합니다. 빈말이 아니라 1세기, 즉 100년 정도만 우리가 이렇게 해나가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21세기 초에 우리가 남북통일을 이룩하고, 중엽에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어 나간다면, 21세기 말엽에는 동아시아시대가 도래하고, 우리가 그 동아시아시대의 중심국가로 설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건 아니지만 이런 가능성이 있어요.nbspnbsp이 가능성은 선조들의 노력 덕분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 어려운 속에서도 우리 선조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워서 독립했고, 배고픈 걸 극복하는 산업화를 성공했고, 투쟁을 통해 민주화를 이루어놓았기 때문에 그들의 공로를 딛고 이제 우리가 마지막 과제인 통일을 이루자는 거예요. 통일을 해도 그저 통일에 머무르면 안 됩니다. 통일은 첫 발걸음이에요. 통일을 이루어서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가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 간다면 고구려와 발해 멸망 이후 천 년의 꿈을 실현하는 겁니다.nbspnbsp우리가 미래 100년을 이렇게 그려본다면 지금의 작은 이해관계와 다툼 정도는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북한도 남한도 서로 여러 가지 상처를 입어서 적대감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이 감정에 치우치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이런 감정은 이해하지만, 감정을 뛰어넘어야 해요.nbspnbspnbsp그럴러면 예수님께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신 것과 같은 우리의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자꾸 인간적 감정만 주장하면 우리에게 부활은 없습니다. 감정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민족적 부활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누구보다 여러분들이 가장 앞장서 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마치겠습니다.”nbsp스님이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이야기하며 민족적 부활을 이야기하자 천주교인들도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 주제인 ‘민족의 화해와 남북의 평화통일’의 방법은 바로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 속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들을 직시할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기 보다 욕망을 쫓아왔던 우리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강연을 마치고 스님은 다시 대기실로 이동해 스님을 초청한 김홍진 신부님을 비롯해 사목회 분들과 조촐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분은 “어쩜 그렇게 논리적이고 명쾌하게 강연을 하실 수 있느냐?”고 하면서 “너무나 재미있게 강연을 들었다”며 소감을 말해주었습니다.nbspnbsp▲ 성당 사목회 분들과의 차담nbsp함께 자리한 수녀님은 불교에 대해 평소 궁금한 점이 많았다며 ‘보살은 무엇을 뜻하는지’, ‘비로자나 부처님은 어떤 분이신지’, ‘아라한은 무엇을 말하는지’ 물어보았고, 어떤 천주교인은 ‘스님은 성경도 정말 잘 알고 계신데 어떻게 성경을 공부하게 되셨는지’, ‘한국은 자살율이 세계 1위라고 하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 여러 가지를 스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nbspnbspnbsp스님이 쉽게 설명을 해주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고, 종교의 벽을 허물고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nbspnbsp▲ 김홍진 신부님과 법륜 스님nbsp스님은 “크리스마스 날에 다시 뵙겠습니다”고 인사를 한 후 성당을 나왔습니다. 서울 정토회관에는 11시가 다 되어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부터 이틀 간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전문가 30여 명과 함께 2015년을 평가하고 2016년을 조망해 보는 통일 정책 연구 워크샵에 참석해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nbspnbsp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야단법석을 지금 인터넷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14만 킬로미터의 여정에서 만난 2만 2천여 명 세계인과의 행복한 대화가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nbspnbsp지금 구매하기nbspnbsp

2015.12.19. 53,320 읽음 댓글 64개

2015.12.17 (오후) 통일의병교육 3,4,5강 녹화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후 1시부터 5시간 동안 통일의병교육용 교재 제작을 위해 영상 촬영을 한 후 저녁 8시에는 쑥고개 성당에서 ‘민족의 화해와 남북통일’을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서울공동체 대중들과 발우공양을 함께한 스님은 오전 내내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서울 정토회관 1층 법당에서 통일의병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의병교육용 교재 제작을 위해 5시간 동안 녹화 촬영을 하였습니다. nbspnbspnbsp스님이 먼저 “지난번 1,2강 강의가 너무 어려웠어요?” 라고 물어보자 통일의병들은 “아니요” 라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웃음을 머금으며 곧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오늘은 총 5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들끼리 파당지어 싸우기 바쁘다며 왜 이런 정치적 갈등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아들을 군대에 보낸 후 부터는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한데 우리는 어떻게 평화를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주변국에 대해 어떤 외교적 자세를 가져야 할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국민주권과 민주주의가 왜곡된 한국의 정치 현실과 긴장과 대결이 고조되는 안보 위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세 번째 질문자는 통일은 왜 해야 하는지, 통일이 되면 무엇이 좋은지, 어떤 이익과 변화가 올 것인지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통일을 대비해서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국민 행복과 국가발전의 열쇠는 통일 경제에 있으며 통일이 되면 안전과 평화가 보장되고 사상의 자유가 확대되며 국제 위상이 격상되고 국가브랜드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며 다양한 이익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통일을 대비해서 경제민주화, 복지사회, 분권과 자치, 권력 분산, 다당제와 연정 등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질문자는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정부가 해야할 일과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특히 통일의병들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한 스님의 대답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남한이 책임지는 통일, 북한에 대한 포용과 투자, 통일 지향적 정부 구성, 유권자 운동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nbspnbspnbsp“그 동안 스님의 강의를 통해서 통일이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여는 새로운 서막이며 우리에게 수많은 유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어 설레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는 저부터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통일로 나아가면 좋겠다’거나 ‘어떻게든 잘 되겠지’ 하는 안일한 희망을 품어온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통일로 나아가서 우리 민족이 도약하느냐, 아니면 정체국면으로 가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변화의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100년을 위한 통일한국을 만들려면 지금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고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nbspnbsp그리고 얼마 전에 통일의병 배지도 받고 의병번호도 부여받으면서 비장함과 약간의 두려움, 뿌듯함 등 다양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의병으로서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봤어요. 저는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저를 위해서는 통일이 돼도 좋고 안 돼도 그만이지만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니까 꼭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게다가 저는 다음 생에도 한국에 태어날 생각이라 통일을 위해 뭐라도 해 봐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의병들이 해야 할 역할과 과제를 자세히 짚어주셨으면 합니다.”nbspnbsp“첫째, 우리가 통일을 우리 역량으로 자주적으로 안 하면 통일이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국제사회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우리에게 통일의 기회가 오더라도 중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우리에게 통일을 가져다 준 나라의 속국이 되기 쉽습니다. 형식적인 독립이나 다름없는 그런 통일은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 통일지상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통일은 평화적으로 돼야 하고 통일된 국가는 자주적인 국가여야 합니다. 통일이 되면 좋기는 하지만, 통일만 된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에요. 통일이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하느냐에 따라 통일 이후 우리의 미래가 결정됩니다.nbspnbsp우리의 통일은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주도해서 해주지 않습니다. 그 나라들은 주도해 줄 의향도 없고, 설령 해 준다고 하더라도 결과가 좋지도 않습니다. 만약 미국이 주도해서 통일이 된다면 한국은 대중 전선에서 미국의 최전방으로 복무해야 해요. 미국은 우리에게 그거 하라고 통일시켰다고 할 거예요. 중국이 한국을 통일시키면 중국은 대미 방어전선에서 중국의 최전방으로 한국을 내세울 겁니다. 그들이 통일하도록 해주지도 않겠지만 해주더라도 결과가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통일은 우리가 중심이 돼서 해야 합니다. 주변국의 협조는 얻어야 하지만 중심은 우리가 되어야지, 남이 해주기를 바라면 안 됩니다.nbspnbsp자꾸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중국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하지만 이건 지금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먼저 우리가 중심에 서고, 그 다음에 그들의 방해를 어떻게 막고 협력을 이끌어낼 거냐 하는 외교적인 문제를 해결하면 됩니다.nbspnbsp그러면 당사자인 북과 남 사이에 누가 통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할까요? 우리 민족 전체로 보면 과거에는 통일운동의 주도세력이 북한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지금 자기 체제 지키기도 급급한 형편이라 통일을 주도하기 어렵습니다. 첫째, 자기 체제 지키기도 어렵다는 게 현실이에요. 두 번째, 북한이 희생을 무릅쓰더라도 남한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군사력으로도 안 되고, 정치적으로 안 되고, 경제적으로도 안 됩니다. 세 번째, 북한이 주변국인 중국과 미국을 설득할 능력이 없어요. 그들의 협력을 얻을 만한 이익을 줄 수가 없어요. 북한은 외교역량, 경제역량, 정치역량이 모두 안 됩니다. 하고 싶은 의지는 있지만 역량이 안 되는 게 현실입니다.nbspnbspnbsp그러면 남은 것은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은 역량이 될까요? 제가 볼 때는 역량이 됩니다. 우선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줄 수 있어요. 정치적으로도 남한의 민주사회가 북한 주민이 볼 때는 북한체제보다 나아요. 국방력도 사실 물리적으로 우위에 있어요. 이렇게 역량은 되는데 의지의 문제가 남았어요. 또 한국은 미국을 어느 정도 설득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어떻게 하느냐, 우리 정부가 얼마나 중심을 잡고 하느냐에 따라서 미국이 옛날처럼 한국을 마음대로 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중국도 한국을 마음대로 하긴 좀 어렵습니다. 한국이 중국 쪽으로 가느냐, 일본 쪽으로 가느냐, 미국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서 동아시아의 판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한국이 잘만 하면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한국의 제일 큰 문제는 의지가 없다는 겁니다. 지도자들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는 지도력을 발휘해 왔지만, 북한까지 아우른 전민족의 운명을 어떻게 끌고 갈 거냐 하는 통일 국가발전계획을 세우고 북한의 이익까지도 담보할 만한 정치지도자가 지금 없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분단 상태로도 발전해 왔기 때문에 국민들도 현실에 안주해 있어요.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는다고 해도 그에 대한 아픔이나 사랑, 자비심을 베풀 줄 모릅니다. 오히려 ‘저 사람들하고 같이 살면 손해 보지 않겠느냐’는 걱정부터 하는 수준입니다. 정치인들이 통일할 생각이 없다면 국민들이 그런 생각이 있든지, 국민들은 통일할 생각이 없어도 정치인들은 통일할 생각이 있든지 하면 희망이 있는데 지금은 정치인들도 국민들도 역량은 있는데 의지가 없어요. 그러면 통일은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이대로 두면 통일이 안 될 확률이 더 높아요.nbspnbsp그런데 통일이 되도록 하려면 어디를 설득해야 할까요? 가능성은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북한도 아닌 남한에 있습니다. 대한민국만 통일의지를 강력하게 가지면 역량이 되기 때문에 기회가 있습니다.nbspnbspnbsp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어떤 사람이 주축이 되어야 할까요? 옛날에는 노동세력이었지만 지금은 노동세력이 주축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통일이 되면 실제로 노동자들이 제일 불이익을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의 값싼 노동력이 밀려들어오면 지금보다 노동조건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으니까, 이념적으로는 통일을 이야기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습니다. 북한도 말로만 통일하자고 하지 실제로는 더 어려워지니까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것과 똑같아요. 재벌은 지금 통일에 이해관계가 좀 있습니다. 통일되면 좀 돈벌이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삼성이나 현대는 이미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기 때문에 북한 정도에서 얻는 이익은 이미 그들의 회사 크기에 비하면 큰 이익이 아닙니다. 위험부담을 안고 투자할 만한 장점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중소기업에게는 굉장한 이익이 됩니다. 지금 개성공단에 들어간 중소기업들이 목을 매다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이렇게 전체적으로 이익은 있지만 한국의 어떤 사람도 그 이익이 자기 개인의 이익과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nbspnbsp젊은 학생들은 어떨까요? 생활고나 취직난 같은 자기문제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은 통일이 되면 득을 보긴 하지만, 지금 김정은의 행동 같은 걸 보고 정서적, 문화적으로도 안 맞아서 거부반응이 너무 많아요. 앞으로 노인들보다 더 극단적인 반북세력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nbspnbsp그러니 제가 보기에 그래도 제일 가능성이 있는 게 첫째, 40대, 50대 아줌마입니다. 아들이 군대에 갈 나이잖아요. 통일 되면 군대 안 가도 되거나 전쟁 위험이 없잖아요. nbspnbsp다음으로는 사업하는 사람들입니다.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작은 자영업을 하든 농사짓든 이런 사람들은 국제수출까지는 못해도 내수시장이 크게 확대되니까 이해관계가 있는 겁니다.nbspnbsp그래서 통일의 주축세력이 될 수 있는 것은 자녀를 둔 부모입니다. 미래의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 생각하면 답답하지만 통일이 되면 출구가 열리겠다는 데 동의하는 거예요. 아이는 자기가 자기 책임을 질 생각을 지금은 안 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해도 잘 안 먹히지만, 엄마들은 이제 ‘아, 이 상태로는 어렵겠다’ 하니까 동의하죠. 자녀의 군대문제도 있지만 자녀의 미래 진로를 생각할 때 통일이 돼야 합니다. nbspnbsp경제적으로 어려운 게 통일이 돼야 풀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40대, 50대입니다. 20대, 30대는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자기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부모가 어떻게 해결해 주리라고 기대합니다. 