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거창법당
나의 의지처, 안녕

2018년 가을불교대학, 2019년 가을경전반을 연이어 담당하고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온라인 불교대학 돕는 이 봉사 소임을 자청한 거창법당 조성년 님, 불법이 너무 좋아 300명이 넘는 지인들에게 온라인불교대학 홍보 메시지를 보내놓고는 부끄럽고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다며 수줍은 미소를 보이는 주인공의 발그레한 볼이 유난히 예뻐 보입니다. 봄꽃같이 여리고 화사한 주인공의 삶에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는지 들어 볼까요.

21년 봄날에 활짝 핀 조성년 님
▲ 21년 봄날에 활짝 핀 조성년 님

봉급명세서와 원망

곧고 강직하지만 가난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저는 어릴 때부터 딸 역할을 하느라 어머니를 대신해 살림하다시피 했습니다. 오빠 동생이 우선인 집안 분위기에서 무슨 일이든 혼자서 판단하고 처리하고 감당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보니 자연스럽게 독립심이 강해졌습니다.

적령기가 되어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열심히 일하는 만큼 술을 좋아하고 술주정도 많이 했습니다. 남편에겐 술을 마실 만한 그만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5월에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갔는데 겨울 내복을 입고 있던 그는 결혼 전에 리비아에서 몇 년을 일했습니다. 전기기술자여서 돈을 많이 벌어 가족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귀국하고 보니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뒤늦게 잡역부로 갔던 친구는 월급도 적었고 더 짧은 기간 일했는데 그 돈으로 땅도 사고 집도 샀답니다. 5월에도 내복을 입어야 할 만큼 더운 나라에서 힘들게 일한 후유증이 남아있는데, 그가 흘린 땀 값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남편은 가족을 원망하며 술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리비아에서 받은 월급명세서를 차곡차곡 모아두고 원망 또한 버리지 않았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행사에서 조성년 님(맨 오른쪽)
▲ 부처님 오신날 행사에서 조성년 님(맨 오른쪽)

아이와 생이별을 선택하다

그러한 가운데도 아이가 태어났는데 건강하게 태어나지 않아 병원에 가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남편도 아이도 그런 상태였기에 그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야 했던 저는 너무 지쳐갔습니다. 술을 끊게 하기 위해 병원도 수십 번, 어떤 민간요법도 좋다는 것이면 무엇이든 시도해 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남편의 원망은 깊어만 갔고 술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해졌습니다. 술주정에 싫은 내색을 하는 저에게 하는 화풀이 강도도 더 심해졌습니다. 결국, 다섯 살 된 아이를 떼어놓고 집을 나왔습니다. 건강도 좋지 않은 아이를 떼어놓고 나간 만큼 열심히 일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전날 장사 마친 고깃집 철판을 닦고, 호텔 주방장이었던 형부의 도움으로 호텔 주방에서 설거지 일을 하며 투잡으로 15~17시간씩 일을 했습니다.

다시 가족으로

1년쯤 지났을 때 친정어머니가 남편이 많이 변했다고 아이 생각해서 만나보라고 권했습니다. 잊고 싶었지만 잊을 수 없는 아이의 건강이 궁금했고 애달픈 마음에 만났습니다. 아이의 건강 상태는 더 나빠져 있었고, 단추 하나가 떨어진 채로 셔츠를 입고 온 남편도 초라해 보여서 속상했습니다.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부자 만들어 줄 테니 리비아 봉급명세서 다 태우고, 과거 잊고 나 믿고 살려면 합치고 그렇지 않으면 헤어지자.” 남편은 그런다고 했고 술도 끊었다 했습니다. 남편은 그 뒤로 10여 년이 넘게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떨어져 있을 때 번 돈으로 아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9시간이 걸리는 수술이었지만 아이는 잘 견디어주었습니다. 다시 합가했을 때 남편의 재정 상태는 마이너스였습니다. 다행히 합가 후에는 하는 일이 거짓말처럼 잘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업은 번창하고 곧이어 온 IMF 사태는 남의 일이었을 정도였습니다. 저의 의지대로 잘 되었습니다. 그 당시 작은애도 태어났습니다. 무탈하게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나름 잘 살았습니다.

불교대학 담당 때 학생들과 졸업식과 졸업갈무리에서(맨 왼쪽 조성년 님)
▲ 불교대학 담당 때 학생들과 졸업식과 졸업갈무리에서(맨 왼쪽 조성년 님)

다시 술, 그리고 공황장애

작은애가 중학교 들어갈 즘부터 사람 좋고 귀가 얇은 남편은 남을 잘 믿어 이런저런 골칫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때마다 뒤처리는 제가 도맡았습니다. 사기를 당했을 땐 기사들 월급 마련, 재판 관련 일이 모두 저의 몫이었습니다. 남편이 어렵게 얻은 질서는 흐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또 술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반복되는 삶에 지쳐서 갑자기 숨을 못 쉬게 되어 병원을 갔더니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의 술 때문에 쌓이는 스트레스를 푼다는 핑계로 주말이면 산을 찾고 평일 새벽에는 배드민턴을 쳤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씩 운동하고 출근하는 게 연속이었고, 일상이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남편의 술은 여전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무렵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알게 되고 정토불교대학이라는 걸 소개받았습니다.

이해, 나를 편안케 하는 무기

불교대학에 입학해서 법문을 들을 때마다 자책이 올라와 힘든 시간이 많았습니다. 저는 나름으로 열심히 살았지만, 남편으로 인해 저의 삶이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게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나 잘 났다.’ 병에 살고 있었구나, 소중한 인연들이 저로 인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안에서 문제를 풀려 하지 않고 바깥에서 해결하려 했던 저의 어리석음이 보였습니다.

