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02.05 부탄 현장 답사 3일째, 콜푸 게옥 방문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인간관계를 맺는 게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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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탄 트롱사 종각(Trongsa Dzongkha)의 콜푸 게옥(Korphu Gewog)을 방문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를 마치고 아침 공양을 한 후 7시 10분에 콜푸 게옥으로 출발했습니다. 숙소와 공양을 준비해 주신 쿵가랩텐 아님드라트샹 주지 스님께서 일행을 배웅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침 공양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잘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남은 일정도 무탈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콜푸 게옥으로 가는 길에 삼초링 일부 지역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인 녹차 하우스(GreenTea House)에 들렀습니다.

삼초링 주민들은 각자 소유한 땅에서 직접 녹차를 재배하고 수확한 후, 마을 공용 시설에서 차를 덖어 포장, 유통까지 합니다. 이들은 협동조합처럼 함께 녹차를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산한 녹차는 현재 부탄의 한 회사에서 전량 구매하여 해외로 수출하거나 부탄 국내에서 소비되도록 유통하고 있습니다. 팀푸에는 직영점이 있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농작물로 농사를 지으면 당장 먹거리는 해결되지만 현금으로 전환하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대 주민들이 점점 녹차 재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녹차 재배 규모는 약 97에이커지만, 판매가 늘어난다면 200에이커 이상으로 확장하고 싶다고 합니다.

차를 마셔보니 맛도 좋았습니다. 어제 만났던 삼초링 주민들과는 달리, 녹차 하우스를 운영하는 주민들은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한참 설명을 듣던 중 스님이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차를 만드는 것을 누구에게 배워서 하고 있습니까? 이 잎을 덖어 마시면 좋은 차가 된다는 것을 누구에게 배웠나요?”

“한국에서 온 사람이 알려줬습니다.”

“그 사람에게 배운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10년 정도 됐습니다. 부탄에는 비슷한 방식의 버터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오신 분이 녹차에 대해 알려주고, 제조법, 가공법, 유통까지 모두 알려주었습니다. 이 건물과 인프라도 그분과 정부가 제공해 주었습니다. 당시 부탄 정부와 협의해서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고, 그 덕분에 삼초링에서 녹차를 생산, 가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뜻밖의 답변에 함께 답사하던 일행 모두가 놀랐습니다.

“그렇군요. 지금은 운영하는 데 더 필요한 것은 없나요? 현재 유통으로 충분한가요?”

“네. 하지만 차가 잘 팔린다면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님은 지하에 있는 차 덖는 시설을 둘러보고, 여러 사람에게 맛보이기 위해 차를 조금 구매했습니다.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눈 후 갈 길이 멀어 이만 녹차 하우스를 나왔습니다.

“오늘 많은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도 맛있게 잘 마셨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콜푸 게옥으로 출발했습니다. 부탄에서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내려온 후 다시 올라가는 방식으로 산 정상을 넘어가야 합니다.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한 도로를 이동하다 보니 차가 속도를 내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게옥과 게옥을 이동할 때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콜푸 게옥은 총 5개의 치옥이 있는데, 오늘은 납지와 님송(Nimshong) 치옥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콜푸 1,2 치옥은 해발 1,300m에 위치하며, 기후는 따뜻한 편이고 총인구는 719명입니다. 납지 치옥 주민들은 대부분 쌀과 향신료인 카다몬을 재배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채소나 과일 재배도 가능하지만 먼 시장까지 가지고 나와 유통하는 것이 쉽지 않아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차는 깊은 마을길을 따라 계속 이동했습니다.

11시에 콜푸 치옥을 지나자 그 지역 주민들이 나와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 일행을 위해 초록색 풀을 바닥에 깔고 색색깔의 천을 덮은 위에 파라솔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스님께 방문 요청을 드리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마을도 스님의 방문이 필요합니다. 마을 정보를 적어왔으니 나중에 꼭 살펴보아 주십시오.”

“네, 고맙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스님은 마을 리더가 적어준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11시 20분에 드디어 콜푸 게옥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콜푸 게옥 센터에는 콜푸1·2, 납지, 님송1·2 치옥 등 5개 치옥의 리더가 와 있었습니다. 스님은 답사에 앞서 각 리더에게 학교 현황과 마을 문제에 대해 물었습니다.