등록금 반값 투쟁이 학부형에게는 설득력이 있지만 학생들한테는 설득력이 별로 없습니다. 돈을 부모님이 내주기 때문입니다. nbspnbspnbsp혜택은 젊은 세대에게 돌아가지만, 젊은 세대는 지금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지 않고 살고 있기 때문에 이게 오히려 부담스럽지요. 그래서 지금 제일 중요한 사람들은 세대로 보면 40대, 50대입니다. 그리고 30대까지도 포함할 수 있어요. 통일이 되고 북한 개발이 되면 거기 가서 주된 실무를 맡고 진두지휘할 사람이 대부분 30대, 40대 초반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일자리나 사업이 늘어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요. 그래서 중소기업가, 자영업자, 아줌마들이 사실 통일 이야기를 하면 가장 빨리 귀담아 듣고 통일이 되면 이해관계도 빠릅니다.nbspnbsp그리고 시민이 중심이 되어서 통일을 해야 통일된 국가가 시민이 주인 되는 국가가 됩니다. 전쟁을 해서 통일하면 군인이 중심인 국가가 되고, 재벌이 중심이 되어서 통일하면 재벌공화국이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이 중심이 되고, 대한민국 안에서도 바로 여러분들 같은 40대, 50대가 중심이 될 확률이 높고, 아저씨보다는 아줌마가 중심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nbspnbsp문제는 인식입니다. 자기 삶에만 매몰된 사람들이 어떻게 통일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을까요? 이 사람들은 정치나 국제정세나 외교에 별 관심이 없어요. 그래도 이 세대는 그래도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했고, 한국사회가 민주화될 때 직접 돌은 안 던졌더라도 옆에서 구경이라도 했고, 우리가 노력하면 변화가 온다는 경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이게 제일 중요해요. 이런 경험을 한 분들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nbspnbsp그런데 통일이란 건 우리가 통일하자고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통일은 남북 간의 정치문제입니다. 남한 안의 여러 가지 세력을 모아야 될 정치적 행위의 문제입니다. 또 주변 국가와의 외교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북한과의 사이에서 혼란을 막으려면 군대를 활용해서 방어도 하고, 통제도 해야 됩니다. 남한이 공격하려고 해도 막아야 하고, 북한이 쳐들어오려고 해도 막아야 하는 국방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통일은 외교적 문제요, 정치적 문제요, 국방의 문제요, 경제적 문제입니다. 통일 이후에 북한 건설과 관련된 일은 국가가 할 일이에요.nbspnbspnbsp그러니까 통일은 외국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중에서도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 남한 안에서도 민간이 아니라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정부가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헌법에 명시된 권리가 있습니다. 즉 정부를 수립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핵심은 첫째,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할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겁니다. 두 번째, 그 정부가 통일을 계속 추진해나갈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해서 강력한 지지 세력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이런 통일추진 국민운동이 일어나서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부가 구성되어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됩니다. 외교든 국방이든 국가의 최고 목표를 통일에 두어야 합니다. ‘북한에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니라 ‘통일에 어떤 게 유리하냐’를 기준으로 해야 된다는 겁니다. 경제적 목표도 전부 ‘통일을 위해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게 어떤 것이냐’를 따져야 합니다.nbspnbsp외교도 미국과는 자주적 한미동맹을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중국과는 군사동맹은 맺지 않지만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적어도 우리가 반중 대열에 앞장서진 않아야 해요. 일본에 대해서는 우호관계를 유지하되 군사동맹은 맺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해야 합니다. 러시아는 통일된 한국이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발에 유리하다는 점을 내세워 설득해야 합니다.nbspnbsp북한에 대해서는 포용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삶이 나아지리라는 점을, 북한 지배세력에게는 신변보호가 확실하며 통일 후에 어떤 차별도 하지 않겠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사전에 보여줘야 됩니다. 그럴려면 현실적으로 경제개발과 경제적 지원을 해서 당장 이익을 주어야 하고, 남한 안에도 사회주의 활동을 허용해 놓음으로 해서 ‘통일된 뒤에도 북한 주민들이 정치활동에 아무 지장을 안 받겠구나’ 이렇게 안심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nbspnbspnbsp우리는 지금 방어에만 목적이 있어요. 북한에 안 먹히겠다는 생각만 하지 북한까지도 포용하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겁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려면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외교적인 자신감이 있어야 하고, 북한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있어야 하고, 국민을 설득할 때도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비전이 된다고 믿어야 해요.nbspnbsp첫째, 이렇게 책임지는 주체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둘째, 남북 간의 합의를 존중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포용하는 자세를 가지고, 셋째, 주변국에는 협조를 얻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북한의 핵은 주변국이 다 우려하고 있으니까 ‘통일된 뒤에 핵은 폐기하겠다’라고 해야 됩니다. 우선은 그렇게 해야 국제사회의 지원이나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nbspnbsp이렇게 우리가 통일을 이루되, 통일된 한국은 통일에만 머물면 안 됩니다. 통일 자체도 시너지 효과가 있지만, 통일된 한국이 중심이 돼서 동북 삼성, 연해주, 일본까지 포함하는 환동해 경제권을 만들고, 또 중국 본토까지 포함하는 환서해 경제권을 만들고, 이 둘을 합친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어가면 결국은 이 동아시아의 중심국가가 한국이 됩니다. 게다가 민주주의도 심화되고, 인권도 더 보장되고, 복지사회도 이루어지고, 평화지향적이 되면 우리만 번영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국도 같이 번영하는 동아시아의 공동체의 번영을 이룰 수 있습니다. 미국도 해양세력의 일부로 이 속에서 더불어 발전하는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이 경제권이 유럽이나 북아메리카 경제권보다 규모가 커집니다. 여기에 우리가 창의성을 발휘해서 한류처럼 세계에서 본받고 배워가는 사례가 점점 늘어난다면 21세기 말에는 세계 문명의 중심국으로 설 가능성이 열립니다.nbspnbspnbsp우리는 ‘통일된 국가’, ‘자주적인 국가’라는 점만 해도 벌써 동아시아의 변방이 아니라 중심국가로 설 수 있습니다. 소위 강대국이 아니어도 강소국으로서 중심국가가 돼요. 여기에 창조력까지 겸해서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면 배달문명이 꽃피웠던 영화를 다시 일으킬 수 있어요. 우리는 이미 세계 최고의 문명을 이루었던 사람들의 후예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세계 최고의 문명을 다시 일으키리라는 자신감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약소국이고 중국의 변방이라는 생각만 갖고 있으면 우리가 그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요. ‘감히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nbspnbsp지금 한국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총체적으로 뒤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우리의 문제를 풀면 세계의 여러 문제가 동시에 풀립니다. 우리가 환경문제를 풀면 중국이 안고 있는 환경 문제의 답이 되고, 우리가 갈등문제를 풀면 다른 나라가 안고 있는 갈등의 답이 됩니다. 전 세계의 온갖 갈등이 한국에 잡탕처럼 모여 있어요. 한국은 민주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한 한편으로 봉건적 잔재도 뒤섞여 있어요. 북한 지배층도 가족주의, 재벌도 가족주의, 교회도 가족주의, 혹은 혈연주의잖아요. 여성교육이 이렇게나 발달했지만 아직도 성평등도가 세계 115위라고 합니다. 좋은 것도 물론 많긴 하지만 ‘헬조선’이라고 할 만한 것, 즉 세계에서 나쁜 것으로 손꼽히는 항목이 60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이런 문제를 우리가 극복하면 우리의 문제만 극복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는 셈이 됩니다.nbspnbsp이렇게 우리의 문제를 푸는 게 바로 창조성입니다. 남한테 배워 와서 푸는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풀어야 해요. 남북 간의 문제도 자존심을 내세우는 북한과 어떻게 관계를 풀어갈 것인지 창조성을 발휘해야 합니다.nbspnbsp또 여기에 우리가 중도를 적용해서 한국사회의 통합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 사람은 부친이 빨갱이라 안 되고 저 사람은 부친이 친일이라 안 된다는 식으로 하면 우리는 사분오열됩니다.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더라도 그걸 고집하지 않으면 과거는 묻지 않겠다, 과거에 어땠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헌법적 가치만 지킨다면 지금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어떤 차별도 하지 않겠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북한 지배층의 극단적인 행동도 다 이해하고 협력해서 통일하자고 하면서 남한의 보수세력은 안 된다거나 진보세력은 안 된다거나 하면 안 돼요. 앞으로 일본이며 중국과도 협력해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자고 하면서 국내에서는 경상도 사람이나 전라도 사람, 기독교인이라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이렇게 우리가 조금 더 새로운 차원의 자세로 통일문제를 풀어야 됩니다. 이건 단순히 남북문제가 아니라 국민 통합을 하기 위한 기본자세입니다.nbspnbsp그렇다고 극단주의에 끌려가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국민의 지지를 100퍼센트 다 받으려고는 하지 말고, 그렇다고 소수만을 뭉쳐서 하려고도 하지 말고, 70퍼센트 정도의 국민이 동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기본관점으로 잡아야 합니다. 조금 더디고 조금 부족하더라도 다수가 지지할 수 있는 방향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다수라는 건 늘 될 가능성이 있을 때 확 움직이지만 어려울 때는 안 움직이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만 움직일 것이 아니라, 다수가 생각은 하고 행동은 못하는 것을 먼저 뚫고 나가줘야 합니다. 소수가 먼저 움직이는 걸 보고 될 것 같아야 나머지 사람들도 참여하는 거예요.nbspnbsp통일은 이런 비전의 첫 출발입니다. 통일을 기반으로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루고, 그 다음으로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만들고, 그 다음으로 세계문명의 중심이 되는 100년을 그려야 해요. 통일을 이루는 출발은 우선 대한민국을 잘 만드는 것과 통일을 추진할 세력을 모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금 원하는 걸 이루어줄 통일비전, 즉 정치민주화와 경제민주화를 달성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키고 대한민국에 희망을 줄 통일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 정부를 만들 수 있는 권한이 헌법에 의해 국민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습니다.nbsp이렇게 한다면 통일은 가능합니다. 일제시대 때 총 들고 독립운동 한 것보다 가능성은 더 높고 위험은 더 적어요. 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하다가 잡혀갈 때에 비해서도 가능성은 훨씬 높고 위험은 훨씬 적어요. 그때보다는 국민 지지도 높아요. 그때는 거의 지지받지 못하다가 투쟁 막바지에 가서 대세가 바뀔 것 같으니까 국민들이 확 따라간 거예요.nbspnbsp그러니 희망을 가지시고 다짐을 하셔야 해요. 우리는 위험도 별로 없고 일도 굉장히 쉽지만 이 일을 하는 자세는 독립운동 하듯이 해야 합니다. 목숨 안 걸어도 되고 재산 안 걸어도 됩니다. 그러나 기본자세는 목숨 거는 자세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번뇌가 없습니다. 죽을 일 아니면 눈도 깜짝 안 하는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죽을 일도 없고, 손해 볼 일도 별로 없고, 감옥 갈 일도 별로 없어요. 다만 초기에 주위로부터 약간 왕따 당할 가능성이 있긴 합니다. nbspnbspnbsp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이야기해 줘서 우리에게 아주 유리해졌어요.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이건 대통령께서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시는 사업입니다. 우리는 그 뜻을 받아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국내 유일의 민간 조직입니다’ 라고 말하면 됩니다. 민주평통이나 통일준비위원회는 다 관군에 속하지만 우리는 정부로부터 정말로 한 푼도 받지 않고 활동하는 의병이니까요.” nbsp강연을 듣는 내내 가슴이 뛰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비전을 이렇게 가슴 뛰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요 무엇보다 통일의 주체세력은 40대, 50대이며 그 중에서 아줌마들이라고 지목한 부분에서 모두들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오늘 참석한 통일의병들도 대부분 아줌마들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스님이 ‘아줌마가 나라의 기둥이다’라고 말한 부분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마지막에는 통일의병운동을 독립운동, 민주화운동과 비교하면서 가능성은 더 높고 위험은 더 낮아졌다며 용기와 자심감도 북돋워 주자 통일의병들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피었고, 더불어 큰 박수가 함께 쏟아져나와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니 어느덧 강연을 시작한지 5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중간에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 스님은 5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강연을 이어갔습니다.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스님의 간절한 희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통일의병교육을 마치고 통일의병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마음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가정 주부는 “40대, 50대 아줌마가 통일의 주체 세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부분에서 많이 웃을 수 있었다”며 “이런 중요한 시기에 역사적 소명을 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한 것을 느낀 것 같았습니다.nbspnbspnbsp교육이 예상보다 일찍 끝나서 집무실에서 업무를 더 보다가 저녁 7시가 되어서 스님은 저녁 강연을 해주기로 한 쑥고개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쑥고개 성당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남북의 통일’을 주제로 천주교 신자들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nbsp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야단법석을 지금 인터넷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14만 킬로미터의 여정에서 만난 2만 2천여 명 세계인과의 행복한 대화가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nbspnbsp지금 구매하기nbspnbsp

2015.12.18. 33,946 읽음 댓글 18개

2015.12.8 (저녁) 진주 청년 즉문즉설 강연

