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2.1 인도성지순례 12일째, 상카시아 회향식
“성지순례를 삶이 변화하는 계기로 만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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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성지순례 마지막 날, 상카시아로 이동하는 날입니다.

쉬라바스티에서 상카시아까지 이동하려면 8시간 동안 버스로 달려야 합니다. 버스 기사님들을 배려해서 새벽 3시에 출발하려고 일정을 잡았지만, 이번에는 버스 기사님들이 일찍 출발하자고 제안하여 버스는 새벽 2시 30분에 쉬라바스티를 출발했습니다. 한밤중임에도 천축선원의 대인 스님과 적조행 보살님이 순례단과 출발하는 스님을 배웅해 주셨습니다.

상카시아로 가는 길에 14대의 버스가 한 줄로 붙어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서로 무전기로 송수신하면서 소감도 이야기하고, 노래도 부르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한참 이동하는 중에 갑자기 몇 대의 차량이 행로를 이탈해서 국도로 가버렸습니다. 500명이 함께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는데, 순례단의 일부가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차를 세우고 행렬을 이탈한 버스 기사님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우리가 기다릴 테니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주세요.”

10여 일의 성지순례를 함께 마무리하려던 소중한 프로그램이었기에 스님은 일정이 늦어지는 것보다 함께 마무리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한 시간가량 기다리자 일부는 돌아왔지만 일부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버스 기사님들을 모아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왜 버스 14대를 한꺼번에 이동하자고 했겠어요. 차량 안에서 마무리하는 프로그램을 하려고 했던 거예요. 일찍 가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왜 이렇게 번다한 방식을 택하겠습니까? 제 뜻이 전달이 안 되었나 봐요.”

“스님, 저희는 이해했는데 이탈한 버스 기사님들이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스님은 다시 버스로 돌아와 전체 차량을 출발시키고, 순례단에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어제 공지하기를 상카시아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다 같이 노래도 부르고 소감도 이야기하면서 순례를 마무리하겠다고 했는데, 차량 일부가 다른 길로 이동하는 바람에 계획대로 안 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우리들끼리라도 일단 프로그램을 진행해 봅시다.”

차량별로 돌아가면서 노래도 하고, 소감도 이야기했습니다. 일본 국적의 케이타 님이 불러주는 아리랑, 성지순례를 마무리하는 시 한 편, 조장 소임을 하면서 처음에는 분별이 나서 힘들었지만 나중에 해탈을 했다는 사연 등 송수신기 속 이야기들을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어느덧 상카시아에 도착했습니다. 순례단은 탑 주변으로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식사한 자리를 정리한 후 가사를 입고 줄을 지어 상카시아 탑을 돌고 예불과 명상을 했습니다. 성지순례에서 하는 마지막 예불이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성지 안내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의 안내를 마치고 순례단은 경전을 읽었습니다.

경전 독송을 마치고 10분 간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을 마치고 스님이 제안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돌아가신 어머니 마야 부인을 위해 인드라천까지 가셔서 설법을 하셨어요.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이 느껴지죠. 우리도 이곳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불러보겠습니다.”

다 함께 익숙한 음률의 노래를 함께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오늘따라 이 노래의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이 절절하게 가슴으로 다가왔습니다. 각자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흐르는 눈물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노래를 마치고 회향식을 하기 위해 상카시아 담마 센터로 이동했습니다. 상카시아 담마 센터에서는 석가족 사람들이 환영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먼저 담마 센터 안으로 입장했습니다.

이어서 순례객 500명이 입장을 시작하자, 석가족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

너른 공터에는 따뜻한 짜이와 쿠키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순례단은 발우에 짜이를 담아 마셨습니다. 500명의 순례단을 환영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 준 석가족의 마음에 순례단은 감동했습니다.

이어서 석가족 40여 명이 인도 방식으로 예를 갖추어 스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축하 공연이 펼쳐지고 이어서 성지순례 회향식을 시작하려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회향식 법문을 멈추고 자리를 접어 담마빨라 스님이 머무는 태국 절로 순례단이 이동하도록 안내했습니다.

“비가 오더라도 혼란스럽지 않도록 수행자답게 이동하세요.”

