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베를린법회
베를린법회 지킴이, 부총무 이희정 님의 수행 이야기

만나면 이유 없이 기분 좋아지고, 주저 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만, 전혀 밉지 않고 오히려 그 호방함에 빠져들게 하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독일 베를린법회 부총무 소임을 맡고 있는 이희정 님인데요, 묵묵히 베를린법회를 지키며 소임을 다하는 이희정 님의 수행 이야기 함께 나눠봅니다.

법문을 듣고 가벼워진 마음

독일에서는 2001년 법륜스님의 첫 법문을 시작으로 여러 도시에서 순회강연이 이루어졌는데, 저는 2002년 베를린 강연에서 처음으로 법륜스님의 법문을 접했습니다. 당시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스님 한 분이 한국에서 오셔서 강연한다며 참석을 권했습니다. 그 때는 절에 가본 적도 없고, 법륜스님이 누구신지, 정토회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를 때였지만 가보았습니다. 아르바이트하며 공부하느라 다른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 친구가 강연 봉사를 맡았고, 꼭 참석하라고 해서 가게 된 것이죠.

그 당시 저는 경제적, 심리적으로 아주 힘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잘못된 재정보증으로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가족들은 한때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그만두고 한국에 들어가서 직장을 구하려고 했는데, 제가 6남매의 맏딸로서 유학 후 집안을 일으킬 것이라 기대하셨는지, 부모님은 제게 어떻게든 독일에서 버텨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혼자 견뎌야 했고, 특히 가족들에게는 힘들다는 소리를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같이 하기가 쉽지 않았고, 부모님의 기대와 책임감으로 마음이 늘 무거웠습니다.
그런 와중에 처음으로 들은 법륜스님의 강연이 제게는 아주 신선했습니다. 강연내용이 아주 쉽고도 논리적이었기에 불교가 그런 것임에 새삼 놀랐고, 그날 스님의 강연을 듣고 힘들던 마음이 아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후 스님 책도 읽고, 2003년 3월 독일 로렐라이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법륜스님과의 명상수련에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정토회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없애기는 쉽지만, 새로 만들기는 어렵다

현재 유럽에는 자체 법당이 없고 다른 단체의 공간을 빌려서 법회를 하지만, 법회 초기 베를린에는 우리가 직접 관리하는 법당이 있었습니다. 2003년 9월 28일에 지도법사님과 유수스님을 모시고 석가모니불 점안식과 베를린법당 개원식이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그때 저도 법당 개원준비에 잠시 동참하기도 했는데, 베를린은 파독 간호사와 유학생들이 많다 보니 여러분들의 원으로 법당개원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2003년 9월 28일 베를린법당 개원식: 15년 전 젊은 법륜스님의 모습도 정토회 현수막도 낯설지만, 베를린법회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반가운 사진
▲ 2003년 9월 28일 베를린법당 개원식: 15년 전 젊은 법륜스님의 모습도 정토회 현수막도 낯설지만, 베를린법회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반가운 사진

법당은 생겼지만 집에서 멀기도 했고, 일하고 공부하느라 바빠서 법회 참석도 못 하고, 스님 강연이나 초파일 행사 때만 얼굴을 내미는 정도였습니다. 몇 년 후 베를린 회원들만으로는 법당유지가 안 되고, 담당자도 한국으로 귀국을 해서 법당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2008년 제가 사는 지역에 있는 독일불교단체 공간을 빌려서 법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봉사하던 분이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가게 되고, 다른 분은 공부 때문에 봉사가 힘들다 하여 법회를 중단할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법회 참석자가 3~4명 정도였는데, "없애기는 쉽지만, 새로 만들기는 어렵다"며 어떻게든 법회유지는 하는 게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때 제가 "한 달에 한 번, 법문 트는 것은 할 수 있다"면서 맡은 것이 알고 보니 베를린법회 총 책임자인 총무 소임이었습니다. 스님 법문을 듣고 마음이 편해졌으니 그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봉사를 해보겠다 했지만, 그토록 바라던 대학교 연구원이 되고 보니 독일어로 강의도 해야 했기에 많이 힘든 때이기도 했습니다. 연구원 자리를 잡은 것은 무엇이든 절실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지만, 가진 능력 이상의 것을 하려니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그 때문에 살도 많이 빠지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난간을 잡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한 어지럼증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잇몸이 내려앉는 등 건강을 많이 해쳤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법문만 틀면 되는 줄 알았는데, 법회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월 2회로 법회 수도 늘려야 했고, 불교대학, 천일결사 등을 하면서 모양을 갖추어 나갔지만 일이 자꾸 생기는 게 부담으로만 여겨졌습니다. 직장에서 너무 에너지를 소진하여 법당에서 쓸 것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수행법회 참석자 수가 늘지 않는 것도 제 능력 부족이라 여겨지고 걱정되어 유수스님께 질문하니, "어차피 혼자서라도 수행을 해야 하니 그냥 혼자라고 생각하고 법회하고, 혹 누가 오면 같이 해서 좋다고 생각해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법회 참석자 수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내 수행을 위해 혼자라도 법문을 듣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소임을 맡지 않았다면 휴일에 밀린 잠을 자느라 법회 참석도 안 했을 겁니다. 소임 덕분에 법회에 빠지지 않고 스님 법문을 꾸준히 듣게 되니,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저도 모르게 어느새 불법에 젖어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2017년 12월 23일 베를린 평화대회 제일 오른쪽에 이희정 님
▲ 2017년 12월 23일 베를린 평화대회 제일 오른쪽에 이희정 님