nbsp오후에 영남대병원에서 열린 초청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진주교대 대강당에서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대구 영남대병원에서 오후 5시에 출발한 스님은 2015년 마지막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 위해 진주교대로 향했습니다. 대구에서 진주로 가는 길에는 지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뉘엇뉘엇 넘어가면서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스님은 올 한해에도 100여 회의 즉문즉설 강연을 했는데, 오늘이 마지막 강연이라고 태양도 수고했다고 축하를 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nbspnbspnbsp진주시내에서 차가 많이 밀리긴 했지만 다행히 오후 6시 30분에 진주교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진주교대 대강당nbsp먼저 강연장으로 들어서며 수고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저녁 7시가 되자 520여 명의 청중들이 자리한 가운데 사회자의 밝은 목소리와 함께 드디어 2015년 스님의 마지막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이번 강연은 진주 청년정토회와 진주교대 불교동아리 ‘선각회’ 학생들이 함께 모여 강연 준비부터 홍보, 진행까지 서로 도와가며 만들었습니다. 대학생 봉사자들이 많아 연신 발랄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접수부터 안내까지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라는 가벼운 인사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번 강연은 청년들을 위한 강연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리에 참석하였습니다.nbspnbsp“오늘은 2015년 마지막 강의입니다. 청년정토회에서 주관하는 청년들을 위한 강의도 오늘이 마지막이고요.nbspnbspnbspnbsp올해는 정토회가 주관하는 희망세상만들기 강연, 통일의병이 주관하는 통일이야기, 청년포럼이 주관하는 청춘콘서트, 청년정토회에서 주관하는 희망강연, 이렇게 이 4개 단체에서 강연을 열다보니 진주에 저도 여러 번 오게 되었어요. 진주가 좋긴 좋은가 봐요. 네 개 단체가 다 진주를 한 번씩 넣다 보니 올해 네 번이나 오게 됐습니다. 얼마 전에도 오더니 또 왔나 싶어서 식상하죠? 그런데 오늘은 청년들을 위한 강의예요. 청년들이 마음껏 질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좀 열어주세요.nbspnbsp제가 보기에는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청년이라는 점만으로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가끔 물어봅니다.nbspnbsp‘공부도 해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고 일이 많은 건 알겠다. 나처럼 60대 되면 공부도, 취직도, 결혼도, 아이 키우기도 안 해도 된다. 지금 그런 일 다 하면서 2030대 할래, 한가로이 지낼 수 있는 6070대 할래?’nbspnbsp그러면 다들 2030대 하겠대요. nbspnbspnbsp그러니 6070대도 잘 사는데 2030대가 왜 못 살까요? 바꾸자고 해도 안 바꿀 정도로 그게 더 좋다면서요.nbsp그래서 제가 볼 때는 별로 걱정이 없을 것 같은데, 자기들은 힘들다고 야단입니다. 돈이 없어서 데이트도 못 한 대요. 데이트를 돈이 없어서 못 해요? 애인이 없어서 못 하죠. nbspnbsp저는 이해가 안 돼요. 여자와 남자만 있으면 나무 밑에 앉아서도 데이트 할 수 있고 진주성 산책하면서도 할 수 있는데요. 그러면 품위가 없어서 안 된대요. 멋진 카페에도 가야 하다 보니 데이트하는 경비가 많이 든대요. 요즘 세대는 우리 때와 다른가 봐요.nbspnbsp어쨌든 젊은이들은 고민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기준을 우리 세대에 두고 보면 걱정거리가 아니고, 자기 세대에 두고 보면 엄청난 걱정거리예요. 누구 기준으로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도 가난을 겪어본 670대 사람들을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아니지만 젊은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이념적, 지역적인 차이보다 세대적인 견해 차이가 굉장히 커요. 여론 조사를 해보면 세대에 따른 여론 차이가 굉장히 큽니다. 세대 간의 단절이지요.nbspnbsp그래서 서로 이해하는 자세가 좀 필요합니다. 상대가 옳다고는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 시대에 자라고 보고 들으며 살았으니 그럴 수 있겠다’ 이렇게 청년들은 부모 세대를 이해하고 부모 세대들은 청년들, 자녀들을 이해해야합니다. 항상 자기 기준만 세워서 ‘그게 뭐가 문제냐’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nbspnbspnbsp그러니 오늘도 젊은이들은 자기 이야기와 고민을 실컷 편안하게 토로하고, 청년 아닌 분들은 우리 자녀들이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지 듣고 참고해서 이해의 폭을 넓혔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러면 시작해보죠. 질문자들 손들어보세요.”nbsp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자 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nbspnbspnbsp첫 번째 질문자는 3년째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하고자 취업 공부를 하고 있는 27살의 취업준비생인데 집에서는 그냥 평범한 곳에 취직하라고 한다면서 27살이나 돼서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하려고 하는 것이 철없고 불효하는 것인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행복이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우리가 행복하다고 하는 순간이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행복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해야 현재에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살다보면 무기력해지는 때가 있는데 그때 스님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네 번째 질문자는 2년 동안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취업준비생인데 현재 아르바이트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하였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고 집에 어머니가 아프신데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싶다는 질문을 하였고, 여섯 번째 질문자는 중국, 미국, 러시아 강대국들 사이에서 갈 길을 잃은 듯 보이는 한국의 통일 전망에 대해 질문했습니다.nbspnbsp특히 마지막 질문으로는 곧 직장에 들어가는데 형편이 안 되지만 외제차를 사고 싶은 욕심이 든다는 질문과 함께 스님의 희망 강연이 청년들에게 꼭 희망을 주는 것 같지 않다는 당돌한 질문이 나오면서 청중이 모두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nbsp nbspnbspnbsp오늘은 여러 질문들 중에서 스님에게도 무기력한 시기가 있었고 그 극복 방법을 들을 수 있었던 질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또 당돌했던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철없는 청춘이 질문하겠습니다. 살다 보면 하루나 이틀, 길게는 일주일까지 무기력해져서 자기 생각에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무기력함에 빠져들 때 어떻게 벗어나오거나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요? 스님께서는 보통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nbsp“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20대에 약간 무기력해지면 이렇게 했습니다. 무기력한 정도가 비교적 덜할 때는 제가 주로 활동했던 경주로 가서 황룡사 터나 김유신 장군 묘 옆, 혹은 무열왕릉 묘 옆에 몇 시간이고 누워 있었어요. 눈 감고 가만히 누워서 1,300년 전에 그 사람들이 활동했던 모습을 영화 보듯이 주욱 상상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그 시대에 좋았던 것도 지나고 봤을 때 반드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예컨대 연애하다가 헤어진 일이 역사 속 인물에게 더 잘된 일일 때도 있고, 어떤 사람이 실패한 게 결과적으로 잘 된 일인 경우가 역사에는 많습니다. 그렇게 옛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자각이 되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간단한 무기력은 그렇게 해결을 했는데, 심한 무기력은 단식을 했습니다. 5일 이상 굶으면 몸뚱이가 ‘뭘 먹어야지, 어떻게 해 봐야지’하고 살려고 합니다. 살려고 하는 욕구야말로 무기력을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무기력은 배부를 때 생기지, 배고프면 절대로 안 생깁니다.nbspnbsp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배가 고파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일어날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일어납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지요. 자살을 하려고 산에 올라가서 나뭇가지에 줄을 매고 목에 딱 거는 순간 호랑이가 나타나면 ‘아이고, 잘 됐다. 안 그래도 죽으려던 참이니 나를 물어 죽여라’ 이러지 않아요. ‘사람 살려’ 소리지르며 줄행랑을 치지요. 자살하려고 목을 매달려는데 옆에서 폭탄이 터지면 도망갑니다. nbspnbspnbsp무기력한 것은 의식의 문제지만 살고자 하는 욕구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어떤 의식도 생존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생존의 욕구가 더 근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정신이 약간 무기력해지면 자기 목숨을 자기가 죽일 수 있습니다. 남도 죽일 수 있듯이 자기도 죽일 수 있는 겁니다. 남을 죽이면 살인이고 자기를 죽이면 자살인데, 그건 정신이 약간 고장나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 생존 자체가 위협에 부딪치면 무기력은 날아가 버립니다. 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요.nbspnbsp그래서 제 경험에 비추어서 말해 보자면, 질문자가 좀 굶어보면 어떨까요? 제가 직접 굶어 봤는데 45일을 넘어가면 ‘살아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몸이 저절로 ‘살아야 되겠다’ 하는 게 일어납니다. 그러면 무기력이 극복됩니다.nbspnbsp그런데 제가 그 이후에 몸의 한계를 시험해본 적이 있습니다. 무기력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북한 동포들이 굶어 죽어가는데도 제가 외면한 것을 생각해서 ‘저들은 굶어죽는데 어떻게 나만 밥을 먹을 수가 있겠어? 나도 같이 굶어야겠다’ 해서 30일 굶다가 중지한 적도 있어요. 최대로 굶어본 건 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던 때에 북한에서 또 대량아사사태가 일어나서 70일을 굶은 일입니다. 그래도 안 죽었습니다.nbspnbspnbspnbsp70일까지 굶어도 안 죽더라고요. 대신, 그렇게 굶을 때는 정신이 맑아야 됩니다. 일상생활은 nbsp아무 문제가 없는데, 심한 노동을 하거나 극심하게 분노하면 에너지 소모가 많아서 기력이 빨리 소진됩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단식을 하면 일상생활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해 보니까 말이 잘 안 나와서 강연은 조금 힘들더라고요. 49일이 넘어가니까 기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명상을 하면서 단식을 계속 했습니다. 명상을 하면 에너지 소모가 적거든요.nbspnbsp또 여러분들은 단식이라고 하면 굶는다고만 생각하는데 안 그렇습니다. 단식을 하면 하루에 300그램의 순수한 살코기만 먹고 삽니다. 무슨 말일까요? 자기 살코기를 먹고 산다는 겁니다. 그래서 단식은 채식이 아니라 육식입니다. 몸무게를 재보면 하루, 이틀, 삼일은 무게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대변이 빠지니까요. 그 다음부터는 하루 평균 300그램씩 몸무게가 빠집니다. 매일 똑같지는 않고, 몸의 수분 함유량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 소변이 잘 안 빠지면 어제와 몸무게가 똑같고, 소변이 빠져버리면 500그램이 빠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기초 체온을 유지하고 생각을 하고 약간 움직이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주는 게 300그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명상을 시작하니까 평균 200그램씩 빠지고, 조금 더 명상을 하니까 평균 150그램씩 빠졌습니다. 머리 쓰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드는데, 명상을 하면 머리도 거의 안 쓰고 대화도 안 하니까 에너지 소모량이 적어져서 체중감량의 정도도 덜했던 겁니다.nbspnbsp저는 굶으면 굶을 때 몸에 어떤 현상이 생기고 그로 인해 마음에는 어떤 현상이 생기는지 늘 연구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단식할 때 뭘 먹느냐? 복식은 언제 하느냐?’ 이런 연구를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굶는 데 무슨 방법이랄 게 있겠습니까? 안 먹으면 되는 거지요. 그런데 ‘복식’은 문제입니다. 음식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면 욕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생명과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심리가 어떻게 변화하고, 몸이 어떻게 작용하고, 뭘 먹으면 설사를 하고, 뭘 먹으면 속이 불편한지, 양이 어떻게 느는지, 이런 걸 본인이 체험해 보면서 연구하는 게 제일 확실합니다.nbspnbspnbsp질문자 나이에 한 5일 굶으면 아마 일어날 거예요. 무기력 할 때 제일 좋은 것은 굶는 거예요. 무기력하다는 건 살고 싶지가 않다는 거예요. 그러면 약 먹거나 목매서 죽지 말고 그냥 굶어 죽으려고 해보면 됩니다. nbspnbspnbsp정신이 확 사로잡혀서 목을 매거나 약을 먹고 죽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되지만, 굶으면 서서히 죽어가는 동안 죽을지 살지를 자기가 다시 판단하게 되니까 ‘아이고, 살아야지’ 하면서 기력이 다시 돌아올 거예요.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질문자가 찾아서 해 보세요.”nbsp“감사합니다.”nbspnbsp정말 무기력해 보였던 질문자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스님의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주어서 더 가슴에 와 닿았던 답변이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자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강연을 막 치려고 하는 찰나에 맨 앞에 앉아서 열심히 강연을 듣던 여학생이 번쩍 손을 들고 꼭 질문을 받아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스님은 시계를 보더니 웃으면서 질문을 받아주었습니다.nbspnbsp학생의 질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외제차를 사고 싶다는 다소 엉뚱해보이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답이 계속되면서 욕심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그 과정에서 청중들도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곧 직장을 갖게 되는데, 저는 욕심이 많습니다. 저는 제가 욕심이 많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욕심이 많으니까 이룬 것도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외제차를 사고 싶은데 살 능력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되는지 궁금합니다.”nbsp“안 사면 되지요.”nbspnbsp“그런데 제가 욕심이 있어요.”nbsp“사고 싶어도 안 사면 된다는 겁니다.”nbsp“출근을 해야 하니까요.”nbspnbsp“걸어서 출근하면 되지요.” nbspnbspnbsp“거리가 멀면 차를 타야 될 거 같은데요.”nbspnbsp“버스를 타면 되지요. 제가 지금 질문자의 질문을 농담으로 넘기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묻고 답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nbspnbsp‘지하철을 탔는데, 앞에 앉은 여학생의 종아리가 너무너무 예뻐서 만지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될까요?’nbsp‘만지지 말아야지요.’nbsp‘그래도 만지고 싶은데요?’nbsp‘그래도 만지지 말아야지요.’nbsp‘한번만 만지면 안 될 까요?’nbsp‘그래도 만지지 말아요.’nbspnbsp스님이 ‘그래, 만져라’라고 하겠어요?” nbspnbspnbsp“그런데 그건 부도덕한 질문이었고, 저는 부도덕한 것은 아니잖아요.”nbspnbsp“맞아요. 질문자가 외제차를 살 형편이 되면 사세요. 형편이 안 되니까 못 사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고 싶긴 한데 못 사니까 질문자 자신도 모르게 점점 부도덕한 짓이나 불법행위를 해서라도 사는 쪽으로 가게 돼요. 그래서 제가 사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살 형편이 안 되는데 계속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외제차를 살 수만 있다면 누군가가 부도덕한 행위나 불법적인 행위를 요구해도 질문자가 그것을 감수하게 됩니다. 지금이야 누군가 부도덕한 행위나 불법적 행위를 요구해도 안 하겠지만, 어머니가 편찮으시거나 수술을 해야 하는 것처럼 돈이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 되면 응하게 됩니다.nbspnbsp요즘 보이스피싱 많지요? 은행에 가서 한번만 돈을 찾아오면 몇 십만원을 주겠다는 사기꾼의 전화에 응하는 사람들은 형편이 풍족한 사람들이 아니라 궁한 사람들이에요. 그게 부도덕하거나 범법행위라는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겁니다. ‘통장 줄 테니까 은행에 가서 돈만 찾아오면 된다. 한 번만 다녀오면 30만 원 주겠다’라고 하니까 ‘그게 뭐가 문제겠어?’라고 생각해서 요구에 응하다가 돈도 못 받고 체포되어 후회를 하게 되잖아요. 나중에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알게 되지요.nbspnbspnbsp며칠 전 TV를 보니까 노인 두 명이 사기를 치는 내용이 나와요. 술 마신 사람에게 일부러 부딪혀 넘어져놓고 다리가 부러졌다며 치료비를 내놓으라고 하거나, 젊은 사람을 약 올려서 욕을 유도해 놓고 옆에서 그 욕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노인한테 막말하는 젊은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리는 식으로 협박해서 300만 원씩 뜯더라고요.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봤더니 할머니가 궁하니까 할아버지를 도와서 그렇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다 궁해서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nbspnbsp질문자처럼 형편이 안 되는데도 너무 욕심에 집중하면 그렇게 끌려가기 쉬워요. 지금은 당연히 ‘내가 왜 그런 짓을 해?’라고 생각하겠지만 눈에 뭐가 씌면 아무 것도 안 보여요. 