스님의 안내에 따라 500명의 순례단은 서두르던 행동을 멈추었습니다. 법당 안에서도 법사님들의 안내에 따라 신속하고 질서있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다시 회향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보름 동안 고생한 순례단을 격려하면서 성지순례가 자기 인생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려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순례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깥 경계가 아닌 내 안을 보기 위함입니다. 인도에 오면 새로운 볼거리가 많습니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에 가보면 볼 것이 별로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와 생활 수준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호텔 안에 들어가 봐도 한국 호텔이나 미국 호텔이나 거의 같고 건물 모양도 같습니다. 다만 옛날 건물들이나 조금 모양이 다를 뿐 생활 모습은 거의 비슷해졌습니다. 옷도 비슷하고 모든 게 비슷합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인도에 오면 아직 전통이 많이 남아 있어서 다른 면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음식을 손으로 먹는 것도 다르고, 여러 가지 생활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눈으로 볼 것이 참 많습니다.

내 마음의 풍경을 보는 여행

이렇게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이 여행의 묘미이긴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여행은 내 마음의 풍경을 보는 것입니다. 바깥 경계의 다양함보다 더 다양한 것이 거기에 따라 일어나는 마음의 다양함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일반 여행은 외부 경치를 살피는 것이고, 순례는 다양한 보고 들음에 부딪혔을 때 내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느냐를 살피는 것입니다. ‘마음이 나쁘게 일어났다’, ‘마음이 좋게 일어났다’ 하는 것을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례가 수행이 되려면 마음이란 다양하게 일어나는 것일 뿐이라는 원칙을 고수해야 합니다. 마음은 선심이 일어나기도 하고, 악심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속에서는 악심은 일으키지 말고, 선심을 일으키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수행은 악심이든 선심이든 마음은 모두 경계 따라 일어나는 것임을 깨닫는 거예요. 경계 따라 일어나는 마음이라는 관점에서는 선심과 악심이 모두 같은 것입니다. 경계 따라서 꼭두각시가 몸을 움직이듯이 마음은 그냥 자동으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일어나는 마음에 너무 의미 부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자기 마음에 너무 의미 부여를 많이 합니다. 좋음이 일어나면 좋은 것에 막 의미 부여를 하니까 집착을 하게 되고, 나쁨이 일어나면 나쁜 것에 막 집착을 하니까 혐오를 일으키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마음이 지금은 이렇게 일어나네’ 하면 죽 끓듯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밖에 안 됩니다. 이렇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게 되면 더 이상 경계에 놀아나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의미 부여를 하게 되면 꼭두각시처럼 경계에 놀아나게 됩니다. 경계에 놀아났다 하더라도 금방 ‘아이고, 내가 또 경계에 팔렸구나!’ 이렇게 자기에게 돌이켜서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오는 관점을 가질 때 순례가 수행이 될 수 있습니다.

