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런던법회
저는 이 길이 뭇 생명을 살리는 길이라 믿습니다
런던법회 김지은 님 수행담

이번 유럽 정토회 소식은 국내 정토회 행정처에서 봉사하다가 남편을 따라 런던으로 이주해 해외 봉사를 시작한 김지은 님의 수행담입니다저는 우연히 작년 4월 해외 총무단 수련 참가를 위해 한국에 나갔다가 서초법당에서 김지은 님을 처음 만났습니다희망리포터를 하면서 이메일 교류만 했었는데 우연히 법당에 계셔서 잠깐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그때는 일 년 후에 제가 김지은 님의 수행담을 부탁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오랜 정토회와의 인연과 단단한 봉사 경력으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런던법회와 해외 사무국에서 잘 쓰이는 지은 님을 보며 국내 봉사는 연습 삼아그리고 해외 전법은 실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하는 일

정토회 해외지부사무국 지원팀장런던법회 제1기 불교대학 담당자 소임 맡고 있습니다지난 2015년 8월 남편이 파견되어 런던에 온 덕분에 해외사무국런던법회 도반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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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불교대학 도반들앞줄 오른쪽 끝이 김지은 님

 

정토회와의 만남

2002년 어느 날남편이 신문을 보다가 우리 법사님께서 법륜스님이 되시고 막사이사이상도 타셨네!” 하고 반가워했습니다대학 3, 4학년 때 비원포교원에 다니며 반야심경금강경 등을 배웠답니다그리고는 잊고 있었는데 2009년 가을에 남편이 즉문즉설 책을 읽어보라 했습니다머리가 펑 트이고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서초법당에 나가기 시작했고그해 11월에는 입재식에 참가했습니다.

2010년부터 2년 동안 남편 따라 상해에 가서 살게 되었지만 혼자 꾸준히 108배하고동영상 법문 듣고스님 책을 지인들에게 선물했습니다. 2012년 귀국해서 바로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11월에 깨달음의장에 다녀와서 봉사 결심을 굳히고는 2013년 1월부터 당시는 중앙사무처지금은 행정처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기 전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풍경자주 고성이 오가고 가끔은 아빠에게 맞기도 했던 엄마칭찬은커녕 늘 매서운 눈으로 지켜보다 화내고 야단치던 아빠언니와 여동생을 편애하고 오빠에게는 가혹한 폭력을 행사하시던 아빠그 속에서 나는 찬밥처럼 덩그마니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엄마가 넋을 놓고 슬프게 앉아 있으면 다가가서 조금은 과장되게 이런저런 칭찬을 한다엄마가 웃으면 나도 좋다집안 분위기가 너무 어두운 것 같으면 일부러 뭘 흘리거나 넘어져서 가족들이 비웃게라도 만든다엄마는 오빠와 내가 안쓰러운지 더 잘해주려 하신다그런데 자존심이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던 엄마는 밖에서는 남편 자랑자식 자랑자랑만 한다그리고 우리에게는 언제나 엄마 말대로 해엄마 말만 들어!” 나도 엄마처럼 아무에게도 내 얘기를 안 한다.’

대학생 때부터 저는 일부러 늘 웃는 표정을 지었습니다아빠 사랑 흠뻑 받으며 곱게 자란 이들이 부럽고천진하고 밝은 표정이 사람들의 호감을 살 것 같고무엇보다도 내 어둠을 내보여 자존심 상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그런데 아들이 어렸을 때 공원에서 넘어져 피가 나는데도 저는 웃는 표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상담공부에서 배운 것과 한계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부터 약 5년간 상담공부를 하면서 꽁꽁 숨겨두었던 내 얘기를 하고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부모님의 고단했던 삶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나는 정의롭다는 생각으로 그 반대편의 사람들을 얼마나 무시했는지그리고 얼마나 은근히 내 자랑을 해대고 있었는지도 알게 되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공감칭찬의사소통 훈련 등을 통해서 얻은 것도 많았지만 어느 순간이 되자 상담공부만으로는 머리와 가슴의 거리를 좁히는 데 한계가 있음이 느껴졌습니다저는 어려서부터 지역인종빈부학벌종교성적 취향장애 등에 대해 편견으로 차별해선 안 된다 생각했고 그렇게 살려 했습니다하지만 이 중 몇 가지는 생각하는 것과 진짜마음이 달라서 내가 이중인격자인가 싶기도 하고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감사하다는 인사는 잘했지만 깊은 감사의 마음은 잘 모르겠고성실하고 친절해서 사람들에게 호감은 사지만 마음을 열고 친해지기는 어려웠습니다보이지 않는 유리벽에 갇혀서 바깥세상을 향해 손짓하지만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조차도 닿지 못하고 혼자 동그마니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교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는데 종교의 비과학적인 요소들과 기복적인 요소들무조건 믿고 빌고 하는 게 안 돼서 역시 저는 종교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그러다 정토회에 다니게 되었고 정토회의 취지와 방향에 대해 알면 알수록 가슴 떨리는 환희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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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정토행자의 하루를 신설하고 8개 지부 희망리포터와의 첫만남을 가졌습니다뒷줄 오른쪽 첫 번째 김지은 님

