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관악지회
내 마음의 보석

지난 십 년 간 리포터 소임을 했습니다. 2차 만일결사에 들어 희망리포터와 편집자가 함께 기사를 만들어가는 모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맞은 첫 인터뷰, 그 주인공은 사무처 지원국 지원국장 이은정 님입니다. 소임의 무게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터뷰 일정을 잡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평일 늦은 저녁에야 겨우 시간을 잡고 새내기 희망리포터 두 명이 참관하는 가운데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작은 소임 하나도 감당하기 힘들 텐데 굵직한 소임을 어떤 마음으로 소화해 내고 있는지 들어보겠습니다.

2017년 한반도 평화대회 때 딸과 함께(왼쪽 이은정 님)
▲ 2017년 한반도 평화대회 때 딸과 함께(왼쪽 이은정 님)

내 삶의 대반전

저는 1남 3녀의 막내입니다. 언니 두 명이 먼저 정토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깨달음의 장1>을 갔다 왔습니다. 언니들이 속닥속닥 <깨달음의 장>에서의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궁금하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해 뒤를 이어 신청했습니다. 남편이 하는 사업도 어려울 때였습니다. 언니들의 권유 덕에 힘들 수 있었던 그 시기를 부처님 법문을 접하며 큰 부부싸움 없이 지나 올 수 있었습니다.

서초법당에서 스님의 영상법문을 접하는데 장님이 눈을 뜬 듯 했습니다. 반박할 수 없는 이치를 근거로 해답을 정확히 내어 주는 법문을 들으며, 평생 스승으로 모셔야겠다는 울림이 왔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정토회가 사회적 실천 활동에 적극적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배우고 활동하며 제가 주인이 된다는 의식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14년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 2014년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제가 대학 다닐 무렵엔 학생운동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분노하고, 반대하고, 울분을 토하며 그것을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후배들에게 한국 근현대사를 가르치면서 분노를 불러 일으켜 사회의 부조리를 깨닫게 했다면 부처님 법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먼저 행복하고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나누고 실천한다는 것이 달랐습니다. 실천 활동 자체가 너무 너무 좋았습니다. 하면 할수록 긍정의 에너지가 생기고 그런 것들이 이전까지 살았던 방법과 전혀 달랐습니다.

정토회에 왔을 당시 저는 논술 강사였습니다. 차츰차츰 정토회 활동 비중을 늘리다가 2020년 서초정토회 총무로 선출되면서 정토회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지금은 남편에게 용돈을 타서 쓰고 있지만 씀씀이가 많았던 지난날보다 마음이 더 가볍고 행복합니다. 씀씀이의 규모를 줄이니 자동적으로 검소한 삶으로 이어지고 정토회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의 자세로 바뀔 수 있어 더더욱 좋습니다.

원망을 이해로 바꾸다

제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다쳐 경제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을 키우느라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어찌 보면 어긋날 수도 있었던 사춘기 시절을 잘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언니들 덕분입니다. 어머니는 아픈 아버지 대신 경제 활동을 했기에 짜증을 자주 냈고 화풀이를 우리들에게도 많이 했습니다.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느 순간 저도 짜증을 많이 냈습니다.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 어머니가 미웠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가 전화만 해도 짜증내고 원망하고 화풀이를 했습니다. 더구나 남편 사업이 힘들어져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니 어머니를 미워하는 감정의 골이 더 깊어갔습니다. 일부러 어머니 전화를 피하려고 안 받았습니다.

2017년 불교대 팀장할 때 입학식 사회
▲ 2017년 불교대 팀장할 때 입학식 사회

108배를 하면서부터 어머니의 모든 것들이 조금씩 이해가 됐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족쇄 하나가 풀린 것처럼 너무나 자유롭고 편안했습니다. 남편과 이혼하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어머니 때문에 이혼을 못했습니다. 스트레스가 많았고 미움이 컸었는데 어머니를 이해하고부터는 이혼할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그만큼 어머니에게 가졌던 짐 같은 미움이 풀리니 무엇이든 가볍게 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전화를 해도 편하고 여행도 다니고 너무나 잘 지냈습니다.

일 년 지나 경전반에서 공부를 할 즈음, 어머니가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가셨습니다. 많이 안타깝고 슬펐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어머니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습니다. 일 년이나마 참 잘 지냈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이었습니다. 어머니와의 숙제 같은 것을 풀어내니 정토회에 대한 고마움과 인연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고, 앞으론 살면서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업식

수행하면서 제 업식을 알아가는 것이 재밌습니다. 요즘 많이 느끼는 건데, 부딪히는 상황이 오면 일부러 회피하려는 업식이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대부분 직접 해버리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해 원만하게 넘어가려 합니다. 소임이 적을 때는 모르겠는데 소임이 커지고 많아지니 일들이 계속 쌓입니다. 회피라는 것이 엄밀히 말하면 참는 것입니다. 그러니 수행적 관점으로는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든 셈입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 듣기를 몹시 힘들어하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피하려고만 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서로 의논하고 협의해야 해결이 되는데 회피만 하니 문제 자체는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의 수행과제는 해결하려는 노력과 회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것입니다.

