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대잠법당
속 시원한 박하사탕, 맛보실래요?

시어머니가 남긴 빚을 청산하느라 변호사, 법무사, 법원을 쫒아다니고나니 10년이 지나 있었습니다. 힘든 시절을 보내고 안정을 찾을 때 즈음, 회사 잘 다녀오겠다며 출근을 한 남편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원망, 불안, 허전함으로 가득 찬 삶을 하늘도 버린 인생이라 여기며 괴로워 했습니다. 오늘은 속 시원한 박하사탕을 만나 괴로운 삶을 버리고 봄처럼 따뜻하고 가벼운 인생을 살아가는 대잠법당 신숙희 님의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날 속였구나!

임신한 몸으로 시부모님을 모시며 어린 시누이까지 뒷바라지하였습니다. 유독 저에게만 쌀쌀맞은 시어머니때문에 시집생활에 지쳐갈 때쯤 시어머니가 아버님의 세 번째 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시누이의 생김새가 많이 닮아서 배다른 남매일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알고보니 남편은 첫 번째 부인의 아들이었고, 시아버지는 두 번째 부인과도 이혼 후 지금의 시어머니와 딸 하나를 낳고 살고있는 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니의 괴롭힘은 세 번째 부인이라는 열등감과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며느리에게까지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저는 ‘모두가 날 속였구나!’ 하고 원망하며 신세한탄만 했지, 상황을 이해하고 제 자신을 다독일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가장 오른쪽 신숙희 님)
▲ 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가장 오른쪽 신숙희 님)

하늘도 외면한 내 인생

매일 괴로움으로 고통받으며 지내던 어느 날, 시어머니는 남편 명의로 보증을 쓰고 시누이와 가출을 했습니다. 집안 살림만 하고 살던 저는 빚을 갚기 위해 식당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돌봐줄 여건이 안 된다는 핑계로 아이가 아프다고 울어도 어린이집에 보내고, 방학이면 언니네 집에 아이를 맡겼습니다. 모든 것이 힘에 부쳐 나부터 살고보자며 아이를 외면했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빚더미 속에서 일만 하며 보내던 중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다시 집을 찾아 왔습니다. 시아버지는 괘씸하다며 노골적으로 시어머니를 비난하고 괴롭혔습니다. 시아버지의 노골적인 괴롭힘에 저는 시어머니에게 미운 마음보다 측은함이 커졌습니다. 남편에게 고통받는 한 여인의 삶이 가여웠습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고 서로에게 쌓였던 앙금이 풀어질 때 쯤, 시어머니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었고 결국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고별의 시간을 가질 틈도 없이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남겨놓은 고액 대출금을 해결하러 변호사, 법무사, 법원을 찾아다니며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어느새 10년이 흘러 있었습니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던 그 힘든 시절도 지나가고 시아버지를 모시며 우리 가정도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습니다.

돌아올 수 없는 남편

2013년 봄, 회사 잘 다녀오겠다며 출근한 남편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회사동료가 기계를 잘못 작동시켜 남편이 추락사했다고 했습니다. 갑작스런 비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눈물보다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나이에도 엄마 등 뒤에 숨고 싶을 만큼 눈앞이 캄캄하고 두려웠습니다. 남편을 그렇게 만든 그 사람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아버지는 자식 잃은 상황을 제 탓으로 돌리며 막말을 했고, 친정식구들에게까지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며 저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습니다.

남편을 잃고나서 저에게 남은 아이들마저 어떻게 될까 싶은 불안감에 매일 노심초사하며 지냈습니다. 이절 저절 찾아다니며 49재와 천도재를 지냈고, 좋다고 하는 것은 다 해봤습니다. 절에서 무조건 빌라고 해서 매일 기도 하며,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경전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무 탈 없이 건강히 자라게 해달라고 손이 닳도록 빌었습니다.

법륜스님 행복강연 스텝활동 중(맨 오른쪽)
▲ 법륜스님 행복강연 스텝활동 중(맨 오른쪽)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항상 ‘이런다고 정말 좋아질까?’ 하는 의문과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눈물 마를 날 없이 지옥 속에서 지내고 있던 중 큰언니의 추천으로 즉문즉설 강연에 가서 질문을 했습니다.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저는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제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그 계기로 불행한 내 삶에 자그마한 변화라도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으로 2015년 3월에 봄 불교대학을 입학했습니다.

