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청주법당
잃어버린 딸을 다시 만났다는 마음으로

환한 미소로 도반들을 살갑게 챙기는 이정희 님의 모습이 정감 있고 편안해 보입니다. 대학에 갓 입학한 아들이 어느 날 임신한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지만, 부처님 법 만나 삶의 고비를 지혜롭게 잘 넘길 수 있었다는 청주법당의 숨은 일꾼, 이정희 님의 수행담을 들어보겠습니다.

짙어진 가을, 집 앞마당에서
▲ 짙어진 가을, 집 앞마당에서

남편 덕을 보다

저는 성실하고 정갈한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가계부를 쓸 정도로 검소하고 정확한 분이었고, 어머니도 걸레를 행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깔끔하게 살림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다혈질이고 옳고 그름이 분명했던 저는 내 옳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저에게 “너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제하고 싶은 말은 다 할 거다.”라는 말을 종종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 흠잡을 데 없는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결혼 생활 하는 동안 제가 부탁하는 것에 대해 “안돼!” 라고 말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말수 적은 남편이 답답해 짜증을 많이 냈습니다. 남편은 그런 저의 비위를 잘 맞추어 주었습니다.

어린 며느리와 손녀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나는 누구일까? 왜 사는 걸까?’라는 의문은 늘 들었습니다. 2014년 인터넷에서 우연히 법륜 스님과 정토회를 알게 되었는데, 정토회 홈페이지에서 느껴지는 편안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인근의 청주법당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봄 불교대학 저녁반에 입학했으나 불교 의식이 낯설었고 무엇보다 나누기가 많이 불편하였습니다. 나누기가 하기 싫어 법문만 듣고 일이 있다며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였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손녀가 태어났고 어린 며느리를 도와주어야 할 것 같아 불교대학을 그만두었습니다.

다음 해 직장을 그만두며 여유가 생겼고 다시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당시는 법문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법당의 단정한 느낌과 분위기가 좋아서 계속 다녔습니다. 남들은 크게 깨쳤다는 <깨달음의 장>에서도 큰 깨우침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가을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봉사 중인 주인공
▲ 가을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봉사 중인 주인공

내 마음대로 하려는 업식

남편은 한 번씩 저를 보고 “수양이 부족하다. 정이 있고 착하고 검소해서 같이 산다.”고 말할 때가 있었는데,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2016년 보은법당 개원식에서 덕생 법사님에게 수행점검을 받아 100일간 남편과 아들, 부모님에게 300배 참회 기도할 것을 권유받았습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잘하는 성격이라 법사님의 말씀대로 100일 정진을 마쳤고 곧이어 법당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물정진, 그리고 하반기 정일사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이렇게 연이어 300배 참회 기도를 하고 나니 비로소 남편과 자식을 내 마음대로 하려는 내 꼬락서니가 보이기 시작했고 저로 인해 힘들어했을 남편과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정토회에서 활동을 하며 덕생 법사님의 정확하고 예리한 수행 점검이 불편해 피해 다닐 때도 있습니다. 법사님은 저를 이나마 사람 되게 해준 가장 고마운 분입니다. 법사님과 도반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부처님, 아들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 잘될 것입니다. 지은 인연의 과보를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이 세상 모든 중생을 구하는 보살이 되겠습니다.’라는 기도문으로 꾸준히 정진하다 보니, 어리석고 정신병자 같은 나를 조금씩 바로 세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청주법당의 귀염둥이 손녀와 함께
▲ 청주법당의 귀염둥이 손녀와 함께

다시 태어난 잃어버린 자식

저는 첫째인 딸에게는 엄격하게 대했던 반면 막내아들은 온실의 화초처럼 키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또래보다 덩치가 작고 내성적인 아들에게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들은 임신한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처음 며칠은 당혹스럽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나 싶었으나 아들이 일찍 철이 들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들은 그해 겨울방학에 결혼하였고, 저희는 주택으로 이사하여 아들 내외가 2층에서 생활하였습니다.

당시 아들은 어렸고 애 엄마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아들은 결혼 4년 만에 이혼하였습니다. “죽을 것 같아도 아이가 20살 될 때까지는 무조건 살아라.”고 만류도 해보았으나 나중에는 아들의 처지도 이해되었습니다. 애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손녀의 장래가 염려된다는 남편의 뜻도 공감되어 저희가 손녀를 키우기로 하였습니다.

부처님 법 만나지 못했다면 이런 고비 고비마다 아들, 남편, 주변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하였을 것인데 그나마 지혜롭게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 ‘과하게 이뻐하지도 미워하지도 말고, 잃어버린 자식이 다시 태어났다고 여기고 20살까지 키우자. 그냥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올렸을 뿐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손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평생 숙이는 삶

지금까지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라는 저만의 기준을 정하여 가족에게 그 기준을 강요하고 살아왔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참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고집도 세서 남의 말을 잘 듣지도 않았던 저. 물론 지금도 놓칠 때가 많지만 알아차리며 참회할 수 있으니 이것만도 참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정토회에서 계속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가족에게 감사하고 특히 남편에게 평생 숙이고 살겠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행복한 회의를 마치고 도반들과
▲ 행복한 회의를 마치고 도반들과


이정희 님은 모둠장을 맡아 모둠원들과 매일 300배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또 제10차 천일결사를 맞아, 일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전환을 위한 ‘행복한 회의’ 진행자 교육 담당도 맡았습니다. 처음에는 일도 많은데 또 무슨 회의를 하느냐며 불만스러워했던 도반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막상 ‘행복한 회의’에 참여하고 나서 가정과 직장, 봉사 과정에서 힘들었던 마음을 도반들과 함께 나누니 너무 좋다는 반응이 많아 매우 보람차다고 합니다. 선뜻 내놓기 어려운 삶의 여정을 가볍게 전해준 주인공. 이제는 완연한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글_김성욱 희망리포터 (청주정토회 청주법당)
편집_강현아 (수성정토회 수성법당)

전체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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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불

대학생 아들이 임신한 여친을 데리고 왔을 때를 상상하니 아득합니다. 그런 손녀를 가볍게 키우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저 또한 남편의 은혜가 하해와 같지만 알지 못하고 남편을 타박하고 원망하며 이혼까지 해 버렸습니다. 또 그 이혼으로 인해 괴로워하다 부처님 법을 만났습니다. 남편과 아들을 부처님으로 모시고 사는 보살님이 귀감입니다.

2020-11-02 06:56:50

향공덕

인자한 모습이 부처님의 모습을 닮은듯 환한 모습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긍정적으로 삶을 대하는 모습~ 잘 배우며 저 또한 삶에 적용하겠습니다.

2020-10-13 10:58:07

정경희

이정희 보살님~
수행담 읽으니 뭉클해집니다.
보살님의 가벼움에 비례하여 손녀가 맑고 밝게 자라는 거 같아요.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한 사진이 참 따뜻합니다.

2020-10-12 15: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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