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남산법당
전생에 진 빚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가을 햇살이 화창한 날, 마당에 예쁜 화초들이 있는 한옥에서 신혜정 님을 만났습니다. 신혜정 님과 남편이 손수 만든 도심의 한옥으로 평소 행복학교로 쓰이는 곳입니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지만, 한때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했던 삶을 살았다는 신혜정 님. 지금은 고즈넉한 한옥처럼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이라는 신혜정 님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전생에 진 빚일까

저는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부모님은 자식들을 돌볼 여유가 없었고, 아들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아쉬운 마음이 제게 크게 투영되었는지, 어려운 집안 상황 속에서 저는 ‘내가 잘해서 집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막연한 책임감 속에서 자랐습니다. 평소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느낌인지 알아차리기보다는 어떤 일을 해야 주변 사람들을 기뻐하는지 살피며 살았습니다.

불대특강수련 봉사 중(맨 오른쪽)
▲ 불대특강수련 봉사 중(맨 오른쪽)

대학교에 진학해서 남편을 만났고, 6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습니다. 제가 번 돈으로 가난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게 그 당시 제가 가졌던 소박하지만 가장 큰 바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신혼여행 다녀온 지 3일 만에 남편은 시댁에 빚이 있다고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빚을 못 갚아 어머니가 머리채를 잡히는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1년 늦게 결혼했다 생각하자며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정아버지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친정아버지가 빌려온 돈을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아서 시어머니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것이 시작인 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빚을 갚아준 저를 예뻐하고 고맙다고 할 줄 알았는데 정반대로 남편은 자주 술을 마시거나 늦게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 저는 시골에서 교사로 근무했었는데, 월급 전액과 모은 돈을 다 시댁에 보내고 보충수업하며 번 돈으로 살았습니다. 남편과의 관계는 멀어지고 계속되는 빚 갚음에 화가 나 ‘전생에 내가 빚을 졌나? 내가 빚진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혼 1년 후 저는 괴물이 되어 있었고 2년, 3년이 지나도 빚은 계속 나왔습니다. ‘더 못 갚겠다, 이러다 내가 죽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3년에 아이를 낳고 휴직해서, 남편이 번 돈으로 시댁에 용돈만 부치고 1년 동안 살았지만, 남편과의 관계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끝없는 갈등 속에서 돈은 없고 아이도 남편도 내 맘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행복학교 송년행사 봉사하며(왼쪽에서 다섯번째)
▲ 행복학교 송년행사 봉사하며(왼쪽에서 다섯번째)

불안하고 불행하고 공허하다

저는 직장에서는 전교조 조합원으로 다른 사람들이 던져 준 문제에, 증거를 가지고 모양새 있게 잘 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밖에 나가서 싸우는 게 길어지면서 저는 지쳐 있었습니다. 결혼생활은 불안하고 불행했고 직장에서도 싸움닭처럼 정의를 외치는 게 너무 공허했습니다. 마음속에 분노가 쌓여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음의 장〉을 알게 되었고, ‘뭘까?’ ‘내가 깨달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신청해 가출하듯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남편은 틀렸고 제가 옳다 생각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길바닥에 쓰러져 있어 누군가에게 부축받고 들어오는 남편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빚 갚아준 사람을 무시하는 남편은 사기꾼이었습니다. 저에게 남편은 미워해도 되는 사람이었고 겉모습과 다른 가식적인 시부모님은 원망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깨달음의 장〉에서 완전히 깨져버렸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남편의 마음을 읽지 못했던 것이었고 모두 제 고집이었습니다.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활동가 나들이 봉사하며(왼쪽)
▲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활동가 나들이 봉사하며(왼쪽)

멀미가 날 정도로 브레이크 없이 열심히 달려오기만 했던 일상을 잠깐 멈추고 수련을 다녀온 지 보름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심장병 환자의 몸으로 아이 둘을 키워준 아버지를 왜 미워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미워하고 화낸 것들로부터 멈춘 계기가 되고 주변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저도 이해받고 싶었습니다. 〈나눔의 장〉에 다녀오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해서는 울면서 수업을 받았습니다. 위로받아서 울고, 괴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면서 아주 가벼워졌습니다. 모든 문제는 제가 해결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남편의 문제는 그 자신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몸을 다독이면서 ‘그래그래 잘했어. 안 미치고 살아있어서 고마워.’ 이렇게 저를 스스로 위로하면서 괴로움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수 있다

