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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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열린 400회 나눔의 장 - 공양 바라지 삼총사 출동!!

독일 베를린 인근에 위치한 랑스도르프(Rangsdorf)에서 지난 10월 26일부터 30일까지 '나눔의장' 수련이 있었습니다. 요즘 베를린 하늘에는 철새들이 브이자 모양을 그리며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철새들처럼 런던, 함부르크, 취리히,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등 유럽 여러 도시에 흩어져 살던 참가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습니다. 처음 신청과 달리 참가자 수가 줄자 베를린법회 이희정 님, 프랑크푸르트법회 신재숙 님 그리고 런던법회 김지은 님 셋이서만 공양 바라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나눔의 장은 400회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바라지들에게는 어떤 시간이었는지 나누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나눔의 장, 어느새 400회

이희정: 상설 수련장이 없어서 준비할 것이 많았어요. 작년에 처음으로 베를린 근교에서 나눔의장을 하게 되어 열심히 장소를 찾으러 다녔던 생각이 나네요. 저렴한 가격,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 독립된 부엌, 좋은 자연환경, 다른 단체와 겹치지 않는 독자적 공간, 장보기 쉽고 대중교통으로 쉽게 찾아 올 수 있어야 하는 등 고려할 게 많았죠. 일반 수련장은 다소 가격이 높아 펜션을 빌리게 되었어요. 베를린은 법당이 없어서 독일 불교단체의 공간을 빌려 법회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수련에 필요한 방석도 빌려야 했고, 부엌시설이 수련장과 달라 주방기기와 그릇 등도 거의 다 따로 준비해서 날라야 했지요. 준비과정이 어렵다 보니 유럽에 수련장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커졌지만 그만큼 수행할 거리도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원래 2년에 한 번씩 나눔의장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일 년 만에 하게 되어 휴가를 남겨두지 못해서 시작 전부터 걱정이 많았어요. 참가 취소가 늘고 게다가 400회라고 하니 부담이 가중되었지요. 하지만 평소 정토회 활동으로 소통하고 있던 두 분과 함께 하고 바라지 경험들도 있어서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두 분이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빈 곳을 메워 주어서 수련을 잘 마친 것 같습니다.

간식으로 준비한 400회 기념 축하 케이크♬
▲ 간식으로 준비한 400회 기념 축하 케이크♬

신재숙: 저는 지난 4월 깨달음의장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바라지에 참가했습니다. 내년에는 깨달음의장 바라지 총괄을 맡을 예정이어서 연습 삼아 한 번 더 하게 되었지요. 베를린에 오기 전부터 카톡방에서 공양 준비를 의논하고 아침에 삼백 배 정진을 하기로 의기투합을 했기에 큰 불안감 없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김지은: 한국에 있을 때 바라지장에 한번 참여해 보고 싶었으나 늘 다른 일에 밀렸어요. 주로 사무적인 일만 하다 보니 몸을 쓰는 봉사도 해보고 싶었고, 먼 타국에서 어렵게 나장에 참가하신 분들에게 그리운 한국음식을 공양으로 올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통일 독일의 수도에 처음 가서 수련장 부엌에서만 있다 왔어요. 그래도 공항에 내려 길을 못 찾아 헤맬 때 전화기를 빌려주고 직접 전화도 걸어준 세 명의 훈남 청년들, 기차 시간 놓칠까 같이 급히 움직이고 기차에 올라타서 행선지까지 확인해주고 내린 아가씨, 코에 피어싱을 하고 담배 냄새 풍기며 행운을 빌겠다던 순박한 표정의 아가씨, 어두운 기차역이 무서워 들어갔던 피자집의 친절한 주인아저씨…. 덕분에 베를린은 제게 따뜻하고 멋진 도시로 기억될 것 같아요.

이래서 바라지도 ‘수련’이구나

공양 바라지도 ‘수련’이랍니다. 매일 공양 바라지 명심문을 삼창하고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의사소통이 원활한 세 사람이 일을 하는데도 때때로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식사 준비가 끝나면 매번 심도 있는 나누기를 했고 이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베를린 나눔의장 공양 바라지 삼총사! 왼쪽부터 신재숙, 김지은, 이희정 님
▲ 베를린 나눔의장 공양 바라지 삼총사! 왼쪽부터 신재숙, 김지은, 이희정 님

이희정: 올해 처음으로 텃밭을 가꾸게 되었는데 제때에 씨를 뿌리지 못해 늦게 자란 깻잎을 먹지 않고 모았다가 절임을 해서 반찬으로 내어놓고는 마음이 이상했어요. 자식을 위해 끼니를 준비하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게 아닐까 싶었지요. 해외에서는 한국의 수련장과 달리 바라지들이 직접 준비해야 하는 게 많으니 이런 마음을 키우게 되는 듯해요. 좋은 음식이나 재료를 보면 수련생부터 생각이 나요.

공양 시간 맞추기 바빠서 깔끔하게 치우면서 요리하지 못해 핀잔을 많이 받았는데, 가능한 것은 미리 준비해두면 여유 있게 할 수 있음을 배웠어요. 잔소리를 하면서도 세심하게 챙겨주고 치워준 신재숙 님과 본인의 생각과 맞지 않아도 배려심을 내어 맞춰준 김지은 님 덕분에 사전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지만 큰 갈등 없이 행사를 잘 마치게 된 것 같아요. 두 분에게 감사한 마음이 정말 큽니다.