은행 직원이 5억 원을 빼돌려서 썼다거나 경찰이 사기꾼 뒤를 봐주고 몇 억 원을 받았다는 사건 기억나지요?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생각에는 굉장히 나쁜 사람들 같지만 저는 그런 사람들을 면회하고 상담하잖아요. 집에 환자가 생겼거나, 주식에 실패해서 집을 날렸거나, 알고 보면 다 그런 유혹에 빠질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nbspnbsp질문자가 외제차를 사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건 좋아요. 그러나 그 욕심이 어느 순간에 쥐약처럼 되어서 질문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그러니 욕심을 버리세요. 욕심을 버리라는 건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을 전혀 내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대통령 되고 싶다’, ‘내가 외제차를 사고 싶다’ 이런 건 욕심이 아니에요.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서 노력을 안 하고, 외제차를 사고 싶다면서 노력을 안 하는 걸 욕심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외제차를 사고 싶다.’nbsp‘사라.’nbsp‘그런데 살 형편이 안 된다.’nbsp‘그럼 사지 마라.’nbspnbsp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거기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이런 덫에 걸려들 위험이 있다는 걸 자각하라는 겁니다.”nbsp“그럼 욕심을 가져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nbsp“욕심은 가지면 안 됩니다. 질문자가 ‘뭘 하겠다’ 하는 건 욕심이 아니에요. ‘외제차를 사고 싶다’ 이것도 욕심이 아닙니다. 그런데 ‘외제차를 살 형편이 안 되는데 사겠다’라고 하면 그건 욕심입니다.”nbspnbsp“그럼 살 형편을 만들면 되나요?”nbsp“그렇지요. 혹시 부모님이 재산이 좀 있나요?”nbsp“예.”nbspnbsp“그럼 부모님께 잘 하세요. 아침에 밥상도 차려드리고, 저녁에 안마도 해 드리고, 예쁘게 아양도 떨면서 ‘어머니, 아버지, 외제차 사주세요’ 하세요. 그게 밖에 나가 돈 버는 것보다 훨씬 돈 벌기가 수월할 겁니다. 돈 있는 남자를 만나든지, 직접 돈을 벌어서 사든지,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다만 돈 있는 남자를 만나더라도 부인 있는 남자는 안 돼요. 그건 부도덕한 일이기 때문에 비난을 받아요. 욕심이 많으면 그런 덫에 걸릴 확률이 높아요. 당시에는 본인이 굉장히 잘한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큰 위험을 자초하는 법이에요. 그래서 스님이 ‘욕심은 내려놔라’라고 말하는 겁니다.”nbspnbsp조금 당돌하게 질문을 던졌던 이 여학생은 곧이어 또다른 질문을 당돌하게 던졌습니다. 오늘 강연을 들은 소감을 말하면서 왜 이 강연을 희망 강연이라고 부르는지 물었습니다. 답변을 주욱 들어보니 스님이 청년들의 희망을 오히려 꺾은 것 같다는 것이였습니다.nbspnbsp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지만 스님은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청중들의 전체 평가를 확인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 후 차분하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처음부터 들었는데, 제 생각에 스님은 고민이 있는 청년들에 대해서 희망을 주는 게 아니라 희망을 꺾는 것 같습니다. 계속 ‘하지 말라’고 하시니까요. 어떤 점에서 스님의 강연이 ‘희망강연’이라고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nbspnbsp“질문자는 그렇게 생각했군요. 스님은 질문한 각각의 질문자에게 희망을 주는 게 목적이겠어요? 지금 질문하고 있는 질문자한테 희망을 주는 게 목적이겠어요?”nbspnbsp“질문한 사람한테 희망을 주는 게 목적이겠지만 또한 듣는 사람들한테도 희망을 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nbspnbsp“질문자한테 물어봤을 때 ‘나한테는 도움이 됐다’ 그러면 된 거 아닐까요?”nbsp“예. 그런데 이 강연의 방청객 중에도 질문자들의 처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있다면 스님의 답에 영향을 받을 텐데, 저는 그게 좀 걱정이 됩니다.”nbspnbsp“좋은 아이디어네요. 저는 지금 질문자의 질문이 굉장히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 강연을 평가를 해봐야겠어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스님이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약간 거짓말을 섞더라도 격려를 해 주는 게 낫겠다. 그게 오히려 희망이 되겠다’라고 평가한다면 저도 앞으로는 강연하는 태도를 바꾸겠습니다. 질문자는 뒤로 돌아 방청객들을 향해 서보세요. 자, ‘오늘 스님이 즉문즉설을 통해 젊은이의 기를 팍 꺾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nbsp“저기 젊은이 2명이 손을 들었는데요.”nbspnbsp“자, 그럼 ‘스님이 젊은이의 기를 꺾은 것도 아니고, 기를 살린 것도 아니고, 사실대로 말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nbspnbspnbsp손을 내리세요. 보세요. 그러니 그 질문은 당신의 생각인 것 같아요. nbspnbsp100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꿈을 갖고 있다가도 부모님이나 은사님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할 때 ‘현실적으로 보고 꿈을 좀 포기하라’는 말을 듣는 사례가 많아서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까 싶은데요. 스님은 ‘부모의 말을 들어라’라는 말을 안 하잖아요. ‘부모의 희생 위에 살지 말라’고 하지요.nbspnbspnbsp다시 말해 자기가 뭘 하고 싶다고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내 이익을 위해서 남에게 손해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아까 ‘자립해서 살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스님은 ‘그래, 네 맘대로 하라’고 했잖아요. 자립해서 살기 위해서는 부도덕하거나 범법 행위만 아니라면 무엇을 해도 좋고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어요. 그런데 부모의 지원을 받으면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은 범법 행위에 버금갈 만큼 아주 나쁜 행위입니다. 그건 빚지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nbsp“예,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nbsp당돌했던 여학생은 그제서야 수긍을 하며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명쾌한 답변에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은 참 다이나믹했던 것 같습니다. 청년들이여서 그런지 마음껏 질문하는 분위기였고, 스님도 편안하게 이야기해 주어서 아주 솔직한 대화가 오갔고,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nbspnbsp강연이 끝나고 곧장 책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청년들과 함께 눈인사를 하며 차분하게 사인회를 마쳤습니다.nbspnbspnbsp강연이 끝난 뒤 무기력증에 대해서 질문했던 참가자에게 다가가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난 소감이 어떤지 물어보았습니다. “참 현실적인 답변을 해주신 것 같고, 무기력은 배부른 상황에서나 할 수 있는 생각인 것 같다. 내년에 스님이 강연을 오시면 꼭 다시 참여하고 싶다”며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사인회를 마친 스님은 희망강연을 준비한 청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한 명 한 명 손을 잡고 악수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자원봉사를 했던 진주교대 학생은 “스님의 손이 아기 손처럼 부드러워 놀랐다”며 무척이나 설레어 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늘은 2015년 마지막 즉문즉설 강연이었습니다. 진주청년정토회 봉사자들은 둥그렇게 서서 스님을 모시고 조촐하게 축하 이벤트를 했습니다.nbspnbspnbsp먼저 청년들이 준비한 작은 선물 전달식이 있었습니다. 선물을 받고 곧바로 포장지를 뜯어 보았는데, 작은 주머니 속에는 겨울을 따뜻하게 나게 해 줄 회색 장갑, 손목 토시, 양말이 가지런하게 담겨 있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선물이네” 하면서 감사히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5년 한해 동안 100여 회의 즉문즉설 강연을 하느라 수고한 스님에게 한반도가 그려진 편지지에 통일의 염원과 감사의 메시지를 적어 건넸습니다.nbspnbspnbsp특히 편지 내용 중에는 평양이 위치한 곳에 점을 콕 찍고 “스님, 통일 되어 요기 평양에서 강연 들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라고 적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nbspnbspnbsp이 외에도 “올 한해 강연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님, 저 인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인생에 희망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통일을 향해 계속해서 노력해 나가는 진주 통일 아가씨가 되겠습니다” 등의 메시지가 청년들의 강연 준비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nbspnbsp작은 선물에도 좋아해 주는 스님을 보면서 다함께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nbsp청년들에게 “수고했다”고 격려를 한 후 진주교대를 나온 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밤 12시가 다 되어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이렇게 2015년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모두 끝났습니다. 무엇보다 전국을 누비며 잠도 거의 차 안에서 주무시며 강행군을 하며 많은 대중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설해준 스님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스님은 오늘도 강연을 마치고 나서 몸이 좀 안좋으신지 차 안에서 단잠을 주무셨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오랜만에 강연이 없는 날입니다. 스님도 내일 하루 만큼은 아무런 약속을 잡지 않으시고 휴식을 취할 예정입니다. 물론 휴일에도 이것저것 소일거리를 만들어 하시는 스님의 일상은 그대로일 테지만. 운전하고, 촬영하고, 글을 쓰고, 식사를 챙기는 수행팀도 내일은 하루 휴식을 취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스님의 하루’도 내일 하루만 잠시 쉬어 가겠습니다. 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10. 136,829 읽음 댓글 133개

2015.12.7 서울 관악구 통일의병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관악구청 8층 강당에서 서울 시민들을 위해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전국 순회 강연을 시작한지 20번째를 맞이한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통일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면서 아침 일정을 보냈습니다. 두북 정토수련원에 잠시 들러 선물용 김장 김치를 추가로 발송할 것을 마지막으로 점검한 후 시골 형님이 농사를 지어 보시한 쌀 여러 포대를 가정 형편이 어려운 봉사자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차에 실었습니다.nbspnbsp▲ 어제 추가로 포장한 선물용 김장 김치nbsp▲ 가정 형편이 어려움에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선물할 쌀포대nbsp그리고 그동안 선물용 김장 김치를 담그기 위해 수고가 많았던 화광 법사님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울산 두북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후 치과에 들러 치료를 받은 후 오늘 강연이 있는 관악구청으로 갔습니다.nbspnbsp▲ 관악구청nbsp저녁 6시 30분에 관악구청에 도착한 스님은 접견실에서 머물며 유종필 관악구청장님을 비롯해 통일의병 대표를 맡고 있는 김홍신 작가님과 환담을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유 구청장님에게 강연 장소를 마련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새책 ‘야단법석’을 선물했고, 유 구청장님도 스님에게 책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 유종필 관악구청장님nbsp한편 일찌감치 관악구청 8층 강당에 모인 통일의병들은 서울시민들을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특히 오늘은 올해 마지막 강연이라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기념 촬영을 잊지 않았습니다.nbsp82328232▲ 추운 날씨에 서울대입구역에서 안내 푯말을 들고 있는 통일의병nbsp강연장 입구에서 60대 남성 분은 열심히 질문을 적고 있었습니다.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스님께 꼭 nbsp여쭙고 싶다고 합니다. 사촌 3명이 함께 온 분들도 있었습니다. 각자의 종교는 천주교, 기독교, 불교라며 웃음을 내비칩니다. 그 중에 한 분은 천주교도인데 스님의 팬이라고 하면서 매일 아침을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오는 ‘스님의 하루’로 시작한다고 기분 좋게 말했습니다.nbspnbspnbsp네 대의 nbsp엘리베이터가 바삐 오르내리며 시민들을 nbsp8층으로 실어나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350개의 좌석이 다 채워졌습니다. 7시가 되자 만석을 넘어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강연장 문을 열어주면 밖에 서서라도 듣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nbsp없어서 8232죄송한 마음으로 양해를 구하고 되돌아가시도록 안내를 해야 했습니다.nbsp82328232nbsp오늘은 올해 마지막 강연이라 통일의병 대표를 맡고 있는 김홍신 작가님이 특별히 참석해 환영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작가님은 오늘 강연을 듣고 모두 대한민국을 밝히는 찬란한 꽃이 되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대표 김홍신 작가님nbsp“옛날에는 귀신이 정말 많았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귀신이 없어졌어요. 그 많던 귀신이 어디로 갔죠? 바로 전기불 때문입니다. 거리가 밝아지고 세상이 밝아지니 귀신이 사라져 버렸어요. 지금도 아프리카나 동남아처럼 척박하고 가난한 지역은 아직도 귀신이 무지하게 많아요. 대한민국은 살기 좋아져서 많이 밝아졌는데 아직도 전기불이 비춰지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바로 우리의 북녘 형제들입니다. 이제는 평화적인 통일이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가 지구 상에서 가장 사람이 살만한 땅이 될 것입니다. 그 때를 우리는 대비해야 합니다. ‘광명’ 이라고 할 때 ‘명’은 자기를 밝히는 것이고 ‘광’은 남을 밝히는 것입니다. 광명을 밝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nbsp강연이 끝나고 며칠 후에 통일시민학교가 열리는데 이것을 수강하면 통일의병 군번이 나옵니다. 나중에 통일이 되면 ‘당신은 통일을 위해 무엇을 했냐?’ 고 반드시 물을텐데 그 때 ‘나는 통일의병 군번 몇 번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nbspnbsp그런데 저는 통일의병 대표인데 아직 군번이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군번이 1000번으로 예약해 두었는데, 아직 통일의병이 1000명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통일의병이 되셔서 저를 빨리 통일의병 군번을 받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스님 말씀을 새겨 들어서 모두들 대한민국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찬란한 꽃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nbsp청중들은 작가님의 간곡한 호소에 화답하며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강연이 시작되고 nbsp밝은 얼굴로 스님이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강연 후 통일의병들과 쫑파티가 예정되어 있어서 강연을 일찍 마치기 위해 강연 취지에 대해서만 잠깐 소개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은 ‘통일의병’이 주관한 강연입니다. 그래서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고 저를 데려온 거예요. 항상 저만 보면 아이나 배우자와 관계된 개인의 인생 고민을 묻고 싶어 하시지만 오늘은 좀 참아주세요. 그런 이야기로 시간이 다 가버리면 주관한 단체에서 다시는 저를 안 불러줄 겁니다. ‘스님이 오시면 사람은 많이 오는데 도무지 우리가 목적하는 통일 이야기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통일 이야기로 질문을 받겠습니다.”nbsp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통일 강연이었지만 그래도 개인 고민을 묻는 분이 한 분이 있었습니다. 첫번째 질문자였는데요. nbsp화를 잘 내고 못된 오기가 있어서 8232상대가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8232해도 마음에 안들면 그 이야기를 틀렸다고 하는 습관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개인 고민을 묻는 사람은 통일시민학교를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해서 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nbsp두 번째 질문자부터 네 번째 질문자까지는 통일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통일이 되면 좋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오는지 막연하다며 통일이 되면 우리에게 어떤 이익과 변화가 오는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미국 중국 등 주변국은 현상 유지가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되기 때문에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 같은데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국과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 하는지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이야기하고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어서 통일을 적극 추진할 것을 기대했지만 남북관계에 변화가 별로 없다며 현 정부에 어떤 입장과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질문자의 대답과 nbsp스님의 말씀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착착 맞아 nbsp들어 가고 순간순간 터져나오는 시민들의 웃음 소리는 강연장을 더욱 훈훈하게 해주었습니다. 