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남산법당
행복 비결은 멈추지 않는 꾸준함

지금은 온라인에서 전국(지역)대의원, 행복학교 진행과 스텝, 통일 의병 모둠장으로, 코로나 19 전에는 남산법당의 지킴이 저녁팀장이었던 김창심 님. 정토회 30년 역사를 대구에서 묵묵히 지켜온 김창심 님의 드라마 같은 인생 이야기, 들어가 보겠습니다.

가족 해결사

저는 2남 3녀 중 둘째 딸로 어릴 때부터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가족들의 해결사 역할을 하며 남동생에게는 따뜻한 누나였습니다. 공무원인 아버지는 퇴근길에 술을 자주 마셨지만, 평소에는 자상하고 집안일, 청소, 음식도 어머니와 함께 하는 화목한 집이었습니다. 어릴 때 저의 집은 친척들이 자주 모여 시끌벅적하고 항상 북적거리는 집안 분위기였습니다. 크면서 막내동생이 학교도 잘 안 가고 부모님께 돈을 자주 요구하며 집안 분위기가 많이 불편했습니다.

2019.6월 동성로에서 jts 거리모금(왼쪽에서 세번째)
▲ 2019.6월 동성로에서 jts 거리모금(왼쪽에서 세번째)

그런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집안 어른들 중매로 남편을 만났습니다. 누구 앞에서든 해야 할 말은 당당하게 하는 믿음직한 모습에 끌려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잘들어 주어서 의논도 없이 남동생을 서울로 불러 함께 지냈습니다. 아들이 태어날 무렵 동생은 친정집으로 갔고 그 후 남편의 직장 부하직원이 사고를 쳐서 대구로 오게 되었습니다. 친정집이 시댁과 가까워 동생은 술을 마시면 시어른과 함께 사는 시댁으로 찾아와 저를 난처하게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잦아지면서 마음 한구석은 동생은 착한데 엄마와 잘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정토회와의 첫 인연

91년에 대구에도 정토법당이 생긴다고 해서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제가 처음 갔을 때 법당은 기도만 하는 정도였고 가정 법회를 한 집씩 돌아가며 했습니다. 문경에는 전기도 없이 비닐하우스에서 <깨달음의 장1>을 했고, 아주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마음은 그곳이 편했습니다.

남산법당-생일에 딸과 함께
▲ 남산법당-생일에 딸과 함께

막내동생도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게 했고, 이어 문경살이도 6개월 넘게 하면서 마음이 안정되고 많이 좋아졌습니다. 지금은 혼자 되신 어머니를 그 동생이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저의 권유로 친정어머니, 막내동생, 큰동생, 남편, 시어머니, 시누이 부부, 아들, 딸, 주변 지인들까지 모두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면서 이혼할 위기를 넘긴 집도 있어 뿌듯한 마음입니다.

법당이 천국

매일 아침 9시면 법당 가서 법문 듣고 봉사하는 게 좋았습니다. 주말마다 3년간 철야 정진을 했습니다. 법당에는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어 엽서 써서 보내기, 포스터 그리기 등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했습니다. 홍보도 아파트 계단을 꼭대기부터 내려오면서 전단지를 넣었습니다. 힘들었지만 법당에 나가면 마음이 편안해서 ‘이곳이 천국이다 !’ 느끼며 보냈습니다.

부처님 법 만나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계기는 아이들을 바르게 잘 키우고 싶은 바람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친정과 시댁 형제들을 보면서 자식 잘 키우는 게 가장 큰 숙제라 여겼습니다. 저도 세상에서 말하는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게 최고의 행복이라 여기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잘되지 않으면서 다만 두 아이를 반듯하게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법 배우고 실천하며 법당 일은 뭐든지 다 하겠다는 각오가 생겼습니다.

사서도 하는 고생

남편 하는 일은 경제적으로 넉넉해 보였지만 현실에서는 아주 힘들었고, 친정에서 돈을 가져다 쓰는 형편이었습니다. 가까운 지인들한테도 빌려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IMF 이전부터 일은 완전히 힘들어 집도 경매로 넘어가면서 빈손으로 몸만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가서 벌어야 했습니다.

2018.8월 두북봉사(왼쪽에서 두번째)
▲ 2018.8월 두북봉사(왼쪽에서 두번째)

아주 저렴한 한옥을 월세로 들어갔는데, 천정에서 구더기가 떨어지고 비가 오면 방과 부엌에 비도 샜습니다. 빚쟁이가 술 마시고 밤마다 찾아와서 찜질방에서 딸과 같이 잔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잠자는 시간 줄여 가며 하루에 네 가지 일을 할 때도 있었지만 법당 봉사는 빠지지 않고 했습니다. 월급 받으면 80%를 빚 갚는 데 쓰면서도 천일결사비, 삼보수호비는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저의 어려운 사정을 아는 법당 도반들의 도움도 받으며 오로지 일과 법당만 오가며 5년을 보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는 생각이 오히려 자신을 더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습니다.

친정보다 더 편안하고 딸처럼 아껴 주고, 마음은 언제나 부자였던 시부모님 덕분에 법당 봉사를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친정에서는 어머니의 완벽한 성격으로 칭찬 한번 들은 적이 없었는데 시댁에서는 이쁨받는 며느리로 살았습니다.