"콜푸 치옥은 두 개의 치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구가 약 700명 가까이 됩니다. 그러나 도시로 나가는 인구도 많고 유동인구가 많아 학교는 없습니다. 납지 치옥의 학생 수는 15명, 님송 치옥의 학생 수는 약 55명입니다."

“콜푸 게옥의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까?”

“그전에는 줄어들고 있었는데, 제가 알기로 지금은 늘고 있습니다. 도로가 개설되고 공공시설도 늘면서 서비스가 좋아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님송 치옥의 리더가 어려운 점을 말했습니다.

“다른 지역은 크게 문제가 없는데, 님송은 관개 수로 시설이 없어서 농사 짓기가 어렵습니다.”

“파이프만 있으면 물을 가져올 수 있습니까?”

“님송 지역 자체에 물이 부족해서, 물을 다른 곳에서 끌어와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파이프, 모터 등 재료도 많이 들고 운반비도 많이 들 것 같습니다.”

“네, 그러면 님송의 물 문제 말고는 크게 없네요. 저기 앉아 계신 분은 보건소에서 나오신 분이죠?”

“네, 납지 보건센터에 있습니다. 납지에 위치해 있지만 인근 사람들을 전부 수용하고 있습니다. 기본 진료와 피 검사, 헤모글로빈 검사 등 기초 검사도 하고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의 치아 상태는 어떻습니까?”

“아주 나쁜 상태는 아닙니다. 1년에 한 번씩 치과의사가 와서 봐주고 있기도 합니다.”

“이 병원에서 출산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네, 4명 중 1명꼴로 이곳에서 출산을 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납지 치옥으로 가서 보건소와 학교를 둘러보았습니다.

두 건물 모두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었으며 정부가 인프라를 잘 갖추어 놓은 상태였습니다. 스님은 납지 치옥을 다 둘러보고 나서 함께 답사 중인 정부 관계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부탄에서 답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정부가 정말 구석구석 인프라를 잘 갖추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 산골까지 도로, 전기, 의료 등 지역 주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부분들이 정말 잘 갖추어져 있네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스님의 이야기에 중앙 정부 관계자, 트롱사 지역 정부 관계자, 그리고 마을 리더들까지 기뻐했습니다.

스님은 납지 치옥에 있는 절로 이동해서 점심 공양을 했습니다. 납지 절에서는 방문단을 위해 전통 공연과 점심 공양을 풍성하게 준비해 주었습니다.

점심 공양 후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3시에 님송 치옥으로 갔습니다.

님송 치옥에 도착하여 환영식을 하고 마을 사람들과 법당에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이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뭐가 제일 필요합니까?”

“물이 없어서 농사를 못 짓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물 문제가 가장 먼저 나왔습니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여러 사람이 물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방금 말씀하신 분, 해결책이 있습니까?”

“새로운 수로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만들면 좋겠습니까? 재료만 주어지면 여러분들끼리 직접 만들 수 있겠습니까? 다른 생각을 가진 분은 없습니까?”

“우리도 물탱크가 있었는데, 7년 전에 흙더미에 묻히는 바람에 그 후로 물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물탱크를 찾아보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그 물탱크로 충분했습니까?”

“네, 그런데 여름철이나 물이 많은 계절에는 좋았는데 그렇지 않은 시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수로를 개설하는 것이 더 좋겠네요. 여러분들과 대화를 더 하고 싶지만, 이후 일정도 있어서 이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스님은 님송에 있는 학교와 보건소를 둘러본 후 젬강으로 출발했습니다.

5시에 젬강 종각(Zhemgang Dzongkha)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이번에도 도지사와 종각 사람들이 나와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환영식을 마치고 스님은 정부 관계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치옥마다 환영 인사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줄이고 제가 주민들의 생활환경이나 농토 같은 것을 볼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습니다. 가장 어려운 가구나 물이 부족한 곳이 있다면 보여주세요. 좋은 것은 보지 않아도 됩니다. 어제, 오늘 답사하면서 정부가 곳곳에 신경을 써서 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을 둘러보면서 우리 모두 감동했습니다. 저는 부탄에서 우리가 도와줄 만한 열악한 곳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지역 상황이 좋다면 저희가 활동할 이유가 없습니다. 가장 열악한 곳을 보여주어야 우리가 활동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손님에게 그런 것을 보여주기가 안 좋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온 목적은 어려운 것을 보기 위해 온 것이니까요. 지금까지는 전통문화 체험 차원에서 참여했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네요. 다시 한번 요청드립니다.”(웃음)