신재숙: 런던의 김지은 님은 이미 함께 바라지 한 경험이 있고 이희정 님은 다른 업무로도 자주 연락을 하는 사이여서 의사소통에 큰 문제는 없었어요. 다만 이희정 님은 휴가를 내지 못해 직장일로 이틀 동안 반나절을 비워야 했고, 김지은 님은 중간에 잠깐씩 해외사무국 지원 업무를 보아야 해서 저 혼자 준비를 할 때 분별심이 올라왔어요. 설거지나 정리 등을 보조할 일손이 없어서 쌓인 그릇과 지저분한 조리대가 눈에 띄면 저절로 불평이 나오기도 했지요. 제가 하기 싫은 일은 투덜대면서 한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어요. 앞으로는 이왕 하는 일이면 기분 좋게 아니면 조용히 하는 습관을 길러 볼 요량이에요.

대체로 빨리빨리 하는 한국인의 급한 마음이 저에게도 있는데 이번에는 너무 여유를 부린다는 지적을 받았어요. 반대로 상대가 조급함을 보일 때 왜 저리 서두르나 하는 분별심이 일어났고요. 대체로 여유를 가지고 성급한 행동을 자제하는 독일 사회에서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물이 든 것은 아닌가 싶어요.

김지은: 셋이 각자 할 일도 많았고 조금씩 실수도 했지만 웬만하면 서로 괜찮다, 잘했다 칭찬하며 즐겁게 일했어요. 다만 '이거 누가 그랬어?'하고 자꾸 물어본다거나 '수행자가 그래서야'라는 말이 들리면 마음이 불편했어요. 순하게 들으면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내 기준을 내세웠기 때문이겠죠. 공양 바라지 명심문을 정말 명심하면서 삼창하고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음식이 더 잘돼 신이 났어요. 나누기를 통해 평소 지나쳐 버린 습관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도 좋았습니다.

일석삼조 공양 바라지, 선착순입니다

구하기 힘든 한식 재료, 게다가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서로 의견을 많이 나눴습니다. 준비된 식재료로 어떻게 요리를 할까 의논하는 시간들이 즐거웠습니다. 늦가을이라 완성된 음식을 예쁘게 꾸밀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법사님의 권유로 다양한 색깔의 식재료를 사용하여 낭비 없이 멋지게 장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희정 님은 이 방면에 특출한 재능을 보여 연신 탄성을 자아냈는데 사진으로 보여 드릴 수 없어 아쉽습니다. 이희정 님은 칼질도 아주 잘해서 공양팀에서 '베를린 칼잡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김지은 님은 꼼꼼하게 레시피를 보충해서 거의 완벽하게 요리를 했습니다. 요리가 잘되었음에도 더 잘할 수 없나 궁리하고 수련이 시간에 맞춰 끝나지 않으면 음식이 식을까 안절부절 해서 '미세스 퍼펙트'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신재숙 님은 수련생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식재료 구매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고 유기농을 선호해서 다른 수련에 비해 식비가 많이 나오겠다며 같이 웃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삼총사가 되어버린 세 명의 바라지들. 이번 경험을 통해 왜 바라지가 수련이 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답니다. 일하면서 올라오는 자신의 분별심뿐만 아니라 상대의 분별심도 알아차리고, 나누기를 통해 서로 다른 입장과 마음과 생각을 알게 되면서 이해와 배려의 폭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베를린 인근 랑스도르프의 수련 장소. 가을 풍경이 고즈넉하네요~~
▲ 베를린 인근 랑스도르프의 수련 장소. 가을 풍경이 고즈넉하네요~~

수련을 마친 참가자들이 지금까지 먹은 수련 음식 중 최고였다는 찬사를 해주자 힘들었던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이런 맛에 바라지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마음의 때를 벗긴 듯 환해진 참가자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바라지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했고 맛있게 드셔주신 것에 감사했습니다. 수련도 하고 새로운 요리법도 배우고 칭찬까지 들으니 이것이야말로 일석삼조라 하겠습니다. 참가자 중 많은 분들이 다음 수련의 바라지에 참가하고 싶다며 방법을 물었습니다. 일단 깨장이면 깨장, 나장이면 나장을 마쳐야 그 수련의 바라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선착순이니 망설이지 말고 신청해 보셔요.

글_김지은, 신재숙, 이희정
정리_신재숙 (유럽중동아프리카 희망리포터)
편집_김지은 (해외지구)

전체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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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세 분이 하는게 쉬운일이 아닌데 대단하십니다. 준비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구요. 세 분께 감사의 인사올립니다.

2016-11-10 15:17:26

보리안

배를린 칼잡이, 미세스 퍼펙트, 유기농 메니아 님들~~~
너무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별명에 맞게 옆에서 본 듯 눈에 선~합니다요.
늦게 씨앗 뿌린 깻잎을 한 장 한 장 모은 마음! 찡하네요~

2016-11-08 08:22:44

이정인

한편의 진한 수행담을 읽은 느낌이예요~ 허심탄회한 나누기속에 들어있는 자기 성찰력들. 내공들이 대단하십니다. 세 분 아름답습니다!!!

2016-11-08 07: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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