2018.8월 환경주방세제 만들기-남산법당에서(오른쪽 첫번째)
▲ 2018.8월 환경주방세제 만들기-남산법당에서(오른쪽 첫번째)

어머님은 갓바위를 밤에 올라가서 새벽까지 기도하는 신심이 깊은 분이었습니다. 농사일이 바쁠 때도 새참을 준비해서 가겠다고 하면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아버님 병간호며 3년 전 세상을 떠난 시동생이 아플 때도 혼자 간호하고 저는 집안 친척 대소사에 함께 손잡고 가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것도 법당행사와 겹쳐 갈수 없어 죄송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주인은 나

황금동 법당을 열면서 페인트칠, 목공, 샤시, 집기, 모든 것을 도반들과 손수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수저, 밥그릇까지도 집에서 가져오며 화기애애하게 시작했지만, 도반들과 의견 충돌도 많았습니다. 4분 정근 (새벽기도, 사시기도, 저녁기도, 밤기도) 만 배 정진, 주말 철야정진으로 단합을 다져 나갔습니다. 법륜스님 순회 법회와 정토지로 법당 주변 상가와 아파트를 오르내리며 홍보하고, 지인 홍보도 하면서 회원들이 늘어났습니다.

사찰순례(봉암사에서)
▲ 사찰순례(봉암사에서)

북한의 홍수와 심한 가뭄으로 북한 동포 돕기 백만인 서명운동을 하면서 단합이 더 잘되었습니다. 많은 활동의 부담으로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두는 도반도 많았습니다. 각 지역의 법사님들이 오셔서 정토불교대학을 시작하면서 법당이 안정되고 회원들이 늘어나서 범어동 법당으로 다시 확장 이전했습니다. 도반들의 활동으로 북한에서 이주해 온 분들과의 교류도 활발하게 했습니다.

일보다 사람

2011년 경전반 공부를 다시 해야 활동을 할 수 있어 경전반을 하면서 지원팀장을 맡았습니다. 잘 모르는 것은 배우고 도반들과 정진도 열심히 하니 힘이 솟아났습니다. ‘쓰면 쓸수록 빛이 나는구나’ 하며 주어진 소임도 재밌게 했습니다. 2015년에는 지금의 남산법당에서 저녁 팀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봉사할 도반이 없어서 모든 일을 소수 인원으로 감당했습니다. 도반들과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아 법사님과 간담회를 열어 해결했습니다.

그때, 법사님의 말에 봉사에 대한 관점이 잡히고, 일보다 사람이 먼저가 되고, 도반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그 무렵 몸이 아파서 법당에 휴가를 냈습니다. 쉬면서 돌아보니 마음공부를 하기보다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든 것이 ‘법당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구나’ 를 알고 다시 복귀했을 때는 소임이 복으로 느껴졌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을 간섭하지 않으려고 법당 봉사하면서 긴 세월의 터널을 잘 지나갔습니다. 법사님에게 질문도 하면서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아들딸 둘 다 학비 한번 대준 적 없었고, 교복이며 참고서도 얻어서 공부했습니다. 딸은 결혼할 때도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시작해서 아이 셋 육아도 사위와 둘이서 잘 키우고 있습니다.

행복 전달

집이 법당이고 내가 당주라는 말처럼 그 옷에 맞게 법당이 청정하고 전법 도량이 될 수 있도록 꾸준하게 매일 희망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2016.5월 천일결사 입재식
▲ 2016.5월 천일결사 입재식

그중에는 성당과 교회 다니는 두 분이 행복학교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거부하는 사람 없이 매일 아침 “희망편지 덕분에 좋은 아침을 맞는다”고 답장도 옵니다. 지인들과 모르는 사람들까지 350명에게 행복학교와 정토불교대학 전법을 했습니다. 요즘 일어나면 ‘아! 행복하다 이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라는 생각부터 듭니다. 제가 삶을 걱정 없이 내려놓고 살 수 있게 된 것은 오랜 시간 정토회의 끈 덕분입니다.


힘겨운 삶의 무게를 편안하게 내어놓는 김창심 님의 모습은 제게 큰 깨달음입니다. 한사람이 깨닫고 행복하면 그 가족과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길 발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글_이재선 희망리포터(수성정토회/남산법당)
편집_조미경(김해정토회/김해법당)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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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정

도반님으로 인해, 정토회가 더 빛납니다. 경전대학생으로 정토회 시스템에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뭔가 비효율적이다라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30년 역사안에 도반님들의 노력과 눈물과 땀을 기억하겠습니다. 선배도반님들의 마음을 되새기며 제 마음도 잘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어떤 쓰임의 인연을 맞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건강하세요~~^^

2021-04-20 06:13:49

자재왕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04-16 10:17:13

박신영

쓰일수록 빛난다는 도반님의 말씀이 와 닿습니다 . 가족들을 깨장에 다녀올수 있게 인도한 도반님 대단하고 존경스럽습니다 . 솔직한 나누기 감사합니다

2021-04-09 05: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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