2020년 2월 운 좋게 <깨달음의 장1>에 갔습니다. 수련이 끝날 무렵 저의 마음 밑바닥에 있었던 감정 하나를 발견하고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난 하지만 흐트러진 모습 한번 보이지 않았던 부모님처럼, 남편도 가장으로서 아이들에게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있었습니다. 남편도 가장이 아닌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지만 저는 가장이라는 틀에 가두고 부담을 주었습니다. 그를 온전히 보지 못하고 한 가지만 집착하며 살고 있음을 깨달으니 남편에 대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경전반 담당으로 졸업식에서 학생들과 함께(맨 오른쪽 조성년 님)
▲ 경전반 담당으로 졸업식에서 학생들과 함께(맨 오른쪽 조성년 님)

왜 내가, 왜 남편이?

불교대학, 경전반 담당 소임을 하면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학생 도반들이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견디며 잘 이겨나가는 모습에서 옳고 그름이 없음을 보았습니다. 제가 바르다고 생각한 것만 바른 것이라고 고집하고, 그게 정의라고 이름 짓던 제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게 아주 쉬워졌습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편에 대한 마음은 내려놓아 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면 왜 내가 괴로울까?, 왜 남편이 미울까?’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땐 아버지 없는 아이로 키우게 될까 봐 술을 못 먹게 하고 불안했습니다. 남편의 술에 집착하는 동안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 없이 외롭게 자랐습니다. 사실 술을 마시는 것은 남편이니 몸과 마음이 힘들고 괴롭다면 제가 아니고 그여야 할 것입니다. 저의 집착과 기대로부터 괴로움의 싹이 트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결국 저의 마음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바쁘게 일했지만 가난했던 부모님이 저의 의지처가 되지 못해서 서운했습니다. 결혼해서는 남편이 저의 의지처가 되어주겠지 하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남편도 저와 같지 않았을까? 남편도 믿었던 가족이 든든한 의지처가 되어주지 못해 많이 힘들어했구나 이해가 되었습니다.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니 제가 편안해졌습니다. 혼자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던 저는 옳고 그름에 집착했고, 저의 대쪽 같은 성격으로 남편과 아이들은 긴장과 불안 속에 외로웠을 것입니다.

잔소리 대신 건강 챙기기

불법을 공부하면서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것에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스님 말씀처럼 저에게 깊은 업식, 나쁜 성질머리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한 템포 쉬어가는 여유로 의연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제 남편이 술 마시는 것에 싫은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술 마시는 남편을 위해 몸에 좋은 것을 더 많이 챙겨줍니다. 건강하지 못할까 봐 미워하는 대신 건강하도록 건강식을 해줍니다. 남편은 술 마시는 것에 잔소리를 안 하니 신기하게도 술을 덜 마십니다.

얼마 전 한층 여유로워진 저에게 용기 내어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작은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앞만 보고 살아온 저였기에 섬세하고 다정다감하게 엄마 역할을 하지 못해서 많이 미안했습니다. 상처가 있지만 마음이 참 따뜻하여 타인에게 도움 주기를 즐기는 작은 아이가 대견하고 고마웠습니다. 저의 사과를 받아준 작은 아이가 앞으로 잘 헤쳐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그이름, 수행자 조성년 님!
▲ 꽃보다 아름다운 그이름, 수행자 조성년 님!

의지처가 생기다

정토회를 다니면서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도반들의 나누기가 생소하면서도 부러웠습니다. 항상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옆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목표한 것 외에 다른 것을 하는 일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잔잔하고 사소한 행복을 느낄 여유가 없었던 삶이었는데 이제는 좀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모습을 보며 답답하고 힘들었을 가족에게 미안한 만큼 가족들의 마음을 살피겠습니다.

제 인생의 주인으로 남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깊은 업식도 알아차리며 지금 여기 깨어있기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중심을 잡아주는 정토회와 스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나아가 제 문제에서 벗어나 털끝만큼이라도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불법을 만나지 않았으면 몰랐을 행복감, 쏠쏠한 알아차림이 오늘도 저와 함께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동네에서 낮에 일터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는 조성년 님, 놀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답니다. 정신없이 일만 하던 주인공이 이제는 며칠 시간을 내어 가족여행을 즐기는 사람으로 변신했답니다. 정토회를 만나 상록수도 눈에 띄지 않게 잎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을 깨우친 것 같습니다. 그런 주인공의 다음 여행은 가족 여행이 되든, 마음의 여행이 되든 더욱더 풍요로울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글_ 이행숙 희망리포터(진주정토회 거창법당)
편집_ 이종명(전주정토회 전주법당)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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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나의친구

이제 도반으로 같이 하니 행복하다. 고맙다.
어려운 역경에도 굳굳하게 잘 견디며 열정적으로 살아낸 내친구 사랑해~♡
넌 항상 현명했어 . 행복하자 응원할게.

2021-04-16 16:32:33

야오밍

‘호텔 주방에서 설거지 일을 하며 투잡으로 15~17시간씩 일을 했습니다.‘

너무 좋아요.
남자 필요없어요.
중국 농구선수 야오밍 같다.

2021-04-16 01:08:30

박선미

성년보살님~ 글 잘 읽었어요! 눈물이 또르륵. 나눠주셔서 감사하고 늘 화이팅입니다♡^^

2021-04-14 1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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