봉사하며 정진도 열심히 하고 ‘매일 잘살자’, ‘탄탄한 일상으로 나를 지켜내자’ 하며 봉사 거리가 오면 무조건 다했습니다.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사로잡혔고 내 옳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굳어 있었지만, 도반들과 부대끼며 조금씩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적과 비난, 평가에 예민한 사람인 것도 알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맞추는 것을 배우게 되니, 남편과 아들한테도 조금씩 맞추고 받아들였습니다. 전에는 다른 사람이 힘들어하면 ‘힘들지만 해야지’ 했었는데, 제가 3개월 휴가를 내고 입원할 정도로 아파보니 '그럴 수 있겠다. 진짜 그럴 수 있겠어요.' 하며 공감하는 폭이 넓어졌습니다.

통일의병활동 봉사하며(오른쪽 첫번째)
▲ 통일의병활동 봉사하며(오른쪽 첫번째)

저는 제가 불행의 상징인 줄 알았는데, 저도 행복할 수 있고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화가 멈춰지고 두통도 사라지며 억울해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는데, 숨도 쉬어졌습니다. 다른 세상이 열렸습니다. 정토회에서 하는 것은 빠지지 않고 다 했습니다. 살고 싶어서 했고 할수록 내 안의 분노가 멈춰지는 게 고마웠습니다. 봉사하면서 저를 격려하고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 질투심이 원동력이 되어 봉사했지만, 갈등 속에서 깨지면서 조금씩 자유로워졌습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힘

큰아들은 노력해도 엄마한테 인정받지 못해서 상처만 받으며 컸고 중학교 3학년 때 사춘기가 왔는지 저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3년을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힘이 생겼고, 봉사로 에너지를 빼고 집에 가니까 남편도 아들을 그냥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엄마로 많이 미숙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은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우울증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더 깊어지기 전에 저에게 이야기해서 병원치료를 받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아들은 지금도 치료받으며 약을 먹고 있지만, 대학 1학년 때 〈동북아 역사기행〉 을 시작으로 〈깨달음의 장〉,〈나눔의 장〉, 〈명상수련〉을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정토불교대학을 다니고 있으니 저는 아들에게 가장 큰 전법을 했습니다.

행복캠프 봉사(왼쪽에서 첫번째)
▲ 행복캠프 봉사(왼쪽에서 첫번째)

돌아보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아버지, 남편, 아들 모두가 미워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깨닫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고 지금도 휘둘릴 때가 있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상대를 객관화시키고 나를 객관화 시키니 제 인생에서 기적과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수행과 봉사하면서 저의 에너지와 열정을 정토 세상 만드는데 잘 쓰이고 싶습니다.


지난 어려움과 극복 과정을 편안하게 내어주신 신혜정 님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하였습니다. 한길을 같이 가고 있어 뿌듯하고 많은 에너지를 흠뻑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글_이재선 ( 수성정토회 남산 법당)
편집_임도영 ( 광주정토회 )

전체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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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융

어머니이자 도반인 신혜정 보살님,
힘든 상황에서도 두 아들 키우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일출가를 끝낸 뒤 재입재 중에 어머니의 수행담을 읽습니다. 눈물이 왈칵 납니다.
어머니를, 또 제 업식을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불법 만나게 해주신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받은 사랑 세상에 베풀며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성불하십시오!

2021-09-05 10:31:48

김희경

편안하고 든든하고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항상 웃는 모습이 굿입니다.....

2020-11-05 11:19:17

대거화박순천

신혜정님, 감동적인 수행담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그토록 호탕하고 개구장이처럼 천진한 모습 뒤에 아픔이 있었군요. 모든 어려움을 거름으로 바꾸신 신혜정님, 눈물겹게 아름답습니다. 사랑합니다^^

2020-11-04 14: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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