강연장 여기 저기에는 필기를 열심히 하시는 분,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 등 스님 말씀을 잠시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시는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통일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 물었던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올해 마지막 통일 강연이니 만큼 스님은 그동안 진행된 강연을 총정리하면서 가슴 뛰는 통일 비전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너무나 명쾌하게 종합적으로 설명을 해주었기에 듣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nbspnbspnbsp“통일이 되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한데 그 변화가 좀 막연하고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통일이 되면 우리에게 어떤 이익과 변화가 오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nbsp“통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생각은 않고 통일된 뒤의 떡고물부터 탐내시네요.” nbspnbsp“질은 일단 놔두고 양적으로 우선 설명해 보면 경제와 정치, 안보 모든 측면의 돌파구가 됩니다. 현재의 대한민국, 즉 남한만 보면 인구가 5천만이고 국토가 9.8만 제곱킬로미터입니다. 1인당 GDP는 약 3만 달러 가까이 되고, 총 GDP는 세계 13위 정도예요. 노무현 대통령 때 11위로 가장 순위가 높았습니다.nbspnbsp그런데 이명박 후보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경제를 모르는 사람이 연이어 대통령이 되어서 우리나라 경제를 망쳤다’라고 주장하면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기를 가리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말을 한 근거가 있긴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18년 동안에 평균 GDP 성장, 즉 경제성장률이 11퍼센트였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때 정치는 문제가 많았지만 경제만큼은 비약적으로 성장해서 7년 동안 연 평균 10퍼센트씩 성장했어요. 노태우 대통령 5년 동안에는 9퍼센트, 김영삼 대통령 5년 동안에는 7퍼센트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 5년 동안에는 5퍼센트, 노무현 대통령 5년 동안에는 4퍼센트 성장했어요. 그러니 이명박 후보가 그렇게 말할 만 했어요. ‘그 전에는 아무리 못해도 7퍼센트 성장했는데 저 두 사람 때문에 우리나라가 10년을 잃어버렸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아무리 못 해도 7퍼센트 성장을 달성하겠다. 그러면 1인당 GDP 4만 달러 시대가 도래해서 세계 경제 11위에서 7위로 올라설 수 있다’고 큰소리 친 게 소위 747 정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BBK며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을 밀어줬어요. 경제 성장의 향수 때문이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5년 동안에 3퍼센트 성장했습니다. 7퍼센트는 고사하고 전대 대통령들 만큼도 달성하지 못했어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2.8퍼센트예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3.8퍼센트 정도를 목표로 세웠지만, 임기 끝날 때까지 2.5퍼센트 정도 하면 잘 한 축에 들 겁니다.nbspnbspnbsp그러나 이것은 특정한 대통령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다음 선거에 어떤 대통령 후보든 ‘내가 당선되면 5퍼센트 성장시키겠다’라고 주장해도 믿으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 소진됐기 때문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3퍼센트 이상은 더 끌어올리기 어려워요. 앞으로 20년 이상은 갈수록 성장이 둔화되어 평균 2퍼센트 성장도 어렵다고 이미 국제기구에서 예측하고 있습니다. 20년 전 일본이 걸었던 길인 장기불황에 우리도 들어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못 받아들이죠. 왜? 지난 50년 동안 분단된 상태로도 이렇게 성장해왔기 때문입니다. 분단된 상태로도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정치 민주화를 이루었고, 국방력도 크게 증가시켰기 때문에 지금 조금 문제가 있긴 하지만 우리가 잘 하면 다시 경제도 성장하고, 정치 민주화도 더 나아가고, 안보도 튼튼해지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건 과거의 향수 때문에 착각하는 거예요.nbspnbsp현실을 보면 국내적으로 이미 성장 동력이 소진됐어요. 첫째 원인은 모방 시스템의 한계입니다. 미국이 100이라면 유럽이 93, 일본이 90, 우리가 한 83까지 따라왔어요. 그 차이가 클 때는 따라잡는 성장속도가 빠르지만 차이가 좁혀질수록 성장속도도 느려집니다.nbspnbspnbsp중국도 차이가 많이 날 때는 두 자리 수 성장하다가 차이가 줄어드니 7퍼센트 아래로 떨어졌잖아요. 조금 더 가면 5퍼센트 대로 떨어질 겁니다. 갈수록 둔화되고 정체되는 것이 우리만 겪는 현상이 아니라 정상이라는 겁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가다가 이미 20년 전에 저성장에 돌입한 거예요.nbspnbsp그래서 우리도 장기불황에 대비책을 세워야 합니다. 계속 잘 되리라고 아무리 믿어도 실제로는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인구 구성을 봐도 노령 인구가 많아지고 출산율은 떨어집니다. 국제산업구조를 봐도 뒤에서는 중국이 바짝 추격해오고 앞에는 일본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 모든 조건이 이제 더 이상 고성장은 어렵다는 겁니다. 국제적인 상황도 그렇습니다. 한때 수출이 매년 2, 30퍼센트씩 늘었지만 지금은 줄어들잖아요. 작년보다 올해는 더 많이 줄었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가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nbspnbsp문제는 경제만이 아닙니다. 정치며 안보도 그래요. 그동안 우리는 분단된 속에서도 독재에서 민주화를 이루었고, 지방 자치도 이루었어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오고,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오면서 민주화가 느리더라도 조금씩 더 나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간다는 인식들이 팽배합니다. 지금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이야기도 나와요. 지방 자치단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방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들 할 정도입니다. 국회도 지역주의에 뿌리를 둔 양당구조가 국민의 정치수요를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질적인 줄 세우기를 벗어나지 못합니다.nbspnbsp이런 게 꼭 대통령 개인이나 특정 정당의 문제라고만 하긴 어렵습니다. 분단된 상태에서의 민주주의는 여기서 더 이상 나아가기가 어렵게 되어 있어요. 안보도 국방력이 엄청나게 강해졌는데도 최근 56년 사이에 전쟁 직전까지 간 위기가 벌써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 전에 국방력이 그리 튼튼하지 않을 때도 전쟁 위험을 이렇게 걱정하지는 않았잖아요. 물리력은 엄청나게 강해졌는데도 실질적인 전쟁 위험은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nbspnbspnbsp앞서 말했듯 경제도 성장했는데 내적인 질은 안 좋고요. 겉으로는 살기 좋은 편인 것 같이 보이지만 국민 행복도는 세계 117위여서 카메룬, 말리 같은 나라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성 평등도는 115위이고 자살률과 저출산율은 세계 1위입니다. ‘헬조선’의 악명을 세계적으로 떨치는 항목이 60여 가지나 된다고 할 정도입니다. 외적인 규모는 커졌지만 내부 질은 굉장히 부실한 거예요. 그런데 그 양의 성장마저 이제는 거의 멈췄습니다.nbspnbsp전에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였어요. 미국이 전 세계 부의 30퍼센트와 전 세계 국방예산의 50퍼센트 정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누구도 미국과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미국과 동맹을 맺고 가장 가까이에 있었기에 안보도 안심할 수 있었고, 과학기술도 바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경제도 성장했고, 정치도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된 거예요.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의 급격한 부상으로 G2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는 일극이 아닌 양극 체제로 가게 됐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현재 안보는 미국에 의지해있고 경제는 중국에 의지해 있어요. 중국에의 수출량이 미국에의 수출량 두 배가 넘고, 우리의 흑자는 대부분 중국에서 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하니까 어느 한 발을 떼야 하는데, 안보도 못 떼고 경제도 못 떼는 진퇴양난에 빠졌어요. 그래서 지금 미국이 한국더러 대중 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안보 면에서 계속 압력을 넣는 거예요. 한미일 군사동맹에 참여해라, 사드 배치하라는 게 그래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 들어가면 중국과는 갈등관계가 됩니다. 지금은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유지하고자 친중 외교를 하려고 하다 보니 또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고 불신을 제기해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어떻게 줄타기를 해왔지만, 이게 올해까지 갈지 내년까지 갈지 모릅니다.nbspnbsp이런 속에서는 우리의 안보도, 경제도, 정치도 더 이상 성장과 발전은 없다는 현실진단이 우선돼야 합니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그냥 정체국면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일본과 달리, 우리의 정체국면은 곧 불안정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에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거나 몰락하는 양 길밖에 없어요. 정체상태를 유지하는 것만도 어렵습니다.nbspnbsp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통일이라는 돌파구가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일단 인구가 7천3백만, 영토가 21만 제곱킬로미터로 늘어납니다. 여기에 정치적 갈등과 군사적 갈등이 사라지고 북한의 저렴한 양질의 노동력과 한국의 자본력과 기술이 결합한다면 우리는 다시 세계적인 생산기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때 세계적인 생산기지였다가 중국에 그것을 넘겨줬잖아요. 지금은 중국에서 인도로 이동해가고 있는데, 그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다시 한국이 생산기지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북한개발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1020년 동안은 다시 57퍼센트 대의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철도, 도로와 항만, 비행장, 공장 등 인프라 건설만 하더라도 북한개발에는 엄청난 수요가 있습니다. 미국이 동부가 정체국면에 빠졌을 때 서부개척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듯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일본은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100년 전에는 위기 극복을 노리고 한국을 침략해서 실제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지금은 침략을 할 수 없으니까 길이 없어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정체국면을 당분간 해소할 새로운 길이 있습니다. 그게 통일이에요.nbspnbspnbsp통일은 남한에게만 좋은 게 아니에요. 북한도 생존의 위기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남북한이 통합경제, 즉 통일경제로 간다면 북한은 연 10퍼센트 이상 성장은 당연하고 연 100퍼센트 성장도 가능합니다. 국제통계학에서 이미 관련 예상 수치가 다 나와 있어요. 통일하고 20년만 지나면 통일한국의 인구, 규모, 영토, 경제력은 세계 7위권까지 올라간다고 보고들 있어요. 남북한과 동북 3성, 연해주, 일본까지 결합하는 환동해권 인구만도 3억 5천만 명 가까이 됩니다. 그 영토는 유럽과 맞먹습니다. 거기에 시베리아나 사할린의 가스가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바로 들어와요. 그러면 중동이 저렇게 불안해도 걱정 없이 값싼 에너지원을 들여와 이용할 수 있어요. 경제적으로 활력이 생기고, 청년들의 일자리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물론입니다.nbsp그러면 여러분들은 돈이 많이 들지 않냐고 우려하겠죠. 돈이 많이 드는 건 맞아요. 그런데 이 돈은 전부 투자비용입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 비용이 몇 년 전 계산으로 4조원이었으니 지금은 56조 정도 될 겁니다. 그런데 이 돈은 1020년 안에 회수할 수 있어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연결되면 한국에는 물류혁명이 일어납니다. 물류가 부산항에서 유럽까지 바로 연결되는 거예요. 이렇게 투자비용이기 때문에, 돈이 있으면 우리 돈으로 하고 없으면 외자 유치해서 하면 됩니다. 세계에 투자처를 찾는 자본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나머지도 다 그냥 허공에 뿌리는 돈이 아니라 투자비용이에요.nbspnbsp북한의 2천만 인구까지 먹여 살려야 한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먹여 살린다는 측면에서는 돈이 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양질의 값싼 노동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북한의 2천만 인구 자체가 엄청난 자산입니다. 그리고 북한에 묻혀 있는 희귀 금속과 각종 지하자원은 적게 잡으면 4조 달러, 많이 잡으면 8조 달러의 가치를 지닙니다. 매장량의 가치가 남한의 30배에 달해요. 그러니 하나하나 이야기할 것도 없이 완전히 새로운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nbsp그리고 통일이 되면 우리의 사고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지금은 무슨 이야기하다가도 ‘그런 이야기 하면 종북으로 몰린다’ 이럴 정도로 사고에 늘 어떤 벽이 있잖아요. 통일되면 그런 벽이 다 허물어져서,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어떤 사상이든 자유로이 토론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젊은이들의 사고의 창의성이 굉장히 발달합니다. 특히 미래에는 모방이 아니라 창조가 과제잖아요.nbspnbsp그리고 한국 브랜드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성장합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 들어봤죠? 한국은 지금은 잘 나갈지 몰라도 언제든 전쟁이 나서 국가기반 시설 몇 개만 폭격당해버리면 하루아침에 경제가 붕괴되는 위험을 안고 있어요. 이걸 ‘코리아 리스크’라고 해요. 우리의 실력이 100이라면 국제사회에서는 70밖에 평가를 안 해줍니다. 언제든 위험 부담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해서 값어치가 저평가 되어 있는데, 통일이 되면 코리아라는 상표가 제 값어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우리는 북한을 생각하지 않으니 잘 모르지만, 국제사회에서 ‘코리아’라고 하면 핵, 전쟁, 기아, 독재, 인권문제 같은 이미지가 지배적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삼성, 현대가 한국 기업인지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적습니다. 코리아 상표가 아닌 자기 상표로 자리 잡은 거예요.nbsp그런데 통일이 되어 코리아의 이미지가 좋아지면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코리아 상표에 힘입어 살아날 수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면도날은 독일제가 좋더라’ 하지 않고 ‘뭐든지 독일제면 좋더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듯, 한국도 그리 될 수 있어요. 대기업은 자기 상표를 갖고 국제 사회에서 경쟁력이 있지만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자기 상표를 가질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코리아 상표가 좋아져버리면 모든 중소기업이 다 살아납니다. 그냥 화장지 하나, 드라이버 하나도 한국제라고 하면 무조건 좋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돼요. 통일되기 전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nbspnbspnbsp이렇듯 통일 뒤에 얻어지는 부가가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여기에 더해 이산가족의 아픔 같은 우리들의 오래된 한을 풀 수도 있고, 진정한 역사 바로 세우기도 할 수 있습니다. 