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인연 따라 모였다 흩어질 뿐입니다

보리수 활동은 주로 남성들의 영역일 것 같은데 소감문을 소개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은주 님은 소방 훈련을 진행하면서 부담스러운 마음, 하기 싫어서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한 생각 돌이켜서 해내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을 내려 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꿋꿋이 보리수 활동을 지속하는 모습이 참 감동적입니다.

언니의 권유로 시작된 정토회 활동

삼십 대의 저는 ‘내가 어디가 부족해서 결혼 못 하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고, 드디어 서른아홉에 동갑내기 상대를 만나 결혼했지만, 경제 능력이 없고 성격도 맞지 않아 7년 만에 이혼했습니다.

더 이상 결혼에 미련 두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마음으로 직장만 열심히 다니고 있을 때 언니가 불교 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불교대학 첫 수업부터 법륜스님의 명쾌하고 이치에 딱 맞는 말씀에 점점 빠져들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매료되어 수업을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2023년 연등달기 봉사 중(맨 왼쪽이 김은주 님)
▲ 2023년 연등달기 봉사 중(맨 왼쪽이 김은주 님)

불교대학 전법하다 만나게 된 남편

저는 소방 감리 자격증이 있어서 보리수 1기를 모집하는 글을 보고 지원하였습니다. 소방 감리는 건축물의 소방 공사가 적법하게 이루어지는지를 전체적으로 감독하고 관리하는 업무입니다.

제가 소방 감리 자격증을 따게 된 것도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친구 소개로 생각지도 않은 소방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사장님과 동료들 인상이 좋아 보여 입사하였고 경리로 근무했습니다. 그러다 사장님이 현장에 배치할 소방 기사가 필요하니 자격증 딸 준비를 해보라 하셨습니다. 퇴근하면 바로 학원에 가서 공부하며 소방 설비, 소방 감리 자격증을 차례로 딴 다음 기술자로 배치되었고, 현장 직원들을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실무 경험을 쌓았습니다.

소방 기술자로 근무할 당시, 불교대학 홍보 기간에 카카오톡 친구로 저장되어 있던 분들에게 홍보 안내물을 보냈습니다. 그중에는 제가 소방감리로 있던 거래처의 전기 소장님도 있었습니다. 평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즐겨 듣고, 정토회에 호감이 있던 그분은 이를 계기로 제게 적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시 그분은 암으로 오래 투병한 아내와 사별한 지 3~4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그렇게 만난 그분과 저는 새로운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소방 감리인이 된 것, 불교대학 전법을 하다 남편을 만난 것, 보리수 1기에서 소방 담당을 맡게 된 것 모두 인연 따라 이루어진 일인 것 같습니다.

부처님오신날 방재실 안전 요원들(가운데가 김은주 님)
▲ 부처님오신날 방재실 안전 요원들(가운데가 김은주 님)

한 생각 돌이켜서 해보기

사실 보리수 활동하면서 힘들 때도 있습니다. 특히 매달 한 번씩 소방 훈련을 제가 진행하는데, 부담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게다가 소방 훈련 후에 알아듣기 힘들었다 등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해서 사서 고생인가, 괜히 한다고 했나?’ 하는 생각에 더 일하기가 싫어집니다. 또 한꺼번에 일이 몰릴 때는 다 외면하고 싶기도 합니다.

평소 저는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미루고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가 닥쳐서야 허둥지둥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보리수 활동 덕분에 이런 업식이 일어날 때 한 생각 돌이켜 해내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이 들 때는 ‘이왕 시작한 일인데 하기 싫어하면 나만 손해지’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잘하려는 마음도 없고, 잘하려 하지 않으면 긴장되고 싫어하는 마음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꿋꿋이 보리수 활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 화

정토회에 들어와서 6년 동안 수행했음에도 여전히 화가 불쑥불쑥 일어납니다. 화가 나면 결국 분풀이를 해버리고 후회하니, 이 업식은 제가 평생 수행하며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한 번 화가 폭발하면 흉기를 들고 쫓아올 정도로 폭력적이었는데, 제가 그 화를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언니 역시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는데 정토회 활동으로 극복한 만큼 저도 수행 정진으로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보리수 정진에서 유수스님이 제게 주신 명심문은 ‘화내지 않습니다’이고, 월광법사님이 주신 명심문은 ‘남편에게 방긋 웃으며 네 알겠습니다’입니다. 또 향자재법사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불안해지는 내 마음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보리수 활동을 하면 매월 법사님들과 스스로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습니다.

요즘은 보리수 활동하러 주말마다 서울 오는 길에 언니와 함께 과천에 사는 엄마에게 들릅니다. 엄마는 24년 전에 암 진단을 받으셨고, 처음에는 수술해도 1년 안에 돌아가신다고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그동안 암이 여기저기 전이되어 수술도 여러 번 하시고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살아계십니다.

정토회를 만나기 전에는 늘 ‘엄마가 돌아가시면 나는 어떻게 사나’라는 생각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엄마와의 이별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인연은 모였다 흩어질 뿐임을, 수행하며 봉사하며 알게 된 덕분입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3년 10월호에 수록된 김은주 님의 보리수 소감문입니다.

글_김은주(원주지회)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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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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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엽

남들은 나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지요. 잘보이고 싶은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도반님 응원합니다!

2024-05-07 17:20:49

자재왕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보리수 봉사하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24-05-07 14:06:57

현광 변상용

도반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정토회관이 우리의 힘으로 굴러가는군요.
생각지도 않던 소방 자격증에 남편과의 만남에..참으로 오묘한 인연입니다.
저 역시 욱 하는 걸 자주 맞닥뜨립니다. 빈도와 강도가 예전보단 적어졌다곤 하나 여전함을 알기에 그래서 꾸준히 수행을 합니다.
멋진 수행담 잘 들었습니다~

2024-05-07 13: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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