다만 사고였을 뿐

새벽정진 후(맨 앞 신숙희 님)
▲ 새벽정진 후(맨 앞 신숙희 님)

저는 주로 사람들의 말을 들어 주는 입장이고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고 여겼는데, 정반대인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착한 제가 모든 걸 참고 희생하고 있으니 가족은 무조건 내 뜻에 따라야 한다는 착각으로 괴로워하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가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는 귀기울이지 않고 제 생각대로 판단하고 단정지으며 독재자로 살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가끔 독재자같은 행동이 나오려는 순간, 수련장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면 머리카락이 하늘을 찌르듯 소름이 끼칩니다.

그 전에는 남편의 사고가 전생에 쌓은 제 업보 탓인 줄 알고 늘 마음 무겁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에게 일어난 일은 교통사고가 일어나듯 찰나의 실수로 생긴 사고와 다름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고를 낸 가해자도 고통과 괴로움으로 살아가겠구나, 죄책감으로 마음이 불편하겠구나!’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원망했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이제는 제 마음에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소임은 내 인생 가장 큰 선물

불교대학 담당을 맡았을 때에 학생들의 출석여부로 전전긍긍했습니다. 또 부총무 소임을 맡았을 땐 활동가들이 그만둘까봐 노심초사했습니다. 단지 남들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이 소임 저 소임 맡았는데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홀로사시는 시아버지도 돌봐야 하고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딸아이와 막 중학생이 된 아들도 아직은 저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법당 소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엄마 아빠 두 가지 역할을 하려니 힘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저의 무능력함을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내세울 것이 없어 부끄럽다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부족함이 도반들 도움의 손길로 이어졌습니다. 내가 잘나서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것 보다 부족한 줄 알아 서로 어울려서 돕고 지내는 것이 훨씬 재밌고 정도 들고 행복한 삶이라는 걸 소임을 통해 배웠습니다.

평화통일을 위한 천배정진(윗줄 제일 오른쪽)
▲ 평화통일을 위한 천배정진(윗줄 제일 오른쪽)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

불교대학, 경전반 공부하고 3년은 총무 소임 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며 사소한 가정 문제는 뒷전이었습니다. 집안일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해 가족들에게 미안했는데 오히려 바쁜 일상 덕분에 자식에 대한 집착도 내려놓게 되었고, 시아버지도 저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잘 살고 계십니다. 이만한 복이 없습니다.

얼마 전 시아버지께서 눈물이 글썽글썽 맺힌 모습으로 혼자서 두 아이 키우느라 고생했다며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숨기고 싶었던 지난날의 상처가 이제는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게 될 만큼 아물었고, 저의 아픈 과거는 행복한 삶,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남편 가신 날 저도 죽었다 생각하고 살았는데, 부처님 법 만나고 새롭게 태어났으니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여기며 하루하루 소중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곁에 살아있어 눈 마주치고 손잡아 볼 수 있는 사랑스러운 딸과 아들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욕심내기 보다는 회향하며 괴로움 없는 삶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부총무 소임을 회향하고나서 대의원으로서 여전히 곳곳에서 잘 쓰이고 계신 신숙희 님.
시어머니가 남긴 빚더미, 남편을 사고로 몰고 간 동료에 대한 원망, 자식을 잃은 시아버지의 원망이 담긴 괴롭힘, 아이들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으로 괴로웠던 삶을 털어버리고 불법으로 가벼워진 신숙희 님에게서 시원한 박하향이 나는 듯합니다. 불법 만나 행복해졌으니 이제 그 행복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며 살겠다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보며 향기로운 삶을 사는 법을 배웁니다.

글_정도현 희망리포터(경주정토회 대잠법당)
편집_김난희(홍보국 편집담당)

전체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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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승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시고 환한 웃음을 보니
도반들에게도 큰깨달음을 주시는거 같습니다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2020-08-24 22:43:02

김병숙

시원한 박하향의 감동나누기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8-22 14:44:23

신금년

보살님의 환한 미소가 연꽃미소였네요.
아름답고 행복한 수행자이십니다.
홧팅입니다.

2020-08-21 16: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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