남북한이 적대적으로 경쟁하다 보니 북한도 역사가 왜곡돼 있고 남한도 역사가 왜곡돼 있어요. 지금 교과서 논란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엄청난 역사 왜곡이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부정해야 하다 보니 독립운동할 때 사회주의 계열에 섰거나 훗날 북한 정부 수립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 제외시켜버려서 독립운동사가 빈약합니다. 북한은 또 독재를 해야 하다 보니 중요한 독립운동은 김일성과 주변 인물들이 다 했다 하고 북한정부 수립에 참여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역사에서 죄다 제거해버렸어요. 이런 역사적 왜곡이 아주 심한데, 통일되면 이런 역사가 전부 복원될 수 있어요.nbspnbsp통일의 효과는 문학과 예술 면에도 미칠 겁니다. 제가 보기에 남북 평화 통일을 이루면 우리가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노벨상이 평화상과 문학상입니다. 이 분단의 고통, 전쟁의 고통을 승화시켜서 낸 소설이 지금 노벨상을 받는다면 남쪽에서 나온 작품은 북쪽에서 반대할 테고 북쪽에서 나온 작품은 남쪽에서 반대할 겁니다. 받을 만한 사람들은 이미 대략 윤곽이 나와 있어요. 통일이 되면 그런 걸림돌이 없으니 바로 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할 겁니다.nbsp외교 면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금은 미중이 각축하는 가운데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우선 목적이 있으니까 일본을 내세워요. 전후 패전국의 이미지를 다 지우고 재무장시켜서 미국의 대리인으로 내세우고, 거기에 한국도 붙으라고 압력을 가하는 거예요. 한일 간에 군사협력을 하라는 게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중국과 완전히 적대 관계에 놓여야 해요. 통일 한국은 어디로 갈지 모르니까 지금 미국은 남한만 떼 와서 미국의 대중 방어선에 붙이려 들어요. 중국은 지금 남한을 거기 못 들어가게 하려고 잡아당기고는 있지만 안 되겠다 싶으면 북한을 껴안을 겁니다. 그러면 북한은 중국의 아래에, 남한은 미국의 아래에 붙어서 미중의 싸움 속에서 다시 서로 갈등해야 합니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남북이 갈등하고 전쟁했던 것과 별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남북이 통일국가를 형성해서 어느 정도 규모가 생기면 한국이 중국 쪽으로 협력하느냐 미국 쪽으로 협력하느냐에 따라 동아시아의 질서, 판도가 달라져요. 그래서 우리만 중심을 잡으면 오히려 우리 덕분에 동아시아가 평화지대가 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통일한국에 중국과 일본, 미국까지 손을 잡아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형성하면 그 규모가 유럽이나 미국을 훨씬 능가합니다. 그러면 일부 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문명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가 동아시아로 다시 옮겨올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데 동아시아가 지금처럼 민족적인 갈등을 하고 있으면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문명의 중심이 되려면 경제 규모나 군사 규모만 커져서 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발전, 인권의 신장, 학문의 창조성, 이런 많은 요소가 다 결합해야 하잖아요.nbsp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 21세기 초반에 통일을 하고 중반에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해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나간다면, 21세기 후반에는 세계 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오고 우리가 그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이 됨으로 해서 결국은 세계 문명의 중심국가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지금 열려 있는데 그 첫 발이 통일입니다.nbspnbsp우리가 미중의 하위 변수로 전락해서 갈등의 분쟁 지역이 될 것이냐, 아니면 통일국가를 형성해 미중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나아가 동아시아 번영의 중심이 될 거냐를 가르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예요. 위기를 극복하면 기회가 되고 기회를 놓치면 위기가 됩니다. 이런 새로운 변화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우리가 더 큰 이익을 생각해서 작은 감정이나 손실, 즉 북한을 포용할 때 일어나는 문제를 감수해내야 해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과거에 입었던 피해에 대한 복수심에 너무 사로잡혀서 미래의 큰 이익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nbsp우리의 통일은 단순히 남북한의 통일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남북한의 통일 자체로도 의미가 크지만, 그 통일이 합의통일이 되면 시너지 효과가 나서 일본 및 중국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문명의 중심국가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무력으로 북한을 굴복시켜 통일하게 되면 통일은 될지 몰라도 중국과 우리는 갈등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면 통일의 시너지 효과가 없어집니다.nbspnbspnbsp그러니 통일이 돼야 하지만 통일이 어떻게 되느냐는 방법론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남북이 대등하게 통일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한쪽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남한 사람인 제가 이런 주장을 하니 북한 입장에서는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대등하게 통일하기가 어려워요. 남한도 문제가 없진 않지만 남한을 좀 리모델링해서 통일의 중심을 삼을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북한의 요구를 좀 들어줘야 해요. 경제만 먼저 통합하되 정치는 10년이든 20년이든 중국처럼 여유를 두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북한 자체에 어떤 변화가 올 때까지 좀 열어둬야 해요. 그러나 경제 문제는 내일이라도 당장 통합경제, 통일경제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민족이 살 수 있습니다.nbspnbsp통일의 이익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통일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확신이 없어요. 미래는 불안정하잖아요. 미국 가서 이야기해봐도 그래요. 자기들이 봐도 통일된 한국이 미국 편에 딱 붙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쉽게 도와주지 않으려 합니다. 중국에서도 손을 쉽게 내밀어주지 않아요. 지금의 한국이 미국과 군사며 뭐며 전부 결합되어 있는데 통일됐다고 해서 중국과 협력관계가 되리라고 확신하기 어렵잖아요. 자기 쪽으로 온다는 게 확실하면 지지하겠지만, 미래의 불확실성보다는 현실에 주어진 확고한 것을 확실히 가지려 드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미국은 남한을 확실하게 끌어오는 쪽으로 관심을 갖고, 중국은 남한이 미국과 결합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일본까지 결합하지는 않도록 잡아당기고 있어요. 중국이 지금은 우리에게 잘 해주지만,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북한을 잡을 겁니다. 지금은 한국을 잡으려고 북한과 거리를 좀 두고 있다는 거예요.nbspnbsp이런 위태로운 균형이 유지되는 것도 몇 년 안 남았습니다.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가서 사드 배치에 사인을 안 했기 때문에 그나마 아직 시간이 좀 있는 거예요. 사드 배치에 사인하면 대세가 거의 기울어진다고 봐야 해요.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아직은 중국에 고개를 안 숙이고 버티고 있으니 시간을 번 겁니다. 그런데 저걸 얼마나 더 버티겠어요? 고개 숙여버리면 끝나요. 남쪽이든 북쪽이든 아직은 통일의 기회가 있는데, 어느 쪽이든 더 이상 못 견뎌서 이쪽이든 저쪽으로든 기울어지면 통일은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미중의 하위변수로 편제되어 장기간 분단 상태로 가야 합니다. 미중의 패권 경쟁은 앞으로도 몇 십 년은 이어질 거예요. 그러면 미래의 100년 역시 과거의 100년과 다름없는 상태로 가야 해요.nbspnbspnbsp이렇게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알아서, 국민이 뜻을 모아야 합니다. 현재의 정부가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하도록 여론을 조성하고 압력을 가하고, 현 정부가 그리 하지 못하면 다음에는 통일을 확실하게 추진할 정부를 구성한다든지 하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국민의 행동 없이 현재의 정치인들만 가지고는 마치 임진왜란 때 관군만 가지고는 안 되었듯이 통일도 좀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의병운동이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은 시험이 중요하고 결혼이 중요하고 자녀 문제가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사는 전체 공동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분단된 상태에서도 여기까지 온 것은 잘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굉장히 불확실한 조건에 놓여 있는데, 이걸 지금 안 보고 그 안에서 자기 개인 문제에만 안주해 있으면 미래는 어둡습니다. 조선말엽에 소위 서세동점이라는 국제적인 위기에 처했는데도 아무런 방비 없이 내부에서 사색당쟁만 하다가 중국에서 일본으로 세력 교체 되는 시기에 결국은 나라를 잃고 식민 지배를 겪었잖아요. 지금 그와 비슷한 새로운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가 우리에게 오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통일의 이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nbsp스님의 가슴 뛰는 통일 이야기에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통일이 가져다 줄 이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그동안 통일에 대해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어떤 이익이 있는지 너무나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들으니 새로운 기운이 약동하는 듯한 희망찬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불안해 하고만 있는 우리들의 앞길에 대해 이렇게 멋진 청사진을 그려주시는 어른이 있어 너무나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벌써 약속한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통일 대박론을 내세우면서도 아무런 진전이 없는 현 정부에 대해 어떤 태도와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물었던 마지막 질문에 대해 답하면서 지금 통일을 위해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갖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우리는 주권자입니다. 우리는 국가의 이익과 발전,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했기 때문에 그렇게 선출된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행해야 해요. 만약 대통령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가 임명해야 합니다. 회사에 위기가 닥치면 주주들이 모여 주주총회를 열고 CEO를 새로 뽑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대주주는 사람 수는 적지만 표를 많이 가지고 있는 데 반해, 소액주주는 힘을 많이 모아야 해요.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거나 언론을 장악한 사람들은 몇 십만 표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아요.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으니 우리가 각성해서 다음 선거에는 반드시 국가의 목표를 평화와 통일에 두고 국가의 비전을 만들어갈 지도자를 뽑아야 합니다. 그렇게 투표의 기준을 세워야 해요.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해 공장을 세운다’ 이런 공약에는 그만 현혹되고요.nbspnbspnbsp‘사실상 통일에 준하도록 해서 북한 개발을 하면 우리는 최소한 5 이상의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라고 말하면 진짜지만, 무턱대고 그냥 경제 발전시키겠다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피땀 흘려 이뤄온 발전,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안전수칙이 평화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평화를 기초로 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는 비전을 가지려면 통일이 있어야 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nbspnbsp우리의 공동체인 국가는 발전계획이 있어야 하고 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은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국가는 발전했을지 몰라도 국민은 행복하지 않아요. 아까 국민 행복도가 세계 117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국가운영체계가 마련돼야 합니다. 그런 쪽으로 여러분이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nbspnbsp의병은 반군이 아닙니다. 반군은 정부군과 싸우지만, 의병은 정부군과 손잡아서 외세와 싸우는 거예요. 국가의 목표인 평화와 통일을 해나가는데 정부만으로는 힘이 미약하니까 우리가 밀어줘서 그 목표를 이루자는 의미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해나간다면 대한민국에게 새로운 희망, 비전이 있지 않겠는가 합니다.nbsp그러니 여기서 이념이나 지역, 종교 같은 논쟁은 이제 좀 빼면 어떨까 해요. 국가 전체의 목표를 설계하려면 과거를 떠나 다 같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정치 민주화를 이룬 사람들도, 경제 산업화를 이룬 사람들도 모두 힘을 모아야 해요. ‘저 사람들은 친일 후손이다’, ‘저 사람은 빨갱이 후손이다’ 이런 말 너무 하지 마세요. 그 사람도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의해서 해야지, 자꾸 과거 따지고 연좌제 따지지 마세요. 과거가 어땠든 지금 그가 이 평화와 통일 대의에 동의한다면 그 누구도 함께할 수가 있다는 관점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지도자를 우리가 뽑아줘야 해요. 그게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합니다. 그런 관점을 갖고 평가를 하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다음 대선까지는 아직 2년이 남았습니다. 현 정부가 남은 2년 동안 통일을 위해 일하도록 강력한 지원과 압력을 넣고, 현 정부가 그걸 못 하면 다음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정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nbsp스님의 간곡한 호소는 언제 들어도 새롭게 들리고, 정신도 번쩍 차릴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정부 정책이 정말로 통일지향적이 되도록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정부는 반드시 통일지향적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다함께 손에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스님의 말씀 중에 와닿는 것이 너무 많았던지 오늘따라 가사가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nbsp▲ 함께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nbsp강연이 끝나고 나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길게 늘어선 줄이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 건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고, 스님도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환한 웃음으로 강연장을 찾아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몇몇 분들에게 오늘 강연을 들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한 분은 “오늘 스님 말씀 중에 이제는 성장이 한계에 다달았다, 통일만이 유일하게 남은 길이라는 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며 강연 내용 전반에 대해 아주 만족해 했습니다. 