이치를 탁 깨닫는 것은 언하(言下)에 될 수도 있습니다. 말 떨어지자마자 될 수도 있고, 삼일 만에 될 수도 있고, 석 달 만에 될 수도 있고, 삼 년 만에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치를 확연히 깨닫는 것과 그것을 일상에서 적용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혀 모르고 있는 어떤 것을 탁 깨쳐서 밝아지는 것을 ‘근본 무지를 깨쳤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알고 있어도 순간적으로 경계에 부딪히면 탁 마음이 어리석어지거나 어두워져서 화가 나든 짜증이 나든 욕심이 납니다. 그러나 무지에 빠졌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무지를 ‘찰나 무지’라고 합니다. 이런 찰나 무지로부터도 자유로워지려면 자신을 자각하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남한테 욕도 한번 들어보고, 칭찬도 한번 들어보고, 고된 일도 해보고, 굶어도 보고, 쫓겨나기도 해 보고, 이런 것을 ‘만행’이라고 합니다. 여러 상황에 적응해 보면서 찰나 무지를 극복하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수많은 경우에 부딪혀도 여일함을 유지하는 것을 경험적으로 증득할 때 마음의 흔들림이 적어집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이야기할 때 4가지 단계를 얘기합니다. 첫 번째 깨달음을 ‘수다원’이라고 합니다. 수다원은 이치를 확연히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찰나 무지가 늘 작용하기 때문에 아는 것이 현실 속에서 실천이 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인과의 이치를 확연히 알게 되면 범부로 돌아가지는 않게 됩니다. 현실에서 안 될 뿐이지 오래 사로잡히지는 않습니다. 넘어지면 ‘아! 내가 넘어졌구나’ 하고 다시 일어날 줄 압니다. 이것을 계속 연습해서 넘어지지 않는 단계까지 가는 거예요. 이것을 네 가지 단계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첫 번째 단계인 수다원은 이치를 깨닫고 성인의 류에 들었지만 계속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인 사다함은 계속 넘어지다가 한 번만 더 넘어지면 다시는 안 넘어지는 경지입니다. 세 번째 단계인 아나함은 이번에 넘어지는 걸로 끝이 나는 경지입니다. 네 번째 단계인 아라한은 넘어지지 않는 경지입니다. 여러분도 이생에서 수다원까지는 이르러야 합니다. 일상에서 안 되더라도 이치를 확연히 알아서 안 될 때 안 되는 줄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안 되는 것을 합리화하지 않는 단계까지는 가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수다원과를 증득한 것을 두고 선불교에서는 초견성을 했다고 표현합니다. 초견성을 한 뒤에 만행을 하는 것을 ‘보림’이라고 합니다. 비유하자면 딱 성냥불을 켠 것을 ‘초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냥불은 훅 불면 다시 꺼져 버리잖아요. 그래서 ‘보림’을 하는 겁니다. ‘보림’을 성냥불에 비유하자면 여기저기 불을 붙여서 다시는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 더 이상 불이 꺼지지 않는 경지로 가는 것을 ‘보림’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성지순례를 하면서 무엇을 자각했나요?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좀 느끼셨나요?”

“네!”

“지금 이렇게 느꼈다 하더라도 한국에 가서 한 달만 살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아무 생각도 없어집니다. 성지순례 기간 동안에는 한국 돈으로 200원도 채 안 되는 10루피도 아끼면서 생활했잖아요. 그래서 한국에 가면 돈 쓰기가 어려워요. 인도 돈으로 계산해 보면 밥 한 끼 사 먹을 때마다 몇백 루피가 드니까요. 그런데 한국에 가면 한 달도 안 돼서 원래 습관대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자각한 것을 그대로 유지해야 합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왔다고 해서 인생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성지순례를 계기로 해서 변화의 출발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평소에는 변화하려고 해도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작심삼일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성지순례에 와서 자극을 세게 받고 나면, 본인만 변화하겠다는 마음을 내면 실제로 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삶이 변화하는 계기로 만들려면

아이들이 핸드폰에 너무 중독되어 있으면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멈추지 못합니다. 그럴 때 아이를 데리고 인도처럼 전화가 안 되는 곳에 열흘 동안 여행을 해보세요. 처음 이삼일은 핸드폰을 못 하니까 아이가 죽겠다고 난리지만 며칠 지나면 거기에 적응하게 됩니다. 이것을 계기로 해서 핸드폰 게임을 적게 하도록 하면 어느 정도 자기 조절이 됩니다. 여러분들도 한국에서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다가 여기 오니까 핸드폰을 안 보고 다니잖아요. 한국에 가서도 핸드폰을 계속 안 보면 유지가 되는데, 공항에 내리는 순간 핸드폰을 보기 시작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고, 아이들에 대해서도 그렇고, 남편에 대해서도 그렇고, 어떤 계기를 마련해주고 나서 변화를 요구해야 합니다. 그냥 무작정 변화하라고 요구하면 누구도 변화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적게 먹고 싶어도 잘 안 되잖아요. 그럴 때는 단식을 열흘 한 후에 적게 먹는 것을 실천하면 좀 쉽습니다. 왜냐하면 안 먹고도 살았는데 적게 먹는 건 쉽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성지순례가 변화의 계기가 됩니다. 여러분들도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지순례를 해야 변화가 됩니다. 보름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참고 있던 사람은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면세점에 가서 물건 구매부터 합니다. 물건을 사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때 자기 마음을 봐야 합니다. 마음이 훅 일어나면 ‘보름 동안 공부한 게 나무아미타불이네’ 하면서 좀 살펴야 해요. 용수철을 꽉 눌렀다가 놓으면 탁 튀듯이 욕구가 확 일어납니다. 그럴 때 잠시 멈추어야 해요. 물건 사는 걸 문제 삼지 말고 마음을 살펴서 욕구를 완화시키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도 순례에서 깨달은 마음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정토회에서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자’ 하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도 현실에서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인도성지순례에 참가했던 여러분은 본인이 결심만 하면 소비를 줄이는 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너무 돈 버는 이야기만 하지 말고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내 가게가 안 되는 한이 있더라도 소비를 줄여야 해요. 내 가게는 망해도 괜찮습니다. 지구가 더 중요하니까요. 내 가게가 망하고 지구가 산다면 우리는 능히 해야 해요. 한국처럼 사회보장제도가 조금씩 확대되는 이런 나라에서는 소비만 줄인다면 더 이상 노후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개개인들이 소비를 줄여나가야 합니다.