 

수행 삶의 변화

처음 입재식에 참가한 다음 날 108배를 했을 때가 가끔 생각납니다어찌나 눈물을 많이 흘렸던지요아래턱이 덜덜 떨리다 아프기까지 했습니다그간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과 후회남편과 아들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오면서 가슴이 아프고 통곡이 쏟아졌습니다.

초기에는 절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비비 꼬며 1시간 동안이나 하기도 했습니다절을 며칠씩 빼먹기도 했는데 그러면 남편과 아들이 얼른 하라고 성화를 해댔습니다화내는 게 줄어든답니다처음 참가한 입재식에서 스님께서 절을 빚 갚기에 비유하시며 날마다 천 원씩 갚겠냐 아니면 나중에 빚잔치하겠냐’ 물어보셨던 말씀도 마음에 남았습니다계속 화를 내고 살아간다면 남편과의 관계가 어찌 될까아들은 어떻게 자랄까그게 빚잔치겠구나 싶었습니다.

절을 하면서 부모님을 떠올리며 많이도 울었습니다남편자식 모두 당신 뜻대로 조정하려던 엄마를 얄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아빠의 독선적이고 권위적이며 소리소리 질러대는 모습표독한 표정아빠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해소되지 못한 채 나를 흔들어댔습니다.

그런데 절을 하다 보니 엄마의 힘겨웠던 삶이 정말 가슴 저미게 느껴졌고온갖 정성을 쏟으며 우리를 키워주신 것에 대해 한없는 고마움이 느껴졌습니다아빠가 짊어져야 했던 가장으로서의 삶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왔으며 평생을 성실하고 청렴하게 직장에 다니면서 우리의 생계를 책임져주셨던 것이 너무나 고맙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아들에게 그러고 싶지 않은데 버럭 성질 내고 있는 내가 싫고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만 했는데이제는 부모님들도 내가 기억하는 장면들 속에서 결코 행복하지 않으셨을 것임을 잘 압니다그래도 우리 버리지 않고 이렇게 잘 키워주시고 노년을 평탄하게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내자 막혔던 관이 뚫린 것처럼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퐁퐁 솟구쳤습니다원망하는 마음에 가려져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들엄마아빠가 살뜰히 보살펴 주시던 장면들도 떠올랐습니다얼룩진 안경을 닦아낸 것처럼 세상이 밝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한편 늪에 빠진 제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내 감정과 생각은 외면한 채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세월공부도 어느 정도 하고 좋은 직장똑똑한 남자와 결혼해서 부모님의 인정은 받았지만 내 무의식은 여전히 사랑고파병으로 허기졌습니다부지런히 나를 갈고 닦아 잘난 사람으로 만들어서 바가지를 하나 쥐여주고는 만나는 사람마다 난 이렇게 부족한 게 없단 말이야그러니 나 좀 사랑해 줘인정해 줘.’ 하고 들이밀게 했습니다자기가 잘났으니 상대적으로 못난 사람이 있고그 못난 사람에게도 사랑은 받고 싶어서 예의 바르게 포장하고못났다 생각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그 진심을 들켜 미움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자가당착의 늪너무나 막막했던 그 늪.

그런데 깨달음의장에 다녀와서 이 늪이 서서히 말라가기 시작했습니다나는 그저 한 줄기 풀잎과 같은 존재임을 깨닫고 나서는 내가 아무리 치졸하고 유치한 감정을 느껴도 비난하지 않고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실수를 해도 괜찮다 따뜻이 다독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결국 내 바가지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바로 나뿐이었던 것입니다제 유리벽도 따라서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나눔의장에서 왕창 무너져 내렸습니다제게는 기적 같은 이런 변화는 날마다 머리 조아리고 부처님의 발을 드는 수천수만 번의 몸짓과 보시봉사 활동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정토회와 우리 가족