일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화합

그렇게 6차 천일결사 기간 중간에 담당자를 맡았고, 7차는 다른 사람이 담당자를 한다 했다가 그만두어 다시 맡았습니다. 8차에는 한국 귀국을 고려했기에 일을 맡지 않겠다 했는데, “한국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라" 하시는 지도법사님 말씀에 다른 담당자를 구하지 못해 내려놓지 못한 베를린법회 뿐 아니라, 독일정토회 총무도 맡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해외사무국에 들어가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늘 한쪽 발만 걸쳐놓고 언제라도 빠져나갈 궁리를 하다가 처음으로 두발을 담궈보았습니다. 한국과 해외상황이 다르고, 같은 해외도 지역마다 다른데 일괄적으로 내려오던 업무, 진행방식이 힘들고, 문서작성이 불편하게 여겨졌습니다. ‘불평만 하지 말고 직접 뛰어들어 바꾸면 된다’는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사명으로 해외사무국에 들어갔는데 제가 생각한 대로 일을 해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해외사무국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이다 보니 시차가 맞지 않아 잠잘 시간도 없이 거의 종일 일을 잡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정토회에 대한 애착은 있지만, 일하면서 겪는 도반들과의 갈등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제 아상이 너무 커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편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임 덕분에 도반이 수행의 전부이고, 일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화합임을 배웠습니다.

2018 유럽 정토를일구는사람들 수련: 뒷줄 중앙에 이희정 님
▲ 2018 유럽 정토를일구는사람들 수련: 뒷줄 중앙에 이희정 님

직장과 병행이 힘들어 올해부터 해외사무국은 그만두고 법회 담당만 맡고 있습니다. 봉사는 희생이 아니고, 정토회는 회원들의 희생을 바라지 않는다 했습니다. 일하느라 힘들다는 핑계로 개인 수행도 제대로 안 하고, 자기관리도 하지 못해 건강을 해치고, 업무 감당이 안 되어 일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회원이 적은 해외인데다 정토회가 워낙 열려있다 보니 저 같은 사람도 큰 소임을 맡을 수 있었고, 덕분에 교육과 수련을 통해 가까이서 지도법사님, 법사님들의 소중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정토행자로서 원을 세우지는 못했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 바뀌어야 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만둔다 하면서도 아직까지 붙어있다 보니 그나마 조금이라도 수행을 하게 된듯 합니다. 소임을 맡지 않았다면 저를 되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사람들 간의 갈등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주어진 환경 탓, 다른 사람 탓을 하고, 내 능력 부족에 대한 자책을 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만난 어떤 인연보다 제일 감사한 것이 불법을 만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법륜스님의 쉬운 불교가 아니었다면 불법을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 귀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는 것도 배웁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조건에 있더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행복하지 않았던 것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희정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 법회에서 크고 작은 소임을 맡고 있는 여러 도반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크게 일었습니다. 해외에서 법회 운영을 맡아 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알아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베를린법회가 지금처럼 자리 잡기까지 이희정 님을 비롯한 여러 도반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껏 여러 번의 제안에도 본인은 부족하여 나눌 얘기가 많지 않다며 늘 인터뷰를 고사했었는데, 베를린법회의 역사와 감동적인 개인 수행담을 나눠 준 이희정 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글_임진선 희망리포터(뒤셀도르프법회)
편집_이진선 (해외지부)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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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사

감사합니다

2018-04-27 02:59:29

보리안

아고...
너무나 반가운 수행담. 감사한 마음.
6월에 봐요~ 보고싶습니다. ...()...

2018-04-26 23:51:47

지장행

이희정 법우님 정말 감동입니다. 그바쁜 와중에서도 정토회를 운영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불법을 만나게 해 주다니 정말 큰일을 해내었네요.

2018-04-26 13: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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