인도성지순례에 참가해서 ‘앞으로는 소비를 줄이며 살 수 있겠다’ 하는 자각이 일어났다면 남편과 아내, 자식에게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면 남편과 다툴 일도 없어져요. 남편이 가면 가고, 있으면 있고, 저녁에 들어오면 들어오고, 같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입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1등 할 필요도 없어요. 학교에 가는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아이가 학교에 안 가면 ‘혹시 법륜스님처럼 될지도 모르겠네’ 이렇게 생각하세요. 회사에서도 승진하려고 그 골머리 썩힐 필요가 없습니다. 승진을 시켜주면 올라가고, 안 시켜주면 밑에 있고, 나가라고 하면 정토회에 봉사하러 가면 됩니다. 이 말은 꼭 정토회에 오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가난하게 살라는 이야기도 아니에요. 관점을 이렇게 갖고 살면 인생살이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작년에 어떤 분이 성지순례에 왔다가 보름간 조장을 했어요. 회사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려고 하다가 ‘성지순례 갔다 와서 그만둬야지’ 하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조장을 하고 돌아가니 회사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해요. 요즘 한국 사회에서 회사원이든 공무원이든 상사가 아무리 무섭고 잔소리를 많이 해도 법륜스님보다는 덜 엄격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법륜스님과 함께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나니까 상사가 아무 문제가 안 되었다고 합니다. 직원들이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성지순례 조원만큼 말을 안 들을까요? (모두 웃음) 회사는 월급이라도 주는데, 성지순례에서 조장을 맡으면 돈도 안 줘요. 그래서 그분 이야기가 회사를 그만둘 각오를 하고 왔는데 성지순례를 하고 나서는 회사 다니는 게 즐겁다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법의 가피입니다. 성지순례 갔다 와서 부자가 됐다거나, 법륜스님 공덕으로 선거에 당선되었다거나, 이런 게 법의 가피가 아닙니다. 무직이라도 괜찮고, 심부름해도 괜찮고, 정토회에 와도 괜찮고, 남편이 술 먹어도 괜찮고, 남편이 늦게 와도 괜찮고, 이렇게 주어진 조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법의 가피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기

행복을 너무 멀리서 찾지 마세요. 눈이 보이고, 귀가 들리고, 말할 수 있고, 내 숟가락으로 내가 밥 먹고, 내 힘으로 똥 누고, 이것만 해도 엄청난 행복입니다. 병원에 가서 제일 힘든 게 자기 똥을 자기가 못 누는 거예요. 밥을 자기 손으로 못 먹어서 콧구멍으로 음식을 넣고, 옆구리에 관을 뚫어 똥을 받아내는 사람들이 병원에 가면 많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내 발로 걸을 수 있고, 내 손으로 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좋은 일이에요. 회사에서 나에게 일을 시키는 것도 내가 걸어 다닐 수 있고 손을 움직일 수 있고 눈이 보이니까 시키는 겁니다. 그런 것이 안 되는데 어떻게 일을 시킬까요? 이런 것을 딱 꿰뚫어 볼 수 있으면 단박에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는 재물로 오는 게 아니라 삶의 자유를 얻는 쪽으로 우리에게 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순례를 하는 거예요. 힘들지만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좀 더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성지순례를 한 공덕

그런데 내 개인만 자유로워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순례를 함으로써 보시도 많이 하게 되고 공덕도 많이 쌓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 와서 보니까 절이 가난해요, 호텔이 가난해요?”