또 한 분은 “내일 스님의 하루에 오늘 강연 소식이 올라가면 주변 친구들에게 열심히 전달을 할 것이다” 라며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nbspnbsp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가운데서도 통일의병들은 ‘통일시민학교’ 참가자 모집 에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들고 열정적으로 홍보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오늘 강연을 계기로 관악구에서도 많은 통일의병들이 탄생해서 통일을 위한 작은 초석이 되어주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 통일시민학교에 접수 신청을 하고 있는 시민들nbsp오늘은 올해 마지막 통일 강연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이 모두 돌아가고 텅빈 강연장에 다시 통일의병들이 모두 모여 조촐하게 쫑파티를 가졌습니다.nbspnbsp강연장의 불을 끄고 어둡게 한 상태에서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이 들어오자 통일의병들은 모두 핸드폰 불빛을 비추며 두 분을 반겼습니다.nbspnbsp▲ 2015년 통일이야기 20회 순회 강연을 마무리하는 쫑파티nbsp‘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부르는 동안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이 무대 위로 올라왔고, 이어서 지난 전국 순회 20회 강연 모습이 담긴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니 보이지않는 곳곳에서 수고해 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다시 한 번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nbspnbsp▲ 20회 강연을 돌아보는 영상 상영nbsp곧이어 통일의병들은 전국을 다니며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내년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더 많은 곳을 종횡무진 다니시라고 운동화를 선물했습니다.nbspnbsp▲ 스님에게 선물을 건네는 통일의병nbsp선물을 받고 나서 스님은 수고한 통일의병들에게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올 한해 20회 강연을 준비하느라 수고들 많이 하셨어요.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힘들다고 하더니 20회를 진행해 보고 나니 이력이 좀 생겼죠? 오늘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왔네요. 내년 일정을 잡아보니까 상반기에 9회, 하반기에 9회, 총 18회 강연 일정이 나와요.nbspnbspnbsp어떤 일이든 처음에 굴릴 때가 어려워요. 왔다갔다 할 때는 미는 게 무척 힘이 드는데, 한번 굴러가기 시작하면 잘 굴러가요. 아직은 저절로 굴러가는 수준까지는 안 된 것 같아요. 아직 좀 더 밀어야하지 않나 싶은데, 이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개인적인 다른 일들이 장애가 되더라도 이 일에 조금 더 정열을 바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독립운동을 하거나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수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직장 생활하면서 이 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요. 그러나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세상이 변하지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서는 변하지 않잖아요.nbspnbspnbsp극단적인 사람들의 장점은 행동한다는 겁니다. 죽기 살기로 싸우든지, 인터넷에 댓글 다는데 목을 매든지, 데모를 하든지 하는데, 합리적인 사람들은 사람만 신사이지 행동을 잘 안하니까 역사를 바꾸는데 큰 도움이 안 돼요. 그러니 우리는 행동하는 신사가 되어야 합니다. 행동하는 중도, 행동하는 합리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행동할 수 있어야 시민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민에 불과한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은 행동하는 시민이 되기를 바랍니다.”nbspnbsp행동하는 시민이 되어달라는 당부 말씀에 모두들 힘찬 박수로 결의를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통일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봉고차 한 대에 짐을 싣고 유랑극단처럼 전국을 누비고 다닌 ‘즉통팀’의 소감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짧은 한마디 속에 그동안 수고로움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nbspnbsp▲ 20회 강연을 하는 동안 봉고차 한 대에 짐을 싣고 전국을 누빈 즉통팀 nbspnbsp“통일을 알리는 일에 미력하나마 보탬이 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합니다. 우리가 뿌린 이 씨앗을 잘 가꾸어서 풍성한 결실을 맺도록 내년에도 열심히 하겠습니다.”nbsp“평생 못해본 현수막 아줌마, 전단지 아줌마도 해보면서 덕분에 세상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nbsp“처음에는 얼떨결에 시작했는데 어느새 제 가슴 속에 통일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새겨졌습니다.”“정말 재미있었어요. 내년에도 스타렉스에 몸을 맡기고 전국을 누비고 싶습니다.”nbspnbsp특별히 고생한 ‘즉통팀’을 위해 모두들 더 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스님도 소감 한 마디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하면서 박수를 쳐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숫자 ‘20’ 이 꽂혀 있는 케익이 무대 가운데에 자리했습니다. ‘20’은 올 한해 진행된 통일 강연 20회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박수와 함성 속에서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이 함께 ‘후’하고 촛불을 끈 후 케익 컷팅을 했습니다.nbspnbsp▲ 20회 강연 마치며 기념 케익을 자르는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nbsp이어서 통일의병 노래팀인 ‘학수고대’가 20회 강연을 원만히 마친 것을 기념하여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노래를 열창해 주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노래팀 학수고대의 축하 공연nbsp“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nbsp기타 반주에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불러주며 그동안 수고했던 서로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언젠가 학수고대가 노래를 잘 하면 통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스님께 노래를 들은 소감을 여쭈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통일이 다 되어 간다” 라고 말해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서로 웃으며 쫑파티를 마무리한 후 다함께 오늘의 역사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통일의병들은 글자 하나씩을 들고 “통일이야기 20강 완수. 의병아 통일 해버리자” 는 문장을 만든 후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통일 의병”을 외쳤습니다.nbspnbspnbsp우렁찬 목소리를 들으니 내년에는 정말 통일로 성큼 다가서게 해줄 기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포크로 케익을 서로 먹여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며 스님은 강연장을 나왔습니다.nbspnbsp스님은 관악구청을 나와 서울 정토회관에 밤 10시가 넘어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4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울산 두북에 들렀다가 오후 3시 30분에 영남대병원에서 초청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진주교대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08. 59,213 읽음 댓글 47개

2015.12.1 (저녁) 서초구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스님은 오전에 춘천 KBS홀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 저녁 7시부터는 서초구민회관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nbspnbsp손님과의 미팅을 마친 후 평화재단을 출발한 스님은 저녁 6시 50분 즈음에 서초구민회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오늘은 12월의 첫날인데요. 서울은 겨울 날씨답지 않게 하루 종일 맑고 온화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평일 저녁인데도 올해 남은 마지막 한 달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강연 시작 한참 전부터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즉문즉설 강연장을 찾았습니다.nbspnbspnbspnbsp그중에서 올해 환갑이 되었다는 수원에 사는 조명자 님은 기독교 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강연 시간보다 무려 2시간이나 일찍 강연장에 도착했는데 그 이유를 묻자 “지난번 강연 때 조금 늦게 왔더니 좌석이 없어 강연 시간 내내 통로에 쭈그리고 앉아 강연을 들어야 했어요. 그 이후로는 미리 강연장을 찾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내 종교와 달라도 스님 법문이 성경과 다 일맥상통하니 앞으로도 수도권에서 강연이 있으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참석하고 싶어요.”라며 의욕을 보였습니다.nbspnbsp또 엄마와 함께 강연장을 찾은 초등학교 6학년 남자 어린이에게 어떻게 강연장에 오게 되었는지 묻자 아주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오늘 저녁에 햄버거를 사준다고 했어요. 그래서 함께 왔어요. 그래도 혹시 스님에게 질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계기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옆에 있던 아이 엄마의 손에는 아이와 약속한 대로 햄버거 세트가 들려 있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지금 사춘기 남자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평소 문제 극복을 위해 팟캐스트를 찾아서 듣다가 오늘 난생 처음으로 강연장을 찾았어요. 아직 낯선 사람들 앞에서 질문을 할 정도로 용기가 생기지는 않지만 다른 질문자들의 답변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답을 얻어가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nbspnbsp또 어떤 여성분들 대여섯 명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 ‘센스쟁이. 스님’, ‘최고예요. 왕짱’이라는 푯말을 계속 들고 있으면서 열정적인 팬임을 드러내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찾는 이유야 각자의 인생만큼 천차만별이고 다를 수 있겠지만 괴로움에서 벗어나 온전히 행복해지고 싶다는 그 마음만큼은 똑같지 않을까 싶었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약 2시간에 걸쳐 서초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있었습니다. 좌석은 총 800석인데요. 저녁 6시 50분경이 되자 강연을 위해 준비한 자리가 모두 차서 조금 늦게 강연장을 찾은 분들은 아쉽게도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동안은 통로에 보조의자를 놓거나 때로는 무대 위에 자리를 잡고 강연을 듣기도 했지만 오늘은 시설관리팀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정원수 만큼만 입장할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nbspnbsp▲ 서초구민회관nbsp저녁 7시가 되자 스님이 강연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이에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nbspnbspnbsp“여기 강연장 안에 있는 사람보다 조금 늦게 온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이 못 들어오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무대 위에도 앉고 그랬는데 안전이 제일 중요해서 정원만 받았으니 깊이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분들은 집에 가셔서 유튜브를 보시면 됩니다. 즉문즉설 어떻게 하는지 잘 알죠? 거두절미하고 시작하죠. 질문 신청하신 분 누굽니까? 손 번쩍 드세요.”nbsp스님의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자 곧바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첫 번째 질문자는 큰 아이가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하고 모의고사에서도 성적이 좋은데 큰 시험만 보면 망쳐서 삼수를 하고 있다며 자책감이 들고 두려울 때가 있는데 엄마로서 어떤 자세를 가지고 기도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 그리고 아내를 둔 가장으로서 주말부부를 하면서 토요일에는 파킨슨병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고, 일요일 단 하루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가족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점차 없어지는 것 같아 걱정된다며 과연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을 방법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세 번째 질문자는 결혼한 지 30년이 되었는데 술만 마시면 시작되는 폭언과 행패, 그리고 처갓집 식구를 무시하는 남편 때문에 가출했는데 최근 들어 용서를 구하는 남편 말을 믿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깨끗이 포기하고 이혼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물었습니다.nbspnbspnbsp네 번째 질문자는 평소 중요한 시험이 있을 때마다 시험불안증이 있어서 시험을 망치곤 했는데 앞으로 시험 공포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다섯 번째 질문자는 어린 시절부터 일방적으로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며 살아야 했고, 간암이 발병한 지 3년 만에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집안 경제를 책임지다가 도망치듯이 한 결혼에 실패한 후 최근에 재혼할 사람이 생겼는데, 언니가 자기 아이를 돌봐달라고 한다며 이제라도 이기적인 언니와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여섯 번째 질문자는 결혼 초 남편이 외도를 하면서 자신에게 이혼을 요구했는데 억울한 마음에 12년 동안 거부해오다가 5년 전부터 반대로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말하는데 지금은 남편이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양육비를 본인이 전적으로 책임지고서라도 이혼을 감행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물었습니다.nbsp오늘은 그중에서 세 번째 질문자의 질문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nbspnbsp“결혼한 지 30년 동안 남편과 싸워도 대문 밖을 나간 적이 없는데, 어제로 집을 나온 지 100일째 됐습니다. 남편이 술을 좋아하는데 마시면 자기도 기억을 못하는 악담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는 좋은 부모 밑에서 집안 교육을 잘 받았는데 저는 안 그렇다면서 ‘독한 년’이라고 불러요. 또 본인은 좋은 소리라고 하지만 반복하면 듣는 입장에서는 잔소리가 되잖아요. 남편은 술을 먹으면 기본으로 3시간은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들이 다 커서 29살, 25살, 21살이 된 지금까지도 불러서 앉혀놓고 잔소리를 합니다. 저와 싸우면 저녁에만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다음날 아침까지 마시면서 잔소리를 해요. 항상 ‘네가 뭘 알겠느냐’는 식으로 무시하는 말을 하고요.nbspnbsp남편이 갈수록 심해지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친정집 식구들, 돌아가신 지 40년이 된 친정아버지까지 들먹이는 걸 보면서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봐라. 노래방 아니면 네가 갈 데가 어디 있겠냐. 먹고 살 길이 없어서 며칠 안에 돌아올 텐데 나가서 뭐 하냐?’라고 늘 무시하는 것도 화가 났어요. 더 참을 수 없어서 남편이 자는 사이 몰래 가방을 싸서 집을 나오자마자 전화기도 꺼버렸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제가 집을 나온 지 3일 만에 옷이나 이불 등 제 물건을 모조리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내다버렸대요. 그 이야기를 아이들을 통해서 듣고 나니 ‘아, 이제는 내가 진짜 결심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서울의 큰딸 집에 와 있어요. 남편은 저를 죽인다고 하면서도 큰딸 성격이 자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아직 직접 찾아오지는 않았습니다.nbspnbsp집을 나온 뒤 취직해서 바쁘게 일을 하니까 마음도 좀 놓이고 잊혀졌나 싶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성인이긴 하지만 걱정됩니다. 남편도 딸 몰래 두 번이나 저를 출근길에 만나러 와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빌어요. 제가 남편 일을 도왔는데 남편도 취하지 않았을 때는 제가 고생하는 줄 알고 인정해줬거든요. 친정어머니는 ‘혼자 사는 것보다는 같이 사는 게 낫다. 술 안 마실 때는 괜찮은 사람이니까 한번 생각을 해 보라’고 하시는데, 동생이나 다른 사람들은 제가 돌아간다면 다시는 절 보지 않겠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아빠를 버리라’고 하더니 이제는 한 번쯤 용서해 주라고 하고, 남편은 자기가 또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면 당신이 집을 나가도 더는 찾지 않을 테니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합니다. 그런 소리를 듣고 살면서도 돌아갈 궁리를 하니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갈등이 심합니다.”nbsp“그런 사람이 뭐가 좋아서 30년을 살았어요? 나빴던 것은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좋았던 것을 이야기해 보세요.”nbspnbsp“그 사람이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10년 전에 시동생이 죽고 난 뒤부터 시동생이 술 먹었을 때 하는 행동을 남편이 똑같이 하기 시작했어요. 점을 보니 ‘동생 귀신이 씌었다고 하기에 제가 시동생을 위해 천도재도 지냈습니다. 그런데 잠시 좋아졌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똑같아졌어요. 무당 말을 안 믿으려고 해도, 술만 마시면 죽은 시동생과 똑같은 행동을 해요.