2022년 1차만일 회향식 준비하면서(왼쪽에서 두 번째 이은정 님)
▲ 2022년 1차만일 회향식 준비하면서(왼쪽에서 두 번째 이은정 님)

수행을 하면서는 화를 잘 안낸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도반이 저보고 화를 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고향이 안동입니다. 단순히 경상도 말이니까 억센 말투 때문에 그렇겠거니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평범하게 이야기 했던 것도 가만히 들여다보니 화가 숨어 있었습니다. 알고 나니 변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이 '내 안의 문제'였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니 오히려 속이 시원하고 더 감사했습니다. 제가 화내는 줄도 몰랐을 때는 귀 막고, 눈 막고, 마음 닫은 고집불통이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금은 '나 스스로 화를 내고 있구나! 화가 일어나는구나!' 알아차릴 수 있어 참 다행스럽습니다.

소임을 통해 한계를 극복하다

서초법당에서 2013년에 불교대학을 입학하고 다음해에 경전대학을 다녔습니다. 2015년엔 소임을 맡고 싶어서 먼저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받은 소임이 환경팀 꼭지였는데 전국에 있는 환경상품 재고조사까지 했습니다. 이후, 저는 소임이 자주 바뀌는 편이었습니다. 통일팀에서 통일 담당을 했을 때는 새터민들 관리부터 각종 행사를 맡아 열었습니다. 이어서 불교대학팀에서 경전대학 담당을 했었고 한 달 만에 다시 불교대학 팀장 소임을 1년 동안 맡아서 하였고, 서울제주지부 자원활동팀장 소임도 2년을 맡아서 했습니다.

2020년 서초정토회 총무시절 도반들과 함께(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은정 님)
▲ 2020년 서초정토회 총무시절 도반들과 함께(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은정 님)

2020년엔 서초정토회 총무소임을 맡았는데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2021년 온라인정토회로 바뀌며 다시 지원국으로 와 법회와 실천활동 팀장에 이어 2022년 지원국장 소임을 맡아서 현재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소임을 어떻게 하게 되었냐고 물어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소임을 저보고 하라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보았을 때, 제가 잘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해 시키는 것이지 못하는 사람은 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때 큰 깨달음이 왔습니다. 소임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 겸손해서가 아니라 나를 고집하는 것이었습니다. ‘못하면 알아서 자르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오히려 편했습니다. 실제로 잘린 적도 있습니다.

2018년 문경대강당에서 서원행자수계식
▲ 2018년 문경대강당에서 서원행자수계식

저는 어떤 소임을 맡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첫 마음이 ‘하기 싫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필요한 일인가?’ 생각을 하고 필요하다고 판단이 되면 그냥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무슨 소임을 맡겨도 그냥 ‘예’하고 잘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마음 깊숙한 곳에 하기 싫음이 있습니다. 도반들은 그런 저의 심중은 모른 채 맡기면 잘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의 내면에 있는 하기 싫음은 잘 안되었을 때 오는 두려움이 원인입니다. 결과에 대한 무거운 책임은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습니다. 지금도 제 안에 잠재되어있는 업식이 아닌가 합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소임을 맡아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소임을 통해 저를 돌아볼 수 있고 저의 실상을 보기엔 더 없이 좋기 때문입니다.

정토회 오기 전에는 마음 맞거나 편한 사람들만 가려서 만났습니다. 그마저도 극소수의 지인들하고만 친분을 맺고 살았습니다. 세 시간 동안 이야기 나눈 사람을 다음 날에 만나면 얼굴조차 기억이 안 났습니다. 그 정도로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교대 팀장을 할 때는 서초법당 도반들이 몇 백 명이나 되었는데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진짜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그랬구나! 세상에 대해 눈 감고 쳐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듯이 관심이 없으면 그 어떤 소임도 할 수가 없습니다. 관심만 있다면 이름도 외울 수 있고 그 이상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23년 5월 14일, 사무처 회원의 날, 양재 시민의 숲에서(앞줄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이은정 님)
▲ 2023년 5월 14일, 사무처 회원의 날, 양재 시민의 숲에서(앞줄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이은정 님)


수행을 하면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이은정 님. 소임이 주어질 때면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수행의 내공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서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개인적인 서원은 별로 없고 우리민족이 평화통일을 이루면 좋겠고, 정토회가 우리나라 국민정서에 생활 철학으로 뿌리 내릴 수 있기를 발원한답니다. 마음이 숙여지며 업식이 많은 저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합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정토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잘 소화해 내길 응원합니다.

글_이태기 희망리포터(부산울산지부 해운대지회)
편집_이주현(부산울산지부 동래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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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갑

지원국장님급도 소임을 맡기면 싫어하는 마음부터 일어나는구나. 무엇이 나와 다른가? 그럼에도 무조건 합니다. 못해서 잘리는 것조차 개의치 않고,,,,,

2023-10-12 18:47:33

지금여기

고맙고 감사합니다~~~^^

2023-07-07 12:35:52

보현

고맙습니다

2023-06-14 07: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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