“절이 가난해요”

“여러분들이 호텔에서 안 자고 가난한 절에서 잤기 때문에 절의 입장에서는 도움을 준 것이 됩니다. 특히 미얀마절, 스리랑카절, 캄보디아절, 이런 절에서 잠을 자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여러분들에게 공덕이 됩니다. 또 우리가 검소하게 절약하며 여행을 했기 때문에 돈이 좀 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따로 보시를 안 하더라도 성지순례 참가비에서 남은 돈이 모두 수자타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경비로 사용됩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제가 성지순례를 시작할 때부터 이렇게 계획을 했었어요. 성지순례에서 절약한 돈으로 학교 건물도 짓고, 아이들에게 밥도 주고, 옷도 입히고, 학용품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니 성지순례를 통해 개인적으로는 수행이 되었을 것이고, 또 우리들이 검소하게 순례를 한 결과는 이 나라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대신 여러분들이 고생을 좀 했습니다. 그래서 법륜스님하고 성지순례를 가면 안내는 충분히 잘 들을 수 있는데 조금 고생스러울 수 있어요. 고생스러운 걸 각오하려면 저를 따라오고, 그게 어렵겠다는 사람은 여행사를 통해서 가시면 된다고 알렸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딛고 무사히 성지순례를 잘 마쳤습니다.

똥이 방에 있으면 오물이지만 밭에 가면 거름이 되듯이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게 나한테는 수행이 되고 세상에는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지순례를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이런 내용이 좀 더 자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 합장을 하세요. 부처님의 마지막 게송을 제가 읊을 테니까 같이 들으면서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너희 곁에 남아있으리라. 세상은 덧없다. 부지런히 수행 정진해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이게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늘 이것을 가슴에 새기고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순례를 마치며 가사와 발우를 반납하는 의식을 했습니다.

“자, 지금부터는 15일 동안 부여했던 가사와 발우를 돌려받겠습니다. 이번에는 여러분들이 먼저 ‘가사와 발우를 반납하겠습니다’ 하고 말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잘 받겠습니다’ 하면서 받겠습니다.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주세요”

“가사와 발우를 반납하겠습니다.”

“잘 받았습니다.”

회향식을 마치고, 담마 센터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석가족이 인도 음식을 정성껏 차려 주었습니다.

“오늘 회향식을 하려고 무대도 만들고 음향도 세팅해 두었는데, 비가 와서 음향은 다 철거를 했어요. 무대는 남아 있으니 송수신기 채널을 맞춰서 노래잔치를 하겠습니다.”

스님은 순례단과 함께 노래잔치를 했습니다. 바이샬리 왕궁터에서 장기자랑 시간을 가질 때 자신의 재주를 못다 펼친 재주꾼들이 많았습니다. 송수신기가 손에 손을 이어 전달되면서 한 시간가량 쉴 틈 없이 노래가 펼쳐졌습니다.

노래잔치를 마무리하고 스님은 홍콩 불교신문 기자 크레이그 님과 인터뷰를 한 후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성지순례 마지막 날이 저물어갑니다. 내일은 델리로 이동하여 델리 박물관을 안내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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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이런 찰나 무지로부터도 자유로워지려면 자신을 자각하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남한테 욕도 한번 들어보고, 칭찬도 한번 들어보고, 고된 일도 해보고, 굶어도 보고, 쫓겨나기도 해 보고, 이런 것을 ‘만행’이라고 합니다. 여러 상황에 적응해 보면서 찰나 무지를 극복하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2024-03-26 15:56:58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4-02-17 14:00:02

김윤정

스님 감사합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

2024-02-11 16: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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