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nbspnbsp“남편이 옛날에는 안 그랬던 게 아닙니다. 시아버지는 어때요?”nbsp“시아버지가 젊었을 때는 이렇게까지는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nbsp“어머니는 살아 계세요?”nbspnbsp“예.”nbsp“남편이 어릴 때 시아버지나 시어머니가 어땠는지 들어봤어요?”nbsp“시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나서 이런 식으로 잔소리를 하면 시어머니는 좀 피해 있곤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가 나간다면 대문을 걸어 잠글 정도예요. 그리고 제가 좋아서 남편과 결혼을 했으니까, 저는 집을 나가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해봤습니다.”nbspnbsp“시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이나 시동생의 속에도 그런 씨앗이 형성이 되어는 있었어요. 시동생이 먼저 발현됐고 시동생이 죽으니까 남편 안에 있던 것도 발현이 된 것이지, 없던 게 생긴 건 아닙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남편이 좋았던 점은 뭐예요?”nbsp“성실합니다. 일단은 일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nbspnbsp“그래서 돈은 잘 벌었겠네요?”nbsp“잘 번 건 아닌데요.” nbspnbsp“어쨌든 먹고 살만큼은 벌었잖아요?”nbsp“예.”nbsp“어쨌든 아내가 번 것으로 먹고 산 게 아니고, 같이 하긴 했지만 남편이 벌어서 식구들을 먹여 살렸네요. 또 뭐가 좋았어요? 애를 셋이나 낳을 정도면 금슬은 좋았나 봐요.”nbsp“예, 좋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술을 안 먹었을 때는 엄청 자상하고 가정적입니다.”nbspnbsp“그러니까 그런 좋은 점이 있기 때문에 술만 안 마시면 좋겠죠? 이제는 안 마시겠다고 하니까 한 번만 믿어볼까 하고 솔깃한 거잖아요.”nbsp“예.”nbsp“그런데 질문자가 집에 들어가면 남편이 술을 마실까요, 안 마실까요?”nbsp“한동안은 안 마셔도 나중에는 마시겠지요.”nbsp“남편이 나중에라도 술을 마시면 그 증상이 이전과 똑같이 나타날까요, 안 나타날까요?”nbsp“안 나타날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집을 나온 지 100일이나 되니까 남편이 엄청 겁을 먹었거든요.”nbsp“아이고, 저렇게 순진해서 어떻게 해요. 질문자가 집에 들어가면 남편은 전과 똑같이 술을 마시고 똑같은 주정을 할 가능성이 99.9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예전처럼은 안 할 거다’라는 걸 전제하고 집에 들어가지 마세요. 그렇게 전제하고 들어가면 또 집을 나와야 돼요. 그러니까 ‘예전처럼 하더라도 들어가자’ 이런 마음이 들면 들어가세요.”nbspnbsp“큰딸은 ‘아빠는 죽을 때까지 안 바뀐다’면서 저를 못 들어가게 합니다.”nbsp“딸이든 엄마든 다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듣지 마세요. 남편은 어릴 때 억압심리가 생겼기 때문에 술을 먹고 취했을 때 의식은 없어지고 무의식이 작동해서 어린 시절의 억압된 심리가 튀어나오는 거예요. 누구든 붙들고 욕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건 정신질환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고쳐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남편이 안 취했을 때는 ‘내가 고치겠다’고 결심하지만 술에 취하면 그게 안 되잖아요. 남편이 나빠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에요. 어릴 때 심리가 억압되었기 때문에 술을 먹으면 자동으로 그렇게 나오게 돼 있는 거예요. 그러니 남편을 미워할 필요도 없습니다.nbspnbsp그래도 질문자가 남편과 살겠다면 남편에게 술을 먹지 말라든지 주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더 심해집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술을 마시고 욕을 하면 ‘그래,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아이고, 내가 이렇게 못난이인데 당신 입장에서 우리 부모님이 뭐가 좋겠어? 그래, 그래’ 이렇게 등을 두드려줘야 합니다. 남편의 주정은 일종의 질환이기 때문에 그 주정하는 말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nbspnbsp“제가 그리 했기 때문에 여태까지 살아온 거예요. 남이 부끄러워서라도 그렇게 했어요.”nbsp“그건 참아온 거잖아요. 남편 속의 작은 아이를 내 아들처럼 불쌍하게 여기란 말이에요. 남편이 아버지가 주정하고 엄마가 악쓰는 가운데 자라서 술만 먹으면 어릴 때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때 억압된 심리로 이렇게 주정을 하는 거니까 질문자는 남편을 보면서 ‘너무 너무 불쌍하다’ 이런 마음을 내세요. 남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들을 달래듯 하세요. 질문자의 아들도 이제 또 그렇게 됩니다.”nbsp“그게 걱정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술을 먹으면 그냥 재우기 위해서 제가 항상 다독거려줬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제가 그렇게 한 게 잘못이다 싶어요. 오히려 처음에 확 잡았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것 같아요.”nbsp“확 잡으려 들다가 잘못하면 칼 맞아 죽어요. 질문자가 그렇게 남편을 다독거려줬는데도 효과가 안 나는 것은 참고 했기 때문입니다. 참고 한 것은 성내는 것보다 결과가 더 못합니다. 진짜 불쌍하게 여겨야 됩니다. 남편이 주정하는 게 괘씸하지 않고 너무너무 불쌍해야 됩니다. 질문자의 아들이 그러고 있다면 며느리는 아들과 싸우겠지만 질문자는 아들이 너무너무 불쌍해서 ‘아이고, 저게 제 아버지 닮아서 저렇구나. 내가 악을 써서 저렇구나. 쯧쯧’ 이럴 거 아니에요? 이렇게 아들 보듯이 해야 됩니다. 남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요. 그렇게 등 두드리면서 살려면 집에 들어가도 됩니다. 전제조건은 붙이지 마세요.nbsp그런데 질문자가 ‘내가 이 나이에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 이유가 뭐가 있나? 지금까지 산 것만 해도 다행이고 아이들도 모두 20살이 넘었으니까, 나는 어디 가서 파출부 하면서 살더라도 편안하게 내 인생 살겠다’라고 생각한다면 아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남편이 한 번만 오라고 해도 ‘네, 알았어요. 좀 더 있다가 갈게요’ 이렇게 말하고 안 가면 됩니다. 안 간다고 버티면서 다툴 필요도 없고, 약속 지키네 마네 하는 이야기도 할 필요 없어요. 그냥 ‘조금 더 따로 살아봅시다. 나도 너무 힘들었어요, 여보. 내가 조금 더 살아보고 들어갈 테니 먼저 가세요’ 이러고 그냥 살면 됩니다. 어느 걸 선택할래요? 집에 들어가고 싶으니까 저한테 물었겠지요? 스님한테 ‘가거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여기 온 건데, 저는 그 말을 해 주기가 싫어요. nbspnbspnbsp질문자는 우선 남편은 전과 똑같이 행패를 부릴 거라는 사실을 아셔야 해요. 똑같다는 걸 전제하고, 질문자가 택할 수 있는 길이 두 가지 있습니다. ‘전에는 남편의 주정 때문에 힘들어했지만 이제는 불쌍한 아들로 여기고 다독이며 살겠다. 진짜 관세음보살 같은 마음을 내서 불쌍하게 여기겠다.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술만 마시면 악을 쓸까? 아이고, 저 한을 내가 풀어줘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매일 ‘우리 남편한테 내가 관세음보살이 되겠습니다’라고 절하면서 진짜 남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들어가려면 들어가도 됩니다.nbspnbsp그렇지 않고 ‘내가 이 정도 했으니 남편이 이제 정신 차리지 않겠냐?’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안 그렇습니다. 질문자가 집에 들어가면 남편은 더 보복을 할 거예요. 술을 안 마실 때는 괜찮겠지만 술을 마시면 ‘네가 나를 두고 도망을 가? 한 번 더 가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린다.’ 이렇게 나올 겁니다. 남편이 질문자를 찾아갔을 때는 술을 안 마셨으니까 그렇죠. 사람이 똥 누러 갈 때 마음과 똥 누고 온 마음이 달라요. 결혼할 때 그렇게 사랑한다고 해놓고 막상 결혼하니까 딴 짓하는 걸 이미 경험해 놓고 뭘 또 물어요? ‘내가 더 튕기면 남편이 고쳐질 거다’ 이런 생각도 하면 안 됩니다.nbspnbsp어떻게 할래요? 딱 그대로 수용하고 들어가든지, 그냥 끝내든지요. 아이들 모두 20살 넘을 때까지 키웠으니까 이제 남편과 안 살아도 도덕적, 윤리적, 법률적으로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그렇게 마음 졸여가면서 살 필요가 뭐가 있어요? 다 행복하려고 태어났는데 질문자도 행복하게 살아야지요. 그러니 질문자가 자기 인생을 딱 결정하세요. 그 남자가 술 먹고 행패 부려서가 아니라 ‘나도 이제는 내 인생을 살겠다.’ 이렇게 결정하면 돼요. 딸이나 엄마가 뭐라 그러든 남의 말을 들을 필요 없습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아가면 됩니다. 남편이 와서 빌면 ‘알겠어요. 먼저 내려가세요. 내가 혼자 좀 더 살아보고 내려갈게요.’ 이렇게 좋게 이야기해 주세요. ‘난 안 간다. 너하고는 다시는 안 산다.’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내일 가겠다.’ 이런 말도 할 필요가 없고요.”nbsp“어제 남편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마지막 기회를 한 번만 달라.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당신이 나가도 다시는 안 찾겠다’라고 했는데요.” nbspnbsp“그런 말은 믿지 말라니까요. 질문자가 경험을 해봤잖아요. 술 안 마셨을 때 했던 말은 술 마시면 달라진다니까요. 그 말을 믿고는 가지 말라는 겁니다.”nbsp“예, 잘 알겠습니다.”nbsp“가고 싶으면 그냥 가세요.” nbspnbsp“감사합니다.”nbsp“연세가 몇이에요?”nbsp“51살입니다.”nbspnbsp“아이고, 아직 남자가 필요할 나이네요. 이해는 되는데, 남편이 술을 안 마시거나 다시는 주정 안 할 거라고 생각하고 가지는 마세요. 병이기 때문에 못 고쳐요. 앞으로 남편이 어떤 행동을 해도 ‘이건 병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크게 힘이 안 들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두 다리가 부러져서 똥, 오줌 받아내는 것보다는 그래도 잔소리 좀 듣고 사는 게 낫다’는 마음으로 ‘아이고, 여보, 그랬구나. 그래, 그래, 당신 말이 맞다.’ 이렇게 등 두드려주며 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고칠 거라는 전제하에 들어가려면 가지 말라는 거예요.nbspnbspnbsp들어가고는 싶지만 못 들어가고 있었는데 마침 남편이 빌러오니까 그걸 빌미로 들어가려고요?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들어가려면 그런 말 믿지 말고 그냥 들어가세요. 남편은 옛날 모습 그대로입니다. 대신에 질문자가 바뀌어야 해요. 남편은 그대로지만 ‘내가 옛날엔 악쓰고 살았지만 이제는 악쓰고 살지는 않겠다. 주정은 병이다. 다른 병 수발하는 것보다는 그 병 수발하는 게 낫다.’ 이렇게 생각하면 괜찮습니다.”nbsp스님의 반복되는 설명 끝에 그제서야 질문자도 수긍이 갔는지 넙죽 감사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은 질문자를 위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질문자들이 모두 연이어서 스님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해서 스님의 답변도 많이 길어졌는데 이 모습을 본 몇몇 청중들은 “이제 그만해” 하며 답답한 마음을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질문자도 얼마나 답답하면 그러겠냐며 그 마음을 대신 헤아려주며 청중들을 진정시켜 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이 보시기에는 답답할지 몰라도 듣는 우리가 더 답답하겠어요, 질문하는 분이 더 답답하겠어요? 질문하는 분은 더 답답해요. 여러분들은 제3자 입장에서 들으니까 서너번만 들으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는데 자기 문제가 되면 제 얘기가 귀에 안 들려요. 본인도 길게 얘기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러겠어요. 그러니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계속 얘기해도 괜찮아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좋은 게 아니잖아요. 한 사람이라도 답답한 사람의 마음을 해결해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듣는 여러분들은 귀찮을 수 있지만 즉문즉설은 단 한 명을 위해서도 1시간, 2시간을 할 수 있는 겁니다.” nbspnbspnbsp한 사람의 고민이라도 제대로 해결해주고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스님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고, 닫는 말씀을 하면서도 스님은 우리가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지 이야기해주었습니다.nbspnbsp“재미있었어요?”nbsp“네.”nbsp“질문하신 분들은 참 고마운 분들이에요. 사실 자기 이야기 꺼내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 꺼낸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 이야기하고 비슷한 것도 있어요. 나를 대신해서 질문해 준 셈입니다. 그러니 좋은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주신 6명의 질문자들께 큰 박수 한 번 주세요. 저도 감사드립니다.nbspnbspnbsp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얼굴이 검든 희든, 노인이든 청년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종교가 뭐든,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든 학대를 받았든,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이혼해서, 애가 있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이런 핑계를 자꾸 대면서 ‘나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건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겁니다. 이미 지나간 옛날 기억에 사로잡히거나 오지도 않은 미래의 상상에 사로잡혀 꿈속을 헤매면서 괴로워하는 거예요. 그런 과정을 겪고도 지금 안 죽고 살았잖아요. 지금 살아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지만 사는 동안에는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자기 괴로움을 자꾸 합리화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자꾸 이유를 대는 건 ‘나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예요. ‘애가 시험에 떨어져서 괴롭다’, ‘남편이 술을 마셔서 괴롭다.’ 다 이해는 됩니다. 그건 결국 자기가 괴롭고 싶다는 소리일 뿐이에요. 얼마나 괴롭고 싶으면 온갖 이유를 다 갖다 대면서 괴롭다고 그렇게 주장하겠어요? 그러니 그런 핑계 대지 말고 ‘지금부터 나는 행복할 수가 있다’는 걸 아세요. 그걸 두고 부처님은 ‘모든 중생은 다 부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라는 말은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괴로워해서 되겠어요? 그러니까 자꾸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괴로워하지 마세요. 우리는 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걸 아시고 모두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자기 권리를 포기하지 마세요. 행복할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nbsp“감사합니다.” nbspnbsp오늘도 6명의 질문자가 우리를 대신해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고 간절하게 답을 구했으며 그 덕분에 우리 또한 인생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오늘 즉문즉설 강연은 서초 정토법당 봄불교대학과 봄경전반, 그리고 가을불교대학과 가을경전반 80여 명이 주축이 되어 진행되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서 봉사자들은 곧바로 팀별로 흩어져 마음나누기를 했습니다.nbspnbsp▲ 강연을 마치고 마음나누기를 하고 있는 봉사자들nbsp그중 봄경전반 소속 박경래 님은 오늘 오후 강연장 물품 나르는 봉사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반가를 내고 일찌감치 강연장으로 달려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동안 스님의 하루에 올라온 글을 스마트폰으로 쉽게 읽으면서도 거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숨어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직접 강연장에 나와 보고서야 법륜 스님은 물론이고, 참으로 많은 봉사자들의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의 동참이 또 다른 분들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nbsp이어서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길게 줄을 서서 스님의 사인을 기다리는 청중들의 얼굴에는 가볍고 행복한 표정이 가득했습니다. 스님은 강연장을 찾아와 준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간혹 어린이들이 보일 때면 “안 지루했어? 엄마가 억지로 데려와서 힘들었겠구나” 하면서 그 마음을 헤아려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정토회 서울제주 지부에서 주관한 올해 마지막 강연이기에 종강연 기념 행사를 조촐하게 가지려고 했으나 서초구청 측에서 공간 사용을 허락지 않아 그냥 마쳐야 했습니다. 봉사자들은 아쉬움을 달래며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오늘 하루 종일 강연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던 봉사자들은 스님과의 사진 한 장으로 그 노곤함이 모두 녹아나는가 봅니다. 모두들 얼굴에 환한 웃음이 가득했습니다.nbspnbspnbsp봉사자들을 격려한 후 서초구민회관을 나온 스님은 밤 10시가 다 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하루 종일 집무실에서 새책 원고 집필 작업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성남시 수정청소년 수련관에서 성남 시민들을 위해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03. 96,135 읽음 댓글 55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