“네, 잘 알겠습니다. 스님께서 짧게 방문하시는 동안 효율적으로 볼 수 있는 동선을 고려하다 보니 도로에서 가까운 지역들로 선정을 했습니다. 도로에서 멀어질수록 마을이 열악한 것은 사실입니다. ”

“네, 도로 위치와 상관없이 어려운 지역을 보여주세요. 제가 상황을 봐야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젬강을 선택한 이유도 부탄에서 어려운 종각 중 하나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님은 지역 정부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눈 후 4시간을 달려서 밤 9시가 넘어 오늘 숙소가 있는 판방(Panbang)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저녁 공양을 한 후 원고를 수정하고 휴식했습니다.

내일부터는 젬강 종각을 답사합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일 금요일에 있었던 즉문즉설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인간관계를 맺는 게 어렵습니다.

“저는 어릴 때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살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사람들 앞에서 야단을 많이 치셨어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으면 저는 말을 못 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창피함을 느끼고 아무 말도 못 합니다. ‘어차피 창피를 당했는데,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하며 인간관계를 끊어버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과 얘기할 때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말을 흘려듣는 편이며 뒷북을 많이 칩니다. 비난을 들으면 얼굴에 표정이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들과 가까이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릴 때 야단을 맞은 것이 상처가 되어,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서 그렇습니다. 트라우마가 있으면 누군가 조금만 야단을 치거나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움츠러듭니다. 이것은 피해 의식에 의한 일종의 정신적인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의에게 치료를 받으면 많이 개선될 수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아플 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듯이, 정신적으로 아픈 것에 대해서도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첫째, 치료를 받으면 완치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치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신과 치료를 받아볼 것을 권합니다.

둘째, 수행도 하나의 치료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병이 심할 때는 우선 전문의에게 치료를 받는 것이 응급 치료로는 더 효과적입니다. 수행적인 방법은 자기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는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미 지난 일인데도 그 당시의 생각을 계속하면 병이 됩니다. 이것을 수행적인 방법으로 치료하려면, 엄마도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가 나를 키워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만약 아버지마저 나를 버렸다면 어땠을까요? 야단은 맞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대신 고아원에서 자랐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한테 야단을 맞으면서도 아버지가 밥도 주고, 학교에도 보내주며 키워준 것이 더 낫지 않았어요? 이것을 먼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어릴 때는 아버지에게 야단맞은 것만 생각하며 아버지를 나쁘게만 생각했는데, 지금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그것은 부차적이었고, 아버지는 나를 키워준 정말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엄마도 자식을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아버지는 그래도 나를 끝까지 책임지고 키워주셨습니다.’

이렇게 질문자가 자신의 생각을 확 바꿔버릴 수 있다면, 아버지한테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보는 앞에서 창피하게 야단쳤다는 옛날의 상처를 계속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장애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어릴 때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른이 되었으니, 다시 돌아보면 ‘정말 아버지는 고마운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를 키워준 것을 100으로 본다면, 야단친 것은 10도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야단도 치지 않고 잘 키워주셨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버지도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야단을 좀 치거나 매를 좀 때린 것이 마이너스 10점이라면, 아버지가 나를 키워준 것은 플러스 100점임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아버지는 정말 고마운 분'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백일 동안 매일 절을 하면서 이렇게 기도해 보세요.

‘아버지, 야단을 좀 쳤다 하더라도 저를 키워주신 공덕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계속 절을 해보면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네, 병원에 가면 낫는다고 하셔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부터 병원에 가보겠습니다.”

“병원에 간다고 100퍼센트 낫는다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병원에 가서 얘기를 해보면, 약을 좀 먹어 보라든지, 상담을 받으라든지, 그 정도는 괜찮다고 할 것입니다. 전문의가 권유하는 대로 하면 좋겠습니다. 현재 얘기된 증상으로 볼 때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 겪은 상처로 인해 피해 의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약물 치료나 상담 치료를 하면 조금은 개선될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고마운 분이다’ 하는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며 기도를 꾸준히 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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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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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고마운 분이다’ 하는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며 기도를 꾸준히 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2024-03-26 19:37:53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4-02-26 13:37:52

수승행

스님 법문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자유로운 사람이 되고자 꾸준히 수행정진 하겠습니다~^^

2024-02-21 12: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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