신혼 초 어느 날 남편에게 조금만 기다려밥 해줄게요.” 그랬더니 남편은 당신은 나에게 밥을 해주는 게 아니다일을 나눠서 하는 거다힘센 사람이 더 많이 하겠다.’면서 집안일의 70%가 넘게 자기가 하는 것이었습니다.셔츠 다림질도구두 닦기도 평생 할 거 아니면 아예 하지 마라나 버릇 된다.’ 그러더니 아직까지도 스스로 합니다잔소리도 없고 오히려 제 뜻을 존중해 줍니다경상도 집안의 남자들과는 다른 남편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대학생 때 스님께 영향을 받아서 그랬구나 싶고이 은혜를 갚을 기회가 주어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제가 108배를 시작했습니다엉터리로 절을 하고 있으면 아들이 옆에 와서 거 참하려면 제대로 합시다.” 하기도 하고 자기도 따라 했습니다어릴 때부터 명랑하고 선한 아이였는데 엄마가 평소엔 친절하다가도 가끔씩 불같이 화를 내면 놀라서 눈물만 뚝뚝 흘리곤 하더니 엄마의 화가 줄어드니까 좋았나 봅니다몇 년이 지난 후에 아들은 울 엄마광기 히스테리 다 어디로 갔나요?” 하며 장난을 쳤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정토회 청소년 단기출가에 참가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작년에 런던대학 파운데이션 과정에 합격해서 같이 왔지만 욕망과 서원에 대한 스님의 법문을 듣더니 나는 사람들이 다 좋다니까 욕망에 의해서 이곳에 온 것 같다정말 가슴 뛰는 일과 공부를 하고 싶다스무 살이 넘었으니 부모님께 신세 지지 않겠다.’며 빈손으로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아르바이트하며 몇 달 살아보고는 다시 입시 공부를 하겠다고 투자를 요청하더니며칠 전에는 불교대학에도 입학했습니다우리 아들은 이제 아들이 아니라 제가 후원자가 된 한 젊은 청년 같습니다이 친구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합니다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일 것이라 믿습니다이렇게 응원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스님과 도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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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3일 법회 후런던은 둘째넷째 주 일요일 불교대학 수업 후 법회를 한답니다.

 

서원

남편은 제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줄 알았답니다그 사이 종교를 가지면 좋을 것 같아서 권했지 이렇게 전적으로 봉사할 줄은 몰랐답니다주변의 지인들도 왜 돈을 안 벌고 그렇게 제 돈 써가며 힘들게 일하냐고 묻습니다우리 엄마는 지치지도 않고 가끔씩 저에게 거기는 정말 차비도 안 주니?” 하십니다너무 바쁠 때면 집안이 엉망이 되고가족들 밥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왜 이 일을 하지제가 정말 행복해졌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다른 분들도 기적같이 행복해지는 걸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더 많은 분들이 행복해지시기를 염원하기 때문입니다비록 우리 가족이 조금 불편을 겪을지라도 내 자식과 우리 후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남겨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저는 이 길이 뭇 생명을 살리는 길이라 믿습니다그리고 제게로 와 있는 것들을 나눔으로써 저도 더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런던에 온 이후 저는 매일 324배를 합니다나를 돌아보는 108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108런던법당 불사 원만성취를 기원하는 108낯선 런던 땅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던 고마운 런던법회 도반들우리 도반들은 불교대학이 개설되자 12명이나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2016년 새해맞이 3,000배 정진도 같이하는 등 수행도 열심입니다런던은 작년까지는 열린법회였다가 올 초에 수행법회로 승격되었습니다아직 법당이 없어 작은 극장이나 무용 스튜디오를 빌려 쓰고 있는데 하루빨리 법당이 생겨서 즐거운 수행도량이 되고 전법의 날개를 펼 수 있는 터전이 되기를 염원합니다. '런던법회화이팅!'

 

_김지은(유럽지구 런던법회 불교대학 담당)

담당_신재숙 희망리포터(유럽지구

 

런던정토법회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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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법회/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
불교대학/ 매월 첫째, 둘째, 넷째 일요일

전체댓글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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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거사

진솔한 이야기 고맙습니다. 아직 풀지 못한, 아니 얽혀매여 고통받고 있는 저와 우리 가족을 되돌아보게 하는 내용입니다. 님의 인생이 향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2018-05-29 04:26:44

대승행

온라인으로 소임으로만 뵙던 지은보살님의 수행담이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도반님이심이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런던법회 화이팅입니다~~~~????

2017-03-22 13:42:21

황소연

웃는 모습이 참 이쁜 지은보살님^^ 정말 행복한 정토행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정진할 힘을 팍팍 !!! 얻어갑니다^^

2017-03-22 12: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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